참성단

 

[참성단]신흥 야구 명문 수원 유신고

수원 유신고가 청룡기 전국야구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경사라는 말로는 모자람이 있다. 쾌거다. 유신고는 이달 초 황금사자기에서도 우승했었다. 두 대회 연속 우승이다. 이런 패기라면 남은 대통령 배와 봉황기 배까지 전국대회 4관왕 위업 달성을 하지 말란 법도 없다. 전력이 역대 최고라서 더 그렇다. 야구는 '투수 놀음'이다. 유신고에는 선발진, 계투진, 마무리의 조화가 완벽한 막강 투수진이 존재한다. 이번 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좌완 허동윤은 5경기 21이닝을 던지면서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는 인상적인 투구를 했다. 제2의 류현진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선수층도 두텁다. 여기에 극성맞은 동문의 후원까지, 여건도 좋다.그동안 야구 하면 '인천야구'였다. 인천은 한국 야구의 본산이다. 50·60년대 동산고와 인천고를 앞세워 고교야구를 평정한 '야구의 도시'였다. 70년대 들어 서울과 경북 부산 광주지역 고교 야구팀이 창단되면서 침체기를 맞기는 했지만, 여전히 강하다. 이제 그 명성을 수원 유신고가 이을 태세다.유신고의 전국대회 우승 의미는 크다. 그동안 수원은 야구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70년대 남창, 신풍, 세류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야구부가 운영되긴 했지만, '미완의 대기'는 모두 인천이나 서울로 빠져나갔다. 이들을 받아 줄 중·고등학교 야구팀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1984년 유신고가 야구부를 창설했다. 초창기엔 선수 부족 등으로 뚜렷한 성적을 내지 못했다. 2005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에서 한 번 우승한 적이 있지만, 그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에 기적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열심히 뛴 선수들의 덕이지만, 이들을 제대로 키워 낸 이성열 감독, 무한한 지원을 아끼지 않은 동문의 힘도 컸다.유신고 야구는 올해 창단 35년을 맞는다. 연륜만 따지면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다. SK 와이번스의 최정·최항 형제, kt wiz의 유한준·김민, 두산 베어스의 정수빈 등 걸출한 스타 선수도 배출했다. 유신고의 전국대회 우승을 발판으로 수원, 나아가 경기 야구의 부흥을 기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수원을 연고지로 하는 프로야구 kt wiz도 이에 한몫할 것이다. 열렬한 야구팬으로서 너무도 들어보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신흥 야구 명문 수원 유신고' 말이다. 이제 광주일고, 경남고, 군산상고가 하나도 부럽지 않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7-18 이영재

[참성단]80대 로커의 도전정신

일렉트릭 기타(일렉기타)가 처음 선보였을 때 음악계에서는 일렉기타를 악기 범주에 포함시키는 게 타당한지를 놓고 설왕설래 말이 많았다고 한다. 고전 현악기는 물론 어쿠스틱 기타에 필수적인 울림통이 없는 '요상한' 악기였기 때문이다. 금속현의 진동을 전기신호로 바꿔 소리를 증폭시키는 방식이 당시로서는 적잖이 낯설었던 듯싶다. 하지만 이제 일렉기타는 현대 대중음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악기의 강자로 자리 잡고 있다.일렉기타의 매력은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다양한 음색과 갖가지 특수 주법을 꼽을 수 있다. 실제로 밴딩, 팜뮤트, 라이트핸드 등 일렉기타의 주법은 이름만 외우기도 벅찰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클래식 기타의 하모닉스 주법을 응용한 피킹하모닉스 주법처럼 일렉기타에 특화된 주법들도 속속 개발되고 있다. 이들 주법은 대부분 기타에 '미친'(?) 사람들이 개발했을 터이다. 밤낮으로 기타를 끼고 살면서 이리 쳐보고 저리 뜯어보다가 "어! 이런 소리도 나네?" 하면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주법으로 발전시켰지 않았나 싶다.우리나라에도 이처럼 기타에 미친 사람이 있다. 한국 록음악의 대부 신중현이다. 그는 일렉기타의 매력을 대중에게 알린 최초의 뮤지션이라 할 수 있다. 그의 히트곡 '미인'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기타 리프(Riff, 짧은 선율적 악구)는 한번 들으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이다.그가 며칠 전 81세의 나이로 새 앨범을 발표했다. 지난 2009년 펜더사에서 특제 기타를 헌정받은 것에 대한 '헌정 기타 기념 앨범'이다. 그가 펜더기타를 헌정받은 것은 에릭 클랩튼, 제프 백 등에 이어 세계에서 여섯번째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2006년 은퇴 공연 이후 연주활동을 접었던 그가 펜더의 헌정을 계기로 새로운 주법을 개발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삼삼(33) 주법'으로, 왼손의 검지와 중지, 새끼손가락 등 세 손가락을 주로 사용하는 주법이라고 한다. 기타 실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의 아들 신대철도 "33주법을 하기 위해서는 기타를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며 포기했을 정도라고 하니 상당히 파격적인 주법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그는 이 주법을 완성시키기 위해 손 마디마디에 각인된 기존의 주법을 과감히 버렸다고 한다. 이번 앨범도 이 주법으로 녹음했다. 80대 로커의 도전정신이 새 앨범에 어떻게 녹아있을지 사뭇 궁금하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07-17 임성훈

[참성단]고령자 운전제한

미래학자 애덤 한프트는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를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증후군'으로 불렀다.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서 주인공인 71세의 데이지가 부주의로 차 사고를 낸 것에 착안한 것이다. 그는 2000년 초반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가 미래에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으로 예견했다. 그의 말대로 우리나라 교통사고 사망자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은 고령 운전에서 비롯될 만큼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고령 운전자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갈수록 사고 빈도가 잦아지고, 한번 사고가 나면 대량의 사상자가 발생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래서 미국에선 운전할 수 없음에도 운전대를 잡는 노인들을 가리켜 '살인자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80세 이상 운전자에 의한 사망자가 매년 100명 이상 발생한다고 한다. 심지어 90세 이상 노인이 운전하는 차 사고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부터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면허 갱신 주기를 5년에서 3년으로 요건을 강화했다. 이미 일본은 70세 이상 모든 운전자의 면허 갱신 주기를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했고, 뉴질랜드는 80세가 되면 면허를 자동으로 말소시킨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그제 "운전능력 평가에서 떨어진 노인은 고속도로 운전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운전능력 평가 절차 등을 거쳐 고속도로 운전을 제한하거나 첨단안전장치 장착을 의무화하는 등 '조건부 면허 제도'를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제도는 이미 미국·호주·뉴질랜드 등에서 시행 중이다. 미국의 경우 고령 운전자에게는 야간운전금지, 고속도로 운전 제한, 운전 가능 장소 제한 등을 실시하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운전 가능 장소를 제한해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해 노인 인구 비중이 15%를 넘기면서 이미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인의 면허소지자 비율도 9.4%로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와 비례해 고령자 운전사고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택시나 택배 기사처럼 생업을 위해 고령임에도 운전대를 잡는 분들도 꽤 많다.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운전에 제한까지 둘 경우 이를 선뜻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노인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충분한 논의와 면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7-16 이영재

[참성단]'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서구의 직장문화는 수평적이고 개인주의적이다. 냉정한 고용계약이 바탕에 있다. 미국 회사의 고용 계약서에는 '당신은 임의로 고용된 근로자이며 이는 회사가 당신을 언제든지 이유 없이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무시무시한 문구가 있다. 취업 리얼리티쇼를 진행했던 트럼프는 "You're Fired(넌 해고야)"라고 소리쳤지만, 실제로는 회사가 직원을 자르는데 큰 소리칠 이유가 없다. 출입증을 정지하고 컴퓨터 로그인을 막거나, 조용히 불러 통보하면 그걸로 끝이다. 사정이 이러니 직원들도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태도로 회사와 상사를 대한다.반면에 유교적 전통이 유장한 우리나라 직장문화는 이와 사뭇 달랐다. 고용계약서는 존재하지만 한번 직장은 평생직장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회사도 직원들을 가족으로 여기며 범죄적 해사행위가 아니면 고용을 유지했다. 집안마다 가풍이 다르듯 회사마다 고유한 사풍으로 직원들을 통제하는 폐쇄적 구조는 직급에 따른 수직적 상명하복 직장문화를 만들어냈다. 상사의 지시가 부당해도, 폭언은 물론 폭행을 당해도 조직을 위해 참고 넘기는 걸 미덕으로 여겼다.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평생직장 개념이 깨지는 중이고 고용의 형태도 다양해졌다. 노동조합의 권력은 정부와 정당만큼 강력하고, 무엇보다 신세대 직장인들의 근로의식은 유교문화와 거리가 멀다. 직원들에게 막말하고 부당한 지시를 남발하는 상사들은 직원들의 요시찰 대상이 된다.이런 시대적 추세에도 여전히 직장 갑질을 일삼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오늘부터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 즉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됐다. ▲사용자나 근로자가 직장에서 우월적 지위나 관계를 이용해 ▲업무상의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는 금지된다. 가해자 대신 사용자가 처벌받는다. 직장내 괴롭힘이 없도록 직원들 교육을 똑바로 시키라는 뜻이다.폭력적인 직장문화를 바꾸고 이를 법으로 강제하는 일은 필요한 조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직원을 존중하는 자발적 환경변화일 것이다. 귀하게 얻은 인재를 직장내 괴롭힘으로 잃을 바보 같은 기업은 없다. 천지에 청년 실업자가 널려있고 이들을 값싸게 고용하는 현실이 직장내 폭력의 근본적 원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7-15 윤인수

[참성단]사라지는 주유소

세계 최초의 주유소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나 지붕이 있고 넓은 주차시설과 급유기를 갖춘 현대식 주유소는 1907년 스탠다드 오일사가 워싱턴주 시애틀에 세운 게 최초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주유소는 서울역 앞에 세운 '역전주유소'로 알려졌지만, 이것저것 함께 취급하는 석유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펌프식 주유기를 갖춘 최초 주유소로는 1910년대 후반 자동차 판매상 테일러가 서울 조선호텔 건너편에 세운 게 처음이라고 한다.6·25전쟁 후에도 주유소가 없어 장거리 여행 때 차에 기름통을 싣고 다녔다. 본격적으로 주유소가 들어선 건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부터였다. 한국 최초 현대식 주유소는 1969년 한국석유공사가 홍대 인근에 설립한 '청기와 주유소'다. 그 후 자동차가 보급되고 주유소가 떼돈을 버는 사업으로 소문나면서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주유소 사업을 발판으로 성공한 사업가들이 많았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석유를 몰래 들여와 팔고, 더러는 가짜 휘발유를 팔아 폭리를 취하기도 했다. '주유소 사장님' 소리를 들으면 그 동네에서 영락없는 알부자요 유지였다. 주유소는 부의 상징이었다.'대를 이어 먹고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호황을 누렸던 주유소가 요즘에는 '황금 알 못 낳는' 사양산업이라고 경인일보가 보도했다. 주유소는 1991년 거리제한이 완화된 뒤 3천382곳이 2010년 1만3천3곳으로 4배 가까이 급증했다. 특히 2011년 알뜰주유소까지 도입되면서 주유소 간 피 말리는 생존경쟁을 벌여야 했다. 무료 세차는 기본이고 휴지·생수 같은 물품공세를 편 것도 이때다. 과당경쟁과 친환경 차의 증가 등으로 수익성이 크게 악화하면서 전국적으로 매년 150여 개 주유소가 운영을 중단하거나 문을 닫고 있다고 한다.폐업 비용이 부담스러워 임시휴업 중인 주유소도 전국적으로 600여 개에 달한다. 주유소만으로는 유지할 수 없어 전기차 충전부터 택배, 편의점까지 첨단·편의·공간 활용 등의 키워드를 담은 주유소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주유소는 이제 더는 기름만 넣는 곳이 아니다. 여관은 호텔·모텔에 밀려 사라지고, 동네 극장은 멀티플렉스와 텔레비전에 밀려 전성시대를 일찍 마감했다. 이제 주유소도 우체통과 공중전화처럼 찾는 이 없는 신세가 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7-14 이영재

[참성단]살찐 고양이 법

역사학자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문학과지성사 간)은 1730년대 파리 생 세브랭가의 한 인쇄소에서 일어난 고양이 무더기 학살사건이 프랑스 대혁명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다루고 있다. 인쇄소 주인이 키우는 고양이들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견습공들은 고양이로 상징되는 주인을 재판하고 자백을 받아 사형시키는 극을 만들어 법과 사회 질서에 분노를 공유했고 결국 집단적 저항으로 이어져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양이는 탐욕에 찬 부르주아를 일컫는다.미국에선 부자들을 '살찐 고양이'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모든 부자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욕심 많은 기업인이나 은행가 등 부정적 의미의 배부른 자본가들이다. 우리도 그렇지만 어느 나라건 '부자=욕심'이란 공식이 각인되어 있는 듯하다. 부자가 존경받기란 그만큼 어려운 세상임은 분명하다. '살찐 고양이'는 1928년 프랭크 켄트의 저서 '정치적 형태'에 논의된 후,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 미 금융회사 경영진들의 도덕적 해이가 부각 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직원들은 구조조정과 임금 삭감에 내몰려 있는데 정작 경영실패 책임을 져야 할 경영진은 거액의 연봉과 퇴직금을 챙겨갔기 때문이다. 이때 제기된 것이 '살찐 고양이 법'이다. 경영진들이 받아가는 연봉이 근로자와 그들이 한 일에 비해 적정한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이들의 연봉을 규제하자는 것이다. 개인이 벌어들이는 연 소득에 상한선을 정하고, 이 상한선을 최저임금에 연동시키는 '최고임금제' 같은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지난 2016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민간 대기업 임직원들은 최저임금의 최고 30배, 공공기관 임직원은 10배,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는 5배가 넘는 임금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최고임금법'을 대표 발의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경기도가 이를 도입할 모양이다. 산하 공공기관 임원의 연봉을 최저임금의 7배인 1억4천만 원 이내로 제한하는 조례안이 16일 도의회 본회의에서 의결을 앞두고 있다. 부산 서울 제주 광주 등 요즘 '살찐 고양이 법'이 지자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취지는 이해할 것 같은데 문제는 실효성이다. 근대민법의 3대 원칙 중 하나인 '계약자유의 원칙'이 무력화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그 연봉에 유능한 인재를 구하는 게 그리 만만치가 않다. 유행을 뒤쫓다 후에 낭패를 당하는 걸 우리는 종종 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7-11 이영재

[참성단]평화학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이 남편으로부터 무차별 폭행당하는 동영상이 공분을 자아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주여성이 폭행을 당하는 내내 '엄마'를 부르며 울부짖던 두 살 아기가 자꾸 눈에 밟힌다. 주먹과 발길질을 피해 얼굴을 감싸고 웅크린 엄마를 조막손으로 보듬는 듯한 모습을 보는 것은 차라리 고문이었다. 폭행이 멈춘 뒤 엄마 품에 안긴 아기에게 엄마 품은 과연 평화로웠을까?'평화'의 반대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아마도 많은 이들이 '전쟁'을 꼽을 듯싶다. 그러나 국내 평화학 박사 1호인 정주진 박사의 설명을 접하다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그는 저서 '평화,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에서 평화의 반대는 '폭력'이라고 정의한다. 이어 폭력의 유형을, 가정폭력이나 학교폭력처럼 폭력이 사람에게 직접 가해져 바로 피해가 발생하는 '직접적인 폭력'과 사회의 구조를 통해 가해지는 '간접적인 폭력', 문화를 통해 이뤄지는 '문화적 폭력'으로 구분한다. 전쟁은 직접적 폭력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폭력의 한 종류다. 가장 위험한 폭력이기에 평화의 반대말 하면 전쟁부터 떠올리는 것 같다.그렇다면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은 단지 '직접적 폭력'의 희생자일까? 평화학에서 말하는 간접적 폭력은 사회 구조가 약자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말한다. 재산이 없거나 급료가 낮은 사람이 신용도 때문에 은행 대신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려야 하는 것도 일종의 간접적 폭력으로 설명한다. 유색인종, 여자, 어린이, 장애인, 외국인 등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은 문화적 폭력이다.평화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이주 여성이라는 사회적 약자 신분에 물리적 폭행까지 당한 피해여성은 직접적 폭력은 물론이고 간접적인 폭력, 문화적 폭력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몸을 추스를 경황조차 없는 엄마의 품으로 뛰어든 아기야말로 이런 복합적인 폭력문화가 낳은 최대의 희생자다. 폭력은 워낙 파괴적이기에 아기는 엄마 품이 평화를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작 두 살배기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으리라.정 박사는 평화학에 대해 '평화를 이루는 평화적인 방법을 연구하고 실천하는 학문'으로 요약한다. 큰 전쟁을 치렀음에도 우리나라에는 아직 이 학과가 없다. 국가 차원의 안보적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았고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 갑질로 많은 이들이 고통받는 지금이야말로 평화를 '배워야' 할 시기가 아닌가 싶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07-10 임성훈

[참성단]친일 청산 프로젝트

히말라야 시다(Himalaya cedar). 우리나라에서는 개잎 갈나무, 설송나무라고 부른다. 히말라야가 원산지다. 이식이 쉽고 잘 자라며 공해에 강해 가로수 정원수로 인기가 높다. 파키스탄의 국가 나무이기도 하다. 레바논 국기에는 히말라야 시다 사촌격인 레바논 시다가 그려져 있다. 금송(金松), 아라우카리아와 함께 3대 조경수로 꼽힌다. 우리나라에는 일제 강점기에 들어왔다. 비록 외래종이지만 학생들이 나무처럼 하늘을 향해 바르고 씩씩하게 자라길 희망하는 마음에 교목으로 지정하는 학교도 있다. 나무가 그만큼 친숙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주 큰 나무는 줄기 지름 3m에 키가 60m에 이른다. 위풍당당하다.이 나무가 수난을 당한 적이 있다. 2005년 봄, 당시 문화재청장 유홍준이 전북대 박물관을 찾았다가 정원에 서 있던 30년 넘은 히말라야 시다를 본 게 화근이었다. 그는 히말라야 시다가 친일 잔재라며 베어 버리라고 지시했다. 당시 끗발 좋은 '스타 청장'의 말 한마디에 애꿎은 나무는 '친일'딱지가 붙은 채 '댕강' 잘리고 말았다. 그때 그 나무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도 하늘을 향해 건강하고 행복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것이다.경기도 교육청이 최근 학교 내 친일 청산 프로젝트에 나섰다가 구설에 올랐다. 도내 2천300여 초·중·고교 학생과 교사를 대상으로 '학교생활 속 일제 잔재 발굴 조사'를 실시하면서 그동안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용어, 즉 화이팅(Fighting), 수학여행을 청산 대상 일제 잔재로 지목한 것이다. 경기 교육청은 2016년에도 동·서·남·북 등 방위명과 제일, 중앙 등의 서열화된 단어가 일제강점기의 잔재라고 보고 이를 청산하기 위해 '학교명을 부탁해'라는 프로젝트를 실시했다가 흐지부지 끝낸 적도 있다. 이에 호응한 학교는 고작 5개교에 불과했다. 이번 발굴조사는 친일 청산 프로젝트 시즌 2인 셈이다. 취지는 뭔지 알겠는데, 효과는 처음부터 미지수였다. 학교 현장에 아주 깊숙이 스며든 문화가 일제 잔재인지 학생은 물론이고 교사조차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교육청, 교육감, 교장, 중학교, 고등학교, 체육, 축구, 야구, 칠판이란 용어도 모두 일제 잔재로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다. 단발성 이벤트로 진행하는 친일청산 프로젝트는 이제 그만하자. 하면 할수록 머릿속은 혼란스럽고 마음은 점점 더 쓸쓸하고 허탈해진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7-09 이영재

[참성단]한·일 경제전쟁

"한 번 뛰어서 곧바로 대명국(大明國)에 들어가 우리나라(일본)의 풍속을 4백여주에 바꾸어 놓고…." 임진왜란 직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통신사를 통해 선조에게 전달한 국서의 내용이다. 그러면서 선조가 직접 자신을 알현할 것을 요구했다. 명을 칠테니 자발적으로 길을 내달라는 정명가도(征明假道)의 논리는 조명 동맹에 대한 명백한 선전포고였다. 임진왜란은 예고된 전쟁이었고, 조선은 당쟁으로 허송세월했다. 이런 나라 탓에 조선 백성들은 일본에 귀무덤, 코무덤을 남겨야 했다.외침에 이골난 한민족이지만, 일본에 대한 역사적 반감은 특별하다. 임진왜란과 일제식민지배로 두번이나 나라가 절단난 역사를 민족 전체가 공유하고 있다. 임란은 성웅 이순신과 동맹인 명의지원으로 그나마 국권을 지켜냈다. 하지만 이순신도 없고 동맹도 없었던 대한제국은 국권을 강탈당했다.일본이 우리를 향해 사실상 경제전쟁을 선포했다. 핵심 소재 수출제한으로 삼성 등 한국 반도체 기업을 정밀 타격했다. 일본이 소재, 부품, 장비 공급을 제한하면 한국 기업들은 공장을 세워야 한다. 일본의 의도는 명백하다. 한국 정부의 위안부 합의 백지화, 한국 법원의 강제징용 피해보상 결정에 대한 반격이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일본의 가해역사는 종결됐음을 인정하라는 강요다.한국에서는 반사적으로 반일 감정이 일고 있다.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경기도교육청은 '수학여행'을 일제용어라며 청산하겠다고 한다. 감정적으로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과연 대응의 방식으로 옳은지는 확신하기 힘들다. 여당의 한 의원은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서 의병을 일으켜야 할 일"이라고 했다는데, 나라는 어디가고 의병부터 찾는단 말인가. 일본의 경제전쟁 선포에 국력을 모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국가의 책무가 있다. 무능했던 선조도 일본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통신사를 파견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아니라 정부의 통상전문가가 일본을 갔어야 했다.국제사회에서 국력의 뒷받침 없는 선린우호 관계는 사상누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우리 기업에 피해가 발생하면 우리 정부도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정부의 대응이 우리 국력의 현실을 보여줄 것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7-08 윤인수

[참성단]달 착륙 50주년

기억난다. 1969년 7월 20일. 일요일이었다. 동네에 TV가 있는 집은 딱 한 곳이었는데, 그 집에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마음씨 좋은 집주인은 싫은 내색 없이 오히려 어른들에게 이날을 기념하자며 막걸리를 한 사발씩 따라 주었다. 우리는 모두 TV 앞에 모였다.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실황중계를 보기 위해서다. 흑백 TV를 통해 달에서 껑충껑충 뛰던 사람이 닐 암스트롱이고, 그가 달을 밟으며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고 말했다는 것은 후에 알았다. 그때는 당장 달에 방아를 찧는 토끼가 살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충격이었다.우주 탐사의 역사는 미·소 체제 경쟁의 역사다. 1961년 구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에서 108분 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돌아왔다. 미국은 큰 충격에 빠졌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달 정복을 선언했다. 아폴로호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리고 미국이 달을 선점했다. 하지만 경쟁자가 없으면 기록은 늘 뒤처지게 마련이다. 경제 악화로 러시아는 우주에 투자할 여력을 잃었고, 미국도 재정 건전성 등을 이유로 항공우주국(NASA)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우주는 점점 기억에서 사라졌다.우주경쟁에 다시 불을 붙인 건 미국의 사업가 데니스 티토였다. 그는 2001년 러시아에 2천만 달러를 내고 민간인 최초로 소유스 우주선을 탔다. 이후 18년간 총 7명의 민간인이 사비를 털어 우주로 나갔다. 이를 본 기업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저스의 블루 오리진, 버진 에어라인 창업주 리처드 브랜슨의 버진 갤럭틱, 테슬라의 창업주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가 우주 항공사업에 뛰어들었다. 오는 20일은 인류가 달에 첫발을 디딘 지 꼭 50년이 되는 날이다. NASA는 이를 기념해 지난달 '아르테미스'계획을 발표했다. 2020년 아르테미스 1호를 발사해 달 궤도 무인비행을 하고, 2022년 2호로 우주인을 싣고 달 궤도 비행을 한 뒤, 2024년 아르테미스 3호로 유인 달 착륙을 하며 최종적으로 달에 인간이 머물 기지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 속 사냥과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를 상징하듯, 첫 유인 달 탐사 우주인으로 여성을 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이들의 목표는 달이 아니다. 따로 있다. 화성에 가는 것이다. 50년 전 암스트롱의 발걸음은 화성을 향한 위대한 도약이 될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7-07 이영재

[참성단]인물시

미당 서정주의 작품 세계는 전 생애를 걸쳐 크게 변화했다. 첫 시집 '화사집(花蛇集)'에서 원시적인 생명력을, 두 번째 시집 '귀촉도(歸蜀途)'는 인간의 슬픔이 주조를 이룬다. '신라초(新羅抄)'에선 동양사상을, '질마재 신화(神話)'에서는 '이야기꾼'으로 변모한다. 그러던 그가 세계 여행의 체험과 자연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1992년 세계의 산 이름을 소재로 '산시(山詩)'를 선보였다. 산 만 가지고 풀어쓴 시로 "역시 미당!"이란 탄성이 나온다.미당이 산으로 시를 썼다면 인물로만 시를 쓴 시인도 있다. 시인 고은이다. 1980년 여름, 내란음모 및 계엄법 위반으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육군교도소 특별감방과 대구교도소에 갇혀 있는 동안 역사와 시대를 관통하는 유·무명 인물들에 대한 시를 구상해 1986년부터 계간지 '세계의 문학'에 연재를 시작했다. 2010년까지 20여 년에 걸쳐 시집 30권에 총 4천1수를 수록하여 발간했다. 많은 사람에 대해 적은 기록이란 뜻의 '만인보(萬人譜)'다.한국사의 역사적인 인물들부터 어린시절 친구, 이웃들까지, 등장하는 인물이 무려 5천600여명에 이른다. 시적 완성도에 대해선 여전히 엇갈리지만 자유와 해방, 민주와 민족의식을 불교사상에 근거해 내밀하게 다뤘다는 평가에는 이의가 없다. 세계 최초로 사람만을 노래한 연작 시라는 점에서 노벨상 후보에 오를 때 '만인보'가 거론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역사 속 인물들을 시로 조명해 온 이오장 시인이 월간 '시' 7월호에 발표한 '인물시'가 큰 화제다. 정파를 가리지 않은 3행의 짧은 시. 촌철살인(寸鐵殺人)이다. 시인의 쓴소리에 33인 정치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전·현직 대통령이라고 예외는 없다. "안개 강 하나 건너와 옷깃 터는가/자연은 돌고 돌아 제자리에 오는 것/그대가 받들어야 할 자연은 국민이다." ('문재인' 전문) "이 세상 모든 것은 공주가 갖는 것/공주의 모든 것은 부마가 갖는 것/부마 없는 공주는 국민이 부마." ('박근혜' 전문) 문학은 시대를 반영하는 산물이다. 압축된 언어에 은유와 풍자가 가미한 시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정치의 꼴'이라는 형태의 '정치 시' 실험을 하는 이 시인의 소망은 단 하나, "정치인이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 우리의 바람도 그래서인지 짧은 시지만 그 울림은 크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7-04 이영재

[참성단]동창회에서

"전두환 아니었으면 우리 같은 촌놈들이 대학에나 갈 수 있었겠냐?"얼마 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5년만에 처음으로 동창회에 참석했다. 5년 주기로 동창회가 열리는 만큼, 이번에 빠지면 환갑에나 고교 친구들을 볼 수 있다는 동창 친구의 말에 이끌린 것 같다. 역시 오랜만에 벗을 만나는 일은 즐거웠다. 수십 년 세월의 더께에 가려진 옛 얼굴의 흔적을 찾는 재미도 쏠쏠했다. 출렁거리는 배를 안고 닭싸움을 해도 부끄럽지 않은 시공간의 왜곡 현상까지 경험하고 나니 그동안 인적 네트워크의 후순위에 밀려 있던 동창회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저녁 뒤풀이 시간, 서로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다 화제가 자녀교육 문제로 옮겨갔다. 다들 사교육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을 털어놓더니 결국 과거와 현재의 교육정책을 비교평가하는 장이 펼쳐졌다.서두에 쓴 친구의 말처럼 시골에서 부유하지 못한 학창시절을 보낸 50대 중반 세대들은 전두환 교육정책의 덕을 본 것이 맞다. 이른바 학력고사 세대들이다. 전두환 정부는 사교육을 전면금지하고, 대학별 고사를 폐지하는 대신 국가에서 출제하는 학력고사로 일원화시켰다. 특히 이날 모인 동창들은 고교 전학년 내신성적이 입시에 반영된 첫 수험생 세대다. 이같은 교육정책은 시골 고등학교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많은 학생들이 내신성적을 내기 위해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는 도시의 명문고 대신 가까운 고향 학교를 택했고 이는 시골 학교의 학업 수준과 면학 분위기의 향상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질적·양적으로 전보다 월등히 높은 대학진학률을 기록했으니 교육의 형평성 측면에서 전두환 정부의 교육정책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물론 전두환 정부의 교육정책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암기 위주의 학력고사는 지금의 수능에 비해 수준이 떨어졌고 '눈치작전'이라는 기형적 입시 관행도 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 민주화 과정을 겪은 터라 전두환 정부에 호감을 갖기 힘든 586세대가 당시의 교육정책을 추억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학창시절에는 최소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을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는 좋은 대학에 가기 힘들고, 자사고나 특목고가 고교서열화를 부추기는 현재의 교육 현실 속에서 35년 전의 모교는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는 위안처가 아니었나 싶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07-03 임성훈

[참성단]무인화 시대

'아마존 고'는 아마존이 운영하는 세계 최초의 무인 슈퍼마켓이다. 지난 5월 뉴욕에 12호점이 문을 열었다. 아마존 고에는 계산원은 물론 계산대도 없다. 매장 천장에 설치된 수백 개의 센서와 카메라는 누가 무엇을 사는지 지켜볼 뿐이다. 손님이 진열대에서 물건을 집어 들면 센서가 이를 자동으로 인식, 스마트폰에 미리 등록한 신용카드로 결제가 끝난다. 아마존 고는 현금을 받지 않는다. 신용카드나 은행 계좌가 없어 주로 현금을 사용하는 저소득층이나 노인, 즉 디지털 소외계층은 아마존 고를 이용할 수 없다는 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여론이 들끓자 뉴욕 매장은 현금 사용 고객을 위해 직원을 따로 뒀다. 하지만 그 자리가 오래 유지될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아마존은 아마존 고를 2021년까지 최대 3천개로 늘릴 계획이다.우리 역시 '무인(無人) 자동화'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패스트푸드점과 영화관이 무인화 기기 '키오스크'에 점령당한 지 오래고, 주유소도 셀프로 바뀌는 추세다. 대형 마트 계산대도 무인으로 바뀌고 있다. 줄 설 필요도 없이 신용카드를 꽂고 물건을 바코드 인식기에 대면 자동으로 계산이 끝난다. 고용주 입장에서 소비자가 만족하고 무엇보다 비용이 주는데 무인화를 마다할 리가 없다.무인화는 주문이나 결제를 위해 줄 서서 기다리는 불편함을 덜어주는 등 소비자에겐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하지만, 계산원들에게는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으려는 공포의 존재나 다름없다. 고속도로 통행권을 뽑을 필요도 없이 통행료가 결제되는 '스마톨링'이라는 요금 자동수납시스템으로 고속도로 요금 수납원이 해고 위기에 몰리는 것이 그런 경우다. 무인화 시대의 도래는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지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의 여파가 크다. 소득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무인화를 부채질한 것이다.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격'이다. 하지만 무인화 시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도 하다. 정책적으로 무인화 시대를 늦춘다고 해도 그건 잠시뿐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으로 유통업체에 무인 자동화 시스템의 확산은 더욱 빨라질 것이며, 무인 자동화 시스템의 보편화는 결과적으로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무인화 시대가 드리우게 될 어두운 그림자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7-02 이영재

[참성단]판문점의 변화

판문점이 영화의 상상력을 압도하는 현실의 드라마로, 글로벌 뉴스의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 2000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대한민국 육군 이수혁(이병헌) 병장은 밤마다 군사분계선 넘어 북측 초소를 찾아 조선인민군 오경필(송강호) 중사와 호형호제하며 정을 나눈다. 하지만 절대 넘어선 안되는 선을 넘은 그들은 비극을 향해 치닫는다. 같은 얼굴, 같은 말을 쓰는 한민족 청년들은 금단의 선 앞에서 한없이 무력하다. 판문점은 그들에게 표정없는 대치를 강요할 뿐이다.그러나 이제 판문점은 남북미 정상들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고무줄 놀이 하듯 넘나들며 월경(越境) 이벤트를 벌이는 리얼리티 정치쇼 무대가 됐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1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단초가 됐다. 새소리만 들렸던 도보다리 환담은, 어떤 영화도 구현할 수 없는 미장센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6월 3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또 다시 월경 이벤트를 재현했다. 트럼프는 사상 최초로 북한 땅을 밟은 미국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지위를 얻었고, 자신의 트위터 초대에 응해 준 김 위원장에게 정중한 사의를 표했다.레이건, 오바마, 조지W부시 등 판문점을 방문했던 역대 미국 대통령은 군복 상의를 착용했다. 세계 유일의 냉전 현장에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동맹을 강조했다. 하지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장소"라고 말했던 판문점의 이미지가 변하고 있다. 북중러 동맹과 한미일 동맹 대치의 꼭지점에서, 남북미 정상의 번개회동 장소가 됐으니 그렇다. 오히려 언론들이 놀라 역사적 장면을 송출하는 방송화면이 흔들렸다.영화적 상상에 머물러 더 비극적이었던 이수혁 병장의 금지된 월경을, 대한민국 대통령에 이어 미국 대통령까지 해내는 현실은, 아버지를 따라 군사분계선을 넘었던 이방카의 말처럼 "비현실적"이다. 한국전쟁 휴전회담이 시작된 널문리 주막에서 비롯된 판문점의 역사가 휴전 66년 만에 중대한 변화의 길목에 선 듯 싶다. 그 변화가 대한민국과 한민족 전체의 축복으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7-01 윤인수

[참성단]독수 독과의 원칙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1957년 작. 감독은 시드니 루멧. 데뷔작이 이렇게 주목을 받기도 힘들다. 미국의 배심원제를 세밀하게 그려낸 법정영화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힌다. TV 드라마로 이미 검증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심만으로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정의가 내재한 '법의 정신' 덕을 톡톡히 봤다. 이는 당시 미국의 '시대 정신'이기도 했다. 증거보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한 소년을 살인자로 몰아가는 11명의 배심원 사이에서 유일하게 무죄 가능성을 버리지 않은 8번 배심원을 맡아 마침내 전원 무죄 평결로 이끌어 낸 헨리 폰다의 연기가 일품이다. 지난 27일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군사기밀보호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A 씨 등 6명에 대해 항고심에서 "수사 혐의와 무관한 컴퓨터 저장장치, 서류철까지 전부 압수하여 가져간 다음 장기 보관하면서 이를 활용하여 별건 수사에 활용하는 경우 해당 증거들은 물론, 그 증거들에 기초하여 수집된 2차 증거는 모두 위법수집 증거로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수사 기관의 관행이 된 '별건 수사'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법원이 선언한 셈이다.독수독과(毒樹毒果)의 원칙이란 게 있다. 독이 든 나무에서 열린 열매 역시 독이 있다는 것으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증거로서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법에 이 이론이 도입된 것은 2007년으로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위법수집 증거능력 배제원칙을 명문화 했다. 하지만 우리의 수사기관은 그동안 독이 들어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원칙은 외면한 채 과실을 따 먹기에만 급급해 왔다. '별건(別件) 수사'가 그것이다. 별건 수사는 본래 수사 대상이 아닌 다른 사건을 조사함으로써 피의자를 정신적으로 압박해 범죄혐의를 얻어내는 수법이지만, 검찰권 남용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특히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 사건 조사에 자주 이용된다. 취임하는 검찰총장마다 별건 수사 관행 등에 대해 늘 개선 의지를 밝힌다. 하지만 이 '지독한' 수사 관행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수사를 받는 도중 극단적인 선택을 한 몇몇 인사가 '별건 수사'로 극심한 심적 고통을 느꼈을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추정하고 있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단호하게 배제되어야 한다. 이제라도 별건 수사가 사라져 '법의 정신'이 꼭 지켜지길 기대해 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30 이영재

[참성단]쿠르디, 소하예트, 발레리아

2017년 1월 생후 16개월 된 남자아이가 진흙탕에 얼굴을 묻고 숨진 채 발견됐다. 무차별적으로 살육을 자행하는 미얀마 정부군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향하는 난민 대열에 합류했다가 보트 전복으로 사망한 로힝야족 아이였다. 시인 서해성은 '슬픈 사진' 한 장이 준 충격을 이렇게 시에 담았다. '미얀마 해변에서 로힝야족 소년은 엎드려 죽었다./ 터키 바닷가에 쓰러진 아일란 쿠르디처럼./쫓겨가다 죽지 않았으면 아무도 몰랐을 이름/무함마드 소하예트./이름만으로도 무슬림인/썰물에 드러난 16개월을 산 세상./로힝야 로힝야/무덤이 없다.' ( '로힝야 소년을 위한 무덤'중에서) 사진 한 장이 전하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간혹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2015년 9월 2일. 터키 도안통신의 닐뤼페르 데미르 기자가 찍은 사진 한 장이 전 세계를 절망에 빠뜨렸다. 터키 휴양도시 보드룸의 해변 모래에 얼굴을 박고 숨진 채로 발견된 사진 속 주인공은 시리아 국적의 세 살배기 남자아이 아일란 쿠르디. 그의 가족 4명은 에게 해를 가로질러 그리스로 가려고 고무보트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 아버지 압둘라를 제외한 전원이 변을 당했다. 쿠르디의 싸늘한 시신을 담은 사진은 시리아 난민사태의 참혹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 '사진 한 장'은 유럽의 일부 국가에 난민 수용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그제 멕시코 마타모로스의 리오그란데 강 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와 그의 딸 두 살배기 발레리아의 사진 한 장이 또 전 세계를 울렸다. 지난 4월 고향 엘살바도르를 떠나온 이들 가족은 미국 망명을 위해 강을 건너려다 변을 당했다. 아빠는 딸을 물속에서 놓칠까 봐 자신의 티셔츠 안에 품었고, 딸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빠의 목을 끌어안고 있어 슬픔을 더하고 있다.이들 죽음을 담은 '사진 한 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을 전망이다. 1천200만 명 난민을 발생시킨 시리아 내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미얀마 실권자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은 로힝야 족에 대해 "해결책을 찾는 중"이라며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 이민 정책 역시 바뀌긴 힘들어 보인다. 시리아의 쿠르디, 로힝야의 소하예트, 엘살바도르의 발레리아가 사진 속에서 이렇게 절규하는 것 같다. "어른들! 제발 뭐라도 좀 하세요! "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27 이영재

[참성단]백범 암살범의 마지막 인터뷰

어제는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 7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백범은 1949년 6월26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던 자택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그러니까 백범 서거 47주년이 되던 1996년 6월26일, 경인일보 지면에 백범 암살범 안두희의 인터뷰가 실렸다. 당시 그는 인천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나이 80에 치매까지 겹쳐 거동도 제대로 하지 못해 누워지내던 터였다. 민족반역자로 낙인찍혀 숨어 살면서 신분노출을 극도로 꺼리던 그였다. 더구나 1992년 2월 민족정기구현회 회장인 권중희씨가 벌인 납치 사건 이후엔 아예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 왔다.구차한 말년을 보내고 있었지만 안두희는 '애국자는 죽고, 반역자는 살아남았다'는 우리 현대사의 역설을 입증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런 안두희에 대해 인터뷰가 성사됐다는 소식에 편집국이 술렁였던 기억이 새롭다. 그는 앞서 여러 경로를 통해 국내 암살 배후세력과 미국의 사주를 암시하는 내용의 진술을 한 바 있지만 수시로 이를 뒤집기 일쑤였다. 그의 나이나 건강상태로 볼 때 그 인터뷰는 사실상 백범 암살의 진실을 밝힐 마지막 기회였다. 굳게 닫힌 입을 열게 하는 고도의 인터뷰 기술이 필요한 만큼 인터뷰는 연륜 있는 베테랑 선배가 맡았다.그러나 그는 진실을 원하는 국민들의 염원을 또다시 외면했다. 백범 암살 배후를 묻는 질문에 그는 "내가 안죽였다. 미국이 죽였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는 듯 했다. 하지만 국내 배후세력에 대해선 "나 혼자 죽였다"며 끝내 입을 다물었다. 당시 기사를 읽은 독자들은 분노와 함께 역사의 진실을 밝힐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4개월여가 지나 안두희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정의봉'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몽둥이에 맞아 숨진 것이다. 한 택시기사에 의해 안두희가 생을 마감하면서 결국 경인일보의 인터뷰는 생전 안두희의 마지막 기록이 되고 말았다.이제 암살범을 추궁하는 것도, 그에게서 증언을 기대하는 것도 먼 과거의 일이 됐지만 분명한 것은 진실을 찾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23년 전 작성된 기사에는 그 당위성을 압축한 문장이 나온다.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 역사학자 콜링우드가 말했듯 '역사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속에 살아 있는 과거'이기 때문이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06-26 임성훈

[참성단]DMZ와 美 대통령

비무장지대(DMZ)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겐 이에 따른 긴장감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70여 년간 이어진 좌절과 고통의 공간이 인기 있는 관광지라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반인뿐만이 아니다. 해방 후 9명의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대부분이 DMZ를 찾았다.미 대통령의 최초 방한은 전쟁 중이던 1952년 12월 2일,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중·동부전선 수도고지를 찾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였다. 그의 최전방 시찰은 이승만 대통령도 몰랐다. 둘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젠하워가 북진 통일하자고 강력히 주장하는 이 대통령을 만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언쟁밖에 없었을 것이다.미군을 철수하려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79년 DMZ내 미군부대에서 1박을 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3년 11월 판문점 인근 콜리어 초소를 방문, 30분간 머물렀다. 당시 분위기는 소련의 KAL기 격추, 북한의 아웅산 테러 등 최악의 상황이었다. 레이건의 방문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론이 논란이 일자 굳건한 한미동맹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은 1992년 방한 때 DMZ에서 멀지 않은 경기 동두천의 캠프 케이시를 방문했다.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1993년 방문한 클린턴 대통령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 시찰 후 "북한이 핵을 개발해 사용한다면 북한 정권은 최후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도라산역을 방문했고,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은 군사분계선 미군 초소에서 가죽 재킷을 입고 쌍안경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모습을 연출했다. DMZ 위에 선 미 대통령은 그 자체만으로 굳건한 한·미관계의 상징이었다.미 45대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29, 30일 한국을 찾는다. 2년 전 방한 했을 때 기상 악화로 찾지 못한 DMZ를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걱정도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의 DMZ 방문 목적은 한·미 동맹을 강조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미관계는 전 같지가 않다. DMZ를 방문한 트럼프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25 이영재

[참성단]제2 윤창호법

경찰이 제2 윤창호법이 시행되는 오늘부터 두 달 동안 전국에서 음주운전 특별단속을 벌인다. 윤창호씨는 지난해 9월 25일 부산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사망한 피해자다. 그를 아꼈던 친구들이 형편없이 약한 음주운전 가해자 처벌법규와 관대한 음주단속 기준에 분노해 국민청원에 나섰다. 그 결과 음주운전 사망사고 가해자를 최대 무기징역으로 처벌토록 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개정안', 즉 윤창호법이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시행 중이다. 이어 이번에 면허정지·취소 기준을 낮추고 음주운전 처벌도 강화한 제2 윤창호법,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발효된 것이다.제2 윤창호법에 따라 앞으로 혈중알코올 농도가 0.03% 이상이면 운전면허 정지, 0.08% 이상이면 운전면허 취소 처분을 받는다. 소주 한 잔만 마셔도 면허정지 수준이라니, 입술에 술만 대도 운전대를 잡지 말아야 한다. 처벌도 징역 3년, 벌금 1천만원에서 징역 5년, 벌금 2천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음주단속에 걸리면 생업 유지가 힘들고, 음주운전 인명사고는 아예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애주가들은 술 권하는 사회의 음주문화에 비추어 과한 처벌로 느낄지 모르나, 음주운전 사고로 인한 끔찍한 피해를 생각하면 내놓고 반발하기는 힘들다.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윤씨의 경우처럼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남긴다. 반면에 그동안 가해에 대한 처벌은 피해규모에 비해 미약했다. 윤창호의 친구와 가족들이 분노한 지점이다.음주운전 사고만 놓고 보면 1·2 윤창호법으로 이제 겨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피해 규모에 맞게 법적 형평성을 맞춘데 불과하다. 남은 문제는 의식과 문화의 영역이다. 음주와 운전을 완전히 분리시키는 시민의 각성이 중요하다. 한 두잔 정도는 음주로 여기지 않거나, 한잔 걸치고 운전대를 잡는 걸 묵인하는 걸 넘어 동승하는 취객들의 무리가 유흥가 마다 넘친다. 숙취에 찌든 채 운전대를 잡는 출근길 직장인들도 한 둘이 아닐 것이다.인천공항고속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운 채 하차했다가 사망한 여성 연예인은 부검 결과 만취상태였다고 한다. 경찰은 동승한 남편을 음주운전 방조혐의로 조사할 모양이다. 경찰이 실시하는 60일 특별음주단속 기간을 음주와 운전을 분리하는 각성의 시간으로 활용해야겠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6-24 윤인수

[참성단]요즘 프로야구

여름밤, 조명을 가르며 빨랫줄처럼 시원하게 날아가는 백구(白球). "딱" 소리와 함께 일제히 베이스를 향해 달려가는 선수들. 치어리더 손짓에 스탠드를 박차고 일어나는 관중. 여기에 치맥만 있으면, 세상이 모두 내 손안에 있는 것 같다. 야구는 자유분방한 경기장의 분위기와 확실한 게임의 룰, 즉 느슨함과 엄격함이 함께 어우러지는 중독성이 강한 스포츠다. 이를 등에 업고 KBO 리그는 한국인이 가장 즐기는 스포츠로 우뚝 섰다.오랜만에 야구장에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텅 빈 야구장에, 수준이 마치 고등학교 야구만도 못해서다. 내야수 가랑이 사이로 공이 빠져나가고, 캐처가 투수의 볼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더 놀란 건 선수들의 태도다. 고등학교 선수들의 표정에서는 이겨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라도 읽히지만, 프로 선수들의 얼굴에서 그런 표정을 찾을 수가 없다. 결정적인 에러로 점수를 내줘도 그저 '픽' 웃고 만다. 여기에 고질적인 심판의 오심과 어설픈 경기운영으로 비디오 판독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경기를 지루하게 만들었다.야구는 '투수놀음'인데 투수의 수준은 더 한심했다. '끝내기 낫아웃 폭투'가 나오는가 하면, 한 이닝에 무려 사사구 8개를 내주며 안타 없이 5점을 주는 경기도 있었다. 팀 간 전력 차가 너무 심해 대승 아니면 대패하는 경우가 많다.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어도 뒤집히는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다. 선수의 자질이 떨어지는 탓이다. 은퇴해야 할 선수들이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대충대충 야구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을 대체할 새로운 선수가 없다. 선수층은 턱없이 얇은데 구단 수가 10개로 너무 많은 것이다. 우리보다 초· 중 ·고 야구팀이 훨씬 많은 일본 프로야구의 경우, 1953년 양 리그에 각 6팀씩 총 12팀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올 시즌 프로야구는 개막 364경기 만에 400만 관중을 채웠다. 경기당 평균 1만1천23명의 관중이 찾은 셈이다. 지난해 364경기 누적 관중은 442만7천419명이었다. 지난해보다 9% 넘게 줄었다. 누굴 탓할 것도 없다. KBO, 구단, 선수 모두 정신 차려야 한다. 자칫 우리 경제처럼 장기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러다 한방에 '훅'가는 수가 있다. 감동이 없으면 프로 스포츠가 아니다. 요즘 프로야구에는 감동이 하나도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23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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