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호텔 개조 임대주택

2000년 이후 중국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요우커(遊客)가 급증한 2010년대 초반, 수도권과 제주 등지는 숙박시설이 절대 부족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모텔까지 동원했으나 태부족이었다. 눈치 빠른 부동산 업자들이 숙박업 사업에 뛰어들었다. 호텔 운영에 따르는 위험부담을 피하려 수익형 모델을 장착했다. 투자자가 객실을 구분 등기할 수 있고, 운영사가 매월 임대수입을 주는 구조다.객실이 부족한 데다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자 투기꾼이 몰렸다. 순항하던 호텔 업계는 2014년 사스가 유행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2017년 중국 정부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도입에 대한 보복으로 자국민의 단체관광을 금지했다. 이후 3년간 요우커가 30% 급감했다. 지난해 회복세이던 관광업계는 올 초 시작된 코로나 19로 다시 치명상을 입었다. 전국 관광호텔 상당수가 극심한 운영난에 숨만 붙은 '좀비' 상태다.이낙연 더불어 민주당 대표가 전세난을 말하면서 호텔 객실을 활용하겠다고 언급했다. 지난주 관훈 토론회에서 부동산 대책 관련 질문에 답하면서다. 이미 국토부가 엠바고(보도 유예)로 예고한 내용을 미리 흘린 것이다. 어설픈 누설이다.반응은 더 실망스럽다. 전국에서 지탄이 쏟아졌다. 야권은 비판을 넘어 어린아이 놀리듯 조롱한다. 야당 대변인 입에서 '초등학교 학급 회의 수준의 대책'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은 "전세 난민에서 월세 난민으로 밀려난 국민에게 호텔을 개조해 전셋집을 만들어 준다는 정부는 국민을 '일세 난민'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 같다"고 했다.서울시가 숭인동 호텔을 개조한 청년 주택은 난방과 창문 구조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숙박용과 주거용 건물의 차이를 간과한 때문이다. 입지 여건도 썩 좋지가 않다. 입주자들은 주변보다 임대료가 월 10만 원 정도 싸다는 것 외에는 장점이 없다고 불평한다.국토부가 19일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전세난 타개를 위해 2022년까지 전국 11만 4천 가구, 수도권 7만 1천 가구의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기로 했다. 그런데 뭇매를 맞는 숙박시설 활용 방안이 버젓이 포함됐다. 나중이야 어찌 되든 성난 민심을 달래고 보자는 정부의 다급한 처지가 딱하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1-19 홍정표

[참성단]백령도공항과 동남권신공항

'공기수송'은 어떤 대중교통 수단이 이용하는 승객이 거의 없는 상태를 표현하는 조어다. 사람이 아니라 공기를 실어나른다는 얘기다. 지금 세계 항공업계는 노선과 운항편수를 대폭 감축하고도 텅 빈 비행기를 띄우는 바람에 경영 위기에 몰렸다. 돌발적인 코로나19의 기습으로 1년 가까이 공기수송을 이어 온 탓이다.하지만 공기수송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공익과 국익을 위한 교통수단이 적지 않다. 국토균형발전이란 명분으로 개설된 공기수송 도로가 전국에 널려있지만, 불가피한 국책사업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천의 숙원사업인 백령도 공항이다. 건설비용 1천700억원대의 소형공항이지만 서해5도의 고립을 풀어 군사·외교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는 국익뿐 아니라, 접경도서 국민들의 응급의료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공익이 큰 공항이다. 이를 정부는 경제성, 즉 공기수송을 이유로 막아왔다.최악은 수요예측에 실패해 '공기수송'으로 조롱받는 교통수단이다. 인근 농민들이 활주로에서 고추를 널어 말렸다는 무안국제공항이 그랬다. 양양공항, 청주공항도 한동안 공기만 수송하는 유령공항이라는 오명을 썼다. 역대 정권 마다 깃대 공약으로 지방공항 건설을 앞세웠다. 여객수요 보다는 지역 표를 겨냥해서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항들이 대부분 적자운영을 면치 못하고 있다.엊그제 정부가 김해공항 확장을 백지화했다. 부산 가덕도에 동남권 신공항을 추진하기 위해 걸림돌을 뽑아버린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공약은 이명박 대통령 때 백지화됐고, 박근혜 대통령 때 프랑스 업체의 용역에 따라 동남권신공항 대신 김해공항을 확장하기로 결론났다. 당시 용역 결과 가덕도는 입지여건이 경남 밀양에도 뒤지는 것으로 판단됐다. 실제 가덕도 신공항을 건설하려면 김해공항 확장사업비보다 6조나 더 들고, 접근성이 떨어져 여객수요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한다. 대다수 언론이 부산시장 보궐선거용 공항으로 보는 이유다.백령도 공항은 비용 대비 편익이 압도적이고 국익과 공익을 다 만족시키는 저비용 소형공항이다. 정부는 이를 경제성을 따져 오랜 세월 막아왔다. 그런 정부가 이미 확정된 국책사업을 폐지하고 6조를 더 들여 부산 앞바다 섬을 메워 신공항을 건설하는 일엔 전광석화다. 아무리 표가 중해도 이건 아니지 싶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1-18 윤인수

[참성단]'현각'과 '혜민'의 야단법석

고승대덕들이 남긴 법문들의 결론은 대체로 무소유에 이른다. 소유에 대한 집착이 불성(佛性)을 방해한다는 이유일테다. 평생 누더기 승복 한 벌로 지낸 성철 스님은 "밥은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고 옷은 살이 보이지 않을 정도면 된다"며 "사람들은 소중하지 않은 것들에 미쳐 칼날 위에서 춤을 추듯 산다"고 탄식했다. 속세의 대중들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성철의 법문엔 무릎을 칠지언정, 막상 '소유'를 포기하라는 실천행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법정 스님은 난초를 향한 집착과 각성을 통해 무소유의 화두를 깨달았다. 죽어서도 자신의 글에 자신이 갇히고, 사부대중이 자신의 글에 집착하는 걸 꺼렸던 걸까, 죽음을 앞둔 법정은 그의 '사유(思惟)' 마저 버리고 갔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모든 출판물의 '출판 금지'를 유언으로 남긴 것이다. 백석의 영원한 연인 김영한은 법정의 무소유에 감복해 요정 '대원각'을 시주했지만, 시주에 성공하기 까지 10년이 걸렸다. 법정은 결국 그 시주를 받아 길상사를 열었다. 속세는 천문학적인 시주에 놀랐지만, 정작 그녀에게 대원각은 "백석의 시 한 줄만도 못한" 티끌이었다. 그 스님에 그 보살이 탄생시킨 '무소유의 명장면'이다. 불교는 여러 선사들이 남긴 무소유 만행(萬行)의 흔적에 의지해 명맥을 유지하는지 모른다.최근 현각 스님과 혜민 스님이 한바탕 야단법석을 피웠다. 혜민의 호화로운 거처가 방송된 것이 발단이었다. 현각은 혜민을 향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모르는 도둑놈"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아먹으며 지옥으로 가고 있는 기생충"이라고 일갈했다. 혜민은 즉시 "참회한다"며 "모든 활동을 내려놓고 수행정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현각은 이튿날 "혜민은 내 영원한 도반"이라고 바로 화해의 메시지를 남겼다. 비판과 참회와 화해가 너무 돌발적이라, 두 스님의 대화가 과연 깨달음을 향한 불교적 논쟁인 '법거량'에 해당하는지 헛갈리고, 비판 여론도 많다.그래도 미국 국적에 하바드 동문인 두 스님이 부처님 말씀을 중심으로 전광석화 같은 일갈과 주저없는 참회를 주고 받는 장면이 선사한 돈오(頓悟)의 쾌감도 적지 않다. 문제의 본질을 제쳐두고 티끌에 집착해 거짓과 비난의 악순환에 갇힌 세상 탓일 게다. 벽안의 스님과 한국계 미국인 스님의 한바탕 소동이 여러 화두를 남겼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1-17 윤인수

[참성단]소래포구와 새우타워

소래포구는 연간 300만명이 찾는 명물 어시장이다. 일제는 인근에서 소금이 나자 1930년대 수원·인천을 잇는 협궤열차를 부설해 소래역을 만들었다. 한국전쟁 이후 월남민들이 정착하면서 새우젓 집산지가 됐다. 1970년대 새우 파시가 열리면서 수도권 대표 어시장으로 부상했다. 꽃게가 잡히는 5~6월과 김장철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소래포구는 유난히 화재가 잦다. 2017년 1월 좌판상점 332개 중 220개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됐다. 일반 점포 41개 중 20개도 불탔다. 2010년 1월에는 좌판상점 25곳이, 2013년 2월에는 36곳이 화재로 피해를 봤다. 불에 약한 비닐 천막에 마구잡이로 끌어다 쓴 전선 줄이 도화선이다.소래포구가 화마의 악몽을 떨치고 새 얼굴로 손님맞이 채비 중이다. 핵심 사업인 어시장 신축공사 공정률이 90%를 넘어섰다. 사업비 181억원으로 연 면적 4천500㎡, 지하 1·지상 2층 신축 건물을 짓는 중이다. 1층은 어시장 상인들의 점포가 입점하고, 2층은 어시장 운영과 상권 활성화를 위한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선다. 옥상에는 전망대 등 휴게 공간도 만들어진다.지난주에는 포구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새우타워'가 개장했다. 대표 특산물인 새우의 모습을 본떠 만든 조형 전망대로, 옛 5부두에 높이 21m 규모로 조성됐다. 주변에는 2.5㎞ 길이의 산책로가 마련돼 인근 카페와 쉼터를 찾는 관광객들의 접근성을 높였다고 한다.그런데 막상 일반에 공개되자 예상치 못한 반응들이다. 일부 방문객은 과자 '새우깡'을 연상시키는 모습과 초라한 형태를 꼬집으면서 '흉물이 될 것'이라고 혹평한다. "10억원을 들였다는데 어디에 썼는지 모르겠다, 세금 낭비다"는 비판도 있다.한때 소래포구엔 '바가지 상술'이란 꼬리표가 달렸다. 제철 해산물을 사고 맛보는 명소이면서도 부정적 이미지가 각인된 거다. 지자체와 시장상인들은 화려한 부활을 꿈꾼다. 새우타워와 현대식 어시장은 야심 차게 준비한 새 병기다. 하지만 바가지라는 인식을 바꾸지 못한다면 수백억원 사업비도 무용할 뿐이다.'소래포구' 하면 싸고, 편리하고, 깨끗하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걱정할 게 없다. 뛰어난 접근성에 볼거리까지 갖춘 어시장을 소비자들이 외면할 까닭이 없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1-16 홍정표

[참성단]조두순 포비아

오는 12월 13일 조두순 만기출소를 앞두고 나영이(가명) 가족이 결국 안산시를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12년전 조두순에게 회복불능의 심신장애를 당한 나영이 가족 집에서 1㎞도 안 떨어진 곳에 그가 되돌아온다고 하자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나영이 아버지는 조두순에게 제발 안산으로 오지 말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조·두·순' 이름 석자가 공포인 나영이와 가족들에겐 그를 마주칠 수 있다는 상상 자체가 악몽이다. 그 곳이 어디든 그가 없다면 천국일테다.나영이 가족뿐 아니다. 조두순이 거주할 예정인 안산시와 동네는, "조두순이라는 범죄자가 안산으로 돌아오는 것 자체가 공포"라는 윤화섭 시장의 말 그대로 패닉 상태다. 안산시는 조두순 거주지를 중심으로 CCTV 71대를 설치하고, 24시간 순찰을 맡을 무도실무관급 청원경찰 6명을 채용했다. 하지만 조두순이 거주할 아파트 주민들의 피해는 이미 현실인 모양이다. 조두순과 한 곳에서 거주하는 심리적 불안감에 재산상 피해도 심각하단다. 아파트 평판이 나빠지면서 매매, 전세 거래가 끊긴 탓이다.한 범죄자의 만기출소가 빚어낸 불안한 소란의 원인은 아무래도 죄에 비해 터무니없는 벌을 내린 법원이지 싶다. 조두순은 나영이 사건 이전에도 강간과 살인 등 전과17범이었다. 강간죄로 3년을 복역했지만 살인죄로는 주취감경돼 2년만 살았다. 조두순이 8살 나영이에게 저지른 18번째 죄는 글로 옮기기 혐오스러울 정도로 끔찍한 악마의 폭행이었다.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법원은 주취감경을 적용해 12년을 선고했다. 악마가 술에 취했다는 이유였다.조두순 사건 이후 아동 성폭행 방지를 위한 각종 제도가 생겼지만, 웬일인지 음주감경 규정은 그대로다. 인사사고를 낸 음주운전자를 가중처벌하는 윤창호법이 시행 중인 마당에 중범죄자의 음주감경이 여전히 가능한 건 어색하다. 완화된 음주감경 규정을 아예 폐지하자는 '조두순 방지법'이 연내에 처리될지 주목된다.너무 일찍 풀려난 조두순 때문에 스무살 나영이는 피난(?)을 떠났고, 교화 여부가 불투명한 조두순과 함께 살아야 할 시민들은 불안해한다. 하지만 조두순 역시 '소셜 파놉티콘(사회적 원형감옥)'에 수감될 형편이다. 전 사회적 시선이 그를 주목해서다. 감옥과 출옥 중 무엇이 나은지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 된 것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1-15 윤인수

[참성단]광군제와 코세페

'1초당 구매량이 58만 건까지 치솟았다. 개장 30분 만에 매출 62조를 기록했다'. 중국 최대 쇼핑시즌인 광군제(光군節) 열기를 매 순간 숨 가쁘게 전한 인터넷 언론의 헤드라인이다. 2009년 시작된 광군제는 매년 11월 11일 중국 최대 이커머스 회사인 알리바바가 개최한다.알리바바는 지난 1일부터 11일까지 티몰, 타오바오 등 자사의 여러 플랫폼에서 총 4천892억 위안(약 83조7천972억원)의 거래가 이뤄졌다고 12일 발표했다. 지난해 42조5천억원을 2배가량 뛰어넘는 사상 최고 실적이다. 회사 측은 올해 통계를 산출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겨 지난해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지만 경이로운 수준인 건 부인하지 않는다.2위 업체인 징둥닷컴도 지난 1~3일 사전행사 때 2천억 위안(약 34조원)의 거래액을 기록했다. 두 회사에서만 110조원을 가볍게 넘어선 것이다. 외신은 "코로나로 억눌렸던 중국 소비자의 보복소비 심리가 광군제 거래액 신기록의 요인"이라고 분석했다.지난 1일부터 22일까지 '코리아세일페스타'가 열린다. 국내 유명 백화점과 대형 유통업체들이 참여했다. 정부는 내수 진작을 하겠다며 행사 직·간접비로 48억여원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그런데 소비자 반응이 영 시원치 않다. '오프라인 우수 중소기업 상품 판매전'이 열리는 현대백화점 판교점 지하 1층 대행사장은 방문객이 적어 썰렁하다. 상인들은 '장사가 너무 안 된다'고 울상이다.코세페 할인율은 평균 10~20%에 불과하다. 일반 할인행사도 30% 정도는 기본이다. 백화점들은 업체로부터 매출액의 20%를 수수료로 가져간다. 가격을 더 낮출 수 없는 구조다. 행사 자체를 모르는 소비자도 많다. 흥미를 끌 만한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광군제 기간 지난해 수준을 넘어서는 매출을 올렸다. 국내 기업들은 코세페를 패스하려 한다. 올해 광군제는 유력 인사 300여 명이 라이브 방송 판매를 해 화제가 됐다. 지난해 10만 채가 팔린 아파트는 80만 호가 매물로 나왔다. 참신한 기획 아이디어에 코로나 바이러스도 비켜섰다. 해마다 30~40%씩 성장하는 세계 최대 할인행사가 내년에는 또 어떤 기록을 세울지 궁금해진다. 반면 코세페는 어찌 될지, 존폐가 걱정된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1-12 홍정표

[참성단]'윤석열 신드롬'

윤석열 검찰총장이 어제 공개된 여론조사(한길리서치· 쿠키뉴스)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 지지도 1위에 올랐다. 지난 2일 발표된 여론조사(리얼미터·오마이뉴스)에서 3위로 치솟은지 10일도 안 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독점하던 차기 대권 판세가 무너진 것이다.필리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검사였고, 브라질 차기 대권후보로 부상한 세르지오 모루는 판사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변호사였고 이회창, 이인제 등도 법조 출신 대통령 후보였다. 하지만 모두 법조 출신일 뿐 정치인으로 전향하기 위해 다양한 정치, 행정적 이력을 쌓았다. 윤 총장처럼 현직 검찰총장이 차기 대통령 후보로 주목받는 건 유례가 드문 현상이다.대검찰청 국정감사 직후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지난해 조국 사태 이후 윤 총장을 향한 적개심은 노골적이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취임 이후 아예 총대를 메고 윤 총장 찍어내기에 전념했다. 검찰인사, 수사권지휘, 총장 측근과 가족수사 지시, 감찰 등 모든 수단을 동원했고 급기야 특활비 까지 털었다. 하지만 윤 총장에게 날린 부메랑은 번번이 여권으로 선회한다.추 장관과 민주당의 협공은 집요하지만 명분은 빈약하다. 적폐사정의 영웅 윤석열을 반정부 정치검사로 일구이언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대통령의 당부대로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 것을 비난할 수 없자, '정치하려면 옷 벗고 하라'고 합창했다. 그 결과 윤 총장은 마법처럼 대권후보 1위에 올랐다. 동화 같은 반전이다. 대안이 없던 정권 반대여론에겐, 정권의 집단적 핍박에 시달리는 윤 총장이 신데렐라로 보인 듯싶다. 사주풀이 검사 진혜원이 '나이트(클럽)'라고 조롱하며 비웃은 '대검'이 정치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윤석열 대선후보 3위 여론조사에 대해 "검찰이 당연히 해야 할 검찰 직무와 관련돼 국민에게서 특별한 기대를 받는다는 게 사실은 슬프면서도 웃긴 일"이라고 말했다. 탁월한 식견이다. 윤 총장의 살아있는 권력수사를 묵인했다면, 다수의 '마속'을 잃을지언정 정권은 명예의 전당에 올랐을지 모르고, 윤석열은 그저 '칼'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런데 그 칼이 때리면 때릴수록 단단해지면서 생물로 진화하고 있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 정말 무서운 생물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1-11 윤인수

[참성단]코로나 졸업앨범

그제 경인일보에 실린 작은 기사가 뒤통수를 때렸다. 인천 한 초등학교가 졸업앨범 제작을 두고 고민 중인데, 110쪽 짜리 졸업앨범을 채울 사진이 부족해서란다. 코로나19의 악행이 민생을 도탄에 빠트린 것도 모자라 초등학생들의 학창시절 추억 마저 지워버린 현실에 탄식이 절로 터졌다. 1년 내내 원격수업과 등교수업을 오락가락한데다 소풍, 체험활동, 운동회 등등 학사일정이 모두 취소됐으니 급우들과의 단체사진이 있을 리 없다.학교는 학부모와 상의한 끝에 학생 개인 사진들을 짝꿍끼리 붙여주는 식으로 편집해 앨범에 싣고, 남는 여백에는 아이들의 졸업소감을 담은 롤링 페이퍼로 채우기로 했단다. "함께 한 시간이 짧았다. 추억은 졸업하고 만들어가자", "마스크야 우리 내년에는 보지 말자", "마스크 꼭 버리고 중학교 갔으면···" 롤링 페이퍼에 남긴 아이들의 글들이다. 2020년 코로나 애사(哀史)로 부족함이 없으니, 오히려 더 짠해진다.586세대가 기억하는 초·중·고교 졸업식 풍경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잘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재학생과 졸업생이 졸업가를 주고 받으며 눈물바다를 만들던 엄숙한 시대의 통과의례는 '라떼는' 시절의 흑백사진에 박제됐다.대신 신세대는 새로운 졸업문화를 만들어 즐긴다. 의정부 고등학교의 패러디 코스프레 졸업사진은 해마다 언론이 주목하는 뉴스토픽이 됐다. 졸업시즌은 전국의 학교들이 선보이는 톡톡 튀는 콘텐츠 경연장이 됐다. 반면에 건조한 장면도 있다. 개인정보 노출을 꺼려 졸업앨범 사진 촬영과 게재를 거부하는 선생님과 학생도 드물지 않아서다. 높아진 인권의식 만큼 학창시절의 추억이 흐려진듯 싶어 웃프다. 아무튼 신세대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졸업의 의미를 새기는 것이니, 기성세대의 기억으로 탓할 일은 아니다.졸업앨범이 문제가 아니라 올해는 졸업식 자체가 열릴지 말지 장담할 수 없다.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면 졸업식 자체가 전면 취소될 수도 있다. 수많은 동기동창들이 동시대의 공감각을 확인할 추억과 기억을 삭제당한다면 그만한 불행이 없다. 코로나 졸업앨범은 올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길 바랄 뿐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1-10 윤인수

[참성단]'서리'와 절도

김유정의 소설 '만무방'은 벼를 스스로 도둑맞는 가난한 농부의 슬픈 현실을 담았다. 소설 속 '응오'는 순박하고 성실한 모범 농군이자 가장이다. 찌들게 가난해 피땀 흘려 농사를 지어도 삭초와 도지, 그리고 장리벼를 제하면 남는 것이 없어 빚만 늘어난다. 그는 지주의 착취에 맞서 논의 벼를 베지 않는다. 그런데 수확도 않은 벼를 닷 말쯤 도둑맞는다. 그의 형인 응칠은 전과자라는 자격지심에 누명을 벗고자 도둑을 직접 잡기로 한다. 밤샘 기다림 끝에 현장에서 괴한을 잡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인인 응오가 범인이다. 빚더미에서 벗어날 길이 없자 자작극을 벌인 것이다.경기도의회 행정감사에서 농정해양위 김봉균 의원이 농작물 절도에 대한 당국의 대책을 촉구했다. 김 의원은 "곳간을 털거나 재배 중인 작물을 가져가는 사례, 농기계 절도 등 질이 안 좋은 범죄가 많다"고 했다. 감시가 소홀한 주말농장은 온 가족이 땀 흘려 지은 농작물을 싹쓸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남양주의 농촌 마을에는 '애써 키운 농작물 절도에 농부의 마음이 멍들어 가고 있습니다'는 현수막이 걸렸다. 농작물 절도범들에 안타까운 농심(農心)을 전해보려는 고육책이다. 경찰도 바빠졌다. 가을철 내내 농축산물 절도 예방활동에 나서야 하는 실정이다. 경찰에 따르면 2017년 540건이던 전국의 농작물 절도 사건이 지난해 847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경기도는 560건(남부 425건·북부 135건)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는(66.11%) 것으로 집계됐다.시골에서 나고 자란 중·장년층에 '농작물 서리'는 동심을 소환하는 그리움이다. 한여름에는 참외 수박이, 가을철에는 사과 배가, 겨울에는 닭과 오리가 수난을 당했다. 밭과 과수원, 농장주들은 불청객을 막기 위해 원두막을 짓고, 숙식을 해결하며 작물을 지켜야 했다. 그래도 막상 서리꾼을 붙잡으면 따끔하게 야단을 치는 게 고작이었다.서리는 '떼를 지어 남의 과일, 곡식, 가축 따위를 훔쳐 먹는 장난'인 정도를 말한다. 그러니 주인들도 너그럽게 봐주는 거다. 하지만 계획적으로 남의 작물을 대량으로 훔치는 것은 범죄행위다. 6년을 기다린 인삼을 하루 저녁에 싹쓸이한다. 주인은 다 키운 자식을 잃은 심정이라고 한다. 농촌에 서리가 사라지고 대신 범죄가 들어섰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1-09 홍정표

[참성단]'트럼프'와 미국 민주주의

미국의 정치 석학 조지프 나이는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2015년)'에서 "미국의 세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쟁국인 중국의 경제·군사력이 미국에 못미치고, 국제 리더로 인정받을 소프트파워가 빈약하다는 이유에서다. 즉 중국의 중화주의가 '중국의 세기'를 막고 '미국의 세기'를 연장시킬 것이란 통찰이다. 동북공정, 사드보복, 방탄소년단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억지에 익숙한 우리 입장에서 고개를 끄덕일만한 논리다.하지만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로 조지프 나이의 전망이 무색해졌다. 미국의 자랑이던 민주주의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혼란에 세계의 조롱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8일(미국 시간 7일) 조 바이든이 대통령 당선자로 확정됐지만, 미국 대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도널드 트럼프가 주인공이다. 그는 백악관에서 선거불복 진지전을 벌이고 있다.트럼프는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기이한 대통령이다. 부동산 재벌이자 리얼리티쇼 진행자로 악명을 떨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사건이었다. 경제위기에 직면한 백인 중산층들이 '미국 우선주의'에 집결한 덕분이다. 그의 통치는 분열적이었다. 트럼프 그룹의 총수처럼 나라를 통치했다. SNS로 지지층과 직접 소통했고, 존경받는 공화당원 매케인이 싫은 소리를 하자 '패배자'라 비난했다. 최고 존엄 김정은도 하노이에서 망신당했다. 이번 대선은 트럼프 찬·반 투표가 되고, 승복의 문화는 망가졌다.물론 트럼프의 불복투쟁이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선 측근들이 줄줄이 떠나면서 백악관이 텅 비었다. 공화당 의원들의 승복 요구는 미국 정당의 이성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미국 언론도 살아있다. 이념적 지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미국 방송사들은 트럼프의 불법선거 기자회견을 중단하거나 팩트체크를 통해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군중은 흥분하고 있지만, 정치와 언론은 작동하고 있다.그러나 트럼프로 인해 미국 민주주의가 검증대에 오른 건 틀림없다. 중국과 이란의 조롱거리가 된 미국 민주주의 위기의 원인이, 트럼프 증후군인지 구조적 문제인지를 놓고 미국의 고민이 깊어질 것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세운 미국 민주주의도 단 한 명의 지도자가 절단낼 수 있다는 사례로, 트럼프는 두고두고 연구대상으로 남을 듯하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1-08 윤인수

[참성단]가림막 수능

40 중후반부터 50 후반 연령대는 대입학력고사 세대로 불린다. 본고사가 폐지되고 학력고사와 내신 점수가 당락을 결정지었다. 1982년 도입돼 1993년까지 이어졌다. 1994년부터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른다. 대입 전형이 다양해져 중요도는 예전만 못하다.첫해 학력고사는 문제의 난이도가 상당했다. 수학은 본고사 수준의 까다로운 문제가 출제됐다. 수학 시험이 끝나자 교실 안은 절망적 분위기에 한숨 소리로 가득했다. 어떤 학생은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해 각 대학의 합격선은 낮아졌고, 서울대를 비롯한 명문대마다 미달 사태가 속출했다. 선배들은 82학번 새내기들을 '똥파리'라 부르며 놀렸다. 캠퍼스 곳곳에서 유별나게 많이 띈다는 것이다. 졸업정원제가 도입되면서 전년보다 정원이 20% 늘어났기 때문이다.다음 달 3일 실시하는 2021학년도 대입 수능은 예년과 다른 환경에서 치러진다. 코로나 19 여파다. 시험장에는 바이러스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가림막이 설치된다. 반투명성 아크릴 재질로 제작됐다고 한다. 책상 왼쪽과 오른쪽에는 설치되지 않고 앞에만 놓인다. 가로 60㎝, 세로 45㎝ 크기의 상판 밑부분에는 너비 40㎝의 직사각형 홈을 내서 문제지 일부를 책상 밖으로 내놓고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했다.일부 수능 수험생들은 불만을 제기한다. 가림막이 놓일 경우 책상 공간이 좁아져 시험을 치르는 데 방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림막을 치워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교육부는 수험생 간 앞뒤 간격이 띄워지지 않으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가림막을 설치해달라고 요청해 설치 계획을 철회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가림막 설치가 긍정적 측면도 있다. 부정행위 가능성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다. 교육부도 부정행위 방지와 시험 감독을 위해 반투명하게 제작했다고 밝혔다. 너무 투명하면 시험지가 반사돼 부정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너무 불투명하면 감독하기 어렵기 때문에 반투명으로 했다고 한다.수능일에 50만 명 가까운 수험생이 전국에서 시험을 치른다. 지난해보다 3주 정도 늦어져 입시 한파가 우려되지만, 코로나 걱정이 더 크다. 가림막이 설치된 초유의 수능이지만 집단감염 없이 끝난다면 K-방역의 한 장면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1-05 홍정표

[참성단]불교와 개신교의 '성명서 대화'

서양 일부 개신교단에선 걸어다니며 특정 지역을 축복하거나 정화하는 기도를 드린다고 한다. 'prayerwalking'이라는 이 선교방식을 한국 개신교에선 '땅밟기'로 번역해 실행해왔다. 그런데 불교 사찰들이 땅밟기의 표적이 되면서 종교간 갈등으로 비화됐다. 봉은사에서 개신교 청년들이 예배를 드리고, 조계사에 모인 목사와 장로들은 불교 비하 발언을 쏟아냈다. 우상이라며 불상을 훼손하는 일도 잇따랐다. 참다 못한 한국불교종단협의회가 2010년 "기독교는 선이고 타종교는 악이라는 망상"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10년이 흘렀지만 일부 개신교도들의 사찰 공격은 그치지 않았다. 지난달 14일엔 남양주 수진사가 한 개신교도의 방화로 큰 피해를 입었다. 방화범은 "신의 계시"라며 당당했다고 한다. 고 법정 스님이, 시주받은 요정 대원각터에 세운 길상사엔 관음보살상이 있는데 성모 마리아를 닮았다. 법정이 종교간 화합을 위해 천주교신자 조각가에 의뢰한 결과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길상사에서 축시를 낭송했고, 법정은 명동성당을 답방했고, 이해인 수녀는 법정과 김 추기경을 추모하는 글을 남겼다. 위대한 종교인들 행적에 비추어 보면 광신적인 개신교도들의 사찰 공격은 가소로운 일이다.지난 2일 수진사 방화와 관련 이번엔 조계종이 성명을 냈다. 개신교 지도자와 목회자들에게 "신자들을 올바로 인도해야 할 책무가 있다"며 "개신교는 폭력과 방화를 양산하는 종교가 아닌 화합의 종교로 거듭나라"고 요청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다음날 지체 없이 사죄 성명을 발표했다. "종교의 다름을 떠나 평화적으로 공존해야 할 이웃을 혐오하고 차별하며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이 아니다"며 "극단적으로 퇴행하는 한국 기독교 현실을 함께 아파하며 회개한다"고 했다.수진사 방화 사건은 안타깝지만, '품위있는 항의'와 '진정한 사과'로 사태를 수습하는 불교계와 개신교계의 '성명서 대화'가 눈부시다. 대립과 분열의 시대다. 정파 근본주의에 영혼을 빼앗긴 정치꾼과 가짜 지식인들이 분열과 혐오의 언어로 민주주의를 절단 내고, 국가의 기운을 말리고, 국민의 혼을 오염시키고 있다. 정파적 맹목이 광신 만큼이나 두렵다. 불교계와 개신교계가 주고 받은 두 성명이 빛나 보이는 건, 순전히 혼탁한 시국 탓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1-04 윤인수

[참성단]'사회적 타살'

한국은 2003년부터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유지하고 있다. 통계청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사망자는 총 1만3천799명으로, 하루 평균 37.8명이 스스로 생명을 끊었다. 10~30대의 사망원인 1위, 40·50대 사망원인 2위가 자살이다. 지난 10년간 자살 사망자가 십 수만명에 이른다면, 국민 대부분이 한 번 쯤은 가까운 이의 불행한 죽음을 경험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자살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크게 변화했다. 과거에는 자살의 원인을 개인의 심신미약 탓으로 여기기 십상이었지만, 이제는 사회적 타살이라는 개념이 자리잡아가는 중이다. 청소년은 진학 스트레스와 학교폭력, 청장년층은 경제생활, 노년층은 질병과 빈곤이라는 사회적 한계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비방과 비난으로 도배된 SNS는 유명인들을 겨냥한 죽음의 덫이 됐다.이제 낭만적인 베르테르식 자살 미화는 가능하지 않다. 언론은 자살이라는 용어 사용 자체를 자제한다. 정부는 온갖 정책으로 자살로 인한 6조원대 사회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자살률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모방을 부추길 유명인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말 설리, 구하라의 극단적 선택이 있었고 올해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그랬다.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자살예방 대책은 쏟아지지만, 실제로 자살 예방을 위한 상담과 약물치료는 빈약한 점이 뼈아프다. 자살 전조를 보이는 사람들이 전문적인 상담을 받지 못하고, 우울증 환자들은 넘쳐나는데 정신과 치료와 약처방을 받는 사람은 드물다. 정책은 있지만 시스템과 인식은 제자리라는 지적이다.씩씩하고 건강한 웃음을 선사했던 개그우먼 박지선씨가 모친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화장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예민한 피부 때문에 고통받았다지만, 그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고 활동해왔기에 큰 충격을 주었다. 분명 두 사람을 꼼짝할 수 없게 만든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을 뿐이다.동료 개그맨 김영철의 추모사가 긴 여운을 남긴다. "난 지선이에 대해 모르고 있는데 작별을 해야 하니 미안하다. 누군가에겐 엄살이겠지만 아프고, 힘든 얘기들 많이 했으면 좋겠다. 우리가 못 알아차릴 수도 있으니 더 많이 표현하는 하루 됐으면 한다." 우리 사회를 향한 메시지로 손색이 없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1-03 윤인수

[참성단]커밍아웃

여름 한 철 양떼 방목장에서 함께 일하게 된 두 청년이 오랜 친구처럼 마음을 터놓는 사이가 된다. 우정은 친구 이상으로 발전하지만 둘은 감정의 실체가 뭔지 모른 채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4년 뒤 우연히 만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1년에 한두 번씩 만나 함께 지낸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성소수자 이야기다. 2005년 개봉돼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요절한 '조커' 히스레저의 대표작이다.커밍아웃은 동성애자 및 성소수자들이 성적 정체성을 스스로 밝히는 일이다. '벽장 속에서 나오다(Coming out of the closet)'라는 뜻에서 유래됐다. 서구에서는 동성애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가는 것을 '벽장 속에서 산다'고 표현한다. 방송인 홍석천은 국내 연예인 가운데 처음으로 지난 2000년 커밍아웃을 했다.지난주 추미애 장관이 페이스북에 자신을 공개 비판한 이환우 제주지검 검사에 대한 기사를 공유했다. 그러면서 "좋습니다. 이렇게 커밍아웃해주시면 개혁만이 답입니다" 라는 글을 올렸다. 이 검사를 개혁대상이라고 칭한 것이다. 이후 추 장관에 반발해 커밍아웃을 자청한 검사가 200명을 훌쩍 넘었다. 청와대 국민청원사이트에는 '커밍아웃 검사 사표 받으십시오'라는 청원이 등장했다. 답변 기준인 30만명을 돌파했다.법무부와 검찰 발(發) 커밍아웃 논쟁에 시민사회단체는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한 시민단체는 "장관이나 검사들의 글에 등장하는 커밍아웃은 본래의 뜻과 어긋날뿐더러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만들어온 용어의 역사성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법무부 장관이 커밍아웃이란 말을 사용한 것 자체가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차별과 관련해 누구보다 인권의식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유럽과 미국은 동성 간 결혼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추세다. 벽장을 뚫고 나와 대중 앞에 당당하게 밝히는 유명인들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우리는 커밍아웃한 연예인이 드물고, 일반인은 정도가 더 심하다.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여전한 때문이다. 추 장관은 "불편한 진실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장관과 검사들의 난전(亂戰)은 언제 끝날지 가늠하기 힘들다. 다만 상황에 맞지 않는 엉뚱한 소리로 성소수자들이 상처를 입는 일은 중단돼야 한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1-02 홍정표

[참성단]난민(難民)

이란인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는 1988년부터 2006년까지 무려 18년 동안 프랑스 샤를 드골 공항에서 살았다. 이란 팔레비 왕조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추방당했다며 난민 인정을 받아 영국에 정착하려다가 여권을 분실하는 바람에 출발지인 프랑스로 쫓겨나, 그대로 공항 라운지에 갇힌 것이다. 공항 칩거가 흡족했던지 나세리는 프랑스가 발급한 난민용 여권도 거부하며 공항생활을 이어갔다. 남에게 절대 폐를 끼치지 않는 그를 공항 직원들은 가족처럼 돌봤고, 신문을 읽거나 일기를 쓰며 유유자적하는 일상으로 그는 일약 프랑스 제1국제공항의 명사가 됐다.2004년 나세리의 일기를 엮어 출판한 '터미널 맨(The Terminal Man)'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톰 행크스 주연의 '터미널(The Terminal)'이다. 가상의 국가 크라코지아에 온 빅터 나보스키가, 모국에서 발생한 쿠데타로 인해 무국적자가 돼 존 에프 케네디 공항에 갇힌 뒤 벌어지는 해피엔딩 스토리다.하지만 나세리나 영화속 나보스키 처럼 행복한 난민은 극히 드물다. 많은 국가들이 UN 난민조약에 따라 난민을 보호한다지만 허울뿐일 경우가 많다. 중국은 홍콩 민주화운동가나 반정부 인사들의 미국 망명을 결사적으로 막는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목선 탈북난민 2명을 5일만에 북한에 강제송환했다. 유럽과 미국은 경제난민의 대규모 유입을 막는다. 외교분쟁과 국내 반대여론 등 정치적 부담 때문에 대부분의 나라들이 난민지위 인정에 각박한 것이다. 인권과 국익의 충돌이다.그러니 실제로 난민이 되어 타국의 공항에 갇힌다면 처참하다. 지난 2018년 콩고 출신 앙골라 국적인 루렌도 부부와 자녀 6명이 인천국제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했지만, 심사를 거부당해 9개월 넘게 공항에 갇혔었다. 결국 법원의 결정으로 심사가 가능해져 공항을 빠져나왔지만, 가족 모두 건강을 크게 상했다고 한다. 언제 추방당할 지 모르는 공항 생활은 공포 자체였을 것이다.루렌도 가족 사태로 난민법 위헌소원이 제기됐었다. 난민 심사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 위헌이라는 주장에, 헌법재판소는 지난 29일 합헌이라 했다. 무조건 난민 심사를 허용하면 국경을 지키기 어렵다는 당국의 호소가 먹힌 것으로 보인다. 굳이 낯선 타국의 보호를 요청할 필요 없는 모국의 존재만큼 신성하고 소중한 것은 없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1-01 윤인수

[참성단]핼러윈데이

켈트족은 청동기시대 독일 라인·엘베·도나우강 유역에 거주했다. BC 6∼BC 4세기 무렵 갈리아·브리타니아에 진출했고, BC 4세기 초 로마를 침공했다. 한때 유럽을 지배했으나 갈리아는 BC 1세기에, 브리타니아는 1세기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아일랜드·웨일스·브르타뉴 지역에 언어와 풍습이 남아 있다. 로마인은 갈리아인이라 부른다.이들은 겨울이 시작되는 11월1일을 '만성절'이라 부르며 새해 첫날로 삼았다. 내세를 믿어 전날인 10월31일에 죽음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 열린다고 생각해 망자(亡者)들의 혼을 달래는 축제를 열었다. 죽음의 세계에서 온 악령들이 자신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걱정에 악령(惡靈)처럼 분장하고 축제에 참여했다. 미 대륙을 넘어 지구촌 전역으로 번진 핼러윈데이의 유래다.국내에서는 2000년대 초반 용산 미군기지 인근에서 시작됐다. 영어학원 외국인 강사가 급증하면서 학원가를 중심으로 이벤트가 열렸다. 핼러윈 파티를 열면서 영어를 가르치고, 학생들도 유치하자는 상술이 더해졌다. 이후 2010년대 클럽문화가 확산하면서 열풍이 불었다.이태원과 홍대, 강남 등지 클럽들이 경쟁적으로 핼러윈 파티를 열었다. 젊은이들은 악당과 마귀, 영화 캐릭터 분장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니다 클럽으로 몰렸다. 유명 연예인들이 핼러윈 파티 장면을 SNS에 공유하면서 유행이 됐다. 2018년 한 남성이 강남의 클럽에서 5만원권 다발 1억여원을 뿌리는 소동이 있었다.서울 소재 대형 클럽들이 28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영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 방역당국은 젊은 층이 클럽 등 밀폐시설에 밀집하는 핼러윈데이를 기점으로 코로나19 재확산 우려가 크다며 모임을 자제할 것을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집합금지 행정명령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정부·지자체의 압력이 통한 듯하다.방역당국은 일단 클럽 발 집단감염 우려가 확 줄어들게 됐다는 반응이다. 그래도 불안요소가 여전하다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중소 규모의 술집과 거리에서 즐기는 '코스튬 플레이'가 주의 대상이라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귀신도 몸을 숨겨야 하는 신세가 됐다. 청년 세대는 아쉽겠지만 올해는 일탈의 유혹을 참아내야 한다. 나보다 우리, 개인보다 공동체 우선이 슬기로운 바이러스 퇴치법이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0-29 홍정표

[참성단]'자민당 장기집권'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일본 정치는 자민당 장기집권의 기록이다. 1955년 강경 보수인 자유당과 중도보수인 민주당이 합당해 창당한 이후 일본 정치를 지배해왔다. 두 차례에 걸쳐 야당에 5년 8개월 정권을 내준 적 있지만 장기집권 역사에선 작은 에피소드일 뿐이다. 자민당 총재가 자동적으로 총리가 되니 의회의 총리 임명동의권은 무용지물이다. '자민 막부'라는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중도에서 극우까지 아우르는 '보수 빅텐트' 자민당의 독주는 견고하다.장기집권에 따른 폐해가 없을 수 없다. 가장 큰 폐해는 허약한 민주주의다. 의원내각제에 바탕한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1당의 장기집권으로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지난해 개봉한 일본 영화 '신문기자'는 장기집권의 폐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익이 주류인 탓인지 흥행은 저조했지만 한국배우 심은경이 신문기자 역을 열연해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일본 여배우들이 우익들의 '이지메'를 걱정해 배역을 외면한 덕분이다.영화에서 일본 정부는 대학교로 위장한 생화학무기 연구소 신설을 추진한다. 주축은 총리 직속의 정보기관인 내각정보조사실이다. 하지만 내부고발자가 이를 한 지방언론에 제보하고, 내각정보조사실장은 이를 막기 위한 여론조작과 언론 회유 및 협박을 자행한다. "정권유지가 나라의 평화와 안정이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형태만 있으면 돼"라는 조사실장의 극 중 대사엔 1당 장기집권의 모든 폐해가 농축돼있다. 정권이 국가가 된 나라, 일본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기회가 될 때마다 민주당 정권 장기집권을 희망했다. 집권이 목표인 정당이 연속적인 국민지지를 꿈꾸는 건 비난할 일이 아니다. 최근 민주당이 지난달 발의한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로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 개정안은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비토권을 없애는 것이다. 야당의 비토권 행사가 현실화되자, 입법과정에서 민주적 견제장치라 자부했던 비토권을 스스로 없애겠다는 얘기다. 중립적인 공수처장 후보로 야당을 설득하는 대신 절대다수 의석으로 비토권을 박탈한다면 형식적인 민주주의로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해치는 일이지 싶다. 한국 진보 빅텐트 민주당의 장기집권 구상의 목표가 형식과 실질이 일치하는 민주주의일 것으로 믿는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0-28 윤인수

[참성단]이건희가 남긴 유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오늘 선영에 안장된다. 지난 25일 아침 이 회장이 타계하자 그의 업적을 기리는 보도가 넘쳐나는 가운데 일각에선 그의 과오를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 있는 자리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듯, 고인에 대한 기억이 교차하는 건 당연하다. 삼성과 유족이 가족장을 치른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대중의 추모 분위기는 국민적이었다.가장 인상적인 건 한국 대표 기업 삼성에 대한 국민적 자부심 표출이다. 온라인 매체에는 아버지 이병철에게 물려받은 1조짜리 삼성을 400조짜리 글로벌 삼성으로 키운 이 회장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공(功)과 함께 과(過)를 언급했다가 '무례하다'는 네티즌의 항의에 시달렸고 급기야 청와대엔 삼성 상속세 10조원 면제 청원이 올랐을 정도다."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프랑크푸르트 혁신 선언과 '애니콜 화형식' 등 이 회장이 남긴 어록과 행적들이 '혁신의 언행'으로 각광받고, 절판된 그의 수필집은 중고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된다고 한다. 뉴욕타임즈는 한국식 재벌경영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삼성의 큰 사상가"라 기렸고,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조기를 게양했다.대학가의 추모 열기는 뜻밖이다. 서울대와 고려대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와 '고파스'엔 이 회장을 '현대판 이순신'이라며 위인의 반열에 올리자거나 국민장을 해주자는 등 예상 밖의 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비록 일각의 주장일테지만 편법상속·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법적 심판 등 삼성의 부정적 이미지에 익숙한 세대에게도 이 회장의 성취가 비범했던 모양이다. '이건희의 족적'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이 회장의 타계로 한국 경제를 창업하고 수성한 재벌 1, 2세대의 시대가 저물었다. 빛이 강렬했던 만큼 그림자도 짙었지만, 그래도 "해보기나 했어"라는 정주영식 1세대 도전과 "다 바꾸라"는 이건희식 2세대 혁신이 오늘의 한국경제를 만들어냈다. 개천에서 흔하게 용이 났던 덕분이다. 이 회장 장례기간 많은 국민들이 누구나 용이 될 수 있었던 '등용문 시대'의 기억을 공유했다. 이 기억으로 가재·붕어·개구리에 머물 뻔한 많은 청년들이 용이 되기를 바란다.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명복을 빈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0-27 윤인수

[참성단]전통시장 '청춘몰'

2017년 7월 수원 영동시장에 '28청춘 청춘몰'이 개장했다. 시장 2층 유휴공간 660㎡에 쇼핑과 지역 문화, 젊은 감각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조성됐다.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이 공모한 '2016 청년몰 조성사업'에 응모해 선정됐다. 국비 7억5천만원, 시비 6억원, 시장 자체 지원금 1억5천만원 등 15억원이 투입됐다.28개소 점포주들은 19~39세 청년세대로 구성됐다. 넘치는 열정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시장 명물이 됐다. 입주업체인 '미나리 빵집'이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었다. 2년 전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에 입점해 화제가 됐다.비슷한 시기, 수원 남문시장의 '푸드트럭존'은 백종원 프로그램에 방영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우리가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뿐 아니라 다양한 이국의 먹거리를 선보여 젊은이들을 줄 세웠다. 덕분에 전통시장이 젊어지고 활기가 넘쳐난다는 찬사가 쏟아졌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열기는 식고, 손님 발길은 뜸해졌다. 한때 15대를 넘어서 차로까지 점령했던 푸드트럭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소상공인들을 주저앉게 한 코로나19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청년몰은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전통시장 활성화와 청년 일자리를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전국 전통시장 17군데에 설치됐다. '전통시장의 새로운 희망과 활로'라는 시행 초기의 호평은 사라지고 어렵고 힘들다는 한숨만 커지는 양상이다.의정부 제일시장은 청년몰 사업이 초반부터 난관에 부딪히면서 시장과 상인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 기존 세입자들을 내보내면서 의욕적으로 추진했으나 청년 예비창업자들이 외면하면서 중도 포기를 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사업비로 확보한 국비 10억원과 시비 8억원, 자부담 2억원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정산해야 하는 딱한 처지가 됐다.시장 관계자들은 청년몰의 몰락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상권 특성이 고려되지 않고, 새로울 게 없는 뻔한 업종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장 활성화와 창업 일자리 창출에 매달려 지원을 남발한 정부와 관련 단체도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다.겨울철은 환경이 열악한 전통시장에 불리하다. 청년몰도 마찬가지다. '젊어 실패는 돈을 주고라도 산다'고 했다. 청년창업주들의 도전정신을 응원한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0-26 홍정표

[참성단]'비밀의 숲'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덕분에 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1'을 정주행했다. 2017년 tvN이 제작 방영한 드라마다. 드라마의 서부지검 검사들은 대부분 세속의 권력에 오염된 사람들이다. 황시목 검사만이 사건의 진실을 향해 직진한다. 뇌 수술 후유증으로 감정을 잃은 덕분이다. 이 별종 검사가 온갖 우여곡절 끝에 비밀의 숲에 숨어있던 재벌권력을 심판하고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혀낸다는 스토리다. 재벌가의 사위로 전 서부지검장 출신 청와대 민정수석 이창준이 사실은 황 검사를 비밀의 숲으로 인도한 내부고발자였다는 극적인 반전은 허탈했지만 극적 긴장감으로 16회 정주행이 가능했던 웰메이드 드라마였다.조 전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법사위의 대검 국정감사 다음 날 SNS에 캡처한 비밀의 숲 영상에 황 검사의 대사를 올렸다. "썩을 덴 도려낼 수 있죠. 그렇지만 아무리 도려내도 그 자리가 또다시 썩어가는 걸 전 8년을 매일 같이 목도해왔습니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왼손에 쥔 칼로 제 오른팔을 자를 집단은 없으니까요. 기대하던 사람들만 다치죠." 지금 검찰 조직과 검사들이 '비밀의 숲'의 서부지검과 검사들과 같다는 것이고, 결론은 SNS 제목대로 '공수처의 필요성'이다.드라마 제목 '비밀의 숲'은 그 어떤 사정 기관의 접근도 불허하는 성역화된 모든 권력을 은유한다. 비밀의 숲에서 법 위에 군림하는 모든 권력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산다. 이를 쳐부순 영웅들이 적지 않았다. 이탈리아 마니 풀리테 검사들과 브라질의 세르지오 모루 연방판사는 부패한 최고 권력자들을 법대에 세웠고, 미국 재무성의 비밀검찰국 언터처블들은 알 카포네를 알카트리즈 감옥에 보냈다. 하지만 이탈리아, 브라질, 미국의 권력형 범죄가 사라진 건 아니다. 사정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법을 농락하는 권력과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다.대검 국감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법리적으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했다. 같은 날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은 "정치가 검찰을 덮어 버렸다"며 사표를 던졌다. 수사지휘권을 박탈당한 검찰총장의 항변, 정치 현실에 비관해 검사직을 내놓은 서울남부지검장의 좌절 뒤에 범접할 수 없는 '비밀의 숲'이 어른거린다. 감정 없이 오직 법에 따라 비밀의 숲을 파헤치는 검사들이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0-25 윤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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