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동물국회' 유감

국회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지정)을 둘러싼 여야 충돌로 '동물'수준으로 떨어졌다는 국민적 개탄이 자자하다. 선거법, 공수처법 등을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발의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 중심 여야 4당과 기필코 저지하겠다는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국회의사당 폭력대치로 국회가 과거 '동물국회' 시절로 회귀했다는 것이다.하지만 지금 복원된 '동물국회'의 양상이 과거에 비해 심각한 이유는 '말' 때문이다. 양측의 말 폭탄이 몸싸움보다 심각한 후유증을 낳고 있다. 여야 지도부는 29일 하루에만도 거두어들이기 힘든 저주의 말들을 쏟아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한국당을 '국회를 못 맡길 도둑놈'이라며 청산에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한국당의 저지투쟁을 '반개혁 정당의 난동'이라고 쏘아붙였다. 한국당의 독설도 만만치 않다. 황교안 대표는 패스트트랙 발의를 "의회 쿠데타"라고 했고, 나경원 원내대표는 "(대통령에게) 홍위병을 선사하는 공수처법"이라고 목청을 높였다.과거에도 여야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격돌하고, 야당의 장외투쟁으로 정국이 경색됐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도 협상을 위한 퇴로는 열어놓았다. 협상 주체에 대한 직접적인 도발은 자제했던 것이다. 여야 협상에 진전이 없으면 여당의 주인인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영수회담으로 돌파구를 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에 한나라당 이회창 대표와 7번이나 만났다.동물국회 시절에도 언어의 금도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여야 정치는 동물적 행태보다 패륜적 언행이 더 문제다. '난동을 부리는 도둑놈(자유한국당)'과 '정권의 홍위병을 세우는 의회 쿠데타 세력(더불어민주당)'이 타협을 위한 대화를 모색하기는 힘들다.지난 16일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당 이 대표와 홍 원내대표에게 "여야정 협의체를 가동해 쟁점사안을 해결하는게 좋겠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패스트트랙 발의를 결정하기 전에 대통령의 제안을 실행했으면 '동물국회'는 면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말 폭탄과 맞고발 대결로 대화 자체가 당분간 힘들게 됐다.분명한 건 여야의 '정치인격'으로는 패스트트랙으로 실현하려는 다당제 국회가 상대의 절멸을 원하는 정치동물들의 난장판으로 변할게 틀림없다는 점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4-29 윤인수

[참성단]어벤져스가 뭐길래

영화관이 1년에 73일 이상 한국영화를 반드시 상영해야 하는 '스크린 쿼터제'는 늘 영화계의 뜨거운 감자였다. 폐지론이 고개를 들 때마다 한국영화 붕괴를 우려한 영화인들이 길거리로 나서 삭발투쟁을 벌였다. 한국 최고의 감독 봉준호도 한때 스크린 쿼터 폐지를 반대하며 1인시위를 벌인 적이 있다. 그러면서 자신은 '괴물(1천300만)'과 '설국열차(935만)'로 스크린을 독점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했다.한국영화 발전에 스크린 쿼터제는 큰 도움이 됐다. '도둑들' '광해, 왕이 된 남자' 두 편의 영화에 무려 2천500만명의 관객을 부른 2012년 7~9월, 한국영화 좌석 점유율은 70.4%였다. 물론 이 때문에 아픔도 있었다. 매년 평균 100편의 한국 영화가 제작되지만, 흥행작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개봉관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등장한 게 '스크린 상한제'다. 우리나라처럼 특정 영화의 상영 점유율이 90%를 넘는 경우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지난 24일 개봉한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전국 3천58개 스크린의 95.7%인 2천927개를 독점했다. 덕분에 개봉 첫날 134만873명의 관객을 동원해 오프닝 기록도 세웠다. 스크린 부족으로 1개 스크린에 4개 영화가 '시간 나눠먹기'를 벌였다. 이 때문에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군함도' '명량' '신과 함께' 등 천만 관객영화가 나올 때마다 논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다'며 그때는 넘어갔었다.하지만 이번엔 예사롭지가 않다. 찬반논란이 뜨겁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22일 "스크린 독과점을 막기 위한 스크린 상한제를 위한 관련 법을 개정하겠다"고 말한 후, "정부가 '어벤져스 규제'로 인기 영화 상영을 제한하려 한다"며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어서다. 이미 국회에는 스크린 상한제를 제도화한 4개의 법안이 계류 중이다. 다만 너무 민감한 사안이라 마치 '고양이 목 방울 달기'와 같다. 프랑스 등 해외에서는 영화 한 편이 전체 스크린의 30%를 넘지 못하는 관련 법안이 시행되고 있다. 스크린 상한제를 적용하면 특정 영화의 독점을 막고 관객들은 다양한 영화들을 만날 기회가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영화인들의 속셈은 복잡하다. 한국영화가 타격을 받아 1천만 한국영화를 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극장업계도 난색을 보이고 있다. 도대체 어벤져스가 뭐길래, 이래저래 영화판이 시끄러워지게 됐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4-28 이영재

[참성단]진보 대연합

1990년 2월 민정 민주 공화 3당이 합당해 '민주자유당(民主自由黨)'이 탄생했다. 두 글자로 줄이면 '民自', 한글로 쓰면 '민자', 그래서 밋밋하고 '개성 없음'을 꼬집는 '민짜'로 발음되기 쉬우므로 당명을 바꾸는 게 좋겠다는 의견도 꽤 많았다.당시 3당을 '보수 대연합'으로 불러야 할지, 아니면 '보수·중도합당'으로 불러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도 분분했다. 정치학자들조차 뭐라 부를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원래는 1당만으로 국회의 과반수를 확보하는 당이 없을 때, 내각책임제의 경우는 복수의 당이 합쳐서 정권을 만드는 경우를 '연립' 또는 '연합정권'이라고 부른다. 이 경우 제1당과 제2당이 합쳐서 정권을 탄생시키면 '대연립' 또는 '대연합', 제1당이 제3당과 합치면 '소연립' 또는 '소연합'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제2당인 평민당이 빠졌으니 '대연합'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당시 언론은 3당 합당을 '보수 대연합'이라고 불러주었다. 진보성향의 강력한 제1야당인 평화 민주당이 빠졌지만, 보수와 중도가 모두 모였으니 '보수 대연합'이라고 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4당이 선거제도 개편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 3개 안건'에 합의함으로써 정국은 1여 4야에서, 순식간에 4여 1야로 바뀐 느낌이다. 일부에선 90년 '보수 대연합'을 빗대어 '진보 대연합' '한지붕 네 가족당'이란 소리도 들린다. 이게 꼭 틀렸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신속처리 절차에 돌입하면 최장 330일이 걸려 이 기간에 4개 당은 최대 쟁점 현안에서 협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나라의 운명이 백척간두(百尺竿頭)라면 여·야 5당이 합쳐 1당이 된들 탓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지금이 그런 상황도 아니다. 패스트트랙을 강행하려는 '진보 대연합'이 국민 다수로부터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밥값 못한다"며 국회의원의 수를 줄이자는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밥그릇 싸움' 정도로 이해하는 국민도 꽤 된다. 특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은 '고위 공직자의 권력형 비리 근절'이라는 애초 취지와는 달리, 국회의원과 대통령 친·인척, 장·차관이 대상에서 제외됨으로써 공분(公憤)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국회인지 생각하게 하는 요즈음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4-25 이영재

[참성단]슬픈 결혼식

인현동 화재 참사가 발생하고 5일 후인 1999년 11월 4일 이른 아침, 인천 길병원 영안실에서 정명환 당시 남구청장이 주례사를 읽어 내려갔다. 목멘 주례사가 이어지는 사이 탄식과 흐느낌이 장내를 가득 메웠다. "두 젊은 영혼이 지금 영정으로 만나지만, 이 모순되고 부도덕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며 함께 스러져간 인연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닙니다. 그날 함께 떠난 넋들을 하객으로,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남아있는 부모와 어른들을 증인으로 삼아 그대들이 영혼으로 맺어진 천생배필임을 확인하나이다."주례의 결혼 선포로 사돈이 된 두 아버지는 서로 아들과 딸을 대신해 흑장미와 순백의 국화를 교환했다. 붉어진 눈시울을 훔치던 두 어머니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끝내 오열을 터뜨렸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자식의 넋을 조금이라도 달래보려는 부모들의 눈물겨운 배려에 두 영혼은 이렇게 백년가약을 맺었다. 열일곱, 열여섯의 꽃다운 나이였다. "신랑은 다른 아이들을 도와주다 변을 당했고, 신부는 반에서 1~2등을 다투던 모범생이었어요." 아이들을 추억하던 참석자들은 이들이 저승에서라도 서로를 보듬으며 해로하기를 기도했다.어느덧 20년 전의 일이다. 영혼결혼식이 열린 길병원 영안실은 개인적으로 가장 슬펐던 취재현장이었다.인현동 화재 참사 20주년을 맞는 올해, 인천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인현동화재참사유족회와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인현동화재참사 20주기 추모준비위원회'가 인현동 화재 참사를 인천의 '공적 기억'으로 복원할 것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스템을 정비하고, 고통받은 유족과 지인의 사회적 치유와 희생자의 명예를 복원하여 인천시민에게 도시의 공공성을 확인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현동 화재 참사의 공적 책임과 시스템 점검이 있었다면 세월호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진단도 덧붙였다.인현동 화재 참사는 아픈 기억이다. 상당수 유족은 마치 손에 박힌 가시와도 같은 '아픈 기억'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도 했다. 그 아픈 기억이 지금까지도 통증을 일으키는 것은, 무수히 많은 '신약 개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가 상처를 치유하고 예방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04-24 임성훈

[참성단]수도권 쓰레기 매립지

1977년까지 난지도는 '난초(蘭)와 영지(芝)가 자라던 섬'이었다. 조선 시대 김정호의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에는 '꽃 섬'이라는 의미를 담은 '중초도'(中草島), 오리가 물에 떠 있는 모습이라고 해서 '오리섬'(압도·鴨島)이라고도 표기했다.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그윽한 풍경은 1978년 난지도가 수도권 쓰레기 매립장이 되면서 모두 사라졌다.1993년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 폐쇄로 새로 조성된 곳이 인천 서구의 수도권 쓰레기매립지다. 정부가 동아건설로부터 부지를 양도받아 1991년부터 조성했다. 혐오시설이란 이유로 당시 부지 선정을 두고 갈등이 컸다. 이곳은 1960년대 빈민구제사업으로 조성한 해안간척지로 80년대 들어서면서 농지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됐다. 지금은 전국의 40%에 달하는 수도권 3개 지자체의 쓰레기가 묻힌다. 제1 매립장은 2000년, 제2 매립장은 2013년 총 폐기물 1억4천257만t이 묻히며 매립장의 역할을 사실상 다했다. 하지만 대체 매립지가 없다는 이유로 논란 끝에 사용 기한을 한시적으로 연장했다. 지난해 9월 매립을 시작한 제3-1 매립장은 2025년 8월까지만 사용하는 것으로 지자체들이 합의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주민들의 반발로 더는 대체 매립지를 발표하지 못하자 공모를 통해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를 선정하기로 서울시, 경기도, 인천시가 합의했다. 그러나 이 역시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지가 않다. 혐오시설을 반대하는 이른바 님비(NIMBY) 현상이 작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 뒷마당에는 절대 안 돼! (Not in my backyard!)"라고 반발하는 주민들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세상에 쓸모없는 건 없다. 그런데 쓸모없다고 버려지는 너무 많은 쓰레기로 온 나라가 몸살을 앓고 있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전 세계가 모두 그렇다. 우리나라가 특히 심할 뿐이다. 쓰레기 문제는 지금부터라도 지방자치단체 간 긴밀한 타협과 조정이 필요하고 때로는 누군가의 희생이 불가피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총선을 불과 1년 앞둔 시점에서 대체 매립지 선정이 정치권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에 수도권은 이미 파랗게 질렸다. 지금도 하루 평균 1만3천여t의 쓰레기가 3-1 수도권 쓰레기 매립장으로 쉼 없이 반입되고 있다.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기분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4-23 이영재

[참성단]김대중 - 김홍일 부자

아들에게 아버지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자,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사슬로 엮인 숙명적 관계이다. 그리스 로마신화는 우라노스, 크로노스, 제우스 3대의 부친살해를 통해 창세의 혼돈을 정리하고 신들의 세계를 정립한다. 오이디푸스는 부친을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뒤 결국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세상과 절연한다. 피를 나눈 부자지간의 비극은 신들이 설계한 운명의 올가미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을 보여준다.혈연을 중시하는 동양문화에서도 아버지의 업과 운명은 자식에게 미친다. 정치분야는 특히 더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아버지 시중쉰이 문화대혁명으로 숙청당하자 15살 나이에 산시성 촌구석으로 하방당해 토굴 속에서 7년을 보내야 했다. 김삿갓으로 유명한 김병연은 과거시험에서 조부 김익순을 신랄하게 비판해 급제했으나, 뒤늦게 조부임을 알고 평생을 방랑했다. 비정한 정치판에서 부자의 운명은 연좌를 피하기 어렵다.지난 20일 작고한 김홍일 전 의원이 부친인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길을 함께 한 것도 숙명이었을 것이다. 군부독재의 박해에 시달리는 부친을 두고 다른 길을 모색한다? 언감생심이었을 터이다. 신군부는 김대중내란음모사건으로 두 부자를 함께 감옥에 가두었다. 아들은 투옥 전에 모진 고문을 당했다.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얻었다. 휠체어 없이 거동을 못했고 언어장애도 심했다.아버지 김대중은 "그런 아들을 보고 있으면 뼛속까지 아팠다"는 심경을 자서전에 남겼다. 박지원 의원의 전언대로면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니, 그 정경이 참담하다. 아들이 인사청탁 수뢰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했을 때도 아버지는 "홍일이가 유죄를 받고 의원직을 상실하더라도 현금 3천만원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으면 원이 없겠다"고 했다니, 아들에 대한 부채의식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김 전 의원은 오늘 발인을 마치고 광주 5·18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조문객의 바람대로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부자의 정담을 마음껏 나누기 기원한다. 엄혹했던 역사에 휘말린 정치적 동지로서가 아니라 그저 아버지와 아들로 환하게 만나기를…. /윤인수 논설위원

2019-04-22 윤인수

[참성단]임진강 상괭이

태종실록 1405년 11월 20일에 이런 기사가 실려있다. '큰 고기 여섯 마리가 바다에서 조수(潮水)를 타고 양천포(陽川浦)로 들어왔다. 포(浦) 옆의 백성들이 잡으니, 그 소리가 소(牛)가 우는 것 같았다. 비늘이 없고, 색깔이 까맣고, 입은 눈(目)가에 있고, 코는 목(項) 위에 있었다'. 양천포는 서울 강서구 가양동. 잡혔다는 6마리의 고기는 '상괭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갑자년(1564년)에 한강에 큰 물고기가 나타났다. 크기는 돼지만 하고 색상은 희며, 길이가 한 길이 넘는데 머리 뒤에 구멍이 있었다'고 적혀 있는데 이 역시 상괭이로 추정된다. 상괭이는 최대 크기가 약 1.5~2m로 회색 몸통에 주둥이가 짧고 등지느러미가 없다. 이빨 고래류 중 덩치가 가장 작다. 예로부터 바다와 강에서 흔히 발견되다 보니 지역에 따라 '쌔에기' '슈우기' '무라치'로 불렸다. 순조 14년인 1814년 흑산도에 유배 중이던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상괭이를 '상광어(尙光魚)'와 '해돈어(海豚魚)'라 적었다. 얼굴 모양이 사람이 웃는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웃는 돌고래', '형사인(形似人)' 즉, 사람을 닮은 물고기 '인어'라고도 불린다.상괭이는 남·서해안에 주로 서식하지만, 옛날에는 통진(김포) 부근에 특히 많았다. 다른 돌고래와 달리 염분이 적은 물에서도 활동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강에 사는 돌고래는 손에 꼽을 정도다. '보토'라고 불리는 아마존의 '분홍돌고래', 라오스의 '이와라디 돌고래'도 메콩 강에 서식한다. 이들의 특징은 개발과 수질 오염, 남획으로 개체 수가 줄어들고 있는 세계적인 희귀동물이라는 점이다. 사람같이 여러 표정을 짓는다고 해서 모두 인어 전설쯤 하나씩 가진 것도 공통점이다. 인천 장봉도의 인어 전설도 상괭이에서 연유한다.지난 17일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한 상괭이 한 마리가 파평읍 율곡리 임진강 변에서 발견됐다. 최근엔 지난 2015년 4월, 5월 두 차례 한강 변에서 사체로 발견된 적은 있지만, 산 채로 잡히긴 처음이다. 구조된 상괭이의 몸길이는 1.5m 가량으로 탈진이 심하고 온몸에 피부병이 발병한 상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동물병원에 옮겨진 지 10분 만에 폐사했다. 모처럼 임진강을 찾은 것은 반갑지만, 인간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웃는 돌고래' 상괭이가 멸종리스트에 오르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4-21 이영재

[참성단]반값 등록금

대학을 가리키는 말도 세태에 따라 변했다. '신성한 학문, 진리의 전당'을 가리키는 '상아탑(象牙塔)'은 대학생에게 '듣보잡'이 된 지 오래다. '가난한 농가에서 소를 팔아 마련한 학생의 등록금으로 세운 건물'이란 의미의 '우골탑(牛骨塔)'도 대학가에선 아주 낯선 용어다. 비싼 등록금을 대기 위해 부모의 등골이 휜다는 '인골탑(人骨塔)'에 이어 '늙으신 어머니가 힘든 일을 하여 자녀 학비를 댄다'는 '모골탑(母骨塔)'이란 신조어가 요즘 대세다. 등록금에 대한 부담이 날이 갈수록 가중되고 있음을 뜻한다.2017년 사립대 등록금은 평균 742만원이다. 10년째 동결이라지만 여전히 높은 편이다. 지난 30여년간 한웃값은 6배 올랐으나 대학등록금은 85배 뛰었다. 지난해 송아지 한 마리가 350만원 안팎으로, 1년 등록금을 위해서는 송아지 2마리를 팔아야 했다.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드는 학생도 크게 늘었다. 최저 임금 인상으로 이마저도 하늘의 별 따기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등록금 대출을 받는 학생도 크게 늘었다. 취업 즉시 대출금 상환을 해야 하는데, 취업 역시 하늘의 별 따기다. 이래저래 등록금은 평생 짊어져야 할 짐이다.대학등록금 문제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하다. 정부가 '등록금 상한제'까지 만들어 인상의 고삐를 바짝 죄는 것도 그래서다. 현행 고등교육법엔 등록금 인상률과 관련해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 물가상승률의 1.5배를 초과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학이 원하는 대로 등록금을 인상해 줄 경우 표밭인 20대들로부터 역풍을 맞는다는 걸 정치권도 잘 알고 있다. 대학들도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등록금 인상은 꿈도 꾸지 못한다. 등록금 인상 시 국가장학금·정부 재정지원 사업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반값 등록금'은 정치권의 매혹적인 어젠다이다.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었다. 문제는 누가 먼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느냐다. 안산시가 먼저 움직였다. 지자체 중 최초로 관내 모든 대학생에게 등록금의 50%를 지원키로 했다. 예산은 총 335억원. 당장 '포퓰리즘' 논란에 휩싸였다. 교육복지를 포퓰리즘으로 무조건 매도해 버릴 때, 진지한 사회적 논의 공간은 좁아진다. 문제는 왜 총선을 1년 남겨둔 이 시점에 이런 발표를 했느냐는 것이다. 포퓰리즘 정책은 결국 독이 된다는 걸 우리 모두는 아는데 정치인들만 모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4-18 이영재

[참성단]망언정치언어상

'나는 여론을 일으키거나 거기에 붙어서 편을 끌어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의 글은 다만 글이기를 바랄 뿐, 아무것도 도모하지 않고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리지 않는다'. 김훈 작가가 얼마 전 산문집('연필로 쓰기')을 내면서 '알림'이란 제목으로 서두에 쓴 글이다. 역시 글쓰기의 대가 다운 면모가 엿보인다. 글쓰기에 대한 자신만의 원칙과 철학, 더 나아가 탁월한 통찰력의 소유자만이 갖출 수 있는 자신감이 단어 하나 하나에 흠뻑 배어있는 듯하다. '알림'이란 제목을 달았지만 '선언문' 같은 중량감이 느껴지는 것은 연필 끝에 가해지는 내공의 무게 때문이리라.외람되지만 이 글을 한 번 뒤집어 본다. '나는 여론을 일으키고 거기에 붙어서 편을 끌어모으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나의 글은 무엇인가를 도모하며 당신들의 긍정을 기다린다'. 뒤집고 보니 좀 섬뜩하다. 일부 정치인들의 글쓰기(또는 인용하기) 행태와 매우 닮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정치인의 글쓰기와 관련해, 일종의 강령을 압축해 놓은듯한 느낌도 든다.최근 일부 정치인들이 SNS에 쓰거나 인용한 세월호 망언에도 '편을 끌어모으고 무엇인가를 도모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던 것은 아닌지 강하게 의심이 든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월호 유가족을 겨냥해 "징하게 해 처먹는다"거나 "이제 징글징글해요"라는 식의 자극적인 표현(문장)을 불특정다수가 보는 SNS에 올리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들 정치인은 결국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지만 세월호 유가족이 입은 상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 같다."길거리에서 같은 또래의 아이들을 보기만 해도, 음식점에서 아이가 좋아하던 반찬이 나오기만 해도, 아이와 함께 걷던 길에 접어들기만 해도 아이 얼굴부터 떠오르는 걸 어떡합니까." 예전에 접했던 자식을 잃은 한 어머니의 호소다. 세월호 유가족의 5년 세월도 이랬을 터인데 일부 정치인들이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이 와중에 망언 논란의 중심에 있는 한 국회의원이 제8회 국회를 빛낸 바른정치언어상 시상식에서 품격언어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품격이란 단어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하는 대목이다. 앞서 김훈 작가의 글에 변형을 가했을 때 전혀 다른 의미가 됐다. 동시에 원래 문장의 품격이 돋보이기도 했다. 품격은 이런 경우에 어울리는 단어이지 않을까 싶다. 내친김에 '바른정치언어상'도 한번 뒤집어 보자. '망언정치언어상'으로. /임성훈 논설위원

2019-04-17 임성훈

[참성단]불탄 노트르담 대성당

지금은 우리 모두 할리우드 영화에 푹 빠져 있지만, 한때는 '프랑스 영화'로 몸살을 앓았다. 지금은 극장 문을 나서면 내용을 금세 잊지만, 프랑스 영화에 응축된 깊은 예술성에 영화를 보고 난 후 감흥은 꽤 오래갔다. 여기에 영화 음악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것도 프랑스 영화였다. '새로운 물결(new wave)'이란 뜻의 '누벨 바그'라는 영화운동이 나올 만큼 프랑스 영화는 예술 영화의 상징이었다. 르네 클레망은 예술로서의 프랑스영화를 완성 시킨, 프랑스인들이 가장 사랑하고 흠모하는 감독이다. '태양은 가득히' '금지된 장난' '목로주점'에서 그는 독자적인 영화 사실주의를 개척했다.1966년 작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에서 클레망은 실사화면을 중간중간에 넣어 영화의 사실주의를 극대화 시키려고 했다. 영화를 흑백으로 제작한 것도 그런 이유다. 알랭 드롱, 장 폴 벨몽드, 샤를르 부아이에, 커크 더글러스, 글렌 포드 등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단 한 장면을 찍기 위해 기꺼이 영화에 동참했다. 영화는 파리에서 철수하는 나치스 군에게 파리를 잿더미로 만들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받고, 예술을 사랑한 점령군 사령관이 히틀러 명령에 복종할 것인지, 예술의 도시 파리를 지켜야 할 것인지를 두고 벌이는 고뇌를 다뤘다. 항복한 사령관이 놓친 전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라는 히틀러의 절규는 이 영화의 백미다.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염에 휩싸인 충격적인 영상을 보고 이 영화가 떠오른 건 영화의 엔딩신 때문이다. 연합군의 파리 입성을 가장 먼저 반긴 것은 노트르담 대성당의 종소리였다. 클레망도 이를 꽤 비중 있게 다뤘다. 종 치는 장면과 파리로 들어오는 연합군, 개선문을 향하는 드골 장군,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시민들을 교차 편집해 노트르담의 종소리를 유난히 강조했다. 이처럼 노트르담 대 성당은 프랑스인의 꿈이자 희망이며 자긍심이었다.프랑스의 '심장'인 노트르담 대성당의 화재로 프랑스인이 받을 정신적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깊고 아플 것이다. 우리도 2008년 화재로 국보 1호 숭례문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걸 보았다. 그때, 훼손된 민족의 정서적 연대감이란 게 얼마나 아픈 것인지 처절하게 경험했다. 깊은 상실감으로 좌절하고 있을 프랑스 인들에게 "힘내라"고 위로의 말을 보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4-16 이영재

[참성단]백두산 분화(噴火)

동해 바닷물이 마를 일도 없고 백두산이 닳아 없어질 일도 없다. 애국가 1절은 동해와 백두산을 담보로 대한민국의 영원한 존속을 장담한다. 그런데 동해는 몰라도 백두산은 닳아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어제 국회에서 '깨어나는 백두산 화산,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는데, 발표자들의 걱정이 예사롭지 않다.윤성효 부산대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잦은 지진이 발생했던 백두산이 잠시 안정됐다가 지난해 부터 다시 지진이 증가하고 있다며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윤수 포항공대 교수는 "946년 백두산 분화 당시 방출된 화산에너지는 약 840경(1京=1兆의 만 배) 주울(J)로 히로시마 원자폭탄 에너지의 16만배, 동일본대지진의 4배"라고 밝혔다.국제 공동연구팀은 2017년 천지 부근에서 발견된 낙엽송 화석의 나이테를 정밀 분석한 결과 백두산 대분화의 시점을 946년 가을에서 겨울 사이로 특정했다. 이전에는 대충 서기 1천년 안팎 쯤으로 추측해 학계에서는 백두산 '천년 분화'로 불러왔다. 백두산 천년 분화 정도의 화산 폭발은 1만년 동안 네 번 뿐이었단다. 100㎦ (1천억㎥)의 화산재가 일본 홋카이도를 덮치고 지구 한바퀴를 돌아 그린란드의 빙하에도 쌓였다고 한다. 일본 우익들은 터무니 없이 천년 분화를 고대 한국인 멸종설, 발해 멸망설의 근거로 주장할 정도다.백두산이 천년 전의 대폭발을 일으킨다면 재앙의 규모는 당시 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다. 천지 아래 마그마가 솟구쳐 20억㎥에 달하는 천지 물을 만나면서 엄청난 수증기와 화산재가 지구 전체를 덮쳐 지구환경과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재앙이 될 수 있다. 중국 국가지진국이 천지화산관측소를 설치해 백두산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다.우리 학자들은 지금이라도 남북을 포함해 백두산 화산을 감시할 국제공동연구를 주장한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도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는 대북제재 대상이 아니라고 확인해 준 모양이다. 백두산이 화산폭발로 닳아버리는 일이 없기를 염원하지만, 남북이 공동 대응하는 건 너무 당연하다. 북한의 호응을 기대한다. 특히 백두산 근처에서 핵폭발 실험은 절대 안된다. 과학적 인과관계와 관련한 논란과는 상관없이, 민족의 영산을 노하게 할 이유가 없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4-15 윤인수

[참성단]영화배우 양 모 씨

지난 12일은 양 씨 성을 가진 대한민국 영화배우들이 곤욕을 치른 날이었다. 한 뉴스 전문 채널에서 "영화배우 양 모 씨가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고 보도한 게 발단이었다. 보도는 한술 더 떠 "경찰 조사 결과 양 씨는 간이 마약 검사에서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왔다. 이에 강남경찰서는 양 씨의 마약 정밀 검사를 의뢰하고 마약 구매 통로와 동반 투약자 등을 조사 중"이라며 "최근 유명 영화와 지상파 인기 드라마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라고 추가 보도했다. 이러자 인터넷 포털 실시간검색에는 '영화배우 양 모 씨'가 한동안 상위에 올랐다. '익명보도 원칙'에 따라 실명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 씨 배우'라고만 알려지자 많은 네티즌이 해당 기사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양 씨 배우'를 찾기 위해 양 씨 성을 가진 배우들의 실명을 언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양 씨 성을 가진 배우 4~5명의 이름이 순식간에 포털 실시간 검색어 순위 상위에 올랐다. 양 씨 배우들은 소속사를 통해 의혹을 반박하는 등 일대 혼잡이 일어났다. 하지만 실제 경찰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진 양 씨 배우는 단역 배우인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보도 원칙'은 범죄 사실을 보도할 때, 특정인이나 특정 직종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인이 식별되지 않도록 호칭 사용에 각별히 유의하라는 일종의 가이드 라인이다. 누군지 알 수 없도록 한글, 영문 이니셜을 사용하여 김 모 씨, K 씨 등으로 표기해야 하나 이니셜로 주변 정황에 의해 누구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때는 실명과 전혀 관계없는 A씨, B씨 등으로 사용하고, 그 이니셜이 실명과 관련이 없음을 알려야 한다. 가령 실명이 '이몽룡'일 경우 엉뚱한 이름인 '변학도'라 하고 '가명'이라고 표기하는 식이다.최근 마약 관련 기사의 홍수 속에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는 마약 관련 기사는 당사자에게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그럼에도 최근 부쩍 '팩트 체크'없는 무책임한 가짜 뉴스들이 넘쳐나고 있다. 일반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사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이번 '영화배우 양 모 씨'도 그런 경우다. 이번 사태는 인터넷 언론사들의 무분별한 낚시성 기사와 익명으로 처리된 기사의 낮은 신뢰도가 원인이다. 오보나 과장, 미확인, 일방보도 등 소위 '작문'기사의 폐해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4-14 이영재

[참성단]내부자 거래

1815년 6월 18일 벨기에 브뤼셀 인근에서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과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국가의 운명을 건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이른바 '워털루 전투'. 결과를 지켜보는 런던 증권가에는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정보원을 통해 프랑스의 패배를 확신한 로스차일드는 영국 국채를 내다 팔기 시작했다. 금융계 큰 손의 국채 매도에 놀란 개미투자가들은 영국의 패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투매에 가담했다. 국채는 순식간에 휴지가 됐다. 이때, 다시 국채를 매입한 로스차일드는 엄청난 차익을 거뒀다. 전문가들은 이 행위를 내부자 거래의 효시로 보고 있다.영국을 비롯한 금융 선진국들은 주식 내부자거래를 '정보의 절도'로 보고 엄격히 금지한다. 미국은 정치인과 정부 고위공직자가 주식 내부거래를 하다 적발될 경우 법정 최고형으로 처벌한다. 미 의회도 증권거래법과 증권거래위원회 규정에 '국회의원과 보좌관은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거래할 때 국가와 국민에 대한 신의 성실 의무(fiduciary duty)를 진다'는 조항을 추가해 내부자거래를 막고 있다.2017년 8월 민변 출신 이유정 변호사는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올랐다가 주식 거래가 문제가 됐다. '백수오 파문'을 일으킨 '내츄럴엔도텍'주식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5억원 넘는 차익을 남긴 것이다. 분노한 네티즌들은 내부자거래 의혹을 제기하며, 이 변호사에게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같다 해서 '유정 버핏'이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이 변호사는 지명 20일 만에 자진사퇴했다.'주식 부자' 이미선 헌법 재판관 후보자가 이유정 변호사의 뒤를 그대로 걷고 있다. 42억여 원의 재산 중 83%인 35억여 원을 주식에 투자됐고, 이 중 24억여 원이 재판 관련 특정 기업에 집중된 것으로 밝혀지며 내부자거래란 의혹을 받고 있다. 인터넷상에는 이 후보자를 향해 '제2의 이유정'.'미선 소로스'라는 비아냥이 쏟아진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제174조는 미공개 중요정보의 이용행위, 즉 '내부자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직무 때문에 알게 된 법인의 미공개 정보를 증권의 매매 등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헌법 재판관 후보까지 오른 이 변호사가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설령 헌법 재판관이 된다 해도 내부거래 의혹 만으로도 이미 도덕성에 큰 흠집이 생겼다. 공직자가 가져야 할 덕목 가운데 으뜸은 '양심'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4-11 이영재

[참성단]벽안(碧眼)의 독립운동가

아일랜드를 지배하던 영국 정부에 맞서 아일랜드 공화국군이 독립 전쟁을 일으킨 때가 1919년 1월 21일이다. 그로부터 40여일 후인 1919년 3월 1일 식민지 조선에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서로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나라들인데, 뭔가 공통분모가 엿보인다. 아일랜드 독립전쟁 후에 아일랜드가 아일랜드 자유국과 북아일랜드로 분리된 것도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두 나라에 걸쳐 있는 또 하나의 기록이 눈길을 끈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임시정부를 지원한 비밀조직과 인물들의 기록을 담은 책자를 발간한다고 한다. 항일투쟁을 하다 일본 법원에서 재판받은 기록(판결문)을 분석해 임시정부가 국내에서 펼친 활동과 임시정부를 지원한 다양한 활동을 소개한다는 것이다. 이 책자는 추후 누리집(http://www.archives.go.kr)에도 게재될 예정이다.이같은 내용으로 국가기록원이 낸 보도자료를 훑다 보니 색다른 이름이 눈에 띈다. 李東輝, 朴容萬 등 한자로 표기된 독립운동가들과 달리 유일하게 일본어로 쓰인 이름이다.임시정부 의정원 및 대한청년단 등을 조직하고 군자금, 군수품 등을 모집한 혐의로 구속된 독립운동가 16명에 대한 판결문(고등법원, 1924.3.12)에서다. 'ジㅡ. エル. シヨウ'(G.L.쇼). 그가 아일랜드계 영국인 '조지 루이스 쇼'(George Lewis Shaw)다. 자료에는 '쇼가 만주에서 경영한 무역회사 이륭양행(怡隆洋行)이 임시정부와 국내를 연결하는 연락거점으로 활용됐다'는 간략한 설명이 붙어 있다. 곧 발간될 책자에 소개되겠지만 쇼는 '이륭양행'의 건물을 임시정부에 제공한 것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상하이를 오가는 독립운동가들에겐 회사 소유의 배를 내주기도 했다. 백범 김구도 이륭양행의 배를 타고 상하이로 망명했다. 이처럼 몸을 사리지 않고 일제에 맞선 대가로 그는 4개월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지금 세계의 대세를 보라.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인도의 독립 역시 가까이에 존재한다. 다음에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함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대들이 만족할 만한 일은 멀지 않았다." 한세기 전, 파란눈의 독립운동가가 했던 말이 깊은 울림을 주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일이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04-10 임성훈

[참성단]낙태죄 위헌 판결

미국은 2015년 6월 연방대법원 판결 5대4로 동성결혼 국가가 됐다. 103쪽에 이르는 합법 판결의 다수 의견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집필했다. 가톨릭에서 동성애는 허용하지 않지만, 케네디 대법관은 "헌법이 가치와 법적 질서 사이에서 불일치가 나타날 때 자유권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동성애자들은 법 앞에 평등한 존엄을 구하고 있으며 동성혼은 이들이 중대한 헌신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썼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과 판결을 철저하게 구분한 것이다. 법과 정의의 수호신인 테미스 여신은 눈을 가린 채 오른손에는 천칭을 들고 있다. 눈을 가린 건 심판을 함에 있어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좌우되지 않겠다는 뜻이다. 천칭은 공정성을 의미한다. 신들의 사회에서 법과 정의를 지키는 테미스의 존재는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사회 질서는 법과 정의에 의해서, 법과 정의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공정성에 의해서 구현된다. 판사가 법정에서 입는 법복이 검은색인 이유는 어떤 색깔에도 쉽게 침범 당하지 않으며 오염되지도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다. 법복은 '공정함'과 '권위' 그리고 '책임'의 엄격함을 상징한다.2012년 합헌 결정이 내려진 '낙태죄'가 7년 만에 다시 헌법재판소 판결을 앞두고 있다.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의 낙태 처벌 조항의 위헌성 여부다. 이번 판결의 쟁점은 낙태 행위를 죄로 규정하는 것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다. 청구인 쪽은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고 하지만, 법무부는 태아는 생명권의 주체로 낙태의 증가를 막기 위해 낙태에 대한 처벌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일반인의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임신 초기의 낙태나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는 주장과 낙태죄 폐지가 자칫 생명경시 풍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이다. 재판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이런 상황에서 새로 구성된 6기 헌법재판관의 성향을 분석하며 판결에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판결과 개인적 성향은 구분되어야 한다. 2012년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하고 낙태 시술 증가를 우려해 낙태죄 합헌 결정을 내린 헌재가 이번엔 어떤 판결을 내릴지 국민의 관심은 온통 11일 오후 2시 헌재 대심판정을 향하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4-09 이영재

[참성단]'고(故) 조양호 회장'

2013년 4월 18일 로이터 통신은 헤지펀드계의 거물 조지 소로스의 부고 기사를 타전했다. "약탈적 방법으로 막대한 성공을 거둔 자본가이자 투자가로, 역설적이게도 자신을 억만장자로 만들어 준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수년간 비판한 조지 소로스가 00세로 00일 숨졌다." 미리 작성해 둔 부고 기사가 실수로 출고된 오보였다. 알렉산드라 페트리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의 부고 기사 촌평이 의미심장했다. "스크루지 영감 처럼 자신을 돌아 볼 좋은 기회다. 기사에서 묘사한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다면 아직 새 삶을 살 기회가 남아있다."지금 89세의 소로스가 새 삶을 살고 있는지, 로이터가 부고 기사를 대폭 수정할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나, 알프레드 노벨은 부고 기사 오보로 사후가 완전히 달라졌다. 생전 자신의 부고 기사에 충격을 받아 노벨상을 제정한 것이다. '죽음의 상인이 사망했다'는 제목 아래 "알프레드는 많은 사람을 빨리 죽이는 방법을 찾아 돈을 모았다"는 기사가 이어졌다. 오보를 통해 사후 평판을 미리 알게 된 노벨은 '죽음의 상인' 대신 '노벨 상'을 택할 수 있었다.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별세했다. 최근 수년 간 조 회장 집안은 배우자와 자녀들이 일으킨 갑질 스캔들로 인해 '적폐 가문'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2014년 장녀의 '땅콩 회항' 사건을 간신히 수습했지만, 2018년 차녀의 물컵 갑질 사건과 배우자의 '갑질 동영상' 파문으로 침몰했다. 조 회장은 지난 달 27일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가 최초로 적용돼 대한항공 경영권까지 상실했다. 그러나 지난 수년 간의 과(過)에도 불구하고 항공산업계에 남긴 조 회장의 공(功)은 뚜렷하다. 부친과 함께 대한항공을 글로벌 국적항공사로 키워 낸 경제적 성취는 '수송보국(輸送報國)'이라는 사훈과 어울린다. 남북화해의 물꼬를 튼 평창올림픽 유치에 애썼고, 프랑스와의 민간외교에 남긴 족적도 크다. 인천의 향토기업인으로서 교육분야에 남긴 흔적도 깊다. 전경련과 경총의 추모 분위기는 정중하다.조 회장의 별세 소식을 접한 대중의 정서는 그의 '경제적 성취'와 '가문의 패륜' 사이에서 당혹스럽다. 그의 죽음은 이분법으로 분할된 세상의 경계를 서성인다. 만일 땅콩회항 사건 직후 그의 부고 기사가 오보됐다면 조 회장의 인생행로가 지금과는 많이 다르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요즘 세상에 70은 새로운 인생을 펼치기에 충분한 나이 아닌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4-08 윤인수

[참성단]무너진 마약 청정국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우리나라 영화 팬의 우상으로 떠오른 것은 60대 중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라는 '마카로니 웨스턴'을 통해서였다. 곧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음산한 바람 소리와 함께 시가를 질겅질겅 씹으며 등장하는 '판초'차림의 건 맨 조(Joe). 눈을 지그시 감은 무표정한 모습, 소나기처럼 시원하게 쏘는 속사포에 추풍에 낙엽 지듯 쓰러지는 악당들. 유령의 울음처럼 울려 퍼지는 음산한 휘파람 소리와 엔리오 모리꼬네의 황량한 주제음악. 이런 것들은 속도 느린 서부영화에 익숙했던 관객에겐 전율에 가까운 신선한 충격이었다.일약 스타가 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더티 해리'에서 냉혈 형사 캘러핸 역을 맡아 미국 여론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 10인'중 한 명으로 뽑혔다. 반전운동이 전성기를 맞던 시대에 큰 위기를 느낀 보수 세력의 무의식을 반영했다는 '더티 해리'시리즈를 4편이나 더 찍은 그는 자타가 공인한 '보수의 아이콘'이 됐다.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생전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르는(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라스트 미션 (원제·the mule(마약 운반책 ))'을 보았다. 1930년생으로 이제 그의 나이도 90이다. 연기 때문이 아니라 진짜로 구부정한 그의 어깨 위엔 수없이 떨어진 연륜이 고스란히 쌓여있었다. 스크린 위엔 조각 같은 얼굴 캘러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늙은 마약 운반책 얼 스톤이 있을 뿐이었다. 영화는 2011년 전 세계 최고령 마약 운반책으로 붙잡힌 '레오 사프'의 실화를 모티브로 삼았다.영화는 절묘하게 재벌 3세와 연예인들의 마약으로 온통 사회가 시끄러운 시기에 개봉됐다. 흔히 '농익었다'는 말이 무색한 노배우의 연기보다 마약 이야기라서 더 관심을 끈다. 최근 우리 사회는 국제 우편, 특송화물로 들어오는 마약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무분별하게 확산하면서 마약 구하기가 쉬워졌다. 영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았던 운반 방법은 고전적 수법이 돼버린 셈이다. 운반책과 판매책이 누군지도 모른 채 암호 화폐로 거래되면서 단속도 훨씬 어려워졌다. 급기야 유엔 기준에 인구 10만명당 마약류 사범이 20명 미만이면 부여되던 마약 청정국 지위도 지난해 기준 24명으로 늘어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 마약은 한번 손대면 영혼이 파괴될 때까지 끊기가 어렵다. 이제 본격적인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할 때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4-07 이영재

[참성단]5G

1973년 4월 3일은 세계통신사에 기념비적인 날이다. 모토로라의 통신 책임자인 마틴 쿠퍼와 경쟁사인 AT&T 벨연구소 책임자 조엘 엥겔간에 세계 최초의 무선 전화 통화가 실현된 날이기 때문이다. 한참 후발주자인 우리는 1984년 5월 첫 무선전화인 카폰의 등장으로 모바일 역사가 시작됐다. 당시 단말기 가격은 대당 300만원, 설치비에 채권료까지 410만원을 줘야 카폰을 사용할 수 있었다. 400만원인 승용차 포니2보다 비쌌다. 그래서 당시 차 꽁무니의 긴 안테나는 '권력과 부의 상징'이었다.카폰에 이은 실질적인 첫 휴대폰 서비스는 서울 올림픽을 두 달 앞둔 1988년 7월 1일 시작했다. 한국산 단말기가 없어 모토롤라의 '다이나택'이 사용됐다. 무게만 1.3 ㎏으로, 벽돌같다 해서 '벽돌폰'이라 불렸다. 10시간 충전하면 30분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단말기 가격 400만원에 가입비 60만원으로 500만원이던 승용차 포니 액셀과 맞먹었다. 이어 무선 호출기 '삐삐'와 시티폰, PCS가 출시되면서 휴대폰의 대중화가 시작됐다.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기술 덕분에 단말기 크기는 작아지고 성능은 좋아졌으며 가격도 저렴해졌다. 하지만 단말기의 변화를 주도한 건 통신기술의 진화였다. 기술이 돼야 그에 걸맞은 단말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동통신 기술은 1996년 2세대(CDMA), 2003년 3세대(WCDMA)를 거쳐 2011년 4세대(LTE)로 진화를 거듭했다. 그리고 2015년 3월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인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에서 황창규 KT 회장이 '5G, 새로운 미래를 앞당기다'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면서 5세대 통신을 세상에 알렸다.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랬다. "초고속, 초연결, 초저지연 3대 특성으로 하는 5G가 산업 전반을 통째로 바꿀 4차 혁명을 주도하게 될 것." 황 회장에게 '5G 전도사'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공교롭게도 마틴 쿠퍼가 조엘 엥겔과 첫 무선 전화통화를 한 날로부터 꼭 46년이 지난 2019년 4월 3일 오후 11시. 대한민국 이동통신 3사가 각각 5G 1호 가입자를 배출하며 5세대 통신의 '세계 최초 상용화'를 선언했다. 5세대 통신 시대를 우리가 연 것이다. 5G 상용화로 가상현실,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기술의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이제부터 '73년 4월 3일'과 '2019년 4월 3일'로 각각 기억되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4-04 이영재

[참성단]월미도 디아스포라

1950년 9월13일 새벽 5시, 월미도 상공에 굉음과 함께 유엔군의 공군기 1개 편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내 하늘에서 기름통과 네이팜탄이 비 오듯 쏟아졌다. 어떤 이는 새벽잠에 빠져 있다가 고스란히 타죽었고 잠에서 깬 이들은 속옷 차림으로 도망갈 곳을 찾았다. 비행기가 사람만 보이면 기총사격을 해대는 통에 갯벌에서 펄 흙을 잔뜩 뒤집어쓰고 숨죽여 있기도 했다. 간신히 인천으로 피신했던 사람들은 폭격이 잦아든 틈을 타 월미도와 인천을 연결한 다리를 통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폐허가 된 마을에서 숨진 가족과 이웃의 시신을 수습하던 이들에겐 슬퍼할 겨를조차 없었다. 이틀 뒤인 15일 인천상륙작전이 본격 전개됐고 함포사격을 피해 다시 고향을 빠져나와야 했다. 그리고 끝이었다. 월미도 원주민들이 고향을 잃은 사연은 한국전쟁사에서 매우 이례적인 사례다. 북녘에 고향을 둔 실향민처럼 휴전선으로 가로막힌 것도 아닌데 고향은 꿈속에나 남아있다. 물리적 공간으로 보면 고향에 머물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삶은 타지에서 살아가는 유대인을 지칭하는 '디아스포라'와 비슷하다.사실 주민들은 전쟁이 끝나면 바로 고향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고향에는 미군이 주둔해 있었고 그들은 고향을 눈앞에 두고 다리 앞에서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미군부대가 철수하면 고향에 들어가게 해주겠다"는 역대 인천시장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향수병을 달랬다. 하지만 그 약속은 '희망고문'이었다. 미군은 철수했지만 대신 국군 제2함대사령부가 주둔했다. 이 부대가 평택으로 이전하고 나서는 공원이 들어섰다. 결국, 휴전 후 한국을 지배하던 안보논리와 시대의 변화 속에서 그들의 귀향은 번번이 가로막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최근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소식이 전해졌다. 월미도 원주민들에게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의 조례안이 인천시의회에서 가결된 것이다. 이데올로기를 떠나 인도적 차원에서 이들의 고통을 돌아보기까지 69년이 걸린 셈이다. 이 소식을 접하니 십수년 전 취재현장에서 만났던 한 할머니의 절규가 귓가에 맴돈다. "죽기 전에 고향에 보내달라고 시장에게 말하려는데 순사들이 못 들어가게 해!" 청원경찰을 순사로 알고 있는 그 할머니는 당시에도 상당한 고령이었다. 주름진 눈가를 훔치던 그 할머니는 이 소식을 들었을까? /임성훈 논설위원

2019-04-03 임성훈

[참성단]골란고원 와인

지난달 25일 백악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골란고원 이스라엘 주권인정' 포고문 서명식이 있었다. 한마디로 '골란고원은 이스라엘 땅'이라고 인정하는 자리였다. 지난해 이스라엘 미국대사관 예루살렘 이전에 이은 트럼프의 이런 배려에 5선 도전을 앞둔 네타냐후 총리가 크게 감동했던 모양이다. 선포식이 끝나자 네타냐후는 "골란고원에서 최상품의 와인을 한 상자 가져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술을 입에 대지 않으니 대신 백악관 직원에게 주고 싶다"며 호기를 부렸다.1967년 6월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으로 골란고원을 점령한 이스라엘이 가장 먼저 한 건 '포도나무 심기'였다. 1천m 이상 고도, 화산토와 선선한 기후는 포도 재배의 최적지였다. 그때 심은 묘목이 적당하게 자라나자 1983년 '골란고원 와이너리'가 들어서고 본격적으로 와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곳 와인은 '야르덴' '감라' '골란'이란 상표를 붙여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이스라엘 와인은 최근 국제시장에서 호주 와인과 함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중이다. 아직 프랑스나 칠레 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없지만 수천 년 역사를 지닌 전통적인 포도주 제조기법에 최첨단 기술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 와인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중이다.하지만 지난 2015년 11월 EU(유럽연합)는 이스라엘 와인에 대해 생산지 라벨 부착을 의무화했다. 무력으로 점령한 골란고원은 이스라엘 영토가 아니므로 이 지역 생산 와인을 EU에서 판매할 경우 '메이드인 이스라엘' 대신 해당 정착촌을 산지 라벨로 부착하라는 것이다.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때 베를린의 최고급 백화점 카데베에서 이 규정을 적용해 이스라엘 와인을 철수시키자 네타냐후까지 나서서 항의하는 등 외교분쟁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지금 튀니지에서는 제30차 아랍연맹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아랍 정상들은 시리아의 골란고원 주권을 강조하면서 미 트럼프 정부의 지나친 이스라엘 우호 정책을 비난하는 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자국민을 살상 가스로 살해하며 친이란 정책까지 펴는 시리아의 알 아사드 정권의 비도덕성과 중동국가의 분열로 더는 의견을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 골란고원이 실제 이스라엘로 편입돼 골란고원 고급 와인이 '편입 축하주'가 되는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4-02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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