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판소리 명창과 복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이유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이 있다. 강남스타일이 우리 국악을 기반으로 한 곡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강남스타일의 음원 파형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면 국악의 휘모리장단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박상진 동국대 한국음악과 교수는 이를 토대로 음악적 보편성과 독창성을 강남스타일의 인기 비결로 꼽는다. 세계인들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 요소와 우리나라에만 있는 휘모리 장단, 즉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독창성이 세계인을 사로잡았다는 설명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이유다. 물론 강남스타일의 작곡자가 휘모리장단을 염두에 두고 곡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작곡자에게 한국인 특유의 문화적·예술적 DNA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부연한다. 얼마 전 한국인으로서, 그 DNA를 조금이나마 체감할 기회가 있었다. 경인일보가 창간 74주년을 맞아 마련한 김경아 명창의 심청가 판소리 완창 공연에서다. 장장 5시간의 심청가 완창을 듣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본격적인 공연에 앞서 김경아 명창이 관객들과 함께 단가 '이산 저산'을 부를 때 입도 벙긋하지 못할 정도로 판소리 문외한이었으니 오죽하랴.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눈꺼풀 내려가는 게 멈추더니 심봉사 눈뜨는 대목에서는 어느덧 눈과 귀가 무대를 향해 활짝 열려 있었다. 악보도 없이 5시간 동안 완창을 하는 명창의 초인적인 능력에는 경외감마저 들었고 고수의 북소리 또한 경이로웠다. 중모리, 자진모리 등 우리 고유의 장단은 물론, 왈츠에서부터 보사노바에 이르기까지 지구촌 모든 리듬이 고수의 북에서 재생되는 듯했다.경험이 관심으로 이어졌나 보다. 지난 주말 '판소리복서'라는 영화를 봤다. 사실 심청가 완창을 관람해보지 않았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영화다. 관객 동원 측면에서 보면 '폭망'했다고 할 수 있는 영화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여운이 남는다. 휘모리장단에 맞춰 "번개같은 주먹 병구주먹, 천둥같은 장단 은지장단~"으로 시작되는 영화 속 판소리 한 소절은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판소리와 복싱이라는 이질적 소재를 접목한 이 영화는 '판소리 복싱'이라는 미완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무모한 도전에 나선 한물간 복서의 이야기를 담았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 멋진 소리꾼과 멋진 복서를 만났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10-23 임성훈

[참성단]엘 클라시코

스포츠에는 국가 대항전이건, 자국 프로리그건 전통적으로 라이벌전이란 게 있다. 우리의 축구 한·일전이, 프로 야구의 롯데와 기아 전이 그런 경우다. '엘 클라시코(El Clasico)'는 스페인 프로축구 라 리가 소속으로 카탈루냐 민족을 상징하는 FC바르셀로나와 스페인 왕실의 후원을 받는 레알 마드리드의 라이벌전을 말한다. 1902년 첫 경기를 시작해 올해 117년을 맞는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레알 마드리드 선수로 뛰었을 때 FC 바르셀로나 간판 리오넬 메시와의 '엘 클라시코'는 전 세계축구팬의 최대 관심사였다. 바르셀로나 주도인 카탈루냐는 1714년 9월 스페인에 병합됐다. 그러나 카탈루냐인들은 오랜 시간 고유의 언어와 문화를 지키면서 독립의 열망을 키웠다. 설상가상으로 1939년부터 3년간 계속된 스페인 내전에서 승리한 프랑코 정부는 카탈루냐 자치 정부를 해체하고 카탈루냐어 사용을 금지했다. 당시 카탈루냐 주민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프랑코 정권에 항의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FC 바르셀로나 구장 '캄푸 누'였다. 이곳에서 '엘 클라시코'가 열리면 경기시작 17분 14초에 모든 관중이 일어나 "독립!"을 외친다. 치욕의 1714년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다. 프랑코 사후 다시 자치권을 얻었지만, 캄푸 누에는 지금도 '카탈루냐는 스페인이 아니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카탈루냐는 스페인 동북부의 4개 주로 구성되어 있다. 스페인 영토의 6%에 인구는 750만명에 불과하지만, 국내총생산(GDP)은 스페인 전체의 20%를 차지할 만큼 부유하다. 독립이 가능한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셈이다. 지금도 절반 이상의 주민이 아직도 스페인어가 아닌 카탈루냐어를 사용하고 있다. 문화 수준도 꽤 높다. '건축의 수도자' 안토니 가우디와 전설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도 카탈루냐 출신이다. 카탈루냐 독립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시위가 점차 격화되면서 오는 26일 바르셀로나에서 열릴 예정인 '엘 클라시코'가 12월 18일로 연기됐다. 라 리가 사무국이 경기를 다른 곳으로 옮겨 치르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두 팀이 모두 거부했다고 한다. 최악의 상황에도 전통의 '엘 클라시코'는 중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1932년 이후 '엘 클라시코'의 역대 전적은 96승 51무 95패로 FC 바르셀로나가 앞서고 있다. 온갖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엘 클라시코'의 전통이 그저 부러울 뿐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10-22 이영재

[참성단]유시민의 언론 품평

1985년 창립된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해마다 전세계 180개 국가의 언론자유지수를 발표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언론자유 지표로 인정받는다. 언론의 다원주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 자기검열 수준, 제도적 장치, 취재 및 보도의 투명성, 뉴스생산구조 등 6개 항목의 설문조사를 토대로 순위를 결정한다.짐작했겠지만 북한은 지수발표 첫해인 2002년부터 5년 연속 꼴찌를 차지했다. 공산당에 장악된 북한 언론은 수령체제를 최일선에서 보위하는 당 선전조직이다. 언론자유 운운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런데 이런 북한마저 머쓱하게 한 나라가 있다. 에리트레아라는 아프리카 신생독립국인데, 국가안보를 이유로 민영언론사를 모두 폐쇄해 2007년부터 10년간 북한을 제치고 언론자유지수 꼴찌 국가의 영예(?)를 누렸다. 북한은 2018년 꼴찌의 영광(?)을 되찾았는데, 올해 다시 독재국가 투르크메니스탄에 내주고 말았다. 올해 백마 탄 김정은을 찬양한 북한 언론이 내년에 꼴찌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지 주목거리다.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주로 만족스러운 상황인 40위권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 31위로 최고점을 찍었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70위권까지 떨어졌지만, 올해는 41위로 복귀했다. 특히 43위를 기록한 지난해에는 RSF가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언론자유지수를 발표하면서 10년 동안 개선된 한국 언론자유지수를 극찬하기도 했다. 작년과 올해 한국 언론자유지수는 언론의 나라 미국보다 앞섰다. 트럼프의 선별적인 언론대응 결과인듯 싶다.한국 언론은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불가피하게 진영대결에 갇혔다. 조국과 정권 지지를 기준으로 대중은 언론을 양분해 소비했다. 언론보도는 진영의 입장에서 해석돼 지지받거나 비난받았다. 언론이 전하는 사실의 근거와 진위는 모두 해석된 '의도'에 가려졌다. 급기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특정 언론을 직접 거명하며 조국 사태 보도 경향을 품평하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주로 진보진영의 기대를 받았던 방송, 신문사들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였다.범진보 어용 지식인과 유튜브 언론인을 자칭한 유 이사장이 언론을 품평하고 압박하는 언론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내년도 한국 언론자유지수가 슬며시 궁금해진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10-21 윤인수

엠넷, '프로듀스X101' 수사 중 10대 보컬 경연 '십대가수' 론칭

현재 '프로듀스X101' 조작 논란 관련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엠넷이 내년 초 10대 지원자를 대상으로 보컬리스트를 뽑는 경연 프로그램 '십대가수'를 선보인다.엠넷은 내년 초 '10대가 부르고 10대가 직접 뽑는' 경연 프로그램 '십대가수'를 선보이기 위해 21일부터 다음 달 24일까지 지원자를 모집한다. 아마추어나 일반인도 실력으로 주목 받을 기회를 제공, 음악에 대한 열정과 풋풋함을 간직한 실력 있는 10대 보컬들의 등용문 역할을 한다는 계획이다.'프로듀스 엑스(X) 101'을 비롯해 엠넷 일부 오디션 프로그램이 투표 조작 논란으로 경찰 수사를 받는 중인 상황이지만 오디션 장르를 포기할 수는 없는 시장 상황에서 '정면 돌파' 전략을 택한 것으로 읽힌다.심사위원 역시 10대들로 채워 10대 취향과 기준에 맞게 방송을 만들 예정이다.엠넷은 "기성세대와는 확연하게 다른 10대들만의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으로 기존의 틀에 박힌 심사평을 벗어나, 신선하고 창의적인 심사평도 쏟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은 10대는 노래를 부르는 영상과 함께 '십대가수'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은 지원서를 '십대가수' 공식 메일 계정(teensinger@daum.net)으로 보내면 된다./편지수기자 pyunjs@kyeongin.com십대가수 /연합뉴스=엠넷 제공

2019-10-21 편지수

[참성단]상반된 여론조사

여론 조사기관 리얼미터의 2019년 5월 7~8일 정당지지도 조사에서 민주당 36.4%, 자유한국당 34.8%의 결과가 나왔다. 항상 지지율 20%의 박스권에 갇혀 있던 한국당이 민주당과 대등한 지지율로 올라선 이례적인 결과였다. 특히 광주·전라에서 한국당이 22.7%의 지지를 얻은 것이 특이했다. 당시 한국당은 '5·18 망언 논란'에 휩싸여 있을 때여서 예상외 결과라며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다. 심지어 이해찬 민주당 대표도 "이상한 조사 결과"라며 반론을 제기했다. 문제는 1주일 후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였다. 정당지지도 조사에서 민주당 43.3% 한국당 30.2%로 1주일 사이 지지율 격차가 무려 13.1%p 벌어진 것이다. 이번엔 한국당이 가만있질 않았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드디어 의문이 풀렸다. 이 여론조사의 샘플 자체가 왜곡된 게 명백하다. 전체 유권자 대비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이 과대평가된 여론조사다"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ARS의 속성상, 표본이 일정하게 분포되지 않을 수 있다"며 항간에 퍼진 조작설을 일축했다.최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두 여론 조사기관의 조사 결과가 상반돼 또다시 여론조사 진위성 논란에 휩싸였다. 리얼미터의 10월 3주차 주중 집계 결과, 문재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지난주보다 4.1%P 오른 45.5%라고 했지만, 하루 늦게 발표한 한국 갤럽은 지난주(41.4%)보다 2.4%P 떨어진 39%로 취임 후 최저치라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상승, 하락 원인도 제각각이다. 리얼미터는 "국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큰 원인이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퇴가 상승의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한 반면, 갤럽은 "경제 위기론이 커지는 가운데 조국 법무부 장관의 인사 실패 논란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분석했다.조사기법 발달에도 불구하고 여론조사는 걸핏하면 틀린다. '여론조사 무용론'이 그래서 나온다. 그렇다고 조사 기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이는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여론이 심각하게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에 따라 우리 사회가 심하게 요동을 친다는 것도 걱정이다. 두 기관의 전혀 상반된 여론조사를 보면서 "여론조사 결과가 정의와 진실이란 건 무지몽매한 세상으로 가는 시작"이라는 소설가 김훈의 주장에 고개가 끄떡여진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10-20 이영재

[참성단]참회록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滿) 이십사 년 일 개월을/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그때 그 젊은 나이에/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일본 유학을 위해 부득이 창씨개명을 했던 윤동주는 시 '참회록'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이렇게 고백했다. 당시 누구나 했던 행위가 이 젊은 시인에겐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었던 모양이다. 이것이 윤동주를 민족의 시인으로 추앙하고 있는 이유다.'자기의 잘못에 대해 깊은 깨달음과 반성'이라는 참회의 본질은 진정성 있는 고백과 뉘우침이다. 제 허물을 고스란히 들춰내 세상에 알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위선과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정치인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참회엔 고통과 용기가 따른다. 3대 참회록으로 꼽히는 루소, 톨스토이, 아우구스티누스의 글이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회자하는 것도 자신의 타락과 위선에 대해 솔직히 고백했던 그 용기가 빛나서다.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방탕하기 이를 데 없던 그가 기독교인으로 거듭나는 순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큰 감동을 주었다. 톨스토이는 참회록 '나의 참회'에서 자신의 허물을 뉘우침으로써 후세에게 인생의 좌표가 될 수많은 명언들을 남겼다. 루소도 '고백록'에서 물건을 훔치고 하녀에게 뒤집어씌운 젊은 시절의 타락에 대해 고백했다.조국 사태로 인한 상처는 크고 깊다. 갈라진 국론도 그렇고 길거리에 버려지는 사회적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말할 것도 없고, 임명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조차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한마디를 한 후 입을 닫았다. 입만 열면 정의와 공정을 외치며 조국을 옹호했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나라를 광란에 빠뜨리고도 참회의 글 한 줄 남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수치다. 오죽하면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이 페이스북에 "조국은 갔다. 후안무치한 인간들뿐이니 뭐가 달라지겠는가. 책임을 통감하는 자가 단 1명도 없다. 이게 우리 수준"이라고 쓴 자성론이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비정상으로 가고 있다는 뜻이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無 羞惡之心 非人也)'. 누군가는 참회록을 써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10-17 이영재

[참성단]노룩(no-look) 축구

"한국은 후반 시작과 함께 나상호 대신 황희찬이 들어가 공격적으로 나섰으나 북한의 공세도 만만찮았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수많은 스포츠 기사를 접하고, 직접 써보기도 했지만 이처럼 해괴한(?) 기사는 처음 본다. 북한의 공세가 만만찮았으면 만만찮았지, 만만찮았던 것으로 보인다니….정작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오죽 답답했을까? 현장이 생명인 스포츠 기사를 작성하면서 현장은 커녕, 문자메시지 하나에 상상의 나래를 펴며 노트북 자판을 두드려야 했으니 분명 죽을 맛이었을 게다.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2022년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한국과 북한의 경기가 결국 무중계, 무관중 경기로 막을 내렸다. 동네 조기축구도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가 가능한 시대에 한마디로 '노룩(no-look) 축구'의 새역사(?)를 쓴 셈이다. 단순 비교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노룩 축구에 비하면 호날두의 노쇼(no-show)는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문자중계 과정도 가관이다. 대한축구협회의 문자 중계가 경기 상황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는데, 그 과정이 연기나 봉화로 통신을 했던 조선시대의 봉수제도를 떠올리게 한다. 먼저 평양 현지에 있는 키르기스스탄 국적의 AFC(아시아축구연맹) 감독관이 경고나 교체 등 경기 주요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휴대전화 메신저를 이용해 AFC본부에 알려주면 AFC본부가 다시 대한축구협회에 통보했고, 협회는 이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국내 팬들에게 전달하는 식으로 문자중계가 이뤄졌다. 평양에서 피어오른 봉화가 AFC본부가 있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서울에 이르는 동안, 스마트폰이 봉수대 역할을 한 셈이다. 현대문명이 낳은 첨단기기의 쓰임새가 고작 조선시대 봉수대였다는 점은 씁쓸하지만, 스마트폰마저 없었다면 그야말로 한동안 경기 결과도 모를 판이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태극전사들이 골을 넣을 때마다 휴전선 넘어 북쪽에서도 함성이 들려왔다고 한다. 그 함성을 들으며 민족애를 느꼈다는 병사들도 적지 않다. 어떻게 17년 전보다도 못한 상황이 돼버렸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이유야 어떻든 이번 노룩 사태로 정부의 외교력은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게 됐다. 스마트폰 캘린더에 경기 일정을 입력해놓고, 설마 설마 하며 경기 당일을 손꼽아 기다린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허탈한 하루였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10-16 임성훈

[참성단]마크롱의 반전

2017년 5월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에마뉘엘 마크롱의 공약은 크게 7가지였다. '경제적 자유주의' 'EU 단일시장 강화' '법인세 25%로 인하' '노동 유연성 강화' '공무원 12만명 감축' '재정 건전성 확보' '행정현대화'가 그것이다. 프랑스 국민들은 다소 도전적인 공약에도 불구하고 39세의 젊은 지도자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세금은 적게 내고 공공서비스는 더 많이 요구하는 프랑스인들의 모순된 정서와 툭하면 길거리 시위와 폭력으로 정책을 뒤집는 프랑스의 현실 앞에서 마크롱의 개혁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공약대로 공공부문 일자리를 없애는 대신 민간 일자리를 늘리고, 법인세를 낮추면서 친기업 정책을 폈지만, '철밥통'으로 불리던 공공노조와 일부 시민단체, 마크롱을 비판하는 언론의 격렬한 반발이 시작됐다. '노란 조끼'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은 전기·가스 요금 동결, 유류세 인상 백지화와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파리 곳곳이 불타고, 폭력이 난무해 마치 프랑스 혁명을 방불케 했다.'프랑스 경제개혁가', '유럽통합 선도자'라는 마크롱을 향한 찬사는 제왕적 통치스타일을 뜻하는 '주피터'(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를 지칭) '보나파르트'(나폴레옹)로 바뀌었다. 지지율도 21%로 폭락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마크롱의 거품이 마침내 터졌다'는 제목의 칼럼을 싣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마크롱은 포퓰리즘을 남발하지도, 거창한 구호도 내세우지 않았다. 관제데모도 없었다. 대신 마크롱이 직접 국민을 찾아 나섰다. 전국을 돌며 국민과의 대토론을 시작했다. 국민들을 만나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귀를 열었다. 이런 국민과의 '소통'이 장장 3개월간 계속됐다.그러자 반전(反轉)이 일어났다. '부자들만의 대통령'이란 소리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강성노조의 철밥통이 깨지면서 경제가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 해고도 쉬워졌다. 청년 일자리도 늘었다. 법인세를 내리자 외국으로 떠났던 기업들이 돌아왔다. 지지율도 36%로 치솟았다. '소통'으로 국민과의 공감대를 형성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고, 스스로 '소통'을 거부하는 문재인 정부가 타산지석 삼아야 할 일이다. '소통'만큼 중요한 게 없다. 문 대통령이 국민의 소리에 조금만 귀를 기울였다면 한심하고, 어처구니없는 '조국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10-15 이영재

[참성단]노벨상 증후군

노벨상은 최고의 권위 만큼이나 논쟁적이다. 수상자와 수상자를 배출한 국가는 수상 분야의 성취를 세계적으로 공인받는 기쁨을 누린다. 그런 만큼 선정 사유에 사소한 하자만 발생해도 국제적인 시빗거리가 되기 일쑤다.14일 경제학상 수상자 발표로 2019년 노벨상 수상자 전원이 확정됐다. 하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시비가 걸렸다. 문학상 수상자인 오스트리아 희곡 작가 페터 한트케의 전범 옹호 전력이 도마에 올랐다. 한트케는 발칸의 도살자로 악명 높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연방 대통령 추종자로 유명하다. 밀로셰비치는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앞세워 코소보 등지에서 인종청소를 주도했다. 한트케는 그가 죽자 장례식에서 조사를 읽기도 했다.한트케는 자신의 전력 때문에 노벨 문학상 수상이 어려울 것으로 짐작했는지 2014년엔 "문학의 잘못된 성역화"라는 문학적 레토릭으로 노벨상 폐지를 주장했다. 이 정도면 "자본주의가 준 상을 받을 수 없다"며 수상을 거부한 장 폴 사르트르를 따라 할 만도 했다. 그런데 한트케는 "작품이 이제 빛을 보는 것 같다. 오늘 하루 아무것도 먹거나 마시지 못했다"며 "스웨덴 한림원의 결정은 매우 용기 있는 것"이라고 반색했다니, 작품은 몰라도 인품과 권위는 노벨상감에 못미친다.이처럼 논쟁적인 노벨상이지만, 한국은 해마다 노벨상 증후군으로 집단적 열등감과 열패감에 시달린다. 특히 역사적 민족적 경쟁자인 일본의 화려한 수상기록이 이를 더욱 부추긴다. 올해도 일본은 요시노 아키라가 노벨화학상 수상자가 됐다. 25번 째 수상자다. 우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이 유일하니, 노벨상 수상의 격차가 심한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노벨상을 향한 집착 만큼 노벨상 수상을 위한 기반을 착실히 다져왔는지 돌아볼 때가 됐다. 기반이 없으니 대표선수를 밀다가 낭패를 본다. 여당이 노벨상 추진단을 만들기까지 한 황우석씨는 연구부정으로 낙마했다. 문학상 대표선수로 노벨상 시즌마다 자택을 찾은 취재진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고은 시인은 '미투 운동'에 걸려 문학상 만년 후보에서 해방(?)됐다.고교 재학생이 의학논문 제1저자가 되는 나라의 학문 토양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한다면, 오히려 기적에 가깝다. 기적을 바랄게 아니라 인문, 사회, 과학 분야 종사자들에게 축적의 시간을 허용하는 의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10-14 윤인수

[참성단]'01:59:40.2'

1999년 10월 시카고마라톤 대회에서 모로코의 할라드 하누치가 2시간5분42초의 세계 최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전 세계 언론은 약속이나 한 듯, 같은 헤드라인으로 경기 결과를 보도했다. '마의 6분 벽 무너지다'. 1988년 로테르담대회에서 에티오피아의 딘사모가 2시간6분50초의 기록으로 7분 벽을 넘어선 이래, 11년 만에 6분 벽이 무너졌으니 충분히 흥분할 일이었다. 그때까지 2시간6분의 벽은 인간의 능력으로 넘을 수 없는 '마의 장벽'이었다.하지만 당시 스포츠과학 전문가들은 "20년 안에 2시간대의 벽은 무너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산소 섭취와 주법 등을 최적화하는 과학에 기반을 둔 훈련법, 여기에 나날이 발전하는 최첨단 운동 장비 때문에 가능하다는 주장이었다. 0.1초를 다투는 경기에서 초경량 신발은 기록 단축에 한 몫하고 있다. 가령 과학자들은 운동화 무게를 1온스(28.35g) 줄이면 1마일(1.6㎞)을 뛸 때 55파운드(24.75㎏)의 무게를 줄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육상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속도다. 무게를 줄일수록 속도는 빨라진다. 이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은 1시간57분대도 가능하다고 말한다.'마의 5분 벽'이 깨진 건 4년 후인 2003년 케냐의 폴 터갓이 2시간4분55초의 기록을 작성하면서다. 그 후 2008년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가 2시간3분59초를, 2014년 케냐의 키프루토 키메토가 2시간2분57초 그리고 2018년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가 2시간1분39초로 마침내 '1분대'에 들어섰다. 1908년 미국의 존 하예스가 2시간55분18초의 세계기록을 세운 이래, 111년 만에 53분39초가 단축된 셈이다. 1년에 29초씩 빨라진 것이다. 그럼에도 2시간의 벽은 여전히 인간의 한계로는 도저히 넘볼 수 없는 거대한 벽으로 남아 있었다.마침내 케냐의 엘리우드 킵초게가 인류 사상 최초로 42.195㎞ 마라톤 풀코스를 '1시간59분40.2초'에 달렸다. 비록 '인류 마라톤 최초의 2시간 돌파'를 위한 비공식 경기로 공인기록으론 인정되지 않지만, 인간의 숙원이던 2시간 벽은 돌파한 셈이다. "인간에게 불가능한 게 없다는 걸 알려서 기쁘다. 언젠가는 공식 마라톤 대회에서도 2시간 벽을 돌파할 것"이라는 킵초게의 말에서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숙연함과 감동이 전해져 온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10-13 이영재

[참성단]슬픈 쿠르드 족

'역사상 단 한 번도 국가를 가져보지 못한 세계 최대의 민족'. 인구 4천만명의 유랑 민족 쿠르드 족 앞에 늘 따라다니는 말이다. '쿠르드족에게는 친구는 없고 산만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산악지역에 거주한다. 터키 남동부와 이란 북서부, 이라크 북동부와 시리아 북동부에 걸친 넓은 산악 지대에 살면서 중동 각국의 핍박을 받으면서 이리저리 쫓겨 다녀야 했던 슬픈 종족 쿠르드. 1916년 영국과 프랑스 간 '사이크스 피코 협정'으로 이란, 이라크, 시리아, 터키 등 인접 4개국으로 강제 분할됐다. 이때부터 쿠르드족이 독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이들 국가로부터 무자비한 탄압을 받았다.중동 각국의 먹잇감 신세였던 그들의 희망은 아이러니하게 IS(이슬람 국가)였다. IS가 세를 넓히며 중동의 골칫거리로 등장하자 쿠르드는 2014년부터 미국의 지원을 받아 IS와 크고 작은 전투로 4만여 명의 쿠르드 민병대가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쿠르드족은 미국을 동맹으로 여겼고, 언젠가는 미국의 도움을 받아 '쿠르디스탄'에서의 건국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미군이 시리아에서 전격적으로 철수함으로써 쿠르드족의 이런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동맹과의 신의를 버린 트럼프 대통령의 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미국의 배신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2년 친미였던 이란과 친소였던 이라크가 국경 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이라크 내 쿠르드족을 이용해 이란을 견제했다. 이라크 쿠르드 족은 이라크와 3년 동안 전쟁을 치렀지만, 막상 분쟁이 종료되자 미국은 언제 그랬냐며 쿠르드족을 외면했다. 반면 쿠르드족이 또다시 이란 편에 설 것을 우려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1988년 이들이 모여 사는 할라브자 마을을 화학무기로 공격해 5천여명이 사망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으로 전 세계의 공분을 샀다.미군이 철수하자 터키는 기다렸다는 듯 시리아 쿠르드족에 대한 폭격을 가하고 있다. 이제 쿠르드족은 맹수가 우글거리는 곳에 아무렇게나 던져진 어린 양 처지가 됐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오기까지는 하나로 뭉치지 못한 쿠르드족 내부 탓도 크다. 쿠르드족의 역사는 분열의 역사나 다름없다. 터키계, 이란계, 이라크계 등으로 서로 나뉘어 늘 대립했고, 강대국과 주변국들은 분열을 조장하면서 이를 이용했다. 이런 슬픈 쿠르드족의 모습이 열강 사이에 끼어 헤매고 있는 우리의 처지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10-10 이영재

[참성단]아테네 학당과 솔베이 회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등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철인, 학자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그림이 있다. 라파엘로가 1510년에 완성한 벽화 '아테네 학당'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인문학적인 그림이라 할 수 있다. 과학계에도 '아테네 학당'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사진이 있다. 1927년 10월 개최된 제5차 솔베이 회의의 참석자들을 찍은 단체사진이다. 벨기에 기업가 어니스트 솔베이의 기부금으로 만들어진 솔베이 회의는 각 분야 최고 권위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물리학 및 화학학회로 3년에 한 번씩 열린다. 제5차 솔베이 회의가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참석자 29명 중 절반이 넘는 17명이 노벨상 수상자일 정도로 과학사에 굵직한 업적을 남긴 천재들이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를 비롯해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퀴리부인 등 참석자들의 면면을 보면 이 사진에 왜 '인류 역사상 다시는 없을 정모(정기모임)'란 별명이 붙었는지 이해가 간다. 아인슈타인이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긴 것도 이 회의에서다.사실 아테네 학당은 예술작품으로, 등장인물들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모델을 활용한 상상화인 데 비해, 솔베이 회의 사진은 실제 인물들을 촬영한 실사판이기에 감상(?)하는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통분모가 엿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이 회의에서 상대성이론과 더불어 현대물리학의 한 축인 양자역학을 둘러싸고 아인슈타인과 보어 간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마치 아테네 학당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각자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이데아와 현실에 대해 설파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물리학자인 김상욱 교수는 교양과학서적을 펴내면서 '시간여행자'를 찾아보라는 주문과 함께 솔베이 회의 참석자들 사이에 자신의 모습을 합성한 사진을 게재하는 재치를 발휘, 책 읽는 재미를 배가시키기도 했다.노벨상의 계절이다.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천체물리학자인 캐나다계 미국인 제임스 피블스, 스위스의 미셸 마요르 등 3명의 물리학자가 선정됐다는 소식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처럼 부러운 소식을 듣기만해야 할까? 우리나라에서도 명화 아테네 학당이나 솔베이 회의 사진처럼 인류 역사의 의미 있는 한 컷에 당당히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이 쏟아져 나오기를 손꼽아 기다려본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10-09 임성훈

[참성단]태풍 풍년

올들어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은 모두 7개다. 1951년 기상청이 태풍을 관측한 이래 가장 많다. 마음도 심란한데 태풍 하나가 또 올라올 모양이다. 19호 태풍 '하기비스'다. 현재로선 일본 관통이 유력하지만, 세력이 워낙 강해 우리나라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만일 피해가 발생한다면 2019년은 '태풍 풍년의 해'로 기록될 것이다.태풍으로 불리는 열대성 저기압은 북서 태평양 서쪽 북위 5~25도, 동경 120~160도의 열대 해상에서 연평균 27개가 생성된다. 보통 6월부터 10월까지 발생하는데 이 중 9, 10월 '가을 태풍'이 가장 무섭다. 2002년 9월 246명의 인명을 앗아가고 5조원 이상의 재산 피해를 낸 '루사', 2003년 9월 '매미', 그리고 849명의 인명피해를 내며 한반도를 초토화한 1959년 9월의 '사라'는 모두 '가을 태풍'이었다.가을 태풍이 강력한 건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 온도 상승 때문이다.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이를 에너지 삼아 태풍은 더욱 세진다. 2013년 11월 초속 105m로 필리핀을 강타해 1만2천명의 사망자를 기록한 초특급 태풍 '하이엔'은 해수 온도 31℃에서 발생했다. 가을 태풍이 고약한 또 다른 이유는 북태평양 고기압 때문이다. 여름에는 강한 북태평양 고기압이 발생해 올라오는 태풍을 막아주지만, 가을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수축하면서 우리나라 쪽으로 찬바람이 내려오는 통로를 만들어준다. 찬바람이 열대성 저기압과 만나면 한반도에는 강력한 대기 불안정이 형성된다. 이 때문에 더 많은 비가 내리고 바람도 더 강해지는 것이다.이런 태풍 말고도 지금 우리는 '조국 퇴진'을 원하는 열대성 저기압과 '조국수호'를 바라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만나 발생한 불안한 대기의 영향으로 두 달째 시달리고 있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불청객 태풍은 인력으로 막을 수 없지만, '광화문파'와 '서초동파'로 갈라진 찬반 집회는 인력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 그런데 그 힘을 가진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적 사안에 대해 국민의 의견이 나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로, 이를 국론 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냥 두고 보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당분간 불안정한 대기는 계속될 것이다. 덕분에 국민들은 아름다운 가을날을 집회 참가하느라 속절없이 날려버리고 있다. 이래저래 올해는 태풍 풍년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10-08 이영재

[참성단]'은행 악취' 유감(有感)

"한줄기 미풍에도 얇은 금편(金片)들 떨어져 내려/···//알몸인 이 몸에 그 정결한 금편들 닿으면/ 녹아서 이내 부드럽게 금칠하리/ 마침내 이 몸이 그냥 그대로 생불(生佛)될 때까지." 시인 박희진은 '방학동 은행나무'의 황금색 낙엽을 맞으며 성불을 꿈꿨다지만, 보통 사람들도 샛노란 잎들로 단장한 은행나무를 보면 가을을 직감하고 생각이 깊어지기 마련이다.사람들 감성을 파고드는 신령스러운 기운과 아름다운 자태 뿐만 아니라, 은행나무의 실용성도 독보적이다. 잎은 혈액순환 개선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데, 특히 우리나라 은행잎의 약성이 좋아 한때 독일 제약회사들이 싹쓸이해 갔던 시절도 있었다. 우리가 은행이라 부르는 종자는 진해·거담 작용을 하는데, 포장마차 술안주에서부터 고급 한식 재료에 오르는 등 빈부 격차 없이 즐겨 온 식재료이기도 하다. 재질이 물러서 다루기 쉽고 무늬가 아름다운데도 변형이 없는 은행나무는 고급가구와 바둑판의 최상급 목재로 손꼽힌다.신은 다 주지 않는다더니, 은행나무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종자를 감싼 과육이 터질 때 번지는 엄청난 악취가 그것이다. 냄새가 너무 고약해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은행 과육으로 도배된 길을 걷는 일 자체가 고역이다. 은행 냄새는 과육안에 있는 은행산, 빌로볼 성분 때문인데 과육 속 씨앗을 지키기 위한 은행나무의 생존 전략이다. 은행나무 입장에서는 모든 걸 다 주고도, 종을 지키려는 최소한 자위권 때문에 수난을 당하니 억울할 만하다.가을이면 은행 악취 대책을 요구하는 민원으로 지방자치단체들이 몸살을 앓는 게 연례행사가 됐다. 대책은 과육이 열리는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하거나 아예 가로수 수종을 교체하는 것인데, 아무래도 돈이 들고 시간이 걸린다. 최근엔 이산화탄소 흡수율이 높은 은행나무의 대기오염 방지 효과를 옹호하며 수종 교체를 반대하는 역민원도 있다니, 자치단체들은 이래저래 골치 아프게 됐다.광장과 거리를 묵묵히 지켜 온 은행나무다. 요근래 대한민국 광장과 거리는 비난과 욕설, 궤변과 망언을 토해내는 수십만 인파들의 구취(口臭)에 취해 비틀거린다. 광장과 거리의 사람들이 은행 냄새를 탓하기 보다, 은행나무의 유일무이한 품격을 주목했으면 한다. 지구상에 오직 한 종 뿐인 은행나무처럼, 세상에서 유일한 한민족 아닌가. 이렇게 척지고 분열되면 안된다. 올 가을, 은행나무 단풍잎 맞으며 성불까지는 아니어도 '우리'를 생각해 봄직하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10-07 윤인수

[참성단]프로파일러

1940년부터 16년간 30여 개의 폭발물을 뉴욕 그랜드 센트럴 역, 라디오 시티 뮤직홀 등 공공장소에 설치해 시민을 공포에 떨게 한 '미친 폭탄마' 조지 메테스키를 붙잡은 건 정신과 의사 제임스 브러셀의 도움이 컸다. 브러셀은 폭발 현장의 사진과 범인이 신문사에 보낸 편지들을 종합해 그의 성격 등 범인의 윤곽을 정확히 짚어냈다. '아버지를 증오하고 어머니를 병적으로 사랑하는 편집증 환자. 코네티컷 주에 거주하고 있으며 40대의 뚱뚱한 남자로 독신. 더블 양복을 주로 입고 다니는 가톨릭 신자.'실제 경찰이 메테스키를 검거했을 때 놀랍게도 그는 더블 양복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프로파일링, 즉 범죄심리 분석의 시작으로 꼽힌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브러셀에게 배운 요원을 중심으로 행동과학부를 설립한 것은 1972년이다. FBI는 미 전역의 교도소에 있는 살인범들을 일일이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살인자의 심리구조를 방대하게 집대성했다. 그럼에도 사건보고서와 현장사진만을 가지고 범인을 추정하는 프로파일링이 현장에 보급될 때는 일선 형사들로부터 큰 불신을 받았다.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마인드 헌터'는 프로파일러의 시작 과정을 세밀하게 다룬 드라마다.우리의 프로파일링 역사도 짧다. 2000년 경찰에 범죄행동분석팀이 신설되고, 2005년 심리학 ·사회학 전공자를 특채해 전문 교육을 한 후 일선에 배치했다. 처음엔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이들은 범인이 범죄현장에 남긴 작은 증거와 눈에 보이지 않는 범행 성향을 조사하여 대략적인 범인의 특성과 성격·행동유형·직업·나이 등 '프로파일'을 추론해냈다. 수사의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묻지마 범죄'나 현장에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는 지능범이 활개를 치는 요즈음 프로파일러의 활약은 눈부시다. 화성 사건의 용의자로 이춘재의 존재가 밝혀지면서 9명의 프로파일러가 투입됐다. 이들은 이춘재와 대화를 통해 모방범죄로 알려진 8차 사건을 포함해 모든 사건이 자신의 범행이라는 진술을 받아냈다. 이외에도 4건의 살인사건과 30여 건의 성폭행 사건도 추가됐다. 이미 DNA가 나와 자포자기한 심정에서 나온 진술일 수도 있어 그 신빙성은 더 조사해봐야 안다. 그러나 이춘재와 '라포르(친밀관계)'를 형성한 프로파일러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과학수사가 밝혀낸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10-06 이영재

[참성단]참여연대

1990년대 이후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 및 비판기능을 겸비한 시민단체가 크게 늘었다. 민주화 영향이 컸다. 모두 시민에 의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비영리, 비정부, 비정당 단체다. 국가권력이나 특정정당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오롯이 국민권익을 위해 사회 각 분야에서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면서 어느새 하나의 권력이 됐다. 부작용도 커졌다. 이념적인 편향성과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시민단체 활동을 정치기반으로 삼으려는 정치 지망생도 크게 늘었다.우리나라 대표 사회단체인 참여연대는 권력을 감시하고, 사회 개혁을 위해 1994년 9월 10일 설립했다. 뜻을 함께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해 정책과 대안을 제시하며 참여 민주사회 건설이 목적이다. 초기에는 대주주의 횡포에 맞서 소액주주 운동을 벌이는 등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그러나 폐쇄적인 조직문화, 특유의 정파성과 이념적 편향성에 소수 엘리트가 주축이 돼 권력과 유착하면서 '시민 없는 시민단체'라는 지적도 받았다. 참여연대 창립 이후 전·현직 임원 400여명 중 3분의 1에 달하는 150여명이 청와대와 정부 고위직, 산하 각종 위원회 위원 등의 자리를 꿰차 '신 권력연대'라는 소리를 들은 것도 그래서다.조국 법무부 장관은 2000~2002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을 맡았다. 2004~2005년까지는 사법감시센터 소장을, 2007~2008년에는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지냈다. 그래서인지 참여연대는 이번 조국 사태로 내놓은 7번의 논평 중 도덕성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아 '내 식구 감싼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이런 와중에 김경율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이 "조국 펀드가 권력형 범죄로 비화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하자, 김 소장을 징계위에 넘기는 일이 벌어졌다.김 소장은 조 장관을 옹호하는 시민사회단체 소속 회원들을 향해서도 "구역질이 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참여연대는 "김 소장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라며 입을 닫고 있다.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참여연대 입장에선 이번 일이 부끄럽고 창피하고 난감할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상에는 김 소장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시민들이 줄을 잇고 있다. 참여연대에 기대하는 바가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참여연대가 초심으로 돌아가 모두에게 사랑받는 시민단체로 거듭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10-03 이영재

[참성단]쓸쓸한 참성단

해마다 개천절이 되면 지역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곳이 있다. 강화도 마니산 정상에 있는 참성단이다. 참성단은 한반도 남쪽에서 가장 오래된 단군 유적이다.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곳으로 전해지는 이곳에서는 해마다 개천절이면 '개천대제'(開天大祭)가 열린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의 원종은 직접 참성단에 올라 제사를 올렸고 이후에도 조정에서는 가뭄이나 홍수 등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관리를 파견해 제사를 지냈다. 일제강점기를 제외하고 개천대제의 전통은 삼국시대와 고려· 조선시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종교의식을 따르고는 있지만 현대에 이르러 개천대제는 민족의 문화와 얼을 계승하고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문화행사를 지향하고 있다. 집례자들이 강화군수, 강화군의회의장 등 종교인이 아닌 공직자로 구성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단군신화에 보면 단군의 셋째 아들인 부소는 세상에 전염병이 돌자 부싯돌로 불을 만들어 없애 버렸다. 개천대제에서도 하늘의 불을 선녀가 채화하는 엄숙한 의식이 행해진다. 강화지역 여고생 중에서 선발된 7선녀가 제천무(祭天舞)를 추고 참성단 계단을 사뿐히 내려와 향로에 불을 붙이는 모습은 개천대제의 백미다. 이 장면은 해마다 지역신문의 1면을 장식할 정도로 인상적이다. 이처럼 1년 중 개천절에 딱 한번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장소인 참성단이 올해 쓸쓸한 개천절을 맞게 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퍼지는 바람에 개천대제 부활 후 처음으로 행사가 취소된 것이다. 돼지열병의 확산방지가 급선무인 터라 어쩔 수 없었겠지만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달리 표현하면, 인간 세상에 이로움을 주기 위해 선녀가 불을 붙이고,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선조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오른 곳이 참성단인데, 후손들은 가축전염병으로 힘들어 하면서도 정작 참성단을 외면한 것 아닌가. 이색이 시를 통해 '이 몸이 몇번이나 이곳을 찾을 수 있을는지'라며 아쉬워했듯이 참성단은 선조들에게 각별한 곳이다. '강화도, 미래신화의 원형'이란 책의 저자인 이동연 작가는 '강화도는 구슬과 같은 땅'이라고 했다. '자기를 비춰주는 거울이자 세상을 내다보는 보물'로서의 구슬의 의미를 강화도에 접목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거울과 보물의 가치가 집약된 참성단은 '강화도의 구슬'이 아닌가 싶다. 그 구슬이 발산하는 영롱한 빛을 올해 볼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10-02 임성훈

[참성단]노벨상 시즌

잘못된 부고 기사가 없었다면 노벨상은 탄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오보 문제가 나올 때 늘 거론되는 알프레드 노벨의 부고 얘기다. 다이너마이트 발명으로 막대한 부를 일궜던 스웨덴 기업가 노벨은 1888년 프랑스의 한 신문에 실린 자신의 부고를 보고 깜짝 놀랐다. 신문사가 칸에 살던 형 루드비히의 죽음을 잘못 알고 부고를 낸 것. '죽음의 상인이 사망했다'는 부고 제목은 말할 것도 없고 "알프레드는 더 많은 사람을 빨리 죽이는 방법을 찾아 돈을 모았다"는 내용에 노벨이 받은 충격은 컸다. 가뜩이나 다이너마이트로 인명이 살상되는 것을 목격해 마음이 무겁던 노벨은 죽기 1년 전인 1895년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에게 재산을 상금으로 준다'는 유언을 남겼다. 세계 최고의 영광이라 일컬어지는 노벨상이지만 선정과 수상과정에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20세기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지 못했던 반면, 히틀러와 스탈린 같은 독재자가 평화상 후보로 오르는 일도 있었다. 수상 거부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1958년 '닥터 지바고'로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보리스 파스테르나크가 수상을 거부해 큰 파문이 일었다. 장 폴 사르트르도 1964년 문학상 수상을 거부하면서 "문학적 우수성을 놓고 등급을 매기는 것은 부르주아 사회의 습성"이라고 이유를 댔다. 1973년 평화상 수상자로 지명된 레둑토 베트남 전 총리는 "아직 베트남에 진정한 평화가 오지 않았다"며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노벨상 계절이 돌아왔다. 7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8일 물리학상, 9일은 화학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문학상은 10일, 평화상은 11일이고 경제학상은 14일이다. 특히 과학 분야에서는 지난해까지 118년간 생리 의학·물리·화학 등 607명의 수상자가 나왔다. 수상자 가운데 97%(587명)가 남성일정도로 여성에게 인색하기로 유명하다. 노벨위원회가 늘 성차별의 중심에 서 있는 이유다. 올해 역시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 명단에서 한국인을 찾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11년 '노벨상의 산실'로 불리는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 일본 이화학연구소를 모델로 기초과학연구원(IBS)까지 출범시켰지만, 정권이 몇 번 바뀌면서 연구 성과가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노벨상은 부단한 연구 과정에서 생겨나는 부산물이다. 누구의 간섭없이 자신의 소신대로 연구에 끈질기게 매진하는 풍토가 아쉽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10-01 이영재

[참성단]트럼프와 우크라이나 게이트

재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심각한 정치 위기에 빠졌다. 우크라이나 게이트의 지옥문이 열린 탓이다. 미 언론들은 닉슨 대통령을 자진 사퇴 시킨 워터게이트와 견주어 대통령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이고, 민주당은 하원 6개 위원회 조사 개시로 대통령 탄핵절차에 착수한 상태다.우크라이나 게이트 전말의 발단은 민주당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이 자신의 아들이 취업한 우크라이나 에너지 업체를 수사하는 검찰총장의 교체를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요구해 관철했다고 한다. 미국의 10억달러 대출보증 보류 위협이 제대로 먹혔다고 한다.트럼프가 이를 알고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정상 통화를 통해 바이든 부자에 대한 조사를 종용하고, 젤렌스키는 적극 호응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또한 젤렌스키를 압박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군사원조 카드를 활용했다고 한다. 이같은 내용을 전해 들은 내부고발자가 상·하원 정보위원장에게 내부고발장을 발송했고, 결국 공개되면서 트럼프 탄핵정국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트럼프로서는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인 바이든을 쳐내려다, 본인의 발등을 찍은 셈이니 환장할 일일 테다. 하지만 권력자의 거짓말에 단호한 미국과 미국인은 외세를 끌어들여 미국을 모욕하고 이를 은폐하려 한 트럼프를 정조준하고 있다.워터게이트로 궁지에 몰린 닉슨은 법무장관에게 특별검사 해임을 명령했지만 장관은 이를 거부하고 사임했다. 그러자 장관대행이 된 부장관에게 다시 명령했지만 그 또한 사표를 던지고 물러났다. 그런 미국에서 하원이 탄핵절차를 밟고 있으니 문제는 심각하다."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며 항변한 닉슨은 하원이 탄핵안을 가결하기 직전 스스로 사임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닉슨과 다르다. "내부고발자는 스파이"라며 비난하고 "하원정보위원장은 사기와 반역죄로 조사받아야 한다"고 역공에 나섰다. 탄핵 처지에 몰린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탄핵 메신저에 대한 공세로 물타기에 나선 느낌이다. 이 미묘한 기시감은 뭔가 싶다.아무튼 최대의 정치위기에 몰린 트럼프의 다음 행보가 북한을 향하고 있으니 큰 걱정이다. 정치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김정은 정권과 상식을 초월한 합의에 이를까 봐서다. 트럼프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할 때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9-30 윤인수

[참성단]지식인의 이중성

계몽주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교육철학에서 한 획을 그었지만 실제로는 자식들을 보육원에 내다 버린 비정의 아버지였다. 노동자의 해방을 부르짖었던 카를 마르크스는 가정부에게 임금을 주지 않고 무려 45년간이나 노동력을 착취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병적일 정도로 거짓말을 일삼았으며, 논쟁을 즐기기로 유명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상대방에게 저주를 퍼붓던 과대망상증 환자였다. 여성 해방의 주창자로 알려진 헨리크 입센은 실제로는 여성 해방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물론, 여성을 인간으로도 취급하지 않았다. 위대한 명성에 가려진 지식인들의 이중성을 파헤친 영국의 언론인 폴 존슨은 '지식인의 두 얼굴(을유문화사 刊)'에서 겉과 속이 다른 지식인의 이중성을 이렇게 신랄하게 비판한다. 폴 존슨은 책에서 지식인은 인격이 미성숙한 어린애이면서 동시에 자기 이익이 관련된 일에는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을 서슴지 않는 사악한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자신의 존재를 부각하기 위해서는 자기선전, 거짓말, 기만, 표절, 허위, 위선, 직무 유기, 무력함 등 모든 악덕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한다는 것이다. 볼리비아 정글에서 체 게바라와 함께 게릴라전을 펼쳤던 행동하는 지식인 레지스 드브레는 그의 책 '지식인의 종말(원제:프랑스 지식인-연속과 종말)'(예문 刊)에서 오늘날 지식인들이 5가지 중병을 앓고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자신들만의 틀에 갇혀 대중과 단절된 '집단 자폐증', 둘째 공부도 안 하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현실감 상실증', 셋째 자신들이 사회의 도덕을 선도한다고 자만하는 '도덕적 자아 도취증', 넷째 들어맞지도 않는 예측을 늘어놓는 '만성적 예측 불능증', 다섯째 자신의 이름이 잊힐까 두려워 매스컴의 장단에 맞춰 설익은 견해를 유창한 언변으로 포장하는 '순간적 임기응변증'이 그것이다. 우리 사회에 말과 글이 따로 놀고, 정치적, 사상적 이중성을 당연시하는 얼치기 지식인들이 차고 넘친다. 조국사태로 드러났듯, 일부 지식인들이 학연을 바탕으로 끼리끼리 맺은 추악한 유대강화가 신 적폐로 등장했다. 여기에 진영논리까지 가세해 '좌파와 우파만 있고 지식인은 없다'는 자조 섞인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쓰리다 못해 참담할 지경이다. 그럼에도 왜 국민이 분노하는지 조차 모르는 일부 지식인들의 이중성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9-29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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