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2009년생 오만원

돈은 돌고 돌아야 한다고 해서 '돈'이다. 돌지 않으면 돈이 아니다. 전 세계 지폐 중 가장 비싼 500유로화(약 68만원)는 돈이지만 돈 대접을 받지 못한다. 너무 고액권이라 돌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사람도 500유로를 직접 본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500유로에 '빈 라덴'이란 별명이 붙었다. 여행 중 500유로짜리를 건넸다가는 눈총을 받기 일쑤다. 앞뒤를 꼼꼼히 살펴보거나 빛에 비춰보기도 한다. 아예 받지 않는 상점도 꽤 많다. 500유로는 주로 테러 및 범죄은닉 자금 등으로 이용됐다. 올 초 유럽중앙은행이 500유로 발행을 중단한 것도 그런 이유다. 이처럼 고액권은 거래 수단보다는 가치 저장 성격이 강하다. 시중에 유통되는 것보다 금고로 들어가는 게 더 많다는 의미다. 경제 규모가 클수록 고액권 비중이 높다. 통화 확대 시 고액권이 많을수록 화폐 유통 속도가 느려져 물가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우리나라 최고액권 5만원이 23일이면 태어난지 꼭 10년이 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유통 중인 5만원권은 98조2천억원으로 금액 기준으로 전체 은행권(지폐)의 84.6%를 차지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지폐 10장 중 4장이 5만원권이다. 하지만 환수율은 여전히 낮다. 5만원권 환수율은 2010년 41.4%에서 2014년 25.8%로 낮아졌다가 2015년엔 40.1%로, 지난해 67%로 높아졌지만, 1만원권(107%), 5천원권(97%), 1천원권(95%) 대비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런 탓에 5만원권이 지하경제로 흘러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5억원을 1만원권으로 가득 채우려면 사과 상자가 필요했지만, 5만원권은 007가방 하나면 충분하게 됐으니 수뢰의 편의성(?)을 높였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각종 뇌물수수나 비자금 조성 등 부정부패 사건이 드러날 때 5만원권을 가방이나 쇼핑백 등에 담아 전달했다는 수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런 우려 때문에 발행을 앞두고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2006년 국회에서 발행촉구 결의안이 의결되고서도 무려 세 해를 넘기고야 빛을 보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듯 이제 5만원권의 입지도 크게 바뀌었다. 경조사비용 인상의 '주범'이란 소리에도 불구하고 2009년생 5만원권은 1973년생 1만원권을 누르고 우리 일상생활에서 가장 사랑받는 돈의 위치를 굳건히 하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20 이영재

[참성단]요트, 그리고 낚시

2011년 6월 인천북항 관공선 부두에서 세일링요트 카트리나호가 돛을 올렸다. 이 요트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었다. 바로 요트 항로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카트리나호는 한국수상레저협회가 개최한 '제1회 한반도연안 요트릴레이투어'에 나선 첫 요트였다.그렇다면 이 요트가 출항할 때, 요란하지는 않더라도 형식상의 출항행사라도 있었을 법한데 부두는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인천에 일정 수심을 확보한 요트계류시설(마리나)이 없기 때문이었다. 요트가 대형 상선들이 정박해 있는 관공선 부두에서 상선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는 모습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인천이 요트릴레이투어의 출발지이면서 정작 출항식은 경기도 제부도에서 열리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했다. 지금은 왕산마리나도 생기고 여건이 많이 달라졌지만 요트 레저에 관한 한 당시 인천은 전곡항은 고사하고 제부도에도 밀리는 형국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요트를 타면서 국내 3대 도시 인천의 해양레저산업 인프라가 일개 섬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느낌을 경험한다. 일종의 기시감(旣視感)이다. 중국낚시클럽연맹 회장단이 얼마 전 방한해 한·중낚시대회 개최지를 답사하고 돌아갔는데 그 장소가 바로 거제도다. 이들은 거제 일원에서 갯바위와 선상낚시를 체험한 뒤 9~10월 께 대회를 개최키로 합의했다고 한다. 일이 성사되기까지에는 경상남도와 거제시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은 수도권에 위치해 있는 데다 많은 섬을 보유하고 있어 해양레저산업이 발달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중국과의 거리 또한 거제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깝다. 중국의 낚시인구는 9천만명으로, 중국낚시클럽연맹은 낚시전문 방송채널도 보유하고 있다. 인천이 발 빠르게 나서 대회를 유치했다면 섬은 물론, 수도권의 관광자원과 연계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을 것이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사실 부산을 비롯한 많은 자치단체들이 낚시 인구 700만 시대에 발맞춰 시장배낚시대회 등 다양한 낚시 이벤트를 개발 중인데 비해 인천은 거의 손을 놓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점에서 오는 23일 인천 해상에서 열리는 '제1회 선상낚시대회'는 의미가 남다르다. 해양레저도시 인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회이기 때문이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06-19 임성훈

[참성단]공포의 적수

아주 아주 오래전 학교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온 동네가 파헤쳐진 좁은 골목길 한가운데 묻힌 파이프가 집 대문 아래를 지나갔다. 문을 열었을 때, 우물가에는 앙증맞은 수도꼭지가 햇빛을 받으며 반짝거렸다. 그때의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큰 비가 오면 수도에선 한동안 흙탕물이 나오곤 했다. 그래도 집에 수도가 있다는 게 마냥 좋았다.상수도의 기원은 BC 312년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변의 샘물과 호수의 물을 관을 통해 끌어와 공동 목욕탕과 분수대에 공급한 게 그 시작이었다. 상수도가 없었다면 고대 로마제국의 영광도 없었다. 로마 황제들은 도로만큼이나 상수도 설치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로 인해 도시에 물이 넘쳤고 그 물로 로마 인구 150만명을 먹여 살렸다고 한다. 지도자의 최고 덕목은 예나 지금이나 치수(治水)다.인천에 상수도가 보급된 건 1910년 12월 1일이었다. 부산, 서울, 평양, 목포에 이어 전국에서 5번째다. 개항지 치고는 꽤 늦은 편이다. 노량진에서 넘어온 물은 송현 배수지(현재 인천 동구 송현동)로 합류됐고 이곳에서 인천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1883년 개항 전만 해도 전동, 용동, 화수동, 송림동 등엔 큰 우물이 있어 지역 주민들의 식수 확보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개항 후 급격한 인구 증가는 상수도의 필요성을 가중시켰다. 신포동 일대 일본, 중국, 영국 조계지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붉은 수돗물 (적수·赤水)'은 B급 공포 영화의 상징이자 단골 메뉴다. 한밤중에 찾아온 심한 갈증. 수도를 틀었는데 붉은 피가 쏟아진다. 그리고 시작되는 살육(殺戮). 이런 공포를 인천 주민들이 20일째 체험중이다. 영화처럼 핏빛은 아니지만, 인천에서 적수가 배출되기 시작한 건 지난달 30일이었다. 처음엔 서구에서 시작됐는데 중구와 영종도, 마침내 강화도까지 확산했다. 공무원들의 초기 부실대응이 사태를 키웠다. 시민의 분노가 폭발하자 어제 정부가 "수돗물 공급 체계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준비 부실, 초동대처 미흡 등 대응 부실 때문 "이라고 발표했다. 그제는 그동안 침묵하던 인천시장이 사과문을 발표하고 머리를 숙였다. 치수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지도자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게 다시 한 번 입증됐다. 그럼에도 모든 게 언제쯤 완전 정상화될지 모른다는 게 인천 시민에겐 여전히 공포가 아닐 수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18 이영재

[참성단]홍콩 피플 파워

세계 패권을 놓고 미국과 일전을 불사하는 중국이 예상치 못한 한 방에 체면을 구겼다. 홍콩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을 사실상 무산시킨 것이다. 지난 9일 홍콩 시민 100만명이 '반송중(反送中)' 팻말을 들고 홍콩 정부가 범죄인을 중국에 인도하도록 한 송환법에 반대하고 나섰다. 법이 없을 때도 중국 공권력이 반중 성향의 홍콩 시민을 납치하는 마당에, 법이 생기면 중국에 저항하는 반체제인사나 인권운동가들이 줄줄이 중국으로 송환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시위를 촉발시켰다.이번 홍콩 시위는 형식적으로 송환법을 추진한 행정장관 케리 람을 겨냥했지만, 실제로는 일국양제(1국가 2체제) 원칙을 무시해 온 중국에 대한 저항이다. 일국양제는 1997년 중국이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은 뒤 국제사회에 공언한 약속이다. 외교, 군사분야를 제외한 전 분야의 자치권을 최대한 보장한 이 원칙에 따라 홍콩은 올림픽, 국제기구에 독립국가처럼 참여한다. 일국양제를 확실히 하기위해 후진타오 전 주석은 2017년 홍콩 정부 행정수반인 행정장관 직선제를 약속했었다.그런데 시진핑 현 주석이 2014년 직선제를 무산시킨다. 대의원의 간선으로 선발된 2~3명의 행정장관 후보, 즉 관제 후보에 대한 직선제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에 반발해 홍콩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직선제 관철 시위가 79일이나 이어졌다. 경찰 최루탄에 우산으로 맞선 '우산혁명'은 결국 무산됐고, 기존처럼 본토의 눈치를 살피는 1천200명의 선거인단에 의해 현 캐리 람이 행정장관에 선출됐다 이번 사태를 맞았다.100만명으로 시작된 홍콩 시위는 16일에는 150만여명으로 확대 돼 친중 강경파 캐리 람은 송환법 포기 의사를 담은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피플 파워'를 경험한 740만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여정이 여기서 멈출지 의문이다. 시민운동의 최종 목표는 행정장관 직선제 등 정치 민주화를 향할 수 있다.덩샤오핑의 외교유훈인 '도광양회'를 훌훌 벗어던지고 세계 패권을 향해 질주하던 시진핑의 '중국몽'이 미국의 견제로 흔들리던 참에 홍콩의 반중 시위로 일격을 당한 모양이 됐다. 중국의 대응에 따라 홍콩의 운명이 흔들릴 판이다. 향기로운 항구도시 홍콩(香港), 미·중 신냉전의 틈바구니에서 향기를 잃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6-17 윤인수

[참성단]감독 정정용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그래서 감동이 크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각본 없는 드라마인 스포츠를 각본 있는 드라마인 영화로 옮겨 놓아도 감동은 전혀 반감하지 않는다. 결과를 알고 있는데도 그렇다. 이유가 있다. 승부의 결과보다 그들이 흘린 땀방울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 선수의 좌절과 영광을 다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나 열악한 조건에서도 굴하지 않는 국가대표 스키선수를 다룬 '국가 대표'에 국민이 열광한 것도 그런 이유다. 각본 없는 드라마 한 편이 어제 막을 내렸다. 준우승에 멈췄지만 그 과정은 치밀한 각본대로 움직이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그 각본은 정정용의 손에서 쓰였다. 누군가 훗날, '2019 U-20 월드컵 대회'를 영화로 만든다면 주인공은 이강인보다 무명 감독 정정용이어야 한다. 이번 경기가 있기 전까지 이름은커녕 그 존재감조차 알지 못했던 68년생 감독 정정용은 1983년 박종환 감독이 이끌던 U-20 대표의 4강 신화보다 더 큰 역사를 썼다.감독 정정용은 대구 출생이다. 신암초등, 청구 중·고, 경일대를 졸업했다. 수비수 출신에 국가대표 경력도 없다. 요즘 말로 '흙 수저' 출신이다. 거기에 큰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일찍 마감했다. 최고경력은 2부리그였던 대구 FC 수석코치였다. 기회는 눈앞에서 스타 출신 지도자에게 번번이 빼앗겼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가 주로 U-13·U-14·U-16·U-18·U-19 등 유소년 지도자로 활동한 점이다. 그는 한마디로 '선수 조련사'였다. 그의 평소 지론은 '20세 이하 어린 선수들에게 우승보다 중요한 건 국제대회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었다.막이 내리면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선수를, 무대 위의 배우를 비추게 마련이다. '골든골' 수상으로 이강인은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격려, 신뢰, 소통을 앞세워 개성이 강한 젊은 선수들을 '원팀'으로 만든 감독 정정용의 리더십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정 감독은 경기마다 상대에 맞춰 변화하는 용병술과 전술적 작전 변화,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 선수 기용과 교체 등 승부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치고 명감독이 없다'는 축구계의 격언을 감독 정정용은 또다시 입증했다. 마침내 한국축구의 새 역사가 써졌다. 이제야 비로소 한국축구의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16 이영재

[참성단]정쟁 마당 국민 청원 게시판

버락 오바마는 시민의 정치참여를 '민주주의 정신'이라고 확신했던 대통령이다. 2011년 9월 국민청원 웹사이트 '위 더 피플(We the People)'을 개설한 것도 그래서다. 30일간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백악관 공식 답변 대상이 됐다. 무분별한 청원을 막기 위해 모두 답을 해주지는 않았다. 선출직 공직 후보자를 지지, 반대하거나 삼권분립에 어긋나는 청원은 아예 받아주지 않았다. 2016년 12월 기준으로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4천799건의 청원 중 277건에 대해 답을 주었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휴대 전화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전화기를 다른 통신사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 '동성애자 전환 치료를 금지하라'. 이들 청원에 대해 백악관은 관련 기관에 개정을 요구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말로 유명한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 선수 요기 베라에게 '대통령 자유 메달'이 수여될 수 있었던 것도 국민 청원 덕분이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청원 게시판은 지지부진한 답변으로 열기가 시들해졌다.'위 더 피플'을 벤치마킹한 청와대 게시판은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2017년 8월 17일 문을 열었다. 미국과 달리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청와대의 답변을 들을 수 있다. 초기엔 국민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의견을 내는 직접 민주주의의 본보기라는 긍정적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요즈음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부정확한 사실을 확산시키고 여론 재판을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지나친 정치적 편향도 논란의 대상이다. 청원 게시판이 정당해산, 대통령 탄핵 등 정치적 선동과 지지세력 간 정치적 대결의 장으로 퇴색된 지는 이미 오래됐다.청원 게시판이 또 시끄럽다. 정당 해산 청구 청원에 대해 청와대 정무수석이 직접 나서 "정당에 대한 평가는 국민의 몫"이란 답변 때문이다. 한국당은 "청와대가 선거운동에 나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모두 예견된 것이다. 분명한 건 이제 미국처럼 청원 대상에 명확한 한계를 둬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그게 어렵다면 이번 기회에 청원 게시판을 폐지하고 국민청원 기능을 국회로 넘기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다가 '민주주의 정신' 청원 게시판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채 국론을 분열시키는, 처치 곤란한 '괴물'로 변하지 않을지 정말 걱정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13 이영재

[참성단]'원 팀(One Team)' 대한민국

리오넬 메시는 현역 최고의 축구선수다. 13세에 FC 바르셀로나에 스카우트 된 그가 클럽 소속으로 스페인 프로축구리그 프리메라 리가에서 세운 기록은 독보적이다. 686 경기에서 602 득점, 232 어시스트다. 그를 향한 스페인 사람들의 사랑은 'inmessionante'라는 형용사를 모국어 사전에 올렸을 정도다. '인메시오난테'는 "메시다운, 무한의 능력을 발휘하며 완벽한 축구를 구사하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선수다운"이라는 뜻이라는데, 축구 천재에 대한 헌사로 모자람이 없다.그런 메시에게도 아픔과 좌절이 있다. 조국 아르헨티나 대표팀으로 출전한 네차례 월드컵에서 우승하지 못한 것이다. 남미의 월드컵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마찬가지.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에선 조 예선을 겨우 통과하더니 16강전에서 패해 짐을 싸야했다. 신의 반열에 든 메시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원 팀' 아르헨티나가 깨진 탓이다. 그래서 월드컵 3회 우승으로 조국 브라질에 줄리메컵을 바친 펠레에는 못미친다는 평가다. 클럽용 메시에게 국보급 펠레는 유일한 '넘사벽'인 셈인데, '펠레'의 스펠링이 'G·O·D(신)'이라는 과장은 깨지지 않을 모양이다.어제 새벽 한국 축구가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에콰도르를 1-0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FIFA 주관 세계대회 첫 결승 진출이라는 축구 역사의 신기원을 지켜 본 국민이 열광했고, 환호의 중심에 18세 소년 이강인이 있다. 현재 1골 4도움을 기록 중인 이강인은 이번 대회를 통해 메시급 천재로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중원을 지배하며 공격 루트를 만들어내는 기량이 창의적이고 탁월하다.기량 만큼 놀라운 건 그가 대표팀 막내인데도, 형들이 '막내 형'으로 부를 정도로 팀에 녹아드는 리더십을 보여 준 점이다. 스페인 명문 클럽 발렌시아의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는 이강인이 형들을 앞세우며 스스럼 없이 따르면서 대표팀은 '원 팀'으로 단단해졌다. 그가 자신을 앞세웠다면 메시의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의 메시가 될 수도 있었다.국민은 이강인을 포함해 대표선수 전체가 그물코 처럼 엮인 '원 팀'의 결속력과 그 결과에 감동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각분야에서 파열음이 그치지 않는 시절을 위로하는 U-20 대표팀의 정상 등극을 고대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6-12 윤인수

[참성단]DJ 평생 동지 이희호 여사

대통령 부인, 즉 퍼스트레이디의 진면목을 보여준 건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여사였다. 퍼스트레이디 자격으로 처음 기자회견을 했고, 정부예산으로 부속실 직원을 둔 것도 그였다. 1948년 UN 총회의 미국 대표로 세계인권선언을 만장일치로 이끌어냈다. 검소했지만 우아했고, 무엇보다 지적이면서도 겸손했다. "자신을 다룰 때는 머리를 쓰고 남을 다룰 때는 가슴을 쓰라"는 숱한 명언도 남겼다.최고 권력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퍼스트레이디의 막강한 영향력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대부분 퍼스트레이디는 이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데서 부담감으로 상당한 공포와 불안감을 경험하곤 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부인 패트 닉슨은 "퍼스트레이디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무보수 직"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다니엘 여사는 이런 중압감 때문에 엘리제 궁의 입주를 거부하고 14년 동안 사가에 거주했다.우리나라에서 퍼스트레이디는 영부인(令夫人)이다. 원래는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었는데 대통령 부인의 호칭으로 굳어졌다. 우리 국민들에게 고 육영수 여사의 이미지 때문인지 영부인은 '조용한 내조와 온화한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영부인의 스타일에 따라 그 영향력은 천차만별이다. 행동이 많으면 너무 나선다고 눈총을 받고, 내조에 충실하면 존재감이 없다는 소리를 듣지만 내놓고 활동을 하든, 내조만 하든 영부인은 대통령에게 늘 귓속말을 할 수 있는 '제1의 특별조언자'임에는 틀림없다. '영부인'이 '여사'로 바뀐 것은 이희호 여사가 청와대 안주인이 되면서부터였다. 이 여사는 "국가 지도자의 부인도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 누구보다도 영향력이 강한 퍼스트레이디였다. 이 여사는 대통령 부인이기 이전에 47년간 옥바라지와 망명, 가택연금 등 정치적 고초를 함께 겪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생 동지이자 정치적 조언자였다. "그를 쳐다보면 왠지 아렸어요. '차라리 김대중이란 사람이 없었다면…' 그가 무너질 때마다 따르던 사람들이 가슴을 쳤지요.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기적처럼 일어났어요"라고 했던 이희호 여사가 10일 밤 별세했다. 향년 97세. 언제나 "아내가 없었다면 나도 없었다"고 말했던 영원한 동지 DJ 곁으로 떠났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11 이영재

[참성단]정쟁에 갇힌 역사

어제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6·10 민주항쟁 32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민주인권기념관의 옛이름은 남영동 대공분실. 6·10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현장이다. 그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전두환의 독재 호헌조치에 반발하던 여론이 폭발했다. 연세대생 이한열이 최루탄에 쓰러지자, 서울 시민 전체가 들고 일어섰다. 6·29선언이 나왔고, 10월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국민투표로 확정됐다. 독재 종식과 민주주의 시작인 '1987년 체제'의 완성이다. 그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의 기억은 선연한데 벌써 30년이나 지났다니,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거짓말 만큼이나 거짓말 같다.기억은 같은데 해석은 엇갈린다. 여야 정당의 6·10 항쟁 기념일 논평이 그렇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주화 정신과 촛불 혁명을 계승하여 탄생한 문재인 정부"라며 현 정부의 민주적 정통성을 강조했다. 자유한국당은 "민주라는 가치가… 헌법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에게 부당하게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현 정부에 날을 세웠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87년 체제 극복을 강조하는 실리를 강조했다.올해 들어 국가적 기념·추념일이 정쟁으로 얼룩졌다. 3·1절 100주년은 '빨갱이'의 역사적 유래를 놓고 소동이 일었다. 5·18 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은 '독재세력의 후예' 논란으로 시끄러웠고, 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촉발된 '김원봉' 소란은 아직껏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이 모든 소란의 시작은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였다. 대통령과 여당의 역사와 야당의 역사가 다르니 아이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가 흔들린다.이런 식이라면 권력의 이념 지향에 따라 대한민국의 역사는 끊임없이 흔들리게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의 유리창을 교체해야 한다. 역사가 지배와 통치의 수단이 되는 형국을 조지 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고 말했다.건국의 기원을 어디에 둘지 신경전을 벌이는 바람에 지난해 대한민국정부수립 70주년과 올해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행사는 어영부영 흘려보냈다. 국민이 하나 되어야 할 국가 기념일과 추념일이 국민을 분열시키는 뇌관이 됐으니, 역사의 신은 유독 우리에게만 가혹한 듯 하여 야속하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6-10 윤인수

[참성단]이문열

제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침몰 직전의 난파선과 다름없었다. 이회창 후보의 거듭된 대선 패배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은 한마디로 만신창이였다. 2004년 4월 공천심사위원회가 구성되자 세간의 관심은 위원장인 김문수(경기지사), 부위원장 안강민(전 서울지검장)이 아니었다. 위원으로 이름을 올린 작가 이문열씨였다. 그는 당이 5·6공 인사를 공천하려 하자 "이러다 당이 망한다"며 대대적인 물갈이를 요구했다. 하지만 개혁은 여의치 않았고 한나라당은 열린 우리당에 참패했다.우리나라 작가 중 이문열씨 만큼 사회적 현안에 대해 활발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드물다. 사회적으로 현안이 있을 때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신의 소신을 밝혀왔다. 스스로 '보수꼴통'을 자처하는 그는 신문 칼럼으로, 때론 작품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밝혔다. 그래서 이씨에 대해선 용기 있게 소리를 내는 작가, 지나치게 정치화된 작가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닌다.이씨의 정치적 소신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건 2002년 '세계의 문학'에 4부작으로 연재하며 문학적 평가보다 정치적 논란을 일으킨 '호모 엑세쿠탄스'(처형하는 인간)일 것이다. 이씨는 이 소설에서 2002년 대선 이후의 한국 상황에 대해 '민족도 이념도 순식간에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국가주도형 포퓰리즘이 게거품을 뿜었다'고 묘사하거나, 햇볕정책을 '핵이란 비대칭 전력을 보유한 북한에 모래성 같은 경제적 우위를 앞세워 어디 사용될지도 모르는 현금을 몇억 달러씩 갖다 바쳤다'고 썼다. 또 '시민운동이 엽관의 수단이 되고 관직은 감투에 눈먼 386 홍위병들의 전리품이 됐다'며 시민단체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때문에 우리 문화계에 수치로 기록될 '책 화형식'이라는 끔찍한 일을 당하기도 했다.8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이천 설봉산 자락 이씨의 문학 사숙(私塾) 부악문원 (負岳文院) 을 찾으면서 잠시 잊혔던 그가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두 사람은 '보수정치'를 두고 1시간가량 대화를 가졌다. 이문열은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잠재력이 지나친 정치적 관심 때문에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을 그동안 꾸준히 받아왔다. 하지만 작가가 정치적 신념을 내세운다고 해서 비판을 받는 건 옳지 못하다. 이날도 그는 황 대표에게 "당에 쳐내야 할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다"며 2004년 공심위 때처럼 인적 쇄신을 강조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09 이영재

[참성단]한국형 실업 부조

부조(扶助)의 사전적 의미는 '잔칫집이나 상가(喪家) 따위에 돈이나 물건을 보내어 도와줌. 또는 돈이나 물건.'이다. 경조사 부조와 생계 부조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10명이 한술씩 보태면 배고픈 한 사람이 먹을 분량이 된다는 '십시일반(十匙一飯)'은 일종의 생계형 부조다. 청나라 말 중국의 사상가 캉유웨이(康有爲)는 우리의 부조문화에 대해 '조선사람들이 가진 뜨거운 마음의 표시'라며 부러워했다고 한다.경조사비를 통한 상부상조의 관습은 우리의 오랜 미풍양속이다. 과거 직접 일손으로 거들어 주던 풍습이 현재 봉투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부고장을 받을 때마다 얼마를 넣어야 할지 누구나 한 번쯤 고민을 하곤 한다. 부조는 계 향약 두레 등의 성격을 지닌다. 슬프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 서로 품앗이해서 무난히 치르자는 것이다. 조선 말 사회상을 기록한 '하재일기'(荷齋日記)에는 떡 술 국수 북어 등의 물품이나 돈 10냥을 부조했다고 적고 있다. '국민취업 지원제도'의 또 다른 명칭은 '한국형 실업 부조'다. 구체적인 그림이 완성돼 내년부터 시행된다고 한다. 중위 소득 50% (청년은 120%) 이하인 저소득층 구직자에게 매달 50만원씩 6개월간 최대 300만원을 지급한다. 일종의 '구직촉진수당'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자, 현 정부 국정과제다. 누가 이런 명칭을 만들었는지 '한국형'이란 것도 그렇고, 실업(失業)에 부조(扶助)를 갖다 붙인것도 기발하다는 생각이 든다. 실업부조에 들어갈 비용도 만만치 않다. 내년에 35만 명을 대상으로 5천40억 원이 소요되고 2020년 대상자를 60만 명을 늘릴 경우 연간 1조원을 훌쩍 넘긴다. 전액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데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대해선 일언반구가 없다. 공교롭게 시행 시기가 7월로 총선 3개월 후다. 총선용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擊蒙要訣)'에 이렇게 적었다. '서로 아는 처지라면 무슨 명목이 있어 주는 물건만 받고 아무런 명목이 없는 것은 받아서는 안 된다. 명목이란 것은 초상이 났을 때 부의를 하거나, 혼인할 때 도와주는 따위의 일이다.' 부조라고 냉큼 받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어찌 됐건 공공연한 경조사비 말고 숨겨진 부조금 항목이 또 하나 생겼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06 이영재

[참성단]제발 축구 하게 놔두세요

'공굴리기도 한일전은 재밌다'는 말을 입증하듯 5일 열린 U-20 월드컵 한일전의 시청률이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넘었다. 조사 결과 지상파 3사가 생중계한 일본과의 16강전 시청률은 12.3%였다. 앞서 조별리그에서 남아공전과 아르헨티나전 시청률이 각각 1.7%와 3%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역시 한일전'이라 할 만한 기록이다. 경기 내용 또한 숙적 일본을 이겼으니 성공이다. 졌더라면 울분에 못 이겨 꿈자리마저 뒤숭숭할 판이었다. 그런데 뒷맛이 개운치 않다. 한 방송사의 시청률 지상주의 때문이다. TV를 시청하는데 하프타임에 이강인이 등장한다. 배경은 경기장이 아닌 스튜디오인 듯하다. 이어 "전반전에 골 안 나서 답답하시죠? 후반전에 폭풍 골 기대하세요"라고 말하더니 "채널 고정"이란 멘트와 함께 엄지를 세운다. 점쟁이도 아니고 전반전이 0대 0으로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당연히 경기 전에 미리 찍어 편집한 녹화 영상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경우의 수에 따라 각기 다른 영상이 존재할 것이다. 방송에 필요한 경우의 수를 따져보니 4가지가 떠오른다. 한일전에서 실제로 벌어진 0대0 상황을 비롯해 한국이 골을 넣어 이기고 있는 상황, 일본이 골을 넣은 상황, 두 팀 다 골을 넣어 동점인 상황 등이다. 이처럼 가상의 스코어에 따라 이강인의 방송 대본 또한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채널 고정'이라는 마지막 멘트는 '절대' 빠지지 않았을 듯싶다.이 대목에서, 중요한 경기를 앞둔 선수를 불러내 시청자들에게 '채널 고정'을 주문하는 영상을 찍으면서까지 시청률을 올려야 하는지 묻고 싶다. 성숙한 판단을 기대하기에는 아직 이른 미성년자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방송사는 물론이고 선수 관리 관계자들도 결코 칭찬받지는 못할 것 같다. 영상을 찍는 시간은 선수들끼리 한 번이라도 더 발을 맞추거나 개인적으로는 전술이해도를 높이며 경기에 대비해야 할 시간이었을 터이다. 그렇다면 시청률은 어땠을까. 정작 그 방송사의 시청률은 2.7%로 방송3사 가운데 꼴찌였다.이강인은 두 말이 필요없는 한국축구의 희망이다. 무한한 가능성의 소유자인 만큼 아직은 축구 외적인 부분에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축구만 하게 놔뒀으면 좋겠다.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현실에 안주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 스포츠천재들을 여럿 보았지 않은가. /임성훈 논설위원

2019-06-05 임성훈

[참성단]류덕스

야구는 '투수놀음'이다. 야구 전문가들은 투수의 비중을 75%로 본다. 하지만 그 이상이다. 전설적인 야구 기자 레너드 코페트는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훌륭한 투수는 훌륭한 타자를 막아내지만 훌륭한 타자가 훌륭한 투수를 마구 두들기는 일은 거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1930년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3할 타자 8명을 보유하고도 8위에 그친 것을 예로 들었다. 하긴 멀리 갈 것도 없다. LA다저스 투수 류현진은 5월 선발 등판한 6경기에서 5승, 방어율 0.59를 기록했다. 매 경기 단 1점도 주지 않으니 패할 리가 없다.90년대 메이저리그를 호령했던 랜디 존슨, 로저 클레멘스,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모두 90마일 이상을 던지는 강속구 투수였다. 그렉 매덕스는 그 틈바구니에서 최고 구속 89마일 공으로 놀랄만한 대기록을 남겼다. 통산 355승, 완투 109회, 완봉 35회, 여기에 '투수의 꿈'인 사이영상을 4회 연속 수상했다. 제구력이 얼마나 좋았던지 눈을 감은 포수의 미트에 공을 넣은 적도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스트라이크 같은 볼''볼 같은 스트라이크'를 던졌다.매덕스는 피칭을 예술로 승화시킨 '마운드 위의 예술가'였다. 그는 공은 팔로 던지는 게 아니라 손가락으로 던진다는 것, 공은 속도보다 움직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터득한 투수였다. 그의 투심 패스트볼은 지금도 메이저리그 손꼽히는 마구(魔球)로 통한다."마치 왼손으로 던지는 그렉 매덕스가 마운드에 있는 것 같았다." 지난주 뉴욕 메츠의 미키 캘러웨이 감독이 류현진의 호투를 두고 던진 말이다. 언론들은 5월의 류현진을 '매덕스의 재림'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평생 매덕스를 따라다닌 '컨트롤의 마법사'를 류현진 이름 앞에, 그리고 류현진의 '류' 매덕스의 '덕스'를 합성해 '류덕스'라는 별명도 붙여 주었다.류현진이 메이저리그 NL '5월의 투수상'을 받았다. 한국인으로는 박찬호(1998년 7월)에 이어 2번째다. 이 여세를 몰아 아시아인 최초로 사이영상을 받으면 더 바랄 게 없지만, 혹사하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어깨 수술을 한 경험 때문이다. 우리는 20승보다 15승씩 10년 동안 던지는 류현진을 더 보고 싶다. 매덕스의 또 다른 위대한 기록은 23년간 부상자 명단에 딱 한 번 올랐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기관리에 철저한 선수였다. 류현진도 이를 꼭 배워서 부상 없이 오랫동안 공을 던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04 이영재

[참성단]방탄소년단과 손흥민

지난 주 한국인은 유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방탄소년단(BTS)의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에 환호했고 손흥민의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패배에 탄식했다. 유럽은 세계 문명의 중심이라는 자존심이 중국 못지 않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공유하는 유럽의 문화적 정체성은 강력한 국가연합체인 유럽연합(EU) 출범으로 이어졌다. 그런 유럽에서 공연 예술인들에게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은 성공의 상징이고, 챔피언스 리그는 월드컵을 능가하는 축구축제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다.방탄소년단의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은 완벽한 성공이었다. 12만명의 관객이 두차례 공연을 매진시킨 것은 물론 유럽 소녀 팬들은 한국어 가사를 떼창하며 열광했다. 1964년 비틀즈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미국의 충격을 대변했다면, 방탄소년단이 주도하는 '케이팝 인베이전'은 세계를 강타한 문화적 충격이다. 서구 언론들은 '비틀즈의 재림'이라며 호들갑이지만, 방탄소년단의 성공스토리는 비틀즈를 넘어선 문화현상으로 미디어 학자들의 연구 대상으로 주목받을 듯하다.웸블리 스타디움은 축구 종가를 자부하는 영국 축구의 성지이자 국가 경기장이기도 하다. 1948·2012년 런던 올림픽과,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의 주경기장이었고, 현재는 영국 축구협회가 관리하고 있다. 손흥민과 인연이 깊다. 소속팀 토트넘 홋스퍼는 홈구장을 리모델링 하는 동안 웸블리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임대했고, 이적생 손흥민은 웸블리에서 스타로 성장했다. 방탄소년단 RM이 웸블리 공연에서 '손(SON)'이라는 로고가 적힌 모자를 쓰고 나와 손흥민과 토트넘의 챔피언스 리그 승리를 응원한 건 우연이 아니다. 아쉽게 토트넘은 패배했지만, 손흥민은 계속 성장 중이다.방탄소년단과 손흥민의 성공이 남다른 건 그들이 성공을 감당할 만한 인격을 갖춰서다. 인격은 말로 드러난다. 방탄소년단 RM은 공연 기자간담회에서 "팬들과 서로를 충전하고 돕고 있음을 느낀다"며 팬클럽 '아미'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손흥민은 리버풀 전 패배 직후 인터뷰 요청에 "오늘은 안 했으면 좋겠어요. 말실수할까 봐서요"라고 정중히 사양했다고 한다. 팬클럽을 향해 진심어린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탄소년단과 말을 아껴야 할 때를 아는 손흥민의 인격이 예사롭지 않다. 막말로 정치를 막장에 처박고 있는 한국 정치인들이 배워야 할 말의 품위이자 인격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6-03 윤인수

[참성단]다뉴브 강의 눈물

'광막한 황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 있느냐 /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1926년 7월 윤심덕은 일본의 닛토 축음기 사장으로부터 음반 취입을 의뢰받았다. 녹음이 끝난 후 한 곡을 더 추가할 수 없겠냐는 윤심덕의 요청에 루마니아 작곡가 요시프 이바노비치의 '다뉴브 강의 잔물결'에 윤심덕이 우리말 가사를 붙인 '사의 찬미(死의 讚美)'가 더해졌다. 반주는 동생 윤성덕이 맡았다. 당시 윤심덕이 노래를 얼마나 애절하게 불렀던지 녹음실이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그녀가 모든 노래를 일본어로 부르면서 이 노래만 우리말을 고집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녀의 연인 극작가 김우진과 현해탄에 투신하기 전 죽음을 결심하고 부른 노래여서 그랬는지, 가단조의 이 슬픈 왈츠곡 덕분에 레코드는 10만 장이 넘게 팔리는 대 히트를 쳤다. 우여곡절 끝에 부른 '사의 찬미'를 가요계에선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효시로 꼽는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강이 친숙한 건 '사의찬미'보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탓이 크다. 빈 필 하모닉 신년 음악회에 앙코르곡으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그 곡이다.다뉴브 강은 러시아를 관통하는 볼가 강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 긴 강으로 장장 2천858㎞다. 독일의 남서부 흑림(黑林), 즉 슈바츠발트 산지에서 발원해 오스트리아 체코 헝가리 유고 불가리아 루마니아 등 10개국을 거쳐 흑해로 흘러간다. 강 이름도 나라별로 제각각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도나우, 체코어로 두나이, 헝가리어로 두나, 불가리아어로 두나브지만 영어로는 다뉴브로 부른다.헝가리 부다페스트를 상징하는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 강이 한국인을 태운 유람선 허블레아니호의 침몰로 눈물과 탄식의 강으로 변했다. '아름답고 푸른 다뉴브 강'을 하루아침에 '눈물의 다뉴브 강'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여간해선 힘들다. 하지만 재앙은 이렇게 늘 예고 없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다뉴브 강은 이제 우리에게 '슬픔의 강'이다. 사망· 실종자의 사연 하나하나가 가슴을 때린다. "너의 영혼은 희망을 찾을 거야"라고 한글로 썼다는 헝가리인의 추도 편지가 눈물을 적신다. '다뉴브 강의 기적'이 일어나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02 이영재

[참성단]반(反) 화웨이 전선

'파이브 아이스(Five Eyes·FVEY)'는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앵글로 색슨계 5개국이 참여하고 있는 정보 동맹체다. 1946년 미국이 소련에 대응하기 위해 형제국가 영국과 비밀 정보교류 협정을 맺고, 1956년에 호주와 뉴질랜드·캐나다가 가세하면서 '다섯 개의 눈'이 결성됐다. 말로만 떠돌던 이들의 존재가 노출된 건 2013년 6월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 요원이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NSA의 도·감청 기밀문서를 폭로하면서다.FVEY는 1960년에 개발된 '어셜론'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수십억 개의 전 세계 통신망을 감청해 취합된 정보를 자국 기관의 정보처럼 공유하고 있다. 국가 정상의 전화통화도 예외는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 시절, 독일 메르켈 총리의 전화를 감청하다 들통 나 외교문제까지 비화한 적도 있다. 최근 일본은 FVEY와 준동맹 관계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북한 선박이 다른 선박에 물건을 옮겨싣는 것이 적발된 것은 FVEY와 가까워지고 싶은 일본이 현장사진을 제공했기 때문이다.FVEY가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선 것은 화웨이 고사작전에 그들이 배후에 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다. 지난해 7월 월스트리트 저널은 FVEY 수장들이 모여 통신보안을 위한 화웨이 견제 필요성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기사 보도 후 트럼프 정부는 '2019년 국방수권법(NDAA)'을 통과시키며 공공기관 등에서 중국 통신장비의 사용을 금지했다. 화웨이 등 중국 통신장비가 중국 스파이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게 이유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지난해 말 5G 공급망서 화웨이를 배제하기로 했다. 통신장비 중 특히 5G 장비가 표적이 된 것은 데이터 전송속도가 빨라져 데이터가 유출될 경우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어서다.특히 4차 산업혁명 주도기술인 5G 시장을 이끄는 나라가 결국 미래산업은 물론 정보전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높은데, 화웨이의 5G 기술이 세계 최고수준으로 이번 기회에 싹을 자르겠다는 게 미국의 생각이다. 세계 기업들이 속속 미국 편에 서고 있다. 문제는 우리다. 미국은 우리 정부에 '반(反) 화웨이 전선'에 동참을, 중국은 삼성, SK하이닉스에 중단없는 제품 공급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드 사태 때 어설프게 대응하다 당한 경제보복의 상처가 아직도 깊은 우리 정부로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만 점점 깊어지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5-30 이영재

[참성단]기생충을 기다리며

기생충학자인 서민 박사의 위트 넘치는 칼럼이 너무 재미있어 그의 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 '기생충 열전'이란 책이다. 아니나다를까 몇 장 넘기기도 전에 낄낄거리고 말았다. 일반인을 위한 기생충 교양서가 몇 권 안 되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던 중 '기생충'이라는 책을 새로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펼쳐보았는데, '충'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생의 이야기였다는 대목에서다. 서 박사가 풀어놓는 기생충 이야기는 흥미롭다. 친절하게도(?) 온갖 기생충 사진을 배치하는 바람에 간혹 책장 넘기기가 두려워지는 점만 빼고는 예방을 위해서라도 한 번 읽어볼 만하다. 그는 기생충의 변호사라 해도 무방할 듯 싶다. 한 예로 세상에 뚱뚱한 사람은 있어도 뚱뚱한 기생충은 없다고 단언한다. 자기 분수를 지켜서 먹기 때문이란다. 또 기생충 박멸 이후 사람에게서 알레르기나 자가면역질환이 늘었다며, 이는 갑자기 상대가 없어진 면역계가 우리 몸을 공격한 결과라고 부연한다. 이쯤 되면 기생충과 '상생'을 하라는 것인지 가늠이 안 간다. 물론 기생충을 옹호(?)만 하는 것은 아니다. 각 기생충을 설명할 때마다 위험도를 비롯해 감염증상과 감염원 등을 별도로 소개하면서 경각심을 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 기생충 같은 놈아'라는 욕이 적당한 욕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부분은 일종의 블랙코미디다. 기생충이 자발적으로 일을 안 하려는 데 비해 집에서 놀기만 하는 사람은 일을 하고 싶어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는 탓에 백수가 된 거니, 기생충을 갖다 붙일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기생충이 '본의 아니게' 우리 사회의 아픈 부분을 상기시킨 셈이다.영화 '기생충'이 오늘 개봉한다. 줄거리를 보니 갖가지 기생충이 등장하는 '기생충 열전'과 달리 영화에서는 기생충의 왕이라는 회충 한 마리 '출연'하지 않는 것 같다. 기묘한 인연으로 얽힌 백수 가족과 부자 가족을 통해 현대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다루었다는 설명으로 미뤄 기생충은 봉 감독 특유의 은유일 것이다. 황금종려상 수상 소식을 접하면서 기생충 열전이 떠오른 것은 영화 줄거리와 책에서 엿본 블랙코미디적 요소 때문이 아닌가 싶다. 봉 감독은 기생충에 대해 '인간에 대한 예의와 존엄에 관한 영화'라고 했다. 그렇다면 영화는 '기생'을 넘어 '공생' 또는 '상생'에 대해 화두를 제시할 것으로 추측된다. 그래서 더 보고 싶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05-29 임성훈

[참성단]액상형 전자담배

"담배와 나는 한 몸"이라고 말했던 공초(空超) 오상순(吳相淳) 말고도 처칠과 임어당(林語堂)의 '담배 예찬'은 너무도 유명하다. 처칠은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2차대전 회고록'을 쓰면서 한 번도 시가를 입에서 뗀 적이 없고, 임어당은 저서 '생활의 발견'에서 "파이프 담배를 즐겨 피우는 사람은 절대 자기 아내와 다투지 않는다"고 썼다. 지금의 상식과는 엄청나게 괴리된 얘기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처음 들어온 것은 17세기 초로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 '식물편'에 담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남령초(南靈草)라고도 부르는 이것은 왜국에서 들어왔고 이것을 빨면 담과 하습(下濕)을 제거하여 술을 깨게 한다. 그러나 독이 있으므로 경솔하게 사용하면 안 된다"며 친절하게 경고까지 적었다. 1492년 콜럼버스가 120명의 대원과 함께 서인도제도의 동쪽 끝에 있는 작은 섬 '히스파니올라'에 상륙해 원주민들에게 담배 선물을 받은 지 2세기도 채 안 돼 담배가 조선에 들어왔다. '독이 있다'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조상들은 왜 담배를 좋아했을까. 마땅히 즐길만한 것도 없었던 그때 , 시간을 죽이는데 담배만 한 것이 없었을 것이고 더러는 연주(煙酒) 연차(煙茶) 영초(靈草) 망우초(忘憂草) 사상초(思想草)니 하는 온갖 이름을 붙여 담배 피우는 것을 '멋'으로 생각했다.청소년들이 '멋'으로 피울지도 모르는 미국산 액상형 전자담배 '쥴'이 지난 24일부터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상상도 못한 날렵한 디자인으로 '전자담배 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담배다. 2015년 미국에서 출시되었을 때 '청소년들의 흡연 호기심을 자극해 전자담배 입문을 조장한다'는 논란을 일으킨 그 담배다. 쥴 때문에 '전자담배를 피우다'라는 뜻의 '쥴링(Juuling)'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쥴'은 냄새도 없고 담뱃재도 나오지 않는다. 과일 맛이 나 청소년들 사이에 급속히 확산할 우려가 크다. 편의점에선 액상형 전자담배가 없어 못 팔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형태가 USB(이동식 저장장치) 같아 소지품 검사를 해도 적발하기 어렵다. 수입허가를 내줄 때는 언제고 뒤늦게 보건당국이 편의점 등을 상대로 전자담배 청소년 판매에 대한 집중 단속에 나선다니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한술 더 떠 KT&G도 대항마인 '릴 베이퍼'를 출시한다니 청소년 흡연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5-28 이영재

[참성단]'게임중독' 논란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한 새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을 확정하면서 게임강국인 한국이 벌집을 쑤셔놓은 형국이다. WHO는 게임 통제 능력이 손상되고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게임을 12개월 이상 지속하면 게임중독이라고 기준을 세웠다. 이 기준에 포함되는 사람은 이제부터 게임중독이라는 질병에 걸린 중환자라는 얘기다.하지만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볼 과학적 근거에 대한 찬·반 진영의 대립은 이제부터 시작이고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WHO의 결정을 수용한다며 절차를 밟겠다는데, 문화체육관광부는 WHO에 이의를 제기하겠다며 반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자녀들의 게임중독을 우려하는 학부모와 의료계를, 문체부는 게임업계를 대변하니 정부의 입장 조율이 주목거리다.게임중독은 질병이 아니라는 게임업체와 국내외 과학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게임은 알코올, 마약, 담배와 같은 금단증상도 없고 영구적이지 않다는 논리다. 영화와 같이 수많은 게임이 출시됐다 퇴출되는 문화 기호품이라는 얘기다. 세계를 주름잡는 프로게이머나, 학교에서 1년내내 게임을 하는 한 특성화고교의 E-스포츠학과 학생들마저 게임중독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항변은 과장이지만 업계가 체감하는 위기감을 보여준다. 게임업계에선 '게임중독' 대신 '게임 과몰입'이라는 표현을 쓴다.그런데 끼니를 거른 채 학교 수업을 팽개치고, 아이템을 사기위해 부모지갑에 손을 대면서까지 게임에 열중하는 자녀들의 '게임중독 증세'를 매일 체감하는 학부모들에게 게임업체의 반발은 헛소리일 뿐이다.문제는 정부다. 이미 지난해부터 WHO의 결정이 예고됐음에도 불구하고 1년이 지난 지금 보건복지부와 문체부가 딴소리를 내니, 대책 마련에 손 놓고 있었다는 자백이다. 자녀의 '게임중독' 증상을 체감하는 학부모와 '게임 과몰입'을 게임중독으로 침소봉대하면 게임산업이 망한다는 게임업계 사이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가뜩이나 경직된 노동시장과 주력산업의 퇴조로 경제위기설이 회자되는 험악한 시절이다. 노조 결사의 자유를 압박하는 ILO에 이어, 한국의 차세대 유력업종인 게임산업에 고삐를 채우고 나선 WHO에 이르기까지 국제기구마저 딴지를 걸고 나서나 싶은 낭패감은 시절 탓인가? /윤인수 논설위원

2019-05-27 윤인수

[참성단]'봉준호 영화'

2001년 말께, 경인일보 편집국에 더벅머리 청년(?) 두 명이 들어왔다. 그중 한 명이 자신은 '플란다스의 개'를 만든 "감독 봉준호"라고 했다. 또 한 명은 훗날 '해무'를 감독한 심성보. 데뷔작이 흥행하지 못했지만, 평단의 찬사 때문이었는지 봉 감독은 자신감에 충만 돼 있었다. 이들이 경인일보를 찾은 건 '화성 연쇄 살인사건' 때문이었다. 화성 사건을 다룬 경인일보의 기사가 가장 풍성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당시 기사와 사진 자료 등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역대 한국영화 100편을 뽑을 때 늘 최상위에 올라있는 '살인의 추억'은 그렇게 탄생했다. 525만 명을 동원한 이 영화로 봉준호는 한국영화를 이끌 차세대 감독으로 우뚝 섰다.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경쟁부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 사상 첫 황금종려상이다. 특히 올해는 한국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수상의 의미는 더 크다. 보통 세계 3대 영화제로는 칸, 베를린, 베니스 영화제를 꼽는다. 2012년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이후 7년 만의 쾌거다. 영화제 대상 수상을 올림픽 금메달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의 본고장에서 한국 감독이 해외 거장 감독들의 영화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은 대상이라 경사가 아닐 수 없다.봉 감독이 추구했던 영화의 세계는 '불합리한 계급사회'에 대한 비판이다. 대학 시절 만든 단편영화 '지리멸렬'에서부터 봉 감독은 교수 법조인 언론인 등 지도층의 위선과 허위를 들추며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국제적 명성을 얻은 후 만든 '설국열차'의 열차 안 세상은 절대 평등하지 않은 부조리한 세상이다. 패배자들로 가득한 꼬리 칸의 젊은 지도자가 폭동을 일으켜, 고위층들이 모여 있는 가장 위 칸으로 돌진하는 것은 불평등으로 가득 찬 현대사회에 대한 상징과 은유의 표현이다. '기생충' 역시, 가난한 가족과 부자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빈부격차' 문제를 블랙코미디 방식으로 개성 있게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12세 때 감독을 꿈꾸었던 봉준호는 단 7편의 장편 영화로 '봉준호 영화'라는 나름의 장르영화 계보를 만들며 세계적 감독이 됐다. 이제 봉준호를 선두로 박찬욱, 홍상수, 이창동, 김기덕, 나홍진 감독 등이 어우러져 한국영화는 바야흐로 '풍요의 시대'를 맞게 됐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5-26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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