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자민당 장기집권'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일본 정치는 자민당 장기집권의 기록이다. 1955년 강경 보수인 자유당과 중도보수인 민주당이 합당해 창당한 이후 일본 정치를 지배해왔다. 두 차례에 걸쳐 야당에 5년 8개월 정권을 내준 적 있지만 장기집권 역사에선 작은 에피소드일 뿐이다. 자민당 총재가 자동적으로 총리가 되니 의회의 총리 임명동의권은 무용지물이다. '자민 막부'라는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중도에서 극우까지 아우르는 '보수 빅텐트' 자민당의 독주는 견고하다.장기집권에 따른 폐해가 없을 수 없다. 가장 큰 폐해는 허약한 민주주의다. 의원내각제에 바탕한 민주주의 국가이지만 1당의 장기집권으로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지난해 개봉한 일본 영화 '신문기자'는 장기집권의 폐해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우익이 주류인 탓인지 흥행은 저조했지만 한국배우 심은경이 신문기자 역을 열연해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일본 여배우들이 우익들의 '이지메'를 걱정해 배역을 외면한 덕분이다.영화에서 일본 정부는 대학교로 위장한 생화학무기 연구소 신설을 추진한다. 주축은 총리 직속의 정보기관인 내각정보조사실이다. 하지만 내부고발자가 이를 한 지방언론에 제보하고, 내각정보조사실장은 이를 막기 위한 여론조작과 언론 회유 및 협박을 자행한다. "정권유지가 나라의 평화와 안정이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형태만 있으면 돼"라는 조사실장의 극 중 대사엔 1당 장기집권의 모든 폐해가 농축돼있다. 정권이 국가가 된 나라, 일본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다.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기회가 될 때마다 민주당 정권 장기집권을 희망했다. 집권이 목표인 정당이 연속적인 국민지지를 꿈꾸는 건 비난할 일이 아니다. 최근 민주당이 지난달 발의한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로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 개정안은 야당의 공수처장 후보 비토권을 없애는 것이다. 야당의 비토권 행사가 현실화되자, 입법과정에서 민주적 견제장치라 자부했던 비토권을 스스로 없애겠다는 얘기다. 중립적인 공수처장 후보로 야당을 설득하는 대신 절대다수 의석으로 비토권을 박탈한다면 형식적인 민주주의로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해치는 일이지 싶다. 한국 진보 빅텐트 민주당의 장기집권 구상의 목표가 형식과 실질이 일치하는 민주주의일 것으로 믿는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0-28 윤인수

[참성단]이건희가 남긴 유산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오늘 선영에 안장된다. 지난 25일 아침 이 회장이 타계하자 그의 업적을 기리는 보도가 넘쳐나는 가운데 일각에선 그의 과오를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서 있는 자리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듯, 고인에 대한 기억이 교차하는 건 당연하다. 삼성과 유족이 가족장을 치른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대중의 추모 분위기는 국민적이었다.가장 인상적인 건 한국 대표 기업 삼성에 대한 국민적 자부심 표출이다. 온라인 매체에는 아버지 이병철에게 물려받은 1조짜리 삼성을 400조짜리 글로벌 삼성으로 키운 이 회장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공(功)과 함께 과(過)를 언급했다가 '무례하다'는 네티즌의 항의에 시달렸고 급기야 청와대엔 삼성 상속세 10조원 면제 청원이 올랐을 정도다."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프랑크푸르트 혁신 선언과 '애니콜 화형식' 등 이 회장이 남긴 어록과 행적들이 '혁신의 언행'으로 각광받고, 절판된 그의 수필집은 중고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된다고 한다. 뉴욕타임즈는 한국식 재벌경영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삼성의 큰 사상가"라 기렸고,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조기를 게양했다.대학가의 추모 열기는 뜻밖이다. 서울대와 고려대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와 '고파스'엔 이 회장을 '현대판 이순신'이라며 위인의 반열에 올리자거나 국민장을 해주자는 등 예상 밖의 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비록 일각의 주장일테지만 편법상속·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법적 심판 등 삼성의 부정적 이미지에 익숙한 세대에게도 이 회장의 성취가 비범했던 모양이다. '이건희의 족적'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이 회장의 타계로 한국 경제를 창업하고 수성한 재벌 1, 2세대의 시대가 저물었다. 빛이 강렬했던 만큼 그림자도 짙었지만, 그래도 "해보기나 했어"라는 정주영식 1세대 도전과 "다 바꾸라"는 이건희식 2세대 혁신이 오늘의 한국경제를 만들어냈다. 개천에서 흔하게 용이 났던 덕분이다. 이 회장 장례기간 많은 국민들이 누구나 용이 될 수 있었던 '등용문 시대'의 기억을 공유했다. 이 기억으로 가재·붕어·개구리에 머물 뻔한 많은 청년들이 용이 되기를 바란다.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명복을 빈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0-27 윤인수

[참성단]전통시장 '청춘몰'

2017년 7월 수원 영동시장에 '28청춘 청춘몰'이 개장했다. 시장 2층 유휴공간 660㎡에 쇼핑과 지역 문화, 젊은 감각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조성됐다.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이 공모한 '2016 청년몰 조성사업'에 응모해 선정됐다. 국비 7억5천만원, 시비 6억원, 시장 자체 지원금 1억5천만원 등 15억원이 투입됐다.28개소 점포주들은 19~39세 청년세대로 구성됐다. 넘치는 열정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시장 명물이 됐다. 입주업체인 '미나리 빵집'이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었다. 2년 전 신세계백화점 영등포점에 입점해 화제가 됐다.비슷한 시기, 수원 남문시장의 '푸드트럭존'은 백종원 프로그램에 방영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우리가 흔히 먹을 수 있는 음식뿐 아니라 다양한 이국의 먹거리를 선보여 젊은이들을 줄 세웠다. 덕분에 전통시장이 젊어지고 활기가 넘쳐난다는 찬사가 쏟아졌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열기는 식고, 손님 발길은 뜸해졌다. 한때 15대를 넘어서 차로까지 점령했던 푸드트럭도 눈에 띄게 감소했다. 소상공인들을 주저앉게 한 코로나19는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청년몰은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전통시장 활성화와 청년 일자리를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전국 전통시장 17군데에 설치됐다. '전통시장의 새로운 희망과 활로'라는 시행 초기의 호평은 사라지고 어렵고 힘들다는 한숨만 커지는 양상이다.의정부 제일시장은 청년몰 사업이 초반부터 난관에 부딪히면서 시장과 상인들에게 짐이 되고 있다. 기존 세입자들을 내보내면서 의욕적으로 추진했으나 청년 예비창업자들이 외면하면서 중도 포기를 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사업비로 확보한 국비 10억원과 시비 8억원, 자부담 2억원을 다 써보지도 못하고 정산해야 하는 딱한 처지가 됐다.시장 관계자들은 청년몰의 몰락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상권 특성이 고려되지 않고, 새로울 게 없는 뻔한 업종으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장 활성화와 창업 일자리 창출에 매달려 지원을 남발한 정부와 관련 단체도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다.겨울철은 환경이 열악한 전통시장에 불리하다. 청년몰도 마찬가지다. '젊어 실패는 돈을 주고라도 산다'고 했다. 청년창업주들의 도전정신을 응원한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0-26 홍정표

[참성단]'비밀의 숲'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덕분에 드라마 '비밀의 숲 시즌1'을 정주행했다. 2017년 tvN이 제작 방영한 드라마다. 드라마의 서부지검 검사들은 대부분 세속의 권력에 오염된 사람들이다. 황시목 검사만이 사건의 진실을 향해 직진한다. 뇌 수술 후유증으로 감정을 잃은 덕분이다. 이 별종 검사가 온갖 우여곡절 끝에 비밀의 숲에 숨어있던 재벌권력을 심판하고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혀낸다는 스토리다. 재벌가의 사위로 전 서부지검장 출신 청와대 민정수석 이창준이 사실은 황 검사를 비밀의 숲으로 인도한 내부고발자였다는 극적인 반전은 허탈했지만 극적 긴장감으로 16회 정주행이 가능했던 웰메이드 드라마였다.조 전 장관은 지난 22일 국회 법사위의 대검 국정감사 다음 날 SNS에 캡처한 비밀의 숲 영상에 황 검사의 대사를 올렸다. "썩을 덴 도려낼 수 있죠. 그렇지만 아무리 도려내도 그 자리가 또다시 썩어가는 걸 전 8년을 매일 같이 목도해왔습니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왼손에 쥔 칼로 제 오른팔을 자를 집단은 없으니까요. 기대하던 사람들만 다치죠." 지금 검찰 조직과 검사들이 '비밀의 숲'의 서부지검과 검사들과 같다는 것이고, 결론은 SNS 제목대로 '공수처의 필요성'이다.드라마 제목 '비밀의 숲'은 그 어떤 사정 기관의 접근도 불허하는 성역화된 모든 권력을 은유한다. 비밀의 숲에서 법 위에 군림하는 모든 권력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산다. 이를 쳐부순 영웅들이 적지 않았다. 이탈리아 마니 풀리테 검사들과 브라질의 세르지오 모루 연방판사는 부패한 최고 권력자들을 법대에 세웠고, 미국 재무성의 비밀검찰국 언터처블들은 알 카포네를 알카트리즈 감옥에 보냈다. 하지만 이탈리아, 브라질, 미국의 권력형 범죄가 사라진 건 아니다. 사정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법을 농락하는 권력과 사람들이 문제인 것이다.대검 국감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법리적으로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했다. 같은 날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은 "정치가 검찰을 덮어 버렸다"며 사표를 던졌다. 수사지휘권을 박탈당한 검찰총장의 항변, 정치 현실에 비관해 검사직을 내놓은 서울남부지검장의 좌절 뒤에 범접할 수 없는 '비밀의 숲'이 어른거린다. 감정 없이 오직 법에 따라 비밀의 숲을 파헤치는 검사들이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0-25 윤인수

[참성단]제2부시장

지방자치법에 따라 인구 100만명 이상 기초지자체는 부시장을 2명 둘 수 있다. 경기도에선 수원·고양·용인시가 해당한다. 행정부시장으로 불리는 제1부시장은 이사관급 공무원을, 제2부시장은 개방형 직위로 공모를 통해 임용한다.행정부시장이 서열상 우위이나 지역에서는 2부시장에 더 주목한다. 도시계획과 주택·건설·안전·재난·환경·교통·상하수도 업무를 총괄하기 때문이다. 도시계획심의위와 건축심의위의 당연직 위원장이다. 대규모 도시개발사업과 토목·건축 공사, 점포 개설 등 인·허가권은 죄다 그의 손을 거친다. 사업시행자나 건설업자, 상공인들의 밥줄이 달라질 수 있다.2부시장 신규임용을 앞둔 용인시가 뒤숭숭해 보인다. 시청 안팎에 정치권과 여당 정치인의 외압설이 나돈다. 특정인을 추천하는 압력성 청탁에 시장이 난감해 한다고 한다. 11월 임기를 마치는 현 부시장은 시의원 출신이다. 그가 임명될 때도 지역의 유력 정치인이 추천했다는 말이 돌았다. 업무 능력과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의문이 제기됐으나 인사권자는 선뜻 그를 택했다. 2년이 지났는데 평가는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수원시는 이공계 대학교수가 4년 넘게 2부시장을 지냈다. 도시계획심의위원 경험을 살려 일 처리에 무리가 없고, 대내·외 두루 원만했다는 평가다. 국토부 고위공직자 출신인 현 부시장도 무난하다는 평이다. 수원시장이 부시장 때문에 지역 정치권과 국회의원의 압력을 받았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고양시는 전·현임 모두 늘공 출신이다. 둘 다 경기도청에서 부시장으로 내려왔다, 발탁된 경우다. 도청 도시주택실장을 지낸 현 부시장은 전문성에 친화력을 갖췄다는 후한 평이다. 고양 지역 정치인에게 줄을 댈 처지도 아니다. 대체로 뭔가 부족한 쪽에서 인사청탁을 넣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통하는 건 인사권자의 목줄을 쥔 세력이나 권력자를 앞세우기 때문이다. 2부시장은 전문성이 떨어지고 실전 경험 없는 자가 감당하기 벅찬 자리다. 인사가 망사(亡事)인 행정이 잘 될 까닭이 없다.행정이 원활하게 돌아야 지역에 활력이 생긴다. 모르면 피하기 마련이고, 자꾸 미루다 동맥경화가 심화한다. 어쩌다, 무지(無知)가 용감하면 더 큰 화를 부른다. 도와준 세력과 인사에 충성하다 엉뚱한 사고만 친다. 4성 장군 출신이 모를 리 없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0-22 홍정표

[참성단]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2015년 한·일 지방지 세미나 참석차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를 찾았다. 수교 50주년을 맞은 한·일관계를 양국 지방지 시선으로 평가해보자는 세미나 주제가 신선했고, 2011년 일본 동북지방을 강타한 지진해일 피해 현장을 둘러볼 기회는 덤이었다. 일본 동북부 태평양 연안에서 발생한 지진과 쓰나미는 사망 1만9천691명, 실종 2천568명, 최대 25조엔의 재산피해를 남겼다. 당시 간 나오토 총리는 "사실상 일본 국토 20%를 잃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탄식했다.대재앙 4년 뒤 찾은 미야기현과 센다이시는 제방을 복구하는 토목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인명피해가 가장 컸던 만큼 피해의 흔적들이 곳곳에 숨어있었다. 쓰나미에 휩쓸린 한 학교의 벽시계는 악몽의 순간을 박제한 듯 사고 시간에 멈추었고, 사망자 대부분이 익사였다는 인솔자의 설명엔 30m가 넘는 쓰나미의 공포가 담겨있었다.생존자들의 고통도 심각했다. 동북지방 유력지인 카오쿠신포(河北新報)의 스즈키 모토오 편집국장은 동북지역 연안에서 생산한 수산물의 국제판로가 막혀 주민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센다이시 주산물인 멍게는 한국의 수입제한 조치로 양식업계의 타격이 크다고 했다.동일본 대지진 이후 세계 각국이 일제히 일본 수산물 검역을 강화하거나 수입금지 조치를 했다. 쓰나미에 녹아내린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원자로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유출된 탓이다. 후쿠시마 원전붕괴는 체르노빌과 맞먹는 최고 레벨의 원전참사다. 사태 초기 주민 40만명이 피난했고, 지금도 4만6천명이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는 원전난민 신세다. 아베 전 총리는 방사능 오염지역 농산물을 직접 시식하는 퍼포먼스로 방사능 안전을 강조했지만 일본 국민들도 믿지 않았다.그런 일본 정부가 그동안 모아두었던 후쿠시마 원전 방사성 오염수를 곧 태평양에 방류한다고 밝혀 국내외 비난이 고조되고 있다. 삼중수소 등 최악의 유해물질이 포함된 방사능폐기물을 바다에 버린다는 발상에 미야기현 지사가 반발하고 원희룡 제주지사는 국제소송 불사 의지를 밝혔다. 해양방류가 현실이 되면 한·일 양국은 물론 전 세계 수산업과 해양생태계는 직격탄을 맞는다. 동일본 대지진 때 세계는 일본에 구호와 복구의 손길을 내밀었다.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을 수 있는 건가. 지겹고 두려운 일본의 두 얼굴이다./윤인수 논설실장

2020-10-21 윤인수

[참성단]백신 공포증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 예방주사 접종은 많은 아이들에게 공포였다. 뇌염, 콜레라 예방접종 날이면 열이 있다며 한사코 접종을 피하거나, 결석도 불사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라가 어렵던 시절 1회용 주사기는 언감생심, 주사기 바늘을 알코올 램프 불에 소독해 한 반 전체를 접종했다. 기억도 선명한 불주사다. 불에 달군 주사기 바늘이 살에 꽂히는 공포를 무심히 넘길 동심(童心)은 드물었고, 지금도 아이들에게 주사는 공포체험이다.이물질의 신체유입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 때문인지,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유도 다양하다. 가장 논쟁적인 이유는 접종거부권이다. 종교적, 도덕적, 개인적 신념에 따라 접종을 거부할 권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와 양심과 신체의 자유를 앞세우니 강요할 명분이 궁해진다.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 백신 접종 거부를 인정해 온 배경이다.터무니 없는 음모론도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백신을 무슬림을 불임으로 만들기 위한 서방의 무기로 믿는단다. 정통 유대교도들은 백신에 돼지 DNA가 들어있다며 접종을 거부한다. 1998년 영국에서 볼거리·풍진을 예방하는 'MMR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거짓 연구결과가 전 세계에 백신 거부감을 퍼트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예방접종은 물론 병원 투약을 거부하고 대체의학을 신봉한 '안아키(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 모임)'라는 단체가 아동학대 시비에 오르기도 했다.이유와 음모론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백신 접종을 거부한 대가는 참혹하고 황당하다. 당장 백신 없는 코로나19로 지구촌 전체가 신음 중이다. 2000년 홍역 종식을 선언했던 미국은 최근 몇 해 홍역이 재발해 홍역을 앓고 있다. 진원지는 백신 접종 거부운동이 활발한 지역과 난민 정착촌이다. 덕분에 백신 접종을 강제하자는 여론이 높아지는 모양이다.최근 독감백신을 접종한 청소년과 노인이 사망해 독감백신 공포증이 번지고 있다. 앞선 백신 상온유통 사태와 맞물려 독감백신에 대한 불신이 컸던 탓에 국민 불안은 더하다. 백신과 사망과의 인과관계 규명이 시급하다. 하지만 코로나19처럼 백신 없는 공포라면 몰라도 백신 자체에 대한 과도한 공포는 금물이다. 부실한 제조와 관리가 문제지, 바이러스 창궐시대에 백신이 유일한 동아줄인 사실만큼은 확실하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0-20 윤인수

[참성단]업무추진비

'업무추진비'란 지방자치단체의 장 등이 기관을 운영하고 정책을 추진하는 등 공무(公務)를 처리하는 데 사용하는 비용을 말한다. 기관운영업무추진비와 시책추진업무추진비로 나뉜다. 1993년 이전까지 '판공비'로 불렸다.이재준 고양시장은 참치를 즐겨 먹고, 윤화섭 안산시장은 한우식당을 자주 찾는다. 경기도내 시장·군수들의 업무추진비 사용처를 분석한 결과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이 관련 자료를 입수해 공개했다. 장덕천 부천시장은 지난 2년간 경조사·직원격려금으로 161차례 현금 5천800여만원을, 안병용 의정부시장은 비슷한 기간 106차례 현금 5천880만원을 사용했다고 한다.김종천 과천시장은 코로나19에도 불구, 올 상반기 식사와 술자리 모임을 자주 가졌다. 올해 초부터 7월까지 여럿이 모인 장소에서 152차례 업무추진비를 결제한 것으로 집계됐다. 4성 장군 출신인 백군기 용인시장은 장어집을 드나든 것으로 나타났다.행정안전부는 지자체 업무추진비를 직책급·정원가산·기관운영·시책추진·부서운영·의정운영 등 공통 업무추진비로 분류하고, 지침에 따라 편성·집행하도록 했다. 그러나 사용 기준이 모호하고 사후 정산방법이 명확하지 않다. 지방의회 행정감사 때마다 과다 집행과 부적절 사용 등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신용카드 사용이 원칙이지만 현금 지출도 가능해 단체장의 비자금으로 쓰인다는 지적이다.판공비로 불릴 당시, 기관장들의 업무추진비 규모와 사용처는 대외비였다. 어디에 얼마만큼 쓰이는지 몰라 단체장의 '쌈짓돈'이라는 말이 공공연했다. 2000년대 초부터 업무추진비에 대한 기준이 강화되고 연간 사용규모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가 권력기관의 업무추진비 예산과 사용처는 여전히 투명하지 않다.업무추진비는 '일 열심히 잘하라'고 준 공적 자금이다. 과다 사용도 잘못이지만 너무 안 쓰는 것 역시 직무유기란 지적을 받는다. 문제는 상식선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집합금지 명령이 내려졌는데, 기관장이 값비싼 음식점에서 모임을 하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2000년대 중반, 사업가 출신 수원시장이 지출 결재를 받으러 온 간부 공무원에게 일갈했다. "만약 당신 돈이라면 이렇게(쓸모없는 곳에) 쓰겠느냐"고. 업무추진비도 마찬가지다./홍정표 논설위원

2020-10-19 홍정표

[참성단]최악의 미국 대통령선거

이 정도면 괴짜인지 미친 건지 구분이 힘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얘기다. 트럼프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전통적인 공화당 텃밭인 조지아주 대선 유세에서 "(대선에서 패할 경우) 아마도 나는 이 나라를 떠나야만 할 것"이라고 말했단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 캠페인에서 선거에 패하면 나라를 버리겠다니, 한국 상황이라면 당장 후보직을 사퇴해야 할 망언이다.미 언론은 지지층 결집을 위한 의도된 발언으로 보지만, 그만큼 판세가 불리한 반증이다. 마스크를 쓴 민주당 바이든 후보를 조롱하며 '노(No) 마스크' 유세 도중 코로나19에 감염되면서 트럼프 선거 캠페인에 망조가 들었다. 서둘러 퇴원해 유세를 재개했지만, 여론은 슈퍼감염자로 낙인 찍었다. 재임 중의 모든 무책임한 언행을 감염 이후의 무책임한 유세 행보로 증명했다. 트럼프의 적은 트럼프로 드러나고 있다.이번 미국 대선(현지시간 11월3일)의 핵심 선거 이슈는 트럼프에 대한 찬반이다.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트럼프의 코로나19 감염으로 대선후보 토론도 한 차례에 그쳤다. 트럼프에 대한 열혈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은 온라인에서 서로 조롱하고 증오하며 정책과 비전 등 전통적인 선거 캠페인을 외면한다. "나라를 떠날 수도 있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트럼프 없는 나라를 상기시키는 극단적 메시지다. 미국은 트럼프를 중심으로 극단적으로 분열 중이다.트럼프의 성정을 감안하면 시간이 갈수록, 여론조사 결과가 불리할수록 그의 선거 캠페인은 더욱 극단으로 치달을 것이다. 이미 우편투표 부정을 기정 사실화하고 대선 불복 의사도 밝혀 놓았다. 바이든 아들의 마약·섹스 동영상과 외국기업과의 정경유착 메일이 담긴 노트북 하드디스크가 보도되는 초대형 스캔들도 터졌다. 이 스캔들과 관련해 음모설이 낭자하다.민주주의 가치를 보여주던 미국 대선이 삽시간에 후진국 선거로 전락한 모습이다. 여론조사는 트럼프에게 불리하지만,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간접선거 방식은 트럼프에게 재선 가능성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기이한 지도자와 선거제도가 초강대국 미국을 흔들고 있다. 지도자 리스크에 시달리는 나라들의 국민들이 미국선거를 주목하고 있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0-18 윤인수

[참성단]인구주택총조사 유감

인구조사(人口調査)는 국가가 인구와 가구 수를 총 집계(전수조사) 하는 일이다. 한반도에는 삼국시대에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인구조사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3년에 한 번씩 정교한 인구조사를 했다는 신라 문서가 전해진다.'2020 인구주택총조사'가 15~31일 17일간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된다. 특정 시점에 한국에 거주하는 내·외국인을 대상으로 인구·가구·주택에 관한 종합적인 정보를 파악한다. 5년마다 연도 숫자가 0, 5로 끝나는 해에 실시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방식이 원칙이나, 표본조사(20%) 대상에 해당하면서 응하지 않을 경우 조사원이 직접 방문해 설문한다.조사는 인구·가구·주택 등 분야 55개 항목이다. 변화하는 시대 상황에 맞춰 질문 내용이 첨삭(添削)된다. 개인 신상을 구체적으로 묻다 보니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자존심을 건들고 열 받게 하는 문항도 있다. 조부모의 결혼기념일을 적어내는 항목이 있었다. 손자는 물론 본인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문제는 온라인의 경우 여기에 답을 하지 않으면 다음 순서로 넘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왜 할아버지 결혼기념일을 국가가 알아야 했는지 궁금했는데, 2015년 조사부터 사라졌다.조사대상의 사생활 침해 논란도 여전하다.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 밤 시간대 낯선 남자의 방문은 당혹스럽다. 그리고는 '왜 혼자 사느냐, 언제부터 혼자냐'는 문항을 들이대는 건 대체 어쩌자는 건가. 늦은 밤, 후미진 골목길을 가야 하는 여성 조사원은 강력 범죄에 노출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문전 박대에, 맹견에 물리거나 혼쭐이 난다. 일부 남성 조사원은 여자 가족과, 여성 조사원은 든든한 남자 가족과 함께 다니기도 한다.올해 조사에는 2개 항목이 추가됐다. 처음으로 개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에 대한 문항이 등장했다. 이제 동물도 가족이다. 1인 가구 사유와 혼자 산 기간도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혼자 사는 여성들이 민감할 수 있는 개인정보다. 정확한 주택·인구 통계는 국가 운영의 기본자료다. 하지만 질문 내용에 대한 의문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일부는 조사원이 가정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 조사방식과 내용이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반응들이다. 통계청은 여전히 숙제를 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홍정표 논설위원

2020-10-15 홍정표

[참성단]'사실적시 명예훼손'

어제 경인일보엔 코피노의 양육비를 대신 받아 전달해주는 '열혈 자원봉사자' 구본창씨 인터뷰가 실렸다.(10월14일자 12면 인터뷰 '공감'=[인터뷰… 공감]법정에 선 '배드파더스' 열혈 자원봉사자 구본창씨) 코피노는 한국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많은 코피노들이 양육 책임을 외면하고 잠적한 한국인 아버지들 때문에 편모 슬하에서 생고생을 한다. 양국 간의 외교문제로 비화했을 정도다. 작정하고 숨은 아버지들이니 밀린 양육비를 호락호락 줄 리 없다. 구씨가 코피노 아버지 신상 공개 사이트를 개설한 이유다.'배드 파더스'는 양육비를 안 주는 무책임한 부모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로 2018년 개설됐다. 구씨는 익명의 운영자들을 대신해 이 사이트의 대외창구를 맡고 있다. 현재 양육비를 거부하는 아빠 260여명, 엄마 36명, 코피노 아빠 10여명의 신상이 공개돼있다. 모두 법원의 양육비 지급 판결을 이행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은 신상공개가 두려워 밀렸던 양육비를 서둘러 지급하는 사례가 많은 모양이다.하지만 익명의 사이트 운영자 대신 공개활동을 마다 않는 구씨는 끊임없이 소송위기에 시달린다. 사실이나 허위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형법 307조 때문이다. 사실을 말하고 알려도 명예훼손이라는 이 형법 조항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소조항이라는 비판과 온라인상 명예훼손이 늘어나는 추세를 감안해 유지돼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선다. 헌법재판소엔 매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헌법소원심판이 청구될 정도로 법조계의 핫 이슈다.지난 8일 구씨 등 5인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들 중엔 병원비리를 보도한 기자도 있다. 공공의 이익을 실현할 때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없도록 한 형법 310조에도 불구하고, 해당 병원은 기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모양이다. 대표적인 '전략적 봉쇄소송'이다. 보도의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명예훼손 소송으로 기자를 압박하고 지치게 하려는 의도가 역력하다.구씨의 사이버명예훼손 혐의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는 헌재의 사실적시 명예훼손 위헌 심판 뒤로 재판을 미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실적시'와 '명예훼손'의 연결점이 모호하다. 범법과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자들의 명예가 명예인지도 의문이다. 헌재의 심판이 주목된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0-14 윤인수

[참성단]'방탄소년단'의 위엄

중국은 자국의 국익과 자존심을 건드린 상대라면 개인, 기업, 국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무릎 꿇리기로 악명 높다. NBA(미국 프로농구협회)도 호되게 당했다. NBA 휴스턴 로키츠 단장인 대릴 모리가 지난해 10월 트위터에 홍콩 민주화 운동 지지 발언을 올린 게 사달이 났다. 중국 농구스타 야오밍의 소속팀으로 중국에서 인기를 구가했던 휴스턴 로키츠는 중국에서 완전히 퇴출됐고, NBA 구단 전체가 샐러리캡을 받쳐주던 중국 시장을 잃을까봐 전전긍긍했다.우리도 된통 당했다. 2016년 핵실험으로 북한 핵무장이 기정사실이 되자 한·미 양국은 한반도에 사드(THAAD) 배치를 추진했다. 중국은 북한 핵미사일엔 눈 감고 우리의 자위적 조치에 한한령을 발동했다. 한국 연예인 출연광고 송출금지, 한국상품 불매운동, 중국진출 한국기업 규제다. 명동에서 순식간에 중국 관광객이 증발했고, 골프장을 사드 부지로 제공한 롯데는 중국 유통시장을 포기해야 했다.중국의 폭력적인 무릎 꿇리기가 가능한 것은 거대한 시장과 완벽한 통제다. 중국 시장에서의 퇴출은 국가나 기업에게 재앙이다. 반중 키워드 검색을 중단시키고, 모든 문화 콘텐츠를 검열하는 통제시스템은 일사불란한 보복의 원천이다. 문화 콘텐츠 제작, 유통을 관장하는 광전총국의 검열은 악명이 자자하다. 대륙에서 반중국 문화 상품을 순식간에 지울 수 있다.중국 네티즌들이 방탄소년단(BTS)을 저격하고 나섰다. 한미관계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밴 플리트상을 수상한 BTS 리더 RM(본명 김남준)의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으로 우리는 양국(한미)이 함께 겪었던 고난의 역사와 많은 남성과 여성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는 수상 소감이, 항미원조 전쟁 때 희생당한 중국군에 대한 모욕이라는 것이다. 한국전쟁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역사적 기억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중국 누리꾼들의 주장은 생트집이다.하지만 중국 네티즌의 BTS 저격에,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의 '아미(A.R.M.Y)'들이 중국 공산당을 나치에 비유하는 '차이나치(China+Nazi)'라며 반격에 나섰다. BTS 팬클럽 아미는 세계 연합군이다. 상상도 못한 세계 연합군의 반격에 중국 정부는 스스로 BTS 논란을 잠재우며 꼬리를 내렸다. 중국도 함부로 할 수 없는 BTS의 위엄! 놀랍고 통쾌하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0-13 윤인수

[참성단]돼지 살처분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가축 살처분(殺處分)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트라우마 예방 및 치료 제도 개선을 정부에 권고했다. 인권위는 2017년 공무원과 수의사 268명을 대상으로 '가축 살처분 참여자 트라우마 현황 실태'를 조사한 결과, 4명 중 3명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증상을 보였다고 밝혔다. 또 4명 중 1명은 중증 우울증이 우려된다고 했다.현행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르면 국가·지자체는 가축 살처분 참여자로부터 신청을 받아 심리적, 정신적 치료비용을 지원할 수 있다. 인권위는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사건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회피반응'을 보여 스스로 치료를 신청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지난 8일과 11일, 강원도 화천의 축산농가 돼지들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진 판정을 받았다. 해당 농가의 돼지 1천200여마리가 살처분됐다. '굴착기 굉음과 함께 새끼돼지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굴착기 2대는 농장 구석에 구덩이를 파 돼지를 담을 대형 용기(FRP) 10개를 묻고 있었고, 1대는 돼지를 줄에 묶어 용기 안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방송이 전하는 끔찍한 현장 상황이다.가축 살처분은 잔인하지만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죽을 까닭을 모르는 동물은 괴성을 지르며 살겠다고 발버둥 친다. 멀쩡한 생명줄을 끊고 무더기로 땅에 묻어야 하는 인간 역시 생지옥을 경험한다. 일부는 정신적 충격을 이겨내지 못해 정신질환자가 되기도 한다.1년 만에 재현한 악몽에 축산농가들은 망연자실한 표정들이다. 연천·포천·파주 지역 농가들은 얼마 전 재개한 새끼돼지 입식을 중단하게 됐다. ASF 바이러스는 겨울에도 내성이 강하다. 원치 않는 개점휴업이 언제 그칠지 기약도 없게 됐다.인간계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돼지들에는 ASF 바이러스가 창궐해 인수(人獸) 협공을 하고 있다. 둘 다 뚜렷한 치료제도, 백신도 없다. 겨울철에 더 활성화하고 전파력도 강해지는 특성을 지녔다. 지난해 중국에서 1억마리, 국내에서 45만마리의 돼지가 희생됐다. 바이러스 전파자로 찍힌 야생멧돼지는 씨가 마를 지경이다. 아직은 잠잠한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가세한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최악의 겨울을 맞을 수 있다. 생태계(生態系)의 이상기류가 심상치 않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0-12 홍정표

[참성단]북한 열병식 유감

북한 공산주의 독재체제의 특징으로 사회주의 대가정론이 있다. 지도자를 아버지, 당을 어머니, 인민을 자녀로 여겨 나라 전체를 하나의 가정이라는 유기적 결합체로 결속시킨다. 가정에서 아버지인 수령의 말씀은 신성하며, 어머니인 당을 지켜야 하고, 자녀인 인민들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 가정의 질서를 깨는 반동은 허용되지 않는다. 유교적 체취가 물씬한 사회주의 대가정론이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의 요람인 셈이니, 북한 공산당의 가부장적 유교문화 차용이 절묘하다.지난 10일 0시 평양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 '당과 국가, 무력의 최고영도자 김정은 동지'는 "건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무병무탈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며 눈물을 쏟았다. "노력과 정성이 부족하여 우리 인민들이 생활상 어려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사죄도 했다. 악성비루스와 자연재해로 고생한 인민의 건강을 걱정하고, 경제적 어려움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눈물을 쏟는 아버지의 모습에 열병식에 도열한 자녀들, 당간부·군인·평양시민들도 주룩주룩 눈물을 흘렸다.눈물로 자녀들과 일체가 된 김 위원장은 이내 환한 미소로 신무기 열병식을 박수로 맞는다. 공개된 신무기들의 위용은 대단했다. 2017년 6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성공으로 핵무장국 지위를 굳힌 북한이다. 이번 열병식에서 핵탄두를 탑재한 발사체가 주목받았다. ICBM은 2017년 성공한 화성15형 보다 대형화됐고,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 북극성-4A도 등장했다. 핵탄두 여러개를 실어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무기들이다. 아버지 김 위원장은 "그 어떤 군사적 위협도 충분히 통제 관리할 수 있는 억제력을 갖추었다"고 선언했고, 자녀들은 열광했다.김 위원장은 이날 연설에서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에게도 따뜻한 마음을 보냈다. 지금 남녘 동포들은 북한 해군이 사살한 김 위원장의 '사랑하는 남녘 동포' 시신을 찾아 바다를 헤매고 있다. 이제 남녘동포들은 김 위원장의 연설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읽는 무리와, 열병식의 ICBM과 SLBM에서 공포심을 느끼는 무리로 나뉘어 소란해질 것이다. 눈물만으로 주민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전 세계로 쏘아 보낼 수 있는 다탄두 핵미사일까지 가졌다. 북한군에 사살된 국민을 두고 월북 논란으로 갈라지는 모래알 정치와 민심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0-11 윤인수

[참성단]BTS와 병역특례

90년대 초, 바둑 기사 이창호 9단은 국내·외 기전에서 연간 90승을 달성했다. 스승인 조훈현 9단을 넘어선 청출어람이다. 승패의 갈림길에도 표정 변화가 없어 돌부처란 별명을 얻었다. 반집 승부를 정확히 가려내 신산(神算)이라 불렸다. 1975년생인 그는 1994년 군 입대 대상이었다. 국보급 기사가 국위를 선양하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국민 청원이 시작됐다. 치열한 찬반 공방 끝에 병역특례대상이 돼 공익근무를 했다. 정부가 바둑을 체육특기자 종목에 넣는 묘책을 낸 것이다.방탄소년단(BTS) 단원들의 병역면제 찬반 논란이 뜨겁다. 지난달 신곡 '다이너마이트(Dynamite)'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면서다. K-팝의 주역인 BTS에 특례를 적용해야 한다는 게 찬성론자들 주장이다. 반면 형평과 공정에 어긋난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정치권은 또 오지랖이다. 여당 의원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는 국민에게 주어진 사명이지만, 모두가 반드시 총을 들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국민이 보기에 편치 못하고 본인도 원하는 일이 아니다"라며 선을 긋는다.대한민국 국민은 병역에 민감하다. 병역 기피자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사회에서 매장되기 때문이다. 도박과 음주운전, 심지어 마약을 한 연예인이 화려하게 부활하는 경우가 있다. 이들에겐 세월이 약이다. 하지만 병역은 다르다.가수 유승준은 2002년 미국 시민권 취득을 통한 병역 기피 의혹으로 국내 입국을 금지당하고 추방됐다. 이 사건으로 그는 슈퍼스타에서 조국을 배신한 자, 국민을 속인 사기꾼으로 낙인찍혔다. 법정소송을 통해 입국의 길이 열렸으나 18년이 지난 현재까지 타국을 떠돌고 있다. 국민 정서를 우려한 외교 당국이 입국비자를 발급하지 않기 때문이다.병역 면제 논란은 고무줄 잣대에 있다. 1973년 시작된 병역특례제도는 수차례 바뀌고 땜질 돼 누더기가 됐다는 비판을 받는다. 운동선수와 순수예술인에 대한 특례규정만 있을 뿐 대중문화예술인은 제외돼 있다. BTS 단원들에 대한 특례대상 적용이 어려운 이유다.BTS라 해도 특혜를 줘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무작정 총을 들게 해야 공정한 것인가. 이름 모를 국악대회 수상자는 특례 대상인데 빌보드 1위는 안 된다는 현실이 답답하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0-08 홍정표

[참성단]'라면 형제' 명칭 유감

요즘 유행하는 먹방 콘텐츠를 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라면 요리가 수두룩하다. 문어나 대게 한 마리를 통째로 넣은 라면은 해안 도시 맛집들의 단골메뉴가 됐고, 먹방 유튜버들은 라면에 초호화 식재료를 더한 새로운 메뉴들을 쏟아내고 있다. 영화 '기생충'으로 유행했던 '한우 채끝살 짜파구리' 열풍도 시들해졌을 만큼, 라면 요리의 무한 변신은 발빠르고 호화롭다.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라면 소비량이 세계 1위이다. 남녀노소 없이 라면을 끼니로 먹는 것도 모자라 야식의 대명사로 만들어 놓았다.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가 유지태에게 건넨 "라면 먹을래요"라는 대사는 단순한 식품을 넘어선 라면의 문화적 위상을 잘 보여준다. 바야흐로 한국인은 라면으로 미각의 평등을 이룬 시대에 사는 듯 싶다.하지만 한국인의 집단심리 한구석엔 라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숨어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라면의 미덕은 싼 가격, 간편한 조리, 신속한 섭취다. 어쩐지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을 돈과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의 식품이라는 인상이다. 실제로 그랬다. 삼양라면이 처음 출시된 1963년은 산업화가 막 시작된 시기다. 서민들은 라면으로 간단하게 때우고 신속하게 일터로 복귀했고, 빈곤층에겐 라면이 구황식품이었다. 한국인은 '밥심'이라지만, 5천년 역사에 밥심이 제대로 느낀 시대는 드물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인에게 '밥심' 못지 않은 '(라)면심'이 있었다.'라면=빈곤'이라는 인식의 대표적인 피해자(?)가 '86 서울 아시안게임' 육상 3관왕 임춘애다. 스타탄생 스토리의 클라이맥스 "라면만 먹고 뛰었어요"라는 언론 보도였다. 그녀가 한 말도 아니고 사실도 아니었다. 가난했지만 17년 동안 라면만 먹고 뛸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라면 소녀'라는 낙인은 아시안 게임 육상 3관왕을 대신해 지금껏 회자된다.엄마 없는 집에서 라면을 끓이다가 불이 나 중상을 입은 인천 초등학생 형제들이 의식을 회복했다는 뉴스가 고맙고 반갑다. 그래서 드는 생각이 형제를 지칭하는 '라면 형제', '라면화재 형제'라는 뉴스 제목들이 마음에 걸린다. '라면'에서 빈곤, 결손, 학대의 냄새가 물씬하다. 의식을 회복한 형제들에겐 '라면 형제'로 각인된 현실 자체가 2차 가해가 될 수 있고, 임춘애처럼 가해가 오래 갈 수 있다. 언론의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10-07 윤인수

[참성단]이슬람식 장례

검은색 양복에 흰 장갑을 낀 남성들이 관(棺)을 메고 흥겨운 춤을 춘다. 제복 차림 지휘자가 이끄는 운구 행렬에 악단과 유가족이 뒤따른다. 빠른 리듬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춤사위가 이어지는 장례식이 진행된다. 유튜브를 통해 지구촌을 뜨겁게 달군 '관짝 춤' 동영상 장면이다. 우리네 정서로 상상조차 못하는 괴이한 장례의식은 아프리카 가나의 전통 풍습이다.가나 출신의 방송인 샘 오취리는 종편방송에 나와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모국의 장례문화를 설명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의 마지막 길을, 우울하지 않은 즐거운 기분으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관짝 춤은 의정부고 학생들이 '관짝 소년단'이란 이름으로 패러디하면서 유명세를 더했다.지난달 29일 타계한 쿠웨이트의 알자비르 알사바 국왕(91)이 일반 공동묘지에 묻혔다. 장례식은 간소했고, 묘의 크기도 일반 묘와 비슷했다. 국왕 시신은 지난달 30일 국기에 둘러싸인 상태에서 철제 파이프로 만든 들것에 실려 공동묘지로 옮겨졌다. 모스크(이슬람교 예배당)에서 열린 추모 행사도 간단히 끝났다. 국가를 대표해 행정부를 총괄하고 군 지휘권을 가진 최고 권력자의 장례식이라고 믿기 어렵다.2015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압둘라 국왕의 장례식도 모스크에서 간단한 추모 의식을 가진 뒤 바로 공동묘지에 안장되는 '1일장'으로 치러졌다. 여러 나라에서 온 조문 인사들은 소박한 장례식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고 당시 외신은 전했다.간소한 장례식은 전체 이슬람교 신자의 90%를 차지하는 수니파 국가에서 보편화 돼 있다고 한다. 이슬람 전통은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나 같은 수준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다. 무덤 크기도 왕족이나 일반인이나 비슷하다. 이슬람교는 "인간은 누구나 신 앞에 평등하며, 장례식은 흙에서 나온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는 평범한 과정이기 때문에 검소하게 치러야 한다"고 가르친다.장례는 고인과 이별하는 고유의 의식이다. 장사(葬事)는 사체를 처리하는 방식이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의례와 방식이 다르다. 빈소에서 곡소리가 아닌 춤과 노래 소리가 들리고, 사체를 담은 관을 매장하지 않고 바람결(風葬)에 두기도 한다. 고원지대인 티베트에서는 조장(鳥葬)을 한다. 영혼이 빠져나간 죽은 육신(肉身)이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0-06 홍정표

[참성단]가황(歌皇) 나훈아

우리나라 가요 트로트는 일제 강점기 엔카(일본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뽕짝이라 불리기도 한다. 4/4 박자를 베이스로, '쿵짝 쿵짝' 리듬이 이어진다. 전통 가요라지만 그리 오랜 역사는 아닌 것이다.추석 연휴, 전국이 트로트로 뜨거웠다. 연휴 첫날 KBS2 TV 채널로 방영된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는 전국 시청률 29%를 기록했다. 고향인 부산에서는 37%를 넘기도 했다. 후속작 '나훈아 스페셜' 역시 시청률 18%를 넘어섰다고 한다.나훈아는 2시간30분 동안 스물아홉 곡을 쏟아냈다. 민소매 셔츠에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청춘을 돌려다오'를 열창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으로 진행됐으나 무대는 더 풍성했고, 스케일은 웅장했다. 거대한 배와 기차, 하늘을 날고 바다로 빠지는 역동적인 연출로 관객이 없는 허전함을 채웠다.만 73세 나훈아는 무대 위에서 옷을 갈아입으며 청춘의 몸을 보여줬다. 나이를 잊은 가창력과 쇼맨십, 화려한 무대 연출에 중·노년층뿐 아니라 청년층도 환호했다. '고향 역', '홍시', '사랑', '무시로', '18세 순이', '잡초', '영영' 등 히트곡에 신곡 '테스형'까지. 지루할 틈이 없다.공연 중간 툭툭 던진 메시지가 국민 마음을 흔들었다. "국민 때문에 목숨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을 본 적 없다"며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고 했다. "KBS는 국민의 소리를 듣고 국민을 위한 방송이지요? 두고 보세요. KBS는 앞으로 거듭날 겁니다"라고 했다. 가황(歌皇)다운 묵직한 울림을 줬다는 반응들이다.감동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 정치권은 또 찬물을 끼얹는다. 야권은 '현 정부의 실정을 비판했다'고 해석했다. 여권은 아전인수격이라며 '오독 하지 마라'고 되받는다.나훈아는 50년 넘게 한우물만 판 장인이다. 한때 돈은 없었을지언정 가오는 '단디' 챙겼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불러도 가지 않았고, 평양행 비행기를 타지 않았다. 외길 가인(歌人)이기에 한 소절에 감흥이 일고, 말 한마디에 국민이 움직이는 거다.그는 출연료도 한 푼 받지 않았다. 온 국민과 함께 힘을 내고 희망을 전하는 취지라고 한다. 코로나19에 지치고, 정치권에 실망한 국민들이 한동안은 '부산 싸나이'를 놔줄 것 같지 않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10-05 홍정표

[참성단]'비대면 추석' 후기

길었던 추석 연휴가 끝났다. 코로나19 창궐 이후 첫 명절의 키워드는 언택트, 비대면이었다. 연휴를 앞두고 전국 각지의 '고향'에서는 자식들의 귀향을 만류하는 아버지, 어머니들의 호소가 동영상과 현수막으로 넘쳐났다. 언론들은 조선시대에도 전염병이 돌면 차례를 금했다는 문헌과 고증을 찾아내 '비대면 추석' 분위기를 잡았다. 정부는 추석 대이동이 코로나19 대유행을 초래한다는 경고를 연일 쏟아낸 것도 모자라 명절 연휴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도 폐지했다. 국립현충원을 비롯해 전국의 공·사립 추모공원도 문을 닫았다.하지만 발 없는 말(言)도 천리를 간다는데, 발 달린 사람들의 이동 욕구를 막을 도리가 없다. 연휴 기간 고속도로 1일 통행량은 지난해보다 15% 정도 줄었다지만, 연휴가 길어 전체 통행량은 비슷했다고 한다. 제주도와 부산에 관광객이, 설악산엔 등반객이, 서해엔 낚시객이 몰렸다. "코로나가 하루 이틀에 없어질 것도 아니고…. 만날 집만 지키고 있을 수 없다"는 외교부 장관 낭군님의 미국행은 코로나도 어쩌지 못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보여준다. 차벽으로 봉쇄한 개천절 광화문 '재인산성'은 어색하고 기괴했다.연휴의 이완감 때문인가. 정치의 시간도 한가해졌다. 연휴 직전 면죄부를 받은 추미애 법무장관은 '무책임한 세력들에 대한 후속조치'를 예고하고, 야당은 '추안무치'로 받아쳤지만 연휴 덕분에 전쟁으로 번지진 않았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트럼프는 렘데시비르를 투약받고 대선 유세를 중단했다. 우리 해군은 명절 내내 서해 북방한계선 아래에서 북한 해군에 사살된 공무원의 시신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연휴 중에 숙성된 정쟁과 국제정세 변화의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비대면 추석에 집에 갇힌 국민들은 다양성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TV 채널을 전전했다. 트로트와 특선영화, 스포츠를 오가던 중에 그나마 '나훈아'가 위로가 됐다. 무관중 비대면의 한계를 역대급 퍼포먼스와 레퍼토리로 극복한 공연은 나훈아 이름 석자에 담긴 무게를 증명했다.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은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며 나라를 지킨 건 "바로 국민 여러분"이라는 메시지는 커다란 여운을 남겼다. 나훈아만 기억나는 2020년 비대면 추석, 내년부터는 다시 없길 바란다./윤인수 논설실장

2020-10-04 윤인수

[참성단]'불효자는 옵니다'

추석(秋夕)은 중추절(仲秋節)·가배(嘉俳)·가위·한가위라고도 한다. 중추절이란 명칭은 가을을 초추·중추·종추로 나누는데, 음력 8월이 중간이라 붙은 이름이다. 한국의 전통 명절인 설날·한식·중추·동지 중 으뜸으로 친다. 문헌상 기원은 삼국시대로 추정된다.정부는 1949년 음력 8월15일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1986~1988년에는 추석 당일과 다음날까지 이틀 연휴가 됐다. 1989년 이후 3일 공휴일이 시행돼 현재에 이른다.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추석 연휴 제발 없애주시길 부탁드립니다'란 제목의 청원이 등장했다. '전 국민 이동 벌초 및 추석 명절 모임을 금지해주세요'란 청원은 3만5천563명의 동의를 얻었다. 코로나 19 재확산을 막으려면 연휴를 없애고 성묘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올해 추석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명절이 될 전망이다. '불효자는 옵니다'는 시골 거리 현수막은 암울한 시대 상황을 유쾌한 위트로 담아냈다. 동네 맘 카페에는 '우리 시어머니가 올해는 내려오지 말라고 하셨다'는 글에 '좋아요'와 공감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고 한다.정부는 연휴 기간, 친지 방문·여행 등 이동 자제를 호소한다. 연휴 기간 고속도로 휴게소와 졸음 쉼터 등에 출입구 동선을 분리하고 사람 간 접촉을 최소화하도록 했다. 지루한 귀성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맛보는 간식거리의 유혹도 참아내야 한다. 차 안에서 먹는 어묵과 떡볶이는 따끈하고 쫀쫀한 매장의 그 맛이 아닐 것이다. 대목을 날리게 됐다며 상인들도 울상이다.제주에서는 '추캉스' 족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되자 아예 여행을 금지해 달라는 청원이 제기됐다. 청원인은 "수많은 제주 도민들도 육지 방문 계획을 취소 또는 연기했다"며 "20만명이 한꺼번에 제주도를 찾는 것은 해롭다. 국가 차원에서 금지 조치해달라"고 주장했다.명절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직업과 세대, 지역,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총각 처녀의 결혼이 아니라 '회사 어떠냐'가 금기어가 됐다. 날씨도 사나울 전망이다. 추석 당일인 다음 달 1일 전국이 흐리고 바람이 불 것이라는 예보다. 남·여·노·소 둥근 달을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 소원도 빌어본다. 달이 구름에 가린다고 하니 올해는 이마저도 만만치 않게 됐다./홍정표 논설위원

2020-09-28 홍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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