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주한미군 철수론

2017년 8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스티브 배넌 미 백악관 수석 전략가가 언론에 "중국이 북한의 핵 개발을 동결시키는 대가로 미국은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내용의 협상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해 큰 파문이 일어났다. 배넌은 책임을 물어 곧바로 해임됐지만, 트럼프 정부 아래 주한 미군철수가 거론됐다는 점에서 우리의 충격은 컸다.주한미군 철수는 한미동맹 70여년 동안 수없이 거론됐다. 주한미군 철수론자였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69년 11월 헨리 키신저에게 "이제 주한미군 병력을 줄일 때가 됐다. 철수 실행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1970년에는 주한미군 감축 내용을 담은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그리고 1971년 6월 한국군 현대화를 조건으로 주한미군 1개 사단의 병력 2만명이 처음으로 철수했다. 이때부터 주한미군의 수는 꾸준히 줄어 2006년 이후 지금까지 2만8천명 선에서 유지되고 있다.지미 카터는 주한미군 철수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대통령이었다. 그는 한국의 인권상황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 때문에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사사건건 부딪쳤다. 실제 카터가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한 이유는 한국의 방위력이 크게 증강돼 미군이 한반도에 있어야 할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철수 계획은 의회의 반대로 백지화됐지만, 실제로는 북한 지상군 규모가 남한보다 크게 앞선다는 '존 암스트롱 보고서'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 후에 밝혀졌다.미 워싱턴 정가에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한국을 방문한 존 햄리 미 전략 국제문제연구소(CSIS) 소장이 24일 최종현 학술원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 "북한과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더는 주한미군이 필요 없다는 기류가 미 의회와 외교가에 확산하고 있다"고 말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주한미군 철수론은 한미관계가 삐걱거릴 때 늘 등장했던 메뉴다. 한미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지금,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의 행보는 여전히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하원의 탄핵조사를 받는 처지에 놓인 트럼프다. 재선을 위한 북한과의 대화에서 주한미군이 걸림돌이 된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트럼프다. 표에는 동맹도 없다. 이제 우리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자강(自强) 못하는 국가는 미래도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9-26 이영재

[참성단]양자물리학과 영화

출판계에서는 일반인을 위한 물리학 교양서를 펴낼 때 '수학방정식 하나 넣을 때마다 독자가 천 명씩 떨어져 나간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물리학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일 것이고, 한편으로는 방정식 없이 물리 현상을 설명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물리학 중에서도 '양자얽힘', '불확정성' 등 난해한 용어들로 가득 찬 양자역학은 더할 나위 없다. 심지어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조차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할 정도였으니 일반인, 특히 비(非)이공계 출신은 오죽하겠는가.그래도 방정식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양자역학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애쓰는 교양서 저자들 덕에, 양자역학이 그렇게 낯선 용어로만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대중문화 영역인 영화에서 양자역학이 종종 등장한다는 점이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는 양자역학이 위기 상황을 돌파하는 키 역할을 한다. '양자 수트'를 장착한 어벤져스가 시간을 거슬러가는 게 영화의 반전이다. 국내에서도 '양자 물리학'이란 제목을 단 영화가 25일 개봉했다. 그런데 줄거리를 보니 학구적인(?) 영화는 아닌 것 같다. 주인공의 양자역학적 세계관이 스크린에 조금 비치는 정도랄까. 하기야 영화 '기생충'에서 회충 한 마리 보지 못했으니 이 영화제목 또한 은유일 듯싶다.사실 전자 등 미시세계를 다루는 양자역학은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물리학자들은 양자역학이 없었다면 노트북이나 스마트폰도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양자역학이 컴퓨터의 주요 부품인 반도체의 원리를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IT강국인 우리나라야말로 양자역학을 발전시키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실상은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구글이 양자컴퓨터 성능을 구현하는 데 성공하고 IBM이 53큐빗짜리 양자컴퓨터를 공개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등 외국에서는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한데 국내에서는 양자역학과 관련한 낭보를 듣기 어렵다. 오히려 양자암호통신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될 처지라는 부정적인 뉴스가 관련 전문지의 한 구석을 차지한다.'어벤져스'가 개봉했을 때 관객들 사이에서는 '양자역학을 알리기 위한 영화'라는 평이 나온 적이 있다. 영화 '양자물리학'이 비슷한 기여를 한다면 나름 의미 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09-25 임성훈

[참성단]그레타 툰베리

지금 뉴욕에서는 139개국이 참석하는 'UN 기후 행동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다. 단연 관심 인물은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른 16세의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다. 지난해 8월 스웨덴 국회 앞에서 기후변화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한 달 넘게 1인 시위를 벌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툰베리는 이 회의 참석을 위해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고자 태양광 요트를 타고 영국에서 출발해 대서양을 횡단했다.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툰베리는 우리 행성의 위대한 변호인 중 한 명"이라며 그와 주먹 인사를 하는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세계기상기구(WMO)는 이 회의에 맞춰 최근 5년간 세계는 역사상 가장 덥고 이산화탄소 농도도 최고치였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는 '2015∼2019년 지구 기후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지구 평균 해수면은 연평균 5㎜ 올라갔다. 1993년 이후 연평균 3.2㎜ 상승한 것과 비교해 최근 상승률이 크게 증가했다. 남극과 북극, 그린란드, 에베레스트, 파미르, 스위스 빙하의 '사망'이 원인이다.지난 22일 스위스 북동부, 해발 2천700m 알프스 산맥 기슭에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였다. 알프스의 피졸 빙하가 사라지게 된 것을 추모하는 빙하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피졸 빙하는 2006년 이후부터 녹아내리면서 원래 크기의 80~90%를 잃어 사망선고를 받았다. 지난달 19일 아이슬란드에서도 빙하장례식이 열렸다.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총리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아이슬란드 서부 오크 화산지대에 700년 동안 존재했던 오크예퀴들 빙하가 사라지게 된 것을 아쉬워하며 '미래로 보내는 편지'추모비까지 세웠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사라지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0년 안에 전 세계 빙하가 모두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인도 지역의 가르왈히말라야 빙하는 2035년 완전히 사라질 전망이다.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의 만년설은 1912년 이후 녹기 시작해 현재 20%만 남았다. 히말라야 전체 빙하는 197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9%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툰베리는 8세 때 빙하가 녹아 서식환경을 잃은 북극곰의 '눈물'에 공감해 환경운동가로 나섰다. 어제 UN 기후협약회의에서 "생태계가 무너지는데 어른들은 돈타령만 한다"는 '환경투사' 툰베리의 질타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9-24 이영재

[참성단]'조국 미스터리'

유가(儒家)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장자도 유교를 개창한 공자를 존중할 때가 있었다. 가령 공자를 평한 이런 대목이다. "공자는 나이 육십에 육십번 달라졌다고 합니다. 처음 옳다고 했던 것을 나중에는 아니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지금 옳다고 하는 것이 과거에 쉰아홉번이나 아니라고 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장자 잡편 우언)" 말에 뼈가 있지만, 전체 맥락은 옳다고 한 것에 갇히지 않았던 공자의 대범한 사유체계를 존중한 것이다.자기 말에 갇히지 않기로는 정치인 만한 부류도 없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이 '옳다'고 했다. 하지만 여권은 과거 야당 시절 조 장관에 비하면 조족지혈급 의혹이 제기된 수많은 공직 후보자들을 '아니다'며 낙마시켰다. 문제는 '지금은 옳다'만 주장할 뿐 '그 때는 틀렸다'는 반성이 없는 점이다. 말에 갇히지 않는 합리적 대범이 아니라 말에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이다. 그러니 말은 두서를 잃고 행동은 설명할 길이 없다.장자는 기본적으로 유자(儒者)를 '시경'과 '예기'라는 지식권력으로 무덤을 파헤치는 도굴꾼 쯤으로 여겼다. 도굴의 목적인 무덤속 시신의 입에 물린 구슬, 즉 권력과 명예다.(장자 잡편 외물) 조 장관은 과거 서울대 법대 교수로서 현실 권력의 부패와 부조리에 대해 일일이 비판했다. 법 철학으로 무장한 비판 논리는 주옥 같고 추상 같았다. 그렇게 진보의 상징이 됐고 권력과 명예라는 구슬을 입에 물었다.조국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가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여당은 지금 옳다고 한 것을 계속 옳다고 우기기 난감해졌고, 조 장관은 자신의 지식권력으로 획득한 권력과 명예의 구슬을 토해내야 할 위기에 몰렸다. "살아있는 권력도 엄정히 수사하라"는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정주행 중인 검찰의 칼날이 조 장관을 직접 겨누고 있다.시중에 '조국 미스터리'가 회자되는 건 이런 사태의 전개가 뻔히 예상됐기 때문이다. 뻔히 보이는 파국에도 불구하고 조 장관 임명을 강행한 이유를 그 누구도 설명하지 못하니, 그 배경을 놓고 구구한 억측이 나도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반드시 낙마해야 할 사람을 구하려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권 전체가 위기에 빠진 현재의 상황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조국 사태'는 이 미스터리가 풀릴 때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 윤인수 논설위원

2019-09-23 윤인수

[참성단]8K TV 전쟁

삼성전자와 LG전자의 가전 전쟁 역사는 196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같은 경남 출신에 사돈 관계로 돈독했던 고 이병철 회장(의령)과 고 구인회 회장(진주)의 관계는 삼성이 전자 산업에 진출하면서 서먹한 관계가 됐다. 삼성은 일본 전자회사의 도움을 받아 1969년 삼성 산요전기를, 1970년에는 삼성 NEC를 설립해, 1958년부터 가전 산업에 뛰어든 금성사( 현 LG전자)를 위협했다. 하지만 금성사는 1959년에 국내 첫 라디오를 생산했고 냉장고, 흑백 TV 등 품목 대부분에서 '국산 1호'를 기록하는 등 명실상부한 한국 가전 1위. 삼성전자는 금성사에 눌려 '만년 2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60년대 시중에는 미군 PX와 일본에서 밀반입한 TV, 월남 참전 용사들이 가져온 TV가 유통됐다. 정부는 1965년 말 'TV 부품 도입에 드는 외화는 라디오를 수출해 벌어들인 달러를 활용한다'는 등의 조건을 달아 금성사에 부품 수입을 허가했다. 금성사는 일본 히타치사와 기술 도입 계약을 체결하고 1966년 8월 국산 흑백 TV 1호 VD-191을 생산했다. 삼성전자는 그보다 한참 늦은 1972년 흑백 TV를 생산했다. 냉장고, 세탁기를 두고도 두 회사는 크게 맞붙었다. 2012년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급인 900L 지펠 냉장고 'T9000'을 출시한 후 LG전자가 좀 더 큰 용량의 910L 4도어 디오스 냉장고 V9100을 내놓으면서 양사 간 경쟁이 붙었다. LG전자는 허위 광고라면서 삼성전자를 상대로 100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설상가상으로 2014년 독일 가전전시회에 참가한 LG전자의 간부 연구원이 삼성전자의 가전 매장에서 세탁기 도어의 연결부를 파손해 수사를 받기도 했다. 최근 삼성전자 발광다이오드(QLED)와 LG전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가 '8K TV'를 두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공정위에 제소까지 가는 등 아무리 마케팅 전략이라지만 도를 크게 넘어선 느낌이다. 중국의 기술 발달로 OLED 시장이 3년을 버티기 힘들 것이란 경고가 나오는 가운데 국내 업체 간의 '진흙탕 싸움'을 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세계 전자업계 아성이던 일본 소니를 무너뜨린 삼성과 LG 아닌가. 지나친 경쟁보다 차세대 기술에 신속하게 투자해 기술 격차를 더 벌리는 전략을 써야 할 때다. 한가하게 서로 다툴 시간이 없다. 중국이 쫓아 오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9-22 이영재

[참성단]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언론

장기미제사건 형사들의 활약상을 그린 TV 드라마 '시그널'에서 프로파일러 박해영은 '연쇄 살인'의 조건으로 "최소한 3명의 피해자가 발견되고, 살인사건 사이에 냉각기가 있으며 서로 분리된 상황에서 피해자가 살해된 정황이 확실할 때"라고 정의한다. 1986년 9월 19일 오후 2시, 하의가 벗겨지고 목이 졸린 채 숨진 이모(71) 씨가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에서 발견됐을 때, 이를 보도한 언론이 단 한 곳도 없었던 것도 어쩌면 이와 무관치 않다. 더 변명하자면, 5일 전 5명이 사망한 '김포공항 국제선 대합실 폭발사고'와 다음날 개막하는 아시안 게임으로 이 사건을 언론은 주목하지 못했다.'선보러 집 나갔던 처녀 수로에서 알몸 시신으로…. 10월 23일 오후 2시 30분께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콘크리트 용수로 내에서 박모(25) 양이 알몸으로 숨져 있는 것을 근처에서 콩을 뽑던 윤모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는 기사가 24일 경인일보 사회면에 2단 기사로 실렸다. 2차 희생자였다. 그러나 더 이상의 후속 보도는 없었다. 이때까지도 이 사건이 영구 미제사건으로 역사에 남을 '화성 연쇄 살인사건'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그로부터 두 달 후 1986년 12월 12일 3차 사건이, 14일 4차 사건이 이틀 만에 발생했다. 하지만 3차 사건의 시신이 4개월 뒤인 1987년 4월 23일, 4차 사건은 1주일 후인 12월 21일 발견돼 경찰과 언론이 큰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그 후 모방사건인 8차를 제외하고 다섯 차례 더 발생했지만,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2차부터 후속 보도를 좀 더 충실히 했다면 사건의 방향은 크게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뼈아픈 후회'는 경인일보 편집국엔 뗄 수 없는 큰 짐이었다.그 후 2001년 봉준호 감독이 '살인의 추억'을 만든다며 경인일보를 찾았을 때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제 아픈 부채의식을 조금 덜어내도 되는 것일까. 살인죄로 부산 교도소에 수감 중인 56세 이모씨의 DNA가 5차(1987년 1월), 7차(1988년 9월), 9차(1990년 11월) 등 3건의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이건 분명 하늘이 도운 거다. 범인은 반드시 잡힌다. 사건 해결을 위해 아직 할 일이 많지만, 33년 만에 용의자를 특정한 쾌거를 거둔 경기 남부경찰청 미제사건수사팀에 큰 박수를 보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9-19 이영재

[참성단]삭발과 자유의지

추석 전 금기어로 '조국'이 꼽힌 적이 있다. '조국 정국'을 둘러싼 의견차이로 화기애애했던 술자리가 파탄(?)이 나는 경우가 발생하곤 했는데, 피를 나눈 가족들이라 해도 비슷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추석이 지나고 나서는 '삭발'이 그 자리를 대체하는 양상이다. 다행히 서로 등 돌리고 헤어지는 '조국 논쟁'보다는 강도가 덜하다. 하지만 삭발 정치인들의 '결기'에 대한 평가는 희석되고 정치는 희화화되기 일쑤다. 삭발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분통 터질 일이 아닐 수 없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손톱의 네일아트에 관심을 갖는 격 아닌가.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가 과연 삭발을 할 것인지 여부도 안줏거리다. 이 대목에서 자유의지와 결정론을 다룬 SF작가 '테드 창'의 단편이 떠오른다. 소설에서는 버튼과 LED등이 달려있는 예측기라는 기계가 등장한다. 이 예측기는 버튼을 누르기 1초 전에 불빛이 반짝인다. '네거티브 타임 딜레이'란 회로가 장착돼 1초 전의 과거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예측기를 속일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장난감 같은 기계가 불러오는 파장이 엄청나다. 상당수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다시 말해 결정론을 신봉하게 되면서 선택행위 자체를 거부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무동무언증에 빠져 음식도 섭취하지 않는다.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만 소설 속 설정이기에 망정이지 내용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위안이라면 결정론과 관련해 모든 것이 결정돼 있으니 미래를 포기하라고 말하는 철학자는 별로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나 대표는 제대로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 있을까? 철학적 사유가 아닌 정치역학적으로 볼 때 '정치예측기'는 삭발이라는 결정론적 틀을 갖추기 위해 점점 충전되고 있는 것 같다. 당 내의 삭발 요구 등으로 볼 때 나 대표의 선택범위가 점점 좁아지는 형국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 대표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에 대한 예의다."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에 자유의지의 가치가 깃들어 있다고 믿으며 정치권이 한번 낭송해보기를 권한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09-18 임성훈

[참성단]시국선언

사회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 지식인들이나 종교인들이 모여서 시국이나 사회 현안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것을 '시국선언(時局宣言)'이라고 한다. 암울한 군부 독재 시절을 경험한 우리에게 '시국선언'은 그리 낯선 단어는 아니다. 1970년대의 박정희 정권의 유신 시대부터 10·26, 12·12 그리고 1980년 '서울의 봄'. 전두환 신군부의 등장과 1987년 6월 민주항쟁. 20여 년간 파노라마처럼 이어진 아픈 현대사에서 교수와 종교인의 시국선언은 국민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3·15부정선거에서 촉발된 4·19 혁명이 절정을 보인 1960년 4월 25일, 서울과 지방의 대학 교수 258명이 서울대 교수회관에 모여 발표한 시국 수습을 위한 14개 항의 전국대학교수단 시국선언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 낸 결정적 계기가 됐다. 70, 80년대 군사 독재가 민초를 끊임없이 짓밟아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각계의 시국선언은 들불처럼 피어올랐다. 교수단 시국선언은 학생들과 시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당시 시국선언은 절대적 권력에 대한 국민의 저항권 행사라는 나름의 큰 의미가 있었다.하지만 군부독재가 종식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시국선언은 시국에 편승해 본래의 뜻에서 크게 변질한 모습을 보인 적도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스크린 쿼터 사수, 제주 해군기지 중단 시국선언 등은 시국선언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집단의 일방적 주장이 여과 없이 노출되기도 했다. 특히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민주노동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시국선언을 대법원이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내린 것은 선거운동이 시국선언으로 포장됐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가 시국선언을 불러냈다. 제자들의 '촛불시위'에도 불구하고 침묵하던 전·현직 대학교수 2천여 명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국 법무부 장관의 교체를 요구하는 시국 선언서에 서명했다. 교수들은 시국 선언서에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의 사회정의와 윤리가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며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초심으로 돌아가길 요청한다"고 적었다. 정치적이나 이념적으로 편향되지 않은 교수들의 시국선언이라 눈길이 간다. 조국 장관 임명 후에도 의혹이 가시기는커녕 점점 커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점점 깊은 수렁 속에 빠져드는 것이 아닌지 정말 걱정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9-17 이영재

[참성단]포토라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1993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출석하다가 봉변을 당했다. 언론의 취재경쟁에 휩쓸려 기자의 카메라에 부딪혀 이마가 찢어진 것이다. 언론단체는 이런 난장판 취재를 막기위해 1994년 포토라인 운영 선포문을 만들었다. 이후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주요 사건 피의자들은 검찰과 경찰에 출석할 때마다 포토라인에 멈춰선 채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통과의례를 거친다. 사회적 성취와 명예, 도덕적 권위가 큰 공인일수록 포토라인에서 무너진 명예를 감당하기 힘들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2009년 박연차 게이트로 검찰청 포토라인에 선 뒤 3주 뒤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평검사들과 맞짱 토론을 벌일 정도로 검찰개혁 의지를 불태웠다. 검찰청 포토라인 통과의례 자체를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최근엔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영장심사를 받기 전 수갑을 찬 채 포토라인에 섰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포토라인의 법적 근거는 없다. 국민의 알권리를 대신하는 언론의 취재 편의를 검·경이 묵시적으로 양해한 관행이다. 하지만 포토라인이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고, 그 자체가 사회적 형벌이라는 비판도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검찰청 포토라인을 당당하게 무시하고 패싱한 것도 이 때문이다.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포토라인 폐지를 포함해 피의사실 공표를 전면 제한하는 훈령 제정을 추진할 모양이다. 사실 당정이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관행을 손보기로 마음 먹은지는 오래됐다. '논두렁 시계' 논란으로 노 전 대통령을 잃었다는 오래된 분노가 배경이다. 법무부가 마련한 초안에 따르면 검찰은 일체의 피의사실을 공개해선 안된다. 피의자 검찰 출석 공개와 소환날짜 공개도 안된다.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 내용을 유포한 검사를 감찰할 권한을 준다고 한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깜깜이 수사에 따른 부작용과 국민 알 권리 침해를 우려하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무죄추정의 원칙 실현과 국민의 알 권리를 절충한 논의가 진행돼야 할 사안이다. 그리고 미안한 얘기지만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 종료 이후에 거론해야 맞다. 수사 전 과정이 생중계된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를 봐도 그렇고, 직전 장관도 조국 사태 때문에 유보한 사안 아닌가. 조 장관 일가의 검찰 수사와 검찰 출두를 앞두고 갑자기 '피의사실 공개 금지' 원칙을 강조하면, 그 원칙이 의심받는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9-16 윤인수

[참성단]드론 테러

지난해 8월 5일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국가방위군 창설 81주년 기념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었다. 이때 드론 두 대가 연단 상공으로 날아왔다. 한 대는 마두로 대통령이 연설하고 있던 연단 근처에서 경호부대에 의해 격추됐고, 다행히 다른 한 대는 인근 건물에 충돌해 폭발해 마두로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드론에는 'C4'로 불리는 폭발물 1㎏이 실려 있었다. 드론이 전 세계 국가에 보편적인 무기 체계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미국은 2004년부터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라크·시리아·소말리아·예멘 등에 드론을 실전 배치해 폭격작전까지 수행하고 있다. 미국산 자폭드론 '스위치 블레이드'는 무게 2.7㎏, 길이 61㎝에 불과하지만 맨눈으로 식별할 수 없을뿐더러 적외선 추적센서를 장착하고 있어 한 치의 오차 없이 목표물을 타격한다. 공격 드론 MQ-9 '리퍼'는 정밀유도폭탄을 장착하고 15㎞ 상공을 시속 400㎞로 28시간 동안 비행이 가능하다. 중국 러시아가 앞다퉈 공격형 드론 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런 이유다.드론은 테러 세력들이 가장 선호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저렴한 가격은 물론이고 작은 드론에 살상용 무기를 탑재하면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어서다. 실제 2016년 10월 이라크에서 IS는 온라인쇼핑몰 아마존에서 구매한 것으로 알려진 초소형 드론으로 이란인 2명을 살해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국제 무기 밀매시장에서 중국과 러시아산 드론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테러단체엔 호재다. 그래서 무기 전문가들 중 인류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AI 로봇'으로 드론을 지목하는 이들이 많다.14일 새벽 예멘 후티 반군이 사우디 아라비아의 불법 침략에 대응해 아브카이크 탈황 석유 시설와 쿠라이스 유전을 공격해 불바다로 만들었다. 공격에는 드론 10대가 동원됐다. 스텔스 기능도 없는 반군의 드론이 느린 속도로 1천㎞의 사우디 영공을 가로질러 날아왔다는 것, 그리고 연간 700억 달러 군사비를 지출하면서도 작은 드론에 국가 중요시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것에 서방국가는 경악하고 있다. 이번 공격에 앞서 후티 반군이 "사우디와 UAE의 군사·산업시설 등 핵심 표적 300여 곳에 대한 자료를 축적했다" 고 이미 경고한바 있어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는 물론 UAE의 원자력 발전소 타격 가능성에 중동 전체가 불안에 떨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9-15 이영재

[참성단]2019 추석 민심

추석의 맛이 전 같지 않다. 밍밍하다. 도무지 흥이 나지 않는다. 'R(경기침체)의 공포'니, 'D(디플레이션)의 공포'니 하는 암울한 경제 탓이다. 날씨도 무시할 수 없다. 너무 덥다. 추석인데 낮 기온이 26도 전후다. 지난 추석엔 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했었다. 반바지를 입어도 되는 추석. 낯설다. 기후 온난화가 우리의 추석 명절 한 부분을 망치고 있다. 그래도 추석인데, 선선한 가을바람 정도는 불어줘야 한다. 그 바람을 맞아 너울거리는 황금 들판에서 추수가 시작되고, 넉넉한 인심이 영그는 것이다. 그런데 날씨가 받쳐 주지 않는다.귀성객이 줄었다는데도 올 추석 3천만 명의 '민족대이동'이 예상된다. 모처럼 가족 친지들이 모였으니 집집마다 웃음꽃이 피어날 것이다. 아무리 '혼족'이 대세여도 '혼심'보다 함께 모여 속마음을 털어놓을 때 공동체 의식은 확인되고 민심은 빛을 발한다. 하지만 이도 '옛말'이다. '왔소. 갔소'에 무엇보다 서로 마음을 굳게 닫고 있다. 형제지간에도 웬만해선 속마음을 열지 않는다. 대화 단절, 소통 부재다. 슬프다.그러다 보니 민심을 헤아리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오랜 기간 신문 밥을 먹었지만 요즘 같아서는 무엇이 민심인지 꼭 짚어 말할 수가 없다. 그나마 민심을 알 수 있는 게 여론조사인데, 이번 조국사태 동안 하루가 멀다고 쏟아진 여론 조사는 오히려 조사기관의 불신을 불러왔다. 하루 사이에 여론이 5%씩 널뛰기를 하는가 하면, 여론 조사기관에 따라 10~15% 차이가 나자 국민이 돌아섰다.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정치인들이 선거에 패한 후 꼭 하는 말이 있다. "민심을 너무 몰랐다." 선거 전엔 이해할 수 없는 여론조사 결과를 두고 "이것이 민심"이라고 우기던 그들이다. 평소엔 민심이란 것에 별 신경 안 쓰다가 큰코다치고 난 후 비로소 민심을 받드는 양 수선을 떤다. 그리고 금방 잊어버린다. 정치인들은 늘 그렇다.한 달여 간 진행된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을 놓고 우리 사회는 처참하게 망가졌다. 성한 곳이 없다. 모두 어디 하나쯤은 부러졌다. 갈라진 진영에서 서로 쏟아낸 증오와 멸시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엔 깊고 넓은 상처가 생겼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무색하다. 정말이지 이런 추석은 난생 처음이다. 그러니 추석이 끝난 후 민심이 어디로 튈지 너도, 나도 아무도 모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9-10 이영재

[참성단]검사 '윤석열'

1992년 시작된 이탈리아의 부정부패 척결 작업인 마니 풀리테(mani pulite 깨끗한 손)는 '사정(査正) 혁명'의 기념비적인 사례로 회자된다. 이탈리아 정계와 재계의 검은 커넥션을 겨냥한 전대미문의 수사를 통해 6천여명의 정재계 권력자들이 수사를 받았고, 2천993명이 부패혐의로 체포됐다. 두 전직 총리는 타국으로 망명하거나 비리혐의가 드러나 법대에 섰고, 현직 총리마저 비리혐의로 사임했다. 정신병원엔 노이로제 증상을 호소하는 정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마니 풀리테를 주도한 안토니오 피에트로 검사는 이탈리아 통일의 기초를 세운 주세페 가리발디 이후 최고의 영웅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사정 혁명의 결과는 놀라웠다. 비례대표제를 소선거구제로 바꾸는 정치개혁이 이루어지고, ㎞당 800억리라였던 지하철 공사 비용은 마니 풀리테 이후 440억리라로 떨어졌다. 하지만 권력의 반격도 필사적이었다. 마니 풀리테 검사들을 향해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애송이들이 나라를 말아먹고 있다"고 여론전을 벌이고, 여자관계 등 사생활을 캐내 도덕성에 상처를 입혔다. 반격은 주효했다. 검사들은 반발해 사표를 던졌다. 살아있는 권력이 결국 마니 풀리테 검사들을 이긴 것이다. 그 결과 지금껏 이탈리아는 유럽 최악의 부패국가라는 수렁에 빠져있다.윤석열 검찰총장의 한국 검찰이 살아있는 권력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정권의 핵심인물인 조국과 그 일가를 향한 전격적인 수사에 검찰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윤석열은 국민적 지지를 받는 보기 드문 검사다.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으로 박근혜 정권에 치명타를 가하고, 당시 법무장관 황교안이 부당한 수사 지휘를 했다고 폭로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에서는 수사팀장으로, 문재인 정권에서는 중앙지검장으로 전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의 수사를 지휘하고 마무리했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소신에 반해 대통령은 그를 검찰총장에 임명했다.그런 윤석열을 향해 여권 전체가 '정치 검찰' 낙인 찍기에 나섰다. 급기야 대통령은 9일 조국을 법무부장관에 임명했다. 윤석열의 검찰은 직속 장관의 부인을 기소하고, 장관 가족펀드 관계자의 구속영장을 신청한 셈이 됐다. 이제 후보자가 아닌 장관을 지켜야 하는 살아있는 권력의 반격과 견제는 더 심해질 것이다. 윤석열의 어깨에 대한민국 검찰의 운명이 걸렸다. 꼿꼿이 진실의 문을 열어젖혀야 한다. 마니 풀리테 검사들처럼 사표를 던지면 안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9-09 윤인수

[참성단]다이지의 돌고래

바다는 온통 핏빛이었다.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일렬로 늘어선 배들이 날카로운 금속성 소음을 내면서 달려들자 만(灣) 끝까지 쫓겨 더는 도망치지 못한 돌고래들은 그물에 걸려 울부짖었다. 어부들은 우선 수족관용으로 판매할 새끼 돌고래를 골라낸 후, 쇠 작살로 내리찍고 갈고리를 휘둘렀다. 꼬리를 잡고 칼로 찌르는 어부도 있었다. 이 장면을 지켜본 관객은 숨을 멈췄다.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해서다. 2009년 제82회 아카데미 영화상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작 루이 시호요스 감독의 '더 코브 (The Cove) : 슬픈 돌고래의 진실'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일본의 와카야마 현 작은 어촌 다이지(太地)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돌고래 사냥을 다뤘다. 다이지에선 매년 9월부터 6개월간 돌고래 포획과 학살이 벌어진다. 카메라는 돌고래들을 해안가로 몰아넣고 무자비로 도살하는 이른바, '몰아잡기(drive hunt)' 방식의 사냥법을 카메라에 그대로 담았다. 제작팀은 지역주민의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600여 시간에 담아 그중 90분으로 정리해 공개했다. 영화가 부른 파장은 컸다. 매년 100여 개국에서 다이지의 돌고래 포획에 대한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국제포경위원회(IWC)는 1986년부터 포경을 금지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에 아랑곳없이 고래를 잡는다. 국제사회와 동물보호단체의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1988년 상업 포경 중단을 선언했으나 연구에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매년 수백 마리의 고래를 잡아왔다. 그러다 지난 6월 IWC에서 공식 탈퇴하고 본격적으로 상업적 포경을 재개했다.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 안에서만 고래를 잡는다며 국제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논리를 펴면서 말이다.여론을 비웃듯, 지난 1일부터 다이지에선 어김없이 돌고래 사냥이 시작됐다. 국제 여론 악화와 수요 감소 등으로 점차 포획 수는 감소하는 추세지만, 올해도 최소 1천여 마리의 돌고래들이 포획되거나 죽음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포획과 살육이 중단되지 않는 건 아직도 다이지 돌고래를 수입하려는 국가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중국, 러시아와 함께 다이지로부터 돌고래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 중 하나다. 영화 코브의 감독 시호요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고래가 사라지면 지구가 멸망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9-08 이영재

[참성단]백남준 재평가

천재였다. 우리만 몰랐다. 1984년 1월 1일 정오. 금시초문의 '위성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를 하나로 묶으며,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 한국인이 있었다. 백남준. 그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파리의 퐁피두 센터, 뉴욕 공영방송 WNET 스튜디오를 연결해 전 세계로 생방송 돼 2천500만명이 시청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러더'가 TV를 지식과 권력을 집중화시키는 통제 수단으로 사용한 것을 두고 "절반만 맞았다"고 반박했다. 그로부터 27년 후인 2011년 5월 홍콩 크리스티 경매장. 백남준과 중국 추상미술의 1세대 자오우지, 한국과 중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두 거장의 작품이 나란히 경매에 올랐다. 두 작가는 50년대 각자 독일과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며 세계 미술계에 한국과 중국을 알린 이 분야의 개척자다. 이날 자오우지의 유화 '2.11.59'는 57억 원에, 백남준의 설치작품 'TV는 키치다'는 5억8천만 원에 팔렸다. 자오우지는 생존작가, 백남준은 사후 작가였는데도 무려 10배 차이가 났다. 백남준은 미술사에 남긴 업적과 작품성보다 시장에서 현저하게 저평가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른바 '백남준 디스카운트'. 이유는 많다. 우선 작품들이 80·90년대 주로 제작돼 자칫 고장이 날 경우 단종된 TV 모니터나 부품, 수리 전문가를 찾기도 힘들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에도 상당수 작품이 제작됐는데 어떤 작품이 누구에게 판매됐는지 작품관리가 명확하지 않은 것도 걸림돌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보다 56년 전인 1963년 3월 독일 서부의 소도시 부퍼탈에서 누구보다 먼저 TV의 소통방식을 신랄히 비판하는 기념비적인 전시회를 했던 비디오아트 창시자에 대한 대우치고는 너무도 인색한 게 사실이다.백남준의 예술이 재평가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세계적인 런던 테이트 모던 갤러리에서 10월 17일부터 작품 80여 점을 선보이는 런던 최초의 백남준 회고전이 열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암스테르담·시카고 등 5개 도시에서 순회 전시회가 계속된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세대를 미리 예견했던 과학·예술·문화 융합의 선구자 백남준. 모국에서의 관심은 여전히 미지근하지만, 문화 선진국을 중심으로 백남준이 재평가되고 있다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9-05 이영재

[참성단]사이다송의 재해석

인천시가 인천 앞바다에 대형 사이다병을 띄우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월미바다열차 개통을 앞두고 바다에 사이다 조형물을 설치해 관광자원화 한다는 것이다. 재밌는 발상이다. 발상의 진원지는 코미디언 고(故) 서영춘씨의 '사이다송'이다. 한국 랩의 원조격인 곡으로, 노래의 가사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컵의 일본어 발음) 없이는 못마십니다'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아마도 바다위에 떠있는 5m짜리 사이다병을 본다면 입에서 사이다송이 절로 나올 것 같다.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가지 궁금증이 발동한다. 컵이 없다고 사이다를 마실 수 없다니…. 그냥 병을 입에 대고 마시면 그만이지 않은가. 지금이야 냉장고에서 병을 꺼내 입대고 마시다 들키면 식구들에게 한 소리 듣는다 쳐도, 사이다송이 유행하던 1960년대에 지금처럼 위생관념이 철저했을 리 없다. 소풍날 김밥에 사이다 한병이면 부러울 것 없던 50대 이상이면 다 아는 사실이다. 친구들끼리 사이다병 돌려 마셔도 전혀 께름칙하지 않던 시절 아닌가. 오히려 컵 대신에 '병따개가 없으면 못 마신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은가 싶다. 당시에는 손으로 돌려따는 스크루캡도 발명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내친김에 가사를 재해석해본다. 원래 가사는 '인천 앞바다가 사이다라 해도'인데 '속사포랩'의 어감을 살리느라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로 바뀐 게 아닌가 하는 추론을 해보는 것이다. 그러면 사이다를 마시는데 왜 컵이 필수적인지 이해가 간다. 바닷물이 사이다라 공짜인데, 손으로 떠 마시면 손이 끈적거려 불쾌할 것이고 입으로 마시려고 머리를 들이대다가는 바다에 빠질 수도 있으니 컵으로 떠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닌가. 조금 더 '오버'해보면 '아무리 기회가 많다 해도 준비(컵)가 돼 있지 않으면 성취할 수 없다'는 교훈적(?) 메시지를 읽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바로 앞의 가사와도 연결이 된다. '산에 가야 범을 잡고, 강에 가야 고기 잡지'라는 가사 또한 '어떤 일을 이루려면, 그 일을 일단 시작해야 한다'는 뜻 아니겠는가. 억지로 짜맞춘 것 치고는 제법 그럴듯하다고 감히 자평해본다.어쨌든 인천 앞바다에 새로운 볼거리가 생기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대신 해상안전대책은 확실해야 할 것 같다. 수십, 수백t급 배가 사이다병에 부딪혀 좌초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 아닌가. /임성훈 논설위원

2019-09-04 임성훈

[참성단]세계 1위 고령 국가

장수(長壽)는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불로초에 목을 맨 진시황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평균수명을 늘리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70년대 유행했던 TV 프로그램 중 '장수만세'가 있다. 고령자가 많은 유럽 선진국의 부자 나라를 부러워하면서 만든 프로였고, 일요일이면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볼 정도로 인기도 좋았다. 그때만 해도 장수는 전 연령층이 공감하는 절대적 가치였다. 장수할아버지를 포함한 3대가 함께 TV에 출연해 보여주는 화목한 모습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고령자를 보는 눈이 반드시 곱지만은 않은 듯하다. 한때 '99세까지 팔팔하게 살고 2~3일간 앓다가 4일 만에 죽자'는 인기 건배사 '구구팔팔이삼사'가 술자리에서 사라진 지도 오래다. 고령화 사회가 주는 부작용이 생각보다 커서다. 물론 지금도 생명공학의 꿈은 여전히 '장수'에 맞춰져 있다. 그 결과 과학적으로는 120살, 아니 150살까지의 생명연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일부 사람들의 꿈일 뿐, 상황은 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니 국가적으로도 노후 준비에 대한 뚜렷한 대비책이 없는 상황에서 '장수는 곧 재앙'이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져 나가고 있어서다.통계청이 2일 발표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현황 및 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2045년부터 일본을 제치고 세계 1위 고령 국가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때 가면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37.0%로 전 세계 201개국 중 가장 높아진다고 한다. 세계 1위라면 자다가도 일어나 춤을 추는 민족이 장수국가 세계 1위가 된다는데 왜 이렇게 불안한가. 아마도 '급격한'이라는 단어에서 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고령화가 서서히 다가오면 대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라도 가질 수 있지만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보다 고령화가 더 빨리 진행되고 있으니 걱정은 클 수밖에 없다.오복 중에 으뜸이던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부담이 되는 시대다. 이미 우리 사회가 고령화에 진입해 여러 걸음을 떼었다고 보는 전문가들도 꽤 많다. 하지만 노후대책은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열악한 편이다. 치매 등을 앓는 노부모나 배우자를 장기간 간호하다 지친 가족이 결국 살인자가 돼버리는, 고령화 사회에 주로 나타나는 범죄를 지켜보는 심정은 그래서 곤혹스럽고 혼란스럽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9-03 이영재

[참성단]실시간 검색어

1927년 8월 1일 중국 장시성 난창(南昌)에서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폭동을 일으키자 장제스의 국민당이 진압에 나섰다. 이 전쟁은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에 첫 전투로 기록된다. 전력의 열세로 패한 마오쩌둥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온다." 그러면서 "적을 무찌르려면 여론을 한데 모아야 하며 이를 위해 언론이 당의 나팔수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 말은 그의 어록 중에서 가장 유명한 말이 되었다. 그러나 마오쩌둥이 다시 태어나 지금의 인터넷 세상을 보았다면 당시 했던 말을 이렇게 수정할지도 모른다. "모든 권력은 '인터넷 검색창'에서 나온다.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라."요즘 주요 포털 사이트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두고 벌이는 지지자와 반대자 사이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실검)'를 보면 총만 안 들었지 사실상 전쟁에 가깝다. 그래서 모든 언론마다 이를 두고 '실검 전쟁'이라 부르고 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조국 힘내세요' '조국 사퇴하세요'가 포털 실검 상위 순위에 오르더니 이제는 '가짜뉴스 아웃' '한국언론 사망' '보고싶다 청문회' '법대로 조국 임명' 등의 사실상 정치적 '구호'가 실검 순위를 온통 도배질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이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됐는지 한숨이 나온다.국내 양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카카오의 하루 국내 이용자는 3천만명, 뉴스 소비는 2억건이 넘는다. 돈벌이가 되는데 그냥 둘 포털 회사가 아니다. 접속하면 뉴스부터 뜨게 만들고,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른 뉴스를 찾아보는 이용자의 심리를 이용해 눈에 잘 띄는 곳에 실검 순위를 배치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상술이다. 그러다 보니 이용자들은 검색순위 조작의 유혹을 받는다. 실제 일부 기업들은 실검 순위를 버젓이 상업적 목적으로 이용하곤 한다. 포털은 알고도 이를 묵인한다.공룡 포털이 여론을 좌지우지해 그 폐해가 도를 한참 넘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국 논란은 특정 세력이 순식간에 인터넷 여론을 왜곡·조작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논란을 보면서 벌써 내년 총선이 우려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특정 정파를 위한 조작행위가 횡행해 실검 상위 순위에 온통 정치적 구호나 정치인 이름으로 채워지는 게 아닌지 심히 걱정이다. 이번 기회에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서비스를 포털에서 아예 지워버리면 어떨까. /이영재 논설실장

2019-09-02 이영재

[참성단]대통령의 화법

불편한 몸에도 미국 초유의 4연속 대통령으로, 대공황을 극복하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루스벨트가 좌절과 실의에 빠진 국민을 달래 국론을 하나로 모으고 난국을 이겨낸 데는 그의 뛰어난 화술 덕이 컸다. 그래서 주일마다 라디오 전파를 타고 미 전역으로 퍼져나갔던 그의 노변정담(爐邊情談)을 국정을 이끌어 간 원동력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친구끼리 또는 가족끼리 때로는 할아버지가 손자들을 모아놓고 옛날 이야기를 하듯 솔직하고도 다정하게 던진 한마디는 국민들의 피부에 닿아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매개체가 되었다. 노변정담을 청취한 미국 국민들은 자신들은 혼자가 아니며, 이런 대통령이라면 함께 어떤 위기가 닥쳐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루스벨트와는 정 반대의 방법으로 국가를 경영하고 국민을 이끌어 나간 대통령도 있다. 프랑스의 상징 드골 대통령. 그는 화법을 떠나 기자회견 자체를 싫어했다. 1961년 프랑스를 방문했던 미국의 젊은 대통령 존 F. 케네디에게 '기자회견 무용론'을 설파했을 정도다. "기자회견을 하지 마세요. 신비로움과 위신이 사라지게 됩니다." 드골은 이 말을 자신의 회고록에도 적었는데 기자회견을 너무 자주 하면 가려져야 할 부분까지 노출되어 지도력에 흠이 간다는 것이다.43세의 젊은 나이에 적절한 어휘를 골라, 가장 감동적인 메시지를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에게 전하는 것을 너무도 좋아했던 케네디가 드골의 말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미국에 돌아간 케네디는 여전히 대국민 메시지를 위한 기자회견을 즐겼다. 반대로 "권위는 위신 없이 성립될 수 없고, 위신은 세속과의 격리 없이는 성립할 수 없다"고 단언했던 드골은 1969년 국민투표에서 패하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있는 와중에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모처럼 입을 열었다. 어제 동남아 3개국 순방길에 오르면서다. 문 대통령은 공항에서 측근들에게 "조 후보자 가족을 둘러싼 논란이 있는데 대입 제도 전반을 재검토해 달라"고 지시했다. 조 후보자에 대해선 일언반구 없이, 뜬금없게도 대입제도 문제를 언급한 건 문 대통령의 전형적인 화법이다. 이 발언만으로는 대통령의 의중을 도무지 알 도리가 없다. 이 탓에 언론에는 구구한 억측이 난무하고, 이를 보고 듣는 국민은 또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9-01 이영재

[참성단]8년 만의 현대차 무파업

정부가 공식적인 경기지표를 들이대며 아무리 불황이 아니라고 강조해도, 대중들은 집단적인 체감 지수를 통해 불황을 실감한다. 여성들이 감각적으로 반응하고 공감하는 패션분야는 비공식 불황지수의 보고다. 화장품 브랜드인 에스티 로더가 발표한 '립스틱 지수'와, 경쟁사인 로레알이 밀고 있는 '파운데이션 지수'가 대표적이다. 불황일 때는 저렴하고 화장효과가 즉각적인 기초화장품이 잘 팔린다는 것이다. 불황 때 여성들의 치마길이가 짧아진다는 '스커트 지수'는 실제 호황 때 치마길이가 짧아진다는 연구결과로 신뢰도가 확 떨어졌다. 이를 '헴라인(치맛단) 지수'가 대체했다. 비싼 실크 스타킹을 드러낼 만큼 치마길이가 짧아지면 호황이고, 스타킹 살 돈이 없어 치마가 길어지면 불황이라는 것이다.2008년 금융위기 시절 미국에서는 비공식 경기지표가 다수 등장했다. '불법 입국자 국경 체포지수'는 미국 국경을 넘다가 체포된 멕시코 불법 입국자의 증감을 미국 경기의 선행지표로 봤다. 체포 인원이 감소하면 경기가 안좋은 징조라는 것이다. 미국 체류 히스패닉의 본국 송금액이 줄어들면 불황이라는 '이민자 본국 송금지수'나, 불황 때는 라떼 판매가 줄고 레귤러 커피 판매가 늘어난다는 '스타벅스 라떼 지수'도 있다.한국의 대표적인 비공식 불황지수는 익히 알려진대로 '포터 지수'다. 1톤 트럭 포터의 판매량이 경기향방과 자영업자 추이를 보여주는 실물 지표로 활용된지 오래다. 판매량 증가는 불황의 증거다. 포터가 올해 현대자동차의 베스트셀러라니 걱정이다.그 포터를 만드는 현대자동차 노사가 엊그제 분규 없이 임금단체협상에 합의했다. 대표적인 강성노조인 현대차 노조가 8년만에 파업을 안한다는 소식을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울산시와 시의회는 "감사하고 환영한다"고 환호했다. 우리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현대차 노조의 영향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조는 무파업 결단 이유에 대해 "한반도 정세와 경제 상황, 자동차산업 전반을 심사숙고했다"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와 화이트 리스트 배제 등도 잠정합의에 이르게 한 요소였다"고 밝혔다.현대차 노조의 무파업 결단을 존중하고 환영한다. 하지만 한국 최강 노조마저도 현재의 경제상황을 우려해 파업을 접었다는 소식의 이면에 심각한 경제불황의 그림자가 어른거려 개운치 않다. '포터 지수'에 이어 '노조파업 지수'도 비공식 불황지수에 포함될 수도 있겠다 싶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8-29 윤인수

[참성단]저어새의 하소연

'카타울라쿠스 무티쿠스'라는 종의 개미가 물난리에 대처하는 방식은 흥미롭다. 이들은 속이 빈 대나무 줄기 안에서 사는데, 비가 많이 와 물이 차면 물을 잔뜩 마신 뒤 집에서 몇㎝ 떨어진 곳에 오줌을 싸는 식으로 물을 퍼 나른다. 차라리 도망을 가는 게 나을 듯한데, 폭음과 배설로 몸을 혹사하다 죽는 일이 다반사다. '꼬리치레'라는 새는 근처에 뱀이 나타나면 날개춤을 추며 뱀 주변을 맴도는 무모한 행동을 한다. 다윈의 적자생존의 법칙에 반하는 다양한 연구 결과를 풀어놓은 '다윈, 당신 실수한 거야'란 책에는 이처럼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하는 동물들이 등장한다.이 책에 실릴 정도는 아니지만 인천에서도 10여 년 전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새가 등장한 적이 있다. 바로 천연기념물 제205-1호이자 멸종위기 1급 보호조류인 저어새다. 저어새가 주목받은 이유는 새의 입장에서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 같은 장소에 둥지를 틀었기 때문이다. 도시, 그것도 공단 내 유수지의 인공섬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인근에 먹이가 풍부한 갯벌이 있고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점 등 저어새에게 매력적인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공장지대를 거친 빗물이 유입돼 수질이 나쁠 뿐 아니라, 바닥은 조금만 파도 악취가 날 정도이며 인근 도로의 소음과 먼지 또한 상당한 곳을 보금자리로 삼은 것에 대해 많은 사람이 의아해 했다.어쨌든 '저어새네트워크'를 비롯한 인천시민들은 "오죽했으면 이 더러운 곳에 들어와 살까"하고 안쓰러워 하며 이들을 보살폈고 이에 힘입어 저어새는 지금까지 인공섬을 번식지로 삼고 있다. 이처럼 인천과 각별한 인연을 맺은 저어새가 얼마 전 경인일보를 통해 하소연을 털어놓았다. 저어새 1인칭 시점으로 구성한 기획기사였다.듣고 보니 저어새의 불안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재작년만 하더라도 인공섬에서 새끼 233마리가 살아남았는데 작년에는 46마리, 올해에는 15마리만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한 동물이 헤엄을 치고 건너와 알을 깨 먹기 때문이라는데, 저어새는 유력한 용의자로 너구리를 지목했다. 그렇다고 너구리를 욕할 수 만은 없는 법. 너구리 또한 소중한 생명으로, 배고픈 너구리는 있어도 나쁜 너구리는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4천여마리밖에 남지 않은 저어새도 살리고 너구리도 보호하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08-28 임성훈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