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조국(曺國) 수호에 나선 문학인들

장 폴 사르트르는 저서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작가의 기능은 아무도 이 세계를 모를 수 없게 만들고, 아무도 이 세계에 대해서 '나는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도록 만드는데 있다(문학이란 무엇인가)"고 밝혔다. 소설을 쓰든 시를 짓든 문학인들은 동시대를 서사하고 동시대의 대중들을 시대의 주역으로 각성시킬 의무가 있다는 주장 정도로 해석해 본다.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주인공의 개과천선 스토리만 쏙 빼내 문고판 정도로 정리하면 한국판 '장발장'이 된다. 완역본이 나오기 전 한국 청소년들은 '레미제라블'을 '장발장'으로 읽었다. 하지만 책 두께로 인해 '벽돌'로 불리는 원본 '레미제라블'은 장발장이 머물렀던 프랑스 당대에 대한 서사가 핵심이다. 장발장이 은촛대를 훔쳤던 성당 내부의 묘사가 장황하고, 팡틴느를 불행에 빠트린 프랑스 중산층의 연애풍속이 지루하게 이어지고, 장발장과 자베르의 운명이 결정된 프랑스의 1832년 6월 봉기에 대한 서사는 난해하다. 완독 자체가 고역이다. 하지만 당대의 사람과 제도, 건축, 풍속, 정치, 역사에 대한 서술로 주인공들은 무한한 생명력을 발휘한다.동시대의 기록자 역할을 감당할 때 작가의 가장 큰 고통은 시대 전체에 대한 관찰과 통찰의 고단함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고민과 고통이 클 것으로 짐작한다. 보수의 타락과 진보의 위선으로 삶의 정신적 기반은 모호해지고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는 짙어지고 있다. 촛불이 새로운 길을 열었던 것인지, 열 것인지 의심스럽다. 이 시대와 대중은 공화파와 왕정파가 격돌한 1832년 6월 봉기만큼이나 역동적이고, 그 현장 한 가운데 섰던 장발장과 같다.소설가 이외수는 "(이명박, 박근혜 시절) 당시에 비하면 조족지혈도 못 되는 사건에 송곳니를 드러내는 모습들"이라고 했다. 공지영은 "문프(문재인 대통령)가 조국이 적임자라고 하니 그를 지지한다"고도 했다. 시인 안도현은 "물어뜯기는 조국 보다 물어뜯으려고 덤비는 승냥이들이 더 안쓰럽다"고 한다. 이 시대를 고민하는 문학가들이 이들의 고민 없는 '조국(曺國)전쟁' 참전 선언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장 폴 사르트르는 "작가는 어떠한 경우라도 전쟁을 긍정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전쟁의 사회적 구조는 독재이고, 전쟁의 결과는 항상 위험하고, 전시의 문학은 세뇌 공작에 동원됨으로써 소외당한다"는 이유에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8-27 윤인수

[참성단]'코리아 디스카운트'

한국 기업의 가치가 외국기업의 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현상을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라고 한다. 2000년대 초반 한국 증시가 종합주가지수 500~1천의 박스권에 갇힌 채 요지부동이었다. 한국 기업들의 가치가 홍콩·싱가포르 기업들의 절반이 안되고, 심지어 대만·태국·말레이시아 기업에 비해서도 30% 이상 낮게 평가받는 이상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 국제금융시장에서 통용됐다.그 무렵 전문가 그룹이 꼽았던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은 북핵문제 등 지정학적 불안요인,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와 회계, 노동시장의 경직성 등이다. 북한은 걸핏하면 한반도 긴장을 조성하고, IMF 사태에서 보듯이 재벌 총수들은 무책임 경영과 회계부정으로 기업을 장악하고, 소수 정예 노동단체의 경영개입이 일상화 됐으니 한국기업을 제값 쳐주기 힘들다는 분석이었다.그 때로부터 1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 주가지수는 2천대 전후로 치솟고 삼성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해소됐는지는 의문이다. 핵무장을 완료한 북한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막말로 호령하며 연일 미사일을 쏴대고 있다. 회계부정과 편법 상속으로 검찰에 불려다니는 재벌 총수들의 오너 리스크는 여전하며, 만능 노조로 인한 노조 리스크는 고질이 됐다. 결정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악화시키는 새로운 요소가 등장했으니, 바로 정치 리스크다.보수와 진보가 교대로 집권하면서 복지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나라 곳간이 비어간다. 집요한 집권의지로 서로를 말살하는 정치적 학살을 감행한다. 산업화 세력인 보수는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로 디스카운트 됐다. 이제는 조국 사태로 386 민주화 세력인 진보의 디스카운트가 진행 중이다. 앞으로 대한민국 연구 논문은 국제학회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감수해야 할 판이다. 아무튼 땡처리 수준으로 디스카운트된 보수와 진보가 막장 정치를 펼치니 국격이 흔들린다. 국격이 흔들리니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이 대놓고 대한민국을 무시하고, 러시아 군용기가 영공을 침범한다. 미국과 일본은 대한민국을 성가신 존재로 취급한다.지금처럼 정치, 경제, 외교, 안보 전 국정분야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전면적으로 확산된 적이 있었나 싶다. 이러다 대한민국이 큰일날까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모두 정신 차려야 할 때다. / 윤인수 논설위원

2019-08-26 윤인수

[참성단]도척과 어부의 교훈

장자는 유가(儒家)의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만물은 본성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의 도와 덕으로 공존할 수 있는 걸, 번거롭게 인의예악으로 질서를 세워 왜 쓸데없이 분란을 만드느냐는 비판이다. 장자 잡편에서 공자가 큰 도둑 도척과 무명의 어부에게 망신당하는 장면은 유가 비판의 결정판이다.공자가 잔인무도한 도척을 교화하겠다고 큰 소리쳤다. 공자는 도척에게 성인의 풍모를 가지고 도둑이라 불리니 애석하다며, 그가 마음만 고쳐 먹으면 존경받는 제후가 되도록 도와주겠다고 제안한다. 도척의 답변 요지가 이랬다. "너야말로 거짓말과 위선으로 세상의 군주들을 홀리며 부귀를 구하니 너 보다 큰 도둑이 없다. 세상 사람들이 너를 도둑이라 부르지 않고 나를 도둑이라 부르니 이해할 수 없다." 공자는 사색이 된 채 허둥지둥 물러났다.공자는 길에서 만난 어부가 현자임을 대번에 알아 본 뒤 "천하의 안정을 위해 각국을 돌면서 유세했지만 여기저기서 박대 받았는데 이유를 모르겠다"고 이유를 묻는다. 어부는 공자를 그림자를 떨쳐 버리려 죽을 때 까지 전력질주한 사람에 비유했다. "그늘에서 쉬면 될 걸 어지러운 발자국만 남겼다"고 애석해 하며, 명성과 업적은 다른 사람에게 주고 제 한 몸 돌보는 것이 좋을 거라 충고한다.유가의 비조인 공자가 큰 도둑과 평범한 어부에게 망신당하고 가르침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실제가 아니라 지어낸 허구다. 또한 춘추 시대의 공자를 전국 시대의 장자가 도둑과 어부를 앞세워 비판했으니, 공자 자신이 반박할 수 없었던 점도 아쉽다. 다만 천하경영에 나선 치자(治者)의 처세를 경계하는 우화로는 효용이 높다.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어제 "개혁주의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이 문제에는 불철저하고 안이한 아버지였다"고 딸의 논문 제1저자 등재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 하지만 "저와 제 가족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짊어진 짐을 내려놓을 수 없다"며 장관 후보 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런데 조 후보가 세상을 전력질주 하면서 남긴 발자국이 너무 많다. 대중이 알던 조국과, 그의 그림자가 다르다. 그가 적폐로 몰았던 세상의 도척(?)들이 '너와 내가 다른 것이 무엇이냐'고 호되게 나무라는 듯 하고, 그에게 관심이 없던 서민들은 '이제 그늘에서 쉬라'고 말하는 듯 하다. 조국(曺國)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이 고통스럽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8-25 윤인수

[참성단]'꿈의 구장'과 야구박물관

1989년 개봉한 '꿈의 구장(Field of dreams)'은 옥수수밭에 야구장을 지으면서 펼쳐지는 판타지를 다룬 영화다. 영화의 모티브는 미 프로야구의 흑역사 '블랙삭스 스캔들'에서 따왔다. 시카고 화이트 삭스와 신시내티 레즈가 맞붙은 1919년 미 프로야구 월드시리즈. 승부는 막강한 전력의 삭스가 싱겁게 끝낼 것으로 모두 예상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다음 해 가서야 삭스 선수들이 고의적으로 패배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팬들은 경악했다. 승부조작에 가담한 8명의 선수는 영구제명됐다.영화는 평범한 옥수수 농장주 레이 킨셀라 (케빈 코스트너)에게 매일 밤 들리는 환청으로 시작한다. '그것을 만들면 그들이 올 것이다'. 킨셀라는 옥수수밭을 갈아엎고 조명까지 갖춘 멋진 야구장을 만든다. 이웃의 반응은 조롱과 냉담. 그러던 어느 날, 옥수수밭 사이로 한명의 선수가 수줍게 걸어 나온다. 타이 캅과 늘 타격왕을 겨루던 '맨발의 조' 조 잭슨이다. 그렇게 한 명 또 한 명, 삭스에서 제명된 선수 8명이 옥수수 야구장을 찾아온다는 줄거리다. 마치 꿈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다. 한국에서 이 영화의 흥행은 저조했다. 우리의 정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구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미국에서는 달랐다. 흥행은 말할 것도 없고, 이 판타지 영화가 준 울림은 상상 이상이었다. 영화에서 옥수수 구장을 찾은 '맨발의 조'가 킨셀라에게 "여기가 천국인가요?"라고 묻는 대사가 나오자 극장마다 관객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한다. 눈물을 흘리는 관객도 많았다. '꿈의 구장'은 미국인의 로망이 됐다.영화 '꿈의 구장'이 현실이 된다. 내년 8월 14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뉴욕 양키스의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경기가 실제로 미국 아이오와주의 다이어스 빌 농장에 조성되는 특별야구장에서 치러지기 때문이다. 이 농장은 실제 '꿈의 구장'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1910년부터 1990년까지 화이트삭스가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코미스키파크를 재현한 8천석 규모의 야구장 공사가 지난 14일 착공됐다."옥수수밭에서 펼쳐지는 야구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화합하게 할지 기대된다"는 미 메이저리그 관계자의 말이 가슴을 때린다. 부럽다. 100년이 넘은 한국 야구의 역사, 37년 프로야구 역사에도 불구하고 야구박물관 하나 없는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니 더욱더 부럽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8-22 이영재

[참성단]대마초 코미디

'누구든 중독된 자 있거든 내게 돌을 던져라'. 십수 년 전 발간된 '대마초는 죄가 없다'라는 책의 표지에 실린 문구다. 대마초의 합법화, 비범죄화를 주장하는 이 책은 발간 당시만 하더라도 제목만큼이나 파격적이었다. 지금은 어떨까?같은 마약류로 분류되지만 필로폰, 코카인 등에 비해 대마초에 대한 우리 사회 구성원, 특히 젊은 층의 인식은 상대적으로 관대한(?) 것 같다. 아마도 다른 마약류와 달리 중독현상과 금단현상이 없고, 미국 일부 주와 캐나다 등 여러 국가가 대마초를 합법화했기 때문이지 않나 싶다. 대마초 관련 보도가 나올 때마다 대마초의 합법화를 주장하는 댓글 또한 적지 않은 것이 이를 방증한다.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로,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다섯 차례 구속된 전력이 있는 한 여배우는 방송에 나와 "대마초가 마약이라는 근거를 달라"고 정부에 대놓고 요구하기도 했다.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서인지 최근 미국에 사는 한국인 유튜버가 대마초를 피우는 모습을 여과 없이 방송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는 이 영상이 단순히 '과시용'이거나 네티즌들의 관심을 유도해 조회수를 늘리고, 수익을 올리려고 하는 영상이라는 점이다. 대마초에 대한 고찰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미국에서는) 고등학생도 대마초 사서 필 수 있다"고 너스레를 떠는 장면에서는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아무리 대마초가 중독성이 없고, 합법화 논리에 설득력이 있다 해도 성장기의 청소년들이 환각작용을 일으키는 대마초를 피워서 좋을 일이 뭐가 있겠는가. 더 큰 문제는 이 유튜버가 한국사람이기는 하지만,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처벌을 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사실 이 유튜버 사례는 약과다. 대마초를 둘러싸고 벌어진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이미 1970년대에 있었다. 1975년, 신중현 등 당시 가요계를 주름잡던 뮤지션들이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무더기로 구속됐다. 이른바 '대마초 파동'이다. 그런데 이때는 대마초가 불법이라는 법률 규정이 없었다. '대마관리법'이 실행에 들어간 게 1977년 1월부터이니 이전에 잡혀들어간 연예인들은 영문도 모르고 쇠고랑을 찬 셈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유신체제의 극악무도함과 코미디 같은 면모를 드러낸 사건"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수십 년 전에는 법이 없어도 잡아들일 수 있었는데, 지금은 법이 있어도 잡아들일 수 없는 이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하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08-21 임성훈

[참성단]호르무즈

페르시아만 입구에는 호르무즈(Hormuz)라는 섬이 있다. 면적은 42㎢, 인구 3천여 명. 이란 땅이다. 구글 지도로 보면 황량한 모래섬이지만 페르시아만에서 인도양으로 빠져나가는데 위치해 해상 교역의 요충지로 더할 나위 없는 곳이다. 10세기 호르무즈 왕국은 이 섬을 근거지 삼아 페르시아만 무역을 통제하면서 번영을 구가했다. 1433년 해상무역로를 개척하기 위해 중동 서남아 동아프리카를 거쳐 이곳에 들른 명나라 항해 왕 정화(鄭和)는 호르무즈 왕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병사했다.열강들이 호르무즈 섬을 호시탐탐 노리는 것은 인도와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을 통과해야 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호르무즈는 페르시아 해에서 인도양으로 가는 유일한 길목으로 폭이 54㎞에 불과한 호르무즈 해협은 중동 주요 산유국의 원유 수출 통로이기도 하다. 매일 약 2천250만 배럴의 석유가 이곳을 통과한다. 이는 세계 일일 석유 생산량의 24%에 해당한다. 세계는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일시적으로 유조선의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막히면서 유가가 폭등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호르무즈가 최근 다시 뜨거워졌다. 지난해 트럼프 미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의 치적이던 이란 핵 합의를 전격적으로 파기하고 대 이란 제재를 시행하면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호르무즈 인근 해역에서 유조선에 대한 공격이 잇따르는가 하면 최근엔 미국과 이란이 서로 상대편의 무인기를 격추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란은 미국·이스라엘 정보기관 공작설 등을 주장하면서 페르시아 만은 순식간에 일촉즉발 긴장 상태에 빠졌다.이런 상황에 미국이 호르무즈해협 호위 연합체 구성을 위해 우방국들에 파병 요청을 하자 우리의 고민도 덩달아 깊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은 우리와 일본을 꼭 짚어 참여를 요청해 걱정이 더 크다. 현재 참가를 결정한 나라는 영국과 이스라엘. 이미 독일은 불참을 선언했다. 한미동맹을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서울 강남에 '테헤란로'가 있을 정도로 전통적으로 우호 관계를 맺어온 이란을 생각하면 쉽게 답하기도 어렵다. 국내에선 사드배치 때처럼 파병을 두고 의견이 찬반으로 갈라졌다. 언제나 두 개의 답안지를 두고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우리의 운명이 마치 호르무즈 해협이 처한 상황을 보는 것 같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8-20 이영재

[참성단]한반도 신 합종연횡

진시황이 중국 최초의 황제국을 세우기 전까지 대륙은 전국시대의 혼란을 겪었다. 진(秦)을 비롯한 연(燕), 조(趙), 한(韓), 위(魏), 제(齊), 초(楚) 등 전국 칠웅은 끊임없이 전쟁과 협상의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진이 약진하며 세력 균형이 깨지자 대륙의 혼란과 긴장이 극심해졌고, 이 틈새에서 오직 혀(舌)만 가진 가난뱅이 두 친구 소진과 장의가 기회를 얻었다.소진은 약세에 몰린 6국을 돌며 힘을 합해 진에 맞서자는 합종(合縱)책을 유세했다. 반면 장의는 6국동맹을 각개격파하는 연횡(連橫)책을 진 왕에게 건의했다. 이후 6국동맹과 진나라는 합종과 연횡에 근거한 외교·군사 대결을 전개한 끝에 진의 천하통일로 전국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렇다고 장의의 연횡이 소진의 합종을 누른 것으로 판단하면 안된다. 세력의 형세나 동맹의 신뢰나 변화하는 국가이익에 따라 합종과 연횡은 얽히고 설키게 마련이다.최근 한반도에서 전통적인 합종연횡이 균열 조짐을 보이는 대신 신 합종연횡의 기미가 뚜렷하다. 냉전시대의 한반도는 미국이 중심인 한·미·일 동맹과 구소련이 중심인 북·중·소 동맹, 두 합종 세력의 대립이 팽팽했다. 미·소 양극이 세력 균형을 위해 구축한 동맹은 굳건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와 사회주의 국가의 연쇄적인 몰락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넘실댄 것도 잠시,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핵무장 이후 사정은 전혀 달라졌다.전통적인 합종연횡 구도라면 미국과 한국은 한·미·일 동맹의 합종으로 중국과 북한을 견제해야 맞다. 그런데 한·미·일 동맹의 합종연대에 이상기류가 발생했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로 미국이 동맹들에 성가신 요구가 많아졌다. 트럼프의 고양이 아베는 한국을 대놓고 무시한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북한과의 평화협상에 외교를 집중하면서 미, 일 대하는 것이 예전 같지 않다. 한·미·일 합종의 대상인 중국과 북한이 이 틈을 타고 자유민주동맹에서 한국을 분리시키기 위해 연횡의 전략을 펼치는 중이다. 시진핑은 경제로, 북한은 핵무기와 미사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전통적인 합종은 흔들리고, 연횡의 주체가 되기엔 경제와 국방의 규모가 애매하다. 살벌한 국제관계에서 모호한 합종과 애매한 연횡은 여기저기서 치일 뿐이다. 한반도 신 합종연횡의 형세가 걱정스러운 이유다. / 윤인수 논설위원

2019-08-19 윤인수

[참성단]R의 공포

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 14일 오전 10시 미국 뉴욕 채권시장에서 미 채권의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비록 일시적이었지만 전 세계는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에 떨었다. 역사적으로 미 국채 3년물과 10년물의 수익률이 역전되면 평균 22개월 이내에 본격적인 경기침체가 시작되기 때문에 이 날의 공포는 더 컸다. 우리 역시 국고채 장단기 금리 격차가 11년 만에 가장 줄어들었다. 'R의 공포'가 오면 다음 단계는 'D(deflation)의 공포'다. 디플레이션은 주식이나 부동산 등 자산가치가 폭락하거나 통화량 축소로 인해 물가가 떨어지며 경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현상을 말한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경우 예외없이 부동산, 주식 등의 자산 가격이 내려가고 생산과 소비가 위축되어 경기 침체는 장기화한다.우리 역시 물가 상승률이 7개월째 0%대에 그치면서 물가 하락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를 디플레이션의 우려가 커졌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전문가들이 꽤 많다. 디플레이션이 현실화되면 경제는 악순환의 수렁에 빠져든다. 물가가 떨어지면 기업의 매출이 줄고 생산과 성장률, 고용 등이 덩달아 감소한다. 여기에 소비자가 지갑을 굳게 닫으면서 경제는 불황의 늪으로 들어간다. 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D의 공포'를 겪고 나면 그다음에는 'L(lay off·해고)의 공포'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 장기화와 이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로 이미 애플, 테슬라를 비롯한 첨단 기업부터 포드, GM 등 자동차 업체,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위탁 제조사인 대만 폭스콘까지 감원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무인 자동화 추세가 일자리 감소를 더욱 가속화 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미·중 무역전쟁에 일본의 경제 보복까지 겹쳤다. 수출 침체 장기화가 본격화할 것이란 우울한 진단이 나오며 'L자형'의 장기 침체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은 튼튼하다. 근거 없는 가짜 뉴스나 허위 정보, 과장된 전망으로 시장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고 말한다. 전 세계가 R,D,L 등 이니셜 공포에 떠는 지금, 우리는 대통령의 경제에 대한 지나친 자신감이 더 '공포'로 다가오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영재 논설실장

2019-08-18 이영재

[참성단]수원시 승격 70주년

'이 강산에 정기가 한곳에 모여/그림같이 아름다운 정든 내 고향/이끼 푸른 옛 성에 역사도 깊어 /어딜 가나 그윽한 고적의 향기'. 초등학교에 들어가 처음 배운 게 '수원의 노래'였다. 의무 사항이 아닌데도 담임 이기준 선생님은 "수원에 살면 '수원의 노래' 정도는 외워 부를 줄 알아야 한다"며 직접 풍금을 치며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이끼 푸른 옛 성'이란 가사에서 풍기는 쓸쓸한 느낌이 왠지 좋았다. 성을 오를 때마다 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러자 옆 친구가 또 그 친구의 친구가 같이 따라 불렀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나만 이 노래를 알고 있었던 게 아니었구나'. 50년 전 일이다.달랑 문만 남은 북문, 늘 바람이 세차게 불었던 동문, 온전한 성이라고 하기엔 볼품없이 무너진 성곽 도시에 불과했던 수원이 변하기 시작한 건 수원성이 복원되면서부터다. 처음 공사가 진행될 때 만해도 "어휴! 도대체 언제 복원이 끝나?"하고 한숨을 쉬었지만, 아홉 개였던가, 주춧돌만 덩그러니 서 있던 팔달산 정상 서장대와 장안문에 지붕이 얹혀지고 성곽이 온전한 모습을 갖추면서 "수원이 뭔가 변하는구나"라며 비로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수원성 복원정화사업은 1974년부터 1979년까지 진행됐다. 이랬던 수원이 시로 승격한 지 어제로 70주년이 됐다. 1949년 8월 15일 수원 읍에서 시로 승격된 수원시는 5만명의 소도시에서 지금은 125만명으로 늘었고 명실상부한 경기도 중심도시로 성장했다. 특히 IT로 세계를 호령하는 삼성전자 본사가 수원으로 이전하면서 수원은 전통의 수원화성과 세계 초일류 첨단 기업인 삼성이 공존하는 보기 드문 도시로의 모습을 갖췄다. 18세기 말 개혁의 군주 정조대왕이 수원 천도까지 생각하며 꾸었던 거대한 수원의 꿈은 아마도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늘 손에 쥐고 있으면 그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내겐 성의 존재가 그랬다. 수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이 살던 고향에 대해 그런 추억쯤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제 신도시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도시의 경계마저 무너져 '내 고향'이란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더욱이 광역도시의 출현으로 우리 아이들은 그런 추억조차 가질 수 없게 됐다. 그나마 이렇게 수원시 승격 70년을 맞아 아련한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것만도 다행인지 모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8-15 이영재

[참성단]반전의 태극기

우정사업본부가 제74주년 8·15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역사 속의 태극기' 기념우표 112만 장을 발행했다. 이번 기념우표에 등장하는 태극기는 구한말 고종이 미국인 외교 고문 '데니'에게 하사했다고 알려진 '데니 태극기'를 비롯해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태극기',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 '경주 학도병 서명문 태극기', '김구 서명문 태극기', '진관사 소장 태극기' 등 16종이다. 모양은 조금씩 다르지만, 각 태극기에 공통으로 깃들어 있는 민족사적 가치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각 태극기가 제작된 시기와 배경을 돌이켜 볼 때 한 점 한 점마다 민족정기가 서려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 개인적으로는 발견된 지 올해로 10년이 된 '진관사 태극기'에 가장 먼저 눈길이 간다. 이 태극기에 숨어있는 '반전' 때문이다.2009년 서울 북한산 진관사 칠성각을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작업 인부들이 낡은 보자기 하나를 찾아냈다. 보자기 안에서는 '독립신문', '신대한', '조선독립신문', '자유신종보' 등 독립운동계 신문과 문건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신문과 문건에는 3·1운동 이후의 상황을 알리는 기사와 함께 태극기 관련 기사 및 자료들이 실려 있었다.신문도 신문이지만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바로 보자기의 정체였다. 그 낡은 보자기는 태극기였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태극기가 일장기 위에 덧칠해 그린 태극기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일장기에 덧칠한 태극기라니…. 태극기를 그릴 제지가 없어서 일장기 위에 태극기를 그리지는 않았을 터이다. 그것보다는 '일본을 누르고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명이라는 게 학자들의 일반적인 해석이다. 일제에 대한 분노와 독립의지를 담아 '기획 제작된' 태극기였던 셈이다.이 태극기는 3·1 운동이 일어난 1919년 당시, 진관사에 머물던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이 숨겨 둔 것으로 추정된다. 불교계 독립운동을 이끈 백초월 스님은 광복을 1년 앞두고 청주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이 태극기는 10년 전에 우연히 발견되기까지 90여 년간 절간의 후미진 곳에서 신문과 문건을 품고 있었던 터라, 건괘(乾卦) 쪽 모서리 부분이 삭았고 중앙에 구멍도 여러 개 나 있다. 일본이 경제전쟁을 일으킨 후 많은 이들이 '극일'을 이야기한다. 이 태극기가 주는 울림이 예년에 비해 크게 느껴지는 광복절이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08-14 임성훈

[참성단]미북봉남(美北封南)

2017년 방송사가 주최하는 대선주자 토론회에서 유승민 후보가 문재인 후보에게 "코리아 패싱이라고 아느냐"고 질문했다. 이에 문 후보는 "모른다"고 답했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말의 뜻보다 문법에 맞지 않는 콩글리시라며 갑론을박을 벌였다. 하지만 이 말은 원래 1998년 아시아를 찾은 클린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일본은 들르지 않자 일본언론이 '재팬 패싱'이라고 말한 데서 유래됐다. 일본 언론이 만든 영어 조어에서 차용한 것이다.'코리아 패싱'은 그 이전에도 있었다.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후 미국과 직접 협상을 벌여 중유와 경수로를 받기로 한 1994년 '제네바 합의'가 그것이다. 당시 우리 정부는 이 협상과정에서 철저히 소외됐다.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 이때부터 미국과 직접 협상에 재미를 붙인 북한은 핵 협상에 있어 '한국의 참여를 봉쇄하고 미국과의 협상'을 외교 전략으로 고수해 왔다.2012년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계획으로 장거리 미사일 문제가 불거지자 이에 놀란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에 대규모 식량 지원을 토대로 북한과 직접 협상을 벌여 '2·29 합의'를 이끌어냈다. 한국은 빠진 채 세 차례 고위급 회담을 했다. 그리고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유예, 우라늄농축프로그램을 포함한 영변 핵시설 활동 중지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에 따른 24만t의 식량 지원을 합의했다. 하지만 유엔안보리가 1874호 대북제재 결의안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의장 성명을 발표하자 북한은 즉각 2·29 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북한의 진정성에 실망한 미국은 '남한을 통하지 않고는 북한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통남봉북(通南封北)'을 선언했다. 남한 없이 북한과 대화를 하다 보니 북핵은 물론 그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미국이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하지만 트럼프가 미 대통령이 된 후 상황은 바뀌었다. 소원한 한·미관계를 틈타 북한이 잇단 미사일 발사 등 대남공세를 강화하면서 뒤로는 미국에 친서를 보내자 이에 트럼프 대통령도 맞장구를 쳤다. 이러다 우리만 쏙 빠진 '미북봉남(美北封南)'이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운전자론'과 '4·27 판문점 선언'의 정신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트럼프 정부의 '코리아 패싱'에 '한국 호구론'까지, 이래저래 잠 못 드는 여름밤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8-13 이영재

[참성단]비육우의 동물복지

전주시는 지난 7월 1일 전국 최초로 동물복지 전담부서인 '동물복지과'를 신설한다고 밝혔다. 반려동물의 수가 증가하면서 동물 유기와 학대도 증가하는 현실에서 전주시민과 동물의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임무를 전담하는 부서라 한다. 반려동물, 유기동물, 길고양이, 전시동물, 시민참여 등 5개 분야별로 동물복지 종합계획을 추진한다는 야심찬 조직개편에 전국의 동물 애호가들이 환호했다.반려동물 유기와 학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인면수심을 비난하는 사회적 저항이 커지면서 급기야 동물복지를 전담할 행정조직까지 등장했으니, 전주시를 따라 할 지방자치단체들이 줄을 이을지 주목된다. 선출직에겐 반려동물 천만 시대에 반려동물 주인들의 환심을 사는 일이 매력적일 수 있어서다. 부모 자식 보다 반려견과 반려묘와의 정서적 유대가 각별해진 문화적 추세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반려동물을 향한 동물권이 확대되고 동물복지가 구체화 되는 추세와 달리 식용동물에 대한 동물복지는 더디기 짝이 없다. 동물보호단체의 개 식용 금지 캠페인이 드세지만 전통적인 식용 가축들의 열악한 사육환경은 동물복지와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에선 소가 특히 그렇다. 원인은 마블링을 기준으로 고기 등급을 결정하는 소고기 등급제다. 대리석 무늬와 같은 마블이 그물처럼 촘촘히 박힐수록 최상품 소고기 대접을 받는다.등급별로 고기 값 차이가 크니 축산농가에선 제한된 시간 안에 소의 지방을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좁은 우리에 가두고 사료를 먹이고, 출하 전엔 옥수수 사료만 먹인다. 섬유질이 없는 옥수수 사료를 먹은 소는 되새김질을 할 필요가 없다. 대신 포화지방은 차곡차곡 쌓인다. 지방세포 증식에 방해가 되는 비타민A 공급을 중단해 장님이 되는 소도 많다고 한다.하지만 환상적인 마블링을 얻기 위한 비인도적인 소사육 환경도 개선될 모양이다. 우선 마블링에 열광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지방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 환상적인 마블링이 심장·혈관질환의 원흉이라는 정체를 드러내면서, '투뿔(1++)'을 향한 소비 열망이 급속히 식고 있다. 마블링이 소고기 등급 기준이 된 데는 글로벌 사료업체들의 농간이 개입됐다는 음모설도 정설이 되고 있고…. 마침 정부도 마블링 기준을 완화한 새로운 소고기 등급제를 연말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억지로 지방을 불려 온 한국 소들도 이제 동물복지의 사각지대를 탈출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8-12 윤인수

[참성단]애국가

애국가는 1931년 안익태가 미국 샌프란시스코 한인교회 동포들이 애국가를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 곡조에 맞춰 부르는 것을 보고 작곡했다. 영감은 교회 국기 게양대에 나부끼는 태극기에서 얻었다. 곡은 1936년 베를린에서 완성돼 당시 올림픽 개막식에 선수단 일원으로 참가한 한국인 선수들과 함께 '응원가' 삼아 불렀다고 전해진다. 애국가는 우리 민족의 발자취와 수난의 역사를 그린 대서사시인 '코리아 판타지'의 후반부에도 삽입돼 1938년 아일랜드 국립교향악단에 의해 초연됐다. 그 후 정부 수립과 동시에 국가로 정식 명명되었다.애국가는 4·19혁명 직후 혁명시대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혁명국회의 산적한 현안에 밀려 흐지부지됐다. 그때는 곡보다는 '보우하사' '공활한데' '보전하세' 같은 어려운 가사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애국가 작사가는 윤치호라는 설이 유력하지만 분명치 않다. 이 때문에 임시정부 시절에도 윤치호의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있었지만, 김구 선생이 나서 "3·1 운동을 태극기와 애국가로 싸웠는데 누가 지었는지 그게 무엇이 중요한가"라며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래서 지금도 애국가 작사자는 공식적으로는 '미상'이다.보수가 정권을 잡으면 수면 아래 있다가 진보가 정권을 잡으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애국가 논쟁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애국가 논란이 재점화됐다. 반일감정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8일 국회에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공청회를 하면서다. 이날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안익태의 친일 논란에 더해 표절 논란까지 제기하며 애국가를 더는 부르지 말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반발도 크다.애국가는 법적으로 '국가'로 명시돼 있지 않다. 공식행사에서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노래로 불리며 사실상 국가의 지위를 지금까지 유지해 왔다. 이를 근거로 몇몇 정당이 공식행사에서 애국가를 부정한 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대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논란은 늘 결론을 내지 못하고 끝났다. 단편적인 문제로 안익태를 평가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 우세했고, 특히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부터 여태껏 불린 애국가가 갖는 국민 정서상 공감대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수선한 상황에서 분위기에 편승해 또 불거진 애국가 논란, 언제까지 이를 반복할지 착잡하기 그지없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8-11 이영재

[참성단]아! 남양주 종합촬영소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의 마지막 장면. 판문각을 찍으려는 사진기자를 손으로 막는 남측 군인 이병헌과 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북측 사병 송강호의 모습을 담은 한 장의 스틸 컷. 이 명 장면은 실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이 아니라 남양주 종합촬영소의 8천여 평에 9억원을 들여 완성한 오픈 세트장에서 촬영됐다. 영화가 공개된 후 남양주 종합촬영소는 이 멋진 영화의 촬영 현장을 보기 위해 연간 40만명이 찾는 유명 관광명소가 됐다. 1998년 남양주 조안면 삼봉리 132만3천113㎡ 부지에 들어선 촬영소는 영화촬영용 야외 세트와 6개 실내 촬영스튜디오, 녹음실, 각종 제작장비 등을 갖추고 국내 영화 제작의 중추적 역할을 해 왔다. '서편제',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 '취화선', '미인도' 등 한국 영화의 대표작들이 남양주촬영소의 장비와 기술로 탄생했다. 한국영화의 위상은 이곳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촬영소가 문을 닫는다. "그래? 몰랐는데"하며 놀랄 것도 없다. 2004년 공공기관 지방 이전 정책으로 부산 이전이 결정됐고, 이제 8월 말이면 한국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남양주 촬영소 시대는 막을 내린다. 문제는 이전 예정지 부산 종합촬영소의 건립이 지지부진하다는 것.더 답답한 건 '서울영화장식센터' 등 의상과 소품을 담당하는 기업 2곳이 마땅히 옮길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훼손되기 쉬운 영화 소품의 특성상 당장 이전도 어렵다. 이들 의상과 소품만 무려 40여 만점. '왕의 남자'의 연산군이 앉았던 용상, '여고괴담'의 책걸상들, '살인의 추억'에 등장한 형사들의 철 책상과 캐비닛 같은 소품들 대부분도 포함된다.'나비효과'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날씨 변화를 일으키듯, 미세한 변화나 작은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남양주 종합촬영소가 꼭 그런 케이스다. 당시 표를 의식한 정치적 결정으로, 사용료가 저렴하고 접근성 등이 뛰어나며 여러 편의 작품을 동시에 제작할 수 있는 대형 스튜디오가 완비된 세계적 촬영소가 이렇게 허무하게 문을 닫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이로인해 9월 이후 한국 영화 촬영 대란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상황이 심각하자 부랴부랴 수도권에 촬영소 부지를 찾아다니는 이 웃지 못할 얘기는 실제상황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8-08 이영재

[참성단]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언론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최고 권력자도 참새는 어쩌지 못했나 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따금 언론을 참새에 비유했다고 한다. "(언론이) 하는 짓이 꼭 참새 같아서 사방 천지 돌아다니며 짹짹거리는데, 손에 잡아 쥐면 조금만 힘을 줘도 죽을 것 같고, 그렇다고 풀어주면 또 짹짹거리는 통에 다루기가 어렵다"고 고뇌(?)를 털어놓았다고 한다. 기자 초년병 시절 아버지뻘 되는 선배 기자에게 들었던 얘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참새의 생리에서 언론 다루는 방법을 터득했는지 채찍과 당근으로 언론의 비판적 저항성을 통제하려 했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가 이달부터 모든 종이신문의 구독을 전면 중단했다. 온라인 뉴스가 보편화한 만큼 신문을 끊어 비용과 행정력 등을 절감하겠다는 게 이유다. 공사 측은 또 '신문 절독은 실무부서의 판단이지 서주원 사장이 지시한 일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거의 없는 듯하다. 우유 끊는 것도 아니고, 최고 30년 가까이 구독한 신문 (특히 지역 여론의 소통창구인 지역 신문)을 단칼에 끊어버리는 것이 최고 책임자의 의지 없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매립지 직원들도 다 알 것이다. 이 때문에 매립지 사용기간 연장 반대 여론 형성의 주역인 지역신문에 대한 최고 책임자 차원의 보복조치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1990년대 중반, 매립지 취재를 담당했던 기자로서 단언컨대, 당시 지역 신문의 비판과 조언이 없었다면 수도권매립지가 선진환경시설로서의 위상을 정립하는데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중앙언론에서 외면한 매립지를 지역 기자들은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악취와 침출수 문제, 주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했다. 오죽하면 당시 매립지 최고 책임자가 국정 감사차 방문한 국회의원들에게 "의원님들! 이곳이 바로 대한민국에서 기사가 가장 많이 나오는 곳입니다."라고 소개했을까.그래도 그 시절의 수도권매립지는 비판보도로 곤혹스럽기야 했겠지만, 언론의 문제 제기를 수용, 개선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수도권매립지는 어떤가. 언론의 건전한 비판을 단지 귀에 거슬리는 참새의 짹짹거림 정도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도 손에 쥐고 압박을 가하거나, 모이를 주면서 구슬리거나 했지 참새를 아예 내쫓지는 않았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08-07 임성훈

[참성단]포터·봉고 지수

불황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징후가 있다. 가령 채권은 만기가 길수록 금리가 높은 것이 일반적인데 20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10년 만기 금리 아래로 떨어지면 이는 불황의 신호다. 출산율이 감소하고 립스틱의 판매량이 급증하며 여성의 치마 길이가 짧아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이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경기의 국면 및 전환점을 판단할 때 유용하지만 매월 약 2천200가구를 대상으로 하다 보니 조사 시간이 길고, 소비자 주관적 판단에 의존해 정확도가 떨어지는 게 큰 단점이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2017년 카드사와 공동으로 구축한 '신용카드 빅데이터 기반 경기동향 예측 시스템'이다.이 시스템은 일반인의 소비 패턴을 카드 사용으로 분석해 불황과 호황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매월 2억 건의 신용카드 결제 빅데이터에 따르면 20대의 서적, 편의점, 제과점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경기 불황의 사전징후로 분석됐다. 또 30대의 대중교통 이용이 늘어나거나, 40대의 약국, 건강제품에 대한 소비가 증가하는 것도 경기 불황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포터·봉고지수'도 불황의 징후를 파악하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1t 트럭의 대명사인 이들 차량이 많이 팔리면 불황이라는 논리다. 1997년 IMF 직격탄을 맞고 200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포터와 봉고에는 '불황의 차'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경기 악화로 인한 구조조정으로 실직자가 늘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도 늘고 이들에게 활용도가 높은 1t 트럭의 수요도 함께 늘어나서다. 떡볶이·순대·튀김·호떡을 파는 이동사업자에게 기동력이나 가격 면에서 1t 트럭만큼 유용한 게 없다. 그래서 1t 트럭은 서민 경제를 대변하는 생계형 차종의 부동의 대표주자로 '경기 민감 차'로도 불린다.올 7월까지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1t 트럭 포터가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3% 증가한 6만3천451대가 팔렸다. 봉고의 판매량도 3만7천39대로 기아차 국내 판매 2위를 차지했다. 영락없는 불황의 징조다. 실적 개선에 어려움을 겪는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포터와 봉고는 더할 나위 없는 '효자' 상품이지만, 판매가 늘수록 불황의 그늘은 더욱더 짙어지고 있다. '포터·봉고의 역설'이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8-06 이영재

[참성단]참담한 '사케 논쟁'

임진왜란 중에도 조선 조정은 당쟁을 멈추지 않았다. 선조는 도성인 한양을 버리고 파천을 결정했다. 비참한 정경이다. 그런데 개성 쯤 까지 도망가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기자 마자 파천이 정쟁거리가 됐다. 당시 조정을 장악한 동인들은 남인과 북인으로 가지를 친 상태. 남인들이 파천에 앞장섰다며 북인 이산해를 탄핵했다. 선조는 이산해와 함께 남인 영수인 유성룡을 파직한 뒤, 서인 정철을 불러들인다. 왜란을 예고한 황윤길이 속한 서인의 영수를 복권함으로써, 왜란은 없다고 단언한 김성일이 속한 동인들을 문책한 것이다.하지만 송강 정철은 병사하자 마자 모든 관직을 빼앗기고, 전쟁을 지휘하던 유성룡 등 동인들이 다시 중용된다. 그런 유성룡도 명나라 사신직을 거부하다가 북인들에 의해 영의정에서 쫓겨난다. 왜적 대신 내부를 향한 문신들의 무의미한 설전(舌戰)이 한창일 때, 야전에선 이순신이 백의종군에 시달리고 원균은 조선함대를 잃었다. 이순신 배 12척의 배경은 참담하다. 전쟁후 동인계열 북인이 정권을 장악하지만 이들도 곧 대북과 소북으로 갈라졌다.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의 일식집 사케 논란이 시끄럽다. 이 대표의 사케 반주에 대한 보수 야당들의 비난은 지나치다. 음악과 한식으로 무장한 한류의 세계적 확산에서 보듯이 글로벌 식문화에 국경이 사라진지 오래다. 일식도 우리 식문화의 일부다. 여당도 책임이 있다. 여당과 청와대는 한일 경제전쟁 과정에서 적극적인 반일 의지를 강조해왔다. 조국 전 민정수석은 '죽창가'를 언급하며 '이적과 애국', '친일파'의 기준을 제시했다. 야당의 사케 공세에 조 전 수석은 '전국의 일식집이 다 망하기 바라느냐'고 일갈했지만, 일식집에서 사케, 아니 국산 청주 한잔 하기 힘든 분위기를 누가 만들었는지 되돌아 볼 일이다.왜군에 쫓겨 나라가 절단난 마당에 왕의 피란 책임을 따지는 시비나, 여당 대표의 일식집 오찬 반주가 사케인지 국산 청주인지 가리는 시비가 모두 졸렬하고 처참하다. 정쟁이 전쟁을 압도하는 비현실적인 16세기의 구태가 21세기에 재연되니 처연하다. 일본 경제침략에 맞설 이 시대의 이순신은 어디서 백의종군 중일지 궁금하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8-05 윤인수

[참성단]'나는 고발한다!'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가 대립하던 1894년 10월의 프랑스. 파리 주재 독일대사관 우편함에서 군사 기밀이 담긴 편지가 발견됐다. 프랑스 육군 정보부는 포병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간첩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드레퓌스가 "나는 결백하다"고 항변했지만, 비공개 군법회의는 그에게 종신형을 내린다. 단지 그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판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가톨릭과 개신교, 진보와 보수를 둘로 가르며 프랑스 지성계를 들끓게 한 '드레퓌스'사건이다.1898년 1월 13일 소설가 에밀 졸라는 클레망소가 편집장으로 있던 '로로르'지에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해 드레퓌스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군부의 비도덕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졸라는 "드레퓌스는 정의롭지 못한 힘에 자유를 빼앗긴 평범한 시민이다. 전 프랑스 앞에서, 전 세계 앞에서 나는 그가 무죄라고 맹세한다. 내가 40년간 쓴 글로 얻은 권위와 명성을 걸겠다"고 주장했다. 이 글은 앙가주망(Engagement) 즉 '지식인의 사회참여'의 전형으로 프랑스 지성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글로 많은 지식인이 시국선언에 동참했고 드레퓌스는 무죄로 풀려났다.훗날 앙가주망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한 건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였다. 그는 1945년 잡지 '현대' 창간사에서 "지식인을 대표하는 작가는 어떤 수단을 써도 시대에서 도피할 수 없다"며 인간해방의 기치 아래 지식인의 사회 참여를 적극적으로 독려했다. 10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알제리 전쟁 때, 프랑스군이 알제리인 포로들을 모질게 고문하자 프랑스 지식인들이 거세게 반발한 것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서울대학교 교수로 복직하면서 '폴리페서(정치교수)'라는 비판이 일자 "앙가주망은 지식인과 학자의 도덕적 의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에 여론은 싸늘하다. '내가 하면 앙가주망, 남이 하면 폴리페서'라는 조롱 섞인 말도 나온다. 곧 있을 개각에서 법무부 장관 후보로 거론되고, 조금 전까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조 전 수석의 앙가주망을 앞세운 자기변명은 어딘지 모르게 궁색하기 짝이 없다. '사이비 애국자들에게 항거하고 군부의 부당성을 공격하며 진실과 정의를 사랑했던 도덕주의자' 에밀 졸라가 조 전 수석의 말을 들었다면 뭐라 할까. '권력에 대한 지식인의 비판과 감시 활동'이란 앙가주망의 뜻을 잘못 알고 있다고 웃었을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8-04 이영재

[참성단]새우깡

"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 /아이 손 어른 손 자꾸만 손이 가~." 국민 스낵 농심 새우깡의 CM송이다. 1971년 출시한 이래 새우깡만큼 전 세대로부터 사랑받는 스낵도 드물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00년 동안 장수할 식품으로 새우깡을 열 손가락 안에 꼽는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짭짤하고 고소한 맛, 씹을 때 '바삭'거리는 그 독특한 소리로 새우깡은 외국에서도 인기가 높아 현재 7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다.처음엔 서해새우, 새우뻥, 새우튀밥 등의 이름이 거론됐다고 한다. 그러던 중 오너의 막내딸이 아리랑 노래를 부르면서 '아리랑'을 '아리깡'으로 잘못 발음한 데서 힌트를 얻어 새우깡이 됐다는 건 유명한 일화다. 생산 첫해엔 20만 박스가 판매됐다. 이듬해부터 주문이 몰려 20배가 넘는 425만 박스가 팔렸다. 기름이 아닌 뜨거운 소금의 열로 튀기고, 무엇보다 국내산 생새우를 쓴 게 '대박'의 원인이었다. 새우깡 한 봉지에는 5~7cm 크기의 새우가 3~5마리 들어간다. 군산 등 서해안에서 잡은 꽃새우가 주로 사용된다. 농심은 이를 위해 연간 400t가량의 꽃새우를 구매해 왔다. 이는 군산 꽃새우 생산량의 70% 규모다. 하지만 농심은 3년 전부터 국내산과 미국산을 반반씩 사용하고 있다. 국산새우에 문제가 발견돼서다. 농심은 내년부터 새우깡의 원료를 미국산으로 전량 바꾸기로 했다. 폐플라스틱 등이 섞인 새우로는 더는 식품 제조가 부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군산 어민들이 크게 반발했다. 정치권까지 가세해 "농심이 값싼 외국산으로 주원료를 대체하려고 한다"며 문제를 제기하며 논란이 커졌다. 반면 국민들 사이에선 "군산 새우를 다시 쓴다 한들 불안해서 어떻게 새우깡을 먹느냐"며 반발하고 있다. 이에 정부가 서해 꽃새우의 안전성에 대한 전면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새우깡 논란이 서해 수산물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로 확산했기 때문이다. 바다가 플라스틱 조각으로 몸살을 앓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매년 평균 800만t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고, 지름 5㎜ 이하의 미세 플라스틱 입자 50조 개 이상이 지금도 바다에 떠다니고 있다. 지난해엔 국내 특정 지역 굴과 바지락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 식탁에 오르는 수산물에 이어, 이제 새우깡으로 번진 플라스틱 논란은 해양오염의 주범인 우리 인간에게 신이 내린 준엄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8-01 이영재

[참성단]축구 자본주의와 No-Show

'축구 자본주의'의 저자 '스테판 지만스키'는 "축구의 성장은 시장의 힘을 보여주는 가장 순수한 사례"라고 했다.이에 대한 설명을 요약해 본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수입이 증가하고, 여가 시간이 늘고, 세계화가 진행되고, 방송 기술이 발달하면서 스포츠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 여기에는 스포츠 스타의 인기가 높아진 것도 한 몫 했다. 스타플레이어도 수많은 추문을 일으키지만 은행가나 CEO, 정치인과 달리 스포츠 선수의 성적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스포츠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사람이 증가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본 건 축구다. 축구에 버금갈 만큼 세계적 주목을 받는 스포츠는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했을 때 축구는 그 돈을 잘 받기만 하면 됐다. 이 모든 일이 아무런 계획이나 준비, 규제 없이 일어났다."이렇게 갈무리를 하고 보니 한 장면이 떠오른다. '호날두 노쇼(No-Show)' 사건이 벌어진 상암월드컵경기장의 풍경이다. 호날두는 객관적 실력으로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오른 스포츠 스타다. 여성편력으로 인해 크고 작은 스캔들이 불거지기도 했지만 화려한 개인기로 전세계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다. 그를 보기 위해 국내의 수많은 축구팬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관객들이 무려 60억원을 냈는데, 주최측은 그 돈을 지만스키의 표현대로 '잘 받기만' 했다.이러한 정황을 빗대 상암에서 지만스키의 이론이 입증됐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어쨌든 지만스키가 문장 마지막에 지적했듯이 '이 모든 일이 아무런 계획이나 준비, 규제 없이' 일어나다 보니 결국 사달이 났다. 당시 경기를 관람한 관중들이 경기 주최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 소장을 인천지법에 제출한 것이다. 인천을 시작으로 앞으로 유사한 소송이 잇따를 전망이다.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로 이번 사태를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해본다. 시장경제는 수요와 공급의 원칙을 따른다. 수요(호날두가 뛰는 것을 보는 것)와 공급(호날두가 실제로 뛰는 것)이 불일치하는데도 일방적으로 수요공급 곡선을 그려 입장료만 받아 챙긴 것은 시장경제를 훼손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소송은 시장을 교란한 외국의 거대 축구자본을 향해 국내 축구팬들이 옐로카드를 꺼내 든 것에 비유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자본주의 법정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궁금하다. / 임성훈 논설위원

2019-07-31 임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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