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여론과 정권의 권위

최근 문재인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르면서 여권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문 대통령과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촛불혁명의 적자를 자처해왔다. 정권의 기원을 '혁명'에 두고 있으니, 혁명의 동력이었던 시중 여론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3일 어려운 민생경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태를 대통령 지지율 하락 이유로 꼽았다. 당 대표가 이유를 설명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임을 방증하는 대목이다.하지만 여론조사나 광장의 시위가 민심을 대변하는 지표로서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키케로는 "민중 만큼 정해지지 않은 것은 없고, 여론 만큼 애매한 것은 없고, 선거인 전체 의견 만큼 허위적인 것은 없다"고 했다. 로마 최후의 공화주의자에게도 민중, 여론, 선거민심의 실체를 정의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금권정치로 유명한 크라수스를 혐오했는데 어느날 그를 칭찬하는 대중연설을 해 대중들이 크게 호응했다. 칭찬연설의 이유가 이랬다. "나쁜 일을 한 사람을 얼마나 칭찬할 수 있는지 내 웅변실력을 시험해봤지." 로마시대 민중의 여론은 정치인들의 연설을 따라다녔다.여론과 민중은 변덕스럽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100만 대중이 3개월 동안 광화문에서 촛불을 켰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들과 "미국산 소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연예인들을 이끈 시민단체의 저항은 기세등등했다. 하지만 정부는 수입 결정을 밀어붙였다. 지금 수입육 1위인 미국산 소고기는 아무 저항 없이 절찬리에 유통중이다. 여론과 민중이 꼭 진실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노동·시민단체가 문재인 정부의 배신을 규탄한다고, 문 대통령의 배신이 확정되는 건 아니다.정권은 여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론을 감당할 권위를 상실할 때 무너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촛불대중을 설득할 권위가 없어 탄핵당했다. 키케로는 "권력은 시민에게 있고 권위는 원로원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은 떨어지는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을 걱정하기에 앞서 당·정·청의 권위가 무너지는 걸 걱정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부작용,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관 비위 사태는 심각하다. 권위를 잃으면 여론과 민중의 변덕을 설득할 수 없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2-03 윤인수

[참성단]'국가 부도의 날'

1997년 IMF 위기는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경제위기 때마다 IMF를 거론하는 것은 그만큼 두렵고 무섭기 때문이다. 그래도 떠올려야 하는 건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벼락처럼 온 게 아니었다. 수많은 전조가 있었다. 연초부터 모든 통계는 비관적이었다. 1월 한보가 쓰러졌다. 금융권이 얼어붙으며 대출 회수가 시작되면서 3월 삼미, 4월 진로, 5월 삼립식품, 6월 한신공영이 잇따라 무너졌다. 7월 태국에서 외환위기가 시작되면서 기아차가 부도를 맞자 국제신용기관 무디스와 S&P가 신용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정부의 무능은 외국 자본의 불신을 초래했다. 우선 외국 자본이 빠져나갔다. 금융기관들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환율은 급등하고 외화보유액이 바닥났다. 중소기업들도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공포였다. 기업에서 쫓겨난 가장들이 여기저기서 목숨을 끊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노숙자'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얼마 전까지 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하다고 큰소리쳤던 경제 고위관리들이나 대통령까지 그 누구도 사태의 책임을 지지 않았다. 21년 전 오늘 1997년 12월 3일은 임창열 경제 부총리와 캉드쉬 IMF 총재가 긴급 자금 양해각서를 체결한 날이다. 이때 IMF에서 195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 우리는 간신히 국가부도 사태를 면했다. 최근 개봉한 '국가부도의 날'은 당시 우리의 긴박했던 경제 위기를 그린 영화다. 최근 4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태국은 IMF 외환위기에 이른 과정의 잘잘못을 가린 '누쿨보고서'를 냈다. 우리는 그 흔한 백서(白書)도 만들지 않았다. 뒤늦게 제작된 영화가 백서를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재미로 보기엔 아픈 대목이 너무도 많다. 1997년 경제 총수였던 강경식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2010년 출간한 회고록 '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에서 '가장 후회스러웠던 일'로 1997년 자금난에 빠진 기아자동차를 즉시 부도 처리하지 못했던 점을 꼽았다. 그러면서 "국가 위기 관리를 왜 늘 정부가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장에서 결정할 일은 시장에 맡겨야지,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지금 사사건건 시장에 개입하는 문재인 정부가 뼈저리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2-02 이영재

[참성단]무너진 제복의 권위

지난 13일 멕시코의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의 첫 재판이 뉴욕 브루클린 연방법원에서 열렸다. '엘 차포'라는 별명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마약왕인 구스만은 200t이 넘는 마약밀매, 돈세탁, 살인교사, 불법 무기 소지 등 17건의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재판에서 구스만은 "전·현직 대통령에게 수억 달러를 줬다"고 진술했다. '세기의 재판'이 끝난 3일 후 넷플릭스는 멕시코 마약카르텔의 변천을 다룬 '나르코스: 멕시코'를 공개했다. 이 드라마는 왜 멕시코가 마약 천국이 됐는지, 멕시코 공권력이 마약 밀매꾼들에게 왜 그렇게 무력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멕시코는 나라 전체가 마약 카르텔의 범죄로 큰 혼란을 겪는 중이다. 이 지경이 된 건 부패한 정부 관리와 경찰이 잔악한 갱단과 결탁했기 때문이다. 정부관리는 뭉칫돈을 받고, 경찰은 순간의 달콤함에 현혹된 마약을 운반해주고 그 대가로 푼돈을 손에 쥔다. 멕시코 국민들은 경찰을 믿지 않는다. "멕시코 경찰 제복이 피와 코카인 가루에 물들어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경찰 제복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마약산업이 번창했다. 우리 경찰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확실히 변했다. 아마도 검찰과 경찰 간의 수사권 조정에 대비해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조성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상당수 국민도 경찰의 수사권독립에 우호적인 편이다. 그러나 경찰이 보는 앞에서 노조원들에게 무참하게 폭행당한 유성기업 상무 사건은 경찰에 수사권을 넘겨줘도 되는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만든다. 기업 측과 노조 측만 바뀌었을 뿐 과거 늘 권력 편에 선 '진짜' 경찰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다. 사건이 터진 지 3일이 지난 어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사과했다. 경찰도 당시 대응이 적절했는지 감사에 착수했다. 그럼에도 장관과 경찰청장이 유성기업을 찾아가 사과하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폭행이 벌어지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번 사건은 경찰이 민노총 앞에서 무력함을 보여주며 스스로 제복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경찰 제복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때 그 가치가 빛난다. 제복의 강건함이 우리 사회를 안정시킨다. 위대한 공권력은 제복의 권위에서 나온다. 멕시코가 마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제복의 권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제복의 권위는 국민이 주는 게 아니다. 경찰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29 이영재

[참성단]'금수저'를 향한 동경과 경멸

국세청은 28일 미성년 자녀들에게 금수저를 물려준 변칙증여자 225명을 세금 탈루혐의로 조사한다고 밝혔다. 한 치과의사는 미성년 자녀를 부동산임대업자로 등록한 뒤 상가건물을 증여했단다. 아파트 2채를 4억원에 취득한 만 4세 유치원생과 아파트 2채를 11억원에 취득한 12살 초등학생도 있다. 비상장 주식을 아버지나 할아버지에게 사들여 엄청난 상장 차익을 챙긴 미성년자들도 조사대상이다.같은 날 코오롱그룹 이웅열 회장의 금수저 발언도 주목을 받았다. 그는 회장직 퇴임을 선언하면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덕분에 특별하게 살아왔지만 그만큼 책임감의 무게도 느꼈다"고 밝혔다.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 이가 다 금이 간 듯한데 이제 그 특권도 책임감도 다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그의 아들이 그룹 승계를 위해 경영수업중이니, 금수저 특권 포기 선언이 맞나 싶다. 그래도 '금수저'의 책임감을 강조한 재벌 회장은 낯설어 신선하다.소위 '금수저'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동경과 경멸 사이를 오간다. 금수저를 향한 동경은 본능적이다. 권력이 작동하는 모든 사회에서 대중은 금수저 계층이 되려 경쟁한다.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은 태자당이, 북한은 백두혈통이 금수저 사다리의 정점이다. 그 사다리에 한 발이라도 걸치려는 경쟁은 치열할 것이다. 그러니 개인의 능력에 따른 계층이동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체제에서 금수저를 향한 동경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장려돼야 한다. 그래야 제2의 정주영, 스티브 잡스가 나올 수 있다.금수저를 향한 경멸의 근거는 그들이 누리는 부와 권력이 정당하지 않다는 인식이다. 재벌의 경영승계가 비난받는 이유는 불법·탈법·편법적이라서다. 래퍼 마이크로닷은 부모의 재산을 솔직히 공개하는 바람에 위기를 자초했다. 부모의 사기 전력이 드러나면서 금수저 스웩(swag)은 힘이 빠졌다. 고용세습을 의심받는 노조권력은 청년들의 비난에 직면했다.금수저 논란이 계층 대립을 격화시키는 현상이 걱정이다. 경멸의 근거를 제거해야 한다. 사회는 세습 과정의 불법을 발본색원해 금수저를 정화하고, 금수저들은 도덕성으로 사회적 연대를 회복해야 한다. 금수저가 존중받고 금수저를 향한 다양한 기회가 보장된 사회야말로 건강한 사회 아닌가. /윤인수 논설위원

2018-11-28 윤인수

[참성단]경인신춘문예

'성산포 시인'으로 잘 알려진 이생진이 지난주 38번째 시집 '무연고'를 출간했다. 그는 올해로 90세다. 노시인의 기사를 읽는 중 이 대목에 눈길이 갔다. "나도 시인이 되려고 발버둥 치던 시절이 있었다." 발버둥을 칠 정도로 하고 싶었던 시인(詩人). 하긴 우리도 한때 시인이 되고 싶은 시절이 있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왠지 가슴이 뜨거워지고, 밤잠을 설치며 무언가를 끄적였던 그런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지금도 11월이 오면 그렇게 밤을 꼬박 지새우는 사람들이 있다. 신춘문예 지망생들이다. 신춘문예 역사는 백 년이 넘었다. 1914년 12월 10일 매일신보 1면을 장식한 '신년문예모집'이 그 시작이다. 1919년 매일신보가 '신년현상공모'를 냈고, 1924년 동아일보, 이 신문의 주필 겸 편집국장이던 벽초 홍명희가 단편소설, 신시, 가극, 동요, 가정소설, 동화 등 6개 부문에 걸쳐 '현상문예 대모집'이란 이름으로 작품을 공모했다. 이때 아동 문학가 윤석중(尹石重)과 한정동(韓晶東)이 등용 1호의 영예를 안았다. 그 이듬해부터 일간지들이 앞다퉈 신춘문예를 공모하기 시작했다. 문단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지만, 일간지의 신춘문예는 여전히 가장 권위 있는 등용문으로 인식되고 있다. 찬바람이 불자 약속이나 한 듯 신문마다 신춘문예 공고가 게재되고 있다. 경인일보도 '기해년, 문단의 샛별을 찾습니다'는 제목 아래 '2019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공모' 사고가 나갔다. 경인 신춘문예는 경인지역 언론사 중 유일한 작가 등용문이다. 1987년 첫 당선자(소설·시·시조)를 배출한 이래 어느덧 서른 해를 넘겼다. 어려움 속에서도 단 한해도 거르지 않고 신춘문예가 지속된 것은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경인 신춘문예로 배출된 작가들이 지역 문단은 물론 중앙 문단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물론 신춘문예를 통해야만 큰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신문이나 문예지, 기성작가의 추천을 받지 않고서도 훌륭한 작품을 남긴 작가도 적지 않다. 지적 문체와 듬직한 역사의식을 가졌던 이병주(李炳注)가 그런 경우다. 하지만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수많은 작가들은 한국 문단의 기둥이 됐고, 역사가 됐다. 신춘문예를 통해 역량 있는 신인들의 출현을 기대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경인일보 신춘문예 공모에 신선한 작가 지망생들이 많이 응모해 한국 문단에 활력을 불어넣길 기대해 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27 이영재

[참성단]국민투표

지난 주말 발표된 두 나라의 국민투표 결과가 화제다. 대만은 지난 24일 실시된 탈원전 폐지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쳤다. 투표자의 59.49%가 정부의 탈원전 정책 폐지에 찬성했다. 이로써 2025년까지 원전을 완전히 폐쇄한다는 차이잉원 총통의 '원전 없는 나라' 공약은 없던 일이 됐다. 지난해 발생한 국가적 블랙아웃(대정전) 사태가 총통의 꿈을 꺾었다. 그 불똥이 문재인 정부에 튀었다. 정부는 탈원전 정책의 롤모델을 잃었고, 탈원전 반대 세력은 뜻밖의 호재에 입이 열렸다.25일 스위스 국민투표에서는 소의 뿔을 뽑지 않고 그대로 기르는 농가에 보조금을 주자는 '가축 존엄성 유지' 법안이 거부됐다. 국제법보다 스위스법을 우선하자는 관련 법안도 마찬가지. 반면에 보험사기 의심 환자의 사생활을 감시하자는 법안은 승인됐다. 소 뿔 제거·국제법과 국내법의 우선순위·나이롱 환자 감시라는 이질적이고 경중이 달라 보이는 안건을 국민투표에서 똑같은 무게로 다루는 스위스 직접민주주의의 정수(精髓), 이를 견학하는 우리의 심경은 착잡하다.대만과 스위스는 헌법과 법률로 국민투표 발의 조건을 쉽게 해 직접민주주의를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대만은 총통선거 유권자수의 0.01%의 서명을 얻은 뒤 다시 선거 유권자수의 1.5%의 서명을 받은 안건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 이번 국민투표에는 10개의 안건이 올랐다. 스위스는 헌법개정 제안은 유권자 10만명, 법안은 유권자 5만명의 요구로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올해에만 4번의 국민투표로 10개의 법안중 4건을 승인했다. 국민에게 300만원의 기본소득을 보장하겠다는 기본소득법이 국민투표로 거부된 건 2016년의 일이다.물론 직접민주주의가 만능은 아니다. 스위스와 대만의 정치는 천양지차고, 대부분의 선진국이 대의제도로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나라마다 정치를 구성하는 전통과 환경이 달라서다. 하지만 입만 열면 국민 여론을 앞세우는 한국정치에서 국민투표 발의권을 대통령에게만 한정하고 있으니 생각해 볼 문제다. 대신 국민과 소통하는 직접민주주의를 한답시고 청와대 수석부터 주요 정치인들이 SNS 정치에 열을 올리지만 아전인수에 취한 패거리의 나르시시즘일 뿐이다. 국민의사 수렴제도만 놓고 보면 이제 대만이 부러울 지경에 이르렀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1-26 윤인수

[참성단]이간계(離間計)

춘추시대 노나라 대부(大夫) 변장자(卞莊子)는 여관에서 일하는 아이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 "호랑이 두 마리가 소를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소고기를 먹어 보고 맛이 있으면 반드시 다툴 것이고, 다투게 되면 반드시 싸울 것이며, 싸우게 되면 큰놈은 다치고 작은놈은 죽을 것이니, 다친 놈을 찌르면 죽은 놈까지 더해 호랑이 두 마리를 단번에 잡았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실력이 비슷한 둘을 서로 싸우게 해 둘 다 얻는다는 변장자자호(卞莊子刺虎), 이호경식계(二虎競食計)는 여기서 유래됐다. 정치판에는 상대들의 갈등을 조장해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계략들이 많다. 이이제이(以夷制夷)도 그렇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친다는 이이제이는 이쪽 적을 끌어들여 저쪽 적을 공격하게 하는 분열책이다. '남의 칼(힘)을 빌려 사람을 죽인다'는 차도살인계(借刀殺人計)도 모두 상대끼리 의심하게 하여 자중지란을 유발하는 고도의 책략이다. 방휼상쟁(蚌鷸相爭), 어부지리(漁父之利), 일거양득(一擧兩得)도 마찬가지다. 이 모두 이간계(離間計)의 범주에 포함된다.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무(孫武)도 '말 몇 마디로 상대를 갈라놓는 이간계가 적을 이기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했다.이재명 경기지사는 경선을 앞두고 문심(文心)을 들고 나온 전해철 의원과 갈등을 빚던 지난 1월 15일, 성남시장 신년기자 간담회에서 "전통적으로 전략 중에서 가장 돈 안들고 효과적인 전략이 '이간계' "라며 "내부분열을 야기하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다. 이간계 전략에 놀아나지 않는 게 중요하다. 하나의 팀으로 서로를 격려하고 작은 차이를 인정하고 더 큰 목표를 향해 협력해 나가는 그 중심에 나도 있다. 우리는 하나의 팀"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이 지사가 지난 25일 검찰 출석에 앞서 또 다시 '이간계'를 들고 나왔다. 페이스북에 이른바 '혜경궁 김씨' 사건의 본질을 '이간계'라고 지적한 것이다. 이 지사는 "검찰제출 의견서를 왜곡해 유출하고 언론플레이하며 이간질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이간계를 주도하는 사람들이며 이들을 밝혀내는 것이 '트위터 계정주' 사건의 본질이자 핵심"이라고 밝혔다. '이간계'가 뛰어난 지략이라 해도 이는 정치의 올바른 도(道)가 아니다. 이간계를 잘못 쓰면 패착의 길로 가는 경우가 더 많다. 이번 사태를 경기도민은 냉정한 눈으로 지켜 보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25 이영재

[참성단]해안 철책선 철거

2002년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 제작이 발표되자 영화계가 크게 술렁거렸다. 주연을 한국 최고의 배우 장동건이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저예산 영화에 장동건이 출연한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김기덕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내가 자청했다.개런티는 중요하지 않다"는 장동건의 말이 더 화제였다. '해안선'은 부산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흥행은 참패했다. 한국 5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한국인의 알 수 없는 영화 취향'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오히려 외국에서 이 영화를 주목했다. 박찬욱의 '공동경비구역 JSA'보다 더 관심을 끌었다. 간첩을 잡으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해안 초병이 실수로 민간인을 사살한 뒤 파멸해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광기와 영혼의 파괴, 나아가 남북 분단 아픔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장동건의 광기 연기는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에서 말론브란도가 보여준 광기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장동건이 이렇게 연기를 잘했었나"라 할 정도로 '메소드 연기'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김기덕이 '해안선'에서 주목한 건 '철책선'이다. 철책선은 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남북 분단의 상징이었다. 그동안 많이 철거됐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해안가 곳곳에는 '이곳은 군사작전 구역이니 출입을 엄금함'이라고 쓰인 철책선과 경고판이 늘어서 있다. 해안은 아름다운 피서지가 아니라 출입금지 팻말과 철책선 둘러쳐진 분단의 현장이다. 영화는 철책선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극명하게 그려냈다. 국방부가 2021년까지 경기도 해안과 강에 설치된 철책선 107㎞, 인천 도심 해안가를 둘러싸고 있는 철책선 44㎞를 철거한다고 발표했다. '긴 해안선과 연안자원'을 한국 발전의 원동력으로 꼽고 어장 및 수자원 관리에 주력할 것을 주문한 건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 미국 인디애나대 교수였다. 철책선 철거로 해안선이 우리 품으로 돌아온다면 지역경제 발전에 더할 나위 없는 큰 원동력이 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수년 전부터 '바다를 시민의 품에!'라는 기치를 내걸고 경인일보가 인천 녹색연합과 인천의 내륙 해안선을 탐사하는 '해안선 종주 프로젝트'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될 것이다. 다만 서해안에는 인천공항 평택 미군기지 등 안보시설이 많다. 휴전선 내 GP 철거에 이어 해안선 철책 제거로 혹시 '안보는 괜찮은가' 하는 걱정의 시선을 무시해선 안 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22 이영재

[참성단]DJ와 노무현의 현실감각

문재인 정부가 노동계의 반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늘 청와대에서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출범시키지만, 민주노총은 어제 총파업으로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민노총은 이제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민노총은 고집불통.(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라고 몰아세운다. 하지만 서운하다는 표시이지, 척을 지겠다는 의지는 아니다. 민노총이 오히려 당당하다. '우리 때문에 집권한 것 아니냐'는 채권자의 위세가 대단하다.김대중 전 대통령(DJ)은 생전에 정치지도자의 덕목으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강조했다. 현실을 외면한 정치철학의 공허함과, 철학이 없는 현실감각의 천박함을 동시에 경계한 것이다. 그는 공기업 민영화와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IMF위기를 단숨에 돌파했다. 노동자의 실직과 저임금을 감수한 용단이었다. 이지스함 건조를 시작했고 크루즈 미사일 개발에 착수하는 한편 대북 미사일 사거리를 연장했다. 재건된 경제와 강화된 안보를 바탕으로 햇볕정책을 밀어붙이고 임기말에 평양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도 그의 현실감각을 보여주는 사례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토론에 의지한 민주주의 통치론과 순결한 도덕성을 리더십의 근간으로 삼았다. 일선 검사들과의 맞짱 토론을 감수할 정도로 여론과 직접 맞섰다. 자신이 틀렸다면 입장을 바꾸는 도덕성의 소유자였다. 대통령 선거 공약과 달리 철도 민영화에 나서고, 기간제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을 처리했다. 민노총과의 약속과 국가경제를 위한 노동정책을 견준 뒤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DJ정부의 햇볕정책만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문서로 구체화했다. DJ의 리더십은 노무현 시대에 이어졌다.문재인 정부의 서생적 문제의식은 선명하다.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을 구분하는 문제의식은 비판의 수용을 거부한다. 소득주도성장 집착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문제의식 밖의 현실은 차갑고 거칠다. 이·영·자(20대·영남·자영업자)가 등 돌리고, 한미동맹은 흔들리며, 한일관계는 최악이다. 정부와 여당이 이쯤에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작동한 상인적 현실감각을 복기해 보길 권한다. 민노총과의 새로운 관계설정은 문재인 정부의 상인적 현실감각을 판단할 수 있는 가늠자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1-21 윤인수

[참성단]네이밍 법안 홍수

네이밍(naming)은 '이름 짓기, 이름 붙이다'라는 뜻이다. 새로운 상품이나 회사, 그룹 등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나름 명칭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 법에도 소위 '네이밍 법안'이라고 해서 특정인의 이름을 붙인다. 내용을 알리고 법안 발의자 존재감을 부각할 수 있어 의원들 사이에선 유행이다. '김영란법'을 비롯해 '조두순법' '태완이법' '신해철법' '김광석법' '유병언법' '최진실법' 여기에 '우병우 방지법'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그러나 문제도 있다. 요즘 매일 언론을 장식하는 '박용진 3법'이 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뜻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김영란법'의 정식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고 '신해철법'은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일부 개정안'이다. 살인죄에 대한 공소 시효를 폐지한 '태완이법', 범죄수익을 은닉한 제삼자에게 숨겨놓은 재산도 추징할 수 있게 한 '유병언법' 등이 있지만 이름만으로는 법안 내용을 알아채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저 듣기 편하고 홍보 효과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발의한 사람의 이름을 붙인 법안부터 피해자 이름을 붙인 법안, 처벌 대상자 이름을 붙인 법안 그리고 쟁점이 된 인물의 이름을 붙인 법안 등 무분별하게 갖다 붙인 탓이다. 과도한 네이밍의 사용으로 법안의 기본취지가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도 그래서다.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스물한 살의 젊은이 윤창호 씨 사건을 계기로 발의된 '윤창호법'도 그런 경우다. 이 법안 역시 시간이 지나면 네이밍만으로 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게 분명하다. 차라리 이 법안을 공동발의했으나 본인이 음주 운전하다 적발돼, 코미디를 방불케 했던 국회의원의 이름을 따 '이용주법'이라고 했으면 더 이해가 쉬웠을지도 모른다. 모든 법안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네이밍 법안의 가치는 제정된 법이 얼마나 타당성과 실효성을 가지고 시행되느냐에 달려있다.네이밍을 남발하다 보면 진실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자칫 인기영합주의에 매몰될 가능성도 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네이밍의 유혹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준비 중인 법안도 수십 개다. 네이밍으로 법안의 진실성이 국민에게 전달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여론몰이나 정쟁에만 치중한 네이밍 법안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20 이영재

[참성단]백두칭송위원회

백두칭송위원회라니 거창하다. 지난 7일 결성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서울방문 환영 단체다. 지난 18일 광화문 집회로 공식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집회는 먼저 회원들이 나서 김 위원장을 칭송하는 연설회와 시낭송 등으로 구성된 '꽃물결'이라는 공연으로 구성됐다.대학생 회원들이 주도하는 연설회는 단체 명칭 그대로 김 위원장 칭송 일색이다. 그들에게 김정은은 '추진력과 대범함을 갖춘 지도자', '세계 패권국 미국을 제압한 지도자', '천리안의 소유자'이다. 이런 지도자가 성조기와 태극기 부대의 위협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서울을 방문하니 '만세' 부르며 '환영'하자는 논리다. 꽃물결 공연에서는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의 시 '백두칭송'을 낭독했다. 시는 백두산을 칭송하며 통일을 염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연사들이 백두혈통인 김정은을 칭송하는 맥락과 연결하면 백두산이 무엇을 은유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백두칭송위원회의 집회에 분노한 보수단체들은 앙앙불락이지만, 위원회의 염원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선 '칭송'이라는 단체명 부터 '지도자'니 '천리안'이니 하는 칭송의 내용이 시대착오적이고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평양의 꽃물결이 광화문에서 재현될 가능성도 낮다. 외국 국가원수 방한 때 마다 환영인파를 만들어냈던 시절을 졸업한지 한세대가 넘은 대한민국이다.법원은 2016년 황 전 부대변인의 북한 찬양·고무·선전 혐의와 이적표현물 게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한민국이 그 정도에 흔들릴 나라가 아니거니와 상식적인 국민이 넘어갈리도 없다'는 취지였다. 당시 법원의 판결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과 자신감을 보여준다. 100여명의 백두칭송위원회가 전국 순회 집회에 나서도, 우리 체제의 주역들이 이들의 비상식과 시대착오를 압도하면 된다.그래서 찜찜한 구석이 남는다. 최근 여권 인사로 부터 평양 재방문 요청을 받은 대기업들이 불편한 표정이다. '가도 되나' 싶은 표정인데 침묵으로 심경을 대신한다. 리선권 냉면발언 사태 때도 '맞다 아니다' 말도 못한 채 냉면 먹은 벙어리인양 침묵했었다. 기업인은 대한민국 체제의 주역이다. 김정은 찬양세력은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는데, 자유민주체제 주역은 정권의 권위에 끌려다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백두칭송위원회 집회를 한 줌 소동으로 치부하기도 힘들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1-19 윤인수

[참성단]仁川 떠난 힐만

트레이 힐만. 이젠 그에 대한 호칭을 SK 와이번스 '전' 감독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가 인천을 떠났으니까. 2년간의 짧은 감독 생활, 힐만은 SK 와이번스에 8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값진 선물을 안기고 떠났다. 하지만 우승 트로피만 남긴 게 아니다. 2년 동안 힐만은 인천시민과 한국 야구 팬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남겼다. 힐만과의 이별이 슬프지 않은 이유다. 힐만은 인천 팬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줬다. 오히려 우승은 덤이었을 정도다.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팬들에게 음식을 직접 나눠주기도 했고, 의리의 배우 김보성 분장으로 응원단상에 올라 팬들과 소통했다. 일부러 머리를 길러 소아암으로 고통을 받는 어린이를 위해 머리카락을 기부해 팬들을 울리기도 했다. 특히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25일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소아암으로 고생하는 어린이의 학교를 찾아가 격려했다. 그 어린이가 한국 야구 최고의 명승부로 꼽힌 PO 5차전 시구를 맡았던 김진욱 군이다.지난 16일 힐만 감독의 이임식장은 활기에 넘쳤다. '이별의 슬픔'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었다. 최항과 정의윤을 불러내 "의리! 의리! 의리!"도 외치는가 하면 선수들을 향해 "오늘부터는 동료가 아닌 우린 친구"라고 말했다. 힐만은 그런 감독이었다. 한·미·일·베네수엘라에서 감독 생활을 했던 힐만은 2년 전 SK 와이번스 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서 야구하는 것보다 선수들과 관계를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가가는 만큼, 선수들이 오는 것을 느꼈다." 힐만은 이렇게 특유의 '소통 리더십'으로 선수들과 친해졌다. 상대 선발투수를 분석해 타순을 정하는 '데이터 야구' 로 SK를 홈런 군단으로 만들었다. 포스트 시즌에서 SK는 한국프로야구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화끈한 홈런 야구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넥센과의 포스트 시즌 5차전과 한국시리즈 6차전 9회 투아웃에서 나온 최정의 동점 홈런, 13회 한동민의 결승 홈런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힐만은 겸손한 감독이었다. 외국인으론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음에도 "나는 50점이다. 우승은 내가 한 게 아니다. SK의 것이다. 구단 모든 이의 도움으로 좋은 결과가 있었다. 감독으로선 좋은 판단을 한 적도 있고, 나쁜 판단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힐만은 솔직한, 그런 감독이었다. 그가 인천을 떠났다. 벌써 그의 호쾌한 야구가 그립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18 이영재

[참성단]박두진 문학관

1992년 프랑스에서 로마 문화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도시 '베종 라 로망(Vaison la Romaine)'에 대규모 홍수가 발생해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세계 각국에서 지원이 빗발쳤다. 시는 고마움의 표시로 '자르뎅 드 뇌프 드무아젤(아홉아씨 공원)'을 만들어 세계 9개 도시로부터 시인 1명씩 추천받아 9년 동안 모두 81개의 시비를 설치키로 했다. 아시아 도시로는 처음으로 시인 추천도시로 선정된 안성시는 시인 박두진을 추천해 2001년 6월 21일 시비제막식을 가졌다. 시비 앞면에는 시인의 대표 시 '해'의 첫 구절을 한글로, 뒷면에는 불어로 새겨 넣었다. 박두진은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1939년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이들이 공동시집 '청록집'(靑鹿集)을 펴낸 것은 1946년이었다. 청록집에는 박두진의 시 12편 등 39편의 시가 실려있다. 박두진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바탕을 둔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 조화라는 시풍을 보여줬다. 청록파로서 순수미와 인간미는 물론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평화 공존을 염원했다. 자연은 청록파 시 세계의 모태이자 고향이었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암울한 현실을 외면한 채, 한가하게 자연을 노래했다고 청록파 시인을 비판하는 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박두진의 '해'는 자연만 노래한 게 아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에서 '해'는 암울한 시대에도 꺾이지 않는 시대 저항정신의 표현이다. 박두진의 시에는 어둠, 공포와 갈등의 세계를 벗어나 밝고 아름다운 삶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고 이를 초월한 희망을 노래했다. 박두진의 자연은 조지훈, 박목월의 자연과 전혀 다르다. 이상주의자였던 그는 후기 시에 가서 사회적 불의에 항거해서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시를 쓰게 된다.오늘 안성시 보개면 복평리 296에 박두진 기념관이 문을 연다. 시인 탄생 100주년이 되던 2016년 첫 삽을 뜬 문학관은 1만512 ㎡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시인의 친필원고, 시집, 유품, 수석, 글씨와 그림 등이 상설 전시된다. 우리는 문학관에서 박두진의 삶과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15 이영재

[참성단]대학수학능력시험

오늘 전국 1천190개 시험장에서 59만4천900여명의 수험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다. 오전 8시40분부터 오후 5시40분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한 8시간 동안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탐구영역, 제2외국어/한문 시험문제 풀이로 대학입학 진로가 결정된다.한국사회에서 대입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고착된 학력중심 사회구조는 대입에 목숨을 거는 교육과정을 잉태했다. 작금의 청소년 세대는 유아교육부터 시작해 초·중·고 교육과정과 사교육으로 중무장한 대입전사로 봐도 무방하다. 운동장을 버리고 교실과 학원을 전전한 지난한 수련과정이 수능시험장에서 결판난다. 성년 통과의례로는 너무나 치열한 육박전이다.자녀와 공동운명체인 학부모의 심정도 비장하다. 아이가 걷자마자 자녀의 대입 병참기지를 꾸려 온 부모들이다. 대입 병참기지 최상의 조건은 조부모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이란다. 병적인 대입 경쟁을 풍자하는 자조적 농담? 아니다. 누구나 열망하는 환상적인 조건이다. 사정이 이러니 대입수능의 여파는 국민 전체에 미친다.병적인 대입경쟁이 사회의 건강과 연대를 해칠 정도에 이르렀다는 문제의식은 이미 오래전에 확정됐다. 역대 정권 모두 이를 고친다고 대입 시험제도와 입학전형에 손대고 고쳐 온게 수십년이다. 하지만 제도를 신설하고 전형을 이리저리 꼬아대도 소용이 없다. 사교육 시장의 기민한 대응과 학부모의 호주머니는 언제나 정부의 정책을 압도했다. 최근에는 입시개혁의 근간이던 학생부 위주 수시전형마저 흔들리고 있다. 잇따른 학생부 조작사건, 숙명여고 교무부장 사건의 여파로 수능 위주 정시전형을 확대하자는 여론이 높아졌다.정부의 무능한 정책, 사교육 시장의 권위, 부모의 열렬한 후원이 만들어 낸 대입제도의 병리현상 한복판에서 오늘 미래의 동량들이 대입수능 시험지를 풀고 있다. 시험을 방해하는 일체의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그나마 여기까지 오느라 지친 수험생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특히 고사장 주변 소음, 소란은 절대 안된다. 전국의 수험생이 가진 실력을 남김없이 발휘하기 바란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1-14 윤인수

[참성단]하늘 위 주유소

최신예 전투기라 해도 원거리 공격작전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연료 보급이다. 적진을 공습하거나 공중전을 벌일 때 최소 한두 곳의 경유지에서 연료를 보급한 뒤 이동해야 한다. 우방국이 있다면 그곳의 기지를 이용하면 되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작전수행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하늘 위 주유소'라 불리는 공중급유기다. 최초의 공중 급유는 1923년 6월로 미 육군 항공단 소속 DH-4B 복엽기가 연료탱크에 호스를 장착해 비행 중인 다른 항공기에 연료를 주입하는 데 성공했다. 두 달 후에는 9차례의 공중급유 끝에 무려 37시간 비행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고속 비행하면서 기름을 주고받아야 하므로 공중 급유에는 늘 위험이 따랐다. 우주 비행 같은 고도의 기술도 필요했다. 급유 중엔 공중급유기와 전투기는 기름을 공급하는 붐(Boom)과 수유구가 붙어 있는 상태로 5분가량 비행을 해야 한다. 급유기와 전투기 사이 거리와 고도를 유지해야 하는 기술이 필요해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정작 사용되지 못했다.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50년 B-29 폭격기를 공중급유기로 개조한 KB-29M 공중급유기 80대를 전력화하면서 '항공전의 혁명'을 불러왔다. 2005년 7월, 1조4천881억원 규모의 우리 공군 공중급유기 사업 기종으로 모두 미국 보잉사가 선정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동안 우리 공군이 미군 급유기로 공중급유 훈련을 해왔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미군 급유기의 지원을 받아 연합작전을 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에어버스사가 선정됐다. 그동안 전투기를 구매할 때 내세운 '한미 동맹'이 무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북한도 공중급유기 도입 결정에 대해 '전쟁범죄 행위'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그제 우리 공군 전투기의 작전 반경을 획기적으로 늘려 줄 공중급유기 1호기가 도착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보잉사를 제치고 선정된 유럽 에어버스 D&S사의 'A330 MRTT'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 3대가 더 도입된다. 공교롭게도 공중급유기가 도착하는 날, 중동부전선 철원지역 비무장지대(DMZ)에선 굴착기를 동원한 감시초소(GP) 철거 작업이 진행됐다. 같은 날 하늘 위엔 주유소가 설치되고 지상엔 GP가 철거되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13 이영재

[참성단]방탄소년단의 역습

일본 방송사들의 방탄소년단(BTS) 방송출연 취소 사태가 국제적인 파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 TV아사이가 BTS 멤버 지민이 2년전 착용한 광복절 티셔츠를 문제삼아 예정된 방송출연을 취소한데 이어 NHK, 후지TV도 출연검토를 보류하자 세계 유력 매체들이 일제히 한일관계를 재조명하고 나선 것이다.대중음악 매체 빌보드는 "국가 간의 오랜 정치 문화 사회적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 역사를 거론했다. 미국 CNN과 영국 BBC도 일본 방송이 원자폭탄 티셔츠를 이유로 BTS의 방송출연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CNN은 '일본의 점령으로 수백만의 한국인이 고통을 겪은 사실'을, BBC는 '일제 강제징용자 배상판결 이후 냉각된 한일관계'를 상세히 보도했다. 전범국 일본의 과거가 새삼스럽게 떠오른 것이다.방탄소년단을 응원하는 팬클럽 아미(ARMY)의 방탄 활약도 대단하다. 이들은 구글 등 인터넷 검색창을 통해 'Why BTS'를 열심히 검색하고 퍼나르고 있다. 일본 방송이 BTS 출연 취소 결정 이유를 확인하는 검색어는 '왜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는가?(Why did japan invaded korea?)'라는 연관 검색어로 번지면서, 전세계 아미들이 일제의 아시아 침략사를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BTS 방송출연 금지 배후에는 일본 방송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세력이나 단체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 결정에 적나라하게 반발하고 있는 일본 정부와 극우매체 및 단체가 의심된다. 하지만 과녁 설정에 실패했다. 제2의 비틀즈로 떠오른 BTS의 글로벌 위상을 너무 쉽게 봤다.BTS에 열광하는 일본 열도의 열기는 오히려 높아졌다. 아홉번째 싱글앨범 타이틀곡인 'FAKE LOVE(페이크러브)'는 일본 오리콤 차트 1위를 질주 중이고 13일 도쿄를 시작으로 내년 2월까지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를 순회하는 돔 투어 공연은 38만장 전석이 매진됐다. 일본 주요 도시에 불어닥칠 BTS 열기는 방송도, 극우세력도 통제하기 힘들 것이다. BTS사태로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피해자 코스프레로 전범의 역사를 덮어 온 일본의 퇴행적 역사인식만 도드라졌다. 일본 방송이 벌집을 건드렸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1-12 윤인수

[참성단]슬픈 고시원

'서른일곱 개의 방이 있던 그 집, 미로 속에 놓인 방들. 계단을 타고 구불구불 들어가 이젠 더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작은 부엌이 딸린 방이 또 있던 3층 붉은 벽돌집 … 거기였다. 서른일곱 개의 방 중의 하나, 우리들의 외딴 방. 그토록 많은 방을 가진 집들이 앞뒤로 서 있었건만, 창문만 열면 전철역에서 셀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보였다.' 신경숙 이름 석 자를 세상에 각인시켰던 소설 '외딴방'에 묘사된 '벌집촌' 풍경이다. 70년대 부평과 구로동 산업단지 주변의 여공들이 살던 주거 공간으로 '벌 방' '쪽방'이라고도 불렸다. 작가 조세희가 "'난쏘공'이 시작된 곳"이라고 말한 그곳이다.동생 학비를 벌기 위해 도시로 나온 10대 누이들이 '산업역군'이라는 이름 아래 온종일 노동에 시달리다 그나마 휴식을 취하던 이런 '슬픈 공간'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급격한 도시개발로 일시에 사라진 탓이다. 대신 고시원이 그 기능을 하고 있다. 이젠 고시원은 고시 준비생이 아닌 가난한 이들이 저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하는 그들만의 공간이다. 쪽방 특유의 고립된 환경 탓에 정신건강이 악화된 채 방치되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이나 요양시설의 돌봄을 받을 수 없는 그들의 '최후 거주지'인 셈이다.'소방의 날'이었던 지난 9일 새벽,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의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졌다. 참사다. 고시원은 지어진 지 35년 된 건물. 2층에 24개, 3층에 29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였다. 이 방에서 50~70대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가 각자 고단한 일상에 시달리며 살고 있었다. 옆 방에 누가 사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곳. 고시원은 '외딴 방' 하나하나가 나름 하나의 고립된 '섬'이었던 것이다. 이번에 불이 난 고시원에 스프링클러가 없어 피해가 컸다고 하지만, 있다 한들 두 명이 동시에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복도가 좁아 비상 시 대피가 어려운 '쪽방' 같은 구조에서 효과가 있었을지도 의문이다.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고시원에 15만 가구가 살고 있다. 이들 상당수가 화재, 붕괴 등 재난에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목숨을 위협받는 '슬픈 고시원'이 아닐 수 없다. 안전의식 부재, 형식적 점검, 사후의 땜질 대응으로 늘 똑같은 참사가 반복되는 우리의 '불감증 사회'가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11 이영재

[참성단]KBS '콘서트 7080'

김대중 대통령은 KBS '동물의 왕국'의 열혈 시청자였다. 이 프로를 보기 위해 회의를 일찍 끝낸 경우도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못지 않았다.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동물의 왕국'을 자주 얘기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광팬이었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 프로를 즐겨 보는 이유를 "동물은 배신을 안 하니까요" 라고 말한 게 당시 화제가 됐다. KBS 최장수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이 첫 전파를 탄 것은 1969년이었다. BBC, NGC, NHK 등의 수입 자연 다큐멘터리 시리즈에 우리말을 더빙해 방영했다. 종영과 부활을 수없이 반복했다. 2004년 가을 개편에 '동물의 왕국'을 KBS1로 부활시키며 내세운 것이 '공영성 강화'였다. 그 후 '동물의 왕국'은 시청률은 낮지만 KBS가 공영임을 내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익한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됐다. KBS가 이번 가을 개편에 장수프로그램을 대거 폐지했다. 그나마 '동물의 왕국'은 용케 살아남았다. 하지만 2004년 시작해 중장년층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콘서트 7080', 성우 박기량의 코믹 해설이 일품이던 'VJ 특공대'도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젊은 방송'을 만든다는 게 폐지 이유였다.시청자들은 당황했다. 특히 70, 80년대 20대를 보낸 세대를 겨냥한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 '콘서트 7080' 폐지에 시청자 실망이 크다. '콘서트 7080'은 당시의 인기곡을 오리지널 가수가 직접 출연해 그 시절의 추억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던, 시청률은 낮지만 두꺼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소개되는 노래마다 우리 시대 추억이 알알이 맺혀있기 때문이다. 공개방송 표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데 진행자 배철수도 몰랐을 정도로 프로그램 폐지는 전격적이었다.올 KBS 예산은 총 1조5천152억원으로 이중 수신료수입이 6천542억원을 차지한다. 모바일로 TV를 시청하는 20대보다 시청료의 상당 부분을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부담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장년층의 유일한 위안거리 '콘서트 7080'을 폐지 시킨 KBS의 용기가 놀랍다. 월 2천500원의 KBS 수신료를 돌려 달라는 민원이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2016년 1만5천746건에서 2017년 2만246건에 이어 올 9월 말 현재 2만5천964건으로 크게 늘었다. KBS가 요즘 왜 이러는지 국민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08 이영재

[참성단]'보헤미안 랩소디' 열풍

최근 한국 영화팬들이 영상으로 완벽하게 부활한 영국 록밴드 퀸과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에게 열광하고 있다. 지난 달 말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이 미풍에서 태풍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70, 80년대 퀸의 전성기를 겪었던 장노년층은 다시보기는 물론이고 싱어롱 상영관을 찾아 떼창을 한다.영화의 미덕은 퀸의 흥망성쇠와 프레디 머큐리의 인생역정 보다는 그들의 명반, 명곡을 완벽하게 재현해낸데 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20분을 1985년 '라이브 에이드' 자선공연 장면으로 꽉 채운 엔딩장면이 압권이다. '보헤미안 랩소디' '라디오 가가' '위 윌 록 유' '위 아 더 챔피언스'까지, 한국 관객들은 영화를 완전체 퀸의 내한 라이브 공연처럼 즐기고 있다.전성기 시절 퀸은 국내에서 인기 상한가였다. 존 디콘과 로저 테일러가 1984년 방한해 잠실체육관에서 내한공연을 한다는 설이 돌았지만 실현되지 않았고, 될 수도 없었다. 당시 국내에선 보헤미안 랩소디가 금지곡이었다. '권총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가사 내용이 문제였을 것으로 추측될 뿐, 분명한 이유는 모른다. '권총'과 '발포'에 대한 당시 정권의 트라우마가 작용한 탓이려니 짐작해본다. 여하튼 퀸에게 대표곡 보헤미안 랩소디가 빠진 공연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89년 해금됐고, 2014년 퀸의 내한 공연이 성사됐다. 프레디 머큐리는 1991년 사망한 뒤였다.한국의 50, 60대는 프레디 머큐리의 퀸과 늘 함께였다. 70, 80년 대 가난했던 청춘 시절에는 청계천에서 빽판(불법복제음반)을 구해 친구들과 함께 강렬한 사운드와 프레디의 고음에 심취하며 해방감을 맛봤다. 그들이 소비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퀸의 음악은 광고와 다양한 문화현장의 배경음으로 모든 세대에게 전파됐다.우울한 시대와 경제적 전성기를 거쳐 불안한 미래를 마주한 한국의 7080세대는 시대의 우여곡절로 인해 갈라지고 찢어진 세대다. 그들이 모처럼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세대의 동질감을 확인하고 동시대의 공감각을 체험 중이다.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앞두고 "에이즈의 상징으로 소비되지 않겠다"던 프레디 머큐리는 그의 말 대로 '전설'로 부활 중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1-07 윤인수

[참성단]仁川 야구

코리안시리즈가 시작됐으나 야구 팬의 의식은 여전히 지난 2일 플레이오프 5차전에 멈춰 서 있다. 명승부를 넘어 한편의 스펙터클한 영화였던 탓이다. 평생 이런 야구를 본 적이 없었다. 야구라고 다 야구가 아니었다. 정규시즌 야구와 포스트 시즌 야구는 분명히 달랐다. 전국 TV 시청률이 무려 8.9%를 기록했다. 야구 팬이 아니어도 그날의 야구를 보았다면 채널을 돌리는데 주저했을 것이다. 연장 10회 말, SK의 공격. 첫 타자는 정규시즌에서 1군과 2군을 오갔던 베테랑 김강민. 김강민은 투 스트라이크 상태에서 4구를 받아쳐 극적인 동점 홈런을 터뜨려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을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하지만 여기까진 예고편. 이어 타석에 들어선 한동민이 때린 백구(白球)가 가을 밤하늘을 가르며 백스크린 앞에 떨어졌다. 끝내기 홈런. 환호와 탄성이 일시에 폭발했다. 지난 1994년 태평양 돌핀스가 코리안시리즈 진출을 다투는 한화전에서 연장 10회 초 김경기가 날린 홈런도 여기에 비할 수는 없었다. 그 어떤 드라마도 이렇게 극적으로 각본을 짤 수는 없었을 것이다. 누구는 그 경기에서 인천야구의 본질을 보았다고 말했다. 우리의 프로야구 역사는 짧다. 그러나 인천 야구 역사는 길다. 인천은 한국 야구의 본산이다. 5·60년대 인천은 구도(球都)였다. 부산은 비할 바가 못 됐다. 인천고와 동산고를 앞세워 최대 부흥기를 맞았다. 적수가 없었다. 야구는 인천 토박이는 말할 것도 없고 인천에 들어와 살던 실향민들에게도 정신적 위안을 주었다. 야구는 인천사람에게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고된 삶을 잊게 해주는 위안거리였다. '인천사람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었다'. 70년대 서울과 경북 부산 광주 지역 고교 야구팀이 창단되면서 선수부족으로 비록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인천 야구'는 늘 터질 날만 기다리는 거대한 휴화산이었다.인천이 술렁이고 있다. 5년 만에 체험하는 코리안시리즈 때문이다. 1차전 가을의 사나이 박정권의 불같은 타격으로 역대 최강이라는 두산을 7대3으로 격파했다. 2차전은 비록 졌지만, 적지에서의 1승은 큰 수확이다. 1승 1패를 기록하고 오늘부터 두산을 홈으로 불러들여 3연전을 펼친다. 가을야구는 실책이 승부를 가른다. 촘촘한 수비, 불같은 방망이, 민첩한 주루를 기대한다. 반드시 우승이 능사는 아니다. 우린 이미 인천 야구의 '부활'을 보았으니 말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06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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