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무인화 시대

'아마존 고'는 아마존이 운영하는 세계 최초의 무인 슈퍼마켓이다. 지난 5월 뉴욕에 12호점이 문을 열었다. 아마존 고에는 계산원은 물론 계산대도 없다. 매장 천장에 설치된 수백 개의 센서와 카메라는 누가 무엇을 사는지 지켜볼 뿐이다. 손님이 진열대에서 물건을 집어 들면 센서가 이를 자동으로 인식, 스마트폰에 미리 등록한 신용카드로 결제가 끝난다. 아마존 고는 현금을 받지 않는다. 신용카드나 은행 계좌가 없어 주로 현금을 사용하는 저소득층이나 노인, 즉 디지털 소외계층은 아마존 고를 이용할 수 없다는 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여론이 들끓자 뉴욕 매장은 현금 사용 고객을 위해 직원을 따로 뒀다. 하지만 그 자리가 오래 유지될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아마존은 아마존 고를 2021년까지 최대 3천개로 늘릴 계획이다.우리 역시 '무인(無人) 자동화'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패스트푸드점과 영화관이 무인화 기기 '키오스크'에 점령당한 지 오래고, 주유소도 셀프로 바뀌는 추세다. 대형 마트 계산대도 무인으로 바뀌고 있다. 줄 설 필요도 없이 신용카드를 꽂고 물건을 바코드 인식기에 대면 자동으로 계산이 끝난다. 고용주 입장에서 소비자가 만족하고 무엇보다 비용이 주는데 무인화를 마다할 리가 없다.무인화는 주문이나 결제를 위해 줄 서서 기다리는 불편함을 덜어주는 등 소비자에겐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하지만, 계산원들에게는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으려는 공포의 존재나 다름없다. 고속도로 통행권을 뽑을 필요도 없이 통행료가 결제되는 '스마톨링'이라는 요금 자동수납시스템으로 고속도로 요금 수납원이 해고 위기에 몰리는 것이 그런 경우다. 무인화 시대의 도래는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지만,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의 여파가 크다. 소득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무인화를 부채질한 것이다.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격'이다. 하지만 무인화 시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도 하다. 정책적으로 무인화 시대를 늦춘다고 해도 그건 잠시뿐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등으로 유통업체에 무인 자동화 시스템의 확산은 더욱 빨라질 것이며, 무인 자동화 시스템의 보편화는 결과적으로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무인화 시대가 드리우게 될 어두운 그림자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7-02 이영재

[참성단]판문점의 변화

판문점이 영화의 상상력을 압도하는 현실의 드라마로, 글로벌 뉴스의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다. 2000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대한민국 육군 이수혁(이병헌) 병장은 밤마다 군사분계선 넘어 북측 초소를 찾아 조선인민군 오경필(송강호) 중사와 호형호제하며 정을 나눈다. 하지만 절대 넘어선 안되는 선을 넘은 그들은 비극을 향해 치닫는다. 같은 얼굴, 같은 말을 쓰는 한민족 청년들은 금단의 선 앞에서 한없이 무력하다. 판문점은 그들에게 표정없는 대치를 강요할 뿐이다.그러나 이제 판문점은 남북미 정상들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고무줄 놀이 하듯 넘나들며 월경(越境) 이벤트를 벌이는 리얼리티 정치쇼 무대가 됐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1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단초가 됐다. 새소리만 들렸던 도보다리 환담은, 어떤 영화도 구현할 수 없는 미장센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6월 30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또 다시 월경 이벤트를 재현했다. 트럼프는 사상 최초로 북한 땅을 밟은 미국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지위를 얻었고, 자신의 트위터 초대에 응해 준 김 위원장에게 정중한 사의를 표했다.레이건, 오바마, 조지W부시 등 판문점을 방문했던 역대 미국 대통령은 군복 상의를 착용했다. 세계 유일의 냉전 현장에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동맹을 강조했다. 하지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장소"라고 말했던 판문점의 이미지가 변하고 있다. 북중러 동맹과 한미일 동맹 대치의 꼭지점에서, 남북미 정상의 번개회동 장소가 됐으니 그렇다. 오히려 언론들이 놀라 역사적 장면을 송출하는 방송화면이 흔들렸다.영화적 상상에 머물러 더 비극적이었던 이수혁 병장의 금지된 월경을, 대한민국 대통령에 이어 미국 대통령까지 해내는 현실은, 아버지를 따라 군사분계선을 넘었던 이방카의 말처럼 "비현실적"이다. 한국전쟁 휴전회담이 시작된 널문리 주막에서 비롯된 판문점의 역사가 휴전 66년 만에 중대한 변화의 길목에 선 듯 싶다. 그 변화가 대한민국과 한민족 전체의 축복으로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7-01 윤인수

[참성단]독수 독과의 원칙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 1957년 작. 감독은 시드니 루멧. 데뷔작이 이렇게 주목을 받기도 힘들다. 미국의 배심원제를 세밀하게 그려낸 법정영화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꼽힌다. TV 드라마로 이미 검증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심만으로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정의가 내재한 '법의 정신' 덕을 톡톡히 봤다. 이는 당시 미국의 '시대 정신'이기도 했다. 증거보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한 소년을 살인자로 몰아가는 11명의 배심원 사이에서 유일하게 무죄 가능성을 버리지 않은 8번 배심원을 맡아 마침내 전원 무죄 평결로 이끌어 낸 헨리 폰다의 연기가 일품이다. 지난 27일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군사기밀보호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A 씨 등 6명에 대해 항고심에서 "수사 혐의와 무관한 컴퓨터 저장장치, 서류철까지 전부 압수하여 가져간 다음 장기 보관하면서 이를 활용하여 별건 수사에 활용하는 경우 해당 증거들은 물론, 그 증거들에 기초하여 수집된 2차 증거는 모두 위법수집 증거로 증거능력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수사 기관의 관행이 된 '별건 수사'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법원이 선언한 셈이다.독수독과(毒樹毒果)의 원칙이란 게 있다. 독이 든 나무에서 열린 열매 역시 독이 있다는 것으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증거로서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법에 이 이론이 도입된 것은 2007년으로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위법수집 증거능력 배제원칙을 명문화 했다. 하지만 우리의 수사기관은 그동안 독이 들어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원칙은 외면한 채 과실을 따 먹기에만 급급해 왔다. '별건(別件) 수사'가 그것이다. 별건 수사는 본래 수사 대상이 아닌 다른 사건을 조사함으로써 피의자를 정신적으로 압박해 범죄혐의를 얻어내는 수법이지만, 검찰권 남용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특히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 사건 조사에 자주 이용된다. 취임하는 검찰총장마다 별건 수사 관행 등에 대해 늘 개선 의지를 밝힌다. 하지만 이 '지독한' 수사 관행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수사를 받는 도중 극단적인 선택을 한 몇몇 인사가 '별건 수사'로 극심한 심적 고통을 느꼈을 것이라고 많은 이들이 추정하고 있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단호하게 배제되어야 한다. 이제라도 별건 수사가 사라져 '법의 정신'이 꼭 지켜지길 기대해 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30 이영재

[참성단]쿠르디, 소하예트, 발레리아

2017년 1월 생후 16개월 된 남자아이가 진흙탕에 얼굴을 묻고 숨진 채 발견됐다. 무차별적으로 살육을 자행하는 미얀마 정부군을 피해 방글라데시로 향하는 난민 대열에 합류했다가 보트 전복으로 사망한 로힝야족 아이였다. 시인 서해성은 '슬픈 사진' 한 장이 준 충격을 이렇게 시에 담았다. '미얀마 해변에서 로힝야족 소년은 엎드려 죽었다./ 터키 바닷가에 쓰러진 아일란 쿠르디처럼./쫓겨가다 죽지 않았으면 아무도 몰랐을 이름/무함마드 소하예트./이름만으로도 무슬림인/썰물에 드러난 16개월을 산 세상./로힝야 로힝야/무덤이 없다.' ( '로힝야 소년을 위한 무덤'중에서) 사진 한 장이 전하는 메시지는 강렬하다. 간혹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2015년 9월 2일. 터키 도안통신의 닐뤼페르 데미르 기자가 찍은 사진 한 장이 전 세계를 절망에 빠뜨렸다. 터키 휴양도시 보드룸의 해변 모래에 얼굴을 박고 숨진 채로 발견된 사진 속 주인공은 시리아 국적의 세 살배기 남자아이 아일란 쿠르디. 그의 가족 4명은 에게 해를 가로질러 그리스로 가려고 고무보트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 아버지 압둘라를 제외한 전원이 변을 당했다. 쿠르디의 싸늘한 시신을 담은 사진은 시리아 난민사태의 참혹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 '사진 한 장'은 유럽의 일부 국가에 난민 수용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다.그제 멕시코 마타모로스의 리오그란데 강 변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오스카르 알베르토 마르티네스 라미레스와 그의 딸 두 살배기 발레리아의 사진 한 장이 또 전 세계를 울렸다. 지난 4월 고향 엘살바도르를 떠나온 이들 가족은 미국 망명을 위해 강을 건너려다 변을 당했다. 아빠는 딸을 물속에서 놓칠까 봐 자신의 티셔츠 안에 품었고, 딸은 마지막 순간까지 아빠의 목을 끌어안고 있어 슬픔을 더하고 있다.이들 죽음을 담은 '사진 한 장'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을 전망이다. 1천200만 명 난민을 발생시킨 시리아 내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미얀마 실권자 아웅산 수치 국가자문역은 로힝야 족에 대해 "해결책을 찾는 중"이라며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 이민 정책 역시 바뀌긴 힘들어 보인다. 시리아의 쿠르디, 로힝야의 소하예트, 엘살바도르의 발레리아가 사진 속에서 이렇게 절규하는 것 같다. "어른들! 제발 뭐라도 좀 하세요! "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27 이영재

[참성단]백범 암살범의 마지막 인터뷰

어제는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 7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백범은 1949년 6월26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던 자택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에게 암살당했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그러니까 백범 서거 47주년이 되던 1996년 6월26일, 경인일보 지면에 백범 암살범 안두희의 인터뷰가 실렸다. 당시 그는 인천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나이 80에 치매까지 겹쳐 거동도 제대로 하지 못해 누워지내던 터였다. 민족반역자로 낙인찍혀 숨어 살면서 신분노출을 극도로 꺼리던 그였다. 더구나 1992년 2월 민족정기구현회 회장인 권중희씨가 벌인 납치 사건 이후엔 아예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내 왔다.구차한 말년을 보내고 있었지만 안두희는 '애국자는 죽고, 반역자는 살아남았다'는 우리 현대사의 역설을 입증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런 안두희에 대해 인터뷰가 성사됐다는 소식에 편집국이 술렁였던 기억이 새롭다. 그는 앞서 여러 경로를 통해 국내 암살 배후세력과 미국의 사주를 암시하는 내용의 진술을 한 바 있지만 수시로 이를 뒤집기 일쑤였다. 그의 나이나 건강상태로 볼 때 그 인터뷰는 사실상 백범 암살의 진실을 밝힐 마지막 기회였다. 굳게 닫힌 입을 열게 하는 고도의 인터뷰 기술이 필요한 만큼 인터뷰는 연륜 있는 베테랑 선배가 맡았다.그러나 그는 진실을 원하는 국민들의 염원을 또다시 외면했다. 백범 암살 배후를 묻는 질문에 그는 "내가 안죽였다. 미국이 죽였다"고 말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실체적 진실에 다가서는 듯 했다. 하지만 국내 배후세력에 대해선 "나 혼자 죽였다"며 끝내 입을 다물었다. 당시 기사를 읽은 독자들은 분노와 함께 역사의 진실을 밝힐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로부터 4개월여가 지나 안두희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정의봉'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몽둥이에 맞아 숨진 것이다. 한 택시기사에 의해 안두희가 생을 마감하면서 결국 경인일보의 인터뷰는 생전 안두희의 마지막 기록이 되고 말았다.이제 암살범을 추궁하는 것도, 그에게서 증언을 기대하는 것도 먼 과거의 일이 됐지만 분명한 것은 진실을 찾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다. 23년 전 작성된 기사에는 그 당위성을 압축한 문장이 나온다. '역사의 심판에는 시효가 없다'. 역사학자 콜링우드가 말했듯 '역사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속에 살아 있는 과거'이기 때문이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06-26 임성훈

[참성단]DMZ와 美 대통령

비무장지대(DMZ)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에겐 이에 따른 긴장감을 직접 체험할 수 있어 가장 선호하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70여 년간 이어진 좌절과 고통의 공간이 인기 있는 관광지라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일반인뿐만이 아니다. 해방 후 9명의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대부분이 DMZ를 찾았다.미 대통령의 최초 방한은 전쟁 중이던 1952년 12월 2일,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중·동부전선 수도고지를 찾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였다. 그의 최전방 시찰은 이승만 대통령도 몰랐다. 둘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어 안달이 난 아이젠하워가 북진 통일하자고 강력히 주장하는 이 대통령을 만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언쟁밖에 없었을 것이다.미군을 철수하려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79년 DMZ내 미군부대에서 1박을 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3년 11월 판문점 인근 콜리어 초소를 방문, 30분간 머물렀다. 당시 분위기는 소련의 KAL기 격추, 북한의 아웅산 테러 등 최악의 상황이었다. 레이건의 방문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론이 논란이 일자 굳건한 한미동맹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은 1992년 방한 때 DMZ에서 멀지 않은 경기 동두천의 캠프 케이시를 방문했다.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1993년 방문한 클린턴 대통령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 시찰 후 "북한이 핵을 개발해 사용한다면 북한 정권은 최후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도라산역을 방문했고, 2012년 오바마 대통령은 군사분계선 미군 초소에서 가죽 재킷을 입고 쌍안경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모습을 연출했다. DMZ 위에 선 미 대통령은 그 자체만으로 굳건한 한·미관계의 상징이었다.미 45대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29, 30일 한국을 찾는다. 2년 전 방한 했을 때 기상 악화로 찾지 못한 DMZ를 방문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걱정도 있다. 역대 미국 대통령의 DMZ 방문 목적은 한·미 동맹을 강조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한·미관계는 전 같지가 않다. DMZ를 방문한 트럼프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25 이영재

[참성단]제2 윤창호법

경찰이 제2 윤창호법이 시행되는 오늘부터 두 달 동안 전국에서 음주운전 특별단속을 벌인다. 윤창호씨는 지난해 9월 25일 부산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사망한 피해자다. 그를 아꼈던 친구들이 형편없이 약한 음주운전 가해자 처벌법규와 관대한 음주단속 기준에 분노해 국민청원에 나섰다. 그 결과 음주운전 사망사고 가해자를 최대 무기징역으로 처벌토록 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개정안', 즉 윤창호법이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시행 중이다. 이어 이번에 면허정지·취소 기준을 낮추고 음주운전 처벌도 강화한 제2 윤창호법,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발효된 것이다.제2 윤창호법에 따라 앞으로 혈중알코올 농도가 0.03% 이상이면 운전면허 정지, 0.08% 이상이면 운전면허 취소 처분을 받는다. 소주 한 잔만 마셔도 면허정지 수준이라니, 입술에 술만 대도 운전대를 잡지 말아야 한다. 처벌도 징역 3년, 벌금 1천만원에서 징역 5년, 벌금 2천만원으로 껑충 뛰었다. 음주단속에 걸리면 생업 유지가 힘들고, 음주운전 인명사고는 아예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다.애주가들은 술 권하는 사회의 음주문화에 비추어 과한 처벌로 느낄지 모르나, 음주운전 사고로 인한 끔찍한 피해를 생각하면 내놓고 반발하기는 힘들다. 음주운전 사망사고는 윤씨의 경우처럼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남긴다. 반면에 그동안 가해에 대한 처벌은 피해규모에 비해 미약했다. 윤창호의 친구와 가족들이 분노한 지점이다.음주운전 사고만 놓고 보면 1·2 윤창호법으로 이제 겨우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피해 규모에 맞게 법적 형평성을 맞춘데 불과하다. 남은 문제는 의식과 문화의 영역이다. 음주와 운전을 완전히 분리시키는 시민의 각성이 중요하다. 한 두잔 정도는 음주로 여기지 않거나, 한잔 걸치고 운전대를 잡는 걸 묵인하는 걸 넘어 동승하는 취객들의 무리가 유흥가 마다 넘친다. 숙취에 찌든 채 운전대를 잡는 출근길 직장인들도 한 둘이 아닐 것이다.인천공항고속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운 채 하차했다가 사망한 여성 연예인은 부검 결과 만취상태였다고 한다. 경찰은 동승한 남편을 음주운전 방조혐의로 조사할 모양이다. 경찰이 실시하는 60일 특별음주단속 기간을 음주와 운전을 분리하는 각성의 시간으로 활용해야겠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6-24 윤인수

[참성단]요즘 프로야구

여름밤, 조명을 가르며 빨랫줄처럼 시원하게 날아가는 백구(白球). "딱" 소리와 함께 일제히 베이스를 향해 달려가는 선수들. 치어리더 손짓에 스탠드를 박차고 일어나는 관중. 여기에 치맥만 있으면, 세상이 모두 내 손안에 있는 것 같다. 야구는 자유분방한 경기장의 분위기와 확실한 게임의 룰, 즉 느슨함과 엄격함이 함께 어우러지는 중독성이 강한 스포츠다. 이를 등에 업고 KBO 리그는 한국인이 가장 즐기는 스포츠로 우뚝 섰다.오랜만에 야구장에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 텅 빈 야구장에, 수준이 마치 고등학교 야구만도 못해서다. 내야수 가랑이 사이로 공이 빠져나가고, 캐처가 투수의 볼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더 놀란 건 선수들의 태도다. 고등학교 선수들의 표정에서는 이겨야겠다는 결연한 의지라도 읽히지만, 프로 선수들의 얼굴에서 그런 표정을 찾을 수가 없다. 결정적인 에러로 점수를 내줘도 그저 '픽' 웃고 만다. 여기에 고질적인 심판의 오심과 어설픈 경기운영으로 비디오 판독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경기를 지루하게 만들었다.야구는 '투수놀음'인데 투수의 수준은 더 한심했다. '끝내기 낫아웃 폭투'가 나오는가 하면, 한 이닝에 무려 사사구 8개를 내주며 안타 없이 5점을 주는 경기도 있었다. 팀 간 전력 차가 너무 심해 대승 아니면 대패하는 경우가 많다. 큰 점수 차로 이기고 있어도 뒤집히는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다. 선수의 자질이 떨어지는 탓이다. 은퇴해야 할 선수들이 고액의 연봉을 받으며 대충대충 야구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을 대체할 새로운 선수가 없다. 선수층은 턱없이 얇은데 구단 수가 10개로 너무 많은 것이다. 우리보다 초· 중 ·고 야구팀이 훨씬 많은 일본 프로야구의 경우, 1953년 양 리그에 각 6팀씩 총 12팀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올 시즌 프로야구는 개막 364경기 만에 400만 관중을 채웠다. 경기당 평균 1만1천23명의 관중이 찾은 셈이다. 지난해 364경기 누적 관중은 442만7천419명이었다. 지난해보다 9% 넘게 줄었다. 누굴 탓할 것도 없다. KBO, 구단, 선수 모두 정신 차려야 한다. 자칫 우리 경제처럼 장기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 이러다 한방에 '훅'가는 수가 있다. 감동이 없으면 프로 스포츠가 아니다. 요즘 프로야구에는 감동이 하나도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23 이영재

[참성단]2009년생 오만원

돈은 돌고 돌아야 한다고 해서 '돈'이다. 돌지 않으면 돈이 아니다. 전 세계 지폐 중 가장 비싼 500유로화(약 68만원)는 돈이지만 돈 대접을 받지 못한다. 너무 고액권이라 돌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사람도 500유로를 직접 본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500유로에 '빈 라덴'이란 별명이 붙었다. 여행 중 500유로짜리를 건넸다가는 눈총을 받기 일쑤다. 앞뒤를 꼼꼼히 살펴보거나 빛에 비춰보기도 한다. 아예 받지 않는 상점도 꽤 많다. 500유로는 주로 테러 및 범죄은닉 자금 등으로 이용됐다. 올 초 유럽중앙은행이 500유로 발행을 중단한 것도 그런 이유다. 이처럼 고액권은 거래 수단보다는 가치 저장 성격이 강하다. 시중에 유통되는 것보다 금고로 들어가는 게 더 많다는 의미다. 경제 규모가 클수록 고액권 비중이 높다. 통화 확대 시 고액권이 많을수록 화폐 유통 속도가 느려져 물가 부담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우리나라 최고액권 5만원이 23일이면 태어난지 꼭 10년이 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유통 중인 5만원권은 98조2천억원으로 금액 기준으로 전체 은행권(지폐)의 84.6%를 차지했다. 시중에 유통되는 지폐 10장 중 4장이 5만원권이다. 하지만 환수율은 여전히 낮다. 5만원권 환수율은 2010년 41.4%에서 2014년 25.8%로 낮아졌다가 2015년엔 40.1%로, 지난해 67%로 높아졌지만, 1만원권(107%), 5천원권(97%), 1천원권(95%) 대비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런 탓에 5만원권이 지하경제로 흘러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5억원을 1만원권으로 가득 채우려면 사과 상자가 필요했지만, 5만원권은 007가방 하나면 충분하게 됐으니 수뢰의 편의성(?)을 높였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실제로 각종 뇌물수수나 비자금 조성 등 부정부패 사건이 드러날 때 5만원권을 가방이나 쇼핑백 등에 담아 전달했다는 수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이런 우려 때문에 발행을 앞두고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2006년 국회에서 발행촉구 결의안이 의결되고서도 무려 세 해를 넘기고야 빛을 보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듯 이제 5만원권의 입지도 크게 바뀌었다. 경조사비용 인상의 '주범'이란 소리에도 불구하고 2009년생 5만원권은 1973년생 1만원권을 누르고 우리 일상생활에서 가장 사랑받는 돈의 위치를 굳건히 하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20 이영재

[참성단]요트, 그리고 낚시

2011년 6월 인천북항 관공선 부두에서 세일링요트 카트리나호가 돛을 올렸다. 이 요트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있었다. 바로 요트 항로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카트리나호는 한국수상레저협회가 개최한 '제1회 한반도연안 요트릴레이투어'에 나선 첫 요트였다.그렇다면 이 요트가 출항할 때, 요란하지는 않더라도 형식상의 출항행사라도 있었을 법한데 부두는 썰렁하기 그지 없었다. 인천에 일정 수심을 확보한 요트계류시설(마리나)이 없기 때문이었다. 요트가 대형 상선들이 정박해 있는 관공선 부두에서 상선들 사이를 비집고 나가는 모습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인천이 요트릴레이투어의 출발지이면서 정작 출항식은 경기도 제부도에서 열리는 웃지 못할 일이 발생했다. 지금은 왕산마리나도 생기고 여건이 많이 달라졌지만 요트 레저에 관한 한 당시 인천은 전곡항은 고사하고 제부도에도 밀리는 형국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요트를 타면서 국내 3대 도시 인천의 해양레저산업 인프라가 일개 섬에도 못 미친다는 사실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다.그리고 8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느낌을 경험한다. 일종의 기시감(旣視感)이다. 중국낚시클럽연맹 회장단이 얼마 전 방한해 한·중낚시대회 개최지를 답사하고 돌아갔는데 그 장소가 바로 거제도다. 이들은 거제 일원에서 갯바위와 선상낚시를 체험한 뒤 9~10월 께 대회를 개최키로 합의했다고 한다. 일이 성사되기까지에는 경상남도와 거제시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은 수도권에 위치해 있는 데다 많은 섬을 보유하고 있어 해양레저산업이 발달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중국과의 거리 또한 거제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깝다. 중국의 낚시인구는 9천만명으로, 중국낚시클럽연맹은 낚시전문 방송채널도 보유하고 있다. 인천이 발 빠르게 나서 대회를 유치했다면 섬은 물론, 수도권의 관광자원과 연계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을 것이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사실 부산을 비롯한 많은 자치단체들이 낚시 인구 700만 시대에 발맞춰 시장배낚시대회 등 다양한 낚시 이벤트를 개발 중인데 비해 인천은 거의 손을 놓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런 점에서 오는 23일 인천 해상에서 열리는 '제1회 선상낚시대회'는 의미가 남다르다. 해양레저도시 인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회이기 때문이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06-19 임성훈

[참성단]공포의 적수

아주 아주 오래전 학교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온 동네가 파헤쳐진 좁은 골목길 한가운데 묻힌 파이프가 집 대문 아래를 지나갔다. 문을 열었을 때, 우물가에는 앙증맞은 수도꼭지가 햇빛을 받으며 반짝거렸다. 그때의 그 감동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큰 비가 오면 수도에선 한동안 흙탕물이 나오곤 했다. 그래도 집에 수도가 있다는 게 마냥 좋았다.상수도의 기원은 BC 312년 로마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변의 샘물과 호수의 물을 관을 통해 끌어와 공동 목욕탕과 분수대에 공급한 게 그 시작이었다. 상수도가 없었다면 고대 로마제국의 영광도 없었다. 로마 황제들은 도로만큼이나 상수도 설치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로 인해 도시에 물이 넘쳤고 그 물로 로마 인구 150만명을 먹여 살렸다고 한다. 지도자의 최고 덕목은 예나 지금이나 치수(治水)다.인천에 상수도가 보급된 건 1910년 12월 1일이었다. 부산, 서울, 평양, 목포에 이어 전국에서 5번째다. 개항지 치고는 꽤 늦은 편이다. 노량진에서 넘어온 물은 송현 배수지(현재 인천 동구 송현동)로 합류됐고 이곳에서 인천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1883년 개항 전만 해도 전동, 용동, 화수동, 송림동 등엔 큰 우물이 있어 지역 주민들의 식수 확보에 어려움은 없었지만, 개항 후 급격한 인구 증가는 상수도의 필요성을 가중시켰다. 신포동 일대 일본, 중국, 영국 조계지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붉은 수돗물 (적수·赤水)'은 B급 공포 영화의 상징이자 단골 메뉴다. 한밤중에 찾아온 심한 갈증. 수도를 틀었는데 붉은 피가 쏟아진다. 그리고 시작되는 살육(殺戮). 이런 공포를 인천 주민들이 20일째 체험중이다. 영화처럼 핏빛은 아니지만, 인천에서 적수가 배출되기 시작한 건 지난달 30일이었다. 처음엔 서구에서 시작됐는데 중구와 영종도, 마침내 강화도까지 확산했다. 공무원들의 초기 부실대응이 사태를 키웠다. 시민의 분노가 폭발하자 어제 정부가 "수돗물 공급 체계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준비 부실, 초동대처 미흡 등 대응 부실 때문 "이라고 발표했다. 그제는 그동안 침묵하던 인천시장이 사과문을 발표하고 머리를 숙였다. 치수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지도자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게 다시 한 번 입증됐다. 그럼에도 모든 게 언제쯤 완전 정상화될지 모른다는 게 인천 시민에겐 여전히 공포가 아닐 수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18 이영재

[참성단]홍콩 피플 파워

세계 패권을 놓고 미국과 일전을 불사하는 중국이 예상치 못한 한 방에 체면을 구겼다. 홍콩 시민들이 대규모 시위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을 사실상 무산시킨 것이다. 지난 9일 홍콩 시민 100만명이 '반송중(反送中)' 팻말을 들고 홍콩 정부가 범죄인을 중국에 인도하도록 한 송환법에 반대하고 나섰다. 법이 없을 때도 중국 공권력이 반중 성향의 홍콩 시민을 납치하는 마당에, 법이 생기면 중국에 저항하는 반체제인사나 인권운동가들이 줄줄이 중국으로 송환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시위를 촉발시켰다.이번 홍콩 시위는 형식적으로 송환법을 추진한 행정장관 케리 람을 겨냥했지만, 실제로는 일국양제(1국가 2체제) 원칙을 무시해 온 중국에 대한 저항이다. 일국양제는 1997년 중국이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은 뒤 국제사회에 공언한 약속이다. 외교, 군사분야를 제외한 전 분야의 자치권을 최대한 보장한 이 원칙에 따라 홍콩은 올림픽, 국제기구에 독립국가처럼 참여한다. 일국양제를 확실히 하기위해 후진타오 전 주석은 2017년 홍콩 정부 행정수반인 행정장관 직선제를 약속했었다.그런데 시진핑 현 주석이 2014년 직선제를 무산시킨다. 대의원의 간선으로 선발된 2~3명의 행정장관 후보, 즉 관제 후보에 대한 직선제를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에 반발해 홍콩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직선제 관철 시위가 79일이나 이어졌다. 경찰 최루탄에 우산으로 맞선 '우산혁명'은 결국 무산됐고, 기존처럼 본토의 눈치를 살피는 1천200명의 선거인단에 의해 현 캐리 람이 행정장관에 선출됐다 이번 사태를 맞았다.100만명으로 시작된 홍콩 시위는 16일에는 150만여명으로 확대 돼 친중 강경파 캐리 람은 송환법 포기 의사를 담은 사과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피플 파워'를 경험한 740만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여정이 여기서 멈출지 의문이다. 시민운동의 최종 목표는 행정장관 직선제 등 정치 민주화를 향할 수 있다.덩샤오핑의 외교유훈인 '도광양회'를 훌훌 벗어던지고 세계 패권을 향해 질주하던 시진핑의 '중국몽'이 미국의 견제로 흔들리던 참에 홍콩의 반중 시위로 일격을 당한 모양이 됐다. 중국의 대응에 따라 홍콩의 운명이 흔들릴 판이다. 향기로운 항구도시 홍콩(香港), 미·중 신냉전의 틈바구니에서 향기를 잃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6-17 윤인수

[참성단]감독 정정용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그래서 감동이 크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각본 없는 드라마인 스포츠를 각본 있는 드라마인 영화로 옮겨 놓아도 감동은 전혀 반감하지 않는다. 결과를 알고 있는데도 그렇다. 이유가 있다. 승부의 결과보다 그들이 흘린 땀방울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여자 핸드볼 선수의 좌절과 영광을 다룬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나 열악한 조건에서도 굴하지 않는 국가대표 스키선수를 다룬 '국가 대표'에 국민이 열광한 것도 그런 이유다. 각본 없는 드라마 한 편이 어제 막을 내렸다. 준우승에 멈췄지만 그 과정은 치밀한 각본대로 움직이는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했다. 그 각본은 정정용의 손에서 쓰였다. 누군가 훗날, '2019 U-20 월드컵 대회'를 영화로 만든다면 주인공은 이강인보다 무명 감독 정정용이어야 한다. 이번 경기가 있기 전까지 이름은커녕 그 존재감조차 알지 못했던 68년생 감독 정정용은 1983년 박종환 감독이 이끌던 U-20 대표의 4강 신화보다 더 큰 역사를 썼다.감독 정정용은 대구 출생이다. 신암초등, 청구 중·고, 경일대를 졸업했다. 수비수 출신에 국가대표 경력도 없다. 요즘 말로 '흙 수저' 출신이다. 거기에 큰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일찍 마감했다. 최고경력은 2부리그였던 대구 FC 수석코치였다. 기회는 눈앞에서 스타 출신 지도자에게 번번이 빼앗겼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가 주로 U-13·U-14·U-16·U-18·U-19 등 유소년 지도자로 활동한 점이다. 그는 한마디로 '선수 조련사'였다. 그의 평소 지론은 '20세 이하 어린 선수들에게 우승보다 중요한 건 국제대회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었다.막이 내리면 스포트라이트는 언제나 선수를, 무대 위의 배우를 비추게 마련이다. '골든골' 수상으로 이강인은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격려, 신뢰, 소통을 앞세워 개성이 강한 젊은 선수들을 '원팀'으로 만든 감독 정정용의 리더십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정 감독은 경기마다 상대에 맞춰 변화하는 용병술과 전술적 작전 변화,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 선수 기용과 교체 등 승부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스타 플레이어 출신치고 명감독이 없다'는 축구계의 격언을 감독 정정용은 또다시 입증했다. 마침내 한국축구의 새 역사가 써졌다. 이제야 비로소 한국축구의 미래가 보이는 듯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16 이영재

[참성단]정쟁 마당 국민 청원 게시판

버락 오바마는 시민의 정치참여를 '민주주의 정신'이라고 확신했던 대통령이다. 2011년 9월 국민청원 웹사이트 '위 더 피플(We the People)'을 개설한 것도 그래서다. 30일간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백악관 공식 답변 대상이 됐다. 무분별한 청원을 막기 위해 모두 답을 해주지는 않았다. 선출직 공직 후보자를 지지, 반대하거나 삼권분립에 어긋나는 청원은 아예 받아주지 않았다. 2016년 12월 기준으로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4천799건의 청원 중 277건에 대해 답을 주었다. 가령 이런 것들이다. '휴대 전화 사용자들이 자신들의 전화기를 다른 통신사에서도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 '동성애자 전환 치료를 금지하라'. 이들 청원에 대해 백악관은 관련 기관에 개정을 요구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말로 유명한 미국의 전설적인 야구 선수 요기 베라에게 '대통령 자유 메달'이 수여될 수 있었던 것도 국민 청원 덕분이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 청원 게시판은 지지부진한 답변으로 열기가 시들해졌다.'위 더 피플'을 벤치마킹한 청와대 게시판은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2017년 8월 17일 문을 열었다. 미국과 달리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청와대의 답변을 들을 수 있다. 초기엔 국민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의견을 내는 직접 민주주의의 본보기라는 긍정적 평가가 많았다. 그러나 요즈음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부정확한 사실을 확산시키고 여론 재판을 부추길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지나친 정치적 편향도 논란의 대상이다. 청원 게시판이 정당해산, 대통령 탄핵 등 정치적 선동과 지지세력 간 정치적 대결의 장으로 퇴색된 지는 이미 오래됐다.청원 게시판이 또 시끄럽다. 정당 해산 청구 청원에 대해 청와대 정무수석이 직접 나서 "정당에 대한 평가는 국민의 몫"이란 답변 때문이다. 한국당은 "청와대가 선거운동에 나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모두 예견된 것이다. 분명한 건 이제 미국처럼 청원 대상에 명확한 한계를 둬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그게 어렵다면 이번 기회에 청원 게시판을 폐지하고 국민청원 기능을 국회로 넘기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다가 '민주주의 정신' 청원 게시판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채 국론을 분열시키는, 처치 곤란한 '괴물'로 변하지 않을지 정말 걱정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13 이영재

[참성단]'원 팀(One Team)' 대한민국

리오넬 메시는 현역 최고의 축구선수다. 13세에 FC 바르셀로나에 스카우트 된 그가 클럽 소속으로 스페인 프로축구리그 프리메라 리가에서 세운 기록은 독보적이다. 686 경기에서 602 득점, 232 어시스트다. 그를 향한 스페인 사람들의 사랑은 'inmessionante'라는 형용사를 모국어 사전에 올렸을 정도다. '인메시오난테'는 "메시다운, 무한의 능력을 발휘하며 완벽한 축구를 구사하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훌륭한 선수다운"이라는 뜻이라는데, 축구 천재에 대한 헌사로 모자람이 없다.그런 메시에게도 아픔과 좌절이 있다. 조국 아르헨티나 대표팀으로 출전한 네차례 월드컵에서 우승하지 못한 것이다. 남미의 월드컵 '코파 아메리카'에서도 마찬가지.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에선 조 예선을 겨우 통과하더니 16강전에서 패해 짐을 싸야했다. 신의 반열에 든 메시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원 팀' 아르헨티나가 깨진 탓이다. 그래서 월드컵 3회 우승으로 조국 브라질에 줄리메컵을 바친 펠레에는 못미친다는 평가다. 클럽용 메시에게 국보급 펠레는 유일한 '넘사벽'인 셈인데, '펠레'의 스펠링이 'G·O·D(신)'이라는 과장은 깨지지 않을 모양이다.어제 새벽 한국 축구가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에콰도르를 1-0으로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FIFA 주관 세계대회 첫 결승 진출이라는 축구 역사의 신기원을 지켜 본 국민이 열광했고, 환호의 중심에 18세 소년 이강인이 있다. 현재 1골 4도움을 기록 중인 이강인은 이번 대회를 통해 메시급 천재로 국내외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중원을 지배하며 공격 루트를 만들어내는 기량이 창의적이고 탁월하다.기량 만큼 놀라운 건 그가 대표팀 막내인데도, 형들이 '막내 형'으로 부를 정도로 팀에 녹아드는 리더십을 보여 준 점이다. 스페인 명문 클럽 발렌시아의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는 이강인이 형들을 앞세우며 스스럼 없이 따르면서 대표팀은 '원 팀'으로 단단해졌다. 그가 자신을 앞세웠다면 메시의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의 메시가 될 수도 있었다.국민은 이강인을 포함해 대표선수 전체가 그물코 처럼 엮인 '원 팀'의 결속력과 그 결과에 감동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각분야에서 파열음이 그치지 않는 시절을 위로하는 U-20 대표팀의 정상 등극을 고대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6-12 윤인수

[참성단]DJ 평생 동지 이희호 여사

대통령 부인, 즉 퍼스트레이디의 진면목을 보여준 건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여사였다. 퍼스트레이디 자격으로 처음 기자회견을 했고, 정부예산으로 부속실 직원을 둔 것도 그였다. 1948년 UN 총회의 미국 대표로 세계인권선언을 만장일치로 이끌어냈다. 검소했지만 우아했고, 무엇보다 지적이면서도 겸손했다. "자신을 다룰 때는 머리를 쓰고 남을 다룰 때는 가슴을 쓰라"는 숱한 명언도 남겼다.최고 권력자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퍼스트레이디의 막강한 영향력에 대해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대부분 퍼스트레이디는 이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데서 부담감으로 상당한 공포와 불안감을 경험하곤 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부인 패트 닉슨은 "퍼스트레이디는 세상에서 가장 힘든 무보수 직"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 다니엘 여사는 이런 중압감 때문에 엘리제 궁의 입주를 거부하고 14년 동안 사가에 거주했다.우리나라에서 퍼스트레이디는 영부인(令夫人)이다. 원래는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었는데 대통령 부인의 호칭으로 굳어졌다. 우리 국민들에게 고 육영수 여사의 이미지 때문인지 영부인은 '조용한 내조와 온화한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영부인의 스타일에 따라 그 영향력은 천차만별이다. 행동이 많으면 너무 나선다고 눈총을 받고, 내조에 충실하면 존재감이 없다는 소리를 듣지만 내놓고 활동을 하든, 내조만 하든 영부인은 대통령에게 늘 귓속말을 할 수 있는 '제1의 특별조언자'임에는 틀림없다. '영부인'이 '여사'로 바뀐 것은 이희호 여사가 청와대 안주인이 되면서부터였다. 이 여사는 "국가 지도자의 부인도 국익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그 누구보다도 영향력이 강한 퍼스트레이디였다. 이 여사는 대통령 부인이기 이전에 47년간 옥바라지와 망명, 가택연금 등 정치적 고초를 함께 겪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생 동지이자 정치적 조언자였다. "그를 쳐다보면 왠지 아렸어요. '차라리 김대중이란 사람이 없었다면…' 그가 무너질 때마다 따르던 사람들이 가슴을 쳤지요. 그렇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기적처럼 일어났어요"라고 했던 이희호 여사가 10일 밤 별세했다. 향년 97세. 언제나 "아내가 없었다면 나도 없었다"고 말했던 영원한 동지 DJ 곁으로 떠났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11 이영재

[참성단]정쟁에 갇힌 역사

어제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6·10 민주항쟁 32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민주인권기념관의 옛이름은 남영동 대공분실. 6·10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의 현장이다. 그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전두환의 독재 호헌조치에 반발하던 여론이 폭발했다. 연세대생 이한열이 최루탄에 쓰러지자, 서울 시민 전체가 들고 일어섰다. 6·29선언이 나왔고, 10월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국민투표로 확정됐다. 독재 종식과 민주주의 시작인 '1987년 체제'의 완성이다. 그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의 기억은 선연한데 벌써 30년이나 지났다니,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거짓말 만큼이나 거짓말 같다.기억은 같은데 해석은 엇갈린다. 여야 정당의 6·10 항쟁 기념일 논평이 그렇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주화 정신과 촛불 혁명을 계승하여 탄생한 문재인 정부"라며 현 정부의 민주적 정통성을 강조했다. 자유한국당은 "민주라는 가치가… 헌법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에게 부당하게 사용되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진정한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현 정부에 날을 세웠다.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은 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87년 체제 극복을 강조하는 실리를 강조했다.올해 들어 국가적 기념·추념일이 정쟁으로 얼룩졌다. 3·1절 100주년은 '빨갱이'의 역사적 유래를 놓고 소동이 일었다. 5·18 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은 '독재세력의 후예' 논란으로 시끄러웠고, 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촉발된 '김원봉' 소란은 아직껏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이 모든 소란의 시작은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였다. 대통령과 여당의 역사와 야당의 역사가 다르니 아이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가 흔들린다.이런 식이라면 권력의 이념 지향에 따라 대한민국의 역사는 끊임없이 흔들리게 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의 유리창을 교체해야 한다. 역사가 지배와 통치의 수단이 되는 형국을 조지 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고 말했다.건국의 기원을 어디에 둘지 신경전을 벌이는 바람에 지난해 대한민국정부수립 70주년과 올해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행사는 어영부영 흘려보냈다. 국민이 하나 되어야 할 국가 기념일과 추념일이 국민을 분열시키는 뇌관이 됐으니, 역사의 신은 유독 우리에게만 가혹한 듯 하여 야속하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6-10 윤인수

[참성단]이문열

제17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침몰 직전의 난파선과 다름없었다. 이회창 후보의 거듭된 대선 패배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한나라당은 한마디로 만신창이였다. 2004년 4월 공천심사위원회가 구성되자 세간의 관심은 위원장인 김문수(경기지사), 부위원장 안강민(전 서울지검장)이 아니었다. 위원으로 이름을 올린 작가 이문열씨였다. 그는 당이 5·6공 인사를 공천하려 하자 "이러다 당이 망한다"며 대대적인 물갈이를 요구했다. 하지만 개혁은 여의치 않았고 한나라당은 열린 우리당에 참패했다.우리나라 작가 중 이문열씨 만큼 사회적 현안에 대해 활발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드물다. 사회적으로 현안이 있을 때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신의 소신을 밝혀왔다. 스스로 '보수꼴통'을 자처하는 그는 신문 칼럼으로, 때론 작품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밝혔다. 그래서 이씨에 대해선 용기 있게 소리를 내는 작가, 지나치게 정치화된 작가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닌다.이씨의 정치적 소신이 가장 강하게 드러난 건 2002년 '세계의 문학'에 4부작으로 연재하며 문학적 평가보다 정치적 논란을 일으킨 '호모 엑세쿠탄스'(처형하는 인간)일 것이다. 이씨는 이 소설에서 2002년 대선 이후의 한국 상황에 대해 '민족도 이념도 순식간에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국가주도형 포퓰리즘이 게거품을 뿜었다'고 묘사하거나, 햇볕정책을 '핵이란 비대칭 전력을 보유한 북한에 모래성 같은 경제적 우위를 앞세워 어디 사용될지도 모르는 현금을 몇억 달러씩 갖다 바쳤다'고 썼다. 또 '시민운동이 엽관의 수단이 되고 관직은 감투에 눈먼 386 홍위병들의 전리품이 됐다'며 시민단체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때문에 우리 문화계에 수치로 기록될 '책 화형식'이라는 끔찍한 일을 당하기도 했다.8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이천 설봉산 자락 이씨의 문학 사숙(私塾) 부악문원 (負岳文院) 을 찾으면서 잠시 잊혔던 그가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두 사람은 '보수정치'를 두고 1시간가량 대화를 가졌다. 이문열은 뛰어난 문학적 재능과 잠재력이 지나친 정치적 관심 때문에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을 그동안 꾸준히 받아왔다. 하지만 작가가 정치적 신념을 내세운다고 해서 비판을 받는 건 옳지 못하다. 이날도 그는 황 대표에게 "당에 쳐내야 할 사람들이 아직 남아있다"며 2004년 공심위 때처럼 인적 쇄신을 강조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09 이영재

[참성단]한국형 실업 부조

부조(扶助)의 사전적 의미는 '잔칫집이나 상가(喪家) 따위에 돈이나 물건을 보내어 도와줌. 또는 돈이나 물건.'이다. 경조사 부조와 생계 부조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10명이 한술씩 보태면 배고픈 한 사람이 먹을 분량이 된다는 '십시일반(十匙一飯)'은 일종의 생계형 부조다. 청나라 말 중국의 사상가 캉유웨이(康有爲)는 우리의 부조문화에 대해 '조선사람들이 가진 뜨거운 마음의 표시'라며 부러워했다고 한다.경조사비를 통한 상부상조의 관습은 우리의 오랜 미풍양속이다. 과거 직접 일손으로 거들어 주던 풍습이 현재 봉투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부고장을 받을 때마다 얼마를 넣어야 할지 누구나 한 번쯤 고민을 하곤 한다. 부조는 계 향약 두레 등의 성격을 지닌다. 슬프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 서로 품앗이해서 무난히 치르자는 것이다. 조선 말 사회상을 기록한 '하재일기'(荷齋日記)에는 떡 술 국수 북어 등의 물품이나 돈 10냥을 부조했다고 적고 있다. '국민취업 지원제도'의 또 다른 명칭은 '한국형 실업 부조'다. 구체적인 그림이 완성돼 내년부터 시행된다고 한다. 중위 소득 50% (청년은 120%) 이하인 저소득층 구직자에게 매달 50만원씩 6개월간 최대 300만원을 지급한다. 일종의 '구직촉진수당'이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자, 현 정부 국정과제다. 누가 이런 명칭을 만들었는지 '한국형'이란 것도 그렇고, 실업(失業)에 부조(扶助)를 갖다 붙인것도 기발하다는 생각이 든다. 실업부조에 들어갈 비용도 만만치 않다. 내년에 35만 명을 대상으로 5천40억 원이 소요되고 2020년 대상자를 60만 명을 늘릴 경우 연간 1조원을 훌쩍 넘긴다. 전액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데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대해선 일언반구가 없다. 공교롭게 시행 시기가 7월로 총선 3개월 후다. 총선용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율곡 이이는 '격몽요결(擊蒙要訣)'에 이렇게 적었다. '서로 아는 처지라면 무슨 명목이 있어 주는 물건만 받고 아무런 명목이 없는 것은 받아서는 안 된다. 명목이란 것은 초상이 났을 때 부의를 하거나, 혼인할 때 도와주는 따위의 일이다.' 부조라고 냉큼 받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어찌 됐건 공공연한 경조사비 말고 숨겨진 부조금 항목이 또 하나 생겼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6-06 이영재

[참성단]제발 축구 하게 놔두세요

'공굴리기도 한일전은 재밌다'는 말을 입증하듯 5일 열린 U-20 월드컵 한일전의 시청률이 이번 대회에서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넘었다. 조사 결과 지상파 3사가 생중계한 일본과의 16강전 시청률은 12.3%였다. 앞서 조별리그에서 남아공전과 아르헨티나전 시청률이 각각 1.7%와 3%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역시 한일전'이라 할 만한 기록이다. 경기 내용 또한 숙적 일본을 이겼으니 성공이다. 졌더라면 울분에 못 이겨 꿈자리마저 뒤숭숭할 판이었다. 그런데 뒷맛이 개운치 않다. 한 방송사의 시청률 지상주의 때문이다. TV를 시청하는데 하프타임에 이강인이 등장한다. 배경은 경기장이 아닌 스튜디오인 듯하다. 이어 "전반전에 골 안 나서 답답하시죠? 후반전에 폭풍 골 기대하세요"라고 말하더니 "채널 고정"이란 멘트와 함께 엄지를 세운다. 점쟁이도 아니고 전반전이 0대 0으로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당연히 경기 전에 미리 찍어 편집한 녹화 영상임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경우의 수에 따라 각기 다른 영상이 존재할 것이다. 방송에 필요한 경우의 수를 따져보니 4가지가 떠오른다. 한일전에서 실제로 벌어진 0대0 상황을 비롯해 한국이 골을 넣어 이기고 있는 상황, 일본이 골을 넣은 상황, 두 팀 다 골을 넣어 동점인 상황 등이다. 이처럼 가상의 스코어에 따라 이강인의 방송 대본 또한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채널 고정'이라는 마지막 멘트는 '절대' 빠지지 않았을 듯싶다.이 대목에서, 중요한 경기를 앞둔 선수를 불러내 시청자들에게 '채널 고정'을 주문하는 영상을 찍으면서까지 시청률을 올려야 하는지 묻고 싶다. 성숙한 판단을 기대하기에는 아직 이른 미성년자를 상업적으로 이용한 방송사는 물론이고 선수 관리 관계자들도 결코 칭찬받지는 못할 것 같다. 영상을 찍는 시간은 선수들끼리 한 번이라도 더 발을 맞추거나 개인적으로는 전술이해도를 높이며 경기에 대비해야 할 시간이었을 터이다. 그렇다면 시청률은 어땠을까. 정작 그 방송사의 시청률은 2.7%로 방송3사 가운데 꼴찌였다.이강인은 두 말이 필요없는 한국축구의 희망이다. 무한한 가능성의 소유자인 만큼 아직은 축구 외적인 부분에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축구만 하게 놔뒀으면 좋겠다.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다가 현실에 안주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 스포츠천재들을 여럿 보았지 않은가. /임성훈 논설위원

2019-06-05 임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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