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우리회사 양진호'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엽기적인 악행이 직장 갑질 미투운동으로 번질 조짐이다. 각종 매체들은 한 시민단체가 자체 수집해 발표한 직장 갑질 사례를 '우리회사 양진호'로 번안해 보도하고 있다. 퇴직 직원에 대한 양 회장의 폭행 동영상 원본을 보면 정말 치가 떨린다. 폭행당한 청년의 처지를 내 가족과 친구의 경우로 바꾸어 상상하면 적개심이 끓어 오를 지경이다. 대학교수 폭행, 직원 학대 등 드러난 악행은 '사과문'으로 마무리 할 수준이 아니다.IT(정보기술)분야 기업들의 사내 문화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자유분방과 상호존중이다. 창의와 협업이 생명인 산업특징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주의적 기업문화를 가진 IT기업들이 많다고 한다. 사업의 비전과 기술을 창업자에게 의지하는 구조 때문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창업 초기에 'I'm CEO, Bitch'를 새긴 명함을 뿌렸다. "내가 최고경영자다. 떫냐" 정도로 해석되는데, 그를 페이스북 제국의 나폴레옹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인용하는 사례다.양 회장도 웹하드 업계의 대부라 한다. 주로 웹사이트에서 동영상을 유통시키는 웹하드 업체는 음란물을 포함한 불법 동영상 유포의 핵심 통로로 의심받았다. 특히 양 회장은 불법 동영상을 무차별적으로 유통하는 웹하드 사업과 이를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 사업을 함께 운영했다. 불법 동영상 유통 수익과 피해자의 고통을 지워주는 대가를 동시에 챙겼으니 꿩 먹고 알 먹는 사업모델이다. 자신만의 독점적 사업에서 제왕처럼 군림하다 보니 세상의 상식과 법을 초월한 존재로 착각했던 모양이다.양 회장은 사과문에도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초호화 방탄 변호인단을 꾸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폭행 등 드러난 죄가 명백하고, 음란물 유포 등 밝혀야 할 혐의가 적지 않다. 꼼꼼하게 수사해 엄정하게 법적 처리를 해야 마땅하다. 또한 양진호 갑질의 근원을 제도적으로 도려내는 일도 서둘러야 한다. 직장 갑질을 방지할 근로기준법 개정은 물론이고, 불법 동영상 유포로 돈을 버는 사업구조도 뿌리를 뽑아야 마땅하다. '우리회사 양진호'가 양진호 회장 사건으로 정신 차린다면 그건 망외의 소득이고…. /윤인수 논설위원

2018-11-05 윤인수

[참성단]申星一

이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1957년 당대 최고 감독 신상옥은 신필름을 설립하고 배우 모집에 들어갔다. 264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강영일. 하지만 신 감독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그에게 신필름의 '신', 한국 영화계의 새별이 되라는 의미의 '성', 일등 배우가 되라는 뜻의 '일', 신성일이라는 예명을 지어주었다. 대한민국 아니, 건국 이래 최고의 배우 신성일은 그렇게 탄생했다.50년대 말 한국 영화계는 신상옥 최은희의 신필름과 홍성기 김지미의 홍성기 프로덕션으로 양분돼 있었다. 소속 배우도 신 감독 측엔 김승호 김진규 등이, 홍 감독 측엔 최무룡 장동휘 남궁원 등이 포진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유명 배우만을 선호했다. 무명 배우가 출연하면 흥행이 신통치 않았다. 흥행 실패는 파산을 의미했다. 그래서인지 두 영화사 모두 신인을 키우지 않았다. 신필름이 신성일을 뽑아놓고 미적거린 것도 흥행 실패의 두려움이 작용했다. 신성일이 스타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이런 분위기 탓이 컸다. 신성일은 1960년 신필름의 창립 작품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지만, 그저 잘생긴 배우 정도의 이미지만을 남겼을 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마침내 1964년,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제임스 딘이 그랬던 것처럼, 카리스마 있는 반항아 이미지와 청바지가 잘 어울렸던 신성일은 일약 스타 반열에 올랐고 '청춘물'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고통스러운 상황을 의지로 돌파해가는 남성적인 분위기'가 한국 영화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로 시작되는 최희준의 노래도 빅히트를 쳤다. 신성일은 거칠 게 없었다. 1964년부터 8년간 개봉한 1천194편의 작품 중 324편에 그가 출연했다. 특히 1967년 제작된 한국영화 총 187편 중 신성일 출연 작품이 무려 51편이었다.하지만 그는 정치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두 번의 낙선 끝에 '강신성일'로 이름을 바꾼 후 16대 총선에서 당선됐지만 삶은 그리 평탄치 못했다. 옥고도 치렀다. 나운규 이후 최고의 배우이자 '한국의 알랭 들롱', 60년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꽃 피웠던 배우 신성일이 4일 새벽 향년 81세로 숨을 거뒀다. 그의 이름 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이 지금 슬퍼하고 있다. 우리 영화사 가장 중심에 서 있었던 최고의 배우가 그 자신이 하나의 역사가 돼 우리 곁을 떠났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04 이영재

[참성단]목구멍

승정원은 조선의 왕명 출납기관이었다. 왕이 내리는 교지는 승지를 통해 해당 관청에 전달되었고, 상소문은 승지를 통해 왕에게 전달됐다. 정승이나 판서 등 신하가 왕을 면담하거나 중요 회의에 배석해 대화 내용을 기록하는 것도 이들 몫이었다. 우리가 자랑하는 기록문화의 꽃 '승정원일기'가 이들의 손에서 작성됐다. 승정원에는 정3품 당상관인 6명의 승지가 있었다. 왕과 늘 가까이 있어 간혹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역사의 중심에 서곤 했다. 승지의 횡포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익히 아는 터다. 임금의 '목구멍(喉)과 혀(舌)'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승정원을 가리켜 후설(喉舌)이라고 했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라는 뜻이다.'디프 스로트(deep throat : 깊은 목구멍)'는 1972년 미국서 제작된 포르노 영화다. 이 영화가 여전히 회자하는 것은 우선 미국 최초의 합법적 포르노여서다. 그럼에도 22개 주에서 상영이 금지되었지만 폭풍 같은 노이즈 마케팅으로 수완 좋은 제작자 제라드 다미아노는 돈벼락을 맞았다. 4만 5천 달러를 투자해 10년 동안 6억 달러를 회수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깊은 목구멍'이 다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이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두 젊은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워터게이트 빌딩 침입 사건을 2년간 끈질기게 취재해 닉슨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것은 내부조력자의 덕이 컸다. 기자에게 지속해서 제보했던 취재원은 익명을 요구했고, 두 기자는 그를 '깊은 목구멍'이라고 불렀다. 그 이후부터 '깊은 목구멍'은 '은밀한 제보자' '내부 고발인'을 지칭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깊은 목구멍'이 FBI 부국장 마크 펠트로 밝혀진 건 33년이 지난 2005년이었다.요즘 '목구멍'이 뉴스의 중심에 섰다. 지난 9월 평양 정상회담 때, 리선권 북한 조평통 위원장이 점심 식사 자리에서 기업인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라며 면박을 준 발언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먹는 자리에서 '목구멍' 운운한 것은 우리 정서상 대놓고 욕설을 한 것이다. 여론이 들끓고 있다. 북한에 우호적이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조차 "리선권의 자살골"이라며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을 정도다. 리선권의 '목구멍'을 타고 나온 말이 우리를 기죽이려는 의도라고 하기엔 너무 모욕적이고 무례하다. 우려되는 건, 그 말의 함의가 북한의 본심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01 이영재

[참성단]지연된 정의의 후폭풍

"혼자 있어서 슬프고 초조하다. 울고 싶고 마음이 아프다." 일본과 조국의 법정을 전전하길 21년에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을 받은 이춘식(94) 옹의 비감한 소회다. 배상소송을 함께 했던 징용피해 동료 3명이, 그것도 2명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승소 법정에서 전해 들었다. 승소의 기쁨보다 상실의 비애가 앞섰을 것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격언을 이처럼 실감하는 장면이 또 나올지 의문이다.고 여운택, 신천수 두 강제징용자가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에 피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이 1997년 12월이다. 하지만 일본 법원은 이들을 모욕했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다는 전제하에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이들의 최종 상고를 기각했다. 두 사람은 또 다른 피해자 고 김규식씨와 이 옹과 함께 2005년 2월 조국의 법원을 찾았다. 일본의 배상을 원했다기 보다는 조국의 법원이 강탈당한 강제징용자의 정의를 인정해주길 바랐던 마음이 컸을 것이다.놀라운 건 대한민국 지방, 고등법원이 일본법원 판결을 인정한 것이다. 이를 대법원이 바로잡았다. 2012년 "일본 판결은 우리 헌법 취지에 어긋나고, 신일본제철은 구일본제철을 승계한 기업"이라며 고법판결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이에 고법이 2013년 신일철주금의 1억원 배상책임을 확정했다. 신일철주금은 즉시 상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시계추는 고법판결을 그대로 확정하는 수순만 남겨둔 채 5년간 멈추었다. 대법원의 잘못은 명백하다. 의혹대로 재판거래 탓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스스로 세운 역사적 정의를 5년간 묻은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그 대가로 정부는 심각한 외교적 후폭풍을 감당하게 됐다. 수상부터 장관까지 일본의 반발은 전면적이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거론하며 국제재판소 제소를 거론하고 있다. 대북제재 완화를 놓고 미국과의 갈등설이 나오고, 사드 분쟁 이후 중국과도 어색하다. 북한은 자신들을 향한 남측 정부의 진심을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밥상머리 악담으로 모욕한다. 여기에 한·일 갈등이 추가되는 상황은 예사롭지 않다. 대법원이 지연한 정의 때문에 우리 운명이 걸린 한반도 외교전선에 대형 악재가 추가됐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31 윤인수

[참성단]10월의 마지막 밤

그때는 몰랐다. 10월은 오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것이란 걸. '뜀박질로 왔다가 뜀박질로 떠나는 것이 10월'이라는 이어령의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올 10월은 특히 그랬다. 너무 빨랐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어! 하는 사이에 훅~하고 지나갔다. 조동진의 노래처럼 '여름은 벌써 가버렸나, 거리엔 어느새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다. 10월과 함께 상념도 깊어졌다. 모두 마음이 심란한 탓이다. 어려운 경제, 답 없는 정치, 아니면 거리에 나 뒹구는 낙엽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동잎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가을이 온 줄 알았다'고 쓴 사람은 송강 정철이었다. 외로운 유배지에서 가을을 맞이하는 비참한 심회(心懷)를 이제 알 것 같다.10월이면 이브몽땅의 샹송 '고엽(古葉)'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방탄소년단의 '화양연화 pt.2' 앨범에 수록된 '고엽'이 심금을 울린다. BTS는 노래한다. '저기 저 위태로워 보이는 낙엽은 우리를 보는 것 같아서/손이 닿으면 단숨에라도 바스라질 것만 같아서/그저 바라만 봤지/가을의 바람과 같이/…/오늘따라 훨씬 더 조용한 밤/가지 위에 달린 낙엽 한 장/부서지네 끝이란 게 보여, 말라가는 고엽/초연해진 마음속의 고요/제발 떨어지지 말아주오/떨어지지 말아줘 바스라지는 고엽'. 젊은이들에게도 10월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이효석은 낙엽을 '꿈의 껍질'이라고 했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우리의 꿈. 그 껍질은 무슨 색이었던가.지난 주말 가을비가 내렸다. 임어당(林語堂)은 '생활의 발견'에서 '봄비는 책 읽기 좋고, 여름비는 바둑 두기에 좋고, 가을비는 오래된 가방이나 서랍을 뒤지기 좋고, 겨울비는 술 마시기에 좋다'고 했다. 가을이 오면 한 해를 보낼 준비를 하란 뜻이다. 오늘 밤은 '10월의 마지막 밤'. 1982년 7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발표되면서 오늘 밤은 언제나 '특별한 밤'이 되었다. 10월. 모두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이룰 수 없는 꿈'만 남긴 채, 10월이 그렇게 떠나가고 있다. 겨울이 오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30 이영재

[참성단]지방자치의 날

30일 17개 시·도지사가 모여 '자치분권 경주선언'을 발표한다. 지방자치의 날인 29일부터 31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제6회 대한민국 지방자치박람회'의 주요 이벤트다. 박람회는 전국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의 우수 자치행정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다. 이 자리에서 시·도지사가 일제히 자치분권 강화를 위한 중앙정부의 양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1991년 지방의회 선거를 시작으로 1995년 4대 지방선거로 대한민국 지방자치는 완전하게 부활했지만 제도 자체의 효용은 학계와 정치권에서 여전히 논쟁거리다. 자치분권의 역사적 기반이 뚜렷한 연방제 국가나 봉건제 역사의 국가에서는 지방자치가 활발하다. 중앙 통치체제가 완성되기 전까지 유지됐던 지방 자율의 역사가 자치제도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반면 중앙집권 전통이 유구한 우리 지방자치는 중앙정부 종속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재임 시절 "지방자치는 없고 지방선거만 있다"며 "지방자치는 2할의 자치"라고 권한과 예산 없는 지방자치를 혹평했다.문재인 정부는 지방분권에 호의적이다. 지방분권을 연방제 국가 수준으로 강화하겠다는 공언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고치고 행정·입법·재정의 자치권을 명시한 개헌안을 내놓기도 했다. 개헌안은 무산됐지만 자치단체와 자치의회의 요구에 호의적이다. 자치단체는 국세와 지방세 비율 조정 등 자치재정 확대를, 자치의회는 의회 인사권과 정책보좌관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오늘 지방의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한 답변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강화를 지켜보는 여론은 착잡하다. 늘어나는 권한과 재정만큼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독직과 비리가 커지고 지방자치의 고비용 저효율 규모가 더 커질까 해서다. 비리에 연루돼 사법처리되는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너무 많아 헤아리기 힘들다. 무보수 명예직으로 시작한 지방의원들의 보수는 대기업 임금 수준으로 늘었고, 외유성 해외출장은 관행이 됐다.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전임의 정책들을 폐기하는 매몰 비용이 엄청나고, 연임을 위한 선심공약에도 혈세의 낭비가 심각하다.'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학교'라는 말이 맞다면 대한민국 민주주의 학교는 위기일지 모른다. 지방자치의 권한 강화만큼이나,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등 지방권력의 자질 개혁도 중요하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29 윤인수

[참성단]불 꺼진 다다익선(多多益善)

1985년 11월 15일 국립 현대미술관 과천관 신축 상량식이 열렸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미술 관계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나선형 공간을 계단을 타고 빙 돌아 올라가게 만든 구조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구겐하임을 모방했다" "독창성이 없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김수근이 설계한 부여박물관의 '왜색 논란'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시에는 꽤 시끄러웠다.결국 논의 끝에 그 공간에 백남준의 작품을 설치하자는 아이디어가 채택됐다. 이게 '신의 한 수'가 됐다. 88올림픽 개막과 함께 설치된 백남준 비디오아트의 걸작 '다다익선'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름 7.5m 원형에 높이 18.5m, 개천절을 의미하는 1,003개의 모니터 속에는 서울의 풍경과 굿판 등 퍼포먼스 사진과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바이바이 키플링' 등 위성 프로젝트의 영상을 탑재했다.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려면 나사형 공간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이게 꼭 우리의 전통 '탑돌이' 의식과 비슷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역시 백남준은 천재였다. 다다익선은 기단부에 10인치 522대, 2단에 25인치 195대와 3단에 20인치 103대, 4단에 14인치 93대, 상륜부에 6인치 TV 60대로 이뤄졌다. 모두 브라운관인 탓에 그동안 중간중간 화면이 꺼져 2003년 전면 교체했다. 그 후에도 2010년 244대, 2012년 79대, 2013년 100대, 2014년 98대, 2015년 320대를 수리하거나 교체했다. 그러다 올 2월 가동이 완전히 중단됐다. 더는 브라운관 TV를 구할 수 없어서다. LCD 모니터로 교체하는 방안과 철거 후 오마주작품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두고 의견 조율 중이나 결론을 내지 못해 여전히 불 꺼진 상태로 있는 중이다.지난 12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더불어 민주당 이상헌 의원이 이 문제를 거론해 다다익선이 또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이 작품은 현존하는 백남준의 대표작이자 규모 면에서 가장 큰 작품. 외국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다다익선 미술관'으로 더 알려진 것도 그런 이유다. 특히 올해는 작품이 설치된 지 30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하지만 다다익선은 우리의 무관심속에서 8개월 째 먹통이다. 이는 우리 문화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말로만 자랑할 뿐, 정작 고국에서 백남준은 저평가된 예술가로 푸대접을 받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28 이영재

[참성단]최종현 학술원

수원이 배출한 기업인 SK 고 최종현 선대회장은 기업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인재 키우기'라고 보았다. 한국은 자원이 부족한 만큼 사람이 가장 큰 자원이고, 기업 경쟁력도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확고한 '철학'을 갖고 있었다. 1974년 개인재산을 털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만든 것도 그런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유학생을 선발했다. 그 조건이란 '학비·생활비 무료'였다. 1인당 국민소득 560달러이던 시절, 유학생 1인에게 연간 학비 3천500달러, 생활비 4천달러를 지원했다. 한국고등교육재단은 지난 44년 동안 747명의 해외 명문대 박사를 배출한 것을 비롯해 3천700여 명의 장학생을 지원했다. 1973년 후원사를 찾지 못해 폐지 위기에 놓인 TV 프로그램 '장학퀴즈'를 살린 것도 그였다. 최 선대회장은 "청소년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라면 열 사람 중 한 사람만 봐도 무조건 지원하겠다"며 아낌없이 후원했다. 덕분에 장학퀴즈는 국내 최장수 TV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장학퀴즈 500회 특집에서 "장학퀴즈로 벌어들인 돈이 7조원쯤 될 것이다. 기업 홍보 효과 1조~2조원, 우수한 학생을 선발해 교육한 효과가 5조~6조원"이라고 말했다.최 선대회장은 인재 양성에 대한 많은 어록도 남겼다. 1978년 한국고등교육재단 지원으로 유학 가는 학생들에게 "21세기 한국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되고 SK는 세계 100대 기업 안에 들어갈 것이다. 지금은 변방의 후진국이지만 인재양성 100년 계획에 따라 고도의 지식산업사회를 목표로 일등 국가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고, 그 말은 현실이 됐다. 고인의 뜻을 기린 '최종현 학술원'이 다음 달 공식 출범한다는 소식이다. 최태원 회장과 SK(주)의 출연 등 1천억원이 바탕이 됐다. 국가의 앞날을 누구보다 더 걱정했던 최 선대회장의 애국심, 자나 깨나 인재 발굴에 골몰했던 뜨거운 열정을 고려한다면 '최종원 학술원' 출범은 사실 늦은 감이 있다. 10년 전이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때도 지금도 우리에겐 여전히 많은 인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최 선대회장이 타계한 지 20주기다. 고인의 뜻에 힘입어 '최종원 학술원'을 통해 한국의 미래를 이끌 많은 인재들이 육성되길 바란다. 누구도 하지 않은 일을 묵묵히 수행했던 고인이 유난히 그리운 요즈음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25 이영재

[참성단]맥아더 동상 방화

동상을 순례하면 그 나라의 역사를 일별할 수 있다. 동상은 역사와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민족적, 정치적 시선의 변화에 따라 국내외 갈등의 중심에 선 동상이 적지 않다. 프랑스 식민지들은 해방이 되자마자 잔다르크 동상부터 참수해버렸다. 최근에는 뉴질랜드와 호주가 제임스 쿡 선장 동상 훼손을 놓고 이주 국민과 원주민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의 위인이 피해 당사국과 민족에겐 침략의 상징이다.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관통한 우리도 마찬가지다. 일본과는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싼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다. 2011년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이후 일제 피해를 당한 동남아 각국은 물론 유럽과 미국에까지 진출한 소녀상은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고발하는 표상이다. 지난 9월 일본 우익분자가 대만 타이난시의 위안부 동상을 발로 찼다. 국내 여론은 마치 우리 소녀상이 모욕당한 듯 분노했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에게 눈엣가시다.박정희 동상을 둘러싼 시비는 업적과 과오가 너무 뚜렷해서다. 이념적, 정파적 시선이 한쪽만 본다. 지난해 박정희 탄생 100년을 맞아 기념재단은 기증받은 그의 동상을 세울 자리를 물색했다. 하지만 광화문은 서울시가, 용산 전쟁기념관과 상암동 박정희기념관은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혔다. 동상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약속으로 지어진 박정희기념관 창고에 들어가 있다. 그의 과오에만 집중하는 세력이 대세인 탓이다. 딸 박근혜가 탄핵당하지 않았으면 그의 동상은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궁금하다.그런데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방화사건은 확정된 역사적 사실을 전제하면 이해하기 힘들다. 인천상륙작전으로 6·25전쟁의 전세를 역전시켜 자유 대한민국의 영토를 지켜 낸 맥아더의 업적은 객관적이다. 최근 인천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죽산 조봉암 동상 건립 반대 여론이 일고 있다. 조봉암은 전향한 공산주의자였다. '전향'을 빼고 '공산주의자'만 보는 시선이니 수많은 탈북 전향자를 국민으로 품은 현실과 어긋난다. 마찬가지로 반미단체 회원이라는 이 모 목사가 하필이면 방화시위의 자유까지 지켜 준 맥아더를 표적으로 삼은 건 명백한 오조준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24 윤인수

[참성단]음서(蔭敍)

음서제가 도입된 건 997년 고려 목종 때였다. 관리의 자식이나 친척을 과거시험 없이 관리로 채용하는 게 목적이었다. 초기엔 직위에 제약을 뒀다. 명문가가 아니어도 우국충정이 충만하고, 학문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은, 과거를 통해 등용된 인재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기로 갈수록 음서제 출신들이 가문의 힘으로 요직을 차지했다. 폐해가 얼마나 심했던지 심지어 5세 아이가 음서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고려는 그러다 망했다.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같은 신진세력들이 음서제의 폐단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공신들과 왕 주변에 서성이던 최측근 신하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음서제 적용 범위를 '공신이나 2품 이상 관의 자(子)·손(孫)·서(壻)·제(弟)·질(姪), 실직(實職) 3품관의 자손으로 제한한다'고 '경국대전'에 명문화시켰다. 그런데 조선도 고려와 같은 길을 걸었다. '한번 금수저는 대역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영원한 금수저'였던 것이다. 이러고도 조선이 500년이 유지됐으니 '기적'이었다.음서제가 출현한 지 1000년이 지난 지금,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 및 고용세습 의혹으로 우리 사회가 또 한 번 큰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음서제가 사라지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유명 로펌의 경우 정치인, 고위관료 등 유력가의 자식이 아니면 들어가기 힘들다는 '현대판 음서제'가 논란이 된 지 오래다. 대기업 노조의 고용세습도 이미 오래된 관습이었다. 지난 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이 공개한 고용노동부 자료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현재 현대자동차, 금호타이어 등 15개 기업의 단체협약에 정년퇴직자·장기근속자·사망 질병 등에 걸렸을 경우 배우자나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조항이 들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청년 백수'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들은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취업절벽' 앞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는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다. 그런데 한쪽에선 귀족노조 고용세습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공공기관 채용과 정규직화 과정에서 '그들만의 검은 거래'가 자행되고 있다니 이 청년들의 탄식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었다. 이 약속은 현대판 음서제를 뿌리 뽑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23 이영재

[참성단]굴업도 수난사

굴업도는 면적이 30만평 정도로 한강이 만든 여의도(약 88만평)보다 작은 섬이다. 해안 길이 12㎞에 가장 높은 덕물산의 해발고도는 122m에 불과하다. 행정구역상 옹진군 덕적면 굴업리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굴압도(屈鴨島)라 했다. 섬의 형세가 물 위에 구부리고 떠있는 오리의 모양과 같다 해서다. 그러나 일제때 '屈業'을 거쳐 '掘業'으로 바뀌었으나 확실한 연유를 남긴 기록은 없다. 다만 일제 초기만 해도 대규모 민어 파시가 열려 수천명이 북적대던 시절, 노동의 의미가 오리의 형상을 대체한 것이 아닌가 싶다.파시가 쇠퇴하고 오랜 세월 뭍에서 잊혀졌던 굴업도는 1994년 이름 석자를 갑자기 세상에 내밀었다. 정부가 굴업도를 핵폐기장으로 선정한 것이다. 반대할 주민이 없던 굴업도 대신 모섬인 덕적도 주민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결국 굴업도 일대 활성단층이 발견되면서 정부가 주장하던 지질 안정성이 무너졌고, 1년도 못돼 지정은 취소됐다. 당시 굴업도를 눈 앞에 둔 서포리 해안에서 주민들이 벌였던 잔치마당에 참석했던 기억은 언제나 흐뭇하다.정부가 물러나자 이번엔 대기업이 굴업도를 세상에 소환했다. CJ그룹 씨앤아이(C&I)레저산업이 2005년 굴업도에 관광호텔·콘도, 골프장, 마리나를 갖춘 오션파크 건립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CJ그룹은 섬 전체 면적의 98%를 사들였지만 역시 지역 환경단체의 반대에 직면했다. 인천시는 섬 훼손을 우려해 골프장을 뺀 개발을 권고했고, CJ그룹은 2014년 골프장 건설 철회 방침을 밝혔다.CJ의 사업이 답보상태에 빠진 요즘 굴업도는 백패킹의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 개발에서 소외돼 지질학적 원형이 가장 잘 보전된 굴업도를 백패커들은 한국의 갈라파고스로 부른단다. 주말이면 배낭 하나 메고 굴업도를 찾아 캠핑을 즐기는 백패커가 200명 이상이란다. 그 탓에 굴업도의 목기미 해변, 개머리 초지, 연평산 일대는 해양 쓰레기뿐 아니라 캠핑 쓰레기 범벅이 됐다. 원시의 모습과 별이 아름다운 밤하늘을 간직한 덕분에 쓰레기 세례를 받으니, 정부와 대기업으로부터 섬을 지켜낸 의미가 무색하다.핵폐기장, 오션파크, 쓰레기에 이르기까지 굴업도에는 사람의 욕심에 상처 입은 땅의 역사가 담겨있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22 윤인수

[참성단]추억의 인천 미림 극장

1960년대는 한국영화의 전성기였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영화 관람은 유일한 문화생활이었고 일상을 피할 탈출구였다. 남녀노소 영화를 보며 웃고 울었다. '성춘향' '마부' '미워도 다시한번'같은 대박 영화가 나오면 온 나라가 '들썩'였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1960년대 국민 1인당 연간 영화관람 횟수는 평균 5.5회였다. 2016년 4.2회와 비교하면 당시 영화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1990년대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극장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손으로 그린 영화 간판이, 여기저기에 붙어 있던 '만원 사례(滿員謝禮)'가, 명절의 암표상이 추억이 됐다. 인천은 대한민국 극장사(史) 가 그대로 녹아든 곳이다. 한국 최초의 극장 협률사의 전통을 이은 애관극장을 비롯해 문화, 동방, 미림, 오성, 인천, 현대극장 등이 6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함께했다. 그러나 현대화 물결에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애관과 미림극장만 살아남았다.1957년 천막극장으로 시작한 미림은 경영난으로 2004년 문을 닫았다가 지난 2013년 10월 실버극장 '추억극장 미림'으로 재개관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입장료 2천원이면 어르신들은 옛날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었다. 영화만이 아니다. 노인들의 취미, 친목활동 등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으로 지역공동체 친화 극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곳을 찾는 외지인에게서 "내가 사는 곳에도 이런 극장 하나쯤 있었으면…"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림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런 미림극장이 재정문제로 내년 4월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인천시로부터 매년 1억원 정도 받았던 사회적 기업 지원비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추억극장 미림'이 진짜 추억이 될 위기에 처했다.노년층은 여전히 문화생활에 익숙하지 않고 그럴 만한 경제적 여유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버극장은 60, 70년대 고전 영화를 감상할 수 있던 유일한 문화 수단이다. 그 '유일함'이 고작 1억여 원 예산을 지원받지 못해 사라진다면 유서깊은 애관극장을 보유하고 있는 문화도시 인천의 수치다. 미림이 문을 닫는다면 노인은 여전히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홀대받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인천시와 시민들은 머리를 맞대고 미림을 살릴 방안을 꼭 찾길 바란다. 사라진 추억은 손으로 다시 만질 수 없고, 한번 무너진 역사는 복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21 이영재

[참성단]동네 권력 '맘 카페'

"우리 어린이집이 아수라장이 되는데 반나절도 안 걸렸다." 지난 13일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A씨가 근무했던 김포 통진읍 소재 어린이집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A(37)씨는 지난 11일 어린이집 가을 나들이 행사에 참가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회원이 3만명이 넘는다는 지역 커뮤니티 '김포 맘들의 진짜 나눔' 카페에 '아이가 교사에게 안기려고 했지만 교사가 (아이를) 밀쳤다'는 말을 '들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아이의 이모가 쓴 것이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린이집 실명이 공개되면서 항의전화가 쏟아졌다. A씨 신상도 그대로 노출됐다. '신상털이'를 당한 것이다. 수백 개의 댓글과 동조 글이 붙었다. 시민이 고발했다며 경찰까지 찾아왔다. 더구나 아이의 이모가 찾아와 교사 A씨의 무릎을 꿇게 하는 등 인격적으로 모욕을 가하기도 했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A씨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네카시즘'은 '네티즌'과 '매카시즘'의 합성어다. 인터넷상에서 익명으로 어떤 이슈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온라인 폭력을 말한다. 네티즌의 일방적인 여론몰이, 마녀사냥과 동의어다. 매카시즘은 1950년 2월 "국무성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매카시 상원의원의 폭로에 따라 어이없는 마녀사냥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다. 요즘 동네 권력이라는 '맘 카페' 회원들의 근거 없는 인신공격은 매카시즘과 너무 유사하다. 익명 속에 숨어 쏘아대는 포화에 누구나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숨을 곳도 없다. 확인도 안 된 "그렇다더라"에 마음 약한 사람은 견디다 못해 목숨을 내놓는다. 지역별로 맘 카페가 없는 곳이 없다. 맘 카페는 원래 지역 소비자운동으로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육아·교육·지역 정보를 공유하는 대형 커뮤니티로 자리 잡았다. 어마한 '동네 권력'이 된 것이다. 자영업자들은 "지역 상권에서 맘 카페의 힘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말한다. 심지어 "찍히면 죽는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끔찍한 마녀사냥도 자행된다. 지난 7월 경기 광주 맘 카페에 올라온 '난폭 운전하는 태권도 학원 차량'도 그런 경우다. 가장 무서운 게 "어디서 들었는데"다. 그러다 문제가 불거지면 "아니면 말고"다. 'A씨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청원에는 벌써 10만여명이 참여했다. A씨는 결혼을 앞두고 있던 예비 신부였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18 이영재

[참성단]이재명 지사의 'SNS 족쇄론'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최근 한 방송에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한때 저의 힘이었는데 지금은 족쇄"라며 "후회스럽다"고 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과의 지난 대선 당내경선 토론 과정을 회고하며 "싸가지가 없었다"고 자책했다. 지난달 초 "페이스북은 저의 가장 큰 방패이자 무기"라던 입장과 사뭇 다르다. 당시 그는 5천명의 '페친'을 향해 악성 조작 왜곡글에 반박 댓글이라도 써주는 '실천하는 동지'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페이스북은 성남시장 시절부터 이 지사의 핵심 홍보수단이었고, 충성스러운 팔로어들은 그의 표현대로 정적들로부터 그를 보호하는 방패이자 무기였다. 하지만 현재 그를 곤경에 빠트린 진앙 또한 페이스북이다. 김부선씨와는 '가짜 총각'과 '대마 발언'이 증폭돼 자진 신체검증에 이르렀다. '형님 정신병원 강제입원'과 '혜경궁 김씨' 논란은 경찰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대선 경선과정은 친문세력과의 반목으로 이어졌다. 페이스북에 이 모든 논란의 기원이 기록돼 있다. 해명과 부인과 규명은 가능할지라도 '사실'만큼은 지울 수 없다. 누군가 필요할 때마다 재생하고 의도적인 재해석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SNS의 이중성은 너무 극단적이다. 강남스타일을 세계에 퍼트려 싸이를 국내파에서 국제파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구하라는 리벤지 포르노가 SNS에 퍼질까봐 무릎까지 꿇어야 했다. 김기식 전 금감원장은 과거 트위터에서 강조했던 권력의 정당성과 상충되는 외유성 출장이 드러나 정치역정에 오점을 남겼다. 반면 박지원 의원은 부인을 잃은 애통한 심정을 게시해 폭풍 공감을 받았다. 잘 쓰면 축복이고, 아니면 지옥문이 열린다.SNS는 'CIA가 꿈에 그리던 일'이라는 풍자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거주지와 종교적 정치적 견해, 순서대로 정리한 친구 목록,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 자신이 찍힌 수백 장의 사진, 현재하고 있는 활동 정보를 공개하고 있어서란다. 더 이상 풍자가 아니다. 모골이 송연한 경고다.정치하는 사람들은 'SNS가 족쇄가 됐다'는 이 지사의 후회를 진지하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17 윤인수

[참성단]가을 야구

프로 야구는 종종 농사와 비유된다. 이듬해 농사를 위해 겨우내 준비하는 농부처럼 야구도 정규시즌 전 스프링 캠프에서 꼼꼼한 준비를 한다. 가뭄, 장마, 폭염을 거쳐 마침내 가을 수확에서 한해 농사가 결판나듯, 야구도 정규시즌이 끝나고 포스트 시즌 진출 여부에 따라 1년 농사 성패가 좌우된다. 이처럼 144게임을 치러야 하는 프로 야구만큼 계절을 타는 스포츠도 없다. 프로야구의 정규시즌이 마감됐다. 한해 농사가 끝난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 끝난 게 아니다. 포스트 시즌이 기다리고 있다. 포스트 시즌은 깊은 가을이 왔음을 의미한다. 야구의 종주국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는 최종 우승을 가리는 월드시리즈를 '가을의 고전(Fall Classic)' 또는 '10월의 고전(October Classic)'이라고 부른다. 무르익은 가을, 10월(October)에 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10월을 빗댄 조어도 많다. 가령 플레이오프에 강한 모습을 보이는 타자를 Mr October라 부른다. 2007년 와일드카드로 거침없는 7연승을 달리며 돌풍을 일으켰던 현재 오승환 소속팀 콜로라도 로키스는 Rocktober(Rockies+October)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한국 프로야구는 10개 팀 중 상위 5개 팀만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다. 팬들은 정규시즌 내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둬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달라는 절실한 바람을 하나의 문구에 함축시켰다. 역사상 가장 더웠던 지난여름에도 구장마다 팬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던 이 말. '가을에도 야구하자'가 그것이다. 8자에 불과하지만 응원하는 팀이 뛰는 경기를 한 게임이라도 더 보고 싶은 팬들의 간절함이 함축되어 있다. 이후 '가을 야구'는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을 상징하는 용어로 자리를 잡았다.2018년 가을 야구는 두산 SK 한화 넥센 기아 5팀만 초청받았다. 로맥과 한동민으로 대표되는 명실상부한 '홈런 군단'이자 '두산의 대항마' 인천 SK 와이번즈는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해 6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덕분에 팔꿈치 수술을 받고 돌아온 김광현을 가을 야구에서 볼 수 있어 팬들은 벌써 흥분된다. 한화는 11년 만에 가을 야구 초청장을 받았다. 이처럼 가을 야구에는 진출한 팀마다 각각 온갖 사연이 차고 넘친다. 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팬들의 발걸음이 이 깊은 가을, 야구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16 이영재

[참성단]하나의 전쟁과 두개의 시선

제임스 쿡 선장은 영국에게는 영토를 개척한 위대한 탐험가이지만 뉴질랜드와 호주 원주민에게는 침략자이자 학살자이다. 그는 1769년 뉴질랜드에 상륙하고 1770년 호주 해안을 탐사한 최초의 유럽인이었다. 내년은 뉴질랜드 발견 250주년이고, 내후년은 호주 정부가 기리는 '영토발견의 해' 250주년이 된다. 하지만 쿡 선장을 바라보는 두개의 시선이 충돌하면서 기념 분위기가 바래고 있다. 쿡 선장을 향한 양국 원주민들의 반감이 고조되고 있고, 그의 동상은 곳곳에서 훼손되고 철거되는 실정이다.전쟁, 특히 일방적인 침략전쟁의 경우 가해의 역사는 퇴색하는 반면, 피해의 역사는 선명하다. 전쟁을 바라보는 가해국과 피해국의 시선이 달라서다. 일본의 아시아 침략전쟁이 대표적이다. 가해 역사를 지우려는 일본내 극우보수 세력이 가해를 인정하는 양심세력을 압도한다. 그럴수록 피해 당사국들의 피해의식은 더욱 또렷해진다.지난 11~12일 인천시와 경인일보가 주최한 '인천의 전쟁과 세계평화 포럼'에서도 하나의 전쟁을 바라보는 두개의 시선이 역력히 드러났다. 1871년의 한국은 미국의 침략으로 규정한 신미양요를, 미국 발표자는 '원정(遠征)'이라 주장했다. 러-일 전쟁에 대한 논란은 더 뜨거웠다. 러시아 발표자는 "러일 전쟁의 직접적인 전범은 일본"이라고 주장한 반면 일본 발표자는 전쟁이라는 표현 대신 "약간의 교전"이라고 밝혔다. 이에대해 중국 학자는 "러일 전쟁으로 당시 무고한 중국인들이 물적·정신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남의 집(랴오닝과 제물포) 피해는 언급하지 않는데 항의했다.이번 포럼은 현재 진행중인 남북 평화협상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졌다. 분단 이후 남북 분쟁사에서 주로 피해 당사자는 남측이었다. 6·25전쟁, 무장간첩 침투, 아웅산 폭파사건, 1·2차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의 피해 당사자가 현존하고 피해의식은 엄존한다. 정부의 한반도 평화협상 진전을 우려하는 여론의 배경이다. 북한의 대남 침략 역사를 향한 우리 내부의 피해의식 해소가 남북협상 국면에서 매우 중요해졌다. 피해국에 대한 사과와 피해의식의 해소 없이 화해가 불가능한 현실은 한일 관계만 봐도 분명하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15 윤인수

[참성단]흰 지팡이의 날

오늘은 '흰 지팡이의 날'이다. 그동안 이런 날이 있는 줄도 몰랐다. 무관심 탓이다. 제정된 지도 올해로 벌써 39년째가 됐다. 그런데도 몰랐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흰 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해주는 '눈' 역할을 하는 그 지팡이다. 1946년 미국 육군병원 안과의사 후버가 시각장애인을 위해 고안했다. 비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을 쉽게 식별하고 길을 양보하거나 운전자가 서행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1980년 헬렌 켈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세계 시각장애인연합회가 10월 15일을 '흰 지팡이의 날'로 공식 제정해 전 세계에 선포했다. 선언문엔 '흰 지팡이는 동정이나 무능의 상징이 아니라 자립과 성취의 상징'으로 규정했다. 우리나라에서 흰 지팡이에 대한 규정이 마련된 것은 1972년 도로교통법에서다. 도로교통법 제11조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도로를 보행할 때는 흰 지팡이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제48조에는 "모든 차의 운전자는 어린이나 유아가 보호자 없이 걷고 있거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흰색 지팡이를 가지고 걷고 있을 때에는 일시 정지하거나 서행한다"고 적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법은 '딱 '거기 까지다. 시각장애인에게 도심은 여전히 거대한 정글이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장벽이 여기저기에 도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흰 지팡이를 의지해 도심에서 50m를 이동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골목길이나 이면도로는 더 끔찍하다. 비장애인도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겁날 정도로 '우선멈춤'을 지키는 차는 거의 없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인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은 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들에겐 비장애인의 '배려'가 꼭 필요하다.누군가 흰 지팡이를 든 사람이 있다면 운전자와 보행자가 모두 그들에게 '배려'할 준비를 해야 한다. 흰 지팡이의 날을 제정한 것도 비장애인들에게 그런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다. 문제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배려'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다. 말이 선진국이지 장애인들에게 우리나라는 여전히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이 살기 얼마나 힘든 나라 인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우리나라 장애인 중 90% 정도가 후천적 장애인이라고 한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장애를 입을 수 있다. 모든 장애인에 대해 우리 사회가 따뜻한 '배려'를 가져야 하는 이유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14 이영재

[참성단]교황, 카스트로 그리고 김정은

2015년 9월 20일. 쿠바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도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쿠바 국민을 상대로 대규모 미사를 집전하며 "사상이 아니라 사람을 섬겨야 한다"고 말했다. 말로는 쿠바 인민을 위한다면서 개인숭배에 빠진 카스트로 체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쿠바에서 4일을 머무르는 동안 포용과 사랑으로 쿠바의 변화를 독려했다. 쿠바 국민은 1998년 요한 바오로 2세, 2012년 베네딕토 16세의 쿠바방문 때보다 프란치스코를 더욱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교황이 54년 만의 미국·쿠바 국교정상화에 막후 중재역할을 했기 때문이다.교황은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도 만났다. 카스트로는 늘 그랬듯 세 줄이 있는 파란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고 교황을 만났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체제에 대해선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카스트로의 고교 은사이자 예수회 신부인 아만도 요렌테의 설교집을 선물했다. 거기엔 나름 큰 의미가 있었다. 카스트로는 1959년 쿠바 혁명 직후 은사인 요렌테 신부를 추방했다. 요렌테 신부는 고국 쿠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2010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생을 마쳤다. 신부의 설교집 전달은 카스트로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교황의 간곡한 뜻이 포함돼 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양 방문을 공식 초청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교황을 만나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이에 김 위원장은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진행된 얘기라 단정할 수 없지만 김 위원장이 교황 방문을 간곡히 원하는 것과 문 대통령이 교황의 평양방문을 희망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김 위원장이 교황을 초청하려는 의도는 분명하다. 전 세계에 북한을 정상국가로 보이고 싶은 것이다. 교황이 방문을 수락할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수락해도 쿠바와 평양은 너무 다른 나라다. 쿠바국민의 60%가 가톨릭 신자지만 평양에는 가톨릭 신자가 한 명도 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 20만명의 정치범이 있는 세계에서 인권탄압이 가장 극심한 나라 북한을 방문하는 것도 교황으로선 나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아무런 소득 없이 그저 '왔소 갔소'로 끝난다면 방문의 의미는 크게 퇴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11 이영재

[참성단]스리랑카 노동자의 풍등

한 스리랑카 노동자가 일하던 공사현장에 떨어져 있던 풍등에 다시 불을 붙여 날렸다. 심심파적이었을 것이다. 경찰이 이 노동자가 날린 풍등을 대한송유관공사 고양 저유소 폭발화재의 직접적 원인으로 특정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동정론이 우세한 가운데 처벌을 주장하는 소수의견도 있다.논란에 앞서 이 스리랑카 노동자를 덮친 나비효과는 비극적이다. 애초에 풍등을 날린 곳은 저유소에서 800m 떨어진 한 초등학교였다. 학부모회가 주최한 행사에서 지난 8년간 해마다 날렸다고 한다. 그 수많은 풍등 중 하나가 하필 3년전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의 손을 타고 저유소를 향했다. 휘발유 탱크는 폭발했고, 스리랑카 노동자는 인생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이 노동자에 대한 동정여론에 공감이 간다. 무심하게 날린 풍등이 저유소 폭발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증폭된 원인 규명이 중요했다. 풍등의 불씨가 떨어져 저유탱크 잔디밭을 18분이나 태우는 장면이 저유소 모니터가 생중계했지만 이를 지켜본 송유관공사 직원은 없었다. 저유탱크 주변의 화재를 알려줄 시스템도 없었다. 작년말에 풍등을 관리할 소방법 개정이 있었지만, 풍등을 날리는 것은 불법도 아니고, 금지구역을 설정한 것도 아니다.재미삼아 재활용한 풍등 하나가 저유소 폭발로 증폭된데는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 송유관공사의 부실한 방재시스템, 관련 법규의 모호함이 더 큰 원인일 것이다. 한 외국인 노동자를 화재의 주범으로 단정하는 순간 화재 원인과 관련된 우리 내부의 문제점이 소실된다. 대형 저유시설의 화재 가능성을 증폭시켜 온 우리 내부의 문제를 주목하기 보다, 서둘러 희생양을 만들고 있다는 여론은 이성적이다.풍등은 불로 데워진 공기의 팽창력을 동력으로 솟아오른다. 불이 꺼지고 공기가 식으면 떨어진다. 그런데 저유소 잔디밭에 착륙한 문제의 풍등은 불씨를 안고 있었다. 스리랑카 노동자에게 화재의 책임을 미루고 넘어간다면 국가 방재시스템에 화근을 남기게 될테고, 국가중요시설을 향한 풍등의 습격은 계속될 것이다. 검찰이 10일 저유소 화재 피의자인 스리랑카 노동자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10 윤인수

[참성단]요즘 무슨 책 읽어?

얼마 전 길에서 옛 은사님을 만났다. 이런 저런 얘기 중 은사님이 이렇게 물었다. "자네 요즈음 무슨 책 읽나?" 의외의 질문이라 당황했다. 생각해보니 이런 질문을 최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나 역시 누구에게 "지금 무슨 책 읽어?"라고 물어본 적이 없다. 만나는 사람에게 "밥 먹었어?" 라는 말은 수없이 하면서도 "무슨 책 읽어?"라는 말은 단 한 번도 하지 않는,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를 사는 것이다.열어둔 창문 틈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는 건 책 읽기 좋은 가을이 왔다는 것이다. 설악산 단풍 소식은 책을 읽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 왔음을 의미한다. 올해가 '책의 해'라는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국민이 책을 너무 읽지 않으니 정부가 25년 만에 올해를 '책의 해'로 지정했다. 매달 책과 연관된 행사들이 지난 3월부터 연말까지 꾸준히 끊이지 않고 열린다. 하지만 이에 관심을 두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세종은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읽지 않은 책이 없었다. 어제 한글날, 언론들은 세종의 업적을 찬양하면서 가장 으뜸으로 '한글'을 꼽았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건 백성이 쉽게 글을 읽게 하기 위함이다.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28자를 만들었으니~"라고 밝혔듯 왕은 혼자만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는 게 백성들에게 미안했을지도 모른다. 책 읽는 재미를 백성 모두가 공유하길 왕은 진정으로 원했을 것이다. 아무리 미디어 시대라지만 한글창제 572돌을 맞는 지금, 우리의 독서율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 국민이 책을 읽지 않는 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루 평균 200권 이상의 신간이 쏟아지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출판량에도 불구하고 독서율은 OECD 최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5년 펴낸 '국민독서실태조사'보고서를 보면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65.3%였다. 2017년엔 60%로 더 떨어져 성인 10명 중 4명이 일 년 동안 책을 단 1권도 읽지 않았다. 왕의 깊은 뜻이 무색해질 지경이다. '책 읽기의 일상화'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이 순간만이라도 독서삼매경에 빠져야 할 때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은 한 달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리고 100일도 남지 않았지만 '2018년 책의 해'만이라도 이런 인사말이 넘쳐났으면 좋겠다. "무슨 책 읽어?""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09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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