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카바티나

베트남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맨 처음 떠오른 영화가 있다. 베트남 전쟁이 배경인 '디어 헌터'(The Deer Hunter)다. 전쟁의 참혹함을 잘 보여주는 반전영화의 수작이다. 특히 영화제목처럼 사슴사냥을 즐기던 평범한 젊은이들이 참전 후 포로로 잡혀 목숨을 담보로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포탄이 떨어지고 총격전이 오가는 여느 전쟁신 보다 신랄하게 전쟁의 잔인한 실상을 보여준다. 그래서인지 개봉한지 40년이 지났지만 그 장면은 아직도 머릿속에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다. 어쩌다 영화를 다시 볼 때면 테이블 위에서 권총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컷에서부터 음울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이 영화가 기억에 남는 것은 이 장면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을 적시는 기타 소리 또한 명장면 못지 않은 여운을 남긴다. 바로 영국의 작곡가 '스탠리 마이어스'가 만든 '카바티나'(Cavatina)로 호주의 기타리스트 '존 윌리엄스'가 연주했다.악보만 보면 4분의 3박자 단순한 아르페지오 반주에 멜로디만 얹은듯해 쉬워 보이는데 제대로 연주하기가 꽤 까다로운 곡이다. 기타 강사인 한 지인은 카바티나에 도전했다가 슬럼프에 빠져 수개월 동안 소리를 내지 않고 운지와 탄현 연습만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때문인지 대가들의 흠 없는 연주를 듣다 보면 이 곡이 왜 클래식기타 3대 명곡 중 하나로 불리는지 이해가 간다.보는 내내 긴장과 인내를 감수해야 하는 이 영화는 어쩌면 카바티나가 흘러나오는 엔딩크레딧을 위해 달려왔는지 모른다. 영화와 별도로 곡 자체만을 볼 때 카바티나는 전쟁영화 OST로는 미스매칭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애잔하고 담담하게 흐른다.그런데 등장인물들의 행복했던 시절을 보여주면서 자막이 올라가는 영화 막바지에 이 곡의 진가가 나타난다. 등장인물들의 해맑은 표정과 '슬픈 기타 소리'라는 이 기막힌 조합은 '왜 평화가 필요한지'를 저절로 느끼게 해준다. 미국의 시각에서 본 반전영화라는 평가마저 희석시키는 명분이지 않을까 싶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지 44년이 지난 지금 베트남 하노이는 평화를 이야기하는 '핫 플레이스'가 됐다. 그동안 핵단추 운운하며 지구촌 관객들에게 긴장과 인내를 요구했던 두 정상이 베트남에서 반전영화 보다 더한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주기를 기대해 본다. /임성훈 논설위원

2019-02-27 임성훈

[참성단]하노이

1969년 9월 지팡이 하나, 옷 두 벌, 책 몇 권을 유품으로 남기고 떠난 호찌민의 유언은 이랬다. "내가 죽으면 웅장한 장례식으로 인민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무덤에는 비석도 동상도 세우지 마라. 소박하고 넓고 튼튼하고 통풍되는 집을 세워 방문객들이 쉬어가게 하라. 방문객이 추모의 뜻으로 한두 그루 나무를 심게 하라." 하지만 당시 권력자 레주언은 호찌민의 유언을 무시했다. 하노이 바딘광장에 영묘(靈廟)를 조성하고 그의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영구보존했다. 권력의 심장부 하노이에 호찌민을 두고 그의 영향력을 정치에 이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월남전이 한참이던 1972년 7월, 미국 유명배우 헨리 폰다의 딸인 배우 제인 폰다가 하노이를 방문했다. 반전 운동가 제인은 월맹군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북베트남 대공포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북베트남은 "이게 웬 떡이냐"라면서 이 사진을 반전(反戰) 홍보용으로 대대적으로 이용했다. 하지만 사진을 본 미국은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시끄러웠다. 이적행위라는 비난도 일었다. 미국 언론은 그녀에게 '하노이 제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훗날 제인은 "참전 군인에게 상처를 주었다"며 자신의 경솔한 행동에 대해 반성했다.제인이 하노이를 방문하던 그해, 미군은 12월 18일부터 11일 동안 하노이에 훗날 역사가들이 '크리스마스 대 폭격'으로 기록한 대대적인 공습을 감행했다. 이에 견디지 못한 북베트남은 협상장에 나와 미국과 1973년 1월 27일 파리협정을 체결했다. 협정에 따라 미군은 철수했지만,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은 패망했다. 훗날 티우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키신저는 우리도 모르게 공산주의자들과 협상했다. 미국은 국내 문제 해결을 위해 베트남을 버리려고 한 것이다. 이것은 현실정치에서 일어나는 실수가 아니라, 미국이 고의적으로 옳지 못한 정책을 선택한 결과였다." 티우는 남베트남이 '버리는 패'였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하노이는 1958년과 1964년 김일성이 호찌민과 두 번 회담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역사의 현장에서 오늘 내일 이틀간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회담 성공을 기원하는 50만 개의 꽃과 나무, 4천개의 꽃바구니로 지금 하노이가 꽃의 도시로 변했다고 한다. 회담 후 '하노이 선언'이 발표될 것이다. 그저 그랬던 '센토사 선언'보다 우리가 더 납득할 수 있는 비핵화가 담긴 선언이 나오길 바랄 뿐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2-26 이영재

[참성단]국무(國巫) 김금화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 정부가 미국에 파견한 문화사절단엔 만신(萬神·큰 무당) 김금화도 포함됐다. 공연 첫날 무대에 오르려는 김금화의 옷차림을 보고 주미 영사관 사람들이 "나라 망신 시킬 일 있느냐. 무슨 굿이냐. 당장 데리고 나가라"고 난리를 쳤다. 그녀를 데리고 간 고(故) 조자용 에밀레박물관장이 아랑곳 않고 그녀를 무대로 떠밀었다. 신명나게 굿거리를 펼치고 죽기살기로 작두를 탔다. 이번엔 미국 관객들이 춤추고 난리가 났다. 나라 만신, '국무(國巫) 김금화'가 탄생한 순간이었다.이후 김금화는 독일,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에 대동굿과 진혼제를 선보였고,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선종 직후엔 로마대학 앞에서 굿판을 벌이기도 했다. 백남준, 김대중 전 대통령 진혼제와 세월호 희생자 추모위령제도 주재했다. 2007년 사도세자 서거 245주년을 맞아 화성행궁 앞에서 펼친 진혼제에서는 사도세자와 접신해 "목말라. 목말라"라고 울부짖어 관객들의 마음을 찢어놓기도 했다. 김금화는 오방색의 마술사 내고 박생광의 무녀도 시리즈의 모델이기도 했다. 2004년 용인 이영미술관에서 열린 박생광 탄생 100주년 특별전에서 진혼굿을 벌인 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미국 공연 후 1985년 '서해안 배연신 굿 및 대동굿'으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지만, 그 이전의 세월은 그녀의 말(경인일보 2005년 10월 25일) 처럼 "무당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험난했던 인생"이었다. 11살부터 무병을 앓다 14살에 시집에서 도망치고, 17살에 만신이던 외할머니 김천일에게 내림굿을 받아 19살부터 마을 대동굿을 주재했다. 무속을 미신으로 경멸하던 시류 때문에 동란 때는 좌익과 우익의 위협을 받았다. 1·4후퇴 때 고향인 황해도 연백을 떠나 인천 만석동에 자리잡았지만 새마을운동 시절의 사회적 멸시도 만만치 않았다.서해 어민들의 풍어를 빌어주고, 지역사회의 대동평안을 기원하고, 국태민안을 염원하던 국무이자, 굿을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확장시킨 예인 김금화가 지난 23일 세상 옷을 벗어던지고 영면에 들었다. 이제 혼이나마 황해도 연백 고향 하늘을 날고 있으려나. 마침 미북회담이 곧 열린다. 한반도 운명에 볕이 들도록 나라 만신 김금화의 천상 굿판을 청하면 무리일까. /윤인수 논설위원

2019-02-25 윤인수

[참성단]변화하는 아카데미 상

아카데미상을 왜 오스카(OSCAR)상이라고 부르는지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다. 아카데미 상 트로피가 여배우 베티 데이비스 첫 남편 오스카 넬슨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AMPAS)의 도서관 직원이던 마거릿 헤릭 여사의 삼촌 오스카를 닮았다는 데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지만, 근거는 희박하다. 그러나 1934년 6회 아카데미 상에서 캐서린 헵번의 여우주연상 수상 글을 쓴 칼럼니스트 시드니 스콜스키가 처음으로 '오스카'를 거론한 것은 분명하다.아카데미상은 '백조의 잔치'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백인 우월주의에 편향됐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이는 1929년 1회 수상식이 시작된 이래 수여한 2천900여 개의 오스카 트로피 중 흑인의 품에 안긴 건 고작 32번에 불과했다는 데서 여실히 증명된다. 놀랍게도 흑진주 할리 벨리가 '몬스터 볼'로 첫 흑인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된 게 그리 멀지 않은 2002년이었다. 심지어 2015년 시상식에는 남녀 주·조연상 후보 20명이 모두 백인으로 채워져 SNS에는 '오스카는 너무 하얗다' (#Oscars So White)라는 해시태그로 물드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하지만 이제 더 이상의 '하얀 오스카'는 없을 것 같다. 오늘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리는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전혀 다른 모습이 연출될 게 분명해서다. 우선 그동안 영화업계와 큰 갈등을 빚어온 넷플릭스에게 문호가 개방된 것은 큰 변화다. 멕시코 감독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자국 출신 배우들과 자국 언어로 촬영한 넷플릭스 영화 '로마'가 작품상· 감독상 등 10개 부문에 지명됐다. 흑인 히어로 영화 '블랙 팬서'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최초로 작품상 후보를 비롯 7개 부문에 오른 것도 놀랍다. 특히 이 영화는 출연진 90%가 흑인이다. 모두 아카데미가 시대적 변화에 대한 요구를 적극 수용한 결과다.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이번 아카데미 상만큼 말이 많은 적도 없다. 우선 1989년 제61회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공식 사회자 없이 진행된다. 사회자로 낙점됐던 코미디언 케빈 하트가 과거 성 소수자 폄하 발언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자진 하차하자 아카데미는 "사회자 없는 시상식"을 선언했다. 상업성 때문에 비판을 받지만 아카데미상에 화제가 이렇게 풍성한 것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이자 최고의 영화제이기 때문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2-24 이영재

[참성단]육체노동 가동연한

'가동연한(稼動年限)'은 교통사고·산업재해 등 사고로 사망 또는 장애를 입었을 때 손해배상액 산정의 기준이 된다. 통상 해당 직종의 정년을 가동연한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정년이 없으면 동종업계 종사자의 나이를 기준으로 삼는다. 가동연한은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아 대부분 판례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르면 변호사와 법무사, 승려가 70세로 가동연한이 가장 길다. 의사와 한의사, 화가, 목사 등은 65세, 육체 노동자 등 대부분 업종은 60세를 정년으로 한다. 일반 술집 마담, 나이트클럽 웨이터, 잠수부 등은 50세, 프로야구 선수와 에어로빅 강사, 룸살롱 마담은 40세, 다방 여종업원과 골프장 캐디는 35세를 정년으로 본다.대법원이 노동자 가동연한을 60세가 아닌 65세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1989년 가동연한을 55세에서 60세로 상향한 지 30년 만에 다시 한 번 대법원 판례가 바뀐 것이다. 대법원은 "1989년 전원합의 판결 이후 가동연한이 만 60세로 됐지만, 그동안 평균 수명이 늘었고 경제 규모도 4배 이상 커졌다"며 "제반 사정이 현저하게 바뀌었기 때문에 이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가동연한을 만 60세가 아닌 65세로 보는 게 합당하다"고 밝혔다.평균수명이 늘고 노인 취업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지금, 육체노동을 주로 하는 직업의 가동연한을 늘린 것은 너무도 당연한 판결이다. 이번 가동연한 연장으로 우리 사회는 큰 변화가 올 것이다. 손해배상액 산정은 물론 보험, 연금과 법정 정년 등을 판단하는 데도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가동연한 상향에 따라 현행 정년 '만 60세 이상', 노인 '만 65세 이상'이라는 기준 변경 등 기존에 지속해서 제기돼 온 이슈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질 것이다. 문제도 있다. 가동연한 상향으로 정년이 65세로, 노인기준이 70세로 늘어날 경우 '노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간 누렸던 기득권을 모두 포기해야 한다. 물론 연금 수령 시기도 늦춰질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노인의 절반이 빈곤층이란 점이 큰 골칫거리다. 은퇴 후에도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찾아 헤매야 한다. 나이 들어서도 일할 수 있다는 건 행복이지만 그것도 건강이 전제되어야 한다. 아픈데 일해야만 하는 삶이 행복할 수는 없다. 평생을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슬퍼진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2-21 이영재

[참성단]짝퉁 명사수

미국 서부개척시대, 텍사스의 한 마을에 혜성과 같이 등장한 총잡이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벽과 마주하고 섰다. 이어 총을 꺼내더니 벽을 향해 마구 총을 쏴댄다. 이내 벽은 온통 탄환 자국 투성이이다. 수백 발의 탄환을 소진하고 나서 총잡이는 벽을 살펴본다. 자신의 사격 실력이 형편없음을 느꼈는지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다. 잠시 생각에 잠긴 총잡이는 곧바로 창고에서 페인트와 붓을 가져오더니 탄환 자국이 가장 많이 모여있는 곳에 과녁을 그린다. 그제서야 그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잠시 후 동료 총잡이들이 나타나 벽을 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명사수네!"통계학과 심리학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인 '텍사스 명사수의 오류'를 약간 각색해 보았다. 텍사스 명사수의 오류는 '허위 상관관계'를 잘 설명해준다. 무수히 많은 차이점을 무시하고 몇몇 우연의 일치에 주목하는 '링컨과 케네디의 평행이론'도 '텍사스 명사수의 오류'다.대한민국에도 지만원이라는 희대의 명사수가 나타났다. 그는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숭고한 벽에 흠집을 내기 위해 총을 난사했다. 그런데 별 소득이 없었다. 기껏 찾아낸 게 '광수'라는 탄착군이다. 그는 탄착군 안에 있는 탄환 자국마다 '광수1호', '광수2호'식으로 번호를 매겼다. 600호까지 일련번호를 매긴 후에는 붉은색으로 과녁을 그렸다. 과녁에 '광주에 온 북한특수군'이라는 설명까지 덧붙이니 그럴싸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다른 사람들이 확인해보니 제대로 된 탄환 자국이 아니다. 단지 비슷하게 생겼을 뿐이다. '총알자국이 아니라 핏물, 눈물자국'이라며 울분을 토하는 이들도 나타났다. 급기야 허위 과녁임을 알리기 위한 토론회까지 열린단다. 결국 사격 실력을 인정받아 서부 활극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짝퉁 명사수'는 꿈을 접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그래도 그는 낙심하지 않는다. 그의 허접한 사격 실력을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척하는지는 모르지만 3명의 든든한 동료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활동무대가 국회이니 보통 동료가 아니다. 그 중 한 명인 김진태 의원은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다니며 진한 동료애(?)를 과시중이다. 지만원씨의 우상이 '황야의 무법자'의 주인공 '클린트 이스트우드'라고 한다. 영화 속 주인공이 자기 신념과 소신에 따라 사는 영원한 자유인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그렇게 총을 쏴대는 걸까? 실탄인지, BB탄인지 구분도 못하면서…. /임성훈 논설위원

2019-02-20 임성훈

[참성단]이재명의 눈물

"이제 저는 정치를 떠나고자 합니다. 꿈을 이루지 못한 회한이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깨끗이 물러나겠습니다." 15대에 이어 16대 대선에서 패한 새누리당 이회창 전 총재는 주체할 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주변은 숙연했다. 이때 누군가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선거 때 좀 울지. 그러면 당선됐을지도 모르는데…."정치인은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종종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에 상대방은 마음이 움직이게 마련이다. 상황 반전을 시키는 데 있어 눈물만한 것도 없다. 하긴 정치뿐일까. 우리의 인생사가 모두 그렇다. 그래서 눈물을 '입이 말할 수 없는, 마음으로 드러내지도 못하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라고 한다.눈물의 덕을 가장 많이 본 정치인으로는 단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꼽힌다. 그는 '아무리 감명 깊은 연설이라 해도 한 방울의 눈물만 못하다'는 것을 실제 증명했다. 2002년 대선 때 존레논의 '이매진(Imagine)'을 배경음악으로 눈물 흘리는 그의 모습을 담은 광고가 TV 전파를 타자 국민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노무현의 눈물에서 그저 평범한 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이는 극적인 반전을 가져왔고,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었다.잘 못 흘린 정치인의 눈물이 역효과를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 2014년 5월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선출된 정몽준 의원은 수락연설에서 폭풍 눈물을 흘렸다. 아들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미개하다"고 언급해 사태가 악화하자 이를 사과하기 위해서였다. 이완구 국무총리도 아들의 병역 공개검증을 앞두고 "비정한 아버지가 됐다"며 울먹였다. 하지만 국민들은 이를 '악어의 눈물'로 받아들였다. 정치인의 눈물이 늘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정치인은 스스로 눈물을 흘릴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고 말했다.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눈물을 흘렸다. 그제 '반도체 특화 클러스터'와 관련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질문을 자청해 심경을 토로하면서다. "아무리 정치이고, 잔인한 판이라고 해도 죽은 형님과 살아 있는 동생을 한 우리에 집어넣고 이전투구를 시킨 다음에 구경하고 놀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 지사의 표정은 처연했다. "진정성이 느껴졌다"는 현장의 소리도 들린다. 이 지사에게 이 눈물이 반전의 계기가 돼 도정에만 전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2-19 이영재

[참성단]트럼프의 노벨평화상 집착증

못말리는 트럼프다. 이번엔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받은 사실과 추천자를 자기 입으로 자랑하고 나섰다. 지난 15일 "아베(일본) 총리가 노벨평화상을 주는 사람들에게 보낸 아름다운 서한을 내게 줬다"며 "내가 삼가 일본을 대표해서 노벨평화상을 당신에게 주라고 요청했다"고 서한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미-멕시코 국경장벽 건설예산을 의회 동의없이 쓰기위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던 자리였다. 비인도적인 국경장벽 건설과 노벨 평화상 후보라는 대립적 의제를 섞어버린 무개념은 트럼프 다웠다.추천자인 아베가 머쓱해졌다. 의회에서 사실 여부를 질문하는 야당 의원에게 "노벨상위원회는 평화상 추천자와 피추천자를 50년간 밝히지 않는다"며 즉답을 피하다가 "아닌 것은 아니다"고 추천 사실을 실토했다. 아사이 신문은 아베가 트럼프의 노벨 평화상 추천 이유와 관련 '미국 정부의 비공식적 요청'을 확인 보도했다. 요청 시기는 지난해 6·12 북미정상회담 직후였단다.트럼프의 노벨상 욕심은 지난해부터 노골적이었다. 그해 4월 북미정상회담을 예고한 미시건주 공화당 집회에서 청중들이 "노벨"을 연호하자 애들처럼 좋아했다. 실제 지난해 외신들은 남북미 정상들을 노벨 평화상 유력후보로 꼽기도 했다. 남북미 회담만한 국제적 평화 이슈도 없었다. 그런데 매해 2월 1일 마감하는 노벨 평화상 후보 추천 시한을 넘겨서였는지 트럼프의 수상은 불발됐다. 올해엔 시한에 맞추어 일본에 청부 추천까지 완료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자격이 충분하다"고 추천사를 보탰으니, 트럼프는 노벨 평화상을 '따놓은 당상'으로 여길만하다.하지만 히틀러, 스탈린, 전두환도 후보로 추천됐던 노벨 평화상이다. 아웅산 수치는 대놓고 소수민족을 탄압해 상의 의미를 격하시켰다. 미국우선주의에 입각해 국경장벽을 세우고, 전세계와 무역전쟁을 벌이고, 미국내 갈등의 중심에 선 트럼프 대통령의 수상이 실현되면 노벨 평화상은 다시 한 번 논란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트럼프의 노벨 평화상 집착증을 바라보는 우리 심경은 착잡하다. 2·27 2차북미정상회담을 노벨 평화상 이벤트로 여겨 북한 비핵화를 속 빈 강정으로 만들까봐서다. 지난해 문 대통령은 "노벨상은 트럼프가 받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고 말했다. 이제 '트럼프는 노벨상을 받고 김정은은 핵무기를 갖는'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2-18 윤인수

[참성단]고령 운전자

미국에서는 운전할 능력을 상실했음에도 운전대를 잡는 노인들을 가리켜 '살인자 할아버지(killing grandpa)'라고 부른다. 살인과 다름없다는 뜻이다. 애덤 한프트 같은 미래학자들은 2000년 초부터 고령운전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으로 보고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를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증후군'으로 명명했다.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서 주인공인 71세의 데이지가 차 사고를 낸대서 착안한 것이다.우리보다 먼저 고령화 사회를 겪은 일본은 초보운전자에겐 새싹 마크를, 고령 운전자는 네 잎 클로버 마크를 뒷유리에 붙이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 스티커를 붙인 차량을 고의적으로 추월하거나 위협을 주는 행동을 하면 벌금과 벌점을 준다. 일본은 75세 이상 고령운전자가 운전면허를 갱신하고자 하는 경우 사전에 강습예비검사를 의무화했다. 인지기능 테스트에서 치매, 간질 등의 질환이 확인되면 면허가 취소된다.우리의 경우를 보자. 운전하다 차량에 붙어 있는 스티커 중 흔히 보이는 게 '초보운전' '아기가 타고 있어요'다. 때로 '나도 내가 무서워요' 같은 애교 섞인 문구 때문에 웃음이 터지는 경우도 있다. 운전에 미숙한 초보 운전자로 돌발사태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수 있으니 알아서 대비하라는 당부다. 하지만 실제 도로에서 초보운전자보다 더 무서운 건 고령 운전자들이다. 그러나 "나 고령 운전자요"라고 스스로 밝히는 스티커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지난달 98세인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남편 필립공이 직접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일으켰다는 해외 토픽을 접하며 이게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96세의 노인이 운전하는 차량에 행인이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 고령의 운전자는 지난해 시력과 청력 등 기초적인 신체검사로 구성된 적성검사를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인터넷 상에서는 고령자 운전의 위험성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뜨겁게 진행 중이다. 교통 전문가들은 앞으로 고령 운전자들에 의한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음주운전에 의한 사망자 수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상황에서 고령 운전자 사고를 남의 일로 생각할 때는 지났다. 노인단체 등에서는 고령자의 운전 제한에 반발하고 있지만 이제라도 심도 있은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2-17 이영재

[참성단]"서로 사랑하세요"

2007년 5월 추기경은 모교 100주년 행사 미술전시회를 준비 중인 후배로부터 '자화상' 한점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추기경은 그 자리에서 검정 유성 파스텔로 쓱쓱 자화상을 그렸다. 그리고 그림 밑에 '바보야'라고 적었다. 이 그림이 다음 날 일간지 1면에 실리자 큰 반향이 일었다. 너무도 단순해 무심하기까지 한 그림에서 많은 사람이 '바보처럼 살았던'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모양이다. 기자가 왜 '바보야'라고 썼는지 묻자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다. "있는 그대로 인간으로서, 제가 잘났으면 뭐 그리 잘났고 크면 얼마나 크며, 알면 얼마나 알겠습니까.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바보같이 산 것 같아요."사람들이 자신을 '바보 신부'로 불러주길 진심으로 바라던 추기경은 그러나, 불의(不義)에 대해선 단호했다. 1980년 정월 전두환이 새해 인사차 추기경을 찾아오자 면전에서 12· 12사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마치 서부활극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서부영화를 보면 총을 먼저 빼 든 사람이 이기잖아요." 추기경은 원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로 시작하는 윤동주의 '서시'를 좋아했지만, 감히 읊어 볼 생각을 하기가 두려웠다고 한다. 이유를 묻자 "하늘을 우러러 너무 부끄러운 게 많아서…"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좋아하는 시를 '별 헤는 밤'으로 바꿨다. 추기경은 2004년 4월 '21세기의 지도자상'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적이 있었다. 이날 추기경은 "자기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것"을 새 시대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덕목으로 꼽았다. 추기경은 또 "누군가가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을 바꾸어 사랑할 수 있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기적"이라며 이 기적 말고는 다른 어떤 것도 이 세상을 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16일은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善終)한 지 10주년 되는 날이다. 지금 주위에는 아무리 둘러봐도 '존경할 만한 어른' '의지하고 싶은 원로' 한 명 보이지 않는다. 어른들이 모두 이념에 흔들리고, 정파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추기경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는 유언을 남겼다. 전직 대통령 두 명이 감옥에 있고, 끝이 없는 적폐청산으로 국론이 갈기갈기 찢겨 사랑조차 없는 지금, 바보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이 너무도 그립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2-14 이영재

[참성단]'밸런타인 데이' 스트레스

오늘은 여성이 연인과 남성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는 밸런타인 데이다. 결혼이 금지된 로마 군단병들의 비밀 혼례를 집전하다가 사형당한 사제 밸런티노를 기리기 위한 성(聖) 밸런티노 축일이 기원이라지만 유력한 설(說)일 뿐이다. 여성이 연인이나 남성에게 초콜릿 등을 선물하는 문화가 일본의 한 제과회사 마케팅에서 비롯됐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당당하게 남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여성상이 페미니즘 운동과 맞물리면서 확산됐다고도 한다. 밸런타인 데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건 바로 상업성 때문이다. 실제로 밸런타인 데이 특수는 무시할 규모가 아니다. 최근 미국의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밸런타인 데이의 미국인 지출 규모가 207억 달러(23조2천700억원)로 추정됐다. 선물 구입 지출항목은 보석(39억 달러), 외출(35억 달러), 의류(21억 달러), 꽃(19억 달러), 사탕(18억 달러) 순이다. 국내에서도 밸런타인 데이 마케팅은 제과업체에서 외식, 숙박, 유통업으로 확산되면서 선물 품목도 보석, 와인, 숙박권, 상품권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제과·유통 대기업 롯데의 신동빈 회장은 생일이 밸런타인 데이와 겹쳐, 해마다 생일선물로 밸런타인 특수를 받는다 해서 화제다. 기업들은 받았으면 줘야한다는 인지상정도 마케팅에 활용했다. 남성들은 출처 불명의 '화이트 데이(3월 14일)'라는 유탄을 맞았다.밸런타인 데이와 관련해 최근 몇 해 동안 '의리 초코'가 논란이다. 여성이 연인이 아닌 직장 상사나 동료에게 돌리는 초콜릿이 '의리 초코'인데, 여성들의 고민이 보통이 아닌 모양이다. 의리 초코를 돌리자니 대상과 비용이 고민이요, 외면하자니 상사나 동료에게 미운 털 박힐까 노심초사란다. '의리 초코' 대신 '갑질 초코'라는 불만이 나올 정도란다. '의리 초코'의 발상지인 일본에서도 여성들의 스트레스가 심각했던지 밸런타인 데이 초콜릿 상납문화를 폐지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고, 직장인 70%가 직장내 초콜릿 금지령을 지지했다고 한다.일제의 안중근 의사 사형 선고일(1910년 2월 14일)에 일본발 '데이 마케팅'에 놀아나야 하느냐는 비판이 아니더라도, 의미 없는 '의리 초코' 정도는 친절하게 사양해도 괜찮을 듯 싶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2-13 윤인수

[참성단]1,300만 관객 한국영화

"영화를 찍으면서도 흥행은 생각도 안 했다. 제작자 이태원 사장도 이런 영화가 무슨 흥행이 되겠느냐며 저예산으로 찍자고 했다. 그러자고 했다.그런데 뜻밖에 대 히트를 쳤다. 덕분에 보너스도 받았다." 100만 관객 동원의 역사를 쓴 임권택 감독은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100만 관객이 뭐 대수냐고 하겠지만, 당시에는 한 영화관에서의 단독 상영이 관행이었다. 개봉관에서 먼저 상영을 하고 난 뒤 2번, 3번 관으로 넘어갔다. '서편제'는 서울 단성사에서만 1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제작비는 고작 3억 원이었다.1993년 10월 29일이 100만 관객을 돌파한 날이라면, 2004년 2월 19일은 강우석 감독의 '실미도'가 한국 영화 최초로 1천만 관객을 넘어선 기념비적인 날이다. '서편제'가 1993년 4월부터 196일간 상영돼 100만 명을 동원한 데 비해 '실미도'는 상영 58일 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처럼 단시간 내 관객 동원의 비결은 여러 개의 스크린을 가진 멀티 플렉스 영화관 덕이 컸다. 만일 임권택 감독 시절에도 이런 영화관이 있었다면 '서편제'는 몇 명을 동원했을까.멀티 플렉스 영화관은 우리 영화에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1997년 연간 영화 관객이 5천만 명도 채 안 됐지만 멀티플렉스가 등장한 후 2002년 1억 명, 2013년 2억 명을 돌파했다. 실미도 이후 1천만 관객 이상 한국 영화는 2014년 1천761만 명으로 단일 영화로는 최고 기록을 가진 '명량'을 비롯해 모두 15편이다. '신과 함께-죄와 벌'(1천441만) '국제시장'(1천426만)과 '베테랑'(1천341만) '7번 방의 선물'(1천281만) 등이 이에 속한다.영화 '극한직업'이 개봉한 지 19일 만인 11일 현재, 관객 1천300만 명을 넘었다. 역대 박스 오피스 6위다.'7번 방의 선물'을 누르고 역대 코미디 영화 흥행 기록도 갈아치웠다. 순 제작비 65억 원 매출액 1천130억 원. 말 그대로 '초대박'이다. '위기의 한국영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영화계가 침체기에 빠진 상황에서 등장한 1천300만 관객 영화라 그 의미도 남 다르다. 그동안 우리 영화계는 정치영화에 함몰돼 대작조차 관객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모처럼 살아난 한국 영화의 열기가 꺼지지 않게 우리 영화계가 소재의 다변화에 신경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2-12 이영재

[참성단]닥터헬기 '아틀라스'

지난해 작고한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18세 때 미 해군 최연소 조종사로 참전했다. 그때 몰던 뇌격기에 약혼녀인 '바버라'의 이름을 붙였다. 바버라의 가호 때문인가. 격추당한 그는 바다에서 표류하다 무사히 구조됐고, 바버라는 대통령의 아내이자 어머니라는 영광을 누렸다. 일본 히로시마에 세계 최초로 원자폭탄을 투하한 B-29 폭격기의 애칭 '에놀라게이(Enola Gay)'는 기장인 폴 티베츠의 어머니 이름이었다.2차대전 당시 미 공군 조종사들은 자신들의 전투기와 폭격기 동체에 다양한 그림과 문자를 그려 넣었다. 이빨을 드러낸 상어 입 모양이나 맹수들은 물론 당시 유명 여배우들을 그려 넣기도 했다. 출격횟수나 격추한 적기를 표시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새긴 조종사도 적지 않았다. 사기 진작과 긴장 완화,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일종의 부적이었던 셈이다. 노즈 아트(Nose Art)라는 예술장르로 발전한 건 훗날의 일이다.대한민국 공군 조종사의 투혼을 상징하는 '신념의 조인(鳥人)'이라는 문구도 딘 헤스 미 공군 소령이 몰던 F-51D 머스탱 18번기에 새겨진 노즈 아트였다. 그의 좌우명인 'By faith, I fly'를 번역한 문구였다. 헤스 대령은 6·25 전쟁 당시 한국 공군 창설 지원 임무를 맡았지만, 미숙한 한국 조종사들과 함께 250회나 전투 출격을 감행했다. 미 공군이 대한민국 전투기로 전쟁에 참여한 것이다. 2016년 대한민국 공군은 그의 1주기 추모행사를 성대하게 열었다.수원 아주대학교병원이 곧 운행할 닥터헬기에 지난 4일 격무로 사망한 고(故)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이름과 그의 콜 사인 '아틀라스(Atlas)'가 새겨진다.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의 약속이다. 열악한 응급의료체계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의기투합했던 윤 센터장을 잃은 이 센터장의 추도사는 애절하고 비장했다. 그는 윤 센터장을 '한국의 응급의료를 떠받쳐 온' 아틀라스라고 칭했다. '창공에서 만나자'며 닥터헬기에 항상 고인의 자리를 마련해 두겠다고 다짐했다.닥터헬기 '아틀라스'는 전국 최초로 24시간 운영된다고 한다. 그만큼 안전비행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윤 센터장의 가호로 안전하게 임무를 수행하리라 믿는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2-11 윤인수

[참성단]'한국판 산티아고길'

걷기는 삶의 은유이다. 그래서인지 철학자들은 걷기에 대해 유독 많은 철학적 의미를 부여했다.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던 사상가였던 장 자크 루소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나는 걸을 때 명상을 할 수 있다. 걸음이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정신은 오직 나의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고 말했다. 프랑스 생물학자 이브 파칼레는 "우리의 지성은 우리의 걸음이 잉태한 자식"이라고 썼다.다비드 브루통은 자신을 세계적으로 알린 '걷기예찬'에서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고 설파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걷기를 즐기지 않았다면 '소요학파(逍遙學派)'는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우리나라에 걷기 붐이 일기 시작한 것은 2007년 9월 제주에 15㎞의 올레길이 조성되면서부터다. '올레'는 집 앞에서 마을 길까지 이어지는 골목을 뜻하는 제주 방언으로 올레길엔 '끊어진 길을 잇고, 잊힌 길을 찾고, 사라진 길을 불러내' 조성한 20여개 코스가 열려 있다. 올레길의 성공으로 전국적으로 시흥 둘레길, 강화도 둘레길, 남한산성 길, 지리산 둘레 길 등이 잇달아 조성돼 봄 가을엔 몰려든 인파에 몸살을 앓을 정도다. 지구 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걷기에 매력적인 길로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꼽는다. 파울로 코엘료가 직접 걷고 쓴 에세이집 '순례여행'에 소개된 장장 800㎞의 이 길에는 한 해에도 수십만명이 찾아와 걸으며 사색을 즐긴다. 각국마다 이런 길이 있는데 프랑스에는 18만㎞ '랑도네', 미국은 8만㎞ '트레일', 영국의 4천㎞ '풋패스' 일본에는 1천200㎞의 '시코쿠 헨로미치'가 유명하다.정부가 2022년까지 인천시 강화군에서 강원도 고성군까지의 456㎞의 비무장지대(DMZ) 남측에 동서 횡단 도보 길인 가칭 '통일을 여는 길'을 조성해 '한국판 산티아고길'로 만들겠다고 한다. 2010년에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평화 누리길'이 그것인데, 당시엔 생태 파괴가 발목을 잡았다. 희귀 동·식물의 보고인 DMZ가 훼손된다며 환경단체와 야당이 크게 반발했다. 한 야당의원은 국정감사에 DMZ 인근에서 수거한 지뢰를 들고 나와 "지뢰밭에 길을 만든다"며 반대했다. 길은 한번 만들어지면 복구가 사실상 어렵다. 굳이 조성하겠다면, 자연파괴를 최소화하면서 천년을 걸을 길을 만들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2-10 이영재

[참성단]감염병

살면서 어른들에게 귀가 아플 정도로 들었던 것 중 하나가 "외출하고 돌아오면 반드시 손을 씻어라"였다. '손만 씻어도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는 게 어른들의 지론이었다. '병이 옮겨지는 것을 막기 위해선 물과 비누로 손을 깨끗이 닦아야 한다'는 병원의 기본 지침을 처음 제정하고 이를 전파한 사람은 근대 간호학의 창시자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었다. 영국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던 그녀는 크림전쟁이 발발하자 부모 몰래 간호자원봉사대원으로 참가해 '백의의 천사'란 소리를 들었다.당시 영국군은 전쟁에서는 5천여명이 사망했지만, 병상에서 세 배가 넘는 1만5천여명이 사망했다. 열악한 환경의 야전병원에서의 감염병이 주범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사망자가 급속하게 늘자 '환자 주변에 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있다'는 의혹이 확산하기까지 했다. 병원 내 감염병의 존재를 몰랐던 것이다.날개의 천재작가 이상에게 날개를 빼앗아 간 건 결핵이었다. 철학자 데카르트와 칸트, 스피노자, 예술가 쇼팽과 도스토옙스키도 모두 결핵으로 숨졌다. 치료법을 몰라 환자를 염소우리에서 재우거나, 나귀 젖을 먹이는 게 고작이었다고 한다. 터무니없는 치료법이 결핵을 더 확산시킨 셈이다. 1943년 스트렙토마이신이 발견되면서 인간은 결핵으로부터 비로소 자유스러워졌다. 이게 불과 75년 전이다.19세기 말 영국 왕립진료소에서 환자의 절반이 패혈증으로 사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지프 리스터가 석탄산을 수술실 주변에 뿌리고 손과 의료기구를 닦는 데 사용하면서 인류는 마침내 '소독'에 눈을 떴다. 간단한 수술에도 70~50% 가까운 사망률을 보이던 당시, 리스터의 소독법만으로 사망률은 25% 이하로 낮아졌다. 20세기 들어서 무균실 개념이 생겼고, 60년대 이후 각국의 병원감염관리기준 제정으로 병원에서 감염되는 비율이 3% 수준으로 떨어졌다.설 연휴 기간 경기도와 인천에서 감염병인 홍역 환자가 잇따라 발생했다. 안산에서 홍역에 걸린 A씨는 기존 감염자가 입원한 병원의 환자로 파악됐다. 병원에서 감염된 것이다. 올 들어서만 경인지역 내 홍역환자가 20명을 넘었다. 미국 질병 예방통제센터(CDC)는 손 씻기를 '셀프백신'이라고 하여 가장 쉽고 효과적인 감염병 예방법으로 권장하고 있다. 일반인은 손을 잘 씻고, 병원은 소독에 전력을 기울이며 무엇보다 병원 내 문병·간병 문화의 일대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2-07 이영재

[참성단]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설 연휴 중이던 지난 4일 입춘(立春)이 슬그머니 다녀갔다. 24절기의 첫번째 절기인 입춘은 봄의 시작을 알린다. 가을걷이로 쟁여놓은 곡식으로 연명하던 겨울이 끝나고 슬슬 농사준비에 나설 시기이니 농경민족에게는 한해의 시작을 의미한다. 입춘에 한 해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축문을 대문이나 문설주에 붙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이 눈에 익은 입춘방이나 아파트 위주의 거주문화 때문인지 요즘은 찾아보기 힘들다.만물이 소생하는 자연의 섭리로 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이양하는 수필 '신록예찬'에서 "기쁨의 속삭임이 하늘과 땅, 나무와 나무, 풀잎과 풀잎 사이에 은밀히 수수(授受)되"는 때로 신록을 키워내는 봄을 칭송했다. "성례(혼례)시켜 달라지 뭘 어떡해."라는 점순이의 투정에 그렇잖아도 머슴질에 뿔이 난 데릴사위가 장인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진 것(김유정의 '봄봄')도 춘정(春情)에 취한 청춘들의 한바탕 소동이었다.하지만 인세(人世)의 형편과 시세(時勢)의 기운이 각박하면 봄은 잔인한 계절이 된다. 산업화 직전까지도 이 땅의 보통사람들은 보릿고개를 죽기살기로 넘어야 했다. 봄은 곡식 없는 빈 들판이었다. 나라 잃은 민족에게 봄은 언제 올지 모르는 이상향이었으니,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절규했다. 박정희 사망 이후 전두환의 신군부는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의 정치활동을 금지시켰다. 유신시대는 끝났지만 민주주의는 유보됐다. 김종필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다. 봄인데 봄 같지 않은, 잔인한 봄이었다.봄이다. 그런데 나라와 국민의 기운이 겨울을 벗어났는지 의문이다. 정치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법정구속 이후 한겨울이다. 경제는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전망은 어둡고 현실은 각박하다. 무엇보다 설 연휴기간 중 열심히 입을 맞춘 북한과 미국의 실무협상 결과가 김정은과 트럼프를 통해 우리에게 어떤 미래를 열지 불투명하다. 춘래불사춘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양산 자택에 핀 매화를 보며 나태주의 시 '풀꽃'을 떠올렸다고 한다. '너'가 아닌 '우리'를 위해 자세히 보고 오래 보길 바란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2-06 윤인수

[참성단]정치인 테마주

테마주는 주로 약세장에서 기승을 부린다. 주식이 떨어지면 어찌할 줄 모르는 개미들의 조급함을 세력들이 악용해 만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장된게 많다. 최근 등장한 수소차 테마주, 2차전지 같은 테마주도 있지만 이 역시 100% 믿을 건 못 된다. 증권가에는 지금도 '만리장성 테마주'가 회자하고 있다. 1988년 초 노태우 대통령의 북방외교에 빌붙어 관련주들이 주식시장을 마구 흔들었는데 그때 등장한 게 이른바 '만리장성 4인방' 이다. 시작은 대한알루미늄이었다. 중국이 만리장성에 바람막이를 설치하는데 이 회사 제품이 사용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공사하는 인부들에게 태화가 만든 신발이 지급된다는 루머가 그 뒤를 이었다. 더 웃겼던 건 그다음이다. 공사 노동자에게 간식으로 삼립식품의 '호빵'이 제공되고, 그걸 먹다 체한 노동자에겐 한독약품 소화제 '훼스탈'이 공급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터무니 없는 소문에 4종목이 크게 올랐다.정치인 테마주의 시작은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였다. 건설주를 필두로 관련주들이 급등했다. 2012년 대선에선 안랩 등 안철수 주가 올랐다. 박근혜주, 문재인주도 정치상황에 따라 요동쳤다. 정치인 테마주는 선거 구도가 막상막하일 때, 또는 정치판을 흔들 정도의 대형사건이 터질 때 극성을 부린다.그제 김경수 경남지사의 법정구속 소식이 전해지자 첫 반응은 정치권이 아니라 주식시장에서 나왔다. 친문계의 '적자(嫡子)'로 꼽히던 김 지사의 정치적 위기가 예견되자 여권의 또 다른 잠룡으로 꼽히는 이낙연과 유시민 관련주가 예민하게 움직인 것이다. 이 총리의 형이 근무하고 유 작가가 사외이사로 있다는 회사가 그것이다.정치인 테마주를 들여다보면 이 역시 황당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인과 기업주가 같은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또는 정치인이 옆집에 산다는 이유로 주가가 폭등한다. 이 또한 한탕 노리는 세력들이 만들어 낸 경우가 많다. 소문난 테마주가 힘을 받지 못하면 작전세력이 빠져나가는 경우다. 이때 다시 오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백이면 백, 미처 탈출하지 못한 세력의 '마지막 털기'로 보면 된다. 이를 모르고 따라잡으면 이 역시 100% 쪽박이다. 실적없이 오르는 주식은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 그보다 먼저, 테마주로 한몫 잡으려는 생각부터 버리는 게 주식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법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1-31 이영재

[참성단]정권에 켜진 경고등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게 2019년 1월은 집권 이후 가장 잔인한 달로 기억될 듯 싶다. 집권세력 내부에서 연이어 터진 정치, 정책 스캔들이 새해 벽두를 후끈 달궜다. 첫 테이프는 손혜원 의원이 끊었다. 목포 투기 의혹, 부친 서훈 압력, 문화기관 인사개입 의혹은 개인이나 당, 청와대로서도 감당하기 힘든 악재였다. 재판청탁 사실이 드러난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손혜원 덕분에 뉴스의 초점을 피했다.이어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참모인 김현철 전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자살골을 넣었다. "산에 가거나 험악한 댓글만 달지 말고 아세안으로 가라"는 말에 50·60대가 분노했다. 여기서 '헬조선' 타령 말고 신남방 국가에서 해피조선을 확인하라는 권고에 20대는 기막혀했다. 자칭 목포 사랑꾼 손혜원의 선전(?)과 자유한국당의 '5시간 30분 단식' 헛발질로 유지됐던 여론의 균형이 무너졌다. 정 많은 문 대통령도 김 보좌관의 사표를 즉각 수리했다.대통령이 전국에 나누어준 예비타당성면제 사업은 예상치 못한 시민단체와 소외지역의 반발로 역풍이 심각하다. 민주당 대변인은 균형발전을 위한 용단을 찬양했지만, 민주당 백혜련·김영진 의원은 신분당선 연장사업 배제를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고 염태영 수원시장도 청와대를 항의방문했다. 더 아픈 건 진보진영 시민단체들이 이명박식 토건경제의 부활을 비판하고 나선 대목이다.대통령의 간곡한 설득에도 민노총이 경사노위 불참을 선언하면서 노동계와 불편해진 것이나, 손혜원 의원으로 인해 영부인의 이름이 거론된데 이어 해외에 이주한 영애의 이름이 회자되고 있다.결정적으로 30일 대통령의 핵심측근인 김경수 경남지사가 법정구속돼 수감됐다. 법원이 '드루킹' 김동원씨와 공모해 포털사이트 댓글을 조작한 혐의를 인정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도 유죄로 판결했다. 민주당은 판사의 판결을 비난하고 나섰다.새해들어 한달 내내 정권의 악재를 더 큰 악재가 덮는 정국이 이어졌다. 모두 스스로 일으킨 악재다. 정권 내부를 새로운 관점에서 수선해야 한다는 경고다. '춘풍추상'. 스스로를 가을 서릿발처럼 냉정하게 돌아볼 때가 됐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1-30 윤인수

[참성단]불황 속의 로또

복권을 '빈자(貧者)의 세금' '희망(希望) 세금'이라고 한다. 구매자 대부분이 하루하루 고달픈 삶을 살아가는 가난한 서민이고 희망고문만 할 뿐, 당첨이 어려워 돌려받지 못하는 세금과 같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기상청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에는 총 31만 6천679회의 벼락이 떨어졌다. 이 벼락에 4명이 맞았는데 확률은 7만 9천169분의 1이었다. 골프에서 150야드 파 3홀 기준으로 홀인원 확률은 일반인 1만 2천500분의 1, 투어프로는 2천500분의 1로 알려졌다.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 5천060분의 1이다. 액수가 높아질수록 그 확률은 더 낮아진다.우리나라 최초의 복권은 1947년 14회 런던 올림픽 경비마련을 위한 올림픽 후원권이다. 액면가 100원에 1등 100만원으로 모두 140만 장이 발행됐다. 이후 재해 대책자금, 전쟁 후 산업 부흥및 사회복지자금, 박람회 기금 마련 등 특수한 목적을 위해 단기적인 복권발행이 이뤄졌다. 최초의 정기복권인 '주택복권'이 등장한 건 1969년이었다. 매달 액면가 100원에 발행하기 시작해 1983년까지 1천억 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고 실제 서민들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주었다.로또 복권이 등장한 건 2002년이었다. 건설교통부 등 10개 기관이 연합해 로또를 탄생시켰다. 당시 로또는 당첨자가 없을 때 이월되는 규정에 따라 1등 당첨만 되면 최대 수백억 원까지 손에 쥘 수 있어서 '인생역전'의 상징이었다. 로또복권 최고 당첨금은 407억 원으로, 2003년 4월 춘천에 사는 경찰관이 세금을 빼고 무려 318억 원을 수령했다. 세계 최대 복권 당첨금은 2016년 1월 미국 파워볼의 15억 8천700만 달러였다.지난해 로또복권 판매액이 3조 9천658억 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경기와 로또 판매가 비례한다는 속설에 비춰보면 그리 반가운 소식도 아니다. 하지만 경기가 어려울수록 서민의 발걸음은 복권 판매소로 향한다. 추첨이 있는 토요일 명당자리로 알려진 판매소는 몰려온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다. 요즘엔 로또가 가난한 서민뿐만 아니라 학생이나 직장인에게도 큰 인기다. 로또를 구매한다고 해서 이들의 '작은 희망'을 '허황한 꿈'으로 폄하해선 안된다.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 앞으로 큰돈 벌 길이 보이지 않는 서민들에겐 그나마 로또가 인생역전의 유일한 동아줄이기 때문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9-01-29 이영재

[참성단]양날개 고장난 한국정치

새가 양날개로 날듯 정치도 보수와 진보의 두 날개로 난다는 말은 진부하지만 유효하다. 특히 대의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에서 여야 정당이 견제와 균형을 통해 건강하게 양립하는 상황은 국가안정에 필수적이다. 균형이 깨지면 특정 대의(代議)의 독주와 독선이 적폐로 쌓이고 사회는 혼란해진다.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의 추락은 목불인견이다. 전통적 보수층조차 흔쾌하게 지지하기가 불편한 기색이다. 조해주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임명에 반대해 벌인 5시간30분 릴레이 단식으로 천하의 조롱거리가 됐다. 손혜원 의원의 목포 투기의혹은 '목포 호구' 발언으로 역풍을 맞았다. 청와대 민간인 사찰의혹 따진다며 불러낸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에게 면박만 당했다.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는 고질적인 계파대립을 예고하고 있다. 견제 능력을 상실한 '마이너스의 손'으로 내부 권력 투쟁에 골몰하면서 대안정당의 위상은 추락하고 있다.반면 청와대와 집권여당의 나 홀로 독주(獨走)는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은 정상을 찾았지만 도덕적 우월성은 여전히 하늘을 찌른다. 손혜원 투기의혹과 서영교 재판청탁 의혹이 만일 보수정당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까. 민주당의 투쟁력을 감안하면 최소한 국회 앞에서 촛불을 붙였을지도 모른다. 자유한국당 특보가 선관위 상임위원으로 임명됐다면 민주당 의원 누군가는 5시간30분 단식 대신 그야말로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을지 모른다. 자기 검열에 관대한 도덕적 기준으로 권력의 정의가 야금야금 허물어지는 줄 모른다.정치가 보수와 진보의 두 날개로 나는 새라면, 한국 정치는 하늘을 날지 못하는 병든 새다. 오른 날개는 근위축증에 시달리고 왼 날개는 과잉발육 상태니 지상에서 졸렬하고 잔망스러운 발자국만 남긴다.날지 못하는 갈매기가 멀리 보지 못하듯 병든 정치로는 국운을 조망할 수 없다. 이해타산을 앞세우는 트럼프와 혐한감정으로 지지율을 관리하는 아베로 인해 전통적인 한미일 안보동맹은 위기다. 북한과 중국은 더할 나위 없는 유대를 과시하고 있다.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 격상은 무르익고 있다. 한국 정치는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생존이 걸린 중대한 정세 변화 한 가운데서 땅바닥을 기고 있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9-01-28 윤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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