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숨을 쉴 수 없다"

링컨은 1862년 9월 노예해방선언을 발표했고, 미합중국 수정헌법 제13조로 노예제도가 폐지된 때가 1865년이다. 1870년 비준된 수정헌법 제15조는 흑인들에게도 투표권을 줬다. 하지만 흑인들의 헌법적 권리를 남부 백인들은 초법적 인종차별로 철저히 짓밟았다.미시시피주는 문맹검사제도로 흑인들의 투표권을 박탈했다. 악명높은 KKK단은 헌법상 권리를 주장하는 건방진 흑인들을 재판 없이 처형했다. 나무마다 백인들의 린치에 목매달린 흑인들의 주검이 즐비했다. 재즈의 전설 빌리 홀리데이가 부른 '이상한 열매(Strange fruit)'는 바로 그 비참한 주검들이다. 그녀 역시 인종차별의 희생자였다. 흑인과는 숨도 같이 쉬지 않겠다는 악랄한 흑백분리주의는 영화 '그린 북'의 배경이다.말도 안되는 인종차별에 대한 흑인들의 저항은 당연했다. 흑백분리에 저항하는 1950~60년대 흑인민권운동은 치열했다. 백인전용학교 입학투쟁, 백인전용 좌석버스 승차거부, 백인전용 음식점 주문투쟁은 1963년 워싱턴 행진으로 이어졌다. 링컨 동상 주위에 모인 25만명의 군중 앞에서 마틴 루터 킹은 기념비적인 연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를 남겼다. 1964년 모든 흑백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이 통과됐고, 1965년엔 연방투표권법이 통과돼 흑인들의 참정권을 보장했다. 수정헌법 제15조의 권리를 재확인하는데 100년 가까운 세월이 걸린 셈이다.흑인민권운동으로 합법적 차별이 사라진 이후에도 흑인을 향한 경찰의 공권력 남용은 미국 인권의 실체에 의문을 자아냈다. 무고한 흑인들이 경찰에 살해되는 현실을 통해 흑인들은 자신들의 권리가 미완성임을 절감해왔다. 경찰의 무릎에 짓눌려 숨진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이 내전에 버금가는 사태로 치닫는 배경이다. "숨을 쉴 수 없다.(I can't breathe)"는 플로이드의 비명이 백악관을 위협하는 거대한 분노로 번졌다. 인권국가 미국의 인권정책은 완전히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다.혐오와 차별로 누군가의 숨통을 조이는 사회라면 미국이라도 안전할 수 없다. 혐오와 적대의 언어가 판치는 우리 사회가 명심할 대목이다. 최근 이용수 할머니를 향한 친여 네티즌들의 혐오와 증오가 금도를 넘었다. 할머니의 숨통을 조이려 작정한 듯싶다. 반면 윤미향 의원은 어제 백팩을 메고 의원회관에 출근했다. 숨 막히는 장면들이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06-01 윤인수

[참성단]'괴짜 천재' 일론 머스크

사람들은 전기차 업체 테슬라 회장 일론 머스크가 '역발상 전략'을 발표할 때마다 그를 그저 기발한 생각을 하는 '혁신가' '몽상가' 정도로 여겼다. 2002년 31세에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 X'를 설립해 우주여행용 로켓을 싼값에 제공하겠다고 했을 때도, 2013년 터널 굴착회사 보링컴퍼니를 설립 '하이퍼루프'라는 신개념 초고속 진공 열차를 공개했을 때도 그랬다. 진공상태로 터널 속을 초음속으로 달리는 미래 운송수단에 대해 사람들은 "영화 같은 이야기"라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2016년 라스베이거스 사막에서 시험주행에 성공하자 머스크를 보는 눈이 조금씩 달라졌다.대중을 놀라게 한 건 머스크가 재활용 로켓을 이용해 발사 비용 30~50%를 줄일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으면서였다. 전문가들 대부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2017년 '스페이스 X'가 재사용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데 성공하자 머스크의 이름 앞에는 '혁신의 아이콘' '세상을 바꾸는 도전자'라는 별칭이 따라다녔다. 덕분에 그동안 미국, 러시아, 중국 정부가 독점해 오던 유인 우주비행시장에 민간기업이 뛰어드는 전기가 마련됐다. 머스크가 아니었으면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대중은 이런 머스크를 '아이언맨'으로 부르며 열광했다.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기행과 돌출발언으로 수없이 많은 구설에 올랐다.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마리화나를 피우거나, 테슬라가 적자를 기록하는 등 내부 상황이 좋지 않던 지난 만우절에는 "테슬라가 재정적으로 파산했다"는 농담을 트위터에 올려 투자자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주 정부의 공장폐쇄 정책에 불복해 일방적으로 공장 생산을 재개해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때마다 테슬라의 주가는 큰 폭으로 출렁거렸다. '머스크 리스크'였다.머스크의 '스페이스 X' 팰컨9 로켓이 민간기업 최초로 우주비행사를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실어 나르는 유인 캡슐 '크루 드래건' 발사에 성공했다. 이로써 "생의 마감을 화성에서 맞겠다"는 머스크의 무모한 상상도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도로에는 전기자동차 테슬라가, 땅 밑으론 하이퍼루프가, 우주공간에는 스페이스X 로켓이 날아다니는 머스크의 꿈도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뉴턴, 에디슨, 아인슈타인, 잡스 등 '괴짜 천재'가 세상을 바꾼다는 게 머스크로 인해 또 한 번 입증됐다. /이영재 주필

2020-05-31 이영재

[참성단]'갯벌을 살리자'

1996년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경인일보에 '갯벌을 살리자'는 기사가 연재됐다. 10년 공사 끝에 완공을 앞둔 '시화지구 간척사업'으로 인한 갯벌의 심각한 훼손을 보고 시작한 장기 시리즈물이었다. 간척사업으로 인한 어민의 생존권 문제 논란도 한 몫 했다. 당시만 해도 갯벌은 버리는 땅 정도로만 인식되었던 시절이었다. 국토를 넓힐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갯벌 정도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뚝딱' 메꾸곤 했다. 그때는 갯벌이 생태계의 보고인 것도 연안오염을 막아 주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도 몰랐다. 한번 훼손되면 우리 생애 다시는 복구할 수 없다는 것도 몰랐다. 기사가 나가자 "갯벌 가지고 뭘 이렇게까지?"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 우리들의 무지 속에서 아름답기 그지없던 서해의 갯벌은 무참히도 사라졌다. 그나마 신문 보도로 갯벌이 해양자원의 보고이자 환경오염 완충지대이며 생태관광지로서 무한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연안 해양 생물의 70%가 갯벌 생태계와 직접 관련이 있으며 어업도 물고기를 잡는 것만큼이나 개펄 채취가 중요하다는 것도 밝혀졌다. 기사는 큰 반향을 일으키며 1997년 제29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우리 사회가 갯벌의 중요성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갯벌을 살려야 한다는 캠페인이 불기도 했다. 최근 경인일보에 서해안 갯벌 관련 기사가 여섯 차례에 걸쳐 연재됐다. 갯벌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화했음에도 갯벌이 점점 황폐해지고 있다는 고발성 기사였다. 간척사업으로 막힌 물길을 터 갯벌을 살리거나, 갯벌의 완벽한 재생을 위해 '역간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역간척'은 간척사업으로 생긴 제방이나 육지화한 땅을 허물어 간척하기 이전으로 복구하는 것을 말한다. 죽음의 땅이 돼버린 갯벌에 다시 바닷물이 드나들게 만들어 숨 쉬는 자연으로 되돌리자는 것이다.이미 전 세계는 갯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갯벌보호에 발 벗고 나섰다.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등 유럽 선진국은 1980년부터 간척사업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은 '갯벌 계획·보호·복원법'을 만들어 2005년부터 갯벌 복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 서해안 갯벌에 부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자연이 물려준 위대한 유산'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이런 보물을 두고도 우리는 고마움을 모른다. 갯벌을 지키지 못하면 우리의 미래도 없다. /이영재 주필

2020-05-28 이영재

[참성단]300잔의 커피

어떤 경제현상이나 이론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이는 예시 중 하나가 스타벅스의 사례다. 가령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 '팀 하포드'는 "스타벅스가 카푸치노 한 잔에 그토록 큰 마진을 붙여 팔 수 있는 것은 커피나 직원들의 질이 아니라 오로지 매장의 위치 때문"이라고 전제한 뒤 스타벅스에서 파는 커피를 통해 임대료를 비롯한 부동산, 희소성, 가격 차별화 전략 등 다양한 경제현상을 설명한다. 이 밖에도 프랜차이즈나 마케팅 등 경제용어를 다룰 때 스타벅스가 빠지지 않는 것을 보면 스타벅스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커피전문점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최근에도 이런 스타벅스의 위상을 실감케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300잔의 커피 소동'이다.며칠 전 서울 여의도의 스타벅스 매장에서 한 고객이 커피 300잔을 한꺼번에 주문했다. 이어 그는 음료 17잔을 구매하면 주는 사은품(굿즈)만 챙기고 300잔의 커피는 매장에 버린 채 사라졌다. 어떤 종류의 커피를 샀는지는 모르지만 아메리카노를 기준으로 할 때, 커피값이 최소 120만원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스타벅스가 여름마다 진행하는 e-프리퀀시 이벤트로, 스타벅스 로고가 찍힌 '서머 체어' 혹은 '서머 레디백'을 선착순으로 주는 행사를 열며 벌어진 일이다. 더 나아가 온라인에서는 굿즈 되팔기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스타벅스 굿즈가 얼마나 훌륭한 물건이기에 이 난리인가'하고 궁금증이 생길 만하다. 어떤 회사에서 사은품을 받았을 때 "회사로고만 없으면 잘 쓸텐데"라며 아쉬움을 가져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풍경일 것이다. 이 현상을 비정상적인 '팬덤현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기존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고 커피 판매량을 신장시킨 '성공적인 마케팅'이라는 평가 또한 적잖은 게 사실이다. 이 대목에서 스타벅스 커피 가격과 관련한 팀 하포드의 색다른 분석이 떠오른다. 스타벅스의 커피가 비싼 이유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싼 임대료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높은 임대료가 형성되는 이유는 가격에 둔감한 스타벅스의 고객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수구에 버려졌을 300잔의 커피에는 저개발국, 저임금 노동자들의 노고와 한이 깃들어 있을 터이다. 개인의 소비 트렌드에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만 스타벅스에서 벌어진 '상술'과 '기행'의 합작품(?)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임성훈 논설위원

2020-05-27 임성훈

[참성단]막 내린 20대 국회

사회과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인들에게 두 개의 길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를 위해 사는 길'과 '정치에 의해 사는 길'이 그것인데, 정치인이 정치를 '위해'산다면 그는 신념이 있는 정치인이고 정치에 '의해'산다면 그는 정치를 생활의 수단으로 하고 있으므로 정치꾼밖에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베버는 참다운 정치인이 되려면 '신념'이 있어야 하고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조건을 최우선으로 제시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어느 길을 걷는 사람이 더 많을까. 20대 국회를 지켜본 우리 국민은 그 답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20대 국회가 막을 내렸다. 법적으로 임기는 오는 29일이지만 특별한 의사일정이 없어 사실상 끝난 거나 다름없다. 20대 국회는 '동물국회' '식물국회'라는 말이 늘 따라다닐 정도로 최악의 국회였다. 정치인보다 정치꾼이 많았다. 무엇보다 일을 안 했다. 20대 국회에서 제출된 2만4천141건 중 처리된 법안은 9천127건으로 법안처리율은 37.8%에 불과했다. '먹고 놀았다'는 19대 국회 법안처리율 41.7%보다도 떨어졌다. 그런데도 세비는 꼬박꼬박 받아갔다. 직업으로서의 대한민국 국회의원만 한 것도 없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20대 국회는 '행정부 견제'라는 국회 본연의 임무도 망각했다. '인사청문회'를 생각하면 창피할 지경이다. 여당은 민주당 1중대, 2중대로 불리는 범여권의 지원을 받아 보수야당을 힘으로 밀어붙였다. 23명의 장관급 인사를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감행해 사실상 거수기 역할에 충실했다. 초중고 교과서에도 나오는 '삼권분립'은 저잣거리의 비웃음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이를 부끄러워하는 '신념'과 '책임'있는 의원은 없었다. 20대 국회는 그런 국회였다.30일 임기를 시작하는 21대 국회가 첫 과제를 '일하는 국회'로 정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결의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우리 국민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벌써 의장단이나 상임위원장 배분 등 원 구성을 두고 냉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거대 여당 민주당이 '협치' 대신 힘으로 주요 상임위원장을 가져가려 한다면 21대 국회는 법정 개원시기를 맞추지도 못할 가능성이 크다. 20대 국회가 사상 최악의 국회가 된 건 '협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1대 국회는 '정치꾼'보다 '정치인'이 더 많은 국회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영재 주필

2020-05-26 이영재

[참성단]이종욱 박사와 WHO 사무총장

고(故) 이종욱 박사는 지난 2003년 1월 제6대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에 당선됐다. 벨기에와 멕시코 후보를 물리쳤다. 당시까지 한국인으로서 국제기구에 진출한 최고위직 인사다. 건축학을 전공했다 다시 의대를 진학해 국내 한센인을 돌봤다.에이즈 퇴치에 큰 성과를 보여 '백신의 황제'로 불렸다. 비행기 일등석을 타지 않았고, 소형 하이브리드 차로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볐다. 빌 게이츠는 그의 재임 시절 7억5천만달러(약 9천160억원)를 지원했다. 왕성한 활동과 겸손한 태도로 존경받았으나 2006년 과로로 돌연 세상을 떠났다.그는 전략보건운영센터를 만들어 긴급상황이 발생하면 30분 안에 관계자가 모여 회의를 열 수 있도록 했다. 공식 명칭은 '이종욱 전략보건운영센터(JW Lee Centre for Strategic Health Operations, 약칭 SHOC)'로, '워룸(War Room)'이라 불린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신종플루,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발병 때 존재감을 드러냈다. 코로나 19 창궐 이후 WHO에서 가장 바쁘고, 가장 주목받는 센터다. 전 세계 감염병 정보를 모아 즉시 대응전략을 세울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이 지난주 WHO 정상화를 위해 일본인 사무총장을 배출하자는 엉뚱한 주장을 했다. "7개국(G7)은 차기 사무총장 선거에 후보를 내세워 WHO 정상화를 해야 한다. 일본이 사무총장을 내는 것도 유력한 선택지"라는 거다. 그러면서 "이미 차기 사무총장 선거에 한국이 '코로나 대책에서 세계적인 평가를 얻었다'며 후보자를 내려는 움직임이 전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사무총장 임기가 2년이나 남은 시점에 생뚱맞은 보도를 하게 된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대한민국과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타깃(Target)이다.비록 일본 우익의 도발이지만 양국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나쁜 기사'다. 팬데믹을 막아내려면 국가 간 공조체제가 구축돼야 한다. 대한민국이 코로나 확산을 효과적으로 막는다고 일본의 국격이 낮아지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에 배울 게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속 좁은 시샘과 질투는 이미지만 흐릴 뿐이다.2년 뒤 일본이 WHO 사무총장 후보자를 낼 수 있다. 다만 대한민국과 정은경 견제구라면 부끄럽지 않은가. /홍정표 논설위원

2020-05-25 홍정표

[참성단]'박치기왕' 김일

누구나 가슴속에 스포츠 영웅 한 명쯤은 담아두게 마련이다. 내 경우는 프로레슬러 천규덕이다. 대부분 '박치기왕' 김일을 좋아했지만, 검정 타이즈를 입고 당수를 날리던 곱슬머리 천규덕이 그때는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수원 공설운동장에서 레슬링대회가 열렸다. 김일이 출전하지 않은 걸 보면 A급 대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국적불명의 타이거 마스크와 천규덕이 한판 붙었다. 물론 천규덕이 이겼다. 날카로운 당수에 타이거 마스크는 꽁무니를 빼기에 바빴다. 선수 대기실 앞에서 기다리던 내게 천규덕은 머리까지 쓰다듬어 주며 사인을 해 주었다.김일은 천규덕과 함께 60, 70년대 박치기와 당수로 국민들에게 감동과 즐거움을 주며 한국 프로레슬링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우리 시대의 영웅들이었다. 김일 레슬링이 있던 날이면 우리는 만화가게로, 그도 여의치 않으면 동네에서 유일하게 TV가 있던 기봉이에게 온갖 아양을 떨며 구걸 시청을 하기도 했다.'박치기왕' 김일은 1929년 전남 거금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56년 일본에 있던 역도산을 찾아가 '오오키 긴타로'라는 일본명으로 프로 레슬링에 입문했다. 김일은 '왕 주걱턱' 안토니오 이노키, 장신 자이언트 바바와 함께 역도산이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 이들은 1970년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명승부를 펼쳤다. "레슬링은 쇼!"라는 장영철의 폭탄선언이 있기 전까지 프로 레슬링은 우리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였다. 팍팍하고 고단한 삶을 잊게 해주는 청량제였다.하지만 '쇼'로 밝혀지면서 프로레슬링은 쇠락의 길을 걸었다. 김일도 천규덕도 우리의 기억에서 점점 잊혀졌다. 우리의 낭만도 사라져 갔다. 이후 김일은 경기 후유증으로 인한 지병으로 10여년간 투병생활을 하다 2006년 77세의 나이로 영면했고, 2016년에서야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에 헌액됐다. 최근 김일의 유해가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공헌자 묘역에 안장된다는 소식에 까맣게 잊고 있던 김일과 프로레슬링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호랑이와 삿갓, 곰방대가 그려진 흰 가운을 입고 등장해 반칙을 일삼는 일본 레슬러들을 매트에 내리꽂던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모두가 힘든 시절, 용기와 감동을 주던 '박치기왕'과 '당수왕'을 우리 기억에 남겨 두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래 그들을 잊고 있었다. /이영재 주필

2020-05-24 이영재

[참성단]경매에 나온 간송 소장품

건실한 중소 중견기업들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회사를 매각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경영권까지 상속할 경우 할증세율이 더해 최고 65%에 달하는 상속세는 기업들에 너무 큰 부담이다. 가령 100억원짜리 기업을 상속받을 경우 최고 65억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 이는 프랑스의 11.25%, 독일의 4.5%, 벨기에의 3.5%보다 턱없이 높은 수준이다. 물론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는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있다. 문제는 회사 경영을 심각하게 간섭받을 정도로 조건이 까다로울뿐더러, 이 제도를 활용하면 업종 전환을 할 수 없는 제약이 있다는 게 문제다.상속세 폭탄 때문에 국내 중소·중견기업의 창업주들은 가업을 물려줄 것인지, 매각할 것인지를 두고 늘 고민한다. 대만처럼 중소기업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세계 최고 기술을 보유한 중견기업들이 인수합병 (M&A)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다. 가령 종묘업체 농우바이오나 밀폐용기 국내 1위였던 락앤락, 세계 콘돔시장의 40%를 점유했던 유니더스, 중견 가구업체 까사미아 등도 상속세 폭탄을 피하지 못해 경영승계의 뜻을 접고 모두 매각된 경우다.최초의 근대식 사립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삼국·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과 285호 '금동보살입상'이 경매에 나왔다는 갑작스러운 소식에 문화계가 술렁이고 있다. 1938년 서울 성북동에 보화각 (간송미술관 전신)이 문을 연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 문화계가 받은 충격은 너무도 크다. 보물급 문화재가 경매에 나온 이유가 지난 2018년 간송 전형필의 장남 전성우 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이 타계하면서 자손들에게 부과된 거액의 상속세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파문은 일파만파다.현재 간송미술관은 훈민정음 해례본과 동국정운 등 국보 12점을 비롯해 보물급 유물 5천여점을 보유하고 있다.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을 때 막대한 개인재산을 털어 우리 문화재의 해외 유출을 막은 이가 간송 전형필이다. 간송가(家)를 가리켜 '민족문화의 수호신'이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상속세 폭탄에 소장품을 경매로 내놔야 하는 간송가에 대해 오죽했으면 저럴까 하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우리의 걱정은 간송 소장품 경매가 이번에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영재 주필

2020-05-21 이영재

[참성단]학교 가는 길

"할매 어디 가?/ 펭생핵교 간다. 잘 놀고 있어라잉/ 펭생핵교? 거기 가선 뭘 해?/ 가나다라도 배우고 일이삼사도 배우제/ 흰 머리 곱게 빗고 엉덩이 가방 메고/ 우리 할매 신나게 펭생핵교 갑니다."문삼석 시인의 '펭생핵교'란 시다. 펭생핵교(평생학교)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다니지 못한 노인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고자 만든 배움터다. 설레는 등굣길, 할머니와 손자가 나누는 구수한 대화가 정겹기만 하다. 역시 사투리에는 표준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성이 깃들어있다.'펭생핵교' 만큼이나 등굣길을 즐겁고 재미있게 표현한 음악은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이 작곡한 '학교 가는 길'이 아닌가 싶다. 밝고 경쾌한 멜로디가 친구들과 장난쳐가며 학교로 향하는 개구쟁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 때문인지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피아노 연주곡으로 꼽힌다.하지만 학교 가는 길이 이처럼 신나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14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에서는 히말라야의 칼바람만큼이나 가슴 시린 등굣길이 소개된다. 히말라야 라다크지역의 오지마을 주민들이 1년에 단 한번 열리는 얼음길인 '차다'(chaddar)를 건너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10일간의 여정을 담은 다큐다. 20㎏이 넘는 짐을 등에 멘 아버지들은 영하 20도의 강추위 속에서 아이를 보듬으며 이 길을 걷는다. '차다'를 지나기 위해서는 바지를 벗은 속옷차림으로 얼음이 깨진 강을 건너야 하고, 목숨을 걸고 벼랑을 타야 한다. 아슬아슬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나 같으면 학교 안 다니고 만다"란 말이 입에서 저절로 나올 지경이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서라는' 말로는 부족한 경이로운 교육열이다.20일 고3 학생들의 등교를 시작으로 학교 가는 길이 다시 열렸다. 그런데 그 길이 '펭생핵교' 가는 길이나 흥겨운 선율의 '학교가는 길'이 아닌 히말라야의 얼음길과 닮아 있다. 한마디로 험난하고 위험한 길이다. 그래도 얼음길 '차다'의 끝에는 희망의 상징인 학교가 있었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얼음강 건너니 낭떠러지 나오듯, 수차례 연기 끝에 교문을 열긴 했지만 학교조차 안전하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등교 첫날부터 인천에서는 10개 군·구 가운데 절반인 5개 구 고교의 학생들이 코로나19 때문에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안전한 '학교 가는 길'은 언제쯤이나 활짝 열릴까. /임성훈 논설위원

2020-05-20 임성훈

[참성단]이팝나무

처음엔 "나이 들면 보이지 않았던 것도 보이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보름 전 하얀 떡가루가 나무 위에 살포시 올라앉아 있어 마치 눈을 뒤집어쓴 형세를 하는 낯선 나무를 보면서다. 저게 뭐지? 저런 나무도 있었나? 알고 보니 이팝나무였다. 수십 년을 걸었던 길에 어느 날 생판 처음 보는 나무가 서 있었다. 눈꽃이 핀 것 같은 묘한 이 나무가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꽃이 눈에 보이니 늙었구나!"라고 자조를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팝나무는 이미 몇 해 전부터 거기에 있었다. 내가 무심했던 거였다.식물 사전은 이팝나무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우리나라의 남부 지방에서 자라는 낙엽송 교목으로 물푸레나뭇과에 속하는 식물. 주요 분포지는 전라도·경상도 등 남부 지방이며, 해안을 따라서는 서쪽으로는 인천까지, 동쪽으로는 포항까지 분포한다.' 그런데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중부지방 내륙이다. 사전이 맞는다면 이팝나무는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거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 주변엔 온통 이팝나무 천지다. 공원에도 대로에도 산에도 들에도 '쌀밥'나무가 어원이라는 이팝나무가 왜 이리도 많은 것일까. 무엇보다 작물재배한계선을 무너뜨린 기후 온난화의 영향이 컸다.이제 '5월의 꽃'으로 자리 잡은 이팝나무에도 슬픈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며느리밥풀꽃'설화와 비슷하다. 며느리가 제사상에 올릴 밥을 짓다가 뜸이 잘 들었는지 확인하려고 밥알 몇 개를 입 안에 넣었다고 한다. 우연히 이를 목격한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제삿밥을 먼저 먹은 줄 알고 혼을 내고 쫓아냈다. 억울했던 며느리는 뒷산에서 목을 매 죽었고, 이듬해 며느리가 묻힌 무덤가에 나무가 자라더니 흰 꽃이 가득 피었다고 한다. 전국 각 지자체가 조경용으로 이팝나무를 가장 선호한다고 한다. 미세먼지를 줄이는 수종에 성장 속도도 빠르지 않고. 금세 꽃이 지지 않는 게 이유다. 특히 낙엽이 많아 치우기 번거로운 은행나무와 10년이 지나면 뿌리가 보도블록을 들어 올려 보행자 위협이 되는 단풍나무의 단점을 완벽하게 보완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제 비바람에 그동안 잘 버티던 이팝나무꽃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팝나무는 여름을 알리는 전도사이기도 하다. 그 꽃이 지면 곧 여름이 온다는 신호쯤으로 보면 된다. 이렇게 사연 많은 나무를 그동안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이영재 주필

2020-05-19 이영재

[참성단]'대모잠자리'

지금이야 도심에서 마주치기 어렵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잠자리는 지천에 널린 곤충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방학숙제였던 곤충채집의 단골 표본도 잠자리였다.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잠자리/아마 나는 어린가봐 그런가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보고싶지." 조용필의 '고추잠자리'가 히트한 이유도 잠자리를 통해 어머니를 엄마로 불렀던 아스라한 유년의 기억을 소환하는 매력 때문일 게다.한자로 젊은 처녀, 청낭자(靑娘子)인 잠자리를, 동의보감은 탁월한 정력제로 추천하고 있다. 여색을 밝힌 연산군이 즐겨 먹었다니 터무니 없는 처방은 아닌 모양이다. 여인의 고운 옷 맵시를 표현하기에 안성맞춤일 정도로 잠자리 날개는 투명하고 연약하다. 잠자리는 그 연약한 네 개의 날개를 따로 움직여 최고의 비행술을 자랑한다. 급선회, 급강하, 급상승은 물론 후진비행도 가능하다. 시 '청령(잠자리)'에서 이상은 "몸과나래도가벼운듯이잠자리가活動입니다./헌데그것은果然날고있는걸까요"라고 했다. 시적 은유와는 별개로, 잠자리의 호버링(제자리 비행)에서 착상한 작품이지 싶다. 헬리콥터를 잠자리 비행기라고 했으니, 잠자리가 불쾌했겠다.잠자리는 모기의 천적으로 대표적인 익충이다. 모기라면 유충이건 성충이건 가리지 않고 포식하는데, 왕잠자리 성충은 하루에 수백마리의 모기를 먹어치운다고 한다. 여름철 잠자리떼가 비행 중이면 모기 박멸 작전 중이니 방해하면 안된다.잠자리 하면 보통 고추잠자리를 생각하지만 한반도에만 총 11과 58속 123종이나 분포한다. (우포잠자리나라 참조) 아직도 방학숙제를 감당할 정도의 개체수는 유지 중이지만, 드물게 멸종위기종도 있다. 최근 시흥 보통천과 갯골 유역에서 환경부가 지정한 2급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대모잠자리 유충과 성충이 동시에 발견됐다고 한다. 국내서식 곤충류 1만8천여종 중 멸종위기 야생생물은 26종 뿐이다. 대모잠자리 서식지 보호를 위한 시흥시와 경기도의 대책이 시급하다. "아이들 잠자리채에 대모잠자리가 잡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이용성 환경교육센터 소장의 호소는 당연하다. 아울러 수원청개구리, 금개구리, 저어새 등 멸종위기 생물들의 서식지로 확인된 시흥지역 습지 전체에 대한 보호 청사진 마련도 시급해 보인다. /윤인수 논설실장

2020-05-18 윤인수

[참성단]5·18 40주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우리가 꿈꾸는 기적: 인빅터스'는 화해와 소통으로 흑백 인종 간 갈등을 극복하는 남아공화국 만델라 대통령의 리더십을 감동 깊게 그린 영화다. 만델라는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다가 무려 27년간 악명높은 로벤섬 교도소에 투옥돼 극심한 고초를 당해야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후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고 백인 유화정책을 밀고 나갔다.영화는 백인들로 구성된 남아공화국 럭비팀 '스프링 복스'를 통해 만델라 대통령이 자신을 핍박한 백인들을 어떻게 용서하고 어떻게 화해를 했는지 진지하게 묻는다. 이는 '복수'라는 날카로운 칼 대신 '관용'이라는 부드러운 표용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영화에서 자신의 측근이 지나치게 백인을 우대한다고 하자 만델라는 이렇게 말한다. "용서는 영혼을 해방 시키고 공포를 없애주지. 그래서 강력한 무기인 걸세. 자네도 노력해보게."만델라와 어깨를 견줄 대통령이 또 있다. 바츨라프 체코의 하벨 대통령이다. 그는 청춘을 체코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을 위해 바쳤다. 그 역시 공산독재 군력자로부터 끔찍한 학대를 받았다. 민주화가 되면서 하벨은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대통령에 취임했다. 국민들의 관심은 하벨의 '복수'의 칼날이 어디로 향하는지였다. 하지만 그는 용서와 관용을 택했다. 이런 그를 향해 정치적 미숙함이라고 비난한 국민도 있었지만, 그는 용서와 화합으로 체코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였다. 이 때문에 하벨을 '동유럽의 만델라'라고 부른다. 대통령의 자리를 떠날 때 그는 이런 퇴임사를 남긴다. "저에게 실망한 국민, 저의 행동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던 국민, 그리고 저를 미워했던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용서하십시오." 하지만 그를 비난한 국민은 없었다.오늘은 5·18 40년이 되는 날이다. 이미 강산이 4번 변했지만, 광주는 아직도 '진행 중'이고 ,'화해'와 '용서'는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다. 4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이제 이쯤 됐으면 '광주의 아픔'을 극복할 때도 됐다. 그러려면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5·18 40주년을 맞아 만델라와 하벨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용서와 화해로 증오와 미움을 털어내고 우리 모두 하나가 되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영재 주필

2020-05-17 이영재

[참성단]아프리카의 탄식

동네 형들 따라 메뚜기를 잡으러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들판만 나서면 메뚜기가 흔했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후 잡은 메뚜기를 넣고 불을 높이면 메뚜기들이 요란을 떨었다. '투둑 투둑' 거리던 그 소리와 감촉은 지금도 손끝에 생생하다. 물론 맛은 좋았다. 하지만 TV '주말의 명화'에서 '대지'를 본 후, 더는 메뚜기를 먹지 않았다. 아니 먹지 못했다. 시드니 프랭클린 감독의 1937년 작으로 기억되는데 하늘을 온통 덮은 메뚜기와 곡식을 갉아 먹는 메뚜기의 모습을 클로즈업 한 장면이 어린 나이에 너무 충격적이고 무서웠기 때문이다.실제 메뚜기가 한데 몰려다니면 현실은 영화보다 더 끔찍하다. 영화의 원작인 펄 벅의 소설 '대지'는 메뚜기 떼의 습격을 이렇게 적고 있다. '검은 구름처럼 지평선 위에 걸치더니 이윽고 부채꼴로 퍼지면서 하늘을 까맣게 덮었다. 세상이 밤처럼 캄캄해지고 메뚜기들끼리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내려앉은 곳은 잎사귀 하나 없는 황무지가 됐다.'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며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이 메뚜기가 3∼6개월가량을 살면서 한 해 동안 4세대까지 번식을 이어가는 악명높은 '사막 메뚜기'다. 세대가 내려갈 때마다 그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처음보다 10배가량 숫자가 불어난다.사막 메뚜기떼는 아프리카에서 빈번하게 발생해 1천억 마리가 떼 지어 이동한다. 특히 최근 2년간 폭우가 내렸고 고온다습했던 이상 기후가 사막 메뚜기 떼가 번식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었다. 메뚜기떼의 출현 경로는 아직 명확지 않다. 건조한 사막에 비가 내린 후 땅속 메뚜기 알이 부화해 순식간에 개체 수가 늘어나면서 바람을 타고 하루 150㎞ 이동한다. 한 무리가 출몰하면 하루에 3만5천명분의 식량을 먹어 치운다.지난해 말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케냐 등 3개국을 초토화한 사막 메뚜기떼의 2차 습격이 시작돼 아프리카가 극심한 공포에 떨고 있다고 한다. 가뜩이나 코로나19로 고통을 겪고 있는데 또 다른 악재가 발생한 것이다. 메뚜기 떼는 1차습격 때처럼 중동과 파키스탄을 거쳐 인도와 중국 국경까지 이동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메뚜기떼의 출현을 '인도양'의 수온 상승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이젠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 말도 함부로 쓰면 안 될 것 같다. 아프리카의 탄식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영재 주필

2020-05-14 이영재

[참성단]타이슨 & 홀리필드

복싱계 최대의 라이벌 마이크 타이슨과 에반더 홀리필드가 연출한 장면들이다.#장면1: 1997년 타이슨과 홀리필드의 리매치로 치러진 WBA 헤비급 타이틀전. 화끈한 인파이터와 노련한 아웃복서의 수준 높은 경기가 될 것이란 예상을 뒤엎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홀리필드의 지능적인 헤드버팅에 약이 오를 대로 오른 타이슨이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은 것이다. 타이슨의 별명이 '핵주먹'에서 '핵이빨'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세간에는 타이슨이 홀리필드의 귀 살점을 삼켰다는 끔찍한 말까지 나돌았다. 일부 시청자들은 "스포츠 경기를 보려 했지 야수를 보려 한 게 아니다"라며 방송사 등을 상대로 소송을 걸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타이슨은 자격정지와 함께 수십만 달러의 벌금을 냈다. #장면2: 2009년, 당시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던 '오프라 윈프리쇼'에 두 '앙숙'이 나란히 출연했다. 방송에서 타이슨은 홀리필드에게 사과를 했고 홀리필드는 흔쾌히 사과를 받아들였다. 둘은 악수와 포옹까지 하면서 12년 만에 앙금을 털어냈다. 물론 '방송용'이 아니냐는 의혹과 함께.#장면 3: 앞서 제기된 의혹을 불식시킬만한 장면이다. 방송 출연 후 몇 년 뒤, 타이슨이 홀리필드 저택의 초인종을 누른다. 홀리필드가 문을 열자 타이슨이 "미안해, 에반더!"라며 작은 선물상자를 내민다. 홀리필드가 내용물을 꺼내 들며 놀란 표정으로 "내 귀잖아?"라고 말하자 "내 입안에 남아있던 걸 챙겨뒀었어"라는 타이슨의 말이 이어진다. 홀리필드는 두 팔을 벌려 타이슨을 맞이하고 둘은 '격하게' 껴안는다. 사실 홀리필드의 귀는 경기 직후 봉합수술을 받아 멀쩡하다. '장면 3'은 미국의 한 쇼핑몰 광고영상이다. 자본주의의 힘은 '숙원'(宿怨)을 '상품'(?)으로 승화시키는 것도 가능했다. '타이슨 VS 홀리필드'보다는 '타이슨 & 홀리필드'라는 표현이 둘에게 더 어울리는 장면이었다. #장면 4: 장면 4는 아직 개봉박두다. 54세의 타이슨과 58세의 홀리필드가 링 위에서 다시 맞붙는 장면이다. 외신에 따르면 타이슨의 복귀가 임박했다고 한다. 복귀전 상대로는 홀리필드가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감동을 불러올 만한 노(老) 복서들의 투혼인데, 상업적 냄새가 너무 진하다. 그래도 '장면4'를 보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임성훈 논설위원

2020-05-13 임성훈

[참성단]스카이 72의 운명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장은 1921년 6월 21일 문을 연 효창원 골프장이다. 소나무가 멋지게 우거져 있던 조선왕실 묘역 효창원을 빙 둘러 9홀 골프장을 조성했다.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던 일제의 의도가 분명했다. 하지만 총 길이가 2천322야드에 불과해 행인이 공을 맞기 일쑤였다. 또 조선 왕실묘소에서 일본인들이 골프채를 휘두르는 모습에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아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후 1924년 7월 원산 송도원 골프장이, 1924년 8월 대구 외곽 비파산 기슭에 대구골프장이 개장했다.최초의 18홀 정규 규모 골프장은 1930년 6월 문을 연 경성골프구락부. 영친왕이 현 광진구 군자리 부지 30만평을 무상 임대하고, 건설 비용을 모두 지원했다.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됐다가 1954년 7월 재개장하면서 6천750야드(파72) 국제 규모 골프코스를 조성하고 이름도 서울컨트리클럽으로 바꿨다. 이승만 대통령은 당시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 장교들이 주말마다 골프를 치기 위해 일본 오키나와로 가자 이를 유치하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1958년 6월 최초의 프로 골프대회가 이곳에서 열렸다.인천공항 제5 활주로가 영종도 스카이 72 골프장 자리에 들어서게 되면서 바다 코스(54홀)가 사라질 운명에 놓였다. 골프장 스카이72는 2002년 토지 소유주인 인천공항공사와 2020년 말까지 토지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스카이72는 2005년 문을 연 뒤 수도권 최대 골프장으로 성장했다. 연 40만명이 찾아 인천의 지역경제 발전에도 한몫했다. 특히 이번에 사라지는 바다 코스내 오션코스는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1년간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가 열린 명문코스.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골프장이 폐쇄돼 자취를 감추거나 일부 흔적만 남아 추억만 깃들어 있는 곳들이 많다. 전쟁으로, 또는 도심이 팽창하면서 학교, 공원 부지 등으로 바뀌면서 많은 골프장이 폐장했다. 서울대학교가 관악으로 옮기면서 그곳에 있는 관악골프장이 사라지고 대신 1971년 화성 동탄으로 옮겼다가 현재는 리베라CC로 바뀌었다. 뚝섬 골프장은 '서울숲'조성공사로 2004년에 사라졌고, 경북지역의 명문이던 롯데 스카이힐 성주골프장은 2017년 2월 우여곡절 끝에 사드가 배치돼 군사지역으로 바뀌면서 비운의 골프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영재 주필

2020-05-12 이영재

[참성단]사라지는 '세계속의 경기도'

에펠탑과 개선문은 파리시의 명물이다. 베이징엔 자금성이 있고, 호위무사 만리장성이 버틴다. 런던은 템스 강을 가로지르는 타워브리지에, 빨간색 2층 버스가 시내를 누빈다. 그 나라와 도시를 떠올리게 하는 상징물이다.국가와 도시는 고유의 이미지를 형상화해 상징을 만들었다. 국기(國旗)와 휘장, 엠블럼 등이다. 파랑 빨강 흰색의 프랑스 국기는 자유 평등 박애를 의미한다. 대혁명 정신을 담았다. 영국의 국기인 유니언잭의 문형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의 국기를 합친 것이다. 통일과 화합의 정신이다.다국적 기업의 엠블럼은 국기보다 더 자주 볼 때가 있다. 삼각형 모형의 유명 자동차 엠블럼이나 누구나 아는 콜라회사의 심벌마크가 그렇다. 오대양 육대주를 원에 담은 올림픽기는 지구촌 축제의 상징이 됐다.경기도가 도기(道旗) 문형과 슬로건을 바꾼다고 한다. 도의 정체성과 위상을 반영하고 도민의 자긍심을 높일 새로운 상징물(GI·Government Identity)을 개발한다는 것이다.지금 쓰이는 슬로건은 'Global Inspiration, 세계속의 경기도'이다. 2005년 손학규 전 도지사 시절 제정됐다. 세계 각국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영감들이 교차하는 글로벌시대에 경기도가 첨단지식과 기술, 창조적인 생각과 행동으로 동북아 경제시대의 중심이 된다는 의미다. 도 마크는 도내 시·군들의 강력한 네트워크와 팀워크를 상징하는 동시에 21세기 글로벌 시대의 네트워크를 상징한다.그런데 '세계속의 경기도'는 의미가 모호해 활용이 어렵다고 했다. 지난해 도민 설문조사에서도 새로운 GI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70%를 넘었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면 의미도, 해석도, 평가도 달라진다.새 상징물 개발을 위해 전문가자문위원회가 운영된다. 전략, 디자인, 홍보마케팅 전문가 16명이 참여한다. 도민 아이디어를 반영하기 위한 공모전도 열린다.수년 전 서울시가 도시 브랜드를 'I.SEOUL.U'로 바꿨다 혼쭐이 났다. '나와 당신이 이어지며, 함께 공존하는 서울'이라는 의미라지만 '도대체 뭔 뜻이냐, 생뚱맞다'는 반응이 많았다.도민들은 스카이 블루톤 바탕인 '세계속의 경기도'에 익숙하다. 이왕 바꾸는 것, 명품 GI를 내놓았으면 한다. 그래야 섭섭함과 아쉬움을 떨쳐낼 수 있을 것이다. /홍정표 논설위원

2020-05-11 홍정표

[참성단]수요집회

"일본군대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갔던 김학순입니다. 신문에 나고 뉴스에 나오는 걸 보고 내가 결심을 단단하게 했어요. (일본이) 도대체 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오. 그래서 내가 나오게 되었소.…나올 때 좀 무서웠어요. 죽어도 한이 없어요. 하고 싶은 말은 꼭 하고야 말 거요. "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기억연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은 다른 위안부 피해자들의 연쇄증언으로 이어졌고, 전 세계에 일본 정부의 반인권적 범죄행위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듬해 1월 8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 등을 요구하는 첫 집회가 열렸다. 이 집회는 '수요집회'라는 이름으로 지난 6일까지 1천438회 열렸다. 수요집회의 정식명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다. 할머니들은 학생, 시민과 함께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면서 한 번도 빠짐 없이 수요집회를 열었다. 지금도 수요 집회가 열리는 날, 일본대사관은 스무 개가 넘는 창문의 모든 커튼을 내린다.2011년 12월 1천회를 맞은 수요집회 때 일본대사관 앞에 한복을 입은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졌다. 소녀상에는 이제 할머니가 된 피해자들의 가슴 속에 여전히 꿈 많은 소녀가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설치된 다음 날, 누군가 소녀상에 목도리를 감싸주면서 국민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이후 소녀상은 전국 아니 전 세계 곳곳에 세워지면서 평화와 인권, '반일(反日)'의 상징으로 자리를 잡았다.지난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며 수요집회의 상징인 이용수(92) 할머니가 "수요집회는 증오와 상처만 가르친다. 수요집회를 없애야 한다"는 충격발언을 했다. "30년간 속을 만큼 속았고 이용당할 만큼 당했다"는 말도 이어졌다. 정의기억연대 등 위안부 관련 단체와 이번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파문은 일파만파다. 시민단체에선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다. 하루빨리 정부가 나서 원인을 규명하고 사태를 해결해야 한다. 흐지부지 넘길 일도 아니다. 방관하면 사태는 더 커질 것이다. 30년간 이어진 수요집회의 신화가 무너질까 벌써 두렵다. /이영재 주필

2020-05-10 이영재

[참성단]연금복권

복권의 역사는 오래됐다. 고대 이집트 시대에는 도시재건, 전쟁비용 등을 충당하기 위해 복권이 판매됐고, 로마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재산이나 노예를 나누어 주기 위해 복표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지금처럼 당첨 시 현금을 지급하는 복권은 1530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지방에서 발행한 '피렌체복권'이 시작이다.우리나라에선 1947년 14회 런던올림픽 경비마련을 위한 올림픽 후원권을 복권의 효시로 친다. 액면가 100원에 1등 100만원으로 모두 140만장이 발행됐다.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이후 재해 대책자금, 전쟁 후 산업 부흥 및 사회복지자금, 박람회 기금 마련 등 특수 목적을 위해 일시적인 복권발행이 이뤄졌다. 첫 정기 복권은 1969년 9월에 나온 '주택복권'으로 2006년 4월까지 판매됐다. 복권의 규모가 폭증한 것은 1990년 즉석식 복권에 이어 2002년 로또 복권이 등장하면서다. 역대 로또 복권 최고 당첨금은 407억원으로, 2003년 4월 춘천의 당첨자가 세금을 제외하고 318억원을 받아 부러움을 샀다.복권을 흔히 '희망 세금' '빈자의 세금'이라고 한다. 서민에게 헛된 희망만 키울 뿐, 당첨이 어려워 돌려받지 못하는 세금과 같기 때문이다. 로또 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814만5천60분의 1이다. 80㎏ 쌀 세 가마니 분량에 검은 쌀을 한 개 넣고 그것을 집을 확률과 맞먹는다. 골프에서 150야드 파 3홀 기준으로 홀인원 확률은 일반인은 1만2천500분의 1, 프로선수 2천500분의 1인 걸 감안한다면 사실상 당첨이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복권 구매자의 60%가 월평균 소득 400만원 가구인 것을 보면 복권은 '서민의 꿈'이 분명하다.지난달 30일 출시한 '연금복권 720+'가 매진이 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당첨액을 기존 월 500만원에서 700만원으로 40% 상향한 게 인기 요인이 됐다. 정부는 새 복권을 발매하면서 '로또에 쏠린 시장 균형발전'을 내세웠다. 사행심을 조장하는 복권에 '균형발전'을 갖다 붙이니 쓴웃음이 나온다. 지금처럼 삶이 고단하고 팍팍할수록 서민의 발걸음은 복권방으로 향한다. 연금복권 당첨액을 높여 서민을 유혹하는 정부의 꼼수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에겐 인생역전에 복권만한 것도 없다. 이는 서민들이 오늘도 복권방 앞에 줄을 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영재 주필

2020-05-07 이영재

[참성단]아듀! 드라이브 스루

테러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 중 질병이나 사망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나 독소, 유해 물질을 고의로 방출하는 생물테러는 불특정 다수의 목숨을 겨냥하는 만큼 최악질 테러가 아닐 수 없다. 생물테러가 벌어질 경우, 가장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테러 피해자들에게 해독제 등 약품을 나눠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2년 전 그 방법을 연구한 의사들이 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 김진용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과장,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 등이다.이들은 2018년 생물테러시의 약품 배분과 관련한 질병관리본부의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대규모 환자가 발생했을 경우의 해독제 지급 방식을 고안해냈다. 당시 연구책임자는 엄중식 교수였다. 김진용 과장은 연구 결과를 '드라이브 스루'에 접목시키는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대구 상황에 심각성을 느낀 이재갑 교수가 밤늦게 "대규모로 환자를 선별할 수 있는 게 필요하다"는 글을 단톡방에 올리자 김진용 과장은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직접 그림까지 그려 5장의 드라이브 스루 제안서를 만들었다.이렇게 해서 국내에 도입된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는 코로나19 확산을 막는 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병원이나 보건소에서 검체검사에 1명당 최대 1시간 이상 걸리던 것이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에서는 10분 안에 끝났다. 이런 효율성 때문에 전국 곳곳에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가 설치되더니 외신의 찬사가 이어졌다. 영국 BBC는 "한국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빠르게 적용했다"고 했고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국가로 다시 한번 입증됐다"며 한국을 추켜세웠다. 처음에 드라이브 스루에 냉소적 반응을 보이던 일본도 결국 한국을 따라 할 수 밖에 없었다.인천시가 6일부터 선학체육관 주차장에서 운영해오던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검사 수요가 급격히 감소한 데 따른 조치다. 개인적으로 드라이브 스루의 '원조?'는 명절 때 꽉 막힌 고속도로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뻥튀기 판매상들이 아닌가 싶다. 길이 뚫리면 판매상은 사라진다. 드라이브 스루 진료소도 다시 등장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는 코로나19가 재확산되지 않았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고생한 의료진이 다시 매연과 무더위 속에서 구슬땀 흘리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임성훈 논설위원

2020-05-06 임성훈

[참성단]프로야구 무관중 개막

2015년 4월 30일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경기가 무관중으로 치러졌다. 150년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무관중 경기였다. 당시 볼티모어지역의 대규모 폭동 사태로 흑인 소년이 사망한 사건이 원인이었다. 경기 도중 폭동사태 우려로 내려진 부득이한 조치였던 것. 당시 무관중으로 경기를 치른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팬이 없다면 프로 스포츠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준 경기였다.프로 스포츠에 관객이 없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보통 '무관중 경기'는 물의를 빚은 구단에 내려지는 최후의 조치다. 국내 프로 스포츠 첫 무관중 경기는 2007년 축구 K3 리그인 서울 유나이티드가 받았다. 당시 서울은 대구의 한국 파워트레인과의 홈경기 중 응원단과 선수들 간의 폭력사태로 대한축구협회로부터 '무관중 경기'라는 중징계가 내려졌다. 국제경기에서도 가끔 무관중경기가 치러진다. 지난해 9월 평양에서 열린 북한과의 월드컵 예선전이 그런 경우다. 북한은 2005년 이란과의 월드컵 예선 홈경기에서 심판 판정 항의와 오물 투척, 상대 선수단 위협 등으로 제3국 내 무관중 경기라는 징계를 받기도 했다.어제 프로야구 개막전이 무관중 경기로 치러졌다. 코로나19로 인한 부득이한 조치였다. 5개 구장에서 열렸는데 그 어디에도 팬들의 함성이 없었다. 홈런과 안타가 터져도, 절묘한 수비가 펼쳐져도 관중석에선 함성이 들리지 않았다. 홈런을 치고 들어오는 선수의 '언택트 세리모니'는 마치 무언극의 배우를 보는 것처럼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TV 중계 역시 스포츠 캐스터들이 아무리 분위기를 띄우려고 해도 흥이 나지 않았다.하지만 코로나19를 잘 극복하고 있는 탓에 무관중이라도 경기가 펼쳐진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우리의 일상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에서 비록 무관중이지만,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을 보니 비로소 우리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모레부터는 K리그 프로축구도 무관중으로 경기가 열린다. 이 모두 국민이 솔선수범해서 코로나19를 슬기롭게 대처했기에 가능했다. 미국의 스포츠 채널 ESPN이 우리의 프로야구를 매일 한 게임씩 중계할 정도로 지금 전 세계가 코로나19를 이겨내고 무관중 경기라도 하는 우리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이영재 주필

2020-05-05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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