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추석 민심

민심(民心)에 대해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것이 미국 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의 사례다. 그는 부통령을 하다가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하자 자리를 이어받은 운 좋은 대통령이었다. 닉슨의 '돌출 행동'에 데이고, 대통령을 쫓아냈다는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던 미 국민들은 포드에게 70%가 넘는 전폭적 지지를 보냈다. 포드는 이에 크게 고무됐다. 그는 높은 지지율을 미국 국민의 마음으로 생각했다. 그게 문제였다. 민심을 잘못 파악한 그는 취임 한 달 만에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닉슨에 대한 사면을 선언한다." 그게 끝이었다. 민심이 폭발했다. 지지율은 하루 만에 50% 밑으로 폭락했다. 다음 선거에서 카터에게 패한 포드는 대통령직에서 895일밖에 재임하지 못한, 5번째로 단명한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무능한 대통령이란 딱지는 덤이었다. 민심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따지고 보면 '민심은 천심'처럼 추상적인 말도 없다. 정치가 국민의 행복권 실현을 위해 존재하는 한 이런 표현이 유효할 수 있어도, 그렇다고 민심이 '진리'일 수는 없다. 그런데도 현대 사회에서는 민심이 정의나 진리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특히 정치인들의 입에서 스스럼없이 '민심'이 튀어나올 때 특히 그렇다. 평소에는 민심을 헌신짝처럼 취급하다가 선거 전후 그들의 입에서는 민심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다. "민심을 얻지 못해 선거에서 패했다.""표에 담긴 민심을 절대 잊지 않겠다." "민심 무서운 줄 이제 알았다." 등등.곧 추석이다. 장엄한 민족대이동이 연출될 것이다. 사통팔달 길이 뚫리고 고속도로 통행료까지 면제니 고향을 찾고 가족 친지를 만나는 게 더더욱 수월해졌다. 민심의 동향은 이 길을 따라 이곳저곳으로 빠르게 전파될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라는 호재가 있었다. 지난 추석 '촛불 민심'이 그랬듯이, 이번 추석엔 이 평양발 호재가 암울한 경제상황, 고용 불안, 청년 실업 등과 맞부딪혀 다양한 민심을 표출할 것이다. 그러니 청와대도 정부도 정치인도 이번 추석 민심 움직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우리 조상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했다. '넉넉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이다. 풍성한 수확을 가져다준 자연의 섭리와 조상에게 늘 감사하고 혹시 내 주변에 불우한 이웃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정치가 아닌 이런 따듯한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추석 민심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20 이영재

[참성단]평양 정상회담 명암

예정대로라면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백두산 방문을 끝으로 오늘 청와대로 돌아온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9월 평양공동선언문'에 합의하기까지 평양 정상회담은 명암이 엇갈리는 장면과 화제로 풍성했다.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남북 정상의 상호신뢰 확인으로 보인다. 전격적인 4·27판문점 정상회담 이후 세번째 만남에서 두 정상은 모든 장면에서 서로를 향한 신뢰와 존중을 표현했다. 김 위원장의 문 대통령 환대는 최상급이었다. 21발의 예포, 정상 동반 카퍼레이드, 노동당청사 개방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받지 못한 예우였다. "대통령 각하! 조선인민군 명예위병대는 각하를 영접하기 위하여 정렬하였습니다." 북한 육군대좌 김명호의 남한 대통령을 향한 사열보고가 아직도 귓전에 쟁쟁하다.적어도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결정적인 한반도 정세변화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절박한 역사적 숙명 속에서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됐다. 두 사람의 만남은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자정에 트위터 반응을 내놓을 정도로 국제정세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 북핵 폐기를 놓고 희망사항은 다를지 몰라도, 현 정세에 상호 의존적 관계인 것만은 분명하다. 셔틀외교의 완성판인 김 위원장의 서울방문 확정이 이를 증명한다.그러나 아쉽고 불길한 장면도 없지 않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우리가 정권을 뺏기는 바람에 11년 동안 남북관계가 단절돼 여러 가지로 손실을 많이 봤다"고 한 발언은 곱씹을 대목이다. 만일 자유한국당 대표가 동행했으면 북한 사람 앞에서 시비가 붙었을 내용이다. 남북관계 11년 정체 이유는 다양하고, 그 중에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과 북한의 연속적인 핵실험 등 북측의 귀책사유도 많다. 현 한반도 정세를 바라보는 우리 내부의 엇갈린 시선을 여과없이 보여준다.정상회담 직전 미국 요청으로 열린 유엔 안보리에서 북한제재의 실효성을 놓고 미국과 중국·러시아가 거친 언쟁을 벌인 것도 예사롭지 않다. 외세의 개입은 노골적이다.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손 붙잡고 한반도 평화구상을 밀어붙이는데, 우리 내부와 외세의 대응은 엇갈리고 충돌한다. 낙관도 비관도 불허하는 한반도 정세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9-19 윤인수

[참성단]다큐멘터리의 힘

바야흐로 다큐(docu)의 세상이다. 지상파건 종편이건 다큐를 내걸지 않으면 프로그램 행세를 할 수 없을 정도다. 다큐 세상, 시사 다큐, 다큐프라임 등등 온통 다큐일색이다. 예능프로라고 예외는 아니다. 다큐와 예능을 결합한 '리얼 예능'이 대세로 자리잡았다. 다큐는 다큐멘터리(documentary)의 줄임말. 단어가 길어 번거로우니 뒤를 뚝 잘랐다. 다큐멘터리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사실(fact)과 현실(reality)이다. '다큐멘터리의 힘'은 이 단어에서 나온다. 다큐 프로가 난립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다큐멘터리의 사전적 정의는 '사실에 입각한 촬영과 합리적인 재구성을 바탕으로 현실을 '기록'하는 영화'를 말한다.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서 팩트를 기록한다'는 의미도 있다. 다큐멘터리가 현실의 객관적 기록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객관성을 보장하고 있다고 믿으면 오산이다. 다큐멘터리는 감독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주관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는 감독의 성향이나 작품의 의도에 따라 그 방향성이 좌우된다. 그게 다큐멘터리의 매력적이다. 그러나 너무 한쪽으로 치우칠 경우, 다큐멘터리로서의 가치는 크게 훼손된다. 시위현장에서 진압하는 경찰과 저항하는 시위자를 어느 쪽에서 찍느냐에 따라 '폭력시위대'와 '폭력 진압 경찰'이라는 상반된 해석이 나온다. 종종 다큐멘터리가 '선전영화(propaganda film)'로 변질되는 것도 그런 경우다.다큐멘터리가 주는 감동의 크기는 극영화에 비할 바가 아니다. 파급력도 엄청나다.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직설적이고 강렬하기 때문이다. 울림이 크니 감동도 클 수밖에 없다. DMZ 국제 다큐영화제가 어느덧 10회를 맞았다. 레드카펫, 배우들의 화려한 의상, 눈부신 스포트라이트가 없어도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질은 높아진 영화제로 자리 잡았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앙뚜, 다시 태어나도 우리' 'B급 며느리' 같은 좋은 작품이 꾸준히 선을 보인 덕이다. 올해는 39개국에서 142편의 작품이 출품됐다. 어려움 속에서도 이만큼 성장했으니 '대견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아웃사이더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일반인의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고, 새로운 다큐영화제가 신설되고 있으니 이는 좋은 징후다. 지원이 더 강화되고 문호가 더 개방돼 작품의 수도 늘어나면 DMZ 국제 다큐영화제의 앞날은 더 밝아질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18 이영재

[참성단]이재명 빠진 특별수행단

오늘 문재인 대통령은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휴전선을 넘지만, 경기도는 예상치 못한 정상회담 후폭풍을 겪고 있다. 정상회담 특별수행단에 접경지역 단체장 대표로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포함된 반면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제외된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쉬쉬하는 분위기에 강도는 찻잔속 태풍이지만, 추측과 해석은 범상한 수준을 넘는다.강원도지사의 접경지역 단체장 대표성이 상식적인지에서 의문이 돋아났다. 인구와 경제력, 접경지역 기초단체 수, 향후 예상되는 교류협력의 규모 등 도세만 놓고 보면 경기도가 접경지역 대표 광역단체라는 현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이 지사는 취임후 전국 지자체 최초로 평화부지사직과 평화협력국을 신설하는 등 남북교류협력에 대비해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지난 추경에는 남북교류협력기금을 배 이상 확대했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그대로 경기도 경제비전으로 차용했다.이 지사 입장은 쿨했다. SNS에 정상회담 기간 다보스 포럼 참석 사실을 알리고 "문재인 대통령님, 박원순 시장님, 최문순 지사님 잘 다녀오세요"라는 응원을 남겼다. 하지만 도청 분위기는 다르다. 언론이 보도한 산발적인 관계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도청 실무진이 이 지사의 특별수행을 추진했던 것만은 사실인 모양이다. 다보스 포럼 참석 포기 의사까지 표명했다는 후문이고 보면, 결과에 초연하기 힘든게 당연하다. 경중을 가려도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이 민간 모임인 다보스 포럼 참석 보다 훨씬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상황의 배경이 모호하니 추측의 난무는 당연지사다. 수행명단 작성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설 부터, 박원순 서울시장이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의장 자격으로 수행단에 포함된 사실에 견주어 차기 대권구도와 관련한 상상을 부추기는 해석까지 다양하다. 문 대통령의 남북평화 외교를 강력하게 지지해 온 이 지사 입장에서는 이런 봉변이 없다.4대 그룹 대표 포함에서 보듯이 정상회담 특별수행단 구성은 그 자체가 메시지이다. 반토막 난 정당대표 수행, 설(說)을 야기한 경기도지사 불참 등의 소동이 특별수행단 구성에 담을 대북 메시지를 흐렸을까 걱정이다. 불협화음을 불식시킬 정상회담의 성과를 기대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9-17 윤인수

[참성단]"고마워요 KT위즈"

KT위즈가 '마침내' 꼴찌를 '탈환'했다. 시작만 좋았다. 희망은, 4월 그때뿐이었다. 5월 말부터 조짐이 보였다. 투수진이 무너지고 타자의 배트 끝이 무뎌진 게 그즈음이었다. 대패하고도 여유 부리던 코치진과 선수 표정에서 불안감을 느낀 것도 그때였다. 연패에 분통이 터지는 것은 위즈 팬들뿐이다. 3루 쪽 상대 팬들은 그때마다 일제히 외쳤다. "고마워요 KT위즈."위즈가 패하면 상대 팬들은 "고마워요 KT위즈" "사랑해요 KT위즈"를 연호했다. 고맙고 사랑한다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연패에 빠진 팀이나 슬럼프를 겪는 선수들은 위즈를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펄펄 날았다. 위즈가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과 연패에 허덕이는 팀들에게 보약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지난 8월 5일 넥센전. 장단 20안타에 11볼넷을 묶어 무려 20점을 내준 끝에 20대2로 대패했다. 그날부터 힘을 얻은 넥센은 연전연승을 기록하더니 이젠 4위를 달리고 있다. 이날도 넥센 팬들은 위즈를 향해 "사랑해요 KT위즈"를 외쳐댔다. 위즈는 이제 9개 구단의 '도우미'가 됐다.장훈은 자서전 '방망이가 울고 있다'에서 "기교도 중요하지만 싸우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썼다. 위즈는 싸우려는 의지도, 이기겠다는 욕망도 없다. 타자가 1점을 어렵게 뽑아내면 투수들은 너무 쉽게 2점을 내준다. 파이팅은 물론 긴장감도 눈곱만치도 없다. 나사 하나가 빠진 것 같다. 흐리멍덩하다. 응집력도 전혀 없다. 다른 팀은 입을 꽉 물고 경기에 임하는데 위즈는 입을 벌리고 뛴다. 그러니 팀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 중간 투수진이 이미 무너져 이기고 있어도 불안하다. 후반으로 갈수록 경기는 여지없이 뒤집힌다. 그러니 이런 말도 생겼다. "위즈 경기는 장갑을 벗어 봐야 해". 역전패가 다반사라 경기를 끝까지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5점을 앞서도 9회가 되면 불안한 것도 그래서다. 이런 식이면 내년에도 꼴찌 하지 말란 법도 없다.위즈는 유난히 꼬마 팬들이 많다. 9대7로 이기던 경기가 9대11로 뒤집히면(7월6일 롯데전) 이들은 실망감에 '그로기' 상태가 된다. 희망도 사라진다. 밥맛도 없다. 이제 더는 실망을 주지 말자. 남은 19경기라도 최선을 다해 꼬마 팬들 입에서 "고마워요 KT위즈" "사랑해요 KT위즈"가 저절로 나오게 해야 한다. KT위즈! 이제 제발 정신 좀 차리자!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16 이영재

[참성단]고위공직자 7대 배제 원칙

인사청문회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1787년부터니 햇수로 230년이 넘었다. 연방정부 공직자의 임명 권한을 놓고 대통령과 상원의원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자 '선 대통령 지명, 후 상원 인준'으로 선을 긋고 시작한 게 청문회였다. '도덕과 이념의 무덤'이라고까지 불리는 미국청문회는 그 목적과 범위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어 정쟁으로 악용되는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우리는 2000년 6월 헌정사상 최초로 이한동 국무총리의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2003년엔 국가정보원장, 검찰총장, 국세청장, 경찰청장이, 2005년부터 국무위원을 청문회에 포함했다. 원래 공직을 수행해 나가는데 적합한 업무능력이나 인간적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를 검증하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위장전입, 논문표절, 투기 의혹, 병역비리, 이중국적 등 사적인 것을 끄집어내 흠집 내기로 시작됐다. 여야가 바뀌어도 마찬가지였다. 품격 없는 후보자와 의원들의 자기편 감싸기로 청문회는 정쟁의 장으로 변질됐다. 같은 문제로 청문회가 늘 시끄럽자 문재인 정부는 '고위 공직 후보자 임용 7대 비리 배제 원칙'이란 기준안을 만들었다. 위장전입, 불법적 재산증식, 논문표절 등 7개 조항에 위반되면 공직에 서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 제도를 처음 적용한 인사청문회가 10일부터 시작됐다. 결과는 참담했다. 8번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난 헌법재판소 재판관에서부터 아직 청문회를 하지 않았지만,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지역구 사무실 특혜 입주 의혹과 위장전입 전력에 이어 불법적 비서관 채용 문제까지 불거졌다. 7대 원칙이 무색해 진 것이다.관포지교(管鮑之交)로 잘 알려진 관중(管仲)은 '관자'(管子)에서 예절, 의리, 청렴, 부끄러움(禮義廉恥)을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다스리는 4가지 뼈대(四維)로 보았다. 이 중 한 개가 없으면 나라가 기울고, 둘이 없으면 위태롭게 되며, 셋이 없으면 근간이 흔들리고, 넷 모두 없으면 나라는 망한다고 했다. 20년도 안 된 청문회를 오랜 연륜의 미국과 비교한다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7대 원칙이 세워 진 이상 스스로 여기에 적용된다고 생각한다면 사퇴하던가 청문회에 서지 말았어야 했다.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했다면 이야말로 염치가 없는 것이다. 염치가 없는데 예의가 있을 리 없다. 어찌 이들을 믿고 법과 교육을 맡기겠는가.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13 이영재

[참성단]남북정상회담 동행요청 촌극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의 국회의장단과 외교통일위원장, 여야 5당 대표 남북정상회담 동행 요청과 관련해 정치권이 시끄럽다. 요청과 거절을 둘러싼 시비를 떠나 정말 궁금한 점이 있다. 정의용 특사가 지난 5일 방북에서 4·18 3차 남북정상회담을 합의할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정당 주요 인사의 동행 방북을 합의했는지 여부다.외교에서 의전은 생명이다. 핑퐁외교로 죽의 장막을 열었던 미중정상회담 당시 닉슨과 마오쩌둥은 악수와 미소를 주고받는 첫 대면부터 양국이 합의한 의전을 따랐다. 싱가포르 북미회담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키 차이를 고려한 의전이 관심을 끌기도 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를 우러러보는 장면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역으로 의전에 없던 파격을 연출해 회담의 주도권을 잡는 경우도 다반사다. 공격적인 악수로 악명 높은 트럼프는 북미정상회담 때 느닷없이 자신의 전용차 내부를 공개해 김 위원장을 당황시켰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는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깜짝 월경(越境)을 제안해 만만치 않은 내공을 과시했다.3차 남북정상회담도 양측이 합의한 의전이 있을 것이다. 국회의장단, 정당대표들은 국가의전서열 10위내의 주요 인사들이다. 이들이 대통령과 동행하는 문제는 당연히 사전에 합의할 중요한 의전이다. 북한과 합의된 사안이라면 정 특사의 방북 결과 브리핑에 중대한 누락이 있었던 셈이니 큰 문제다. 청와대의 단독 결정이라면 의전상 북한에 대한 실례다. 평양은 청와대가 즉흥적으로 부랴부랴 동행단을 꾸려 방문할 장소는 아니다.임 실장의 전격적인 동행요청은 상호 존중을 강조한 삼권분립의 원칙상 무례했다. 난데없이 '꽃할배' 운운한 대목에선 동행요청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헷갈린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거절의 이유가 우아했으면 좋겠다"고 거들었다.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한 야당대표들의 거절 이유를 야유한 것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갈 사람만 가자'는 냉소적 반응이고, 청와대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퇴근 시간에 밥먹자 했다가 부하직원들이 난색을 표하자 짜증내는 상사의 촌극을 닮았다.북한 비핵화의 분수령으로 주목받는 남북정상회담이다. 내부의 의전이 이 모양인데, 정상회담 의전의 주도권을 쥘 수 있을까 걱정이다. 평양의 김 위원장은 목숨을 걸고 문 대통령을 기다릴텐데 말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9-12 윤인수

[참성단]중국 축구감독 히딩크

추억이라고 다 아름다운 건 아니다. 2002년 월드컵이 하나된 마음으로 국민 모두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은 건 특이한 경우다. 지금도 귓가를 떠나지 않는 '대~한민국'과 '오~필승 코리아'의 함성. 월드컵이 끝나자 지독한 무력증에 빠져 허우적댔던 일상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아름다운 추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2002년 월드컵은 우리를 4강까지 진출시켜준 거스 히딩크 감독과의 행복했던 '한달간의 동거'였다. 그의 '어퍼컷 세리머니'는 얼마나 통쾌했던가.혹독한 IMF는 국민들의 웃음을 빼앗아 갔다. 국민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히딩크가 '불쑥'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가 타임지와 했던 인터뷰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됐던가. "한국민이 원하는 16강이 나의 바람은 아니다. 내게는 그 이상의 바람이 있다. 만약 6월을 끝으로 내가 한국을 떠나게 될지라도 한국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나는 한국팀 감독이고 앞으로도 한국팀 감독이라는 것이다. 월드컵에서 우리는 분명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멋지게 약속을 지킨 히딩크를 우리는 가끔 한국인으로 생각했다.하지만 이제 추억의 히딩크가 악몽의 히딩크가 될 수도 있는 얄궂은 운명과 맞닥뜨리게 됐다. 히딩크가 2020년 도쿄올림픽 본선을 목표로 중국 21세 이하 감독을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히딩크는 한국팀 감독을 사임한 후 호주, 러시아, 터키 감독을 맡으며 자신의 축구인생을 걸어왔다. 그러나 21세 이하라 해도 중국 축구감독 히딩크 인생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중국인들이 대하는 한국 축구는 공한증(恐韓症)이란 말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지금은 좀 나아졌다지만 트라우마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다. 시진핑은 '월드컵 본선 진출과 중국 월드컵 개최, 월드컵 우승'을 3대 소원으로 꼽았다. 어디 이뿐인가. "중국이 월드컵을 개최하고 언젠가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의 축구 사랑은 끔찍할 정도다. 시진핑의 웅대한 꿈에 한국은 늘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히딩크가 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21세 이하는 중국 축구의 미래다. 히딩크 아래서 탄탄한 기본기를 쌓고, 시진핑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다면 중국은 벅찬 상대가 될 것이다. 우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히딩크. 중국으로 가는 히딩크를 보며 스포츠의 세계가 냉혹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11 이영재

[참성단]대부도의 '그랑꼬또'

지금이야 방조제 도로로 연결돼 섬이랄 수도 없지만 대부도는 대교로 연륙된 선재·영흥도로 이어지는 수도권의 드라이브 명소다. 대부도를 찾으면 포도원들이 줄줄이 눈에 띈다. 도로변에는 포도농가들이 그럴듯하게 작명했지 싶은 '비가림 포도'나, '알솎음 포도'를 판매하는 간이매대가 늘어서 주말 행락객을 유혹한다.포도는 포도주, 즉 와인으로 가공돼야 부가가치가 급상승한다. 문제는 국내에서 와인을 제조해도 시장의 호응이 신통치 않은 점이다. 서구의 와인문화가 워낙 독보적이라서다. 와인이 빠진 그리스·로마의 신화를 상상하기 힘들다. 플라톤은 와인을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 예찬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최초로 행한 기적이 물을 포도주로 바꾼 것이고, 최후의 만찬에서는 포도주를 자신의 성혈로 여기라 했다. 신화시대의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기독교의 제의에 이르기까지 포도주의 위상은 절대적이다.와인으로 숙성된 서구문화인 만큼 프랑스, 이탈리아의 유럽이 와인산업을 장악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여기에 대항해시대 유럽에 정복당해 와인문화권에 포함된 남북아메리카가 가세해, 글로벌 와인시장을 놓고 벌이는 유럽중심의 구세계와 칠레와 미국 등 신세계 사이의 시장쟁탈전이 치열한 실정이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이후 와인시장이 확장된 국내에서는 구세계 와인을 고급주로, 신세계 와인을 대중주로 취급하는 경향이 뚜렷하다.지난 주말 명품 포도밭 대부도에서 와인 페스티벌이 열렸다. 대부 포도로 만든 지역 와인 '그랑꼬또'를 알리기 위한 축제였다는데 각계 명사와 일반 와인 애호가들의 시음평이 좋았다고 한다. '그랑꼬또(Grand Coteau)'는 불어로 큰 언덕을 뜻한다. 큰 언덕 대부(大阜)를 곧이 곧대로 상표로 옮겼으니, 작지만 강한 자존심이 프랑스 전통 와이너리 못지 않다. 그래서인가 출시 19년만에 그랑꼬또는 아시아 와인콘테스트에서 금상을 차지하며, 국내외 소믈리에에 극찬을 받는 와인으로 성장했다.여기에 이르기까지 대부 포도의 품질을 믿고 19년 동안 와인을 빚어온 대부도 토박이 김지원 그린영농조합 대표의 뚝심이 있었다. 한 병의 와인에는 세상의 어떤 책보다 더 많은 철학이 있다는 말처럼, 그랑꼬또는 오랜 세월 김 대표의 희로애락으로 숙성됐을 것이다. 조급증이 일상화된 시대에 시간이 일으키는 기적이 더 많아지기를 희망해본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9-10 윤인수

[참성단]오주석의 서재

2005년 2월 7일 자 신문에는 무심한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스쳐 갈 부고 기사가 귀퉁이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수원출신 49세 소장 미술사학자 오주석(吳柱錫). 생전 그는 언론의 조명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진흙 속의 진주인 채로 젊은 생을 마감했다.어디에서건 우연히 잡은 그의 책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을 꼼꼼히 읽은 사람들은 그의 이력 중 '2005년 2월 5일 백혈병으로 별세'라는 마지막 글귀에 이르면 백이면 백 "아!"라는 탄식을 내뱉게 된다. 그 소리가 크면 클수록 그는 이 책에 흠뻑 빠진 사람이다. 그날 밤 그는 오주석의 생애가 궁금하고 "왜 내가 그의 강의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까"라며 잠을 설칠지도 모른다.오주석이 가장 사랑했던 화가 김홍도의 '씨름'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렇다. '등장하는 사람은 모두 22명인데 오른쪽 위의 중년 사나이를 보세요. 입을 헤 벌리고 재미있게 보고 있죠? 재미있으니까 윗몸이 쏠렸죠? 그 옆 장가든 친구는 씨름판에 오자마자 팔베개를 했군요. 씨름판이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얘기죠. 왼쪽 관람객 중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자는 갓도 삐딱하게 쓰고. 하여간 성격도 소심하고 영 시원치 않죠?' 이런 해설에 일반 독자는 말할 것도 없고 전문가들도 열광했다. 입에서 입으로 알려진 이 책은 스테디셀러가 됐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해설을 다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할 것이다.오주석의 호는 '후소(後素)'다. '논어'에 나오는 '그림은 먼저 바탕을 손질한 후에 채색한다'는 '회사후소(繪事後素)'에서 따왔다. '사람은 좋은 바탕이 있는 뒤에 학문과 지식을 더해야 함'을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새털처럼 가벼운 '예능 인문학'이 판치는 지금, 인품과 학식 모두 출중했던 오주석이 더욱 더 그리운 것이다.인문학 도시 수원에 오면 화성 말고도 반드시 들러야 할 새로운 명소 하나가 더 생겼다. 지난 5일 개관한 '열린공간 後素 '다. 행궁 인근 사가(私家)를 수원시가 사들여 오주석의 공간으로 꾸몄다. 1층은 전시실, 2층은 생전 오주석이 모은 자료와 책들로 '오주석의 서재'가 복원됐다. 13년 전 타계한 한 젊은 미술사학자를 과감하게 다시 불러낸 수원시의 결단도 놀랍거니와, 무엇보다 수원은 '오주석의 서재'로 인문학 도시의 튼튼한 초석이 마련됐다. 그를 수원의 문화콘텐츠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이제 그건 살아 있는 자의 몫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09 이영재

[참성단]유감! 경기필하모닉

지휘자 성시연 퇴진 이후 경기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 자리는 공석이었다. 공교롭게도 경기필하모닉 상주 공간인 경기도 문화의 전당도 내부수리가 진행 중이었다. 지휘자도 없고 연주회장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지난 5월 상임 지휘자로 이탈리아 출신 마시모 자네티가 낙점됐다. 문화의 전당 역시 오는 11일 재개관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재개관 후 첫 번째 공연으로 자네티의 데뷔 연주회가 잡혔다. 이런 스케줄은 의심의 여지 없는 너무도 당연한 결정이었다.경기필하모닉 역사상 첫 외국인 상임 지휘자, 리모델링이긴 하지만 무려 180억원이 투입된 후 새로 문을 여는 연주회장. 도민의 기대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자네티가 8일 경기필하모닉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먼저 공연을 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상 데뷔연주회가 서울에서 열리는 것이다. 도민들은 크게 당황했다. 새집에 입주하면서 집들이를 남의 집을 빌려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8개월의 보수공사, 상임 지휘자의 공백을 아무런 불평 없이 묵묵히 기다려 준 도민들의 입장에선 '충격' 그 자체다. "'경기필하모닉'의 간판을 떼서 '서울필하모닉'으로 바꾸라"는 열혈팬들의 주장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만일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필하모닉 데뷔 연주회를 뮌헨이나 프랑크푸르트에서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됐을까'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꿈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세계적인 음악평론가 볼프강 슈라이버는 사이먼 래틀의 베를린필하모닉 데뷔연주회, 즉 베를린 청중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적었다. '2002년 9월 7일. 첫 콘서트는 대성공이었다. 베를린필하모닉은 최고의 긴장감과 기쁨을 안고 말러의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오케스트라, 언론, 청중의 반응을 그저 행복감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뭔가 모자라는 듯했다. 은발의 곱슬머리가 뿜어내는, 상냥하면서도 힘찬 자태와 우아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생동감이 베를린을 뒤덮었다. 새로운 예술감독에게 거는 기대가 치솟아 올랐다. 베를린 청중은 그를 신뢰했고, 래틀 역시 베를린 청중을 신뢰했다'.경기도민도 그런 감동을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기대는 무산됐다. 서울에서 먼저 연주하던 관행, 서울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은 전 지휘자 한 명으로 충분하다. 이제 이런 한심한 행위가 더는 자행돼선 안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06 이영재

[참성단]비무장지대 지뢰밭

"지뢰는 완벽한 병사다. 쉼 없이 일하고 자리를 이탈하지 않으며 먹지 않고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의 전의를 상실시킨다는 것이다." 캄보디아 공산당 크메르 루즈의 지도자이자 킬링필드의 도살자 폴 포트의 지뢰 예찬론이다. "지뢰는 가장 야만적인 무기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계속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다." 전 UN사무총장 코피 아난의 지뢰 저주론이다.폴 포트의 말대로 지뢰는 전장에서 비용 대비 효율이 가장 높은 무기다. 직접적인 살상도 가능하지만, 신체의 일부를 훼손하도록 설계된 지뢰는 적에게 죽음보다 참혹한 공포를 자아낸다. 부상병 관리로 인한 적 전력의 약화도 지뢰의 전술적 효과다. 하지만 미국·베트남과의 전쟁과 내전을 치르는 동안 캄보디아에 깔린 600만발의 지뢰와 불발탄은 전쟁 이후에도 2만여명의 국민을 죽였다. 현재도 매년 100명 이상이 지뢰를 밟아 죽거나 절단장애를 당한다. 코피 아난의 말대로 전쟁은 끝났지만 지뢰의 저주는 남았다.비정부기구인 대인지뢰금지국제캠페인의 '2016 대인지뢰 모니터' 보고서는 2015년 대인지뢰로 인한 사망자와 부상자가 6천461명으로, 전년보다 75%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우크라이나, 예멘 등 내전 및 분쟁국에서 크게 늘어났는데, 사상자의 3분의 1이 어린이였다.1997년 조인된 '오타와협약'은 반영구적, 맹목적인 대인지뢰의 살상 공포를 종식하기 위한 국제조약이다. 모든 대인지뢰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비축 지뢰의 전량 폐기와 매설 지뢰의 폐기를 강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북한은 협약 미가입국이다. 남북대치 상황에서 우리만 지뢰를 포기할 수 없는 안보환경과 비무장지대 매설 지뢰 제거가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최근 육군측이 육군본부에 '지뢰제거작전센터' 설치를 주장해 주목을 끌었다.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한 남북공동사업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DMZ내 남측 지역이 여의도 면적의 40배로 군 공병인력만으로 지뢰를 제거하려면 200년이 걸리니, 지뢰제거 장비와 인력을 운영할 전담기구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남북이 100만개의 지뢰를 묻어놓은 DMZ지뢰밭은 한반도 평화체제가 도래하면 남북교류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대책을 세우는 것은 맞다. 하지만 남북이 공동으로 동시에 추진해야 효율도 높고 전력의 균형도 유지할 수 있다. 북한에 정식으로 제안해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9-05 윤인수

[참성단]정치인의 가동연한(稼動年限)

지난해 1월 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SNS를 통해 "모든 공직에 정년 도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표 의원은 "그래야 나라가 활력이 있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며, 청년에게 참여 공간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여론은 찬반으로 갈렸다. 대선이 아니었다면 지지를 받았겠지만, 대선 출마가 유력시되던 72세 반기문 전 총장을 겨냥한 정치적인 발언이라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역풍을 맞았다.'가동연한'은 교통사고·산업재해 등 사고로 사망 또는 장애를 입었을 경우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사용된다. 이에 따르면 변호사와 법무사, 승려가 70세로 가동연한이 가장 길다. 의사와 한의사, 화가, 목사 등은 65세, 육체 노동자 등 대부분 업종은 60세를 정년으로 한다. 일반 술집 마담, 나이트클럽 웨이터, 잠수부 등은 50세, 프로야구 선수와 에어로빅 강사, 룸살롱 마담은 40세, 다방 여종업원과 골프장 캐디는 35세를 정년으로 본다. 하지만 정치인의 정년은 찾아볼 수 없다.일본 자민당은 '공천정년제'라는 내규를 통해 비례대표 선거의 후보 공천에 대해 정년제를 적용하고 있다. 중의원의 경우 만 73세 이상이면 원칙적으로 공천에서 배제된다. 참의원의 경우 현역의원 임기 만료일 기준으로 70세 이상이면 후보로 지명될 수 없다. 2003년 중의원 공천 때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전직 총리라고 해서 예외를 둘 수는 없다"며 나카소네 야스히로, 미야자와 기이치 등 총리 출신 선배들을 이 규정을 들이대며 모두 정계에서 은퇴시켰다. 나카소네 전 총리가 크게 반발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47년생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선출로 52년생 이해찬 더불어 민주당 대표, 53년생 정동영 평화당 대표 등과 함께 '올드보이'들이 모두 귀환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치른 '2007년 동지들'이기도 하다. 연륜으로 꽉 찬 이들의 '부활'을 두고 협치의 가능성을 점치는 언론도 있지만, 정년 없는 정치인의 가동연한에 대한 따가운 여론도 만만치 않다. 암울했던 70년대 초, 좌절한 국민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던 것은 YS·DJ의 '40대 기수론'이었다. 지금 선진국은 40대 정치 지도자들이 속속 출현하고 있다. 5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패기보다 연륜이 우선되는 우리 정치, '피터의 원리'가 떠오르는 요즈음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04 이영재

[참성단] 방탄소년단과 손흥민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양궁 남자 리커브 결승에서 우승한 김우진은 동료들이 갖다 준 태극기도 마다하고 굳은 표정으로 사대를 벗어났다. 금메달리스트의 의외의 행동엔 이유가 있었다. 결승전 상대인 후배 이우석이 은메달에 머물러 병역특례 혜택을 못받은 것이다. 자신은 8년 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혜택을 받은 마당이니, 병역혜택을 날린 후배 앞에서 우승 세리머니는 가당치 않았을 터이다. 현역 이등병인 이우석은 "남은 군 생활도 열심히 하겠다"며 결과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투명한 승부는 세계 1위 한국 양궁의 비밀을 짐작할 수 있는 명장면으로 오래 회자될 것이다.스포츠와 예술분야 스타들에게 병역의무 이행은 엄청난 부담이다. 군 복무 기간에 유일한 밑천인 고유의 재능이 사장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체육요원특례 제도가 도입됐다. 체육요원은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아경기대회 1위 입상자가 혜택을 받는다. 예술요원은 병무청장이 정한 국제·국내예술경연 입상자 등이 대상자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42명이 특례 수혜 대상자가 됐다. 손흥민은 특례 혜택으로 몸값이 1억유로(1천300억원)로 치솟았고, 소속팀 토트넘도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그러나 예술·체육요원특례는 운영과정에서 뒷말이 무성했다. 야구의 사례처럼 구기 종목의 경우 국가대표 선발 과정부터 잡음이 발생하기 일쑤였다. 2002년 월드컵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때는 국민여론에 흔들려 대표팀 선수들이 특례혜택을 받았다. 정서적 당위가 법의 형평성을 허문 셈이다.급기야 방탄소년단이 병역특례제도의 형평성에 일격을 가했다. 방탄소년단이 최근 새 앨범으로 지난 5월에 이어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200' 1위에 오르자, 여론이 병역특례의 형평성을 성토하고 나섰다. 두 번이나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한 전무후무한 업적은 당연히 병역특례감이라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맏형 진(김석진)은 손흥민과 1992년생 동갑이다. 클래식은 혜택을 받고 대중예술은 제외된 점도 납득하기 힘들다는 여론이 대세다.결국 병무청장이 예술·체육 병역특례를 전체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안으로 국제 스포츠대회와 국내외 예술경연의 성적을 점수화하자는 '마일리지 방식'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다. 단기간의 업적만큼 장기간의 공헌도 배려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국민이 권력보다 현명해 보인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9-03 윤인수

[참성단]수원 한국지역도서전

정조는 책 읽기와 글 쓰기를 좋아했다. 책을 너무 읽어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모친 혜경궁이 늘 노심초사했을 정도다. 부친 사도세자의 죽음을 본 이후, 계속되는 정적들의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은 독서밖에 없었다. 정조는 '살기 위해' 책을 읽었다. 덕분에 정조는 누구와 학문 논쟁을 벌여도 결코 뒤지지 않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한 것도 독서와 무관하지 않다. 규장각의 학자들을 활용하여 서적을 편찬하고 정책을 마련했다. 정조는 신하들에게 어떤 책을 읽는지 묻곤 했다. 신하가 답을 못하면 "독서는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공무로 바쁘다 해도 하루에 한 편의 글도 읽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라는 꾸지람이 이어졌다. 정조는 184권 100책으로 이뤄진 방대한 분량의 홍재전서도 남겼다. 동서고금을 통해 이런 왕은 없었다. 수원이 인문학도시라고 표방하고 나선 것은 화성이 있고, 책을 좋아했던 위대한 군주 정조가 있어서다. 2005년 수원시가 '평생학습도시'를 선포한 후 시민이 주도하는 평생학습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늘 책을 가까이했던 정조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모든 왕이 그렇지만 정조는 특히 세자 시절부터 서연(書筵)에서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하루도 빼놓지 않고 혹독한 교육을 받았다. 평생학습의 모범사례였던 것이다.오는 6일부터 5일간 수원에서 전국 각지의 출판물과 도서 문화를 만날 수 있는 '수원 한국지역도서전'이 열리는 것은, 그래서 뜻깊다. 이번 주제는 '지역 있다, 책 잇다'이다. 지역 출판이 여기에 있고, 책으로 사람과 지역을 잇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행사가 열릴 때마다 늘 궁금한 게 있다. 책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지역을 연결할 수 있을까. 지독히도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도대체 책이 뭐길래. 하지만 이런 자리마저 없다면 책은 점점 더 우리에게서 멀어져 매우 낯선 존재가 될 것이다. 사람도 만날수록 정이 들듯, 책도 자주 만나 읽고, 보듬어야 내 것이 된다. 괴테는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수많은 고상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고 했다. 셰익스피어도 "생활 속에 책이 없다는 것은 햇빛이 없는 것과 같으며, 지혜 속에 책이 없다는 것은 새 날개가 부러진 것과 같다"고 설파했다. 올해는 '책의 해'이기도 하다. 이번 행사를 통해 책의 소중한 의미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02 이영재

[참성단]비주류가 쓴 '축구학 개론'

'축구 감독의 성패는 결국 선수들의 정신을 담금질해 투지에 불을 댕기느냐에 달려 있다. 선수 각자가 한껏 능력을 발휘하도록 동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축구학 개론에 나올 법한 이 말을 한국의 김학범 감독과 베트남의 박항서 감독이 2018 아시안게임에서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학범슨(김학범+알렉스 퍼거슨 )', '쌀딩크(베트남 주산물 쌀+거스 히딩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축구사에 길이 남을 거장 퍼거슨과 히딩크의 탁월한 지도력을 빗댄 것이니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학범슨과 쌀딩크의 공통점은 단연, 한국축구계의 '비주류'라는 점이다. 실력보다는 인맥과 학맥을 으뜸으로 꼽는 한국축구계에서 학범슨(명지대)과 쌀딩크(한양대)는 정통계보가 될 수 없었다. 잡초같은 축구 인생을 살았던 것도 비슷하다. '세상엔 확실한 것이 둘 있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과 축구 감독은 반드시 잘린다는 것이다.' 영국의 축구 격언을 이들만큼 뼈저리게 느꼈을 감독도 흔치 않다. 쌀딩크는 히딩크 감독 밑에서 수석코치로 있으면서 히딩크 리더십을 배웠다. 당시 우리 국가대표팀이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를 약체로 여기며 쉽게 포기하던 베트남 선수들에게 그가 가르친 건 끈기와 인내였다. 학범슨은 '삼류선수'였다. 프로팀도, 국가대표 경력도 없었다. 은행원에서 축구단 코치로 자리를 옮긴 후 축구 이론을 다시 공부했다.쌀딩크는 59년생, 학범슨은 60년생으로 둘은 한 살 터울이다. 학범슨은 2005년 성남 일화(현 성남 FC)에서, 쌀딩크는 2006년 신생 경남 FC에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나이와 프로팀 지휘봉을 잡은 시기가 비슷하고 '성실함'도 닮았다. 학범슨은 틈만 나면 축구 선진국에 나가 전술을 공부했다. 명지대에서 축구 관련 논문까지 쓰며 박사 학위를 받은 '축구 박사'다. 쌀딩크의 머릿속에는 오직 축구, 축구, 축구밖에 없다. 그는 늘 축구만 생각한다. 한 방송사가 제작 방영한 박항서 다큐멘터리는 오직 '축구'로 가득 채워져 있다.2018 아시안게임에서 두 명의 비주류 감독이 각자 나름의 '축구학 개론'을 강의 중이다. 처음에 쌀딩크를 반대했던 베트남 축구관계자와 학범슨을 가벼이 여겼던 한국축구의 주류들은 이 개론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한국은 금메달, 베트남은 동메달을 따 감동의 '비주류 축구학개론'을 완성해 주길 바랄 뿐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30 이영재

[참성단]메달과 병역특례

2018 아시안게임 이우석과 김우진의 양궁 결승전. 2010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은 김우진. 현역 이등병인 이우석. 이우석이 금메달을 따면 조기 전역을 할 수 있는 상황. 결과는 6-4로 김우진 승. 김우진은 미안한 감정에 태극기도 흔들지 못했다. 새드엔딩. 다음은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 병역 면제의 구본길과 군 미필인 오상욱이 만났다. 14대 14. 초접전. 결과는 15대14 구본길 승. 그는 금메달을 따고도 후배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 오상욱은 병역 특례를 받게 됐다. 해피엔딩. 스포츠 경기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치열한 승부 과정에서 일어나는 예상 못한 이변, 거기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는 이변이 자주 일어난다. 절대 강자의 패배와 무명들의 반란을 보는 것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하지만 양궁과 펜싱 사브르 경기는 보기 드문 명승부였지만 '병역특례'가 걸려 있어 '감동'이 아닌 '기막힌' 한 편의 드라마였다.남자 선수들의 경우 현행 병역법 시행령에 따라 올림픽 금, 은, 동메달 수상 선수, 아시안게임 금메달 수상 선수는 '체육 요원'이란 이름으로 병역 혜택을 받는다. 큰 경기가 있을 때마다 늘 그랬지만, 이 병역 특례제도에 대해 이번 2018아시안게임에선 유독 말들이 많다. 축구 손흥민과 야구선수들로부터 시작된 '병역 특혜'는 이 제도의 존속 여부에 대한 논쟁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 제도는 1973년부터 시행됐다. 무려 45년 전이다. 그동안 세상도 변했고 선수들의 의식도 바뀌었다. 이제 국가와 국민의 명예를 드높일 목적으로 땀 흘려주는 선수는 없다. 국가도 아무런 대가 없이 그들에게 애국심만을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개인적 부와 명예를 쌓으려는 이기심을 발휘하다 보면 국가의 위상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이 때문에 나라마다 큰 경기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선수들에게 금전적 혜택을 주고 있다. 우리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에서 메달을 따면 일정액의 포상금과 연금 혜택, 그리고 남자 선수에겐 병역 혜택을 주는 것이다. '병역특례' 제도에 대해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때가 왔다. 언제까지 양궁 펜싱 같은 경기를 가슴 졸이며 봐야 하는가. 선수도, 국민도 더는 못할 짓이다. 이제 소모적인 논쟁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29 이영재

[참성단]애국 통계

중국 지방 정부의 통계 조작은 유명하다. 지방 경제 성장이 곧 관료의 실적이고, 그것이 자신의 앞날을 좌우하기 때문에 관료들은 통계 조작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에 지역경제가 국가 경제의 초석이라는 얄팍한 애국심도 작용했다. 중국 지방 정부의 '애국(愛國) 통계'란 말이 그래서 생겼다. 지방정부 통계가 조작됐으니 그걸 취합해 발표하는 중국 정부의 통계 발표는 시쳇말로 '안 봐도 비디오'였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2010년 발간한 '중국 경제 지표 이해하기'는 중국의 엉터리 통계에 대한 통렬한 비판서다.'애국 통계'에 대해 글로벌 경제의 비난이 끊이질 않자 중국정부는 지방정부의 경제지표 조작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지역의 GDP를 지방정부 통계 담당이 집계하지 못하게 하고 국가통계국 지도하에 산출하는 방식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잘못된 통계 발표가 중국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숫자에 권위를 부여하는 이들은 '통계는 과학'이라고 단정한다. 반대로 '통계는 교묘하고 의도적인 거짓말'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우리의 일상이 숫자놀음에 좌우된다고 개탄한다. 통계에 대한 격언은 차고 넘친다. '새빨간 거짓말, 통계'의 저자 대럴 허프는 "여성들이 약간의 화장으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처럼 통계는 사실을 거짓으로 꾸미는 '마법'을 지녔다"고 비판했다. 영국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통계에 대한 독설, "거짓말에는 세 종류가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는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얘기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는 숫자를 이용한다." 통계를 두고 이렇게 말들이 많은 것은 통계가 진실을 밝히기도 하지만 때론 '거짓의 수단'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황수경 통계청장이 취임 1년 만에 경질됐다. 야당이 "청와대가 통계를 마사지하려고 한다"며 발끈하자, 여당은 "바꿀 때가 됐으니 바꿨을 뿐"이라고 응수했다. 하지만 시기가 안좋았다. 이런 미묘한 상황에 통계청장을 경질했으니 앞으로 야당이 통계의 진실성을 의심하면 청와대는 뭐라 답할 것인가. 이제 통계 수치가 아무리 좋게 나온다 한들 국민들은 중국 지방정부의 '애국통계'쯤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통계청은 한국은행과 마찬가지로 독립성과 신뢰가 생명이다.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매지 말았어야 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28 이영재

[참성단]70대 귀농인의 비극

유명 포털 사이트의 한 귀농인 카페는 선배들의 경험과 지혜를 구하는 초보 귀농인들의 질문들이 넘쳐난다. '태풍이 오는데 하우스 천장을 어찌해야 할가요?'라고 물으면 귀농 선배들이 우르르 몰려 조언을 쏟아낸다. 선녀벌레 퇴치법과 중병아리 구입경로처럼 초보에겐 엄두가 안나는 난제들도, 선배들의 해법은 다양하고 간단하다. 올 여름 살인적인 폭염 탓인지 양수기 설치방법을 묻는 질문과 고추농사가 안된다는 하소연이 많았다.1만 건에 육박하는 질문에 매달린 수만건의 답변을 보면 귀농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해에만 귀농·귀촌인이 51만6천여명에 달했다. 귀농인 카페와 같은 귀농 선후배들이 소통하는 온라인 모임 자체가 귀농 열풍을 반영한 문화현상일 것이다. 다만 귀농지마다 농사에 도가 튼 지역 농민들이 있을텐데 굳이 귀농선배들을 찾는 이유가 궁금했다.카페 내의 한 코너에서 의문의 풀어줄 실마리가 잡혔다. 귀농지 인심을 촌평하는 코너인데, 귀농인과 원주민 사이의 문화적 갈등이 군데군데 드러나있다. 그중 귀농지역 대보름 행사를 '저질 유행가로 시끄러운 춤판'이라며 격렬하게 비난하는 한 회원의 글이 눈에 띄었다. 이에 다른 회원이 '마을 문화를 없애자는 건 외지인의 건방'이라고 충고성 댓글을 올리자 금세 설전으로 이어졌다. 텃세를 걱정하는 글들에는 '처신하기 나름'이라는 댓글이 달리지만, '나름'의 기준과 수준이 애매하니 속시원한 해법을 찾기 힘들었다.최근 경북 봉화에서 70대 귀농인이 원주민과의 물싸움 끝에 면사무소 직원 두명을 엽총으로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인생의 황혼기에 귀농을 결심했을 때 이처럼 비극적인 결말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연구자료에 따르면 귀농·귀촌인 가운데 29.7%가 원주민과의 인간관계 문제로, 23.3%가 마을의 관행 때문에 곤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귀농·귀촌인과 원주민간의 갈등'이 농촌의 가장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꼽혔다.귀농·귀촌인은 원주민의 텃세를 탓하고, 원주민은 귀농·귀촌인의 시골문화 이해부족을 원망한다. 생존방식의 문화충돌인 이주민과 원주민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귀농 지원금만 풀게 아니라, 귀농인과 원주민의 평화적 동거를 위한 갈등해소 정책과 프로그램을 고민할 때가 됐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8-27 윤인수

[참성단]식목왕 최종현

1962년 10월 미국 시카고대학에 유학 중이던 최종현에게 전보가 날아왔다.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 사업이 어려우니 돌아와 형을 도왔으면 좋겠다는 부친 최학배의 편지를 받은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박사과정을 중단하고 아내와 두 살배기 태원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형 최종건이 사장으로 있던 선경직물 부사장에 취임했다. 최종현 나이 33세였다.수원이 배출한 기업인 SK 고 최종현 회장은 기업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인재 키우기'와 '나무 심기'라고 생각했다. '나무는 50년을 보고 심고, 인재는 100년을 내다보고 키운다'는 '수인백년(樹人百年) 수목오십년(樹木五十年)'을 그는 늘 머릿속에 새겨두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러는 최 회장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는 언젠가 숲이 우리에게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많은 것을 되돌려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최 회장은 대한민국 최고의 식목왕(王)이었다. 나무를 심는다고 하자 한 임원이 수도권 지역 땅을 후보지로 들고왔다. "땅장사하려고 이 사업 시작한 줄 아느냐!"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충청북도 충주 인등산, 천안 광덕산, 영동 시항산에는 최 회장이 생전에 심은 300만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최 회장은 이렇게 나무를 키우듯 장학퀴즈와 한국고등교육재단 등을 통해 인재를 양성했다. 자원 빈국인 대한민국이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재가 중요하다는 신념이 강한 기업인이었다. 최 회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인재의 숲'을 만들고자 했을 때 투자기간이 너무 길다며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무를 심는 것이다. 인재의 숲을 거닐며 기업의 뿌리는 사람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그는 생전, 좁은 국토에 묘지가 난립하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죽으면 반드시 화장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는 유언도 남겼다. 어제(26일)는 최종현 회장 20주기 되는 날이었다. 외환위기 시절에 버금가는 투자위축과 고용참사로 일자리 하나가 아쉬운 지금, 언론들은 앞다퉈 '최종현의 기업가 정신'을 재조명했다. 인재를 기르는 일을 사업만큼이나 자랑스러워하고 늘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했던 최 회장은 지난 14일 형 최종건 회장과 함께 수원의 명예를 드높인 공적으로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26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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