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대북 특사

적대적 남북관계에서 7·4남북공동성명이라는 돌발적 해빙무드가 조성된 것은 특사외교의 성과였다. 1972년 5월 남한 박정희 대통령의 대북특사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가슴에 청산가리를 품고 평양에 들어가 김일성 북한 주석을 면담했다. 동시에 북한에서는 부주석 박성철이 서울에서 박 대통령과 만났다. 극비리에 성사된 남북 특사 교환의 성과는 남북이 자주 평화통일을 실현하고 민족대단결을 도모한다는 공동성명 발표로 공개됐다. 서울과 평양 상설 직통전화 설치,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등 이후 남북관계를 관리할 조치들도 뒤따랐다.국제적인 데탕트 분위기에 편승한 남북 독재 정상이 벌인 이벤트는 남북 독재체제 강화에 악용됐다는 혹평에도, 한국전쟁 이후 남북이 서로 국가로 인정한 첫 남북합의라는 역사적 의미가 가볍지 않다. 또한 공동성명의 기본합의는 이후 남북합의의 기초로 활용될 만큼 남북문제 해결의 기본원칙을 담고 있다. 실제로 남북 특사외교를 통해 재개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성안된 남북합의서인 '6·15 남북공동선언(김대중-김정일)'과 '10·4 남북관계의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노무현-김정일)' 모두 기본합의는 7·4 공동성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문재인 정부가 5일 대북특사를 파견한다. 이번 특사는 이전의 대북특사와는 수행해야 할 임무가 전혀 다르다. 이전 특사들은 남북 평화공존과 같은 관념적이고 기본적인 주제를 다루었고, 남북 통치 수반들의 소통과 만남을 성사시키는 임무에 그쳤다. 반면에 이번 특사단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대화, 미·북대화의 실마리를 잡아내야 한다. 과거의 북한이 아니다. "조선이 없는 지구는 필요없다"는 김정일의 유훈에 따라 핵무장을 완료한 북한이다. 우리 특사단에 쥐어보낼 메시지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요동칠 것이 분명하다.특사단이 대한민국 국적자 최초로 김정은을 면담할지 여부도 관심의 대상이다. 김정은이 대한민국 특사단과의 면담으로 국제외교 무대에 데뷔한다면 그 자체로 희망적인 메시지로 해석될 테고, 면담마저 불발되면 또 그 자체로 한반도 외교가 수렁에 빠질 수 있어서다. 특사단의 어깨에 걸린 역사적 임무의 무게가 한없이 무겁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3-04 윤인수

[참성단]한국인, 멸종위기보호종?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4년 한국인이 700여년 후 멸종위기를 맞는다는 수학적 예측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에 담긴 한국인 멸종 시나리오는 이랬다. 당시의 합계출산율 1.19명을 유지할 경우 부산은 2413년, 서울은 2505년 마지막 아기의 탄생을 끝으로 신생아의 고고성이 사라지며, 2750년 한국인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앞서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데이비드 콜먼 교수가 대한민국을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될 국가'로 지목한 때가 2006년이다. 모두 저출산의 저주에 걸린 대한민국의 어두운 미래에 대한 경종이었다.현재의 위기엔 민감하지만 미래의 위기엔 둔감한 법. 한국인 멸종 경고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도 예외는 아니다. 7세기 후의 멸종을 체감하기 힘드니 후손들이 감당해야 할 비극을 농반진반 술자리 안줏거리 화제 정도로 소비했다. 그러는 사이 경종의 음량은 깊고 묵직해졌다. 통계청이 28일 발표한 2017년 출생·사망통계가 심각하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출산율 2.1명의 딱 절반이자, 2016년 1.17명 보다 10.3% 급감한 수치다. 2750년 멸종의 전제였던 1.19명보다는 11.8%가 떨어진 셈이니, 한국인 멸종 시한도 훨씬 앞당겨 수정돼야 할 지경이다.따지고 보면 먼 장래의 위기도 아니다. 현재의 초저출산 현상이 이어지면 인구정점 시기도 2031년에서 2027년으로 당겨진다니 10년 안에 저출산의 저주가 현실로 닥쳐올 수 있다. 노령인구는 급증하고 일할 청년은 사라지면서 경제는 활력을 잃을 것이다. 좌·우파 정부가 경쟁적으로 약속했던 현재의 복지혜택은 한 세대를 이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한민족 멸종이야 먼 미래의 비극일지라도, 비극의 정점을 향할 때까지 겪어야 할 고초와 불행은 우리 세대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얘기다.몇백년 후 한민족이 멸종위기보호종으로 쇠락해 국제사회의 보호, 관찰 대상이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이만하면 전국 주요도시에 한국인 멸종시점을 자정으로 맞춘 운명의 시계탑을 세워, 초저출산 민족의 디스토피아를 날마다 되새겨도 과하지 않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3-01 윤인수

[참성단]피로사회

"시대마다 고유한 질병이 있다"로 시작하는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저서 '피로사회'는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출간되던 2012년 무려 4만2천권이 판매됐다. 가히 '열풍'이라 할 만 했다. 출판 관계자들은 '새털처럼 가벼운 대중인문서가 판치는 출판계에서 벌어진 일대 사건'이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피로사회'라는 제목이 판매에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누구나 고단한 피로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는 현대인들이 "맞아! 나도 피로해."라며 왠지 제목에 친근감을 가졌을 것이란 얘기다. 가령 쉽지 않은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저자 마이클 샌델조차 놀랄 정도로 특이하게 우리나라에서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것과 비슷한 경우다. 민주화를 이뤘지만 우리 사회가 아직도 정의롭지 못한 사회라고 믿는 사람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켰고 한 교수는 유명인사가 됐다. 한 교수는 현대사회는 '성과사회' '자기착취시대'라고 규정한다. 현대인은 "넌 할 수 있어!"라고 외치는 과도한 긍정성 때문에 죽을 때까지 일하며, 자신을 스스로 착취하면서도 실제 본인들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어제 주당 근로시간을 최장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제는 아무리 수당을 더 준다 해도 52시간 초과하는 일을 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야근과 휴일 근무를 당연시했던 직장인 역시 업무 관행과 직장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는 근로시간이 줄어든 만큼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업과 개인의 노력이 동반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생산성을 맞추기 위해서는 주어진 시간에 나름의 성과를 내야 한다. 한 교수의 지적대로 피로사회의 원인인 '성과주의'가 또다시 거론될 수밖에 없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육체적 피로는 줄어들겠지만, 근로자는 '성과'라는 또 다른 적과 싸워야 할 처지에 놓였다. 스트레스는 심화되고 피로감은 더 가중될지도 모른다.철학책 '피로사회'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규율사회는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든다." 지금, 우리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 /이영재 논설위원

2018-02-28 이영재

[참성단]군산의 봄, 인천의 봄

지난 주말, 군산의 봄은 맛깔났다.'전국 5대 짬뽕'이라는 중식 집에는 아침부터 긴 줄이 섰다. 홍합과 바지락, 꼬막이 가득한 짬뽕 그릇을 다 비웠다. 불 향 은은한 국물이 배어든 면은 입안에 착 감겼다. 오전 10시를 지나자 대기 손님이 30명 넘었다. 모 방송국 3대 천왕에 나왔다는 한(韓)식당도 다르지 않다. 달고 시원한 소고기뭇국이 국보급인데, 육회비빔밥에도 자꾸 숟가락이 갔다. 알알이 씹히는 하얀 고두밥이 육회, 나물, 고추장과 어우러져 천상의 맛을 냈다. 신선이 노닐었다는 선유도를 자동차로 오갔다. 새만금 지나 연륙교 너머 빼어난 경관이 별천지다.관광객들은 군산의 봄을 맛보고 즐겼으나 시민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시내 거리는 제너럴모터스(GM) 공장 폐쇄를 반대하는 현수막으로 도배됐다.군산시는 지난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가동이 멈추면서 5천여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지난해 말 인구는 27만4천997명으로 전년보다 2천554명 줄었다. 올 들어서도 2월 10일 현재 439명이 또 줄었다. 지역은 5월 말 GM이 폐쇄될 경우 감소 추세가 더 급격화할 것으로 우려한다.GM의 철수배경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온다. 단순히 '낮은 생산성과 고임금'만은 아닌 게 분명하다. GM은 스웨덴과 호주 등 여러 나라에서 '먹튀'란 오명을 남겼다. 우리 정부에도 '지원 대책이 뭐냐'고 윽박지르듯 하고 있다. 적반하장격이다.인천 부평GM공장에도 먹구름이 짙다. 1만5천여명 직원은 2001년 '부평사태'가 재현될까 걱정이다. 당시 GM은 대우자동차 인수과정에서 1천750여명 부평공장 근로자들을 대량해고했다. 부평공장 협력업체는 1천여개, 이들까지 포함한 전체 고용인력은 3만여 명에 이른다. 인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나 된다.인천시가 26일 범시민 대표 간담회를 열었다. 서로가 "한국지엠 정상화를 위해 지역 역량을 결집하자"고 했을 뿐 타개책은 없었다. 정부도 우왕좌왕 행보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홍정표 논설실장

2018-02-27 홍정표

[참성단]한국版 '스포트라이트'

영화의 힘은 시나리오에서 나온다. 좋은 시나리오에 태작(태作)이란 없다. 토마스 메카시 감독의 '스포트라이트(spotlight)'가 그런 영화다. 좋은 시나리오 덕분에 2016년 아카데미영화상 작품상을 받았다. 각본상은 물론이다. 영화는 보스톤글로브지 기자들이 거대 세력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정신을 다룬다. 가톨릭 보스톤 교구 신부들 90여명이 조직적으로 아동성추행에 가담했다는 믿기지 않는 실화를 영화 소재로 삼은 것이 우선 놀랍다.지역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의 속을 파헤친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쉬운게 아니다. 영화에서 스포트라이트팀은 두가지에 주목한다. 타락한 성직자와 그들이 저지른 아동학대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는 것. "사과 몇알 썩었다고 사과상자를 통째로 버릴순 없지 않은가"라며 교회는 저항하지만 취재를 하면 할수록 성스러운 이름속에 감춰진 사제들의 추악한 얼굴은 드러난다.문화계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종교계까지 확산되면서 영화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벌어졌다.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한모 신부가 아프리카 선교활동에 함께 간 신도를 상대로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남수단으로 봉사하러 온 여성 신자의 방에 강제로 들어와 "내 몸을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러니까 네가 좀 이해를 해 달라"며 추행을 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는 막강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이다. 쌍용차 사태, 세월호 비극, 한상균·이석기 양심수 석방 촉구선언대회 등에서 진리의 대변자로 자처해 온 인물이라 충격은 더 크다.사건의 파장이 커지자 수원교구 교구장이 공개 사과 서한을 보냈다. 하지만 그건 대외용이고 정작 성당 신자들에겐 "사흘정도 보도거리만 없으면 이슈가 잠잠해 질테니 성당에 나오지 말라"는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고 한다. 더욱이 한 신부의 만행을 다른 2명의 신부가 알고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 팀장 월터는 이렇게 말한다. "다들 뭔가 있다는 걸 알면서, 아무도 나서지 않았지. 끝을 내야 해. 누구도 이러고는 도망 못 간다는 걸 보여줘야 해!" /이영재 논설위원

2018-02-26 이영재

[참성단]축제는 끝났다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남아/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끝나면 모두들 떠나 버리고 /무대 위엔 /정적만이 남아있죠 /고독만이 흐르고 있죠'. 1980년 대학가요제에서 샤프가 불렀던 노래 '연극이 끝난 후'다. 곡이 나온 지 40년이 흘렀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사람들이 부를지 그때는 그 누구도 몰랐다. 좋은 노래들은 여러 명의 가수에 의해 수없이 리메이크 되면서 생명력을 이어나간다. 이 곡이 그렇다. '연극'은 그저 상징일 뿐, 그 단어 대신 '사랑'이나 '권력', '인생'을 대치시켜도 공감되는 것이 이 곡의 매력이다. 인생이든 권력이든 끝나면 그저 허무만 남는 법이다. 평창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17일간 평창 강릉 정선 등지를 밝혔던 화려한 조명이 모두 꺼졌다. 선수들이 흘렸던 땀과 눈물과 탄식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는 온 데 간 데 없고 이제 우리만 남았다. 큰 행사를 겪은 후 남는 공허감은 신경림의 시 '농무(農舞)'에도 잘 표현된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 달린 가설 무대/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평창올림픽의 막은 내렸지만 걱정은 산더미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이번 올림픽을 이용해 남북화해를 갈망했던 정부의 집착은 오히려 올림픽의 감동을 반감시켰다. 개막식은 김여정, 폐막식은 김영철에 가려졌다. '평창올림픽은 김여정으로 시작해 컬링의 영미로 정점을 이룬 후, 김영철로 끝났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리는 것도 그런 이유다. '북에서 온 손님들'로 올림픽의 열기가 김 새버렸다는 얘기다. 올림픽 인프라 확충에 투입됐던 14조원의 재정을 누가 부담해야 할지는 차후 문제다. 더 큰 걱정은 더욱 심화된 남남갈등이다. 2002년 월드컵은 "대~한민국"을 부르며 온 국민이 하나가 됐지만, 평창 올림픽은 '남북정상회담'이 갑자기 끼어들면서 오히려 화합은커녕 국론 분열이 확대되고 있다. 화합의 지구촌 대 축제를 보러 온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이 땅에 남아 있는 우리 사이 갈등만 커지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이영재 논설위원

2018-02-25 이영재

[참성단]문화계 미투(Me too) 운동

한국인에게 성(性)폭력 담론은 이중적이다. 피해의식과 가해의식 어디쯤이라서다. 역사적으로 반도 여성의 수난은 늘 성폭력을 수반했다. 병자호란 때는 수많은 조선여인이 청나라에 노리개로 끌려갔다. 곡절 끝에 환국한 여인들은 '환향녀(還鄕女)'로 낙인찍혀 멸시받았다. 일제 때는 식민지의 소녀들이 일본군 위안부로 줄줄이 낯선 이국의 전선에서 희생됐다. 가난한 해방 한국의 소녀들은 미군 기지촌에서 국가의 방조 아래 성적 착취를 감수했다. 패전과 약소의 역사로 인한 여성의 수난사는 정조관념이 유난했던 한국인에게 남녀불문, 총체적 트라우마다. 한·일간의 위안부 문제 종식이 힘든 건 일본이 이를 간과해서다.한국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역사적 부채 때문이라도 근·현대화 과정에서 여성의 성을 존중해야 당연했다. 하지만 남성이 권력을 장악한 모든 분야에서 여성성을 유린하는 가해는 멈출 줄 몰랐다. 산업화 시대의 정치권력과 신흥자본의 성 의식이 그 수준이었다. 여성의 성이 상품으로 소비되는 시대가 그 시절 열렸다. 정인숙 사건 같은 권력의 성 스캔들이 끊이지 않았고, 재벌들의 여성 편력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성 주체성에 대한 여성들의 각성이 이루어지고, 성폭력이 인권의 시각으로 다루어지면서 성폭력은 이제 근절해야 할 악으로 규정됐다. 이 과정에서 정계, 법조, 재계 등 지도층 인사가 성폭력 사범으로 대중의 지탄을 받았다. 오랜 기간 권력의 상층부를 구성했던 보수 인사가 대부분이었고, 이들은 인권에 반하는 보수적폐로 은유됐다.최근 문화계의 성폭력 스캔들에 대중의 분노가 치솟고 있다. 문화영역은 산업화의 주역 보수진영에 대항하는 민주화 세력 진보진영의 보루였다. 문화영역은 권력의 압제에 저항하고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수단으로 유효했다. 성폭력을 비롯한 모든 권력의 폭력에 저항하는 진보적 가치가 문화예술 영역에서 숙성되고 확산됐다. 그랬던 문화계의 진보권력이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 의해 전복되고 있다. 문화계의 '미투(Me too)운동'은 남성의 여성 가해 역사에 저항하는 한국 여성들의 전면전 선포 아닌가 싶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2-22 윤인수

[참성단]간호사들의 그늘 '태움 문화'

간호사들 사이의 괴롭힘을 뜻하는 '태움 문화'가 주목받고 있다. 며칠 전, 서울 대형병원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발단이다. 그의 남자 친구는 '태움으로 불리는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의문을 제기했다.태움은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괴롭히며 엄하게 가르치는 방식을 뜻한다. 마치 군대에서 선임병이 후임을 갈구는 것과 같은 유형으로 보면 된다.간호사들 사이에 태움이 싹튼 배경에는 직업적 특성이 작용한다. 생명이 오가는 병원 현장에서 신규 간호사의 작은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명분을 담고 있다고 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간호사 조직의 이러한 문화가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태움은 비단 간호사들에만 있는 게 아니다. 의사 사회에도 있고, 여자 승무원 사이에도 존재한다.대표 사례는 부산시 소재 대학병원 교수들이다. 한 교수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50여 회에 걸쳐 전공의 11명을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후배 전공의가 환자 관리를 잘못한다는 이유였다. 그는 후배들에게 대리 수술을 시키기도 했다. 그를 믿고 수술대에 오른 환자들에 대한 명백한 사기행위다. 피해자들은 앞날에 대한 불이익을 우려해 폭행 사실을 숨겼다고 한다. 또 다른 교수도 비슷한 시기, 10차례에 걸쳐 전공의 12명을 상습 폭행한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밝혀졌다. 그는 당직실에서 후배 전공의에게 일명 '원산폭격'을 강요하고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때렸다. 피해 전공의들은 고막이 파열되거나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었고, 피부가 찢어져 서로 상처를 꿰매준 사실이 드러났다.고도의 정신적 집중이 요구되는 의사들과 간호사들 사이 '태움'은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훈육의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도 폭력과 따돌림, 집단 괴롭힘은 용납될 수 없다. 가르침을 빙자한 인격 살인이다. 대한민국 군대에서도 폭력과 얼차려가 없어진 세상이다. /홍정표 논설실장

2018-02-21 홍정표

[참성단]영화 '곤지암' 유감

경기 광주의 '곤지암읍'과 '곤지암리'를 지칭하는 공통 지명이 '곤지암'이다. 읍 명칭이자 읍사무소 소재지인 것이다.밥장사를 하는 최미자씨가 1980년대 시작한 소머리국밥이 유명세를 타면서 이름을 알렸다.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IC가 개통되고, LG그룹에서 곤지암 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전국구가 됐다.1980년대까지는 100여 호 남짓한 시골 마을이었다. 산 좋고 물 맑아 성남과 이천 시민들이 몰려와 피서를 즐겼다. 2000년대 들어 개발 바람을 타고 인구가 급증, 면에서 읍으로 승격했다. 성남~이천~충주를 연결하고 양평과 여주~용인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다.영화 제목 '곤지암'이 논란이다. 하필 공포 체험의 성지로 불리는 지역 내 정신병원을 소재로 했다. 공포 체험단 7명이 병원에서 겪는 기이하고 섬뜩한 일을 담은 영화다. 영화에서 병원은 환자 42명이 집단 자살하고 병원장이 실종된 이후 섬뜩한 괴담에 휩싸인 으스스한 장소로 묘사된다.죄다 허구다. 그런데 굳이 영화명에 '곤지암'을 갖다 붙인 게 고약하다. 정신병원의 실제 이름은 곤지암 정신병원이 아니다. 소재지도 신대리 161-1로, 곤지암리에서 2㎞ 정도 떨어져 있다. 곤지암 읍이니 상관없다고 우기는 것도 무리다. 신경정신병원이 세워지고 문을 닫을 때까지 '실촌면' 관내였다. 상·하수도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 1996년 폐쇄됐고, 소유자들이 미국에 이민을 가면서 방치됐을 뿐이다.곤지암 주민들은 억울하고 괘씸하다. 제목 변경을 요구하면서 관람 거부운동에 나섰다.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치권까지 가세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대꾸가 없다. 치밀한 상술에 의한 노이즈마케팅이란 비판이 나온다. 곤지(昆池)라는 못에 바위(岩)가 솟아 있다고 해서 곤지암이다. 백과사전에는 임진왜란 당시 패전해 전사한 신립 장군과 곤지암이 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의 묘도 곤지암에 있다. 왜군에 패해 전사한 것도 분한데 묘 자리가 있는 마을이 공포영화의 제목이 됐다는 사실을 알면 신립 장군은 뭐라 할까. 답답하고 괴이한 일이다. /홍정표 논설실장

2018-02-20 홍정표

[참성단]빙속 女帝의 눈물

출발선상에서 이상화는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선수생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평창올림픽. 자신을 지켜보는 수많은 시선들. 더욱이 상대는 일본 선수 고다이라 나오. 그만큼 금메달이 절실했을지도 모른다.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정확히 37초33 후. 결승선을 통과하자 빙속의 여제 이상화를 연호하는 관중의 함성으로 경기장은 들썩였다. 금메달에 0.39초 뒤진 기록이었지만, 최소한 관중들에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표정관리를 잘하던 이상화지만 참지 못하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금메달을 따지 못해 슬픈 것은 아니었다. 이제 정말 끝났구나 싶었다. '고마웠다'란 말을 가장 듣고 싶다." 빙속의 여제라는 소릴 듣지만 이상화의 선수 생활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쇼트트랙 선수로 출발해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꾼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타고난 운동신경 때문인지 쉽게 적응했다. 문제는 부상이었다. 끈질기게 이상화를 괴롭혔다. 무릎부상에 이어 하지정맥류. 이상화는 포기하지 않았다. 집안 사정상 동생을 위해 선수생활을 포기한 오빠를 위해서라도 그녀는 달려야 했다. 이상화는 10년간 빙속 여제로 세계를 호령했다. 2006 토리노올림픽 때 5위를 했던 그녀는 2010년 스무살의 나이에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더욱이 2014 소치올림픽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2연속 금메달을 차지해 '올림픽 레전드'의 반열에 올랐다. 이날 금메달을 딴 고다이라는 눈물을 흘리는 레전드 이상화를 안아주면서 "넌 내가 존경하는 선수"라며 한국어로 "잘했어"라고 말했다. 이 장면에 대해 AP통신은 "역사적인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나라지만 화합을 보여줬다"고 극찬했고, 일본 언론도 "한일 정상 결전의 마지막은 아름다운 결말이었다"고 타전했다.이상화는 은퇴의 기로에 서 있는듯 싶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상화에게 "은퇴하지 말라"고 강권할 수 없다. 부상을 안고 뛰는 선수 생활의 고통을 우리 범인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은퇴 결정은 순전히 그녀의 몫이다. '피겨의 여왕' 김연아가 그랬던 것처럼, 빙속의 여제가 어떤 진로를 선택하든 우린 그 결정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이영재 논설위원

2018-02-19 이영재

[참성단]고은과 광교산

"광교에 와서/…/광교의 나뭇가지가 되고 싶습니다/…/그 나뭇가지로 이듬해도/그 이듬해도 서리서리 살고 싶습니다//…/광교에 와서/…/이윽고 서해 낙조의 멍한 바다 그 어디로/다 스러져가는 긴 물이 되고 싶습니다//또한 광교에 와서/…/환한 달밤의 눈물 같은 하룻밤이 되고 싶습니다/…" 시인 고은이 2015년 2월부터 경인일보 1면에 연재한 '고은의 광교산 연작' 10편 중 첫 편, '광교산에 와서'의 일부분이다.염태영 수원시장의 표현을 빌리자면 "삼고초려로 모셔온 보물" 고은은 2013년 8월부터 수원 광교산에 새롭게 거처를 마련했다. 20여년 안성생활을 청산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테지만, 수원을 인문학 도시로 만들겠다는 염 시장의 간곡한 염원에 마음을 열었을 터이다. 시업(詩業) 말년의 결정인 만큼, 광교에서 여생을 마치는 것이 순명(順命)이라 여겼음직 하다. 시 '광교산에 와서'는 시인이 광교에 뼈를 묻겠다는 선언이었던 셈이고…. 이후 고은 문학관 건립을 둘러싼 시비와 광교산 주민의 퇴거 시위 등 민망하고 고약한 사단이 있었지만, 가타부타 반응 없이 광교살이의 뚝심을 보여준 시인이다.그랬던 시인 고은이 수원시가 마련해준 광교산 거처(문화향수의 집)를 떠날 의사를 밝혔고, 수원시는 18일 이를 수용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고은 재단 측은 "광교산 주민들의 반발로 수원시가 제공한 창작공간 거주를 부담스러워 했다"며 "시인이 더 이상 수원시에 누가 되길 원치 않는다"고 광교산 퇴거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런 이유 말고도 최근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속 'En선생'으로 세상의 주목을 받는 난처한 사정도 광교산 시대를 정리하려는 결심을 부추기지 않았을까 싶다.광교산을 떠난 뒤 수원에 남을 것이다 아니다 예측이 분분하지만, 이제는 시인이 진정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노벨문학상의 부담으로부터, 그를 통한 도시 마케팅으로부터, 찬양과 비난으로 그의 문학적 성취에 기대려는 무리로부터 초탈하려는 첫 시도가 광교산 시대의 정리이기를 바란다. 애초에 시인으로 광교에 왔듯이, 광교를 떠나서도 오롯이 시인으로만 남는 고은을 기대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2-18 윤인수

[참성단]0대8, 0대8

얄궂고 공교롭다 못해 괴이하고도 오싹하다. 평창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지난 10일 스위스와의 경기에서 0대8로 참패한데 이어 12일 스웨덴과의 경기에서도 똑같이 0대8로 무참히 졌다. 0대8에다가 또 0대8이라니! 귀신도 곡하다 말고 낄낄거릴 일 아닌가. 당초부터 단일팀은 언감생심 무리였다. 2030 비난도 컸다. 왜 팀워크가 강조되나. 그게 하루아침에 다져지는가. 일체감과 혼연일체라는 말도 괜히 생겼나. 큰 돈 들여 해외원정 훈련은 왜 또 하나. 팀 멤버 상호간의 신뢰감과 정신력이 다져지고 일체감으로 여물려면 숙성시간은 필수다. 그런데도 급조된 남북 단일팀이라니! 결과는 0대8, 또 0대8이었다. 미국과 캐나다 2중국적의 세라 머리(Murray·30) 여 감독에게 묻고 싶다. '머리' 속 상황이 어떠냐고. 좌뇌 우뇌 모두 하얘지지 않았나.0대8과 또 0대8에 문득 떠오르는 축구 명감독이 거스 히딩크다.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까지 끌어올려 영웅이 됐지만 한국 대표팀 감독 초장엔 부진했다. 그 전년 8월 체코와의 평가전에서 0대5로 패했고 그에 앞서 대구 컨페더레이션(Confederations)의 프랑스 전에서도 0대5로 깨져 '오대영'이라는 별명이 붙지 않았던가. 아무리 명감독이라도 한국을 4강으로 끄집어 올리기 위해선 적어도 1년간의 혹독한 체력 단련과 팀워크가 필수였던 거다.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그건 맞선보는 날 바로 결혼을 해버린 꼴이다. 문재인 정권의 남북대화, 통일 열망이 조급하고도 환상적이다. 지난 9일부터 2박3일 방남한 북한 고위급 중에서도 김여정, 목과 허리가 고장 났는지 도무지 굽힐 줄을 모르고 빳빳한 그녀에 대한 환대는 지나칠 정도였고 비굴의 극치였다.11일 삼지연악단 서울 공연에서 조명균 통일부장관은 세 번이나 앙코르를 고함쳤고 남북 여가수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자 장내는 환호와 갈채로 떠나갈 듯했다. '이 나라 살리는' 게 통일이고 '이 겨레 살리는' 게 정녕 통일 맞을까. 그러기엔 남북 이국화(異國化) 이질화 별종화(別種化)가 도저히 접합수술이 불가능한 체질로 70년간이나 굳어져버렸다. 문 정권만 모르고 있다는 건가. /오동환 객원논설위원

2018-02-13 오동환

[참성단]'북한의 이방카'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이 김여정(Kim Yo-jong:킴요종)을 '북한의 이방카(Ivanka→트럼프 대통령 장녀)'라고 했다. 그녀의 인기와 영향이 토네이도 급이라는 거다. 작년 11월초 일본을 방문, 아베 정권의 극진한 대접을 받고 일본 방송들이 생중계를 했던 이방카와 비교한 거다. 그 신문은 또 김여정과 문재인 대통령의 악수를 '역사적'이라고 했고 그 역사적 장면이 네티즌 간에 바이러스처럼 퍼졌다(goes viral)고 썼다. 뉴욕타임스도 그녀의 방남(訪南)은 '매우 상징적인 여행(Highly Symbolic Trip)'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문 대통령은 그저께 밤 삼지연악단 서울공연 관람까지 4차례나 그녀와 나란히 앉았고 마지막 '다시 만나자'는 노래 합창에 관중이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내자 벅찬 감격으로 누선(淚腺)은 터지기 직전이었다.그런데 북한이 왜 대화하자 교류하자며 서두르는 걸까. 미국과 유엔의 막판 제재에 몰린 김정은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지난 신년사에서) '민족'을 거론, '북남대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언급한 게 발단이었을까. 그게 아니다. 지난달 6일자 일본 아사히신문은 '남북관계 개선을 조급히 서두르는(하야루) 한국, 日米시선은 싸늘하다(히야야카)'고 보도했다. 남북대화를 서두르는 쪽은 북한이 아닌 한국이라는 거다. 이미 지난해 가을부터 여당 의원과 수장(首長→수장이라면?)들이 중국 등에서 북한 관계자와 접촉, 문 정권의 남북대화 의지를 거듭거듭 밝혔다는 것이고 북한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지난달 3일 성명에서 '남조선 당국자'가 아닌 '문재인 대통령' 호칭을 처음 쓴 것도 이유가 있다고 했다. 북한이야 남조선을 미국의 '코피 작전' 방지 인질로 잡고 유엔제재 충격흡수 판으로 삼은 채 시간을 벌면서 핵 프로젝트를 완성하면 그만이다. 거기다가 DJ의 햇볕정책을 계승하겠다는 문 정권, '노무현의 그림자'라는 문재인 대통령이 막대한 선물을 챙겨 평양을 방문해 준다면야 금상첨화다. 문 정권의 지향점이 무엇인지, 심저엔 무슨 신념이 깔려 있는지 의문이다. 핵 포기 없이는 남북대화도 없다는 한 마디 말도 김여정에게 꺼내지 못한 이유가 뭔가. '너네는 핵 흥정 상대가 못 된다'고 했던가. /오동환 객원논설위원

2018-02-12 오동환

[참성단]청와대의 김여정

'원짜이인'과 '진위정'이 누구일까. 문재인(文在寅) 대통령과 10일 청와대 오찬을 함께 한 북한특사 '金與正(김여정)' 중국 발음이다. 중국엔 金이 '금'이고 김씨는 없다. 발음도 '진'이다. 그래서 김여정이 '진위정'이고 문씨 文 발음도 '원'이다. 일본에선 또 키무요종, 미국에선 킴요종(Kim Yo-jong)인 31살 김여정이 2018 평창동계올림픽 최고 슈퍼스타로 떠올라 전 세계 이목이 쏠렸다. 김정은 전용기로 남하한 북한 막후 실세이자 실질적 2인자인 그녀를 청와대서 맞은 문재인 대통령은 시종일관 명도(明度) 드높은 표정이었고 눈물까지 흘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논란 끝에 탄생된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스위스에 0대8로 무참히 깨져도 김여정과 함께 응원하는 문 대통령은 싱글벙글이었다.김여정 등 북한 최고위급 방문단 청와대 오찬도 극진한 예우였다. 북한은 그녀와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상임위원장, 최휘(崔輝) 체육지도위원장, 이선권(李善權) 조평통위원장 등 4명인데 남측은 임종석(任鐘晳) 청와대비서실장, 정의용(鄭義溶) 국가안보실장, 서훈(徐薰) 국정원장, 조명균(趙明均) 통일부장관 등 최고 실세가 4명이나 대통령을 배석했다. 중국 언론은 '문 대통령이 북한 고위급대표단을 회견했다(韓國總統文在寅會見 朝鮮高級別代表團)'고 보도했다. 김여정은 오빠의 친서를 전달했고 '빠른 시일 내 평양 방문'을 초청했다. 그래서 CCTV는 '남북 상호작용 왕래(朝韓互動往來)'로 '반도 국세가 새롭게 열린다(開啓 半島新局勢)'고 했다. 과연 그럴까.김여정. 지난 8일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강릉 공연에선 공교롭게도 김여정의 '여정'과 같은 남한 노래 '여정'을 불렀다. 2002년 SBS 드라마 '정'의 삽입곡이었던 '여정'은 여가수 왁스(Wax)의 노래다. 그런데 旅情 旅程 餘情 女情 등 어느 여정인지는 몰라도 '거리마다 불빛이 흐느끼듯 우는 밤/ 무던히도 참았던 외로움에 눈물이…'로 슬프다. 최진희의 노래 '여정'-'떨어진 꽃잎위에 바람이 불고/ 쏟아지는 빗소리에 밤은 깊은데…'도 짠하고. '바름(正)과 더불어(與)' 살겠다는 여정! 오빠의 핵 광기(狂氣)를 못 말리는 삶의 여정(旅程)이 순탄할까. /오동환 객원논설위원

2018-02-11 오동환

[참성단]문화권력의 수난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권력유한의 법칙은 분야를 가리지 않는 모양이다. 최근 문단의 두 원로가 참담하고 비루한 시비에 휘말려 대중의 서늘한 시선에 갇힌 상황은 예사롭지 않다. 최영미 시인이 두달전 발표한 시 '괴물'의 주인공 'En(은)선생'은 최근 한 여검사가 불지른 한국판 미투(me too)운동으로 다시 대중 앞에 소환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작가 이외수는 지난해 여름 화천군수를 욕보였던 일이 곪고 곪아 이제는 화천시와의 법적 분쟁, 세속의 뻘밭으로 하강할 모양이다.En선생의 처지는 매우 고약하다. 작품속 이니셜과 현실속 실명 사이에서 적절한 대응이 곤란해졌다. 최영미는 'En선생'이라 했지만 세상은 두 글자 실명 '○○'을 지명한지 오래다. 인터넷에서도 실명 '○○'으로 검색해 'En선생' 콘텐츠를 찾는 게 손쉽다. 진보진영의 대표 문인으로 민중의 편에서 반독재투쟁을 벌였던 노벨상 후보, 시인 '○○'은 이제 상습 성추행의 혐의를 뒤집어썼다. 하지만 최영미는 작품속 'En선생'을 시인 '○○'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원로시인 '○○'은 이니셜에 갇혀버렸다. 최영미는 살아있는 문학권력을 영리하게 허물고 있는 중이다.화천군으로부터 이외수문학관이 있는 감성마을에서 퇴거 통보를 받은 이외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법적으로 맞설 뜻을 밝혔다. 그동안 화천군을 위한 자신의 행적을 열거하면서, 자신에 대한 퇴거 결정과 관련한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 앞에서 화천군수를 향해 육두문자를 날렸을 때, 그는 자신의 문화권력을 과신해 남용한 것 아닌가 싶다. 작가 이외수를 아끼는 독자라면, 문단의 원로가 최후의 작품에 매진하는 대신 세속의 이해를 따지는 일에 떨어진 사실 자체가 안타까울 것이다. 혹독한 대가다.오늘 평창동계올림픽이 개막하지만 축제의 설렘 보다는, 올림픽 이후의 한반도 명운이 더욱 마음에 걸리는 요즘이다. 분절된 역사인식과 갈라진 이념을 화해시킬 권위가 사라진 시대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En선생' 사태요 이외수 사건이다. 문화권력의 권위마저 허접해질까봐…. /윤인수 논설위원

2018-02-08 윤인수

[참성단]교복의 추억

중학교에 진학해 교복을 입고 한동안 징징거렸다. 형들이 입어도 될 정도로 컸다. 여름에는 상의가 하얀 하복을 입었다. 역시나 몸집보다 터무니없이 큰 통에, 질질 끌렸다. 깡마른 체격에 큰 옷을 걸치니 영락없는 허수아비 꼴이었다. 어머니는 '잘만 어울린다'고 딴청이셨다.2학년이 되자 비로소 교복에 몸을 맞출 수 있었다. 중3 때는 동복이 작아져 바지 밑단을 뜯어 기장을 늘렸다. 상의는 늘릴 방법이 없어 몸이 불편할 정도로 꽉 끼었다. 키 큰 친구는 바지 기단이 정강이까지 올라왔고, 엉덩이 부분은 누더기가 됐다. 그래도 다들 동복 한 벌, 하복 한 벌로 3년을 버텼다.교복은 치명적 단점이 있다. 한겨울 추위를 막아내지 못한다. 요즘은 방한기능이 좋은 잠바를 덧입지만, 70년대 말에는 교복 위에 입는 게 허용되지 않았다. 내복이나 털옷을 여러 겹 껴입는 바람에 교복 상의는 늘 빵빵했다. 고등학교 등굣길, 한겨울 칼바람 부는 동인천 고개를 넘는 건 고문(拷問)이었다. 그때마다 '언제나 이 고난을 면하나'하고 되뇌었다.1970년대 초, 시골 초등학교에는 가방을 못 사 보자기를 둘러메고 등교하는 학생이 여럿이었다. 6년 내내 보자기인 친구도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사복을 입고 등교하는 친구도 몇 있었다. 한두 달 지나 교복을 입고 등교했으나 사춘기 여드름 친구는 내내 부끄러워했다.올해 중학생에게 무상교복을 입히겠다는 경기도의 구상이 무산됐다. 예산은 섰으나 주문과 생산, 배급 등 시간이 부족해 내년에나 가능하다고 한다. '포퓰리즘'이란 비판이 있지만 어릴 적 생각을 해보면 고개가 끄떡여진다.누더기 교복에 보자기를 메고 학교에 간 경험이 있다면 '교복'은 가슴 짠한 기억의 조각일 수 있다. 지금은 웃을 수 있으나 그때는 서럽고 부끄러웠을 것이다.이제 형이나 선배들로부터 교복을 물려받는 일은 없어지게 됐다. 졸업식장에서 달걀에 밀가루 세례를 받는 것도 모자라 갈기갈기 찢긴 채 버려졌던 수난사도 함께 없어졌으면 한다. 교복이 뭔 죄가 있겠는가. /홍정표 논설실장

2018-02-07 홍정표

[참성단]'적폐 판사'

막말 저질 판사도 꽤 있지만 '법대로 양심 따라' 판사도 드물지 않다. 그런데 속된 말로 '죽을 맛' 판사는 후자군(群)이다. 이른바 '빠'의 '까' 등쌀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자 '빠'들이 또 돌격대로 일떠선 거다. 판결을 내린 서울고법 정형식 판사에게 '삼성 장학생, 적폐 판사' 등 비난이 쇄도했고 서초동 서울고법 청사 앞에선 '이재용을 엄벌하라' '석방이 웬 말이냐' 등 '빠'들이 시위를 벌였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영장기각 때도,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 석방 때의 그 '빠'들이다. '빠'는 빠돌이 빠순이 '빠'로 무턱대고 감싸는, '까'는 근거 없이 덮어놓고 비난하는 부류다. 문 정권 '빠'는 '문빠'고. 이 따위 속어의 등장은 '사이언스'지에 실렸던 황우석 서울대 수의대 교수의 논문조작 파문 때인 2005년 그 무렵부터란다.그들이야말로 광기의 광신도지만 무서운 건 정권을 끼고 돌며 아부하는 '빠'들이 수시로 '까'로 돌변 표변하는 현상이고 알 수 없는 건 대체 그들은 뭘 하는 사람들인데 할일 없이 '까' 댓글이나 달아대고 법원 청사 앞 시위나 벌이느냐 그 점이다. 또 하나, 자본주의 상징인 대한민국 대표적인 기업들을 그토록 혐오하는 이유가 뭔가. '재벌 적폐→재벌 해체'는 현 정권의 상투어고 삼성을 '원흉'이라고 지칭한 사람이 청와대 정책실장인가 하면 재벌을 암세포에 비유한 인사가 중소벤처기업장관 아닌가. 원흉이라니? 삼성이 범죄 집단이나 흉악범 무리 수괴(首魁) 같다는 건가. 암세포라면 당장 제거수술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영국의 글로벌 브랜드 평가 업체 '브랜드 파이낸스'가 엊그제 글로벌 기업 순위를 매겼다. 삼성이 아마존, 애플, 구글에 이어 브랜드 가치 4위였다. 작년 판매고 239조5천800억, 법인세만도 전체 법인세의 10분의 1인 7조8천억원을 냈고 대한민국 GDP의 약 20%를 삼성이 창출한다. 트럼프가 '똥통국가'로 지칭한 아프리카 국가들도 Korea는 몰라도 '쌤성'은 안다. 문재인 대통령이 그저께 강릉 IOC 총회에서 "남북 단일팀이 멋지지 않은가"라고 물었듯이 묻고 싶다. 삼성이야말로 천배나 만배나 멋지지 않으냐고. /오동환 객원논설위원

2018-02-06 오동환

[참성단]북한 열병식과 평창

인류의 신성한 평화 제전(祭典)인 올림픽에 최소한의 이해와 관심이 있다면, 그리고 동족에 대한 최저한의 연민의 정이 있다면 모레 건군절(建軍節) 열병식은 포기해야 옳다. 문재인 정부가 한미군사훈련을 올림픽 후로 연기한 것도 인류의 평화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지 않기 위함 아닌가. 그런데 한미군사훈련은 일시가 아닌 영구 중단하라는 북한이 올림픽 전날의 자기네 군사 퍼레이드만은 강행한다는 거다. 북한 건군절이 지난 40년간 4월 25일이었던 건 조선인민군의 모태라는 김일성 항일유격대 창설일이 기준이었고 올해 달력도 그 날이 빨간 날이다. 그랬는데 돌연 날짜를 변경한 건 원래의 건군일인 1948년 2월 8일로 되돌린 것이고 따라서 40주년이 아닌 70주년이라는 거다. 그렇다고 해도 왜 돌연 변경인가. 또한 기념식은 갖되 열병식은 생략할 수도 있다. 그게 동족이 주최하는 올림픽 축제에 대한 예의고 도리다.그런데도 북한은 오히려 '올림픽 날짜를 왜 그렇게 정했냐. 진작 바꿀 것이지'라고 빈정거렸다. 그것만 봐도 '역사에서 하차한 나라'지 정상적인 국가는 아니다. 올림픽 전날의 열병식도 어처구니 없지만 평창에 간 외신 기자들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또 있다. 북한 선수들이 CNN, BBC, NHK 등 다수 방송의 인터뷰 요청에 하나같이 거부, 일언반구 응답이 없다는 거다. 취재 거부다. 2일 밤 강릉 쇼트트랙 경기장에서 넘어져 부상한 북한 최모 남자선수도 그랬고 기타 선수와 다른 종목 선수들도 외국 보도진 질문에 묵묵부답이었다는 거다. '본국의 입 조심 지령 때문인 것 같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올림픽 선수가 보도진 인터뷰 요청에 일절 거절하는 예는 올림픽사상 처음 본다'고….그래도 4일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스웨덴과의) 평가전 응원 열기는 뜨거웠고 '우리는 하나' 플래카드와 함성이 넘쳐났다. 삼지연(三池淵)관현악단 공연 티켓도 불티가 났다. 3일 마감된 530조(組) 1천60명 티켓에 약 290배인 15만6천조가 응모했다. 입장료 무료 때문만도 아니고 통일부는 북측 공연단 출연료는 없다고 굳이 밝혔다. 올림픽 성공을 바란다. 문제는 평창 후의 북한, 북한이다. /오동환 객원논설위원

2018-02-05 오동환

[참성단]태극기 없는 평창

대만 선수가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하염없이 운다. 30%는 기쁨, 70%는 대만(중화민국) 국기(靑天白日旗)를 못 올리고 애국가 '싼민주이(三民主義)'가 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왜? 같은 나라라는 중국의 압력 탓이다. 국명을 달리 쓰려면 'Chinese Taipei'로 하라는 거다. 국기를 못 올리고 흔들지 못하는 건 망국(亡國) 때다. 그 단적인 예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의 손기정, 그 통한의 가슴팍 일장기였고 시상대에 울려 퍼진 일본 천황 찬양가 '키미가요(君が代→군주, 즉 천황이 통치하는 시대라는 뜻)'였다. 전쟁에서 항복했을 때도 국기는 처참하게 내려진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런 경우인가. 2011년 MB정권 때 어렵게 유치한 평창올림픽에 왜 태극기가 없는가. 금메달 시상식에도 애국가가 아닌 '통일의 노래'나 아리랑을 부를 참인가. 전국 관공서에 펄럭이는 태극기도 한반도 기로?러시아가 국기와 국장(國章), 국가를 차단당한 건 금지약물 집단복용 탓이다. 그런데 한국이 왜? 지난 31일 스키 선수단이 마식령 스키장 공동 연습을 위해 9천만원 전세기로 북쪽으로 날아갔지만 연습은 단 2시간이었다고 했다. 정신 나간 짓 아닌가. 더구나 가슴 태극기도 떼고 'Korea'도 가리라고 했다는 거다. 호주 건너 남태평양 소국 피지의 바이니마라마 총리가 국기를 바꾸려던 이유는 식민지시대 영국 국기 유니언잭과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국기 변경을 단념했다. 재작년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 피지의 7인제 남자 럭비 팀이 피지 역사상 첫 금메달을 땄고 그 때 게양되는 국기에 너무나 감격, 펑펑 눈물을 흘리면서 국기 변경 의도가 눈 녹듯 사라졌다는 거다.국기를 거역, 부정할 수는 없다. 국민도 아니다. 한반도 기는 국기가 될 수 없다. 그걸 흔드는 건 형법 제105조 국기모독죄(5년 이하 징역)에 해당한다. 평창 내내 '동족'을 부르짖겠지만 남북 이질화는 회복 불능이다.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김정일 플래카드가 비에 젖었다며 엉엉 운 게 북측 양궁 응원단이었다. 평창에 온 19살 여자 피겨선수도 '지(제) 동작 하나하나를 경애하는 수령님께 보여드릴 겝니다' 했단다. 남북 동질화가 가능하겠는가. /오동환 객원논설위원

2018-02-04 오동환

[참성단]솔피 노래(海狼行)

다산(茶山) 정약용은 1818년 8월, 18년 동안의 귀양살이를 끝내고 고향인 마재 마을(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로 돌아왔다. 그의 나이 57세 때였다. 그러니까 2018년은 다산이 유배생활을 마치고 돌아온지 꼭 200주년이 되는 해다.그는 평소 정조(正祖) 임금을 성인으로 여기며, 그와 같은 시대에 태어난 것에 대해 감사해 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조의 죽음은 그에게 너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조가 죽은 지 1년 뒤 겨우 목숨을 건져 경상도 장기(포항)로 유배를 갔을 때 다산은 '해랑행(海狼行)'이라는 시를 지었다. 해랑(海狼)은 '살인고래'라고 불리는 '범고래'를 지칭하는 말인데, 옛날에는 '솔피(率皮)'라고도 불렸다. 그래서 해랑행은 '솔피 노래'로 더욱 잘 알려져 있으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솔피란 놈 이리 몸통에 수달 가죽, 가는 곳마다 열 마리 백 마리 무리지어 다니는데 /물속 날쌔기가 나는 듯 빠르기에 갑자기 덮쳐오면 고기들 알지 못해 / 큰 고래 한입에 천석 고기 삼키니 한번 지나가면 고기 자취 하나 없어/ 솔피 먹이 없어지자 큰 고래 원망하여 큰 고래 죽이려고 온갖 꾀를 짜내었네/ 한 떼는 고래 머리 들이대고, 한 떼는 고래 뒤를 에워싸고, 한 떼는 고래 왼편 노리고, 한 떼는 고래 오른편 공격하고, 한 떼는 물에 잠겨 고래 배를 올려치고, 한 떼는 뛰어올라 고래 등을 올라탔네/ 상하 사방 일제히 고함지르며 살가죽 찢고 깨물고 얼마나 잔혹한가/ 고래 우뢰처럼 울부짖으며 물을 내뿜어 바다 물결 들끓고, 푸른 하늘 무지개 일더니 무지개 사라지고 파도 차츰 가라앉아/ 아아! 슬프도다 고래 죽고 말았구나. 혼자서는 무리의 힘 당해낼 수 없어라 약삭빠른 조무래기 드디어 큰 재앙 해치웠네/ 너희들 피투성이 싸움 어찌 여기까지 이르렀나. 본뜻은 기껏해야 먹이싸움 아니더냐/ 큰 바다 끝없이 넓기만 하여 지느러미 날리고 꼬리 흔들며 서로 좋게 살 수 있으련만 너희들은 어찌 그리 못하느냐.'결국 다산은 이 시를 통해 당시 권력의 암투 속에서 정조가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정치적 상황을 풍자한다. 이를 음미해보면 200년 전 상황이나 요즘 상황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김선회 논설위원

2018-02-01 김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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