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맥아더 동상 방화

동상을 순례하면 그 나라의 역사를 일별할 수 있다. 동상은 역사와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 그래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민족적, 정치적 시선의 변화에 따라 국내외 갈등의 중심에 선 동상이 적지 않다. 프랑스 식민지들은 해방이 되자마자 잔다르크 동상부터 참수해버렸다. 최근에는 뉴질랜드와 호주가 제임스 쿡 선장 동상 훼손을 놓고 이주 국민과 원주민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의 위인이 피해 당사국과 민족에겐 침략의 상징이다.파란만장한 근·현대사를 관통한 우리도 마찬가지다. 일본과는 평화의 소녀상을 둘러싼 갈등이 현재진행형이다. 2011년 종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이후 일제 피해를 당한 동남아 각국은 물론 유럽과 미국에까지 진출한 소녀상은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고발하는 표상이다. 지난 9월 일본 우익분자가 대만 타이난시의 위안부 동상을 발로 찼다. 국내 여론은 마치 우리 소녀상이 모욕당한 듯 분노했다.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에게 눈엣가시다.박정희 동상을 둘러싼 시비는 업적과 과오가 너무 뚜렷해서다. 이념적, 정파적 시선이 한쪽만 본다. 지난해 박정희 탄생 100년을 맞아 기념재단은 기증받은 그의 동상을 세울 자리를 물색했다. 하지만 광화문은 서울시가, 용산 전쟁기념관과 상암동 박정희기념관은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혔다. 동상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약속으로 지어진 박정희기념관 창고에 들어가 있다. 그의 과오에만 집중하는 세력이 대세인 탓이다. 딸 박근혜가 탄핵당하지 않았으면 그의 동상은 지금 어디에 서 있을까 궁금하다.그런데 인천 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방화사건은 확정된 역사적 사실을 전제하면 이해하기 힘들다. 인천상륙작전으로 6·25전쟁의 전세를 역전시켜 자유 대한민국의 영토를 지켜 낸 맥아더의 업적은 객관적이다. 최근 인천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죽산 조봉암 동상 건립 반대 여론이 일고 있다. 조봉암은 전향한 공산주의자였다. '전향'을 빼고 '공산주의자'만 보는 시선이니 수많은 탈북 전향자를 국민으로 품은 현실과 어긋난다. 마찬가지로 반미단체 회원이라는 이 모 목사가 하필이면 방화시위의 자유까지 지켜 준 맥아더를 표적으로 삼은 건 명백한 오조준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24 윤인수

[참성단]음서(蔭敍)

음서제가 도입된 건 997년 고려 목종 때였다. 관리의 자식이나 친척을 과거시험 없이 관리로 채용하는 게 목적이었다. 초기엔 직위에 제약을 뒀다. 명문가가 아니어도 우국충정이 충만하고, 학문의 깊이가 예사롭지 않은, 과거를 통해 등용된 인재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기로 갈수록 음서제 출신들이 가문의 힘으로 요직을 차지했다. 폐해가 얼마나 심했던지 심지어 5세 아이가 음서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고려는 그러다 망했다.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같은 신진세력들이 음서제의 폐단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공신들과 왕 주변에 서성이던 최측근 신하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음서제 적용 범위를 '공신이나 2품 이상 관의 자(子)·손(孫)·서(壻)·제(弟)·질(姪), 실직(實職) 3품관의 자손으로 제한한다'고 '경국대전'에 명문화시켰다. 그런데 조선도 고려와 같은 길을 걸었다. '한번 금수저는 대역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영원한 금수저'였던 것이다. 이러고도 조선이 500년이 유지됐으니 '기적'이었다.음서제가 출현한 지 1000년이 지난 지금, 공공기관의 채용 비리 및 고용세습 의혹으로 우리 사회가 또 한 번 큰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음서제가 사라지지 않고 목숨을 부지하고 있음을 우리는 보고 있다. 유명 로펌의 경우 정치인, 고위관료 등 유력가의 자식이 아니면 들어가기 힘들다는 '현대판 음서제'가 논란이 된 지 오래다. 대기업 노조의 고용세습도 이미 오래된 관습이었다. 지난 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이 공개한 고용노동부 자료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현재 현대자동차, 금호타이어 등 15개 기업의 단체협약에 정년퇴직자·장기근속자·사망 질병 등에 걸렸을 경우 배우자나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조항이 들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청년 백수'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들은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취업절벽' 앞에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는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다. 그런데 한쪽에선 귀족노조 고용세습이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공공기관 채용과 정규직화 과정에서 '그들만의 검은 거래'가 자행되고 있다니 이 청년들의 탄식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었다. 이 약속은 현대판 음서제를 뿌리 뽑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23 이영재

[참성단]굴업도 수난사

굴업도는 면적이 30만평 정도로 한강이 만든 여의도(약 88만평)보다 작은 섬이다. 해안 길이 12㎞에 가장 높은 덕물산의 해발고도는 122m에 불과하다. 행정구역상 옹진군 덕적면 굴업리다.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에는 굴압도(屈鴨島)라 했다. 섬의 형세가 물 위에 구부리고 떠있는 오리의 모양과 같다 해서다. 그러나 일제때 '屈業'을 거쳐 '掘業'으로 바뀌었으나 확실한 연유를 남긴 기록은 없다. 다만 일제 초기만 해도 대규모 민어 파시가 열려 수천명이 북적대던 시절, 노동의 의미가 오리의 형상을 대체한 것이 아닌가 싶다.파시가 쇠퇴하고 오랜 세월 뭍에서 잊혀졌던 굴업도는 1994년 이름 석자를 갑자기 세상에 내밀었다. 정부가 굴업도를 핵폐기장으로 선정한 것이다. 반대할 주민이 없던 굴업도 대신 모섬인 덕적도 주민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결국 굴업도 일대 활성단층이 발견되면서 정부가 주장하던 지질 안정성이 무너졌고, 1년도 못돼 지정은 취소됐다. 당시 굴업도를 눈 앞에 둔 서포리 해안에서 주민들이 벌였던 잔치마당에 참석했던 기억은 언제나 흐뭇하다.정부가 물러나자 이번엔 대기업이 굴업도를 세상에 소환했다. CJ그룹 씨앤아이(C&I)레저산업이 2005년 굴업도에 관광호텔·콘도, 골프장, 마리나를 갖춘 오션파크 건립을 추진하고 나선 것이다. CJ그룹은 섬 전체 면적의 98%를 사들였지만 역시 지역 환경단체의 반대에 직면했다. 인천시는 섬 훼손을 우려해 골프장을 뺀 개발을 권고했고, CJ그룹은 2014년 골프장 건설 철회 방침을 밝혔다.CJ의 사업이 답보상태에 빠진 요즘 굴업도는 백패킹의 성지로 각광받고 있다. 개발에서 소외돼 지질학적 원형이 가장 잘 보전된 굴업도를 백패커들은 한국의 갈라파고스로 부른단다. 주말이면 배낭 하나 메고 굴업도를 찾아 캠핑을 즐기는 백패커가 200명 이상이란다. 그 탓에 굴업도의 목기미 해변, 개머리 초지, 연평산 일대는 해양 쓰레기뿐 아니라 캠핑 쓰레기 범벅이 됐다. 원시의 모습과 별이 아름다운 밤하늘을 간직한 덕분에 쓰레기 세례를 받으니, 정부와 대기업으로부터 섬을 지켜낸 의미가 무색하다.핵폐기장, 오션파크, 쓰레기에 이르기까지 굴업도에는 사람의 욕심에 상처 입은 땅의 역사가 담겨있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22 윤인수

[참성단]추억의 인천 미림 극장

1960년대는 한국영화의 전성기였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영화 관람은 유일한 문화생활이었고 일상을 피할 탈출구였다. 남녀노소 영화를 보며 웃고 울었다. '성춘향' '마부' '미워도 다시한번'같은 대박 영화가 나오면 온 나라가 '들썩'였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자료를 보면 1960년대 국민 1인당 연간 영화관람 횟수는 평균 5.5회였다. 2016년 4.2회와 비교하면 당시 영화사랑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1990년대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극장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손으로 그린 영화 간판이, 여기저기에 붙어 있던 '만원 사례(滿員謝禮)'가, 명절의 암표상이 추억이 됐다. 인천은 대한민국 극장사(史) 가 그대로 녹아든 곳이다. 한국 최초의 극장 협률사의 전통을 이은 애관극장을 비롯해 문화, 동방, 미림, 오성, 인천, 현대극장 등이 6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함께했다. 그러나 현대화 물결에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애관과 미림극장만 살아남았다.1957년 천막극장으로 시작한 미림은 경영난으로 2004년 문을 닫았다가 지난 2013년 10월 실버극장 '추억극장 미림'으로 재개관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입장료 2천원이면 어르신들은 옛날 영화 한 편을 볼 수 있었다. 영화만이 아니다. 노인들의 취미, 친목활동 등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으로 지역공동체 친화 극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이 곳을 찾는 외지인에게서 "내가 사는 곳에도 이런 극장 하나쯤 있었으면…"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림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런 미림극장이 재정문제로 내년 4월 문을 닫는다고 한다. 인천시로부터 매년 1억원 정도 받았던 사회적 기업 지원비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추억극장 미림'이 진짜 추억이 될 위기에 처했다.노년층은 여전히 문화생활에 익숙하지 않고 그럴 만한 경제적 여유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버극장은 60, 70년대 고전 영화를 감상할 수 있던 유일한 문화 수단이다. 그 '유일함'이 고작 1억여 원 예산을 지원받지 못해 사라진다면 유서깊은 애관극장을 보유하고 있는 문화도시 인천의 수치다. 미림이 문을 닫는다면 노인은 여전히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홀대받고 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인천시와 시민들은 머리를 맞대고 미림을 살릴 방안을 꼭 찾길 바란다. 사라진 추억은 손으로 다시 만질 수 없고, 한번 무너진 역사는 복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21 이영재

[참성단]동네 권력 '맘 카페'

"우리 어린이집이 아수라장이 되는데 반나절도 안 걸렸다." 지난 13일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A씨가 근무했던 김포 통진읍 소재 어린이집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A(37)씨는 지난 11일 어린이집 가을 나들이 행사에 참가했다. 그런데 이날 오후 회원이 3만명이 넘는다는 지역 커뮤니티 '김포 맘들의 진짜 나눔' 카페에 '아이가 교사에게 안기려고 했지만 교사가 (아이를) 밀쳤다'는 말을 '들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아이의 이모가 쓴 것이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린이집 실명이 공개되면서 항의전화가 쏟아졌다. A씨 신상도 그대로 노출됐다. '신상털이'를 당한 것이다. 수백 개의 댓글과 동조 글이 붙었다. 시민이 고발했다며 경찰까지 찾아왔다. 더구나 아이의 이모가 찾아와 교사 A씨의 무릎을 꿇게 하는 등 인격적으로 모욕을 가하기도 했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A씨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네카시즘'은 '네티즌'과 '매카시즘'의 합성어다. 인터넷상에서 익명으로 어떤 이슈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온라인 폭력을 말한다. 네티즌의 일방적인 여론몰이, 마녀사냥과 동의어다. 매카시즘은 1950년 2월 "국무성 안에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매카시 상원의원의 폭로에 따라 어이없는 마녀사냥으로 무고한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다. 요즘 동네 권력이라는 '맘 카페' 회원들의 근거 없는 인신공격은 매카시즘과 너무 유사하다. 익명 속에 숨어 쏘아대는 포화에 누구나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숨을 곳도 없다. 확인도 안 된 "그렇다더라"에 마음 약한 사람은 견디다 못해 목숨을 내놓는다. 지역별로 맘 카페가 없는 곳이 없다. 맘 카페는 원래 지역 소비자운동으로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육아·교육·지역 정보를 공유하는 대형 커뮤니티로 자리 잡았다. 어마한 '동네 권력'이 된 것이다. 자영업자들은 "지역 상권에서 맘 카페의 힘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고 말한다. 심지어 "찍히면 죽는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끔찍한 마녀사냥도 자행된다. 지난 7월 경기 광주 맘 카페에 올라온 '난폭 운전하는 태권도 학원 차량'도 그런 경우다. 가장 무서운 게 "어디서 들었는데"다. 그러다 문제가 불거지면 "아니면 말고"다. 'A씨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청원에는 벌써 10만여명이 참여했다. A씨는 결혼을 앞두고 있던 예비 신부였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18 이영재

[참성단]이재명 지사의 'SNS 족쇄론'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최근 한 방송에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한때 저의 힘이었는데 지금은 족쇄"라며 "후회스럽다"고 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과의 지난 대선 당내경선 토론 과정을 회고하며 "싸가지가 없었다"고 자책했다. 지난달 초 "페이스북은 저의 가장 큰 방패이자 무기"라던 입장과 사뭇 다르다. 당시 그는 5천명의 '페친'을 향해 악성 조작 왜곡글에 반박 댓글이라도 써주는 '실천하는 동지'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페이스북은 성남시장 시절부터 이 지사의 핵심 홍보수단이었고, 충성스러운 팔로어들은 그의 표현대로 정적들로부터 그를 보호하는 방패이자 무기였다. 하지만 현재 그를 곤경에 빠트린 진앙 또한 페이스북이다. 김부선씨와는 '가짜 총각'과 '대마 발언'이 증폭돼 자진 신체검증에 이르렀다. '형님 정신병원 강제입원'과 '혜경궁 김씨' 논란은 경찰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다. 대선 경선과정은 친문세력과의 반목으로 이어졌다. 페이스북에 이 모든 논란의 기원이 기록돼 있다. 해명과 부인과 규명은 가능할지라도 '사실'만큼은 지울 수 없다. 누군가 필요할 때마다 재생하고 의도적인 재해석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SNS의 이중성은 너무 극단적이다. 강남스타일을 세계에 퍼트려 싸이를 국내파에서 국제파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구하라는 리벤지 포르노가 SNS에 퍼질까봐 무릎까지 꿇어야 했다. 김기식 전 금감원장은 과거 트위터에서 강조했던 권력의 정당성과 상충되는 외유성 출장이 드러나 정치역정에 오점을 남겼다. 반면 박지원 의원은 부인을 잃은 애통한 심정을 게시해 폭풍 공감을 받았다. 잘 쓰면 축복이고, 아니면 지옥문이 열린다.SNS는 'CIA가 꿈에 그리던 일'이라는 풍자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거주지와 종교적 정치적 견해, 순서대로 정리한 친구 목록,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 자신이 찍힌 수백 장의 사진, 현재하고 있는 활동 정보를 공개하고 있어서란다. 더 이상 풍자가 아니다. 모골이 송연한 경고다.정치하는 사람들은 'SNS가 족쇄가 됐다'는 이 지사의 후회를 진지하게 경청할 필요가 있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17 윤인수

[참성단]가을 야구

프로 야구는 종종 농사와 비유된다. 이듬해 농사를 위해 겨우내 준비하는 농부처럼 야구도 정규시즌 전 스프링 캠프에서 꼼꼼한 준비를 한다. 가뭄, 장마, 폭염을 거쳐 마침내 가을 수확에서 한해 농사가 결판나듯, 야구도 정규시즌이 끝나고 포스트 시즌 진출 여부에 따라 1년 농사 성패가 좌우된다. 이처럼 144게임을 치러야 하는 프로 야구만큼 계절을 타는 스포츠도 없다. 프로야구의 정규시즌이 마감됐다. 한해 농사가 끝난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 끝난 게 아니다. 포스트 시즌이 기다리고 있다. 포스트 시즌은 깊은 가을이 왔음을 의미한다. 야구의 종주국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는 최종 우승을 가리는 월드시리즈를 '가을의 고전(Fall Classic)' 또는 '10월의 고전(October Classic)'이라고 부른다. 무르익은 가을, 10월(October)에 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10월을 빗댄 조어도 많다. 가령 플레이오프에 강한 모습을 보이는 타자를 Mr October라 부른다. 2007년 와일드카드로 거침없는 7연승을 달리며 돌풍을 일으켰던 현재 오승환 소속팀 콜로라도 로키스는 Rocktober(Rockies+October)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한국 프로야구는 10개 팀 중 상위 5개 팀만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다. 팬들은 정규시즌 내내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둬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달라는 절실한 바람을 하나의 문구에 함축시켰다. 역사상 가장 더웠던 지난여름에도 구장마다 팬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던 이 말. '가을에도 야구하자'가 그것이다. 8자에 불과하지만 응원하는 팀이 뛰는 경기를 한 게임이라도 더 보고 싶은 팬들의 간절함이 함축되어 있다. 이후 '가을 야구'는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을 상징하는 용어로 자리를 잡았다.2018년 가을 야구는 두산 SK 한화 넥센 기아 5팀만 초청받았다. 로맥과 한동민으로 대표되는 명실상부한 '홈런 군단'이자 '두산의 대항마' 인천 SK 와이번즈는 정규시즌 2위를 차지해 6년 만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덕분에 팔꿈치 수술을 받고 돌아온 김광현을 가을 야구에서 볼 수 있어 팬들은 벌써 흥분된다. 한화는 11년 만에 가을 야구 초청장을 받았다. 이처럼 가을 야구에는 진출한 팀마다 각각 온갖 사연이 차고 넘친다. 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팬들의 발걸음이 이 깊은 가을, 야구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16 이영재

[참성단]하나의 전쟁과 두개의 시선

제임스 쿡 선장은 영국에게는 영토를 개척한 위대한 탐험가이지만 뉴질랜드와 호주 원주민에게는 침략자이자 학살자이다. 그는 1769년 뉴질랜드에 상륙하고 1770년 호주 해안을 탐사한 최초의 유럽인이었다. 내년은 뉴질랜드 발견 250주년이고, 내후년은 호주 정부가 기리는 '영토발견의 해' 250주년이 된다. 하지만 쿡 선장을 바라보는 두개의 시선이 충돌하면서 기념 분위기가 바래고 있다. 쿡 선장을 향한 양국 원주민들의 반감이 고조되고 있고, 그의 동상은 곳곳에서 훼손되고 철거되는 실정이다.전쟁, 특히 일방적인 침략전쟁의 경우 가해의 역사는 퇴색하는 반면, 피해의 역사는 선명하다. 전쟁을 바라보는 가해국과 피해국의 시선이 달라서다. 일본의 아시아 침략전쟁이 대표적이다. 가해 역사를 지우려는 일본내 극우보수 세력이 가해를 인정하는 양심세력을 압도한다. 그럴수록 피해 당사국들의 피해의식은 더욱 또렷해진다.지난 11~12일 인천시와 경인일보가 주최한 '인천의 전쟁과 세계평화 포럼'에서도 하나의 전쟁을 바라보는 두개의 시선이 역력히 드러났다. 1871년의 한국은 미국의 침략으로 규정한 신미양요를, 미국 발표자는 '원정(遠征)'이라 주장했다. 러-일 전쟁에 대한 논란은 더 뜨거웠다. 러시아 발표자는 "러일 전쟁의 직접적인 전범은 일본"이라고 주장한 반면 일본 발표자는 전쟁이라는 표현 대신 "약간의 교전"이라고 밝혔다. 이에대해 중국 학자는 "러일 전쟁으로 당시 무고한 중국인들이 물적·정신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남의 집(랴오닝과 제물포) 피해는 언급하지 않는데 항의했다.이번 포럼은 현재 진행중인 남북 평화협상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졌다. 분단 이후 남북 분쟁사에서 주로 피해 당사자는 남측이었다. 6·25전쟁, 무장간첩 침투, 아웅산 폭파사건, 1·2차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사건의 피해 당사자가 현존하고 피해의식은 엄존한다. 정부의 한반도 평화협상 진전을 우려하는 여론의 배경이다. 북한의 대남 침략 역사를 향한 우리 내부의 피해의식 해소가 남북협상 국면에서 매우 중요해졌다. 피해국에 대한 사과와 피해의식의 해소 없이 화해가 불가능한 현실은 한일 관계만 봐도 분명하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15 윤인수

[참성단]흰 지팡이의 날

오늘은 '흰 지팡이의 날'이다. 그동안 이런 날이 있는 줄도 몰랐다. 무관심 탓이다. 제정된 지도 올해로 벌써 39년째가 됐다. 그런데도 몰랐다니, 부끄러운 일이다. 흰 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해주는 '눈' 역할을 하는 그 지팡이다. 1946년 미국 육군병원 안과의사 후버가 시각장애인을 위해 고안했다. 비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을 쉽게 식별하고 길을 양보하거나 운전자가 서행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1980년 헬렌 켈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세계 시각장애인연합회가 10월 15일을 '흰 지팡이의 날'로 공식 제정해 전 세계에 선포했다. 선언문엔 '흰 지팡이는 동정이나 무능의 상징이 아니라 자립과 성취의 상징'으로 규정했다. 우리나라에서 흰 지팡이에 대한 규정이 마련된 것은 1972년 도로교통법에서다. 도로교통법 제11조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도로를 보행할 때는 흰 지팡이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제48조에는 "모든 차의 운전자는 어린이나 유아가 보호자 없이 걷고 있거나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흰색 지팡이를 가지고 걷고 있을 때에는 일시 정지하거나 서행한다"고 적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법은 '딱 '거기 까지다. 시각장애인에게 도심은 여전히 거대한 정글이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장벽이 여기저기에 도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흰 지팡이를 의지해 도심에서 50m를 이동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골목길이나 이면도로는 더 끔찍하다. 비장애인도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기 겁날 정도로 '우선멈춤'을 지키는 차는 거의 없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인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은 고속도로를 무단 횡단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들에겐 비장애인의 '배려'가 꼭 필요하다.누군가 흰 지팡이를 든 사람이 있다면 운전자와 보행자가 모두 그들에게 '배려'할 준비를 해야 한다. 흰 지팡이의 날을 제정한 것도 비장애인들에게 그런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다. 문제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배려'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다. 말이 선진국이지 장애인들에게 우리나라는 여전히 후진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이 살기 얼마나 힘든 나라 인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우리나라 장애인 중 90% 정도가 후천적 장애인이라고 한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장애를 입을 수 있다. 모든 장애인에 대해 우리 사회가 따뜻한 '배려'를 가져야 하는 이유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14 이영재

[참성단]교황, 카스트로 그리고 김정은

2015년 9월 20일. 쿠바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도 아바나 혁명광장에서 쿠바 국민을 상대로 대규모 미사를 집전하며 "사상이 아니라 사람을 섬겨야 한다"고 말했다. 말로는 쿠바 인민을 위한다면서 개인숭배에 빠진 카스트로 체제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쿠바에서 4일을 머무르는 동안 포용과 사랑으로 쿠바의 변화를 독려했다. 쿠바 국민은 1998년 요한 바오로 2세, 2012년 베네딕토 16세의 쿠바방문 때보다 프란치스코를 더욱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교황이 54년 만의 미국·쿠바 국교정상화에 막후 중재역할을 했기 때문이다.교황은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도 만났다. 카스트로는 늘 그랬듯 세 줄이 있는 파란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고 교황을 만났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체제에 대해선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카스트로의 고교 은사이자 예수회 신부인 아만도 요렌테의 설교집을 선물했다. 거기엔 나름 큰 의미가 있었다. 카스트로는 1959년 쿠바 혁명 직후 은사인 요렌테 신부를 추방했다. 요렌테 신부는 고국 쿠바로 돌아가지 못하고 2010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생을 마쳤다. 신부의 설교집 전달은 카스트로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교황의 간곡한 뜻이 포함돼 있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양 방문을 공식 초청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교황을 만나보라고 권했다고 한다. 이에 김 위원장은 "교황님이 평양을 방문하시면 열렬히 환영하겠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진행된 얘기라 단정할 수 없지만 김 위원장이 교황 방문을 간곡히 원하는 것과 문 대통령이 교황의 평양방문을 희망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김 위원장이 교황을 초청하려는 의도는 분명하다. 전 세계에 북한을 정상국가로 보이고 싶은 것이다. 교황이 방문을 수락할지는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 수락해도 쿠바와 평양은 너무 다른 나라다. 쿠바국민의 60%가 가톨릭 신자지만 평양에는 가톨릭 신자가 한 명도 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종교의 자유가 없는 나라, 20만명의 정치범이 있는 세계에서 인권탄압이 가장 극심한 나라 북한을 방문하는 것도 교황으로선 나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아무런 소득 없이 그저 '왔소 갔소'로 끝난다면 방문의 의미는 크게 퇴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11 이영재

[참성단]스리랑카 노동자의 풍등

한 스리랑카 노동자가 일하던 공사현장에 떨어져 있던 풍등에 다시 불을 붙여 날렸다. 심심파적이었을 것이다. 경찰이 이 노동자가 날린 풍등을 대한송유관공사 고양 저유소 폭발화재의 직접적 원인으로 특정하면서 사회적 논란이 뜨겁다. 동정론이 우세한 가운데 처벌을 주장하는 소수의견도 있다.논란에 앞서 이 스리랑카 노동자를 덮친 나비효과는 비극적이다. 애초에 풍등을 날린 곳은 저유소에서 800m 떨어진 한 초등학교였다. 학부모회가 주최한 행사에서 지난 8년간 해마다 날렸다고 한다. 그 수많은 풍등 중 하나가 하필 3년전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의 손을 타고 저유소를 향했다. 휘발유 탱크는 폭발했고, 스리랑카 노동자는 인생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이 노동자에 대한 동정여론에 공감이 간다. 무심하게 날린 풍등이 저유소 폭발이라는 엄청난 사건으로 증폭된 원인 규명이 중요했다. 풍등의 불씨가 떨어져 저유탱크 잔디밭을 18분이나 태우는 장면이 저유소 모니터가 생중계했지만 이를 지켜본 송유관공사 직원은 없었다. 저유탱크 주변의 화재를 알려줄 시스템도 없었다. 작년말에 풍등을 관리할 소방법 개정이 있었지만, 풍등을 날리는 것은 불법도 아니고, 금지구역을 설정한 것도 아니다.재미삼아 재활용한 풍등 하나가 저유소 폭발로 증폭된데는 우리 사회의 안전불감증, 송유관공사의 부실한 방재시스템, 관련 법규의 모호함이 더 큰 원인일 것이다. 한 외국인 노동자를 화재의 주범으로 단정하는 순간 화재 원인과 관련된 우리 내부의 문제점이 소실된다. 대형 저유시설의 화재 가능성을 증폭시켜 온 우리 내부의 문제를 주목하기 보다, 서둘러 희생양을 만들고 있다는 여론은 이성적이다.풍등은 불로 데워진 공기의 팽창력을 동력으로 솟아오른다. 불이 꺼지고 공기가 식으면 떨어진다. 그런데 저유소 잔디밭에 착륙한 문제의 풍등은 불씨를 안고 있었다. 스리랑카 노동자에게 화재의 책임을 미루고 넘어간다면 국가 방재시스템에 화근을 남기게 될테고, 국가중요시설을 향한 풍등의 습격은 계속될 것이다. 검찰이 10일 저유소 화재 피의자인 스리랑카 노동자에 대한 경찰의 구속영장 신청을 기각했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10 윤인수

[참성단]요즘 무슨 책 읽어?

얼마 전 길에서 옛 은사님을 만났다. 이런 저런 얘기 중 은사님이 이렇게 물었다. "자네 요즈음 무슨 책 읽나?" 의외의 질문이라 당황했다. 생각해보니 이런 질문을 최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나 역시 누구에게 "지금 무슨 책 읽어?"라고 물어본 적이 없다. 만나는 사람에게 "밥 먹었어?" 라는 말은 수없이 하면서도 "무슨 책 읽어?"라는 말은 단 한 번도 하지 않는, 우리는 지금 그런 시대를 사는 것이다.열어둔 창문 틈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는 건 책 읽기 좋은 가을이 왔다는 것이다. 설악산 단풍 소식은 책을 읽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 왔음을 의미한다. 올해가 '책의 해'라는걸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국민이 책을 너무 읽지 않으니 정부가 25년 만에 올해를 '책의 해'로 지정했다. 매달 책과 연관된 행사들이 지난 3월부터 연말까지 꾸준히 끊이지 않고 열린다. 하지만 이에 관심을 두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세종은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읽지 않은 책이 없었다. 어제 한글날, 언론들은 세종의 업적을 찬양하면서 가장 으뜸으로 '한글'을 꼽았다.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건 백성이 쉽게 글을 읽게 하기 위함이다. "~제 뜻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 이를 딱하게 여겨 새로 28자를 만들었으니~"라고 밝혔듯 왕은 혼자만 책 읽는 즐거움을 느끼는 게 백성들에게 미안했을지도 모른다. 책 읽는 재미를 백성 모두가 공유하길 왕은 진정으로 원했을 것이다. 아무리 미디어 시대라지만 한글창제 572돌을 맞는 지금, 우리의 독서율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 국민이 책을 읽지 않는 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하루 평균 200권 이상의 신간이 쏟아지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출판량에도 불구하고 독서율은 OECD 최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5년 펴낸 '국민독서실태조사'보고서를 보면 성인의 연간 독서율은 65.3%였다. 2017년엔 60%로 더 떨어져 성인 10명 중 4명이 일 년 동안 책을 단 1권도 읽지 않았다. 왕의 깊은 뜻이 무색해질 지경이다. '책 읽기의 일상화'면 금상첨화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이 순간만이라도 독서삼매경에 빠져야 할 때다. 책 읽기 좋은 계절은 한 달에 불과하니 말이다. 그리고 100일도 남지 않았지만 '2018년 책의 해'만이라도 이런 인사말이 넘쳐났으면 좋겠다. "무슨 책 읽어?""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09 이영재

[참성단]한글날

한글은 쉽다. 창제자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서문에서 장담한 대로다. '어리석은 백성이 쉬이 익힐 수 있는 스물여덟자'가 한글이다. '미스터 션샤인' 유진 초이(이병헌)가 어린 시동에게 약간의 무안만 당하면 금방 익힐 수 있는 문자가 한글이다. 세종이 백성을 가엾게 여기지 않았다면 유진 초이는 고애신의 고백 '보고십엇소'에 닿기까지 천자문을 외우느라 진땀을 흘렸을지도 모른다.세종이 백성이 배우기 쉬운 표음문자 창제에 전력을 기울인 이유는 표의문자인 한자(漢字)가 우리 언어와 맞지 않아서 '말하고자 할 바가 있어도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백성'을 위해서였다. 백성 모두가 문자로 상통하는 조선을 꿈꾸고 실현한 것이다. 세종의 어진 마음 덕분에 한국어는 모든 소리를 한글로 옮길 수 있게 됐고, 한자로는 의미를 가두고 확장할 수 있게 됐으니, 후손들이 누리는 문자생활의 이익을 가늠하기 어렵다.그러나 바야흐로 한글 수난시대다. 형태는 무시로 훼손된다. 존맛탱(아 맛있다), 롬곡옾높(폭풍눈물), 사바사(사람 바이 사람. 사람마다 다르다) 등 급식 먹는 중·고생의 급식체는 해독불가다. 방송사 예능프로 자막은 난수표에 가깝고, 뉴스자막에서 오자는 일상이다. 문자의 품위는 비루해졌다. 시종일관 욕설로 일관하는 인터넷 사용자들의 댓글공방을 보면 한글을 이렇게까지 막 쓸 수 있을까, 경이로울 지경이다.문자로 반목하는 정치권의 구태도 여간 걱정이 아니다. '최저임금'이라 쓰고 여권은 더 올려야 할 노동자의 최소임금이라 해석하고, 보수야당은 자영업자 말살 임금이라 주장한다. '국가보안법'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겐 폐지의 대상이고 보수야당에겐 체제안위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보장이다. '종전선언',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싼 정부여당과 보수야당, 미국과 북한의 입장과 해석에 차이가 확연하다.최소한 우리 내부에서는 합의된 의미로 새겨야 할 문자이다. 그래야 우리끼리 상생이 가능하고, 밖에 나가서는 힘을 받는다. 세종은 백성들이 문자로 상통하는 조선을 원했지만, 오늘 대한민국은 문자로 갈라지는 위태로운 시절이다. 문자가 문자 본래의 의미를 가질 수 있도록 서로 소통해야 위대한 문자, 한글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08 윤인수

[참성단]당신은 행복합니까

유엔이 발간한 '2018 세계 행복보고서'를 보면 156개국 중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57위, 사회적 관계지수는 95위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19세 이상 남녀 2천명을 대상으로 행복에 관해 물은 결과 '불행하다'는 답변이 73.4%에 달했다. 나이별로는 19~29세(76.9%), 30~39세(77.9%), 40~49세(75.7%), 50~59세(75.0%) 등 상당수 국민들이 자신의 불행을 호소했다. 양극화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 무한경쟁, 자영업의 붕괴, 고용지표 악화 등 팍팍한 경제사정을 고려하면 지금 우리를 둘러싼 것이 '행복하지 않은 조건'들로 채워져 있는 것만은 분명한 모양이다.경인일보가 창간 73주년을 맞아 내놓은 화두는 '지금 우리 행복한가요'다. 이런 특집을 마련한 건 우리 사회가 그리 행복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독자를 대상으로 한 행복에 대한 조사 결과는 의외다. 응답자들은 행복의 1순위로 '가족'을 꼽았고, 절대다수가 '지금보다 앞으로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고 미래를 희망있게 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플라톤은 행복의 조건에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과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를 들었다. 칸트는 행복의 세 가지 조건으로 첫째 할 일이 있고, 둘째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셋째 희망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행복학 권위자 에드 디너도 '모나리자 미소의 법칙'(21세기북스)에서 "지속적이고 완벽한 행복은 실현 자체가 불가능하니 조금 불행한 행복을 원하라"고 조언한다.헬렌 켈러는 자서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서 이렇게 적었다. '첫날에는 내게 삶의 보람을 느끼게 해 준 친절하고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오후에는 들과 산으로 가서 예쁜 꽃과 풀들을 볼 것이다. 저녁이 되면 황홀한 노을 앞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릴 것이다. 둘째 날에는 동트기 전 일어나 잠든 대지를 깨우는 태양의 장엄한 광경을 경건하게 바라볼 것이다. 마지막 날에는 아침 일찍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밤에는 도시 한복판에서 네온사인이 반짝이는 거리와 쇼윈도에 진열된 멋진 상품들을 보고 싶다.' 우리가 매일 마주쳐 행복이라고 느끼지 못할 정도의 사소한 것들이 헬렌 켈러에겐 절대적인 소원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07 이영재

[참성단]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지금의 가수 양희은을 있게 한 건 '아침이슬' 때문만이 아니다. 그녀의 목소리와 너무도 '딱' 어울렸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 불후의 명곡으로 양희은 더 유명해졌다. 가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 "너의 침묵에 메마른 나의 입술. 차가운 네 눈길에 얼어붙은 내 발자국. 돌아서는 나에게 사랑한단 말 대신에 안녕…" 실연당한 연인들은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수많은 눈물을 흘렸다. 1936년 12월 11일. 영국 국왕 에드워드 8세는 전 세계를 향해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왕위를 포기한다." 왕의 마음을 흔든 건 이혼녀 월리스 심프슨 부인. 이혼녀와는 결혼할 수 없다는 영국교회의 반대에 "그녀가 없으면 왕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며 왕관을 버렸다. 그의 말은 전 세계 연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세기의 사랑에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과 부인 브리지트 트로뉴를 빠질 수 없다. 마크롱은 10학년이던 15세 때 프랑스어를 가르치던 40세 교사 브리지트 여사를 만났다. 브리지트는 3명의 자녀를 둔 유부녀. 심지어 브리지트의 딸은 마크롱과 같은 반 친구였다. 아들의 연애 소식을 들은 부모는 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그들의 불같은 사랑을 막을 수 없었다. 지난달 29일 중간선거 지원 유세 도중 "나는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고 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폭탄 발언은 놀라웠다. 그는 "나는 과거에 매우 거칠었고 김 위원장도 마찬가지였지만 서로 밀고 당기기를 하다가 우린 사랑에 빠졌다"고 말했다. 앞 뒤를 떼고 이 부분만 들었다면 세계는 트럼프의 커밍아웃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어디로 튈지 모르는 두 사람의 성향 때문에 '사랑타령'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눈길도 만만치 않다. 어제 코리 가드너 민주당 의원은 "이혼을 대비한 혼전계약을 맺었길 바란다"고 했고, 크리스 머피 민주당 상원 외교의원도 "독재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말하는 것은 매우 쌀쌀하고 잔인하다"고 조롱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절친으로 알려진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 조차 "사랑같은 소리 집어 치우라. 김정은은 사랑할 구석이 아무것도 없다"고 일침을 놨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결판나면 "후폭풍은 끔찍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그래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보다 '이루어 진 사랑'이 보는 이들에겐 더 좋다. 두 사람의 움직임을 전 세계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04 이영재

[참성단]과도한 대북(對北) 로맨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했다. 김 위원장의 '아름다운 편지'가 두 사람의 연정에 불을 붙였단다. 대한민국 대통령 비서실장은 출중한 외모로 김 위원장의 실세 피붙이 김여정의 팬클럽 회장에 당첨됐다. 당사자인 임종석 실장 대신 '외모패권'에 밀린 박원순 서울시장이 공개했다. "사람들이 김여정의 팬클럽 회장을 하겠다고 난리였다"는 것이다.미북정상회담을 겨냥한 정치적 수사이자, 평양남북정상회담의 훈훈한 장면을 강조하는 여담으로 치부할 수 있다. 정식으로 평론하자면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조롱받기 십상일 게다. 하지만 현재 조성된 남북 평화무드에 취해 낙관적 언어유희가 난무하는 현실은 걱정이다.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적 선언"이라며 "북한이 약속을 어길 경우 언제든 취소할 수 있다"고 미국에 북한과의 종전선언을 압박한 발언은 종전선언 자체의 의미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우리와 미국은 종전선언의 몸값을 최대한 높여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실행 조치를 받아내야 할 입장이다. 기능을 다한 영변핵단지 폐기를 위해 종전선언 카드를 써버리면, 조명균 통일부장관이 인정한 최대 60개의 북한 핵무기를 폐기하기 위한 외교카드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종전선언을 남북평화협정의 시발로 삼으려는 노심초사는 이해하지만, 그럴수록 종전선언은 귀하게 쓸 카드 아닌가.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남북철도 연결비용과 관련 "통일되면 다 우리나라 것이 된다"고 말했다. 지금 남북미 협상은 통일협상이 아니라 북한의 정상국가화를 통한 남북체제 공존협상 아닌가. 또한 대통령 말대로 북한이 핵폐기 약속을 어기면 취소 가능한 종전선언이라면, 우리의 대북투자가 우리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물론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이 절체절명의 남북미 협상에서 대한민국의 실리를 챙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는다. 다만 '트럼프의 사랑', '김여정 팬클럽 회장'류의 낭만적 에피소드와 낙관적 전망의 범람으로 엄숙한 시대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가 흐트러질까 저어할 뿐이다. 반대로 북한은 김정은 남매의 이미지 외교와 실무진의 실리 외교라는 전략적 톱니바퀴가 절묘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느낌이다. 전체주의의 효율이 두렵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03 윤인수

[참성단]부러운 일본의 기초과학

2018년도 노벨상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혼조 다스쿠 교토대 명예교수가 선정됐다. 이로써 일본은 노벨상 생리의학상 분야에서만 역대 수상자가 5명이 됐다. 올해 118년째를 맞은 노벨상은 6개 분야에 걸쳐 총 924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중 일본인 수상자는 1949년 물리학상에 유카와 히데키 이래 27명(외국 국적 취득자 3명 포함)으로 늘었다. 이중 우리가 주목할 것은 23명이 기초과학 분야에서 나왔다는 점이다.일본은 어떻게 기초과학의 강국이 됐을까. 메이지 유신 후 새로운 지식을 수용하며 근대화를 선도했고, 패전 후 정책적으로 과학기술을 육성한 것이 노벨상이라는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졌다. 우리가 2011년 설립한 기초과학연구원(IBS)의 모델이 된 '이화학연구소'를 일본은 1917년에 설립했다. 특히 70년대에 들어서 막대한 금액을 연구개발에 쏟아부은 것이 주효했다. 국가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도 R&D 예산을 GDP의 2% 이상 확보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1995년 '과학기술기본법' 제정으로 연구에 날개를 달았다.여기에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일본인 특유의 장인정신은 기초분야 강국의 원인으로 꼽힌다. 2008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마스카와 도시히데·고바야시 마코토 교수는 대학 선후배로 만나 무려 35년간 소립자 연구의 한 길만 걸었다. 선배 마스카와가 소립자의 6개 쿼크 존재설을 제시하고, 후배 고바야시가 이론적으로 증명해낸 것이다. 특히 마스카와는 "노벨상 시상식 참석이 생애 첫 해외여행"이라고 밝혀 충격을 주었다. 이처럼 관심 분야에 몰입하는 오타쿠 문화가 한 우물을 파는 연구로 이어졌다. 올 수상자 혼조 교수의 "기초의학 연구자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수상 소감은 이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한 것이다.우리는 왜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할까. 전문가들은 국제공동연구 등 네트워크의 부족과 짧은 기초과학연구의 역사를 꼽는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기초과학연구가 시작된 것은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설립되면서부터다. 왜곡된 인식도 한 원인이다. 만일 우리도 일본처럼 한 분야에 집중 지원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특혜를 준다고 난리가 날 것이다. 우리가 노벨 문학상에 목을 매고 있을 때마다 "한국인은 책도 안 읽으면서 노벨문학상만 바라고 있다"는 외신들의 아픈 지적을 이제 곰곰이 생각해볼 때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02 이영재

[참성단]노인의 나라

노인복지법을 비롯한 각종 법률상 공경의 대상이 되는 노인의 기준 나이는 65세다. 전체인구 대비 65세 인구 비율로 유엔이 정한 기준대로라면 대한민국은 노인의 나라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2000년 고령화사회(7% 이상)에 진입한 지 18년만인 지난해 고령사회(14% 이상)로 진입했고, 8년뒤인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20% 이상)가 될 전망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추산에 따르면 2050년엔 65세 노인인구가 35.1%에 달해 일본과 별 차이없는 세계 2위 노인대국이 된다.노인의 나라를 향한 가속에 비해 대한민국 노인복지는 참담한 수준에서 답보중이다. 46.7%의 노인빈곤율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1위이고, 공적연금을 비롯한 노인 소득보장제도 수준은 전세계 96개 나라 중 82위란다. 나이 들어 돈에 쪼들린 탓일까. 노인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다. 보건복지부의 '2017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 5명 중 1명이 우울증을 앓는 가운데, 이중 6.7%가 자살을 생각해봤고 13.2%는 실제 시도했다니 장수시대의 우울한 풍경이다.유엔은 이미 2009년에 '100세 인간(homo hundred)시대'를 선언했다. 장수시대를 연 인류를 향한 축복 보다는, 장수시대를 대비한 변화와 혁신을 강조한 경고의 의미가 짙은 선언이다. 우리나라도 노인은 공경의 세대가 아니라 문제의 세대로 떠올랐다. 노인복지의 시발점을 지금처럼 65세로 고정시킬 경우 노인복지 예산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회적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특히 저출산 현상의 고착으로 인해 노인세대를 떠받칠 청소년 세대가 급감하면서, 예산 등 공적 자원의 배분을 놓고 세대간 내전이 임박한 실정이다.노인 기준 연령을 상향조정하자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30년 전이면 몰라도 이제 65세라 해서 노인이라 자처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전히 팔팔한 심신으로 생산현장을 누비고 싶은 나이에 지하철 무임승차에 만족할 젊은 노인이 얼마나 될까. 오늘이 노인의 날이다. 전국의 100세 장수노인에게 청려장이 전달된다. 100세 노인에게 지팡이가 필요하듯, 젊은 노인에겐 지팡이 대신 일자리가 절실한 시대다. 일자리만 있다면 애매한 노인을 확 줄일 수 있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01 윤인수

[참성단]건군 70주년 국군의 날

오늘은 70주년 국군의 날이다. 이전에는 육군은 국방경비대 창설일인 1946년 1월 15일, 해군은 해방병단 결단일인 1945년 11월 11일, 공군은 육군 항공부대에서 독립한 1949년 10월 1일을 기념해 군별로 행사를 치렀다. 그러다 이를 통합 1956년부터 오늘을 국군의 날로 못 박았다. 6·25전쟁 당시 우리의 3사단 23연대 군인들이 양양지역에서 최초로 38선을 돌파한 날이 10월 1일이었기 때문이다.군 독재시절 국군의 날 행사는 북한에 보내는 경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정권의 권위를 과시하는 게 목적이었다. 준비도 요란해서 한 달 넘게 야영하며 행사를 위한 훈련을 하곤 했다. 연일 수원비행장을 이륙하는 비행기로 인해 소음이 심해지면 '곧 국군의 날이구나'할 정도였다. 마침내 그날, 대규모 병력이 미사일과 탱크 등을 앞세우고 군 통수권자에게 '충성!' 구호를 외치면 여의도가 '움찔'했다. 기념식 후 도심을 관통하는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유명 연예인들이 굳게 입을 닫고 행진하는 군인을 향해 마구 달려가 화환을 걸어주던 모습은 나름 '볼거리'였다.1980년대에 들어서 행사가 전시성이라는 비난을 받자 '3년마다' 규모 있게 치르기로 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이조차도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하던 그 해, 기념식 장소가 계룡대에서 성남 서울비행장으로 바뀌고, 시가행진도 부활됐다. 또 대규모 행사를 '5년마다' 치르기로 했다. 1998년 50주년엔 도심 시가행진을 벌였고, 2008년 60주년엔 테헤란로 일대에서 24종 86대의 대규모 군사 장비가 등장했고 2013년 65주년엔 숭례문~세종대로 구간에서 37종 105대 장비와 4천500명 병력이 참가한 시가행진이 열렸다.관례대로라면 건군 70주년인 오늘, 우리 군이 얼마나 성장해 왔는지 국민들에게 과시하는 행진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오늘 국군의 날 행사엔 우리 군의 보무당당한 행진을 볼 수 없게 됐다. 대신 용산전쟁기념관에서 가수 싸이와 걸그룹 등 인기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행사가 열린다. 남북대화로 인한 '평화의 시대'에 군사 퍼레이드가 모두에게 여러모로 불편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안보의 최후의 보루, '싸워 이기는 군대' 대한민국 국군의 강건한 모습까지 지웠어야 했는지는 의문이다. 건군 70주년 국군의 날 아침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건 그래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30 이영재

[참성단]뮌헨회담 80주년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가 뮌헨회담을 막 끝내고 돌아오던 1938년 9월 30일 그 날, 런던에는 폭우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영국 국민들은 공항까지 마중 나와 '평화협정서'를 들고 온 그를 뜨겁게 맞아 주었다. 그리고 외쳤다. "전쟁의 공포가 사라졌다!" 언론은 그가 총리 재임 중 기사 작위를 받는 영국 역사상 두 번째 인물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언론도 있었다. 영국 국민 앞에서 그는 히틀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 번 약속하면 믿을 수 있는, 협상 가능한 합리적 인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역사는 아무리 과정이 좋아도 결과가 형편없으면 실패한 것으로 기록된다. 체임벌린은 1938년 9월 29일 뮌헨에서 체코슬로바키아 수데테란트를 넘겨주는 조건으로 히틀러와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그는 "더 이상의 영토 요구는 없다"는 히틀러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이듬해 9월 1일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대전의 문을 열어젖혔다. 하지만 역사는 늘 아이러니다. 1945년 독일이 패배에 직면했을 때 히틀러는 자신이 궁지에 몰린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뮌헨이었어. 1938년 전쟁을 시작했어야 했어"라고 후회했다고 한다.뮌헨 회담은 '선의에 의존하는 협상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명제를 후세에 각인시켜 주었다. '적의 도발 앞에서 준비 없이 평화를 애걸하면 비극을 초래한다'는 역사적인 교훈도 남겼다. 트루먼 대통령이 한국전 참전을 결정했을 때도 '뮌헨의 교훈'이 인용됐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 내 강경파들은 케네디 대통령에게 "뮌헨 회담을 잊지 말라"며 전쟁을 독려했다. 베트남 전쟁에 뛰어들며 존슨 대통령은 "나는 체임벌린이 아니다"라고 공언하기까지 했다. 역사는 지금도 체임벌린을 협상으로 평화를 얻으려다 더 큰 불행을 자초한 '무능한 총리'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1940년 11월 눈을 감은 그는 사전 유언장에 "뮌헨이 없었다면 우리는 1938년 파괴됐을 것이다. 나는 결코 역사가의 평가가 두렵지 않다"고 적었다.내일은 뮌헨회담이 열린지 꼭 80주년 되는 날이다. 굳이 달력을 뒤적이면서까지 이날을 떠올리는 건 남북·한미회담에 이어 북미회담이 논의 중인 지금, 우리에겐 왠지 그냥 넘길 날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다. 우리는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가.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27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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