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도산 안창호함 진수식

옛날 뱃사람들은 바다에 신이 있다고 믿었다. 폭풍우와의 조우는 해신(海神)의 노여움 때문으로 여겼다. 인신 공양도 자행됐다.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간 심청이 이야기가 터무니없는 상상만은 아니다. 하지만 폭풍우를 만날 때마다 산 사람을 바다에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배를 만들어 처음 물에 띄울 때 거대한 의식을 진행했다. 그것은 대자연에 생명을 지켜달라고 비는 경건한 제례의식, 진수식(進水式)이다. 어부는 만선을 빌고, 군인은 해전에서의 승리를 기원했다.진수식을 여성이 주도 하는 것도 상징적이다. 금빛의 도끼로 진수 테이프를 잘라내는 것은 바다와 육지를 떼어내는 것이지만, 갓 태어난 생명의 탯줄을 끊는 것과도 흡사하다. 과거 진수식에는 뱃머리에서 붉은 포도주병을 깨뜨리곤 했다. 붉은색은 희생양, 속죄양의 의미로 피를 의미한다.진수식보다 먼저 거행하는 것이 명명식(命名式)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의 방패가 아이기스(Aegis). 영어로 읽으면 이지스다. 우리의 이지스함에는 세종대왕이나 충무공 이순신처럼 성군이나 영웅의 이름을 붙였다. 호위함은 '충북함'처럼 광역시·도나 도청소재지를, 초계함은 '천안함'과 같이 중·소 도시 이름을 사용한다. 잠수함에는 안중근·김좌진·윤봉길·유관순·홍범도·이범석·신돌석 등 항일 독립운동가 이름이 많다. 해군의 3천t급 잠수함 '장보고Ⅲ' 1번함이 '도산 안창호함'으로 명명됐다. 도산 안창호 함은 국내 독자 기술로 설계하고 건조한 첫 3천t급으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군은 2020년부터 총 9척을 차례로 전력화해 지금의 1천200t급 잠수함을 대체할 계획이다.의미가 깊은 도산 안창호 함의 진수식을 애초 29일 열기로 했다가 다음 달로 늦추기로 해 구설에 올랐다. "3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눈치 보기 때문에 일정을 연기한 것"이란 언론보도에 방사청은 "사실무근"이라고 발끈했다. 하지만 국방백서에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란 문항 삭제가 추진되고, 건군 70주년 국군의 날 군사 퍼레이드가 취소된 와중에 진수식마저 연기됐으니 오해받을 만도 했다. 더구나 북한은 9·9절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준비 중이다. 잠수함에 명명된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도대체 뭐라 할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23 이영재

[참성단]이판사판 조계종 분규

한국불교의 대표 종단인 조계종의 내우(內憂)가 진정될 기미가 안보인다. 분규의 중심이었던 설정 스님이 지난 21일 총무원장을 사퇴했지만, 이번엔 후임 총무원장 선출방식을 놓고 내분이 격화되고 있다. 종단의 제도권력인 중앙종회와 교구본사주지협의회는 현행대로 간선제를, 불교개혁행동 등 재야세력은 직선제 전환을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불가(佛家)의 구분에 따르면 조계종 총무원은 종단의 살림살이를 건사하는 사판승(事判僧)의 영역으로, 이판승(理判僧)의 참선·수행과 중생제도를 지원해야 한다. 불목하니 스님의 공덕으로 고승은 장좌불와에 전념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의 위세는 교리마저 초월하는 것인지, 종단의 살림을 맡은 총무원 권한이 비대해지면서 총무원장 자리를 둘러싼 종단내 권력투쟁이 심각해졌다.총무원장이 교체될 때마다 유명한 사찰에서 주지 자리를 놓고 절 쟁탈전이 벌어지고, 신자들이 편을 갈라 대립하는 시비가 잇따랐다. 도박, 성추문 등 스님들의 일탈을 알리는 뉴스가 끊이지 않았다. 설정 스님은 은처자 의혹에 걸려 총무원장을 사퇴했지만, 이전 총무원장 또한 이런저런 의혹으로 매스컴을 장식했다.파사현정을 일갈하던 고승대덕의 법맥(法脈)은 희미해지고, 불교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차가워졌다. 조계종이 운영하는 중앙승가대학은 정원을 못 채워 전전긍긍이고, 천년 고찰들도 출가자가 없어 애태운다. 이러다 스님 없는 절이 속출할지 모른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불교신자는 762만명으로 개신교(967만명)에 제1종교 자리를 내주었다. 10년 전에 비해 300만명의 신도가 사라진 결과였다.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승려의 지위가 천민으로 전락하자, 이판승이든 사판승이든 중 되는 일을 인생막장으로 여겼다. '이판사판'의 유래다. 이젠 불교계가 스스로 자정하지 않으면 이판이든 사판이든 대중의 불신을 받아 불교를 이판사판 막장에 빠트릴 지경이다.불교는 한국문화의 정수다. 불교를 뺀 채 한국문화를 설명하기 힘들다. 조계종 자정을 통한 불교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은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정화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조계종 사부대중이 이판사판 실력 대결이 아니라 불법에 귀의해 종단개혁에 성공하기를 바란다. 최근에 입적한 무산 조오현 스님은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라 했다./윤인수 논설위원

2018-08-22 윤인수

[참성단]고용파국 책임론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2013년 11월 20일 국무조정실장 재임 당시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대학생 토크 콘서트 '열정락(樂)서'에서 강연을 했다. '열정락서'는 경제·경영·문화계 대표 인사를 비롯해 삼성의 CEO, 임직원들이 청춘의 멘토로 나서 열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나누는 소통 프로그램. 처음에 김 실장은 삼성의 초청을 여러 번 거절했다. 장관급 공무원이 삼성 주최 강연을 했다가 괜한 오해를 살까 봐서다. 하지만 삼성이 거듭 요청하자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자신의 강연과 삼성을 결부시키지 말 것과 강연료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일 중독자' 김 부총리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그가 매사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5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갈등설이 불거졌을 때, 그는 "내각에 믿고 맡겨 달라"고 직접 대통령에게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정가에선 "김동연의 내공은 간단치 않다. 쉽게 패싱 당할 사람이 아니다"는 말이 회자됐다.박근혜 정부 출범 전인 2013년 1월 기획재정부 2차관 시절 그는 사적인 자리에서 "관료는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공직에 있으면 언제든지,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한다"며 "그래야 소신껏 일할 수 있다"고 말해 주변 사람들은 그가 "잘리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정 상황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아주대학교 학생과 교수, 동문 상당수는 김 부총리에 대해 좋게 기억을 하고 있다. 당시 김동연 아주대 총장은 '브라운 백 미팅'을 통해 학생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정례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애초 2주에 한번 학생들과 점심을 하며 학교 운영에서부터 진로, 취미,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주제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신청자가 너무 많자 매주 하는 것으로 바꿨다. 그만큼 김 총리는 소통을 중요시했다.고용참사 해법을 두고 김 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이 다시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언론이 너무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고 볼멘소리다. 보다 못한 문재인 대통령은 양쪽에게 "결과에 직을 걸라"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세간 여론은 혈세를 더 투입하겠다는 청와대보다 "필요하면 정책 방향을 수정해 나가겠다"는 김 부총리 발언에 더 무게가 실린 것으로 관측된다. 어찌됐든 최악의 고용재앙을 푸는데 김 부총리의 소신이 통할지 두고 볼 일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21 이영재

[참성단]금강산 21차 이산가족 상봉

오늘 아침 이시득 옹은 금강산에서 눈을 떴을게다. 어제 하루는 초현실적이었을 것이다. 올해 나이 아흔다섯. 광복되던 그해 남동생과 함께 남쪽으로 왔다가 73년을 놓아 버린 북녘 가족과 겨우 연이 닿은 하루였다. 보고 싶었던 두 여동생 대신 상봉한 두 조카였다. 조카들 얼굴에서 부모와 어릴 적 두 여동생 영금이 영화의 얼굴을 짐작했을 터이니 그것으로 족했을까?어제 남측 이산가족 89명이 북한 금강산 호텔에서 북한 가족과 상봉했다. 남북 적십자사가 주선한 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다. 남측 상봉단엔 고령자가 많이 포함됐다. 101세의 백성규 옹을 비롯해 20명 이상이 휠체어 없이는 이동이 불편한 상태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부모는 당연하고 형제자매는 물론 자녀들과의 직접 상봉이 힘든 경우가 많다. 이미 사망한 가족들이 많아서다. 백 옹도 며느리와 손녀를 만났다.그나마 추첨을 통해 상봉단에 선발된 이산가족들은 운이 좋은 경우다. 5만6천890명의 생존자 중에 선발됐으니 말이다. 이산가족 등록자 13만2천124명 중에 7만5천여명이 상봉을 고대하다 타계했다. 지금처럼 100명 규모의 상봉행사를 진행한다면 남은 이산가족 전체의 상봉에 568회의 상봉행사가 필요하다. 2000년 1차 상봉에서 이번까지 21회의 상봉행사에 18년이 걸린 상봉 속도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목표다.하지만 실제 필요한 상봉횟수는 해마다 급속히 줄어들 것이다. 매달 수백명의 고령 이산가족이 세상을 뜨기 때문이다. 동병상련의 이산가족 사망으로 인해 상봉 확률이 높아지는 셈인데, 생존 이산가족들이 이처럼 잔인한 확률을 반길리 없다. 뾰족한 수가 없다. 남북 고령자 이산가족들의 전면 상봉을 서둘러 실현해야 한다. 상설면회소를 설치해 생사확인이 된 이산가족들이 1년 내내 만나게 해야 한다.경인일보 인터뷰에서 "찰밥을 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던 이시득 옹은 금강산 첫날 꿈에나마 그 어머니를 상봉했을까. 아니면 평생 한이 풀려 밤마다 찾아오던 그리운 꿈 마다하고 편히 주무셨나. 꿈 같을 것이다. 금강산 혈육상봉 2박3일이 꿈인지, 남녘에서의 이산 세월 75년이 꿈 같을지 분간이 힘들지도 모르겠다. 수원시 화서동 그의 집에서 상봉 이전처럼 무심하게 지낼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궁금하다고 물을 일도 아닐 것이다. 익명의 시인이 오래 전에 마련해둔 답변이 있다. "소감이요? 심정이요? 그걸 말로 할 수 있갔소?" /윤인수 논설위원

2018-08-20 윤인수

[참성단]한국 국가대표 축구감독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후 팬들의 관심은 요하임 뢰브 독일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에게 쏠렸다. 한국에 충격의 2대0 패를 당하고, 조 최하위로 예선 탈락한 독일축구 명감독의 거취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독일 축구협회의 발표는 간단했다. "우리는 모두 뢰브 감독이 정확히 분석하고 올바른 조치를 통해 대표팀을 다시 성공의 길로 이끌 것으로 확신한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경기 도중 차범근 대표 감독을 날려버린 대한축구협회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한국 축구의 역사는 '감독 변천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외국인에게 대표팀 감독은 말할 수 없이 혹독한 자리다. 거스 히딩크 감독 이후 영입된 외국인 감독들은 히딩크 같은 '전폭적인' 지원도 받지 못하면서도 언제나 히딩크와 비교되며 질타를 받았다. 2003년 움베르투 코엘류, 2004년 조 본프레레, 2005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수난받은 외국인 감독'으로 기록된다. 특히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축구를 27년 만에 아시안컵 결승에 진출시키고 2015년 연승, 무실점 경기 등 각종 신기록도 갈아 치웠다. '제2의 히딩크', '갓틸리케(God+슈틸리케 )'라는 별명을 들었지만, 성적이 부진하자 경질됐다. 얼마나 화가 났던지 그는 지금도 한국축구에 온갖 독설과 저주를 퍼붓고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자리를 '독이 든 성배'라고 한다. 잘하면 본전이고 잘못하면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배인 줄 뻔히 알면서도 잔을 들었다가 끝이 좋았던 건 오직 히딩크 감독밖에 없었다. 그래도 국가대표 감독을 거부하지 못하는 건 국가대표감독 자리가 돈과 명예 등 나름의 매력이 있어서다. 그래도 '총리를 맡는 것보다 축구감독이 더 힘들다'는 영국 격언처럼 '국대감독'은 힘든 자리다.한국 국가대표 축구감독에 파울루 벤투 감독이 선임됐다. 첫날부터 뒷얘기가 난무하고 있다. 3명의 후보들과 협상을 벌였지만, 연봉문제로 결렬돼 차선책으로 벤투 감독이 선정됐다는 등의 말이 축구협회 관계자 입에서 술술 나오는 건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성적이 부진할 경우 "그거 봐라! 원래는 벤투가 아니었다"고 책임을 전가할 태세다. 벤투 감독도 한국 축구협회의 이런 명성(?)을 익히 들었을 것이다. 벤투 감독에게 두 가지만 당부한다. 귀를 꽉 막아라! 아무 것도 들리지 않게. 그리고 첫 경기는 반드시 이겨라! 그것도 시원하게.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19 이영재

[참성단]이탈리아판 성수대교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배경으로 1994년이 선택된 것은 '그 해'가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전환점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1994년 여름은 기상관측이래 최대의 폭염으로 기록된 해였다. 북한 김일성이 사망한 것도, 인간말종 지존파 사건이 터진 것도 1994년이었다. '문화대통령' 서태지가 교육 현실을 비판하며 '교육 이데아'를 불러제껴 문화적 대 충격을 가져온 것도 1994년이었다.무엇보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강남구 압구정동과 성동구 성수동을 잇는 '성수대교의 붕괴'는 대한민국 급성장 과정에서 만연된 부실공사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준공된 지 15년밖에 안 된 다리의 붕괴로 출근하던 회사원, 등교하던 학생 등 49명이 탄 버스가 한강으로 추락해 31명이 사망했다.성수대교 붕괴는 단기간 성과를 내기 위해 저질러졌던 부실공사의 문제점을 우리 스스로 깨닫는 계기가 됐다. 그 무엇보다 안전공사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이듬해 그 끔찍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겪으면서 "정말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라는 묵시적인 국민적 대 합의가 이뤄졌다.14일 이탈리아 북부 제노바에 있는 모란디 다리 80m 구간이 무너져 사망자 수가 42명을 넘어섰다. 이 사고를 접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날의 성수대교'를 떠올렸을 것이다. 우리가 놀란 건 어떻게 이런 후진국적 사고가 한때 세계 경제 5강을 구가했던 이탈리아에서 일어났을까 하는 점이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이탈리아 경제는 그리 녹록지 않다. 2007년 5.7%를 기록했던 실업률은 지난해 11% 선에 머물고,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32% 수준으로 EU 회원국 중 그리스 다음으로 많다. 다리의 부실한 유지관리가 도마에 오른 것도 만성적인 재정위기 탓이란 지적이 그래서 설득력을 가진다. 정치상황도 최악이다. 2011년 유로존 부채 위기 이후 네 명의 총리가 권좌를 오르내렸다. 그 틈을 노려 부패 스캔들과 재정 위기를 초래하고 물러났던 83세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정계에 복귀했다. 진짜 '올드보이의 귀환'이다. 이 모두 포퓰리스트가 난립하는 이탈리아의 혼란한 정치 상황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찌 됐건, 모란디 다리는 우리에게 1994년 '그 해'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여러모로 괴롭고, 무엇보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16 이영재

[참성단]안희정 재판의 '정조(貞操)' 논란

여비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됐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두 사람 사이의 위력관계는 인정하나, 안 전 지사의 위력행사는 증명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반향과 후폭풍이 엄청나다. 여성단체의 반발과 저항이 예사롭지 않다. 한 여성단체의 집회에서는 '사법정의는 죽었다'는 피켓이 등장했고 "안희정이 무죄라면 사법부는 유죄"라는 주장이 터져나왔다. 미투 운동의 종결지여야 할 법원이 '성폭력 관련 사법논란'의 진원으로 주목받는 양상이다.'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법언 그대로 안희정 사건 1심 재판부의 판결은 존중해야 한다. 다만 피해자 김지은씨가 1심 판결에 대한 입장문에서 "재판정에서 피해자다움과 정조를 말씀하실 때 결과는 이미 예견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주장한 대목이 마음에 걸린다. 여성단체는 "지난 7월 6일 비공개 피해자 심문에서 재판부가 김씨에게 '정조를 지키지 않고 뭘 했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더 구체적인 내용을 밝혔다.김씨와 여성단체의 전언대로 재판부의 '정조' 발언이 사실이라면, 1955년 박인수 사건 1심 판결문이 저절로 떠오른다. 박인수는 해군대위를 사칭해 70여명의 미혼 여성을 농락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장은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며 혼인빙자 간음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여성에게 정조를 지킬 의무를 강제했던 유교문화가 정정했던 50년대의 판결이었다. 1994년 성폭력방지법 제정과 함께 '정조'라는 단어는 법전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2018년 법원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에게 '정조' 운운 했다면 시대착오적이다. 한국 남성들은 박인수 재판에서 '보호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는 1심 무죄판결만 기억하지만 항소심 판결은 달랐다. "댄스홀에 다닌다고 해서 모두 내놓은 정조가 아니다"며 "고의로 여자를 여관에 유인하는 남성이 나쁘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박인수는 간음죄로 1년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은 상고 기각으로 이를 확정했다.피해자 김 씨의 의지와 여성들의 반발여론을 감안하면, 안 전 지사에게 4년을 구형했던 검찰의 항소는 당연해 보인다. 2심 재판의 판결이 주목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8-15 윤인수

[참성단]광복절 아침에

광복절 아침이다. 73년 전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광복 그날의 풍경은 이랬다. "그때, 분명 그때, 뜰에는 이상한 여름꽃들이 피어 있었다. 하지만 원추리와 능소화 같은 낯선 꽃들이 우리를 그렇게 놀라게 한 것은 아니었다. 8월의 하늘을 향해 마치 용(龍)의 비늘처럼 번득이며, 솟구치는 한 폭의 깃발이 있었다. 성조기도 아닌, 유니언 잭도, 청천백일기도 아닌, 더더구나 일장기도 아닌, 처음으로 보는 그 깃발이 우리들의 어린 가슴을 북처럼 자꾸 두들기고 있었다."벼락같이 다가온 해방. 처음 태극기를 보았을 때의 감흥을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 이어령은 이렇게 썼다. 태어나서 처음 본 이상야릇한 깃발이었지만 무엇이 어린 가슴을 두드렸다. 비단 이어령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73년 전 오늘 그 또래들에게 해방이 준 선물인 '태극기와의 조우'는 그런 흥분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오늘은 광복 73주년이다. 하지만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건국을 둘러싼 논쟁으로 '광복절'은 이제 공휴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소년 이어령과 그 또래의 가슴을 두드렸던 환희의 '그날'이 아니다. 그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 토론회- 건국일 끝장토론'까지 열렸다. 우파 진영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정부가 탄생한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좌파 진영은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일을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주장한다. 양측의 격앙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사실 내년이 더 두려워진다. 이미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일을 대한민국 건국일이라고 선언한 상태다. 정부는 내년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펼칠 모양이다. 그러니 진보와 보수의 충돌은 불을 보듯 뻔하다. 도산 안창호의 나라 사랑은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일본도 아니요, 이완용도 아니다. 망하게 한 책임자가 누구냐. 그것은 나 자신이다. 내가 왜 일본으로 하여금 손톱을 박게 하였으며, 내가 왜 이완용으로 하여금 조국 팔기를 용서하였소! 그러므로 망국의 책임자는 나 자신이다." ' 겨레의 스승' 도산 안창호는 망국의 원인을 그 누구의 탓으로 돌리려 하지 않았다. 모두 우리 책임이라는 것이다. 광복절 아침, 좌·우를 향해 "정신 차려라!" 소리치는 도산의 호령이 귓가를 두드리는듯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14 이영재

[참성단]문재인 정부와 연금 개혁

정부가 지난 주말 국민연금 개선방안을 슬쩍 흘렸다가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혼비백산, 일요일 보건복지부 장관이 출근해 "정부안이 아니다"고 발뺌하는 소동을 벌였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비난성 청원으로 도배됐다. 국민연금 폐지 주장 부터 '죽기 전에 받아볼 수 있는거냐'는 조롱이 넘쳤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국민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정부의 일방적인 국민연금 개편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직접 진화에 나서야 했다.분명한 건 국민저항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제도 자체는 유지해야 하고, 유지하려면 개선과 개혁이 불가피한 현실이다. 635조원의 기금은 세계 3위 규모이지만, 기금고갈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이 5년마다 70년 후의 연금재정을 감안해, 수령 시기와 금액을 조정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더군다나 저출산, 저성장 추세가 완연한 우리사회는 연금재정 고갈 시한이 단축되면서 보험료 인상, 가입연령 상향, 수급개시 연장이 불가피한 것도 사실이다.문제는 성난 민심이라는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에 있다.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연금개혁에 딴죽을 걸었던 정부·여당이 이제 '방울 술래' 순서가 됐다. 그런데 정부는 그동안 연금 개혁 보다는 국민연금을 통한 대기업 경영 감시방안을 고민했다. 정작 기금을 살찌울 기금운용본부장은 1년째 공석이고 운용수익률은 역대 최악이다.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네번의 결혼으로 반지의 제왕이라는 비아냥을 샀지만, 독일 경제호황의 기반을 마련한 정치력으로 유명하다. 98년 총리 취임이후 7년간 노동자 해고 제한 규정 완화, 연금수령 연령 연장, 의료보험 본인부담 확대 등 경제개혁 조치를 밀어붙였다. 그 대가로 그는 정권을 잃었지만, 독일경제는 통일 후유증을 털고 다시 비상했다. 올 초 방한 때는 "지도자는 선거에 패배하더라도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잃을 각오로 국민연금 등 4대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 동의와 사회적 합의에 매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수구보수 궤멸과 사회개혁을 위한 20년 집권설이 회자되는 상황에서, 연금개혁에 정권을 걸수 있을지 궁금해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8-13 윤인수

[참성단]바닥신호등

지하철을 타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목을 내밀어 스마트폰을 보는 자세가 마치 거북이 같다. 오랜 시간 이런 자세를 취하다 보니 거북이 목처럼 목이 앞으로 구부러져 '거북목 증후군'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걷는 사람들도 꽤 많다. 이들을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인 '스몸비족'이라고 한다. 스마트폰에 정신 팔려 주변을 인지하지 못한 채 걸어가는 좀비에 빗댄 말이다. 스몸비족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가 하면, 육교에서 굴러떨어지거나 지하철과 플랫폼 사이에 발이 끼여 골절되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 요즘은 '로드 킬' 당하는 고라니를 빗대 스마트폰을 보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스몸비족을 '폰라니(스마트폰+고라니)'라고 부른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본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시는 건널목을 건너면서 스마트폰을 보다 적발되면 15달러에서 최대 99달러까지 벌금을 물린다. 수원시와 용인시 등 일부 지자체들이 사거리 건널목에 바닥 신호등을 시범 설치했다. 스몸비족의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스마트폰에 정신 놓지 말고 바닥신호등을 보고 길을 건너라는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 중독이 사회문제가 된 마당에 많은 예산까지 들여가며 바닥신호등까지 설치하는 친절을 베풀어야 하느냐는 부정적인 여론도 만만치 않다. 지자체가 스마트폰 중독을 부채질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하철에는 시력보호를 위해 조명등을 설치하고, 덜컹거림을 방지하기 위해 완충용 좌석까지 설치해주라는 조롱 섞인 말도 들린다. 스마트폰 중독의 심각성은 많은 연구결과가 입증하고 있다. 2011년 데이비드 레비 미 워싱턴대 교수는 SNS 등 디지털에 중독됐을 때 사람의 뇌는 생각 중추인 회백질이 줄어들어 튀어 오르는 팝콘처럼 즉각적인 자극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술과 담배의 중독성보다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서구에선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줄여 오프라인의 여유를 찾자는 '디지털 디톡스(detox·해독)운동'이 확산일로다. '스마트폰을 두고 떠나자'는 디지털 디톡스 여행도 유행이다. SNS는 편리한 의사소통의 한 수단일 뿐, 삶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나름의 절제와 경각심이 필요하다. 일과가 끝나면 일체의 정보화 기기를 꺼버리는 '디지털 다이어트'를 해보면 어떨까.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12 이영재

[참성단]김상곤의 교육 실험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경기도교육감 재직 시절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 시행, 혁신학교 도입 등 보편적 교육 복지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나름 혁신이라 생각했겠지만, 경기도는 하나의 거대한 교육 실험장이 됐다. 그 결과 '2012년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평가'에서 김 교육감이 그토록 공을 들였던 경기도 혁신학교의 성적은 다른 학교들의 30% 수준에 불과했다. 학력저하를 우려하는 학부모의 반발이 컸다.문재인 정부와 함께 출범한 '김상곤 교육부'호의 다양한 교육실험은 이미 예견됐었다. 올 초 교육부가 영어 조기 교육 열풍을 꺾겠다며 느닷없이 유치원 영어수업 금지 방침을 발표한 게 그 좋은 예다. 선행학습금지법에 따라 초등 1, 2학년 영어수업이 금지됐으니 일관성 있게 진학 전 유아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반대여론이 들끓었다. 그러자 교육부는 시행 1년 유예를 발표하고 문제를 덮었다. 충분한 검토 없이 발표했다가 망신을 당한 것이다.당시 언론은 민감한 사안일수록 충분한 의견 수렴으로 공감대를 넓히려는 노력이 앞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불쑥 대학입시개편안 공론화를 발표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가장 관심이 많은 대학입시의 키를 국가교육회의에, 또다시 공론화위원회에 넘기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하청-재하청'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공론화 작업은 논란을 잠재우기는커녕 혼란만 더 부추긴 꼴이 됐다. 최종 결론은 이달 중 교육부의 대입확정안이 나와야 알 수 있지만, 사안은 더 복잡해졌다. 그러자 김상곤 교육부의 무능, 나아가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김상곤 자진 사퇴' 요구가 나왔다.그럼에도 '김상곤 교육부'는 '학교폭력 개선안' '유치원 방과 후 영어학습금지' 등도 또 공론화할 예정이다. 그것이 책임회피 차원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능력이 없어서 일 수도 있다. 교육부가 중대사안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공론화 뒤에 숨는다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그러나 여론 수렴이란 미명 아래 자행되는 공론화 실험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우리의 교육의 미래는 캄캄하다. 누가 뭐래도 이번 혼란은 '김상곤 교육부' 탓이다. 하지만 책임추궁은 나중 문제다. 당장 지금의 혼란을 잠재울 입시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의 교육실험은 참아주기 어렵다. 김상곤 부총리는 직을 걸고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09 이영재

[참성단]미투(Me Too) 열풍 그 이후

올해 1월 현직 검사 서지현이 검찰 내부의 성폭력 실상을 폭로하면서 미투운동 열풍이 순식간에 대한민국을 덮쳤다. 대한민국 공권력의 상징인 검사마저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서 검사의 폭로가 도화선이 돼 사회 각계각층의 미투 폭로로 들불처럼 번졌다.후폭풍은 어마어마했다. 먼저 문화계가 거덜났다. 시인 최영미의 시 '괴물'의 'En 선생'이 재조명되면서 문단의 거목 고은 시인은 수원시가 제공한 광교 집필실에서 물러나는 한편 문학관 건립사업은 흐지부지됐다. 연극계 대부 이윤택, 오태석을 비롯해 영화계의 김기덕, 조재현 등이 차례차례 피해자에게 호명됐다. 정치권에선 여권의 피해가 컸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수행여비서의 미투로 정치자산을 모두 잃었고, 서울시장 도전에 나섰던 정봉주 전 의원은 수많은 알리바이를 내세워 버티다가 결정적 증거 앞에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성추행 의혹을 받은 민병두 의원은 의원직 사퇴서를 던졌다.미투운동은 부수적인 논란도 많았다. 배우 조민기의 불행한 죽음으로 여론재판에 의한 사적 제재의 적정성 논란이 일었고, 진보진영을 강타한 미투운동의 적폐세력 음모설로 시끄러웠다. 수원교구 한만삼 신부의 선교지 성폭력사건은 교계 일각에서 그를 두호하는 바람에 교계 전체를 힘들게 했다.하지만 뜨거웠던 미투운동 열기는 남·북·미 정상회담, 6·13 지방선거를 거치며 급격히 시들었다. 사퇴 의사를 철회한 민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장이 됐다. 고은 시인은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 명예회복에 나섰고, 안 전 지사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며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서 검사는 안태근 전 검찰국장과 법정 공방 중이다. 엊그제 한 방송에서 배우 조재현의 새로운 성폭력 의혹을 방영했으나, 그동안 죄인을 자처했던 조씨도 이번엔 적극적으로 맞서고 나섰다.열풍은 가라앉고 가해와 피해의 실체를 가리는 일이 차분하게 진행중인 건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권력에 의한 성폭력 근절을 위해 국회에 넘긴 미투 관련법 대부분이 국회에 계류중인 건 이해하기 힘들다. 들끓는 여론에 놀라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던 여야 정당이 정작 법 통과에 미적거리니 그렇다. 여론에 반응했다 여론에 무심해지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8-08 윤인수

[참성단]전기 누진제의 역설

좌·우파의 경제 오류를 함께 비판하는 학자로 유명해진 조지프 히스는 저서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마티 刊)에서 낮은 전기요금으로 분배정의를 겨냥하는 좌파의 시도는 '공정가격의 오류'라고 비판했다. 낮은 전기료의 혜택이 저소득층에 국한되지 않는 것은 사실상 수요 공급의 왜곡된 효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물건을 많이 사면 가격이 싸지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다. 전기는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가격이 비싸진다. 누진제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사용 전력량에 따라 처음 200kwh까지는 1kwh당 93.3원이다. 하지만 400kwh를 초과하면 1kwh당 280.6원으로 최대 3배를 더 낸다. 전기는 한국전력이 만든 상품이다. 하지만 적자가 나도 가격을 마음대로 올릴 수 없다. 한전 주가는 2008년 8월 평균 3만1천원이었다. 10년이 지난 어제 주가는 3만450원. 10년 전 그대로다. 한전은 올해 1분기에 2천504억원의 적자를 낸 데 이어 2분기 역시 수천억 원대 적자가 확실시되고 있다. 생산원가는 오르는데 판매가를 올릴 수 없어서다. 그래도 망하지 않는 것은 적자를 정부가 메워주기 때문이다. 무슨 돈으로? 물론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누진제는 70년대 석유 파동 때 에너지 과소비를 막고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 전제조건이 있다. 저소득층은 전기를 조금 소비하고 고소득층은 전기를 많이 소비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저소득층의 전기 사용량이 많고, 소득이 많은 맞벌이 부부 등을 포함해 1~2인 가구의 전기사용량이 오히려 적다. 노약자가 많고, 다자녀 가구일수록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 전기사용이 많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누진제가 명분을 잃었다는 지적이 이래서 나왔다. 그런데도 당정은 7·8월 두 달간 누진제를 완화해 주기로 했다. 1단계·2단계 누진 구간을 늘려 1단계는 200kwh에서 300kwh로, 2단계는 400kwh에서 500kwh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면 총 2천761억원의 요금인하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혜택을 온전히 저소득층이 받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또 요금인하 효과만큼 한전이 입을 손실은 저소득층 지원에 쓸 예산으로 정부가 메워주게 될 것이다. 전력만 풍족하다면 이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다. 그런데도 탈원전 정책으로 일관하는 정부. 이런 아이러니도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07 이영재

[참성단]불자동차 BMW

애플 1천828억 달러, 구글 1천321억 달러, 마이크로소프트 1천49억 달러. 지난 5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브랜드 가치평가 1~3위 글로벌 기업들이다. 삼성은 476억 달러로 7위를 차지해 아시아 기업 최고 브랜드로 톱10에 이름을 올렸다.기업 브랜드는 그 자체로 중요한 자산이다. 평판이 좋은 브랜드는 소비자의 지갑을 열고, 충성스러운 고객층을 형성해 미래의 시장을 보장한다. 최근 시가총액 1조달러를 돌파한 애플은 브랜드 자체가 혁신과 문화의 아이콘으로 전지구적인 추종자를 거느린다. 구찌, 프라다, 루이뷔통에 대한 열광은 비판받을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당연히 기업들은 브랜드 가치를 지키거나 높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특히 대형사고에 대한 위기대응 방식이 중요해졌다. 책임을 미루고 발뺌하다가 오명을 키운 사례가 많아서다. 미국 석유회사 엑손모빌은 알래스카 해안 2천㎞를 오염시킨 유조선 좌초 사건으로 70억 달러의 사고수습 비용을 쓰고도 업계 1위에서 3위기업으로 전락했다. 2009년 미국에서 발생한 페달게이트로 도요타는 천만대 리콜비용은 물론 소비자에게 11억달러를 물어줘야 했다. 이와 별도로 시가총액 22조원이 증발했다.서민에게는 꿈의 자동차인 BMW가 한국에서 단단히 사고를 쳤다. 올해에만 32대의 BMW 520d 승용차가 주행중에 불이 났다. 가장 최근엔 안전진단까지 받은 자동차마저 불이 나면서, 차주들은 현재 진행중인 리콜마저 믿지 못하겠다고 아우성이다. BMW는 왜 한국에서만 불자동차가 된건지 설명을 안하고, 주무 부처인 국토부는 대책이라고 내놓은게 주행자제다. 원인도 모르고 대책이 한심하니 BMW는 여기저기서 주차거부를 당하고, 차주들은 집단소송에 나섰다. 314억 달러의 BMW 브랜드 가치가 무색해졌다.6일 BMW코리아가 대국민사과를 했다. BMW 본사는 기자회견에 기술자를 보낸게 고작이니, 이 또한 한국 고객과 한국을 무시한 처사 아닌가. 미국에 '디젤 게이트' 손해배상금으로 147억 달러를 낸 폴크스바겐이 한국에선 141억원의 과징금으로 면피한 전례를 따를 셈인가. 물렁하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그런데 정작 지난달 BMW 국내판매량이 24.2% 증가했다니 황당하다. 명품 브랜드 BMW를 향한 집착과, 불자동차 BMW에 대한 불만의 공존이 기이하다. BMW가 얕잡아볼 만 하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8-06 윤인수

[참성단]인천 1978년 동일방직

1978년 3월 10일 근로자의 날 행사가 최규하 국무총리가 참석한 가운데 장충체육관에서 열렸다. 행사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을 즈음, 50여 명의 여성이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 없다"는 구호를 외쳤다. 식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기념식은 중단되고 생중계되던 방송은 세 번이나 끊겼다. 한국노총행동대에 두들겨 맞고 머리채를 잡히며 밖으로 끌려나간 이들은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이었다.그로부터 10여 일 후, 3월 26일 새벽 5시30분 여의도 5· 16광장. 수십만 명이 모인 부활절 새벽 연합예배는 기독교방송이 전국에 라디오 중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6명의 여성노동자가 단상 중앙을 점거하고 구호를 외쳤다. "동일방직 문제 해결하라"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 "우리는 똥을 먹고 살 수 없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에 2주 연속 발생한 사태는 우리나라 노동 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대사건이었다.이 둘 다 1978년 2월 21일 인천 동일방직에서 일어난 사건이 발단이었다. 이날은 동일방직 대의원 대회가 예정된 날이었다. 새벽 6시경 남성노동자들이 투표작업을 준비 중인 노조사무실로 난입해 똥물을 뿌리고 여성조합원의 얼굴에 인분을 묻히는 '똥물 투척 사건'이 일어났다. 훗날 중앙정보부가 개입한 것으로 밝혀진 이 사건은 이듬해 8월 YH 여공 신민당사 농성사건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박정희 유신정권이 몰락하는 도화선이 됐다. 그래서 한국 현대사에 동일방직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이런 역사적 의미가 깊은 인천 동일방직이 8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한다. 경인일보는 동일방직이 지난해 말 가동을 끝내 공장의 기능을 상실했으며, 대신 이 자리에 산업사적, 노동사적 의미를 살려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동일방직은 급속한 도시화와 산업화, 그늘진 노동현장과 시대의 아픔 등 한국경제의 변천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역사적 공간이다. 1934년 일본 동양방적 인천공장으로 문을 연 동일방직은 강경애의 소설 '인간문제'의 문학적 무대이기도 하다. 공장 내 일부 건축물을 '노동사 박물관'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그래서 설득력을 주고 있다. 현장 보존은 산업화시기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을 여성노동자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일지도 모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05 이영재

[참성단]수원 야행(夜行)

60년대 수원 화성 풍경은 꼭 이랬다. '서문은 서 있고 동문은 도망가고 남문은 남아있고 북문은 부서졌고'. 그때, 공심돈 옆 무너진 성곽에서 연을 날리며 가끔 이런 상상을 했다. 왕도 여기에 서서 저 들판을 쳐다보았을까. 무너져 내려 초췌한 화령전 돌담길을 지날 때는 왕도 이 길을 걸었을까. 서문에서 북문으로 한달음에 뛰면서도 이 성곽 길을 왕도 걷지 않았을까. 왼쪽으로는 화홍문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고, 앞으로는 멀리 광교산의 우람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오는 방화수류정을 찾았던 그 뜨거웠던 여름날, 왕도 여기에 올라 저 연못에 비친 물그림자를 보았으리라 생각했다.그때는 정조가 대단한 왕인지도 몰랐다. 어린 우리에게 그저 뛰어놀고 기어오르던 성곽에 불과했던 화성이, 그때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며 쌓았던 눈물의 성인지도 몰랐다. 성이 조금씩 복원되고 떨어져 나간 문이 제자리를 찾아 그 형태가 온전히 돌아오자 비로소 정조가 위대한 군주였음을 알게 되었다. 정조의 8일간 화성 행차보고서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는 '1795년 윤 2월 14일 11시 정조는 군복을 입고 말을 타고 수원행궁 낙담헌을 나와 강무당을 거쳐 성곽 길을 밟았다. 북문인 장안문에 이르러 "전에 성 밖에 개간할 만한 땅이 있다고 했는데 그곳이 어디냐"고 묻자 장용외사 조심태는 서북쪽 대유평을 가리켰다. 왕은 화홍문을 거쳐 방화수류정에 올랐다'고 전해진다. 어릴 적 상상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정조는 담 길과 성곽 길을 걸어 방화수류정에도 올랐다. 그로부터 223년 후, 그때 정조가 걸었던 그 길을 걸으며 화성의 진가를 보고 느낄 수 있는 '수원 야행'이 8월 11·12일, 9월 7 ·8일 두 차례에 나눠 진행된다. 올해 타이틀은 '밤빛 품은 성곽도시, 2018 수원 문화재 야행'이다. 이번 수원 야행은 야경(夜景)·야화(夜畵)·야로(夜路)·야사(夜史)·야설(夜設)·야식(夜食)·야시(夜市)·야숙(夜宿) 등 8야(夜)를 주제로 저녁 5시부터 밤 11시까지 이어진다. 8월에는 화성행궁과 행궁광장, 공방길, 신풍동 일대에서, 9월에는 장안문에서부터 화홍문에 이르는 수원화성의 성곽 길, 방화수류정, 수원천 변에서 진행된다. 모두 의미 있고 가슴설레는 야행이지만 개인적으로 2차 야행이 더 마음에 끌리는 건 순전히 어릴 적 추억 때문일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02 이영재

[참성단]죽산 조봉암 서훈 논란

지난달 31일 서울 망우리 공동묘역에서 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 59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최악의 폭염속에서도 죽산의 행적을 추모하고 기리는 후배 정치인들이 함께했다. 참석자들이 죽산에 대한 독립유공자 서훈을 한목소리로 다짐해 특별했다. 의지만 보면 60주기를 맞는 내년안에 결판낼 듯한 기세다.식민시대와 해방정국을 관통한 죽산의 생애는 파란만장했다. 인천 강화 출신인 그는 모스크바 유학생 출신의 공산당원이었다. 1924년 조선공산당 조직을 주도했고, 일제의 대대적인 공산당 단속에 걸려 7년간 신의주 감옥에 갇혔다 1941년 출옥했다. 1945년 해외와 비밀연락 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해방이 되자 풀려났다.해방 이후 그는 박헌영을 비판하고 공산당과 결별한 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돼 초대내각의 농림부장관을 지내면서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독재자 이승만의 북진통일론에 평화통일론으로 맞서 2, 3대 대통령선거에서 선전했다. 하지만 이승만 사법부는 그가 창당한 진보당의 평화통일 정강을 반공법 위반으로 걸어 사형을 선고해 1959년 7월 31일을 교수형을 집행했다. 이른바 진보당 사건이다. 진보진영이 죽산을 각별하게 여기는 이유다. 고 노회찬 의원은 해마다 추모식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올해도 추도사를 하기로 했다고 한다.2011년 1월 대법원은 진보당 사건 재심을 통해 원심을 파기했다. 그동안 실정법 위반을 이유로 반려됐던 독립유공자 추서가 곧바로 신청됐지만 국가보훈처가 제동을 걸었다. 1941년 일제에 국방헌금 150원을 기부한 사실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같은해 4월 나라를 빼앗긴 통절한 심경을 '시일야방성대곡'으로 절규한 위암 장지연 등 19명의 독립유공자 서훈을 일제협력을 이유로 취소한 정부입장이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국가보훈처가 죽산의 독립유공 서훈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제는 증명하기도 힘든 단편적 흔적으로 역사적 삶 전체를 규정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아서다. 죽산의 부인이자 공산당원이었던 김조이는 납북돼 생사가 묘연한데도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한 정부 아닌가. 그 시절엔 공산당 활동도 독립투쟁의 방편이었다는 후대의 아량은 죽산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오늘의 시선으로, 진영을 잣대삼아 서훈이 오락가락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죽산의 명예회복이 진영을 초월한 역사적 관용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8-01 윤인수

[참성단]대통령 휴가 도서목록

열악한 독서율로 어려움을 겪는 출판계가 그나마 반짝 여름 특수를 누리는 것은 여름휴가 때 명사(名士)들의 독서목록 때문이다. '명사들이 휴가지에 갖고 가는 도서'가 발표되면 확실히 판매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특히 대통령의 여름휴가 독서목록은 발표될 때마다 '흥행이 확실시'되는 베스트셀러 보증수표였다. 도서목록에 포함되지 않더라도, 지난해 여름 고 노회찬 의원이 '김지영을 안아주세요'라고 적어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한 '82년생 김지영'은 그것만으로도 초대박 베스트셀러가 됐다.미국 백악관도 해마다 대통령이 휴가때 읽는 책 목록을 발표한다. 처음부터 그런 제도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1961년 라이프지는 잠들기 전 반드시 30분이라도 책을 읽었다는 '존 F 케네디의 애독서 10선'을 실었다. 이언 플레밍의 '007시리즈'는 이 목록 덕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후 미국에서는 매년 여름 휴가철이면 대통령의 여름휴가 가방에 들어가는 도서목록을 공개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대통령의 한마디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 2010년 여름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지까지 들고갔던 조너선 프랜즌의 장편 소설 '자유'를 읽고 "굉장한걸!"이라고 했던 한마디로 이 책은 100만부 넘게 팔리는 초 베스트셀러가 됐다.우리의 역대 대통령들은 여름휴가 기간 읽을 도서선정에 공을 들여 매년 '독서 목록'을 공개해 왔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30일 휴가를 떠나면서 휴가지가 어디인지, 휴가 때 무슨 책을 읽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도 따로 휴가 도서목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휴가에서 돌아온후 SNS를 통해 "책도 읽지 않고 무위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며 "휴가 중 읽은 '명견만리'는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책"이라고 밝혔다. '명견만리'가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됐음은 물론이다. 올해도 청와대가 대통령의 휴가 도서 목록을 공개하지 않자 출판계에선 실망한 표정이 역력하다. 기대했던 '여름 반짝 특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선 짧은 휴가기간에 정해진 목록의 독서를 의무적으로 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지적도 있다. 쉴 때는 쉬어야 한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대통령들의 독서목록에는 향후 국정운영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그 메시지를 들을 수 없게 된 건 아쉽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31 이영재

[참성단]뉴스메이커 '이재명'

6·13지방선거가 끝난 지 한달 보름이 지났지만, 경기도지사 '이재명' 이름 석자는 지금도 바쁘다. 선거에 당선된 광역 및 기초자치단체장들의 이름은 이제 집무실에 갇혔다. 하지만 이 지사의 이름 석자는 집무실과 도정현장 보다는 뉴스메이커로 세상의 관심 속에서 부유중이다.'이재명'을 둘러싼 화제는 논쟁적이다. 바른미래당과 김부선씨와의 법적 다툼은 경찰의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심상치 않은 확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공영방송 시사프로그램 진행자인 주진우와 바른미래당 김영환 전 의원은 시차를 두고 경찰서 입구에서 여배우스캔들 공방을 벌였다. 역시 경찰조사를 받은 작가 공지영은 이재명 저격을 멈출 기세가 아니다. 최근 출간한 신작 '해리'가 '진보의 탈을 쓴 위선적인 무리에 관한 이야기'라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조폭연루설'은 여배우스캔들 만큼이나 이재명을 화제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SBS 방송은 사업가로 변신한 국제마피아파 주요인물 L씨와 지사의 관계를 짐작케하는 정황들을 열거했다. 이 지사는 "이재명이 조폭배후면 대한민국 경찰과 정부도 조폭배후냐"며 L씨는 성남시장 직무수행중 만난 인연일 뿐이라고 해명했다.그런데 이 지사가 검찰수사를 촉구한 이후 휴지기에 들어서던 조폭연루설이 뜻밖에 민주당 당대표 경선 과정에서 불거졌다. 경선 후보인 수원 출신 김진표 의원이 "당과 대통령에게 부담이 된다"며 이 지사의 자진탈당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 지사에 대해 적대적인 당내 친문(親文)세력의 지지를 겨냥한 발언이라는 정치공학적 분석에도 불구하고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김부선, 바른미래당, SBS 대(對) 이재명의 전선이 김 의원 발언으로 인해 '이재명 탈당 찬반'이라는 당내 전선으로 번진 것이다.이 지사의 말 대로 이 모든 논란들이 '거대 기득권의 이재명 죽이기' 차원의 실체없는 '설(說)'이라면 억울해도 보통 억울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문제의 '설'들이 이 지사가 살아오며 맺은 인연에서 비롯됐으니, 설(說)을 토해내는 설(舌)만 탓하기엔 그의 공적 위상이 너무 커졌다. 이 지사는 어제부터 여름휴가 중이다. 이 모든 논란을 작파하고 오롯이 도지사 직분에 전념할 방안을 찾아내 복귀하기 바란다. 적요한 공간을 찾아 명상에 잠겨보길 권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7-30 윤인수

[참성단]김지하의 절필(絶筆)

'김 강사와 T 교수' '창랑정기(滄浪亭記)' 등 작품으로 주목받던 현민 유진오는 해방되자 절필을 선언하고 문단을 떠났다. 그리고 헌법학자로, 야당 정치인으로, 법제처장으로 문학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수필문학의 대가 금아 피천득은 1970년대 중반에 갑자기 절필을 선언했다. "어느 날 보니 내가 전보다 못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쓰지 않기로 결심했다"가 이유였다. 금아는 서초동 자택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절필 약속을 지켰다.자발적 절필 작가들에게 그 이유는 개인적인 것에서부터 사회적, 정치적인 것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절필을 선언하고 훗날 다시 문단으로 복귀하는 작가도 많다. 김주영, 박범신, 김영하, 고종석, 신경림도 이런저런 이유로 절필을 선언했다 다시 문단으로 돌아와 왕성한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하지만 타의에 의해 절필하는 경우도 있다. '해빙기의 아침' '부초'로 70년대 최인호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한국 최고의 인기작가였던 한수산은 1981년 5월 제주도에서 집필 중 보안사 요원에게 체포돼 서울로 압송됐다. 그리고 노태우가 사령관이던 국군보안사령부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신문 연재소설 '욕망의 거리' 내용 일부를 문제 삼은 것이다. 유난히 감수성이 뛰어났던 그가 고문으로 받았던 정신적 충격은 너무도 컸다. 그는 절필했고 한동안 일본에서 생활했다.절필을 강요받은 작가도 있었다. 신경숙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 '우국'과 '전설'의 문장을 표절했다는 시비에 걸려 여기저기서 절필하라는 압박을 받았다. 그는 사과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임기응변식 절필 선언은 할 수 없다. 나에게 문학은 목숨과 같은 것이어서 글쓰기를 그친다면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니다" 라며 절필을 거부했다.올해 등단 50주년을 맞는 시인 김지하가 절필했다는 소문이 지난주 문단을 뜨겁게 달궜다. 신간 시집 '흰 그늘'의 출판사가 내놓은 보도자료에 이번 시집을 끝으로 더는 집필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시집 서문에 "마지막 시집이다/교정하지 않는다/마지막 다섯 줄 '아내에게 모심'/한편으로 끝이다/이제 내겐 어릴 적 한(恨)/'그림'과 산밖에 없다/끝"이라고 써 절필이 사실처럼 돼버렸다. 우리 문단에 김지하처럼 한(恨) 많은 시인을 찾기 어렵다. 상상 못 할 모진 고난에도 붓을 꺾지 않던 그다. 쉽게 절필할 그가 아니다. 문단이 그를 주목하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29 이영재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