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해안 철책선 철거

2002년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 제작이 발표되자 영화계가 크게 술렁거렸다. 주연을 한국 최고의 배우 장동건이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저예산 영화에 장동건이 출연한다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김기덕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내가 자청했다.개런티는 중요하지 않다"는 장동건의 말이 더 화제였다. '해안선'은 부산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흥행은 참패했다. 한국 5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한국인의 알 수 없는 영화 취향'의 희생물이 된 것이다. 오히려 외국에서 이 영화를 주목했다. 박찬욱의 '공동경비구역 JSA'보다 더 관심을 끌었다. 간첩을 잡으려는 욕망에 사로잡힌 해안 초병이 실수로 민간인을 사살한 뒤 파멸해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광기와 영혼의 파괴, 나아가 남북 분단 아픔을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장동건의 광기 연기는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에서 말론브란도가 보여준 광기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장동건이 이렇게 연기를 잘했었나"라 할 정도로 '메소드 연기'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김기덕이 '해안선'에서 주목한 건 '철책선'이다. 철책선은 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남북 분단의 상징이었다. 그동안 많이 철거됐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해안가 곳곳에는 '이곳은 군사작전 구역이니 출입을 엄금함'이라고 쓰인 철책선과 경고판이 늘어서 있다. 해안은 아름다운 피서지가 아니라 출입금지 팻말과 철책선 둘러쳐진 분단의 현장이다. 영화는 철책선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극명하게 그려냈다. 국방부가 2021년까지 경기도 해안과 강에 설치된 철책선 107㎞, 인천 도심 해안가를 둘러싸고 있는 철책선 44㎞를 철거한다고 발표했다. '긴 해안선과 연안자원'을 한국 발전의 원동력으로 꼽고 어장 및 수자원 관리에 주력할 것을 주문한 건 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엘리너 오스트롬 미국 인디애나대 교수였다. 철책선 철거로 해안선이 우리 품으로 돌아온다면 지역경제 발전에 더할 나위 없는 큰 원동력이 될 것이 분명하다. 또한, 수년 전부터 '바다를 시민의 품에!'라는 기치를 내걸고 경인일보가 인천 녹색연합과 인천의 내륙 해안선을 탐사하는 '해안선 종주 프로젝트'도 새로운 전기를 마련될 것이다. 다만 서해안에는 인천공항 평택 미군기지 등 안보시설이 많다. 휴전선 내 GP 철거에 이어 해안선 철책 제거로 혹시 '안보는 괜찮은가' 하는 걱정의 시선을 무시해선 안 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22 이영재

[참성단]DJ와 노무현의 현실감각

문재인 정부가 노동계의 반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오늘 청와대에서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출범시키지만, 민주노총은 어제 총파업으로 불참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민노총은 이제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민노총은 고집불통.(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라고 몰아세운다. 하지만 서운하다는 표시이지, 척을 지겠다는 의지는 아니다. 민노총이 오히려 당당하다. '우리 때문에 집권한 것 아니냐'는 채권자의 위세가 대단하다.김대중 전 대통령(DJ)은 생전에 정치지도자의 덕목으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강조했다. 현실을 외면한 정치철학의 공허함과, 철학이 없는 현실감각의 천박함을 동시에 경계한 것이다. 그는 공기업 민영화와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IMF위기를 단숨에 돌파했다. 노동자의 실직과 저임금을 감수한 용단이었다. 이지스함 건조를 시작했고 크루즈 미사일 개발에 착수하는 한편 대북 미사일 사거리를 연장했다. 재건된 경제와 강화된 안보를 바탕으로 햇볕정책을 밀어붙이고 임기말에 평양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도 그의 현실감각을 보여주는 사례다.노무현 전 대통령은 토론에 의지한 민주주의 통치론과 순결한 도덕성을 리더십의 근간으로 삼았다. 일선 검사들과의 맞짱 토론을 감수할 정도로 여론과 직접 맞섰다. 자신이 틀렸다면 입장을 바꾸는 도덕성의 소유자였다. 대통령 선거 공약과 달리 철도 민영화에 나서고, 기간제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 비준을 처리했다. 민노총과의 약속과 국가경제를 위한 노동정책을 견준 뒤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DJ정부의 햇볕정책만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문서로 구체화했다. DJ의 리더십은 노무현 시대에 이어졌다.문재인 정부의 서생적 문제의식은 선명하다.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을 구분하는 문제의식은 비판의 수용을 거부한다. 소득주도성장 집착증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문제의식 밖의 현실은 차갑고 거칠다. 이·영·자(20대·영남·자영업자)가 등 돌리고, 한미동맹은 흔들리며, 한일관계는 최악이다. 정부와 여당이 이쯤에서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작동한 상인적 현실감각을 복기해 보길 권한다. 민노총과의 새로운 관계설정은 문재인 정부의 상인적 현실감각을 판단할 수 있는 가늠자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1-21 윤인수

[참성단]네이밍 법안 홍수

네이밍(naming)은 '이름 짓기, 이름 붙이다'라는 뜻이다. 새로운 상품이나 회사, 그룹 등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나름 명칭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 법에도 소위 '네이밍 법안'이라고 해서 특정인의 이름을 붙인다. 내용을 알리고 법안 발의자 존재감을 부각할 수 있어 의원들 사이에선 유행이다. '김영란법'을 비롯해 '조두순법' '태완이법' '신해철법' '김광석법' '유병언법' '최진실법' 여기에 '우병우 방지법'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그러나 문제도 있다. 요즘 매일 언론을 장식하는 '박용진 3법'이 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뜻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김영란법'의 정식 명칭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고 '신해철법'은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법 일부 개정안'이다. 살인죄에 대한 공소 시효를 폐지한 '태완이법', 범죄수익을 은닉한 제삼자에게 숨겨놓은 재산도 추징할 수 있게 한 '유병언법' 등이 있지만 이름만으로는 법안 내용을 알아채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저 듣기 편하고 홍보 효과가 뛰어나다는 이유로 발의한 사람의 이름을 붙인 법안부터 피해자 이름을 붙인 법안, 처벌 대상자 이름을 붙인 법안 그리고 쟁점이 된 인물의 이름을 붙인 법안 등 무분별하게 갖다 붙인 탓이다. 과도한 네이밍의 사용으로 법안의 기본취지가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것도 그래서다.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스물한 살의 젊은이 윤창호 씨 사건을 계기로 발의된 '윤창호법'도 그런 경우다. 이 법안 역시 시간이 지나면 네이밍만으로 그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게 분명하다. 차라리 이 법안을 공동발의했으나 본인이 음주 운전하다 적발돼, 코미디를 방불케 했던 국회의원의 이름을 따 '이용주법'이라고 했으면 더 이해가 쉬웠을지도 모른다. 모든 법안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네이밍 법안의 가치는 제정된 법이 얼마나 타당성과 실효성을 가지고 시행되느냐에 달려있다.네이밍을 남발하다 보면 진실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자칫 인기영합주의에 매몰될 가능성도 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네이밍의 유혹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준비 중인 법안도 수십 개다. 네이밍으로 법안의 진실성이 국민에게 전달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여론몰이나 정쟁에만 치중한 네이밍 법안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20 이영재

[참성단]백두칭송위원회

백두칭송위원회라니 거창하다. 지난 7일 결성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서울방문 환영 단체다. 지난 18일 광화문 집회로 공식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집회는 먼저 회원들이 나서 김 위원장을 칭송하는 연설회와 시낭송 등으로 구성된 '꽃물결'이라는 공연으로 구성됐다.대학생 회원들이 주도하는 연설회는 단체 명칭 그대로 김 위원장 칭송 일색이다. 그들에게 김정은은 '추진력과 대범함을 갖춘 지도자', '세계 패권국 미국을 제압한 지도자', '천리안의 소유자'이다. 이런 지도자가 성조기와 태극기 부대의 위협을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서울을 방문하니 '만세' 부르며 '환영'하자는 논리다. 꽃물결 공연에서는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의 시 '백두칭송'을 낭독했다. 시는 백두산을 칭송하며 통일을 염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연사들이 백두혈통인 김정은을 칭송하는 맥락과 연결하면 백두산이 무엇을 은유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백두칭송위원회의 집회에 분노한 보수단체들은 앙앙불락이지만, 위원회의 염원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우선 '칭송'이라는 단체명 부터 '지도자'니 '천리안'이니 하는 칭송의 내용이 시대착오적이고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평양의 꽃물결이 광화문에서 재현될 가능성도 낮다. 외국 국가원수 방한 때 마다 환영인파를 만들어냈던 시절을 졸업한지 한세대가 넘은 대한민국이다.법원은 2016년 황 전 부대변인의 북한 찬양·고무·선전 혐의와 이적표현물 게시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대한민국이 그 정도에 흔들릴 나라가 아니거니와 상식적인 국민이 넘어갈리도 없다'는 취지였다. 당시 법원의 판결문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과 자신감을 보여준다. 100여명의 백두칭송위원회가 전국 순회 집회에 나서도, 우리 체제의 주역들이 이들의 비상식과 시대착오를 압도하면 된다.그래서 찜찜한 구석이 남는다. 최근 여권 인사로 부터 평양 재방문 요청을 받은 대기업들이 불편한 표정이다. '가도 되나' 싶은 표정인데 침묵으로 심경을 대신한다. 리선권 냉면발언 사태 때도 '맞다 아니다' 말도 못한 채 냉면 먹은 벙어리인양 침묵했었다. 기업인은 대한민국 체제의 주역이다. 김정은 찬양세력은 집회와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는데, 자유민주체제 주역은 정권의 권위에 끌려다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백두칭송위원회 집회를 한 줌 소동으로 치부하기도 힘들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1-19 윤인수

[참성단]仁川 떠난 힐만

트레이 힐만. 이젠 그에 대한 호칭을 SK 와이번스 '전' 감독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가 인천을 떠났으니까. 2년간의 짧은 감독 생활, 힐만은 SK 와이번스에 8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값진 선물을 안기고 떠났다. 하지만 우승 트로피만 남긴 게 아니다. 2년 동안 힐만은 인천시민과 한국 야구 팬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남겼다. 힐만과의 이별이 슬프지 않은 이유다. 힐만은 인천 팬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줬다. 오히려 우승은 덤이었을 정도다.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팬들에게 음식을 직접 나눠주기도 했고, 의리의 배우 김보성 분장으로 응원단상에 올라 팬들과 소통했다. 일부러 머리를 길러 소아암으로 고통을 받는 어린이를 위해 머리카락을 기부해 팬들을 울리기도 했다. 특히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25일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소아암으로 고생하는 어린이의 학교를 찾아가 격려했다. 그 어린이가 한국 야구 최고의 명승부로 꼽힌 PO 5차전 시구를 맡았던 김진욱 군이다.지난 16일 힐만 감독의 이임식장은 활기에 넘쳤다. '이별의 슬픔'이라곤 눈곱만치도 없었다. 최항과 정의윤을 불러내 "의리! 의리! 의리!"도 외치는가 하면 선수들을 향해 "오늘부터는 동료가 아닌 우린 친구"라고 말했다. 힐만은 그런 감독이었다. 한·미·일·베네수엘라에서 감독 생활을 했던 힐만은 2년 전 SK 와이번스 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국은 다른 나라에서 야구하는 것보다 선수들과 관계를 만드는 것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가가는 만큼, 선수들이 오는 것을 느꼈다." 힐만은 이렇게 특유의 '소통 리더십'으로 선수들과 친해졌다. 상대 선발투수를 분석해 타순을 정하는 '데이터 야구' 로 SK를 홈런 군단으로 만들었다. 포스트 시즌에서 SK는 한국프로야구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화끈한 홈런 야구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넥센과의 포스트 시즌 5차전과 한국시리즈 6차전 9회 투아웃에서 나온 최정의 동점 홈런, 13회 한동민의 결승 홈런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힐만은 겸손한 감독이었다. 외국인으론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음에도 "나는 50점이다. 우승은 내가 한 게 아니다. SK의 것이다. 구단 모든 이의 도움으로 좋은 결과가 있었다. 감독으로선 좋은 판단을 한 적도 있고, 나쁜 판단을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힐만은 솔직한, 그런 감독이었다. 그가 인천을 떠났다. 벌써 그의 호쾌한 야구가 그립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18 이영재

[참성단]박두진 문학관

1992년 프랑스에서 로마 문화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유서 깊은 도시 '베종 라 로망(Vaison la Romaine)'에 대규모 홍수가 발생해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 세계 각국에서 지원이 빗발쳤다. 시는 고마움의 표시로 '자르뎅 드 뇌프 드무아젤(아홉아씨 공원)'을 만들어 세계 9개 도시로부터 시인 1명씩 추천받아 9년 동안 모두 81개의 시비를 설치키로 했다. 아시아 도시로는 처음으로 시인 추천도시로 선정된 안성시는 시인 박두진을 추천해 2001년 6월 21일 시비제막식을 가졌다. 시비 앞면에는 시인의 대표 시 '해'의 첫 구절을 한글로, 뒷면에는 불어로 새겨 넣었다. 박두진은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1939년 '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단에 나왔다. 이들이 공동시집 '청록집'(靑鹿集)을 펴낸 것은 1946년이었다. 청록집에는 박두진의 시 12편 등 39편의 시가 실려있다. 박두진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바탕을 둔 자연과 인간의 이상적 조화라는 시풍을 보여줬다. 청록파로서 순수미와 인간미는 물론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평화 공존을 염원했다. 자연은 청록파 시 세계의 모태이자 고향이었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암울한 현실을 외면한 채, 한가하게 자연을 노래했다고 청록파 시인을 비판하는 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박두진의 '해'는 자연만 노래한 게 아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넘어 산 넘어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넘어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에서 '해'는 암울한 시대에도 꺾이지 않는 시대 저항정신의 표현이다. 박두진의 시에는 어둠, 공포와 갈등의 세계를 벗어나 밝고 아름다운 삶을 찾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고 이를 초월한 희망을 노래했다. 박두진의 자연은 조지훈, 박목월의 자연과 전혀 다르다. 이상주의자였던 그는 후기 시에 가서 사회적 불의에 항거해서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시를 쓰게 된다.오늘 안성시 보개면 복평리 296에 박두진 기념관이 문을 연다. 시인 탄생 100주년이 되던 2016년 첫 삽을 뜬 문학관은 1만512 ㎡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시인의 친필원고, 시집, 유품, 수석, 글씨와 그림 등이 상설 전시된다. 우리는 문학관에서 박두진의 삶과 숨결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15 이영재

[참성단]대학수학능력시험

오늘 전국 1천190개 시험장에서 59만4천900여명의 수험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다. 오전 8시40분부터 오후 5시40분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한 8시간 동안 국어, 수학, 영어, 한국사·탐구영역, 제2외국어/한문 시험문제 풀이로 대학입학 진로가 결정된다.한국사회에서 대입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오랜 세월에 걸쳐 고착된 학력중심 사회구조는 대입에 목숨을 거는 교육과정을 잉태했다. 작금의 청소년 세대는 유아교육부터 시작해 초·중·고 교육과정과 사교육으로 중무장한 대입전사로 봐도 무방하다. 운동장을 버리고 교실과 학원을 전전한 지난한 수련과정이 수능시험장에서 결판난다. 성년 통과의례로는 너무나 치열한 육박전이다.자녀와 공동운명체인 학부모의 심정도 비장하다. 아이가 걷자마자 자녀의 대입 병참기지를 꾸려 온 부모들이다. 대입 병참기지 최상의 조건은 조부모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버지의 무관심이란다. 병적인 대입 경쟁을 풍자하는 자조적 농담? 아니다. 누구나 열망하는 환상적인 조건이다. 사정이 이러니 대입수능의 여파는 국민 전체에 미친다.병적인 대입경쟁이 사회의 건강과 연대를 해칠 정도에 이르렀다는 문제의식은 이미 오래전에 확정됐다. 역대 정권 모두 이를 고친다고 대입 시험제도와 입학전형에 손대고 고쳐 온게 수십년이다. 하지만 제도를 신설하고 전형을 이리저리 꼬아대도 소용이 없다. 사교육 시장의 기민한 대응과 학부모의 호주머니는 언제나 정부의 정책을 압도했다. 최근에는 입시개혁의 근간이던 학생부 위주 수시전형마저 흔들리고 있다. 잇따른 학생부 조작사건, 숙명여고 교무부장 사건의 여파로 수능 위주 정시전형을 확대하자는 여론이 높아졌다.정부의 무능한 정책, 사교육 시장의 권위, 부모의 열렬한 후원이 만들어 낸 대입제도의 병리현상 한복판에서 오늘 미래의 동량들이 대입수능 시험지를 풀고 있다. 시험을 방해하는 일체의 행동을 자제하는 것이 그나마 여기까지 오느라 지친 수험생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특히 고사장 주변 소음, 소란은 절대 안된다. 전국의 수험생이 가진 실력을 남김없이 발휘하기 바란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1-14 윤인수

[참성단]하늘 위 주유소

최신예 전투기라 해도 원거리 공격작전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연료 보급이다. 적진을 공습하거나 공중전을 벌일 때 최소 한두 곳의 경유지에서 연료를 보급한 뒤 이동해야 한다. 우방국이 있다면 그곳의 기지를 이용하면 되지만 그러지 못할 경우 작전수행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하늘 위 주유소'라 불리는 공중급유기다. 최초의 공중 급유는 1923년 6월로 미 육군 항공단 소속 DH-4B 복엽기가 연료탱크에 호스를 장착해 비행 중인 다른 항공기에 연료를 주입하는 데 성공했다. 두 달 후에는 9차례의 공중급유 끝에 무려 37시간 비행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고속 비행하면서 기름을 주고받아야 하므로 공중 급유에는 늘 위험이 따랐다. 우주 비행 같은 고도의 기술도 필요했다. 급유 중엔 공중급유기와 전투기는 기름을 공급하는 붐(Boom)과 수유구가 붙어 있는 상태로 5분가량 비행을 해야 한다. 급유기와 전투기 사이 거리와 고도를 유지해야 하는 기술이 필요해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정작 사용되지 못했다.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50년 B-29 폭격기를 공중급유기로 개조한 KB-29M 공중급유기 80대를 전력화하면서 '항공전의 혁명'을 불러왔다. 2005년 7월, 1조4천881억원 규모의 우리 공군 공중급유기 사업 기종으로 모두 미국 보잉사가 선정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동안 우리 공군이 미군 급유기로 공중급유 훈련을 해왔고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면 미군 급유기의 지원을 받아 연합작전을 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을 깨고 에어버스사가 선정됐다. 그동안 전투기를 구매할 때 내세운 '한미 동맹'이 무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당시 북한도 공중급유기 도입 결정에 대해 '전쟁범죄 행위'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그제 우리 공군 전투기의 작전 반경을 획기적으로 늘려 줄 공중급유기 1호기가 도착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보잉사를 제치고 선정된 유럽 에어버스 D&S사의 'A330 MRTT' 바로 그것이다. 앞으로 3대가 더 도입된다. 공교롭게도 공중급유기가 도착하는 날, 중동부전선 철원지역 비무장지대(DMZ)에선 굴착기를 동원한 감시초소(GP) 철거 작업이 진행됐다. 같은 날 하늘 위엔 주유소가 설치되고 지상엔 GP가 철거되니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13 이영재

[참성단]방탄소년단의 역습

일본 방송사들의 방탄소년단(BTS) 방송출연 취소 사태가 국제적인 파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 TV아사이가 BTS 멤버 지민이 2년전 착용한 광복절 티셔츠를 문제삼아 예정된 방송출연을 취소한데 이어 NHK, 후지TV도 출연검토를 보류하자 세계 유력 매체들이 일제히 한일관계를 재조명하고 나선 것이다.대중음악 매체 빌보드는 "국가 간의 오랜 정치 문화 사회적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며 일본의 한국 식민지배 역사를 거론했다. 미국 CNN과 영국 BBC도 일본 방송이 원자폭탄 티셔츠를 이유로 BTS의 방송출연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CNN은 '일본의 점령으로 수백만의 한국인이 고통을 겪은 사실'을, BBC는 '일제 강제징용자 배상판결 이후 냉각된 한일관계'를 상세히 보도했다. 전범국 일본의 과거가 새삼스럽게 떠오른 것이다.방탄소년단을 응원하는 팬클럽 아미(ARMY)의 방탄 활약도 대단하다. 이들은 구글 등 인터넷 검색창을 통해 'Why BTS'를 열심히 검색하고 퍼나르고 있다. 일본 방송이 BTS 출연 취소 결정 이유를 확인하는 검색어는 '왜 일본이 한국을 침략했는가?(Why did japan invaded korea?)'라는 연관 검색어로 번지면서, 전세계 아미들이 일제의 아시아 침략사를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BTS 방송출연 금지 배후에는 일본 방송사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세력이나 단체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기업의 배상 결정에 적나라하게 반발하고 있는 일본 정부와 극우매체 및 단체가 의심된다. 하지만 과녁 설정에 실패했다. 제2의 비틀즈로 떠오른 BTS의 글로벌 위상을 너무 쉽게 봤다.BTS에 열광하는 일본 열도의 열기는 오히려 높아졌다. 아홉번째 싱글앨범 타이틀곡인 'FAKE LOVE(페이크러브)'는 일본 오리콤 차트 1위를 질주 중이고 13일 도쿄를 시작으로 내년 2월까지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를 순회하는 돔 투어 공연은 38만장 전석이 매진됐다. 일본 주요 도시에 불어닥칠 BTS 열기는 방송도, 극우세력도 통제하기 힘들 것이다. BTS사태로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피해자 코스프레로 전범의 역사를 덮어 온 일본의 퇴행적 역사인식만 도드라졌다. 일본 방송이 벌집을 건드렸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1-12 윤인수

[참성단]슬픈 고시원

'서른일곱 개의 방이 있던 그 집, 미로 속에 놓인 방들. 계단을 타고 구불구불 들어가 이젠 더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작은 부엌이 딸린 방이 또 있던 3층 붉은 벽돌집 … 거기였다. 서른일곱 개의 방 중의 하나, 우리들의 외딴 방. 그토록 많은 방을 가진 집들이 앞뒤로 서 있었건만, 창문만 열면 전철역에서 셀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보였다.' 신경숙 이름 석 자를 세상에 각인시켰던 소설 '외딴방'에 묘사된 '벌집촌' 풍경이다. 70년대 부평과 구로동 산업단지 주변의 여공들이 살던 주거 공간으로 '벌 방' '쪽방'이라고도 불렸다. 작가 조세희가 "'난쏘공'이 시작된 곳"이라고 말한 그곳이다.동생 학비를 벌기 위해 도시로 나온 10대 누이들이 '산업역군'이라는 이름 아래 온종일 노동에 시달리다 그나마 휴식을 취하던 이런 '슬픈 공간'을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다. 급격한 도시개발로 일시에 사라진 탓이다. 대신 고시원이 그 기능을 하고 있다. 이젠 고시원은 고시 준비생이 아닌 가난한 이들이 저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하는 그들만의 공간이다. 쪽방 특유의 고립된 환경 탓에 정신건강이 악화된 채 방치되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이나 요양시설의 돌봄을 받을 수 없는 그들의 '최후 거주지'인 셈이다.'소방의 날'이었던 지난 9일 새벽, 서울의 한복판인 종로의 한 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해 7명이 숨졌다. 참사다. 고시원은 지어진 지 35년 된 건물. 2층에 24개, 3층에 29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였다. 이 방에서 50~70대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가 각자 고단한 일상에 시달리며 살고 있었다. 옆 방에 누가 사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곳. 고시원은 '외딴 방' 하나하나가 나름 하나의 고립된 '섬'이었던 것이다. 이번에 불이 난 고시원에 스프링클러가 없어 피해가 컸다고 하지만, 있다 한들 두 명이 동시에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복도가 좁아 비상 시 대피가 어려운 '쪽방' 같은 구조에서 효과가 있었을지도 의문이다.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최저주거기준에 미달하는 고시원에 15만 가구가 살고 있다. 이들 상당수가 화재, 붕괴 등 재난에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목숨을 위협받는 '슬픈 고시원'이 아닐 수 없다. 안전의식 부재, 형식적 점검, 사후의 땜질 대응으로 늘 똑같은 참사가 반복되는 우리의 '불감증 사회'가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11 이영재

[참성단]KBS '콘서트 7080'

김대중 대통령은 KBS '동물의 왕국'의 열혈 시청자였다. 이 프로를 보기 위해 회의를 일찍 끝낸 경우도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못지 않았다.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동물의 왕국'을 자주 얘기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광팬이었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 프로를 즐겨 보는 이유를 "동물은 배신을 안 하니까요" 라고 말한 게 당시 화제가 됐다. KBS 최장수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이 첫 전파를 탄 것은 1969년이었다. BBC, NGC, NHK 등의 수입 자연 다큐멘터리 시리즈에 우리말을 더빙해 방영했다. 종영과 부활을 수없이 반복했다. 2004년 가을 개편에 '동물의 왕국'을 KBS1로 부활시키며 내세운 것이 '공영성 강화'였다. 그 후 '동물의 왕국'은 시청률은 낮지만 KBS가 공영임을 내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익한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됐다. KBS가 이번 가을 개편에 장수프로그램을 대거 폐지했다. 그나마 '동물의 왕국'은 용케 살아남았다. 하지만 2004년 시작해 중장년층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던 '콘서트 7080', 성우 박기량의 코믹 해설이 일품이던 'VJ 특공대'도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젊은 방송'을 만든다는 게 폐지 이유였다.시청자들은 당황했다. 특히 70, 80년대 20대를 보낸 세대를 겨냥한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 '콘서트 7080' 폐지에 시청자 실망이 크다. '콘서트 7080'은 당시의 인기곡을 오리지널 가수가 직접 출연해 그 시절의 추억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던, 시청률은 낮지만 두꺼운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소개되는 노래마다 우리 시대 추억이 알알이 맺혀있기 때문이다. 공개방송 표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데 진행자 배철수도 몰랐을 정도로 프로그램 폐지는 전격적이었다.올 KBS 예산은 총 1조5천152억원으로 이중 수신료수입이 6천542억원을 차지한다. 모바일로 TV를 시청하는 20대보다 시청료의 상당 부분을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부담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장년층의 유일한 위안거리 '콘서트 7080'을 폐지 시킨 KBS의 용기가 놀랍다. 월 2천500원의 KBS 수신료를 돌려 달라는 민원이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2016년 1만5천746건에서 2017년 2만246건에 이어 올 9월 말 현재 2만5천964건으로 크게 늘었다. KBS가 요즘 왜 이러는지 국민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08 이영재

[참성단]'보헤미안 랩소디' 열풍

최근 한국 영화팬들이 영상으로 완벽하게 부활한 영국 록밴드 퀸과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에게 열광하고 있다. 지난 달 말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흥행이 미풍에서 태풍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70, 80년대 퀸의 전성기를 겪었던 장노년층은 다시보기는 물론이고 싱어롱 상영관을 찾아 떼창을 한다.영화의 미덕은 퀸의 흥망성쇠와 프레디 머큐리의 인생역정 보다는 그들의 명반, 명곡을 완벽하게 재현해낸데 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20분을 1985년 '라이브 에이드' 자선공연 장면으로 꽉 채운 엔딩장면이 압권이다. '보헤미안 랩소디' '라디오 가가' '위 윌 록 유' '위 아 더 챔피언스'까지, 한국 관객들은 영화를 완전체 퀸의 내한 라이브 공연처럼 즐기고 있다.전성기 시절 퀸은 국내에서 인기 상한가였다. 존 디콘과 로저 테일러가 1984년 방한해 잠실체육관에서 내한공연을 한다는 설이 돌았지만 실현되지 않았고, 될 수도 없었다. 당시 국내에선 보헤미안 랩소디가 금지곡이었다. '권총으로 사람을 죽였다'는 가사 내용이 문제였을 것으로 추측될 뿐, 분명한 이유는 모른다. '권총'과 '발포'에 대한 당시 정권의 트라우마가 작용한 탓이려니 짐작해본다. 여하튼 퀸에게 대표곡 보헤미안 랩소디가 빠진 공연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89년 해금됐고, 2014년 퀸의 내한 공연이 성사됐다. 프레디 머큐리는 1991년 사망한 뒤였다.한국의 50, 60대는 프레디 머큐리의 퀸과 늘 함께였다. 70, 80년 대 가난했던 청춘 시절에는 청계천에서 빽판(불법복제음반)을 구해 친구들과 함께 강렬한 사운드와 프레디의 고음에 심취하며 해방감을 맛봤다. 그들이 소비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퀸의 음악은 광고와 다양한 문화현장의 배경음으로 모든 세대에게 전파됐다.우울한 시대와 경제적 전성기를 거쳐 불안한 미래를 마주한 한국의 7080세대는 시대의 우여곡절로 인해 갈라지고 찢어진 세대다. 그들이 모처럼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세대의 동질감을 확인하고 동시대의 공감각을 체험 중이다. 라이브 에이드 공연을 앞두고 "에이즈의 상징으로 소비되지 않겠다"던 프레디 머큐리는 그의 말 대로 '전설'로 부활 중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1-07 윤인수

[참성단]仁川 야구

코리안시리즈가 시작됐으나 야구 팬의 의식은 여전히 지난 2일 플레이오프 5차전에 멈춰 서 있다. 명승부를 넘어 한편의 스펙터클한 영화였던 탓이다. 평생 이런 야구를 본 적이 없었다. 야구라고 다 야구가 아니었다. 정규시즌 야구와 포스트 시즌 야구는 분명히 달랐다. 전국 TV 시청률이 무려 8.9%를 기록했다. 야구 팬이 아니어도 그날의 야구를 보았다면 채널을 돌리는데 주저했을 것이다. 연장 10회 말, SK의 공격. 첫 타자는 정규시즌에서 1군과 2군을 오갔던 베테랑 김강민. 김강민은 투 스트라이크 상태에서 4구를 받아쳐 극적인 동점 홈런을 터뜨려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을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하지만 여기까진 예고편. 이어 타석에 들어선 한동민이 때린 백구(白球)가 가을 밤하늘을 가르며 백스크린 앞에 떨어졌다. 끝내기 홈런. 환호와 탄성이 일시에 폭발했다. 지난 1994년 태평양 돌핀스가 코리안시리즈 진출을 다투는 한화전에서 연장 10회 초 김경기가 날린 홈런도 여기에 비할 수는 없었다. 그 어떤 드라마도 이렇게 극적으로 각본을 짤 수는 없었을 것이다. 누구는 그 경기에서 인천야구의 본질을 보았다고 말했다. 우리의 프로야구 역사는 짧다. 그러나 인천 야구 역사는 길다. 인천은 한국 야구의 본산이다. 5·60년대 인천은 구도(球都)였다. 부산은 비할 바가 못 됐다. 인천고와 동산고를 앞세워 최대 부흥기를 맞았다. 적수가 없었다. 야구는 인천 토박이는 말할 것도 없고 인천에 들어와 살던 실향민들에게도 정신적 위안을 주었다. 야구는 인천사람에게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고된 삶을 잊게 해주는 위안거리였다. '인천사람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이었다'. 70년대 서울과 경북 부산 광주 지역 고교 야구팀이 창단되면서 선수부족으로 비록 쇠락의 길을 걸었지만, '인천 야구'는 늘 터질 날만 기다리는 거대한 휴화산이었다.인천이 술렁이고 있다. 5년 만에 체험하는 코리안시리즈 때문이다. 1차전 가을의 사나이 박정권의 불같은 타격으로 역대 최강이라는 두산을 7대3으로 격파했다. 2차전은 비록 졌지만, 적지에서의 1승은 큰 수확이다. 1승 1패를 기록하고 오늘부터 두산을 홈으로 불러들여 3연전을 펼친다. 가을야구는 실책이 승부를 가른다. 촘촘한 수비, 불같은 방망이, 민첩한 주루를 기대한다. 반드시 우승이 능사는 아니다. 우린 이미 인천 야구의 '부활'을 보았으니 말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06 이영재

[참성단]'우리회사 양진호'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엽기적인 악행이 직장 갑질 미투운동으로 번질 조짐이다. 각종 매체들은 한 시민단체가 자체 수집해 발표한 직장 갑질 사례를 '우리회사 양진호'로 번안해 보도하고 있다. 퇴직 직원에 대한 양 회장의 폭행 동영상 원본을 보면 정말 치가 떨린다. 폭행당한 청년의 처지를 내 가족과 친구의 경우로 바꾸어 상상하면 적개심이 끓어 오를 지경이다. 대학교수 폭행, 직원 학대 등 드러난 악행은 '사과문'으로 마무리 할 수준이 아니다.IT(정보기술)분야 기업들의 사내 문화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자유분방과 상호존중이다. 창의와 협업이 생명인 산업특징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주의적 기업문화를 가진 IT기업들이 많다고 한다. 사업의 비전과 기술을 창업자에게 의지하는 구조 때문이다.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 창업 초기에 'I'm CEO, Bitch'를 새긴 명함을 뿌렸다. "내가 최고경영자다. 떫냐" 정도로 해석되는데, 그를 페이스북 제국의 나폴레옹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이 근거로 인용하는 사례다.양 회장도 웹하드 업계의 대부라 한다. 주로 웹사이트에서 동영상을 유통시키는 웹하드 업체는 음란물을 포함한 불법 동영상 유포의 핵심 통로로 의심받았다. 특히 양 회장은 불법 동영상을 무차별적으로 유통하는 웹하드 사업과 이를 지워주는 디지털 장의사 사업을 함께 운영했다. 불법 동영상 유통 수익과 피해자의 고통을 지워주는 대가를 동시에 챙겼으니 꿩 먹고 알 먹는 사업모델이다. 자신만의 독점적 사업에서 제왕처럼 군림하다 보니 세상의 상식과 법을 초월한 존재로 착각했던 모양이다.양 회장은 사과문에도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초호화 방탄 변호인단을 꾸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폭행 등 드러난 죄가 명백하고, 음란물 유포 등 밝혀야 할 혐의가 적지 않다. 꼼꼼하게 수사해 엄정하게 법적 처리를 해야 마땅하다. 또한 양진호 갑질의 근원을 제도적으로 도려내는 일도 서둘러야 한다. 직장 갑질을 방지할 근로기준법 개정은 물론이고, 불법 동영상 유포로 돈을 버는 사업구조도 뿌리를 뽑아야 마땅하다. '우리회사 양진호'가 양진호 회장 사건으로 정신 차린다면 그건 망외의 소득이고…. /윤인수 논설위원

2018-11-05 윤인수

[참성단]申星一

이름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1957년 당대 최고 감독 신상옥은 신필름을 설립하고 배우 모집에 들어갔다. 264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강영일. 하지만 신 감독은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그에게 신필름의 '신', 한국 영화계의 새별이 되라는 의미의 '성', 일등 배우가 되라는 뜻의 '일', 신성일이라는 예명을 지어주었다. 대한민국 아니, 건국 이래 최고의 배우 신성일은 그렇게 탄생했다.50년대 말 한국 영화계는 신상옥 최은희의 신필름과 홍성기 김지미의 홍성기 프로덕션으로 양분돼 있었다. 소속 배우도 신 감독 측엔 김승호 김진규 등이, 홍 감독 측엔 최무룡 장동휘 남궁원 등이 포진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유명 배우만을 선호했다. 무명 배우가 출연하면 흥행이 신통치 않았다. 흥행 실패는 파산을 의미했다. 그래서인지 두 영화사 모두 신인을 키우지 않았다. 신필름이 신성일을 뽑아놓고 미적거린 것도 흥행 실패의 두려움이 작용했다. 신성일이 스타가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이런 분위기 탓이 컸다. 신성일은 1960년 신필름의 창립 작품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지만, 그저 잘생긴 배우 정도의 이미지만을 남겼을 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마침내 1964년,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제임스 딘이 그랬던 것처럼, 카리스마 있는 반항아 이미지와 청바지가 잘 어울렸던 신성일은 일약 스타 반열에 올랐고 '청춘물'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고통스러운 상황을 의지로 돌파해가는 남성적인 분위기'가 한국 영화에 스며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로 시작되는 최희준의 노래도 빅히트를 쳤다. 신성일은 거칠 게 없었다. 1964년부터 8년간 개봉한 1천194편의 작품 중 324편에 그가 출연했다. 특히 1967년 제작된 한국영화 총 187편 중 신성일 출연 작품이 무려 51편이었다.하지만 그는 정치권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두 번의 낙선 끝에 '강신성일'로 이름을 바꾼 후 16대 총선에서 당선됐지만 삶은 그리 평탄치 못했다. 옥고도 치렀다. 나운규 이후 최고의 배우이자 '한국의 알랭 들롱', 60년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꽃 피웠던 배우 신성일이 4일 새벽 향년 81세로 숨을 거뒀다. 그의 이름 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이 지금 슬퍼하고 있다. 우리 영화사 가장 중심에 서 있었던 최고의 배우가 그 자신이 하나의 역사가 돼 우리 곁을 떠났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04 이영재

[참성단]목구멍

승정원은 조선의 왕명 출납기관이었다. 왕이 내리는 교지는 승지를 통해 해당 관청에 전달되었고, 상소문은 승지를 통해 왕에게 전달됐다. 정승이나 판서 등 신하가 왕을 면담하거나 중요 회의에 배석해 대화 내용을 기록하는 것도 이들 몫이었다. 우리가 자랑하는 기록문화의 꽃 '승정원일기'가 이들의 손에서 작성됐다. 승정원에는 정3품 당상관인 6명의 승지가 있었다. 왕과 늘 가까이 있어 간혹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역사의 중심에 서곤 했다. 승지의 횡포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익히 아는 터다. 임금의 '목구멍(喉)과 혀(舌)'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승정원을 가리켜 후설(喉舌)이라고 했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라는 뜻이다.'디프 스로트(deep throat : 깊은 목구멍)'는 1972년 미국서 제작된 포르노 영화다. 이 영화가 여전히 회자하는 것은 우선 미국 최초의 합법적 포르노여서다. 그럼에도 22개 주에서 상영이 금지되었지만 폭풍 같은 노이즈 마케팅으로 수완 좋은 제작자 제라드 다미아노는 돈벼락을 맞았다. 4만 5천 달러를 투자해 10년 동안 6억 달러를 회수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깊은 목구멍'이 다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이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두 젊은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워터게이트 빌딩 침입 사건을 2년간 끈질기게 취재해 닉슨을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 것은 내부조력자의 덕이 컸다. 기자에게 지속해서 제보했던 취재원은 익명을 요구했고, 두 기자는 그를 '깊은 목구멍'이라고 불렀다. 그 이후부터 '깊은 목구멍'은 '은밀한 제보자' '내부 고발인'을 지칭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깊은 목구멍'이 FBI 부국장 마크 펠트로 밝혀진 건 33년이 지난 2005년이었다.요즘 '목구멍'이 뉴스의 중심에 섰다. 지난 9월 평양 정상회담 때, 리선권 북한 조평통 위원장이 점심 식사 자리에서 기업인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라며 면박을 준 발언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먹는 자리에서 '목구멍' 운운한 것은 우리 정서상 대놓고 욕설을 한 것이다. 여론이 들끓고 있다. 북한에 우호적이던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조차 "리선권의 자살골"이라며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했을 정도다. 리선권의 '목구멍'을 타고 나온 말이 우리를 기죽이려는 의도라고 하기엔 너무 모욕적이고 무례하다. 우려되는 건, 그 말의 함의가 북한의 본심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01 이영재

[참성단]지연된 정의의 후폭풍

"혼자 있어서 슬프고 초조하다. 울고 싶고 마음이 아프다." 일본과 조국의 법정을 전전하길 21년에 일제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을 받은 이춘식(94) 옹의 비감한 소회다. 배상소송을 함께 했던 징용피해 동료 3명이, 그것도 2명이 올해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승소 법정에서 전해 들었다. 승소의 기쁨보다 상실의 비애가 앞섰을 것이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격언을 이처럼 실감하는 장면이 또 나올지 의문이다.고 여운택, 신천수 두 강제징용자가 일본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에 피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이 1997년 12월이다. 하지만 일본 법원은 이들을 모욕했다. 일제의 식민지배가 합법적이었다는 전제하에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가 이들의 최종 상고를 기각했다. 두 사람은 또 다른 피해자 고 김규식씨와 이 옹과 함께 2005년 2월 조국의 법원을 찾았다. 일본의 배상을 원했다기 보다는 조국의 법원이 강탈당한 강제징용자의 정의를 인정해주길 바랐던 마음이 컸을 것이다.놀라운 건 대한민국 지방, 고등법원이 일본법원 판결을 인정한 것이다. 이를 대법원이 바로잡았다. 2012년 "일본 판결은 우리 헌법 취지에 어긋나고, 신일본제철은 구일본제철을 승계한 기업"이라며 고법판결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이에 고법이 2013년 신일철주금의 1억원 배상책임을 확정했다. 신일철주금은 즉시 상소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시계추는 고법판결을 그대로 확정하는 수순만 남겨둔 채 5년간 멈추었다. 대법원의 잘못은 명백하다. 의혹대로 재판거래 탓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스스로 세운 역사적 정의를 5년간 묻은 잘못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그 대가로 정부는 심각한 외교적 후폭풍을 감당하게 됐다. 수상부터 장관까지 일본의 반발은 전면적이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거론하며 국제재판소 제소를 거론하고 있다. 대북제재 완화를 놓고 미국과의 갈등설이 나오고, 사드 분쟁 이후 중국과도 어색하다. 북한은 자신들을 향한 남측 정부의 진심을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는 밥상머리 악담으로 모욕한다. 여기에 한·일 갈등이 추가되는 상황은 예사롭지 않다. 대법원이 지연한 정의 때문에 우리 운명이 걸린 한반도 외교전선에 대형 악재가 추가됐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31 윤인수

[참성단]10월의 마지막 밤

그때는 몰랐다. 10월은 오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것이란 걸. '뜀박질로 왔다가 뜀박질로 떠나는 것이 10월'이라는 이어령의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올 10월은 특히 그랬다. 너무 빨랐다.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어! 하는 사이에 훅~하고 지나갔다. 조동진의 노래처럼 '여름은 벌써 가버렸나, 거리엔 어느새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다. 10월과 함께 상념도 깊어졌다. 모두 마음이 심란한 탓이다. 어려운 경제, 답 없는 정치, 아니면 거리에 나 뒹구는 낙엽 때문일지도 모른다. '오동잎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비로소 가을이 온 줄 알았다'고 쓴 사람은 송강 정철이었다. 외로운 유배지에서 가을을 맞이하는 비참한 심회(心懷)를 이제 알 것 같다.10월이면 이브몽땅의 샹송 '고엽(古葉)'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방탄소년단의 '화양연화 pt.2' 앨범에 수록된 '고엽'이 심금을 울린다. BTS는 노래한다. '저기 저 위태로워 보이는 낙엽은 우리를 보는 것 같아서/손이 닿으면 단숨에라도 바스라질 것만 같아서/그저 바라만 봤지/가을의 바람과 같이/…/오늘따라 훨씬 더 조용한 밤/가지 위에 달린 낙엽 한 장/부서지네 끝이란 게 보여, 말라가는 고엽/초연해진 마음속의 고요/제발 떨어지지 말아주오/떨어지지 말아줘 바스라지는 고엽'. 젊은이들에게도 10월은 그런 계절인 모양이다.이효석은 낙엽을 '꿈의 껍질'이라고 했다. '낙엽 타는 냄새같이 좋은 것이 있을까. 갓 볶아 낸 커피의 냄새가 난다. 잘 익은 개암 냄새가 난다. 갈퀴를 손에 들고는 어느 때까지든지 연기 속에 우뚝 서서, 타서 흩어지는 낙엽의 산더미를 바라보며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있노라면 별안간 맹렬한 생활의 의욕을 느끼게 된다. …꿈의 껍질인 낙엽을 태우면서 오로지 생활의 상념에 잠기는 것이다'. 우리의 꿈. 그 껍질은 무슨 색이었던가.지난 주말 가을비가 내렸다. 임어당(林語堂)은 '생활의 발견'에서 '봄비는 책 읽기 좋고, 여름비는 바둑 두기에 좋고, 가을비는 오래된 가방이나 서랍을 뒤지기 좋고, 겨울비는 술 마시기에 좋다'고 했다. 가을이 오면 한 해를 보낼 준비를 하란 뜻이다. 오늘 밤은 '10월의 마지막 밤'. 1982년 7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발표되면서 오늘 밤은 언제나 '특별한 밤'이 되었다. 10월. 모두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이룰 수 없는 꿈'만 남긴 채, 10월이 그렇게 떠나가고 있다. 겨울이 오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30 이영재

[참성단]지방자치의 날

30일 17개 시·도지사가 모여 '자치분권 경주선언'을 발표한다. 지방자치의 날인 29일부터 31일까지 경주에서 열리는 '제6회 대한민국 지방자치박람회'의 주요 이벤트다. 박람회는 전국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의 우수 자치행정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다. 이 자리에서 시·도지사가 일제히 자치분권 강화를 위한 중앙정부의 양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1991년 지방의회 선거를 시작으로 1995년 4대 지방선거로 대한민국 지방자치는 완전하게 부활했지만 제도 자체의 효용은 학계와 정치권에서 여전히 논쟁거리다. 자치분권의 역사적 기반이 뚜렷한 연방제 국가나 봉건제 역사의 국가에서는 지방자치가 활발하다. 중앙 통치체제가 완성되기 전까지 유지됐던 지방 자율의 역사가 자치제도를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반면 중앙집권 전통이 유구한 우리 지방자치는 중앙정부 종속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재임 시절 "지방자치는 없고 지방선거만 있다"며 "지방자치는 2할의 자치"라고 권한과 예산 없는 지방자치를 혹평했다.문재인 정부는 지방분권에 호의적이다. 지방분권을 연방제 국가 수준으로 강화하겠다는 공언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고치고 행정·입법·재정의 자치권을 명시한 개헌안을 내놓기도 했다. 개헌안은 무산됐지만 자치단체와 자치의회의 요구에 호의적이다. 자치단체는 국세와 지방세 비율 조정 등 자치재정 확대를, 자치의회는 의회 인사권과 정책보좌관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오늘 지방의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한 답변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권한 강화를 지켜보는 여론은 착잡하다. 늘어나는 권한과 재정만큼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독직과 비리가 커지고 지방자치의 고비용 저효율 규모가 더 커질까 해서다. 비리에 연루돼 사법처리되는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너무 많아 헤아리기 힘들다. 무보수 명예직으로 시작한 지방의원들의 보수는 대기업 임금 수준으로 늘었고, 외유성 해외출장은 관행이 됐다.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전임의 정책들을 폐기하는 매몰 비용이 엄청나고, 연임을 위한 선심공약에도 혈세의 낭비가 심각하다.'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학교'라는 말이 맞다면 대한민국 민주주의 학교는 위기일지 모른다. 지방자치의 권한 강화만큼이나, 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 등 지방권력의 자질 개혁도 중요하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0-29 윤인수

[참성단]불 꺼진 다다익선(多多益善)

1985년 11월 15일 국립 현대미술관 과천관 신축 상량식이 열렸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미술 관계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들렸다. 나선형 공간을 계단을 타고 빙 돌아 올라가게 만든 구조가 뉴욕 구겐하임미술관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구겐하임을 모방했다" "독창성이 없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김수근이 설계한 부여박물관의 '왜색 논란'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시에는 꽤 시끄러웠다.결국 논의 끝에 그 공간에 백남준의 작품을 설치하자는 아이디어가 채택됐다. 이게 '신의 한 수'가 됐다. 88올림픽 개막과 함께 설치된 백남준 비디오아트의 걸작 '다다익선'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름 7.5m 원형에 높이 18.5m, 개천절을 의미하는 1,003개의 모니터 속에는 서울의 풍경과 굿판 등 퍼포먼스 사진과 '굿모닝 미스터 오웰', '바이바이 키플링' 등 위성 프로젝트의 영상을 탑재했다. 관람객들이 작품을 감상하려면 나사형 공간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이게 꼭 우리의 전통 '탑돌이' 의식과 비슷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역시 백남준은 천재였다. 다다익선은 기단부에 10인치 522대, 2단에 25인치 195대와 3단에 20인치 103대, 4단에 14인치 93대, 상륜부에 6인치 TV 60대로 이뤄졌다. 모두 브라운관인 탓에 그동안 중간중간 화면이 꺼져 2003년 전면 교체했다. 그 후에도 2010년 244대, 2012년 79대, 2013년 100대, 2014년 98대, 2015년 320대를 수리하거나 교체했다. 그러다 올 2월 가동이 완전히 중단됐다. 더는 브라운관 TV를 구할 수 없어서다. LCD 모니터로 교체하는 방안과 철거 후 오마주작품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두고 의견 조율 중이나 결론을 내지 못해 여전히 불 꺼진 상태로 있는 중이다.지난 12일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더불어 민주당 이상헌 의원이 이 문제를 거론해 다다익선이 또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이 작품은 현존하는 백남준의 대표작이자 규모 면에서 가장 큰 작품. 외국에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이 '다다익선 미술관'으로 더 알려진 것도 그런 이유다. 특히 올해는 작품이 설치된 지 30년이 되는 뜻 깊은 해다. 하지만 다다익선은 우리의 무관심속에서 8개월 째 먹통이다. 이는 우리 문화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말로만 자랑할 뿐, 정작 고국에서 백남준은 저평가된 예술가로 푸대접을 받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0-28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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