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유령사회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우리는 유령사회(幽靈社會)에 살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유령들이 어슬렁거리고 있다. 회사 자금을 빼돌리는 '유령회사', 건강보험 비용 허위 청구를 위한 '유령환자', 일부 성형외과에서는 '유령의사'가 불법 대리수술인 '유령수술'을 한다. 보험금을 노린 환자들을 상대로 허위 입원 서류를 발급해온 '유령병원', 삼성증권의 '유령 주식', 연금수급 대상자가 사망한 뒤 이를 감추고 가족이 받는 '유령연금' 등등 우리 사회는 이미 유령들로 가득 차 있다. 어제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가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유령 연금'으로 살아가는 가족의 슬픈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우울한 주제를 훈훈한 가족애로 승화시켰다고 해서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다. 히로가즈 감독은 2010년 7월 말 '동경 최고령 남성'으로 등록된 111세 할아버지가 실제로는 30년 전에 숨진 것으로 드러나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사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당시 사건 후 일본정부와 지자체는 긴급 조사에 들어갔는데 그 결과가 놀라웠다. 거주지가 확인되지 않는 100세 이상 고령자가 23만4천354명, 이 가운데 120세 이상은 7만7천118명, 150세 이상은 884명이었다. 나가사키(長崎) 현에는 200세 남성이 호적상 생존하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장수 대국'이란 자부심을 느끼고 있던 일본의 고령자 통계가 모두 엉터리였던 것이다. 그때 나온 신조어가 '유령고령자'다. 24일 경인일보는 인천의 공공도서관 도서 구매 입찰을 노린 가짜 서점이 300여 곳에 달한다는 충격적인 고발기사를 내보냈다. 취재기자는 그런 서점을 '유령서점'이라고 지칭했다. '서적 도·소매업'으로 사업자 등록만 내면 실제로 서점을 운영하지 않더라도 도서구매 입찰 참여가 가능한 한심한 조례가 원인이었다. 불법이 아니니 '청소용역업체', '소방설비업체', '유통상사업체'가 버젓이 도서납품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말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다. 인천의 94개 '진짜 서점'들은 이런 '유령서점'때문에 지금도 경영난으로 가게 문을 닫을지 말지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유령서점이 인천에만 존재하는 건 아닐 것이다. 당장 '고스트버스터즈'를 호출해서라도 우리 사회를 좀먹은 이 땅의 유령들을 모두 쫓아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26 이영재

[참성단]중년의 희망 '버스기사'

여러 단편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 표현하는 예술장르인 옴니버스(Omnibus, 모든 이를 위한)는 대중교통수단인 버스의 표준어이다. 1827년 프랑스의 온천장 주인이 호객을 목적으로 운영한 마차에 옴니버스라 붙인 호칭이 번져, 합승마차를 뜻하는 명사가 됐다. 서부개척시대의 역마차가 대표적인 옴니버스인 셈인데, 미국에서 버스로 줄여 부른게 오늘에 이른다.버스는 현대 도시문명의 살아있는 유산이다. 버스가 등장해 대중교통 시대를 연 덕분에 도시가 성장했고, 도시와 도시가 연결됐다. 한국에서도 버스는 박정희의 산업화 시대를 견인한 주역이었다. 노동자를 공장으로, 학생을 학교로 실어날랐던 버스는 늘 만원이었다. 어떻게든 올라타려는 승객이나 버스에 간신히 매달린 채 개문발차를 감행하던 안내양 까지,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를 합창했던 절박한 시대의 자화상이었다.비행운 처럼 뽀얀 흙먼지를 날리던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에 면해 있으면 그나마 벽촌을 면했고, 70년대 들어 잇따라 개통한 경부, 영동고속도로를 질주하던 고속버스는 도시의 부와 문명을 시골 구석구석에 전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처음 탔던 유년시절의 고속버스는 충격적인 체험이었다. 시내버스와 시외버스의 치열한 경쟁이 없는 쾌적함이 고운 유니폼을 입은 여승무원이 나눠준 사탕보다 달콤했던 모양이다. 자라면 저리 되리라, 단정한 제복 차림의 운전사를 흠모했던 기억이 새롭다.본보 보도에 따르면 경기도내 운전학원과 면허시험장에 1종 대형면허를 따려는 5, 60대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운수종사자가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고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버스 기사가 부족해진데 따른 재취업 행렬이다. 도는 2022년 까지 8천여명의 버스 기사를 양성하기 위해 예산까지 늘렸다고 한다.버스는 여전히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이다. 하지만 버스 기사의 과로운행이 빚은 대형사고로 악명이 높았다. 또 준공영제가 시행되는 지역은 구직난으로, 그렇지 않은 지역은 구인난에 시달린다니 지역별로 다른 보수차이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차제에 근로시간이 단축되고, 준공영제가 정착돼 버스기사가 중년의 직업으로 정착된다면 시민들도 환영할 일이다.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아직도 어느 외진 산골에선 사람이 내리고 싶은 자리가 곧 정류장"이라는 여유가 생길듯 싶어서다. 실업대란 시대에 버스업계의 구인난이 신기하면서도 반갑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7-25 윤인수

[참성단]노회찬이 남긴 '양심의 저울'

23일 오전 느닷없이 타전된 노회찬 의원 사망 뉴스에 놀랐다. 그의 유서를 읽고는 심경이 착잡해졌다. 유서에 담긴 그의 진심을 헤아리자 111년 만의 폭염에도 등골이 서늘해졌다.노 의원은 유서에서 진실을 고백했다. "드루킹의 경공모로 부터 모두 4천만원을 받았다." 잘못을 시인했다. "(경공모)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자책했다.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스스로 검사가 됐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 노 의원이 자신에게 내린 최종형량은 '목숨'이었다.양심(良心)의 무게를 고민하게 된다. 이집트 신화는 양심의 무게를 깃털로 쟀다. 사람이 죽어 정의의 방에 들어가면 자신의 심장과 깃털을 천칭에 올려 무게를 견준다. 심장이 깃털보다 가벼우면 양심불량으로 판정돼 괴물의 먹이로 떨어졌다. 양심은 옳고 그름과 선악을 판단하는 도덕적 의식이다. 인간이라면 최소한 깃털 만큼의 양심을 가져야 한다는 은유다.깃털 만큼의 양심 마저 간직하지 못한 사람들로 혼탁한 세상이고, 정치권은 더욱 그렇다. 어제 말과 행동이 오늘 다르고 내일 변하는 팔색조 양심을 소신으로 치장하는 사람들 투성이다. 그래서일까. 노 의원이 드루킹 특검과 맞설 것이 당연시됐던 참이다. 하지만 간디의 말 대로 양심은 세상에서 유일한 독재자였나. 노 의원은 지금껏 지켜온 양심의 명령에 따라 스스로 심판대로 오르고 말았다. 평생 헌신했던 진보정당이 안착하는 상황을 원내대표인 자신이 망칠 수 있다는 자괴감도 그의 양심을 괴롭혔지 싶다. 세간엔 노 의원의 죽음을 그동안의 정치자금 관행이나 사회 주류층의 병리적 행태에 비추어 과도한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대세인 모양이다.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기는 심정의 반영일 것이다. 하지만 그 선택이 노 의원의 양심 과잉인지, 아니면 그 선택이 과했다는 우리 사회의 반응이 양심 결핍인지 또렷하게 구분하기 힘들어 괴롭다.노 의원이 돈을 받았다는 2016년 3월이면 4·13 20대총선 열기가 한창일 때다. 얼마나 많은 불법정치자금들이 오갔을까. 양심의 무게야 각자가 정하는 것이니 기준을 세울 수 없다. 다만 정치인들이 노 의원의 빈소에서 각자 양심의 무게를 달아보고 오길 바란다. 노회찬은 한국 정치에 양심의 저울을 남기고 갔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7-24 윤인수

[참성단]하늘 '廣場'으로 떠난 최인훈

스무 살 넘어 읽은 소설 중 인생의 지침을 흔들었던 것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두 개의 소설을 꼽는다. 하나는 김승옥의 '霧津紀行'이고, 또 하나는 최인훈의 '廣場'이다. 물론 그 외 많은 작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뿜어내는 폭발적인 열정과 슬픔을 이기는 것은 단언컨대, 없다. 전후 한국 현대 문학은 이 두 개의 소설에서 시작됐다.4·19세대 문학평론가 김현은 '정치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였다고 볼 수 있다'고 단언했다. 60년 10월 '새벽'지에 발표된 원고지매수 600장에 불과한 이 중편소설 하나가 한국문학에 끼친 영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광장'이 발표된 이후 '최인훈의 광장'은 한데 묶여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80년대 젊음을 보냈던 우리가 이럴진대, 4·19세대가 '광장'에서 느낄 감흥이 어떨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최인훈의 광장' 주인공 이명준은 밀실과 광장으로 상징되는 남과 북의 정치 현실에 환멸을 느끼며 제3국으로 가는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린다.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 삼천 톤의 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곡히 들어찬 동중국 바다의 훈김을 헤치며 미끄러져 간다'로 시작되는 광장의 첫 구절은 우리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광장'은 분단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의 출현을 알렸다. 이 모두 4· 19혁명이 있어 가능했다.지독히도 책을 읽지 않는 시절이지만 '광장'이 지금껏 꾸준히 읽히는 것은 남북이 대치하는 분단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 민족의 분단 상태가 지속하는 한 '광장'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억압받아 온 이데올로기의 전반적인 상황을 증거하는 발언으로 거듭 읽힐 것이다. 그리고 분단 상황이 해소되고 이데올로기로부터도 해방되고 나서도 그것은 그래도 여전히 읽힐 것이다' 라고 말했다. '광장'은 지금까지 204쇄 70만부가 팔렸다.'광장'의 최인훈이 23일 오전 10시46분 별세했다. 향년 84세. 함경북도 회령 태생으로, 이제 그 역시 고향 땅을 밟아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 수많은 실향민 중 한 명이 되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23 이영재

[참성단]부러진 애국심

1944년 1월 25일 오전 7시 40분 8명이 탑승한 B-24J 폭격기가 중국 쿤밍(昆明) 비행장을 이륙했다. 이들의 임무는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에서 보급품을 받아 오는 것. 이들이 다니던 '험프'는 날씨가 변화무쌍해 '지옥으로 가는 길'이란 별명이 붙은 '악명 높은' 항로였다. 불행하게 이 비행기는 이륙한 지 3시간 후 지상과의 연락이 끊겼다.미국은 1947년 '험프'에서 추락한 비행기 잔해와 실종된 미군 유해를 찾는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300여 구의 시신을 수습했지만, 이들이 탄 B-24J 폭격기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수색은 계속됐다. 마침내 2012년 10월, 군인·의사·고고학자·인류학자·항공기전문가로 구성된 수색팀이 인도 동북부 히말라야 산맥 2천820m의 바위투성이 산 계곡에서 처참한 모습의 비행기를 발견했다. 추락한 지 68년 만이었다. 이 업무를 담당한 곳이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You are not forgotten)'를 모토로 하는 미 국방성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이다. 미국인의 '자발적 애국심 발전소'로 불리는 곳이다.17일 포항에서 상륙기동헬기 마린온이 이륙 도중 추락해 5명의 해병대원이 목숨을 잃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잔해와 시신. 사고현장은 너무 끔찍해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정부의 사고 처리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다. 사고 현장을 즉시 공개하지 않았을 뿐더러, 청와대 대변인이 뜬금없이 "수리온의 성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발표했다. 마린온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투였다. 대통령의 애도 역시 사고 3일 후에야 나왔다. "유족들이 의전 등이 흡족하지 못해 짜증이 난 것 같다"는 국방부 장관의 발언은 사과 후에도 여전히 유족과 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고 있다. 미국이 최강국이 될 수 있었던 건 전쟁과 훈련 도중 발생한 그 어떤 사고라도 신속히 원인을 밝혀내고, 끝까지 시신을 찾아 가족 품에 돌려주는 '국가의 의무'를 다 하기 때문이다. '험프' 수색이 이를 증명한다. 훈련 중 목숨을 잃은 장병은 물론 유가족의 슬픔과 고통을 가벼이 여긴다면 우리는 절대 강한 국가가 될 수 없다. 마린온의 부러진 날개로 5명의 해병이 순직했지만, 그들의 고귀한 '애국심'마저 부러뜨려선 안 된다. 장병의 영결식은 사고 6일이 지난 오늘, 해병대장으로 열린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22 이영재

[참성단]고승호와 돈스코이호

1894년 7월 25일 인천 옹진군 울도 인근 해상에서 일본 전함의 포격으로 영국 국적 상선 고승호(高陞號)가 침몰했다. 청나라가 조선에 파견할 군인 수송선으로 활용하기 위해 빌린 이 배엔 청군 1천200여 명이 타고 있었다. 고승호의 침몰은 청일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였다. 그러나 탐욕스러운 인간들에게 역사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고승호가 침몰한 그 날부터 청나라의 군자금으로 쓰일 은덩이와 은화 약 600t이 실려 있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소문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이후, 그리고 근래까지 약 100년에 걸쳐 계속됐다. 그리고 2001년 고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운영하던 대아실업의 투자사인 '골드쉽'이 고승호 발굴에 성공했다.문제는 주식시장. 발굴이 진행되려는 시점에 대아건설 주식이 급등했다. 2001년 7월 30일 신문마다 이런 기사가 실렸다. '주식시장에서 '대아건설은 40%의 지분을 갖고 있는 보물선 인양업체인 골드쉽이 청일전쟁 당시 서해안에 침몰한 고승호에서 은괴를 발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주가가 가격제한폭까지 오르는 등 요동을 치면서 '보물선 관련주'들도 덩달아 초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막상 인양된 고승호에는 소문과는 달리 약간의 은화와 엽전, 총기류, 탄알, 쌍안경, 선박용 온도계, 군인 신발, 도자기류 등이 발견됐다.1905년 러일전쟁에 참전했다가 울릉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돈스코이호가 연일 화제다. 한 기업이 '150조원의 금괴가 실린 보물선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고 주장하면서 관련 주가가 급·등락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2003년 6월 3일 신문마다 이런 기사가 실렸다. '3일 증시에서는 보물선 관련주들이 급등해 주목을 받았다. 동아건설이 울릉도 저도 앞바다에서 금괴를 실은 것으로 알려진 제정 러시아의 '돈스코이호'로 추정되는 침몰선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발단이 됐다. 이에 따라 장외시장에서 200~300원대에 불과하던 동아건설 주가가 800원대까지 뛰었다.' 하지만 동아건설은 그해 부도가 나 사라졌다.끔찍한 폭염으로 불쾌지수가 연일 치솟고 있는 요즈음이다. '보물선' 소식이 청량제가 되어 서민들의 더위를 조금이라도 씻어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더 '선'을 넘는 것은 곤란하다. 허황한 꿈이 횡행하고, 거기에 사람들이 현혹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19 이영재

[참성단]'트럼프 리스크'

미국 조야가 한 목소리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혼쭐내고 있다. 미·러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러시아가 2016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자국 정보기관 조사결과를 비난하면서 푸틴 대통령을 옹호한 게 발단이 됐다. 여당인 공화당부터 발끈했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미국 대통령으로서 가장 수치스러운 행동"이라고 머리를 저었다. 민주당 척 수머 상원 원내대표는 "미국의 적을 옹호한 대통령"이라며 "미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합세했다. 존 브레넌 전 CIA국장은 트럼프의 기자회견을 아예 "반역적"이라고 규정했다.언론의 비판은 더한데 보수 언론이 한 술 더 떴다. 트럼프가 사랑하는 폭스뉴스사의 한 진행자는 기자회견 생방송 도중 "좌파냐 우파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잘못된 일"이라며 "구역질 난다"는 극언을 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적국의 범죄 지도자와 공모한 것"(워싱턴 포스트), "트럼프가 푸틴의 발아래 누웠다"(뉴욕 타임즈), "미국 대통령을 더 이상 자유세계의 지도자라 부를 수 없게 됐다"(CNN) 등 미국 유력매체들은 현직 대통령을 '미국의 공적'으로 취급했다.트럼프는 모처럼 주눅든 표정으로 "말 실수"였다 해명했지만, 이번 기자회견 사태로 대통령을 향한 미국 주류사회의 의심은 회복 불가능 수준으로 깊어졌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지독한 자기중심적 정치와 맥락 없는 언행으로 국제질서를 혼란에 빠트렸다. 동맹은 당황했고, 적국은 미소지었고, 미국은 부끄러워했다. 미국 외교분야의 거물인 조지프 나이는 저서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에서 중국을 비롯한 세계강국과 미국 국력을 일일이 견주어보고 "미국의 세기는 끝나지 않았다"고 단정했다. 하지만 현재의 트럼프 리스크를 감안해 개정판을 낸다면 결론이 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미국 국내는 물론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과 하다 못해 북한까지 트럼프 리스크에 맞서거나 요령있게 관리 중인 국제정세다. 문제는 우리다. 트럼프 리스크의 직접 영향권에서 대처가 애매하다. 당장 북한핵을 요절낼 기세는 온데간데 없이 미북정상회담 이후부터 '세월아 네월아'니, 부동산 사업차 김정은을 만난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미·중 관세전쟁으로는 대한민국 수출을 압박하고, 안보와 무역 등 돈 내놓으라 트집 거는 분야가 한 두개가 아니다. 솔직히 말해 북핵 해결 없이 전대만 털릴까 걱정이다. 적극적으로 트럼프 리스크를 관리할 때가 됐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7-18 윤인수

[참성단]성희롱 논란 고전문학 수업

고등학교 때였다. 교과서 한 권만 들고 들어오는 국어 선생님이 계셨다. 수업이 시작되면 늘 "지난 시간 어디까지 배웠지?"라고 말했고, 우리가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요!"라고 하면 "그럼 오늘은 구지가(龜旨歌)를 배우자"며 칠판에 향가를 적어 내려갔다. 일필휘지였다. 물론 책은 들춰보지도 않았다. 향가가 이두를 통해 암호처럼 해독되는 과정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런 선생님의 모습이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우리는 향가 25수를 그렇게 배웠다.향가는 통일신라 때 크게 유행하다 고려 초 소멸한 시가(詩歌)로 요즘으로 치면 인기가요다. 당시에는 훨씬 많은 노래가 불렸겠지만, 불행하게도 삼국유사에 14수, 균여전에 11수만 전해진다. 순수한 우리 글로 표현할 수 없어서 이두(吏讀), 즉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빌려서 표기했다. 그러다 보니 해석에 어려움이 따르고 해독자에 따라 다른 해석이 나오곤 했다. 그래도 향가는 신라 문학이라는 것 외에도 훈민정음 이전의 고어(古語)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귀한 자료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향가를 수록해 가르치는 것은 문학적 또는 역사적으로 '꼭 알아야 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우리의 향가처럼 일본에는 만엽집(萬葉集)이 전해져 내려온다. 상당수 작품이 지나치게 선정적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은 만엽집을 '일본 정신의 고향'으로 추앙하고 있다. 이영희(李寧熙) 전 국회의원은 7권의 저서를 통해 만엽집이 '고대 한국어를 이두체로 기술한 4천516수의 노래묶음'이라고 단언한다. 일본학자들은 기겁하지만, 일본인조차 해석 못 한 만엽집 일부를 이 전 의원은 고대 한국어로 모두 해독했다. 한자가 5세기 왕인박사 등 백제 학자에 의해 일본에 전해진 걸 떠올리면 이영희의 해독은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수업 도중 향가 '구지가'의 해석을 놓고 인천의 한 사립여고 교사가 성희롱 논란에 휩싸였다고 한다. 구지가의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란 대목에서 거북이 머리가 남근(男根)으로 해석된다는 교사의 설명이 성희롱이었다는 것이다. 학교 측은 A교사를 수업에서 배제했다. 한마디로 어이가 없는 노릇이다. 구지가가 이 정도면 처용가(處容歌)를 가르칠 땐 어땠는지 궁금하다. 우리 고전문학엔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가 꽤 많다. 이 잣대라면 우리의 고전문학 수업은 모두 중단되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17 이영재

[참성단]고희 맞은 대한민국 헌법

오늘로 대한민국 헌법이 제정 70주년을 맞았다. 1948년 5·10총선거로 구성된 제헌국회는 7월1일 '대한민국'을 국호로 확정하고, 12일 대한민국 헌법을 성안해 17일 내외에 공포했다.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선출하고 정부를 구성한 뒤 8월15일 대한민국 수립을 선포했다.링컨은 "국가는 거기에 거주하는 국민의 것"이라고 했다. 무엇으로 이를 확인하는가. 헌법이다. 헌법은 자유로운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장전이다.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헌법 10조~39조만 온전히 작동해도 국민은 존엄과 가치를 지닌 인간으로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국민 개개인이 헌법을 숙지하고 생활의 준칙으로 삼으면 수많은 사회적 갈등이 해소될 것이다.가령 대한항공 조씨 일가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는 헌법 11조2항의 정신을 존중했다면, 아랫사람들을 그리 함부로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씨 일가 뿐인가.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정신대로라면 특권의식에 기생한 갑질문화가 발붙일 자리는 없다. 갑질문화는 국민의식이 헌법정신에 못미친다는 증거다. 법 앞의 평등이 돈 앞에서 깨지는 사회는 천박하다.최근 사회를 긴장시키고 있는 최저임금 논란도 헌법에 기초하고 있다. 정부는 근로자의 고용증진과 적정임금 보장으로 최저임금제 시행(헌법 32조1항) 의무를 수행했지만, 편의점 사장들을 비롯한 소상공인들은 생존권 위기를 호소하며 '헌법에 입각한 국민저항권'으로 맞서고 있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대폭 인상하는 바람에 죽게 생겼으니, 최저임금에 불복하겠다는 얘기다.최저임금 현상유지로 인간적 생존을 유지해달라는 편의점 사장들의 헌법적 권리와, 대폭인상으로 적정임금을 보장하라는 근로자의 헌법상 권리가 충돌한 것이다. 결국 최저임금법의 합리적 운용을 통해 양측의 헌법적, 헌법상 권리를 조화시켜야 할 정부만 사면초가 신세가 됐다.물론 소상공인들의 국민저항권이 헌법에 부합할지는 따져 볼 대목이 많다. 다만 편의점 사장님은 절망하고 아르바이트생은 불안하다니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결과가 '국민의 행복추구권' 보장이라는 헌법의 선의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이해가 엇갈리는 모든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려는 정부의 헌법상 의무수행은 매우 섬세해야 한다는 교훈은 남았다. 제정 70주년을 맞는 헌법의 정의를 곱씹어봐야 할 시절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7-16 윤인수

[참성단]여의도 포청천 문희상

8선 이만섭 전 의원은 14대, 16대 두 번 국회의장을 지냈다. 그는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지는 법안 처리를 무척 싫어했다. 14대 의장 때 통합선거법 등의 날치기 처리를 위한 본회의 사회를 거부하면서 김영삼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다. 16대 땐 새천년민주당이 국회 원내 교섭단체의 구성 요건을 완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상임위에서 일방적으로 통과시키자 "날치기는 안 된다"며 법안의 본회의 처리를 끝내 거부했다. 그는 국회가 정부가 보내온 법을 통과시키기만 하는 '통법부(通法府)'가 돼선 안 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진 국회의장이었다. 3공화국 이후 권력의 양지에서만 지냈다는 일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의장 시절 그에 대한 평가가 후한 것도 이런 이유와 무관치 않다.문희상(경기 의정부갑)의원이 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에 선출됐다. 경기도 출신 국회의장은 1·2대 신익희 의장 이후 64년 만이다. 문 의장은 여야를 넘나드는 폭넓은 인맥과 특유의 친화력, 여기에 청와대에 대한 영향력도 상당하다는 평가를 듣는다. 국회가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지금, 국회 기능을 살리는데 나름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문 의장은 별명이 많다. 북송 시절 명판관 포증(包拯)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판관 포청천'의 주인공과 닮았고, 균형 잡힌 일처리를 한다고 해서 '여의도 포청천'이란 별명이 붙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얻은 '개작두', 외모 덕분에 '겉은 장비 속은 조조' '웃는 돼지' 등 다양한 별명도 갖고 있다. 문 의장은 우락부락한 외모와 달리 '할 말은 하고 풍류도 아는, 여의도에 얼마 남지 않은 정치인'이다.최근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의회주의자’ 문희상이 국회의장이 돼서 다행이다. 의장 수락연설에서 “첫째도 협치, 둘째도 협치, 셋째도 협치”라고 말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힘으로 야당을 밀어붙이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린다.정치인은 이해와 현실을 좇고, 정치가는 시대와 역사를 읽는다고 한다. 국회의장이란 자리는 국회 의원이 국민을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하는 자리다. 권력을 쳐다보지 말고 늘 국민의 편에 서서 의회민주주의 전통을 지키는 국회의장이 되길 바란다. 실제 '여의도 포청천'이 돼서 퇴임 후에도 "문희상은 '현실 정치인'이 아닌 '시대의 정치가' 였다"는 평가가 내려지길 기대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15 이영재

[참성단]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 2018

세계 3대 영화제로 베니스, 칸, 베를린 영화제를 꼽는다. 각자 색깔과 특성이 다르다. 칸이 작가주의 작품을 선호한다면, 베니스 영화제는 예술적인 작품을, 베를린 영화제는 철학적이고 실험적이며 진보적인 영화를 선호한다. 이들 영화제는 자신들의 색을 갖기 위해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세계적인 영화제가 되려면 이들처럼 연륜이 쌓여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정체성 논란을 빚으며 영화제 존폐를 논할 정도의 우여곡절도 겪어야 한다. 그러면 영화제에 나름의 고유 색깔이 입혀진다.부천 판타스틱 영화제(BIFAN)가 어제 개막했다. 22회째다. 역대 BIFAN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으라면 1회 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킹덤'일 것이다. 이 공포 영화는 BIFAN을 다른 영화제와는 분명히 다른, 특별하게 뭔가가 있는 영화제로 각인시킨 일등공신이었다. 이 영화 덕분에 BIFAN은 장르영화제 마니아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아왔다. 표현의 억압과 금기에 도전하는 작품들을 여과 없이 소개하면서, 다양성을 겸비한 독자적인 영화제로의 위치를 굳건히 할 수 있었다. 너무하다 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되는 성과 폭력, 타락한 사회를 시원하게 조롱하는 '그들만의 향연'이었다. 반대로 장르영화제가 갖는 한계는 일반인들의 진입을 막는 벽이었고, 그것은 주최 측에게 늘 커다란 고민이었을 것이다.20회를 기점으로 BIFAN은 큰 변화를 맞았다. 애초 영화제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마니아부터 일반 관객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제로 탈바꿈한 것이다. 당시 '코리안 판타스틱' 경쟁 부문을 신설하고, 가족을 위한 '패밀리 존'을 부활시킨 것도 그런 이유다.올 BIFAN엔 53개국에서 290편의 작품을 출품했다. 개막작에 오성윤·이춘백 감독의 애니메이션 '언더 독', 폐막작이 인도영화 '시크릿 슈퍼스타'인 것은 나름 의미심장하다. 그렇다고 호러 영화가 빠진 것은 아니다. 이름만으로도 오싹한 웨스 크레이븐, 조지 A 로메로, 토브 후퍼 감독의 특별전 '3X3 EYES: 호러 거장, 3인의 시선'은 영화제 고유의 색깔을 지키겠다는 주최 측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특별전만으로도 이번 폭염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여건에도 영화제를 이만큼 성장시킨 BIFAN 집행위원회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부산이 부럽지 않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12 이영재

[참성단]볼음도 은행나무의 딱한 사연

가로수로 친근한 은행나무는 주변에 지천이라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별칭이 무색할 지경이다. 하지만 계문강목과속종(界門綱目科屬種)식 생물분류에 따르면 은행나무는 '식물계·은행나무문·은행나무강·은행나무목·은행나무과·은행나무속·은행나무'다. 공룡이 멸종된 6천600만년 전 신생대 이후부터 한 조상과 한 후손만으로 현재의 자태를 이어왔으니 경이로운 존재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은행나무를 멸종위기종 목록에 올린 것도 스스로 번식 자생하는 야생군락지를 찾기 힘들어서다.계통상 다른 식물들과 섞이지 않는 고고함 때문일까, 은행나무는 수령이 길다. 당연히 사람과의 영적교감이 담긴 설화도 많다.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수령은 1100~1500여년으로 추정되는데 멀게는 신라시대부터 한자리를 지킨 셈이니, 원래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였다는 전설이 그럴듯하다. 수령 700년의 안동 용계 은행나무는 한일합방 등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우는 신목으로 유명한데, 다시 우는 일이 없어야겠다.신묘한 자태와 달리 살구를 닮은 은행열매는 똥냄새에 버금가는 악취로 악명이 높다. 성균관대 은행나무는 열매 악취로 성균관 유생들의 공부를 방해해 왕에게 혼쭐이 났을 정도다. 은행나무 가로수가 가을이면 악취민원을 일으키는 건, 숫나무만 심어야 하는데 암나무가 섞여든 탓이다. 요즘은 유전자 기술로 묘목단계에서 암수구별이 가능해졌다니 다행이다. 주의할 건 떨어진 열매를 줍는 건 괜찮지만, 나무를 털어 열매를 따면 범죄다. 은행털이는 안된다.자웅이주의 특성상 은행나무는 암수 부부나무가 있어야 종자를 맺는다. 그런데 천연기념물 304호 강화 볼음도 은행나무가 홍수로 아내 나무와 헤어진지 800년, 이제는 남북 이산나무라(경인일보 7월 10일자 1판1면)니 딱하다. 볼음도 남편 나무의 짝으로 알려진 북한 천연기념물 165호 연안 은행나무는 800년 불임의 세월을 어떻게 견뎠을까. 이제라도 인공 수분(受粉)을 통해 부부의 연을 이어주자는 발상은 남북교류의 상징적 행사로 안성맞춤이다. 명맥이 끊어진 부부나무 풍어제도 복원되면 금상첨화다.그런데 남북,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행보가 오리무중이다. 북한 비핵화 시간표가 안나오면서 한반도정세가 꼬이는 형국이다. 볼음도 은행나무와 연안 은행나무의 상봉 시기가 궁금해진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7-11 윤인수

[참성단]鄭基烈의 歸去來辭

도연명이 펑쩌현 현령 자리를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귀거래사'로 남길 때, 그의 나이 41세였다. 고향으로 간다고 귀거래사를 '안빈낙도(安貧樂道)'라고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내용은 결연하다. '전원(고향)이 장차 황폐해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라는 첫 구절은 물론이고, '남녘의 거친 들판을 일구며/ 전원으로 돌아가 자연에 묻히리라'는 대목에선 변화무쌍한 자연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했던 도연명의 확고한 의지가 엿보인다. 귀거래사는 세속과의 결연한 결별선언서이기도 하다.'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짐도 있다'는 회자정리(會者定離)는 '법화경'에 있는 가르침으로 세상의 무상함을 이른 말이다. 아무리 평탄한 삶을 산다 해도 인간은 평생을 통해 한두 번의 귀거래사를 읊조리게 마련이라는 뜻도 된다. 조순 전 부총리는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이란 귀거래사를 남겼다. '일은 사람이 꾀하지만, 그 일이 되고 안 되고는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고 읽히나 '최선을 다한 후에는 그 결과에 연연하지 말라'는 뜻에 더 가깝다.물러날 때 소회가 없을 수 없다. 하물며 출세의 정상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라면 퇴임의 느낌은 남다를 것이다. 숨 가쁘게 달려왔던 인생, 자신의 모든 것이었다고 생각했던 그 길을 접는 퇴임의 변이 사람에 따라, 살아온 인생에 따라 무지개처럼 다양한 빛깔을 갖는 것은 그래서다.지난달 30일로 임기를 마치고 야인으로 돌아간 제9대 경기도의회 정기열 의장이 9일 주변인들에게 퇴임 인사 겸 새 출발을 알리는 문자를 보내왔다. 그는 문자를 통해 "7월 2일부터 10년 전 다녔던 자동차회사 안양 동안지점 영업과장으로 복직해 카마스터로 일을 시작했다"며 "앞으로 정치인이 아닌 직장인으로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지역주민과 소통하고 직장인으로서 또다른 꿈을 향해 자동차를 팔면서 꿈을 이루어 가려고 한다"는 귀거래사를 남겼다. 정치인으로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도의회 의장까지 지낸이가 아무리 옛 직업이라 해도 카 마스터로 돌아가는 것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1971년생이니 그의 나이 48세, 정치인으로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나이다. 그래서 그의 문자 속엔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뜻이 담겨 있는 듯해 애틋한 느낌마저 든다. 거친 재야에서도 열심히 뛰어다닐 그의 모습이 벌써 눈에 선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10 이영재

[참성단]김세영의 대기록과 한국 여자골프

한국 여자 프로골프가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다. '빨간 바지의 마법사' 김세영(25)이 9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사상 72홀 역대 최저타와 최다 언더파 신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날 김세영의 LPGA 투어 손베리 크리크 클래식 최종 우승기록은 31언더파 257타. 최다 언더파 기록은 안니카 소렌스탐과 자신의 공동기록이던 27언더파를 넘어선 것으로, 남자 투어인 미국프로골프(PGA) 어니 엘스의 기록과 동률이다. 여성으로는 최초로 30언더파를 넘겼으니 좀처럼 깨지기 힘든 기록이다.이제 LPGA는 한국 여성 프로골퍼가 지배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만 출발은 초라했다. 1950년 출범한 LPGA투어에서 한국인 첫 우승은 1988년 스탠더드레지스터 대회의 구옥희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나 1998년 혜성처럼 박세리가 등장해 2개의 메이저대회를 포함해 4승을 올리면서 한국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이후 박세리키즈들의 맹활약으로 2014년 이후에는 한해 30여개의 LPGA투어 대회중 절반 이상을 한국과 한국계가 우승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뿐만 아니라 박세리, 박인비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박인비는 커리어그랜드슬램을, 김세영은 LPGA 한국 선수 통산 203승 경기에서 역대 최저타와 최다 언더파 기록을 세웠으니 LPGA는 이제 한국 여성골퍼의 안방무대나 다름없고, 선수들이 상금으로 챙기는 외화도 만만치 않다.박세리의 1998년 US오픈 맨발의 투혼은 당시 IMF 우울증에 시달리던 국민들에게 위기극복의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까만 종아리 밑으로 드러난 새하얀 맨발이 양희은의 상록수와 함께 방영될 때마다 그녀의 투혼이 국민들의 가슴으로 전이됐다. 박인비는 새하얀 그 맨발을 보고 골프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박세리키즈의 탄생이다. 박세리키즈의 막내격인 김세영의 대기록도 경기침체로 한껏 위축된 우리 사회를 위로하기에 충분하다.분명한 것은 박세리, 박인비, 김세영의 대기록도 착실한 한걸음이 누적된 결과라는 점이다. 골프는 무수한 반복을 통해 자신의 스윙을 만들어야 경지에 오를 수 있는 종목이다. 대선수일수록 구도자의 심정으로 연습에 매진한다. 한걸음 한걸음의 축적이 위대한 결과를 만든다. 조급증에 걸린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덕목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7-09 윤인수

[참성단]SF영화가 경고하는 저출산

요즘 마거릿 애트우드의 동명 소설을 드라마화한 '시녀이야기'를 흥미롭게 보고 있다. 30년 전 출간된 소설이 지난해 아마존이 집계한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읽은 소설' 1위, 드라마는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제69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시리즈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여우주연상 등 주요 5개 부문을 수상한 관심작이다.내용은 이렇다. 배경은 미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권력을 잡은 '길리어드'. 전쟁과 환경오염, 각종 성질환으로 출생률이 급격히 감소하자 여성들은 통제와 감시 속에서 가임여부에 따라 여러 계급으로 분류된다. 임신 가능한 여성들은 빨간색 드레스에 하얀 베일을 쓴 '시녀'가 돼 아이를 낳는 데만 집중한다. 정해진 기간 내에 아이를 낳지 못하면 식민지로 추방된다.'시녀이야기'를 보면서 공포감이 엄습한 것은 오래 지나지 않아 우리에게 현실로 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임신 능력을 상실하여 모든 사람이 더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2027년을 배경으로 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을 보았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브레이드 러너' '마이너리티 리포트'같이 암울한 미래를 다룬 SF 영화에는 감독이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아이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인조인간이 출현하는데 이는 출생률 감소와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대통령 직속 저출산 고령사회위원회가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올해 출산율이 1명 아래로 떨어지고, 2022년 이전에 출산 아동이 20만명 대로 추락한다는 내용이다. 올해 출산 아동은 지난해(35만8천명)보다 적은 32만명대로, 이 예상이 맞는다면 한국은 지구에서 유일한 출산율 0명대 국가가 된다. 어쩌면 그리 오래지 않아 우리 주변에서 '칠드런 오브 맨'처럼 아기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는 현실과 마주칠지 모른다.통계에 놀라서인지 문재인정부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아이 돌보미 지원 대상 확대, 임금 삭감 없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배우자 유급출산휴가 확대 등 예전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아 예상대로 '무감동'이다. 예산을 9천억원 늘렸다지만 이 정도로 저출산을 막으려 한다면 우물에서 숭늉찾는 격이다. 저출산은 국가 존폐와 직결된다. '일하며 아이 키우기 행복한 나라'는 단지 돈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닐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08 이영재

[참성단]GE와 삼성전자

지난달 21일 제너럴 일렉트릭(GE)이 다우지수 30대 구성 종목에서 제외됐다. GE는 다우지수 출범 때 포함된 종목 중 하나였다. 한때 잠시 다우지수를 떠난 적도 있으나 1907년 다시 편입돼 111년 동안 자리를 지켜왔다. GE의 다우지수 제외는 미국 증시에 큰 충격을 주었다. 말이 제외지 사실상 쫓겨났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GE 주가는 다우지수가 32% 상승한 데 비해 46% 하락했다. 그 기간 시가 총액은 다우지수 퇴출 수준인 1천600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가 가정에 공급되고 전구와 라디오, TV, 냉장고 등 각종 전기제품은 인간의 삶을 상상 이상으로 바꿔놓았다. 제트엔진으로 전 세계가 일일생활권에 들어갔고, 엑스레이로 인간의 생명은 연장됐다. 이는 모두 GE가 기술을 개발했거나 상용화 해 가능했던 것이다. 이 때문에 GE는 한때 전 세계 산업 혁신의 아이콘이었다. '경영 교과서'라 할 정도로 미국 최우량 기업의 상징이자 황제였다. 하지만 GE는 급변하는 환경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블룸버그는 "GE의 찬란했던 역사가 끝날 위기에 처했다"고 보도했다. '황제 기업'이 그저 그런 '보통기업'으로 전락한 것이다.황제주 삼성전자가 굴욕의 시간을 맞고 있다. 지난 4월 25일 50대1 액면분할 이후 주가가 하염없이 떨어지고 있어서다. 5월 4일 액면 분할 후 첫 거래를 5만3천원으로 시작한 주가는 이제 4만5천원 붕괴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뿐이 아니다. 공매도와는 거리가 멀었던 주식은 액면분할 후 쏟아지는 공매도 물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삼성전자가 공매도의 표적이 되다니,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삼성전자 주가하락 원인을 실적악화, 미·중간 무역전쟁, 중국의 반도체 추격으로 꼽지만, 정부의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매도 압박'을 꼽는 전문가들도 많다. 실제 지난달 30일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삼성전자 주식 2천700만주를 매각하자 주가가 3.51% 급락해 처음으로 5만원선이 무너졌다. 손해를 본 개미투자자들은 '황제주에서 국민주로, 국민주에서 국민 잡주로 떨어졌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외국인이 삼성전자를 연일 팔아치우는 지금, 삼성전자는 황제주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이 굴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황제기업 GE의 다우 퇴출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05 이영재

[참성단]일본관중의 청소매너와 욱일기

일본인의 청소매너가 러시아 월드컵에서 화제다. 일본 응원단이 경기 후 관중석을 깔끔하게 청소하는 장면에 세계가 감동한 것이다. 응원단 뿐 아니다. 일본 대표팀도 사용했던 경기장 벤치나 라커룸을 깨끗하게 치운 뒤 "감사합니다"는 메모까지 남겼단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부터 이어 온 청소매너라니 대단하다.덕분에 조별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페어플레이 점수로 16강에 오르기 위해 폴란드에 지고 있는데도 산책축구로 일관했던 무개념 스포츠정신에 대한 비판도 쏙 들어갔다. 영국 BBC는 "일본이 16강에서 꼭 지길 바란다"고 대놓고 멸시했다. 하지만 벨기에전 직후 영국 일간지 더선은 "일본 관중이 경기장의 승리자"라며 찬사를 보냈다.월드컵 청소매너와 관련해 일본의 '메이와쿠(迷惑) 문화'가 주목받고 있다. 본래의 뜻과는 상관없이 '민폐'를 뜻하는데, 절대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된다는 일본인의 의식을 일컫는다. 한번이라도 일본을 방문한 사람들은 깨끗한 거리에 놀라고 좀처럼 화내는 법이 없는 일본인의 미소에 감탄한다. 일본의 국격이 메이와쿠 문화에서 비롯된다는 기행문은 헤아리기 힘들다.하지만 메이와쿠 문화는 늘 의심받는다. 일본 주류사회가 주변국에 끼치는 역사적 민폐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고 점령지에서 저지른 만행을 부인하는 일본은, 일제 피해국 국민 입장에서는 역사적 철면피나 다름없다. 지진과 쓰나미 등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일본인이 보여주는 질서있는 대처는 메이와쿠 문화의 표본으로 칭송되지만, 그런 일본인이 일제 시절엔 관동대지진의 희생양으로 조선인을 학살했고 중국 난징시민들을 짐승처럼 사냥했었다. 메이와쿠는 일본인 끼리의 내국용 문화이다.그래서 서구 언론은 일본관중의 청소매너에 감동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일제 피해국들은 일본 관중이 휘두르는 욱일기에 경기를 일으킨다. 청소하는 일본인이 일본의 다테마에(建前·겉모습)라면, 욱일기를 흔드는 일본인은 일본의 혼네(本音·본심)로 보인다. 경기장을 일사불란하게 청소하는 일본인의 모습에서 메이와쿠 문화 속에 잔재한 일제 전체주의의 잔향을 의심하면 너무 예민한 건가./윤인수 논설위원

2018-07-04 윤인수

[참성단]황해문화 통권 100호

인천서 발간되는 '황해문화'가 오는 9월 (가을호) 통권 100호를 맞는다. 1년에 4번 발행하는 계간지고, 그동안 단 한 번의 결호도 없었으니 꽉 찬 25년, 사반세기를 달려온 셈이다. 아직 출간도 안 된 100호가 새삼 주목을 받는 것은 지난달 29·30일 인하대학교 정석학술정보관에서 열린 '황해문화 통권 100호 발간 기념 국제 심포지엄' 때문이다. 한반도 정세를 다룬 심포지엄 주제가 늘 한발 앞서 우리 사회의 담론을 제시했던 잡지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황해문화의 저력은 또 돋보였다.대일 굴욕 외교의 결과로 인천이 개항한 것은 1883년이었다. 그로부터 110년 후인 1993년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가슴 서늘한 슬로건을 내 건 황해문화가 인천에서 태어났다. '창작과 비평' 같은 담론의 장이 인천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시작이었다. 왜 그게 인천이었는지는 지금도 운명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지만, 어찌 됐건 지역 문화를 손에 쥐면서 전국을 아우르는 인문교양 계간지가 탄생해 마침내 100호 발간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생각만 해도 경이로울 뿐이다.지금 인천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인천사랑'이다. 산에 나무를 심듯 마음 속에 인천에 뿌리를 내리고 살겠다는 의식을 심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해문화의 통권 100호는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흔히들 말하곤 한다. 인천은 특수한 운명을 타고난 항도라고. 하긴 그렇다. 모든 게 인천으로부터 시작했다. 전기, 기차, 통신, 등대, 짜장면, 갑문, 천일염전 그리고 야구 등등. 숙명이라면 이제 인천은 황해의 중심 항구로서 모든 인종과 어깨를 겨루고 함께 살아야 하는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인천시는 이런 문화의 다양성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교향곡과 같은 조화로운 하모니를 창조해야 한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이 최강국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인천 시민의 자존심을 지키고, 인천 문화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풀무의 바람이 되는 것'을 추구하는 황해문화에 큰 기대를 거는 것도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그 '힘' 때문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인천이 갖고 있는 문화의 다양성이 문명의 자산으로 전환되는데 황해문화의 역할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황해문화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좌고우면하지 말고 계속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03 이영재

[참성단]무미건조한 이· 취임식

지난해 1월 20일 아침.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가 백악관으로 오바마 미 대통령 부부를 방문했다. 이날 국회의사당에서 열리는 대통령 취임식에 함께 동행하기 위해서다. 오바마는 백악관을 떠나기전 집무실 책상에 신임 대통령에게 편지를 남긴다. 이후 국회의사당에서 이임 대통령을 비롯한 생존한 전직 대통령 부부 모두가 참석한 가운데 취임식이 성대하게 진행된다.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는 트럼프 대통령 부부의 전송을 받으며 국회의사당을 떠난다. 트럼프는 백악관 집무실로 향해 오바마가 남긴 편지를 읽는 것으로 임기를 시작한다.미국 대통령 취임식은 정당과 이념을 초월해 영속하는 하나의 미국을 보여주는 성대한 의식이다. 트럼프 지지자는 취임식장에서 환호하고 그를 반대하는 진보시민들은 격렬한 시위로 저항하지만, 그들을 대표하는 전직 대통령들과 의회의 주요 정당인사들은 빠짐없이 참석해 취임연설을 경청한다. 트럼프를 향한 거리의 찬반 의견과는 별개로, 역대 대통령들의 직무수행으로 성취한 미국의 가치에 모든 정치인이 예의를 표하는 것이다.오바마는 트럼프에게 남긴 편지에서 "우리는 일시적인 대통령직을 수행할 뿐"이라면서 "법의 지배나 삼권분립, 법아래 평등, 자유의 권리 등 민주주의 제도의 수호자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공화당의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비판자들 때문에 낙담하거나 항로를 벗어나지 말라"며 "당신의 성공이 곧 우리나라의 성공이며 난 당신을 지지한다"는 편지를 남겼다. 당파를 떠나 미국의 가치를 실현하는데 복무하는 대통령의 직분을 공유하고 성공을 바라는 전임의 덕담은 신임 대통령이 미국 역사의 일원임을 각성시키기에 충분하다.지난 1일 우중에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간소하게 취임식을 가졌다. 지난달 29일 남경필 전 도지사는 도청 실국을 돌며 인사하고 도의회 정례회 참석으로 퇴임식을 대신했다. 치열하게 격돌했던 지난 선거양상을 감안해도, 도정을 인수인계하는 의식과 의전의 부재는 아쉽다. 전임의 노고를 위로하는 신임의 배려와, 신임의 출정을 축하하는 전임의 덕담이 오고가는 과정이 의식과 의전으로 표현되면 도민들은 정파를 초월한 도정의 영속성, 안정성에 안도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물론이요 경기도 또한 전승하고 공유해야 할 가치있는 공동체 아닌가./윤인수 논설위원

2018-07-02 윤인수

[참성단]태풍 '쁘라삐룬'

태풍에 이름이 붙은 건 1953년부터였다. 그 전에는 번호를 사용했다. 더 그 이전 우리 조상들은 바람의 세기와 형태로 구분을 지었다. 삼국사기에는 바람을 '풍' '대풍' '폭풍'으로, 바람의 세기는 '나무가 부러졌다' '기왓장이 날았다'는 식으로 표현했다. 고려사에는 바람을 12가지로 세분화해 기록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바람으로 인한 피해 기사 150여 건이 등장한다. 1999년까지 태풍 이름은 미국 태풍 합동경보센터가 정했다. 처음엔 온순하고 조용해지라는 희망으로 여성의 이름을 따서 썼는데 1978년 여성단체들이 반발하면서 남녀 이름을 번갈아 사용했다. 2000년부터 태풍의 영향권에 있는 우리나라, 중국, 북한, 라오스 등 14개국이 국가별로 10개씩 제출한 태풍 이름 140개를 28개씩 5개 조로 나눠 순서대로 사용하고 있다.한반도를 지나간 태풍 가운데 우리 기억에 남는 건 1959년 9월 '사라'일 것이다. 아름다운 이름과 달리 사라의 위력에 온 국민이 혼비백산했다. 849명이 사망하고 37만3천459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2002년 8월 31일 단 하루 만에 강릉지방에 870.5㎜의 비를 쏟아 부은 '루사'는 5조4천600억원대의 재산 피해를 남겼다. 그 이듬해 9월 남해안에 상륙한 '매미'는 중심 기압 950헥토파스칼, 순간 최대 풍속 초속 60m로 '사라'의 기록을 모두 갈아 치웠다. 태풍은 초여름이란 고정관념을 깨고 가을에, 그것도 경상도 내륙으로 상륙해 피해가 더 컸다.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 공전(工典) 천택(川澤) 편에서 "강하(江河)의 물가가 해마다 물에 부딪혀 파괴되어 백성들의 커다란 근심거리가 되는 것은, 제방을 만들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안정하게 하여 주어야 한다"며 태풍과 홍수 피해 예방을 강조했다. 매년 겪는 물난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미리 제방을 쌓아 대비해 백성의 근심을 덜어 주는 것이야말로 지방관들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태국어로 '비의 신'을 의미하는 7호 태풍 '쁘라삐룬'이 접근하고 있다. 이번 태풍은 바람보다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어제 경기도청 재난상황실에서 취임식을 하고 첫 업무로 태풍 대비를 위한 재난안전 대책회의를 가졌다. 잘한 일이다. 비에 취약한 곳을 찾아 미리 예방해 인명 피해가 없도록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01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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