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남북정상회담 동행요청 촌극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의 국회의장단과 외교통일위원장, 여야 5당 대표 남북정상회담 동행 요청과 관련해 정치권이 시끄럽다. 요청과 거절을 둘러싼 시비를 떠나 정말 궁금한 점이 있다. 정의용 특사가 지난 5일 방북에서 4·18 3차 남북정상회담을 합의할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국회·정당 주요 인사의 동행 방북을 합의했는지 여부다.외교에서 의전은 생명이다. 핑퐁외교로 죽의 장막을 열었던 미중정상회담 당시 닉슨과 마오쩌둥은 악수와 미소를 주고받는 첫 대면부터 양국이 합의한 의전을 따랐다. 싱가포르 북미회담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키 차이를 고려한 의전이 관심을 끌기도 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를 우러러보는 장면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역으로 의전에 없던 파격을 연출해 회담의 주도권을 잡는 경우도 다반사다. 공격적인 악수로 악명 높은 트럼프는 북미정상회담 때 느닷없이 자신의 전용차 내부를 공개해 김 위원장을 당황시켰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에서는 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깜짝 월경(越境)을 제안해 만만치 않은 내공을 과시했다.3차 남북정상회담도 양측이 합의한 의전이 있을 것이다. 국회의장단, 정당대표들은 국가의전서열 10위내의 주요 인사들이다. 이들이 대통령과 동행하는 문제는 당연히 사전에 합의할 중요한 의전이다. 북한과 합의된 사안이라면 정 특사의 방북 결과 브리핑에 중대한 누락이 있었던 셈이니 큰 문제다. 청와대의 단독 결정이라면 의전상 북한에 대한 실례다. 평양은 청와대가 즉흥적으로 부랴부랴 동행단을 꾸려 방문할 장소는 아니다.임 실장의 전격적인 동행요청은 상호 존중을 강조한 삼권분립의 원칙상 무례했다. 난데없이 '꽃할배' 운운한 대목에선 동행요청이 진담인지 농담인지 헷갈린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거절의 이유가 우아했으면 좋겠다"고 거들었다.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한 야당대표들의 거절 이유를 야유한 것이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갈 사람만 가자'는 냉소적 반응이고, 청와대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퇴근 시간에 밥먹자 했다가 부하직원들이 난색을 표하자 짜증내는 상사의 촌극을 닮았다.북한 비핵화의 분수령으로 주목받는 남북정상회담이다. 내부의 의전이 이 모양인데, 정상회담 의전의 주도권을 쥘 수 있을까 걱정이다. 평양의 김 위원장은 목숨을 걸고 문 대통령을 기다릴텐데 말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9-12 윤인수

[참성단]중국 축구감독 히딩크

추억이라고 다 아름다운 건 아니다. 2002년 월드컵이 하나된 마음으로 국민 모두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은 건 특이한 경우다. 지금도 귓가를 떠나지 않는 '대~한민국'과 '오~필승 코리아'의 함성. 월드컵이 끝나자 지독한 무력증에 빠져 허우적댔던 일상을 생각하면 지금도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아름다운 추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2002년 월드컵은 우리를 4강까지 진출시켜준 거스 히딩크 감독과의 행복했던 '한달간의 동거'였다. 그의 '어퍼컷 세리머니'는 얼마나 통쾌했던가.혹독한 IMF는 국민들의 웃음을 빼앗아 갔다. 국민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히딩크가 '불쑥' 우리 앞에 나타났다. 그가 타임지와 했던 인터뷰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됐던가. "한국민이 원하는 16강이 나의 바람은 아니다. 내게는 그 이상의 바람이 있다. 만약 6월을 끝으로 내가 한국을 떠나게 될지라도 한국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나는 한국팀 감독이고 앞으로도 한국팀 감독이라는 것이다. 월드컵에서 우리는 분명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멋지게 약속을 지킨 히딩크를 우리는 가끔 한국인으로 생각했다.하지만 이제 추억의 히딩크가 악몽의 히딩크가 될 수도 있는 얄궂은 운명과 맞닥뜨리게 됐다. 히딩크가 2020년 도쿄올림픽 본선을 목표로 중국 21세 이하 감독을 맡기로 했기 때문이다. 히딩크는 한국팀 감독을 사임한 후 호주, 러시아, 터키 감독을 맡으며 자신의 축구인생을 걸어왔다. 그러나 21세 이하라 해도 중국 축구감독 히딩크 인생은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중국인들이 대하는 한국 축구는 공한증(恐韓症)이란 말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지금은 좀 나아졌다지만 트라우마는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다. 시진핑은 '월드컵 본선 진출과 중국 월드컵 개최, 월드컵 우승'을 3대 소원으로 꼽았다. 어디 이뿐인가. "중국이 월드컵을 개최하고 언젠가 월드컵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의 축구 사랑은 끔찍할 정도다. 시진핑의 웅대한 꿈에 한국은 늘 걸림돌이었다. 하지만 히딩크가 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21세 이하는 중국 축구의 미래다. 히딩크 아래서 탄탄한 기본기를 쌓고, 시진핑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다면 중국은 벅찬 상대가 될 것이다. 우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히딩크. 중국으로 가는 히딩크를 보며 스포츠의 세계가 냉혹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11 이영재

[참성단]대부도의 '그랑꼬또'

지금이야 방조제 도로로 연결돼 섬이랄 수도 없지만 대부도는 대교로 연륙된 선재·영흥도로 이어지는 수도권의 드라이브 명소다. 대부도를 찾으면 포도원들이 줄줄이 눈에 띈다. 도로변에는 포도농가들이 그럴듯하게 작명했지 싶은 '비가림 포도'나, '알솎음 포도'를 판매하는 간이매대가 늘어서 주말 행락객을 유혹한다.포도는 포도주, 즉 와인으로 가공돼야 부가가치가 급상승한다. 문제는 국내에서 와인을 제조해도 시장의 호응이 신통치 않은 점이다. 서구의 와인문화가 워낙 독보적이라서다. 와인이 빠진 그리스·로마의 신화를 상상하기 힘들다. 플라톤은 와인을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 예찬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최초로 행한 기적이 물을 포도주로 바꾼 것이고, 최후의 만찬에서는 포도주를 자신의 성혈로 여기라 했다. 신화시대의 디오니소스 축제에서 기독교의 제의에 이르기까지 포도주의 위상은 절대적이다.와인으로 숙성된 서구문화인 만큼 프랑스, 이탈리아의 유럽이 와인산업을 장악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여기에 대항해시대 유럽에 정복당해 와인문화권에 포함된 남북아메리카가 가세해, 글로벌 와인시장을 놓고 벌이는 유럽중심의 구세계와 칠레와 미국 등 신세계 사이의 시장쟁탈전이 치열한 실정이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 이후 와인시장이 확장된 국내에서는 구세계 와인을 고급주로, 신세계 와인을 대중주로 취급하는 경향이 뚜렷하다.지난 주말 명품 포도밭 대부도에서 와인 페스티벌이 열렸다. 대부 포도로 만든 지역 와인 '그랑꼬또'를 알리기 위한 축제였다는데 각계 명사와 일반 와인 애호가들의 시음평이 좋았다고 한다. '그랑꼬또(Grand Coteau)'는 불어로 큰 언덕을 뜻한다. 큰 언덕 대부(大阜)를 곧이 곧대로 상표로 옮겼으니, 작지만 강한 자존심이 프랑스 전통 와이너리 못지 않다. 그래서인가 출시 19년만에 그랑꼬또는 아시아 와인콘테스트에서 금상을 차지하며, 국내외 소믈리에에 극찬을 받는 와인으로 성장했다.여기에 이르기까지 대부 포도의 품질을 믿고 19년 동안 와인을 빚어온 대부도 토박이 김지원 그린영농조합 대표의 뚝심이 있었다. 한 병의 와인에는 세상의 어떤 책보다 더 많은 철학이 있다는 말처럼, 그랑꼬또는 오랜 세월 김 대표의 희로애락으로 숙성됐을 것이다. 조급증이 일상화된 시대에 시간이 일으키는 기적이 더 많아지기를 희망해본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9-10 윤인수

[참성단]오주석의 서재

2005년 2월 7일 자 신문에는 무심한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스쳐 갈 부고 기사가 귀퉁이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수원출신 49세 소장 미술사학자 오주석(吳柱錫). 생전 그는 언론의 조명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진흙 속의 진주인 채로 젊은 생을 마감했다.어디에서건 우연히 잡은 그의 책 '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을 꼼꼼히 읽은 사람들은 그의 이력 중 '2005년 2월 5일 백혈병으로 별세'라는 마지막 글귀에 이르면 백이면 백 "아!"라는 탄식을 내뱉게 된다. 그 소리가 크면 클수록 그는 이 책에 흠뻑 빠진 사람이다. 그날 밤 그는 오주석의 생애가 궁금하고 "왜 내가 그의 강의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까"라며 잠을 설칠지도 모른다.오주석이 가장 사랑했던 화가 김홍도의 '씨름'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렇다. '등장하는 사람은 모두 22명인데 오른쪽 위의 중년 사나이를 보세요. 입을 헤 벌리고 재미있게 보고 있죠? 재미있으니까 윗몸이 쏠렸죠? 그 옆 장가든 친구는 씨름판에 오자마자 팔베개를 했군요. 씨름판이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얘기죠. 왼쪽 관람객 중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자는 갓도 삐딱하게 쓰고. 하여간 성격도 소심하고 영 시원치 않죠?' 이런 해설에 일반 독자는 말할 것도 없고 전문가들도 열광했다. 입에서 입으로 알려진 이 책은 스테디셀러가 됐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도 이런 해설을 다시는 듣지도, 보지도 못할 것이다.오주석의 호는 '후소(後素)'다. '논어'에 나오는 '그림은 먼저 바탕을 손질한 후에 채색한다'는 '회사후소(繪事後素)'에서 따왔다. '사람은 좋은 바탕이 있는 뒤에 학문과 지식을 더해야 함'을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새털처럼 가벼운 '예능 인문학'이 판치는 지금, 인품과 학식 모두 출중했던 오주석이 더욱 더 그리운 것이다.인문학 도시 수원에 오면 화성 말고도 반드시 들러야 할 새로운 명소 하나가 더 생겼다. 지난 5일 개관한 '열린공간 後素 '다. 행궁 인근 사가(私家)를 수원시가 사들여 오주석의 공간으로 꾸몄다. 1층은 전시실, 2층은 생전 오주석이 모은 자료와 책들로 '오주석의 서재'가 복원됐다. 13년 전 타계한 한 젊은 미술사학자를 과감하게 다시 불러낸 수원시의 결단도 놀랍거니와, 무엇보다 수원은 '오주석의 서재'로 인문학 도시의 튼튼한 초석이 마련됐다. 그를 수원의 문화콘텐츠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이제 그건 살아 있는 자의 몫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09 이영재

[참성단]유감! 경기필하모닉

지휘자 성시연 퇴진 이후 경기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 자리는 공석이었다. 공교롭게도 경기필하모닉 상주 공간인 경기도 문화의 전당도 내부수리가 진행 중이었다. 지휘자도 없고 연주회장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와중에 지난 5월 상임 지휘자로 이탈리아 출신 마시모 자네티가 낙점됐다. 문화의 전당 역시 오는 11일 재개관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재개관 후 첫 번째 공연으로 자네티의 데뷔 연주회가 잡혔다. 이런 스케줄은 의심의 여지 없는 너무도 당연한 결정이었다.경기필하모닉 역사상 첫 외국인 상임 지휘자, 리모델링이긴 하지만 무려 180억원이 투입된 후 새로 문을 여는 연주회장. 도민의 기대도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자네티가 8일 경기필하모닉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먼저 공연을 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상 데뷔연주회가 서울에서 열리는 것이다. 도민들은 크게 당황했다. 새집에 입주하면서 집들이를 남의 집을 빌려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8개월의 보수공사, 상임 지휘자의 공백을 아무런 불평 없이 묵묵히 기다려 준 도민들의 입장에선 '충격' 그 자체다. "'경기필하모닉'의 간판을 떼서 '서울필하모닉'으로 바꾸라"는 열혈팬들의 주장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이유다.만일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필하모닉 데뷔 연주회를 뮌헨이나 프랑크푸르트에서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됐을까'라는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꿈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세계적인 음악평론가 볼프강 슈라이버는 사이먼 래틀의 베를린필하모닉 데뷔연주회, 즉 베를린 청중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적었다. '2002년 9월 7일. 첫 콘서트는 대성공이었다. 베를린필하모닉은 최고의 긴장감과 기쁨을 안고 말러의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오케스트라, 언론, 청중의 반응을 그저 행복감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뭔가 모자라는 듯했다. 은발의 곱슬머리가 뿜어내는, 상냥하면서도 힘찬 자태와 우아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생동감이 베를린을 뒤덮었다. 새로운 예술감독에게 거는 기대가 치솟아 올랐다. 베를린 청중은 그를 신뢰했고, 래틀 역시 베를린 청중을 신뢰했다'.경기도민도 그런 감동을 느끼고 싶었다. 그러나 기대는 무산됐다. 서울에서 먼저 연주하던 관행, 서울을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은 전 지휘자 한 명으로 충분하다. 이제 이런 한심한 행위가 더는 자행돼선 안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06 이영재

[참성단]비무장지대 지뢰밭

"지뢰는 완벽한 병사다. 쉼 없이 일하고 자리를 이탈하지 않으며 먹지 않고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의 전의를 상실시킨다는 것이다." 캄보디아 공산당 크메르 루즈의 지도자이자 킬링필드의 도살자 폴 포트의 지뢰 예찬론이다. "지뢰는 가장 야만적인 무기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계속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다." 전 UN사무총장 코피 아난의 지뢰 저주론이다.폴 포트의 말대로 지뢰는 전장에서 비용 대비 효율이 가장 높은 무기다. 직접적인 살상도 가능하지만, 신체의 일부를 훼손하도록 설계된 지뢰는 적에게 죽음보다 참혹한 공포를 자아낸다. 부상병 관리로 인한 적 전력의 약화도 지뢰의 전술적 효과다. 하지만 미국·베트남과의 전쟁과 내전을 치르는 동안 캄보디아에 깔린 600만발의 지뢰와 불발탄은 전쟁 이후에도 2만여명의 국민을 죽였다. 현재도 매년 100명 이상이 지뢰를 밟아 죽거나 절단장애를 당한다. 코피 아난의 말대로 전쟁은 끝났지만 지뢰의 저주는 남았다.비정부기구인 대인지뢰금지국제캠페인의 '2016 대인지뢰 모니터' 보고서는 2015년 대인지뢰로 인한 사망자와 부상자가 6천461명으로, 전년보다 75%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우크라이나, 예멘 등 내전 및 분쟁국에서 크게 늘어났는데, 사상자의 3분의 1이 어린이였다.1997년 조인된 '오타와협약'은 반영구적, 맹목적인 대인지뢰의 살상 공포를 종식하기 위한 국제조약이다. 모든 대인지뢰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비축 지뢰의 전량 폐기와 매설 지뢰의 폐기를 강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북한은 협약 미가입국이다. 남북대치 상황에서 우리만 지뢰를 포기할 수 없는 안보환경과 비무장지대 매설 지뢰 제거가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을 고려한 것이다.최근 육군측이 육군본부에 '지뢰제거작전센터' 설치를 주장해 주목을 끌었다.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적 이용과 관련한 남북공동사업에 대비하자는 것이다. DMZ내 남측 지역이 여의도 면적의 40배로 군 공병인력만으로 지뢰를 제거하려면 200년이 걸리니, 지뢰제거 장비와 인력을 운영할 전담기구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남북이 100만개의 지뢰를 묻어놓은 DMZ지뢰밭은 한반도 평화체제가 도래하면 남북교류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대책을 세우는 것은 맞다. 하지만 남북이 공동으로 동시에 추진해야 효율도 높고 전력의 균형도 유지할 수 있다. 북한에 정식으로 제안해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9-05 윤인수

[참성단]정치인의 가동연한(稼動年限)

지난해 1월 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SNS를 통해 "모든 공직에 정년 도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표 의원은 "그래야 나라가 활력이 있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며, 청년에게 참여 공간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여론은 찬반으로 갈렸다. 대선이 아니었다면 지지를 받았겠지만, 대선 출마가 유력시되던 72세 반기문 전 총장을 겨냥한 정치적인 발언이라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역풍을 맞았다.'가동연한'은 교통사고·산업재해 등 사고로 사망 또는 장애를 입었을 경우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사용된다. 이에 따르면 변호사와 법무사, 승려가 70세로 가동연한이 가장 길다. 의사와 한의사, 화가, 목사 등은 65세, 육체 노동자 등 대부분 업종은 60세를 정년으로 한다. 일반 술집 마담, 나이트클럽 웨이터, 잠수부 등은 50세, 프로야구 선수와 에어로빅 강사, 룸살롱 마담은 40세, 다방 여종업원과 골프장 캐디는 35세를 정년으로 본다. 하지만 정치인의 정년은 찾아볼 수 없다.일본 자민당은 '공천정년제'라는 내규를 통해 비례대표 선거의 후보 공천에 대해 정년제를 적용하고 있다. 중의원의 경우 만 73세 이상이면 원칙적으로 공천에서 배제된다. 참의원의 경우 현역의원 임기 만료일 기준으로 70세 이상이면 후보로 지명될 수 없다. 2003년 중의원 공천 때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전직 총리라고 해서 예외를 둘 수는 없다"며 나카소네 야스히로, 미야자와 기이치 등 총리 출신 선배들을 이 규정을 들이대며 모두 정계에서 은퇴시켰다. 나카소네 전 총리가 크게 반발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47년생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선출로 52년생 이해찬 더불어 민주당 대표, 53년생 정동영 평화당 대표 등과 함께 '올드보이'들이 모두 귀환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치른 '2007년 동지들'이기도 하다. 연륜으로 꽉 찬 이들의 '부활'을 두고 협치의 가능성을 점치는 언론도 있지만, 정년 없는 정치인의 가동연한에 대한 따가운 여론도 만만치 않다. 암울했던 70년대 초, 좌절한 국민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던 것은 YS·DJ의 '40대 기수론'이었다. 지금 선진국은 40대 정치 지도자들이 속속 출현하고 있다. 5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패기보다 연륜이 우선되는 우리 정치, '피터의 원리'가 떠오르는 요즈음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04 이영재

[참성단] 방탄소년단과 손흥민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양궁 남자 리커브 결승에서 우승한 김우진은 동료들이 갖다 준 태극기도 마다하고 굳은 표정으로 사대를 벗어났다. 금메달리스트의 의외의 행동엔 이유가 있었다. 결승전 상대인 후배 이우석이 은메달에 머물러 병역특례 혜택을 못받은 것이다. 자신은 8년 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혜택을 받은 마당이니, 병역혜택을 날린 후배 앞에서 우승 세리머니는 가당치 않았을 터이다. 현역 이등병인 이우석은 "남은 군 생활도 열심히 하겠다"며 결과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투명한 승부는 세계 1위 한국 양궁의 비밀을 짐작할 수 있는 명장면으로 오래 회자될 것이다.스포츠와 예술분야 스타들에게 병역의무 이행은 엄청난 부담이다. 군 복무 기간에 유일한 밑천인 고유의 재능이 사장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체육요원특례 제도가 도입됐다. 체육요원은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아경기대회 1위 입상자가 혜택을 받는다. 예술요원은 병무청장이 정한 국제·국내예술경연 입상자 등이 대상자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42명이 특례 수혜 대상자가 됐다. 손흥민은 특례 혜택으로 몸값이 1억유로(1천300억원)로 치솟았고, 소속팀 토트넘도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그러나 예술·체육요원특례는 운영과정에서 뒷말이 무성했다. 야구의 사례처럼 구기 종목의 경우 국가대표 선발 과정부터 잡음이 발생하기 일쑤였다. 2002년 월드컵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때는 국민여론에 흔들려 대표팀 선수들이 특례혜택을 받았다. 정서적 당위가 법의 형평성을 허문 셈이다.급기야 방탄소년단이 병역특례제도의 형평성에 일격을 가했다. 방탄소년단이 최근 새 앨범으로 지난 5월에 이어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200' 1위에 오르자, 여론이 병역특례의 형평성을 성토하고 나섰다. 두 번이나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한 전무후무한 업적은 당연히 병역특례감이라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맏형 진(김석진)은 손흥민과 1992년생 동갑이다. 클래식은 혜택을 받고 대중예술은 제외된 점도 납득하기 힘들다는 여론이 대세다.결국 병무청장이 예술·체육 병역특례를 전체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안으로 국제 스포츠대회와 국내외 예술경연의 성적을 점수화하자는 '마일리지 방식'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다. 단기간의 업적만큼 장기간의 공헌도 배려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국민이 권력보다 현명해 보인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9-03 윤인수

[참성단]수원 한국지역도서전

정조는 책 읽기와 글 쓰기를 좋아했다. 책을 너무 읽어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모친 혜경궁이 늘 노심초사했을 정도다. 부친 사도세자의 죽음을 본 이후, 계속되는 정적들의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은 독서밖에 없었다. 정조는 '살기 위해' 책을 읽었다. 덕분에 정조는 누구와 학문 논쟁을 벌여도 결코 뒤지지 않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한 것도 독서와 무관하지 않다. 규장각의 학자들을 활용하여 서적을 편찬하고 정책을 마련했다. 정조는 신하들에게 어떤 책을 읽는지 묻곤 했다. 신하가 답을 못하면 "독서는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공무로 바쁘다 해도 하루에 한 편의 글도 읽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라는 꾸지람이 이어졌다. 정조는 184권 100책으로 이뤄진 방대한 분량의 홍재전서도 남겼다. 동서고금을 통해 이런 왕은 없었다. 수원이 인문학도시라고 표방하고 나선 것은 화성이 있고, 책을 좋아했던 위대한 군주 정조가 있어서다. 2005년 수원시가 '평생학습도시'를 선포한 후 시민이 주도하는 평생학습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늘 책을 가까이했던 정조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모든 왕이 그렇지만 정조는 특히 세자 시절부터 서연(書筵)에서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하루도 빼놓지 않고 혹독한 교육을 받았다. 평생학습의 모범사례였던 것이다.오는 6일부터 5일간 수원에서 전국 각지의 출판물과 도서 문화를 만날 수 있는 '수원 한국지역도서전'이 열리는 것은, 그래서 뜻깊다. 이번 주제는 '지역 있다, 책 잇다'이다. 지역 출판이 여기에 있고, 책으로 사람과 지역을 잇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행사가 열릴 때마다 늘 궁금한 게 있다. 책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지역을 연결할 수 있을까. 지독히도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도대체 책이 뭐길래. 하지만 이런 자리마저 없다면 책은 점점 더 우리에게서 멀어져 매우 낯선 존재가 될 것이다. 사람도 만날수록 정이 들듯, 책도 자주 만나 읽고, 보듬어야 내 것이 된다. 괴테는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수많은 고상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고 했다. 셰익스피어도 "생활 속에 책이 없다는 것은 햇빛이 없는 것과 같으며, 지혜 속에 책이 없다는 것은 새 날개가 부러진 것과 같다"고 설파했다. 올해는 '책의 해'이기도 하다. 이번 행사를 통해 책의 소중한 의미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02 이영재

[참성단]비주류가 쓴 '축구학 개론'

'축구 감독의 성패는 결국 선수들의 정신을 담금질해 투지에 불을 댕기느냐에 달려 있다. 선수 각자가 한껏 능력을 발휘하도록 동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축구학 개론에 나올 법한 이 말을 한국의 김학범 감독과 베트남의 박항서 감독이 2018 아시안게임에서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학범슨(김학범+알렉스 퍼거슨 )', '쌀딩크(베트남 주산물 쌀+거스 히딩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축구사에 길이 남을 거장 퍼거슨과 히딩크의 탁월한 지도력을 빗댄 것이니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학범슨과 쌀딩크의 공통점은 단연, 한국축구계의 '비주류'라는 점이다. 실력보다는 인맥과 학맥을 으뜸으로 꼽는 한국축구계에서 학범슨(명지대)과 쌀딩크(한양대)는 정통계보가 될 수 없었다. 잡초같은 축구 인생을 살았던 것도 비슷하다. '세상엔 확실한 것이 둘 있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과 축구 감독은 반드시 잘린다는 것이다.' 영국의 축구 격언을 이들만큼 뼈저리게 느꼈을 감독도 흔치 않다. 쌀딩크는 히딩크 감독 밑에서 수석코치로 있으면서 히딩크 리더십을 배웠다. 당시 우리 국가대표팀이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를 약체로 여기며 쉽게 포기하던 베트남 선수들에게 그가 가르친 건 끈기와 인내였다. 학범슨은 '삼류선수'였다. 프로팀도, 국가대표 경력도 없었다. 은행원에서 축구단 코치로 자리를 옮긴 후 축구 이론을 다시 공부했다.쌀딩크는 59년생, 학범슨은 60년생으로 둘은 한 살 터울이다. 학범슨은 2005년 성남 일화(현 성남 FC)에서, 쌀딩크는 2006년 신생 경남 FC에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나이와 프로팀 지휘봉을 잡은 시기가 비슷하고 '성실함'도 닮았다. 학범슨은 틈만 나면 축구 선진국에 나가 전술을 공부했다. 명지대에서 축구 관련 논문까지 쓰며 박사 학위를 받은 '축구 박사'다. 쌀딩크의 머릿속에는 오직 축구, 축구, 축구밖에 없다. 그는 늘 축구만 생각한다. 한 방송사가 제작 방영한 박항서 다큐멘터리는 오직 '축구'로 가득 채워져 있다.2018 아시안게임에서 두 명의 비주류 감독이 각자 나름의 '축구학 개론'을 강의 중이다. 처음에 쌀딩크를 반대했던 베트남 축구관계자와 학범슨을 가벼이 여겼던 한국축구의 주류들은 이 개론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한국은 금메달, 베트남은 동메달을 따 감동의 '비주류 축구학개론'을 완성해 주길 바랄 뿐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30 이영재

[참성단]메달과 병역특례

2018 아시안게임 이우석과 김우진의 양궁 결승전. 2010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은 김우진. 현역 이등병인 이우석. 이우석이 금메달을 따면 조기 전역을 할 수 있는 상황. 결과는 6-4로 김우진 승. 김우진은 미안한 감정에 태극기도 흔들지 못했다. 새드엔딩. 다음은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 병역 면제의 구본길과 군 미필인 오상욱이 만났다. 14대 14. 초접전. 결과는 15대14 구본길 승. 그는 금메달을 따고도 후배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 오상욱은 병역 특례를 받게 됐다. 해피엔딩. 스포츠 경기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치열한 승부 과정에서 일어나는 예상 못한 이변, 거기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는 이변이 자주 일어난다. 절대 강자의 패배와 무명들의 반란을 보는 것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하지만 양궁과 펜싱 사브르 경기는 보기 드문 명승부였지만 '병역특례'가 걸려 있어 '감동'이 아닌 '기막힌' 한 편의 드라마였다.남자 선수들의 경우 현행 병역법 시행령에 따라 올림픽 금, 은, 동메달 수상 선수, 아시안게임 금메달 수상 선수는 '체육 요원'이란 이름으로 병역 혜택을 받는다. 큰 경기가 있을 때마다 늘 그랬지만, 이 병역 특례제도에 대해 이번 2018아시안게임에선 유독 말들이 많다. 축구 손흥민과 야구선수들로부터 시작된 '병역 특혜'는 이 제도의 존속 여부에 대한 논쟁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 제도는 1973년부터 시행됐다. 무려 45년 전이다. 그동안 세상도 변했고 선수들의 의식도 바뀌었다. 이제 국가와 국민의 명예를 드높일 목적으로 땀 흘려주는 선수는 없다. 국가도 아무런 대가 없이 그들에게 애국심만을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개인적 부와 명예를 쌓으려는 이기심을 발휘하다 보면 국가의 위상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이 때문에 나라마다 큰 경기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선수들에게 금전적 혜택을 주고 있다. 우리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에서 메달을 따면 일정액의 포상금과 연금 혜택, 그리고 남자 선수에겐 병역 혜택을 주는 것이다. '병역특례' 제도에 대해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때가 왔다. 언제까지 양궁 펜싱 같은 경기를 가슴 졸이며 봐야 하는가. 선수도, 국민도 더는 못할 짓이다. 이제 소모적인 논쟁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29 이영재

[참성단]애국 통계

중국 지방 정부의 통계 조작은 유명하다. 지방 경제 성장이 곧 관료의 실적이고, 그것이 자신의 앞날을 좌우하기 때문에 관료들은 통계 조작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에 지역경제가 국가 경제의 초석이라는 얄팍한 애국심도 작용했다. 중국 지방 정부의 '애국(愛國) 통계'란 말이 그래서 생겼다. 지방정부 통계가 조작됐으니 그걸 취합해 발표하는 중국 정부의 통계 발표는 시쳇말로 '안 봐도 비디오'였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2010년 발간한 '중국 경제 지표 이해하기'는 중국의 엉터리 통계에 대한 통렬한 비판서다.'애국 통계'에 대해 글로벌 경제의 비난이 끊이질 않자 중국정부는 지방정부의 경제지표 조작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지역의 GDP를 지방정부 통계 담당이 집계하지 못하게 하고 국가통계국 지도하에 산출하는 방식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잘못된 통계 발표가 중국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숫자에 권위를 부여하는 이들은 '통계는 과학'이라고 단정한다. 반대로 '통계는 교묘하고 의도적인 거짓말'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우리의 일상이 숫자놀음에 좌우된다고 개탄한다. 통계에 대한 격언은 차고 넘친다. '새빨간 거짓말, 통계'의 저자 대럴 허프는 "여성들이 약간의 화장으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처럼 통계는 사실을 거짓으로 꾸미는 '마법'을 지녔다"고 비판했다. 영국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통계에 대한 독설, "거짓말에는 세 종류가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는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얘기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는 숫자를 이용한다." 통계를 두고 이렇게 말들이 많은 것은 통계가 진실을 밝히기도 하지만 때론 '거짓의 수단'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황수경 통계청장이 취임 1년 만에 경질됐다. 야당이 "청와대가 통계를 마사지하려고 한다"며 발끈하자, 여당은 "바꿀 때가 됐으니 바꿨을 뿐"이라고 응수했다. 하지만 시기가 안좋았다. 이런 미묘한 상황에 통계청장을 경질했으니 앞으로 야당이 통계의 진실성을 의심하면 청와대는 뭐라 답할 것인가. 이제 통계 수치가 아무리 좋게 나온다 한들 국민들은 중국 지방정부의 '애국통계'쯤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통계청은 한국은행과 마찬가지로 독립성과 신뢰가 생명이다.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매지 말았어야 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28 이영재

[참성단]70대 귀농인의 비극

유명 포털 사이트의 한 귀농인 카페는 선배들의 경험과 지혜를 구하는 초보 귀농인들의 질문들이 넘쳐난다. '태풍이 오는데 하우스 천장을 어찌해야 할가요?'라고 물으면 귀농 선배들이 우르르 몰려 조언을 쏟아낸다. 선녀벌레 퇴치법과 중병아리 구입경로처럼 초보에겐 엄두가 안나는 난제들도, 선배들의 해법은 다양하고 간단하다. 올 여름 살인적인 폭염 탓인지 양수기 설치방법을 묻는 질문과 고추농사가 안된다는 하소연이 많았다.1만 건에 육박하는 질문에 매달린 수만건의 답변을 보면 귀농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해에만 귀농·귀촌인이 51만6천여명에 달했다. 귀농인 카페와 같은 귀농 선후배들이 소통하는 온라인 모임 자체가 귀농 열풍을 반영한 문화현상일 것이다. 다만 귀농지마다 농사에 도가 튼 지역 농민들이 있을텐데 굳이 귀농선배들을 찾는 이유가 궁금했다.카페 내의 한 코너에서 의문의 풀어줄 실마리가 잡혔다. 귀농지 인심을 촌평하는 코너인데, 귀농인과 원주민 사이의 문화적 갈등이 군데군데 드러나있다. 그중 귀농지역 대보름 행사를 '저질 유행가로 시끄러운 춤판'이라며 격렬하게 비난하는 한 회원의 글이 눈에 띄었다. 이에 다른 회원이 '마을 문화를 없애자는 건 외지인의 건방'이라고 충고성 댓글을 올리자 금세 설전으로 이어졌다. 텃세를 걱정하는 글들에는 '처신하기 나름'이라는 댓글이 달리지만, '나름'의 기준과 수준이 애매하니 속시원한 해법을 찾기 힘들었다.최근 경북 봉화에서 70대 귀농인이 원주민과의 물싸움 끝에 면사무소 직원 두명을 엽총으로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인생의 황혼기에 귀농을 결심했을 때 이처럼 비극적인 결말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연구자료에 따르면 귀농·귀촌인 가운데 29.7%가 원주민과의 인간관계 문제로, 23.3%가 마을의 관행 때문에 곤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귀농·귀촌인과 원주민간의 갈등'이 농촌의 가장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꼽혔다.귀농·귀촌인은 원주민의 텃세를 탓하고, 원주민은 귀농·귀촌인의 시골문화 이해부족을 원망한다. 생존방식의 문화충돌인 이주민과 원주민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귀농 지원금만 풀게 아니라, 귀농인과 원주민의 평화적 동거를 위한 갈등해소 정책과 프로그램을 고민할 때가 됐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8-27 윤인수

[참성단]식목왕 최종현

1962년 10월 미국 시카고대학에 유학 중이던 최종현에게 전보가 날아왔다.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 사업이 어려우니 돌아와 형을 도왔으면 좋겠다는 부친 최학배의 편지를 받은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박사과정을 중단하고 아내와 두 살배기 태원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형 최종건이 사장으로 있던 선경직물 부사장에 취임했다. 최종현 나이 33세였다.수원이 배출한 기업인 SK 고 최종현 회장은 기업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인재 키우기'와 '나무 심기'라고 생각했다. '나무는 50년을 보고 심고, 인재는 100년을 내다보고 키운다'는 '수인백년(樹人百年) 수목오십년(樹木五十年)'을 그는 늘 머릿속에 새겨두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러는 최 회장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는 언젠가 숲이 우리에게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많은 것을 되돌려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최 회장은 대한민국 최고의 식목왕(王)이었다. 나무를 심는다고 하자 한 임원이 수도권 지역 땅을 후보지로 들고왔다. "땅장사하려고 이 사업 시작한 줄 아느냐!"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충청북도 충주 인등산, 천안 광덕산, 영동 시항산에는 최 회장이 생전에 심은 300만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최 회장은 이렇게 나무를 키우듯 장학퀴즈와 한국고등교육재단 등을 통해 인재를 양성했다. 자원 빈국인 대한민국이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재가 중요하다는 신념이 강한 기업인이었다. 최 회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인재의 숲'을 만들고자 했을 때 투자기간이 너무 길다며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무를 심는 것이다. 인재의 숲을 거닐며 기업의 뿌리는 사람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그는 생전, 좁은 국토에 묘지가 난립하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죽으면 반드시 화장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는 유언도 남겼다. 어제(26일)는 최종현 회장 20주기 되는 날이었다. 외환위기 시절에 버금가는 투자위축과 고용참사로 일자리 하나가 아쉬운 지금, 언론들은 앞다퉈 '최종현의 기업가 정신'을 재조명했다. 인재를 기르는 일을 사업만큼이나 자랑스러워하고 늘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했던 최 회장은 지난 14일 형 최종건 회장과 함께 수원의 명예를 드높인 공적으로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26 이영재

[참성단]도산 안창호함 진수식

옛날 뱃사람들은 바다에 신이 있다고 믿었다. 폭풍우와의 조우는 해신(海神)의 노여움 때문으로 여겼다. 인신 공양도 자행됐다.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간 심청이 이야기가 터무니없는 상상만은 아니다. 하지만 폭풍우를 만날 때마다 산 사람을 바다에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배를 만들어 처음 물에 띄울 때 거대한 의식을 진행했다. 그것은 대자연에 생명을 지켜달라고 비는 경건한 제례의식, 진수식(進水式)이다. 어부는 만선을 빌고, 군인은 해전에서의 승리를 기원했다.진수식을 여성이 주도 하는 것도 상징적이다. 금빛의 도끼로 진수 테이프를 잘라내는 것은 바다와 육지를 떼어내는 것이지만, 갓 태어난 생명의 탯줄을 끊는 것과도 흡사하다. 과거 진수식에는 뱃머리에서 붉은 포도주병을 깨뜨리곤 했다. 붉은색은 희생양, 속죄양의 의미로 피를 의미한다.진수식보다 먼저 거행하는 것이 명명식(命名式)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의 방패가 아이기스(Aegis). 영어로 읽으면 이지스다. 우리의 이지스함에는 세종대왕이나 충무공 이순신처럼 성군이나 영웅의 이름을 붙였다. 호위함은 '충북함'처럼 광역시·도나 도청소재지를, 초계함은 '천안함'과 같이 중·소 도시 이름을 사용한다. 잠수함에는 안중근·김좌진·윤봉길·유관순·홍범도·이범석·신돌석 등 항일 독립운동가 이름이 많다. 해군의 3천t급 잠수함 '장보고Ⅲ' 1번함이 '도산 안창호함'으로 명명됐다. 도산 안창호 함은 국내 독자 기술로 설계하고 건조한 첫 3천t급으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군은 2020년부터 총 9척을 차례로 전력화해 지금의 1천200t급 잠수함을 대체할 계획이다.의미가 깊은 도산 안창호 함의 진수식을 애초 29일 열기로 했다가 다음 달로 늦추기로 해 구설에 올랐다. "3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눈치 보기 때문에 일정을 연기한 것"이란 언론보도에 방사청은 "사실무근"이라고 발끈했다. 하지만 국방백서에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란 문항 삭제가 추진되고, 건군 70주년 국군의 날 군사 퍼레이드가 취소된 와중에 진수식마저 연기됐으니 오해받을 만도 했다. 더구나 북한은 9·9절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준비 중이다. 잠수함에 명명된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도대체 뭐라 할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23 이영재

[참성단]이판사판 조계종 분규

한국불교의 대표 종단인 조계종의 내우(內憂)가 진정될 기미가 안보인다. 분규의 중심이었던 설정 스님이 지난 21일 총무원장을 사퇴했지만, 이번엔 후임 총무원장 선출방식을 놓고 내분이 격화되고 있다. 종단의 제도권력인 중앙종회와 교구본사주지협의회는 현행대로 간선제를, 불교개혁행동 등 재야세력은 직선제 전환을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불가(佛家)의 구분에 따르면 조계종 총무원은 종단의 살림살이를 건사하는 사판승(事判僧)의 영역으로, 이판승(理判僧)의 참선·수행과 중생제도를 지원해야 한다. 불목하니 스님의 공덕으로 고승은 장좌불와에 전념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의 위세는 교리마저 초월하는 것인지, 종단의 살림을 맡은 총무원 권한이 비대해지면서 총무원장 자리를 둘러싼 종단내 권력투쟁이 심각해졌다.총무원장이 교체될 때마다 유명한 사찰에서 주지 자리를 놓고 절 쟁탈전이 벌어지고, 신자들이 편을 갈라 대립하는 시비가 잇따랐다. 도박, 성추문 등 스님들의 일탈을 알리는 뉴스가 끊이지 않았다. 설정 스님은 은처자 의혹에 걸려 총무원장을 사퇴했지만, 이전 총무원장 또한 이런저런 의혹으로 매스컴을 장식했다.파사현정을 일갈하던 고승대덕의 법맥(法脈)은 희미해지고, 불교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차가워졌다. 조계종이 운영하는 중앙승가대학은 정원을 못 채워 전전긍긍이고, 천년 고찰들도 출가자가 없어 애태운다. 이러다 스님 없는 절이 속출할지 모른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불교신자는 762만명으로 개신교(967만명)에 제1종교 자리를 내주었다. 10년 전에 비해 300만명의 신도가 사라진 결과였다.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승려의 지위가 천민으로 전락하자, 이판승이든 사판승이든 중 되는 일을 인생막장으로 여겼다. '이판사판'의 유래다. 이젠 불교계가 스스로 자정하지 않으면 이판이든 사판이든 대중의 불신을 받아 불교를 이판사판 막장에 빠트릴 지경이다.불교는 한국문화의 정수다. 불교를 뺀 채 한국문화를 설명하기 힘들다. 조계종 자정을 통한 불교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은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정화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조계종 사부대중이 이판사판 실력 대결이 아니라 불법에 귀의해 종단개혁에 성공하기를 바란다. 최근에 입적한 무산 조오현 스님은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라 했다./윤인수 논설위원

2018-08-22 윤인수

[참성단]고용파국 책임론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2013년 11월 20일 국무조정실장 재임 당시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대학생 토크 콘서트 '열정락(樂)서'에서 강연을 했다. '열정락서'는 경제·경영·문화계 대표 인사를 비롯해 삼성의 CEO, 임직원들이 청춘의 멘토로 나서 열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나누는 소통 프로그램. 처음에 김 실장은 삼성의 초청을 여러 번 거절했다. 장관급 공무원이 삼성 주최 강연을 했다가 괜한 오해를 살까 봐서다. 하지만 삼성이 거듭 요청하자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자신의 강연과 삼성을 결부시키지 말 것과 강연료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일 중독자' 김 부총리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그가 매사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5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갈등설이 불거졌을 때, 그는 "내각에 믿고 맡겨 달라"고 직접 대통령에게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정가에선 "김동연의 내공은 간단치 않다. 쉽게 패싱 당할 사람이 아니다"는 말이 회자됐다.박근혜 정부 출범 전인 2013년 1월 기획재정부 2차관 시절 그는 사적인 자리에서 "관료는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공직에 있으면 언제든지,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한다"며 "그래야 소신껏 일할 수 있다"고 말해 주변 사람들은 그가 "잘리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정 상황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아주대학교 학생과 교수, 동문 상당수는 김 부총리에 대해 좋게 기억을 하고 있다. 당시 김동연 아주대 총장은 '브라운 백 미팅'을 통해 학생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정례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애초 2주에 한번 학생들과 점심을 하며 학교 운영에서부터 진로, 취미,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주제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신청자가 너무 많자 매주 하는 것으로 바꿨다. 그만큼 김 총리는 소통을 중요시했다.고용참사 해법을 두고 김 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이 다시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언론이 너무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고 볼멘소리다. 보다 못한 문재인 대통령은 양쪽에게 "결과에 직을 걸라"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세간 여론은 혈세를 더 투입하겠다는 청와대보다 "필요하면 정책 방향을 수정해 나가겠다"는 김 부총리 발언에 더 무게가 실린 것으로 관측된다. 어찌됐든 최악의 고용재앙을 푸는데 김 부총리의 소신이 통할지 두고 볼 일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21 이영재

[참성단]금강산 21차 이산가족 상봉

오늘 아침 이시득 옹은 금강산에서 눈을 떴을게다. 어제 하루는 초현실적이었을 것이다. 올해 나이 아흔다섯. 광복되던 그해 남동생과 함께 남쪽으로 왔다가 73년을 놓아 버린 북녘 가족과 겨우 연이 닿은 하루였다. 보고 싶었던 두 여동생 대신 상봉한 두 조카였다. 조카들 얼굴에서 부모와 어릴 적 두 여동생 영금이 영화의 얼굴을 짐작했을 터이니 그것으로 족했을까?어제 남측 이산가족 89명이 북한 금강산 호텔에서 북한 가족과 상봉했다. 남북 적십자사가 주선한 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다. 남측 상봉단엔 고령자가 많이 포함됐다. 101세의 백성규 옹을 비롯해 20명 이상이 휠체어 없이는 이동이 불편한 상태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부모는 당연하고 형제자매는 물론 자녀들과의 직접 상봉이 힘든 경우가 많다. 이미 사망한 가족들이 많아서다. 백 옹도 며느리와 손녀를 만났다.그나마 추첨을 통해 상봉단에 선발된 이산가족들은 운이 좋은 경우다. 5만6천890명의 생존자 중에 선발됐으니 말이다. 이산가족 등록자 13만2천124명 중에 7만5천여명이 상봉을 고대하다 타계했다. 지금처럼 100명 규모의 상봉행사를 진행한다면 남은 이산가족 전체의 상봉에 568회의 상봉행사가 필요하다. 2000년 1차 상봉에서 이번까지 21회의 상봉행사에 18년이 걸린 상봉 속도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목표다.하지만 실제 필요한 상봉횟수는 해마다 급속히 줄어들 것이다. 매달 수백명의 고령 이산가족이 세상을 뜨기 때문이다. 동병상련의 이산가족 사망으로 인해 상봉 확률이 높아지는 셈인데, 생존 이산가족들이 이처럼 잔인한 확률을 반길리 없다. 뾰족한 수가 없다. 남북 고령자 이산가족들의 전면 상봉을 서둘러 실현해야 한다. 상설면회소를 설치해 생사확인이 된 이산가족들이 1년 내내 만나게 해야 한다.경인일보 인터뷰에서 "찰밥을 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던 이시득 옹은 금강산 첫날 꿈에나마 그 어머니를 상봉했을까. 아니면 평생 한이 풀려 밤마다 찾아오던 그리운 꿈 마다하고 편히 주무셨나. 꿈 같을 것이다. 금강산 혈육상봉 2박3일이 꿈인지, 남녘에서의 이산 세월 75년이 꿈 같을지 분간이 힘들지도 모르겠다. 수원시 화서동 그의 집에서 상봉 이전처럼 무심하게 지낼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궁금하다고 물을 일도 아닐 것이다. 익명의 시인이 오래 전에 마련해둔 답변이 있다. "소감이요? 심정이요? 그걸 말로 할 수 있갔소?" /윤인수 논설위원

2018-08-20 윤인수

[참성단]한국 국가대표 축구감독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후 팬들의 관심은 요하임 뢰브 독일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에게 쏠렸다. 한국에 충격의 2대0 패를 당하고, 조 최하위로 예선 탈락한 독일축구 명감독의 거취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독일 축구협회의 발표는 간단했다. "우리는 모두 뢰브 감독이 정확히 분석하고 올바른 조치를 통해 대표팀을 다시 성공의 길로 이끌 것으로 확신한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경기 도중 차범근 대표 감독을 날려버린 대한축구협회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한국 축구의 역사는 '감독 변천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외국인에게 대표팀 감독은 말할 수 없이 혹독한 자리다. 거스 히딩크 감독 이후 영입된 외국인 감독들은 히딩크 같은 '전폭적인' 지원도 받지 못하면서도 언제나 히딩크와 비교되며 질타를 받았다. 2003년 움베르투 코엘류, 2004년 조 본프레레, 2005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수난받은 외국인 감독'으로 기록된다. 특히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축구를 27년 만에 아시안컵 결승에 진출시키고 2015년 연승, 무실점 경기 등 각종 신기록도 갈아 치웠다. '제2의 히딩크', '갓틸리케(God+슈틸리케 )'라는 별명을 들었지만, 성적이 부진하자 경질됐다. 얼마나 화가 났던지 그는 지금도 한국축구에 온갖 독설과 저주를 퍼붓고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자리를 '독이 든 성배'라고 한다. 잘하면 본전이고 잘못하면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배인 줄 뻔히 알면서도 잔을 들었다가 끝이 좋았던 건 오직 히딩크 감독밖에 없었다. 그래도 국가대표 감독을 거부하지 못하는 건 국가대표감독 자리가 돈과 명예 등 나름의 매력이 있어서다. 그래도 '총리를 맡는 것보다 축구감독이 더 힘들다'는 영국 격언처럼 '국대감독'은 힘든 자리다.한국 국가대표 축구감독에 파울루 벤투 감독이 선임됐다. 첫날부터 뒷얘기가 난무하고 있다. 3명의 후보들과 협상을 벌였지만, 연봉문제로 결렬돼 차선책으로 벤투 감독이 선정됐다는 등의 말이 축구협회 관계자 입에서 술술 나오는 건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성적이 부진할 경우 "그거 봐라! 원래는 벤투가 아니었다"고 책임을 전가할 태세다. 벤투 감독도 한국 축구협회의 이런 명성(?)을 익히 들었을 것이다. 벤투 감독에게 두 가지만 당부한다. 귀를 꽉 막아라! 아무 것도 들리지 않게. 그리고 첫 경기는 반드시 이겨라! 그것도 시원하게.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19 이영재

[참성단]이탈리아판 성수대교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배경으로 1994년이 선택된 것은 '그 해'가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전환점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1994년 여름은 기상관측이래 최대의 폭염으로 기록된 해였다. 북한 김일성이 사망한 것도, 인간말종 지존파 사건이 터진 것도 1994년이었다. '문화대통령' 서태지가 교육 현실을 비판하며 '교육 이데아'를 불러제껴 문화적 대 충격을 가져온 것도 1994년이었다.무엇보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강남구 압구정동과 성동구 성수동을 잇는 '성수대교의 붕괴'는 대한민국 급성장 과정에서 만연된 부실공사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준공된 지 15년밖에 안 된 다리의 붕괴로 출근하던 회사원, 등교하던 학생 등 49명이 탄 버스가 한강으로 추락해 31명이 사망했다.성수대교 붕괴는 단기간 성과를 내기 위해 저질러졌던 부실공사의 문제점을 우리 스스로 깨닫는 계기가 됐다. 그 무엇보다 안전공사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이듬해 그 끔찍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겪으면서 "정말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라는 묵시적인 국민적 대 합의가 이뤄졌다.14일 이탈리아 북부 제노바에 있는 모란디 다리 80m 구간이 무너져 사망자 수가 42명을 넘어섰다. 이 사고를 접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날의 성수대교'를 떠올렸을 것이다. 우리가 놀란 건 어떻게 이런 후진국적 사고가 한때 세계 경제 5강을 구가했던 이탈리아에서 일어났을까 하는 점이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이탈리아 경제는 그리 녹록지 않다. 2007년 5.7%를 기록했던 실업률은 지난해 11% 선에 머물고,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32% 수준으로 EU 회원국 중 그리스 다음으로 많다. 다리의 부실한 유지관리가 도마에 오른 것도 만성적인 재정위기 탓이란 지적이 그래서 설득력을 가진다. 정치상황도 최악이다. 2011년 유로존 부채 위기 이후 네 명의 총리가 권좌를 오르내렸다. 그 틈을 노려 부패 스캔들과 재정 위기를 초래하고 물러났던 83세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정계에 복귀했다. 진짜 '올드보이의 귀환'이다. 이 모두 포퓰리스트가 난립하는 이탈리아의 혼란한 정치 상황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찌 됐건, 모란디 다리는 우리에게 1994년 '그 해'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여러모로 괴롭고, 무엇보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16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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