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넥센 히어로즈 뒷돈 파문

그동안 야구계에서는 넥센 히어로즈가 "선수들을 너무 팔아 치운다"는 소문이 꾸준하게 나돌았다. 그때마다 "설마"했다. 그런와중에 지난해 7월 넥센은 시즌 중 간판타자 윤석민을 KT로 트레이드했다. 팬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타율 325, 홈런 7개, 타점 47개로 생애 최고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던 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이유가 밝혀졌다. 뒷돈 5억원이 있었다. 넥센 히어로즈가 2009년 말부터 최근까지 트레이드 과정에서 131억5천만원의 뒷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야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넥센은 메인 스폰서가 없던 히어로즈 시절부터 23건의 트레이드를 체결했다. 2009년 12월 장원삼을 삼성에 주면서 발표된 내용은 투수 김상수, 박성훈과 함께 현금 20억원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현금 35억원이 건네졌다. 2010년 7월 황재균을 롯데에 보내며 김수화 김민성을 데려올 때 20억원의 현금을 받고서도 KBO에 신고하지 않았다. 2010년 12월 고원준을 롯데에 내줄 때에는 이정훈 박정준과 맞바꾼다고 해놓고 뒤로 19억원의 현금을 챙겼다. 2011년 7월 송신영 김성현을 LG에 보내고 심수창 박병호를 영입할 땐 15억원의 뒷돈을 받았다. MLB 출신 김병현을 2014년 4월 KIA에 트레이드할 때의 뒷돈은 5억원이었다. 프로 스포츠는 막말로 '선수 장사'라고 해도 틀린말이 아니다. 선수를 트레이드할 때 현금으로 얼마를 주고받든 그건 문제가 아니다. 몸값이 높을수록 오히려 선수에겐 영광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거래는 공개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넥센은 왜 그런 무리수를 두었을까. 야구계에서 이번 일을 두고 이구동성으로 '터질 게 터졌다'고 하는 걸 보면 뒷돈 거래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번 사태로 프로야구의 품격은 크게 훼손됐다. 뒷돈 받은 넥센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뒷돈을 준 구단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정범(正犯)과 공범(共犯)의 차이일 뿐이다. 관리 감독을 허술하게 한 KBO 사무국은 종범(從犯)이라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KBO 홈페이지 게시판엔 "모두 한통속이다. KBO 리그는 범죄자 리그"라고 분노한 팬들의 글들이 수없이 올라오고 있다. KBO는 이제 뒷돈 거래를 주도한 구단 수뇌부를 정리하는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 할지, 아니면 구단 자체를 매각시킬지 선택해야 한다. 이런 결정은 빠를수록 좋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5-31 이영재

[참성단]대법원 사태 유감

법 없는 국가는 없었다. 법치가 무너지면 국가가 망하고, 법질서가 흐려지면 사회는 문명에서 야만으로 전락한다. 입법, 행정, 사법의 3권분립은 민주주의를 모든 형태의 독재체제와 구별짓는 권력체계다. 3부의 개별적 권력은 오로지 국민에게서 나오니, 서로 영역을 침범하면 안된다. 권력이 섞이면 주권재민 원칙이 깨지고, 법치의 규범이 무너지고, 정의를 세울수 없다. 대한민국 판사들이 부당한 권력의 간섭에 직을 걸고 항거한 사법파동 역사를 이어 온 건 이 때문이다.1차 사법파동은 1971년 박정희 정권과 사법부의 충돌이었다. 공안 및 시국사범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불만이었던 정권은 두명의 판사에게 향응혐의를 씌워 사법부 길들이기에 나섰다. 당시 450명의 판사중 150명이 사표를 제출하며 항의했다. 정권은 유신헌법으로 대법원의 위헌법률심사권을 박탈하는 것으로 보복했다. 하지만 1988년 2차, 1993년 3차 사법파동에서 소장판사들은 '문제적 대법원장'들을 사퇴시켜 사법개혁 의지를 관철했다. 3차 파동 당시 소장판사들은 사법개혁 성명에서 "판사들은 판결로 말해야 할 때 침묵하기도 했고 판결로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기도 했으며 판결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진실에 등을 돌리기도 했다"고 뼈저린 자기반성을 남겼다. 2003년 4차 사법파동은 법원 인사제도 개혁으로 헌법재판관과 대법관에 여성들을 진출시켰다.법원이 시끄럽다. 지난해 법원행정처의 진보성향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의혹이 사법행정권남용 논란으로 확산됐다. 전·현직 대법원장이 진보·보수 시민단체로 부터 고발당했고,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정리해고됐던 KTX승무원들은 판결무효를 주장하며 대법원을 점거하기도 했다. 현 김명수 대법원장은 자신이 구성한 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부정하는 자충수에 고민이 깊은 모양이다. 법원 내부도 사실 관계에 대한 판사들간의 논란으로 뜨겁다.권력으로부터의 사법독립과 내부의 사법개혁을 추구한 예전의 사법파동과는 거리가 멀다. 진영대립의 악폐가 사법부에 이른 듯해 실망스럽고, 판사 성향에 따라 판결이 달라지는 '코드 판결'의 배경을 짐작할 수 있어 개탄스럽다. 검찰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막장 사태' 일보직전인데, 검찰 신세를 진 사법부를 국민이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앞으로 모든 판결마다 의혹이 매달릴까 걱정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5-30 윤인수

[참성단]방탄소년단과 비틀스

2018년 5월 27일은 한국 대중음악사, 나아가 세계 팝 음악사에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 분명하다. 방탄소년단(BTS)의 앨범 'LOVE YOURSELF 轉 Tear'가 빌보드 앨범 200에 당당히 1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영어가 아닌 한국 가사의 노래가, 싱글 차트가 아닌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것은 춘향가 중 '쑥대머리'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는 것 보다 사실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7명의 젊은이 정국, 진 , 슈가, 제이홉, 지민, 뷔, RM이 그 누구도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한 큰 일을 해냈다.1964년 2월 7일이 팝 역사상 가장 의미 있는 날로 기록되고 있는 것은 그날, 비틀스가 미국에 첫발을 디뎠다는 이유 하나 때문이다. 더벅 머리 4인조 폴 매카트니 죤 레논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의 미국 도착으로 전 세계 음악 시장의 판을 다시 짜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미국으로 건너간 지 불과 두 달 만에 빌보드 싱글 차트 1~5위를 모두 자신들의 곡으로 채우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운 것이다. 이때부터 비틀스는 단순한 '음악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 됐다.비틀스의 미국 방문은 영국의 많은 뮤지션들이 미국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물꼬를 트는 계기 됐다. 믹 재거의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 난폭한 퍼포먼스의 창시자 더 후(The Who), 뉴캐슬 출신의 애니멀스(Animals) 그리고 에릭 크랩튼, 제프 벡, 지미 페이지의 야드 버즈(Yardbirds)등 영국 출신 가수들이 대서양을 건넜고, 삽시간에 미국 팝 음악계를 석권했다. 언론들은 이를 가리켜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이라고 지칭했다. K팝은 한국에서 만 과소평가될 뿐, 세계적으로는 이미 'K팝 신드롬'이라 할 정도로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세계 팝 시장에 K팝이 새로운 주류로 떠오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방탄소년단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비틀스가 빌보드를 석권한 이후 영국 가수들이 미국 시장에서 새로운 음악적 성취를 이룬 것처럼, 방탄소년단 빌보드 차트 1위를 계기로 한국 아이돌 가수들의 대대적인 'K팝의 침공(K-POP Invasion)'이 실현 됐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5-29 이영재

[참성단]무산 스님 입적

조계종 대종사이자 선시(禪詩)의 대가 신흥사 조실 무산 스님이 26일 입적했다. 1968년 범어사에서 비구계를 받았고, 같은 해 '시조문학' 추천으로 등단했으니 법랍과 시력이 50년을 꽉 채웠다. 스님 무산은 참선과 보시에 힘썼고, 시인 조오현은 화사한 선풍 가득한 시로 속세를 위로했다.입적 후 언론이 정리한 스님의 행장은 하나같이 막히고 거칠 것이 없는 선사의 풍모로 가득하다. 2014년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하는 장면을 보고 "고통받는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필요 없다"며 "교황처럼 중생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라"고 절집을 향해 일갈했다. '만해대상'을 제정해 만해 한용운과 백담사를 오늘에 되살린 것도 무산의 업적이다. 신흥사와 백담사에 선원을 세워 사그라들던 선풍(禪風)을 진작했고, 스스로도 말년에 매년 여름과 겨울 석달 씩 백담사 무문관에서 참선에 정진했다.시인으로서도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독자를 거느렸다. 천년을 사는 성자도 뜨는 해 지는 해 다본 뒤 알까고 죽은 하루살이 떼에 불과하다는 '천년의 성자'는 참선 끝에 이른 궁극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제 나도 갈 일만 남은 시신입니더.(염장이와 선사)"의 염장이는 부처였고, "산에 살면서 산도 못보고 생 울음소리는 커녕 내 울음도 못 듣는(일색과후)" 중늙은이는 무산이었다. 삼라만상에 맺힌 부처의 얼굴을 용케도 알아보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스님의 선시를 읽은 문인들과 명사들의 독후감을 모아 '이렇게 읽었다 설악 무산 한글선시'를 펴낸 권성훈 시인은 무산을 이렇게 기억했다. "질문을 던지는데,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침묵하면서 말하게 하고 소리가 없는데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 무산이 "밀물 때나 썰물 때 파도 위에 떠 살던(인천만 낙조)" 그 늙은 어부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생전에 "이다음 숲에서 사는 새의 먹이로 가야겠다.(적멸을 위하여)"고 작정했으니, 이제 숲에서 만날 벌레 한 마리도 예사롭지 않을 듯 싶다.설악산 백담사와 신흥사를 중심으로 수행하던 무산의 다비식이 30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 건봉사에서 열린다. 건봉사는 뒷산 철책선 너머에 등공대를 숨겨두었다. 신라시대 1만일 불공을 드리던 스님 서른한분이 마지막 염불을 왼 뒤 일제히 허공으로 솟구쳤다는 득도의 성지다. 무산 스님이, 시인 조오현이 다비의 연무를 헤치고 등공하기에 맞춤한 장소 아닌가. /윤인수 논설위원

2018-05-28 윤인수

[참성단]이재명 욕설 파일 공개 논란

인지 언어학 창시자 조지 레이코프는 저서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에서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프레임(frame)'이라고 주장했다. "전략적으로 짜인 틀을 제시해 대중의 사고 틀을 먼저 규정하는 쪽이 정치적으로 승리하며, 이를 반박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프레임을 강화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빨갱이' '위선자'등 상대방 흠집을 내는 네거티브를 끊임없이 전파하면 유권자는 그 프레임 속에 갇힌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 압력을 받은 닉슨 대통령이 TV에 나와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라고 연설할 때 이미 '닉슨=거짓말쟁이' 프레임 속에 갇힌 대중은 그 순간, '닉슨은 사기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런 경우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대선 막바지 안철수 당시 국민의 당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한 것은 'MB 아바타'라는 프레임에 걸렸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프레임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2000년 11월 미국 대선 투표일을 5일 앞두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과거에 음주운전으로 체포된 사실이 폭로됐다.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을 때라 앨 고어 민주당 후보 측은 쾌재를 불렀다. '부시=음주운전'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부시를 공격하기 딱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시가 먼저 기자들에게 "나는 실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며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해 버렸다. 그러자 '부시=솔직'이라는 역 프레임이 형성되면서 고어 측이 오히려 손해를 보았다.한국당이 지난 24일 민주당 이재명 경기지사 후보의 욕설 음성 파일을 당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그런데 뒷맛이 영 고약하다. 새로운 것도 아니다. 6년 전부터 이미 대선, 지방 선거 등 고비 때마다 이 후보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그 파일을 재탕한 정도다. 한국당은 '유권자에게 올바른 사실을 제공해 국민의 알 권리와 공공의 이익을 위해 공개했다'지만 그런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유권자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한국당은 각종 여론 조사에서 남경필 후보가 열세를 보이자 파일을 이용해서 '이재명=패륜'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만약 남 후보가 보수답지 않은 저질 네거티브라며 파일 공개를 오히려 극구 반대했더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남경필=공정'이란 프레임이 형성됐을지도 모른다.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다. 아까운 시간 낭비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정책 대결로 페어플레이 하길 바란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5-27 이영재

[참성단]황장엽과 태영호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북한을 탈출한 건 1997년 2월 12일이었다. 그는 한때 북한 권력 서열 13위였다. 고위급 인사 망명에 고무된 김영삼 정부는 그에게 부총리급 예우를 해 주었다. 하지만 1년 뒤 정권이 바뀌었다. 김대중 정부는 그가 적극적인 대북 활동을 하는 게 달갑지 않았다. 쓸데없이 북한을 자극해 햇볕정책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해서다.김대중 정부의 우려대로 황 전 비서는 김정일의 잔인성을 폭로하고 북한의 민주화를 지원하는 일에 열의를 바쳤다. 2002년에는 햇볕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한 '어둠의 편이 된 햇볕은 어둠을 밝힐 수 없다'를 출간해 김대중 정부로부터 큰 미움을 받았다. 주체철학으로 북한 체제를 설계한 그가 탈북했다는 소식에 충격을 받은 북한은 그와 가까웠던 가족 친구 제자 등 2천명 이상을 숙청했다. 부인은 자살하고 자식은 반신불수 상태에 빠졌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렸다. 진보 정권 10년 동안 황 전 비서는 사실상의 출국금지 또는 연금 상태였다. 그에게는 10년의 세월이 자신이 꿈꾸었던 통일의 싹이 뿌리째 뽑히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절망의 세월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다 2010년 10월 안가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생전에 그는 "김정일의 폭정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 보다 진실을 외면하는 일부 남한 사람이 더 문제"라고 늘 걱정했다.2016년 8월 박근혜 정부 시절 망명한 태영호 전 북한 영국 공사가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위원에서 사퇴했다. 최근 그는 증언집 '3층 서기실의 암호'를 출간하고 남남갈등의 가운데 서 있었다. 지난 14일엔 국회에서 출판기념 강연회를 갖고 "김정은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북한은 "천하의 인간쓰레기들까지 국회 마당에 내세웠다"고 그와 우리 정부를 비난했다. 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태 전 공사가 기자회견 하면서 북한에 대해서 적대적 행위를 내질렀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그를 추방하자는 청원도 올라왔다. 갑작스런 그의 사퇴 소식에 황장엽이 떠 오른 건 데자뷰 같아서다. "왜 사직했는지 차후 남북관계가 평가할 것"이란 사퇴의 변이 오히려 더 마음에 걸린다. 그의 증언집은 지금 예스24, 교보문고 등 온·오프라인에서 확고한 베스트 셀러 1위를 달리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5-24 이영재

[참성단]카메라 디스토피아

방송인 이경규를 스타덤에 올린 건 '몰래카메라'다. 1991년 모 방송국 예능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밤에'의 한 코너로 선보이자 마자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난처하게 조작된 상황에 갇힌 유명 연예인들이 벌이는 좌충우돌을 당사자만 쏙 빼고 진행자와 시청자가 한 통속이 돼 깔깔대며 즐겼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최진실을 천사옷을 입혀 공중에 매달거나, 웨이터를 시켜 고현정에게 물벼락을 때린 뒤 그 반응을 수많은 '몰카'로 찍어 편집하는 방식이다.몰카의 선풍적인 반응 덕분에 코너 MC인 이경규는 '일밤' 메인 MC 최수종, 주병진의 인기를 능가했을 정도다. 하지만 언제 당할지 모르는 스타들 사이에선 '몰카 공포증'이 번졌다. 배우 최민식은 봉투에서 출연료를 꺼내 세어보는 장면이 방영된 이후 화장실에서 돈을 세어보는 버릇이 생겼다는 후일담을 남겼다. 지금 같으면 방송사의 갑질로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했다. 실제로 몰래카메라 시즌2 (2005~2007)는 가학적 설정이 언론의 도마에 오르고, 민언련 선정 '2007년 올해의 나쁜방송'이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설정이 아닌 진짜 몰래카메라 시대가 활짝 열렸다. 만인이 만인을 향해 카메라 버튼을 누르고, 영상 콘텐츠를 유포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낳은 카메라 포비아 증후군으로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홍대 남성 누드모델 몰카'사건 여성 피의자 구속이 계기가 됐다. 경찰이 여성 피의자를 신속하게 구속 기소하자, 여성들이 단단히 뿔났다. 경찰은 혐의자가 특정된 탓이라 변명했지만, 여성들이 분통을 터트린 이유는 몰카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인데, 수많은 남성 가해자 중 극히 일부만 사법처리되는 현실에 있다. 2017년 몰카 피의자 5천437명 중 남성이 5천271명(96.9%)이었고, 2016년은 전체 피의자 4천491명 중 4천374명이 남성이었다. 구속자는 2016년 135명, 2017년 119명에 불과했다.몰카 범죄는 갈수록 은밀해지고 확산일로다. 급기야 최근 인천의 한 학교에서는 여교사의 치맛속을 몰래 찍던 고교생이 현장에서 딱 걸렸다. 여교사는 학생을 교무실에서 훈육하던 중 봉변을 당했다. 학생의 스마트폰에서 자신의 치맛속을 확인한 충격에 여교사는 휴가를 내고 정신과 치료중이라 한다. 개인의 인생을 끝장 낼 영상 콘텐츠를 돌려보며 낄낄대는 집단적 가학성 관음증. 카메라 디스토피아를 예고하는 우울한 풍경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5-23 윤인수

[참성단]숲으로 간 수원연극축제

프랑스 아비뇽은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다. 하지만 여름이면 수십만 명이 몰려드는 도시로 변한다. 한 달 동안 진행되는 아비뇽 연극제 때문이다. 덕분에 인근 마르세유, 니스도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말이 연극제지 이젠 장르도 다양해 고대 그리스 비극부터 셰익스피어 연극, 음악, 현대무용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공연 진수성찬'이다.첫술부터 배부른 건 아니었다. 1947년 연출가 겸 배우 장 빌라르가 문화의 부재로 심각한 심적 박탈감을 갖던 프랑스국민을 위해 아비뇽 교황청 앞마당에 무대를 꾸미고 연극 3편을 올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14세기 아비뇽은 교황의 거처였다. 그때 지어진 견고한 고딕 석조 건물인 교황청이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극제가 시작되면 이곳 안마당 '쿠르 도뇌르'엔 2천석의 대형 공연장이 마련된다. 장 빌라르는 "연극은 고대 그리스 작품처럼 야외극장에서 대규모로 이뤄질 때 진정한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전문가들이 꼽는 아비뇽 연극제 성공 원인은 두가지다. 첫째 연극을 거리로 끌고 나왔다는 것이다. 왕족,귀족 등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던 연극 무대를 과감하게 광장, 거리, 공터로 영역을 넓혔다. 그러니 대중이 환호와 갈채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둘째, 아비뇽은 도시 전체가 중세 성벽들에 둘러싸인 도시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분위기가 연극과 궁합이 잘 맞았다. 무대만 만들면 모든 곳이 천연 공연장이었다. 조명과 성곽의 조화는 아비뇽 연극제 성공의 밑바탕이었다.영국 에딘버러 축제도 마찬가지다.수원연극축제가 오는 25일부터 3일간 열린다. 장소는 매년 열리던 화성 일대가 아닌, 서둔동 옛 서울대 농생대 부지 '경기 상상 캠퍼스'다. 장소 변경의 표면적 이유는 '미세먼지와 더위' 때문이라고 한다. 수원연극축제는 1996년 첫 선을 보였다. 중간을 건너 뛴 해도 많았고 명칭도 들쭉날쭉이었다. 어느 해에는 '세계 연극제'라는 타이틀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연륜이 22년이 됐음에도 '개성없는 연극축제'라는 눈총을 받았다. 수원연극축제의 진가는 무대·조명이 성과 어우러질때 나타난다. 성은 이미 차려져 있는 밥상이다. 그런데 그 밥상을 걷어차고 엉뚱한 데서 밥을 먹는 꼴이다 . 이러다 내년엔 실내에서 연극제가 열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생각만 해도 벌써 끔찍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5-22 이영재

[참성단]부처님 오신 날

보리수 아래에서 마침내 득도한 석가모니. 중생들에게 불법을 전하려 세상에 나선다. 그 길에 처음 만난 중생이 그의 비범한 안색을 살피더니 물었다. "그대의 스승은 누구인가." 석가모니의 답이 이랬다. "나는 일체에 뛰어나고 일체를 아는 사람/ 무엇에도 더럽혀짐 없는 사람/ 모든 것을 버리고 애욕을 끊고 해탈한 사람/ 스스로 체득했거니 누구를 가리켜 스승이라 하랴/ 나에게는 스승 없고, 같은 이 없으며/ 이 세상에 비길 자 없도다./ 나는 곧 성자요 최고의 스승/ 나 홀로 정각(正覺) 이루어 고요하다./ 이제 법을 설하려 가니/ 어둠의 세상에 감로의 북을 울려라." 선각자의 사명으로 중생 제도(濟度)에 나선 석가모니의 출사표로서 부족함이 없다.313년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한지 60년 뒤인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이 중국으로부터 불상과 경전을 받아 불교를 공인하면서 한반도 불교역사가 시작됐다. 기독교가 예수 부활 이후 급속하게 서방세계를 점유한데 비해, 기원전 5~6세기 무렵에 탄생한 석가모니의 불교는 거의 천년만에 동방의 끝자락에 다다른 셈이다. 유럽과 아시아의 공간적 차이와 개인수행을 중시하는 불교의 소극적 포교방식이 원인 아닐까 짐작해본다. 대기만성인가. 전래는 늦었지만 한반도의 불교는 삼국의 문화를 꽃피웠고, 고려의 호국종교로 전성기를 구가하면서 수많은 유무형 문화유산을 이 땅에 남겼다.지금도 한국인은 불교의 영향권에서 생활한다. 건달, 식당, 강당, 이판사판, 야단법석, 다반사, 불가사의 등 흔히 쓰는 일상어가 불교에서 유래됐다. 산에 올라 절밥 공양받아 본 등산객이 드물지 않을테고, 호젓한 산사에서 세속의 번뇌를 놓아 본 사람들도 한 둘이 아닐 것이다. 불법의 오의(奧義)를 깨친 선승들의 에피소드는 이문을 따지는 속세에 지친 중생들에게 언제나 통쾌하다. 평생을 삼의일발(三衣一鉢:가사 세 벌과 바리때 1개)로 수행에 정진한 청담은 도반인 성철을 "팔만대장경과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불교에서는 불법을 깨달아 열반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는 삼독(三毒)으로 탐(貪-욕심)·진(瞋-노여움)·치(癡-어리석음)를 꼽는다. 불법이 전파된지 누천년이나 탐·진·치에 갇힌 중생의 지옥도는 여전하니, "어둠의 세상에 감로의 북을 울리라"던 석가모니의 중생제도 출사표가 무색하다. 그래도 부처님 오신 날, 오늘만이라도 자기 욕심의 크기를 헤아려보는 하루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윤인수 논설위원

2018-05-21 윤인수

[참성단]LG 구본무 회장 별세

옛날 경남 진주에 구(具) 씨와 허(許) 씨가 살고 있었다. 구씨는 장사 수완이 좋았고 허씨는 만석꾼 집이었다. 이들은 의기투합해 '락희화학공업사'를 설립했다. 창업 이념은 첫째도 인화(人和) 둘째도 인화(人和) 셋째도 인화(人和)였다. 영업에 강한 구씨와 숫자에 밝았던 허씨의 조화로 기업은 승승장구, LG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렇게 시작된 두 가문의 동업은 고 구인회-고 허만정, 구자경- 고 허준구, 구본무(LG회장)- 허창수(GS 회장)에 이르기까지 68년간 지속됐다. 구씨와 허씨의 회사 분리는 부자간·형제간 경영권 다툼이 일상화 된 우리 기업들에 회자 될 만한 모범 사례를 제시했다. 회사 하나 더 갖겠다는 잡음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오너 리스크 무풍지대 LG'라는 말도 이때 나왔다. LG LCD 설립 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네덜란드 필립스사의 크리스털 리 전 회장은 LG에 16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한국에 투자를 결정하면서 파트너를 찾기 위해 모든 기업을 둘러봤지만 구씨와 허씨가 50년 이상 동업자로서 아무 잡음 없이 경영하는 걸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는 기업이 양보와 타협, 신뢰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에 구본무 회장은 "동업은 결혼과 같은 것이다. 생각이 다르고 자라온 환경이 전혀 다른 남녀가 함께 사는 것처럼 동업자도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양보와 타협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LG그룹의 경영을 논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정도(正道)경영'이다. 구인회 창업 회장은 도박이나 술 등 사행성 산업은 물론 '먹고 마시는 것'과 연관된 소비성 사업, 부동산투자 사업을 엄격히 금지했다. 구본무 회장도 "아무리 어려워도 목적 달성을 위해 편법을 동원하는 모럴 해저드에 빠져선 안된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정도경영'을 해야 한다"고 임원들에 늘 당부했다. LG를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구본무 회장이 20일 만 73세로 별세했다. 구 회장은 생전 "인재 발굴 육성이야말로 기업의 가장 큰 책무"라고 강조했다.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해 순환출자 고리를 끊은 것은 구 회장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다. 100세 시대에 이제 불유구(不踰矩)인 그의 갑작스런 비보는 아쉬움을 넘어 한국 경제의 큰 손실로 기록될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5-20 이영재

[참성단]선거가 사라졌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 미당 서정주가 23세 때 쓴 '애비는 종이었다'로 시작되는'자화상'의 한 구절이다. 시가 발표된 건 1935년. 벌써 8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이 시를 읽으면 한줄기 찬바람이 가슴 속을 쏴~하며 지나가는 느낌이다. 바람이 키운 것은 비단 젊은 시절의 서정주 시인 뿐 만이 아니다. 25세의 윤동주를 통절하게 반성케 하고 괴롭히면서 정신적 성숙을 가져다준 것도 '잎새에 이는 바람'이었다. 시에서 바람은 희망이 되기도 때론 시련의 빛깔로 나타나기도 한다.적벽대전의 승패를 가른 결정적 요인도 바람이었다. 촉의 방통이 조조를 속여 위의 배들을 쇠사슬로 연결하는 '고리를 잇는 계책', 이른바 '연환계(連環計)'를 썼다. 208년 동짓날, 제갈공명이 예측한 대로 동남풍이 불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거세졌다. 그 때 화공(火攻)을 펼치자 조조는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누가 뭐래도 바람하면 선거판이 빠질 수 없다. 바람 없는 선거는 상상할 수 없다. 요즘은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바람을 탄다고 한다. 선거 철이 되면 정치인들은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유리한 호재를 찾아 SNS를 들락거린다. 선거를 앞두고 터지는 사건에 바람 풍(風)자를 붙이는 것도 바람이라도 타서 승리하고 싶은 정치인들의 간절한 '바람'에서 비롯됐다. 안기부가 김대중 후보의 낙선을 위해 '흑금성'이 저지른 공작정치 북풍(北風), 국세청장이 대기업 23곳에서 대선자금을 모금해 이회창 후보 측에 넘긴 세풍(稅風),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 후 치렀던 총선은 탄핵 역풍, 즉 '탄풍(彈風)'이었다. 선거판의 바람은 마침내 역사까지 바꿨다.6·13 지방 선거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는데 선거 바람이 좀처럼 불지 않고 있다. 선거를 치르는 게 맞나 싶을 정도다. 아예 사라진 느낌도 든다. 세월호 침몰사고 여파로 유례없이 조용했던 2014년 6·4 지방 선거를 닮았다. 당시 집권당은 역풍을 맞을까 대놓고 선거를 치르지 못했다. 지금은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그 흔한 후보 TV 토론회도 볼 수 없다. 어찌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나.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이 '블랙홀'처럼 선거 바람을 모두 빨아들인 탓이다. 바람이 불지 않는 선거, 이런 선거는 생전 처음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5-17 이영재

[참성단]정치인의 인격

새뮤얼 스마일스는 '자조론'에서 "한나라의 국력과 산업 그리고 문명은 개인의 인격에 달려있다"며 "법률과 제도는 다만 인격의 자연적인 결과"라고 인격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스마일스 당대의 영국은 산업혁명을 주도해 해가 지지않던 시절을 구가했다. 짐작컨대 급격한 경제 발전은 도덕적 타락을 수반했을테고, 스마일스는 국력에 걸맞은 국격이 국민 개개인의 인격을 통해 구현될 것으로 확신했을 것이다.스마일스는 인격을 갖춘 신사(紳士) 감별법으로 아랫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꼽았다. "자기 보다 약한 사람에 대한 신중함과 관용, 친절이 신사로서의 인격을 판단할 중요한 기준"이라며 프랑스 시인 라 모테의 일화를 예로 들었다. 어느날 시인이 거리에서 한 젊은이의 발등을 밟았는데, 그는 무턱대고 시인의 뺨을 때렸단다. 라 모테 왈 "당신은 내가 소경이라는 것을 알면 반드시 이런 행위를 후회하게 될거요." 무안함에 새빨개진 그 청년의 얼굴이 저절로 그려진다.우리 사회 도처에서 미숙한 인격으로 인생을 망친 사람들을 수없이 목격하는 시절이다. 대한항공 세모녀는 소위 갑질로, 사회적 비난과 대중의 공분을 샀다. 수 많은 문화권력자와 정치권력자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여성을 희롱한 사실이 밝혀져, 자기 분야에서 평생 쌓아온 업적과 평판을 스스로 매장시켰다. 이들의 자멸적 인격이 우리 사회의 건강성에 대한 회의와 의심으로 확산된 건 더 큰 손실이다. 일부 인사의 미숙한 인격이 초래한 재앙이 이처럼 무섭다.지방선거를 앞두고 연일 계속되는 여야 정치인들의 말폭탄도 바닥 수준 인격의 증거이니, 한국 정치는 인격의 수준 만큼 국민의 불신을 받는다. 이 와중에 최근 경기도지사 선거전이 '인격검증' 공방으로 과열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남경필 자유한국당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형수욕설 음성파일'을 이유로 이 후보의 인격을 문제삼았다. 이 후보는 '개인의 불행한 가족사'를 이용하는 남 후보의 인격이 문제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음성파일이 공개될 지 모르겠으나, 공개되면 파장은 클 것이다. 형수에게 욕을 한 이 후보의 인격이 심판받을지, 타인의 가족사를 공개한 남 후보의 인격이 역풍을 맞을지 궁금하다.존 러셀은 "영국 사회의 특징은 천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정작 인격자들의 지도에 따른다는 것"이라고 했다. 준수한 인격의 정치인을 찾아보기 힘든 한국정치의 현실, 참 괴롭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5-16 윤인수

[참성단]플라스틱 바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둥둥, 고뿌(컵) 없으면 못 마십니다." 1960년대 코미디언 서영춘이 불러 히트시킨 음료 광고 '사이다 송'이다. 이 노래에 인천이 등장하는 것은 이곳이 사이다의 발원지였기 때문이다. 1905년 일본인 히라야마 마쓰다로는 인천 신흥동에 '인천 탄산제조소'라는 사이다 공장을 세웠다. 인기가 좋아 1929년엔 하루에 4천500상자를 생산했다고 한다. 60년대 어린시절을 보낸 이들 중엔 인천 바다가 아예 사이다 물이라고 믿은 사람도 많았다. 그랬던 인천 앞바다에는 이제 사이다 대신 페트병이 둥둥 떠다닌다.지난 3월 영국 멘체스터 대학 연구진은 경기·인천 해안이 전 세계에서 미세 플라스틱에 가장 오염된 지역 2위라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3위는 낙동강 하구였다. 전 세계적으로 ㎡당 평균 미세플라스틱 개수가 1만~10만 개인 곳은 우리나라 두 곳과 영국 머지 강과 어웰 강, 미국 세인트로렌스 강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시판 중인 굴과 바지락 등 조개류 4종류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됐다.미세 플라스틱은 페트병의 마모로 생기는 지름 5㎜ 이하의 작은 입자들이다. 현재 전 세계 바다에는 이런 자연 분해되지 않는 미세 플라스틱 입자 51조 개가 떠다닌다고 한다. 이를 플랑크톤이, 또 그것을 물고기와 같은 상위 포식자가 섭취하고 마지막으로 우리의 식탁 위에 오른다. 전문가들은 매년 평균 800만t의 플라스틱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인 참치의 연간 어획량과 맞먹는다.2050년이면 바다 속 물고기보다 플라스틱 수가 더 많아 '플라스틱 바다'가 된다고 한다. 60여 년 전 값싸고 내구성이 좋아 가히 '혁명'이라 했던 플라스틱이 지구의 종말을 앞당길 것이란 예측도 있다. 인천시는 인천 앞바다 폐기물 수거에 매년 80억원을 쏟아붓는다. 바다를 살리지 않으면 우리에겐 미래도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전 세계 플라스틱 사용량 1위 국가다. 오는 31일은 '바다의 날'. 경인일보 인천본사가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해양 쓰레기'를 줄입시다'라는 기획시리즈를 시작했다. 바다를 살리는 길은 한가지 밖에 없다.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는 것. 그것만이 우리가 살길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5-15 이영재

[참성단]사제(師弟)가 직무관계?

공자의 제자 중에 학문과 덕행이 유별났던 10명의 제자가 있으니 십철(十哲)이다. 안연, 민자건, 염백우, 중궁, 재아, 자공, 염유, 자로, 자유, 자하 등이다. 십철 중에서도 공자는 자신의 학문과 덕행을 후세에 온전히 전달할 제자로 안연을 꼽으며 가장 아꼈다. 그 안연이 요절하자 "하늘이 나를 버린다"며 통곡했다. 시정잡배였던 자로는 공자의 교육과 추천을 통해 뛰어난 정치가로 환골탈태했다.유교적 이상국가를 실현하려던 유세정치에는 실패한 공자였지만 제자복 만큼은 차고 넘쳤고, 십철을 비롯한 제자들 덕분에 유교는 동양사상의 대표 사상이 됐다. 석가모니에게도 석가십성(釋迦十聖)이라는 열명의 훌륭한 제자들이 있어 불법이 세상에 퍼질 수 있었다. 예수의 열두제자가 전파한 기독교가 서구역사에 끼친 영향은 일설로 형언이 불가능하고.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 입시사관학교 웰튼에 갓 부임한 영어교사 존 키팅은 책상위에 올라서 제자들을 굽어보며 말한다. "내가 왜 이 위에 섰는지 알고 있나? 사물을 또 다른 각도로 보려고 해서다. 무언가를 안다고 했을 때 그것을 다른 눈으로 봐야한다. 틀리고 바보같지만 시도를 해봐야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을 일깨워주는 스승의 역할을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진학보다 인생을 가르친 죄로 학교에서 쫓겨나는 그를 향해, 제자들은 '마이 캡틴'이라 부르며 책상을 밟고 올라선다. 키팅은 교단을 잃고 제자를 얻었지만, 학교는 교사도 학생도 다 잃은 셈이다.오늘은 '스승의 날'이지만, 최근 며칠 사이 '김영란법(청탁금지법)' 논란으로 빛이 바랜 느낌이다. 선생님에게 카네이션 한송이 달아줄 수 없다는 법적 금제의 타당성을 따지다 보니, 자존심이 구차해진 선생님 1만여명은 아예 스승의 날을 폐지하자는 청원을 청와대에 올렸을 정도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단호하다. 학부모와 교사, 학생과 교사는 성적, 수행평가 등 '직무연관성'이 있어 한송이 꽃 선물도 불가하단다.권익위의 김영란법 해석은 인성교육 대신 진학지도라는 직무만 남은 학교 현실을 국가 스스로 인정한 듯해 서글프다. 사제간의 인간적 소통을 통한 인성교육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 국가가 장려해야 할 미풍양속이다. 김영란법이 공직자의 직무를 아무리 깨끗하게 관리해도 사람을 놓쳐서는 본말전도의 결과에 직면할 것이다. 최소한 사제간에 꽃 한송이 흘러다닐 정도의 숨통은 틔워줘야 마땅하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5-14 윤인수

[참성단]여·야 당 대표들의 막말

요즘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재밌게 보고 있다. 경계 없는 인간적 연대(連帶)가 만들어 가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마음에 와 닿는다. 상처받은 사람에게 던지는 말 한마디가 때론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드라마는 보여준다. 최근 방영분에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돌연 귀의(歸依)한 겸덕이 옛 여자가 찾아오자 반조(返照)를 위해 면벽 묵언(默言) 수행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반조는 몸(身)으로 입(口)으로 생각(意)으로 짓는 업(業)을 돌이켜 보는 불교 수행의 첫걸음이다. 이를 위해 면벽 묵언 수행만큼 좋은 게 없다. 달마대사가 묵언 정진의 면벽 좌선을 9년 하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데서 '면벽구년(面壁九年)'이란 말도 나왔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는 것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은 마음 때문이라고 불교는 가르친다. 가벼운 입 놀림으로 인한 낭패의 사례로 늘 등장하는 게 콘드라티 릴레예프다. 그는 1825년 12월 14일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의 즉위 날 벌였던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의 밤' 주동자였다. 사형 언도를 받고 동료들과 함께 사형대에 목이 매였으나 운이 좋았던지 줄이 끊어져 혼자만 살았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교수형 집행 과정에서 살아난 사람은 '하늘의 뜻'이라며 살려주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그는 "러시아는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밧줄 하나 제대로 못 만든다"고 조롱했다가 진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입을 다물었다면 살아남아 후에 더 큰 일을 도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해 홍준표 한국당 대표의 막말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더니, 이제 추미애 민주당 대표도 질세라 막말에 가세했다.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한 김성태 원내대표를 겨냥해 "깜도 안 되는 특검을 들어줬더니 도로 누웠다"며 "한국당은 빨간 옷을 입은 청개구리당"이라고 조롱했다. 이에 김 원내대표는 "뚫어진 입이라고 막하지 말라"고 받아쳤다. 설화(舌禍)로 그토록 고생 하고도 고쳐지지 않는 게 정치인들의 막말이다. 잊혀지는 것보다 막말이라도 해 존재를 과시하고 싶은 게 정치인들의 속성인 모양이다. 그러나 집권당과 제1야당 대표가 시정잡배같이 내뱉는 막말은 국민을 절망에 빠뜨린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국회의 벽 앞에 앉혀 놓고 면벽 묵언 수행이라도 시켜야 할 판이다. "이제 그 입 좀 다물라!"는 국민의 질타를 제발 귀담아 듣길 바란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5-13 이영재

[참성단]대통령 지지율

정치인들에게 지지율은 계륵(鷄肋)같은 존재다. 조사 방법에 의구심을 표하면서도 결과에 일희일비한다. 입으로는 "지지율은 바람불면 '훅' 날아가는 새털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정치인들이란 늘 그렇다. 1981년 존 힝클리가 쏜 총에 맞고 병원에 실려가면서 "예전처럼 영화배우였다면 잘 피할 수 있었을 텐데…"라던 레이건 대통령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던진 이 유머로 지지율이 83%까지 치솟았다. 이듬해 지지율이 30%대로 폭락하자 걱정하는 참모들에게 "다시 한번 총 맞으면 된다"며 유머로 넘겼지만 속은 매우 쓰렸을 것이다. 그는 배우가 아닌 정치인이기 때문이다.대통령에게 지지율은 민심의 거울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면 동력 상실로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취임하던 해 광우병 사태를 겪으며 지지율 직격탄을 맞았던 이명박 정부가 그런 경우다. 지지율 추락으로 국정은 만신창이가 됐다.과거나 지금이나 여론조사에서 적절한 표본 선정은 큰 난제다. 조사기법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표본 선정의 오류는 여론 조사의 왜곡을 부른다. 정치의 무관심으로 인한 낮은 응답률도 조사의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또 다른 요인이다. 특정 지역과 계층, 세대 그리고 질문 내용과 시기, 방식까지 꼼꼼히 따져보면, 과연 여론조사로 민심을 완벽하게 들여다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경우도 많다.지난 4일 한국갤럽이 조사한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수행 지지율이 83%로 역대 대통령 취임 1년 지지율 최고를 나타냈다. 8·9일 이틀간 리얼미터가 실시한 조사에서도 76.1%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남북관계 복원'으로 큰 점수를 받았다. 문 대통령은 1년 내내 70%대의 높은 지지율을 보여왔다. 적폐청산 등 주요 정책들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도 지지율에 힘입은 바 크다.문재인 정부는 연인원 1천600만명이 참가한 '촛불'이 탄생시킨 정부다. 그러니 여론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지율에 너무 집착하면 '여론조사 정치'라는 함정에 빠진다. 반드시 챙겨야 할 중요한 과제를 잊어버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여론조사는 '하나의 수치'로 참고 지표일 뿐, 정책의 절대적 결정 수단은 아니다. 여론조사 결과가 때론 왜곡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취임 1년을 맞은 문대통령은 꼭 기억하길 바란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5-10 이영재

[참성단]지방선거 유감

6·13지방선거 운동장의 기울기가 심각하다. 수평회복의 조짐은 안보인다. 현장기자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여당인 기호1번 후보들은 넘치는데 기호2번 이하 야당은 출마후보 찾기조차 힘들다고 한다. 여당 쪽에 기운 판세가 워낙 뚜렷해서다. 그 탓인가. 여당은 공천후유증으로 몸살을 앓는 중이고 야당은 인물난에 기진맥진이다. 차기 지방자치를 걱정하는 소리도 높다. 여당 일각의 무리한 공천과 야당의 후보난으로 검증그물이 뚫리면서 부적격 인사들이 대거 지방정가로 유입될까봐 그렇다.여당이 압도하는 6·13지방선거 분위기는 아무래도 문재인 대통령의 후광과 더불어민주당의 프리미엄 덕이 크다. 문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80%안팎이고, 여당인 민주당의 지지율도 보수야당의 두배 이상을 유지한지 오래다. 생활자치 이슈는 중앙의 정치지형과 거대담론에 가려졌다. 드루킹 고행중인 김경수 경남지사후보, 혜경궁김씨 논란의 이재명 경기도지사후보가 자유한국당 김태호, 남경필 후보를 전례없는 고공지지율로 압도하는 이유다.3선에 도전하는 전경숙 의왕시의원 예비후보가 경선을 통해 획득한 '1(정당기호)-가(후보기호)'번을 초선 도전에 나선 후배 여성후보에게 양보한 미담이 화제다. 한선거구에서 2~4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기초의원선거는 모든 정당 후보들이 '가'번호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정당기호에 집착하는 유권자 성향상 '가'번은 정당의 대표 후보라는 각인효과로 득표에 훨씬 유리하다. 각 정당의 '가'후보의 당선율이 '나'후보에 비해 월등한 건 통계로도 확인된다. 전 의원 미담의 이면엔 생활자치의 모세혈관인 기초의회마저 정당기호(공천)에 종속돼 중앙정치의 세포구조가 된 현실이 숨어있다.전북 장수군수 김창수 무소속 예비후보가 9일 "중앙정치 선거 결과인 국회의석 수에 따라 지방선거 후보의 기호를 정하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지방자치제도에 반한다"며 제기한 헌법소원도 곱씹어볼 만한 의제다. 총인구 2만4천여명의 장수군과 같은 초미니 기초단체장 선거를 굳이 정당구조에 종속시킬 필요가 있나 의문이라서다. 최소한 기초의원 만큼은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많았다. 생활자치의 모세혈관인 기초의회마저 정쟁의 도구가 돼 공동체를 양분할 필요가 있느냐는 경험적 자성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지방자치 적폐 해소 차원에서 지방선거 정당공천제의 범위를 재설정해보길 권한다. 힘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윤인수 논설위원

2018-05-09 윤인수

[참성단]신발 디저트

문화인류학의 거두 레비 스트로스는 어릴적부터 고전 음악을 곁에 두고 살만큼 음악애호가였다. 특히 바그너의 오페라를 즐겼다. '슬픈 열대'와 함께 기념비적 저작으로 꼽히는 '신화학(전 4권)' 시리즈 제1권 '날 것과 익힌 것'에서 그는 음식 문화를 음악과 비교했다. 오페라나 연극이 공연되기 전에 막이 내려진 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서곡(overture)은 풀코스 요리의 수프·채소와 같은 전채요리에 해당하고 교향곡은 스테이크와 같은 메인 요리, 앙코르 곡은 커피나 과일 같은 디저트에 비유했다. 그는 음악이나 음식이나 사람이 재료를 다루는 능력, 비법 그리고 문화에 따라 그 맛과 멋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실제 남아메리카 밀림 속에 사는 부족들이 살아있는 엄지 크기의 애벌레를 맛있게 먹으며 자신에게 권했을 때, 그들의 문화라고 생각하니 먹을 만했다고 술회했다. 국가 정상들 간의 만남에서 만찬장 식탁에 오르는 음식과 술이 언론에 필요 이상으로 세세하게 소개되곤 한다. 영국의 가디언지가 이번 판문점 만찬에 나온 냉면을 두고 "평화의 상징은 이제 비둘기가 아니라 평양냉면"이라고 전 세계에 타전했듯이 만찬장에서 정상들이 나누는 말과 행동 못지않게 그들이 어떤 음식, 어떤 술을 먹고 마시는가는 세인들의 관심사다. 국제회의나 정상들의 만찬장에 오르는 음식들은 대체로 주최 국가의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경우가 많다. 음식을 만든 조리사가 누군지도 관심의 대상이다. 건배용 술의 종류와 상표, 생산연도를 식단에 자세하게 표기하는 것은 이제 국제적 관례다. 보통 정상들 만찬의 경우 6~7코스가 기본이다. 아페리티프 와인에서 시작해 입맛을 돋우는 오르되브르-수프-생선요리-육류요리-샐러드-치즈와 디저트로 이어진다. 일본 아베 총리 부부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부부의 만찬에서 검은 신발에 담긴 초콜릿이 디저트로 나왔다고 해서 외교 결례 논란이 일고 있다. 우리도 그렇지만 동양권에서 신발을 밥상에 올리는 것은 큰 결례다. 용기로 사용한 신사화는 세계적인 예술가 톰 딕슨의 작품이고, 요리사는 그 유명한 세게브 모셰였다. 이스라엘 언론은 이례적으로 "이는 유대인에게 돼지 모양의 접시에 초콜릿을 담아 대접한 격"이라고 자국을 비판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문화를 인정해서인지, 싫은소리 하지않는 일본인의 성격때문인지, 정작 일본정부와 언론은 아무런 말이 없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5-08 이영재

[참성단]2018 어버이날 유감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유독 간행이 잦았던 불경이 '불설대보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인데 간략하게 부모은중경으로 일컫는다. 부모의 은혜를 강조한 경전 내용이 효를 근본으로 하는 유교와 상충하지 않았던 덕이다. 경에 따르면 어머니는 3말8되의 응혈(凝血)을 흘려 자식을 낳아, 8섬4말의 혈유(血乳)를 먹여 기른다 했다. 그러니 자식이 아버지는 왼쪽 어깨에, 어머니는 오른쪽 어깨에 업고서 수미산을 백천번 돌더라도 그 은혜 다 갚기는 어렵다. 효경(孝經)은 공자와 제자 증삼의 문답 중 효도에 관한 것을 간추린 효 실천서로, 효에 기반한 충을 통치사상으로 떠받든 조선의 경국교과서였다.가부장제를 바탕으로 한 전제정치의 사상적 도구로서 효경의 효의 용도는 시대착오적이다. 자녀인 인민이 어머니인 당과 아버지인 수령에 효성과 충성으로 받드는 거대한 가정이라는 북한의 사회주의 대가정론이 대표적이다. 통치규범으로서 효는 너무 낡아 수용하기 힘든 세상이 됐다. 반면 부모은중경이 강조한 효의 의미는 인간적 규범으로 여전히 유효하다. 낳아주고 길러 준 부모를 향한 본능적 도리로서 '효'는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운 가치이다.그런데 인간적 규범으로서의 효마저 흔들리는 패륜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니 큰일이다. 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6년 한해, 사법기관은 1만2천9건의 노인학대 신고를 받아 이중 4천280건을 학대로 판정했다. 전년 보다 12.1% 늘어난 수치란다. 가해자 10명 중 4명이 아들이고, 직계가족을 비롯한 친척과 친족이 전체 가해자의 75.5%에 달한다. 경찰청이 홍철호 국회의원에 보낸 자료는 더 심각하다. 살인을 제외하고 부모를 해치는 패륜범죄가 2012년 956건에서 5년만인 2017년엔 1천962건으로 배가 늘었다니 말이다. 최근 4년간 해마다 47~60명의 부모가 자녀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패륜범죄의 상당수가 부모와 독립하지 못한 자녀간의 경제적 갈등 탓이라는 전문가의 분석이 옳다면, 전례없는 취업난 속에 패륜범도 계속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에 어버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려는 모양이고, 공휴일 지정을 압도적으로 지지하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찾아주어 경제적으로 독립시켜 주는 일이, 이 시대 어버이를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지 아닐까 싶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5-07 윤인수

[참성단]힘내라! 동네서점

'동네서점에서만 파는 책'이란 게 있다. 제법 책을 읽었다고 자부하는 독자도 온라인 서점만 이용했다면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이 책은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에서는 판매하지 않는다. 구매하고 싶다면 동네서점을 찾아가야 한다. 출판사 문학동네가 최근 '2010~2017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동네서점 베스트 컬렉션'을 출간했는데 제법 인기가 높다. 책도 책이지만, 숨 막히기 일보 직전인 동네서점을 살려야 한다는 출판사의 기획 의도가 신선하다.발상도 기발하다. 문학동네가 매년 출간하는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중에서 동네서점 주인들이 추천한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표를 얻은 7편을 한데 묶었다. 마케팅도 눈에 띈다. 궁금증 유발을 위해 비닐 포장을 뜯지 않으면 내용을 알 수 없게 제작했다. 물론 가격도 저렴하다. 민음사가 지난해 선보인 '쏜살문고 × 동네서점 에디션'도 오직 동네 서점을 위한 기획 상품이다. 이 책은 동네서점 '51페이지'라는 곳에서 출간을 제의했다. 입으로는 동네 서점을 살려야 한다면서도 온라인서점과 대형서점 중심으로 마케팅에 전념하던 대형 출판사의 뼈아픈 자성(自省)도 한 몫 했다. 막상 출간되자 출판사도 놀랄 정도로 반응이 뜨거웠다.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이 출간되자 초판 2천부가 순식간에 동나 한 달 새 3쇄 4천부를 찍었다. 디자인도 첫 눈에 반할 만큼 깔끔하고 예쁘다.지역을 대표하는 서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데 반해, 새로 문을 여는 작은 동네 서점도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특징은 대형서점과의 철저한 차별성이다. 일부 서점은 고유한 취향을 자랑하고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는 젊은층 사이에서 '힙한'(최신 유행에 밝은) 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다. 주말에는 북 콘서트, 독서토론, 시낭송회를 여는데 열기도 뜨겁고 수준도 꽤 높다. 경기도가 최근 '힘내라! 경기 동네서점'이란 주제를 내걸고 공모한 '2018년 경기도 지역 서점' 169곳을 발표했다. 선정된 서점엔 시설개선, 홍보, 경영 컨설팅이 지원된다. 그러나 동네 특색에 맞는 맞춤형 지원이 오히려 더 절실해 보인다. 동네서점은 지역 문화의 모세혈관이다. 혈관이 막히면 지역 문화는 죽는다. 그래서 동네서점은 꼭 살려야 한다.힘내라! 동네서점 /이영재 논설실장

2018-05-03 이영재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