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노벨평화상과 트럼프

매해 알프레드 노벨이 사망한 12월10일 열리는 노벨상 수상식엔 전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학, 문학, 평화, 경제학 6개 부문의 수상자는 각 분야에서 이룬 탁월한 업적으로 더할 나위 없는 명예를 인정받는다. 다만 다른 부문 수상자들의 업적이 객관적 성과와 합리적 평가가 가능한 반면, 평화상은 객관적 지표로 계량하기 힘든 '평화'의 가치 때문에 자주 구설에 올랐다.냉전시대 미국의 모든 전쟁에 관여한 헨리 키신저가 베트남평화협정으로 수상하자 논란이 일었다. 동반수상자였던 베트남의 레득토는 수상을 거부했다. 최근엔 3인의 여성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이 1991년 수상자인 미얀마 실권자 아웅산 수지를 향해 "로힝야족 인종청소를 외면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2000년 수상자인 김대중 전 대통령때는 '로비설'로 시끄러웠는데, 노벨위원회는 "로비는 있었다. 기이한 건 정치적 반대자 등으로부터 상을 주면 안된다는 로비가 있었다"고 일축했다. 평화에 대한 인식의 충돌과 정치적 고려와 입장 차이가 빚은 불협화음이다.요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가능성을 놓고 뉴스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다. 발단은 2000년 수상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지난 30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노벨평화상을 받으시라"고 보낸 축전이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노벨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야 하고, 우린 평화만 가져오면 된다"는 의미심장한 수사로 트럼프를 추켜세웠다. 미국 폭스뉴스가 이를 보도하자 트럼프는 "문 대통령이 그렇게 발언한 데 대해 매우 관대하다고 생각했다.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화답하고, 딸 이방카는 해당 기사에 '좋아요'를 눌렀단다.트럼프의 노벨평화상 가능성과 관련,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곧 성사될 북미회담의 낙관적 결과의 징조라는 해석과 평화상에 집착한 트럼프가 북핵폐기 의제를 미봉할 수 있다는 우려다.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의제는 북한핵폐기의 수준과 속도다. 트럼프는 북핵폐기 담판에서 대한민국의 이익을 대리하는 셈이다. 성공보수는 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미리 노벨상을 가불해 주는 분위기는 북핵폐기를 의뢰한 우리의 절박한 처지를 흐릴 수 있다. 북미회담에서 북한핵 완전 폐기를 확정한다면, 노르웨이 노벨위원회 홈페이지는 트럼프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청원으로 다운될 것이다. 선후가 이래야 맞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5-02 윤인수

[참성단]'삐라'의 추억

놀거리가 없던 어린 시절, 그나마 유일한 소일거리는 인근 산으로 칡 캐러 가는 거였다. 그때만 해도 산에 칡이 제법 많았다. 칡을 찾다가 뱀과 마주쳐 등골이 오싹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데 뱀보다 더 무서운 게 있었다. 북한에서 날아온 '삐라'였다. 삐라를 발견하면 모두 얼굴이 굳어졌고, 주변에 무장 공비가 있는지 좌우를 살펴보았다. 호기심에 삐라를 주머니에 넣고 돌아올 때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른다. 역사의 격동기를 살았던 50, 60대에게 이런 '삐라의 추억'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총 한 방 쏘지 않고 적을 교란시키는 데 삐라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 삐라는 적군의 마음을 헤집고 들어가 마침내 적진을 붕괴시킨다. 그래서 삐라를 '벌거벗은 심리전의 첨병' '종이 폭탄'이라고 부른다. 삐라는 영어의 bill에서 나왔다. 일본인들은 이를 '삐라'로 읽었고 그대로 우리에게 건너왔다. 전쟁사에선 2차대전 말 연합군이 항복을 앞둔 무솔리니에게 215만장을 뿌린 것을 삐라의 원조로 삼는다. 그러나 절정은 6·25전쟁때 였다. 38선을 가운데 두고 지루한 진지전(陣地戰)을 펼치자 삐라는 상대를 교란시키는데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한 수단이었다. 이 당시 유엔군은 25억장, 북한군은 3억장의 삐라를 뿌렸다고 한다.전쟁이 끝난 후에도 남북이 서로 삐라를 보냈다. 연 270일 북에서 남으로 바람이 불어 북에 절대적으로 유리했지만, 경제력이 뒤바뀌면서 북한의 조잡한 인쇄의 삐라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렀다. 그러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6월 12일 남북 군사 회담에서 삐라 살포를 포함한 심리전을 중단키로 합의해 주었다. 하지만 탈북단체가 계속 삐라를 보내면서 북한은 큰 타격을 입었다. 북한은 시간만 나면 삐라 살포 중단을 요구해 왔다. 통일부가 대북확성기 철거에 이어 대북 관련 단체에 삐라 살포 중단을 요구했다. 살포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과 마찰이 빚어질 경우, 신변안전 차원에서 경찰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하지만 관련 단체들은 강행할 태세다. 평화가 온다면 삐라 살포는 당연히 중단해야 한다. 그러나 삐라에서 열세를 보인 북한은 대신 사이버 공간에서 절대 우위를 보이며 우리를 교란시키고 있다. 우리가 삐라 살포를 중단하면 북한도 사이버 공격을 중단해야 한다. 이번에 우린 그걸 요구했어야 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5-01 이영재

[참성단]일자리 없는 근로자의 날

오늘은 근로자의 날이다. 노동단체는 노동절로 부른다. 1889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 노동자 8만여명을 비롯해 미 전역에서 수십만명의 노동자들이 하루 8시간 노동 보장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며칠 뒤 강제진압에 나선 경찰과 이에 맞선 노동자들의 유혈 충돌이 벌어진 헤이마켓 사건으로 비화된다. 그해 7월 세계 각국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모여 결성한 제2인터내셔날 창립대회에서 5월 1일을 국제 노동자 기념일로 결정하니 소위 메이데이다. 우리는 해방후 잠시 노동절로 기념하다, 1963년 법률로 근로자의 날을 확정해 지금에 이른다.최근 무산됐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했던 개헌안이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일괄 수정해 주목을 받았다.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근로자'가 노사의 대등한 관계를 표현하기에 부적절하다는 노동계의 여론을 수용했다. 근로자는 사용자의 이익에 부합한 단어로, 박정희 시절의 용어라는 심리적 저항이 깔려있다. 반면에 노동을 몸 쓰는 일로 인식해 근로를 단어에 호감을 보이는 여론도 상당하다. 언어가 의식을 규정하니, '근로'와 '노동'의 대치 결과가 주목된다.국제적인 기념일이지만 프롤레타리아 노동계급을 중시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노동절을 더욱 각별하게 기념한다. 냉전시대 소련은 적군의 화려한 열병식으로 이날을 기념했고, 북한에서도 '국제 로동절'은 7대명절에 포함된다. 중국은 올해 노동절 연휴(4월29일~5월1일)에만 1억4천900만명의 유커(遊客)가 중국 각지를 여행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여행수익이 880억 위안(14조8천869억원)이라니 대단하다.아쉬운 건 '근로자의 날'을 만끽하기엔 근로 대기자가 넘쳐나는 우리 현실이다. 올해 들어 지난 3월 실업률이 4.5%로 17년 만에 최고다. 125만명이 실업자다. 청년실업률은 더욱 심각해 2017년 10%에 달한다. 보조지표인 체감청년실업률은 23%로 2000년 이후 최악이었다. 여기에 베이비붐 세대의 메아리인 에코붐 세대가 취업시장에 쏟아져 나오니 설상가상이다. 조선과 자동차 등 3차산업현장의 일자리가 줄고, 패스트푸드점 등 서비스업 현장은 사람을 키오스크로 대체하고 있다. 근로자건 노동자건 최고의 권리는 일할 권리 아닌가. 근로자의 날에 근로자, 노동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청년들이 눈에 밟힌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4-30 윤인수

[참성단]표준시의 정치학

1884년 10월 25개국의 외교관 41명이 워싱턴에서 국제 자오선회의를 갖고 '하루의 길이'와 '하루의 시작'을 정했다. 그러기 위해선 표준시가 필요했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가 기준으로 정해졌다. 지구의 북극점과 남극점을 연결하는 자오선을 동경과 서경으로 나눌 때 그 출발점이 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리니치 동쪽에 있는 서울은 동경 135도를 표준시로 쓴다. 영토가 넓은 나라들은 여러 개의 표준시를 사용한다. 미국은 동부, 중부, 산악지대, 태평양 등 4개의 표준시가 있다. 우리 만큼 표준시가 많이 바뀐 나라도 없다. 모두 불행한 역사의 산물이다. 우리는 1908년 4월 1일부터 동경 127.5도 기준의 표준시를 사용하며 서양식 시간대를 처음 도입했다. 경술국치 이후 일본은 1912년 1월 1일 우리의 표준시를 일본 표준시인 동경 135도 기준으로 정했다. 해방후 이승만 정부는 1954년 3월 21일 표준시를 동경 127.5도로 바꿨다. 그러나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1961년 8월 10일부터 다시 동경 135도를 표준시로 쓰고 있다.북한은 지난 2015년 8월 5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표준시를 이전보다 30분 늦은 '평양시'(127.5도)로 바꾼다고 발표했다. '일제 잔재 청산'이 그 이유였다. 그후 부터 30분 '시차신경전'이 있었다. 2015년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에 대응해 우리 군이 확성기방송을 시작하자 북한은 준전시 상태를 선포했다.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남북 고위급 접촉이 열렸고 8월25일 낮 12시를 기해 방송 중단과 준전시 상태를 해제키로 합의를 봤다. 우리 군은 낮 12시에 확성기를 껐지만 북한은 12시 30분에 준전시 상태를 풀었다. 당시 협상 역시 자정을 조금 넘겨 타결되는 바람에 같은 합의를 두고 우리는 '8·25 합의', 북한은 '8·24 합의'로 불렀다.북한이 평양 표준시를 서울 표준시에 맞추겠다고 밝혔다. 판문점회담에서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평화의 집 대기실에 시계가 2개 걸려 있었다. 하나는 서울 시간, 다른 하나는 평양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이를 보니 매우 가슴이 아팠다"며 "시간부터 먼저 통일하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평양시간'은 3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이제야 남북이 같은 시간대에 살게 됐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4-29 이영재

[참성단]협상의 전략

우리는 매일 협상하며 산다. 물건을 사고 파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일종의 협상이다. 그래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협상술은 큰 관심거리였다. 유대인들이 돈보다 지혜를 중시했던 것은 오랜 방랑을 통해 재산은 빼앗길 수 있어도 지혜는 빼앗아 갈 수 없다는 진리를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협상에도 능하다. '상대방 정보를 많이 입수하고, 협상하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라. 반드시 명심할 것은 서두르는 협상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이다'(유대인의 협상술/작은 씨앗 간)는 유대인들의 몸에 밴 협상 철학이다.외교에서 협상술은 절대적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협상술 중 하나가 '벼랑 끝 전술( Brinkmanship )'이다. 북한이 핵을 앞세워 자주 쓰던 수법이다. 막다른 상황에서 초강수를 띄워 위기에서 탈출하는 전술이다. 상대방을 겁먹게 만들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으로 '공갈 전술'이라고도 한다. '니블링(nibbling)'이라는 것도 있다.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 작은 것 하나를 더 양보받아내는 기술이다. 좀 치사하긴 하지만 큰 물건을 사면서 싼 물건이나 작은 물건 하나를 덤으로 요구하는 경우다. 하지만 상대방이 더 노련한 협상가일 경우 곤란한 일이 발생하곤 한다. 그쪽에서 '카운터 니블링'으로 맞대응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하나 더 줄테니 하나 더 사가라"는 식이다. 주도권을 잡기 위해 '벼랑 끝 전술'이 이용된다면 '살라미(Salami) 전술'은 협상 과정에서 의제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전술이다. 얇게 썰어 먹는 이탈리아 드라이 소시지에서 따온 말로, 하나의 과제를 두고 이를 부분별로 쟁점화하면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협상 전술이다. 목적을 단숨에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계별로 그 대가를 받아냄으로써 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특징이다. 상대방은 속이 터지는 협상이지만 승률은 매우 높다. 오늘 판문점에서 남북 정상이 만난다. 어렵게 만든 자린데 사진이나 찍고, 만찬이나 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분명하다. 비핵화다. 협상이라면 닳고 닳은 북한이 어떤 전략을 들고 나올 것인가. 길고 긴 여정이 시작됐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4-26 이영재

[참성단]남북정상회담 만찬메뉴

만주족 왕조인 청나라의 강희제는 만한전석에 민족화합의 메시지를 담았다. 만주족의 식탁과 한족의 식탁을 합쳤다. 만주족과 한족의 요리를 한 식탁에 모아 하루 두번씩 사흘에 걸쳐 나누어 먹여 한 식구(食口)의 연대를 확인토록 한 것이다. 춘추시대 노나라는 왕의 배식 실패로 공자를 잃었다. 조국인 노나라를 등질 구실이 마땅치 않았던 공자에게 제사고기 분배를 깜박했고, 공자는 시원하게 사직서를 던지고 봇짐을 꾸렸다. 조조는 자신의 개국대업을 반대하는 순욱에게 빈 찬합을 보냈다. 텅빈 도시락의 의미를 모를리 없는 순욱은 자결한다.권력자의 식탁과 음식에 정치적 메시지가 담기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청와대 정상만찬 때 올랐던 독도새우를 놓고 일본이 시비를 걸었다. 독도가 한일간의 갈등 현안인 걸 뻔히 알면서 독도새우가 웬말이냐는 요지의 시비였다. 우리 입장에선 택도 없는 투정이지만, 일본은 한국의 의도적 영토선언 메뉴로 여긴 것이다.곧 이어 열린 한중정상회담에서는 문 대통령이 혼밥외교라는 비난에 곤욕을 치렀다. 대통령이 혼밥을 먹을 정도로 중국의 홀대를 받았다는 여론이었다. 청와대는 오바마의 베트남 혼밥에 견주어 대통령의 베이징 혼밥을 변명했지만, 사드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성 의전은 분명했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남북, 북미정상회담이 결정되자 중국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 정의용 특사를 극진히 모시더니, 북중정상회담 만찬에는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에게 2억원 짜리 명품 마오타이를 대접했다. 지금 베이징에서 한중정상회담이 다시 열리면 정상만찬은 확 달라질게 분명하다.청와대가 4·27 남북정상회담 만찬 메뉴를 공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고향바다에서 잡은 민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 쌀, 정주영 전 현대그룹회장의 서산농장 한우, 문 대통령의 고향생선 달고기를 재료로 한 음식을 올린단다. 남북대화와 교류의 남측 주역들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메뉴가 하나씩 식탁에 오를 때 마다 대화가 이어지도록 애쓴 흔적이 보인다. 다만 윤이상의 고향 통영문어까지 올린다는데, 정상만찬에 담을 대북 메시지에 신경쓰느라 우리 내부의 미묘한 정서를 소홀히 하지 않았나 싶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4-25 윤인수

[참성단]로스쿨 서열화

말이 '소년등과(少年登科)'지 조선시대에 20세 이전 대과 통과는 불가능했다. 세조 3년 16세에 급제한 남이(南怡)는 무과라 가능했다. '신동'이었던 율곡 이이는 13세에 생원시에 합격했으나 대과는 29세에, 퇴계 이황도 31세에 등과했다. 이유가 있었다. 대과를 통과하려면 진사나 생원이 되기 위한 소과에 먼저 합격해야 한다. 소과에 통과해야 성균관 입학 자격이, 성균관에 300일 이상 출석해야 대과 응시자격이 주어졌다. 소과 시험엔 1만명이 넘는 유생들이 응시해 200여명이 합격하고 대과 통과 인원은 불과 33명이었다.옛날로 치면 과거 급제와 같은 게 사법시험이었다. 개인 능력으로 사시만 통과하면 개천에서도 용이 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신분 상승 사다리였다. 대학 주변에 고시촌이 생겨나고, 용이 되기 위해 나이를 잊고 매진하는 '고시 낭인(浪人)'이란 말이 그래서 생겼다.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2009년 로스쿨이 도입됐다. 지난해엔 아예 사법시험을 없애 버렸다. '고려 광종 이래 1천년 넘게 순전히 시험만으로 인재를 등용하던 전통의 종말'이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베일에 가려진 전국 25개 로스쿨의 '제 1∼7회 변호사 시험 합격률'이 22일 공개됐다. 대한변협이 낸 정보공개 소송이 승소하면서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이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서울대가 78.65%의 최고 합격률을 보인 반면 원광대는 24.63%에 그쳐 합격률이 3배가 넘는 극심한 편차를 보였다. 정원 50명에 불과한 수원 아주대는 지방대임에도 누적 합격률 91.9%를 기록해 4위, 올해 치러진 7회 시험도 68.12%로 4위에 올랐다. 교수진이 변호사시험 합격에 초점을 맞춰 학생들을 일대일 개별 지도한 덕이다.합격률 공개로 로스쿨이 '변호사 시험학원'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과도한 경쟁도 불을 보듯 뻔하게 됐다. 그래서 '사시부활론'의 목소리가 다시 쏟아져 나온다. '사시 낭인'이 '변시 낭인'으로 명칭만 바뀌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경쟁률 공개가 옳았는지 의문이지만, 이제 로스쿨 통·폐합을 포함한 구조개혁을 논의할 시점이 된 거 같다. 근시안적인 해결책은 안 하니만 못하다. 멀리 보아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4-24 이영재

[참성단]조양호 회장의 '완행 사과'

아무래도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일가의 시련이 쉽사리 진정되긴 힘들어 보인다. 조 회장이 '물벼락 갑질' 파문에 대해 22일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지만, 게도 구럭도 다 놓친 형국은 그대로다. 장녀 조현아의 '땅콩'에 이어 차녀 조현민의 '물컵'이 일으킨 나비효과로 가문과 그룹경영이 위기에 처한 현실이 어이없고 기막혀서였을까, 조 회장의 한참 늦은 사과를 이해하기 힘들다. 폭주하는 분노의 속도에 비해 터무니없이 느렸던 완행 사과는 미스터리다.대한항공은 내년이면 창업 50주년을 맞는 국적항공기업이자 재벌그룹으로 소비자의 평판이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을 모를리 없다. 당연히 조현민의 악다구니가 담긴 육성이 공개되자마자 대한항공은 위기관리 시스템을 작동시켜야 했다. 특히 일반 임직원이 아닌 오너 일가가 저지른 오너리스크 아닌가. 조 회장과 당사자인 조현민이 즉시 진정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발표하며 저두평신(低頭平身), 납작 엎드렸어야 옳았다. 조 회장 일가가 망설이면 임원들이 종용해야 맞았다. 완행 사과의 이유가 조 회장 일가의 눈치만 살핀 임원들의 침묵이었다면, 대한항공은 정말 위기다.두 자매의 '땅콩'과 '물컵'에서 비롯된 나비효과가 조 회장 가문과 대한항공을 넘어 사회전체로 확산되면서 전례없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대한항공 직원 수백명이 '단톡방'을 개설해 회장 일가의 비리를 수집해 경찰에 넘기고 있다. 골리앗의 갑질에 다윗들이 조직적인 저항에 나선 셈인데, 재벌기업들이 새로운 경영리스크 사례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사실 '갑'들이 너무 높은데 있어 몰랐던 모양인데, '을'들이 만능에 가까운 스마트폰으로 모든 콘텐츠를 순식간에 유통시키고 공유하는 네트워크로 무장한지 오래다. 산업화 시대의 갑질을 부리다가는 정보통신 시대의 을들에게 판판이 깨질 수 밖에 없다. 조 회장은 몰라도 딸들은 이러한 세상의 변화를 충분히 알만한 연배인데 연달아 사고를 쳤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평창올림픽 성화봉송을 함께 한 조 회장과 삼남매의 환한 미소가 기억난다. 그 미소로 사람과 세상을 대했다면 없었을 시련이다. 조 회장의 완행 사과는 정말 늦었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4-23 윤인수

[참성단]천상병 예술제

1987년 12월 3일. 기자는 그날 의정부 장암동 수락산 아래 있었다. 허름한 슬레이트집에 사는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서다. 그때 기사 한 토막. '집에 들어서니 한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방문을 여니 한평 남짓한 방에 시인이 누워 있었다. 배는 임신부처럼 불룩했다. 간이 안좋은 모양이었다. 밥상 겸 책상에 예쁜 어린애 사진이 있어 누구냐고 했더니 잡지책에 하도 예쁜 아이 사진이 있어 오려서 액자에 끼워 두었다며 웃었다. 그때 함께 사는 장모가 한약을 방안으로 들이밀었고,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한입에 들이마셨다. 그리고 사탕 하나를 입에 넣었다. 시인 천상병은 지금 몹시 아프다.' 기사에는 쓰지 않았지만, 취재를 끝내고 나오는데 시인은 "돈 좀 줘! "라며 손을 내밀었다. 익히 들었던 행동이라 그리 놀라지 않았다. 주머니에서 만원 오천원 천원을 꺼내 내밀었더니 천원 한장을 달랑 집으면서 "이거면 돼"라고 말했다. 그때 그 표정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벌써 30년 전 일이다.1967년 동백림사건에 연루된 천상병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3개월, 교도소에서 3개월 치욕스러운 심문을 받은 후 풀려났다.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갈 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아이도 낳을 수 없게 되었다. 문단에 너무도 잘 알려진 시인의 일화 한 토막. '그가 죽고 난 뒤 몇 백만원인가 하는 조의금이 들어왔다. 시인의 가족으로는 처음 만져보는 큰 돈이었다. 시인의 장모는 그걸 사람들 손이 타지 않는 곳에 감춘다고 한 것이 하필이면 아궁이 속이었다. 그걸 모르고 시인의 아내는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시인이 하늘로 돌아가던 1993년 4월 28일, 의정부시립병원 영안실 밖으로는 추적추적 봄비가 꽤 내렸다고 한다.천상병 시인을 기리는 예술제가 의정부시에서 성대하게 열리고 있다. 올해는 시인이 소풍을 떠난 지 25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우리의 버려야 할 버릇 중 하나가 생전에 홀대하다 죽은 후 부산을 떠는 것이다. 그래도 이런 자리를 만들어 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예술가들에게는 없는 게 많다. 부(富), 명예, 지위다. 있는 건 자존심뿐. 천상병도 생전에 그랬던 시인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4-22 이영재

[참성단]강화도 '갱징이 풀'

칠면초(七面草)는 칠면조의 얼굴처럼 붉게 변한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강화도 토박이 노인들은 칠면초를 '갱징이 풀'이라고 부른다. 꽃인지 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이 풀은 밀물에 묻히면 마치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기자 초년병 때 만난 갑곶 노인들은 소나 말도 이 풀만은 먹지 않았다고 말했다. 왜 '갱징이 풀'이고, 소나 말이 그 풀을 먹으려 하지 않을까.이야기는 병자호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1636년 12월 9일 청나라 대군이 조선으로 밀려들었다.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자, 월곶 성동 나루터에는 강화도로 들어가려는 피난민들로 가득 찼다. 그런데 강을 건너게 해 줄 배가 없었다. 며칠을 기다려도 배를 구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가마가 도착했다. 강화도 검찰사로 임명을 받은 영의정 김류의 아들 김경징의 어머니와 아내가 탄 가마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수십 척의 배가 나타나 발버둥을 치는 피난민들은 외면한 채 두 여인과 식솔, 50개나 되는 재물 궤짝만 싣고 강을 건너갔다.그리고 곧 오랑캐가 나루터에 들이닥쳤다. 후대는 그 모습을 "순식간에 거의 다 채고 밟히고 혹은 끌려가고 혹은 바다에 빠져 죽고 하는 바람에 휘날리는 낙엽과 같았으니 그 참혹함을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들은 이 펄에서 죽어가면서, 또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경징아! 경징아! "부르며 저주했다고 한다. 그때 흘린 원한의 피가 붉은 펄 꽃으로 피었다는 것이다. 그게 말과 소도 입에 대지 않는다는 '갱징이 풀'이다.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 해안선 길이 99㎞로 세계적인 갯벌과 천연기념물 205-1호 저어새가 서식하는 곳. 매화마름, 갱징이 풀 등 560여 종의 식물이 자라는 강화도를 소개한 '강화도의 나무와 풀' '강화도 지오그래피'(작가정신 刊) 두 권의 책이 동시 출간됐다. 강화도가 '2018년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된 걸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만큼 우리가 무심했고 늘 옆에 있어 그 소중함을 모른 탓이다. 따지고 보면 제주도보다 더 아름답고, 서러운 역사를 갖고 있는 곳이 강화도다. 책의 출간이 잊고 있던 강화도를 상기시킨다. 이번 주말엔 강화도에 다녀올 생각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4-19 이영재

[참성단]혁명의 교훈

"너무도 험악한 정세와 너무도 강하고 엄청난 어둠 속이라 겁많은 사람일지라도 굳은 각오를 하게 되고, 또 아무리 대담한 사람일지라도 공포를 느낄 정도였다." 빅토르 위고는 '레미제라블'에서 올빼미의 시선을 빌려 1832년 6월혁명 전야의 파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혁명은 규범 대 규범의 충돌이고, 현재를 지키려는 세력과 전복하려는 세력의 격돌은 자비롭지 않다. 위고의 서사는 전환의 역사에서 희망과 절망의 극단을 오가는 군중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혁명의 동력은 악의적인 구체제의 전복을 희망하는 대중이다. 역사적 대중은 혁명이 혁명을 부르고 소멸하는 반복과 순환의 동력이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나폴레옹의 쿠데타-왕정복고-1984년 2월혁명-1871년 파리코뮌에 이르는 1세기 동안 민중혁명과 왕정복귀 쿠데타를 거쳐 선거혁명으로 마무리됐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사회주의 혁명, 공산주의 혁명은 이제 '실패'라는 낙인이 찍혀 역사에서 폐기됐다. 2010년 말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튀니지, 이집트, 예멘, 리비아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연쇄 혁명 '아랍의 봄'은 내전과 종파간의 대립 등 혁명의 여진이 '아랍의 겨울'을 불렀다.오늘로 1960년 4·19혁명이 58주년을 맞았다. 해방공간을 꽉 채운 이념적 대립과 계층간의 이해(利害) 충돌로 극심한 정치혼란기의 대한민국은 4·19혁명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정체성을 획득했다. 5·16 군사쿠데타로 인한 독재복고의 진통속에 혁명세대는 산업화세력과 민주화세력으로 나뉘었지만, 덕분에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모범국가로 성장했다. 하지만 4·19혁명, 두번의 쿠데타, 민주화항쟁으로 이어진 역사의 여진이 남긴 이념의 골이 너무 깊어 대한민국은 아프다.박근혜 전 대통령을 퇴진시킨 촛불시위는 모든 혁명은 모든 권력의 경종이라는 교훈을 일깨운 사건이다. 시대정신에서 홀로 이탈한 권력은 언제든 혁명적 상황에 직면한다.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으로 격상시켜 혁명의 면류관을 쓴 문재인 정부라고 예외는 아니다. 박근혜를 끌어내린 시대정신에 부응하고 있는지 혁명의 교훈을 마주하길 바란다. 혁명주체의 독선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 혁명의 역사였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4-18 윤인수

[참성단]별이 지다

노마 데스먼드는 텅 빈 저택에 유폐된 여왕처럼 살아간다. 이미 대중의 갈채도 환호도 모두 사라졌다. 화려했던 옛날은 그저 덧없이 허공에 흩어지는 연기 같은 것. 영화가 제작된 지 60여 년이 흘렀지만 데스먼드역을 맡은 글로리아 스완슨의 소름 돋는 연기, 특히 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그 마지막 장면은 지금도 우리 기억에 남아있다. 빌리 와일더가 영화 '선셋 대로(Sunset Blvd.)'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천하를 호령한 대 스타라도 시간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다는 것, 흘러간 물로 다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다는 평범한 자연의 섭리였을 것이다. 할리우드까지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도 대 여배우를 갖고 있다. 최은희다.젊어서 과부가 된 어머니와 죽은 아버지의 친구간 애틋한 사랑을 다룬 주요섭의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발표된 것은 1935년 일제 치하때였다. 과부의 사랑이 흉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랑거리도 아닌 시절이었다. 주요섭은 당대 소설가 중 여성 심리를 묘사하는데 단연 일인자였다.그로부터 사반세기가 지난 1961년 이 작품은 동명으로 영화화됐다. 감독 신상옥, 어머니 역에 최은희, 촬영은 수원시 팔달구 남창동 24번 1 정준식의 집에서 진행됐다. 방화수류정 등 수원이 배경이었다. 영화는 큰 성공을 거뒀다. 원작도 좋았지만 그래도 흥행의 1등 공신은 당대 최고의 배우 최은희가 큰 역할을 했다. 신상옥·최은희 콤비의 필모그래피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는 '성춘향'·'빨간 마후라'와 함께 언제나 맨 앞을 장식한다.최은희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92세. 1960년대를 전후로 엄앵란, 김지미와 함께 한국 영화 황금기의 스크린을 누빈 톱스타였다. 78년 신상옥 감독과 차례로 홍콩에서 납치돼 북한에 머물다 8년 만에 탈출하는 등 '삶 그 자체가 영화'였을 정도로 극적인 삶을 살았던 배우. 생전에 늘 "되돌아보면 내 삶은 기적의 연속이었다"고 말한 최은희는 1926년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생전에 1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3편의 영화를 감독했다. 언제나 큰 별로 살았던 최은희. 그 별이 졌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4-17 이영재

[참성단]정권의 결정장애

결정장애는 넘쳐나는 정보와 기회에 갇혀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현대인의 심리현상을 설명하는 신조어다. 지난해 한 취업포털 업체는 직장인 80.6%가 결정장애를 겪었다는 설문조사를 밝혔는데, 메이비족(Maybe族)은 이들을 일컫는 신조어다. 독일 저널리스트 올리버 예게스가 '결정 장애세대(Generation maybe)'에서 처음으로 쓴 단어로, '글쎄요'라며 결정을 유보하는 신세대의 경향을 규정한 것이다.사람들의 심리는 시장에 반영된다. 소비자의 결정장애를 치유하는 메뉴가 넘친다. 짜장면과 짬뽕 사이의 딜레마는 짬짜면으로 극복했고, 치킨집의 '양념반 프라이드 반' 메뉴는 위풍당당하다. 커피 마저도 컵을 반으로 나누어 아메리카노와 라떼를 반반 담아주기에 이르렀으니 가히 듀얼푸드의 전성시대다.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한판 위에 육·해·공 식재료가 한꺼번에 올라간 한국형 피자에 이탈리아 사람들은 불편함을 느낀다고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저녁 회식 메뉴와 장소를 찾기위해 수많은 먹방프로그램을 순회하며 탈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결정장애를 해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남에게 결정을 위임하는 것이다. 결정 과정의 스트레스는 물론 결정의 결과에 따르는 책임을 벗어던질 수 있어서다. 하지만 결정의 위임은 주체의 상실로 이어진다. 자기의 결정을 미루는 사람은 사회적 신뢰를 잃기 쉽고, 사회성을 잃은 사람이 행복할리 없다. 미국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우유부단함이 습성화된 사람 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다"고 말한대로다.최근 권력핵심의 결정장애 현상이 눈에 띄어 걱정이다. 김상곤 부총리의 교육부는 대입제도개편안의 결정을 국가교육위원회에 미뤘다. 국방부는 성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에 필요한 장비반입 결정을 시민단체의 반대농성으로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압권은 청와대다. 김기식 금감원장 거취 결정을 중앙선관위에 위임했다. 결국 선관위는 16일 전체회의를 열어 장고 끝에 김 원장의 '5천만원 셀프 기부'에 대해 위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김 원장은 곧바로 사의를 표명했다. 청와대는 정무적 결정을 미루는 바람에 권력의 권위만 초라해졌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4-16 윤인수

[참성단]철없는 자매(姉妹)

삼성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은 철저하고 빈틈이 없는 성격이었다. 엄격한 유교적 가풍을 중시했다. 웬만해선 자식들과 겸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화목'을 중시했다. 새벽 5시가 되면 청운동 자택에서 자식들과 아침 식사를 같이했다. 연암(蓮庵) 구인회 LG 창업주는 "한번 사귀면 헤어지지 말고 부득이 헤어지더라도 적이 되지 말라"는 말을 철칙으로 삼았다. '신뢰'가 경영의 최고 미덕이라고 여겼다. 공동창업주였던 허준구 회장과 그룹이 분리될 때 단 한마디의 잡음이 들리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다. '재벌'은 여전히 애증의 대상이지만, 이렇듯 재벌 1세대들의 뚜렷한 경영철학은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이 되는 밑거름이 됐음은 부인할 수 없다. 1956년 10월 36세 한진상사 조중훈 대표는 '책임제 수송계약'을 들고 미군 고위층을 찾아갔다. 운송 도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 이유 불문하고 전액 변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덕분에 미군용 캔맥주 운송을 맡게 됐다. 계약기간 6개월. 대금 7만 달러. 조 사장의 좌우명은 "처음에 얻지 못한 신용은 나중에도 얻기 힘들다"였다. '신용'을 최우선 덕목으로 휴일도 없이 수송업무를 강행했다. 단 한 번의 계약 위반도 없었다고 한다. 그때 얻은 신용으로 베트남에 진출해 지금의 한진그룹이 됐다. 생전에 정석(靜石) 조중훈 창업주는 그 어느 그룹 회장보다 직원들에 대한 사랑이 극진해 존경을 받았다.조양호 현 한진그룹 회장의 막내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갑질 논란'으로 구설에 올랐다. 회의 도중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소리를 지르고 물을 뿌렸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나이 많은 간부급 직원에게 막말을 해왔다고 한다. 조 전무는 2014년 '땅콩 회항사건'으로 사회를 들끓게 한 조현아 칼 호텔 네트워크 사장의 친여동생이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철없는 자매(姉妹)다. 인성이 이런데 경영능력이 있을 리 없다. 갑질을 하는 것은 자신이 스스로 함량 미달임을 감추기 위해서다. 이 자매들이 정석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 자질이 안되는 총수 자녀들은 경영에서 퇴출해야 한다. 철없는 재벌 3세로 인해 민심이 또다시 들끓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4-15 이영재

[참성단]大學入試變遷史

미국사를 뒤집으면 '인디언 멸망사'라는 말이 있다. 아마 한국사도 뒤집으면 '대학입시변천사'쯤 될 것이다. 대학진학률 90%가 보여주듯 대학입시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은 언제나 늘 뜨겁다. '맹모 삼천지교'를 앞세우며 옥답을 팔아 자식을 키운 우리 부모들이다. 이 뿐인가. '교육 백년지대계'는 초등학교만 나와도 아는 상식적인 용어가 됐다.1954년 대입 '국가 연합고사'가 치러졌다. 첫 국가시험이라 느슨했는지 커닝 소동이 터지면서 시험은 무효처리됐다. 1968년 사립대학 입학부정이 문제가 되자 대입 4개월을 앞두고 '대학예비고사' 실시를 발표했다. 그래서 69학번이 날벼락을 맞았다. 군이 정권을 잡은 1980년 7월 30일. 국보위는 과외폐지를 골자로 하는 '7·30 조치'를 발표했다. 1981년 졸업정원제와 내신이 도입됐다. 1982년 예비고사가 폐지되고 '대학입학 학력고사'가 실시됐다. 학력고사는 1994년에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변경됐다.대학입시변천사를 논할 때, 단연 으뜸은 김대중 정부 때의 이해찬 교육부 장관일 것이다. 1998년 10월 이 장관은 야간 자율학습과 월간 모의고사를 폐지하며 '당구 하나만 잘 쳐도 대학을 갈 수 있다'는 '대학 무시험전형' 확대를 선언했다. 입시지옥에 시달렸던 학생과 학부모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첫 적용인 2002학년도 수능생들, 삼풍백화점·성수대교 등 슬프고 끔찍한 사고를 보며 자란 1983년생 '이해찬 세대'는 역대 최고 어려운 시험지를 받아들고 멘붕에 빠졌다. 그 후 '이해찬 세대'라는 고유명사는 진보정권 집권 기간 내내 '무능 정권'을 상징하는 조롱의 대상으로 쓰였다.여기서 끝이 아니다. 2004년 노무현정부가 사교육비 경감 대책으로 내놓은 EBS와 수능 연계로 학생들은 내신, 수능, 논술을 모두 챙겨야 하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겪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선 거기에 '학생부 종합전형'까지 더해졌다. 이렇게 해방 이후 대학입시는 16번 바뀌었다.교육부가 그제 2022학년도 입시안을 공개했다. 반응이 싸늘하다. 잡탕 개편안이란 비난에 직면하자 김상곤 장관은 '열린안'이라고 우긴다. 교육부의 무능이 또다시 드러났다. 대학입시만 생각하면 머리와 가슴이 아프다. 정말 어쩌면 좋은가. /이영재 논설실장

2018-04-12 이영재

[참성단]김기식 사태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의 로비성 해외출장 파문이 심상치 않은 정치적 사태로 번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내로남불'형 이중적 도덕률의 수많은 사례에 하나 더 보태는 선에서 끝날 듯 싶더니, 문재인 정부의 도덕성 논란으로 확대된 것이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은 '로맨스'라 주장하지만 야당은 '불륜'으로 규정하며 반발하고, 여론은 사태의 전개를 주시하고 있다.부적절한 해명이 불씨를 키웠다. 김 원장이 국회의원 시절 국민세금을 지원받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경비로 여비서와 외유성 출장을 다녀오는 등 세차례의 무상 외유출장을 다녀왔다는 의혹에 대해 청와대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민주당은 당시 국회의원들의 관행이라고 보호막을 쳤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KIEP의 실패한 로비'라고 거들었다. 당사자인 김 원장은 출장에 동행한 여비서의 역할이 '정책총괄자'라 했다. 도덕성을 묻는 질문의 본질을 자의적인 법과 관행의 해석으로, 현란한 수사로 외면한 셈이다. 결정적으로 김 원장의 정책총괄 비서의 당시 신분은 인턴으로 밝혀졌다.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에서 잉태됐다. 권력의 비도덕성에 절망한 국민이 대안 부재 상태에서 선택한 권력이다. 도덕적 순결의 의무는 그만큼 엄중하다. 전 대통령과 전전 대통령이 적폐의 상징으로 전락해 구치소에 수감된 초현실적 상황은 권력의 도덕성을 회복해야 할 문재인 정부의 책무를 상기시킨다.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꾸준히 70%를 유지하는 동력은 권력의 새로운 전범(典範)을 갈구하는 대중의 소망이다. 민심은 '김기식 사태'를 문재인 정부의 도덕적 우월성을 검증할 잣대로 활용할 수 있다.청와대와 민주당이 자신들이 어부지리로 획득한 도덕적 권위의 엄중함을 인식했더라면 여기에 이르렀을까 의문이다. 민주평화당 조배숙 대표는 "김 원장의 외유가 관행이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원 특활비를 받은 것도 관행 아니냐"고 힐난했다. 이 질문은 청와대와 여당이 자문자답했어야 옳았다. 김기식의 관행과 박근혜의 관행이 뒤섞이면 문재인 정부와 전 정부·전전 정부 사이의 차별성이 모호해진다. 여권이 직시해야 할 '김기식 사태'의 본질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4-11 윤인수

[참성단]삼성의 굴욕

삼성 제품들이 전 세계 판매장에서 찬밥 신세를 당한 적이 있었다. 세일을 해도 팔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제품의 질이 형편없었던 게 문제였다. 팔리지 않는 제품은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이를 본 이건희 회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 1993년 삼성 이 회장은 LA, 오사카, 도쿄, 런던에서 장장 4개월에 걸쳐 1천800명의 임직원을 대상으로 신경영을 설파하며 다녔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는 혁명적인 연설을 한 후 '양보다는 질'을 우선하는 대대적인 경영혁신을 단행했다.1995년 무리하게 출시를 서둘렀던 애니콜 휴대폰의 불량률이 12%로 치솟자 구미공장에서 15만대를 쌓아놓고 불태웠다. 이른바 '애니콜 화형식'. 이런 과정을 겪고 삼성은 IMF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그 후 삼성 특검과 심근경색으로 이 회장이 쓰러지면서 이재용 부회장 체제를 맞았다.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이 부회장이 구속과 석방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런 삼성이 최근 삼성전자와 삼성증권 등에서 사고가 잇따르면서 굴욕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 9일 삼성전자 평택 반도체 공장의 정전사고, 같은 달 19일 삼성물산이 시공한 평택 물류센터 공사 현장에서 근로자 추락 사망 사고, 이달 6일에는 삼성증권의 100조원대 주식 배당 사고 등 한 달 사이 큰 사고 세 건이 발생했다. 여기에 노동조합 와해 의혹, 반도체공장 환경보고서 공개 논란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과거에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이 같은 일들은 미래전략실 해체가 결정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룹의 컨트롤타워가 사라지면서, 삼성 특유의 관리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도금지' 지시를 받고도 잘 못 들어온 주식을 버젓이 팔아치우는 삼성증권 임직원들의 모럴 해저드를 컨트롤타워 부재 때문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이번 사태로 올해 창립 80주년을 맞는 삼성그룹에 대한 신뢰는 크게 떨어졌다.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자칫 삼성병원에서 발생한 메르스 같은 사태를 맞을지도 모른다. 지금 삼성이 이 굴욕을 떨쳐 내려면 솔직한 반성과 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 때처럼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4-10 이영재

[참성단]여론조사

선거철이면 봇물 처럼 쏟아지는 게 여론조사다. 이제 여론조사 없는 선거는 불가능하고, 급기야 정치적 의사결정 수단으로 기능이 확대되고 있다. 현 정부가 공론조사방식으로 신고리원전 5, 6호기 건설을 재개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여론조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많다. 지표로서의 한계 때문이다. 여론조사는 현안에 대한 대중의 입장을 확인하는 실시간 지표로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장시간을 두고 실현해야 할 비전이나 목표는 실시간 지표로 확정하는데 한계가 있다. 원전 유지에 대한 정부 입장을 여론조사 형태인 공론조사로 결정하는게 맞느냐는 논쟁이 벌어진 이유다.조작과 왜곡으로 특정 집단의 이익 추구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는 점도 여론조사의 맹점이다. 선거 때 마다 여론조작 시비가 발생하는데 주로 추출 표본과 의도된 설문이 증거로 도마에 오른다. 신고리원전 공론조사 설문도 비슷한 시비에 시달렸다. 종종 여론조작을 감행하는 권력에게 여론조사는 조작을 위장하는 악행의 도구다. 미국 부시 정부 시절 이라크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여론조작 시도가 있다. 장막 뒤에서 여론을 조작하는 당시의 스핀닥터는 백악관 참모 칼 로브였다. 스핀닥터들의 여론조작 수법이 왝더독(Wag the dog)이다. 대중을 부정적인 여론에서 분리하기 위해 끊임없이 대형 이슈를 조작해 생성하는 수법이다. 사건을 사건으로 덮는 영화속 악질검사의 수법이다. 조작하기로 작정한 여론을 여론조사로 포장하면 대중이 눈치채기는 정말 힘들다.여론조사 결과 자체가 여론에 미치는 영향도 경계해야 한다. 밴드왜건 효과는 여론조사 결과 드러난 다수의 의견이 확장되고 강화되는 현상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소외를 견디지 못해 다수 의견을 추종하거나 아니면 침묵한다. 그 결과 실제와 다른 여론의 편향이 가능해진다.그래도 선거에서 여론조사는 침묵하는 민심을 가늠해 볼 유일한 수단이다. 경인일보가 어제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유한국당 남경필 도지사가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 3명에게 모두 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남 지사 진영에는 비상사이렌이 울렸을테고, 민주당 예비후보들은 경선이 본선이라는 절박함이 커졌을 것이다. 6·13 지방선거가 본격화되고 있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4-09 윤인수

[참성단]銃聲 없는 戰爭

그 어떤 총성도 들리지 않았다.그렇다고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미·중 무역 전쟁은 총소리 한방 없이, 스텔스 전폭기 처럼 조용하고 은밀하게 세계 경제 여기 저기에 폭탄을 투하하고 있다. 무역전쟁을 '무기 없는 전쟁'이라고 하는 이유다. 1929년 대공황으로 미국 경제가 붕괴하자 당시 다수당이던 공화당은 수입품에 평균 20%의 관세를 부과했다. 그럼에도 경제는 더 악화됐다. 다른 나라들도 앞다퉈 보복관세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1차대전 배상금과 대공황으로 국가 파산 직전까지 몰린 독일은 예정대로 군국화의 길로 나섰다. 지역마다 내전, 국지전이 일어나더니 2차대전으로 확대됐다. 미·중 무역전쟁은 지난해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균열조짐을 보일때 예견됐다. 하나의 경제권이라고 해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두 나라였다. 하지만 트럼프가 멕시코산 제품에 수입 관세를 20% 물리고 국경에 장벽을 세우겠다고 했을 때 금이 가기 시작했다. 당시 전문가들은 "1차 점령지가 멕시코라면, 최종 상륙지는 결국 중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불행하게 예상은 적중했다. 미·중 무역 충돌로 세계 경제는 패닉에 빠졌다. 대공황 이후 70여 년간 유지해 왔던 자유무역질서에도 심각한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교역의 담을 높일 수 있다는 배타주의가 각국으로 확산 되고 있어 걱정은 더 크다.문제는 세계 6위 수출대국인 우리다. 백악관은 중국과의 전쟁에 동맹국들과 공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우리 역시 미국 편에 서도록 압박받을 가능성이 커졌다.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을 열어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겠다는 심사다. 우리는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서글픈 숙명 앞에서 또 다시 방황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제 우리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대책없이 전쟁에 임하면 백전백패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치밀하고 전략적인, 만반의 대책을 마련해 두고 있는가. 그게 걱정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4-08 이영재

[참성단]박 전 대통령 1심 선고 생중계

1960년 5월 아르헨티나에 숨어있던 아돌프 아이히만이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체포됐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럽 각지에서 유대인을 체포해 수용소 강제 이주를 지휘한 특급 나치 전범이었다. 이듬해 4월 11일 그는 이스라엘 법정에 섰다. 이 재판은 전 세계 37개국에 생중계됐다. 재판 첫 날 법정 서기는 15개의 죄목을 읽어 내려갔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수백만 명 학살. 리투아니아 8만 명 학살, 라트비아 3만 명 학살,우크라이나 7만5천명 학살…. 아이히만은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행위에 대해 속죄하는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다."내가 뭘 잘못했지? 시킨대로 했을 뿐인데"하는 표정이었다. 현장에 있었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그의 모습에서 '악의 평범성'을 읽어냈다. 아이히만의 섬뜩한 표정은 수용소에서 살아 난 유대인들의 생생한 증언과 함께 고스란히 전 세계로 생중계됐다. 그리고 1962년 5월 31일. 텔아비브 외곽의 라믈레 교도소에서 아이히만의 사형이 집행됐다. 2015년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된 '아이히만 쇼'는 이 재판 과정을 생중계한 제작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백인 전처와 그의 연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미국 프로 풋볼 스타 O J 심슨 재판은 1994년 6월부터 1년 4개월 동안 생중계됐다. 그 기간 미국인의 눈과 귀는 TV 화면에 집중됐다. 모든 정황은 심슨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흑인의 우상이었다. 드림 팀이라고 불린 그의 초호화 변호인단은 사건을 '인종차별의 관점'으로 몰고 갔다. 작전은 주효했다. 그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만일 재판이 생중계되지 않았다면 상황은 바뀌었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1심 판결이 오늘 TV로 생중계된다. 사법사상 처음 열리는 하급심 생중계인데다 다른 사건의 선례가 될 수 있어서인지 관심이 뜨겁다. '무죄 추정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과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결정'이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불출석이 확실한 가운데 안 하느니만 못한 중계라는 말도 나온다. 아무튼 오늘 중계는 역사에 선명하게 기록될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4-05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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