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김정호' & '민경욱'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과 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이 집권세력과 보수야당의 내면을 보여주는 프리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각각 공항갑질과 유권자 모욕 논란을 일으킨 두 의원은 해명과정을 통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력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김 의원은 신분증을 꺼내 달라는 공항 보안요원의 요구에 국회의원 신분을 밝히며 규정에 없는 갑질을 한다고 핏대를 세우고 욕설까지 했다고 한다. 해명이 가관이었다. 자신이 보안요원에게 갑질을 당했고, 시민을 대표해 항의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비난 여론이 커지자 음모론으로 맞섰다. 김해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자신을, 시쳇말로 공항공사가 엿먹였다는 취지였다. 대통령과 정권에 대한 공격이라고도 했다.문제의 보안요원은 스물네살의 공항공사 협력사 직원이다. 공항공사는 김 의원이 속한 국토교통위 산하기관이다. 감히 김 의원에게 갑질하고 엿먹일 입장이 아니다. 김 의원의 억지는 '나는 무조건 옳다'는 독선(獨善) 말고는 설명이 어렵다. "사찰 DNA가 없다"는 정권 성선설과 맥락이 같다. 결국 김 의원은 사과했다. 하지만 김 의원을 통해 권력 핵심의 독선을 짐작한 국민의 경계심은 커졌다.민 의원은 "잘 지내냐"는 인사말에 "이번 정부에서는 잘 지낸다"고 답한 여성 유권자에게 침을 뱉었다. '고맙다고 더 분발하겠다'고 정중하게 답해야 옳았다. 보수에 적대적인 현장민심의 사례로 당 지도부와 공유하고, 대변인이 한 유권자의 직설에 감사를 표했으면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그런데 앞에서 뱉으면 모욕이고 뒤돌아 뱉으면 모욕이 아니다? 황당하다. "비염"은 뭐고 "부덕의 소치"는 뭔 소린가. 잘 지낸다는 유권자에게 왜 침을 뱉나. 상대가 남성이었다면 멱살잡이가 벌어졌을지 모른다. 민 의원은 자유한국당의 보수혁신 의지에 침을 뱉은 셈이고, 모른 체 하는 당 지도부의 시계는 박근혜 탄핵에 머물러 있다.자신의 갑질을 힘 없는 청년의 갑질로 둔갑시키고 과대망상적 음모론으로 덮으려는 여당 의원. 머리 조아리고 고마워해도 모자랄 직언에 침을 뱉은 야당의원. 두 의원은 집권세력과 제1야당의 정체를 거울처럼 보여주었다. 감사할 일인가? /윤인수 논설위원

2018-12-26 윤인수

[참성단]웜비어 사망 배상판결

2016년 2월 29일 한 미국 청년이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울먹이며 북한의 체제 선전물을 미국으로 반출하려 했다는 혐의를 인정했다. 버지니아 대학생 오토 웜비어였다. 관광회사를 통해 북한을 방문했다 1월 2일 귀국 비행기 탑승 전에 억류된 지 두 달만에 범죄자로 북한 매체에 등장한 것이다.북한 최고재판소는 양각도 국제호텔에서 체제 선전물을 절도했다는 그에게 국가전복음모죄로 15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했다. 검사는 무기를 구형했지만 "사회주의 복을 누려가는 태양 민족의 참모습을 직접 보도록 하자"는 변호로 감형됐다는 것이 북한 매체의 보도였다. 하지만 웜비어는 태양 민족의 참모습을 오래 보지 못했다. 사회주의 복도 웜비어만 비켜갔던 모양이다. 북한은 2017년 6월 12일 혼수상태로 웜비어를 석방했고, 그는 귀국한 지 엿새만에 사망했다. 국제사회는 경악하고 분노했다.멀쩡한 자식을 잃은 웜비어 부모는 진상규명을 위해 북한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지난 10월 북한을 상대로 11억달러 배상소송을 냈다. 미국 법원은 24일(현지시간) 북한이 5억113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판사는 "북한은 웜비어에 대한 고문, 억류, 재판외 살인과 그의 부모에 입힌 상처에 책임이 있다"며 "웜비어 부모는 북한이 아들을 붙잡아 전체주의 국가의 볼모로 쓰는 잔혹한 경험을 직접 했다"고 밝혔다.북한이 배상할리 없다. 미국내 압류할 북한 자산도 없다. 웜비어 사망에 대한 북한 책임을 기록에 남긴 상징적 판결이다. 웜비어 부모도 "김(정은) 정권이 아들의 죽음에 법적이고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세계가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는 성명을 냈다.지금 북한은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와 탈북민 3명 등 6명의 대한민국 국민을 최장 5년 이상 억류 중이다. 3명의 선교사는 무기노동교화형을 받았다. 기독교계가 이들의 구조를 요청했지만 정부의 답변은 애매했다고 한다. 실제로 세차례 남북정상회담에서 거론조차 안됐다. 답답했는지 한 교회가 정부의 구조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진행중이다.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억류 중인 우리 국민의 석방을 촉구하면서 "정부가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한 적이 있었다. 웜비어 사망 직후로, 그의 사망에 격노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목전이던 때였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2-25 윤인수

[참성단]2018 성탄절 풍경

"조용한 아기의 호흡/ 강물도 바다도 잠이 들고/ 하늘만 살아서 눈 위에 오는데/ 입가에 서리는 미소, 그것은/ 사랑이요, 사랑이며, 사랑이라.('아기예수')" 시인 황금찬은 오직 사랑만이 예수 탄생의 의미임을 노래했다. 생전에 '시는 신을 기억하는 작업'이라고 정의했을 만큼 독실한 크리스찬이었던 그에겐 당연했던 성탄 찬송이다.아시아에서는 드물게 한국은 성탄절을 휴일로 지정한 국가다. 기독교는 전래 이후 한국 근현대사의 어려운 고비를 민초들과 함께 헤쳐왔다. 굴곡 많은 역사를 관통하는 고난 속에서 기독교는 대중에게 큰 의지가 됐다. 교세가 커지면서 교회세습 등의 적폐도 생겼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남긴 사랑의 복음은 치유 능력이 여전하다. 이제 성탄절은 종교를 초월해 전 국민이 한해의 노고를 위로하고 덕담과 선물로 사랑을 나누는 연말 세시풍속으로 자리잡았다. 굳이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의 상업화를 비난할 필요가 없다. 어느 사회에나 잠시 쉬어갈 시간과 판타지는 필요하다.하지만 사랑으로 가득 차야 할 성탄절 즈음해서 한국사회는 한 해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니 참 공교롭고 난처하다. 과거정권 적폐청산, 사법농단 의혹, 최저임금 갈등, 유치원 비리 파동, 미투 열풍이 휩쓸고 지나간 성탄절 풍경이 을씨년하다. 청년실업이 중장년층으로 번지고, 기업이 사라진 도시는 활력을 잃었다. 문제를 해결할 정치는 아집과 독선으로 중증이다. 민간인 사찰의혹으로 뭇매를 맞고 있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두들겨 맞겠지만 맞으며 가겠다"고 버틴다. 그의 말에 예수의 십자가 고행을 연상할 이가 있을지 궁금하다.지금 국민의 심정을 유안진의 시를 빌려 "주님/ 지금 제 마음은 황량한 들녘/ 승냥이떼 울부짖는 야밤중 홀로 버려진 새끼짐승('내 가슴을 말구유로')"이라 말하면 과장일까. 2018년 성탄절 즈음 우리 사회는 이해인 수녀의 노래대로 "당신이 사랑으로 오신 날/ 아직 사랑의 승리자가 되지 못한 부끄러움/ 그대로 안고 당신 안에 서('성탄 시')"있는 형국이다.성탄절이다. 황금찬의 기도가 이 땅의 갈등하고 대립하는 모든 이의 가슴을 때리길 기원해본다. "나와 또 내 마음속에 다시 와야 할 아기! 예수여.('아기예수')" /윤인수 논설위원

2018-12-24 윤인수

[참성단]'올해의 책'

우리도 '독서대국'인 적이 있었다. 한해 소설이 수백만 권이 나가고, 백 만권 넘게 팔린 시집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학자들이 나서서 왜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지 연구할 정도다. 독서율은 OECD 국가 중 꼴찌다. 1일 평균 독서시간은 6분, 성인 세명 중 한 명은 1년에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다. 책도 읽지 않는데 어떻게 선진국이 됐는지, 아니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는데도 왜 책을 읽지 않는지 세계인들은 궁금해하고 있다.올해도 언론사마다 '올해의 책'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국민들은 책도 읽지 않는데 책을 선정해 정성스럽게 편집해 소개하는 걸 보면 낯설기까지 하다. 하지만 책 안에 한 해의 세태가 그대로 담겨 있다는 것을 아는 언론이 이를 외면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독서를 권장하는 의미도 담겨있다. 매체는 달라도 보는 눈은 같아서 같은 책을 '올해의 책'으로 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교보문고와 인터파크, 예스24 온라인 서점 '빅 3'도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올해의 책'을 발표했다. 에세이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가 세 군데 모두 1위에 올랐다. 하태완의 에세이 '모든 순간이 너였다'와 백세희의 에세이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도 10위 목록에 들었다. 하완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 마크 맨슨의 '신경 끄기의 기술', 김수현의 '나는 혼자 살기로 했다' 등 자기계발서도 눈에 띄었다. 고단한 세상 탓인지 올해도 에세이의 판매가 두드러졌다. TV 등 미디어에 노출된 도서의 선호도가 높았다.국내 작가의 소설이나 시는 단 한 권도 진입하지 못한 것은 이제 새삼 놀라운 일도 아니다. 미국 아마존닷컴의 올해 베스트셀러 종합 순위 '톱 10'에 8권이 소설인 것과는 너무도 대조적이다. 영상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의 책에 대한 무관심 속에 '문학은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올해는 25년 만에 돌아온 '책의 해'였다. 책이 더 팔렸다는 말이 없는 걸 보면 이를 눈치채지 못한 사람이 더 많았던 모양이다. 알았다 해도 '독서는 사치'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올해의 책을 꼽으라면, 시인 김명인의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와 세스 스티븐스의 '모두 거짓말을 한다',스티븐 레비츠키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가 좋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2-23 이영재

[참성단]사찰(査察)의 역사

권력은 늘 사찰의 유혹을 느낀다. 사찰을 통한 통제와 감시만큼 효과적인 통치 수단이 없어서다. 사찰의 사전적 의미는 '주로 사상적인 동태를 조사하고 처리하던 경찰의 한 직분'으로 되어 있다. 한국 정치사를 살짝 비틀면 '불법 정치 사찰의 역사'가 된다. 이승만 정권 때는 경찰 사찰과에서 그 역할을 담당하며 야당 정치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박정희 정권하에서는 중앙정보부가 정치 사찰을 담당하는 권력기관으로 공포의 대상이 됐다. 여야 정치인은 물론 언론인, 교수, 심지어 일반 국민까지 모두 사찰의 대상이었다. '사상이 불투명하며 권모술수와 기만으로 정치생활 30년을 일관한 신뢰성이 전혀 없는 위험인물.'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 사찰 자료는 김대중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이 기록이 만천하에 드러난 건 1990년 10월 4일. 국군보안사령부에서 복무하던 윤석양 이병이 탈영하면서 챙겨나온 컴퓨터 디스켓 덕분이었다. 그 안에는 정치계·노동계·종교계·재야 등 각계 주요 인사와 민간인 1천303명을 상대로 정치사찰을 자행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른바 '보안사 민간인사찰 폭로사건'으로 노태우 정부는 국방부 장관 등 문책인사를 단행하고, 보안사 서빙고분실을 폐쇄했다. 명칭도 국군기무사로 변경했다.'사직동 팀'도 있었다. 고위공직자와 대통령 친·인척 관리 및 첩보수집 기능을 담당한 청와대 직속 수사기관으로 정식명칭은 '경찰청 형사국 조사과'였다. 서울 종로구 사직동 안가에서 사찰 작업을 했다고 해서 이렇게 불렸다. 1999년 5월 '옷 로비사건'으로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자 2000년 10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지시로 해체됐다. 그 역할을 대신한 게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폐지됐다가 2008년 촛불집회 이후 공직윤리지원관실로 부활했다. 여기서도 예외 없이 무차별적인 사찰이 이뤄졌다. 2010년 언론에 민간인 사찰이 폭로되면서 공직복무관리관실로 명칭이 바뀌었다.최근 청와대가 민정수석실 산하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전 감찰반원의 잇따른 폭로와 청와대의 반박이 역대 정권이 그랬던 것처럼 지루하게 반복되고 있다. 시정(市井)에선 이를 두고 사찰이냐 감찰이냐 논쟁도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진위는 반드시 가려지게 돼 있다. 서슬퍼렇던 독재정권 때도 진실을 감추지 못했다. 문제는 그 후에 일어날 일이다./이영재 논설실장

2018-12-20 이영재

[참성단]권력의 DNA

인간 유전자(DNA)가 가진 32억개의 염기서열을 규명하기 위한 '인간게놈프로젝트(HGP) 국제컨소시엄'이 임무완수를 선언한 때가 2003년이다. 결과는 당혹스러웠다. 인간 유전자 수가 단순한 동물과 별 차이가 없고,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는 98% 이상 같다는 사실이 그랬다. 2% 미만의 유전자 차이로 인간과 침팬지의 운명이 결정된 셈이니 얼마나 아슬아슬한가.인간게놈프로젝트 이후 유전자는 인류 문명 전반에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리처드 도킨스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가 자신의 주인인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단언했지만, 인간은 도구에 머물 생각이 없었다. 게놈(한 생명의 유전자 전체)지도를 확보한 인류는 유전자를 문명 유지와 발전의 수단으로 활용중이다.최근 중국 허젠쿠이 교수가 인공수정 배아의 유전자를 편집해 에이즈의 원인인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저항성이 있는 여아 쌍둥이 출산에 성공했다고 밝혀 과학계의 비판에 직면했다. '유전자가위 악당'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그는 물러날 생각이 없다. 국내에선 한 민간기업의 유전자 검사 서비스를 받은 신생아가 30만명에 이르고, 일본에서는 유전자 적합도 검사로 짝을 이어주는 사업이 성업중이다. 콩, 옥수수 등 유전자 변형 농작물이 식탁을 지배한 지는 오래됐다. 유전자 개입을 멈추기에는 인간의 욕망 DNA가 윤리 DNA를 압도한다.엊그제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에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청와대 특감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한 반박이었다. 하지만 '모든 권력은 부패한다'는 권력 DNA의 속성에 어긋난 자신감이다. 인류 역사는 권력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스스로 폭주하는 권력의 속성을 보여준 사례로 넘쳐난다.문재인 정권 또한 권력 부패의 속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또 권력에서 부패 DNA만 잘라낼 유전자 가위도 없다. 있었다면 부패로 상처받거나 무너진 숱한 권력들의 운명을 설명할 길이 없다. 김 대변인의 유전자 발언은 문재인 정부 권력의 순결을 강조한 취지였겠지만, 권력의 본질을 밝힌 역사적 성찰과는 거리가 멀다. 앞으로 특감반 사건과 비슷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유전자 검사 요구에 시달리게 생겼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2-19 윤인수

[참성단]대학가 풍자 대자보

2013년 12월 10일 고려대학교 캠퍼스내에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고려대 경영학과 08학번 학생이 쓴 이 대자보는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었다. 안녕하지 못한 서글픈 현실을 사는 이들에게 '안녕한가'를 묻는 27세 대학생의 대자보 여파는 전 세대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마치 들불 같았다. 그 후 우리 사회엔 '안녕들 열풍'이 불었다. 고교생까지 안녕 대자보 대열에 합류했다. 대자보는 잠시나마 자신을 바라보는 거울이 됐다. 대자보의 역사는 길다. 로마의 카이사르는 벽보를 정치에 적극 활용했다. 조선시대에도 나라에서 붙이는 방문(榜文), 남을 비방하거나 민심을 선동하기 위해 붙이는 괘서(掛書) 등이 있었다.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의 파리코뮌과 러시아 혁명도 따지고 보면 길거리 벽보에서 시작됐다. 대자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건 1950년대 중국의 여러 정치세력이 붙인 대중선전용에서 비롯됐다. 조직 내부 소식지나 성명서는 소자보,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벽보는 대자보라 칭했다. 문화대혁명 시절 마오쩌둥이 대자보로 홍위병을 선동해 사실상 살육의 도구로 삼았다. 우리나라 대자보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대학 대자보로 광주의 진상, 5공 권력층의 비리 등이 국민에게 알려졌다. 시대의 양심 대자보는 시대 문화로 자리 잡았다. 언론이 통제 당하면서 대자보가 민중저항 매체 노릇을 한 것이다. 대학마다 밤새도록 쓴 글을 사복형사에게 들킬까 봐 새벽에 몰래 붙이고, 또 떼어지는 일들이 수없이 반복됐다. 대자보 내용은 학교 담을 넘어 순식간에 거리로 퍼져 나갔다. 12일 자 경인일보는 수도권 대학가를 중심으로 붙기 시작한 '문재인 왕 씨리즈' 대자보가 전국의 100여 개 대학교로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자보는 문대통령을 경제왕, 고용왕, 태양왕, 기부왕, 외교왕 등으로 빗대면서 주요 정책을 반어법으로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80년대 대자보의 '선언'과 '투쟁'을 벗고 '해학'과 '조롱'으로 무장한 것이 특징이다. 학교마다 미허가 대자보란 이유로 제거하고 있지만, 문 대통령에 대한 20대 지지율이 급격히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자보가 주는 의미는 매우 상징적이다. 노력해도 절대 열리지 않는 취직의 문, 계급 상승의 사다리가 사라졌다는 절망감에서 비롯된, 어쩌면 기성세대 '꼰대'들에게 보내는 20대들의 분노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2-18 이영재

[참성단]'먹방' 유감

속초에 자주 가는 편이다. 덕분에 주인과 안면을 튼 단골식당들이 꽤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해를 거치면서 단골을 포기한 식당이 하나 둘 늘어간다. 고명으로 올린 명태무침에 면을 걸어 넘기는 맛이 일품인 '○○면옥'은 관광버스와 승용차로 북새통을 이루면서 혼자 냉면 한그릇 시키기 어려운 집이 됐다. 동네 사람들 취한 속을 달래주던 '○○○복집'도 맛집으로 회자되더니 새로 이전한 뒤로는 옛 정취가 아득해졌다.속초시내 웬만한 식당들은 간판에 방송사 로고가 박힌 먹방 장면을 캡처한 광고사진들로 도배를 했다. 처음엔 갯배나루 양편의 아바이마을과 생선구이 골목에 집중됐던 방송사 맛집은 속초 전역으로 확산됐다. 먹방 덕에 상인들은 관광상권이 활성화됐다고 반길 수 있으나, 생활물가 대신 관광물가를 감당하게 된 원주민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다.지상파, 종편, 케이블 방송을 비롯해 인터넷, 유튜브, SNS 등 시각매체들의 먹방 경쟁이 뜨겁다. 단순히 맛집을 소개하던 단순 구성을 벗어나 여행, 체험, 예능, 토크 등 모든 프로그램에 먹방을 접목해 시청률 전쟁을 펼친다. 먹방의 장르도 양과 재료, 장소별로 세분화되고 있다. 최근엔 저렇게 먹고도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의 폭식, 대식가가 각광을 받는 중이다.먹방이 각광받는 이유는 시청자에게 대리만족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현실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무리 '짠내'나는 여행이라도 해외 음식여행이나 전국을 돌며 미각여행을 하기란 서민들에겐 벅찬 일이다. 그러니 방송에서 맛의 향연을 대신 즐기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편의점에서 혼밥에 만족해야 하는 청춘이 적지 않고, 혼밥족을 위한 식당이 늘어가는 추세다.한 방송사가 백종원에게 맛집순례 대신 '골목식당' 살리기 프로그램을 맡겨 주목을 받았다. 모처럼 현실감각을 회복한 방송사의 기획이 신선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식당 재활 컨설팅에 나선 백종원을 향해 설탕 레시피로 시비를 걸었는데, 아무래도 뒷북을 친 느낌이다.보건복지부는 논란 끝에 먹방규제 방침을 방송사 자율규제로 꼬리를 내렸다. 꼭 국민비만 걱정 때문이 아니라도 방송사의 먹방 자율규제는 필요해 보인다. 자영업자 폐업이 속출하고 실업대란이 한창인 나라에서 전국민에게 환상미각을 주입하는 먹방의 범람은 비현실적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2-17 윤인수

[참성단]민간 우주 여행시대

1957년 10월 4일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하자 세계가 깜짝 놀랐다. 소련은 그로부터 한 달 뒤, '라이카'라는 이름의 개를 태운 스푸트니크 2호를 또 발사했다. 미국의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제2의 진주만 폭격'이라는 말도 나왔다. 늘 소련을 깔보며 모든 분야에서 한 수 위라고 자부했던 미국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1961년 4월 소련은 유리 가가린, 즉 인간을 태운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쏘아 올린 것이다. 보스토크 1호는 301㎞ 상공에서 시속 1만8천마일의 속도로 1시간 48분간 우주 비행에 성공했다. 우주에서 가가린은 "지평선이 보인다. 하늘은 검고 지구의 둘레에 아름다운 푸른색 섬광이 비친다"는 역사적 메시지를 보냈다. 온 세계가 '가가린 신드롬'에 빠졌다. 화가 난 존 F.케네디 미 대통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소집해 "1960년대가 끝나기 전, 미국인을 달에 착륙시키겠다"고 선언했다. 우주가 미소 냉전의 각축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미국은 NASA를 창설하고 무려 400억 달러 이상의 예산을 쏟아 부었다. 마침내 60년대를 5개월 남긴 1969년 7월 20일 암스트롱이 달에 발을 내디뎠다. 그는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라는 멋진 말도 남겼다. 미·소간 냉전이 끝났지만, 국가 간 우주 경쟁은 그대로 민간기업으로 옮겨졌다.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의 버진 갤럭틱,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의 블루 오리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의 스페이스X가 치열한 상업 우주 비행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브랜슨 회장이 먼저 웃었다. 지난 13일 버진 갤럭틱의 '스페이스십 투'가 지구와 우주의 경계인 상공 50마일(약 80.4672㎞)을 넘어선 82. 7㎞까지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브랜슨 회장은 "우리는 오늘 사상 처음으로 민간 승객을 싣고 우주에 닿았다"며 "우주개발의 새 장을 함께 연 우리 팀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여행용 민간 우주선이 인간을 태우고 우주에 도달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비행에서 버진 갤럭틱은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고, 우주에서 보는 둥근 형태의 지구 표면인 만곡면을 관측하는 데도 성공했다. 인류의 도전은 끝이 없다. 이제 인간의 우주여행이 실현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바야흐로 민간 우주 여행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2-16 이영재

[참성단]지상파 TV 중간광고 허용

가상광고는 화면에 CG 기술을 이용해 가상이미지를 덧씌워 내보내는 것으로 '버추얼 광고'라고도 한다. 가령 야구경기를 중계하면서 야구장 안에 특정 회사의 로고를 노출하는 식이다. 가상광고는 보고 싶지 않아도 경기를 보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봐야 한다. 지금 KBS를 비롯해 지상파 방송들은 이 가상광고를 일상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정부에 종합편성채널, 예능채널과의 형평성을 제기하며 '중간광고' 허용을 꾸준히 요구해 왔다.노무현 정부는 지상파방송을 크게 지원했다. 2005년 12월 4개 채널 (KBS1·KBS2·MBC·SBS)에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낮 방송 허용이라는 큰 선물을 안겼다. 당시 방송통신위원회는 '시청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보장하고 공익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낮 방송으로 그동안 소외된 프로그램이 전파를 탈 수 있다는 논리도 내세웠다. 하지만 지상파의 낮 방송은 오락프로 비중이 50%를 넘었고 재탕 방송이 주를 이뤘다. 시청률도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낮 방송 편성으로 방송사 조직은 비대화 됐다.문재인 정부도 지상파방송에 우호적이다. 마침내 지상파의 '중간광고'요구를 들어줄 모양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해 이르면 내년 4월부터 지상파 프로그램에 '중간광고'가 허용된다. 지금의 광고로도 공영방송으로서 정체성이 애매하다는 비판을 받는데 중간광고까지 하게 되면 KBS를 공영방송이라 부르기 민망해질 것이다. 연간 수신료 6천억원에도 KBS의 경영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매출액은 2015년 1조5천462억원에서 2017년 1조4천326억원으로, KBS2의 시청률 또한 2015년 5.6%에서 2017년 5.0%로 하락하고 있다. 광고수입도 2015년 5천25억원에서 2017년 3천666억원으로 2년 사이 27% 감소했다. MBC SBS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종편과 예능채널, 최근엔 유튜브에 시청자를 빼앗긴 탓이 크지만 방만한 경영도 무시할 수 없다.진부한 콘텐츠와 특정 이념에 편향된 프로그램들로 시청자들의 외면을 자초한 것도 방송사 책임이다. 최근 'KBS 수신료 거부운동'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중간광고가 시작되면 시청률은 더 하락할 지도 모른다. 시청률 하락이 다시 광고부진을 부르는 악순환은 계속된다. 그때 가선 뭐라 할 것인가. /이영재 논설실장

2018-12-13 이영재

[참성단]세비·의정비 논란

국회의원들이 성난 민심에 화들짝 놀라 전전긍긍이다. 국회의원 세비 인상액을 포함한 새해예산안을 통과시킨데 대해 국민들이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인상률은 1.8%로 높다고 볼 수 없다. 그런데 국민은 이마저도 아깝게 여겨 화를 내고 있다. 지난 7일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오른 '셀프인상을 즉각 중단하십시오!!' 청원에는 12일 오후까지 19만명에 가깝게 참여인원이 몰렸다. 청원게시판에서 '국회의원 세비'를 검색하면 국회의원 세비를 아까워 하는 청원과 제안이 1천건에 달할 정도다.국회의원 세비만 문제가 아니다. 전국 곳곳에서 지방의원 의정비 인상에 저항하는 시민운동이 뜨겁다. 지난 10월 지방의원 월정수당을 지방의회가 자율적으로 인상토록 지방자치법 시행령이 개정되자 전국 광역·기초 지방의회가 일제히 의정비 인상에 나선 것이 동티가 났다. 지방의원 의정비는 정액으로 정해진 의정활동비(연간 광역의원 1천800만원, 기초의원 1천320만원)에 월정수당으로 구성된다. 행안부 집계에 따르면 전국 광역의원 평균 의정비는 5천734만원, 기초의원은 3천858만원이다. 국내외 출장여비와 기타 의회운영 공통경비는 별도다. 전국 지방의원들이 4천명이 넘는다.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용인이 피고용인의 임금에 분노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밥 값을 못할 때다. 국회의원의 세비와 지방의원 의정비 인상에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의 무능을 향한 오래된 불신이 세비와 의정비 지급의 정당성을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의 보수를 없애거나 최저임금 혹은 일당제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마당에 세비·의정비 인상이라니, 언감생심이다.국민이 화나는 건 무능한 국회의원·지방의원을 해고할 방법이 없고, 선거로 바꿔봐야 국민을 무시하는 행태에 변화가 없는 점이다. 그렇다고 국회와 지방의회를 아예 없앨 수도 없는 일이니 답답한 노릇 아닌가. 결국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이 스스로 밥값을 해야 해결될 문제다. 국회의원은 권력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 부역하고, 지방의원은 공천권력이 아니라 자치단체 주민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변하지 않으면 세비·의정비는 눈칫밥이다. 눈칫밥이라도 먹겠다면 국민 눈치라도 제대로 보든지. /윤인수 논설위원

2018-12-12 윤인수

[참성단]단식의 정치학

1983년 5월 18일 YS는 5·18 3주년을 맞아 민주회복, 정치복원 등 민주화를 위한 전제조건 5개 항을 내걸고 단식에 들어갔다. 보도통제로 국내에선 기사화되지 않았다. 5월 25일 단식으로 몸무게가 14kg이나 빠지는 등 건강이 악화하자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5월 29일 병상을 찾은 권익현 민정당 사무총장에게 "나를 해외로 보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나를 시체로 만든 뒤에 해외로 부치면 된다"고 했던 말은 지금 들어도 처연하다. 단식은 23일이 지난 6월 9일까지 계속됐다.1990년 10월 평민당 총재였던 DJ도 64세의 나이로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 및 내각제 포기를 요구하며 단식에 들어갔다. DJ의 13일간의 단식은 이듬해 지방의회 선거 시행으로 이어졌고, 1995년 전면적인 지방자치제도가 시작됐다. 지방자치제가 DJ의 단식 투쟁의 산물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도 의원 시절, 세월호 유가족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단식을 만류하러 갔다가 동조 단식에 들어갔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이었다. 하지만 의원 수가 130석의 거대한 야당의 계파 수장이 국회에서 문제를 풀지 않고 밖으로 나왔다고 해서 큰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단식은 8일 만에 싱겁게 끝났다. 이밖에도 단식을 경험한 정치인들은 무수히 많다.인도의 양심이자 정신, 마하트마 간디의 단식은 역사적으로 뿌리가 있는 투쟁방식이었다. 평생을 비폭력 자치·독립운동을 펼친 간디가 단식투쟁을 펼치자 윈스턴 처칠은 "굶어 죽었으면 좋겠다"는 악담을 퍼부었다. 하지만 간디는 "나의 육체를 깔아뭉갤 수는 있지만 영혼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며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정치인의 단식은 우리 정치 발전의 중요한 계기가 됐을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특히 거물 정치인 YS, DJ 단식의 경우 외신의 관심도 높았고, 무엇보다 국내 여론의 지지는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정치환경은 그때와 크게 바뀌었다. 72세의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이 단식으로 대통령제 직선제와 지방자치를 이뤘다"며 "제왕적 대통령제, 승자독식 양당제의 폐단을 바로잡겠다"면서 무기한 단식을 시작했다. 소속의원들의 탈당설이 커지는 상황에서 선거구제 개편마저 관철하지 못할 경우 손 대표의 입지가 크게 좁아질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손 대표의 단식은 그의 마지막 정치적 승부수가 될지도 모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2-11 이영재

[참성단]사랑의 온도탑

자선냄비 옆에서 구세군이 흔드는 딸랑딸랑 종소리에 겨울이 깊은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경제력이 지금만 못하던 시절의 거리는 지금처럼 밝지 않았다. 그래서 유독 빨간 자선냄비는 눈에 띄었고, 흰 눈이 흠뻑 내리면 더했다.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드물었다. 한파가 혹독할수록 온정의 열기도 뜨거웠다. 코흘리개의 동전 한 닢부터 고액수표까지, 어려운 이웃의 의식주를 위해 익명의 선의가 끓인 자선냄비에선 김이 펄펄 솟았다.구세군 자선냄비의 활약은 여전하지만, 최근에는 사랑의 온도탑이 우리 사회의 자선 지표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사랑의 온도탑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대표적인 자선 캠페인으로 2000년부터 설치됐다. 온도탑의 대형 온도계는 모금회가 목표로 정한 모금액의 1%가 모일 때마다 수은주가 1도씩 올라간다. 빙점에서 끓는 점까지 올라가는 수은주는 은연 중 시민들의 자선의지를 분발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덕분에 사랑의 온도계는 100도를 훌쩍 웃돌 때가 대부분이었다. 100도 달성에 실패한 건 딱 두 번이다. 처음 보는 모금방식에 낯설었는지, IMF사태 여파 때문인지 설치 첫해에 100도를 넘기지 못했는데, 다음 해에 148.5도를 기록해 만회했다. 2010년엔 공동모금회 비리 사건에 성난 시민들이 등을 돌리는 바람에 100도 달성에 실패했다. 올해엔 어금니 아빠 이영학이 딸의 병치료를 빙자해 거액의 후원금을 받았던 사실이 드러나, 기부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래도 캠페인 마지막 날 간신히 100도를 넘겼다.공동모금회는 2019년 모금 목표를 4천105억원으로 잡고 지난달 20일 사랑의 온도탑을 설치하고 내년 1월31일까지 73일간 수은주를 체크한다. 매일 56억3천만원 가량이 모여야 100도 달성이 가능하다. 그런데 수은주 오르는 기세가 영 신통치 않은 모양이다. 전국적으로 전년 동기 대비 모금 추세가 형편없다고 한다. 지난해 100도 달성에 실패한 경기도는 올해도 수은주가 좀처럼 오르지 않고, 인천도 지금 추세라면 지난해와 달리 100도 달성이 힘들 전망이란다. 아무래도 경제한파의 영향이 아닐까 의심된다. 자선은 어려울 때 더 빛난다. 괴테는 "선을 행하는 데는 생각이 필요 없다"고 했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2-10 윤인수

[참성단]늙은 都市

2012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서쪽으로 약 80㎞ 떨어진 추오 고속도로의 사사고 터널에서 두께 8㎝의 콘크리트 천장 상판이 무너져 9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1년 전 동일본 대지진의 후유증이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발생한 이 사고는 '세계 최고의 안전국가'로 자부하던 일본정부와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사사고 터널 사고 후 일본 정부는 노후 인프라에 대한 강도 높은 유지보수 투자방안인 '인프라 장수명화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1964년 도쿄 올림픽 전후에 지어진 일본 내 기반시설이 수명을 다해 유지관리 비용이 치솟은 상황에서 사사고 터널 사고가 일대 전환의 기회가 된 것이다. 미국도 1966년부터 2005년까지 노후교량 1천500여개가 무너지자 2012년 '성능 평가 기반의 자산관리 법안(MAP-21)'을 수립했다. 영국은 재무부 산하에 인프라사업청(IPA)을 두고 인프라 업무를 총괄하고 있고, 프랑스는 국토평등위원회(CGET), 호주는 인프라호주(IA)를 통해 국가 차원에서 인프라 수요를 파악하고 재원 조달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늙어간 선진국도 시설 노후화라는 심한 몸살을 앓은 후 이런 대책들을 만들었다.시설물 노후로 인한 사고는 사전에 다양한 징후들이 발생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징후에 애써 눈 감는다. 그렇다고 위기의 뿌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를 '회색 코뿔소(Gray Rhino)' 현상이라고 한다. 위험 신호가 계속되는데도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는 회색 코뿔소가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어슬렁거리고 있다. 사람처럼 시설물도 나이가 들면 늙는다. 교량이나 하수관, 도로 등 시설물들도 시간이 가면 노후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대적인 보수를 해야 한다. 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당장 눈앞에서 사고가 나지 않으면 예산 사용 순위는 언제나 뒤로 밀려나게 마련이다.일산 평촌 분당 등 경기도내 1기 신도시는 30년 된 늙은 도시다. 사람으로 치면 60세를 넘어선 나이다. 사람처럼 인프라 이곳저곳에 동맥경화현상이 일어난다. 하지만 우리는 노후 인프라 시설 개량을 위한 기본계획은 물론, 노후 인프라 투자 결정을 위한 컨트롤타워조차 없다. 그나마 대형 사고가 발생해야 '조금' 정신을 차린다. 이번 백석역 온수관 파열 사고는 어찌 보면 우리에게 던지는 고마운 경고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를 외면한다면 그 결과는 너무도 뻔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2-09 이영재

[참성단]대법관 수난시대

지난 봄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밝혔던 산드라 데이 오코너가 1981년 미국 최초 여성대법관에 임명되기 전까지 대법원 판결문 서명란은 '미스터 저스티스(Mr. Justice)'였다. 그녀가 오면서 '저스티스'로 바뀌었다. 남성 중심에 빠져있던 미국 대법원에 오코너는 중도 보수의 신념에 따른 판결로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미국법에서 '9'는 신의 숫자다. 9명의 종신 대법관이 내리는 판결이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지혜의 아홉 기둥'에 비유되는 것은 견제와 균형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연방대법원의 근간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저스티스'라고 불러 주는 것은 미국 사람들의 대법관에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다. 정의를 선언하는 최종 판단자로서 대법관은 한 점의 흠도 없어야 한다는 뜻도 된다. 하급심 판사가 자칫 지나칠지 모르는 '정의'를 대법관은 반드시 봐야 한다는 미국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기도 하다. 미국에선 대법관 외 나머지 판사들은 그냥 '저지(Judge)'로 칭한다. 물론 야구 심판도 '저지(Judge)'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법관이 아닌 법관을 모두 '판사'라고 한다. 대법관에게선 그만큼 권위가 묻어난다. 그들이 있는 대법원은 민주주의와 법질서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20개가 넘는 국회 인사청문 대상 중에 대법관 후보자의 통과율이 제일 높았던 것은 고도의 도덕성과 자질이 요구되는 만큼 실질적으로 훌륭한 후보자들이 추천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대법관의 인사청문회에서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김명수 대법원장과 김선수·노정희·이동원 대법관은 청문회를 하면서 다운계약서 작성, 안철상 대법관(법원행정처장)은 3차례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났다.그제 김상환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불발됐다. 김 후보자는 3번의 위장전입으로 실정법을 위반하고, 두 차례 다운계약서를 작성해 탈세를 저질렀다. 청문회에서 김 후보자는 "사려 깊지 못했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한다"고 말했지만 그의 말을 가슴으로 들었다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법원이 검찰 수사를 받는다. 사법 농단에 연루된 박병대·고영한 등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초유의 사태도 발생했다. 대법원장 차에 화염병을 투척하는 일도 벌어졌다. 대법원의 신뢰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바야흐로 대법관 수난시대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2-06 이영재

[참성단]'윤장현의 해명'

역대 최악의 국내 사기범은 의료기기 임대업을 가장한 다단계 투자사기로 유명한 조희팔이다. 거액의 배당이나 수익을 미끼로 투자자를 모아 돈을 챙기는 '폰지 사기'는 피해 규모가 엄청나다. 국졸의 조희팔에게 당한 피해자가 3만명에 피해액은 5조원대로 추산된다. 조희팔 가족들은 그가 중국에서 사망했다며 장례식 장면을 공개했지만, 피해자들은 이마저 사기로 여긴다. 여전히 그를 추적하기 위해 돈과 시간을 쓰고 있다.사기는 사람의 욕망에 기생한다. 부(富)를 향한 집착은 각종 금융사기의 발판이다. 2008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로 나스닥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지낸 버나드 메이도프의 다단계 금융사기가 드러났을 때 미국은 경악했다. 수십년에 걸친 650억 달러 규모의 사기행각에 스티븐 스필버그, 프로야구팀 구단주, 상하원 주요 정치인이 피해를 봤다. 초강대국 상류계층도 수익에 눈멀어 사기를 눈치채지 못했다.정치분야도 사기범이 활동하기 좋은 무대다. 권력 자체를 향한 욕망과 권력이 배분하는 이권을 향한 경쟁에 눈 먼 사람들이 많아서다. 특히 대통령과 권력자의 측근을 사칭해 공직과 이권을 미끼로 돈을 갈취하는 사기는 역대 정권들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자유당 시절 사기범 강성병은 권력자 이기붕의 양아들 이강석을 사칭해 전국을 돌며 향응과 뇌물을 챙겼다. 권력을 조롱하는 제2, 제3의 강성병이 끊이질 않는다. 최근 청와대는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를 사칭한 사기범죄에 경보음을 울렸다.윤장현 전 광주시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를 사칭한 김 모 여인에게 4억5천만원을 뜯긴데 이어 김 여인의 두 자녀 취업까지 알선한 사실이 밝혀져 곤경에 처했다. 경찰은 지난 지방선거 공천 전에 돈이 전달된 점에 주목해 윤 전시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피의자로 전환했다. 사기녀의 자녀 취업알선은 직권남용 혐의가 짙다.윤 전시장은 5일 침묵을 깨고 한 매체에 '노 전 대통령의 혼외자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는 걸 막기위해 돈도 주고 취업도 도왔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석연치 않다. 권 여사를 직접 만나기만 했다면 막을 수 있는 사단이었다. 정치권력의 부패에 민감한 민심을 설득하기엔 많이 부족해 보인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2-05 윤인수

[참성단]손창근 옹의 통 큰 기증

1851년 66세 추사 김정희는 함경도 북청으로 귀양을 떠났다. 거기서 달준이라는 시동(侍童)을 만났다. 추사가 글을 쓸 때 옆에서 먹을 갈기도 해 '먹동이'라고도 불렀다. 이듬해 귀양에서 돌아와 과천에 은거할 때도 달준이는 따라와 추사를 모셨다. 그런 그가 고마웠던지 추사는 그를 위해 '난'을 쳤다. 그런데 완성된 그림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추사 자신도 그림을 보고 놀랐다. "다만 이런 그림은 하나만 있으면 족하지 둘은 있을 수 없다"고 자화자찬했을 정도다. '세한도(歲寒圖)'와 함께 조선시대 문인화의 걸작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는 그렇게 탄생했다.추사는 그림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던지 제시와 발문을 네 번이나 적었다. '내가 난 그림을 그리지 않은 지 20년, 우연히 하늘의 본성을 그려냈다. 문을 닫고 깊이 찾아드니 이 경지가 바로 유마의 불이선일세. 누군가 그 이유를 설명하라고 강요한다면 마땅히 비야리성에 살던 유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절하겠다. 만향.'이라고 그림 상단에 적었다. 낙관은 무려 17개나 찍혔다. 추사 본인 것과 소장가와 감상자의 인장이다.추사가 평생 지향했던 학예일치의 경지를 보여준 '불이선란도'가 국립미술관의 품에 안겼다. 지난달 21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손창근(89)옹이 소유하고 있던 유물 202건 304점 기증식이 열렸는데 그 안에 '불이선란도'가 포함된 것이다. 이날 기증된 유물은 지정문화재급으로 그중에는 국보·보물급도 상당수다. 추사의 작품 중 '잔서완석루'와 청나라 문인과의 교유관계를 보여주는 '함추각행서대련'도 포함돼 있다. 돈으로 따질 수도 없는 귀한 것들이다.용인시 기흥구에 거주하는 손창근옹은 '세한도'의 소장자이기도 하다. 손 옹은 기증식에서 "한 점 한 점 정도 있고, 한 점 한 점 애착이 가는 물건들이다. 죽을 때 가져갈 수도 없고 고민하다가 박물관에 맡기기로 하였다. 나 대신 길이길이 잘 보관해 주시길 부탁한다. 작품 아래 손아무개 기증이라고만 붙여달라.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외국에선 부자들이 소장 미술품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기증하는 것이 흔한 일이다. 록펠러와 에스티 로더 콜렉션이 대표적이다. 여러모로 어지럽고 팍팍한 지금, 평생 모은 소장품을 우리 사회에 아낌없이 내놓은 '한국의 록펠러' 손창근옹의 통 큰 기증이 큰 감동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2-04 이영재

[참성단]여론과 정권의 권위

최근 문재인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르면서 여권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문 대통령과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촛불혁명의 적자를 자처해왔다. 정권의 기원을 '혁명'에 두고 있으니, 혁명의 동력이었던 시중 여론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3일 어려운 민생경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태를 대통령 지지율 하락 이유로 꼽았다. 당 대표가 이유를 설명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임을 방증하는 대목이다.하지만 여론조사나 광장의 시위가 민심을 대변하는 지표로서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키케로는 "민중 만큼 정해지지 않은 것은 없고, 여론 만큼 애매한 것은 없고, 선거인 전체 의견 만큼 허위적인 것은 없다"고 했다. 로마 최후의 공화주의자에게도 민중, 여론, 선거민심의 실체를 정의하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금권정치로 유명한 크라수스를 혐오했는데 어느날 그를 칭찬하는 대중연설을 해 대중들이 크게 호응했다. 칭찬연설의 이유가 이랬다. "나쁜 일을 한 사람을 얼마나 칭찬할 수 있는지 내 웅변실력을 시험해봤지." 로마시대 민중의 여론은 정치인들의 연설을 따라다녔다.여론과 민중은 변덕스럽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때 100만 대중이 3개월 동안 광화문에서 촛불을 켰다. 유모차를 끌고 나온 주부들과 "미국산 소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먹겠다"는 연예인들을 이끈 시민단체의 저항은 기세등등했다. 하지만 정부는 수입 결정을 밀어붙였다. 지금 수입육 1위인 미국산 소고기는 아무 저항 없이 절찬리에 유통중이다. 여론과 민중이 꼭 진실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노동·시민단체가 문재인 정부의 배신을 규탄한다고, 문 대통령의 배신이 확정되는 건 아니다.정권은 여론에 의해서가 아니라 여론을 감당할 권위를 상실할 때 무너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촛불대중을 설득할 권위가 없어 탄핵당했다. 키케로는 "권력은 시민에게 있고 권위는 원로원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은 떨어지는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을 걱정하기에 앞서 당·정·청의 권위가 무너지는 걸 걱정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부작용,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관 비위 사태는 심각하다. 권위를 잃으면 여론과 민중의 변덕을 설득할 수 없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12-03 윤인수

[참성단]'국가 부도의 날'

1997년 IMF 위기는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경제위기 때마다 IMF를 거론하는 것은 그만큼 두렵고 무섭기 때문이다. 그래도 떠올려야 하는 건 다시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벼락처럼 온 게 아니었다. 수많은 전조가 있었다. 연초부터 모든 통계는 비관적이었다. 1월 한보가 쓰러졌다. 금융권이 얼어붙으며 대출 회수가 시작되면서 3월 삼미, 4월 진로, 5월 삼립식품, 6월 한신공영이 잇따라 무너졌다. 7월 태국에서 외환위기가 시작되면서 기아차가 부도를 맞자 국제신용기관 무디스와 S&P가 신용등급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 정부의 무능은 외국 자본의 불신을 초래했다. 우선 외국 자본이 빠져나갔다. 금융기관들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매입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환율은 급등하고 외화보유액이 바닥났다. 중소기업들도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공포였다. 기업에서 쫓겨난 가장들이 여기저기서 목숨을 끊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노숙자'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얼마 전까지 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하다고 큰소리쳤던 경제 고위관리들이나 대통령까지 그 누구도 사태의 책임을 지지 않았다. 21년 전 오늘 1997년 12월 3일은 임창열 경제 부총리와 캉드쉬 IMF 총재가 긴급 자금 양해각서를 체결한 날이다. 이때 IMF에서 195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 우리는 간신히 국가부도 사태를 면했다. 최근 개봉한 '국가부도의 날'은 당시 우리의 긴박했던 경제 위기를 그린 영화다. 최근 4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며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태국은 IMF 외환위기에 이른 과정의 잘잘못을 가린 '누쿨보고서'를 냈다. 우리는 그 흔한 백서(白書)도 만들지 않았다. 뒤늦게 제작된 영화가 백서를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재미로 보기엔 아픈 대목이 너무도 많다. 1997년 경제 총수였던 강경식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2010년 출간한 회고록 '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에서 '가장 후회스러웠던 일'로 1997년 자금난에 빠진 기아자동차를 즉시 부도 처리하지 못했던 점을 꼽았다. 그러면서 "국가 위기 관리를 왜 늘 정부가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시장에서 결정할 일은 시장에 맡겨야지, 정부가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지금 사사건건 시장에 개입하는 문재인 정부가 뼈저리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2-02 이영재

[참성단]무너진 제복의 권위

지난 13일 멕시코의 마약왕 호아킨 구스만의 첫 재판이 뉴욕 브루클린 연방법원에서 열렸다. '엘 차포'라는 별명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마약왕인 구스만은 200t이 넘는 마약밀매, 돈세탁, 살인교사, 불법 무기 소지 등 17건의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재판에서 구스만은 "전·현직 대통령에게 수억 달러를 줬다"고 진술했다. '세기의 재판'이 끝난 3일 후 넷플릭스는 멕시코 마약카르텔의 변천을 다룬 '나르코스: 멕시코'를 공개했다. 이 드라마는 왜 멕시코가 마약 천국이 됐는지, 멕시코 공권력이 마약 밀매꾼들에게 왜 그렇게 무력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멕시코는 나라 전체가 마약 카르텔의 범죄로 큰 혼란을 겪는 중이다. 이 지경이 된 건 부패한 정부 관리와 경찰이 잔악한 갱단과 결탁했기 때문이다. 정부관리는 뭉칫돈을 받고, 경찰은 순간의 달콤함에 현혹된 마약을 운반해주고 그 대가로 푼돈을 손에 쥔다. 멕시코 국민들은 경찰을 믿지 않는다. "멕시코 경찰 제복이 피와 코카인 가루에 물들어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경찰 제복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면서 마약산업이 번창했다. 우리 경찰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확실히 변했다. 아마도 검찰과 경찰 간의 수사권 조정에 대비해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조성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상당수 국민도 경찰의 수사권독립에 우호적인 편이다. 그러나 경찰이 보는 앞에서 노조원들에게 무참하게 폭행당한 유성기업 상무 사건은 경찰에 수사권을 넘겨줘도 되는가 하는 의구심을 들게 만든다. 기업 측과 노조 측만 바뀌었을 뿐 과거 늘 권력 편에 선 '진짜' 경찰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다. 사건이 터진 지 3일이 지난 어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사과했다. 경찰도 당시 대응이 적절했는지 감사에 착수했다. 그럼에도 장관과 경찰청장이 유성기업을 찾아가 사과하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폭행이 벌어지면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가해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번 사건은 경찰이 민노총 앞에서 무력함을 보여주며 스스로 제복의 권위를 무너뜨렸다. 경찰 제복은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때 그 가치가 빛난다. 제복의 강건함이 우리 사회를 안정시킨다. 위대한 공권력은 제복의 권위에서 나온다. 멕시코가 마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제복의 권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제복의 권위는 국민이 주는 게 아니다. 경찰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11-29 이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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