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단편을 하나의 주제로 묶어 표현하는 예술장르인 옴니버스(Omnibus, 모든 이를 위한)는 대중교통수단인 버스의 표준어이다. 1827년 프랑스의 온천장 주인이 호객을 목적으로 운영한 마차에 옴니버스라 붙인 호칭이 번져, 합승마차를 뜻하는 명사가 됐다. 서부개척시대의 역마차가 대표적인 옴니버스인 셈인데, 미국에서 버스로 줄여 부른게 오늘에 이른다.버스는 현대 도시문명의 살아있는 유산이다. 버스가 등장해 대중교통 시대를 연 덕분에 도시가 성장했고, 도시와 도시가 연결됐다. 한국에서도 버스는 박정희의 산업화 시대를 견인한 주역이었다. 노동자를 공장으로, 학생을 학교로 실어날랐던 버스는 늘 만원이었다. 어떻게든 올라타려는 승객이나 버스에 간신히 매달린 채 개문발차를 감행하던 안내양 까지,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를 합창했던 절박한 시대의 자화상이었다.비행운 처럼 뽀얀 흙먼지를 날리던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에 면해 있으면 그나마 벽촌을 면했고, 70년대 들어 잇따라 개통한 경부, 영동고속도로를 질주하던 고속버스는 도시의 부와 문명을 시골 구석구석에 전했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처음 탔던 유년시절의 고속버스는 충격적인 체험이었다. 시내버스와 시외버스의 치열한 경쟁이 없는 쾌적함이 고운 유니폼을 입은 여승무원이 나눠준 사탕보다 달콤했던 모양이다. 자라면 저리 되리라, 단정한 제복 차림의 운전사를 흠모했던 기억이 새롭다.본보 보도에 따르면 경기도내 운전학원과 면허시험장에 1종 대형면허를 따려는 5, 60대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운수종사자가 근로시간 특례업종에서 제외되고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버스 기사가 부족해진데 따른 재취업 행렬이다. 도는 2022년 까지 8천여명의 버스 기사를 양성하기 위해 예산까지 늘렸다고 한다.버스는 여전히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이다. 하지만 버스 기사의 과로운행이 빚은 대형사고로 악명이 높았다. 또 준공영제가 시행되는 지역은 구직난으로, 그렇지 않은 지역은 구인난에 시달린다니 지역별로 다른 보수차이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차제에 근로시간이 단축되고, 준공영제가 정착돼 버스기사가 중년의 직업으로 정착된다면 시민들도 환영할 일이다.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아직도 어느 외진 산골에선 사람이 내리고 싶은 자리가 곧 정류장"이라는 여유가 생길듯 싶어서다. 실업대란 시대에 버스업계의 구인난이 신기하면서도 반갑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7-25 윤인수
스무 살 넘어 읽은 소설 중 인생의 지침을 흔들었던 것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두 개의 소설을 꼽는다. 하나는 김승옥의 '霧津紀行'이고, 또 하나는 최인훈의 '廣場'이다. 물론 그 외 많은 작품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이 뿜어내는 폭발적인 열정과 슬픔을 이기는 것은 단언컨대, 없다. 전후 한국 현대 문학은 이 두 개의 소설에서 시작됐다.4·19세대 문학평론가 김현은 '정치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1960년은 학생들의 해이었지만, 소설사적 측면에서 보자면 그것은 '광장'의 해였다고 볼 수 있다'고 단언했다. 60년 10월 '새벽'지에 발표된 원고지매수 600장에 불과한 이 중편소설 하나가 한국문학에 끼친 영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광장'이 발표된 이후 '최인훈의 광장'은 한데 묶여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80년대 젊음을 보냈던 우리가 이럴진대, 4·19세대가 '광장'에서 느낄 감흥이 어떨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최인훈의 광장' 주인공 이명준은 밀실과 광장으로 상징되는 남과 북의 정치 현실에 환멸을 느끼며 제3국으로 가는 배에서 바다로 뛰어내린다.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 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 삼천 톤의 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곡히 들어찬 동중국 바다의 훈김을 헤치며 미끄러져 간다'로 시작되는 광장의 첫 구절은 우리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광장'은 분단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의 출현을 알렸다. 이 모두 4· 19혁명이 있어 가능했다.지독히도 책을 읽지 않는 시절이지만 '광장'이 지금껏 꾸준히 읽히는 것은 남북이 대치하는 분단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 민족의 분단 상태가 지속하는 한 '광장'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억압받아 온 이데올로기의 전반적인 상황을 증거하는 발언으로 거듭 읽힐 것이다. 그리고 분단 상황이 해소되고 이데올로기로부터도 해방되고 나서도 그것은 그래도 여전히 읽힐 것이다' 라고 말했다. '광장'은 지금까지 204쇄 70만부가 팔렸다.'광장'의 최인훈이 23일 오전 10시46분 별세했다. 향년 84세. 함경북도 회령 태생으로, 이제 그 역시 고향 땅을 밟아 보지 못하고 눈을 감는 수많은 실향민 중 한 명이 되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23 이영재
세계 3대 영화제로 베니스, 칸, 베를린 영화제를 꼽는다. 각자 색깔과 특성이 다르다. 칸이 작가주의 작품을 선호한다면, 베니스 영화제는 예술적인 작품을, 베를린 영화제는 철학적이고 실험적이며 진보적인 영화를 선호한다. 이들 영화제는 자신들의 색을 갖기 위해서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세계적인 영화제가 되려면 이들처럼 연륜이 쌓여야 한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정체성 논란을 빚으며 영화제 존폐를 논할 정도의 우여곡절도 겪어야 한다. 그러면 영화제에 나름의 고유 색깔이 입혀진다.부천 판타스틱 영화제(BIFAN)가 어제 개막했다. 22회째다. 역대 BIFAN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를 꼽으라면 1회 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킹덤'일 것이다. 이 공포 영화는 BIFAN을 다른 영화제와는 분명히 다른, 특별하게 뭔가가 있는 영화제로 각인시킨 일등공신이었다. 이 영화 덕분에 BIFAN은 장르영화제 마니아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아왔다. 표현의 억압과 금기에 도전하는 작품들을 여과 없이 소개하면서, 다양성을 겸비한 독자적인 영화제로의 위치를 굳건히 할 수 있었다. 너무하다 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되는 성과 폭력, 타락한 사회를 시원하게 조롱하는 '그들만의 향연'이었다. 반대로 장르영화제가 갖는 한계는 일반인들의 진입을 막는 벽이었고, 그것은 주최 측에게 늘 커다란 고민이었을 것이다.20회를 기점으로 BIFAN은 큰 변화를 맞았다. 애초 영화제 취지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마니아부터 일반 관객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영화제로 탈바꿈한 것이다. 당시 '코리안 판타스틱' 경쟁 부문을 신설하고, 가족을 위한 '패밀리 존'을 부활시킨 것도 그런 이유다.올 BIFAN엔 53개국에서 290편의 작품을 출품했다. 개막작에 오성윤·이춘백 감독의 애니메이션 '언더 독', 폐막작이 인도영화 '시크릿 슈퍼스타'인 것은 나름 의미심장하다. 그렇다고 호러 영화가 빠진 것은 아니다. 이름만으로도 오싹한 웨스 크레이븐, 조지 A 로메로, 토브 후퍼 감독의 특별전 '3X3 EYES: 호러 거장, 3인의 시선'은 영화제 고유의 색깔을 지키겠다는 주최 측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특별전만으로도 이번 폭염을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여건에도 영화제를 이만큼 성장시킨 BIFAN 집행위원회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부산이 부럽지 않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12 이영재
인천서 발간되는 '황해문화'가 오는 9월 (가을호) 통권 100호를 맞는다. 1년에 4번 발행하는 계간지고, 그동안 단 한 번의 결호도 없었으니 꽉 찬 25년, 사반세기를 달려온 셈이다. 아직 출간도 안 된 100호가 새삼 주목을 받는 것은 지난달 29·30일 인하대학교 정석학술정보관에서 열린 '황해문화 통권 100호 발간 기념 국제 심포지엄' 때문이다. 한반도 정세를 다룬 심포지엄 주제가 늘 한발 앞서 우리 사회의 담론을 제시했던 잡지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황해문화의 저력은 또 돋보였다.대일 굴욕 외교의 결과로 인천이 개항한 것은 1883년이었다. 그로부터 110년 후인 1993년 "전 지구적으로 사고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는 가슴 서늘한 슬로건을 내 건 황해문화가 인천에서 태어났다. '창작과 비평' 같은 담론의 장이 인천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시작이었다. 왜 그게 인천이었는지는 지금도 운명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지만, 어찌 됐건 지역 문화를 손에 쥐면서 전국을 아우르는 인문교양 계간지가 탄생해 마침내 100호 발간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생각만 해도 경이로울 뿐이다.지금 인천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인천사랑'이다. 산에 나무를 심듯 마음 속에 인천에 뿌리를 내리고 살겠다는 의식을 심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황해문화의 통권 100호는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흔히들 말하곤 한다. 인천은 특수한 운명을 타고난 항도라고. 하긴 그렇다. 모든 게 인천으로부터 시작했다. 전기, 기차, 통신, 등대, 짜장면, 갑문, 천일염전 그리고 야구 등등. 숙명이라면 이제 인천은 황해의 중심 항구로서 모든 인종과 어깨를 겨루고 함께 살아야 하는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 인천시는 이런 문화의 다양성을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교향곡과 같은 조화로운 하모니를 창조해야 한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이 최강국이 된 것처럼 말이다. '인천 시민의 자존심을 지키고, 인천 문화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풀무의 바람이 되는 것'을 추구하는 황해문화에 큰 기대를 거는 것도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그 '힘' 때문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인천이 갖고 있는 문화의 다양성이 문명의 자산으로 전환되는데 황해문화의 역할이 그만큼 크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황해문화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좌고우면하지 말고 계속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7-03 이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