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마시모 자네티의 '경기 필'

세상에 크고 작은 권력과 권력자들에 대한 비판과 칭찬의 상투적인 비유로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자주 인용된다. 단원을 일사불란하게 장악하고 차이나는 연주능력을 조율해 자신만의 색을 가진 화음을 실현하는 지휘자를 이상적인 리더십의 전형으로 인식한 덕이다. 실제로 지휘자와 단원이 따로인 오케스트라의 불협화음은 끔찍하다. 갈등의 확대재생산이 특기인 한국 정치가 지휘자도 악보도 없는 망가진 오케스트라로 조롱받은지 오래거니와, 리더십이 실종된 한국 보수정당의 현실은 이에 꼭 들어맞는 형국 아닌가.훌륭한 지휘자의 리더십에도 유형은 있다.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주빈 메타는 단원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게 하는 소통의 리더십으로 유명했다. 지난해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던 리카르도 무티는 강력한 장악력으로 단원들을 지치게 한 모양이다. 2005년 라 스칼라 오페라 단원들이 "당신은 위대한 지휘자"라면서도 자신들을 파트너가 아닌 악기로 사용한다며 사임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들도 독보적 카리스마로 베를린 필의 종신 독재자로 유명했던 카라얀의 명성엔 못미친다. 하지만 지휘계의 황제로 칭송받던 그도 30년 전횡에 지친 단원들의 반발에 몰려 물러났으니 독재의 말로는 늘 이렇게 처연하다.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1997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외국인 상임지휘자 마시모 자네티를 영입했다. 베버와 바그너가 활약했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지휘했을 정도로 오페라에 정통한 인물이다. 지난 26일 기자회견에서 "경기 필은 놀라운 잠재력을 가진 젊은 오케스트라이고, 나에게도 굉장한 기회"라고 의욕을 보였다. 창단 이후 경기 필은 관립의 한계와 열악한 공연시설, 취약한 클래식 저변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성장을 거듭해왔다. 특히 젊은 여성지휘자 성시연의 활약과 무티와의 협연으로 국내외 공연계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성과를 냈다. 경기 필이 자네티를 통해 전통과 현대, 장르를 종합해 특별한 개성을 만들어내길 바란다. 물론 행정편의적인 지원에 머물러 있는 관립 운영체제의 혁신도 필수적이다. 서울시향의 정명훈 사태에서 보듯, 경영과 예술의 경계가 불분명하면 불협화음으로 번진다. 경기 필의 새로운 하모니를 기대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3-28 윤인수

[참성단]잿빛 미세먼지 대책

1952년 12월 4일. 아침 날씨는 화창했다. 바람 한줌 없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800만 런던시민의 석탄 사용량이 급증했다. 질 낮은 석탄이 뿜어내는 유황성분 가스는 그저 허공에 맴돌았다. 지면 근처의 대기 온도가 상층보다 낮은 기온역전현상때문이었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았다면,그리고 바람이 불었다면'이라는 가정법은 아무 소용없었다.이미 참사는 시작됐으니 말이다. 다음날이 문제였다. 매연(smoke)과 안개(fog)가 런던을 덮쳤다. 가시거리 0 . 짙은 안개에 익숙한 런던 시민들은 끔찍한 상황도 모른 채 안개로 축구 경기가 취소 될까봐 걱정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차를 끌고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충돌 사고가 일어났다. 얼마나 안개가 심했던지 실제로 길잃은 사람들이 시각장애인의 안내를 받아 자신의 집을 찾아 갔다고 한다. 병원에는 호흡장애를 호소하는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가장 먼저 희생됐다. 그날 1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12월까지 4천명이 죽고 다음해 후유증으로 8천명, 모두 1만2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어제 경인일보 2면에 실린 '미세먼지· 안개에 묻힌 송도' 사진은 충격이었다. 1952년 런던스모그 사진과 너무나도 흡사해서다. '잿빛 공포에 갇혀버린 시민 일상'이라는 헤드라인도 가슴에 와닿는다. 이제 미세먼지는 우리가 피할수 없는 생활의 일부가 된듯하다. 우리 스스로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해 마스크도 챙겨야 한다. 4~5월에 더 심해진다니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느낌이다. 이러다 우리 생애에 수채화처럼 맑고 파란 하늘을 볼 수 없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당시 영국 정부는 스모그가 사라진 후 사망한 사람은 독감에 의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듬해와 비교해 사망률이 4배 늘어났다는 것을 발견한 후, 뭔가 크게 잘못됐다고 느끼고 비로소 규제에 들어갔다. 대기오염방지법이 제정되고 부랴부랴 벽난로 사용을 금지 시켰다. 큰 대가를 치르고야 정신을 차리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이제라도 정부는 연료정책과 배출가스 규제등 확실한 대책을 내놔야 한다. 요즘 뿌연 창밖 풍경을 보노라면 '잿빛 정책'에 절망감 마저 든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3-27 이영재

[참성단]'봄이 온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혁명적인 사회주의 문학예술의 힘으로 부르주아 반동문화를 짓눌려 버려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 전역에서 대한민국 문화콘텐츠가 암시장을 통해 번지는데 대한 경고로 해석됐다. 북이 한국 대중문화를 '날라리 풍'으로 배격하는 데는 자유로운 기풍이 체제위협의 비수로 변할까 걱정해서다.대한민국 예술단의 4월 1, 3일 두 차례 평양공연이 주목받은 이유다. 4월 남북, 5월 미북정상회담을 앞둔 축하사절의 성격인 만큼 남측 예술단 공연장에서 보여줄 그들의 반응은 단순히 공연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이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과 평양공연 제목을 '봄이 온다'로 작명한 것도 공연 이후 전개될 3각 정상회담에 걸린 희망과 기대의 반영일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핵심 문화참모 아닌가. 정치 이벤트 성격이 짙은 평양 공연이지만, 한반도에 봄이 오는 계기이길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다.상황은 녹록지 않다. 미국의 기세가 심상치 않아서다. 최근 트럼프는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장을 국무장관에 지명한데 이어 존 볼턴을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에 내정했다. 둘 모두 대북 강경파이지만, 특히 볼턴은 북한 선제공격론을 앞장서 주장했던 대북 초강경 매파로 주목받았던 인물이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볼턴만큼 미국을 전쟁으로 이끌 가능성이 큰 사람은 거의 없다"고 걱정이고, 워싱턴포스트도 "볼턴의 북한에 대한 전쟁 옹호 발언은 이미 위험에 처해 있는 미·북 정상회담을 침몰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볼턴 변수로 인해 남북미 정상회담의 전망은 한층 불투명해졌다. 상대를 극한까지 밀어붙인다는 트럼프의 협상술과 사무실 책상에 핵단추를 올려놓았다는 김정은의 벼랑끝 외교술이 어떤 결과에 이를지, 착잡한 시절이다. 평양공연 '봄이 온다'가 역사적 남북미 정상회담의 화려한 개막공연으로 삼각 정상들의 마음을 녹여내길 바란다. 문재인, 김정은, 트럼프 세 정상의 회담이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를 거쳐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에서 조용필의 '친구여'로 이어지는 '봄이 온다'의 레퍼토리처럼 흐른다면 더할 나위 없겠고…. /윤인수 논설위원

2018-03-26 윤인수

[참성단]새마을 기

새마을 기의 녹색은 '녹색혁명', 황색원은 협동과 부(富),무한한 가능성을 표시한다. 녹색의 잎과 싹은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상징하고 있다. 최순실 재판이 한창이던 지난해 전국의 각 구청 민원실엔 새마을 깃발을 철거해달라는 민원이 잇따랐다. 지난해 9월 20일 수원 영통구청에 원천교에 설치된 새마을기 12개를 내려달라는 전화가 걸려 오기도 했다. 기를 훼손하는 일도 벌어졌다. "새마을 기를 보면 유신 독재가 생각난다"는게 이유였다. 실제 광주광역시는 지난 1월 새마을기가 "유신 잔재 논란이 있고,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시민 단체의 요구를 받아 들여 시청·구청·기초의회 청사에서 새마을 기를 모두 내렸다. 이재명 전 성남 시장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14일 뒤인 5월1일 새마을 단체에 양해를 구하고 성남시청 새마을 기를 내렸다. 그 자리에 노란 세월호 깃발을 게양했다. 경기도내 31개 시·군 청사에 새마을기가 사라진 곳은 성남시가 유일했다. 경인일보 21일자 경기판 23면에는 성남시청 광장에 4년만에 새마을기가 등장했다고 보도했다.이재명 전시장이 경기지사 선거 출마를 위해 지난 14일 사임한 후 시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이재철 부시장이 재 게양 결정을 내린 것이다. 지난해 12월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서 제4회 우간다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가 열렸다. 왼쪽 가슴에 한글로 선명하게 '새마을'이라고 쓴 초록색 새마을 옷을 입고 있는 우간다 새마을 지도자들이 식장을 가득 메웠다. 우간다는 현재 30여 개의 새마을운동 시범마을과 지도자 연수원까지 있을 정도로 새마을 운동에 푹 빠져 있다.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은 새마을 운동의 열렬한 신봉자다. 그는 2015년 유엔 회의에서 "지난 10년간 이뤄진 르완다의 고도성장은 한국의 새마을운동 덕분"이라고 연설까지 했다. 인종청소 대량학살로 유명한 르완다는 예전 악몽을 딛고 연 평균 8%라는 눈부신 성장을 기록하는 나라가 됐다. 지금도 전 세계의 수많은 공무원,학생,농민들은 새마을 운동을 배우려고 한국을 찾는다. 그들은 새마을 운동의 종주국에서 새마을 기가 내려지고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할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3-25 이영재

[참성단]반갑다 야구야

봄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하면 무엇이든 들뜨기 마련이다. 사람도 그렇다. 콧구멍으로 봄바람이 들어가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춘분에 쏟아졌던 눈이 3월 대설이라는 기록을 세워도,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다. 떠나는 겨울의 마지막 용틀임도 봄 앞에선 두 손을 들고 항복을 선언해야 한다. 봄이다. 이제 대지는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온갖 꽃들이 내뿜는 향기로 숨이 막혀 버릴 것이다.꽃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가 봄을 그토록 기다린 이유는 또 있다. 지금 수원과 인천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그 이유, 야구 때문이다. 봄은 야구와 함께 온다. 야구는 봄을 알리는 전령사다. 장장 5개월의 동면(冬眠). 야구가 없어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시간이었다. 스포츠 중 시즌 오픈과 한 해의 시작이 맞아 떨어지는 종목중 야구가 대표적이다.내일 2018 프로야구 개막을 알리는 팡파르가 울린다. 예년보다 2주일이 빠르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아시안 게임 때문에 8월 18일부터 9월 2일까지 리그를 잠시 중단하기 때문이다. 시범경기가 총 40경기로 축소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지난해 꼴찌였던 수원 kt위즈에 큰 변화가 왔다. 우선 황재균이 11년 만에 수원구장으로 돌아왔다. 2007년 그는 현대 유니콘즈의 유니폼을 입고 수원 야구장에서 2번 타자 유격수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또 있다. 두산의 에이스였던 더스틴 니퍼트도 kt유니폼을 입었다. 초대형 신인 타자 강백호도 데뷔전을 치른다. 타자 라인업만 따지면 국내 최고다.왼쪽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하고 2년 만에 돌아온 인천 SK 와이번스 김광현은 머리를 삼손처럼 길렀다. 그의 위력투가 그 머리카락에서 나올지도 모른다. 뉴욕 메츠의 노아 신더가드와 닮았다. 여기에 메릴 켈리, 앙헬 산체스.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에이스급 세 명의 투수로 선발진을 꾸렸다. "무슨 야구를 갖고 그러냐"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가 않다. 야구는 축구를 제치고 우리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스포츠다. 지난해 무려 840만688명이 야구장을 찾았다. 골치 아픈 국내·외 복잡한 문제들을 잠시 잊고 이제 야구를 즐기자. 반갑다 야구야. /이영재 논설실장

2018-03-22 이영재

[참성단]뉴미디어의 디스토피아

모이제스 나임이 '권력의 종말'에서 언급한 대로 '모두가 보도하고 모두가 결정'하는 미디어 홍수의 시대다. 누구든 주장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앱을 여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 수백만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SNS 리더들은 실제로 신문, 방송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선에서 뉴욕타임스 등 진보적인 전통 미디어에 자신의 트위터로 맞서더니, 얼마전에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트위터 메시지로 해고해 화제가 됐다. 4천700만명의 팔로어를 거느린 트럼프는 걸어다니는 거대 미디어다.30억명 이상의 세계인이 SNS에서 소통하는 TGIF(트위터·구글·아이폰·페이스북) 시대가 가능해진 건 기술 혁신 덕분이다. 스마트폰을 열어 구글의 검색엔진을 통해 정보를 취득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에서 메시지를 발신하는 세상이 열리는데 한 세대가 안 걸렸다. 반면에 페이스북 같은 기술 기업들이 엄격하게 작동됐던 미디어 윤리규범을 전복하는데 따른 논란은 이제야 한창이다. 직접 민주주의의 확장 등 장점을 앞세우는 낙관론과 SNS에 유통되는 개인정보를 독점한 '빅브라더'의 출현을 우려하는 비관론이 교차한다.묘한 시점에 페이스북이 대형사고를 쳤다. 정치 컨설팅 업체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가 5천만명의 페이스북 이용자 정보를 가공해 지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사용했다는 의혹이 보도되면서, 당일에만 39조원의 시가총액을 날렸다. CA 최고경영자 알렉산더 닉스는 고객을 가장해 잠입취재에 나선 영국의 한 언론에 전 세계에서 펼친 정치공작 실적을 자랑했다. 기술이 발전하면 권력도 진화한다. 소수권력이 SNS 빅데이터를 독점하거나 찬탈해 사람을 통제하는 순간, 조지오웰의 디스토피아 '1984'의 문이 열릴 것이다.남 얘기가 아니다. SNS가 진영간의 손가락 전쟁터로 전락하고, 네이버와 다음 등 신흥 미디어는 댓글 조작설에 시달린다. 미투 피해자를 향한 집단 린치에서 뉴미디어의 잔인한 민낯을 본다. 인간은 사라지고 감정 없는 유령들이 배회한다. 합리적 규제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됐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3-21 윤인수

[참성단]詩란 무엇인가

이 세상에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난감한 질문은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다. '시란 무엇인가'도 그중 하나다. '소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답하기가 더 어렵다. 시인들에게 물어도 우물쭈물한다. 김광규 시인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돈을 목적으로 부르지 않는 마지막 노래", 강은교 시인은 "빈방에 꽂히는 햇빛", 허영자 시인은 "자기 존재의 확인이며 자기 정화의 길"이라고 '시처럼' 대답했다. 한국에 있는 수 만명의 시인에게 물어도 그 답은 모두 다를 것이다.소설가 출신 이창동 감독의 '시'는 따지고 보면 '시란 무엇인가'를 다룬 영화다. 60대 여주인공 미자의 시 쓰기와 성폭행 사건으로 연루된 손자의 죽음을 통해 우리 사회의 죄의식의 부재를 고발하지만 그 이면엔 아름다운 것, 잊혀지는 기억의 의미를 더듬으며 '시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묻는다. 이 감독도 "이 영화를 통해 시가 죽어가는 시대에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영화로 다룰만큼 시는 그렇게 오묘하고 영롱한 존재다.책을 읽지 않는 게 사회문제가 된 시대에서 그나마 시집의 판매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드라마에 시집이 노출되면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는, 우리의 독특한 문화 현상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도깨비' 4화에 등장한 김용택 시인의 필사책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가 노출 즉시 베스트 셀러 1위에 오른 게 그런 경우다.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시집 판매는 거의 매년 10~30%씩 증가했다. 2010년에 비하면 지난해 시집 판매량은 거의 두 배나 늘었다. '시인의 연인'이란 제목으로 유·무명 시인들의 작품과 해설을 매주 경인일보에 연재했던 권성훈 평론가가 그 글을 한데 모아 '현대시 미학산책(경인엠앤비 刊)'이란 제목으로 출간했다. 아무리 좋은 소설도 두 번 읽기가 쉽지 않다. 시는 수 백 번 읽을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이 책을 읽으면 시가 우리 삶의 테두리 밖으로 나간 적이 한 번도 없었음을 알게 된다. 남의 좋은 시를 찾아 읽는 즐거움. 우리의 삶은 더욱 윤택해질 것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3-20 이영재

[참성단]패권주의에 갇힌 대한민국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현지시간 18일 대선 개표 결과 재선을 확정지었다. 76% 이상의 압도적 득표율이니 무인지경의 독주였다. 6대에 이어 7대 대통령으로 2024년까지 집권이 보장됐다. 2000년부터 3, 4대 대통령으로 8년 연임한 이후 4년을 상왕 총리로 군림한 세월까지 총 24년을 집권하는 셈이다. 중국은 한술 더 떴다. 17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2천970표 만장일치로 시진핑(習近平)을 국가주석 및 중앙군사위원회주석으로 재선출했다. 이날 '국가의 조타수, 인민의 영도자' 시 주석을 위해 인공눈을 뿌렸다. 국가주석 연임제한 폐지 개헌으로 능력껏 장기집권이 가능해진 시 주석인데, 하늘이 할 일을 안하니 사람이 대신했다.중국 시(習)황제, 러시아 차르(황제) 푸틴의 등장이 대한민국에 미칠 영향은 간단치 않다. 패권 추구의 역사를 갖고 있는 두 나라의 집권자가 차례로 독재에 가까운 장기집권체제를 구축했으니, 그 여파를 따져보는 건 당연하다. 특이한 인격의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보다는 미국 우선이라는 패권적 행태를 보이고, 60년 가까이 장기집권 중인 일본 자민당이 제국의 영광을 추억하는 현실도 버겁다. 게다가 북한은 '조선 없는 지구는 없다'며 3대 세습을 완료하고 핵을 무기로 패권의 일각을 차지하는 형국이다.주변 4강의 패권주의는 이미 부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시진핑은 사드의 주인 미국이 아니라 한국을 향해 경제보복의 포승줄을 조였다 풀었다 희롱 중이다. 러시아와 영국의 외교 전면전은 제국 러시아의 국익을 위해 언제든 한반도 문제에 어깃장을 놓을 수 있는 푸틴의 면모를 보여주는 전조다. 예측불가능한 트럼프는 통상문제 만큼은 변함없이 위압적이고, 미·중·러에 상냥한 일본은 유독 한국에만 독하다. 북한 김정은의 실체는 4, 5월을 지내봐야 결론이 날테고.한반도의 운명이 남북, 미북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라간 상황에서 한반도 주변 4강의 패권주의는 물이 오를대로 올랐다. 남북한과 미국의 합의에 한반도에서의 지정학적 이익을 포기할 시진핑, 푸틴, 자민당이 아니다. 4, 5월 연쇄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4강의 이해충돌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운전대를 꽉 쥐어야 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3-19 윤인수

[참성단]저출산세(低出産稅)

프랑스 루이 14세의 숭배자였던 영국의 찰스 2세는 1662년 전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1년에 두 번 성 미카엘 대축일과 성모 영보 대축일에 난로당 2실링씩의 '난로세'를 징수했다. 소득과는 상관없이 거둬들였던 세금이라 조세 저항이 심했다. 1696년 영국의 윌리엄 3세는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국가의 재정이 고갈되자 '창문세'를 도입했다. 창문이 10개 이하일 경우 0.1파운드, 11개 이상~20개는 0.3파운드, 21개 이상은 0.5파운드를 부과했다. 그러자 창문을 없애는 게 유행이 됐다.러시아 근대화에 앞장선 표도르는 유럽의 문화를 받아들이기 위해 강력한 서구화 정책을 폈던 왕이다. 그는 유럽 문화를 열렬히 흠모했다. 러시아인이면 누구나 길렀던 수염이 미개해 보였던지 귀족에게 수염을 깎으라고 강요했다. 수염을 소중하게 여겼던 러시아 사람들이 크게 반발하자 기르고 싶은 사람에겐 '수염세'를 내라고 했다. 그러자 반발은 더 커졌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시대 흥선대원군은 경복궁을 중건하기 위해 '문세(門稅)'를 거둬들였다. 서울 사대문을 통과하는 사람들에게 물품 종류·수량에 따라 세금을 거뒀으나 백성의 불만이 극도로 높아지면서 1873년에 폐지됐다. 이렇듯 신설되는 목적세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의 저항이 따라다닌다. 정부가 출산율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 '저출산세(低出産稅)'를 검토한다는 소리가 들린다. 파격적인 수준의 자녀 양육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재원 마련을 위해서다. 일부 언론에 이 사실이 보도되자 기획재정부는 보도자료까지 돌리며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뛰었지만 왠지 입맛이 쓰다. '저출산세'는 2005년 노무현정부 시절에도 거론된 적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지금 국민들은 높은 조세부담률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목적세를 자꾸 신설해 세금을 거둬들이면 국민 가처분소득이 줄어 소비위축이 심화되고 성장률이 더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는 오히려 출산율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정부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3-18 이영재

[참성단]스티븐 호킹

외국 유명인사나 위인들이 '한국에 태어났으면'이라는 가정으로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조롱하는 블랙유머는 지금도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가령 만유인력의 창안자 아이작 뉴턴은 자신의 새로운 학설로 교수들의 학설을 부정하다가 눈 밖에 나서 연구실에서 쫓겨나 초등학교 교사가 돼 학부모 촌지나 챙겼을 것이라고 했다. 내신에서 수학과 과학 이외의 과목을 망친 아인슈타인은 중국집 배달원이, 어마어마한 발명들이 특허규제로 사장된 에디슨은 열 받아 특허법을 터득하기 위해 고시생이 됐단다. 하필 북한에서 태어나서 '그래도 주체사상은 틀렸다'고 웅얼대다 들킨 갈릴레오는 죽을 때까지 아오지 탄광에서 석탄을 캤고….스티븐 호킹 박사도 블랙유머의 주인공으로 회자됐는데 한국인 호킹의 말로는 끔찍했다. 어려서부터 천재였던 호킹은 일류대에 들어가 이론 물리학을 하며 빅뱅이론을 열심히 연구했으나, 20대에 루게릭병에 걸려 장애인이 됐다. 그러다 어느 날 몸에 열이 오르고 전신마비가 와서 택시에 실려 병원을 향했으나, 모든 종합병원에서 응급환자로 받기를 거부해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 노상에서 최후를 맞았다는 것이다. 장애인 복지 부재를 향한 통렬한 비판이었다. 그만큼 장애인 과학자 호킹의 존재는 한국인에게도 강렬했다.지난 14일 작고한 호킹은 새로운 블랙홀 이론을 탐구한 과학자이자 장애를 극복한 영웅으로 동시대인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었다. '호킹 복사' 이론으로 현대 물리학계의 슈퍼스타로 등극했고, 역작 '시간의 역사'는 물리학도들의 희망봉으로 빛난다. 대중들은 신체를 구속하는 절대 장애를 이겨낸 불굴의 의지에 공감하고 환호했다. 휠체어에 부착된 고성능 음성합성기를 볼 근육만으로 작동하면서도 지적 탐구에 전념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그에게서 '존엄한 인간'의 표본을 본 것이다.호킹은 말년에 외계생명체의 습격과 인공지능(AI)의 역습을 경계했다. 위대한 삶을 살았던 천재의 선지(先知)로 여긴다면 인류가 소홀히 여길 일이 아니다. "망가진 컴퓨터(두뇌)에 천국이나 사후세계는 없다"던 무신론자 호킹이 죽음의 블랙홀로 사라졌다. 남은 지구인들은 그를 오래오래 추억할 듯싶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3-15 윤인수

[참성단]대통령과 포토라인

1995년 12월 2일 아침, 전두환 전 대통령이 연희동 자택 앞에서 이른바 '골목 성명'을 발표했다.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검찰이 소환을 통보한데 따른 입장이었다. 그는 "검찰은 대통령의 지시 한 마디로 종결 사안에 대한 수사를 재개하려 한다"며 "검찰의 태도는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보아 소환요구 및 어떤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생각"이라며 조사를 피했다.검찰청사가 아닌 국립묘지에 들렀다, 그 길로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가 버렸다. 5촌 조카의 집에 머물던 전 전 대통령은 밤 11시께 잠시 나와 측근들과 친척, 지역민들에게 '수고한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들어갔다. 한때 체포조의 진입이 시도됐으나 호위대가 대문을 굳게 닫고 완강하게 버티는 바람에 자정을 넘어서도 대치가 계속됐다. 담장 위에서 '뻗치기' 취재를 하던 월간지 기자가 독백처럼 말했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3일 새벽 5시께 의경들이 대문 앞에서 호송차까지 2열로 늘어섰다.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 방으로 갔고, 잠시 뒤 전 전 대통령이 모습을 보였다. 검은색 외투에 중절모, 흰색 목도리 차림으로 '수고한다, 미안하다'며 일일이 악수한 뒤 문밖으로 나섰다. 호송차량은 5시간을 달려 안양교도소에 멈췄다.이명박 전 대통령이 14일 검찰 포토라인에 섰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5번째로 검찰 소환을 받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3대가 잇따라 불행한 처지가 됐다. 이 전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고 했다. 이어 "전직 대통령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지만 말을 아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했다"고 했다. 정치 보복이란 생각을 에둘러 전한 것이다.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평창 동계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스키경기를 관람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경기를 보면서도 심경은 복잡했을 듯하다. 이 전 대통령은 "다만 바라는 것은 역사에서 이번 일로 마지막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상투적 발언이라지만 가장 크고 또렷하게 들렸다. /홍정표 논설실장

2018-03-14 홍정표

[참성단]빨간 호랑이의 부활

지난해 5월 타이거 우즈가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음주 운전 혐의로 체포됐다. 음주 측정을 거부하다 구치소 신세가 됐다. 면도를 안 해 덥수룩한 수염에 초점을 잃은 눈동자, 자포자기한 듯한 표정이었다. '골프 황제'의 위엄은 찾아볼 수 없는 몰골이다. 금지 약물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고질적인 허리 부상에 사생활 문제가 겹치며 선수 생활이 불투명했다. 언론은 '42살이 된 우즈의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팬들은 천재 골퍼의 끝없는 추락을 지켜봐야 했다.타이거가 다시 포효했다. 지난주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발스파 챔피언십에서 공동 2위에 올랐다. 비록 1타차로 우승을 놓쳤지만 2015년 8월 윈덤챔피언십 이후 2년 7개월여 만에 첫 '톱 10' 진입이다. 대회 마지막 날 '공포의 붉은 셔츠'를 입고 나와 파4 17번 홀에서 13m짜리 장거리 퍼트를 집어넣었다.그의 부활은 성적 때문만이 아니다. 경기력 지수가 골고루 좋아졌다. 3라운드 14번 홀에서의 드라이버 헤드 스피드는 시속 129.2마일(207.9㎞)이었다. 올 시즌 PGA투어 모든 선수를 통틀어 가장 빠른 스윙 스피드다. 327야드(299m) 떨어진 페어웨이에 안착했다. 3라운드 그린 적중률은 77.78%에 달했다. 전성기인 2000년 75.15%의 그린 적중률로 PGA투어 전체 1위를 기록했던 것을 능가하는 수치다.브랜트 스네데커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전성기 시절 타이거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조던 스피스는 언론 인터뷰에서 "어릴 때부터 우즈를 보면서 골프를 했다. 우상인 그와 대결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 설렌다"고 했다.팬들도 돌아온 골프 황제를 극진 예우했다. 대회기간 현장을 찾은 팬들은 전년보다 40%나 급증했다. 로리 맥길로이, 조던 스피스, 더스틴 존슨, 저스틴 토마스는 늘 황태자일 뿐이다.팬들의 시선은 벌써 4월 마스터스 대회로 향한다. 언론은 그를 마스터스 우승 확률 1위에 올려놓았다. 그린 재킷을 입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의미다. 황제의 귀환에 화들짝 놀란 골프팬들의 가슴이 부풀고 있다. /홍정표 논설실장

2018-03-13 홍정표

[참성단]독살(毒殺)

알렉산드로 리트비넨코. 2차 체첸전쟁을 촉발시킨 모스크바 건물 폭탄 테러가 러시아 정부 내부의 불만과 관심을 밖으로 돌리려는 KGB의 음모라고 주장하고 2000년 영국으로 망명한 전직 FSB(KGB의 후신) 요원. 내부고발자인 셈이다. 그가 세계적인 인물로 부상한 것은 2006년 11월 '폴로늄 210'이라는 방사성 독극물에 의해 사망하면서다. 이 물질이 섞인 차를 마신 그는 시름시름 앓다가 3주 만에 숨졌다. 죽기 직전 머리털이 모두 빠진 채 앙상한 그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공개돼 세계인에게 충격을 던졌다. 사인을 10년간 조사해 온 영국 정부는 러시아를 배후로 생각했지만, 심증만 있을 뿐 증거가 없었다. 물론 러시아는 '모르쇠'로 일관했다.리트비넨코의 절친 안드레이 네크라소브 감독은 2007년 그의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리벨리온(rebellion)'을 만들었다. 생전의 리트비넨코 인터뷰를 중심으로 가족과 주변 인물 등의 증언을 담았다.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리트비넨코를 독살했다고 주장하는 킬러와의 인터뷰도 삽입했다. 그래도 러시아는 꿈쩍도 안했다.독극물로 인한 암살은 세계 곳곳에서 수없이 자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1978년 영국 런던에 망명 중인 불가리아 반체제 인사 게오르기 마르코프 사건. 그는 출근 버스를 기다리던 중 우산 끝에 찔린 뒤 나흘 만에 사망했다. 부검에서 KGB가 개발한 것으로 알려진 '리친'이란 독성물질이 발견됐으나 그뿐,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지난해 2월 북한 김정일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맹독성 신경작용제인 VX로 살해당했다.영국과 러시아가 한 이중 스파이의 독살을 두고 심각한 외교분쟁을 겪고 있다. 지난 4일 영국의 솔즈베리 한 쇼핑센터 벤치에서 전 러시아군 정보총국(GRU) 대령 출신인 세르게이 스크리팔과 그의 딸 율리아 스크리팔이 맹독성 신경가스로 독살됐다. 영국정부는 러시아의 소행임을 확신하고 있지만 여전히 메이 총리는 경찰 수사를 통해 범행의 배후가 확인될 때까지는 이번 사태를 러시아의 소행으로 단정 짓는 데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물론 러시아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있다. /이영재 논설위원

2018-03-12 이영재

[참성단]햄버거 회담

2016년 미대선 유세중 "김정은이 미국에 온다면 만나겠다. 회의 탁자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면서 더 나은 핵협상을 할 것이다"라고 허풍처럼 공언했던 미 트럼프대통령의 발언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하는 거 봐서'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5월 미·북 정상회담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봄' '한반도 평화의 대 전환점' 등 언론은 일제히 희망 메시지를 쏟아냈다. 하지만 갈등을 겪는 국가 정상들의 회담은 성사부터 결과까지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1959년 9월 25일 후르시초프는 미국을 전격 방문해 아이젠하워를 만났다. 2차 세계 대전 후 으르렁거리기만 했던 정상들의 첫 회담이었다.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다. 일정을 끝내고 돌아가는 후르시초프는 다음해 파리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양국 정상의 만남은 1961년에 가서야 빈에서 이뤄졌다. 아이젠 하워가 케네디로 바뀌었을 뿐, 양국 정상은 혹독한 냉전체제의 현실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후 미·소관계는 쿠바 위기까지 겪으며 더욱 더 냉각됐다.닉슨이 미 대통령 신분으로 처음 소련을 방문한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에야 이뤄졌다. 그 후 17년이 지난 1989년 몰타에서 부시와 고르바초프가 만나 냉전구도의 종언을 선언했다. 이 역시 동구권의 몰락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결과를 끄집어 내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우리도 갈 길은 멀다. 미국 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칫 준비 없는 회동으로 북한에 이용당할 수도 있다는 걱정의 소리도 높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아시아담당 보좌관을 지낸 에반 메데이로스가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을 가지고 놀더니 이제 트럼프 대통령을 가지고 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다. 트럼프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1987년 출간된 '거래의 기술(Art of the Deal)'이다. 책대로라면 그는 협상의 달인 아닌가. 지난 세월 미국의 외교적 실패 사례들을 정치가들이 바보스러웠다는 사실에서 찾는 트럼프다. 회담장 테이블에 햄버거가 올려질지는 알 수 없지만, 정말 성사된다면 5월 회담은 '역사적 회담'이 될 것이다. /이영재 논설위원

2018-03-11 이영재

[참성단]지방선거와 미투(#Me too)

정치는 생물이라더니 화석처럼 단단했던 더불어민주당의 6·13 지방선거 승리 구도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추문과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이 피해 여성들의 '미투(#Me too)' 폭로로 세상에 드러나면서다. 문화계 진보 권력을 강타한 미투 운동의 폭심(爆心)이 여권으로 이동하면서 진보 진영 전체의 도덕성에 대한 대중의 의심이 깊어지고 있다. 민심의 동요는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친다. 더불어민주당은 또 다른 가해자가 나올까 전전긍긍이다. 자유한국당은 진보진영의 도덕적 타락을 비난한다. 촛불과 탄핵 이후 갇혔던 수세국면을 반전하려는 기색이다.미투 운동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지방선거 현장을 자율규제하는 조짐도 뚜렷하다. 각종 전과 기록 보유자들도 서슴없이 공천경쟁에 뛰어드는 지방선거 풍토가 미투로 인해 싸늘해졌다. 기록은 변명할 수 있어도, 추악한 행적이 들통나는 일은 아무리 철면피라도 견뎌낼 재간이 없다. 후보들 사이에 성폭력과 관련한 자기 검증이 한창이란다. 출마를 공언했다 발을 빼는 후보자들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는 후문이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후보들은 여성 유권자와의 스킨십 수준을 고민하고, 여성을 앞세운 선거 캠페인을 포기하는 등 선거운동 행태의 변화도 감지된다.미투 운동이 정치권에 진입하면서 운동의 본질이 훼손될까 걱정이다. 정치는 현안의 본질을 왜곡, 조작하기 일쑤다. 여야 정치권의 선거캠페인으로 전락하고 득표용 전술로 소비되는 야만적 상황에 휩쓸리는 순간, 미투 운동은 남성이 지배하는 정치권력에 이용당하는 역설에 직면한다. 공개적으로 수치를 무릅쓰고서 폭력의 기억을 소환한 미투 여성들에겐 잔인한 일이다. 정치인 안희정과 정봉주로 표적이 이동하는 동안 시인 고은은 외신에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문제의 신부님은 고해성사 없이 잠적 중이다.미투 운동의 본질은 남성 권력의 여성 가해 역사를 종식시켜, 모든 권력의 어떠한 폭력도 가능하지 않은 세상을 열자는 시대전환의 요구다. 여야 없이 미투 이후의 세상을 고민하고 설계해야 할 때다. 미투 운동의 지방선거 손익은 민심이 알아서 셈할테니 걱정마시고. /윤인수 논설위원

2018-03-08 윤인수

[참성단]판문점 남북정상회담

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회담했다. 한반도의 허리가 끊긴 뒤 55년 만에 성사된 남북 정상간 첫 만남이다. 큰 형님격인 김 대통령을 깍듯하게 대하는 김 위원장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2007년 10월에는 역시 평양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나 2차 정상회담을 했다. 김 위원장의 호방한 웃음과 시원한 말투가 화제가 됐다.김 대통령 방문길에는 신문·방송 등 언론사 대표들도 동행했다. 김 위원장은 저녁 식사를 대접하면서 남측 언론사 대표들과 팔짱을 끼는 등 파격 행보를 보여줬다. 경인·부산·대구매일·광주일보 4개 지방지 사장들도 함께 갔는데, 제외된 지방지들이 반발하면서 청와대 홍보실이 곤경에 처했다. 일정이 끝난 뒤에는 4개사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왕따'를 당하는 후유증을 남겼다. 노 대통령 때는 청와대 출입기자들만 동행했다.북한을 다녀온 특사 일행이 4월 말 남북 정상회담 소식을 전했다. 만남의 장이 평양이 아닌 판문점 남측 지역인 평화의 집이라고 한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게 된다. 지난해 말에는 북한 병사가 5발의 총탄에 맞고서도 이곳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했다.1·2차 회담은 두고두고 논란이 됐다. 우리 정부가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막대한 돈과 물자를 북에 줬다는 비판이 나왔다. 북은 이 돈을 핵무기 개발 자금으로 썼다는 게 비판론의 핵심이다.3차 회담을 앞둔 분위기는 이전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명확한 의제를 논의한다. 평양이 아닌 판문점 군사분계선 남측 250m 지점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국제무대 공식 데뷔전이다. 미북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관심이다. 김정은은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며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밝혔다. 북한 옥죄기에 주력해온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도 일단 긍정적이다.김정은 위원장은 방북 특사 일행을 정중히 맞이했다. 만찬 뒤에는 차를 타고 떠나는 일행을 끝까지 배웅했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지만 이전과는 다른 한반도의 봄기운이다. /홍정표 논설실장

2018-03-07 홍정표

[참성단]'국제여성의 날'과 미투(Me Too)

올 초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로 25명 넘게 숨졌다. 4만2천명이 시위에 참여해 2009년 이후 가장 규모가 컸다. 실업과 물가 폭등과 같은 정부의 경제 정책 실패를 규탄하며 시작됐으나 최고 지도자와 기득권을 쥔 종교세력, 신정 일치 체제에 반대하는 주장으로 번졌다. 제2의 '아랍의 봄'이란 전망이었지만 기세가 한풀 꺾였다.시위에서 주목받은 건 여성들이다. 하얀색 히잡을 벗어 장대에 매달아 흔드는 여성의 SNS 영상은 반정부 시위의 상징이 됐다. 비다 모하베드라는 31세 여성은 히잡 착용을 강제하는 이란 현행법에 맞서 시위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그를 따라 히잡을 벗은 시위 여성이 늘고 있다.히잡은 이슬람권 여성들의 열악한 인권 현실을 대변한다. 남성들의 성욕을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며 얼굴을 가리도록 했다. 여성의 자존감과 인격체로서의 주체 의식은 안중에도 없다.히잡을 벗자는 움직임은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웃한 중동 국가로 번지고 있다. 중동은 이제 민주화와 여성인권 신장이란 2개의 혁명 축이 가동되는 양상이다.8일은 국제(세계) 여성의 날이다. 여성의 정치적 자유와 평등을 위한 기념일이다. 1904년 3월 8일 뉴욕에서 열린 사회주의 여성 동맹의 여성 참정권 요구가 시작이었다.마침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에 대한 폭로는 충격을 넘어선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비서는 "(안 지사가) 미투 얘기하며 미안하다 말하면서 그날 또 그랬다"고 주장했다. 안 지사는 직원들에게 "미투 운동은 남성 중심적 성차별의 문화를 극복하는 과정"이라며 "인권 실현의 마지막 과제로 우리 사회 모두가 동참해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는 지사직을 전격 사퇴했고, 더불어민주당은 출당·제명하기로 했다. 정치판과 차기 대선 구도를 뒤흔드는 메가톤급 사건이다.예년 같으면 덤덤했을 여성의 날이 올해는 별나게 다가온다. 화성을 탐사하고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선 세상인데도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는 여전하다. 히잡을 벗어 던지고, 미투할 일이 없는 세상은 가능한 것인가. /홍정표 논설실장

2018-03-06 홍정표

[참성단]정치인의 출판기념회

정치인들은 출판기념회를 찾는 이들에게 책을 무료로, 또는 정가에 비해 싸게 줄 수가 없다. 무료 기부행위로 선거법에 저촉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정가보다 책값을 더 내는 것은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다. 현금으로 10만원을 내든 100만원을 내든 신용카드를 긁든 내는 사람 맘대로다. 더구나 출판기념회때 거둬들이는 수익은 신고 의무도 없다. 정치인 출판기념회 책값은 선거법과 김영란 법을 교묘히 비켜가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러니 정치인들은 신이 났다.정치인에게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을 확보할 절호의 기회다. 무한대로 모을 수 있다. 초청 인원 제한규정은 아예 없다. 유권자들이 제발로 찾아 오고, 거기에 정가보다 비싸게 책도 사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꿩먹고 알먹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다. 출판기념회는 정치인들이 누리는 최대 '특권'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출판기념회에 목숨을 건다. 더러 세 과시용으로도 이용된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을 모으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는 것도 그래서다. 정치인들도 출판기념회가 민폐에 적폐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내부적으로 출판기념회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낯간지러웠던지 지난 19대 국회때 출판기념회 책을 정가에 팔도록 하고 수입 지출을 선관위에 신고하며 출판기념회 횟수를 제한하자는 '국회의원 윤리실천특별법안'과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유야무야 하다가 폐기됐다. 20대 국회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회'에서도 책을 정가에 팔도록 하는 개선책을 내놨지만 그 이후는 감감 무소식이다.이번 6 ·13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정치인들이 출판기념회를 열려면 3월15일 이전에 끝내야 한다.선거 90일 이전에는 정치인 출판기념회가 금지됐기 때문이다. 아마도 전국적으로 같은 날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것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밖에 없을 것이다. 오는 3월10일 토요일이 그런 날이다. 말 그대로 '슈퍼데이'다.독서율 꼴찌인 나라에서 출판기념회가 전국적으로 대거 열리는, 이런 코미디는 대한민국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이영재 논설위원

2018-03-05 이영재

[참성단]대북 특사

적대적 남북관계에서 7·4남북공동성명이라는 돌발적 해빙무드가 조성된 것은 특사외교의 성과였다. 1972년 5월 남한 박정희 대통령의 대북특사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은 가슴에 청산가리를 품고 평양에 들어가 김일성 북한 주석을 면담했다. 동시에 북한에서는 부주석 박성철이 서울에서 박 대통령과 만났다. 극비리에 성사된 남북 특사 교환의 성과는 남북이 자주 평화통일을 실현하고 민족대단결을 도모한다는 공동성명 발표로 공개됐다. 서울과 평양 상설 직통전화 설치, 남북조절위원회 구성 등 이후 남북관계를 관리할 조치들도 뒤따랐다.국제적인 데탕트 분위기에 편승한 남북 독재 정상이 벌인 이벤트는 남북 독재체제 강화에 악용됐다는 혹평에도, 한국전쟁 이후 남북이 서로 국가로 인정한 첫 남북합의라는 역사적 의미가 가볍지 않다. 또한 공동성명의 기본합의는 이후 남북합의의 기초로 활용될 만큼 남북문제 해결의 기본원칙을 담고 있다. 실제로 남북 특사외교를 통해 재개된 두 차례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성안된 남북합의서인 '6·15 남북공동선언(김대중-김정일)'과 '10·4 남북관계의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노무현-김정일)' 모두 기본합의는 7·4 공동성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문재인 정부가 5일 대북특사를 파견한다. 이번 특사는 이전의 대북특사와는 수행해야 할 임무가 전혀 다르다. 이전 특사들은 남북 평화공존과 같은 관념적이고 기본적인 주제를 다루었고, 남북 통치 수반들의 소통과 만남을 성사시키는 임무에 그쳤다. 반면에 이번 특사단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대화, 미·북대화의 실마리를 잡아내야 한다. 과거의 북한이 아니다. "조선이 없는 지구는 필요없다"는 김정일의 유훈에 따라 핵무장을 완료한 북한이다. 우리 특사단에 쥐어보낼 메시지에 따라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가 요동칠 것이 분명하다.특사단이 대한민국 국적자 최초로 김정은을 면담할지 여부도 관심의 대상이다. 김정은이 대한민국 특사단과의 면담으로 국제외교 무대에 데뷔한다면 그 자체로 희망적인 메시지로 해석될 테고, 면담마저 불발되면 또 그 자체로 한반도 외교가 수렁에 빠질 수 있어서다. 특사단의 어깨에 걸린 역사적 임무의 무게가 한없이 무겁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3-04 윤인수

[참성단]한국인, 멸종위기보호종?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4년 한국인이 700여년 후 멸종위기를 맞는다는 수학적 예측을 담은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에 담긴 한국인 멸종 시나리오는 이랬다. 당시의 합계출산율 1.19명을 유지할 경우 부산은 2413년, 서울은 2505년 마지막 아기의 탄생을 끝으로 신생아의 고고성이 사라지며, 2750년 한국인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앞서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데이비드 콜먼 교수가 대한민국을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될 국가'로 지목한 때가 2006년이다. 모두 저출산의 저주에 걸린 대한민국의 어두운 미래에 대한 경종이었다.현재의 위기엔 민감하지만 미래의 위기엔 둔감한 법. 한국인 멸종 경고에 대한 한국인의 반응도 예외는 아니다. 7세기 후의 멸종을 체감하기 힘드니 후손들이 감당해야 할 비극을 농반진반 술자리 안줏거리 화제 정도로 소비했다. 그러는 사이 경종의 음량은 깊고 묵직해졌다. 통계청이 28일 발표한 2017년 출생·사망통계가 심각하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05명으로 현재의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출산율 2.1명의 딱 절반이자, 2016년 1.17명 보다 10.3% 급감한 수치다. 2750년 멸종의 전제였던 1.19명보다는 11.8%가 떨어진 셈이니, 한국인 멸종 시한도 훨씬 앞당겨 수정돼야 할 지경이다.따지고 보면 먼 장래의 위기도 아니다. 현재의 초저출산 현상이 이어지면 인구정점 시기도 2031년에서 2027년으로 당겨진다니 10년 안에 저출산의 저주가 현실로 닥쳐올 수 있다. 노령인구는 급증하고 일할 청년은 사라지면서 경제는 활력을 잃을 것이다. 좌·우파 정부가 경쟁적으로 약속했던 현재의 복지혜택은 한 세대를 이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한민족 멸종이야 먼 미래의 비극일지라도, 비극의 정점을 향할 때까지 겪어야 할 고초와 불행은 우리 세대부터 시작될 수 있다는 얘기다.몇백년 후 한민족이 멸종위기보호종으로 쇠락해 국제사회의 보호, 관찰 대상이 된다면….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이만하면 전국 주요도시에 한국인 멸종시점을 자정으로 맞춘 운명의 시계탑을 세워, 초저출산 민족의 디스토피아를 날마다 되새겨도 과하지 않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3-01 윤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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