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참성단]정치인의 가동연한(稼動年限)

지난해 1월 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SNS를 통해 "모든 공직에 정년 도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표 의원은 "그래야 나라가 활력이 있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며, 청년에게 참여 공간이 생긴다"고 덧붙였다. 여론은 찬반으로 갈렸다. 대선이 아니었다면 지지를 받았겠지만, 대선 출마가 유력시되던 72세 반기문 전 총장을 겨냥한 정치적인 발언이라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역풍을 맞았다.'가동연한'은 교통사고·산업재해 등 사고로 사망 또는 장애를 입었을 경우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때 사용된다. 이에 따르면 변호사와 법무사, 승려가 70세로 가동연한이 가장 길다. 의사와 한의사, 화가, 목사 등은 65세, 육체 노동자 등 대부분 업종은 60세를 정년으로 한다. 일반 술집 마담, 나이트클럽 웨이터, 잠수부 등은 50세, 프로야구 선수와 에어로빅 강사, 룸살롱 마담은 40세, 다방 여종업원과 골프장 캐디는 35세를 정년으로 본다. 하지만 정치인의 정년은 찾아볼 수 없다.일본 자민당은 '공천정년제'라는 내규를 통해 비례대표 선거의 후보 공천에 대해 정년제를 적용하고 있다. 중의원의 경우 만 73세 이상이면 원칙적으로 공천에서 배제된다. 참의원의 경우 현역의원 임기 만료일 기준으로 70세 이상이면 후보로 지명될 수 없다. 2003년 중의원 공천 때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전직 총리라고 해서 예외를 둘 수는 없다"며 나카소네 야스히로, 미야자와 기이치 등 총리 출신 선배들을 이 규정을 들이대며 모두 정계에서 은퇴시켰다. 나카소네 전 총리가 크게 반발했지만,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47년생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선출로 52년생 이해찬 더불어 민주당 대표, 53년생 정동영 평화당 대표 등과 함께 '올드보이'들이 모두 귀환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치른 '2007년 동지들'이기도 하다. 연륜으로 꽉 찬 이들의 '부활'을 두고 협치의 가능성을 점치는 언론도 있지만, 정년 없는 정치인의 가동연한에 대한 따가운 여론도 만만치 않다. 암울했던 70년대 초, 좌절한 국민들에게 큰 희망이 되었던 것은 YS·DJ의 '40대 기수론'이었다. 지금 선진국은 40대 정치 지도자들이 속속 출현하고 있다. 50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패기보다 연륜이 우선되는 우리 정치, '피터의 원리'가 떠오르는 요즈음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04 이영재

[참성단] 방탄소년단과 손흥민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양궁 남자 리커브 결승에서 우승한 김우진은 동료들이 갖다 준 태극기도 마다하고 굳은 표정으로 사대를 벗어났다. 금메달리스트의 의외의 행동엔 이유가 있었다. 결승전 상대인 후배 이우석이 은메달에 머물러 병역특례 혜택을 못받은 것이다. 자신은 8년 전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혜택을 받은 마당이니, 병역혜택을 날린 후배 앞에서 우승 세리머니는 가당치 않았을 터이다. 현역 이등병인 이우석은 "남은 군 생활도 열심히 하겠다"며 결과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두 사람의 투명한 승부는 세계 1위 한국 양궁의 비밀을 짐작할 수 있는 명장면으로 오래 회자될 것이다.스포츠와 예술분야 스타들에게 병역의무 이행은 엄청난 부담이다. 군 복무 기간에 유일한 밑천인 고유의 재능이 사장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체육요원특례 제도가 도입됐다. 체육요원은 올림픽 3위 이상, 아시아경기대회 1위 입상자가 혜택을 받는다. 예술요원은 병무청장이 정한 국제·국내예술경연 입상자 등이 대상자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도 42명이 특례 수혜 대상자가 됐다. 손흥민은 특례 혜택으로 몸값이 1억유로(1천300억원)로 치솟았고, 소속팀 토트넘도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그러나 예술·체육요원특례는 운영과정에서 뒷말이 무성했다. 야구의 사례처럼 구기 종목의 경우 국가대표 선발 과정부터 잡음이 발생하기 일쑤였다. 2002년 월드컵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때는 국민여론에 흔들려 대표팀 선수들이 특례혜택을 받았다. 정서적 당위가 법의 형평성을 허문 셈이다.급기야 방탄소년단이 병역특례제도의 형평성에 일격을 가했다. 방탄소년단이 최근 새 앨범으로 지난 5월에 이어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차트 '빌보드200' 1위에 오르자, 여론이 병역특례의 형평성을 성토하고 나섰다. 두 번이나 빌보드 앨범차트 1위를 기록한 전무후무한 업적은 당연히 병역특례감이라는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맏형 진(김석진)은 손흥민과 1992년생 동갑이다. 클래식은 혜택을 받고 대중예술은 제외된 점도 납득하기 힘들다는 여론이 대세다.결국 병무청장이 예술·체육 병역특례를 전체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안으로 국제 스포츠대회와 국내외 예술경연의 성적을 점수화하자는 '마일리지 방식'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다. 단기간의 업적만큼 장기간의 공헌도 배려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국민이 권력보다 현명해 보인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9-03 윤인수

[참성단]수원 한국지역도서전

정조는 책 읽기와 글 쓰기를 좋아했다. 책을 너무 읽어 건강을 해치지 않을까 모친 혜경궁이 늘 노심초사했을 정도다. 부친 사도세자의 죽음을 본 이후, 계속되는 정적들의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은 독서밖에 없었다. 정조는 '살기 위해' 책을 읽었다. 덕분에 정조는 누구와 학문 논쟁을 벌여도 결코 뒤지지 않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정조가 규장각을 설치한 것도 독서와 무관하지 않다. 규장각의 학자들을 활용하여 서적을 편찬하고 정책을 마련했다. 정조는 신하들에게 어떤 책을 읽는지 묻곤 했다. 신하가 답을 못하면 "독서는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공무로 바쁘다 해도 하루에 한 편의 글도 읽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라는 꾸지람이 이어졌다. 정조는 184권 100책으로 이뤄진 방대한 분량의 홍재전서도 남겼다. 동서고금을 통해 이런 왕은 없었다. 수원이 인문학도시라고 표방하고 나선 것은 화성이 있고, 책을 좋아했던 위대한 군주 정조가 있어서다. 2005년 수원시가 '평생학습도시'를 선포한 후 시민이 주도하는 평생학습 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것도 늘 책을 가까이했던 정조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모든 왕이 그렇지만 정조는 특히 세자 시절부터 서연(書筵)에서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하루도 빼놓지 않고 혹독한 교육을 받았다. 평생학습의 모범사례였던 것이다.오는 6일부터 5일간 수원에서 전국 각지의 출판물과 도서 문화를 만날 수 있는 '수원 한국지역도서전'이 열리는 것은, 그래서 뜻깊다. 이번 주제는 '지역 있다, 책 잇다'이다. 지역 출판이 여기에 있고, 책으로 사람과 지역을 잇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런 행사가 열릴 때마다 늘 궁금한 게 있다. 책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지역을 연결할 수 있을까. 지독히도 책을 읽지 않는 이 시대에 도대체 책이 뭐길래. 하지만 이런 자리마저 없다면 책은 점점 더 우리에게서 멀어져 매우 낯선 존재가 될 것이다. 사람도 만날수록 정이 들듯, 책도 자주 만나 읽고, 보듬어야 내 것이 된다. 괴테는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수많은 고상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다"고 했다. 셰익스피어도 "생활 속에 책이 없다는 것은 햇빛이 없는 것과 같으며, 지혜 속에 책이 없다는 것은 새 날개가 부러진 것과 같다"고 설파했다. 올해는 '책의 해'이기도 하다. 이번 행사를 통해 책의 소중한 의미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9-02 이영재

[참성단]비주류가 쓴 '축구학 개론'

'축구 감독의 성패는 결국 선수들의 정신을 담금질해 투지에 불을 댕기느냐에 달려 있다. 선수 각자가 한껏 능력을 발휘하도록 동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축구학 개론에 나올 법한 이 말을 한국의 김학범 감독과 베트남의 박항서 감독이 2018 아시안게임에서 몸소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학범슨(김학범+알렉스 퍼거슨 )', '쌀딩크(베트남 주산물 쌀+거스 히딩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축구사에 길이 남을 거장 퍼거슨과 히딩크의 탁월한 지도력을 빗댄 것이니 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다.학범슨과 쌀딩크의 공통점은 단연, 한국축구계의 '비주류'라는 점이다. 실력보다는 인맥과 학맥을 으뜸으로 꼽는 한국축구계에서 학범슨(명지대)과 쌀딩크(한양대)는 정통계보가 될 수 없었다. 잡초같은 축구 인생을 살았던 것도 비슷하다. '세상엔 확실한 것이 둘 있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과 축구 감독은 반드시 잘린다는 것이다.' 영국의 축구 격언을 이들만큼 뼈저리게 느꼈을 감독도 흔치 않다. 쌀딩크는 히딩크 감독 밑에서 수석코치로 있으면서 히딩크 리더십을 배웠다. 당시 우리 국가대표팀이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를 약체로 여기며 쉽게 포기하던 베트남 선수들에게 그가 가르친 건 끈기와 인내였다. 학범슨은 '삼류선수'였다. 프로팀도, 국가대표 경력도 없었다. 은행원에서 축구단 코치로 자리를 옮긴 후 축구 이론을 다시 공부했다.쌀딩크는 59년생, 학범슨은 60년생으로 둘은 한 살 터울이다. 학범슨은 2005년 성남 일화(현 성남 FC)에서, 쌀딩크는 2006년 신생 경남 FC에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나이와 프로팀 지휘봉을 잡은 시기가 비슷하고 '성실함'도 닮았다. 학범슨은 틈만 나면 축구 선진국에 나가 전술을 공부했다. 명지대에서 축구 관련 논문까지 쓰며 박사 학위를 받은 '축구 박사'다. 쌀딩크의 머릿속에는 오직 축구, 축구, 축구밖에 없다. 그는 늘 축구만 생각한다. 한 방송사가 제작 방영한 박항서 다큐멘터리는 오직 '축구'로 가득 채워져 있다.2018 아시안게임에서 두 명의 비주류 감독이 각자 나름의 '축구학 개론'을 강의 중이다. 처음에 쌀딩크를 반대했던 베트남 축구관계자와 학범슨을 가벼이 여겼던 한국축구의 주류들은 이 개론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까. 한국은 금메달, 베트남은 동메달을 따 감동의 '비주류 축구학개론'을 완성해 주길 바랄 뿐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30 이영재

[참성단]메달과 병역특례

2018 아시안게임 이우석과 김우진의 양궁 결승전. 2010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병역 면제 혜택을 받은 김우진. 현역 이등병인 이우석. 이우석이 금메달을 따면 조기 전역을 할 수 있는 상황. 결과는 6-4로 김우진 승. 김우진은 미안한 감정에 태극기도 흔들지 못했다. 새드엔딩. 다음은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 병역 면제의 구본길과 군 미필인 오상욱이 만났다. 14대 14. 초접전. 결과는 15대14 구본길 승. 그는 금메달을 따고도 후배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 오상욱은 병역 특례를 받게 됐다. 해피엔딩. 스포츠 경기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한다. 치열한 승부 과정에서 일어나는 예상 못한 이변, 거기에 사람들은 열광한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는 이변이 자주 일어난다. 절대 강자의 패배와 무명들의 반란을 보는 것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하지만 양궁과 펜싱 사브르 경기는 보기 드문 명승부였지만 '병역특례'가 걸려 있어 '감동'이 아닌 '기막힌' 한 편의 드라마였다.남자 선수들의 경우 현행 병역법 시행령에 따라 올림픽 금, 은, 동메달 수상 선수, 아시안게임 금메달 수상 선수는 '체육 요원'이란 이름으로 병역 혜택을 받는다. 큰 경기가 있을 때마다 늘 그랬지만, 이 병역 특례제도에 대해 이번 2018아시안게임에선 유독 말들이 많다. 축구 손흥민과 야구선수들로부터 시작된 '병역 특혜'는 이 제도의 존속 여부에 대한 논쟁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 제도는 1973년부터 시행됐다. 무려 45년 전이다. 그동안 세상도 변했고 선수들의 의식도 바뀌었다. 이제 국가와 국민의 명예를 드높일 목적으로 땀 흘려주는 선수는 없다. 국가도 아무런 대가 없이 그들에게 애국심만을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개인적 부와 명예를 쌓으려는 이기심을 발휘하다 보면 국가의 위상은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이 때문에 나라마다 큰 경기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선수들에게 금전적 혜택을 주고 있다. 우리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에서 메달을 따면 일정액의 포상금과 연금 혜택, 그리고 남자 선수에겐 병역 혜택을 주는 것이다. '병역특례' 제도에 대해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때가 왔다. 언제까지 양궁 펜싱 같은 경기를 가슴 졸이며 봐야 하는가. 선수도, 국민도 더는 못할 짓이다. 이제 소모적인 논쟁의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29 이영재

[참성단]애국 통계

중국 지방 정부의 통계 조작은 유명하다. 지방 경제 성장이 곧 관료의 실적이고, 그것이 자신의 앞날을 좌우하기 때문에 관료들은 통계 조작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에 지역경제가 국가 경제의 초석이라는 얄팍한 애국심도 작용했다. 중국 지방 정부의 '애국(愛國) 통계'란 말이 그래서 생겼다. 지방정부 통계가 조작됐으니 그걸 취합해 발표하는 중국 정부의 통계 발표는 시쳇말로 '안 봐도 비디오'였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2010년 발간한 '중국 경제 지표 이해하기'는 중국의 엉터리 통계에 대한 통렬한 비판서다.'애국 통계'에 대해 글로벌 경제의 비난이 끊이질 않자 중국정부는 지방정부의 경제지표 조작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지역의 GDP를 지방정부 통계 담당이 집계하지 못하게 하고 국가통계국 지도하에 산출하는 방식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잘못된 통계 발표가 중국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숫자에 권위를 부여하는 이들은 '통계는 과학'이라고 단정한다. 반대로 '통계는 교묘하고 의도적인 거짓말'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우리의 일상이 숫자놀음에 좌우된다고 개탄한다. 통계에 대한 격언은 차고 넘친다. '새빨간 거짓말, 통계'의 저자 대럴 허프는 "여성들이 약간의 화장으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는 것처럼 통계는 사실을 거짓으로 꾸미는 '마법'을 지녔다"고 비판했다. 영국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의 통계에 대한 독설, "거짓말에는 세 종류가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는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얘기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짓말쟁이는 숫자를 이용한다." 통계를 두고 이렇게 말들이 많은 것은 통계가 진실을 밝히기도 하지만 때론 '거짓의 수단'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황수경 통계청장이 취임 1년 만에 경질됐다. 야당이 "청와대가 통계를 마사지하려고 한다"며 발끈하자, 여당은 "바꿀 때가 됐으니 바꿨을 뿐"이라고 응수했다. 하지만 시기가 안좋았다. 이런 미묘한 상황에 통계청장을 경질했으니 앞으로 야당이 통계의 진실성을 의심하면 청와대는 뭐라 답할 것인가. 이제 통계 수치가 아무리 좋게 나온다 한들 국민들은 중국 지방정부의 '애국통계'쯤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통계청은 한국은행과 마찬가지로 독립성과 신뢰가 생명이다. 오얏나무 아래에서는 갓끈을 매지 말았어야 했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28 이영재

[참성단]70대 귀농인의 비극

유명 포털 사이트의 한 귀농인 카페는 선배들의 경험과 지혜를 구하는 초보 귀농인들의 질문들이 넘쳐난다. '태풍이 오는데 하우스 천장을 어찌해야 할가요?'라고 물으면 귀농 선배들이 우르르 몰려 조언을 쏟아낸다. 선녀벌레 퇴치법과 중병아리 구입경로처럼 초보에겐 엄두가 안나는 난제들도, 선배들의 해법은 다양하고 간단하다. 올 여름 살인적인 폭염 탓인지 양수기 설치방법을 묻는 질문과 고추농사가 안된다는 하소연이 많았다.1만 건에 육박하는 질문에 매달린 수만건의 답변을 보면 귀농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한해에만 귀농·귀촌인이 51만6천여명에 달했다. 귀농인 카페와 같은 귀농 선후배들이 소통하는 온라인 모임 자체가 귀농 열풍을 반영한 문화현상일 것이다. 다만 귀농지마다 농사에 도가 튼 지역 농민들이 있을텐데 굳이 귀농선배들을 찾는 이유가 궁금했다.카페 내의 한 코너에서 의문의 풀어줄 실마리가 잡혔다. 귀농지 인심을 촌평하는 코너인데, 귀농인과 원주민 사이의 문화적 갈등이 군데군데 드러나있다. 그중 귀농지역 대보름 행사를 '저질 유행가로 시끄러운 춤판'이라며 격렬하게 비난하는 한 회원의 글이 눈에 띄었다. 이에 다른 회원이 '마을 문화를 없애자는 건 외지인의 건방'이라고 충고성 댓글을 올리자 금세 설전으로 이어졌다. 텃세를 걱정하는 글들에는 '처신하기 나름'이라는 댓글이 달리지만, '나름'의 기준과 수준이 애매하니 속시원한 해법을 찾기 힘들었다.최근 경북 봉화에서 70대 귀농인이 원주민과의 물싸움 끝에 면사무소 직원 두명을 엽총으로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인생의 황혼기에 귀농을 결심했을 때 이처럼 비극적인 결말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연구자료에 따르면 귀농·귀촌인 가운데 29.7%가 원주민과의 인간관계 문제로, 23.3%가 마을의 관행 때문에 곤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귀농·귀촌인과 원주민간의 갈등'이 농촌의 가장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꼽혔다.귀농·귀촌인은 원주민의 텃세를 탓하고, 원주민은 귀농·귀촌인의 시골문화 이해부족을 원망한다. 생존방식의 문화충돌인 이주민과 원주민의 갈등은 필연적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귀농 지원금만 풀게 아니라, 귀농인과 원주민의 평화적 동거를 위한 갈등해소 정책과 프로그램을 고민할 때가 됐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8-27 윤인수

[참성단]식목왕 최종현

1962년 10월 미국 시카고대학에 유학 중이던 최종현에게 전보가 날아왔다. "아버지께서 위독하시다." 사업이 어려우니 돌아와 형을 도왔으면 좋겠다는 부친 최학배의 편지를 받은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박사과정을 중단하고 아내와 두 살배기 태원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형 최종건이 사장으로 있던 선경직물 부사장에 취임했다. 최종현 나이 33세였다.수원이 배출한 기업인 SK 고 최종현 회장은 기업이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을 '인재 키우기'와 '나무 심기'라고 생각했다. '나무는 50년을 보고 심고, 인재는 100년을 내다보고 키운다'는 '수인백년(樹人百年) 수목오십년(樹木五十年)'을 그는 늘 머릿속에 새겨두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러는 최 회장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는 언젠가 숲이 우리에게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많은 것을 되돌려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최 회장은 대한민국 최고의 식목왕(王)이었다. 나무를 심는다고 하자 한 임원이 수도권 지역 땅을 후보지로 들고왔다. "땅장사하려고 이 사업 시작한 줄 아느냐!"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충청북도 충주 인등산, 천안 광덕산, 영동 시항산에는 최 회장이 생전에 심은 300만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최 회장은 이렇게 나무를 키우듯 장학퀴즈와 한국고등교육재단 등을 통해 인재를 양성했다. 자원 빈국인 대한민국이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재가 중요하다는 신념이 강한 기업인이었다. 최 회장은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인재의 숲'을 만들고자 했을 때 투자기간이 너무 길다며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무를 심는 것이다. 인재의 숲을 거닐며 기업의 뿌리는 사람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그는 생전, 좁은 국토에 묘지가 난립하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죽으면 반드시 화장하고, 훌륭한 화장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는 유언도 남겼다. 어제(26일)는 최종현 회장 20주기 되는 날이었다. 외환위기 시절에 버금가는 투자위축과 고용참사로 일자리 하나가 아쉬운 지금, 언론들은 앞다퉈 '최종현의 기업가 정신'을 재조명했다. 인재를 기르는 일을 사업만큼이나 자랑스러워하고 늘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했던 최 회장은 지난 14일 형 최종건 회장과 함께 수원의 명예를 드높인 공적으로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26 이영재

[참성단]도산 안창호함 진수식

옛날 뱃사람들은 바다에 신이 있다고 믿었다. 폭풍우와의 조우는 해신(海神)의 노여움 때문으로 여겼다. 인신 공양도 자행됐다.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간 심청이 이야기가 터무니없는 상상만은 아니다. 하지만 폭풍우를 만날 때마다 산 사람을 바다에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배를 만들어 처음 물에 띄울 때 거대한 의식을 진행했다. 그것은 대자연에 생명을 지켜달라고 비는 경건한 제례의식, 진수식(進水式)이다. 어부는 만선을 빌고, 군인은 해전에서의 승리를 기원했다.진수식을 여성이 주도 하는 것도 상징적이다. 금빛의 도끼로 진수 테이프를 잘라내는 것은 바다와 육지를 떼어내는 것이지만, 갓 태어난 생명의 탯줄을 끊는 것과도 흡사하다. 과거 진수식에는 뱃머리에서 붉은 포도주병을 깨뜨리곤 했다. 붉은색은 희생양, 속죄양의 의미로 피를 의미한다.진수식보다 먼저 거행하는 것이 명명식(命名式)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의 방패가 아이기스(Aegis). 영어로 읽으면 이지스다. 우리의 이지스함에는 세종대왕이나 충무공 이순신처럼 성군이나 영웅의 이름을 붙였다. 호위함은 '충북함'처럼 광역시·도나 도청소재지를, 초계함은 '천안함'과 같이 중·소 도시 이름을 사용한다. 잠수함에는 안중근·김좌진·윤봉길·유관순·홍범도·이범석·신돌석 등 항일 독립운동가 이름이 많다. 해군의 3천t급 잠수함 '장보고Ⅲ' 1번함이 '도산 안창호함'으로 명명됐다. 도산 안창호 함은 국내 독자 기술로 설계하고 건조한 첫 3천t급으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군은 2020년부터 총 9척을 차례로 전력화해 지금의 1천200t급 잠수함을 대체할 계획이다.의미가 깊은 도산 안창호 함의 진수식을 애초 29일 열기로 했다가 다음 달로 늦추기로 해 구설에 올랐다. "3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의 눈치 보기 때문에 일정을 연기한 것"이란 언론보도에 방사청은 "사실무근"이라고 발끈했다. 하지만 국방백서에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란 문항 삭제가 추진되고, 건군 70주년 국군의 날 군사 퍼레이드가 취소된 와중에 진수식마저 연기됐으니 오해받을 만도 했다. 더구나 북한은 9·9절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준비 중이다. 잠수함에 명명된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도대체 뭐라 할지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23 이영재

[참성단]이판사판 조계종 분규

한국불교의 대표 종단인 조계종의 내우(內憂)가 진정될 기미가 안보인다. 분규의 중심이었던 설정 스님이 지난 21일 총무원장을 사퇴했지만, 이번엔 후임 총무원장 선출방식을 놓고 내분이 격화되고 있다. 종단의 제도권력인 중앙종회와 교구본사주지협의회는 현행대로 간선제를, 불교개혁행동 등 재야세력은 직선제 전환을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불가(佛家)의 구분에 따르면 조계종 총무원은 종단의 살림살이를 건사하는 사판승(事判僧)의 영역으로, 이판승(理判僧)의 참선·수행과 중생제도를 지원해야 한다. 불목하니 스님의 공덕으로 고승은 장좌불와에 전념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의 위세는 교리마저 초월하는 것인지, 종단의 살림을 맡은 총무원 권한이 비대해지면서 총무원장 자리를 둘러싼 종단내 권력투쟁이 심각해졌다.총무원장이 교체될 때마다 유명한 사찰에서 주지 자리를 놓고 절 쟁탈전이 벌어지고, 신자들이 편을 갈라 대립하는 시비가 잇따랐다. 도박, 성추문 등 스님들의 일탈을 알리는 뉴스가 끊이지 않았다. 설정 스님은 은처자 의혹에 걸려 총무원장을 사퇴했지만, 이전 총무원장 또한 이런저런 의혹으로 매스컴을 장식했다.파사현정을 일갈하던 고승대덕의 법맥(法脈)은 희미해지고, 불교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선은 차가워졌다. 조계종이 운영하는 중앙승가대학은 정원을 못 채워 전전긍긍이고, 천년 고찰들도 출가자가 없어 애태운다. 이러다 스님 없는 절이 속출할지 모른다.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불교신자는 762만명으로 개신교(967만명)에 제1종교 자리를 내주었다. 10년 전에 비해 300만명의 신도가 사라진 결과였다.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승려의 지위가 천민으로 전락하자, 이판승이든 사판승이든 중 되는 일을 인생막장으로 여겼다. '이판사판'의 유래다. 이젠 불교계가 스스로 자정하지 않으면 이판이든 사판이든 대중의 불신을 받아 불교를 이판사판 막장에 빠트릴 지경이다.불교는 한국문화의 정수다. 불교를 뺀 채 한국문화를 설명하기 힘들다. 조계종 자정을 통한 불교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은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정화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조계종 사부대중이 이판사판 실력 대결이 아니라 불법에 귀의해 종단개혁에 성공하기를 바란다. 최근에 입적한 무산 조오현 스님은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라 했다./윤인수 논설위원

2018-08-22 윤인수

[참성단]고용파국 책임론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2013년 11월 20일 국무조정실장 재임 당시 삼성그룹이 운영하는 대학생 토크 콘서트 '열정락(樂)서'에서 강연을 했다. '열정락서'는 경제·경영·문화계 대표 인사를 비롯해 삼성의 CEO, 임직원들이 청춘의 멘토로 나서 열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나누는 소통 프로그램. 처음에 김 실장은 삼성의 초청을 여러 번 거절했다. 장관급 공무원이 삼성 주최 강연을 했다가 괜한 오해를 살까 봐서다. 하지만 삼성이 거듭 요청하자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자신의 강연과 삼성을 결부시키지 말 것과 강연료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었다.'일 중독자' 김 부총리를 경험해본 사람들은 그가 매사 호락호락한 사람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지난 5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갈등설이 불거졌을 때, 그는 "내각에 믿고 맡겨 달라"고 직접 대통령에게 요청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정가에선 "김동연의 내공은 간단치 않다. 쉽게 패싱 당할 사람이 아니다"는 말이 회자됐다.박근혜 정부 출범 전인 2013년 1월 기획재정부 2차관 시절 그는 사적인 자리에서 "관료는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공직에 있으면 언제든지,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한다"며 "그래야 소신껏 일할 수 있다"고 말해 주변 사람들은 그가 "잘리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국정 상황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아주대학교 학생과 교수, 동문 상당수는 김 부총리에 대해 좋게 기억을 하고 있다. 당시 김동연 아주대 총장은 '브라운 백 미팅'을 통해 학생들과 소통하는 자리를 정례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애초 2주에 한번 학생들과 점심을 하며 학교 운영에서부터 진로, 취미,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주제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신청자가 너무 많자 매주 하는 것으로 바꿨다. 그만큼 김 총리는 소통을 중요시했다.고용참사 해법을 두고 김 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이 다시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언론이 너무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고 볼멘소리다. 보다 못한 문재인 대통령은 양쪽에게 "결과에 직을 걸라"며 최후통첩을 보냈다. 세간 여론은 혈세를 더 투입하겠다는 청와대보다 "필요하면 정책 방향을 수정해 나가겠다"는 김 부총리 발언에 더 무게가 실린 것으로 관측된다. 어찌됐든 최악의 고용재앙을 푸는데 김 부총리의 소신이 통할지 두고 볼 일이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21 이영재

[참성단]금강산 21차 이산가족 상봉

오늘 아침 이시득 옹은 금강산에서 눈을 떴을게다. 어제 하루는 초현실적이었을 것이다. 올해 나이 아흔다섯. 광복되던 그해 남동생과 함께 남쪽으로 왔다가 73년을 놓아 버린 북녘 가족과 겨우 연이 닿은 하루였다. 보고 싶었던 두 여동생 대신 상봉한 두 조카였다. 조카들 얼굴에서 부모와 어릴 적 두 여동생 영금이 영화의 얼굴을 짐작했을 터이니 그것으로 족했을까?어제 남측 이산가족 89명이 북한 금강산 호텔에서 북한 가족과 상봉했다. 남북 적십자사가 주선한 21차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다. 남측 상봉단엔 고령자가 많이 포함됐다. 101세의 백성규 옹을 비롯해 20명 이상이 휠체어 없이는 이동이 불편한 상태다. 고령의 이산가족들은 부모는 당연하고 형제자매는 물론 자녀들과의 직접 상봉이 힘든 경우가 많다. 이미 사망한 가족들이 많아서다. 백 옹도 며느리와 손녀를 만났다.그나마 추첨을 통해 상봉단에 선발된 이산가족들은 운이 좋은 경우다. 5만6천890명의 생존자 중에 선발됐으니 말이다. 이산가족 등록자 13만2천124명 중에 7만5천여명이 상봉을 고대하다 타계했다. 지금처럼 100명 규모의 상봉행사를 진행한다면 남은 이산가족 전체의 상봉에 568회의 상봉행사가 필요하다. 2000년 1차 상봉에서 이번까지 21회의 상봉행사에 18년이 걸린 상봉 속도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목표다.하지만 실제 필요한 상봉횟수는 해마다 급속히 줄어들 것이다. 매달 수백명의 고령 이산가족이 세상을 뜨기 때문이다. 동병상련의 이산가족 사망으로 인해 상봉 확률이 높아지는 셈인데, 생존 이산가족들이 이처럼 잔인한 확률을 반길리 없다. 뾰족한 수가 없다. 남북 고령자 이산가족들의 전면 상봉을 서둘러 실현해야 한다. 상설면회소를 설치해 생사확인이 된 이산가족들이 1년 내내 만나게 해야 한다.경인일보 인터뷰에서 "찰밥을 볼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난다"던 이시득 옹은 금강산 첫날 꿈에나마 그 어머니를 상봉했을까. 아니면 평생 한이 풀려 밤마다 찾아오던 그리운 꿈 마다하고 편히 주무셨나. 꿈 같을 것이다. 금강산 혈육상봉 2박3일이 꿈인지, 남녘에서의 이산 세월 75년이 꿈 같을지 분간이 힘들지도 모르겠다. 수원시 화서동 그의 집에서 상봉 이전처럼 무심하게 지낼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궁금하다고 물을 일도 아닐 것이다. 익명의 시인이 오래 전에 마련해둔 답변이 있다. "소감이요? 심정이요? 그걸 말로 할 수 있갔소?" /윤인수 논설위원

2018-08-20 윤인수

[참성단]한국 국가대표 축구감독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후 팬들의 관심은 요하임 뢰브 독일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에게 쏠렸다. 한국에 충격의 2대0 패를 당하고, 조 최하위로 예선 탈락한 독일축구 명감독의 거취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독일 축구협회의 발표는 간단했다. "우리는 모두 뢰브 감독이 정확히 분석하고 올바른 조치를 통해 대표팀을 다시 성공의 길로 이끌 것으로 확신한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경기 도중 차범근 대표 감독을 날려버린 대한축구협회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한국 축구의 역사는 '감독 변천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외국인에게 대표팀 감독은 말할 수 없이 혹독한 자리다. 거스 히딩크 감독 이후 영입된 외국인 감독들은 히딩크 같은 '전폭적인' 지원도 받지 못하면서도 언제나 히딩크와 비교되며 질타를 받았다. 2003년 움베르투 코엘류, 2004년 조 본프레레, 2005년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수난받은 외국인 감독'으로 기록된다. 특히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축구를 27년 만에 아시안컵 결승에 진출시키고 2015년 연승, 무실점 경기 등 각종 신기록도 갈아 치웠다. '제2의 히딩크', '갓틸리케(God+슈틸리케 )'라는 별명을 들었지만, 성적이 부진하자 경질됐다. 얼마나 화가 났던지 그는 지금도 한국축구에 온갖 독설과 저주를 퍼붓고 있다.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자리를 '독이 든 성배'라고 한다. 잘하면 본전이고 잘못하면 온갖 비난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독배인 줄 뻔히 알면서도 잔을 들었다가 끝이 좋았던 건 오직 히딩크 감독밖에 없었다. 그래도 국가대표 감독을 거부하지 못하는 건 국가대표감독 자리가 돈과 명예 등 나름의 매력이 있어서다. 그래도 '총리를 맡는 것보다 축구감독이 더 힘들다'는 영국 격언처럼 '국대감독'은 힘든 자리다.한국 국가대표 축구감독에 파울루 벤투 감독이 선임됐다. 첫날부터 뒷얘기가 난무하고 있다. 3명의 후보들과 협상을 벌였지만, 연봉문제로 결렬돼 차선책으로 벤투 감독이 선정됐다는 등의 말이 축구협회 관계자 입에서 술술 나오는 건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성적이 부진할 경우 "그거 봐라! 원래는 벤투가 아니었다"고 책임을 전가할 태세다. 벤투 감독도 한국 축구협회의 이런 명성(?)을 익히 들었을 것이다. 벤투 감독에게 두 가지만 당부한다. 귀를 꽉 막아라! 아무 것도 들리지 않게. 그리고 첫 경기는 반드시 이겨라! 그것도 시원하게.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19 이영재

[참성단]이탈리아판 성수대교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배경으로 1994년이 선택된 것은 '그 해'가 국가적으로 사회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전환점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1994년 여름은 기상관측이래 최대의 폭염으로 기록된 해였다. 북한 김일성이 사망한 것도, 인간말종 지존파 사건이 터진 것도 1994년이었다. '문화대통령' 서태지가 교육 현실을 비판하며 '교육 이데아'를 불러제껴 문화적 대 충격을 가져온 것도 1994년이었다.무엇보다 1994년 10월 21일 오전 7시. 강남구 압구정동과 성동구 성수동을 잇는 '성수대교의 붕괴'는 대한민국 급성장 과정에서 만연된 부실공사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준공된 지 15년밖에 안 된 다리의 붕괴로 출근하던 회사원, 등교하던 학생 등 49명이 탄 버스가 한강으로 추락해 31명이 사망했다.성수대교 붕괴는 단기간 성과를 내기 위해 저질러졌던 부실공사의 문제점을 우리 스스로 깨닫는 계기가 됐다. 그 무엇보다 안전공사가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더욱이 이듬해 그 끔찍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겪으면서 "정말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라는 묵시적인 국민적 대 합의가 이뤄졌다.14일 이탈리아 북부 제노바에 있는 모란디 다리 80m 구간이 무너져 사망자 수가 42명을 넘어섰다. 이 사고를 접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날의 성수대교'를 떠올렸을 것이다. 우리가 놀란 건 어떻게 이런 후진국적 사고가 한때 세계 경제 5강을 구가했던 이탈리아에서 일어났을까 하는 점이다. 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이탈리아 경제는 그리 녹록지 않다. 2007년 5.7%를 기록했던 실업률은 지난해 11% 선에 머물고,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32% 수준으로 EU 회원국 중 그리스 다음으로 많다. 다리의 부실한 유지관리가 도마에 오른 것도 만성적인 재정위기 탓이란 지적이 그래서 설득력을 가진다. 정치상황도 최악이다. 2011년 유로존 부채 위기 이후 네 명의 총리가 권좌를 오르내렸다. 그 틈을 노려 부패 스캔들과 재정 위기를 초래하고 물러났던 83세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정계에 복귀했다. 진짜 '올드보이의 귀환'이다. 이 모두 포퓰리스트가 난립하는 이탈리아의 혼란한 정치 상황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찌 됐건, 모란디 다리는 우리에게 1994년 '그 해'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여러모로 괴롭고, 무엇보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16 이영재

[참성단]안희정 재판의 '정조(貞操)' 논란

여비서 성폭력 혐의로 기소됐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4일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두 사람 사이의 위력관계는 인정하나, 안 전 지사의 위력행사는 증명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반향과 후폭풍이 엄청나다. 여성단체의 반발과 저항이 예사롭지 않다. 한 여성단체의 집회에서는 '사법정의는 죽었다'는 피켓이 등장했고 "안희정이 무죄라면 사법부는 유죄"라는 주장이 터져나왔다. 미투 운동의 종결지여야 할 법원이 '성폭력 관련 사법논란'의 진원으로 주목받는 양상이다.'판사는 판결문으로 말한다'는 법언 그대로 안희정 사건 1심 재판부의 판결은 존중해야 한다. 다만 피해자 김지은씨가 1심 판결에 대한 입장문에서 "재판정에서 피해자다움과 정조를 말씀하실 때 결과는 이미 예견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주장한 대목이 마음에 걸린다. 여성단체는 "지난 7월 6일 비공개 피해자 심문에서 재판부가 김씨에게 '정조를 지키지 않고 뭘 했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더 구체적인 내용을 밝혔다.김씨와 여성단체의 전언대로 재판부의 '정조' 발언이 사실이라면, 1955년 박인수 사건 1심 판결문이 저절로 떠오른다. 박인수는 해군대위를 사칭해 70여명의 미혼 여성을 농락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장은 "법은 정숙한 여인의 건전하고 순결한 정조만을 보호할 수 있다"며 혼인빙자 간음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여성에게 정조를 지킬 의무를 강제했던 유교문화가 정정했던 50년대의 판결이었다. 1994년 성폭력방지법 제정과 함께 '정조'라는 단어는 법전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2018년 법원이 성폭력을 당했다는 피해자에게 '정조' 운운 했다면 시대착오적이다. 한국 남성들은 박인수 재판에서 '보호 가치가 있는 정조만 보호한다'는 1심 무죄판결만 기억하지만 항소심 판결은 달랐다. "댄스홀에 다닌다고 해서 모두 내놓은 정조가 아니다"며 "고의로 여자를 여관에 유인하는 남성이 나쁘다고 할 수 있다"고 했다. 박인수는 간음죄로 1년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은 상고 기각으로 이를 확정했다.피해자 김 씨의 의지와 여성들의 반발여론을 감안하면, 안 전 지사에게 4년을 구형했던 검찰의 항소는 당연해 보인다. 2심 재판의 판결이 주목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8-15 윤인수

[참성단]광복절 아침에

광복절 아침이다. 73년 전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광복 그날의 풍경은 이랬다. "그때, 분명 그때, 뜰에는 이상한 여름꽃들이 피어 있었다. 하지만 원추리와 능소화 같은 낯선 꽃들이 우리를 그렇게 놀라게 한 것은 아니었다. 8월의 하늘을 향해 마치 용(龍)의 비늘처럼 번득이며, 솟구치는 한 폭의 깃발이 있었다. 성조기도 아닌, 유니언 잭도, 청천백일기도 아닌, 더더구나 일장기도 아닌, 처음으로 보는 그 깃발이 우리들의 어린 가슴을 북처럼 자꾸 두들기고 있었다."벼락같이 다가온 해방. 처음 태극기를 보았을 때의 감흥을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 이어령은 이렇게 썼다. 태어나서 처음 본 이상야릇한 깃발이었지만 무엇이 어린 가슴을 두드렸다. 비단 이어령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73년 전 오늘 그 또래들에게 해방이 준 선물인 '태극기와의 조우'는 그런 흥분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오늘은 광복 73주년이다. 하지만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건국을 둘러싼 논쟁으로 '광복절'은 이제 공휴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소년 이어령과 그 또래의 가슴을 두드렸던 환희의 '그날'이 아니다. 그제 '대한민국 건국 70주년 기념 토론회- 건국일 끝장토론'까지 열렸다. 우파 진영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정부가 탄생한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좌파 진영은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일을 대한민국 건국이라고 주장한다. 양측의 격앙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사실 내년이 더 두려워진다. 이미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은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일을 대한민국 건국일이라고 선언한 상태다. 정부는 내년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펼칠 모양이다. 그러니 진보와 보수의 충돌은 불을 보듯 뻔하다. 도산 안창호의 나라 사랑은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를 망하게 한 것은 일본도 아니요, 이완용도 아니다. 망하게 한 책임자가 누구냐. 그것은 나 자신이다. 내가 왜 일본으로 하여금 손톱을 박게 하였으며, 내가 왜 이완용으로 하여금 조국 팔기를 용서하였소! 그러므로 망국의 책임자는 나 자신이다." ' 겨레의 스승' 도산 안창호는 망국의 원인을 그 누구의 탓으로 돌리려 하지 않았다. 모두 우리 책임이라는 것이다. 광복절 아침, 좌·우를 향해 "정신 차려라!" 소리치는 도산의 호령이 귓가를 두드리는듯하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14 이영재

[참성단]문재인 정부와 연금 개혁

정부가 지난 주말 국민연금 개선방안을 슬쩍 흘렸다가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 혼비백산, 일요일 보건복지부 장관이 출근해 "정부안이 아니다"고 발뺌하는 소동을 벌였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비난성 청원으로 도배됐다. 국민연금 폐지 주장 부터 '죽기 전에 받아볼 수 있는거냐'는 조롱이 넘쳤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국민 동의와 사회적 합의 없는 정부의 일방적인 국민연금 개편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직접 진화에 나서야 했다.분명한 건 국민저항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제도 자체는 유지해야 하고, 유지하려면 개선과 개혁이 불가피한 현실이다. 635조원의 기금은 세계 3위 규모이지만, 기금고갈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이 5년마다 70년 후의 연금재정을 감안해, 수령 시기와 금액을 조정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더군다나 저출산, 저성장 추세가 완연한 우리사회는 연금재정 고갈 시한이 단축되면서 보험료 인상, 가입연령 상향, 수급개시 연장이 불가피한 것도 사실이다.문제는 성난 민심이라는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에 있다.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연금개혁에 딴죽을 걸었던 정부·여당이 이제 '방울 술래' 순서가 됐다. 그런데 정부는 그동안 연금 개혁 보다는 국민연금을 통한 대기업 경영 감시방안을 고민했다. 정작 기금을 살찌울 기금운용본부장은 1년째 공석이고 운용수익률은 역대 최악이다.독일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네번의 결혼으로 반지의 제왕이라는 비아냥을 샀지만, 독일 경제호황의 기반을 마련한 정치력으로 유명하다. 98년 총리 취임이후 7년간 노동자 해고 제한 규정 완화, 연금수령 연령 연장, 의료보험 본인부담 확대 등 경제개혁 조치를 밀어붙였다. 그 대가로 그는 정권을 잃었지만, 독일경제는 통일 후유증을 털고 다시 비상했다. 올 초 방한 때는 "지도자는 선거에 패배하더라도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정권을 잃을 각오로 국민연금 등 4대연금 개혁을 위한 국민 동의와 사회적 합의에 매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수구보수 궤멸과 사회개혁을 위한 20년 집권설이 회자되는 상황에서, 연금개혁에 정권을 걸수 있을지 궁금해서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8-13 윤인수

[참성단]바닥신호등

지하철을 타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목을 내밀어 스마트폰을 보는 자세가 마치 거북이 같다. 오랜 시간 이런 자세를 취하다 보니 거북이 목처럼 목이 앞으로 구부러져 '거북목 증후군'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보며 길을 걷는 사람들도 꽤 많다. 이들을 스마트폰과 좀비의 합성어인 '스몸비족'이라고 한다. 스마트폰에 정신 팔려 주변을 인지하지 못한 채 걸어가는 좀비에 빗댄 말이다. 스몸비족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걷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가 하면, 육교에서 굴러떨어지거나 지하철과 플랫폼 사이에 발이 끼여 골절되는 상처를 입기도 한다. 요즘은 '로드 킬' 당하는 고라니를 빗대 스마트폰을 보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스몸비족을 '폰라니(스마트폰+고라니)'라고 부른다. 상황이 심각하다고 본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시는 건널목을 건너면서 스마트폰을 보다 적발되면 15달러에서 최대 99달러까지 벌금을 물린다. 수원시와 용인시 등 일부 지자체들이 사거리 건널목에 바닥 신호등을 시범 설치했다. 스몸비족의 교통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다. 스마트폰에 정신 놓지 말고 바닥신호등을 보고 길을 건너라는 것이다. 그러나 스마트폰 중독이 사회문제가 된 마당에 많은 예산까지 들여가며 바닥신호등까지 설치하는 친절을 베풀어야 하느냐는 부정적인 여론도 만만치 않다. 지자체가 스마트폰 중독을 부채질한다는 지적도 있다. 지하철에는 시력보호를 위해 조명등을 설치하고, 덜컹거림을 방지하기 위해 완충용 좌석까지 설치해주라는 조롱 섞인 말도 들린다. 스마트폰 중독의 심각성은 많은 연구결과가 입증하고 있다. 2011년 데이비드 레비 미 워싱턴대 교수는 SNS 등 디지털에 중독됐을 때 사람의 뇌는 생각 중추인 회백질이 줄어들어 튀어 오르는 팝콘처럼 즉각적인 자극에만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이 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술과 담배의 중독성보다 높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서구에선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줄여 오프라인의 여유를 찾자는 '디지털 디톡스(detox·해독)운동'이 확산일로다. '스마트폰을 두고 떠나자'는 디지털 디톡스 여행도 유행이다. SNS는 편리한 의사소통의 한 수단일 뿐, 삶 자체가 될 수는 없다. 나름의 절제와 경각심이 필요하다. 일과가 끝나면 일체의 정보화 기기를 꺼버리는 '디지털 다이어트'를 해보면 어떨까.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12 이영재

[참성단]김상곤의 교육 실험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경기도교육감 재직 시절 무상급식과 학생인권조례 시행, 혁신학교 도입 등 보편적 교육 복지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나름 혁신이라 생각했겠지만, 경기도는 하나의 거대한 교육 실험장이 됐다. 그 결과 '2012년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평가'에서 김 교육감이 그토록 공을 들였던 경기도 혁신학교의 성적은 다른 학교들의 30% 수준에 불과했다. 학력저하를 우려하는 학부모의 반발이 컸다.문재인 정부와 함께 출범한 '김상곤 교육부'호의 다양한 교육실험은 이미 예견됐었다. 올 초 교육부가 영어 조기 교육 열풍을 꺾겠다며 느닷없이 유치원 영어수업 금지 방침을 발표한 게 그 좋은 예다. 선행학습금지법에 따라 초등 1, 2학년 영어수업이 금지됐으니 일관성 있게 진학 전 유아에게도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반대여론이 들끓었다. 그러자 교육부는 시행 1년 유예를 발표하고 문제를 덮었다. 충분한 검토 없이 발표했다가 망신을 당한 것이다.당시 언론은 민감한 사안일수록 충분한 의견 수렴으로 공감대를 넓히려는 노력이 앞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자 불쑥 대학입시개편안 공론화를 발표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가장 관심이 많은 대학입시의 키를 국가교육회의에, 또다시 공론화위원회에 넘기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하청-재하청'이란 비난이 쏟아졌다. 공론화 작업은 논란을 잠재우기는커녕 혼란만 더 부추긴 꼴이 됐다. 최종 결론은 이달 중 교육부의 대입확정안이 나와야 알 수 있지만, 사안은 더 복잡해졌다. 그러자 김상곤 교육부의 무능, 나아가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김상곤 자진 사퇴' 요구가 나왔다.그럼에도 '김상곤 교육부'는 '학교폭력 개선안' '유치원 방과 후 영어학습금지' 등도 또 공론화할 예정이다. 그것이 책임회피 차원일 수도 있고 아니면 정말 능력이 없어서 일 수도 있다. 교육부가 중대사안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공론화 뒤에 숨는다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그러나 여론 수렴이란 미명 아래 자행되는 공론화 실험에 기대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우리의 교육의 미래는 캄캄하다. 누가 뭐래도 이번 혼란은 '김상곤 교육부' 탓이다. 하지만 책임추궁은 나중 문제다. 당장 지금의 혼란을 잠재울 입시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더 이상의 교육실험은 참아주기 어렵다. 김상곤 부총리는 직을 걸고 이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이영재 논설실장

2018-08-09 이영재

[참성단]미투(Me Too) 열풍 그 이후

올해 1월 현직 검사 서지현이 검찰 내부의 성폭력 실상을 폭로하면서 미투운동 열풍이 순식간에 대한민국을 덮쳤다. 대한민국 공권력의 상징인 검사마저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위력에 의한 성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서 검사의 폭로가 도화선이 돼 사회 각계각층의 미투 폭로로 들불처럼 번졌다.후폭풍은 어마어마했다. 먼저 문화계가 거덜났다. 시인 최영미의 시 '괴물'의 'En 선생'이 재조명되면서 문단의 거목 고은 시인은 수원시가 제공한 광교 집필실에서 물러나는 한편 문학관 건립사업은 흐지부지됐다. 연극계 대부 이윤택, 오태석을 비롯해 영화계의 김기덕, 조재현 등이 차례차례 피해자에게 호명됐다. 정치권에선 여권의 피해가 컸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수행여비서의 미투로 정치자산을 모두 잃었고, 서울시장 도전에 나섰던 정봉주 전 의원은 수많은 알리바이를 내세워 버티다가 결정적 증거 앞에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성추행 의혹을 받은 민병두 의원은 의원직 사퇴서를 던졌다.미투운동은 부수적인 논란도 많았다. 배우 조민기의 불행한 죽음으로 여론재판에 의한 사적 제재의 적정성 논란이 일었고, 진보진영을 강타한 미투운동의 적폐세력 음모설로 시끄러웠다. 수원교구 한만삼 신부의 선교지 성폭력사건은 교계 일각에서 그를 두호하는 바람에 교계 전체를 힘들게 했다.하지만 뜨거웠던 미투운동 열기는 남·북·미 정상회담, 6·13 지방선거를 거치며 급격히 시들었다. 사퇴 의사를 철회한 민 의원은 국회 정무위원장이 됐다. 고은 시인은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으로 명예회복에 나섰고, 안 전 지사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에 대해 무죄를 주장하며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서 검사는 안태근 전 검찰국장과 법정 공방 중이다. 엊그제 한 방송에서 배우 조재현의 새로운 성폭력 의혹을 방영했으나, 그동안 죄인을 자처했던 조씨도 이번엔 적극적으로 맞서고 나섰다.열풍은 가라앉고 가해와 피해의 실체를 가리는 일이 차분하게 진행중인 건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권력에 의한 성폭력 근절을 위해 국회에 넘긴 미투 관련법 대부분이 국회에 계류중인 건 이해하기 힘들다. 들끓는 여론에 놀라 정부에 대책을 촉구하던 여야 정당이 정작 법 통과에 미적거리니 그렇다. 여론에 반응했다 여론에 무심해지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이다. /윤인수 논설위원

2018-08-08 윤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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