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칼럼

 

[이준우 칼럼] 수화를 언어로 인정하는 대한민국

농인들 삶의 질 향상시키고자존감 높여주는 ‘한국 수어법’정치권, 공식·제도적 인정하는법안통과 외면말고 서둘러야그들에겐 교과서 문제보다언어로 인정 받는게 더 급하기에2013년에 4개의 수화언어 관련 법안이 국회에 발의될 때만 해도 수화를 주된 언어로 사용하며 살아가는 농인들은 환호했고, 금방이라도 수화가 언어로 인정될 것처럼 들떠 있었다. 수화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설움을 경험해왔던 날들을 이젠 더 이상 현실에서 마주하지 않아도 될 것으로 여겼기에 한없이 기뻐했다. 하지만 2015년이 저물어가는 지금까지도 수화언어 관련 법안은 통과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본격적인 논의는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 폐기 처분되어가는 형국이다. 수많은 농인들이 낙심하고 좌절감에 빠져들고 있다. 자신들의 언어를 언어로 인정해 달라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조차도 외면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인 것이 심히 유감스럽다.농인들이 손과 표정으로 의사소통하는 언어인 수화는 음성언어 중심의 사회에서 지속해서 단죄되거나 폄하되었다. 그래서 그 이름도 ‘수어’가 아닌 ‘수화’로 명명되어 왔던 것이다. 수화를 언어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농인들은 생활 속에서 가장 중요한 시각적인 정보수용이나 농인의 특성에 적합한 정보제공 등을 외면받거나 소외되어 그 결과 정보화 사회에서 가장 정보에서 배제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물론 최근 국립국어원과 한국농아인협회가 우리나라의 농인들을 위해 하나의 커다란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경우는 아주 특별하다. 무려 1만535개의 수화 전문용어를 표준화하여 사진과 영상으로 구성된 수화 콘텐츠를 개발하는 사업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의 대표적인 유물 총 650점의 설명을 수화로 만드는 일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올해 이들 사업이 마무리되고, 내년 초에 농인들에게 제공될 터인데, 벌써부터 농인 사회에서는 기대가 크다.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다양한 용어들이 수화로 정리되어 있지 못했기에 답답했고, 정부가 만든 박물관들을 가도 재미와 의미를 경험할 수 없었던 농인들에게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엄청난 수화 콘텐츠가 정부 주도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벅차기만 하다. 그렇지만 이것뿐이다. 그 어느 곳에서도 농인을 위한 ‘수화’ 중심의 정보 제공을 구체적으로 시도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농인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수화가 언어적 서비스로 제공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일각에서는 농인들도 글을 알 테니까 자막으로 정보를 접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한다. 하지만 농인들 자신은 언어로서의 수화에 의한 완벽한 의사소통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은 수화가 훨씬 편하다. 수화가 모어(母語)이고 한국어는 제2언어인 것이다. 솔직히 구화나 문자는 농인들에게는 참 성가시고 힘든 방식이다. 농인들은 단지 말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아니라 말하는 방법이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농인들이 수화를 사용하는 것을 무능한 것으로 치부하는 음성언어 중심의 사회에서 교육, 취업, 정보 접근, 문화향유, 지역사회 참여 등 전 영역에서 농인들을 소외시키고 차별하는 ‘사회 인식 및 제도’와 ‘교육 및 문화 환경’ 등에 있다.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 수어법’ 제정은 향후 농인 복지와 교육, 치료와 재활 등이 올바르게 자리매김하는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수화가 언어로서 공식적인 지위를 획득하게 되면 수화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 동시에 농인들의 자존감을 높여 삶의 질 또한 높이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나아가 이를 기반으로 ‘정보통신 관련법’ 등 농인에 차별적인 제도들에 대한 개정 운동이 뒤따라 일어나고 그 다음 사회적 서비스들의 개선이 본격화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음성언어가 주류인 우리 사회에서 의사소통의 장애로 인해 다양한 정보 소외를 경험하고 있는 농인들에게 수화통역서비스를 지원하는 일이 보다 더 법적으로 확대될 것이고, 이는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언어를 권리로서 보장하는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정치권에서 ‘한국 수어법 제정’을 하려는 움직임은 사라져가는 느낌이다. 안 된다! 대한민국은 수화를 언어로서 공식적·제도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 시작이 ‘한국 수어법’이다. 농인들에게는 교과서 문제보다도 더 시급한 것이 수화를 언어로 인정받는 일이다./이준우 강남대 사회복지 전문대학원 교수이준우 강남대 사회복지 전문대학원 교수

2015-11-09 이준우

[오대영 칼럼] 따뜻한 가족애로 자살률 줄이기

개인주의 성향 강한 미디어시대스마트폰으로 게임·음악 즐기며가족간 대화는 없고 침묵만 흘러인간은 더욱 고독해져만 간다가정에서 주말 하루라도 ‘핸드폰 제로의 날’ 만들었으면…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10년 넘게 선진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갖고 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따르면 2013년 OECD 회원국의 평균 자살인구는 인구 10만명 당 12명이었는데, 한국은 29.1명으로 최고였다.사람이 자살하는 이유는 더 이상 사는 것이 무의미하고,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죽음보다 더한 고통만 있을 것이라는 절망감 때문일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건복지부가 분석한 자살 동기(2013년)를 보면 우울감 등 정신적 이유 37.9%, 대인 관계 스트레스 31.2%, 경제문제 10.1%, 신체질병 5.7% 였다. 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래학자 토마스 프레이 다빈치연구소장은 한국의 높은 자살률에 대해 “지나친 경쟁이 한국인들의 삶을 힘들게 만들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이같이 갈수록 심해지는 취업난, 경쟁, 소득격차, 불투명한 미래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정신적인 이유가 가장 큰 것 같다.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정신적 먹구름이 그만큼 무거운 것이다. 정부와 사회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각종 복지대책을 만드는 등 사회적 안전망 구축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인간은 가장 고독함을 느낄 때, 세상에 버려지고 혼자라고 생각할 때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반대로 ‘나 홀로의 세상’이 아니라 ‘우리의 세상’이며, 누군가를 위해 살아야 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할 때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해진다. 과거 우리의 부모 세대가 전쟁터에서도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가고, 독일에 광부, 간호사로 간 한국인들이 어렵게 돈을 모아 집으로 보냈던 것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였다. 이런 점에서 스마트 시대의 미디어가 갖고 있는 부정적인 역기능은 ‘자살 시대’를 맞아서 심각하게 고민해볼 문제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의 대표적인 미디어는 TV였다.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에는 저녁에 가족들이 모여서 TV를 보는 것이 중요한 문화행사였다. 가족들이 TV를 보면서 울고, 웃고, 많은 이야기를 하는 동안 알게 모르게 가족애가 쌓여갔다. 그러나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시대를 맞은 지금, 이런 가정의 모습은 사라져 간다. 모두 집에 있지만, 혼자이다. 각자 스마트폰으로 게임, 음악, 영화를 즐기면서 자신의 세계에 몰두한다. 대화는 없고, 침묵만 있다. 식구들이 모처럼 외식을 해도 서로 스마트폰에 빠져, 결국에는 식사만 하고 돌아온다. 가족 공동체가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인터넷과 SNS는 공동체보다는 개인 지향적인 성향이 매우 강한 미디어다. 인터넷과 SNS로 사회적 관계가 넓어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이버 세계일 뿐, 인간은 더욱 고독해져 간다. 사이버 세계에 빠진 인간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더욱 몰두한다. 가족 간에 유대감이 없어지면 가족 간의 작은 갈등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택하는 일이 많아진다. 필자는 2년 전 학생들의 스마트폰 이용 실태를 연구한 적이 있다. 청소년들의 스마트 미디어 중독은 충동성을 높이고, 휴식과 오락을 가상공간에서 충족하게 함으로써 학교라는 현실 공간에서의 인간관계를 어렵게 하며, 학교 수업의 만족도를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학생들일수록 일탈적이고,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에서도 청소년들의 핸드폰 사용량이 많다. 그래서 ‘핸드폰 바구니’를 준비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유대인들이 믿는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저녁에는 가족들이 핸드폰을 이 바구니에 넣고, 주말 내내 음식과 대화를 즐기면서 가족애를 쌓아간다는 것이다.자살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 가족 간의 따뜻한 가족애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일 것 같다. 우리 가정에서도 매 주말 하루를 ‘핸드폰 제로’날을 만들면 좋을 듯 싶다. 가정이 인간 사랑을 가르치는 곳으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오대영 가천대 언론영상광고학과 교수오대영 가천대 언론영상광고학과 교수

2015-11-02 오대영

[이준우 칼럼] 사회복지의 전면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중구난방식 확장해왔던 사업의제도·서비스·시설 면밀 검토와선택과 집중 지혜 발휘 할 필요복지정책이 국가와 국민을신바람 나게하는 근원 되도록끊임없는 노력도 요구된다사회복지 현장이 급변하고 있다. 최근 읍면동 단위 지역사회보장협의체가 가동되었다. 지역주민의 피부에 와 닿는 사회복지서비스가 이뤄지게끔 하려는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가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사회복지전달체계와의 유기적인 연계가 이뤄지고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일까? 복지수요는 크게 늘어나는데 국민의 체감도는 그리 높지 않다. 더욱이 급속한 고령화 추세로 연금이나 건강보험 등 노인관련 재정지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비해 실질적인 지원에 대한 만족도는 여전히 낮은 상태다. 사회적 양극화와 청년실업, 근로빈곤 등 다양한 복지수요에 대한 대응도 미흡하다. 지속적인 경기침체로 세수는 감소하고 있어 중앙과 지방정부의 재정적 어려움은 만성적으로 가중되고 있어서 늘어난 복지부담이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그런데 정말로 심각한 문제는 복지비용 지출이 늘어나는 만큼 고용과 국가적 생산능력도 높아지는 선 순환적인 경제흐름이 일어나지 못하고 소모적인 형태로 고착돼 가고 있는 데에 있다. 즉, 복지비용의 증가가 고스란히 국민의 삶에 체감되는 만족감이 커지게끔 하고, 그에 따라 일터와 지역사회·가정 등에서 보다 생산성 있는 활동들이 늘어나서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이러한 사회적 경향은 전통적인 사회구조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완전고용과 높은 출산율, 고성장에 기초한 남성 생계부양자 중심의 사회복지정책을 전면 재조정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즉, 기존의 전통적인 사회복지정책은 남성 생계부양자에 대한 ‘교육과 투자’가 선행되고, 그 이후 그들의 ‘고용’과 그에 따른 생산성 창출, 다음으로 ‘은퇴’라고 하는 생애주기에 따른 가족지원과 교육·훈련, 그들에 대한 사회보험, 그리고 은퇴기의 노령연금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연속적인 복지시스템에 기초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이젠 무용지물이 된 상황이 눈앞의 현실로 펼쳐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회적 기업, 사회적 일자리 등과 같은 사회적 경제조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 결과 일정수준의 수익을 창출해 내는 자활과 자립을 지향하는 ‘탈 전통적인 사회복지실천’ 영역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한편, 과거 저소득층에 대한 위기개입실천의 대명사였던 지역사회복지관이 이제는 무한돌봄센터나 희망복지지원단 사업 등에 의한 공공사례관리 실천이 자리 잡아감에 따라 지역사회복지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장애인복지관의 경우에도 치료재활 서비스의 상당 부분이 특수학교 부설 치료센터나 발달장애인지원센터, 특수교육지원센터의 서비스와 중복되고 있으며 장애인복지관 내에서 이뤄지던 직업재활서비스 또한 다양한 형태의 ‘보호작업장’과 ‘장애인사업장’ 등의 확대 및 사회적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로 인해 복지관 사업에서 점차 비중이 줄어가고 있는 상황이다.‘그때 그때’ 필요할 때마다 이 사업 만들고, 저 사업 만드는 방식으로 확장해 왔던 사회복지제도와 서비스, 시설들을 이제는 한 자리에 펼쳐놓고 면밀하게 검토할 때가 된 것이다. 선택과 집중의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복지정책이 국가와 국민을 신바람 나게 하는 근원이 되게끔 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서비스를 공급하는 입장에서 주로 설치해 왔던 관행에서 수요자 내지 이용자의 관점에서 이용자의 권리에 부합하는 서비스 방향을 설정함과 동시에 서비스 투입에 따른 성과를 염두에 두는 사회복지정책과 서비스 실천을 국가적 과제의 하나로 실현해야 한다. 즉 우리나라 사회복지정책과 서비스전달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정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상황이다. 국민의 진정한 행복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사회복지정책과 전달체계, 실제적인 서비스들의 총체적이며 전문적인 관리운영을 국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감당해 나갈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효과적이며 효율적으로 사회복지를 경영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획기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 있다. 복지 때문에 망하지 않고 복지 때문에 더 잘 살기 위한 묘안을 짜내야 할 때다./이준우 강남대 사회복지 전문대학원 교수이준우 강남대 사회복지 전문대학원 교수

2015-10-12 이준우

교육격차 줄이는 길

미리 공부하겠다는 ‘선행학습’법으로 규제할 대상인지…가난한 학생 학습권 어떻게보상해야 하는지 궁금하다해결책은 현실 정확히 파악하고학교 경쟁력 높이는게 급선무일본 도쿄에 있는 히비야(日比谷)고교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매년 200명 가까운 학생이 도쿄대에 입학하는 일본 최고의 공립학교였다. 그러던 히비야고가 1990년대에는 도쿄대 입학생이 1~2명, 때로는 없을 정도로 몰락했다. 일본 정부가 고교 평준화정책 차원에서 고교 입학권역을 대폭 축소했기 때문이다. 전국의 학생들이 히비야고에 지원할 수 있었지만, 고교 지원구역을 매우 작게 쪼개면서, 히비야고에 입학하는 우수한 학생들이 대폭 줄었다. 이런 현상은 다른 공립고에서도 똑같이 발생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학부모들 사이에 “공립고에 보내면 우수한 대학에 입학하지 못한다”는 공립고 불신감이 확산되면서, 사립고를 찾기 시작했다. 한국의 사립고는 공립고나 다름없지만, 일본 사립고는 매우 자율적인 대신 학비가 매우 비싸다. 공립고는 연간 100만원대, 사립고는 연간 2천만원대다. 그럼에도 무리를 해서라도, 사립고를 찾는 학부모들이 늘었고, 명문대에 입학하는 사립고 학생들도 부쩍 증가했다. ‘부모의 경제력=좋은 대학 입학’이라는 공식이 생겼다. 도쿄대 입학생 학부모의 경제력도 높아졌다. 지방자치단체들이 2000년대 들어 공립고 살리기에 나섰지만, 이미 부모 경제력에 의한 학력격차가 사회문제가 되었다. ‘부모 경제력-> 학력격차-> 빈부격차 확대’를 우려하는 ‘교육격차 사회’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히비야고 사례는 사회현실을 무시한 정책은 오히려 해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시장 논리와 맞지 않으면 시장은 반드시 보복한다. 미국에서 1920년대 시행되었던 금주법도 그랬다. 밀주가 성행하면서 범죄가 늘어나고, 마피아 조직만 살찌웠다.갈수록 늘어나는 재수생이 우리 사회의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는 사교육을 줄이고, 학생의 학업부담을 경감한다는 취지에서 매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난이도를 낮춰왔다. 그런데 ‘물수능’이 될 정도로 문제가 너무 쉽다 보니, 주요 과목에서 한문제만 틀려도 등급이 떨어져 지원가능한 대학이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자 아쉬움으로 처음부터 재수하거나, 대학입학 후 휴학하고 재수하는 ‘반수생’이 급증했다. 안민석 의원이 최근 공개한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53개 대학 신입생 29만여명 중 5만여명이 입학 후 휴학이나 자퇴했다. 대부분 ‘반수생’이라고 한다. 이들이 낸 등록금만 500억원에 이른다. 재수학원 비용과 시간까지 감안하면 엄청난 사회적 손실이다. 그래도 시험문제가 쉬울수록, 특히 객관식에서는 풀어본 경험이 많은 사람이 유리하기 때문에 재수생은 늘고 있다. 정책 취지와는 달리, 고교 때는 사교육을 받을 수 있고, 졸업 후에는 재수나 반수를 할 수 있는 경제적 뒷받침이 있는 학생이 유리한 입시정책인 것이다.정부가 지난해 만든 ‘선행교육 규제 특별법’도 학교의 선행학습만 금지하고, 학원은 풀어놓으니 오히려 학원만 웃고 있다. 교육부 조사결과 지난해 학생당 사교육비는 월평균 24만2천원으로 2013년보다 늘었다. 값싼 방과후 학교에서 선행학습을 하지 못하자, 학원을 찾는 학생이 늘고, 학부모 부담은 더 커졌다. 가정형편상 학원을 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선행학습을 할 곳을 잃어, 학교에서는 걱정과 불만이 많았다. 교육부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올 3월 ‘방과후 교실 선행학습 허용’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이 법은 시행 전부터 문제가 많다는 지적을 받았다. 미리 공부하겠다는 것이 꼭 법으로 규제해야 하는 대상인지, 학교에서 선행학습을 못하고 사교육도 받을 수 없는 가난한 학생의 학습권은 어떻게 보상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우리사회에서 교육격차 문제가 더욱 커지는 것은 아닌지도 우려된다. 해결책은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제도의 기본취지에 충실한 데 있다. 입시의 기본취지는 학생 선발에 있고, 그것은 변별력에서 나온다. 그래야 시험의 신뢰도 생긴다. 학교의 기본취지는 학습에 있다. 학교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급선무다. 학교만 다녀도 잘 배운다면, 왜 학원에 가겠는가. 잘 가르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교육격차를 줄이는 길이다./오대영 가천대 언론영상광고학과 교수오대영 가천대 언론영상광고학과 교수

2015-10-05 오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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