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칼럼

 

[홍창진 칼럼]안락사

여론조사 따르면 국민 80%가 찬성우리나라 아직까지 법적으로 금지죽음, 한사람의 인생 투영하는 거울깨닫지 못했던 '삶의 의미' 되짚어두려워 외면 '마지막 선물' 놓치는 것한 여론조사 기관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80% 이상이 안락사에 찬성한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품위 있게 보내기 위해서, 두 번째가 남은 가족들을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스위스의 디그니타스는 자발적 안락사를 돕는 비영리단체입니다. 최근 3년간 두 명의 한국인이 이미 이 단체를 통해 죽음을 맞이했고, 같은 방식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한국인이 백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호주의 과학자 구달도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고, 이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화제에 올랐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안락사가 법으로 금지돼 있습니다. 다만 작년부터 생명만 연장하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존엄사법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법이 통과되자마자 연명치료 거부 희망자가 1만 명을 넘어서는 등 '자발적 죽음'에 대한 관심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천주교 신부는 적어도 한 달에 다섯 번 이상 죽음을 마주합니다. 신자가 죽음에 임박했을 때 종부성사라는 종교의식을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임종을 앞둔 분들에게서 발견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의연했던 사람이더라도 죽음 직전에서는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은 조금이라도 그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그러나 인간의 수명이란 이미 정해진 것이고, 그 마지막을 잘 수용하는 것이 인생을 완성 짓는 마지막 한 걸음이라는 사실을 본인도 가족도 모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죽음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어떤 이들은 죽음을 단순히 생명이 꺼지는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최대한 고통 없이 죽기를 원합니다. '존엄한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안락사를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조력으로 죽음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 본인에게도 가족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겪게 되는 고통은 삶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고통을 통해서 생명의 귀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많은 환자들은 내게 주어진 이 하루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낍니다. 또한 자기 인생에 함께한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선물이었는지를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어쩌면 전 생애 중 죽음을 앞두고 겪는 고통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값진 순간일는지 모릅니다.죽음은 한 사람의 인생을 투영하는 거울과 같습니다. 살면서 나누고 베풀 줄 알았던 사람들은 죽음도 건강하게 맞이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가까운 지인이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에 있었습니다. 그는 고통 중에도 삶의 마지막 순간을 의미 있게 채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중병으로 말도 잘 못했던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이들을 미소로 맞기로 결심하고, 남은 이들에게 그 순간이 아름다운 추억이 되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생명은 값진 것이고 고통 중에도 빛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죽음을 앞둔 고통 중에 깨달은 것입니다. 그를 찾아왔던 많은 이는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삶을 반성했습니다. 건강한 몸을 하고도 온갖 불평으로 소중한 시간들을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반면 사는 동안 자기중심적으로 살았던 사람들은 죽음 전에 겪는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인생을 혼자 살아왔던 그는 죽음을 만나면서 더욱더 외로움의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더할 나위 없는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요즘 안락사에 관한 시류는 죽음을 그저 한순간 벌어지는 현상학적인 문제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문제는 생애 전반을 두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이나 가족은 이제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지금이라도 인생의 의미를 잘 정리하고 받아들이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고통이라는 과정도 자연의 섭리이고 이 고통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삶의 의미를 하나씩 되짚게 해줍니다. 고통이 두려워 죽음을 앞둔 시간을 외면하려는 것은 어쩌면 생이 우리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을 놓치는 것일지 모릅니다. 갓 태어난 아이가 변을 못 가린다고 흉보지 않습니다. 생을 마감하면서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고 어느 누가 존엄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죽음을 자연의 섭리에 맡기고 우리는 지금 죽음의 일부를 지내고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06-03 홍창진

[방민호 칼럼]'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박경리~최인훈 사이 세대 박완서첫 소설 '나목' 욕망·양심 드라마단편 '…가르칩니다' 병적 감수성윤리적 양심의 뿌리, 늘 의식하는'부끄러움'의 능력에 무릎을 탁 쳐작가 박완서 선생은 1931년에 경기도 개풍군, 지금은 갈 수 없는 휴전선 위쪽에서 나서 2011년 불과 몇 년 전에 담낭암으로 유명을 달리한 작가다.나는 먼저 선생의 세대적 위치를 가늠해 본다. 박경리 선생은 1926년생 그의 성장기 전체는 일제 강점기에 걸쳐졌다. 태평양 전쟁과 이후 육이오 한국전쟁을 통하여 문학의 문제를 생명의 문제로 초점화할 수 있었다. 최인훈은 1936년생이고,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원산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중 사회주의 체제 교육을 접했다. 1·4후퇴를 얼마 앞두고 원산철수로 부산에 내려온 선생은 평생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적 자유주의, 이 두 20세기 사상이 내건 숙제들과 싸우는데 바쳤다.박완서 선생은 이 둘 사이에 끼인 세대의 작가였다. 그녀는 일제 말기에 숙명여고에 들어가 해방 후에 숙명여고로 졸업했으니 1950년 5월이었다. 곧이어 육이오를 맞는 바람에 대학 입학과 더불어 수학은 좌절되고 6·28 서울 함락부터 9·28 수복에 이르는 3개월여를 인민군 치하에서 보낸다. 다시 1·4 후퇴 이후의 정적 감도는 서울에 남은 끝에 전쟁의 죽음과 폐허, 모순과 불합리를 겪을 만큼 겪은 사람으로 남게 된다.이 선생의 첫 작품은 젊었을 때 미군 PX 초상화부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박수근의 그림을 모델로 삼은 장편소설 '나목'이다. 선생은 여기서 선생 자신을 썩 빼어 닮은 여성 주인공 이경과 박수근을 모델로 그린 화가 옥희도의 사랑을, 그리고 대학을 두 해 다니다 군대에 갔다 온 전공 '황태수'와 미군 '죠오' 사이에서의 방황과 선택을 그렸다.이경은 여기서 자신의 잘못된 제안으로 행랑채에 숨어 있던 두 오빠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다. 그럼에도 젊고 살아 있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갈망하는 여성이었다. 이 이경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박경리의 '생명'의 여인도 아니요, 좌우익 선택 문제에 귀착하는 최인훈의 '이념'의 청년도 아니다. 전쟁이라는 사회적 부조리, 불합리 속에서 온갖 고통을 떠안은 채 죄책감에 시달리며 그러면서도 한 삶을 살아내고자 하는 세속적 여성의 욕망과 양심의 드라마가 바로 '나목' 그것이다.이 '나목'은 어째서 선생이 이 육이오를 겪은 1950~1953년으로부터 근 이십 년이나 동떨어진 1970년에야 '여성동아' 현상 공모라는 독특한 형식을 통하여 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일까? 선생은 그보다 훨씬 더 '문학적으로', 더 일찍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 스무 해 동안 선생의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민음사 판 새로운 '나목'에 단편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가 함께 붙어있어 다시 한 번 눈길이 갔다. 여기에는 세 번이나 결혼하면서 농사꾼 부자, 가난한 전임강사에 이어 일본 무역상을 자처하는 사업가에게 시집을 간 한 결벽증적 여인이 등장한다. 이 소설은 꽤나 풍자적이어서 이야기 전개에 재미가 있는데, 그 한가운데에는 이 여성 특유의 독특한 '부끄러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녀는 세 번 결혼한 것쯤이야 하등 부끄러울 것 없지만 돈 많다고 떠벌리는 것, 겉으로는 고상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물욕과 명예욕에 허덕이며 사는 것, 육체를 팔아서라도 먹고는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의 물질주의, 육체주의를 지독히도 혐오한다.그런 그녀가 작중에서 하는 말이 있다. "……혹시 내가 쓴 작문을 잘 됐다고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읽어주기라도 하면, 저 구절은 어디서 표절한 것, 저 느낌은 어디서 훔쳐온 것 하고 한 구절 한 구절이 읽을 때마다 나를 찌르는 것 같아 안절부절 못했다. / 분명히 내 내부에는 유독 부끄러움에 과민한 병적인 감수성이 있어서 나는 늘 그 부분을 까진 피부를 보호하듯 조심조심 보호해야 했다."이 작중 여성 인물의 자기 인식에 관한 대목을 읽으며 나는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바로 이 '부끄러움'의 능력. 정말 자기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고 아는 능력이야말로 박완서 선생을 오늘 우리 문학사에 남은 존재로 만들어 준 근본이었다는 사실이다. 작가로서 박완서는 무엇보다 윤리적 양심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생명처럼 근본적이지도 이념처럼 숭고하지도 않되 자신의 양심의 뿌리를 늘 의식하고 써나간 작가였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9-05-27 방민호

[이영재 칼럼]책을 정리하며

창간~종간호 모은 월간지 '뿌리 깊은 나무'발행인 온기 그대로 과거로 되돌아간 느낌10년 넘은 책꽂이, 반은 책·반은 먼지란 말"지금 우리는 그런 먼지 속에서 살고 있다"책을 정리할 일이 생겼다. 문학청년의 패기는 모두 사라지고, 이사를 해도 이제 더는 책을 안고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 책을 빼면 먼지가 풀풀 날았다. 하얀 목장갑이 금세 까매졌다. 딱히 정해진 날까지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책은 두 겹으로 꽂혀있다. 한 권을 빼면 그 뒤에 늙어서 더는 힘을 쓰지 못하는 병사처럼 빛바랜 책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뿌리 깊은 나무'가 보였다. 70년 중·후반을 풍미했던 월간지다. 가슴속에 바람이 싸하게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책 정리고 뭐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서슬 퍼렇던 시절, 수원 교동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창간호부터 종간호까지 사서 모은 잡지다. 어렵사리 결호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른다. 발품을 판 덕분에 단 한 권의 결호 없이 온전히 모았다. 권당 200원에서 500원 값을 치렀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른 어느 책보다 '뿌리 깊은 나무'에 애정이 넘치는 것도 그래서다. 창간호를 읽다 보니 이래저래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1976년 3월에 창간된 한글 전용 잡지 '뿌리 깊은 나무'에는 '문화'의 힘을 앞세워 긴급조치를 발동한 독재에 항거하는 발행인 한창기의 온기가 그대로 녹아있다. 쌀을 한 움큼 쥐고 있는 손을 표지 사진으로 사용한 창간호는 기존의 잡지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43년 전 쓰인 한창기의 창간사는 이랬다. "우리가 '잘사는' 일은 헐벗음과 굶주림에서 뿐만이 아니라 억울함과 무서움에서도 벗어나는 일입니다. 안정을 지키면서 변화를 맞을 슬기를 주는 저력 - 그것은 곧 문화입니다." 잡지는 신군부가 들어선 1980년 8월 폐간될 때까지 모두 53권이 발행됐다.80년대 초 수원역 지하상가 입구에는 '니꼴라'라는 서점이 있었다. 군사정권으로부터 판매금지된 책들은 이곳에서 구했다. 그때 사서 본 책들이 둘째 줄에서 먼지를 꼬박 뒤집어쓴 채 숨을 죽이며 있었다.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신동엽의 '금강'을 비롯해 헝가리 공산당 인민위원이었던 게오르그 루카치의 저서들도 있었다. 당시에는 '불온서적'으로 낙인찍혀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국가보안법에 저촉된 책들이다. 무엇에 홀렸던 것일까. 그때는 이런 책들을 밤새 탐독했다. 책 안에 '민주화로 가는 길'이 있는 줄 알았다. 다시 들춰보니 쓴웃음이 나왔다. 책마다 밑줄이 쳐있고, 뭐라고 썼는지 판독조차 하기 어려운 메모들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리고 있었다. 80년대 우리는 '민주화의 열망'속에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책 속에 있으니 80년대로 다시 돌아간 느낌이었다. 낡은 책에서 매운 최루탄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최루탄 터지는 소리가, 그것을 피하려고 이리저리 달리는 친구들의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많은 사람이 그때의 기억을 지웠고, 이제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 한때는 집안에 김소월 윤동주 시집 한 권 정도는 갖고 있었다. 이제 그런 시대도 지났다. "요즘 무슨 책 읽어?"라고 묻는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도 아직 그 시대를 잊지 못하고 그때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꼰대'라고 손가락질을 받는지도 모르고 '자신들이 곧 정의'라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고민은 이 책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였다. 기증하려고 했지만, 도서관마다 난색을 보였다. 그러잖아도 있는 책들을 폐기해야 하는 처지라 더는 기증을 받지 못한다고 도서관 측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렇다고 분리수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고물상에 넘기는 방법도 있지만, 이미 그런 경험을 한 친구는 "그거 사람이 할 짓이 못되더라. 어렸을 적 어른들이 집에서 키운 백구를 정이 붙을 만하니 개장수에 넘겼잖아. 그때 그 백구의 슬픈 눈빛을 봤지? 꼭 그 기분이야 "라고 말했다. 물론 안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다시 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뽀얀 먼지가 방안 가득 피어올랐다. "10년이 넘으면 책꽂이도 반은 책이고 반은 먼지"라고 했던 친구의 말은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먼지 속에서 살고 있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5-27 이영재

[이남식 칼럼]인간의 미래

영화 속 인간의 능력 확장 캐릭터우리 미래 발전 방향 예견하는 듯체외골격 슈트로 하반신 마비 극복외국어 실시간 번역 인터페이스 등개인격차 최소화로 발전하는 기술최근 어벤져스: 엔드게임이라는 영화가 1천341만명의 관객이 관람하여 역대 외화 중 가장 흥행에 성공한 영화로 기록되었다. 마블코믹스 만화의 주인공들인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토르, 헐크, 호크아이, 앤트맨 등의 캐릭터를 총출연시켜 만든 슈퍼히어로 영화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각기 다른 초능력과 스토리를 지니고 있다, 아이언맨의 경우는 억만장자 천재 발명가인 토니 스타크가 심장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자신의 목숨을 지키며 동시에 세계를 지키기 위하여 강화 슈트를 제작하고 과학의 결정체로 만들어진 슈트를 입고 아이언 맨이 되어 악과 싸워가는 캐릭터이다. 이 영화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능력이 확장(human augmentation) 된 사이보그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것인가를 미리 예견하는 듯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으며 많은 관람객이 공감하는 미래라고도 할 수 있다. 1966년 미국의 NBC에서 방영되었던 '스타트렉'이라는 우주전함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TV드라마에 나오는 수많은 상상의 기기나 도구들이 50년이 지난 지금에 거의 대부분 우리들의 일상에서 사용되고 있다. 예전에 히트 친 '스타텍'이라는 폴더폰은 이 드라마에서 나오는 통신장치와 동일한 모양으로 출시되었다. 영화의 상상력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이 되었는데 최근 인공지능과 기계학습, 로봇, 드론, 증강현실 등의 최종적인 방향은 인간 능력의 확장과 향상 (augmentation and enhancement)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영화 어벤져스와 함께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새로운 기술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 인간을 지배한다든지, 인간이 하는 일을 인공지능이 대체하여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든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정보화 시대에서 정보격차(information divide)가 큰 문제가 된 것처럼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이해와 습득의 부재로 인한 인간 능력의 격차(human performance divide)가 문제가 될 것이다. 동일한 검색엔진을 사용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입력하는 키워드가 달라 검색의 결과에 큰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의 기술 발전 방향은 인간의 능력 차이를 줄이기 위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어 기술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준다. 인간의 육체적 개인차는 대개 1:2-3의 범위에 있다.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가 100m를 9.5초에 주파하지만 일반인도 20초 이내에 뛸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을 많이 주어도 훈련되지 않은 사람은 코딩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주어진 문제를 푸는 인지적인 능력의 차이는 100배가 넘을 경우도 허다하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인지적인 격차를 줄이는데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또한 고령화에 따라 시력, 청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을 보완하는 안경, 보청기 등은 이미 널리 사용되어 왔으나 이제는 몸에 입는 체외골격 슈트(exoskeletal suit)가 근력을 강화하여 걷고, 무거운 물건을 들 수 있게 하며 장시간 불편한 자세에서도 작업할 수 있도록 인간의 능력을 확장하고 있다. 증강현실(AR)을 안경형태의 시야에 정보가 중첩되어 보이는 디스플레이 즉 HMD(머리에 쓰는 디스플레이)를 활용하여 구현함으로 예를 들어 HMD의 카메라가 길을 안내하거나 사람의 얼굴을 인식 누구인지 알려주며, 각종 직무 관련된 절차를 쉽게 따라 하게 하여 인간의 직무능력을 향상시키도록 할 수 있다. 개인의 능력-감각, 인지, 운동 능력을 대폭 향상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영화에서 상상하고 있는 인간 능력의 확장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하반신 마비가 된 환자를 스스로 일어나 걸을 수 있게 하는 Suit X와 같은 체외골격 슈트가 상용화되어 장애인들에게 큰 기쁨을 주고 있다. 지금도 통역프로그램들이 있으나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상대방이 하는 외국어를 번역을 실시간적으로 들려주고 나의 대답을 실시간으로 외국어로 상대방에게 전달할 수 있는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필요한데 머지않은 장래에 이러한 것 또한 가능해진다면 굳이 힘들게 외국어를 배우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인간 능력의 확장 방향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의 진정한 꿈이 아닐까?/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

2019-05-20 이남식

[윤상철 칼럼]국가의 길, 국민의 길

국민 가치관 따라 '정부개입' 차이착취보다 포용적 경제 성장에 유리집단주의 성향 강해도 성공한 한국우리 사회 '국가가 분배 주도' 요구자본·민주중 한쪽 희생해야할 상황배링턴 무어의 저서, '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은 "부르주아 없이 민주주의 없다"는 테제로 요약된다. 부르주아계급의 존재가 민주주의, 독재, 그리고 파시즘의 경로를 결정했다는 내용이다. 물론 현대의 확장적 대의민주주의는 여기에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혁명적 역할이 더해진다. 이후 남미, 동구, 아프리카의 '제3의 물결' 민주화를 지켜본 정치경제학자들은 "국가 없이 민주주의 없다"라고 주장한다. 즉, 계급 간의 투쟁으로 국가가 불안정하면 민주주의도 자리 잡기 어렵다는 말이다.국가는 민주주의 정치만 제도화하는 게 아니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라는 공저에서 경제학자 대런 애스모글루와 정치학자 제임스 로빈슨은 "우리 이론의 요체는 포용적 정치·경제 제도와 번영의 관계다.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신기술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는 포용적 경제제도는 경제활동에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못하는 착취적 경제제도에 비해 경제성장에 훨씬 더 유리하다"고 말한다. 즉, 포용적 국가 없이 경제적 번영은 없다는 주장이다. 이들이 제시한 사례는 아니지만, 미국에 비해 최대 3배의 셰일가스 매장량을 가진 중국이 그 생산량에서 훨씬 못 미치는 배경에 대해서도 포용적 국가제도가 거론된다. 지진 빈발 혹은 물 부족과 같은 자연환경적 요인보다는 셰일가스의 개발이익 분배와 같은 제도가 민간의 창의적 개발의욕과 기술개발에 큰 격차를 유발한다고 지적한다.중요한 것은 어떠한 국가인가의 문제이다. 자유주의자인 김정호 교수에 따르면 토지의 소유제한, 분배 등 경제적 헌법조항을 가진 나라들은 주로 사회주의 혹은 저개발국들이고,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세세한 정부개입조항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차이가 국민들의 가치관에서 비롯된다고 추정하면서, 전자의 국가들은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후자의 국가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고 보고 있다. 개인주의적 시민들은 국가의 개입을 거부하고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진다는 세계관을 가진 반면, 집단주의적 시민들은 집단적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국가가 개인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적 발전의 경험이 개인주의적 성향을 더 심화시키는 역의 인과관계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집단주의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지만 OECD에 들어간 나라들이 그리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터키, 멕시코 그리고 대한민국 등이고, 이 국가들이 어떠한 정치체제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이후 어떠한 경로를 밟아가는가를 살펴보면 그 인과의 방향을 판단할 수 있다.대한민국은 집단주의적 가치관이 더 지배적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에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의 저자인 오구라 기조 교수는 한국의 현대사를 '힘=문화'라고 생각하는 입장과 '힘=철'이라고 생각하는 입장 간의 쟁투로 보고 있다. '힘=문화'로 보는 전통적인 유교 사대부적 입장에 반해, 후자에 선 이들은 공업화와 산업화를 추진하고 국력을 기르는 것은 국가의 존망과 관계된다고 생각하고 '하면 된다'는 슬로건을 제창하고 효율적인 통제를 위하여 군사적인 힘을 강화했다고 보고 있다. 집단주의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는 한국에서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이유일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기로에 서 있다. 집단주의적인 가치관이 지배적인 한국사회가 민주주의적인 대의제를 통하여 국가권력을 재생산하고 있다. 군사정권이나 권위주의적 국가권력이 사라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국민 대중이 대의제 민주주의를 통해 만들어내는 국가체제는 자본주의적, 개인주의적 성장주도체제라기보다 국가주의적, 사회주의적 분배주도체제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가의 발전전략에 이끌려왔던 우리 사회는 국가가 다시 분배를 주도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발전과정이 기적인 이유는 국가와 경제의 파국을 막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동시적, 순차적 발전을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이제 한국사회는 그 적절한 조합이 아닌 어느 한 쪽을 희생시키면서 다른 쪽을 선택하는 국면에 처해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칼자루는 국민에게 쥐어져 있다. 이제까지 걸어왔던 길과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9-05-13 윤상철

[전호근 칼럼]어벤져스와 초원의 집

예나 지금이나 '히어로물'에 열광원더우먼등 에피소드는 기억 안나가족이야기 다룬 '초원의 집' 인상공동체의 평화, 영웅의 헌신 아닌가난한 사람 협력으로 지켰기때문마블 스튜디오에서 만든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6일 한국 관객 수 천만을 돌파했다고 한다. 이번 작품은 동명의 시리즈뿐 아니라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을 기록할 전망이란다. 영화의 줄거리는 기존의 히어로물과 별 차이가 없다. 캡틴 아메리카를 비롯하여 아이언맨, 토르, 헐크, 호크아이, 블랙 위도우 등 이른바 슈퍼히어로들이 한 팀이 되어 악의 세력으로부터 지구를 지킨다는, 매번 같은 이야기다.예나 지금이나 히어로물에 열광하는 이유는 늘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그만큼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들 개인의 능력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곤경에 처했을 때 어디선가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영웅이 나타나 자신을 구해주기를 바라지 않겠는가. 다만 전에는 탁월한 히어로 한 명이면 너끈히 지구를 지킬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만큼 악의 무리도 힘이 커져서 한 명으로는 턱도 없다. 이른바 드림팀을 이뤄서 단체로 달라붙어야 간신히 이기는 지경이 된 것이다.나 또한 어린 시절부터 이런 종류의 드라마를 자주 보았는데 중학생 무렵에는 '육백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원더우먼' 등 주로 초능력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미국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다. 매주 빼놓지 않을 정도로 즐겨 보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단 한 개의 에피소드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매번 지구를 구하는 식상한 이야기가 반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반면 당시 미국 드라마 중 서부 개척시대의 가족이야기를 다룬 초원의 집은 그다지 자주 보지 않았는데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몇 개 있다. 그중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이야기를 소개한다.어느 날 주인공 소녀의 아버지가 거부였던 먼 친척으로부터 상속을 받게 되자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하던 마을에 심상찮은 변화가 일어난다. 아버지는 졸지에 유명인사가 되어 가는 곳마다 극진한 대우를 받는가 하면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관계가 소원했던 사람들까지도 그와 친하게 지내며 호감을 사려고 애를 쓴다.시간이 흐르면서 마을 사람들은 이런저런 금전적 어려움을 하소연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마을의 목사까지 교회에 피아노가 있으면 좋겠다고 은근히 기부를 부탁하기에 이른다. 물론 그럴 때마다 주인공 아버지는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고 마을 사람들은 좋은 이웃을 두었다고 흡족해한다.꿈은 거기까지였다. 먼 친척은 거부이기는 했으나 부채가 상속액보다 많아서 막상 상속을 받고 보니 주인공 아버지가 도리어 채무를 변제해야 할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결국 친척이 살던 동부에서 변호사 일행이 찾아와 주인공 아버지에게 친척의 채무 변제를 요구하며 집과 토지와 가재도구 일체를 경매 처분하겠다고 통고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곳에서 주인공 아버지의 재산이 하나 둘 경매에 부쳐지는데…. 물건이 경매에 나올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1센트!'를 불렀고 더 높은 금액을 부르는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모든 물건이 차례차례 1센트씩에 팔려나간다. 책상도 1센트, 집도 1센트, 농토도 1센트….동부에서 온 일행은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고 주인공 아버지는 완전히 파산했다. 부자가 되는 꿈이 이렇게 허망하게 끝나는가 싶었을 때 반전이 일어난다. 마을 사람들이 낙찰받았던 모든 물건을 주인공 아버지에게 그대로 돌려준 것이다. 마을은 다시 평화를 되찾고 주인공 소녀가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웃는 엔딩 신이 이어진다.수십 년이 지난 이 이야기를 내가 지금까지 기억하는 까닭은, 공동체의 평화는 부자의 지갑이나 영웅과 드림팀의 헌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서로 돕는 데서 지켜진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마지막 대사가 궁금한 건 나도 어쩔 수 없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5-06 전호근

[이명호 칼럼]농업은 지식 산업이다

농산물 수출 '세계 2위' 네덜란드좁은 국토·자원 부족 한국과 유사농식품업 중심 연구·인재양성 주력농민 스스로 '밸류체인' 혁신 나서정부·대학과 꾸준한 협력은 필수농산물 수출을 많이 하는 국가는 어느 나라일까? 세계 1위는 미국이고 뒤를 이어 네덜란드, 독일, 브라질, 프랑스 순이다. 전체 수출 비중에서 농업 비중이 큰 나라를 보면 네덜란드가 1위이고 뒤를 이어 호주, 프랑스, 미국, 독일 순이다. 비교우위론에 따르면 농업국가나 저개발국이 농산물을 많이 수출할 것 같은데, 선진국이나 제조 강국이 농산물을 많이 수출하고 있다. 저개발국이나 농업국가의 농산물 원료를 수입하여 선진국들이 농식품 등으로 가공하여 높은 가격에 되파는 구조이다. 이 중에서 역시 눈에 띄는 국가는 네덜란드이다. 인구 1천700만명의 작은 나라, 세계 수출 5위, GDP 17위의 네덜란드는 첨단 반도체 장비 등을 수출하는 제조 강국이면서 농업 강국이다. 우리나라는 작년에 1인당 GDP가 3만달러를 넘었다. GDP 2만달러에서 3만달러에 도달하는 데 12년이 걸렸다. 세계 평균 기간은 8년이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농업이 전체 경제성장을 못 따라가고 오히려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조 강국인 선진국들이 동시에 농업 강국인 것을 볼 때 우리나라도 농업의 경쟁력을 높이지 못하면 4만 달러 선진국 대열에서 멀어질 수 있다.그런 면에서 네덜란드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나라이다. 두 나라 모두 상당히 좁은 국토면적을 가지고 있고, 주변에 강대국 및 큰 시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지리적으로 물류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다른 자원도 부족하여 인적 자원과 무역에 의지하는 구조이며, 과학기술에 강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농업은 천양지차이다. 농업이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 내외로 비슷한데, 우리나라가 농업의 고용 비중이 3배 정도 많으니 생산성이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수출 비중은 17배 정도 적어 국제 경쟁력은 비교할 수 없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네덜란드는 1인당 GDP가 5만5천 달러에 달하고 농민이 더 잘 사는데, 우리나라는 농가소득이 도시근로자 소득대비 60% 수준에 불과하다.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았을까? 우리나라는 농지에 기반한 농업을 하고 있고, 네덜란드는 농산물에 기반한 농식품업을 하고 있는 것이 커다란 차이라고 본다. 1880년대 증기선이 등장하면서 미국과 캐나다의 막대한 곡물이 유럽으로 쏟아져 들어와 곡물 가격의 하락으로 농업이 위기에 처하자 유럽 각국은 보호주의로 전환하였다. 그러나 네덜란드는 자유무역을 유지하였다. 값싼 곡물 사료를 수입하여 축산업을 발전시키고, 우유를 치즈로 만드는 등 고부가가치 농식품으로 가공하여 주변국에 수출하는 전략을 취하였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같이 소농, 가족농에 기반하였지만 네덜란드의 일관된 이러한 정책은 농업의 구조조정과 규모화, 경쟁력 강화를 촉진시켜 농가당 경지면적이 우리나라보다 19배 큰 기업농으로 성장하는 환경으로 작용하였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농산물 수입개방 때마다 쌀직불제, 밭직불제 등 소득 지원정책이 오히려 농업의 규모화를 더디게 하고 있다. 두 번째는 농업을 지식산업으로 전환시켰다. 1997년 국제 농업지식의 중심이 된다는 목표로 바헤닝언 대학과 정부의 농업연구청을 합병시켰다. 이후 바헤닝언 대학은 R&D 인력이 1만5천명에 달하는 푸드밸리를 조성하여 연간 매출이 66조원으로 네덜란드 GDP의 10%를 차지하는 성공 사례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가식품클러스터의 중심에는 연구와 인재 양성, 창업을 담당하는 대학이 없다. 세 번째는 정부와 대학, 농민의 협력이다. 항상 위기라고 느끼는 농민들은 지식공동체인 '지식 서클을 만들어 학자, 공무원, 기업체 등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필요한 분야에 대해 배우고 토의하며 농업의 밸류체인을 혁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농업 혁신과 R&D는 정부 주도이고, 지자체-기업-대학(연구)의 협력 플랫폼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네덜란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농업은 지식산업이며, 여러 이해 관계자가 꾸준히 협력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산업이다. 그리고 농업이 지식산업이 되기 전까지는 선진 강국으로 도약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9-04-29 이명호

[이영재 칼럼]판문점 회담 1년, 그리고 '이산가족 상봉'

4·27 판문점선언후 두차례 이산가족 만남계속 이어졌다면 트럼프 설득 쉬웠을지도실향민들 아픔 달래준 이미자 데뷔 60주년부모님 모시고 콘서트라도 다녀와야 할듯음정도 박자도 가사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맞는 게 없었다. 그래도 이 노래가 그 노래임을 알 수 있었던 것은 '눈물로 보냅니다' 라는 가사만은 그런대로 또렷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창밖에는 꽃잎들이 바람에 따라 이리로 저리로 휘날리고 있었다. 그 바람에 따라 이제 90인 아버지가 부르는 노래도 이리저리 흔들렸다. 나는 대한민국 가수 중 이미자를 최고의 가수라고 생각한다. 조용필과 나훈아가 들으면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남자가수고, 그들 역시 이미자에게는 자신이 최고라는 자부심을 양보할 것이다.골목길로 들어서면서 전봇대가 있는 여섯 번째 집에서 일하던 식모는 온종일 이미자 노래만 불렀다. 그 노래가 어린 우리에게도 얼마나 구슬프게 들리던지 하굣길에 그 집 앞에서 담을 타고 넘어오는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한참 동안 들었다. 이미자의 목소리에는 고향 생각을, 그곳에 두고 온 어머니를 생각나게 하는 묘한 마력이 있다. 지나가다 그녀의 노래를 듣던 다 큰 어른들도 눈물을 훔치곤 했다. 어린 시절, 동네 친구들이 그 집 앞에 모여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난다. "일본 놈들이 많은 돈을 주고 이미자의 목소리만 샀대. 죽으면 목 해부해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확인하겠다는 거야. 왜 그렇게 노래를 잘 부르는지 말이야." 이미자가 들었다면 경을 칠 일이지만, 그때는 그 말이 진짜인 줄 알았다. 그만큼 이미자의 목소리는 일본도 부러워할 정도로 최고였다."가부장적이었던 아버지 앞에서 어머니는 숨도 제대로 쉬지도 못했어. 아버지가 소리 한번 지르면 저 구석에서 마치 죽은 쥐처럼 말 한마디 못했지. 왜 그렇게 사셨는지. 그런 어머니랑 16살에 헤어졌다. 나오면서 사진 한 장 못 갖고 나왔어. 금방 돌아갈 줄 알았거든. 이 노래가 어머니 얘기를 하는 것 같아." 노래는 다시 시작됐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을 허덕이면서 아~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 물론 가사도 음정도 박자도 모두 무시됐다. 그래도 노래를 듣는 우리는 단 한 번 본적 없는 할머니의 얼굴을 수없이 그렸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패티 김이나 주현미, 아니 요즘 뜬다는 홍자도 이 노래를 이미자만큼 아리게 부르지는 못할 것이다. 뜬금없이 이미자 얘기를 꺼낸 것은 며칠 전 노래 다섯 곡을 새로 배웠다는 실향민 1세대 아버지가 차 안에서 부른 '여자의 일생' 때문이다. 이 노래 말고도 다른 노래도 배웠다는데 그날 아버지는 '여자의 일생'만 부르고 또 불렀다.다음 주면 판문점 회담 1주년이다.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남북이 발표한 '4·27 판문점 선언'에는 5번 문항에 분명 이런 문구가 명시되어 있다. '남과 북은 민족 분단으로 발생 된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남북 적십자회담을 개최하여 이산가족·친척상봉을 비롯한 제반 문제들을 협의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당면하여 오는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 선언 덕분인지는 모르지만, 지난해 8월 20일부터 22일, 24일부터 26일까지 두 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이 금강산에서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의 만남은 없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철도 회담은 귀가 아프도록 들었지만, 그 이후 서울이건 평양이건 더 이상의 '이산가족 상봉'은 없었다. '여자의 일생'을 듣던 그날 문득, "만일 우리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을 몇 번 더 추진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시키는데도 더 수월했을지 모른다. 그 역시 계속되는 이산가족 상봉을 거부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생존한 실향민 1세대도 손에 꼽을 정도다. 억세게 운이 좋은 몇 명은 이미 가족 상봉의 꿈을 이뤘지만, 여전히 대부분은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의 생사 확인조차 못 한 채, 이미자 노래를 벗 삼아 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공교롭게 올해는 이미자가 데뷔한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올해도 이산가족 상봉은 틀렸으니, 부모님을 모시고 이미자 60주년 콘서트만이라도 다녀올 생각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4-22 이영재

[홍창진 칼럼]유혹

욕심앞에 휩쓸리기 쉬운 세태속내것에 집착하다 파멸초래 일쑤사회냉대 체험 장애아동 부모들사랑 실천없으면 이웃 함께 불행유혹 물리친 사람 주위에 행복줘살다보면 여러 가지 유혹을 만나게 마련입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돈, 권력, 이성의 유혹이 아닐까 합니다. 이 세 가지 유혹에 잘못 빠지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뉴스나 신문에서 종종 확인하게 됩니다. 그래서 후배나 자녀들에게 잘못된 유혹에 현혹되면 한순간에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가르칩니다. 하지만 사실 우리 서민들의 각박한 삶에서 유혹을 받는다고 할만한 상황은 별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조직을 배신하고 정보를 넘기면 몇억원을 주겠다고 유혹하는 사람도 없고, 반대로 돈으로 남을 매수할 일도 없습니다. 직장에서 한 단계 높은 자리로 승진 정도는 할 수 있을지언정, 누군가의 삶을 쥐락펴락할 만큼의 권력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성의 유혹으로 말하자면 물 건너간지 오래입니다. 돈도 없고 배경도 없는 내게 누가 다가오겠습니까. 말하자면 유혹을 당할 상황이 원천봉쇄된 것이지요.그러면 이 시대의 서민들은 유혹이라는 현실에서 완전히 해방된 걸까요? 아닙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도 유혹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출세한 사람이나 서민이나 욕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욕심은 늘 우리를 괴롭힙니다. 유혹은 욕심을 부리면 부릴수록 더 자주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최근에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어머니가 친구 두 명과 함께 딸의 1년 선배를 심각하게 구타했고 그 영상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많은 사람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이렇습니다. 같은 댄스학원을 다니는 1년 터울 두 여학생은 댄스교습 후 함께 술을 마시고 각자 귀가했습니다. 술을 마시고 돌아온 딸을 본 중2 어머니는 딸을 다그치는 중에 중3 언니와 함께 마셨다는 것을 알아냈고, 그 아이를 불러내 본인의 친구 두 명과 함께 무자비하게 구타한 것입니다. 거친 폭력에 아이가 항의하자 가해자는 엄마 같은 심정으로 잘 되라고 때렸다고 했고, 아이는 당신은 우리 엄마가 아니지 않느냐며 맞섰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항변에 가해자는 이렇게 퍼부었습니다. "너는 엄마 없잖아. 이 ***야!(욕설)" 아이는 오래전에 부모가 이혼해 엄마 없이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욕심은 내 것만이 우선이라는 애착에서 나옵니다. 내 딸만이 귀중하기 때문에 내 딸을 망치는 남의 딸은 처단의 대상이 됩니다. 자기 것에 너무 애착한 나머지 남의 것을 해하게 되고, 그 과정에 자기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노후자금을 마련해놓고 그것에 집착해 가난한 친척을 외면하는 일, 동료를 밀어내고라도 내 자리를 지키고 싶어 내 공만 앞세우는 것 등 양심의 문을 닫게 하는 수많은 갈등 상황이 바로 이 시대의 유혹입니다.15년째 장애어린이 합창단 단장을 하고 있습니다. 장애어린이의 부모들도 오랫동안 만났습니다. 그분들은 자기 아이를 보살피기만도 벅찬 상황에서 다른 분들의 아이들까지 서로 걱정하며 보살펴줍니다. 뿐만 아니라 비장애가정인 친척들의 살림도 걱정해 줍니다. 누가 보더라도 부족한 형편인데도 누군가를 도와주려고 항상 마음의 문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이분들이라고 왜 유혹이 없겠습니까? 이분들도 자기 것은 하나라도 더 지키고 싶고, 남과 나누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자녀의 장애에 대한 이 사회의 냉대를 체험하면서, 사랑하지 않으면 나도 이웃도 함께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유혹은 달콤하여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되돌리기 어려운 고통을 초래합니다. 쉽지 않겠지만, 유혹을 거부하고 사랑을 선택하면 그 결과는 오히려 더 달콤합니다. 하나를 지키려는 상황도 알겠고, 이 시대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애착과 집착에서 벗어나 나눔의 문 하나 정도는 열어 놓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유혹은 욕심을 자극해 사랑을 마비시킵니다. 사랑의 마비가 감정조절 장애입니다.이런 사람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괴롭게 합니다. 그러나 자기만을 사랑하려는 유혹을 물리친 사람은 따뜻한 표정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줍니다. 스스로도 행복해지는 것은 물론입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04-22 홍창진

[방민호 칼럼]신동엽을 읽는 봄

금강 제9장 '누가 하늘을 보았다…구름 한송이 없는 맑은 하늘을…'지금 우리들 하늘엔 몇겹의 구름이눈부신 햇살 가로막고 있는가심지어 스스로 하늘이라고도 한다황사라는 말이 미세먼지로 바뀐 지 얼마나 되었나. 오늘은 실로 오랜만에 깨끗한 공기를 맛보는 날이다. 봄꽃들 피었으나 다시 춥고 어둡고 비까지 내려,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았다. 과연 깨끗한 눈으로 세상 본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한갓 큰 것 같지만 작은 정치에 눈이 흐려져 옳은 것, 근본적인 것을 보지 못하던 일이 그 얼마나 많던가. 큰 배를 타고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이 기가 막힌 일들을 겪고 수중 원혼이 되고 이로부터 수년 내 이어진 항의가 모여 새로운 정부가 세워졌건만 그로부터 벌어진 일들 맑기만 했던가.마흔 살 나이로 세상 떠난 시인 신동엽(1930.8.18~1969.4.7)의 전집을 펼쳐들고 서사시 '금강'의 페이지를 열었다. '금강'은 아주 긴 시, 그중에서도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제9장을 사랑한다. 그는 외쳤다."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당신이 본 것은 먹구름, 당신은 그것을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았다.""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아침저녁으로 당신의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줄 아는 사람은 '외경'을 알리라."외경,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공경하면서 두려워함을 이름이다. 그러나, 무엇을 공경하며 두려워한다는 말일까. '금강'은 동학의 이야기다. 제4장에 수운 최제우의 역사가 나온다. 그는 집에 있는 '노비 두 사람을 해방시켜 하나는 며느리로, 하나는 양딸로 삼았다. 가지고 있던 금싸라기 땅 열두 마지기를 땅 없는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었다.' 무상 소리만 나오면 자라 보고 놀란 가슴들 솥뚜껑도 보고 놀라는 우리.'바다의 달' 최시형은 관헌의 추적을 피해 전국 방방곡곡 가지 않은 곳이 없다. 어느 여름 동학교도 서 노인의 집에서 저녁상을 받을 때 바깥에서 베 짜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월이 무슨 소리냐고 묻자 며느리가 베를 짜고 있노라고 대답한다. 이에 해월이 이렇게 말한다. "서 선생, 며느리가 아닙니다. 그분이 바로 한울님이십니다. 어서 모셔다가 이 밥상에서 우리 함께 다순 저녁 들도록 하세요." 하룻밤을 자고 나오는데 그 집 막내아들이 따라 나오며 우는 것을, 서 노인이 쫒아버리려 한다. "이 어린 분도 한울님이세요. 소중히 받드세요."혁명이란 무엇이냐, 신동엽 시인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모두가 평등하게, 아니 한울님처럼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러면 경제적 평등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옛날부터 천도교, 곧 동학에 이르기를, 이 우주의 삼라만상, 산천초목, 짐승과 사람은 모두들,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나 아이나 양반이나 상민이나 돈 가진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이나 큰 하나인 한울로부터 나온 것이니 같다. 평등하다. 높고 낮음 없다.사람들은 평등을 말하면 경제적 평등을 가리키는 것으로만 알고 대경실색들을 한다. 부자도 얼마나 한없이 불쌍하며 가난한 사람도 그 얼마나 깨끗하게 행복한가. 그러나 먹구름을 하늘로 알고 살아오는 우리는 정말로 된 하늘을 보지 못한다.'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과연 우리는 하늘을 보았는가. 나는 하늘을 보았는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을, 영원의 하늘을 본 사람은 외경을 알련만.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각자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 일이니, 바른 주장이려니, 행동이려니, 한다.외경이란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공경할 것을 공경할 줄 알고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할 줄 아는, 그런 사람 되기는 참말 어려운 말이다.우리들 하늘에는 지금 얼마나 두꺼운 구름이 몇 겹씩 끼어 눈부신 햇살을 가로막고 있는가. 그래도 저마다 하늘을 보았노라고 한다. 심지어는 스스로가 하늘이라고도 한다. 아무도 두려움을, 공경을 알지 못한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9-04-15 방민호

[이남식 칼럼]오래된 새로운 비즈모델 '구독경제'

넷플릭스 선도… 애플도 가세 형국소유 아니라 접속하는 형태로 변화가정식등 많은 서비스 새롭게 부상한국, 5G 상용화 '최적 인프라' 갖춰기회 살리는 지혜 모아야 할 때다지난 3월 25일 애플사는 동영상스트리밍 서비스인 'TV+'와 무제한으로 잡지와 신문을 구독하는 'NEW+'를 매월 9.99달러에 제공하는 서비스를 발표하였다. 넷플릭스가 선도하고 있는 구독경제에 애플도 가세하는 형국이다. 구독경제는 매월 도서나 음반을 받거나 또는 신문이나 잡지의 구독 등으로 익숙한 형태이며 현재에도 인터넷 사용+IPTV+전화, 음악스트리밍 등을 월정액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제레미 리프킨은 이미 2000년 인터넷의 시대가 열리면서 '접속의 시대 The age of access'라는 저서를 통하여 앞으로는 소유에서 접속하여 사용하고 체험하는 시대로 바뀔 것을 예측하였다. 스마트 폰의 보급과 5G 시대가 열리면서 이제 접속에 들어가는 한계비용이 0에 가깝게 되다 보니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접속하고 사용하는 형태로 급속히 바뀌고 있다. 최근 현대 자동차에서는 월정액을 내면 다양한 차량을 마음대로 바꾸어 타는 서비스를 시험하고 있으며 밀리의 서재와 같은 도서의 무제한 대출, 윌라와 같은 오디오북과 강연을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구독 서비스 등 네트워크효과에 의한 플랫폼비즈니스들이 수익모델을 광고에서 구독형모델로 전환하는 경우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유튜브의 경우도 광고가 없는 유튜브레드로의 전환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경제적으로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는 구독경제에 대해 긍정적이며 기업의 입장에서도 한 번 고객이 구독을 시작하면 이탈하기가 어려우며 매월 수입이 보장되므로 안정적인 사업이 가능한 구독모델을 선호할 수 있다. 동영상스트리밍의 경우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엄청난 투자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벤처캐피털의 경우 이러한 구독 및 플랫폼 모델에 대해서는 거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으므로 보다 보편화 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과거와 달리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통하여 기존의 오래된 비즈니스 모형이 바뀌고 있는데 바로 대세가 구독경제인 것이다. 화장품, 가정식 또는 명품가방에 이르기까지 월정액을 지불하고 사용하게 되는 많은 서비스들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구독경제에는 대체로 네 가지 유형의 비즈모델이 있는데 첫 번째가 정기배송 모델로 전문가의 큐레이션과 정기배송이 결합된 형태로 나타나며, 두 번째는 무제한 이용 모델로 월정액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무제한 이용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고가품 렌털 모델로 자동차, 안마의자, 가구 명품의류 등의 품목이 이에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클라우드 구독 모델로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나 어도비, 구글, 아마존이 이러한 서비스를 각사의 클라우드와 연동하여 서비스하고 있다. 향후 자율주행차, 아파트 등 거주 공간, 매일 식사, 무제한 의료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수많은 오프라인 서비스들이 구독경제의 형태로 바뀌어 나가게 될 것이다. 향후에는 고객의 영향력이 과거와 판이하게 커져서 고객의 추천과 좋아요의 힘이 더욱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결국 공유 경제가 진일보하여 구독경제로 전환되며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보다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 최초로 5G 서비스를 상용화하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새로운 구독서비스를 시험 평가할 수 있는 좋은 인프라를 가지게 되어 국내에서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를 창안하여 시험한 뒤 전 세계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과 환경 그리고 비즈니스모델을 통합하여 기회를 살리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서 승자 독식과 새로운 독과점이 심화되기 때문에 우리 산업은 계속 변방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향후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등의 신흥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구독경제를 구축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구상해야 할 시점이다./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

2019-04-08 이남식

[윤상철 칼럼]아랫목이나 윗목이나

국민총생산 세계 11위 오른 한국'삶의 질'은 20위권 후반 머물러소득주도성장, 자영업자 좌절 초래국가는 부자지만 국민은 가난해장기적 관점서 정책 처방 찾아야현재의 86세대는 1980년에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접했다. 군부권위주의정권 시대에 접했던 정보사회의 예언서에서 불과 15년쯤 후를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구로공단의 여공들과 청계피복노조의 전태일, 그리고 중화학공업의 산업재해와 중동건설 붐을 경험했던 세대들에게 정보화는 열악한 노동으로부터 인간의 해방을 열어주는 신기루였을까?그 후 40여년이 흐르면서 민주화도 산업화도, 그리고 정보화도 성취해냈다. 국민총생산은 세계 11위를 점하고, 1인당 국민총소득은 3만달러를 넘어섰으며, 인구가 5천만이 넘는 한국은 이른바 30-50클럽에도 들어갔다. 그 클럽의 회원국은 한국을 제외하면 모두 G7국가들이다. 그러나 정치체제는 민주공화국을 완성시키기 위한 적폐청산에 매진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사회적 균열과 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그러나 냉정하게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40위권을 맴돌다가 작년에는 31위 수준이다. '삶의 질'은 20위권 후반에 머물고 있다. 놀랍게도 작년도 가계 1인당 가처분소득이 1천900만원 선에 그치고 있다. 국민들은 처한 위치에 따라 엄청난 혼란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경기불황, 실업, 가계부채 등에도 불구하고 연휴기간 동안 인천공항을 채우는 여행객들, 여전히 성업 중인 고급 식당들, 부동산 투자로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는 소식들은 누군가의 소득은 3만불을 훨씬 상회하리라고 믿게 한다. 소득 양극화에 대응하여 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정책을 내걸었다. 그러나 중산층의 배아픔이나 상류층 따라잡기 욕망을 해소하기보다 하위 1분위 저소득층의 배고픔과 소득저하 그리고 자영업자의 좌절을 초래했을 뿐이다. 정규직 중심의 고용시장 재편이 자본의 반발과 양극화의 심화를 낳았을 뿐이다. 부동산으로 인해 자산증가율이 소득증가율을 앞지르고 나아가 높은 이자와 조세 부담을 지움으로써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켰다는 진단에서 내놓은 정부의 반시장적 부동산정책은 불과 1년 사이에 서울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이전 정부 4년에 필적할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전 청와대 정책실장, 청와대 대변인, 여당 시의원의 뉴스들은 정책입안자들조차 믿지 않은 정책에 따르고자 했던 대중들을 격앙시키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 경제주체들이 GDP에 기여한 비중은 가계 56%, 기업 20%, 정부 24%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에게는 동반성장정책, 사내유보금 과세, 정경유착 청산과 정규직화,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등이 제안되었고, 국가주도의 일자리 창출이 현 정부 내내 진행되었다. 그러나 국가는 부자이지만 국민은 가난한 현상황을 바꿀 것 같지 않다.문재인정부도 어느덧 집권 3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한국사회의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지난 2년간의 진단이나 처방이 타당하거나 효과적이었다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미 레임덕의 문턱에 이르렀다. 미시적인 대증요법으로는 경제와 사회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선지 정부는 내부 구조조정보다는 불확실한 외부시장확대전략에 의존하고 있었던 듯 하다.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개척처럼 북한을 시장으로 편입시키고 나아가 그를 발판으로 더 먼 유럽까지의 길을 열고자 했지만 그 결과를 지금이나 현 정부의 집권 기간 내내 확언하기는 어렵다. 세대, 성별, 지역 등 우리나라의 사회적 균열의 양 축 간의 양보와 타협으로 극복할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우리 사회의 어떤 주체들도 그렇게 할 의지와 리더십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데서 원인을 진단하고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적 처방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제3차 산업혁명의 냉기가 국민의 피부에 와 닿기도 전에 제4차 산업혁명의 한기가 함께 몰려오고 있다. 세상은 더 글로벌화되고 대외적 환경은 더욱 비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 방안의 한기가 이불과 구들의 문제가 아니라 더 먼 데서 날라와 벽 틈을 타고 오는 것이라면……./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9-04-01 윤상철

[이영재 칼럼]그래도 인사 청문회는 계속되어야 한다

여·야 바뀌어도 출연진만 다르고 변함없어청와대 '7대비리 배제' 내놓고도 의혹 나와인식 바뀌지 않는 한 무용론 끊임없이 제기그래도 큰 꿈 그리는 '누군가'가 있을지도천막 안에는 사람들이 쭈그리고 앉아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불이 하나둘씩 꺼지면 장내는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곧 영화가 시작될 것이다. 뿌연 먼지를 가르며, 영사기에서 뿜어지는 강렬한 빛이 비치기 시작하면 일순간 적막이 흐른다. 초라한 하얀 천 위에서는 온갖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긴박한 순간마다 여기저기서 관객의 탄식이 터져 나온다. 개봉관과 재개봉관을 모두 거치고 마침내 여기까지 온 필름에는 시종 비가 내렸다. 그래도 좋았다. 모두 분위기에 취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이윤복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와 김승호의 '마부'도 아마 그 천막극장에서 보았을 것이다. 마침내 영화가 끝나고 천막이 걷어지면 사람들은 뿔뿔이 밤길 속으로 사라졌다. 조금 전 사람들이 모여 웃고 울었던 공간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공터는 순식간에 텅 비었다. 그 허전함이란. 급조된 영화관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예외 없이 모두 TV 앞에 모였다. 이제 곧 장관 인사청문회가 시작될 것이다. TV 카메라 조명이 강렬한 빛을 발하며 카메라에 빨간 불이 켜지면 드라마가 시작된다. 물론 줄거리는 뻔하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의혹투성이인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TV 앞에 모인 건 이번만은 뭔가 다르겠지 하는 한 가닥 희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작심한 듯, 또 맥빠진 질문에 뻔한 답을 쏟아낸다. 2000년부터 우리는 TV를 통해 많은 인사청문회를 보았다. 달라진 것은 출연진뿐, 예외 없이 위장전입, 논문표절, 투기의혹, 이중국적 등은 변함없는 주요 레퍼토리였다. 여·야가 뒤바뀌어도 늘 그 타령이었다. 정쟁의 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늘 수많은 의혹이 있었지만, 면피성 답변만을 듣고 결국은 통과의례이거나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청문회는 막을 내렸다. 그들이 떠난 텅 빈자리 역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적막만 남았다. 그 허전함이란. 그때마다 '청문회무용론'이 제기됐다.청문회가 늘 이런 식으로 시작하고 끝나자 지난해 청와대는 획기적인 안을 내놨다. '고위 공직 후보자 임용 7대 비리 배제 원칙'기준안이 그것이다. 위장전입, 불법 재산증식, 논문표절 등 7개 조항에 위반되면 아예 공직에 나서지 못하게 한 것이다. 국민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렇지! 역시 촛불 정부는 달라도 무언가 다르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인사청문회에서도 후보자의 위장 전입, 논문 표절, 탈세 의혹 등이 제기됐다. 7대 원칙이 무색해진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실망한 국민을 달래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그럼에도 청와대는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함으로써 '청문회 무용론'에 불을 지폈다. 그렇게 해서 임명한 장관의 수가 벌써 10명이 넘는다. 지난 1월에는 자유한국당이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의 전력을 문제 삼아 반발하며 국회 일정을 전면 보이콧하자 청문회도 없이 그를 위원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일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청문회 때 많이 시달린 분들이 오히려 일을 더 잘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해 국민을 놀라게 했다.인사청문회는 해당 공직에 걸맞은 능력을 가리는 건 물론 임명권자가 발견하지 못한 비리 등의 결격사유가 있는지를 꼼꼼하게 따지자는 데 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를 공직 임명 통과의례 정도로 보는 청와대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청문회 무용론'은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다. 이번 청문회에 나온 7명 후보자 역시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도 청와대는 이들을 장관으로 임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이런 청문회는 없었다'는 비난이 쏟아지겠지만, 그래도 청문회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밤하늘의 별이 보이는 초라한 천막극장에서 낡은 영화를 보며 '누군가' 세계적인 영화감독의 꿈을 버리지 않았듯이, 이런 한심하고 터무니없는 청문회를 보면서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국가와 국민에게 헌신하는 큰 꿈을 그리는 단 한 명의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3-25 이영재

[전호근 칼럼]늦게 도착한 시집

석달 지나 발견한 '파일명 서정시'쉽게 꺼낼 수 없는 두려운 말 가득표현하지 못하고 소리·가락 이룬 것 파일서 해방돼 시어 만끽하고 싶어그러기엔 다물어야 할 입 너무 많다며칠 전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경기도 용인)에 갔다가 어지럽게 뒤섞인 행정실 우편물 더미 속에서 나희덕 시인이 보내온 시집 《파일명 서정시》를 발견했다. 겉봉의 우체국 소인에는 분명히 '2018.11.23'이라 찍혀 있는데 대관절 어찌하여 석 달도 더 지난 지금, 계절마저 바뀐 뒤에야 내게 왔단 말인가. 게다가 적힌 주소는 서울 회기동인데 어디를 떠돌다가 이곳으로 배달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이태 전 시인의 산문집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달, 2017)를 읽으며 사소한 일상에서 커다란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글에 감탄했던 나는 이번에도 비슷한 기대감을 품은 채로 시집을 펼쳤다가 그만 아픈 데를 찔린 병자처럼 지금껏 움찔거리고 있다.나는 시인이 이전에 펴낸 또 다른 서정 시집을 여러 권 가지고 있다. 서정시라는 말에 어울릴 만큼 하나같이 아름다운 시어들로 가득한 시집들이다. 하지만 이번 시집에는 쉽사리 입에서 꺼낼 수 없는 두려운 말들로 가득하다. 후기에는 시인의 고백이 이렇게 적혀 있다."이빨과 발톱이 삶을 할퀴고 지나갔다 / 내 안에서도 이빨과 발톱을 지닌 말들이 돋아났다 / 이 피 흘리는 말들을 어찌할 것인가 / 시는 나의 닻이고 돛이고 덫이다 / 시인이 된 지 삼십년 만에야 이 고백을 하게 된다"닻과 돛과 덫. 세 단어의 받침에 웅크린 'ㅊ'이 마치 가시처럼 보였다. 과연 시에는 상처 자국이 선연하다. 그래, 가시가 여기저기 걸려서 오는 길이 이렇게 험하고 더디었구나. 닻은 내리고 돛은 올리고 덫은 걸리는 것이다. 시인은 어쩌면 돛을 올려 다다르거나 닻을 내리고 잠시 머무는 장소를 찾으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읽히는 시(<기슭에 다다른 당신은>, <여기서는 잠시>)가 드문드문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이 어디든 덫에 걸려 몸부림 친 흔적이 역력하다. 덫은 땅 위(<이 도시의 트럭들>)와 땅 아래(<혈거인간>), 바다 속(<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과 바다 밖(<난파된 교실>), 심지어 하늘(<새를 심다>)에도 촘촘히 펼쳐져 있다. 시인이 그간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디어 왔는지 느껴져 책장을 넘기는 손이 무겁다. 시에는 지난 몇 해 동안 시인이 무엇을 보았는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 비극적인 2014년 4월 16일 이후 시인은 이렇게 썼다."(...)지금도 교실에 갇힌 아이들이 있다 / 책상 밑에 의자 밑에 끼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리와 / 유리창을 탕, 탕 두드리는 손들, / 그 유리창을 깰 도끼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난파된 교실>의 마지막 단락)"아마도 이 시는 시인이 걸린 덫 중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 흔적일 테다. 이 외침 때문에 시인은 지난 정권 시절 세 곳의 기관으로부터 불온한 자로 지목당하여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아이들의 절규를 대신한 이런 시가 불온하게 여겨졌다면 그런 마음이야말로 정말 불온한 것 아닌가?남송의 철학자 주희는 '시란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남은 것들이 모여 소리와 가락을 이룬 것'이라 했다. 그러니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어야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주희의 이 말에 따르면 시는 말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말이 끝나는 지점에서, 말이 멈추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없는 이는 시를 쓸 수 없다. 나희덕 시인의 이 시는 차마 말로 옮길 수 없는, 가슴 아픈 진실을 적어낸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시인은 또 다른 덫에 걸려 괴로워할 수밖에 없고 그 말할 수 없는 상처가 다시 시가 되어 이렇게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덫에 걸려 괴로워하지 않았다면 이 시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덫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독자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나는 언젠가 예전에 그랬듯 시인이 닻을 내린 곳에서 저녁이 오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새벽녘 능선 위에 쉬고 있는 상현달에서 신의 모습을 보고 싶다(<상현(上弦)>). 그래서 파일에서 해방되어 반짝이는 시어들을 만끽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아직 다물어야 할 입들이 너무 많다. 어둠이 너무 짙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3-25 전호근

[이명호 칼럼]기후변화 무관심이 불러온 재앙 '미세먼지'

에너지 사용·지구온난화로 발생오염 적은 '비싼 원료로 대체' 중요재택근무 등 탄력제도 확대 필요국내 에너지소비 매년2~3%씩 증가'적게 쓰는 경제' 생활화 전환 시급연일 미세먼지가 기승이다. 국가 재난사태라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여름 무더위는 저리 가라다. 한때 미세먼지는 고등어구이가 원인이라고 하여 논란이 일더니 지금은 원전과 중국발 원인 논쟁까지 겹쳐 진영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어제는 죽은 도시와 같은 하늘이 오늘은 청명한 하늘로 바뀐다. 기상이 미세먼지의 운명을 좌우한다. 우리 조상들이 기우제를 지냈듯이 하늘에 빌어야 할 상황이다. 그럼 기후가 좋으면 미세먼지는 발생하지 않는 것인가? 중금속과 응착된 발암물질로 분류될 정도로 건강에 해로운 미세먼지는 매일 거의 일정량 발생하고 있다. 모래바람이나 황사 등 자연에서 발생하는 먼지는 대부분 해롭지 않다. 해로운 미세먼지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대기 정체로 미세먼지가 농축되거나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미세먼지가 우리나라에 도달하면 그때 고통이 시작된다. 기후를 통제할 수 없는 이상 우리는 '미세먼지 매우 나쁨'의 확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공강우나 바람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기후를 통제하는 시도가 있지만, 다른 지역으로 오염이 이동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결국 효과적인 방법은 미세먼지 발생을 줄이는 것이다. 기상 조건을 제외하고 미세먼지 발생 원인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결과는 명확하다. 석탄발전을 포함한 연료연소, 자동차와 같은 이동오염원 배출이 가장 큰 원인이다. 특히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교통'에서 발생한다.그래서 미세먼지 대책으로 석탄발전소에 저감장치 부착, 석탄보다는 LNG(천연가스) 연료사용, 경유차 운행 제한, 심한 경우에는 차량 2부제 등이 실시되고 있다. 이와 같은 것이 미세먼지 발생단계에서의 조치라면, 공기청정기(가정용 또는 스모그타워)는 발생된 미세먼지를 흡착하여 감소시키는 방식이다. 어떤 방식이든지 부수적인 비용을 발생시킨다. 미세먼지에 대한 근본 대책은 없는 것일까? 산업화를 미리 겪은 선진국들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공장 굴뚝의 매연을 성장의 상징으로 여기던 시기를 지나 1930년대부터 선진국에서 매연(스모그)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최악은 1952년 영국 런던의 템스강 유역에서 발생한 스모그로 3주 동안 4천여명이 사망했다. 이후 선진국들은 공장의 도시 밖 이전, 오염공장이나 에너지를 많이 쓰는 산업의 개도국 이전, 석탄사용 감축,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 에너지를 적게 쓰는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쳤다. 수십 년에 걸친 이러한 노력으로 개도국이 선진국보다 더 대기오염이 심각한 상황으로 역전되었다.결국 미세먼지는 에너지사용의 문제, 기후변화(지구온난화)의 문제이다. 전체적으로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오염이 많은 싼 에너지에서 오염이 적은 비싼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 방안이다. 정책적으로 에너지가 비싸 사용을 줄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지구온난화의 경고를 무시했다. 우리나라는 전기료가 싼 나라이다. 더운 여름에 손님을 끌기 위에 문을 열고 에어컨을 켤 정도로 에너지를 싸게 생각한다. 무더위를 에어컨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이는 대기를 더 덥게 한다. 미세먼지도 공기청정기로 해결할 수 없다.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또 다른 방법은 교통수요, 이동을 줄이는 것이다. 특히 수도권의 출퇴근 시간은 1시간 30분이 넘어 세계 최고다. 긴 이동 시간, 거리만큼 미세먼지가 더 발생한다. 차량 제한을 넘어 이동하지 않는 방법을 실시해야 한다. 재택근무다. 여러 연구들은 재택근무가 온실가스 감축에 효과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미세먼지 대책으로 시도지사가 재택근무를 포함한 탄력근무를 민간에 권고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실시되지 않고 있다. 제도적으로 재택근무, 화상회의 등 원격근무를 확대해야 한다. 선진국들은 대부분의 업무를 재택근무로 수행하는 비율이 5%를 넘고 네덜란드는 14%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순수한 재택근무는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다.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2000년대 들어 에너지 소비가 감소추세로 돌아섰는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매년 2~3%씩 증가하고 있다. 동일 부가가치 생산에 OECD 평균보다 1.5배 에너지를 더 쓴다. 1인당 에너지 소비도 OECD 평균보다 30% 많다. 에너지를 적게 쓰는 경제, 생활로 빨리 바꿔야 한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9-03-18 이명호

[홍창진 칼럼]상실

보이지 않는 가치 '사랑' 잃어버려마음 한구석 인두로 지진듯 '아파'자기중심적 사람 이웃에게 상처만사랑한것 후회도 괴로워도 마세요서로 다독여주며 살아가면 되기에살면서 생기는 아픔 중에 가장 큰 것은 상실로 인한 아픔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이나 사고로 생긴 아픔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회복됩니다. 그러나 상실로 생긴 아픔은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마치 마음 한구석을 인두로 지져놓은 것처럼, 이 아픔은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사라지지 않습니다. 상실은 어떤 대상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눈에 보이는 물질을 잃어버리는 것은 상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재산을 잃어도 회복할 수 있다면 상실이 아닙니다.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 역시 상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상실이 아니라 분실입니다. 상실은 보이지 않는 소중한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사랑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평생을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했는데 그는 나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관심조차 두지 않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크나큰 상실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가치인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육십 대 중반의 어느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이 어머니는 최근 상실의 아픔으로 식사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매일 다니던 성당에도 발길을 끊었습니다.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했고 아들 역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는데, 아들로부터 사랑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사랑을 상실했습니다.그분은 몇 년 전에 남편과 사별한 뒤 모든 유산을 아들에게 넘기고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매달 아들이 보내주는 소정의 생활비로 풍족하진 않았지만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생활비가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리다 못한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전화를 하면 아들은 그제야 짜증을 내며 돈을 보내왔습니다. 아들의 형편이 걱정이 돼 연락도 못하고 기다리면, 두 달이 지나서야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견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부부가 찾아와 이제부터 어머니를 편히 모시고 살겠으니, 살고 있던 어머니의 집을 팔고 살림을 합치자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선뜻 그러자고 허락하고 아들의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편히 모시겠다던 아들 내외는 살림을 합친 뒤 돌변했습니다. 용돈을 주기는커녕, 어머니를 혼자 둔 채 자기 식구들끼리 외식을 하러 나가기도 하고, 해외여행을 가면서도 빈말이라도 함께 가자는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그저 손주들 뒷바라지만 시켰다고 합니다. 결국 어머니는 아들에게 다시 살림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정신이 나갔느냐", "돈이 어디 있느냐"며 화를 내더라는 겁니다. 아들의 사랑을 잃어버린 어머니는 상실에서 오는 아픔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어 지금까지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도 자신을 사랑하는 줄 믿고 아들의 사랑을 간직하고 살다가 그만 그 사랑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어머니 입장에선 상실이 분명합니다. 세상에 사랑보다 더 큰 가치는 없습니다. 사랑보다 재산을 더 탐한 아들의 욕심 때문에 어머니는 깊은 상실을 겪고 말았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랑의 가치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모두 사랑의 고리로 인연을 맺고 살아갑니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 물론이고 이웃과 친구와 동료에 이르기까지 크기에 차이는 있어도 모두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를 잘 살펴보면 유독 자기중심적인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이웃에게 상처를 주게 마련입니다.그러나 결국 사랑이 많은 사람이 세상을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한 것을 후회하지 마십시오. 상실감으로 괴로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랑을 재주로 타고난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면 됩니다. 우리가 사랑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상실로 괴로워하는 이웃을 사랑으로 서로 다독여주면서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03-11 홍창진

[방민호 칼럼]하노이발 뉴스에 관하여

우리는 통일이라는 것을 단순하게정치·경제로 논할 수 있는게 아냐'한국인' 인류적 종 존속위해 필요냉정과 침착속에서 서로 공존하고北동포들과의 미래위한 슬기 모아야하노이발 뉴스를 접하고 선배 작가 한 분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글쎄요. 저는 언젠가부터 현안에 어두워져서 잘 모르겠는데요, 했다. 다른 한 분은, 충격이라니, 나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난 것부터 의외였거든, 하고 들뜬 사람들을 쉽게 타박한다.지금 청년들 중에는 이데올로기에 찌들고 가난한 북한 싫다고 통일이 절대적 필요 명제는 아니라 한다. 입만 벌리면 경제, 경제하고 경제병 걸린 나이 든 분들도 우리 먹고살기도 바쁜데, 한다. 아무리 속물적으로 느껴지더라도 그 안에도 일단의 진실은 있다고 봐야 한다.필자로 말하면 386세대, 어려서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배우며 자란 세대의 일원이다. 유신체제 때 '국민학교'를 다녀,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줄 알았고, 국가와 민족을 지상 명제로 끌어안고 성장했다. 이른바 '범생'이었기에 다른 친구보다 더하면 더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것도 철학이 아니라 국민윤리였으니, 왜 국민 윤리가 철학보다 먼저이고 철학은 중고등학교 과정에 있지도 않은 건지 물음표조차 생기지 않았다.이 국가 교육 때문에 생긴 부작용의 하나는 강렬한 정치 감각일 것이다. 필자가 서울로 대학에 진학하게 되자 부모님은 절대 현실 문제에 휩쓸리지 말고 공부만 하라 당부하셨다. 그러나 한 일 년 지나는 사이에 사람이 달라져 버렸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유신 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와 민족이 어디로 가는지, 민족중흥의 사명을 띠고 태어난 자들이 어떻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조국'의 통일이라는 것도 필자에게는 처음에는 그런 차원에서 당위적인 명제로 받아들여졌다. 1945년 해방과 독립이 미완에 그쳤고 그나마 분단으로, 전쟁으로 치달았으니 원래의 상태를 회복해야 함은 당연지사 아닌가. 그래도 '통일 지상주의'에는 용케 빠지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나중에는 우리나라가 섬 같아서 갑갑해졌다. 동서남 쪽이 모두 바다에 접해 있고 북쪽은 철책으로 가로막혔으니 어디 먼 곳으로 떠나기도 어렵지 않은가. 비행기 타고 날아가면 되지 않느냐 해도 땅을 밟고 바깥 풍경이 시시각각 변해가는 것을 보는 것과 공중 이동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해야 한다.여행 핑계를 댔지만 사실 어디 여행 같은 문제일 뿐이겠는가. 아무리 세계화, 국제화가 전개되어도 한국 사람들의 '고인 물' 같은 우물 감각은 좀처럼 벗을 수 없는 것이 위쪽 통로가 막힌 데도 이유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대륙에서 내려온 사람들인데 그 대륙과 살을 맞대고 살 수 없는 상황은 사람들을 비좁게 만들기 쉬운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부터 신채호를 즐겁게 읽는다. 그는 한말의 유생 출신으로 비범한 재능과 목숨을 건 공부를 통해 '조선사'의 '비밀'을 캐내는데 접근할 수 있었던 드문 선각자였다. 사람들은 그가 역사를 주관적으로 해석했느니, 상상과 공상이 많았느니 하지만 비난은 쉽고 깊이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과연 중국 청대의 사고전서를 접하여 우리 역사책에 잘 안 나오는 우리 역사를 사리에 맞게 맞추려 한 사람 얼마나 되던가. 이 선생 신채호를 통해 역사라는 것을 생각해 보건대, 대저 역사라는 사람살이의 기억은 만만히 볼 것 아니요, 경제나 정치 따위로 논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한 인류적 종의 '자연사'를 정리해 놓은 것이니, 이것 없이는 그 종의 현재의 삶도 있을 수 없고, 현재를 살아도 덧없는 삶에 그치기 쉽다. 우리는 통일이라는 것을 단순히 '정치적', '경제적' 같은 '현재' 때문에만 아니라 이 '한국인'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한 인류적 종의 존속을 위해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무슨 무슨 '지상주의자'는 되지 않아야 할 일이다. 냉정과 침착 속에 우리 안에서도 서로 공존하고, 북한 동포들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미래를 위한 슬기를 모아야 할 때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9-03-04 방민호

[이영재 칼럼]3·1운동 100주년 그리고 미당 서정주

'친일' vs '천재시인'… 극과 극 갈리는 평부천 상동 '시와 꽃이 있는 거리'에서 퇴출시비 놔둔채 '친일 시를 쓴 시인' 표시했다면'변절 목도' 교육효과 클수도… 철거 아쉽다여기 서정주의 '동천(冬天)'이란 시가 있다. 짧은 시니 전편을 인용한다. '내 마음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국어선생님은 교과서에 게재된 '국화 옆에서'와 함께 교과서에 없는 이 시를 해설해 주었다. 그러면서 "서정주가 아니면 절대 쓸 수 없는 시"라며 "미당은 100년에 한 번도 나올 수 없는, 두보와 견줘도 손색없는 시인"이라고 말했다. 40년 전이다.칼날 같은 바람이 부는 매서운 겨울. 들판엔 눈이 쌓여 있고, 연처럼 하늘에 걸려 있는 초승달. 어느 한자도 넣을 수도, 뺄 수도 없을 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시어(詩語). 마치 겨울 풍경을 찍은 한 장의 사진 같다. 그래서 처연하다. 그날 선생님의 이 시에 대한 해석은 대충 이렇다. "일체의 설명적 요소를 배제하고 고도의 압축과 상징으로 이루어진 상징시다. 짧은 시 형식과 상징이라는 표현 기법을 통해 강렬한 언어 긴장을 이루며 인간 본질의 탐구라는 무거운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정제된 미의식을 드러낸다".하지만 서정주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오직 시만 가지고 논할 때 그의 이름 앞에는 '살아 있는 한국 시사(詩史)' '시선(詩仙)'이라는 찬사가 붙지만, 친일·친 독재 전력에 이르면 그의 이름은 '다츠시로 시즈오'가 되고, 전두환 생일에 축시를 쓴 파렴치한 시인이 된다. '꽃'의 시인 김춘수는 "미당의 시로 그의 처신을 덮어버릴 수는 없다. 미당의 처신으로 그의 시를 폄하할 수도 없다. 처신은 처신이고 시는 시다."라는 말로 그의 이런 전력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 때문에 시인의 고향에서조차 미당을 내놓고 자랑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비극의 역사가 만들어낸 또 다른 비극인 셈이다.부천에서 미당 서정주가 퇴출당했다. 부천시 상동 상도중학교 뒤 '시와 꽃이 있는 거리'에 세워져 있던 그의 시비 '동천'이 지난 13일에, '국화 옆에서'가 어제 철거된 것이다. 미당의 시비는 지난 2008년 상동 주민자치위원회가 부천문화사업과 연계해 '시와 꽃이 있는 거리'를 조성할 때 세워졌다. 이곳에는 노천명의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와 주요한의 '샘물이 혼자서'가 있었지만 모두 친일 논란 끝에 철거됐다.2015년 서정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우린 문단엔 미당 재평가 바람이 불기도 했었다. 그의 시를 아끼는 후학들이 '미당 서정주 전집' 20권을 완간하기도 했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먹히는 듯했다. 하지만 3·1 운동 100주년의 거센 바람 앞에서는 천하의 미당도 버티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시비철거가 결정되자 부천시의 정치권, 시민사회 등에서는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며 크게 환영하고 있다고 한다. 정재현 시의회 행정복지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친일 잔재를 없애는 것은 민중에게 서러운 삶을 안긴 엉터리 지도자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며칠 후면 3·1 운동 100주년이 된다. 여기저기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3·1 운동의 명칭을 '3·1혁명'으로 변경하자는 말이 집권당 대표 입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물론 친일 시인을 쫓아내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을 나무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역사 바로 세우기'를 목적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어버리자 우리 국민들은 환호했다. 그때는 흉물스런 조선총독부 건물만 철거되면 일제 잔재가 모두 사라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건물을 그냥 두고 우리의 아픈 역사를 가르쳤다면 효과가 더 컸을 것이란 자성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철거만이 능사는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미당의 시비도 마찬가지다. 시비는 그냥 놔두고 그 옆에 '친일 시를 쓴 시인' 정도로 작은 표시를 해 두었으면 어땠을까. 우리 언어를 한 단계 승화시킨 시를 쓴 '천재시인의 변절'을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교육 효과는 더 클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당 시비 철거소식이 못내 아쉬운 것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2-25 이영재

[이남식 칼럼]국민이 행복한 나라

GDP 10위권 불구 '행복지수' 낮아사회에 만연한 불신과 갈등 '심각'손익 얽매여 대립하는것 피하려면미래에 대한 목표·방향 설정 필요올해엔 '국가미래기본법' 입법 기대매년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UN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가 발간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156개국 중에서 57번째로 행복한 나라라고 조사되었다. GDP면에서는 세계 10위권임에도 불구하고 국민행복순위에서는 크게 처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예전에 비하여 경제적인 삶의 질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신과 갈등이 우리의 삶을 피곤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진보와 보수, 소득 계층, 세대, 지역, 노사, 심지어는 전기 생산 방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슈에 대하여 갈등과 대립이 심각하다. 터널의 끝이 언제 끝날지 모를 때 사람은 불안을 느끼고 견디기 어렵다. 하지만 언제 끝나는지를 미리 알 수 있을 때에는 훨씬 쉽게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훨씬 편하고 사회 전체적인 신뢰 수준이 훨씬 높아지게 될 것이다. 즉 우리 사회에는 과거와 달리 미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름대로 선거공약을 기반으로 2020 2030 같은 미래비전을 내어 놓지만 수많은 정책 과제의 나열이며 그나마 정권이 바뀌면 지난 정부의 정책 과제는 사라지고 만다. 지난 20년만 보더라도 국가균형발전 - 녹색성장 - 창조경제 - 소득주도 성장 등으로 슬로건이 바뀌어 왔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이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것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이 정부마다 차이가 있을 뿐인 것이다. 하지만 매 정부에서 주장하는 것이 과연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민의 행복에 어떻게 기여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없이 새로운 슬로건으로 바뀌어 여야 간에 극한적인 대립과 갈등이 반복되니 국민들은 별로 행복하지 못하다. 핀란드의 경우 의회 내 미래상임위원회(The Committee for the Future)에서 다양한 미래이슈에 대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행정부에서 내어 놓는 미래 보고서를 평가하여 방향성에 대한 제시를 하고 새로운 기술이나 사회적 변화가 미칠 영향에 대하여 예측한다. 2015년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핀란드의회와 미래전략 연구에 대한 논의 후에 국회의 선진화를 위하여 국회미래연구원 안을 내어 놓았으며 정세균 전 국회의장 때에 여야 합의로 2018년 5월 국회미래연구원이 출범하게 되어 향후 국회에서 국가 미래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행정부 내에는 미래를 전략적으로 다룰 기능이 명문화되어 있지 못하므로 국회 내의 연구회 중의 하나인 국회미래정책연구회(회장 정갑윤 의원, 이주영, 조경태, 나경원, 이혜훈, 홍문종, 원혜영, 김부겸, 조배숙, 신경민, 유승희 의원 등 여야 30여 의원이 회원)와 국제미래학회, 그리고 한국헌법학회가 지난 8개월여의 협력을 통하여 국가미래기본법을 발의하게 된 것은 매우 다행이 아닌가 한다. 국가미래기본법의 골자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국가미래전략위원회를 두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①기후변화, 지진, 토양, 해양 등 자연환경, ②경제, 산업, 과학기술, ③교육, 문화, ④인구, 복지, ⑤정치, 지방자치, 통일, 외교 등에 대한 미래전략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이에 대한 미래대응체계를 만들어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며 국회에서는 장기적인 국회미래에 대한 여야의 합의를 이루어 이를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입법과 예산심의를 통하여 불확실성과 불필요한 대립과 갈등을 막도록 하자는 것이 기본 취지이다. 이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견제와 균형 협력에 매우 이상적인 모형이 아닌가 한다. 10년 20년 뒤의 미래에 대해서는 여야 간에 더 나가서 국민 모두에게 이견이 별로 없을 것이다. 당장의 손익에 매몰되어 대립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미래에 대한 확실한 목표와 방향을 먼저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제 진정한 포용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확실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만들어 서로 방법론에는 이견이 있을지언정 우리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행복해 질 수 있는 미래를 향하여 나가기 위하여 올해 내에 국가미래기본법이 국회에서 입법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

2019-02-25 이남식

[윤상철 칼럼]열지 못한 세대, 닫혀가는 세대

유튜브·페북·밴드·카톡 SNS매체유유상종·동종교배 네트워크 작동정치 '적폐 對 개혁'등 흑백균열 심화소통도 대안도 없이 분열사회 남겨민주화 불구 '그 그늘' 못 벗어난듯이른바 '밀레니얼세대'가 '꼰대' 586세대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수메르인들처럼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라고 점토판에 쓰거나 소크라테스처럼 "요즘 아이들은 폭군과도 같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대들고, 게걸스럽게 먹으며, 스승을 괴롭힌다"고 말할 수 없는 한국의 꼰대들은 우왕좌왕할 뿐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태어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성인이 된 20대 '밀레니얼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로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대면커뮤티케이션보다 온라인,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에 더 익숙하다. 간결하고 즉각적인 소통을 선호하고 줄임말을 구사하고 막말이나 아무 말도 서슴지 않는다. 수평적이고 효율적인 소통에 익숙하고, 정보수집에 능하며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중심의 세계를 설정하고, 사회적 인간으로서 기성세대와 그들의 사고, 이미 주어진 사회 및 세계에 적응하는 데 어색하다. 불합리성, 불공정성, 불투명성 모두에 적대적이고 고리타분하고 형식화된 절차를 기피한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도 업무는 스스로 구획하려 하고, 상사의 대화시도를 간섭으로 불편해하고, 자신의 계획에 따라 거침없이 뛰쳐나오기도 한다. 그들과 다른 세대와의 소통은 가정과 사회에서 시도되기도 전에 장애에 직면한다.586세대인 고등학교 동창들의 모임이 있다. 지천명을 넘어섬에도 모두들 젊은 시절부터 민주화 흐름에 몸담으면서 다진 결기가 대단하다. 그러나 촛불집회와 탄핵, 그리고 대선으로 이어지면서 우파정치세력이 거의 몰락하다시피 한 이후에는 서로 다른 목소리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상당하게 동질적인 집단이었지만, 연령효과로 인한 꼰대들에게는 약간의 차이도 크게 느껴졌다. 여러 가지 이유들로 포장되기도 했지만, 그들 일부의 공통적인 희망은 '나와 다른 이야기로 나를 침해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평생의 믿음이 조금이라도 부서질까 두려워한다. 종교와 달리 정치는 개인의 자유로운 신념의 영역만은 아니고 서로 간의 관계와 경계를 정하는 일이니만큼 충분히 상호 존중하면서 토론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던가? 평생을 민주주의를 의식하면서 살아왔지만,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타인을 향한 요구일 뿐 내장된 가치가 아닌 듯했다. 그들을 엮어주던 공통토대인 정치가 화제로 오르지 못하게 되자 그들의 단톡방은 가끔 안부만 전하는 공동묘지로 바뀌어 버렸다. 밀레니얼세대나 586세대에게나 온라인,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이 주요한 소통방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20대는 성장과정부터 대면적, 전면적 소통에 능하지 않지만, 50대 역시 점차 대면적 소통의 비중을 줄여가고 있다. 20대는 자기중심적으로 세계를 재구성하고 자신과 다른 세대를 수용하지 못하지만, 50대는 이미 경직되어가는 세계관 내로 소통을 좁혀가고 있다. 이러한 소통방식의 변화는 인터넷과 SNS가 일상화되면서 가능해졌고, 그에 따라 정보화의 빛과 그림자가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보화는 개인의 지식접근이 넓어지고 개인들 간의 지적 교류가 쌍방향적으로 전 지구적으로 확대되면서 인류 수준의 집단지성을 꿈꾸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차이의 인정과 상호 대화보다는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의 생각을 격려하고 극단화시키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20대는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이 부재함으로써 소통의 도구를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반면, 50대는 그 특유의 꼰대성으로 인해 대화의 소재와 대상들을 제한하게 된다. 여기에 유튜브,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등 SNS매체들은 대부분 개방과 공유의 시대를 열기보다는 유유상종과 동종교배의 네트워크로서 작동하고 극단화된 승자독식 시장을 열어간다는 점에서 이러한 추세를 더 심화한다. 여기에 최근 한국의 정치상황은 적폐세력 대 민주개혁세력, 재벌자본세력 대 노동민중세력, 남성집단 대 여성집단, 친원전세력 대 탈원전세력 등 극단적인 흑백의 사회균열을 부추긴다. 즉 사회적 소통방식과 정치적 균열이 상호 악순환하면서 극단적 분열의 사회로 치닫고 있다. 선민적 자기집단의식으로 무장하거나 악마적 적폐집단으로 규정하거나 상관없이 소통도 없고 대안도 없이 분열된 사회로 나아간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행 이후 보여준 모습들은 모두 다 민주주의의 넓은 스펙트럼 내에서 가능한 형태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생각도 우리의 생각처럼 충분히 가능한 사회적 지향이 아닐까? 오로지 하나의 대안만이 있다고 생각하는 전체주의 혹은 권위주의를 벗기 위해 길고 긴 민주화의 과정을 걸어왔건만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는 못한 것만 같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9-02-18 윤상철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