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칼럼

 

[전호근 칼럼]베르메르와 쉼보르스카와 희망

그림속 '우유를 따르는 여인' 만큼사회 노동자들이 하는 일 매우 중요연간 1천여명 작업장에서 죽어가기계로 인해 일터에서 목숨잃는 한 우리에겐 희망을 가질 자격 없다2012년 세상을 떠난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네덜란드 레이크스 미술관에 간 적이 있다. 시인이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작품을 감상했는지 알 수 없지만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베르메르의 그림 '우유를 따르는 여인' 앞에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만은 확실하다.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기 때문이다.레이크스 미술관의 이 여인이 / 세심하게 화폭에 옮겨진 고요와 집중 속에서 / 단지에서 그릇으로 / 하루 또 하루 우유를 따르는 한 / 세상은 종말을 맞을 자격이 없다(베르메르, 최성은 옮김)시인은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고요와 집중을 읽어내고 있다. 하지만 그림의 장소는 하녀가 일하는 주방이다. 비록 테이블 위에 놓인 빵에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앉고 있지만 그림의 작업장이 고요하거나 따뜻할 리 없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 놓여 있는 발난로를 보더라도, 장식이라곤 없는 벽을 보아도 그곳은 춥고 지저분하며 시끄러운 곳임에 틀림없다.그러나 시인은 그림 속의 풍경에서 우유가 쪼르르 흘러나오는 소리를 또렷이 들었을 것이다. 그림 속의 여인이 따르는 우유와 테이블 위에 놓인 빵은 아마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닐 게다. 그럼에도 하얗고 가느다란 우유 줄기에서 그녀의 집중이 분명히 보인다. 그것은 누군가를 공양하기 위한 그녀의 정성이자 세상을 지탱하는 숭고한 힘이다.그러기에 시인은 저 여인이 "하루 또 하루 우유를 따르는 한 / 세상은 종말을 맞을 자격이 없다"고 받아 적은 것일 테다.아름다운 그림 한 폭과 그에 맞춤한 아름다운 시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이 이야기를 지배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니까 저 여인에게 이 일이 이토록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니까 너는 평생 우유나 따르라고 이야기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순식간에 성자는 노예가 되고 숭고는 마취제가 되고 만다.그림 속의 여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가 하는 일, 이를테면 택배기사나 편의점 점원이 하는 일은 그림의 여인이 하는 일만큼이나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의 숭고한 노동으로 떠받쳐지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이들 노동자를 대하면 어떤 서사가 만들어질까? 그러니까 당신들이 하는 일이 고객에게 그토록 중요하니 물량을 맞추기 위해 밤새도록 배달하고 손님이 없어도 자리에 앉지 말고 일하라고 요구한다면?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어난 김용균씨의 죽음은 바로 그런 자본주의적 서사의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 결말이다. 고용노동부의 확인에 따르면 사고로 작업 중지 명령이 내려진 이후에도 주변의 컨베이어 벨트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한다. 우리는 그런 희생 아래 만들어진 전기를 쓰면서 따뜻하게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비단 김용균씨의 비극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통계에 따르면 연간 1천여 명의 노동자가 작업장에서 죽어가고 있다. 올해에 들어서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숨지고, 자동문을 설치하던 노동자가 문틈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끼이고 깔리고 떨어져 목숨을 잃는 것이 이 나라 노동자의 처지인 것이다.일하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는데도 계속 돌아가야 하는 컨베이어 벨트가 있다면 그것은 악마의 맷돌이다. 그런 세상 어디에도 숭고는 없다. 이것이 내가 이 아름다운 그림과 시를 마냥 편안한 마음으로 보거나 읽지 못한 이유다. 일터에서 죽어가는 노동자가 있는 한, 기계로 인해 목숨을 잃는 노동자가 있는 한 우리에겐 희망을 가질 자격이 없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2-11 전호근

[이영재 칼럼]가지 않은 길

'불안한 평화 지속' 한번도 경험 못한것들북한 '핵 동결'에 사실상 美가 '보유 인정'새로운 경험할까봐 두려운게 솔직한 심정안보는 한번 무너지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읽어주는 50세 중반의 국어 선생님 목소리는 진지했다. '어린 너희가 뭘 알겠어?'라는 표정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얼마나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야 하는지 지금 너희는 잘 모를 것이다. 많게는 서너 번, 적게는 수백 번 결단의 순간과 맞닥뜨리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가 숲 속을 걷다가 만나는 두 길을 모두 갈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의 앞에 펼쳐지는 여러 갈래 길을 동시에 갈 수는 없다. 갈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사기꾼이다.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두려워할 건 없다. 어차피 그게 인생이니까." 시도 좋았지만, 책도 없이 시 전문을 한 자의 틀림도 없이 외운 선생님을 우리는 신뢰했다. 어린 나이에 선생님의 그 말이 왜 그렇게 쓸쓸하게 들렸는지 그때는 몰랐다.그날 교실 분위기가 무거웠던 건 시의 첫째 연과 마지막 연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1990년대는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가 높았다. '몰래카메라' '브레인 서바이버' '양심 냉장고' '러브 하우스'도 그랬지만 개그맨 이휘재의 '인생극장'은 내 맘대로 내용과 결론을 바꾸는 지금의 '인터렉티브 영화' 콘셉트로 인기를 끌었다. 매번 선택의 갈림길에 서고, 그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각기 다르게 전개되는, 특히 "그래! 결심했어"란 유행어도 남긴 인기코너였다. 그 '인생극장'을 보면서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났다. 선생님의 말처럼 그동안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다. 문과가 아닌 이과를 택했다면, 그때 공부보다 운동권 학생이 되었다면, 이 직장이 아니라 저 직장을 택했다면, 이 사람이 아니라 저 사람을 만났다면 등등 '그때 저 길로 갔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 봤을 것이다.'가지 않은 길'이 다시 떠오른 건 3년 전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들으면서였다. 그리고 요즘은 매일 문 대통령의 말처럼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경험하고 있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매일 벌어지는 검경의 압수수색은 논외로 치더라도 대법원장의 구속, 눈만 뜨면 나타나는 미세먼지, 일자리정책 앞에서 탄식하는 젊은이들을 보는 것은 물론, 대통령이 국민연금에 주주권행사를 직접 지시하거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발표하는 것도, 투기의 의혹 국회의원이 오히려 국민들을 향해 큰소리 치는 것도 생애 첫 경험이다. 이웃 일본과 최악의 관계도 새로운 경험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은 걸리겠지만, 우리가 제정신을 차리고 왔던 길로 다시 가서 다른 길을 택한다면 해결되는 것들이다.문제는 돌이킬 수 없는, 불가역적인 것들에 있다. 지난해 남북 정상 간 세 번의 회담, 그 과정에서 도출된 9·19 남북 군사 합의서로 인해 발생한 '불안한 평화의 지속'도 실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조만간 북한의 핵 동결이라는, 사실상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새로운 경험을 할까 두려운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앞엣것들과 다르게 안보가 한번 무너지면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때 국어 선생님은 이런 말도 했었다. "분명한 건 어느 한 길을 택할 경우, 다른 길을 택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인생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무서운 건 택한 그 길이 꽃길인지 아니면 가시밭길인지는 끝까지 가봐야 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담보로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1-28 이영재

[이명호 칼럼]도시재생에서 부족한 것, 혁신적 도시경제

대다수 '옛 영광' 누리려는게 문제지식경제 시대에 맞는 모델 필요혁신적 견문 갖춘 세력 유입 시급연구 역량과 결합된 신산업 이끌미래 세대에게 공간 제공 더 중요도시재생이 뜨거운 이슈다. 목포시 근대문화역사거리는 시작단계에서부터 주목을 받았으니, 잘 조성되면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될 것 같다. 1897년에 개항한 목포는 근대화의 상징적인 도시였으나 그 영광을 간직한 곳은 '불 꺼진 원도심', 1900년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상징적인 지역으로 떠올랐다. 개발독재 시대의 산업화가 빗겨간 도시의 운명이었다고 할까.도시재생은 목포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으로의 경제 집중, 영남중심의 산업화, 신도시 개발에 따른 원도심의 역차별, 부동산 개발 투기 등으로 지방은 소멸의 위기에 처해있다. 전국 228개 지자체 중 40% 정도가 30년 후에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큰 아들을 집중 지원해서 동생들을 돌보게 한다는 '낙수효과'는 경제에서만이 아니라 국토개발에서도 낙제점이라는 것이 또 한 번 증명되고 있다. 도시재생이 본격적으로 정책적 과제가 된 것은 2013년 12월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면서부터이지만, 본격화된 것은 이번 정부 들어서이다. 문재인 정부는 5년간 50조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대규모 철거 방식의 신규단지 개발에서 소규모 생활밀착형, 지역 맞춤형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쇠퇴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문화적·경관적 특징을 잘 살리는 동시에 주민참여형 도시계획을 정착시키며, 도시경제 활성화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필요한 정책이다. 문제는 많은 지역의 도시재생 사업이 '옛 영광'을 되살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낙후된 경관을 정비하여 상권을 활성화 시키고, 역사문화 공간을 개발하는 사업에 치중하고 있다. 투자에서 소외된 지역에 투자를 한다는 정당성은 있지만, 새로운 산업 경쟁력과 도시경제라는 관점에서는 미흡하다. 사실 도시도 성장과 소멸, 회생을 반복하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도시의 역사를 돌아보면 도시는 산업혁명과 같이 성장하였다. 1차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던 영국 런던은 더 이상 산업의 중심지가 아니다. 미국 디트로이트는 2차 산업혁명의 주요 도시로 자동차 산업을 이끌었던 도시였으나 지금은 몰락하였다. 에디슨이 전기회사를 설립한 뉴욕은 제조에서 금융, 서비스 산업뿐만 아니라 문화 도시로 변천에 성공했다. 3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도시는 실리콘밸리이다. 실리콘밸리는 대학과 연구소, 기업 등이 네트워크와 같이 협력하는 중소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도시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도시가 돼야 한다. 도시재생도 마찬가지이다. 도시의 변천 이면에는 산업, 경제의 변화가 있다.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서비스업으로의 변화를 거쳐 이제는 지식경제로 진화 중이다. 지식경제 시대에 맞는 도시모델이 필요하다. 네덜란드의 브라이트랜드 지역은 열린 혁신 커뮤니티를 표방하고 지식이 교차하는 곳에서 혁신이 일어나도록 하는 새로운 캠퍼스를 개발하고 있다. 과학, 비즈니스와 교육을 결합한 4개의 캠퍼스에는 대학만이 아니라 기업과 연구기관이 들어서 있다. 과학자, 기업가, 학생들에게 연구와 혁신, 성장을 지원하는 시설과 협력 공간을 제공하여 지식 기반의 바이오와 건강 산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군산과 같이 자동차 공장 폐쇄를 겪은 호주 애들레이드 시는 2008년 미쓰비시 완성차 공장이 떠난 공장 부지에 혁신 산업을 키우기 위한 첨단 산업단지를 구축하고 있다. 2012년부터 명문대학 캠퍼스와 연구시설을 조성하여 지멘스, 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과 의료·에너지·자율주행 등 유망분야 스타트업들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직원들의 주거와 생활 등이 단지 내에서 해결되도록 하여 산업과 주거, 문화가 융합된 지역으로 개발했다.우리나라 때문에 조선업의 경쟁력을 잃고 몰락했던 스페인의 빌바오 시가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립하여 회생한 성공사례만이 도시재생의 모델이 아니다. 도시의 재생, 혁신은 새로운 세력을 끌어들일 때 성공할 수 있다. 단순히 젊은이가 아닌 혁신적인 지식을 갖춘 세력을 끌어들여야 한다. 대학 등의 연구 역량과 결합된 새로운 산업을 이끌 미래 세대에게 혁신의 공간과 주거를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도시경제가 살 수 있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9-01-28 이명호

[홍창진 칼럼]약속

사람과 사람 연결하는 끈과 같아지키면 이어지고 안 지키면 끊어져세상의 모든 약속은 경중이 없어평생 같이 살 사람 잃지 않는 행위나 먼저 반드시 지키는 사람 돼야약속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끈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키면 이어지고 안 지키면 끊어지는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관계를 지속시키고 싶은 쪽은 충실히 지키려 하고 관계를 지속하건 안 하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쪽은 약속을 소홀히 합니다.인간관계는 일을 하면서 생기기도 하고 일상의 사교를 하면서 생기기도 합니다. 일은 자연스럽게 갑과 을이 형성됩니다. 보통 갑은 약속을 어겨도 용서가 된다는 통념이 있습니다. 따라서 을은 갑의 약속 불이행으로 관계를 끊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음 약속을 잡고 그것이 이행되기를 기대합니다. 사교는 갑과 을이 없습니다. 따라서 약속의 불이행은 머지않은 시기에 관계 단절을 의미합니다.그러나 일이든 사교든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는 지속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절교를 선언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아는 사람 명단에 있을 뿐, 의미 없는 인사만 나누는 사이로 먼발치에 둡니다. 그가 아무리 갑이라도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은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연극인들 식사 모임에 초대되어 회식을 하던 중에 어떤 청년이 자신이 천주교 신자라고 하면서 인사를 하고 이제 연기를 시작한 신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일이 있습니다. 1년도 지난 일이라 잊고 지냈습니다. 그는 얼마 전에 문자로 신년 인사드리고 싶다고 날짜를 달라고 해서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전날 밤 급한 오디션 하나가 생겨서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른 약속도 못 잡았는데 그리고 그 약속에 맞추어 다음 약속의 동선도 맞추어 놓았는데 다 흐트러지게 되었습니다. 신인에게 오디션은 중요한 일이고 본인이 생각할 때는 약속을 파기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OK, 파이팅"이라는 답신을 남겨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청년이 다음에 또 약속을 잡자고 하면 잡지 않을 것입니다.소중한 것은 사람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도 지나고 보면 소중한 사람들 때문에 연결되고 그 신뢰 때문에 만들어집니다. 누군가를 소중히 생각하고 그가 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확신은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이고 기쁨입니다. 서로를 신뢰하게 되고 신뢰는 좋은 일을 도모하게 되고 함께한 일에 대한 결실도 좋게 됩니다. 약속은 사람하고 하는 것이지 일의 가치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약속을 취소하는 이유가 일에 대한 가치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순간 사람은 사라지고 일만 남습니다. 국가의 수장들도 국가의 명예를 걸고 약속을 하고, 정치인도 국민과 약속을 하고, 조그만 조직에서도 리더와 구성원이 약속을 합니다. 가족들끼리도 약속을 하고, 연인들끼리도 약속을 하며 친구들끼리도 약속을 합니다. 세상의 모든 약속은 경중이 없습니다. 모두 귀중하고 존엄합니다. 왜냐하면 약속은 존엄한 인간들끼리 하는 존엄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약을 해놓고 다음 약속이 자기 기준으로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선약을 취소하는 행위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인간이 인간에게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약속을 어기는 행위입니다.세상에 지키지 못하는 약속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 합니다. 사람을 차별하여 생각하거나 지나친 욕심으로 사람보다는 일을 우선으로 택하기 때문에 약속을 못 지키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와 가족의 급한 병환이나 급한 업무 등 상대가 충분히 이해할만한 상황까지 포함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는 일은 평생 같이 살 좋은 사람들을 잃지 않는 지혜로운 행위입니다.따라서 우선 본인이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이웃에게 존중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절대 믿지 마십시오. 그는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자존감도 없는 사람이고 누구를 존중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사람과 이별하세요. 그리고 믿을 만한 사람들과만 인연을 맺고 살아가십시오. 좋은 사람들과만 살기에도 짧은 인생입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01-21 홍창진

[방민호 칼럼]'태움'

간호사 사회 '괴롭히며 규율잡기'김용균군 희생된 火電 '사람 차별'책임 면하는 '이상한 논문 표절'썩을대로 썩은 문화 없애지 못하면영혼은 늘 굶주리고 고통은 연속며칠 전에 신문에서 한 간호사가 세상을 떠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유서에 썼다는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병원 사람들 조문도 오지 마라." 오죽 괴로웠으면 죽고 나서도 병원 사람들은 만나고 싶지 않다 했을까?이런 일이 이번만의 일은 아니었고, 얼마 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졌을 때 네이버에 들어가 도대체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아본 적이 있다. '태움'. 이 말은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힘 등으로 길들이는 규율 문화를 지칭하는 용어다.참 이런 문화도 있을까 싶다. 어떻게 해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집단의 이름으로 길들이고 말 듣지 않거나 적응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태워져 재가 될 때까지 태워 버리는 것일까. 참 말도 실감 나게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얼마나 괴롭힘을 당하면 그렇게 태워져 버린다는 말이냐. 그러나 이 말을 처음 들은 후 그 생생한 어감의 놀라움과 함께 나를 괴롭힌 것은 이 '태움'이 병원 간호사 사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에 없는 곳 없다 할 정도로 사람들을 지독히 괴롭히는 형태로 끈질기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사실 카풀 문화라는 것이 왜, 얼마나 필요한지 알지 못하지만 서구에서도 그런 문화가 있다고들 하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것이 도입되어야 한다고도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잖던가. 그것은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바다 건너 이 나라에 들여오려면 이곳 사정에 얼마나 맞는지, 어떻게 해야 무리 없이 들여올 수 있는지, 그런 제도가 시행될 때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배려를 해야 하는지 이리저리 고민도 해봐야 할 게 아닌가? 정말 그렇게 한 후 그 카풀이라는 제도를 시행하려고 하는 걸까. 결과가 얼마나 좋을지는 아직 기다려 보고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 새로운 제도를 시행한다고 하니, 사람 '태우는' 사람들이 광화문 앞이며 어디 앞에 십여 만 명씩 빽빽하게 서서 시위를 하고 항의를 하고 파업을 벌이는 통에 그 추운 한겨울 밤에 택시를 '타는' 사람도 새벽길을 걷고 걸어 집에 지쳐 떨어지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급기야 택시 기사 두 분이 자신의 몸을 태우는 일까지 일어났다. 김용균 군을 태안 화력발전소의 어이없는 희생양으로 만들고 만 것도 알고 보면 우리 사회의 그 '태움' 문화 때문이 아니던가. 석탄을 태워야 하는 화력 발전소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고 사람을 차별하고 자격을 '못 갖춘' 사람들은 나이가 어떻든 성별이 어떻든 그가 내몰릴 대로 내몰려 몸과 영혼이 몽땅 태워질 때까지 몰아대는 것이 바로 한국 사회 아니던가. 그 어린 젊은이가 전생에 어디서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생에 와서 그런 처절한 고통을 맛봐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이 '태움'은 어디에서 와서 이렇게 병원 간호사들뿐 아니라 이 나라 곳곳에서 귀신같은 힘을 발휘한단 말인가. 대학교에도 온갖 태움 문화가 만연하는 가운데, 그중 이상한 태움 문화로 표절이라는 것도 있다. 남의 논문이나 글을 몰래 가져다 쓴 사람이 3년만 그 소행이 밝혀지지 않으면 그 사실이 드러난다 해도 '절대'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니, 그런 이상한 '태움' 때문에 표절한 사람은 요행히 책임을 면할 수 있겠지만 정작 그 일을 당한 사람이나 그 일을 저지른 사람에게서 강의를 들어야 하는 학생들은 속이 타도 탄다고 어디에 말할 곳조차 없이 숨어서나 괴로워하는 끝에 영혼 자체가 태워져 버린 것만 같은 고통을 당해야 한다. '태움'을 태워버려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상처가 곪을 대로 곪고 문제가 썩을 대로 썩을 때까지 몸과 마음을 다 태워 버리는 식의 문화를 없애지 않고는 이 사회는 아무리 돈을 벌어도 영혼은 늘 굶주리고 태움을 당하는 고통을 맛봐야 할 것이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9-01-14 방민호

[이남식 칼럼]CES 2019를 관전하기

미래엔 4차산업혁명 스마트시티화아마존·구글, 인공지능 경쟁 치열스마트폰·TV 화면 접고 펴는 기능혁신적 변화 이끌 한국기업들 주목메모리반도체 수요 '더 급증' 예측새해가 시작되면 한 해의 방향을 제시하는 행사들이 열리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국가전협회가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하는 가전쇼 (Consumer Electronics Show CES)이다. 올해도 1월 8일에서 11일까지 개최되는데 2000년대 초반까지도 TV 오디오 비디오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 중심이었으나 컴덱스가 쇠퇴하면서 첨단 IT(정보통신) 제품의 소개장으로 성장하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의 변화를 예견할 수 있는 행사로 주목받아 자율주행자동차나 드론과 같은 분야의 전시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국내의 삼성이나 LG 또한 세계가 주목하는 기업으로 이 행사를 통하여 미래의 제품과 서비스를 소개해 오고 있다. 오늘은 CES를 관전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드리고자 한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바뀌게 될 우리들의 미래와 영역은 어디일까? 우선 스마트 홈이나 스마트 모빌리티를 포함하는 우리 삶의 터전이 되는 스마트 시티이다. 전 세계적으로 도시화(urbanization)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2030년경에는 전체 인구의 60~70%가 도시에 거주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시는 효율적인 인프라와 상생효과 및 자원의 집중화로 경쟁력이 있으며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므로 거주인구가 계속 늘어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에너지 물류 리테일 교통 등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이를 효율화하기 위하여 새로운 5G 초고속이동통신이 상용화되는 첫해이기도 할 것이다. 5G의 최고속도는 20Gbit/s에 달하고 사용자가 경험하는 데이터 속도도 1Gbit/s에 달하여 그야말로 HD영화 한편을 수 초 내에 다운로드할 수 있어 요사이 우리가 사용하는 4G LTE 등에 비하면 10~20배 더 빨라지게 된다. 특히 자율주행자동차를 위한 주행여건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5G가 크게 기여하는 동시에 클라우드 서비스가 보편화되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번 CES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아마존과 구글이다. 아마존은 전자상거래에서 출발하여 물류, 클라우드 서비스의 세계적인 강자로 부상하였으며 이제는 오프라인의 매장 또한 확장하여 아마존고 (Amazon Go)와 같이 상품을 장바구니에 고르면 자동적으로 결제되는 매장을 늘려가고 있다. 아마존의 알렉사 (Alexa)는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음성을 인식하고 작동시키는 인터페이스로 에코 (Echo)라는 스마트 스피커를 제공하므로 모든 가정의 기기를 음성으로 제어하고 필요한 물건을 음성으로 주문하는 그야말로 스마트 홈의 허브(Hub)를 장악하고자 하고 있다. 서치엔진에서 시작한 구글사 또한 인공지능기반의 구글어시스턴트를 기반으로 출시 한 구글 홈을 가지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에코 31.9%대 구글 홈 29.8%). 올해에는 양사가 다양한 분야(예를 들면 자율주행자동차에서의 차량과 승객사이의 대화등)에 응용하려는 시도가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많은 주목을 받는 분야가 스마트 폰이다. 화두는 접히는 화면을 갖는 스마트폰으로 접을 때는 기존의 사이즈이나 펼치면 패드사이즈로 확장 되는 폰으로, 지난 수년간 스크린사이즈를 키우고 카메라의 개수나 처리속도를 늘리고 메모리를 키우는 등 아주 혁신적인 변화는 없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화면이 말려 접히는 OLED TV 또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TV 사이즈가 커질수록 인테리어에 영향을 미치므로 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대형스크린이 접혔다 펴졌다 할 수 있다면 극장과 같은 효과를 더욱 고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의 주력 상품인 메모리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꺾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많지만 CES의 추세를 감안해 볼 때 향후 메모리 수요는 더욱 급증하지 않을까 예측해 볼 수 있다. 디스플레이의 대형화, 고해상도화, 고속화, 클라우드화 등이 모두 기하급수적인 메모리 수요를 촉발하고 있다. 요사이 웬만한 스마트폰은 기본이 512G의 메모리를 가지고 있다. 이제 모바일 환경을 통하여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집적하고 이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하여 실제 생활환경의 효율을 높이는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는 것이 이번 CES의 관전 포인트가 아닌가 한다./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

2019-01-07 이남식

[윤상철 칼럼]세대의 성찰에 대한 기대

일자리·노후복지 등 둘러싸고세대간 분배투쟁 불가피하게 보여갈등조정·완화제도 아직도 논쟁실패집단 해결주체 내세우기보다서로 반성하는데 눈을 돌려보자사회조사들은 설문 말미에 응답자의 사회적 배경을 묻는다. 성별, 연령, 교육수준, 거주지역, 직업, 소득 등이다. 여기에는 성별, 세대 등 사회적 조건에 따라 사회와 국가정책에 대한 인식과 행위가 다를 것이라는 암묵적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선거 결과 등은 예측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사회적 배경에 따라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요인이 중첩적으로 작용하거나 그 사회적 배경을 압도하는 사건이 우연하게 발생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원래의 전제를 훼손하기보다 더 적극적으로 적용하여 여성과 남성을, 어떤 세대를, 어떤 지역민을, 어떤 계층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행위자로 불러내기도 한다.경제성장의 잠재력은 이미 소실되었고 마침내 위기가 오고 있다는 진단이 들린다. 주로 취업률, 고용률, 성장률, 경기선행지수, 그리고 지니계수 등 불평등지수가 거론된다. 그로 인해 더 심화된 사회적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는 견해들도 피력된다. 인과가 불명확하거나 역전되기도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이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문제로 부각된다. 먼저 정권의 책임론이 거론된다. 이전 보수 정권들의 적폐와 무능, 그리고 부자와 재벌 편들기가 낙수효과를 낳기는커녕 한국경제를 위기의 늪에 빠트렸다고 한다. 신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산업구조의 변경 없이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성장과 분배를 악화시켰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사회경제적 집단에게 책임을 묻기도 한다. 재벌구조가 중소벤처기업의 창의성과 일자리 창출을 고갈시키고 사회적 양극화를 낳았다고 한다. 민주노총과 대기업 귀족노조가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조건을 악화시키고 비정규직의 취업난을 낳았다고 비판한다. 더 나아가 경제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을 특정 계급에게 묻거나 정치권력구조 혹은 경제조직 및 분배구조에게 묻기도 한다. 그러나 우파정권이나 좌파정권이나 경제구조를 재구성하고 성장의 잠재력을 이끌면서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데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재벌과 노조는 서로를 비난함으로써 그 입지를 찾는 적대적 공존관계로서 저소득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그리고 실업자들의 현실을 개선할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분단체제하에서 왜곡되어 미형성된 계급들이 변화의 주체가 되기는 어렵고, 권력구조나 생산분배구조는 모든 행위 주체들을 사면하는 변명일 뿐이다. 더러 또 다른 사회집단들이 호명되기도 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여성의 사회진출과 지위를 악화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산업구조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성차별의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 어떤 주체들을 부를지는 모호하다. 여기에 일부 사회학자들은 세대문제를 제기한다. 이른바 베이비부머들인 86민주화세대가 사회적 기회를 절대적, 상대적으로 많이 점유함으로써 후세대들과의 불평등한 분배구조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최근의 청년실업은 86세대들을 그 수혜자로 만든 2016년부터의 근로자 정년연장의 결과로 더 악화되었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정치권력의 분배에 있어서도 일찍 사회운동 및 시민사회의 권력을 딛고 제도정치에 진출하여 지금까지 후속세대들을 압도하고 있다고 본다. 현재의 사회상황에 대한 세대논쟁은 이미 작년 여름에 이루어졌다. 카이스트의 이병태 교수는 헬조선을 말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앞 세대의 분투를 폄하하지 말고 넓은 세상을 보고 더한 노력을 먼저 시도하라고 말한다. 이에 한양대의 박찬운 교수는 '5000년 역사 최고 행복세대의 오만'에서 벗어나 그들에게 성장과 경쟁만을 물려준 일에 대해서 성찰하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고 반박한다. 다시 이 교수는 앞 세대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으며 젊은 세대에게 던지는 립서비스는 그 어떤 해법도 아니라고 비판하지만, 박 교수는 가진 것을 공유하자는 젊은이들에게 공감하면서 대안과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응답한다.고령화 사회를 거쳐 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일자리와 노후복지 등을 둘러싼 세대 간 분배투쟁의 문제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한 세대갈등을 조정하고 완화할 제도들은 아직도 논쟁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내의 분배문제를 이미 경험한 사람들이 사회적 분배문제를 재구성할 인식과 실천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떠한 의식과 경험도 없는, 이미 등장하여 실패한 집단들을 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주체로 다시 호명하기보다는, 이제 세대와 그 세대의 성찰에 눈을 돌려보자./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8-12-31 윤상철

[전호근 칼럼]편지

3년전 수강생 졸업 앞두고 보낸 안부훌쩍 성장한 향기로운 소식 읽으며 송나라 주돈이의 '애련설' 생각했다1학년 학생들 마지막 시험후 인사그 모습 사랑스럽고 대견해 보였다3년 전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 졸업을 앞두고 편지를 보내왔다. 종종 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지만 이처럼 훌쩍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혼자 읽기 아까워 이곳에 나눈다.안녕하세요 교수님. 저는 2015년 1학기에 경희대에서 교수님의 고전읽기 강의를 수강했던 연극영화학과 학생입니다. 저는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으며 학교생활을 돌아보던 중 제게 가장 큰 인상으로 남은 분이라 이렇게 안부 차 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성실하지도, 눈에 띄지도 않는 학생이라 아마 절 기억하지는 못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난이 깊은 풀숲에 있어 찾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그것이 향기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는 공자의 말을 자신의 사유로 풀어내는 것이 기말 시험이었습니다.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저는 신동엽 시인의 '오렌지'를 말머리에 쓰고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글로 썼습니다. 또 제가 예술을 하는 것과 여성인 자신을 인정하기 위해, 나의 향기를 긍정하기 위해 누군가의 코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사실 저는 유학을 비롯한 한국철학에 흥미가 없던 학생이었고 당시 교수님의 수업도 학점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강했습니다. 한국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왠지 보수적이고 정체되어 있을 것 같다는 편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그토록 중시하는 '인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답변을 유학 고전강의에서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교수님은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두 개의 팔과 다리가 존재하고, 말을 할 수 있으며, 남성과 여성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등 그런 다수의 보편성에 기대는 분류가 아니라 스스로 누군지 알고 그 정체성에 충실한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강의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공감과 위안 그리고 충격을 받았고 그 학기 교수님과 함께 한 시간에 대해 두고두고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평소 매우 비관적이고 모든 학문의 역사와 인간 사회에 대해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어떤 강의를 듣고 감동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입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오만하고 자의식이 과잉된 일이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작업하는 모든 창작물과 세상에 쌓여있는 인류의 산물이 헛되게 느껴져 의욕을 잃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세월에 구애받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고, 그것이 다른 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누군지 탐구하면서 스스로 점점 더 견고해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의 강의가 누군가에겐 과거를 읽는 일이 어떻게 미래의 가치로 연결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람과 사람이 만든 것들에 환멸을 느낄 때 교수님의 강의가 주셨던 희망을 떠올리는 것처럼요. 교수님처럼 꾸준히 기억하고 기록하고 한 곳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건강한 겨울 보내시고 오래도록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OOO 올림.나는 이 향기로운 편지를 읽으면서 송나라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을 생각했다. 그는 연꽃을 칭송한 글에서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 맑아진다는 말(香遠益淸)을 남겼는데 나는 이 표현이 그저 문학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이 학생의 편지를 받은 뒤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 편지를 받은 다음 날 일어났다. 그날은 내가 가르치는 1학년 학생들이 마지막 시험을 치른 날이었다. 답안을 쓴 뒤 인사하고 나가는 한 명 한 명이 전에 없이 사랑스럽고 대견해 보여 나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지가 학생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 자체를 변화시킨 것이다.앞으로 나는 모든 학생들을 이 학생을 대하듯 만날 것이다. 그러니 이 편지의 향기는 후배들에게도 전해져 멀리멀리 퍼져나갈 것이다. 향기는 홀로 있어도 가두어지지 않는 법이다. 학생의 바람처럼 나는 오래도록 행복할 것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12-24 전호근

[이명호 칼럼]웰빙은 왜 성장보다 중요한가?

'경제성장'이란 목표로 달려왔지만자살률 증가등 심리적 불안 더 커양극화 따른 상대적 박탈감에 분노한국 OECD웰빙지수 12년째 최하위수치 연연 말고 '배려하는 사회' 절실얼마 전 인천 송도에서 열린 OECD 세계포럼에 참석했었다. 3일 동안 열린 행사의 전체 주제는 미래의 웰빙(Well-being) 이었다. 최저임금인상, 노동시간 단축으로 상징되는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포용적 성장 정책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과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나라에서 '웰빙'을 언급하는 것은 '사치스런'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다른 선진국은 성장과 웰빙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가를 알고 싶어 포럼에 참석했다. 미래 웰빙의 탐구와 측정, 디지털화와 웰빙, 복잡한 세상에서의 거버넌스, 웰빙과 기업의 역할 등 다양한 세미나가 준비되어 있었다. 3일 동안 여러 세미나를 참석하면서 성장과 웰빙,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번 행사는 2009년에 OECD가 '경제성과와 사회발전 측정에 관한 고위전문가그룹 보고서'를 낸 이후 9년 만에 후속편이 발표되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 등이 주도하여 결성된 OECD 고위전문가그룹은 사회발전의 기준을 무엇으로 잡아야 하는가를 집중적으로 연구 토론해왔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가 이번 포럼의 하이라이트였다. 보고서는 많은 국가들이 GDP(국내총생산)에 과도하게 의존함으로써 2008년의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고 그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파급효과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잘못된 방향으로 경제성장 정책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GDP는 경제성장을 측정하는 기준이다. 전년 대비 몇 프로 경제가 성장하였다고 하는 기준이 되는 지표이다. 경제성장률이 2.9% 성장 전망보다 0.1% 하락하였다고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암울'하게 만드는 그 기준이다. 경제의 측면에서는 중요한 기준임에도 GDP에 대한 개념은 많은 도전을 받아왔다. GDP는 국민의 행복, 나의 행복, 나의 삶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하는 의문은 계속해서 제기되었다. 로버트 케네디는 1968년 한 연설에서 'GDP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측정한다'고 비판했다. GDP라는 것이 전업주부가 자녀를 돌보는 것은 GDP 계산에 들어가지 않지만, 직장을 얻어 일하면서 가사 도우미나 보육 도우미를 고용하면 0에서 수백만원의 GDP가 추가로 발생하는 방식이다. 새로운 제품이 나와 이전 것을 버리고 새로 사면, 폐기 비용까지 포함하여 GDP가 증가하게 된다. 이와 같이 GDP라는 기준이 인간의 행복, 환경 보존,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바람직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비판이 크다. 그래서 부탄은 '국민총행복' 지수를 만들어 가난하지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경제적 풍요가 행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풍요롭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이스털린의 역설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기점으로 물질의 풍요와 행복은 비례하지 않고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2만달러까지는 경제 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국민 모두가 달려왔지만, 2만달러 이후 소득이 정체하는 중진국의 함정과 오히려 자살률 등이 증가하는 심리적 불안은 더 가중되는 현상을 겪고 있다. 성장 자체가 불균형에 의거하고 있어 부의 총량이 증가했지만, 일부의 구조적 과잉과 일부의 구조적 궁핍이 동시에 연결되어 있는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양극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사람들은 더 좌절하고 분노하게 만든다.OECD는 성장이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성장만의 추구는 오히려 사회를 더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반성에서 새로운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웰빙, 더 나은 삶의 질이라는 개념이다. 우리가 측정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사회, 경제, 환경의 전 측면에 걸친 웰빙 지표를 측정하고 있다. 그 OECD 웰빙 지수에서 한국은 12년째 최하위이다. 어떻게 하면 웰빙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 네덜란드 왕자빈의 포럼 기조연설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알다시피 네덜란드는 혁신지수도 높고 복지지수도 높은 고소득 국가이다. 그런 네덜란드는 어떻게 웰빙 국가가 될 수 있었을까? 한 가지 답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연설에서 강조한 메시지는 하나였다. 수치에 얽매이지 말고 국민 개개인이 충분히 의미 있는 존재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하면 사람들은 사회에 소속감을 갖고 사람들과 협력하고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배려하는 사회가 성장하는 웰빙 사회이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8-12-17 이명호

[이영재 칼럼]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자의든 타의든 1년 내내 남북관계에 빠져경제는 장관 바뀔 정도로 최악의 길 걸어와나라 존망위기 몰린 '저출산 문제'도 심각늦었지만 청와대·정부의 '현실 직시' 다행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사람마다 각자 다르다. '먹방'을 틀어놓고 끊임없이 먹어대는 사람도 있고 격렬한 운동으로 터질 것 같은 압박을 달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술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도 많다. 하정우 같은 배우는 하염없이 걸으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나의 경우, 단연 공포영화 시청하기다. 영화를 보는 동안 공포에 쫄다보면, 스트레스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공포지수가 높을수록 효과는 배가된다. 최근 나홍진의 '곡성'을 봤다.역시 그는 천재였다. 무서웠다. 다시 봐도 정말 무서웠다.공포에 이리저리 쫓기다가 그 '장면'에 멈췄다. 아니 '장면'이 아니라 그 '대사'에서 멈췄다. 이 영화가 개봉되던 2016년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그 대사 말이다.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허냐고,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 이 대사에서 가슴이 콱 막혔다. 정말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그냥 살아왔다는 자책감이 들어서다. 갑자기 눈물도 핑 돌았다. 공포영화를 보면서도 이런 깨달음을 주는 나홍진은 정말 천재다. 2006년 영화 '타짜'의 정 마담이 "이거 왜 이래,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고 외쳐댄 이후, 영화 대사 한 줄이 이토록 유행한 적이 없었다. 유행어는 시대의 산물이다. 2016년 9월 1일 정세균 국회의장이 정기국회 개원사에 사드 반대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등을 언급하자 새누리당이 크게 반발했다. 이를 이유로 새누리당이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자들 앞에서 격앙하며 이렇게 말했다. "새누리당이 민생을 정말 죽이려 하는 것인가. 지금 '뭣이 중헌디'라고 묻고 싶다." 자의든 타의든 1년 내내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면서 남북관계 하나에 빠져 지냈다.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김여정 김영철이 찾아온 이후,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6월 싱가포르 북미회담, 9월 문재인 대통령 평양방문으로 우리의 관심사는 온통 남북문제뿐이었다. 멀리까지 갈 것도 없다. 최근 2~3주 동안 김정은의 서울 답방 여부를 두고 벌인 해프닝은 끔찍했다. 한 해를 결산해야 할 중요한 시기를 우리는 그렇게 보냈다. 그런데 결론은 "연내 답방 어렵다"였다. 그럼에도 그의 답방이 왜 불발됐는지 청와대도 정부도 언론도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올해 우리 경제는 장관이 바뀔 정도로 끔찍했다. 고용률, 실업률 등 고용 관련 주요 지표들이 고용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악의 길을 걸었다. 길거리에 널린 빈 가게, 일거리를 찾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인력시장, 역대 최대인 실업급여 수급자. 52조원을 쏟아부은 일자리 예산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다. 그런데도 내년엔 경제가 더 악화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또 있다. '저출산' 문제다. 이야말로 '냄비 속의 개구리'다. 지금은 고통스럽지도, 아프지도, 물론 무섭지도 않다. 정말 그런 날이 올지 지금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초'를 붙여야 할 정도로 저출산 문제로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몰렸다. 우리나라 합계출산율, 즉 여성 1인이 평생 낳는 아기가 0.95명으로 떨어졌다. 인구 유지를 위해 필요한 합계출산율 2.1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68명)을 크게 밑돈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닌가. 최근 12년간 저출산 대책에 120조원 이상 재정을 투입한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우리가 북한에 홀려 있는 사이 이렇게 수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2018년이 보름도 남지 않았다.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도 어느새 50% 이하로 떨어졌다. 취임 후 최저치다. 이제 사람들 입에서 "뭣이 중헌디, 뭣이 중헌지도 모름서"라는 말이 흘러 나오고 있다. 이제야 모두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있는 모양이다. 처음이란 게 놀랍지만 어쨌든, 어제 문 대통령이 현 정부 들어 '첫' 확대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을 필요한 경우 보완조치 하라"고 지시했다. 늦은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제라도 청와대와 정부가 무엇이 중요한지 깨달은 것 같아 천만다행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12-17 이영재

[홍창진 칼럼]한반도 평화

'확실한 핵 포기'·'체제 보장 유지'북미간 불신에 국민들 의견도 갈려'교황 방북' 새로운 전환점 될수도이제 우리는 운명의 길 가야할 시점진지한 소통으로 내부 갈등부터 해결근래 들어 남한과 북한은 과거 어느 때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관계가 좋아지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에 양쪽 정상이 벌써 세 차례나 회담을 가졌고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미 정상 회담이 이루어졌습니다. 북한 노동자 연맹이 휴전선 아래로 내려와 축구 경기를 했고,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남측 관계자들이 바로 평양을 다녀왔습니다. 남북 간의 철도 연결을 위해 실사팀이 실험 운행을 단행하기도 했습니다.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저는 약 10년에 걸쳐 매년 한두 번씩 평양을 다니며 민간 차원의 교류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요즘 남북 교류 속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는 것 같습니다. 북측 젊은 리더는 과거의 체제로는 이제 더 이상 지도자로서 나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립각만 고집해서는 고립만 가중될 뿐 국민을 부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경제의 안정 없이는 체제가 붕괴될 것이고 국가의 존립마저 흔들린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이제 우리는 통일을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통일이 되면 양측은 어떤 모습으로 살게 된 것인가? 남측이 북측을 흡수하는 형태가 되나? 아니면 연방제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양 체제는 각각 유지되나? 국가 구성 체제부터 주변 열강들과의 이해관계까지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런데 잘 진행되는 듯 보이던 남북의 평화 로드맵이 또다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유엔은 북한의 모든 경제 활동을 제재하기로 결의한 바가 있습니다. 일단 그것부터 해결하고 다음 일을 도모해야 하는데, 도무지 이 제재가 쉽게 풀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미국은 보다 더 확실한 핵 포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북은 여러 차례 핵 포기를 언급은 했지만 확신이 들 만큼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즉 양자는 서로를 완전히 믿지 않습니다. 미국은 과거 경험에 비추어 북한이 약속을 어기고도 남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고, 북한은 자신들이 핵과 관련한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는 순간, 미국이 약속한 체제 보장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런 북미 간의 불신에 더하여 남쪽 국민들의 의견도 반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미국처럼 과거 경험에 견주어 북한을 불신하는 쪽과, 이제 북한은 경제 개방 외에 살 길이 없으니 핵 포기에 관한 그들의 의사를 존중해주자는 쪽으로 선명하게 나뉘어 서로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서로의 의견을 듣고 타협과 양보를 할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입니다. 남북의 평화 로드맵은 이 불신 때문에 아주 천천히, 그리고 완만하게 진행될 것 같습니다. 교황의 방북은 이 불신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미국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가톨릭 신자이고 유엔 상임이사국과 영향력 있는 회원 국가들 역시 대부분 가톨릭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교황의 방북이 다른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국의 평화를 위해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희망합니다. 어찌 되었든 우리 한반도는 평화로 향한 길을 떠났습니다. 이제 우리는 느리게 가든 빨리 가든 이 운명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이 길을 걸으며 꼭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 북한과의 관계 구축에 앞서 우리 안의 갈등부터 들여다봐야 합니다. 북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여러 입장이 있습니다. 그 차이는 어제오늘 생긴 것이 아니라 몇십 년에 걸쳐 축적된 것입니다. 서두르지 말고 진지한 소통을 통해 차근차근 풀어야 합니다. 정치권도 치적을 통한 인기에 욕심을 내서는 안 됩니다. SNS시대에 토론의 장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습니다. 소통에 참여하는 각 개인도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말고 먼저 상대의 의견을 진지하게 들어야 합니다. 상대의 주장만 헐뜯지 말고, 그 주장이 어디에 기인한 것인지 곱씹어봐야 합니다. 이런 과정 없이 결과만 바라서는 결코 한반도의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체제가 하나라고 의식이 하나가 되는 건 아닙니다. 과정 없는 평화는 머지않아 또다시 분열을 만들 것입니다. 다음은 한반도 평화를 꼭 이뤄내야 한다는 소신입니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남과 북은 하나의 경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비단 북한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정치적, 경제적 문제 역시 이대로는 출구가 없어 보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입니다. 어떤 모습을 어떻게 갖추고 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애정을 가지고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8-12-10 홍창진

[방민호 칼럼]창랑의 물이 흐리거든

입은 먹는것 말고 말하기도 한다남을 칭찬만 않고 험담도 일삼아정화하자 해놓고 더러운 말 더 써말이 무서운 올해 이제 한달 남아더러움 속에서 자기도 보라… 몇 날 며칠째 입안에 맴도는 시구절이 있다. 창랑 뭐라 했는데 그게 어땠더라. 갓끈, 뭐라고도 했는데. 옛날 같으면 나중에 찾지 하고 말 것을, 인터넷은 뭐든 단번에 답을 주고야 만다. 어디? 아하, 굴원이었다. '어부사'에 나오는 시구였다. 한문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옛사람의 이야기를 알까만, 그래도 한번 들추어 보자면. 옛날에 굴원(약 B.C.~B.C. 278년)이라는 초나라 사람이 정계에서 물러나 강가에 머물러 있었다 한다. 그때 어부 하나를 만나 세상 한탄하기를, "온 세상이 모두 흐린데 나만 홀로 맑구료. 모든 사람이 다 취했건만 나만 홀로 깨어 있었구료. 이로 인해 추방을 당하고 말았소"라 하였다. 이 어부는 한갓 이름없이 살아가는 이겠지만 굴원의 '고고' 포즈가 마음에 들리 없었으리. 세상에서 물러나 세월의 흐름에 뜻을 맡기는 이는, 저희들끼리 중앙이니 서울이니 자부하는 곳에서 아웅다웅 다투는 꼴 한없이 부질없이 느껴졌으리라. 몇 번 문답 끝에 노옹이 남기고 떠나간 시구가 다음과 같다. 滄浪之水淸兮(창랑지수청혜)/可以濯吾纓(가이탁오영)/滄浪之水濁兮(창랑지수탁혜)/可以濯吾足(가이탁오족). 큰 바다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그 물이 흐리면 발을 닦으리. 시원스럽기 짝이 없는 말 같지만 간단치는 않다. 아니, 이 무슨 해괴한 '시류'주의자의 요설이란 말인가? 창랑이라 하면 큰 바다 물이라 할 텐데, 이 시는 왜 강물이라 해도 될 것을 굳이 바다라 했나. '나'는 아무리 커도 작다는 것을 알려주려 한 것일까? 바다 위에 떠 있으면 '나'만큼 작은 것도 없으리니 말이다. 세상이란 가뒀다 풀 수 있는 한갓 강물 따위가 아니요 제 혼자 힘으로는 너무나 감당하기 벅찬 산더미 바다라는 것이다. 그 물을 퍼내어 내 맘대로 깨끗하게 할 수 없고 또 제 맘대로 더럽힐 수도 없다. 곧 세상은 창랑, 큰바다 물, 내가 수초처럼 떠 있는 곳이다. 몇 날 며칠 그 더럽다는 그 한 단어가 자꾸 입안에 맴돌아 어찌할 수 없다. 충청도나 그 이남 사투리에 '더럽다'는 '드럽다'라고 한다. '더'와 '드'가 큰 차이 없건만 하필 드럽다고 하면 정말 더러운 느낌이 난다. 그러고 보면, 십 년도 전에 서울 북쪽 어느 큰 대학교 선생님들을 뵙는데, 송 아무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 입처럼 드런 게 없어"하고, 혼잣말하시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는 손이니 발이니 하는 사람 몸이 다른 생물 것들보다 깨끗하지 않단 말을 하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입이 더럽다? 딴은 그런 것도 같다. 손발은 온갖 더러운 것 다 만지고 밟은 '도구'지만, 그래도 눈에 잘 보여 늘 씻고 닦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입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거울 보고 이를 닦을 때도 입안은 좀처럼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 그 입안으로 사람들은 온갖 것을 쓸어 넣는데, 사람처럼 안 가리고 먹는 짐승도 드물다. 쓴 것, 매운 것, 싱싱한 것, 썩은 것, 냄새 고약한 것, 향기 나는 것, 못생긴 것, 탐스럽게 생긴 것, 이 모두가 입을 통해 사람 몸으로 든다. 그러니 입이 어찌 깨끗하랴.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분의 그 말씀은 사람의 몸에 관한 얘기가 아닌 것도 같다. 사람의 몸의 각 부위는 한 가지 역할만 하지는 않아서 입도 먹는 것 말고 또 한 가지 일, 말하는 일을 한다. 그 입으로 남을 칭찬만 하지 않고 온갖 험담을 일삼는다. 있는 일 갖고 비난만 하는 게 아니요 없는 일 갖고도 더러운 말을 지어낸다. 남자만 더럽게 말하는 게 아니고 여성도 그런 말들을 꾸며낸다. 없는 사람, 낮은 사람, 못난 사람의 말은 차라리 그럴 수라도 있다 하지, 가지고 높고 잘난 사람이 더러운 말도 상급이다. 말을 정화하자며 더러운 말을 하고 우리끼리만 말하자며 더 더러운 말을 한다. '더럽다'라는 이 한 마디 말이 요즘처럼 실감나게 들릴 때가 없다. 어떻게 사람들이 모여 살며 벌이는 일이 어떻게 이렇게 치사스러울 수 있나. 문제는 창랑의 물만 더러운 게 아니라는 사실. 나도 더럽다 아니할 수 없어, 창랑의 물만 보고 더럽다, 더럽지 않다 할 계제가 아니다. 올해 무술년이라 했다. 심상찮은 바람, 광풍이 분다 했다. 이제 양력으로 한 달, 음력으로 두 달. 말이 무서운 이 해가 언제 가려나 한다. 어느 신문에서 올해의 한자성어를 뽑았다. 왜 '지록위마'는 후보에 없었나. 하지만 명심하라. 무명 어부의 지혜를 배우라. 더러움 속에서 자기도 보라./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8-12-03 방민호

[이영재 칼럼]겨울이 오고 있다

경제상황 1년간 나빠질 것이란 전망 '53%'실업자·노사분규 증가 예상도 '50%' 넘어청와대의 '현실과 동떨어진' 잇단 발언들내부 의사결정 과정 심각한 문제있다는 의미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드라마 광팬이었다. 그 바쁜 시간에 언제 시간을 내 드라마를 보는지 궁금할 정도다. 지금도 '오바마와 미드' '오바마가 좋아하는 미드 추천'이란 제목으로 그가 좋아했던 드라마 목록이 돌아다니고 있다. 워싱턴 정가 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하우스 오브 카드', 이슬람 테러를 다룬 '홈랜드'는 오바마가 좋아했던 드라마들이다.특히 '왕좌의 게임'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로 꼽힌다. 제작사인 HBO에 방영도 하지 않은 시즌 6을 미리 보여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당시 제작사는 "그는 자유세계의 '리더'이기 때문에 미리 보여줬다. 물론 내용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다"고 했던 일화가 있다. '왕좌의 게임'이 오바마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것은 재미있기도 하지만, 이 드라마가 던지는 메시지 탓이 크다. '왕좌의 게임'은 가상의 세계인 웨스테로스 대륙의 연맹 국가 칠 왕국을 무대로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가문들의 치열한 권력 다툼을 그렸다. 명대사 '겨울이 오고 있다(winter is coming)'는 왕국의 북부를 다스렸던 주인공 스타크 가문의 가훈이기도 하지만, 왕권 다툼을 하는 가문 모두에게 북쪽 방벽 너머 '죽음과 겨울을 몰고 오는 백귀(白鬼)'의 공격에 대비하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비록 드라마이지만, 마치 우리 인류에게 보내는 메시지로 들린다.오바마는 언젠가 "책과 드라마를 통해 현실 정치에서 알지 못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드라마 시청이 단지 '시간 때우기 용'이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 오바마는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워싱턴 정가의 이면을, '왕좌의 게임'을 통해 국가 간 패권 다툼을 넘어서 인간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위기를 헤쳐나갈 지혜를 배웠다. 요즘 드라마가 얼마나 현실에 근접하는지 지난해 미국 대선에 개입했던 러시아 '댓글 공장' 요원들이 '하우스 오브 카드'로 미국 정치를 배웠다 해서 화제가 됐다. 우리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드라마와 크게 다를 게 없다. '왕좌의 게임'처럼 실제 '겨울이 오고 있다'는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이기도 하다. 정치, 사회, 남북문제는 제쳐 두고라도 우선 경제만이라도 보자. 생산, 투자, 소비 등 핵심 경기지표들이 일제히 내림세를 보이면서 앞날을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게 우리의 경제상황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은 이른바 한국 경제위기의 '10년 주기설'을 지적하고 있을 정도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내외 경제 전문기관들은 한국 경제가 2%대 성장률이 굳어지는 추세적 경기하강에 진입했다는 경고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밖으로는 미·중 무역전쟁 후유증으로 보호무역주의가 세계 경제를 엄습하고 있다.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서는 경제 상황이 앞으로 1년 동안 나빠질 것이라는 전망(53%)이 좋아질 것이라는 예측(16%)보다 훨씬 높았다. 앞으로 1년간 실업자가 늘고 노사분쟁이 증가할 것이라는 견해가 50%를 넘었다.문제는 청와대의 안일한 현실 인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국무회의에서 "자동차는 생산이 다시 증가하고, 조선 분야도 세계 1위를 탈환했다"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처럼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우리의 자동차업계가 벼랑 끝 위기 상황인데도 이런 발언이 나와서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에도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며 현실과 다른 발언을 했다. 또한 최근 한 세미나에서 청와대 비서관은 "위기라고 하면서 개혁의 싹을 미리 자르려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는 발언으로 참석자들을 당황케 했다. 이는 청와대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다 1997년 IMF 한 달 전까지 "우리 경제는 괜찮다"고 말한 김영삼 대통령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 요즘 유난히 드라마를 보며 현실을 인식한다는 오바마가 생각 나는것도 그런 이유다. 굳이 '왕좌의 게임' 대사를 다시 들추지 않더라도 모든 지표를 보면 진짜 겨울이 오고 있다. '왕좌의 게임' 결말을 모르듯, 얼마나 혹독하고 추운 겨울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군가는 겨울을 대비해야 하는데 주위를 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게 더 무섭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11-26 이영재

[이남식 칼럼]보헤미안 랩소디가 주는 교훈

올바르게 알리고 예방대책 수립사회적으로 차별하는게 아니라오히려 인도적으로 보호하는 것최근 영국의 전설적인 록그룹 '퀸 (Queen)'의 스토리를 다룬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영화를 통하여 70년대 4옥타브를 넘나드는 성량과 화려한 스테이지 매너 그리고 여러 장르를 융합한 창의적인 곡으로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던 프레디 머큐리를 비롯한 브라이언 메이 로저 테일러 그리고 존 디콘의 활약상을 재현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옛 추억을 회상하게 하고 젊은 세대들에게는 팝음악의 역사에 함께하게 하였다. 퀸을 사실상 성공하게 만든 가장 큰 핵심은 리드싱어인 프레디 머큐리인데 다른 세 명의 엄친아(브라이언 메이는 천체물리학 전공, 로저 테일러는 치대생, 그리고 존 디콘은 공대생)와 달리 인도계의 디자인 전공자로 '퀸'이라는 그룹명뿐만 아니라 보헤미안 랩소디를 작곡하기도 한 그룹의 중심인물이다. 그런데 프레디 머큐리가 더욱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은 그가 동성애적 성적지향으로 인한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로 불과 46세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만약 에이즈가 아니었다면 좀 더 그의 무대를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세계보건기구 WHO에서는 매년 12월 1일을 에이즈의 날로 정하여 에이즈에 대한 바른 이해와 확산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원인은 HIV 바이러스이다. 성관계뿐만 아니라 혈액을 통하여 감염되므로 과거에는 수혈을 통해서도 전파되었다. 하지만 의료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명백하게 성적접촉으로 인한 에이즈의 전파가 가장 큰 확산의 원인이며 특히 남성 동성애자가 가장 큰 감염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 명백하다고 말한다. 2016년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의 보고에 따르면 신규내국인 환자 1천62명중 남자가 1천2명 여자가 60명으로 남성의 비율이 16.7배에 달하며 대부분 남성과 남성 사이의 성관계로 감염되었으므로 이러한 팩트에 근거한다면 프레디 머큐리와 마찬가지로 에이즈의 가장 큰 전염경로가 남성보균자와 남성 간의 성관계라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남성 동성애자들에게 노출된 이러한 위험에 대하여 올바르게 알리고 이를 예방하고 막기 위한 교육과 대책을 세우는 것은 결코 이들을 사회적으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도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 본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올바르게 전달하는 것을 왜곡하는 것은 차별금지법의 기본적인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성별이나 인종 피부색 장애 등에 의해 인간의 기본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하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사회의 기본적인 도리일 것이나 차별금지의 출발점에는 개인이 스스로 정할 수 없는 것에 의한 차별을 막고자 함에 있다. 그러나 동성애와 같은 성적 정체성에 대한 자유의지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오히려 차별금지의 원칙을 벗어나는 동시에 현실을 왜곡하고 에이즈의 위험을 증대시키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오히려 질병에 노출된 동성애자들이 인도적인 차원에서 치료받거나 사회로부터 격리되지 않도록 하되 이를 부추기거나 보다 세련된 라이프 스타일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 생물학적인 성별을 차별의 이름으로 없애고자 하는 젠더메인스트리밍이 유럽과 미국에서 인권보호의 상징처럼 떠오르면서 무분별하게 동성애 동성혼을 법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의 기본 취지에는 반하는 영역까지 확장될 경우 또 다른 역차별과 왜곡이 유발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만만치 않다. 좀 더 성숙한 사회로 그리고 포용적인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원칙을 충실히 준수하여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기준을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

2018-11-26 이남식

[윤상철 칼럼]학문 부재의 위험사회

인류 정체성 마저 흔드는 사회변동미래 더 복잡하고 불안하게 만들어우리에 대한 지식 남에게 의존하며'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해 와이젠 '자유로운 학문'으로 벗어나야최근에 '학문기본법'에 대한 논의가 일군의 인문사회과학자들과 여러 학문공동체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는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국가와 사인의 침해행위로부터 보호되어야 하고, 이를 규율하는 절차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며 시설, 인력, 재정 등 그 물적 기반이 사회권으로서 국가에 의해 제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학문의 자유도 대학의 자치도 빈곤한 사회 현실에 대한 자성이면서 미래위험사회를 맞이하여 국가와 사회에 대한 절박한 호소이기도 하다.실제로 대학은 학생들에게 학문도야의 공간이라기보다 취업을 위한 디딤돌 정도로 인식된다. 대학교수가 되려는 이들은 학문에 대한 소명의식을 갖기보다는 어떤 연구분야와 대학(원)이 더 유망한지를 중시한다. 국가와 사회도 다르지 않다. 학문은 정부관료와 정치세력의 입장과 정책을 정당화하고, 교육은 기업이나 산업의 성장에 기술적으로 혹은 인력 수급에 있어서 도움을 주는지가 관건이다.역사적으로도 학문의 역할과 효용은 제한적이었다. 조선시대의 학문과 교육은 유학을 지배이데올로기로 재생산하는 역할을 수행했고, 학자선비들에게는 입신양명의 지적 수단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식민통치에 필요한 관료들을 선발하고 이에 순치된 신민을 양성하였다. 개발독재기와 신자유주의시기에 학문과 교육은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에 기여하는 도구였고, 서구 선진국가를 복사하여 따라잡기 위한 지적 도구였다.학문과 교육이 국가와 기업에 의해 그 사회적 역할이 제약되는 상황에서 본질적 자유이자 기본권으로서 수용되기는 어렵다. 학문과 교육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조건 없는 충분한 지원을 기대하기는 더더욱 어려웠다. 그로 인해 학문생산은 분산적이고 파편적인 생산체제하에서 이루어졌고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재생산체제를 갖추지 못하였다. 학문생산의 기지이자 후속세대의 교육장인 대학원은 국가지원 프로젝트에 연명하는 부실한 교육체제였고, 해외유학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학문연구자들을 주도적으로 양성한다. 따라서 연구자들의 사회적 배경이 유학이 가능한 계층으로 편중되고, 그들의 지적 기반과 우리 사회의 현실은 여전히 디커플링(Decoupling)을 보여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문의 존재와 역할은 훨씬 근본적이다. 즉, 학문은 학자 개인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사회적 성공을 이루기 위한 도구적 지식이 아니라 그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지역, 사회, 국가, 인류공동체 나아가 지구생태계의 지속과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학문이 다루는 대상이나 학문의 성과와 연관된 사람들이나 집단이 다양하기 때문에 학문에 대한 기대는 서로 다를 수 있지만 그 모두를 위한 사회적 공공재를 생산함으로써 공동선을 실현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이른바 '한국 사회과학의 토착화'로부터 시작되어 주기적으로 제기되어 왔지만, 사회적으로는 비주류 학자들의 자기변호이자 집단이익추구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선진국들의 과거를 발생학적으로 따라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역사적으로 경험하였고 향후 전개될 지속불가능한 위험사회는 그야말로 과거에 경험하지 못했고 그 적절한 대안도 내지 못한 완벽하게 새로운 사회임을 깨닫고 있다. 경제와 과학이 발전하면서도 인간이 통제하기 어려운 재난들이 출현하고, 후기후발자본주의국가가 경험한 적이 없었던 극도의 고용불안이 나타나고,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인구절멸국가의 경고를 받고 있으며, 이주노동자와 해외 취업으로 국가간 경계가 불명확한 초이동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특히 4차산업혁명과 지식정보사회는 인류 자체의 정체성마저도 흔들고 있다. 이렇듯 대안없는 극심한 사회변동의 상황에서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 세계경제체제 내 위상, 사회체제와 역사적 유제 등은 우리의 미래를 훨씬 복잡한 위험사회로 만들고 있다.마크 트웨인은 ''사람들은 몰라서 곤경에 빠지는 게 아니라 잘 알면 곤경에 빠지지 않으리라는 착각 때문에 곤경에 빠진다"고 말했다. 정작 우리 사회는 우리에 대한 지식을 남에게 의존하면서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해왔다. 근거 없는 착각보다 더 위험한 것은 무모한 무지일지도 모른다. 학문, 특히 자유로운 학문이야말로 그 출구를 찾아줄 이정표일 수 있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8-11-19 윤상철

[전호근 칼럼]빛이 된 두 사람

참형 당한 동학 1대 교주 '최제우'제자 최시형이 후천개벽 시점 묻자"때가 있으니 마음 급히 하지 말라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자연히…"그의 말은 절망의 시대 비추는 '빛'1864년 3월 10일, 경상도 대구의 관덕정 뜰에서 동학의 1대 교주 수운 최제우가 참형에 처해졌다. 사도를 일으켜 정도를 어지럽혔다는 좌도난정(左道亂正)의 죄목이었다. 그의 나이 41세, 동학을 창도한 지 3년 만이었다. 그는 죽기 전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등불이 물 위에 밝았으니 의심이 없고(燈明水上無嫌隙) 기둥이 마른 것 같지만 아직 힘이 남아 있다(柱似枯形有餘力)."최제우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제자 최시형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861년 여름이었는데, 이후 최제우는 최시형의 득도를 인정하고 1863년 7월 23일에 그에게 해월(海月)이라는 도호를 내린 바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등불이 물 위에 밝았다"는 말은 바로 바다 위에 떠오른 달 '해월(海月)'을 가리키는 비유다.최제우가 최시형에게 도를 전수하게 된 데는 깊은 내력이 있다. 최제우가 관의 지목을 피해 전라도 남원으로 피신했다가 몰래 경주로 돌아와 은신하고 있던 1862년 봄의 일이다. 스승의 종적을 알 수 없게 된 최시형이 스승을 그리워하며 수행하던 중, 반 종지의 기름으로 스무하루 동안 밤을 새우는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그는 그때의 체험을 이렇게 이야기했다."임술년(1862) 정월이었다. 여러 달 동안 밤이 새도록 등불을 켰기 때문에 기름이 반 종지밖에 남지 않았다. 다시 스무하루 동안 밤새움을 했는데도 기름이 닳지 않았다. 이로써 마음에 '자연의 이치'가 있음을 알아차렸다."이렇게 마음에 있는 '자연의 이치'를 터득한 그는 누가 일러주지 않았는데도 스승이 있는 곳을 알고 찾아가게 된다. 최제우는 그가 찾아오자 깜짝 놀랐다. 당시 최제우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있는 곳을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은 그가 아직 전라도 어딘가에 피신하고 있는 줄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최시형의 체험을 기록한 이 일화는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당시 두 사람의 눈에 비친 세상은 참혹했다. 거듭된 흉년으로 백성들의 삶은 무너졌고 아무리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도 끼니를 잇기 어려웠으며 나쁜 병이 퍼져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어디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시대였다. 빛이 없는 시대에는 스스로 빛이 되는 수밖에 없다. 순도는 그렇게 예정된 것이다. 기름 없는 등잔에서 빛을 보았다는 것은 어둠의 시대에 자신의 몸을 살라 스스로 빛이 되겠다는 결심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리라. 최시형은 스스로 빛이 되었기에 어둠 속에서도 스승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이로써 최시형의 득도를 알아차린 최제우는 자신이 오래지 않아 체포될 것이라는 사실을 내다보고 1863년 8월 14일 최시형에게 도통을 전수하여 동학교도를 이끌게 한 뒤 11월에 관에 체포되어 이듬해 순도하였다. 당시 그에게 직접 도를 전수받은 제자들 대부분이 함께 죽거나 유배형에 처해졌기 때문에 동학은 거의 끊어질 뻔했지만 그의 마지막 말처럼 최시형이 남아 있었기에 동학은 이어질 수 있었다. 스승을 이어 이후 35년간 동학을 이끌던 최시형은 1898년 4월 5일 밤 강원도 원주에서 관에 체포되었다. 같은 해 5월 30일 그는 스승과 같은 좌도난정의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6월 2일 단성사 뒤편 당시 육군법원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의 나이 72세, 동학에 입교한 지 38년 만의 순도였다.일찍이 그는 후천개벽의 시점을 묻는 제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때는 그때가 있으니 마음을 급히 하지 말라. 기다리지 아니하여도 자연히 오리니. 만국 병마가 우리나라 땅에 왔다가 물러가는 때이니라."스승이 그를 남겨 후천개벽의 시대를 기다렸던 것처럼 그 또한 스승의 말을 세상에 전함으로써 절망의 시대를 비추는 빛이 되고자 하였다. 마치 기름 없는 등잔이 어둔 방을 비추듯./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11-12 전호근

[이명호 칼럼]정부는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없는가?

국민 안전 보호·국가 운영 방법과학기술에서 찾겠다는 자세 필요남의 일보다 자신 문제 해결 우선공무원의 'R&D 권한' 넘겨 받아DARPA같은 조직으로 창업 유도며칠 전에 한 연구관리 전문기관에서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PM(프로그램 매니저) 제도를 설명해 달라는 요청으로 대전에 가서 DARPA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R&D 시스템에 대하여 2시간 동안 강연과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차를 몰고 올라오면서 그 열띤 진지함이 또 한 번의 좌절로 끝날 것을 생각하니 허망했다. DARPA PM 제도의 벤치마킹은 과학기술과 R&D에 대한 지금의 정부와 공무원의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R&D 정책과 제도는 미국의 것들을 '한국 실정에 맞게(적당히)' 벤치마킹한 것이 많다. 심하게 말하면 기술도 보고 베꼈듯이 정책도 베낀 것이다. 그런데 왜 정부가 세계 최고수준의 R&D 예산(올해 20조 원)을 투입하고 있는데, 여전히 성과가 없다는 평가가 반복되는 것일까? 수십 년 넘게 혁신성장동력을 마련한다고 했는데, 왜 경제는 혁신동력을 잃어가는 것일까? 노벨상을 바라보며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60년 된 DARPA PM 제도의 핵심은 과제기획 기능과 동시에 우리는 못 갖고 있는 예산집행의 전권과 재량권을 갖고 있다가 아니다. DARPA의 핵심은 국가가 왜 과학기술에 투자하고 R&D를 하는가 하는 철학의 문제이다. 학문의 증진, 산업의 육성, 경제 발전 등은 부차적인 것이다. 국가가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강력한, 효율적인 국가와 정부조직이 되겠다는 것이 목적이다. 첨단기술을 개발하여 국가를 지키고 국민의 안녕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60년 전에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을 쏴서 미대륙을 위협하는 사건, 4년 전 세월호 같은 사건이 안 일어나게 하겠다는 국가의 존재 이유에 대한 성찰과 대비이다.외부로부터의 기술적 충격, 새로운 기술을 기반으로 위협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하여 정부가 먼저 새로운 기술에 대한 도전을 계속해서 하겠다는 것이다. 국가가 먼저 첨단기술을 활용하는 조직이 되겠다는 것이다. 이전에 시도된 적이 없는 새로운 것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많은 실패, 그에 따른 예산의 낭비가 전제되지만, 만일 경쟁국이 더 먼저 앞선 기술을 개발했을 때 닥칠 위험에 비하면 그런 실패는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9·11테러가 방대한 정보 분석의 실패에 따른 반성에서 방법을 찾다 보니 인공지능 기술이 나오고(이 기술은 금융권의 사기 감지 기술로 활용되고 있음), 부상당한 응급한 수술이 필요한 군인을 야전에서 수술하기 위해 수술 로봇을 개발하는 것이다(우리도 수술로봇 개발한다고 정부 돈 낭비했는데, 의료헬기 몇 대 더 장만하면 충분했을 것임). 정부, 즉 국민이 그 기술의 수혜자이면서, 최첨단의 기술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국가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술을 개발하는데 대학의 연구소, 공공 연구소, 기업이 같이 참여하게 하여 창업과 첨단 산업을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인터넷, GPS, 반도체, 자율주행차, 드론, 아이폰 시리 등이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얼마 전에 정부가 몇 년 동안 투자해 온 머신러닝 플랫폼 사업을 포기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똑같은 패턴의 반복이다. 인공지능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술을 개발하여 일반인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 대학에 몇 십억을 투자했다. 여전히 국가, 공무원들이 산업을 육성한다고 R&D 예산의 50% 이상(OECD 국가들은 20% 수준) 쓰고 있다. 한때 이 방식은 잘 작동했다. 모방해야 할 기술을 선정하는 데는 공무원이라고 못할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기가 지났다. 기업체가 알아서 더 잘하는 시대가 되었다. 정부에서 행정혁신을 위해 머신러닝 플랫폼을 개발했다면 적당히 연구비 받아서 개발하는 시늉만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이제는 정부가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방법, 국가를 잘 운영하는 방법을 과학기술에서 찾겠다는 자세에서 시작해야 한다. 정부가 남의 문제 해결하겠다고 하지 말고 정부 자신의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하는 전략의 전환이 필요하다. 공무원이 좌지우지하는 R&D 권한을 넘겨 DARPA 같은 조직을 만들어라. 그러면 자연스럽게 과학기술 전문가가 열심히 해결책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가지고 나가 창업을 할 것이다. 그렇게 혁신동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부가 혁신적이면 국가 전체가 혁신적이 된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8-11-05 이명호

[홍창진 칼럼]평등 사회

우리나라 성범죄는 남녀 사이에서불평등한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힘 있는 자가 행사하는 '인권유린'범죄없는 성숙한 사회 만들기위해서로 배려·존중하는 마음 지녀야최근 우리 사회는 '미투(Me Too) 운동'을 체험하면서 양성 평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남성과 여성은 구별될 뿐 차별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언론을 통해 수많은 성폭력 고발 사례를 접하면서 그동안 묵과하던 행동들이 범죄가 된다는 것도 바로 알게 되었습니다. 친근감의 표시로 변명되던 술자리 스킨십이 누군가에게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된 사람도 많으리라 봅니다. 지난 3월 문화체육부와 국가인권위원회는 특별 조사단을 만들어 문화예술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성폭력, 성추행 고발을 접수했습니다. 100일간 진행된 특별 조사는 상당수의 고발 건이 시효가 만료되는 등 가시적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성적 측면에서 얼마나 불평등한가에 대한 실상이 제대로 드러났고, 이것이 바른 변화를 이끌어내는 큰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제가 소속되어 있는 천주교 성직자계도 이번 미투 운동으로 큰 충격을 겪고 내부적으로 쇄신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등 성 평등에 관한 인식 전환을 체험 중에 있습니다. 특히 교구 소속 사제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닷새간의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았습니다. 또한 해당 사제에게는 정직이라는 중징계가 처해졌습니다.6년 전부터 서울대병원 부설 서울 해바라기센터에서 운영위원으로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국립양성평등원의 성폭력 예방교육 강사 자격을 이수했고, 나름 준전문가 입장에서 성폭력 사례를 수십 차례 상담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피해자를 대면하는 동안 한 가지 의문이 계속 되었습니다. '왜 성범죄가 발생하는가?' 한국 사회에서 성범죄는 남녀 간의 불평등한 권력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본질적으로 성범죄는 권력이 있는 쪽이 권력이 없는 쪽에 행사하는 인권유린입니다. 이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인간다움을 버리고, 인성보다 동물성에 충실하려는 저급한 의식에서 비롯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노인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저지르는 성범죄입니다. 단지 힘이 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힘없는 노인과 어린이를 범죄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권력이 존재하는 어느 조직에서든 성범죄는 일어납니다. 사회에 속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인간에게 조직 생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조직은 여전히 여성보다 남성에게 훨씬 큰 권력이 부여되고 있습니다. 성범죄의 이면에 권력의 횡포가 숨어있다고 볼 때, 이 사회의 전 분야에 걸쳐 성범죄가 만연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인성이 문화를 만들어야 행복한 사회에서 살 수 있습니다. 동물처럼 힘의 논리에 의해 문화가 만들어지면 우리가 사는 이곳은 공포 사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범죄를 없애려면 우선 인권운동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인 1948년, 유엔은 '세계인권선언문'을 선포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평등하다. 그 이유는 인간의 타고난 존엄성 때문이다"라고 요약되는 이 선언문은 인류 스스로 만들어낸 좋은 문화의 산물입니다.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생활지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천주교 신부는 한 성당, 즉 한 조직의 최고책임자입니다. 당연히 막강한 권력이 주어집니다. 더군다나 종교라는 특수성 때문에, 조직구성원인 신도들은 신부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합니다. 돌아보면 신자들의 인권을 무시한 경험이 많습니다. 성당 운영위원회 회의 때 위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결정지은 적도 여러 번입니다. 종교인과 신도는 구별될 뿐 차별되지 않는 것은 복음의 진리입니다. 이를 잊고 주어진 권력을 남용한 것입니다.가정에서 쉽게 아내 혹은 남편 그리고 자녀의 인권을 무시한 적이 없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인권 의식이 없으면 여러 가지 사고가 발생합니다. 성범죄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성범죄 없는 성숙한 사회가 되려면 대상이 누구든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8-10-29 홍창진

[이영재 칼럼]나폴레옹과 모니퇴르

동서고금 막론 권력자들 비판적 뉴스 경계당정, 1인미디어 '가짜뉴스 진원지'로 판단국가가 나서 손 보려한다면 부작용은 더 커표현의 자유등 민주주의 기본가치 훼손때문프랑스혁명 직후 분위기를 작가 앙드레 모루아는 '밀고가 시민의 의무였고, 단두대는 미덕의 제단이었다'며 한 줄로 깔끔하게 정리했다. 혁명은 많은 피를 불렀다. 사회는 혼란 그 자체였다. 그 틈을 이용해 권력을 장악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그 지긋지긋한 피를 더 흘려서는 민심을 얻지 못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생각한 게 언론이었다. 언론을 장악해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언론과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쿠데타 직전에 73개였던 파리의 신문사가 1800년에는 13개만 남았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1805년 그는 비밀경찰 책임자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내 이익에 반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인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1811년 신문은 4개만 남았다. 모두 친나폴레옹계 신문이었다. 정부의 실정(失政)은 물론 국민의 피폐한 삶은 한 글자도 보도되지 않았다. '모니퇴르'도 그중 하나였다.모니퇴르는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시민들 편에 섰던 신문이다. 덕분에 혁명 후 프랑스 최고 언론의 위치에 섰다. 시민들은 모니퇴르에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하지만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자 그의 편에 섰다. 나폴레옹이 권력을 잃고 엘바 섬으로 유배된 후에는 부르봉 왕조에 붙어 나폴레옹을 공격했다. 그러던 중 1815년 3월 1일.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했다.이 소식을 모니퇴르가 모를 리 없었다. 나폴레옹이 파리로 입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일. 그 기간 모니퇴르의 1면 헤드라인은 수없이 바뀌었다. '식인귀, 소굴에서 탈출 - 호랑이, 카르프에 나타나다-괴물, 그레노블에 야영-폭군, 벌써 리옹에 진입-찬탈자, 수도 100㎞에 출현-보나파르트, 북으로 진격 중 -나폴레옹, 내일 파리 도착 예정-나폴레옹 황제, 퐁텐블로 궁에 도착하시다-어제 황제 폐하께옵서 충성스런 신하들을 대동하시고 퇼드리 궁전에 납시었다.' 언론의 변절을 지적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자들은 비판적인 뉴스의 확대를 경계한다. 권력을 위태롭게 한다고 믿어서다. 나폴레옹은 언론과 전쟁을 치르면서 "적대적인 신문 4개가 총검 1천개보다 더 무섭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나폴레옹은 파리에 입성한 후 모니퇴르를 정부 기관지로 만들었다.후세 역사가들은 나폴레옹이 언론을 탄압하지 않았다면 프랑스 역사는 크게 바뀌었을 거라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언론이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고, 견제했다면 대륙 봉쇄령이나 스페인 전쟁, 러시아 침공은 수정됐을 것이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은 그의 권력은 더 오래갔을 거란 얘기다. 언론 탄압은 나폴레옹의 최대 실수였다. 나폴레옹도 파리의 신문들이 어용이란 것을 알고 있어서인지 그들의 기사를 믿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정치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외국에선 어떻게 평가되는지 궁금해 영국 신문들을 밀수해서 읽었다.당·정이 1인 미디어를 가짜뉴스의 진원지로 보고 규제하려는 모양이다. 지난 2일 이낙연 국무총리가 가짜뉴스에 대해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사회의 공적으로, 사회 불신과 혼란을 야기하는 공동체 파괴범이며 민주주의 교란범"이라고 비판한 이후, 법무부와 민주당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법무부는 '가짜뉴스 엄정대처'라는 보도자료를 돌리고, 민주당 가짜뉴스대책특위도 전문가를 불러 토론회를 하는 등 가짜뉴스 근절에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그런데 걱정이다. 박정희 정권때부터 여러 번 독재 권력을 지켜본 입장에서 지금의 상황이 마치 과거로 회귀한 느낌이 들어서다. '유언비어'나 '괴담'이 아닌, 정말 가짜뉴스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 부작용은 분명 클 것이다. 그러나 국가권력이 나서서 손을 보려 한다면 그 부작용은 더 크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등 민주주의 기본 가치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1인 미디어를 규제함으로써 대한민국 모든 언론이 모니퇴르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뇌 과학자 이반 로버트슨은 '승자의 뇌'에서 "진정한 승자는 자신의 자아가 늘 위험하고 사나운 개라는 사실을 알고, 권력이란 무거운 짐을 잘 사용하기 위해 그 개를 멀찍이 떼어놓는다"고 적었다. 지금 딱 어울리는 말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10-22 이영재

[방민호 칼럼]지금, 국가와 정부, 그리고 시민들

현재 국민들 환상에 머무는데 익숙보여주는것에 만족하고 찬사 보내그 덕에 인터넷이 언론과 표현 점령오늘날 민주주의 과거보다 더 위험진실 가리는 정보들 교묘하게 작동어느 순간, 더 이상은 나라가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둘 수 없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때가 있다. 예전에는 무엇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른지 비교적 명백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때는 '나'도 주류가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단순하게, 투명하게 생각할 줄 알면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사태는 결코 명백하지 않고, 늘 알 수 없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고 의문을 갖는 순간, 복잡함, 불투명함을 자기 사유의 기반으로, 근본적 조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부주의하거나 둔감하게 지나치면 이 순간은 다시 사라져버린다.국가를 믿고, 국가가 시민들의 의지에 의해 수립되어야 한다고 믿고, 그러지 않은 정부라면 뒤집어 버리면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때, 국가가 없는 세계야말로 유토피아겠지만 그 국가 없는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국가 아닌 국가', '국가를 폐절시키는 국가'의 단계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때도 순진하다면 순진했다. 그런 국가가 얼마나 타락했던가를 깨닫고 국가 없는 세계에 대한 꿈도 함께 잊었을 때 국가라는 문제는 곧 어떤 정부냐 하는 문제로 바뀌어버렸다. 국가를 심문하지 못하게 되자 '근본주의'적 사유는 빛을 잃고 앞에 놓인 정부들 중 하나를 양자택일 식으로 골라잡는 일에 매달리게 되었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순진함이여, 썩 물러가라. '내'가 선택하고 지지한 어떤 정부도 선하지만은 않았으니, 다시는 '내' 의지를 어떤 정부를 위해 사용치 말라. 아깝지 않느냐, 낭비해 버린 젊음의 시간들이. 위선에서 교활을 거쳐 야만으로. 그리고 이제 다시 쇼로. 쇼가 펼쳐지는 무대 뒷면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홉스는 만약 정부가 없다면 사람들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날을 지새우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자연 상태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정부에 위임코자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정부를 갖고 있는가? 악 대신에 선이 활동하는 국가 말이다. 살의에 관해서 생각한다. 만약 정부가 선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사람들의 살의는 정부의 선한 중재에 의해 사그라들 수 있겠다. 과연 정부는 그런 선의로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가?과거에 어떤 정부는 자신이 저지른 악 때문에 전전긍긍했다. 그런 때만 해도 좋은 통치를 위한 가능성은 사라지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선의를 위한 타협과 거짓, 선을 행하기 위해 메피스토펠레스와 단 한 번 계약을 맺었을 뿐이니까. 하지만 메피스토펠레스의 본분은 유혹에 빠뜨려진 자를 파멸에 이르게 하는 것. 유혹에 응한 욕망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 그 어떤 정부는 악마의 손아귀에 들어 갈기갈기 찢기우고 말았다. 악수인 줄만 알았던 것이 수렁에 빠진 격이 되어 끝 모를 이중성을 이어가다 마침내 파멸해 버린 것이다. 만약 순진했던 정부가 악에 익숙해지면 어떻게 될까. 정부를 이끄는 사람들이 이중성에 익숙해지면, 무대에서는 선을 보이고 장막 뒤에서 악을 행하는 데서 편리를 취하는 기술을 익힌다면. 그 어떤 파산한 정부의 뒤를 이은 정부들은 사실상 그러했다. 그들은 교활하기도 했고 야만적이기도 했지만 나아가 보여주고 보임 뒤에서 다른 수를 내는데 익숙했다. 오늘날에도 시민들은 순진하고 환상에 머무는데 익숙하다. 그들은 보여주는 것에 만족해서 찬사를 보내며 머물기 좋아한다. 옛날에 어떤 지도자는 그래서 국민들보다 반 보만 앞서 가라 했지만, 차라리 반 보를 늦게 가야 더 큰 찬사를 받을 수 있는지 모른다. 보여지는 것에 약한 시민들 덕분에 인터넷 가상 현실이 언론과 표현을 점령하다시피 한 오늘날 민주주의는 과거보다 더 큰 위험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 빠르고 광범위한 전파 능력은 보여주는 세력에게만 이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환각 이면의 진실을 탐색하는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하기는 한다. 그러나 사태는 절대 간단치 않다. 진실을 가리는 정보들의 숱한 집적과 '좋은' 정보를 향한 접근 자체를 가로막는 온갖 교묘한 기술과 트릭이 작동한다. 지난 여름부터 가을까지 정치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실감하게 되면서, 아하, 이제 천치가 되자 생각한다. 무엇이 진실인지 진정한 친구가 어디 있는지 생각하지 않으면 편할 것 같다. 이미 모든 게 뒤얽히고 엎어져 버렸다. 이 비관은 어디에서 오는가.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할 수도 없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8-10-22 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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