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칼럼

 

[이남식 칼럼]국부의 창출과 분배

수 십년간 국가경제 근간 이뤄온조선·자동차·전자 등 한계 도달단순 여론조사로 정책방향 잡기보다현장목소리 듣고 유연하게 대처지속가능한 정부·경제발전 가능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국민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의 안보나 국민의 안전, 그리고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함으로써 자유롭게 원하는 일들을 이루어 자존감과 행복감을 높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부의 창출과 분배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한다. 즉 경제의 생산성을 높여 파이를 키우는 동시에 고용을 창출하여 파이를 잘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생산성 위주의 성장주도 전략을 펴다보면 환경 복지에 불균형이 누적되어 분배중심의 전략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 이번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이 아닌가 한다. 개인의 소득이 늘어나는 것을 누군들 싫어하겠는가? 문제는 나누어 줄 재원을 키우면서 이에 비례하여 소득이 늘어나도록 해야 지속가능한 소득의 증대가 일어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인위적으로 소득을 늘리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가정 하에 최저임금을 16.4%를 올리고 비정규직을 없애는 쪽으로 정책을 펴다보니 오히려 일자리가 늘어나지 못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정부가 나서서 양질의 일자리인 공무원을 대폭 증원하겠다고 하고 있다.모두가 안정적이고 좋은 급여를 받는 일자리를 원한다. 하지만 제한된 국가예산을 미래의 국부창출과 산업경쟁력을 위한 투자 보다 당장에 일자리를 늘리는 쪽에 우선 순위를 둔다면 과연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게 된다. 정부의 역할은 일자리를 직접 나서서 늘리기보다 일거리를 늘려 간접적으로 일자리가 늘어나게 해야 지속가능해 질 것이다. 국민들의 안전을 향상하기 위해 경찰관의 숫자를 많이 늘리는 것은 정부가 직접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라면 인공지능을 갖춘 CCTV를 촘촘하게 배치할 수 있도록 정부가 프로젝트를 만들면 기업이 이러한 국가수요에 참여하기 위하여 기술을 개발하고 인력을 충원하여 국민의 안전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보기에 따라서는 전자의 정책이 당장에는 더 환영 받을 수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는 지속적으로 많은 국가 재정을 필요로 하며 후자는 해외에 기술 수출 등 확대 재생산이 가능하나 경찰관은 수출이 불가능하다. 결국 일자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산업정책을 통하여 일거리를 확장하고 노동정책을 통하여 노동의 유연화를 통하여 다양한 일자리를 확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새로운 기술을 요하는 직업과 보편화된 역량을 요구하는 직업은 확연히 다르므로 비정규직이나 파견 근무직 등을 대폭 늘려 연령에 제한 없이 일정 수준의 능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바람직하다. 정규직만을 강조하다보면 오히려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 뿐만 아니라 노동의 유연성이 더욱 줄어들게 될 것이다.매우 복잡한 경제 질서와 사람들의 심리를 하나의 정책으로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고 본다. 정부는 운영의 묘를 살려 유연하게 정책을 펼쳐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결국 국가의 혁신역량과 이를 뒷받침하는 국민의 역량이 배양되지 않으면 경제의 총량이 늘어나기 어렵다. 이를 위하여 규제의 개혁, 교육의 혁신,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예측 역량을 배양하는 것이야말로 원천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최근에 우리의 기간산업이라 할 수 있는 조선, 자동차, 전자, 석유화학 등 지난 수 십년간 국가경제에 근간을 이루어온 분야들이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어떻게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 대응하기도 쉽지 않은데 기업의 경영활동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크나큰 내부 도전을 만나게 되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단순 여론조사에 의하여 정책방향의 당위성을 찾을 것이 아니라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 정책의 유연성을 펼쳐가는 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경제발전과 더불어 지속가능한 정부가 가능해질 것이다. 최근 세계적으로 원전의 수요가 늘고 있는데 정부가 앞장서서 일거리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과 같은 대형사업도 정부가 앞장서서 확보해야 할 일거리 인데 적극성 부족으로 멀어져가는 안타까움이 크다. 결론은 우리의 미래의 꿈을 이루기 위한 방법론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인데 정부의 신중한 선택과 유연한 운용을 기대해 본다./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

2018-10-15 이남식

[윤상철 칼럼]창의성의 사회적 장애

자유화는 문화적 취향 소비 통해과시·타인과 구별 결과만 초래자발·독립성 찾아내기 어렵다정치적 억압 수동적 만들진 않지만창의력의 필요충분조건은 아냐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 폐막식에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한국기자들에게 질문을 받고자 했다. 그러나 한국기자들은 오바마의 두 차례 요청에 거듭 침묵을 지켰고 정작 그 마이크는 중국기자에게 넘어갔다. 그 자리의 한국 기자들이 마땅한 질문거리를 준비하지 못했을까?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고 국가의 위신을 세워야 한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울렁증 때문이었을까? 청와대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은 사전에 협의된 질문을 정해진 순서에 따라 발언하지만, 대통령의 두루뭉술한 답변에 대해 재차 캐묻거나 약속된 범위를 넘어서는 질문을 감히 시도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반드시 언어문제는 아니다.최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중고교생 두발자유화선언'을 발표했다. 그는 "머리 모양을 정하는 것은 학생들의 '자기결정권'에 해당하며 기본권으로서 보장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차원에서 각 학교 단위에서 이를 공론화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나아가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학생들을 피동적, 수동적 존재로 보고 제한만 하는 낡은 교육관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가 기대하는 결과는 시대변화에 부응하는 능동적이고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학생이자 시민이었을 것이다. 두발자유화가 기본적 인권의 문제이고 이를 민주적 공론화 과정을 통해 성취해내면 기자들이 보여준 억압된 피동성을 벗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창의성을 드러낼 수 있을까? 중국사회에서 성장하고 활동해온 중국인 기자가 보여준 무례할 정도의 당당한 모습은 인권과 민주주의를 그 핵심적 문제로 보기도 어렵게 한다. 이미 상당한 정도로 진전된 두발자유화가 교육감의 선언으로 촉발되어 설사 민주적 공론화 과정을 거치더라도 학교 내의 민주주의를 진전시키고 나아가 학생들의 자기주도성과 민주성, 그리고 창의성을 높일 것 같지도 않다.돌이켜보면, 자유화는 항상 기대했던 바의 바람직한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된 이후, 2011년에는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이른바 '등골브레이커'점퍼가 유행하였고, 작년에는 연예인이나 축구선수들의 전유물이었던 롱패딩이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새로운 '잇템'으로 떠올랐었다. 자유화 세례 이후 맘카페가 확산시킨 유기농 수제 '미미쿠키'를 먹고 자란 학생들은 '스타벅스'와 같은 카페브랜드를 소비하고, 이제는 프리미엄 취향의 '시그니처' 메뉴와 그 매장을 문화적으로 소비하게 된다. 이렇게 성장한 대학생들은 해외여행과 해외어학연수는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고, 독립적인 개성으로서의 워킹홀리데이와 해외생활을 시도해야 한다. 용돈을 마련하고자 많은 시간을 알바에 투입하면서도 해마다 바뀌는 휴대폰 신모델을 구입해야 한다. 자유화가 문화적 취향의 소비를 통해 자신을 과시하고 타인과 자신을 구별 짓는 결과만을 낳을 뿐 그 어디에도 자발성과 독립성, 그리고 창의성을 찾아내기 어렵다. 즉, 정치적 사회적 억압이 반드시 수동적 존재를 만들지도 않지만, 자유화가 창의성의 필요충분조건도 아니라는 말이다. 한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거쳐 교수로 자리 잡은 중국인 교수 동거는 "표현에 서투르고 토론을 기피하는 한국인들은 과정과 결과를 다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살면서 모든 이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만의 것에 대한 확신을 포기한다"고 말한다(중앙일보 10월 5일자). 자유화가 정치적 억압을 벗어버리고 원하는 바 풍성한 열매를 맺기 전에 사회적 억압이라는 장애물을 만나서 개인적 창의성보다는 비교적 안전한 선택인 사회적 유행의 따라잡기와 사회적 구별짓기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일찍이 사회학자 막스베버는 젊은이들이 '개성'과 '체험'이라는 우상을 숭배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자기의 일에 대한 도취와 헌신, 그리고 영감을 통해 그 일의 정점에 오르기보다는 단지 남과 다른 체험을 자신의 독특한 개성으로 과시한다는 것이다. 에디슨의 '99%의 노력과 1%의 영감'과 달리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체험을 영감으로 동일시한다. 정작 우리 사회 안에는 베버나 에디슨이 그리는 방향으로 젊은이들을 이끌고 격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결여되어 있다. 젊은 청년창업가 표철민씨의 말의 울림이 오래 느껴진다(중앙일보 10월 5일자). "성장이 느리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평생 할 수 있습니다. 평생 할 각오로 꾸준히 임하는 데 성공하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그가 지닌 용기와 확신이 살아온 동안의 불편을 연상시킨다. 자유화는 억압을 없애는 출발점일 뿐이고 그 열매는 사회적 자유화 속에서 영글어 갈 수 있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8-10-08 윤상철

[전호근 칼럼]위대한 패배

1907~1910년 일제강점기 의병들맨몸으로 일본군 신식무기에 맞서이길 수 없는 전쟁 치른 이유는억압하고 핍박하던 못난 나라도자유로운 삶 위해 지켜야했기 때문"다 죽는구나. 다 죽어."드라마를 보던 아내가 길게 탄식을 내뱉는다. 무슨 드라마인가 물었더니 한말 의병과 관련된 이야기를 배경에 깔고 있는 '미스터 션샤인'이라며 줄거리를 간단하게 이야기해준다. 이야기를 들은 나는 이 드라마가 의병운동의 실상을 제대로 그려냈구나 싶었다. 동학 농민 전쟁부터 시작해 한말의 의병 운동은 전쟁이 아니라 일방적인 학살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1년여 전 나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이 개최한 학술대회에 참가하여 장일순의 평화사상을 주제로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함께 학술대회에 참여했던 동학연구자인 원광대 박맹수 교수는 '전봉준의 평화사상'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나는 박교수의 발표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전쟁이라고 생각했던 전봉준의 무장투쟁이 실제로는 일방적인 피학살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박교수가 발굴한 자료에 따르면 전봉준의 지휘에 따른 농민군은 전쟁 내내 철저하게 불살생(不殺生)의 원칙을 지켰다. 전봉준이 내린 군령의 첫 번째 조항에는 적을 마주할 때 병기의 칼날에 피를 묻히지 않고 이기는 것을 으뜸가는 공훈으로 삼는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또 어쩔 수 없이 싸우더라도 결코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을 최고로 친다는 내용과 함께 행군하는 곳마다 절대 백성들의 물건을 해하지 말라는 명령도 포함되어 있었다. 도무지 군령이라고 볼 수 없는 내용이다.실제 동학농민군을 시종일관 비판적인 입장에서 기술했던 매천 황현의 '오하기문'에 따르더라도 1차 동학 농민혁명당시 농민군은 민폐를 전혀 끼치지 않은 반면, 서울에서 파견된 홍계훈의 경군은 막대한 민폐를 끼쳤다고 기술하고 있으며, '도쿄아사히 신문', '시사신보' 등 일본측 신문에도 일본 상인 가운데 농민군에게 피해를 입은 상인은 단 한 명도 없었으며, '조선잡기'에는 동학농민군의 규율을 두고 '문명적'이라고 기술하기도 했다.그날 뒤풀이 자리에서 박교수는 1894년 12월에 있었던 일본군과 동학농민군 간의 갑오농민전쟁 기간 동안 일본군 희생자 한 명당 동학농민군 희생자는 3만 명이었다고 이야기했다. 동학농민혁명은 처참한 자기희생일지언정 전쟁이 아니었던 것이다.동학농민혁명뿐 아니라 일제의 강점을 전후한 시기에 활동한 의병도 마찬가지였다. 1907년부터 나라가 병탄되던 1910년에 이르기까지 의병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지만 그들 대부분은 일제의 진압에 무자비하게 학살되었다. 초기 독립운동 기록을 살펴보면 의병 70여 명을 일본군 헌병 세 명이 출동하여 몰살시키는 식이다. 의병들의 무기는 몽둥이, 낫, 도끼, 화승총 따위였고 일본군은 신식 무기를 갖추고 있었으니 상대가 될 수 없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일제 강점 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영규의 '강화학 최후의 광경'을 읽어보면 정원하와 이건승을 비롯한 양명학자들은 만주로 가 독립운동에 참여하지만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손자병법에 따르면 전쟁은 이길 수 있을 때만 하는 것인데 동학농민군이나 이후의 의병과 독립군들은 모두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한 것이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더욱이 그들이 지키려던 나라는 그들을 억압하고 핍박하던 못난 나라 아닌가? 그들은 그들의 가난한 무기와 움켜쥔 주먹으로 외세와 부패한 권력을 몰아내고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1907년 의병활동을 취재하기 위해 조선에 온 영국의 기자 매켄지는 당시 항일 의병을 이끌던 젊은 의병 지휘관의 말을 이렇게 전했다."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싸우다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노예로 사느니 자유민으로 죽는 게 낫다."그들은 질 수밖에 없는 전쟁이라도 나서야 하며 자유로운 삶을 위해 못난 나라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내가 드라마의 마지막 편을 보면서 대사를 따라 중얼거린다.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불꽃으로 살다가 가겠다, 이게 나의 세계다.혹 이 나라를 침략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들처럼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나설 수 있을 것인가?/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10-01 전호근

[이명호 칼럼]우리 정부는 플랫폼 정부인가?

美, '챌린지'로 난제 시민과 해결우리도 '정책 플랫폼' 있었다면최저임금·영세업체 매출 감소로자영업자 대책 세우는일 없었을 것 국민이 정책 생산·실행 참여할 때잘 나가는 글로벌 기업의 특징은 플랫폼 기업이라는 것이다. 구글,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 등 시가 총액 세계 5위까지 모두 인터넷 플랫폼 기업이다. 핸드폰 사용자라면 누구나 일상적으로 접속하는 구글의 플레이 스토아와 유튜브, 애플의 앱스토아와 아이튠, 페이스북은 다 플랫폼이다. 플랫폼이 만들어지면 수많은 공급자가 자발적으로 제품과 서비스, 콘텐츠를 올리고 소비자는 쉽게 구매하거나 받아 쓸 수 있다. 플랫폼은 중개인의 개입 없이 공급자와 소비자가 직접 거래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제품과 서비스를 찾는 탐색과 유통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어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또한 플랫폼이 일정 규모의 사용자를 확보하면, 규모의 경제를 이루어 더 쉽게 더 많은 사용자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면서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인다. 잘 만든 콘텐츠 하나가 입소문만으로 수백만 명, 수천만 명에게 전달이 되는 것도 플랫폼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래서 기업들은 플랫폼이라는 마당을 조성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기존의 포털 같은 정보서비스가 일방향의 서비스라면 플랫폼은 쌍방향으로 생태계(시장)를 형성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나라도 카카오톡, 배달의 민족, 쿠팡 등이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해가고 있다. 한마디로 플랫폼 기업들이 주도하는 플랫폼 경제의 시대이다. 지난 달에 정부도 빅데이터·블록체인·공유경제, AI(인공지능), 수소경제를 혁신성장 전략투자 분야로 선정하고 플랫폼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투자 규모도 대대적이다. 내년에만 5조 원을 투자하고 향후 5년간(2019~2023년) 9조~10조 원 규모 투자가 이뤄질 계획이다. 빅데이터나 인공지능 등 여러 산업에 걸쳐 꼭 필요한 인프라,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여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한 플랫폼 경제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이다. 플랫폼 경제로 전환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을 보면서 우리 정부는 정말 플랫폼의 장점을 잘 알고 플랫폼 경제로 전환시킬 능력이 있는 정부인가를 되물어 보게 된다. 70~80년대 고도성장기에 8~9%대를 유지하던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김영삼 정부 말에 IMF를 맞이한 후, 김대중 정부에서는 평균 5.32%, 노무현 정부 4.48%, 이명박 정부 3.2%, 박근혜 정부 3%로 정부가 바뀌면서 1%씩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다. 경제 성장률 저하가 정부만의 책임이 아니겠지만, 정부와 관료조직이 효율적으로 움직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국민의 불신과 불만이 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 좋은 플랫폼 경제를 부르짖는 정부는 좋은 정책을 만들어 내는 플랫폼 정부인가를 되묻게 된다. 플랫폼은 공급자와 소비자라는 쌍방향이 만나는 공간이다. 정부의 플랫폼은 크게는 정책의 공급자(정부, 정당)와 소비자(국민, 이해관계자)가 만나 새로운 정책이 생산되고 확산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작게는 정부 내에서 각 부처가 통계와 자료를 공유하고, 정책을 조율하고 창출하는 공간이다. 미국은 '챌린지'라는 플랫폼을 활용하여 연방정부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를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통해 해결하면서, 정부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싱가포르는 2014년부터 '스마트 네이션 플랫폼'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전자정부나 정책 포털을 넘어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정책 플랫폼이 있었다면, 최저임금 인상과 52시간 노동제가 자영업, 소상공인 등 영세업종의 매출 및 고용 감소로 이어지면서 부리나케 자영업자 대책을 세우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정책 근거가 되는 데이터와 통계에 대해서도 혼란을 불러일으켰다.이제는 정부와 국민이 정책의 생산과 실행에 참여하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현재 국민의 모든 생활과 경제활동 등에 영향을 미치는 법정계획으로 정부가 기본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정책이 330여개, 종합계획은 120여개가 된다. 그러나 인터넷 어디에서도 이런 계획 자료를 한곳에서 찾을 수 없다. 순환보직으로 자리를 옮겨 다니는 어느 공무원의 책상 위에 기본계획 하나 식 있을 것이다. 수많은 정책에 관련된 데이터나 정책의 변천, 성과를 분석하는 인공지능 시스템은 당연히 없다. 플랫폼 시대에 정책 플랫폼이 없는 것이다. 유능한 정부를 기대할 수 있을까? 플랫폼을 운영해본 적이 없는 정부가 제대로 플랫폼 경제를 육성할 수 있을까?/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8-09-17 이명호

[홍창진 칼럼]결심과 실천

'사랑' 말로 하기는 참 쉬워혈연외에 어떤 사랑도 없다면동물의 왕국과 무슨 차이일까행복이란 서로 움켜쥐는게 아니라주고 받는 관계에서 생겨나는 것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스스로를 "바보"라고 칭했습니다. 말로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 삶에서는 '믿는 자'의 삶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며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했지요.매 주말 강론을 통해 신자들에게 '행동의 중요성'을 전해야 하는 성직자들의 흔히 경험하는 속내를 김 추기경은 팔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 솔직하게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부끄럽다는 그 고백 이면에서 오히려 강한 실천 의지가 느껴집니다. 실천하지 못했다는 반성은 곧 실천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바보 선언'을 한 그의 삶에서 여느 고위 성직자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많은 사회 참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시대의 어른조차도 결심에서 실천에 이르는 길이 이토록 멀고 험한 것이라면 우리는 어떨까요?조카뻘 되는 어느 여자 이야기입니다. 미국에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들른 한인성당에서 교포 2세 남자를 만났습니다. 서른쯤인 여자는 한국에서 취업을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미국 여행길에 혹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고 합니다. 남자는 편의점을 운영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 현지 명문대를 졸업한 뒤 은행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둘은 첫눈에 서로 호감을 느껴 몇 차례 데이트를 했다고 합니다. 이후 여자가 귀국하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 남자는 결혼을 결심하고 한국에 와 청혼을 했습니다. 여자의 부모에게도 허락받은 뒤 둘은 바로 미국에 건너가 남자의 부모에게도 인사를 드렸습니다. 마침 미국에 갔을 때 사업을 하는 남자의 고모가 여자의 취직까지 해결해 주었습니다. 누구나 인생에 한두 번쯤 큰 행운이 온다고 하는데, 마침 그 여자에게 그런 행운이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그러나 한국에 들어온 여자는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예비 시댁 식구들과의 첫 식사 자리에 남자의 누나가 나왔는데 중증 발달장애자였던 겁니다. 물론 남자가 데이트 중에 장애인 누나가 있다고 얘기는 했지만,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하니 충격이 무척 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식사를 끝내고 둘이 있을 때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누님을 돌볼 능력이 없어지면 그때는 자기가 맡아서 돌봐야 한다고….여자에게는 인생에 한두 번 찾아오는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던 상황이 역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도 반대했고 친구들도 말리고 나섰습니다. 여자는 생각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는 결혼할 수 없다.' 중증 장애를 지닌 누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건 감내하기 힘든 조건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여자는 행운을 불운으로 결론짓고, 미국행을 포기하기로 했답니다.사랑을 말로 하기는 쉽습니다. 남의 위대한 사랑에 박수 치기도 쉽습니다. 그러나 실천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만일 중증 장애를 지닌 딸을 보살피는 부모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TV에 방영된다면, 이를 본 사람들은 모두 감동의 박수를 보낼 것입니다. 여자도 그런 프로그램을 보았다면 감동의 눈물을 흐리며 동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이 내 일이 되었을 때는 상황이 180도 달라집니다. 혈연으로 묶인 관계가 아닌 다음에야, 헌신하는 사랑을 감내하는 용기를 내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랑이 없으면 이 세상은 사막처럼 답답해질 것입니다. 혈연 외에는 어떤 사랑도 없다면 동물의 왕국과 무슨 차이일까요? 약육강식만이 존재하는 살벌한 세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행복이란 움켜쥐는 것이 아닌,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서 생기니까요. 어느 누구도 여자에게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강요하지 못했습니다. 사랑은 스스로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남자와 그의 부모는 또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겠지요. 그들의 손을 잡아 줄 용기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여자가 한 사람 나타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더 이상 삭막해지지 않으면 참 좋겠습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8-09-10 홍창진

[방민호 칼럼]말의 피흘림

세상 사람은 모두 불쌍한 존재월급 못받고 주지도 못해 딱하다서로의 처지 관대하게 볼 줄 알고이해·동정의 마음 담은 말들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썼으면 한다인터넷이 지금처럼 활성화되기 시작한 때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때 말의 피흘림도 함께 시작되었다. 인터넷 댓글은 피 흘리는 말들의 전시장 같았다. 댓글은 어떤 기사나 의견에 대한 반응을 나타내는 글인데,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문제를 다룰 때 그것은 거의 언제나 비판을 넘어 비난과 비방, 비아냥, 냉소로, 또 한도를 넘는 잔인한 공격으로 나타나곤 했다. 옳은 견해도 말을 아름답고 깨끗하게, 정중하게, 유머러스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그 거침과 투박함, 공격성으로 인해 듣고 보는 사람의 오해를 사고,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그 올바름마저 옳지 못한 것으로 뒤바뀌기까지 한다. 옛날부터 말을 곱게 해야 한다 했다. 옛날에 국왕이 남면해야 한다고 한 것은, 단순히 남쪽을 바라보고 앉아야 한다는 것만 아니라 부드럽고 따뜻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국왕부터, 그러니까 지금 식으로 말하면 정치 지도자부터 말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간결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곡진하고, 때로는 완곡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민심이 덩달아 편안해질 수 있다는 뜻이리라.말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은 그러니까 우리 사회에서 지긋지긋할 정도로 넘쳐나는 좌니, 우니, 보수니, 진보니 하는 것보다는 그 말을 쓰는 사람이나 집단의 성정에 관계하는 것이다. 돌아가신 어느 대통령께서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보면 부드럽고 완곡하게 말씀하시는 장면을 잘 보여주지 않았고, 이 때문인지 그분을 열렬히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치적 견해가 조금만 차이나도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자유자재로 퍼나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조롱과 풍자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말의 쓰임 가운데 하나일 수 있지만 이것이 지나쳐서 같은 '편' 사람들조차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는 정도가 되면 아주 곤란하다. 그래도 그분은 뜨거운 사람이어서 그 안에 어떤 모순과 잘못됨이 있었는지 몰라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것은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말이 피 흘리는 일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지난 십 년 사이에 사람들은 진정함이 결여된 말의 성찬, 차라리 교활하다고까지 해야 할 어법에 잔인하고 비정한 짓누름의 말들을 '위'에서 보고 '아래'에서 함께 썼다. 말로 이루어지는 온갖 담론 장들, 토론과 댓글과 선언, 성명 같은 모든 곳에서 말들은 피를 흘린다. 상처가 덧나 염증이 생기고 병세가 아무리 심각해져도 사람들은 말쯤이야 자신들의 의지와 올바름과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한갓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예전에 우리에게도 뛰어난 말의 예술사 한 분이 계셨다. 돌아가신 대통령 가운데 한 분으로, 늘 비방, 마타도어에 시달리는 처지였건만 야당 지도자일 때도 여간해서는 화내는 표정을 보이지 않으셨다.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거나 새해 인사를 할 때는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좌중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이끌곤 하셨다.이 분이 돌아가셨을 때 필자는 동교동의 어떤 출판사에서 책 편집 일을 하다 장례 주최 측에서 나누어주는 그분의 일기 발췌본을 받아보았다. 그중 어떤 부분은 음력설을 앞둔 때의 기록이었다. 거기서 그분은 설을 앞두고 생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면서, 월급을 받지 못한 사람들뿐 아니라 월급을 주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동정을 금치 못하셨다. 그때 필자는 세상 경험이 적은 데다 없는 사람 편을 들어야 한다는 마음만 확고하던 때였다. 제때 월급 못 받으며, '노동 착취' 당하는 사람들을 말할 수 없이 동정하면서도, 월급을 주지 못해서 당하는 괴로움 같은 것이 있으리라고는 별반 헤아려 보지도 못했었다. 확실히 세상 사람은 모두 불쌍한 존재인 것이다. 월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주지 못하는 사람도, 그리고 돈이 아주 많은 사람도 사실은 불쌍하다. 사람들은 서로의 처지를 보다 관대하게 볼 줄 알아야 하고 이 이해와 동정의 마음을 담은 말들을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때가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8-09-03 방민호

[이영재 칼럼]우리는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

야구광이며 운동권 출신인 자영업자 A씨"AG로 프로야구 중단 팬들에 예의 아냐정부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대책' 어이없어최저임금 독약 국민들 알면서도 계속 마셔"자영업자 A씨는 요즘 즐겁고 행복한 일이 1도 없다고 한다. 야구광이며 대학 시절 운동권이기도 했던 A씨를 만나 왜 요즘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은지 들어봤다. A씨는 프로야구, 특히 SK 와이번즈의 열렬한 팬이다. 요즘 그를 힘들게 하는 건 '프로야구 일시 중단'이다. A씨는 말한다. "아시안게임 출전으로 프로야구를 통째로 중단하는 게 말이 되느냐. 프로 축구도 하지 않느냐. 지금이 '까라면 까는' 군사독재시대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봉 수십억 원을 받는 선수들이 아시안게임 출전 핑계로 거의 한 달을 통째로 노는 것은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A씨는 주장했다. 야구사랑이 넘치는 미국도 일본도 올림픽 때문에 프로리그를 중단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KBO는 달랐다. 8월 17일부터 9월 3일까지 일정을 중단했다. 그러자 '병역특혜논란'이 나왔다. A씨는 KBO와 구단이 몇몇 선수들의 병역을 해결하기 위해 의기투합했다고 생각한다. 몇몇 선수는 상무와 경찰청 지원을 미루고 대표팀 자리를 노렸다고 확신하고 있다. 병역 미필자가 애초 7명이었는데 부상선수 교체를 핑계로 9명으로 늘어난 걸 보라는 것이다. A씨는 KBO와 구단이 모종의 야합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A씨는 "내가 요즘 즐겁지 않은 건 자영업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씨는 편의점주다. A씨는 지난주 정부가 발표한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대책'을 어이없어했다. "정부가 정책실패 등 계속 헛발질을 해놓고 왜 국민 세금으로 우리를 지원하려고 하느냐. 우리가 거지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첫 단추를 잘 못 끼웠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린 게 독약이었다. 그런데도 계속 독약을 마시고 있다. 문제는 독약인 줄 알면서도 계속 먹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말이 아팠다. "그 독약을 누가 마시냐. 결국 우리 국민들이 마시는 거다."A씨의 말은 점점 거칠어 졌다. A씨는 문재인 정부에 큰 기대를 걸었다고 한다. 그런데 내놓는 정책마다 자영업자들을 힘들게 해 '지지철회'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요즘 A씨는 차라리 월급을 또박또박 받고 52시간 근무로 '저녁이 있는 삶'을 영위하던 직장에 좀 더 있을 걸 그랬다고 후회하고 있다. "정책입안자들이 편의점 체험 1주일만 하면 무엇인 문제인지 금세 알 수 있을 텐데" 라며 A씨는 혀를 끌끌 찼다. A씨는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있다면 대학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당시 젊은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A씨도 그 누구보다 민주화를 열망한 학생이었다. 도서관에 처박혀 영어단어나 외우는 그런 학생이 아니었다. 전두환 정권 말기 A씨는 아스팔트 위에서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화염병도 제법 던졌다. 건대 사건 때에는 최후까지 남기도 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A씨는 그때, 자신이 '겁많은 데모꾼'이었다고 말했다. 운동권 주변을 맴돌았을 뿐, 그 중심으로 뛰어들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학내 데모의 단골 멤버였지만, 늘 두 번째 줄에 섰다"고 말했다. 야학은 했으나 위장 취업할 용기가 A씨에겐 없었다. "그때 학교(감옥)에 한번 갔다 왔으면 인생이 바뀌었을 텐데. 운명이었는지 이상하게 그런 상황은 나를 피해 갔다." A씨와 얘기하고 있을 때 TV에 운동권 출신 공직자가 나오자 그의 표정은 묘하게 변했고, 혼자 뭐라고 중얼거렸다. TV 소리 때문에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내가 장남만 아니었어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물론 저 소득계층도 더 어렵겠지만, 자영업자 소상공인은 요즘 정말 어렵다. 만일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제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뭘 제대로 하려는지 말하려다가 A씨는 입을 닫아 버렸다. 그때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A씨는 얼른 창밖으로 얼굴을 돌렸다. 나는 A씨에게 말했다. "지금 즐겁지도, 행복하지도 않은 건 당신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아무도 행복하지 않다."PS: 이 글을 쓰고 있는 중 A씨에게 문자가 날아왔다. "우리 야구가 실업팀이 주축인 대만 야구에 졌는데도 기분 나쁘지 않은 경우는 내 평생 이번이 처음입니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08-27 이영재

[이남식 칼럼]대입제도 개편 유감

미래 준비위한 교과과정 변화 아닌수능 통한 정시모집 확대에 불과눈치작전·대입컨설팅 성행 불보듯되레 공교육 정상화 노력 역주행이젠 학생 역량 키우는데 중점둬야오랜 공론화 과정을 거쳐 최근 2022년 대입제도 개편 방안이 확정되어 현 중3 학생들의 대입이 바뀌게 되었다. 가장 크게 바뀌는 내용은 4차 산업혁명 등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교과과정의 변화와 이에 따른 선발방식의 개선이 아닌 수능을 통한 정시 모집의 확대에 불과하다.그간은 고교교육의 정상화를 위하여 평소 학교생활의 누적적인 기록인 학생부를 중심으로 선발의 다양성을 확대하기 위하여 수시모집을 늘려왔으며 그 결과 일부 대학에서는 전체 80% 정도를 수시에서 선발하기에 이르렀다.우리의 교육이 기-승-전-대학입시가 되다보니 모든 교육의 관심이 대입에만 첨을 맞추게 되고 교육과정보다는 궁극적으로 대학입시에 유리한 조건을 충족하는데 온 힘을 기울이게 된다. 이번 공론화의 과정에서 학생부에 대한 불신 내지는 수능으로 한 번에 만회하는 기회를 늘리며 816가지나 되는 선택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결론이나 한 마디로 미래지향적인 교육에 대한 어떠한 변화도 찾아볼 수 없는 오히려 온갖 눈치작전과 편법, 대입컨설팅만 성행하게 될 것임이 불 보듯 뻔하게 되었다.이런 상황 속에서 학생주도형 스스로 학습, 융합형 교육, 플립트 러닝 (거꾸로 교실), 인성교육 등이 학생이나 학부형들에게 무슨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학생, 교사와 교육과정, 교육환경을 어떻게 개선하고 향상시킬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없이 단순히 대입선발 방식만 아무리 논의해도 결론은 항상 제자리 일 것이다. 가장 정확한 학생에 대한 평가는 시험점수가 아니라 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교사들이 내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전문가의 주관적인 평가는 매우 객관적이라는 것을 신뢰할 때 교육을 통하여 성장하는 차세대를 제대로 육성할 수 있을 것이다.이제 교사의 가장 큰 책무는 학생들을 관찰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학생 각자의 자질과 능력을 발견하고 성장 시키는 것이다. 지식을 전달하는 역할에서 학생들의 경험을 늘리고 인생의 방향을 설정해주는 역할로 바뀌어야하며 이를 사회 모두가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이번 논의에서도 학생부에 대한 불신이나 교사들의 업무 부담을 줄여주어야 하므로 학생부 비중을 낮추어야한다는 시각은 오히려 이제까지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노력에는 역주행하며 수능시험 한 번으로 모든 것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기회주의적인 사고만 키우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결국 초·중등 교육을 통하여 수많은 교사들이 관찰한 학생들의 모든 것을 빅데이터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객관화하여 대학입시뿐만 아니라 기업에서 직원을 선발하는 데에도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12년간의 초·중등 교육 기간을 통하여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도록 미래의 시민을 양성하는 것을 역행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더욱 불확실해질 것이다. 결과 못지않게 과정을 중시하는 것 또한 교육의 가치가 아닌가? 궁극적으로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하여 사람다운 사람을 키우기 위하여 교육하는 것이지 어떻게 해서든지 나만 잘되면 되는 사람을 만들고자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올해 우리의 교육 예산은 68조원에 달하고 초·중등교육에만 53조원을 쏟아 붓는데 이중 65%가 교원의 인건비이다. 약 38조원을 교사 급여로 지급하고 있다. 아마 단일 항목으로는 가장 비중이 큰 국가예산 항목일 것이다.이것은 교사의 역할이 매우 크기 때문에 국가가 이를 부담하는 것으로 이러한 사회적 투자와 기대치를 만족시키기 위한 교사들의 노력과 더불어 이러한 막대한 투자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없다면 왜 이렇게 큰 비용을 지불하는가? 묻고 싶다. 이러한 공교육을 제쳐두고 또 다시 인기 스타 강사나 학원에 교육의 미래를 맡길 것인지에 대하여 진지하고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이제 학생역량을 키우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하며 당연히 학생들의 학습 성취나 역량의 평가 방식도 바뀌어져서 정말 자기 능력과 소질을 알고 거기에 합당한 교육을 통하여 모두가 행복해지는 미래가 열리기를 소망한다./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

2018-08-27 이남식

[윤상철 칼럼]'내로남불'의 집단극단화

국가 구성하는 개인들 생각이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하면소통통해 먼저 풀어 나가야그 뿌리 사회에서 정치로 뻗었다면치유의 출발은 사회안에 있다는것이른바 '내로남불'이란 말이 갈등하는 집단 간에 상대를 비난하거나 자신을 변명하는데 자주 사용된다. 정치와 언론을 넘어 지식인까지 두루 사용하고, 나무위키에 열거된 사례들을 보면 희소한 일탈현상은 아닌 듯하다. 개인적 에피소드에서 집단과 사회조직, 나아가 정치권력과 국가권력에 이르기까지 나타나는 현상이다. 얼핏 보면 크게 다를 바 없는 현상을 상대에 대하여 전혀 다르게 극단적으로 규정하는 점도 독특하다. 새정부 들어 인사청문회의 기준이 흔들리면서 여당의 '적폐청산'에 야당은 '내로남불'로 맞섰다. 6년 전의 국가정보원 여론조작사건(혹은 대선개입사건)과 작년부터 발생한 드루킹 댓글조작사건은 행위자와 이해당사자가 다를 뿐 민주주의의 근간인 국민의 여론형성을 심각하게 왜곡한 사례들이었다. '제왕적 대통령제'에 이어 '국가주의'를 둘러싼 논쟁에서도 야당은 '촛불혁명'을 초래한 국정농단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여당은 시장과 국가의 역사적 성패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다. 내로남불은 주로 정치의 언어로 사용되지만, 돌아보면 그 뿌리는 넓게 퍼져있다. 정치인 팬덤현상들도 제3자의 눈에는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른바 '깨시민'이나 그들의 비판대상이나 진리에 있어서는 똑같이 독선적이다. 내부자 출신 정치인들에 대해서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참여연대나 비정규직 문제해결은 정부와 재계에 넘기고 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만을 옹호하는 민주노총도 다르지 않다. 워마드는 이른바 미러링으로 변명하면서 그들의 비판대상인 '한남'을 닮아갈 뿐 아니라 범죄를 예고하는 일탈을 쉽게 벌인다. 일부 기독교계는 입국 금지된 이슬람국가에 들어가 선교하면서도 무슬림의 국내 입국에 대해서는 공포증을 조장한다. "롤리콤은 범죄지만 쇼타콤은 취향"이라고 말하는 교수나 여성과 남성의 비혼에 대해 근거 없이 상반된 기준을 들이미는 교수의 편협한 시각도 이제 낯설지 않다. 어쩌면 내로남불은 전 사회적인 현상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지금은 옳고 그때는 틀리다"라는 상황논리로 변명하지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다 옳거나 다 틀렸기 쉽다. 더 아쉬운 사실은 서로 분열된 집단 내에서 상대에 대해 동의하거나 이해하는 목소리도, 자기 집단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목소리도 듣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지키려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다양성, 토론과 합의, 그리고 양보와 협력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넛지'의 저자인 캐쓰 R. 선스타인은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라는 책에서 이러한 집단의식의 모습을 '집단극단화'로 규정한다. 그에 의하면 사람들은 서로 생각이 유사한 집단 속에 들어가면 극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극단주의 성향이 심화되고, 내부 다양성은 저하되며, 나아가 상대집단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는 것이다. 집단 내부에 동일한 성향의 정보가 쏟아지고 사람들은 사회적 평판을 고려하여 이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일반적으로 극단적인 입장일수록 훨씬 설득력을 얻는다는 것이다. 나아가 정보화시대에 들어서면서, 인터넷 공간은 더 신속하고 폐쇄적인 정보순환을 가능하게 하여 집단극단화를 더욱 가속화시킨다. 선스타인은 집단극단화를 막는 세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전통주의 혹은 선인들의 지혜에 대한 존경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과거를 시대적 한계가 아닌 적폐로 치부하는 우리에겐 적합하지 않다. 결과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미래에 적용하는 대안이 있지만,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우지 않으며 인물과 조직의 대체를 선호한다. 마지막 대안은 견제와 균형이다. 링컨이나 루스벨트가 그랬듯이 동조하는 집단들로 이루어진 '정보의 반향실'이 아닌 반대하는 집단들로 '정보의 풀'을 넓히거나, 유유상종을 회피하고, 제도적으로는 3권 분립과 헌법상 독립기관의 권위를 존중하는 일이다. 그마저도 '청와대정부'를 가득 채우고 있는 같은 뿌리의 정치인들의 모습에서 찾기 어렵다. 우리에게 남은 대안이 있다면, "정부는 그 나라를 구성하는 개인들을 반영한다"는 샤무엘 스마일즈의 말처럼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통하여 먼저 내로남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뿌리가 사회에서 정치로 뻗어나간 것이라면 그 치유의 출발은 사회 안에 있다는 말이다. LA흑인폭동의 주인공 로드니 킹은 사건 이후 진행된 인종 간의 분노와 혐오, 그리고 좌절을 겪은 후에 이렇게 말했다. "우린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잖아요?"/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8-08-20 윤상철

[전호근 칼럼]어느 가족이 본 '어느 가족'

'혈연 아닌 서로 필요해서 산다'는영화속 다섯명의 주인공들마지막 장면에서는 서로를 위해자신이 가장 소중한 것을 준다내가 본 '유일한' 가족 영화였다며칠 전 가족과 함께 집 근처 영화관을 찾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을 보기 위해서다. 당초 식구 넷이 다 같이 편안하게 즐길 만한 영화로는 적당치 않을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염려가 없지 않았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지만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기에는 적잖이 불편한 장면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가족 모두 어엿한 성인인데다 의견 일치가 쉽지 않은 우리 가족의 특성상, 모처럼 같이 영화를 보기로 한 드문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가족 간 의견 일치가 어떻게 쉽지 않은지 궁금해하실 분이 계실 것 같아 잠시 옆길로 새자면, 우리 가족은 좋아하는 음식도 각기 다르고, 독서나 음악 취향도 모두 다르며 세대 차이도 꽤 심각한 편이다. 무엇보다 밥상머리 대화에서 다른 사람 이야기는 잘 듣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끝까지 해대는 통에 번번이 논쟁이 일어나 서로 얼굴 붉히기가 십상이다.이처럼 모래알 같은 가족이 한 명의 반대도 없이 '어느 가족'을 보는 데 찬성했으니 영화를 보기도 전에 고레에다 감독의 위대함에 고개가 숙여졌다.'어느 가족'은 원제가 '만비키 가족(万引き家族)'이다. '만비키'는 물건을 사는 척하면서 훔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원제를 우리말로 옮기면 '좀도둑 가족' 정도가 된다. 제목만 놓고 보면 가족 영화가 아니라 오히려 가족파괴 영화라 해야 할 것이다. 세상의 직업으로 간주할 수 없는 도둑들의 이야기가 어찌 가족 영화일 수 있단 말인가.게다가 주인공들 중 사회가 용인하는 정상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가족 구성원 중 남편 역할을 하는 오사무는 아이를 시켜 가게의 물건을 훔치게 하고 때로 자동차의 창문을 부수고 직접 물건을 훔치기도 한다. 아내 역할을 하는 노부요는 세탁소에서 일하지만 세탁물에 잘못 딸려온 고객의 물건을 수시로 훔친다. 딸 역할을 하는 아키는 유사 성행위 업소에서 일하며 돈을 번다. 할머니 하츠에는 전 남편이 남겨준 연금으로 생활하지만 생전의 남편과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아들 역인 쇼타는 책가방을 메고 다니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으며 책가방 안에는 책 대신 훔친 물건이 들어있다. 새로 가족의 일원이 된 유리는 오빠인 쇼타를 따라 가게에서 물건 훔치는 법을 배운다.이들은 혈연 유대가 아니라 서로의 필요에 따라 함께 살게 된 것일 뿐이다. 할머니는 돌봄이 필요하고 다른 사람은 할머니의 연금에 의지하여 생활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함께 모여 살게 된 이유는 가출이나 버려짐 또는 유괴의 결과일 뿐이다. 그러니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이들을 가족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들이 세상 사람들이 '내다 버린' 가족의 가치를 가장 잘 지키고 있다면?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할머니 하츠에가 죽자 두 부부는 연금을 계속 타기 위해 할머니의 시신을 몰래 땅속에 파묻는다. 나중에 경찰이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추궁하자 노부요는, 자신들은 '버린 것'이 아니라 '주운 것'이라며 버린 사람은 따로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 질문은 관객에게 그대로 꽂힌다. 내가 바로 노부요가 말하는 그 '버린 사람'은 아닌가.주인공들이 함께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 깊다. 그들은 불꽃은 보지 못하고 지붕 너머로 폭죽 소리만 들을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여느 가족보다 더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즐기고 있다. 이 장면은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할머니가 해변에서 놀고 있는 다섯 명의 가족을 바라보며 입술만 움직여 말하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물론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쇼타가 입술을 움직이는 장면과 함께, 들리지 않아도 들을 수 있다는 걸 암시한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영화의 막바지에서 두 부부는 자신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쇼타에게 내어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들의 아들로 여겼던 쇼타 그 자신이다. 노부요는 쇼타에게 친부모를 찾을 수 있는 단서를 알려준다. 그리고 오사무는 자신의 본명과 똑같은 이름을 지어준 아들 쇼타에게 이렇게 말한다."아빠는 이제 아저씨로 돌아갈게."주인공들은 가족을 위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준 것이다.'어느 가족'은 '훌륭한' 가족 영화가 아니라 내가 본 '유일한' 가족 영화였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8-13 전호근

[이명호 칼럼]최저임금과 52시간제, 얻는 것과 잃는 것

영세자영업자 임금인상 폐업 속출실업자↑ 근로시간 줄여 매출도 ↓반면 취업자 고임금에 소비력 상승고용구조 개선·워라밸 효과 얻지만채용증가로 이어지긴 어려워 보여한국은 외국 여행자들에게 천국 같은 나라이다. 도시는 밤늦게까지 붐비고, 가로등과 네온사인은 밤인지를 잊게끔 밝다. 택시비도 싸고 늦게까지 돌아다녀도 안전하다. 늦은 밤까지 식당들은 붐빈다. 밤늦게 음식을 배달해서 먹을 수 있고, 24시간 문을 여는 편의점들도 많다. 자영업자 비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두 배에 달하는 25%를 둔 우리가 누리는 혜택이었다. 유럽이나 선진국들을 여행하다 보면 이러한 혜택을 절감하게 된다. 도시의 가로등은 어둡고, 에어컨은 미지근한 바람이 나오고, 8시가 넘으면 음식점과 상가들은 문을 닫고 늦게까지 술을 마실 곳이 없다. 역시 우리나라가 놀기 좋은 나라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그 많은 혜택을 제공해주던 자영업이 지금 위기에 처해있다. 대부분이 망한다는 자영업의 치열한 경쟁 상황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자영업자들이 집단적으로 더 이상 자영업 하기 어렵다는 한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영세한 자영업자에게 종업원 임금을 10% 올려주는 것은 감당하기 어렵고, 많은 자영업자조차 버는 돈이 최저임금 수준밖에 안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 52시간제는 자영업 매출조차 줄이고 있다. 긴 노동에 쌓인 피로를 회식과 술로 풀었는데, 일찍 끝나고 집에서 가족들과 같이 보내거나 여가나 취미활동을 하는 직장인들이 늘어서 음식점 매출이 줄고 있다. 자영업 상황이 IMF 때보다 안 좋다는 여론의 불만 속에 경기 지표들도 하락세로 돌아서고, 고용 상황이 악화되면서 모든 경제 문제의 원인이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라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말 그런 것일까? 먼저 우리나라는 왜 자영업이 많은지를 볼 필요가 있다. 기업, 특히 대기업의 고용 비중이 낮기 때문이다. 기업의 입장에서 고용자의 수를 늘리기보다는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 더 좋다. 노동의 유연성이 낮은 상황에서 노동자의 단결을 막고, 주당 68시간까지라는 긴 노동 시간으로 임금인상의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취업 시장이 어려우니 우선 자영업이라도 할 수밖에 없고, 긴 노동의 스트레스를 격렬하게 푸는 방법은 회식과 술이기에 이는 자영업의 수요가 되어 주었다. 이러한 유흥문화가 주 52시간제로 타격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이에 더해 최저임금 인상은 영세한 자영업자, 중소기업의 저임금 경쟁력을 빼앗아 실업을 증가시키고, 폐업을 늘려 고용을 감소시키는 부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은 경제학의 상식이다. 반면에 취업자는 상대적 고임금과 노동시간 감소에 따른 소비력 증가라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소득주도 성장이 노리는 효과이면서도, 고용의 감소라는 역풍에 직면하게 되는 한계이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늦추겠다고 한발 물러났다. 그럼 52시간제는 고용을 늘려줄 것인가? 그렇게 될 가능성은 높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제조업 가동률이 낮아지는 상황에서 고용을 늘릴 요인이 약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52시간제가 자영업 감소와 기업 고용 증가라는 원하는 결과를 얻더라도 전체적으로는 플러스, 마이너스여서 고용구조 개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의 효과는 있겠지만, 고용의 증가로 이어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이 절실한데, 혁신의 동력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방향을 못 잡고 있다. 4차산업 혁명위원회를 출범시켰지만, 규제개혁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혁신성장동력으로 빅데이터,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드론 등을 강조하며 여전히 기술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다. 정부가 지도하겠다는 관료적 사고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사람중심 국가 R&D혁신'이라는 모호한 개념에 매달려 있다. 혁신이 일어나는 생태계 조성을 위해 정부가 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조차 부족해 보인다. 신규 고용과 혁신은 주로 기술 기반의 창업에서 나온다. 그리고 창업의 기반이 된 많은 기술은 국가 운영을 혁신하고 첨단화하기 위한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에서 나오고 있다. 기업보다 못한 과학기술에 대한 인식과 운영 시스템을 가진 국가, 정부가 혁신을 이끌 수 있단 말인가?/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8-08-06 이명호

[이영재 칼럼]먹방과 비만

보건복지부 '방송규제' 밀어붙이기식 잘못우선 '비만 심각성' 공지후 영향 미쳤는지최소한 통계 자료라도 냈다면 좋았을 것그후 방송사 자체적 제재했다면 더 효과적지난주 보건복지부가 '국가 비만 관리 종합 대책'을 내놓으며 '먹방' 가이드 라인 운운했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시청자의 예상치 못한 격렬한 저항에 식겁한 보건복지부는 "진의는 그게 아니었다"며 얼른 발을 뺐다. 그럴 줄 알았다.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는지 모르지만 지금 먹방 인기가 어느 정돈지도 모르는, 정말 세상 물정 캄캄한 공무원임이 분명하다. 며칠 전 종편 예능 프로를 보다 깜짝 놀랐다. '밴쯔'가 출연한 것이다. 밴쯔가 누군가. 인터넷 먹방의 지존. 먹방 콘텐츠만으로 구독자 250만 명을 돌파하고 연간 10억의 수입을 올린다는 슈퍼스타다. 밴쯔는 한 상 가득 쌓인 음식을 깔끔하게 먹어치우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짜장면 10그릇을 13분에 해치웠다. 그의 먹는 모습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대리만족하며 열광한다. 그가 마침내 인터넷 방송을 평정하고 종편 방송 고정출연자가 됐다. 우린 이제 곧 지상파에서도 음식을 먹어치우는 밴쯔를 보게 될 것이다. 시청률만 오른다면 무엇이든 하는 방송사들이 그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먹방을 우려하는 시선도 없진 않다. 먹방에 채널권을 뺏겼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사실 먹방이 많긴 많다. 못 믿겠다면 직접 확인해 보면 안다. 지상파, 종편, 케이블 할 것 없이 예능 프로 중 50% 이상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먹는 것과 연결된다.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일상을 다루는 예능은 예외 없이 무언가를 열심히 해먹는다. 냉장고까지 통째로 들고 나와 요리 대결도 벌인다. 심지어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 가서 한 끼 얻어먹는 예능도 있다. 상황이 이러니 국민의 건강, 나아가 비만에 신경을 써야 하는 정부가 폭증하는 먹방에 우려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이 비만이고 비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천문학적이다. 그러나 먹방이 비만과 어느 정도 인과관계인지 밝혀진 것은 없다. 통계도 없다. 다만 추측만 가능하다. 방송에 맛집이라고 소개되면 도대체 그 많은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다음날부터 식당 앞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방송에서 탄수화물은 적게 먹고 버터와 육류 등 고지방 음식이 건강과 다이어트에 좋다고 소개되면 실제 마트에서 버터 품귀 현상이 일어난다. 2년 전 실제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 심지어 삼겹살을 버터에 구워 먹는 삼겹살 버터구이까지 등장해 불티나게 팔렸다. 누군가 맛있게 먹으면 따라 먹게 되고, 좋다는 소문을 들으면 식당으로, 마트로 달려간다. 이게 먹방의 위력이다. 얼마 전 중학교 30명과 함께 '미래의 꿈'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요리사가 되겠다는 학생이 8명으로 단연 1위였다. 의사 변호사가 되겠다는 학생은 1명도 없었다. 이게 쿡방의 위력이다.2013년 4월 블룸버그 뉴욕 시장은 뉴욕의 공공장소에서 500㎖ 이상의 탄산음료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뉴욕 시민 3명 중 1명이 심각한 비만이라는 조사 결과에 따른 조치였다. 하지만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패소 후 블룸버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이것은 사람들의 목숨이 달린 문제다. 우리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인 비만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자 인간의 수명을 늘리려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저소득층 비만을 매우 심각하게 봤다. 부자는 알아서 살을 뺀다는 것이다. 중독성이 강한 탄산음료에 세금을 높게 매긴다고 해서 이미 맛에 중독된 저소득층의 소비가 크게 줄지 않을 것이란 게 그의 생각이었다. 차라리 공공 장소에서 탄산 음료을 팔지 못하게 하는 게 효과가 있다고 본 것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논리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에 월스트리트 저널은 "대용량 탄산음료가 대중의 건강에 좋은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블룸버그 시장이 제대로 된 법적 절차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이번 먹방 규제도 보건복지부 절차에 무리가 있었다.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다. 우선 비만의 심각성을 공지하고, 먹방이 비만에 영향을 미치는지 최소한 통계 자료라도 제시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런 후 정부의 인위적 규제가 아닌 방송사가 자체적으로 규제하는 방법을 택했다면 훨씬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 '먹방'의 심각성에 공감하는 국민들도 꽤 많기 때문이다. 모처럼 좋은 기회를 놓쳤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07-30 이영재

[홍창진 칼럼]가벼운 마음

미래에 대한 걱정 쌓아둔다고당장 해결 되는 일은 없다주어진 현실 외면하라는게 아니라달라지지않는 일 고민에 발목잡혀고통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는 것해마다 여름이 되면 성당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캠프 준비로 바쁩니다. 당연히 신부는 봉사해줄 청년을 찾습니다. 그러나 요즘 도시 성당에서 청년 봉사자를 찾기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한국에 사는 청년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안고 있는 걱정이 있습니다. 바로 취업입니다. 취업문이 너무 좁은 탓에 방학 동안에도 쉬지 않고 스펙을 쌓아야 합니다. 물론 봉사도 스펙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성당 오빠, 성당 언니 스펙은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해외연수나 국내에서의 극한 체험, 전공과 관련한 자격증 취득 등이 그나마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하는 스펙입니다. 어떤 청년은 스펙을 쌓기는커녕 당장 학비 마련도 힘겨워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하며 더위와 씨름하고 있습니다.이 위기를 넘기고자 어머니 봉사자를 모집했습니다. '모집 인원 ○○명'에 지원자는 정말 0명이었습니다. 아무도 지원하지 않은 겁니다. 청년들보다는 어머니들 사정이 좀 낫겠지 싶어 어머니 봉사자를 모집했지만, 그분들 상황은 청년보다 더 하면 더 했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어머니들 대부분이 정규직은 아니더라도 그에 못지않은 무게를 감내해야 하는 고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가사 노동과 아이 교육까지 도맡아야 하니, 일요일에 성당에 나와 주일미사에 참석하는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성당의 주일학교 교육이 아직 무급봉사에 의존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유급교사로 전환하지 않으면 길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마지막으로 아버지 봉사자를 모집해봤습니다. 공고를 내기도 전에 앓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옵니다. "성당 아이들 교육도 중요하지만 우리 아빠들 죽어나가는 사정도 좀 들어주세요." "해고 걱정, 폐업 걱정, 대출 상환 걱정! 신부님, 걱정이 태산입니다." 아버지 봉사자 모집은 방도 못 붙이고 계획을 철회했습니다.여름 캠프 봉사자 모집은 아쉽게도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청년들과 어머님, 아버님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많은 일을 감당하며 바쁘게 사는 것은 좋은데, 그분들에게서 지친 모습만 보일 뿐 희망이나 기쁨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걱정과 불안만 가득한 그들의 눈은 다가올 미래를 암울하게 응시하고 있었습니다.우리 마음의 무게를 저울에 달아보면 얼마나 될까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마음을 어떻게 측량할까 싶지만, 실제로 잴 수 있다고 해도 아마 0.0001그램도 안 될 겁니다. 그러나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그 마음이 걱정과 근심 때문에 천근 혹은 만근처럼 무겁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가 감내해야 할 현실의 무게는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 밖의 위기가 산적해 있다고 해서 이를 고스란히 내 안으로 가져와 차곡차곡 쌓아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미래에 대해 걱정을 쌓아둔다고 해서 해결되는 일은 없습니다. 어차피 걱정한다고 당장 무슨 일이 바뀌지 않는다면 미래는 신의 영역에 맡긴 뒤 걱정을 내려놓고, 우리는 그저 오늘 사과나무를 심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주어진 현실을 외면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고민한들 달라지지 않는 걱정거리에 발목을 잡혀, 내게 주어진 오늘을 고통으로 점철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을 만나게 됩니다. 30% 인원 감축을 통보한 직장 현실, 대출까지 받아 장만한 아파트가 급락해 이자도 못 갚는 현실, 가진 돈 모두 털어 창업을 했는데 경제 상황이 악화돼 폐업 위기에 몰린 현실은 분명히 내 노력과 의지만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내가 이런 현실에 놓여 있다고 해도 그 현실이 내일 똑같이 펼쳐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 그간의 인생 경험에서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쁜 일이 항상 계속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좋은 현실도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는 것을, 신은 늘 그래 왔다는 것을.여름 행사 봉사자를 모집하며 어느새 저도 모르게 제 마음에 근심과 걱정을 얹어 놓고 힘겨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걱정을 내려놓기로 했습니다. 봉사자들이 없으면 없는 대로 떠나 볼 생각입니다. 바다에서 아이들이 하루 종일 신부와 수영만 해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고, 나라도 없었으면 그마저도 못하지 않을까 싶어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8-07-30 홍창진

[방민호 칼럼]고독한 항해사 최인훈 선생

소년시절 북한 초기사회주의 경험월남이후 그의 문학에 결정적영향전후 남북 이념대립 '광장'에 녹여자신을 난민간주 이상적사회 추구고단했던 탐색자여 고이 잠드소서작가 최인훈 선생이 영면에 드셨다. 공식적으로는 1936년생이라지만 실제로는 1934년생, 1·4 후퇴를 앞두고 북한 원산에서 부산으로 월남해서 목포에서 고등학교를 다니셨다. 원래 원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계셨지만 여기 와서 다시 입학해야 했고 부모님이 학교 다니기 좋게 출생 연도를 낮춰 주었다고 한다. 필자는 요즘 이른바 월남문학이라는 것에 관심이 간다. 처음 이 말을 쓸 때는 국문학자가 베트남 문학을 공부하느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지만 지금은 그렇지만은 않다. 1945년 8월 15일 해방부터 1948년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을 거쳐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에 이르는 약 8년의 세월 동안 남으로 내려올 사람들은 '전부' 내려오고 북으로 올라갈 사람들은 '전부' 올라갔다. 최인훈 선생은 원산고등학교 1학년 학생으로 이른바 원산철수라는, 흥남철수 직전의 철수 작전 때 한 가족 모두가 미군 수송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최인훈 문학은 바로 이러한 '월남'이 낳은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문제는 결코 간단치 않은데, 왜냐하면 소년 최인훈은 해방부터 월남하기까지 모두 5년 정도 북한 초기 사회주의 체제를 경험한 사람이 되었고 이것이 그의 문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해방이 되자 소년 최인훈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나중에 최인훈은 그의 긴 소설에서 해방이 되자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무엇보다 사람을 때리지 않는 것이었다고 했다. 해방되기 전에는 조선 사람은 어디서든 얻어맞았다고 했다. 병원에서까지 사람을 때렸다는 문장을 읽을 때 필자는 가슴이 아팠다. 해방이 되자 북한 사회주의 정권은 학교나 병원에서 아이들을 때리지 않는 대신 유산자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살던 곳에서 추방시키고 학교에서는 계급주의 사상교육을 기계적으로 시행했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목재소를 운영하던 최인훈의 부친은 유산자 계급으로 몰려 재산을 내놓아야 했고 원산으로 이주했다. 원산 중학교의 소년 최인훈은 소설에 따르면 공부를 잘했어도 계급이 다르다는 이유로 담임선생이 사주하는 냉혹한 '자아비판'에 시달려야 했다.원산고등학교에 가서는 경험의 빛깔이 달라지기는 한다. 그러나 전체주의-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체험적 인식은 월남 후 그가 자신의 이념적 방향을 조율해 나감에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과연 이상적인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 하는 이분법적 대립을 거절하는 최인훈 문학의 고유한 특질에 주목해야 한다. 그의 문제작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친일파가 득세하는 남한 사회를 떠나 월북하지만 북한 체제에 대한 환멸을 느낀다. 그는 6·25 전쟁 중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남과 북이 아닌 제3국을 선택한다. '회색인'이라는 소설 속 주인공 독고준은 '임박한 파국'을 앞두고 혁명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친구의 주장을 거절하고 사랑을 원리로 삼는 이상적 사회를 구상하기 위한 고독한 작업에 몰두한다. 앙가주망, 곧 참여냐, 순수냐 하는 이분법적 선택을 거절하는 독고준의 '회색빛' 이념은 순백색이나 순적색보다 진실에 가까운 빛이라고, 필자는 늘 생각하고 있고, 지금도 그것은 그러하다.미군 수송선을 타고 월남했던 그는 그 자신을 '난민'으로 간주했고 전후의 한국 사회 또한 '난민촌'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스마트폰, 인터넷에 온갖 첨단 문화로 들썩이고 있으므로 이런 규정은 비록 비유적일지라도 마음에 들지 않을지 모른다.그러나 이 고도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현대 문명이라는 거친 바다를 풍파에 휩쓸려 이리저리 떠도는 폐선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으리라. 아무리 높이 쌓아 올리는 고층 아파트에서도 싸구려 임시가옥 냄새가 나지 않던가? 오래된 것들은 어느 사회에서보다 일찍 제 빛을 잃고 혼탁한 대기 속으로 사라져버리지 않던가?최인훈은 한국 사회가 난파선으로 현대의 바다를 이리저리 표류하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한 작가였다. 그러기 위해 그는 '화두'라는 소설이 보여주듯 미국과 구 소련이라는 두 개의 제국을 차례로 순례했다. 제국과 식민지, 좌와 우, 남과 북이라는 이항대립의 주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평생을 건 긴 여행을 했다.고단하고 외로웠던 문명의 탐색자여, 풍랑치는 현대 바다 위 고독한 항해자여, 이제 고이 안식을 취하소서. 그대의 오랜 손때 묻은 키를 누군가는 이어받을 수 있으리니./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8-07-24 방민호

[이남식 칼럼]공간과 미래 교육

미래가 요구하는 인재는창의성·혁신·기업가 정신 갖춰야이를 위해선 교육공간 변화 필수이재정 도교육감, 우수학생 육성학습의욕 돋우는 행정 펼치길 바라미국 서해안 샌디에고 인근의 라 호야에는 세계적으로 명망이 높은 솔크 생명과학 연구소가 있다.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요나스 솔크 박사가 1960년에 설립한 연구소로 지난 58년간 11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이곳을 거쳐 간 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탁월한 연구 성과를 거둔 연구기관이다. 그런데 이곳의 연구원들은 하나같이 바닷가에 마치 수도원과 같은 분위기의 연구소 공간이 창의성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루이스 칸이라는 걸출한 건축가가 설계했는데 솔크 박사는 건축가에게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건축 아이디어를 주었다고 한다. 소아마비 백신 연구 중에 수년간 진척이 없자 솔크 박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당 (Basilica of St. Francis of Assisi)을 방문하여 머물게 된다. 그런데 이곳의 독특한 공간, 13세기부터 지어진 고딕과 로만 양식의 높은 천장 그리고 기둥이 정렬된 아케이드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백신 연구를 완성할 수 있었다. 루이스 칸은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바다, 석양과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공간을 디자인한 결과 그간의 탁월한 연구 성과가 공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가 되었다. 원스턴 처칠의 '우리가 건물을 짓지만, 결국 건물이 우리를 만든다'(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는 명언처럼,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최근에는 기능적 MRI (fMRI)를 활용하여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특히 핀란드에서는 미래지향적인 교육을 위하여 학교의 교육공간을 바꾸기 시작했다. 천장의 높이가 높고 교실의 벽을 없애며, 가구 또한 이동 가능하며 혼자 또는 그룹으로 수업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배치 가능하게 하여 문제해결 중심, 그리고 학생 참여형 교육으로 그 틀을 바꾸고 있다. 3년마다 OECD에서 실시하는 국제학생역량평가 (PISA 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에서는 전 세계 70개국 이상의 16세 학생을 대상으로 독해력, 수학, 과학 분야의 역량 평가 결과를 발표하는데 그간 한국은 세계 최정상 수준을 보여 왔으나 최근에는 싱가포르 중국 일본 대만 등에 밀리며 점점 하락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방 예산보다도 많은 매년 60조가 넘는 교육예산을 쏟아 붓고 있으며 경기도 또한 17조에 달하는 예산을 교육에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의 학생들이 학업에 의욕을 갖지 못하고 있으며 상당수의 학생들이 기초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사회에 진출하게 되어 취직이 어렵고 소득격차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하루속히 개선하기 위해서는 수업의 공간을 개선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신경건축학 (neuro architecture)은 집중력을 높이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공간, 그리고 학생들이 학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공간을 조성하는데 도움을 준다. 교사들에게 거꾸로 교실을 아무리 하라 하여도 공간의 변화 없이는 수업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핀란드의 경우 숙제는 없으며 수업 중에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서로 묻고 가르치는 참여형 학습으로 거의 100%에 가까운 학생이 교과내용을 이해하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70% 정도 밖에 이해하지 못하므로 방과 후 학습이나 기타 사교육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미래가 요구하는 인재는 창의성, 혁신, 기업가 정신을 갖춘 인재로 현재와 같이 교사 중심, 강의중심의 교육방식으로는 키우기 어렵다고 본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교육공간의 혁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겠다. 이제 경기도도 민선 교육감 2기의 새로운 출발을 함에 있어 미래교육에 대한 청사진을 만들어 우수한 학생은 더욱 우수하게 하는 동시에 평균 이하의 학생들이 학습의욕을 가지고 학습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는 교육행정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해 본다./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

2018-07-16 이남식

[윤상철 칼럼]누구를 위한 지역공동체인가?

지역공동체는 시민이든 기업가든그들의 사회·문화·경제적 교류통해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집단…누구만의, 누구들만의 것도 아니다官이 주도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워성남시에서 지역화폐로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신임시장은 지역화폐로 지급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함으로써 풍요로운 지역공동체를 만들어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아동수당을 받아 사용하게 될 엄마들은 자율에 맡기는 현금지급을 선호한다. 그들은 지역화폐가 사용지역과 용도가 제한되어 육아현실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시민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도 없었다고 반발한다. 또 다른 당사자인 기업이나 판매업체들은 아직 뚜렷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다. 이 사안은 보편복지와 선별복지 간의 논란이자 이를 둘러싼 중앙정치와 연관되어 있지만 지역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최근에 화성시의 한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심포지엄에 주제발표자로 갔던 적이 있었다. 회의 주제가 '화성시민과 기업의 상생발전방향'이었던 만큼 심포지엄을 주최한 시민단체 회원뿐만 아니라 시의회, 상공회의소, 기업지원협의회 관계자들이 다수 참석해 있었다. 의례 그렇듯이 시정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이 기업들을 규제하는 한편 지원하는 시청 고위 공무원들도 참석하였고 직접 제도와 정책을 홍보하고 있었다. 주제발표에서 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목적이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하여 그 주식가치를 높이거나 이해당사자들의 만족도를 제고함으로써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오히려 기업 자체가 지역공동체의 시민이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일종의 사회적 규범으로서 그 기원이나 의미와 무관하게 당연시되면서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자 했다. 이 심포지엄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진짜(?) 시민들이 등장하면서 주최 측의 의도에서 빗겨난 듯했다. 기업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대와 지역 농산물의 출하 시간대가 겹치면서 농민들의 고충은 더 심각해졌다고 했다. 기업들은 농촌의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농촌마을 안으로 들어오지만 막상 그 뒷감당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 된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겨울 농한기에 일자리를 원하지만 그들이 보는 것은 공장을 드나드는 외지인들뿐이라고 불평한다. 넓은 심포지엄 강당에 불과 몇 십 명의 청중들이 듬성듬성 자리한 이유는 억센 비 때문이 아니고 진짜 시민들에게 알리지 않은 탓이라는 성토도 있었다. 1990년대 말경이니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나는 교환연구자로 미국의 스탠포드대학에 2년간 머무르면서 그 옆의 팔로알토시에 살았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대학에 온 외국 연구자나 유학생들의 현지 적응이나 언어학습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 한 분을 만났다. 덴마크 국적의 그는 미국시민권을 취득할 자격을 갖추고 있었지만 자신의 조국에 대한 애정과 부채감 때문인지 30년 넘게 그린카드를 바꾸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의 지역공동체를 뜨겁게 사랑하고 그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자신이 늙은 나이에 왜 주변 지역의 흑인들에게 집을 마련해주기 위하여 '해비타트 포 휴머니티' 사업에 열심히 참여하는가를 설명하고 자랑스러워했다. 북유럽 출신의 완벽한(?) 백인이 흑인들과 하이파이브와 허그를 즐기는 모습은 늘 생소하기만 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마이크로소프트, 휴렛팩커드, 구글, 엡손 등의 회사와 사무실 등을 자랑스럽게 소개했고, 그들의 창업주나 가족들이 자신의 동료 시민임을 뿌듯해했다. 그리고 휴렛의 장남이 운영한다는 자그만 극장으로 안내하였다. 평생을 사업가로 살다가 은퇴한 그였지만 대기업가의 장남이 지역주민들에게 철 지난 영화를 보여주면서 젊은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러나 아무런 이익도 남기지 못하는 사업에 몰두한다는 사실에 감동스러워했다. 시정부나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공청회는 늘 만석이었고 그는 그 자리에 다녀온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곤 했었다. 대형할인매장과 아웃렛에 익숙한 미국사람인 그가 마지막에 알려준 이야기는 "그들이 돌아오고 있어. 걸어가서 그들의 가게에서 물건을 사야겠어. 저 가게의 주인은 우리 옆집에 살던데"였다. '그들'은 더 이상 외지인이 아닌 다운타운 사업자들이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시장과 시공무원의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지역공동체는 일반 시민이든 기업시민이든 그들 사이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교류를 통해 이루어진다. 누구만의, 누구들만의 공동체가 아니다. 누가 일방적으로 주도하거나, 특히 관이 주도하는 자리에 공동체의 싹이 트고 자라기는 어렵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8-07-09 윤상철

[전호근 칼럼]정성껏 물을 주면

모든 교육과정 대입위한 수단 간주연령대별 익혀야 할것들 팽개쳐 둬싹 자라기는 커녕 더 말라가기만사회구조 바뀌지 않는한 파행 지속유일한 방법은 학생들 변화시켜야송나라의 어떤 사람이 곡식 싹이 빨리 자라지 않는 것을 답답하게 여긴 나머지 조금씩 뽑아 올려주었다. 그는 집에 돌아가서 가족에게 곡식이 자라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아들이 깜짝 놀라 뛰어가 보니 싹은 이미 말라죽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를 수 있는지 묻는 제자에게 맹자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로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른바 알묘조장(알苗助長, 싹을 뽑아 자라는 것을 도와줌)의 고사로 '맹자'에 나온다. 호연지기는 한 사람이 올바른 행동을 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도덕적 끈기와 유사한 것으로 플라톤이 이야기한 용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한 철학자답게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것이 양심(良心)이다. 하지만 양심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은 이해관계에 얽히면 쉽사리 양심을 저버리고 이익을 취하기 일쑤다. 양심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호연지기는 이런 양심을 떠받치는 힘이다. 그러므로 호연지기를 기르지 않으면 양심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올바른 행위를 할 수도 없게 된다.맹자가 예로 든 알묘조장의 뜻은 이렇다.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서는 곡식 싹이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처럼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세상 사람들이 기다리지 못하고 속성으로 기르다보니 호연지기가 길러지기는커녕 도리어 말라죽고 말았다는 얘기이다. 맹자는 이어 세상에 조장하지 않는 이가 드물다고 탄식했다.지금 이 나라의 교육자나 학부모 중에도 아이들의 싹을 뽑아 올리는 조장(助長)을 하지 않는 이가 드물다. 모든 교육과정이 대학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어 연령대별로 꼭 익혀야 할 것은 팽개쳐 두고 오로지 대학입시를 위한 학습에만 골몰하고 있으니 조장도 이런 조장이 없다. 그러니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 대부분이 말라죽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대학도 조장에 나서긴 마찬가지다. 방학 중에 진행되는 이른바 계절 학기는 한 학기 16주 동안 진행되는 강좌를 15일로 압축한 단기속성과정이다. 대학의 당국자들은 전체 강의시간만 같으면 기간과 상관없이 동일한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특히 인문교양 과목의 경우 졸업할 때까지 4년간 기다린다 해도 효과를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한 사람이 전 생애에 걸쳐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인문교양 과목은 당장의 이익과는 상관없는 내용을 가르치기 때문에 전공보다 훨씬 긴 호흡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학 당국은 인문교양을 비롯한 다수의 학과목을 속성과정으로 개설하고 있다.이러다 보니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 또한 싹이 자라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말라가기만 한다. 당연히 학생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대학 당국의 잘못으로 돌릴 수만도 없다. 교육을 기능인 양성 정도로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파행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를 만든 오래된 주범들은 교육부 관료들과 기업, 언론으로 보이지만 그들도 구조의 일부일 뿐 권력과 자본의 당사자가 아니다. 그러니 도무지 그런 구조를 바꿀 방법이 없어 보인다. 학교 당국자가 교육의 근본 취지에 따라 학교를 운영하려면 당장 언론의 대학평가를 거부해야 하고 교육부의 지원을 포기해야 하며 학생 수가 줄어드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내가 알기로 학교의 어느 관계자도 그런 모험을 할 생각이 없고 그럴 만한 용기도 없다.이런 현실을 느낄 때마다 대학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하지만 결국 학생들 때문에 떠나지 못한다. 내가 바라는 건 결국 학생들을 통해서 이룰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유일한 방법이다.오래전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희생'을 보다가 마태수난곡이 나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끝내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옛날 어느 수도사가 말라죽은 나무에 정성껏 물을 주었더니 마침내 죽은 나무에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할까? 내가 만나는 학생들도 정성껏 물을 주면 정말 수도사의 나무처럼 꽃을 피울까?정성껏 물을 주면, 정성껏 물을 주면…./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7-02 전호근

[이영재 칼럼]이산가족의 희망고문 또 시작됐다

2015년보다 더 적은 남북 각각 100명이라니여기저기 실망으로 체념 섞인 한숨소리만생사확인 등 北 거부하자 우리측 받아들여추첨 탈락자들 '언제될지 모르는' 비극 맞아이럴 줄 알았다. 그래도 '설마'했다. 이번만큼은 분위기가 달라서다. 문제가 있다면 애매모호한 문구로 가득했던 그 선언문이다. 4월 27일 판문점 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한 그 선언문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남과 북은 민족 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남북 적십자회담을 개최하여 이산가족·친척상봉을 비롯한 제반 문제들을 협의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 정도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 다음에 덧붙여진 '오는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진행하기로 하였다'가 문제였다. 이게 이산가족 가슴에 뜨거운 '희망'의 불을 지폈다.특히 그날 만찬장에서 남북 정상이 술까지 곁들였다는 보도는 '정말 이번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더구나 그로부터 꼭 한 달 뒤, 젊은이들이 '번개'하듯 남북 정상이 다시 판문점에서 만났을 땐 '모든 이산가족이 상봉할것'이란 생각에 가슴까지 뭉클했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은 실향민 2세대고 이산가족 상봉 경험도 갖고 있지않은가. 누구보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이산가족이면 누구나 1세대인 부모님을 모시고 평양이든 영변이든 함흥이든 마음껏 다녀올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번 역시 일회성 보여주기 행사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지금 이산가족들을 엄습하고 있다. 우선 지난 22일 남북관계자들이 금강산 호텔에서 만나 오는 8월 20~26일 남북 각 100명씩의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행사를 금강산에서 열기로 합의했다는 보도는 귀를 의심케 했다. 처음엔 '1000명'에서 '0'이 하나 빠진 줄 알았다. 5만7천여명의 이산가족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15년 10월 20일 20차 이산가족 상봉 때보다 가족 수가 더 줄었다. 남북 각각 100명이라니. 여기저기서 실망으로 가득 찬 이산가족의 체념 섞인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난 20차 행사의 상봉 확률은 662대 1 이었다. 추첨장에는 머리가 하얗고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추첨 과정을 지켜보다 최종 탈락한 고령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쓸쓸히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컴퓨터를 이용해 500명의 1차 후보자가 선정됐다. 여기서 다시 400명을 탈락시킨다. 최종 경쟁률은 569대 1 이었다. 애초에 탈락한 이산가족도 그렇지만 100명에 들지 못하고 다시 탈락한 실향민에겐 이 과정은 너무도 가혹하다. 그런데 박경서 한적 회장은 어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선정되신 분들은 축하를 드리고, 선정되지 못하신 분들은 다음 기회에 꼭 한을 풀어드리겠다". 이 말은 "이번에 당첨된 분들은 축하한다. 떨어진 분들은 다음 기회에"로 들렸다. 이번 상봉과 관련해 대한적십자사의 변명은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 측이 상봉 규모를 남북 각각 200명으로 확대하고 전면적인 이산가족 생사 확인, 이산가족 고향 방문, 상봉 행사 정례화 등을 요구했는데 북한이 거부했다고 한다. 그걸로 끝이다. 그랬으면 우리도 협상을 거부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무엇이 두려웠던지 대한적십자사는 북한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일회성 정치 이벤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한번에 100명씩 1년에 네 번의 상봉이 이뤄질 경우, 생존하는 3만5천960명의 고령이산자의 상봉이 성사되려면 99년이 걸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산가족 고령자가 한 명 두 명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런데도 다음 상봉은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이산가족이 원하는 건 오직 한가지다. 만나게 해 줄 능력이 안되면 생사 확인만이라도 해 달라는 것이다. 북측 가족이 사망했으면 이제 모든 '희망'을 접을 것이고, 다행히 살아 있다면 서신 교환으로 안부만 묻겠다는 것이다. 이게 그렇게도 어려운 부탁인가. 분단의 최대 희생자인 이산가족들의 이 정도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다면 그가 누가 됐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논할 자격이 없다. 상봉 재개로 이산가족의 끔찍한 희망고문도 다시 시작됐다. 이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06-25 이영재

[이명호 칼럼]한반도의 새로운 퍼즐 맞추기

분단 70년 '지금은 새로운 변화시대'북한의 행동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文정부 평화구도 정착시킬 수 있을지미국의 여러가지 불확실한 상황속드러나지 않은 판의 답 맞춰 나가야어제는 6·25라고 하는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날이었다. 휴전한지 65년이 지난 올해 한반도에는 그 전쟁의 참전국들이 종전과 평화협정을 위한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작년 말까지 또 다시 전쟁이 발발하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핵 전쟁이라는 위기 상황까지 갔던 국면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화의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남북한의 정상회담,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과 비핵화 협상을 북한의 위장 평화공세라고 주장하며 분단구조에 의존하던 보수 정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외면을 받아 몰락의 수준으로 참패했다. 1948년 남북한의 단독 정부 수립 이후 유지돼온 70년의 분단의 구조가 바뀌는 것인가? 지금 한반도의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먼저 70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려 보자.한국전쟁의 시작은 북한의 공격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한일합방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국제적인 갈등의 희생양이 한반도였다는데 있다. 우리 민족은 패전한 제국주의 일본이 아니고 식민지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미국과 소련(구 러시아)이라는 두 열강에 의한 분단은 민족 내부의 갈등을 증폭시켰고, 한국전쟁으로 참담한 비극을 겪어야 했다. 해방을 대비한 단일한 민족역량의 부족, 미국과 소련의 양대 세력으로 나눠져 등을 돌린 국내의 정치 세력, 국제 정세에 대한 무지 등이 민족의 비극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분단된 지 70년, 지금 한반도의 정세는 또다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70년 전 우리 민족의 역량과 안목의 한계가 분단이라는 현재를 규정하였다면, 현재의 상황은 또다시 우리 민족의 70년 미래를 규정할 수 있다. 올바른 행동을 위해서는 올바른 상황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변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판단해야 할 것인가? 먼저 북한의 행동과 의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왜 북한은 핵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다가 비핵화 협상에 나섰는가? 핵의 완성을 선언하였지만, 핵이 정말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가? 북한과 김정은은 지금 무엇을 가장 원하는가? 김정은은 장기간 집권할 수 있을 것인가? 여러 가지 질문이 꼬리를 잇고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새로 수립된 국가들은 3단계의 국가발전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김일성에 의한 정통성 단계, 김정일에 의한 안보 단계를 거쳐서 김정은은 경제발전을 할 수밖에 없는 단계에 왔다고 본다. 한국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안보의 위협, 유라시아 대륙과의 연결 단절이라는 지리적 고립 속에서 계속 성장할 수 있는가? 한국 국민은 통일을 원하는가? 통일 비용 부담론, 통일 후 사회 혼란, 공산세력에 대한 적대의식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룰 수 있는가? 문재인 정권은 평화의 구도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아직 변수는 많지만 한국 국민들은 평화 체제 속에서 북한과의 경제적인 교류와 협력을 원한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의 의도와 미국의 상황은 여러 가지 불확실한 것이 많아 보인다.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핵은 동북아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변화를 가져왔는가?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북한의 도발을 이용해 왔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카드는 폐기되는 것인가? 미국의 자본에게 북한의 투자 가치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중국과 베트남의 투자 효용이 한계에 와서 새로운 투자처가 필요한가? 트럼프는 군산복합체와 미국의 정치 주류인 대중국, 대공산주의 매파에서 벗어났는가? 아직까지 미국 주류의 입장은 북한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북한의 핵 보유는 중국의 경제 우선(경제대국 후 군사대군), 동북아 현상유지 구도에 균열을 가져왔는가? 남북한의 협력(평화와 번영)은 일본에 이득이 되는가, 러시아에게는 극동개발과 영향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가? 세계의 투자자들에게 북한은 새로운 투자처로 매력적인가?국제 구도에서 남북한의 국내 정치까지 여러 가지 불명확한 것이 많지만, 필자는 현재 분단 70년의 판이 뒤집어졌다고 본다. 새로운 판의 모습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우리는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확인해 가면서, 하나하나 새로운 판의 퍼즐을 맞춰나가야 할 것이다. 그 판이 우리 민족의 앞으로 70년을 규정할 것이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8-06-25 이명호

[홍창진 칼럼]종교의 영역

나의 종교로 믿음 생활하고 있다면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잘 살펴라종교는 미래 보장해주는 보험 아냐신을 통해 인간의 본모습 깨닫고욕심 버리고 평화 얻는게 참모습지하철도 다니지 않는 어두컴컴한 새벽, 전등불이 환하게 켜지는 곳은 절, 교회, 성당 그리고 보험회사 사무실이다. 새벽 미사를 드리려고 졸음을 참고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면, 건너편 고층 빌딩의 5개 층에 벌써 불이 들어와 있다. 그 환한 불빛 사이로 '○○보험'이라고 적힌 간판이 보인다. 종교인들이야 혼탁한 세상을 깨우기 위해 어둠을 뚫고 새벽을 연다지만 저들은 무엇을 위해 새벽부터 이 부산을 떠는 것일까?사실 20~30년 전만 해도 보험회사는 지금처럼 성장하지 않았었다.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취업과 결혼, 집 장만, 육아 등 미래의 청사진을 자신의 힘으로 일굴 수 있었다. 자기 주도적으로 인생을 꾸려갈 수 있는 여건이 되었기 때문에, 굳이 보험 같은 것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보험 상품 한두 개쯤은 갖고 있다. 미래가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다.보험회사는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닥치지도 않은 미래의 불행을 과장되게 꾸며 사람들에게 겁을 준다.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 돈을 버는 셈이다. 어떤 비용 투자 없이 불안을 사고파는 것으로 영업이 되니, 일면 신기루 같은 사업이라고 볼 수도 있다.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 영업 형태를 종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세월 일부 종교에서는 진리를 가르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불안한 미래를 두고 겁을 주면서, 절대자인 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 불에 떨어진다고 설교했다. 심지어 헌금을 내면 대신 기도해 불행을 막아줄 것처럼 유도하기도 했다. 일정 보험액을 내면 미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보험회사가 떠들 듯이, 종교 역시 얼마나 정성을 바치느냐에 따라 미래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겁을 주었고, 사람들은 종교를 떠나면 큰 봉변을 당하는 줄 알고 그 가르침을 맹신했다.요새는 보험회사가 하도 영업을 잘해서인지, 일부 종교의 잘못된 행태가 많이 사라졌다. 불안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은 이제 보험회사의 몫이다. 그나마 남은 영업수단이 장례 때 복을 빌어주는 일인데, 이 일도 상조회사가 나타나서 자리를 뺏겨버렸다.종교의 본래 기능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잘 들여다보게 해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이다. 신에게 의존해 마치 모든 일을 신이 다 해결해 줄 것처럼 매달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 순리대로 살게 하는 것이다. 즉, 살면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의 정답이 실은 내 안에 있음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이다.아이가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란다면 돈을 내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무턱대고 합격하게 해달라고 빌 게 아니라, 공부로 힘들어하는 아이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주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이런 세상 이치를 이해하고 제 스스로 노력하도록 힘을 주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다. 종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설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고 '더 노력해야겠구나'하며 힘을 낼 것이다.하지만 여전히 종교를 소원을 이뤄주는 요술램프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 입시 백일 전에 성당, 교회, 절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불경이든 성경이든 어느 종교 경전에서도 "복을 빌어라, 그러면 내가 복을 주겠다"고 가르치는 구석은 없다.내가 만일 어떤 종교에 소속되어 지속적으로 종교 생활을 하고 있다면 내 종교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잘 들여다보라. 그리고 나는 어떤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잘 살펴보라. 종교는 미래를 보장해주는 보험 상품이 아니다. 신을 통해 인간의 본 모습을 깨닫고, 욕심을 버리고 평화를 얻는 것이 종교의 참모습이다./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2018-06-18 홍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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