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칼럼

 

[윤상철 칼럼]국가에 대한 헌신

국가의 잘못 적폐로 질타하면서그 책임 누군가에 묻기 보다는모두의 거룩한 희생 수용 필요누구도 국가에 헌신 역할 없다면끝없이 요구하면서 비판하거나공격하는 길 찾기 마련이다케네디대통령은 "국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으세요."라고 요청한다. 문재인대통령은 "국민들이 '국가의 존재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두 대통령의 말은 언뜻 상보적으로 보이지만 국민들에게 국가를 보는 상반된 관점을 제시한다. 1990년대 초반에 필자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했었다.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여야 거물급 정치인들 중에는 훗날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등이 된 이들도 있었다. '신성한 국회의사당'의 뒤편에서 이른바 '4류 정치인'들의 부패나 무능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에게 난감했던 사실은 그들 구세대에게는 이른바 "애국심"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정치적 스승으로 이승만과 김구를 내세웠다. '추한 담합'으로 지탄받으면서도 '국민과 국익을 위하여' 협상할 줄 알았다. 그들보다 젊은 정치인들도 그 애국심을 폄훼하지 않았다. 반면, 당시 86세대나 X세대에게 '민주화된' 국가는 군부권위주의체제의 잔재와 IMF위기를 촉발한 무능정부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국가를 공격하여 시민의 자유, 민주, 나아가 평등을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국가는 헌신과 봉사의 대상이 아니고, 그 약탈과 지배로부터 자기보호와 자유를 쟁취해야 하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애국심이란 애초에 보이지 않거나 또 다른 정치적 억압이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이미 사회과학계에 뿌리내린 맑스주의 또한 젊은 세대의 경험적인 국가개념을 정당화하는 데 일조했다. 맑스주의는 사회가 계급들로 구성되고, 국가는 명목적일 뿐이라는 국가론과 계급론을 제공하였다. 사회 안에는 계급간의 투쟁만 존재할 뿐이고 국가는 특정 계급의 공동관심사를 다루는 위원회에 불과했으며, 소외되고 배제된 계급들에게 국가는 폐기의 대상이었다. 어떤 국민들이 체험을 통해 국가의 존재를 재구성했던 반면 우리는 그 과정에서 국가를 부정하는 길을 밟았다. 국가가 원천적으로 부정되면 국민이 국가에 바쳐야할 헌신과 의무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 국민들은 링컨, 케네디, 그리고 처칠에게서 국가를 배운다. 링컨은 게티스버그 연설에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오히려 명예로이 죽은 이들의 뜻을 받들어, 그 분들이 마지막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그 대의에 더욱 헌신하는… 이 땅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며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는 내용으로 국가의 존재와 그 국가의 민주주의를 위한 거룩한 희생과 지속적인 헌신을 웅변함으로써 미국 애국주의 전통에 기여했다. 처칠은 "나는 피, 수고, 눈물, 그리고 땀밖에는 달리 드릴 것이 없습니다."라는 말로 전쟁으로 절망한 국민에게 달콤한 희망 대신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호소하였다.국가가 부정되고, 국가가 사적 정권 혹은 정파적 정부와 동일시되면 국민은 국가에 대해 뭔가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상상적 국가를 채울 국민들의 헌신은 '금모으기 운동'을 넘어선다. 그러나 국민들은 요구하고 정부와 정치권은 대답하는 형국이라면, 국가를 만드는 작업에서 국민들은 소외되고 수동적인 객체로 둔갑한다. '민주'는 살아있으나 '공화국'은 사라진 기형이다. 국가와 더불어 모든 조직공동체들이 부정되면서 노동자, 공무원, 교직원, 군인 등이 오로지 요구만 한다면 기업, 정부, 학교, 군대는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중동의 건설노동자, 대학의 과학기술자들, DMZ의 군인들, 바다의 등대지기들, 그을린 농부들이나 원양어선의 선원들 등을 과거 권위주의시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불러내어 그들의 국가에 대한 헌신을 국민과 더불어 공유하는 것은 어떤가? 국가의 잘못을 적폐로 질타하면서 그 책임을 누군가에 묻기보다는 남군과 북군 모두의 거룩한 희생으로 수용하면서 국가를 위한 헌신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여는 방법이 우리의 역사와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누구라도 국가에 헌신하는 역할이 주어지지 않으면 끝없이 요구하면서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길을 찾기 마련이다. 그때 우리 모두의 국가는 사라지게 된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7-11-20 윤상철

[전호근 칼럼]일한 사람이 쉴 수 있는 세상

한국노동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OECD평균보다 1.7개월 더 많고독일보다 무려 넉달이나 더 일해수고롭게 일하고도 쉬지 못한다이젠 우리도 부의 분배만 아니라쉼의 분배에도 많은 관심 가져야중국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한 사람인 묵자는 수레를 만드는 기술 노동자였다. 당시 그를 비롯한 기술자들은 수차와 호미 등 새로운 농기구를 만들어 물질적 풍요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당시의 지배자들은 기술이나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의 노고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들의 삶은 여전히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기술자 집단의 우두머리였던 묵자는 기술과 노동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우려 했다. 그는 인간이 인간인 이유를 노동하는 데서 찾았다."사람은 본디 날짐승이나 길짐승과는 다른 존재다. 짐승들은 깃이나 털을 그대로 옷으로 삼고 물이나 풀을 그대로 먹을거리로 삼지만, 사람은 이들과 달라 노동하는 자는 살아나갈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자는 살아나갈 수 없다."그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깃이나 털을 그대로 옷으로 삼고 물과 풀을 그대로 먹는 짐승들과는 달리 노동을 통해 자연을 넘어서는 존재다. 되돌려 말하자면, 그에게 일하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가 말하는 정의란 것도 다른 철학자들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그려진다. 그는 남의 것을 훔친 자를 부도덕하다고 비판하지만 그보다 스스로 노동하지 않고 남의 노동을 훔친 행위, 곧 남의 노동을 착취하는 행위야말로 가장 부도덕한 행위라고 비판했다.따라서 그는 그런 노동 착취행위가 가장 큰 규모로 일어나는 침략 전쟁은 약자에 대한 강자의 부당한 폭력이라고 지적한다. 전쟁이야말로 가장 중대한 사회적 불의라고 규정했던 건 그에게는 당연한 결론이었다. 실제로 그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집단을 구성하여 침략자에게 조직적으로 저항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시대를 대혼란의 시대로 보았지만 혼란을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달랐다. 당시의 혼란을 묵자는 이렇게 정리했다."백성에게는 세 가지 걱정이 있다. 굶주린 자가 먹지 못하는 것, 추위에 떠는 자가 입지 못하는 것, 수고롭게 일한 자가 쉬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야말로 백성들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이 말에서 그의 철학이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백성, 수고롭게 일한 자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자뿐 아니라 수고롭게 일하고도 쉬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스스로 일하는 자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천 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에 비추어 보아도 묵자의 이야기는 여전히 돌아볼 만한 점이 없지 않다.말할 것도 없이 현대의 한국인들은 고대의 춘추전국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이들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다지 행복한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높은 자살률과 낮은 국민 행복도를 보면 한국인의 삶은 대체로 우울해 보인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최근의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우울은 무슨 실존적인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은 데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OECD에서 발표한 '2017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6년 한국 노동자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 노동자는 OECD 평균보다 1.7개월을 더 일하며,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짧은 독일과 비교하면 무려 넉 달을 더 일한다. 이러니 한국 노동자들은 한 마디로 수고롭게 일하고도 쉬지 못하는 이들인 셈이다. 어떤 이들은 노동생산성이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 노동자들의 자질이 독일 노동자보다 넉 달을 더 일해야 할 정도로 떨어진다는 말인가?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많이 일하면 생산성도 따라서 올라간다는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반증으로 이해하고 노동 시간을 줄여야 할 것이다.2천 년 전의 묵자가 일한 자는 쉬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가 그의 시대적 요청에 명징하게 답한 것처럼 이제 한국 사회도 부의 분배만 아니라 쉼의 분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수고롭게 일한 모든 이들이 마음 놓고 넉넉히 쉴 수 있는 날이 이제는 와야 하지 않을까. 2천 몇 백 년은 너무 오랜 기다림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11-13 전호근

[홍창진 칼럼]인연(因緣)이 미래다

모든 형태의 노력은 미래의 씨앗'인연'으로 제대로 싹 틔워야이웃과 담 쌓은채 고민하지 말고산행·종교활동·연애도 하면서일상적인 만남 많이 갖고 살아야따뜻함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신부님, 회사에 사표 냈어요. 당분간 쉬면서 생각 좀 하려고요. 일간 찾아뵐게요.'얼마 전 받은 문자메시지다. 젊은 친구들과의 만남이 많아서인지 평소 이런 문자를 자주 받게 된다. 대부분 이직을 정하지 않고 무작정 내린 결론들이다. 먹고살 대비책을 세워두지도 않고 일단 사표부터 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불안할까?하지만 다행히 일자리를 찾았다고 해도 이전보다 행복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경제 성장이 침체기에 든 이래 일자리 자체가 크게 줄었고, 자연히 개인의 업무량은 늘었다. 눈앞의 일을 해치우느라 몸은 피곤해 죽겠는데, 권고사직이니 명예퇴직이니 하는 무시무시한 말 때문에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한다. 그래서 아예 국가고시 등 다른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위 의전, 약전, 법전 준비생들이다. 전공을 바꿔 대학과정을 밟아 전문직을 갖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멀쩡히 잘 다니던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고시원에 들어갔다.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평생직장을 갖겠다는 그 노력이 가상하긴 하지만, 내 눈에는 미래를 향한 멋진 도약으로 보이지 않는다. 입으로는 희망을 말하지만 눈빛이나 행동에는 괴로운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괴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양질의 자리는 점점 희박해지고 경쟁은 치열해져가는 세상이 너무 두려운 것이다. 가진 재주를 다 모아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될 리 없다. 무서운 경쟁을 뚫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가뜩이나 복잡한 마음을 더 짓누른다. 그런데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미래에 내가 어떻게,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지 결정짓는 데 가장 크게 작용하는 요소가 무엇인가?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다. 기본적인 실력도 있어야 하고, 학벌이 뒷받침되면 더 좋은 거고, 인내심이나 도전의식 등 품성도 갖출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하지만 나는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인연(因緣)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많은 젊은 친구들이 미래의 삶을 의논하러 나를 찾아온다. 그럴 때 나는 내 주변 사람 중에 그 친구의 꿈과 엇비슷한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 아니 꼭 꿈과 관련 없어도 위로를 주고 본이 될 만한 사람들에게 연락해 서로 어울리게 한다. 거창한 모임이 아니라 그저 산에 오르거나 자전거를 탈 때 놀러 오라고 한다. 안타까운 건 젊을수록 그런 자리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말이다. 학원에 가야하고, 스터디에도 가야하고, 시험 준비도 해야 한단다. 가뜩이나 피곤한데, 그 시간에 잠이라도 한 숨 더 자겠다는 마음도 보인다. 좋은 인연 날아가는 소리가 귓전에 들리지만,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다 앉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저 하던 대로 이 직장 저 직장 기웃대며 고민하는 걸 지켜볼 밖에는.지나고 보니 내가 주선한 세대 간 통합 모임에 꾸준히 나왔던 친구들은 거의 자리를 잡아 열심히 잘 사는 반면, 저 하던 대로 고립돼 살던 친구들은 같은 고민에 허우적대고 있다. 먹고사는 일이 녹록지 않은 시대이지만 이웃과 담을 쌓은 채 혼자 고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가끔 산행 모임도 나가고, 종교 활동도 하고, 연애도 하면서 일상적인 인연들을 계속 키우며 살았으면 좋겠다.나는 아직까지 혼자 노력해 성공했다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노력은 미래의 씨앗이 된다. 그러나 그 씨앗이 제대로 싹을 틔우려면 좋은 토양과 햇볕이 필요하다. 인연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인연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모르고 오로지 자기 힘만 믿고 미래를 개척하려드는 건 어찌 보면 미련한 짓이다. 인연이라는 절반의 기회를 그냥 내다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력도 좋지만 생각보다 따뜻한 인연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아직 당신은 그 인연을 만나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2017-11-06 홍창진

[방민호 칼럼]헌책방 사연

세상이 바뀌고 나서도숱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하지만 정녕 중요한 것은역시 한 사람이 나고 살고 가는것몇 권 그의 책을 사들고나오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어젯밤이다. 뭔가 허전하다 싶으면 헌책방을 찾게 된다. 어젯밤에는 더구나 박완서 수필집 보아둔 것을 꼭 사야 할 용무도 있었다. 지난번에 만오천 원이라 했었다. 다른 책도 제법 많이 산 데다 초판도 아닌 3판째 수필집이라 미루어 둔 책이었다. 서울에서도 마포 홍익대학교 근처, 그래도 이런 곳에 헌 책을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가끔 싼 값에 좋은 책을 만나면 그보다 아기자기한 즐거움도 드물다. 옛날에, 청계천 근처 헌책방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를 일제 강점기에 한국어로 낸 문고판 책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던가. 이런 경우를 요즘 세속 말로 '득템'이라 한다던가. 그러나, 사실, 요즘은 꼭 그렇게 기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 헌책 흥정이라는 것이, 요즘은 인터넷에서 경매가 벌어지고 인터넷 유통망을 통한 가격 비교가 언제든 할 수 있게 되면서 간단치만은 않게 되었다. 어쩌다 주인 모르는 책을 싸게 사게 되면 혹여 사람을 속여 넘긴 게 아닌가 찜찜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인터넷 유통망으로 가격을 일일이 확인하고 헌책 값을 받을 대로 받으려는 주인님을 보면 어쩐지 얄밉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래저래, 귀한 책은 귀한 값 그대로는 못될망정 적당히 쳐주고 그렇지 않은 책은 이유까지 알려 드리며 제 가격대로 사는 게 마음 편하다. 왔다 간 게 불과 한 달 전쯤이었나? 그런데 그 짧은 사이에 헌책들이 꽤 좋은 것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 같다. 누가 소장하고 있던 책들을 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이 업계에서는 '나까마'(なかま, 仲間)라고 한단다. 이 어원이 맞나 모르겠는데, 내놓아진 책을 싸게 사다 헌책방 같은 곳에 되파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간 상인일텐데, 다들 아직까지 일본어로 그렇게들 부른다. 청계천 헌책방 같은 데 서서 그분들 이야기 나누는 것 보면, 좋은 책 나오려면 꼭 어느 분이 돌아가시든가 해야 한다. 책을 사랑해 수집하고 아껴 소장해온 사람이 어느덧 나이가 들어 병석에 들고 그 자손들이 그 무겁고 부피 나가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없어 처분해야 하는 때가 오면 나카마 분들께는 대목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나카마 장사를 잘 하려면 책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일제 강점기에 나온 책이면 쇼와(昭和) 25년이 서기력으로 몇 년인지 정도는 알아야 하고, 해방 직후나 1950년대 책을 알아보려면 단기력에서 2333년을 빼야 서기력이 나온다는 것쯤도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웬만한 작가나 시인 이름 정도도 그 존재는 알고 있어야 무게로 달아 나오는 헌 책에서 값이 되는 것을 뽑아낼 수 있다. '박노갑'이라면 그렇게 유명한 작가라고 할 수도 없지만 점점 책이 귀한 세상이 되고 보면 그런 작가 책도 가볍다고만 볼 수 없고, 더구나 그가 박완서 작가의 스승이기도 했다고 생각하면 한 번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박완서 수필집 3판 것을 오천 원을 깎아 주어 쉽게 사고난 후 새로 들어온 헌책들을 살펴보는데, 그 중에 '창작과비평' 1970년대 것들도 그런대로 깨끗한 게 뭉치로 있고, 김성동의 장편소설이며 수필집도 초판 나온 게 있다. 이런 책들은 요즘 쉽게 나오지를 않는 것이다. 어떤 분이 갖고 계시던 건가요? 단골 된 덕에 알아보는 주인께서, 모모한 사람인데, 이름은 알려줄 수 없고, 그런데 그분이 오래 아파서 어쩔 수 없이 내놓는 책들이라고, 당신 보기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다. 어느 한 분야에 오래 있다 보면 남들 잘 모르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는 법도 있다. 생각이 짚이는 데가 있다. 하지만 그 이름을 발설하지 않는다. 그러면 더 마음이 편치 않아질 것 같아서다. 세상이 바뀌고 나서도 숱한 일들이 일어난다. 하지만 정녕 중요한 것은 역시 한 사람이 나고 살고 가는 것이라고, 헌책방을 몇 권 그의 책을 사들고 나오면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밤이 이미 많이 깊었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7-10-30 방민호

[이남식 칼럼]세상을 바꾸는 '기계학습'

미래엔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기존 산업·빅데이터·기계학습이새로운 가치 창출하게 될 것이를 위해 착실히 준비하는 것이미래의 경쟁력 키워가는 지름길교육콘텐츠도 바뀌지 않으면 안돼최근 네이처지에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에서 새롭게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수많은 기보를 통하여 훈련시킨 '알파고' 인공지능프로그램과 '알파고 제로'라 불리는 새로운 방식의 인공지능프로그램이 대결해 '알파고 제로'가 100 대 0으로 승리했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새로운 '알파고 제로'는 과거의 기보 자료나 지도 훈련 없이 순수하게 스스로 강화학습에 의해 바둑 두는 방식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바둑을 두는 지식에 근거하여 학습한 것보다 기계가 스스로 학습한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과거 '알파고'에서는 정책망(policy network)과 가치망(value network), 두 개의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을 사용하여, 정책망은 인간고수가 어디에 돌을 놓을지를 지도학습으로 훈련시키고, 가치망은 바둑돌을 두었을 때, 누가 이길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이렇게 훈련이 끝나면, 몬테칼로 나무탐색(tree search)을 통하여 가장 확률이 높은 상대방 수에 대하여 승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알파고 제로'는 하나의 신경망을 사용하고 사람의 지도나 감독 없이 무작위로 스스로 바둑을 두되 강화학습이 일어나도록 프로그램하였다. 결국은 '알파고 제로' 스스로 승리하는 패턴(즉 포석)을 손실함수(loss function)로 계산하며 학습하여 지난번 보다 훨씬 효율적인 결과를 낳았다. 과거의 '알파고'는 몇 달간의 훈련을 거쳐 완성되었는데, 새로운 '알파고 제로'는 단 36시간의 학습 뒤에 '알파고'를 앞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과거 '알파고'는 분산된 여러 대의 컴퓨터와 48개의 TPU(신경망을 계산하는 CPU)를 사용하였으나 새로운 '알파고 제로'는 4개의 TPU를 가진 한 대의 컴퓨터로 가능하였다. 불과 몇 개월 만에 바둑이라는 한정된 영역이기는 하지만 기계학습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의 가장 큰 동력을 '인공지능'이라 하지만 이 중에서도 그 중심에는 기계학습 즉 머신러닝이 있다.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하는 기계를 통하여 앞으로 엄청난 생산성 향상과 더불어 21세기에 새로운 경제부흥을 기대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누가 기계를 잘 만드느냐가 아니라 누가 기계학습을 잘 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느냐가 경쟁의 핵심이 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의 걱정처럼, 효율과 성과만을 기준으로 강화학습이 일어날 경우, 많은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인간이 기계와 다른 점은 '인간의 양심'이 악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기계학습에 의하여 가장 효율화된 시스템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게 될 경우 엄청난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를 어떻게 인간의 통제 하에 둘 것인가에 대하여 전 세계적인 기준을 만들고 총체적으로 이를 감독하고 관리하는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 전 세계 인구의 60%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게 될 것이며, 이 때문에 스마트시티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생산성의 향상을 위하여 모든 생산현장이 스마트팩토리로 바뀌어가고 있다. 결국 엄청난 양의 다양한 정보들이 빅데이터로 생성, 보관되며 실시간으로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기계학습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미래에는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기존의 산업과 빅데이터, 기계학습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이를 착실히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미래의 경쟁력을 키워가는 지름길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의 콘텐츠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더 이상 안 배워도 될 것들을 줄이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힐 여유가 없다. 선생님이나 교수님이 있기 때문에 배워야 하는 것들이 있다면 이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

2017-10-23 이남식

[윤상철 칼럼]우리에게 나라는 있는가?

트럼프와 김정은 말폭탄 이어북, 핵·미사일 도발 강도 높이고미, 북에 군사적 압력 '긴장 고조'이 틈에서 한국정부 갈팡질팡아무 대책없이 선택 수용 한다면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아지금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 있는 듯하다. 미국 대통령은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한 반면, 김정은 북한노동당위원장은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고 반격했다. 말뿐만이 아니다. 북한은 핵실험을 거듭하고 탄도미사일의 발사거리를 늘려가는 반면, 미국은 B1B 전략폭격기 편대를 한반도 상공에 출격시키고 핵추진 항모전단을 한반도로 이동시키면서 북한에 대해 군사적 압력을 한껏 높이고 있다.이 틈에서 정작 한국정부는 갈팡질팡한다. 정부는 북한에 800만달러를 지원하면서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분리하여 지속 추진'하겠다고 하는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의 도발을 조기에 분쇄하고 북한을 재기불능으로 만들 힘이 있다"고 강력하게 압박했다. 반면 야당은 '코리아 패싱', '무기력 행정부', '환상에 빠진 청와대' 등으로 거칠게 비판하면서 '전술핵 재배치'와 핵무장, 전시작전권 환수 재고 등을 거론하면서 대북 압박과 제재를 주문한다.사자와 하이에나의 틈바구니에서 양과 여우의 전략이 다투는 형국이다. 그러나 양과 여우가 기실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인식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일단은 공식적인 정책결정자도 안보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의 말에서 찾아진다.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교수는 "한미 동맹이 깨진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고 말하면서 북미간 우발적, 계획적 충돌과 핵전쟁의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소설가 한강은 '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제목의 NYT 기고문에서 "평화가 아닌 어떤 해결책도 의미가 없고 승리는 공허하고 터무니없는 구호일 뿐"이라고 절규한다.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즐비한 우리나라에서 한국, 나아가 한반도가 핵전쟁으로 맞게 될 파괴와 절멸의 위기에 대응하여 그 어떤 헤게모니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촛불혁명에 참여한 시민들이 외쳤던 "이게 나라냐"를 다시 되뇔 때가 아닌가 싶다. 그 때는 국정농단과 같은 내우를 한탄하는 말이었다면, 이제 외환에 대해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정파적 대결이 횡행하는 상황을 질타하는 말이다. 나라의 백성과 강토가 사라지거나 이제껏 이룩한 정치경제적 발전을 과거로 되돌릴 수 있는 형국에서 나라의 가장 본질적인 목표인 생존전략조차 합의하지 못하는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살고 있다면 '상상의 공동체'로서 나라는 이미 해체된 거나 다름없다. 이런 일이 한반도의 21세기에서만 나타나는 상황일까?임진왜란 1년 전에 일본에 갔던 조선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은 일본의 동정에 대해 상반된 보고를 한다. 정사 황윤길은 '필시 병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보고하였지만 김성일은 '그러한 정상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민심을 동요하게 한다'고 상반된 보고를 올린다. 정파적 이해가 다르더라도 그 실낱같은 가능성이 일본의 조선지배를 초래할 일이었으면 조선의 집권세력은 병란을 대비했어야 했다. 불과 40년 후에 일어난 병자호란도 나라의 생존을 둘러싸고 이해를 달리하는 척화파와 주화파 간의 대립으로 아무런 대책 없이 쟁론만 벌이다가 백성들은 전쟁의 참화를 겪고 강토는 유린되고 왕은 굴욕을 당한다. 나라의 생존이 무엇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만 있었더라면 임진왜란 이후 전쟁에 대비하고, 명분만 앞세워 강력한 적에 맞서는 우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북분단이나 한국전쟁의 상황에서도 이러한 적전분열의 양상은 다르지 않았다.전근대시대라면 인접국과는 동맹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만큼, 북한이나 중국과는 적어도 적대관계를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오랜 냉전으로 굳어진 대립관계를 우호적 관계로 돌리기란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전국시대의 진나라나 신라처럼 원교근공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기에는 미국도 중국도 우호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동북아 균형자론은 상황인식도 주제파악도 안된 공상처럼 들린다. 이 시점에 마키아벨리라면 미국과 중국, 미국과 북한이 대립하는 형국에서 어느 한쪽을 명확히 선택하라고 주문했을 것이다. 그는 인접한 두 강국이 싸우는 형국에서 중립은 결국 궤멸을 초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립하는 두 국가들이 전쟁으로 갈지, 현상유지로 갈지 알 수 없는 형국이다. 그 결과가 북미간의 빅딜이건, 미중간의 빅딜이건 간에 한국이 한반도 운전자가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마키아벨리라면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는 방법이 최악이라고 말했을 것이고, 서로 다른 전략으로 우왕좌왕하는 것은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라 말했을 것이다. 아무런 입장이 없어서 패싱 당하고 남들의 선택을 수용해야 하는 나라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이게 나라냐?"/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7-10-16 윤상철

[전호근 칼럼]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커피믹스 따로 팔 수는 있지만탄 커피 돈 받을 수 없다는 할머니돈으로 못 살것 없는 지금의 세상진심어린 친절 감동이기에값어치로 환산할 수 없는 환대거래할 수 없는 가치 지녀내가 한창 골목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던 시절 이야기다. 2009년 어느 가을날에 나는 카메라를 챙긴 다음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서울의 후암동 골목길을 찾았다.용산고등학교를 지나 남산으로 통하는 소월길에 이르기까지 꼬불꼬불 이어지는 후암동 골목길은 갈래가 꽤나 복잡해서 다 돌아보는 데 반나절 가까이 걸린다. 그날은 빛이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러 차례 골목길을 오르내리면서 마음에 드는 컷을 많이 건졌다.부지런히 돌아다니던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골목길에는 커피숍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소월길 못미처 용산초등학교 언저리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찾았다. 우리는 전에 다른 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믹스커피를 타달라고 해서 마실 요량으로 구멍가게로 들어갔다.안에는 여든이 훨씬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믹스커피를 타 주실 수 있겠느냐고 여쭙자 할머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전자를 꺼내 불에 올렸다.가게는 아주 작았다. 둘러보니 진열된 물건들도 유행 지난 과자가 대부분이었고 양도 많지 않았다. 가게 입구에 설치된 평상에는 커다란 호박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가게로 연결된 좁다란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울퉁불퉁 파손된 곳이 많았다.이윽고 주전자 안의 물이 끓기 시작했고, 잠시 후 우리는 할머니가 타주신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많이 걸었던 터라 그런지 커피가 유난히 맛있었다. 천천히 커피를 다 마시고 난 뒤 우리는 할머니에게 얼마를 드려야할지 여쭈었다.그런데 할머니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놀란 우리는 그러시면 안 된다고 말하며 돈을 꺼내 드리려고 했으나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면서 돈을 절대 받을 수 없으니 그냥 가라고 하셨다.할머니 말씀은 커피믹스를 따로 팔 수는 있어도 손님에게 커피를 타주고서 돈을 받을 수는 없다고 하신다. 그리고는 "우리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고 하셨다.우리는 할 수 없이 건강하시라고 인사드리고 가게를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나는 커피를 마실 때면 종종 까닭 모를 감동과 함께 그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렸다. 커피를 따로 팔 수는 있지만 손님에게 커피를 타주면서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그 할머니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돈으로 못 살 건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지금 세상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 또한 대개가 거래의 다른 이름이기 십상이다. 거래에는 손님과 주인이라는 고유한 관계는 사라지고 소비자와 판매자라는 무미건조한 관계만 남는다. 소비자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물건을 사고 판매자 또한 물건을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관심도 없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도 물건을 사용할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가격에 맞춰 상품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애덤 스미스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맛있는 빵을 원한다면 빵집 주인의 자비심에 기대할 것이 아니라 그의 이기심에 호소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인 세상이다.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방법은 무엇이든 교환할 수 있는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미 오래 전에 뿌리 내린 자유 시장의 거래 원칙이다. 물건만이 아니다. 돈의 힘은 더없이 편리하고 강력해서 돈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는 한 우리는 어디서나 한껏 친절한 응대를 살 수 있다.하지만 그날 나는 커피를 타주는 할머니의 환대를 돈으로 살 수 없었다. 진심어린 친절이기에 거래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사랑은 사랑으로만 교환할 수 있고 우정은 우정으로만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까닭 모를 감동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환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얼마 전 일이 있어 후암동에 들렀다가 할머니 가게가 있던 곳을 찾았지만 이미 그곳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가게가 있던 골목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가려고 그곳을 떠나 지하철역에 이를 때까지 내 귀에는 계속 할머니의 목소리가 맴돌았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10-09 전호근

[이남식 칼럼]특이점의 시대

알파고 바둑실력 인간 능력 추월인간의 시각처리 신경 본떠 만든대표적 모델 '합성곱 신경망'개인 비서인 인공지능 스피커 등새로운 생태계 비즈니스 탄생이젠 적극 활용해야 할때가 왔다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알파고는 더욱 발전된 실력으로 바둑의 세계 1인자라는 중국의 커제 9단과의 3번기를 내리 이겨 지난 해 이세돌 9단을 포함 프로기사와의 대결에서 총 69전 68승 1패를 거두었으며 5월 27일 드디어 은퇴를 선언하였다. 그나마 이세돌 9단이 올린 1승이 인간이 올린 유일한 승리였으며 바둑에 관한한 더 이상 인간과의 대결은 무의미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바둑이라는 고도의 인지적 훈련과 통합적인 판단을 요하는 바둑의 영역에서 기계의 능력이 인간의 능력을 추월하는 그야말로 "싱귤레리티 (Singularity, 특이점)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100m 달리기를 하는데 인간 최고의 스프린터인 우샤인 볼트와 내연기관의 자동차가 대결하여 자동차가 승리했다는 것과 유사할 수 있다. 더 이상 자동차와 인간의 대결은 무의미하며 모든 사람이 자동차를 사용하고 자동차로 말미암아 인간의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무거운 짐들을 쉽게 운반하게 된 것처럼 이제는 모든 사람이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오히려 인간의 능력이 증강되고 향상될 수 있어 사이버의 세계에서의 새로운 인지적인 도구가 보편화 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급속한 인공지능의 기술진보와 확산은 오픈이노베이션 (open innovation)에 있다.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에 관련된 대부분의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는 모두 공개되어 누구든지 사용하고 이를 기반으로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 1953년에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한 이후 90년대까지는 등반에 성공하는 팀이 매우 적었으나 최근에는 매년 600~700명이 등반에 성공하는데 이유는 베이스캠프의 위치가 처음에는 2천500m에서 시작하여 최근에는 5천800m까지 상승하면서 급격히 등반 성공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의 분야는 공개된 가장 좋은 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응용을 거듭함으로써, 그 수준이 폭발적으로 향상되는 것이다. 구글의 Tensor Flow, 마이크로소프트의 CNTK, DMTK 페이스북의 Torch 버클리비전센터의 Caffe 등의 공개소프트웨어, Github와 같이 2천600만명의 사용자가 있는 공개프로젝트 커뮤니티, 각종 공개데이터, 공개 경진대회 등을 통하여 하루가 다르게 진화 발전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최소한 이런 공개소프트웨어나 공개데이터를 활용하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특정 문제에 적용하고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이다. 최소 6개월에서 1년이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다. 최근 코세라(cousera)와 같은 MOOC에서 6개월 안에 마칠 수 있는 새로운 학위과정-나노디그리 (Nano degree) 가 활성화된 것 또한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시각을 처리하는 신경을 모사하여 만든 인공신경망 모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을 합성곱 신경망 (CNN : Convolutional Neural Network)이라 한다. 이미 비디오 영상 중에서 수천 가지의 서로 다른 물체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물체를 인식하는 학습을 첨가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CNN을 Cable Network News의 약자로 인지하는 사람은 많으나 아직 CNN을 합성신경망이라 인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동차를 이용하듯이 모든 사람이 이러한 새로운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국가야말로 미래에 경쟁력이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들이 탄생 되고 있다. 아마존의 인공지능 스피커인 Echo를 이용한 개인비서인 일렉사(Alexa)가 그러한 비즈니스이다. 이것은 단지 스피커를 파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아마존이 개발한 음성인식, 자연어처리와 같은 인공지능서비스를 수많은 개발자와 함께 판매하는 생태계 (Echo system)이다. 스피커에 지시하는 다양한 명령을 스킬 (skill)이라 하여 누구든지 개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음악을 틀어 줘'와 같은 것 이외에도 '문자에 있는 계좌로 돈을 송금해 줘'라는 명령을 앞의 자연어처리, 문자-음성 변환처리 등의 서비스를 이용하여 개발할 수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과금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통하여, 그리고 개발된 서비스를 웹에서 서비스할 때 과금하는 등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통하여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데 매년 그 신장률이 50% 이상이다. 즉 새로운 생태계에서 1인 기업이 얼마든지 가능하며 노트북 이외에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 아마존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AWS (Amazon Web Sevice)를 통하여 스킬을 개발하고 전 세계적으로 개발된 스킬이 사용될 때마다 사용료를 받는 사업이 가능해지므로 남는 시간에는 문화생활을 즐기며 새로운 서비스를 구상하는 삶을 살게 되는 날이 온 것이다. 인공지능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이제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

2017-05-29 이남식

[전호근 칼럼]죄(罪)와 용서에 관하여

재물보다 사람 아끼라는 말은이 나라 모든이가 귀담아 들어야통치자는 아랫사람의 말 잘 듣고묻는것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신하의 죄 임금이 용서할 수 있지만임금의 죄는 용서해줄 사람 없어춘추시대의 패자 제나라 환공이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한 노인을 만났다. 나이를 물어보니 83세라 한다. 환공은 노인에게 오래 산 복으로 자신을 위해 축원해 달라고 했다.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임금님을 위해 축원합니다. 재물을 가벼이 여기시고 사람을 중시하십시오.""좋은 말씀입니다. 좋은 말은 한 번으로 그쳐서는 안 되니 한 마디 더 해주십시오.""임금님을 위해 축원합니다. 임금께서는 부디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그 또한 좋은 말씀입니다. 좋은 말은 반드시 세 번 해야 합니다. 한 마디 더 해주십시오.""임금님을 위해 축원합니다. 임금께서는 부디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죄를 짓지 마십시오."예상치 못한 말은 들은 환공은 크게 화를 내며 이렇게 따졌다."과인은 자식이 어버이에게 죄를 짓고 신하가 임금에게 죄를 짓는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이 신하에게 죄를 짓는다는 말은 처음이오."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그렇지 않습니다. 자식이 죄를 지으면 어버이가 용서해주면 되고 신하가 죄를 지으면 임금이 용서해주면 됩니다. 하지만, 임금이 죄를 지으면 용서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옛날 폭군 걸왕이 탕에게 쫓겨났고 주왕이 무왕에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환공은 노인에게 절하고 그로 하여금 고을을 다스리게 한 뒤 떠났다.유향의 '신서'에 나오는, 2천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노인의 세 마디 말은 참으로 옳다.재물보다 사람을 아끼라는 첫 번째 말은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이가 귀 담아 들어야 한다. 저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도, 침몰 원인을 아직 다 밝히지는 못했으나 따지고 보면 사람을 재물보다 천시하는 풍조가 근본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적재적량을 훨씬 넘어서는 화물을 적재한 이유나 적재된 화물을 고박하지 않은 이유는 모두 사람보다 재물을 아꼈기 때문이 아닌가.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두 번째 말은 모름지기 통치자는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말을 뜻하는 한자 言(언)은 입[口]에서 나오는 음파[≡]가 위쪽으로 퍼져 나가는 모양을 본 뜬 글자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입이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래에 위치한 입[口]은 신분이 낮은 사람의 말을 뜻한다. 그러니 말이 통한다는 것은 높은 사람의 말이 아래로 전달된다는 뜻이 아니라 낮은 사람의 말이 위에까지 전달된다는 것을 뜻한다.고래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란 없다.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의 말은 아무리 목소리를 낮게 하더라도 다 알아서 듣기 때문이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은 말[言]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명령[令]이기 때문이다. 명령을 뜻하는 한자 령(令)은 입[△]이 위쪽에 위치하고 아래에 사람이 엎드려 기는 모양[ ]을 본뜬 글자다. 곧 아래에 있는 사람이 신분이 높은 사람이 하는 말에 복종하는 모양을 그린 글자가 령(令)자의 본뜻이다.명령, 곧 권력자의 말이 쉽게 전달되는 것은 그 말이 꼭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의 하수인들이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 때로 온 몸을 던지며 죽음으로 항거해도 그들의 말은 세상에 반향을 일으키기 어렵다. 세상은 귀머거리인 까닭이다.마지막으로 아랫사람에게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그 이유가 절묘하다. 아랫사람의 죄는 윗사람이 용서해줄 수 있지만 윗사람이 지은 죄를 아랫사람이 용서해줄 수는 없는 법이다. 용서라는 말이 그렇다. 용서란 '꾸짖거나 벌을 주지 않고 너그럽게 봐준다'는 뜻이다. 애초에 꾸짖거나 벌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일이 용서다. 그러니 아랫사람에게 죄를 짓는다면 그가 나를 용서할 길이 없으니 나 역시 그에게 용서를 구할 수 없다. 위에 버티고 있으면서 아래에 용서를 구한다는 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바가 크니 사면해줘야 한다'는 말처럼 무례하고 교활한 억지다.지금 이 나라의 행정부나 국회에 있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윗사람이 된 이들은 모두 노인의 이 말을 새겨야 할 것이다. 나도 죄를 짓지 않도록 이 말을 명심해 두려고 한다. 나 또한 부모이고 선생이니./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05-15 전호근

[홍창진 칼럼]죽음은 삶의 거울

죽음의 두려움 없애는 방법은하루하루 불평불만없이 사는것주어진 인생 잘 살아가다 보면마지막 순간엔 행복한 죽음 맞아늘 감사한 일과 마음 갖게 되면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즐거워사람은 본능적으로 모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의학과 과학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죽음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세상 어떤 사람도 죽음을 앞서 경험해본 이는 없기 때문이다. 무덤에 묻혔던 이가 다시 깨어나 증언하지 않는 한, 사실 죽음에 대해 명확히 알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웃는 얼굴로 맞을 수는 있다고 본다. 직업상 죽음을 참 많이 봐 왔다. 신부가 제일 많이 하는 일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찾아가 행하는 종부성사(임종 전에 치르는 천주교 의식)이다. 신부들은 24시간 전화기를 켜두어야 한다. 급한 임종은 대개 밤과 새벽 사이에 일어나기 때문에, 취침 중에라도 항상 대기모드로 해 둔다. 30년 가까운 시간, 한 달에 많게는 수차례씩 임종을 지켜보다 보니 죽음을 목전에 둔 얼굴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이분이 지금 천당으로 가고 있는지 지옥으로 가고 있는지 말이다. 차분하고 평안한 얼굴로 떠날 채비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초조하고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두려움에 떠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면 죽음 직전의 얼굴이 평생 살아온 인생의 지도라는 생각이 든다. 평생 남의 가슴에 못 박는 일 없이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산 사람은 떠나는 길의 표정도 평화롭고 행복해 보인다. 웃음으로 생긴 잔주름과 잔잔한 입가의 미소가 눈물겹게 아름답다. 그러나 자기만 위하고 가족과 이웃을 외면하며 살았거나, 성공을 추구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내면의 자아를 학대하며 산 사람은 마지막 생명줄을 부여잡고 괴로워한다. 죽음 직전에 지나간 날들이 후회스러워 편히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표정에 괴로움과 회환이 가득하지만, 종교의식 한 번으로 그 표정을 바꿀 수는 없다. 잘못 살아온 삶의 대가는 생의 마지막 순간 고스란히 받아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내가 살아온 삶의 모습이 곧 언젠가 맞이할 내 죽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 "거울 속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그 얼굴이 바로 당신이 죽을 때의 얼굴입니다."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찬찬히 응시하면 거울 속 내 모습은 매번 다르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산 날이면 거울 속 내 얼굴이 빛이 난다. 주름도 좀 없어진 것 같고 눈가에 생기가 돌기도 한다. 그러나 나만 생각하느라 가까운 사람을 등한시했거나, 불평불만으로 하루를 보낸 날이면 거울에 비친 낯빛이 어둡다. 지친 기색 때문에 주름도 더 있어 보이고 분노, 얼울함, 후회 등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눈빛도 흐려 보인다.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고 생각하면, 결국 매일매일을 잘 살면 인생을 잘 사는 게 된다. 인생을 잘 살면 곧 마지막 순간에도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결국 죽음의 두려움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늘 하루 주어진 삶을 잘 사는 것이다. 매 순간 있는 힘껏 잘 살면 죽음의 공포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죽음의 공포 대신 '한세상 잘 살았다'는 충만감이 자리하게 된다. 일전에 일주일 정도 단식을 한 적이 있다. 이틀이 지날 무렵부터 물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이렇듯 결핍은 아주 작은 일에도 우리를 감사하게 만든다. 결핍 중 최고의 결핍은 죽음이다. 죽음이 예고 없이 찾아든다는 것을 늘 기억한다면 우리 사람은 감사한 일로 넘쳐나게 된다.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면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삶은 즐거워진다./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

2017-05-08 홍창진

[방민호 칼럼]상처 입은 말, 피 흘리는 글

공격과 야유·조롱의 말과 글이음식 첨가물로 칭송되는 시대에사람들 영혼·참생명 메말라 가국가기관 닮은 부대들이인터넷망 파고 들어 포격 명령두 포털 그들 용맹에 무릎 꿇어원래 댓글은 한번도 달지 않은 사람이다. 언제부터냐 하면 지난 지지지난 대통령 때부터다. 그때부터 호화찬란한 댓글 문화, 문자문화가 꽃을 피웠다. 누군가 자기 생각에 안 맞는 말을 하고 글을 쓰면 패를 이루어 몰려가서 흠씬 두들겨 팬다. 정의와 진보의 이름으로.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말씀 거칠게 하니, '백성'들이 다투어 그분을 따라 말하고 쓴다. 전자게임에서 적을 마구 도륙하는 워리어가 된다. 급속히 확대된 인터넷 문화는 호화찬란한 소통 문화의 개활지로 변했다. 사실, 이런 말펀치, 글폭력은 군사독재 시절에 군림하던 사람들이나 쓰던 것이다. 불법 집권해서 무서울 게 없는 무리가 힘없는 '백성', 저항하는 '난도'들을 향해 카메라 모아놓고 눈 부라리며 썼다. 저항하는 사람들도, 그중에서도 젊은 학생, 노동자들도 같은 말, 글을 썼다. 싸우면서 투쟁과 공격의 언어를 익혔다. 삶의 말과 글이 군사 용어들로, 증오와 비난의 표현들로 오염되어 갔다. 이것이 그 지지지난 대통령 시대에 극적으로 인터넷에 상륙했다. 거침없는 비난과 비하, 조롱, 야유, 적대적 공격의 언어가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을 업었다. 지지난 대통령, 지난 대통령의 시대에 이 문화는 더욱더 발전, 융성했다. 문화 융성이라는 허울 좋은 표어 아래 말과 글은 더욱더 군사화, 폭력화되었다. 국가 기관이 버젓이 댓글부대를 창설하고 '적'을 설정하고 말폭탄, 글폭탄을 투하했다. 맞아 죽으라는 듯 말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렇게 폭격에 노출되어 '학대'당하던 진영으로부터 반격이 시작됐다. 이 저항 진영은 이미 지지지난 대통령 때부터 실력을 연마해 온 터라 한번 작정을 하고 나서자 그 국가기관 뺨칠 만큼 체계화, 조직화, 대량화되었다.이제 전투 '기계'가 완비되었다. 공상 미래 영화 '토탈리콜'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전자 레이더를 통한 적의 색출, 조준, 포격, 임무 완수, 또다른 명령 하달 같은 전자 게임적 대량 살상이 현실화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번 선거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모든 정보 전달, 의사소통이 인터넷화, 휴대폰화 하면서 날 것의, 직접의, 육성의, 종이 출판물의 말과 글은 무력화 되었다. 이 모든 아날로그적 말글은 오로지 디지털화될 때만 힘을 쓸 수 있다,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그리하여, 네이버와 다음이 이번 선거에서는 가장 무서운 매체로 대두했다. 종이 신문에 나는 정보, 뉴스 따위는 그 자체로는 차라리 '무력'하다. 포털 사이트들이, 실시간 뉴스에 상위 랭크시켜 주지 않는 한, 댓글 많은 뉴스, 많이 본 뉴스로 카운트해 주지 않는 한, 그것들은 정보의 홍수, 바다 속에 잠겨버릴 수밖에 없다. 네이버와 다음, 두 포털이 누구를 점지하느냐에 이번 선거의 명운이 달렸다. 그런데 이 사실을 누가 가장 잘, 명확하고도 냉철하게, 아니, 영리하게 알고 있을까? 김어준 씨다. 딴지일보 창업자이자, 정봉주, 김용민, 주진우 씨 등과 함께 '나꼼수'라는 불멸의 저항 팟캐스트를 구축한 인물. 그가 이 모든 사태를 논리 이전에 동물적 후각, 촉각으로 '완전히' 파악했다. 그리하여 지금 이 '나꼼수'는 마치 분열 생식하듯, '파파이스', '브리핑', '전국구' 같은 것들로 분화해서 인터넷 상의 팟캐스트 상위 링크를 완전히 장악했고, 나아가 그들 못지 않은 모방적 팟캐스트들을 발생 '시켰다'.그때 지난 대통령이 마침내 숱한 행악 끝에 탄핵을 당했다. 그러자 공중파 방송들, 종편 채널들, 라디오 방송들에서 이들 정의와 진보의 워리어들에게, 놀랍게도 시간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변했음을 참, '빠르게도' 알아차린 것이다!지금 내 눈에 상처 입은 말, 피 흘리는 글이 전투 현장에 널려, 쓰러져 나뒹구는 모습이 보인다. 공격과 야유, 조롱의 말과 글이 음식에 좋은 맛을 내는 보조물로 칭송되는 시대에 사람들의 영혼은, 참생명은 메말라 간다. 국가기관이 창설한 '더러운' 부대를 닮은 부대들이, 지금 인터넷망에 참호를 파고, 작전회의를 하고, 포격 명령을 하달한다. 다음과 네이버 같은 '기계'를 이 지휘관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용맹과 지혜에 네이버와 다음은 무릎을 꿇어버렸다.아! 너무나 위대한, 전설로 남을 지휘관들이여, 명석하고도 예리한 워리어들이여! 그대들의 진보와 정의가 부디 오래 분별 있는 것으로 남기를. 그대들이 세월호의 진실과 가난한 이들의 현실을 위해 싸웠던 지난 시간들처럼. 부디, 부디, 변질되지 않기를. 이미 늦었는지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아, 그렇지 않을 것이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7-05-01 방민호

[이남식 칼럼]차기 대통령께 바란다

산업·민주화 보수·진보의 공 인정미래 향한 대동단결 리더십 기대오만·불통 정치로 촛불 들지않게경제침체 늪에서 나라 건져 내고北 위협 못하도록 지혜 발휘해야떠날때 박수 받는 리더 나오기를이제 대통령 선거를 불과 보름 남짓 앞두고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대통령께 꼭 드리고 싶은 부탁을 적어보고자 한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선진국을 벤치마킹하는 추격 전략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일하게 위대한 국가이며 이를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 또는 보수와 진보 진영 모두의 공을 인정하며 미래를 향하여 대동단결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지도자의 리더십을 간절히 기대한다. 그간 산업화의 기득권과 민주화의 기득권이 고착화되면서 내부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의 추격에 따라 새로운 발전전략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진보와 보수의 대립과 갈등에서 상생으로 선순환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이해타산을 버리고 국민을 위해 진정으로 지도자가 선택해야할 정책들이 어떤 것이며 정파를 넘어서 진정으로 국정의 여러 부문을 이끌어야할 리더들을 객관적으로 임명해 국민들이 안심하고 더 나가서는 체증이 확 풀리도록 해 주시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지금은 더 이상 내부적인 갈등으로 서로 적대시하며 싸울 여유가 없다. 세계적인 제4차 산업혁명의 파도, 지속적인 북핵의 위협, 점점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세계적인 조류 속에서 미래를 향하여 올바른 선택을 하려면 전 국가적인 집단 지성을 이끌어 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어떤 때보다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한 때라 아니할 수 없다. 의견이 다른 정당이나 국민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날 때 많은 미국 국민들이 감사와 존경을 표하지 않는가? 이제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떠날 때 박수 받는 대통령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이는 재임 시 얼마나 겸손한 자세로 국민을 위하여 봉사하는가에 달렸다고 본다. 오만과 불통의 정치가 반복된다면 이제 더 이상 이 나라에 희망이 없다고 본다. 이제까지의 역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국민들이 촛불을 들지 않아도 되며 북한이 다시는 핵을 무기로 안보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지혜를 발휘해 주시기를 기대한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저출산고령화, 지역 간의 격차, 빈부격차의 해소 등에 대하여 확실한 소신을 가지고 사회혁신을 이룰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직관과 예지력을 보여주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서 과감히 산업화의 기득권과 민주화의 기득권을 향하여 양보를 요구할 수 있는 담력을 보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표와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위하여 불철주야 노력하는 대통령의 모습에 감동되어 모든 국민이 하나 되어 다시 일어난다면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이 도약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 시민의 이러한 소망이 지나 친 것일까? 아니 모든 국민들이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올바른 지도자를 뽑기 위하여 꼼꼼히 공약을 살펴보고 그 공약의 실현 가능성이 얼마나 되는지를 살펴본 후에 투표에 임함으로써 후회 없는 선택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진짜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지속가능하게하기 위해서는 이를 유지하기 위한 국민들의 노력이 그 어떤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이제 국가지도자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리더십 못지않게 팔로워십이 중요하다. 무조건 피켓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과도하게 소수의견을 주장하는 것도 다시 생가해 볼 필요가 있다. 다시 다수결의 원칙이 지켜져서 대의정치의 비효율을 제거하는 것도 리더십을 세워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문제라 생각한다. 새로운 대통령은 그 어떤 때보다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분오열된 나라를 다시 하나 되게 하고, 경제성장을 침체의 늪에서 건져내야하며 북한의 위협과 도발로부터 국민의 안위도 지켜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혼자하시는 것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하고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그러한 대통령이 되시기를 기대해 본다./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

2017-04-24 이남식

[윤상철 칼럼]국민의 자격

민주화 이룬 국민들 스스로가높은 민주주의 의식 가졌더라면아직도 진행중인 촛불집회라는거대한 사회적 비용 필요치 않아이제 자격 갖춘 시민으로 성장거대한 시험대를 응시하고 있다사람들이 서로 다투다 보면 "당신이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냐?"고 묻는다. 그 말은 상대에 대해 이미 권위나 영향력의 우열이 무너진 경우에 드러난다. 국가 '지도자의 자격'이 극적으로 실추된 상황에서 '국민의 자격'은 우리 공동체를 다시 세우기에 신뢰할만한지 묻고 싶다. 흔히 '부모의 자격'은 운위되지만 '자식의 자격'은 없는 것처럼, '지도자의 자격'은 거론되지만 '국민의 자격'을 논하지는 않는다. '자식의 자격'은 가부장주의적 억압을, '국민의 자격'은 국민국가의 비민주적 동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시대처럼 지배 규범이 없이 서로 다른 윤리적 규범들이 상충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헌법에는 지도자의 소명이자 자격의 예로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에 대해 청렴의 의무, 국가이익을 우선하는 직무수행, 국가의 독립이나 헌법을 수호할 책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 등이 적시되어 있지만, 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이를 실행하지 않더라도 제재를 받지 않는 윤리적 혹은 정치적 자격들이다. 이와 달리 '국민의 자격'은 납세와 국방의 의무를 제외하면 따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선거권과 공무담임권을 가진 국민들이 그 권한을 수행하기 위하여 공화주의적 자격과 능력을 스스로 갖추고 고양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다. 혹자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가치관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집단지성이 민주주의를 이루어 나간다고 믿는다. 노조나 정당 등이 이른바 '민주시민교육'의 이름 아래 시민들에게 민주적 규범과 가치를 심어주고 그 기반 위에서 민주주의라는 불안정한 체제가 자리잡도록 한다고 믿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보수언론인이 일정한 역사관, 국가관, 대북관을 공유해야 국민으로서의 자격을 지닌다고 주장할 때에 우리는 그 이념적 배후를 의심한다. 평화주의적인 종교인이 9·11테러에 대한 보복적 성전에 동의하는 미국인들을 세계를 이끄는 국가의 국민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비판하는 모습에서 과도한 보편적 이념주의를 발견한다. 누구도 감히 말하지 못하는 국민의 자격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비폭력 평화혁명 촛불집회에서 광장의 시민으로서 그 형체를 드러낸다. 시민들의 동원된 힘은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대통령을 탄핵하고 구속하게 함으로써 민주주의를 기사회생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적 자긍심과 해외 언론의 상찬에도 불구하고 "부패한 정치는 부패한 국회의원을 선출했기 때문이요, 부패한 국회의원을 선출한 것은 부패한 국민인 까닭이다"라는 영국의 격언이 여전히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들은 누차에 걸쳐 대통령권력의 타락을 미리 예단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눈감고 귀를 막았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자정적 제도화를 이루지 못했었다. 이제 대통령과 그 주변의 부패한 정치모리배들을 몰아낸 것만으로 과연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까? 한반도 안보위기가 극한적으로 치닫고 있지만, 대통령 후보자들은 그 어떤 해결책이나 제안조차 해볼 수 없는 이 상황이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결여된 그들만의 탓으로 돌리기는 쉽지 않다. 자격있는 국민의 부재를 빗댈 수 있는 괴테의 말이 우리와는 무관하기를 희망한다. "다수라는 것보다 분개하게 하는 것은 없다. 다수를 구성하는 것은 소수의 유력한 선구자 외에는 대세에 순응하는 건달과 동화된 약자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전혀 모르고 따라 붙는 대중들이기 때문이다." 민주화를 이룬 국민들이 스스로의 높은 민주주의 의식을 항상 곧추세우고 있었더라면 무려 22차에 걸쳐 1천500만 이상을 동원하면서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촛불집회라는 거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르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괴벨스라면 "이것은 그들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그리고 그들은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거야"라고 조소하고, 히틀러라면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 권력자에게는 얼마나 큰 행운인가?"라고 흐뭇해하지 않았을까?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지켜오고 있는 동안 민주주의적 교양을 갖춘 자격있는 시민으로 성장했고, 이제 다시 거대한 시험대를 응시하고 있다. 히틀러와 괴벨스는 아니라도 더 추한 정치지도자들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지는 않은가?/윤상철 한신대 대학원장윤상철 한신대 대학원장

2017-04-17 윤상철

[전호근 칼럼]말 한 마디와 국가의 흥망(興亡)

나라 책임질 사람 선택하는 대선선거때마다 입에 담지못할 말 많아본인은 '한때의 말' 이라고 하지만국가와 자신 망친다는 사실 알아야부디 국민이 기억하고 나라 세우는아름다운 말들이 들려 왔으면…노나라 임금 정공이 공자에게 물었다."말 한 마디로 나라를 일으킬 수 있다고 하던데 참으로 그런 말이 있습니까?""한 마디 말로 그 정도 효과를 기약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르기를 '임금 노릇하기는 어렵고 신하노릇하기도 쉽지 않다'고 하니 임금과 신하가 이런 도리를 안다면 한 마디로 나라를 일으키는데 가깝지 않겠습니까."정공은 다시 물었다."말 한 마디로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런 말이 있습니까?""한 마디 말 때문에 나라가 망하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사람들이 이르기를 '임금 노릇하는데 다른 즐거움은 없고 오직 내가 명령을 내리면 아무도 어기지 않으니 이것은 참으로 즐거워할 만하다'고 하니 임금이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잃는데 가깝지 않겠습니까.""..."아무리 좋은 말이라 하더라도 한 마디 말로 나라를 일으키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평소 번드레한 말을 미더워하지 않았던 공자다운 말이다. 나라를 일으켜 세우는 일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기도 하거니와 말로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임금과 신하가 이 말로 인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면 적어도 바로 나라가 흥하지는 않더라도 아름다운 미래를 기약할 수는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말 한 마디로 나라를 망하게 할 수는 있을까? 역시 공자의 이야기처럼 한 마디 말로 나라가 망하기는 어렵다. 모름지기 나라라는 커다란 물건이 하루아침에 망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라처럼 큰 물건만 있는 게 아니다. 때로 한 마디 말을 잘못하여 작게는 신세를 망치고 크게는 심지어 나라까지 망친 예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공자가 나라를 망친 예로 든 저 말도 본디 진나라 평공이 한 말이다.진나라 평공이 어느 날 신하들을 불러 함께 술을 마시다가 이렇게 말했다."임금 노릇해보니 별다른 즐거움은 없지만 내가 말하면 아무도 내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은 즐거워 할만하다.""..."모든 신하들이 잠자코 있었는데, 평공 곁에서 음악을 연주하던 눈 먼 악사 사광이 갑자기 거문고를 번쩍 들어 평공을 향해 집어던졌다. 평공이 깜짝 놀라 몸을 피하자 거문고는 커다란 소리를 내며 뒤쪽 벽에 부딪쳤고 벽에는 구멍이 뚫렸다.평공은 크게 놀라 사광을 꾸짖었다."네 이놈 이게 무슨 짓이냐?"사광은 이렇게 대답했다."임금님, 지금 제 옆에서 어느 놈이 아주 나쁜 말을 했습니다. 이런 말을 임금님이 들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제가 그 놈을 향해 거문고를 집어던진 것입니다.""..."사광의 말은 참으로 옳다. '아무도 내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이 즐겁다'는 말은 임금이 입에 담을 말이 아닌 것이다. 어찌 임금뿐이랴. 모든 사람이 그렇다. 만약 어떤 사람의 주변에 그가 하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생각해볼 일이다. 과연 자신의 말이 모두 옳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말을 어기지 않는 것을 즐거워하기 때문인지를. 사광의 이야기를 들은 평공도 깨달은 바가 있었던지 뚫린 구멍을 수리하지 않고 그대로 두어 실언의 경계로 삼았다고 하니 말이다.2천500년도 더 된 오래 전 이야기다. 하지만 한갓 옛이야기로 치부할 수 없을 만큼 어떤 말을 하느냐는 여전히 중요하다. 더욱이 앞으로 5년 간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책임질 사람을 선택하는 대통령 선거가 있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지금까지는 선거 때마다 아름다운 말보다는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말들이 더 많이 들렸다. 개중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도 없지 않았다. 본인은 한 때의 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말 한 마디가 나라를 망하게 하지는 못할지라도 그 자신을 망치기에는 충분하다는 사실을 거듭 새겨야 할 것이다.이제 선거가 눈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부디 국민들이 오래도록 기억할 만한, 그래서 나라를 일으킬 수 있는 아름다운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으면 좋겠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04-10 전호근

[홍창진 칼럼]이제 다시 현실

흙수저라는 허울에 사로잡혀일상의 기쁨 외면하며 살면 안돼행불행은 타고난 환경·스펙 아냐가난하다고 행복까지 포기 말자더 정의롭게 더 사랑하며 사는게우리 흙수저들의 당당한 권리다민심이 모여서 정의를 이루었다. 민주사회는 국민이 주인이고 법 앞에 평등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앞으로 우리 사회는 보다 더 공정한 사회가 될 것이다. 계층 간의 격차가 해소되고 공정한 경쟁사회를 희망해 본다. 그러나 이런 희망이 단번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대다수가 흙수저이고 당분간은 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수년간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해오던 A군.그는 부모님의 뒷바라지를 받으며 밤낮으로 공부한 끝에 드디어 군청에 출근하게 되었다. 적은 월급이었지만 매달 꼬박꼬박 생활비를 보태고 부모님께 용돈도 드렸다. 그런데 1년 후 A군은 모텔 화장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싸늘히 식은 그의 주검 곁에 유서 한 장이 발견되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는 건 거짓말이었어요. … 이렇게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해서 죄송합니다.'A군은 가족들에게 시험에 또 떨어졌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험에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매일 아침 출근한다며 집을 나와 길 위를 떠돌았다. 그러기를 꼬박 1년, 매달 부모님께 드린 생활비와 용돈도 실은 대부업체를 통해 마련한 것이었다. 올해 초 많은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했던 한 젊은이의 이야기이다. 신문 사회면에 작게 실렸던 이 사건이 유독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았던 건 벼랑 끝에 내몰린 그의 고통이 그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흙수저라 불리는 이 시대 모든 젊은이의 자화상이 아닐까?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복권에라도 당첨되지 않는 한, 아무리 노력해도 쥐구멍에 볕들 날을 기대할 수 없다. 부와 가난이 혈연을 통해 대물림되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 현실 앞에서 젊은이들은 분노한다. 그러나 그 분노는 부모에 대한 원망이 아니다. 내가 만나본 젊은이들은 절대 이런 일로 부모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난을 안고 꿋꿋이 살아온 부모를 애틋하게 생각한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A군처럼 말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의 젊은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보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좀 기죽지 말고 당당해져야 한다. 열악한 현실이 원망스럽기는 해도, 어떻게든 내 삶을 책임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갖은 구박을 당하고 휴일도 없이 일하면서도 가족 앞에서는 괜찮다고 웃어 보이는 우리가 아닌가? 그런 고통을 말없이 떠안고 있는 것만으로 자긍심을 갖기 충분하다. 중요한 건 흙수저로 대변되는 우리 젊은이들은 하나도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의에 눈 밝고 가족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주어진 여건 안에서 자기 계발도 하고 내 인생을 소중히 가꾸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의기소침할 이유가 없다. 떳떳하게 목에 힘주고 살아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맞서 이겨나가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의무에 앞서 우리 스스로 활기를 찾을 필요가 있다. 분노하고 원망만 하며 살기엔 우리 인생이 너무 아깝다. 문제 해결도 내게 주어진 시간들을 즐기고 누리는 중에 해야 한다.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하고 갈 길이 구만리이지만, 흙수저라는 허울에 사로잡혀 일상의 기쁨들을 포기하며 살지는 않았으면 한다. 금수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금수저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행복한 건 아니다. 행불행은 타고난 환경이나 스팩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정의로운가, 내가 얼마나 사랑하며 사는가에 달렸다. 가난하다고 행복을 포기하진 말자. 더 정의롭게, 더 사랑하며 사는 것이 우리 흙수저들이 누려야 할 당당한 권리다./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

2017-04-03 홍창진

[방민호 칼럼]'부로 인텔리겐차(부르주아 + 프롤레타리아)'의 대선 관전평

후보들 향해 좌우·진보·보수란 평낡은 구분법 이젠 뛰어 넘어야어떠한 손실·희생도 없는 진보란있을 수 없다는 말 되새길 필요'진보'·'보수'라는 말부터 허상헛것이 눈 어지럽히는것 같아장미 대선이라는 말은 누가 처음 붙였는지, 명문구다. 장밋빛 꿈이라는 말이 있듯이 장미 대선, 장미꽃이 그때 피어서 그런 건지, 장밋빛 꿈꾸게 하는 대통령 선거인 것도 같다. 이름과 같은 것은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어제 관부에서는 전직 최고책임자를 구속하는 신청을 냈다 하니, 근 십 년 전 일들이 눈에 어른거린다. 결코 유쾌해 할 일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며 그밖의 온갖 부정적 사건들은 전혀 정리, 정돈되지 않았다.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도 불행을 자꾸 되풀이하는 것은 좋지 않다.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대통령 선거는 이번에는 더욱더 진보다, 보수다, 하는 슬로건으로 뒤덮일 것 같다. 이번에는 물론 이른바 보수에게 기회는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 비록 보수, 진보로 후보들이 나뉜다 해도 운동장은 이른바 진보 쪽으로 확연히 기울었다. 자업자득이니 상대방을, 국민들을 탓할 수도 없다. 대체로 이번에는 진보 쪽이 유리할 거라고들 예견한다. 후보들도 보수냐 진보냐, 좌냐 우냐 하는 이념의 스펙트럼을 따라 재단, 평가되는 추세다. 예를 들어, 민주당을 보면 시장 출신 후보가 가장 왼쪽, 지난 번에 이어 다시 나온 후보가 그 다음 왼쪽, 이른바 '선의' 파동에 '대연정' 구상으로 다른 당 지지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후보는 그중 오른쪽에 가깝다고들 한다. 이번에는 국민의 당의 유력 후보.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하고 젊은이들을 위한 희망 메시지로 정계에 들어선 그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민주당 열성 지지자들은 그를 향해 집권 여당의 이중대다, 보수대연합 들러리다 했지만, 최고책임자와 함께 침몰해 버린 지난 여당이 다시 집권할 가능성이 사라져버린 지금 그런 비난은 근거가 없다. 그밖의 수많은 사람들은 아직 관망중이다. 더디고 느린 그의 상승 곡선이 이를 말해준다. 왜 그럴까?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다. 그러나, 그중 한 가지 중요한 이유, 그것은 오랫동안 익숙해진 진보와 보수, 좌와 우의 구획선에 그가 꼭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 대하는 태도를 보고 보수라고 하고 보면 청년, 실업, 복지에 적극적일 뿐만 아니라 적폐 청산에 사활을 건다. 진보에 가깝다고 보고 싶기도 한데 4차산업혁명 시대 얘기를 하는 것으로 보아 규모의 경제학에도 무관심하지 않은 듯하다.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것 같다. 불투명해 보이기까지 한다. 얘기가 길어졌다.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없어서다. 바른당도 있다. 두 후보 중 지난 국회의원 총선거 때 공천 파동을 겪은 후보는 개혁 보수의 적임자임을 표방한다. 국회 원내총무로 연설한 것이 최고 책임자와 불화를 겪는 결정적 사유가 되었는데, 개혁 중도가 아니라 보수 적자임을, 거기에 보수 연대를 주장한다. 영남 지역 중심의 소대표성에 만족하려는 게 아니라면 납득 잘 안가는 슬로건이다. 또 한 후보는 모병제를 주장한 것이 특이해 보였는데, 과연 이것이 현실성 있게 들릴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젊고 개혁적인 보수는 모병제라도 얼마든지 수용 가능한 걸까? 마지막으로, 자유한국당. 모래시계로 널리 알려진 후보는 보수 적통임을 표방하는데, 티비나 라디오에서 반말처럼 들릴 수도 있는 어법을 보정하는 것이 급선무 같고, 다른 한 후보는 아직도 무너져내린 낡은 레짐에 관심이 있다. 그것이 극보수 이념성 이전에 윤리적인 차원의 비판에 직면해 있는 현실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모두들 이 후보들을 향해 좌우니, 진보, 보수니를 말한다. 하지만 심히 귀에 거슬리는 어법이다. 오히려 이번 대선은 그런 낡은 구분법을 뛰어넘어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특히, 진보와 관련하여, 어떤 손실도, 희생도 없는 진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진보는 그 말 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곧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질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그러나 영국 작가 헉슬리는 소설 속에서 그런 일은 없다고 단언했다. 모든 진보에는 손실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글을 접하면서 생각했다. 그러고도 진보를 지지하고 믿을 수 있을까? 요즘에는 생각이 더 달라졌다. 그 진보라는 말, 보수라는 말부터가 허상이라는 것이다. 헛것이 자꾸 눈을 어지럽히는 대선이라고나 할까./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7-03-27 방민호

[이남식 칼럼]평생학습의 새로운 場… '지식 (GSEEK)'

4차산업혁명은 '지능정보화시대'똑똑한 기계들이 삶의 모든 분야편리한 생활 누리게 해주는데필요한 서비스 활용할 줄 알아야미래엔 지능정보화 격차가삶의 질에 큰 영향 미치게 된다전 세계적으로 온라인공개수업 무크(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가 모바일 시대를 맞아 언제 어디서나 내가 원하는 시간에 새로운 지식과 역량을 얻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원격수업의 수단으로 개발된 웹서비스를 기반으로 2012년부터 널리 알려진 스탠퍼드대학의 교수, 연구진이 오픈한 유다시티 (Udacity), 코세라 (Coursera) 그리고 하버드, MIT중심의 에덱스 (Edex) 는 세계 유명대학의 최신 강의를 마음껏 수강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한 획을 긋게 되었다. 수강신청과 강의 시청, 과제물 제출 그리고 커뮤니티를 통한 질의 응답, 토론이 가능하고 학점취득도 가능하여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2015년부터 국내 유수의 대학들이 K-MOOC를 개발하여 현재는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20여개 대학의 300여 강좌를 무료로 수강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MOOC를 통하여 선행학습법인 '거꾸로 학습' (Flipped learning)이 확산되고 있다. 수업에 참가하기 전에 미리 강의를 듣고, 실제 수업에서는 학습한 내용에 대하여 토론, 문제풀이, 서로 가르쳐주기, 개인별 질의-응답, 팀 프로젝트 등으로 학습하고자 하는 내용을 완전히 알게 하는 수업방식이다. 그런데 세계 최초로 지방자치단체인 경기도가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학습자 중심의 평생 학습의 장으로 무크를 개설한 것은 획기적이 아닌가 한다. 지식 (GSEEK.kr)이 바로 그러한 무크 서비스인데 학습에는 언어, 자격증, 취창업, IT, 은퇴설계, 취미 등 모두 14분야에 1만개 이상의 학습 콘텐츠가 구축되어 있으며, 트렌드에는 각종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정보들이 다양하게 제공되고 있다. 또 마이플랫폼에는 각자가 스스로 학습콘텐츠를 올릴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생활의 달인이나 특별한 재능을 가진 분들은 자기만의 노하우를 공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평생학습의 장으로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데 매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해외에서도 무크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 중의 하나가 스스로 속도조절을 하면서 하다 보니 끝까지 수업을 마치는 비율이 높지 못하다는 것이다. 무료이고 언제든지 할 수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성실성이 낮아지게 된다. 따라서 제대로 수강신청을 하고 완주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수업료를 받는 무크가 늘어나고 있다. 수강료를 내고 완주할 경우 학점을 주고 수강료를 돌려주는 방식으로 중도 탈락을 방지하기도 한다. 이제 100세 시대에 모든 국민은 두 가지 중의 하나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즉 배우거나 또는 가르치거나 하는 시대이다. 내가 부족한 점은 배우고, 내가 잘하는 것은 주변과 나누는 일이다. 학교에서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 보다 잘 누리기 위해서는 지금 결단하고 다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용기를 갖는 것이야말로 100세 시대를 보다 건강하고 생산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하나의 키워드로 설명하자면 지능정보화의 시대 있다.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보다 똑똑해진 기계들이 우리의 삶을 편리하고 능률적으로 도와주는데 이러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작동원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활용할 줄 아는 것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이렇게 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차이가 너무 커 지게 된다. 빈부의 격차뿐만 아니라 지능정보화의 격차가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택시를 잡기 어려운 곳에서 어떤 사람은 모바일 택시 서비스를 통하여 쉽게 택시를 부르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으나 어떤 사람은 이러한 앱을 찾아 모바일 기기에 설치하고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어 활용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편할 것인가? 이를 뛰어 넘으려면 바로 사용법에 도전해야하는데 바로 지식 (GSEEK) 서비스가 친절하게 이러한 격차를 메워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이제 지식서비스로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경기도민과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

2017-03-20 이남식

[윤상철 칼럼]우리 안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

지금 우리는 다양한 생각들과이해관계 지닌 사회관계란 점을시인하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복잡하게 이합집산하는 집단들정당·세대·지역이든 서로 같음을강요않고 인정하는데서 출발해야'다른 백년'을 꿈꾸는 지식인들이 있다. 대선후보들은 "역사교체"와 "시대교체"를 주장한다. 어떤 시대를 환골탈태하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말이다. 새 시대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같이 하자는 데 누가 탓할 것이며, 모름지기 지식인이건 정치인이건 국민과 더불어 앞장설 일이다. 이러한 현상은 어제 오늘에 나타난 일은 아니다. 민주화 30년 동안 우리는 매번 새로운 정부를 만나야 했다. 개혁적 정부는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로 자칭했고, 보수정부도 이전 정권과의 단절을 강조했었다. 그 어떤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에게 이어받을 유산을 찾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한국 민주주의는 선진적 민주정부라 하기에는 더없이 치욕적인 이유로 탄핵사태를 맞게 되었다. 안창호 헌재재판관의 보충의견이 30년 전에 나왔어야 할 말처럼 낯설기만 하다. "이 탄핵심판은… 미래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헌법적 가치와 질서의 규범적 표준을 설정하는 것"이다. 잠시 사회학자 짐멜의 사회관계론으로 돌아가자. 그는 사회관계를 다이애드(이자관계, Dyad)와 트라이애드(삼자관계, Triad)로 나누어 설명한다. 트라이애드는 한 명의 구성원이 다이애드에 추가된 데 불과하지만 그 사회관계의 속성은 근본적으로 변화한다. 개인의 목소리와 개인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사회적 갈등이 완화된다는 것이다. 다이애드와 달리 집단의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고 집단의 정체성이 강화되는 반면, 트라이애드의 개인들은 덜 자유롭고, 덜 독립적이고, 더 제한적이라는 말이다. 다시 우리 사회로 돌아와 보자.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는 양당제가 바람직한 정당체제로 받아들여져 왔다.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 경상도당과 전라도당, 부자의 당과 노동자·서민의 당으로 늘 나뉘어져왔다. 전형적인 다이애드 관계가 정치세력이나 정치적 이념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제3의 세력은 늘 '사꾸라' 혹은 '이중대'로 매도되거나 외면당했다. 깊게 들여다보면 나와 '나 아닌 것'으로 나뉘어져 있을 뿐이었다. 'x사모' 혹은 'x빠'의 이름으로 나(I)와 동일한 우리(we)를 가두어 놓고 나 아닌 다른 모두를 밀어내고 있었다. 머리 속에는 오로지 나 밖에 없지만 그런 나를 돋보이기 위해 나 아닌 남을 상대로 치켜세우는 이른바 '적대적 공존'만이 존재하였다. 다이애드에 집단의 정체성이 없듯이 '적대적 공존' 안에는 우리가 없고, 민족이 없고, 국가가 없고, 대한민국이 없다. 심지어 모두가 동의하는 우리 역사도 없다. 오로지 갈등하는 다이애드만 있을 뿐 이를 매개하고 조정하는 제3의 무엇이 없다. '탄핵인용'과 '탄핵기각'은 있지만 그 중간은 없었다. 대선후보들이나 국회의장까지 나서서 '탄핵심판'의 결과를 승복하자고 했지만 자신이 희망하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강변했다. 정치세력간의 싸움이 존재하더라도 이른바 감사원이나 검찰, 국정원이나 군대 등 이른바 '헌법상 독립기구'들이 뭔가 중립적으로 양자를 조정하거나 그 상황에서도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해주는 기구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서로 다른 이념들이 충돌하더라도 헌법은 존재하고, 역사적 전통이나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가 '디케의 저울'로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만일 그마저도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분열된 다이애드로 싸울 일은 아니다. 우리를 확인시켜 줄 제3의 구성원을 찾아 트라이애드를 만들 일이다. 조너선 하이트는 '바른 마음'에서 사람들은 감성적 직관으로 결론을 정해놓고 나중에 논리적 정당화를 한다고 말한다. 결국은 가장 민주적인 사회는 다양한 직관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스스로의 의견들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조직된 사회라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다양한 생각들과 이해관계를 지닌 그런 사회관계라는 점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복잡하게 이합집산하는 집단들, 그게 정당이든 세대든 지역이든 뭐든 서로 같아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고 인정하는 데서 출발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스스로를 상대화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우리를 찾을 수 있고 매번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물어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우리 안에서 그러한 다이애드의 독재가 붕괴하고 있다는 점에서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윤상철 한신대 대학원장윤상철 한신대 대학원장

2017-03-13 윤상철

[전호근 칼럼]선(善)한 고을의 조건

대선주자들 다양한 공약 주장문제는 그들의 선한 이야기가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 하는점이번엔 다수의 기계적 선택 아니길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그렇지않은 사람보다 많은게 '善'공자의 제자 자공이 스승에게 물었다."고을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좋아하면 어떻습니까?""좋지 않다.""고을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미워하면 어떻습니까?""좋지 않다. 고을 사람 중에서 선(善)한 사람은 그를 좋아하고 선하지 않은 사람은 미워하느니만 못하다."공자의 대답은 뜻밖이다. 고을의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대답이야 수긍할 수 있다 쳐도 고을의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반드시 좋은 사람은 아니라고 말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오히려 공자는 선한 사람은 좋아하고 불선한 사람은 미워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그렇다면 세상에는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반드시 비관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공자의 말대로라면 고을에서 선한 사람의 수가 불선한 사람의 수보다 많아지면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그럼 어떤 사람이 선한 사람인가? 무엇이 선인지는 예부터 수많은 철학자들이 각기 다른 견해를 내놓았을 만큼 풀기 어려운 문젯거리다. 이를테면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 말한 이데아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한 에우다이모니아는 모두 선이 무엇인지에 대한 각기 다른 견해다. 16세기 조선의 성리학자 이황과 기대승이 8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며 다퉜던 주제도 다름 아닌 선과 욕망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둘러싸고 일어난 논쟁이었다.그런데 고대 동아시아인들이 어떤 것을 선이라고 생각했는지는, 선(善)이라는 문자의 자의(字義)를 살펴보면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한자의 선(善)은 양(羊)자와 공(公)자가 위아래로 배치된 글자다. 여기서 양(羊)은 뿔 달린 양을 그린 글자이고 공(公)은 함께 나눠 먹는다는 뜻을 담고 있는 글자다. 따라서 나눠먹으면 선(善)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불선(不善)이다. 사람과 사람의 평화로운 공존을 뜻하는 화(和)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화(和)자 또한 본래 벼를 그린 화(禾)와 공(公)이 합쳐진 글자(和의 옛글자는 '禾公'이다)로 수확한 벼를 나눠먹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선과 평화는 가진 것을 나누는 데 달려있다는 것이 이 두 글자에 들어 있는 오래된 진리다.나눔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고을은 선한 사람이 불선한 사람보다 많은 고을이다. 그런 고을에서는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많다. 이것이 선한 고을의 본모습이다.불행히도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지금의 이 나라는 선한 고을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빈부의 양극화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고 자살률은 OECD국가 중 가장 높을 뿐 아니라 노동시간 또한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긴 나라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러니 헬조선이나 흙수저니 금수저니 하는 세간의 말들을 그냥 귓가로 흘려들을 수 없을 정도로 이 나라의 불선(不善), 불화(不和), 불의(不義)는 심각하다.올해는 이 나라의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다. 헌법재판소 판결이라는 변수가 남아 있지만 광장의 민심을 헤아려보면 현재로서는 조기대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이미 출마를 선언한 후보자들은 저마다 공약을 내걸고 자신이 이 나라의 지도자로 적임자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면면을 살펴보면 그 어느 때보다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 많아 보인다. 어떤 이는 기본소득을 이야기하고, 어떤 이는 사회수당을 강조하고, 어떤 이는 일자리 확대가 답이라고 주장한다.지향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모두 나눔을 더 늘리자는 이야기이니 공자가 말한 좋은 사람이 이 나라에 이렇게 많은가 싶다. 문제는 그들의 선한 이야기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운가 하는 점일 것이다. 이번에는 다수의 기계적 선택(選擇)이 아니라 좋은 사람을 뽑는 '선택(善擇)'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거니와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많은 것이 선한 고을의 조건이기 때문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03-06 전호근

[홍창진 칼럼]인연(因緣)과 우연(偶然)

어지러운 우리나라 현실 보며너무 내 중심적으로만 안 봤으면사건에 의도한바 있으리라 믿고진지한 태도로 조용히 맞이해야내가 할 몫 차분히 찾는게 중요내가 신부가 된 것은 어느 신부님의 권유로부터 이루어졌다.가끔 그때 일을 떠올리며 "만일 신부가 되지 않았으면 뭐가 됐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그 신부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신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신부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신부가 되지 않았더라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다른 인생을 택하지 못해 아쉬운 건 아니다. 남들 눈엔 성직자 생활이 갑갑해 보일지 몰라도, 오히려 일반 사람들보다 더 즐겁고 신나게 살고 있다.그 옛날 우연히 사제의 길에 들어선 것처럼, 나는 지금도 내 곁에서 일어나는 작은 우연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궁금하거나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바로바로 행동에 옮긴다. 그런 작은 경험들이 또 다른 경험을 불러오고, 결국엔 생각지도 않은 일들을 이루게 한다. 성직자라는 틀에 갇혀 외길 인생만 고집했더라면 결코 맛볼 수 없는 즐거움이다.인생의 즐거움은 이렇듯 예기치 않은 우연에서 찾아온다는 걸 시간이 지날수록 깨닫게 된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우연한 일, 예기치 않은 인연으로 행복해진 분들이 꽤 있다.지인 중 미국 글로벌 기업에서 꽤나 잘나가던 50대 여자 분이 있었다. 그분이 한창 바쁘게 생활하던 중 몸에 조금 탈이 나 치료차 한국에 잠시 들어오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휴가를 얻은 그분은 치료 기간 중에 그동안 다니지 못했던 여행을 하고 업무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많은 사람과 만남을 가졌다. 한마디로, 계획 없는 나날들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늘 정해진 틀에 갇혀 살던 그분에게 한국에서의 시간은 너무도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그러던 차에 우연히 어느 시골 마을에 가게 되었다. 마을 풍경은 무척 정겨웠고, 며칠 머무는 동안 소박한 시골 생활이 자신과 잘 맞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작은 경험을 통해 그동안 미국에서 화려한 삶을 살아왔지만 정작 그 속에 자기 자신이 없었다는 걸 깨달은 그분은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시골행을 택했다. 지금은 그간 해온 직장 경험을 살려, 동네 주민들이 재배한 농산물을 인터넷으로 거래하는 일을 하고 있다. 수입이야 전에 비할 것이 못 되지만, 그분은 무척 행복해하고 있다. 시골 생활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생을 함께할 짝도 만나게 된 것은 덤이다.이 두 에피소드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신이 우리와 이야기하는 방법이 바로 인연과 우연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신은 침묵하는 존재다. 그러나 신은 우리 곁에서 사람과 사건을 만나게 하시면서 우리와 역사를 만들어 가신다. 따라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과 사건을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모두 신이 하는 일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내가 만나는 사람과 사건은 내 욕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놓치는 것이 너무 많다. 그러나 신의 프로포즈라고 생각하면, 생각하고 느낄 일이 너무 많다.요즘 어찌 보면 어지럽게 진행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바라보면서 너무 내 중심으로 바라보지 말았으면 한다. 이 사건들 안에 신의 사랑과 의도한 바가 있을 것이라는 진지한 태도로, 보다 차분히 맞이해야 한다. 내 욕망으로 바라보면 너무 힘들고 지치는 일이다. 그러나 신과 함께 이루어지는 미래라면 많은 부분 신에게 맡기고, 내가 해야 할 몫을 차분히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

2017-02-27 홍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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