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칼럼

 

[방민호 칼럼]신동엽을 읽는 봄

금강 제9장 '누가 하늘을 보았다…구름 한송이 없는 맑은 하늘을…'지금 우리들 하늘엔 몇겹의 구름이눈부신 햇살 가로막고 있는가심지어 스스로 하늘이라고도 한다황사라는 말이 미세먼지로 바뀐 지 얼마나 되었나. 오늘은 실로 오랜만에 깨끗한 공기를 맛보는 날이다. 봄꽃들 피었으나 다시 춥고 어둡고 비까지 내려,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았다. 과연 깨끗한 눈으로 세상 본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한갓 큰 것 같지만 작은 정치에 눈이 흐려져 옳은 것, 근본적인 것을 보지 못하던 일이 그 얼마나 많던가. 큰 배를 타고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이 기가 막힌 일들을 겪고 수중 원혼이 되고 이로부터 수년 내 이어진 항의가 모여 새로운 정부가 세워졌건만 그로부터 벌어진 일들 맑기만 했던가.마흔 살 나이로 세상 떠난 시인 신동엽(1930.8.18~1969.4.7)의 전집을 펼쳐들고 서사시 '금강'의 페이지를 열었다. '금강'은 아주 긴 시, 그중에서도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제9장을 사랑한다. 그는 외쳤다."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당신이 본 것은 먹구름, 당신은 그것을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았다.""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아침저녁으로 당신의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줄 아는 사람은 '외경'을 알리라."외경,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공경하면서 두려워함을 이름이다. 그러나, 무엇을 공경하며 두려워한다는 말일까. '금강'은 동학의 이야기다. 제4장에 수운 최제우의 역사가 나온다. 그는 집에 있는 '노비 두 사람을 해방시켜 하나는 며느리로, 하나는 양딸로 삼았다. 가지고 있던 금싸라기 땅 열두 마지기를 땅 없는 농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었다.' 무상 소리만 나오면 자라 보고 놀란 가슴들 솥뚜껑도 보고 놀라는 우리.'바다의 달' 최시형은 관헌의 추적을 피해 전국 방방곡곡 가지 않은 곳이 없다. 어느 여름 동학교도 서 노인의 집에서 저녁상을 받을 때 바깥에서 베 짜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월이 무슨 소리냐고 묻자 며느리가 베를 짜고 있노라고 대답한다. 이에 해월이 이렇게 말한다. "서 선생, 며느리가 아닙니다. 그분이 바로 한울님이십니다. 어서 모셔다가 이 밥상에서 우리 함께 다순 저녁 들도록 하세요." 하룻밤을 자고 나오는데 그 집 막내아들이 따라 나오며 우는 것을, 서 노인이 쫒아버리려 한다. "이 어린 분도 한울님이세요. 소중히 받드세요."혁명이란 무엇이냐, 신동엽 시인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모두가 평등하게, 아니 한울님처럼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러면 경제적 평등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옛날부터 천도교, 곧 동학에 이르기를, 이 우주의 삼라만상, 산천초목, 짐승과 사람은 모두들, 남자나 여자나 어른이나 아이나 양반이나 상민이나 돈 가진 사람이나 못 가진 사람이나 큰 하나인 한울로부터 나온 것이니 같다. 평등하다. 높고 낮음 없다.사람들은 평등을 말하면 경제적 평등을 가리키는 것으로만 알고 대경실색들을 한다. 부자도 얼마나 한없이 불쌍하며 가난한 사람도 그 얼마나 깨끗하게 행복한가. 그러나 먹구름을 하늘로 알고 살아오는 우리는 정말로 된 하늘을 보지 못한다.'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과연 우리는 하늘을 보았는가. 나는 하늘을 보았는가. 구름 한 점 없이 깨끗한 하늘을, 영원의 하늘을 본 사람은 외경을 알련만.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각자 자신이 하는 일이 옳은 일이니, 바른 주장이려니, 행동이려니, 한다.외경이란 참으로 어려운 말이다. 공경할 것을 공경할 줄 알고 두려워해야 할 것을 두려워할 줄 아는, 그런 사람 되기는 참말 어려운 말이다.우리들 하늘에는 지금 얼마나 두꺼운 구름이 몇 겹씩 끼어 눈부신 햇살을 가로막고 있는가. 그래도 저마다 하늘을 보았노라고 한다. 심지어는 스스로가 하늘이라고도 한다. 아무도 두려움을, 공경을 알지 못한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9-04-15 방민호

[이남식 칼럼]오래된 새로운 비즈모델 '구독경제'

넷플릭스 선도… 애플도 가세 형국소유 아니라 접속하는 형태로 변화가정식등 많은 서비스 새롭게 부상한국, 5G 상용화 '최적 인프라' 갖춰기회 살리는 지혜 모아야 할 때다지난 3월 25일 애플사는 동영상스트리밍 서비스인 'TV+'와 무제한으로 잡지와 신문을 구독하는 'NEW+'를 매월 9.99달러에 제공하는 서비스를 발표하였다. 넷플릭스가 선도하고 있는 구독경제에 애플도 가세하는 형국이다. 구독경제는 매월 도서나 음반을 받거나 또는 신문이나 잡지의 구독 등으로 익숙한 형태이며 현재에도 인터넷 사용+IPTV+전화, 음악스트리밍 등을 월정액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제레미 리프킨은 이미 2000년 인터넷의 시대가 열리면서 '접속의 시대 The age of access'라는 저서를 통하여 앞으로는 소유에서 접속하여 사용하고 체험하는 시대로 바뀔 것을 예측하였다. 스마트 폰의 보급과 5G 시대가 열리면서 이제 접속에 들어가는 한계비용이 0에 가깝게 되다 보니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접속하고 사용하는 형태로 급속히 바뀌고 있다. 최근 현대 자동차에서는 월정액을 내면 다양한 차량을 마음대로 바꾸어 타는 서비스를 시험하고 있으며 밀리의 서재와 같은 도서의 무제한 대출, 윌라와 같은 오디오북과 강연을 무제한으로 볼 수 있는 구독 서비스 등 네트워크효과에 의한 플랫폼비즈니스들이 수익모델을 광고에서 구독형모델로 전환하는 경우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유튜브의 경우도 광고가 없는 유튜브레드로의 전환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경제적으로 많은 혜택을 볼 수 있는 구독경제에 대해 긍정적이며 기업의 입장에서도 한 번 고객이 구독을 시작하면 이탈하기가 어려우며 매월 수입이 보장되므로 안정적인 사업이 가능한 구독모델을 선호할 수 있다. 동영상스트리밍의 경우 네트워크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엄청난 투자가 수반되어야 하는데 벤처캐피털의 경우 이러한 구독 및 플랫폼 모델에 대해서는 거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으므로 보다 보편화 되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과거와 달리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통하여 기존의 오래된 비즈니스 모형이 바뀌고 있는데 바로 대세가 구독경제인 것이다. 화장품, 가정식 또는 명품가방에 이르기까지 월정액을 지불하고 사용하게 되는 많은 서비스들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이러한 구독경제에는 대체로 네 가지 유형의 비즈모델이 있는데 첫 번째가 정기배송 모델로 전문가의 큐레이션과 정기배송이 결합된 형태로 나타나며, 두 번째는 무제한 이용 모델로 월정액으로 제품이나 서비스를 무제한 이용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고가품 렌털 모델로 자동차, 안마의자, 가구 명품의류 등의 품목이 이에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클라우드 구독 모델로 이미 마이크로소프트의 오피스나 어도비, 구글, 아마존이 이러한 서비스를 각사의 클라우드와 연동하여 서비스하고 있다. 향후 자율주행차, 아파트 등 거주 공간, 매일 식사, 무제한 의료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수많은 오프라인 서비스들이 구독경제의 형태로 바뀌어 나가게 될 것이다. 향후에는 고객의 영향력이 과거와 판이하게 커져서 고객의 추천과 좋아요의 힘이 더욱 자리 잡게 될 것이다. 결국 공유 경제가 진일보하여 구독경제로 전환되며 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보다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 최초로 5G 서비스를 상용화하게 되었는데 이에 따라 새로운 구독서비스를 시험 평가할 수 있는 좋은 인프라를 가지게 되어 국내에서 새로운 개념의 서비스를 창안하여 시험한 뒤 전 세계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과 환경 그리고 비즈니스모델을 통합하여 기회를 살리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서 승자 독식과 새로운 독과점이 심화되기 때문에 우리 산업은 계속 변방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향후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 등의 신흥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구독경제를 구축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구상해야 할 시점이다./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

2019-04-08 이남식

[윤상철 칼럼]아랫목이나 윗목이나

국민총생산 세계 11위 오른 한국'삶의 질'은 20위권 후반 머물러소득주도성장, 자영업자 좌절 초래국가는 부자지만 국민은 가난해장기적 관점서 정책 처방 찾아야현재의 86세대는 1980년에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접했다. 군부권위주의정권 시대에 접했던 정보사회의 예언서에서 불과 15년쯤 후를 가늠하기는 어려웠다. 구로공단의 여공들과 청계피복노조의 전태일, 그리고 중화학공업의 산업재해와 중동건설 붐을 경험했던 세대들에게 정보화는 열악한 노동으로부터 인간의 해방을 열어주는 신기루였을까?그 후 40여년이 흐르면서 민주화도 산업화도, 그리고 정보화도 성취해냈다. 국민총생산은 세계 11위를 점하고, 1인당 국민총소득은 3만달러를 넘어섰으며, 인구가 5천만이 넘는 한국은 이른바 30-50클럽에도 들어갔다. 그 클럽의 회원국은 한국을 제외하면 모두 G7국가들이다. 그러나 정치체제는 민주공화국을 완성시키기 위한 적폐청산에 매진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사회적 균열과 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그러나 냉정하게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40위권을 맴돌다가 작년에는 31위 수준이다. '삶의 질'은 20위권 후반에 머물고 있다. 놀랍게도 작년도 가계 1인당 가처분소득이 1천900만원 선에 그치고 있다. 국민들은 처한 위치에 따라 엄청난 혼란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더구나 경기불황, 실업, 가계부채 등에도 불구하고 연휴기간 동안 인천공항을 채우는 여행객들, 여전히 성업 중인 고급 식당들, 부동산 투자로 엄청난 수익을 올린다는 소식들은 누군가의 소득은 3만불을 훨씬 상회하리라고 믿게 한다. 소득 양극화에 대응하여 현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정책을 내걸었다. 그러나 중산층의 배아픔이나 상류층 따라잡기 욕망을 해소하기보다 하위 1분위 저소득층의 배고픔과 소득저하 그리고 자영업자의 좌절을 초래했을 뿐이다. 정규직 중심의 고용시장 재편이 자본의 반발과 양극화의 심화를 낳았을 뿐이다. 부동산으로 인해 자산증가율이 소득증가율을 앞지르고 나아가 높은 이자와 조세 부담을 지움으로써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켰다는 진단에서 내놓은 정부의 반시장적 부동산정책은 불과 1년 사이에 서울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이전 정부 4년에 필적할 수준으로 올려놓았다. 전 청와대 정책실장, 청와대 대변인, 여당 시의원의 뉴스들은 정책입안자들조차 믿지 않은 정책에 따르고자 했던 대중들을 격앙시키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7년 우리나라 경제주체들이 GDP에 기여한 비중은 가계 56%, 기업 20%, 정부 24%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에게는 동반성장정책, 사내유보금 과세, 정경유착 청산과 정규직화,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등이 제안되었고, 국가주도의 일자리 창출이 현 정부 내내 진행되었다. 그러나 국가는 부자이지만 국민은 가난한 현상황을 바꿀 것 같지 않다.문재인정부도 어느덧 집권 3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한국사회의 사회적 양극화에 대한 지난 2년간의 진단이나 처방이 타당하거나 효과적이었다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미 레임덕의 문턱에 이르렀다. 미시적인 대증요법으로는 경제와 사회가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선지 정부는 내부 구조조정보다는 불확실한 외부시장확대전략에 의존하고 있었던 듯 하다.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개척처럼 북한을 시장으로 편입시키고 나아가 그를 발판으로 더 먼 유럽까지의 길을 열고자 했지만 그 결과를 지금이나 현 정부의 집권 기간 내내 확언하기는 어렵다. 세대, 성별, 지역 등 우리나라의 사회적 균열의 양 축 간의 양보와 타협으로 극복할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우리 사회의 어떤 주체들도 그렇게 할 의지와 리더십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보다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데서 원인을 진단하고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적 처방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제3차 산업혁명의 냉기가 국민의 피부에 와 닿기도 전에 제4차 산업혁명의 한기가 함께 몰려오고 있다. 세상은 더 글로벌화되고 대외적 환경은 더욱 비우호적으로 바뀌고 있다. 방안의 한기가 이불과 구들의 문제가 아니라 더 먼 데서 날라와 벽 틈을 타고 오는 것이라면……./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9-04-01 윤상철

[이영재 칼럼]그래도 인사 청문회는 계속되어야 한다

여·야 바뀌어도 출연진만 다르고 변함없어청와대 '7대비리 배제' 내놓고도 의혹 나와인식 바뀌지 않는 한 무용론 끊임없이 제기그래도 큰 꿈 그리는 '누군가'가 있을지도천막 안에는 사람들이 쭈그리고 앉아 어두워지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불이 하나둘씩 꺼지면 장내는 술렁거리기 시작한다. 곧 영화가 시작될 것이다. 뿌연 먼지를 가르며, 영사기에서 뿜어지는 강렬한 빛이 비치기 시작하면 일순간 적막이 흐른다. 초라한 하얀 천 위에서는 온갖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긴박한 순간마다 여기저기서 관객의 탄식이 터져 나온다. 개봉관과 재개봉관을 모두 거치고 마침내 여기까지 온 필름에는 시종 비가 내렸다. 그래도 좋았다. 모두 분위기에 취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이윤복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와 김승호의 '마부'도 아마 그 천막극장에서 보았을 것이다. 마침내 영화가 끝나고 천막이 걷어지면 사람들은 뿔뿔이 밤길 속으로 사라졌다. 조금 전 사람들이 모여 웃고 울었던 공간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공터는 순식간에 텅 비었다. 그 허전함이란. 급조된 영화관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예외 없이 모두 TV 앞에 모였다. 이제 곧 장관 인사청문회가 시작될 것이다. TV 카메라 조명이 강렬한 빛을 발하며 카메라에 빨간 불이 켜지면 드라마가 시작된다. 물론 줄거리는 뻔하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의혹투성이인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TV 앞에 모인 건 이번만은 뭔가 다르겠지 하는 한 가닥 희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작심한 듯, 또 맥빠진 질문에 뻔한 답을 쏟아낸다. 2000년부터 우리는 TV를 통해 많은 인사청문회를 보았다. 달라진 것은 출연진뿐, 예외 없이 위장전입, 논문표절, 투기의혹, 이중국적 등은 변함없는 주요 레퍼토리였다. 여·야가 뒤바뀌어도 늘 그 타령이었다. 정쟁의 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늘 수많은 의혹이 있었지만, 면피성 답변만을 듣고 결국은 통과의례이거나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청문회는 막을 내렸다. 그들이 떠난 텅 빈자리 역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적막만 남았다. 그 허전함이란. 그때마다 '청문회무용론'이 제기됐다.청문회가 늘 이런 식으로 시작하고 끝나자 지난해 청와대는 획기적인 안을 내놨다. '고위 공직 후보자 임용 7대 비리 배제 원칙'기준안이 그것이다. 위장전입, 불법 재산증식, 논문표절 등 7개 조항에 위반되면 아예 공직에 나서지 못하게 한 것이다. 국민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렇지! 역시 촛불 정부는 달라도 무언가 다르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인사청문회에서도 후보자의 위장 전입, 논문 표절, 탈세 의혹 등이 제기됐다. 7대 원칙이 무색해진 것이다. 그렇다고 누구 하나 실망한 국민을 달래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그럼에도 청와대는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함으로써 '청문회 무용론'에 불을 지폈다. 그렇게 해서 임명한 장관의 수가 벌써 10명이 넘는다. 지난 1월에는 자유한국당이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의 전력을 문제 삼아 반발하며 국회 일정을 전면 보이콧하자 청문회도 없이 그를 위원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일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청문회 때 많이 시달린 분들이 오히려 일을 더 잘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해 국민을 놀라게 했다.인사청문회는 해당 공직에 걸맞은 능력을 가리는 건 물론 임명권자가 발견하지 못한 비리 등의 결격사유가 있는지를 꼼꼼하게 따지자는 데 있다. 하지만 인사청문회를 공직 임명 통과의례 정도로 보는 청와대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청문회 무용론'은 끊임없이 제기될 것이다. 이번 청문회에 나온 7명 후보자 역시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아도 청와대는 이들을 장관으로 임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 '이런 청문회는 없었다'는 비난이 쏟아지겠지만, 그래도 청문회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밤하늘의 별이 보이는 초라한 천막극장에서 낡은 영화를 보며 '누군가' 세계적인 영화감독의 꿈을 버리지 않았듯이, 이런 한심하고 터무니없는 청문회를 보면서 민주주의를 생각하고, 국가와 국민에게 헌신하는 큰 꿈을 그리는 단 한 명의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3-25 이영재

[전호근 칼럼]늦게 도착한 시집

석달 지나 발견한 '파일명 서정시'쉽게 꺼낼 수 없는 두려운 말 가득표현하지 못하고 소리·가락 이룬 것 파일서 해방돼 시어 만끽하고 싶어그러기엔 다물어야 할 입 너무 많다며칠 전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경기도 용인)에 갔다가 어지럽게 뒤섞인 행정실 우편물 더미 속에서 나희덕 시인이 보내온 시집 《파일명 서정시》를 발견했다. 겉봉의 우체국 소인에는 분명히 '2018.11.23'이라 찍혀 있는데 대관절 어찌하여 석 달도 더 지난 지금, 계절마저 바뀐 뒤에야 내게 왔단 말인가. 게다가 적힌 주소는 서울 회기동인데 어디를 떠돌다가 이곳으로 배달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무튼 이태 전 시인의 산문집 《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달, 2017)를 읽으며 사소한 일상에서 커다란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글에 감탄했던 나는 이번에도 비슷한 기대감을 품은 채로 시집을 펼쳤다가 그만 아픈 데를 찔린 병자처럼 지금껏 움찔거리고 있다.나는 시인이 이전에 펴낸 또 다른 서정 시집을 여러 권 가지고 있다. 서정시라는 말에 어울릴 만큼 하나같이 아름다운 시어들로 가득한 시집들이다. 하지만 이번 시집에는 쉽사리 입에서 꺼낼 수 없는 두려운 말들로 가득하다. 후기에는 시인의 고백이 이렇게 적혀 있다."이빨과 발톱이 삶을 할퀴고 지나갔다 / 내 안에서도 이빨과 발톱을 지닌 말들이 돋아났다 / 이 피 흘리는 말들을 어찌할 것인가 / 시는 나의 닻이고 돛이고 덫이다 / 시인이 된 지 삼십년 만에야 이 고백을 하게 된다"닻과 돛과 덫. 세 단어의 받침에 웅크린 'ㅊ'이 마치 가시처럼 보였다. 과연 시에는 상처 자국이 선연하다. 그래, 가시가 여기저기 걸려서 오는 길이 이렇게 험하고 더디었구나. 닻은 내리고 돛은 올리고 덫은 걸리는 것이다. 시인은 어쩌면 돛을 올려 다다르거나 닻을 내리고 잠시 머무는 장소를 찾으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읽히는 시(<기슭에 다다른 당신은>, <여기서는 잠시>)가 드문드문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곳이 어디든 덫에 걸려 몸부림 친 흔적이 역력하다. 덫은 땅 위(<이 도시의 트럭들>)와 땅 아래(<혈거인간>), 바다 속(<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과 바다 밖(<난파된 교실>), 심지어 하늘(<새를 심다>)에도 촘촘히 펼쳐져 있다. 시인이 그간 얼마나 힘든 시간을 견디어 왔는지 느껴져 책장을 넘기는 손이 무겁다. 시에는 지난 몇 해 동안 시인이 무엇을 보았는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 비극적인 2014년 4월 16일 이후 시인은 이렇게 썼다."(...)지금도 교실에 갇힌 아이들이 있다 / 책상 밑에 의자 밑에 끼여 빠져나오지 못하는 다리와 / 유리창을 탕, 탕 두드리는 손들, / 그 유리창을 깰 도끼는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난파된 교실>의 마지막 단락)"아마도 이 시는 시인이 걸린 덫 중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긴 흔적일 테다. 이 외침 때문에 시인은 지난 정권 시절 세 곳의 기관으로부터 불온한 자로 지목당하여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아이들의 절규를 대신한 이런 시가 불온하게 여겨졌다면 그런 마음이야말로 정말 불온한 것 아닌가?남송의 철학자 주희는 '시란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남은 것들이 모여 소리와 가락을 이룬 것'이라 했다. 그러니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있어야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주희의 이 말에 따르면 시는 말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말이 끝나는 지점에서, 말이 멈추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없는 이는 시를 쓸 수 없다. 나희덕 시인의 이 시는 차마 말로 옮길 수 없는, 가슴 아픈 진실을 적어낸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시인은 또 다른 덫에 걸려 괴로워할 수밖에 없고 그 말할 수 없는 상처가 다시 시가 되어 이렇게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덫에 걸려 괴로워하지 않았다면 이 시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덫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독자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나는 언젠가 예전에 그랬듯 시인이 닻을 내린 곳에서 저녁이 오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새벽녘 능선 위에 쉬고 있는 상현달에서 신의 모습을 보고 싶다(<상현(上弦)>). 그래서 파일에서 해방되어 반짝이는 시어들을 만끽하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아직 다물어야 할 입들이 너무 많다. 어둠이 너무 짙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3-25 전호근

[이명호 칼럼]기후변화 무관심이 불러온 재앙 '미세먼지'

에너지 사용·지구온난화로 발생오염 적은 '비싼 원료로 대체' 중요재택근무 등 탄력제도 확대 필요국내 에너지소비 매년2~3%씩 증가'적게 쓰는 경제' 생활화 전환 시급연일 미세먼지가 기승이다. 국가 재난사태라는 말까지 나온다. 지난여름 무더위는 저리 가라다. 한때 미세먼지는 고등어구이가 원인이라고 하여 논란이 일더니 지금은 원전과 중국발 원인 논쟁까지 겹쳐 진영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어제는 죽은 도시와 같은 하늘이 오늘은 청명한 하늘로 바뀐다. 기상이 미세먼지의 운명을 좌우한다. 우리 조상들이 기우제를 지냈듯이 하늘에 빌어야 할 상황이다. 그럼 기후가 좋으면 미세먼지는 발생하지 않는 것인가? 중금속과 응착된 발암물질로 분류될 정도로 건강에 해로운 미세먼지는 매일 거의 일정량 발생하고 있다. 모래바람이나 황사 등 자연에서 발생하는 먼지는 대부분 해롭지 않다. 해로운 미세먼지는 인간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대기 정체로 미세먼지가 농축되거나 다른 나라에서 발생한 미세먼지가 우리나라에 도달하면 그때 고통이 시작된다. 기후를 통제할 수 없는 이상 우리는 '미세먼지 매우 나쁨'의 확률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공강우나 바람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기후를 통제하는 시도가 있지만, 다른 지역으로 오염이 이동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결국 효과적인 방법은 미세먼지 발생을 줄이는 것이다. 기상 조건을 제외하고 미세먼지 발생 원인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결과는 명확하다. 석탄발전을 포함한 연료연소, 자동차와 같은 이동오염원 배출이 가장 큰 원인이다. 특히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교통'에서 발생한다.그래서 미세먼지 대책으로 석탄발전소에 저감장치 부착, 석탄보다는 LNG(천연가스) 연료사용, 경유차 운행 제한, 심한 경우에는 차량 2부제 등이 실시되고 있다. 이와 같은 것이 미세먼지 발생단계에서의 조치라면, 공기청정기(가정용 또는 스모그타워)는 발생된 미세먼지를 흡착하여 감소시키는 방식이다. 어떤 방식이든지 부수적인 비용을 발생시킨다. 미세먼지에 대한 근본 대책은 없는 것일까? 산업화를 미리 겪은 선진국들은 어떻게 해결했을까? 역사적으로 보면 공장 굴뚝의 매연을 성장의 상징으로 여기던 시기를 지나 1930년대부터 선진국에서 매연(스모그)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했다. 최악은 1952년 영국 런던의 템스강 유역에서 발생한 스모그로 3주 동안 4천여명이 사망했다. 이후 선진국들은 공장의 도시 밖 이전, 오염공장이나 에너지를 많이 쓰는 산업의 개도국 이전, 석탄사용 감축,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 에너지를 적게 쓰는 산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쳤다. 수십 년에 걸친 이러한 노력으로 개도국이 선진국보다 더 대기오염이 심각한 상황으로 역전되었다.결국 미세먼지는 에너지사용의 문제, 기후변화(지구온난화)의 문제이다. 전체적으로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오염이 많은 싼 에너지에서 오염이 적은 비싼 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 방안이다. 정책적으로 에너지가 비싸 사용을 줄이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지구온난화의 경고를 무시했다. 우리나라는 전기료가 싼 나라이다. 더운 여름에 손님을 끌기 위에 문을 열고 에어컨을 켤 정도로 에너지를 싸게 생각한다. 무더위를 에어컨으로 해결하려고 하는데 이는 대기를 더 덥게 한다. 미세먼지도 공기청정기로 해결할 수 없다.에너지 수요를 줄이는 또 다른 방법은 교통수요, 이동을 줄이는 것이다. 특히 수도권의 출퇴근 시간은 1시간 30분이 넘어 세계 최고다. 긴 이동 시간, 거리만큼 미세먼지가 더 발생한다. 차량 제한을 넘어 이동하지 않는 방법을 실시해야 한다. 재택근무다. 여러 연구들은 재택근무가 온실가스 감축에 효과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미세먼지 대책으로 시도지사가 재택근무를 포함한 탄력근무를 민간에 권고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만 실시되지 않고 있다. 제도적으로 재택근무, 화상회의 등 원격근무를 확대해야 한다. 선진국들은 대부분의 업무를 재택근무로 수행하는 비율이 5%를 넘고 네덜란드는 14%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순수한 재택근무는 통계조차 잡히지 않는다.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2000년대 들어 에너지 소비가 감소추세로 돌아섰는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매년 2~3%씩 증가하고 있다. 동일 부가가치 생산에 OECD 평균보다 1.5배 에너지를 더 쓴다. 1인당 에너지 소비도 OECD 평균보다 30% 많다. 에너지를 적게 쓰는 경제, 생활로 빨리 바꿔야 한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9-03-18 이명호

[홍창진 칼럼]상실

보이지 않는 가치 '사랑' 잃어버려마음 한구석 인두로 지진듯 '아파'자기중심적 사람 이웃에게 상처만사랑한것 후회도 괴로워도 마세요서로 다독여주며 살아가면 되기에살면서 생기는 아픔 중에 가장 큰 것은 상실로 인한 아픔이라고 생각합니다. 병이나 사고로 생긴 아픔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회복됩니다. 그러나 상실로 생긴 아픔은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마치 마음 한구석을 인두로 지져놓은 것처럼, 이 아픔은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사라지지 않습니다. 상실은 어떤 대상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눈에 보이는 물질을 잃어버리는 것은 상실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 재산을 잃어도 회복할 수 있다면 상실이 아닙니다. 아끼는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 역시 상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상실이 아니라 분실입니다. 상실은 보이지 않는 소중한 가치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사랑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평생을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했는데 그는 나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관심조차 두지 않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크나큰 상실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가치인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육십 대 중반의 어느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이 어머니는 최근 상실의 아픔으로 식사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매일 다니던 성당에도 발길을 끊었습니다. 누구보다 아들을 사랑했고 아들 역시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굳게 믿었는데, 아들로부터 사랑이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사랑을 상실했습니다.그분은 몇 년 전에 남편과 사별한 뒤 모든 유산을 아들에게 넘기고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매달 아들이 보내주는 소정의 생활비로 풍족하진 않았지만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생활비가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기다리다 못한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전화를 하면 아들은 그제야 짜증을 내며 돈을 보내왔습니다. 아들의 형편이 걱정이 돼 연락도 못하고 기다리면, 두 달이 지나서야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견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부부가 찾아와 이제부터 어머니를 편히 모시고 살겠으니, 살고 있던 어머니의 집을 팔고 살림을 합치자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선뜻 그러자고 허락하고 아들의 집으로 이사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편히 모시겠다던 아들 내외는 살림을 합친 뒤 돌변했습니다. 용돈을 주기는커녕, 어머니를 혼자 둔 채 자기 식구들끼리 외식을 하러 나가기도 하고, 해외여행을 가면서도 빈말이라도 함께 가자는 일언반구도 없었습니다. 그저 손주들 뒷바라지만 시켰다고 합니다. 결국 어머니는 아들에게 다시 살림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대뜸 "정신이 나갔느냐", "돈이 어디 있느냐"며 화를 내더라는 겁니다. 아들의 사랑을 잃어버린 어머니는 상실에서 오는 아픔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어 지금까지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아들도 자신을 사랑하는 줄 믿고 아들의 사랑을 간직하고 살다가 그만 그 사랑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어머니 입장에선 상실이 분명합니다. 세상에 사랑보다 더 큰 가치는 없습니다. 사랑보다 재산을 더 탐한 아들의 욕심 때문에 어머니는 깊은 상실을 겪고 말았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사랑의 가치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모두 사랑의 고리로 인연을 맺고 살아갑니다. 부모와 자식 관계는 물론이고 이웃과 친구와 동료에 이르기까지 크기에 차이는 있어도 모두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를 잘 살펴보면 유독 자기중심적인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이웃에게 상처를 주게 마련입니다.그러나 결국 사랑이 많은 사람이 세상을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사랑한 것을 후회하지 마십시오. 상실감으로 괴로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랑을 재주로 타고난 사람들은 더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면 됩니다. 우리가 사랑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상실로 괴로워하는 이웃을 사랑으로 서로 다독여주면서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사람으로 살아가면 됩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03-11 홍창진

[방민호 칼럼]하노이발 뉴스에 관하여

우리는 통일이라는 것을 단순하게정치·경제로 논할 수 있는게 아냐'한국인' 인류적 종 존속위해 필요냉정과 침착속에서 서로 공존하고北동포들과의 미래위한 슬기 모아야하노이발 뉴스를 접하고 선배 작가 한 분은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글쎄요. 저는 언젠가부터 현안에 어두워져서 잘 모르겠는데요, 했다. 다른 한 분은, 충격이라니, 나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난 것부터 의외였거든, 하고 들뜬 사람들을 쉽게 타박한다.지금 청년들 중에는 이데올로기에 찌들고 가난한 북한 싫다고 통일이 절대적 필요 명제는 아니라 한다. 입만 벌리면 경제, 경제하고 경제병 걸린 나이 든 분들도 우리 먹고살기도 바쁜데, 한다. 아무리 속물적으로 느껴지더라도 그 안에도 일단의 진실은 있다고 봐야 한다.필자로 말하면 386세대, 어려서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배우며 자란 세대의 일원이다. 유신체제 때 '국민학교'를 다녀,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줄 알았고, 국가와 민족을 지상 명제로 끌어안고 성장했다. 이른바 '범생'이었기에 다른 친구보다 더하면 더했을 것이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것도 철학이 아니라 국민윤리였으니, 왜 국민 윤리가 철학보다 먼저이고 철학은 중고등학교 과정에 있지도 않은 건지 물음표조차 생기지 않았다.이 국가 교육 때문에 생긴 부작용의 하나는 강렬한 정치 감각일 것이다. 필자가 서울로 대학에 진학하게 되자 부모님은 절대 현실 문제에 휩쓸리지 말고 공부만 하라 당부하셨다. 그러나 한 일 년 지나는 사이에 사람이 달라져 버렸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유신 교육에 있다고 생각한다. 국가와 민족이 어디로 가는지, 민족중흥의 사명을 띠고 태어난 자들이 어떻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조국'의 통일이라는 것도 필자에게는 처음에는 그런 차원에서 당위적인 명제로 받아들여졌다. 1945년 해방과 독립이 미완에 그쳤고 그나마 분단으로, 전쟁으로 치달았으니 원래의 상태를 회복해야 함은 당연지사 아닌가. 그래도 '통일 지상주의'에는 용케 빠지지 않았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겠다. 나중에는 우리나라가 섬 같아서 갑갑해졌다. 동서남 쪽이 모두 바다에 접해 있고 북쪽은 철책으로 가로막혔으니 어디 먼 곳으로 떠나기도 어렵지 않은가. 비행기 타고 날아가면 되지 않느냐 해도 땅을 밟고 바깥 풍경이 시시각각 변해가는 것을 보는 것과 공중 이동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해야 한다.여행 핑계를 댔지만 사실 어디 여행 같은 문제일 뿐이겠는가. 아무리 세계화, 국제화가 전개되어도 한국 사람들의 '고인 물' 같은 우물 감각은 좀처럼 벗을 수 없는 것이 위쪽 통로가 막힌 데도 이유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대륙에서 내려온 사람들인데 그 대륙과 살을 맞대고 살 수 없는 상황은 사람들을 비좁게 만들기 쉬운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부터 신채호를 즐겁게 읽는다. 그는 한말의 유생 출신으로 비범한 재능과 목숨을 건 공부를 통해 '조선사'의 '비밀'을 캐내는데 접근할 수 있었던 드문 선각자였다. 사람들은 그가 역사를 주관적으로 해석했느니, 상상과 공상이 많았느니 하지만 비난은 쉽고 깊이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과연 중국 청대의 사고전서를 접하여 우리 역사책에 잘 안 나오는 우리 역사를 사리에 맞게 맞추려 한 사람 얼마나 되던가. 이 선생 신채호를 통해 역사라는 것을 생각해 보건대, 대저 역사라는 사람살이의 기억은 만만히 볼 것 아니요, 경제나 정치 따위로 논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한 인류적 종의 '자연사'를 정리해 놓은 것이니, 이것 없이는 그 종의 현재의 삶도 있을 수 없고, 현재를 살아도 덧없는 삶에 그치기 쉽다. 우리는 통일이라는 것을 단순히 '정치적', '경제적' 같은 '현재' 때문에만 아니라 이 '한국인'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한 인류적 종의 존속을 위해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무슨 무슨 '지상주의자'는 되지 않아야 할 일이다. 냉정과 침착 속에 우리 안에서도 서로 공존하고, 북한 동포들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미래를 위한 슬기를 모아야 할 때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9-03-04 방민호

[이영재 칼럼]3·1운동 100주년 그리고 미당 서정주

'친일' vs '천재시인'… 극과 극 갈리는 평부천 상동 '시와 꽃이 있는 거리'에서 퇴출시비 놔둔채 '친일 시를 쓴 시인' 표시했다면'변절 목도' 교육효과 클수도… 철거 아쉽다여기 서정주의 '동천(冬天)'이란 시가 있다. 짧은 시니 전편을 인용한다. '내 마음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동지섣달 날으는 매서운 새가/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국어선생님은 교과서에 게재된 '국화 옆에서'와 함께 교과서에 없는 이 시를 해설해 주었다. 그러면서 "서정주가 아니면 절대 쓸 수 없는 시"라며 "미당은 100년에 한 번도 나올 수 없는, 두보와 견줘도 손색없는 시인"이라고 말했다. 40년 전이다.칼날 같은 바람이 부는 매서운 겨울. 들판엔 눈이 쌓여 있고, 연처럼 하늘에 걸려 있는 초승달. 어느 한자도 넣을 수도, 뺄 수도 없을 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완벽한 시어(詩語). 마치 겨울 풍경을 찍은 한 장의 사진 같다. 그래서 처연하다. 그날 선생님의 이 시에 대한 해석은 대충 이렇다. "일체의 설명적 요소를 배제하고 고도의 압축과 상징으로 이루어진 상징시다. 짧은 시 형식과 상징이라는 표현 기법을 통해 강렬한 언어 긴장을 이루며 인간 본질의 탐구라는 무거운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정제된 미의식을 드러낸다".하지만 서정주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었다. 오직 시만 가지고 논할 때 그의 이름 앞에는 '살아 있는 한국 시사(詩史)' '시선(詩仙)'이라는 찬사가 붙지만, 친일·친 독재 전력에 이르면 그의 이름은 '다츠시로 시즈오'가 되고, 전두환 생일에 축시를 쓴 파렴치한 시인이 된다. '꽃'의 시인 김춘수는 "미당의 시로 그의 처신을 덮어버릴 수는 없다. 미당의 처신으로 그의 시를 폄하할 수도 없다. 처신은 처신이고 시는 시다."라는 말로 그의 이런 전력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 때문에 시인의 고향에서조차 미당을 내놓고 자랑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비극의 역사가 만들어낸 또 다른 비극인 셈이다.부천에서 미당 서정주가 퇴출당했다. 부천시 상동 상도중학교 뒤 '시와 꽃이 있는 거리'에 세워져 있던 그의 시비 '동천'이 지난 13일에, '국화 옆에서'가 어제 철거된 것이다. 미당의 시비는 지난 2008년 상동 주민자치위원회가 부천문화사업과 연계해 '시와 꽃이 있는 거리'를 조성할 때 세워졌다. 이곳에는 노천명의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와 주요한의 '샘물이 혼자서'가 있었지만 모두 친일 논란 끝에 철거됐다.2015년 서정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우린 문단엔 미당 재평가 바람이 불기도 했었다. 그의 시를 아끼는 후학들이 '미당 서정주 전집' 20권을 완간하기도 했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먹히는 듯했다. 하지만 3·1 운동 100주년의 거센 바람 앞에서는 천하의 미당도 버티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시비철거가 결정되자 부천시의 정치권, 시민사회 등에서는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며 크게 환영하고 있다고 한다. 정재현 시의회 행정복지위원장은 자신의 SNS에 "친일 잔재를 없애는 것은 민중에게 서러운 삶을 안긴 엉터리 지도자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언론은 전하고 있다.며칠 후면 3·1 운동 100주년이 된다. 여기저기서 역사를 바로 세우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3·1 운동의 명칭을 '3·1혁명'으로 변경하자는 말이 집권당 대표 입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물론 친일 시인을 쫓아내고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을 나무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역사 바로 세우기'를 목적으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어버리자 우리 국민들은 환호했다. 그때는 흉물스런 조선총독부 건물만 철거되면 일제 잔재가 모두 사라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건물을 그냥 두고 우리의 아픈 역사를 가르쳤다면 효과가 더 컸을 것이란 자성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철거만이 능사는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미당의 시비도 마찬가지다. 시비는 그냥 놔두고 그 옆에 '친일 시를 쓴 시인' 정도로 작은 표시를 해 두었으면 어땠을까. 우리 언어를 한 단계 승화시킨 시를 쓴 '천재시인의 변절'을 목도하는 것만으로도 교육 효과는 더 클지도 모른다. 그래서 미당 시비 철거소식이 못내 아쉬운 것이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2-25 이영재

[이남식 칼럼]국민이 행복한 나라

GDP 10위권 불구 '행복지수' 낮아사회에 만연한 불신과 갈등 '심각'손익 얽매여 대립하는것 피하려면미래에 대한 목표·방향 설정 필요올해엔 '국가미래기본법' 입법 기대매년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UN Sustainable Development Solutions Network)가 발간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156개국 중에서 57번째로 행복한 나라라고 조사되었다. GDP면에서는 세계 10위권임에도 불구하고 국민행복순위에서는 크게 처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예전에 비하여 경제적인 삶의 질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나 여전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신과 갈등이 우리의 삶을 피곤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진보와 보수, 소득 계층, 세대, 지역, 노사, 심지어는 전기 생산 방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슈에 대하여 갈등과 대립이 심각하다. 터널의 끝이 언제 끝날지 모를 때 사람은 불안을 느끼고 견디기 어렵다. 하지만 언제 끝나는지를 미리 알 수 있을 때에는 훨씬 쉽게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훨씬 편하고 사회 전체적인 신뢰 수준이 훨씬 높아지게 될 것이다. 즉 우리 사회에는 과거와 달리 미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름대로 선거공약을 기반으로 2020 2030 같은 미래비전을 내어 놓지만 수많은 정책 과제의 나열이며 그나마 정권이 바뀌면 지난 정부의 정책 과제는 사라지고 만다. 지난 20년만 보더라도 국가균형발전 - 녹색성장 - 창조경제 - 소득주도 성장 등으로 슬로건이 바뀌어 왔다.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국민이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것이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론이 정부마다 차이가 있을 뿐인 것이다. 하지만 매 정부에서 주장하는 것이 과연 장기적인 관점에서 국민의 행복에 어떻게 기여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없이 새로운 슬로건으로 바뀌어 여야 간에 극한적인 대립과 갈등이 반복되니 국민들은 별로 행복하지 못하다. 핀란드의 경우 의회 내 미래상임위원회(The Committee for the Future)에서 다양한 미래이슈에 대한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행정부에서 내어 놓는 미래 보고서를 평가하여 방향성에 대한 제시를 하고 새로운 기술이나 사회적 변화가 미칠 영향에 대하여 예측한다. 2015년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핀란드의회와 미래전략 연구에 대한 논의 후에 국회의 선진화를 위하여 국회미래연구원 안을 내어 놓았으며 정세균 전 국회의장 때에 여야 합의로 2018년 5월 국회미래연구원이 출범하게 되어 향후 국회에서 국가 미래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행정부 내에는 미래를 전략적으로 다룰 기능이 명문화되어 있지 못하므로 국회 내의 연구회 중의 하나인 국회미래정책연구회(회장 정갑윤 의원, 이주영, 조경태, 나경원, 이혜훈, 홍문종, 원혜영, 김부겸, 조배숙, 신경민, 유승희 의원 등 여야 30여 의원이 회원)와 국제미래학회, 그리고 한국헌법학회가 지난 8개월여의 협력을 통하여 국가미래기본법을 발의하게 된 것은 매우 다행이 아닌가 한다. 국가미래기본법의 골자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국가미래전략위원회를 두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①기후변화, 지진, 토양, 해양 등 자연환경, ②경제, 산업, 과학기술, ③교육, 문화, ④인구, 복지, ⑤정치, 지방자치, 통일, 외교 등에 대한 미래전략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이에 대한 미래대응체계를 만들어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며 국회에서는 장기적인 국회미래에 대한 여야의 합의를 이루어 이를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인 입법과 예산심의를 통하여 불확실성과 불필요한 대립과 갈등을 막도록 하자는 것이 기본 취지이다. 이는 입법부와 행정부의 견제와 균형 협력에 매우 이상적인 모형이 아닌가 한다. 10년 20년 뒤의 미래에 대해서는 여야 간에 더 나가서 국민 모두에게 이견이 별로 없을 것이다. 당장의 손익에 매몰되어 대립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미래에 대한 확실한 목표와 방향을 먼저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제 진정한 포용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확실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만들어 서로 방법론에는 이견이 있을지언정 우리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행복해 질 수 있는 미래를 향하여 나가기 위하여 올해 내에 국가미래기본법이 국회에서 입법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

2019-02-25 이남식

[윤상철 칼럼]열지 못한 세대, 닫혀가는 세대

유튜브·페북·밴드·카톡 SNS매체유유상종·동종교배 네트워크 작동정치 '적폐 對 개혁'등 흑백균열 심화소통도 대안도 없이 분열사회 남겨민주화 불구 '그 그늘' 못 벗어난듯이른바 '밀레니얼세대'가 '꼰대' 586세대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수메르인들처럼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라고 점토판에 쓰거나 소크라테스처럼 "요즘 아이들은 폭군과도 같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대들고, 게걸스럽게 먹으며, 스승을 괴롭힌다"고 말할 수 없는 한국의 꼰대들은 우왕좌왕할 뿐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태어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성인이 된 20대 '밀레니얼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로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대면커뮤티케이션보다 온라인,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에 더 익숙하다. 간결하고 즉각적인 소통을 선호하고 줄임말을 구사하고 막말이나 아무 말도 서슴지 않는다. 수평적이고 효율적인 소통에 익숙하고, 정보수집에 능하며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중심의 세계를 설정하고, 사회적 인간으로서 기성세대와 그들의 사고, 이미 주어진 사회 및 세계에 적응하는 데 어색하다. 불합리성, 불공정성, 불투명성 모두에 적대적이고 고리타분하고 형식화된 절차를 기피한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도 업무는 스스로 구획하려 하고, 상사의 대화시도를 간섭으로 불편해하고, 자신의 계획에 따라 거침없이 뛰쳐나오기도 한다. 그들과 다른 세대와의 소통은 가정과 사회에서 시도되기도 전에 장애에 직면한다.586세대인 고등학교 동창들의 모임이 있다. 지천명을 넘어섬에도 모두들 젊은 시절부터 민주화 흐름에 몸담으면서 다진 결기가 대단하다. 그러나 촛불집회와 탄핵, 그리고 대선으로 이어지면서 우파정치세력이 거의 몰락하다시피 한 이후에는 서로 다른 목소리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상당하게 동질적인 집단이었지만, 연령효과로 인한 꼰대들에게는 약간의 차이도 크게 느껴졌다. 여러 가지 이유들로 포장되기도 했지만, 그들 일부의 공통적인 희망은 '나와 다른 이야기로 나를 침해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평생의 믿음이 조금이라도 부서질까 두려워한다. 종교와 달리 정치는 개인의 자유로운 신념의 영역만은 아니고 서로 간의 관계와 경계를 정하는 일이니만큼 충분히 상호 존중하면서 토론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던가? 평생을 민주주의를 의식하면서 살아왔지만, 그들에게 민주주의는 타인을 향한 요구일 뿐 내장된 가치가 아닌 듯했다. 그들을 엮어주던 공통토대인 정치가 화제로 오르지 못하게 되자 그들의 단톡방은 가끔 안부만 전하는 공동묘지로 바뀌어 버렸다. 밀레니얼세대나 586세대에게나 온라인, 모바일 커뮤니케이션이 주요한 소통방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20대는 성장과정부터 대면적, 전면적 소통에 능하지 않지만, 50대 역시 점차 대면적 소통의 비중을 줄여가고 있다. 20대는 자기중심적으로 세계를 재구성하고 자신과 다른 세대를 수용하지 못하지만, 50대는 이미 경직되어가는 세계관 내로 소통을 좁혀가고 있다. 이러한 소통방식의 변화는 인터넷과 SNS가 일상화되면서 가능해졌고, 그에 따라 정보화의 빛과 그림자가 함께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보화는 개인의 지식접근이 넓어지고 개인들 간의 지적 교류가 쌍방향적으로 전 지구적으로 확대되면서 인류 수준의 집단지성을 꿈꾸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차이의 인정과 상호 대화보다는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의 생각을 격려하고 극단화시키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20대는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이 부재함으로써 소통의 도구를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반면, 50대는 그 특유의 꼰대성으로 인해 대화의 소재와 대상들을 제한하게 된다. 여기에 유튜브, 페이스북, 밴드, 카카오톡 등 SNS매체들은 대부분 개방과 공유의 시대를 열기보다는 유유상종과 동종교배의 네트워크로서 작동하고 극단화된 승자독식 시장을 열어간다는 점에서 이러한 추세를 더 심화한다. 여기에 최근 한국의 정치상황은 적폐세력 대 민주개혁세력, 재벌자본세력 대 노동민중세력, 남성집단 대 여성집단, 친원전세력 대 탈원전세력 등 극단적인 흑백의 사회균열을 부추긴다. 즉 사회적 소통방식과 정치적 균열이 상호 악순환하면서 극단적 분열의 사회로 치닫고 있다. 선민적 자기집단의식으로 무장하거나 악마적 적폐집단으로 규정하거나 상관없이 소통도 없고 대안도 없이 분열된 사회로 나아간다. 그러나 1987년 민주화 이행 이후 보여준 모습들은 모두 다 민주주의의 넓은 스펙트럼 내에서 가능한 형태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생각도 우리의 생각처럼 충분히 가능한 사회적 지향이 아닐까? 오로지 하나의 대안만이 있다고 생각하는 전체주의 혹은 권위주의를 벗기 위해 길고 긴 민주화의 과정을 걸어왔건만 그 그늘에서 벗어나지는 못한 것만 같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9-02-18 윤상철

[전호근 칼럼]베르메르와 쉼보르스카와 희망

그림속 '우유를 따르는 여인' 만큼사회 노동자들이 하는 일 매우 중요연간 1천여명 작업장에서 죽어가기계로 인해 일터에서 목숨잃는 한 우리에겐 희망을 가질 자격 없다2012년 세상을 떠난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는 네덜란드 레이크스 미술관에 간 적이 있다. 시인이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작품을 감상했는지 알 수 없지만 17세기 네덜란드의 화가 베르메르의 그림 '우유를 따르는 여인' 앞에 가장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만은 확실하다.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기 때문이다.레이크스 미술관의 이 여인이 / 세심하게 화폭에 옮겨진 고요와 집중 속에서 / 단지에서 그릇으로 / 하루 또 하루 우유를 따르는 한 / 세상은 종말을 맞을 자격이 없다(베르메르, 최성은 옮김)시인은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고요와 집중을 읽어내고 있다. 하지만 그림의 장소는 하녀가 일하는 주방이다. 비록 테이블 위에 놓인 빵에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앉고 있지만 그림의 작업장이 고요하거나 따뜻할 리 없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 놓여 있는 발난로를 보더라도, 장식이라곤 없는 벽을 보아도 그곳은 춥고 지저분하며 시끄러운 곳임에 틀림없다.그러나 시인은 그림 속의 풍경에서 우유가 쪼르르 흘러나오는 소리를 또렷이 들었을 것이다. 그림 속의 여인이 따르는 우유와 테이블 위에 놓인 빵은 아마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닐 게다. 그럼에도 하얗고 가느다란 우유 줄기에서 그녀의 집중이 분명히 보인다. 그것은 누군가를 공양하기 위한 그녀의 정성이자 세상을 지탱하는 숭고한 힘이다.그러기에 시인은 저 여인이 "하루 또 하루 우유를 따르는 한 / 세상은 종말을 맞을 자격이 없다"고 받아 적은 것일 테다.아름다운 그림 한 폭과 그에 맞춤한 아름다운 시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이 이야기를 지배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니까 저 여인에게 이 일이 이토록 아름답고 숭고한 것이니까 너는 평생 우유나 따르라고 이야기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순식간에 성자는 노예가 되고 숭고는 마취제가 되고 만다.그림 속의 여인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자가 하는 일, 이를테면 택배기사나 편의점 점원이 하는 일은 그림의 여인이 하는 일만큼이나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세상은 그런 사람들의 숭고한 노동으로 떠받쳐지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이들 노동자를 대하면 어떤 서사가 만들어질까? 그러니까 당신들이 하는 일이 고객에게 그토록 중요하니 물량을 맞추기 위해 밤새도록 배달하고 손님이 없어도 자리에 앉지 말고 일하라고 요구한다면?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일어난 김용균씨의 죽음은 바로 그런 자본주의적 서사의 돌이킬 수 없는 비극적 결말이다. 고용노동부의 확인에 따르면 사고로 작업 중지 명령이 내려진 이후에도 주변의 컨베이어 벨트는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한다. 우리는 그런 희생 아래 만들어진 전기를 쓰면서 따뜻하게 지내고 있었던 것이다.비단 김용균씨의 비극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통계에 따르면 연간 1천여 명의 노동자가 작업장에서 죽어가고 있다. 올해에 들어서도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택배 노동자가 과로로 숨지고, 자동문을 설치하던 노동자가 문틈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끼이고 깔리고 떨어져 목숨을 잃는 것이 이 나라 노동자의 처지인 것이다.일하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는데도 계속 돌아가야 하는 컨베이어 벨트가 있다면 그것은 악마의 맷돌이다. 그런 세상 어디에도 숭고는 없다. 이것이 내가 이 아름다운 그림과 시를 마냥 편안한 마음으로 보거나 읽지 못한 이유다. 일터에서 죽어가는 노동자가 있는 한, 기계로 인해 목숨을 잃는 노동자가 있는 한 우리에겐 희망을 가질 자격이 없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9-02-11 전호근

[이영재 칼럼]가지 않은 길

'불안한 평화 지속' 한번도 경험 못한것들북한 '핵 동결'에 사실상 美가 '보유 인정'새로운 경험할까봐 두려운게 솔직한 심정안보는 한번 무너지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을 읽어주는 50세 중반의 국어 선생님 목소리는 진지했다. '어린 너희가 뭘 알겠어?'라는 표정은 눈곱만치도 없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얼마나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야 하는지 지금 너희는 잘 모를 것이다. 많게는 서너 번, 적게는 수백 번 결단의 순간과 맞닥뜨리게 된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가 숲 속을 걷다가 만나는 두 길을 모두 갈 수 없는 것처럼, 인생의 앞에 펼쳐지는 여러 갈래 길을 동시에 갈 수는 없다. 갈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사기꾼이다.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그렇다고 두려워할 건 없다. 어차피 그게 인생이니까." 시도 좋았지만, 책도 없이 시 전문을 한 자의 틀림도 없이 외운 선생님을 우리는 신뢰했다. 어린 나이에 선생님의 그 말이 왜 그렇게 쓸쓸하게 들렸는지 그때는 몰랐다.그날 교실 분위기가 무거웠던 건 시의 첫째 연과 마지막 연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1990년대는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가 높았다. '몰래카메라' '브레인 서바이버' '양심 냉장고' '러브 하우스'도 그랬지만 개그맨 이휘재의 '인생극장'은 내 맘대로 내용과 결론을 바꾸는 지금의 '인터렉티브 영화' 콘셉트로 인기를 끌었다. 매번 선택의 갈림길에 서고, 그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가 각기 다르게 전개되는, 특히 "그래! 결심했어"란 유행어도 남긴 인기코너였다. 그 '인생극장'을 보면서 '가지 않은 길'이 생각났다. 선생님의 말처럼 그동안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결단의 순간들이 있었다. 문과가 아닌 이과를 택했다면, 그때 공부보다 운동권 학생이 되었다면, 이 직장이 아니라 저 직장을 택했다면, 이 사람이 아니라 저 사람을 만났다면 등등 '그때 저 길로 갔다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은 가져 봤을 것이다.'가지 않은 길'이 다시 떠오른 건 3년 전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들으면서였다. 그리고 요즘은 매일 문 대통령의 말처럼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경험하고 있다.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거의 매일 벌어지는 검경의 압수수색은 논외로 치더라도 대법원장의 구속, 눈만 뜨면 나타나는 미세먼지, 일자리정책 앞에서 탄식하는 젊은이들을 보는 것은 물론, 대통령이 국민연금에 주주권행사를 직접 지시하거나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발표하는 것도, 투기의 의혹 국회의원이 오히려 국민들을 향해 큰소리 치는 것도 생애 첫 경험이다. 이웃 일본과 최악의 관계도 새로운 경험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은 걸리겠지만, 우리가 제정신을 차리고 왔던 길로 다시 가서 다른 길을 택한다면 해결되는 것들이다.문제는 돌이킬 수 없는, 불가역적인 것들에 있다. 지난해 남북 정상 간 세 번의 회담, 그 과정에서 도출된 9·19 남북 군사 합의서로 인해 발생한 '불안한 평화의 지속'도 실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조만간 북한의 핵 동결이라는, 사실상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새로운 경험을 할까 두려운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앞엣것들과 다르게 안보가 한번 무너지면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때 국어 선생님은 이런 말도 했었다. "분명한 건 어느 한 길을 택할 경우, 다른 길을 택한 것과는 전혀 다른 인생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무서운 건 택한 그 길이 꽃길인지 아니면 가시밭길인지는 끝까지 가봐야 안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의 운명을 담보로 '가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9-01-28 이영재

[이명호 칼럼]도시재생에서 부족한 것, 혁신적 도시경제

대다수 '옛 영광' 누리려는게 문제지식경제 시대에 맞는 모델 필요혁신적 견문 갖춘 세력 유입 시급연구 역량과 결합된 신산업 이끌미래 세대에게 공간 제공 더 중요도시재생이 뜨거운 이슈다. 목포시 근대문화역사거리는 시작단계에서부터 주목을 받았으니, 잘 조성되면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될 것 같다. 1897년에 개항한 목포는 근대화의 상징적인 도시였으나 그 영광을 간직한 곳은 '불 꺼진 원도심', 1900년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상징적인 지역으로 떠올랐다. 개발독재 시대의 산업화가 빗겨간 도시의 운명이었다고 할까.도시재생은 목포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으로의 경제 집중, 영남중심의 산업화, 신도시 개발에 따른 원도심의 역차별, 부동산 개발 투기 등으로 지방은 소멸의 위기에 처해있다. 전국 228개 지자체 중 40% 정도가 30년 후에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큰 아들을 집중 지원해서 동생들을 돌보게 한다는 '낙수효과'는 경제에서만이 아니라 국토개발에서도 낙제점이라는 것이 또 한 번 증명되고 있다. 도시재생이 본격적으로 정책적 과제가 된 것은 2013년 12월 '도시재생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되면서부터이지만, 본격화된 것은 이번 정부 들어서이다. 문재인 정부는 5년간 50조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대규모 철거 방식의 신규단지 개발에서 소규모 생활밀착형, 지역 맞춤형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쇠퇴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문화적·경관적 특징을 잘 살리는 동시에 주민참여형 도시계획을 정착시키며, 도시경제 활성화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필요한 정책이다. 문제는 많은 지역의 도시재생 사업이 '옛 영광'을 되살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낙후된 경관을 정비하여 상권을 활성화 시키고, 역사문화 공간을 개발하는 사업에 치중하고 있다. 투자에서 소외된 지역에 투자를 한다는 정당성은 있지만, 새로운 산업 경쟁력과 도시경제라는 관점에서는 미흡하다. 사실 도시도 성장과 소멸, 회생을 반복하는 살아있는 '생물'이다. 도시의 역사를 돌아보면 도시는 산업혁명과 같이 성장하였다. 1차 산업혁명의 중심지였던 영국 런던은 더 이상 산업의 중심지가 아니다. 미국 디트로이트는 2차 산업혁명의 주요 도시로 자동차 산업을 이끌었던 도시였으나 지금은 몰락하였다. 에디슨이 전기회사를 설립한 뉴욕은 제조에서 금융, 서비스 산업뿐만 아니라 문화 도시로 변천에 성공했다. 3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도시는 실리콘밸리이다. 실리콘밸리는 대학과 연구소, 기업 등이 네트워크와 같이 협력하는 중소도시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도시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도시가 돼야 한다. 도시재생도 마찬가지이다. 도시의 변천 이면에는 산업, 경제의 변화가 있다.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서비스업으로의 변화를 거쳐 이제는 지식경제로 진화 중이다. 지식경제 시대에 맞는 도시모델이 필요하다. 네덜란드의 브라이트랜드 지역은 열린 혁신 커뮤니티를 표방하고 지식이 교차하는 곳에서 혁신이 일어나도록 하는 새로운 캠퍼스를 개발하고 있다. 과학, 비즈니스와 교육을 결합한 4개의 캠퍼스에는 대학만이 아니라 기업과 연구기관이 들어서 있다. 과학자, 기업가, 학생들에게 연구와 혁신, 성장을 지원하는 시설과 협력 공간을 제공하여 지식 기반의 바이오와 건강 산업을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군산과 같이 자동차 공장 폐쇄를 겪은 호주 애들레이드 시는 2008년 미쓰비시 완성차 공장이 떠난 공장 부지에 혁신 산업을 키우기 위한 첨단 산업단지를 구축하고 있다. 2012년부터 명문대학 캠퍼스와 연구시설을 조성하여 지멘스, 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과 의료·에너지·자율주행 등 유망분야 스타트업들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직원들의 주거와 생활 등이 단지 내에서 해결되도록 하여 산업과 주거, 문화가 융합된 지역으로 개발했다.우리나라 때문에 조선업의 경쟁력을 잃고 몰락했던 스페인의 빌바오 시가 구겐하임 미술관을 건립하여 회생한 성공사례만이 도시재생의 모델이 아니다. 도시의 재생, 혁신은 새로운 세력을 끌어들일 때 성공할 수 있다. 단순히 젊은이가 아닌 혁신적인 지식을 갖춘 세력을 끌어들여야 한다. 대학 등의 연구 역량과 결합된 새로운 산업을 이끌 미래 세대에게 혁신의 공간과 주거를 제공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도시경제가 살 수 있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9-01-28 이명호

[홍창진 칼럼]약속

사람과 사람 연결하는 끈과 같아지키면 이어지고 안 지키면 끊어져세상의 모든 약속은 경중이 없어평생 같이 살 사람 잃지 않는 행위나 먼저 반드시 지키는 사람 돼야약속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끈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키면 이어지고 안 지키면 끊어지는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관계를 지속시키고 싶은 쪽은 충실히 지키려 하고 관계를 지속하건 안 하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쪽은 약속을 소홀히 합니다.인간관계는 일을 하면서 생기기도 하고 일상의 사교를 하면서 생기기도 합니다. 일은 자연스럽게 갑과 을이 형성됩니다. 보통 갑은 약속을 어겨도 용서가 된다는 통념이 있습니다. 따라서 을은 갑의 약속 불이행으로 관계를 끊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음 약속을 잡고 그것이 이행되기를 기대합니다. 사교는 갑과 을이 없습니다. 따라서 약속의 불이행은 머지않은 시기에 관계 단절을 의미합니다.그러나 일이든 사교든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는 지속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절교를 선언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아는 사람 명단에 있을 뿐, 의미 없는 인사만 나누는 사이로 먼발치에 둡니다. 그가 아무리 갑이라도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은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얼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연극인들 식사 모임에 초대되어 회식을 하던 중에 어떤 청년이 자신이 천주교 신자라고 하면서 인사를 하고 이제 연기를 시작한 신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일이 있습니다. 1년도 지난 일이라 잊고 지냈습니다. 그는 얼마 전에 문자로 신년 인사드리고 싶다고 날짜를 달라고 해서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전날 밤 급한 오디션 하나가 생겨서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른 약속도 못 잡았는데 그리고 그 약속에 맞추어 다음 약속의 동선도 맞추어 놓았는데 다 흐트러지게 되었습니다. 신인에게 오디션은 중요한 일이고 본인이 생각할 때는 약속을 파기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OK, 파이팅"이라는 답신을 남겨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청년이 다음에 또 약속을 잡자고 하면 잡지 않을 것입니다.소중한 것은 사람입니다. 세상의 모든 일도 지나고 보면 소중한 사람들 때문에 연결되고 그 신뢰 때문에 만들어집니다. 누군가를 소중히 생각하고 그가 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확신은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이고 기쁨입니다. 서로를 신뢰하게 되고 신뢰는 좋은 일을 도모하게 되고 함께한 일에 대한 결실도 좋게 됩니다. 약속은 사람하고 하는 것이지 일의 가치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약속을 취소하는 이유가 일에 대한 가치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순간 사람은 사라지고 일만 남습니다. 국가의 수장들도 국가의 명예를 걸고 약속을 하고, 정치인도 국민과 약속을 하고, 조그만 조직에서도 리더와 구성원이 약속을 합니다. 가족들끼리도 약속을 하고, 연인들끼리도 약속을 하며 친구들끼리도 약속을 합니다. 세상의 모든 약속은 경중이 없습니다. 모두 귀중하고 존엄합니다. 왜냐하면 약속은 존엄한 인간들끼리 하는 존엄한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선약을 해놓고 다음 약속이 자기 기준으로 더 대단한 사람이라고 선약을 취소하는 행위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인간이 인간에게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약속을 어기는 행위입니다.세상에 지키지 못하는 약속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 합니다. 사람을 차별하여 생각하거나 지나친 욕심으로 사람보다는 일을 우선으로 택하기 때문에 약속을 못 지키는 것입니다. 물론 부모와 가족의 급한 병환이나 급한 업무 등 상대가 충분히 이해할만한 상황까지 포함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약속을 지키는 일은 평생 같이 살 좋은 사람들을 잃지 않는 지혜로운 행위입니다.따라서 우선 본인이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이웃에게 존중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절대 믿지 마십시오. 그는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는 자존감도 없는 사람이고 누구를 존중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사람과 이별하세요. 그리고 믿을 만한 사람들과만 인연을 맺고 살아가십시오. 좋은 사람들과만 살기에도 짧은 인생입니다./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홍창진 천주교 수원교구 기산성당 주임

2019-01-21 홍창진

[방민호 칼럼]'태움'

간호사 사회 '괴롭히며 규율잡기'김용균군 희생된 火電 '사람 차별'책임 면하는 '이상한 논문 표절'썩을대로 썩은 문화 없애지 못하면영혼은 늘 굶주리고 고통은 연속며칠 전에 신문에서 한 간호사가 세상을 떠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유서에 썼다는 말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병원 사람들 조문도 오지 마라." 오죽 괴로웠으면 죽고 나서도 병원 사람들은 만나고 싶지 않다 했을까?이런 일이 이번만의 일은 아니었고, 얼마 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졌을 때 네이버에 들어가 도대체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아본 적이 있다. '태움'. 이 말은 이렇게 정의되어 있다. '태움'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에서 나온 말로, 선배 간호사가 신임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힘 등으로 길들이는 규율 문화를 지칭하는 용어다.참 이런 문화도 있을까 싶다. 어떻게 해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집단의 이름으로 길들이고 말 듣지 않거나 적응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태워져 재가 될 때까지 태워 버리는 것일까. 참 말도 실감 나게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얼마나 괴롭힘을 당하면 그렇게 태워져 버린다는 말이냐. 그러나 이 말을 처음 들은 후 그 생생한 어감의 놀라움과 함께 나를 괴롭힌 것은 이 '태움'이 병원 간호사 사회뿐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에 없는 곳 없다 할 정도로 사람들을 지독히 괴롭히는 형태로 끈질기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사실 카풀 문화라는 것이 왜, 얼마나 필요한지 알지 못하지만 서구에서도 그런 문화가 있다고들 하고 우리나라에도 그런 것이 도입되어야 한다고도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잖던가. 그것은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해도 바다 건너 이 나라에 들여오려면 이곳 사정에 얼마나 맞는지, 어떻게 해야 무리 없이 들여올 수 있는지, 그런 제도가 시행될 때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배려를 해야 하는지 이리저리 고민도 해봐야 할 게 아닌가? 정말 그렇게 한 후 그 카풀이라는 제도를 시행하려고 하는 걸까. 결과가 얼마나 좋을지는 아직 기다려 보고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 새로운 제도를 시행한다고 하니, 사람 '태우는' 사람들이 광화문 앞이며 어디 앞에 십여 만 명씩 빽빽하게 서서 시위를 하고 항의를 하고 파업을 벌이는 통에 그 추운 한겨울 밤에 택시를 '타는' 사람도 새벽길을 걷고 걸어 집에 지쳐 떨어지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급기야 택시 기사 두 분이 자신의 몸을 태우는 일까지 일어났다. 김용균 군을 태안 화력발전소의 어이없는 희생양으로 만들고 만 것도 알고 보면 우리 사회의 그 '태움' 문화 때문이 아니던가. 석탄을 태워야 하는 화력 발전소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고 사람을 차별하고 자격을 '못 갖춘' 사람들은 나이가 어떻든 성별이 어떻든 그가 내몰릴 대로 내몰려 몸과 영혼이 몽땅 태워질 때까지 몰아대는 것이 바로 한국 사회 아니던가. 그 어린 젊은이가 전생에 어디서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생에 와서 그런 처절한 고통을 맛봐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이 '태움'은 어디에서 와서 이렇게 병원 간호사들뿐 아니라 이 나라 곳곳에서 귀신같은 힘을 발휘한단 말인가. 대학교에도 온갖 태움 문화가 만연하는 가운데, 그중 이상한 태움 문화로 표절이라는 것도 있다. 남의 논문이나 글을 몰래 가져다 쓴 사람이 3년만 그 소행이 밝혀지지 않으면 그 사실이 드러난다 해도 '절대' 처벌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니, 그런 이상한 '태움' 때문에 표절한 사람은 요행히 책임을 면할 수 있겠지만 정작 그 일을 당한 사람이나 그 일을 저지른 사람에게서 강의를 들어야 하는 학생들은 속이 타도 탄다고 어디에 말할 곳조차 없이 숨어서나 괴로워하는 끝에 영혼 자체가 태워져 버린 것만 같은 고통을 당해야 한다. '태움'을 태워버려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상처가 곪을 대로 곪고 문제가 썩을 대로 썩을 때까지 몸과 마음을 다 태워 버리는 식의 문화를 없애지 않고는 이 사회는 아무리 돈을 벌어도 영혼은 늘 굶주리고 태움을 당하는 고통을 맛봐야 할 것이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9-01-14 방민호

[이남식 칼럼]CES 2019를 관전하기

미래엔 4차산업혁명 스마트시티화아마존·구글, 인공지능 경쟁 치열스마트폰·TV 화면 접고 펴는 기능혁신적 변화 이끌 한국기업들 주목메모리반도체 수요 '더 급증' 예측새해가 시작되면 한 해의 방향을 제시하는 행사들이 열리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미국가전협회가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하는 가전쇼 (Consumer Electronics Show CES)이다. 올해도 1월 8일에서 11일까지 개최되는데 2000년대 초반까지도 TV 오디오 비디오 냉장고 세탁기 등 가전 중심이었으나 컴덱스가 쇠퇴하면서 첨단 IT(정보통신) 제품의 소개장으로 성장하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의 변화를 예견할 수 있는 행사로 주목받아 자율주행자동차나 드론과 같은 분야의 전시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국내의 삼성이나 LG 또한 세계가 주목하는 기업으로 이 행사를 통하여 미래의 제품과 서비스를 소개해 오고 있다. 오늘은 CES를 관전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드리고자 한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바뀌게 될 우리들의 미래와 영역은 어디일까? 우선 스마트 홈이나 스마트 모빌리티를 포함하는 우리 삶의 터전이 되는 스마트 시티이다. 전 세계적으로 도시화(urbanization)가 가속화되고 있으며 2030년경에는 전체 인구의 60~70%가 도시에 거주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시는 효율적인 인프라와 상생효과 및 자원의 집중화로 경쟁력이 있으며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므로 거주인구가 계속 늘어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에너지 물류 리테일 교통 등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이를 효율화하기 위하여 새로운 5G 초고속이동통신이 상용화되는 첫해이기도 할 것이다. 5G의 최고속도는 20Gbit/s에 달하고 사용자가 경험하는 데이터 속도도 1Gbit/s에 달하여 그야말로 HD영화 한편을 수 초 내에 다운로드할 수 있어 요사이 우리가 사용하는 4G LTE 등에 비하면 10~20배 더 빨라지게 된다. 특히 자율주행자동차를 위한 주행여건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5G가 크게 기여하는 동시에 클라우드 서비스가 보편화되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 그러다 보니 이번 CES에서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아마존과 구글이다. 아마존은 전자상거래에서 출발하여 물류, 클라우드 서비스의 세계적인 강자로 부상하였으며 이제는 오프라인의 매장 또한 확장하여 아마존고 (Amazon Go)와 같이 상품을 장바구니에 고르면 자동적으로 결제되는 매장을 늘려가고 있다. 아마존의 알렉사 (Alexa)는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음성을 인식하고 작동시키는 인터페이스로 에코 (Echo)라는 스마트 스피커를 제공하므로 모든 가정의 기기를 음성으로 제어하고 필요한 물건을 음성으로 주문하는 그야말로 스마트 홈의 허브(Hub)를 장악하고자 하고 있다. 서치엔진에서 시작한 구글사 또한 인공지능기반의 구글어시스턴트를 기반으로 출시 한 구글 홈을 가지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에코 31.9%대 구글 홈 29.8%). 올해에는 양사가 다양한 분야(예를 들면 자율주행자동차에서의 차량과 승객사이의 대화등)에 응용하려는 시도가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많은 주목을 받는 분야가 스마트 폰이다. 화두는 접히는 화면을 갖는 스마트폰으로 접을 때는 기존의 사이즈이나 펼치면 패드사이즈로 확장 되는 폰으로, 지난 수년간 스크린사이즈를 키우고 카메라의 개수나 처리속도를 늘리고 메모리를 키우는 등 아주 혁신적인 변화는 없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화면이 말려 접히는 OLED TV 또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TV 사이즈가 커질수록 인테리어에 영향을 미치므로 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대형스크린이 접혔다 펴졌다 할 수 있다면 극장과 같은 효과를 더욱 고조시킬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우리의 주력 상품인 메모리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꺾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많지만 CES의 추세를 감안해 볼 때 향후 메모리 수요는 더욱 급증하지 않을까 예측해 볼 수 있다. 디스플레이의 대형화, 고해상도화, 고속화, 클라우드화 등이 모두 기하급수적인 메모리 수요를 촉발하고 있다. 요사이 웬만한 스마트폰은 기본이 512G의 메모리를 가지고 있다. 이제 모바일 환경을 통하여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집적하고 이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하여 실제 생활환경의 효율을 높이는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는 것이 이번 CES의 관전 포인트가 아닌가 한다./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

2019-01-07 이남식

[윤상철 칼럼]세대의 성찰에 대한 기대

일자리·노후복지 등 둘러싸고세대간 분배투쟁 불가피하게 보여갈등조정·완화제도 아직도 논쟁실패집단 해결주체 내세우기보다서로 반성하는데 눈을 돌려보자사회조사들은 설문 말미에 응답자의 사회적 배경을 묻는다. 성별, 연령, 교육수준, 거주지역, 직업, 소득 등이다. 여기에는 성별, 세대 등 사회적 조건에 따라 사회와 국가정책에 대한 인식과 행위가 다를 것이라는 암묵적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선거 결과 등은 예측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사회적 배경에 따라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요인이 중첩적으로 작용하거나 그 사회적 배경을 압도하는 사건이 우연하게 발생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원래의 전제를 훼손하기보다 더 적극적으로 적용하여 여성과 남성을, 어떤 세대를, 어떤 지역민을, 어떤 계층을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행위자로 불러내기도 한다.경제성장의 잠재력은 이미 소실되었고 마침내 위기가 오고 있다는 진단이 들린다. 주로 취업률, 고용률, 성장률, 경기선행지수, 그리고 지니계수 등 불평등지수가 거론된다. 그로 인해 더 심화된 사회적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다는 견해들도 피력된다. 인과가 불명확하거나 역전되기도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이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문제로 부각된다. 먼저 정권의 책임론이 거론된다. 이전 보수 정권들의 적폐와 무능, 그리고 부자와 재벌 편들기가 낙수효과를 낳기는커녕 한국경제를 위기의 늪에 빠트렸다고 한다. 신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산업구조의 변경 없이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성장과 분배를 악화시켰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사회경제적 집단에게 책임을 묻기도 한다. 재벌구조가 중소벤처기업의 창의성과 일자리 창출을 고갈시키고 사회적 양극화를 낳았다고 한다. 민주노총과 대기업 귀족노조가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조건을 악화시키고 비정규직의 취업난을 낳았다고 비판한다. 더 나아가 경제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의 원인을 특정 계급에게 묻거나 정치권력구조 혹은 경제조직 및 분배구조에게 묻기도 한다. 그러나 우파정권이나 좌파정권이나 경제구조를 재구성하고 성장의 잠재력을 이끌면서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데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재벌과 노조는 서로를 비난함으로써 그 입지를 찾는 적대적 공존관계로서 저소득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그리고 실업자들의 현실을 개선할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분단체제하에서 왜곡되어 미형성된 계급들이 변화의 주체가 되기는 어렵고, 권력구조나 생산분배구조는 모든 행위 주체들을 사면하는 변명일 뿐이다. 더러 또 다른 사회집단들이 호명되기도 한다. 페미니스트들은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여성의 사회진출과 지위를 악화시켰다고 주장하지만 산업구조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성차별의 구조를 해체하기 위해 어떤 주체들을 부를지는 모호하다. 여기에 일부 사회학자들은 세대문제를 제기한다. 이른바 베이비부머들인 86민주화세대가 사회적 기회를 절대적, 상대적으로 많이 점유함으로써 후세대들과의 불평등한 분배구조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최근의 청년실업은 86세대들을 그 수혜자로 만든 2016년부터의 근로자 정년연장의 결과로 더 악화되었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정치권력의 분배에 있어서도 일찍 사회운동 및 시민사회의 권력을 딛고 제도정치에 진출하여 지금까지 후속세대들을 압도하고 있다고 본다. 현재의 사회상황에 대한 세대논쟁은 이미 작년 여름에 이루어졌다. 카이스트의 이병태 교수는 헬조선을 말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앞 세대의 분투를 폄하하지 말고 넓은 세상을 보고 더한 노력을 먼저 시도하라고 말한다. 이에 한양대의 박찬운 교수는 '5000년 역사 최고 행복세대의 오만'에서 벗어나 그들에게 성장과 경쟁만을 물려준 일에 대해서 성찰하고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고 반박한다. 다시 이 교수는 앞 세대는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으며 젊은 세대에게 던지는 립서비스는 그 어떤 해법도 아니라고 비판하지만, 박 교수는 가진 것을 공유하자는 젊은이들에게 공감하면서 대안과 희망을 주어야 한다고 응답한다.고령화 사회를 거쳐 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에서 일자리와 노후복지 등을 둘러싼 세대 간 분배투쟁의 문제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한 세대갈등을 조정하고 완화할 제도들은 아직도 논쟁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내의 분배문제를 이미 경험한 사람들이 사회적 분배문제를 재구성할 인식과 실천을 준비하고 있지는 않을까? 어떠한 의식과 경험도 없는, 이미 등장하여 실패한 집단들을 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주체로 다시 호명하기보다는, 이제 세대와 그 세대의 성찰에 눈을 돌려보자./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8-12-31 윤상철

[전호근 칼럼]편지

3년전 수강생 졸업 앞두고 보낸 안부훌쩍 성장한 향기로운 소식 읽으며 송나라 주돈이의 '애련설' 생각했다1학년 학생들 마지막 시험후 인사그 모습 사랑스럽고 대견해 보였다3년 전 강의를 들었던 학생이 졸업을 앞두고 편지를 보내왔다. 종종 학생으로부터 편지를 받지만 이처럼 훌쩍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혼자 읽기 아까워 이곳에 나눈다.안녕하세요 교수님. 저는 2015년 1학기에 경희대에서 교수님의 고전읽기 강의를 수강했던 연극영화학과 학생입니다. 저는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으며 학교생활을 돌아보던 중 제게 가장 큰 인상으로 남은 분이라 이렇게 안부 차 편지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성실하지도, 눈에 띄지도 않는 학생이라 아마 절 기억하지는 못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난이 깊은 풀숲에 있어 찾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그것이 향기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라는 공자의 말을 자신의 사유로 풀어내는 것이 기말 시험이었습니다.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저는 신동엽 시인의 '오렌지'를 말머리에 쓰고 외부의 평가가 아니라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글로 썼습니다. 또 제가 예술을 하는 것과 여성인 자신을 인정하기 위해, 나의 향기를 긍정하기 위해 누군가의 코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사실 저는 유학을 비롯한 한국철학에 흥미가 없던 학생이었고 당시 교수님의 수업도 학점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강했습니다. 한국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왠지 보수적이고 정체되어 있을 것 같다는 편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그토록 중시하는 '인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답변을 유학 고전강의에서 듣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교수님은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두 개의 팔과 다리가 존재하고, 말을 할 수 있으며, 남성과 여성이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등 그런 다수의 보편성에 기대는 분류가 아니라 스스로 누군지 알고 그 정체성에 충실한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강의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공감과 위안 그리고 충격을 받았고 그 학기 교수님과 함께 한 시간에 대해 두고두고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저는 평소 매우 비관적이고 모든 학문의 역사와 인간 사회에 대해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어떤 강의를 듣고 감동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입니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오만하고 자의식이 과잉된 일이 없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가 작업하는 모든 창작물과 세상에 쌓여있는 인류의 산물이 헛되게 느껴져 의욕을 잃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세월에 구애받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고, 그것이 다른 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제가 누군지 탐구하면서 스스로 점점 더 견고해짐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교수님의 강의가 누군가에겐 과거를 읽는 일이 어떻게 미래의 가치로 연결될 수 있는지 깨닫게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람과 사람이 만든 것들에 환멸을 느낄 때 교수님의 강의가 주셨던 희망을 떠올리는 것처럼요. 교수님처럼 꾸준히 기억하고 기록하고 한 곳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건강한 겨울 보내시고 오래도록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OOO 올림.나는 이 향기로운 편지를 읽으면서 송나라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을 생각했다. 그는 연꽃을 칭송한 글에서 향기는 멀어질수록 더 맑아진다는 말(香遠益淸)을 남겼는데 나는 이 표현이 그저 문학적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이 학생의 편지를 받은 뒤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 편지를 받은 다음 날 일어났다. 그날은 내가 가르치는 1학년 학생들이 마지막 시험을 치른 날이었다. 답안을 쓴 뒤 인사하고 나가는 한 명 한 명이 전에 없이 사랑스럽고 대견해 보여 나 스스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지가 학생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 자체를 변화시킨 것이다.앞으로 나는 모든 학생들을 이 학생을 대하듯 만날 것이다. 그러니 이 편지의 향기는 후배들에게도 전해져 멀리멀리 퍼져나갈 것이다. 향기는 홀로 있어도 가두어지지 않는 법이다. 학생의 바람처럼 나는 오래도록 행복할 것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12-24 전호근

[이명호 칼럼]웰빙은 왜 성장보다 중요한가?

'경제성장'이란 목표로 달려왔지만자살률 증가등 심리적 불안 더 커양극화 따른 상대적 박탈감에 분노한국 OECD웰빙지수 12년째 최하위수치 연연 말고 '배려하는 사회' 절실얼마 전 인천 송도에서 열린 OECD 세계포럼에 참석했었다. 3일 동안 열린 행사의 전체 주제는 미래의 웰빙(Well-being) 이었다. 최저임금인상, 노동시간 단축으로 상징되는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포용적 성장 정책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과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나라에서 '웰빙'을 언급하는 것은 '사치스런'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다른 선진국은 성장과 웰빙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는가를 알고 싶어 포럼에 참석했다. 미래 웰빙의 탐구와 측정, 디지털화와 웰빙, 복잡한 세상에서의 거버넌스, 웰빙과 기업의 역할 등 다양한 세미나가 준비되어 있었다. 3일 동안 여러 세미나를 참석하면서 성장과 웰빙,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번 행사는 2009년에 OECD가 '경제성과와 사회발전 측정에 관한 고위전문가그룹 보고서'를 낸 이후 9년 만에 후속편이 발표되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행사였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 등이 주도하여 결성된 OECD 고위전문가그룹은 사회발전의 기준을 무엇으로 잡아야 하는가를 집중적으로 연구 토론해왔고, 그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가 이번 포럼의 하이라이트였다. 보고서는 많은 국가들이 GDP(국내총생산)에 과도하게 의존함으로써 2008년의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했고 그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파급효과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해 잘못된 방향으로 경제성장 정책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GDP는 경제성장을 측정하는 기준이다. 전년 대비 몇 프로 경제가 성장하였다고 하는 기준이 되는 지표이다. 경제성장률이 2.9% 성장 전망보다 0.1% 하락하였다고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암울'하게 만드는 그 기준이다. 경제의 측면에서는 중요한 기준임에도 GDP에 대한 개념은 많은 도전을 받아왔다. GDP는 국민의 행복, 나의 행복, 나의 삶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하는 의문은 계속해서 제기되었다. 로버트 케네디는 1968년 한 연설에서 'GDP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주는,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것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측정한다'고 비판했다. GDP라는 것이 전업주부가 자녀를 돌보는 것은 GDP 계산에 들어가지 않지만, 직장을 얻어 일하면서 가사 도우미나 보육 도우미를 고용하면 0에서 수백만원의 GDP가 추가로 발생하는 방식이다. 새로운 제품이 나와 이전 것을 버리고 새로 사면, 폐기 비용까지 포함하여 GDP가 증가하게 된다. 이와 같이 GDP라는 기준이 인간의 행복, 환경 보존,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바람직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비판이 크다. 그래서 부탄은 '국민총행복' 지수를 만들어 가난하지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경제적 풍요가 행복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만, 풍요롭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이스털린의 역설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기점으로 물질의 풍요와 행복은 비례하지 않고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도 2만달러까지는 경제 성장을 최우선 목표로 국민 모두가 달려왔지만, 2만달러 이후 소득이 정체하는 중진국의 함정과 오히려 자살률 등이 증가하는 심리적 불안은 더 가중되는 현상을 겪고 있다. 성장 자체가 불균형에 의거하고 있어 부의 총량이 증가했지만, 일부의 구조적 과잉과 일부의 구조적 궁핍이 동시에 연결되어 있는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양극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사람들은 더 좌절하고 분노하게 만든다.OECD는 성장이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고 성장만의 추구는 오히려 사회를 더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반성에서 새로운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웰빙, 더 나은 삶의 질이라는 개념이다. 우리가 측정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사회, 경제, 환경의 전 측면에 걸친 웰빙 지표를 측정하고 있다. 그 OECD 웰빙 지수에서 한국은 12년째 최하위이다. 어떻게 하면 웰빙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 네덜란드 왕자빈의 포럼 기조연설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알다시피 네덜란드는 혁신지수도 높고 복지지수도 높은 고소득 국가이다. 그런 네덜란드는 어떻게 웰빙 국가가 될 수 있었을까? 한 가지 답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연설에서 강조한 메시지는 하나였다. 수치에 얽매이지 말고 국민 개개인이 충분히 의미 있는 존재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하면 사람들은 사회에 소속감을 갖고 사람들과 협력하고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배려하는 사회가 성장하는 웰빙 사회이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8-12-17 이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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