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칼럼

 

[이영재 칼럼]6·13선거는 끝났다?

여전히 흔들림없는 문대통령·민주당 지지율홍대표의 거친 입·결집력 부재인 한국당'르네상스'라는 큰 대문 연 '메디치'가문처럼내 지역 이끌 인재 발굴하는데 고민해야솔직히 놀랐다. 아무리 여당의 압승이 예상된다 해도 분위기가 이 정도인 줄 몰랐다. 운동장이 기울어져도 한참 기울어졌다. 평창 올림픽부터 판문점 정상 회담 등 남북관계 해빙이 결정적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말고 야당이 일방적으로 당해야 할 만한 딱히 큰 잘못도 없었다. 오히려 야당 측에 유리한 호재도 잇달아 터졌다. 차기 여권의 대권후보 1순위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미투. 김기식 전 금감원장 사태도 현 정권에겐 매우 아팠다. 그리고 드루킹 . 어디 이 뿐인가. 실업률 급증, 재활용 쓰레기 파동, 입시정책 혼란 등 잇따른 정부의 정책 실패는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것들이었다.특히 드루 킹 사건은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제 발등 찍는 걸 모르고 네이버 댓글 수사를 요청하면서 불거진 것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댓글을 단 사람이 민주당원이었고, 그 주모자 입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김경수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옛날 같으면 선거의 결과를 뒤집을 만큼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의외로 조용하다. 오히려 특검을 주장한 한국당이 추경예산 통과에 딴죽을 건다며 역풍을 맞는 형국이다. 여전한 문재인 대통령의 70%대 지지율과 흔들림이 없는 50%의 민주당 지지율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요즘 신문사 밥 먹고 있다고 하면 꼭 받는 질문이 있다. 질문이 거의 똑같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는 거 보면 6·13선거에 그렇게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처음 질문을 받았을 때 정말 놀랐다. " 그래도 한국당이 경기도내 기초단체장 한 석은 차지하겠죠?"라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한두 번 받은 게 아니다. 그가 민주당 지지자라면 조롱이고, 한국당 지지자라면 체념의 표현일 것이다. 그래도 질문이 너무 고약하지 않은가. 경기도 31개 시 군중 현재 한국당 소속 지자체장은 15명이다. 반타작만 해도 7석이다. 그런데 5석도 아니고, 달랑 1석? 김무성 전 대표가 친박계 공천에 반발, 공천장 직인을 찍어주지 않고 부산으로 도피했던 이른바 '옥쇄파동'이 일어난 건 2016년 4·13 총선 전이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그 사이 역사에 기록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두 명의 대통령이 구속됐다. 그날부터 시작된 보수의 균열은 그때보다 오히려 더 악화 된 느낌이다. 단 한 골도 못 넣고 31대0 패배를 걱정할 만큼 사실상 붕괴 수준이다. 6·13선거는 한국당을 심판 하는 선거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됐을 것이다.지금 우파 보수층은 결집이 불가한 모래알 같다. 이 지경이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들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는 보수야당, 특히 한국당 탓이 크다. 특히 홍준표 대표의 거친 입을 향한 장년층 보수 우파의 원성은 하늘을 찌른다. 아무리 남북 회담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였다고 해도, 한때 정권을 잡았던 당이다. 그리고 지금은 제 1 야당이다. 그런데도 70년간 구축된 '냉전의 지축'이 붕괴의 파열음을 내고 있는 중대한 시점에서 '빨갱이론'같은 판에 박힌 비판으로 일관한다면 이를 지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설사 북한과 관련된 홍 대표의 말이 맞다손 쳐도 그의 거친 입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러니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의도적으로 홍 대표와 거리를 두려는 것이다. 이제 홍 대표부터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보수층이 움직인다.중세(中世) 1000년의 종지부를 찍은 건 권력도 종교도 아니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었다. 상업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메디치 가문은 주변의 인재를 끌어모아 아낌없는 후원으로 '르네상스'라는 큰 대문을 열어젖혔다. 메디치 가문은 화려한 스펙을 갖춘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재능을 채 드러내지 못한 인재에게 어떻게 영감을 불어 넣어줄 것인가를 늘 고민했다. 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가 아닌, 나와 가족의 삶과 직결된 내 지역을 이끌 단체장을 뽑는 선거다. '선거는 끝났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지금도 늦지 않다. 사심없이 일할 내 지역 인재를 발굴하는, 지금 우리는 메디치 가문처럼, 처절하게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05-21 이영재

[전호근 칼럼]시인(詩人)을 존경한다

시는 갑자기 찾아오는게 아니라시인으로 사는자에게만 다가오는것겨울과 강·나무와 풀 늘 말 걸지만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두 귀가 순해진 시인뿐이다언젠가 나를 소개하는 글 끄트머리에 "가난한 시인을 존경한다"고 쓴 적이 있다. 그 무렵 '책 읽는 사회 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시 낭송회에 참석하기 위해 동숭동에 있는 일석기념관에 갔다가 이모 시인을 만났다. 그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 손을 덥석 붙잡으며 "가난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가 왜 자신을 멀리하는지 비로소 알았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며 슬쩍 넘어갔지만 아무래도 내 글이 부담을 준 것만 같아 지금까지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이 남아 있다.나는 늘 시인이 부러웠다. 나도 시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깜냥으로는 어떻게 해야 시를 쓸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시를 많이 읽다 보면 마침내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백석과 윤동주, 김수영과 기형도의 시를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칠레의 시인 네루다도 시에서 이야기하길, 어느 날 시가 내게로 왔다며,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대시인조차 시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셈이니 그저 난감하기만 했다.그러다가 문학평론가 도정일 선생의 글을 읽고 난 뒤 어떻게 해야 시를 쓸 수 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도정일 선생은 시인이 세상을 향해 뭔가 보여주고 싶을 때, 이를테면 나무라든가 구름, 당나귀 같은 것을 보여주고 싶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그냥 한 사람의 시인으로 사는 것이라 했다.('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문학동네) 요컨대 시인으로 살면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가, 수필가, 화가는 '가'이되 시를 쓰는 사람만큼은 '시인'이다. 그가 갖고 있는 재주가 아니라 그냥 온전히 존재 자체가 시인 사람, 시인이라서.방법을 알았지만 또 다른 어려움에 부딪쳤다. 시인으로 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시인이 아닌 나로서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 어느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접하곤 시인으로 사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게 되었다.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한국에서 소득 가장 낮은 직업 2위는 수녀, 1위는?'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기사를 읽지 않고도 답이 무엇인지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를 열어 보았더니 가장 가난한 직업은 시인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고용정보원이 최근 소득별 직업 순위 정보를 포함한 '2016 한국의 직업정보'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직업은 시인으로 한 해 평균소득이 542만 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5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돈으로 한 달을 사는 일, 하루 세끼 챙겨 먹기에도 벅찬 수입으로, 겨울에는 춥게 여름에는 덥게 사는 것이다. 기사를 읽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끝내 시를 쓰지 못하리라는 것을.그날 지리산에서 올라온 박남준 시인은 '마음의 북극성'이라는 시를 낭송했다.'… 꼭 그만큼씩 울음을 채워주던 강물이 말라갔다 / 젊은 날의 나침반이었던 내 마음의 북극성만이 아니다 / 간밤에 미처 들여놓지 못한 앞강이 / 꽁꽁 얼기도 했다 / 강의 결빙이 햇살에 닿으며 안개 또는 김발로 명명되고 / 가물거리는 아지랑이를 만든다 / 아~아지랑이 / 어쩌면 치미는 슬픔 같은 먼 봄날의 아지랑이 / 이렇게나마 겨우 늙었다 / 강을 건너온 시간이 누군가의 언덕이 되기도 한다 / 두 귀가 순해질 차례다'두 귀가 순해진다는 시구는 공자의 '이순(耳順)'에서 따온 말일 테지만 이 구절을 읽고 나는 비로소 시인으로 살면 시를 쓰게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그렇다. 귀가 순해진다는 것은 나무들이 말을 하고 시냇물이 소리를 내며 언 강이 녹으며 봄날의 아지랑이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나는 또 네루다가 시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며,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 뜻도 알았다. 시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시인으로 사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다. 겨울과 강, 나무와 풀은 늘 말을 걸어오지만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귀가 순해진 사람, 시인뿐이다. 시인만이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시인을 존경한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5-21 전호근

[이명호 칼럼]좋은 노동과 기본소득

우리나라에서 '좋은 노동'은 뭘까여전히 주 40시간 노동에최저임금 인상·정규직 보장이다100년후엔 기본소득 보편화 가능지금 필요한건 일하는 시간 줄이기얼마 전에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이 '실패'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하여 가짜 뉴스라는 반론이 나오며 기본소득이 또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기본소득 정책을 주도한 핀란드 사회보장국 담당자는 실험 대상을 확대하여 2년 연장하는 추가 예산 요청을 중앙정부에서 거부하여 내년 1월로 예정된 실험이 끝난 후 평가가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실패'는 가짜 뉴스라고 항변하였다. 핀란드는 지난해 1월부터 실업수당을 받는 25세부터 58세까지 실업자 중에서 무작위로 추첨한 2천명에게 2년 동안 월 560유로(약 70만원)를 지급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대상자들이 취업한 이후에도 기본소득을 그대로 지급하도록 하였다. 실업률이 9%대로 다른 북유럽 국가들보다 높았던 핀란드는 기본소득이 '좋지 않은' 일자리라도 취업하는 효과를 기대하였으나, 기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물론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대상자를 실업자로 한정하여 취업·소득에 상관없이 최저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 취지와 어긋나기 때문에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개념, 제도의 실패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의 성패에 대한 판단은 아직 이르지만, 필자는 이 논란을 접하면서 1년 전 한 행사에서 독일 교수가 한 말이 다시 생각이 났다. "독일에서도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일부 기업가들이 제기한 적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은 신성하며 인간에게 주어진 소명이기 때문에 노동 없는 사회는 생각하지 않는다. 독일 노조도 4차 산업혁명에 의한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에 대한 대책은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전직 훈련이다. 두 번째로는 새롭게 생기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학교 같은 곳에서 키워 주는 것이다. 동시에 노동 시간 단축도 병행돼야 한다. 그래도 전 사회적으로 일자리가 부족하고 실업자가 늘어난다면 그때, 기본소득이 필요할 수 있다고 본다."기본소득보다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것이다. 사실 독일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노동시간이 적은 나라이다. 연간 1천363시간(52주 기준 주당 26시간)에 불과하다. 한국은 멕시코 다음으로 두 번째로 노동시간이 길어 연간 2천212시간(주당 42시간)에 달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일자리 감소에 대하여 모든 나라들이 걱정하고 있는데, 4차 산업혁명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인더스트리 4.0을 처음으로 제기하고 추진하고 있는 독일이 일자리 감소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사회적 합의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첨단 제조 전략인 인더스트리 4.0을 추진하면서 독일이 취한 또 다른 정책은 생산의 한 축인 노동 4.0이다. 노동 4.0은 노동의 유연성, 노동 시간과 장소의 노동자 결정권을 높이는 방법 등으로 국민 100%가 일하는 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얼마 전 5월 1일은 128주년 세계 노동절이었다.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 지역의 노동자들은 '8시간, 8시간 휴식, 8시간 교육'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시작하였다. 하루 12~16시간의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1760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지 120여년이 지나 하루 8시간 노동을 '좋은 노동'의 목표로 제시하였다. 물론 노동시간의 단축은 기업들의 생산성 향상 노력에 의한 것이기도 하였다. 1914년 포드자동차는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하여 자동차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늘리면서,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줄이고 임금을 인상시켜서 노동자들도 자신들이 만든 자동차를 살 수 있도록 하였다.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는 미래에 좋은 노동은 무엇일까? 독일은 노동 4.0 백서에서 다름과 같이 그리고 있다. "시원한 바닷가에 편안히 앉아 노트북을 무릎에 놓고 일하는 창의적 지식 노동자, 혹은 컴퓨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원하는 작업 스케줄을 짜는 생산직 노동자 등이 현재 우리의 이상향이다." 우리나라에서 '좋은 노동'은 무엇일까? 우리는 여전히 주 40시간 노동, 최저임금 인상, 정규직 보장이다. 100년 후에는 기본소득이 보편화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시간 줄이기이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8-05-14 이명호

[홍창진 칼럼]진정한 친구

모든것 줄 수 있는 사람에 집중하면되레 집착 때문에 목 졸릴 수 있어어느 특정한 관계 유지하기 보다다방면의 여러 친구 사귀는게외로움 더는데 더 많은 도움 된다사람이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왕따로 사는 건 흡사 죽음을 미리 체험하는 것 같은 공포를 준다. 그만큼 사람에게 친구는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요즘 세상에서 자신에게 진정한 친구가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다가 배신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거다. 한번은 방송 출연 중에 제일 친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때 누구에게 보낼까 잠시 망설이다가 한 동창 신부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동창 신부가 과연 진정한 친구일까? 과연 친구라는 존재가 내 마음을 100퍼센트 알아주고, 힘들 때 정말 위로가 되어줄까?그렇다고 그 동창 신부가 친구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흔히 '진정한' 친구라고 했을 때 기대하는 것이 허상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나는 진정한 친구를 갈구하는 것 자체가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세상엔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친구, 내 마음을 뼛속까지 알아주는 친구는 없다. 그런데 그런 친구가 없어서 외롭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오해다.친구가 내 외로움을 해결해 주는 존재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각자 짊어져야 할 외로움의 몫이 있고, 그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나 사람은 그렇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위안 삼아 묵묵히 자기 인생을 걸어갈 뿐이다. 그 이상을 바란다면 욕심이다. 그리고 그 욕심이 결국 관계를 망친다. 대개의 인간관계, 특히 친구나 가족처럼 가까운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 이유는 '내가 생각한 만큼, 상대가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또한, 상대에 대한 서운함에는 상대를 내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다는 집착이 숨어있다. 집착을 우정이나 사랑으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과도하게 챙겨주고 또 그만큼 요구하게 되면 결국 서로 감당을 못하는 관계가 되고 만다. 그래서 거리가 필요하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나에게 맞춰달라고 강요하면 안 되고, 또 반대로 상대의 요구에 맞춰줘서도 안 된다. 결국엔 감당이 안 돼 싸우거나 서로 피하는 관계가 되고 만다.관계에 집착하지 마라. 진정한 친구가 없다고 인생이 망가질 일은 없다. 내 인생에 모든 걸 줄 수 있는 친구 한 사람에게 목매달다가는 오히려 그 집착 때문에 목을 졸릴 수 있다. 대신 여러 친구를 다양하게 사귈 필요가 있다. 어느 한 관계에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관계를 다방면으로 유지하는 편이 외로움을 더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직장 동료는 일을 같이하는 사람일 뿐이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관계를 깊게 가진다 해도, 일이라는 공동의 목적이 무너지면 그 관계는 오래갈 수 없다. 따라서 일을 떠나서 하는 부탁은 사양하라. 그가 상사라 하더라도 지혜롭게 피해가라.다양한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단 하나의 규칙은 모인 목적에 충실하면 된다는 것이다. 축구 모임에서는 축구를 열심히 하면 된다. 환경운동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사회 운동에 진심을 다하면 된다. 그 이상의 기대는 버려야 한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할 일도 없고, 기대가 없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친구에 대한 허상에서 벗어나라. 집착을 버리고 거리를 둘 때 되레 외로움이 줄어들뿐더러, 소원하던 관계가 전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2018-05-07 홍창진

[방민호 칼럼]작가 김사량을 생각한다

사상범으로 日서 보여주기식 체포해방 되자 북한으로 돌아갔고6·25 참전중 9·28 수복때 전사왜 덧없이 희생되어야 했던가?참으로 지혜가 필요한 시대였다작가 김사량의 본명은 김시창이다. 그는 1914년에 평양의 잘 사는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공부도 잘한 사람이었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쿄제국대학에 독문학을 공부하려 유학까지 했다. 본디 잘 사는 사람은 래디컬한 생각을 갖기 어렵건만 그는 달랐던 것 같다. 고등보통 1학년때 광주학생의거가 일어나자 시위에 참가해서 일본 관헌에게 쫓겨다녔고 5년 졸업반 때는 일본 장교의 학교 배속에 반대하는 동맹휴교에 참가하여 끝내 졸업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몰렸다. 손창섭 장편소설 '낙서족' 주인공이 그러하듯이 김사량도 반도 안에서는 공부하기 어렵게 되자 일본에 밀항해서 공부를 계속하고자 한다. 안우식이 쓴 '김사량 평전'에 따르면 그의 형이 이미 도쿄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부산에까지 갔는데 거기서 특고들 눈에 띄어 경찰서까지 끌려갔다 도망 나왔고 형이 소식을 알고 보내준 학생복이며 학생증 위조한 것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시작하여 동인 그룹에서 창작으로 나아갔고 도쿄 제대에 들어가서도 동인 활동을 했다. 물론 일본어를 통한 문학 창작활동이었다. 그러나 김사량은 확실히 달랐던 것이 이른바 세틀먼트 운동이라 해서 빈민 지역에 몸소 들어가 거주하면서 그들의 삶과 의식을 개량하는, 일종의 도시 '나로드니키'로 활동하다 다시 경찰에 체포된다. 이로써 김사량은 3개월 구류 처분되었고 뿐만 아니라 일종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인물이 되었다. 읽은지 오래되어 명확하지 않으나 대학교 재학 중에 '조선예술좌' 같은 연극운동단체에 적을 붙인 것도 그로 하여금 시련의 길을 걷게 한 일로 남았다. 세틀먼트 운동의 경험을 소설로 옮긴 것이 바로 일본어로 쓴 단편소설 '빛 속으로', 그에게 아쿠타가와 상 후보의 '영예'를 안겨 준 작품이다. 그는 한국어와 일본어 두 개의 언어로 창작활동을 했는데, 이 세대의 작가들에게 언어 선택이라는 문제는 지금 생각하기보다 아주 미묘하고도 어려운 문제였다. 고등보통 시절에 중국 유학을 꿈꾸었고 나아가 미국으로 가 영어소설을 쓸 생각을 했던 그이니만큼 일본을 괄호에 넣고자 하는 반제국주의 성향이 강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일본에 유학하고 아쿠타가와 상 같은 제도 문단권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면서 그의 문학 언어 선택은, 일본인들에게 조선인들의 삶의 실상을 제대로 알린다는 명분 아래 일본어 쪽에 더 많이 기울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작이라 할 만한 '천마'라는 일본어 소설이 나왔고 이것이 한국어로도 남겨지지 않은 것을 무척 아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 국면이다. 1941년 벽두부터 조선사상범 예방 구금령이라는 것이 발동되자 사상범 전력이 있던 김사량은 일본에서 본때 보여주기 격으로 체포되었다 부친의 도움으로 간신히 풀려난다. 이 법령은 전두환 정부 시절의 사회안전법 같은 것으로 이미 치안유지법 사범, 즉 오늘날의 국가보안법 사범이 되었던 자는 다시 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는 '추측'만으로 잡아 가둘 수 있는 이상한 법이었으며, 이것이 당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작가 김남천의 단편소설 '등불'에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일제 말기 체제 아래서 김사량은 3,4년 '보호색'을 띠고 체제에 동화될 수 있는 사람처럼 살았지만, 1945년이 되자 중국으로 파견된 틈에 냅다 탈출의 길을 선택, 연안으로 들어가 저항군이 된다. 이런 그에게 해방은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요즈음 문학인들의 1945년 8·15 이후에 관해 생각한다. 그는 해방이 되자 북한으로 '돌아갔고' 6·25 전쟁 중에 참전, 남쪽으로 내려왔다 9·28 수복의 와중에 전사해 버리고 만다. 그는 정말 사회주의자였을까? 왜 그는 북한을 선택했던 것일까? 조국의 현실에 괴로워하는 양심가였던 그는 왜 그렇게 덧없이 희생되어야 했던가? 참으로, 지혜가 필요한 시대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눈에 보이는 상황이 달라 보일 뿐, 험한 세상은 지식을 쌓은 사람들에게 냉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8-04-30 방민호

[이남식 칼럼]행복한 미래를 위하여

지금까지 삶의 방식·가치 기준추구하는 방식 새롭게 접근 필요서로 재능 공유하는 사회로 전환한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변화속라이프스타일 등 재점검해야할 때최근에 발간된 세계행복리포트 (World Happiness Report 2018)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156개국 중 57번째로 행복한 나라로 조사 되었다. 가장 행복한 나라로는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가 꼽혔으며, 우리나라는 자마이카, 러시아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 국민소득, 건강수명, 사회적 지원, 국민의 자유, 부패 등의 요소를 평가한 결과로 소득 3만 달러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다수의 국민들이 북유럽 국가들에 비하여 훨씬 덜 행복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물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안보의 위협이 상존하며, 청년실업, 주거문제, 가계부채, 고령화 등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다. 그러면 앞으로 행복한 미래를 위하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안보문제는 최근 남북, 북미 간에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큰 변화의 조짐이 있어 다행이나, 나머지 문제들의 해결을 위하여 새로운 대안을 생각해 보자.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코워킹(Coworking), 코리빙(Coliving) 라이프 스타일이다. 최근에 서울의 요지 (강남역, 삼성동, 을지로 등)의 고급 빌딩에는 코워킹 스페이스에 입주하여 사무실을 운영하는 젊은 청년 창업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예전 같으면 높은 임대료 때문에 도저히 입주할 수 없는 빌딩에 비록 개인이 차지하는 공간은 겨우 노트북을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의 책상 하나이지만 모두가 공유하는 근사한 회의실, 카페, 체련장, 개인비서서비스 등을 공유하는 오피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가 호황을 맞고 있다. 즉 공유경제의 아이디어가 남는 시간에 자기 차를 택시로 제공하는 우버(Uber)나 남는 방을 여행객에게 제공하는 에어비앤비(Air B&B)를 넘어서 항시 필요로 하지 않는 공간을 공유하여 보다 저렴하고 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피스나 주거공간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가계부채가 주택을 소유하거나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므로 굳이 주택을 소유하지 않고도 훨씬 적은 부담으로 쾌적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우리의 행복지수도 훨씬 높아지지 않을까? 코워킹 코리빙 라이프 스타일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나의 생활을 간소화하는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생활공간에는 정말 많은 물건들이 쌓여있으며, 오히려 이들에 눌려 지내게 된다. 특히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의류, 그리고 책, 수천 가지의 생활용품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기 때문에 혹자는 가지고 있는 짐을 버려서 한 평의 공간을 확보하면 수천만 원 (아파트 한 평에)을 벌 수 있다고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문제들을 한꺼번에 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코워킹 코리빙 스페이스가 제공되고 여기에서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일하고 거주하며 기존의 주택들은 팔아서 가계부채를 줄이고 가계가 가지고 있는 불필요한 많은 살림살이들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최소한의 것들로 살아가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경제구조도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협동조합이나 스마트 컨트랙으로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경제도 구상해 볼 수 있다. 신뢰가 낮은 사회에서도 블록체인경제는 거래의 비용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모두가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스트레스가 적고 워라밸(워크 라이프 밸런스)를 이룰 수 있지 않나 한다. 결국 미래의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삶의 방식, 가치의 기준,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에 대하여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일자리 역시 정규직만을 고집한다면 해답이 없다고 본다. 각자의 재능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로 전환되어야 한다. 각자의 역량에 따라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이나 기관에 제공하는 수많은 1인 기업들이 탄생하게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 모두가 전세계가 직면한 공동의 문제들-기후변화, 빈곤의 문제, 식량과 물 부족의 문제, 건강과 보건, 교육의 격차 등을 함께 해결해 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할 때 세계적인 리더십을 가지는 나라로 자리 잡아가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퍼팩트 스톰 즉 한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때 미래를 위하여 내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라이프 스타일을 재점검해야 할 때라 생각한다./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

2018-04-23 이남식

[이영재 칼럼]남북정상회담에 부쳐

北 선언, 핵 실험 중지일뿐 포기는 아냐완성된 핵무기 쥐고 테이블에 앉을 수도전세계 생중계 '김정은 쇼 타임' 될까 걱정文대통령 '완전 폐기' 당당하게 주장해야평창 올림픽이 끝난 지 석달도 지나지 않았다. 그 기간 남북 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이 일어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실험과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 발사를 거듭한 끝에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 단추가 내 손 안에 있다"며 미국을 협박한 게 지난 연말이다. 주기적으로 터지는 '○월 위기설'로 B-1 등 미국의 전략 자산이 전개돼 한반도의 긴장이 극에 달했던 것도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런데 올림픽 개막식에 김여정이 전격 방문한 후 상황이 급변했다. 우리 특사단이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나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하고 돌아왔다. 여기에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내정자가 북한을 극비리에 방문해 김정은을 만나기도 했다.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속도가 너무 빨라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이런 속도로 달려가도 되는지, 그러다 갑작스러운 돌발 사태로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이 될지 걱정이 앞선다.그러던 중 지난 토요일 북한이 핵실험장 폐기와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을 기습적으로 선언하고 나왔다. 2013년 3월 제시했던 경제·핵 병진 노선을 공식 폐기하는 대신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새로운 전략 노선을 내놓은 것이다. 그동안 우리와 미국이 요구한 것은 핵무기를 포함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였다. 하지만 이날 선언으로 시야가 밝아진 게 아니라 오히려 안갯속으로 더 깊이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다. 이번 선언은 핵과 ICBM 실험만 중지키로 했을 뿐, 완전한 핵 포기를 언급한 것은 아니다. "핵무기가 완성됐으니 그동안 실험장비들은 이제 모두 폐기한다"로 들릴 뿐이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의 지적이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그는 "이번 발표는 핵 실험을 중단한다는 내용이지 핵 선제 사용이나 핵기술 이전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아니며, 핵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실험의 중지'일 뿐 '생산의 중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27일 남북 정상 회담에서는 종전 선언으로 평화체제 방안을 논의한다고 한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1991년 제5차 남북 고위급회담 기본합의서에는 '정전 상태의 평화 상태로의 전환'을 명시한 바 있다. 2007년 노무현 김정일의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한다'고 적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합의는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 이 뿐인가. 김정은 체제인 2012년 2·29 합의에서도 핵실험 중단과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에 동의해 놓고 두달도 지나지 않은 4월13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제 북한은 이미 완성했을지도 모를 핵무기를 쥐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과연 우리는 여기에 대적할 협상 카드를 쥐고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모든 것을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해야 한다. 판문점이라는 분단의 현장에서 만난다는 역사적 의미에 너무 함몰돼서도 안된다. 이번 회담은 전 세계로 생중계된다고 한다. 자칫 '김정은 쇼 타임'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북한은 2008년 6월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을 전 세계로 송출하는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다. 결과는 참담했다. 이번 회담에 온 국민이 기대에 부풀어 있다. 언론도 장밋빛 전망이다. 불안한 정전 체제를 청산하고 남북이 평화롭게 살자는데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많은 국민들이 겉과 속이 다른 북한의 전략에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들을 안심시킬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동안 있었던 두 번의 정상회담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문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를 거울삼아 세 번째 정상회담에 임해 주길 바란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04-23 이영재

[윤상철 칼럼]사회적 민주주의로 문열기

사회적 차별·지배 쉽게 발견되지만찰과 상처럼 취급돼 방치되기 쉬워미봉적 타협 불과한 민주주의조차제대로 실현하기에는 항상 어렵고깊은 민주주의 실현 더더욱 힘들다이른바 '제3의 물결' 민주화가 1970년대 중후반부터 20여년 이상 전 지구를 휩쓸었다. 대표적 민주주의 논자였던 길레르모 오도넬은 민주주의를 3차원으로 나누고, 정치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의 문열기에 불과하고 경제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민주주의로 확산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정치적으로 의례화한 최소요건 민주주의로 전락했다. 경제적 민주화는 신자유주의의 지구적 지배상황에서 저항의 주체들이 약화되면서 정체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민주주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민주화 이전의 상황을 보자. 권위주의적 가족 안에서 명령하는 아버지와 복종하는 자식이 있고, 어머니는 그 갈등관리에 지쳐 있다. 기업조직 안에서는 권위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임용 및 인사 과정의 시혜를 미끼로 성적 지배와 학대까지도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교회 안에서는 신처럼 군림하는 성직자와 힘없는 평신도들 사이에서 교리해석과 신앙행위에 대한 독점적 지배관계가 자연스럽다. 지역 간에도 패권주의적 지배와 실리적 복종이 요구된다. 학교 안에서도 봉건적 권위주의와 자본주의적 교환으로 구성되는 교사와 학생 간의 비민주적 관계가 발견된다. 세대 간에도 노동현장에서도 이 모든 전(前)민주주의적, 비민주주의적 관행이 여전하다. 우리가 아는 한, 체제의 이행은 단속적이다. 역전되기도 하고 건너뛰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체제진전이 그들에게 준 자존감과 행복감을 기억하고 이행의 지속을 선호한다. 따라서 경제적 민주주의가 정체하더라도 사회적 민주주의의 진전은 계속된다. 지역불균형 발전을 극복하고 지역차별과 패권을 철폐하는 일은 지속 될 것이다. 노동자이든 근로자이든 차이를 가르는 명명들이 존재할지라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감소될 것이다. #Me Too를 내걸든 #With You를 내걸든 권력과 결부된 성적 차별과 폭력은 결단코 사라져 갈 것이다. 기대에 미흡하더라도 그 진전으로 인간의 품격이 높아진다면 사람들은 계속 나아갈 것이다. 모두가 다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해하지 말라고 말한다. 가해자들에게도 인격과 권리가 있고 사법적 판단 이전에 여론 재판을 가하지 말라고 한다. 스스로를 해명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고 가해자들을 옹호하기도 한다. 가해자에게도 가족이 있고 그들의 인권은 중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피해자들은 너무 어리고 판단 능력을 갖지 못할 수 있다고 한다. 여전히 권력을 가진 자들의 반격과 역주행에 유의하라고 충고한다. 심지어 다른 소수자들의 권리를 인식하고 그들의 상처와 피해까지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더 시선을 넓혀 다른 소수자와 연대하여 더 큰 민주주의를 이루라고 한다. 어떤 정치적 음모가 있다고 속삭이고,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를 줍고 있다고 핀잔하기도 한다.수용하기도 비난하기도 쉽지 않은 이러한 언설에 대해, 한 방송인의 말이 와 닿는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이제 그만 좀 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슬픔의 기한은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라, 유가족의 눈물이 멈출 때까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차별에 상처받은 이들에게 시한을 정하지 마라. 또한 사람들은 변증법적 발전을 상식적으로 수용한다. 다소 격하게 보이더라도 관행처럼 익숙해진 것들을 변화시키려면 그야말로 '역편향'까지도 수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폭력적 혁명의 최종적 결과는 별로 진보적이지 않은 민주주의이듯이 아직 크게 변하지도 않은 차별을 뿌리뽑기 위한 사회적 노력에 법과 제도에 근거한 차분하고 점잖은 태도를 조언하지 마라. 아직 아물지도 않은 자기 상처를 치유하기에 몰입하는 이들에게 다른 이들의 상처까지도 전가하지 마라. 각자 자기 상처의 고통을 말하면서 다소 불균형적 치유가 흡족하지 않더라도 보이는 것은 일단 치료하고 보자. 단 한 번의 촛불집회로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는다. 심지어 그 촛불집회를 야기한 농단조차도 쉽게 철폐되지 않는다. 사회적 문화와 관행에 깊이 녹아들어가 있는 차별과 지배는 쉽게 발견되지만, 찰과상처럼 취급되기 쉬워서 무관심과 방치의 대상이 되기 쉽다. 찰과상에 몰두해있는 아이를 가볍게 바라보면서 시선을 바꿀 것을 강요함으로써 그 뿌리까지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 모든 것의 출발에 불과한, 그런 의미에서 미봉적 타협에 불과한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실현하기는 늘 어렵고 보다 깊은 민주주의는 더더욱 실현하기 어렵다. 신문마다 무수한 기둥(column)들을 세우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를 떠받들기는 어렵기만 하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8-04-16 윤상철

[전호근 칼럼]빵과 물, 시인과 도둑

우리 아이들의 학교생활안전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선교내 출입통제 강화하거나경찰관 배치하는게 아니라빵과 물 나누는 따뜻한 마음 필요얼마 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인질극이 일어났었다. 많은 이들이 가슴을 졸였는데 다행스럽게도 인질로 잡혔던 아이는 무사히 풀려났고 용의자도 검거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의 현명한 대응이 눈길을 끌었다. 사건을 보도한 기사를 읽어보았더니 경찰관은 용의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에게 빵과 물을 건넸다. 이어서 용의자더러 아이에게도 빵과 물을 나누어주라고 청한 다음 틈을 노려 검거에 성공했다고 한다.인질극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아이가 안전하게 가족의 품에 돌아가기만을 빌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아이뿐 아니라 용의자 또한 무사히 검거되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나에게는 경찰이 건넸다는 빵과 물이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무슨 숭고한 물건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 빵과 물은 인질극이라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용의자에게도, 인질로 잡힌 아이에게도 건네져야 할 신성한 무엇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빵과 물은 예사 물건이 아니다. 용의자는 주림과 갈증을 해소하는 빵과 물을 건네받고, 또 그것을 아이에게 건네면서 순간이나마 마음이 느슨해졌을 것이다. 아이도 긴장과 공포와 갈증에서 잠깐 한숨 돌리는 순간이 되었을 테니, 둘 사이에 오간 팽팽했던 시간의 틈새가 극적인 해결을 가져왔으리라.그러다가 나는 만약 용의자가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누군가 그에게 빵과 물을 건넸다면 인질극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현실이 아닌 허구이지만,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에게 누군가 빵과 물을 건넸다면 어땠을까. 그가 빵을 훔쳐 감옥에 갈 일도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며칠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이 내 머릿 속에서 잊힐 무렵 마침 50주기를 맞이하여 새로 출판된 '김수영 전집(이영준 엮음·민음사)'을 펼쳤다가 저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김수영의 산문 '양계 변명'을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북동에서 마포 서강 강변으로 이사해 살던 김수영은 생활고를 줄여볼 요량으로 닭을 키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도둑이 들었다. 가난한 시인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지만 내가 더 놀랐던 것은 시인과 도둑의 첫 대화가 존댓말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이거 보세요, 이런 야밤에…" 대화의 첫 마디에 따라 이후의 상황이 얼마나 크게 달라지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도둑 또한 존댓말로 "백번 죽여주십쇼, 잘못했습니다!" 하고 용서를 빌었다. 이어서 시인은 도둑에게 집이 어딘지 물었고 도둑은 우이동이라 답했다. 우이동 사는 사람이 왜 이리로 왔느냐고 물으니 도둑은 그 이유는 자신도 모르며 여기서 잘 수 없는지 되물어왔다. 시인은 그가 취한 척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여보, 술 취한 척하지 말고 어서 가시오." 했더니 도둑은 두서너 발자국 걸어 나가다가 뒤를 돌아보며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하고 물었다고 한다.기막히게도 철조망을 넘어온 도둑이 어디로 나가야 하느냐고 물은 것이다. 시인은 도둑의 이 마지막 물음이 끝내 잊히지 않고 귀에 선하다고 했다. 도둑의 말을 단순히 문이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으로 이해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철조망을 넘어온 도둑이 다시 철조망을 넘는다면 그뿐이지만, 나가는 문을 물어 그리로 나간다면 적어도 다시 도둑질을 하러 가는 길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디로 가야 살아나갈 길이 있을 것인가. 결국 시인은 자신이 닭을 키우는 것도 도둑이 철조망을 넘어온 이유와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하며 자신과 도둑의 처지를 바꾸어 말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어 스스로 도둑이 되어 이렇게 말한다."백번 죽여주십쇼, 백번 죽여주십쇼,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김수영의 짧은 글 '양계 변명'은 이렇게 갈 곳 없는 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하는 자의 물음으로 끝난다. 이 물음에 어떻게 답할지는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나에게는 시인의 도둑과 이번 사건의 용의자가 같은 인물로 겹쳐 보였다. 어디로 나가느냐고 묻는 도둑이 더 이상 도둑일 수 없는 것처럼, 인질에게 빵과 물을 건네는 인질범은 더 이상 인질범으로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p.s. 우리의 아이들이 참으로 안전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은 출입통제를 강화하거나 학교에 경찰관을 배치하는 일이 아니라 빵과 물을 나누는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용의자는 아이를 붙잡으며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4-09 전호근

[이명호 칼럼]미래준비, 반복되는 위기의 고리 끊기

미래에 도전 없으면 지배 당해구글·3M 등 혁신적 기업들자율적 과제 수행 요구 이유는탐색의 중요성 인정하기 때문정부·기업, 지금과 다른 새로운것시도해 볼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기시감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 보는 대상이나, 처음 겪는 일을 마치 이전에 보았거나 경험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기시감보다는 '이미 본'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데자뷔라는 영화 제목이 더 익숙할 수도 있겠다.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금호타이어 매각 등 이전에 봤던 현상이 다시 반복되고 있는 느낌이다. 1997년 IMF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10여년 만에 또 위기가 시작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앞선다. 3년 연속 돈을 벌어도 빌린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이 외부감사 대상기업의 14.2%에 달한다. 한계기업의 대출 비중에서 대기업이 65.7%에 달하고 있다. 회생 가능성이 없음에도 정부나 채권단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대마불사 좀비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IMF 위기는 국내 대기업들의 과잉 중복투자에 따른 구조조정 위기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부동산의 과잉 신용을 담보로 한 중복소비에 따른 거품붕괴 위기였다. 그럼 현재의 위기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미래 준비의 위기라고 본다. 그 동안 우리 산업은 선진국의 산업을 모방해서 저렴한 생산비용으로 경쟁하는 방식이었다. 관리를 잘해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 경쟁력의 원천이었다. 기업은 경쟁자보다 싼 값에 물건을 더 팔 수 있어서 수익도 늘고, 임금도 오르는 성공의 과실을 맛보게 된다. 이 방식은 모방이 쉬워서 오래 가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일본이 서양에서 배우고, 한국이 일본에서 배우고, 중국이 한국에서 배우고, 베트남이 중국에서 배우는, 물이 흐르듯이 주역이 바뀌는 구조이다. 성공의 과실도 넘어가고 위기도 반복된다. 반복되는 위기를 끊고, 성공의 과실도 계속 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미래에 대한 준비와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우리 기업들은 성공의 과실을 따는 동안 투자를 기피하고,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깎고, 사내 보유금을 늘려왔다. 반복되는 다가오는 위기에 대한 대응이라는 소극적 대응의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무엇에 투자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은 경쟁력의 원천인 모방의 속도를 높여서 품질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선진국과 같은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는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더욱이 스마트 폰과 반도체, 자동차 등 일부 제품은 품질도 앞서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모방할 새로운 제품이 눈에 띄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는 자부심이 자만이었다는 것을 아는 데는 오래가지 않았다.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산업 인터넷, 빅데이터, 스마트 팩토리, 가상물리시스템, 블록체인 등 선진국들은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과 신제품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제품만 쫓다가, 제품이 나오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기나긴 연구개발의 과정, 즉 미래 준비와 투자를 놓친 것이다. 우리는 현재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았다. 미래는 선진국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만을 생각해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어제, 오늘과 같은 내일이 아닌 달라질 수 있는 내일,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미래 준비가 시작된다. 그것은 현재의 강점이 향후에도 유효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의 제기이다. 의문의 제기는 불안이 아니고, 불확실성에 대한 호기심이다. 새롭게 펼쳐질 미래는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영역이다. 밀림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탐색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가능성과 위험이 공존하는 과정이다. 현재의 이익을 놓고 다투는 과정이 아니고 미래의 이익을 위해 타협하고, 협력하고, 인내하고, 실천하는 과정이다. 미래에 대한 도전이 없으면 미래에 지배당하게 된다. 현재의 길을 쉬지 않고 달려간다고 미래에 도달하지 않는다. 구글, 3M 등 많은 혁신적인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자율적 과제 수행을 요구하는 이유는 바로 탐색의 중요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국가와 기업은 여유를 가지고 엉뚱한 상상을 하고, 지금과 다른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도록 북돋아 주어야 한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8-04-02 이명호

[이영재 칼럼]대통령 사주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라면아무리 좋은 사주라고 한들비극적으로 될 수 밖에 없어반복되는 역대 대통령 불행처럼나쁜 사주 만들지 않으려면권한 줄이는 헌법개정안 필요등에 업힌 아기를 본 노인이 "아이구, 그 녀석 대통령감일세"라고 하면 옛날 엄마들은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대통령이 된다는 데 싫어할 엄마는 없을 것이다.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유모차에 애를 태우고 가는데 누군가 "대통령감"이라고 하면 요즘 젊은 엄마들은 눈을 흘기며, 화부터 낸다고 한다. 물론 웃자고 하는 얘기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을 떠올리면 웃음은커녕 우울하다 못해 슬퍼지려고 한다.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이국만리 머나먼 하와이에서 숨을 거뒀다. 지금은 그 누구도 초대 대통령의 유해를 이 땅에 모셔오자는 사람이 없다.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잊힌 인물이 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가장 믿었던 부하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대통령과 그의 친구 노태우 대통령은 내란 음모죄를 비롯해 여러 가지 죄목으로 옥고를 치렀을뿐더러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박탈당했다. 그래서 어느 방송에선 그냥 '전두환씨 노태우씨'라고 불리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감옥에 가지는 않았지만 "대통령 시절 정말 행복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감옥에 간 자식 때문에 편하게 눈을 붙이지 못하고 긴 밤을 뒤척여야 했다. 민주화 동지였지만 생전에 둘은 갈등하면서 지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허공에 육신을 던짐으로써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지금 그들은 모두 감옥에 있다. 그런데 금쪽같은 내 아이가 대통령이 될 상이나 사주를 갖고 있다면 좋아할 부모는 없다. 생각만 해도 끔찍할 지경이다.대한민국 거의 모든 신문이 '오늘의 운세'를 싣는다. 우리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독자 중 기독교 신자도 많을텐데 그런 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그날 신문 기사중 '오늘의 운세' 인기는 꽤 높은 편이다. 공표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많이 읽힌다. 맞으면 좋고 틀려도 그만인 심심풀이를 독자들이 정치 사회면 톱기사 보다 더 열심히 찾아 읽는 이유를 단지 '로또'를 사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국민이 원래 그런데 관심이 많다. 신년호 특집이나 큰 선거를 앞두고 출마자 관상과 사주를 경쟁하듯 싣는 것도 이런 '오늘의 운세'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만큼 많이 읽히기 때문이다. 언론에 보도된 후보들의 사주는 여기저기 살이 더 붙어서 '카더라 통신'이라는 바람을 타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흘러다닌다. "OOO 역술인이 그러는데 이번 대통령은 OOO가 된다더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사주뿐인가. 대한민국을 떡 주무르듯이 하는 유력 정치인들이 좋은 집터를 찾아서 집을 옮긴 것이 공공연하게 기사화되기도 한다. 옛날 자료를 찾아서 일일이 대통령의 사주를 논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후 모두 용비어천가급 찬사를 남발했지, "나쁜 사주"라고 말한 역술인은 단 한 명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선자들에게 "하늘이 내려준 사주를 타고 났다"고 한 것은 그냥 의례적인 공치사였다는 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사주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나쁜 사주로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역술인들을 만나 얘길 들어 보면 대통령이 되려면 반드시 좋은 사주를 타고 나야 된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대통령 앞에 늘 붙어다닌 '제왕적'이라는 그것이 대통령의 사주를 꼬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현행 무소불위 제왕적 대통령제라면 아무리 좋은 사주를 받고 태어나 대통령이 된다 한들, 비극적인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현 대통령제의 불합리한 시스템이 비극적 대통령을 만드는 주범이다. 반복되는 전직 대통령의 비극을 더 이상 사주 탓이라 할 수 없다. '대통령 사주'를 나쁜 사주로 만들지 않으려면 대통령 권한을 현실적으로 줄이는 헌법개정안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도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 한 명쯤은 가져도 될 때가 됐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03-27 이영재

[홍창진 칼럼]부부공존의 미학

상대에게 뭔가 바라는건 욕심'너 아니면 죽는다'는 식의환상과 기대 갖기 때문에 불행배우자와 가까워질 수 있는 말은"나 요즘 왜 이렇게 힘들지?"별것 아니지만 상대방 마음 움직여신부로 살면서 결혼을 시킨 커플만 수십 쌍이다. 혼배성사 날짜가 잡히면 식전에 신랑을 불러 슬쩍 물어본다. "왜 이 여자랑 결혼할 생각을 했습니까?" 대부분 "잘은 모르겠는데 결혼은 이 여자랑 해야 한다는 감이 오더라고요"하고 대답한다. 신부에게도 따로 물어본다. "왜 하필 이 남자입니까?" 이런저런 대답이 나오지만 공통적으로 "다른 건 모르겠는데, 저한테 잘해줘요"라는 말이 나온다.그럴 때 속으로 '결혼하고 조만간 찾아오겠구나' 생각한다. 그 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십중팔구 못 살겠다며 찾아온다. 주례할 때 AS를 보증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여자가 미쳤나 봐요. 집안일은 하나도 안 하고 친구만 만나러 다녀요.""매일 회사로 데리러 오던 남편이 요새는 전화도 잘 안 받아요.""결혼 전이랑 너무 달라요. 뭐든 다 해줄 것처럼 굴더니, 사사건건 간섭만 해요."해결될 문제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결혼은 AS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애초에 고장 난 물건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하자가 있었으니 되돌려 놔봐야 고물이다. 고칠래야 고칠 수 없다는 걸 모르고 어떻게든 바꿔보겠다고 아우성이니 답답할 노릇이다. 착각해서 결혼을 하고 망각해서 재혼을 한다. 좀 부실해도 고쳐 쓰면 될 거라는 착각 때문에 결혼하고, 결코 고칠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해서 재혼을 한다. 결혼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이혼하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최소한 그놈 때문에, 그녀 때문에 내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하지는 말라는 거다. 결혼해서 한집에 살게 되었지만 여전히 인생은 각자 살아야 한다. 그걸 알고 자기 주도적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은 결혼해서 사는 게 좀 힘들더라도 배우자 탓을 하지 않는다. 결혼 역시 자기 선택으로 결정한 일이라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애걸복걸해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 애걸복걸을 들어준 것은 결국 자신이 아닌가? 그를 선택한 것이 나이니, 그와 함께 사는 것도 내 몫이다. 물론 속된 말로 '사기 결혼'을 당해 도저히 살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결혼 생활의 문제는 배우자에게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배우자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내 마음에서 비롯된다. 상대로 인해 이익을 보려는 마음, 상대를 내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생각 때문에 힘든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상대를 바꾸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결혼 생활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살면서 여러 사람과 인연을 맺는다. 그중에 결혼의 인연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니 결혼을 한 배 탄 것에 비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은 한 배를 탄 것이 아니라 함께 갈 배 한 척이 내 곁에 온 것뿐이다. 그럴 거면 뭣하러 결혼하냐고? 그렇게 생각해선 안 된다. 망망대해를 홀로 헤쳐가야 하는 외로운 인생에서 같은 곳을 향할 이웃 배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다. 거친 풍랑을 만나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이웃 배가 옆에 있다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결혼이 딱 그렇다. 배우자를 그저 옆에 있는 배이려니 하면 훨씬 편하게 살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상대에게 뭔가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이다. 기대와 욕심이 채워지지 않아 힘들어 해봤자 자기만 손해지 변하는 것은 없다. 반대로 기대와 욕심을 버리면 상대방이 해주는 아주 작은 것에도 고맙고 정이 생겨난다. 죽도록 사랑해야 하고, 너 아니면 죽는다는 식의 환상과 기대를 갖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이렇게 얘기해 놓고 나니 결혼생활을 마치 수행자의 삶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배우자와 가깝게 지낼 수 있는 말 한마디를 알려 드리겠다." 나 요즘 왜 이렇게 힘들지?"별것 아닌 말이지만, 어설픈 훈계 혹은 위로보다는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말이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인다./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2018-03-26 홍창진

[방민호 칼럼]봄에 통영으로

그리운 박경리 선생님의 고향홀로 원주서 25년 '토지'와 싸우던그분 생각하며 서피랑에 오른다깊이 세속 물든 속물 같은 사람이그래도 세상 끝에 와 서니 좋다맑은 바다에 몸 깨끗이 씻고 싶다3월 이른 봄에 통영에 간다. 박경리 고향 통영이다.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전혁림의 고장 통영이요, 문학연구가 김재용의 고향 통영이다. 아침 8시 25분 용산발 케이티엑스 열차다. 옛날에는 용산에서는 호남만 갔는데, 이제는 용산에서 마산도 가고 부산도 간다. 서울역에서 목포도 간다. 참 좋은 변화다. 옛날에 시인 백석이 통영 처녀 박경련을 사모해서 그곳에 갔다 했다. 그때 마산까지 가서 거기서는 배를 타고 갔다 했다. 친구 허준의 결혼식에서 만난 그녀를 그는 마음에 두었고, 그래 세 번이나 그녀를 만나러 그곳에 갔다 했다. 친구 신현중이라는 사람이 주선을 놓았다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그가 그녀와 맺어지고 말았다. 세상에는 이런 아이러니가 많다. 마산역에서 내려서는 버스를 타고 통영으로 향한다. 한 시간 걸렸을까, 도착한 우리가 처음 찾아든 곳은 물론 식당,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 점심 메뉴로 생선구이가 나왔다. 고등어는 알겠고, 나머지는 분명치 않아 묻는데, 어느 한 분께서 이건 돔이고 이건 서대고 이건 뭐라고 가르쳐 주신다. 아무래도 바닷가에서 자란 분만 같다. 이에 덧붙이는 말씀, 서대와 박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씀인가 궁금해들 하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서대는 검고 박대는 불그스름하단다. 또 말려서 찌면 서대는 박대보다 살이 깊단다. 마지막으로 서대는 남해안에서 나고 박대는 서해안에서 난다기도. 햐. 잘도 아신다. 그러자 시인 백석 생각이 바로 난다. 백석 수필 가운데 '동해'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백석은 운치 있고 맛깔스럽게 동해안 풍경을 읊어가다 말고 뜬금없이 툭 이런 말을 던진다. "……그대나 나밖에 모를 것이지만 공미리는 아랫주둥이가 길고 꽁치는 윗주둥이가 길지."하, 공미리라. 공미리가 뭐냐. 옛날에 이 수필을 읽고 백과사전을 찾아본즉, 공미리란 학꽁치의 다른 말이라 했다. 그러자 저절로 무릎이 쳐졌다. 학꽁치와 꽁치, 생긴 것은 비슷한데 한 놈은 아랫주둥이가 더 길고 또 한 놈은 윗주둥이가 더 길다는 것이다. 문인이 이렇게 섬세하게 바다 것을 잘 아는 수도 있을까.서대와 박대를 이렇게 간명하게 구별하는 걸 보면 세상에는 자연을 속세보다 더 잘 아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부러운 일이다.이제 우리는 세병관으로 향한다. 통영은 옛날에 통제영이 있던 곳, 여기에 서울의 경회루, 여수의 진남관과 더불어 한국에 남은 웅장한 목조 건축물의 하나, 세병관이 우뚝 서 있다. 여기서 걸어서 조금만 가면 서문고개, 통영성의 여러 문의 하나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그곳에서 문호 박경리 선생이 세상에 났다. 우리는 박경리 선생의 생가를 찾아 큰 길에서 좁은 골목으로 꺾어든다. 리어카도 다니지 못할 작은 골목 안쪽 어디에 박경리 선생 생가라는 붉은 벽돌 두 장 정도 크기밖에 안 되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박경리 하면 나는 눈물이 날 만큼 그리운 분이다. 세상 뜨시던 해 봄에 근황을 여쭈러 갔더니 말씀이 이리 흩어지고 저리 흩어졌다. 전에 없이 그러시기에 이상도 해서 어디 몸이 아프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을 나중에 알고 보니 '늘어놓으신' 것이었다. 연말에 회를 잘못 먹은 게 탈이 나서 이렇게 오래간다는 것이셨다. 하지만 그때 이미 선생께서는 당신의 깊은 병을 알고 계셨다. 홀로 원주 들어가 25년을 '토지'와 싸우던 그분 생각을 하며 거기서 멀지 않은 서피랑에 오른다. 바람이 따뜻한 날 답지 않게 자못 차다. 통영 포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얀 건물들과 흰 물감 섞은 하늘색 물감 풀어놓은 것 같은 바다.세상 끝에 와 있는 것 같다. 너무 깊이 세속에 물든 속물 같은 사람이, 그래도 세상 끝에 와 서니 좋다. 저 맑은 바다에 몸을 깨끗이 씻어내고 싶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8-03-19 방민호

[이남식 칼럼]징벌적 손해배상

기업이윤 위해 사회적 책임 망각거짓말 일삼고 다시 영업한다면국제사회에서 낙인찍히게 될 것징벌적 피해보상제 서둘러 확립개인·사회적 피해 보상받도록개헌과 맞물려 심사숙고해야최근 미국의 온라인 비디오 서비스인 넷플릭스에서는 '검은 돈'이란 일련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1970년대 1천700만대의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불과 3만8천대를 팔던 폭스바겐이 전세계 제1의 자동차 메이커로 부상하기 위해 가솔린 엔진 대신 디젤 직분사 TDI엔진으로 미국시장을 공략했다. 디젤엔진의 문제는 연비는 좋으나 미세먼지와 질소화합물을 배출하므로 가솔린 차량에 비해 공해를 많이 배출하게 된다. 따라서 벤츠나 BMW와 같은 회사에서는 요소수를 이용해 공해를 저감시키는 장치를 달았으나 기술특허의 문제와 20ℓ 요소수 통이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기 위해 폭스바겐에서는 배출가스를 다시 태워서 공해물질을 저감하는 방식을 채택, 자신들의 엔진은 클린디젤로 가솔린엔진 보다 공해 물질을 덜 낸다고 오랜 기간 캠페인을 해 많은 사람들이 이를 믿게 됐고 결국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생산 판매하기에 이르렀다.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환경단체에서 디젤엔진이 가솔린 엔진보다 공해 배출이 적음을 보여 더욱 많이 사용토록하기 위해 실험하는 과정에서 전혀 예기치 않았던 결과를 얻게 된다. 즉 주행 중에 폭스바겐의 TDI엔진은 알려진 것보다 40배나 많은 질소화합물을 배출해 공기를 오염시키고 스모그를 생산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결국 오랜 공방을 통해 공해를 저감시키는 장치가 소프트웨어적으로 실제 주행이 아닌 공해측정 장치 위에서 측정 될 때에만 작동하도록 (즉 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검사 모드로 인식) 해 여러 가지 환경인증을 통과하는 조직적인 범죄를 장기간에 걸쳐 범했다. 1천100만대가 넘는 차량에 이런 TDI엔진이 장착돼 판매됐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 이후에 판매된 폭스바겐 차량 중 약 20만대에 해당 엔진이 장착돼 그간 우리 사회에 입힌 폐해는 엄청나게 크다 할 수 있다.미국에서는 당연히 폭스바겐에 대해 구매자나 연방정부 차원의 소송이 진행돼 중고차로 판매할 수 없게 된 약 40만대의 구 차량을 폭스바겐이 다시 구매해 현재 미국의 여러 항구나 사용하지 않는 대형경기장 주차장에 이를 모두 쌓아놓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5조원에 달하는 벌금을 미 정부에 내면서 소송을 마무리하는 등 미국에서만 총 17조9천억원에 달하는 징벌적인 배상을 실시했다. 폭스바겐이 미국의 피해고객과 환경오염에 대한 배상액으로 153억 달러, 우리 돈으로 17조9천억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2.0L TDI 디젤엔진을 장착한 폭스바겐 차량소유자 47만5천명 전원에게 일단 대략 591만원에서 1천100만원까지 배상금을 지급했다.문제는 징벌적 배상 규정을 두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의 피해자들에게는 거의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미국과 크게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물리적인 피해를 단지 보상해 주면 되는 피해보상제도로 말미암아 미세먼지로 시달리는 사회 전체적인 피해에 대하여는 대상 기업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단지 수십억 원의 과징금이나 해당 제품에 대한 인가 취소 정도가 이뤄졌을 뿐이다. 올해 들어 폭스바겐은 다시 신차를 들여다 판매를 시작하고 있으며 한국에 대한 사회적 보상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있다. 우리 사회는 원천적으로 문제를 고치고 개선하려는 노력보다는 일과성으로 문제시하다가 곧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세월호 사건 이후 연안여객선의 안전이 실제로 개선됐는지 또는 화물 적재 시 제대로 결박을 하는지, 선체에 대한 불법적인 증·개축은 없는지 똑똑히 따지는 사람은 별로 없이 잊혀져 가고 있다.넷플릭스의 '검은 돈'에서는 폭스바겐을 인류에게 두 번 독가스를 마시게 한 기업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돌프 히틀러가 미국의 포드자동차를 벤치마킹해 독일 국민 모두가 탈 수 있는 국민차로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한 연구기관을 통해 디젤엔진 배기가스를 피험자에게 노출시켜 건강에 문제가 없음을 보여주는 생체실험 계획이 발견돼 두 번의 가스 흡입 사건을 알려주고 있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고 거짓을 일삼은 기업이 아무런 반성이 없이 이 땅에서 버젓이 다시 영업을 한다면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망각하는 사회로 국제사회에서 낙인찍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여러 차례 입법했으나 번번이 대륙법체계에 맞지 않는다하여 실패한 징벌적 피해보상 제도를 하루 속히 확립하고 개인의 피해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피해에 대해 우리 사회 전체가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헌법 개정과 맞물려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

2018-03-12 이남식

[윤상철 칼럼]'저녁이 있는 삶'은 가능한가?

양극화·실업·고용불안정 속에서'저녁이 있는 삶' 같은 환상보다'국민성공시대' 같은 현실 택했던국민들 뭔가 다른 생각하기 시작물질적 욕구 다 채워졌을때주어지는 덤이 아니기 때문이다2012년 대선주자 손학규는 '저녁이 있는 삶'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자정을 넘어 귀가하기 일쑤인 회사원들과 대학입시 학원을 전전하는 고3들의 노곤한 일상까지 다독여주는 따뜻하고 품격있는 슬로건이었다. 개인의 자유, 삶의 질, 공동체에 대한 존중 등과 같은 탈물질적 욕구를 국민들에게 약속하는 호소였다. 40줄을 넘어선 장년들은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돌아 고이시는" 장면을 상상했을 듯하다. 영화 '원더'에서 '옮음과 친절함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을 선택하라'는 말처럼 정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성적 정의 대신에 감성적 친절을 내세운 슬로건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국민성공시대'를 내건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고, 그의 정의로운(?) 목표, 이른바 '747공약'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의 경제적 성공만을 목표로 국민들을 내몰았다.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자유를 앗아갔다. 외환위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신자유주의는 과거의 발전지상주의를 불러들이면서 더 정의로운 사회적 가치이자 삶의 양식이 되었다. 우리 사회는 더 자본주의적이고, 더 시장지향적이며, 더 경쟁지상주의적인 모습으로 변모해갔다. 도덕적 경건함, 행복과 즐거움, 휴식과 평안, 가족과 공동체를 찾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에서도 시장과 경쟁, 사적소유와 빈곤, 서열과 차별 등이 더 자연스러웠다. 신에 대한 경배, 사람에 대한 사랑과 용서, 자신의 죄악에 대한 반성과 회개의 공간인 교회에서는 더 많은 신도, 더 많은 헌금, 더 큰 교회당을 두고 경쟁한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그 가족들의 상처를 위로하는 빈소에서 그 자손들의 사회적 성공 네트워크를 드러내는 근조문구들이 경쟁한다. 결혼식장에서는 본인과 부모의 출신과 성공을 보여주는 화환들이 경쟁한다. 심지어 고단한 사회생활에서 벗어나 심신의 휴식을 취하려는 동호회 활동에서도 사회적 지위의 우열경쟁과 그에 따른 갈등, 심지어 운동능력의 차이를 둘러싼 과도한 경쟁과 차별, 구별짓기가 난무한다. 고교 동문회는 주식투자와 부동산 투기를 위한 정보교류의 장에서 경제적 성공에 걸맞은 감투를 흥정하는 투기판으로 변해간다.그 와중에 평창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올림픽 기간에는 항상 금메달 수와 (우리나라만 센다고 알려져 있는) 국가순위, 그리고 메달리스트들의 판에 박힌 성공담이 언론을 뒤덮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느 때와 달랐다. 처음에는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이 뉴스를 압도하다가 중후반으로 가면서 우리 선수들의 경기 자체에 온 국민들이 분노하고 환호하면서 몰입하는 양상을 드러냈다. 이성적 정의로움에 식상해 하면서 감성적 정서로 소통하는 모습은 이전과는 달라 보였다.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에 분노한 국민들은 의성 '팀킴'의 여자컬링에 환호를 보냈다. 이전에도 올림픽을 보던 국민들을 격분케 한 일들이 여럿 있었다. 쇼트트랙의 김동성, 펜싱의 신아람, 피겨의 김연아 등의 사례들은 선수의 속임수, 심판의 오심, 주최국의 정치적 영향력 등이 스포츠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그 본질인 공정성을 앗아가 버린 사건들이었다. 이와 달리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국민들이 분노한 이유는 저조한 실력이나 불공정성이 아니었고, 팀워크를 붕괴시킨 선수간의 불화와 그러한 사태를 촉발한 빙상연맹 내부의 파벌갈등이었다. 이에 반해 여자컬링은 5명의 선수들이 교환하는 눈빛과 열정적인 사투리를 들으면서, 국민들은 소외와 차별을 이겨내고 '하나의 팀'을 만들어낸 그들의 동지애와 노력을 느끼면서 더 큰 하나가 되었다.선수들이 분열하면 국민들은 통증을 느꼈고 서로 화합하면 편안한 행복감을 느끼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게임에 승리하여 메달을 획득하면 온 국민이 열광하면서 쾌감을 느끼고, 불공정한 상황에서 패배하면 분노하던 이전의 상황이 바뀐 것이다. 지극히 경쟁지상주의적이고 능력위주의 사회를 추구해왔던 국민들이 이제는 동일한 경쟁을 보면서 다른 가치와 느낌을 찾고 있다는 기대감이 든다. 사회적 양극화와 실업, 고용불안정 속에서 '저녁이 있는 삶' 같은 환상보다는 '국민성공시대' 같은 현실을 선택했던 국민들이 뭔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는 희망이 떠오른다. '저녁이 있는 삶'은 물질적 욕구가 다 채워졌을 때에 결과로써 주어지는 덤이 아니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8-03-05 윤상철

[전호근 칼럼]이름 이야기

고전 구절 인용 작명하는 이유는동아시아의 오랜 지적 전통을복원하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내가 되살리고 싶은 것은오랫동안 지켜온 삶의 문법이고 그중 하나가 이름에 담겨 있다가끔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이들이 있다. 내가 이름을 짓는 방식은 작명가들이 짓는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 주로 고전 구절을 따서 이름을 짓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동아시아의 오랜 지적 전통을 복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통의 복원이라니까 오해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권력으로서의 전통은 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되살리고 싶은 것은 우리의 지식인들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삶의 문법이다. 그중 하나가 이름에 담겨 있다.옛사람들은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명나라 말기의 학자 방학점(方學漸)은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방이지(方以知)'라는 구절을 따서 손자의 이름을 지었다. 올바른 도리를 지켜 지혜로워진다는 이름 덕택인지 방이지(方以智)는 고금과 동서의 지(知)를 망라하는 대지식인이 되었다. 그 자신의 이름인 학점(學漸)도 주역의 점(漸)괘에서 착안한 것으로 삼대가 주역학자였던 집안다운 이름 짓기라 하겠다.방학점의 선배격인 명나라 중기의 유학자 담약수(湛若水)의 이름은 장자의 군자지교담약수(君子之交淡若水)에서 따온 것으로 '담(淡)'을 자신의 성(姓)인 '담(湛)'으로 바꾼 것일 뿐이다.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맑다는 뜻인데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다.18세기 조선의 인물 중에는 멋진 이름을 가진 이가 많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건 다산 정약용이다. 그의 이름 '약용(若鏞)'은 서경에 나오는 말이다. 다만 '약용(若鏞)'이라는 표현 그대로는 안 나오고 '약금(若金)'으로 찾아야 나온다. 서경 열명편에는 은나라의 고종이 부열을 등용하면서 "만약 쇠붙이일 것 같으면 너로 하여금 숫돌이 되게 하리라(若金 用汝作礪)"고 했는데 여기서 '만약 쇠붙이라면'이라는 뜻인 '약금(若金)'을 취한 것이다. 다산의 아버지는 이에 착안하여 아들형제의 이름에 모두 쇠금(金)자를 넣어서 '약전(若銓)', '약용(若鏞)' 등으로 지었다. 세상을 바로 잡는 저울(銓)이 되고 세상을 울리는 큰 종(鏞)이 되어 사람들을 깨우치라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이름이 좋아서인지 두 사람은 모두 이름값을 했다.'청장관전서'를 남긴 이덕무(李德懋)의 이름도 서경에서 따온 것이다. 서경 중훼지고에는 탕임금의 공덕을 들면서 '덕이 훌륭한 사람에게는 관직을 주어서 덕에 힘쓰게 했다'는 덕무무관(德懋懋官)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덕무의 이름은 덕무(德懋)이고 자는 무관(懋官)이다. 합치면 덕무무관(德懋懋官), 서경의 글귀와 똑같다.'북학의'를 지은 박제가(朴齊家)의 이름은 제가(齊家), 자는 수기(修其)였다. '제가'는 대학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제가이고, '수기(修其)'는 수기(修己) 또는 수신(修身)과 같은 의미로 재수기신(在修其身)에 따온 이름이니 자와 이름을 모두 대학에서 취한 것이다. 이 두 사람 또한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하지만 이름이 좋다고 반드시 이름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현대 신유학자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던 양수명(梁漱溟)의 아버지는 이름이 제(濟)였고 자가 거천(巨川)이었다. 이 또한 서경 열명편에서 "만약 큰물을 건널 것 같으면 너로 하여금 배와 노가 되게 하리라(若濟巨川 用汝作舟楫)"고 한 대목 중 큰물을 건넌다는 뜻인 '제거천(濟巨川)'에서 따온 것이다. 양제의 아버지는 아들이 큰물을 건너는데 쓰이는 훌륭한 재목이 되라는 마음을 담아 이렇게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제는 청나라가 망하자 서세동점의 큰물을 건너지 못하고 적수담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다.벌써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나는 아들의 아명을 '웅비(熊비)'라고 지었다. 본명을 짓는 것은 할아버지의 몫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아명을 지었는데, 곰 웅(熊)자와 곰 비(비)자를 썼다. 웅비(熊비)는 시경의 시 사간(斯干)에 "곰 꿈을 꾸는 것은 사내아이를 낳을 조짐이다(維熊維비 男子之祥)"라고 한 데서 따온 것이다. 아들아이를 낳기 전 아내가 태몽으로 곰 꿈을 꿨기 때문이다. 시경의 구절대로 태몽을 꾼 셈이니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2-26 전호근

[홍창진 칼럼]가상화폐까지 간 욕망

돈 추구하는건 나쁘지 않지만인생목표 1순위로 두는게 문제내 뜻대로 안된다는걸 인정하고부자에 대한 개념부터 바꿔야더 벌기위해 애쓰는것 보다자기삶 만족할줄 아는게 '부자'금의 보유량을 전제로 그 비율에 따라 달러라는 화폐를 만들었다. 이것은 금이라는 현실을 근거로 한 것이다. 화폐는 유가증권으로도 주식으로도 변할 수 있지만 그 근저에는 금이라는 현실이 있다. 그런데 최근 가상화폐의 관심은 매우 뜨겁다. 현실이 아닌 가상을 근거로 화폐를 만들고 그것을 유통하면서 인간이 이제 현실의 욕망을 넘어 가상의 욕망까지 탐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도대체 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돈만 있으면 인생은 정말로 행복한 것일까? 그렇다고 돈을 무시하고도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일까?성경 구절 중에 신자들이 참 안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부자 청년에 관한 일화이다. 어느 부자 청년이 예수를 찾아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참고로 그 청년은 평소에 선행도 많이 하고 교회가 가르치는 계명도 엄청 잘 지켰다). 그 질문에 예수는 "마지막으로 네가 가진 것을 전부 팔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청년은 아무 대꾸도 못하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갔고, 예수는 그 자리에 있던 제자들에게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 나오는 것이 더 쉽다"라고 말씀하셨다.현실적으로 보자면 참 갑갑한 이야기다. 어릴 적에 이 이야기를 듣고는 참 원망스러웠다. 그 부자 청년의 심정이 꼭 내 마음 같았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나는 부자가 아니니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다' 하는 자조(?) 섞인 생각과, '바늘 귀 못 빠져나와도 좋으니 부자 한번 돼 봤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교차했다.솔직히 부자 되기 싫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만 해도 신부가 되기 전까지 가장 큰 소원은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필 어릴 적 옆집에 살던 친구네가 엄청난 부자였는데, 2층 양옥에 연못까지 있는 그 집에 놀러 갈 때마다 이런 집에서 하루만 살아보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가죽 냄새가 폴폴 나는 커다란 소파에 몸을 묻고는 기필코 부자가 되고 말겠다는 의지를 다지곤 했다.신부가 되고 나서 그 마음은 옅어졌지만, 지금도 돈에 대한 욕심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성경 속에서 예수님이 한 말도 무작정 돈 욕심을 버리라고 한 뜻은 아니라고 본다. 예수가 묻고 싶었던 건 돈에 대한 그 청년의 마음가짐이었을 거다. 가진 것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베풂을 강조하기에 앞서 재물을 1순위에 두는 한 인생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치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돈을 추구하는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다만 돈을 인생 목표 1순위로 두는 게 문제다. 돈은 좇는다고 잡아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설혹 잡았다고 해도 그 자체가 행복과 직결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주 부근 성당에 있을 때 4대강 개발 덕에 땅값이 평당 10만원에서 200만원이 된 곳이 있었다. 그 때 마침 내 지인과 그의 친구 몇이 그곳에 땅이 있었다. 지인의 친구들은 이때다 싶어 땅을 팔았지만, 내 지인은 땅값이 더 오르려니 하고 팔지 않았다. 땅값은 평당 400만원 까지 올랐고, 땅을 먼저 판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내 지인을 부러워하고 질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개발 계획이 취소되면서 땅값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땅을 판 사람들의 술잔은 축배가 되었고 내 지인은 병을 얻어 입원을 하더니 급기야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불과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재물에 대한 애착 때문에 고통을 당하다 급기야 죽음에 이른 것이다.먼저 돈이 내 의지대로 안 된다는 걸 쿨하게 인정하자. 또 하나, 부자에 대한 개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 부자란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더 이상은 돈을 늘릴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강남에 수백억짜리 건물을 가지고 있어도 돈을 더 벌기 위해 애쓴다면 부자가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을 굳이 늘리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이 부자다. 즉, 부자는 스스로 자기 삶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2018-02-19 홍창진

[방민호 칼럼]많이 아픈 후배를 위해

말수 적고 다정했던 후배에게모진 병고 시달림 뒤늦게 알아시대의 격류 요란하다지만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오직 그녀에게 생명의 따스한 빛 다시 돌아와 주기만을 바랄뿐얼마 전이다. 밀양에서 큰 불이 나서 제천에 이어 사람들 가슴을 아프게 하더니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도 불이 났다고 했다. 소식을 들은 건 불을 다 끈 다음이다. 이번 불은 다행히 소방시설이 잘 되어 있어 번지지 않았다는데, 그래도 소식을 듣고는 화들짝 놀랐다. 마침 아는 사람이 바로 그때 입원해 있었다.혈액암에는 두 종류가 있어 특히 그 한 종은 고치기 어렵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던 후배가 그로 인해 고생하다 그 병원에 들어가 있었다. 조혈모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맞이할 때쯤 학업에 대한 꿈을 거의 완전히 잃어버렸다.무슨 일인가를 겪으면서 사람은 평범하게, 평균적으로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하게 됐다.여름방학 지나 늦가을에 이르자 정신적 긴장이 극도에 다다른 나머지 밤에 발작적인 증세가 나타났다.분명 꿈을 꾸고 있었는데 현실에서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현관문 여는 소리에 부모님이 일어나 나와보니 내가 내복 바람에 맨발로 현관문을 열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 우리집은 단독주택이었다.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만류하자 '몽유병' 환자는 기를 쓰고 바깥으로 뛰쳐 나가려고 했다. 서슬에 아버지의 러닝셔츠가 찢어지고 물어뜯는 바람에 팔뚝에도 피가 흘렀다.이웃집 사는 아버지 후배까지 달려와서야 겨우 택시에 몽유인을 밀어넣고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한 병원에서 거부당하고 또다른 병원으로 향하던 중에야 몽유인은 겨우 꿈에서 깨어났다. 그렇게 가을, 겨울이 다 가고 봄이 오자 학교는 견디기 힘든 곳으로 변했다.연합 서클이라고,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어울리는 독서 동아리가 대전에 있었다. 남들은 공부하러 제각기 학교로 돌아간다는 3학년 봄에 몽유인은 본격적으로 서클활동을 시작했다.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이어령의 '장군의 수염'도 읽었다. 그 무렵에는 다들 실존주의에 열을 올렸다.5월이 되자 일요일을 빌려 체육대회를 했다. 남학생들끼리는 농구 시합을 했다. 전반전 끝난 휴식시간에 여자 후배 하나가 다가왔다. 내 셔츠에 운동장 흙이 묻어 있는 것을 말없이 털어주는 것이었다.'운영전'을 보면, 안평대군 궁궐에서 글씨를 쓰던 김진사의 먹물 한 방울이 벼루 시중을 들던 운영의 손가락에 잘못 튄 것이 불타는 사랑의 도화선이 된다. 몽유인도 그날 이후로 정신이 없어졌다.그때는 휴대전화는커녕 삐삐도 없었다. 집집마다 전화가 겨우 한 대 있고 전화비도 꽤나 아낄 때였다. 부모님이 주무실 때를 기다려 전화를 시작해서 그 집 시누이가 새벽밥 지으러 일어날 때까지 무슨 이야기들인가를 한없이 나누기도 했다.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이 바로 십대라는 나이대일 것이다.그 시절에는 그후로도 오래 계속된 등화관제라는 것도 있었다. 십대의 소년과 소녀가 제과점에서 나와 비가 세차게 내리는 어느 고등학교 담길을 걷는데 사방이 갑자기 완전한 어둠으로 변했다. 가로등이 모두 꺼져버린 것이다.우산조차 하나를 쓰지 못하고 두 우산 속에 나란히 걷는데 무슨 다른 용기를 낼 수 있었으랴. 등화관제 그날조차 손과 손의 거리를 이겨내지 못했는데, 다른 날들이라고 무슨 사건이 가능할 수 있었으랴.대학입학 시험도 보고 정신병 환자가 서울로 가는 게 결정된 후에 서클 지도 선생님 댁을 둘이 방문한 일도 있다. 흰 눈이 소담스럽게도 내리던 날, 그때 아직 총각이던 국어 선생님 하숙집을 찾아가 몇 시간을 함께 놀았다.그러고 나서 어언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말수 적고도 다정한 후배에게 모진 병고가 찾아 들었음을 뒤늦게야 알았다.세상 사람들의 시간은 저마다 다르다. 시대의 격류가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다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정신병 환자는 다른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오직 하나, 이 후배에게 생명의 따스한 빛이 다시 돌아와 주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며칠 전부터 후배의 휴대전화는 전원이 끊어졌다. 그래도 이 수술 이후 나타난다는 숙주반응을 이겨내고 후배는 다시 웃는 얼굴을 보여줄 것이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8-02-12 방민호

[이남식 칼럼]블록체인과 가상화폐

비트코인 투기로 피해 발생안정적 가치교환·고른 이익분배가능한 가상화폐만 살아남을 것블록체인·코인 기술 활용공유경제시스템 구축 등 '기회''선한 목적' 사용토록 감독·격려최근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에 대한 투기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사태가 발생되고 있다. 물론 투자자 중에는 블록체인에 대한 기술을 이해하고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으로 투자한 경우도 있겠으나 대부분 이를 통해 횡재했다는 소문에 편승해 묻지마 투자가 결국은 투기를 낳게 된 것이다.모두가 잘 알다시피 2009년 뉴욕발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기존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말미암아 분산화된 거래원장을 통해 금융기관이 없이도 개인 간의 거래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소프트웨어로 암호화된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이 등장하게 됐다. 그 후에 거래원장(ledger)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약 기능(smart contract)을 덧붙인 이더리움이란 가상화폐 등 현재 1천400여종의 가상화폐가 코인공개(ICO)란 과정을 통해 자금을 모집하고 거래소에 등록 돼 전 세계적으로는 약 4천500억 달러의 시가총액을 나타내고 있다.원래 화폐란 가치교환의 수단으로 사용돼야 하는데 현재 비트코인이나 몇몇 화폐를 제외하면 현실적으로 거래에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으며 코인 그 자체가 투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 비트코인의 경우 화폐를 공급하는 방법으로 채굴(minig)이라 해 컴퓨터로 거래원장을 분산시키는 노력의 대가로 코인을 보상해 주다 보니 코인은 제한 돼 있고 가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며 거래소에서는 단순히 전자지갑 속의 코인을 다른 사람의 전자지갑으로 이전하거나 현금과 교환해주며 수수료를 받다 보니 이 과정에서 보안이 완벽하지 못한 틈을 타고 다양한 해킹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그러다 보니 정부 당국에서도 여러 가지 규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투기로 인한 차액에 대해 과세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살아남는 가상화폐가 되려면 적어도 이를 통해 안정적으로 가치교환이 이뤄지는 동시에 이를 사용하면서 얻어지는 이익이 고르게 모든 사용자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가상화폐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비트코인의 미래도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 왜냐 하면 하나의 거래를 확인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면 실질적으로 해외송금 등에는 유용하나 줄을 길게 서는 마트에서 사용하는 것은 어렵다.지금의 상황은 마치 인터넷 초기와 비슷하다. 인터넷이 처음 도입됐을 때 웹브라우저나 이메일이 킬러 앱이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포털이 등장하고 서치엔진 업체가 그 중심에 있게 됐으며 결국은 광고가 주된 수입원인 생태계가 형성됐다. 앞으로 코인의 발행은 보편화 될 것이며 코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러한 코인을 기반으로 수많은 가치 생태계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코인플랫폼을 우리나라에서도 개발해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한 사례가 있어 다행이라 할 수 있다.그러면 블록체인 기술과 코인을 통해 미래는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시나리오를 소개한다. 지금 사회적 문제 중의 하나가 실업이다. 요사이 최저임금과 정규직화 문제로 좋은 일자리는 더욱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4대 보험에서 제외 돼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를 블록체인과 코인으로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돌 지망생으로 수년간 수업한 청년의 경우 아이돌로 데뷔할 수 있는 가능성은 수천분의 일이나 상당한 수준의 재능을 가진 청년은 상당히 많다. 이들의 재능을 원하는 다수의 파티나 결혼식, 다양한 행사가 있을 수 있으나 개인으로서는 이러한 기회를 알지 못하므로 모바일이나 웹을 통해 블록체인과 코인기반의 구인구직 시스템을 구축하고, 코인을 인센티브로 제공하고, 이런 인센티브의 일정 부분을 4대 보험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하면 프리랜서도 일한 만큼 정규직 못지않게 보상을 축적할 수 있는 체제를 보험사 없이 구축할 수 있다.이런 공유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기술이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부동산 거래에서의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고 부동산을 유동화시켜 거래를 쉽고 안전하게 하는 동시에 거래수수료도 대폭 낮추는 시스템이 소개됐다. 따라서 줄기세포 사건과 마찬가지로 기술에 대한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평가 없이 여론에 따른 정책적 규제는 오히려 큰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모든 기술에는 칼날과 같이 양면이 있다. 선한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감독하고 격려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

2018-02-05 이남식

[윤상철 칼럼]정현신드롬 이후

지금의 정현에 대한 환호제2 정현 나올 때까지 이어질지…이성적 근거없이 만들어진정치적 지지는 아무 책임감 없이또 다른 '~빠'가 만들어질 때까지 맹목적으로 지속될지 모른다정현이 호주오픈 4강에 진출하자 대중은 열광하였다. 우리 국민들이 국가대항전이 아닌 개인스포츠에 주목하는 현상은 낯설지는 않지만, 스포츠 자체가 문화적 기호(嗜好)라는 점에서 기이하기도 하다. 이들 중에는 테니스 경험이 전혀 없거나, 아파트 단지의 테니스장을 주차장으로 만드는 데에 기꺼이 동조했던 이들도 있다. 이제 그의 안경이나 신발, 그리고 라켓이 관심을 끌게 되고,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테니스 레슨을 권할 것이다. 정작 신세대 정현의 자유로운 열정이나 성장과정, 그와 상대한 페더러가 건네준 배려는 그의 성공신화를 장식하는 에피소드로 동원되었다. 정현현상은 그 이전에 나타났던 박세리나 김연아의 신드롬과 다르지 않다. 오로지 세계적인 선수의 반열에 올라야 관심을 받고 그를 위해 희생되는 다른 것들은 가려지는 지극히 단선적이고 동질적이고 목표상향적인 사고와 행태가 지배해왔다. 탄탄한 생활체육 기반, 폭넓은 사회시설과 제도, 수많은 일선지도자들과 그 직업환경 등은 뒷전이다. 외국인 지도자와 훈련시스템도 히딩크와 고드윈처럼 신화와 전설로 부풀려지고 그 기여의 내실은 묻힌다. 오로지 개인 선수의 화려한 성공 이미지만 환호 받으면서 유포되고 소비된다. 배경과 결과에 대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성찰 없이 오로지 목표만을 위하여 치닫고 그 이미지만 감성적으로 소비되는 행태는 우리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암호화폐 열기처럼 지극히 경제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하는 경제행위도 다르지 않다. 투자인지 불분명한 암호화폐 거래는 평창롱패딩을 사려는 장사진과 유사하게 반복되지만 그에 필수적인 블록체인 등은 뒷북치듯이 거론된다. 암호화폐 투자로 거부가 된 사례가 기사화되고 이를 모르는 사람은 시류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간주된다. 즉, 우리 사회의 목표지상주의는 동질성 선호로 인해 강화된다. 남들이 하면 해야 하고 그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왕따 당하거나 비난받거나 바보로 취급된다.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행위는 타인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기 때문에 창조적 모험으로서 용인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회적 파장이나 영향력이 훨씬 큰 경제적 행위나 국가와 국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행위에 대해서는 다른 시선을 필요로 한다. 오래전 미국 외교관이자 학자인 그레고리 핸더슨은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라는 저서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취약성을 설파한 적이 있다. 한국 정치는 사회의 동질성과 중앙집권적 통일성이 상호 악순환하면서 원자화된 개인, 가족, 집단은 오로지 중앙권력을 향해 질주한다고 요약된다. 그의 통찰력은 조선과 대한민국 초기에 적용되었으나 대기업과 노동조합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여전히 빛을 발한다. 권력에의 목표지상주의와 동질성의 강요는 정치인에 대한 팬덤으로서 이른바 "~빠"문화라는 일상적 행위에도 나타난다. 민주화와 자유화는 큰 소용돌이를 해체하기보다는 그 부정적 유산들과 결합한 작은 소용돌이들을 낳았을 뿐이다. 처음에는 정치인이나 정당 등에 의해 동원되었던 지지가 점차 지지 동인(動因)들보다는 지지대상의 이미지에 대한 감성적 선호로 대체되었다. 지지의 정당성이 상대적으로 희미해지다 보니 지지자간의 동류선호를 통한 확증편향만 강화시켜가고 있다. 즉, 특정한 이미지를 선호하는 사람들끼리 폐쇄적 집단을 만들어 그 안에서 서로의 믿음을 키워가는 양상이다. 결과적으로 특정한 이념과 정책을 위해 특정 정치인을 수단으로 지지하던 양상에서 그 정치인을 지지하는 일이 목적으로 전치되는 일이 벌어진다. 그 정치인을 위하여 그와 대립하는 정치인이나 정책 등에 막무가내로 비판하는 반정치적 현상이 발생한다. 정현에 대한 환호는 또 다른 정현이 나올 때까지 맹목적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이성적 근거없이 만들어진 정치적 지지는 스스로 아무런 책임감도 없이 또 다른 "~빠"를 만들 때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정현신드롬을 돌이켜 보듯이 정치적 "~빠"문화 역시 공론적 성찰을 요구한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8-01-29 윤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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