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칼럼

 

[윤상철 칼럼]누구를 위한 지역공동체인가?

지역공동체는 시민이든 기업가든그들의 사회·문화·경제적 교류통해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집단…누구만의, 누구들만의 것도 아니다官이 주도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워성남시에서 지역화폐로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하다. 신임시장은 지역화폐로 지급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함으로써 풍요로운 지역공동체를 만들어보겠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아동수당을 받아 사용하게 될 엄마들은 자율에 맡기는 현금지급을 선호한다. 그들은 지역화폐가 사용지역과 용도가 제한되어 육아현실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시민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도 없었다고 반발한다. 또 다른 당사자인 기업이나 판매업체들은 아직 뚜렷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지 않다. 이 사안은 보편복지와 선별복지 간의 논란이자 이를 둘러싼 중앙정치와 연관되어 있지만 지역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의 문제이기도 하다.최근에 화성시의 한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심포지엄에 주제발표자로 갔던 적이 있었다. 회의 주제가 '화성시민과 기업의 상생발전방향'이었던 만큼 심포지엄을 주최한 시민단체 회원뿐만 아니라 시의회, 상공회의소, 기업지원협의회 관계자들이 다수 참석해 있었다. 의례 그렇듯이 시정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이 기업들을 규제하는 한편 지원하는 시청 고위 공무원들도 참석하였고 직접 제도와 정책을 홍보하고 있었다. 주제발표에서 나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목적이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하여 그 주식가치를 높이거나 이해당사자들의 만족도를 제고함으로써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오히려 기업 자체가 지역공동체의 시민이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일종의 사회적 규범으로서 그 기원이나 의미와 무관하게 당연시되면서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자 했다. 이 심포지엄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진짜(?) 시민들이 등장하면서 주최 측의 의도에서 빗겨난 듯했다. 기업 직원들의 출퇴근 시간대와 지역 농산물의 출하 시간대가 겹치면서 농민들의 고충은 더 심각해졌다고 했다. 기업들은 농촌의 생태계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농촌마을 안으로 들어오지만 막상 그 뒷감당은 고스란히 주민들의 몫이 된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겨울 농한기에 일자리를 원하지만 그들이 보는 것은 공장을 드나드는 외지인들뿐이라고 불평한다. 넓은 심포지엄 강당에 불과 몇 십 명의 청중들이 듬성듬성 자리한 이유는 억센 비 때문이 아니고 진짜 시민들에게 알리지 않은 탓이라는 성토도 있었다. 1990년대 말경이니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나는 교환연구자로 미국의 스탠포드대학에 2년간 머무르면서 그 옆의 팔로알토시에 살았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대학에 온 외국 연구자나 유학생들의 현지 적응이나 언어학습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 한 분을 만났다. 덴마크 국적의 그는 미국시민권을 취득할 자격을 갖추고 있었지만 자신의 조국에 대한 애정과 부채감 때문인지 30년 넘게 그린카드를 바꾸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의 지역공동체를 뜨겁게 사랑하고 그 일원이라는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자신이 늙은 나이에 왜 주변 지역의 흑인들에게 집을 마련해주기 위하여 '해비타트 포 휴머니티' 사업에 열심히 참여하는가를 설명하고 자랑스러워했다. 북유럽 출신의 완벽한(?) 백인이 흑인들과 하이파이브와 허그를 즐기는 모습은 늘 생소하기만 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마이크로소프트, 휴렛팩커드, 구글, 엡손 등의 회사와 사무실 등을 자랑스럽게 소개했고, 그들의 창업주나 가족들이 자신의 동료 시민임을 뿌듯해했다. 그리고 휴렛의 장남이 운영한다는 자그만 극장으로 안내하였다. 평생을 사업가로 살다가 은퇴한 그였지만 대기업가의 장남이 지역주민들에게 철 지난 영화를 보여주면서 젊은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그러나 아무런 이익도 남기지 못하는 사업에 몰두한다는 사실에 감동스러워했다. 시정부나 시민단체가 주최하는 공청회는 늘 만석이었고 그는 그 자리에 다녀온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곤 했었다. 대형할인매장과 아웃렛에 익숙한 미국사람인 그가 마지막에 알려준 이야기는 "그들이 돌아오고 있어. 걸어가서 그들의 가게에서 물건을 사야겠어. 저 가게의 주인은 우리 옆집에 살던데"였다. '그들'은 더 이상 외지인이 아닌 다운타운 사업자들이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시장과 시공무원의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지역공동체는 일반 시민이든 기업시민이든 그들 사이의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교류를 통해 이루어진다. 누구만의, 누구들만의 공동체가 아니다. 누가 일방적으로 주도하거나, 특히 관이 주도하는 자리에 공동체의 싹이 트고 자라기는 어렵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8-07-09 윤상철

[전호근 칼럼]정성껏 물을 주면

모든 교육과정 대입위한 수단 간주연령대별 익혀야 할것들 팽개쳐 둬싹 자라기는 커녕 더 말라가기만사회구조 바뀌지 않는한 파행 지속유일한 방법은 학생들 변화시켜야송나라의 어떤 사람이 곡식 싹이 빨리 자라지 않는 것을 답답하게 여긴 나머지 조금씩 뽑아 올려주었다. 그는 집에 돌아가서 가족에게 곡식이 자라는 것을 도와주었다고 자랑스레 이야기했다. 아들이 깜짝 놀라 뛰어가 보니 싹은 이미 말라죽어 있었다. 어떻게 해야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를 수 있는지 묻는 제자에게 맹자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로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른바 알묘조장(알苗助長, 싹을 뽑아 자라는 것을 도와줌)의 고사로 '맹자'에 나온다. 호연지기는 한 사람이 올바른 행동을 하는 데 필요한 일종의 도덕적 끈기와 유사한 것으로 플라톤이 이야기한 용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한 철학자답게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것이 양심(良心)이다. 하지만 양심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사람들은 이해관계에 얽히면 쉽사리 양심을 저버리고 이익을 취하기 일쑤다. 양심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호연지기는 이런 양심을 떠받치는 힘이다. 그러므로 호연지기를 기르지 않으면 양심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올바른 행위를 할 수도 없게 된다.맹자가 예로 든 알묘조장의 뜻은 이렇다.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해서는 곡식 싹이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처럼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한데 세상 사람들이 기다리지 못하고 속성으로 기르다보니 호연지기가 길러지기는커녕 도리어 말라죽고 말았다는 얘기이다. 맹자는 이어 세상에 조장하지 않는 이가 드물다고 탄식했다.지금 이 나라의 교육자나 학부모 중에도 아이들의 싹을 뽑아 올리는 조장(助長)을 하지 않는 이가 드물다. 모든 교육과정이 대학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되어 연령대별로 꼭 익혀야 할 것은 팽개쳐 두고 오로지 대학입시를 위한 학습에만 골몰하고 있으니 조장도 이런 조장이 없다. 그러니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 대부분이 말라죽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대학도 조장에 나서긴 마찬가지다. 방학 중에 진행되는 이른바 계절 학기는 한 학기 16주 동안 진행되는 강좌를 15일로 압축한 단기속성과정이다. 대학의 당국자들은 전체 강의시간만 같으면 기간과 상관없이 동일한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특히 인문교양 과목의 경우 졸업할 때까지 4년간 기다린다 해도 효과를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한 사람이 전 생애에 걸쳐 올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는 인문교양 과목은 당장의 이익과는 상관없는 내용을 가르치기 때문에 전공보다 훨씬 긴 호흡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학 당국은 인문교양을 비롯한 다수의 학과목을 속성과정으로 개설하고 있다.이러다 보니 대학에 들어온 학생들 또한 싹이 자라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더 말라가기만 한다. 당연히 학생들을 탓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대학 당국의 잘못으로 돌릴 수만도 없다. 교육을 기능인 양성 정도로 생각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이런 파행은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구조를 만든 오래된 주범들은 교육부 관료들과 기업, 언론으로 보이지만 그들도 구조의 일부일 뿐 권력과 자본의 당사자가 아니다. 그러니 도무지 그런 구조를 바꿀 방법이 없어 보인다. 학교 당국자가 교육의 근본 취지에 따라 학교를 운영하려면 당장 언론의 대학평가를 거부해야 하고 교육부의 지원을 포기해야 하며 학생 수가 줄어드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내가 알기로 학교의 어느 관계자도 그런 모험을 할 생각이 없고 그럴 만한 용기도 없다.이런 현실을 느낄 때마다 대학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하지만 결국 학생들 때문에 떠나지 못한다. 내가 바라는 건 결국 학생들을 통해서 이룰 수밖에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일은 무척 어려운 일이지만 유일한 방법이다.오래전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희생'을 보다가 마태수난곡이 나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끝내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영화의 도입부에는 옛날 어느 수도사가 말라죽은 나무에 정성껏 물을 주었더니 마침내 죽은 나무에 꽃이 피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할까? 내가 만나는 학생들도 정성껏 물을 주면 정말 수도사의 나무처럼 꽃을 피울까?정성껏 물을 주면, 정성껏 물을 주면…./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7-02 전호근

[이영재 칼럼]이산가족의 희망고문 또 시작됐다

2015년보다 더 적은 남북 각각 100명이라니여기저기 실망으로 체념 섞인 한숨소리만생사확인 등 北 거부하자 우리측 받아들여추첨 탈락자들 '언제될지 모르는' 비극 맞아이럴 줄 알았다. 그래도 '설마'했다. 이번만큼은 분위기가 달라서다. 문제가 있다면 애매모호한 문구로 가득했던 그 선언문이다. 4월 27일 판문점 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합의한 그 선언문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남과 북은 민족 분단으로 발생된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남북 적십자회담을 개최하여 이산가족·친척상봉을 비롯한 제반 문제들을 협의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 정도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 다음에 덧붙여진 '오는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진행하기로 하였다'가 문제였다. 이게 이산가족 가슴에 뜨거운 '희망'의 불을 지폈다.특히 그날 만찬장에서 남북 정상이 술까지 곁들였다는 보도는 '정말 이번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더구나 그로부터 꼭 한 달 뒤, 젊은이들이 '번개'하듯 남북 정상이 다시 판문점에서 만났을 땐 '모든 이산가족이 상봉할것'이란 생각에 가슴까지 뭉클했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은 실향민 2세대고 이산가족 상봉 경험도 갖고 있지않은가. 누구보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엔 이산가족이면 누구나 1세대인 부모님을 모시고 평양이든 영변이든 함흥이든 마음껏 다녀올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번 역시 일회성 보여주기 행사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지금 이산가족들을 엄습하고 있다. 우선 지난 22일 남북관계자들이 금강산 호텔에서 만나 오는 8월 20~26일 남북 각 100명씩의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행사를 금강산에서 열기로 합의했다는 보도는 귀를 의심케 했다. 처음엔 '1000명'에서 '0'이 하나 빠진 줄 알았다. 5만7천여명의 이산가족 모두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15년 10월 20일 20차 이산가족 상봉 때보다 가족 수가 더 줄었다. 남북 각각 100명이라니. 여기저기서 실망으로 가득 찬 이산가족의 체념 섞인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지난 20차 행사의 상봉 확률은 662대 1 이었다. 추첨장에는 머리가 하얗고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추첨 과정을 지켜보다 최종 탈락한 고령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쓸쓸히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컴퓨터를 이용해 500명의 1차 후보자가 선정됐다. 여기서 다시 400명을 탈락시킨다. 최종 경쟁률은 569대 1 이었다. 애초에 탈락한 이산가족도 그렇지만 100명에 들지 못하고 다시 탈락한 실향민에겐 이 과정은 너무도 가혹하다. 그런데 박경서 한적 회장은 어제 이렇게 말했다. "오늘 선정되신 분들은 축하를 드리고, 선정되지 못하신 분들은 다음 기회에 꼭 한을 풀어드리겠다". 이 말은 "이번에 당첨된 분들은 축하한다. 떨어진 분들은 다음 기회에"로 들렸다. 이번 상봉과 관련해 대한적십자사의 변명은 궁색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 측이 상봉 규모를 남북 각각 200명으로 확대하고 전면적인 이산가족 생사 확인, 이산가족 고향 방문, 상봉 행사 정례화 등을 요구했는데 북한이 거부했다고 한다. 그걸로 끝이다. 그랬으면 우리도 협상을 거부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도 무엇이 두려웠던지 대한적십자사는 북한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일회성 정치 이벤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한번에 100명씩 1년에 네 번의 상봉이 이뤄질 경우, 생존하는 3만5천960명의 고령이산자의 상봉이 성사되려면 99년이 걸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산가족 고령자가 한 명 두 명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런데도 다음 상봉은 언제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이산가족이 원하는 건 오직 한가지다. 만나게 해 줄 능력이 안되면 생사 확인만이라도 해 달라는 것이다. 북측 가족이 사망했으면 이제 모든 '희망'을 접을 것이고, 다행히 살아 있다면 서신 교환으로 안부만 묻겠다는 것이다. 이게 그렇게도 어려운 부탁인가. 분단의 최대 희생자인 이산가족들의 이 정도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다면 그가 누가 됐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논할 자격이 없다. 상봉 재개로 이산가족의 끔찍한 희망고문도 다시 시작됐다. 이건 정말 사람이 할 짓이 못된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06-25 이영재

[이명호 칼럼]한반도의 새로운 퍼즐 맞추기

분단 70년 '지금은 새로운 변화시대'북한의 행동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文정부 평화구도 정착시킬 수 있을지미국의 여러가지 불확실한 상황속드러나지 않은 판의 답 맞춰 나가야어제는 6·25라고 하는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날이었다. 휴전한지 65년이 지난 올해 한반도에는 그 전쟁의 참전국들이 종전과 평화협정을 위한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작년 말까지 또 다시 전쟁이 발발하는 것이 아닌가, 더군다나 핵 전쟁이라는 위기 상황까지 갔던 국면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화의 국면으로 전환되고 있다. 남북한의 정상회담,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과 비핵화 협상을 북한의 위장 평화공세라고 주장하며 분단구조에 의존하던 보수 정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민의 외면을 받아 몰락의 수준으로 참패했다. 1948년 남북한의 단독 정부 수립 이후 유지돼온 70년의 분단의 구조가 바뀌는 것인가? 지금 한반도의 변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먼저 70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려 보자.한국전쟁의 시작은 북한의 공격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한일합방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국제적인 갈등의 희생양이 한반도였다는데 있다. 우리 민족은 패전한 제국주의 일본이 아니고 식민지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맞이했다. 미국과 소련(구 러시아)이라는 두 열강에 의한 분단은 민족 내부의 갈등을 증폭시켰고, 한국전쟁으로 참담한 비극을 겪어야 했다. 해방을 대비한 단일한 민족역량의 부족, 미국과 소련의 양대 세력으로 나눠져 등을 돌린 국내의 정치 세력, 국제 정세에 대한 무지 등이 민족의 비극을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분단된 지 70년, 지금 한반도의 정세는 또다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70년 전 우리 민족의 역량과 안목의 한계가 분단이라는 현재를 규정하였다면, 현재의 상황은 또다시 우리 민족의 70년 미래를 규정할 수 있다. 올바른 행동을 위해서는 올바른 상황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변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판단해야 할 것인가? 먼저 북한의 행동과 의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왜 북한은 핵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다가 비핵화 협상에 나섰는가? 핵의 완성을 선언하였지만, 핵이 정말 북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는가? 북한과 김정은은 지금 무엇을 가장 원하는가? 김정은은 장기간 집권할 수 있을 것인가? 여러 가지 질문이 꼬리를 잇고 명확한 답을 찾기 어려운 상태이다. 일반적으로 새로 수립된 국가들은 3단계의 국가발전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김일성에 의한 정통성 단계, 김정일에 의한 안보 단계를 거쳐서 김정은은 경제발전을 할 수밖에 없는 단계에 왔다고 본다. 한국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안보의 위협, 유라시아 대륙과의 연결 단절이라는 지리적 고립 속에서 계속 성장할 수 있는가? 한국 국민은 통일을 원하는가? 통일 비용 부담론, 통일 후 사회 혼란, 공산세력에 대한 적대의식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룰 수 있는가? 문재인 정권은 평화의 구도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인가? 아직 변수는 많지만 한국 국민들은 평화 체제 속에서 북한과의 경제적인 교류와 협력을 원한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의 의도와 미국의 상황은 여러 가지 불확실한 것이 많아 보인다. 미국의 입장에서 북한의 핵은 동북아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변화를 가져왔는가?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 북한의 도발을 이용해 왔다고 볼 수 있는데, 이 카드는 폐기되는 것인가? 미국의 자본에게 북한의 투자 가치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중국과 베트남의 투자 효용이 한계에 와서 새로운 투자처가 필요한가? 트럼프는 군산복합체와 미국의 정치 주류인 대중국, 대공산주의 매파에서 벗어났는가? 아직까지 미국 주류의 입장은 북한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북한의 핵 보유는 중국의 경제 우선(경제대국 후 군사대군), 동북아 현상유지 구도에 균열을 가져왔는가? 남북한의 협력(평화와 번영)은 일본에 이득이 되는가, 러시아에게는 극동개발과 영향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가? 세계의 투자자들에게 북한은 새로운 투자처로 매력적인가?국제 구도에서 남북한의 국내 정치까지 여러 가지 불명확한 것이 많지만, 필자는 현재 분단 70년의 판이 뒤집어졌다고 본다. 새로운 판의 모습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우리는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확인해 가면서, 하나하나 새로운 판의 퍼즐을 맞춰나가야 할 것이다. 그 판이 우리 민족의 앞으로 70년을 규정할 것이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8-06-25 이명호

[홍창진 칼럼]종교의 영역

나의 종교로 믿음 생활하고 있다면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잘 살펴라종교는 미래 보장해주는 보험 아냐신을 통해 인간의 본모습 깨닫고욕심 버리고 평화 얻는게 참모습지하철도 다니지 않는 어두컴컴한 새벽, 전등불이 환하게 켜지는 곳은 절, 교회, 성당 그리고 보험회사 사무실이다. 새벽 미사를 드리려고 졸음을 참고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면, 건너편 고층 빌딩의 5개 층에 벌써 불이 들어와 있다. 그 환한 불빛 사이로 '○○보험'이라고 적힌 간판이 보인다. 종교인들이야 혼탁한 세상을 깨우기 위해 어둠을 뚫고 새벽을 연다지만 저들은 무엇을 위해 새벽부터 이 부산을 떠는 것일까?사실 20~30년 전만 해도 보험회사는 지금처럼 성장하지 않았었다.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만 한다면 취업과 결혼, 집 장만, 육아 등 미래의 청사진을 자신의 힘으로 일굴 수 있었다. 자기 주도적으로 인생을 꾸려갈 수 있는 여건이 되었기 때문에, 굳이 보험 같은 것에 의존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보험 상품 한두 개쯤은 갖고 있다. 미래가 너무 불안하기 때문이다.보험회사는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닥치지도 않은 미래의 불행을 과장되게 꾸며 사람들에게 겁을 준다. 사람들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 돈을 버는 셈이다. 어떤 비용 투자 없이 불안을 사고파는 것으로 영업이 되니, 일면 신기루 같은 사업이라고 볼 수도 있다.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그 영업 형태를 종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세월 일부 종교에서는 진리를 가르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불안한 미래를 두고 겁을 주면서, 절대자인 신을 믿지 않으면 지옥 불에 떨어진다고 설교했다. 심지어 헌금을 내면 대신 기도해 불행을 막아줄 것처럼 유도하기도 했다. 일정 보험액을 내면 미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처럼 보험회사가 떠들 듯이, 종교 역시 얼마나 정성을 바치느냐에 따라 미래의 행복이 보장된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 죽어서 지옥에 간다고 겁을 주었고, 사람들은 종교를 떠나면 큰 봉변을 당하는 줄 알고 그 가르침을 맹신했다.요새는 보험회사가 하도 영업을 잘해서인지, 일부 종교의 잘못된 행태가 많이 사라졌다. 불안을 팔아 돈을 버는 것은 이제 보험회사의 몫이다. 그나마 남은 영업수단이 장례 때 복을 빌어주는 일인데, 이 일도 상조회사가 나타나서 자리를 뺏겨버렸다.종교의 본래 기능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잘 들여다보게 해 자기 인생을 주도적으로 살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이다. 신에게 의존해 마치 모든 일을 신이 다 해결해 줄 것처럼 매달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가감 없이 받아들이고 순리대로 살게 하는 것이다. 즉, 살면서 부딪히는 모든 문제의 정답이 실은 내 안에 있음을 깨닫도록 도와주는 것이다.아이가 대학에 합격하기를 바란다면 돈을 내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아이가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무턱대고 합격하게 해달라고 빌 게 아니라, 공부로 힘들어하는 아이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주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이런 세상 이치를 이해하고 제 스스로 노력하도록 힘을 주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다. 종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설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이를 받아들이고 '더 노력해야겠구나'하며 힘을 낼 것이다.하지만 여전히 종교를 소원을 이뤄주는 요술램프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 입시 백일 전에 성당, 교회, 절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불경이든 성경이든 어느 종교 경전에서도 "복을 빌어라, 그러면 내가 복을 주겠다"고 가르치는 구석은 없다.내가 만일 어떤 종교에 소속되어 지속적으로 종교 생활을 하고 있다면 내 종교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잘 들여다보라. 그리고 나는 어떤 종교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잘 살펴보라. 종교는 미래를 보장해주는 보험 상품이 아니다. 신을 통해 인간의 본 모습을 깨닫고, 욕심을 버리고 평화를 얻는 것이 종교의 참모습이다./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2018-06-18 홍창진

[방민호 칼럼]무궁화호 타기

바랑·트렁크·백팩 등 다양한 가방맨발·농구화·샌들 갖가지 신발들빽빽한 기차안의 '사람 사는 풍경'사람 살리는 정치라는게 무엇일까그들 삶 이해하는 일 생각케 한다요즘엔 무궁화호 타는 게 옛날보다 쉽지 않다. 한두 시간 전에도 코레일 어플에 좌석표가 남아 있던 시절은 지나갔다. 휴일 날 대전에 가려고 급하게 표를 찾으면 없다. 비상이다.4호 칸은 열차카페라 하는데 실상은 입석 승객 천국이다. 카페 기능은 잃어버린 지 오래다. 차내 서비스가 없는데 카페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자판기가 이 차 중 카페의 전부다. 그래도 앉아서 먹으라고 창을 향해 앉을 수 있는 좌석도 2~3인용이 셋 있다. 반대편에는 서서 먹으라고 긴 배튼도 놓여 있다.한 이십 분 전에 이 카페를 찾으면 입석이라도 버젓한 좌석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아뿔싸, 늘 늦듯 이번에도 늦었다. 방법이 있기는 하다. 긴 배튼 아래 바닥에 '철푸덕' 앉아 가는 것이다. 긴 좌석 의자에 셋이 비좁게 앉아 가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다.그래도 꽤 일찍 플랫폼에 들어온 덕분에 제법 좋은 자리에 '일요신문'을 깔고 앉았다. 바닥에 깔고 앉으려고 '스토리웨이'에서 일부러 샀다. 인터넷, 휴대폰을 지금만큼 많이 안 볼 때는 '일요신문' 어지간히도 봤다. 그걸 봐야 갈증이 풀릴 것 같은 때가 있었다. 지금은 정치에서 멀어졌다. 지방선거라는데도 뉴스가 귓등 바깥으로 스쳐 지나간다.출발할 때가 가까워오자 드디어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들어 온다. 옛날 전쟁 때 피난 갈 때야 비할 바 없고 비둘기호 때보다도 낫겠지만 그래도 사람 많다. 먼저 내 옆에 사람들이 혹은 서고 혹은 앉더니 그 앞사람 지나다니는 곳에도 엉덩이 붙이고 앉고들 한다. 기차가 영등포에 서자 다시 한 번 사람들이 밀려든다. 공기가 점차 사람들 숨으로 덥혀진다. 아직 사람 냄새는 여름이 덜 되어 나쁘지 않다.한 스님이 사람들 꽉 들어찬 곳으로 커다란 바랑을 짊어지고 문간에 나타났다. 어떻게 될까. 스님은 사람들을 헤집고 들어오시더니 나와 흰 트렁크를 모셔놓고 선 키 큰 젊은이 사이 약간의 빈 공간에 커다란 엉덩이를 '들이밀고' 나처럼 '철푸덕' 앉아버리신다. 그보다 먼저 짊어지고 오신 바랑은 내 에코백이 놓여 있는 모퉁이에 털썩 던져 놓으셨다. 이런 경우에 화가 나는 사람은 유머 감각 없거나 야박한 치다. 다 같은 신세인 때문이다. 자리를 슬쩍 옮겨 공간을 드린다. 스님의 엉덩이는 '크다'. 스님 앞에 있게 된 여학생 둘이 고개를 돌리고 휴대폰에 더욱 열중한다.나는 스님의 모습을 옆으로 살펴본다. 승복은 낡디낡으셨는데 걷어붙인 팔뚝에 검버섯이 졌다. 얼굴은 햇볕에 그을린 데다 원래 붉어 보인다. 연세가 있으시다. 예순은 넉넉히 넘으셨다. 기차가 떠나자마자 크록스 신발을 아예 벗어놓고 맨발이 된 채 발을 뻗고 주무신다. 수원까지 내리 주무시다 문득 잠을 깨셔서는 옆에 사람한테 동대구까지 간다고 사투리 섞인 말씀 툭 던지시고는 또 주무신다. 천안에서 문득 잠을 깨셔서는 여기 대전이냐고 물으시고 또 주무신다. 휴대폰만 보던 여학생 둘이 일어선다. 자리가 여유가 났다. 트렁크 젊은이도 천안에서 나간다. 인총 빽빽하던 카페가 갑자기 숨통이 트인다.이제 여유로운 마음으로 카페에 둘러앉고 선 사람들을 엿볼 수 있게 된다. 사람보다 차라리 가방들이 보인다. 바랑에, 트렁크에 비닐백에, 에코백에, 가죽 가방, 캐리어, 백팩에, 가방도 가지가지다. 이번에는 발들을 본다. 맨발에, 농구화에, 축구화에, 샌들에, 슬리퍼에, '삐딱구두'에, 스니커즈, 삼선화도 있다.가끔 무궁화호는 뜻하지 않은 곳에도 선다. 이번에는 부강역이다. 언젠가는 전의역에도 섰다. 나는 작은 역도 빠짐없이 쉬어가던 비둘기호가 지금도 그립다. 스님은 여전히 수면 삼매경이시다. 크록스 신발은 벗어 두 다리 사이에 끼워 놓으셨다.사람 사는 일이 무엇이냐. 사람을 살리는 정치라는 것이 무엇이냐. 나는 고개를 가로젓고 사람들 삶을 이해하는 일을 생각한다. 기쁘게도 슬프게도 생각 말고 더 깊이 들어가야 할 때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8-06-11 방민호

[이남식 칼럼]사회적 가치의 실현과 공공기관의 운영평가

여러분야 경험·노하우 갖고 있는사회적 기업과 협업·협력 중요공공기관 직원 늘리기 보다는사회적 기업 고용 늘려양질의 일자리 창출하는게 바람직문재인 정부의 정부혁신 정책기조는 정부운영을 사회적 가치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며 사회적 가치란 인권, 안전, 환경,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배려, 그리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상생협력의 영역에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공공서비스의 질이 향상되어 국민의 삶이 더 나아지도록 하기 위한 실천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지난 12월에 공공기관 운영평가 기준에 사회적 가치 실현이 차지하는 비중이 40% 이상으로 바뀌면서 공공기관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좋은 목적으로 시작된 일이라도 자칫 평가의 함정에 빠져 단순히 더 높은 평가점수만을 얻기 위하여 근시안적으로 기관운영을 한다면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히 높다. 아직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보니 기관의 내부 직원에 대한 정규직화나 정원의 증원, 갑질 예방 그리고 자선활동 등에 포커스가 맞추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각 기관의 고유의 경영활동의 선상에서 관련된 사회 문제를 민관협동(Public Private Partnership PPP)으로 해결해 가는데 대한 노력이 간과될 수 있다. 원래 영국에서 2012년부터 시작된 사회가치법 (Social Value Act)의 기본 취지는 중앙 또는 지방정부가 공공서비스를 시행함에 있어 여러 가지 형태의 조달이나 위탁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간은 입찰에 의하여 저가 낙찰만을 하다 보니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지 않으며 특정 서비스의 전문성이 높은 사회적 기업이 참여하기 어려운 구조였는데, 1파운드 투자에 대하여 몇 배의 사회적 가치가 있는지를 측정하고 가장 효과적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민간과 협동함으로써 일자리도 창출하고 국민에 대한 서비스의 질도 향상시킨다는 것을 기본 취지로 하고 있다. 다분히 관료화를 방지하고 저비용고효율의 서비스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에 있어서도 이러한 방향성이 강조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일과성으로 바뀌는 구호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민관협력을 통하여 공공기관의 조직을 슬림하게 만들고 공공서비스의 질에 대한 국민들의 체감효과는 높이자는 것이 핵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정의하고 해당 공공기관은 자신의 핵심역량을 통하여 민관협력을 통하여 어떻게 포괄적인 가치를 높일 것일까를 고민해야 한다. 이미 기업에서는 CSV (공유가치창출)를 통하여 경제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가치도 함께 높이자는 운동이 2011년경부터 확산되고 있다. 한동안 공정무역 (fair trade)을 통하여 커피를 수확하는 농부들에게 20~30%의 가격을 더 지불하여 제대로 노동에 대한 보상을 해 주자는 캠페인이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그들의 경제적인 상황에는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하자, 보다 적극적으로 기업이 선투자하여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커피재배 기술을 전수하여 양질의 커피 생산을 늘리자 실질적인 농가 소득이 200~300% 증가 되었으며 기업은 오히려 고급 원두를 훨씬 싼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지역공동체의 경쟁력 향상을 적극 지원하여 기업과 지역마을이 윈-윈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공공기관은 지역에 비하여 고급의 인력과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회적, 환경적인 포괄적인 가치를 증대시킬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어 노력 여하에 따라 큰 변화를 이루어 낼 수 있으며 이러한 방향이 새로운 공공기관의 기관운영평가에서 지향하는 목표가 아닌가 한다. 그러다 보니 여러 분야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의 협업과 협력이 중요하게 되며 공공기관의 직원을 늘리는 것이 아닌 사회적 기업의 고용을 늘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고용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가능하며 포괄적인 사회적 영향력 (social impact)을 고려한다면 1을 투자하여 5의 효과를 구하는 것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물론 초기 단계에는 시행착오가 있겠으나 참여자 모두의 마인드 셋이 정착되면 공공서비스의 질이 획기적으로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국제미래학회 회장

2018-06-04 이남식

[윤상철 칼럼]또다시 사회적 민주주의로…

네트워크화 된 젊은 세대들과양극화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등서서히 성장하며 저항력 키워사회적 민주주의 제기함으로써지배자들에게 민주주의를 요구이전에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말한 바 있다. 이른바 '제3의 물결 민주화' 초기에 다수가 낙관적으로 기대했던 민주주의의 확장 및 심화 가능성이 현실의 정치와 경제에 의해 왜소화되거나 부정당했지만, 사회적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희망을 걸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현실의 정치를 살펴보자. 선거는 정규적으로 반복되고 여·야간의 수평적 정권교체도 세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 누구도 쿠데타와 같은 비선거적 방식을 도모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민들은 정치권을 신뢰하지 않는다. 정치적 이슈들이 부단히 동원되지만 진영논리에 매몰되거나 제도적 한계에 갇히어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부족하다. 현실의 경제는 어떠한가? 경제성장은 지속되고 한국의 국가 명목 GDP는 세계 12위이고 국가신용등급도 매우 높고 안정적이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하고 비정규직 등 고용의 질이 낮다. 그럼에도 이를 극복하기에는 세계화와 경쟁, 남북관계 등 국내외적 상황이 우호적이지 않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제도화와 진영의 논리에 위축되고, 경제적 민주주의가 성장과 효율의 늪에 빠져 있다면 사회적 민주주의는 어떠한가? 정치적 권력관계에서 비롯된 전근대적 사회관계는 성희롱과 성폭력 등 사회적 민주주의의 파탄을 보여준다. 고용과 하청 등 경제적 지배관계에서 비롯된 갑질 사례 역시 사회적 민주주의의 민낯을 보여준다. 산업은행은 퇴직자들을 낙하산으로 받아주는 조건으로 기업들에게 돈을 대출해준다. 은행경비원들은 은행과 고객, 그리고 용역업체로부터 3중 갑질을 당한다. 정수기 설치기사들의 정규직화와 치킨업체 가맹점 착취 등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전근대적 권위주의를 해체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언론의 폭로기사, 공정거래위원회의 경고, 그리고 동반성장위원장의 엄포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 민주주의마저 이렇다면 우리 민주주의의 희망은 없는가? 다행스럽게도 정치 및 경제 영역 안에서, 그리고 그 효과에 의해 질식된 사회적 민주주의는 개인화, 자유화, 정보화, 세계화 속에서 그 희망의 불씨를 키워냈다. 성차별을 배격하고 평등한 인권을 지향하는 미투운동은 정치와 경제에 대한 발본적 성찰과 재구조화 없이는 멈추기 쉽지 않을 것이다.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인권 보호 및 차별 철폐와 더불어 내부 권력구조의 변화가 동반될 때에 비로소 미투운동을 촉발한 원인들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성희롱과 성폭력은 남성 지배의 정치, 행정조직을 성평등한 조직으로 바꿈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일찌감치 성평등적 인사정책이 이루어졌더라면 검찰 내 성폭력은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성차별적 임금구조는 기업 내의 차별적 인사구조와 더불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평등구조를 혁파하지 않고는 해소되기 어렵다. 대한항공 직원들의 '갑질 규탄 촛불집회'는 4차로 이어지면서 광화문과 보신각으로 중앙을 향하고, 이를 지원하는 크라우드 펀딩이 이어지며, 매 집회마다 시민들이 합세한다. 재벌가의 갑질은 과거에도 더 끔찍한 형태로 발생했지만 이처럼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었다. 오너 일가가 저지른 갑질행위를 규탄하는 집회는 이제 총수 일가의 퇴진을 외치고 시민들이 이에 동조함으로써 재벌기업의 가족 승계구조는 물론 재벌체제의 작동방식에 대해 근본적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재벌개혁은 정치적 민주주의의 위로부터의 공격보다 사회적 민주주의의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의해 시작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요컨대, 한국 민주주의의 심화 가능성은 사회적 민주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사회적 민주주의의 자원은 네트워크화된 젊은 세대, 양극화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학생, 중소기업, 가맹업자 등에서 서서히 성장하면서 저항과 민주주의의 잠재력을 키우고 있다. 그들은 사회적 민주주의를 제기함으로써 사회적 지배자이자 정치적, 경제적 지배자들에게 민주주의를 요구한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사회적 민주주의가 다른 영역의 민주주의를 추동하는 뇌관으로 작동한다. 모름지기 국가와 정치권력은 권위주의적 공포로부터 인지적 해방을 경험한 이들의 요구를 차단하거나 우회시키지 말고 사회구조의 민주주의적 재구성으로 이끌 수 있도록 지원과 찬사를 보내야 한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8-05-28 윤상철

[이영재 칼럼]6·13선거는 끝났다?

여전히 흔들림없는 문대통령·민주당 지지율홍대표의 거친 입·결집력 부재인 한국당'르네상스'라는 큰 대문 연 '메디치'가문처럼내 지역 이끌 인재 발굴하는데 고민해야솔직히 놀랐다. 아무리 여당의 압승이 예상된다 해도 분위기가 이 정도인 줄 몰랐다. 운동장이 기울어져도 한참 기울어졌다. 평창 올림픽부터 판문점 정상 회담 등 남북관계 해빙이 결정적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말고 야당이 일방적으로 당해야 할 만한 딱히 큰 잘못도 없었다. 오히려 야당 측에 유리한 호재도 잇달아 터졌다. 차기 여권의 대권후보 1순위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미투. 김기식 전 금감원장 사태도 현 정권에겐 매우 아팠다. 그리고 드루킹 . 어디 이 뿐인가. 실업률 급증, 재활용 쓰레기 파동, 입시정책 혼란 등 잇따른 정부의 정책 실패는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것들이었다.특히 드루 킹 사건은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제 발등 찍는 걸 모르고 네이버 댓글 수사를 요청하면서 불거진 것이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댓글을 단 사람이 민주당원이었고, 그 주모자 입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김경수라는 이름이 튀어나왔다. 옛날 같으면 선거의 결과를 뒤집을 만큼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런데 의외로 조용하다. 오히려 특검을 주장한 한국당이 추경예산 통과에 딴죽을 건다며 역풍을 맞는 형국이다. 여전한 문재인 대통령의 70%대 지지율과 흔들림이 없는 50%의 민주당 지지율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요즘 신문사 밥 먹고 있다고 하면 꼭 받는 질문이 있다. 질문이 거의 똑같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질문이 나오는 거 보면 6·13선거에 그렇게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처음 질문을 받았을 때 정말 놀랐다. " 그래도 한국당이 경기도내 기초단체장 한 석은 차지하겠죠?"라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한두 번 받은 게 아니다. 그가 민주당 지지자라면 조롱이고, 한국당 지지자라면 체념의 표현일 것이다. 그래도 질문이 너무 고약하지 않은가. 경기도 31개 시 군중 현재 한국당 소속 지자체장은 15명이다. 반타작만 해도 7석이다. 그런데 5석도 아니고, 달랑 1석? 김무성 전 대표가 친박계 공천에 반발, 공천장 직인을 찍어주지 않고 부산으로 도피했던 이른바 '옥쇄파동'이 일어난 건 2016년 4·13 총선 전이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났다. 그 사이 역사에 기록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두 명의 대통령이 구속됐다. 그날부터 시작된 보수의 균열은 그때보다 오히려 더 악화 된 느낌이다. 단 한 골도 못 넣고 31대0 패배를 걱정할 만큼 사실상 붕괴 수준이다. 6·13선거는 한국당을 심판 하는 선거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됐을 것이다.지금 우파 보수층은 결집이 불가한 모래알 같다. 이 지경이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이들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는 보수야당, 특히 한국당 탓이 크다. 특히 홍준표 대표의 거친 입을 향한 장년층 보수 우파의 원성은 하늘을 찌른다. 아무리 남북 회담이 모든 이슈를 빨아들였다고 해도, 한때 정권을 잡았던 당이다. 그리고 지금은 제 1 야당이다. 그런데도 70년간 구축된 '냉전의 지축'이 붕괴의 파열음을 내고 있는 중대한 시점에서 '빨갱이론'같은 판에 박힌 비판으로 일관한다면 이를 지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설사 북한과 관련된 홍 대표의 말이 맞다손 쳐도 그의 거친 입에 거부감을 갖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러니 지방선거 출마자들이 의도적으로 홍 대표와 거리를 두려는 것이다. 이제 홍 대표부터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보수층이 움직인다.중세(中世) 1000년의 종지부를 찍은 건 권력도 종교도 아니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이었다. 상업으로 막대한 부를 일군 메디치 가문은 주변의 인재를 끌어모아 아낌없는 후원으로 '르네상스'라는 큰 대문을 열어젖혔다. 메디치 가문은 화려한 스펙을 갖춘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재능을 채 드러내지 못한 인재에게 어떻게 영감을 불어 넣어줄 것인가를 늘 고민했다. 선거가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이번 선거는 국회의원 선거가 아닌, 나와 가족의 삶과 직결된 내 지역을 이끌 단체장을 뽑는 선거다. '선거는 끝났다!'는 소리도 들리지만, 지금도 늦지 않다. 사심없이 일할 내 지역 인재를 발굴하는, 지금 우리는 메디치 가문처럼, 처절하게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05-21 이영재

[전호근 칼럼]시인(詩人)을 존경한다

시는 갑자기 찾아오는게 아니라시인으로 사는자에게만 다가오는것겨울과 강·나무와 풀 늘 말 걸지만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두 귀가 순해진 시인뿐이다언젠가 나를 소개하는 글 끄트머리에 "가난한 시인을 존경한다"고 쓴 적이 있다. 그 무렵 '책 읽는 사회 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시 낭송회에 참석하기 위해 동숭동에 있는 일석기념관에 갔다가 이모 시인을 만났다. 그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 손을 덥석 붙잡으며 "가난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가 왜 자신을 멀리하는지 비로소 알았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며 슬쩍 넘어갔지만 아무래도 내 글이 부담을 준 것만 같아 지금까지 마음 한구석에 미안함이 남아 있다.나는 늘 시인이 부러웠다. 나도 시를 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깜냥으로는 어떻게 해야 시를 쓸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시를 많이 읽다 보면 마침내 시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백석과 윤동주, 김수영과 기형도의 시를 읽고 또 읽었다. 하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칠레의 시인 네루다도 시에서 이야기하길, 어느 날 시가 내게로 왔다며,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고 하지 않았던가. 대시인조차 시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셈이니 그저 난감하기만 했다.그러다가 문학평론가 도정일 선생의 글을 읽고 난 뒤 어떻게 해야 시를 쓸 수 있는지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도정일 선생은 시인이 세상을 향해 뭔가 보여주고 싶을 때, 이를테면 나무라든가 구름, 당나귀 같은 것을 보여주고 싶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그가 그냥 한 사람의 시인으로 사는 것이라 했다.('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문학동네) 요컨대 시인으로 살면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가, 수필가, 화가는 '가'이되 시를 쓰는 사람만큼은 '시인'이다. 그가 갖고 있는 재주가 아니라 그냥 온전히 존재 자체가 시인 사람, 시인이라서.방법을 알았지만 또 다른 어려움에 부딪쳤다. 시인으로 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시인이 아닌 나로서는 도무지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얼마 전 어느 언론에 보도된 기사를 접하곤 시인으로 사는 것이 어떤 일인지 알게 되었다. 기사의 제목은 이랬다.'한국에서 소득 가장 낮은 직업 2위는 수녀, 1위는?'제목을 보는 순간 나는 기사를 읽지 않고도 답이 무엇인지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를 열어 보았더니 가장 가난한 직업은 시인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한국고용정보원이 최근 소득별 직업 순위 정보를 포함한 '2016 한국의 직업정보'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직업은 시인으로 한 해 평균소득이 542만 원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50만 원에 미치지 못하는 돈으로 한 달을 사는 일, 하루 세끼 챙겨 먹기에도 벅찬 수입으로, 겨울에는 춥게 여름에는 덥게 사는 것이다. 기사를 읽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끝내 시를 쓰지 못하리라는 것을.그날 지리산에서 올라온 박남준 시인은 '마음의 북극성'이라는 시를 낭송했다.'… 꼭 그만큼씩 울음을 채워주던 강물이 말라갔다 / 젊은 날의 나침반이었던 내 마음의 북극성만이 아니다 / 간밤에 미처 들여놓지 못한 앞강이 / 꽁꽁 얼기도 했다 / 강의 결빙이 햇살에 닿으며 안개 또는 김발로 명명되고 / 가물거리는 아지랑이를 만든다 / 아~아지랑이 / 어쩌면 치미는 슬픔 같은 먼 봄날의 아지랑이 / 이렇게나마 겨우 늙었다 / 강을 건너온 시간이 누군가의 언덕이 되기도 한다 / 두 귀가 순해질 차례다'두 귀가 순해진다는 시구는 공자의 '이순(耳順)'에서 따온 말일 테지만 이 구절을 읽고 나는 비로소 시인으로 살면 시를 쓰게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그렇다. 귀가 순해진다는 것은 나무들이 말을 하고 시냇물이 소리를 내며 언 강이 녹으며 봄날의 아지랑이가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나는 또 네루다가 시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며,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한 뜻도 알았다. 시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시인으로 사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다. 겨울과 강, 나무와 풀은 늘 말을 걸어오지만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귀가 순해진 사람, 시인뿐이다. 시인만이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시인을 존경한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5-21 전호근

[이명호 칼럼]좋은 노동과 기본소득

우리나라에서 '좋은 노동'은 뭘까여전히 주 40시간 노동에최저임금 인상·정규직 보장이다100년후엔 기본소득 보편화 가능지금 필요한건 일하는 시간 줄이기얼마 전에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이 '실패'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하여 가짜 뉴스라는 반론이 나오며 기본소득이 또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기본소득 정책을 주도한 핀란드 사회보장국 담당자는 실험 대상을 확대하여 2년 연장하는 추가 예산 요청을 중앙정부에서 거부하여 내년 1월로 예정된 실험이 끝난 후 평가가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실패'는 가짜 뉴스라고 항변하였다. 핀란드는 지난해 1월부터 실업수당을 받는 25세부터 58세까지 실업자 중에서 무작위로 추첨한 2천명에게 2년 동안 월 560유로(약 70만원)를 지급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대상자들이 취업한 이후에도 기본소득을 그대로 지급하도록 하였다. 실업률이 9%대로 다른 북유럽 국가들보다 높았던 핀란드는 기본소득이 '좋지 않은' 일자리라도 취업하는 효과를 기대하였으나, 기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물론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대상자를 실업자로 한정하여 취업·소득에 상관없이 최저 소득을 보장하는 기본소득 취지와 어긋나기 때문에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개념, 제도의 실패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의 성패에 대한 판단은 아직 이르지만, 필자는 이 논란을 접하면서 1년 전 한 행사에서 독일 교수가 한 말이 다시 생각이 났다. "독일에서도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일부 기업가들이 제기한 적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노동은 신성하며 인간에게 주어진 소명이기 때문에 노동 없는 사회는 생각하지 않는다. 독일 노조도 4차 산업혁명에 의한 자동화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에 대한 대책은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일자리를 잃게 될 노동자에게 제공하는 전직 훈련이다. 두 번째로는 새롭게 생기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학교 같은 곳에서 키워 주는 것이다. 동시에 노동 시간 단축도 병행돼야 한다. 그래도 전 사회적으로 일자리가 부족하고 실업자가 늘어난다면 그때, 기본소득이 필요할 수 있다고 본다."기본소득보다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것이다. 사실 독일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노동시간이 적은 나라이다. 연간 1천363시간(52주 기준 주당 26시간)에 불과하다. 한국은 멕시코 다음으로 두 번째로 노동시간이 길어 연간 2천212시간(주당 42시간)에 달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이 몰고 올 일자리 감소에 대하여 모든 나라들이 걱정하고 있는데, 4차 산업혁명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인더스트리 4.0을 처음으로 제기하고 추진하고 있는 독일이 일자리 감소를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것은 바로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생산성을 높이는 사회적 합의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첨단 제조 전략인 인더스트리 4.0을 추진하면서 독일이 취한 또 다른 정책은 생산의 한 축인 노동 4.0이다. 노동 4.0은 노동의 유연성, 노동 시간과 장소의 노동자 결정권을 높이는 방법 등으로 국민 100%가 일하는 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얼마 전 5월 1일은 128주년 세계 노동절이었다.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 지역의 노동자들은 '8시간, 8시간 휴식, 8시간 교육'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시작하였다. 하루 12~16시간의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은 1760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지 120여년이 지나 하루 8시간 노동을 '좋은 노동'의 목표로 제시하였다. 물론 노동시간의 단축은 기업들의 생산성 향상 노력에 의한 것이기도 하였다. 1914년 포드자동차는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하여 자동차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늘리면서,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줄이고 임금을 인상시켜서 노동자들도 자신들이 만든 자동차를 살 수 있도록 하였다.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는 미래에 좋은 노동은 무엇일까? 독일은 노동 4.0 백서에서 다름과 같이 그리고 있다. "시원한 바닷가에 편안히 앉아 노트북을 무릎에 놓고 일하는 창의적 지식 노동자, 혹은 컴퓨터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원하는 작업 스케줄을 짜는 생산직 노동자 등이 현재 우리의 이상향이다." 우리나라에서 '좋은 노동'은 무엇일까? 우리는 여전히 주 40시간 노동, 최저임금 인상, 정규직 보장이다. 100년 후에는 기본소득이 보편화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시간 줄이기이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8-05-14 이명호

[홍창진 칼럼]진정한 친구

모든것 줄 수 있는 사람에 집중하면되레 집착 때문에 목 졸릴 수 있어어느 특정한 관계 유지하기 보다다방면의 여러 친구 사귀는게외로움 더는데 더 많은 도움 된다사람이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왕따로 사는 건 흡사 죽음을 미리 체험하는 것 같은 공포를 준다. 그만큼 사람에게 친구는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요즘 세상에서 자신에게 진정한 친구가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다가 배신 비슷한 감정을 느낀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거다. 한번은 방송 출연 중에 제일 친한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때 누구에게 보낼까 잠시 망설이다가 한 동창 신부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동창 신부가 과연 진정한 친구일까? 과연 친구라는 존재가 내 마음을 100퍼센트 알아주고, 힘들 때 정말 위로가 되어줄까?그렇다고 그 동창 신부가 친구가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흔히 '진정한' 친구라고 했을 때 기대하는 것이 허상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다. 나는 진정한 친구를 갈구하는 것 자체가 착각이라고 생각한다. 잔인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세상엔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친구, 내 마음을 뼛속까지 알아주는 친구는 없다. 그런데 그런 친구가 없어서 외롭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도 오해다.친구가 내 외로움을 해결해 주는 존재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각자 짊어져야 할 외로움의 몫이 있고, 그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나 사람은 그렇게 살아간다는 사실을 위안 삼아 묵묵히 자기 인생을 걸어갈 뿐이다. 그 이상을 바란다면 욕심이다. 그리고 그 욕심이 결국 관계를 망친다. 대개의 인간관계, 특히 친구나 가족처럼 가까운 관계에서 상처를 받는 이유는 '내가 생각한 만큼, 상대가 나를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또한, 상대에 대한 서운함에는 상대를 내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다는 집착이 숨어있다. 집착을 우정이나 사랑으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과도하게 챙겨주고 또 그만큼 요구하게 되면 결국 서로 감당을 못하는 관계가 되고 만다. 그래서 거리가 필요하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나에게 맞춰달라고 강요하면 안 되고, 또 반대로 상대의 요구에 맞춰줘서도 안 된다. 결국엔 감당이 안 돼 싸우거나 서로 피하는 관계가 되고 만다.관계에 집착하지 마라. 진정한 친구가 없다고 인생이 망가질 일은 없다. 내 인생에 모든 걸 줄 수 있는 친구 한 사람에게 목매달다가는 오히려 그 집착 때문에 목을 졸릴 수 있다. 대신 여러 친구를 다양하게 사귈 필요가 있다. 어느 한 관계에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관계를 다방면으로 유지하는 편이 외로움을 더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직장 동료는 일을 같이하는 사람일 뿐이다. 아무리 개인적으로 관계를 깊게 가진다 해도, 일이라는 공동의 목적이 무너지면 그 관계는 오래갈 수 없다. 따라서 일을 떠나서 하는 부탁은 사양하라. 그가 상사라 하더라도 지혜롭게 피해가라.다양한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단 하나의 규칙은 모인 목적에 충실하면 된다는 것이다. 축구 모임에서는 축구를 열심히 하면 된다. 환경운동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사회 운동에 진심을 다하면 된다. 그 이상의 기대는 버려야 한다. 기대가 없으면 실망할 일도 없고, 기대가 없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친구에 대한 허상에서 벗어나라. 집착을 버리고 거리를 둘 때 되레 외로움이 줄어들뿐더러, 소원하던 관계가 전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2018-05-07 홍창진

[방민호 칼럼]작가 김사량을 생각한다

사상범으로 日서 보여주기식 체포해방 되자 북한으로 돌아갔고6·25 참전중 9·28 수복때 전사왜 덧없이 희생되어야 했던가?참으로 지혜가 필요한 시대였다작가 김사량의 본명은 김시창이다. 그는 1914년에 평양의 잘 사는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공부도 잘한 사람이었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도쿄제국대학에 독문학을 공부하려 유학까지 했다. 본디 잘 사는 사람은 래디컬한 생각을 갖기 어렵건만 그는 달랐던 것 같다. 고등보통 1학년때 광주학생의거가 일어나자 시위에 참가해서 일본 관헌에게 쫓겨다녔고 5년 졸업반 때는 일본 장교의 학교 배속에 반대하는 동맹휴교에 참가하여 끝내 졸업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몰렸다. 손창섭 장편소설 '낙서족' 주인공이 그러하듯이 김사량도 반도 안에서는 공부하기 어렵게 되자 일본에 밀항해서 공부를 계속하고자 한다. 안우식이 쓴 '김사량 평전'에 따르면 그의 형이 이미 도쿄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부산에까지 갔는데 거기서 특고들 눈에 띄어 경찰서까지 끌려갔다 도망 나왔고 형이 소식을 알고 보내준 학생복이며 학생증 위조한 것을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시작하여 동인 그룹에서 창작으로 나아갔고 도쿄 제대에 들어가서도 동인 활동을 했다. 물론 일본어를 통한 문학 창작활동이었다. 그러나 김사량은 확실히 달랐던 것이 이른바 세틀먼트 운동이라 해서 빈민 지역에 몸소 들어가 거주하면서 그들의 삶과 의식을 개량하는, 일종의 도시 '나로드니키'로 활동하다 다시 경찰에 체포된다. 이로써 김사량은 3개월 구류 처분되었고 뿐만 아니라 일종의 블랙리스트에 오르는 인물이 되었다. 읽은지 오래되어 명확하지 않으나 대학교 재학 중에 '조선예술좌' 같은 연극운동단체에 적을 붙인 것도 그로 하여금 시련의 길을 걷게 한 일로 남았다. 세틀먼트 운동의 경험을 소설로 옮긴 것이 바로 일본어로 쓴 단편소설 '빛 속으로', 그에게 아쿠타가와 상 후보의 '영예'를 안겨 준 작품이다. 그는 한국어와 일본어 두 개의 언어로 창작활동을 했는데, 이 세대의 작가들에게 언어 선택이라는 문제는 지금 생각하기보다 아주 미묘하고도 어려운 문제였다. 고등보통 시절에 중국 유학을 꿈꾸었고 나아가 미국으로 가 영어소설을 쓸 생각을 했던 그이니만큼 일본을 괄호에 넣고자 하는 반제국주의 성향이 강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 일본에 유학하고 아쿠타가와 상 같은 제도 문단권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면서 그의 문학 언어 선택은, 일본인들에게 조선인들의 삶의 실상을 제대로 알린다는 명분 아래 일본어 쪽에 더 많이 기울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작이라 할 만한 '천마'라는 일본어 소설이 나왔고 이것이 한국어로도 남겨지지 않은 것을 무척 아쉽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 다음 국면이다. 1941년 벽두부터 조선사상범 예방 구금령이라는 것이 발동되자 사상범 전력이 있던 김사량은 일본에서 본때 보여주기 격으로 체포되었다 부친의 도움으로 간신히 풀려난다. 이 법령은 전두환 정부 시절의 사회안전법 같은 것으로 이미 치안유지법 사범, 즉 오늘날의 국가보안법 사범이 되었던 자는 다시 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다는 '추측'만으로 잡아 가둘 수 있는 이상한 법이었으며, 이것이 당대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작가 김남천의 단편소설 '등불'에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일제 말기 체제 아래서 김사량은 3,4년 '보호색'을 띠고 체제에 동화될 수 있는 사람처럼 살았지만, 1945년이 되자 중국으로 파견된 틈에 냅다 탈출의 길을 선택, 연안으로 들어가 저항군이 된다. 이런 그에게 해방은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요즈음 문학인들의 1945년 8·15 이후에 관해 생각한다. 그는 해방이 되자 북한으로 '돌아갔고' 6·25 전쟁 중에 참전, 남쪽으로 내려왔다 9·28 수복의 와중에 전사해 버리고 만다. 그는 정말 사회주의자였을까? 왜 그는 북한을 선택했던 것일까? 조국의 현실에 괴로워하는 양심가였던 그는 왜 그렇게 덧없이 희생되어야 했던가? 참으로, 지혜가 필요한 시대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도 다르지 않다. 눈에 보이는 상황이 달라 보일 뿐, 험한 세상은 지식을 쌓은 사람들에게 냉정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8-04-30 방민호

[이남식 칼럼]행복한 미래를 위하여

지금까지 삶의 방식·가치 기준추구하는 방식 새롭게 접근 필요서로 재능 공유하는 사회로 전환한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변화속라이프스타일 등 재점검해야할 때최근에 발간된 세계행복리포트 (World Happiness Report 2018)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사대상 156개국 중 57번째로 행복한 나라로 조사 되었다. 가장 행복한 나라로는 핀란드, 노르웨이, 덴마크가 꼽혔으며, 우리나라는 자마이카, 러시아와 비슷한 수준에 머물렀다. 국민소득, 건강수명, 사회적 지원, 국민의 자유, 부패 등의 요소를 평가한 결과로 소득 3만 달러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다수의 국민들이 북유럽 국가들에 비하여 훨씬 덜 행복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물론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안보의 위협이 상존하며, 청년실업, 주거문제, 가계부채, 고령화 등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다. 그러면 앞으로 행복한 미래를 위하여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어떤 것이 있을까? 안보문제는 최근 남북, 북미 간에 대화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큰 변화의 조짐이 있어 다행이나, 나머지 문제들의 해결을 위하여 새로운 대안을 생각해 보자.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코워킹(Coworking), 코리빙(Coliving) 라이프 스타일이다. 최근에 서울의 요지 (강남역, 삼성동, 을지로 등)의 고급 빌딩에는 코워킹 스페이스에 입주하여 사무실을 운영하는 젊은 청년 창업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예전 같으면 높은 임대료 때문에 도저히 입주할 수 없는 빌딩에 비록 개인이 차지하는 공간은 겨우 노트북을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의 책상 하나이지만 모두가 공유하는 근사한 회의실, 카페, 체련장, 개인비서서비스 등을 공유하는 오피스를 제공하는 비즈니스가 호황을 맞고 있다. 즉 공유경제의 아이디어가 남는 시간에 자기 차를 택시로 제공하는 우버(Uber)나 남는 방을 여행객에게 제공하는 에어비앤비(Air B&B)를 넘어서 항시 필요로 하지 않는 공간을 공유하여 보다 저렴하고 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피스나 주거공간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가계부채가 주택을 소유하거나 전세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므로 굳이 주택을 소유하지 않고도 훨씬 적은 부담으로 쾌적한 삶을 살 수 있다면 우리의 행복지수도 훨씬 높아지지 않을까? 코워킹 코리빙 라이프 스타일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나의 생활을 간소화하는 미니멀 라이프 스타일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생활공간에는 정말 많은 물건들이 쌓여있으며, 오히려 이들에 눌려 지내게 된다. 특히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의류, 그리고 책, 수천 가지의 생활용품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기 때문에 혹자는 가지고 있는 짐을 버려서 한 평의 공간을 확보하면 수천만 원 (아파트 한 평에)을 벌 수 있다고도 이야기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문제들을 한꺼번에 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코워킹 코리빙 스페이스가 제공되고 여기에서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일하고 거주하며 기존의 주택들은 팔아서 가계부채를 줄이고 가계가 가지고 있는 불필요한 많은 살림살이들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최소한의 것들로 살아가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경제구조도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협동조합이나 스마트 컨트랙으로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경제도 구상해 볼 수 있다. 신뢰가 낮은 사회에서도 블록체인경제는 거래의 비용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모두가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스트레스가 적고 워라밸(워크 라이프 밸런스)를 이룰 수 있지 않나 한다. 결국 미래의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제까지의 삶의 방식, 가치의 기준,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에 대하여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일자리 역시 정규직만을 고집한다면 해답이 없다고 본다. 각자의 재능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로 전환되어야 한다. 각자의 역량에 따라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이나 기관에 제공하는 수많은 1인 기업들이 탄생하게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 모두가 전세계가 직면한 공동의 문제들-기후변화, 빈곤의 문제, 식량과 물 부족의 문제, 건강과 보건, 교육의 격차 등을 함께 해결해 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할 때 세계적인 리더십을 가지는 나라로 자리 잡아가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퍼팩트 스톰 즉 한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때 미래를 위하여 내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라이프 스타일을 재점검해야 할 때라 생각한다./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

2018-04-23 이남식

[이영재 칼럼]남북정상회담에 부쳐

北 선언, 핵 실험 중지일뿐 포기는 아냐완성된 핵무기 쥐고 테이블에 앉을 수도전세계 생중계 '김정은 쇼 타임' 될까 걱정文대통령 '완전 폐기' 당당하게 주장해야평창 올림픽이 끝난 지 석달도 지나지 않았다. 그 기간 남북 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이 일어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실험과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 발사를 거듭한 끝에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 단추가 내 손 안에 있다"며 미국을 협박한 게 지난 연말이다. 주기적으로 터지는 '○월 위기설'로 B-1 등 미국의 전략 자산이 전개돼 한반도의 긴장이 극에 달했던 것도 불과 얼마 전이다. 그런데 올림픽 개막식에 김여정이 전격 방문한 후 상황이 급변했다. 우리 특사단이 평양에서 김정은을 만나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합의하고 돌아왔다. 여기에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내정자가 북한을 극비리에 방문해 김정은을 만나기도 했다.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속도가 너무 빨라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이런 속도로 달려가도 되는지, 그러다 갑작스러운 돌발 사태로 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이 될지 걱정이 앞선다.그러던 중 지난 토요일 북한이 핵실험장 폐기와 핵실험·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을 기습적으로 선언하고 나왔다. 2013년 3월 제시했던 경제·핵 병진 노선을 공식 폐기하는 대신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하는 새로운 전략 노선을 내놓은 것이다. 그동안 우리와 미국이 요구한 것은 핵무기를 포함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였다. 하지만 이날 선언으로 시야가 밝아진 게 아니라 오히려 안갯속으로 더 깊이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다. 이번 선언은 핵과 ICBM 실험만 중지키로 했을 뿐, 완전한 핵 포기를 언급한 것은 아니다. "핵무기가 완성됐으니 그동안 실험장비들은 이제 모두 폐기한다"로 들릴 뿐이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의 지적이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그는 "이번 발표는 핵 실험을 중단한다는 내용이지 핵 선제 사용이나 핵기술 이전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아니며, 핵보유국이 될 수 있다는 선언"이라고 말했다. '실험의 중지'일 뿐 '생산의 중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27일 남북 정상 회담에서는 종전 선언으로 평화체제 방안을 논의한다고 한다.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1991년 제5차 남북 고위급회담 기본합의서에는 '정전 상태의 평화 상태로의 전환'을 명시한 바 있다. 2007년 노무현 김정일의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한다'고 적시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합의는 모두 지켜지지 않았다. 이 뿐인가. 김정은 체제인 2012년 2·29 합의에서도 핵실험 중단과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에 동의해 놓고 두달도 지나지 않은 4월13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제 북한은 이미 완성했을지도 모를 핵무기를 쥐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과연 우리는 여기에 대적할 협상 카드를 쥐고 있는가.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모든 것을 완전히 폐기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해야 한다. 판문점이라는 분단의 현장에서 만난다는 역사적 의미에 너무 함몰돼서도 안된다. 이번 회담은 전 세계로 생중계된다고 한다. 자칫 '김정은 쇼 타임'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북한은 2008년 6월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는 장면을 전 세계로 송출하는 퍼포먼스를 한 적이 있다. 결과는 참담했다. 이번 회담에 온 국민이 기대에 부풀어 있다. 언론도 장밋빛 전망이다. 불안한 정전 체제를 청산하고 남북이 평화롭게 살자는데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많은 국민들이 겉과 속이 다른 북한의 전략에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들을 안심시킬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동안 있었던 두 번의 정상회담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문 대통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를 거울삼아 세 번째 정상회담에 임해 주길 바란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04-23 이영재

[윤상철 칼럼]사회적 민주주의로 문열기

사회적 차별·지배 쉽게 발견되지만찰과 상처럼 취급돼 방치되기 쉬워미봉적 타협 불과한 민주주의조차제대로 실현하기에는 항상 어렵고깊은 민주주의 실현 더더욱 힘들다이른바 '제3의 물결' 민주화가 1970년대 중후반부터 20여년 이상 전 지구를 휩쓸었다. 대표적 민주주의 논자였던 길레르모 오도넬은 민주주의를 3차원으로 나누고, 정치적 민주주의는 민주주의로의 문열기에 불과하고 경제적 민주주의와 사회적 민주주의로 확산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정치적으로 의례화한 최소요건 민주주의로 전락했다. 경제적 민주화는 신자유주의의 지구적 지배상황에서 저항의 주체들이 약화되면서 정체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민주주의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민주화 이전의 상황을 보자. 권위주의적 가족 안에서 명령하는 아버지와 복종하는 자식이 있고, 어머니는 그 갈등관리에 지쳐 있다. 기업조직 안에서는 권위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임용 및 인사 과정의 시혜를 미끼로 성적 지배와 학대까지도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교회 안에서는 신처럼 군림하는 성직자와 힘없는 평신도들 사이에서 교리해석과 신앙행위에 대한 독점적 지배관계가 자연스럽다. 지역 간에도 패권주의적 지배와 실리적 복종이 요구된다. 학교 안에서도 봉건적 권위주의와 자본주의적 교환으로 구성되는 교사와 학생 간의 비민주적 관계가 발견된다. 세대 간에도 노동현장에서도 이 모든 전(前)민주주의적, 비민주주의적 관행이 여전하다. 우리가 아는 한, 체제의 이행은 단속적이다. 역전되기도 하고 건너뛰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체제진전이 그들에게 준 자존감과 행복감을 기억하고 이행의 지속을 선호한다. 따라서 경제적 민주주의가 정체하더라도 사회적 민주주의의 진전은 계속된다. 지역불균형 발전을 극복하고 지역차별과 패권을 철폐하는 일은 지속 될 것이다. 노동자이든 근로자이든 차이를 가르는 명명들이 존재할지라도 노동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감소될 것이다. #Me Too를 내걸든 #With You를 내걸든 권력과 결부된 성적 차별과 폭력은 결단코 사라져 갈 것이다. 기대에 미흡하더라도 그 진전으로 인간의 품격이 높아진다면 사람들은 계속 나아갈 것이다. 모두가 다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해하지 말라고 말한다. 가해자들에게도 인격과 권리가 있고 사법적 판단 이전에 여론 재판을 가하지 말라고 한다. 스스로를 해명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고 가해자들을 옹호하기도 한다. 가해자에게도 가족이 있고 그들의 인권은 중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피해자들은 너무 어리고 판단 능력을 갖지 못할 수 있다고 한다. 여전히 권력을 가진 자들의 반격과 역주행에 유의하라고 충고한다. 심지어 다른 소수자들의 권리를 인식하고 그들의 상처와 피해까지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더 시선을 넓혀 다른 소수자와 연대하여 더 큰 민주주의를 이루라고 한다. 어떤 정치적 음모가 있다고 속삭이고,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를 줍고 있다고 핀잔하기도 한다.수용하기도 비난하기도 쉽지 않은 이러한 언설에 대해, 한 방송인의 말이 와 닿는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이제 그만 좀 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슬픔의 기한은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라, 유가족의 눈물이 멈출 때까지"라고 말한 적이 있다. 차별에 상처받은 이들에게 시한을 정하지 마라. 또한 사람들은 변증법적 발전을 상식적으로 수용한다. 다소 격하게 보이더라도 관행처럼 익숙해진 것들을 변화시키려면 그야말로 '역편향'까지도 수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폭력적 혁명의 최종적 결과는 별로 진보적이지 않은 민주주의이듯이 아직 크게 변하지도 않은 차별을 뿌리뽑기 위한 사회적 노력에 법과 제도에 근거한 차분하고 점잖은 태도를 조언하지 마라. 아직 아물지도 않은 자기 상처를 치유하기에 몰입하는 이들에게 다른 이들의 상처까지도 전가하지 마라. 각자 자기 상처의 고통을 말하면서 다소 불균형적 치유가 흡족하지 않더라도 보이는 것은 일단 치료하고 보자. 단 한 번의 촛불집회로 민주주의는 완성되지 않는다. 심지어 그 촛불집회를 야기한 농단조차도 쉽게 철폐되지 않는다. 사회적 문화와 관행에 깊이 녹아들어가 있는 차별과 지배는 쉽게 발견되지만, 찰과상처럼 취급되기 쉬워서 무관심과 방치의 대상이 되기 쉽다. 찰과상에 몰두해있는 아이를 가볍게 바라보면서 시선을 바꿀 것을 강요함으로써 그 뿌리까지 제거하기가 쉽지 않다. 모든 것의 출발에 불과한, 그런 의미에서 미봉적 타협에 불과한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실현하기는 늘 어렵고 보다 깊은 민주주의는 더더욱 실현하기 어렵다. 신문마다 무수한 기둥(column)들을 세우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를 떠받들기는 어렵기만 하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8-04-16 윤상철

[전호근 칼럼]빵과 물, 시인과 도둑

우리 아이들의 학교생활안전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선교내 출입통제 강화하거나경찰관 배치하는게 아니라빵과 물 나누는 따뜻한 마음 필요얼마 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인질극이 일어났었다. 많은 이들이 가슴을 졸였는데 다행스럽게도 인질로 잡혔던 아이는 무사히 풀려났고 용의자도 검거됐다. 이 과정에서 경찰관의 현명한 대응이 눈길을 끌었다. 사건을 보도한 기사를 읽어보았더니 경찰관은 용의자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에게 빵과 물을 건넸다. 이어서 용의자더러 아이에게도 빵과 물을 나누어주라고 청한 다음 틈을 노려 검거에 성공했다고 한다.인질극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아이가 안전하게 가족의 품에 돌아가기만을 빌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아이뿐 아니라 용의자 또한 무사히 검거되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나에게는 경찰이 건넸다는 빵과 물이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무슨 숭고한 물건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 빵과 물은 인질극이라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용의자에게도, 인질로 잡힌 아이에게도 건네져야 할 신성한 무엇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빵과 물은 예사 물건이 아니다. 용의자는 주림과 갈증을 해소하는 빵과 물을 건네받고, 또 그것을 아이에게 건네면서 순간이나마 마음이 느슨해졌을 것이다. 아이도 긴장과 공포와 갈증에서 잠깐 한숨 돌리는 순간이 되었을 테니, 둘 사이에 오간 팽팽했던 시간의 틈새가 극적인 해결을 가져왔으리라.그러다가 나는 만약 용의자가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누군가 그에게 빵과 물을 건넸다면 인질극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현실이 아닌 허구이지만,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주인공 장발장에게 누군가 빵과 물을 건넸다면 어땠을까. 그가 빵을 훔쳐 감옥에 갈 일도 안 일어나지 않았을까.며칠 시간이 흐르면서 사건이 내 머릿 속에서 잊힐 무렵 마침 50주기를 맞이하여 새로 출판된 '김수영 전집(이영준 엮음·민음사)'을 펼쳤다가 저 일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김수영의 산문 '양계 변명'을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성북동에서 마포 서강 강변으로 이사해 살던 김수영은 생활고를 줄여볼 요량으로 닭을 키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도둑이 들었다. 가난한 시인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지만 내가 더 놀랐던 것은 시인과 도둑의 첫 대화가 존댓말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이거 보세요, 이런 야밤에…" 대화의 첫 마디에 따라 이후의 상황이 얼마나 크게 달라지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도둑 또한 존댓말로 "백번 죽여주십쇼, 잘못했습니다!" 하고 용서를 빌었다. 이어서 시인은 도둑에게 집이 어딘지 물었고 도둑은 우이동이라 답했다. 우이동 사는 사람이 왜 이리로 왔느냐고 물으니 도둑은 그 이유는 자신도 모르며 여기서 잘 수 없는지 되물어왔다. 시인은 그가 취한 척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여보, 술 취한 척하지 말고 어서 가시오." 했더니 도둑은 두서너 발자국 걸어 나가다가 뒤를 돌아보며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하고 물었다고 한다.기막히게도 철조망을 넘어온 도둑이 어디로 나가야 하느냐고 물은 것이다. 시인은 도둑의 이 마지막 물음이 끝내 잊히지 않고 귀에 선하다고 했다. 도둑의 말을 단순히 문이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으로 이해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철조망을 넘어온 도둑이 다시 철조망을 넘는다면 그뿐이지만, 나가는 문을 물어 그리로 나간다면 적어도 다시 도둑질을 하러 가는 길은 아니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어디로 가야 살아나갈 길이 있을 것인가. 결국 시인은 자신이 닭을 키우는 것도 도둑이 철조망을 넘어온 이유와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하며 자신과 도둑의 처지를 바꾸어 말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어 스스로 도둑이 되어 이렇게 말한다."백번 죽여주십쇼, 백번 죽여주십쇼,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 어디로 나가는 겁니까?"김수영의 짧은 글 '양계 변명'은 이렇게 갈 곳 없는 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하는 자의 물음으로 끝난다. 이 물음에 어떻게 답할지는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나에게는 시인의 도둑과 이번 사건의 용의자가 같은 인물로 겹쳐 보였다. 어디로 나가느냐고 묻는 도둑이 더 이상 도둑일 수 없는 것처럼, 인질에게 빵과 물을 건네는 인질범은 더 이상 인질범으로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p.s. 우리의 아이들이 참으로 안전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은 출입통제를 강화하거나 학교에 경찰관을 배치하는 일이 아니라 빵과 물을 나누는 따뜻한 마음이 아닐까? 용의자는 아이를 붙잡으며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4-09 전호근

[이명호 칼럼]미래준비, 반복되는 위기의 고리 끊기

미래에 도전 없으면 지배 당해구글·3M 등 혁신적 기업들자율적 과제 수행 요구 이유는탐색의 중요성 인정하기 때문정부·기업, 지금과 다른 새로운것시도해 볼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기시감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 보는 대상이나, 처음 겪는 일을 마치 이전에 보았거나 경험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기시감보다는 '이미 본'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데자뷔라는 영화 제목이 더 익숙할 수도 있겠다.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금호타이어 매각 등 이전에 봤던 현상이 다시 반복되고 있는 느낌이다. 1997년 IMF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10여년 만에 또 위기가 시작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앞선다. 3년 연속 돈을 벌어도 빌린 이자도 못 갚는 '한계기업'이 외부감사 대상기업의 14.2%에 달한다. 한계기업의 대출 비중에서 대기업이 65.7%에 달하고 있다. 회생 가능성이 없음에도 정부나 채권단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대마불사 좀비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1997년 IMF 위기는 국내 대기업들의 과잉 중복투자에 따른 구조조정 위기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부동산의 과잉 신용을 담보로 한 중복소비에 따른 거품붕괴 위기였다. 그럼 현재의 위기는 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미래 준비의 위기라고 본다. 그 동안 우리 산업은 선진국의 산업을 모방해서 저렴한 생산비용으로 경쟁하는 방식이었다. 관리를 잘해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 경쟁력의 원천이었다. 기업은 경쟁자보다 싼 값에 물건을 더 팔 수 있어서 수익도 늘고, 임금도 오르는 성공의 과실을 맛보게 된다. 이 방식은 모방이 쉬워서 오래 가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일본이 서양에서 배우고, 한국이 일본에서 배우고, 중국이 한국에서 배우고, 베트남이 중국에서 배우는, 물이 흐르듯이 주역이 바뀌는 구조이다. 성공의 과실도 넘어가고 위기도 반복된다. 반복되는 위기를 끊고, 성공의 과실도 계속 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미래에 대한 준비와 미래에 대한 투자이다. 우리 기업들은 성공의 과실을 따는 동안 투자를 기피하고, 중소기업의 납품단가를 깎고, 사내 보유금을 늘려왔다. 반복되는 다가오는 위기에 대한 대응이라는 소극적 대응의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무엇에 투자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은 경쟁력의 원천인 모방의 속도를 높여서 품질은 조금 떨어지더라도 선진국과 같은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는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더욱이 스마트 폰과 반도체, 자동차 등 일부 제품은 품질도 앞서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모방할 새로운 제품이 눈에 띄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다는 자부심이 자만이었다는 것을 아는 데는 오래가지 않았다.인공지능, 자율주행차, 산업 인터넷, 빅데이터, 스마트 팩토리, 가상물리시스템, 블록체인 등 선진국들은 4차 산업혁명의 신기술과 신제품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제품만 쫓다가, 제품이 나오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기나긴 연구개발의 과정, 즉 미래 준비와 투자를 놓친 것이다. 우리는 현재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았다. 미래는 선진국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만을 생각해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어제, 오늘과 같은 내일이 아닌 달라질 수 있는 내일,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미래 준비가 시작된다. 그것은 현재의 강점이 향후에도 유효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의 제기이다. 의문의 제기는 불안이 아니고, 불확실성에 대한 호기심이다. 새롭게 펼쳐질 미래는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영역이다. 밀림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 탐색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양한 가능성과 위험이 공존하는 과정이다. 현재의 이익을 놓고 다투는 과정이 아니고 미래의 이익을 위해 타협하고, 협력하고, 인내하고, 실천하는 과정이다. 미래에 대한 도전이 없으면 미래에 지배당하게 된다. 현재의 길을 쉬지 않고 달려간다고 미래에 도달하지 않는다. 구글, 3M 등 많은 혁신적인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자율적 과제 수행을 요구하는 이유는 바로 탐색의 중요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국가와 기업은 여유를 가지고 엉뚱한 상상을 하고, 지금과 다른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도록 북돋아 주어야 한다./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이명호 (재)여시재 솔루션 디자이너

2018-04-02 이명호

[이영재 칼럼]대통령 사주

현행 제왕적 대통령제라면아무리 좋은 사주라고 한들비극적으로 될 수 밖에 없어반복되는 역대 대통령 불행처럼나쁜 사주 만들지 않으려면권한 줄이는 헌법개정안 필요등에 업힌 아기를 본 노인이 "아이구, 그 녀석 대통령감일세"라고 하면 옛날 엄마들은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대통령이 된다는 데 싫어할 엄마는 없을 것이다.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유모차에 애를 태우고 가는데 누군가 "대통령감"이라고 하면 요즘 젊은 엄마들은 눈을 흘기며, 화부터 낸다고 한다. 물론 웃자고 하는 얘기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을 떠올리면 웃음은커녕 우울하다 못해 슬퍼지려고 한다.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이국만리 머나먼 하와이에서 숨을 거뒀다. 지금은 그 누구도 초대 대통령의 유해를 이 땅에 모셔오자는 사람이 없다.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잊힌 인물이 된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가장 믿었던 부하의 총에 목숨을 잃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대통령과 그의 친구 노태우 대통령은 내란 음모죄를 비롯해 여러 가지 죄목으로 옥고를 치렀을뿐더러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박탈당했다. 그래서 어느 방송에선 그냥 '전두환씨 노태우씨'라고 불리고 있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감옥에 가지는 않았지만 "대통령 시절 정말 행복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감옥에 간 자식 때문에 편하게 눈을 붙이지 못하고 긴 밤을 뒤척여야 했다. 민주화 동지였지만 생전에 둘은 갈등하면서 지냈다.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허공에 육신을 던짐으로써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지금 그들은 모두 감옥에 있다. 그런데 금쪽같은 내 아이가 대통령이 될 상이나 사주를 갖고 있다면 좋아할 부모는 없다. 생각만 해도 끔찍할 지경이다.대한민국 거의 모든 신문이 '오늘의 운세'를 싣는다. 우리만의 특이한 현상이다. 독자 중 기독교 신자도 많을텐데 그런 건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그날 신문 기사중 '오늘의 운세' 인기는 꽤 높은 편이다. 공표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손가락을 꼽을 정도로 많이 읽힌다. 맞으면 좋고 틀려도 그만인 심심풀이를 독자들이 정치 사회면 톱기사 보다 더 열심히 찾아 읽는 이유를 단지 '로또'를 사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국민이 원래 그런데 관심이 많다. 신년호 특집이나 큰 선거를 앞두고 출마자 관상과 사주를 경쟁하듯 싣는 것도 이런 '오늘의 운세'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다. 그만큼 많이 읽히기 때문이다. 언론에 보도된 후보들의 사주는 여기저기 살이 더 붙어서 '카더라 통신'이라는 바람을 타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흘러다닌다. "OOO 역술인이 그러는데 이번 대통령은 OOO가 된다더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사주뿐인가. 대한민국을 떡 주무르듯이 하는 유력 정치인들이 좋은 집터를 찾아서 집을 옮긴 것이 공공연하게 기사화되기도 한다. 옛날 자료를 찾아서 일일이 대통령의 사주를 논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대통령에 당선된 후 모두 용비어천가급 찬사를 남발했지, "나쁜 사주"라고 말한 역술인은 단 한 명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선자들에게 "하늘이 내려준 사주를 타고 났다"고 한 것은 그냥 의례적인 공치사였다는 건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사주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면, 나쁜 사주로 대통령이 될 수는 없다. 역술인들을 만나 얘길 들어 보면 대통령이 되려면 반드시 좋은 사주를 타고 나야 된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대통령 앞에 늘 붙어다닌 '제왕적'이라는 그것이 대통령의 사주를 꼬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다. 현행 무소불위 제왕적 대통령제라면 아무리 좋은 사주를 받고 태어나 대통령이 된다 한들, 비극적인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현 대통령제의 불합리한 시스템이 비극적 대통령을 만드는 주범이다. 반복되는 전직 대통령의 비극을 더 이상 사주 탓이라 할 수 없다. '대통령 사주'를 나쁜 사주로 만들지 않으려면 대통령 권한을 현실적으로 줄이는 헌법개정안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도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 한 명쯤은 가져도 될 때가 됐다./이영재 논설실장이영재 논설실장

2018-03-27 이영재

[홍창진 칼럼]부부공존의 미학

상대에게 뭔가 바라는건 욕심'너 아니면 죽는다'는 식의환상과 기대 갖기 때문에 불행배우자와 가까워질 수 있는 말은"나 요즘 왜 이렇게 힘들지?"별것 아니지만 상대방 마음 움직여신부로 살면서 결혼을 시킨 커플만 수십 쌍이다. 혼배성사 날짜가 잡히면 식전에 신랑을 불러 슬쩍 물어본다. "왜 이 여자랑 결혼할 생각을 했습니까?" 대부분 "잘은 모르겠는데 결혼은 이 여자랑 해야 한다는 감이 오더라고요"하고 대답한다. 신부에게도 따로 물어본다. "왜 하필 이 남자입니까?" 이런저런 대답이 나오지만 공통적으로 "다른 건 모르겠는데, 저한테 잘해줘요"라는 말이 나온다.그럴 때 속으로 '결혼하고 조만간 찾아오겠구나' 생각한다. 그 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십중팔구 못 살겠다며 찾아온다. 주례할 때 AS를 보증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여자가 미쳤나 봐요. 집안일은 하나도 안 하고 친구만 만나러 다녀요.""매일 회사로 데리러 오던 남편이 요새는 전화도 잘 안 받아요.""결혼 전이랑 너무 달라요. 뭐든 다 해줄 것처럼 굴더니, 사사건건 간섭만 해요."해결될 문제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결혼은 AS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애초에 고장 난 물건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하자가 있었으니 되돌려 놔봐야 고물이다. 고칠래야 고칠 수 없다는 걸 모르고 어떻게든 바꿔보겠다고 아우성이니 답답할 노릇이다. 착각해서 결혼을 하고 망각해서 재혼을 한다. 좀 부실해도 고쳐 쓰면 될 거라는 착각 때문에 결혼하고, 결코 고칠 수 없다는 사실을 망각해서 재혼을 한다. 결혼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이혼하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최소한 그놈 때문에, 그녀 때문에 내 삶이 망가졌다고 생각하지는 말라는 거다. 결혼해서 한집에 살게 되었지만 여전히 인생은 각자 살아야 한다. 그걸 알고 자기 주도적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은 결혼해서 사는 게 좀 힘들더라도 배우자 탓을 하지 않는다. 결혼 역시 자기 선택으로 결정한 일이라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애걸복걸해 마지못해 결혼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 애걸복걸을 들어준 것은 결국 자신이 아닌가? 그를 선택한 것이 나이니, 그와 함께 사는 것도 내 몫이다. 물론 속된 말로 '사기 결혼'을 당해 도저히 살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결혼 생활의 문제는 배우자에게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배우자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내 마음에서 비롯된다. 상대로 인해 이익을 보려는 마음, 상대를 내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생각 때문에 힘든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상대를 바꾸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결혼 생활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사람은 살면서 여러 사람과 인연을 맺는다. 그중에 결혼의 인연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니 결혼을 한 배 탄 것에 비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혼은 한 배를 탄 것이 아니라 함께 갈 배 한 척이 내 곁에 온 것뿐이다. 그럴 거면 뭣하러 결혼하냐고? 그렇게 생각해선 안 된다. 망망대해를 홀로 헤쳐가야 하는 외로운 인생에서 같은 곳을 향할 이웃 배가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해야 할 일이다. 거친 풍랑을 만나 생사의 갈림길에 섰을 때 이웃 배가 옆에 있다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결혼이 딱 그렇다. 배우자를 그저 옆에 있는 배이려니 하면 훨씬 편하게 살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상대에게 뭔가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이다. 기대와 욕심이 채워지지 않아 힘들어 해봤자 자기만 손해지 변하는 것은 없다. 반대로 기대와 욕심을 버리면 상대방이 해주는 아주 작은 것에도 고맙고 정이 생겨난다. 죽도록 사랑해야 하고, 너 아니면 죽는다는 식의 환상과 기대를 갖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이렇게 얘기해 놓고 나니 결혼생활을 마치 수행자의 삶처럼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배우자와 가깝게 지낼 수 있는 말 한마디를 알려 드리겠다." 나 요즘 왜 이렇게 힘들지?"별것 아닌 말이지만, 어설픈 훈계 혹은 위로보다는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말이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인다./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2018-03-26 홍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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