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칼럼

 

[전호근 칼럼]맛에 관하여

나는 주사부나 김정희가 느낀그 맛이 어떻다고 말할 순 없지만가족들과 모여 먹는 일이야말로가장 큰 즐거움이란 걸 알 것 같다언젠가 내가 만든 요리 함께 먹으면그땐 맛이 뭔지 말할 수 있을듯언제부턴가 우리 식구 중에서 나만 빼고, 그러니까 아내와 딸, 아들 녀석까지 TV에서 먹는 걸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나오면 넋 놓고 본다. 얼마 전엔 어느 먹방에 유명 요리사 고든 램지가 나왔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나는 식구들의 그런 모습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일쑤였다.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먹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먹는 걸 보고 즐긴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먹는 모습을 방송으로 내보내는 일을 기꺼이 감내하는 출연자들은 더 이상해 보였다. 나라면 밥 먹을 때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면 밥이 잘 넘어가지 않을 것만 같아서다.그러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방송을 보고 즐겼는지 생각해보았다. 지금은 거의 보지 않지만 나도 한 때는 스포츠 경기 중계방송을 즐겨 보았다. 야구나 축구 경기는 무척 즐겨 보는 편이었고 가끔은 권투나 이종 격투기를 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주로 보았던 셈이다. 으레 치고 박고 싸우거나 승자의 환호와 패자의 눈물이 있는 그런 일들을 보고 즐겼던 것이다.반면 먹방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즐거워하며 음식을 나눠먹는 평화로운 모습이 이어질 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문득 먹방 보는 식구들이 이상한 게 아니라 그걸 이상하게 바라보는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오래 전 이야기지만 '음식남녀'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요리사인 주사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입맛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스스로 그런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가족들 또한 그의 요리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동료 요리사 온씨가 그의 고충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이야기한다."베토벤이 좋은 소리는 귀에 있지 않다고 말한 것처럼 좋은 입맛도 입에만 있는 것이 아니야."얼마 후 온씨는 건강을 잃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일하던 주방으로 돌아와 숨을 거둔다. 동료를 잃고 슬픔에 잠긴 주인공은 자신의 요리를 먹는 가족들의 표정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그 결과 그는 가족들이 말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요리가 이미 제 맛을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후 그는 평소 마시던 고산차 대신 물을 마신다. 평생 그토록 좋아하던 차맛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입맛을 잃어버린 것이다.이제 주변에서 그가 요리한 음식을 먹으면서 감탄하는 사람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손녀 뻘인 이웃집 어린이 산산은 그의 음식을 언제나 맛있게 먹어주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는 매일 같이 여러 가지 음식을 요리한 다음 그것을 들고 학교로 가서 산산에게 준다. 아이들은 그가 만든 음식에 환호했고 이후 그는 다른 아이들의 음식까지 만들어서 학교를 드나들기 시작한다. 산산이 집에서 가지고 온 도시락을 대신 먹던 주인공은 조금씩 깨달아 가기 시작한다. 동료 온씨가 맛은 음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던 뜻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딸이 차려준 음식을 먹으며 주인공은 마침내 입맛을 되찾았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찾은 맛은 어떤 맛이었을까?그러고 보니 추사 김정희도 죽기 두 달 전 이런 대련을 썼다.'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최고의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요, 가장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 라는 뜻이다. 이 글귀대로라면 가장 맛있는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따위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김정희의 속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당시 그의 나이가 일흔 한 살이었으니 그의 미각 또한 주사부 만큼이나 온전치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여태껏 변변한 요리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주사부나 김정희가 느낀 그 맛이 어떠했을지 감히 말할 수 없다. 다만 가족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함께 음식을 먹는 일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즐거움이라는 뜻만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언젠가 내가 만든 요리를 식구들과 함께 먹는 날이 오면, 그 때는 나도 맛이 무엇인지 비로소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1-22 전호근

[홍창진 칼럼]삶의 전환점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가는 것'버리고 내려놓고 비우는 동안어느덧 '괴짜 신부'·'날라리 신부'"신부가 뭐 저래?" 수군대지만좀 어떤가 내가 행복하고남도 행복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사제가 된 지 7년째 접어들 무렵, 한 3년간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당시 중국은 개방은 했지만 종교에 관해서는 여전히 삼엄한 장벽을 치고 있었던 터라, 우리 신부들 사이에선 '대만 신부가 중국에서 선교를 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다더라', '어느 프랑스 신부가 중국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알고 보니 남몰래 포교하다가 중국 공안에게 살해당한 거라더라' 등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그러던 차에 고향이 얀삐안(鹽邊)인 주교님으로부터 중국으로 떠날 지원자를 받는다는 모집령이 떨어진 것이다. 중국엔 관심도 없었고, 더구나 목숨을 걸고 선교활동을 할 소명감 따위는 털끝만치도 없어서 모집령을 무시하고 있었는데, 눈치 없는 후배 신부가 순진한 얼굴로 찾아와서는 "형님, 저랑 같이 가요"하는 거였다. 선배된 체면에 겁나서 못 가겠다는 말은 차마 못하겠고, '우리 교구에 속한 신부만 해도 200여 명인데, 설마 내가 뽑히겠어?'하는 얄팍한 생각으로 지원서를 냈다. 그런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지원한 지 며칠도 안 돼 주교님으로부터 "어려운 자리에 지원해줘 고맙다"는 전화가 걸려왔다.(그 전화를 받고 얼마나 벽에 머리를 박았는지 모른다.)울며 겨자 먹기로 인사공문을 받아들었는데, 좀 이상했다. 사유란에 떡하니 적힌 '중국 유학'. 선교하러 가는데 웬 유학이냐고 물으니, 중국은 성직자 입국이 금지되어 있으니 일단 유학생 신분으로 위장해 입국을 하란다. 이러다 진짜 죽겠구나 싶었다.겁을 잔뜩 먹고 시작된 중국행은 생각보다는 살벌하지 않았다. 단지 더러운 환경 속에서, 한국에서 살던 때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살림살이를 해야 한다는 불편이 더 컸다. 수돗물이 순환급수제여서 모임에서 식사를 하다가 집으로 달려와 수돗물을 받아놓고 다시 외출을 해야 하고 자동차는 꿈도 못 꾸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가는 데 겨울에 영하 30도를 뚫고 가야 하는 일, 앞에 가는 자전거 탄 사람이 뱉은 가래침을 얼굴에 맞아야 하는 일 등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생활이었다.무엇보다 제일 힘든 것은 신부라는 권위를 송두리째 내려놓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특히 성당 안에서는-왕 노릇을 하다가 그곳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중국의 일개 인민으로 살아야만 했다. 중국 사람들을 만날 때 한국에서의 직업이 무엇이었냐는 물음에 '신부'라고 대답하면 중학교 중퇴자 정도의 사람으로 취급을 당한다. 중국 신부가 나온 중국신학교는 사설학원 같은 곳이어서 정규대학이 아닌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 신부들이 중국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덩달아 나도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이 당연한데, 이런 상황을 견디는 일은 보통의 일이 아니었다.중국을 다녀온 뒤 내 사제 생활은 전과 참 많이 달라졌다. 아니 내가 달라졌다기보다 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미사 후 신자들과 인사하는 것이 피곤해 사제관으로 들어오던 것은 옛말. 한 사람이라도 더 손잡고 인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저 내가 생각한 신부의 모습에서 한 계단 내려온 것뿐인데, 이상하게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전에는 문득문득 가슴을 후비던 고독감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신기한 건 20여 년 전의 내 사진과 요즘 내 사진이 참 다르다는 것이다. '자뻑'일지 몰라도 내 눈에는 젊었을 때보다 지금 모습이 훨씬 매력적이다. 머리숱이 줄고 배가 좀 나왔지만.좋아하는 어구 중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가는 것(위도일손 爲道日損)'이라는 말이 있다. 버리고, 내려놓고, 비우며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는 동안 어느덧 괴짜 신부, 날라리 신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신부가 뭐 저래?" 하고 수군대는 소리도 없진 않다. 하지만 그러면 좀 어떤가. 내가 행복하고, 더불어 남도 행복해 질 수 있으니 말이다./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2018-01-15 홍창진

[방민호 칼럼]새해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우리들이 상상하는 모든 슬픔기쁨이 들어 있는 놀라운 삶입신양명·돈 벌기도 중요하지만지금은 풍요롭고도 절박한 시간올해엔 미래 기약할 수 없는나에게 '은총' 가득하길 기원한다또 새로운 한해가 열렸다. 이 개띠 해도 벌써 열흘 가까이 흘러갔다. 이 새해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본다. 지난 몇 년 동안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 마지막 몇 년은 팟캐스트만 끼고 살았다.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는 직장에 배달되는 신문 헤드라인으로만 알았다. 정부 입맛에만 맞추는 방송 언론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습관이었다. 좋은 점이 없지 않았다. 시장 논리가 겨냥하는 것,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아예 모르게 되다시피 했다. 무슨 새 물건이 나왔는지, 어떤 가수가 인기를 끄는지, 무슨 영화가 수입됐는지 알지 못했다. 아이들이 바다에서 무참하게 죽어가는 세상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벌어지는 일들을 알지 않아도 되었다.정부가 바뀌고 방송사들이 달라져서일까. 이제 겨우 브라운관에 눈을 주게 된다. 아직도 드라마 같은 것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래도 잠깐씩이라도 앉아 뉴스 화면도 본다. 내가 원하는 세상만이 아닌, 뭇사람들의 세상에도 관심을 '표명'해 본다. 그러다 알게 된 것 하나가 교육방송에서 하는 의학 관련 논픽션 프로다. 아픈 삶을 그리는 것으로 그중 많은 사람들이 기약 없는 투병 생활을 하기도 한다. 끝내 삶의 마지막 국면에 다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새로 시작한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다. 이상한 일은, 사람들이 병에 걸려 신음하는 상황을 지켜보는 일이 위안을 준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자신은 아직 살아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남의 불행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잔인한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일까? 그런 것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확실히 이기적이다 못해 철면피한 요소를 가진 존재다.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의 고통과 불행 속으로 들어가는 심리에는 다른 선한 면도 작용할 것이다. 사람들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자기 아닌 존재를 향한 이해와 동정의 마음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텔레비전 화면 속의 사람들 때문에 눈물을 흘릴 때 우리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선량한 심성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타자' 이해와 동정의 더 깊은 바닥에는 우리 자신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라는, 본능적 감각이 작동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것을 가리켜 고대 그리스의 한 비극은 "죽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존재"라고 정의했다. 인간은 이 땅에 태어나 삶이라는 것을 만들어 가다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그것을 끝내야 하는 한시적 존재다. 그로부터 사람들의 삶을 좌우하는 모든 문제가 생겨났고 그 가장 중요한 현상이 바로 종교다. 사람들은 종교를 믿는다. 그 이유는 영원히 살기 위해서다. 지상에서 불멸할 수 없는 사람들이 천상에서의 불멸을 꿈꾸는 것. 죽어 육신을 땅에 묻어야 할 사람들이 영혼만은 살아 영원에 귀속될 것이라 믿는 것. 이것을 가리켜 종교적 염원이라 할 것이다. 세상에는 불멸을 지향하는 다양한 형태의 종교들이 있고, 그 어느 것에나 신심이 깊은 사람들은 그 속에서의 신이, 아니, 믿음이 그로 하여금 불멸에 들게 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깊은 믿음 속에서도 비록 순간적일지라도 두려움과 슬픔에 잠길 때가 있다. 이를 가리켜 의심이라고, 회의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이것은 이 땅과 대지에 결부된 삶의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이 죽어서는, 다시 말해 영혼의 불멸과 영원성 속에서는 다시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어떤 실물적 감각에서 오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의학 프로그램에 나오는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본질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건강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해도 어느 일정한 시점이 되면 그 삶에 죽음이 깃들기 마련이다. 뜻하지 않게 암이나 희귀한 병에 걸려 고통 받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 자신의 삶의 말로이기도 한 것이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이러한 필멸의 운명을 종교에 바치는 것에 반대하여 그 삶을 그 필멸 때문에 사랑할 것을 가르쳤다. 모든 종교도 삶을 사랑하라 하지만 그는 그것이 필멸하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혐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느꼈다. 만약 이 지상에서의 삶의 모든 것이 신의 뜻에 바쳐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삶 자체에 대한 혐오를 의미하는지도 알 수 없기는 하다. 그러나 새해 벽두를 논쟁으로 끌어가지는 않도록 하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이 지상에서의 삶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 삶 속에 우리들이 상상하는 모든 슬픔과 기쁨이 들어 있다. 그 놀라운 복합물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이다. 정치도, 문화도, 국가 대사도, 입신양명도,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우리는 그처럼 풍요롭고도 절박한 삶을, 삶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올해에는 이 사실을 하루도 잊지 않기로 한다. 그리하여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나'의 삶이 그 삶의 '은총'으로 가득하기를 기원해 본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8-01-08 방민호

[이남식 칼럼]쿨 코리아 (Cool-Korea)

엄청난 사회적 소용돌이 겪고도아무 개선도 되지않는 경우 많아이제 구성원 모두 쿨해졌으면…그러려면 이해당사자 헤아리고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그러면 많은 문제점 해결책 보여201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를 맞아 독자 여러분 가정에 만복이 깃드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를 맞으면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면서 새로운 각오와 계획으로 시작하곤 합니다. 한 해가 있다는 것은 우리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올해는 어떠한 각오로 새해를 시작 하시겠습니까? 사실 해가 바뀐다고 하여 상황이 바뀌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은 계속적으로 현재진행형입니다. 저는 독자 여러분께 올 해 부터는 우리가 좀 더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들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에는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있습니다. 각자의 입장이 있겠지만, 각자도생을 외치며 나의 입장만을 주장한다면 어떤 문제도 풀어가기 어렵다고 봅니다. 서로의 입장을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며 서로를 배려해 간다면 수많은 문제들을 멋지게 해결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연간 수백만 명의 미숙아가 태어나고 있으며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의료수준이 낮기 때문에 대부분의 미숙아들이 사망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인큐베이터 시설이 보급되어 있으므로 미숙아라 하더라도 사망률이 매우 낮습니다. UN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세계적인 연구기관과 협력하여 보통 2만 달러 정도하는 인큐베이터를 10분의 1 가격으로 그것도 저개발 국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하여 개발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사실상 생산원가를 10분의 1로 줄인다는 것은 대단히 큰 성공이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아프리카에서 미숙아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는 별로 진척이 없었습니다. 10분의 1가격의 인큐베이터를 운영할 인력, 전기, 자금 어느 하나 만만치 않았던 것입니다. 인큐베이터를 싸게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연구진이 아프리카의 마을로 가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살아남는 미숙아들을 관찰하면서 미숙아가 사망하는 이유에 대하여 다시 조명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즉 미숙아가 정상아에 비하여 위험한 이유는 체온조절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인큐베이터의 역할 중 중요한 것이 항온으로 엄마 뱃속처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기 보다는 처음에는 무조건 저렴한 인큐베이터를 만들어 보급하려고 시도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십명의 탁월한 엔지니어들이 싸게 만드는데는 성공했으나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데 실패하여 엉뚱한 해결책을 내어놓게 된 것이었지요. 체온을 유지하는 즉 보온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합니다. 결국 보온해주는 담요와 같은 역할을 하는 저렴함 패드를 아프리카 전역에 보급함으로써 미숙아가 사망하는 것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매사에 너무 쉽게 흥분하고 너무 쉽게 문제라 지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냉정하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공감하는 능력 즉 empathy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문제가 무엇이다라고 쉽게 예단하기 전에 진정한 문제가 무엇이고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는 습관이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얽혀있는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은가 합니다. 더구나 요사이와 같이 SNS가 발달된 시대에 편향적인 정보와 소통으로 말미암아 너무 쉽게 판단하는 경향이 심화되어가고 있어 매우 걱정이 됩니다. 엄청난 사회적인 소용돌이를 겪고도 아무런 개선도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좀 더 쿨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해당사자를 헤아리고 그들과 공감할 수 있도록 해 봅시다. 그러면 이제까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많은 문제들의 해결책을 보다 쉽게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 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 국제미래학회 회장

2018-01-01 이남식

[윤상철 칼럼]금지되어야 하는 것!

타인의 생각을 '정치적 올바름''영악함'으로 대처해온 우리는차이와 차별 반복적으로 재생산자유주의 출발점은 사고의 자유사회적으로는 사람간의 생각차인정해주는데서 출발해야한 정치학자는 한국민주화의 한계로서 자유주의 혁명의 부재를 지적했었다. 그 결과 한국인들은 자신의 요구 주장에는 익숙하지만, 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개인의 자유를 상호간에 침해하지 않는 데에 둔감하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제와 위계적 관료체제로 장착된 한국에서 개인의 자유는 행정편의적 관료주의와 충돌한다. 가령 한국인들은 모터사이클(이륜자동차)의 고속국도 주행이 금지된 유일한 나라라는 사실을 당연시한다. 총기소지허용을 옹호하는 미국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분개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토론되고 사회규범으로 제어되어야 하는 일들이 국가권력의 '금지와 전용' 포고로 대체된다. 그럼에도 정작 최우선적으로 금지되어야 하는 것들은 방치된다. 국가권력의 선별적 차별논리가 개인간의 차별에도 관철된 탓이다. 유엔 경제사회문화적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수차례 권고하였지만 현 대통령조차 후보시절에 이미 반대했었다.돌이켜보면, 우리 사회를 뿌리째 균열시킨 계급적·지역적 차별, 그리고 그에 근거한 사회집단간 혐오를 정치적 경쟁에 내맡기고 근절하지 못한 상황에서 더 보편적이고 덜 가시적인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있을 리 없다. 오히려 우리 사회는 차별 자체가 부당하다는 인권 차원의 인식을 민주주의의 심화를 통해 극복하기보다는 차별을 정치적 선악으로 대체하여 혐오를 확산시키는 방식을 택했었다. 지역간, 계층간 차별과 불평등을 극복하고 이 시각을 한반도와 민족의 문제로 넓히고자 했던 세력들에 대해서 '종북좌파'로 매도하여 그 혐오를 증폭시켰다. 특정 지역과 여성에 대한 혐오와 국가를 사유화한 국정농단을 일베와 적폐로 규정함으로써 이 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끌어내고 유연한 민주화의 길에 동참한 세력을 모두 배제해버리고 있다. 어떤 나라가 종북좌파와 적폐세력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왜란과 호란의 와중에서 주전파와 주화파로 나뉘어 백성과 국토의 유린을 방치했던, 그리고 사색당파 싸움으로 나라의 비전과 인재들을 고갈시켰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역사는 상이한 사회세력과 정치적 목소리, 그리고 사회구성의 비전이 경쟁하면서 진행된다. 때로는 협력을 통해서 때로는 정반합의 논리를 통해서 역사발전에 기여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경험이 부재한 우리 사회는 차이의 논리를 선악의 논리로 바꾸고 나아가 최악의 순환적 차별논리를 만들어낸다.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그러한 독선적 논리를 키워왔다. 한때는 반공과 정치발전론, 그리고 산업화론이 그랬었고 맑스주의나 주체사상도 다르지 않았다. 최근에는 페미니즘 역시 그러한 사상적 검증의 규준으로 작동한다. 심지어 친노, 친박, 친문의 이름으로 어설픈 정치논리조차 그러한 독선적 검증규준에 나선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이른바 '폴리티컬 코렉트니스'(political correctness)로 영악하게 대처하고 있다. "힐러리가 대통령답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게 말하지는 않겠다"는 트럼프의 정치적 산술에서 보이듯이. 그러나 그러한 자유주의의 부재 혹은 우회로는 민주주의를 더 심화시키기 어렵다. 타인의 생각을 '정치적 올바름'의 배타적 기준으로 재단하는 방식이나, 그에 대해 '정치적 영악함'으로 대처하는 방식으로 이어져온 우리 사회는 차이와 차별의 문제가 해소하기보다는 반복적으로 재생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자유주의에 있어서 그 출발점은 사고의 자유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사람간의 생각의 차이를 인정해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생충학자 서민교수나 배우 유아인 씨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도 이제 우리 사회의 성원들이 생각의 차이를 열어가는 단초가 아닌가 싶다. 경제학자 대니얼 카머넌이 말한 '시스템1'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징후로 보고 싶다. 복잡한 사회적 쟁점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얽혀 있는 사안들에 대해서 직관과 감성에 의거하여 판단하고 그 프레임으로 타인들의 사고를 얽매는 데 익숙하고, 다른 쪽에서는 침묵하거나 거짓 동조하는 '정치적 영악함'으로 대처하는 자유주의 부재의 침묵의 사회를 이제는 보다 본격적으로 해체할 시점에 이르고 있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7-12-25 윤상철

[전호근 칼럼]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길속에서 할머니 구한 세 청년그들은 맹자의 가르침 처럼이성이나 다른 능력에 주목 않고아무 생각없이 갑작스런 마음에서인간 본성 선함을 이끌어냈던 것그 용기 존경·감사의 마음 전한다지난 한 주 동안은 유난히 화재 사고가 많았던 모양이다. 며칠 전 TV로 뉴스를 보다가 강원도 춘천시 약사동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 소식을 접했다. 뉴스에 따르면 70대 노부부와 손자가 사는 집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할아버지와 손자는 곧바로 밖으로 대피했지만 휠체어를 타고 있어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다급해진 손자가 주변에 도움을 청하자 마침 근처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있던 청년 셋이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 휠체어에 앉아 있던 할머니를 구해 나왔다는 것이다.방송사의 카메라 앞에 선 청년 중 한 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안에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할머니를 구해 밖으로 나왔습니다."뉴스를 보고 있던 나에게는 청년이 인터뷰에서 한 말 중 '생각할 겨를도 없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인상 깊게 다가왔다. 맹자가 말한 '출척측은지심( 척慽惻隱之心)'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기 때문이다.일찍이 맹자는 어린 아이가 막 우물에 빠지는 '유자입정(孺子入井)'의 사례를 가정하면서 그런 일을 목도하게 되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출척측은지심( 척惻隱之心)'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여기서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은 그가 주장하는 성선설의 중요한 근거이기도 하다.그는 측은지심을 필두로 악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가리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두고 인간의 선한 본성을 확인할 수 있는 네 가지 마음이라는 뜻에서 사단(四端)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어서 사람이 사지(四肢)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누구나 이 네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만약 이 네 가지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이야기했다. 맹자에 따르면 이런 마음은 배워서 아는 것도 아니고 깊이 생각해서 아는 것도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나오는 양지(良知)요 양심이기 때문이다.맹자가 사단(四端)의 으뜸으로 강조한 측은지심은 흔히 연민이나 동정심 정도로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측은(惻隱)의 '측(惻)'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뜻이고 '은(隱)'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측은지심은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고 헤아리는 마음이라 하겠다.그런데 맹자는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데는 '출척( 척)'이라는 전제가 있다고 말한다. '출척( 척)'은 갑작스러운 상황을 당해 '깜짝 놀라는 마음'이다. 맹자는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 까닭은 아이의 부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웃 사람의 칭찬을 바라서도 아니며, 구해주지 않았다는 비난이 두려워서도 아니라고 이야기했다.아이의 부모나 이웃의 칭찬이나 비난을 '생각하지 않는 가운데' 갑자기 일어나는 마음이 '출척( 척)'이라 본 것이다.맹자의 이야기는 참으로 설득력이 있다. 그는 인간이 가진 이성이나 다른 능력에 주목하지 않고 오히려 아무런 생각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마음에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확신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만약 위급한 상황에 처한 어떤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 곧바로 행동하지 않고 이것저것 길게 생각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아마도 자신의 행동이 초래할 위험을 두려워 해 소방관이 오기를 기다릴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난을 염려하여 구조를 주저할 수도 있을 것이며, 행동의 결과에 따른 이로움이나 불리함을 따져보기도 하지 않을까. 그러는 사이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는 영영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이런 이유로 나는 불길 속에서 할머니를 구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발휘한 청년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지면으로나마 먹던 밥알을 토해내고 이웃의 귀중한 생명을 구해낸 세 명의 청년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12-18 전호근

[홍창진 칼럼]내 안에 답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 찾아신나게 노력하는 사람과싫은걸 억지로 하는자 결과 뻔해즐겁지 않게 하다 망하느니처음부터 안하고 노는게 더 행복자율의지 그 뭔가를 찾을 때까지신학교에 입학한 뒤 첫 1년을 지낼 때 '내년쯤이면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갈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살짝 들었다. 화장실 갔다가 보던 일도 끊고(?) 나오기가 다반사였고, 소등 시간이 되면 잠이 안 와도 억지로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그러는 동안 2학년이 됐는데, 때려치울지도 모른다는 내 예감은 다행히 빗나갔다. 2학년부터 들었던 철학수업이 꽤나 매력적이어서 규칙이 주는 압박을 잊고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령도 좀 생겨서 화장실 가서 늦게 오기도 하고, 소등 뒤에 이불 뒤집어쓰고 철학 책 읽다가 다음 날 수업시간에 좀 졸기도 하고, 규칙 안 지킨다고 교수 신부님께 욕도 좀 먹어주면서 살았다. '이렇게 살다가 잘리면 장가나 가지 뭐' 하고 맘을 편히 먹으니 숨 쉴 여지가 생기는 듯도 했다. 교수 신부님들도 이런 내 기질을 알았는지, 슬쩍 눈감아주는 아량을 베풀기도 하셨다. 그런 끝에 기적적으로 사제서품을 받았다. 만일 9년간 숨 쉴 여지없이 규칙대로만 살았더라면 중도에 신학교를 박차고 나왔을지 모른다. 아무리 내가 요령껏 규율을 피하며 살았다 해도 신학교 생활이 갑갑한 건 사실이었다. 신학교에서 생활하는 내내 속으로 외쳤다. '신부가 되기만 해봐라. 한 일주일 동안 잠만 잘 테다!'실제로 나는 신부가 되고 정말 사제관에 처박혀 잠만 잤다. 그것도 일주일이 아닌 한 달씩이나. 9년을 타율 속에 살다가 갑자기 자유가 주어지니 정말 너무 달콤했다. 하루 한 번 있는 미사만 마치면 나머지 시간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사제관 안에서 두문불출하는 나를 두고 신자들은 신심 깊은 신부가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기도를 하나 보다 했을 거다. 그러기를 거의 한 달. 그런데 참 신기했다. 미사 집전만 겨우 하고 마음껏 게으름을 부리다 보니 슬슬 기도가 하고 싶어지는 거였다. 9년을 기도만 하며 살 때, 한 자리에 앉아 장시간 침묵 속에 기도했다는 뿌듯함은 있었지만 사실 영혼의 울림은 없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마음에, 즉 자율로 택한 기도는 게으름을 피우며 청한 낮잠보다 훨씬 달콤했다. 신을 만나는 기도 본래의 목적을 자율 속에 맛보게 된 것이다.나를 9년이나 묶어놓은 우리 조직(?)에 대한 복수로 무려 한 달이나 테러를 저질렀지만, 그러면서 깨달았다. 똑같은 규칙이어도 타율이 아닌 자율은 내 삶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과 자유를 준다는 사실을. 똑같은 기도라도 하고 싶을 때 하면 무척 달콤하지만, '신부니까 해야 한다'는 타율에 따른 기도는 스트레스가 될 뿐이라는 걸 체험했다. 내게 압박을 주는 건 아무리 명예롭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해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직업이나 진로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 깜냥을 벗어난 일이라고 생각되면 그냥 무시해도 상관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내 직분 안에서 즐겁게 할 수 있는 걸 찾아 최선을 다하는 것. 내가 이 빡빡한 사제 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버거운 일, 내 능력 밖의 일이라고 생각되면 내 것이 아니니 좀 포기하고 놀아도 된다. 즐겁게 살기만도 바쁜 인생이 아닌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묻는다. "나 좋은 것만 하다가 남보다 뒤처지면요?""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했는데, 놀기만 하는 건 죄 아닌가요?"걱정도 팔자다. 저 좋은 일 찾아 신나게 노력하는 사람과 싫은 걸 억지로 하는 사람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억지로 해서 잘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남의 시선이나 사회가 정한 룰에 따라 즐겁지 않은 것을 억지로 하다가 망하느니, 처음부터 안 하고 노는 편이 훨씬 행복한 거다. 내 안의 자율 의지가 요동치는 그 무언가를 찾을 때까지 말이다./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2017-12-11 홍창진

[방민호 칼럼]찬(讚) 안재성

증언·어렵게 모은 자료로'박헌영'이란 역사적 존재 통해우리가 아는 한국사 새롭게 구성우리는 근대·공산주의 삶 싫고인간이 존중되는 세계 바란다'밥'만 원치 않는건 사람이기에지지난 주 읽은 '박헌영 평전'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박헌영이라면, 그의 시대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아는 사람만 아는 사람이다. 이 평전의 작가는 왕년의 '노동소설가' 안재성 씨다. 이 평전은 그는 놀라운 작가적 능력의 소유자임을 보여 주었다. 박헌영은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태생. 필자는 면을 하나 격하여 있는 덕산면에서 출생했다. 가깝다면 아주 가까운 사이. 그보다 필자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역사라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했던 시대였다. 그에 대해서 아주 잘 알 수밖에 없었다. 그는 1920년대부터 일생을 공산주의로 일관한 사람이요, 해방공간의 이름 '높은' 남로당 당수다.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6·25 전쟁이 계속되던 1953년 3월 11일 제국주의의 간첩이라는 혐의로 북한당국에 체포, 1955년 12월 15일 사형을 언도받고 1956년 7월 19일 한밤에 권총으로 밀살되고 말았다. 최근 필자의 관심사는 해방 직후부터 6·25 전쟁 끝날 때까지의 8년사를 새롭게 보는 것. 1979년에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있었고 2006년에는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다시 흘렀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일제말기부터 해방공간까지의 역사적 상황을 민족사의 시각에서 새롭게 재구성하고자 했다. 해방과 더불어 분단이 시작되고 남쪽에서 미군정이 시작되고 단독 정부들이 수립되고 6·25 전쟁이 예비되는 과정들을 대한민국 체제의 관점에서 보는 대신, 어찌하여 한국인들이 미완의 근대를 살게 되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하는지 살피고자 했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은 그러한 해방 전후의 한국사를 다시 한 번 재검토할 것을 주장했다. 그 배경이 있다. 1990년 전후로 한 이른바 현실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세계는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 담론이나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정치경제학적 상부구조가 한 시대를 풍미했다. 때마침 한국에는 야만적인 3당합당으로 김영삼 정부가 들어섰다. 이 작은 나라의 어느 한 지역을 고립시키고 그곳을 진보로 몰아붙여 보수끼리 대통합을 하자는 논리였다. 이를 주창한 정치도, 동조한 정치도 민주주의일리 없다. 나중에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나왔으나 김영삼 정부 말기에 직면한 외환위기로 인해 한국은 깊이 성찰할 여유가 없었다. 경제를 살린다는 것은 곧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깊숙히 편입되는 길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이 정부들의 무지나 실책이나 위선 같은 것까지 변명해줄 생각은 없다."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은 이러한 시대가 15년을 경과한 끝에 나왔다. 식민지 체제가 근대화를 가능케 했다면 그와 같은 아이러니를 승인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것이 이 책의 대전제였다. 그로부터 이승만 독재도, 일본의 위안부 문제 책임도, 박정희 5·16 쿠데타와 유신 체제 선포도 '자동적'으로 승인될 수 있었다.필자의 판단에 따르면 이제 우리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과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을 동시에 뛰어넘어 새로운 눈으로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아야 할 역사의 '계단'에 다다라 있다. 두 책을 떠받치고 있는 두 상이한 담론의 지위는 물론 같지 않다. 그래도 어쨌거나 새로운 입각점에 서지 않는 한 8·15 해방에서 6·25 전쟁으로 이어진 민족사의 비극을 극복할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없다.이러한 상황에서 출간된 지 벌써 8년이나 된 안재성 작가의 새로운 "박헌영 평전"은 하나의 경이다. 옛날에 왕년의 "해방일보" 기자 박갑동이 쓴 "박헌영 평전"을 읽었던 필자였다. 그에 대해서는 웬만큼은 안다고 생각했다. 역시 지식의 세계에 '안다'는 것은 없다. 안재성 작가는 그동안 축적되어 온 증언들, 쉽게 눈에 뜨이지 않는 자료들, 소련 해체 이후 공개된 구소련 문서들과 미국 쪽 자료들을 망라하면서 박헌영이라는 한 역사적 존재를 통해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한국사를 새롭게 구성해 보였다. 그가 무엇을 썼느냐 하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박헌영의 일생을 단순하게 영웅화시키지 않고도, 또 좌익 공산주의를 예찬하거나 승인하지 않고도, 우리 역사를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간과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일깨울 수 있었다. 우리는 '근대주의' 사회나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되는 세계를 원한다. 우리는 '밥'만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가 사람인 이유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7-12-04 방민호

[이남식 칼럼]지금 선전(深圳)에서는

전기 시내버스·택시 보편화걸인들 조차도 QR Code 사용이젠 한국이 벤치마킹 대상 아냐매력적인 경제파트너 생각 안해제4차 산업혁명 '中國굴기' 중우리도 혁신통해 다시 일어나야얼마전 중국의 선전(深圳)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한가한 어촌에서 1980년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된 이후 이제는 인구 1천700만명, 33.5세의 평균연령, GDP 규모가 홍콩을 추월하였으며, 전세계 휴대폰의 70%를 조립 생산하는 지역, 세계 최대의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로 주목을 받고 있다. 누구든지 상상력을 가지고 오면 제품이든 매우 저렴하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어 블랙홀처럼 전세계로 부터 자본, 인재, 신기술을 흡인하고 있다. 또한 초연결 사회로 변모된 중국의 거대시장에 대한 새로운 상품의 테스트베드로 부상함으로써 이제는 새로운 벤처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오히려 선전으로 몰려들고 있다. 뿐만아니라 화웨이, 텐센트, DJI, Denza (세계적인 전기자동차기업인 중국의 BYD와 벤츠의 50:50 합작법인)의 본사가 선전에 있어 대기업들의 신기술 M&A를 통한 혁신형 창업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유니콘 기업 (창업기업이 상장하여 10억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가지는 기업)이 탄생하여 젊은 청년들이 중국몽을 이루기 위하여 몰려들고 있다. 이미 선전에서는 BYD사의 전기시내버스와 전기택시가 보편화되어 있으며 2030년까지는 중국 전체 자동차 생산을 전기차로 바꾸려하고 있다. 조만간 주강삼각주에 위치한 광저우~선전~홍콩~마카오를 연결하는 순환고속도로를 완성하여 탄생하는 인구 6천600만명의 웨강이오 Greater Bay Area는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제4차 산업혁명의 세계적인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찍이 경제특구를 구축하였으나 아시아 9개국 중 6위로 하위권이며 정부규제, 행정과 조세 인센티브, 고용조건, 노사관계 등에서는 9개국 중 최하위로 나타나 우리나라의 경제특구에 입주하는 Fortune 500대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10월 18일에 개최된 중국의 19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3시간 반에 걸쳐 향후 5년간 (2017~2022)의 발전 목표와 계획을 천명하였다. 이미 글로벌 G2로 부상한 중국은 2010년 국민소득의 2배를 달성하는 소강(小康)사회를 목표로 그간의 사회적 경제적인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면서 국민들의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중국몽(中國夢)을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였다. 과거 중국에서는 비디오테이프를 건너뛰어 DVD가 보급되고 유선전화 대신 모바일 폰으로 바로 점프한 것처럼, 이제는 크레딧 카드를 건너 뛰어 대부분이 모바일결제를 사용하며 전국의 농촌마다 타오바오 마을과 같은 전자상거래거점을 마련하여 신유통을 통하여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걸인들 조차도 QR Code를 사용하여 적선을 받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는 중국 경제의 성장과 더불어 비교우위를 가진 여러 분야에서 호황을 누려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중국에서는 더 이상 한국이 벤치마킹의 대상이 아니며 매력적인 경제파트너로도 생각하지 않는 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지속적인 혁신을 통하여 비교우위에 있지 않는다면 코리아 패싱을 피할 길이 없다. 한류를 기반으로 한 문화콘텐츠, 반도체 나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막대한 투자와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하여 추격이 아닌 추월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대외적으로는 북핵과 사드 문제로 발목 잡혀있고 대내적으로는 국가의 미래보다는 과거사를 정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이웃의 변화에 대해서는 너무 둔감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논란 끝에 최근에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임명되었다. 그간 중소, 중견, 그리고 벤처기업에 관한 중요성 때문에 부로 격상 되었으나 장관이 임명되지 못하고 표류하는 바람에 반년 이상의 시간을 허비하였는데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추월하기 위한 산업의 전략과 방향을 다듬어야할 시기이다. 지금 선전에서는 미래를 향한 제4차 산업혁명의 중국굴기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도 다시 일어나야 할 때이다./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

2017-11-27 이남식

[윤상철 칼럼]국가에 대한 헌신

국가의 잘못 적폐로 질타하면서그 책임 누군가에 묻기 보다는모두의 거룩한 희생 수용 필요누구도 국가에 헌신 역할 없다면끝없이 요구하면서 비판하거나공격하는 길 찾기 마련이다케네디대통령은 "국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으세요."라고 요청한다. 문재인대통령은 "국민들이 '국가의 존재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두 대통령의 말은 언뜻 상보적으로 보이지만 국민들에게 국가를 보는 상반된 관점을 제시한다. 1990년대 초반에 필자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했었다.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여야 거물급 정치인들 중에는 훗날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등이 된 이들도 있었다. '신성한 국회의사당'의 뒤편에서 이른바 '4류 정치인'들의 부패나 무능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에게 난감했던 사실은 그들 구세대에게는 이른바 "애국심"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정치적 스승으로 이승만과 김구를 내세웠다. '추한 담합'으로 지탄받으면서도 '국민과 국익을 위하여' 협상할 줄 알았다. 그들보다 젊은 정치인들도 그 애국심을 폄훼하지 않았다. 반면, 당시 86세대나 X세대에게 '민주화된' 국가는 군부권위주의체제의 잔재와 IMF위기를 촉발한 무능정부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국가를 공격하여 시민의 자유, 민주, 나아가 평등을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국가는 헌신과 봉사의 대상이 아니고, 그 약탈과 지배로부터 자기보호와 자유를 쟁취해야 하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애국심이란 애초에 보이지 않거나 또 다른 정치적 억압이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이미 사회과학계에 뿌리내린 맑스주의 또한 젊은 세대의 경험적인 국가개념을 정당화하는 데 일조했다. 맑스주의는 사회가 계급들로 구성되고, 국가는 명목적일 뿐이라는 국가론과 계급론을 제공하였다. 사회 안에는 계급간의 투쟁만 존재할 뿐이고 국가는 특정 계급의 공동관심사를 다루는 위원회에 불과했으며, 소외되고 배제된 계급들에게 국가는 폐기의 대상이었다. 어떤 국민들이 체험을 통해 국가의 존재를 재구성했던 반면 우리는 그 과정에서 국가를 부정하는 길을 밟았다. 국가가 원천적으로 부정되면 국민이 국가에 바쳐야할 헌신과 의무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 국민들은 링컨, 케네디, 그리고 처칠에게서 국가를 배운다. 링컨은 게티스버그 연설에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오히려 명예로이 죽은 이들의 뜻을 받들어, 그 분들이 마지막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그 대의에 더욱 헌신하는… 이 땅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며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는 내용으로 국가의 존재와 그 국가의 민주주의를 위한 거룩한 희생과 지속적인 헌신을 웅변함으로써 미국 애국주의 전통에 기여했다. 처칠은 "나는 피, 수고, 눈물, 그리고 땀밖에는 달리 드릴 것이 없습니다."라는 말로 전쟁으로 절망한 국민에게 달콤한 희망 대신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호소하였다.국가가 부정되고, 국가가 사적 정권 혹은 정파적 정부와 동일시되면 국민은 국가에 대해 뭔가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상상적 국가를 채울 국민들의 헌신은 '금모으기 운동'을 넘어선다. 그러나 국민들은 요구하고 정부와 정치권은 대답하는 형국이라면, 국가를 만드는 작업에서 국민들은 소외되고 수동적인 객체로 둔갑한다. '민주'는 살아있으나 '공화국'은 사라진 기형이다. 국가와 더불어 모든 조직공동체들이 부정되면서 노동자, 공무원, 교직원, 군인 등이 오로지 요구만 한다면 기업, 정부, 학교, 군대는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중동의 건설노동자, 대학의 과학기술자들, DMZ의 군인들, 바다의 등대지기들, 그을린 농부들이나 원양어선의 선원들 등을 과거 권위주의시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불러내어 그들의 국가에 대한 헌신을 국민과 더불어 공유하는 것은 어떤가? 국가의 잘못을 적폐로 질타하면서 그 책임을 누군가에 묻기보다는 남군과 북군 모두의 거룩한 희생으로 수용하면서 국가를 위한 헌신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여는 방법이 우리의 역사와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누구라도 국가에 헌신하는 역할이 주어지지 않으면 끝없이 요구하면서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길을 찾기 마련이다. 그때 우리 모두의 국가는 사라지게 된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7-11-20 윤상철

[전호근 칼럼]일한 사람이 쉴 수 있는 세상

한국노동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OECD평균보다 1.7개월 더 많고독일보다 무려 넉달이나 더 일해수고롭게 일하고도 쉬지 못한다이젠 우리도 부의 분배만 아니라쉼의 분배에도 많은 관심 가져야중국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한 사람인 묵자는 수레를 만드는 기술 노동자였다. 당시 그를 비롯한 기술자들은 수차와 호미 등 새로운 농기구를 만들어 물질적 풍요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당시의 지배자들은 기술이나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의 노고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들의 삶은 여전히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기술자 집단의 우두머리였던 묵자는 기술과 노동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우려 했다. 그는 인간이 인간인 이유를 노동하는 데서 찾았다."사람은 본디 날짐승이나 길짐승과는 다른 존재다. 짐승들은 깃이나 털을 그대로 옷으로 삼고 물이나 풀을 그대로 먹을거리로 삼지만, 사람은 이들과 달라 노동하는 자는 살아나갈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자는 살아나갈 수 없다."그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깃이나 털을 그대로 옷으로 삼고 물과 풀을 그대로 먹는 짐승들과는 달리 노동을 통해 자연을 넘어서는 존재다. 되돌려 말하자면, 그에게 일하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가 말하는 정의란 것도 다른 철학자들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그려진다. 그는 남의 것을 훔친 자를 부도덕하다고 비판하지만 그보다 스스로 노동하지 않고 남의 노동을 훔친 행위, 곧 남의 노동을 착취하는 행위야말로 가장 부도덕한 행위라고 비판했다.따라서 그는 그런 노동 착취행위가 가장 큰 규모로 일어나는 침략 전쟁은 약자에 대한 강자의 부당한 폭력이라고 지적한다. 전쟁이야말로 가장 중대한 사회적 불의라고 규정했던 건 그에게는 당연한 결론이었다. 실제로 그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집단을 구성하여 침략자에게 조직적으로 저항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시대를 대혼란의 시대로 보았지만 혼란을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달랐다. 당시의 혼란을 묵자는 이렇게 정리했다."백성에게는 세 가지 걱정이 있다. 굶주린 자가 먹지 못하는 것, 추위에 떠는 자가 입지 못하는 것, 수고롭게 일한 자가 쉬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야말로 백성들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이 말에서 그의 철학이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백성, 수고롭게 일한 자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자뿐 아니라 수고롭게 일하고도 쉬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스스로 일하는 자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천 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에 비추어 보아도 묵자의 이야기는 여전히 돌아볼 만한 점이 없지 않다.말할 것도 없이 현대의 한국인들은 고대의 춘추전국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이들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다지 행복한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높은 자살률과 낮은 국민 행복도를 보면 한국인의 삶은 대체로 우울해 보인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최근의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우울은 무슨 실존적인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은 데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OECD에서 발표한 '2017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6년 한국 노동자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 노동자는 OECD 평균보다 1.7개월을 더 일하며,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짧은 독일과 비교하면 무려 넉 달을 더 일한다. 이러니 한국 노동자들은 한 마디로 수고롭게 일하고도 쉬지 못하는 이들인 셈이다. 어떤 이들은 노동생산성이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 노동자들의 자질이 독일 노동자보다 넉 달을 더 일해야 할 정도로 떨어진다는 말인가?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많이 일하면 생산성도 따라서 올라간다는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반증으로 이해하고 노동 시간을 줄여야 할 것이다.2천 년 전의 묵자가 일한 자는 쉬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가 그의 시대적 요청에 명징하게 답한 것처럼 이제 한국 사회도 부의 분배만 아니라 쉼의 분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수고롭게 일한 모든 이들이 마음 놓고 넉넉히 쉴 수 있는 날이 이제는 와야 하지 않을까. 2천 몇 백 년은 너무 오랜 기다림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11-13 전호근

[홍창진 칼럼]인연(因緣)이 미래다

모든 형태의 노력은 미래의 씨앗'인연'으로 제대로 싹 틔워야이웃과 담 쌓은채 고민하지 말고산행·종교활동·연애도 하면서일상적인 만남 많이 갖고 살아야따뜻함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신부님, 회사에 사표 냈어요. 당분간 쉬면서 생각 좀 하려고요. 일간 찾아뵐게요.'얼마 전 받은 문자메시지다. 젊은 친구들과의 만남이 많아서인지 평소 이런 문자를 자주 받게 된다. 대부분 이직을 정하지 않고 무작정 내린 결론들이다. 먹고살 대비책을 세워두지도 않고 일단 사표부터 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불안할까?하지만 다행히 일자리를 찾았다고 해도 이전보다 행복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경제 성장이 침체기에 든 이래 일자리 자체가 크게 줄었고, 자연히 개인의 업무량은 늘었다. 눈앞의 일을 해치우느라 몸은 피곤해 죽겠는데, 권고사직이니 명예퇴직이니 하는 무시무시한 말 때문에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한다. 그래서 아예 국가고시 등 다른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위 의전, 약전, 법전 준비생들이다. 전공을 바꿔 대학과정을 밟아 전문직을 갖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멀쩡히 잘 다니던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고시원에 들어갔다.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평생직장을 갖겠다는 그 노력이 가상하긴 하지만, 내 눈에는 미래를 향한 멋진 도약으로 보이지 않는다. 입으로는 희망을 말하지만 눈빛이나 행동에는 괴로운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괴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양질의 자리는 점점 희박해지고 경쟁은 치열해져가는 세상이 너무 두려운 것이다. 가진 재주를 다 모아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될 리 없다. 무서운 경쟁을 뚫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가뜩이나 복잡한 마음을 더 짓누른다. 그런데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미래에 내가 어떻게,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지 결정짓는 데 가장 크게 작용하는 요소가 무엇인가?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다. 기본적인 실력도 있어야 하고, 학벌이 뒷받침되면 더 좋은 거고, 인내심이나 도전의식 등 품성도 갖출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하지만 나는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인연(因緣)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많은 젊은 친구들이 미래의 삶을 의논하러 나를 찾아온다. 그럴 때 나는 내 주변 사람 중에 그 친구의 꿈과 엇비슷한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 아니 꼭 꿈과 관련 없어도 위로를 주고 본이 될 만한 사람들에게 연락해 서로 어울리게 한다. 거창한 모임이 아니라 그저 산에 오르거나 자전거를 탈 때 놀러 오라고 한다. 안타까운 건 젊을수록 그런 자리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말이다. 학원에 가야하고, 스터디에도 가야하고, 시험 준비도 해야 한단다. 가뜩이나 피곤한데, 그 시간에 잠이라도 한 숨 더 자겠다는 마음도 보인다. 좋은 인연 날아가는 소리가 귓전에 들리지만,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다 앉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저 하던 대로 이 직장 저 직장 기웃대며 고민하는 걸 지켜볼 밖에는.지나고 보니 내가 주선한 세대 간 통합 모임에 꾸준히 나왔던 친구들은 거의 자리를 잡아 열심히 잘 사는 반면, 저 하던 대로 고립돼 살던 친구들은 같은 고민에 허우적대고 있다. 먹고사는 일이 녹록지 않은 시대이지만 이웃과 담을 쌓은 채 혼자 고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가끔 산행 모임도 나가고, 종교 활동도 하고, 연애도 하면서 일상적인 인연들을 계속 키우며 살았으면 좋겠다.나는 아직까지 혼자 노력해 성공했다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노력은 미래의 씨앗이 된다. 그러나 그 씨앗이 제대로 싹을 틔우려면 좋은 토양과 햇볕이 필요하다. 인연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인연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모르고 오로지 자기 힘만 믿고 미래를 개척하려드는 건 어찌 보면 미련한 짓이다. 인연이라는 절반의 기회를 그냥 내다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력도 좋지만 생각보다 따뜻한 인연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아직 당신은 그 인연을 만나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2017-11-06 홍창진

[방민호 칼럼]헌책방 사연

세상이 바뀌고 나서도숱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하지만 정녕 중요한 것은역시 한 사람이 나고 살고 가는것몇 권 그의 책을 사들고나오면서 다시 한번 생각했다어젯밤이다. 뭔가 허전하다 싶으면 헌책방을 찾게 된다. 어젯밤에는 더구나 박완서 수필집 보아둔 것을 꼭 사야 할 용무도 있었다. 지난번에 만오천 원이라 했었다. 다른 책도 제법 많이 산 데다 초판도 아닌 3판째 수필집이라 미루어 둔 책이었다. 서울에서도 마포 홍익대학교 근처, 그래도 이런 곳에 헌 책을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가끔 싼 값에 좋은 책을 만나면 그보다 아기자기한 즐거움도 드물다. 옛날에, 청계천 근처 헌책방에서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를 일제 강점기에 한국어로 낸 문고판 책을 발견하고 얼마나 기뻤던가. 이런 경우를 요즘 세속 말로 '득템'이라 한다던가. 그러나, 사실, 요즘은 꼭 그렇게 기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 헌책 흥정이라는 것이, 요즘은 인터넷에서 경매가 벌어지고 인터넷 유통망을 통한 가격 비교가 언제든 할 수 있게 되면서 간단치만은 않게 되었다. 어쩌다 주인 모르는 책을 싸게 사게 되면 혹여 사람을 속여 넘긴 게 아닌가 찜찜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인터넷 유통망으로 가격을 일일이 확인하고 헌책 값을 받을 대로 받으려는 주인님을 보면 어쩐지 얄밉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래저래, 귀한 책은 귀한 값 그대로는 못될망정 적당히 쳐주고 그렇지 않은 책은 이유까지 알려 드리며 제 가격대로 사는 게 마음 편하다. 왔다 간 게 불과 한 달 전쯤이었나? 그런데 그 짧은 사이에 헌책들이 꽤 좋은 것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 같다. 누가 소장하고 있던 책들을 내놓은 것 같기도 하고. 이 업계에서는 '나까마'(なかま, 仲間)라고 한단다. 이 어원이 맞나 모르겠는데, 내놓아진 책을 싸게 사다 헌책방 같은 곳에 되파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중간 상인일텐데, 다들 아직까지 일본어로 그렇게들 부른다. 청계천 헌책방 같은 데 서서 그분들 이야기 나누는 것 보면, 좋은 책 나오려면 꼭 어느 분이 돌아가시든가 해야 한다. 책을 사랑해 수집하고 아껴 소장해온 사람이 어느덧 나이가 들어 병석에 들고 그 자손들이 그 무겁고 부피 나가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없어 처분해야 하는 때가 오면 나카마 분들께는 대목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나카마 장사를 잘 하려면 책 볼 줄 아는 눈이 있어야 한다. 일제 강점기에 나온 책이면 쇼와(昭和) 25년이 서기력으로 몇 년인지 정도는 알아야 하고, 해방 직후나 1950년대 책을 알아보려면 단기력에서 2333년을 빼야 서기력이 나온다는 것쯤도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웬만한 작가나 시인 이름 정도도 그 존재는 알고 있어야 무게로 달아 나오는 헌 책에서 값이 되는 것을 뽑아낼 수 있다. '박노갑'이라면 그렇게 유명한 작가라고 할 수도 없지만 점점 책이 귀한 세상이 되고 보면 그런 작가 책도 가볍다고만 볼 수 없고, 더구나 그가 박완서 작가의 스승이기도 했다고 생각하면 한 번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박완서 수필집 3판 것을 오천 원을 깎아 주어 쉽게 사고난 후 새로 들어온 헌책들을 살펴보는데, 그 중에 '창작과비평' 1970년대 것들도 그런대로 깨끗한 게 뭉치로 있고, 김성동의 장편소설이며 수필집도 초판 나온 게 있다. 이런 책들은 요즘 쉽게 나오지를 않는 것이다. 어떤 분이 갖고 계시던 건가요? 단골 된 덕에 알아보는 주인께서, 모모한 사람인데, 이름은 알려줄 수 없고, 그런데 그분이 오래 아파서 어쩔 수 없이 내놓는 책들이라고, 당신 보기에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다. 어느 한 분야에 오래 있다 보면 남들 잘 모르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는 법도 있다. 생각이 짚이는 데가 있다. 하지만 그 이름을 발설하지 않는다. 그러면 더 마음이 편치 않아질 것 같아서다. 세상이 바뀌고 나서도 숱한 일들이 일어난다. 하지만 정녕 중요한 것은 역시 한 사람이 나고 살고 가는 것이라고, 헌책방을 몇 권 그의 책을 사들고 나오면서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밤이 이미 많이 깊었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7-10-30 방민호

[이남식 칼럼]세상을 바꾸는 '기계학습'

미래엔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기존 산업·빅데이터·기계학습이새로운 가치 창출하게 될 것이를 위해 착실히 준비하는 것이미래의 경쟁력 키워가는 지름길교육콘텐츠도 바뀌지 않으면 안돼최근 네이처지에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에서 새롭게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수많은 기보를 통하여 훈련시킨 '알파고' 인공지능프로그램과 '알파고 제로'라 불리는 새로운 방식의 인공지능프로그램이 대결해 '알파고 제로'가 100 대 0으로 승리했다고 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새로운 '알파고 제로'는 과거의 기보 자료나 지도 훈련 없이 순수하게 스스로 강화학습에 의해 바둑 두는 방식을 터득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바둑을 두는 지식에 근거하여 학습한 것보다 기계가 스스로 학습한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과거 '알파고'에서는 정책망(policy network)과 가치망(value network), 두 개의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을 사용하여, 정책망은 인간고수가 어디에 돌을 놓을지를 지도학습으로 훈련시키고, 가치망은 바둑돌을 두었을 때, 누가 이길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이렇게 훈련이 끝나면, 몬테칼로 나무탐색(tree search)을 통하여 가장 확률이 높은 상대방 수에 대하여 승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알파고 제로'는 하나의 신경망을 사용하고 사람의 지도나 감독 없이 무작위로 스스로 바둑을 두되 강화학습이 일어나도록 프로그램하였다. 결국은 '알파고 제로' 스스로 승리하는 패턴(즉 포석)을 손실함수(loss function)로 계산하며 학습하여 지난번 보다 훨씬 효율적인 결과를 낳았다. 과거의 '알파고'는 몇 달간의 훈련을 거쳐 완성되었는데, 새로운 '알파고 제로'는 단 36시간의 학습 뒤에 '알파고'를 앞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과거 '알파고'는 분산된 여러 대의 컴퓨터와 48개의 TPU(신경망을 계산하는 CPU)를 사용하였으나 새로운 '알파고 제로'는 4개의 TPU를 가진 한 대의 컴퓨터로 가능하였다. 불과 몇 개월 만에 바둑이라는 한정된 영역이기는 하지만 기계학습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 한다. 제4차 산업혁명의 가장 큰 동력을 '인공지능'이라 하지만 이 중에서도 그 중심에는 기계학습 즉 머신러닝이 있다.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하는 기계를 통하여 앞으로 엄청난 생산성 향상과 더불어 21세기에 새로운 경제부흥을 기대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누가 기계를 잘 만드느냐가 아니라 누가 기계학습을 잘 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느냐가 경쟁의 핵심이 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의 걱정처럼, 효율과 성과만을 기준으로 강화학습이 일어날 경우, 많은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인간이 기계와 다른 점은 '인간의 양심'이 악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기계학습에 의하여 가장 효율화된 시스템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게 될 경우 엄청난 문제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를 어떻게 인간의 통제 하에 둘 것인가에 대하여 전 세계적인 기준을 만들고 총체적으로 이를 감독하고 관리하는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 전 세계 인구의 60%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게 될 것이며, 이 때문에 스마트시티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생산성의 향상을 위하여 모든 생산현장이 스마트팩토리로 바뀌어가고 있다. 결국 엄청난 양의 다양한 정보들이 빅데이터로 생성, 보관되며 실시간으로 의미 있는 패턴을 찾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또한 기계학습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미래에는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기존의 산업과 빅데이터, 기계학습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게 될 것이다. 이를 착실히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미래의 경쟁력을 키워가는 지름길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의 콘텐츠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더 이상 안 배워도 될 것들을 줄이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힐 여유가 없다. 선생님이나 교수님이 있기 때문에 배워야 하는 것들이 있다면 이제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

2017-10-23 이남식

[윤상철 칼럼]우리에게 나라는 있는가?

트럼프와 김정은 말폭탄 이어북, 핵·미사일 도발 강도 높이고미, 북에 군사적 압력 '긴장 고조'이 틈에서 한국정부 갈팡질팡아무 대책없이 선택 수용 한다면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아지금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 있는 듯하다. 미국 대통령은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우리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사실상의 선전포고를 한 반면, 김정은 북한노동당위원장은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이라고 반격했다. 말뿐만이 아니다. 북한은 핵실험을 거듭하고 탄도미사일의 발사거리를 늘려가는 반면, 미국은 B1B 전략폭격기 편대를 한반도 상공에 출격시키고 핵추진 항모전단을 한반도로 이동시키면서 북한에 대해 군사적 압력을 한껏 높이고 있다.이 틈에서 정작 한국정부는 갈팡질팡한다. 정부는 북한에 800만달러를 지원하면서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분리하여 지속 추진'하겠다고 하는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의 도발을 조기에 분쇄하고 북한을 재기불능으로 만들 힘이 있다"고 강력하게 압박했다. 반면 야당은 '코리아 패싱', '무기력 행정부', '환상에 빠진 청와대' 등으로 거칠게 비판하면서 '전술핵 재배치'와 핵무장, 전시작전권 환수 재고 등을 거론하면서 대북 압박과 제재를 주문한다.사자와 하이에나의 틈바구니에서 양과 여우의 전략이 다투는 형국이다. 그러나 양과 여우가 기실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인식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일단은 공식적인 정책결정자도 안보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의 말에서 찾아진다.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교수는 "한미 동맹이 깨진다고 하더라도 전쟁은 안 된다"고 말하면서 북미간 우발적, 계획적 충돌과 핵전쟁의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소설가 한강은 '미국이 전쟁을 언급할 때 한국은 몸서리친다'는 제목의 NYT 기고문에서 "평화가 아닌 어떤 해결책도 의미가 없고 승리는 공허하고 터무니없는 구호일 뿐"이라고 절규한다.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즐비한 우리나라에서 한국, 나아가 한반도가 핵전쟁으로 맞게 될 파괴와 절멸의 위기에 대응하여 그 어떤 헤게모니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촛불혁명에 참여한 시민들이 외쳤던 "이게 나라냐"를 다시 되뇔 때가 아닌가 싶다. 그 때는 국정농단과 같은 내우를 한탄하는 말이었다면, 이제 외환에 대해서 아무런 대책도 없이 정파적 대결이 횡행하는 상황을 질타하는 말이다. 나라의 백성과 강토가 사라지거나 이제껏 이룩한 정치경제적 발전을 과거로 되돌릴 수 있는 형국에서 나라의 가장 본질적인 목표인 생존전략조차 합의하지 못하는 정치인들과 국민들이 살고 있다면 '상상의 공동체'로서 나라는 이미 해체된 거나 다름없다. 이런 일이 한반도의 21세기에서만 나타나는 상황일까?임진왜란 1년 전에 일본에 갔던 조선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은 일본의 동정에 대해 상반된 보고를 한다. 정사 황윤길은 '필시 병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보고하였지만 김성일은 '그러한 정상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민심을 동요하게 한다'고 상반된 보고를 올린다. 정파적 이해가 다르더라도 그 실낱같은 가능성이 일본의 조선지배를 초래할 일이었으면 조선의 집권세력은 병란을 대비했어야 했다. 불과 40년 후에 일어난 병자호란도 나라의 생존을 둘러싸고 이해를 달리하는 척화파와 주화파 간의 대립으로 아무런 대책 없이 쟁론만 벌이다가 백성들은 전쟁의 참화를 겪고 강토는 유린되고 왕은 굴욕을 당한다. 나라의 생존이 무엇인지에 대한 최소한의 합의만 있었더라면 임진왜란 이후 전쟁에 대비하고, 명분만 앞세워 강력한 적에 맞서는 우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북분단이나 한국전쟁의 상황에서도 이러한 적전분열의 양상은 다르지 않았다.전근대시대라면 인접국과는 동맹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만큼, 북한이나 중국과는 적어도 적대관계를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오랜 냉전으로 굳어진 대립관계를 우호적 관계로 돌리기란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전국시대의 진나라나 신라처럼 원교근공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기에는 미국도 중국도 우호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동북아 균형자론은 상황인식도 주제파악도 안된 공상처럼 들린다. 이 시점에 마키아벨리라면 미국과 중국, 미국과 북한이 대립하는 형국에서 어느 한쪽을 명확히 선택하라고 주문했을 것이다. 그는 인접한 두 강국이 싸우는 형국에서 중립은 결국 궤멸을 초래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립하는 두 국가들이 전쟁으로 갈지, 현상유지로 갈지 알 수 없는 형국이다. 그 결과가 북미간의 빅딜이건, 미중간의 빅딜이건 간에 한국이 한반도 운전자가 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마키아벨리라면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는 방법이 최악이라고 말했을 것이고, 서로 다른 전략으로 우왕좌왕하는 것은 아무 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라 말했을 것이다. 아무런 입장이 없어서 패싱 당하고 남들의 선택을 수용해야 하는 나라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 "이게 나라냐?"/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7-10-16 윤상철

[전호근 칼럼]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커피믹스 따로 팔 수는 있지만탄 커피 돈 받을 수 없다는 할머니돈으로 못 살것 없는 지금의 세상진심어린 친절 감동이기에값어치로 환산할 수 없는 환대거래할 수 없는 가치 지녀내가 한창 골목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던 시절 이야기다. 2009년 어느 가을날에 나는 카메라를 챙긴 다음 사진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서울의 후암동 골목길을 찾았다.용산고등학교를 지나 남산으로 통하는 소월길에 이르기까지 꼬불꼬불 이어지는 후암동 골목길은 갈래가 꽤나 복잡해서 다 돌아보는 데 반나절 가까이 걸린다. 그날은 빛이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러 차례 골목길을 오르내리면서 마음에 드는 컷을 많이 건졌다.부지런히 돌아다니던 우리는 커피를 마시고 싶었지만 골목길에는 커피숍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소월길 못미처 용산초등학교 언저리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찾았다. 우리는 전에 다른 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믹스커피를 타달라고 해서 마실 요량으로 구멍가게로 들어갔다.안에는 여든이 훨씬 넘어 보이는 할머니가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믹스커피를 타 주실 수 있겠느냐고 여쭙자 할머니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전자를 꺼내 불에 올렸다.가게는 아주 작았다. 둘러보니 진열된 물건들도 유행 지난 과자가 대부분이었고 양도 많지 않았다. 가게 입구에 설치된 평상에는 커다란 호박이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고 가게로 연결된 좁다란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울퉁불퉁 파손된 곳이 많았다.이윽고 주전자 안의 물이 끓기 시작했고, 잠시 후 우리는 할머니가 타주신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많이 걸었던 터라 그런지 커피가 유난히 맛있었다. 천천히 커피를 다 마시고 난 뒤 우리는 할머니에게 얼마를 드려야할지 여쭈었다.그런데 할머니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놀란 우리는 그러시면 안 된다고 말하며 돈을 꺼내 드리려고 했으나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면서 돈을 절대 받을 수 없으니 그냥 가라고 하셨다.할머니 말씀은 커피믹스를 따로 팔 수는 있어도 손님에게 커피를 타주고서 돈을 받을 수는 없다고 하신다. 그리고는 "우리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 고 하셨다.우리는 할 수 없이 건강하시라고 인사드리고 가게를 그냥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후 나는 커피를 마실 때면 종종 까닭 모를 감동과 함께 그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렸다. 커피를 따로 팔 수는 있지만 손님에게 커피를 타주면서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그 할머니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돈으로 못 살 건 아무 것도 없어 보이는 지금 세상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 또한 대개가 거래의 다른 이름이기 십상이다. 거래에는 손님과 주인이라는 고유한 관계는 사라지고 소비자와 판매자라는 무미건조한 관계만 남는다. 소비자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물건을 사고 판매자 또한 물건을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관심도 없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도 물건을 사용할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가격에 맞춰 상품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애덤 스미스가 말한 것처럼 우리가 맛있는 빵을 원한다면 빵집 주인의 자비심에 기대할 것이 아니라 그의 이기심에 호소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인 세상이다.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방법은 무엇이든 교환할 수 있는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것이 이미 오래 전에 뿌리 내린 자유 시장의 거래 원칙이다. 물건만이 아니다. 돈의 힘은 더없이 편리하고 강력해서 돈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는 한 우리는 어디서나 한껏 친절한 응대를 살 수 있다.하지만 그날 나는 커피를 타주는 할머니의 환대를 돈으로 살 수 없었다. 진심어린 친절이기에 거래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사랑은 사랑으로만 교환할 수 있고 우정은 우정으로만 교환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까닭 모를 감동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환대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얼마 전 일이 있어 후암동에 들렀다가 할머니 가게가 있던 곳을 찾았지만 이미 그곳에는 아파트가 들어섰고 가게가 있던 골목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집으로 가려고 그곳을 떠나 지하철역에 이를 때까지 내 귀에는 계속 할머니의 목소리가 맴돌았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10-09 전호근

[이남식 칼럼]특이점의 시대

알파고 바둑실력 인간 능력 추월인간의 시각처리 신경 본떠 만든대표적 모델 '합성곱 신경망'개인 비서인 인공지능 스피커 등새로운 생태계 비즈니스 탄생이젠 적극 활용해야 할때가 왔다지난 해에 이어 올해도 알파고는 더욱 발전된 실력으로 바둑의 세계 1인자라는 중국의 커제 9단과의 3번기를 내리 이겨 지난 해 이세돌 9단을 포함 프로기사와의 대결에서 총 69전 68승 1패를 거두었으며 5월 27일 드디어 은퇴를 선언하였다. 그나마 이세돌 9단이 올린 1승이 인간이 올린 유일한 승리였으며 바둑에 관한한 더 이상 인간과의 대결은 무의미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바둑이라는 고도의 인지적 훈련과 통합적인 판단을 요하는 바둑의 영역에서 기계의 능력이 인간의 능력을 추월하는 그야말로 "싱귤레리티 (Singularity, 특이점)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100m 달리기를 하는데 인간 최고의 스프린터인 우샤인 볼트와 내연기관의 자동차가 대결하여 자동차가 승리했다는 것과 유사할 수 있다. 더 이상 자동차와 인간의 대결은 무의미하며 모든 사람이 자동차를 사용하고 자동차로 말미암아 인간의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무거운 짐들을 쉽게 운반하게 된 것처럼 이제는 모든 사람이 인공지능을 이용하여 오히려 인간의 능력이 증강되고 향상될 수 있어 사이버의 세계에서의 새로운 인지적인 도구가 보편화 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급속한 인공지능의 기술진보와 확산은 오픈이노베이션 (open innovation)에 있다.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에 관련된 대부분의 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는 모두 공개되어 누구든지 사용하고 이를 기반으로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 1953년에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한 이후 90년대까지는 등반에 성공하는 팀이 매우 적었으나 최근에는 매년 600~700명이 등반에 성공하는데 이유는 베이스캠프의 위치가 처음에는 2천500m에서 시작하여 최근에는 5천800m까지 상승하면서 급격히 등반 성공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의 분야는 공개된 가장 좋은 것을 기반으로 새로운 응용을 거듭함으로써, 그 수준이 폭발적으로 향상되는 것이다. 구글의 Tensor Flow, 마이크로소프트의 CNTK, DMTK 페이스북의 Torch 버클리비전센터의 Caffe 등의 공개소프트웨어, Github와 같이 2천600만명의 사용자가 있는 공개프로젝트 커뮤니티, 각종 공개데이터, 공개 경진대회 등을 통하여 하루가 다르게 진화 발전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최소한 이런 공개소프트웨어나 공개데이터를 활용하여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특정 문제에 적용하고 더 큰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역량이다. 최소 6개월에서 1년이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다. 최근 코세라(cousera)와 같은 MOOC에서 6개월 안에 마칠 수 있는 새로운 학위과정-나노디그리 (Nano degree) 가 활성화된 것 또한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시각을 처리하는 신경을 모사하여 만든 인공신경망 모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을 합성곱 신경망 (CNN : Convolutional Neural Network)이라 한다. 이미 비디오 영상 중에서 수천 가지의 서로 다른 물체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물체를 인식하는 학습을 첨가할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CNN을 Cable Network News의 약자로 인지하는 사람은 많으나 아직 CNN을 합성신경망이라 인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동차를 이용하듯이 모든 사람이 이러한 새로운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국가야말로 미래에 경쟁력이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변화 속에서 새로운 비즈니스들이 탄생 되고 있다. 아마존의 인공지능 스피커인 Echo를 이용한 개인비서인 일렉사(Alexa)가 그러한 비즈니스이다. 이것은 단지 스피커를 파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아마존이 개발한 음성인식, 자연어처리와 같은 인공지능서비스를 수많은 개발자와 함께 판매하는 생태계 (Echo system)이다. 스피커에 지시하는 다양한 명령을 스킬 (skill)이라 하여 누구든지 개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음악을 틀어 줘'와 같은 것 이외에도 '문자에 있는 계좌로 돈을 송금해 줘'라는 명령을 앞의 자연어처리, 문자-음성 변환처리 등의 서비스를 이용하여 개발할 수 있는데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서비스를 이용할 때마다 과금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통하여, 그리고 개발된 서비스를 웹에서 서비스할 때 과금하는 등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통하여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데 매년 그 신장률이 50% 이상이다. 즉 새로운 생태계에서 1인 기업이 얼마든지 가능하며 노트북 이외에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 아마존의 클라우드 서비스인 AWS (Amazon Web Sevice)를 통하여 스킬을 개발하고 전 세계적으로 개발된 스킬이 사용될 때마다 사용료를 받는 사업이 가능해지므로 남는 시간에는 문화생활을 즐기며 새로운 서비스를 구상하는 삶을 살게 되는 날이 온 것이다. 인공지능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으며, 이제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

2017-05-29 이남식

[전호근 칼럼]죄(罪)와 용서에 관하여

재물보다 사람 아끼라는 말은이 나라 모든이가 귀담아 들어야통치자는 아랫사람의 말 잘 듣고묻는것도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신하의 죄 임금이 용서할 수 있지만임금의 죄는 용서해줄 사람 없어춘추시대의 패자 제나라 환공이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한 노인을 만났다. 나이를 물어보니 83세라 한다. 환공은 노인에게 오래 산 복으로 자신을 위해 축원해 달라고 했다.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임금님을 위해 축원합니다. 재물을 가벼이 여기시고 사람을 중시하십시오.""좋은 말씀입니다. 좋은 말은 한 번으로 그쳐서는 안 되니 한 마디 더 해주십시오.""임금님을 위해 축원합니다. 임금께서는 부디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그 또한 좋은 말씀입니다. 좋은 말은 반드시 세 번 해야 합니다. 한 마디 더 해주십시오.""임금님을 위해 축원합니다. 임금께서는 부디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죄를 짓지 마십시오."예상치 못한 말은 들은 환공은 크게 화를 내며 이렇게 따졌다."과인은 자식이 어버이에게 죄를 짓고 신하가 임금에게 죄를 짓는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이 신하에게 죄를 짓는다는 말은 처음이오."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그렇지 않습니다. 자식이 죄를 지으면 어버이가 용서해주면 되고 신하가 죄를 지으면 임금이 용서해주면 됩니다. 하지만, 임금이 죄를 지으면 용서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옛날 폭군 걸왕이 탕에게 쫓겨났고 주왕이 무왕에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이 말을 들은 환공은 노인에게 절하고 그로 하여금 고을을 다스리게 한 뒤 떠났다.유향의 '신서'에 나오는, 2천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노인의 세 마디 말은 참으로 옳다.재물보다 사람을 아끼라는 첫 번째 말은 이 나라에 사는 모든 이가 귀 담아 들어야 한다. 저 비극적인 세월호 참사도, 침몰 원인을 아직 다 밝히지는 못했으나 따지고 보면 사람을 재물보다 천시하는 풍조가 근본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적재적량을 훨씬 넘어서는 화물을 적재한 이유나 적재된 화물을 고박하지 않은 이유는 모두 사람보다 재물을 아꼈기 때문이 아닌가.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두 번째 말은 모름지기 통치자는 낮은 곳에 있는 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말을 뜻하는 한자 言(언)은 입[口]에서 나오는 음파[≡]가 위쪽으로 퍼져 나가는 모양을 본 뜬 글자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입이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래에 위치한 입[口]은 신분이 낮은 사람의 말을 뜻한다. 그러니 말이 통한다는 것은 높은 사람의 말이 아래로 전달된다는 뜻이 아니라 낮은 사람의 말이 위에까지 전달된다는 것을 뜻한다.고래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란 없다. 신분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의 말은 아무리 목소리를 낮게 하더라도 다 알아서 듣기 때문이다. 그래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은 말[言]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명령[令]이기 때문이다. 명령을 뜻하는 한자 령(令)은 입[△]이 위쪽에 위치하고 아래에 사람이 엎드려 기는 모양[ ]을 본뜬 글자다. 곧 아래에 있는 사람이 신분이 높은 사람이 하는 말에 복종하는 모양을 그린 글자가 령(令)자의 본뜻이다.명령, 곧 권력자의 말이 쉽게 전달되는 것은 그 말이 꼭 올바르기 때문이 아니라 권력의 하수인들이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 때로 온 몸을 던지며 죽음으로 항거해도 그들의 말은 세상에 반향을 일으키기 어렵다. 세상은 귀머거리인 까닭이다.마지막으로 아랫사람에게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그 이유가 절묘하다. 아랫사람의 죄는 윗사람이 용서해줄 수 있지만 윗사람이 지은 죄를 아랫사람이 용서해줄 수는 없는 법이다. 용서라는 말이 그렇다. 용서란 '꾸짖거나 벌을 주지 않고 너그럽게 봐준다'는 뜻이다. 애초에 꾸짖거나 벌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일이 용서다. 그러니 아랫사람에게 죄를 짓는다면 그가 나를 용서할 길이 없으니 나 역시 그에게 용서를 구할 수 없다. 위에 버티고 있으면서 아래에 용서를 구한다는 건 '국가 경제에 이바지한 바가 크니 사면해줘야 한다'는 말처럼 무례하고 교활한 억지다.지금 이 나라의 행정부나 국회에 있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윗사람이 된 이들은 모두 노인의 이 말을 새겨야 할 것이다. 나도 죄를 짓지 않도록 이 말을 명심해 두려고 한다. 나 또한 부모이고 선생이니./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05-15 전호근

[홍창진 칼럼]죽음은 삶의 거울

죽음의 두려움 없애는 방법은하루하루 불평불만없이 사는것주어진 인생 잘 살아가다 보면마지막 순간엔 행복한 죽음 맞아늘 감사한 일과 마음 갖게 되면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즐거워사람은 본능적으로 모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의학과 과학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죽음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다. 세상 어떤 사람도 죽음을 앞서 경험해본 이는 없기 때문이다. 무덤에 묻혔던 이가 다시 깨어나 증언하지 않는 한, 사실 죽음에 대해 명확히 알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웃는 얼굴로 맞을 수는 있다고 본다. 직업상 죽음을 참 많이 봐 왔다. 신부가 제일 많이 하는 일은 죽음을 앞둔 사람들을 찾아가 행하는 종부성사(임종 전에 치르는 천주교 의식)이다. 신부들은 24시간 전화기를 켜두어야 한다. 급한 임종은 대개 밤과 새벽 사이에 일어나기 때문에, 취침 중에라도 항상 대기모드로 해 둔다. 30년 가까운 시간, 한 달에 많게는 수차례씩 임종을 지켜보다 보니 죽음을 목전에 둔 얼굴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이분이 지금 천당으로 가고 있는지 지옥으로 가고 있는지 말이다. 차분하고 평안한 얼굴로 떠날 채비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초조하고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두려움에 떠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얼굴을 마주할 때면 죽음 직전의 얼굴이 평생 살아온 인생의 지도라는 생각이 든다. 평생 남의 가슴에 못 박는 일 없이 주어진 삶에 감사하며 산 사람은 떠나는 길의 표정도 평화롭고 행복해 보인다. 웃음으로 생긴 잔주름과 잔잔한 입가의 미소가 눈물겹게 아름답다. 그러나 자기만 위하고 가족과 이웃을 외면하며 살았거나, 성공을 추구하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내면의 자아를 학대하며 산 사람은 마지막 생명줄을 부여잡고 괴로워한다. 죽음 직전에 지나간 날들이 후회스러워 편히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표정에 괴로움과 회환이 가득하지만, 종교의식 한 번으로 그 표정을 바꿀 수는 없다. 잘못 살아온 삶의 대가는 생의 마지막 순간 고스란히 받아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내가 살아온 삶의 모습이 곧 언젠가 맞이할 내 죽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종종 이런 이야기를 한다. "거울 속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그 얼굴이 바로 당신이 죽을 때의 얼굴입니다."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찬찬히 응시하면 거울 속 내 모습은 매번 다르다. 주어진 삶에 감사하면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산 날이면 거울 속 내 얼굴이 빛이 난다. 주름도 좀 없어진 것 같고 눈가에 생기가 돌기도 한다. 그러나 나만 생각하느라 가까운 사람을 등한시했거나, 불평불만으로 하루를 보낸 날이면 거울에 비친 낯빛이 어둡다. 지친 기색 때문에 주름도 더 있어 보이고 분노, 얼울함, 후회 등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눈빛도 흐려 보인다.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이 된다고 생각하면, 결국 매일매일을 잘 살면 인생을 잘 사는 게 된다. 인생을 잘 살면 곧 마지막 순간에도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결국 죽음의 두려움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오늘 하루 주어진 삶을 잘 사는 것이다. 매 순간 있는 힘껏 잘 살면 죽음의 공포는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죽음의 공포 대신 '한세상 잘 살았다'는 충만감이 자리하게 된다. 일전에 일주일 정도 단식을 한 적이 있다. 이틀이 지날 무렵부터 물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이렇듯 결핍은 아주 작은 일에도 우리를 감사하게 만든다. 결핍 중 최고의 결핍은 죽음이다. 죽음이 예고 없이 찾아든다는 것을 늘 기억한다면 우리 사람은 감사한 일로 넘쳐나게 된다.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면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삶은 즐거워진다./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홍창진 광명성당 주임신부

2017-05-08 홍창진

[방민호 칼럼]상처 입은 말, 피 흘리는 글

공격과 야유·조롱의 말과 글이음식 첨가물로 칭송되는 시대에사람들 영혼·참생명 메말라 가국가기관 닮은 부대들이인터넷망 파고 들어 포격 명령두 포털 그들 용맹에 무릎 꿇어원래 댓글은 한번도 달지 않은 사람이다. 언제부터냐 하면 지난 지지지난 대통령 때부터다. 그때부터 호화찬란한 댓글 문화, 문자문화가 꽃을 피웠다. 누군가 자기 생각에 안 맞는 말을 하고 글을 쓰면 패를 이루어 몰려가서 흠씬 두들겨 팬다. 정의와 진보의 이름으로.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말씀 거칠게 하니, '백성'들이 다투어 그분을 따라 말하고 쓴다. 전자게임에서 적을 마구 도륙하는 워리어가 된다. 급속히 확대된 인터넷 문화는 호화찬란한 소통 문화의 개활지로 변했다. 사실, 이런 말펀치, 글폭력은 군사독재 시절에 군림하던 사람들이나 쓰던 것이다. 불법 집권해서 무서울 게 없는 무리가 힘없는 '백성', 저항하는 '난도'들을 향해 카메라 모아놓고 눈 부라리며 썼다. 저항하는 사람들도, 그중에서도 젊은 학생, 노동자들도 같은 말, 글을 썼다. 싸우면서 투쟁과 공격의 언어를 익혔다. 삶의 말과 글이 군사 용어들로, 증오와 비난의 표현들로 오염되어 갔다. 이것이 그 지지지난 대통령 시대에 극적으로 인터넷에 상륙했다. 거침없는 비난과 비하, 조롱, 야유, 적대적 공격의 언어가 표현의 자유라는 명분을 업었다. 지지난 대통령, 지난 대통령의 시대에 이 문화는 더욱더 발전, 융성했다. 문화 융성이라는 허울 좋은 표어 아래 말과 글은 더욱더 군사화, 폭력화되었다. 국가 기관이 버젓이 댓글부대를 창설하고 '적'을 설정하고 말폭탄, 글폭탄을 투하했다. 맞아 죽으라는 듯 말이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렇게 폭격에 노출되어 '학대'당하던 진영으로부터 반격이 시작됐다. 이 저항 진영은 이미 지지지난 대통령 때부터 실력을 연마해 온 터라 한번 작정을 하고 나서자 그 국가기관 뺨칠 만큼 체계화, 조직화, 대량화되었다.이제 전투 '기계'가 완비되었다. 공상 미래 영화 '토탈리콜'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전자 레이더를 통한 적의 색출, 조준, 포격, 임무 완수, 또다른 명령 하달 같은 전자 게임적 대량 살상이 현실화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번 선거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모든 정보 전달, 의사소통이 인터넷화, 휴대폰화 하면서 날 것의, 직접의, 육성의, 종이 출판물의 말과 글은 무력화 되었다. 이 모든 아날로그적 말글은 오로지 디지털화될 때만 힘을 쓸 수 있다,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그리하여, 네이버와 다음이 이번 선거에서는 가장 무서운 매체로 대두했다. 종이 신문에 나는 정보, 뉴스 따위는 그 자체로는 차라리 '무력'하다. 포털 사이트들이, 실시간 뉴스에 상위 랭크시켜 주지 않는 한, 댓글 많은 뉴스, 많이 본 뉴스로 카운트해 주지 않는 한, 그것들은 정보의 홍수, 바다 속에 잠겨버릴 수밖에 없다. 네이버와 다음, 두 포털이 누구를 점지하느냐에 이번 선거의 명운이 달렸다. 그런데 이 사실을 누가 가장 잘, 명확하고도 냉철하게, 아니, 영리하게 알고 있을까? 김어준 씨다. 딴지일보 창업자이자, 정봉주, 김용민, 주진우 씨 등과 함께 '나꼼수'라는 불멸의 저항 팟캐스트를 구축한 인물. 그가 이 모든 사태를 논리 이전에 동물적 후각, 촉각으로 '완전히' 파악했다. 그리하여 지금 이 '나꼼수'는 마치 분열 생식하듯, '파파이스', '브리핑', '전국구' 같은 것들로 분화해서 인터넷 상의 팟캐스트 상위 링크를 완전히 장악했고, 나아가 그들 못지 않은 모방적 팟캐스트들을 발생 '시켰다'.그때 지난 대통령이 마침내 숱한 행악 끝에 탄핵을 당했다. 그러자 공중파 방송들, 종편 채널들, 라디오 방송들에서 이들 정의와 진보의 워리어들에게, 놀랍게도 시간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세상이 변했음을 참, '빠르게도' 알아차린 것이다!지금 내 눈에 상처 입은 말, 피 흘리는 글이 전투 현장에 널려, 쓰러져 나뒹구는 모습이 보인다. 공격과 야유, 조롱의 말과 글이 음식에 좋은 맛을 내는 보조물로 칭송되는 시대에 사람들의 영혼은, 참생명은 메말라 간다. 국가기관이 창설한 '더러운' 부대를 닮은 부대들이, 지금 인터넷망에 참호를 파고, 작전회의를 하고, 포격 명령을 하달한다. 다음과 네이버 같은 '기계'를 이 지휘관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들의 용맹과 지혜에 네이버와 다음은 무릎을 꿇어버렸다.아! 너무나 위대한, 전설로 남을 지휘관들이여, 명석하고도 예리한 워리어들이여! 그대들의 진보와 정의가 부디 오래 분별 있는 것으로 남기를. 그대들이 세월호의 진실과 가난한 이들의 현실을 위해 싸웠던 지난 시간들처럼. 부디, 부디, 변질되지 않기를. 이미 늦었는지도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아, 그렇지 않을 것이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7-05-01 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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