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명칼럼

 

[방민호 칼럼]봄에 통영으로

그리운 박경리 선생님의 고향홀로 원주서 25년 '토지'와 싸우던그분 생각하며 서피랑에 오른다깊이 세속 물든 속물 같은 사람이그래도 세상 끝에 와 서니 좋다맑은 바다에 몸 깨끗이 씻고 싶다3월 이른 봄에 통영에 간다. 박경리 고향 통영이다. 작곡가 윤이상과 화가 전혁림의 고장 통영이요, 문학연구가 김재용의 고향 통영이다. 아침 8시 25분 용산발 케이티엑스 열차다. 옛날에는 용산에서는 호남만 갔는데, 이제는 용산에서 마산도 가고 부산도 간다. 서울역에서 목포도 간다. 참 좋은 변화다. 옛날에 시인 백석이 통영 처녀 박경련을 사모해서 그곳에 갔다 했다. 그때 마산까지 가서 거기서는 배를 타고 갔다 했다. 친구 허준의 결혼식에서 만난 그녀를 그는 마음에 두었고, 그래 세 번이나 그녀를 만나러 그곳에 갔다 했다. 친구 신현중이라는 사람이 주선을 놓았다는데, 나중에는 오히려 그가 그녀와 맺어지고 말았다. 세상에는 이런 아이러니가 많다. 마산역에서 내려서는 버스를 타고 통영으로 향한다. 한 시간 걸렸을까, 도착한 우리가 처음 찾아든 곳은 물론 식당,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 점심 메뉴로 생선구이가 나왔다. 고등어는 알겠고, 나머지는 분명치 않아 묻는데, 어느 한 분께서 이건 돔이고 이건 서대고 이건 뭐라고 가르쳐 주신다. 아무래도 바닷가에서 자란 분만 같다. 이에 덧붙이는 말씀, 서대와 박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말씀인가 궁금해들 하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서대는 검고 박대는 불그스름하단다. 또 말려서 찌면 서대는 박대보다 살이 깊단다. 마지막으로 서대는 남해안에서 나고 박대는 서해안에서 난다기도. 햐. 잘도 아신다. 그러자 시인 백석 생각이 바로 난다. 백석 수필 가운데 '동해'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백석은 운치 있고 맛깔스럽게 동해안 풍경을 읊어가다 말고 뜬금없이 툭 이런 말을 던진다. "……그대나 나밖에 모를 것이지만 공미리는 아랫주둥이가 길고 꽁치는 윗주둥이가 길지."하, 공미리라. 공미리가 뭐냐. 옛날에 이 수필을 읽고 백과사전을 찾아본즉, 공미리란 학꽁치의 다른 말이라 했다. 그러자 저절로 무릎이 쳐졌다. 학꽁치와 꽁치, 생긴 것은 비슷한데 한 놈은 아랫주둥이가 더 길고 또 한 놈은 윗주둥이가 더 길다는 것이다. 문인이 이렇게 섬세하게 바다 것을 잘 아는 수도 있을까.서대와 박대를 이렇게 간명하게 구별하는 걸 보면 세상에는 자연을 속세보다 더 잘 아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부러운 일이다.이제 우리는 세병관으로 향한다. 통영은 옛날에 통제영이 있던 곳, 여기에 서울의 경회루, 여수의 진남관과 더불어 한국에 남은 웅장한 목조 건축물의 하나, 세병관이 우뚝 서 있다. 여기서 걸어서 조금만 가면 서문고개, 통영성의 여러 문의 하나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그곳에서 문호 박경리 선생이 세상에 났다. 우리는 박경리 선생의 생가를 찾아 큰 길에서 좁은 골목으로 꺾어든다. 리어카도 다니지 못할 작은 골목 안쪽 어디에 박경리 선생 생가라는 붉은 벽돌 두 장 정도 크기밖에 안 되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박경리 하면 나는 눈물이 날 만큼 그리운 분이다. 세상 뜨시던 해 봄에 근황을 여쭈러 갔더니 말씀이 이리 흩어지고 저리 흩어졌다. 전에 없이 그러시기에 이상도 해서 어디 몸이 아프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을 나중에 알고 보니 '늘어놓으신' 것이었다. 연말에 회를 잘못 먹은 게 탈이 나서 이렇게 오래간다는 것이셨다. 하지만 그때 이미 선생께서는 당신의 깊은 병을 알고 계셨다. 홀로 원주 들어가 25년을 '토지'와 싸우던 그분 생각을 하며 거기서 멀지 않은 서피랑에 오른다. 바람이 따뜻한 날 답지 않게 자못 차다. 통영 포구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얀 건물들과 흰 물감 섞은 하늘색 물감 풀어놓은 것 같은 바다.세상 끝에 와 있는 것 같다. 너무 깊이 세속에 물든 속물 같은 사람이, 그래도 세상 끝에 와 서니 좋다. 저 맑은 바다에 몸을 깨끗이 씻어내고 싶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8-03-19 방민호

[이남식 칼럼]징벌적 손해배상

기업이윤 위해 사회적 책임 망각거짓말 일삼고 다시 영업한다면국제사회에서 낙인찍히게 될 것징벌적 피해보상제 서둘러 확립개인·사회적 피해 보상받도록개헌과 맞물려 심사숙고해야최근 미국의 온라인 비디오 서비스인 넷플릭스에서는 '검은 돈'이란 일련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폭스바겐의 디젤게이트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1970년대 1천700만대의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불과 3만8천대를 팔던 폭스바겐이 전세계 제1의 자동차 메이커로 부상하기 위해 가솔린 엔진 대신 디젤 직분사 TDI엔진으로 미국시장을 공략했다. 디젤엔진의 문제는 연비는 좋으나 미세먼지와 질소화합물을 배출하므로 가솔린 차량에 비해 공해를 많이 배출하게 된다. 따라서 벤츠나 BMW와 같은 회사에서는 요소수를 이용해 공해를 저감시키는 장치를 달았으나 기술특허의 문제와 20ℓ 요소수 통이 차지하는 공간을 줄이기 위해 폭스바겐에서는 배출가스를 다시 태워서 공해물질을 저감하는 방식을 채택, 자신들의 엔진은 클린디젤로 가솔린엔진 보다 공해 물질을 덜 낸다고 오랜 기간 캠페인을 해 많은 사람들이 이를 믿게 됐고 결국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자동차를 생산 판매하기에 이르렀다.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환경단체에서 디젤엔진이 가솔린 엔진보다 공해 배출이 적음을 보여 더욱 많이 사용토록하기 위해 실험하는 과정에서 전혀 예기치 않았던 결과를 얻게 된다. 즉 주행 중에 폭스바겐의 TDI엔진은 알려진 것보다 40배나 많은 질소화합물을 배출해 공기를 오염시키고 스모그를 생산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결국 오랜 공방을 통해 공해를 저감시키는 장치가 소프트웨어적으로 실제 주행이 아닌 공해측정 장치 위에서 측정 될 때에만 작동하도록 (즉 핸들이 움직이지 않으면 검사 모드로 인식) 해 여러 가지 환경인증을 통과하는 조직적인 범죄를 장기간에 걸쳐 범했다. 1천100만대가 넘는 차량에 이런 TDI엔진이 장착돼 판매됐으며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 이후에 판매된 폭스바겐 차량 중 약 20만대에 해당 엔진이 장착돼 그간 우리 사회에 입힌 폐해는 엄청나게 크다 할 수 있다.미국에서는 당연히 폭스바겐에 대해 구매자나 연방정부 차원의 소송이 진행돼 중고차로 판매할 수 없게 된 약 40만대의 구 차량을 폭스바겐이 다시 구매해 현재 미국의 여러 항구나 사용하지 않는 대형경기장 주차장에 이를 모두 쌓아놓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5조원에 달하는 벌금을 미 정부에 내면서 소송을 마무리하는 등 미국에서만 총 17조9천억원에 달하는 징벌적인 배상을 실시했다. 폭스바겐이 미국의 피해고객과 환경오염에 대한 배상액으로 153억 달러, 우리 돈으로 17조9천억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2.0L TDI 디젤엔진을 장착한 폭스바겐 차량소유자 47만5천명 전원에게 일단 대략 591만원에서 1천100만원까지 배상금을 지급했다.문제는 징벌적 배상 규정을 두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의 피해자들에게는 거의 보상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미국과 크게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물리적인 피해를 단지 보상해 주면 되는 피해보상제도로 말미암아 미세먼지로 시달리는 사회 전체적인 피해에 대하여는 대상 기업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단지 수십억 원의 과징금이나 해당 제품에 대한 인가 취소 정도가 이뤄졌을 뿐이다. 올해 들어 폭스바겐은 다시 신차를 들여다 판매를 시작하고 있으며 한국에 대한 사회적 보상 따위는 생각지도 않고 있다. 우리 사회는 원천적으로 문제를 고치고 개선하려는 노력보다는 일과성으로 문제시하다가 곧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세월호 사건 이후 연안여객선의 안전이 실제로 개선됐는지 또는 화물 적재 시 제대로 결박을 하는지, 선체에 대한 불법적인 증·개축은 없는지 똑똑히 따지는 사람은 별로 없이 잊혀져 가고 있다.넷플릭스의 '검은 돈'에서는 폭스바겐을 인류에게 두 번 독가스를 마시게 한 기업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돌프 히틀러가 미국의 포드자동차를 벤치마킹해 독일 국민 모두가 탈 수 있는 국민차로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한 연구기관을 통해 디젤엔진 배기가스를 피험자에게 노출시켜 건강에 문제가 없음을 보여주는 생체실험 계획이 발견돼 두 번의 가스 흡입 사건을 알려주고 있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고 거짓을 일삼은 기업이 아무런 반성이 없이 이 땅에서 버젓이 다시 영업을 한다면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망각하는 사회로 국제사회에서 낙인찍히게 될 것이다. 따라서 여러 차례 입법했으나 번번이 대륙법체계에 맞지 않는다하여 실패한 징벌적 피해보상 제도를 하루 속히 확립하고 개인의 피해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피해에 대해 우리 사회 전체가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헌법 개정과 맞물려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

2018-03-12 이남식

[윤상철 칼럼]'저녁이 있는 삶'은 가능한가?

양극화·실업·고용불안정 속에서'저녁이 있는 삶' 같은 환상보다'국민성공시대' 같은 현실 택했던국민들 뭔가 다른 생각하기 시작물질적 욕구 다 채워졌을때주어지는 덤이 아니기 때문이다2012년 대선주자 손학규는 '저녁이 있는 삶'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자정을 넘어 귀가하기 일쑤인 회사원들과 대학입시 학원을 전전하는 고3들의 노곤한 일상까지 다독여주는 따뜻하고 품격있는 슬로건이었다. 개인의 자유, 삶의 질, 공동체에 대한 존중 등과 같은 탈물질적 욕구를 국민들에게 약속하는 호소였다. 40줄을 넘어선 장년들은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돌아 고이시는" 장면을 상상했을 듯하다. 영화 '원더'에서 '옮음과 친절함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친절을 선택하라'는 말처럼 정치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이성적 정의 대신에 감성적 친절을 내세운 슬로건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국민성공시대'를 내건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고, 그의 정의로운(?) 목표, 이른바 '747공약'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의 경제적 성공만을 목표로 국민들을 내몰았다.우리의 선택은 우리의 자유를 앗아갔다. 외환위기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신자유주의는 과거의 발전지상주의를 불러들이면서 더 정의로운 사회적 가치이자 삶의 양식이 되었다. 우리 사회는 더 자본주의적이고, 더 시장지향적이며, 더 경쟁지상주의적인 모습으로 변모해갔다. 도덕적 경건함, 행복과 즐거움, 휴식과 평안, 가족과 공동체를 찾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에서도 시장과 경쟁, 사적소유와 빈곤, 서열과 차별 등이 더 자연스러웠다. 신에 대한 경배, 사람에 대한 사랑과 용서, 자신의 죄악에 대한 반성과 회개의 공간인 교회에서는 더 많은 신도, 더 많은 헌금, 더 큰 교회당을 두고 경쟁한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그 가족들의 상처를 위로하는 빈소에서 그 자손들의 사회적 성공 네트워크를 드러내는 근조문구들이 경쟁한다. 결혼식장에서는 본인과 부모의 출신과 성공을 보여주는 화환들이 경쟁한다. 심지어 고단한 사회생활에서 벗어나 심신의 휴식을 취하려는 동호회 활동에서도 사회적 지위의 우열경쟁과 그에 따른 갈등, 심지어 운동능력의 차이를 둘러싼 과도한 경쟁과 차별, 구별짓기가 난무한다. 고교 동문회는 주식투자와 부동산 투기를 위한 정보교류의 장에서 경제적 성공에 걸맞은 감투를 흥정하는 투기판으로 변해간다.그 와중에 평창동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올림픽 기간에는 항상 금메달 수와 (우리나라만 센다고 알려져 있는) 국가순위, 그리고 메달리스트들의 판에 박힌 성공담이 언론을 뒤덮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느 때와 달랐다. 처음에는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이 뉴스를 압도하다가 중후반으로 가면서 우리 선수들의 경기 자체에 온 국민들이 분노하고 환호하면서 몰입하는 양상을 드러냈다. 이성적 정의로움에 식상해 하면서 감성적 정서로 소통하는 모습은 이전과는 달라 보였다.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경기에 분노한 국민들은 의성 '팀킴'의 여자컬링에 환호를 보냈다. 이전에도 올림픽을 보던 국민들을 격분케 한 일들이 여럿 있었다. 쇼트트랙의 김동성, 펜싱의 신아람, 피겨의 김연아 등의 사례들은 선수의 속임수, 심판의 오심, 주최국의 정치적 영향력 등이 스포츠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그 본질인 공정성을 앗아가 버린 사건들이었다. 이와 달리 여자 팀추월 경기에서 국민들이 분노한 이유는 저조한 실력이나 불공정성이 아니었고, 팀워크를 붕괴시킨 선수간의 불화와 그러한 사태를 촉발한 빙상연맹 내부의 파벌갈등이었다. 이에 반해 여자컬링은 5명의 선수들이 교환하는 눈빛과 열정적인 사투리를 들으면서, 국민들은 소외와 차별을 이겨내고 '하나의 팀'을 만들어낸 그들의 동지애와 노력을 느끼면서 더 큰 하나가 되었다.선수들이 분열하면 국민들은 통증을 느꼈고 서로 화합하면 편안한 행복감을 느끼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게임에 승리하여 메달을 획득하면 온 국민이 열광하면서 쾌감을 느끼고, 불공정한 상황에서 패배하면 분노하던 이전의 상황이 바뀐 것이다. 지극히 경쟁지상주의적이고 능력위주의 사회를 추구해왔던 국민들이 이제는 동일한 경쟁을 보면서 다른 가치와 느낌을 찾고 있다는 기대감이 든다. 사회적 양극화와 실업, 고용불안정 속에서 '저녁이 있는 삶' 같은 환상보다는 '국민성공시대' 같은 현실을 선택했던 국민들이 뭔가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하였다는 희망이 떠오른다. '저녁이 있는 삶'은 물질적 욕구가 다 채워졌을 때에 결과로써 주어지는 덤이 아니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8-03-05 윤상철

[전호근 칼럼]이름 이야기

고전 구절 인용 작명하는 이유는동아시아의 오랜 지적 전통을복원하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내가 되살리고 싶은 것은오랫동안 지켜온 삶의 문법이고 그중 하나가 이름에 담겨 있다가끔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이들이 있다. 내가 이름을 짓는 방식은 작명가들이 짓는 방식과는 많이 다르다. 주로 고전 구절을 따서 이름을 짓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그것이 동아시아의 오랜 지적 전통을 복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통의 복원이라니까 오해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권력으로서의 전통은 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되살리고 싶은 것은 우리의 지식인들이 오랫동안 지켜왔던 삶의 문법이다. 그중 하나가 이름에 담겨 있다.옛사람들은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명나라 말기의 학자 방학점(方學漸)은 주역 계사전에 나오는 '방이지(方以知)'라는 구절을 따서 손자의 이름을 지었다. 올바른 도리를 지켜 지혜로워진다는 이름 덕택인지 방이지(方以智)는 고금과 동서의 지(知)를 망라하는 대지식인이 되었다. 그 자신의 이름인 학점(學漸)도 주역의 점(漸)괘에서 착안한 것으로 삼대가 주역학자였던 집안다운 이름 짓기라 하겠다.방학점의 선배격인 명나라 중기의 유학자 담약수(湛若水)의 이름은 장자의 군자지교담약수(君子之交淡若水)에서 따온 것으로 '담(淡)'을 자신의 성(姓)인 '담(湛)'으로 바꾼 것일 뿐이다.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맑다는 뜻인데 참으로 아름다운 이름이다.18세기 조선의 인물 중에는 멋진 이름을 가진 이가 많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건 다산 정약용이다. 그의 이름 '약용(若鏞)'은 서경에 나오는 말이다. 다만 '약용(若鏞)'이라는 표현 그대로는 안 나오고 '약금(若金)'으로 찾아야 나온다. 서경 열명편에는 은나라의 고종이 부열을 등용하면서 "만약 쇠붙이일 것 같으면 너로 하여금 숫돌이 되게 하리라(若金 用汝作礪)"고 했는데 여기서 '만약 쇠붙이라면'이라는 뜻인 '약금(若金)'을 취한 것이다. 다산의 아버지는 이에 착안하여 아들형제의 이름에 모두 쇠금(金)자를 넣어서 '약전(若銓)', '약용(若鏞)' 등으로 지었다. 세상을 바로 잡는 저울(銓)이 되고 세상을 울리는 큰 종(鏞)이 되어 사람들을 깨우치라는 마음을 담았을 것이다. 이름이 좋아서인지 두 사람은 모두 이름값을 했다.'청장관전서'를 남긴 이덕무(李德懋)의 이름도 서경에서 따온 것이다. 서경 중훼지고에는 탕임금의 공덕을 들면서 '덕이 훌륭한 사람에게는 관직을 주어서 덕에 힘쓰게 했다'는 덕무무관(德懋懋官)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덕무의 이름은 덕무(德懋)이고 자는 무관(懋官)이다. 합치면 덕무무관(德懋懋官), 서경의 글귀와 똑같다.'북학의'를 지은 박제가(朴齊家)의 이름은 제가(齊家), 자는 수기(修其)였다. '제가'는 대학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제가이고, '수기(修其)'는 수기(修己) 또는 수신(修身)과 같은 의미로 재수기신(在修其身)에 따온 이름이니 자와 이름을 모두 대학에서 취한 것이다. 이 두 사람 또한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하지만 이름이 좋다고 반드시 이름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현대 신유학자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았던 양수명(梁漱溟)의 아버지는 이름이 제(濟)였고 자가 거천(巨川)이었다. 이 또한 서경 열명편에서 "만약 큰물을 건널 것 같으면 너로 하여금 배와 노가 되게 하리라(若濟巨川 用汝作舟楫)"고 한 대목 중 큰물을 건넌다는 뜻인 '제거천(濟巨川)'에서 따온 것이다. 양제의 아버지는 아들이 큰물을 건너는데 쓰이는 훌륭한 재목이 되라는 마음을 담아 이렇게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제는 청나라가 망하자 서세동점의 큰물을 건너지 못하고 적수담에 몸을 던져 자결하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다.벌써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나는 아들의 아명을 '웅비(熊비)'라고 지었다. 본명을 짓는 것은 할아버지의 몫이었기 때문에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아명을 지었는데, 곰 웅(熊)자와 곰 비(비)자를 썼다. 웅비(熊비)는 시경의 시 사간(斯干)에 "곰 꿈을 꾸는 것은 사내아이를 낳을 조짐이다(維熊維비 男子之祥)"라고 한 데서 따온 것이다. 아들아이를 낳기 전 아내가 태몽으로 곰 꿈을 꿨기 때문이다. 시경의 구절대로 태몽을 꾼 셈이니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하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2-26 전호근

[홍창진 칼럼]가상화폐까지 간 욕망

돈 추구하는건 나쁘지 않지만인생목표 1순위로 두는게 문제내 뜻대로 안된다는걸 인정하고부자에 대한 개념부터 바꿔야더 벌기위해 애쓰는것 보다자기삶 만족할줄 아는게 '부자'금의 보유량을 전제로 그 비율에 따라 달러라는 화폐를 만들었다. 이것은 금이라는 현실을 근거로 한 것이다. 화폐는 유가증권으로도 주식으로도 변할 수 있지만 그 근저에는 금이라는 현실이 있다. 그런데 최근 가상화폐의 관심은 매우 뜨겁다. 현실이 아닌 가상을 근거로 화폐를 만들고 그것을 유통하면서 인간이 이제 현실의 욕망을 넘어 가상의 욕망까지 탐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도대체 돈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돈만 있으면 인생은 정말로 행복한 것일까? 그렇다고 돈을 무시하고도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일까?성경 구절 중에 신자들이 참 안 좋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부자 청년에 관한 일화이다. 어느 부자 청년이 예수를 찾아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는다(참고로 그 청년은 평소에 선행도 많이 하고 교회가 가르치는 계명도 엄청 잘 지켰다). 그 질문에 예수는 "마지막으로 네가 가진 것을 전부 팔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청년은 아무 대꾸도 못하고 시무룩한 표정으로 돌아갔고, 예수는 그 자리에 있던 제자들에게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 나오는 것이 더 쉽다"라고 말씀하셨다.현실적으로 보자면 참 갑갑한 이야기다. 어릴 적에 이 이야기를 듣고는 참 원망스러웠다. 그 부자 청년의 심정이 꼭 내 마음 같았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나는 부자가 아니니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다' 하는 자조(?) 섞인 생각과, '바늘 귀 못 빠져나와도 좋으니 부자 한번 돼 봤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교차했다.솔직히 부자 되기 싫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만 해도 신부가 되기 전까지 가장 큰 소원은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필 어릴 적 옆집에 살던 친구네가 엄청난 부자였는데, 2층 양옥에 연못까지 있는 그 집에 놀러 갈 때마다 이런 집에서 하루만 살아보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가죽 냄새가 폴폴 나는 커다란 소파에 몸을 묻고는 기필코 부자가 되고 말겠다는 의지를 다지곤 했다.신부가 되고 나서 그 마음은 옅어졌지만, 지금도 돈에 대한 욕심 자체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성경 속에서 예수님이 한 말도 무작정 돈 욕심을 버리라고 한 뜻은 아니라고 본다. 예수가 묻고 싶었던 건 돈에 대한 그 청년의 마음가짐이었을 거다. 가진 것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은, 베풂을 강조하기에 앞서 재물을 1순위에 두는 한 인생은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치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돈을 추구하는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다만 돈을 인생 목표 1순위로 두는 게 문제다. 돈은 좇는다고 잡아지는 것도 아닐뿐더러, 설혹 잡았다고 해도 그 자체가 행복과 직결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여주 부근 성당에 있을 때 4대강 개발 덕에 땅값이 평당 10만원에서 200만원이 된 곳이 있었다. 그 때 마침 내 지인과 그의 친구 몇이 그곳에 땅이 있었다. 지인의 친구들은 이때다 싶어 땅을 팔았지만, 내 지인은 땅값이 더 오르려니 하고 팔지 않았다. 땅값은 평당 400만원 까지 올랐고, 땅을 먼저 판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내 지인을 부러워하고 질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개발 계획이 취소되면서 땅값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땅을 판 사람들의 술잔은 축배가 되었고 내 지인은 병을 얻어 입원을 하더니 급기야 6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불과 1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재물에 대한 애착 때문에 고통을 당하다 급기야 죽음에 이른 것이다.먼저 돈이 내 의지대로 안 된다는 걸 쿨하게 인정하자. 또 하나, 부자에 대한 개념을 바꿀 필요가 있다. 부자란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더 이상은 돈을 늘릴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강남에 수백억짜리 건물을 가지고 있어도 돈을 더 벌기 위해 애쓴다면 부자가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을 굳이 늘리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이 부자다. 즉, 부자는 스스로 자기 삶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2018-02-19 홍창진

[방민호 칼럼]많이 아픈 후배를 위해

말수 적고 다정했던 후배에게모진 병고 시달림 뒤늦게 알아시대의 격류 요란하다지만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오직 그녀에게 생명의 따스한 빛 다시 돌아와 주기만을 바랄뿐얼마 전이다. 밀양에서 큰 불이 나서 제천에 이어 사람들 가슴을 아프게 하더니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도 불이 났다고 했다. 소식을 들은 건 불을 다 끈 다음이다. 이번 불은 다행히 소방시설이 잘 되어 있어 번지지 않았다는데, 그래도 소식을 듣고는 화들짝 놀랐다. 마침 아는 사람이 바로 그때 입원해 있었다.혈액암에는 두 종류가 있어 특히 그 한 종은 고치기 어렵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던 후배가 그로 인해 고생하다 그 병원에 들어가 있었다. 조혈모 이식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맞이할 때쯤 학업에 대한 꿈을 거의 완전히 잃어버렸다.무슨 일인가를 겪으면서 사람은 평범하게, 평균적으로 사는 게 좋다고 생각하게 됐다.여름방학 지나 늦가을에 이르자 정신적 긴장이 극도에 다다른 나머지 밤에 발작적인 증세가 나타났다.분명 꿈을 꾸고 있었는데 현실에서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현관문 여는 소리에 부모님이 일어나 나와보니 내가 내복 바람에 맨발로 현관문을 열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 우리집은 단독주택이었다.달려와 무슨 일이냐고 만류하자 '몽유병' 환자는 기를 쓰고 바깥으로 뛰쳐 나가려고 했다. 서슬에 아버지의 러닝셔츠가 찢어지고 물어뜯는 바람에 팔뚝에도 피가 흘렀다.이웃집 사는 아버지 후배까지 달려와서야 겨우 택시에 몽유인을 밀어넣고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한 병원에서 거부당하고 또다른 병원으로 향하던 중에야 몽유인은 겨우 꿈에서 깨어났다. 그렇게 가을, 겨울이 다 가고 봄이 오자 학교는 견디기 힘든 곳으로 변했다.연합 서클이라고, 남학생과 여학생이 함께 어울리는 독서 동아리가 대전에 있었다. 남들은 공부하러 제각기 학교로 돌아간다는 3학년 봄에 몽유인은 본격적으로 서클활동을 시작했다.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이어령의 '장군의 수염'도 읽었다. 그 무렵에는 다들 실존주의에 열을 올렸다.5월이 되자 일요일을 빌려 체육대회를 했다. 남학생들끼리는 농구 시합을 했다. 전반전 끝난 휴식시간에 여자 후배 하나가 다가왔다. 내 셔츠에 운동장 흙이 묻어 있는 것을 말없이 털어주는 것이었다.'운영전'을 보면, 안평대군 궁궐에서 글씨를 쓰던 김진사의 먹물 한 방울이 벼루 시중을 들던 운영의 손가락에 잘못 튄 것이 불타는 사랑의 도화선이 된다. 몽유인도 그날 이후로 정신이 없어졌다.그때는 휴대전화는커녕 삐삐도 없었다. 집집마다 전화가 겨우 한 대 있고 전화비도 꽤나 아낄 때였다. 부모님이 주무실 때를 기다려 전화를 시작해서 그 집 시누이가 새벽밥 지으러 일어날 때까지 무슨 이야기들인가를 한없이 나누기도 했다.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이 바로 십대라는 나이대일 것이다.그 시절에는 그후로도 오래 계속된 등화관제라는 것도 있었다. 십대의 소년과 소녀가 제과점에서 나와 비가 세차게 내리는 어느 고등학교 담길을 걷는데 사방이 갑자기 완전한 어둠으로 변했다. 가로등이 모두 꺼져버린 것이다.우산조차 하나를 쓰지 못하고 두 우산 속에 나란히 걷는데 무슨 다른 용기를 낼 수 있었으랴. 등화관제 그날조차 손과 손의 거리를 이겨내지 못했는데, 다른 날들이라고 무슨 사건이 가능할 수 있었으랴.대학입학 시험도 보고 정신병 환자가 서울로 가는 게 결정된 후에 서클 지도 선생님 댁을 둘이 방문한 일도 있다. 흰 눈이 소담스럽게도 내리던 날, 그때 아직 총각이던 국어 선생님 하숙집을 찾아가 몇 시간을 함께 놀았다.그러고 나서 어언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말수 적고도 다정한 후배에게 모진 병고가 찾아 들었음을 뒤늦게야 알았다.세상 사람들의 시간은 저마다 다르다. 시대의 격류가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다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정신병 환자는 다른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오직 하나, 이 후배에게 생명의 따스한 빛이 다시 돌아와 주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며칠 전부터 후배의 휴대전화는 전원이 끊어졌다. 그래도 이 수술 이후 나타난다는 숙주반응을 이겨내고 후배는 다시 웃는 얼굴을 보여줄 것이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8-02-12 방민호

[이남식 칼럼]블록체인과 가상화폐

비트코인 투기로 피해 발생안정적 가치교환·고른 이익분배가능한 가상화폐만 살아남을 것블록체인·코인 기술 활용공유경제시스템 구축 등 '기회''선한 목적' 사용토록 감독·격려최근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에 대한 투기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사태가 발생되고 있다. 물론 투자자 중에는 블록체인에 대한 기술을 이해하고 미래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으로 투자한 경우도 있겠으나 대부분 이를 통해 횡재했다는 소문에 편승해 묻지마 투자가 결국은 투기를 낳게 된 것이다.모두가 잘 알다시피 2009년 뉴욕발 금융위기가 한창일 때 기존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불신으로 말미암아 분산화된 거래원장을 통해 금융기관이 없이도 개인 간의 거래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소프트웨어로 암호화된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이 등장하게 됐다. 그 후에 거래원장(ledger)뿐만 아니라 다양한 계약 기능(smart contract)을 덧붙인 이더리움이란 가상화폐 등 현재 1천400여종의 가상화폐가 코인공개(ICO)란 과정을 통해 자금을 모집하고 거래소에 등록 돼 전 세계적으로는 약 4천500억 달러의 시가총액을 나타내고 있다.원래 화폐란 가치교환의 수단으로 사용돼야 하는데 현재 비트코인이나 몇몇 화폐를 제외하면 현실적으로 거래에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있으며 코인 그 자체가 투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 비트코인의 경우 화폐를 공급하는 방법으로 채굴(minig)이라 해 컴퓨터로 거래원장을 분산시키는 노력의 대가로 코인을 보상해 주다 보니 코인은 제한 돼 있고 가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올라가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며 거래소에서는 단순히 전자지갑 속의 코인을 다른 사람의 전자지갑으로 이전하거나 현금과 교환해주며 수수료를 받다 보니 이 과정에서 보안이 완벽하지 못한 틈을 타고 다양한 해킹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그러다 보니 정부 당국에서도 여러 가지 규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투기로 인한 차액에 대해 과세하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살아남는 가상화폐가 되려면 적어도 이를 통해 안정적으로 가치교환이 이뤄지는 동시에 이를 사용하면서 얻어지는 이익이 고르게 모든 사용자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가상화폐만이 살아남게 될 것이다. 비트코인의 미래도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 왜냐 하면 하나의 거래를 확인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면 실질적으로 해외송금 등에는 유용하나 줄을 길게 서는 마트에서 사용하는 것은 어렵다.지금의 상황은 마치 인터넷 초기와 비슷하다. 인터넷이 처음 도입됐을 때 웹브라우저나 이메일이 킬러 앱이었으며 이를 기반으로 포털이 등장하고 서치엔진 업체가 그 중심에 있게 됐으며 결국은 광고가 주된 수입원인 생태계가 형성됐다. 앞으로 코인의 발행은 보편화 될 것이며 코인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러한 코인을 기반으로 수많은 가치 생태계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코인플랫폼을 우리나라에서도 개발해 성공적으로 시장에 진입한 사례가 있어 다행이라 할 수 있다.그러면 블록체인 기술과 코인을 통해 미래는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시나리오를 소개한다. 지금 사회적 문제 중의 하나가 실업이다. 요사이 최저임금과 정규직화 문제로 좋은 일자리는 더욱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비정규직의 문제는 4대 보험에서 제외 돼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를 블록체인과 코인으로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돌 지망생으로 수년간 수업한 청년의 경우 아이돌로 데뷔할 수 있는 가능성은 수천분의 일이나 상당한 수준의 재능을 가진 청년은 상당히 많다. 이들의 재능을 원하는 다수의 파티나 결혼식, 다양한 행사가 있을 수 있으나 개인으로서는 이러한 기회를 알지 못하므로 모바일이나 웹을 통해 블록체인과 코인기반의 구인구직 시스템을 구축하고, 코인을 인센티브로 제공하고, 이런 인센티브의 일정 부분을 4대 보험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하면 프리랜서도 일한 만큼 정규직 못지않게 보상을 축적할 수 있는 체제를 보험사 없이 구축할 수 있다.이런 공유경제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기술이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최근 영국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부동산 거래에서의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고 부동산을 유동화시켜 거래를 쉽고 안전하게 하는 동시에 거래수수료도 대폭 낮추는 시스템이 소개됐다. 따라서 줄기세포 사건과 마찬가지로 기술에 대한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평가 없이 여론에 따른 정책적 규제는 오히려 큰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모든 기술에는 칼날과 같이 양면이 있다. 선한 목적으로 사용하도록 감독하고 격려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

2018-02-05 이남식

[윤상철 칼럼]정현신드롬 이후

지금의 정현에 대한 환호제2 정현 나올 때까지 이어질지…이성적 근거없이 만들어진정치적 지지는 아무 책임감 없이또 다른 '~빠'가 만들어질 때까지 맹목적으로 지속될지 모른다정현이 호주오픈 4강에 진출하자 대중은 열광하였다. 우리 국민들이 국가대항전이 아닌 개인스포츠에 주목하는 현상은 낯설지는 않지만, 스포츠 자체가 문화적 기호(嗜好)라는 점에서 기이하기도 하다. 이들 중에는 테니스 경험이 전혀 없거나, 아파트 단지의 테니스장을 주차장으로 만드는 데에 기꺼이 동조했던 이들도 있다. 이제 그의 안경이나 신발, 그리고 라켓이 관심을 끌게 되고,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테니스 레슨을 권할 것이다. 정작 신세대 정현의 자유로운 열정이나 성장과정, 그와 상대한 페더러가 건네준 배려는 그의 성공신화를 장식하는 에피소드로 동원되었다. 정현현상은 그 이전에 나타났던 박세리나 김연아의 신드롬과 다르지 않다. 오로지 세계적인 선수의 반열에 올라야 관심을 받고 그를 위해 희생되는 다른 것들은 가려지는 지극히 단선적이고 동질적이고 목표상향적인 사고와 행태가 지배해왔다. 탄탄한 생활체육 기반, 폭넓은 사회시설과 제도, 수많은 일선지도자들과 그 직업환경 등은 뒷전이다. 외국인 지도자와 훈련시스템도 히딩크와 고드윈처럼 신화와 전설로 부풀려지고 그 기여의 내실은 묻힌다. 오로지 개인 선수의 화려한 성공 이미지만 환호 받으면서 유포되고 소비된다. 배경과 결과에 대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성찰 없이 오로지 목표만을 위하여 치닫고 그 이미지만 감성적으로 소비되는 행태는 우리 사회의 다른 영역에서도 나타난다. 암호화폐 열기처럼 지극히 경제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하는 경제행위도 다르지 않다. 투자인지 불분명한 암호화폐 거래는 평창롱패딩을 사려는 장사진과 유사하게 반복되지만 그에 필수적인 블록체인 등은 뒷북치듯이 거론된다. 암호화폐 투자로 거부가 된 사례가 기사화되고 이를 모르는 사람은 시류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간주된다. 즉, 우리 사회의 목표지상주의는 동질성 선호로 인해 강화된다. 남들이 하면 해야 하고 그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왕따 당하거나 비난받거나 바보로 취급된다.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행위는 타인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기 때문에 창조적 모험으로서 용인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회적 파장이나 영향력이 훨씬 큰 경제적 행위나 국가와 국민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행위에 대해서는 다른 시선을 필요로 한다. 오래전 미국 외교관이자 학자인 그레고리 핸더슨은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라는 저서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취약성을 설파한 적이 있다. 한국 정치는 사회의 동질성과 중앙집권적 통일성이 상호 악순환하면서 원자화된 개인, 가족, 집단은 오로지 중앙권력을 향해 질주한다고 요약된다. 그의 통찰력은 조선과 대한민국 초기에 적용되었으나 대기업과 노동조합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여전히 빛을 발한다. 권력에의 목표지상주의와 동질성의 강요는 정치인에 대한 팬덤으로서 이른바 "~빠"문화라는 일상적 행위에도 나타난다. 민주화와 자유화는 큰 소용돌이를 해체하기보다는 그 부정적 유산들과 결합한 작은 소용돌이들을 낳았을 뿐이다. 처음에는 정치인이나 정당 등에 의해 동원되었던 지지가 점차 지지 동인(動因)들보다는 지지대상의 이미지에 대한 감성적 선호로 대체되었다. 지지의 정당성이 상대적으로 희미해지다 보니 지지자간의 동류선호를 통한 확증편향만 강화시켜가고 있다. 즉, 특정한 이미지를 선호하는 사람들끼리 폐쇄적 집단을 만들어 그 안에서 서로의 믿음을 키워가는 양상이다. 결과적으로 특정한 이념과 정책을 위해 특정 정치인을 수단으로 지지하던 양상에서 그 정치인을 지지하는 일이 목적으로 전치되는 일이 벌어진다. 그 정치인을 위하여 그와 대립하는 정치인이나 정책 등에 막무가내로 비판하는 반정치적 현상이 발생한다. 정현에 대한 환호는 또 다른 정현이 나올 때까지 맹목적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이성적 근거없이 만들어진 정치적 지지는 스스로 아무런 책임감도 없이 또 다른 "~빠"를 만들 때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정현신드롬을 돌이켜 보듯이 정치적 "~빠"문화 역시 공론적 성찰을 요구한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8-01-29 윤상철

[전호근 칼럼]맛에 관하여

나는 주사부나 김정희가 느낀그 맛이 어떻다고 말할 순 없지만가족들과 모여 먹는 일이야말로가장 큰 즐거움이란 걸 알 것 같다언젠가 내가 만든 요리 함께 먹으면그땐 맛이 뭔지 말할 수 있을듯언제부턴가 우리 식구 중에서 나만 빼고, 그러니까 아내와 딸, 아들 녀석까지 TV에서 먹는 걸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 나오면 넋 놓고 본다. 얼마 전엔 어느 먹방에 유명 요리사 고든 램지가 나왔다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나는 식구들의 그런 모습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일쑤였다.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먹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먹는 걸 보고 즐긴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먹는 모습을 방송으로 내보내는 일을 기꺼이 감내하는 출연자들은 더 이상해 보였다. 나라면 밥 먹을 때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면 밥이 잘 넘어가지 않을 것만 같아서다.그러다 나는 지금까지 어떤 방송을 보고 즐겼는지 생각해보았다. 지금은 거의 보지 않지만 나도 한 때는 스포츠 경기 중계방송을 즐겨 보았다. 야구나 축구 경기는 무척 즐겨 보는 편이었고 가끔은 권투나 이종 격투기를 보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사람들이 '싸우는 모습'을 주로 보았던 셈이다. 으레 치고 박고 싸우거나 승자의 환호와 패자의 눈물이 있는 그런 일들을 보고 즐겼던 것이다.반면 먹방에는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즐거워하며 음식을 나눠먹는 평화로운 모습이 이어질 뿐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문득 먹방 보는 식구들이 이상한 게 아니라 그걸 이상하게 바라보는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오래 전 이야기지만 '음식남녀'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요리사인 주사부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금씩 입맛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스스로 그런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가족들 또한 그의 요리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동료 요리사 온씨가 그의 고충을 알아차리고 이렇게 이야기한다."베토벤이 좋은 소리는 귀에 있지 않다고 말한 것처럼 좋은 입맛도 입에만 있는 것이 아니야."얼마 후 온씨는 건강을 잃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일하던 주방으로 돌아와 숨을 거둔다. 동료를 잃고 슬픔에 잠긴 주인공은 자신의 요리를 먹는 가족들의 표정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그 결과 그는 가족들이 말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요리가 이미 제 맛을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후 그는 평소 마시던 고산차 대신 물을 마신다. 평생 그토록 좋아하던 차맛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입맛을 잃어버린 것이다.이제 주변에서 그가 요리한 음식을 먹으면서 감탄하는 사람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손녀 뻘인 이웃집 어린이 산산은 그의 음식을 언제나 맛있게 먹어주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는 매일 같이 여러 가지 음식을 요리한 다음 그것을 들고 학교로 가서 산산에게 준다. 아이들은 그가 만든 음식에 환호했고 이후 그는 다른 아이들의 음식까지 만들어서 학교를 드나들기 시작한다. 산산이 집에서 가지고 온 도시락을 대신 먹던 주인공은 조금씩 깨달아 가기 시작한다. 동료 온씨가 맛은 음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던 뜻을.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딸이 차려준 음식을 먹으며 주인공은 마침내 입맛을 되찾았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찾은 맛은 어떤 맛이었을까?그러고 보니 추사 김정희도 죽기 두 달 전 이런 대련을 썼다.'대팽두부과강채(大烹豆腐瓜薑菜) / 고회부처아녀손(高會夫妻兒女孫)''최고의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나물이요, 가장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 라는 뜻이다. 이 글귀대로라면 가장 맛있는 음식은 두부, 오이, 생강 따위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김정희의 속뜻을 이해하기 어렵다. 당시 그의 나이가 일흔 한 살이었으니 그의 미각 또한 주사부 만큼이나 온전치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여태껏 변변한 요리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주사부나 김정희가 느낀 그 맛이 어떠했을지 감히 말할 수 없다. 다만 가족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함께 음식을 먹는 일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즐거움이라는 뜻만은 어렴풋하게나마 알 것 같다. 언젠가 내가 만든 요리를 식구들과 함께 먹는 날이 오면, 그 때는 나도 맛이 무엇인지 비로소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8-01-22 전호근

[홍창진 칼럼]삶의 전환점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가는 것'버리고 내려놓고 비우는 동안어느덧 '괴짜 신부'·'날라리 신부'"신부가 뭐 저래?" 수군대지만좀 어떤가 내가 행복하고남도 행복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사제가 된 지 7년째 접어들 무렵, 한 3년간 중국에서 선교활동을 했다. 당시 중국은 개방은 했지만 종교에 관해서는 여전히 삼엄한 장벽을 치고 있었던 터라, 우리 신부들 사이에선 '대만 신부가 중국에서 선교를 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다더라', '어느 프랑스 신부가 중국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알고 보니 남몰래 포교하다가 중국 공안에게 살해당한 거라더라' 등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그러던 차에 고향이 얀삐안(鹽邊)인 주교님으로부터 중국으로 떠날 지원자를 받는다는 모집령이 떨어진 것이다. 중국엔 관심도 없었고, 더구나 목숨을 걸고 선교활동을 할 소명감 따위는 털끝만치도 없어서 모집령을 무시하고 있었는데, 눈치 없는 후배 신부가 순진한 얼굴로 찾아와서는 "형님, 저랑 같이 가요"하는 거였다. 선배된 체면에 겁나서 못 가겠다는 말은 차마 못하겠고, '우리 교구에 속한 신부만 해도 200여 명인데, 설마 내가 뽑히겠어?'하는 얄팍한 생각으로 지원서를 냈다. 그런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지원한 지 며칠도 안 돼 주교님으로부터 "어려운 자리에 지원해줘 고맙다"는 전화가 걸려왔다.(그 전화를 받고 얼마나 벽에 머리를 박았는지 모른다.)울며 겨자 먹기로 인사공문을 받아들었는데, 좀 이상했다. 사유란에 떡하니 적힌 '중국 유학'. 선교하러 가는데 웬 유학이냐고 물으니, 중국은 성직자 입국이 금지되어 있으니 일단 유학생 신분으로 위장해 입국을 하란다. 이러다 진짜 죽겠구나 싶었다.겁을 잔뜩 먹고 시작된 중국행은 생각보다는 살벌하지 않았다. 단지 더러운 환경 속에서, 한국에서 살던 때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살림살이를 해야 한다는 불편이 더 컸다. 수돗물이 순환급수제여서 모임에서 식사를 하다가 집으로 달려와 수돗물을 받아놓고 다시 외출을 해야 하고 자동차는 꿈도 못 꾸고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가는 데 겨울에 영하 30도를 뚫고 가야 하는 일, 앞에 가는 자전거 탄 사람이 뱉은 가래침을 얼굴에 맞아야 하는 일 등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생활이었다.무엇보다 제일 힘든 것은 신부라는 권위를 송두리째 내려놓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특히 성당 안에서는-왕 노릇을 하다가 그곳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중국의 일개 인민으로 살아야만 했다. 중국 사람들을 만날 때 한국에서의 직업이 무엇이었냐는 물음에 '신부'라고 대답하면 중학교 중퇴자 정도의 사람으로 취급을 당한다. 중국 신부가 나온 중국신학교는 사설학원 같은 곳이어서 정규대학이 아닌 것이다. 그러다 보니 중국 신부들이 중국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덩달아 나도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이 당연한데, 이런 상황을 견디는 일은 보통의 일이 아니었다.중국을 다녀온 뒤 내 사제 생활은 전과 참 많이 달라졌다. 아니 내가 달라졌다기보다 내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미사 후 신자들과 인사하는 것이 피곤해 사제관으로 들어오던 것은 옛말. 한 사람이라도 더 손잡고 인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저 내가 생각한 신부의 모습에서 한 계단 내려온 것뿐인데, 이상하게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전에는 문득문득 가슴을 후비던 고독감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신기한 건 20여 년 전의 내 사진과 요즘 내 사진이 참 다르다는 것이다. '자뻑'일지 몰라도 내 눈에는 젊었을 때보다 지금 모습이 훨씬 매력적이다. 머리숱이 줄고 배가 좀 나왔지만.좋아하는 어구 중 '도의 길은 하루하루 없애가는 것(위도일손 爲道日損)'이라는 말이 있다. 버리고, 내려놓고, 비우며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는 동안 어느덧 괴짜 신부, 날라리 신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신부가 뭐 저래?" 하고 수군대는 소리도 없진 않다. 하지만 그러면 좀 어떤가. 내가 행복하고, 더불어 남도 행복해 질 수 있으니 말이다./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2018-01-15 홍창진

[방민호 칼럼]새해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우리들이 상상하는 모든 슬픔기쁨이 들어 있는 놀라운 삶입신양명·돈 벌기도 중요하지만지금은 풍요롭고도 절박한 시간올해엔 미래 기약할 수 없는나에게 '은총' 가득하길 기원한다또 새로운 한해가 열렸다. 이 개띠 해도 벌써 열흘 가까이 흘러갔다. 이 새해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본다. 지난 몇 년 동안 텔레비전을 보지 않았다. 마지막 몇 년은 팟캐스트만 끼고 살았다. 세상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는 직장에 배달되는 신문 헤드라인으로만 알았다. 정부 입맛에만 맞추는 방송 언론에 대한 혐오에서 비롯된 습관이었다. 좋은 점이 없지 않았다. 시장 논리가 겨냥하는 것, 대중들이 원하는 것을 아예 모르게 되다시피 했다. 무슨 새 물건이 나왔는지, 어떤 가수가 인기를 끄는지, 무슨 영화가 수입됐는지 알지 못했다. 아이들이 바다에서 무참하게 죽어가는 세상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벌어지는 일들을 알지 않아도 되었다.정부가 바뀌고 방송사들이 달라져서일까. 이제 겨우 브라운관에 눈을 주게 된다. 아직도 드라마 같은 것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래도 잠깐씩이라도 앉아 뉴스 화면도 본다. 내가 원하는 세상만이 아닌, 뭇사람들의 세상에도 관심을 '표명'해 본다. 그러다 알게 된 것 하나가 교육방송에서 하는 의학 관련 논픽션 프로다. 아픈 삶을 그리는 것으로 그중 많은 사람들이 기약 없는 투병 생활을 하기도 한다. 끝내 삶의 마지막 국면에 다다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새로 시작한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다. 이상한 일은, 사람들이 병에 걸려 신음하는 상황을 지켜보는 일이 위안을 준다는 사실이다. 왜 그럴까? 자신은 아직 살아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남의 불행을 보고 쾌감을 느끼는 잔인한 심리가 작동하기 때문일까? 그런 것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확실히 이기적이다 못해 철면피한 요소를 가진 존재다.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의 고통과 불행 속으로 들어가는 심리에는 다른 선한 면도 작용할 것이다. 사람들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자기 아닌 존재를 향한 이해와 동정의 마음을 가진 존재인 것이다. 텔레비전 화면 속의 사람들 때문에 눈물을 흘릴 때 우리에게는 자기도 모르게 선량한 심성이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타자' 이해와 동정의 더 깊은 바닥에는 우리 자신도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라는, 본능적 감각이 작동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것을 가리켜 고대 그리스의 한 비극은 "죽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존재"라고 정의했다. 인간은 이 땅에 태어나 삶이라는 것을 만들어 가다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그것을 끝내야 하는 한시적 존재다. 그로부터 사람들의 삶을 좌우하는 모든 문제가 생겨났고 그 가장 중요한 현상이 바로 종교다. 사람들은 종교를 믿는다. 그 이유는 영원히 살기 위해서다. 지상에서 불멸할 수 없는 사람들이 천상에서의 불멸을 꿈꾸는 것. 죽어 육신을 땅에 묻어야 할 사람들이 영혼만은 살아 영원에 귀속될 것이라 믿는 것. 이것을 가리켜 종교적 염원이라 할 것이다. 세상에는 불멸을 지향하는 다양한 형태의 종교들이 있고, 그 어느 것에나 신심이 깊은 사람들은 그 속에서의 신이, 아니, 믿음이 그로 하여금 불멸에 들게 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깊은 믿음 속에서도 비록 순간적일지라도 두려움과 슬픔에 잠길 때가 있다. 이를 가리켜 의심이라고, 회의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이것은 이 땅과 대지에 결부된 삶의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이 죽어서는, 다시 말해 영혼의 불멸과 영원성 속에서는 다시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어떤 실물적 감각에서 오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의학 프로그램에 나오는 고통스러운 사람들의 삶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의 본질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건강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해도 어느 일정한 시점이 되면 그 삶에 죽음이 깃들기 마련이다. 뜻하지 않게 암이나 희귀한 병에 걸려 고통 받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 자신의 삶의 말로이기도 한 것이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이러한 필멸의 운명을 종교에 바치는 것에 반대하여 그 삶을 그 필멸 때문에 사랑할 것을 가르쳤다. 모든 종교도 삶을 사랑하라 하지만 그는 그것이 필멸하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혐오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느꼈다. 만약 이 지상에서의 삶의 모든 것이 신의 뜻에 바쳐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삶 자체에 대한 혐오를 의미하는지도 알 수 없기는 하다. 그러나 새해 벽두를 논쟁으로 끌어가지는 않도록 하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이 지상에서의 삶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 삶 속에 우리들이 상상하는 모든 슬픔과 기쁨이 들어 있다. 그 놀라운 복합물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이다. 정치도, 문화도, 국가 대사도, 입신양명도,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우리는 그처럼 풍요롭고도 절박한 삶을, 삶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올해에는 이 사실을 하루도 잊지 않기로 한다. 그리하여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나'의 삶이 그 삶의 '은총'으로 가득하기를 기원해 본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8-01-08 방민호

[이남식 칼럼]쿨 코리아 (Cool-Korea)

엄청난 사회적 소용돌이 겪고도아무 개선도 되지않는 경우 많아이제 구성원 모두 쿨해졌으면…그러려면 이해당사자 헤아리고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그러면 많은 문제점 해결책 보여201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새해를 맞아 독자 여러분 가정에 만복이 깃드시기를 기원합니다. 새해를 맞으면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면서 새로운 각오와 계획으로 시작하곤 합니다. 한 해가 있다는 것은 우리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해 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올해는 어떠한 각오로 새해를 시작 하시겠습니까? 사실 해가 바뀐다고 하여 상황이 바뀌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들은 계속적으로 현재진행형입니다. 저는 독자 여러분께 올 해 부터는 우리가 좀 더 냉정하게 이성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들에 대하여 생각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에는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이 있습니다. 각자의 입장이 있겠지만, 각자도생을 외치며 나의 입장만을 주장한다면 어떤 문제도 풀어가기 어렵다고 봅니다. 서로의 입장을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며 서로를 배려해 간다면 수많은 문제들을 멋지게 해결해 갈 수 있지 않을까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연간 수백만 명의 미숙아가 태어나고 있으며 아프리카의 경우에는 의료수준이 낮기 때문에 대부분의 미숙아들이 사망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인큐베이터 시설이 보급되어 있으므로 미숙아라 하더라도 사망률이 매우 낮습니다. UN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세계적인 연구기관과 협력하여 보통 2만 달러 정도하는 인큐베이터를 10분의 1 가격으로 그것도 저개발 국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하여 개발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사실상 생산원가를 10분의 1로 줄인다는 것은 대단히 큰 성공이라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아프리카에서 미숙아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는 별로 진척이 없었습니다. 10분의 1가격의 인큐베이터를 운영할 인력, 전기, 자금 어느 하나 만만치 않았던 것입니다. 인큐베이터를 싸게 만들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연구진이 아프리카의 마을로 가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살아남는 미숙아들을 관찰하면서 미숙아가 사망하는 이유에 대하여 다시 조명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즉 미숙아가 정상아에 비하여 위험한 이유는 체온조절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인큐베이터의 역할 중 중요한 것이 항온으로 엄마 뱃속처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기 보다는 처음에는 무조건 저렴한 인큐베이터를 만들어 보급하려고 시도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수십명의 탁월한 엔지니어들이 싸게 만드는데는 성공했으나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는데 실패하여 엉뚱한 해결책을 내어놓게 된 것이었지요. 체온을 유지하는 즉 보온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합니다. 결국 보온해주는 담요와 같은 역할을 하는 저렴함 패드를 아프리카 전역에 보급함으로써 미숙아가 사망하는 것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매사에 너무 쉽게 흥분하고 너무 쉽게 문제라 지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냉정하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공감하는 능력 즉 empathy가 부족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문제가 무엇이다라고 쉽게 예단하기 전에 진정한 문제가 무엇이고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피는 습관이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얽혀있는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은가 합니다. 더구나 요사이와 같이 SNS가 발달된 시대에 편향적인 정보와 소통으로 말미암아 너무 쉽게 판단하는 경향이 심화되어가고 있어 매우 걱정이 됩니다. 엄청난 사회적인 소용돌이를 겪고도 아무런 개선도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좀 더 쿨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해당사자를 헤아리고 그들과 공감할 수 있도록 해 봅시다. 그러면 이제까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많은 문제들의 해결책을 보다 쉽게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 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 국제미래학회 회장

2018-01-01 이남식

[윤상철 칼럼]금지되어야 하는 것!

타인의 생각을 '정치적 올바름''영악함'으로 대처해온 우리는차이와 차별 반복적으로 재생산자유주의 출발점은 사고의 자유사회적으로는 사람간의 생각차인정해주는데서 출발해야한 정치학자는 한국민주화의 한계로서 자유주의 혁명의 부재를 지적했었다. 그 결과 한국인들은 자신의 요구 주장에는 익숙하지만, 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고, 개인의 자유를 상호간에 침해하지 않는 데에 둔감하다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제왕적 대통령제와 위계적 관료체제로 장착된 한국에서 개인의 자유는 행정편의적 관료주의와 충돌한다. 가령 한국인들은 모터사이클(이륜자동차)의 고속국도 주행이 금지된 유일한 나라라는 사실을 당연시한다. 총기소지허용을 옹호하는 미국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분개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토론되고 사회규범으로 제어되어야 하는 일들이 국가권력의 '금지와 전용' 포고로 대체된다. 그럼에도 정작 최우선적으로 금지되어야 하는 것들은 방치된다. 국가권력의 선별적 차별논리가 개인간의 차별에도 관철된 탓이다. 유엔 경제사회문화적권리위원회는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수차례 권고하였지만 현 대통령조차 후보시절에 이미 반대했었다.돌이켜보면, 우리 사회를 뿌리째 균열시킨 계급적·지역적 차별, 그리고 그에 근거한 사회집단간 혐오를 정치적 경쟁에 내맡기고 근절하지 못한 상황에서 더 보편적이고 덜 가시적인 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있을 리 없다. 오히려 우리 사회는 차별 자체가 부당하다는 인권 차원의 인식을 민주주의의 심화를 통해 극복하기보다는 차별을 정치적 선악으로 대체하여 혐오를 확산시키는 방식을 택했었다. 지역간, 계층간 차별과 불평등을 극복하고 이 시각을 한반도와 민족의 문제로 넓히고자 했던 세력들에 대해서 '종북좌파'로 매도하여 그 혐오를 증폭시켰다. 특정 지역과 여성에 대한 혐오와 국가를 사유화한 국정농단을 일베와 적폐로 규정함으로써 이 나라의 경제발전을 이끌어내고 유연한 민주화의 길에 동참한 세력을 모두 배제해버리고 있다. 어떤 나라가 종북좌파와 적폐세력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왜란과 호란의 와중에서 주전파와 주화파로 나뉘어 백성과 국토의 유린을 방치했던, 그리고 사색당파 싸움으로 나라의 비전과 인재들을 고갈시켰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역사는 상이한 사회세력과 정치적 목소리, 그리고 사회구성의 비전이 경쟁하면서 진행된다. 때로는 협력을 통해서 때로는 정반합의 논리를 통해서 역사발전에 기여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경험이 부재한 우리 사회는 차이의 논리를 선악의 논리로 바꾸고 나아가 최악의 순환적 차별논리를 만들어낸다.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에서 그러한 독선적 논리를 키워왔다. 한때는 반공과 정치발전론, 그리고 산업화론이 그랬었고 맑스주의나 주체사상도 다르지 않았다. 최근에는 페미니즘 역시 그러한 사상적 검증의 규준으로 작동한다. 심지어 친노, 친박, 친문의 이름으로 어설픈 정치논리조차 그러한 독선적 검증규준에 나선다. 물론 많은 사람들은 이른바 '폴리티컬 코렉트니스'(political correctness)로 영악하게 대처하고 있다. "힐러리가 대통령답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게 말하지는 않겠다"는 트럼프의 정치적 산술에서 보이듯이. 그러나 그러한 자유주의의 부재 혹은 우회로는 민주주의를 더 심화시키기 어렵다. 타인의 생각을 '정치적 올바름'의 배타적 기준으로 재단하는 방식이나, 그에 대해 '정치적 영악함'으로 대처하는 방식으로 이어져온 우리 사회는 차이와 차별의 문제가 해소하기보다는 반복적으로 재생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자유주의에 있어서 그 출발점은 사고의 자유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사람간의 생각의 차이를 인정해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생충학자 서민교수나 배우 유아인 씨를 둘러싼 최근의 논란도 이제 우리 사회의 성원들이 생각의 차이를 열어가는 단초가 아닌가 싶다. 경제학자 대니얼 카머넌이 말한 '시스템1'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징후로 보고 싶다. 복잡한 사회적 쟁점일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얽혀 있는 사안들에 대해서 직관과 감성에 의거하여 판단하고 그 프레임으로 타인들의 사고를 얽매는 데 익숙하고, 다른 쪽에서는 침묵하거나 거짓 동조하는 '정치적 영악함'으로 대처하는 자유주의 부재의 침묵의 사회를 이제는 보다 본격적으로 해체할 시점에 이르고 있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7-12-25 윤상철

[전호근 칼럼]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길속에서 할머니 구한 세 청년그들은 맹자의 가르침 처럼이성이나 다른 능력에 주목 않고아무 생각없이 갑작스런 마음에서인간 본성 선함을 이끌어냈던 것그 용기 존경·감사의 마음 전한다지난 한 주 동안은 유난히 화재 사고가 많았던 모양이다. 며칠 전 TV로 뉴스를 보다가 강원도 춘천시 약사동에서 일어난 화재 사고 소식을 접했다. 뉴스에 따르면 70대 노부부와 손자가 사는 집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할아버지와 손자는 곧바로 밖으로 대피했지만 휠체어를 타고 있어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다급해진 손자가 주변에 도움을 청하자 마침 근처 음식점에서 밥을 먹고 있던 청년 셋이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 휠체어에 앉아 있던 할머니를 구해 나왔다는 것이다.방송사의 카메라 앞에 선 청년 중 한 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안에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길 속으로 뛰어들어 할머니를 구해 밖으로 나왔습니다."뉴스를 보고 있던 나에게는 청년이 인터뷰에서 한 말 중 '생각할 겨를도 없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인상 깊게 다가왔다. 맹자가 말한 '출척측은지심( 척慽惻隱之心)'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한 말이기 때문이다.일찍이 맹자는 어린 아이가 막 우물에 빠지는 '유자입정(孺子入井)'의 사례를 가정하면서 그런 일을 목도하게 되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출척측은지심( 척惻隱之心)'을 가지게 된다고 했다. 여기서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은 그가 주장하는 성선설의 중요한 근거이기도 하다.그는 측은지심을 필두로 악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 마음인 사양지심(辭讓之心),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가리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두고 인간의 선한 본성을 확인할 수 있는 네 가지 마음이라는 뜻에서 사단(四端)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어서 사람이 사지(四肢)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누구나 이 네 가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만약 이 네 가지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이야기했다. 맹자에 따르면 이런 마음은 배워서 아는 것도 아니고 깊이 생각해서 아는 것도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나오는 양지(良知)요 양심이기 때문이다.맹자가 사단(四端)의 으뜸으로 강조한 측은지심은 흔히 연민이나 동정심 정도로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측은(惻隱)의 '측(惻)'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뜻이고 '은(隱)'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측은지심은 타인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느끼고 헤아리는 마음이라 하겠다.그런데 맹자는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데는 '출척( 척)'이라는 전제가 있다고 말한다. '출척( 척)'은 갑작스러운 상황을 당해 '깜짝 놀라는 마음'이다. 맹자는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 까닭은 아이의 부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이웃 사람의 칭찬을 바라서도 아니며, 구해주지 않았다는 비난이 두려워서도 아니라고 이야기했다.아이의 부모나 이웃의 칭찬이나 비난을 '생각하지 않는 가운데' 갑자기 일어나는 마음이 '출척( 척)'이라 본 것이다.맹자의 이야기는 참으로 설득력이 있다. 그는 인간이 가진 이성이나 다른 능력에 주목하지 않고 오히려 아무런 생각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마음에서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확신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만약 위급한 상황에 처한 어떤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을 때 곧바로 행동하지 않고 이것저것 길게 생각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아마도 자신의 행동이 초래할 위험을 두려워 해 소방관이 오기를 기다릴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난을 염려하여 구조를 주저할 수도 있을 것이며, 행동의 결과에 따른 이로움이나 불리함을 따져보기도 하지 않을까. 그러는 사이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는 영영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이런 이유로 나는 불길 속에서 할머니를 구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발휘한 청년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지면으로나마 먹던 밥알을 토해내고 이웃의 귀중한 생명을 구해낸 세 명의 청년에게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12-18 전호근

[홍창진 칼럼]내 안에 답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 찾아신나게 노력하는 사람과싫은걸 억지로 하는자 결과 뻔해즐겁지 않게 하다 망하느니처음부터 안하고 노는게 더 행복자율의지 그 뭔가를 찾을 때까지신학교에 입학한 뒤 첫 1년을 지낼 때 '내년쯤이면 다 때려치우고 집에 갈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살짝 들었다. 화장실 갔다가 보던 일도 끊고(?) 나오기가 다반사였고, 소등 시간이 되면 잠이 안 와도 억지로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그러는 동안 2학년이 됐는데, 때려치울지도 모른다는 내 예감은 다행히 빗나갔다. 2학년부터 들었던 철학수업이 꽤나 매력적이어서 규칙이 주는 압박을 잊고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령도 좀 생겨서 화장실 가서 늦게 오기도 하고, 소등 뒤에 이불 뒤집어쓰고 철학 책 읽다가 다음 날 수업시간에 좀 졸기도 하고, 규칙 안 지킨다고 교수 신부님께 욕도 좀 먹어주면서 살았다. '이렇게 살다가 잘리면 장가나 가지 뭐' 하고 맘을 편히 먹으니 숨 쉴 여지가 생기는 듯도 했다. 교수 신부님들도 이런 내 기질을 알았는지, 슬쩍 눈감아주는 아량을 베풀기도 하셨다. 그런 끝에 기적적으로 사제서품을 받았다. 만일 9년간 숨 쉴 여지없이 규칙대로만 살았더라면 중도에 신학교를 박차고 나왔을지 모른다. 아무리 내가 요령껏 규율을 피하며 살았다 해도 신학교 생활이 갑갑한 건 사실이었다. 신학교에서 생활하는 내내 속으로 외쳤다. '신부가 되기만 해봐라. 한 일주일 동안 잠만 잘 테다!'실제로 나는 신부가 되고 정말 사제관에 처박혀 잠만 잤다. 그것도 일주일이 아닌 한 달씩이나. 9년을 타율 속에 살다가 갑자기 자유가 주어지니 정말 너무 달콤했다. 하루 한 번 있는 미사만 마치면 나머지 시간은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사제관 안에서 두문불출하는 나를 두고 신자들은 신심 깊은 신부가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기도를 하나 보다 했을 거다. 그러기를 거의 한 달. 그런데 참 신기했다. 미사 집전만 겨우 하고 마음껏 게으름을 부리다 보니 슬슬 기도가 하고 싶어지는 거였다. 9년을 기도만 하며 살 때, 한 자리에 앉아 장시간 침묵 속에 기도했다는 뿌듯함은 있었지만 사실 영혼의 울림은 없었다. 그러나 내가 하고 싶은 마음에, 즉 자율로 택한 기도는 게으름을 피우며 청한 낮잠보다 훨씬 달콤했다. 신을 만나는 기도 본래의 목적을 자율 속에 맛보게 된 것이다.나를 9년이나 묶어놓은 우리 조직(?)에 대한 복수로 무려 한 달이나 테러를 저질렀지만, 그러면서 깨달았다. 똑같은 규칙이어도 타율이 아닌 자율은 내 삶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행복과 자유를 준다는 사실을. 똑같은 기도라도 하고 싶을 때 하면 무척 달콤하지만, '신부니까 해야 한다'는 타율에 따른 기도는 스트레스가 될 뿐이라는 걸 체험했다. 내게 압박을 주는 건 아무리 명예롭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해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나는 직업이나 진로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 깜냥을 벗어난 일이라고 생각되면 그냥 무시해도 상관없습니다"라고 말한다. 내 직분 안에서 즐겁게 할 수 있는 걸 찾아 최선을 다하는 것. 내가 이 빡빡한 사제 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버거운 일, 내 능력 밖의 일이라고 생각되면 내 것이 아니니 좀 포기하고 놀아도 된다. 즐겁게 살기만도 바쁜 인생이 아닌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묻는다. "나 좋은 것만 하다가 남보다 뒤처지면요?""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고 했는데, 놀기만 하는 건 죄 아닌가요?"걱정도 팔자다. 저 좋은 일 찾아 신나게 노력하는 사람과 싫은 걸 억지로 하는 사람의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억지로 해서 잘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남의 시선이나 사회가 정한 룰에 따라 즐겁지 않은 것을 억지로 하다가 망하느니, 처음부터 안 하고 노는 편이 훨씬 행복한 거다. 내 안의 자율 의지가 요동치는 그 무언가를 찾을 때까지 말이다./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2017-12-11 홍창진

[방민호 칼럼]찬(讚) 안재성

증언·어렵게 모은 자료로'박헌영'이란 역사적 존재 통해우리가 아는 한국사 새롭게 구성우리는 근대·공산주의 삶 싫고인간이 존중되는 세계 바란다'밥'만 원치 않는건 사람이기에지지난 주 읽은 '박헌영 평전'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박헌영이라면, 그의 시대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는 아는 사람만 아는 사람이다. 이 평전의 작가는 왕년의 '노동소설가' 안재성 씨다. 이 평전은 그는 놀라운 작가적 능력의 소유자임을 보여 주었다. 박헌영은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태생. 필자는 면을 하나 격하여 있는 덕산면에서 출생했다. 가깝다면 아주 가까운 사이. 그보다 필자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역사라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했던 시대였다. 그에 대해서 아주 잘 알 수밖에 없었다. 그는 1920년대부터 일생을 공산주의로 일관한 사람이요, 해방공간의 이름 '높은' 남로당 당수다. 그의 말로는 비참했다. 6·25 전쟁이 계속되던 1953년 3월 11일 제국주의의 간첩이라는 혐의로 북한당국에 체포, 1955년 12월 15일 사형을 언도받고 1956년 7월 19일 한밤에 권총으로 밀살되고 말았다. 최근 필자의 관심사는 해방 직후부터 6·25 전쟁 끝날 때까지의 8년사를 새롭게 보는 것. 1979년에 "해방 전후사의 인식"이 있었고 2006년에는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이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다시 흘렀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일제말기부터 해방공간까지의 역사적 상황을 민족사의 시각에서 새롭게 재구성하고자 했다. 해방과 더불어 분단이 시작되고 남쪽에서 미군정이 시작되고 단독 정부들이 수립되고 6·25 전쟁이 예비되는 과정들을 대한민국 체제의 관점에서 보는 대신, 어찌하여 한국인들이 미완의 근대를 살게 되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하는지 살피고자 했다.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은 그러한 해방 전후의 한국사를 다시 한 번 재검토할 것을 주장했다. 그 배경이 있다. 1990년 전후로 한 이른바 현실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세계는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 담론이나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정치경제학적 상부구조가 한 시대를 풍미했다. 때마침 한국에는 야만적인 3당합당으로 김영삼 정부가 들어섰다. 이 작은 나라의 어느 한 지역을 고립시키고 그곳을 진보로 몰아붙여 보수끼리 대통합을 하자는 논리였다. 이를 주창한 정치도, 동조한 정치도 민주주의일리 없다. 나중에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나왔으나 김영삼 정부 말기에 직면한 외환위기로 인해 한국은 깊이 성찰할 여유가 없었다. 경제를 살린다는 것은 곧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체제에 깊숙히 편입되는 길밖에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이 정부들의 무지나 실책이나 위선 같은 것까지 변명해줄 생각은 없다."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은 이러한 시대가 15년을 경과한 끝에 나왔다. 식민지 체제가 근대화를 가능케 했다면 그와 같은 아이러니를 승인해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것이 이 책의 대전제였다. 그로부터 이승만 독재도, 일본의 위안부 문제 책임도, 박정희 5·16 쿠데타와 유신 체제 선포도 '자동적'으로 승인될 수 있었다.필자의 판단에 따르면 이제 우리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과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을 동시에 뛰어넘어 새로운 눈으로 우리의 과거를 돌아보아야 할 역사의 '계단'에 다다라 있다. 두 책을 떠받치고 있는 두 상이한 담론의 지위는 물론 같지 않다. 그래도 어쨌거나 새로운 입각점에 서지 않는 한 8·15 해방에서 6·25 전쟁으로 이어진 민족사의 비극을 극복할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없다.이러한 상황에서 출간된 지 벌써 8년이나 된 안재성 작가의 새로운 "박헌영 평전"은 하나의 경이다. 옛날에 왕년의 "해방일보" 기자 박갑동이 쓴 "박헌영 평전"을 읽었던 필자였다. 그에 대해서는 웬만큼은 안다고 생각했다. 역시 지식의 세계에 '안다'는 것은 없다. 안재성 작가는 그동안 축적되어 온 증언들, 쉽게 눈에 뜨이지 않는 자료들, 소련 해체 이후 공개된 구소련 문서들과 미국 쪽 자료들을 망라하면서 박헌영이라는 한 역사적 존재를 통해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한국사를 새롭게 구성해 보였다. 그가 무엇을 썼느냐 하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박헌영의 일생을 단순하게 영웅화시키지 않고도, 또 좌익 공산주의를 예찬하거나 승인하지 않고도, 우리 역사를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이 간과하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일깨울 수 있었다. 우리는 '근대주의' 사회나 공산주의 사회에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중되는 세계를 원한다. 우리는 '밥'만을 원하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가 사람인 이유다./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2017-12-04 방민호

[이남식 칼럼]지금 선전(深圳)에서는

전기 시내버스·택시 보편화걸인들 조차도 QR Code 사용이젠 한국이 벤치마킹 대상 아냐매력적인 경제파트너 생각 안해제4차 산업혁명 '中國굴기' 중우리도 혁신통해 다시 일어나야얼마전 중국의 선전(深圳)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한가한 어촌에서 1980년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된 이후 이제는 인구 1천700만명, 33.5세의 평균연령, GDP 규모가 홍콩을 추월하였으며, 전세계 휴대폰의 70%를 조립 생산하는 지역, 세계 최대의 하드웨어 액셀러레이터로 주목을 받고 있다. 누구든지 상상력을 가지고 오면 제품이든 매우 저렴하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어 블랙홀처럼 전세계로 부터 자본, 인재, 신기술을 흡인하고 있다. 또한 초연결 사회로 변모된 중국의 거대시장에 대한 새로운 상품의 테스트베드로 부상함으로써 이제는 새로운 벤처들이 실리콘밸리에서 오히려 선전으로 몰려들고 있다. 뿐만아니라 화웨이, 텐센트, DJI, Denza (세계적인 전기자동차기업인 중국의 BYD와 벤츠의 50:50 합작법인)의 본사가 선전에 있어 대기업들의 신기술 M&A를 통한 혁신형 창업의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유니콘 기업 (창업기업이 상장하여 10억달러 이상의 기업가치를 가지는 기업)이 탄생하여 젊은 청년들이 중국몽을 이루기 위하여 몰려들고 있다. 이미 선전에서는 BYD사의 전기시내버스와 전기택시가 보편화되어 있으며 2030년까지는 중국 전체 자동차 생산을 전기차로 바꾸려하고 있다. 조만간 주강삼각주에 위치한 광저우~선전~홍콩~마카오를 연결하는 순환고속도로를 완성하여 탄생하는 인구 6천600만명의 웨강이오 Greater Bay Area는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제4차 산업혁명의 세계적인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찍이 경제특구를 구축하였으나 아시아 9개국 중 6위로 하위권이며 정부규제, 행정과 조세 인센티브, 고용조건, 노사관계 등에서는 9개국 중 최하위로 나타나 우리나라의 경제특구에 입주하는 Fortune 500대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10월 18일에 개최된 중국의 19차 당 대회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3시간 반에 걸쳐 향후 5년간 (2017~2022)의 발전 목표와 계획을 천명하였다. 이미 글로벌 G2로 부상한 중국은 2010년 국민소득의 2배를 달성하는 소강(小康)사회를 목표로 그간의 사회적 경제적인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면서 국민들의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중국몽(中國夢)을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였다. 과거 중국에서는 비디오테이프를 건너뛰어 DVD가 보급되고 유선전화 대신 모바일 폰으로 바로 점프한 것처럼, 이제는 크레딧 카드를 건너 뛰어 대부분이 모바일결제를 사용하며 전국의 농촌마다 타오바오 마을과 같은 전자상거래거점을 마련하여 신유통을 통하여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걸인들 조차도 QR Code를 사용하여 적선을 받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는 중국 경제의 성장과 더불어 비교우위를 가진 여러 분야에서 호황을 누려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중국에서는 더 이상 한국이 벤치마킹의 대상이 아니며 매력적인 경제파트너로도 생각하지 않는 다는 점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우리가 지속적인 혁신을 통하여 비교우위에 있지 않는다면 코리아 패싱을 피할 길이 없다. 한류를 기반으로 한 문화콘텐츠, 반도체 나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막대한 투자와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하여 추격이 아닌 추월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다. 대외적으로는 북핵과 사드 문제로 발목 잡혀있고 대내적으로는 국가의 미래보다는 과거사를 정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이웃의 변화에 대해서는 너무 둔감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논란 끝에 최근에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임명되었다. 그간 중소, 중견, 그리고 벤처기업에 관한 중요성 때문에 부로 격상 되었으나 장관이 임명되지 못하고 표류하는 바람에 반년 이상의 시간을 허비하였는데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추월하기 위한 산업의 전략과 방향을 다듬어야할 시기이다. 지금 선전에서는 미래를 향한 제4차 산업혁명의 중국굴기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도 다시 일어나야 할 때이다./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이남식 수원대학교 제2 창학위원장·국제미래학회 회장

2017-11-27 이남식

[윤상철 칼럼]국가에 대한 헌신

국가의 잘못 적폐로 질타하면서그 책임 누군가에 묻기 보다는모두의 거룩한 희생 수용 필요누구도 국가에 헌신 역할 없다면끝없이 요구하면서 비판하거나공격하는 길 찾기 마련이다케네디대통령은 "국가가 당신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지 말고 당신이 국가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으세요."라고 요청한다. 문재인대통령은 "국민들이 '국가의 존재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을 주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두 대통령의 말은 언뜻 상보적으로 보이지만 국민들에게 국가를 보는 상반된 관점을 제시한다. 1990년대 초반에 필자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했었다. 가까이서 볼 수 있었던 여야 거물급 정치인들 중에는 훗날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등이 된 이들도 있었다. '신성한 국회의사당'의 뒤편에서 이른바 '4류 정치인'들의 부패나 무능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에게 난감했던 사실은 그들 구세대에게는 이른바 "애국심"이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정치적 스승으로 이승만과 김구를 내세웠다. '추한 담합'으로 지탄받으면서도 '국민과 국익을 위하여' 협상할 줄 알았다. 그들보다 젊은 정치인들도 그 애국심을 폄훼하지 않았다. 반면, 당시 86세대나 X세대에게 '민주화된' 국가는 군부권위주의체제의 잔재와 IMF위기를 촉발한 무능정부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국가를 공격하여 시민의 자유, 민주, 나아가 평등을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국가는 헌신과 봉사의 대상이 아니고, 그 약탈과 지배로부터 자기보호와 자유를 쟁취해야 하는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들에게 애국심이란 애초에 보이지 않거나 또 다른 정치적 억압이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이미 사회과학계에 뿌리내린 맑스주의 또한 젊은 세대의 경험적인 국가개념을 정당화하는 데 일조했다. 맑스주의는 사회가 계급들로 구성되고, 국가는 명목적일 뿐이라는 국가론과 계급론을 제공하였다. 사회 안에는 계급간의 투쟁만 존재할 뿐이고 국가는 특정 계급의 공동관심사를 다루는 위원회에 불과했으며, 소외되고 배제된 계급들에게 국가는 폐기의 대상이었다. 어떤 국민들이 체험을 통해 국가의 존재를 재구성했던 반면 우리는 그 과정에서 국가를 부정하는 길을 밟았다. 국가가 원천적으로 부정되면 국민이 국가에 바쳐야할 헌신과 의무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 국민들은 링컨, 케네디, 그리고 처칠에게서 국가를 배운다. 링컨은 게티스버그 연설에서 "우리에게 남은 일은 오히려 명예로이 죽은 이들의 뜻을 받들어, 그 분들이 마지막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그 대의에 더욱 헌신하는… 이 땅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며 인민을 위한, 인민에 의한, 인민의 정부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는 내용으로 국가의 존재와 그 국가의 민주주의를 위한 거룩한 희생과 지속적인 헌신을 웅변함으로써 미국 애국주의 전통에 기여했다. 처칠은 "나는 피, 수고, 눈물, 그리고 땀밖에는 달리 드릴 것이 없습니다."라는 말로 전쟁으로 절망한 국민에게 달콤한 희망 대신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호소하였다.국가가 부정되고, 국가가 사적 정권 혹은 정파적 정부와 동일시되면 국민은 국가에 대해 뭔가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 상상적 국가를 채울 국민들의 헌신은 '금모으기 운동'을 넘어선다. 그러나 국민들은 요구하고 정부와 정치권은 대답하는 형국이라면, 국가를 만드는 작업에서 국민들은 소외되고 수동적인 객체로 둔갑한다. '민주'는 살아있으나 '공화국'은 사라진 기형이다. 국가와 더불어 모든 조직공동체들이 부정되면서 노동자, 공무원, 교직원, 군인 등이 오로지 요구만 한다면 기업, 정부, 학교, 군대는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중동의 건설노동자, 대학의 과학기술자들, DMZ의 군인들, 바다의 등대지기들, 그을린 농부들이나 원양어선의 선원들 등을 과거 권위주의시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불러내어 그들의 국가에 대한 헌신을 국민과 더불어 공유하는 것은 어떤가? 국가의 잘못을 적폐로 질타하면서 그 책임을 누군가에 묻기보다는 남군과 북군 모두의 거룩한 희생으로 수용하면서 국가를 위한 헌신에 기여할 수 있도록 길을 여는 방법이 우리의 역사와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누구라도 국가에 헌신하는 역할이 주어지지 않으면 끝없이 요구하면서 비판하거나 공격하는 길을 찾기 마련이다. 그때 우리 모두의 국가는 사라지게 된다./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윤상철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2017-11-20 윤상철

[전호근 칼럼]일한 사람이 쉴 수 있는 세상

한국노동자 1인당 평균 노동시간OECD평균보다 1.7개월 더 많고독일보다 무려 넉달이나 더 일해수고롭게 일하고도 쉬지 못한다이젠 우리도 부의 분배만 아니라쉼의 분배에도 많은 관심 가져야중국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 중 한 사람인 묵자는 수레를 만드는 기술 노동자였다. 당시 그를 비롯한 기술자들은 수차와 호미 등 새로운 농기구를 만들어 물질적 풍요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당시의 지배자들은 기술이나 노동에 종사하는 이들의 노고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들의 삶은 여전히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기술자 집단의 우두머리였던 묵자는 기술과 노동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일깨우려 했다. 그는 인간이 인간인 이유를 노동하는 데서 찾았다."사람은 본디 날짐승이나 길짐승과는 다른 존재다. 짐승들은 깃이나 털을 그대로 옷으로 삼고 물이나 풀을 그대로 먹을거리로 삼지만, 사람은 이들과 달라 노동하는 자는 살아나갈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자는 살아나갈 수 없다."그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깃이나 털을 그대로 옷으로 삼고 물과 풀을 그대로 먹는 짐승들과는 달리 노동을 통해 자연을 넘어서는 존재다. 되돌려 말하자면, 그에게 일하지 않는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그가 말하는 정의란 것도 다른 철학자들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그려진다. 그는 남의 것을 훔친 자를 부도덕하다고 비판하지만 그보다 스스로 노동하지 않고 남의 노동을 훔친 행위, 곧 남의 노동을 착취하는 행위야말로 가장 부도덕한 행위라고 비판했다.따라서 그는 그런 노동 착취행위가 가장 큰 규모로 일어나는 침략 전쟁은 약자에 대한 강자의 부당한 폭력이라고 지적한다. 전쟁이야말로 가장 중대한 사회적 불의라고 규정했던 건 그에게는 당연한 결론이었다. 실제로 그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방어집단을 구성하여 침략자에게 조직적으로 저항하기도 했다. 그는 또한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시대를 대혼란의 시대로 보았지만 혼란을 바라보는 관점은 매우 달랐다. 당시의 혼란을 묵자는 이렇게 정리했다."백성에게는 세 가지 걱정이 있다. 굶주린 자가 먹지 못하는 것, 추위에 떠는 자가 입지 못하는 것, 수고롭게 일한 자가 쉬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야말로 백성들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이 말에서 그의 철학이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백성, 수고롭게 일한 자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굶주리고 추위에 떠는 자뿐 아니라 수고롭게 일하고도 쉬지 못하는 이들의 고통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스스로 일하는 자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천 년도 더 지난 이야기이지만 지금의 한국 사회에 비추어 보아도 묵자의 이야기는 여전히 돌아볼 만한 점이 없지 않다.말할 것도 없이 현대의 한국인들은 고대의 춘추전국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한 생활을 누리고 있으며 굶주리거나 추위에 떠는 이들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그다지 행복한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높은 자살률과 낮은 국민 행복도를 보면 한국인의 삶은 대체로 우울해 보인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테지만 최근의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우울은 무슨 실존적인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노동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은 데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OECD에서 발표한 '2017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6년 한국 노동자의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은 OECD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길다고 한다.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 노동자는 OECD 평균보다 1.7개월을 더 일하며, 연간 평균 노동시간이 짧은 독일과 비교하면 무려 넉 달을 더 일한다. 이러니 한국 노동자들은 한 마디로 수고롭게 일하고도 쉬지 못하는 이들인 셈이다. 어떤 이들은 노동생산성이 그만큼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 노동자들의 자질이 독일 노동자보다 넉 달을 더 일해야 할 정도로 떨어진다는 말인가? 터무니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많이 일하면 생산성도 따라서 올라간다는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반증으로 이해하고 노동 시간을 줄여야 할 것이다.2천 년 전의 묵자가 일한 자는 쉬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가 그의 시대적 요청에 명징하게 답한 것처럼 이제 한국 사회도 부의 분배만 아니라 쉼의 분배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수고롭게 일한 모든 이들이 마음 놓고 넉넉히 쉴 수 있는 날이 이제는 와야 하지 않을까. 2천 몇 백 년은 너무 오랜 기다림이다./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17-11-13 전호근

[홍창진 칼럼]인연(因緣)이 미래다

모든 형태의 노력은 미래의 씨앗'인연'으로 제대로 싹 틔워야이웃과 담 쌓은채 고민하지 말고산행·종교활동·연애도 하면서일상적인 만남 많이 갖고 살아야따뜻함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신부님, 회사에 사표 냈어요. 당분간 쉬면서 생각 좀 하려고요. 일간 찾아뵐게요.'얼마 전 받은 문자메시지다. 젊은 친구들과의 만남이 많아서인지 평소 이런 문자를 자주 받게 된다. 대부분 이직을 정하지 않고 무작정 내린 결론들이다. 먹고살 대비책을 세워두지도 않고 일단 사표부터 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불안할까?하지만 다행히 일자리를 찾았다고 해도 이전보다 행복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경제 성장이 침체기에 든 이래 일자리 자체가 크게 줄었고, 자연히 개인의 업무량은 늘었다. 눈앞의 일을 해치우느라 몸은 피곤해 죽겠는데, 권고사직이니 명예퇴직이니 하는 무시무시한 말 때문에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한다. 그래서 아예 국가고시 등 다른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위 의전, 약전, 법전 준비생들이다. 전공을 바꿔 대학과정을 밟아 전문직을 갖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멀쩡히 잘 다니던 대기업을 때려치우고 고시원에 들어갔다.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평생직장을 갖겠다는 그 노력이 가상하긴 하지만, 내 눈에는 미래를 향한 멋진 도약으로 보이지 않는다. 입으로는 희망을 말하지만 눈빛이나 행동에는 괴로운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들도, 괴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양질의 자리는 점점 희박해지고 경쟁은 치열해져가는 세상이 너무 두려운 것이다. 가진 재주를 다 모아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될 리 없다. 무서운 경쟁을 뚫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가뜩이나 복잡한 마음을 더 짓누른다. 그런데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미래에 내가 어떻게,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지 결정짓는 데 가장 크게 작용하는 요소가 무엇인가?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수 있다. 기본적인 실력도 있어야 하고, 학벌이 뒷받침되면 더 좋은 거고, 인내심이나 도전의식 등 품성도 갖출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하지만 나는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인연(因緣)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많은 젊은 친구들이 미래의 삶을 의논하러 나를 찾아온다. 그럴 때 나는 내 주변 사람 중에 그 친구의 꿈과 엇비슷한 직업군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한다. 아니 꼭 꿈과 관련 없어도 위로를 주고 본이 될 만한 사람들에게 연락해 서로 어울리게 한다. 거창한 모임이 아니라 그저 산에 오르거나 자전거를 탈 때 놀러 오라고 한다. 안타까운 건 젊을수록 그런 자리를 외면한다는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말이다. 학원에 가야하고, 스터디에도 가야하고, 시험 준비도 해야 한단다. 가뜩이나 피곤한데, 그 시간에 잠이라도 한 숨 더 자겠다는 마음도 보인다. 좋은 인연 날아가는 소리가 귓전에 들리지만,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다 앉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저 하던 대로 이 직장 저 직장 기웃대며 고민하는 걸 지켜볼 밖에는.지나고 보니 내가 주선한 세대 간 통합 모임에 꾸준히 나왔던 친구들은 거의 자리를 잡아 열심히 잘 사는 반면, 저 하던 대로 고립돼 살던 친구들은 같은 고민에 허우적대고 있다. 먹고사는 일이 녹록지 않은 시대이지만 이웃과 담을 쌓은 채 혼자 고민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가끔 산행 모임도 나가고, 종교 활동도 하고, 연애도 하면서 일상적인 인연들을 계속 키우며 살았으면 좋겠다.나는 아직까지 혼자 노력해 성공했다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노력은 미래의 씨앗이 된다. 그러나 그 씨앗이 제대로 싹을 틔우려면 좋은 토양과 햇볕이 필요하다. 인연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인연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를 모르고 오로지 자기 힘만 믿고 미래를 개척하려드는 건 어찌 보면 미련한 짓이다. 인연이라는 절반의 기회를 그냥 내다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력도 좋지만 생각보다 따뜻한 인연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아직 당신은 그 인연을 만나지 못한 건지도 모른다./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홍창진 수원교구청 신부

2017-11-06 홍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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