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몽잡이저: 교육은 섞이어 있는 나타남이다

산에서 샘물이 흘러 나와 계곡으로 내리고 계곡에서 내를 지나 강물을 이루고 강을 거쳐 바다에 이른다. 맨 처음 산속에서 물줄기가 나와 샘을 이룬 상을 주역에서 산수몽괘(山水蒙卦)라 한다. 몽괘는 샘물이 처음에는 어디로 흘러가야 할지 몰라 앞길이 막막해 발걸음이 멈추어있는 상이다. 그러나 그대로 멈춰있으면 영영 바다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마니 과감하게 흘러가야 한다. 이렇듯 과감하게 흘러가야 하는데 앞길이 어둡고, 앞길은 어두운데 과감히 진행은 해야하는 상황이 몽괘의 정황이다. 잘못 흐르면 강물을 타지 못하고 새어나가 버릴 수 있는 상황이다. 고인들은 이 몽괘를 보고 교육을 떠올렸다. 어린 아이가 세상에 나와 아무것도 모르는데 향후 성장해나가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면 이성이 계발되지 않아 천치로 남아있을 수 있다. 그러니 이것저것 배워야 한다.그래서 아이들을 교육하는 교재 등에 가르친다는 의미를 강조해서 훈몽(訓蒙)이라 하고, 열어준다는 의미를 강조해서 계몽(啓蒙)이라 하고, 엄하게 회초리를 든다는 의미로 격몽(擊蒙)이라 부르기도 한 것이다. 이런 몽괘에 대해서 뒤죽박죽 섞인 가운데 하나하나 구분되고 분별되는 이성적 진화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섞임이란 혼돈의 상태처럼 분별심이 없는 것이다. 분별심이 없다가 하나하나 세상 물정을 알아가는 과정을 잡이저(雜而著)라 하였다.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들을 교육할 때 참고할 만한 말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6-12 철산 최정준

[생활법무카페]금전거래 안전장치는 무엇이 있나요?

금전거래는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좋으나, 어쩔 수 없이 돈을 빌려주어야 되는 경우에는 훗날 채무자가 갚기로 약속한 날짜에 갚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돈을 빌려줄 때 사용할 수 있는 안전장치로는 예컨대 채무자나 물상보증인이 제공하는 부동산에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것과 같이 물적담보를 제공받는 방법과 재력이 있는 사람을 연대보증인으로 세우는 것과 같이 인적담보를 제공받는 방법이 있다. 이 중에서는 담보가치가 충분한 부동산에 곧바로 소송절차 없이 경매신청을 할 수 있는 근저당권 설정이 가장 확실한 안전장치라 하겠다.한편 채무자나 물상보증인의 근저당권설정을 제공받기가 여의치 않은 경우라면, 공증사무실에 가서 공정증서(금전소비대차계약 또는 약속어음 등)를 작성한 후에 돈을 빌려주는 것이 좋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는 경우에 복잡한 법원의 소송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강제집행을 할 수 있어 시간이 절약되고 간편한데, 다만 강제집행할 채무자의 책임재산을 쉽게 찾아낼 수 있는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또 돈을 빌려주는 채권자는 훗날 채무자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법원의 소송절차를 진행할 경우를 대비하여 대여금액과 대여일자, 변제기, 이자율 등을 명확하게 기재한 차용증(금전소비대차계약서, 현금보관증, 지불각서 등 명칭 불문)을 작성하여 두는 것이 좋다. 특히 채무자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주민등록상 주소, 연락처 등 인적사항은 반드시 기재하고, 더 나아가 주민등록증을 복사하여 첨부하게 하거나 인감 도장을 찍고 인감증명서를 첨부하도록 한다. 이는 모든 일이 종료될 때까지 잘 보관하여야 한다. 그러나 결국 가장 좋은 안전장치는 상대방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냐 여부를 판단하여 금전 거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라 하겠다./장지수 법무사·경기중앙법무사회 수원지부장지수 법무사·경기중앙법무사회 수원지부

2019-06-11 장지수

[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돈오점수(頓悟漸修)

BTS 'DNA'·김연자 '아모르파티'솔 벨로의 소설 '오늘을 잡아라'공통 분모는 '지금' 이라는 것곧바로 삶의 진실 먼저 깨닫고참사랑 시나브로 실천하는게 중요돈오점수(頓悟漸修)는 사물의 본질이나 인간의 본성을 앞서 깨닫고 그 깨달은 바를 점차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삶의 이치를 깨치는 것은 쉽지 않다. 그것을 깨쳤다 해도 수행에 정진하기란 어렵다.최근 세계적 보이그룹으로 거듭난 방탄소년단이 부른 'DNA'(작사/작곡:Supreme Boi, RM, 김우람, Suga, Hitman Bang, Pdogg)는 돈오점수의 과정을 남녀 사랑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첫눈에 널 알아보게 됐어/.../내 혈관 속 DNA가 말해줘/내가 찾아 헤매던 너라는 걸'. 돈오 과정의 출발이 문득 깨닫는 것처럼 곡명 'DNA'의 화자도 불현듯 한눈에 사랑을 찾는다. 돈오의 촉매제는 바로 '내 혈관 속 DNA'이다. 그리고 '너'를 찾은 후 '만남'이라는 돈오 깨우침에 대해 부연 설명한다: '우리 만남은 수학의 공식/종교의 율법/우주의 섭리/내게 주어진 운명의 증거'. 화자가 자신의 연인을 찾아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숙명'은 혼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우주'가 탄생하고 '무한의 세기'를 초월하고 '전생'과 '다음 생애'까지 함께할 '섭리'를 같이 발견한 것이기 때문이다.이제 화자가 해야 할 일은 점수라는 수행이다: 'I want it this love/I want it real love'. 진정한 사랑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정신적 집중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난 너에게만 집중해'. 집중할 수 있는 사랑은 서로가 진정한 연인 관계일 때만 가능하다. 화자는 연인을 대할 때마다 왠지 모르게 '숨'이 멎는다. 그의 DNA가 처음부터 연인을 찾아 심장이 뛰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연인에게만 몰입한 사랑의 핵심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지나간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후회'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가 강조하는 주제어는 바로 오늘이다. 왜냐하면 그에게 자신의 연인은 '영원히/영원히/함께니까'. 김연자가 부른 '아모르 파티'(작사:이건우·신철, 작곡:윤일상)는 돈오점수의 과정을 긍정적 인생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누구나 빈손으로 와'. 사람은 '빈손'으로 세상에 나온다. 그 이후 '소설' 속에 등장할만한 자신만의 '한편의 얘기들을' 이 세상에 흩뿌리고 살아간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자신에게 실망'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화자는 '모든 걸 잘 할 순 없어'라고 자위한 후 단번에 삶의 이치를 깨닫는다: '인생은 지금이야/아모르 파티'. '아모르 파티(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문구는 독일 철학자 니체가 사용한 명구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불우한 운명을 오히려 적극적인 삶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화자는 '인생은 지금'이라는 돈오를 깨닫고 운명애를 강조한다. 한편 점진적 수행 과정인 점수에 대한 화자의 시각은 분명하다: '나이는 숫자/마음이 진짜/가슴이 뛰는 대로 가면 돼'. 그는 '가슴이 뛰는 대로' 몰입 수행하겠다는 삶의 점수를 선포한다. 생물학적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그래서 원효대사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주창하지 않았던가. 삶은 '지금'이라고 깨우친 화자는 '왔다 갈 한 번의 인생아/연애는 필수/결혼은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과거와 달리 연애는 필수 요소이고 결혼은 선택 사항으로 여기는 시대적 경향과 무관치 않다. 노랫말 후반부에 나타난 화자의 긍정 인생 에너지는 '다가올 사랑은/두렵지 않아'라는 확신이다. 즉 그는 삶을 수동에서 능동으로 그리고 '실망'에서 희망으로 진취적 수행 점수 의지를 갖고 실행하겠다고 다짐한다. 미국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솔 벨로의 소설 '오늘을 잡아라'에서 탐킨 박사는 말한다: '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는 거야. 바로 지금 오늘을 잡아야 해.' '아모르 파티'와 'DNA' 그리고 '오늘을 잡아라'의 공통분모는 지금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바로 삶의 진실을 먼저 깨닫고 참사랑을 시나브로 수행하는 돈오점수를 실천해봐도 유의미할 듯싶다./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2019-06-09 고재경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대기만성: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

얼마 전 지인을 만났는데 이야기 도중 필자에게 대기만성의 의미에 대해 견해를 피력하였다. 대기만성을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고 해석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 대신 큰 그릇은 늦게 채워진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인이 살아본 바에 의하면 사람의 그릇은 그 크기와 양이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우리도 흔히 이야기하는 소재이자 주제인 그릇에 대해 생각해보았다.노자에 대기만성이 등장하는 대목의 맥락은 대방무우(大方無隅)식의 논리 흐름이다. 논리적으로 풀면 '큰 A는 a가 없다'는 논리이다. A에는 반드시 a가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논리인데 노자는 a를 초탈한 A를 찬탄하고 있다. 방(方)이란 사방의 네모로 반드시 모퉁이나 귀퉁이에 해당하는 우(隅)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노자는 인간의 시청에 근거한 논리나 정의에 얽매이지 말고 사물을 볼 것을 권유한다. 그 결과 사방의 모퉁이가 없는 네모를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소리 없는 음악이나 형태 없는 형상 등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기만성은 '이루어지지 않는 그릇'으로 보아야 한다. 한편 논어에 보면 공자는 자공에게 제사에 쓰이는 그릇인 호련(瑚璉)으로 평가하는 대목이 나온다. 또한 역사적으로 위대한 책사로 알려진 관중에 대해 '관중지기소재(管仲之器小哉)'라 하여 그의 그릇이 작다고 말씀한 대목도 보인다. 그러므로 공자는 그 사람마다 정해진 국량이 있다고 여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기(大器)를 논어의 용례처럼 해석하면 이미 정해진 큰 그릇이며 노자처럼 해석하면 좀처럼 완성할 수 없는 그릇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 둘의 의미로 해석하지 않고 큰 도자기를 만들려면 시간이 더디다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6-05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할미꽃

이른 봄 양지 밭에 나물캐던 울 어머니곱다시 다듬어도 검은 머리 희시더니이제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서러움도 잠드시고이 봄 다 가도록 기다림에 지친 삶을삼삼이 눈 감으면 떠오르는 임의 양자(樣子)그 모정 잊었던 날의 아, 허리 굽은 꽃이여하늘 아래 손을 모아 씨앗처럼 받은 가난긴 긴 날 배고픈들 그게 무슨 죄입니까적막산 돌아온 봄을 고개 숙는 할미꽃조오현(1932~2018)4월과 5월에 개화하는 할미꽃은 꽃대가 굽어서가 아니라 꽃이 지고 나서 열매에 가득 달린 흰털이 하얗게 센 할머니 머리와 비슷하여 생겨 난 말. 슬픔과 추억이라는, 꽃말을 간직한 할미꽃은 그렇게 꽃을 피우던 젊은 날을 지나 추억만 하얗게 매달고 있다. 그것도 들판의 '봄 양지 밭에'서 오지 않을 사람을 오래 기다려 온 듯이 '검은 머리'가 '희어'지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사람. 기억하는가. 바로 당신 때문에 잠 못 이루던 그 사랑. '이제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 버렸지만 '기다림에 지친 삶'에서 언제든지 '삼삼이 눈 감으면 떠오르는 임'으로서 '허리 굽은 꽃'이 되어 당신에게 오고, 당신은 '펼 수 없는 그리움'으로 피어난다. 돌아가 돌아오지 않는 당신의 그리움은 미안한 마음에서 제다 '슬픔의 죄'가 되어 '긴 긴 날 배고픈' 추억으로 허기를 달래면서 오늘도 적막한 너머의 고개를 넘어간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6-03 권성훈

[김나인의 '생활관상']얼굴, 자신의 가치 특정하는 자산(資産)의 보고(寶庫)이자 경쟁무기

시선 집중돼 타인의 평가 받고수많은 '정보창고'와도 같아성형으로 낯선 대리만족 보다는부모에게 물려 받은 온전상태로가꾸어 가는 마음가짐 중요관상(觀相)이란 상(相)을 본다는 말이다. 예로부터 얼굴·손·발 등의 인간 신체의 구조물을 보고 수상(手相), 족상(足相)이라 하여 그 사람의 명운(命運)이 어떠한가를 판단해왔다. 얼굴을 보는 일은 누구나가 매일 매일 접하는 일상의 습관이며 관심사이기에 더 이상 관상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얼굴을 살피는 일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살피는 일이기에 단 한순간도 관리의 대상, 관심의 대상, 그리고 관찰의 대상에서 눈을 뗄 수 없고, 소홀할 수도 없는 중요한 일이라 말할 수 있다. 오늘도 얼굴에 문제는 없는지 밤새 탈은 없었는지 안부를 묻고 보살펴야 하는 일상의 일이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시선이 집중되는 부위이기 때문이다. 얼굴은 가릴 수 없는 부분이고, 늘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남의 시선을 받게 된다. 시선을 받는 걸로 끝나면 좋은데, 원하든 원치 않든 타인의 평가를 받는 일이기 때문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이왕 남에게 보여주고, 보일 일이라면 조금 더 잘 보이고 싶고, 조금 더 좋은 점수를 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관상은 등한시 할 수 없는 중요한 일상의 일이 되는 것이다. 얼굴을 통한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 화장도 하고 성형도 하고 다양하게 꾸미며 신경 쓰고 투자하는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예뻐지고 싶다는 미적 기준을 충족하기 위하여 코를 세우고 턱을 다듬고 하는 일은 자기만족을 얻기에 충분한 일이지만, 그것이 곧 운을 좋게해 밝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지나치고 무분별한 성형은 신중히 접근해야 할 것이다. 얼굴은 자신의 가치를 매기는 상품이기에 좋은 상품이 비싼 값에 팔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얼굴은 자신의 자산을 관리하고 보관하고 증대시키는 은행과도 같은 것이기에 부실은행보다는 우량은행이 더 안정적이고 발전적이라 보는 것이다. 얼굴은 타인과 비교되는 자신만의 우월성을 특정하는 강력한 무기이기에, 가치의 등급을 매기는 점수표와도 같은 것이다. 이처럼 수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정보창고와도 같은 것이기에 각 개인의 운의 흐름를 비교 분석하고 평가받는 중요한 부위다. 얼굴에는 현재는 물론 과거와 미래의 모든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정보의 창고다. 사람의 얼굴을 통하여 그 사람의 과거가 어땠는지, 현재의 운이 어떤지, 미래 가치는 어떻게 이어질지 등을 알 수 있는 것이다.만일 얼굴을 남에게 보여주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가리면서 살 수 있다면 남의 시선에 신경 쓸 일이 없으니 그렇게까지 집착하지는 않을 것이다. 현 시대에서 관상은 어쩌면 인간의 3대 욕구인 수면욕·성욕·식욕을 뛰어넘는 더 의미 있는 본능적 욕구가 되지 않았나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오늘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보며 밝은 내일을 그려가고 있고, 내일을 보면서 밝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관상은 겉모습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따라 움직이고 바뀌고 변화되는 것이다. 단순히 미적인 아름다움을 위한 꾸밈이나 성형 등을 통한 어설프고 낯선 대리만족보다는 조금은 부족해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온전한 바탕에서 자기만족으로 채우고 가꾸어가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상법가들은 먼저 그 사람의 마음 바탕을 보고 후에 상을 보라 하였던 것이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밝은 미래를 그려가고, 멋진 세상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얼굴을 꾸미고 단장하는 일. 이제부터는 단순히 꾸미고 치장하는 일이 아니라, 얼굴을 세심히 살피고 진단하며 자신의 미래를 아름답고 멋지게 이끄는 인생의 진정한 주인공으로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무리 상이 좋아도 기색이 어둡거나 탁하면 운이 왔다가도 티끌처럼 사라지게 되며, 상(相)이 조금은 부족해도 기색이 좋으면 운이 열리는 것이다. 마음의 바탕에 기준한 거울을 통해 멋지고 아름다운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가고자 하는 욕구, 그래서 얼굴이 맑다면 조금은 못나 보여도 좋은 것이다./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

2019-06-02 김나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얼비자천: 재앙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다

주역점은 중국이나 한국이나 할 것 없이 유래가 심원하다. 중국이나 한국도 고대부터 국가의 중대사가 있으면 반드시 점을 치는 관리를 두고 점을 쳐서 결정했다. 공자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춘추에 관한 해설전인 춘추좌씨전에 당시 각국의 제후들이 대사를 점친 주역점 기록만 해도 20여 가지 넘게 나온다. 그중 한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진(晉)나라 헌공(獻公)이 딸 백희(伯姬)를 진(秦)나라에 시집보내려고 주역점을 치니 귀매(歸妹· )괘의 상육효를 얻었다. 그 효사에 여자의 광주리에 과실이 없고 남자가 양을 찔러도 피가 나오지 않아 이로울 바가 없다고 하였다. 그 효사를 보고 점을 담당한 관리가 도와줄 사람이 없고 결국 전쟁이 나는데 자신의 나라가 패할 것이고 왕자도 언덕에서 죽을 것이라고 풀이한다. 백희는 진나라 헌공의 부인인 제강이 낳은 맏딸인데 점친 관리의 말대로 일이 벌어지자 후일 혜공(惠公)은 자신의 아버지인 헌공이 선택을 잘못했다고 원망하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점관의 점(占)풀이를 따라서 시집보내지 않았다면 자신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원망한 것이다. 그러자 한간(韓簡)이 그 점을 따랐더라도 아무런 이익이 없었을 것이라고 하며 시경의 "사람들이 받는 재앙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초한 것이다"라는 내용의 구절을 인용하여 깨우쳐준다. 현실에서 점을 응용할 때 해당되는 사람의 덕량이 전제되지 않으면 점은 그 사람에서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당시의 점술도 인간의 덕량을 전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5-29 철산 최정준

[조성면의 '고서산책']'정암집(靜菴集)'과 조광조의 개혁정신

사익 취한적 없고 외압 유혹 견제오로지 정의로운 사회 실현 혼신개혁은 철저한 도덕성으로 추진사람 해치는게 아니라 살려야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케 해올해는 정암 조광조(1482~1519) 선생이 서세(逝世)한 지 오백주년이 되는 해다. 그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인격적 기준'이었고, '개혁의 상징'이었다. 선생의 서세 오백주년을 맞이하여 모처럼 '정암집'을 꺼내 들었다. 조선시대 '정암집'은 세 차례에 걸쳐 간행됐다. 1681년 남원에서, 1685년 대구에서, 그리고 고종 29년째인 1892년에는 능주에서 학포 양팽손(1480~1545) 선생의 후손 양정환과 그의 아들 양회연의 주도로 중간됐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석판본도 나왔으나 현재 널리 유통되는 판본은 1892년 임진본(壬辰本)이다. 임진본의 서지 상황은 이렇다. 총 5권 14권 4책에, 크기는 가로 29㎝×세로 19㎝, 10행 18자에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가 있다. 옛날 고서들은 중앙 부분을 접어 제본하는데, 중앙의 접힌 부분인 판심(版心)에 물고기 꼬리 모양의 장식을 한 것이 바로 어미이다.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란 판심 위아래의 물고기 꼬리 장식이 판심의 중심부를 향해 있으며, 어미 속에 2개짜리 꽃잎 장식이 들어가 있다는 뜻이다. 필자가 소장한 임진본은 4권짜리로 편집된 것인데 공교롭게도 미수 허목(1595~1682)이 쓴 서문과 퇴계 이황(1501~1570)과 치재 홍인우(1515~1554)가 찬술(撰述)한 행장, 소재 노수신(1515~1590)이 지은 신도비명 등의 글이 빠져 있다. 단순한 낙질본인지 당색과 가풍에 따른 의도적 재편집본인지는 더 따져봐야겠다. 만일 후자라면 '정암집'이 당색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매우 흥미롭고, 또 많이 아쉽다. 요즘 우리 사회가 적폐청산과 개혁 드라이브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적폐청산과 패스트트랙을 핑계로 당리당략을 챙기려는 극한대립과 막말정치를 지켜보면서 문득 한국사상사에서 영원한 개혁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정암이 떠올랐다. 정암이 사화의 광풍 속에서 유배지인 전남 화순 능주에서 사약을 받고 서세한 지 오백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개혁정치에 대해서는 여전히 평가가 엇갈린다. 조선을 도덕적 이상국가로 만들기 위한 올곧은 실천으로 보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조선의 적폐청산을 위한 그의 비타협적 개혁을,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성공하지 못한 사림정치로 보기도 한다. 조선시대 내내 정암 같은 개혁은 유례가 없었다. 그는 개혁정치를 통해 털끝만큼의 사익을 취한 적이 없었다. 또 현실정치에 몸을 담았던 4년 동안 어떠한 외압과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정의로운 도덕적 이상사회 실현을 위해 혼신을 다했다. 그러나 끝내 현실정치의 벽을 넘지 못하고 기득권 세력의 탄핵을 받아 사사, 엽지화(葉之禍)를 입었다. 정암은 '소학'과 '근사록'을 연마하여 문리를 얻고 유교의 정수에 이르렀는데, 스승 한훤당 김굉필(1454~1504)처럼 '소학'을 매우 중시했다. 중종조는 조선의 유교화가 본격화한 시기이자 '소학'의 시대였다. 중종 13년(1518년) 국가에서 '소학'을 1천300부나 인쇄하여 대소 신료 ·종친·지방관아 등에 무료로 배포하였다는 기록에서 알 수 있듯 근대 이전에 책은 판매나 상거래 대상이 아니라 나눔과 공유의 대상이었다. 이렇듯 옛날 책은 대개 판매가 아니라 나눠주기 위해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정암처럼 인품과 도덕성과 정당성을 갖춘 현인(賢人)의 개혁도 큰 참화를 입었거늘 나는 그대로인 채 남더러 바뀌라 하고 세상을 바꾸기란 더더욱 불가능하다. 개혁은 단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도덕성과 사회적 동의의 바탕 위에서 점진적으로 꾸준하게 추진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사람을 해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개혁이 되어야 한다. '정암집'은 개혁이 얼마나 무섭고 어려운 일인지 다시 숙고하게 하는 살아있는 고전이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2019-05-26 조성면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지소선후: 먼저 할 일과 나중에 할 일을 안다

바둑을 두어보면 절실히 느끼는 주제가 수순(手順)이다. 바둑돌을 동일한 여러 지점에 놓더라도 그 순서를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따라 대마가 죽기도 하고 미생마가 살아나기도 한다. 나중에 둘 돌을 먼저 두어도 문제고 먼저 둘 돌을 나중에 두어도 문제다. 곡성이란 영화의 한 장면 대사처럼 '뭣이 중헌디?'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른바 우선순위의 문제는 반상에서 놓아지는 흑백의 돌이 가는 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길에서 부딪히는 문제이다. 대학이란 고전에서는 이에 관해 사물(事物)의 틀을 가지고 생각해보라고 알려주고 있다. 사물에서 물(物)은 물건이고 사(事)는 일이다. 철학적 차원에서 보면 물건은 존재에 해당하고 일은 작용에 해당하니 존재와 작용의 문제이다. 대학에서는 모든 존재를 나무로 표현하여 공간적 의미를 대표하였고 모든 작용을 나무의 작용으로 표현하여 시간적 의미를 대표하였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무에는 뿌리와 가지가 있고(物有本末) 그 작용에는 마침과 시작함이 있으니(事有終始) 이런 틀을 가지고 파악하다 보면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할 것인지 알게 되는데(知所先後) 그때가 돼서야 도(道)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則近道矣)."나무를 보면 땅속에 묻힌 부분이 있고 밖으로 드러난 부분이 있는데 묻힌 부분이 근본으로 먼저이고 드러나 보이는 부분은 오히려 지엽적인 것으로 나중이다. 날이 풀려 봄이 오면 나무에서 싹이 나니 먼저이고 추워져서 겨울이 오면 나무의 정기가 뿌리로 돌아가니 나중이다. 그러나 이건 전체적이고 기본적인 선후일 뿐이고 진정한 선후는 그때마다 달라진다. 봄철의 나무는 꽃을 피우는 것이 중하고 가을철의 나무는 열매를 맺는 것이 중하다. 선후를 안다는 것은 고인들이 강조한 시중(時中)의 도리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착착 들어맞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대학이란 고전에서는 그와 관련해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준 것이다. "나는 지금 어느 철에 무슨 나무일까?"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5-22 철산 최정준

[생활법무카페]매출급감, 월세 감액 청구 가능한가

Q:상가건물임대차 계약 후 1년여 동안 마트 영업 중, 인접 지역에 대형마트가 입점하면서 매출액 급감으로 월세를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임대인에게 월세의 감액을 청구할 수 있나요? A:계약당사자 간에 약정한 차임이 임차건물에 관한 조세, 공과금, 그 밖의 부담 증가, 경제사정의 변동으로 인해 상당하지 않게 된 경우, 이를 인정할 만한 구체적인 입증자료가 있다면, 임차인 또는 임대인은 장래의 차임 또는 보증금에 대한 증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1조).임차인의 감액 청구에는 그 비율에 한도가 없으며, 임대차계약 당시 임차인이 차임의 감액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약정을 한 경우에도, 이는 임차인에게 불리한 약정으로 효력이 없습니다(같은 법 제15조). 단 입증책임은 청구인에게 있으므로 사전에 법무사, 변호사 등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판례1. 대법원 92다31163판결요지= 임대차계약에 있어서 차임은 당사자 간에 합의가 있어야 하고, 임대차 기간 중에 차임을 변경할 때도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한 경우에는 민법 제628조에 의해 차임의 증감을 청구할 수 있다.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 임대인만이 차임을 인상할 수 있고, 임차인은 이의를 할 수 없다고 약정했더라도, 이는 강행법규에 위반하여 임차인에게 불리한 약정이므로 효력이 없다(민법 제652조 참조).※판례2. 대법원 96다34061판결요지= 차임을 증액하지 않겠다는 특약이 있는 경우에도 그 약정 후 특약을 그대로 유지시키는 것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인정될 정도의 사정변경이 있다고 보일 때에는 형평의 원칙상 임대인에게도 차임증액 청구를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법 절차에 따른 감액청구 이전에 상대방과의 대화로써 합리적인 합의를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입니다./조규일 법무사 경기중앙법무사회 수원지부조규일 법무사 경기중앙법무사회 수원지부

2019-05-21 조규일

[시인의 꽃]장미를 위하여

단 한마디꽃 중의 꽃 장미라고 불렀을 때다른 어떤 말도 보태지 않고그 이름 불렀을 때그는 다소곳이 꽃잎 갈피갈피 감춘혼의 향기를말없이 우리에게 안겨준다한 다발의 장미 그 혼의 향기를가슴에 품고 돌아오는 길은길고 긴 역사의 산정이우러러 보인다홍윤숙(1925~2015)무엇을 위한다는 것은 그것에 대한 소중함을 기억하고 실천하겠다는 의지적 표명이다. 당신이 위하는 꽃이 있다면 여러 종의 꽃 중에서 그 꽃을 차별해 낸 것이며, 다른 꽃들과 분리시켜 당신만의 꽃으로 담고 있는 것. 그것은 꽃에 스며있는, 혹은 겹쳐있는 경험과 시간이 그 안에 머물면서 심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만약 '꽃 중의 꽃 장미'라고 했을 때, 그 장미는 이미 당신 가슴을 물들인 추억의 잎사귀를 가슴 속에 매달고 있는 것 같이. 여름과 맞닿아 있는 오월에 피는 장미는 오월의 슬픈 역사를 관통하며 피로 물든 시기에 피어난다.'장미를 위하는 것'은 표층적 장미가 아니라 심층적 장미를 말하는 것으로, 지나간 장미라는 '그 이름'은 누군가와 잊지 못할 '꽃잎 갈피갈피 감춘' 사연과 사라진 '혼의 향기'를 지닌다. 이른바 '한 다발의 장미'는 이별한 대상에 대한 '한 다발 가슴 깊이 품고'있는 사랑인바, 한때 당신이었을 그대로부터 진동하는 그리움에서 오는 것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5-20 권성훈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낡은 시대의 끝에 새로운 시대가 찾아온다

브레히트 '갈릴레이의 생애' 공연은'이미 아닌… 아직 아닌 힘들' 갈등'체제의 법' 보존·신설놓고 파워게임극작가들이 자주 다루는 이유는현시대 메시지 전할 수 있기 때문지난 4월 5일부터 28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생애' 공연이 있었다. '갈릴레이의 생애'는 "낡은 시대의 끝에 새로운 시대가 찾아온다"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아닌 힘들과 아직 아닌 힘들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 연극이다.이미 아닌 힘들은 비록 낡은 시대의 불합리성을 드러내고 있을지라도 여전히 그 체제의 법을 보존하려는 막강한 힘을 행사하게 된다. 반면 아직 아닌 힘들은 비록 시대의 합리성을 간직하고 있을지라도 미처 새로운 체제의 법을 제정하려는 강력한 힘을 행사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극작가들이 두 힘들 사이의 갈등을 자주 다루는 까닭은 이러한 갈등이 그 자체로 풍요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시대에 대해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생애'도 예외가 아니다.브레히트는 서사극을 창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관객이 연극을 통해 사회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획득함으로써 사회가 변화하길 원했다. 이를 위해 그는 서사극의 여러 장치를 활용했다. 제4의 벽(연극의 사실적 재현을 위한 가상의 벽으로, 관객은 이를 통해 무대를 마치 현실의 한 장면처럼 받아들게 된다)을 허물기 위해 무대장치와 노래를 활용하거나 배우와 등장인물을 분리하는 연기양식을 도입했다. 이제 무대는 무대일 뿐이며, 현실을 통찰하기 위한 교실이 된다.브레히트가 갈릴레이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신발보다 나라를 더 많이 갈아 신었다고 할 정도로 일생 동안 망명 생활을 해야 했던 그는 '갈릴레이의 생애'를 통해 1930년대의 독일과 유럽 사회를 비판하고자 했다. 문명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야만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상황에서 지식인의 사회적 역할에 주목했다. 이러한 그의 의지는 '갈릴레이의 생애' 덴마크판본(1938~39) 이후에도 미국판본(1945)과 베를릴판본(1954~56)을 생산할 정도로 개작 작업을 반복한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이미 익숙해진 세계에서 우리는 사회의 제도나 문화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므로 자명성은 한 사회의 제도나 문화가 갖고 있는 그늘을 가리기 쉽다. 이는 갈릴레이가 어린 안드레아에게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것이라는 사실을 설명할 때, "눈을 뜨고 있는 건 보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대사와 닿아 있다. 익숙한 자명성의 눈으로는 비록 눈을 뜨고 보더라도 그 현상의 진실을 모두 보는 것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명동예술극장의 이번 공연이 브레히트의 갈릴레이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우리 시대에 브레히트의 갈릴레이를 다시 호명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 시대의 반지성주의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무대 위의 갈릴레이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이성의 시대를 열기 위한 지난한 과정에서 지성이란 한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공적 형태에 의해 발현한다는 점일지도 모른다."반지성주의자들에게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라며 반지성의 무시간성을 비판한 우치다 다쓰루에 따르면, 사회성과 공공성은 찬동자의 많고 적음에 의해 측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향해 시간적으로 열려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된다. 지성은 개인의 산물이 아니고 집단적인 현상이기에 그러하다. 갈릴레이가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이 도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원경으로 관찰하게 하면서까지 신학자들에게 증명하려 해도 그들이 귀 기울이지 않을 때, "근거를 제시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은 시체들뿐"이라는 대사로 받아칠 수밖에 없었던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브레히트는 관객이 극장에 들어서자마자 모자와 함께 그들의 두뇌를 벗어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는 극장이 교실로 바뀌길 원했다. 그러나 관객이 더 이상 극장을 찾지 않는 시대라면 대체 연극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쩌면 모자와 함께 두뇌를 벗어버리는 태도를 바꿔야 하는 곳은 극장이 아니라 사회일지 모른다./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

2019-05-19 권순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인기아취: 남이 버릴 때 나는 취한다

재화를 늘리는 것을 화식(貨殖)이라 하는데 화식을 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놓은 책이 사마천이 지은 '사기' 가운데 들어있는 '화식열전'이다. 중국 고대 상인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세 사람을 3대 상성(商聖)이라 하여 범려와 백규와 호광용을 꼽는다. 인기아취는 이 중에 백규가 한 말로 전해진다. 백규는 BC 4세기 무렵 사람인데 부자가 되기 위한 네 가지 덕목을 강조하고 있다. 백규는 상인이 큰 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지(智), 용(勇), 인(仁), 강(强)의 네 가지를 구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서 제시된 네 가지 덕목은 도덕적 차원이라기보다는 부를 성취하기 위한 실용적 차원의 자격이나 능력에 가깝다. 백규가 말하는 지혜란 물가 등의 시세변화에 통달하는 것을 말한다. 용기는 결단할 수 있는 힘을 뜻한다. 어짊은 남을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라 남들이 버릴 때 취하고 남들이 취할 때 줄 수 있는 넉넉함이나 여유를 말한다. 이 인(仁)의 덕목에서 인기아취가 등장한다. 그리고 굳셈은 기회를 포착하는 힘을 말한다. 백규는 늘 물가의 시세를 살피길 좋아했다. 그 해 풍년이 들면 싼값에 곡식을 사들이는 대신 실이나 옷감을 팔아넘기고 흉년이 들면 그 반대로 했다. 역학으로 점쳐서 태음(太陰)이 어느 궁에 있는지를 따져서 풍년과 흉년을 예측하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태음이 卯나 酉에 있으면 그 이듬해 흉년이 들고 태음이 子나 午에 있으면 그 이듬해에 큰 가뭄이 든다고 하는 식으로 예측하였다. 백규는 이런 방법을 써서 내년 두 배씩 부를 축적하였다고 한다. 백규가 말하는 仁의 여유는 매우 간단하다. 비가 많이 내릴 때 공짜로 물을 담아두었다가 비가 내리지 않을 때 저수를 방류하여 비싼 값에 물을 내주는 이치이다. 문제는 언제 비가 많이 올지 적게 올지의 시세예측과 그 시세에 대응하는 인간의 심리운용이다. 그래서 시세파악의 지혜와 결단하는 용기, 거기에 더해 기회를 낚아채는 굳센 의지를 말한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5-15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낙화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이형기(1933~2005)영원한 것이 없다는 말은 영원한 것이 있었으면 하는 사람들의 염원에서 기원한다. 헤어짐의 아쉬움이 너무나도 컸기에 미련으로 남아 다른 누구를 만나게 되면, 경험칙상 벌써부터 헤어짐을 걱정하게 되는 것. 우리에게 만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면 '잘 헤어지는 법'이 아닌가. 그것은 소중한 사람일수록 그 사람과의 만남이 끝나더라도 그 기억 속에 영원히 남게 되는 것같이. 헤어짐의 아픔은 잠시이지만 만남의 즐거움은 영원한 시공간에 있는 것같이, 잘 헤어지는 법이야말로 영원한 것이 있다는 것의 역설로 교환된다. 가야 할 때를 알고 떨어지는 한 잎의 꽃처럼 그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의 사랑'에게 그러하다면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이 되고,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나의 사랑, 나의 결별'로 인하여 '내 영혼의 슬픈 눈'에 "영원의 열매"가 맺힐지니, 안녕.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5-13 권성훈

[조성미의 나무이야기]'아까시나무' 그 이름 제대로 불러줘야

진짜 '아카시아'는 열대지방에 사는 나무'닮아서 학명 붙인것 뿐' 처음부터 잘못 불려황폐한 땅에서 잘자라 조림용으로 많이 심어꽃은 떡·술 재료… 목재는 강도높아 '고급'계절의 여왕 5월이다. 봄이 무르익어 온 천지가 연두에서 초록 사이 농밀한 색채를 뿜어대는 신록으로 더할 나위 없는 눈 호강을 하게 된다. 여기에 은은하고 향긋한 꽃향기까지 더해져 산과 들에 향연처럼 가득 펼쳐지면 저절로 동요 '과수원 길'에 나오는 '아카시아 꽃'을 연상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아카시아의 정확한 이름은 아까시나무이다. 진짜 아카시아는 아프리카나 호주의 사막 같은 열대지방에 사는 나무로 온대기후인 우리나라에는 살 수 없다. 아프리카에서 기린이 목을 길게 빼고 단골로 뜯어먹는 나무로 키가 크고 억센 가시가 많으며 꽃도 황금색이다.아까시나무의 잎이 아카시아나무와 닮았다고 해서 학명에 acacia가 붙은 것뿐인데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올 때 잘못 불리고 이것이 그대로 굳어져 아카시아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아까시나무의 학명에는 가짜 아카시아라고 해서 'pseudo' 즉 가짜라는 라틴어 접두사가 붙어 있으며, 영어 이름도 'False acacia' 역시 가짜 아카시아라는 뜻이다. 아까시나무가 잘못된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안 이창복 박사가 1966년 이 나무의 가시에 착안해 아까시나무로 부르자고 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아카시아로 부르고 있다.북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아까시나무는 일본인의 손을 통해 1891년 중국을 거쳐 인천으로 들어왔다. 아까시나무는 메마르고 황폐한 땅에서도 잘 자라며 생장속도도 굉장히 빨라서 과거 치산녹화사업을 통해 전국에 조림과 사방사업용으로 많이 심은 것이 널리 퍼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특히 어떤 식물도 살기 어려운 황폐한 산에 뿌리내리고 자리 잡아 다른 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게 만들어주었는데 이는 뿌리에 공중의 질소를 고정하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있어 척박한 땅을 비옥하게 했으며 농촌에 연료와 퇴비를 공급하는데도 유용했다. 또한 아까시나무에서 채취한 꿀이 전체 생산량의 70%를 넘게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국내 최대의 밀원수(蜜源樹)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까시나무는 때로는 쓸모없는 나무로 인식되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소나무 등 토종 수종의 생장을 방해하고 왕성한 생명력으로 인해 생태계 교란을 염려하게 했다. 더더욱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소중히 여기고 관리하고 있는 조상님들의 산소에 뿌리가 파고들어 제거해야 하는 나무가 되기도 했다. 또 일제가 우리 산을 망치려고 일부러 심었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까시나무를 심은 것은 그 당시 황폐한 민둥산이었던 우리나라 산의 상태에서는 최상의 선택이었다. 사실 아까시나무는 그대로 내버려두면 더 이상 맹아를 번식하지 않으며 수명도 기껏해야 100년 정도이고, 햇볕을 아주 좋아하는 극양수라서 다른 나무가 숲을 이룬 곳은 침범하지 못하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아까시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잎이지는 넓은잎 큰키나무이다. 다 자라면 키가 25m까지 큰다. 5∼6월에 흰색으로 피는 꽃은 개화기간은 약 10일 정도이며 여러 개의 꽃이 꽃대에 모여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린다. 잎은 깃모양의 겹잎이고 어긋나기로 달리며, 9∼19개 달리는 작은 잎은 타원형 또는 달걀 모양으로 양면에 털이 없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아까시나무의 가장 큰 특징인 가시는 잎자루 쪽에 1쌍씩 달리는데 잎을 구성하는 것 중 하나인 턱잎이 변해서 생긴 것으로 어느 정도 큰 나무가 되면 없어지고 더는 생기지 않아 방어용 무기로 어린 가지나 줄기에 나타난다고 보면 된다. 9∼10월에 갈색으로 열리는 열매는 콩과 식물이라 꼬투리 모양인데 속에는 흑갈색의 콩팥 모양 씨가 들어 있으며 겨우내 달려 있기도 하고 간혹 이듬해 봄에 꽃이 필 때까지 달려있기도 한다.아까시나무의 꽃은 날것으로 먹기도 하고 떡과 술로 만들어 먹는다. 잎은 나물로 먹고 이뇨작용이 뛰어나 신장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까시나무는 건조가 까다롭기는 하지만 아주 좋은 목재이다. 색상과 무늬가 아름답고 뒤틀림이 거의 없으며, 강도도 높은 데다 방부효과까지 뛰어나 가공기술이 개발되면서 고급 목재의 반열에 오르게 됐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홍보실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홍보실장

2019-05-12 조성미

[의학기고]이유 없이 피곤하고 무기력한 당신, 갑상샘 기능 이상?

봄 날씨가 완연하다. 몸이 이유 없이 피곤하고 무기력해져 '춘곤증'인가 하고 무심코 넘기는 경우가 많은데, 갑상샘 기능 이상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최덕현 내분비대사내과 교수의 도움말로 갑상샘 기능 이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갑상샘은 목 앞쪽에 있는 나비넥타이 모양의 기관으로 갑상샘 호르몬을 생성하고 분비하는 역할을 한다. 갑상샘 호르몬은 체내 여러 조직의 산소 소비와 열량 생산 등을 촉진하여 대사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갑상샘 호르몬이 지나치게 많은 질환이 '갑상샘항진증', 적은 질환이 '갑상샘저하증'이다.'갑상샘항진증'은 체내 대사가 항진되어 더위에 민감해지고 땀이 많이 나며, 체중 감소, 두근거림, 불안감, 안구 돌출, 호흡 곤란 등의 증상들이 나타난다. 심할 경우, 심방세동, 협심증 같은 심장 질환이 유발되기도 한다. 또한, 극도로 악화되면 '갑상샘 중독발작'이 와서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반면에 '갑상샘저하증'은 갑상샘항진증과는 반대되는 증상들이 나타난다. 추위에 민감해지고, 인지 기능이 떨어지며, 체중 증가, 변비, 탈모, 우울증 같은 증상들이 생길 수 있다. 대사가 지나치게 억제되어 고지혈증, 고혈당을 유발할 수 있으며, 심한 경우는 심부전이 발생하기도 한다. 갑상샘저하증 역시 극도로 악화되면 '점액부종혼수'에 이르러 생명이 위독할 수 있다.갑상샘 기능 이상 질환들의 치료는 일차적으로 약물치료가 원칙이다. 갑상샘항진증은 갑상샘 호르몬 수치를 떨어뜨리는 '항갑상샘제'를 쓰고, 갑상샘저하증은 반대로 수치를 높이는 '갑상샘 호르몬제'를 쓴다.항갑상샘제는 피부 두드러기와 소화 불량과 같은 부작용이 5% 정도에서 나타날 수 있다. 매우 드물지만, 무과립구증이나 간염과 같은 위험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어 주치의와 반드시 상의하여 복용해야 한다.약물 치료가 실패한 경우, 갑상샘절제술이나 방사성요오드요법을 고려할 수 있다. 갑상샘저하증 치료를 위해 갑상샘호르몬제를 복용할 때는 반드시 아침 식사 30분 전 공복에 복약해야 한다. 식후에 복용하거나, 위장약과 같은 다른 약제와 함께 복용하면 흡수율이 떨어지므로 주의해야 한다. 갑상샘항진증과 갑상샘저하증 모두 체내 갑상샘 호르몬 수치를 정상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므로 치료 중에는 정기적인 채혈 검사를 통해 갑상샘 호르몬 수치를 확인해야 한다.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최덕현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갑상샘은 우리 몸의 대사를 조절하여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특별한 이유 없이 무기력하거나 체중 변화, 가슴 두근거림, 손 떨림, 혹은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추위와 더위를 반대로 느낄 때가 많다면 갑상샘 기능 이상을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최덕현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최덕현 순천향대학교 부천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

2019-05-09 경인일보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불치하문: 자기보다 못한 이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자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공문자란 사람은 무엇 때문에 문(文)이라고 부릅니까?" 여기에서 공문자(孔文子)는 위(衛)나라의 대부 공어(孔어)의 시호(諡號)이다. 시호는 보통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때의 공적이나 덕행 등을 따져서 정해지는데 문(文)이 들어간 것은 단계가 높은 시호이다. 당나라 현종이 공자의 존호를 문선왕(文宣王)으로 추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공어는 친구의 아내를 탐했다고 알려질 정도로 욕심이 많은 인물이었는데 문(文)이라는 시호를 받았기에 자공이 물은 것이다. 공자가 이에 말씀하셨다. "그는 민첩하면서 배우기를 좋아하며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를 문이라고 부른다. 여기에서 하문(下問)의 하(下)는 자기보다 못하다는 뜻이지만 구체적으로는 여러 가지 의미로 새길 수 있다. 단순히 나이가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다. 나이가 자기보다 어려도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면 물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학식이 자기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읽을 수도 있다. 인생의 길을 찾는데 학식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기가 배운 학식의 틀에 갇혀 그 밖의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다. 또 자기보다 덕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읽을 수도 있고,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읽을 수도 있다. 자기가 월등한 점을 제쳐두고 자기가 부족한 그 무엇을 상대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면 상대에게 그것을 물어보는 것이 하문(下問)이라 할 수 있다. 배움을 물음을 통해 완성되기에 학문(學問)이라 하듯이 하문을 부끄럽게 여길 일이 아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5-08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둘리고 있을 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삼백예순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찬란한 슬픔의 봄을김영랑(1903~1950)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낙엽관목인 모란은 5월에 개화한다. 이 꽃은 예부터 부귀의 상징으로 여겨오면서 왕실에서 왕비나 공주와 같은 귀한 신분의 여인들의 옷에 모란무늬가 들어갔으며, 가정집의 수병풍에도, 선비들의 소박한 소망을 담은 책거리 그림에도 부귀와 공명을 염원하는 모란꽃이 새겨졌다. 특히 미인을 말함에 있어서 복스럽고 덕 있는 미인을 활짝 핀 모란꽃과 같다고 할 정도로 모란은 여성성이 강한 이미지다. 모란꽃을 기다리는 마음은 여성을 그리워하듯 기다리며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릴 것을 알면서도 그 숨결과 함께 한다. 이른바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마는 것이지만 단념하기 보다는 또 다시 모란과 더불어 올 봄을 1년 동안을 잊지 않고 가슴을 내어준다. 당신의 사랑도 시든 자리에 모란처럼 피어날 사랑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찬란한 슬픔의 봄' 안에는 수많은 불빛이 빛나듯이 그렇게 피어났다가 시들어버린 시간들이 응집되어 있기에, 슬픔도 찬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5-06 권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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