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시승육룡: 때에 맞게 여섯마리 용을 탄다

매일 출퇴근을 하다보면 자전거를 타든 버스를 타든 지하철을 타든 자가용을 타든 무언가를 탄다. 조물주는 무얼 타고 다닐까? 주역에서는 조물주는 용을 타고 다닌다고 했다. 용은 상상의 동물이긴 하지만 변화막측한 존재로 구름을 몰고 비를 내리는 작용을 하는 고마운 하늘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조물주가 하늘의 작용을 주관하는 모습을 용을 탄다고 비유했다. 운전사가 그 차를 타야 작동하는 것처럼 조물주가 용을 타야 구름이 몰려들고 비가 내려 만물이 우로 받아 살 수 있다. 그런데 용을 타긴 타는데 용이 한 마리가 아니라 여섯 마리가 있다고 했다. 여섯 마리의 용은 하늘의 작용을 여섯 가지로 구분하여 해당시킨 것으로 맨 아래 잠룡(潛龍)에서 맨 꼭대기의 항룡(亢龍)으로 六龍을 말한 것이다.맨 아래 잠용은 말 그대로 잠장되어 있고 숨어있어 작용하지 않는 잠재 상태이다. 다음의 현룡(見龍)은 밖으로 드러내놓고 작용을 하는 단계이다. 척룡(龍)은 전반부를 마무리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단계이다. 약룡(躍龍)은 조화의 중심처로 도약하기 위해 개혁하는 단계이다. 비룡(飛龍)은 조물주의 조화가 절정에 도달해 비를 내리는 단계이다. 항룡(亢龍)은 이 모든 시기를 거쳐 이제 무대에서 물러날 준비를 하는 단계이다. 이렇듯 하늘은 조화를 내는데 시작에서 끝까지 6단계의 시기가 있다. 조물주는 이 시기에 알맞게 조화를 부리니 그것이 바로 時乘六龍이다. 인내천(人乃天)이라 하듯 사람도 조화를 부릴 때 이렇게 하라는 것인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 왜냐하면 지혜가 짧은데 욕심은 많아 그 단계가 명확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0-04-22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제비꽃이 피었다

우리 집 담 밑에 제비꽃이 피었다봄날의 마법처럼 깊은 어둠 뚫고 피었다아무리 힘든 세상도 사는 게 더 낫다며 피었다꽃도 사람처럼 누군가의 환한 시선 받고 싶다며 피었다슬픔은 삶을 낭비할 때 생기는 회한의 그림자서로서로 격려하며 기쁘게 한 시절 잘 보내자고 피었다눈물 나게 따뜻한 작은 꽃잎들 불쑥불쑥 내밀며외로울 땐 거울 보듯 자신을 보러 나오라며 피었다사방이 연둣빛으로 감격스런 화창한 봄날 오후자꾸만 잊혀지고 멀어지는 첫 순정, 첫사랑처럼저 혼자, 저 멀리서 찾아와우리 집 담 밑에 작고 예쁜 보랏빛으로 피었다향기로운 봄바람에 수줍은 서정(抒情)처럼 피었다어린 날, 쬐그만 내 얼굴처럼 피었다김상미(1957~)제비꽃은 말 그대로 제비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른 봄 잎사귀 사이 긴 꽃대 끝에 "봄날의 마법처럼 깊은 어둠 뚫고"보라색 또는 자주색 꽃을 한 개씩 피워 올리는, 제비꽃은 제비가 겨울나고 돌아오는 4월 무렵에 개화한다. 또한 이 꽃은 여러해살이풀로서 "서로서로 격려하며 기쁘게 한 시절 잘 보내자고"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오랑캐의 머리 모양이 비슷해서 오랑캐꽃, 반지를 많이 만들어서 반지꽃, 병아리처럼 작고 귀여워서 병아리꽃 등의 별칭을 가진다. 여기에 "눈물 나게 따뜻한 작은 꽃잎들 불쑥불쑥 내밀며" 얽힌 설화도 많지만 대부분 '나를 생각해 주세요'라는 꽃말과 통한다. '화창한 봄날 오후' 거리를 걷다가 '첫 순정, 첫사랑처럼 저 혼자, 저 멀리서 찾아와'있는 제비꽃을 보라. 그것은 누군가 잊혀지거나, 멀어지지 말았으면 하는'보랏빛 그리움'이 넘을 수 없는 마음속 담장 밑에 피어난 것이 분명하다./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4-20 권성훈

[손경년의 '늘찬문화']'코로나19' 이후의 희망과 기대

백신 개발 어려워 감염 두려움 더 커문화예술계 '새로운 개념' 요구돼온라인 갤러리등 다양한 기획 시도'움직임의 일상' 준비할 공공기관지원대상 누락없는 정책실행 기대약 두 달 동안 시계추처럼 집과 사무실을 오가는 정도의 움직임과 집 근처의 시장에서 음식물 등 생필품을 사기 위한 나들이 정도로 '사회적 거리두기', 좀 더 엄밀히 표현하자면 '물리적 거리두기'를 철저히 하고 있다. 요즘은 중앙공원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마다 마치 새롭게 배운 외국어를 말해보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산책 나온 강아지, 길고양이, 비둘기, 참새, 개나리, 철쭉 등에 인사를 건넨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달라진 일상이다.알다시피 우리가 알고 있는 세균은 DNA, RNA를 모두 갖고 있으며, 스스로 생명 활동이 가능한 완전한 세포이자 생물이다. 이에 반해 바이러스는 단백질 외피가 유전물질 한 가닥을 싸고 있는 구조이며, 종류에 따라 DNA, RNA 둘 중 하나만 갖고 있고, 세포막이 없으며 숙주 내에 있을 때만 생명 활동이 가능하다. 바이러스는 세균과 달리 돌연변이가 나타날 수 있고 변이가 빨라서 백신을 만들기가 어렵다고 하니 감염에 대한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최근의 공연이나 행사, 축제, 스포츠 등은 대규모 관중 또는 관람객이 함께 모여 공통의 관심사에 몰입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여행은 체험과 모험이 주는 힘을 강조하면서 국가를 넘나드는 관광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모여야 성공적이라는 등식은 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코로나19 이후 문화예술계는 규모와 경제적 편익과의 관계, 공연·축제 그리고 관광의 의미 및 가치에 대한 새로운 개념과 동시에 형식과 내용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생활방식의 변화를 체감하면서, 10년 뒤 우리는 놀랍게 바뀐 사회생활과 거리의 모습, 지금과 다른 방식의 사람과 사물에 관한 관심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까지 이루어왔던 만남·연결을 통한 상호이해, 현장이 주는 생생한 체험, 직접 보면서 느끼는 실물의 아우라 등을 느끼는 방식이 바뀔지도 모른다.이반 일리치의 '텍스트의 포도밭에서' 내용 중에 중세의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책을 읽던 독특한 방법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수도사들은 하느님의 말씀이 적혀 있는 양피지로 된 책을 여럿이 모여 낭독하는데, 마치 농사꾼이 자신이 지은 포도밭의 잘 익은 포도를 한 알 한 알 음미하는 것처럼 책의 글자 하나하나를 소리 내어 읽으면서,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음악적 쾌감을 즐겼다고 한다. 코로나바19로 인해 공연장에서의 대규모 공연과 미술관의 전시, 강의실의 교육과 면대면 회의 등이 어려워지자 문화예술계는 '무관중 연주회', '온라인 갤러리', '제한적 관람', 야외에서의 '드라이브인 공연', '랜선공연(동화구연, 라이브 공연, 쇼케이스 발표 등)', 온라인 강의, 화상회의 등 접근이 가능한 다양한 기획을 시도하고 있다. 묵독의 방식이자 혼자서 겪는 체험으로서의 독서가 일반적인 요즘, 이반 일리치의 사례처럼 잊고 있었던 옛 방식의 하나인 '낭독'의 즐거움을 '랜선 동화구연'으로 되살려내기도 한다. 이런 시도는 불과 몇 개월 동안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이제 우리는 '팬데믹'을 대처하는 세계 각국의 모습을 통해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재난대비 '삶의 기술'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류사회에 갖가지 재앙과 질병을 퍼트린 판도라의 남편 '에피메테우스'를 비난만 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에 남은 '희망'은 '자연의 선량함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에서 우러나오며, 예측할 수 없기에 희망을 품고 뜻밖의 일이기에 놀람, 경이로움의 체험을 얻는다고 한다. 반면에 '기대'는 '인위적으로 계획하고, 통제한 것에 따른 결과에 대한 의존'을 뜻한다고 한다.조만간 코로나19로 인한 '멈춤'에서 '움직임의 일상'을 준비해야 할 국가, 지자체, 공공기관은 중장기적 계획과 더불어 당면한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 입안과 실행에 대한 '기대'를 요구받을 것이다. 무엇보다 좋은 시절이든 좋지 않은 시절이든 사회적 역할을 해왔던 예술단체, 예술가들이 '모든 사람'의 지원대상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문화정책·예술정책이 체계적으로 실행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품위와 상식, 인간의 존중과 미덕에 대한 '희망'과 함께./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20-04-19 손경년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유시위대: 오직 때가 지대하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있다. 개인이나 조직이 하고자 하는 일의 성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민이다. 스스로 지니고 있는 재주나 능력이 중요할까 아니면 시운이 중요할까의 문제이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재주나 능력이 미치는 영향이 '3'이라면 시운이 미치는 영향은 '7'이라는 뜻이다. 인생의 경험이 풍부할수록 운영을 하는 조직의 규모가 클수록 이 말에 더 절실히 공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역에서도 자연과 인간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때라고 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적 공간인 천지도 시절의 흐름과 함께 변화한다. 지구에 사람이 없던 시절도 있었고 빙하기도 있었지만 이 모든 변화는 때에 따른 것이다. 천지도 이런데 하물며 사람이 때를 따르지 않을 수 있으며 귀신이 때를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좋은 종자를 골라 열심히 모내기를 하고 벼를 심어놓아도 여름철 물 한 방울 보기 힘든 가뭄이 들면 그 해 농사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농부가 노력을 기울여 능력을 발휘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그 해 농사를 망치기 쉬운 것이다. 화투에 고스톱을 쳐보면 아무리 좋은 패를 들어도 싸기만 하면 피만 들고 있던 옆 사람만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시절의 운이 거꾸로 돌면 천하장사도 어쩔 수 없다. 그러므로 시절의 운을 살펴보는 것은 요행을 바라기 위함이 아니고 궁극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필수적 행위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0-04-15 철산 최정준

[생활법무카페]코로나19와 개인회생·파산

코로나19 여파로 경제가 침제된 가운데 개인회생, 파산에 대한 문의가 늘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들의 폐업 및 극심한 매출감소 타격뿐만 아니라, 급여소득자도 무기한 무급휴직 당하거나 직장 사정으로 아예 회사를 사직하게 되는 현실이 앞으로 수면 위로 더욱 드러날 것으로 예상됩니다.개인 파산은 영업자·비영업자 등 채무자의 신분에 관계없이 '개인'이 소비활동의 일환으로 자신의 변제능력을 초과해 과도하게 금전을 차용한 결과, 자신의 모든 재산으로도 채무를 변제할 수 없는 지급불능의 상태에 빠져 그 정리를 위해 파산신청 후 종국적으로 면책신청까지 하는 경우로서 총채무액 제한은 없습니다.개인회생의 경우에는 채무자 '개인'이 파산의 원인인 사실이 있거나 그러한 사실이 생길 염려가 있는 자로서 총채무액이 5억원 이하(담보부채무의 경우에는 10억원)의 '정기적이고 확실하고 계속적, 반복적으로' 수입을 얻을 가능성이 있는 급여소득자 또는 영업소득자가 원칙적으로 3년간 일정한 금액을 변제하고 나머지 잔액의 면제를 받을 수 있는 절차입니다.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자영업자들이 폐업하거나 급여소득자가 실직한 경우에는 계속적, 반복적으로 정기적이고 확실한 수입이 불가능하므로 개인회생보다는 개인파산면책이 요건에 맞을 것입니다. 다만 새로운 직장을 바로 구하거나 폐업을 하지 않고 수입을 유지하는 경우에는 개인회생이 가능할 수 있으나 경기침체로 인해 구직활동이나 영업유지가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이런 경기침체가 언제까지 갈지 지금으로서는 예상할 수 없습니다.정부가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해 내놓은 긴급재난지원금 정책과, 각 지자체마다 지역화폐 발행을 통해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이 지역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경기부양정책으로서 그 효과가 '언 발에 오줌 누기'가 아닌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구제방안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에 자영업자 및 급여소득자들이 오롯이 코로나19 여파 때문에 개인회생 파산 상담을 한다는 문의 전화가 줄어들기를 기대합니다./주영민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수원지부주영민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수원지부

2020-04-14 주영민

[시인의 꽃]백일홍

개심사 배롱나무뒤틀린 가지들구절양장(九折羊腸)의 길을 허공에 내고 있다하나의 행선지에 도달할 때까지변심(變心)과작심(作心) 사이에서마음은 얼마나 무른가푸른 마음이 파고들기에 허공은 또 얼마나 단단한가새가 앉았다날아간 방향나무를 문지르고 간 바람이,붐비는 허공이배롱나무의 행로를 고쳐놓을 때마음은 무르고 물러서그때마다 꽃은 핀다 문득문득핀 꽃이 백일을 간다장만호(1970~)인간은 서로 볼 수 없는 생각과 만질 수 없는 감정과 느낄 수 없는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마음'이라고 한다. 자신조차도 잘 모르는 마음은 말과 행동으로 나타났을 때 그 실체를 만날 수 있다. 이처럼 다른 사람과 말이나 행동으로 통하는 고유한 이것은 상호 소통을 목표로 하지만 사실상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하거나, 또한 내면을 온전하게 구현하지 않을 때, 마음은 또 다른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어 낸다. 거기서 개별적인 마음이 '뒤틀린 가지들'처럼 뻗어가고 육신의 창자처럼 이리저리 꼬부라진 험한 산길을 '변심(變心)과 작심(作心) 사이에서' 배회하기도 한다. 어느 방향으로 꽃을 피울지 모르는 백일홍은 자신을 열면서 언제 바뀔 지 모르는 '무르고 무른' 인간의 마음을, 보라는 듯이 백일동안 허공에 펼쳐놓고 단단하게 피었다가 간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4-13 권성훈

[주종익의 '스타트업']밀알이 죽으면

천재과학자 쇼클리 리더 자질 부족반도체연구원 8명 갈등 못 견뎌내새 회사 설립 '실리콘밸리' 초석돼노키아 1천개 넘는 스타트업 도와휴대폰 사업보다 핀란드경제 기여"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성경 구절이 있다. '8명의 배신자' 이야기는 실리콘밸리와 벤처캐피털의 태동과 성장을 이야기할 때 늘 등장하는 사례이다.옛날에 라디오가 귀할 때 광석라디오가 있었다. 이 광석의 원소가 게르마늄이며 초기의 반도체 소자였다. 열에 약하고 성능이 모자라서 후에 실리콘으로 대체되면서 실리콘 반도체 회사들이 지금의 실리콘밸리에 계곡을 이루듯 설립되면서 실리콘 밸리가 생기게 되었다.MIT 출신 물리학자이며 천재적인 과학자 윌리엄 쇼클리가 벨 연구소에서 반도체 연구의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고 1956년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를 8명의 기라성 같은 연구진과 함께 스탠퍼드 대학 내에 만들었다. 그러나 쇼클리는 훌륭한 과학자이기는 하였지만, 리더로서는 부족한 자질 문제로 주변의 동업자나 연구원들과의 사이는 좋지 않았고 늘 다툼으로 헤어지는 일이 잦았다.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 8명의 연구원은 끝내 쇼클리와의 갈등을 못 견디고 연구소를 사퇴하고 자신들의 반도체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8명의 배신자가 된 것이다.8명의 배신자가 반도체회사를 설립하려면 자금이 필요했으나 이들이 투자자를 만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고 이때 IBM의 최대 주주이며 페어차일드 카메라의 소유주인 셔먼 페어차일드를 만나게 도와준 사람이 동부의 금융계에서 일하던 아서 록이다.1957년에 지금의 실리콘 밸리에 페어차일드 반도체 회사가 설립된다. 이후 많은 반도체 회사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는 초석을 만들게 된다.페어차일드에서 함께 근무하던 8인의 배신자 중의 고든 무어와 로봇 루이스가 또다시 배신자가 되어 오늘날의 인텔을 1968년에 만들었고 인텔의 최대 경쟁자인 AMD 반도체회사도 비슷한 시기에 이 지역에 공장을 설립했다.노키아는 핀란드에서 한국의 삼성전자와 같은 회사였다. 2011년까지 10년이 넘도록 휴대전화 사업 부문에서 세계 1위의 점유율을 유지하는 회사였으나 스마트폰 전략의 실패로 2013년 마이크로소프트에 휴대전화 부문을 8조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으로 매각하였다.핀란드에는 큰 걱정을 주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슬기롭게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20년이 넘도록 대기업에서 첨단의 기술을 익힌 직원들에게 노키아는 브릿지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퇴직 직원들에게 적극적으로 스타트업에 진출할 기회를 부여했다. 1인당 3천500만원이 넘는 스타트업 자금을 지원하여 능력 있는 기술자들이 1천개가 넘는 스타트업을 창업하도록 도와주어 노키아의 휴대폰 사업 부문에서 이룩했던 성과보다도 더 많은 매출을 달성함으로써 핀란드의 국가 경제에 기여하게 되었다. 핀란드는 인당 스타트업 비율이 세계 1위의 국가다.노키아가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맺었다. 우리나라도 기술 있는 대기업 한 두 개가 죽어서 젊고 능력 있는 기술자들이 스타트업에 진출해야 스타트업 국가로 갈 수 있다고 말하는 이도 심심찮게 있다.우리는 전통적으로 노동의 자유도가 낮은 국가다. 한곳에 뼈를 묻어야 한다는 정신이 있다. 인사 담당은 배신하지 않는 사람을 뽑으려고 관상을 보는 사람을 면접관으로 참석시키기도 했다. 본인 자신들도 배신이나 도전보다는 한곳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공무원을 좋아한다.이제는 좀 달라졌지만, 회사를 3번 이상 옮긴 사람은 뽑지 않았다. 빨간 줄이 세 번 그어졌다고 마치 감옥에 갔다 온 것과 같은 것으로 비유했다. 한곳에 안주하고 이제 됐다는 생각의 알을 깨고 뛰쳐나가 새로운 꿈을 향한 도전 정신이 일반화될 때 스타트업 국가로 나아가는 길이 트일 것이다. 쇼클리에서 시작된 지속적인 밀알들의 죽음으로 페어차일드가 생겨나고 인텔, AMD, 내셔널세미컨덕터 등을 포함하여 20년 후에는 65개의 반도체 회사를 나았다. 한 회사에 안주하지 않은 수많은 자유로운 영혼들이 인류에게 공헌하기 위해 벽돌 한 장을 쌓아온 지 60년이 넘으면서 미국은 반도체와 컴퓨터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국가가 되었다. 그들은 8명의 배신자가 아니라 8명의 개척자였다./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에버스핀 감사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에버스핀 감사

2020-04-12 주종익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용회이명: 어둠을 써서 밝힌다

시중에 나도는 유행어 가운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치상 그럴듯한 말들이 꽤 있는 것 같다. 요즈음 '동학개미운동'이란 신조어가 생겨났다. 코로나사태로 세계금융시장이 휘청거리는 가운데 우리나라 개인투자가들이 삼성전자에 투자하면서 생긴 말이다. 지금까지의 과거 사례를 보자면 우리나라 금융시장에서 외국인투자가들을 개인이 이긴 적은 전무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결과가 어떨지 궁금해 하는 이들도 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 개인들이 잘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도 많은데 필자도 동감하는 부분이다. 향후 4차 산업의 핵심동력은 누가 뭐래도 반도체다. 최근 삼성전자는 시스템반도체 분야에 133조원을 10년간 투자한다고 밝혔다. 현재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반도체 전문가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감한 투자임을 알 수 있다. 역사에 어둠과 밝음은 늘 있어 왔다. 금융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어두움 중에 가장 어두운 정황을 나타내는 글자가 회(晦)인데 그믐달로 깜깜한 밤을 뜻하는 글자다. 주역에서는 어두움을 잘 활용하여 밝혀 나가라고 했다. 그믐달이 초생달로 바뀌고 초생달이 상현달이 돼 보름달이 되듯 어두울 때일수록 대세의 방향이 바뀌지 않는다면 전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어두운 때를 활용하여 밝아질 날을 대비해야 한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0-04-08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백일홍

어젯밤 / 어디서 잤는지 / 머리에 / 붉은 실밥이 가득하다 //수박장사 리어카조차 / 그늘에서 쉬고 있는 / 한낮 //지린내가 진동하는 / 공터에 //태양을 독점한 듯 / 미친 여자 하나 / 눈부시게 / 서 있다문성해(1963~)무엇보다 시인은 시어를 통해 존재를 새롭게 발견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기려고 한다. 그럴 때 표상되는 대상과 원래 대상 사이의 유사한 형태나 성질을 매개로 전혀 다른 존재를 상상하게 만든다. 100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운다고 해서 명명된 '백일홍'은 순결이라는 꽃말처럼 고귀한 의미로 받아들인다. 이 꽃은 6월에서 10월 사이 개화하는데, 잎은 마주나고 달걀 모양이며 잎자루가 없고 가장자리는 밋밋하며 털이 나서 거칠고, 끝이 뾰족하며 밑은 심장 모양을 가진 아름다운 꽃이다. 그러나 시인은 백일홍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제거하며 순간적으로 '미친 여자 하나'로 전환시켜 버린다. 말하자면 '어젯밤 어디서 잤는지 머리에 붉은 실밥이 가득'한 그것도 '한낮에 지린내가 진동하는 공터' 위에 피어난 존재일 뿐이다. 시어의 프리즘을 통과한 백일홍은 우리의 상식과 맞지 않은 '눈부시게 서있는 미친 꽃'으로 전복되는 데에서 놀라움이 발생되는 것. 이것이 바로 존재를 다시 드러내며 각인시키는 언어의 힘이며, 마법 같은 미적 성취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4-06 권성훈

[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초로인생(草露人生)

삶은, 풀잎 위 이슬처럼 해가 뜨면 사라질 꿈에 불과최희준 하숙생·배정은 일장춘몽'공수래 공수거' 적절 묘사순리대로 살다보면 덧 없음 극복초로인생(草露人生)은 풀잎에 맺힌 이슬 같은 삶이란 뜻이다. 아침 해가 뜨면 풀잎 위 이슬처럼 없어질 인생이란 참으로 덧없다. 하루살이 부유(蜉蝣) 인생은 너무나 허무하다. 온갖 세상 부귀영화를 누려본들 인생 말년의 종착역은 어디인지 누구나 안다.최희준이 부른 '하숙생'(작사 김석야, 작곡 김호길) 노랫말엔 초로인생의 삶이 절절히 녹아 있다. 곡목 '하숙생'에서 인생은 자신의 주거 지역을 떠나 다른 곳에 잠시 머물다 떠도는 여인(旅人)의 길과 동일시된다. 여인의 길은 한 장소에 계속 정착하지 않는다. 무수한 별들 중에서 어느 별에서 왔는지 모르기에 어디로 가야할 지도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화자는 인생은 이리저리 객지를 유랑하는 '나그네 길'임을 나지막이 읊조린다. '인생은 나그네길/어디서 왔다가/어디로 가는가'. 따라서 여인의 발길은 드넓은 공간을 떠다니는 구름처럼 정처 없이 떠돌기만 한다. 이러한 발길은 마치 김삿갓이라는 별명으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조선 후기 방랑 시인 김병연을 연상시킨다. 벼슬을 버리고 전국을 구름에 달 가듯 평생 나그네 길을 걸어간 김삿갓 말이다. 김 시인이야말로 속세에 속박되지 않고 노닐며 떠돌고 유유자적하는 여인의 발길이 아닌가 싶다.화자는 인생을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공수래공수거로 묘사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빈손이 아니라 알몸으로 왔다가 알몸으로 돌아가는 초로인생이 더 적절한 표현일 지도 모른다. 이 같은 벌거숭이 삶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인은 '정'과 '미련'에 구속되기 십상이다. 버리고 버려도 끝이 없는 정인(情人)에 대한 샘솟는 그리운 '정'과 아쉬움을 어찌 탓하겠는가. 문제의 핵심은 그 정인을 사모하는 '정'과 '미련'에 지나치게 집착함에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지 않던가.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삶은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지는 초로인생이다. 그리고 '소리 없이 흘러서' 가는 고요한 강물 같다.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인생은 벌거숭이 강물이 흘러가듯/소리 없이 흘러서 간다'.배정은이 부른 '일장춘몽'(작사 강용길, 작곡 서재영) 노랫말에도 초로인생의 삶이 오롯이 스며있다. 화자는 가사 도입부에서 '아둥바둥', '발버둥' 쳐봐도 '일백년 인생'은 유한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이래저래 살아봐도/일백년 인생이요/아둥바둥 살아봐도/일백년 인생이라네 '.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일백년' 살아보려고 '몸부림' 치며 사는 사람들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인생은 열흘 붉은 꽃이 없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후회와 원망을 해봤자 아무 소용없다. 인생도 꽃잎같이 한번 지면 그만이다. 특히 탐욕은 사라지는 이슬처럼 인생 파멸의 지름길이다. 이 같은 일장춘몽은 궁극의 현자 솔로몬 왕이 인생 말년에 깨달은 '헛되고, 헛되고, 헛되도다'란 말을 상기시킨다.권력과 명예 그리고 재산과 장수 등 그 어떠한 것도 초로와 같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불사조처럼 '천년만년 살 거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한번 왔다 가는 인생이란 왕복표를 발행하지 않는 인생처럼 한 번 출발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삶이다. 그 인생이란 오늘의 삶에 충실하라는 경구이다. 또한 현재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진솔하게 살라는 조용한 외침이기도 하다. '수 천금을 가졌어도 부족한 마음/수 만금을 가졌어도 모자란 마음/천년 만년 살 거라고 착각하며 살았소'. 결국 인생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알몸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작은 점에서 출발한 인생은 다시 작은 재가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초로인생이란 한바탕 꿈에 불과한 일장춘몽이다. 역행의 역천(逆天)의 삶이 아닌 순리의 순천(順天)의 삶을 살면 오히려 초로인생의 허무를 극복할 수 있다. 유대교 문헌 미드라쉬(Midrash)에서 유래한 '이 또한 지나가리라' 문구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피겨여왕 김연아의 좌우명으로 알려진 이 명구의 깊은 뜻을 다시 한 번 성찰해보자. 따라서 풀잎 이슬 같은 찰나의 삶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2020-04-05 고재경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이상견빙: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된다

요즈음의 우울한 세계상황은 새삼 작은 것들에 대해 되돌아보게 한다. 작은 것들은 숨어있고 미세하기 때문에 들추어내고 확대하지 않으면 볼 수가 없다. 작고 크다는 것이 상대적이긴 하지만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바이러스는 확실히 작은 것들이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것들이 이 큰 세계를 뒤흔들고 있으니 영향력은 작고 큼에 달려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세계로 들어갈수록 오히려 영향력은 더욱 커진다.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원자나 양자나 유전자나 바이러스는 다 작은 것들이다. 주역에서 작은 것에 대한 생각은 모두 괘의 가장 처음에 해당하는 초효(初爻)에 들어있다. 그 중에 땅을 상징하는 곤괘(坤卦)에 맨 처음이자 맨 아래에 있는 초효(初爻)에 서리를 밟으면 굳은 얼음이 된다고 하였다. 절기로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 되면 땅에 서리가 내린다. 그 서리를 계속해서 밟고 지나가면 나중에는 얼음처럼 견고해져서 어찌하기 힘들다는 이야기이다. 서리 내리는 계절이 얼음이 어는 계절로 바뀌려면 거쳐 온 시간이 있고 한 순간에 갑자기 그리 된 것은 아니다. 우리가 겪는 좋지 않은 일도 한 순간 갑자기 된 것은 드물고 뒤져보면 그리 될 만한 연유가 있다. 인류가 지금까지 겪어온 재앙을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때 하나는 재(災)이고 하나는 생()이다. 재(災)는 자연적인 재앙이고 생()은 인간이 자초한 재앙이다. 자연적인 사이클에 의한 재앙은 어쩔 수 없다지만 인간이 자초하는 재앙은 줄여나갈 수 있다. 생태적 차원에서 보면 작은 미물도 우주에 참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자기들 위주로만 마구 개발하면서 그들의 처소를 침범하는 등 함부로 다루면 대가가 따른다. 작은 것일수록 그것들과 관계함에 있어 향후 그 미치는 파장에 대해서도 고민하면서 다루어야 할 것이다. 한 티끌 속에도 시방세계가 들어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0-04-01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산벚꽃

재잘대며 흐르는 시냇물 따라 / 산기슭이다 산기슭 위로 /벚나무들 한데 어울려 / 무데기로 무데기로 꽃 피우고 있다 //꽃수레를 타고 찾아가야 하는 / 꽃대궐이 여기인가 /입 벌려 놀랄 틈도 없이 / 하르르 불어오는 바람… //순간 산벚꽃 꽃잎들 / 떨어져 내린다 흐르는 시냇물 위 /갓 태어난 나비 떼들 / 새하얀 날개 파닥거린다 //연분홍 복사꽃잎까지 / 꼬리치며 떨어져 뒤섞이고 있다 /흐르며 흔들리는 세상 / 황홀하다 잠시 여기가, 정토인가.이은봉(1953~)3월에 개화하는 화려한 벚꽃은 그 생김새에 따라서 다양한 꽃말을 가지고 있다. 숲속에서 볼 수 있는 산벚나무는 고상함을, 강가 부근에 피는 수양벚나무는 은총을, 거리에 일렬로 서 있는 왕벚나무는 순결을, 여러 장의 꽃잎이 겹쳐 피는 겹벚나무는 교양을 통해 우리에게 '정신의 아름다움'을 가르친다. 말도 없이 제 자리를 지키며 흰색, 분홍색, 보라색 등으로 마중 나와 여기저기 우리의 마음을 물들인다. 그것도 "벚나무들 한데 어울려 무데기로 무데기로 꽃 피우고" 있는 힘을 다해 땅으로 뿌리를 내리면서 하늘을 흔들고 있지 않던가. 그러다가 저 멀리 불어오는 바람에 '입 벌려 놀랄 틈도 없이' '황홀하게' 떨어져 내리는 '산벚꽃 꽃잎들'을 바라보면 추운 겨울을 앙상하게 버틴 것들의 침묵을 알게 한다./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3-30 권성훈

[김나인의 '생활관상']코는 사물을 분별하고 판별하는 '심변관'

코는 온갖 사물이나 물질의 냄새를 분별하여 각각의 형체와 형상을 규정짓고 판별하는 일을 한다고 해 '심변관'으로 칭하고 있다. 코는 얼굴 한가운데 산 봉우리처럼 우뚝 솟아 가장 눈에 먼저 띄는 부위인데, 숨을 쉬고 음식의 냄새를 맡는 감각기관으로 정신작용을 이끄는 물질적 자아가 거하는 자리라 말할 수 있다.코는 41세부터 50세까지의 운을 지배하고 있는데, 경제적 능력과 기세(氣勢) 그리고 배우자의 운을 보는 중요한 부위로서 우뚝 솟아 무게가 있고 살집이 두툼하고 콧대가 바르고 콧방울이 두툼해 코를 잘 감싸고 콧구멍은 가려져 적당히 숨겨져 있어야 좋은 코라 말할 수 있다.관상학에서는 쓸개를 매달아 놓은 듯, 대나무를 쪼개 놓은 듯, 복주머니를 꽉 묶어 놓은 듯한 코를 귀격이라 말하고 있는데, 이런 코를 가진 사람은 세상을 주름잡는 대부호의 상이다. 코는 오행상(五行上) 토성(土星)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풍륭해 기름지고 두툼하며 살집이 꽉 차 있어야 좋은 것이다. 또 콧구멍을 정위 난대라고 하는데, 창고를 여닫는 문으로 두툼하며 살집이 꽉 채워져 있어 코를 잘 받쳐줘야 재물운이 좋은 것이며, 귀 좋은 거지는 있어도 코 좋은 거지는 없다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니, 코의 형체와 형상이 좋으면, 부(富)를 이루는데 한치의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코의 형체만 좋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며 기색 역시 중요하니, 아무리 코의 형상이 좋아도 주름이 생기거나 좀살이 돋는 등 기색이 탁해지면 일순간에 재물이 먼지처럼 흩어지게 되는 것이니, 후천적 결과로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또 코를 재백궁이라 해 이 부위가 두두룩하고 깨끗하고 바르면 평생 돈이 떨어지지 않는다. 콧대가 빈약하며 비뚫어지고 기색이 어두우며 상처가 있으면 재물이 모이지 않으며 있는 재산도 다 날리게 된다. 콧구멍이 뻥 뚫려 하늘을 보듯이 훤히 들여다보이면 재산을 탕진하며, 콧방울인 정위 난대가 약하면 창고의 문이 부실해 늘 열려있는 것이니 이런 사람은 사치와 소비를 즐겨하며 도박으로 패가망신 하는 경우가 허다함이 수많은 고객의 임상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코뼈가 솟아 이마까지 이어지고 좌우 관골이 코를 감싸듯 안고 있고, 콧방울이 코를 잘 감싸주면 나라의 큰 부자가 돼 그 부귀의 끝을 헤아릴 수 없게 된다고는 하나, 끝없는 욕심에 악행을 멈추지 않고 악업을 쌓아나간다면, 현생의 과보가 그대로 음덕문인 와잠부위와 코에 나타나게 되니, 이에 응해 코에 없던 주름이나 좀살이 생겨나거나 검은 먹구름 같은 흑기(黑氣)가 코에 가득하게 되니, 부귀영화가 일순간에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하니 콧대가 휘어지고 코끝이 가냘프고 코에 살집이 없어 뼈만 앙상하고 콧등이 계단처럼 패여있고 콧방울이 뻥 뚫리고 콧구멍과 콧방울이 너무 작고 얇아 없는 듯하고 얼굴에 비해 코가 너무 작거나 코만 크면 이와 같은 코를 흉상이라 해 부모의 덕이 없어 초년고생이 심하고 물려받을 재산도 없을뿐 아니라 재물 모으기가 어려우며 세상살이에 장애가 많다 하나, 어느 순간부터 음덕문에 선명한 빛이 들고 눈빛이 맑아지며, 코의 기색이 밝고 선명하게 빛나면 운기가 좋아진다는 암시이니 재물복이 좋아져 날로 곳간이 풍성하게 채워지게 되는 것이다.코의 형체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알 수 있는데, 코가 두툼하고 바르고 높이 솟아있고 코뿌리가 인당을 지나 이마까지 뻗치면 세상에 알려진 부자가 되며, 계단처럼 깎여있으면 성격이 포악하고 잔인하며, 콧구멍이 훤히 들여다보이면 사치 도박 유흥을 즐기는 사람이며, 코가 너무 작으면 소심하고 여리나 마음이 착한 사람이며, 콧대가 바르지 않으면 심성도 바르지 않고, 코에 흑기가 들어오면 손재나 질병으로 고생하는데, 눈빛마저 흐릿하면 생명까지 위험하다. 국부(國富)도 이와 같아서 대통령의 코 형체와 형상이 좋으면 국가경제가 좋아지니 국고(國庫)가 늘고 국민들의 삶도 좋아지겠지만, 코의 형체가 아무리 잘나고 좋아도 어느 순간부터 코에 먹구름이 몰려들어 기색이 어둡고 탁하며 주름이 자리하면 국부는 고갈되고 경제는 파탄나며, 국민의 삶은 빈궁해지는 것이니, 통치자의 코가 국가경제는 물론 국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됨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대통령의 코는 지금 이 나라의 경제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대변하고 있다는 말이다./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

2020-03-29 김나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상하적응: 위 아래가 적대적으로 응한다

주역에 응(應)이란 단어가 있다. 말 그대로 상응하거나 호응하는 관계를 지칭한다. 그런데 이 상응과 호응은 모든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조건이 맞아야 가능하다.그 일정한 조건이란 서로 상하나 내외에서 대등한 위치에서 상응하여야 한다. 예컨대 정상회담을 하면 한 나라의 정상과 다른 나라의 정상이 서로 만나서 더부는 것과 같다.그 아래 비서들끼리 만나면 그 또한 동등한 라인에서의 호응이라 할 수 있다. 이 호응이 잘되면 관계가 좋아 도움도 받고 영향도 미친다. 반면 이 호응이 잘 되지 않으면 도움은 커녕 적대적으로 바라보며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그림으로 그리면 두 사람이 서로 마주보며 손을 잡는 것이 제대로 된 호응이라면 두 사람이 서로 등을 지고 정 반대의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잘못된 호응이다. N극과 S극이 만나는 것과 그 반대의 경우와 같다. 전자를 정응(正應)이라 하고 후자를 적응(敵應)이라 한다. 이치상 정응과 적응은 모두 필요하다.이는 태양계도 행성들이 서로 인력과 척력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야 행성간 거리를 유지하며 자기활동을 하는 것과 같다. 현대는 세계가 일가라서 서로 교역을 하며 살아가야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호간 밀접한 교류가 필요하다.그런데 이번 코로나19라는 전염병으로 인해 '거리두기'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냉정히 물리적으로만 보면 그동안에 세계에서 그동안 작용한 인력과 상반하는 힘이 갑자기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차제에 상호 저지하고 통제하고 밀쳐내는 가운데 정반대로 서로를 필요로 하며 끌어당기는 욕구가 있다는 것을 여실히 확인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0-03-25 철산 최정준

[생활법무카페]계속적 거래관계에서 소멸시효 기산점

의뢰인은 'A'라는 사람에게 몇년 전부터 물품을 납품하면서 물품대금은 수시로 결제받는 형태로 거래를 해 왔다.작년부터 'A'는 자금악화를 이유로 차일피일 대금결제를 지연하여 부득이 더 이상의 납품을 중단하고 'A'에게 대금지급을 요구하였더니 느닷없이 'A'는 납품한 물품대금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남은 물품대금의 변제를 거부하였다고 상담을 요청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우 'A'에게 물품을 납품한 것은 1회성 납품이 아니라 계속적인 납품이었는데도 'A'의 주장처럼 소멸시효에 걸리게 되는지, 'A'에 대한 물품대금의 소멸시효기간의 기산점은 어느 시점으로 보아야 하는지가 관건입니다.소멸시효와 관련하여 상법 제64조에 의하면 '상행위로 인한 채권은 상법에 다른 규정이 없는 때에는 5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한다. 그러나 다른 법령에 이보다 단기의 시효의 규정이 있는 때에는 그 규정에 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민법 제163조에서는 생산자 및 상인이 판매한 생산물 및 상품의 대가에 대한 채권은 3년의 소멸시효에 해당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이에 상품판매 채권은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인 채권발생일로부터 3년의 소멸시효가 경과되면 채권이 소멸되어 물품대금청구를 할 수 없게 됩니다.다만 위 예와 같이 동일거래처에 대한 계속적 반복적 거래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거래종료일로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물품을 납품한 날로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따라서 이러한 경우에는 실제 납품한 날짜를 기준으로 이미 3년이 경과한 물품대금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김종철 법무사·경기중앙지방 법무사회 수원지부김종철 법무사·경기중앙지방법무사회 수원지부

2020-03-24 김종철

[시인의 꽃]산수유

세상에,갓 태어난 아기 울음 그치는가 싶더니무명천 안개 자락에 지리는 배냇똥살얼음 헛디디며 몇 만리를 흘러왔는지반가부좌 엉덩이마다 환하게 피는 봄깨금발로 지나쳐간 내 사랑의 뒤란에 샛노랗게 반짝이는 등불 한 송이 윤향기(1953~)탄생은 인류가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듯이 모든 존재하는 것들도 불변의 이치이긴 마찬가지다. 여기서 사라지고 생겨나는 것들은 서로 유사한 동질성을 지니고 있지만 차별된 것이며 독립된 개체일 뿐. 그것은 봄이 되면 새롭게 탄생하는 생명들의 축제 속에서도 경이롭게 발견되는데, 다 같은 꽃처럼 보이지만 유심히 관찰해보면 꽃 하나 하나의 피어남이 다르듯이 미세한 차이를 보인다. 3월에 개화하며 '지속'과 '불변'이라는 꽃말을 가진 산수유 꽃은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 울음'으로 제각기 피어 있다. 그것도 '무명천 안개 자락에 지리는 배냇똥'처럼 바람이 허공에 배설을 한 것같이. 얼어붙은 반가부좌 자세로 참선을 끝낸 겨울이 환하게 봄으로 환생해 있지 않던가. 거기서 사랑을 잃어본 당신도 그 생각 속 뒤란에서 사랑과 유사한 '샛노랗게 반짝이는 등불 한 송이' 그리움을 찾을 수 있는 것.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3-23 권성훈

[조성면의 '고서산책']'부국원 월보'에 대하여

농업중심지 수원에 1907년 창업한 종묘사 잡지서울 소공로 지점… 종자·묘목취급철도·우편을 통해 영업'고서의 역사적기억' 사료 가치황석영의 소설 '오래된 정원'에 이런 말이 나온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보통의 날들"이라는.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문장이다. 나이가 드니 백 가지 좋은 일보다 한 가지 나쁜 일이 없는 것이 더 좋고 좋은 일이 생기는 것보다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 편이 백 번 천 번 낫다. 코로나19로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삶과 일상이 정지되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려움이 크다. 불평불만이 많았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또 인류가 한 가족으로 살아야 하는 지구촌 시대에는 나만, 우리나라만 괜찮으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절감한다. 이럴 때 고서 타령이 조금 한가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답답한 일상에 작은 위로와 잠깐의 기분전환이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개인 소장 자료를 이용한 소규모 전시 준비를 하느라 서가를 뒤지다가 까맣게 잊고 있었던 작은 팸플릿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조선농림원예요람'이라는 '부국원 월보(富國園月報)' 제35권 6호인데 발행일자는 1942년 6월 10일이다. 부국원(富國園)은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동명의 종묘회사 건물로 2017년 국가등록문화재 제698호로 지정되었으며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에 위치해 있다. 이 근대건축물은 식민지 수탈정책과 긴밀히 연결돼 있는 슬픈 역사적 기억물, 이른바 그리프 투어리즘(Grief Tourism)의 대상이겠으나 역사적 교훈을 되새길 수 있는 장소로서 유의미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부침과 역사적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기념물로서 그 가치도 크다. 부국원의 존재는 1923년에 출판된 사카이 마사노스케의 '수원'이라는 책을 통해서도 확인되니 최소 백년의 역사를 지닌 건축물이다. 해방 후 1950년대에는 수원법원과 검찰 임시청사로 활용됐고 나중에는 수원시 교육지원청, 공화당 청사, 수원예총 사무실로도 사용됐다. 종자·종묘·비료 등 농업과 관련된 주식회사 부국원이 수원에 들어선 것은 수원의 역사와 긴밀히 호응한다. 수원은 개혁의 상징도시, 요컨대 조선후기 국가의 역량과 정조의 정치 철학이 집중된 신도시요, 농업의 중심지였다. 미국이 농업 국가이듯(미국은 첨단 군수산업과 금융 중심의 국가일 뿐 아니라 세계적인 거대 농업국가이다) 수원도 농업의 중심도시였다. 정조 시대에 조성된 관개시설로 축만제와 만석거가 있으며 대유평과 서둔이란 이름이 이를 뒷받침한다. 통감부 시대인 1906년 권업모범장이 들어섰고 1962년 농촌진흥청이 설립됐으니 수원은 가히 한국 농업의 메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가균형발전 정책에 따라 농촌진흥청이 완주로 이전하면서 그 의미가 많이 약화하였지만 수도권의 균형발전과 지역 정체성 유지를 위해 그 역사성을 잘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 '부국원 월보'를 살펴보니 창업연대가 35년 전 그러니까 1907년인 것으로 소개돼 있다. 이로 미루어 부국원이 권업시험장의 설립과 함께 그 역사가 시작된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정해 볼 수 있다. 본사는 경기도 수원읍 궁정 93번지 지금의 수원시 팔달구 향교로 130번지에 있었으며 지점은 경성부 명치정 22정목으로 현재 서울시 중구 소공로에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나온다. 각종의 종자와 묘목 등을 취급했으며 철도와 우편을 통한 영업을 전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서는 역사적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며 소장자의 안목과 태도에 따라 쓰임새와 팔자가 달라질 수 있다. 탐구심과 진정성이 없으면 고가의 고서도 그냥 낡은 책이요, 반대로 아무리 허접한 작은 책자라도 쓰임에 따라 귀중한 역사적 자원이 될 수 있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

2020-03-22 조성면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오세재윤: 5년에 두번 윤달이 든다

올해 2020년은 윤달이 있는 해이다. 음력으로 4월이 있고 다시 윤4월이 들어있다. 윤4월은 양력으로 5월 중순에 들어서 6월 중순에 끝난다. 윤달은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며 한 해를 이루는 시간과 달이 12번 해와 만나 합삭이 이루어지는 시간의 길이가 달라서 만들어진 제도이다.대략 5년에 2번 8년에 3번이라지만 정확히는 19년 동안 7번 윤달이 들면 음력과 양력의 날수와 절기가 꼭 들어맞는다. 그래서 윤달에 태어난 사람은 19년마다 자기가 태어난 날의 음력과 양력이 부합되는 현상이 되풀이된다.현대에서는 모든 일정을 잡고 계획을 세울 때 양력을 주로 쓴다지만 아직도 음력이 꼭 필요한 경우도 많다. 전통적으로 해안가에 사는 어부들은 배를 띄워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기 위해서 택일을 하는데 이때는 음력을 봐야만 한다. 윤달은 이장이나 공사 등 결정하기 쉽지 않은 대사를 치를 때도 사용한다. 매년 윤달이 든 해에는 이장의 횟수가 대폭 늘어나는 것이 통계로 드러난다. 윤(閏)은 천문학적으로 해의 운행속도와 달의 운행속도의 차를 조절하는 중용의 의미가 있다. 글자를 보아도 門에 王이 앉아있는 형상이다. 門은 해와 달이 출입하는 문이며 王이란 조절하는 자이다. 무언가 좌우의 균형이 치우쳐있거나 조절을 하지 못했던 일이 있으면 이번 윤달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윤달이 지나면서 코로나19도 조절이 됐으면 좋겠다. 동지에 떨쳐 나온 놈이니 하지에는 고개를 숙여야하지 않는가.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0-03-18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먼, 분홍

윤이월 매화는 혼자 보기 아까워 없는 그대 불러 같이 보는 꽃생쌀 같은 그대 얼굴에 매화 한 송이 서툰 무늬로 올려놓고 싶었다 손가락 두 마디쯤 자르고 사흘만 같이 살아보고 싶었다혼자 앓아누운 아침 어떻게 살아야 매화에 닿는가 꽃이라는 깊이 꽃이라는 질문 기름진 음식을 먹어도 배가 고팠다 매화는 분홍에서 핀다 분홍은 한낮의 소란스러움을 물리친 색 점자처럼 더듬거리다 멈춰서는 색새벽의 짐승처럼 네 발로 당신을 몇 번이나 옮겨 적었다 분홍이 멀다먼, 분홍 서안나(1965~)가끔 자연 속에서도 예상치 못하게 시작되는 것들이 있다. 물론 그것마저도 인간이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이겠지만, 먼저 온다는 것은 빨리 기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 이를테면 기다림보다 앞서 와 오히려 기다려주는 2월에 피는 매화 꽃. 혼자 보기에는 '아까워 없는 그대 불러 같이 보는 꽃'이 아닐까. 원래 매실나무에 '생쌀 같은 그대 얼굴'처럼 피는 매화는 3월에 만개하며 지난한 겨울을 지나온 봄의 표상이다. 이런 매화는 색깔에 따라서 꽃말이 다른데, 백매라고 불리는 흰색은 고결과 기품을, 홍매라고 불리는 붉은 색은 결백과 충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시 분홍을 피워낸 홍매는 '한낮의 소란스러움'을 뒤로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자국을 멈추게 하는 '색'이 아닐 수 없다. 매화에게 다가갈수록 허물 많은 우리는 '먼, 분홍'으로부터 시련을 깨끗이 잊고 눈가와 입가가 활짝 개화한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3-16 권성훈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봄이 온 줄도 모르고

탐욕 눈먼채 중요한 가치 못보는 가족 이야기 다룬 '터널구간'지혜롭게 빠져 나오기 위해선마땅히 경계할 행동 중요하지만터널 연장 않도록 하는게 더 중요지난 2월 7일부터 16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연극 '터널구간'(이상례 작·오유경 연출) 공연이 있었다. 이 작품은 삶의 은유를 길과 계절에서 가져오고 있다. 길은 출생과 죽음의 과정이며 계절은 그 과정에서 순환하는 리듬이다. 연극은 한 가족이 터널구간에 갇혀 "봄이 왔는데 봄이 온 줄도 모르고" 있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물론 터널구간과 봄은 관객이 풀어야 하는 은유이다.여기 한 가족이 있다. 건물주인 아버지의 칠순 잔칫날이다. 비혼인 딸과 아들이 골칫거리인 아버지가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믿는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여자를 준비한다. 잔치 음식이 식기 전에 결혼을 하라고 명령한다. 대체로 이야기가 잔치 장면에서 시작하면 장례 장면으로 끝나는 것처럼 이 연극은 아버지가 계단에서 굴러 사망하고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10층 건물이 빚으로 쌓아올린 모래성이었던 것이다.터널 비전(tunnel vision)이라는 말이 있다. 터널 속으로 들어갔을 때 터널 안만 보이고 터널 밖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주변을 보지 못한 채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한 가지에 집중하면 다른 것을 인식하지 못해 생긴다고 한다. 연극 '터널구간'은 탐욕에 눈먼 시선으로 삶을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삶을 오로지 돈으로 재단함으로써 정작 더욱 중요한 가치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터널 비전에 갇힌 사람은 어떻게 그 터널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을까.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친 테세우스의 이야기에서 그 열쇠를 찾아볼 수 있다. 미노타우로스를 물리치기 힘겨운 이유는 그 괴물이 미궁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 들어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미궁에서 테세우스 이전에는 살아나온 사람이 없었다. 그 미궁에서 테세우스가 괴물을 물리치고 밖으로 무사히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실타래 덕분이었다. 미궁에 들어갈 때 풀어놓았던 실타래를 따라 되돌아온 것이다. 아리아드네가 건네준 실타래가 지혜의 실이라 불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터널구간'의 가족에게 지혜의 실타래가 있었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아리아드네의 실은 여러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지만 미궁 바깥으로 이어주는 통로이자 연결이라는 점에서 바깥 세계를 망각하지 않게 하는 징표이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래서 돌아가야 하는 곳이 어디인지를 가리키는 기호이다. 삶의 가치를 돈으로만 바라보는 터널 비전에 사로잡힌 '터널구간'의 가족에게도 삶의 길에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있었을지 모른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과 돈으로 사서는 안 되는 것까지 돈으로 사려 했던 순간부터 실타래는 그들의 손에서 멀어져 간 것이 아닐까."봄이 왔는데 봄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구나"라는 자탄은 그들에게도 실타래가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삶의 길에서 터널이 겨울이라면 터널의 바깥은 봄이다. 그들에게도 봄이 있었고 봄을 만끽할 줄 알았던 것이다. 돈이라는 미노타우로스에게 사로잡히지만 않았다면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이나 미래형으로 봄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터널을 지혜롭게 빠져나오기 위해서 우리가 마땅히 조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연극 '터널구간'은 말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미궁에 들어갔으나 그들은 되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 자신이 미궁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미궁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괴물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물리쳐야 하는 괴물과 동일화한 그는 이제 미궁 그 자체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마땅히 경계해야 하는 것은 터널을 빠져나오기 위한 행동이 터널을 연장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못해서 비록 터널 바깥에 나온 것처럼 보일지라도 터널 안에서 진 빚을 갚아야 한다면, 그래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면 진정으로 터널구간이 끝났다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만난 봄이 어찌 봄이겠는가. 저만치 봄이 와 있는 길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저마다의 손에 알맞은 아리아드네의 실타래가 아닐까./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0-03-15 권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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