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시인의 꽃]나리 나리 개나리

누이여또다시 은비늘 더미를 일으켜 세우며/시간이 빠르게 이동하였다어느 날의 잔잔한 어둠이/이파리 하나 피우지 못한 너의 생애를소리 없이 꺾어갔던 그 투명한/기억을 향하여 봄이 왔다//살아 있는 세월을 나는 모른다/네가 가져간 시간과 버리고 간시간들의 얽힌 영토 속에서/한 뼘의 폭풍도 없이 나는 고요했다다만 햇볕이 이글거리는 벌판을/맨발로 산보할 때어김없이 시간은 솟구치며 떨어져/이슬 턴 풀잎새로 엉겅퀴 바늘을/살라주었다//봄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은 묻지 않는다떠다니는 내 기억의 얼음장마다/부르지 않아도 뜨거운 안개가 쌓일 뿐이다잠글 수 없는 것이 어디 시간뿐이랴아아, 하나의 죽음이 얼마나 큰 죽음들을 거느리는가나리 나리 개나리/네가 두드릴 곳 하나 없는 거리봄은 또다시 접혔던 꽃술을 펴고찬물로 눈을 헹구며 유령처럼 나는 꽃을 꺾는다기형도(1960~1989)죽어서는 절대 올 수 없는 봄은 죽어 있는 가운데에서 온다. 그 죽음은 땅의 기억 속에서 시간을 건너온 무수한 사물들의 몸이 사라져간 것과 사라져가고 있는 것 사이 살아가야하는 생명이 피워 올린 몸짓인 것. '은비늘 더미'는 찬란한 생명의 조각들인 죽음이 퇴적된 흔적으로서 '잔잔한 어둠'이며 더 이상 '피우지 못한 생애'라고 할 수 있다. 개나리는 이러한 '가져간 시간과 버리고 간' 시간들이 '시간들의 얽힌 영토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니. 살아있지 않는 것을 깨우지 않는 봄은 죽어간 것들 속에서 죽어 갈 삶을 위무라도 하듯이, 노란 개나리 형상을 하고, 우리에게 미리 와서 반겨주는 것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2-03 권성훈

[조성면의 '고서산책']춘향전, 그 후

국민 고전답게 판본과 이본 다양춘향이 정실부인 된다는게 판타지첩실이 된다는 결말이 더 현실적차상찬의 '해동염사'는 한 술 더떠'천하의 추녀에 관기의 딸' 주장도고서는 구하기도 힘들고 비싸며 관리도 만만치 않다. 곰팡내도 많이 나고, 부부 사이도 안 좋아질 수 있다. 디지털 시대를 역주행하는 구닥다리 취미다. 그렇다고 고서 수집벽(蒐集癖)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공식 기록이나 연구로 파악할 수 없었던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고 작품해석에도 큰 도움이 된다. 최근 서가를 뒤적이다 다시 '춘향전'을 꺼내 읽게 됐다. 그러다 문득 '춘향전'의 주인공 춘향의 일생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 '춘향전'은 국민적 고전답게 다양한 판본과 이본들이 존재하는데, 1917년 동창서옥(東昌書屋)에서 나온 '현토 한문춘향전'은 판소리계 한글소설과 전혀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현토춘향전'은 식자들을 대상으로 한 소설답게 유교적 윤리의식과 도덕률에 철저하다. '춘향전'을 신분제에 대한 민중적 저항의 서사가 아니라 일부종사를 위해 목숨을 거는 열녀의 이야기로 탈바꿈시켜놓은 데다가 춘향은 수절의 대가로 이몽룡의 첩실이 된다. 한글 '춘향전'의 발랄함과 민중적 염원을 뒤로하고 아주 현실적이며 유교적인 방식으로 마무리된다. 어쩌면 엄혹한 신분제 사회에서 춘향이 정실부인이 된다는 것이 판타지이고, 첩실로 들어간다는 결말이 오히려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춘향이 작품 속의 가공인물이지만, 그 성격에 결혼생활은 순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콩깍지가 씌운 상태에서 분비되는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과 테스토스테론 등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면, 열정의 감정은 어느새 권태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바뀌게 된다. 뇌과학에서는 열정적 사랑의 유통기간을 호르몬이 분비되는 3년으로 보는데, 재결합 이후 이몽룡의 사랑도 예전 같지 않아질 테고 또 출신의 한계로 발생하는 문화적·계급적 차이에 따른 갈등으로 부부사이(?)가 원만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시인이자 잡지 편집자였던 청오 차상찬(1887~1946)의 '해동염사'(海東艶事, 1937)는 한 술 더 떠 춘향이를 아예 만고의 박색(薄色)에 관기의 딸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국의 여성사를 다룬 야사인 '해동염사'에 따르면, 춘향은 미녀가 아니라 "코는 지리병 같고 눈은 비탈에 돌아가는 도야지 눈 같고 머리는 몽당 빗자루 같고 목은 자라목 같고 몸집은 절구통 만한 데다가 그중에 마마를 몹시 한 탓으로 얽고 찍어매고 하여 박춘재(朴春載)의 곰보타령에 나오는 곰보 모양으로" 천하에 둘도 없는 추녀였다는 것이다. 그 박색 춘향이가 모친의 기지로 이몽룡과 하룻밤 만리장성을 쌓은 뒤 그만 상사병이 도져 자결하여 원귀가 되었고, 그를 이몽룡이 해원(解冤)을 해주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춘향전'이라는 것이다. 하루에 오만가지 생각을 다하고 사는 게 우리지만, 정작 작품이 끝나면 사고도 함께 멈춰 버린다. 전후좌우의 맥락과 상하를 살피지 않고 텍스트가 만든 세계의 테두리에 그대로 갇혀 버리는 것이다. 사고의 프리퀄과 시퀄이 없는 것이다. 이따금 고전적 명작과 고서를 뒤적이는 것은 경직된 사고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고 또 삶의 고독과 피로를 치유하는데 제격이다. 부부관계가 예전 같지 않으며 자식들도 훌훌 다 떠나고, 사는 게 바빠 친구마저 만나지 못하는 갱년기 중년의 고독을 달래기 위해서는 TV나 음주 말고도 미쳐 지낼만한 한두 개의 취미가 있어야 한다. 행복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즐기는 것이라는 시인 조지훈(1920~1968)의 말대로 고서의 세계에 빠져 지내는 것도 삶의 고독과 인생의 무게를 견뎌내는 일책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지혜샘도서관 관장

2020-02-02 조성면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지풍지자: 바람의 유래를 안다

바람이 불어오면 이 바람이 어디에서 불어온 것인지를 재는 풍향계가 있다. 전통적으로 동양에서 계절에 따라 팔방에서 불어오는 바람마다 그 나름대로 특성을 정해놓았다. 동지에 북방은 광막풍(廣莫風), 입춘의 동북방은 조풍(條風), 춘분의 동방은 명서풍(明庶風), 입하의 동남방은 청명풍(청명풍), 하지의 남방은 경풍(景風), 입추의 서남방은 량풍(凉風), 추분의 서방은 창합풍(闔風), 입동의 서북방은 부주풍(不周風)이다. 동지에서 입춘 사이의 바람인 광막(廣莫)은 양기가 음기의 아득한 허공 속에서 처음으로 시작되는 기상이다. 별자리로는 허수(虛宿)와 상응한다. 음기가 극성한 가운데 막 양기가 처음 시작되기 때문에 추위를 동반한 바람이다. 회남자에서는 이때 관문과 교량을 폐쇄하고 형벌의 기간 등에 대해 결단을 내린다고 하였다. 그러다가 양력으로 2월4일이면 절기상 입춘이 되니 이때부터는 조풍(條風)이 분다. 조(條)는 안으로 들어온 생명이 다시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종시(終始) 의미가 있다. 별자리로는 기수(箕宿)와 상응한다. 기(箕)는 곡식을 까부는 키로 바람의 별이다. 팔풍의 바람이 각기 불어야 할 때 불면 그것이 바로 화풍(和風)으로 상서로운 조짐이다. 반대로 불어야 할 때가 아닌데 부는 바람은 좋지 않은 조짐이다. 풍(風)자를 보면 벌레 충()자가 들어있다. 그래서 고인들은 겨울철에 온풍이 불면 온병(溫病)의 조짐이라 보기도 한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0-01-29 철산 최정준

[생활법무카페]2020년 달라지는 취득세 요율

주택 유상거래 취득세율은 6억~9억원 이하의 주택 취득세율 1~3%로 세분화 되고, 9억 초과의 경우에는 3%, 주택 외 토지, 건물, 상가 4%는 변화가 없다. 다만, 내년 1월부터 집을 3채 이상 가지고 있는 세대가 추가로 주택을 매입하면 (총 4채부터) 4%의 취득세율이 적용된다. 1세대는 주민등록상 세대를 기준으로 하며, 배우자와 미혼인 30세 미만 자녀는 따로 거주하더라도 1세대에 포함된 것으로 취급한다. 이에 따라 취득세 신고 시 관할 지자체에서는 매매계약서 및 부동산거래신고필증 이외에도 가족관계증명서와 주민등록표등본을 요구한다. 또한 다운계약 등 불법거래를 막기 위해 취득세율 구간이 변경되어 실거래가 6억원 초과~9억원 이하 부분이 현행 일률적인 2%에서 1~3%(1천만원 단위)로 세분화 된다. 해당 구간에서 6억을 기준으로 취득세 1%에서 1천만원씩 늘어날 때마다 세율이 올라가게 되는 것으로, 이에 따라 중간값인 7억5천만원 이하는 취득세가 1~2%로 적용되고, 7억5천만원 초과~9억원 이하 구간은 2~3%가 적용된다. 6억에서 9억 구간 주택 유상거래 취득세율 계산법(3주택 이하)은 다음과 같다. 세율 Y (%) = 취득가액 X (억원) * 2/3 - 3억원.취득세율 외에도 양도세 장기보유특별공제, 1주택자 2년 이상 거주, 전세자금대출 후 신규주택 매입 제한,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기간 단축 및 해제 신고 의무화, 자금조달계획서 제출대상 확대 및 거래소명 강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유예기간 종료, 연 2천만원 이하 주택임대소득 소득세 신고, 종합부동산세 세율조정, 공시가격 현실화 및 형평성 제고 등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가 더욱 강화되기 때문에 기존 주택 보유자 또는 주택 취득 예정인 사람은 달라지는 제도를 미리 파악하여 자산관리 계획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정부가 발표한 강력한 규제책이 투기세력을 잠재우고, 치솟은 집값을 안정화시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주영민 법무사·경기중앙지방법무사회 수원지부주영민 법무사·경기중앙지방법무사회 수원지부

2020-01-28 주영민

[시인의 꽃]동화목冬花木

옷 한 벌 입지 않은 맨몸으로빈들에 서서 떨고 있는저 엄숙한 침묵,시린 발, 시린 몸, 웅크리고제 몸 비벼 봄을 틔우고 있는저 심지의 환한 불길,내가 가만가만 그에게 다가가살짝 귀 대어 들어 보니벌컥 벌컥 물 마시는 소리,그 뜨거운 생불生佛의 열기확, 내 몸에 불을 당긴다이영춘(1941~)언어의 홍수 속에서 지극히 절제된 언어의 파장으로 정서를 흔들어 놓는 것이야말로 현대시가 구현해야 하는 '서정적 놀라움'이 아닐 수 없다. 일상성 속에서 새롭게 출현한 시는 서정적 자각과 존재에 대한 통찰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으로 기존 질서를 배반하면서 근원적인 존재를 이해하는데 한걸음 더 나가게 만든다. 우리가 부르는 '꽃'은 학습 되어진 것으로서 어떠한 사물에 부여된 획일적인 명사에 지나지 않지만 시인이 찾아내는 사물은 이전의 사물과 다른 형태와 의미로 전환할 때 사물은 꽃과 교환되면서 고유한 꽃이 되며 시가 된다. 이 겨울을 '옷 한 벌 입지 않은 맨몸으로' 버티고 있는 한그루 나무를 이른바 '동화목冬花木'으로 보는 것. 그것은 '빈들에 서서 떨고 있는/저 엄숙한 침묵'이 피워낸 꽃으로 환원시키는 것. 거기에는 '벌컥 벌컥 물 마시는' 나무의 생명성을 들여다보는 것. 따라서 시는 나무의 '시린 발, 시린 몸, 웅크리고/제 몸 비벼 봄을 틔우고 있는/저 심지의 환한 불길'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뜨거운 생불生佛의 열기'로 자신의 '몸에 불을 당기고 있는' 당신도 '한 송이 동화목'과 다르지 않음을 성찰하게 해 준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1-27 권성훈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세금태과: 금의 해로 크게 지나치다

역학적으로 한 해를 표기하는 干支(간지)는 천간과 지지라 하듯이 기본적으로 천지 음양의 실정과 이치를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다만 관점에 따라 다양한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에 변통이 중요하다. 庚子(경자)라는 간지를 놓고 의역학(醫易學)적 관점에서 보면 庚(경)은 오행으로 金(금)이며 음양으로는 陽(양)인 陽金(양금)이다. 陽은 지나치고 陰(음)은 모자라다는 개념으로 보아 庚을 金기운이 지나친 金太過(금태과)로 본다. 중국전통의학의 바이블인 황제내경에서는 庚년의 특징적 정황에 대해 예측론적으로 설명해놓았다. 먼저 경년은 燥氣(조기)가 流行(유행)한다. 燥氣는 건조한 기운으로 인체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간목수사(肝木受邪)라 하였다. 오행으로 금은 목을 극하니 금기운이 태과하여 목의 장부에 해당하는 간이 나쁜 기운을 받게 된다. 혈자리로는 태충(太衝)혈에 그 반응과 치료점이 대응한다. 경락은 手太陰陽明(수태음양명)경과 상응하므로 치료부위를 찾을 때 참고한다. 다만 子午(자오)년의 경우는 六氣(육기)로 소음군화인 火(화)에 해당하므로 六氣의 火가 오운의 金을 극하여 태과한 양상을 억제하므로 평기로 전환된다고 하였다. 특히 주의할 구간으로 양력 9월 10월을 들 수 있는데 가을임에도 불구하고 되레 더위가 찾아와서 온역(溫疫)을 주의하라고 하였다. 전통적 관점이긴 하지만 주의해서 나쁠 건 없을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0-01-22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동백꽃 그리움

떨어져 누운 꽃은나무의 꽃을 보고나무의 꽃은떨어져 누운 꽃을 본다그대는 내가 되어라나는 그대가 되리김초혜(1943~)바닷가에서 서식하는 동백은 1월부터 4월까지 개화하는데, 꽃들이 다 지고 나면 추운 겨울에 붉게 피어난다. 마치 홀로 피는 외로운 사랑처럼. 동백섬으로 잘 알려진 전남 여수 오동도에서 전해오는 동백에 얽힌 전설이 있다. 이 섬에서 단둘이 고기잡이를 하며 먹고 사는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하루는 남편이 없는 사이 정체 모를 남자가 숨어 들어와 그녀를 해치려고 달려들었고, 그녀는 남편이 있는 바닷가를 향해 도망가다가 그만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 이를 안 남편은 통곡하며 부인의 시신을 잘 묻어두고 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떠났다. 그 뒤 남편이 부인이 보고 싶어 섬에 돌아왔을 때 그녀의 무덤에 한그루 나무가 자라 꽃을 피웠는데, 그것이 바로 동백이다. 이 동백꽃에서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어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고 해서 동백의 꽃말이 '나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가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영원한 사랑이란 '떨어져 누운 꽃은/나무의 꽃을' 반대로 '나무의 꽃은/떨어져 누운 꽃을' 삶과 죽음을 건너 애절하게 바라보듯이 '그대는 내가' 되고 '나는 그대'가 되어 가슴 깊이 붉게 파고드는 것이 아닐까.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1-20 권성훈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사람을 나누려는 게 아니래요

'수정의 밤' 공간은 두만강 근처'있는 듯 없는 듯' 그랬던 경계가강력한 분리의 국경선으로 작동삶의 터전 떠나 이동 시작한 사람 등도착한 곳 시간·조건 사로잡힌 이들지난 12월27일부터 1월5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연극 '수정의 밤'(김도영 작, 이준우 연출) 공연이 있었다. 이 작품의 시간은 1962년 북한과 중국이 국경조약을 체결한 직후이다. 공간은 두만강 근처에 있는 조선족 마을의 한 골동품 가게이다. 함오일이 운영하는 이 가게는 국경을 넘는 사람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기 위한 위장용이다. '있는 듯 없는 듯 그랬던' 경계가 조약 체결 이후 강력한 분리의 국경선으로 작동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떠남은 있으나 도착은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연극이 시작하면 골동품 가게에서 함오일이 아들 함구제를 기다린다. 아내와 며느리도 함께 기다린다. 함구제가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무사히 데려오기를 기다리는 이 시간은 지금처럼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되는 시간이다. 얼마 전에는 여섯 명이 강을 건넜다. 조약이 체결된 이후에는 강을 건너는 사람 수나 횟수가 급격히 줄었다. 함구제는 최성락, 고은마 부부와 함께 돌아온다.함오일의 유일한 관심은 돈이다.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에 관해서는 무관심하다. 국경 조약 체결 이후에 강을 건너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할 뿐이다. "땅을 나누는 거지 사람을 나누려는 게 아니래요"라는 말에도 "땅을 나눠서 갈라놓는 것 자체가 사람을 나누는 거야"라고 답하지만 그 말이 간직한 박탈의 조건과 상태에 대해서는 둔감하다. 아니 둔감해야만 생계를 이어갈 수 있다. 아버지의 고향이 함경도이지만 "나는 중국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의 선친이 지금 강을 건너는 사람들처럼 과거에 이곳에 도착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생계를 이어가는 데 어떤 보탬도 되지 않기 때문이다.최성락과 고은마는 위장한 부부이다. 강을 건너 골동품 가게까지는 도착했으나 이곳은 종착지가 아니다. 도착할 곳 없는 곳을 향해 다시 길을 떠나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보다 앞서 강을 건넌 여섯 명이 궁금하다. 내일 자신들의 모습이 아닐 수 없는 여섯 명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함씨 일가가 가장 답하기 곤란한 물음이다. 뒷돈을 받으며 가게 일을 눈감아 주던 중국 공안이 세 배나 많은 돈을 요구하는 것보다 더 곤란한 물음이다. 여섯 명 중 한 명으로 짐작할 수 있는 부랑자의 출현에 함오일이 대응하는 방식이 그것을 말해준다. 함오일은 제거라는 말 아닌 다른 말로 부르기 힘든 방식으로 그를 처리한다. 골동품 가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듯.최성락과 고은마는 어느 곳에 가 닿았을까. 사천과 운남을 지나 치앙마이까지 가려던 최성락은 어디쯤에 있을까. 강릉에 가려던 고은마는 어디까지 이동했을까. 두 인물이 겪을 이후의 서사가 궁금함이 아니라 허망함으로 다가오는 것은 최성락을 넘기기로 한 중국 공안과의 거래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떠난 뒤에도 골동품 가게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은 연극이 시작하는 장면과 같은 장면에서 끝난다. 함오일이 아들 함구제를 기다린다. 아내와 며느리도 함께 기다린다. 그 장면에서 연극은 끝난다.그러므로 관객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과연 함구제는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돌아올까. 관객은 답하게 될 것이다. 최성락, 고은마 부부의 이야기와 그에 앞서 강을 건넌 여섯 명의 이야기를 어떤 입장에서 보는지에 따라 그 답을 얻게될 것이다. 그리고 연극이 끝난 이후 극장 바깥의 세계로 눈을 돌릴 것이다. 현재에도 도착을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는 현실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국적국을 떠난 사람들, 난민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사람들이 2천590만명(2018년)이 넘는 현실에 대해.연극 '수정의 밤'은 미완의 도착에 관한 연극이다. 삶의 터전을 떠나 도착할 곳 없는 이동을 시작한 사람들, 방문도 아니며 체류도 아니며 통과도 아닌 것으로 도착하는 사람들, 그로 인해 셈해지지 않으며 더 이상 어떤 권리도 주어지지 않아 그저 도착한 곳의 시간과 조건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이야기이다./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

2020-01-19 권순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절이제도: 마디로써 법도를 짓는다

길이나 부피나 무게 등의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단위를 도량형(度量衡)이라 한다. 도(度)는 길이를 재는 자이고, 양(量)은 부피나 그것을 재는 되, 형(衡)은 무게나 무게를 재는 저울을 지칭한다.일상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단위는 말 그대로 공통적으로 균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흔히 하는 '이중 잣대'라는 표현처럼 잣대의 단위가 다르면 여러 가지 불편하고 불공평한 문제가 발생한다.그래서 재는 기준이 되는 단위가 다르면 불편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산상 피해나 인명의 피해 등 심각한 일까지 벌어질 수 있다. 진시황이 독재자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사람들이 인정하는 공적으로 단연 도량형의 통일을 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주역에서 그 기준을 말해주는 괘가 절괘(節卦)이다. 절(節)은 마디이다. 마디를 정할 때 균일하긴 해야지만 획일적이면 안 된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한의학에서 인체의 혈 자리를 잡을 때 사용하는 촌(寸)도 손가락의 작은 마디이다.그런데 사람의 신체는 각각의 사이즈가 있어서 다윗과 골리앗의 마디를 획일적인 거리로 정할 수 없다. 어린이나 작은 키의 소유자는 마디가 그만큼 작을 것이고 성인이나 큰 키의 소유자는 그만큼 마디가 클 것이다.국가도 마찬가지이다. 각종 제도(制度)를 신설하거나 고칠 때는 자기 나라에 알맞은 마디가 무엇인지를 고려해야지 무작정 다른 나라의 제도를 카피해서 붙여놓으면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하다. 그 알맞음을 보여주는 상이 못 위에 알맞게 차있는 물이다. 못은 자연적 그릇이니 그릇에 맞는 제도만이 국민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이니 각종 규제도 마찬가지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0-01-15 철산 최정준

[생활법무카페]법무사 vs 변호사

"법무사와 변호사는 뭐가 달라요?" 이렇게 묻는 사람들도 꽤 있다. 업무영역은 똑같다. 확실히 다른 점은 변호사는 모든 법정에 출석할 수 있지만 법무사는 단독재판장의 허가에 의하여 제한적으로 출석할 수 있을 뿐이다. 변호사는 법정에 출석하는 사건마다 불리는 이름이 다르다. 민사·가사사건의 경우 대리인, 형사사건의 경우 변호인, 소년사건의 경우 보조인으로 부른다. 대리인인 경우 변호사가 당사자 없이 법정에 출석하고, 변호인·보조인인 경우에는 당사자와 함께 출석한다. 법무사는 법원에 제출하는 서류를 작성, 접수해주고 당사자만 법원에 출석한다. 신청사건(가압류·가처분 등 보전처분사건), 소송사건, 집행사건(경매·추심 등)으로 나뉜다. 생선에 비유하자면 '신청'은 머리부분에, '본안'은 몸통부분에, '집행'은 꼬리부분에 해당한다. 이 중 신청과 집행과 소송사건이 아닌 비송사건은 서류재판인 경우가 많아 법무사가 주로 처리해왔고 본안 소송 사건은 법정에 출석할 수 있는 변호사가 주로 처리해왔다.그런데 20년 전 변호사는 약 5천명으로 당시 6천여명인 법무사보다 적었는데, 현재 변호사는 로스쿨제도 도입으로 2만1천명이상으로 늘어나 법무사 7천여명보다 3배가 넘다 보니 변호사가 담당하는 사건이 전통적으로 법무사가 해오던 신청, 집행, 비송사건까지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법무사와 변호사가 특히 다른 것은 수임료에 있어서 약 5~10배 정도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법정에 혼자 출두하여 소송을 이어가기 어려운 분들에게는 변호사를 선임할 것을 권유하나 변호사 숫자의 기하급수적 증가 이외에도 법률시장에 몰아닥친 불황으로 인한 수임료 부담, 인터넷 발달과 법원의 정보제공도 확대 등으로 인한 나 홀로 소송 증가 등의 이유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같은 이유로 법무사에게 사건을 맡기는 경우도 줄어들고 있다.요즘도 동창회에 나가면 은퇴한 친구들이 "넌 참 좋겠다. 평생 직업이 있으니"라고 부러워할 때마다 "글쎄? 그건 옛날 얘긴데…"하고 말꼬리를 흐린다./이상후 법무사·경기중앙지방법무사회 수원지부이상후 법무사·경기중앙지방법무사회 수원지부

2020-01-14 이상후

[시인의 꽃]꽃

꽃은 누가 죽어가는 시간에 피어나는 것일까, 그 사람이 힘없이 손짓하던 부름을 말하지 못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여, 피어나는 것일까. //꽃이 피는 시간에 그 주위에서 일어나는 바람은 또 무엇일까, 꽃 가장이를 예감처럼 돌다가 사라지는 빛은…//아, 꽃은 결국 무슨 뜻으로 저리도 선명한 빛깔로 내게 다가오는가. 이수익 (1942)한 사람이 태어나면 별 하나가 생기고, 그 사람이 죽으면 그 별도 같이 소멸한다고 할 때 우리는 저마다 별 하나씩을 가졌다. 하늘에서 빛나는 별은 멀어서 모두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의 모습처럼 빛나는 정도도, 크기도, 생김새도 다르다. 이처럼 하늘에 자신의 삶과 같이 하는 것이 '하늘의 별'이라면 반대로 '땅의 꽃'은 누가 태어날 때 시들고 '누가 죽어가는 시간에/피어나는' 것이다. 사람의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저 별과 달리, 이 꽃은 죽은 자가 '말하지 못한 하고 싶은 말을' 전수하기 위해서 피어나는 것. 그래서 '꽃이 피는 시간에' '그 주위'를 맴도는 '바람'과 '꽃 가장이'를 비추는 '빛'은 그렇게 죽어간 영혼이 마지막 머물다 가는 자리인 것, 꽃이 '저리도 선명한 빛깔로 내게 다가오는' 것은 차마 돌아가지 못한 가운데 생애 마지막 아름다움을 남기고 떠나고 싶어 하는 '망자의 말'인 것이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1-13 권성훈

[조성미의 '나무이야기']기품이 있는 황금색 칠감을 생산하는 황칠나무

투명한 광택·내구성 뛰어나최고급 천연 도장재료 적합영양성분 많아 '나무인삼'으로 불려 간기능·혈행개선·면역력강화 효능항암성분, 차가버섯보다 '1.5배'옛날부터 옻나무와 함께 귀하게 대접받은 찬란한 황금색 고급 칠감을 생산하는 나무가 있다. 바로 황칠나무다. 황칠나무는 줄기에 상처를 내면 누런 수액이 나온다고 해서 '황칠(黃漆)'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북한에서는 옻나무와 같은 칠액이 나오는데 노랗다고 해서 노란 옻나무라고 부른다. 잎이 오리발을 닮았다고 해서 압각목(鴨脚木), 황금색 닭발을 의미하는 금계지(金鷄趾) 등으로 부르기도 했다. 황칠은 칠 가운데 가장 으뜸으로 꼽았던 전통 공예기술로, 옻칠과 같이 황칠나무의 수액을 채취해 정제 후 사용한다. 황칠나무의 수액도 옻칠과 같이 색이 변하는데, 처음에는 우윳빛이었다가 공기 중에서 점차 산화되어 황금빛을 띠게 된다. 다산 정약용이 '황칠'이라는 시에서 '보물 중의 보물'이라고 표현했고, 황칠나무의 황금빛 액은 '맑고 고와 반짝반짝 빛이 나네'라고 했을 정도로 영롱한 금빛을 띤다. 부와 권력의 상징인 황금색을 띠기에 아예 황칠을 금칠(金漆)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 쓰임새가 광범위해서 나무와 종이는 물론이고 가죽, 금속, 유리에도 사용할 수 있다. 황칠은 '옻칠 천년 황칠 만년'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장기간 사용해도 변하지 않는등 내구성이 좋다. 투명하고 광택이 우수하며 열에도 강하고 방수성도 뛰어나다. 특히 은공예에 사용하면 탁월한 색상과 고광택을 유지할 수 있어 최고급 천연 도장재료로 전혀 손색이 없으므로 향후 가능성이 매우 무궁무진하다. 황칠의 역사는 굉장히 깊은데 첫 기록은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에 보장왕 4년(645년)에 나온다. 당 태종이 이세적을 선봉에 내세워 요동성을 공격했는데 이 전쟁에 백제가 금칠한 갑옷을 바치고 군사를 파견했다는 내용이 있는데 바로 황칠을 한 갑옷을 진상한 것이다.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영원불멸의 삶을 꿈꿨던 진시황이 사방으로 신하를 보내 불로초를 구해오게 했는데, 서복이라는 신하가 제주도까지 와서 황칠나무를 가져갔다는 내용이 나온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특산물로 매우 귀했기에 주로 왕실에서 사용했고 중국에 보내는 중요한 조공품목이었다. 2007년 경주 황남동에서 황칠이 담긴 토기가 발견되었고, 황칠을 한 백제의 갑옷이 출토되기도 했으며, 2012년 옹진 영흥도 인근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7∼8세기 신라 무역선에서도 황칠이 담긴 토기가 발견되어 황칠무역이 활발했었음을 알 수 있다. 황칠은 나무에서 얻는 것도 소량인 데다가 나무가 자라는 곳이 제주도와 서남해안 일부 지역이라서 더욱 얻기가 힘들었다. 조선말에는 아전들의 수탈이 심해져서 정조 18년에는 호남위유사 서영보가 출장보고서에 "완도의 황칠은 근년 산출이 점점 전보다 못한데도 추가로 징수하는 것이 해마다 늘어나는 폐단이 있고 아전들의 농간이 극심하니 엄격히 규제하여 섬 백성들의 민폐를 제거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라고 올린 것으로 보아 황칠 때문에 백성들의 원성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역사적 부침에도 시간이 흐르며 그나마 명맥이 이어지던 황칠나무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가 황칠의 우수성이 알려지고 다양한 약리작용이 밝혀짐에 따라 새롭게 주목받게 되었다. 학명부터 특이하게 '병을 낫게 하는 나무(Dendropanax morbiferus)'이다. 영양성분이 우수해 '나무 인삼'이라고도 불린다. 황칠나무는 새순과 줄기, 가지를 말려 차로 마시거나 진액, 환, 가루 등으로 만들어 먹는다. 효능으로는 간 기능 및 혈행개선, 정혈작용, 면역력 강화, 심장기능 개선 효과가 있다고 한다. 황칠나무에는 항암 성분인 베툴린이 차가버섯보다 1.5배 많아 항암, 항산화, 기초면역력 증진 등에 효과적이며, 노화 및 주름 예방, 피부미용에도 좋기에 비누, 화장품 원료로도 쓰인다. 천연신경안정제로 불리는 안식향(安息香)이 있어 우울증 치료에도 효과가 있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황칠나무는 두릅나무과의 늘푸른 넓은잎 중간키나무로 높이는 3∼8m까지 자란다. 7∼8월에 황록색 꽃이 피는데 아카시나무보다 1.7배의 꿀을 생산하는 유망한 밀원식물이기도 하다. 타원형 또는 넓은 타원형 잎이 달리고 어린 가지의 잎은 3∼5개로 갈라진다. 11월경에 검은색 타원형의 열매가 달린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홍보실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홍보실장

2020-01-12 조성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일신기덕: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한다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주역의 괘로 국운이 어찌 되는지 궁금해하기도 한다. 기자들도 궁금해한다. 자기 한 치 앞도 모르는데 어찌 국운을 장담하겠는가마는 역의 이치는 이치대로 나름 논리가 있기 때문에 참고해볼 필요는 있다. 새해 庚子(경자)의 두 글자를 가지고 괘를 지어보는 방법에 의하면 크게 쌓는다는 대축(大畜)이란 괘가 꾸민다는 비(賁)라는 괘로 변하는 상이 나온다. 질문은 늘 대동소이하다. 올해도 마찬가지이다. 남북관계, 경제, 정치 등등이다. 새해니만큼 좋은 이야기만 늘어놓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괘는 나오는 그대로 말할 뿐이다. 大畜은 '크게 쌓는다'는 뜻을 지닌 괘로 축(畜)에는 그쳐 막는다는 저지의 의미도 들어있다. 간추려 요약해보면 한 편의 陽(양)이 다른 상대의 陽의 진행을 막는 형국이다. 상하나 내외나 피차의 문제로 보면 저지하는 기운이 강하기 때문에 음양적 상호 화합이나 협력은 힘든 괘이다. 그러니 남북문제나 경제의 유통이나 국제 외교적 협력은 기대만큼 이루기 힘든 상이다. 그러나 힘이 든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축이니깐 그런 운을 타개할 덕량을 크게 쌓아야 한다고 했으니 대축괘에 日新其德(일신기덕)이라 한 것이 그것이다. 德(덕)은 선천적으로 얻어진 것이지만 후천적으로 닦으면서 쌓아나갈 때 새로워진다. 큰 하늘을 품고 있는 작은 산의 형상이 대축인데 이때 산은 다름 아닌 사람을 상징한 것이다. 작은 산이 하늘이 춘하추동으로 날로 새로워짐을 꽃피고 열매 맺는 것으로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산속에 하늘이 쌓여있기 때문이다. 내 안에 쌓여있는 하늘의 덕량을 날로 새롭게 해야(日新其德) 전체적으로 인간사회의 꾸밈이라 할 수 있는 인문(人文)이 이루어진다(化成天下:화성천하)는 것이 올해 괘의 주요메시지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0-01-08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꽃향기

내 무거운 짐들이 꽃으로 피어날 수 있으면 좋겠네버리고 싶었으나 결코 버려지지 않는결국은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고 질질 끌고 온아무리 버려도 뒤따라와 내 등 뒤에 걸터앉아 비시시 웃고 있는버리면 버릴수록 더욱더 무거워져 나를 비틀거리게 하는비틀거림은 비틀거릴수록 더욱더 늘어나 나를 짓눌러버리는내 평생의 짐들이 이제는 꽃으로 피어나그래도 길가에 꽃향기 가득했으면 좋겠네정호승(1950~)오늘은 그동안 살아온 삶이 하루 동안 펼쳐지는 날이다. 그리고 오늘은 그 누구도 살아보지 못한 날인 것처럼 새해 속에 함의 된 365일이라는 시간 또한 아무도 살아보지 못한 평등한 날로 존재한다. 그러나 각자 살아온 세월만큼 다르게 축적된 시간을 나이라고 하는데, 이 시간은 "버리고 싶었으나 결코 버려지지 않는" 것이다. 이제 한 살 더 먹은 당신도 "지금까지 버리지 못하고 질질 끌고 온" 그것은 육체의 무게에 부가된 '내 무거운 짐들이' 어깨를 누르며, 숨통을 조이고 있듯이. 말하자면 "아무리 버려도 뒤따라와 내 등 뒤에 걸터앉아 비시시 웃고 있는/버리면 버릴수록 더욱더 무거워져 나를 비틀거리게 하는/비틀거림은 비틀거릴수록 더욱더 늘어나 나를 짓눌러버리는" 순간을 살고 있지 않던가. 무거워지려면 채워야 하고 가벼워지려면 버려야 하느니, 그렇다면 더 가지려고 하는 욕망이라는 '평생의 짐'을 나눌 때 "내 평생의 짐들이 이제는 꽃으로 피어나" '평생의 짐들이' 평생의 꽃밭이 되어 '그래도 길가에 꽃향기 가득'하게 진동할 수 있으리.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20-01-06 권성훈

[손경년의 '늘찬문화']현실 속의 SF, SF 속의 현실

전체주의 공포 보여주는 '1984'사회 억압 지적 '다섯번째 계절'엔데 '지역통화' 만드는 구조 제안 판타지 아닌 '현실' 느꼈다면 '독서의 힘' 쓸만한 것 같다해가 새로 바뀌면 습관에 기대어 계획을 짜긴 하나 한 해의 말미가 되면 시들해져 버린 경험을 많이 했는데, 2020년 1월은 작심삼일의 효력이 지속되어 연말에 짜둔 독서계획이 현재진행형이라서 그나마 다행이다. 각종 흥미로운 영상 및 시각적 매체와 속도감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소셜 미디어 속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넘나드는 책을 고르는, 아니, 책이 나를 선택하는 경험을 하는 것은 마치 도심 한복판의 공원에서 자동차 소리 대신 새소리를 듣는 기분과 비슷하다. 2012년에 출간된 '조지 오웰 -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의 서문 첫 단락에서 저자 고세훈은 "오웰의 고발과 비판은 권력(자)·가해(자)를 향해 치열하게 열려있고, 권력과 가해의 주변에는 늘 지식인이 서성댔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권력 언저리에서 킁킁대며 안일과 위선과 표변을 일삼는 지식인에 대한 거대한 보고서일지 모른다."라고 하는데, 이러한 그의 분석은 SF(Science Fiction) 장르의 거장으로 알려진, 조지 오웰에 대해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권력의 부패한 모습을 풍자적으로 묘사한 '동물농장'(1945)이나 빅브라더를 통한 전체주의의 공포를 보여주는 '1984'(1949)는 당시의 사회주의 지식인에 대한 '내부 비판자'로서의 오웰의 입장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의 책을 '제대로' 읽다 보면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불확실한 소용돌이와 자본주의, 사회주의의 이념, 권력과 지식인의 움직임이 우리 삶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힘을 느낀다.2015년에 발표된 N.K.제미신의 '다섯 번째 계절'은 '고요'라고 불리는 거대한 초대륙에 반년 또는 수세대가 지나도록 지진이 일어나는 재해 시기를 제목으로 삼은 장편 SF이다. 인류 중에 '조산력(造山力)'(지진과 관련된 에너지를 조종하는 능력)을 지닌 '오로진'이라는 종족은 재앙을 불러오는 존재로 여겨져 혐오의 대상이며, '펄크럼'이라는 기관에서 교육받고 관리를 받지 않으면 죽임을 당한다. 또 교육 후 살아남아도 철저히 도구화되고 착취 받는 존재이다. 제미신은 "내게는 차별을 거부할 특권이 없었다"는 흑인이자 여성의 입장에서 혐오, 인종차별, 성차별이 여전히 작동되는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억압시스템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켄 리우의 '종이 동물원'(2016)은 미국인 아버지가 결혼중개회사의 카탈로그에서 고른 열여덟의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 '나'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나'는 어릴 때 어머니가 선물 포장지로 만든 '살아 있는' 종이 동물들과 함께 놀면서 산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어머니가 물려준 피도 싫었던 '나'는 점점 영어로 대화가 안되는 어머니에게 입을 닫았고 그때부터 어머니의 세계도 닫히게 되며, '살아 있는' 종이 동물들도 볼품없는 종이가 되어버린다. 어머니는 암으로 돌아가시고 '나'는 어머니가 남긴 편지를 읽으면서 그제야 종이 동물들이 '살아 있던 비밀'을 알게 된다. "아들, 네가 중국사람처럼 생긴 네 눈을 안 좋아하는 것, 엄마도 알아. 엄마를 닮은 눈 말야(…) 너한테 중국어로 말을 못 걸게 했을 때 엄마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이해할 수 있겠어? 그때 엄만 모든 걸 다시 잃어버린 기분이었어." 켄 리우는 SF, 판타지 문학으로 독자에게 다가와 상상과 환상, 그리고 현실을 교차시키면서 '대화'와 '소통', '공감' 그리고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미하엘 엔데의 '짐크노프'(1960), '모모'(1973), '끝없는 이야기'(1979) 등 동화와 8편의 중·단편들로 구성된 판타지 소설 '자유의 감옥'을 읽다 보면, '현실 너머의 현실'을 넘나드는 판타지 여행을 하면서 우리가 가끔 잊고 살아가는 내면의 세계 및 현재의 문제를 다른 눈으로 살펴볼 기회를 갖게 된다. 시간에 쫓겨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시간경영'이 과연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지를 우화적으로 질문하고 현실의 모순에 대한 미래로부터의 해답을 끌어내고자 하는 엔데는 궁극적으로 '돈'의 문제, 다시 말해 화폐시스템에 대한 '상식'을 의심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지역통화'(경기지역화폐, 부천페이 등과 유사)를 만들어가는 구조를 제안하고 있다. 끝으로 SF 읽기를 통해 판타지가 아닌 현실을 더 명징하게 느꼈다면 '독서의 힘'은 역시 쓸만한 것 같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20-01-05 손경년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학이시습: 배우고 때로 익힌다

이론을 아는 것과 그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는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다양한 이론을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학(學)은 배움인데 어린 아이가 상위에 산가지(爻)를 만지고 있는 모습으로 보기도 한다. 하나 둘 세면서 셈을 하는 모습이다. 그러다 보면 사칙연산을 익숙하게 할 수 있는 지경에 도달한다. 이렇게 배운 가감승제의 원리를 현실에 적용하면서 살아간다. 언제 더하기를 해야 하는지, 언제 빼기를 해야 하는지, 언제 나누기를 하고 곱하기를 해야 하는지는 경험을 통해 익숙해진다. 그래서 습(習)은 익힘인데 주석에 새가 자주 날갯짓을 하는 모습인 여조삭비(如鳥數飛)라고 하였다. 부화하여 세상에 갓 나온 어린 새가 날갯짓을 하며 나는 연습을 하는 모습이라고 하였다. 이런 익힘의 문제는 결국 적시성(適時性)과 관련된다. 경험이 충분히 쌓이기 전에는 나누기를 할 때 곱하기를 하는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경험이 쌓이다 보면 그때그때에 알맞게 적용하니 이것이 시습(時習)이다. 학습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이론에만 정통한 것이 아니라 그 적용에도 탁월하다는 의미이다. 가감승제의 수학 뿐 아니라 인문학적 이론이나 적용도 마찬가지이다. 2020년의 새해 첫날 학습에 관한 단상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20-01-01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국화꽃 그늘을 빌려

국화꽃 그늘을 빌려살다 갔구나 가을은젖은 눈으로 며칠을 살다가갔구나국화꽃 무늬로 언첫 살얼음또한 그러한 삶들있거늘눈썹달이거나 혹은그 뒤에 숨긴 내어여쁜 애인들이거나모든 너나 나나의마음 그늘을 빌려서 잠시살다가 가는 것들있거늘 장석남(1965~)당신만 빠져있는 세계는 의미가 없듯이 당신만 있는 세계도 의미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모두가 개별적인 존재이지만 공동체를 통해 함께 할 때 존재자로서 자신의 삶을 검증받는다. 이렇게 우리가 속한 사회는 갈등과 분열의 연속이지만 그 속에서 삶의 의지를 지원받고 생명을 연장하면서 하루하루 희망을 공급받는다. 따라서 나는 우리라는 '그늘을 빌려 살얼음판' 같은 세계에서 어제의 절망과 내일의 희망 사이에 '있거늘'. 이 그늘은 같이 있으므로, 있는 것들이 생성해내는 '또한 그러한 삶들'이 있는 동안 피어 올리는 '있거늘'로서 떠나거나 벗어나지 않는 상태의 '서로의 그늘'을 표상한다. 이것은 "모든/너나 나나의/마음 그늘을 빌려서 잠시/살다가 가는 것들" 바로 '있거늘'은 오늘을 그토록 살기 원했던 어제 '국화꽃 그늘을 빌려 살다'가 간 어느 '영혼의 자리'기도 하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12-30 권성훈

[주종익의 '스타트업']리버스 이노베이션

아래서 위로 변혁 양상 '역혁신'특정 하드웨어·SW 종속되지 않는오픈 뱅킹 시스템으로 가야생각만 바꾸면 CDMA 경우처럼과감한 '건너뛰기 전략' 시도 충분은행들의 광고전쟁이 불붙었다. 매일 수천만 원도 넘는 신문 전면 광고가 3~4개씩 올라온다. 12월 18일부터 18개 금융기관이 실시한 오픈 뱅킹 서비스 때문이다. 오픈 뱅킹 서비스는 기술적으로는 복잡한 문제가 많지만 보통 수준의 은행 고객 측면에서 말하자면, 여러 은행과 거래를 하는 고객은 이제 한 은행의 앱만 설치하면 모든 은행과 거래를 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고객을 빼앗기면 큰 손실이 예상되는 1등만이 살아남는 승자독식의 게임에서 성공하기 위해 사운을 걸고 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취지가 그럴듯해 오픈 뱅킹 앱을 설치해보기로 했다. 다른 은행의 계좌도 등록하고 요청사항을 입력하는데 약간의 인내와 짜증을 참고 앱을 설치했다. 기대하면서 가장 손쉽고 많이 사용하는 계좌이체 송금을 해보기로 했다. 송금 실패 메시지가 떴다.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도움말을 아무리 찾아도 지점 창구를 가지 않고는 해결될 것 같지 않아 지점 창구에 가서 원인을 알아봤다. 인터넷 뱅킹을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 그렇단다. OTP 보안카드와 공인인증서는(이런 것 없애자는 것 아닌가?) 있는지도 물어보길래, 아! 이건 무늬만 오픈 뱅킹이지 기존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여러 은행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문만 하나 더 달았다고 생각했다. 그냥 집에 돌아와 앱을 삭제했다. 앱을 삭제했는데 문제가 생겨서 또 창구를 찾아갔다. 통장 입출금 발생 시 핸드폰으로 알려주는 서비스가 안 되어서 갔더니 다시 신청해야 한다고 해서 또다시 신분증 제시하고 서명하고 신청을 했다. 아니 앱을 지우면 기존의 서비스는 완벽히 복구시켜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조만간 없어질 지점 창구를 문제 해결의 최종 단계로 생각하는 은행의 사고방식은 결국 외부에 의한 혁신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리버스 이노베이션이란 말은 미국 다트머스 대학의 비제이 고빈다라잔 교수가 집필한 책 '리버스 이노베이션' 때문에 유명해진 단어이다.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마치 위에서 아래로 물 흐르듯이 전수되던 전통적 혁신의 패턴이 이제는 아래에서 위로 혁신의 양상이 달라지는 '역혁신'이 시작되었다는 이론이다. 우리의 금융기관은 아마도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기는 어려울 듯하다. 오히려 스타트업에 의한 리버스 이노베이션이 일어나도록 지원하고 격려하고 기대하는 쪽이 훨씬 가능성이 높을 듯하다. 실제로 요즈음 핀테크 분야는 스타트업이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앱을 통한 송금이나, P2P 서비스, 카카오뱅크나 K뱅크 등의 등장으로 등 떠밀리듯 은행들이 오픈 뱅킹 서비스 같은 것도 시도해보는 듯하다. 그러나 지금의 오픈 뱅킹은 무늬만 오픈 뱅킹이다. 오래된 아파트에 페인트 칠하고 창문 고친다고 재건축 아파트와 같을 수는 없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현대는 건너뛰기(skipping) 전략이 가능한 시대이다. 유선전화를 거쳐야 무선전화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가솔린 엔진 자동차 생산을 거쳐야 전기 자동차를 생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중국은 유선 전화와 가솔린 자동차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무선전화와 전기자동차 산업을 시작했다. 전기자동차는 우리보다 어느 면에서는 앞섰다. 앱으로 결제하기나(알리페이) 공유경제 택시(디디추싱)도 우리보다 중국이 앞서간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IT 강국이 된 것도 모두가 무선전화 방식 결정을 망설일 때 CDMA 방식을 과감하게 제일 먼저 도전한 건너뛰기 전략 때문이다.현금 없는 디지털 화폐시대, 은행지점이 없는 시대, 보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블록체인의 시대, 어느 특정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에 종속되지 않는 시대를 전제로 하는 오픈 뱅킹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건너뛰기 전략이 시작은 늦은 듯하지만 궁극적으로 시간과 돈을 절약하고 세계를 리드하는 제도가 될 것이다. 중간치기 개선은 나중에 되돌리려면 오히려 앞으로 나간 만큼 손해다. 생각만 바꾸면 CDMA 경우처럼 건너뛰기 전략을 시도할 수 있는 모든 요소가 나와 있고 우리의 역량도 충분하다. 혁신적 지도자와 도전이 없을 뿐이다./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에버스핀 감사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에버스핀 감사

2019-12-29 주종익

[생활법무카페]채무자의 재산 찾는 방법은?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아 법적 소송절차를 밟아 승소해도 채무자가 자발적으로 돈을 주지 않는 경우 강제집행을 통해 채권만족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강제집행을 하려고 해도 채무자의 재산을 파악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민사집행법 제61조 채무자 재산명시제도가 있습니다. 이는 채무자가 자신의 재산을 법원의 판사 앞에서 부동산, 자동차, 채권 등 모든 재산을 기재한 재산목록을 제출하고 이것이 진실하다는 선서를 함으로써 채권자는 이를 열람하여 채무자의 재산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여 강제집행을 보다 용이하게 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만약 채무자가 거짓 재산목록을 제출한 경우 민사집행법 제68조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고, 재산명시기일에 불출석, 재산목록의 제출거부, 선서 거부한 경우 법원의 결정으로 20일 이내 감치에 처해집니다. 이 제재내용을 고지받은 채무자는 대부분 법정에 나와 재산명시에 따를 것입니다. 부실한 재산목록인지 여부는 여전히 채권자 입장에서 알 길이 없으나 채무자의 자발적인 재산내역 제출을 강제한다는 점에서 실익이 있습니다. 훗날 허위의 재산목록제출임이 밝혀지는 경우라면 전략적인 형사고소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재산명시는 법원을 통한 개인의 재산과 신용정보에 관한 전산망을 관리하는 공공기관, 금융기관, 단체 등에 채무자의 '재산조회'를 신청하기 전에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재산명시제도를 통해 돈을 대여하고 못 받아 승소판결문까지 받았으나 채무자가 재산을 빼돌리거나 변제를 거부할 때 채무자의 재산을 파악한 후에 강제집행한다는 점에서 사후적으로 담보력을 확보하는 것이지만, 이보다는 금전을 대여할 때 근저당권 설정 등 사전에 담보력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이영옥 법무사·경기중앙지방법무사회 화성지부이영옥 법무사·경기중앙지방법무사회 화성지부

2019-12-26 이영옥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일일삼추: 하루가 삼년과 같다

시간은 상대적이라고들 한다. 객관적으로 동일한 시간대라도 사람의 처지에 따라 흐름의 지속이 다르다. 보통 행복한 시간은 빠르고 괴로운 시간은 느리다고 한다. 실제 괴로움을 겪는 시간은 지루하고 견디기 힘들게 느껴져 빨리 지났으면 한다. 이런 식의 시간의 주관적 상대성은 옛날부터 그래왔다. 시경에 사모하고 그리운 님을 기다리는 시간의 흐름을 하루가 삼년 같다고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시간의 상대성 개념이 옛날과 달라졌다. 얼마 전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인 한돌이 이세돌을 이긴 것을 보면 현대문명에서 시간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다. 자체학습진화기능을 지니고 있으니 향후 인공지능의 시간처리는 인간이 하는 시간처리의 수억만 배까지 단축될 것이다. 인간이 삼년 걸려 생각하고 일해서 처리할 것을 단 일각에 인지하고 처리하는 시대이다. 옛날 전설에나 나오는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실현되고 있다. 과학문명의 속도전으로 인해 하루가 삼년 아니라 천년, 만년이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요즘 기업들이 속도를 강조하는 맥락이다. 이런 환경에서 인간의 정신이 중심을 잡지 못하면 분열화로 진행될 수도 있으니 이 시대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12-25 철산 최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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