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돌여래여: 갑자기 찾아온다

서경에 실려 있는 고대 정치의 아홉 가지 범주인 홍범구주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첫 번째가 오행인데 그 오행 가운데 첫 번째가 물이고 그 다음이 불이다. 왜 정치를 하는 범주에 물이니 불이니 하는 물질들이 들어갔을까? 흔히 정치를 생각하면 시민 권력 투표 의회 행정 사법 등의 제도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정치의 가장 기본이 백성임을 생각해보면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두말할 것 없이 사람들의 삶, 민생이다. 우리는 물이 없이 살 수 없고 불이 없이도 살 수 없다. 물과 불이 없이는 인간이 도저히 살 수가 없으니 중요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정치범주에 물과 불이 기본으로 들어간 것은 이런 이유뿐만이 아니다. 물과 불은 우리의 생명줄도 되지만 우리의 재산과 목숨을 빼앗아가기도 한다. 전하는 기록에 고대 우임금이 홍수를 당해 큰 피해를 입게 되자 물에 대해서 전격적으로 인식을 달리하여 관찰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물뿐 아니라 불과 나무와 흙 등 이른바 오행에 관한 연구를 토대로 정치의 도리를 깨달아 후세에 전한 것이 홍범구주라 한다. 이 기록에 불에 관한 내용도 등장하는데 불은 기본적으로 위로 타오르는 성질인 염상(炎上)이라고 기록되어있다. 주역에서는 불은 이괘(離卦)에 해당한다. 불은 어디엔가 붙으려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불이 붙어 타오르는 다양한 모습 가운데 돌연히 찾아온다는 돌여래여(突如來如)라는 표현도 있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과학문명이 초고도로 발전한 시대라지만 물과 불이 인류에 주는 파괴력은 여전하기 때문에 늘 긴장을 늦추지 않고 조심하며 체계적으로 예방하는 것만이 수마나 화마를 줄이는 상책일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4-10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산에 언덕에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화사한 그의 꽃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맑은 그 숨결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울고 간 그의 영혼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신동엽(1930~1969)사랑하는 사람이 불현듯 사라질 때 혹은 그런 사람의 곁에서 떠나올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리움으로 가득 찬 그 사람의 텅 빈 빈자리를 응시하게 된다.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하늘만큼 커져만 가는, 기다림의 숱한 방황의 날들은 빈자리를 채우려고 한다. 그러면서 그 사람과 함께 한 시간을 더듬으며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만이 생각의 꽃을 피운다. 이 꽃은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시시때때로 동시다발적으로 '화사한 그의 꽃'으로 현현된다. 길을 가다가, 산과 언덕을 오르다가 피어나는 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이 되는 것. 이를테면 아름다웠던 기억이 상징화된 꽃으로 되살아나는 것인 바, 사람은 가고 지나간 시간만이 꽃으로 치환된 것. 이 꽃은 당신이 사랑했던 그 사람의 '맑은 숨결'로서 '바람'과 '인정'을 담아서 거기에 잎사귀를 내민다. 보아라, '쓸쓸한 마음'에 흔들리는 꽃이 있다면 그것은 '울다 간 그의 영혼'이 바람 되어 당신을 찾아온 것일지니.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4-08 권성훈

[김나인의 '생활관상']인당 부위 새겨진 현침문, 선과 악의 결과물

중심 통과땐 파산·이별등 큰 우환크면서 현침문 생기면욕심 지나쳐 많은 사람에게 상처웃음속 가시 닮았다는것 같아인간 속일수 있어도 하늘은 못 속여인당 부위에 새겨진 현침문은 하늘이 응징하는 날카로운 가시와 같은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인당은 평평하고 밝으며 윤기가 흐르면 공명을 이룸에 한치의 의심할 바가 없다. 인당의 형상이 길(吉)하고 흠결이 없으면 인덕이 많아 형제·동기 간은 물론 친구·지인에 이르기까지 우호적인 세력이 많아지고 세상을 주도하는 중심에 서게 된다. 반면 인당이 좁고 울퉁불퉁하며 불그레한 좀살이 돋아나고 검은 반점이나 사마귀가 박혀있고 기색마저 어두우면 하는 일마다 막히고 장애물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기가 힘들다. 현재의 운이 어떤지 알고 싶다면 인당 부위를 먼저 관찰하는 것이 좋다. 인당은 시험·학업·공명·문서운뿐 아니라, 성격·재물·배우자·자손 등의 운을 알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부위다. 인당에 흠결이 없고 눈썹이 가지런하고 정갈하면 천운이 동행하는 모습이니, 하는 일마다 성공을 거두며 운이 닿는 28세부터 크게 발복하여 공명 가도를 달려나가는 주인공이 된다. 인당이 너무 넓으면 시원시원해 보이나 치밀성이 부족하고 꼼꼼하지 못하여 잦은 실수를 많이 하게 된다. 인당이 너무 좁으면 치밀하고 계산적이며 꼼꼼한 일면은 있으나 사람됨이 옹졸하고 인색하며 화를 잘 내고 따지기를 좋아하며 소심한 일면이 많다. 인당에서 가장 꺼리는 것은 바늘이 서있는 듯한 형상인 현침문이 돋는 것인데, 현침문이 인당의 중심을 관통하면 그릇이 두 동강으로 갈라지는 것과 같으니 파산·이별·사고 등 큰 우환을 만나게 된다. 얼굴을 찡그리면 자연히 인당에 주름이 생기게 되는데, 작은 주름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현침문은 인상을 찡그리는 것만으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관상학에서는 그 사람이 행한 선과 악의 과보에 따라 인과의 표상으로 생겨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현침문이 돋는 것은 전생의 과보이고, 후에 현침문이 생겨나는 것은 현생의 과보의 결과물이라 보고 있다. 욕심이 지나쳐 탐욕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원망을 듣게 되면 하늘이 내리는 징벌의 표상이라 말하는 관상가도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런 경우 갑자기 인생이 암흑기로 접어들어 건강에 장애가 생기거나 집안에 우환이 겹쳐 집안의 기둥이 뿌리째 흔들려 쇠락하기도 한다. 또 부모·형제 대립 쟁투로 처자를 극하고 생사 이별하게 되며, 재물파손에 심하면 파산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고 감당하기 힘든 재앙을 만나기도 한다. 또한 인당에 사람인(人), 여덟팔(八)자(字) 문양의 세로주름이 생겨나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에는 스트레스로 얼굴을 자주 찡그리거나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면 자연히 인당 부위에 주름이 자리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고집이 세며 배우자·형제운도 좋지 않으며, 잦은 실패로 고단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면 주름도 생기기 마련이고 특히 인당 부위에 자리하는 주름은 피해갈 수 없는 흔적이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주름은 욕심과 탐욕으로 채워진 사람들의 주름과는 문양은 비슷하다 하더라도 그 기색을 달리한다. 이는 눈동자를 보면 알 수 있는바, 그 사람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를 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인생의 이력이며 과보의 표상임을 하늘이 대신하여 일러주고 있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 눈빛이 어떤 모습으로 비치는지 스스로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인상은 사람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기분 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남을 해하고 속이려는 좋지 않은 생각을 품으면 말로 드러내지 않아도 사람의 인상에 그에 상응하는 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남을 돕고 배려하는 선(善)한 생각을 하게 되면 마음이 정한 이치에 따라 선한 상이 생겨나는 것이다. 따라서 말로는 숨기고 감추고 속일 수는 있어도 상은 속일 수가 없는 것이니, 상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가짐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선행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위장된 행동을 하는 일이라면 웃음 뒤에 가시가 숨겨져 있는 것이니, 면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표상이 그대로 나타난다. 따라서 현침문의 형상은 웃음 속에 가시를 닮았다 하는 것이니, 인간을 속이고 법을 속일 수는 있어도 하늘은 절대로 속일 수 없는 일이다. 양심은 곧 하늘이기 때문이다./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

2019-04-07 김나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무방무체: 일정한 방위도 없고 몸체도 없다

개개인이 지니고 있는 몸은 여러모로 시공간적 용량에 한계가 있다. 키가 아무리 커도 하늘까지는 닿지 못하고 식성이 아무리 좋아봤자 바다의 물을 다 마시진 못한다. 사람뿐 아니라 여타의 생명체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드넓은 이 지구도 정해진 시한이 있으니 마찬가지이다. 어찌 보면 한량없다는 우주의 몸체도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윤회를 반복하면서 생멸을 한다 하니 마찬가지이다. 작은 개인이든 큰 우주든 간에 일체가 일음일양의 무상한 변화를 겪으니 이것을 주역에서 '일체는 고정된 몸체가 없고 작용하는 고정된 방위도 없다'고 정의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어찌 보면 무상하고 허망하기도 한 이 표현을 한번 굴려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바닷물에 포말(泡沫)이 일면 포말의 몸체는 바다 전체에 비교해보면 극소의 몸체라 할 수 있다. 또 포말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작용을 보면 늘 일어나기만 하는 것도 아니고 늘 사라지기만 하는 것도 아닌 찰나의 무상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바다 전체를 생각해볼 때 그런 현상은 동일한 몸체가 빚어내는 작용이다. 포말의 몸체에 국한하여 그 생멸의 작용을 생각해본다면 이보다 더 왜소하고 허무할 수가 없을 것이지만 바다 전체가 내 몸이라고 생각해본다면 포말의 기멸상은 그저 당연한 변화작용일 뿐이다. 우리는 바다와 같은 본래의 몸체는 꿈에도 보지 못하고 늘 기멸하는 포말 같은 몸체에만 집착하여 아상을 구축하며 살기 때문에 이런 진실을 보기 어렵다. 주역에서는 그래서 역(易)은 고정된 몸체도 없을 뿐 아니라 그 작용 또한 고정된 방위가 없다고 하였다. 양으로 나타나면 남자의 몸이고 음으로 작용하면 밤일 뿐 남녀 주야의 상은 고착된 것이 없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4-03 철산 최정준

[조성면의 '고서산책']천 년 전의 인생노래, 우마르 하이얌의 '루바이야트'

'음풍농주' 자유분방한 삶 예찬 詩'하이얌 시편' 저항감 없는 이유는 인생무상 읊조리며 풍류 즐겼던두목 같은 만당시에 익숙했기 때문가끔 허무주의·무상철학 느껴볼만지갑 속의 돈을 헤아리면서도 밤하늘의 별을 동경하는 게 우리 인생이다. 세상에서 살아가자니 돈 버는데 몰두할 수밖에 없겠으나 돈만으로 채워지지 않는 것이 인생이기에 더 힘들다. 돈을 벌지 않을 수도, 돈만 벌며 살 수도 없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럴 때는 시 쓰고 술 마시는 음풍농주(吟風弄酒)가 제격이라 주장하는 천 년 전 페르시아의 시집이 있다. 한국에서 오머 하이얌, 오마르 하이얌, 또는 우마르 하이얌으로 읽히거나 적는 우마르 하이얌(Omar Khayyam, 1048~1123)의 4행 시집 '루바이야트'가 그것이다. '루바이야트(RUBAIYAT)'는 4행시를 뜻하는 페르시아어 '루바이'의 복수형이다. 대단히 금욕적이고 엄격할 것 같은 이슬람 사회에서 일천 년 전에 술과 인생무상과 자유분방한 삶을 예찬하는 시집이 나왔다는 것이 놀랍다. '루바이야트'는 1859년 영국 시인 에드워드 피츠제럴드(1809~1883)가 영역하여 비로소 서구 세계에도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한국 T. S. 엘리엇 학회장'을 역임한 김병옥 교수가 1973년 민음사에서 펴낸 초판본이 최초다. 이후 이상옥(1975), 김주영(1995), 권소향(2012) 등 다양한 번역본이 나왔으나 크기가 한 뼘도 안 되나 사막의 모래 빛깔로 장정한 1973년 김병옥 본에 왠지 더 애착이 간다. '루바이야트'를 남긴 우마르 하이얌은 시인이자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였다. 그의 생부가 천막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였기에 '천막을 만든다'는 뜻의 하이얌이 성(姓)이 됐다.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직업을 성으로 삼는(혹은 부여하는) 언어관습은 세계적 현상이다. 가령 빵 굽는다는 뜻의 베이커(Baker), 방앗간 주인 밀러(Miller), 대장장이 스미스(Smith) 등이 그렇다. 이름은 그렇다 쳐도 개성적이고 도발적인 언어로 인생무상과 허무를 찬미하는 하이얌의 노래를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은 것인가.허무와 무상을 백안시하는 태도는 세월의 불가역성 앞에서 인생무상이라는 삶의 진실과 대면하기 싫은 회피심리 때문이거나 또는 이 같은 허무적멸 사상이 개인의 인생과 공동체 사회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윤리적 공리가 판단의 최종심급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삶이란 고작해야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같은 존재라는 '야고보'의 말씀이나 모든 게 "꿈, 환영, 물거품, 그림자와 같다"는 '금강경'의 일구는 쇼펜하우어적 염세주의를 찬미하려는 게 아니라 삶과 삼라만상의 본질이 이러하니 부질없는 욕망과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라는 종교적 부정의 변증법이다. 하이얌의 시편들이 우리에게 저항감 없이 쉽게 읽히는 까닭은 두목(803~852)이나 두보(712~770) 같은 만당시(晩唐詩)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럴 것이다. 인생무상을 읊조리며 평생 풍류남아로 살았던 두목은 기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아 항상 기생들이 던져준 귤이 수레 가득 채워질 정도라 귤만거(橘滿車)란 별명으로 불렸다. 장편 대하소설을 써내려가도 모자랄 파란곡절 많은 인생사를, 말과 글이 짧은 우리를 대신하여 촌철살인 같은 짧은 시편들에 잘 녹여 내는 두목의 공감주술력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페르시아의 두목, 이슬람의 두보라 할 하이얌도 이에 못지않은 절창을 쏟아냈다. "어떤 이는 이 세상이 즐겁다 하고/ 어떤 이는 저 세상이 복되다 하나/ 나는 오늘만 있을 뿐 내일은 부질없다/ 먼 북소리는 듣기만 좋을 뿐"이라는 12번 루바이라든지 "아귀다툼의 인간사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애태워 왔나/ 모두가 쓰고도 슬픈 열매인 것을/ 차라리 한 잔 술만 못한 것을"이라 한 39번 루바이는 무상철학의 극치인데, 오히려 그의 이 허무주의가 삶에 지친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된다.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만 따지는 물신주의와 가파른 경쟁으로 귀중한 인생의 시간을 허비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가끔은 이러한 허무주의와 무상의 철학을 보감으로 삼아 음풍농주하며 음풍농서(吟風弄書)하는 시적 삶을 누려볼 일이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2019-03-31 조성면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혹읍혹가 : 울기도 하다가 노래도 부른다

사람 관계에서 믿음만큼 중요한 덕목이 또 있을까? 서로를 믿는다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믿음과 관련해서는 대부분 상호신뢰나 상호불신의 양상을 보인다. 간혹 나는 상대를 믿지만 상대가 나를 불신하는 경우도 있지만 믿으면 서로 믿고 불신하면 서로 불신한다는 뜻이다. 주역에 믿음에 관한 이야기가 꽤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중부(中孚)라는 괘가 있다. 괘상이 말하고자 하는 도리는 비움과 실질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마음을 비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나를 비운다는 것은 상호소통을 통한 신뢰를 구축함에 있어 욕심을 내세우지 말라는 뜻이다. 내가 욕심을 부리는 만큼 상대도 욕심을 부리게 되니 그러면 신뢰의 기반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서로 비움의 문제가 어느 정도 전제되어야만 그 다음 실질적인 부분을 논할 수 있다고 하였다. 믿음에는 실질이 뒤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인간이 하늘을 걸어 올라갈 수 있다고 믿어본들 허황된 믿음일 뿐 실질이 따르지 않는다.상호 신뢰관계에 있어 먼저 서로의 마음을 비우고 실질을 추구하라는 당부이다. 이것이 정반대로 전개되면 상호 욕심을 꽉 채운 채 헛된 일만 따라오게 되니 욕심을 부릴 땐 이루어질 것 같아 웃으며 노래하지만 허사로 돌아가니 눈물을 흘리며 울게 된다. 신뢰에 관해 마치 미친 사람의 모양처럼 갈피를 못 잡는 모습을 혹읍혹가(或泣或歌)라 표현하였다. 복잡하면서 속도감 있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겪기 쉬운 일상이니 지나친 욕심을 내려놓고 허황된 믿음도 버려야 할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3-27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봄부터 소쩍새는그렇게 울었나 보다.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천둥은 먹구름 속에서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서정주(1915~2000)세상에 까닭 없이 태어난 사람이 없듯이 그냥 피는 꽃도 없으리라. 결과에는 원인이 있고, 이 원인의 근원에는 인연이 있는 법. 만약 지금 당신이 꽃이라고 표상되는, 스펙트럼을 피어 올리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물리적인 관계에서 온 물질인 것. 봄에 마주하게 되는 '한 송이 국화꽃'은 '천둥'을 이기고, '먹구름'을 지나 존재의 형상을 영롱하게 보이지 않던가. 죽음의 입구에서 삶의 출구로 도전장을 내민 '노오란 네 꽃잎'에서 존재에 대한 비의와 경이로움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 배후는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시절과 아픔을 건너온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오는 것인 바, 그리움과 아쉬움이 깊을수록 젊음의 뒤안길은 그만큼 고통스러웠을 것이며, 그것의 출구는 기쁨과 환희로 배가 되지 않던가. 당신이 살고 있는 어두운 세상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잠도 오지' 않는 이유도 지금―여기 있으니, 꽃을 피우고 싶다면 진실로 자신을 세계에 내 던져야 하지 않겠는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3-25 권성훈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기억해야만 했다, 이 이름들을

제주 4·3사건 다룬 '잃어버린 마을'30년전 사건에 묶인 '동혁의 삶'오태석의 '자전거' 윤정목도 유사현기영 '순이삼촌'·이산하 '한라산'…역사의 과정 아직도 못다한 말 많아마을이 사라졌다. 한 마을이 불타 사라졌다. 1949년 1월 제주 곤을동 마을이 토벌대가 지른 불로 사라졌다. 돌담과 집터만 남기고 이 땅에서 사라졌다. 연극 '잃어버린 마을'(부제: 동혁이네 포차,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2월 22일~4월 7일)은 4·3사건 동안 사라진 마을 중 하나인 곤을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연극 '잃어버린 마을'은 두 축의 시간이 흐른다. 하나는 극 중 현재인 1979년의 시간이다. 다른 하나는 극 중 과거인 4·3사건이 일어난 시간이다. 두 축의 시간대가 교차하며 연극은 진행된다. 2019년의 관객은 동혁이 고향을 떠나지 못하는 사연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4·3사건을 만나게 된다. 관객을 그 진실로 안내하는 출입문은 동혁과 아들 재구와의 갈등이다. 관객이 그 문을 열고 들어서게 되면 잃어버린 마을을 목도하게 된다.동혁의 삶은 30년 전 사건에 묶여 있다. 그는 마을에서 혼자 살아남았다. 후한 값을 치르겠다는 제안에도 땅을 팔지 않는 까닭은 그가 고향에 남은 마지막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나중에서야 밝혀지지만 그는 살고 싶어 서북청년단에 협력했다. 그가 불을 지른 것은 아니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마을이 사라지고 난 뒤였다. 그렇게 살아남았던 것이다. 그 후 30년 동안 그의 시간은 멈춰있다. 주변에서 "30년 지켰으면 됐다"라거나 "네가 붙들고 있는 게 뭔지 안다"라는 말로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이 없는 그 자리에서.연극 '잃어버린 마을'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피해자가 아닌 인물을 중심인물로 다룬다는 점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부정적 인물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목록에 올릴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동혁과 같은 인물이 연극사에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4·3사건을 다룬 연극이 극히 적다는 점, 제주도가 아닌 서울에서 공연한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4·3사건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진행형이라는 점에서 동혁과 같은 인물을 형상화하는 것은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기 위한 시도인지도 모른다.연극 '자전거'(오태석, 1983)에도 유사한 인물이 나온다. '자전거'의 윤정목은 제삿날이 되면 사금파리로 자신의 얼굴을 긁는다. 한국전쟁 당시 등기소 방화사건이 있었고, 그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그래서 제삿날이 같은 집이 마을에 허다하다. 윤정목이 30년이 지나도록 사금파리로 얼굴을 긁는 것은 어쩌면 용서를 구하는 일일 것이다. '잃어버린 마을'의 동혁이 "기억해야만 했다, 이 이름들을"이라고 읊조리는 까닭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4·3사건을 다룬 문학 작품의 목록은 아직 앙상하다. 그러나 1978에 발표한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과 1987년에 발표한 이산하의 장편서사시 '한라산'은 큰 족적을 남겼다. 현기영은 "고모부님, 고모분 당시 삼십만 도민 중에 진짜 빨갱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햄수꽈?"라고 물었다. 이산하는 "오늘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 그 아름다운 제주도의 신혼여행지들은 모두/ 우리가 묵념해야 할 학살의 장소"라고 노래했다. 저자 후기에서 그는 4·3을 "인간이 얼마만큼 인간일 수 있으며, 동시에 인간이 얼마만큼 인간이기를 포기할 수 있는지를 처절하게 보여준 사건"이라고 말했다.평화의 섬 제주로 가는 항해가 여전히 지난하다는 것을 연극 '잃어버린 마을'은 보여주고 있다. 4·3사건을 말할 수조차 없던 시절에서 우리는 과연 얼마나 멀리 나아갔는가를 묻고 있다. 4·3사건은 아직 숫자로 남아 있다. 숫자로 기록되는 사건을 넘어 그 이름을 얻는 역사의 과정에서 보면 이 연극이 조금은 다르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아직도 다하지 못한 말이 남았기 때문이다. 말하지 못한 말, 말하는 동안 목구멍으로 눌린 말, 말한 후에도 혀끝에 달라붙어 있는 말, 그 모든 웅크린 말들이 온전히 날아오를 때 비로소 변방은 변방이 아닌 게 된다./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

2019-03-24 권순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집지실도: 집착하면 법도를 잃는다

내가 사물을 인식할 때 이미 나에게 익숙해진 방식으로 경험된 인식을 가지고 한다. 그리고 경험된 인식은 반드시 언어를 수반한다.멍하니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모양과 개념을 가지고 바라본다는 뜻이다. 이른바 명상(名相)을 초월해서 인식한다는 것은 일상의 인간 삶에서는 불가능하다. 무엇인가를 보고 듣는다는 것은 바로 무엇에 대한 모양과 개념을 업그레이드해서 재확인하는 과정이다. 어릴 때 개에게 물려본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도 개를 보면 무섭다고 인식한다. 그러므로 한 번 주입된 인식은 잘 바뀌지 않는다. 바뀌기보다는 오히려 공고해진다. 예부터 내려오는 말에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것도 이런 이치이다.그런데 이전에 갖고 있었던 어떤 모양이나 개념에 익숙해지는 경향은 자칫 집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사물에 대해 판단할 때 사물도 변화하고 나도 변화한다는 변화의 가능성을 도외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역의 이치를 벗어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의 주식에 투자할 때 그 회사에 대한 처음의 정보나 경제적 개념에 집착하게 되면 그 이후의 회사 흐름에 둔탁해질 수 있다. 회사는 조직이기 때문에 흥망성쇠를 겪으며 변화한다. 변화하고 있는 실제를 보지 못하면 그 자체가 투자자에게 손해로 다가온다. 나에게 인식된 어느 한 상태를 고정시켜 너무 집착하면 중도를 잃고 그렇게 되면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3-20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조화弔花

여기 호올로 핀 들꽃이 있어자욱-히 나리는 안개에잎사귀마다 초라한 등불을 달다아련히 번지는 노을 저쪽에소리도 없이 퍼붓는 어둠먼-종소리 꽃잎에 지다아 저무는 들가에 소복히 핀 꽃이는 떠나간 네 넋의 슬픈 모습이기에지나던 발길 절로 멈추어한 줄기 눈물 가슴을 적시다김광균(1914~1993)조화弔花는 고인에게 조의를 표하는 꽃으로서 삶의 한 가운데에서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다.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죽음의 초입에서 사계절 동안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조화는 한 생명이 왔던 '순백의 시간'을 펼친다. 그리고 누구도 가로질러 갈 수 없는 죽음 앞에서 고개 숙여 애도하는 사람들을 맞이한다. 거기에서 인간은 세계라는 들판에서 '여기 호올로 핀 들꽃'처럼 내일이라는 미지의 '자욱-히 나리는 안개' 속에서 언제 꺼질 줄 모르는 '초라한 등불' 하나 달고 있는 생명체일 뿐이다. 이 순간도 '아련히 번지는 노을 저쪽에 소리 없이 퍼붓는 어둠'이 있다면, 그것은 '먼-종소리 꽃잎에' 지고 있는 누군가의 목숨인 것. "아 저무는 들가에 소복히 핀 꽃"을 보라. 그렇게 떠나간 이들의 '넋'이 슬프게 피어있지 아니한가. 이 봄날, 가슴에 묻은 사람들이 잊지 못해 하얀 그리움으로 당신을 찾아온 것이니.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3-18 권성훈

[조성미의 나무이야기]역사의 암흑기 시련을 함께 한 한반도 고유종 미선나무

3·1운동과 임정 수립 100주년우리나라에만 자생 고유식물미선나무, 관심 높아져 재조명학계에 처음 보고된 지 올해로 100년을 맞이했기 때문봄은 쉬이 오지 않는가 보다. 갑자기 찾아온 꽃샘추위로 인해 겨울의 그림자가 채 가시기도 전인 이른 봄 척박한 돌밭에서 단아한 흰색의 꽃을 피우는 미선나무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더 큰 희망과 의지를 갖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온 우리 민족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다. 올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고유식물인 미선나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재조명되고 있는데, 미선나무도 학계에 처음 보고된 지 올해로 100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한 세기 동안 민족과 운명을 같이하며 역사의 암흑기를 이겨낸 한반도 특산식물 미선나무는 한국을 대표하는 나무이다.미선나무는 한국 식물학의 개척자인 정태현 박사에 의해 1917년 충북 진천 용정리에서 자생지가 발견되었고, 1919년 일본인 나카이 다케노신 박사에 의해 학계에 처음 보고되면서 한반도를 대표하는 특산식물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우리나라 나무 이름을 가장 많이 붙인 나카이 박사는 조선총독부의 지원 아래 한반도 전역의 식물에 대한 조사, 연구를 시행해 왔다. 미선나무와 개나리를 비롯한 327종의 학명에 '나카이'라는 이름이 들어가 있어 우리가 접하는 나무 이름에는 일제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고 아직도 남아 있다. 학계에 보고될 당시 미선나무는 일본 이름인 '부채나무'로 소개되었다. 미선(尾扇)이라는 이름은 대나무 줄기를 잘게 쪼개어 둥글게 펴고 실로 엮은 뒤 종이로 앞뒤를 바른 둥그스름한 모양의 부채로 미선나무 열매의 모양이 이 부채와 닮았다 해서 붙인 이름이다. 미선은 옛날이야기 속 왕이나 옥황상제 옆에서 시녀가 들고 있는 하트모양의 부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중국에서는 둥근 부채 같은 나무를 의미하는 '단선목(團扇木)'이라 부르며, 서양에서는 미선나무를 하얀 개나리를 뜻하는 '화이트 포르시시아(White Forsythia)'로 부른다.미선나무는 물푸레나뭇과의 낙엽이 지는 관목이다. 물푸레나뭇과에 속하지만 미선나무속에는 이 나무만 존재하는 1속 1종 식물로 그 어느 나라에도 없고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아주 귀한 나무이다. 그 희귀성과 식물분류 및 분포학적인 가치가 높게 평가되어 전국의 자생지들은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충북 괴산과 영동, 전북 부안 변산반도 등 5곳에 있는 자생지는 모두 깊은 산속이 아니라 마을 가까운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 때문에 사람의 손을 쉽게 타서 수난을 당해 왔다. 특히 최초로 발견되어 천연기념물 14호로 지정되었던 진천의 자생지는 무단채취로 인해 훼손되어 1969년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고 말았다. 미선나무는 볕이 잘 드는 산기슭에서 자란다. 다 자란 나무의 높이는 1∼1.5m 정도로 옆으로 가지를 많이 만들며 퍼진다. 가지는 끝이 아래로 처지며 자줏빛이 도는 반면 새로 난 어린 가지는 둥글지 않고 네모난 것이 특징이다. 3월에 피는 꽃은 그 어느 꽃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화사하고 아름답다. 꽃 모양은 개나리를 닮았지만 꽃이 좀 작고 하얀색이며 개나리보다 더 일찍 개화한다. 줄기를 타고 수북하게 피어나는 꽃은 일정한 간격으로 층을 이루며 한 자리에 서너 개에서 십여 개의 꽃들이 모여 달린다. 미선나무 꽃은 향이 없는 개나리와는 달리 지나가는 사람의 발길을 붙잡을 만큼 매우 달콤하고 좋은 향기가 난다.꽃이 먼저 피고 난 후에 나오는 잎은 가지 양쪽에 마주 보며 달리는데 끝이 뾰족하고 밑부분은 둥글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미선나무는 꽃도 아름답지만 꽃이 지고 난 뒤 맺히는 열매는 더욱 매력적이다. 9월쯤 익는 얇고 납작한 열매는 가운데 두 개의 종자가 들어있고 둘레 부분이 얇은 날개 역할을 해 바람을 타고 날아갈 수도 있게 만들어졌다. 미선나무는 꽃이나 꽃받침의 색, 열매의 모양에 따라 구분해 부르기도 한다. 분홍꽃이 달리면 분홍미선나무, 상아색 꽃이 피면 상아미선나무, 꽃받침의 빛깔이 푸른 것은 푸른미선나무, 열매 끝이 오목하지 않고 둥근 것은 둥근미선나무로 부른다. 최근에 각종 연구에서 미선나무 추출물이 미백과 주름 개선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화장품과 비누, 탈모방지샴푸 등에 사용되고 있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홍보실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홍보실장

2019-03-17 조성미

[풍경이 있는 에세이]어느 긴 새벽에 대하여

우린 제마음 읽는법 배워본적 없다마흔 넘도록 선택할 땐 손끝 파르르내가 다섯살짜리 키우기 벅찬시대열여덟살 엄마가 갓난아이 키우는데'좋은시절 금방 온다' 헛된꿈도 못꿔집 근처에는 김밥집이 한 곳 있다. 내 손바닥 반만 한 길이로 말아주는 꼬마김밥집인데 메뉴가 수십 가지다. 햄치즈 김밥, 제육 김밥, 낙지 김밥, 게살 김밥 등등 고르는 데에도 머리통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한 줄에 천 원. 두 줄을 주문하면 내 속에 딱 맞았다. 그날 김밥집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한 손님이 막 나가던 길이었고 나는 김밥 진열대 앞에 서서 "아줌마, 불오뎅 김밥 두 줄 주세요." 그러면서 이천 원을 건넸다. 주인아줌마는 약간 골이 나 있었다. "아니, 지가 매운 걸 시켜놓고 맵다고 야단이면 어째?" 나는 좀 뜨끔했는데 생전 먹지도 않던 매운 음식이 당겨 마침 불오뎅 김밥을 주문한 참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막 나간 그 손님이 매운 걸 먹다 말고 투덜거린 모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그 조막만 한 김밥들을 절반도 먹지 못했다. 매워도 너무 매웠다. 주인아줌마 눈치가 보여 기를 쓰고 먹어보려 했지만 별 수 없었다. 슬그머니 반 넘어 남긴 접시를 두고 일어서는데 딱 걸렸다. "왜? 매워? 매워서 못 먹겠어?" 나는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배가 불러서요!"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도 그랬다. 늘 가던 콩나물국밥집이었는데 그날도 희한하게 매운 국물이 먹고 싶어서 처음으로 매운 콩나물국밥을 주문했다. 역시나 나는 반도 먹지 못했다. 내가 절절 매니 깍두기를 더 주러 다가왔던 아줌마가 혀를 끌끌 찼다. "그러게 왜 먹지도 못하면서 매운 걸 시킬까나? 그냥 먹던 대로 먹지." 분명 내 입맛이,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 것인데도 무언가를 주문하면서 실패를 거듭한다. 아기 내복이나 좀 살까 싶어 들어갔던 인터넷쇼핑몰에서 봄 원피스를 만원도 안 되는 가격에 팔기에 나는 열 벌도 넘게 샀다. 백화점에 가면 한 벌도 못 살 값이었다. 옷감이 좀 후지더라도, 디자인이 좀 촌스럽더라도 어차피 아이들은 쑥쑥 자라니 만원 값만 하면 된다 생각한 거였다. 하지만 막상 배송이 된 옷들을 쳐다보자니 한숨이 절로 났다. 정말 딱 만 원짜리들이었다. 이걸 입혀 어딜 데리고 나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 원 값만 하면 된다 해놓고는 이 무슨 변덕이람. 옷장 속에 개어 넣으면서 이 옷들을 정말 입히게나 될까, 싶었다. 매운 걸 시켜서 매운 음식이 나왔고, 만 원짜리 옷을 사서 만 원짜리 옷이 온 걸 나는 어쩌자고 후회하고 있는 걸까. 다 내가 고른 것인데.친구는 새벽녘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의 울음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여고 2학년 딸이 아기를 낳겠다고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딸의 마음은 확고하고 단단해서 더는 어쩌지 못하겠다 말하며 그녀는 펑펑 울었다. 알겠다고, 돕겠다고 말은 했다는데 아직 제 마음이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했다. 내 딸은 아직 다섯 살이라 나로서는 상상도 안 갈 일이었다. 친구의 딸이 마음을 이미 다졌다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아이를 응원하는 일뿐이었다. "꼭 전해줘. 이모가 응원한다고.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얘기하라고도 전해줘." 고작 엄마 친구가 응원하는 일이 그 아이의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될까. 하지만 다른 건 해줄 것이 없어서 나는 그 말만 바보처럼 되풀이했다. 친구가 말했다. "난 마흔도 넘었지만 내 선택을 온전히 믿지 않아. 아직도 내 선택을 내가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아. 그런데 그 앤 고작 열여덟 살이야. 그 앤 정말 제 선택을 믿고 있는 걸까? 이왕이면 그 애가 끝까지 제 선택을 스스로 믿었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제 마음을 제대로 읽어내는 법, 우리는 그런 것을 배워본 적이 없다. 배워서 될 일이 아니겠지만. 친구의 말처럼 나 역시 마흔도 넘었지만 무언가를 선택할 때마다 손끝이 파르르 떨릴 때가 많다. 살아도, 살아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나이를 먹고도 여태 무능한 나를 반성하느라 나는 친구의 전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마흔이 넘은 내가 다섯 살 아이를 키우기도 벅찬 시대인데, 갑자기 천지개벽해 열여덟 살짜리 엄마가 갓난아기를 키우기 좋은 시절이 금방 오리라는 헛된 꿈을 꾸지도 못했다. 새벽은 길었고 친구의 울음도 길었다. 무섭도록 긴 밤이었다./김서령 소설가김서령 소설가

2019-03-14 김서령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제출호진: 임금이 동방에서 출현한다

아직 아침저녁으로 남아있는 한기는 있지만 그렇게 추웠던 날이 가고 꽃이 피어나는 계절이 왔음을 실감한다. 봄의 상징인 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보면서 마음도 하나 둘 열리는 느낌인데 제출호진(帝出乎震)이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동양에서 지리를 볼 때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나침반이 패철인데 지남철이기 때문에 '쇠'라고도 부른다. 이 지남철은 말 그대로 남향을 가리키는 쇠이다. 이 지남철을 가지고 방위를 보고 길흉을 따진다. 지남철에 정해진 방위의 원리는 주역이라는 고전에서 유래한다. 주역에서 유래한 방위를 보는 방법은 남방(南方)을 정면으로 향해 서있을 때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랬을 때 동서남북 사방만 따지자면 남방이 앞의 이괘(離卦)이고 북방이 뒤의 감괘(坎卦)이다. 동방이 왼쪽의 진괘(震卦)이고 서방이 오른쪽의 태괘(兌卦)이다. 동서남북의 사방은 각자 지니고 있는 개성이 있으며 동시에 시간적 의미도 포함한다. 동방을 예로 들면 해가 떠오르는 방위이지만 시간으로 보면 하루 중 해가 떠오르는 아침에 해당하고 한 해로는 생명의 싹을 지표에 내는 봄에 해당한다. 예로부터 해는 임금의 상징이기 때문에 임금이 동방에서 출현한다는 말은 해가 동쪽에서 떠오른다는 뜻이다. 그래서 제출호진(帝出乎震)이라 하였으니 동방은 해가 떠오르는 곳이고 해가 떠오름에 따라 만물이 소생해 나오는 때라는 의미를 함축한 표현이다. 그런데 이 말을 한 때 우리나라에서 위대한 성군이 출현한다는 비사( 辭)로도 사용했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진단(震檀)이라 하는데 震은 중국의 낙양에서 볼 때 동쪽을 뜻하고, 檀은 우리나라의 시조인 단군을 뜻하는 말이다. 굳이 비사가 아니라 하더라도 봄을 맞아 누구에게나 잠재해있는 태양처럼 밝은 상제(上帝)의 마음과 힘이 출현하기를 바라본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3-13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산유화

산에는 꽃피네 /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 꽃이 피네 //산에 / 산에 /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 꽃이 좋아 / 산에서 /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 꽃이 지네 / 갈 봄 여름 없이 / 꽃이 지네.김소월(1902~1932)산유화는 꽃 이름이 아니라 '산에 꽃이 있다' 라는 의미로 '산유화(山有花)'다. 이른 봄부터 산에 피는, 이름 모를 꽃들은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하는데, 거기에는 기다림도 설렘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산유화는 언제 피는지, 언제 지는지에 관한 물음을 접은 채, 피어나고 지는 데 있다. 그 꽃은 '갈 봄 여름 없이' 보는 사람에게 피어나는 꽃이며, 반대로 '갈 봄 여름 없이' 지는 꽃으로서 산속 어딘가에서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을 뿐. 마치 겨울을 홀로 보낸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함의 얼굴이 있다면 그러하리라. 따라서 산유화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통과하여 더 이상 외롭지도 쓸쓸하지도 않은 상태로서 고독의 절정이 피어 올린 근원적 존재를 형상화하고 있는 것. '산에서 우는 작은 새도 고독이라는 꽃이 좋아 산에서 사는 것같이 누구나 세계라는 산속에서 잠시 홀로 왔다가 간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3-11 권성훈

[손경년의 '늘찬문화']지역문화의 중요성과 양적성장 속의 지역문화재단 역할

전국 75개 기초문화재단 운영중지역 기반의 중요 시책 심의·지원수요 많아지는 만큼 성장 가속화운영 전문성 요구되는 '대표이사'고도화된 리더십 요구 부응해야2014년 46개였던 기초문화재단이 2019년 2월 현재 서울 15개, 부산 1개, 인천 2개, 대구 6개, 울산 1개, 경기 14개, 강원 9개, 충북 3개, 충남 4개, 경북 6개, 경남 6개, 전북 3개, 전남 5개 등 총 75개가 설립·운영되고 있다. 이는 전국 226개 시군구 중 33.2%에 해당한다. 광역단위에서는 경기문화재단, 서울문화재단 등 16개 재단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 기초문화재단들은 '사단법인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이하 전지연)'를, 광역문화재단들은 '사단법인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이하 한광연)'를 구성하여 전국적인 협력망을 형성, 협력을 도모하고 있다. 알다시피 재단의 설립은 정부, 기업 그리고 개인 차원에서 가능하며, 그 역할과 임무는 다양하다. 한 예로 국가와 정부가 재단을 설립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공식적인 정부행정체계 내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혹은 수행한다 하더라도 효율적이지 못한 임무나 역할을 준 민영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며, 또한 공공의 목적에 민간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로 여기기도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지역사회 및 지방자치정부가 공공서비스의 효율적인 전달을 위해 지역재단의 개념을 도입하는 사례는 심심찮게 볼 수 있다.그러나 우리나라 지역문화재단의 경우를 보면 설립목적과 역할 등이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다소 차이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2014년에 제정된 [지역문화진흥법] 제19조와 20조에 의한 '지역문화재단의 설립, 지원' 등의 규정과 [지방자치법] 제2조와 19조의 규정을 근거로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유산, 문화예술, 생활문화, 문화산업 및 이와 관련된 유형·무형의 문화적 활동의 진흥에 관한 중요 시책을 심의·지원하고 그 사업을 수행하는 공공문화재단'의 개념을 준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 각 지자체의 조례에 의해 설립·운영되고,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출연기관이며, [민법] 중 재단법인에 관한 규정을 적용해야 하는 등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주민의 문화욕구 증가와 새로운 삶의 방식 등장, 미래가치의 수용 및 시민의 문화권 확장요구가 커짐에 따라 이를 담아 낼 지역단위의 기구에 대한 수요가 더 많아지고 있고 이로 인해 지역문화재단의 양적 성장은 가속화될 것으로 본다. 따라서 지역문화재단의 수가 늘어나는 속도만큼 재단의 질적 역량 또한 함께 상승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싶다. 올 초, '전지연'에서는 기초문화재단을 대상으로 [기초문화재단 설립 실태조사 및 지역문화재단 역량강화를 위한 전략과 방향 연구](연구책임 디자인 자리)를 수행하였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초문화재단의 정규직 성비 분포는 남성 55%, 여성 45%이며, 임원(이사)의 구성은 남성 80%, 여성 20%로 조사되었다. 조사대상 기초문화재단 중 16%는 임원에 여성 구성원이 전혀 없었다. 운영되고 있는 사업의 범위는 기초지자체의 행정업무 분산, 문화시설운영 및 지역축제운영 등 행정 필요에 의한 사업 및 기초지자체의 위탁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 자치단체장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대표이사 인사에 영향을 미친 사례도 있었다. 지역문화재단 설립 시 기본 요건으로 문화예술의 특성 및 전문성이 반영될 수 있는 독립성과 자율성의 보장, 즉 '팔길이 원칙'이 지켜지기를 기대하는데 이번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아직 갈 길이 먼 것으로 보인다.지역문화재단의 질적 역량 향상을 위해서 독립성과 자율성은 필요한 요소이다. 이를 근간으로 지역이 가진 특성과 주민들의 삶의 여건을 반영한 재단비전 설계가 이루어져야 하고 동시에 지역의 문화정책수립과 사업추진의 투명성·공정성을 위한 재단운영의 민주화, 권력형 위계문화의 타파, 성 평등 문화의 정착 등이 고려되어야 한다. 최근 몇몇 지역의 문화재단 대표이사 공모 후의 뒷말들이 무성한 것 같다.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예술기구로서 운영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이니만큼 기관장의 자질 및 리더십에 대한 지역사회의 상당한 수준의 요구는 당연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모든 사회문제로부터의 고립이 아닌, 시대정신과 사회적 이슈로부터 균형을 유지하고 정치적, 행정적 간섭과 사적지배로부터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지역문화재단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지역문화재단은 고도화된 리더십 요구에 부응해야 할 것이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9-03-10 손경년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근묵자흑: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

최근 연달아 어두운 먼지가 창공을 뒤덮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흙먼지로 둘러싸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실이 곧 닥칠 것 같은 두려움이 든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서 잠을 자는 동안 목이 불편하더니 집에서 나올 때도 마찬가지이다. 취약한 아이들이나 노인들 그리고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에겐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방송을 들어보니 전문가들에게 원인과 처방을 요구하지만 딱히 속 시원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원인은 중국의 문제가 크고 국내에서도 원인이 어느 정도 있다는 것이다. 해결책으로는 하나같이 중국은 거시적이고 우리나라가 아니니 국내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정답이라고들 한다.그러나 중국의 산업화와 그로 인한 화석연료 사용에 따라 그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이른바 어쩔 수 없는 지정학적 근묵자흑이다. 중국에 가까운 나라이고 매년 중국에서 기류가 봄철이면 우리나라를 향해 유입된다. 사람이 달에도 가고 화성에도 가는 기술력을 자랑하면서도 당면한 기후변화에는 쩔쩔매고 있다. 사람의 기술력이 위대해지는 반면 상대적으로 사람의 인문학적 정신력은 기술의 뒤꽁무니를 따라가기 바쁘다. 지금까지의 과거는 어쩔 수 없다 치고 향후 기술력의 방향을 기후변화에도 집중하면 어떨까? 우주를 항해하는 기술력을 기후변화에 대응하는데 사용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를 근본적으로 전환하면서도 동시에 당장 필요한 인공강우 등의 기술에 적극적으로 힘을 써야 한다. 중국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문제의 원인에 대한 인식과 개선책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주어진 근묵자흑이기 때문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3-06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노변의 꽃들

저것들에게도 분명 무슨 말들이 있을 거다 / 그렇지 않고선 어찌 / 저렇게 온종일 / 바람과 낄낄거린다는 말인가저것들에게도 분명 무슨 사연들이 있을 거다 / 그렇지 않고선 어찌 / 저렇게 밤을 새워 기다린다는 말인가저것들에게도 분명 무슨 사랑들이 있을 거다 / 그렇지 않고선 어찌 / 저렇게 곱게 몸단장을 한다는 말인가그리고 저것들에게도 분명 무슨 미련이 있을 거다 / 그렇지 않고선 어찌 / 저렇게도 해마다 해마다 그 자리 / 그곳에 다시 피어난다는 말인가 / 그러나 나의 길은 가면 못 오는 길한번 지나갈 뿐 / 이제 그 길을 나는 지금 고속으로 / 너를 보며보며 지나가고 있는 거다 / 이렇게 나머질.조병화(1921~2003)이유 없이 태어난 사람이 없듯이 그냥 피어나는 꽃들도 없을 것이다. 가꾸지 않았는데도 길가 봄기운과 함께 움트고 있는 꽃들도 그러하리. 3월 어느 날 자신의 존재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한 세상 뿌리내린 이름 없는 꽃들을 바라본다. 꽃들의 말이, 꽃들의 사연이, 꽃들의 사랑이 들리는가. 그렇다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해 마다 그 자리'에 피어나는 그들의 생각도 읽을 수 있으리라. 반면 꽃들의 길은 가고 올 수 있지만 사람의 길은 한번 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것. 그것도 고속으로 '한번 지나갈 뿐' 그렇게 지나가고 있는 이 길에, 당신은 꽃보다 할 말이, 사연이, 사랑이 그리고 인생의 미련이 얼마나 아름답게 남았는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9-03-04 권성훈

[주종익의 '스타트업']스타트업 3.0

최대 관심사 '1.0' 시작·'2.0' 성장빠르고 크게 성공 방점 찍힌 '3.0' 배짱좋은 경영자 드라이브 걸 시점우리는 아직도 중국보다 못한 '0.8'10년 후 취업환경 생각하면 답답아주 아주 거칠고 짧게 말하면 나의 정의는 이렇다. 스타트업 1.0=제발 좀 스타트업을 하라(Start). 스타트업 2.0= 스타트업했으면 성장하라(Up). 스타트업3.0=빨리빨리 크게 성장해라(Scale). 최근 미국 스타트업 계의 관점이 달라졌다. SNS나 블로그는 물론이고 아마존에서 판매되는 책이나 벤처캐피털이나 액셀러레이터들의 행사 내용들을 보면 확실히 방점이 찍히는 곳이 달라졌다. 나는 지금 미국의 상태를 스타트업 3.0이라고 규정한다. 스타트업 초기인 1.0시대에는 온통 '스타트업을 하라 그것도 지금 당장'이 최대의 관심사다. 주체적인 인생을 살고 싶다면 눈을 스타트업으로 돌리라고 한다(just start). 왜 스타트업을 해야 하는지? 스타트업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기업가정신이 무엇인지? 누구랑 해야 하는 것인지? 자금은 어떻게 조달하는지? 비즈니스모델이란 무엇인지? 등등의 사업 경험이 없는 대학생들에게 어떻게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운영하는지 기초적인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핵심이다. 개척과 도전 정신이 강한 청교도의 후예답게 독립정신이 투철한 미국의 대학생들은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았고 교수들은 열심히 이들을 자극하고 독려하고 동참해서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적극적으로 도전했다. 이제는 스타트업의 숫자가 넘쳐나도록 많아졌다. 팀들이 많아지자 더 이상 스타트업에 도전하라고(just start) 외칠 필요가 없어졌다. Start 한 기업가들이 이제는 죽지 않고 잘 성장하는 Up 단계로 들어가는 스타트업 2.0으로 축이 바뀐다. Up단계는 성장에 중점이 있는 만큼 성장을 위한 여러 가지 방법과 도구, 행사, 정책 등의 경영전략이 핵심을 이룬다. 이 시점에는 Data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분석한 방법을 실험하고 홍보와 광고를 활발하게 진행한다. A/B test를 많이 한다. Start단계에서 제품과 시장의 궁합이(Product Market Fit) 어느 정도 확인이 되었다는 확신이 서면 적극적인 성장 전략인 그로스 해킹(growth hacking) 전략을 추진하게 된다. 전문 그로스 해킹 팀을 구성하고 성장의 원동력이 되는 강한 견인력(traction)을 만들어 낸다. 고객을 유치(acquisition)하고 활성화(activation)하고 유치한 고객을 유지(retention)하고 매출(revenue)을 발생시키고 유치한 고객으로부터 추천(referral)을 받는 소위 AARRR이라는 데이터 분석에 열중한다. 성공하는 기업들의 성공사례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성공사례가 또 다른 성공사례를 만들어 낸다. 이제는 성공의 크기와 얼마나 빨리 그 지점에 도달하였느냐에 방점이 찍히면서 자연스레 스타트업 3.0으로 넘어간다. 스타트업 3.0은 빨리 크게(시가총액 10조원이상) 성공하는 방법과 전략이 관심사다. 초 강대 기업들의 창립 연도를 보자. 애플(76), 아마존(94), 구글(98), 페이스북(2004), 트위터(2006), 드롭박스(2007), 애어비앤비(2008), 우버(2009). 과거보다 최근에 성공한 기업들의 성장곡선이 훨씬 가파른 것을 보면서 통찰력과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 "빨리빨리"이다. 이 시기는 경영학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역행하여야 하는 것이 많다. 때로는 빨리빨리가 효율성 합리성 최적화 등보다 훨씬 우선한다. 위험하기 짝이 없다. 모든 부분의 혁신이 수행된다. 경영전략, 비즈니스모델, 조직, R&D, 마케팅, 의사결정 등의 혁신을 수행할 탁월한 능력과 배짱 좋은 경영자가 과감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는 기간이다. 우리는 아직도 스타트업 1.0이다. 제발 대기업 취직만 하려고 하지 말고 스타트업을 하라고 하지만 학생들은 꿈쩍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수나 지도자들도 별로 관심이 없고 경험이나 능력도 부족하니 어쩌면 1.0이 아니라 0.8쯤이 아닌가가 싶다. 중국보다도 훨씬 못하다. 앞으로 10년 후의 우리 젊은이들의 취업 환경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왜 우리는 뻔한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일까? 꼭 장마 때가 돼서 지붕을 고쳐야하나? 몰라서 못하는 것인가(주지주의) 의지가 없어서 못하는 것일까(주의주의)?/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외대 외래교수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외대 외래교수

2019-03-03 주종익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비구혼구: 도적이 아니라 혼인할 짝이다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사람과 사람의 인간관계를 큰 틀에서 우호적이냐 적대적이냐로 구분할 수 있다. 주역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대표하는 말이 혼구(婚구)인데 혼구란 혼인할 대상이나 혼인을 청하는 사람 혹은 혼인을 중매하는 사람이다. 혼인은 인륜의 시작인 부부관계를 맺는 약속이므로 이보다 우호적인 관계는 찾기 힘들다. 이에 비해 적대적인 관계를 대표하는 말이 도적인데 도적은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생명과 재산에 해를 입히는 사람이다. 국가 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상호관계에서 오해나 의심으로 인하여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주역에서 '도적이 아니라 혼인할 짝이다'라고 하였다.그렇다면 한반도의 남과 북은 혼구인가 도적인가? 이것은 세대 간 치른 역사적 경험과 그에 관한 인식에 따라 다를 수는 있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부부도 영원히 사랑을 간직하고 사는 관계가 최선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아 사랑할 때와 불화를 겪는 시절이 있듯이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원래 한 식구지만 아픈 역사가 갈라놓은 이별을 겪는 시절에는 상호 도적으로 인식될 수 있지만 시절이 바뀌어 운수가 도래하면 사람의 마음도 바뀐다. 나를 해치는 도적인가 싶어 활시위를 매겼다가 다시 눈을 뜨고 보니 나와 혼인할 상대라는 말이다. 그동안의 의심이 신뢰로 전환되는 상황을 표현한 말이 비구혼구(匪寇婚구)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9-02-27 철산 최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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