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부지소향: 향할 바를 알지 못함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이 고민이 많을 시기이다. 이 시기에 선택을 잘해야 한다. 필자도 청소년기를 돌이켜보면 후회가 많다.어느 정도 판단력이 있어도 자신에 관한 판단은 늘 어렵다. 더군다나 아직 철이 없을 때니 더욱 그렇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래서 주위에 상의도 하고 상담도 해본다. 이는 곧 인생의 방향에 관한 문제이다. 방향은 자신의 주관적 욕구나 객관적 환경과 맞물려 돌아간다. 그러므로 어느 방향으로 갈까를 결정함에 있어 먼저 자신의 욕구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그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또한 객관적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 아무리 소원이 있어도 그것을 이루기 위한 여건이 당장 갖추어지지 않으면 욕구와 환경 간에 괴리가 커져서 틀어질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조금 늦더라도 방향을 제대로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전역에서의 한 걸음이 결국 서울역과 부산역이라는 남북의 종착지로 달라지기 때문이다.또 하나는 방향을 정했다 하더라도 반드시 고정된 것은 아니고 삶의 과정에서 다른 방향으로 변경할 수 있다. 고인들은 인생의 추구하는 방향을 정함에 있어 늘 두 가지를 고려하라고 하였다. 하나는 현실적으로 운용하는 경제의 문제이고 하나는 자신의 본래성을 돌아보는 마음의 문제이다.맹자는 이를 두고 항산(恒産)과 항심(恒心)으로 표현하였다. 생존과 윤리가 둘 다 건강한 것이 가장 이상적인 방향이라는 의미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2-12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앉은뱅이꽃

앉은뱅이꽃이 피었다작년 피었던 그 자리에또 피었다 // 진한 보랏빛그러나 주위의 푸르름에 밀려기를 펴지 못하는 풀꽃 // 이름은 왜 하필 앉은뱅이냐그렇게 물어도 아무 말 않고작게 웅크린 앉은뱅이꽃 // 사나흘 지나면 져버릴 것이다그래 그래 지지말고덧없는 소멸그것이 꿈이다꿈이란 꿈 다 꾸어버리고이제는 없는 그 꿈작년 그대로 또 피었다이형기(1933~2005)'지지 않는 꽃'이 있던가. 꽃은 짧게 피었다가 사라지기 때문에 값지고 아름답다. 그러나 사람들은 무한한 시간 앞에서 유한성을 인정하면서도, 저마다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욕망하며 살아간다. 영원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시공간을 초월한 자연과 우주의 원형일 뿐, 그 안에 기거하는 사물들은 한낮 꿈을 꾸는 꽃처럼 시들어가는 것. "작년 피었던 그 자리에 또 피었다"가는 '앉은뱅이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년에 피었던 꽃이 아니듯,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 역시 그대로인 공간에 사람만 매번 바뀌는 이치와 같은 것. '작게 웅크린 앉은뱅이꽃'과 같이 '사나흘 지나면 져버릴 것'을 망각한 채,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인 양 욕망이 이끄는 대로 소유하려고 한다. '덧없는 소멸'로의 끝은 '그것이 꿈'으로 귀결되지만 지금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망에의 질주를 멈출 수 없다. "꿈이란 꿈 다 꾸어버리고 이제는 없는 그 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또 꿈을 꾸며 일상으로 나아간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2-10 권성훈

[권순대의 '대사 한 줄로 읽는 연극']거기가 고향같네

해방 55년 만에 귀환한 동포들극단적 선택 이유 관객에 물어일제가 남긴 상흔 여전히 진행중우리 모두 그들에게 빚지고 있어등장인물 세 명, 그들의 다른 이름지난 11월 9일부터 12월 9일까지 대학로 소극장 공유에서 지공연협동조합의 '고향마을' 공연이 있었다. 지공연은 조합원 모두가 공동제작자로 참여하는 공연예술인 협동조합이다. 열악한 연극 제작 환경에서 지속가능한 공연 제작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2017년에 창립한 지공연협동조합이 두 번째 정기공연으로 '고향마을'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연극 '고향마을'은 사할린에서 영주귀국한 세 명의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극의 시간은 한일월드컵이 열린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연극의 공간은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 아파트다. 그곳에서 세 명의 할머니가 국회의원을 납치하여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극은 시작한다. 연극 '고향마을'은 그토록 갈망하던 고국으로 돌아와 이제 막 정착한 할머니들이 왜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관해 말하고 있다. 연극은 사할린 동포는 누구인지 관객이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들며 끝난다.연극 '고향마을'의 제목은 경기도 안산에 있는 임대아파트 단지 이름인 고향마을에서 가져왔다. 2000년 고향마을에는 총 489세대 967명이 입주하게 된다. 입주민은 모두 영주귀국한 사할린 동포이다. 해방이 된 지 55년 만의 귀환이다. 사할린 동포는 안산 고향마을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4천300여 명 정도가 영주귀국하였다. 하지만 영주귀국의 조건이 1945년 8월 15일 이전 사할린 이주 또는 사할린 출생자 등으로 제한되어 있어 이들 중에는 사할린에 있는 가족과 다시 이산의 아픔을 겪게 된 경우도 있다. 연극 '고향마을'은 그들 중에서 세 명의 할머니를 호명하여 일제가 남긴 상흔이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연극 '고향마을'의 인물인 할머니들의 귀국은 미완의 귀향이다. 세 명의 할머니는 안산에 살면서도 정작 고향 땅을 찾지는 않고 있다. 고국에 돌아왔으나 고향 땅은 낯설기만 하다. 평생을 살았던 삶의 시간은 고향 땅이 아니라 사할린에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세 명의 할머니는 사할린에서 음력을 적어 넣은 달력을 직접 만들었을지도 모른다."초복 4일 전에 배차(배추) 심고, 중복 때 무 심어요. 그러면 그거 가지고 김장하요.", "물 빠지면 바다에 나가서 조개나 새우 같은 거 많이 잡았어. 미역도 건지고. 그러려면 음력으로 언제 물이 나가고 들어오는지 알아야 했지."(최상구, '사할린', 2015)라는 대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할린의 시간은 고국에서 사용하던 음력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사할린에서의 삶의 시간으로부터 다시 단절된 세 명의 할머니가 정작 고국에서 "거기가 고향 같네."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최상구의 '사할린'에는 사할린 동포의 삶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안명복의 증언은 강제동원으로 인한 이산의 가장 잔혹한 사례이다.그의 아버지는 1939년에 사할린으로 강제동원을 갔다. 어머니와 4남매는 이듬해인 1940년 6월에 사할린으로 가서 가족이 함께 살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가 1944년 9월에 다시 일본으로 강제동원을 당하면서 이산의 아픔을 또 겪게 된다. 당시 13세의 안명복은 해방 이후에도 아버지를 만나지 못한다. 일제에 의해 1944년에 시행된 이중동원은 사할린 북서부 지역에 위치한 14개의 탄광에서 조선인 광부 3천여 명을 일본 본토로 다시 동원해 간 사건을 말한다. 안명복의 아버지를 포함하여 그들은 배제된 사람들 중에서도 배제된 사람들이다.우리 모두는 그들에게 빚지고 있다. 지금까지 영주귀국한 4천300여 명의 동포와 여전히 사할린에 살고 있는 한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유즈노사할린스크 공동묘지, 고르노자보드스크 공동묘지, 우글레고르스크 인근의 사라진 공동묘지 터에 묻힌 한인들에게, 그리고 그 기나긴 세월이 지나도록 국가에 의해 단 한 번도 셈해지지 않고 사라진 사할린의 무연고 한인들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다. 연극 '고향마을'의 인물인 세 명의 할머니, 한미옥, 김순영 그리고 조인숙은 그들의 다른 이름이다./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권순대 경희대 객원교수

2018-12-09 권순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월래무영: 달이 비추어도 그림자가 없다

16세기 조선시대의 휴정(休靜)선사는 우리에게 서산(西山)대사라는 명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아무리 뛰어난 도인이라도 모함과 질시는 피할 수 없는 법이다. 무업(無業)이라는 중이 서산대사의 시 등향로봉(登香爐峰)의 내용을 트집 잡아서 역심을 품고 있다고 고발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만국의 도성은 개미집과 같고 천가의 호걸들은 파리와 같구나. 창가 밝은 달은 맑은 허공을 베개 삼고 그칠 줄 모르는 솔바람 소리 가지런하질 않네. 여기에서 임금이 사는 도성(都城)을 개미가 사는 굴에 비유한 것을 트집 잡은 것이다. 이에 대해 선조임금이 대나무 그림을 곁들여 묵죽시를 내렸다. 그 시에 이르길, 잎은 붓끝에서 나왔고 뿌리도 땅에서 나오지 않았네. 달이 비추어도 그림자가 보이질 않고 바람이 불어도 소리가 들리질 않네. [葉自毫端出(엽자호단출)根非地面生(근비지면생)月來無見影(월래무견영)風動不聞聲(풍동불문성)] 그림에 묘사된 대나무의 잎과 뿌리 그리고 달과 바람은 모두 실제가 아닌 그림일 뿐이라는 뜻으로 서산대사의 실제의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마음을 그림과 그에 관한 시로 전한 것이다. 신뢰하는 이에게 마음을 전하는 풍류가 느껴진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2-05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박두진 '꽃'

이는 먼 / 해와 달의 속삭임 / 비밀한 울음. 한 번만의 어느 날의 / 아픈 피 흘림. 먼 별에서 별에로의 / 길섶 위에 떨궈진 다시는 못 돌이킬 / 엇갈림의 핏방울.꺼질 듯 / 보드라운 / 황홀한 한 떨기의 아름다운 정적靜寂. 펼치면 일렁이는 / 사랑의 / 호심湖心아. 박두진(1916~1998)시는 문자―언어로서 시인의 관념을 형상화한다는 점에서 보이지 않는 시의식이 언어라는 사물의 표피를 입고, 생각의 추상이 기호의 구상으로 전환된 것. 일테면 '사랑'이라는 말 자체로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기에 누구나 공감하는 '꽃'으로 표상하고 있다. 저마다 다양한 사랑의 체험에 의해 사랑의 온도로 정서의 결에 배태되어 있는 바, 이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것 중 하나가 '꽃의 은유'다. 이 시의 각 연 끝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랑과의 이별을 말할 때 어느 누구에게는 '속삭임'과 같은 '비밀한 울음'으로 혼자만이 견뎌왔던 기억에 남아있고, '어느 날' 인가 '아픈 피 흘림' 또는 '엇갈림의 핏방울'처럼 육신이 찢어지는 상처로 기록되어 있으며, '황홀한 한 떨기'를 피워낸 '아름다운 정적'을 통해 조화롭고 균형 있는 미적인 시간으로도 관철된다. 이처럼 한결같이 잊을 수 없는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사랑을, 감각적으로 전해 주는 것이 꽃이다. 우리의 무의식을 "펼치면 일렁이는 사랑의 호심湖心아." 당신의 마음속 호수 깊은 곳에 고요하게 잠들어 있던 '첫사랑'의 추억이 춥고 바람 부는, 겨울이면 '꺼질 듯 보드라운'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듯. 시들은 당신 사랑의 은유도 같은 이치다./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2-03 권성훈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강유상역: 강함과 부드러움이 서로 바뀐다

마른 나무라는 물건이 마찰이라는 조건을 만나면 불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나무가 다 타서 없어지면 이내 불은 사라진다. 이처럼 만물은 인연에 의해 모이고 인연에 의해 흩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인연이란 것은 내적 요인과 외적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내적 요인을 인(因)이라 한다면 외적 조건은 연(緣)인데 이들이 모여 불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과(果)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흔히 인과(因果)나 인연(因緣)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런 인연법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수적인 조건이 있다. 그것은 바로 무아(無我)이다. 무아(無我)란 현상계의 모든 존재나 우리의 내부의식조차도 일정하게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다고 소집(所執)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이런 이치를 우리는 세월의 변화로 읽는다. 주역에서는 이것을 음양의 변화로 이야기한다. 음은 그늘이라 어둡고 양은 볕이라 밝다. 어둠과 밝음은 낮과 밤이 만들어내는 현상이다. 낮과 밤은 태양과 지구가 만들어내는 결과이다. 지구의 자전과 태양의 빛이 인연이 되어 낮과 밤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음양적 인연이고 인과이다. 그러므로 밝음과 어두움 또한 무아(無我)를 필수조건으로 삼는다. 그래서 세상은 어두움이라고 영원히 어두울 수만은 없고 밝음이라고 영원히 밝을 수는 없다. 한 나라나 한 사람의 운명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옛사람들이 권력이 무상하다고 읊은 것이다. 강함이 유약함이 되고 유약함이 강함이 될 수 있는 것이 섭리이다. 그러므로 어두움을 밝음으로 바꾸고 싶다면 첫 번째 할 일이 무아(無我)를 깨닫는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1-28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절대신앙

당신의 불꽃으로나의 눈송이가 뛰어듭니다.당신의 불꽃은나의 눈송이를자취도 없이 품어 줍니다.김현승(1913~1975)첫눈이 하늘을 덮었다. 눈앞에서 첫눈은 아쉽게도 하얗게 녹아 까마득하게 사라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뭇가지에 소복이 내려앉으며 눈꽃을 피운다. 한편 눈꽃과 대조적인 불꽃은 불에서 일어나는 강렬한 불꽃으로 서로 물과 불이 가지는 속성으로부터 미학성을 지녔다. 이른바 꽃은 식물의 번식 기관에서 발화되는 것이지만, 눈꽃과 불꽃의 경우 물과 불이라는 원소에 대한 아름답고 화려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 시는 '눈송이'라는 시적 주체가 불꽃을 태우고 있는 대상에 동화되는 상황을 통해 물에서 불로 전이되는 과정을 드러낸다. 절정에 있는 "당신의 불꽃으로/나의 눈송이가/뛰어"들어가면 불에서 산화된 나도, 불꽃을 피게 되는 바, 이때 물화는 경지에 오른 불의 전도성에 의한 것. 간절한 마음이 온몸을 다해 '몸꽃'을 피웠을 때, '몸'은 사라지고 '자취도 없이 품어'주는 '꽃'만 남게 된다. 향기에 취한 대상 또한 그 순간 꽃이 되고 마는데, 얼마나 마음을 태우고 곡진해져야 '몸꽃'을 피게 할 수 있는가.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1-26 권성훈

[손경년의 '늘찬문화']지역영상미디어센터의 역할 증대와 미디어 리터러시

2002년 시작 전국 45개소 운영중도시정책등 연계 프로그램 기획미래, 창의적 콘텐츠 제작역량 필요 사회·교육적 지원 있어야 할 영역복지 한 형태로 제공될 필요 있어2002년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시작한 '영상미디어센터'는 현재 전국의 45개소에서 영상미디어센터, 또는 시민미디어센터라는 명칭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2016년 8월 지역영상문화진흥을 위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 개정, 시행됨에 따라 지역영상문화의 활성화가 가능한 법적 근거가 강화되었고, 그동안 영상장비의 대여, 미디어 교육, 시민영상콘텐츠 제작지원 및 동아리 지원, 상영관 운영, 소외계층 미디어 활동지원 등의 사업을 수행해 온 지역영상미디어센터들은 앞으로 생활문화와 연계한 마을 단위의 공동체 라디오 교육과 지역문화시설과 연계한 미디어 교육으로 사업영역이 확장될 가능성이 커졌다. 직접 미디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김해문화재단, 부천문화재단, 고양문화재단, 성남문화재단, 강릉문화재단, 화성문화재단 등 6개의 재단은 생활문화로서의 영상문화 및 공동체 미디어에 대한 역할이 커지게 되자 이에 발맞춰 주민자치, 혁신 읍면동, 도시재생 정책 등과 연계한 적극적인 프로그램 기획을 도모하고 있다.21세기 영상정보시대에서 많이 요구되는 것은 미디어 환경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컨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태블릿 등을 활용하여 특정포털을 선택하여 검색 엔진에 원하는 검색어를 입력하는 단계를 '정보의 접근 능력'이라고 한다면, 검색결과 제공되는 수많은 정보 중에서 자신에게 유용한 정보와 불필요한 정보를 골라내는 과정을 '분석'과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창조'와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 수집한 정보를 토대로 필요한 목적에 활용하고 그 내용을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읽고 창의적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미래세대가 당연히 가져야 할 역량으로 여겨질 것이다. 미국의 미디어교육전국연합회(NAMLE)에서는 '모든 종류의 의사소통 수단을 기반으로 접근, 분석, 평가, 창조, 그리고 행동하는 능력'을 미디어 리터러시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능력이 부족할 경우 소통이나 다양한 활동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문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역량을 높이기 위해 국가가 의무교육을 실시한 것처럼, 경험적 자연 획득이 가능하지 않은 미디어 리터러시 또한 사회적· 교육적 지원이 있어야 할 영역이며, 이런 역할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기관이 지역영상미디어센터라고 할 수 있다.잘 알다시피 디지털 미디어기술의 발전은 많은 사람들이 영상의 단순 소비주체가 아닌 참여적이고 창조적인 영상미디어활동의 주체로 성장하는데 기여했다. 영상매체를 통한 정보의 전달과 접근이 점점 더 중요해짐에 따라 영상으로 기록된 지식과 정보의 파악 및 활용을 위한 교육과 영상제작을 위한 기자재를 시민에게 제공하는 것은 여러모로 필요하다. 사회구성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신뢰할 만한 정보와 콘텐츠를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이며, 이러한 분별력을 통해 고품질의 정보와 콘텐츠를 적절히 활용하여 삶 속에서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제공되는 교육이 곧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다.4차 산업혁명의 시대의 '미래직업기술 2020 (Future Work Skills 2020)'이라는 보고서에 의하면, 의미부여 능력, 사회지능, 새로운 사고와 변화적응 능력, 다문화 역량, 컴퓨터 기반의 추론 능력, 뉴미디어 리터러시, 초학문적 개념이해 능력, 문제해결을 위한 과제설계 능력, 인지적 부하관리(Cognitive Load Management), 가상의 협업 능력 등 10개의 직업역량을 제시하고 있다. 언급된 역량 중 하나인 '뉴미디어 리터러시'는, 협의의 의미로 보면 '미디어 콘텐츠에 대한 해독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광의의 의미로 보면 '미디어에 접근할 수 있고 그 미디어가 작동하는 원리와 미디어 콘텐츠를 분별 있고 비판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나아가 미디어를 적절히 활용하고 이를 창조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포괄한다. 따라서 문해력과 동등한 위치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우리들이 생비자(prosumer)로서 영상콘텐츠를 통해 자신에게, 또 공동체를 위해 필요하고 유용한 내용을 찾아 소통하고 구성원 간 상호이해와 공존에 기여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보장되는 복지의 한 형태로 제공될 필요가 있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8-11-25 손경년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거일폐백: 하나를 들어 백 가지를 폐기한다

나를 이롭게 한다는 이기주의와 남을 이롭게 한다는 이타주의는 철학이나 윤리의 문제에 속한다. 이 기준을 가지고 나를 살피고 남을 살피기도 한다.맹자는 나만 위하는 마음과 천하를 위하는 마음을 지양하고 그 둘 가운데를 집착하여 택한 마음까지 다 쳐버렸다. 춘추전국 시기 양자는 자기 몸의 터럭 하나를 버리면 천하가 이롭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리하지 않는다. 묵자는 온몸을 희생해서 천하가 이롭게 된다면 기꺼이 그리한다. 맹자가 대비적으로 예를 든 두 인물은 사실 극단적인 경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맹자가 예로 든 것처럼 극단적이지 않다. 그래서 스스로를 그 둘의 중간 정도에 위치해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중용을 지킨다고 스스로 판단할 수도 있다.자막이라는 이가 양자와 묵자의 가운데 지점을 상정하여 일정한 태도로 집착하여 이기와 이타의 중도를 행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맹자는 이에 대해 중간을 정해 잡더라도 권도를 모르고 획일적으로 일정하게 고착되면 이것은 중용이 아니라 획일적인 것이라고 비판한다. 획일적으로 '여기가 가운데이다'라고 고집하게 되면 오히려 그 하나에 집착함으로 인해 다른 모든 것을 보지 못하고 놓쳐버린다는 뜻이다.자기가 믿는 사상이나 철학이나 신념은 확고할수록 좋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고집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시절에 합당한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치권의 정책결정이 중요하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1-21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박태기 꽃

충혈인지 어혈인지 그쪽으로 자꾸 깊게 물들고 있다 진자주다 한번 되게 그대에게 부딪쳤을 뿐인데 온몸 다닥다닥 꽃 벌기 직전이다 어쩌려고 이러나 등짬을 당겨보지만 돌아서지 않는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갈 때까지 갈 모양이다 다닥다닥 서둔다 어느 문전이라도 걸 벌써 다 알고 있는 눈치다 박태기 꽃 맺힌 걸 다닥다닥 바라다보며 이 봄이 위태위태하다 한번 되게 살구나무가 부딪친 것 만개滿開로 본 것이 엊그제인데 맘먹고 박태기 꽃 마지막을 서둔다 이 늦봄 꿈속의 꿈까지 꾸어 몸 밖의 몸을 보려한다 박태기꽃 진자주 정진규(1939~2017)인간에게 삶과 죽음이 공존하듯이, 한그루 나무에 사계절이 들어있다. 늦가을이 되면 칼집처럼 생긴 꼬투리가 달려서 '칼집나무'라고도 불리는, 박태기나무는 4월부터 '진자주' 색으로 개화한다. 꽃이 밥알 모양과 비슷하다고 해서 박태기라고 하며, 일부 지방에서는 '밥티나무'라고 불린다. 이 나무는 봄이 되면 '충혈인지 어혈인지' '온몸 다닥다닥 꽃'이 먼저 잎이 피기 전에 7∼8개에서 20∼30개씩 한 군데 모여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우정'이라는 꽃말과 같이 서로 '꿈쩍도 하지 않고 달라붙어 다닥다닥 바라보며' 여기저기에서 출현하는 '위태위태한 봄'의 끝에서 '맘먹고' 피어나듯 봄을 알린다. 마치 "이 늦봄 꿈속의 꿈"을 꾸듯이, 꿈이 '몸 밖에 몸'으로 피는 것같이, 박태기 꽃은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을 뚫고 나온다. 그것도 진하고 진한 '진자주' 빛깔로 사계를 견뎌온 '세월의 표피'를 몸 밖으로 꿈을 표출하듯이 수놓는, 봄이 그리워지는 11월의 찬바람 끝에 서 있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1-19 권성훈

[주종익의 '스타트업']발사 준비 조준

아이디어는 숨기지 말고 알려최소 기능만 보유한 제품 준비잠재고객 찾아 반응을 보고의견 충분히 반영 수정·보완 필요이를 수차례 반복 실패율 줄여야바둑에서 엉뚱한데 툭 돌을 두는 경우가 있다. 응수하는 방법에 따라 실력을 평가하고 다음 전략과 전술을 세우겠다는 뜻이다. 정부가 민감한 정책을 구상하거나 중요 부처의 책임자를 임명할 때 여론과 언론의 반응을 미리 파악하기 위해 슬쩍 정보를 흘려보는 경우가 있다. 외교나 기업의 영업 관련 담판을 지을 때 상대방의 반응을 보기 위해 내부의 비밀 대화 내용이 유출된 것처럼 흘려버리는 전략이 있다. 일단 저지르고 상대방(고객) 반응을 보고 수습하는 전략들이다. 학교 선생님에게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이야기가 있다. 무슨 일을 하든 준비를 철저히 하고 목표를 정확히 조준해서 조심스럽게 목표를 향해 준비한 것을 발사하라는 프로세스에 관한 당부다. 훈련소의 사격장 풍경이다. 준비된 사수부터 조준 발사 개시~. 확성기에서 명령이 떨어지면 사선(射線)에서는 과녁을 향해 총알이 콩 볶듯 터진다대한민국의 군인들은 이렇게 준비 조준 발사의 단계를 거치면서 사격을 배운다. 스타트업은 실패 확률이 높다. 열 번 도전하면 한 번 정도 성공할까 말까 한 확률이다. 왜 그렇게 남이 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멍텅구리 같은 짓을 계속하는 것일까?"나는 다 알아" "나는 항상 옳아"라는 오만한 생각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보고 또 본 남들의 실수를 나도 똑같이 되풀이할 리가 없다.여기 똑똑하고 열정도 높고 도전정신이 강한 스타트업 기업가를 상정해보자. 어느 날 TV를 보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나름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혹시라도 나의 이 기발한 아이디어가 남에게 들키지나 않을까 조심하면서 열심히 인터넷을 뒤지고 도서관을 들락거린다. 이 어마어마한 아이디어를 어느 날 갑자기 펑 터트려 세상을 놀라게 하기 위한 전략과 준비를 시작한다. 이제는 고생도 끝이라는 생각과 함께 돈방석에 앉아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경영자가 되는 생각에 미소까지 짓기도 한다. 밤을 새워 제품을 개발하고 품질도 완벽하게 체크한다. 즉시 생산을 시작한다. 많이 팔릴 것을 확신하니 생산량도 넉넉히 하기로 하고 여기저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뛰어다녀보지만 투자를 받으려면 투자자에게 아이디어를 노출해야 하므로 돈을 빌려서 하는 쪽을 택한다. 실패하면 신용불량자가 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은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다. 홍보 마케팅 돌입과 동시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판매를 시작한다. 아이디어-제품개발-생산-홍보-판매의 경영학 책에 있는 과정을 그대로 물 흐르듯 따랐다. 제품은 한 톨도 팔리지 않았고 내가 고객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코빼기도 볼 수가 없었으니 쫄딱 망하고 신용불량자의 낙인이 찍힌 빚쟁이가 되었다. 준비 조준 발사의 정확한 가르침 데로 철저히 과정을 준수하였는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스타트업은 발사-준비-조준이 올바른 수순이다. 뚱딴지처럼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꼭꼭 숨기지 말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서 그들의 반응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수정 보완을 하여야 한다. 먼저 발사를 해서 반응을 보는 것이다. 이때 잠재고객에게 최소기능만을 보유한 MVP(Minimum viable product: 최소기능 제품)를 준비하여 고객들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적용 보완하여야 한다. 한번이 아니라 수차례 반복하여 실패 가능성을 제거하여야 한다. 제품생산 전에 고객이 누구이며 그들의 문제점(Pain Point)이 무엇인지 많은 연구 검토를 한 다음에 보완해야 할 미비점들을 철저히 반영한다. 여러 번의 수정 보완을 하는 발사 단계를 먼저 실천해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제품과 고객 간의 궁합을 맞추어 보는 것이다(Product market Fit라고함).세상에 아무리 좋은 옷도(제품) 몸에(고객)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이 기업가는 고객을 위한 제품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제품을 만든 꼴이니 망할 수밖에 없다. 사실 스타트업뿐만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발사)-준비-조준-발사가 제대로 된 프로세스이다. 다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괄호 속의 발사가 준비 앞에 있음을 볼 줄 아는 통찰력이 없을 뿐이다./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외대 외래교수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외대 외래교수

2018-11-18 주종익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습이불찰: 익숙하면서도 살피지 못한다

가족이나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습관은 보기 쉽고 알기 쉽다. 그래서 그에 관한 예측도 가능해진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자신이 습관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맹자는 사람들의 이런 경향에 대해 "행동하면서도 분명히 인지하지 못하며 익숙하면서도 살피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습관은 말 그대로 어떤 생각이나 행동이 익숙해져서 관성이 붙은 것이다. 눈에 보이는 행동뿐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도 습관이 있다. 행동은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에 행동으로 드러나는 습관의 뿌리는 생각에 있다. 더 넓게 말하면 마음에 있다. 습관이란 마치 물과 같아서 물을 독사가 먹으면 독을 뿜어내고 소가 먹으면 우유를 내놓는 것과 같아서 그것 자체는 중립이다. 익숙하게 길들여지는 원리는 중립이지만 그 내용이 무엇이냐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를 만든다. 애초부터 좋은 내용만 익숙하게 길들였으면 좋겠지만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떤 습관은 좋지만 어떤 습관은 좋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성찰(省察)이니 성찰은 반성과 관찰이다. 반성은 성찰의 방향을 자신 내부로 되돌리는 것이고 관찰은 그렇게 되돌려서 제대로 보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비유하면 반성은 방향의 전환이고 관찰은 살피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물건은 방향이 제대로 잡히고 힘이 가해지면 그리로 가게 되어있다. 일상의 습관에 대해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1-14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들국화

산등선 외따른데,애기 들국화바람도 없는데괜히 몸을 뒤누인다.가을은다시 올 테지.다시 올까?나와 네 외로운 마음이,지금처럼순하게 겹친 이 순간이천상병(1930~1993)늦은 11월까지 꽃을 피우는 들국화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국화과 식물을 두루 일컫는 보통명사다. 산과 들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절초, 쑥부쟁이, 감국, 산국 등과 같이, 가을에 등장하는 이러한 꽃을 들국화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이 식물마다 꽃말이 다른데, 구절초는 가을 여인, 쑥부쟁이는 기다림과 그리움, 감국은 가을의 향기, 산국은 순수한 사랑 등 다양하다. 국화과 식물들의 특징으로 작고 가녀린 형체를 떠올릴 수 있는데, 화자는 이름 모를, 이 꽃을 '애기 들국화'라고 하는 것. 이 시는 산등선 외딴곳에 얼굴을 내민 '애기 들국화'와 시선을 마주치면서 시상이 확장되고 있는 점이다. 어느 늦은 가을날 "바람도 없는데" 몸을 눕히는 연약한 들국화를 보면 언젠가 저렇게 홀로 시들어 갈 인생과 겹쳐져 '나'와 '들국화'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심상. 그것은 우리의 내면에 깃든 '애기 들국화'와 동화되어 안쓰러운 마음이 절로 생기게 되는 것이다. 잠시 생명에의 기쁨을 주고 가는 들국화에게서 "나와 네 외로운 마음"을 달래듯이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작고 적은 것들 속에서 '순하게 겹친 이 순간'을 크고 많은 것들로 바꾸어 보라. 당신의 향기로움은 "다시 올 테지"라고 처음 만난 타인일지라도 그 영혼 속에 남아 기다림을 간직하게 되리니.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1-12 권성훈

[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노발충관(怒髮衝冠)

쉽게 성을 내고 화를 삭이지못하는 분노조절 장애 발생이갈수록 늘고 있다그러나 터무니없이자신과 타인에게 날리는 묻지마식 노여움의 하이킥은현대인의 이성을 마비시킨다노발충관(怒髮衝冠)은 격렬한 분노에 머리털이 관을 밀어낸다는 뜻이다. 특히 배반당한 모욕감에 몹시 성이 난 모양을 비유하는 말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화가 나야 털이 뻣뻣이 일어날까. 누구든 노발충관 상황에 직면하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치밀어 오른 감성이 합리적 이성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연인에게 배신당한 여성이 날린 분노의 하이킥이 에일리가 부른 '보여줄게'(작사·강은경 작곡·김도훈/이현승) 곡목 가사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화자는 남자로부터 버림받은 여자로 등장한다. 자신의 연인과 '함께한 날이 얼마인데'라고 스스로 비웃으며 연인을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다. 또한 저 멀리 흘러간 '시간이 억울해서 자꾸 눈물이' 두 뺨을 적신다. 남자가 그녀 곁을 떠난 이유는 또 다른 여자가 남자 앞에 홀연히 나타났기 때문이다. 화자 자신이 사준 옷을 입고 향수를 뿌리고 새 여자를 만나 히히덕거리며 웃는 남자의 불쾌한 모습을 그녀는 상상한다. 그 후 번민의 시간이 지나고 그녀는 거침없는 발차기를 남자에게 날린다. 말하자면 구남친 퇴치를 위한 선전포고를 한다: '더 멋진 남잘 만나 꼭 보여줄게/너보다 행복한 나/너 없이도 슬프지 않아/무너지지 않아/boy you gotta be aware'. 여자는 이제 자신의 곁을 떠난 남자의 잔상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거하려 한다. 그리고 기약 없는 먼 훗날 남자에게 '완전히 달라진 나'를 반드시 보여주겠다는 보복 의지를 굳게 다진다. 또한 지금부터 '바보처럼 사랑 때문에' 떠나버린 연인 때문에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말한다. 결국 여자는 남자로부터 받은 반지를 버린다. 연애편지도 모두 지우고 '미련 없이 후회 없이' 모두 잊겠다고 선포한다. 아울러 여자는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화장도 새로 고치려 한다. 일부러 '하이힐에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신의 남자였던 '널' 만나면 '놀란 니 모습 뒤로 한 채 또각또각' 걸어가겠다고 단단히 벼른다. 그리고 치명적인 하이킥을 작렬 시키겠다고 울분을 토한다.이소라가 부른 '화'(작사·이소라 작곡·UNKNOWN) 노랫말 속에도 노발충관의 진노가 드러난다. 곡목 '화'의 첫 가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난 뭐든지 너무 쉽게 화가 나/그럴 땐 추악해/아직도 치밀어 와/'. 화자는 왜 이렇게 자신에 대해 화를 내는 걸까. 왜 화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노발대발하는 걸까. 과거 연인으로부터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걸까. 아니면 씻을 수 없는 '기억'이 그녀를 억압하고 있는 걸까. '비틀어진' 마음이라고 스스로 조언을 해도 '내가 날 막을 수' 없다면서 자신을 극도로 부정한다. 망각의 저 편 '어둠' 속에서 '날이 선 가위로' 화자에게 뼈아픈 '기억'이 다가온다. '남 모르게' 불끈 성이 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인내의 임계점을 넘어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상황까지 다다른다.화자는 누구의 그 어떠한 말도 아직까지 '지금도' 불신하기 때문에 주의 깊게 경청하려 들지 않는다. '내가 날 막을 수 없어/죽임 같은 거/아무도 믿을 수 없어 지금도/'. 화가 홀아비 동심(動心)하듯 치밀어서 분노한 머리털이 화자의 관을 밀어내는 모습은 노발충관 그 자체이다. 이처럼 자신뿐만 아니라 연인으로부터 당한 배신감은 영국 작가 에밀리 브론테의 명작 '폭풍의 언덕'에 등장하는 광기의 주인공 히스클리프를 연상시킨다. 자신의 사랑을 배신한 캐서린과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에 대한 잔인한 복수심에 불타 인생의 파멸에 이르는 히스클리프! 제어할 수 없는 분노에 가득 찬 21세기형 현대판 노발충관의 화신인 듯싶다. 요즘 쉽게 성을 내고 화를 삭이지 못하는 분노조절 장애 발생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최근 발생한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과 부산 일가족 살인사건 등이 적절한 예이다. 의학적으로 분노 호르몬이 분비되면 뇌신경이 흥분하고 호흡이 가빠진다고 한다. 그러나 터무니없이 자신과 타인에게 날리는 묻지마식 노여움의 하이킥은 현대인의 이성을 마비시킨다./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2018-11-11 고재경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정위응명: 자기의 바른 자리에서 소명을 완성하라

命의 갑골문의 본래 글자는 명령 령(令)자이다. 명령 령(令)자는 삼각형 모양의 모을 집( )아래에 영어의 p자형태의 병부 절( )로 되어있다. 모을 집( )자는 덮개를 의미한다. 작은 경우는 모자에 해당하고 큰 경우는 사람이 거처하는 건물[궁궐, 대궐, 조정...]을 의미한다. 병부 절( )자는 사람 인(人)자의 변형으로 사람이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한 사람이 무릎을 꿇고 명령을 내리는 것인데 그 의미를 확실히 하기 위해 입 구(口)자가 첨가되어 명(命)이 되었다. 명령(命令)의 의미이다. 명령(命令)이란 글자에 들어있는 절( )은 무릎의 마디를 의미하는 마디 절(節)의 의미가 파생되었다. 대나무 마디를 가지고 옛날에는 병부(兵符)를 만들었다. 명(命)자에서 건물 안에서 명령을 내리는 가장 높은 사람을 '임금'으로 보는데 그러면 임금의 명령이 된다. 옛날에 임금이나 명령권자가 명령을 내릴 때 쓰던 도구를 병부(兵符)라고 한다. '병부'는 주로 병력을 동원할 때 쓰던 도구이다. 대나무를 두 조각으로 나누어 만들었다. 조선시대의 경우는 반쪽 나뭇조각은 관찰사나 절도사 등이 보관하고 나머지 반쪽 나무는 궁중에서 보관했다. 군대(軍隊)를 동원(動員)하는 표지(標識)로 쓰이던 동글납작한 나무패로 병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을 때 명령을 내리는 임금이 교서와 함께 한 쪽 나무 조각을 보내면 관찰사나 절도사는 그것을 자기가 보관하고 나머지 반쪽과 맞추어보고 틀림없을 경우 병력을 동원했다. 병부(兵符)는 봉화(烽火)와 더불어 통신(通信)체계의 원형이기도 하다. 우리는 명령(命令), 천명(天命), 생명(生命), 수명(壽命), 성명(性命), 운명(運命) 등등을 이야기한다. 명은 주어지는 면도 있고 그것을 인식하는 면도 있고 그것을 이행하는 면도 있고 변화시키는 면도 있다. 어떤 의미이든 현실에서 각자의 소명을 잘 알고 그것을 완성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천명을 알고 이루는 길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1-07 철산 최정준

[김나인의 '생활관상']선행인지 악행인지 묻고싶거든 음덕문(陰德門) 형상을 보라

눈 밑 누당 부위가 어두컴컴하거나불그레한 좀살이 돋아나면도(道)를 지나친 악행의 흔적이는 하늘이 노해 징벌 내린것으로 절대 속일 수 없다는 증거인간의 행위는 행(行)하는 업(業)에 따라 선(善)이 되기도 하고 악(惡)이 되기도 하는데, 그에 대한 과보(果報)는 하나도 빠짐없이 하늘이 응하여 밝고 선명한 자색의 기색을 누당(눈 밑)에 머무르게 한다. 그 사람에게 하늘에서 보은이 내림을 일러주는 곳을 음덕문(陰德門)이라 하는데, 눈 밑 부위가 그곳이다.세상(世上)의 일은 원인(原因)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結果)를 낳게 되는 것이고, 결과는 원인 없이 생겨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이 평소 행하는 행위의 결과는 복록으로 이어지고, 때로는 응징의 징벌로 내려지는 것이니, 눈 밑 누당 부위가 검은 먹구름 같은 어두컴컴한 기색이나 또는 굴뚝에서 나오는 탁한 연기와 같은 희끄무레한 기색으로 가득 차오르거나, 불그레한 좀살이 돋아나고 어지럽게 가로세로 줄 문양이 생겨나면, 도(道)를 지나친 악행의 흔적이다. 이는 하늘이 노하여 인간을 대신하여 징벌을 내리는 것이니, 인간과 세상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늘은 절대 속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눈 밑의 형체와 기색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행한 모든 과업의 흔적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숨어서 몰래 행하는 악업(惡業)은 들어오고 나가는 문을 순간은 알 수 없으나 악업이 쌓이고 쌓여 그 도(道)를 넘어서면, 화흉(禍凶)이 되는 것이니, 어찌 선을 행하고도 고통의 과보라 말할 것이며, 남 몰래 행하는 악행 역시 그 문이 열리는 것을 쉽게 알 수 없으나, 선업(善業)이 쌓여 하늘에 닿으면 길복(吉福)이 되는 것이니, 어찌 하늘이 이를 외면하겠는가. 그 사람이 행하는 모든 행위의 결과는 반드시 과보로 남겨지게 되는 것이고, 눈가 밑에 고스란히 흔적으로 남아 음덕문이 이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노자는 도덕경을 통하여 '하늘은 성글어도 인간 행위 하나하나 절대로 놓치는 일이 없다'고 하였다. 음덕문은 마음의 바탕에 기준하여 열리고 닫히는 것이며, 그 행위가 선행인지 악행인지에 따라 흔적을 남기는 일이니,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행동은 진정한 의미에서 선행이라 보기는 어렵다 할 것이다.세상에 나올 때 누구라도 자신이 직접 부모를 결정하고 얼굴형체를 만들고 나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며, 부모라는 인연이 만들어준 하나의 생명체로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부유한 부모를 두는 것도, 가난한 부모를 두는 것도 모두가 전생(前生)의 업보(業報)에서 출발하여 현생(現生)의 과보로 이어지는 일이니, 인간의 능력과 의지에 물을 일이 아닌 것이다. 이마가 풍륭하고 넓은 것도, 이마가 좁고 낮은 것도 눈썹이 수려하고 단정한 것도, 건강한 몸도 병약한 몸도 자신이 직접 만들어 세상에 나온 것이 아니기에 선과 악의 업보로 윤회를 통하여 또 다른 현생으로 이어지는 과보의 결과물을 갖고 태어나는 일이니 얼굴의 형체에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다. 전생의 과보는 그렇다 치더라도, 그렇다면 한 번 부여받은 명운(命運)은 절대 변화시킬 수도 바꿀 수도 없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그 사람의 얼굴의 체형과 짜임새는 선천적(先天的)인 명운이기에 쉽게 바꿀 수는 없는 일이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그 사람의 행동이나 마음가짐에 따라 눈동자의 빛과 얼굴의 기색은 얼마든지 변화되고 바뀌게 되는 것이다. 어렵고 고단한 살림살이라도 성정이 맑으며, 얼굴 기색이 밝고 깨끗하면 하늘이 음덕을 베풀어 장차 부귀를 취할 사람이니, 좋은 환경을 만나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관상을 살필 때는 그 사람의 외형만 취하지 말고, 마음의 바탕인 심상(心相)을 잘 헤아리고 살피라 하는 것이다. 남을 자신의 몸과 마음처럼 아끼고 돌보며 선업을 즐겨 하는 사람에게는 음덕문이 열려 현생의 길을 밝게 비춰주는 것이니, 어찌 이마가 좁고 코가 부실하고 턱이 빈약하다 하여 부귀공명과 무관한 사람이라 하겠는가.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며 돕고 손잡아 주는 일은 얼굴의 생김새에 묻는 일이 아니라 심성에 물을 일이다. 이런 사람의 관상을 보면 비록 삶이 곤고하고 넉넉지 않아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누당의 기색이 밝아오며 눈빛의 광채가 은은히 뻗어나면 그 사람의 내적 가치를 알 수 있는 것이니, 어찌 이런 사람의 심상을 100억에 비하겠는가./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김나인 한국역리연구소 소장

2018-11-04 김나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저양촉번: 숫양이 울타리를 부딪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서로 고육지계(苦肉之計)로 들어섰다. 그 둘 가운데 낀 나라의 경제적 손실과 심리적 불안도 더해간다. 일종의 힘겨루기인데 너무 나가는 것 아닌가 싶다. 주역에서 힘을 쓰는 도리나 상황에 대해 羊을 가지고 말해놓았다. 여기에서의 양은 뿔 달린 염소를 이야기한다. 羊은 겉으로 유순해 보이지만 속에는 강한 힘과 고집스러운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런 양이 자신이 지닌 힘을 과시할 때 벌어지는 상황을 저양촉번(저羊觸藩)이라고 묘사하였다. 숫양이 울타리를 부딪친다는 뜻이다. 양을 키우기 위해 만든 것이 울타리인데 여기에서 울타리는 일종의 한계와 경계를 뜻한다. 양이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사용하게 되면 울타리를 들이받아 부딪치는데 그러다가 뿔이 울타리에 걸려 빼도 박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런 것이 저양촉번(저羊觸藩)이다.주역에서 羊은 태괘(兌卦)에 해당하고 방위로는 서방(西方)에 해당하고 현재 나라로는 서양의 강대국을 상징한다. 대표적으로는 羊자가 들어있는 아름다울 美자인데 美를 파자(破字)하면 대양(大羊)으로 큰 양이다. 나라로는 힘센 대국인 미국(美國)이다. 아무리 경제에 문외한이지만 벌어지는 꼴을 보자니 꼭 숫양이 울타리를 들이받아 넘어가고 싶은 모양새다. 그러나 보이는 한정된 이 세계에는 보이지 않지만 무서운 울타리가 존재한다. 그 보이지 않는 울타리는 인과의 섭리라고 할 수 있는데 내게서 나간 것은 반드시 나에게 돌아오게 되어있다. 백지를 기계로 돌려 무한정의 화폐를 자기들 마음대로 찍어내는 대국이라지만 그런 대국도 이 인과의 섭리를 어기면 멀지 않아 저양촉번(저羊觸藩)의 꼴을 당할 것이다. 대국을 자처하는 중국의 동북공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10-31 철산 최정준

[시인의 꽃]따알리아

가을 볕 째앵 하게내려 쪼이는 잔디밭.//함빡 피여난 따알리아.한낮에 함빡 핀 따알리아.//시약시야, 네 살빛도익을 대로 익었구나.//젖가슴과 부끄럼성이익을 대로 익었구나.//시약시야, 순하디순하여다오.암사심처럼 뛰여 다녀 보아라.//물오리 떠돌아다니는힌 못물 같은 하늘 밑에,//함빡 피여나온 따알리아.피다 못해 터저 나오는 따알리아정지용(1905~?)국화과 여러해살이 풀인 다알리아(Dahlia) 꽃은 멕시코가 원산지로 스웨덴의 식물학자인 A. Dahl을 기념하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7~11월 사이 개화하는 이 꽃에 얽힌 전설이 전해진다. 영국의 고고학자들이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연구하던 중 한 여자 미라를 발견했는데, 그 손에 꽃 한송이가 있었고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그 꽃은 산산조각이 나면서 꽃씨가 되어 떨어졌다. 이를 영국으로 가져와 모종을 했더니 싹이 자라서 꽃이 피었는데, 이 꽃을 재배했던 식물학자 '다알'의 이름을 따서 '다알리아'라고 호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한창 '가을 볕 째앵 하게/내려 쪼이는 잔디밭'에 "함빡 피여난 따알리아"를 보면 살갗이 익을대로 익은 '색시 젖가슴'처럼 부끄러움도 없이 자태를 드러낸다. '순하디 순한 암사슴'같이 '연못가에 함빡 핀' 물오른 이 꽃의 꽃말은 화려, 우아, 감사 등으로 사람들 입가에서도 피어난다. 누군가에게 화려함으로, 우아함으로, 감사함으로 "피다 못해 터져 나오는" 다알리아를 보면 나는 어떠한 꽃으로 피어나 있는가, 자문하게 된다. /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10-29 권성훈

[조성면의 '고서산책']넘버원 애장서, '문학의 논리'

임화의 빼어난 평론집으로우리 문단·정치·비평이론사를좌우 종횡으로 연결하는사통팔달의 문화 허브이자문학사의 보고라 할 수 있다고서 시장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장르는 시집이다. 다음이 소설이요, 평론집은 그다음이다. 이 같은 가격의 하이어라키를 수긍하기 어렵지만, 현실은 그렇다. 그렇다고 평론집들이 시장에서 다 죽을 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임화의 '문학의 논리'(1940)나 최재서의 '문학과 지성'(1938)은 시집 못지않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임화의 '문학의 논리'는 한국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임화는 한국근대비평사의 '별'이자 한국문학연구자들이 넘어야 할 '벽'이다. 임화는 누구인가. 그는 불꽃같은 삶을 산 문학인이었다. 시집 '현해탄'(1938)을 남긴 시인이자 탁월한 외모로 네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주연을 맡기도 했던 '조선의 발렌티노'였다. 또 독일 표현주의 영화에 대한 평론을 비롯해서 모두 18편의 영화비평을 남긴 전방위적 문학평론가였고, 카프 서기장을 역임했으며, 해방공간에서 '조선문학가동맹'의 창설을 주도한 진보문학운동의 이론가요 지도자였다. 월북해서 남로당계 문인으로 활동하다 '미제 스파이 혐의'로 북한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의 거장인 마츠모토 세이쵸는 임화의 이 비극적인 삶을 소재로 한 추리소설 '북의 시인'(1962)을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연구들을 보면, 임화가 부당한 마녀사냥식 재판에 항거한 것으로 나와 있다. 군사재판을 받던 도중 안경알을 깨서 오른팔 동맥을 끊어 자살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1953년 8월 6일 사형 판결을 받기는 했으나 실제로 사형이 집행된 것은 1956년이었다는 새로운 주장도 있다. '문학의 논리'는 지금 봐도 여러모로 문제적인 평론집이다. 빼어난 논리와 평론가적 안목도 돋보이지만, 루카치 · 발자크 · 프리체 등 서구의 유명작가와 이론가들의 저작들이 인용되거나 활용되고 있으며 여기에 문화인류학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등 지금 봐도 놀라운 첨단의 평론집이었다. 임화의 공식학력은 보성고보 4학년 중퇴가 전부이나 카프 초기를 주도했던 회월 박영희와 '무산자사'의 리더 이북만의 각별한 뒷받침이 있었다. '조선소설사'로 유명한 김태준, 역사철학자 신남철, 영문학도였던 시인 임학수 등 경성제국대학 출신 학자들은 물론 당시 문단의 거목이었던 월탄 박종화와도 깊은 교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지적 배경이 필시 그를 최고의 평론가로 키워냈을 것이다. 얼마 전 '화봉문고'의 고서 경매에 연속해서 출품됐던 2권의 '문학의 논리'가 잠시 세간의 눈길을 끌었다. 임화가 자신의 평론집에 서명하여 회월과 월탄에게 선물했던 책이 각각 두 달의 시차를 두고 경매시장에 나왔던 것이다. 인천근대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문학의 논리'는 임화가 시인 임학수에게 증정한 서명본이라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임화의 문단 인맥과 교류의 양상을 말해주는 귀중한 자료들이다. '문학의 논리' 초판본은 1940년 최남주가 사주로 있던 학예사에서 출판됐다. 사주는 최남주이나 운영은 임화가 도맡았다. 평론집 표지 디자인과 장정은 근원 김용준의 솜씨다. 근원 김용준은 화가이자 미술사가로서 유명할 뿐 아니라 '근원수필'이라는 베스트셀러 수필집을 낸 문필가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문학의 논리'는 빼어난 평론집일 뿐 아니라 우리 문단사와 정치사와 비평이론사를 좌우 종횡으로 연결하는 사통팔달의 문화 허브이자 우리 문화사의 안팎을 연결하는 문학사의 보고라 할 수 있다. 1986년 초가을 무렵 처음으로 임화의 평론들을 접하고 난 뒤 '문학의 논리'는 필자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서슬 퍼런 겨울공화국 시대 그 이름조차 금기였던 상황이었는지라 복사본과 영인본만으로도 마냥 행복해하다가 30년여의 세월이 흐른 뒤에 원본 소장의 꿈을 이룬 필자의 넘버원 애장서가 바로 임화의 '문학의 논리'이다./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조성면 문학평론가·수원문화재단 전통교육팀장

2018-10-28 조성면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