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수기득리: 그릇 따라 이로움을 얻는다

사람들이 세상에 나올 때는 다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타고난다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이제까지 줄곧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져 왔다. 즉 아무리 가난하게 태어났어도 다 자기 먹을 복은 있기 때문에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사회로 진입하면서 이 속담을 비관적인 의미로 보는 그런 경향이 나타났는데, 최근의 '금 수저 흙 수저' 타령이 대표적이다. 내가 태어날 때 내 그릇과 수저가 부모대로부터 이미 결정되었기 때문에 태어난 후에 내가 바꿀 수 있는 인생의 여지는 적다는 한탄과 자조가 섞인 말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릇이 최소한의 자신(自信)의 의미가 아니라 나의 의미와 노력을 무력화시키는 포기(抛棄)의 의미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릇타령과 관련해서 의상의 법성게에서 수기득리(隨器得利)라고 하였다. 이 말은 가뭄에 하늘을 꽉 채우는 비가 내려도 그 비를 받을 그릇의 용량에 따라 이익을 얻으니, 사람도 나에게 유익함이 오냐 오지 않느냐를 탓하는 대신 그것이 왔을 때 담을 수 있는 자신에 맞는 기량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말을 개인적 차원의 기량 뿐 아니라 공동체적 공감과 합의에 의한 사회적 기량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결국 눈이 있어도 감고 있으면 보이지 않고, 보고 싶어도 눈이 없으면 보이지 않듯이, 사람의 그릇도 선천적으로 정해지는 측면도 분명히 있지만 그 후천적인 기량이나 쓰임새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7-05-02 철산 최정준

[시인의 연인]5월

어떻게 하라는 / 말씀입니까.부신 초록으로 두 눈 머는데진한 향기로 숨 막히는데마약처럼 황홀하게 타오르는 육신을 붙들고나는 어떻게 하라는 / 말씀입니까.아아, 살아 있는 것도 죄스러운푸르디푸른 이 봄날,그리움에 지친 장미는 끝내가시를 품었습니다.먼 하늘가에 서서 당신은 / 자꾸만 손짓을 하고.오세영(1942~)눈에 보이는 것은 시선 안에 놓인 것만 본다는 것이다. 반대로 보자면 시선 밖은 제외하고 보는 것으로써 어쩌면 우리는 모래알보다도 작은 '근시적 시안'를 가졌다. '푸르디푸른 이 봄날' 푸름이 더해가는 5월 역시 '부신 초록'을 바라보는 것에 주목하고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한 향기로 숨 막히는' 세계를 응시하게 만든다. 그것은 초록을 들여다보면 사물들이 죽고 썩어서 그 형체가 사라진 흙에서 얻은 양분으로 5월의 푸름을 일궈내는 것이다. 따라서 5월의 뿌리는 죽음이 되는 것으로써 그것을 깨닫는 순간 5월은 죽은 '육신을 붙들고' 땅에서 '마약처럼 황홀하게 타오르는' '죽음의 색채'로 파고든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은 '아아, 살아 있는 것도 죄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며, '먼 하늘가에 서서'보면 당신의 곁에서 사라져간 당신이 '자꾸만 손짓을 하고' '장미의 가시'로 찔려오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오세영(1942~)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4-30 권성훈

[고영직의 여시아독(如是我讀)]우리 안의 '먹고사니즘'

김훈 소설 '공터에서'는 우리 안의 '먹고사니즘'에 관한 소설이다. 먹고사니즘은 오로지 지금 당장 나와 내 가족의 끼니를 해결하며 사는 일이 하나의 신앙처럼 작동하는 마음의 생태학을 이르는 말이다. 소설 속 마동수-마장세·마차세 부자(父子)는 먹고사니즘의 생생한 문화적 실체라고 간주할 수 있다. 1910년생인 마동수는 일제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분단과 군사독재 시절 내내 자신의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지만, 끝내 자식들에게 발 디딜 곳 하나 물려주지 못한다. 한국전쟁 당시의 표어 '식량 문제는 각자 해결하자!'라는 구호는 어쩌면 마동수 세대가 처한 굶주림에 대한 공포를 잘 요약한다. 마동수가 임종을 앞두고 일제 시절 만주 길림으로 떠난 형 마남수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술회하는 대목은 소설의 핵심적 전언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때,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마동수와 그 세대의 삶에서 '생활'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직 '생존'의 공포가 마동수 세대의 삶을 압도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마동수의 후속세대인 마장세·마차세의 경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베트남전쟁 당시 전우 김정팔을 사살하고, 괌에서 고철무역을 하며 지내는 마장세는 누구보다 '물적 토대'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범죄를 저지르는 것 또한 당연시한다. '먹이'를 벌기 위해 오토바이 배송을 하는 마차세 또한 '쯩(證)'도 없고 줄도 없기 때문에 세상 질서에 활착(活着)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한마디로 말해 오직 생존의 논리만이 마장세·마차세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셈이다. 그런 마차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 김훈은 "사냥감은 보이지 않았고 사냥감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고 흘러갔다"라고 쓰고 있다. 김훈의 '공터에서'는 지금은 노년 세대가 된 전후 세대의 삶을 통해 오로지 '밥이 노선'이 되어버린 지금·여기의 현실을 묘파하고자 한 소설이다. 작가는 마동수-마장세·마차세라는 인물을 통해 개인의 진실이 그대로 역사의 진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환기하고자 한다. 어느 누구도 한 개인의 인생과 내력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개인의 진실을 절대화하려는 지금·여기 노년 세대의 의식과 무의식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더 집요하게 탐사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심판 이후에도 태극기 집회를 개최하며 불복하는 어버이연합 어르신들의 행태란 결국 먹고사니즘이란 반(反)지성주의에 다름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던가. 오히려 자신만의 아상(我相)을 고집하려는 노년 세대의 행태와 심리에 더 철저히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른바 꼰대 문화의 본질은 개인의 진실을 강변하고 후속세대에게 강요하려는 마음의 태도와 습관에서 비롯한다. 물론 소설 '공터에서'는 영화 '국제시장'의 경우처럼 노년 세대의 자기 합리화를 위한 알리바이로서의 독백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보며 노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이 부재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개인의 진실과 역사의 진실을 하나로 일치시키려는 지행합일의 삶의 양식을 다루는 노년문학은 불가능한가./고영직 문학평론가고영직 문학평론가

2017-04-30 고영직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고양생제: 마른 버드나무에 싹이 난다

동양의 고전에서 과(過)라는 글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일단 지날 과로 지나갔다는 뜻이다. 통과(通過)나 과거(過去) 등에 쓰인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지나쳤다는 뜻이 되는데 지나쳤다는 것은 적절함의 기준선을 지나쳤다는 뜻으로도 이해되기 때문에 과오(過誤)나 허물의 뜻으로 쓰인다. 동시에 일정한 기준선에서 지나쳤기 때문에 그만큼의 차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주역에 대과(大過)라는 괘가 있는데 보통수준보다 지나치거나 차이가 많이 난다는 뜻을 내포한다.그 대과(大過)라는 괘에 "마른 버드나무에 싹이 난다"는 뜻의 고양생제(枯楊生제)란 말이 나오는데 세속에서는 회춘의 의미로도 가끔 쓰는 용어이다. 그런데 이 말 속에는 '생명계승'의 뜻이 들어있다. 하나뿐인 목숨을 어떻게 잇겠는가마는 개체단위의 종족번식의 차원에서는 가능한 표현이다. 그 안에는 단순히 '생명계승'의 의미뿐 아니라 '정신계승'의 뜻도 들어있다. 꺼져가는 생명을 후손을 통해 잇거나 희미해져가는 정신을 후계를 통해 이을 때 쓰기도 한다. 지금은 생명도 연장하는 과학의 시대를 경영할만한 적절한 정신계승의 문제가 요청되고 있다. 오래된 나무에서 새싹이 나듯이 오래된 고전에서 새로운 사상의 싹이 등장해야 할 때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7-04-25 철산 최정준

[시인의 연인]사랑 이미지… 직선과 곡선

직선의 힘으로 남자는 일어서고곡선의 힘으로 여자는 휘어진다직선과 곡선이 만나 면이 되고 집이 된다직선은 길을 바꾸고 지도를 바꾸지만곡선은 그 길 위에 물 뿌리고 꽃을 피운다서로가 만나지 않으면 길은 길이 아니다이지엽(1958~)무엇이 된다는 것은 역학적으로 다른 하나가 또 다른 하나를 만나는 것이다. 직선이 직선을 만나거나, 곡선이 곡선을 만났을 때에는 1차원적인 연장선에 지나지 않지만 직선이 곡선을 만나 서로의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2차원적 '면이 되고' 3차원적 '집이 된다' 뿐만 아니라 '직선'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은 "길을 바꾸고 지도를 바꾸지만" "그 길 위에 물 뿌리고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은 '곡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직선이라는 남성성과 곡선이라는 여성성이 화합하여 어떤 것을 창조해낸다. 이른바 태생적으로 직선은 곧지만 구부러지기 쉽고, 곡선은 부드럽지만 강하지 못한 점들을 상호 보완하는 생명성을 가졌다. 혼자 이루어질 수 없는, 우리의 사랑도 그런 것이다. "서로가 만나지 않으면"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길 가운데 어디쯤 당신의 사랑도 '직선의 힘'으로 일어서거나, '곡선의 힘'으로 휘어지고 있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이지엽(1958~)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4-23 권성훈

[손경년의 늘찬문화]새 정부의 새로운 문화정책 기대

원래대로라면 공직자선거법에 의해 제 18대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기 70일 전인 2017년 12월 20일에 대통령 선거가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대통령의 파면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을 겪음으로써 3주 후에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되었고, 이와 함께 각계각층에서는 새 정부에게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문화정책영역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간의 정책을 재검토하고 더 나아가 '문화민주주의'의 성장기반이 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제기되었던, 그럼에도 허약함이 여전했던 지속가능한 예술생태계 조성, 예술의 사회적 권리 확대, 예술인 사회보장제도, 생활문화 활성화, 시민참여형태의 문화정책 수립기반 마련 등의 의제가 다시금 수면 위에 올라와 있다. 레이몬드 윌리엄즈가 '키워즈(Keywords)'에서 '문화는 영어(English)에서 가장 복잡한 두 세 단어 중 하나'라고 말했듯이, '문화'정책은 여타 정책과 비교해 볼 때 당장의 효과를 보기 어렵고, 궁극적으로 우리 삶의 양식과 깊이 관계하고 있어서 만만치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문화예술의 가치와 힘은 공동체 의식과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시키는 데 있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지금' 제대로 된 문화정책 수립을 통해 삶의 조건을 다시금 구조화하고 미래의 삶을 주체적으로 구성하는데 애를 써야 할 것으로 본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일상화로 젊은 세대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는 이득도 있지만, '유동하는 세계'에서의 우리는 '거짓말과 환영, 쓰레기, 폐기물 같은 껍질들을 분리해내서 읽을 만한 낟알과 진리의 낟알을 뽑아내도록 도와주는 탈곡기가 없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바우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혜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정체성을 재부팅하는 상황'을 제대로 진단하도록 하고 '보다 많은 양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즐거움의 질을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깊은 성찰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이렇듯 거시적인 사회 변화 현상과 정치적 변동을 직면한 우리는 예술적 자유를 인식하고 보호하는 것이 예술가의 존재와 창조적 행위의 보장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 문화 분야 전문가들의 책임, 더 나아가 우리 모두의 삶과 상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문화적 표현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즐거움을 주고받는 것 이외에, 그 과정에서 사회적 문제를 논의하고 또 주변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정책은 이러한 인식적 흐름을 토대로 예술적 자유 및 표현과 관련하여 예술가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주체적 참여를 장려·보장하는 것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는 새로운 정책을 펼칠 것이며, 정책이 수행되는 공적기관의 자리를 채우는 새로운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라는 공자의 말씀이 있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것, 타인과의 공명과 공감대를 갖는 것, 모름지기 국민의 힘으로 만들어 낸 새 정부에서의 대통령, 장관, 국가 공무원, 공공기관의 장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

2017-04-23 손경년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역소임중: 힘은 작은데 짐이 무거움

내가 지니고 있는 역량과 내가 원하는 일이 어느 정도 걸맞지 않으면 그 일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그런 현상에 대해서 주역에서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 방면에서 예를 든다. 하나는 덕(德)과 지위의 문제로 덕은 박한데 지위만 높은 경우 실패하기 쉽다. 또 지혜는 적은데 도모하는 일이 클 경우도 실패하기 쉽다. 또 하나의 예는 힘은 작은데 들고 가는 짐이 무거운 경우이다. 그런데 이런 사례는 밥을 지어먹는 과정에서 상징적으로 비유된 것이다. 주역에서는 옛날 솥에 밥을 짓는 과정을 여섯 단계로 보았다. 첫 단계는 솥에 남은 찌꺼기를 버리는 단계이다. 두 번째 단계는 솥에 물을 붓고 새 음식재료를 넣은 단계이다. 세 번째는 솥이 벌겋게 달아올라 기다리는 단계이다. 네 번째는 솥의 그릇이 작은데 지나치게 많은 음식물이 들어있으면 음식이 밖으로 쏟아져 내려 못 먹게 되는 경우이다. 다섯 번째는 적절히 음식이 잘 익어서 먹을 만하게 된 단계이다. 마지막은 솥을 옮겨서 함께 밥을 먹는 단계이다. 이 가운데 위 사례는 네 번째 단계를 상징적으로 비유해서 말한 것이다. 결국 그릇의 용량이 작은데 너무 많이 넣지 말라는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7-04-18 철산 최정준

[주종익의 스타트업]스타트업과 창업은 다른 것이다

스타트업, 사업자 등록없이 투자 받아 협업美대학, 실패 두렵지 않은 기업가 정신 키워창업, 자기 자본 비즈니스 플랜 철저히 짜야BC(기원전)와 AD(기원후)는 2000여년 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한 시대의 가르마 타기이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어제 뜨던 해나 오늘 뜨는 해는 어김없이 동쪽에서 뜬다. 인간들은 현실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는 일에 대해 왜 마치 머리에 가르마를 타듯 선을 긋고 싶어하는 것일까?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생각은 많은데 행동은 늘 그 생각을 따르지 못한다. 그리고 반성과 후회하는 존재이다. 그러면서 혼란스러워하고 찝찝해한다. 인간은 이러한 혼란스러움을 견디지 못한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이 혼돈에서 질서를 찾으려는 노력이며 이것이 철학이다 (Chaos to Cosmos).1월 1일이 되면 인간들은 지난해의 혼란스러운 미완성의 찌꺼기들을 잊고 싶다. 그리고 새 기분과 다짐으로 새롭게 시작해서 이번에는 꼭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생각하는 바를 이루어 내려고 한다.2007년은 인류역사 특히 IT산업의 흐름에 대단히 중요한 해이다. 애플의 아이폰이 이때 나왔다.이제 우리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 2007년 이전은 BC이고 2007년 이후는 AD이어야 한다. 2007년 이전의 지식 경험 생각 등은 모두 버리고 2007년 이후의 생각으로 살아야 4차 산업혁명을 이겨 나갈 수 있다. 식당에서 밥 먹기 전에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내는 것이 지금은 당연하지만 10년 전에는 없던 일이다. 언제 우리가 이런 세계에 살았는가? 오래된 것 같지만 10년밖에 안됐다. 스타트업과 창업은 다른 것이다. 창업은 BC이고 스타트업은 AD이다. 원래 창업이란 내 사업을 만들고 경영하는 모든 행위를 총칭하는 보통명사다. 이런 의미에서는 스타트업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가 통상 젊은이들이 졸업 후 취업하는 대신 자기 사업을 한다는 뜻의 좁은 의미의 창업을 말할 때는 창업보다는 스타트업이라고 해야 한다. 이 경우는 창업과 스타트업은 다른 것을 뜻한다. 스마트 폰도 전화기의 일종이지만 전화기라고 하지 않고 스마트 폰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무엇이 다른지 보자.첫째 스타트업은 내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닌 투자를 받아서 하는 것이다. 반면 창업은 자기 돈 또는 대출(Loan)을 받아서 한다.두 번째 스타트업의 조직은 임시조직이고 창업은 공식 조직이다. 스타트업은 투자자의 검증을 못 받으면 투자를 받을 수 없고 결과적으로 그 조직은 해산하면 그만이다. 아무런 법적 근거가 남지 않는다.세 번째 스타트업은 법인 설립이나 사업자등록을 하는 것이 아니다. 투자를 받아 공식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때 법인 설립과 사업자등록을 내면 된다. 모르니까 모든 스타트업들이 법인 설립과 사업자등록부터 하고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잘못을 범한다. 또 그렇게 가르친다. 스타트업은 잘 안되면 그냥 해산하면 되지만 창업기업은 폐업 신고를 하여야 한다. 이는 마치 연애하다가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결혼을 한 후에 헤어지면 이혼신고를 하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스타트업은 연애고 창업은 결혼이다.네번째 스타트업은 비즈니스모델(9 Block) 한 장이면 충분하지만 창업은 비즈니스 플랜을 두툼하게 작성해야 한다.다섯 번째 스타트업은 설립자가 협업(통상 3~4명)을 기본으로 하지만 창업은 통상 혼자 아주 드물지만 두 명이 시작한다.여섯 번째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사람은 돈, 경험, 지식 등이 없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창업은 사전 준비와 경험을 철저히 하여 신중히 시작한다.일곱 번째 스타트업은 그 방점이 Start에있다. 너무 우물대지 말고 그냥 시작하라 그리고 안되면 고치고 그래도 안되면 다른 것을 하면 된다는 뜻이 들어가있다. 그러나 창업은 속도보다는 신중히 할 것을 요구한다.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대학에서는 부담 같지 말고 학교에서 팀원끼리 프로젝트 하듯이 스타트업을 그냥 시작하라(Just Start) 그리고 문제가 있으면 고치고 힘들면 다른 것으로 또 시도해보고 이도저도 안되면 해산하고 다른 팀을 만들어서 또 가볍게 시작하는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 좋은 팀들에 의해 대박 나는 사업들이 나온다. 이렇게 하여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을 배우게 된다. 스타트업과 창업은 다른 것이다. 창업이란 단어는 쓰지 말자. 스타트업은 글로벌을 전제로 한다. 외국 투자자에게 창업을 영어로 어떻게 번역하겠는가? Foundation? Establishment? Set up? 스타트업이란 말을 우리 것처럼 그냥 써야 통한다./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외대 외래교수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외대 외래교수

2017-04-16 주종익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심생우물: 마음은 사물에서 일어난다

내 머리에 매일 떠오르는 생각의 흐름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축적된 기억이 생각의 습관 또는 습관적 생각의 흐름을 좌우한다. 그리고 이 생각의 흐름이 또다시 경험의 축적을 만들면서 개인의 삶을 좌우하고 이들이 모이면 인류의 역사를 움직인다. 나의 생각과 경험, 경험과 생각은 서로를 증식시키면서 큰 덩어리를 만들어나가는데 이것이 내가 짓는 별업(別業)이다. 나 개인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공업(共業)이 된다. 이렇게 지은 업(業)은 반드시 결과를 초래하는데 이것은 개인이나 사회가 스스로의 생각과 경험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 한다. 그런데 이 마음이나 생각이라는 것이 별개의 자유로운 존재로 활용되지 않기 때문에 일정한 구속을 받게 된다. 음부경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란 외부세계의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心生于物死于物)고 했다. 외부세계의 물질적인 것들과의 관계를 초탈해 독존하는 마음은 현실적으로 체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마음과 물질은 상의(相依)적일 뿐 아니라 물질이 마음을 죽이고 살리는 면이 강하다는 뜻이다. 이런 것을 사회적으로 조화해나가기 위해서는 경제적 분배제도와 더불어 생각의 조절력이 필요하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7-04-11 철산 최정준

[시인의 연인]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 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 때 그 사람이 그 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히 그 순간을 사랑할 것을…… 모든 순간이 다아 꽃봉오리인 것을,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꽃봉오리인 것을! 정현종(1939~)회한은 현실의 세계에서는 잘 알지 못한다. 마치 앞면만으로 뒷면을 모르듯이 뒷날에 만나게 되는 후회다. 미련한 사람은 아집에 사로잡혀 반벙어리 또는 귀머거리와 같이 입과 귀를 막고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이전의 잘못을 깨우치고 뉘우치는 사이 성숙하게 된다. 인간이 인공지능(AI)보다 우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성찰과 반성이 아닐까? 그것을 깨달은 당신은 '노다지'를 얻은 것과 다를 바가 없으며, "더 열심히 파고들고/더 열심히 말을 걸고/더 열심히 귀 기울이"면서, 앞으로 또 있을 실수를 줄이고자 할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세상을 '더 열심히 사랑'하는 방법으로서의 사랑의 실천은 자신을 척박한 세계에서 '꽃봉오리'로 매순간을 활짝 피울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게 된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4-09 권성훈

[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 세상]운예지망(雲霓之望)

운예지망(雲霓之望)은 극심한 가뭄에 구름과 무지개를 바란다는 뜻이다. 큰 가뭄에 단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간절한 마음을 담고 있다. 살다보면 '돈 가뭄'에 시달려 갈팡질팡 할 때가 있다. 또한 지식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지혜의 가뭄'에 봉착하기도 한다. 이러한 유무형의 가뭄을 해갈할 방도는 꿈과 희망 즉 운예지망의 마음이 아닐까 싶다.버블 시스터즈 서승희가 부른 '고래의 꿈'(작사:서승희 작곡:바비 킴) 가사에서 운예지망의 은유적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곡명 '고래의 꿈' 노랫말에서 자연과 사람은 등식화된다. 즉 자연의 상징인 고래와 사람인 화자는 동일인으로 설정된다. 따라서 가사에서 언급된 꿈은 사람의 꿈인 동시에 고래의 꿈이기도 하다. 화자인 고래는 '바다 저 끝 어딘가'에 있을 사랑의 대상인 '너'를 애타게 찾아 길을 나선다. 때로는 거센 '하얀 파도'가 화자의 간절한 마음을 마구 흔들어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온갖 난관에도 불구하고 오직 '너'만이 '나'인 화자를 '편히 쉬게 할 꿈'이라고 진실한 소망을 드러낸다: '너를 찾아서/나의 지친 몸짓은 파도 위를 가르네/I'm fall in love again 너 하나만/나를 편히 쉬게 할 꿈인 걸 넌 아는지'. '운명'의 존재를 부정했던 화자이지만 '너'를 보며 사랑에 몰입하는 고래! 이제 '너'를 찾아 꿈을 꾸며 바다로 향하는 고래의 꿈속에는 운예지망의 진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 그렇다면 고래의 운예지망 꿈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모든 이들의 뜨거운 가슴에 잠재된 간절한 그리움인 듯싶다. 김범수가 부른 'higher'(작사:김민지 작곡:돈 스파이크) 노랫말은 운예지망의 예를 보다 더 확연히 보여 준다. 곡명 'higher' 노랫말은 혹독한 '시련이 와도' 미래의 '꿈'을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화자의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화자는 '하늘 높이' 다시 떠오르는 태양처럼, 다시 피어나는 푸른 잎처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맹세와 다짐을 강조한다. 누구나 장벽에 막혀 갇힐 수 있고 다칠 수도 있다. 또한 걸림돌에 걸려 갸우뚱거려 넘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화자는 지쳐 쓰러진다 해도 오뚝이처럼 재기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드러낸다: '내 꿈을 향하여/지쳐 쓰러져도 난 두렵지 않아/다시 일어나/I want to get higher 그날을 위하여'. 혹독한 가뭄에 구름과 무지개를 기다리는 운예지망처럼, '헛된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창공을 훨훨 날 수 있는 '그날을' 학수고대하는 화자! '오늘'과 '내일'에 대한 기대와 믿음이 '어제'보다 더욱 견고한 화자! 절망의 미로를 벗어나 희망의 대로를 당당히 걷고자하는 화자의 희망찬가가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듯하다.누구든 인생의 우여곡절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한두 번쯤 쓰라린 실패도 맛보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도 한다. 무수한 역경에 처할수록 자신을 격려해보자. 기나긴 가뭄 속에 구름과 무지개 같은 운예지망이 실현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자신의 우선순위로 삼아보자. 파란 바다 끝 꿈과 사랑을 찾아 떠나는 고래처럼 오늘의 거친 바다를 헤엄치는 자들의 모든 희망과 사랑을 응원해보자./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2017-04-09 고재경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응무소주: 마땅히 머무르는 바가 없다

현실에 대한 열정을 불사르다가도 고통에 직면하게 되면 삶의 진정한 모습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석가는 누구든 태어나면 예외 없이 언젠가는 늙고 병들고 죽어간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생의 덧없음을 무상(無常)으로 설파하였다. 인간 뿐 아니라 태어난 모든 존재 즉 중생(衆生)은 다 그렇다. 젊어지면 좋겠고 늙어 가면 서럽고, 병들면 아프고 건강하면 괜찮고, 죽어 가면 슬프고 살아나면 기쁘고, 중생의 역사는 한마디로 일희일비(一喜一悲)의 이력이다.그런데 기가 막힌 건 이렇게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주인공을 알지 못한 채 습관적으로 반복하다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다. 그 주인공인 소위 '나'도 모르는데 '내 마음'을 안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이렇게 그를 알지 못한 채로 육척(六尺) 육신에 갇혀서 사는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보면 모두 수인(囚人)이다. 그것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다가 죽음에 임박해서 느낄 뿐,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혀 100여년 지내다 또 어디론가 갇히는 것을 돌고 돌며 육도(六道)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슬퍼 대비(大悲)하다고도 한다. 육신에 갇힌 진불(眞佛)은 그렇게 일정한 주소가 없으니 금강경에 무소주(无所住)라 하였다. 예전에 초상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상여를 따라가는 것을 보고 한 스님이 "많은 죽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한 사람을 따라가는구나!"했다고 하듯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자유롭다고 믿는 우리는 실은 모두 돌아다니는 감옥에 갇힌 수인(囚人)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7-04-04 철산 최정준

[시인의 연인]다시 봄 편지

날이 많이 풀렸지요?// 흰 꽃 피워 그대에게 한 송이/보내고 싶은 정옵니다// 꽃은 시들겠지만 하고, 이어서는(영원한 것을 묶어 두는 문장이어야겠지만)// 나의 아트만도 내일이면 시드니/그대가 오늘 이 꽃을 보면// 우리의 생이 다하도록/―하겠습니다// 다시 추위가 있을까요? 하는/질문은 가능하겠지 만은// 그건 모르는 일이겠지요// 종이꽃에 물을 주는 아이를 보세요// 때로는 쇠락함이, 다시 그럴 수 없는// 영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만// 그것도 원래 나타나지 않았던 듯/―하겠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꼴이 마음에 드나요?// 아직 불러줄 노래도 많은데/짧게, 우리 서로의 // 눈 속에 잠깐, 아름답게/―있었지요함성호(1963~)변하지 않는다는 말만 변화하지 않듯 불변할 것 같은, 사랑도 움직인다. 자연이 보여주는 사계는 그것을 성찰하게 만든다. 날이 풀린 따듯한 봄날 정오, 활짝 핀 목련꽃과 같이 곱게 핀, 사랑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이제 시들어 갈 것이다. 그러나 사라지고 소멸되어 가는, 사랑을 고정시키는 것은 그대라는 '흰 꽃 한 송이'처럼 '영원한 것을 묶어 두는' "사랑의 문장"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영원하지 않는 "우리의 생이 다하도록" 우리는 어떻게 사랑 "하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꼴이" "종이꽃에 물을 주는 아이"의 무모함일지라도, 불러줄 노래가 있다면 그대로 하라. 매순간 "우리 서로의 눈 속에 잠깐, 아름답게" 머물게 되리니, 짧은 그 순간만큼 괄호( )라는 영원 속에 놓여있지 않겠는가.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함성호(1963~)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4-02 권성훈

[조성미의 나무이야기]동서양이 인정한 '진짜 나무' 참나무

4월은 산과 들에 벚꽃, 진달래, 개나리를 비롯한 다양한 꽃들이 만개하고, 헐벗었던 산들이 연두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계절이다. 봄을 맞아 숲을 우아하게 수놓은 연둣빛 잎들을 두 눈 가득 담고, 온 몸을 감싸는 따사로운 봄기운을 만끽하기 위해 가까운 산을 오르면 자주 볼 수 있는 나무가 바로 참나무류이다.참나무는 소나무와 함께 우리나라 숲을 대표하는 나무인데, 참나무류는 전체 산림의 약 25% 정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참나무라는 이름은 없다. 참나무는 어떤 한 가지 수종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등 참나무과 참나무속에 속하는 나무를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참나무에 달리는 열매를 도토리라 부르기 때문에 도토리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참나무는 진짜 나무라는 뜻이며 참나무속은 학명이 쿠에르쿠스(Quercus)인데 라틴어로 '진짜', '참'이라는 뜻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참나무를 보는 안목이 다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참나무는 전국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데 높이 20~30m까지 자라며, 잎은 어긋나고 대부분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다. 꽃은 4~5월에 피며, 열매인 도토리는 접시 같은 각두 안에 들어 있으며 타원형 또는 공 모양이다. 참나무류는 이름의 유래도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신갈나무는 옛날 짚신 바닥에 깔았던 나뭇잎이라 하여 신갈이나무라고 한데서, 굴참나무는 수피에 세로로 깊은 골이 파여 있어 골참나무라고 부르던 것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갈참나무는 잎이 가을 늦게까지 달려있고, 단풍이 눈에 잘 띄는 황갈색이라서 가을 참나무로 불리다가 갈참나무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졸참나무는 참나무 중 잎이 제일 작기 때문에 졸병 참나무란 뜻에서 이름이 붙었다. 떡갈나무는 예부터 조상들이 오래 보관하기 위해 떡갈잎으로 떡을 쌌는데, 그만큼 넓은 잎을 가진 나무라는 뜻이다. 상수리나무는 임진왜란에 의주로 피난을 떠난 선조가 제대로 먹을 만한 음식이 없자 도토리로 묵을 만들어 먹었고 이 맛에 반한 선조가 환궁한 뒤에도 가끔 수라상에 올렸다고 한다. 수라상에 올린다는 뜻인 '상수라'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참나무는 예로부터 우리 숲의 주를 이루어 우리 민족과 함께 생활해온 나무이다. 도토리는 대표적인 구황식물이었는데 흉년이 들 때마다 더 많이 도토리가 달려 백성들의 배고픔을 달래주었다. 이는 참나무가 꽃을 피워 수분을 하는 시기에 비가 많이 오면 모내기에 적당해 풍년이 들지만 참나무는 수분이 어려워 열매를 덜 맺기 때문이다.열매인 도토리는 동의보감에 성질이 따뜻하고 맛은 쓰고 떫으며 독이 없어 설사와 이질 등을 낫게 하고 장과 위를 든든하게 하여 몸에 살을 오르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도토리로 만든 음식은 소화가 잘 되며 뼈를 튼튼하게 하고 체중감소에도 효과가 있다. 또한 요즘처럼 미세먼지로 인해 우리의 건강을 위협받고 있을 때 몸 안에 쌓이는 중금속을 제거한다고 알려져 있는 도토리는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은 식품이다. 참나무는 목재의 질이 단단하여 유럽에서는 와인이나 위스키를 숙성시키는 술통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재질이 좋아 건축재와 선박재, 관재 등으로 이용했고 참나무로 만든 숯은 최고로 친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

2017-04-02 조성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복귀기근: 각자의 근본으로 돌아간다

산에서 자라는 수많은 초목들은 저마다의 살림살이가 있다. 부산스럽게 한철 살림을 나면 어김없이 낙엽도 지고 앙상해져 꽃잎도 지고 열매도 없어진다. 이런 현상을 보고 노자는 저마다의 뿌리로 돌아온 것이라 표현하고 우리들은 돌아갔다고 말한다. 누가 맞을까? 누가 맞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노자는 노자고 우리는 우리다. 봄날이 가면서 흩날리는 꽃을 보고도 눈물이 나는 우리인데 친하게 정을 나누었던 사람이 떠나간다는데 간다고 하는 것이 사람의 정이다. 다만 그냥 떠나가는 것이 아니라 떠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갈 뿐이다.주역에서는 만물이 천지를 근본으로 삼아 출현했기 때문에 다시 천지로 돌아가려는 회귀심이 있다고 하였다. 형체이상의 것들은 하늘로 돌아가고(魂升) 형체이하의 것들은 땅으로 돌아간다(魄降)는 생각으로 읽기도 한다. 노자는 만물이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아니라 근본으로 돌아온다는 입장이다. 노자는 자신이 우주적 근본에서 일체가 되어 놀고 있기 때문에 돌아온다고 표현한 것이지만 우리네 인생은 그 근본이란 곳을 짐작만 하기에 돌아간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누구든 삶을 이별하고 떠나가는 길은 막막하고 슬픈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7-03-28 철산 최정준

[고영직의 여시아독(如是我讀)]슬픔의 조사(弔辭)

운명적으로 망각에 서툰 사람들이 있다. 한국문학 현장에서 소설가 임철우가 그런 사람이다. 임철우는 1981년 문단 데뷔 이후 지금까지 '가만히 있으라'며 망각을 재촉하고 강요하는 시대의 감정구조에 맞서 기억과 죽음에 관한 사유를 행간에 부려놓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1980년 오월 광주의 상흔을 기록한 대하소설 '봄날'이 그랬고, 전쟁과 분단 그리고 베트남전쟁의 상처와 그늘을 잊지 않으려 한 '백년여관'이 그러했다.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국가의 통치에 의해 희생된 자들의 넋을 위무하고 희생자들의 얼굴과 마주하려는 고통의 글쓰기를 해온 것이다. 소설집 '연대기, 괴물'에서도 기억술사로서의 글쓰기는 여일하다. 소설집 '연대기, 괴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죽음 앞의 인간이 된 노인들이다. 그는 혼자 살다 혼자 죽어가는 무연사회의 어두운 그늘을 묘사하는 데 관심을 쏟는다. 오직 나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려는 '흔적'의 '당신'과 더불어 쪽방에서 고독사를 맞게 되는 '세상의 모든 저녁'의 '허만석'이 그들이다. '간이역'과 '물 위의 생'의 인물들 또한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죽음 앞의 인간이 되어버린 존재들에 대한 침통한 붓질을 통해 '죽음이 죽은' 사회를 성찰하며, 인간의 인간성은 무엇이고 죽음에 대한 예의는 무엇인지 묻고 있다. 죽은 지 일주일 넘도록 방치된 주검을 묘사하는 '세상의 모든 저녁'은 너무나 참혹하다. "거기, 시간의 덩어리 하나, 세월의 불룩한 자루 하나가 홀로 방치된 채 소리 없이 녹아내리고 있다." 이런 죽음을 '고독사'라고 명명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고립사'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죽음을 성찰하는 임철우의 글쓰기는 죽임의 권력에 의해 반복되는 '죽임의 시대'를 증언하고자 하는 작가적 욕망에서 비롯한다. 고통은 오로지 기억하는 자의 몫이라는 작가적 태도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 보도연맹 사건, 베트남전쟁, 1980년 오월 광주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한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표제작 '연대기, 괴물'은 연대기(年代記) 형식으로 괴물이 되어버린 국가의 오·작동 상태를 비판적으로 성찰한 수작이다. 전작 '백년여관'의 축소판이되, 더 이상의 '굴욕'을 견디지 않겠다는 작가적 결기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특히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이 모욕당해서는 안된다는 어떤 절박감이 감지되는 것은 어찌할 수 없다. 그것은 죄책감 때문이리라. 시대에 대한 부채감은 임철우 소설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부채감은 '남생이'에서도 어느 소녀의 강렬한 '눈빛'으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소녀는 자신이 나병 환자 가족이라는 사실을 목격한 소년에게 묻고 또 묻는다. "너, 아무한테도 말 안했지?"라고. 소녀의 강렬한 눈빛에서 표제작에 등장하는 세월호 참사 아이들이 살기 위해 선체의 벽을 긁어대던 손톱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지난 25일 밤, 세월호가 침몰 1천75일 만에 인양되었다. 그것은 1천75일 간의 슬픔의 결정체이고, 1만t의 한숨과 눈물이다. 잔인했던 그해 사월의 슬픔을 잊지 않기 위해 그날의 죽음들에 대한 예의가 필요하다. 기억술사 임철우의 소설이 죽은 넋들의 씻김을 위한 진혼의 조사(弔辭)가 될 것이리라. 우리는 아직 상중이고, 탈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고영직 문학평론가고영직 문학평론가

2017-03-26 고영직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집중무권: 가운데만 잡고 저울질을 하지 않음

중용이란 책도 있고 중용타령을 많이 하지만 막상 생각해보면 딱 떨어지는 답이 없는 게 중용의 중(中)이란 개념이다. 현실에서 중용을 강조하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도 물어보면 그의 말문이 막힌다. 이와 관련해서 맹자의 말을 곱씹어보면 그 의미가 좀 선명해진다. 맹자는 세 인물을 비교하였는데 양자(楊子)와 묵자(墨子)와 자막(子莫)이다. 양자(楊子)라는 이는 자기를 위해 사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는데 설사 자기 몸의 한 터럭을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는 하지 않는다. 묵자(墨子)는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한다. 자막(子莫)은 이 두 사람의 중간을 잡았으니 중간을 잡은 집중(執中)은 좋지만 중간을 잡는데 저울질하지 않고 잡으면 이것은 한 곳만 고집하는 것밖에는 안 된다. 한 곳을 고집하게 되면 道를 해치니 하나를 들기 위해 백 가지를 폐기하는 병폐를 낳는다. 여기에서 생각해볼 것은 중용을 저울질로 비유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쓰였던 저울대를 보면 표면상으로는 가운데를 잡을 수 있지만 그것은 진정한 가운데가 아니다. 왜냐하면 저울추를 한 곳에 두면 저울에 단 물건의 무게에 따라 기울어지기도 하고 평평해지기도 하는데 저울대가 평평해지면 그곳이 중이지 정해진 중(中)이 없다. 그러므로 맹자는 물건의 경중을 저울질 한 뒤에야 진정한 중(中)을 알 수 있다고 한 것이다. 결국 중(中)이란 것도 나와 가족과 세상이 기울어지지 않음(平)을 위한 최선의 방도임을 알 수 있다. 자기원칙만 고집하고 저울질을 하지 않게 되면 인간의 도리를 해칠 수 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7-03-21 철산 최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