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고영직의 여시아독(如是我讀)]눌변의 힘

사회학자 김찬호의 '눌변'은 회복력에 관한 책이다. 다시 말해 나를 나이게 하고, 우리를 우리이게 하는 회복력은 어디에서 비롯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사회학자로서 성실히 자문자답하려는 사유와 성찰의 여정을 보여주는 칼럼집이다. 지난해 출간되었으나, 대선 이후 사회 전 부문에서 공론영역의 공공성과 더불어 우리 안의 회복력 복원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해진 지금·여기에서 읽혀져야 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정치적이라는 것, 즉 폴리스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힘과 폭력이 아니라 말과 설득을 통하여 모든 것을 결정함을 의미한다"는 한나 아렌트의 언명처럼, 리셋 대한민국을 위한 사유와 성찰에 충분히 값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대선 이후 우리 사회의 회복력은 말과 설득을 통해 비정상성에 대한 저항을 수행하는 동시에, 정상성에 대한 저항의 과정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수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김찬호가 말하는 눌언(訥言)의 미덕은 적잖은 신뢰를 준다. 갈수록 나만 옳다는 확언의 수사학이 아니라 판단유보 능력이 요청되는 탈근대적 지성을 위한 방편으로써 눌언의 미덕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왜? 인간이 발견한 진리는 언제나 부분적이고 가설적인 것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내 안의 과도한 자기애를 극복하고, 허약한 정체에 대한 두려움 또한 넘어서자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김찬호의 이러한 신중한 제안은 협력을 위한 의례로서 대화적 대화(dialogic coversation)의 방법을 강조한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의 주장과도 통한다. 대화적 대화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대화"를 말한다. 그런 대화적 대화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공감보다는 감정이입의 능력이 더 중요하다. 타자에 대한 단정적 태도를 삼가고, 영어의 'as if'처럼 가정법을 사용하자고 세넷이 제안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리라. 다시 말해 '내가 너라면'이나 '아마 나라면' 같은 식의 어법을 사용하자는 것이다. 눌언의 힘을 강조하는 '눌변' 또한 대화적 대화의 원리에 충실한 책이다. 눌변(訥辯)의 사전적 의미는 "서툴게 더듬거리는 말솜씨"를 뜻한다. 시쳇말로 '고구마'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눌한 말솜씨를 의미하는 눌변을 대체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느 사안이든 간에 속 시원한 '사이다' 맛을 연상시키는 쾌도난마식 확언의 수사학을 더 선호한다.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의 언행을 둘러싸고 고구마 논란이 그치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김찬호의 '눌변'은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을 의미하는 대화적 대화와 협력의 의례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나는 특히 새로운 '창의한국'을 위해서는 놀이와 예술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의 가능성을 적극 모색함으로써 공생의 사회로 가는 율동과 리듬이 창조되리라는 저자의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는 이 '눌변'을 통해 말하는 자의 인격뿐만 아니라, 들음에도 인격이 있다는 점을 배웠다. 우리는 좀처럼 현상 너머를 성찰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우리는,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되었는지 성찰하고 사유하고자 한다면 이 책이 좋은 벗이 되지 않을까 한다. 나의 자아와 너의 자아가 만나 유대를 맺는 능력이 중요하고, 서로의 내면을 연결하는 안내자 역할을 하는 책이라는 점을 당신도 느끼게 될 것이다./고영직 문학평론가고영직 문학평론가

2017-06-04 고영직

[손경년의 늘찬문화]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것

유엔은 '새천년개발목표(Millenium Development Goals, MSGs)'를 2015년에 종료하고, 뒤이어 '2030 지속가능개발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를 채택하였다. 이행기간은 2016년부터 2030년까지이며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것'이라는 슬로건 아래 17개의 목표와 169개의 세부목표를 설정하였다. 빈곤퇴치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8개 목표로 구성된 MSGs에 비해 17개의 목표로 구성된 SDGs는 국가 간 합의와 주요그룹의 참여로 '빈곤퇴치를 넘어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발전의 길 추구'라는 점에서 보다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다. 새롭게 등장한 국제사회 실천의제는 국가 간의 합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실천적 이행이 요구되며, 따라서 우리나라의 여타 정책과 더불어 문화정책에서도 보다 능동적인 대응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그런 점에서 SDGs의 목표 중 '모든 국가에서 모든 형태의 빈곤 종식', '모든 사람의 건강한 삶 보장, 웰빙 증진', '모든 사람을 위한 포용적이고 형평성 있는 양질의 교육 보장 및 평생교육 기회증진', '성평등 달성 및 여성, 여아의 역량 강화', '지속적, 포괄적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및 생산적 완전고용과 양질의 일자리 증진', '포용적인, 안전한, 회복력 있는 지속가능한 도시와 정주 공간 조성',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패턴 확립',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제도적 환경 구축'등은 문화정책 지표와 과제수립에 있어서 연관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빈곤과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산 대비 사회적 취약계층 문화향유 예산', '문화다양성 지원 예산', '사회적 취약계층의 문화권 보장을 위한 재정지원확대', '문화예술인 사회보장 및 세금관련 정책', '노동시간 감축, 연차유급휴가제도 개선', '무장애문화시설 및 서비스 지원', '생애주기별 문화·여가 정책 확대' 등의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양질의 문화예술교육 제공을 위해 '문화예술교육 참여', '문화정책과 교육정책을 결합한 인재양성계획', '예술부문 전문교육인력확보 및 처우개선' 등이 검토되어야 한다. '공공문화기관의 여성임원 비율', '모성보호기간 보장', '성인지적 교육 실시', '양성평등을 보장하는 법적 체계 구축' 등을 통해 양성평등을 고려해야 하며, '문화콘텐츠산업의 창조적 생산을 위한 제반 기능 도입', '문화콘텐츠산업 등 창조분야 창업 촉진 및 중소기업 지원', '산업의 문화화와 예술의 산업화'를 고려함으로써 고용과 산업영역의 안정화를 살펴야 한다. '지역문화진흥조례 제정 및 진흥계획수립', '문화영향평가 참여', '문화적 재생을 위한 문화도시 사업 확대추진', '지역 간 문화격차 해소 및 문화자치 실현을 위한 법·제도적 환경 개선', '생활문화시설 확충 및 지역미디어센터 활성화', '문화권·표현의 자유', '공공문화기관의 독립성 강화를 위한 법·제도적 환경 및 행정체계 구축' 등의 고려는 새 정부 공약사업의 실천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앞으로 새 정부는 유네스코의 문화다양성 협약 이행과 함께 SDGs 권고사항 이행을 위한 '단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전략 및 과제를 제시, 우리나라의 상황에 맞는 '지속가능한 문화정책' 수립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

2017-05-28 손경년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욕속부달: 성급히 하고자하면 달성할 수 없다

공자 제자 중에 자하(子夏)는 공자 사후 제자양성을 하면서 위(魏)나라 문후(文侯)의 스승이 되기도 하였는데 자식이 죽자 눈물과 슬픔에 겨워 눈이 멀 정도로 인정이 깊었다. 자하가 노나라의 거보라는 한 읍을 맡아서 정사(政事)를 도모할 때 공자에게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성급히 하려고 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추구하지 말라. 성급히 하려고 하면 뜻하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추구하게 되면 큰일을 성공할 수 없다." 이 말은 자하뿐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누구든 무엇인가 새롭게 출발하는 마당에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런 욕구에 비례해서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시간과 노력과 운이 따라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때로는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고, 노력이 더 들 수도 있고, 운이 더 따라줘야 하는 수도 있다. 이런 순리적인 흐름을 타고 갈 각오를 하게 되면 적어도 지나치게 성급한 무리수는 두지 않는다. 또 당장의 작은 이익만 보지 말고 멀리 보고 계획을 짜야 대국적인 차원의 일이 이루어진다. 나라일도 마찬가지이니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새 정부에게도 이런 점을 기대해본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7-05-23 철산 최정준

[시인의 연인]가정백반

집 앞 상가에서 가정백반을 먹는다가정백반은 집에 없고상가 건물 지하 남원집에 있는데집 밥 같은 가정백반은 집 아닌 남원집에 있는데집에는 가정이 없나밥이 없으니 가정이 없나?혼자 먹는 가정백반남원집 옆 24시간 편의점에서도 파나?꾸역꾸역 가정백반을 넘기고기웃기웃 가정으로 돌아가는데대모산이 엄마처럼 후루룩 콧물을 훌쩍이는 저녁.신달자(1943~)21세기 가정은 2000년대를 경유하면서 '빠름의 즉시성'과 '불안전의 불규칙성'으로 다원적인 구성원 간에 가족이 재편성되면서, 이른바 독거가족이 탄생되었다. 혼자 먹고 마시는 혼밥, 혼술이라는 신조어는 이들이 만들어낸 '쓸쓸한 존립의 세계'를 지배적으로 보여준다. 거기에 가족 간에 남녀의 역할 구분이 갈수록 모호해지면서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라면 남성과 여성의 일을 나눈다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그것은 현대가 만들어낸 또 다른 외부 세계와의 조우와 파생을 시사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집 앞 상가' 어느 곳이든 한상 차려진 '가정백반'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혼자 먹는 가정백반'은 자본 아래 가족의 이산과 분열이 아니라 "엄마처럼 후루룩 콧물을 훌쩍이는 저녁"을 섭취하면서 '꾸역꾸역' 가족을 생각할 수 있는 혼자만의 여유가 아니겠는가.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신달자(1943~)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5-21 권성훈

[주종익의 스타트업]스타트업의 속성-1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신과 물체(육체)라는 이원론을 주장 했는데 스타트업 구조도 똑같다.스타트업=정신+육체로 되어있다. 정신은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고 육체는 린 스타트업(Lean Startup)이다. 기업가 정신의 기자는 기(企)가 아니라 기(起)다. 이는 Startup의 UP과 같다.기업가 정신은 강한 정신력을 기르는 '정신의 힘줄 기르기' 즉 정신 짱(얼짱·몸짱 비유)이되는 것이고 린 스타트업은 유도의 낙법과 같이 절벽에서 뛰어내려도 다리 부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스타트업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도전 정신과 아무리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도 다리가 부러지지 않는 기법을 필요로 한다.돈도 없고 경험이나 지식도 없는데 어떻게 스타트업을 하느냐는 질문을 학생들에게 자주 받는다. 스타트업이라는 단어에 들어있는 속성을 모르니까 답답해하는 것이 당연하다.스타트업이라는 말에는 몇 가지 핵심적인 속성을 포함하고 있다.첫째 스타트업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는 PM/Fit(Product market fit)이다. 옷을 구입할 때 맘에 드는 옷은 반드시 입어보고 구입한다. 제아무리 좋은 옷이라도 몸에 맞지 않으면 말짱 헛일이다. 이때 우리가 옷을 입어보는 곳이 피팅룸이다. 나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고객의 요구사항과 맞지 않는 것은 제아무리 좋아도 고객이 구입을 하지 않는다. 가장 바보 같은 짓이 고객의 요구사항과 관계없이 자기 생각대로 물건을 만들고 돈 들여 광고하고 망하는 사람이다. 망하는 사람들은 기술이 모자라서 망했다고 생각들 하지만 사실은 고객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다.둘째 스타트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없는 것과 있는 것이 있다. 없는 것은 돈·지식·경험이다. 이 3가지가 다 있는 사람이 자기 사업을 한다면 그것은 스타트업이 아니다. 이런 속성 때문에 대학생들에게도 스타트업을 권유할 수 있는 것이다. 돈이 없으니까 투자자에게서 필연적으로 투자를 받아야 한다. 투자자의 검증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이 스타트업이다. 자기 돈을 아무런 담보나 보장도 없이 생으로 투자해야 하는 투자자들도 오만 가지 기법을 동원해 두드리고 두드려 투자를 한다지만 이들도 투자의 50% 정도는 날린다.K-Startup은 아이돌(Idol)들의 등용문인 K-Pop만큼이나 피나는 경쟁을 뚫어야 투자를 받을 수 있다. 이들에게는 고객이 누구인지 시장이 무엇인지 경쟁자가 누구인지 어떤 기술이 필요한지 정말로 아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이 맨땅에 헤딩하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귀인을 만나야 성공할 수 있다. 좋은 멘토다.그리고 있는 것 3가지가 의지(똥 고집)·열정·끈질김 이다. 의지란 비록 우리 젊은이들은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이지만(하이데거-독일 철학자) 그래도 세상을 한번 뒤집어엎는 일을 해보겠다는 똥고집 같은 오기가 스타트업을 하는 젊은이에게는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똥고집이 없으면 그냥 조직에 잘 동화하면서 성실하게 일하는 취업을 선택하는 편이 더 낫다.이 세상에는 돈을 주는 사람이 있고 돈을 받는 사람이 있다. 스타트업은 주는 사람이고 취직을 한 사람은 돈을 받는 사람이다. 주는 사람이 더 어렵고 힘들지만 보람은 더 크고 인류에게 더 많은 공헌을 한다.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테슬라, 우버, 에어비앤비 모두 세상을 뒤엎어보겠다는 데서 시작한 기업들이다./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외대 외래교수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외대 외래교수

2017-05-21 주종익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이신사순: 신의를 이행하고 순리를 생각한다

사람들이 보통 표현하는 좋고 나쁨을 주역에서는 길흉(吉凶)이나 이해(利害)로 이야기한다. 길흉(吉凶)과 이해(利害)는 득실(得失)과 관련해볼 때 비슷한 개념이지만 길흉은 이해에 비해 좀 더 포괄적인 표현이다. 길(吉)이 행위의 명분을 얻어 적당함을 보장하는 표현이라면 이(利)는 그 결과로서의 성과를 지칭하기도 한다. 주역에는 이 둘을 아우르는 점사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길무불리(吉无不利)란 표현인데, 길(吉)할 뿐 만 아니라 이롭지 않음이 없다는 최고의 극찬이다. 그런데 이 점사에 대해서 공자는 그 이유를 이신사순(履信思順)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신의를 이행하고 순리를 생각하며 살기 때문에 최고로 좋다는 것이다. 정말 신의를 이행하고 순리를 생각하며 살면 그렇게 좋을까? 우리의 몸 구조를 보면 머리는 하늘을 향해있고 발은 땅을 밟고 있다. 머리로는 하늘을 생각하고 발로는 땅을 밟고 다닌다. 하늘에서는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차례에 따라 기후가 펼쳐지고 땅에서는 그에 발맞추어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생명활동이 진행된다. 하늘을 생각해보면 춘하추동이 단 한 번도 역행(逆行)하지 않고 순행(順行)함을 깨닫게 된다. 땅을 밟고 다니다보면 하늘을 따라 생장수장(生長收藏)이라는 생명활동을 이행하고 있음을 믿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하늘과 땅의 가운데 살면서 하늘을 보니 사순(思順)을 안할 수 없고 땅을 밟다보니 이신(履信)을 안할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생각과 실천을 천지의 도리에 따라 생각하고 실천한다면 하늘도 돕고 사람도 도와 길무불리(吉无不利)가 된다는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7-05-16 철산 최정준

[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 세상]우공이산(愚公移山)

우공이산(愚公移山)은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뜻이다. 때로는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이 최고의 성과를 거둔다는 함의가 담겨있다. 인생사 자체가 수많은 장벽의 연속이다. 넘어야 할 산이 높고 깊다면 쉽게 포기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강인한 의지를 갖고 난관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면 누구든지 성취할 수 있다. 이 같은 우공이산의 은유적 예가 파주 출신 YB 윤도현이 부른 '나의 작은 기억'(작사:윤도현 작곡:강호정) 노랫말에 서정적으로 그려져 있다: 어린 시절에 뛰어 놀던 그 자리를 다시 찾아가 보았지만/내 친구 하늘소도 집게벌레도 온데 간데 없고/남은건 커다란 쓰레기 더미/.../서로의 관심 속에서 하나 하나 고쳐 나가면/언젠가는 다시 찾을 수 있을거야/. 자연은 인간의 소중한 자산이자 보물이다. 또한 미래 후손에게 물려줄 인류의 유산 목록 제1호이다. 하늘소와 집게벌레는 오염되지 않은 자연의 은유이다. 그런데 화자가 어릴 적 보았던 그 곤충들이 지금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있다. 마냥 뛰어 놀던 그 자리에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온통 '쓰레기 더미' 뿐이다. 화자는 현대사회의 환경오염과 파괴의 심각성을 고발함으로써 인간 사회에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더 나아가 자연 보존과 관리 노력으로 하늘소와 집게벌레 등 생태환경을 '언젠가는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금부터라도 '서로의 관심 속에서' 뚜벅뚜벅 우공이산 믿음을 토대로 생태환경 복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화자의 절절한 외침이 들려오는 듯싶다.그룹 코요태 멤버인 인천 출신 신지가 부른 '해뜰날'(작사:송대관, 김태희 작곡:신대성, 김진훈) 가사에도 우공이산의 상징적 예가 드러난다: 슬픔도 괴로움도 모두 모두 비켜라/안되는 일 없단다 노력하면은/.../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힘들 땐 잠시 쉬어도 돼/널 사랑하는 그 품에 안겨/울어도 돼 포기하지 않는 그 마음 하나 갖고 있다면/날아올라 꿈꿔왔던 하늘 끝까지/.../불가에서는 사람이 반드시 네 가지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말한다. 생로병사(生老病死)가 그것이다. 이 중 '생로' 과정에는 사람의 칠정인 희로애락애오욕(기쁨,분노,슬픔,즐거움,사랑,싫음,갈망)이 포함된다. 위에서 인용한 가사에 등장하는 화자는 슬픔, 분노의 괴로움, 걱정, 힘듦 그리고 의기소침 등 현실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멀리에 위치한 높은 산을 옮길 수 있는 내일을 갈망한다. 또한 노력의 산물은 결실이라는 믿음과 언젠가 '해 뜰 날'이 꼭 돌아온다는 확신을 지니고 있다. '포기하지 않는 그 마음' 그 열정으로 창공을 향해 '하늘 끝까지' 날아오를 꿈과 희망! 내일을 향해 달려가 쨍하고 해 뜨는 날이 오면 바로 그것이 우공이산의 완성이 아닐까 싶다.'날지 못하면 뛰어라. 뛸 수 없으면 걸어라. 걸을 수 없다면 기어라. 그러나 무엇을 하든지 앞으로 계속 움직여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이다. 이처럼 한 눈 팔지 않고 묵묵히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 정신은 인공지능 알파고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하겠다./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2017-05-14 고재경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토고납신: 옛 것을 뱉고 새 것을 받아들인다

요즈음 미세먼지와 황사 때문에 사람들이 마음 놓고 숨쉬기가 불안하다. 최근 마스크와 공기청정기 수요가 폭증한 것도 이 때문인데, 마스크의 경우 오염된 공기를 걸러주는 기능이 첨가되어 고가에 팔리는 것들도 있다. 건강하게 오래살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아무리 기능이 좋은 마스크나 공기청정기를 사용한다고 해도 대기권의 공기 자체가 맑은 것보다는 못하다. 문제는 기술은 인간수명을 연장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데 반해 지구의 대기는 인간수명을 단축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데 있다.도가사상을 제창한 장자(莊子)는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선술(仙術)의 구체적 방법인 토고납신(吐故納新)이란 호흡법을 소개하였다. 말 그대로 의식적인 호흡을 통해 묵은 숨을 밖으로 내쉬고 신선한 공기를 체내에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체내의 탁한 공기가 체외의 청정한 공기로 전환되어 진기(眞氣)를 체득하게 되면 불로장생한다는 것으로 여기에서 일체의 호흡 수련법이 유래되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초기에는 의식적인 호흡을 통해야 한다는 것인데, 토고납신의 호흡은 단순히 공기만 왕래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이 따라붙어야 한다. 지금 지구촌의 대기를 청정하게 전환하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지구의 대기에 지구인들의 의식이 따라붙어야 한다. 모든 사업에 있어서 대기와 기후의 문제가 가장 상위에 있게 되는 시절이 도래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7-05-09 철산 최정준

[시인의 연인]엄마 딸이 더 좋아

붕어빵에 붕어 없고 / 국화빵엔 국화 없네, 내가 노래하면 / 칼국수엔 칼이 없고 / 빈대떡엔 빈대 없네, 따라하는 엄마 // 없어서 좋은 것도 참 많겠지 / 내 맘에도 내 마음이 없어지면 / 내 속에도 내가 없어지면 / 그래도 엄마 딸이냐고 물었더니 / 엄청 깊고 넓은 큰 사람이 될 거란다 / 성자聖者가 될 거란다 / 성자보다 나는 엄마 / 딸, 이대로가 더 좋아.유안진(1941~)자신이 지향하는 모델은 스스로 선택한 타입(type)이지만 부모와 자식 관계는 어느 누구도 채택할 수 없다. 엄마는 아이가 자신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평생을 잘 살아가기를 원하면서 지켜본다. 자식은 '붕어빵에 붕어'와 같이, '국화빵엔 국화'와 같이, '칼국수엔 칼'과 같이, '빈대떡엔 빈대'와 같이 또 다른 닮은꼴을 발견한다. 세상에는 "없어서 좋은 것도 참 많겠지"만 "내 맘에도 내 마음이 없어지면" 어느 누가 있을까? 엄마는 자식을 위해 열 달 동안 자신을 비워낸 '성자'가 아니겠는가. 높아가는 5월 하늘가 "성자보다 나는 엄마"라는, 고단하지만 보람 있는 이름으로 살다간, 또한 살고 있는 "엄청 깊고 넓은 큰 사람" 하나 '내 속에 내가 없어져도' 여전히 거기에 있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유안진(1941~)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5-07 권성훈

[조성미의 나무이야기]쌀밥 같은 꽃으로 농사 풍흉 점치는 이팝나무

곱게 피었던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 그리고 봄의 여왕인 벚꽃이 지고 나서도 어디를 가든 꽃잔치는 계속 된다. 여기저기서 철쭉제가 열리고 다양한 꽃들이 앞을 다투어 피면서 꽃향기가 산과 들에 가득하다.신록이 절정인 계절의 여왕 5월에 싱그러운 봄날을 시샘하듯이 꽃이 피어 새하얀 함박눈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것처럼 장관을 연출하는 나무가 있다. 바로 이팝나무다.이팝이라는 이름은 꽃이 활짝 피었을 때 멀리서 보면 사기그릇에 윤기 자르르한 흰쌀밥을 수북이 담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 해서 잡곡 없이 입쌀로만 지은 이밥에서 나왔으며 이밥이 이팝으로 변했다고 한다. 특히 이팝나무에 꽃이 필 무렵은 지난해 수확한 양식은 거의 바닥나고 보리는 아직 피지 않은 보릿고개였다. 때마침 모내기철이라 주린 배를 움켜쥐고 농사일을 할 때 사람들은 흰쌀밥 같은 이팝나무꽃을 바라보며 다가오는 가을 풍요로운 수확을 기대했다. 이처럼 이팝나무엔 온 가족이 밥 한번 제대로 배불리 먹고 싶어 했던 옛사람들의 절박함과 한이 서려 있다. 이름에 대한 유래는 24절기 중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입하에 꽃이 피는데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는데 실제로 전북지방에서는 입하목으로 부르기도 한다.옛날부터 이 땅에 우리 민족과 함께 살아오며 애환을 같이한 이팝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이 7그루인데 소나무, 은행나무, 느티나무, 향나무 다음으로 그 수가 많으며 대부분 정자목이나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는 당산목의 역할을 했다. 우리 조상들은 물이 많이 필요한 모내기철에 이팝나무꽃의 많고 적음에 따라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했는데, 물이 풍부한 곳에서 잘 자라는 이팝나무에 꽃이 많이 피고 오래가면 그해는 벼농사도 풍년을 예상했다.이팝나무는 최근 들어 도심곳곳에 가로수로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탐스러운 꽃이 20일 이상 지속되고 단풍과 열매도 아름다우며 무엇보다 공해와 병충해에 강하기 때문에 가로수로 사랑을 받고 있다.영어로는 '하얀 술'이라는 뜻의 프린지 트리(Fringe tree)라고도 하고 흰 눈을 연상시키는 꽃 때문에 스노 트리(Snow tree)라고도 한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잎을 차로 마시므로 다엽수(茶葉樹)라고도 부른다.이팝나무는 물푸레나무과의 잎이 지는 넓은잎 큰키나무이다. 다 자라면 키가 30미터에 이르고 지름도 몇 아름이나 된다. 잎은 끝이 뾰족한 타원형이고 마주나며 길이는 3∼15㎝정도이다. 꽃은 5월에 새로 나는 햇가지 끝에 흰색으로 피는데 가느다랗게 넷으로 갈라져 있다. 어린 줄기는 황갈색이나 커 갈수록 줄기는 회갈색을 띠고 세로로 촘촘히 갈라진다. 9∼10월에 굵은 콩알만한 짙은 푸른색의 타원형 열매가 열리는데 때로는 겨울에도 가지에 매달려 있다. 번식이 좀 까다로워 발아와 삽목이 잘 안되고 어릴 때 생장이 느린 편이다. 중국, 일본, 대만에도 분포하며, 제주도에 자라는 긴잎이팝나무는 이팝나무보다 잎은 조금 더 길고 꽃잎은 좀 더 가늘고 긴 편인데 보기 드문 우리나라 특산이다.목재는 염료와 기구를 만드는데 이용한다. 민간요법으로 열매와 수피를 가을에 채취해 말린 후 중풍으로 마비된데, 치매, 가래 등의 치료에 사용한다. 이팝나무 어린잎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나물로 먹거나 말려서 차를 끓여 마시기도 한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

2017-05-07 조성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수기득리: 그릇 따라 이로움을 얻는다

사람들이 세상에 나올 때는 다 자기 밥그릇은 자기가 타고난다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이제까지 줄곧 사람들에게 희망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져 왔다. 즉 아무리 가난하게 태어났어도 다 자기 먹을 복은 있기 때문에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사회로 진입하면서 이 속담을 비관적인 의미로 보는 그런 경향이 나타났는데, 최근의 '금 수저 흙 수저' 타령이 대표적이다. 내가 태어날 때 내 그릇과 수저가 부모대로부터 이미 결정되었기 때문에 태어난 후에 내가 바꿀 수 있는 인생의 여지는 적다는 한탄과 자조가 섞인 말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릇이 최소한의 자신(自信)의 의미가 아니라 나의 의미와 노력을 무력화시키는 포기(抛棄)의 의미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릇타령과 관련해서 의상의 법성게에서 수기득리(隨器得利)라고 하였다. 이 말은 가뭄에 하늘을 꽉 채우는 비가 내려도 그 비를 받을 그릇의 용량에 따라 이익을 얻으니, 사람도 나에게 유익함이 오냐 오지 않느냐를 탓하는 대신 그것이 왔을 때 담을 수 있는 자신에 맞는 기량을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 말을 개인적 차원의 기량 뿐 아니라 공동체적 공감과 합의에 의한 사회적 기량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결국 눈이 있어도 감고 있으면 보이지 않고, 보고 싶어도 눈이 없으면 보이지 않듯이, 사람의 그릇도 선천적으로 정해지는 측면도 분명히 있지만 그 후천적인 기량이나 쓰임새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7-05-02 철산 최정준

[시인의 연인]5월

어떻게 하라는 / 말씀입니까.부신 초록으로 두 눈 머는데진한 향기로 숨 막히는데마약처럼 황홀하게 타오르는 육신을 붙들고나는 어떻게 하라는 / 말씀입니까.아아, 살아 있는 것도 죄스러운푸르디푸른 이 봄날,그리움에 지친 장미는 끝내가시를 품었습니다.먼 하늘가에 서서 당신은 / 자꾸만 손짓을 하고.오세영(1942~)눈에 보이는 것은 시선 안에 놓인 것만 본다는 것이다. 반대로 보자면 시선 밖은 제외하고 보는 것으로써 어쩌면 우리는 모래알보다도 작은 '근시적 시안'를 가졌다. '푸르디푸른 이 봄날' 푸름이 더해가는 5월 역시 '부신 초록'을 바라보는 것에 주목하고 있지만 그 뒤에 숨어 있는 '진한 향기로 숨 막히는' 세계를 응시하게 만든다. 그것은 초록을 들여다보면 사물들이 죽고 썩어서 그 형체가 사라진 흙에서 얻은 양분으로 5월의 푸름을 일궈내는 것이다. 따라서 5월의 뿌리는 죽음이 되는 것으로써 그것을 깨닫는 순간 5월은 죽은 '육신을 붙들고' 땅에서 '마약처럼 황홀하게 타오르는' '죽음의 색채'로 파고든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은 '아아, 살아 있는 것도 죄스러운' 마음을 가져야 하며, '먼 하늘가에 서서'보면 당신의 곁에서 사라져간 당신이 '자꾸만 손짓을 하고' '장미의 가시'로 찔려오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오세영(1942~)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4-30 권성훈

[고영직의 여시아독(如是我讀)]우리 안의 '먹고사니즘'

김훈 소설 '공터에서'는 우리 안의 '먹고사니즘'에 관한 소설이다. 먹고사니즘은 오로지 지금 당장 나와 내 가족의 끼니를 해결하며 사는 일이 하나의 신앙처럼 작동하는 마음의 생태학을 이르는 말이다. 소설 속 마동수-마장세·마차세 부자(父子)는 먹고사니즘의 생생한 문화적 실체라고 간주할 수 있다. 1910년생인 마동수는 일제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분단과 군사독재 시절 내내 자신의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지만, 끝내 자식들에게 발 디딜 곳 하나 물려주지 못한다. 한국전쟁 당시의 표어 '식량 문제는 각자 해결하자!'라는 구호는 어쩌면 마동수 세대가 처한 굶주림에 대한 공포를 잘 요약한다. 마동수가 임종을 앞두고 일제 시절 만주 길림으로 떠난 형 마남수와의 기억을 떠올리며 술회하는 대목은 소설의 핵심적 전언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때,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런 마동수와 그 세대의 삶에서 '생활'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오직 '생존'의 공포가 마동수 세대의 삶을 압도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마동수의 후속세대인 마장세·마차세의 경우에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베트남전쟁 당시 전우 김정팔을 사살하고, 괌에서 고철무역을 하며 지내는 마장세는 누구보다 '물적 토대'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범죄를 저지르는 것 또한 당연시한다. '먹이'를 벌기 위해 오토바이 배송을 하는 마차세 또한 '쯩(證)'도 없고 줄도 없기 때문에 세상 질서에 활착(活着)하기 위해 갖은 애를 쓴다. 한마디로 말해 오직 생존의 논리만이 마장세·마차세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셈이다. 그런 마차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작가 김훈은 "사냥감은 보이지 않았고 사냥감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고 흘러갔다"라고 쓰고 있다. 김훈의 '공터에서'는 지금은 노년 세대가 된 전후 세대의 삶을 통해 오로지 '밥이 노선'이 되어버린 지금·여기의 현실을 묘파하고자 한 소설이다. 작가는 마동수-마장세·마차세라는 인물을 통해 개인의 진실이 그대로 역사의 진실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환기하고자 한다. 어느 누구도 한 개인의 인생과 내력에 대해 함부로 왈가왈부할 권리는 없다. 그러나 개인의 진실을 절대화하려는 지금·여기 노년 세대의 의식과 무의식의 차원에 이르기까지 더 집요하게 탐사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금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심판 이후에도 태극기 집회를 개최하며 불복하는 어버이연합 어르신들의 행태란 결국 먹고사니즘이란 반(反)지성주의에 다름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던가. 오히려 자신만의 아상(我相)을 고집하려는 노년 세대의 행태와 심리에 더 철저히 집중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른바 꼰대 문화의 본질은 개인의 진실을 강변하고 후속세대에게 강요하려는 마음의 태도와 습관에서 비롯한다. 물론 소설 '공터에서'는 영화 '국제시장'의 경우처럼 노년 세대의 자기 합리화를 위한 알리바이로서의 독백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보며 노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한 질문이 부재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개인의 진실과 역사의 진실을 하나로 일치시키려는 지행합일의 삶의 양식을 다루는 노년문학은 불가능한가./고영직 문학평론가고영직 문학평론가

2017-04-30 고영직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고양생제: 마른 버드나무에 싹이 난다

동양의 고전에서 과(過)라는 글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다. 일단 지날 과로 지나갔다는 뜻이다. 통과(通過)나 과거(過去) 등에 쓰인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지나쳤다는 뜻이 되는데 지나쳤다는 것은 적절함의 기준선을 지나쳤다는 뜻으로도 이해되기 때문에 과오(過誤)나 허물의 뜻으로 쓰인다. 동시에 일정한 기준선에서 지나쳤기 때문에 그만큼의 차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주역에 대과(大過)라는 괘가 있는데 보통수준보다 지나치거나 차이가 많이 난다는 뜻을 내포한다.그 대과(大過)라는 괘에 "마른 버드나무에 싹이 난다"는 뜻의 고양생제(枯楊生제)란 말이 나오는데 세속에서는 회춘의 의미로도 가끔 쓰는 용어이다. 그런데 이 말 속에는 '생명계승'의 뜻이 들어있다. 하나뿐인 목숨을 어떻게 잇겠는가마는 개체단위의 종족번식의 차원에서는 가능한 표현이다. 그 안에는 단순히 '생명계승'의 의미뿐 아니라 '정신계승'의 뜻도 들어있다. 꺼져가는 생명을 후손을 통해 잇거나 희미해져가는 정신을 후계를 통해 이을 때 쓰기도 한다. 지금은 생명도 연장하는 과학의 시대를 경영할만한 적절한 정신계승의 문제가 요청되고 있다. 오래된 나무에서 새싹이 나듯이 오래된 고전에서 새로운 사상의 싹이 등장해야 할 때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7-04-25 철산 최정준

[시인의 연인]사랑 이미지… 직선과 곡선

직선의 힘으로 남자는 일어서고곡선의 힘으로 여자는 휘어진다직선과 곡선이 만나 면이 되고 집이 된다직선은 길을 바꾸고 지도를 바꾸지만곡선은 그 길 위에 물 뿌리고 꽃을 피운다서로가 만나지 않으면 길은 길이 아니다이지엽(1958~)무엇이 된다는 것은 역학적으로 다른 하나가 또 다른 하나를 만나는 것이다. 직선이 직선을 만나거나, 곡선이 곡선을 만났을 때에는 1차원적인 연장선에 지나지 않지만 직선이 곡선을 만나 서로의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2차원적 '면이 되고' 3차원적 '집이 된다' 뿐만 아니라 '직선' 자체가 가지고 있는 힘은 "길을 바꾸고 지도를 바꾸지만" "그 길 위에 물 뿌리고 꽃을" 피우게 하는 것은 '곡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직선이라는 남성성과 곡선이라는 여성성이 화합하여 어떤 것을 창조해낸다. 이른바 태생적으로 직선은 곧지만 구부러지기 쉽고, 곡선은 부드럽지만 강하지 못한 점들을 상호 보완하는 생명성을 가졌다. 혼자 이루어질 수 없는, 우리의 사랑도 그런 것이다. "서로가 만나지 않으면"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길 가운데 어디쯤 당신의 사랑도 '직선의 힘'으로 일어서거나, '곡선의 힘'으로 휘어지고 있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이지엽(1958~)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4-23 권성훈

[손경년의 늘찬문화]새 정부의 새로운 문화정책 기대

원래대로라면 공직자선거법에 의해 제 18대 대통령의 임기가 종료되기 70일 전인 2017년 12월 20일에 대통령 선거가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대통령의 파면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을 겪음으로써 3주 후에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되었고, 이와 함께 각계각층에서는 새 정부에게 다양한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 문화정책영역도 예외가 아니어서 그간의 정책을 재검토하고 더 나아가 '문화민주주의'의 성장기반이 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제기되었던, 그럼에도 허약함이 여전했던 지속가능한 예술생태계 조성, 예술의 사회적 권리 확대, 예술인 사회보장제도, 생활문화 활성화, 시민참여형태의 문화정책 수립기반 마련 등의 의제가 다시금 수면 위에 올라와 있다. 레이몬드 윌리엄즈가 '키워즈(Keywords)'에서 '문화는 영어(English)에서 가장 복잡한 두 세 단어 중 하나'라고 말했듯이, '문화'정책은 여타 정책과 비교해 볼 때 당장의 효과를 보기 어렵고, 궁극적으로 우리 삶의 양식과 깊이 관계하고 있어서 만만치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문화예술의 가치와 힘은 공동체 의식과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시키는 데 있을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지금' 제대로 된 문화정책 수립을 통해 삶의 조건을 다시금 구조화하고 미래의 삶을 주체적으로 구성하는데 애를 써야 할 것으로 본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일상화로 젊은 세대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는 이득도 있지만, '유동하는 세계'에서의 우리는 '거짓말과 환영, 쓰레기, 폐기물 같은 껍질들을 분리해내서 읽을 만한 낟알과 진리의 낟알을 뽑아내도록 도와주는 탈곡기가 없는 것 같다'고 분석한다. 바우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혜는 '끊임없이 계속해서 정체성을 재부팅하는 상황'을 제대로 진단하도록 하고 '보다 많은 양의 즐거움을 얻기 위해 즐거움의 질을 희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깊은 성찰의 필요성을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이렇듯 거시적인 사회 변화 현상과 정치적 변동을 직면한 우리는 예술적 자유를 인식하고 보호하는 것이 예술가의 존재와 창조적 행위의 보장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 문화 분야 전문가들의 책임, 더 나아가 우리 모두의 삶과 상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삶 속에서 문화적 표현을 하고자 하는 이유는 즐거움을 주고받는 것 이외에, 그 과정에서 사회적 문제를 논의하고 또 주변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정책은 이러한 인식적 흐름을 토대로 예술적 자유 및 표현과 관련하여 예술가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주체적 참여를 장려·보장하는 것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는 새로운 정책을 펼칠 것이며, 정책이 수행되는 공적기관의 자리를 채우는 새로운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라는 공자의 말씀이 있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것, 타인과의 공명과 공감대를 갖는 것, 모름지기 국민의 힘으로 만들어 낸 새 정부에서의 대통령, 장관, 국가 공무원, 공공기관의 장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

2017-04-23 손경년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역소임중: 힘은 작은데 짐이 무거움

내가 지니고 있는 역량과 내가 원하는 일이 어느 정도 걸맞지 않으면 그 일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그런 현상에 대해서 주역에서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 방면에서 예를 든다. 하나는 덕(德)과 지위의 문제로 덕은 박한데 지위만 높은 경우 실패하기 쉽다. 또 지혜는 적은데 도모하는 일이 클 경우도 실패하기 쉽다. 또 하나의 예는 힘은 작은데 들고 가는 짐이 무거운 경우이다. 그런데 이런 사례는 밥을 지어먹는 과정에서 상징적으로 비유된 것이다. 주역에서는 옛날 솥에 밥을 짓는 과정을 여섯 단계로 보았다. 첫 단계는 솥에 남은 찌꺼기를 버리는 단계이다. 두 번째 단계는 솥에 물을 붓고 새 음식재료를 넣은 단계이다. 세 번째는 솥이 벌겋게 달아올라 기다리는 단계이다. 네 번째는 솥의 그릇이 작은데 지나치게 많은 음식물이 들어있으면 음식이 밖으로 쏟아져 내려 못 먹게 되는 경우이다. 다섯 번째는 적절히 음식이 잘 익어서 먹을 만하게 된 단계이다. 마지막은 솥을 옮겨서 함께 밥을 먹는 단계이다. 이 가운데 위 사례는 네 번째 단계를 상징적으로 비유해서 말한 것이다. 결국 그릇의 용량이 작은데 너무 많이 넣지 말라는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7-04-18 철산 최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