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김준혁의 역사산책]1894년의 승리와 패배

1894년 3월 조선에서는 최대의 이변이 일어났다.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것이다. 고종과 조정 관료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학정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백성들이 국왕과 조정의 위세에 대항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였다. 그래서 초토사(招討使)로 홍계훈을 임명하고 당대 최고의 군대인 장위영을 파견하였다. 더불어 청나라로 하여금 군대를 보내 자신에게 항거하는 백성들을 죽여달라고 요청하였다. 고종의 이러한 술책에도 농민군은 전주성을 공격하는 홍계훈의 군대를 막아내었다. 도저히 전주성을 다시 빼앗기 어렵다고 판단한 고종은 전라감사로 김학진을 임명하고 그에게 전권을 주어 농민군과 협상하라고 하였다. 그 결과 집강소를 설치하고 청상과부의 재가를 허용하며, 탐관오리를 처벌하는 등의 폐정개혁안 12조의 전주화약(全州和約)이 성립되었다. 농민군의 승리였다. 이 성과로 전라도 일대에서 백성들이 직접 지역의 행정을 책임질 집강을 선발하기 시작하였다. 전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서 혁명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고종을 비롯한 조정의 관리들은 이를 용납하려 들지 않았다. 백성들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그들은 용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고종이 불러들인 청나라 군대로 인하여 일본 군대도 천진조약을 근거로 조선에 진주하였다. 청나라와 일본의 군대는 조선을 도우려고 온 것이 아니라 조선을 병합하려는 의도였기에 이 두 나라의 군대는 조선 땅 안에서 조선의 지배권을 갖기 위한 전쟁을 시작하였고, 마침내 일본의 승리로 끝나고 말았다. 조선의 지배권을 갖게 된 일본은 이제 조선의 관군을 동원하여 외세를 배격하여 자주 국가를 수립하려는 농민군 척결하고자 하였다.이러한 일본과 조정의 의도를 알고 있던 농민군의 지도자 전봉준은 서울로 진격해 외세와 기득권 세력을 물리치고 조선을 구하자고 하였다. 하지만 그때 갑오농민전쟁의 3대 지도자는 길을 달리 하기 시작했다. 온건론의 손화중과 급진파의 김개남, 그리고 중도파의 전봉준이 백성의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의(大義)는 같이했으나 실행방식을 달리했다. 백성들에 의한 완전한 혁명을 추진하여 왕조체제를 타파하고자 하는 김개남과 두 사람의 의견이 달랐고, 손화중과 전봉준 역시 양반 출신과 평민 출신의 신분적 한계로 인하여 생각이 달랐다. 그래서 김개남은 남원으로, 손화중은 나주로 가고 말았다. 이후 전봉준의 공주성 점령에 김개남은 참여하지 않고 청주성을 단독으로 공격하다 실패하였다. 하나로 힘을 모아 전주성을 점령했던 농민군의 힘은 세 지도자의 분열로 쪼개졌고, 결국 한양으로 진격하던 중 공주 우금치에서 몇 만명의 농민군이 일본군의 기관총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그리고 세 지도자 역시 모두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진정한 백성의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농민군들의 꿈은 사라지고 외세의 총칼 아래 식민지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다.지금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온 국민이 지지하고 있다. 광화문과 서울시청 광장에 수백만의 촛불이 켜지고 있다. 100여 년전 갑오농민전쟁의 죽창이 오늘날 촛불로 바뀌었다. 그런데 두렵다. 100여년 전 세 지도자의 분열로 혁명이 실패하였듯이 지금 3야당이 국민들의 촛불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정파적 이익만을 앞세우려고 하는 것이 아닌지 불안하다. 그러면 우린 100년 전의 실패를 또다시 재현하며 향후 몇 십년간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야당과 새누리당 비박 국회의원들은 보다 큰 대의를 위해 자신의 이익을 내려놓는 진심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의 춧불이 죽창이 되어 그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국민들의 촛불이 두렵지 않은가!/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2016-12-04 김준혁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관기소유: 그 말미암은 바를 본다

어느덧 한 해가 지나간다. 올 해를 지내며 한 해에 일어났던 일들을 정리해보면 한마디로 '설마'의 한 해였다. 丙申년의 처음 '설마'는 알파고가 건네주었다. 인간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믿었던 바둑의 영역에서 이세돌의 패배가 그것이었다. 두 번째의 '설마'는 국내 모든 여론조사의 예측을 뒤엎고 제1야당이 탄생한 것이었다. 세 번째의 '설마'는 브렉시트라는 국가이익을 우선하는 국수주의의 부활이었다. 하반기 들어서서 네 번째로 경주에서 일어난 지진은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한 경각심과 더불어 아집을 버리고 다시 볼 것을 일깨워주었다. '설마 우리나라는 지진안전지대라는데'라는 말은 이제 없어져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다섯 번째 가장 큰 설마는 비선실세의 국정논단사태였다. 그리고 여섯 번째 설마는 미국 대선에서 cnn여론조사가 당일 아침까지도 91%의 확률로 힐러리가 승리할 거라는 예상을 깨고 트럼프가 당선 된 것이다. 올해 일어난 이런 일련의 사건의 맥락이나 연유를 살펴보면 '설마'라는 짧은 단어에 있다. 우리의 인식은 일상적인 것에 익숙해져 최면이 걸리면 '설마'를 보기 힘들다. 공자는 논어에서 사건이나 사람을 관찰할 때에는 표면뿐 아니라 그 맥락내지 연유를 보라고 하였다. 올해 일어난 일련의 사건의 일관된 맥락은 '설마'에 있다. 특히 예측의 분야에 있어서 올 한해의 '설마'는 향후 시대를 읽는데 있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11-29 철산 최정준

[윤중강의 음악살롱]성대의 태평소

천성대는 젊은 피리연주가다. 에스닉 팝그룹 '락(RA;AK)'에서 활동한다. 이 그룹은 '민속음악(에스닉)에 뿌리를 둔 대중음악(팝)'을 지향한다. '태평성대'는 '락'의 대표곡! '어진 임금이 잘 다스리어 태평한 세상을 태평성대(太平聖代)라고 부른다. 락의 콘서트에선 의미가 추가된다. "'태평'소를 부는 천'성대'"라고 해서도 '태평성대'다. 락(RA;AK)의 콘서트에선, '락(Rock)처럼 힘이 넘쳐나는 락(樂)'을 경험한다. 멤버의 기량이 모두 출중하지만, 천성대의 태평소는 특히 신명나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악기는 왜 태평소(太平簫)일까? 평화의 피리란 뜻이지 않은가! 오래전 이순신장군도 어디선가 들려오는 태평소소리를 들었다. 안타깝게도 그 시절도 난세(亂世)였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한산섬 달 밝은 밤에'를 잘 안다. 광화문에 가면 이순신 동상이 있고, 이순신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충무공이 지은 한시를, 노산 이은상 선생이 시조로 풀어냈다. 시조의 종장은 이렇다.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茄)는 남의 애를 끊나니'. 호가(胡茄)는 바로 '태평소'다. 한시의 원문은 일성강적갱첨수(一聲羌笛更添愁). 원문에선 강적(羌笛)으로 되어 있다. 강적도 '오랑캐의 피리'란 뜻이다. 그런데 강(羌)이란 한자에는, '아!'하는 '탄식'과 함께, '굳세다'는 의미도 있다. 어쩜 예나 이제나 같을까? 강적, 곧 태평소 소리엔 나라를 걱정하는 깊은 탄식과 나라를 바로잡으려는 굳은 의지가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존재한다. 만약 이순신이 살아있어 지금 이 나라를 보면 뭐라 할까? 지금 이 땅에서 퍼지는 또 다른 호가(胡가)의 애끓는 절규와 강적(羌笛)에 담긴 굳건한 의지를 헤아리고 있을까? '광화문'하면 생각하는 전통노래가 있다. '진국명산'이다. 조선의 지식층이 사랑했던 가곡(歌曲)이다. 국가무형문화재이자, 유네스코가 지정한 인류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가곡의 '편수대엽'이란 곡조에 맞춰서 부르는 '진국명산'이다. "진국명산(鎭國名山) 만장봉(萬丈峰)이 청천삭출(靑天削出) 금부용(金芙容)이라" 광화문에서 바라본 사면경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인재가 앞으로 계속 나올 조선은 그러하기에 국태민안(國泰民安)할 것이라는 희망의 노래다. 이 노래는 감격군은(感激君恩)으로 마무리 짓는다. 왕조 사회에서 성군(聖君)에 대한 감사와, 임금이 계속 성군이길 바라는 심정을 헤아리게 된다. "이랴도 태평성대(太平聖代), 저랴도 성대(聖代)로다 / 요지일월(堯之日月)이요, 순지건곤(舜之乾坤)이로다 / 우리도 태평성대(太平聖代)니 놀고 놀려 하노라" 가곡의 대미를 장식하는 '태평가'. 일명 '태평성대'다. 동양의 이상사회를 이끌었던 요임금과 순임금이 등장한다. 이상적인 통치자는 이렇게 오래된 노래에만 존재할까? 태평성대와 국태민안을 바라는 민초가 떠오른다. 저 악기를 태평소(太平簫)라고 이름하고, 평화의 시대를 바라면서 이 악기를 힘내서 불렀던 이 땅의 민중의 모습을 상상한다.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에서 양희은이 '아침이슬' '상록수'를 불렀다. 그 자리에 있던 천성대도 이 노래를 들었겠지. 광화문으로 향하는 그의 가방엔 '태평소'가 있다. '아침이슬'이 울려 퍼지는 그 곳에서, 성대는 마음으로 태평소를 불었을 거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태평소를 부는 연주가들도 모두 한 마음일 거다. 태평소의 강하고 찬란한 기운이 이 땅 곳곳에 퍼지길 바라노라! 곧 성대(盛代)한 세상이 되어서, 성대(盛大)한 태평소가락을 들으면,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노라!/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11-27 윤중강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물이군분: 사물은 무리끼리 나뉜다

남자와 여자의 정기(精氣)가 모여 생명이 잉태되어 이 세상에 나온다고 할 때 생명이란 정기가 취합한 것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정기에다가 후천적으로 받아들인 에너지를 의지해서 한 평생 살다가 늙어가면서 정기와 에너지가 분산되어 없어지면 자연스런 죽음에 이른다. 생명의 전 과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분산과 취합의 취산(聚散) 혹은 분합(分合)이다. 모인 것은 흩어지게 되어있고 흩어져있다가도 다시 모이기도 하니. 그런데 이런 취산이나 분합의 이합집산(離合集散)은 아무런 맥락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종류끼리 모이기도 하고 또 흩어져가기도 한다. 자연스런 생명의 취산뿐 아니라 사회에서 사람끼리 모이고 흩어지는 것도 동일하다. 전혀 종류가 다른 사람끼리 모이거나 흩어져나가지 않는다. 그래서 전국시대 장의와 소진이란 책사들은 이 성질을 이용해서 합종(合從)과 연횡(連衡)이라는 이합집산(離合集散)에 관한 책략을 펼쳤다. 둘 다 귀곡자(鬼谷子)의 문인이었던 소진(蘇秦)과 장의(張儀)는 서로 다른 계책을 구사함으로써 당시를 주름잡았는데, 합종과 연횡이란 것도 본질적으로 모이고 흩어짐에 관한 책략이다. 종으로 모이면 횡으로 흩어지는 것이고 횡으로 모이면 종으로 흩어지는 것이다. 이합(離合)은 옛날부터 난세에 더욱 활발하게 일어났던 현상인데 분명한 것은 이합도 일정 정도의 유사성을 공유한 무리끼리 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11-22 철산 최정준

[시인의 연인]해금

나를 이토록 아프게 하는 소리 떠나간 이 불러다 앉혀 놓는 소리 차마 그이에게 잘못한 일들 그이 맘에 아직 남았을 상처 너는 다독여 주리라 하건만눈이 시리도록 울어 울어야 못다 맺은 인연 풀어헤칠까 저 연두빛 숲에 그늘이 지도록아픈 가슴 파고드는 네 소리 슬픔이 이렇듯 빛날 수 있나 방민호(1965~)세상에 많은 악기가 추구하는 것은 자연의 소리다. 자연의 소리에 가깝게 근접 할수록 악기는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 악기는 자연의 소리를 자연스럽게 모방하는 것이며, 우리는 재현되는 그 소리를 통해 내면의 울림을 느낀다. 그러나 어떠한 소리든지 그 자체로 있을 수 없으며, 소리는 사물과 부딪힘이라는 물리적인 것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나를 이토록 아프게 하는 소리"도 '떠나간 이'와의 갈등에서 고조된 것이며 "차마 그이에게 잘못한 일들"이 남은 까닭이다. 이처럼 "그이 맘에 아직 남았을 상처"에서 연원하는 가슴의 통증을 '해금 소리'가 호명하고 어루만지는 것이다. 해금이 상처 입은 감정을 다독여 주고, 눈이 시리도록 울어주면서 '못다 맺은 인연'을 풀어헤치는 사이 자신 내면에 "아픈 가슴 파고드는 네 소리"를 슬프도록 연주한다. 당신도 그렇다면 가을의 끝에선 한그루 나무처럼 눈물 흘릴 줄 아는 '몸의 악기'를 가졌다./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방민호(1965~)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11-20 권성훈

[조성미의 나무이야기]늦가을 물들이는 황금빛 낙엽송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요즘 울긋불긋 화려함을 뽐내던 단풍이 지고 난 후 뒤늦게 홀로 황금빛을 자랑하며 마지막 가을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나무가 바로 낙엽송이다. 낙엽송은 단풍뿐만 아니라 초봄 연둣빛 신록의 자태도 고운데 박두진 시인은 낙엽송이란 시에서 '가지마다 파아란 하늘을 받들었다. 파릇한 새순이 꽃보다 고옵다'라고 할 정도로 싱그러운 생명력과 꽃보다도 곱다고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있다. 낙엽송은 소나무과의 침엽수로 일본이 원산지이며 상록수인 소나무과의 다른 나무들과 달리 가을이면 물들어 잎이 떨어지는 큰키나무이다. 정식 이름은 이렇게 잎을 갈고 원산지가 일본이라고 해서 일본잎갈나무이다. 우리나라 금강산 이북지방에 자생하는 잎갈나무가 있는데 백두산에 가면 울창한 원시림을 이루고 있으며 낙엽송과 구분이 쉽지 않다. 낙엽송은 잎갈나무와 달리 비교적 춥지 않은 중부 이남의 비옥한 땅에서 잘 자라며, 높이 30m 직경 1m까지 자란다. 나무껍질은 회갈색으로 세로로 갈라져서 긴 비늘조각처럼 벗겨지며 가지는 수평으로 뻗거나 아래로 처진다. 잎은 선형으로 짧은 가지에 20~30개씩 모여나는데 밝은 녹색으로 소나무나 잣나무보다는 길이가 짧다. 꽃은 5월에 노란색 타원형의 수꽃과 담홍색의 달걀모양 암꽃이 한 나무에서 따로 피며 열매는 솔방울 모양으로 9~10월에 익는데 처음에 아래쪽을 향하다가 열매가 익을 때 위쪽을 향한다. 낙엽송은 자라는데 햇빛이 많이 필요한 나무로 병충해에 강하나 공해에는 비교적 약한 편이다.낙엽송은 1904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됐다. 60~70년대 이후 치산녹화계획에 따라 정부주도하에 나무심기가 한창일 때 1순위 권장수종으로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으로 헐벗은 산을 푸르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현재는 우리나라 산림면적의 6.2%인 27만2천㏊를 차지하고 있다. 낙엽송은 자라는 속도가 빨라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목재를 생산할 수 있으며 특히 목질이 우수하고 곧게 자라 상품성이 좋아 경제 수로 각광 받고 있다. 목재는 강하고 결이 세서 못이 잘 박히지 않을 정도이며 탄력이 적어 전봇대나 갱목, 건물을 신축할 때 건물 바깥쪽 공사판 지지대용으로 널리 쓰였고 나무젓가락을 만드는 단골재료이기도 했다. 그러나 가지는 잘 부러지는 특징이 있어 눈에 의한 피해에 약하며 옹이가 많은 게 단점이다. 나무껍질에서는 염색의 재료와 타닌을 채취하고 수지에서는 테르핀유를 채취하기도 한다. 얼마 전 태백산 일대의 낙엽송과 관련된 얘기가 언론을 장식하고 많은 사람이 반대의견을 내놓은 적이 있다. 태백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태백산 숲의 11.7%를 차지하고 있는 낙엽송 50만그루를 5년간 베어내고 그 자리에 우리나라 고유수종인 참나무와 소나무 등을 심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낙엽송은 일본이 원산지이므로 민족의 영산인 태백산에는 걸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1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우리 토양과 기후에 잘 적응해서 우거진 숲을 이룬 낙엽송을 짧은 기간에 대면적 벌채를 하는 것은 산림훼손은 물론 숲 생태계를 파괴하게 되므로 무작정 외래종이라는 이유로 나무를 베어내는 일은 무엇보다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문제이다. 다행히 한 발 뒤로 물러선 듯한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이는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한 건 아닐까 싶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

2016-11-20 조성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미복지흉: 회복하기 아득한 흉함

세상에 태어난 사람치고 단 한 번의 과오를 행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렇듯 모든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남의 과오를 용서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한 두 명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특정인의 잘못을 맹렬하게 지탄한다면 그것은 그의 과오가 대중들이 용서하기 힘든 선을 넘어섰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회복 불가능한 정도의 잘못을 저지른 것인데, 이런 상황을 주역에서는 '미복(迷復)'이라 한다. 되돌아오기엔 너무 아득히 멀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미복'은 한 번에 발생된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잘못이 누적돼 정상으로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예 사라져버린 것이다. 용서의 대상으로 하여금 '포기'하게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포기하게 됐을까? 그것은 문제를 일으킨 주인공이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반성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과오에 대한 알아차림이 없으면 개선을 통한 회복도 없는 것이다. 서양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표현이다. 카이사르(시저)가 원로원의 보수파에 대항해 내란을 일으킨 뒤 로마로 진격하기 위해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외친 뒤 루비콘강을 건넌 고사로 널리 알려졌다. 이후 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말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된 일'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됐다. 요즘 대한민국의 상황은 하루하루가 루비콘 강을 건넌 것과 같은 모습이어서 참으로 안타깝다./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11-15 철산 최정준

[시인의 연인]사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관이 향기로운 너는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물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본다 노천명(1912~1957)사슴은 학·거북이·해·산·돌·물·소나무·달·불로초와 함께 십장생으로서 민족과 친숙하게 지내온 짐승이다. 십장생은 장수를 의미하는 숭배의 대상으로 고구려 벽화에도 부분적으로 나타나며, 병풍이나 이불보, 베개, 자개옷장 등에 수를 놓을 정도로 길운과 장수의 상징이다.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무척 높은 족속' 등에서 욕망이 절제된 상태의 고고하고 흔들림 없는 정서를 느낄 수 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눈망울 속에서 숨겨진 '비애의 눈물'을 찾을 수 있다. 슬픔과 고독 속에 잠겨 있는 사슴은 고요한 연못의 물을 통해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그 속에 '잃었던 전설'을 읽어내기 시작한다. 그것은 지나온 '지난한 향수'이며 '잃어버린 그리움'인 것 같이, 그러한 날이면 당신도 자신도 모르게 넋을 놓고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쳐다'보는 '녹슨 추억'이 있질 않던가.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노천명(1912~1957)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11-13 권성훈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손이행권: 공순한 마음으로 권력을 행사하라

현대 사전적 의미로 보면 권력은 남을 지배하는 힘을 말한다. 이렇게 권력을 이해하고 말면 남을 지배하기 위한 마음만을 부추기게 되어 여러 가지 추태를 만든다. 한자로 보면 권력의 권(權)은 저울추를 말한다. 권은 전통적 저울대의 한쪽에 걸거나 저울판에 올려놓는 일정한 무게를 지닌 쇠이다. 이 저울추는 물건의 무게에 따라 추를 바꾸거나 위치를 이동시키며 무게를 잰다. 이렇게 저울추를 바꾸거나 이동시킬 때의 척도는 저울대의 평평함이다. 저울대가 기울지 않고 평평하면 저울질을 잘 한 것이고 저울대가 기울면 저울질을 잘하지 못한 것이다. 즉 '평형(平衡)'이 저울질의 합당성여부를 판단하는 척도인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권력(勸力)이란 저울추가 지닌 힘으로 저울대를 기울지 않고 평평하게 만들고 유지하는 힘이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무얼 뜻할까? 백성들의 삶이 한쪽으로 기울면 권력을 한쪽으로만 쏠리게 잘못 쓴 것이고 백성들의 삶의 질이 평등해서 기울어지지 않으면 권력을 균형(均衡)감 있게 잘 쓴 것이다. 이것이 대학에서 공자가 말한 평천하(平天下)에서 '平'의 뜻이다. '내말 한마디면 너는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권력자는 남을 지배하고자하는 의미의 권력자일지는 모르나 진정한 권력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진정한 권력자란 백성의 삶을 기울어트리지 않고 평등하게 만드는 자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겸손하고 공순할 수밖에 없으니 권력을 행사하는데 공순한 마음으로 할 수밖에 없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11-08 철산 최정준

[김준혁의 역사산책]다산과 박대통령의 숫자 18의 차이

다산 정약용에겐 18이란 특별한 숫자가 따라다닌다. 국왕 정조와 함께 조선의 개혁을 위해 노력했던 시간이 18년이었고, 정조의 죽음 이후 유배를 갔던 시간이 18년이었다. 그리고 유배지 강진에서 풀려나 고향으로 돌아와 살다가 죽을 때까지의 시간이 18년이었다. 그래서 다산에게 18이란 숫자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다산 정약용만큼이나 18이란 숫자가 따라다니는 인물이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18이란 숫자는 사실 그녀의 부친인 박정희 전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한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18년 집권하다가 부하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죽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은 이후 18년 동안 야인생활을 하다가 1998년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이 되었다. 18이란 숫자가 그녀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에게 18이란 숫자가 다시 인생에 다가왔다.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한 지 18년이 되는 2016년인 올해 그녀의 소울메이트로 이야기되는 최순실로 인하여 인생의 최고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난 금요일 국민들에게 최순실 파동으로 인한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게 되었다. 이러한 여파로 문고리 3인방이라 불리는 그녀의 최측근들인 정호성 등 비서관 3명이 18년 만에 박근혜 대통령을 떠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다산 정약용의 18과 박근혜 대통령의 18이란 숫자는 같은 의미일까? 동양 유학의 최고 저서라고 평가받는 것이 공자가 마지막에 완성한 '주역(周易)'이다. 사서삼경(四書三經) 중 최고의 경전으로 평가받는 주역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주역은 64괘로 구성되어 있어 그 내용마다 의미와 쓰임이 다르다. 64괘중 18번째 괘는 '산풍고(山風蠱)'란 괘다. 위에 산이 있고 아래에 바람이 있어 좀이 먹어 썩어들어간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반듯해지고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썩어서 부패하여 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썩는 것일까? 산(山)은 간방(1시 방향)으로 우리 조선을 말하는 것이고, 풍(風)은 손방(5시 방향)으로 일본을 말하는 것인데 우리나라 산속에 일본의 바람이 들어 단풍이 떨어지듯 나라를 병들게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최순실로 인한 국정 혼란이 있었던 것은 어쩌면 일본의 바람이 가득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가 친일을 미화하고 일본과 말도 안되는 위안부 협상을 추진하였으며, 친일의 역사를 가르치지 않게 하는 국정교과서를 만들고, 일본이 평화헌법을 파괴하고 2차 세계대전 이전과 같은 군사 대국화로 발전하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일본의 바람이 한반도를 뒤덮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강산과 사회에 온통 좀이 먹고 썩어들어 간 것이다.주역에는 산풍고이지만 썩어들어가게 하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그것은 군주가 백성을 진작시키고 덕을 기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썩지 않고 오히려 길할 수 있다고 했다. 다산은 비록 군주는 아니었지만 덕을 기르는데 힘써서 18이란 숫자의 운명을 백성을 위한 개혁의 숫자로 만들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덕을 기르지 못해 온 나라를 썩어들어가게 한 것이다. 그래서 국가지도자가 덕을 기르고 백성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참으로 부끄러운 시절에 18이란 숫자를 다시 생각해 본다./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2016-11-07 김준혁

[시인의 연인]텔레비전 Ⅰ

박남철(1953~2014)백지 위에 사각형 '텔레비전 Ⅰ'을 들여다 보기 위해서는 1980년대의 사회적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당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표출된 민주화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좌절시키면서 등장한 신군부 정권은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screen, sport, sex 또는 speed'에 의한 3S 정책을 사용했다. 이런 3S 정책은 세계적으로 부당하게 권력을 수립한 통치자가 국민을 조정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이른바 정권을 향한 국민들의 관심을 감각과 운동으로 분산시키기 충분한 자극 요법으로 사용해 왔다. 텔레비전은 이러한 국가의 문화적 폭력을 그대로 담고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백지 위에 스크린 이미지―네모만을 그려놓고, 제목을 '텔레비전 Ⅰ' 이라고 쓰고 있다. 사회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드러내고 있는, 이 시에서 정권이 자행하는 폭력의 얼굴과 실체를 감지할 수 있게 된다. 고통받는 국민들을 '바보의 방'에 몰아넣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강요하고 유린하는 현실이, 우리를 또 다시 차가운 길 위에 세우며 분노하게 만든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박남철(1953~2014)박남철 作 '텔레비전 1': 백지 위에 사각형 선만 그려놓고 국가의 문화적 폭력을 풍자함.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11-06 권성훈

[시인의 연인]가을의 뒷모습

깨끗하게 헤어지는 법을 배워야겠네여름 내내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꼭 붙어 지낸 나뭇가지와 잎사귀바람 부는 날 서둘러 헤어지는구나 뒷모습을 오래 보았지 뒤돌아보지 않고 인파에 휩쓸려 사라져버린 그대쓸쓸한 등이 눈에 밟히고잘 지내요 힘없는 그 말 귓가에 맴도는데이 거리를 혼자 걸을 수밖에 없다그대 쓸쓸한 뒷모습을 기억하는겨울이 온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이이승하(1960~)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뒷모습은 쓸쓸하다. 정면에서 보이는 강한 생명력도 그 뒤를 보여 줄 때, 빛이 바래고 어두워 보인다. 낙엽 물드는 10월의 마지막 날 우리는 절정에 이른 '가을의 뒷모습' 속에서 생명에의 근원적 외로움을 발견한다. 또한 거기서 '깨끗하게 헤어지는 법'을 찾아 "여름 내내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꼭 붙어 지낸 나뭇가지와 잎사귀"에서 '서둘러 헤어지는' 이별을 배운다. '뒤돌아보지 않고' 순식간에 나무에서 하강하는 낙엽을 보면, 어느 날 "인파에 휩쓸려 사라져버린 그대" 가슴 아픈 사랑과 같이 아직도 "쓸쓸한 등이 눈에 밟히고" 있지 않은가. "잘 지내요" 말하고 떠나버린 '그대 쓸쓸한 뒷모습을 기억'하는 10월의 마지막 거리에 서면 지나온 빛바랜 시간이 굴러다니다가 앙상한 얼굴로 마주치기도 한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이승하(1960~)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10-30 권성훈

[윤중강의 음악살롱]한국의 밥딜런 '들'

2016년,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가수로선 처음이다. 문학마니아에게는 의외겠지만, 나와 같은 입장에선 두 손을 번쩍 들면서 기뻐한다. 1970년대, 밥 딜런이 한국가수에게 끼친 영향은 크다. 그의 명곡 '블로윙 인 더 윈드'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과 같은 제목으로, 한국의 많은 포크가수가 번안해서 불렀다."'한국의 밥 딜런'은 누구일까?"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소식과 함께, 새삼 이런 질문을 접하게 된다. 저마다 좋아하는 가수를 한국의 밥 딜런으로 꼽는다. 오래전부터, 자타공히 '한국의 밥 딜런'이라고 불린 가수는 '담배'를 부른 서유석이다. 1970년대의 3대 저항 포크가수로서 김민기, 한대수, 서유석을 꼽고 있다. 이렇게 세 사람을 꼽는 건 신중해야 한다. 한국의 초기 포크가수와 그들의 저항적 노래를 얘기할 때 양병집을 빼놓을 수 없다.당시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치는 남녀가수들이 초기에는 밥 딜런과 조안 바에즈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그런 노래 속에서 '미국 포크'에서 '한국민요'의 관심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한국적 포크음악에서 투코리언즈의 '벽오동 심은 뜻은'은 큰 의미가 있다. 이 노래는 시조와 민요 등 한국적인 노래말과 함께 한국적인 곡조가 돋보인다. 투코리언즈의 한명이 바로 김도향이었다. 다양한 음악을 거친 김도향은 1990년대 '월이 아리랑', '여보게 저승갈 때 무얼 가지고 가나(거문고 반주)' 등의 곡을 내놓았다.1970년대 초반의 포크음악으로서 김민기의 '밤뱃놀이', '가뭄', 양병집의 '타박네', 서유석 '진주난봉가' 등은 무척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가수 마다 한 두곡에 불과했던 한국적인 포크음악은 송창식을 통해서 보다 더 한국적인 색깔이 짙은 음악으로 자리하게 된다. 송창식의 '에이야홍 술래잡이' '밀양머슴아리랑' '돌돌이와 석순이' 등을 들으면 그가 한국적인 음악을 두루 섭렵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김정호가 있다. 김정호의 '님'은 마치 남도민요(南道民謠)를 듣는 느낌이고, 그의 목소리는 마치 국악기 '아쟁'과 무척 닮았음을 느끼게 된다.한국적인 가요의 맥락을 살필 때, 가장 중요시하게 다룰 가수는 정태춘이다. 그의 '고향집 가세'를 들어보면 안다. 정태춘을 통해서 완벽하게 미국적인 포크음악은 자취를 감추고 한국적인 민요에 바탕을 둔 새로운 음악이 정착되었음을 확인한다. 그의 '고향집 가세'는 피리와 소리북을 통해서 반주한다. 정태춘의 노래 가사와 곡조는 그 시절의 밥 딜런에게 뒤지지 않거나 때론 능가한다.'한국의 밥 딜런'은 어느 특정한 한 사람에게 국한하기 어렵다. 미국의 밥 딜런이 했던 역할은 한국의 대중음악에선 여러 가수들의 노래를 통해서 찾아낼 수 있다. 최근 밥 딜런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그저 '한국의 밥 딜런 찾기'에 국한되지 않길 바란다. 이보다는 한국적인 포크음악의 맥락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기여해 주길 바란다. 한국에도 여러 면에서 훌륭한 밥 딜런'들'이 존재하고 있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10-30 윤중강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논목공패: 목공이 패자가 된 것을 논하다

자고일어나면 전운이 감돌았던 춘추전국시기 열국의 제후들은 회맹(會盟)을 주장하던 대표인 패자가 되고 싶어 했다. 이른바 춘추오패라 부르는 이들 가운데 진나라 목공의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공자의 나이 30대에 제나라의 경공(景公)이 신하인 안영과 함께 노나라를 방문한 일이 있다. 그 때 제나라의 경공(景公)이 공자에게 물은 것이 바로 진(秦)나라의 목공이 패자가 된 이유였다. 그 때 공자가 답한 것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국가의 외형적 규모는 작지만 내면의 의지는 원대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비록 중원에서 보면 변두리에 치우쳐있었지만 행동이 정당하고 중용에 알맞다는 것이고, 셋째는 백리해라는 출중한 인재를 등용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자의 말을 잘 새겨보면 의지가 중요하고 그것을 실천하기위한 행동이 정당해야하고 함께 할 인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진목공은 당시 이 나라 저 나라 노예로 전전하던 백리해를 다섯장의 양가죽을 써서 해방시켜준 뒤 대부로 기용했다. 그래서 그를 오고대부(五고大夫)라 부르기도 한다. 패권이 의지의 원대함과 행위의 중정과 현인의 천거에 달려있다는 점은 지금도 유용하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10-25 철산 최정준

[조성미의 나무이야기]노란 낙엽으로 가을 정취를 더하는 은행나무

뜨거웠던 여름이 물러간 후 짧은 가을이 아쉬울 만큼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다. 눈에 담는 풍경마다 그림 같다. 산과 들은 물론 도심까지 노란빛으로 치장해 붉은 단풍과 어우러져 가을의 정취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나무, 은행나무다. 은행(銀杏)은 '은빛 살구'라는 의미로 열매의 모양이 살구를 닮아서 붙인 이름인데, 송나라 때 지방 정부가 중앙 정부에 제공하는 조공품 목록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잎이 오리발과 닮아서 압각수(鴨脚樹),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의 열매가 손자 대에 열린다 해서 공손수(公孫樹)라 부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유교와 불교의 전파와 함께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인 낙엽 교목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분포한다. 잎은 부채모양으로 흔히 2개로 갈라지고 잎끝에 미세하게 물결모양의 무늬가 있다. 잎은 긴 가지에 어긋나게 나지만 짧은 가지에는 뭉쳐서 난 것처럼 보인다. 꽃은 5월에 피는데 암꽃과 수꽃이 서로 다른 나무에서 핀다. 나무껍질은 회색으로 두꺼운 코르크질이 발달했으며 세로로 깊게 갈라진다. 은행나무가 지구 상에 처음 뿌리를 내린 것은 무려 3억 년 전 정도이며 혹독한 빙하기를 거치면서 많은 생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는데도 살아남아 메타세쿼이아와 함께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린다. 은행나무가 이렇게 오랜 세월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강하기 때문이었다.요즘 도심에서는 은행이 떨어져 고약한 냄새를 풍겨 민원의 원인이 되곤 한다. 벌레나 동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인데, 딱딱한 속껍데기를 감싸고 있는 노랗고 물렁한 껍데기에 포함된 은행산과 점액질의 빌로볼 성분이 특유한 냄새의 원인물질이다. 또 은행나무 자체에도 플라보노이드라는 살균과 살충 성분이 있어 벌레의 유충이나 식물에 기생하는 각종 곰팡이, 바이러스를 억제한다. 이러한 보호 장치를 통해 은행나무는 지금까지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가 되었다. 은행은 폐기능 개선에 도움을 줘 천식에 효과가 있으며,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혈전을 없애는 기능을 한다. 어린이 야뇨증이나 피로회복에도 은행만큼 좋은 게 없다. 그러나 청산배당체라는 독성물질이 있어 날것으로 먹으면 중독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반드시 익혀서 먹어야 하며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자란 은행나무에 세계 어느 곳에 있는 것보다 약리적 물질이 월등히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은행나무는 높이 60m까지 크게 자라며 모양이 아름답다. 수명이 길어 천연기념물 30호로 지정된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수령이 1천100년 이상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 나무 중 가장 키가 크고 당당한 위엄을 보이는데, 조선 세종 때 정3품 당상관의 품계를 하사받기도 했다. 은행나무는 예로부터 절이나 사원, 문묘 등에 많이 심고 보호해 왔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 중에 은행나무가 가장 많다. 병충해가 거의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드리우기 때문에 정자 옆에 많이 심었고, 자동차 배기가스를 흡수해 정화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건조해도 잘 자라며 추위에도 강해 도심지 주변의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서울인천경기 본부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서울인천경기 본부장

2016-10-23 조성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