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육언육폐: 여섯 가지 말과 여섯 가지 가리워짐

물건은 엄폐하면 보이지 않는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어둠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빛 속에 잠재되어있듯이 일상에서 치켜세우는 미덕의 이면에는 잘 보이지 않는 단점이 있다. 공자는 제자들이 지니고 있는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는데, 그 중 자로에 대한 애정과 걱정은 곳곳에서 보인다. 이 육언육폐 역시 자로에게 가르친 내용이다. 공자가 말씀한 여섯 자리의 미덕인 六言이란 지식이나 지혜를 추구하는 지(知),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덕인 인(仁), 이것 들이 잘 구현되지 않을 때 분발하는 덕인 용맹(勇), 진리와 사람에 대한 믿음인 신(信), 왜곡됨이 없이 표출되는 덕인 정직(直), 굳세서 나태하지 않는 강건함(剛)이라는 여섯 가지 미덕에도 각각 제대로 탁마하지 않을 경우의 폐단이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이런 폐단을 바로잡아주는 방법이 배움(學)에 있다고 보았다. 배움이 없는 상태에서, 인(仁)만 추구하면 어리석어지고, 지(知)만 추구하면 너무 호탕해지고, 용맹(勇)만 추구하면 어지럽게 되고, 믿음(信)만 추구하면 자기와 남을 해치게 되고, 정직(直)만 추구하면 급하게 되고, 강건함(剛)만 추구하면 경솔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치우친 면이 조금씩이라도 있기 마련이니 공자의 말씀을 기준으로 나의 단점을 성찰해보고 그 방면의 배움을 탁마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10-11 철산 최정준

[김준혁의 역사산책]훈민정음과 정조(正祖)

1790년 4월 29일. 정조가 국방강화를 위해 추진했던 '무예보도통지'가 간행되었다. 조선의 무예를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의 무예를 24가지로 정리한 무예서가 간행된 것이다. 조선이 건국된 후 군영마다 익히는 무예가 달랐고, 무과 시험 역시 표준무예가 없었다. 그래서 정조는 국방 강화의 핵심으로 표준 무예 정립이 그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조는 1759년 아버지 사도세자가 18가지 무예를 정리하여 간행한 '무예신보'를 바탕으로 마상무예 6가지를 추가하여 새로운 무예서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엄청난 성과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무예도보통지'의 훈민정음 언해본을 동시에 간행한 것이다. 백성들이 어려운 한문으로 된 '무예도보통지'를 읽을 수 없기 때문에 백성들이 읽고 무예를 익히게 하도록 언해본을 간행하게 한 것이다.사실 조선왕조에서 백성들을 위한 다양한 서적의 언해본을 거의 간행하지 않았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지만 세종이 죽고 난 후 훈민정음은 정음(正音)이 아닌 언문(諺文)으로 천대받기 시작하였다. 세종의 생각과 달리 한문만을 중요시 여기는 양반사대부 등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 훈민정음은 철저히 외면받았다. 그들에 의해 훈민정음은 천한 글 혹은 여자들이 사용하는 글이라는 뜻을 가진 '언문'으로 격하되고 활용되지 못했다. 조정에서 훈민정음으로 책을 낸 것이 세종대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 그리고 세조 대에 석보상절 등이지 나머지 국왕 대에는 거의 없었다. 양반사대부들이 읽는 경서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하거나 아니면 국가의 정책과 법률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하여 백성들이 읽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일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이와 같이 훈민정음이 천대받던 시절에 국왕 정조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였다. 백성들이 읽고 쓸 수 있어야 국가가 올바르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조는 즉위 후 가난으로 버려진 아이들과 전염병으로 부모가 죽어 고아가 된 아이들을 기르기 위한 '자휼전칙'이란 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대로 하자면 해당 고을의 수령은 고아가 된 아이들이 10살이 될 때까지 반드시 책임지고 관아에서 생활비를 제공하여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했다. 정조는 이 법의 존재를 백성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하여 간행하게 하였다. 정조는 그 후 죄를 지어 관아에서 심문을 받는 죄수들의 인권을 생각하여 가혹한 체벌을 금지하는 '흠휼전칙'이란 법을 제정하였다. 수령이나 관원들이 비록 죄인이라 하더라도 가혹한 매질과 고문을 가하지 못하게 하고, 감옥 안을 반드시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게 만든 법이었다. 이 역시 훈민정음으로 번역하여 반포하였다. 이처럼 정조는 국가의 법률과 정책 그리고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는 서적들의 상당수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하여 간행하였다. 새로 간행된 언해본 '무예도보통지'를 통해 무예에 자질이 있는 백성들이 표준 무예를 익힐 수 있었고, 무과에 당당히 합격하여 새로운 신진 무반이 될 수 있다. 백성들을 똑똑하게 만드니 자연스럽게 국방도 강화될 수 있었다. 기득권층들이 자신들만 문자를 알고 백성들은 무지하게 하려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반적이다. 하지만 정조는 그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 위대한 군주로 평가받는 것이다. 한글날을 지내면서 오늘의 한반도에 있는 두 나라의 지도자와 정조를 생각해보았다. 그저 씁쓸할 따름이다./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2016-10-09 김준혁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붕우지궤: 벗이 주는 음식

"벗이 죽어서 돌아갈 곳이 없으면 '우리 집에 빈소를 차리라'고 하셨고, 벗이 주는 선물일 경우 설령 수레나 말이라도 제사지낸 고기가 아니면 절하지 않으셨다." 공자가 평소 벗을 대하던 태도에 관한 '논어'의 기록이다. 앞의 한 장면은 아낌없이 주는 내용이고 뒤의 한 장면은 정 반대로 담담하게 받는 장면이다. 이에 대한 후대에 주석은 '의합(義合)'과 '통재(通財)'이다. '의합(義合)'은 의리로 합한 사이라는 것이고, '통재(通財)'는 재물을 통용하는 사이라는 뜻이다. 의리로 합한 사이이기 때문에 빈소가 없으면 자기 집안에 빈소를 마련해주고, 재물을 통용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귀중한 선물이라도 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제사의 경우는 벗의 조상을 자기의 조상을 대하는 공경의 예로 대하려 절을 하고 받았다는 것이다. 혈연으로만 따지자면 夫婦지간도 무촌이지만 벗도 무촌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벗 간의 웅혼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져왔다. 고기 한 덩어리를 받아도 절을 하고, 말 한필을 받아도 덤덤히 받았던 그런 붕우의 이야기가 사라지면서 청렴의 이름으로 이제 3만원의 밥이 새롭게 등장했다. 벗 간에 덤덤해야 할지 절을 해야 할지 그런 고민은 이제 관심이 없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10-04 철산 최정준

[윤중강의 음악살롱] 블랙스트링, 세계음악의 돌파구

블랙 스트링(Black String)의 음반이 나왔다. 독일에서 나왔다. 한국그룹이다. 세계적인 재즈레이블 ACT가 그들을 선택했다. 아시아 뮤지션이 메이저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블랙스트링은 즉흥음악 앙상블이다. 재즈로 볼 수 있고, 월드뮤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의 장르적 경계를 허물면서, 독특한 자기 세계를 지향하는 즉흥음악 앙상블'이라고 보는 게 가장 맞다. 이런 블랙스트링을 한국의 음악계는 얼마큼 주목하고 있을까? 블랙스트링의 음반을 어떻게 평가할까? 지구촌 곳곳에 존재하는 재즈와 월드뮤직의 마니아들만큼이나, 한국에서도 그들의 음악이 주목을 받게 될까?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 음악의 가치를 우리가 모른다! 우리 뮤지션의 실력을 우리가 외면한다! 블랙스트링은 한국의 전통음악에 기반을 두고 있다. 블랙스트링이란 말 자체가 거문고(玄琴)를 뜻한다. 거문고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이 땅에만 존재한 악기다. 악기의 형태도 독특하고, 악기를 소리 내는 방식도 독특하다. 세계의 민족음악학자는 그래서 더욱 주목한다. 하지만 거문고는 한 때 국악에서도 홀대 받는 악기였다. 관현악에서 소외되기도 했고, 심지어 얼마지나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악기라고 했다. 블랙스트링의 리더이자 거문고의 명인 허윤정은 달랐다. '한계가 특성'이라는 자세로, 거문고만이 낼 수 있는 연주력의 최대치를 끄집어냈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거문고와 허윤정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블랙스트링은 허윤정을 중심으로 이이람(대금, 단소, 양금), 오정수(기타)의 세 명으로 출발했고, 황민왕(소리, 아쟁)이 참여하면서, 한국음악의 소재를 보다 넓혔다.새 음반의 여러 곡 중에서 한 트랙만을 선택하라면, 'Growth Ring'이다. 생장륜(生長輪) 또는 나이테로 풀이된다. 이 제목은 한국음악 자체의 그간의 성장처럼 보이기도 하고, 블랙스트링의 음악적 행보를 말해주는 것 같다. 주목과 방관을 반복해오면서 안으로 단단해지고, 온기와 냉기를 거치면서 스스로의 활로를 모색하는, 토종적인 한국음악의 숙명처럼 숭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블랙스트링의 음악이 견고하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이 곡은 한국 전통음악의 세 장르인 정악, 탈춤, 민요가 순차적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음악을 보다 더 심층적으로 살피면서, 이 셋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기존의 국악적 시각에서 보면 다른 음악이겠지만, 블랙스트링의 입장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한 뿌리의 음악이다. 다소 과장을 허용한다면, 이렇게 진행하는 연주가 마치 선녀의 옷은 꿰맨 자국이 없다는 천의무봉(天衣無縫)처럼 이어진다. 이번에 나온 블랙스트링의 음반 'Mask Dance'를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이들은 국악을 출발점으로 삼지만, '국악의 대중화'를 외치는 그룹이 아니다. 그렇다고 재즈레이블에서 나왔다고 해서 '재즈로의 투항'도 아니다. 블랙스트링은 한국의 전통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연주력을 바탕으로 한 음악이다. "이 시대의 국악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장 합당할까?"라는 질문으로 풀어낸 음악이다. 이런 화두로 풀어낸 블랙스트링의 음악은, 기존의 음악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경계했고, 새로운 음악을 만든답시고 저지르는 '섣부른 실험'도 배제했다. 이런 자세로 만들어진 블랙스트링의 음악은, 한국적 시각으로 보면 우리음악의 '현재형'이 되고, 재즈나 월드뮤직의 시장에서 보면 그간 들어보지 못한 '핫한' 음악이다. 블랙스트링은 이렇게 '한국음악의 자존심'을 세웠고, '세계음악의 돌파구'가 되었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10-02 윤중강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초상지풍: 풀 위에 부는 바람

예나 지금이나 정치집단은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 정점에 있는 이가 최고 권력자임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그가 지니고 있는 의미와 신념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방법이 지나치다싶으면 그 목적이 정당화될 수 없다. 논어에 자주 등장하는 季氏의 가문에 속한 季康子와의 대화에 그 내용이 나온다. 계강자가 "제가 추구하는 제대로 된 정치방향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죽여서 제대로 된 정치가 이루어지게 한다면 어떨까요?" 공자는 "정치란 德을 기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무력을 동원하여 강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가 진정 善한 정치를 지향한다면 자연 백성들도 당신의 노선을 지지할 것입니다. 이는 마치 풀이 바람의 방향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과 같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산이나 들에 가 보면 풀이 한쪽으로 누워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보면 그 곳의 풍향을 알 수 있다. 民草라 부르는 풀은 이렇듯 정치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바람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절대적으로 바람의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이다. 풀은 추위를 타며 앙상하게 누워있는데 바람이 남동풍이라고 우기면 누가 옳은 것인가? 民草와 風俗은 현란한 세치 혀로 속인다고 속일 수 있는 게 아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9-27 철산 최정준

[조성미의 나무이야기] 늘 푸르고 변함이 없는 잣나무

요즘 경기도 가평에는 잣 수확이 한창이다. 전국 생산량의 45% 이상을 차지하는 가평 잣은 잣알이 굵고 윤기가 흐르며 맛이 담백하고 고소해 경기도를 대표하는 임산물이다. 올해는 자연재해가 없고 일조량까지 풍부해 잣이 대풍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잣나무는 늘 푸르고 변함이 없어 소나무와 함께 고고한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나무다. 잣나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로 꼽히는데 잣나무를 영어로 코리안 파인(Korean Pine)이라고 하며 학명에도 한국의 나무라는 것이 분명히 표시되어 있다.잣나무는 소나무과의 상록침엽교목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에만 자란다. 추운 곳을 좋아하는 한대수종으로 우리나라에는 백두산과 개마고원에 주로 분포하고 강원도 오대산과 설악산 등 높은 산에서 자라는데 남부지방에서는 표고 1천 미터 이상 되는 고산지대에서 자생한다. 잣나무는 1970년대부터 조림을 시작했으며 리기다소나무와 낙엽송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심어져 있다. 잣나무는 토심이 깊고 비옥한 토양에서 잘 자라는데 어렸을 때는 그늘을 좋아하지만 커갈수록 햇빛요구량이 많다.잣나무는 높이는 30m, 가슴높이 직경이 1m까지 곧게 자라고 가지가 돌아가며 고르게 뻗어 긴 삼각형의 안정된 형태를 보인다. 나무껍질은 흑갈색이고 가로세로로 얇게 갈라져 있으며 바늘 모양의 잎은 짧은 가지 끝에 다섯 개씩 모여서 달리는데 유난히 짙푸르고 무성하다. 꽃은 적황색으로 5월에 피고, 열매는 다음 해 10월에 열리는데 솔방울처럼 생겼으나 긴 타원형으로 크기가 어른 주먹만 하고 비늘 밑에 잣이 들어있다. 보통 잣송이 하나에서 100개 정도의 잣이 나오는데 열매를 맺으려면 적어도 12년 이상 자라야 하고 25년 정도 지나면 결실량이 많아진다.잣은 죽을 쑤거나 요리나 다과에 고명으로 얹어 먹었는데 단백질 등 기본 영양성분은 물론 무기질과 비타민까지 고루 갖춘 완전식품이다. 잣은 지봉유설 등 옛 문헌에 보면 중국 사람들이 잣을 좋아해 당나라 때는 신라사신들이 갈 때마다 잣을 많이 가지고 가서 선물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중국에서는 잣이 매우 귀했는데 특히 신라인들이 가져간 잣의 품질이 좋아 우리나라 잣나무를 신라송이라고도 불렀으며, 바다를 건너왔다고 하여 잣나무를 해송(海松)으로도 불렀고 열매인 잣은 해송자라고 불렀다.정월대보름 전날 잘 고른 잣 12개를 바늘에 꿰어 열두 달을 정하고 불을 붙여 잘 타는 달은 일이 잘 풀린다고 믿어 한 해를 점치는 풍속이 있었고, 정월 초하룻날 잣나무 잎으로 만든 술을 마시면 액운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잣나무는 품질이 매우 좋은 목재다. 나무의 가운데가 불그스름한 색을 띠고 있어 색과 무늬가 아름다우며 틀어짐이나 수축, 팽창이 적고 가볍기까지 하여 건축재, 가구재, 선박재 등 다양한 곳에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송진이 많아 가공이 어렵지만 송진 때문에 향이 좋고 보전이 잘되는 장점이 있다. 옛말에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고 아들을 낳으면 잣나무를 심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빨리 크는 오동나무로는 딸의 혼례 때 가구를 만들고 곧고 굵게 자라는 잣나무로는 관을 준비한다는 의미이다. 경북 경산의 삼국시대 초기 고분에서 출토된 목관이 잣나무로 밝혀져 이용되어 온 역사가 그만큼 길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

2016-09-25 조성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후하안택: 아래를 후하게 해서 집을 편안하게 한다

사람이 땅에서 살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것은 땅의 후덕(厚德) 때문이다. 주역에서 땅은 실상 그 움직임이 지극히 강하지만(動剛) 현상으로 느껴지는 땅은 지극히 고요하다(至靜)고 하였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속도는 너무 빠르고 강하지만 우리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땅이 지닌 方正한 德이다. 사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라는 어마한 움직임에 비하면 일시적인 지진은 그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작은 움직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은 움직임이 어마한 災難의 움직임으로 느껴지며 그 때서야 비로소 땅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며 실감한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의 안전에 위험을 느낄 때라야만 땅을 돌아본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잊어버린다. 주역의 박괘(剝卦)는 광대한 대지 위에 산이 있는 상이다. 그렇듯이 사람들의 터전도 대지위에 건설한 것이다. 지반이 요동치면 산도 무너지고 인간의 집도 무너지니 그래서 집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싶으면 집을 으리으리하게 지을게 아니라 그 집을 짓는 아래의 땅의 후덕(厚德)을 살펴보라고 하였다. 천지는 천지 나름대로의 생리를 따라 운동할 뿐 인간의 안전은 관심 없다. 그러니 천상 인간이 그 운동양상에 맞추어 땅의 후덕에 의지할 뿐이다. 하늘이 없으면 단 한 번의 숨도 못 쉬고 땅이 없으면 한발자국도 걷지 못하면서도 사람은 천지에 감사하다는 인사도 한번 하지 않는다. 그렇게 각박하게 관심이 없는데 땅의 후덕이 제대로 발휘할까! 인간은 땅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오만이 있는 한 땅은 인간에게 후덕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9-20 철산 최정준

[시인의 연인] 가을 산길

맨 앞에 아버지가 가고 나는 아버지 뒤를 따라가고 오리는 내 뒤를 따라오고 모처럼 산길에서 만나 함께 길을 가지만 도시락도 들고 가지만 아무도 말이 없다 아버지는 옛날에도 말씀이 없으셨다 나도 아버지 닮아 말이 없고 오리도 말이 없다 가을 산길 이승훈(1942~)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인생은 어디서 출발했는가? 길에서 만나고 길에서 이별하며 길에서 길을 물으면서 살아가는, 당신은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통하는 길을 통해 인생이라는 길에서 길로 나아가며 다시 그 길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 길의 주체는 당신이지만 길을 있게 한 것은 아버지이므로 "아버지가 가고 나는 아버지 뒤를 따라가"는 피동적 주체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뒤뚱거리는 '오리'가 '맨 앞에' 닮아 있는 오리를 따라가는 것과 같다. 이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놓여 진 길들이 있지만 이러한 길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같이 유사하지만 다르며,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다. 아버지와 같이 말없이 익어가는 '가을 산길'에 서면 '나도 아버지 닮아 말이 없고' 묵묵히 아버지가 된 당신도 가족이라는 무리를 이끄는 한 마리 오리와 같이 아픔을 슬픔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저 아버지가 먼저 간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어갈 뿐이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이승훈(1942~)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09-18 권성훈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혼구유언: 중매하는 이가 말을 할 것이다

이번 주 월요일 부산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강도가 70년대 이후 관측 이래 가장 컸다고 한다. 예전 기록을 찾아보면 이보다 크다고 여길만한 지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관측기계가 정착된 이후의 기록으로 이야기할 때 그렇다는 것이다. 예전부터 원주민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콜롬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간의 생명이나 재산 등의 안전과 관련한 문제는 그 기준을 잡을 때 방만하게 하면 위험하다. 70년대 이후 최고라고 해서 그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반도의 지진에 관한 강도의 기준을 높여야한다는 의미이다.주역에 지진(地震)에 관한 진괘(震卦)가 있는데 천지가 진동(震動)하는 재난이 찾아왔을 때의 상황과 대처에 관한 괘이다. 먼저 사람은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래야 그 두려움을 무사히 지난 뒤에 웃으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 몸에는 아직 지진의 피해가 없더라도 이웃에서 지진이 나면 그것을 경계로 지혜로운 사람의 말을 듣고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을 잘 갖추어놓고 대비하라고 하였다. 이것을 혼구유언(婚구有言)이라 하였다. 이웃에 오면 얼마 후 나에게도 오는 것이 지진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9-13 철산 최정준

[시인의 연인] 들국화

너 없이 어찌/이 쓸쓸한 시절을 견딜 수 있으랴너 없이 어찌/이 먼 산길이 가을일 수 있으랴이렇게 늦게 내게 와/이렇게 오래 꽃으로 있는 너너 없이 어찌/이 메마르고 거친 땅에 향기 있으랴도종환(1955~)누구에게나 고향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하나이며 어머니로 표상되는 곳이다. 태어나고 자라난 고향은 차마 돌아가고 싶은 동경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고향의 회귀 의식은 존재적 본능이며, 그 장소에 우물과 같이 '상상의 두레'로 날마다 퍼내도 '그리움의 샘물'로 고이는 이유는 마르지 않는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험하고 거친 인생길을 방황하다가 먼 하늘을 보며 쓴웃음을 짓고 쉴 수 있는 것도, 삶의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고향이 하늘 너머에 있기에 그렇다. 고향이 있는 자, 혼자가 아니기에 "이 쓸쓸한 시절을 견딜 수 있"는 '무한한 에너지'이며, "이 먼 산길이 가을일 수 있"는 '아름다운 동행'이랴. 고향은 기쁘고 즐거울 때 생각나지 않지만 지치고 힘겨울 때 "늦게 내게 와/이렇게 오래 꽃으로 있는" 꿈에도 잊을 수 없는, 변하지 않는 향수인 것이다. "이 메마르고 거친 땅에 향기" 가득한 것도, 이와 같지 않던가./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도종환(1955~)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09-11 권성훈

[김준혁의 역사산책] 사헌부 장령 김호, 대한민국 부장검사 김형준

1687년(숙종 13) 3월 17일 사헌부의 정5품 지평으로 근무하는 김호(金灝)를 한 등급 승진시켜 정4품의 장령으로 임명하였다. 사헌부는 오늘날 검찰과 같은 기능을 하는 기관으로 '경국대전'에 시정(時政)을 논집(論執)하고, 백관을 규찰하고, 풍속을 바로잡고, 원억(寃抑)을 풀어주고, 유언비어 날조를 금하는 등의 일을 맡는다고 되어 있다. 이러한 직무에 따라 조정의 모든 관리의 비위 사실에 대한 탄핵감찰권과 일반범죄에 대한 검찰권을 아울러 행사할 수 있는 동시에 불복공소(不服控訴)에 대한 고등법원으로서의 구실까지 겸하는 등 국왕의 뜻을 받아 법률을 집행하는 법사(法司)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인사(人事)와 법률개편의 동의 및 거부권 등 국정 전반에 걸쳐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처럼 중요한 기관이었기 때문에 사헌부의 관원 임명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직한 젊은 엘리트들을 임명하였다. 특히 장령은 오늘날 검찰의 핵심인 대검찰청 부장검사에 해당하는 지위로 사헌부의 핵심 관료였다. 그래서 사헌부 장령이 조정의 회의에 참여하여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대소신료들 모두가 떨었다고 할 정도였다.사헌부 장령으로 임명된 김호는 국왕 숙종의 국정운영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장희빈을 총애하다 못해 그녀의 오빠인 장희재와 그의 측근들이 권력의 중심이 되어 국정을 농단하는 것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장령으로 임명된 지 7년 뒤인 1694년(숙종 20) 10월에 숙종에게 장희빈과 장희재 등의 권력농단에 대한 상소를 올렸고, 국왕 숙종의 무능한 국정 수행능력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비판을 하였다. 이로써 조정의 대신들은 김호를 사헌부 관원중 최고의 인물로 평가하였다.이와 같은 목숨을 걸고 파격적인 상소를 올린 김호를 장희재와 가까운 이조판서 유상운이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를 외직의 수령으로 보내 조정에서 간쟁을 하지 못하게 하였다. 유상운은 인사권을 갖고 있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김호를 두 달 뒤인 12월에 전염병이 발생하여 수령으로 가면 죽을 수도 있는 울산군수로 발령을 냈다. 그러자 이건명을 비롯한 조정의 신료들이 반발을 하자 이건명을 함경도 병마절도사의 막료인 북평사로 발령을 내어 조정에 남아 있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아버렸다. 상당수의 조정의 신료들도 함께 항의하였으나 유상운은 강행하고 말았다. 평소 몸이 병약했던 김호는 울산군수로 임명되어 온 정성을 다하다 3개월 만에 관아에서 사무를 보던중 44살의 나이에 죽고 말았다. 조선시대 가장 강직한 사헌부 장령이 멀고도 먼 바닷가의 고을에서 의도된 타살을 당한 것이다.최근 우리는 조선시대 사헌부와 같은 검찰의 검사들에 대한 뉴스를 자주 듣는다.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검사가 아닌 자신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부정부패를 일삼는 검사들의 이야기이다. 특히 전 국회의장의 사위인 김형준 부장검사의 파렴치한 행위는 국민들에게 분노를 넘어 좌절을 주고 있다. 우리가 사헌부 장령인 김호 같은 강직한 검사를 바라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양심을 가진 검사가 우리 검찰에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것이 희망이라면 대한민국은 희망이 없는 나라다./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2016-09-11 김준혁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시리고상: 밟아온 것을 보고

간사한 마음이 들 정도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날이 서늘해지기 시작한다. 요즈음 유난히 주위에 있는 지인들에게 부고가 많이 전해온다. 언제나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주는 일은 낯설고 슬프다. 지금은 그런 풍경을 흔히 볼 수 없지만 예전엔 시골에서 초상집의 문 앞에 상을 펴고 밥과 나물 그리고 짚신을 차려 놓는 풍습이 있었다. 망자의 혼을 데려가는 심부름꾼인 저승사자를 위한 것이라 여겨 사자밥이라고도 불렀다. 짚신은 먼 길을 떠나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어떤 경우는 세 켤레를 두기도 하는데 저승사자 둘과 망인을 위한 것이자, 삼혼(三魂)사상의 흔적이기도 하다. 주역에 사람이 삶을 살아가면서 남김 족적인 이력(履歷)에 대해 이야기한 괘가 이괘(履卦)인데 履卦의 맨 마지막에 視履라 하여 그동안의 밟아온 인생이력을 살펴본다고 하였다. 그런데 사람은 신발을 신고 다니며 땅을 밟아가므로 履는 신발이란 뜻이기도 하다. 즉 신발을 보는 것이다. 喪家에서 문전에 마련된 신발을 보면서 사람들은 고인이 그동안 밟아온 길과 앞으로 밟아갈 길을 생각해보기 마련이다. 그동안 신었던 신발을 벗고 또 길 떠나는 신발을 신고…. 이 끊임없는 모든 이들의 여정에 상서로움이 깃들길 바래본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9-06 철산 최정준

[윤중강의 음악살롱] 시간의 종말

'시간의 종말'은 메시앙(Olivier Messiaen, 1908-1992)의 작품이다. 포로수용소에서 작곡됐다. 독일이 침공하기 일주일 전, 메시앙은 프랑스군에 입대를 했고 포로가 된다. 1941년 1월 15일, 살을 에는 수용소에서 이 작품이 초연됐다.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를 다룰 수 있는 포로 세 명과 함께, 메시앙이 피아노를 연주했다. 이 작품의 온전한 제목은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다. 다큐멘터리 영화 '시간의 종말'(김대현 감독)은, 이런 메시앙의 음악에서 제목을 가져왔고, 메시앙의 음악을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은 모두 여덟 개의 악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메시앙의 이런 음악에서 한 부분씩을 가져와서, 모든 악장을 영화속에 효과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메시앙은 이 작품을 쓸 때, 먼저 4악장 '간주곡'부터 썼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앞의 1악장부터 3장을 채워나갔다. 이렇게 네 개의 장을 완성한 후에, 뒤의 네 개의 악장을 순차적으로 써 내려간 거다. 이 작품은 8개의 악장을 각각 의미가 있다. 특히 1악장 '수정체의 예배'부터 7악장 '시간의 종말을 고하는 천사들을 위한 무지개의 착란'까지는, 우리의 보편적 삶의 일주일과 비교하는 것이 가능하다. 여기까지가, 우리네 인간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8악장은 '예수의 영원성에의 송가'이다. 이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시간을 초월한 영원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메시앙의 작품에 거의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정서가 있다. 자연 속에서의 새소리다. 이 작품에선, 제 3악장 '새들의 심연'이 그렇다. 메시앙에 있어서, 현실 속의 가장 아름다운 소리이자 인간이 신에게 근접하면서 연결되는 매개가 '새소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에서 이런 메시앙의 음악은 양성원이 활동하는 트리오 '오원'과 클라리네티스트 채재일이 연주를 한다. 올해 초 첼리스트 양성원과 영화감독 김대현은 프랑스를 방문했다. 오래전 한국에 와서 순교한 프랑스 신부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영화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올해로 병인박해(병인순교) 150주년이 된다. 한국의 가톨릭 전파에 있어서 파리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Societe des Missions Etrangeres de Paris)의 역할은 중요했다. 다큐멘터리영화 '시간의 종말'은 이렇게 한국과 프랑스를 오가면서, 가톨릭과 박해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성찰하게 한다. 다큐멘터리영화 속 풍경은, 성스럽고, 슬프고, 아름답다. 영화가 중반쯤 되니, 눈물이 저절로 흐른다. 사실 박해란 것이 곧 처형이 아닌가! 칼을 휘두르는 망나니가 사람의 목을 베는 거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이런 장면을 매우 절제하고 있다. 영화는 참 따뜻하다. 메시앙의 작품은 이른바 '현대음악'이고, 난해한 음악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시간의 종말'의 8개의 악장의 중요한 부분을 발췌해서, 다큐멘터리영화 속에 잘 담아내고 있다. 역사적 사실과 종교적 심성을 아우르고 있다. 영화적으로도, 음악적으로도, 깊은 울림을 전달한다. 가톨릭이라는 종교적인 입장에선 물론이겠지만, 비(非) 종교적인 입장에서 볼 때도 이 영화에 내재된 철학적 사유는 전달된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09-04 윤중강

[시인의 연인] 너를 위한 노래 1

어디까지 갈지 나도 몰라강물 따라 가노라면 너 있는 곳바로 보이는지 그것도 몰라다만 나 지금은내 몸에서 깨어나는 신선한 피뜨거움으로 일렁이는 처음 떠오르는 말을하루 한 편의 시로 네게 전하고 싶다신달자(1943~)우리는 존재 이유를 대상으로부터 찾기 때문에 상대의 있음은 존재감의 시작이다. 그 사람은 인연으로 된 '관계 맺음'이며, 몸과 몸이 교합된 '에로스적인 사랑'을 의미한다. 나의 길은 오로지 그 사람의 길 위에 있는 것이며, 나는 온전히 '너를 위한 노래'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노래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주체가 아니라 상대가 주체가 되는 것이며, 상대를 위해 나는 자동적으로 불려지게 된다. 그 노래는 "어디까지 갈지 나도 몰라/강물 따라 가노라면 너 있는 곳"이라면 어디인지 길을 묻지 않으며, 가는 길이 맞는지 의심하지 않는 "바로 보이는지 그것도 몰라" 날마다 사랑이 곁에 있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내 몸에서 깨어나는 신선한 피"의 생성은 그와 같이 아침을 맞이하며 현실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삶의 피스톤'이 된다. 누구나 사랑을 하면 시인이 된다는 말이야, 말로 "뜨거움으로 일렁이는 처음 떠오르는 말을/하루 한 편의 시로 네게 전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당신, 오늘부터 시인이 될 수 있다. 아니, 인연을 만난 날 이미 당신은 아름다운 '한편의 시' 인줄 몰랐을 뿐이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신달자(1943~)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09-04 권성훈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일언상방: 한마디 말로 나라를 잃는다

금강경에 따르면 누구든 나름대로 '나'라고 생각하는 아상(我相)이 있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실제 세계인 여래(如來)를 볼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어느 정도이든 어떤 형식이든 아상이 있는 것이 중생(衆生)의 속성이라고 하였다. 나 아(我)자를 파자하면 손 수(手)와 창 과(戈)로 이루어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손에 창을 들고 있는 형상이 나다. 나라는 실체가 없어도 중생은 나라는 나름대로 상을 만들고 경계를 만들어 그 경계를 지키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내 몸에 상처가 나면 고통을 느끼는 것도 나라고 느끼는 내 몸의 경계 안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고통을 느낄 수 있으니 그것은 내 고통이다. 그래서 자아를 지키기 위해 그 영역에 집착하다 보면 그 힘이 강해지는 데 그것을 아집(我執)이라 한다.아집(我執)이 강할수록 자신의 일이라 생각되면 열정을 가지고 하지만 반면에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은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아집이 강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정치영역에서의 최고지도자이다. 아상과 아집은 자연스레 독선(獨善)으로 이어져 남의 말을 듣지 않게 된다. 공자는 정공(定公)의 질문에 '나를 어기지 않는 것이 임금 노릇의 참맛이다'라는 이 말 한마디는 나라를 망칠 수 있다고 하여, 지도자의 독재와 독선을 경계하였다. 지도자의 귀에 국민의 말이 안 들리면 그것이 바로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라는 뜻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8-30 철산 최정준

[조성미의 나무이야기] 한여름 정열적인 자태 뽐내는 배롱나무

유난히 기승을 부렸던 올 여름 폭염도 한풀 꺾이고 어느덧 가을의 문턱으로 접어들고 있다. 꽃이 흔하지 않은 한여름 뜨거운 태양보다 더 화사하게 피어나 붉디붉은 정열적인 자태를 한껏 뽐내는 나무, 무궁화와 함께 여름 꽃나무를 대표하는 배롱나무다. 중국 남부가 원산지인 배롱나무는 부처꽃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소 교목으로 높이가 약 5∼6m까지 자란다. 나무 전체는 넓게 퍼지는 둥근 타원형으로 줄기는 전체적으로 연한 갈색이나 껍질이 벗겨진 자리는 매끈하고 백색이다. 특히 줄기는 세월이 흐를수록 고풍스러움과 멋스러움을 더해 가는 특징이 있다. 잎은 마주나며 타원형이나 달걀을 거꾸로 세운 모양이다. 꽃은 7월부터 9월까지 가지 끝에서 원추꽃차례에 붉은색·보라색·흰색으로 피고, 꽃잎은 꽃받침과 더불어 6개로 갈라지는데 끝이 주름이 졌으며 아래에서부터 차례로 피고 진다. 꽃말은 '부귀'이며 흰 꽃은 향기가 좋고 꿀이 많아 여름철 밀원식물로 인기가 높다.배롱나무는 토양이 비옥하고 햇빛이 잘 드는 곳에서 잘 자라며, 추위에 약해 중부 이북지방에서는 겨울을 나기 위해 보온시설을 해주어야 하나 공해와 건조에는 강한 편이다. 배롱나무는 백일 동안 붉은 꽃이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해서 백일홍나무 또는 목백일홍(木百日紅)으로도 불린다. 한글이름인 배롱나무는 백일홍나무가 구전되면서 소리 나는 대로 '배기롱나무'로 발음되다 시간이 지나 '기'자가 빠져 배롱나무가 되었다. 나무껍질을 손으로 긁으면 잎이 움직인다고 해서 간지럼나무, 배고팠던 시절 꽃이 질 때쯤 벼가 익는다 해서 쌀밥나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제주도에서 부르는 '저금 타는 낭'도 간지럼 타는 나무라는 뜻으로 배롱나무를 말한다. 일본에서는 나무줄기가 매끄러워 원숭이가 미끄러지는 나무 '사루스베리'로 부른다.배롱나무는 나무의 수형도 아름답지만 꽃이 피는 기간이 길기때문에 예로부터 정원수로 각광을 받았다. 고려 말 선비들의 문집인 '파한집'이나 '보한집'에 이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고려 말 이전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세조 때 강희안이 쓴 원예서 '양화소록'에 배롱나무에 대해 "비단처럼 아름답고 이슬꽃처럼 온 마당을 비춰주어 그 어느 것보다도 유려하다"고 쓰여 있다. 중국에서는 배롱나무를 자미화(紫微花)라 부르는데 오랜 기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당나라 현종은 배롱나무를 매우 사랑해 국가 차원에서 심는 것을 장려했다고 하며, 배롱나무가 많은 당나라 장안의 성읍을 자미성이라 불렀을 정도다. 배롱나무는 줄기가 매끈하고 하얀 속살이 보여 여인의 몸을 연상케 한다 해서 대가 집 안채에 심는 것은 금기시했고, 사찰에서는 매년 한 차례 껍질을 벗어버리는 배롱나무를 보고 스님들이 속세의 때를 벗어버리고 수도에 정진하라는 의미로 심었다고 한다. 서원에는 선비들이 백일동안 꽃이 피는 끈기를 배우고, 깨끗하고 청렴하게 수행하라는 의미로 심어졌다.배롱나무의 꽃은 그늘에서 말려 차로 달여 먹고 기름에 튀겨 먹거나 국을 끓여 먹는 등 다양하게 이용된다. 나무껍질과 뿌리는 약용으로 사용하는데 주로 지혈, 해독, 천식 등에 효능이 있으며 잎에는 타닌성분을 다량 함유하여 철을 매염제한 흑갈색 계통의 색을 얻을 수 있는 염료식물로도 이용된다. 목재는 나뭇결이 곱고 단단하여 기구나 실내장식품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

2016-08-28 조성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