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 세상]등고자비(登高自卑)

등고자비(登高自卑)는 높은 데 오르려면 낮은 데부터 시작해야한다는 뜻이다. 모든 일에는 순서와 차례가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말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속담에 해당한다. 산정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 출발하는 것이 정석이다. 동일한 맥락에서 꿈과 사랑 등 인생사 자체가 등고자비 과정의 연속이다.김수현이 부른 'Dreaming'(작사 박진영·작곡 박진영, 개미) 노랫말은 꿈을 쫒는 발걸음을 등고자비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곡명 'Dreaming' 가사 도입부에 나타난 화자의 원대한 목표는 좌초 일보 직전이다. 그는 눈 앞에서 점점 멀어지는 꿈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해 한다: '저 멀리 희미해지는 나의 꿈을 바라보며/멍하니 서 있었죠'. 이런 이유 때문에 가슴 속에 밀려오는 극심한 허탈감에 사로잡힌다. 심지어 꿈이 '더 이상 남은 게 없어' 전부 포기할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포자기의 절체절명 순간에 그는 '두려움과 설렘을 안은 채'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기로 다짐한다. 마음 속 저 밑바닥 깊고 낮은 곳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을 준비를 한다. 고공을 향해 그리고 목표 실현을 위해 과감히 도전을 선언한다. 물론 화자가 또다시 실패할 가능성은 얼마든 지 있다. 그러나 가슴 속 내면의 '멈추지 않는 울림'의 등고자비 희망이 화자의 마음을 '앞으로' 이끌어 움직이게 한다: '비틀거리고 흔들려도 난 또 한 걸음을 내딛어요'. 때론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다가와 그를 주저하게 한다. 하지만 미래에 성취할 꿈이 있기에 그의 도전을 제지하지 못한다.윤종신이 부른 '오르막길'(작사:윤종신 작곡:윤종신, 이근호)노랫말도 등고자비의 예를 적절히 보여준다. 곡명 '오르막길' 가사는 노랫말 끝 구절 '크게 소리쳐/사랑해요 저 끝까지'가 상징하듯 단지 연인 사랑 찬가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의 극점에 오르기까지 예상되는 험난한 등고자비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화자는 사랑의 산정에 이르는 과정을 '완만했던 우리가 지나온 길'로부터 '가파른 이 길'을 거쳐 산꼭대기인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 곳'에 도달하는 힘겨운 오르막길 과정으로 갈파한다. 또한 등정 코스가 '웃음기' 사라지는 어려운 과정으로 묘사한다. 지난날 '달콤한 사랑의 향기'는 사라지고 '끈적이는 땀'과 '거칠게 내쉬는 숨'만이 등정 길 두 연인의 '유일한 대화'일 지도 모른다. 이 같은 험난한 과정에 두 사람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은 길을 함께 올라가는 상대방의 위대한 사랑의 힘이다: '사랑해 이 길 함께 가는 그대여/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화자는 두 연인이 '한 걸음 이제 한 걸음' 내딛고 함께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길을 기억하자고 역설한다. 산정에 발걸음이 닿는 순간에 연인 서로는 위안이 된다. 더 나아가 사랑의 등고자비 과정이 완결된다. 사랑의 태산이 높고 크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낮은 곳부터 천천히 오르면 사랑의 정상에 우뚝 설 수 있다. 서로 사랑하는 정인 관계라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누구든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지금부터 서서히 활용해보자. 마지막에 기회의 최고 정점에 다다를 수 있다./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2017-08-27 고재경

[시인의 연인]지금

커다란 고요가 있고여름 해가 있고흘러간 존재의 모습이 있다네가 떠난 다음마지막으로 지상에 남은 것이승훈(1942~)세계는 우리가 알아듣지 못하는 수많은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인식하지 못하는 시끄러운 것들은 사실상 공허한 잡음이며, 역설적으로 '커다란 고요'에 불과할 뿐이다. 내 안에 없는 것들, 여기 속하지 않은 것들은 세상엔 있지만 내게 없는 것이며, 때로는 있으나 마나한 것으로써 그 자체로 가치를 말할 수 있으나, 상대적으로 유의미를 가동하지 못한다. 시조시인 조오현 스님은 이것을 본질적인 것에 비유하면서 "삶이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라고 설법한 적이 있다. 반대로 '지금 여기' 없는 것들은, 삶의 경계 밖에 있으므로 지금 내게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지금 여기' 있는 것은 그대로 있어 왔던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삶이란 뜨거운 '여름 해'에 그을리면서 흘러온, 혹은 '흘러간 존재의 모습이' 이른바 지금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겠지만 '떠난 다음' 무엇이 남겠는가. 결국 '마지막으로 지상에 남은 것'은 당신이 힘들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가시밭길과도 같은 '바로 지금' 이 아니겠는가.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8-20 권성훈

[조성미의 나무이야기]안타까운 이별 아쉬움의 징표, 버드나무

장마철보다 비가 더 자주 오는 날씨에 무더위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 아직 남아 있을 늦더위에는 작렬하는 태양과 숨 막히는 지열을 피할 수 있는 시원한 계곡의 품이 무척이나 그리울 것이다. 물을 좋아해 계곡이나 개울, 호수 등 물가나 습지에서 무리지어 잘 자라는 나무,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을 선사해주는 버드나무이다. 버드나무 종류는 우리나라 전국에 분포하며 40여 종이 있는데, 민요 천안삼거리에 나오는 능수버들부터 새색시가 꽃가마 타고 가는 길에 가지를 길게 늘어뜨린 수양버들, 버들강아지라고도 불리는 시냇가의 갯버들,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키버들, 경북 청송의 주산지에 자라는 왕버들까지 다양하다. 버드나무는 버드나무과의 잎이 지는 넓은 잎 큰키나무로서 높이는 20미터까지 크게 자라며 암수딴그루이다. 줄기는 곧게 뻗으나 자라면서 비스듬해지며 가지가 굽어져 나와 전체가 둥그스름해진다. 꽃은 4월에 잎보다 먼저 피거나 거의 동시에 피는데 암꽃과 수꽃 모두 타원형으로 이삭처럼 뭉쳐서 달린다. 5월에 달리는 타원형의 열매는 다 익으면 껍질이 벌어져 하얀 솜털이 달린 씨앗이 나오는데 바람을 타고 잘 날아서 곳곳에 종자를 퍼뜨려 번식이 잘 되게 한다. 잎은 길이 5∼12센티미터 정도로 가지 끝에 어긋나게 달리는데 끝이 뾰족한 피침모양이며 얕은 톱니가 희미하게 있다. 잎은 서리를 맞으면 허옇게 돼서 떨어진다. 버드나무는 능수버들이나 수양버들과 달리 가지가 축축 처지지 않아 구별하기 쉽다. 버드나무류는 우리나라 전통 시문학에서 소재로 가장 많이 다루어졌다. 특히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눈을 틔워 봄을 대표하는 나무이기 때문에 봄날의 서정을 표현하거나 이별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 특히 옛사람들이 그냥 버들이라고 하는 경우는 수양버들을 말하는데 버들이 이별의 아쉬움을 나타내는 징표가 된 것은 중국의 고사와 관련이 있다.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의 동쪽에 흐르는 '파수'라는 강에는 '파교'라는 다리가 있었는데 당시 파교에서 이별하는 사람들이 늘어진 수양버들 가지를 꺾어서 떠나는 사람에게 주고 그 사람의 평안과 무사함을 빌었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조선 후기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버들가지를 주는 것이 재물을 들이지 않고서도 정성을 표할 수 있는 흔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나와 있다.불교에서 버들가지는 관세음보살의 대자대비를 상징해 실바람에도 나부끼듯이 미천한 중생의 작은 소망까지 귀 기울여 듣고 이루어주는 것을 나타낸다. 버드나무는 잘 휘어지고 부드러운 속성 때문에 종종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에 비유되기도 했다. 조선시대 정도전은 '삼봉집'에서 버들가지를 여인의 가는 허리로, 버들잎은 긴 눈썹으로 비유했다. 우리 조상들은 귀신을 물리치기 위해 오월의 버드나무를 꺾어 문 위에 걸어 놓았다. 버드나무 줄기에는 '인'성분이 많다. 산골에서 도깨비가 나온다고 알려진 곳은 버드나무가 우거진 숲인 곳이 대부분인데 '인'이 캄캄할 때 빛이 나므로 이것을 도깨비불이라고 두려워했다. 버드나무는 한방에서 잎과 가지를 이뇨, 진통, 해열제로 사용해 왔으며, 서양에서도 현대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가 임산부의 통증완화를 위해 버들잎을 처방했을 정도로 오랜 기간 민간요법으로 이용되어왔다. 버드나무에서 추출한 아스피린은 가정상비용 통증완화제에서 심장질환 예방까지 다양한 효과가 입증되어 널리 쓰이고 있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

2017-08-20 조성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천유오적: 하늘에 다섯 도적이 있다

올 여름 유난히 비가 많이 온다. 인류는 물이 없이 살 수 없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비님이라고 하여 경배하였다. 그런데 물이 너무 많아도 물난리에 살 수가 없다. 그래서 7년 가뭄이나 9년 홍수 이야기는 모두 물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실상을 담고 있다. 감로가 되기도 하지만 홍수로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물은 우리를 낳고 기르는 부모처럼 혜택을 주지만 동시에 우리를 죽이려드는 도적이 되기도 하니 우리에게 은인이자 해를 끼치는 도적이다. 그래서 음부경에 해로움은 은혜로움에서 나온다고 해생우은(害生于恩)이라고 하였다.서로를 해치려 상극하는 이치로 보면 수화목금토의 오행은 모두 오적(五賊)으로 부를 수 있기 때문에 이 세계에는 다섯 도적이 있다고 한 것이다. 이 다섯 도적이 서로를 극하는 이치를 잘 이용하면 여러 가지 적절한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예전에 우임금의 아버지인 곤이란 사람이 치수사업에 실패한 것은 그 이치를 제대로 몰랐기 때문이다. 오행이론에도 토가 수를 극하긴 하지만 수가 과도하게 넘치면 토가 유실(流失)된다고 하였다. 평상시의 강우량만 생각하고 물에 관한 대책을 마련해 방비시설을 준비하게 되면 비가 생각보다 많이 올 때 그것은 흉물로 돌변한다. 비는 사람에게 도적이 되어 찾아오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7-08-15 철산 최정준

[고영직의 여시아독(如是我讀)]'현재 진행형' 분단 트라우마

지방의 한 읍에서 읍 승격 20주년을 맞아 마을의 역사를 기록하는 읍지(邑誌)를 발간하고자 한다. 발간 전체를 통괄하는 편찬위원회가 결성되고, 실무를 책임지는 편집위원회가 꾸려진다. 역사학 전공 교수진에게 분야별로 원고를 의뢰했고, 완성된 원고에 대한 편찬위원회의 윤독회가 순조롭게 진행된다. 사단이 난 것은 작중 어느 교수가 읍의 근현대사에 대해 쓴 '해방정국과 6·25전쟁'편이다. 이른바 '좌빨' 시비가 빚어진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병산읍'에서 전쟁 당시 일어난 국민보도연맹(보련) 사건에 관한 서술 때문이다. 국민보도연맹은 1948년 12월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좌익쪽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을 전향시켜 이들을 보호하고 인도한다는 취지로 조직된 관변단체이다. 읍에서는 700여명 전후로 추산되는 희생자들이 발생했다. 그런데 더 많은 보련 희생자들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영화 '쉰들러 리스트'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면장 김후곤이 허형도 지서장을 찾아 구금 중인 보련원들을 풀어주면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허 지서장이 이에 응해 90여명의 보련원들을 풀어준다. 그 사건 이후 보련원들을 처리하라는 본서의 명령은 더 이상 내려오지 않았고, 민간인들에 대한 재판과정 없는 불법 학살은 중단된다. 원로작가 조갑상의 소설집 '병산읍지 편찬약사'는 위와 같은 문제설정을 통해 계속되는 분단 트라우마를 성찰하려는 만만치 않은 작가의 내공을 보여준다. 역사적 사실(fact)을 어떻게 서술하고 편집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분단 트라우마가 지금·여기 살아 있는 뜨거운 쟁점이라는 점을 하나의 축소판으로 보여준다. 다시 말해 과거사를 둘러싼 기억투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보도연맹 사건이 6·25의 전부가 아니다, 좌빨 글 싣는 데 한 푼도 예산 쓸 수 없다…, 같은 언사들이 작중 인물에게 가해진다. "요즘 이런 저술들의 추세가 그 고장의 변화 발자취를 통해 긍정적 측면의 발전사를 알리는 것 아닙니까." '긍정적 측면의 발전사'라는 표현이 예사롭지 않다. 해방 이후 역사 서술과 편집에 있어서 오직 하나뿐인 공식 이데올로기는 긍정적 측면의 발전사라는 사관(史觀)이 의식적·무의식적으로 강력히 짓눌러왔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의 관제(官製) 기억인 국정화 역사교과서를 도입하고자 한 박근혜 정부의 시도는 그 좋은 예가 된다. 이 점에서 조갑상이 소설에서 빚어낸 병산읍은 분단 트라우마로부터 아직도 자유롭지도 못하고, 자유로울 수도 없는 분단 한반도를 환유한다. 조갑상은 독자들에게 국민보도연맹 같은 분단 시대 비극의 역사에 대한 의미화란 결국 누구의 손에 의해 어떠한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결코 간단치 않은 화두를 제시한다. 작가는 1980년 데뷔 이후 줄곧 보도연맹 문제에 천착해오다 문제작 '밤의 눈'(2012)을 발표했다. 그는 '밤의 눈'에서 분단 트라우마의 실상이란 길들여진 공포가 작동해온 시절이었음을 사실감 있게 묘사한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드러내고, 사회적 생매장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는 인물 형상들은 21세기 분단문학의 소중한 결실이다. 그는 분단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길은 역사적 사실은 사실로 수용하되 역사적 사실을 넘어 문학적 진실을 중단 없이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소설집에 수록된 '해후'의 마지막 문장을 아프게 읽어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증산이 장인만이 묻힌 땅은 아니었다. 산소조차 쓰지 못한 죽음들도 새겨야 했다." 8·15, 72번째 광복절이 오고 있다./고영직 문학평론가고영직 문학평론가

2017-08-13 고영직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수시변역: 때를 따라 변화하고 바꾼다

이 땅에 절기상 가을을 세운다는 立秋가 들어섰다. 주역의 괘로 보면 곤괘(坤卦)의 기상이다. 坤을 뜯어보면 토(土)와 신(申)으로 구성되어있다. 이 땅에 申월의 기운이 찾아온 것이 坤이다. 건(乾)의 하늘이 선천적이라면 곤(坤)의 땅은 후천적이다. 음력으로 1월에서 6월까지가 1년 12달의 전반부라면 7월부터가 1년의 후반부에 들어가니 올해의 후천이 또 시작된 것이다. 선천과 후천은 동양사상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변화의 관점에서 보면 선천은 기존의 변화를 따르는 것이고 후천은 새로운 변화를 만드는 것이다. 때가 바뀌면 바뀌는 때를 따라서 새롭게 바꾸어 가야한다는 것이 수시변역(隋時變易)이다.새로운 변화를 만들어가려면 기존의 변화를 계승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올해 태세인 정유(丁酉)의 천간과 지지를 보면 천간은 丁이고 지지는 酉이다. 천간은 선천이고 지지는 후천인데 선천의 丁은 오행으로 火에 속하고 후천의 酉는 오행으로 金에 속한다. 올 연초에 달과 火星과 金星이 위에서 아래로 나란히 모습을 드러내 丁酉의 太歲에 호응한 바 있으니 선후천타령을 해보는 것이다. 金은 예로부터 숙살(肅殺)의 기운을 띤다고 알려져 있다. 올해 전반기 火氣가 주름잡았다면 이제 후반기는 金의 숙살지기(肅殺之氣)가 펼쳐질지 모른다. 어느 때보다도 중앙 土의 중재자역할이 중요한 시기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7-08-08 철산 최정준

[시인의 연인]강물을 보면서

내 가슴에 상처를 남기고 떠난 사람들용서하자, 용서하자 하면서도 저 강바닥의 수심 같은 옹이 하나,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의 등을 밟아야 오를 수 있는저 물살의 무게,그들도 내 등을 밟고 가느라 꽤도 힘들었을 게다내 등에 박힌 상처, 상처에서 불꽃 수시로 피어오르는데오늘 이 강에 이르러서야 물결처럼 놓아 주어야 한다는 생각,생각의 깊이로 돌아가 누워야 할 물의 심지그 심지에 이르러 나를 버리는 일,상선약수上善若水이리라이영춘(1941~)상처를 덮기 위해 우리는 누군가에게 더 큰 상처를 만들었다. 자신의 빈틈만큼 남의 흉터에 집을 짓는 것을 스스로 허용하면서 흘러왔다. 물과 같이 가벼워지기 위해 "강바닥의 수심 같은 옹이 하나" 모르는 척, 깊도록 잠재우면서 "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의 등을 밟아야 오를 수 있는/저 물살의 무게"를 넘어 '위선의 부력'을 행사하면서 '삶의 자장'을 넓혀온 지난날. 내가 그들의 등을 밟고 갔듯이 돌이켜보면 "그들도 내 등을 밟고 가느라 꽤도 힘들었을 게다" 당신이라는 강물은 옹이를 드러내며 "오늘 이 강에 이르러서야 물결처럼 놓아 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 시작된 '물의 심지'를 보는 순간, '생각의 깊이'는 그동안 길고도 깊게 늘어트려 온 욕망이라는, 그 생각마저도 돌아가 버리고 싶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8-06 권성훈

[손경년의 늘찬문화]지방분권과 문화분권… '지역의 냄새'를 잃지 말자

잠시 소나기가 내린다 한들 연일 30도를 웃도는 날씨가 계속되면 아무리 더위를 타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내리쬐는 햇볕이 마뜩치 않을 것이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할 즈음, 비록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는 지구적 상황을 알고 있을지라도 '입추가 지나면 서늘한 바람이 분다'는 절기의 성실함을 내심 믿고 싶다. 어쨌거나 이런 더위 속에서도 이달 3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는 '모두가 함께 하는 문화청책포럼'이 개최되었고, 전국에서 온 100여명의 참석자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문화·체육·관광분야 전반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거침없이 제시했다. 알다시피 '문화청책(聽策)'이란 '정책수립을 위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는다'는 의미이며, 그런 점에서 격식 없는 자리를 만들어 현장의 소리에 다가서고자 하는 도종환 장관과 문광부의 태도는 이전 정부와 확연히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문광부는 조만간 두 차례 더 '청책'의 자리를 만들고, '지방분권, 문화분권'이라는 기본방향에 따라 지역문화진흥, 문화자치, 생활문화의 일상화를 실현시키기 위한 조직의 변화, 즉 '지역문화국'을 만들 것이라 한다. 그동안 문광부 내에서 지역관련 정책은 '지역전통문화과'에서 다루어져왔는데, 앞으로 '과(課)'단위에서 '국(局)' 단위로 상향조정한다고 하니 아마도 정책실현의 정도가 이전과는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지역이 열쇠'라고 보는 현 정부 문화정책의 방향은 지극히 타당하다. 알다시피 지역을 '중앙과 지방'의 개념으로 여기거나 높낮이를 두고 하찮게 바라보면 자치권과 재량권을 형성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지방분권의 실현은 지역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니체는 모든 존재에 대한 인정(認定), 다시 말해 자신과 더불어 상대에 대한 인정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버릴 것이 없으며, 없어도 좋을 것이란 없다"라고 표현했다. 니체의 눈에 기대어 지역과 지역문화를 바라본다면, 지역에서 일궈지는 모든 것이 다 유의미하지 않을까 싶다. '지역의 이해'는 문화기획의 계획단계를 어떻게 설계하는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생긴다. 우선, 도시를 잘게 쪼개어 마을과 동네 단위로 밀착시켜 사람, 공간, 콘텐츠 등을 찾아내는 선행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이를 통칭하자면 '지역학' 혹은 '마을학'의 정립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의 기본적인 방법으로, 지역 내 혹은 인접지역에 있는 대학(교)들과 협력하여 세미나 등을 통한 지역 의제 발굴과 교과과정을 활용한 학생 참여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의 양태, 관심사, 문화적 활동 방식 등 기초자원을 조사하고자 할 때, 지역소재 대학의 커리큘럼에 지역조사 및 연구를 포함시켜 학생들이 참여하게 하거나, 학교와 문화원, 지역문화재단 등의 기관들이 협력하여 지역문화자원 발굴, 지역소재의 스토리텔링, 스토리텔링에 기반을 둔 콘텐츠 생산 등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수도 있다. 지역에 대한 이해는 '아프리카 냄새를 잃은 코끼리는 이미 코끼리 따위가 아니지'라는 말처럼 '지역의 냄새'를 잃지 않는 것이 기본전제이며, 지역자원 활용의 고도화와 지역문화의 이해가 있어야 비로소 '지방분권과 문화분권'이 제대로 작동될 수 있는 출발선이 보일 것이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7-08-06 손경년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지신수우: 섶을 가리켜 몸을 닦아 복을 받는다

지금은 거의 모든 문명이 전력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밤을 낮처럼 밝힐 수도 있는 편리한 시대이다. 하지만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시골에서는 전기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이 때의 에너지원은 땔나무였다. 음식을 해먹을 때나 겨울철 추위를 나기 위해 부엌의 아궁이나 방안의 화로에 불을 붙여 사용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성냥조차 없던 시절에는 불씨를 섶 속에 보관하여 다음날 또 사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깊은 산골에서 그 불씨가 꺼지는 순간 불씨를 다시 얻어야 하는 일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불씨가 이어지지 않으면 집안 살림의 가장 중요한 동력이 멈춘다. 현 시대에서도 갑자기 전기가 나가면 집안의 기기가 아무것도 작동되지 않는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사람이 복을 받는 것도 하루만 선행을 해서 되거나, 나의 세대만 좋은 일을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 좋은 일을 하고 내일 멈추거나, 내 세대에서만 좋은 일을 하고 다음 세대에서는 멈춘다거나 하면 그 복이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옛사람들은 불씨를 끊어지지 않게 전하는 일로 비유하였으니 그것을 지신(指薪)이라 한다. 그 불씨가 담긴 섶을 가리키며 인생의 복도 그와 같이 계속 닦아야 이어진다는 수우(修祐)를 이야기한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7-08-01 철산 최정준

[주종익의 스타트업]절벽에서 뛰어내려라

기업가 정신은 스타트업의 기본 정신이다. 인간에게 정신이 없다면 식물인간이듯이 기업가 정신이 없다면 식물 스타트업이다.스타트업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기술이나 제품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강한 정신력과 끊임없이 도전하는 용기가 없이는 스타트업은 불가능하다. 보통 기업가정신을 언급할 때면 늘 어느 교수가 이러이러하다고 정의를 내렸고 어느 성공한 기업가가 이러이러하다고 했으며 기업가 정신은 이러이러한 것이라는 이론투성이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럴 때 처음으로 등장하는 학자가 우리가 잘 아는 '창조적 파괴'를 주장한 슘페터다.그러나 스타트업은 배운 내용을 달달 외워서 시험에 A학점 맞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수영과 마찬가지이다. 물속에서 헤엄치는 것이 학술적으로 외워서 되는 것이 아니다. 물 밖에서 백날 이론적으로 배워 봐야 몸이 수영하는 방법을 터득하지 않는 한 물속에 들어가면 빠져 죽는다. 직접 물을 먹어가면서 몸으로 익힌 것을 습관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기업가 정신은 외우거나 이론이기 보다는 그냥 이야기하듯 늘 접하고 익힌 것을 실천하는 실천 정신이다. 4개의 짧은 스토리로 요약했다.기업가 정신의 첫 번째는 '절벽에서 뛰어내려라'이다. 기업가 정신의 핵심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이다. 죽을지도 모르는 무서움과 두려움을 각오하고 뛰어내리는 정신이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도전하는 용기는 이것 이상은 없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유별나게 공무원이나 교사 등을 선호하는 것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헤쳐나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오히려 어려움을 극복하는 능력이 향상될 뿐이다. 기업가정신의 두 번째는 '결단으로 시작하라'다. 사생결단이라는 말은 있어도 사생결심이라는 말은 없다. 취업 대신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은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루에도 수십 번도 더하는 단순한 결심만으로 하기에는 너무나 큰 일이다. 결단이란 자주 하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중요하고 영향력이 큰 일을 결정 할 때는 결심이 하니라 결단을 내려야 한다. 스타트업을 한다는 결정은 결단이다.세 번째는 '해커가 되라'이다. 남의 컴퓨터에 들어가 몰래 정보를 빼내오는 것을 해킹이라고 한다. 나쁜 의미의 해커를 뜻한다. 좋은 의미의 해커를 화이트 해커라고 한다. 해커가 되라 라는 말은 화이트 해커 정신을 가지라는 뜻이다. 해커정신은 보통 미국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가지고 있는 정신이다. 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것은 무조건 고치려고 하고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잠을 자지 않으면서 해낸다. 규정이나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다. 또 이런 일들을 돈 때문에 하지 않는다. 넷째는 '남이 가는 길은 가지 마라'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The road not taken(가지 않은 길)'이라는 유명한 시가 있다. 두려웠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갔더니 나의 인생이 달라졌다는 시다. 아무 생각 없이 너도나도 자기소개서 쓰고 입사 원서 내고 면접하고 하는 길은 이제 그만 가야 한다. 산업화 시대까지는 괜찮았다. 이제는 젊은이들이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기업가 정신은 초등학교 때부터 길러 주어야 한다./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외대 외래교수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외대 외래교수

2017-07-30 주종익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촌보난이: 한 발걸음을 옮기기 어렵다

평소 사람들은 소심하다는 남에게 말을 하기도 하고 자기가 듣기도 한다. 대담하는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소심(小心)이나 대담(大膽)은 둘 다 오장육부를 들어 표현한 것이다. 소심(小心)은 심장(心臟)이 작다는 것이고 대담(大膽)은 담(膽)이 크다는 뜻이다. 한의에서 심장은 오행 가운데 화(火)에 속하고 담(膽)은 오행 가운데 목(木)에 속한다. 원래 목화(木火)는 발산하는 기운이고 금수(金水)는 수렴하는 기운이다. 발산은 확장하는 특징이 있는데 그것을 제대로 발휘하면 대담(大膽)이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소심(小心)이다.그런데 명심보감에서는 소심함이란 천하를 버릴 수 있는 것이며(小心天下去得), 대담함이란 한발자국 옮기는 것(大膽寸步難移)을 어렵게 여기는 것이라고 하였다. 작은 것을 버릴 줄 알고 큰 것은 버리기 어려운 것이 보통인데, 소심함이란 작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이므로 진정한 소심함은 남들이 버리기 어려운 천하를 작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가까운 곳은 작게 여겨 쉽사리 가고 멀리 있는 곳은 어렵게 여겨 발걸음을 옮기기 어려운 법인데, 대담함이란 가까운 곳을 크게 여겨 쉽사리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천하를 버릴 줄 아는 소심함과 한 걸음 옮기는 것을 어렵게 여기는 대담함은 보통의 사람들이 갖추기 어려운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7-07-25 철산 최정준

[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 세상]사면초가(四面楚歌)

사면초가(四面楚歌)는 사방에서 들리는 초(楚)나라의 노래라는 뜻이다. 유방의 한나라는 항복한 초나라 병사들로 하여금 고향 노래를 부르게 해서 패색이 짙은 초나라 항우로 하여금 자결하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사면초가는 적에게 둘러싸인 상황 또는 그 누구의 지원 없이 고립무원에 빠진 상황을 일컫는다.JK 김동욱이 부른 '미련한 사랑'(작사:박창학, 작곡:이병훈) 노랫말은 떠나가려는 여자를 붙잡고 싶은 남자의 사면초가 위기 상황을 담고 있다. 화자인 남자는 다가올 내일 일은 알 수 없다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매몰차게 말하는 여자가 야속하다. 그 여자가 '마치 언제라도 나를 떠나 버릴 수 있을 것처럼' 남자의 애정 전선에 냉기류를 형성한다. 헤어지려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두 사람 사랑에 빨간 적신호가 켜져 있다. 남자는 여자를 도저히 떠나보낼 자신이 없다. 그저 '힘없이 웃고 있는' 자신이 두려울 뿐이다. 그러기에 남자는 자신의 사랑을 답답하고 어리석은 '미련한 사랑'으로 인식한다. 더 나아가 임박한 이별에 애타며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간다. 갈수록 남자는 '헤어날 수 없는' 사랑의 사면초가에 빠져든다. '그 어떤 우연이' 그가 '모르는 아주 먼 곳으로' 자신의 여자를 데려갈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이때 남자는 자신과 여자가 애정의 출발선이었던 처음 '만난 곳으로' 그리고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곳'으로 원점 회귀의 심정을 토로한다. 이같이 가슴 시린 애틋함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속절없는 미련과 아쉬움을 뒤로한다. 결국, 그는 고립무원의 처지에 내몰리게 된다. 에스크로가 부른 인디음악 '하루만이라도'(작사:정연태, 아루앤 폴, 작곡:정연태) 노랫말에도 초나라 병사 노래처럼 사방에서 벼랑 끝에 선 인생 노래가 들려온다. 하루살이 삶으로 살아가는 세일즈맨 화자의 인생에 희망의 무지개는 실종됐다. 그는 오늘도 '열기 오르는 보도블록 바닥을' 뛰고 또 뛴다. 오전에 외친 '대박'이 '현실'이 되길 꿈꾼다. 그러나 돈도 없고 '백'도 없는 '벼랑 끝' 인생만이 철저히 그를 지배한다. 그에게 어릴 때부터 소망해온 '무지갠' 사라진 지 오래다. '구렁이 상사'의 매서운 눈치를 살펴야 하고 매일 '폭탄주'를 마셔야 하는 운명의 남자 세일즈맨의 비애가 노랫말 전반을 관통한다. 화자는 '하루만이라도' 실컷 잠을 자보고 싶다는 꿈을 말한다. 그러나 죽음을 상징하는 회색 빌딩 숲을 지날 때 그에게 남은 것은 생존 본능인 '오기'뿐이다. 영업 실적을 올려야 하는 부담 백배의 사면초가에 빠진 화자이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목청껏 소리 지를 한순간의 여유도 없다. 그것은 단지 희망 사항일 뿐이다. 화자는 위기의 덫에서 빠져나올 기회가 원천 차단되어 있다. 그의 인생은 '지각 인생'인 동시에 배수진을 친 진퇴양난 인생인 셈이다.삶의 성패와 흥망은 순간이다. 누구나 인생에 초나라 노래가 들려와서 궁지에 빠질 때가 올 수 있다. 인생 자체가 세일즈맨처럼 무거운 심리적 압박에 시달릴 때도 다반사이다. 위기에 처할수록 '하루만이라도' 하늘의 아름다운 무지개를 꿈꿔보자. 꽉 막힌 숨통을 잠시나마 틔우지 않을까 싶다./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2017-07-23 고재경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성유호우: 비를 좋아하는 별이 있다

나의 감정과 기분이 내 안의 닫힌 세계 속에서만 일어나고 유지되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전 과정동안 외부세계와의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루어진다. 그러니 나의 감정이나 기분 등도 열린 세계 속에서의 일이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우리는 덩치가 커지면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지구 도는 소리가 그렇게 큰 데도 나의 귀는 아랑곳없이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다. 지구도 그렇단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 폭우로 인명과 재산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그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가뭄으로 논밭이 말라 농사를 짓지 못했다. 이래저래 기상재해를 당한 꼴이다. 툭하면 지구온난화 탓으로 돌리는데 이골이 나다보니 별 수가 없다는 생각도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구의 기분이나 전반적인 상태도 열린 세계 속에서 작용하고 있다. 천체속의 지구이다. 우리가 어쩌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거기에는 해와 달과 별이 운행하고 있다. 바로 그들의 영향으로 지구의 기분에 변화가 오는 것이다. '서경'에는 천체의 영향으로 지구의 기후가 달라진다고 보았는데 현대 우리들보다 더 열린 생각이다. 그 중에 별을 좋아하는 별이 지구에 영향을 주면 비가 많이 오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별을 보길 좋아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열려있음을 직관했기 때문이다. 그 세계에서 신호를 주면 무시하지 않아야 재난에 대처할 준비를 할 수 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7-07-18 철산 최정준

[시인의 연인]고백성사 -못에 관한 명상

못을 뽑습니다휘어진 못을 뽑는 것은여간 어렵지 않습니다못이 뽑혀져 나온 자리는여간 흉하지 않습니다오늘도 성당에서아내와 함께 고백성사를 하였습니다못자국이 유난히 많은 남편의 가슴을아내는 못 본 체하였습니다나는 더욱 부끄러웠습니다아직도 뽑아내지 않은 못 하나가정말 어쩔 수 없이 숨겨 둔 못대가리 하나가쏘옥 고개를 내밀었기 때문입니다김종철(1947~2014)못이 상징적으로 작동할 때, 못은 일상적인 것을 넘어서 수많은 의미의 못으로 박힌다. 이때 못은 못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 상상 사이에서 전도되면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를테면 못이 가지고 있는 날카로운 성질은 누군가의 표면을 뚫고 가슴에 뿌리박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타자에게 못을 박는 주체가 나일수도 있고, 타자가 주체가 되어 나에게 못을 박을 수도 있다. 특히 가슴에 '휘어진 못'이 있다는 것은, 그 만큼 고통을 감수해야 그것을 뽑아낼 수 있으며, 그것을 제거하더라도 그 자리는 흉터로 남기 마련이다. 이러한 흉이 많다는 것은 못자국이 가슴에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뽑아도 뽑히지 않는 못대가리가 있다는 것은 고백한다고 해서, 용서할 수 없는 죄의 뿌리가 깊다는 말이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7-07-16 권성훈

[조성미의 나무이야기]불꽃같은 자태로 화려한 축제를 연출하는 자귀나무

후텁지근해서 짜증나기 쉬운 장마철이다. 한껏 녹음이 무르익어가는 요즘 숲이나 공원 등에서 곱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자귀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자귀나무는 여름에 가장 독특하면서도 화려한 꽃을 피운다. 짧은 진분홍색 비단실을 부챗살 모양으로 펼쳐 놓은 것 같은 꽃은 마치 공작새 수컷이 화려한 날개를 펼친 듯해 단번에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특이한 모양의 꽃은 사실 꽃잎이 아니라 수꽃의 수술이다. 우산모양으로 모여서 피는 꽃은 나무 제일 높은 곳에서 한 가지에 스무 개 정도 피는데 수꽃의 꽃잎이 퇴화되어 3㎝쯤 되는 수술이 술잔 모양의 꽃받침에 싸여 있다. 수꽃 사이에 달리는 암꽃은 피지 않은 꽃봉오리처럼 봉곳한 망울들을 맺고 있는데 수꽃과 달리 아주 수수한 생김새다. 자귀나무는 꽃만큼이나 잎의 모양도 매우 독특하다. 줄기에 잎이 하나씩 달리지 않고 초승달 모양의 작은 잎들이 모여 하나의 잎을 만들고 이들이 다시 줄기에 달리는 깃꼴 겹잎이다. 아까시나무처럼 대부분의 겹잎은 개개의 작은 잎들은 서로 마주보고 달리고 가지 끝에 홀로 달린 잎이 있는데 자귀나무는 홀로 남는 잎이 없이 완벽하게 짝이 맞는다. 낮에 활짝 퍼져 있던 잎은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거나 비가 오면 서로 마주 보며 접히는데, 이 모양을 보고 부부의 금슬을 뜻하는 합환목, 합혼수, 야합수 등의 이름으로 불렀다. 집안에 심으면 부부간의 애정이 두터워진다고 하여 결혼 초 울타리 안에 심기도 했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아이가 나무 밑에 누우면 학질에 걸린다고 하여 집안에 심는 것을 금기시하기도 했다. 자귀나무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는데 '짝나무'에서 '짜기나무'를 거쳐 생겼다는 것과 목재를 찍어서 깎고 가공하는 연장인 자귀의 손잡이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나무였기 때문에 자귀나무가 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경상도에서는 소가 좋아해 아주 잘 먹는다고 해서 '소쌀나무' 또는 '소쌀밥나무'라고도 부른다. 서양에서는 실크트리 즉 비단나무라고 부르고, 남태평양의 휴가지로 유명한 사이판에서는 자치령의 국화로 정하기도 했다. 자귀나무는 낙엽활엽수교목으로 장미목 콩과에 속한다. 우리나라 황해도 이남에 분포하며 아시아와 중동이 원산지이다. 햇빛을 좋아하는 양수이며, 보통 3~5m 정도로 자란다. 회갈색의 줄기는 껍질이 갈라지지 않으며, 가지가 많이 나와 길게 옆으로 퍼져 역삼각형 모양이다. 10월에 열리는 열매는 콩과식물답게 15㎝ 정도의 납작한 긴 콩꼬투리 모양의 열매가 다닥다닥 달려 겨울을 난다. 스산한 겨울바람에 자귀나무 열매가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시끄러워 여자의 혀에 비유해 '여설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우리 조상들은 자귀나무가 자라는 모양을 보고 농사에 활용하기도 했다. 자귀나무는 5월경에 잎이 늦게 나오는데 움이 트게 되면 늦서리가 없으니 마음 놓고 곡식을 파종할 수 있고, 첫 번째 꽃이 필 무렵에 팥을 밭에 뿌렸다. 한방에서는 자귀나무 껍질이나 꽃이 진통이나 강장, 진정효과가 있다하여 신경쇠약이나 불면증에 약재로 사용했다. '동의보감'에는 껍질이 '맛이 달고 독이 없으며,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근심을 없애고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고 나와 있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

2017-07-16 조성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지이장왕: 지식은 지난 일을 저장한다

易에서는 모든 변화의 가장 큰 상징이 천지이기 때문에 천지로 사물과 변화를 이야기한다. 인식과 시간의 문제도 천지로 이야기한다. 시간과 인식을 기준으로, 이 세계를 나에게 열려있는 세계와 닫혀있는 세계로 구분해볼 수 있다. 닫혀있던 세계가 열리기도 하고 열렸던 세계가 다시 닫히기도 한다. 시간을 기준으로 삼아보면 하늘은 무한히 다닐 수 있는 열려있는 미래의 세계를, 땅은 더 이상 다닐 수 없는 닫혀있는 과거의 세계를 상징한다. 주역에서는 사람의 인식작용가운데 미래의 일을 추측하는 것을 신(神)이라 하고, 과거의 일을 저장하는 것을 지(知)라 한다. 신(神)은 하늘에 해당하는 양(陽)의 인식이고 지(知)는 땅에 해당하는 음(陰)의 인식이다. 땅에 해당하는 음(陰)의 인식인 지(知)가 지난 시절의 인식의 총체를 잘 간직하여 그것을 활용하는 이른바 빅데이터(Big Data)를 표방하는 현대사회에서 화두로 등장한 인간의 기억(記憶)이란 것도 알고 보면 장왕(藏往)하는 지(知)의 기능에 해당한다. 그러나 하늘이 없는 땅은 상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의 지(知)란 인식이란 것도 미래의 일을 추측하는 신(神)과 함께해야 온전할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7-07-11 철산 최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