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시인의 연인] 처서(處暑) 지나고

처서 지나고저녁에 가랑비가 내린다.태산목泰山木 커다란 나뭇잎이 젖는다.멀리 갔다가 혼자서 돌아오는 메아리처럼한 번 멎었다가 가랑비는한밤에 또 내린다.태산목 커다란 나뭇잎이새로 한 번 젖는다.새벽녘에는 할 수 없이귀뚜라미 무릎도 젖는다.김춘수(1922~2004)성장기가 지난 사람은 더 이상 자라지 않듯이 자연의 풀도 '처서 지나고' 성장이 멈춘다. 처서는 뜨거운 시간을 지나온 여름의 끝이며,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의 시작이다. 끝과 시작의 모퉁이에서 사물들이 왔던 곳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저녁, 가랑비가 내렸다. 크든지 작든지, 많든지 적든지, 있든지 없든지 처서 이후에 비를 맞았다. 이제 비를 맞는다고 해서 그것들의 차지가 늘어나지 않을 것이며, 가을빛으로 물들며 떨어져 내릴 것이다. "태산목泰山木 커다란 나뭇잎"도 "멀리 갔다가 혼자서 돌아오는/메아리처럼" 다시 돌아갈 그때가 지금이다. 외롭고 높고 쓸쓸해지는 이 시간 "태산목 커다란 나뭇잎이" 젖어가듯 세상에 당신이 피워낸 '초록의 욕망'도 소리 없이 가랑비에 풀이 죽는다. '귀뚜라미 무릎'까지 차오른 가랑가랑한 죽음을 보면 가야할 길이 그렇게 멀지 않는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당신도, '새벽녘에는 할 수 없이' 성장이 멈춘 처서에 들고 있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김춘수(1922~2004)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08-28 권성훈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학이불행: 배우고도 실행하지 못함

중용이란 책에 보면 사람이 도리를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을 일치하기 위해서는 배우기를 좋아하고, 힘써 행하고 그러지 못할 때에는 부끄러움을 알아야한다고 해서 이 세 가지가 지혜(知)와 어짊(仁)과 용기(勇)에 다다를 수 있는 추동력이라고 하였다. 이 세 가지를 완비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세 가지를 삼달덕(三達德)이라고 한다.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부자가 자공(子貢)이었고 가장 가난한 제자로는 원헌(原憲)이었다고 한다. 자공은 공자가 도를 펴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가장 마지막까지 공자를 모신 제자로 학식도 뛰어났다. 반면 원헌은 부끄러움을 알았던 제자로 논어에도 공자에게 부끄러움에 대해 묻자 부끄러움은 나라가 정상적인 방법으로 굴러가지 않는데도 녹만 받아먹고 있으면 그것이 치욕이라고 대답하는 대목이 있다. 자공이 배우길 좋아하는 知를 추구했다면 원헌은 치욕을 아는 勇이 있었다. 하루는 화려한 치장을 한 수레를 타고 자공이 원헌이 사는 집을 찾아왔다. 마중 나온 원헌의 옷은 남루하고 신발도 떨어져있었다. 그러자 자공이 물었다. "어찌 병이 들어있습니까?" 그러자 "재산이 없는 것을 가난이라 하고 배우고도 행하지 못함을 병들었다 하는데, 나는 가난한 것이지 병든 것이 아닙니다"하였다. 진짜 병든 것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8-23 철산 최정준

[남재철의 날씨이야기] 태풍, 피할 수 없다면 끄떡없이 이겨내자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와 함께 태풍이 다가올 시기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우리에게 찾아와 긴장시키는 태풍, 어떻게 생성되는 걸까?태풍은 북태평양 서쪽에서 발생하는 열대저기압으로, 세계기상기구(WMO)는 중심 부근의 최대풍속이 33m/s 이상의 열대저기압을 태풍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일반적으로 17m/s 이상을 태풍으로 분류한다. 태풍은 발생 초기에는 서북 서진하다가 북상해 편서풍 지역에 이르면 진로를 북동쪽으로 바꿔 한반도를 향하는데 육지에 상륙하면 에너지원을 잃고 지면 마찰로 인해 빠른 속도로 약화하면서 소멸한다. 태풍이 접근하면 폭풍과 호우로 수목이 꺾이고, 건물이 무너지고, 통신 두절과 정전이 발생하며, 하천이 범람하는 등 피해가 일어난다. 하지만 태풍이 파괴력을 갖고 있다고 해서 피해만 주는 것은 아니다. 전 지구적인 관점으로 볼 때 태풍은 수자원의 공급원으로 물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1994년 여름은 유난히 덥고 길어 가뭄이 극심했었는데 그나마 더위를 식혀주고 가뭄을 해갈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 8월에 내습한 태풍 '더그(Doug)'다. 사람들은 이 태풍을 효자 태풍이라 불렀다. 또, 태풍은 저위도 지방에 축적된 대기 중의 에너지를 고위도 지방으로 운반해 남북의 온도균형을 유지해주고 해수를 뒤섞어 순환시킴으로써 바다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태풍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버리고 대비를 철저히 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태풍이 발생하면 대형·고층건물에 거주하는 주민은 유리창에 테이프를 붙여 파손에 대비해야 한다. 주변에 간판처럼 낙하위험시설물이 있다면 제거하거나 정비해야 하고 가로등, 신호등, 고압전선은 접근하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태풍주의보 또는 경보를 라디오나 TV,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기상청은 2015년 5월부터 태풍보다 한 단계 약한 열대저압부(TD;Tropical Depression) 정보서비스를 제공한다. 태풍의 사전, 사후에도 위험기상을 동반할 수 있는 열대저압부 예보는 태풍 정보서비스 영역을 확장한 것으로 태풍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 기상청은 올해 8월부터 제주지역을 대상으로 태풍 영향예보 서비스를 시범운영 중이다. 기존의 태풍예보가 태풍진로와 강도에 관한 기본적인 내용만을 제공했다면, 태풍 영향예보는 지역별 특성을 고려해 잠재피해나 침수 등의 위험성까지 고려해 위험 가능성을 4단계, 이를 다시 위험 수준 10단계로 구체적으로 나눠 예보해 방재 관계기관에 제공해 태풍에 미리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기상청은 올 여름철 라니냐의 영향으로 태풍 수가 평년보다 적을 것으로 예상했다. 북서태평양 해역에서 전체 7~10개 정도의 태풍이 발생하지만, 그중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는 태풍은 약 1개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다. 태풍 발생 빈도수가 적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 라니냐가 발달하면 대류활동이 활발해져 강력한 태풍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최근 고온화의 영향으로 매우 강한 강도의 태풍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발표하는 기상청 '가을철 태풍전망'도 꼭 확인해 피할 수 없다면 미리 예방해 이겨내길 바란다./남재철 기상청 차장남재철 기상청 차장

2016-08-21 남재철

[시인의 연인] 소망

생애 끝에 오직 한 번화사하게 꽃이 피는대나무처럼 //꽃이 가면 깨끗이 눈 감는대나무처럼 //텅 빈 가슴에그토록 멀리 그대 세워놓고바람에 부서지는 시간의 모래톱 //벼랑 끝에서 모두 날려버려도곧은 길 한 마음단 한 번 눈부시게 꽃피는대나무처럼김후란(1934~)언제나 변화하지 않는 절개와 정조의 식물, 대나무가 있다. 푸르고 곧은 대나무의 형상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인간의 마음을 비유하기에 충분하다. 대나무가 피어올린 꽃은, 생애 한번 보기 힘들 정도로 희귀하면서 개화 시기도 알 수도 없다. 그러나 대나무가 꽃을 피우고 나면 죽고야 만다는 속설과 같이 그 꽃은 대나무의 마지막을 알려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생애 끝에 오직 한 번/화사하게 꽃이 피는/대나무"에서 인간의 가치를 자연의 숭고한 것에서 발견하려고 한다. "꽃이 가면 깨끗이 눈 감는/대나무"는 "텅 빈 가슴에/그토록 멀리 그대 세워놓고/바람에 부서지는 시간"과 "벼랑 끝에서 모두 날려버려도 곧은 길 한 마음" 온갖 비바람을 서서 맞이하며 숙명적으로 한 사람을 기다리는 대나무에게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이 시대가 배워야 할 '마음의 길'을 본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김후란(1934~)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08-21 권성훈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기용불족: 흉년이 들어 쓸 것이 부족함

현대 경제에서는 주체를 국민과 기업과 정부로 구분한다. 정부는 국민과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재정을 마련한다. 세금을 더 거두는 것을 증세(增稅)라 하는데 이 증세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늘 문제가 되어왔다. 노나라군주 애공과 공자제자 有若의 대화에서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 노나라 군주 애공이 "임금이 나라에 흉년이 들어 쓸 것이 부족하니 어쩌면 좋겠소?"하고 물었다. 그러자 유약은 '철(徹)'법을 쓰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였다. 徹은 주나라의 세금제도로 백성에게 10분의 9를 얻게 하고 10분의 1만을 거두는 조세법이다. 그런데 당시에는 주나라 조세법과 달리 10분의 2를 거두는 조세법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 흉년으로 백성들이 쓸 것이 없으니 10분의 1로 줄이자는 것이 유약의 생각이다. 그러자 노나라 애공은 10분의 2의 세금으로는 나라 재정에 쓸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물은 것인데 어떻게 10분의 1로 줄이자는 대답을 할 수 있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유약이 답한다. "백성이 풍족한데 임금이 부족한 이치는 없고 백성이 부족한데 임금이 풍족한 이치는 없다." 여기서 不足하다는 의미가 서로 다름을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그 주체는 백성이어야 한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8-16 철산 최정준

[김준혁의 역사산책] 암행어사 정약용의 상소(上訴)

1794년(정조 18) 가을, 흉년으로 농사를 망쳐 백성들이 고통에 빠져있는데 경기도의 여러 수령들이 백성들을 돌보지 않고 부정부패를 하고 있다는 소문이 도성에 가득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이 되자 수령을 신뢰하지 못하는 백성들이 암행어사를 파견하여 탐관오리를 해결해달라고 조정에 간곡하게 요청하기 시작했다. 그 소식을 들은 정조는 11월 초에 젊은 관리들 15명을 은밀히 불러 모았다. 정조는 청렴결백한 젊은 관리로 평가받고 있는 그들을 경기도 전역에 암행어사로 보내기로 하였다. 정조는 이들에게 "수령의 잘잘못을 규찰하고 백성들의 괴로움을 살피는 것이 어사의 직임이다. 비단옷을 입는 것은 그 은총을 드러내는 것이요, 도끼를 지니는 것은 그 권위를 높이려는 것이다" 라며 철저한 조사를 지시하였다.이 청년 관리들중에 32살의 정약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정조가 정약용에게 조사하라고 지시한 지역은 경기 북부의 적성, 마전, 연천과 삭녕의 네 고을이었다. 정약용은 이곳에 가서 은밀히 조사를 시작하였다. 조사를 하던 정약용은 너무도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직 삭녕군사 강명길과 전직 연천현감 김양직의 부정부패가 일반 수령들에 비해 극에 달한 것이다. 김양직은 마음대로 환곡을 나누어 주어 높은 이자를 받아 자신이 챙겼고, 강명길은 가난한 백성들이 스스로 개간한 화전(火田)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여 자신이 착복하였다. 강명길은 부평부사로 자리를 옮기고도 그 못된 행위를 그만두지 않고 더욱 심한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정약용은 이 두 사람의 죄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으니 유배형에 처해야 한다고 정조에게 상소를 올렸다. 정조는 매우 곤혹스러웠다. 왜냐하면 이 두 사람이 자신이 매우 총애하는 관료들이었기 때문이다. 강명길은 자신의 건강을 책임지는 내의원의 태의(太醫)였다. 강명길은 정조의 체질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치료를 전담하다시피 하였다.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몸이 좋지 않았던 정조는 자신의 건강을 지켜준 강명길을 무척 신뢰하였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수령으로 보내준 것이다. 김양직은 정조의 부친인 사도세자의 묘자리인 수원 현륭원의 터를 잡아준 지관(地官)이었다. 부친 사도세자에 대한 지극한 효심을 갖고 있던 정조는 김양직이 잡아준 묘자리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연천현감을 제수한 것이다. 의관과 지관이 고을의 수령으로 임명된 것은 조선 역사에서 매우 드문 일이었다. 이만큼 이들은 정조의 신뢰를 받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정조의 신뢰를 이용하여 엄청난 비리를 저지르며 백성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였다. 정약용은 "법의 적용은 마땅히 국왕의 가까운 신하로부터 하여야 합니다"라며 정조가 잘못을 저지른 이들을 유배형에 처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국왕의 측근이 법을 지키지 않거나 법에 따라 처벌받지 않는다면 다른 관료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할 수도 없고, 관료들의 불법을 처벌하여 국가의 법질서를 확고히 세울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정조는 사적 감정을 배제하고 이들을 유배형에 처했다. 최근 대통령의 측근인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가 온 나라 국민들의 관심이다. 여러 행태의 배임과 부동산 관련 비리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대통령은 그를 해임하지 않고 오히려 감싸고 있다.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다. 200여년 전 정조와 정약용이 다시 태어나 이 모습을 본다면 무어라 할지 궁금하다. 지금 권력자들이 청렴하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부끄러운 것을 부끄럽게 여기었으면 좋겠다. 너무 큰 기대인가!/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2016-08-15 김준혁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손하익상: 아래에서 덜어서 위에 보태 준다

주역에 손해를 본다는 損卦가 있고 이익을 본다는 益卦가 있다. 損卦는 아래에서 덜어내 위에 보태주는 괘이고, 益卦는 위에서 덜어내 아래에 보태주는 괘이다. 이름을 붙인 기준이 아래임을 대번에 알 수 있다. 損卦는 아래가 덜려서 손이고 益卦는 보태주니 익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아래란 바로 나 같은 서민이다. 損卦에는 서민의 주머니에서 덜어내는 세금부여의 도리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첫째 덜어내면 안 되는 것은 덜지 말아야 한다. 덜어내면 안 되는 것은 기본적 생계의 부분이다. 둘째 서민의 삶이 튼실해졌을 때 덜어내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기계적으로 세금을 올리면 깡패보다 나은 게 없다. 셋째 덜어내더라도 국민과의 합의를 통해 참작해서 덜어내야 한다. 이것은 세금을 부과하는 양적인 문제이다. 공자도 자신의 제자가 다스리는 마을에 세금을 가혹하게 부과하자 그를 성토하라고 하였다.서민들의 애로를 달래주던 담배에 건강을 명분으로 가격을 배로 인상하고, 수입 없는 노인에게 주던 연금을 갑자기 단절하고, 민생치안에 바빠야 할 경찰들이 운전 띠 검사에 대대적으로 투입되고, 이 여름 전기요금까지 이중 잣대를 들이대며 서민을 짓눌러오고 있으니 날도 더운데 이런 시리즈를 목도하고 있으려니 숨이 막혀 힘이 든다./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8-09 철산 최정준

[윤중강의 음악살롱] 송창식과 함춘호

"여기 우리 음악이 있다!" 여우樂페스티벌의 슬로건이다. 올해로 일곱 번째가 되는 '여우락'은 그간 국악에 뿌리를 두고 있는 축제였다. 전통성과 실험성이 적절하게 공존하는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해서 한국음악의 새로운 성과를 공감하는 축제다. 올해는 달랐다. 다른 장르의 아티스트가 대거 참여했다. 성과도 달랐다. 국악에 대한 이해와 활용은 천차만별이었다. 타 장르의 아티스트 중 송창식과 함춘호가 빛났다. 일반적인 음악으로 봤을 때도 그렇고 특별하게 국악으로 봤을 때도 그렇다. 그들은 국악기를 전혀 사용치 않았다. 오직 기타 두 대가 존재했다. 여기에 송창식의 노래가 합쳐졌다. 이렇게 두 사람이 만들어낸 노래는 과거의 포크송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70년대의 포크음악은 이 시대의 새로운 민요 혹은 민속음악처럼 다가왔다. K-POP을 들으면서, 세련된 편곡을 바탕으로 한 가창력과 칼군무에 놀랐다. 하지만 늘 '이게 과연 우리음악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대중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우리음악'적인 모습은 무엇일까? 송창식과 함춘호가 하나의 답을 해주고 있었다. 송창식은 국악의 호흡에 익숙했고 함춘호는 보컬의 호흡에 익숙했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이 과거의 포크송을 국악적인 노래를 만들고 있었다. 한국적인 호흡이 존재했다. 국악 특유의 미학인 '죄고 품', 곧 긴장과 이완의 묘미가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음악'이라 부를 수 있었다. 함춘호의 기타는 달랐다. 요즘 25현가야금보다도 더 국악적이었다. 새로 창작된 국악곡에서 25현가야금이 화성을 채우려는데 급급하기도 하다. 함춘호라는 기타의 고수(高手)는 마치 노래의 고수(鼓手)와 같았다. 그의 기타는 선율이자 장단이었다. 그는 송창식의 노래에 내재된 리듬(호흡)을 찾아냈고 소리꾼의 호흡과 노래를 잘 따라갔다. 아주 이상적인 고수(鼓手) 의 역할을 했다.국악계에서, 또 여우락페스티벌에서, 이런 송창식의 1970년대의 가요를, 국악기가 중심이 된 보다 더 한국적인 음악으로 만들면 어떨까? 송창식이 부른 '피리부는 사나이'에서의 피리가 꼭 국악기를 의미하는 건 아닐거다. 관악기의 통칭일 수 있다. 피리를 통해서 풍류 하는 즐거움을 얘기하고 있다. 이런 노래에 진짜 피리가 등장하면 어떨까? 진솔하고 또 농염하게, 이 노래가 갖는 가치를 깊게 해 줄 거다. 이런 작업을 통해서 70년대의 포크음악이 이 땅의 민속음악으로 뿌리를 내리게 될 거다. 여우락엔 단골 레퍼토리가 있다. 국악기로 듣는 영화음악콘서트도 좋았고, 클래식이나 재즈분야의 탁월한 뮤지션과의 콜라보도 괜찮았다. 하지만 이런 것의 대부분은 바로 현장에 신기하고 놀라면서 끝난다. 이렇게 탄생된 음악 중 지속적으로 계속 듣게 되는 음악이 얼마인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08-07 윤중강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책인서기: 남을 꾸짖음과 자기를 용서함

동양의 고전에서 사람을 단순히 구분해서 말할 때 人과 己를 쓴다. 이 때의 人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아니라 남이란 뜻이고 己는 자기이다. 즉 남과 나, 나와 남의 관계로 사람들의 관계를 말할 때 쓰는 것이 己와 人이다. 대표적으로 修己治人이란 말도 자기를 다스리고 남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지구의 70억 인구는 모두 己와 人으로 상대해서 표현 할 수 있다.최근에 외국인 승려가 한국 불교 조계종을 여러 각도에서 비판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이해와 책망의 문제인데 이와 관련해 송대의 재상 范純仁이 자식을 훈계하며 한 말이 생각난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도 남을 꾸짖는 데는 밝고 아무리 총명한 사람도 자기를 용서하는 데에는 어둡다. 그러니 너희들은 남을 꾸짖는 마음으로 자기를 꾸짖고 자기를 용서하는 마음으로 남을 용서하라."누구든 어느 분야이든 비판과 책망은 성장에 필수적인 거름이다. 그러나 大學이란 책에서는 그 전제를 달아놓았다. "자기 몸 안에 품고 있는 것이 남들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남을 훈계할 도리는 없다." 己와 人은 큰 틀에서 보면 국가 간의 문화일 수도 있다. 한국엔 한국의 종교문화가 있고 그 속엔 극복해야할 요소와 지켜나가야 할 요소가 혼재되어있다. 충분한 이해가 없는 비판은 한편으로는 비난으로 들리기 쉽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8-02 철산 최정준

[조성미의 나무이야기] 선비의 지혜와 절개를 상징하는 회화나무

무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는 8월, 꽃이 만발한 봄을 피해 이맘때쯤 가지 끝에 황백색의 자잘한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다. 바로 선비의 지혜와 절개를 상징하는 회화나무이다. 중국이 원산지이며 콩과에 속하는 넓은 잎 큰키나무인 회화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서나 잘 자란다. 높이 30미터, 직경 2미터까지 크게 자라는 회화나무는 느티나무, 은행나무, 팽나무, 왕버들과 함께 우리나라 5대 거목중 하나이다.회화나무는 가지를 많이 쳐서 넓게 자라며 어린가지는 푸른색을 띠는데 비비면 특유의 냄새가 난다. 잎은 아까시나무와 비슷하며, 꽃은 꽃대가 휠 정도로 많이 피는데 밀원이 부족한 한여름에 꿀벌들에게 인기가 높다. 열매는 9~10월에 노란색으로 익으며 둥근 씨앗이 줄줄이 연결되어 있는 꼬투리모양으로 독특하다.회화나무는 한자로 나무목과 귀신귀를 합친 괴(槐)로 쓰는데 괴의 중국 발음이 '회'이므로 회화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지방에 따라서 회나무·해나무·호야나무 등으로 다르게 부르기도 한다. 흔히 회화나무를 '학자수' 또는 '선비목'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이는 중국의 과거시험 중 진사시험의 시기가 회화나무꽃이 필 즈음이었기에 '괴추(槐秋)'라 부르기도 하고, 과거에 응시하는 사람들이 합격을 기원하는 뜻으로 회화나무를 심는 등 이런 관행이 송나라까지 이어져 회화나무는 사대부와 학자, 선비를 상징하는 나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화나무는 영문명도 같은 뜻인 스칼라 트리(Scholar Tree)이다. 회화나무는 우리 선조들이 최고의 길상목으로 손 꼽아왔는데 회화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인물이 난다고 귀하고 신성하게 여겨 함부로 아무 곳에나 심지 못하게 했다. 특히 집안 앞마당에는 보통 나무를 심지 않던 우리 선조들은 회화나무만큼은 앞마당에 특별히 심었고, 심지어는 옛 선비들이 집을 옮겨갈 때 이삿짐 목록에 집어넣을 정도로 회화나무를 무척 아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회화나무는 우리나라와 중국 유교문화의 핵심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회화나무가 유교를 이해하는 중요한 나무로 등장한 것은 중국 주나라의 제도 때문이었다. 주나라에서 삼공(三公)의 자리와 고급관리인 사(士)의 무덤에 회화나무를 심어 신분을 구분했다.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삼은 송나라시대에도 회화나무는 상징목이었는데 지금도 허난성 등의 서원에서는 회화나무를 볼 수 있다. 또한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삼은 조선왕조도 조정과 관청, 그리고 향교와 서원을 중심으로 회화나무를 상징목으로 보급했기에 창덕궁과 성균관, 안동 도산서원, 해남 녹우당 등 유교관련 유적지에는 예외 없이 회화나무를 볼 수 있으며, 도산서원을 배경으로 한 천 원짜리 지폐 뒷면의 무성한 나무도 바로 회화나무이다.회화나무는 꽃과 열매, 껍질, 뿌리 등을 한약재로 사용하는데 주로 고혈압과 중풍, 손발의 마비 등 순환기계 질병과 치질 등에 효과가 크고 오래 먹으면 머리카락이 희어지지 않고 장수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회화나무꽃에는 루틴성분의 노란색소가 많아서 혈압을 내려주고 모세혈관을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열매에는 열을 내리고 혈액의 응고를 촉진해 주는 성분이 있어 예전에는 출혈이 있을 때 열매를 갈아 마시기도 했다. 특히 열매에는 천연여성호르몬이 풍부해 갱년기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효과가 있어 중년 여성을 위한 특급약나무라고 할 수 있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

2016-07-31 조성미

[시인의 연인] 나체족

벗음으로 오히려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벗어버리면 덜렁거리는 남근도질척이는 사랑의 입구도그림자일 뿐이다.김왕노(1957~)인간 존재는 본질적으로 최소한의 물질을 취하고 보유해야 살 수 있기에,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무소유는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더 가지려고 하지 않는 것, 소유 자체의 부정이 아니라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이다. 욕망의 바닥은 집착이며, 이 집착의 근원지를 찾았을 때, 그토록 욕망했던 물질에서 해방될 수 있다. 물질은 보이지 않는 욕망의 실체이며, 물질의 채움과 비움은 욕망의 움직임이 된다. 욕망에 매여 있는 한, 소유에서 다른 소유에로 나아 갈 뿐 욕망의 벗어남은 불가능하다. 소유를 끊고 대상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물질에 관계하는 '대상없는 마음'이 필요하며 대상을 동기화시킬 때 최적화될 수 있다. "벗음으로 오히려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라는 역설이야 말로 있음의 욕망을 모두 벗고 자유로운 상태에 이른 경지다. 따라서 감추고 있었던 '덜렁거리는 남근'과 '질척이는 사랑의 입구'로 음부만 남기는, 전라의 형상은 '무소유의 이미지'인 줄 모른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김왕노(1957~)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07-31 권성훈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미음망신: 그늘을 즐기느라 몸을 잊다

어느덧 매미울음소리가 아침저녁으로 가득하다. 올해처럼 무더운 여름 매미도 덥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득 장자의 매미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어느 날 장자가 남의 과수원에서 끌리는 새를 발견하고는 잡으려고 하였다. 가만히 보니 그 새는 사마귀를 잡아먹기 위해서 정신이 팔려있었다. 사마귀는 또 매미를 잡아먹으려고 정신이 팔려있었다. 매미는 그늘 속에서 피서를 즐기느라 정신이 팔려있었다. 이 모든 것을 관찰하며 빠져든 장자조차 과수원주인에게 꾸지람을 당한다.인간을 포함한 생명에게는 욕구가 있다. 생존의 욕구, 안전의 욕구, 명예의 욕구 등 추구하는 분야와 정도는 달라도 욕구가 없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욕구가 충돌되기도 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욕구가 남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생태계의 먹이사슬로 비유를 한 것이지만 인간사회에서도 종종 벌어진다. 그런데 최종의 승자는 없다는 것이 장자의 생각이다. 그늘을 즐기는데 정신이 없는 매미를 바라보는 사마귀는 자신이 승자라 여기겠지만 그 위에는 그 사마귀를 노리는 새가 있고, 또 그 새에게는 그 새를 탐내는 장자가 있고, 또 그 장자를 지켜보는 과수원 주인이 있다. 과수원 주인이 조물주라면 인간은 모두 욕망의 수레바퀴에서 돌고 돈다. 문제는 욕망의 지나침이다. 너무 깊은 욕망은 탐욕이고 탐욕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여 화를 초래하기도 한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7-26 철산 최정준

[남재철의 날씨이야기] 폭염과 날씨이야기

지난 100여 년 동안 한반도에서 관측된 기후자료 분석에 따르면 장마는 6월 말에 시작해 약 한 달 동안 전국적으로 많은 비가 내렸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에는 장마가 제대로 힘을 못쓰고 오히려 심각한 가뭄과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올해 여름에는 슈퍼 엘니뇨에서 라니냐로 바뀌는 기간으로 습하고 무더운 공기를 포함하고 있는 북태평양 고기압의 위력이 약해 장마전선이 중부지방까지 올라오지 못하고 남부지방에 잠시 머물면서 많은 비를 내렸다. 북태평양고기압이 활성화돼 장마가 끝나면 폭염을 동반하는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최근 기후변화에 따라 세계적으로 기상재해가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발생시키는 기상재해인 폭염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세계에서 최악의 폭염 피해를 기록한 사례는 지난 2003년 8월 서유럽에서 발생했다. 프랑스(1만9천490명), 스페인(1만5천090명), 독일(9천355명)에서 발생해 엄청난 인명피해를 기록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폭염에 의한 온열 질환자가 2009년 1천482명, 2013년 5천396명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사망자도 발생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폭염은 지구온난화로 많은 영향을 받고 있으며, 발생기간도 길어지고 있다. 따라서 기상청에서는 일 최고기온이 33℃를 넘는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때 '폭염주의보'를 발표를 발표한다. 폭염특보는 국민안전처의 '긴급재난문자'로 해당 지역의 전 국민에게 알리게 된다. 이처럼 정부에서 폭염이 주요한 재해로 인식됨에 따라 여러 기관이 합동으로 폭염에 대비하고 있다. 기상청에서는 폭염특보 기간을 확대하고 폭염 관련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온열 질환자 발생 감시 및 정보수집체계를 개선하고, 국민안전처에서는 긴급재난문자를 발송하고 무더위쉼터 위치안내 등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지자체와 경찰청에서는 농어촌 영농작업장 대상 폭염 피해 예방순찰을 시행하고 있다. 최근 기상청에서는 보건복지부, 국민안전처, 밥상공동체 연탄 은행과 공동으로 폭염 취약계층의 피해 예방을 위한 '해피해피 캠페인'을 시작했다. '해피해피 캠페인'은 '여름엔 해(태양)를 피하고 행복해지자'는 의미로 폭염의 위험성과 행동요령을 알려, 온열 질환 피해를 줄이는 데 있다. 특히, 재난정보 접근이 어려운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욱 필요하다. 실제로 폭염에 의한 피해는 취약계층인 노인과 아이들에게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서울 인천과 같은 대도시는 도시 열섬효과가 겹쳐져 폭염과 열대야가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농촌 지역에서는 야외에서 농사일하는 농부들이 폭염 위험에 많이 노출돼 있다. 수도권 지역은 도시 농림 복합지역으로 취약계층인 도시영세민과 노약자 그리고 농민들이 많이 거주해 이들의 안전을 위한 맞춤형 폭염서비스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남재철 기상청 차장남재철 기상청 차장

2016-07-24 남재철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방약무인: 곁에 사람이 없는 듯 행동하다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물은 차구나(風蕭蕭兮易水寒) 장사가 한번 감에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壯士一去兮 不復還) 호랑이 굴을 찾아 교룡의 집으로 들어간다(探虎穴兮入蛟宮) 하늘을 우러러 기합을 외치니 하얀 무지개를 이루는구나(仰天噓氣兮 成白虹) 이 시는 형가(荊軻)라는 자객이 진(秦)나라 시황제로 불리는 정(政)을 암살하기 위해 역수(易水)를 거너기 전 불렀던 노래라고 한다. '사기'의 '자객열전'에 등장하는 형가는 위(衛)나라 출생이다. 연(燕)나라의 태자 단(丹)의 식객이 되어 그의 부탁을 받아 진나라 왕을 암살하기 위해 진나라에서 온 장수 번오기의 목과 연나라 지도를 가지고 진나라에 들어갔지만 진나라의 왕을 죽이는데 실패하고 죽게 된다. 그가 연나라에 있을 때 죽이 맞아 깊이 사귄 고점리란 인물이 있었는데 고점리는 축(筑)이란 악기를 잘 다루었다. 서로 술을 마시면 고점리가 악기를 연주하고 형가는 노래를 부르며 노는 모습을 표현한 말이 방약무인(傍若無人)이다. 본래는 마치 주위에 아무도 없는 듯 신경 쓰지 않고 서로의 감흥에 취해 연주하고 노래했다는 뜻이다. 나름대로 인연과 품은 뜻이 있고 게다가 이런 기질이 있었기에 자객이 되어 암살을 시도했을 것이다.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일상에서는 방약무인하면 큰 실례로 나쁜 의미인데 요즈음 연일 뉴스에 나오는 각종 테러를 보면 정말 방약무인이다. /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7-20 철산 최정준

[김준혁의 역사산책] 파리동양어학교 도서관의 한국 서가(書架)

2016년 7월 1일. 프랑스 파리 동양어학교 도서관에 있었다. 파리동양어학교는 루이 16세때 아시아로 파견하는 외교관을 위하여 언어를 집중적으로 교육하기 위해 만든 349년 교육기관이다. 이 교육기관에서 양성된 수많은 외교관과 제국주의 국가 건설의 신봉자들이 중국과 일본 그리고 조선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아시아를 식민지화 하거나 국제 교류를 통해 자국의 이익을 얻겠다고 치밀하게 준비한 프랑스 사람들을 생각하면 무섭기 그지없다. 유로 2016 축구대회 열기로 가득한 시기에 이곳을 찾아간 것은 특별한 이유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이곳에 한글로 작성된 정리의궤(整理儀軌) 때문이다. 이 정리의궤는 주한 프랑스 초대공사인 블랑시(Collin de Plancy)가 구입하였다가 자신의 모교에 기증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너무도 잘 알려진 수원에서 개최된 혜경궁 홍씨의 회갑진찬연을 비롯한 8일간의 화성행차가 기록된 글이다.이 의궤는 매우 귀중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파리동양어학교에서 한국에서 활용할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필자를 포함한 4명의 방문단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자 하였다.필자는 이곳에서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한글본 정리의궤를 본 것 때문이 아니었다. 다름 아닌 파리동양어학교 도서관을 관람하고 나서였다. 전 세계의 수많은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고, 전 세계인들이 전문적으로 혹은 대중적으로 공부하고 책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파리동양어학교 도서관이었다. 우리들에게 호의를 베풀기 위해 아시아담당관은 개방된 아시아 서가로 방문단을 안내했다. 그는 자신들이 2차 세계대전 이후 한국에서 간행된 역사와 문학을 비롯한 여러 책들을 소장하고 있다고 환하게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한국 서적들이 꽂혀있는 서가는 아시아관 가장 뒤편에 있었다. 그런데 기대한 서가의 책은 달랑 2개의 서가에 그것도 상단부 2~3칸 정도만 있을 뿐이었다. 한국 서가 옆으로 일본 서가와 중국 서가가 있었는데 일본 서가는 한국 서가의 10배가 넘었고, 중국 서가는 그 이상이었다. 완전히 충격이었다.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프랑스 파리에 전 세계 최고의 도서관 안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본 것이다. 이 부끄럽고 화가 나는 현상에 대해 질문을 했더니 일본 정부가 지속적으로 책을 보내주기에 이렇게 책이 많다는 것이다. 그 순간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 세계 수많은 지성들이 이 도서관을 찾았다가 아시아관에서 일본과 중국 한국의 서가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 과연 한국을 문화국가로 인정할 것인가? 그 순간 정조가 즉위했던 1776년 이덕무와 박제가가 정조의 명으로 중국 연경 유리창에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을 살 때의 광경이 떠올랐다. 서점 주인이 이들에게 던진 한마디는 비수였다. "조선이 문명국가인줄 알았더니 이제 겨우 고금도서집성을 한질 사러 왔구려, 일본은 이미 10년 전 두질을 사갔는데!" 200년 전 일본은 작은 섬나라 국가가 아닌 문명국가로 나가려 했는데 조선은 허울만 문명국가였지 실제 문화를 높이기 위한 노력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200년이 지난 21세기 오늘도 역시 우리는 변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파리동양어학교 도서관 한국서가에서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진 것이다. 정부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줄 수 있는 책을 사서 그들에게 지원하지 못한다면 당장 필자의 책이라도 그들에게 보내야겠다. 너무도 부끄러운 시절이다./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2016-07-18 김준혁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입계의완: 경계에 들어 갈 때는 완만하게 하라

최근 사드배치를 두고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간 갈등과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큰 틀에서 보면 국가도 이해관계를 따져서 움직이는 조직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검토를 하고 결정을 하였을 것이다. 여러 가지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경계의 문제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국제관계속에서 보면 한국에는 남북 간에 경계가 있지만 동시에 국제세력 간 힘겨루기의 경계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외교 전략을 짤 때는 경계가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특성을 고려하여야 한다.경계와 관련해서 바둑의 교훈을 적은 글인 위기십결에 입계의완(入界宜緩)이라는 말이 있다. 원래는 남의 세력에 진입할 때는 서서히 하라는 뜻인데 경계에 진입할 때는 신중해야한다는 뜻도 된다. 경계는 서로 다른 세력이 공존하여 혼재되어있는 곳이기 때문에 복잡성과 다양성이라는 특징이 있고 그만큼 변수가 많아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중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식의 공격과 방어든 자기가 주도권을 쥐기 전에는 적극적으로 속도감 있게 추진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만큼 타이밍조절이 매우 중요하다. 과연 지금 이 시점에 적극적으로 사드배치를 결정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7-12 철산 최정준

[윤중강의 음악살롱] 국악×재즈= 월드뮤직

음악은 '허세'다. 조금은 그렇다. 한국에서, 60년대와 70년대는 클래식이 그랬다. 80년대와 90년대는 재즈가 그랬다. 이런 음악들이 주목을 받으면서, 지적 허영심을 만족하는 기재가 되었다. 물론 모두 그랬다는 건 아니다. 2000년대 이후, 국악이 어쩌면 '허세'인지 모른다. 자신이 국악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더라도, 무릇 음악인이라면 국악을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는 심리가 있다. 클래식과 현대음악, 재즈와 월드뮤직을 한다는 음악인들이, 국악을 소재로 해서 쓴 작품은 꽤 많다. 그러나 양과 질은 결코 비례하지 못했다. 신현필이라는 재즈 색소포니스트가 있다. 그를 재즈에 국한할 수 없다. 그간 경험하고, 지금 지향하는 음악이 재즈라고 할 순 없기에 그렇다. 지난해 '대중음악인을 위한 국악작곡 아카데미'(국립국악원)를 통해 작품을 발표했다. 발표된 곡 중에서 신현필의 곡은 유일하게 피아노를 사용하지 않았다. 피아노만큼 만만한(?) 악기가 또 어디있으랴? 이 악기 하나로 재즈적 화성을 모두 커버할 수 있지 않은가? 그의 작품은 또한 국악연주가들이 땀을 삐질 흘리면서 연주하게 만들었다. 국악적인 곡이 아니라서 그랬을까? 그 반대다. 국악적 리듬(2분박과 3분박)을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이를 신선하게 접근했다. 비유컨대, 2차방정식을 잘 푸는 학생에게 이제 3차방정식의 문제를 내 준 셈이랄까? "국악은 어떻게 월드뮤직이 될 수 있을까?" 나와 같은 사람들에겐 평생의 숙제다. 나는 월드뮤직을 이리 정의한다. "지역음악의 특수성과 세계음악의 보편성이 잘 융합된 음악이다." 국악연주자와 타 분야 음악인들이 만날수록, 특수성과 보편성이 조화로울 수 있다. 신현필에게서 그런 씨앗을 발견한다. 'Hauzikhas Connection'이란 음반에는 '한오백년'이 실렸다. 그가 프로듀서를 하고, 색소폰으로 연주했다. 인도음악가와 함께 작업을 했다. 사랑기(인도현악기)와 타블라(인도 타악기)가 등장한다. 재즈를 전공한 이들이, 자국의 민속음악을 이용해서, 월드뮤직을 지향하고 있다.국악이 월드뮤직이 되기 위해선, 어떠 해야 하나? 장르적 '허세'를 넘어선, 작품적 '전력'이 요구된다. 신현필과 같은 젊은 음악가들에게, 한국적 월드뮤직의 내일을 기대해본다. 신현필은 그 유명한 버클리음대 출신이다. 한국유학생이 많기로 유명하다. 버클리음대출신의 한국음악가들이 재즈에만 국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학교 출신의 교수가 많은 한국의 대학에서, '실용음악=재즈'라는 등호관계도 없어졌으면 좋겠다. 실용음악과가 참으로 많은 대한민국에서, 이제부터 다양한 한국음악을 만들어내는 전초적 기지가 되길 바란다. 여우락(여기 우리음악이 있다) 페스티벌 개막공연(2016. 7. 8.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신현필의 색소폰은 당당했다. 이생강(대금)과 신관웅(피아노)과 함께 연주하는 신현필의 색소폰에서, 한국적 월드뮤직의 가능성을 본다. 두 거장에 대한 한없는 존경심과 함께, 익숙해진 오래된 음악에, 신선하게 '젊은 피'가 수혈되고 있었다. 그가 그동안 한국음악에 대한 이해를 깊게 했기에 저런 연주가 가능했을 거다. 신현필을 통해서 '국악 × 재즈 = 월드뮤직'이란 등식이 현실화 될 날을 기대한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07-10 윤중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