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김준혁의 역사산책] 미국과 일본

1905년 7월 29일, 미국의 26대 대통령인 테어도어 루스벨트의 지시를 받은 미국 육군장관 태프트(Taft,W.)는 동경으로 가서 일본 수상 가쓰라(桂太郞)와 비밀리에 미국은 필리핀을 지배하고, 일본은 조선을 지배한다는 비밀 협정을 맺었다. 남하하는 러시아를 막기 위하여 조선을 일본에 주어 성장시키자는 것이 미국의 논리였다. 당시 주한미국공사 알렌은 일본의 야욕이 커지고 있어 향후 일본이 반드시 미국과 대결을 할 것이니 일본의 조선 지배를 용인해서는 안된다고 강변하였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호감과 조선에 대한 경멸로 알렌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비밀리에 맺은 가쓰라 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은 미국의 은밀한 지원하에 조선을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나 일본은 알렌의 주장대로 미국의 진주만을 공격하며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미국과 일본의 동맹은 서로의 국익 때문에 깨졌고, 미국은 일본을 공격하기 위하여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리틀보이라 부르는 원자폭탄을 투하하였다. 이 결과로 7만8천명이 사망하고 1만명이 실종 되었으며, 3만7천명이 부상을 입었다. 그로부터 41년이 지난 1996년 12월에 히로시마의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이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는 세계 평화를 위하여 다시는 핵무기가 사용 되어서는 안된다는 메시지를 주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의 세계유산 지정이 그 의도와 달리 일본을 피해자로 둔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이상한 현상을 더욱 부추기는 일이 최근에 발생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26일에 있을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방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위령탑에서 1945년에 희생된 일본인들을 위하여 추모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이 중국의 성장을 막기 위하여 일본과 깊은 교류를 맺으며 일본의 군사력을 확장하게 하고 있는 처지이니 오바마의 일본 방문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가 더욱더 일본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라는 것을 인식시켜줄 수 있는 행동이 될 수 있다.당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때 죽은 재일 조선인 피폭자는 그 수가 무려 7만~10만 명으로 일본인 피폭자의 10분의 1이 넘는다. 이들은 엄청난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일본으로부터 사과는 물론이고 단 1원의 보상금도 받은 적이 없다. 이러한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아무 죄도 없이 죽어간 조선인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다.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의 피폭 피해자들에 대해 추모하는 것은 인류의 평화를 위하여 옳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시 일본에서 냉대받고 고생하다 죽음의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간 조선인들에 대해 추모하지 않는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추모는 진정성이 없는 것이다. 미국이 대한민국과 우방이라고 자처하면서 역으로 우리 대한민국을 우습게 보고, 과거 적이었던 일본에 대해 신우방으로 일본의 비위만을 맞추려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역사의 반성도 아시아의 평화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미국은 이를 정확히 알아야 하고 이들에 대한 보상을 반드시 해야 한다./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2016-05-22 김준혁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대인호변: 대인은 호랑이처럼 변화한다

주역에서는 개혁이나 혁신 혁명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革卦가 있다. '고칠 革'의 택화혁괘(澤火革卦)는 못과 불이 서로 만나 못물은 아래로 흘러내리며 불을 끄려 하고, 불은 위로 타올라 못물을 말려서 없애려하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이 증발해 없어지든 불이 꺼지든 둘 중의 하나로 결론이 나기 때문에 혁명의 뜻도 있다. 계절의 변화로 보면 革卦는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즈음에 해당하는데,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서늘한 가을이 오면서 기후가 싸늘해져 그 급격한 기후변화를 실감하기 때문에 그렇다. 짐승들도 가을철에 접어들면 털갈이를 하는데 두껍게 듬성듬성 나있던 털을 가늘고 촘촘한 털로 바꾼다. 겨울의 추위를 대비하기 위해 가을철 털갈이를 하는 것인데 그 털이 너무 가늘기 때문에 추호(秋毫)라는 말도 생겼다. 주역에서는 이처럼 미래를 대비해서 몸에 난 털을 완전히 바꾸는 동물처럼 제대로 혁신하는 모습을 호변(虎變)이라 한다. 이와는 반대로 외형만 고치는 모습을 혁면(革面)이라고 하는데 마음은 전혀 고치지 않고 낯빛만 고친다는 뜻이다. 개혁이나 혁신을 하는데 小人은 혁면(革面)만 하고말지만 大人은 호변(虎變)을 한다는 것이다. 기왕 혁신을 하려면 완전히 뜯어고치는 호변(虎變)을 해야 할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5-17 철산 최정준

[윤중강의 음악살롱] '한국재즈 100년사'(박성건 지음)

재즈는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한국' 재즈라고 하면 달라진다. 잘 모르거나, 크게 인정하지 않는다. 한국재즈의 역사에 관해 체계적인 정리가 이뤄지지 못한 탓도 있다. 한국재즈와 관련해서 얘기할 때도, 몇 명의 특정인물과 몇 개의 특정장소에 치우쳤다. 이런 아쉬움을 해소해 줄 책 한권이 나왔다. '한국재즈 100년사'란 종이책이다. 저자 박성건이 대단하다. 그간의 재즈와 관련한 신문과 잡지를 섭렵했다. 그의 눈에는 신문기사뿐 아니라, 신문광고까지도 소중했다. 재즈와 관련된 인물들과 만나면서, 거기서 한국재즈를 총체적으로 볼 수 있는 실마리를 얻어낸 것 같다. '한국재즈 100년사'는 그의 이런 열정과 노력의 결과물이다. 재즈애호가들은 이 책을 통해서 한국재즈의 시공(時空)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이 책은 이 땅에서 재즈를 위해 애썼던 많은 인물들을 불러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장르가 대중에게 뿌리를 내리기 위해선, 개인이나 국가가 후견인(patron)이 돼 줘야한다. 조선의 재즈에선, 백명곤이 그런 역할을 했음을 알려준다. 1930년대, 조선의 음악은 매우 다양해지기 시작한다. 그런 역할을 했던 인물이 김해송(1911~1950)과 손목인(1913~1999)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음악인을 능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크게 인정을 받은 두 음악인들의 활약에 관해 소상히 알게 해준다. 1960년대 이후의 재즈는 어떠했을까? '카바레'란 말을 언급하는 것이 편치 않던 시절이 있다. 하지만 동화카바레의 김광수악단과 은성카바레의 엄토미악단을 통해 한국의 재즈음악이 점차 전문성을 획득했음을, 이 책은 당당하게 밝힌다. 호텔의 나이트클럽과 함께, 한 때 인기절정이었던 한일회관과 뉴욕회관이 실상 재즈음악의 소통 공간으로서 역할을 했음을 알려준다. 당시 국도극장에서 공연했던 극장식 쇼가 결국은 재즈음악이 밑바탕에 깔려 있음도 확인하게 해준다.한 때 재즈라는 음악은 정치적으로 불온(不穩)한 것이었고, 재즈의 소통공간은 사회적으로 불륜(不倫)의 온상처럼 취급했다. 그러나 정작 이런 공간이 있었기에, 한국재즈사에 있어서 특별히 언급되어야 할 불후(不朽)의 명곡들이 탄생됐음을 얘기한다."그 많던 재즈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두 개의 극단적인 마음이 든다. 과거 재즈뮤지션들의 무한한 열정에 대한 감동을 한다. 반면 대한민국의 재즈현실에 대한 회의적인 의문이다. 지금도 재즈를 좋아한다는 게 마치 자유스런 영혼의 소유자처럼 치장된다. 한국의 재즈페스티벌은 연중행사로 정착돼서 열광하는 사람들이 미어터진다.하지만 정작 재즈가 진솔하게 소통 할 공간의 실상은 어떠한가? 서울 홍대주변의 '문 글로우'는 이미 문을 닫았다. 인천과 경기지역에서 전통을 자랑하는 재즈클럽 '버텀라인'은 어떠한가? 한국의 재즈뮤지션은 이 공간에서 연주하는 걸 큰 기쁨으로 여긴다. 이 재즈클럽의 건물은 백년 된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다. 말하자면 '근대문화유산'이다. 이 땅에서 시작한지 백년이 되가는 재즈도, '근대문화유산'이다. 한 곳에서 33년을 버텨온(!) 버텀라인을 보면서, 한국재즈에 관한 극단적인 두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허상과 실제 사이의 괴리감이다.재즈애호가가 '비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에 열광한다. 마찬가지로 한국재즈에 관한 다큐 '브라보 재즈라이프'(2010)에는 더욱 경의를 표하길 바란다. '한국재즈 100년사'가 이 땅의 음악인의 필독서가 되길 바란다. 거기에 한국역사가 있고, 한국재즈가 있기에 그렇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05-15 윤중강

[시인의 연인] 묵념 5분 27초

묵념 5분 27초 황지우(1952~)소통의 방식은 소리―언어에만 있지 않다. 소리를 제거하고 난, 침묵―언어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1952년 작곡가 존 케이지의 '4분 33초'라는 작품은 공연을 위해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연주자가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로 올랐으나, 무대에서는 아무런 연주가 없었다. 객석에서 관객들의 술렁임만 감지될 뿐 무대는 4분 33초 동안 침묵과 고요만이 흘러가다 연주가 끝났다. 때로는 '침묵의 언어'―기의와, 말해야 되는 '시적 언어'―기표 사이에서 '5분 27초'라는 '고요한 묵념'만이 '진실한 소리'를 들려줄 때가 있다. 이 때 '묵념'을 수용하면서 '침묵'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나는 말할 수 없으므로 양식을 파괴한다. 아니 파괴를 양식화 한다"라는 시인의 말처럼 폭력적 세계에서 상식을 깨버린 '파괴적 언어'는 일상적인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를테면 1980년 5월 27일 광주에서 계엄령이라는 비정상적인 법칙과 이에 따른 희생자들을 묵도하게 함으로써 언어의 정보적 기능은 사라진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 고요함 속에서 배치되는 정적의 사태 속에서 '혼란의 진실'과 '통증의 모순'을 웅전하게 된다./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05-15 권성훈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희유세존: 세상에 드문 높은 분

부처님에게는 몇 가지 부르는 호칭이 있다. 경문(經文)에 종종 싯달태자(悉達太子)라는 명칭이 보이는데 그것은 그의 출가전 속세의 이름을 음역한 실달타(悉達多)와 당시의 신분인 태자(太子)를 합한 명칭이다. 부처의 성은 고타마였고, 이름은 싯달타였는데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에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의 불타(佛陀)나 부처라고도 부른다. 한편으로는 그가 석가족 출신이기 때문에 석가족의 성자(聖人)이란 뜻으로 석가모니라고도 부른다. 또 모든 중생에게 가르침을 베풀며 인도해주는 진정한 스승이라는 뜻에서 삼계도사(三界導師) 라고도 부른다. '금강경'에서는 어디서 온 적도 없고(無所從來) 어디로 가는 자도 아니기(無所從去) 때문에 여래(如來)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 나온 적도 없고 이 세상에서 떠나간 적도 없는 것이 깨달은 자의 경계라는 뜻이다. 이런 여래(如來)를 희유세존(希有世尊)이라고 부르고 있다. 희유(希有)하다는 것은 극히 보기 드물다는 뜻이다. 우리의 현실은 모두 안주(安住)할 무엇인가가 있다고 믿고 그것을 향해 노력하고 더 나아가 집착을 한다. 부처는 영원히 안주(安住)할 대상은 없으니 그런 것에 집착하지도 말고(應無所住) 마음을 쓰라고(生其心) 한다. 그래야 고통에서 해방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집착의 연속인 우리의 일상과 현실에서 보면 정말 희유(希有)한 생각이다. 희유한 생각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진리이다./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5-10 철산 최정준

[조성미의 나무이야기] 봄향기 가득한 산나물의 귀족 음나무

하루하루 녹색 빛깔을 더해가는 5월의 산은 생명의 기운이 넘쳐나서 싱그럽고 아름답다. 이른 봄 생강나무에 노란 꽃이 피는가 싶더니 진달래가 온 산을 장식하고 어느새 연녹색의 잎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얼굴을 내밀면서 숲은 온통 초록의 물결로 뒤덮인다.마을 주변이나 산에 오르다 보면 많은 나무들 가운데 크고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유난히 눈에 띄는 나무가 있다. 우리가 흔히 엄나무라고도 부르는 음나무다. 지역에 따라 개두릅나무, 멍구나무, 엉개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두릅나뭇과의 낙엽활엽교목인 음나무는 높이 25m, 직경 1m까지 자라며 잎은 단풍나무잎처럼 5∼9개로 깊게 갈라진다. 황록색 꽃은 8월에 피는데 꿀이 많아서 벌과 나비가 모여 들어 기능성 꿀을 생산할 수 있는 밀원자원으로서의 가치도 매우 높다. 음나무는 물기가 약간 있고 토심이 깊은 곳과 계곡 근처를 좋아하며 어려서는 그늘진 곳에서 잘 자라지만 클수록 약한 햇빛을 좋아한다. 음나무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가시는 어릴 때 나무 전체에 덮여 있다가 줄기의 지름이 한 뼘쯤 굵어지고 키가 십여 미터쯤 자라게 되면 아래쪽의 수피부터 차츰 회흑색으로 짙어져 가며 거의 사라져 없어진다. 가시는 맛이 좋은 음나무 어린 순을 노리는 들짐승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생존의 수단이라고도 할 수 있다.예로부터 음나무는 액운을 막아주고 만복이 깃들게 하는 길상목으로, 성황림의 신목으로 우리 민족과 함께 해왔다. 위협적인 가시 때문에 귀신이 집에 들어오지 못한다 하여 옛날 사람들은 대문 옆이나 마을 어귀에 음나무를 수문장처럼 심었다. 정월대보름에 병마와 잡귀가 집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미리 막기 위해 음나무 가지를 잘라다가 문설주위에 가로로 걸어두는 풍습도 전해지고 있다. 음나무를 깎아 '음'이라고 하는 육각형 노리개를 만들어 잡귀가 범접하지 못하게 아기 옆구리에 채워주기도 했다.봄이면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돋우는 두릅나무 새순은 참두릅, 음나무 새순은 개두릅이라고 한다. 개두릅이라고 하여 참두릅보다 결코 맛이나 향이 뒤떨어지지 않는다. 대개 4월 하순에서 5월 초 가시가 갈색에서 녹색으로 변하면 곧 음나무 새순이 돋는데 잎이 완전히 피기 전의 새순은 쌉싸래한 맛과 독특한 향으로 봄철 산나물의 귀족으로 불리고 있으며 식도락가들은 개두릅을 먹어야 제대로 봄맞이를 했다고 한다. 특히 음나무순은 인삼의 주요성분인 사포닌과 루틴 등 기능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어 맛뿐만 아니라 영양적 측면에서도 가히 웰빙시대의 대표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음나무순은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맛이 일품이다. 부치거나 튀겨서 먹고 김치를 담그기도 하며 삶아서 말리거나 간장에 절여서 저장하기도 한다. 가지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닭이나 오리와 함께 백숙요리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한방에서는 음나무 껍질을 해동피라 부르며 피부병, 관절염 치료에 처방했고, 약리 실험에서 중추신경을 진정시키는 작용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음나무는 재질이 좋아 목재로도 다양하게 이용되어 왔다. 나뭇결이 아름답고 목재의 강도도 적당한데다 가공하기 쉬워 가구재로 선호되었고 습기를 잘 흡수하지 않는 성질이 있어 나막신과 스님들이 지니고 다녔던 나무그릇인 발우를 만드는데도 사용되어왔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

2016-05-08 조성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우보익생: 보배로운 비가 중생을 유익하게 해준다

매해 사월 초파일이 되면 생각나는 고승들이 있다. 한국에는 고승이 많았는데, 신라시대의 스님으로는 원효(元曉)와 의상(義湘)이 대표적이다. 의상은 661년에 당나라의 사신을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서 종남산(終南山) 지상사(至相寺)에서 화엄학(華嚴學)을 공부하였다. 화엄학은 석가모니가 깨닫고 처음 설한 법을 기록했다는 화엄경(華嚴經)을 근본 교리로 삼는 불교의 학파이며 그 종파가 화엄종(華嚴宗)이다. 의상은 중국 화엄종의 2대 조사(祖師)인 지엄(智儼)에게서 배운 뒤 그 핵심사상을 210자(字)로 담은 법성게(法性偈)를 남겼다.필자는 2년 전 중국의 종남산 지상사에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의상스님이 유학했을 당시를 떠올려보며 동행한 학인들과 함께 법성게를 독송해보기도 하였다. 그 법성게에 보면 부처의 진리를 하늘에서 내리는 비로 비유해 놓았다. 오늘처럼 전국적으로 많은 봄비가 허공을 꽉 채우며 내리면 그동안의 갈증을 해소하며 생기를 받고 성장하는 초목(草木)이 무수히 많다. 그와 같이 부처가 설하는 진리의 법우(法雨)는 허공에 꽉 차있다고 하였다. 문제는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는 실감하지만 보이지 않는 진리의 법우는 체감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의상과 같은 선각(先覺)들은 곳곳에 진리가 있으니 잘 활용해 유익함을 얻으라고 권유하고 있다./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5-03 철산 최정준

[남재철의 날씨이야기] 농사와 날씨 이야기

우리 민족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농자는 천하지 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하면서 농업을 중시했다. 글을 모르는 농부도 씨앗을 뿌려야 할 때와 김을 맬 때를 알았고, 하늘, 달, 구름만 보아도 그때 그 시절에 필요한 날씨를 알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요즘 기상청의 장기예보나 다름없는 '24절기'를 겪으면서 쌓인 체험과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24절기는 중국 주(周)나라 때 화북 지방에서 날씨와 동식물의 변화를 면밀히 관찰해 붙인 이름이다.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도는 길인 황도(黃道)를 따라 15°씩 돌 때마다 절기의 이름을 붙였다. 즉, 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기온, 강수량, 일조량 등 기상요소가 변하기 때문에 중국 황하 유역과 우리나라에서 농사를 짓는 데 아주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봄을 알리는 절기인 입춘(立春)이 지나고 우수(雨水)가 되면 날씨가 거의 풀리고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새싹이 돋아난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春分)이 되면 농부들은 논밭에 뿌릴 씨앗의 종자를 골라 파종 준비를 서두르게 된다. 4월에는 농사 시작의 중요한 절기가 되는 청명(淸明)과 곡우(穀雨)가 있다. 청명은 4월 5일께고 날이 풀리기 시작해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는 날이다. 이 무렵을 전후해 찹쌀로 빚은 술을 청명주(淸明酒)라 하며, 이때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고 하여 한 해 동안 먹을 장을 담그기도 한다. 곡우에는 봄비가 내려서 못자리를 준비하여 일 년 농사를 준비하게 되고 벼농사 외에도 각종 농작물의 파종 시기이기도 하다. 입하(立夏)는 5월 5일로 봄이 완전히 퇴색하고 여름이 시작되며, 산과 들에는 푸른 잎들이 돋아나고 마당에는 지렁이들이 꿈틀거린다고 한다. 못자리에는 볍씨의 싹이 터 모가 한창 자라고, 밭에는 보리 이삭이 패기 시작한다. 소만(小滿)에는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가 있다. 이때는 본격적으로 여름이 되어 모내기가 시작되고, 보리가 익어가며, 잡초 제거로 바쁜 시기이다. 하지만 이 시기는 '보릿고개'란 말이 있을 정도로 양식이 떨어져 힘겹게 연명하던 때이기도 하다. 망종(芒種)은 씨를 뿌리기 좋은 시기라는 뜻으로 모내기와 보리 수확이 절정을 이루면서 농촌에서는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이다.이처럼 오래전부터 천수답이 많았던 우리나라에서 논밭을 일구고 씨를 뿌리며 곡식을 수확하는 것을 면밀히 살펴보면 24절기를 기준으로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한 간장, 고추장도 담고 된장도 가르고 김장을 하는 시기를 결정하는 것도 달력에 적힌 절기가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기후변화로 인하여 24절기가 잘 맞지 않고 있다. 개나리 벚꽃이 일찍 개화하고 빨리 오는 초여름, '뜨거운 5월 예고'가 24절기에 익숙해 있던 우리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S)의 미래 전략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따른 에너지, 식량, 물 문제가 21세기의 가장 심각한 세계적 현안으로 보고 있다. 18세기 후반에 시작한 산업혁명으로 지난 200여 년 동안 배출된 온실가스에 기인한 기후변화가 2천여 년 이상 이어오던 농사기술에 대혼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후손들에게 식량 걱정을 물려주게 되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피해는 점차 증가하고 피해를 복구하는 것보다 사전에 피해를 줄이기 위해 기존 24절기를 대체 할 수 있는 기후변화시대에 맞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선조들은 경험으로 배웠지만 우리는 경험으로 배우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부족한 시간 대신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피해를 예방할 수 있는 정책 개발의 노력이 더 필요한 시대이다./남재철 수도권기상청장남재철 수도권기상청장

2016-05-01 남재철

[시인의 연인] 노라

나는 인형이었네/아버지 딸인 인형으로/남편의 아낸 인형으로/그네의 노리개였네//노라를 놓아라, 순순히 놓아다구/높은 장벽을 헐고/깊은 규문을 열어/자연의 대기 속에/노라를 놓아라//나는 사람이라네/남편의 아내 되기 전에/자식의 어미 되기 전에/첫째로 사람이 되려네//나는 사람이로세/구속이 이미 끊쳤도다/자유의 길이 열렸도다/천부의 힘은 넘치네//아아, 소녀들이여/깨어서 뒤를 따라오라/일어나 힘을 발하여라/새날의 광명이 비쳤네나혜석(1896~)'진정한 주체'란 자신을 억압된 세계에서 풀어내고 자기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관습화된 제도와 사회적 규범이라는 일상성에서 빠져나온다는 건 쉽지 않다. 오히려 거기에 얽매여 자신의 인생을 살기보다는, 타자라는 누군가에게 구속된 이른바 '인형의 시간'을 보낸다. 인형은 사람의 형상을 닮은 조형물이지만 그 자체로 인격이 없는 '비무형의 비인격체'다. 인형 같은 삶은 '아버지의 딸' '남편의 아내' '자식의 어미'인바, 한낱 '타자의 노리개'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의 대기'를 향해 인형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높은 장벽을 헐고' '깊은 규정의 문을 열고' "나는 사람"이라고 선언하며 '날 노라'라고 외치며 커밍아웃할 때 가능해 진다. 그리하여 선구자는 '새날의 광명'을 바라보면서 "자유로운 영혼을 위해 자신을 먼저 십자가에 매단 자"일 수밖에 없다./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05-01 권성훈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어지재수: 물고기는 물속에 있다

최근에 한 대기업의 경영자가 채권자들에게 회사의 구조조정을 일임하는 자율협약이전에 자신과 자신의 가족이 지니고 있는 주식을 전량 팔아치웠다는 뉴스가 나왔다. 최근 이와 유사한 사례는 한 둘이 아닌데 분명 생각해볼 점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의 문제이다. 이런 행위에는 "내가 내 것을 내 마음대로 하는데 당신들이 무슨 상관이냐"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주식회사의 기본인 '주주회사'라는 생각도 없고, 회사가 생존하는 기반인 '사회'라는 생각도 없고, 그것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주는 '정부'라는 생각도 없이 오직 '내 것'이라는 생각뿐이다. 하다못해 그 옛날에도 "노복(奴僕)을 부릴 때는 먼저 그들의 배고픔과 추위를 생각해야한다."라고 하였는데,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소한의 상식을 가진 '주주회사'의 경영자라면 주주들의 처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회사에 투자한 주주들의 피와 살을 밟아버린다. 내가 지금의 위치에 있게 된 것은 자기 혼자 힘으로 된 게 아닌데도, 그런 생각은 아랑 곳 없다. 새가 하늘을 나는 것은 창공이 있기 때문이고,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도 물이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식회사 경영자의 독존(獨存)의식은 죄악이다. 적자든 흑자든 물이 적든 많든, 물고기는 자신에게 물을 제공한 연못을 떠나서 살 수 있는가?/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4-26 철산 최정준

[김준혁의 역사산책] 집강소(執綱所)와 민주주의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날 중 하나가 1894년 4월 27일이다. 이날은 바로 부정부패 세력들을 일소하고 백성들의 나라를 건설하겠다고 기치를 올린 동학농민군이 호남의 심장인 전주성을 점령한 날이었다. 오만에 가득한 관군은 죽창밖에 들지 않은 농민군을 우습게 보고 대처하다가 황토현에서 대패하고 마침내 전주성에서도 패배하여 도망을 갔다. 전주는 단순한 도시가 아니었다. 전주가 조선 왕실의 본향이었기 때문에 조정의 충격은 너무도 대단했다. 관군이 전주성을 빼앗긴 것은 군사들의 무능도 있었지만 호남지역 수령들에 대한 백성들의 지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호남지역 수령들은 토색질에 전념했고 동학농민군의 투쟁이 일어나자 필요한 재물만 챙겨 도망을 갔다. 당시 조선의 국왕인 고종은 전라감사 김학진에게 전권을 위임하여 농민군과 협상하라고 하였다. 전주성을 점령한 전봉준과 농민군은 백성이 진정한 주인이 되어 상하 차별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를 희망하였고 조정과 폐정개혁안 12조를 협의하고 선포하였다. 노비제도에 대한 혁파와 과부의 재가 허용, 그리고 탐관오리에 대한 처벌 등이 그 안에 포함되었다. 귀한 자와 천한 자가 없는 평등세상, 바로 당시 백성들이 꿈꾸던 사회로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 폐정개혁안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이 바로 집강소의 설치였다.집강소는 전라도 53주(읍)의 관아 안에 설치된 일종의 민정기관이었다. 집강(執綱)이란 각 고을마다 설치한 동학의 조직 접(接)의 수령인 접주를 말하는 것이다. 이 집강소의 설치로 동학교도가 각 읍의 집강이 되어 지방의 치안과 행정은 사실상 이들이 담당하게 되었다. 전주에는 집강소의 총본부인 대도소(大都所)를 두고, 집강소에는 분장을 나누어 집강 밑에 서기·집사·동몽 등 임원을 두어 행정사무를 분담케 하였다. 오늘날 국민투표와 거의 같은 것으로 민주주의의 시작이었다.호남지역에서 실시한 집강 선발은 기존 수령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백성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차분히 수령을 선출하였다. 이로써 관료들의 고압적 행정은 쇄신되고 실질적인 백성의 삶을 헤아리는 지도자가 모든 고을을 책임지게 되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참정권을 얻고 올바른 지도자를 뽑기 위한 목숨을 건 투쟁의 결과였다. 결국 백성들에 의해 선발된 지도자가 백성들의 실제적 삶을 나아지게 올바른 정치적 행위와 행정을 하게 만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우리 민족사만이 아닌 세계사적 자랑거리이다.이와 같이 위대한 민주주의의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는 이를 계승 발전시킬 책임과 의무가 있다. 얼마 전 우리는 20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실시하였다. 그간의 여론조사와 달리 충격적인 여소야대의 정국으로 민심의 결과가 나왔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적 무능과 민주주의의 후퇴 그리고 개성공단 폐쇄 등 남북관계의 파탄이 국민들의 마음을 현 정부와 여당에서 떠나게 한 것이다. 그렇다고 야당이 잘해서 그들을 지지해준 것이 절대적으로 아님을 야당 모두는 알아야 한다. 이제 새롭게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들은 120여년 전 백성의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피를 흘린 수많은 선조들을 기억하면서 민심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2016-04-24 김준혁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이중해심: 이로움이 무거우면 해로움도 깊다

크든 작든 사업을 하는 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벌어보려고 계획을 하고 열심히 일도 한다. 사업가가 아닌 사람들도 이익을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계획이 제대로 성사되어 일이 잘 진행되면 그만큼 이익도 늘어난다. 그래서 자꾸 더 큰 이익을 추구하려 하고 그러다가 분에 넘치는 큰 투자를 무리하게 해서 그동안의 결실을 한 번에 날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이익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대가(代價)에 관한 인식이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고, 고수익의 상품은 고위험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익에만 눈이 멀면 내가 추구하는 이익의 무게만큼 내가 감내해야 할 손해의 깊이는 생각하지 않게 된다. 아름다운 장미에 눈이 멀면 가시는 보이지 않지만 꺾어서 가지려 하면 내 손에는 생채기가 나 있다.이익은 그 대가(代價)의 문제뿐 아니라 그것이 정상적인 성질의 것인가도 매우 중요하다. 고수익의 유혹에 빠져 사회에서 용인되지 못하는 범죄에 가담하게 되면 그 또한 자신과 사회에 큰 해로움이 따르게 마련이다. 아무리 불빛이 좋아도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추구하는 불나방이 아닌 다음에야 누구든 생각하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사람의 기형적인 욕심은 자신이 미래에 지불해야 할 채무(債務)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4-19 철산 최정준

[윤중강의 음악살롱] 해어화를 봐야 하는 이유

'해어화'는 잘 만든 영화다. 권번(기생학교)에 소속된 두 여자와 가요 작곡가임을 숨기고 사는 또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들 세 사람의 개인사를 시대사와 잘 엮었다. 어린 소율(한효주)과 연희(천우희)는 예기(藝妓)가 되어 평생 함께 하자고 다짐한다. 둘은 모두 가수 이난영(차지연)을 좋아한다. 영화 속 유일한 실존인물이다. 이난영의 대표곡 '목포의 눈물'(차지연 노래)과 함께, '봄아가씨'도 들을 수 있다. 이난영의 숨은 명곡이다. 앳된 목소리가 봄아가씨의 설레는 마음을 잘 그려낸다. 영화에선 가수가 된 연희와 관객으로 온 소율과 함께 부른다. 연희와 소율, 두 사람은 노래를 사랑하지만, 각자 느낌이 다르다. 연희는 가요에 맞고, 소율은 정가(正歌)에 맞다. 조선시대 지식층이 좋아했던 고상한 노래가 정가다. 권번의 정가선생을 어머니(장영남)로 둔 김윤호(유연석)는 정가보다는 가요를 좋아한다. 그는 최치림이라는 예명으로 가요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 영화 속 유연석이란 배우가 대단하다. 연기도 잘 하지만, 연주를 잘 한다. 음악을 다룬 여러 영화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를 하는 장면은 때론 어색하다. 그 분야 전문가의 눈엔 더 그렇다. 유연석은 달랐다. 피아노를 치고, 작곡을 하는 장면에 진정성이 배어있다. '이 시대의 아리랑'을 만들고 싶은 윤호가, 그런 노래를 불러줄 수 있는 파트너가 연희라는 걸 알았을 때의 연기에 깊이가 있다. 배우의 표정이 아니라, 작곡가의 심정이다. 그는 영화에서 분노하듯 아리랑을 연주한다. 출정하는 일본 군인이 떠들썩한 술자리에서, 윤호는 피아노 앞에서 아리랑을 연주한다. 아주 짧지만, 꽤 강렬하다. '해어화'는 가요와 정가를 같은 비중으로 다룬다. 소율은 애인도 빼앗기고, 노래도 빼앗겼다. 무엇보다도 자신도 부르고 싶은 '조선의 마음'을 부르지 못해서 자학한다. 사랑이라는 거짓말에게 속았다고 생각하는 소율은 윤호에게 '사랑, 거짓말'이란 정가를 들려준다. 이 노래는 여성이 부르는 정가로, '계면조 평거'의 노래말이다. 윤호는 소율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진정 소율이 잘 부를 수 있는 가요를 작곡한다. 같은 제목의 노래로, 정가의 창법을 잘 살리면서도, 대중적 감성이 살아있는 노래다. 세월이 흘러서, 일제에 의해 금지곡이 된 '조선의 마음' 음반이 발굴된다. 아울러 '사랑, 거짓말'도 가요담당 피디에 의해 발견된다. "그 때는 왜 그걸 몰랐을까요?" 자신의 노래 '사랑, 거짓말'을 가장 높게 평가하는 가요담당 피디 앞에서, 노년이 된 소율은 그리 말한다. 세상엔 일단 자신에게 맞는 음악이 있는 듯하다. 소율은 정가에 맞는 발성와 감성, 연희는 가요에 맞는 발성과 감성을 지녔다. 그래서 소율이 연희가 될 수 없고, 연희가 소율이 될 수 없었다. 영화는 이렇게 '가요'과 '정가'를 함께 생각하면서, 서로 다름을 얘기하는 것 같다. 그러나 결국 장르와 무방하게, 진실이 담긴 노래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킴을 역설한다. 주변에서 한 장르에 대해서 깊이 있게 잘 아는 음악전문가를 본다. 그런데 때론 이런 사람 중에는, 타 장르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도 낮게 보는 편견도 발견한다. 그들도 언젠가 그리 말하게 될까? "그 때는 왜 그걸 몰랐을까요?" 가요와 정가는 참 다른 노래다. 하지만 영화에서 이 다른 노래를 참 아름답게 감싸고 있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참 볼 만한 영화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04-17 윤중강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경지이오: 다섯 가지로 경영하라

오늘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일이다. 다툰다는 '쟁(爭)'이란 글자는 한 물건을 소유하기 위해 그것을 잡으려 하는 두 손을 그린 글자이다. 내가 잡으면 상대는 떨어지고 상대가 잡으면 내가 떨어진다. 냉엄한 현실이다. 싸움은 가급적 안하는 것이 좋지만 적극적으로 또는 마지못해 싸워야할 때가 있다. 나라 뿐 아니라 한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전국시기 활약한 손자(孫子)는 싸움을 할 때는 다섯 가지의 사항에 대해 면밀히 검토를 하고 그것을 충분히 갖추면 싸움에서 승리한다고 하였다. 그가 말한 다섯 가지란 도(道)와 천(天)과 지(地)와 장(將)과 법(法)이다. 천(天)은 천기(天氣)로 낮과 밤이나 추위와 더위 같은 시기적 상황을 유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地)는 지세(地勢)로 높고 낮은 높이나 멀고 가까움의 거리, 평지와 험지, 넓은 지역과 좁은 지역 등의 지리적 위치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將)은 그 싸움을 이끄는 장수의 덕량을 말한다. 지혜와 신의와 어짊과 용기 그리고 엄숙함을 갖추면 부하들을 움직여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법(法)은 일종의 잘 짜여진 관제(官制)를 뜻하는데 규칙에 맞게 일정하게 운용해야 그에 맞추어 싸움을 진행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4가지에 앞서 가장 먼저 말한 도(道)란 무엇일까? 손자는 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도(道)는 백성들에게 전쟁의 명령을 내릴 때 위의 뜻과 함께 하여 같이하는 것이다. 그러면 같이 죽고 같이 살고자하여 속임이 없을 것이다. 그 당시에도 손자가 꼽은 전쟁의 제일 원칙인 도(道)는 바로 백성의 동의(同意) 즉 민의(民意)였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4-12 철산 최정준

[조성미의 나무이야기] 봄의 여왕 벚나무

남녘에서부터 전해진 꽃소식이 이제는 수원 화성과 팔달산까지 올라와 벚나무가 꽃송이를 터트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올해는 특히 이상고온현상으로 개나리, 진달래와 벚꽃이 한꺼번에 만개해 보는 상춘객들의 눈을 더욱 즐겁게 해주고 있다.봄이면 꽃으로 온 천지를 화사하게 장식해주는 벚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 전국에 분포한다. 우리나라에는 산벚나무, 왕벚나무, 올벚나무 등 16종이 자생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꽃을 보기 위해 관상용으로 개량해서 세계적으로는 400여종이나 된다고 한다. 종류가 다양한 벚나무는 모양새가 너무 비슷하고 변이가 심해 전문가들도 구별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꽃피는 시기, 암술대와 꽃자루의 털의 유무, 꽃잎의 길이나 형태 등으로 구별하는데 그나마 꽃이 피었을 때가 가장 쉽게 구별이 된다. 울릉도 특산이라 할 수 있는 섬벚나무는 가장 먼저 흰색에 가까울 정도로 연한 꽃을 피우고 올벚나무나 왕벚나무는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피며, 산벚나무는 꽃이 피는 동시에 잎이 나오고 수양벚나무는 가지가 수양버들처럼 늘어진다.왕벚나무는 화려한 꽃으로 가장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일본의 국화라는 인식 때문에 일제의 잔재로 여겨져 외면을 받을 때도 있었다. 광복 이후 상당수가 잘려 나갔고, 1980년에는 창경궁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궁궐의 품격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제 강점기 때 심은 벚나무 2천여 그루를 베어버리기도 했다.왕벚나무는 원산지에 대한 논란이 많았는데 특히 우리나라와 일본간에 논쟁이 치열했으며 최근에는 중국까지 여기에 가세했다. 일본에서는 왕벚나무꽃을 동경도의 도화로 지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을 상징하는 꽃으로서 일본문화의 전령사로 세계 각처에 보급하는데 열을 올려 왔다. 미국 워싱턴의 포토맥 강변에서 열리는 벚꽃축제는 20세기 초 일본이 3천여 그루의 왕벚나무를 기증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왕벚나무의 원산지는 제주도 한라산이며 산벚나무와 올벚나무 사이의 자연교잡종이라는 것도 증명되었다. 원산지를 판단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생지인데 자생 벚나무가 제주도에서 확인된 것만 200그루가 넘으며 벚꽃의 종주국임을 주장하는 일본은 아직도 자생지를 찾고 있는 중이라는 입장이다.왕벚나무와 일본벚나무가 유전적으로 동일하다는 것도 산림청이 일본과 한국 벚나무의 유전자 분석 결과와 미국 농림부가 일본과 한국의 벚나무시료 82개를 채취해 염기서열 등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확인되었다. 벚나무는 활을 만드는 주요 재료중 하나이다. 병자호란을 겪고 왕위에 오른 효종은 북벌을 계획하면서 궁재로 쓰기 위해 북한산 우이동과 장충공원 근처에 벚나무를 심기도 했다. 산벚나무는 나뭇결이 균일하고 조직이 치밀한데다 잘 썩지도 않는 등 목재로서 우수해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목판 제작에도 사용되었다.봄을 대표하는 꽃으로 사랑받으면서 전국 곳곳에 가로수로 심어진 벚나무는 100만 그루가 넘으며, 그 지역의 랜드마크로서의 역할을 하는 곳도 여러 곳이다. 이맘때가 되면 들려오는 '벚꽃엔딩'의 감미로운 멜로디와 함께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서 눈처럼 흩날리는 꽃잎 속을 걸으며 봄을 만끽해 보자./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서울인천경기 본부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서울인천경기 본부장

2016-04-10 조성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