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부귀빈천: 부하고 귀함과 가난하고 천함

빈부와 귀천은 예로부터 이야기해오던 것들이다. 사주를 볼 때 대부분의 관심도 빈부와 귀천이다. 그래서 궁통보감(窮通寶鑑)이라는 명리서적에는 아예 이 두 가지를 기준으로 삼아서 사람의 팔자를 논단하기도 하였다. 빈부는 경제적 소유의 개념이고 귀천은 사회적 지위의 개념이다. 사주로 치면 재관(財官)에 해당하는 셈이다. 사람이 살면서 경제적 능력의 잣대인 재물과 이상적 직업인 관직을 원하는 것은 누구든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재물을 손상시키는 기운을 겁재(劫財)라 하고 관직을 흔드는 기운을 상관(傷官)이라 하여 고약한 이름을 붙여놓았다. 겁재(劫財)는 재물을 겁탈한다는 뜻이고 상관(傷官)은 관직에 상해를 입힌다는 뜻으로 사람들이 그만큼 부와 귀를 원해왔던 것이고 지금도 그렇다.부귀와 빈천을 논어에서 찾아보자. 논어에도 부귀와 빈천에 대한 생각이 나오는데 대표적인 구절을 하나 소개해본다. "부유함과 귀함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부당한 방법을 쓰면 '不以其道'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그런 부귀에는 거처하지 않을 것이다." 논어의 이 구절을 보면 부귀를 추구하는 것은 사람들의 공통점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부귀를 좋아하는 만큼 그것을 성취하는 방법에 대한 정당성이 빠져버리면 취할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과연 그것을 성취하는 정당성이라는 '其道'가 무엇일까? '其道'는 시대에 따라 변통이 필요할 것 같긴 하지만 최소한의 共感여부가 아닐까 한다./철산(哲山) 최정준(동문서숙 대표)

2016-02-16 철산 최정준

[조성미의 나무이야기] 한민족의 표상 소나무

늘 푸른 기상을 상징하는 나무가 바로 소나무이다. 우리 국민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나무이기도 하다. 우리가 보통 소나무라고 알고 있는 나무는 줄기가 붉은 색을 띠어서 적송, 내륙지방에 자란다고 하여 육송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고유의 수종이다. 소나무는 지역적으로도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금강송, 강송, 춘양목 등이다. 금강송은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강원도와 경북에 자라는 줄기가 곧고 수관이 좁은 소나무를 말하며 금강송을 줄여 강송이라고도 한다. 춘양목은 경북 봉화의 춘양면 일대에서 자라는 소나무를 말하는데 1980년대 초까지 춘양역을 통해 운송하던 소나무가 품질이 우수해 출발역인 춘양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척박한 땅에서도 꿋꿋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소나무는 한민족의 표상으로 우리 민족과 함께 수천 년의 삶을 이어왔다. 소나무를 역사적으로 보면 이인로의 '파한집'에 신라시대부터 화랑도들이 수양의 일환으로 소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시대에는 부귀영화를 기원하기 위해 소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소나무가 건축과 조선에 중요한 자재로 사용되면서 금송(禁松)지역을 선정해 소나무림을 보호하고 조림을 하기도 했다. 안면도 소나무는 병선 건조를 위해, 울진 소광리의 소나무는 왕실의 관곽재 생산을 위해 특별 관리하기도 했다.소나무는 곧은 절개와 지조를 상징해 한시부터 현대시까지 많은 문학작품에 등장했으며 그림의 소재로 사랑을 받아왔다. 애국가의 남산의 소나무는 고난을 극복하는 의지의 상징으로 묘사돼 있으며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비롯해 수많은 그림의 소재가 바로 소나무였다.소나무의 한자인 송(松)은 나무 목(木)에 벼슬을 뜻하는 공(公)을 붙여 벼슬을 해도 좋을 만큼 훌륭한 나무라는 의미도 있는데 그래서 벼슬을 받기도 하고 상속을 받기도 했다. 속리산 정이품송은 세조가 법주사를 갈 때 가지를 들어 올려 왕의 가마가 지나가게 했다 하여 정이품 품계를 받았다고 한다. 예천의 600년 된 소나무 석송령은 자기 명의의 땅이 있어 지금까지 50년 넘게 세금을 내고 있으며 석송령의 보호와 재산관리를 위해 송계가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또 소나무를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해 궁궐복원을 위해 소나무를 벨 때도 반드시 예를 갖추어 '어명이요'를 세 번 알리고 나서야 톱을 댔다.소나무는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기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소나무와 함께 했다.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고 대문에 솔가지를 매달은 금줄이 처진 집에서 첫날을 맞았다. 소나무로 만든 가구나 도구를 이용하고 땔감과 음식재료로 사용했으며, 소나무로 만든 관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렇게 문화적 가치도 높고 쓰임새가 다양한 소나무가 안타깝게도 지구온난화와 소나무재선충 등 병충해 확산으로 인해 위기를 맞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2090년께에는 강원도 산간지대 등 일부에서만 소나무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다음 세대들도 소나무를 보고 즐길 수 있도록 보호대책을 마련하는데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본부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본부장

2016-02-14 조성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도청도설: 길에서 듣고 길에서 말한다

고전을 공부하고 강의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다보면 자신에 대해 후회가 들 때가 있다. 특히 그 많은 구절이 나의 삶과 괴리됨을 느낄 때는 더하다. 그러면 이건 자신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다. 즉 고전의 글이 나와 합치되지 않았다는 신호이다. 그럴 때 계속 무시하고 떠들어대기만 하면 속병이 드는 수가 있다. 특히 기계문명에 의한 초스피드 정보교환의 시대라는 지금 그럴 가능성이 백배는 커져있다. 논어에서는 배움을 위기지학(爲己之學)과 위인지학(爲人之學)으로 구분해놓았다. 배움의 궁극적 목적은 남에게 인정받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온전하게 이루는 데 있다는 뜻이다. 공자 당시에도 "옛날의 배우는 자는 자기를 위한 공부를 했는데 지금의 배우는 자는 타인을 위한 공부를 하는구나!"(子曰, 古之學者爲己, 今之學者爲人)라고 한 것을 보면 세태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배움은 순자가 말한 이구지학(耳口之學)으로 연결된다. 귀로 들어오자마자 입으로 나가는 것을 말하는데 입과 귀 사이는 4치밖에 안되니, 이러면 어떻게 7척이나 되는 몸을 아름답게 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좋은 말을 들으면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익숙하게 할 때 그것이 온몸으로 퍼져 행동으로 실현되는 것이 온당한데, 귀로 들어오자마자 입으로 내보내면 필터링도 할 시간 없이 그대로 빠져나가 버린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다"(學而不思則罔)는 말처럼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길에서 들은 것을 길에서 말하면 덕(德)을 버리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길을 가다 얻어지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잘 챙겨서 자기 것으로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먼저이다./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2-02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납약자유: 맺음을 들이는데 통하는 곳으로부터 한다

똑같은 이야기인데 저쪽 말은 안 듣고 이쪽 말은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사람 심리가 왜 그럴까? 이에 대한 주역의 답이 창문이다. 한나라 고조 유방이 척희(戚姬)를 사랑하여 태자를 바꾸려 할 때 이야기다. 여러 신하들이 간언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자 장량이 꾀를 내어 말하길, 상산사호(商山四皓)만 초빙할 수 있다면 일은 끝난 거나 다름없다고 하였다. 상산사호는 당시 상산(商山)에 살던 네 노인으로 모두 눈썹과 머리카락이 희었다는데서 붙여진 명칭이다. 유방이 깜짝 놀라 산에서 내려온 이유를 묻자 그들은 태자의 덕이 뛰어나 돕고자 하는 뜻이 있음을 비추었다. 그러자 유방이 생각을 고쳤다는 이야기다. 이 대목에서 張良의 계책은 탁월했는데 그건 바로 납약자유(納約自牖)의 도리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건물에 난 창은 밝음이 통하는 소통처이다. 벽은 막혀서 밝음이 통할 수 없는 곳이다. 그러므로 소통할 때는 창문으로 해야지 벽에다 대고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이 없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의 건물로 보면 마찬가지로 가려진 벽처럼 통하지 않는 곳이 있고 열린 창문처럼 통하는 곳도 있다는 것이다. 당시 유방은 사랑에 가려 간언을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막혀있었다. 그 때 한 줄기 빛이 들어오는 창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자신이 평소 흠모하고 존중했던 상산사호라는 인물이었다. 그가 바로 유방에게는 소통의 창문인 셈이다. 그걸 안 장량의 계책은 참으로 탁월하다. 신하가 임금에게 간언을 하든 친구간에 충고를 하든 간에 이치는 동일하다. 창을 찾아 그리고 관계를 맺어야 하니 이것이 맺음을 들이는데 통하는 곳으로부터 한다는 뜻이다./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1-26 철산 최정준

[박인하의 만화세상] 섬과 섬을 이어가는 소중한 가치

정현종 시인은 두 행으로 끝나는 짧은 시 '섬'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 그 섬에 가고 싶다" 시인은 사람들 사이에서 섬이 있다고 했다. 망망한 바다에 홀로 떠있는 섬.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는데 우리는 무심하다. 때론 그 섬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완전히 추방되고, 고립된다. 이 섬의 이름은 장기 농성장이다. 김선수 변호사는 "이 고립된 섬들은 21세기 대한민국의 민낯이자 가장 아픈 곳들"이라 부른다. 만화가와 르포 작가들이 짝을 이뤄 장기농성장을 찾았다. 그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현장을 살펴 만화를 그리고 글을 썼다. 그들은 섬과 섬을 이어보자고 한다. 감성적이면서 힘이 있는 주장이다. 2014년 첫 번째 권이 출간되었고, 2015년 12월 두 번째 권이 나왔다. '섬과 섬을 잇다 2'에서는 총 다섯 곳의 섬이 나온다. 광화문 지하보도에서 3년째 자리를 지키는 '장애인 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주장하는 농성현장. 민주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에게 의도적으로 안전상태가 의심스러운 차로 장거리 코스에 배치하는 전주버스, 싼값에 산 회사를 비싸게 팔기 위해 희망퇴직을 권하는 사측에 맞서 1년이 넘게 굴뚝에 올라가있는 스타케미칼, 문자 하나로 해직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 위해 10년 동안 싸움을 이어가는 기륭전자, 심야노동폐지라는 단순한 요구로 시작해 5년 넘게 이어진 유성기업. 신문 기사나 소셜 미디어에서 공유된 글에서 한번쯤 본 것 같은 낯익은 섬들이다. 다섯 곳의 섬을 찾아간 만화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섬을 찾아간다.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서명을 받는 광화문 지하를 찾은 앙꼬는 섬뜩한 직관으로 서명운동현장을 스쳐가는 이들을 멀리 관찰한 뒤 카메라 앞으로 불러내 인터뷰를 한다. 평범한 이들을 인터뷰한 중간에 2014년 4월 17일 화재로 사망한 송국현 씨 에피소드를 넣었다. 전주지역 버스 노조를 찾아간 조남준은 충실하게 현장의 사정을 전달한다. 최악의 노동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파업을 했고, 736일만에 파업을 끝내고 업무에 복귀했지만 회사는 낡은 차로 가장 힘든 구간을 운행하게 하고 헤고 작은 트집으로 해고를 통지한다. 2천500억 들어간 공장을 400억 헐값에 인수하고 2년 만에 공장 문을 닫았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굴뚝에 올랐다. 원혜진은 굴뚝에 오른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광호의 이야기를 그렸다. 주호민은 기륭전자 해고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대화형식으로 풀어갔다. 최규석은 노조를 파괴하는 '유성기업지회'의 사례를 극화로 구성했다. 만화가 채 담지 못한 현장의 자세한 이야기는 강혜민, 송기역, 유영자, 연정, 송경동의 르포기사가 다룬다. 만화는 치열한 현장을 옮기는데 적합하다. 작가 1인이 맨몸으로 현장에 다가가 그곳의 이야기를 기록할 수 있다. 현장을 경험하고, 시각적으로 풀어낼 수 있으니 글보다 효과적이다. '내가 살던 용산'(2010년) 이후 현장을 찾아가는 완성한 작품들이 꽤 늘어났다. 만화라는 매체를 빌려 고립된 이들에게 다가가고, 은폐된 진실을 드러내는 뜻깊은 작업이다. 그 중에서도 고립된 투쟁의 현장을 이어가는 '섬섬프로젝트'는 연속성에 있어서나, 이 탐욕의 시대에 꼭 필요한 연대를 위해서나 소중한 결과물이다./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

2016-01-24 박인하

[시인의 연인] 설화(雪花)

썩은 가지에 눈발이 살아 있다절속(絶俗) 후 하릴없는 생각들이겨울눈으로 허공을 껴안아뿌리 쪽 관다발 어디쯤에선물길이 막힐수록 빛나는 적요죽음이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생(生)이 외도(外道)라면 눈은 또 무슨 경계의 밖인가 고사(古寺)의 숲은 밝아여태 걸은 길들이 능선에 엉킨다 연(緣) 없는 나목(裸木)들 반은 살아 반은 죽어 연록의 시절을 지우며 야윌 때대처로 가는 길 영원히 막힐러니김종태(1971∼)상대방에게 위로가 된다는 것은, 그 만큼의 상처를 덮어주는 일이다. 상처의 부피가 깊을수록 나눠야하는 슬픔의 진폭도 비례한다. 죽어가는 생명은 삶으로부터 멀어지지만 그래도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누군가 옆에 있기에 가능하다. 삶의 잎사귀를 모두 떨어뜨린 사이사이를 채워주는 '겨울눈'을 보면 자신을 키워온 '인생의 육체'를 보게 된다. 그것은 뿌리 쪽 관다발에서 물길이 막히어 썩어가는 나무에 내린 눈을 통해 우리의 삶을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눈꽃은 존재 내면의 크기를 '대처'해 주는 형상물로서 '생(生)이 외도(外道)'라고 할 수 있다. '반은 살아 반은 죽어' 있는 삶에서 "연록의 시절을 지우며" 서 있는, 겨울 한복판에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했다./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01-24 권성훈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이인위미: 어진 사람들의 마을이 아름답다

2016년 수원시의 화두로 이인위미(里仁爲美)가 선정되었다. 새해를 수원화성 방문의 해로 정하면서 수원을 인심이 어진 아름다운 마을로 만들자는 다짐으로 보인다. 마침 이 화두는 필자가 제안한 것이기도 해서 그 사자성어를 통해 논어를 읽어보자. 이 성어는 논어에 들어있는데 '里仁爲美'로 시작하기 때문에 그 편을 이인(里仁)편이라 한다. 어진 풍속을 지닌 마을이 아름다운데 사람이 거처를 할 때 이런 마을을 선택해서 거처하지 않는다면 과연 지혜롭다고 할 수 있겠느냐는 공자의 말씀이다. 고인들의 거처에 대한 選擇이 지혜롭고 신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시대 이중환(李重煥)은 이 구절에서 인용해 마을을 택한다는 뜻의 택리(擇理)로 이름을 삼아 택리지(擇里志)란 책을 지었다. 택리지를 보면 크게 팔도의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데 지금도 거처를 선택할 때 참고해야할 사항이며 더 적극적으로는 도시계획의 관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진정한 도시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운 도시는 어떻게 만드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공자는 제일 먼저 '사람들의 어진 마음'을 들고 있는 것이다. 仁을 파자하면 이인(二人)으로 나와 너, 즉 우리들이다. 사람에 대한 고민이 빠진 마을은 아무리 화려해도 쓸쓸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수원시의 고민은 탁월하다. 조선후기 당시 里仁을 꿈꾸었던 정조의 고민이 다시 부활하고, 동시에 많은 이들이 수원화성 방문을 통해 그런 생각이 공감되길 바란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1-19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충언역이: 충성스러운 말은 귀에 거슬린다

누구에게나 지나고 보면 그가 나에게 진실한 충고를 한 것인데 그 당시에는 그 말이 듣기가 싫어 흘려버리거나 심지어 화를 내기까지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충고는 여러 경우가 있어서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공통점은 좋은 방향을 제시하고자하는 진심이 담겨있고 사리에 맞는 이야기라면 충고라고 할 만하다. 이런 면에서 객관적이고 냉정한 비판이나 사적인 감정이 담긴 비난과 다르다. 그런데 사람의 귀는 어찌된 일인지 비판이나 비난은 물론이고 진심어린 충고도 듣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기원전 26년 진(秦)에 먼저 입성한 유방(劉邦)은 진(秦)의 자영(子영)에게 황제의 도장(印)을 받고 함양(咸陽)에 들어갔다. 음주가무를 즐기던 유방은 아방궁(阿房宮)이 선사하는 화려함에 도취되어 항복한 자영(子영)도 죽이고 아방궁(阿房宮)에 눌러앉고 싶었다. 이에 번쾌가 무고한 살인을 해서는 안 되며 궁전에서 나가야한다고 충고했지만 먹혀들지 않았다. 그러자 장량이 충고를 하였다. 유방이 진나라 궁궐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진(秦)이 도리를 잃자 민심이 떠난 까닭인데 만약 지금 환락에 빠져들어 머문다면 똑같은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한 말이 "충언(忠言)은 귀에 거슬리지만 행실에는 이롭고(忠言逆耳利於行),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는 잘 듣는다(良藥苦口利於病)"는 명언이다. 진퇴(進退)의 결정에는 늘 충언이 필요하다./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1-12 철산 최정준

[김준혁의 역사산책] 환향녀(還鄕女), 위안부(慰安婦)

병자호란이 터졌다. 무능한 인조와 서인 세력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만을 위하여 국제정세나 백성들의 삶은 돌아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사라져가고 있는 명나라밖에 없었다. 명나라가 아니었다면 조선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이라며 명에 대한 충성을 고집하고 있었다. 중국땅은 이미 여진족의 세상이 되어 가고 있었지만 조선의 기득권들은 명나라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비난의 소리를 하면 대역죄인으로 몰아 죽였다. 자신의 나라와 백성들의 삶을 위해 주체적 국가 건설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큰 죄악이었으니 어느 누가 사대를 버리고 주체를 선택하겠는가! 결국 이러한 무지가 오랑캐라 부르던 그들 여진족에게 항복하는 조선 역사상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였다.이러한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백성들이었다. 그 백성 중에서도 청나라로 끌려간 여인들이 가장 큰 피해자였다. 여진족들은 조선 여인들이 아름답고 일을 잘한다고 하여 사대부의 여인이나 평민 여인이나 가리지 않고 만주로 끌고 갔다. 그 여인들은 노비로 팔려가거나 여진족들의 성 노리개가 되었다. 조선 지도자들의 무능으로 결국 피해는 조선의 이름없는 나약한 여인들이 받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도 이러한 불합리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이 여인들 중 만주를 탈출하여 조선의 압록강을 건넌 여인들도 있고, 집안에서 돈을 주고 풀어내어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들도 있다. 그래서 이 여인들을 '고향[鄕]으로 돌아온[還] 여인[女]'이라고 해서 '환향녀'라고 불렀다. 그런데 양반사대부 집안으로 돌아온 여인들은 배척을 받았다. 이 여인들이 여진족에게 몸을 더럽혀진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들은 '환향녀'가 아닌 '화냥년'이라는 욕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아니 이 여인들이 어떻게 만주까지 가게 된 것인가? 그것은 여인들의 잘못이 아니라 바로 나라의 잘못이요, 자신들의 권력과 금력만을 위하여 나라를 잘못으로 만든 무능하고 거짓된 관료들과 사대부들의 잘못이 아닌가!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은 꼭꼭 숨겨두고 온갖 고생을 하다 돌아온 슬픈 여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그들은 거꾸로 이 여인들을 이용하여 가문의 명예를 빛내고자 하였다. 그래서 이 여인들에게 죽음을 강요하거나 아니면 비밀리에 살해하고 그녀들이 스스로 가문의 명예를 위해 자결했노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래서 그녀들을 죽인 그들은 나라로부터 열녀문을 하사받고 세금 면제와 군역 면제 등 온갖 특혜를 받으며 지역 사회에서 명망가 행세를 하였다. 이것이 바로 환향녀의 진실이다.최근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군의 성(性)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성 노리개 역할로 강제 끌려간 우리 할머니들에 대한 배상문제를 해결했다고 한다. 100억원도 안되는 10억엔을 한국 정부에 주면서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선전한다. 그 과정에서 일본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도 대한민국 정부가 이전해주기로 했다고 일본 정부가 발표했다. 이 말도 안 되는 일을 보며 300년 전 환향녀가 생각났다. 우리가 다시 이 여인들을 화냥년으로 만들 것인가?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았던 이 가녀린 여인들에게 300년전의 기득권들처럼 오늘의 정부와 보수 세력들이 똑같이 그녀들을 상대하는 것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이 나라는 아직도 300년 전의 그 어리석은 조선인가?/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2016-01-10 김준혁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신명행사: 명령을 거듭해서 사업을 행한다

서기로 2016년인데 정월이 지나면 원숭이띠의 해가 된다. 원숭이띠의 해는 지지로 신(申)이며 申은 음력 7월에 해당하니 1년으로 치면 후반부가 시작되는 첫 달인 셈이다. 음력 7월에는 봄여름에 지어놓은 농사가 결실을 맺는 가을의 초입이기 때문에 申은 자기가 지니고 있는 성정(性情)을 펼친다는 펼 신(伸)의 뜻으로 본다. 모든 사물에 굴신(屈伸)이 있듯이 봄에 땅속에 들어간 씨앗이 가을에 익어서 펼쳐 나오는 뜻으로 보면 그렇다.申은 거듭한다는 뜻도 있는데 한 번만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거듭 거듭한다는 의미이다. 거듭해야할 것이 많지만 주역에서는 명령을 거듭한다고 하여 신명(申命)이라 하였다. 모든 생명(生命)은 말 그대로 나면서부터 부여된 수명(壽命)이라는 목숨의 기한이 있고 그 기한동안 수행해야할 명령(命令)도 있다. 명령 중에 제일 크고 근원적인 것으로 흔히 천명(天命)을 든다. 공자도 50이 돼서야 알았다는 천명(天命)이지만 천명이란 게 저 푸른 하늘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속에 내재된 하늘의 명령으로 귀를 기울이면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명령이다. 일반 행정명령체계도 위에서 아래로 계속 내려오고 어제에서 오늘로 거듭 이어지듯 고금(古今)의 명령체계가 다르고 동서(東西)의 명령체계가 다르다. 명령을 한번만 내리고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하기 때문에 시대와 장소에 맞추어 거듭 명령을 내려야 하는데 그것이 申命이고 그런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행사(行事)이다. 12지지 가운데 원숭이 띠인 申의 해에 수행해야할 명령이 신명(申命)이라면 그것을 잘 수행하는 것이 바로 각자의 신명행사(申命行事)인 셈이다./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1-05 철산 최정준

[윤중강의 음악살롱] 이난영 탄생 100주년

일본방송의 어디선가, 오늘도 미조라 히바리(1937~1989)를 얘기할 거다. 엔카(演歌)의 여왕으로 추앙받는 그녀는, 사후에도 줄곧 관심의 대상이다. 일본에 미조라 히바리가 있다면, 한국엔 이난영(1916~ 1965)이 있다. 아니다! 어찌 조선가희(朝鮮歌姬) 이난영을 미조라 히바리 정도에 비하리오. 이난영은 훨씬 더 높다. 이난영 하면 ‘목포의 눈물’(1935)을 떠올릴 거다. 더 안다면 ‘다방의 푸른 꿈’(1939)을 얘기한다. 일제강점기의 트로트의 대표곡을 부른 가수이자, 블루스의 원조 격인 노래를 이난영이 부른 게 많다. 그녀는 실제 일제강점기의 유행 장르인 가요, 민요, 만요, 재즈를 두루 넘나들었다. 앳된 목소리로 부른 ‘아리랑’과 ‘신아리랑’, 한 편의 드라마가 연상되는 ‘담배집 처녀’와 ‘알아달라우요’, 남편 김해송과 함께 부른 ‘명랑한 젊은날’, ‘올팡갈팡’을 들어보라. 조선의 여가수 중에서, 이렇게 음악적인 스펙트럼이 넓은 가수는 이후에도 드물다. 샹송의 여왕 에디트 피아프(1915~ 1963)와 이난영 사이에는 평행이론이 존재한다. 둘 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겪었다. 그녀들의 이름이 모두 타인이 붙여준 예명이다. 버거운 현실을 잊게 해준 이름이었다. 모두 탁월한 음악성으로 전성기를 누리면서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결코 인생이 행복하지 않았다. 에디트 피아프의 주변에 이브 몽탕이 있었다면, 이난영에겐 남인수란 가수가 있었다. 남편 김해송이 한국전쟁으로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그에게 의지하면서 살았다.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에디트 피아프나 이난영이나 가수가 본업이었으나, 연기에도 출중했다. 카르멘이 아닌, 남자 역할 돈호세를 할 수 있는 여배우였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의 삶은 불우했지만, 많은 사람에게 행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었다는 점이다. 에디트 피아프와 이난영의 노래를 다시 부른 사람은 많지만, 그녀들을 뛰어넘을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에디트 피아프가 태어난 이듬해 이난영이 태어났고, 에디트 피아프가 타계한 이듬해에 이난영이 세상을 떠났다. 파리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서 거행된 장례식엔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렸던 것처럼, 집회가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에도 이난영이 떠나는 영결식에 많은 시민이 애도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두 여가수의 평행이론을 인정하는가? 지금의 우리는 프랑스의 에디트 피아프처럼 한국의 이난영을 더욱 주목해야 한다. 프랑스사람이 에디트 피아프를 생각하는 것만큼, 우리가 이난영을 제대로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때 그 시절, 우리에게 이런 명가수가 있었다. 이난영은 진정 ‘격이 다른’ 노래를 불렀다. 탄생 100주년을 맞는 2016년, 이난영에 관한 제대로 된 평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한국전쟁 당시, 이난영은 남편 김해송(1911~1950)을 떠나보내고 김시스터즈를 길러낸 인물이기도 하다. 에드설리반쇼에 출연해서 딸들인 김시스터즈와 함께 아리랑을 가사로 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에 관해선 다큐멘터리 ‘다방의 푸른 꿈’(김대현 감독, 2015)에 잘 담겨있다.2016년, 경향각지에서 이난영을 기리는 콘텐츠가 만들어지길 희망한다. 영화, 연극, 가요, 국악분야에서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난영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다. 에디트 피아프와 미조라 히바리가 각기 그 나라에서 어떤 존재인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01-03 윤중강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군자유종: 군자는 마침을 둔다

마친다는 뜻을 지닌 한자인 종(終)자를 보면 겨울 동(冬)자가 들어있다. 겨울은 한 해를 마치는 계절이기 때문에 의미가 부합한다. 겨울은 기운을 땅 속에 깊숙이 수렴하면서 한 해의 노고를 위로하는 때이기 때문에 위로의 계절이라 하였는데 한 해를 돌아보며 그 동안 한 일을 평가하고 위로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각종 단체나 직장에서 나름대로 종무식(終務式)을 한다.그런데 겨울은 천간(天干)으로 임계(壬癸)에 해당하는데 임(壬)은 아이를 밴다는 ‘임(妊)’의 뜻이고, 계(癸)는 헤아린다는 ‘규(揆)’의 뜻이다. 겨울이 끝이 아니라 다시 새 생명을 잉태하여 품고 있다는 뜻이고 속에 품고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추측하고 헤아린다는 뜻이다. 이것은 마칠 종(終)자에 있는 실 사(糸)자의 역할이다. 실이 사물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듯이 겨울은 감추기만 하는 것이 아니고 다시 새해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듯 마친다는 ‘종(終)’은 그 자체에 ‘시(始)’를 품고 있다. 새해를 시작하고 마치기를 수십 번 해보아도 깔끔하게 만족스러운 적이 얼마나 있을까! 시작이 있고 과정이 있고 마침이 있듯이 이 세 가지 단계를 잘할 방법을 주역에서 소개하고 있다. 그 가운데 마침을 잘하는 방법에 대한 충고가 군자유종(君子有終)이다. 마침을 잘 이루기 위해서는 노력과 겸손함이 필요하다고 해서 겸손하다는 겸괘(謙卦)에 있는 말인데 다 이루어놓고 자만하는 순간 유종(有終)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뜻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5-12-29 철산 최정준

[시인의 연인] 겨울 자작나무 숲

온몸에는 별들이 쉬었다 간 자국 바람이 강렬하게 포옹했던 체온으로 가득한 겨울 자작나무 숲우듬지로부터 가지와 가지 사이 서서히 흘러내리는 불꽃같은 빛을 따라 이파리에 매달린 애벌레가 일광욕을 즐기고 참새 떼는 빛을 쪼며 흥겨워하고 눈처럼 흰 생명의 빛으로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추위를 견디는 겨울 자작나무 숲 허형만(1945~)시간을 수평적이라고 한다면 공간은 수직적이다. 끊임없이 지나가는 시간은 고정된 공간 속에서 시간의 단위로 현전한다. 이 시간에 있지 못한 사람들은 이 공간에 없는 사람인바, 이 시간을 보낼 수 없다는 점에서 시공간은 언제나 동행자다. 누군가에게는 절실히 살고 싶었던 오늘이며, 누군가에게는 이토록 죽고 싶은 오늘을 산다. 그런 한해가 석양으로 물들고 있다. ‘겨울 자작나무 숲’을 보면 지나온 시간의 “온몸에는 별들이 쉬었다 간 자국”을 만나게 된다. “바람이 강렬하게 포옹했던 체온”을 느껴보라. “우듬지로부터 가지와 가지 사이”로 “흘러내리는 불꽃같은 빛”과 “눈처럼 흰 생명의 빛으로” 희망이 오고 있다. “서로의 온기를 나누며 추위를 견디는” 시간은 분명히 갈등과 충돌이 해소된 장소로서 ‘인간들의 숲’이 된다. 그렇다면 2015년을 아름답게 저물게 할 수 있으련만./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5-12-27 권성훈

[박인하의 만화세상] 엄마와 딸, 다시 엄마와 딸로 이어지는 상처의 고리

일본 만화에는 ‘에세이 만화’라는 구분이 있다. 명칭 그대로 장르의 틀 안에서 서사가 진행되는 ‘장르 만화’와 다른, 작가 개인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를 ‘에세이 만화’라고 부른다. 1990년대 이후 주로 일본의 장르 만화가 번역, 소개되다가 최근 몇년 사이에 에세이 만화도 번역되는 중인데, 에세이 만화는 만화잡지뿐만 아니라 일반 잡지에도 연재되고 있다. 에세이 만화는 여성 작가와 여성 독자들의 비중이 높다.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많은 사랑을 받은 마스다 미리도 여성 만화가다. 마스다 미리 만화가 히트하자, 다른 에세이 만화들도 출간되는데, 마스다 미리의 만화만큼 알려지지는 않았다. 에세이 만화는 음식이나 여행·패션·뷰티처럼 세부 주제에 집중하는 만화와 삶의 전반적 이야기를 담아내는 만화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는 세부 주제를 설명하는 만화보다는 마스다 미리의 만화처럼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며 자신의 삶을 드러내는 공감형 만화가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마스다 미리 만화가 여성의 일상에 대한 에세이 만화였다면, ‘그래도, 우리 엄마’는 ‘엄마와 딸’로 묶인 여성에 대해 생각하게 해 보는 에세이 만화다.다케시마 나미 ‘그래도, 우리 엄마’는 2014년 1월에 일본에서 출간된 ‘저는 나쁜 엄마입니다(私がダメ母だったわけ)’를 6월에 (발 빠르게) 번역한 책이다. 우리나라에는 통 안 알려졌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솔직한 만화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자신이 무척 낯을 가리지만, 낯가리는 걸 티 내지 않으려 애를 쓰는 사람이라 소개한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기 전에 엄청 긴장하고, 타인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심지어 전화도 제대로 걸지 못한다 고백한다. 그리고 32년간 성실하고 착한 딸이었지만, 아이를 키우며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했다고 고백하고 이 만화가 ‘나쁜엄마 극복기’라고 설명한다. 아이를 낳아 육아를 시작하는데, 순간순간 아이에게 짜증을 낸다. 힘들어 짜증을 낼 수 있다고 다들 말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짜증이 뭔가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틀림없이, 분명히 애정이 있는데 대체 왜 짜증을 내고 마는지 계속 자책”도 한다. 아이와 함께 노는 것도 힘들고, 매일 밤 딸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도 역시 힘들기만 하다. 그러던 중 배변훈련을 하다가, 실수를 한 딸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만다. 어느 날 자신의 눈치를 보는 딸 아이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리고 딸 아이에게서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작가는 자기 마음 속에 응어리진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늘 화를 내던 엄마, 자식들에게 과도한 애정을 표현하고, 엄마에게는 폭력적인 아빠. 그리고 그 안에서 자라며 상처를 받은 자신의 유년시절을 담담하게 고백한다. 작가는 엄마가 되어 자식을 기르며 기억 저편에 밀쳐놓았던 유년시절과 엄마를 직시한다. 작가는 짜증내는 엄마에 대한 기억을 중심으로 유년시절을 돌아본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는 엄마와 딸의 관계회복을 그린 만화가 아니다. 엄마와 딸, 다시 엄마와 딸로 상처의 고리가 이어지고 있음을 드러낸 만화다. 장르 만화처럼 멋진 클리이맥스는 없지만, 함께 고민해야 할 화두는 충분하다./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

2015-12-27 박인하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절문근사: 간절하게 묻고 가까이에서 생각한다

고전을 공부하다 보면 현실과 괴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공자왈 맹자왈의 그 주옥같은 말이 일상의 풍경에서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목격할 때는 더욱 그렇다. 물론 나 자신을 포함해서 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다 보니 어떨 때는 이런 괴리감을 당연시하기도 한다. 공자왈은 그저 책 속에서나 가능한 성현들의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리고선 그와는 전혀 다른 현실에 빠져든다. 이것이 고전 공부하다 만나게 되는 병폐이다.그러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고전의 말이 너무 고원하여 그저 영원히 실현 불가능한 좋은 이야기이거나 아니면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 찌들어서 좋은 줄 알면서도 감당하기 힘들 거나 아니면 그 둘 다 해당할 수도 있다. 이런 괴리감을 해결하기에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 역시 고전의 말씀이다. 절문근사(切問近思)!고전을 접할 때 그 내용에 대해 교조적이거나 맹목적으로 다가가게 되면 점점 더 자기와는 거리가 멀어져 괴리감은 더 커지고 고착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고전의 글을 나의 삶 속에서 내 수준에 맞게 양질을 조절해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의 자기 행위를 떠나서 글을 보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아주 가까이에서부터 고전의 글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이것이 근사(近思)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 진정이 담긴 물음이 생기는데 그것이 절문(切問)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5-12-22 철산 최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