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시인의 연인]텔레비전 Ⅰ

박남철(1953~2014)백지 위에 사각형 '텔레비전 Ⅰ'을 들여다 보기 위해서는 1980년대의 사회적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당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표출된 민주화에 대한 대중의 열망을 좌절시키면서 등장한 신군부 정권은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screen, sport, sex 또는 speed'에 의한 3S 정책을 사용했다. 이런 3S 정책은 세계적으로 부당하게 권력을 수립한 통치자가 국민을 조정하기 위한 효율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이른바 정권을 향한 국민들의 관심을 감각과 운동으로 분산시키기 충분한 자극 요법으로 사용해 왔다. 텔레비전은 이러한 국가의 문화적 폭력을 그대로 담고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백지 위에 스크린 이미지―네모만을 그려놓고, 제목을 '텔레비전 Ⅰ' 이라고 쓰고 있다. 사회에 대한 불신과 분노를 드러내고 있는, 이 시에서 정권이 자행하는 폭력의 얼굴과 실체를 감지할 수 있게 된다. 고통받는 국민들을 '바보의 방'에 몰아넣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강요하고 유린하는 현실이, 우리를 또 다시 차가운 길 위에 세우며 분노하게 만든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박남철(1953~2014)박남철 作 '텔레비전 1': 백지 위에 사각형 선만 그려놓고 국가의 문화적 폭력을 풍자함.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11-06 권성훈

[시인의 연인]가을의 뒷모습

깨끗하게 헤어지는 법을 배워야겠네여름 내내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꼭 붙어 지낸 나뭇가지와 잎사귀바람 부는 날 서둘러 헤어지는구나 뒷모습을 오래 보았지 뒤돌아보지 않고 인파에 휩쓸려 사라져버린 그대쓸쓸한 등이 눈에 밟히고잘 지내요 힘없는 그 말 귓가에 맴도는데이 거리를 혼자 걸을 수밖에 없다그대 쓸쓸한 뒷모습을 기억하는겨울이 온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이이승하(1960~)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뒷모습은 쓸쓸하다. 정면에서 보이는 강한 생명력도 그 뒤를 보여 줄 때, 빛이 바래고 어두워 보인다. 낙엽 물드는 10월의 마지막 날 우리는 절정에 이른 '가을의 뒷모습' 속에서 생명에의 근원적 외로움을 발견한다. 또한 거기서 '깨끗하게 헤어지는 법'을 찾아 "여름 내내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꼭 붙어 지낸 나뭇가지와 잎사귀"에서 '서둘러 헤어지는' 이별을 배운다. '뒤돌아보지 않고' 순식간에 나무에서 하강하는 낙엽을 보면, 어느 날 "인파에 휩쓸려 사라져버린 그대" 가슴 아픈 사랑과 같이 아직도 "쓸쓸한 등이 눈에 밟히고" 있지 않은가. "잘 지내요" 말하고 떠나버린 '그대 쓸쓸한 뒷모습을 기억'하는 10월의 마지막 거리에 서면 지나온 빛바랜 시간이 굴러다니다가 앙상한 얼굴로 마주치기도 한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이승하(1960~)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10-30 권성훈

[윤중강의 음악살롱]한국의 밥딜런 '들'

2016년,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가수로선 처음이다. 문학마니아에게는 의외겠지만, 나와 같은 입장에선 두 손을 번쩍 들면서 기뻐한다. 1970년대, 밥 딜런이 한국가수에게 끼친 영향은 크다. 그의 명곡 '블로윙 인 더 윈드'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과 같은 제목으로, 한국의 많은 포크가수가 번안해서 불렀다."'한국의 밥 딜런'은 누구일까?"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는 소식과 함께, 새삼 이런 질문을 접하게 된다. 저마다 좋아하는 가수를 한국의 밥 딜런으로 꼽는다. 오래전부터, 자타공히 '한국의 밥 딜런'이라고 불린 가수는 '담배'를 부른 서유석이다. 1970년대의 3대 저항 포크가수로서 김민기, 한대수, 서유석을 꼽고 있다. 이렇게 세 사람을 꼽는 건 신중해야 한다. 한국의 초기 포크가수와 그들의 저항적 노래를 얘기할 때 양병집을 빼놓을 수 없다.당시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를 치는 남녀가수들이 초기에는 밥 딜런과 조안 바에즈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그런 노래 속에서 '미국 포크'에서 '한국민요'의 관심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한국적 포크음악에서 투코리언즈의 '벽오동 심은 뜻은'은 큰 의미가 있다. 이 노래는 시조와 민요 등 한국적인 노래말과 함께 한국적인 곡조가 돋보인다. 투코리언즈의 한명이 바로 김도향이었다. 다양한 음악을 거친 김도향은 1990년대 '월이 아리랑', '여보게 저승갈 때 무얼 가지고 가나(거문고 반주)' 등의 곡을 내놓았다.1970년대 초반의 포크음악으로서 김민기의 '밤뱃놀이', '가뭄', 양병집의 '타박네', 서유석 '진주난봉가' 등은 무척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가수 마다 한 두곡에 불과했던 한국적인 포크음악은 송창식을 통해서 보다 더 한국적인 색깔이 짙은 음악으로 자리하게 된다. 송창식의 '에이야홍 술래잡이' '밀양머슴아리랑' '돌돌이와 석순이' 등을 들으면 그가 한국적인 음악을 두루 섭렵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김정호가 있다. 김정호의 '님'은 마치 남도민요(南道民謠)를 듣는 느낌이고, 그의 목소리는 마치 국악기 '아쟁'과 무척 닮았음을 느끼게 된다.한국적인 가요의 맥락을 살필 때, 가장 중요시하게 다룰 가수는 정태춘이다. 그의 '고향집 가세'를 들어보면 안다. 정태춘을 통해서 완벽하게 미국적인 포크음악은 자취를 감추고 한국적인 민요에 바탕을 둔 새로운 음악이 정착되었음을 확인한다. 그의 '고향집 가세'는 피리와 소리북을 통해서 반주한다. 정태춘의 노래 가사와 곡조는 그 시절의 밥 딜런에게 뒤지지 않거나 때론 능가한다.'한국의 밥 딜런'은 어느 특정한 한 사람에게 국한하기 어렵다. 미국의 밥 딜런이 했던 역할은 한국의 대중음악에선 여러 가수들의 노래를 통해서 찾아낼 수 있다. 최근 밥 딜런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그저 '한국의 밥 딜런 찾기'에 국한되지 않길 바란다. 이보다는 한국적인 포크음악의 맥락을 바르게 이해하는데 기여해 주길 바란다. 한국에도 여러 면에서 훌륭한 밥 딜런'들'이 존재하고 있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10-30 윤중강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논목공패: 목공이 패자가 된 것을 논하다

자고일어나면 전운이 감돌았던 춘추전국시기 열국의 제후들은 회맹(會盟)을 주장하던 대표인 패자가 되고 싶어 했다. 이른바 춘추오패라 부르는 이들 가운데 진나라 목공의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공자의 나이 30대에 제나라의 경공(景公)이 신하인 안영과 함께 노나라를 방문한 일이 있다. 그 때 제나라의 경공(景公)이 공자에게 물은 것이 바로 진(秦)나라의 목공이 패자가 된 이유였다. 그 때 공자가 답한 것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국가의 외형적 규모는 작지만 내면의 의지는 원대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비록 중원에서 보면 변두리에 치우쳐있었지만 행동이 정당하고 중용에 알맞다는 것이고, 셋째는 백리해라는 출중한 인재를 등용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자의 말을 잘 새겨보면 의지가 중요하고 그것을 실천하기위한 행동이 정당해야하고 함께 할 인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진목공은 당시 이 나라 저 나라 노예로 전전하던 백리해를 다섯장의 양가죽을 써서 해방시켜준 뒤 대부로 기용했다. 그래서 그를 오고대부(五고大夫)라 부르기도 한다. 패권이 의지의 원대함과 행위의 중정과 현인의 천거에 달려있다는 점은 지금도 유용하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10-25 철산 최정준

[조성미의 나무이야기]노란 낙엽으로 가을 정취를 더하는 은행나무

뜨거웠던 여름이 물러간 후 짧은 가을이 아쉬울 만큼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다. 눈에 담는 풍경마다 그림 같다. 산과 들은 물론 도심까지 노란빛으로 치장해 붉은 단풍과 어우러져 가을의 정취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나무, 은행나무다. 은행(銀杏)은 '은빛 살구'라는 의미로 열매의 모양이 살구를 닮아서 붙인 이름인데, 송나라 때 지방 정부가 중앙 정부에 제공하는 조공품 목록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잎이 오리발과 닮아서 압각수(鴨脚樹),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의 열매가 손자 대에 열린다 해서 공손수(公孫樹)라 부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유교와 불교의 전파와 함께 들어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은행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인 낙엽 교목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분포한다. 잎은 부채모양으로 흔히 2개로 갈라지고 잎끝에 미세하게 물결모양의 무늬가 있다. 잎은 긴 가지에 어긋나게 나지만 짧은 가지에는 뭉쳐서 난 것처럼 보인다. 꽃은 5월에 피는데 암꽃과 수꽃이 서로 다른 나무에서 핀다. 나무껍질은 회색으로 두꺼운 코르크질이 발달했으며 세로로 깊게 갈라진다. 은행나무가 지구 상에 처음 뿌리를 내린 것은 무려 3억 년 전 정도이며 혹독한 빙하기를 거치면서 많은 생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는데도 살아남아 메타세쿼이아와 함께 '살아있는 화석'이라고 불린다. 은행나무가 이렇게 오랜 세월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강하기 때문이었다.요즘 도심에서는 은행이 떨어져 고약한 냄새를 풍겨 민원의 원인이 되곤 한다. 벌레나 동물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인데, 딱딱한 속껍데기를 감싸고 있는 노랗고 물렁한 껍데기에 포함된 은행산과 점액질의 빌로볼 성분이 특유한 냄새의 원인물질이다. 또 은행나무 자체에도 플라보노이드라는 살균과 살충 성분이 있어 벌레의 유충이나 식물에 기생하는 각종 곰팡이, 바이러스를 억제한다. 이러한 보호 장치를 통해 은행나무는 지금까지 가장 오래 살아남은 나무가 되었다. 은행은 폐기능 개선에 도움을 줘 천식에 효과가 있으며, 혈액순환을 좋게 하고 혈전을 없애는 기능을 한다. 어린이 야뇨증이나 피로회복에도 은행만큼 좋은 게 없다. 그러나 청산배당체라는 독성물질이 있어 날것으로 먹으면 중독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반드시 익혀서 먹어야 하며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자란 은행나무에 세계 어느 곳에 있는 것보다 약리적 물질이 월등히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은행나무는 높이 60m까지 크게 자라며 모양이 아름답다. 수명이 길어 천연기념물 30호로 지정된 양평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수령이 1천100년 이상으로 추정되며 우리나라 나무 중 가장 키가 크고 당당한 위엄을 보이는데, 조선 세종 때 정3품 당상관의 품계를 하사받기도 했다. 은행나무는 예로부터 절이나 사원, 문묘 등에 많이 심고 보호해 왔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거수 중에 은행나무가 가장 많다. 병충해가 거의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드리우기 때문에 정자 옆에 많이 심었고, 자동차 배기가스를 흡수해 정화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건조해도 잘 자라며 추위에도 강해 도심지 주변의 가로수로 심어져 있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서울인천경기 본부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서울인천경기 본부장

2016-10-23 조성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육언육폐: 여섯 가지 말과 여섯 가지 가리워짐

물건은 엄폐하면 보이지 않는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어둠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빛 속에 잠재되어있듯이 일상에서 치켜세우는 미덕의 이면에는 잘 보이지 않는 단점이 있다. 공자는 제자들이 지니고 있는 장단점을 잘 파악하고 있었는데, 그 중 자로에 대한 애정과 걱정은 곳곳에서 보인다. 이 육언육폐 역시 자로에게 가르친 내용이다. 공자가 말씀한 여섯 자리의 미덕인 六言이란 지식이나 지혜를 추구하는 지(知), 그것을 몸소 실천하는 덕인 인(仁), 이것 들이 잘 구현되지 않을 때 분발하는 덕인 용맹(勇), 진리와 사람에 대한 믿음인 신(信), 왜곡됨이 없이 표출되는 덕인 정직(直), 굳세서 나태하지 않는 강건함(剛)이라는 여섯 가지 미덕에도 각각 제대로 탁마하지 않을 경우의 폐단이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이런 폐단을 바로잡아주는 방법이 배움(學)에 있다고 보았다. 배움이 없는 상태에서, 인(仁)만 추구하면 어리석어지고, 지(知)만 추구하면 너무 호탕해지고, 용맹(勇)만 추구하면 어지럽게 되고, 믿음(信)만 추구하면 자기와 남을 해치게 되고, 정직(直)만 추구하면 급하게 되고, 강건함(剛)만 추구하면 경솔해지기 쉽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치우친 면이 조금씩이라도 있기 마련이니 공자의 말씀을 기준으로 나의 단점을 성찰해보고 그 방면의 배움을 탁마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10-11 철산 최정준

[김준혁의 역사산책]훈민정음과 정조(正祖)

1790년 4월 29일. 정조가 국방강화를 위해 추진했던 '무예보도통지'가 간행되었다. 조선의 무예를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의 무예를 24가지로 정리한 무예서가 간행된 것이다. 조선이 건국된 후 군영마다 익히는 무예가 달랐고, 무과 시험 역시 표준무예가 없었다. 그래서 정조는 국방 강화의 핵심으로 표준 무예 정립이 그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정조는 1759년 아버지 사도세자가 18가지 무예를 정리하여 간행한 '무예신보'를 바탕으로 마상무예 6가지를 추가하여 새로운 무예서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엄청난 성과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무예도보통지'의 훈민정음 언해본을 동시에 간행한 것이다. 백성들이 어려운 한문으로 된 '무예도보통지'를 읽을 수 없기 때문에 백성들이 읽고 무예를 익히게 하도록 언해본을 간행하게 한 것이다.사실 조선왕조에서 백성들을 위한 다양한 서적의 언해본을 거의 간행하지 않았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였지만 세종이 죽고 난 후 훈민정음은 정음(正音)이 아닌 언문(諺文)으로 천대받기 시작하였다. 세종의 생각과 달리 한문만을 중요시 여기는 양반사대부 등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 훈민정음은 철저히 외면받았다. 그들에 의해 훈민정음은 천한 글 혹은 여자들이 사용하는 글이라는 뜻을 가진 '언문'으로 격하되고 활용되지 못했다. 조정에서 훈민정음으로 책을 낸 것이 세종대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 그리고 세조 대에 석보상절 등이지 나머지 국왕 대에는 거의 없었다. 양반사대부들이 읽는 경서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하거나 아니면 국가의 정책과 법률을 훈민정음으로 번역하여 백성들이 읽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일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이와 같이 훈민정음이 천대받던 시절에 국왕 정조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였다. 백성들이 읽고 쓸 수 있어야 국가가 올바르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조는 즉위 후 가난으로 버려진 아이들과 전염병으로 부모가 죽어 고아가 된 아이들을 기르기 위한 '자휼전칙'이란 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대로 하자면 해당 고을의 수령은 고아가 된 아이들이 10살이 될 때까지 반드시 책임지고 관아에서 생활비를 제공하여 살아갈 수 있게 해야 했다. 정조는 이 법의 존재를 백성들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이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하여 간행하게 하였다. 정조는 그 후 죄를 지어 관아에서 심문을 받는 죄수들의 인권을 생각하여 가혹한 체벌을 금지하는 '흠휼전칙'이란 법을 제정하였다. 수령이나 관원들이 비록 죄인이라 하더라도 가혹한 매질과 고문을 가하지 못하게 하고, 감옥 안을 반드시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게 만든 법이었다. 이 역시 훈민정음으로 번역하여 반포하였다. 이처럼 정조는 국가의 법률과 정책 그리고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는 서적들의 상당수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하여 간행하였다. 새로 간행된 언해본 '무예도보통지'를 통해 무예에 자질이 있는 백성들이 표준 무예를 익힐 수 있었고, 무과에 당당히 합격하여 새로운 신진 무반이 될 수 있다. 백성들을 똑똑하게 만드니 자연스럽게 국방도 강화될 수 있었다. 기득권층들이 자신들만 문자를 알고 백성들은 무지하게 하려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반적이다. 하지만 정조는 그리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 위대한 군주로 평가받는 것이다. 한글날을 지내면서 오늘의 한반도에 있는 두 나라의 지도자와 정조를 생각해보았다. 그저 씁쓸할 따름이다./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2016-10-09 김준혁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붕우지궤: 벗이 주는 음식

"벗이 죽어서 돌아갈 곳이 없으면 '우리 집에 빈소를 차리라'고 하셨고, 벗이 주는 선물일 경우 설령 수레나 말이라도 제사지낸 고기가 아니면 절하지 않으셨다." 공자가 평소 벗을 대하던 태도에 관한 '논어'의 기록이다. 앞의 한 장면은 아낌없이 주는 내용이고 뒤의 한 장면은 정 반대로 담담하게 받는 장면이다. 이에 대한 후대에 주석은 '의합(義合)'과 '통재(通財)'이다. '의합(義合)'은 의리로 합한 사이라는 것이고, '통재(通財)'는 재물을 통용하는 사이라는 뜻이다. 의리로 합한 사이이기 때문에 빈소가 없으면 자기 집안에 빈소를 마련해주고, 재물을 통용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귀중한 선물이라도 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제사의 경우는 벗의 조상을 자기의 조상을 대하는 공경의 예로 대하려 절을 하고 받았다는 것이다. 혈연으로만 따지자면 夫婦지간도 무촌이지만 벗도 무촌이다. 그래서 예전부터 벗 간의 웅혼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져왔다. 고기 한 덩어리를 받아도 절을 하고, 말 한필을 받아도 덤덤히 받았던 그런 붕우의 이야기가 사라지면서 청렴의 이름으로 이제 3만원의 밥이 새롭게 등장했다. 벗 간에 덤덤해야 할지 절을 해야 할지 그런 고민은 이제 관심이 없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10-04 철산 최정준

[윤중강의 음악살롱] 블랙스트링, 세계음악의 돌파구

블랙 스트링(Black String)의 음반이 나왔다. 독일에서 나왔다. 한국그룹이다. 세계적인 재즈레이블 ACT가 그들을 선택했다. 아시아 뮤지션이 메이저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블랙스트링은 즉흥음악 앙상블이다. 재즈로 볼 수 있고, 월드뮤직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의 장르적 경계를 허물면서, 독특한 자기 세계를 지향하는 즉흥음악 앙상블'이라고 보는 게 가장 맞다. 이런 블랙스트링을 한국의 음악계는 얼마큼 주목하고 있을까? 블랙스트링의 음반을 어떻게 평가할까? 지구촌 곳곳에 존재하는 재즈와 월드뮤직의 마니아들만큼이나, 한국에서도 그들의 음악이 주목을 받게 될까?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 음악의 가치를 우리가 모른다! 우리 뮤지션의 실력을 우리가 외면한다! 블랙스트링은 한국의 전통음악에 기반을 두고 있다. 블랙스트링이란 말 자체가 거문고(玄琴)를 뜻한다. 거문고는 지구상에 유일하게 이 땅에만 존재한 악기다. 악기의 형태도 독특하고, 악기를 소리 내는 방식도 독특하다. 세계의 민족음악학자는 그래서 더욱 주목한다. 하지만 거문고는 한 때 국악에서도 홀대 받는 악기였다. 관현악에서 소외되기도 했고, 심지어 얼마지나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악기라고 했다. 블랙스트링의 리더이자 거문고의 명인 허윤정은 달랐다. '한계가 특성'이라는 자세로, 거문고만이 낼 수 있는 연주력의 최대치를 끄집어냈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거문고와 허윤정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블랙스트링은 허윤정을 중심으로 이이람(대금, 단소, 양금), 오정수(기타)의 세 명으로 출발했고, 황민왕(소리, 아쟁)이 참여하면서, 한국음악의 소재를 보다 넓혔다.새 음반의 여러 곡 중에서 한 트랙만을 선택하라면, 'Growth Ring'이다. 생장륜(生長輪) 또는 나이테로 풀이된다. 이 제목은 한국음악 자체의 그간의 성장처럼 보이기도 하고, 블랙스트링의 음악적 행보를 말해주는 것 같다. 주목과 방관을 반복해오면서 안으로 단단해지고, 온기와 냉기를 거치면서 스스로의 활로를 모색하는, 토종적인 한국음악의 숙명처럼 숭고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블랙스트링의 음악이 견고하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이 곡은 한국 전통음악의 세 장르인 정악, 탈춤, 민요가 순차적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음악을 보다 더 심층적으로 살피면서, 이 셋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 기존의 국악적 시각에서 보면 다른 음악이겠지만, 블랙스트링의 입장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한 뿌리의 음악이다. 다소 과장을 허용한다면, 이렇게 진행하는 연주가 마치 선녀의 옷은 꿰맨 자국이 없다는 천의무봉(天衣無縫)처럼 이어진다. 이번에 나온 블랙스트링의 음반 'Mask Dance'를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이들은 국악을 출발점으로 삼지만, '국악의 대중화'를 외치는 그룹이 아니다. 그렇다고 재즈레이블에서 나왔다고 해서 '재즈로의 투항'도 아니다. 블랙스트링은 한국의 전통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연주력을 바탕으로 한 음악이다. "이 시대의 국악은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장 합당할까?"라는 질문으로 풀어낸 음악이다. 이런 화두로 풀어낸 블랙스트링의 음악은, 기존의 음악에 대한 '맹목적 추종'을 경계했고, 새로운 음악을 만든답시고 저지르는 '섣부른 실험'도 배제했다. 이런 자세로 만들어진 블랙스트링의 음악은, 한국적 시각으로 보면 우리음악의 '현재형'이 되고, 재즈나 월드뮤직의 시장에서 보면 그간 들어보지 못한 '핫한' 음악이다. 블랙스트링은 이렇게 '한국음악의 자존심'을 세웠고, '세계음악의 돌파구'가 되었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6-10-02 윤중강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초상지풍: 풀 위에 부는 바람

예나 지금이나 정치집단은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 정점에 있는 이가 최고 권력자임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므로 그가 지니고 있는 의미와 신념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방법이 지나치다싶으면 그 목적이 정당화될 수 없다. 논어에 자주 등장하는 季氏의 가문에 속한 季康子와의 대화에 그 내용이 나온다. 계강자가 "제가 추구하는 제대로 된 정치방향을 따르지 않는 자들을 죽여서 제대로 된 정치가 이루어지게 한다면 어떨까요?" 공자는 "정치란 德을 기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무력을 동원하여 강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가 진정 善한 정치를 지향한다면 자연 백성들도 당신의 노선을 지지할 것입니다. 이는 마치 풀이 바람의 방향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과 같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 산이나 들에 가 보면 풀이 한쪽으로 누워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보면 그 곳의 풍향을 알 수 있다. 民草라 부르는 풀은 이렇듯 정치적으로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바람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절대적으로 바람의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이다. 풀은 추위를 타며 앙상하게 누워있는데 바람이 남동풍이라고 우기면 누가 옳은 것인가? 民草와 風俗은 현란한 세치 혀로 속인다고 속일 수 있는 게 아니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9-27 철산 최정준

[조성미의 나무이야기] 늘 푸르고 변함이 없는 잣나무

요즘 경기도 가평에는 잣 수확이 한창이다. 전국 생산량의 45% 이상을 차지하는 가평 잣은 잣알이 굵고 윤기가 흐르며 맛이 담백하고 고소해 경기도를 대표하는 임산물이다. 올해는 자연재해가 없고 일조량까지 풍부해 잣이 대풍이라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잣나무는 늘 푸르고 변함이 없어 소나무와 함께 고고한 선비의 지조를 상징하는 나무다. 잣나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나무로 꼽히는데 잣나무를 영어로 코리안 파인(Korean Pine)이라고 하며 학명에도 한국의 나무라는 것이 분명히 표시되어 있다.잣나무는 소나무과의 상록침엽교목으로 우리나라와 중국, 러시아 그리고 일본에만 자란다. 추운 곳을 좋아하는 한대수종으로 우리나라에는 백두산과 개마고원에 주로 분포하고 강원도 오대산과 설악산 등 높은 산에서 자라는데 남부지방에서는 표고 1천 미터 이상 되는 고산지대에서 자생한다. 잣나무는 1970년대부터 조림을 시작했으며 리기다소나무와 낙엽송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이 심어져 있다. 잣나무는 토심이 깊고 비옥한 토양에서 잘 자라는데 어렸을 때는 그늘을 좋아하지만 커갈수록 햇빛요구량이 많다.잣나무는 높이는 30m, 가슴높이 직경이 1m까지 곧게 자라고 가지가 돌아가며 고르게 뻗어 긴 삼각형의 안정된 형태를 보인다. 나무껍질은 흑갈색이고 가로세로로 얇게 갈라져 있으며 바늘 모양의 잎은 짧은 가지 끝에 다섯 개씩 모여서 달리는데 유난히 짙푸르고 무성하다. 꽃은 적황색으로 5월에 피고, 열매는 다음 해 10월에 열리는데 솔방울처럼 생겼으나 긴 타원형으로 크기가 어른 주먹만 하고 비늘 밑에 잣이 들어있다. 보통 잣송이 하나에서 100개 정도의 잣이 나오는데 열매를 맺으려면 적어도 12년 이상 자라야 하고 25년 정도 지나면 결실량이 많아진다.잣은 죽을 쑤거나 요리나 다과에 고명으로 얹어 먹었는데 단백질 등 기본 영양성분은 물론 무기질과 비타민까지 고루 갖춘 완전식품이다. 잣은 지봉유설 등 옛 문헌에 보면 중국 사람들이 잣을 좋아해 당나라 때는 신라사신들이 갈 때마다 잣을 많이 가지고 가서 선물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중국에서는 잣이 매우 귀했는데 특히 신라인들이 가져간 잣의 품질이 좋아 우리나라 잣나무를 신라송이라고도 불렀으며, 바다를 건너왔다고 하여 잣나무를 해송(海松)으로도 불렀고 열매인 잣은 해송자라고 불렀다.정월대보름 전날 잘 고른 잣 12개를 바늘에 꿰어 열두 달을 정하고 불을 붙여 잘 타는 달은 일이 잘 풀린다고 믿어 한 해를 점치는 풍속이 있었고, 정월 초하룻날 잣나무 잎으로 만든 술을 마시면 액운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다.잣나무는 품질이 매우 좋은 목재다. 나무의 가운데가 불그스름한 색을 띠고 있어 색과 무늬가 아름다우며 틀어짐이나 수축, 팽창이 적고 가볍기까지 하여 건축재, 가구재, 선박재 등 다양한 곳에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송진이 많아 가공이 어렵지만 송진 때문에 향이 좋고 보전이 잘되는 장점이 있다. 옛말에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고 아들을 낳으면 잣나무를 심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빨리 크는 오동나무로는 딸의 혼례 때 가구를 만들고 곧고 굵게 자라는 잣나무로는 관을 준비한다는 의미이다. 경북 경산의 삼국시대 초기 고분에서 출토된 목관이 잣나무로 밝혀져 이용되어 온 역사가 그만큼 길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

2016-09-25 조성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후하안택: 아래를 후하게 해서 집을 편안하게 한다

사람이 땅에서 살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을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것은 땅의 후덕(厚德) 때문이다. 주역에서 땅은 실상 그 움직임이 지극히 강하지만(動剛) 현상으로 느껴지는 땅은 지극히 고요하다(至靜)고 하였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속도는 너무 빠르고 강하지만 우리는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땅이 지닌 方正한 德이다. 사실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라는 어마한 움직임에 비하면 일시적인 지진은 그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작은 움직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은 움직임이 어마한 災難의 움직임으로 느껴지며 그 때서야 비로소 땅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며 실감한다. 우리는 이렇게 우리의 안전에 위험을 느낄 때라야만 땅을 돌아본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잊어버린다. 주역의 박괘(剝卦)는 광대한 대지 위에 산이 있는 상이다. 그렇듯이 사람들의 터전도 대지위에 건설한 것이다. 지반이 요동치면 산도 무너지고 인간의 집도 무너지니 그래서 집을 안전하게 유지하고 싶으면 집을 으리으리하게 지을게 아니라 그 집을 짓는 아래의 땅의 후덕(厚德)을 살펴보라고 하였다. 천지는 천지 나름대로의 생리를 따라 운동할 뿐 인간의 안전은 관심 없다. 그러니 천상 인간이 그 운동양상에 맞추어 땅의 후덕에 의지할 뿐이다. 하늘이 없으면 단 한 번의 숨도 못 쉬고 땅이 없으면 한발자국도 걷지 못하면서도 사람은 천지에 감사하다는 인사도 한번 하지 않는다. 그렇게 각박하게 관심이 없는데 땅의 후덕이 제대로 발휘할까! 인간은 땅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오만이 있는 한 땅은 인간에게 후덕을 베풀지 않을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6-09-20 철산 최정준

[시인의 연인] 가을 산길

맨 앞에 아버지가 가고 나는 아버지 뒤를 따라가고 오리는 내 뒤를 따라오고 모처럼 산길에서 만나 함께 길을 가지만 도시락도 들고 가지만 아무도 말이 없다 아버지는 옛날에도 말씀이 없으셨다 나도 아버지 닮아 말이 없고 오리도 말이 없다 가을 산길 이승훈(1942~)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인생은 어디서 출발했는가? 길에서 만나고 길에서 이별하며 길에서 길을 물으면서 살아가는, 당신은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통하는 길을 통해 인생이라는 길에서 길로 나아가며 다시 그 길로 돌아온다. 그러나 이 길의 주체는 당신이지만 길을 있게 한 것은 아버지이므로 "아버지가 가고 나는 아버지 뒤를 따라가"는 피동적 주체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뒤뚱거리는 '오리'가 '맨 앞에' 닮아 있는 오리를 따라가는 것과 같다. 이 같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놓여 진 길들이 있지만 이러한 길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같이 유사하지만 다르며, 다르지만 연결되어 있다. 아버지와 같이 말없이 익어가는 '가을 산길'에 서면 '나도 아버지 닮아 말이 없고' 묵묵히 아버지가 된 당신도 가족이라는 무리를 이끄는 한 마리 오리와 같이 아픔을 슬픔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저 아버지가 먼저 간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어갈 뿐이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이승훈(1942~)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6-09-18 권성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