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선능지미: 맛을 아는 이가 적다

어떤 음식이든지 배가 고파 먹는 음식은 그저 허기를 채우는 것만으로 고맙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배가 불러지면 산해진미도 맛이 없으니 맛이라는 게 자신의 처지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는 음식의 맛을 전통적 오행관념에 따라 오미(五味)로 구분한다. 木에 해당하는 신맛, 火에 해당하는 쓴맛, 金에 해당하는 매운맛, 水에 해당하는 짠맛, 土에 해당하는 단맛이 그것이다. 입과 혀의 기능이 정상적이라면 누구든 이 다섯 가지 맛을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용’이란 책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음식을 먹지만 그 맛을 아는 이는 드물다고 하였다.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사과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달고 신 맛을 누구든 느끼는데 그건 일반적인 맛이고 깊은 맛을 보는 이가 있으니 바로 그 사과를 경작한 농부이다. 사과밭을 지나가는 나그네는 그저 달고 신 맛을 느낄 뿐이지만 농부가 맛보는 사과 하나에는 천지인(天地人) 삼재의 맛이 모두 함축되어있다. 사과 종자의 맛도 느껴지지만, 한 해 동안 겪었던 가뭄이나 홍수 등 하늘의 기후상황도 느껴지고, 땅에서 이루어지는 토양의 비옥도도 느껴지고, 농부로서 자기가 흘린 땀방울의 정도도 느껴진다.자신이 관심 없어서 정성을 기울이지 않으면 이런 맛을 느낄 수가 없다. 사과 하나의 맛을 보는 것도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맛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할까! 어느 분야든지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세월이 흘러도 그저 겉핥기로 맛을 보게 된다. 그래서 ‘주역’에는 대다수 사람들은 날마다 진리 속에서 그 진리를 쓰면서 살지만 그 맛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관심과 정성이 들어가면 맛은 점점 더 깊어질 것이다./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5-12-15 철산 최정준

[김준혁의 역사산책] 혼돈주(混沌酒)

우리 민족이 즐겨 마시는 술은 크게 청주(淸酒)와 탁주(濁酒)로 나뉜다. 술은 거른 형태에 따라 청주와 탁주로 나뉘며, 또 이를 기준으로 자연스럽게 고급술과 대중술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술꾼들의 은어를 빌려 소주인 청주를 ‘성인(聖人)’으로, 탁주를 ‘현인(賢人)’으로 표현하기도 했다.시성(詩聖) 이백은 공자의 수제자인 안회(顔回)가 밥을 짓던 중에 티끌이 묻은 밥이 아까워서 먹다가 동료들에게 의심을 받았던 고사와 현인으로 일컬어졌던 윤길보의 아들 백기가 계모의 옷에 붙은 독벌을 떼어 내려다가 참소를 받은 고사를 소재로, “티끌이 묻은 밥을 걷어 내고 독벌을 떼어 내려고 하였건만, 사람들은 성인을 의심하고 현인을 시기했네.(拾塵철蜂 疑聖猜賢)”라는 시구를 지었다. 그는 이를 통해 청주를 성인으로, 탁주를 현인으로 표현했다.물론 이러한 중국 고사는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에도 전해졌는데, 당대 지식인이었던 목은 이색에 의해 전파된 듯하다. 조선 초기 청주, 즉 소주는 특정계급인 양반들에게만 접근 가능한 기호품이었고, 사치스런 고급주로 인식됐다. 그 이유는 곡식을 발효시켜 증류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곡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곡식 낭비를 이유로 소주를 금지하자는 간언이 있기도 했다. 조선 성종 대 조효동은 “세종 대에는 사대부들이 집에서 소주를 드물게 썼는데, 지금 연회에서 모두 쓰므로 낭비가 심하니 금지하자”고 국왕에게 요청했고, 실제로 성종은 이를 받아들였다. 또한 소주는 너무 많이 마시면 중독이 되어 얼굴이 파랗게 되고 말을 못하는 구금증이 나타나고 혼미하여 의식을 잃게 되기도 하는 폐단이 있기도 했다.이처럼 소주는 독하기도 하여 건강에 폐단을 주기도 하였지만 양반사대부가를 중심으로 빚어지고 사용되었기에 조선의 백성들은 주로 탁주를 즐겨마셨다. 탁주는 백성의 술로, 거르지도 짜지도 않고 그대로 마시는 술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문인 정희량은 이를 ‘혼돈주(渾沌酒)’라고 불렀다. 내 막걸리 내 마시고 我飮我濁, 내 천성을 내 보전하네 我全我天, 내가 스승 삼는 술은 我逎師酒, 성인도 아니고, 현인도 아니네 非聖非賢정희량은 비운의 인물이었다. 그는 백성들의 지지를 받았지만 조정의 관료들과 기득권층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무오사화’로 인해 김해로 유배간 뒤 집으로 돌아왔다 어느 날 산책 간다고 하고는 사라져 신선으로 화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그가 세상을 한탄하며 탁주인 막걸리를 혼돈주라 이름 한 것은 어쩌면 백성들의 한(恨)이 그 술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 누가 나의 이 술을 즐기는 뜻을 알 것인가”라며 혼돈주를 마셨다. 백성들과 함께 하던 정희량이 마셨던 혼돈주, 즉 탁주는 백성들의 술이기도 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그 숱한 금주령 시대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벌써 한해가 저물고 있다. 특히 올해는 나랏일 때문에 술 마실 일이 많았다. 지금도 이런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혼돈스런 세상에 혼돈주를 마시다가 한 해가 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혼돈주가 비록 혼돈스러운 것 같지만 술한잔으로 혼돈스러운 세상을 마감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도 있다. 그래서 혼돈주는 혁명의 술이기도 하다. 하여 혼돈주는 위대하다. 이 어지러운 세상, 오늘 밤에도 목놓아 외치겠다. 혼돈주를 위하여!/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2015-12-13 김준혁

[시인의 연인] 망忙을 보다

망忙을 본다는 것은/ 망亡을 보는 것이다.나의 온갖 부끄러운 행동들이 모두 조급하게 서두르는 것은 망亡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산을 오르다 만난 박새둥지에서털도 나지 않은 망亡을 보았다.망보기가 떠난 곳은 망忙이 뚫린 곳이다.허술하게 썩어가는 둥지 안이나의 이곳 저 곳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박무웅(1944~)하나의 단어가 많은 의미를 생산해 내는 시 일수록 시적인 가치를 지닌다. 시는 일반적인 것에서 시작되지만 언어화되면서 다의적인 의미로 발전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상적 언어’로서는 존재 의미를 타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망’은 빠르다는 뜻 ‘망忙’과, 소멸한다는 뜻 ‘망亡’으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망忙을 본다는 것”과 “망亡을 보는 것”은 ‘망’이라는 동일한 단어이지만 분명한 차이로 나타난다. 망은 빠르게 가는 것과 소멸해 가는 것을 동시에 보는 것이다. “조급하게 서두르는 것”도 소멸해 가는 “나의 온갖 부끄러운 행동들”에서 유례된다. 나를 응시하는 일이야 말로 ‘허술하게 썩어가는 박새 둥지 안’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곳은 “망보기가 떠난 곳”이면서 “망忙이 뚫린 곳”으로서 “나의 이곳 저 곳일지도 모른다는” 죽음 앞에선 인간의 불안하고 연약한 존재적 해석에 도달하고 있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5-12-13 권성훈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치지미란: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린다

한편으로 보면 심란했던 을미(乙未)년도 저물어간다. 어떤 물건이든 방치하면 혼란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물리학 법칙은 현실에서 경험해 볼수록 딱 들어맞는 원리이다. 어릴적 흙으로 담을 쌓을 때 진흙을 뭉쳐 이겨서 벽돌을 만드는 틀에 넣고 말리면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벽돌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되면 그 모양을 다시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조선조 개혁적 사상가였던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선생은 과거 답안으로 제출한 춘부(春賦)에서 샘에서 발원한 맑은 물이 흐르고 흘러 대해까지 이르러야 하는데 중간에 탁한 물과 같은 소인들이 흘러들어와 그 기세가 위로는 하늘의 명을 더럽히고 아래로는 사람들의 윤리를 우습게 만들면서, 게다가 그런 분위기를 즐기기까지 하여 많은 악폐가 쌓이게 된다고 읊었다. 맑은 샘물도 중간에 흐린 물에 섞이면 혼탁해질 수 밖에 없다. 이미 혼탁한 물이 스며들어 섞이면서 흐르고 흐르면 그 물은 맑아질 수 없다. 그래서 주역에 모든 것이 다 해결되고 마무리되었다는 기제(旣濟)라는 괘에 지금은 아무 일 없이 완성적이지만 반드시 가깝거나 먼 미래에 근심과 걱정거리가 생길테니 미리 막아야 한다고 하였다. 연말이 되어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것은 연초에 먹은 마음을 변치 않고 지니고 왔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정말 그렇게 한 사람은 그런대로 자만하지 않고, 전반부에 미리 준비하고 다스리지 못한 것이 있어 말미에 어지러워졌으면 진솔하게 반성해보고 다시 새 해를 준비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이것이 을미년 어지러워진 것[未亂]을 다스리는 자세가 될 수 있다./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5-12-08 철산 최정준

[윤중강의 음악살롱] 응답하라 1988 & 이선희와 정서용

시대는 가도, 노래는 남는다. 응답하라 1988(응팔) 시청자라면, 더욱 공감하리라. 드라마를 통해, 대중가요를 만난다. 가요를 유행가라고 부르듯, 그 시대에 유행했던 노래를 만난다. 응팔의 가요가, 그런데 아쉽다. ‘너무’ 많다. 많으면, 좋다고? 아니다. 장년에겐 좋을 수 있다. 노래를 읊조리며, 기억 속의 내가 등장하니까. 응팔의 가요가, 신세대에게도 그럴까? 아니라고 본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시대의 문맥 속에서, 진정성을 획득해야 한다. 재미로 보는 드라마에서, 내가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걸까? ‘레트로마니아’란 책이 있다. 영국의 음악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가 지은 책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표지엔 ‘과거에 중독된 대중문화’란 부제와 같은 문장이 보인다. 이 책과 연관지어서, 한국의 음악평론가 최유준은 이리 말한다. “디지털 음악 아카이브는 현재라는 평면 위에 과거의 음악을 뒤섞는다. 디지털 세대는 이 점에서 복고가 일상화된 세대다.” 복고는 이미 일상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공이 그대로 증명한다. 한국인은 이미 레트로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아쉽다. 복고가, 복고 이상이 되지 못한다. 응팔에선 그 시대에 먹었던 음료와 과자도 등장하고, 전자제품과 승용차도 등장한다. 전자는 다시 소비될 가능성이 있지만, 후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 응팔에 등장하는 가요가 전자가 되어야 한다. 비유컨대,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그 시대의 노래가 이 시대의 노래로 잘 ‘번역’되어야 한다. 평생을 번역에 몰두한 불문학자 김화영 선생은 이리 말한다. “번역이란, 가장 오래된 것과 가장 싱싱한 것과의 만남이다.” 황현산 선생은 ‘어린 왕자’를 네 번이나 고쳐 번역했다. 그의 후기에선 번역에 있어서 ‘무리하게’는 부정적으로, ‘엄숙하게’는 긍정적인 단어로 사용된다. 내용을 자연스럽게 알리기 위해서 ‘무리하게’번역을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아울러 ‘어린왕자’의 번역은 궁극적으로 ‘때때로 ‘엄숙하게’ 말할 줄 아는 어린이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응팔이 ‘1988년이란 오래된 시대에 관한 2015년의 싱싱한 번역’이길 바란다. 드라마 속의 보라(류혜영)와 관련된 노래를 짚어보자. 운동권 학생으로 분한 그녀가 감옥에 간 선배의 것으로 추측되는 승용차 안에서 카세트테이프 ‘동지가’는 어떤까? 그 시절, 이 노래를 부른 꽃다지가 지금 듣는다면 어떨까? 보라와 선우(고경표)라는 연상연하 커플로 연애를 시작했을 때, 배경음악인 강수지의 ‘보라빛 향기’(1990)는 왜 선곡을 했을까? 그렇다면 응팔의 바람직한 선곡방향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선희와 정서용의 공존이다. 단일화는 함정이다. 그 시대에 이선희콘서트가 있었고, ‘나 항상 그대를’이 히트했다는 걸 더 이상 강조하지 말라. 다양화가 필요하다. 그 때 신촌블루스가 생겨났고, 그런 젊은이들에 의해서 한국적인 블루스음악이 태동했음을 알려라. 드라마 ‘응팔’에서 보라는 닭장차에 끌려가다 파주란 낯선 곳에 떨어진다. 선우에게 연락을 취한다. 늦은 밤 둘이 만날 때, 신촌블루스(정서용)의 ‘아쉬움’이 배경음악이다. 한 시대의 메이저와 마이너를 공존하면서, 시대의 가치와 노래의 효용성이 더욱 돋보이는 ‘응팔’을 기대한다. 응팔이 제발 계속 가요톱텐, 별이빛나는밤에, 토토즐에만 연연하지 않길 바란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5-12-06 윤중강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신급돈어: 믿음이 돼지와 물고기까지 미친다

평소에 믿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가끔 길거리에서 초면인 사람이 도(道)를 믿으라고 권하기도 한다. 믿음은 신앙, 신념, 신의 등등 종교나 사상이나 인간적 관계윤리에서나 두루 쓰인다.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할까? 이런 믿음과 관련해 주역에서는 중부(中孚)라는 괘가 있는데 믿음은 돼지와 물고기에게까지 파급된다고 하였다. 돼지나 물고기는 우리가 미물이라고 생각하고 잡아서 먹기도 하는 생물이다. 진정으로 우리가 믿을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런 미물들에게도 통용되는 보편적인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미물들에게서도 통용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음양(陰陽)의 도이다. 공자는 음양의 기운과 이치에 의해 이 우주는 형성되고 변화해간다는 의미로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고 하였다. 낮이 지나면 밤이 오고,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는 시간적 흐름은 바로 음양의 섭리라는 것이다. 음양의 섭리는 특정한 영역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우주적 차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돼지나 물고기 같은 미물에게서도 드러난다는 것이다. 양(陽)의 도리는 남성성을 이루고 음(陰)의 도리는 여성성을 이룬다는 계사전의 말은 우리가 미물이라고 여기는 돼지나 물고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음양적 섭리를 믿게 된다는 의미이다. 사람만 남녀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존재도 자웅(雌雄), 빈모(牝牡)의 음양적 섭리에 의해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거꾸로 음양적 섭리에 따른 균형이 깨지면 그 배신의 효과는 바로 그 미물들에게서 드러난다. 기후변화를 포함한 죽어가는 생태계를 걱정하긴 하지만 배신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이중적 모습이 현대문명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5-12-01 철산 최정준

[박인하의 만화세상] 삶을 돌아본다는 것

얼마 전 우편물을 뜯어 보고 깜짝 놀랐다. 1977년부터 1993년까지 월간지 ‘여성중앙’에 매달 4쪽씩 연재된 ‘와이프행진곡’ 전체를 묶은 두툼한 만화였다. 표지에는 금혼식 기념만화라고 적혀있었다. 박수동 작가가 결혼 50주년을 기념해 책을 묶었다. 매월 독자들을 울고 웃겼던, 작가의 표현대로 “자식 키우고 살림하고 남편 뒷바라지 하는 인생살이 만화”가 고운 옷을 입고 나타났다. 무려 17년간 연재되었으니 달동네 문간방에서 시작한 신혼부부는 아파트 전세를 거쳐, 1985년에 15평 아파트에 입주한다. 1988년 어린이날에는 ‘마이카’를 구입하고, 매번 승진에서 탈락한 남편은 1990년 10월 ‘드디어’ 차장으로 승진한다. 연재하는 동안 독자들이 바뀌기는 했어도, 작가는 작품과 함께 나이를 먹었을 터이니 연재분 전체를 묶은 ‘와이프행진곡’안에는 시대의 삶의 기억과 시간이 녹아있다. ‘와이프행진곡’은 ‘신혼행진곡’으로 연재된 막 결혼한 신혼 부부의 문간방 셋집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젊은 남녀의 밀고 당기는 신혼생활 사이로 가끔은 처연한 생활을 드러낸다. 너무 더운 여름날, 부엌에 다라이를 놓고 물을 받아 들어가 있으니 대번에 주인집 아주머니가 말한다. “수도물 아껴써요. 지난 달에 수도값이 8천원이 넘게 나왔어!” 이런 구박 끝에 억울해 적금타면 마이홈으로 가자고 이야기하자 아내가 말한다. “코딱지만한 집도 천만원이 다 넘어요.” 남편이 손가락으로 계산해 보니 “2년에 100만원씩 모은다치고 1천만원이면 20년”이 걸린다고 말한다. 아내는 “20년동안 집 값은 가만히 있는가요?”라고 소리 지르고, 남편도 “왜 나같은 놈에게 시집”왔냐고 화를 낸다. 둘은 울며 화해하고, ‘아마 날씨 탓인가 봅니다. 신랑도 울고 각시도 한참 울었습니다’는 내레이션이 깔린다. 문간방 에피소드 뿐만이 아니다. 승진을 위한 남편의 노력, 새벽 3시에 일어나 연탄불 갈기와 같은 오래전 풍경에서 시작해 최근 이야기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시대의 이야기가 구슬픈 엘레지처럼 깔려있다. 물론 당대에 사회적으로 규정된 성 역할에 충실한 중산층 가정이 구성된다. 하지만 그 시대의 다른 작품들이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묘사하는 남자의 의식이나 행동이 자주 소재로 활용해 반성하는 남자를 그린다. 어린이 만화의 걸작 ‘번데기야구단’은 평범하고 가난한 ‘번데기동’의 어린이들이 구성한 야구단 이야기다. ‘효자물꽁’이란 에피소드는 시장에 좌판을 펼친 어머니 대신 동생들을 돌보는 물꽁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시대에 이처럼 처연하게 가난을 정면에서 마주한 작품을 난 아직도 보지 못했다. 명랑만화에서도 ‘가난한 골목’을 외면하지 않았던 작가라서, 남자의 반성을 만화에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당대의 다른 성인만화에서 흔히 활용되는 대상화된 여성이 아니라 오히려 욕망하는 여성이 나온다. 그래서 ‘와이프행진곡’은 시대의 증언이다. ‘와이프행진곡’에 담긴 1977년에서 1994년이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걸고 있는 것인가?‘와이프행진곡’은 박수동 작가가 금혼식을 기념해 직접 출간했다. 보고 싶어도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만화를 서점에서 언제라도 살 수 있는 환경이 될 때 우리는 만화문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

2015-11-29 박인하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불원지복: 머지않아 회복한다

일제 강점기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일제에 항거한 독립투사들의 가슴속에 간직한 태극기에 쓰여있는 글자가 ‘不遠復’이었는데 바로 가까운 장래에 나라를 되찾는다는 예언과 의지를 담은 글자이다. 자신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리면 누구든 빨리 되찾고 싶어하는데 잃어버리자마자 빨리 되찾는다는 뜻이다. 스마트폰을 택시 안에 놓고 내리면 종일 그것을 찾을 생각에 궁금해하고 걱정하는 경험을 떠올려보면 짐작이 간다. 공자는 사람이 잃어버린 것 가운데 소중한 마음이야말로 빨리 되찾아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제자 안연의 태도를 들었다. 안연은 도덕적 허물을 지으면 그것을 빨리 알아채고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았다고 칭찬하면서 ‘不遠復’을 실천한 대표적 지성인으로 평가했다. 그런 안연이 30대 초반의 나이로 숨을 거두자 공자는 애석해 하면서 그가 머지않아 살아 돌아올 것이라고 염원하였다. 불가 三生의 윤회를 믿지 않더라도 안연이 지닌 도덕 정신이 현대에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의미 정도로 보면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돌아오라고 망자의 옷을 흔들며 이름을 부르며 ‘復’을 세 번 외치는 풍속이 있었다. 다시 돌아오라는 외침이다. 사람은 성인이든 범인이든 누구나 죽는 것은 정해진 사실인데, 누구는 죽으면 다시 돌아오라고 사람들이 외치고 누구는 다시는 돌아와서는 안 된다고 외친다. 다시 돌아와 달라고 외치는 사람은 살아있을 때 자신의 허물을 빨리 고쳐 소중한 마음을 회복했던 사람이 아닐까 싶다./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5-11-24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오영호겸: 꽉 참을 싫어하고 겸손함을 좋아한다

주역 64괘 가운데 겸손하다는 겸괘가 있다. 겸괘는 높은 산이 낮은 땅 아래에 있는 상으로 자신을 낮추는 뜻이 있다. 謙이란 한자를 보면 말씀 言과 아우를 兼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자존만 아니라 남의 자존을 아울러 배려하고 말하다 보니 그 말이 자연 겸손해진다는 뜻도 있다. 공자는 겸괘를 풀이하면서 하늘과 땅과 귀신과 사람의 겸손에 대해 그 원리를 아울러 밝혀놓았다.하늘의 기운과 땅의 형세와 귀신의 조화와 사람의 감정은 모두 겸을 지향하고 있다는 내용인데 이들 모두가 꽉 차있는 곳에서 겸허한 곳으로의 흐름을 바라며 동참한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사람의 감정이 겸을 지향하는 양상에 대한 표현이 惡盈好謙인데 인정은 꽉 찬 사람을 미워하고 겸손한 사람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꽉 채워지길 원한다. 그것이 현세적인 재물이나 권력이든 아니면 자존감이든 대상이 무엇이든 충만하게 소유하고 싶어 한다. 차면 덜리고 비우면 다시 채워지는 자연의 섭리는 눈 감은 채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의 욕구를 추구해나가려는 경향이 있다. 정신적인 차원의 욕구를 추구한다는 신앙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구촌 자기 머리에 이고 있는 하늘만 가장 높고 다른 사람 머리 위의 하늘은 낮다고 생각하는 오만하고 빗나간 신념은 무고한 사람을 해치는 테러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늘에 대한 신앙을 팔아 하늘을 짓밟는 狂氣는 謙의 섭리에 대한 몰지각과 獨善에서 생겨난다./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5-11-17 철산 최정준

[김준혁의 역사산책] 모화적 사대주의(慕華的 事大主義)

조선이 건국되면서 내건 이념은 사대교린(事大交隣)이었다. 큰 나라를 섬기고 이웃 나라와 사귄다는 사대주의를 천명한 것은 오늘날 시각에서 보면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다. 자주 국가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건국의 주체들이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천명한 것은 진정한 사대가 아닌 정책적인 것이었다. 신라가 비록 당나라를 동원해서 삼국을 통일했지만 끝내 당나라와 전쟁을 벌이며 당나라 세력을 몰아낸 것부터 우리 역사에서는 우리가 힘이 부족할 때에는 정책적인 사대를 취해왔다. 조선 건국 주체였던 이성계와 정도전이 사대를 천명하면서도 다시 요동정벌을 추진했던 것도 마음속 깊이 중국을 사대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다.그러나 병자호란과 삼전도의 치욕 이후 조선의 집권자들과 사대부들에게는 정책적 사대주의가 사라지고 어느 순간인가 모화적 사대주의가 나타나고 있었다. 이들은 이성과 주체성을 잃고 국가의 이익보다는 사대의 명분만을 중시하는 자아 상실의 사대주의 중독증에 걸렸다. 그들은 임진왜란으로 나라를 잃을 위기의 조선을 명나라가 구해주었으니 명나라에 대한 은혜를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감은사상(感恩思想)에 너무도 깊숙이 취해 있었다. 임진왜란을 극복하기 위해 온 힘을 다 바친 의병들의 투쟁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명나라를 위해 국왕들은 창덕궁 후원 깊숙한 곳에 대보단(大報壇)을 만들어 중국 황제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사대부들도 오로지 명나라의 연호만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모화적 사대주의는 국시(國是)가 되어 국가와 백성들을 위한 자주적이고 합리적인 이야기를 하는 이들을 이단으로 몰아붙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다.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자! 과연 중국이 조선을 구했는가? 당시 참전한 명나라는 평양성 탈환에 공을 세운 것 말고 한 것이 없다. 그나마 평양성 탈환은 목숨을 건 사명당 유정과 영규 대사를 비롯한 승군들과 조선 관군의 참전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명나라 장수들은 일본군으로부터 막대한 뇌물을 받고 더 이상 일본과 전쟁을 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조선 백성들을 수탈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오죽하였으면 조선의 백성들이 일본군보다 명나라 군대의 가혹한 행위가 심하다고 조정을 원망했겠는가! 그런데도 모화적 사대주의자들은 명나라의 허물은 숨기고 그저 재조지은만 강조하면서 모화적 사대주의를 이어나갔다. 이러한 명나라에 대한 모화적 사대주의는 현대사회에 와서 사라지지 않고 미국에 대한 모화적 사대주의로 변했다. 한국전쟁으로 공산화될뻔한 대한민국을 미국이 구했기에 이들에 대한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점에 대해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극단적인 친미 모화적 사대주의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지 않는 폐단을 낳게 된다. 그로 인하여 사회의 분열을 더욱 가속화 하고, 4대 핵심기술 이전을 거부하는 총 사업비 18조원이 드는 KF-X(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를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도 세계를 이끌어 나가는 국가가 되었다. 이제 미국만의 모화적 사대주의가 아닌 국가의 이익을 위한 다양하고 실용적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나아가 분단을 고착하는 모화적 사대주의를 청산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자주적 국가정책을 추구하기 바란다./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2015-11-15 김준혁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유관무곽: 속널만 있고 덧널은 없다

공자가 아낀 제자를 꼽으라면 顔淵을 이야기한다. 계강자가 공자에게 제자들 가운데 누가 배움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안회라는 제자가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단명하였다고 하였다. 안연이 30대 초반의 나이에 죽을 당시 공자는 “하늘이 나를 망쳤다”고 통곡을 할 정도였다. 안연의 아버지인 顔路는 그의 아들이 죽자 공자에게 공자의 수레를 팔아서 자식의 외관(外棺)인 덧널(椁)을 만들어달라고 청했다. 관(棺)은 죽은 자의 시신을 넣는 속널, 곽(椁)은 관을 담는 덧널인데 관(棺)과 곽(椁)은 주역의 대과괘(大過卦)에서 착안한 장례 도구이다. 그러자 공자는 잘났든 못났든 누구든 각자 자기 자식을 말하기 마련이라며 아들 리(鯉)가 죽었을 때 이야기를 해주면서 거절하였다. 공자의 아들 리(鯉)가 죽었을 때도 관(棺)만 있고 곽(椁)은 없었는데 그것은 당시 大夫의 지위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공식적으로 大夫에게 주어진 수레를 팔아서 곽을 만들게 되면 걸어 다니게 되는데 그것은 이래저래 大夫의 예에 걸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들의 장사에 관(棺)만 쓰고 곽(椁)은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안연이 죽자 문인들도 후하게 장사지내려고 하자 공자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문인들이 후하게 장사를 지내자 공자가 “안회는 나를 아버지처럼 대했는데 나는 그를 아들처럼 대하지 못했구나!”라고 하였다. 자신의 아들은 실정에 맞는 장례를 치렀는데 안연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공자의 예(禮)에 대한 생각을 다시 읽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5-11-10 철산 최정준

[윤중강의 음악살롱] 지휘는 있어야 하나?

“국악관현악단 단원들은, 왜 지휘자를 잘 안 쳐다봐요?” “보게 되면, 오히려 틀리기 때문이야.” 관현악단의 단원이라면, 지휘로 인한 곤혹스러운 경험이 있다. 국악관현악단에 지휘자는 꼭 있어야 할까? 서양의 오케스트라는 필수적이다. 서구고전음악이 작곡의 역사라면, 한국전통음악은 연주의 역사다. 모두 창작이 존재하지만, 그의 주체와 방식이 다르다. 국악은 그간 연주자들에 의한 창작적 전통을 중시했다. 국악관현악단은 어떻게 더 생생한 연주를 통해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국악관현악단의 단원들이 주체가 되면 가능하다. 지금처럼 지휘의 ‘통제’ 아래서 음악을 만드는 방식을 지양하면 가능하다. 비유컨대, 서구의 오케스트라가 과거 전근대적 연극의 제작방식이라면, 국악관현악단은 배우가 주체가 되는 현대적 방식이라 하겠다. 연출이 있지만 지시하기보다는 유도하는 ‘공동창작’의 형태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연주에서, 단원들이 만들어낸 관현악 형태의 산조가 이를 증명한다. 지휘자의 통제를 받은 곡과는 사뭇 달랐다. 음악적 생기와 활력이 객석에 그대로 전달되었다.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누군가는 단순한 악곡만이 지휘 없이 가능하다고 반문할지 모른다. 이건 편견이다. 국악관현악단에서 파트간의 호흡이 맞는다면, 오히려 이렇게 해서 만들어내는 음악을 들으면서 청중들은 더 큰 감동을 받는다. 국악관현악을 서구 오케스트라로만 바라보는 관습적 편견에서 벗어나자. 지휘봉의 통제를 따르는 국악관현악을 비(非) 전통적이고, 전(前) 근대적으로 단정 짓진 않겠다. 국악관현악단의 기존 레퍼토리를 제대로 모두 살려내고, 더 나가 국악관현악단의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낼 사람은 누구인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지휘자에게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서양음악을 전공한 지휘자들이 영입되면 해결될까? 음악적인 정교함은 상승될지라도, 한국을 대표할 국악관현악 형태를 만들어내리라는 보장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지금 국악관현악단은 상임지휘자가 있다. 상임지휘자가 예술감독을 겸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악단의 경우, 지속해서 음악적인 성장을 이루는 모범적인 사례를 들 수 있는가? 오히려 예술감독과 지휘자가 분리된 체제에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지금 국악관현악단과 관련해서, 가장 간과하는 것은 ‘단원’이다. 국악관현악단의 중심체는 ‘단원’이다. 그들이 국악관현악단의 성장동력이다. 그들에 의해서 바로 각 악단마다 음악적인 ‘색깔’이 만들어진다. 과연 지금까지 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가 악단의 음악적인 색깔을 만들어냈을까?작금의 국악관현악단은 몇몇 지휘자들에 의한 ‘순환보직’이라고 말하면 성날까? 그간 국공립단체 지휘자들의 면면을 살피면 누구든 인정한다. 당장 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를 없애야 하고,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한국음악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당대적 상황을 인식한다면, 국악관현악단에서 지휘를 ‘제어’할 방법을 점진적으로 찾아내야 한다. 국악관현악단의 연주에서, 지휘가 존재하지 않아도 가능한 작품을 지속해서 계발해야 한다. 어렵지 않다. 서구오케스트라의 고정된 비교에서 벗어난다면, 다양한 가능성과 실행방법이 보인다. 국악관현악단의 주체는 악기의 생명력을 살려내는 연주가(단원)다./윤중강 평론가·연출가윤중강 평론가·연출가

2015-11-08 윤중강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 유공유문: 혹시나 또 무슨 말을 듣게 될까 겁난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 재여(宰予)가 낮잠을 자자 공자가 꾸짖었다. 나무에 조각을 할 때 나무가 썩어있으면 조각을 할 수 없고, 담장을 손질할 때 흙이 썩어있으면 역시 담장을 손질할 수 없다는 비유를 들었다. 낮잠이야 졸리면 잘 수도 있고 일정 시간 정해놓고 낮잠을 잤던 철학자도 있었으니 낮잠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의 언급이다. 예전엔 어떤 사람이 말을 하면 그의 말을 듣고 곧 그렇게 행할 것이라 믿었는데, 지금은 그의 말을 들으면 그의 행위를 관찰하게 되었는데 재여로 인하여 이렇게 바꾸었다는 것이다. 학문에 실제 힘쓰지 않고 말만 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재여를 꾸짖은 대목이다.반면에 자로(子路)는 어떤 일을 하겠다고 대답하면 그 말을 묵히지 않았다(無宿諾)고 하였다. 선생으로부터 좋은 말을 듣고 그것을 아직 실천하지 못한 상태에서 다시 또 새로운 좋은 말을 듣게 될까봐 저어했다는 것이다(惟恐有聞). 재여가 게으른 성격인 반면 자로는 급한 성격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둘의 차이는 단지 성격의 문제로 돌릴 것만은 아니고 말과 행위라는 言行의 상관성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좋은 말은 하기 쉽지만 좋은 행위는 실천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늘 실천은 말을 따라가기 쉽지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할 때는 그 말에 따르는 행위를 염두하고 말하며(言顧行), 행위를 할 때는 자기가 한 말과 부합하는 행위인지도 점검해보아야(行顧言) 언행간의 괴리가 크게 생기지 않아 심신이 안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였다. 깊은 사려 없이 말만 해놓고 지키지 못하는 게으른 자신을 돌아보며 자로의 기상을 생각해본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문서숙 대표)

2015-11-03 철산 최정준

[박인하의 만화세상] 우리를 만든 건 첫사랑의 힘

갑자기 추워졌다. 새벽에 일어나면 서리가 내린다. 채 걷지 못했던 고추는 붉은 열매만을 남기고 말라붙었다. 추운 겨울을 맞이하려는 마음으로 아꼈던 다니구치 지로의 ‘겨울동물원’을 보았다. 이 겨울에 어울리는 만화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 돗토리에서 교토로 이주해 직장을 다니던 주인공 하마구치 미쓰오는 의도치않게 사장 딸의 사랑의 도피를 돕게 된다. 도쿄에서 신문배달하며 야간 디자인학교에 다니는 친구 다무라에게 난처한 상황을 털어놓았더니, 상경해 인기 만화 곤도 선생의 화실에서 일하기를 권한다. 도쿄에 온 첫날부터 곤도 선생의 마감에 동참하게 된 하마구치. 그렇게 만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다니구치 지로가 등장하는 자전만화는 아니지만, 자전만화로 읽힌다. 다니구치 지로도 돗토리의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교토의 섬유회사에서 근무하다, 도쿄로 상경해 잡지 ‘만화소년’ 등에 만화를 연재한 이시카와 큐타(石川球太)의 어시스턴트로 만화계에 발을 딛는다.‘겨울동물원’은 중의적 제목인데, 동물원은 주인공 하마구치가 즐겨 찾으며 동물을 그리던 곳이고, 교토 섬유회사 사장의 딸이 유부남 연인을 따라 도망간 곳이며, 마지막으로 아픈 연인과 데이트를 하던 곳이기도 하다. 사랑의 사정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동물을 즐겨 그렸던 건 분명하다. ‘겨울동물원’의 주인공 하마구치와 작가 다니구치의 삶의 여정의 큰 줄기는 동일하다. 디테일도 대부분 경험에서 나왔을 것으로 보인다. 60년대 후반 새로운 만화를 내세운 잡지 ‘가로’와 ‘COM’이 등장하고, 쯔게 요시하루의 ‘나사식(ねじ式)’을 보며 충격을 받은 만화가들의 분위기와 매주 정신없이 마감을 하는 주간소년잡지의 풍경도 생생하다. 일본의 학생운동이 가장 격렬하던 시대의 풍경도 얼핏 보여준다. 가부키초 뒷골목 지하의 스낵바에 모인 이들은 혁명의 노래를 부른다. “찢어라! 부숴라! 혁명전사!” 힘이 넘치는 60년대 후반 일본만화의 풍경을 만나는 것도 흥미롭지만,‘겨울동물원’의 진짜 재미는 첫 사랑의 풋풋한 이야기다. 하마구치는 지인의 부탁으로 도쿄에 요양온 마리와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하게 된다. 마리와 데이트를 통해 그동안 구상만 하던 만화를 완성하게 된다. 첫사랑의 떨리는 감성으로 완성한 만화는 데뷔작이 된다. 요양 온 소녀와 데이트, 그리고 건강이 안좋아 고향으로 내려가는 소녀와 그 소녀를 잊지 못하는 소년.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다니구치 지로는 시대와 공간과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넣어 생생하게 만들었다. 특히 갑자기 고향으로 떠난 그녀를 잊지 못하고, 원고를 보여주고 싶어 몰입하는 하마구치의 모습 위로 깔리는 1인칭 내레이션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내가 하마구치가 된 듯 몰입감이 뛰어나다. 마침내 원고를 완성하고 그녀의 언니에게 부탁해 원고를 그녀에게 보낸다.“나는 그녀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그녀는 내게 가르쳐 주었다. 만화를 그리는 즐거움과 이야기를 만드는 기쁨을.” / 소년은 기차를 타고 그녀를 만나러 간다. 병원을 찾아 야윈, 하지만 여전히 예쁜 소녀를 만난다. 소년은 마음을 쉬 전하지 못한다. 소년은 소녀를 끌어안고 말한다. / “좋아해!”‘겨울동물원’의 띠지에 ‘거장 다니구치 지로를 만든 것은 사랑이었다!’고 써있다. 어디 다니구지 지로 뿐이랴.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럴 것이다. 이 겨울에 그 사랑을 추억해 보자./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창작전공 교수

2015-11-01 박인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