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칼럼

 

[조성미의 나무이야기]그윽한 향과 아름다운 수형으로 사랑받는 향나무

끝이 보이지 않던 추위도 눈이 비로 바뀌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된다는 우수가 지나면서 불어오는 바람에 제법 따뜻함이 배어있다. 남녘에서는 올해 첫 나무심기행사를 시작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봄기운을 맞이하러 가까운 산사에라도 찾아가면 코끝에 스미는 그윽한 향을 느낄 수 있다. 불자들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부처님께 간절히 빌며 정성껏 피우는 향을 만드는데 쓰여 온 향나무는 소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와 함께 가장 오랫동안 우리 민족과 함께 해온 우리의 나무라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은 향나무를 이 땅의 삶을 하늘에 까지 연결시켜주는 귀중한 나무라고 생각해 무척 소중히 여겨왔다. 궁궐이나 절, 정원 등에 으레 심었고 물을 맑게 한다고 믿어 우물가에 한그루씩은 심었다. 제를 올리는 곳이나 무덤을 지키는 나무로 또는 무덤가에 피워놓는 향불의 재료로 쓰기 위해서 많이 심어왔다.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는 불교의식으로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해안에 향나무를 묻어두는 매향(埋香)을 했다. 왜구의 약탈과 탐관오리의 학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은 미륵의 도래를 애타게 기다렸는데 그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향나무를 묻어 기원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관원이 임금을 알현할 때 손에 쥐던 명패인 홀(笏)이 있었는데, 5품부터 9품까지의 벼슬아치들은 향나무로 만든 홀을 사용했기에 향나무를 홀목(笏木)이라고도 부른다. 향나무는 목재 자체에서 좋은 향(香)이 나 붙여진 이름인데, 잎과 수액에서도 독특한 향기가 난다. 향나무는 측백나무과에 속하는 늘푸른 바늘잎 큰키나무로 높이 20미터, 지름 2미터 이상도 크는 나무이다. 우리나라 북쪽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해발 800미터 이하에서 자라고 있으며 중국, 일본, 몽골 등에 분포한다. 울릉도가 향나무의 국내 최대 자생지이며 내륙에서는 자생지가 매우 드물고 일본 품종인 가이즈카 향나무를 조경수로 많이 심었다. 어릴 때는 생장이 느린 편으로 그늘에서도 잘 자라나 좀 크면 햇빛이 잘 드는 양지에서 잘 자란다. 건조한 곳에서도 생장이 괜찮으며, 땅이 깊은 사질양토를 좋아하나 어디서든 잘 자라는 편이다. 향나무의 수피는 어릴 때 적갈색이며 성장하면서 회갈색으로 바뀌는데 세로로 좁고 길게 갈라진다. 잎은 어린 가지에는 바늘잎이 마주 나거나 3개의 잎이 돌려나고, 7~8년생부터 비늘같이 부드러운 잎이 달린다. 4월에 피는 꽃은 황색의 긴 타원형인 수꽃과 둥글고 긴 모양의 암꽃이 지난해 가지 끝에 달린다. 열매는 구과로 검은색이며 모양은 구형 또는 편구형으로 이듬해 가을에 익는다. 향나무 씨앗은 발아억제물질이 있어 좀처럼 발아가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익은 열매를 새가 따먹으면 위액에 의해 발아에 적합한 상태로 변해 싹이 잘 나게 되고 멀리까지 자손을 퍼트릴 수 있어 향나무로서는 일거양득이라 할 수 있다. 향나무는 무늬와 색이 아름답고 조직이 치밀하며 결이 곧고 윤이 나 목재로서의 가치도 아주 높다. 여기에 향까지 좋아 고급 가구재로 이용했고, 조각재는 물론 관이나 불상을 만드는데도 사용했다. 신라시대 불상으로 알려진 해인사의 비로자나불도 향나무로 만들었다. 향나무의 추출물은 여러 연구에서 비만과 당뇨, 암의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목질부 추출물은 피부주름의 개선효과와 항산화, 항노화 개선효과가 우수해 화장품 재료로도 사용되고 있다./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조성미 산림조합중앙회 서울인천경기 본부장

2018-02-25 조성미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변동불거: 변하고 움직여 한곳에 있지 않는다

그렇게도 추운 날씨가 계속되더니 어느덧 절기상 봄비가 내리다는 우수가 지나간다. 봄은 매년 반복되는 세월의 흐름이라지만 한 해 한 해 맞이하는 느낌이 다르다. 세월도 흐르면서 풍경이 달라지지만 바라보는 사람에게도 많은 변화가 찾아오기에 매 해가 달라진다. 세상이 변한다는 진리는 당장 몸을 거울에 비추어보면 실감한다. 이런 변화가 지속되다가 어느 때가 되면 주어진 생을 마쳐야한다는 것이 분명한 진리임에도 하루하루 혹은 분주하게 혹은 애써 외면한 채 살아들 간다. 지구 자체가 한 곳에 가만히 있지 않고 우주공간을 움직여 가는데 우리가 어느 한 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규모가 크건 작건 지금 사는 집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듯 우리의 일상은 분주하게 이 곳 저 곳 옮겨 다닌다. 그러다 보니 한 곳에 가만히 있을 수도 없다. 이처럼 시간의 흐름도 계속되고 공간상 이동도 끊임이 없는 생명활동의 이치를 주역에서는 변동불거라고 하였다. 지금 숨 쉬고 살아있다고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도 아니고, 이승에 살다가 언젠가는 저승으로 옮겨가야 하는 변동불거의 숙명을 모든 생명은 타고났다. 얼마 전 기부의 목적에 관한 생각을 말했던 빌게이츠는 자신이 모은 재물과 명예도 변동불거임을 진정으로 깨달은 것 같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2-20 철산 최정준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관기회통: 모여서 소통함을 본다

노자는 반복이야말로 우주운동의 도리라고 하였다. 반복은 극에 다다르면 돌이켜 움직인다는 의미와 본래자리로 돌아온다는 의미를 겸하고 있다. 반복되는 원리에 의해 또 한해의 시작인 무술년의 설이 돌아온다. 설이 되면 비교적 소원했던 사람들도 한 자리에 모여든다. 식구가 많으면 많은 사람이 모이고 식구가 없으면 혼자 지내기도 한다. 다들 많이 모이는데 자신만 혼자면 상대적으로 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모인다는 것은 상호 이해와 소통과 위로와 협력을 도출할 때 진정한 의미가 있다. 그렇지 않고 수적으로만 많고 오히려 오해와 불통과 긴장과 싸움을 유발한다면 그 모임은 없는 게 낫다.이왕 모였으면 소통해야만 의미가 있기에 주역에서는 회통(會通)에 대해 잘 살펴보라고 하였다. 세상의 생물은 공간상 하늘에서 날아다니며 모일 수도 있고, 땅위에서 달리면서 모일 수도 있고, 물속에서 헤엄치며 모일 수도 있다. 시간이 밤에서 낮으로 가든가 낮에서 밤으로 가든가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시공간의 큰 틀에서 보면 이럴 뿐이니 이를 三才와 陰陽의 이론으로 체계화한 것이 주역이다. 사람의 모임과 소통은 이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모일 때 모일 곳에서 모일 사람과 모이느냐의 여부가 소통을 좌우한다. 무술년 새해는 어느 정도 소통을 기대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으면 좋겠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2-13 철산 최정준

[시인의 연인]뿌리와 뿔

뿌리에서 멀어지면 단단한 뿔이 된다애초에 하나였으나 이제는 둘이다뼈 없이살 뚫고나와뼈가 되어 박힌다뿌리에 가까워져도 단단한 뿔이 된다안으로 뻗어가며 마음을 들이박는다뿌리는뿔처럼 뻗었으나뒤늦게 찔린 거다김남규(1982~)사물의 높은 곳에 달린 뿔은 자신의 몸을 뚫고 나와야 비로소 뿔이 된다. 뿔이 된다는 것은 자신을 먼저 찌른 다음 세계를 향해 그것을 들 수 있다. 뿌리에서 나온 뿔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체가 뿌리로서 존재하지만 뿔이면서 뿌리가 아니다. 헤르만헤세의 '데미안' 에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Abraxas) 다." 이 뿔은 근원적으로 인간 욕망의 뿌리를 형상화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실재하는 화신이 아닐까. 또한 "뿌리에서 멀어지면 단단한 뿔이" 뿌리를 닮아 있는 것은 이 둘이 '애초에 하나'였음을 증명해 주기도 한다. '뼈 없이 살 뚫고나온 뼈'가 욕망에의 "단단한 뿔이" 되기 위해서 안으로 깊숙이 뿌리내리면서 자기를 파괴해야 세계 더 높게 뻗어나갈 수 있는 것 같이./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2-11 권성훈

[손경년의 늘찬문화]예술과 과학은 한통속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의 이인편(里仁篇)에서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라 해 참된 이치를 깨달았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한다. '앎'에 대한 끈질긴 인간의 탐구심의 근간은 무엇일까? 상상력과 창의력(creativity)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보통 창의력이란 새롭고 혁신적인 생각이나 의견을 생각해 내는 능력을 뜻한다. 고생물학자인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은 "탐구와 정복의 정신은 진화의 최고 본질이다. 그것은 자신의 지성과 생명을 예술이나 과학에 헌신한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 된다"고 말한다. 과학의 발견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종종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서 외친 유레카(Eureka: 나는 알았다)를 인용한다. 우리는 보통 과학자들이란 기존지식을 시험하고자 하는 욕구와 새로운 영역의 탐험 그리고 새로운 질서를 발견하려는 지적탐구를 보여 주는 사람들이며, 우주의 질서나 인체의 구조 등 자연법칙을 찾아내고자 노력한 사람들이라고 이해한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예술가들도 과학자들과 비슷하다. 아리스토텔레스나 아인슈타인이 관심을 가졌던 광학(光學)과 시각화(視覺化)에 대해서 벨라스케즈, 베르메르, 터너 등과 같은 화가들 역시 빛과 색깔, 이미지, 형태 등을 분석하고자 했다. 화가이자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는 당시 많은 화가나 조각가가 해부학을 통한 표현방식에 관심이 있었을 때, 그는 이미 이를 섭렵하고 한 발 더 나아가 사람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자세와 각도를 자신의 작품에 도입했다. 쇤베르크는 바흐에서 브람스에 이르기까지 당연하게 여겼던 전통적인 협화음과 불협화음의 개념을 포기하면서, 하나의 작품에 반음계의 12음을 모두 사용해 음조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을 시도했다.우리는 예술과 과학의 연결점인 기술발전이 새로운 예술형태를 이끌어내고 있음을 익히 알고 있다. 사진기의 발명은 사진예술장르를 생겨나게 했고, 뤼미에르 형제가 활동사진 카메라를 발명함에 따라 영화, 애니메이션이 새로운 예술로서 자리를 잡게 됐다. 또한 레이저기술은 CD에 소리를 저장하여 음악을 반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게 하는 등 과학기술의 발전은 예술형식 사이의 관계, 즉 화가의 손 및 눈에 대한 관계, 그리고 음악가의 귀에 대한 관계를 변화시키는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물론 시대마다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 인간과 기계가 동시에 진화할 수 있을 것이라 여기며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예술가가 있기도 하지만, 또 예술과 과학의 기술적 결합이 창작자 개인의 의도와 예술적 통찰, 세계관, 사회적 상황 사이에 복잡한 상호관계 속에서 해석되고, 예술적 완성이 기술적 완성과 반드시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어 예술에 과학기술을 도입하는 것을 회피하는 예술가도 있다. 지금 강원도 평창에서는 동계올림픽이 한창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개막식을 통해 개최국의 문화수준을 가늠하기도 한다. '과거와 미래를 탐험하여 평화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서는 과정'을 콘셉트로 하여 1218개의 드론 오륜기, 첨단 고출력 레이저로 구성된 무대, 달항아리 형상의 성화대 등 첨단과학과 예술이 서로 만난 개막식 행사를 보면서, 역시 미래의 예술과 과학은 끊임없는 변화와 새로운 아이디어, 형상을 탄생시키는 상상력과 창의력에 빚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2018-02-11 손경년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침윤지참: 점점 스며드는 참소

자장이 밝음에 대해서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점점 스며드는 물과 같은 참소(浸潤之讒)가 통하지 않고, 직접 피부에 와닿는 하소연(膚受之소)이 통하지 않을 정도면 원대한 안목을 지닌 사람이라고 하였다. 참소(讒訴)를 예로 들어 말한 것이지만 그에 국한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신의 이목이 끌리는 방향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위에서 자신의 눈과 귀를 가리고 사실을 왜곡하여 전달해도 그 사실을 모른다.공자는 사람의 인식과 관련하여 은미한 것과 드러난 것 두 가지로 대별하여 비유하고 있다. 사안의 실상을 모른 채 은미하게 점점 진행되는 참소는 받아들이기 쉽다. 사안이 드러나서 훤히 보이고 피부에 느껴질 정도면 그에 관한 참소는 덮어놓고 받아들이기 쉽다. 어떤 일이든 자신의 중심이 서있는 상태에서 제대로 사안을 파악한 뒤 외부의 의견에 호응하라는 충고이다. 책임과 권한이 막중할수록 사안에 관한 결정의 파급력은 크다. 그러니 어떤 정보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강도에 관계없이 그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하는 밝은 지도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2-06 철산 최정준

[주종익의 스타트업]경쟁과 가치

인생을 살면서 세금과 경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많은 경영학자들이 경쟁에 이기는 방법을 연구하고 경쟁전략을 대학에서 가르친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는 경쟁전략의 최고 권위자이다.전략경영학(Strategic management)이 주류를 이루던 197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경쟁전략은 전략경영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경쟁우위에 있던 많은 대 기업들이 몰락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경쟁전략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벌어졌다.GE, GM, KODAK, SONY, NOKIA 등등의 몰락내지는 경영의 어려움을 겪는 회사들이 나타나고 APPLE, GOOGLE, AMAZON, FACEBOOK, NETFLIX와 같은 회사들이 등장하면서 그 원인을 분석하는 연구들이 활발히 시작되었다. 무엇이 1등을 무너트리는 것일까?하버드대의 크리스텐슨 교수는 혁신기업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에서 이를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과 존속적 혁신(Sustainable Innovation)으로 설명하려 했다.안이하게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다른 기업보다 조금만 더 잘하면 된다는 느슨한 혁신에만 몰두한 기업은 기술혁신을 기반으로 한 파괴적인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 때문에 몰락한다는 것이다.PayPal 사단의 대부로 꼽히는 피터 틸은 'Zero to one'이란 책에서 아예 경쟁하지 마라 그냥 독점하라(Monopoly) 즉 100% 다 먹는 시장에서 사업할 것을 주장했다. Zero 는 경쟁이 없는 것을 뜻하고 One은 나 혼자 독식한다는 뜻이다.최근에 블루오션 이론으로 유명한 한국 출신의 김위찬 교수는 블루오션 시프트에서 경쟁하지 말고 전략의 본질인 가치창조에 몰두할 것을 주장했다.경쟁을 좇지 말고 가치를 좇아라. 대단히 어려운 말이다. 개념 자체도 어렵지만 단지 몇 마디 말로 설명한다는 것은 더 어렵다. 그래도 거칠게 그리고 쉽게 말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마라톤경기를 생각하자. 마라톤 경기에 출전한 선수들이 노리는 목표는 딱 두 가지다. 하나는 1등 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마라톤 신기록을 수립하는 것이다. 이때 1등을 목표로 하는 것은 경쟁이고 마라톤 신기록을 목표로 하는 것은 가치에 목표를 두는 것이다.1등은 기록에 관계없이 그 당시 경쟁자들 중에 가장 잘 뛰면 된다. 그래서 기록은 형편 없어도 1등은 할 수 있다. 경쟁자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요령 있게 달리면 1등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위험하기 그지없다. 가치 즉 기록을 목표로 연습을 하고 실력을 길러온 사람이 나타나는 순간 그 사람에게 1등을 빼앗기는 것은 당연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남보다 조금만 더 잘해서 오랫동안 1등을 유지한 기업은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기술, 새로운 경쟁 전략으로 파괴적 혁신에 도전한 기업이 나타나는 순간 대 기업도 몰락하게 된다.사느냐 죽느냐가 최대 관심사인 스타트업에게는 1등만 해도 감지덕지할 일인데 무슨 경쟁보다 가치에 도전하라는 말인가?우리에게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 될는지 모르지만 내일의 큰 꿈을 실현하고 싶은 파운더(Founder)는 왜 경쟁하는지 가치 창조가 무엇인지 그것이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나에게 부여된 스타트업의 미션이 무엇인지 정도는 생각해보는 사람이 인류에 공헌한다는 점을 꼭 유념하면 좋겠다./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외대 외래교수주종익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대표멘토·외대 외래교수

2018-02-04 주종익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진덕수업: 덕을 증진시키고 사업을 닦아나간다

德과 業은 인간으로 태어나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숙명적인 것으로 내적 심리와 외적 사업이다. 德이 성분(性分)이라면 業은 직분(職分)이다. 심성(心性)은 타고나는 것이지만 후천적인 수양에 의한 증진이 가능하고, 사업이나 직업도 어느 정도 자기와 맞는 천직이 있지만 후천적인 수련에 의한 정립이 가능하다. 내적인 심성이나 외적인 사업은 윤리와 경제의 문제이기도 하다. 심성이 증진되지 않으면 사회윤리가 제대로 작동되지 못하고 사업이 정립되지 않으면 국민의 생업이 곤란해진다. 맹자는 이런 문제를 항산(恒産)과 항심(恒心)으로 이야기하였다. 항산이란 생계를 위협하지 않을 정도의 경제력을 뜻하고, 항심은 사회윤리를 무너뜨리지 않을 정도의 윤리관을 뜻한다. 진덕이 항심의 문제라면 수업은 항산의 문제이다. 이 중에 현실적으로 더 기본적인 문제는 항산의 문제이다. 항산이 갖추어지지 못하면 항심은 정립되기 힘들다. 항심이 정립되지 못하면 사회는 점점 퇴폐해진다. 그래서 德과 業은 상호영향을 주며 병진한다. 덕을 증진시킬 정도의 사업이 모든 이들에게 갖추어지면 이를 大業이라 하는데, 진덕과 수업은 大業을 성취하기 위한 전제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1-30 철산 최정준

[시인의 연인]불투명한 영원

손바닥을 종이에 대고 펜으로 손의 윤곽을 따라 그린다/손목 위쪽은 닫히지 않는다/바닥에 찍힌 십자가 그림자/우리는 수수께끼 앞에 서 있다해변으로 밀려오는 손목들/불붙은 커튼/하늘은 주먹으로 두드려 맞은 것처럼 울퉁불퉁하고/나무들은 게으르게 흔들린다//흔들리지 않는 슬픔물속에 손을 넣으려고 하면//손을 잡기 위해 떠오르는 손이 하나 보인다/시계에 물이 찼다//기도가 끝났다 신철규(1980~)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대상은 말해지는 지시 기호 사이의 연관성을 통해 그 의미가 확산된다. 실제 하지 않거나,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영원의 언어'는 그것을 지시하는 상징어로 편재되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손바닥을 종이에 대고 펜으로 손의 윤곽을 따라" 그린다고 할 때 손바닥은 영원이 기거하는 대상의 공간이며, 종이와 펜은 그것을 지시하는 기호로서 '손목 위쪽' 어딘가에 있을, '영원의 윤곽'을 감각적으로 투사시킨다. '바닥에 찍힌 십자가 그림자' '해변으로 밀려오는 손목들' '불붙은 커튼' 등이 상징하는 것 역시 가시성으로 영원이 연원하는 불가시성을 인식하는 역할을 한다. '흔들리는 나무'와 '물속에 손' 그리고 '시계에 물'과 '기도' 등은 대상 자체를 형상하는 것 보다 대용적인 것으로써 형이상학적인 '비대상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방식이 아닐 수 없다. /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1-28 권성훈

[고재경의 노래로 본 사자성어 세상]무신불립(無信不立)

무신불립(無信不立)은 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는 뜻이다. 나라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없으면 국가가 제대로 설 수 없다. 또한 남녀 연인 사이의 수평적 관계에서도 상대방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 가치라 할 수 있다. 박정현이 부른 '믿어요'(작사:강은경 작곡:박정현) 노랫말에는 무신불립의 예가 선명히 드러난다. 곡명 '믿어요' 가사의 화자와 그 상대방은 과거 연인 관계였다. 현재 두 사람은 헤어진 상태이다. 화자는 그리운 마음으로 연인과 재결합 의지를 보인다. 이런 와중에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식상할 수도 있는 '그 흔한 사랑'을 잊지 못하고 '왜 바보처럼' 사는 지 의아해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떠난 님의 귀환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즉 사랑에 대한 절대 믿음과 떠나버린 님에 대한 무한 신뢰는 거의 운명적 신념에 가깝다. 이는 화자로 하여금 '돌아올 그댈' 위해 자신의 마음 문을 활짝 열게 한다: '믿어요 난 돌아올 그댈/믿어요 난 사랑을'. 훌쩍 떠난 님의 회귀 여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구 저 반대편 끝에서라도 '언젠가는 꼭 반드시 만나죠'라는 굳건한 믿음은 화자만의 존재 이유가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화자는 회자정리(會者定離/만남엔 헤어짐이 따름) 거자필반(去者必返/헤어짐엔 다시 만남이 뒤따름)의 윤회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듯싶다. 섭식하려는 음식을 믿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진실을 믿으면 현실이 바뀌고 사랑의 맛과 멋과 흥에 취할 수 있다. 화자에게는 '꿈꾸는 사람에게만 비로소 꿈은 이뤄진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다. 이러한 전폭적인 신뢰가 있기에 제대로 설 수 있고 사랑을 성취할 수 있다. 소나기가 부른 '믿어요'(작사:신익수 작곡:김영재) 노랫말에도 무신불립의 전형적인 예가 여실히 나타난다. 곡명 '믿어요' 가사 도입부에 나오는 '그대여 내 손을 잡아요' 그리고 '날 믿어요'는 연인에 대한 전폭적인 사랑의 맹세이다. 누군가와 함께 손을 잡는다는 것은 동행을 뜻한다. 지향하는 목표가 동일하고 오랫동안 길을 같이 걷는 것이다. 이러한 따뜻한 동행 서약에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사랑의 출발부터 삐걱거릴 수 있다. 믿음이 무너지면 펑크난 자동차 바퀴처럼 연인 간 축적된 애정은 붕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서로 믿음을 쌓아 가면 마음속에 있는 '작은 꿈'이 커져간다. 더 나아가 험난한 세상살이에 다친 '아픈 상처 모두가' 아물 수 있다. 그래서 화자는 확신에 찬 어조로 '난 믿어요/우리 함께라면/사랑의 빛이 되어 밝혀줄게요'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의 공든 탑은 차곡 차곡 쌓아 올린 믿음의 주춧돌로 인해 완성된다. 연인 사이에 신뢰를 토대로 견고하게 구축한 '하나의 사랑' 금자탑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따라서 믿음에 기초한 사랑하는 '그대만 있어준다면/그 어떤 시련이 와도/'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 화자는 이와 같은 서약을 자신의 연인에게 달콤하게 속삭인다. 삶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미덕은 신뢰이다. 누구든지 믿음이 깨지면 상호 관계에 금이 가고 제대로 일어설 수 없다. 예나 지금이나 무신불립은 변하지 않는 금언이자 진리이다./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고재경 배화여대 명예교수

2018-01-28 고재경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근불상득: 가까운데 서로 얻지 못함

우리는 시간과 공간에 대해 생각할 때 멀고 가까움의 차이를 느끼고 이야기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도 멀고 가까움에 대해 표현을 하곤 한다. 더 나아가 사람이 아닌 사물의 영역에도 사용한다. 원근으로 사람의 관계를 따져보면 가까운 사이도 있고 소원한 사이도 있고 전혀 모르는 사이도 있다. 사람 사이의 원근은 선천적으로 정해진 사이도 있고 후천적으로 정해진 사이도 있다. 고전적 인륜관계의 틀로 말하자면 가까운 사이 중 선천적으로 가까운 사이의 대표적인 것이 부모와 자식이나 형제와 같은 가족이다. 후천적으로 가까워진 사이 중 대표적인 것이 부부이고 친구이고 사제이다. 그런데 주역에서는 사람끼리 가까워졌는데 서로 덕이 되지 못하면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덕이 된다는 것은 서로 마음을 통하고 좋은 결과를 맺는 관계를 말한다. 현실에서는 가까이 하고도 결국에는 오히려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보다 더 멀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얽힌 사정이 있을 것이다. 주역에서는 원근과 관련한 인간관계의 길흉을 괘효(卦爻)로 이야기해준다. 그 가운데 가장 좋지 않은 경우가 가까이 있는데도 서로 덕이 되지 못하는 효(爻)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1-23 철산 최정준

[시인의 연인]미루나무

나는 오늘처럼 서서 이 겨울을 다 보았다수많은 눈이 저 호수 속으로 몸을 던지고 산짐승들은 밤낮으로 들판을 찾았다달빛이 산줄기를 뒤덮기도 했지만 온기는 전혀 없었다바람은 수시로 내게 거친 말을 건넸으나 나는 이 겨울을 바라볼 뿐이었다졸음을 몰고 오는 햇살이 발아래를 적신다 겨울이 흩어지고 있다나는 오늘처럼 서서 이 겨울을 그대로 보낼 것이다무슨 말을 하겠는가홍용희(1966~)오래된 것일수록 새 것이 모방하지 못하는 지혜가 담겨 있다. 세월을 견뎌낸 고목의 울퉁불퉁한 안쪽 겹겹의 결들은 사물의 이치를 배반하지 않고 그대로 감득한 기록이 아닐까. 흐르는 풍경을 떠나지 않는 지혜의 숲에 '오늘처럼 서서' 있는 '미루나무'는 무엇을 보았는가. '수많은 눈이 저 호수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과, '산짐승들은 밤낮으로 들판을' 찾는 것과, '달빛이 산줄기를 뒤덮기도' 하며 '졸음을 몰고 오는 햇살이 발아래를' 적시는 겨울을 미루나무 한 그루가 온 몸으로 적고 있다. 한 치 앞도 벗어날 수 없는 속박에서 결박당하지 않기 위해 '오늘처럼 서서 이 겨울을 그대로 보낼 것'이라는 담대한 사색에 있다면 우리는 '무슨 말을 하겠는가' 바라볼 뿐./권성훈 (문학평론가·경기대 교수)

2018-01-21 권성훈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지지지지: 이를 곳을 알고 그곳에 이르다

미래와 관련해 사람들이 하는 고민을 크게 둘로 나누어보면 예상과 실행에 관계되어있다. 예상은 향후 내가 하는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 하며 생각해보는 일이다. 마라톤 달리기로 말하면 중간지점이나 반환점을 예상해보는 것인데 그것에 대해서 정확히 아는 것이 지지(知至)이다. 지도를 펼쳐놓고 예상 시간도 재보면서 도착할 상상을 해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중간지점이나 반환점의 구체적 위치와 자기 능력으로 달렸을 때 도달할 예상시간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 과정이 지지(知至)이다. 그런데 정확히 알고 있다고 해도 달려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몸소 실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체력도 기르고 예행연습도 해본다. 그 결과 그곳에 잘 이르게 되는데 이것이 지지(至之)에 해당한다. 이 정도 되면 조짐을 알고 조짐에 참여할 수 있는(可與幾) 사람이라고 보았다. 세상이나 인생의 흐름이 이와 비슷한데도 현실은 일찍부터 조짐을 알고 참여하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꼭 거창한 인생전반이 아니더라도 하나의 일을 예정하고 실행해보는 것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1-16 철산 최정준

[고영직의 여시아독(如是我讀)]'손으로 생각한다'는 것

"아이들의 꿈에는 / 도무지 땀 흘리는 게 없다." 공고에서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던 시인 최기종이 '장래희망'이라는 작품에서 쓴 표현이다. 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농부가 되고 어부가 되고 화부가 되는 꿈 / 석공이 되고 목수가 되고 잡역부가 되는 꿈" 따위는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기술수업이 퇴출되고, 부모들이 '펜대' 굴리는 직업을 선호하며, 육체노동을 경멸하는 문화가 견고히 형성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특정한 기술을 습득하면 그것으로 아이들의 삶이 결정된다고 믿는 어른 세대의 불안감이 작용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손으로, 생각하기'의 저자인 매튜 B. 크로포드는 육체노동을 예찬하며 자립적인 기능인으로서의 삶을 적극 권장한다. 무엇보다 저자의 이력이 이채롭다. 시카고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워싱턴에 있는 싱크탱크 책임자로 일했던 저자가 어느 날 모터사이클 정비사로 변신했던 것이다. 화이트칼라였던 저자가 자발적으로 블루칼라 노동자가 된 셈이랄까. '손으로, 생각하기'는 '손으로 생각한다'는 것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무엇이 좋은 노동인지에 대한 성찰을 기록한 책이다. 인간의 직관적인 판단조차 알고리즘으로 대체하는 것을 당연시하며 공포 마케팅을 하고 있는 지능공학 시대에 대한 어느 '반골' 철학자의 사유를 보여주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크로포드는 우리가 손을 쓰지 않게 되면서 소비사회에 의존하는 인간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표준화된 시험 문제를 잘 풀고 잡다한 정보들은 알고 있지만 정작 아무것도 할 줄 모르고,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마켓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할 여지만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터사이클 정비사로서 겪은 육체노동의 경험과 노동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통해 무엇인가를 '할 줄 아는' 개인의 감각적 지식이 갖는 힘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육체노동을 통해 토착적이고 실천적인 암묵지를 갖게 되고, 자기 물건의 주인이 되려는 열망을 통해 탐구정신과 연계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암묵지란 그리스적 의미에서 토착적이고 실천적인 지혜를 뜻하는 메티스(metis)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실제 사물과의 대면을 통해 생겨난다. 왜 손을 사용하는 노동이 중요한가. 크로포드는 "우리의 세계를 책임지려면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의 출처를 더 확실히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물건의 구조를 숨기며 '계획적인 진부화'를 의도적으로 꾀하는 최근의 엔지니어링 문화와 소비사회 문화에서는 물건을 직접 만들고 수리하는 과정에서 터득되는 행위주체성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감각적 이해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헨리 포드가 1917년 처음 어셈블리 라인을 도입했고, 1917년 행동과 생각을 노동 현장에서 분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스미스-휴즈법이 적용됨에 따라 오늘날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가 분리되었다고 말하는 저자의 설명은 설득력이 있다. '손으로, 생각하기'는 '눈'으로 터득한 지식과 노동이 아니라 '손'으로 터득한 지식과 노동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책이다. '구경꾼의 지각과 정비사의 지각이 다르다'는 저자의 주장은 사실에 대한 지식보다 갈수록 방법에 대한 지식이 더 중요해지는 시절에 손과 몸을 쓰며 사는 삶이 왜 중요하고 행복한지 환기하는 힘이 있다. 공허한 미래주의를 운운하는 대신에 실과(實科) 수업이 학교 현장에서 부활되어야 하고, 육체노동을 바라보는 우리 안의 관점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하며, 먹고사는 데 쓰잘데기없는 일을 하는 것을 권장하는 생활문화운동이 필요하다. 자유라는 말이 소비시장에서 물건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로 제한되는 사회에서의 노동은 좋은 노동이 아니기 때문이다./고영직 문학평론가고영직 문학평론가

2018-01-14 고영직

[사자성어로 읽는 고전]수다토류: 수압이 세면 둑이 터진다

동양의 고전을 들여다보면 자연 현상에 빗대어 인생의 지혜를 이야기한 내용이 많다. 서대승이란 이가 편집했다고 전해지는 명리학 서적인 연해자평에 보면 수화목금토라는 오행이 상생상극으로 상호작용하는 양상을 자연현상에 빗대어 말하였다. 그 중에 둑은 흐르는 물을 막을 수 있지만(土能克水) 물의 흐름이 거세면 거꾸로 둑이 무너진다(水多土流)는 표현이 있다. 기본적으로 흙더미가 뭉친 둑은 흐르는 물을 막는 능력과 기능을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홍수가 범람하는 시절에는 오히려 댐의 문을 열어둔다. 이는 댐이 물을 막는 능력과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 아니다. 수압의 정도가 지나칠 때는 오히려 물길을 터주어야 댐도 무너지지 않고 물도 자기 길로 흘러서 빠져나간다. 고전에서 물의 흐름은 도도하게 흐르는 시대적 흐름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의 시대흐름은 제대로 읽고 대처하려하면 이미 늦을 정도로 너무 빠르다. 빠르긴 해도 그 근저에서 작동하는 것은 디지털이다. 국가의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입장에서 보면 국민들의 수요와 지향이 바로 물의 흐름이다. 이 물의 흐름이 거센데 억지로 막으려하면 오히려 둑이 무너진다. 도도한 흐름이 거셀 때는 막으려고만 하지 말고 길을 내서 잘 터주어야 한다. 옛날 우임금의 치수사업도 이런 원리를 깨달았기에 성공적이었다고 전해진다. 어떤 정책이든 먼저 길을 터주고 나서 규제를 생각해야 한다. /철산(哲山) 최정준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미래예측학과 교수)

2018-01-09 철산 최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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