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김종필 전 국무총리 별세]파란만장 '2인자'… '3김' 역사속으로

영원한 권력의 2인 자로 불린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지난 23일 별세했다. JP만큼 한국 정치사에서 부침과 영욕이 교차한 인물은 드물다.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더불어 '3김'이라 불리며 반평생을 권력의 중심부에 있으며 한국 현대정치의 흐름을 이끌었지만, 정작 '1인자'의 위치에는 오르지 못했다. 권력의 심장부에 있다가도 하루아침에 유랑길로 내몰렸다. 또 정치탄압으로 숨죽였다가도 다시 화려하게 재기했으며, 여와 야를 넘나들었다. 1926년 1월7일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JP는 서울대 사대 2학년 때 부친의 사망을 계기로 가세가 기울자 교사의 꿈을 접고 육사에 입학했다. 35세 때인 1961년 그는 5·16쿠데타로 현대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처삼촌과 조카사위라는 당시 박정희 소장과 그의 '혈연'은 5·16쿠데타를 계기로 최고통치권자와 2인자라는 동지 이상의 운명으로 발전했다. 1961년 중앙정보부를 창설, 초대 부장에 취임하기도 했다. 유신반대 데모가 한창이던 1971년부터 1975년까지 국무총리를 지냈다. 그러나 1979년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고 5공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그는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지목돼 모든 재산을 압류당하고 미국으로 쫓기듯 떠나는 신세가 됐다. 1986년 귀국한 그는 옛 공화당 세력을 규합,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했다. 1990년 1월 '3당 합당'의 주역이 돼 여권 실세 정치인이 됐다. 민자당 최고위원에 이어 당 대표까지 맡으며 JP는 여당을 이끌게 됐지만 순탄치 못했다. 민주계를 중심으로 한 축출 움직임이 지속됐다. 이후 자민련을 창당했고, 1997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단일화를 해 또 한번 킹메이커가 됐다. 이를 계기로 그해 JP는 두 번째 총리직이자 새 정부의 초대 총리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2000년 DJP 연대가 파기되면서 그의 세력은 급격히 약화하기 시작했다. 이후 2004년 4월 19일 "43년간 정계에 몸담으면서 나름대로 재가 됐다"고 술회하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JP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3김 시대' 주역인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도 고인의 영정 앞에 헌화하며 추도했다. /김태성기자 mrkim@kyeongin.com故 김종필 전 국무총리 빈소에 놓인 영정. /연합뉴스

2018-06-24 김태성

'영원한 2인자' 김종필(JP) 전 국무총리 별세… 역사속으로 사라진 '3김 시대'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이로써 김대중·김영삼·김종필 트로이카가 이끌어왔던 '3김(金)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지난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김 전 총리는 공주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으며, 지난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그해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3김 시대'의 한 축인 김 전 총리는 1961년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하면서 현대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했으며, 같은 해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초대부장에 취임한 것을 시작으로 줄곧 영원한 '제2인자의 길'을 걸어왔다.반평생을 권력의 중심부에 있으며 한국 현대정치의 흐름을 이끌었지만, 정작 '1인자'의 위치에는 오르지는 못한 것이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몰려 정치활동이 금지된 5공 시대를 제외하고는 줄곧 2인자의 삶을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2인자로서의 삶은 35세 때인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육군 중령으로서 처삼촌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쿠데타에 가담하며 정치 전면에 등장한 그는 거침없는 박정희 정권의 '풍운아'였다. 같은 해 서슬 시퍼런 중앙정보부를 창설, 초대 부장을 역임했고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했다. 1971년부터 75년까지 4년6개월간 국무총리를 재임하며 '박정희 후계자'로서의 꿈을 키웠다.그러나 5.16 쿠데타 세력간 권력다툼으로 1963년 '자의반 타의반'이라는 말을 남기고 1차 외유에 나선 데 이어 1964년 '김종필-오히라 메모' 사건, 1968년 3선개헌 추진세력과의 충돌 등으로 한때 권력에서 멀어지도 했다.1인자, 그리고 그 주변으로부터 끊임없이 견제받는 2인자로서의 숙명적 삶이 되풀이 것임을 암시한 것이다. 그 속에서 처세와 굴신, 나아가 'JP식 정치'를 몸에 익혔다 할 수 있다. 5공 신군부 등장으로 정치적 영어의 몸이 됐던 그는 1987년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한 데 이어 13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지며 '넘버 투'의 굴레를 벗어던지기 위한 몸부림에 나섰다. 1987년 대선에 4위에 그쳤지만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35개 의석을 확보하며 건재함을 과시한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 2인자라는 수식어를 단 그의 입지는 거세게 불어오는 민주화의 바람 앞에서 여지없이 흔들렸다. 결국 1990년 3당 합당을 통해 또다시 2인자의 길로 들어섰다. 이때부터 속칭 '충청권 맹주'로서 '캐스팅보트를 쥔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충청권 지역주의 정치를 심화하는 등 한국정당정치의 후퇴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아울러 양김(兩金)과의 끊임없는 밀고당기기를 통해 1992년, 1997년 대선에서 이들을 권좌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자신의 대권도전이 무위에 그칠 것으로 판단하여, 내각제를 고리로 해 이들 양김과 '딜'을 하며 대권 쟁취를 도왔다는 해석이다. 김 전 총리는 1992년 대선을 앞두고 3당 합당으로 한배를 탄 YS에 대한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여권 2인자로서의 자리를 굳혔다. 청와대의 신임을 받기 위한 그의 충성도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자당내 권력투쟁에 밀린 그는 6.27 지방선거를 앞둔 1995년 민자당을 탈당해 자민련을 창당했으며, 또다시 1997년 대권 도전을 선언하며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대선 막바지 그의 선택은 또다시 2인자였다. 여야 정권교체라는 명분을 내세워 당시 김대중 후보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DJP 연합'을 성사시키며 헌정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일궜다. 이미 고희를 훌쩍 넘긴 그는 '국민의 정부 초대 국무총리'라는 공식적인 2인자의 반열에 올라 외환위기 사태 극복 등 김대중 전 대통령과 '콘크리트 공조'를 과시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후 내각제 파동, 16대 총선 과정에서 쌓인 권력 1, 2인자 사이의 앙금은 2001년 9월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안 가결로 공조 파기로 이어졌고, 김 전 총리는 정치적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한 재기를 노렸으나 역부족이었다. 자신의 10선(選) 도전에 실패한 것은 물론 4명의 의원만 배출하는 굴욕적 참패로 정계은퇴를 선언하며 2인자 정치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김 전 총리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쿠데타 원조에서부터 중앙정보부 창설자, 풍운의 정치인, 영원한 2인자, 경륜의 정치인, 처세의 달인, 로맨티스트 정치인 등 그에 따라붙는 여러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영욕과 부침을 거듭해왔다.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예리씨 1남1녀가 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27일 수요일 오전 8시 영결식을 개최하고, 9시에 발인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디지털뉴스부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1962년 전권대사 자격으로 한일협정에 나선 당시 김종필 중앙정보부장. /연합뉴스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1989년 국회 새의원회관 준공 및 정기총회 폐회 리셉션에서 김대중 평민당 총재(좌)와 김영삼 민주당 총재가 악수하는 동안 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웃으며 지켜보는 모습. /연합뉴스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8시 15분 별세했다. 향년 92세. 사진은 고 김 전 총리가 1962년 중앙정보부장 신분으로 한일 국교수립 등을 논의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고 귀국해 박정희 당시 최고회의 의장(오른쪽)을 만나는 모습. /연합뉴스

2018-06-23 디지털뉴스부

'풍운의 정치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 향년 92세로 별세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향년 92세의 일기로 별세했다.김 전 총리 측 관계자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김 전 총리가 오늘 오전 8시 15분께 별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김 전 총리는 이날 오전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순천향병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 측에 따르면 김 전 총리의 가족들은 이날 오전 119를 통해 김 전 총리를 인근 순천향병원으로 옮겼으며, 김 전 총리는 병원 도착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김 전 총리는 노환으로 별세한 것으로 전해졌다.김 전 총리는 지난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나 공주중·고등학교와 서울대 사범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지난 1963년에는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그해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 7·8·9·10·13·14·15·16대를 거치며 9선 국회의원을 지냈다.김 전 총리는 또한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총재를 지냈으며, 박정희 정권과 김대중 정부 시절 두 차례에 걸쳐 국무총리를 지냈다. 한편, 김 전 총리는 故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한때 '3김(金) 시대'를 이끌기도 했다. /디지털뉴스부사진은 지난 4월 18일 오전 김종필 전 총리가 신당동 자택에서 자유한국당 이인제 충남지사 후보를 만나는 모습. /연합뉴스

2018-06-23 디지털뉴스부
1 2 3 4 5 6 7 8 9 10
사람들연재
지난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