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천)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43]인천 강화도 새우젓

국내 젓새우 70~80% 잡히는 강화도… 배에서 바로 염장해 뛰어난 품질 '전국 입소문'매년 김장철마다 북새통 이루는 외포항 수산시장, 저렴하고 맛 좋은 '추젓' 인기 높아 현대식 냉동 창고 갖춘 경인북부수협 경매장, 지역 모든 제품 거쳐가는 '유통 중심지'김장에 빠질 수 없는 젓갈의 원재료가 되는 젓새우는 인천의 바다가 선물하는 중요한 수산자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특히 인천 강화도 인근 바다는 젓새우 황금어장으로 불린다. 강화에서 생산하는 새우젓 또한 많은 사람으로부터 명품 대접을 받는다.때문에 해마다 가을이 되면 강화의 포구는 새우잡이 어선으로 들썩이고 전국 각지에서 새우젓을 사러 온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룬다.지난 6일 찾아간 강화군 외포리에 있는 외포항 젓갈 수산시장은 김장철을 맞아 새우젓 등 젓갈을 사러 온 손님과 관광객으로 북적였다.현재 외포항 젓갈 수산시장에는 18개 젓갈 판매 매장이 성업 중이다. 새우젓을 주력으로 밴댕이, 멸치 등 어림잡아 20여 종류가 넘는 젓갈을 판매하고 있다.이날 시장에서 만난 조경숙(50)씨는 서울 강남 수서에서 이곳까지 찾아왔다고 한다. 조씨는 추젓 12㎏을 샀다. 김장 100포기를 하려면 10㎏ 정도 필요하다고 한다. 그는 "강화 새우젓이 명품이라기에 올해는 강화 새우젓으로 김장을 담아보려고 멀리까지 찾아왔다"며 "김장 맛이 좋으면 앞으로 계속 강화 새우젓을 쓸 생각"이라고 했다. 그는 10여 년 동안 충남 논산 강경에서 젓갈을 구매해 김장을 했다고 한다.새우젓은 가을에 담근 것을 '추젓'이라고 부른다. 5월에 잡은 새우로 담근 젓을 '오젓', 6월에 담근 젓을 '육젓'이라고 하고, 겨울에 담근 젓을 '동백하젓'이라 부른다.김장철에는 가격이 저렴하고 맛도 좋은 추젓이 인기다. 오젓과 육젓은 추젓보다 가격이 비싸다. 이날 추젓이 1㎏에 2만원, 오젓은 2만5천원, 육젓은 4만원 선에서 판매됐다.잡히는 시기에 따라 새우 크기도 다른데, 추젓은 길이가 1~2㎝, 오젓은 2~3㎝, 육젓은 3㎝ 이상 된다.짠맛의 세기를 결정하는 염도 또한 시기별로 다르다. 가장 더울 때 잡히는 육젓은 부패 방지를 위해 소금이 많이 들어가야 해 짠맛이 강하다. 오젓이 중간 맛, 추젓이 가장 덜 짜다.이곳 상인들은 강화 새우젓이 다른 어떤 지역의 새우젓보다도 품질이 우수하다고 자랑했다.중국산 등을 속여 팔다가 적발돼 홍역을 치르기도 한 다른 지역과 달리, 오직 국산만을 고집하며 믿을 수 있는 새우젓이란 이미지를 지켜 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란다.정찬요(54) 강화새우젓축제사무국장은 "우리나라 젓새우의 70~80%가 강화에서 잡히는데, 산지에서 잡아 배에서 바로 염장하는 강화 새우젓은 전국 어디보다 경쟁력이 있다"며 "국내에 유통되는 새우젓의 70~80%는 외국산으로 보면 되는데, 강화에서 사는 새우젓은 원산지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젓갈 상점 곳곳에는 새우젓이 가득 담긴 드럼통이 보였다. 매장 한 곳에 진열된 물건만 수천만 원어치가 된다고 한다. 새우젓 국물이 닿지 않아 노랗게 색이 변한 부분을 '윗밥'이라고 부른다. 이 윗밥을 걷어내고 판매하는데 먹어도 상관은 없다. 따로 가져가는 곳이 있다고 한다.강화 새우젓이 명품 소리를 듣게 된 것은 강화의 자연환경과 큰 연관성이 있다. 강화도는 한강이 임진강, 예성강과 만나는 곳이다. 조석 간만의 차가 심하고 물살의 변동이 심해 갯벌도 발달해 있다. 민물과 짠물이 만나는 합류 지역이라 어종도 풍부해 큰 새우 어장이 형성될 수 있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석모도에 염전이 있던 시절에는 품질 좋은 소금이 생산되면서 뛰어난 새우젓이 생산됐다고 전해진다.젓새우는 조업 방법이 크게 두 가지다.'닻배'라고 부르는 배를 이용하는 연안자망 어업 방식과 '꽁지배'를 이용한 안강망 어업 방식이다.자망 어업은 새우가 그물코에 꽂히게 해 잡는 방식이다. 안강망 어업은 조석 간만의 차가 큰 지점에 자루그물을 투하해 닻으로 고정 부설한다. 그러면 새우가 조류에 의해서 자루그물 속으로 들어가 잡힌다.강화도 어민들은 젓새우에 집중하고 있지만 1900년대 초까지만 해도 다른 어종도 많이 났다고 전해진다. 과거에는 조기, 밴댕이, 민어, 병어 등을 잡는 데 주력했다. 지금은 홍어, 까나리, 농어, 숭어 등이 대표적이라고 한다. 강화부지(1783년)에는 민어, 숭어, 석수어, 새우, 가리맛조개, 굴 등이 당시 강화의 수산물로 기록돼 있다.어민들이 생산한 새우젓은 창고로 옮겨 보관 숙성된다.수산시장에서 300여m 떨어진 곳에는 경인북부수협이 운영하는 새우젓 보관창고 겸 경매장이 있는데, 이곳이 새우젓 유통의 중심 역할을 한다. 강화도에서 생산되는 새우젓이 모두 이곳을 거친다고 한다. 인천시와 강화군 등이 50억 원의 예산을 지원해 2011년 완공한 수산물 처리·저장시설이다. 저온 냉장창고, 냉동창고, 급속 냉동창고 등을 갖추고 있다.옛날에는 새우젓을 토굴에 보관했는데, 지금은 현대식 냉장·냉동창고 등 체계적인 방법으로 보관하고 있다. 지금은 판매를 위해 물건이 빠져나가 창고가 비어 있지만, 10월 초가 되면 창고들이 모두 새우젓으로 가득 찬다.김용순(54) 경인북부수협 판매사업소장은 "옛날에는 토굴에 새우젓을 보관하다가 이곳에 보관시설을 설치하고 장소를 옮겼다"며 "최신식 시설에서 새우젓을 잘 숙성시켜 강화 새우젓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아이클릭아트강화 새우젓은 인천의 명품 수산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특히 가을에 수확한 젓새우로 만든 '추젓'은 김장에 빠질 수 없는 재료로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지난 9일 경인북부수협이 운영하는 수산물 처리·저장 시설에 보관 중인 새우젓이 숙성 중이다.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외포항 젓갈 수산시장에는 판매장 18곳이 운영 중이다.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아이클릭아트김장철을 맞아 시장에서 젓갈을 고르는 손님들.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낡은 시설을 고쳐 지난 2009년 새롭게 조성된 외포항 젓갈 수산시장 전경.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2018-11-14 김성호

[zoom in 송도]송도국제도시 브리핑

■IFEZ 스마트시티운영센터 누적 방문객 1만7178명송도국제도시 G타워에 있는 인천경제자유구역 스마트시티운영센터에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센터가 문을 연 2014년 2월부터 올해 10월 말까지 1만7천178명이 방문했다고 밝혔다. 전체 방문객의 65%(1만1천204명)는 외국인이다.지난 7일에는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와 연계해 독일, 중국, 오스트리아, 스위스, 일본, 이탈리아, UAE 등 세계 7개국 18개 주요 해외 언론사 관계자가 센터를 찾았다. 인천경제청은 "올해 46개국 2천215명이 센터를 방문했다"며 "쿠웨이트 주택부 장관, 노르웨이 환경부 장관, 에콰도르 산업부 장관 등 주요 인사들의 센터 방문이 잇따르고 있다"고 했다.365일 24시간 체제로 운영되는 센터는 ▲CCTV 실시간 영상 감시 및 관계기관 공조 체제 구축 ▲비상벨 호출 등 상황 발생 접수 및 전파 ▲방범·방재·교통·환경 정보 제공 등의 기능을 한다.■아·태 방송개발기구,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 견학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센터장·이충환)에 아·태 방송개발기구 관계자들이 방문했다.시청자미디어재단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는 최근 아·태 방송개발기구 10개국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국형 미디어교육 현장을 소개하고 센터의 미디어사업을 설명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주최하고 시청자미디어재단이 주관한 이번 행사는 아·태 지역 시청자의 권익 증진과 협력 방안 모색을 위해 마련됐다.말레이시아, 몰디브, 미얀마, 방글라데시, 브루나이, 인도, 캄보디아, 태국, 독일 등 10개국 방송·통신 관계자들은 해송중학교 '찾아가는 미디어나눔버스' 미디어교육 현장을 둘러본 뒤 센터에서 미디어사업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이후 드론교육과 1인 방송 체험에 참여하는 등 스마트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을 참관했다.■경제청 "송도자원순환센터 고형연료시설 정상 운영"송도자원순환센터 고형연료 사용시설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밝혔다.송도자원순환센터는 연수구 지역에서 발생한 생활폐기물을 고형연료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올해 3~9월 고형연료 사용 시설의 일평균 대기오염 물질 배출 농도는 배출 허용 기준 대비 먼지 4.9%, 질소산화물 6%, 일산화탄소 24.3%, 염화수소 32.5%다. 이 기간 시간당 평균 배출량은 먼지 0.02㎏, 질소산화물 0.2㎏, 일산화탄소 0.38㎏, 염화수소 0.2㎏ 수준이다. 염화수소의 경우, 굴뚝자동측정기 교정 과정 등에서 간헐적으로 배출 허용 기준을 초과했으나, 송도 주민에게 건강상 피해를 줄 정도의 농도와 양은 아니라고 인천경제청은 설명했다.인천경제청은 송도자원순환센터 시설·설비 운영 상황을 확인하는 시민검증단을 구성해 운영할 예정이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 제공

2018-11-11 목동훈

[zoom in 송도]美 팝아트 거장 '로버트 인디애나의 HOPE'

오라카이 송도파크호텔 개관5주년 기념희망찬 이미지 마지막 유작 설치 '눈길'오라카이 송도파크 호텔 앞에 미국 팝아트 거장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 'HOPE'가 설치됐다.오라카이 송도파크 호텔이 2019년 1월 개관 5주년을 앞두고 정문 앞에 조형물을 새롭게 설치했다. 이 조형물은 미국 팝아트 거장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 1928~2018)의 작품 'HOPE'다.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LOVE' 'HOPE' 'EAT' 'DIE' 등이 있다.'HOPE'는 올해 5월 타계한 로버트 인디애나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 주요 도시 랜드마크로서 많은 이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서울 명동 대신금융그룹 신사옥 앞에 'LOVE'가 설치돼 있으며, 인증샷 스팟으로 유명하다.호텔 관계자는 "내년 1월 개관 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HOPE'를 설치했다"며 "오라카이 송도파크 호텔의 희망찬 이미지 형성과 더불어 큰 포부를 가지고 성장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또 "호텔을 방문하는 고객분들이 정문 앞에 있는 작품을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된다"며 "환영 인사와 함께 작품으로 하여금 희망을 발견하고 품길 바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오라카이 송도파크호텔은 'Orakai Hotels & Resorts' 1호 브랜드로, 인천 송도 중심부에 있다. 275개 객실과 2개 연회장, 'Level 19 뷔페 레스토랑', 'Thirsty Monk 탭하우스', 'illy CAFF', 실내외 수영장, 남녀 사우나, 피트니스 센터를 갖추고 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오라카이 송도파크 호텔 정문 앞에 설치된 미국 팝아트 거장 로버트 인디애나의 작품 'HOPE'. /오라카이 송도파크 호텔 제공

2018-11-11 목동훈

[zoom in 송도]韓·우즈베크 교류 플랫폼 '송도시대' 열다

주한 무역대표부 포스코타워에 개소관련외국기관 최초 인천에 둥지 틀어수출입·투자 상담부터 특산품 전시장경제청 "통상 핵심役 기대 적극 지원"우즈베키스탄 주한 무역대표부가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우즈베크 주한 무역대표부는 지난 9일 송도 포스코타워(동북아무역센터) 29층에서 개소식을 하고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갔다.무역대표부는 대한민국과 우즈베크 양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설립한 우즈베크 정부 공식 기관이다. 약 1년간 준비 기간을 거쳐 올해 8월 업무를 시작했으며, 우즈베크에서 파견한 공무원 3명과 주한대사관 상무 관련 외교관 2명 등이 근무하고 있다. 주로 서울에 위치하는 외국 무역대표부가 인천에 둥지를 튼 건 처음이다. 무역대표부 초대 대표는 김창건(에버그린모터스 대표이사) 주한 우즈베크 명예영사다.김창건 대표는 개소식에서 "우즈베크 무역대표부가 한국에 처음 설립돼 양국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됐다"며 "초대 대표를 수행하게 돼 영광"이라고 했다. 이어 "무역대표부가 양국 교류·발전의 플랫폼이 될 수 있도록 개방하겠다. 적극적으로 활용해달라"며 "양국 우호 증진과 경제 발전에 초석을 놓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무역대표부는 수출입과 투자 관련 협의를 진행할 수 있는 회의실등을 갖추고 있으며, 우즈베크에서 만든 제품들을 전시하고 있다.개소식에는 김창건 대표를 비롯해 우즈베크 비탈리 펜(Vitaly Fen) 주한 대사와 묵슨크자(Mukhsinkhuja) 페르가나주(Ferghana Regeion) 부지사, 김진용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 신명진 한국수입협회 회장, 김승동 (사)유라시아21 이사장 등 우즈베크와 국내 기관·단체·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했다.비탈리 펜 대사는 축사를 통해 "(무역대표부는) 우즈베크의 특산품을 전시·수출하고, 관광과 직접 투자를 상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양국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우즈베크는 금, 원유, 가스 등 자원이 많고 정치적으로도 안정돼 있다.김진용 청장은 "포스코타워에는 중국 웨이하이(威海)관이 있고, 포스코대우가 들어와 있다"며 "무역대표부가 한국과 우즈베크 간 무역과 통상에서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또 "앞으로 인천경제청은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우즈베크 사브카트 미르지요예프(Shavkat Mirziyoyev) 대통령은 경제자유구역 개발 등 한국의 경제·교육·관광 모델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기존 3개 특별산업지구 명칭과 운영 제도를 경제자유구역으로 단일화했으며, 추가로 4곳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이 아닌 인천 송도에 무역대표부를 개설한 것도 인천경제자유구역을 롤모델로 삼고 있기 때문으로 인천경제청은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인천경제청은 올해 4월 우즈베크 경제자유구역 개발 및 주한 무역대표부 활동 지원 등에 관한 상호협력 양해각서를 주한 우즈베크 대사관과 체결했다. 7월에는 우즈베크 페르가나주, 3월엔 부하라주(Bukhara Region)와 각각 협력 의향서를 체결했다. 이들 지역은 경제자유구역을 개발하는 등 우즈베크의 경제 성장을 이끌고 있는 도시다.인천경제청은 우즈베크 경제 관계 공무원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 송도에서 운영되도록 협의하고, 우즈베크 무역대표부 개소를 계기로 다른 나라의 무역대표부도 유치할 계획이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우즈베크 무역대표부가 입주한 송도 포스코타워 전경. /경인일보DB우즈베크 주한 무역대표부 송도 입주 개관식 모습.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옷,와인 등 우즈베크에서 만든 제품이 전시된 무역대표부 모습.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11-11 목동훈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42]인천항 관문 '갑문' (하)

1910년대 미곡 수출 중심으로 떠오른 인천日, 곡물 반출위해 축항… 죄수등 강제동원처참했던 공사현장 '백범일지'에도 기록돼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8년 10월 26일. 일본우선주식회사 깃발을 단 기선 한 척이 인천 앞바다에 있는 사도(沙島)를 지나 바다 위 거대한 철문 앞에 멈췄다. 두 개의 갑문을 지난 배는 400m가 넘는 거대한 길이의 부두에 정박했다. 8년여 동안 진행한 인천항 축항(갑문 건설) 공사를 마무리하고 준공식에 앞서 가진 시험 운항이었다. 이튿날 오전 10시 30분께 2대 조선총독을 지낸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등 700명의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인천항 축항 공사 준공식이 개최됐다. 수심이 얕고 9~10m에 달하는 조수 간만의 차 때문에 24시간 선박 접안이 어려웠던 인천항에 4천500t급 기선 세 척이 항상 정박할 수 있는 항만시설이 만들어진 것이다.조선총독부는 물자를 원활하게 수탈하기 위해 1911년 현재 인천항 제1부두 근처에서 갑문 건설사업을 시작한다. 1933년 발간한 인천부사에 따르면 1911년부터 1918년까지 진행한 공사에는 391만 4천455엔이 사용됐다. 1918년 당시 일본 내 쌀 한 섬(150㎏) 가격이 10엔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일본 돈으로 300억 엔, 우리나라 돈으로 3천억 원이 넘는 예산이 사용된 셈이다.조선총독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이유는 인천항이 우리나라 미곡 수출의 중심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인천항은 1910년대부터 군산, 부산 등을 제치고 국내에서 가장 많은 쌀과 콩을 수출하는 항구 도시가 됐다고 한다. 1910년대 인천에서 투기의 일종인 '미두(米豆)'가 가장 성행한 것도 인천으로 쌀이 모였기 때문이다. 미두는 일정한 날짜를 정해 놓고 그 기간 내에 쌀을 사거나 팔아 시세 차익을 얻는 방식이다.일본이 우리나라 곡물을 자국으로 반출하기 위해 진행한 축항 공사에는 조선인이 동원됐다. 특히, 인천 내동에 있던 경성감옥 인천 분감에 수감된 조선인 죄수들이 대거 끌려갔다. 그 가운데 백범 김구(1876~1949)도 있었다. 김구는 1911년 '안악 사건'(1910년 11월 안명근 군자금 모금 사건)으로 서울에서 옥살이를 한다. 1914년 39세 때 인천 감옥으로 이감돼 축항 공사 현장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그는 백범일지에 '아침저녁 쇠사슬로 허리를 매고 축항 공사장으로 출역을 간다. 흙 지게를 등에 지고 10여 장의 높은 사다리를 밟고 오르내린다. 불과 반일 만에 어깨가 붓고 등창이 나고 발이 부어서 운신을 못 하게 된다. 너무 힘들어 바다에 빠져 죽고 싶었으나 그러면 같이 쇠사슬을 맨 죄수들도 함께 바다에 떨어지므로 할 수 없이 참고 일했다'고 참담한 심정을 기록했다. 인천항 내항 1부두 동쪽과 남쪽 시설은 콘크리트로 덧씌운 탓에 옛 축항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북쪽 석축은 100년 전 모습 그대로다. 석축 위로 정박한 배를 묶어 두는 계선주(繫船柱) 역시 당시 모습대로 열을 지어 서 있다. 1930년대 인천 지역에 군수공장이 늘어나면서 일본은 인천항을 확장할 계획(제2선거 건설)을 세웠다. 인천항만공사가 2008년 발간한 '인천항사'에 따르면 당시 제2선거를 계획했던 지역은 지금의 인천 북항 일대로 추정된다. 인천도시역사관 배성수 관장은 "조선기계제작소(현 두산인프라코어), 조선목재, 동양방적(현 동일방직) 등 군수 물자 보급을 위한 공장들이 세워지면서 인천항 물동량이 많이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의 제2선거 건설 계획은 태평양 전쟁이 확대되면서 공사 비용을 확보하지 못해 백지화됐다.경제개발로 화물 급증 1974년 새 갑문 준공한계 넘는 선박 드나들며 산업화 견인 역할역사적 명암 공존 '100년사 기념' 가치 충분일본이 시작하지 못한 공사는 1960년대 우리 정부에 의해 추진됐다.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1965년 서울 구로와 인천 부평·주안에 한국수출산업공업단지가 차례로 조성되면서 인천항의 화물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1960년 46만 6천259t이었던 인천항 물동량은 1969년 279만 8천t으로 600%나 올랐다. 인천연구원 김창수 도시경영센터장은 "당시에는 육로 운송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부산 등 다른 지역까지 화물을 운반할 여건이 충분하지 않았다"며 "구로, 부평, 주안 등 공장에서 필요한 원자재 가운데 대부분이 인천항으로 수입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1974년 현재의 갑문이 만들어지면서 인천항은 컨테이너 하역 전용 부두인 4부두를 포함해 2부두와 3부두 등 5만t급 이상 대형 선박들을 동시에 접안해 하역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다. 항만 인프라가 만들어지면서 인천항 물동량도 급증했는데, 1979년에는 2천 400만t의 물동량을 처리했다.1980년대 들어서면서 인천항 물동량이 3천만t에 육박하기 시작했다. 당시 갑문은 항상 배들로 가득했다는 게 당시 근무자들의 설명이다. 1978년부터 인천항 갑문에서 근무한 김익봉 인천항만공사 갑문운영팀장은 "인천항 갑문에 하루 50척의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데, 58척의 선박이 통항한 적도 있었다"며 "인천 앞바다와 내항 안에는 갑문을 이용하려고 대기하는 선박이 항상 보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입출항 선박이 너무 많아 갑문을 거의 온종일 열어 놓다 보니 내항의 물이 계속 줄어들어 수심이 낮아지는 현상까지 벌어졌다"며 "내항이 일정 수위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외항의 물을 내항으로 공급하는 공사도 실시했다"고 덧붙였다.지난달 27일은 인천항 갑문이 처음 만들어진 지 100년째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인천 지역에서는 별도의 행사 없이 이를 조용히 지나쳤다. 현재 남아있는 갑문이 100년 전 만들어진 것도 아닌 데다, 일제 수탈의 역사를 굳이 기념할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인천항 갑문의 축조일은 역사적으로 기념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지적한다.김창수 센터장은 "인천항 갑문은 100년 전 조선인의 피땀으로 만들어졌고,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견인차 구실을 한 시설"이라며 "명암이 함께 공존하는 시설이기 때문에 갑문의 의미를 다시 되돌아보는 일은 인천시 등 관계 기관이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1918년 완공된 인천항 갑문에 선박이 입항하는 모습. 초창기 갑문은 현재 운영되는 '슬라이딩 게이트(미닫이)' 방식이 아닌 '마이터 게이트(여닫이)' 형태로 제작됐다.1911년 인천항 축항공사에 동원된 인천 내동 경성감옥 인천 분감 조선인 죄수들 모습. /인천항운노동조합 제공1918년 10월 27일 열린 인천항 축항공사 준공식 모습./인천항만공사 제공현재의 갑문이 지어지기 전인 1966년 인천항 전경.1974년 인천항 갑문타워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 모습. /인천항만공사 제공

2018-11-07 김주엽

[zoom in 송도]송도국제도시 브리핑

■'국제기구-MICE 커리어 페어' 9일인천시와 외교부가 공동 주최하고 인천관광공사가 주관하는 '2018 국제기구-MICE 커리어 페어'가 오는 9일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다. 국제기구-MICE 커리어 페어는 국제기구와 MICE 분야 진출 희망 인력에 대한 전문교육 및 정보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해당 분야 일자리 창출을 위해 2015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올해에는 UNDP(유엔개발계획) 뉴욕 본부, ICC(국제형사재판소) 헤이그 본부, FAO(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 등 9개 국제기구 본부 인사 전문가들과 태국 전시컨벤션뷰로와 인센티브&컨벤션협회 임원 등이 참석한다.주요 행사로는 ▲국제기구 분야별 주요 업무와 인사 채용 방법을 소개하는 '국제기구 진출 설명회' ▲국제기구 내 이벤트 매니지먼트에 이르기까지 MICE 분야의 참신하고 다양한 글로벌 커리어를 알려주는 '글로벌 MICE 아카데미' ▲NGO 채용 계획 및 진출 사례를 소개하는 'NGO 진출 설명회' 등이 있다. 국제기구 및 MICE 기관·업체 약 60여 개소가 참가하는 진로·채용 상담 및 홍보 부스도 운영된다.■이달중 'IFEZ 투자유치·일자리박람회'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2018 IFEZ(인천경제자유구역) 투자유치 홍보 및 일자리 박람회' 개최를 준비하고 있다.이번 박람회는 핵심 국정과제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이다. 송도 등 IFEZ 입주기업과 잠재투자기업의 일자리 정보를 구직자들에게 알려주고, 국내외 법인·기업에 IFEZ 투자 가치를 홍보하는 행사다. VR(가상현실), 로봇, 드론 등을 체험할 수 있는 부대행사도 진행된다. 인천경제청은 이달 중 송도컨벤시아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다.■주한 우즈베크 무역대표부 9일 개소식송도국제도시 포스코타워 29층에 둥지를 튼 주한 우즈베키스탄 무역대표부가 오는 9일 오전 11시 개소식을 한다.우즈베크 무역대표부는 대한민국과 우즈베크 양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설립한 우즈베크 정부 공식 기관이다. 개소식은 우즈베크 통상부, 주한 우즈베크 대사관, 주한 우즈베크 무역대표부가 공동 주최한다. 주한 우즈베크 무역대표부 김창건(주한 우즈베크 명예영사) 대표는 "글로벌 국제업무지구로 급부상하고 있는 송도에서 무역대표부를 오픈하게 됐다"며 "양국 경제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8-11-04 목동훈

[zoom in 송도]송도 3개 조성계획 '정부 수요조사' 포함

인천 송도국제도시는 공유수면을 매립해 만든 도시이기 때문에 바다와 접하고 있다. 특히 외곽의 수로와 호수를 연결해 'ㅁ'자 모양의 물길을 만드는 워터프런트 조성사업이 계획돼 있어, 마리나(Marina) 조성의 최적지로 꼽힌다. 마리나는 스포츠 또는 레크리에이션용 요트와 모터보트 등을 위한 항구로, 선박 계류시설뿐만 아니라 주차장·호텔·놀이시설 등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항만을 말한다. 해양관광산업 핵심 기반시설이다. 소득 수준 향상, 여가 시간 확대 등으로 해양스포츠 등 해양관광 수요는 증가하는 추세다. 중국도 해양관광산업이 성장하고 있어, 마리나 개발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지만 '해양도시' 인천에는 영종도에 있는 왕산마리나가 유일하다. 2천552만 명의 수도권 인구를 배후에 두고 있지만, 그 지리적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인천공항·항만 가까워 접근·시장성 '우수'항만公, 국제여객부두에 크루즈연계 전략연수구, 10공구 연구·수리시설 대규모 유치경제청, 워터프런트 남측 수로에 조성 추진해수부, 3곳등 현장조사 타당성 검토 거쳐 내년중 2차 계획·정책방향 수립 '귀추 주목'그나마 최근 인천시가 실시한 '(해양수산부) 제2차 마리나항만 기본계획(2020~2029년) 수요조사' 결과에 송도 마리나 조성계획 3개가 포함됐다. 1개는 '제1차 마리나항만 기본계획(2010~2019년)'에 반영된 사업이고, 나머지 2개는 신규 사업이다. 이들 사업은 아직 계획 또는 구상 단계이기 때문에 본격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표·위치도 참조■ 마리나 최적지 '송도'송도는 다른 수도권 마리나 예정지에 비해 접근성, 시장성, 이용성 등이 매우 우수하다.인천항만공사와 연수구 자료를 보면, 송도는 대한민국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인천항이 가깝다. 인천공항은 제2여객터미널 개항 등으로 여객 처리 능력이 커지고 있고, 인천항은 국제여객부두 신설 등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인천항만공사는 "해양관광의 핵심 시설인 마리나를 도입해 국내외 해양관광 수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지역 및 국가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했다.송도는 지하철과 도로 등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배후 수도권에 풍부한 인적·물적 관광 인프라가 있다. 송도와 서울을 잇는 GTX,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인천~안산 구간이 개통하면 접근성이 더욱 향상될 전망이다. 연수구는 "송도는 항공, 해상, 육상교통 등 접근 수단이 다양하다"며 "인천공항과 인접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유리하고, 인천항 국제여객부두와의 연계로 시너지 효과도 발생한다"고 했다.■ 송도 마리나 조성 계획·구상인천항만공사는 송도 9공구 국제여객부두(크루즈·카페리 접안 시설)에 마리나를 조성할 계획이다. 육상 165척, 해상 135척 등 총 300척이 계류할 수 있는 규모다. 인천항만공사는 국제여객부두에 국제여객터미널을 건설하고 있다. 또 그 배후 부지에 숙박시설과 상업시설 등 다양한 분야의 시설을 유치할 계획이다. 크루즈와 카페리를 이용해 인천에 온 외국인 관광객들이 마리나에서 해양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국제공항, 크루즈부두, 배후 단지가 연계된 국내 유일의 마리나가 될 것이라고 인천항만공사는 설명했다.연수구는 송도 10공구 준설토 투기장에 마리나를 유치할 계획이다. 사업비 6천787억 원, 119만 4천㎡, 2천800선석(육상 2천 척, 해상 800척) 등 규모가 크다. 연수구는 이곳에 선박 계류시설뿐만 아니라 마리나 관련 연구·전시·판매시설과 수리·공장시설도 계획하고 있다.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송도 워터프런트 2단계 사업 대상지인 남측 수로에 마리나를 조성할 계획이다. 워터프런트는 기존 호수와 수로를 연결하고 송도 11공구에 수로를 내 'ㅁ'자형 물길을 만드는 대형 프로젝트다. 수 면적 4.66㎢, 수로 연장 16.19㎞ 규모이며 2027년 완성을 목표로 한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남측 수로 너비가 400m 정도 되는데, 약 100m를 매립할 계획"이라며 "매립지를 매각해 워터프런트 사업성을 높이고 마리나 조성 비용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다.한편, 송도 6·8공구 중심부 128만㎡ 개발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던 '블루코어 컨소시엄'도 6공구 호수 변에 마리나 시설을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블루코어 컨소시엄은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되찾고자 인천경제청과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마리나 조성 시기는?마리나 조성사업은 경제성과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연수구와 인천경제청이 계획한 마리나 사업은 우선 '마리나항만 기본계획'에 반영돼야 하고, 민간 투자도 유치해야 한다. 인천항만공사와 인천경제청 마리나 사업은 각각 국제여객부두 배후 단지 개발, 워터프런트 조성과 연계돼 있어 이들 프로젝트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연수구 사업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사업 타당성 확보 여부가 사업 추진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해수부는 지자체 등이 제출한 마리나항만 기본계획 수요조사 결과를 토대로 현장 조사, 타당성 검토 등을 벌여 내년 중 제2차 기본계획과 마리나 정책 방향을 수립할 예정이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연수구 송도동 국제여객부두 인근 마리나 조감도. /인천항만공사 제공

2018-11-04 목동훈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41]인천항 관문 '갑문' (상)

"NGB 인천대교 통과. 10시 20분에 갑문 도착합니다."지난달 19일 오전 10시 10분께 인천항 갑문 관제탑에서 무전이 울렸다. 인천항에 들어오는 선박에 탑승한 도선사가 보낸 것이다. 'NGB'라고 지칭된 이 선박은 인천항과 중국 웨이하이(威海)를 오가는 3만 1천t급 대형 카페리선 '뉴골드브릿지7호'. 인천 내항에 있는 제2여객터미널에 입항하려면 반드시 갑문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갑문 관제탑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 것이다.10시 20분께 뉴골든브릿지7호가 갑문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갑문 주변에는 경고음이 울렸고, 1천50t에 달하는 외측 갑문이 천천히 열렸다. 배가 갑거(수로)에 완전히 진입하자 외측 갑문이 닫혔고, 배에서 내린 4개의 줄을 줄잡이들이 고정하기 시작했다. 인천항만공사 갑문운영팀 강석현 차장은 "내항과 외항의 수면 높이를 맞춰야 한다. 수로에 물을 채우는 과정에서 배가 흔들려 갑벽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에 배를 고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배가 고정되면 수로에 물이 들어온다. 이날 10시 20분께 외항의 수위는 4.7m. 내항의 해수면 높이는 최소 7m로 유지되기 때문에 수로에서 내항과 외항의 수위를 맞춰야 한다. 강 차장은 "내항의 수위가 높은 경우에는 내항 쪽에서 (수로로) 물을 보내고, (배가 수로에 들어온 후) 외항의 수위가 높으면 바다 쪽 외항으로 물을 흘려보낸다"고 했다.1883년 개항한 인천항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9~10m의 조수 간만의 차를 극복해야 했다. 썰물 때 갯벌이 훤히 드러날 정도여서 큰 배는 물론 작은 배도 인천항에 접안하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선박이 인천 앞바다에 정박해 있으면 작은 배가 다가가 사람과 짐을 날랐다.김탁환과 이원태가 쓴 소설 '아편전쟁'에서도 이 같은 초창기 인천항의 모습이 묘사된다.'인천은 수심이 얕고 아직 부두가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외국 상선이 곧바로 바닷가에 닿지 못한다오. 바닥이 평평한 짐배가 나가서 상선에 붙소. 승객과 상품을 짐배에 옮겨 싣는 게요.'인천항을 통한 물동량이 늘어나면서 일본은 만조와 간조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선박이 입항할 수 있는 시설을 원했다. 이에 1911년 항만 설비 확장 공사를 시작했고, 1918년 10월 27일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갑문이 인천항에 설치됐다.1962년 시작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당시 7~8%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는데, 인천항의 화물 증가 추세는 이보다 3배가 넘었다고 한다. 경인 공업지역의 원자재와 소비재 물동량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당시 갑문 안쪽의 인천항 시설은 4천500t급 3선석에 불과해 수도권 지역 물동량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정부는 1964년 인천항 갑문 제2선거 공사에 착수했고, 1974년 현재의 인천항 갑문이 설치됐다. 100년 전 축조한 갑문은 바닷속에 가라앉았다. 현재는 인천 내항 1부두 주변에서 일부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인천항 갑문은 최대 길이 306m, 너비 32m를 가진 선박이 이용할 수 있는 5만t급과 길이 215m, 너비 19m 선박이 이동하는 1만t급 등 총 2개 수로로 운영되고 있다.갑문 축조와 내항 확장으로 안정적인 하역 환경이 조성되면서 인천항의 수출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인천항사'에 따르면 인천항의 수출액은 1973년 3억 1천791만 3천 달러에서 갑문 완성 이듬해인 1975년 5억 9천941만 8천 달러로 급증했다. 1978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돌파했다.2004년 인천 남항이 개항하기 전까지 인천 내항은 몰려드는 배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해양수산부가 1999년 펴낸 '수도권 항만 기능정립·재정비계획'을 보면, 수도권 화물의 인천항 폭주로 인천항의 체선·체화 현상이 가장 심했던 때는 1990년이다. 그해 체선율은 48.2%였다. 체선율은 선박이 부두에 접안하지 못하고 12시간 이상 대기한 선박의 비율을 말한다. 100대 중 48대가 12시간 이상 기다렸다가 인천항에 들어올 수 있었던 셈이다. 인천항의 체선율은 전국 항만 중 가장 높았다. 당시 평균 체선 시간은 70시간 정도로 길게는 일주일 이상을 바다에서 대기해야 갑문을 통해 인천항에 들어올 수 있었다.인천 남항에 이어 북항, 신항까지 문을 열면서 내항을 찾는 선박은 줄어들고 있다. 인천항만공사에 따르면 인천항 갑문을 입출항하는 선박은 2005년 1만 3천140척을 정점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벌크화물 하역항인 북항이 개항한 2010년 8천395척, 컨테이너 전용부두인 내항 4부두가 가동을 멈춘 지난해에는 5천 52척만이 갑문을 이용했다. 2005년에 비해 60% 이상 입출항 선박이 줄어든 셈이다. 지난해 물동량도 내항 하역량이 가장 많았던 2004년(4천529만t)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2천353만 3천730t으로 떨어졌다. 하역 장비의 발달로 수심과 관계없이 선박에서 짐을 싣고 내릴 수 있다 보니, 30분 이상 걸리는 갑문을 출입하기 꺼리는 것이다.하지만 갑문 속에 있는 내항은 아직 항만으로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게 갑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설명이다. 1978년부터 갑문에서 근무한 인천항만공사 김익봉 갑문운영팀장은 "갑문은 24시간 해수면 높이가 일정하고, 물이 잔잔하기 때문에 정밀기계나 자동차 하역에 적합한 항구"라며 "인천항 발전을 이끌어온 항구라는 자부심을 품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인천항 갑문으로 3만1천t급 대형 카페리선 뉴골드브릿지 7호가 들어오고 있다. 인천항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9~10m의 조수 간만 차이가 있어 갑문 운영이 필수적이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인천항 갑문 관제탑 모습.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인천항 갑문 관제실. 이곳에서 인천 내항과 외항의 수면 높이를 조절한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10-31 김주엽

[zoom in 송도]송도국제도시 브리핑

■인천글로벌캠퍼스 31일 입주대학생 '뮤직 페스티벌'인천글로벌캠퍼스운영재단(대표이사·김기형)은 오는 31일 오후 5시 30분 체육관에서 입주대학 학생들이 끼와 재능을 마음껏 뽐내는 '인천글로벌캠퍼스 뮤직 페스티벌'을 개최한다.인천글로벌캠퍼스에는 현재 한국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FIT(패션기술대학교), 한국조지메이슨대, 겐트대 글로벌캠퍼스, 유타대 아시아캠퍼스가 입주해 있다. 이번 페스티벌은 이들 대학 학생들이 악기 연주와 노래, 춤을 선보이는 자리다. 동아리 홍보 전시회와 초청 공연(몽니, 윤미래)도 열린다. ■내달 1일 '2018 국제기후금융·산업콘퍼런스' 개최인천시와 인천연구원은 11월 1일 오전 9시 30분부터 송도컨벤시아에서 '2018 국제기후금융·산업콘퍼런스'를 연다.인천시는 GCF(녹색기후기금) 송도 유치를 계기로 2014년부터 매년 국제기후금융산업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 콘퍼런스에선 기후변화 협상과 대응 동향을 파악하고, 도시를 포함한 다양한 이행 주체들의 노력을 살펴본다. 기후금융 조성과 녹색기술 개발에 관한 국제 동향과 우리나라 역할도 모색하게 된다. 행사는 개회식, 기조연설에 이어 4개 세션이 진행된다. 세션 주제는 ▲파리협약 이후 국제 기후변화정책 동향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도시의 전략 ▲포용적이고 회복 가능한 도시를 통한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한 발전 ▲기후기술과 글로벌 협력 등이다. 문의:인천기후환경연구센터 (032)715-5795■개관 앞둔 '아트센터 인천' 사전 테스트 공연 성료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최근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 사전 테스트 공연 '재즈 빅밴드 브라소닛 콘서트'를 개최했다. 인천경제청은 11월 16일 '아트센터 인천' 개관을 앞두고 공연장 시설과 운영 시스템을 점검하고자 이번 공연을 열었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사전 공연을 통해 공연장의 우수성을 전문가로부터 검증받는 기회를 가졌으며 향후 안정감 있는 공연장 운영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할 예정"이라고 했다.아트센터 인천은 지하 2층, 지상 7층, 연면적 5만 1천977㎡, 1천727석 규모의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이다. 11월 16일과 17일 양일간 개최하는 개관 공연에는 인천시립교향악단과 이탈리아 명문 악단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협연 조성진)의 무대가 준비돼 있다.■송도 재미동포타운, 오피스텔등 1단계 사업 마무리송도 재미동포타운 1단계 사업이 완료됐다.재미동포타운 조성사업은 재미 동포들의 고국 내 정주 공간 마련을 목적으로 2012년 8월부터 추진됐다. 민간기업이 추진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로 2014년 중단 위기를 맞았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설립한 인천투자펀드(주)가 자본금을 출자하고 민간기업으로부터 사업권 양수 및 단계별 추진 계획 수립 등 사업 정상화를 추진해 드디어 1단계 사업이 마무리됐다. 1단계 사업은 아파트 830가구, 오피스텔 125실, 상업시설 113실 규모다. 2023년 10월 준공 예정인 2단계 사업은 아파트 498가구, 오피스텔 674실, 상업시설 1만 9천47㎡로 계획됐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재즈 빅밴드 브라소닛 콘서트.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2018-10-28 목동훈

[zoom in 송도]외국법인·기업 투자 본격화

日 '아마다코리아' 지식정보산단에 이달 문열어美 오티스 R&D센터·獨 머크 한국 자회사 착공佛 생고뱅 바이오제조시설 토지매매계약 체결등차부품·반도체… 다양한 산업·국적 외투 쏟아져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최근 외국인투자기업(이하 외투기업)들이 건물 건립 공사를 시작하거나 준공 후 본격 운영에 들어가는 등 '송도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 법인·기업들이 송도 투자를 본격화하는 것이다. → 표 참조일본 아마다 자회사 '아마다코리아'는 지난 17일 송도 지식정보산업단지에서 인천테크니컬센터 개소식을 했다. 이 센터는 연면적 4천5㎡ 규모로 지난해 9월 착공해 올해 8월 준공됐다. 1946년 설립한 일본 아마다는 판금·절삭·공작기계사업, 프레스사업, 정밀용접사업 등을 하는 금속가공 기계 종합 기업이다. 아마다코리아는 인천테크니컬센터에서 아마다의 고기능 기계를 소개(전시)하고, 고객사의 기계 오퍼레이터를 대상으로 기계·소프트웨어 운영 교육을 한다. 인천 주요 대학 및 산업교육기관과 협력해 정밀판금 가공에 대한 이론·실기 교육을 진행하는 등 국내 산업 인력 육성에도 이바지하게 된다.미국 오티스의 엘리베이터 R&D센터 및 첨단생산시설은 지난 12일 착공했다. 이들 시설은 송도 지식정보산업단지내 1만5천600㎡ 부지에 들어선다. 사업 주체인 '오티스코리아'는 전국에 분산된 연구개발 및 생산 조직을 송도로 통합하고, 현대화시스템센터 등 서울 여의도 본사 기능 일부를 이곳으로 이전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송도 R&D센터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연구개발의 허브 역할을 하게 된다"며 "전 세계 오티스 연구개발 센터와의 기술 교류도 이뤄진다"고 했다.독일 머크의 한국 자회사 머크(주)는 지난 11일 송도에서 '한국 생명과학 운영본부' 착공식을 개최했다. 머크는 올해 설립 350주년을 맞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글로벌 제약·화학·생명과학기업이다. 국내 다수의 바이오기업에 생명과학 분야 바이오 공정 관련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 생명과학 운영본부는 독일 머크가 사업비 260억원을 전액 투자하는 사업이다. 1만141㎡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8천319㎡ 제조 및 부대시설을 내년 5월까지 짓게 된다.프랑스 기업 '생고뱅'은 송도 바이오클러스터에 첨단 바이오 공정 제조시설을 건립하기 위해 지난달 20일 인천경제청과 토지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생고뱅의 자회사 '생고뱅코리아'는 약 218억원을 투입해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1만3천293㎡ 규모의 제조시설을 내년 말까지 건립할 계획이다. 1665년 창업한 생고뱅은 세라믹 재료, 고성능 플라스틱 기술 분야 제품을 개발·생산해 생명과학, 항공, 자동차,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 공급하고 있다.인천경제청이 개청한 2003년 10월부터 올해 9월 말까지 송도국제도시 외국인직접투자(FDI) 누적액은 약 63억2천550만달러다. 영종국제도시(약 47억3천870만달러)와 청라국제도시(7억6천680만달러)보다 많다. 송도 외투기업은 2011년 36개에서 2018년 63개로 증가했다.인천경제청 신성장산업유치과 '외투기업 유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일본·미국·독일·프랑스 외에 홍콩(송도애니파크·제이엠테크노·엔바이로테크놀러지 등), 스위스(규델리니어텍), 핀란드(파이박스텔레메트리), 네덜란드(얀센백신), 벨기에(오덱), 싱가포르(비알씨 등) 등 다양한 국적의 해외 법인·기업이 송도에 투자했다. 이들 외투기업의 사업 분야도 바이오, 반도체, 자동차부품, LED, 로봇 등 다양하다. 인천경제청은 최근 스위스 취리히에서 로슈, 노바티스 등 바이오기업을 대상으로 인천경제자유구역 투자 환경을 홍보하는 등 외투기업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생고뱅코리아 관계자들이 지난달 20일 첨단 바이오 공정 제조시설 건립을 위한 토지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아마다코리아'의 인천테크니컬센터 전경.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지난 12일 열린 미국 오티스의 엘리베이터 R&D센터 및 첨단생산시설 착공식 모습.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2018-10-28 목동훈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40]연평도 꽃게잡이

조기 인기에 밀려 그냥 버리던 찬밥1960년대 들어서 '대표수산물' 등극장비 열악했지만 작은배 가득 채워中불법조업 등 남획탓 어획량 급감'어민들 주 수입원' 자원 보호 시급국내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꽃게'를 검색하면 관련 검색어에 인천 옹진군 '연평도'가 나온다. 연평도를 검색하면 '연평도 꽃게'가 관련 검색어로 뜬다.서해안에서 주로 잡히는 꽃게는 인천의 대표적인 수산물이다. 특히 인천 앞바다 서해 5도 중 한 곳인 연평도는 꽃게 산지로 유명하다. 인천 소래포구 어시장이나 인천종합어시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은 꽃게가 한가득 담겨 있는 통과 그 앞에 적혀 있는 '연평도산'이라는 팻말이다.꽃게는 봄철과 가을철에 잡힌다. 봄철에는 알이 가득 배 있는 암꽃게가 주로 잡히며 암꽃게는 주로 게장을 담가 먹는다. 한정식에서 빠지지 않는 간장게장은 암꽃게로 만든다. 가을철에는 찜이나 탕으로 해먹는 숫꽃게가 살이 많고 맛도 좋다. 여름철은 꽃게 산란을 위해 금어기로 지정돼 있다. 가을철 꽃게잡이는 8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이뤄진다. 수온이 내려가면 꽃게가 자취를 감추기 때문에 어민들은 어획 활동을 하지 않는다.지난 11일 새벽 5시 40분 연평도 당섬선착장. 해가 뜨기 직전이라 어둠이 가시지 않았지만, 꽃게잡이 어선들이 켜 놓은 조명들이 선착장 주변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전날 풍랑주의보로 출항하지 못한 어선들이 만선을 기대하며 출항 준비에 한창이었다. 9.8t급 자망 어선인 '정복호'도 출항 준비를 마쳤다. 6시가 조금 지나자 20여 척의 어선이 일제히 바다를 향해 키를 돌렸다. 정복호는 연평도 남서쪽 해역으로 향했다.정복호 유호봉(60) 선장은 1990년대 초부터 연평도에서 꽃게잡이를 했다. 중간에 강원도나 전라도 앞바다에서 일을 하긴 했지만, 대부분 연평도에서 꽃게잡이 어선을 탔다. 자망 어선은 선원 6명과 선장 1명이 한 조로 일한다. 너비 5m 길이 500m의 직사각형 모양의 그물을 바다에 수직으로 펼쳐놓은 뒤 며칠 있다가 걷어 올리는 방식으로 조업한다. 그물과 연결된 굵은 밧줄을 끌어올리는 것은 선박에 설치된 장비를 이용하지만, 그물과 밧줄을 끊어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그물을 연결해 바다로 던져 넣는 작업은 선원들이 역할을 나눠 진행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선원 간 호흡이 어긋나면 밧줄이 선원들을 덮치는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작업 과정에서 선장은 선원들에게 고함을 지르며 지시하기도 했다. 유호봉 선장은 "바다 위에서는 항상 긴장해야 한다. 작업 과정에서 말을 험하게 하는 이유도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이날 오전 6시 50분. 40분 이상을 내달려 도착한 바다에서 첫 그물을 끌어올렸다. 꽃게는 그물에 듬성듬성 매달려 있었다. 그물을 20~30분간 끌어올렸으나 그물 한가득 꽃게가 매달린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선원들은 한목소리로 "꽃게잡이가 예년만 못하다"고 했다. 점점 꽃게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어선의 불법 조업이 꽃게잡이 어획에 악영향을 미쳤다. 그때보다 중국어선이 많이 줄었지만 꽃게 어획량은 여전히 늘어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유호봉 선장은 2008년 4월 중국어선을 직접 나포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우리 어선 30여 척이 연평도 앞바다까지 내려와 있는 중국어선을 직접 나포한 것이다. 어선 4척이 한 조가 돼 중국어선을 쫓았다. 직접 중국어선에 올라가 선원들을 붙잡고 해양경찰에 인계했다. 그는 "당시 중국어선이 한 번 지나간 자리는 고기 씨가 마를 정도로 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자원 보호를 위한 조치를 더 강하게 취해야 한다"며 "이곳에서 살게 될 후손들을 위해서도 지금보다는 더 자원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꽃게가 인천의 대표 수산물이 된 건 오래되지 않았다. 인천에서 꽃게를 잡기 시작한 것은 불과 50여 년 전이라는 게 연평도 어민들 이야기다. 이전까지만 해도 연평도의 대표 어종은 '조기'였다. '조기 파시'라고 불릴 정도로 전국의 어선들이 봄철이면 연평도로 몰려들었다. 한때 1천여 척이 넘기도 했다. 이때에는 꽃게가 그물에 걸려 올라와도 모두 버렸다고 한다. 어민들은 조기로 큰돈을 벌어들였고, 이 때문에 술집과 기생집 등도 연평도에 넘쳐났다.경향신문은 1962년 5월 14일자 기사에서 "조기잡이의 '골든타임'을 바로 눈앞에 두고 연평도를 중심으로 한 어장 일대는 어선 1천200여 척과 어민 1만여 명이 숨가쁜 준비 태세 속에서 조기잡이 '붐'을 이루며 북적이고 있다"고 보도했다.연평도 주민 강유선(75·여)씨는 "꽃게잡이를 시작한 것은 60년대 중반 이후로 기억한다"며 "연평도에서 조기를 잡기 힘들자 어민들이 2년 정도는 흑산도 등 남해로 내려가 조기잡이를 하기도 했다. 이들이 연평도로 다시 올라와 꽃게잡이를 시작한 것이 60년대 중후반 정도"라고 말했다.강씨는 당시 잡았던 꽃게를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져다가 팔았다고 한다. 배를 10시간가량 타고 인천항에 도착한 뒤 경인전철을 타고 노량진으로 향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가는 도중에 상한 꽃게는 중간에 버리기도 했다고 한다. 강씨는 "조기잡이 때에는 중국과 일본 상인들이 연평도에 와서 조기를 샀다. 무역이 이뤄진 것"이라며 "하지만 꽃게잡이를 시작했을 때에는 판로가 없어 노량진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인천에 어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라고 했다.1960년대만 하더라도 어선의 규모는 작았다. 어획 방식은 자망 방식으로 지금과 비슷하지만, 장비가 열악해 그물을 끌어올리는 것은 모두 선원들의 몫이었다. 이 때문에 그물의 크기도 100m 정도로 짧았고, 걷어 올릴 수 있는 그물의 수도 적었다.연평도에서 30년 넘게 배를 탄 노영철(68)씨는 "예전에는 꽃게가 그물에 한가득 걸리는 날이 많았다"며 "처음에는 참나무로 된 닻을 만들어 조업을 하기도 했는데, 배가 작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차재득(78)씨는 "점점 꽃게 먹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을 느낀다. 단적으로 예전보다 바다에 수초가 줄었다"면서 "꽃게의 먹이가 되는 작은 물고기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남획이 불러온 결과"라고 강조했다.서해수산연구소에 따르면 인천 해역 꽃게 어획량은 1990년 처음 해당 통계를 집계한 이래 2009년 1만 4천675t을 기록했으나 점차 줄어 2015년 1만t, 2017년 5천723t 등 계속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꽃게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연평도 어민들의 주 수입원은 꽃게다. 당섬선착장 인근과 마을 곳곳에서는 주민들이 모여 꽃게 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물과 꽃게를 분리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1척의 배에서 잡아온 꽃게를 그물에서 떼어내는 데 10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한다.글·사진/정운기자 jw33@kyeongin.com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지난 11일 정복호 선원들이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꽃게 잡이를 하고 있는 모습. 연평도 인근 해역은 국내 대표 꽃게 산지로 이름이 나 있으며 꽃게는 연평도 어민들의 주 수입원이기도 하다. /경인일보DB정복호 유호봉 선장. /경인일보DB연평도 당섬선착장 인근에서 꽃게를 분류하는 모습. /경인일보DB1950년대 연평도의 모습. 조기잡이를 위해 전국에서 어선들이 몰려들었다. 당시에는 꽃게가 그물에 걸려 올라와도 버렸다고 한다. /강유선씨 제공연평도 앞 바다에서 잡아 올린 꽃게를 그물과 분리하는 모습. 분리 작업은 선원들이 아닌 연평도 주민들이 맡아서 한다. /경인일보DB소래포구 어시장에서 꽃게를 판매하는 모습. /경인일보DB

2018-10-24 정운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39]인천항 향토하역사-우련통운

73년간 인천항과 함께 자라온 인천의 향토 하역사이자 종합물류기업인 우련통운은 '인천우체국 사서함 1호'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우편사서함이란 우체국에서 개인이 직접 우편물을 찾아갈 수 있는 전용 수취함이다. 우체국에 가야 볼 수 있다. 인천항 인근에 있는 우련통운(주)는 인천우체국에서 사서함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신청해 사서함 1호의 주인이 됐다. 우련통운은 1923년 신축한 인천우체국이 2003년 중구에서 연수구로 이전하고 나서도 사서함 1호를 계속 사용 중이다. 인천우체국에는 1978년부터 사용한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우련통운의 전신인 청구양행이 1945년 설립된 것을 고려하면 그 이전부터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서함 이용 초기에는 관공서 공문, 세금계산서 등 각종 서류와 공문이 하루 100통 이상 도착해 총무과 전담 직원이 매일 우체국을 방문해 우편물을 찾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간단한 서류 정도만 받을 뿐이다. 우련통운 윤기림 대표이사는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우편사서함을 왜 유지하는지 의아해 하겠지만, 당시 최첨단 우편서비스를 가장 먼저 채택했다는 상징이 크다"며 "우련통운은 인천의 향토 기업으로서 항상 도전하고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가고자 노력하는 회사"라고 설명했다.1945년 무역회사로 첫발 디딘 '우체국사서함 1호'세계적선사 대리점·육상운송 진출하며 기틀 닦아TOC 도입으로 내항 2부두 맡아 사료 중심 급성장최근 잇단 위기, 소금 제조 등 사업다각화로 극복■ 인천~중국 간 무역업에서 시작우련통운은 1945년 항만하역사업을 시작으로 현재는 화물운송, 보관, 제3자물류 등 인천항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업을 도맡았다. 지금은 내항통합으로 항만 하역기능이 위축됐지만, 인천 내항 2부두의 운영사이기도 했다. 운송사업 분야에서는 우련육운, 우련TLS(주)를, 물류사업 분야에서는 우련국제물류(주), 우련평택물류(주), 인천콜드프라자(주), 제조업 솔트원(주) 등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 연혁 참조우련통운의 모태 기업인 '청구양행'은 인천항 인근의 작은 무역 회사로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됐던 1945년 설립된 회사로, 인천과 중국 상하이(上海) 간 육상 운송에 주력했다. 당시 인천항은 긴급 구호품과 산업물품을 조달하는 국가 제1의 수입항이었다. 수도권을 배후에 두고 있는 인천항 인근에는 크고 작은 무역 회사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천항의 인프라는 열악했다. 항만 시설이 한국전쟁으로 많이 파괴되면서 국가 재건에 필요한 원자재 수입은 부산항에 쏠리기 시작했다. 청구양행은 수출·수입 물량이 없는 상황에서 무역업만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하역업에 뛰어들었다. 1958년 '우련통운'은 그렇게 탄생했다.야심 차게 하역업을 시작했지만, 군소 하역업체가 난립하기 시작하면서 경쟁은 점점 심해졌다. 게다가 1950년대 후반 외부 원조가 줄면서 물동량도 감소하자 하역업체들의 경영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우련통운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영업 활동을 시작했다. 1958년 American President Line과 Lykes Brothers Steamship Co. Line 등 당시 세계적인 선사들의 총대리점을 맡았다. 1959년에는 당시 국내 최대 해운사였던 대한해운공사 인천지점의 하역권을 유치했다. 우련통운은 격동기의 어렵던 시절을 극복하고 본격적인 성장기에 올랐다.■ 다양한 사업 확장으로 제2의 전성기우련통운이 안정적인 성장의 기틀을 잡게 된 것은 배인복 회장이 작고한 후 1976년 동생인 배인흥 현 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다. 당시 우련통운은 전문 하역회사로서의 역량은 충분했으나 추가적인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체 상태에 놓여 있었다. 최신 운송 서비스를 원하는 화주들이 많았는데, 배인흥 대표는 이를 반영해 '우련육운'이라는 합자회사를 설립(1978년)했다. 육상 운송 사업에 진출한 것이다. 1999년 부두운영회사제(TOC)가 도입되면서 인천 내항 2부두 운영 주체가 된 것은 우련통운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 큰 계기가 됐다. 2002년에는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남부에 있는 항구 도시 '잉커우(營口)시' 항무국(항만청)과 협력해 카페리 선사인 범영훼리를 설립해 선박 운송, 컨테이너 하역업에도 진출했다. 우련통운은 주 하역 물동량 가운데 사료부원료가 50%, 잡화와 철강 등 나머지가 50%였을 정도로 산물 하역에 강점이 있었다. 우련통운은 2003년 국내 최대 사료부원료 전용 보관 창고(1만3천630㎡)를 완공하기도 했다. 인천항만물류협회와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우련통운은 2006년 물동량 677만t에 매출액 359억원을 달성하는 등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동력으로 인천북항다목적부두(주), (주)INTC에 지분 참여를 하고, 평택항 부두 시설 건설에 참여하는 등 점차 사세를 넓혔다. 매일경제 1969년 4월 26일자 '인명피해 월 1건꼴 하역장비 모두 낡아'라는 제하의 기사를 보면 당시 인천지방해운국에 등록된 하역회사는 우련통운, 선광공사 등 16개 회사에 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향토 하역사들이 계속 무너졌지만, 우련통운은 지역 사회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이익 일부를 재환원하면서 꾸준히 사업을 이끌어 나갔다. ■ 인천 내항 통합 위기를 또 다른 기회로우련통운은 2003년 평택항에 진출하는 한편 인천에서도 꾸준히 장비 임대, 물류 대행, 운송 등 물류 전반에 걸쳐 사업을 확대했다. 2011년에는 저온 화물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인 콜드프라자까지 인수했다.70여 년 인천항 터줏대감으로 계속해 성장할 것만 같았던 우련통운은 인천 내항 통합으로 최근 위기를 맞았다. 전용부두였던 내항 2부두가 통합되면서 연간 물동량과 매출액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2013년에 진출한 경인항 컨테이너터미널 조업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우련통운은 이러한 위기를 '사람 우선 경영'으로 극복하고 있다. 그간 하역 사업이 위축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지난 70년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한 적이 없다고 한다. 우련통운 유성재 상무는 "우련통운에게 사람은 100년 장수기업을 향해가는 기반"이라며 "'인화단결'이라는 사훈을 중심으로 노사 간 상생을 중시해 임직원과 지역사회에 보답하는 기업 운영 원칙을 유지하려고 하고, 실제로 올해 고용을 늘리면서 사업 다각화를 함께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우련통운은 현재 카페리 컨테이너 하역을 중심으로 평택항 하역, 물류·운송업, 소금 제조업(솔트원) 등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 개장 예정인 신국제여객터미널의 카페리 하역 작업 현대화사업도 진행 중이다.우련통운 윤기림 대표이사는 "인천항은 우련통운과 임직원에게는 삶의 터전이며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소중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또 "신항만의 신속한 추가 개발, 항만 배후부지 개발에 대한 재정 투입 등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우련통운을 포함한 향토기업들이 인천항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받았으면 한다"며 "인천항은 무엇보다 남북 화해 정국에 따라 남북경협의 최대 수혜지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는 만큼 관계기관과 항만업계 주도의 발 빠른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1980년대 우련통운 하역작업장에서 직원들이 화물을 옮기고 있는 모습. /우련통운 제공우련통운이 오랜 기간 운영해왔던 인천 내항 2부두 전경. /우련통운 제공

2018-10-17 윤설아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38]인천항 향토하역사-영진공사

초기 미군 물자 위주에서 일반분야로 사업 넓혀1972년 사채동결 위기, 바레인 진출하면서 극복한중수교 이후 부두 직접 조성하며 교역에 대비 인천항과 함께 성장한 (주)영진공사가 어느덧 환갑을 앞두게 됐다. 1961년 인천의 향토 하역사로 출발한 영진공사는 대한민국 관문항인 인천항을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인천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다.영진공사는 화물 하역부터 운송과 보관에 이르기까지 물류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인천항 최초로 인천 남항에 민간투자 부두를 만들어 체선·체화 방지에 이바지하고, 비교적 최근에 개장한 인천 북항 철재부두 주(主)하역사로 선정돼 세계적 수준의 고객 중심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동의 관문인 바레인에 진출해 공항·항만 운용 능력을 인정받은 영진공사는 '1등 서비스가 아니면 시작하지 않겠다'는 기업 철학으로 21세기 물류산업을 대표하는 글로벌 종합 물류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영진공사 이강신 회장은 "열린 시각으로 시대적 변화에 주목하면서 과감한 도전과 의지로 고객과 함께하는 종합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아낌없는 성원에 감사하고 있다"며 "고객 중심의 21세기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미군 부대 군수물자 하역으로 출발2016년 12월 이기상 전 영진공사 회장이 타계하자 항만업계를 비롯한 지역사회 각계 인사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그는 인천항발전협의회 초대 회장, 인천항만공사 초대 항만위원장, 인천항만물류협회 회장 등을 맡으면서 인천항 발전에 이바지했다. 인천시의회 초대 의장,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회장, 인천시 야구협회 회장, 인천시 체육회 부회장 등 인천 정계와 사회단체, 체육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했다. "항만은 물론 인천의 큰 어른이었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대학 동기(연세대 56학번)이기도 하다.영진공사 초대 회장이자 창업주인 그의 형(兄) 고(故) 이기성 전 회장 역시 인천경제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1985년부터 1993년까지 인천상공회의소 회장을 내리 세 번 연임하고, 인천항만하역협회 인천지역회장을 지내는 등 활발한 상공 활동으로 인천경제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영진공사를 이끌고 있는 그의 아들 이강신 회장도 2015년부터 인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다.영진공사는 1961년 4월 15일 문을 열었다. 고(故) 이기성, 이기상 등 형제가 창업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수도권 지역 주한미군의 군수물자가 대부분 인천항을 통해 반입되던 상황에서, 미군부대 측 가까운 인사 소개로 하역업체 문을 열게 됐다. 인천기계공고 교사였던 이기성 전 회장이 가족 중에 가장 똑똑해 대표이사를 맡았다고 한다. 본사 위치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찾기 어렵지만, 1966년 한 신문에 실렸던 영진공사 광고를 보면 본사 주소가 인천시 사동 7번지(현재 신포사거리 인근)로 돼 있다. 서울 중구 무교동 25번지 원창빌딩 608호에 서울사무소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현재 영진공사 본사는 인천 중구 신흥사거리 인근에 있다. 창업 초기 주로 미군 군수물자를 하역하던 영진공사는 이후 일반하역 분야까지 진출하면서 사세를 확장했다. → 연혁 참조저온창고 신축·북항 철재부두 주 하역사 선정도철도활용 운송등 업역확장 '종합물류기업' 도약전·현직 회장, 경제·체육·사회단체 활동도 앞장 # 바레인 진출 이후 탄탄대로영진공사는 1972년 정부의 '사채 동결 조치'로 경영이 크게 어려워졌다고 한다. 영진공사 김구환 전무이사는 "그때 당시 고리대금 업자가 연간 40~50%의 이자를 받고 사채를 빌려줬는데, 정부의 사채 동결 조치로 최대 16% 정도의 이자밖에 받지 못하게 됐다"며 "때문에 사채를 주려는 업자들이 크게 줄면서 돈을 빌릴 곳이 없게 돼 월급도 제대로 못 줄 정도로 자금난에 빠진 적이 있었다"고 했다.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영진공사는 1977년 바레인에 진출하게 된다. 바레인 진출은 회사 경영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영진공사는 중동 진출 붐이 일던 1970년대 중반 주한 미군 계약관 출신의 한 인사를 영입했다. 그는 중동 진출 모색을 위해 찾은 바레인 공항에서 항만 운영사를 모집한다는 신문 공고를 우연히 접했다. 영진공사는 이를 계기로 입찰에 참여해 바레인 항만의 화물 하역 사업권을 따낼 수 있었다. 당시 영진공사는 바레인에 첨단 항만하역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했다. 영진공사는 이를 바탕으로 같은 해 바레인 공항의 지상조업 계약도 맺었다. 영진공사는 걸프전 때도 차질 없이 하역업을 유지하는 등 바레인 정부와 신뢰를 쌓으며 30년 넘게 항만 하역을 지속했다. 바레인 공항 지상조업의 경우엔 현재까지도 담당하고 있다. 바레인 진출과 인천항 하역 물량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영진공사는 1980년대 '인천의 삼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커졌다. 컨테이너 수리업, 해사 채취업, 건설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고, 평택항 등에도 진출했다. IMF 때 문을 닫긴 했지만, 한때 상호신용금고도 운영했다.# 종합물류기업으로 성장 다짐영진공사는 1992년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하자 대(對)중국 교역 증가에 대비했다. 1995년 컨테이너 보세장치장을 개설하고, 이듬해에는 인천 남항에 5천t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물양장을 축조했다. 당시 하역사가 물양장 등 부두를 직접 조성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영진공사는 1999년 인천 내항 8부두 운영주식회사를 설립했다. 2004년 인천 남항 물양장을 1만t급 이상의 선박 접안이 가능한 부두로 확장하고, 2005년 저온창고를 신축하는 등 계속해서 사업을 확장했다. 평택항 등 진출 범위도 넓혀 나갔다.영진공사는 아시아횡단철도의 북방철도 루트인 중국 횡단철도(TCR)와 몽골리아 횡단철도(TMGR), 시베리안 횡단철도(TSR) 등을 통한 수송서비스와 3자 물류 서비스, 국제복합 물류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주)영진 GLS를 비롯해 영진탱크터미날(주), (주)영진운수, 한중물류(주), 청도중한국제물류유한공사, (주)영진시포트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최근 인천 내항 부두운영사(TOC) 통합으로 하역 기능이 축소되긴 했지만, 영진공사는 물류 관련 업역을 넓혀가면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대표하는 종합물류기업으로의 성장을 다짐하고 있다. 김승회 영진공사 대표이사는 "50여 년의 전통과 전문성으로 고객이 감동하고 만족하는 종합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21세기 물류산업을 선도하는 종합물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했다. 글/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창업주 故 이기성 회장. /영진공사 제공1996년 남항민자부두 준공 기념식. /영진공사 제공바레인 공항 조업. /영진공사 제공고철 하역 작업. /영진공사 제공해사채취 작업. /영진공사 제공

2018-10-10 이현준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37]인천항 향토하역사-선광

조선·광복서딴 사명… 창고에서 보관·운송 업무로 첫발1980년대 중동 건설 붐때 해외 하역 작업 통해 급속 성장발전소·교량 자재 등 운송 도맡아·양곡 사일로 현대화도2005년에 컨 진출… 2015년엔 야드 자동화 컨터미널 개장1883년 개항한 인천항이 지난해 304만 8천TEU의 컨테이너 물동량을 처리하며 전 세계 40위권 항만으로 성장한 데에는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한 향토 하역사들의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특히 향토하역사 가운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선광(鮮光)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광은 인천항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천 신항에서 선광신컨테이너터미널(SNCT)을 운영하며 인천항 컨테이너 물동량의 3분의 1 가까이 처리하고 있다. 인천항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는 평가다. SNCT는 지난해 82만TEU에 달하는 물동량을 처리했다. 이런 선광도 1948년 창업 초기에는 작은 창고에 불과했다. → 연혁 참조#선광의 태동선광은 인천 신항을 중심으로 한 컨테이너 하역사업과 평택·군산 등 지역에서의 항만 하역사업, 중량물 운송, 보관 물류, 사일로 사업 등을 활발히 하고 있다. 선광문화재단 등을 통한 사회공헌사업도 충실히 진행하고 있다. 선광은 해방 이후 인천항의 세관 창고를 기반으로 보관과 운송 사업을 시작하면서 태동했다. 70년 전인 1948년 4월이다. 창업주인 고(故) 심명구 전 회장은 선광공사라는 이름으로 인천에서 세관 창고를 임대받아 물건을 보관하고, 내주는 일을 시작했다. 심명구 전 회장의 형제는 모두 5명으로, 형님 고(故) 심봉구 씨와 세관장을 역임한 첫째 동생 고(故) 심영구 씨, 서울대 경영대학장을 역임한 고(故) 심병구 씨, 지역에서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심정구 명예회장(87) 등이다.선광이라는 사명은 '조선'과 '광복' 두 단어에서 각각 선(鮮)과 광(光)을 가져와 정했다. 당시는 국민들 사이에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국호보다는 조선(朝鮮)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시기였다. 창립 당시 사무실은 현재의 신포동 주민센터 인근의 작은 공간이었다. 당시 세관으로부터 임대를 받은 현재 중부경찰서 인근 창고는 선광의 모체가 됐다. 선광은 사세가 확장하면서 사업 영역을 통관 사업까지 넓혀 개인 회사에서 1961년에 법인 사업자로 전환했다. 현재 선광문화재단과 인근의 건물을 사무실로 쓰다가 1985년 양곡 사일로를 건설하며 현재의 중구 항동7가 자리로 이전했다.선광은 현재 고(故) 심명구 회장의 장남인 심장식 씨가 회장직을, 차남인 심충식 씨가 부회장을 맡아 이끌고 있다. 특히 심장식 회장은 IMF 외환위기 때 경인리스와 국민리스 등을 인수, 투자금융 전문 업체인 화인파트너스를 운영하면서 금융 분야까지 사업 영역을 다양화하는 등 회사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도약과 성장선광은 1980년대 초반 리비아 진출을 선광의 도약기로 보고 있다. 중동 국가들이 오일달러를 이용해 대규모 토목 및 건설공사를 진행해 대한민국에 중동 건설 붐이 일던 시기였다. 선광은 리비아 브레가항, 미스라타항, 벵가지항만 등에 하역노무자와 관리직 등 450여 명 규모의 국내 직원을 보내 해외항만 하역 작업에 나섰다. 이후 약 10여 년간 건설 기자재 등 하역작업을 통해 연간 2천만 달러의 외화를 획득하는 등 선광은 급속하게 성장했다. 중량물 운송사업 진출도 비슷한 시기에 이뤄졌다. 경제 발전을 최우선시하던 3·4공화국 시절 현대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발전소, 교량 건설자재 등 대형 설비를 수입해 설치하려는 국내 수요가 많았다. 선광은 이런 수요를 흡수하고자 했다. 한강 철교 자재와 인천화력발전소 시설 등도 선광이 운송했다.1970년대에 인천항 제2선거 부두시설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2선거 이전까지 항만 시설이 부족해 외항에서 하역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역을 위해선 부선이 필요했는데, 내항이 갖춰지면서 부선이 활용되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선광은 이들 부선을 이용해 해사 채취 사업을 시작했다. 선광은 인천항에 양곡 전용부두가 생기고 양곡 수입이 급증하자 1985년 내항과 컨베이어 벨트로 연결하는 사일로를 건설해 운영했다. 재래식으로 이뤄지던 양곡 하역은 이 사일로 건설로 대폭 현대화됐다. 이 사일로는 선광이 일반 화물 하역 사업에 국한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에 진출해 안정적인 이익을 올리는 탄탄한 기반이자 선광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1996년 해양수산부 출범 이후 1997년 부산항과 동시에 인천항에 부두운영회사제(TOC)가 도입되며 선광은 내항의 자동차 전용부두인 5부두 운영을 시작한다.IMF 외환위기 후 많은 기업이 안정적이고 소극적인 경영 전략을 펼 때 선광은 오히려 적극적인 투자를 했다. 인천항의 고질적 체선 해소를 위해 산업원자재 종합 처리 항만으로 건설된 인천 북항에 다목적부두를 건설 투자해 운영했다.인천을 기반으로 성장한 선광은 군산과 평택 등 국내 다른 항만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선광은 인천항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군산항에 양곡 하역 및 보관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 2005년 군산항 6부두에 양곡 터미널을 개장했다. 이 양곡 터미널의 일시 보관 능력은 50만t 규모로 국내 최대 수준이라고 한다. 선광은 평택항에도 진출했다. 2010년 서부두에서 한일시멘트의 슬래그 하역작업을 시작했고, 2018년엔 현대글로비스와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자동차 전용부두를 개장해 인천항에 이어 평택항에서도 전문적인 자동차 하역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선광의 미래컨테이너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로 한 것도 중요한 결정이었다. 전 세계적인 컨테이너 물동량 증가와 일반화물의 컨테이너화에 따라 컨테이너터미널의 중요성은 높아졌다. 우선 2005년 인천 내항과 인접한 남항에 선광인천컨테이너터미널(SICT)을 개장해 컨테이너 터미널 사업에 진출했다.SICT 개장 후 채 10년이 지나지 않아서 중국 등 주 교역 상대국과의 급격한 교역량 증가와 선박 대형화로 컨테이너 항만시설의 대형화와 현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역 선두 하역 기업으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있던 선광은 인천 신항 운영자 참여를 결심하고 인천항 최초로 야드 자동화가 실현되는 컨테이너터미널을 계획했다. 선광은 2010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약 3천억 원의 대규모 사업비를 투입해 2015년 6월 마침내 선광신컨테이너터미널(SNCT)을 개장했다. SNCT는 인천을 찾는 국내외 주요 인사들이 발전된 인천항의 현재와 미래를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거치는 장소가 됐다.글로벌 기업들과 무한경쟁해온 물류기업 선광은 그동안 동북아 물류 허브가 되기 위해 유수의 항만들과 경쟁해 온 인천항과 함께 성장해왔다. 심정구 명예회장은 "선광은 인천에 터를 잡고 인천항과 함께 70년 동안 꾸준히 성장하며 인천에 많은 신세를 졌다"며 "앞으로도 인천의 성장에 보탬이 되고 인천시민의 사랑을 꾸준히 받을 수 있도록 성실히 역할을 해 나아가겠다"고 말했다.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1969년 2월10일 인천화력발전소 1호기 트랜스포머 부선 운송작업.1985년 준공 당시 사일로.1948년 작은 창고로 시작한 향토 하역사 선광은 70년이 지난 현재 인천항 컨테이너 물동량의 3분의 1 가까이를 처리하고 있는 하역사이자 종합 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사진은 선광이 인천 신항에서 운영하고 있는 선광신컨테이너터미널(SNCT) 전경. /선광 제공

2018-10-03 김성호

[zoom in 송도]10월9일 송도국제마라톤대회

인천대 송도캠퍼스 북2문·동문서 '스타트' 올해 출발·도착점 변경 '주의'컨벤시아대로 왕복뒤 외곽으로 빠져… 대부분 직선주로 기록 경신 유리국제 인증 '하프' 달빛축제공원주변 반환점 '풀코스' 남동산단까지 질주투모로우시티·동북아무역센터·G타워등 도시 발전상 직접 체험 기회도전국 마라토너와 인천시민의 축제 '인천송도국제마라톤대회'가 한글날인 10월 9일 오전 9시 송도국제도시에서 열린다. 2010년 첫 대회를 열어 올해 9회째를 맞은 송도국제마라톤대회는 국내외 마라토너와 인천시민이 참여하는 스포츠 축제로 성장했다. 바이오·MICE·교육·연구 등 첨단지식서비스 산업의 글로벌 거점이자 대한민국 1호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송도국제도시. 송도 '빌딩 숲'을 달리며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행사가 바로 송도국제마라톤대회다.송도의 발전상을 직접 보는 기회도 된다. 국내외 엘리트 선수, 전국 마라톤 동호회 회원, 기업·기관 임직원, 일반시민, 풀, 하프, 10㎞, 5㎞ 등 참가 유형과 코스도 다양하다.2018 송도국제마라톤대회는 10월 9일 오전 9시 '인천대학교 송도캠퍼스'에서 시작한다. 작년까지는 송도 센트럴파크 부근이 출발·도착점이었다. 이 때문에 행사장을 잘못 찾아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옷을 갈아입거나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푸는 시간을 고려해 오전 8시까지 인천대 송도캠퍼스 운동장 쪽으로 오면 된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참가자는 인천대 송도캠퍼스 '동문(정문)' 또는 '남1문'이나 '남2문'으로 들어와 지하에 주차하면 된다. 대회 참가자 출발·도착 동선 관계로 '북1문'과 '북2문'으로는 차량이 진입할 수 없다. 참가자 수에 비해 주차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좋다.마라톤 동호회 등 단체 참가자들을 위한 부스는 운동장 트랙 일부와 축구장에 설치된다. 축구장 옆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뒤 중요 물품은 물품보관소(체육관 건물)에 맡기면 된다.출발은 인천대 송도캠퍼스와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사이 도로 '북2문' 인근에서 코스별로 이뤄진다. 엘리트, 풀, 하프, 10㎞, 5㎞ 순이다. 이 중 5㎞ 코스는 '북2문' 인근이 아닌 '동문(정문)' 쪽에서 출발한다. 올해 출발·도착점이 바뀌면서 코스에도 변화가 생겼다. 작년까지는 센트럴파크 주변 등 송도 1·3공구 둘레를 돌아 외곽으로 빠졌다면, 올해엔 '컨벤시아대로'를 왕복한 뒤 송도 외곽을 뛰게 된다. 풀 코스를 제외한 나머지 코스는 경사가 거의 없고 대부분 직선주로여서 안전하고 기록을 경신하기에 유리하다. 풀 코스도 바이오산업교(송도4교)를 오르내릴 때만 경사가 있다.일반인이 많이 참가하는 5㎞ 코스부터 살펴보자. 인천대 송도캠퍼스에서 출발해 컨벤시아교(송도2교) 인근까지 갔다가 다시 인천대 캠퍼스로 돌아오는 직선 코스다. 뛰다 보면 송도컨벤시아 인근 사거리에서 '투모로우시티'를 볼 수 있다. 송도국제업무지구 E6-1블록에 있는 복합시설물 '투모로우시티'는 지하 2층, 지상 6층, 연면적 4만8천㎡ 규모다. 2009년 7월 완공됐지만, 공사비 정산 관련 소송으로 2011년 운영이 중단됐다. 인천시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투모로우시티에 복합환승센터와 창업 지원 공간을 조성하는 등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인근에 위치한 송도컨벤시아는 올해 7월 2단계 시설이 완공돼 개관했으며, 그 일대는 국내 첫 '국제회의 복합지구'로 지정됐다. 송도컨벤시아 옆에 높게 솟은 빌딩은 송도의 핵심 랜드마크 '동북아무역센터'다. 지하 3층, 지상 68층, 높이 305m, 연면적 19만5천220㎡ 규모다. 대우인터내셔널, 포스코A&C, 호텔 등 많은 기업이 입주해 있다.10㎞ 코스는 5㎞ 코스를 뛴 뒤 인천대 송도캠퍼스 주변 도로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설계됐다.송도국제마라톤대회 하프는 국제육상연맹 인증 공인 코스다. 인천대 송도캠퍼스에서 출발해 '컨벤시아대로'를 왕복한 후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을 끼고 달빛축제공원 인근 반환점까지 달린다. 이후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인천대 송도캠퍼스를 거쳐 블루오션골프클럽(송도24호 공원 골프연습장) 인근까지 달린 뒤 유턴해 인천대 쪽으로 되돌아간다. 하프 코스 참가자 시야에는 송도 6공구 인공호수와 '아트센터 인천'(콘서트홀), 인천경제청과 GCF(녹색기후기금) 등이 입주해 있는 G타워가 들어온다. 아트센터 콘서트홀은 지하 2층, 지상 7층, 1천727석 규모로 올해 11월 중순 개관할 예정이다. 인천시와 인천경제청은 올가을 예정된 북한예술단 공연이 이곳 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리기를 희망하고 있다.풀 코스는 바이오산업교(송도4교)를 통해 남동국가산업단지 안까지 들어간다. 중소기업청사거리를 지나 300m 지점에 반환점이 있다. 다시 바이오산업교를 넘어 송도로 진입한 뒤에는 연세대 국제캠퍼스, 인천글로벌캠퍼스(해외 명문대 공동캠퍼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교육기관·바이오기업이 위치한 송도 5·7공구 내부를 돌아 나와 도착점인 인천대 송도캠퍼스로 달리게 된다.송도국제마라톤대회가 열리는 10월 9일 오전 8시 50분부터 11시까지 컨벤시아대로 등 대회 참가자들이 통과하는 일부 도로의 차량 통행이 제한된다. 인천송도마라톤조직위원회는 "컨벤시아대로 차선 일부를 코스로 사용하게 돼 주민들의 교통 불편이 예상된다"며 "송도1동 주민들은 송도국제교(송도1교), 송도2동 주민들은 아트센터교(송도3교)를 이용해달라"고 당부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송도 복합시설물 투모로우시티 일대 전경. 2018 인천송도국제마라톤대회 모든 코스는 인천대에서 출발해 투모로우시티가 있는 '컨벤시아대로' 구간을 지나게 설계됐다. / 경인일보DB

2018-09-30 목동훈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36]한국과 중국 바닷길 잇는 한중카페리(下)

웨이하이시, 항로개설후 인구20만→280만 성장'한러팡' 조성 쇼핑몰·식당·야시장 한국 판박이부산항에 밀려 어려움 겪던 수도권 관문 인천항'中 수출입 선점'통해 컨테이너 등 다변화 성공사드·금한령으로 찾아온 위기 '고급화'로 돌파 "웨이하이는 한국인들이 만든 도시입니다."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시에서 만난 위동항운 중국 측 관계자는 웨이하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인천과 웨이하이를 오가는 한중카페리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웨이하이에 고층 건물은 15층 규모의 '웨이하이 호텔' 하나밖에 없었다"며 "이마저도 한중카페리 개통으로 늘어나는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중카페리 개통 이후 한국 기업들의 진출이 이어지면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유통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지금의 웨이하이 모습을 만든 것은 한국인들"이라고 강조했다.지난 16일 찾은 웨이하이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의 한 도시를 보는 것 같았다. 인천~웨이하이 카페리가 내리는 '웨이하이 신국제여객터미널'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위고광장에 도착하자 곳곳에 한국어로 된 간판이 눈에 띄었다. 광장 중심에는 롯데백화점이 자리 잡고 있었고, 주변에는 우리나라 유명 커피 브랜드나 외식 업체가 줄지어 있었다. 위고광장에 위치한 주중 인천(IFEZ·인천경제자유구역) 경제무역대표처 고경욱(51) 부대표는 "한중카페리가 개설된 이후 웨이하이는 중국 산둥성의 물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웨이하이 시민들에게 한국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해준 고마운 나라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웨이하이시가 조성한 '한러팡(韓樂坊)'은 한국을 그대로 옮겨 놓은 모습이다. 쇼핑복합문화센터와 한인타운을 결합한 한러팡은 한국 화장품 판매장, 영화관, 한국식 야시장 등이 운영되고 있다. 한국상품전시교역센터라는 대형 쇼핑몰이 눈길을 끌었고, 골목마다 한국어로 쓴 간판이 넘쳐났다. 한러팡 입구에는 돌하르방과 장승 등이 놓여 있었고, 중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치맥' 가게가 곳곳에 있었다.심지어 국내 대형 중국 음식 프랜차이즈도 이곳에 진출해 있었다. 야시장이 운영되는 주말 밤이 되면 사람이 많아 길을 걸어가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한국상품전시교역센터에 들어서자 국내에서 생산한 과자와 생활용품, 화장품 등이 판매되는 가게가 줄지어 있었다. 이곳에서 화장품 판매장을 운영하는 왕리씨는 "사드 배치 등으로 한국에 대한 중국 내 감정이 나빠졌지만, 화장품 등 한국에서 생산된 물건에 대한 수요는 계속되고 있다"며 "일반 중국 제품보다 가격이 조금 높은 편이지만, 많은 중국인이 찾고 있다"고 했다.한국과 웨이하이는 매우 가까운 도시다. 웨이하이시에서 한국 공해까지 거리는 174㎞밖에 되지 않는다. 인천에서 강원도 춘천까지 정도의 거리로, 차를 타면 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산둥성에서 닭 우는 소리가 인천에서 들렸다'고 말할 정도였다.한중카페리가 개설되기 전인 1990년대 초만 해도 인구 20만 명의 어촌이었던 웨이하이는 인천과 뱃길이 열린 뒤 280만 명이 넘는 대도시로 급성장했다. 2015년에는 중국 내 쟁쟁한 도시들을 제치고 인천과 함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시범도시로 지정됐다.자그마한 어촌이었던 웨이하이는 한중카페리가 개설되고 대도시로 변신하기 시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국과 뱃길이 열리고 눈부신 성장을 이룬 웨이하이에는 한때 한국 기업이 1천800개, 교민 수가 6만명에 달했다. 인천연구원 김수한 연구위원은 "웨이하이가 성장할 수 있는 물꼬를 튼 것은 한중카페리"라며 "산둥성 내에서도 작은 도시에 불과했던 웨이하이가 대(對) 한국 교류에 거점으로서의 위상을 얻었다"고 했다. 2008년 중국에서 신노동법이 발효된 이후 인건비 상승으로 노동집약형 업종은 인건비가 싼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등지로 이전했다. 하지만 현재 700여 개 기업과 1만 8천여 명의 교민은 아직 웨이하이에서 살고 있다.한중카페리는 인천항 성장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수도권의 관문이지만, 부산에 밀려 항로 개설이 어려웠던 인천항이 대(對) 중국 수출입 중심 지역을 선점할 수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청운대 이상용 교수(글로벌경영학과)는 "1990년 이전에는 사실상 인천항에는 정기 항로가 없었다"며 "이 때문에 수도권 지역 공단에서 생산한 화물을 철도나 화물차로 부산까지 운송해야 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비용도 비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한중카페리가 생기고 나서 항차 수도 늘었고, 항로가 다변화됐다"고 덧붙였다. 현재 인천항의 정기 컨테이너 항로는 49개며, 이 가운데 중국을 오가는 항로는 23개다.한중카페리는 현재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3월 사드 한반도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금한령 이후 줄어든 여객 수는 예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항공 수송의 증가로 화물 수도 점차 감소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중카페리 발전을 위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 내부에서도 나온다. 유현재 위동해운 인천사무소장은 "신조선 건조 등 한중카페리를 고급화하는 것이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대책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과 중국의 발전을 이끌었던 한중카페리가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에 조성된 대형쇼핑몰 '한국보세교역센터' 일대 모습. 상가 곳곳마다 한국어로 쓰인 간판과 한국 화장품 판매장 등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쇼핑복합문화센터와 한인타운을 결합한 '한러팡' 일대에는 인삼, 장승 등의 조형물들이 있어 흡사 민속촌에 온 듯한 착각을 할 정도이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웨이하이시 위고광장에 위치한 주중 인천관 내부 모습.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1990년 9월 인천∼웨이하이 카페리 항로 개설 당시 웨이하이 부두의 모습. /위동항운 제공

2018-09-26 김주엽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35]한국과 중국 바닷길 잇는 한중카페리(上)

한중수교 체결보다 빠른 1990년에 열린 인천~웨이하이 항로 저렴한 가격에 비자 발급 장점, 초기 표구하기 1개월씩 걸려관광객 수요 항공기에 빼앗기면서 보따리상 비율 크게 늘어호텔같은 시설·공간… 최근들어 한국인 단체이용객 증가세인천공항에서 중국 산둥성(山東省) 웨이하이(威海)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남짓 걸린다. 하지만 인천항에서 한중카페리를 타면 14시간이나 소요된다. 누가 바다에서 그렇게 긴 시간을 허비할까 싶지만, 지난해에만 13만 6천605명이 한중카페리를 이용해 인천과 웨이하이를 오갔다.15일 오후 6시께 인천 내항 1부두. 길이 196m, 너비 27m 크기의 대형 카페리선 '뉴골든브릿지7호'(3만 1천t급)에 올랐다. 이 배는 한중카페리 가운데 처음으로 우리나라 기업인 현대미포조선에서 건조한 신조선(新造船)이다. 그동안 한중 노선에 투입된 카페리들은 중국에서 건조됐거나 중고인 선박이 대부분이다. 한중카페리선사 위동항운의 새 카페리선 뉴골든브릿지7호는 기존에 운영하던 2만 6천t급 카페리선 '뉴골든브릿지2호'보다 길이가 10m가량 길고, 너비도 3m 정도 넓다. 컨테이너도 2호보다 30TEU(1TEU는 길이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많은 325TEU를 실어 나를 수 있다.오후 7시가 되자 '두드루룽' 소리와 함께 선체 엔진이 돌았다. 갑판 위에 서자 상큼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배에 오른 승객들은 새로운 선박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선상에서 만난 위동항운 윤태정(56) 수석사무장은 1992년부터 한중카페리에서 근무한 베테랑이다. 그는 "1990년 인천과 웨이하이를 잇는 한중카페리가 처음 출항한 이후 승객 구성이 크게 3번 정도 바뀌었다"고 설명했다.한국과 중국의 서해 뱃길을 운항하는 한중카페리는 1990년 9월 15일 처음 운항했다. 한중 뱃길은 중국에 공산당 정부가 들어선 1949년 이후 완전히 단절된 상태였다. 당시 중국을 가려면 홍콩을 거쳐야 했다. 한중 수교(1992년)가 맺어지기 2년 전 최초의 여객 직항로인 '인천~웨이하이 카페리 항로'가 생겼다. 윤 사무장은 "비용도 싸고 비자를 미리 받지 않아도 돼 한국 관광객이 많이 몰렸다"며 "초창기에는 배표를 구하기 어려워 한 달씩 대기해야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한중카페리 한국인 승객은 중국 현지에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중국과의 하늘길도 열리면서 카페리를 이용하는 관광객이 점차 줄어들자, 그 빈자리를 채운 승객이 '보따리상'이다. 초기에는 한국 보따리상이 많았는데, 지금은 중국 보따리상이 더 많다는 게 윤 사무장의 설명이다. 이날 인천항을 출항한 뉴골든브릿지7호도 전체 승객 624명 가운데 중국 보따리상이 199명에 달했다.배가 출항하자마자 중국 보따리상들은 객실이나 복도, 계단 아래 등에서 자신이 산 면세품의 포장을 뜯어 가방에 담기 시작했다. 중국 세관은 1인당 가방 한 개(50㎏) 분량에 대해서만 관세를 면제하기 때문이다. 이를 초과하면 반입품을 빼앗거나 일반 화물보다 더 비싼 금액의 세금을 부과한다는 게 중국 보따리상들 얘기다.배가 출항한 지 1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선박 쓰레기를 모으는 선미에는 면세품 쇼핑백과 포장지를 담은 1ℓ 크기의 비닐 봉투 60여 개가 쌓였다. 중국인 보따리상 류웬차오(45)씨는 "카페리는 한국에서 산 물건을 재포장할 공간이 넓은 데다 휴대할 수 있는 수하물 무게가 많다. 보따리상 대부분이 시간이 오래 걸려도 한중카페리를 이용한다"고 말했다.최근에는 한국 단체관광객도 상당히 늘었다고 한다. 이날 뉴골든브릿지7호에 탄 조순학(67)씨는 1997년부터 한중카페리를 타고 중국을 여행했다. 이날 그와 함께 배에 탄 친구 5명도 한중카페리로 중국을 여행하다 만났다고 한다. 조씨는 "젊은 사람들이야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지만, 우리처럼 시간이 많은 사람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 배에서 편하게 있다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맥주 한잔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게 카페리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조씨를 만난 시간은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테이블에 둘러앉아 편의점에서 산 캔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그는 "선박 여행이 비행기보다 월등한 점은 역시 발 뻗고 편히 쉴 수 있다는 것"이라며 "2인 객실은 화장실과 욕실이 있어 호텔과 별 차이가 없다. 따뜻한 물로 샤워한 후 침대에 누우면 약간의 흔들림에 저절로 깊은 잠에 빠진다"고 말했다.인천은 예나 지금이나 중국 교역의 중심 도시다.인천 연수구 옥련동 '능허대공원'. 이 공원에서 옥련사거리 방면으로 조금만 걸으면 인천시 기념물 제8호 '능허대 터'가 나온다. 378년 삼국시대 백제 근초고왕이 중국과 교역할 때 사신들이 출발한 '나루터'다. 백제 사신들은 인천~덕적도~중국 산둥반도에 이르는 '등주항로'라는 해상 루트를 다녔다. 한중카페리 최초 항로(인천~웨이하이)와 비슷한 경로를 1천600여 년 전에도 이용한 셈이다.1883년 개항 이후 인천항과 중국과의 해상 교역이 다시 시작된다. 당시 인천항의 첫 국제정기항로는 상하이를 오가는 배였다. 인천시가 1983년 발간한 '인천개항 100년사'에 따르면 1883년 초부터 청국 상하이초상국(上海招商局)의 '난성(南陞)'호가 매달 1~2차례 상하이~인천을 정기 운항했다. 이 배는 이듬해인 1884년 10월 운항을 중단했지만, 청국 상하이초상국은 1888년 3월 '광제(廣濟)'호를 상하이~인천 항로에 다시 투입했다.한중 뱃길은 1990년 웨이하이와 연결되면서 다시 열렸다. 이후 1992년 인천∼톈진(天津) 등 여러 한중카페리 항로가 추가로 개설됐다. 현재 인천항에서만 단둥, 옌타이, 다롄, 스다오, 잉커우, 칭다오, 롄윈강, 친황다오 등 10개 항로에서 카페리가 운항 중이다. 평택·군산에서 중국을 오가는 카페리 항로는 6개다."25년 전 웨이하이에서 인천으로 오는 '황금가교'(골든브릿지)호의 기적 소리를 시작으로, 한중 간 새로운 우정의 항해가 시작됐다." 2015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 축사에서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연설한 내용 일부분이다. 이처럼 한중 간 인적·물적 왕래의 물꼬를 튼 위동항운 임직원들은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윤 사무장은 "인천과 산둥반도를 오가는 카페리를 3천 번 정도 탔다. 지난 28년 동안 한중 양국이 큰 이익을 거두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탰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이어 "최근 항공기 운항이 늘면서 카페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한중 뱃길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지난 15일 오후 인천항 제2국제여객터미널에서 승객들이 중국 산둥성(山東省) 웨이하이(威海)행 한중카페리 '뉴골든브릿지7호'에 승선하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인천항 갑문 통과 중인 뉴골든브릿지7호.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인천항제2국제여객터미널 출국장 보따리상.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뉴골든브릿지7호의 내부.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뉴골든브릿지7호 전경.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1990년 9월 한중 최초로 개설된 카페리 항로인 인천∼웨이하이 항로를 운항했던 골든브릿지호(사진)와 항로 개설 당시 인천에서 열린 기념행사. /위동항운 제공

2018-09-19 김주엽

[zoom in 송도]인천, 내년 국비확보·현안해결 시급한 송도사업은

글로벌캠퍼스에 외국 연구기관 유치비용 절반 42억 국비 요청GTX-B 예타조사 연내 통과·GCF Complex '국책사업' 추진인천시가 내년도 국비 확보와 현안 해결을 위해 인천지역 국회의원들과 정책간담회를 가진 데 이어 최근엔 더불어민주당과 예산정책협의회를 했다. 인천시는 인천 관련 사업비 2조 9천129억원을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해달라고 정부에 신청한 상태다. 국회와 정당에서 도움을 줘야 할 현안 사업도 많다. 인천시가 인천지역 국회의원들과 더불어민주당에 지원을 요청한 송도 관련 사업을 정리해봤다.■ 송도컨벤시아 2단계 임대료 72억원=송도컨벤시아 2단계 건립사업은 올해 7월 완료됐다. 1단계 시설 옆에 연면적 6만4천207㎡ 규모의 시설을 증축했다.이 사업은 BTL(임대형 민자사업) 방식으로 진행됐다. 민간사업시행자 '더송도컨벤시아(주)'가 건립하면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2038년까지 임차해 사용하게 돼 있다. 총 임차료는 2천891억원(20년, 국비·시비 50%씩)이다. 내년에는 국비 72억원, 시비 72억원이 필요하다.인천시는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지역지원계정'으로 국비를 지원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인천시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인천시는 ▲송도컨벤시아는 경제자유구역 활성화를 위한 시설인 점 ▲BTL은 정부에서 상환해야 할 부채적 성격으로 국가에 지급 의무가 있는 점 등을 강조하고 있다.■ 외국 교육연구기관 유치·설립을 위한 42억원=인천글로벌캠퍼스에는 한국뉴욕주립대, 한국조지메이슨대, 겐트대 글로벌캠퍼스 등 5개 대학이 입주해 있다.인천경제청은 미국 스탠퍼드대 스마트시티연구소, 영국 케임브리지대 의약연구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음악원을 추가로 유치하고자 지난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상태. 이들 기관이 인천글로벌캠퍼스에 들어와 개소·개교하려면 설립 준비비 등 내년에 총 84억원(국비·시비 42억원씩)이 있어야 한다. 또한 인천경제청은 인천글로벌캠퍼스 2단계 사업으로 2022년까지 세계 50위권 대학 5개교를 유치할 계획이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건립비 245억원=문화체육관광부는 송도국제업무단지 센트럴공원 내 약 2만㎡ 부지에 연면적 1만5천650㎡ 규모의 세계문자박물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총 사업비는 908억원이다. 2021년 개관 등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선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건립 공사는 내년 중반께 시작될 예정이다. 인천시는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내년도 정부 예산에 245억원을 반영해달라고 국회와 각 정당에 요청하고 있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B) 예타 통과 지원=GTX-B 노선은 인천과 서울에 신속하게 접근하도록 하는 핵심적인 광역교통체계다. 이 노선이 구축되면, 인천 송도와 서울 청량리 통행 시간이 100분대에서 20분대로 단축된다. 교통 편의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사업이다. GTX-B 노선은 2016년 6월 제3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반영됐으며, 지난해 8월 기재부는 이 노선을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사업으로 선정했다. 연내 GTX-B 노선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도록 지원해달라는 게 인천시의 건의사항이다.■ GCF(녹색기후기금) Complex 국책사업으로 추진=인천시는 송도 G타워 인근 약 1만8천500㎡ 부지에 지하 3층, 지상 33층, 연면적 9만㎡ 규모의 GCF Complex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 건물은 GCF 및 연관 국제기구, 국제인증기구, 금융기관, 기업을 집적화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플랫폼이다. 인천시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인천 송도를 녹색기후금융도시로 조성하겠다는 공약이 반영된 점, 독일과 덴마크 등 다른 나라도 국책사업으로 유엔 건물을 건립한 점을 강조하고 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8-09-16 목동훈

[zoom in 송도]'데카트론' 송도에 국내 최대 체험형 1호

축구·캠핑·등산등 45개 종목 4천여 상품 '다양'곳곳에 트랙·탁구대등 제품 테스트공간 마련국제 규격 풋살장·무료강의 스튜디오도 '눈길'유럽의 대표적인 스포츠레저용품 전문 브랜드 '데카트론'(Decathlon)이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한국 1호점을 열었다. 송도 복합쇼핑몰 '트리플스트리트'에 위치한 데카트론 송도점은 7천800㎡에 45개 종목 4천여 품목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체험형 매장이다. 송도점을 시작으로 국내에 2028년까지 49개 매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데카트론의 계획. 인천에 상륙한 데카트론 송도점을 둘러봤다.데카트론의 한국 첫 매장인 송도점은 3층 규모의 단일 매장이다. 1~2층은 스포츠레저용품 매장이고, 3층에는 국제 규격의 풋살장과 아담한 옥상정원이 있다. 매장 외부에는 스트리트바스켓볼(3대3 농구)을 즐길 수 있는 농구장, 스케이트보드 등을 탈 수 있는 스케이트존이 있다. 무료 이용이 가능한 개방형 시설이다.1~2층 매장은 축구, 농구, 캠핑, 등산, 자전거, 스쿠버 다이빙, 요가, 골프, 웨이트 트레이닝 등 스포츠레저 종목별로 상품이 진열돼 있다.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구조다. 데카트론은 매장 곳곳에 자사 제품을 테스트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이를테면 러닝과 트레킹 구역에는 각각 러닝 트랙, 트레킹 로드가 있다. 간이 배드민턴장과 탁구대가 있어 구매하고자 하는 라켓을 테스트할 수 있다.데카트론이 자신 있게 선보인 시설은 '데카스튜디오'와 '풋살장'이다. 매장 2층에 위치한 데카스튜디오는 필라테스, 요가, 줌바 등을 즐기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꽤 넓다. 데카트론은 이곳에서 고객들이 무료로 스포츠 클래스를 수강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3층 옥상에 조성한 풋살장은 국제 규격 수준으로, 무료로 개방된다.송도점은 매장 1층에 셀프계산대가 설치돼 있다. 일일이 바코드를 스캔하지 않아도 된다. 셀프계산대 안에 제품을 넣으면 기계가 스스로 인식해 구매 내역을 알려주고 신용카드 결제를 돕는다.데카트론은 제품을 직접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제조하고, 유통·판매한다. 특히 '데카트론 스포츠랩 행동과학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을 제품에 적용해 혁신 제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다양하고 혁신적인 제품을 싼 가격에 공급할 수 있다. 현재 20여 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스테판 가이 데카트론코리아 대표는 "우리 회사는 '사람'과 '열정'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며 "모두가 스포츠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목표 중 하나"라고 했다. 또 "송도에 매장을 연 건 단순히 제품만 판매하기 위한 게 아니다"며 "스포츠 유저와 유저를 잇는 사회적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佛 창립… 유럽 첫 복합매장 열어■ '데카트론(Decathlon)'은1976년 프랑스 북부 상공업 중심도시인 릴(Lille)에서 창립했다. 프랑스 앵글로스(Englos)에 유럽 최초 복합스포츠 매장을 연 이후 현재까지 40개국에서 1천415개 매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2015년 온라인 몰 '11번가' 입점을 시작으로 국내에 진출했으며, 지난 15일 인천 송도점 오픈과 동시에 온라인 쇼핑몰 서비스를 시작했다.유럽의 대표적인 스포츠레저용품 전문 브랜드 '데카트론'의 송도 매장 모습.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아이클릭아트매장내 자전거용품매대, 라켓 테스트를 할 수 있는 간이 배드민턴장 모습.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아이클릭아트3층 옥상에 조성된 국제 규격 규모의 풋살장.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아이클릭아트

2018-09-16 목동훈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34]바다 수호 첨병 해양경찰

왕산마리나 하늘바다파출소 낮에는 배·밤에는 간이사무실 대기낚시·레저 증가에 따른 고립·조난 등 5~7분내 출동 빠르게 대응부산서 해양경찰대로 첫발, 中어선 출몰·北접경 영향 인천 이전6 → 323척 외적성장 주력하다 '2014년 세월호 책임론' 해체 아픔이후 역량 강화 사업 전개… 연안구조선 보급 등 국민 보호 노력우리나라 바다 넓이는 44만3천㎢로, 남한 면적의 약 4.5배에 달한다. 이처럼 넓은 바다는 어족 자원의 보고이면서 다양한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곳이다. 바다를 통한 교역과 이와 연관된 산업들은 비단 바다에서뿐 아니라 육지와 연결되면서 다양한 가치를 창출한다. 인천은 바다를 끼고 있는 해양도시다. 160여 개의 섬이 있고 수도권에 위치에 있어 바다를 기반으로 한 관광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긍정적인 측면과는 반대로 바다엔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사고가 나면 수많은 생명을 한순간에 잃기도 하는 곳이 바다다. 이처럼 중요하면서도 위험한 바다에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해양경찰'이다.9월 10일 오후 2시께 인천시 중구 왕산마리나. 이곳은 인천해양경찰서 하늘바다파출소가 운영하는 '연안구조정' 정박 장소다. 18t급 선박인 연안구조정은 다양한 역할을 한다. 인근 을왕리해수욕장과 왕산해수욕장 등에서 조난 신고 등이 들어오면 출동해 구조 업무를 수행한다. 무의도 같은 섬에서 야간 시간에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도 구조정이 출동해 환자를 이송한다. 최근 보트 등 해양레저기구를 이용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해양경찰의 역할은 점차 커지고 있다.이날 연안구조정을 운항한 하늘바다파출소 배병진(43) 경위는 "순찰을 돌며 혹시나 있을 비상 상태에 대비한다"면서 "이 일대 바다는 낚시나 레저기구를 사용하는 인구가 많기 때문에 사고도 많이 발생한다. 특히 조수 간만의 차 때문에 고립되거나 먼바다로 휩쓸리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하늘바다파출소는 2~3명이 주간에 연안구조정에서 생활한다. 빠른 출동을 위해서다. 야간에는 인근에 있는 왕산해수욕장에 간이사무실을 마련해 놓고 대기한다. 신고가 들어오면 바로 출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준비다. 해양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바다의 특성상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해경의 출동 시간이 생명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해경에서는 파출소마다 신고 후 출동까지의 시간을 수치로 정한 '출동시간 목표관리제'를 시행하고 있다. 신고를 받은 시간부터 배의 시동을 걸고 닻줄을 풀어 출발하기까지의 시간을 정한 것이다. 각 출동 장소의 특성을 반영해 정해졌으며 하늘바다파출소의 경우 주간 5분, 야간 7분 안에 출동할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다.하늘바다파출소 김정용(52) 경위는 "바다는 매일 물때가 다르고 갑자기 안개가 끼거나 풍랑이 거세지는 등 날씨의 변화가 크다"며 "이러한 변화가 어민이나 낚시인 등 바다에 있는 분들에게는 큰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인명 구조를 최우선 가치로 놓고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해양경찰이 탄생한 것은 65년 전인 1953년이다. 해양경찰청의 전신인 '해양경찰대'가 이때 창설됐으며 내무부 치안국 소속이었다. 해양경찰대는 경비함정 6척에 정원 658명인 작은 조직으로 시작했다. 청사는 부산에 마련했다. 1960년대까지 해양경찰의 주 업무는 일본 어선이 우리 해역에 침범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고 한다. 2000년대 중국어선이 서해 우리 어장에서 불법 조업을 벌이는 것과 같이 당시에는 일본 어선의 불법 조업을 막는 것이 해경의 주된 역할이었다. 1964년에는 월평균 300척의 일본어선이 우리나라 해역을 침범해 연간 22만t의 수산물을 잡았다. 이 때문에 일본어선의 불법 조업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컸다. 당시 부족했던 해양경찰의 경비함정을 마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금 활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해양경찰대가 부산에 설치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일본의 불법 조업이 점차 감소하면서 인천의 중요성은 점차 부각됐다. 수도권에 있고 서해 5도 등 북한과 가까운 접경지역이기 때문이다. 중국어선의 불법 조업도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렸다. 2012년 정년퇴임한 인천해경 재향경우회 이병일(66) 회장은 1974년부터 40년 가까이 해양경찰에 몸담았다. 이병일 회장은 "해양경찰대가 부산에 설치된 것은 당시 성행했던 일본의 불법 조업을 막기 위한 측면이 컸다"며 "이후 점차 해경이 확대되고 인천 바다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1979년 해경본부가 인천에 들어섰다"고 설명했다.해양경찰대는 1979년 인천 중구에 터를 잡았다. 이후 40년 가까이 인천에서 본부를 운영하면서 발전을 거듭했다. 해양경찰대는 1996년 독립 외청인 '해양경찰청'으로 그 위상이 강화됐고 장비와 인원도 보강됐다. 맨 처음 6척이었던 함정은 323척으로 50배 이상 늘어났으며, 인원도 1만1천여명으로 확충됐다.외형적으로 성장을 거듭했지만 20~30년 전만 해도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특히 소형 경비함정에서 근무할 경우 한 번 근무에 길게는 1주일 이상을 바다에 있어야 하는데, 화장실이 없는 경비함정이 많았다는 게 당시 근무했던 직원들의 설명이다. 조병문(61) 인천해경 경우회 회원은 "1980년대만 해도 선박 내에 화장실이 없어서 갑판 위 깃대를 잡고 용변을 봐야만 할 정도로 시설이 열악했다"며 "쥐가 신발과 양말을 갉아 먹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박성국(62) 전 인천해경서장은 "기상 상황이 좋지 않으면 이틀로 예정했던 함정 생활이 1주일까지 길어지기도 한다"며 "간혹 식량이 떨어져서 섬 주민들에게 식량을 얻은 적도 있었다. 주민들이 반갑게 맞아주면서 먹을거리를 한가득 안겨줬다"고 말했다.외형적 성장에 치우친 나머지 해경에 필수인 수상구조 훈련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2014년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30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사고 때 해경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해양경찰청은 해체돼 외청 독립 이후 18년 만에 독립기관의 기능을 상실했다. 이후 2017년 해양경찰청은 다시 독립기관으로 환원됐지만, 세월호 참사의 영향은 이어지고 있다.인천에는 현재 중부지방해양경찰청, 인천해양경찰서, 서해5도 특별경비단 등이 운영되고 있다. 이 중 중부지방해양경찰청은 해경이 해체된 뒤 생겨난 중부지방해양경비안전본부가 이어진 것이다. 수도권이면서 북한과의 접경지역, 중국어선 출몰 해역이라는 인천의 중요성이 반영된 결과이면서도 세월호 참사로 인한 조직 구조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명 구조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면서 연안구조정 등의 장비가 지역마다 신규로 배치됐다. 하늘바다파출소의 연안구조정도 세월호 참사 이후 추진된 구조역량 강화사업 일환으로 2016년 배치됐다.이병일 인천해경 재향경우회장은 "우리나라는 바다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바다에서 해경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바다를 지키고 바다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해경으로서 그동안 부족했던 부분도 있었다. 앞으로 더욱 보완해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해경뿐 아니라 나라가 발전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인천 왕산해수욕장 일대에서 활동중인 인천해양경찰서 하늘바다파출소 대원들.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인천시 중구 왕산마리나에 정박해있는 인천해양경찰서 하늘바다파출소 연안구조정.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지난해 11월 서해5도특별경비단이 우리 해역에서 불법 조업 중인 중국어선을 단속하는 모습. /중부지방해양경찰청 제공1996년 해양경찰청이 독립 외청으로 승격하면서 진행된 현판식 모습. 이 청사는 해양경찰 본부가 인천으로 올라온 1979년부터 사용됐다. 현재는 서해5도특별경비단 청사로 활용하고 있다. /중부지방해양경찰청 제공지난 7일 인천해경이 인천 자월도 인근 해역 갯바위에 고립된 사람을 구조하는 모습. /인천해양경찰서 제공

2018-09-12 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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