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천)

[zoom in 송도]송도국제도시 브리핑

■인천글로벌캠퍼스 31일 입주대학생 '뮤직 페스티벌'인천글로벌캠퍼스운영재단(대표이사·김기형)은 오는 31일 오후 5시 30분 체육관에서 입주대학 학생들이 끼와 재능을 마음껏 뽐내는 '인천글로벌캠퍼스 뮤직 페스티벌'을 개최한다.인천글로벌캠퍼스에는 현재 한국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 FIT(패션기술대학교), 한국조지메이슨대, 겐트대 글로벌캠퍼스, 유타대 아시아캠퍼스가 입주해 있다. 이번 페스티벌은 이들 대학 학생들이 악기 연주와 노래, 춤을 선보이는 자리다. 동아리 홍보 전시회와 초청 공연(몽니, 윤미래)도 열린다. ■내달 1일 '2018 국제기후금융·산업콘퍼런스' 개최인천시와 인천연구원은 11월 1일 오전 9시 30분부터 송도컨벤시아에서 '2018 국제기후금융·산업콘퍼런스'를 연다.인천시는 GCF(녹색기후기금) 송도 유치를 계기로 2014년부터 매년 국제기후금융산업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 콘퍼런스에선 기후변화 협상과 대응 동향을 파악하고, 도시를 포함한 다양한 이행 주체들의 노력을 살펴본다. 기후금융 조성과 녹색기술 개발에 관한 국제 동향과 우리나라 역할도 모색하게 된다. 행사는 개회식, 기조연설에 이어 4개 세션이 진행된다. 세션 주제는 ▲파리협약 이후 국제 기후변화정책 동향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도시의 전략 ▲포용적이고 회복 가능한 도시를 통한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한 발전 ▲기후기술과 글로벌 협력 등이다. 문의:인천기후환경연구센터 (032)715-5795■개관 앞둔 '아트센터 인천' 사전 테스트 공연 성료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최근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 사전 테스트 공연 '재즈 빅밴드 브라소닛 콘서트'를 개최했다. 인천경제청은 11월 16일 '아트센터 인천' 개관을 앞두고 공연장 시설과 운영 시스템을 점검하고자 이번 공연을 열었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사전 공연을 통해 공연장의 우수성을 전문가로부터 검증받는 기회를 가졌으며 향후 안정감 있는 공연장 운영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할 예정"이라고 했다.아트센터 인천은 지하 2층, 지상 7층, 연면적 5만 1천977㎡, 1천727석 규모의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이다. 11월 16일과 17일 양일간 개최하는 개관 공연에는 인천시립교향악단과 이탈리아 명문 악단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협연 조성진)의 무대가 준비돼 있다.■송도 재미동포타운, 오피스텔등 1단계 사업 마무리송도 재미동포타운 1단계 사업이 완료됐다.재미동포타운 조성사업은 재미 동포들의 고국 내 정주 공간 마련을 목적으로 2012년 8월부터 추진됐다. 민간기업이 추진했는데,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로 2014년 중단 위기를 맞았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설립한 인천투자펀드(주)가 자본금을 출자하고 민간기업으로부터 사업권 양수 및 단계별 추진 계획 수립 등 사업 정상화를 추진해 드디어 1단계 사업이 마무리됐다. 1단계 사업은 아파트 830가구, 오피스텔 125실, 상업시설 113실 규모다. 2023년 10월 준공 예정인 2단계 사업은 아파트 498가구, 오피스텔 674실, 상업시설 1만 9천47㎡로 계획됐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재즈 빅밴드 브라소닛 콘서트.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2018-10-28 목동훈

[zoom in 송도]외국법인·기업 투자 본격화

日 '아마다코리아' 지식정보산단에 이달 문열어美 오티스 R&D센터·獨 머크 한국 자회사 착공佛 생고뱅 바이오제조시설 토지매매계약 체결등차부품·반도체… 다양한 산업·국적 외투 쏟아져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 최근 외국인투자기업(이하 외투기업)들이 건물 건립 공사를 시작하거나 준공 후 본격 운영에 들어가는 등 '송도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일본, 미국, 독일, 프랑스 등 다양한 국적의 외국 법인·기업들이 송도 투자를 본격화하는 것이다. → 표 참조일본 아마다 자회사 '아마다코리아'는 지난 17일 송도 지식정보산업단지에서 인천테크니컬센터 개소식을 했다. 이 센터는 연면적 4천5㎡ 규모로 지난해 9월 착공해 올해 8월 준공됐다. 1946년 설립한 일본 아마다는 판금·절삭·공작기계사업, 프레스사업, 정밀용접사업 등을 하는 금속가공 기계 종합 기업이다. 아마다코리아는 인천테크니컬센터에서 아마다의 고기능 기계를 소개(전시)하고, 고객사의 기계 오퍼레이터를 대상으로 기계·소프트웨어 운영 교육을 한다. 인천 주요 대학 및 산업교육기관과 협력해 정밀판금 가공에 대한 이론·실기 교육을 진행하는 등 국내 산업 인력 육성에도 이바지하게 된다.미국 오티스의 엘리베이터 R&D센터 및 첨단생산시설은 지난 12일 착공했다. 이들 시설은 송도 지식정보산업단지내 1만5천600㎡ 부지에 들어선다. 사업 주체인 '오티스코리아'는 전국에 분산된 연구개발 및 생산 조직을 송도로 통합하고, 현대화시스템센터 등 서울 여의도 본사 기능 일부를 이곳으로 이전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송도 R&D센터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연구개발의 허브 역할을 하게 된다"며 "전 세계 오티스 연구개발 센터와의 기술 교류도 이뤄진다"고 했다.독일 머크의 한국 자회사 머크(주)는 지난 11일 송도에서 '한국 생명과학 운영본부' 착공식을 개최했다. 머크는 올해 설립 350주년을 맞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글로벌 제약·화학·생명과학기업이다. 국내 다수의 바이오기업에 생명과학 분야 바이오 공정 관련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한국 생명과학 운영본부는 독일 머크가 사업비 260억원을 전액 투자하는 사업이다. 1만141㎡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5층, 연면적 8천319㎡ 제조 및 부대시설을 내년 5월까지 짓게 된다.프랑스 기업 '생고뱅'은 송도 바이오클러스터에 첨단 바이오 공정 제조시설을 건립하기 위해 지난달 20일 인천경제청과 토지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생고뱅의 자회사 '생고뱅코리아'는 약 218억원을 투입해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1만3천293㎡ 규모의 제조시설을 내년 말까지 건립할 계획이다. 1665년 창업한 생고뱅은 세라믹 재료, 고성능 플라스틱 기술 분야 제품을 개발·생산해 생명과학, 항공, 자동차, 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 공급하고 있다.인천경제청이 개청한 2003년 10월부터 올해 9월 말까지 송도국제도시 외국인직접투자(FDI) 누적액은 약 63억2천550만달러다. 영종국제도시(약 47억3천870만달러)와 청라국제도시(7억6천680만달러)보다 많다. 송도 외투기업은 2011년 36개에서 2018년 63개로 증가했다.인천경제청 신성장산업유치과 '외투기업 유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일본·미국·독일·프랑스 외에 홍콩(송도애니파크·제이엠테크노·엔바이로테크놀러지 등), 스위스(규델리니어텍), 핀란드(파이박스텔레메트리), 네덜란드(얀센백신), 벨기에(오덱), 싱가포르(비알씨 등) 등 다양한 국적의 해외 법인·기업이 송도에 투자했다. 이들 외투기업의 사업 분야도 바이오, 반도체, 자동차부품, LED, 로봇 등 다양하다. 인천경제청은 최근 스위스 취리히에서 로슈, 노바티스 등 바이오기업을 대상으로 인천경제자유구역 투자 환경을 홍보하는 등 외투기업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생고뱅코리아 관계자들이 지난달 20일 첨단 바이오 공정 제조시설 건립을 위한 토지 매매계약을 체결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아마다코리아'의 인천테크니컬센터 전경.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지난 12일 열린 미국 오티스의 엘리베이터 R&D센터 및 첨단생산시설 착공식 모습.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2018-10-28 목동훈

[한국 근대음악의 발상지 인천·(4)]철도와 음악

한양을 작별하는 기적소리는/연화봉(蓮花峰)을 진동하며 작별을 하고/한 바퀴 두 바퀴는/차례로 굴러/종남산(從南山)의 단색은 등에 멀렀네번화한 좌우시가 다투어비키고/굉굉(轟轟)한 바퀴소리는 땅을 가르는데/대지를 울리이는 기적일성은/장엄한 용산역을 부수우는구나경부선과 경원선을 서로 나누어/한마듸의 기적으로 고별을 하고/웅장한 남한강의 철교를 지나/ 철마요람(鐵馬搖籃) 노량진에 다랐도다살같이 나타나는 장엄한 기차/어언 듯 영등포 잠간거치여/부산행 급행을 멀리 보내고/오류동 정거장 지내였고나넓고넓은 소사벌을 갈라나가면/ 소사역과 부평역도 차례로 거쳐/산넘고 물건너/급히달(達)하니/속하다 주안역도 지내엿고나원산(遠山)을 우구려 가깝게 하고/근산(近山)에 뻗치여 멀게 하면서/우렁찬 기적을 울리는 철마(鐵馬)/어언 듯 제물포에 다다랐도다 <경인철도가(京仁鐵道歌) 전문> 1899년 모갈기관차 노량진-제물포 첫 운행빠른속도·굉음·육중한 외관 당대인들 매료최남선, 日 철도가 모방 '경부철도가' 작사이어 경인·호남·경의 등 노선마다 노래로여행중 느낀 문명이기에 놀라움·경의 표현인천콘서트챔버 '발굴·연주회' 뜨거운 호응인천콘서트챔버는 1900년을 전후한 인천의 서양음악을 발굴, 연주회의 테마로 구성해 선보이고 있다. 근대 역사 속 인천을 무대로 한 '원더풀 동인천' 시리즈는 사료 발굴 및 전문가들과 협업을 통해 무대에서 만나기 어려운 곡들을 해설과 함께 들려줘 청중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지난 6월 16일 오후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에선 인천콘서트챔버의 '원더풀 동인천-두 강이 만난 바다, 인천. 그 곳의 근대 음악 이야기'가 펼쳐졌다.인천콘서트챔버 이승묵 대표의 친절한 진행에 연주와 지역의 역사학자들인 강덕우·강옥엽 박사의 근대 인천에 대한 설명이 어우러졌다.공연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연주와 해설에 귀를 기울였고, 곡이 끝날 때마다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 중 바리톤 박대우와 인천콘서트챔버가 연주한 '경부철도가'에 대한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연주 전 곡의 탄생과 시대 상황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며, 7·5조의 쉬운 율격의 가사가 낯익은 멜로디에 실려서 청중에 전달됐기 때문일 것이다.지금까지 국내에 '철도와 문학'에 대한 연구와 기술이 많은 가운데, 비교적 미흡한 '철도와 음악'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다.서양음악에서 '철도와 음악'은 근대 프랑스 음악의 최선봉으로 평가받는 '프랑스 6인조(Les Six)' 중 한 명인 작곡가 오네게르(A. Honneger·1892~1955)를 떠올리게 만든다. 오네게르는 1923년에 기차의 기계적 소리를 불협화음으로 표현한 관현악곡 '퍼시픽 231'을 발표했다. '3개의 교향적 악장' 중의 제2곡에 해당하는 이 작품은 작곡가가 퍼시픽(Pacific)식 기관차에서 착상해서 쓴 작품이다.체코의 작곡가 드보르자크(A. Dvorak·1841~1904)는 '기차 마니아'의 원조격으로 불린다. 어린 시절 프라하 인근 철도 공사를 봐온 드보르자크는 9세 때 완공된 철길로 쏜살같이 지나가는 열차를 보았다고 한다. 기관차의 육중한 외관, 빠른 속도,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 등은 어린 드보르자크에게 강렬한 음악적 경험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훗날 제자에게 반농담식으로 "기관차를 내가 발명할 수 있었다면, 내가 쓴 교향곡 전부를 포기해도 좋을 텐데"라고 했던 말은 유명하다.국내에서 기차는 지금부터 꼭 119년 전인 1899년 9월 18일 오전 9시 첫 선을 보였다. '화륜거(火輪車)'로 불린 육중한 모갈(Mogul·거물) 증기기관차가 희뿌연 증기를 내뿜으며 굉음과 함께 노량진을 떠나 제물포로 출발했다. 드디어 철도의 시대로 진입하는 순간이었다.1897년 착공했으며, 2년 만의 준공 이후 철도는 우리 사회에서 근대 문명과 진보의 상징이 됐다. 우정박물관의 자료에 따르면, 경인선 철도 개통 이전까지 인천우체사와 한성우체사의 우전인(郵傳人)은 매일 오전 9시에 우편낭을 메고 오류동까지 걸어갔다. 두 우전인은 오후 1시께 오류동에서 우편낭을 교환해서 돌아갔다. 하루 평균 9시간 이상이 걸린 행보였다. 이를 토대로 따져봤을 때 당시 경성까지 걸어서 가려면 인천에서 노량진까지 6~7시간, 배로 한강을 건너 다시 걸어서 남대문까지 도합 10시간은 족히 걸렸다. 하지만 철도가 놓이면서 인천에서 노량진까지 1시간30분으로 단축됐다. 노량진까지 이전의 4분의 1수준으로 단축됐으며, 경부선 개통 후엔 5분의 1 이상 수준으로 남대문까지 가까워진 것이다. 서울 사람들이 인천역에 내려 월미도 해변이나 만국공원, 인천항을 둘러보고 돌아온다 해도 한 나절이면 충분해졌다. 경인선에 이어 경부선(1905년), 경의선(1906년), 호남선과 경원선(1914년) 등이 개통한다.구한말의 대문장가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로 평가받는 육당 최남선(1890~1957)은 신문명인 철도를 알리기 위해 1908년 일본 노래 '철도가'를 모방한 '경부철도가'를 작사했다. 문학 갈래로는 창가가사이며, 노래는 스코틀랜드 민요 '밀밭에서'에 가사를 붙인 형태로 불렸다.'경부철도가'는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까지의 역들과 풍경, 감회를 7·5조의 가락에 담은 장편 가사이다. 문명과 개화의 찬양에 급급한 나머지 일제가 철도를 부설한 의도에 대해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경부철도가'에 이어 '경인철도가', '호남철도가', '경의철도가' 등 '철도 노래'들이 지어졌다. 가사의 길이와 내용은 다르지만, 대부분은 '경부철도가'처럼 기차의 위용과 속력, 기적 소리에 대한 묘사로 시작해 종착역에 이르기까지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경부철도가'를 모방한 것으로 보이는 '경인철도가'는 6연으로 구성된 작자 미상의 전통적 가사 형식의 노래이다. 시적 화자가 증기 기관차를 타고 경성에서 제물포까지 가면서 느끼는 감정을 표현했다. 근대적 문명의 이기인 철도에 대한 놀라움과 경의를 노래했다.(전문 참조)3연 1행의 '경부선과 경원선을 서로 나누어'를 통해 유추해 볼 때 1911년 10월 15일 이후에 가사가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 경원선은 1911년 10월 15일 용산~의정부 구간이 처음 개통된 후 1914년 8월 14일 세포~고산 구간을 마지막으로 전 구간이 개통했다.'경인철도가'에선 5연 마지막 행의 주안역과 6연 마지막 행의 제물포역(현 인천역)이 부각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두 역은 당시부터 여러 요소들로 인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경부철도가'와 마찬가지로 '빠름'(문명·개화)을 찬양하고 있다. 진정한 예술이라면 '빠름'만을 찬양하진 않을 것이다. 건강한 삶과 어우러지는 속도를 통한 조화가 부재한 20세기 초반 우리 문화계의 일면을 드러내 주고 있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최초의 기관차 모갈1호. 모갈1호는 철도개통시 사용된 첫 열차를 견인한 증기기관차다. 미국 브룩스사에서 4대가 제작된 후 반제품으로 운송해 1899년 인천에서 조립됐다.초기의 인천역사. 여객의 운송보다는 화물운송과 철도운영에 직접적으로 필요한 시설에 한정됐다. /격동 한세기 인천이야기(다인아트 刊)지난 6월 16일 오후 인천아트플랫폼 C동 공연장에서 열린 인천콘서트챔버의 '원더풀 동인천-두 강이 만난 바다, 인천. 그 곳의 근대 음악 이야기'에서 인천콘서트챔버의 반주에 맞춰 바리톤 박대우가 '경부철도가'를 부르고 있다. /인천콘서트챔버 제공

2018-10-25 김영준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40]연평도 꽃게잡이

조기 인기에 밀려 그냥 버리던 찬밥1960년대 들어서 '대표수산물' 등극장비 열악했지만 작은배 가득 채워中불법조업 등 남획탓 어획량 급감'어민들 주 수입원' 자원 보호 시급국내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꽃게'를 검색하면 관련 검색어에 인천 옹진군 '연평도'가 나온다. 연평도를 검색하면 '연평도 꽃게'가 관련 검색어로 뜬다.서해안에서 주로 잡히는 꽃게는 인천의 대표적인 수산물이다. 특히 인천 앞바다 서해 5도 중 한 곳인 연평도는 꽃게 산지로 유명하다. 인천 소래포구 어시장이나 인천종합어시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은 꽃게가 한가득 담겨 있는 통과 그 앞에 적혀 있는 '연평도산'이라는 팻말이다.꽃게는 봄철과 가을철에 잡힌다. 봄철에는 알이 가득 배 있는 암꽃게가 주로 잡히며 암꽃게는 주로 게장을 담가 먹는다. 한정식에서 빠지지 않는 간장게장은 암꽃게로 만든다. 가을철에는 찜이나 탕으로 해먹는 숫꽃게가 살이 많고 맛도 좋다. 여름철은 꽃게 산란을 위해 금어기로 지정돼 있다. 가을철 꽃게잡이는 8월 말부터 11월 말까지 이뤄진다. 수온이 내려가면 꽃게가 자취를 감추기 때문에 어민들은 어획 활동을 하지 않는다.지난 11일 새벽 5시 40분 연평도 당섬선착장. 해가 뜨기 직전이라 어둠이 가시지 않았지만, 꽃게잡이 어선들이 켜 놓은 조명들이 선착장 주변을 환히 비추고 있었다. 전날 풍랑주의보로 출항하지 못한 어선들이 만선을 기대하며 출항 준비에 한창이었다. 9.8t급 자망 어선인 '정복호'도 출항 준비를 마쳤다. 6시가 조금 지나자 20여 척의 어선이 일제히 바다를 향해 키를 돌렸다. 정복호는 연평도 남서쪽 해역으로 향했다.정복호 유호봉(60) 선장은 1990년대 초부터 연평도에서 꽃게잡이를 했다. 중간에 강원도나 전라도 앞바다에서 일을 하긴 했지만, 대부분 연평도에서 꽃게잡이 어선을 탔다. 자망 어선은 선원 6명과 선장 1명이 한 조로 일한다. 너비 5m 길이 500m의 직사각형 모양의 그물을 바다에 수직으로 펼쳐놓은 뒤 며칠 있다가 걷어 올리는 방식으로 조업한다. 그물과 연결된 굵은 밧줄을 끌어올리는 것은 선박에 설치된 장비를 이용하지만, 그물과 밧줄을 끊어내고 그 자리에 새로운 그물을 연결해 바다로 던져 넣는 작업은 선원들이 역할을 나눠 진행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작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선원 간 호흡이 어긋나면 밧줄이 선원들을 덮치는 위험한 상황이 올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작업 과정에서 선장은 선원들에게 고함을 지르며 지시하기도 했다. 유호봉 선장은 "바다 위에서는 항상 긴장해야 한다. 작업 과정에서 말을 험하게 하는 이유도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이날 오전 6시 50분. 40분 이상을 내달려 도착한 바다에서 첫 그물을 끌어올렸다. 꽃게는 그물에 듬성듬성 매달려 있었다. 그물을 20~30분간 끌어올렸으나 그물 한가득 꽃게가 매달린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선원들은 한목소리로 "꽃게잡이가 예년만 못하다"고 했다. 점점 꽃게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어선의 불법 조업이 꽃게잡이 어획에 악영향을 미쳤다. 그때보다 중국어선이 많이 줄었지만 꽃게 어획량은 여전히 늘어나지 않고 있다고 했다.유호봉 선장은 2008년 4월 중국어선을 직접 나포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우리 어선 30여 척이 연평도 앞바다까지 내려와 있는 중국어선을 직접 나포한 것이다. 어선 4척이 한 조가 돼 중국어선을 쫓았다. 직접 중국어선에 올라가 선원들을 붙잡고 해양경찰에 인계했다. 그는 "당시 중국어선이 한 번 지나간 자리는 고기 씨가 마를 정도로 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자원 보호를 위한 조치를 더 강하게 취해야 한다"며 "이곳에서 살게 될 후손들을 위해서도 지금보다는 더 자원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꽃게가 인천의 대표 수산물이 된 건 오래되지 않았다. 인천에서 꽃게를 잡기 시작한 것은 불과 50여 년 전이라는 게 연평도 어민들 이야기다. 이전까지만 해도 연평도의 대표 어종은 '조기'였다. '조기 파시'라고 불릴 정도로 전국의 어선들이 봄철이면 연평도로 몰려들었다. 한때 1천여 척이 넘기도 했다. 이때에는 꽃게가 그물에 걸려 올라와도 모두 버렸다고 한다. 어민들은 조기로 큰돈을 벌어들였고, 이 때문에 술집과 기생집 등도 연평도에 넘쳐났다.경향신문은 1962년 5월 14일자 기사에서 "조기잡이의 '골든타임'을 바로 눈앞에 두고 연평도를 중심으로 한 어장 일대는 어선 1천200여 척과 어민 1만여 명이 숨가쁜 준비 태세 속에서 조기잡이 '붐'을 이루며 북적이고 있다"고 보도했다.연평도 주민 강유선(75·여)씨는 "꽃게잡이를 시작한 것은 60년대 중반 이후로 기억한다"며 "연평도에서 조기를 잡기 힘들자 어민들이 2년 정도는 흑산도 등 남해로 내려가 조기잡이를 하기도 했다. 이들이 연평도로 다시 올라와 꽃게잡이를 시작한 것이 60년대 중후반 정도"라고 말했다.강씨는 당시 잡았던 꽃게를 노량진 수산시장에 가져다가 팔았다고 한다. 배를 10시간가량 타고 인천항에 도착한 뒤 경인전철을 타고 노량진으로 향했다.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가는 도중에 상한 꽃게는 중간에 버리기도 했다고 한다. 강씨는 "조기잡이 때에는 중국과 일본 상인들이 연평도에 와서 조기를 샀다. 무역이 이뤄진 것"이라며 "하지만 꽃게잡이를 시작했을 때에는 판로가 없어 노량진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인천에 어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때"라고 했다.1960년대만 하더라도 어선의 규모는 작았다. 어획 방식은 자망 방식으로 지금과 비슷하지만, 장비가 열악해 그물을 끌어올리는 것은 모두 선원들의 몫이었다. 이 때문에 그물의 크기도 100m 정도로 짧았고, 걷어 올릴 수 있는 그물의 수도 적었다.연평도에서 30년 넘게 배를 탄 노영철(68)씨는 "예전에는 꽃게가 그물에 한가득 걸리는 날이 많았다"며 "처음에는 참나무로 된 닻을 만들어 조업을 하기도 했는데, 배가 작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차재득(78)씨는 "점점 꽃게 먹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을 느낀다. 단적으로 예전보다 바다에 수초가 줄었다"면서 "꽃게의 먹이가 되는 작은 물고기도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남획이 불러온 결과"라고 강조했다.서해수산연구소에 따르면 인천 해역 꽃게 어획량은 1990년 처음 해당 통계를 집계한 이래 2009년 1만 4천675t을 기록했으나 점차 줄어 2015년 1만t, 2017년 5천723t 등 계속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꽃게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지만, 그래도 연평도 어민들의 주 수입원은 꽃게다. 당섬선착장 인근과 마을 곳곳에서는 주민들이 모여 꽃게 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물과 꽃게를 분리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1척의 배에서 잡아온 꽃게를 그물에서 떼어내는 데 10명 이상이 필요하다고 한다.글·사진/정운기자 jw33@kyeongin.com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지난 11일 정복호 선원들이 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꽃게 잡이를 하고 있는 모습. 연평도 인근 해역은 국내 대표 꽃게 산지로 이름이 나 있으며 꽃게는 연평도 어민들의 주 수입원이기도 하다. /경인일보DB정복호 유호봉 선장. /경인일보DB연평도 당섬선착장 인근에서 꽃게를 분류하는 모습. /경인일보DB1950년대 연평도의 모습. 조기잡이를 위해 전국에서 어선들이 몰려들었다. 당시에는 꽃게가 그물에 걸려 올라와도 버렸다고 한다. /강유선씨 제공연평도 앞 바다에서 잡아 올린 꽃게를 그물과 분리하는 모습. 분리 작업은 선원들이 아닌 연평도 주민들이 맡아서 한다. /경인일보DB소래포구 어시장에서 꽃게를 판매하는 모습. /경인일보DB

2018-10-24 정운

[한국 근대음악의 발상지 인천·(3)]인천 아리랑(下)

현재 다양한 공연 '헐버트 선교사' 공로곳곳 아리랑 채보 서양식 5선악보 담아국권회복도 헌신… 타계후 양화진 안장2017년 12월 인천의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은 인천 송도 트라이볼에서 3개 마당으로 구성된 '인천 아라리'를 선보였다. '인천 아라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2017 전통예술 지역 브랜드 상설공연 지원사업'에 선정된 공연물이다. 3개 마당 중 마지막 마당은 '인천 아리랑'으로 구성됐다. 공연에서 잔치마당은 해안가와 농지가 공존한 과거 인천의 고유한 소리와 이야기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해석해 선보였다. 전통 북과 꽹과리, 장구 등의 악기에 신시사이저, 일렉트릭 기타 등이 가세했다. 세 번째 마당의 '인천 아리랑' 또한 전통 경기·서도소리 선율과 이를 모티브로 현대적 감각을 가미한 재즈, 록 버전 등 3가지 형태로 부르고 연주됐다. 국가무형문화재 제29호 서도소리 이수자인 유상호 명창의 무대에 이어 재즈 보컬리스트 박가아의 공연, 정유천 밴드의 록 버전 공연까지 '인천 아리랑'이 다양한 형태로 무대에서 울려 퍼진 것이다.구전으로 전해지며, 130여년 전 개항지 인천에서 불린 노래를 오늘날 공연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 미국 감리교 선교사이자 교육자였던 호머 B. 헐버트(1863~1949) 박사의 공로다.헐버트 박사는 당시 곳곳의 '아리랑'을 채보했다. 이처럼 서양식 5선 악보에 표기된 최초의 아리랑은 그가 쓴 '코리아 보컬 뮤직(Korea vocal music)'에 담겼다. '코리아 보컬 뮤직'은 영문 잡지 <코리안 리포지터리(The Korean Repository)> 1896년 2월호에 수록됐다.헐버트 박사는 이 글에서 "한국인은 즉흥곡의 명수",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쌀과 같이 중요한 노래"라고 예찬하기도 했다.아리랑이 해외에 알려지고, 구전이 아닌 아리랑의 형태가 문서에 기록되면서 후대가 연구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된 것이다. 특히 당시 민요를 경시하는 풍조로 인해 아리랑의 가사를 기록한 조선 사람이 없었던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어서 더욱 가치 있다.1886년 조선 땅을 처음으로 밟은 헐버트 박사는 육영공원 교사로 일했으며 명성황후 시해사건 직후인 1895년엔 고종의 경호를 담당하기도 했다. 이듬해 독립신문 발행에 관여하면서 아리랑 등 한국전통음악을 채보해 발표했다. 1905년 을사늑약 무효를 선언한 고종의 친서를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하려다 실패했으며, 일본을 규탄하고 고종에게 헤이그 밀사 파견을 건의하는 등 한국의 국권 회복운동에 협력했다. 1949년 이승만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국빈으로 내한한 그는 노환으로 서울에서 타계, 고인의 뜻에 따라 양화진 외인묘지에 유해가 안장돼 있다. 헐버트 박사 타계 60주년이었던 2009년 전국의 대표 아리랑을 수록한 의미 있는 음반 '쌀의 노래 아리랑'(신나라)이 출시됐다. 헐버트 박사가 채보한 '아리랑'을 비롯해 '인천 아리랑'과 '문경 아리랑', '아르랑 타령' 등도 함께 실렸다. 음반에는 김연갑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상임이사의 해설과 김영임 명창이 부른 '아리랑'들이 담겼다. 음반의 타이틀은 앞서 언급한 헐버트 박사의 글 중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쌀과 같이 중요한 노래"에서 따왔다.허경진 교수 발견 '홍석현의 조선어책'지역 반일감정 대변 '인천 아리랑' 수록황해도·전북김제 등 타지 차용 흔적도헐버트 박사의 글이 발표되기 2년 전의 자료를 발굴해 '인천 아리랑'의 존재를 알린 인천 출신 국문학자 허경진 교수(연세대 국문과)의 노력도 부각할 필요가 있다. 2000년 하버드대 한국연구소 방문학자로 머물던 허 교수는 한국 고서와 관련된 자료를 조사하다가 '인천 아리랑' 전문이 실린 <신찬 조선회화>(홍석현 저) 책자를 발견했다. 훗날 관립 한성고등학교 교장을 지내고 평택군수를 역임한 홍석현은 1894년 조선어 회화책을 펴냈다. 이 책은 같은 해 10월 3판이 출판될 정도로 일본에서 인기 있었다고 한다. 조선어 단어와 회화 등을 일본어로 소개하고 있는 이 책에는 '인천 아리랑'을 비롯해 인천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많이 수록됐다. 허 교수는 당시 일본인들이 인천에 많이 살았으며, 서울로 가는 사람도 배에서 내려서 인천에서 며칠을 묵었기 때문에 인천에 대한 사전지식이 필요했던 것으로 여긴다. 책에는 인천을 찾아가는 이야기와 기차를 타고 가는 이야기, 기차 삯과 제물포 요릿집이 소개되며, '인천 아리랑'이 수록됐다. 허 교수는 관련 논문에서 <신찬 조선회화>에 '인천 아리랑'이 수록된 이유에 대해 "일본인들을 미워하는 인천 사람들의 민심을 미리 알려주고, 행동에 조심하도록 경고하는 의미가 있다. 일본인들을 위한 교과서에다 이 노래를 실은 홍석현이 당시 인천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던 반일 감정을 대변한 것이다. 그가 첫 연에 덧붙인 의역을 보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고 설명했다.홍석현이 덧붙인 의역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인천의 산은 아름답고 / 제물포의 물은 맑아 / 가서 산에서 읊조려도 좋겠네 / 가서 물에서 헤엄치는 것도 좋겠네 / 하지만 그렇게 하지 마세요 / 일본인이 뽐내며 으스대고 다녀서 / 유쾌하게 사는 것이 이미 어려워"또한, 조선총독부가 1912년에 실시한 민요조사에 따르면 '인천 아리랑'의 가사는 여러 곳에서 차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기도의 '산타령'을 비롯해 황해도와 전북 김제에서 각각 채집된 '풍자요'와 '아리랑 타령'이 그것이다.개항지 제물포 부두에 몰려들었던 노동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부르면서 전국으로 퍼진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아리랑'은 1920년대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흥행하면서 알려지고 채록된 것들이다. 그에 앞서 인천 지역의 사회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인천 아리랑'은 인천시민의 지속적 연구와 무대화를 통해 계승해 나가야 할 대상이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지난해 12월에 열린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의 '인천 아라리' 중 전통 경기·서도소리로 불린 인천 아리랑, 재즈 버전의 인천 아리랑, 록 버전의 인천 아리랑.(사진 위부터) /잔치마당 제공Homer B. Hulbert(1863~1949)

2018-10-18 김영준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39]인천항 향토하역사-우련통운

73년간 인천항과 함께 자라온 인천의 향토 하역사이자 종합물류기업인 우련통운은 '인천우체국 사서함 1호'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우편사서함이란 우체국에서 개인이 직접 우편물을 찾아갈 수 있는 전용 수취함이다. 우체국에 가야 볼 수 있다. 인천항 인근에 있는 우련통운(주)는 인천우체국에서 사서함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가장 먼저 신청해 사서함 1호의 주인이 됐다. 우련통운은 1923년 신축한 인천우체국이 2003년 중구에서 연수구로 이전하고 나서도 사서함 1호를 계속 사용 중이다. 인천우체국에는 1978년부터 사용한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우련통운의 전신인 청구양행이 1945년 설립된 것을 고려하면 그 이전부터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서함 이용 초기에는 관공서 공문, 세금계산서 등 각종 서류와 공문이 하루 100통 이상 도착해 총무과 전담 직원이 매일 우체국을 방문해 우편물을 찾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간단한 서류 정도만 받을 뿐이다. 우련통운 윤기림 대표이사는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우편사서함을 왜 유지하는지 의아해 하겠지만, 당시 최첨단 우편서비스를 가장 먼저 채택했다는 상징이 크다"며 "우련통운은 인천의 향토 기업으로서 항상 도전하고 새로운 시대에 발맞춰가고자 노력하는 회사"라고 설명했다.1945년 무역회사로 첫발 디딘 '우체국사서함 1호'세계적선사 대리점·육상운송 진출하며 기틀 닦아TOC 도입으로 내항 2부두 맡아 사료 중심 급성장최근 잇단 위기, 소금 제조 등 사업다각화로 극복■ 인천~중국 간 무역업에서 시작우련통운은 1945년 항만하역사업을 시작으로 현재는 화물운송, 보관, 제3자물류 등 인천항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업을 도맡았다. 지금은 내항통합으로 항만 하역기능이 위축됐지만, 인천 내항 2부두의 운영사이기도 했다. 운송사업 분야에서는 우련육운, 우련TLS(주)를, 물류사업 분야에서는 우련국제물류(주), 우련평택물류(주), 인천콜드프라자(주), 제조업 솔트원(주) 등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 연혁 참조우련통운의 모태 기업인 '청구양행'은 인천항 인근의 작은 무역 회사로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됐던 1945년 설립된 회사로, 인천과 중국 상하이(上海) 간 육상 운송에 주력했다. 당시 인천항은 긴급 구호품과 산업물품을 조달하는 국가 제1의 수입항이었다. 수도권을 배후에 두고 있는 인천항 인근에는 크고 작은 무역 회사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인천항의 인프라는 열악했다. 항만 시설이 한국전쟁으로 많이 파괴되면서 국가 재건에 필요한 원자재 수입은 부산항에 쏠리기 시작했다. 청구양행은 수출·수입 물량이 없는 상황에서 무역업만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 하역업에 뛰어들었다. 1958년 '우련통운'은 그렇게 탄생했다.야심 차게 하역업을 시작했지만, 군소 하역업체가 난립하기 시작하면서 경쟁은 점점 심해졌다. 게다가 1950년대 후반 외부 원조가 줄면서 물동량도 감소하자 하역업체들의 경영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우련통운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인 영업 활동을 시작했다. 1958년 American President Line과 Lykes Brothers Steamship Co. Line 등 당시 세계적인 선사들의 총대리점을 맡았다. 1959년에는 당시 국내 최대 해운사였던 대한해운공사 인천지점의 하역권을 유치했다. 우련통운은 격동기의 어렵던 시절을 극복하고 본격적인 성장기에 올랐다.■ 다양한 사업 확장으로 제2의 전성기우련통운이 안정적인 성장의 기틀을 잡게 된 것은 배인복 회장이 작고한 후 1976년 동생인 배인흥 현 회장이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다. 당시 우련통운은 전문 하역회사로서의 역량은 충분했으나 추가적인 부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체 상태에 놓여 있었다. 최신 운송 서비스를 원하는 화주들이 많았는데, 배인흥 대표는 이를 반영해 '우련육운'이라는 합자회사를 설립(1978년)했다. 육상 운송 사업에 진출한 것이다. 1999년 부두운영회사제(TOC)가 도입되면서 인천 내항 2부두 운영 주체가 된 것은 우련통운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게 된 큰 계기가 됐다. 2002년에는 중국 랴오닝성(遼寧省) 남부에 있는 항구 도시 '잉커우(營口)시' 항무국(항만청)과 협력해 카페리 선사인 범영훼리를 설립해 선박 운송, 컨테이너 하역업에도 진출했다. 우련통운은 주 하역 물동량 가운데 사료부원료가 50%, 잡화와 철강 등 나머지가 50%였을 정도로 산물 하역에 강점이 있었다. 우련통운은 2003년 국내 최대 사료부원료 전용 보관 창고(1만3천630㎡)를 완공하기도 했다. 인천항만물류협회와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우련통운은 2006년 물동량 677만t에 매출액 359억원을 달성하는 등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동력으로 인천북항다목적부두(주), (주)INTC에 지분 참여를 하고, 평택항 부두 시설 건설에 참여하는 등 점차 사세를 넓혔다. 매일경제 1969년 4월 26일자 '인명피해 월 1건꼴 하역장비 모두 낡아'라는 제하의 기사를 보면 당시 인천지방해운국에 등록된 하역회사는 우련통운, 선광공사 등 16개 회사에 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향토 하역사들이 계속 무너졌지만, 우련통운은 지역 사회에서 고용을 창출하고 이익 일부를 재환원하면서 꾸준히 사업을 이끌어 나갔다. ■ 인천 내항 통합 위기를 또 다른 기회로우련통운은 2003년 평택항에 진출하는 한편 인천에서도 꾸준히 장비 임대, 물류 대행, 운송 등 물류 전반에 걸쳐 사업을 확대했다. 2011년에는 저온 화물을 보관할 수 있는 창고인 콜드프라자까지 인수했다.70여 년 인천항 터줏대감으로 계속해 성장할 것만 같았던 우련통운은 인천 내항 통합으로 최근 위기를 맞았다. 전용부두였던 내항 2부두가 통합되면서 연간 물동량과 매출액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2013년에 진출한 경인항 컨테이너터미널 조업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우련통운은 이러한 위기를 '사람 우선 경영'으로 극복하고 있다. 그간 하역 사업이 위축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지난 70년간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진행한 적이 없다고 한다. 우련통운 유성재 상무는 "우련통운에게 사람은 100년 장수기업을 향해가는 기반"이라며 "'인화단결'이라는 사훈을 중심으로 노사 간 상생을 중시해 임직원과 지역사회에 보답하는 기업 운영 원칙을 유지하려고 하고, 실제로 올해 고용을 늘리면서 사업 다각화를 함께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우련통운은 현재 카페리 컨테이너 하역을 중심으로 평택항 하역, 물류·운송업, 소금 제조업(솔트원) 등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 개장 예정인 신국제여객터미널의 카페리 하역 작업 현대화사업도 진행 중이다.우련통운 윤기림 대표이사는 "인천항은 우련통운과 임직원에게는 삶의 터전이며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소중한 공간"이라고 말했다. 또 "신항만의 신속한 추가 개발, 항만 배후부지 개발에 대한 재정 투입 등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우련통운을 포함한 향토기업들이 인천항 발전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받았으면 한다"며 "인천항은 무엇보다 남북 화해 정국에 따라 남북경협의 최대 수혜지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는 만큼 관계기관과 항만업계 주도의 발 빠른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1980년대 우련통운 하역작업장에서 직원들이 화물을 옮기고 있는 모습. /우련통운 제공우련통운이 오랜 기간 운영해왔던 인천 내항 2부두 전경. /우련통운 제공

2018-10-17 윤설아

[한국 근대음악의 발상지 인천·(2)]인천 아리랑 (上)

지난해 10월 개봉한 영화 '대장 김창수'에는 청년시절의 백범 김구 선생이 인천 감옥소에서 수감생활을 할 때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철도 공사에 강제 동원돼 노역하는 장면이 나온다." 인천 제물포 살기 좋아도~, 왜인 위세로 못 살겠네~".수감자들이 곡괭이질을 하며 지친 몸을 달래고자 노래를 부르는데 그 노래가 바로 '인천 아리랑'이다. 노역 중 쉬는 시간에 중국인이 나눠준 자장면을 먹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영화를 연출한 이원태 감독은 영화 개봉 후 경인일보와 인터뷰에서 "'인천 아리랑'을 경인선 부설공사 장면에서 노동요로 쓰기 위해 고증에 공을 들였다"고 밝힌 바 있다.조미통상조약 당시 아리랑 애국가 역할예부터 한민족 하나로 이어주는 구심점영화가 세월에 묻혀 있던 '인천 아리랑'을 끄집어 낸 후 그해 12월 인천의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은 인천 송도 트라이볼에서 공연 3개 마당으로 구성된 '인천 아라리'를 선보였다. '인천 아라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2017 전통예술 지역 브랜드 상설공연 지원사업'에 선정된 공연물이었다. 3개 마당 중 마지막 마당은 '인천 아리랑'으로 구성됐다. '인천 아리랑'이 무대에서 울려 퍼진 것이다.'아리랑'은 우리 민족 모두가 즐겨 부르는 또 하나의 국가이다.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로 있는 김연갑이 1994년에 쓴 <팔도 아리랑 기행 1>(집문당)에 따르면 1882년 5월 22일 인천(제물포)에서 조선과 미국의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티콘데로가(Ticonderoga) 호의 함상 군악대가 두 나라의 국가 대신에 국가 격으로 '양키 두들(Yankee Doodle)'과 '아리랑'을 연주했다. 이미 선대로부터 전국적으로 불린 '아리랑'은 외국인들도 조선의 대표적인 민요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북한은 물론 해외 동포들과도 자연스럽게 하나로 만들어주며, 근래 들어선 남북 단일팀으로 참가하는 국제경기에서 '아리랑'이 국가 대신 연주되기도 한다.'인천 아리랑'은 진도아리랑, 밀양아리랑, 정선 아리랑 등에 비춰볼 때 잘 알려지지 않은 아리랑이다. 김연갑은 일본 국립국회도서관에서 <유우빈호우치신분> 1894년 5월 31일자 3면에 실린 '조선의 유행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발굴했다. 신문 기사에는 '인천 아리랑'의 가사와 해설이 담겼다. 노랫말과 함께 실린 해설에서 "산간벽지의 아이들이나 포구의 아이들까지도 입에 담고 있으며, 조선인이 일본의 위력에 압도당하는 것을 원망하고 군주의 폭정을 비난해서 부르는 것"으로 밝혔다.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인천 아리랑'영화 '대장 김창수'속 한장면 노동요로인천 출신 국문학자 허경진(연세대 국문과) 교수도 '인천 아리랑' 전문이 실려있던 1894년 8월 27일 도쿄에서 간행된 <신찬 조선회화(新撰 朝鮮會話)>(홍석현 저)를 발굴한 바 있다. 허 교수는 2000년 하버드대학교 한국연구소 방문학자로 1년 동안 머물면서 한국 고서와 관련된 자료를 조사하던 중 발견했다.'인천 아리랑'은 조선의 다른 곳들과 달랐던 개항지 인천의 모습처럼 여타 지역의 아리랑과 다른 정서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불리던 대부분의 아리랑은 사랑하는 님의 배반과 그를 원망하는 노래이다. 그 안에 설움과 한이 깃들어 있는 것이 기본적인 서사적 정서이다. 그러나 인천 아리랑은 다른 나라에 대한 언급이 직접 나온다는 것이 흥미롭다. 왜인들이 여기저기 할거해서 살기 어렵다고 직접 말하는가 하면 일본인이 뽐내고 으스대고 다녀서 힘들다고 한다.1883년 개항 이후 인천에는 전국 팔도에서 품을 팔러 온 노동자들로 붐볐다고 한다. 일본인에 대한 불만 가사 직접적 표출'사랑'소재 다른 지역 아리랑과 차별점낯선 객지에 품을 팔러 온 이들에게 타향살이 애환이 없을 리 만무하다. 고일 선생이 쓴 <인천석금>에 당시 사회상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 있다.'항도 인천은 부두 노동자와 정미직공, 목도꾼, 자유노동자인 지게꾼이 많기로 유명하고 곡물관계의 객주업자와 거간, 미두꾼과 절치기꾼이 섞여 살았던 곳이다. 관리도 별로 없었고 장사치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서울처럼 양반, 상놈의 구별이 없었고 굽실대고 쇤내를 올릴 때가 없는 곳이었다.'이처럼 돈을 벌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온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어려서부터 흥얼거렸던 아리랑 가락에 당시 시대상이 담긴 가사를 붙였다. '인천 아리랑'이 여타 지역의 아리랑과 차별성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나아가 '한국 노동 운동의 시발점'으로서 인천의 역사를 뒷받침하는 것이기도 하다.조우성 전 인천시립박물관장은 자신이 쓴 <인천이야기 100장면>에서 "한국 아리랑 사(史)에 인천을 편입시킨 것과 그 어느 도시보다도 치안이 삼엄했던 지역에서 아리랑을 항일 민요로 불렀던 선대들의 꼿꼿한 풍모를 밝혀낸 것도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인천 아리랑'의 의의를 설명했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인천 아리랑 전문. /허경진 '19세기 인천에서 불려졌던 <아리랑>의 근대적 성격' 발췌'2018 정선아리랑제' 행사 모습. /정선아리랑제조직위원회 제공지난 6~9일 정선읍 아라리공원 일원에서 열린 제43회 정선아리랑제. 특히 올해 축제에선 남한 아리랑과 함께 북한 서도아리랑을 통해 남북의 아리랑이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가능성도 확인했다. /정선아리랑제조직위원회 제공

2018-10-11 김영준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38]인천항 향토하역사-영진공사

초기 미군 물자 위주에서 일반분야로 사업 넓혀1972년 사채동결 위기, 바레인 진출하면서 극복한중수교 이후 부두 직접 조성하며 교역에 대비 인천항과 함께 성장한 (주)영진공사가 어느덧 환갑을 앞두게 됐다. 1961년 인천의 향토 하역사로 출발한 영진공사는 대한민국 관문항인 인천항을 중심으로 성장하면서 인천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다.영진공사는 화물 하역부터 운송과 보관에 이르기까지 물류 종합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인천항 최초로 인천 남항에 민간투자 부두를 만들어 체선·체화 방지에 이바지하고, 비교적 최근에 개장한 인천 북항 철재부두 주(主)하역사로 선정돼 세계적 수준의 고객 중심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동의 관문인 바레인에 진출해 공항·항만 운용 능력을 인정받은 영진공사는 '1등 서비스가 아니면 시작하지 않겠다'는 기업 철학으로 21세기 물류산업을 대표하는 글로벌 종합 물류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영진공사 이강신 회장은 "열린 시각으로 시대적 변화에 주목하면서 과감한 도전과 의지로 고객과 함께하는 종합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아낌없는 성원에 감사하고 있다"며 "고객 중심의 21세기 글로벌 물류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미군 부대 군수물자 하역으로 출발2016년 12월 이기상 전 영진공사 회장이 타계하자 항만업계를 비롯한 지역사회 각계 인사들의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그는 인천항발전협의회 초대 회장, 인천항만공사 초대 항만위원장, 인천항만물류협회 회장 등을 맡으면서 인천항 발전에 이바지했다. 인천시의회 초대 의장, 대한적십자사 인천지사 회장, 인천시 야구협회 회장, 인천시 체육회 부회장 등 인천 정계와 사회단체, 체육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했다. "항만은 물론 인천의 큰 어른이었다"는 평가가 있었다. 그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대학 동기(연세대 56학번)이기도 하다.영진공사 초대 회장이자 창업주인 그의 형(兄) 고(故) 이기성 전 회장 역시 인천경제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1985년부터 1993년까지 인천상공회의소 회장을 내리 세 번 연임하고, 인천항만하역협회 인천지역회장을 지내는 등 활발한 상공 활동으로 인천경제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영진공사를 이끌고 있는 그의 아들 이강신 회장도 2015년부터 인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고 있다.영진공사는 1961년 4월 15일 문을 열었다. 고(故) 이기성, 이기상 등 형제가 창업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수도권 지역 주한미군의 군수물자가 대부분 인천항을 통해 반입되던 상황에서, 미군부대 측 가까운 인사 소개로 하역업체 문을 열게 됐다. 인천기계공고 교사였던 이기성 전 회장이 가족 중에 가장 똑똑해 대표이사를 맡았다고 한다. 본사 위치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찾기 어렵지만, 1966년 한 신문에 실렸던 영진공사 광고를 보면 본사 주소가 인천시 사동 7번지(현재 신포사거리 인근)로 돼 있다. 서울 중구 무교동 25번지 원창빌딩 608호에 서울사무소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현재 영진공사 본사는 인천 중구 신흥사거리 인근에 있다. 창업 초기 주로 미군 군수물자를 하역하던 영진공사는 이후 일반하역 분야까지 진출하면서 사세를 확장했다. → 연혁 참조저온창고 신축·북항 철재부두 주 하역사 선정도철도활용 운송등 업역확장 '종합물류기업' 도약전·현직 회장, 경제·체육·사회단체 활동도 앞장 # 바레인 진출 이후 탄탄대로영진공사는 1972년 정부의 '사채 동결 조치'로 경영이 크게 어려워졌다고 한다. 영진공사 김구환 전무이사는 "그때 당시 고리대금 업자가 연간 40~50%의 이자를 받고 사채를 빌려줬는데, 정부의 사채 동결 조치로 최대 16% 정도의 이자밖에 받지 못하게 됐다"며 "때문에 사채를 주려는 업자들이 크게 줄면서 돈을 빌릴 곳이 없게 돼 월급도 제대로 못 줄 정도로 자금난에 빠진 적이 있었다"고 했다.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영진공사는 1977년 바레인에 진출하게 된다. 바레인 진출은 회사 경영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영진공사는 중동 진출 붐이 일던 1970년대 중반 주한 미군 계약관 출신의 한 인사를 영입했다. 그는 중동 진출 모색을 위해 찾은 바레인 공항에서 항만 운영사를 모집한다는 신문 공고를 우연히 접했다. 영진공사는 이를 계기로 입찰에 참여해 바레인 항만의 화물 하역 사업권을 따낼 수 있었다. 당시 영진공사는 바레인에 첨단 항만하역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을 했다. 영진공사는 이를 바탕으로 같은 해 바레인 공항의 지상조업 계약도 맺었다. 영진공사는 걸프전 때도 차질 없이 하역업을 유지하는 등 바레인 정부와 신뢰를 쌓으며 30년 넘게 항만 하역을 지속했다. 바레인 공항 지상조업의 경우엔 현재까지도 담당하고 있다. 바레인 진출과 인천항 하역 물량을 기반으로 성장해온 영진공사는 1980년대 '인천의 삼성'이라고 불릴 정도로 커졌다. 컨테이너 수리업, 해사 채취업, 건설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고, 평택항 등에도 진출했다. IMF 때 문을 닫긴 했지만, 한때 상호신용금고도 운영했다.# 종합물류기업으로 성장 다짐영진공사는 1992년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하자 대(對)중국 교역 증가에 대비했다. 1995년 컨테이너 보세장치장을 개설하고, 이듬해에는 인천 남항에 5천t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물양장을 축조했다. 당시 하역사가 물양장 등 부두를 직접 조성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영진공사는 1999년 인천 내항 8부두 운영주식회사를 설립했다. 2004년 인천 남항 물양장을 1만t급 이상의 선박 접안이 가능한 부두로 확장하고, 2005년 저온창고를 신축하는 등 계속해서 사업을 확장했다. 평택항 등 진출 범위도 넓혀 나갔다.영진공사는 아시아횡단철도의 북방철도 루트인 중국 횡단철도(TCR)와 몽골리아 횡단철도(TMGR), 시베리안 횡단철도(TSR) 등을 통한 수송서비스와 3자 물류 서비스, 국제복합 물류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주)영진 GLS를 비롯해 영진탱크터미날(주), (주)영진운수, 한중물류(주), 청도중한국제물류유한공사, (주)영진시포트 등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최근 인천 내항 부두운영사(TOC) 통합으로 하역 기능이 축소되긴 했지만, 영진공사는 물류 관련 업역을 넓혀가면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대표하는 종합물류기업으로의 성장을 다짐하고 있다. 김승회 영진공사 대표이사는 "50여 년의 전통과 전문성으로 고객이 감동하고 만족하는 종합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21세기 물류산업을 선도하는 종합물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했다. 글/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창업주 故 이기성 회장. /영진공사 제공1996년 남항민자부두 준공 기념식. /영진공사 제공바레인 공항 조업. /영진공사 제공고철 하역 작업. /영진공사 제공해사채취 작업. /영진공사 제공

2018-10-10 이현준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37]인천항 향토하역사-선광

조선·광복서딴 사명… 창고에서 보관·운송 업무로 첫발1980년대 중동 건설 붐때 해외 하역 작업 통해 급속 성장발전소·교량 자재 등 운송 도맡아·양곡 사일로 현대화도2005년에 컨 진출… 2015년엔 야드 자동화 컨터미널 개장1883년 개항한 인천항이 지난해 304만 8천TEU의 컨테이너 물동량을 처리하며 전 세계 40위권 항만으로 성장한 데에는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한 향토 하역사들의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특히 향토하역사 가운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선광(鮮光)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선광은 인천항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천 신항에서 선광신컨테이너터미널(SNCT)을 운영하며 인천항 컨테이너 물동량의 3분의 1 가까이 처리하고 있다. 인천항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는 평가다. SNCT는 지난해 82만TEU에 달하는 물동량을 처리했다. 이런 선광도 1948년 창업 초기에는 작은 창고에 불과했다. → 연혁 참조#선광의 태동선광은 인천 신항을 중심으로 한 컨테이너 하역사업과 평택·군산 등 지역에서의 항만 하역사업, 중량물 운송, 보관 물류, 사일로 사업 등을 활발히 하고 있다. 선광문화재단 등을 통한 사회공헌사업도 충실히 진행하고 있다. 선광은 해방 이후 인천항의 세관 창고를 기반으로 보관과 운송 사업을 시작하면서 태동했다. 70년 전인 1948년 4월이다. 창업주인 고(故) 심명구 전 회장은 선광공사라는 이름으로 인천에서 세관 창고를 임대받아 물건을 보관하고, 내주는 일을 시작했다. 심명구 전 회장의 형제는 모두 5명으로, 형님 고(故) 심봉구 씨와 세관장을 역임한 첫째 동생 고(故) 심영구 씨, 서울대 경영대학장을 역임한 고(故) 심병구 씨, 지역에서 4선 국회의원을 지낸 심정구 명예회장(87) 등이다.선광이라는 사명은 '조선'과 '광복' 두 단어에서 각각 선(鮮)과 광(光)을 가져와 정했다. 당시는 국민들 사이에 대한민국(大韓民國)이라는 국호보다는 조선(朝鮮)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시기였다. 창립 당시 사무실은 현재의 신포동 주민센터 인근의 작은 공간이었다. 당시 세관으로부터 임대를 받은 현재 중부경찰서 인근 창고는 선광의 모체가 됐다. 선광은 사세가 확장하면서 사업 영역을 통관 사업까지 넓혀 개인 회사에서 1961년에 법인 사업자로 전환했다. 현재 선광문화재단과 인근의 건물을 사무실로 쓰다가 1985년 양곡 사일로를 건설하며 현재의 중구 항동7가 자리로 이전했다.선광은 현재 고(故) 심명구 회장의 장남인 심장식 씨가 회장직을, 차남인 심충식 씨가 부회장을 맡아 이끌고 있다. 특히 심장식 회장은 IMF 외환위기 때 경인리스와 국민리스 등을 인수, 투자금융 전문 업체인 화인파트너스를 운영하면서 금융 분야까지 사업 영역을 다양화하는 등 회사 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도약과 성장선광은 1980년대 초반 리비아 진출을 선광의 도약기로 보고 있다. 중동 국가들이 오일달러를 이용해 대규모 토목 및 건설공사를 진행해 대한민국에 중동 건설 붐이 일던 시기였다. 선광은 리비아 브레가항, 미스라타항, 벵가지항만 등에 하역노무자와 관리직 등 450여 명 규모의 국내 직원을 보내 해외항만 하역 작업에 나섰다. 이후 약 10여 년간 건설 기자재 등 하역작업을 통해 연간 2천만 달러의 외화를 획득하는 등 선광은 급속하게 성장했다. 중량물 운송사업 진출도 비슷한 시기에 이뤄졌다. 경제 발전을 최우선시하던 3·4공화국 시절 현대화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발전소, 교량 건설자재 등 대형 설비를 수입해 설치하려는 국내 수요가 많았다. 선광은 이런 수요를 흡수하고자 했다. 한강 철교 자재와 인천화력발전소 시설 등도 선광이 운송했다.1970년대에 인천항 제2선거 부두시설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2선거 이전까지 항만 시설이 부족해 외항에서 하역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역을 위해선 부선이 필요했는데, 내항이 갖춰지면서 부선이 활용되는 경우가 줄어들었다. 선광은 이들 부선을 이용해 해사 채취 사업을 시작했다. 선광은 인천항에 양곡 전용부두가 생기고 양곡 수입이 급증하자 1985년 내항과 컨베이어 벨트로 연결하는 사일로를 건설해 운영했다. 재래식으로 이뤄지던 양곡 하역은 이 사일로 건설로 대폭 현대화됐다. 이 사일로는 선광이 일반 화물 하역 사업에 국한하지 않고 새로운 사업에 진출해 안정적인 이익을 올리는 탄탄한 기반이자 선광을 대표하는 상징이 됐다. 1996년 해양수산부 출범 이후 1997년 부산항과 동시에 인천항에 부두운영회사제(TOC)가 도입되며 선광은 내항의 자동차 전용부두인 5부두 운영을 시작한다.IMF 외환위기 후 많은 기업이 안정적이고 소극적인 경영 전략을 펼 때 선광은 오히려 적극적인 투자를 했다. 인천항의 고질적 체선 해소를 위해 산업원자재 종합 처리 항만으로 건설된 인천 북항에 다목적부두를 건설 투자해 운영했다.인천을 기반으로 성장한 선광은 군산과 평택 등 국내 다른 항만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선광은 인천항에서 축적한 경험을 바탕으로 군산항에 양곡 하역 및 보관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해 2005년 군산항 6부두에 양곡 터미널을 개장했다. 이 양곡 터미널의 일시 보관 능력은 50만t 규모로 국내 최대 수준이라고 한다. 선광은 평택항에도 진출했다. 2010년 서부두에서 한일시멘트의 슬래그 하역작업을 시작했고, 2018년엔 현대글로비스와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자동차 전용부두를 개장해 인천항에 이어 평택항에서도 전문적인 자동차 하역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선광의 미래컨테이너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기로 한 것도 중요한 결정이었다. 전 세계적인 컨테이너 물동량 증가와 일반화물의 컨테이너화에 따라 컨테이너터미널의 중요성은 높아졌다. 우선 2005년 인천 내항과 인접한 남항에 선광인천컨테이너터미널(SICT)을 개장해 컨테이너 터미널 사업에 진출했다.SICT 개장 후 채 10년이 지나지 않아서 중국 등 주 교역 상대국과의 급격한 교역량 증가와 선박 대형화로 컨테이너 항만시설의 대형화와 현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역 선두 하역 기업으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있던 선광은 인천 신항 운영자 참여를 결심하고 인천항 최초로 야드 자동화가 실현되는 컨테이너터미널을 계획했다. 선광은 2010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약 3천억 원의 대규모 사업비를 투입해 2015년 6월 마침내 선광신컨테이너터미널(SNCT)을 개장했다. SNCT는 인천을 찾는 국내외 주요 인사들이 발전된 인천항의 현재와 미래를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거치는 장소가 됐다.글로벌 기업들과 무한경쟁해온 물류기업 선광은 그동안 동북아 물류 허브가 되기 위해 유수의 항만들과 경쟁해 온 인천항과 함께 성장해왔다. 심정구 명예회장은 "선광은 인천에 터를 잡고 인천항과 함께 70년 동안 꾸준히 성장하며 인천에 많은 신세를 졌다"며 "앞으로도 인천의 성장에 보탬이 되고 인천시민의 사랑을 꾸준히 받을 수 있도록 성실히 역할을 해 나아가겠다"고 말했다.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1969년 2월10일 인천화력발전소 1호기 트랜스포머 부선 운송작업.1985년 준공 당시 사일로.1948년 작은 창고로 시작한 향토 하역사 선광은 70년이 지난 현재 인천항 컨테이너 물동량의 3분의 1 가까이를 처리하고 있는 하역사이자 종합 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사진은 선광이 인천 신항에서 운영하고 있는 선광신컨테이너터미널(SNCT) 전경. /선광 제공

2018-10-03 김성호

[zoom in 송도]10월9일 송도국제마라톤대회

인천대 송도캠퍼스 북2문·동문서 '스타트' 올해 출발·도착점 변경 '주의'컨벤시아대로 왕복뒤 외곽으로 빠져… 대부분 직선주로 기록 경신 유리국제 인증 '하프' 달빛축제공원주변 반환점 '풀코스' 남동산단까지 질주투모로우시티·동북아무역센터·G타워등 도시 발전상 직접 체험 기회도전국 마라토너와 인천시민의 축제 '인천송도국제마라톤대회'가 한글날인 10월 9일 오전 9시 송도국제도시에서 열린다. 2010년 첫 대회를 열어 올해 9회째를 맞은 송도국제마라톤대회는 국내외 마라토너와 인천시민이 참여하는 스포츠 축제로 성장했다. 바이오·MICE·교육·연구 등 첨단지식서비스 산업의 글로벌 거점이자 대한민국 1호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송도국제도시. 송도 '빌딩 숲'을 달리며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행사가 바로 송도국제마라톤대회다.송도의 발전상을 직접 보는 기회도 된다. 국내외 엘리트 선수, 전국 마라톤 동호회 회원, 기업·기관 임직원, 일반시민, 풀, 하프, 10㎞, 5㎞ 등 참가 유형과 코스도 다양하다.2018 송도국제마라톤대회는 10월 9일 오전 9시 '인천대학교 송도캠퍼스'에서 시작한다. 작년까지는 송도 센트럴파크 부근이 출발·도착점이었다. 이 때문에 행사장을 잘못 찾아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 옷을 갈아입거나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푸는 시간을 고려해 오전 8시까지 인천대 송도캠퍼스 운동장 쪽으로 오면 된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참가자는 인천대 송도캠퍼스 '동문(정문)' 또는 '남1문'이나 '남2문'으로 들어와 지하에 주차하면 된다. 대회 참가자 출발·도착 동선 관계로 '북1문'과 '북2문'으로는 차량이 진입할 수 없다. 참가자 수에 비해 주차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좋다.마라톤 동호회 등 단체 참가자들을 위한 부스는 운동장 트랙 일부와 축구장에 설치된다. 축구장 옆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은 뒤 중요 물품은 물품보관소(체육관 건물)에 맡기면 된다.출발은 인천대 송도캠퍼스와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사이 도로 '북2문' 인근에서 코스별로 이뤄진다. 엘리트, 풀, 하프, 10㎞, 5㎞ 순이다. 이 중 5㎞ 코스는 '북2문' 인근이 아닌 '동문(정문)' 쪽에서 출발한다. 올해 출발·도착점이 바뀌면서 코스에도 변화가 생겼다. 작년까지는 센트럴파크 주변 등 송도 1·3공구 둘레를 돌아 외곽으로 빠졌다면, 올해엔 '컨벤시아대로'를 왕복한 뒤 송도 외곽을 뛰게 된다. 풀 코스를 제외한 나머지 코스는 경사가 거의 없고 대부분 직선주로여서 안전하고 기록을 경신하기에 유리하다. 풀 코스도 바이오산업교(송도4교)를 오르내릴 때만 경사가 있다.일반인이 많이 참가하는 5㎞ 코스부터 살펴보자. 인천대 송도캠퍼스에서 출발해 컨벤시아교(송도2교) 인근까지 갔다가 다시 인천대 캠퍼스로 돌아오는 직선 코스다. 뛰다 보면 송도컨벤시아 인근 사거리에서 '투모로우시티'를 볼 수 있다. 송도국제업무지구 E6-1블록에 있는 복합시설물 '투모로우시티'는 지하 2층, 지상 6층, 연면적 4만8천㎡ 규모다. 2009년 7월 완공됐지만, 공사비 정산 관련 소송으로 2011년 운영이 중단됐다. 인천시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투모로우시티에 복합환승센터와 창업 지원 공간을 조성하는 등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인근에 위치한 송도컨벤시아는 올해 7월 2단계 시설이 완공돼 개관했으며, 그 일대는 국내 첫 '국제회의 복합지구'로 지정됐다. 송도컨벤시아 옆에 높게 솟은 빌딩은 송도의 핵심 랜드마크 '동북아무역센터'다. 지하 3층, 지상 68층, 높이 305m, 연면적 19만5천220㎡ 규모다. 대우인터내셔널, 포스코A&C, 호텔 등 많은 기업이 입주해 있다.10㎞ 코스는 5㎞ 코스를 뛴 뒤 인천대 송도캠퍼스 주변 도로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설계됐다.송도국제마라톤대회 하프는 국제육상연맹 인증 공인 코스다. 인천대 송도캠퍼스에서 출발해 '컨벤시아대로'를 왕복한 후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을 끼고 달빛축제공원 인근 반환점까지 달린다. 이후 잭 니클라우스 골프클럽, 인천대 송도캠퍼스를 거쳐 블루오션골프클럽(송도24호 공원 골프연습장) 인근까지 달린 뒤 유턴해 인천대 쪽으로 되돌아간다. 하프 코스 참가자 시야에는 송도 6공구 인공호수와 '아트센터 인천'(콘서트홀), 인천경제청과 GCF(녹색기후기금) 등이 입주해 있는 G타워가 들어온다. 아트센터 콘서트홀은 지하 2층, 지상 7층, 1천727석 규모로 올해 11월 중순 개관할 예정이다. 인천시와 인천경제청은 올가을 예정된 북한예술단 공연이 이곳 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열리기를 희망하고 있다.풀 코스는 바이오산업교(송도4교)를 통해 남동국가산업단지 안까지 들어간다. 중소기업청사거리를 지나 300m 지점에 반환점이 있다. 다시 바이오산업교를 넘어 송도로 진입한 뒤에는 연세대 국제캠퍼스, 인천글로벌캠퍼스(해외 명문대 공동캠퍼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교육기관·바이오기업이 위치한 송도 5·7공구 내부를 돌아 나와 도착점인 인천대 송도캠퍼스로 달리게 된다.송도국제마라톤대회가 열리는 10월 9일 오전 8시 50분부터 11시까지 컨벤시아대로 등 대회 참가자들이 통과하는 일부 도로의 차량 통행이 제한된다. 인천송도마라톤조직위원회는 "컨벤시아대로 차선 일부를 코스로 사용하게 돼 주민들의 교통 불편이 예상된다"며 "송도1동 주민들은 송도국제교(송도1교), 송도2동 주민들은 아트센터교(송도3교)를 이용해달라"고 당부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송도 복합시설물 투모로우시티 일대 전경. 2018 인천송도국제마라톤대회 모든 코스는 인천대에서 출발해 투모로우시티가 있는 '컨벤시아대로' 구간을 지나게 설계됐다. / 경인일보DB

2018-09-30 목동훈

[한국 근대음악의 발상지 인천·(1)프롤로그]1883년 항구가 열리고… 파도처럼 밀려온 '양악'

제물포 개항후 첫 서양음악 수용·확산전통문화 대신 근대 신문물 체화 노력강점기~1960년대 시향 설립 역사조망인천의 지리·사회적 의미 들여다볼 것회화는 공간 속에서, 인위적인 공간 표상을 통해 작용한다. 음악 등 모든 역동적인(Energischen) 예술들은 연속적인 시간에서뿐 아니라 그를 통해, 즉 인위적인 음의 시간적 변화를 통해 작용한다. 시의 본질 역시 이러한 근본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시는 임시적인 기호, '힘(Kraft)'이라 하자. 그렇다면 형이상학에서 공간·시간·힘이 세 개의 근본개념이듯, 또한 수리적인 학문들이 이들 개념 중 어느 하나로 환원되듯이 문예 및 예술이론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하겠다. 말하자면 제작물을 제공하는 예술은 공간 속에서 작용하고, 에네르기를 통한 예술은 연속적인 시간에서 작용하며, 문예 혹은 오히려 유일한 문예인 시는 힘을 통해 작용한다. -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최초의 비판적인 작은 숲' 중에서헤르더(J G Herder·1744~1803)는 18세기 독일의 대표적 사상가이자 문학자, 신학자였다. 평생 음악에 심취했던 인물이기도 한데, 고대 독일 민요를 복원하는 데 관심을 기울이며 연구를 통해 의미 있는 <민요집>을 펴내기도 했다. '민요(Volkslied)'라는 용어를 만든 인물이기도 한 헤르더는 음악을 장식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문화와 교육의 원천 중 하나로 보았다. 앞서 인용한 글에서처럼 그는 당대 지식인들의 식견을 훌쩍 뛰어넘는 음악에 대한 혜안을 보여줬다.헤르더의 사상은 후대 사상가와 작곡가들에 의해 확대 생산됐다. 그중 가치를 인정받은 작품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클래식(Classic)'으로 인정받으며 생명력을 부여받게 된다.마찬가지로 우리 땅에선 우리(동양) 사상가들과 음악가들에 의한 음악이 고래로 이어져 왔다. 하지만, 1883년 제물포가 개항하면서 우리는 서양음악(이하 양악)을 받아들여야 했다. 당시 인천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던 큰 소리를 경험했다. 무시무시한 대포 소리와 우렁찬 나팔 소리였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군함을 끌고 와 인천 앞바다에서 대포를 쏘면서 무력시위를 했고, 이에 우리 선조들은 외세에 문호를 개방했다.근대화 시기 신문물의 도입부로서 역할을 했던 인천은 정치·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요지였다. 서구의 새로운 문물은 인천을 통해 수입되고 국내에 확산했다. 그에 따라 근대 시기 인천은 전통문화보다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고 체화(體化)하는 데 더욱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실례는 미술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신문과 각종 자료에 따르면 1920~1930년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수상한 인천 출신 작가는 대다수가 서양화부에 쏠려 있다. 나아가 1920년대라는 이른 시기 인천에 이미 화단이 형성됐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인천이 동서양 문물의 최 접경지였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경인일보는 인천문화재단과 함께 '인천 근대 양악'을 주제로 기획 시리즈를 진행한다. 20회로 구성될 이번 기획에선 양악의 수용과 일제 치하, 해방, 전쟁 후, 1960년대 인천시립교향악단의 설립까지 인천 양악사(史)를 짚어볼 계획이다.기획 시리즈의 주제는 장소(인천)와 시기(근대), 대상(양악)을 지칭하는 세 단어로 구성됐다. 이번 기획에서 장소(인천)의 범위는 최대한 넓힐 예정이다. 일례로, 음악을 하는 행위는 연주와 감상으로 이뤄진다. 그 때문에 연주와 감상은 불가분의 관계다. 독일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인천에서 공연했다면, 인천시민이 공연장을 찾아 감상했기 때문에 인천 음악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인천이란 지리적인 의미와 사회적인 의미를 동시에 갖는 '인천에 사는 인천사람들'이 아닌 독일을 비롯해 전 세계인들로 구성된 베를린 필하모닉의 인천 연주를 인천 음악으로 규정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이러한 부분들을 모두 포괄할 것이다. 따라서 근대 인천에서 일어난 양악과 관련한 사건과 작품, 인물, 장소 등 규정짓지 않고 들여다볼 계획이다.모든 도시가 흐르는 시간을 타고 변하지만, 한반도에서 인천만큼 시간과 공간의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된 도시는 드물다. 근대 이후만 놓고 본다면, 개항과 함께 한적한 어촌에 외국인들이 모이기 시작했으며, 일제강점기에 항만이 건설되고 군사기지가 조성됐다. 철도가 놓였고, 최초의 천일 염전이 만들어졌다. 해방되어선 미군이 들어왔으며, 전쟁 후에는 휴전선이 그어지며 고향을 등진 실향민들이 먹고살기 위해 모여들었다. 급격히 변한 도시의 모습만큼 짧은 국내 양악사 속에서 다채롭게 피어난 음악과 관련 요소들을 다룰 이번 기획을 통해 인천을 새롭게 느끼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린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인천은 근대 이후 한반도에서 가장 급격히 변한 도시이다. 인천의 급변에는 바다가 큰 역할을 했다. 바닷길은 사람과 물품이 오가는 통로였다. 1883년 제물포 개항은 국제무역항의 기능을 더욱 강화시켰고, 신문물의 도입지로서 입지를 다졌다. 인천은 서양음악 수용의 창구 및 한국 근대음악 진원지의 하나로 역할을 하면서 선도적으로 한국 근현대 음악 문화를 개척해 나갔다. /경인일보DB

2018-09-27 김영준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36]한국과 중국 바닷길 잇는 한중카페리(下)

웨이하이시, 항로개설후 인구20만→280만 성장'한러팡' 조성 쇼핑몰·식당·야시장 한국 판박이부산항에 밀려 어려움 겪던 수도권 관문 인천항'中 수출입 선점'통해 컨테이너 등 다변화 성공사드·금한령으로 찾아온 위기 '고급화'로 돌파 "웨이하이는 한국인들이 만든 도시입니다."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시에서 만난 위동항운 중국 측 관계자는 웨이하이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인천과 웨이하이를 오가는 한중카페리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는 웨이하이에 고층 건물은 15층 규모의 '웨이하이 호텔' 하나밖에 없었다"며 "이마저도 한중카페리 개통으로 늘어나는 관광객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중카페리 개통 이후 한국 기업들의 진출이 이어지면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유통가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지금의 웨이하이 모습을 만든 것은 한국인들"이라고 강조했다.지난 16일 찾은 웨이하이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의 한 도시를 보는 것 같았다. 인천~웨이하이 카페리가 내리는 '웨이하이 신국제여객터미널'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위고광장에 도착하자 곳곳에 한국어로 된 간판이 눈에 띄었다. 광장 중심에는 롯데백화점이 자리 잡고 있었고, 주변에는 우리나라 유명 커피 브랜드나 외식 업체가 줄지어 있었다. 위고광장에 위치한 주중 인천(IFEZ·인천경제자유구역) 경제무역대표처 고경욱(51) 부대표는 "한중카페리가 개설된 이후 웨이하이는 중국 산둥성의 물류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웨이하이 시민들에게 한국은 지역경제를 활성화해준 고마운 나라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웨이하이시가 조성한 '한러팡(韓樂坊)'은 한국을 그대로 옮겨 놓은 모습이다. 쇼핑복합문화센터와 한인타운을 결합한 한러팡은 한국 화장품 판매장, 영화관, 한국식 야시장 등이 운영되고 있다. 한국상품전시교역센터라는 대형 쇼핑몰이 눈길을 끌었고, 골목마다 한국어로 쓴 간판이 넘쳐났다. 한러팡 입구에는 돌하르방과 장승 등이 놓여 있었고, 중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치맥' 가게가 곳곳에 있었다.심지어 국내 대형 중국 음식 프랜차이즈도 이곳에 진출해 있었다. 야시장이 운영되는 주말 밤이 되면 사람이 많아 길을 걸어가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한국상품전시교역센터에 들어서자 국내에서 생산한 과자와 생활용품, 화장품 등이 판매되는 가게가 줄지어 있었다. 이곳에서 화장품 판매장을 운영하는 왕리씨는 "사드 배치 등으로 한국에 대한 중국 내 감정이 나빠졌지만, 화장품 등 한국에서 생산된 물건에 대한 수요는 계속되고 있다"며 "일반 중국 제품보다 가격이 조금 높은 편이지만, 많은 중국인이 찾고 있다"고 했다.한국과 웨이하이는 매우 가까운 도시다. 웨이하이시에서 한국 공해까지 거리는 174㎞밖에 되지 않는다. 인천에서 강원도 춘천까지 정도의 거리로, 차를 타면 2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산둥성에서 닭 우는 소리가 인천에서 들렸다'고 말할 정도였다.한중카페리가 개설되기 전인 1990년대 초만 해도 인구 20만 명의 어촌이었던 웨이하이는 인천과 뱃길이 열린 뒤 280만 명이 넘는 대도시로 급성장했다. 2015년에는 중국 내 쟁쟁한 도시들을 제치고 인천과 함께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시범도시로 지정됐다.자그마한 어촌이었던 웨이하이는 한중카페리가 개설되고 대도시로 변신하기 시작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국과 뱃길이 열리고 눈부신 성장을 이룬 웨이하이에는 한때 한국 기업이 1천800개, 교민 수가 6만명에 달했다. 인천연구원 김수한 연구위원은 "웨이하이가 성장할 수 있는 물꼬를 튼 것은 한중카페리"라며 "산둥성 내에서도 작은 도시에 불과했던 웨이하이가 대(對) 한국 교류에 거점으로서의 위상을 얻었다"고 했다. 2008년 중국에서 신노동법이 발효된 이후 인건비 상승으로 노동집약형 업종은 인건비가 싼 베트남, 캄보디아, 미얀마 등지로 이전했다. 하지만 현재 700여 개 기업과 1만 8천여 명의 교민은 아직 웨이하이에서 살고 있다.한중카페리는 인천항 성장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수도권의 관문이지만, 부산에 밀려 항로 개설이 어려웠던 인천항이 대(對) 중국 수출입 중심 지역을 선점할 수 있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청운대 이상용 교수(글로벌경영학과)는 "1990년 이전에는 사실상 인천항에는 정기 항로가 없었다"며 "이 때문에 수도권 지역 공단에서 생산한 화물을 철도나 화물차로 부산까지 운송해야 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비용도 비쌌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한중카페리가 생기고 나서 항차 수도 늘었고, 항로가 다변화됐다"고 덧붙였다. 현재 인천항의 정기 컨테이너 항로는 49개며, 이 가운데 중국을 오가는 항로는 23개다.한중카페리는 현재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3월 사드 한반도 배치에 따른 중국 정부의 금한령 이후 줄어든 여객 수는 예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항공 수송의 증가로 화물 수도 점차 감소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중카페리 발전을 위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업계 내부에서도 나온다. 유현재 위동해운 인천사무소장은 "신조선 건조 등 한중카페리를 고급화하는 것이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하는 대책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과 중국의 발전을 이끌었던 한중카페리가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에 조성된 대형쇼핑몰 '한국보세교역센터' 일대 모습. 상가 곳곳마다 한국어로 쓰인 간판과 한국 화장품 판매장 등을 손쉽게 발견할 수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쇼핑복합문화센터와 한인타운을 결합한 '한러팡' 일대에는 인삼, 장승 등의 조형물들이 있어 흡사 민속촌에 온 듯한 착각을 할 정도이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웨이하이시 위고광장에 위치한 주중 인천관 내부 모습.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1990년 9월 인천∼웨이하이 카페리 항로 개설 당시 웨이하이 부두의 모습. /위동항운 제공

2018-09-26 김주엽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35]한국과 중국 바닷길 잇는 한중카페리(上)

한중수교 체결보다 빠른 1990년에 열린 인천~웨이하이 항로 저렴한 가격에 비자 발급 장점, 초기 표구하기 1개월씩 걸려관광객 수요 항공기에 빼앗기면서 보따리상 비율 크게 늘어호텔같은 시설·공간… 최근들어 한국인 단체이용객 증가세인천공항에서 중국 산둥성(山東省) 웨이하이(威海)까지는 비행기로 1시간 남짓 걸린다. 하지만 인천항에서 한중카페리를 타면 14시간이나 소요된다. 누가 바다에서 그렇게 긴 시간을 허비할까 싶지만, 지난해에만 13만 6천605명이 한중카페리를 이용해 인천과 웨이하이를 오갔다.15일 오후 6시께 인천 내항 1부두. 길이 196m, 너비 27m 크기의 대형 카페리선 '뉴골든브릿지7호'(3만 1천t급)에 올랐다. 이 배는 한중카페리 가운데 처음으로 우리나라 기업인 현대미포조선에서 건조한 신조선(新造船)이다. 그동안 한중 노선에 투입된 카페리들은 중국에서 건조됐거나 중고인 선박이 대부분이다. 한중카페리선사 위동항운의 새 카페리선 뉴골든브릿지7호는 기존에 운영하던 2만 6천t급 카페리선 '뉴골든브릿지2호'보다 길이가 10m가량 길고, 너비도 3m 정도 넓다. 컨테이너도 2호보다 30TEU(1TEU는 길이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많은 325TEU를 실어 나를 수 있다.오후 7시가 되자 '두드루룽' 소리와 함께 선체 엔진이 돌았다. 갑판 위에 서자 상큼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배에 오른 승객들은 새로운 선박을 구석구석 살펴보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선상에서 만난 위동항운 윤태정(56) 수석사무장은 1992년부터 한중카페리에서 근무한 베테랑이다. 그는 "1990년 인천과 웨이하이를 잇는 한중카페리가 처음 출항한 이후 승객 구성이 크게 3번 정도 바뀌었다"고 설명했다.한국과 중국의 서해 뱃길을 운항하는 한중카페리는 1990년 9월 15일 처음 운항했다. 한중 뱃길은 중국에 공산당 정부가 들어선 1949년 이후 완전히 단절된 상태였다. 당시 중국을 가려면 홍콩을 거쳐야 했다. 한중 수교(1992년)가 맺어지기 2년 전 최초의 여객 직항로인 '인천~웨이하이 카페리 항로'가 생겼다. 윤 사무장은 "비용도 싸고 비자를 미리 받지 않아도 돼 한국 관광객이 많이 몰렸다"며 "초창기에는 배표를 구하기 어려워 한 달씩 대기해야 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한중카페리 한국인 승객은 중국 현지에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다.중국과의 하늘길도 열리면서 카페리를 이용하는 관광객이 점차 줄어들자, 그 빈자리를 채운 승객이 '보따리상'이다. 초기에는 한국 보따리상이 많았는데, 지금은 중국 보따리상이 더 많다는 게 윤 사무장의 설명이다. 이날 인천항을 출항한 뉴골든브릿지7호도 전체 승객 624명 가운데 중국 보따리상이 199명에 달했다.배가 출항하자마자 중국 보따리상들은 객실이나 복도, 계단 아래 등에서 자신이 산 면세품의 포장을 뜯어 가방에 담기 시작했다. 중국 세관은 1인당 가방 한 개(50㎏) 분량에 대해서만 관세를 면제하기 때문이다. 이를 초과하면 반입품을 빼앗거나 일반 화물보다 더 비싼 금액의 세금을 부과한다는 게 중국 보따리상들 얘기다.배가 출항한 지 1시간밖에 되지 않았지만, 선박 쓰레기를 모으는 선미에는 면세품 쇼핑백과 포장지를 담은 1ℓ 크기의 비닐 봉투 60여 개가 쌓였다. 중국인 보따리상 류웬차오(45)씨는 "카페리는 한국에서 산 물건을 재포장할 공간이 넓은 데다 휴대할 수 있는 수하물 무게가 많다. 보따리상 대부분이 시간이 오래 걸려도 한중카페리를 이용한다"고 말했다.최근에는 한국 단체관광객도 상당히 늘었다고 한다. 이날 뉴골든브릿지7호에 탄 조순학(67)씨는 1997년부터 한중카페리를 타고 중국을 여행했다. 이날 그와 함께 배에 탄 친구 5명도 한중카페리로 중국을 여행하다 만났다고 한다. 조씨는 "젊은 사람들이야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야 하지만, 우리처럼 시간이 많은 사람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 배에서 편하게 있다가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맥주 한잔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게 카페리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조씨를 만난 시간은 자정이 넘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테이블에 둘러앉아 편의점에서 산 캔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그는 "선박 여행이 비행기보다 월등한 점은 역시 발 뻗고 편히 쉴 수 있다는 것"이라며 "2인 객실은 화장실과 욕실이 있어 호텔과 별 차이가 없다. 따뜻한 물로 샤워한 후 침대에 누우면 약간의 흔들림에 저절로 깊은 잠에 빠진다"고 말했다.인천은 예나 지금이나 중국 교역의 중심 도시다.인천 연수구 옥련동 '능허대공원'. 이 공원에서 옥련사거리 방면으로 조금만 걸으면 인천시 기념물 제8호 '능허대 터'가 나온다. 378년 삼국시대 백제 근초고왕이 중국과 교역할 때 사신들이 출발한 '나루터'다. 백제 사신들은 인천~덕적도~중국 산둥반도에 이르는 '등주항로'라는 해상 루트를 다녔다. 한중카페리 최초 항로(인천~웨이하이)와 비슷한 경로를 1천600여 년 전에도 이용한 셈이다.1883년 개항 이후 인천항과 중국과의 해상 교역이 다시 시작된다. 당시 인천항의 첫 국제정기항로는 상하이를 오가는 배였다. 인천시가 1983년 발간한 '인천개항 100년사'에 따르면 1883년 초부터 청국 상하이초상국(上海招商局)의 '난성(南陞)'호가 매달 1~2차례 상하이~인천을 정기 운항했다. 이 배는 이듬해인 1884년 10월 운항을 중단했지만, 청국 상하이초상국은 1888년 3월 '광제(廣濟)'호를 상하이~인천 항로에 다시 투입했다.한중 뱃길은 1990년 웨이하이와 연결되면서 다시 열렸다. 이후 1992년 인천∼톈진(天津) 등 여러 한중카페리 항로가 추가로 개설됐다. 현재 인천항에서만 단둥, 옌타이, 다롄, 스다오, 잉커우, 칭다오, 롄윈강, 친황다오 등 10개 항로에서 카페리가 운항 중이다. 평택·군산에서 중국을 오가는 카페리 항로는 6개다."25년 전 웨이하이에서 인천으로 오는 '황금가교'(골든브릿지)호의 기적 소리를 시작으로, 한중 간 새로운 우정의 항해가 시작됐다." 2015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 축사에서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연설한 내용 일부분이다. 이처럼 한중 간 인적·물적 왕래의 물꼬를 튼 위동항운 임직원들은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윤 사무장은 "인천과 산둥반도를 오가는 카페리를 3천 번 정도 탔다. 지난 28년 동안 한중 양국이 큰 이익을 거두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탰다는 긍지와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이어 "최근 항공기 운항이 늘면서 카페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해 한중 뱃길의 역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지난 15일 오후 인천항 제2국제여객터미널에서 승객들이 중국 산둥성(山東省) 웨이하이(威海)행 한중카페리 '뉴골든브릿지7호'에 승선하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인천항 갑문 통과 중인 뉴골든브릿지7호.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인천항제2국제여객터미널 출국장 보따리상.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뉴골든브릿지7호의 내부.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뉴골든브릿지7호 전경.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1990년 9월 한중 최초로 개설된 카페리 항로인 인천∼웨이하이 항로를 운항했던 골든브릿지호(사진)와 항로 개설 당시 인천에서 열린 기념행사. /위동항운 제공

2018-09-19 김주엽

[zoom in 송도]인천, 내년 국비확보·현안해결 시급한 송도사업은

글로벌캠퍼스에 외국 연구기관 유치비용 절반 42억 국비 요청GTX-B 예타조사 연내 통과·GCF Complex '국책사업' 추진인천시가 내년도 국비 확보와 현안 해결을 위해 인천지역 국회의원들과 정책간담회를 가진 데 이어 최근엔 더불어민주당과 예산정책협의회를 했다. 인천시는 인천 관련 사업비 2조 9천129억원을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해달라고 정부에 신청한 상태다. 국회와 정당에서 도움을 줘야 할 현안 사업도 많다. 인천시가 인천지역 국회의원들과 더불어민주당에 지원을 요청한 송도 관련 사업을 정리해봤다.■ 송도컨벤시아 2단계 임대료 72억원=송도컨벤시아 2단계 건립사업은 올해 7월 완료됐다. 1단계 시설 옆에 연면적 6만4천207㎡ 규모의 시설을 증축했다.이 사업은 BTL(임대형 민자사업) 방식으로 진행됐다. 민간사업시행자 '더송도컨벤시아(주)'가 건립하면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2038년까지 임차해 사용하게 돼 있다. 총 임차료는 2천891억원(20년, 국비·시비 50%씩)이다. 내년에는 국비 72억원, 시비 72억원이 필요하다.인천시는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 지역지원계정'으로 국비를 지원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다른 지역과의 형평성을 이유로 인천시 요구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인천시는 ▲송도컨벤시아는 경제자유구역 활성화를 위한 시설인 점 ▲BTL은 정부에서 상환해야 할 부채적 성격으로 국가에 지급 의무가 있는 점 등을 강조하고 있다.■ 외국 교육연구기관 유치·설립을 위한 42억원=인천글로벌캠퍼스에는 한국뉴욕주립대, 한국조지메이슨대, 겐트대 글로벌캠퍼스 등 5개 대학이 입주해 있다.인천경제청은 미국 스탠퍼드대 스마트시티연구소, 영국 케임브리지대 의약연구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음악원을 추가로 유치하고자 지난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상태. 이들 기관이 인천글로벌캠퍼스에 들어와 개소·개교하려면 설립 준비비 등 내년에 총 84억원(국비·시비 42억원씩)이 있어야 한다. 또한 인천경제청은 인천글로벌캠퍼스 2단계 사업으로 2022년까지 세계 50위권 대학 5개교를 유치할 계획이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건립비 245억원=문화체육관광부는 송도국제업무단지 센트럴공원 내 약 2만㎡ 부지에 연면적 1만5천650㎡ 규모의 세계문자박물관을 건립할 계획이다. 총 사업비는 908억원이다. 2021년 개관 등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선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건립 공사는 내년 중반께 시작될 예정이다. 인천시는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내년도 정부 예산에 245억원을 반영해달라고 국회와 각 정당에 요청하고 있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B) 예타 통과 지원=GTX-B 노선은 인천과 서울에 신속하게 접근하도록 하는 핵심적인 광역교통체계다. 이 노선이 구축되면, 인천 송도와 서울 청량리 통행 시간이 100분대에서 20분대로 단축된다. 교통 편의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사업이다. GTX-B 노선은 2016년 6월 제3차 국가철도망구축계획에 반영됐으며, 지난해 8월 기재부는 이 노선을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사업으로 선정했다. 연내 GTX-B 노선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도록 지원해달라는 게 인천시의 건의사항이다.■ GCF(녹색기후기금) Complex 국책사업으로 추진=인천시는 송도 G타워 인근 약 1만8천500㎡ 부지에 지하 3층, 지상 33층, 연면적 9만㎡ 규모의 GCF Complex를 조성할 계획이다. 이 건물은 GCF 및 연관 국제기구, 국제인증기구, 금융기관, 기업을 집적화하는 글로벌 비즈니스 플랫폼이다. 인천시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인천 송도를 녹색기후금융도시로 조성하겠다는 공약이 반영된 점, 독일과 덴마크 등 다른 나라도 국책사업으로 유엔 건물을 건립한 점을 강조하고 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8-09-16 목동훈

[zoom in 송도]'데카트론' 송도에 국내 최대 체험형 1호

축구·캠핑·등산등 45개 종목 4천여 상품 '다양'곳곳에 트랙·탁구대등 제품 테스트공간 마련국제 규격 풋살장·무료강의 스튜디오도 '눈길'유럽의 대표적인 스포츠레저용품 전문 브랜드 '데카트론'(Decathlon)이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한국 1호점을 열었다. 송도 복합쇼핑몰 '트리플스트리트'에 위치한 데카트론 송도점은 7천800㎡에 45개 종목 4천여 품목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체험형 매장이다. 송도점을 시작으로 국내에 2028년까지 49개 매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데카트론의 계획. 인천에 상륙한 데카트론 송도점을 둘러봤다.데카트론의 한국 첫 매장인 송도점은 3층 규모의 단일 매장이다. 1~2층은 스포츠레저용품 매장이고, 3층에는 국제 규격의 풋살장과 아담한 옥상정원이 있다. 매장 외부에는 스트리트바스켓볼(3대3 농구)을 즐길 수 있는 농구장, 스케이트보드 등을 탈 수 있는 스케이트존이 있다. 무료 이용이 가능한 개방형 시설이다.1~2층 매장은 축구, 농구, 캠핑, 등산, 자전거, 스쿠버 다이빙, 요가, 골프, 웨이트 트레이닝 등 스포츠레저 종목별로 상품이 진열돼 있다.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구조다. 데카트론은 매장 곳곳에 자사 제품을 테스트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이를테면 러닝과 트레킹 구역에는 각각 러닝 트랙, 트레킹 로드가 있다. 간이 배드민턴장과 탁구대가 있어 구매하고자 하는 라켓을 테스트할 수 있다.데카트론이 자신 있게 선보인 시설은 '데카스튜디오'와 '풋살장'이다. 매장 2층에 위치한 데카스튜디오는 필라테스, 요가, 줌바 등을 즐기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꽤 넓다. 데카트론은 이곳에서 고객들이 무료로 스포츠 클래스를 수강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3층 옥상에 조성한 풋살장은 국제 규격 수준으로, 무료로 개방된다.송도점은 매장 1층에 셀프계산대가 설치돼 있다. 일일이 바코드를 스캔하지 않아도 된다. 셀프계산대 안에 제품을 넣으면 기계가 스스로 인식해 구매 내역을 알려주고 신용카드 결제를 돕는다.데카트론은 제품을 직접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제조하고, 유통·판매한다. 특히 '데카트론 스포츠랩 행동과학연구소'에서 개발한 기술을 제품에 적용해 혁신 제품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이런 시스템 때문에 다양하고 혁신적인 제품을 싼 가격에 공급할 수 있다. 현재 20여 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스테판 가이 데카트론코리아 대표는 "우리 회사는 '사람'과 '열정'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다"며 "모두가 스포츠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목표 중 하나"라고 했다. 또 "송도에 매장을 연 건 단순히 제품만 판매하기 위한 게 아니다"며 "스포츠 유저와 유저를 잇는 사회적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佛 창립… 유럽 첫 복합매장 열어■ '데카트론(Decathlon)'은1976년 프랑스 북부 상공업 중심도시인 릴(Lille)에서 창립했다. 프랑스 앵글로스(Englos)에 유럽 최초 복합스포츠 매장을 연 이후 현재까지 40개국에서 1천415개 매장을 직접 운영하고 있다. 2015년 온라인 몰 '11번가' 입점을 시작으로 국내에 진출했으며, 지난 15일 인천 송도점 오픈과 동시에 온라인 쇼핑몰 서비스를 시작했다.유럽의 대표적인 스포츠레저용품 전문 브랜드 '데카트론'의 송도 매장 모습.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아이클릭아트매장내 자전거용품매대, 라켓 테스트를 할 수 있는 간이 배드민턴장 모습.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아이클릭아트3층 옥상에 조성된 국제 규격 규모의 풋살장.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아이클릭아트

2018-09-16 목동훈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34]바다 수호 첨병 해양경찰

왕산마리나 하늘바다파출소 낮에는 배·밤에는 간이사무실 대기낚시·레저 증가에 따른 고립·조난 등 5~7분내 출동 빠르게 대응부산서 해양경찰대로 첫발, 中어선 출몰·北접경 영향 인천 이전6 → 323척 외적성장 주력하다 '2014년 세월호 책임론' 해체 아픔이후 역량 강화 사업 전개… 연안구조선 보급 등 국민 보호 노력우리나라 바다 넓이는 44만3천㎢로, 남한 면적의 약 4.5배에 달한다. 이처럼 넓은 바다는 어족 자원의 보고이면서 다양한 경제활동이 이뤄지는 곳이다. 바다를 통한 교역과 이와 연관된 산업들은 비단 바다에서뿐 아니라 육지와 연결되면서 다양한 가치를 창출한다. 인천은 바다를 끼고 있는 해양도시다. 160여 개의 섬이 있고 수도권에 위치에 있어 바다를 기반으로 한 관광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긍정적인 측면과는 반대로 바다엔 위험도 도사리고 있다. 사고가 나면 수많은 생명을 한순간에 잃기도 하는 곳이 바다다. 이처럼 중요하면서도 위험한 바다에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해양경찰'이다.9월 10일 오후 2시께 인천시 중구 왕산마리나. 이곳은 인천해양경찰서 하늘바다파출소가 운영하는 '연안구조정' 정박 장소다. 18t급 선박인 연안구조정은 다양한 역할을 한다. 인근 을왕리해수욕장과 왕산해수욕장 등에서 조난 신고 등이 들어오면 출동해 구조 업무를 수행한다. 무의도 같은 섬에서 야간 시간에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도 구조정이 출동해 환자를 이송한다. 최근 보트 등 해양레저기구를 이용하는 인구가 늘어나면서 해양경찰의 역할은 점차 커지고 있다.이날 연안구조정을 운항한 하늘바다파출소 배병진(43) 경위는 "순찰을 돌며 혹시나 있을 비상 상태에 대비한다"면서 "이 일대 바다는 낚시나 레저기구를 사용하는 인구가 많기 때문에 사고도 많이 발생한다. 특히 조수 간만의 차 때문에 고립되거나 먼바다로 휩쓸리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고 말했다.하늘바다파출소는 2~3명이 주간에 연안구조정에서 생활한다. 빠른 출동을 위해서다. 야간에는 인근에 있는 왕산해수욕장에 간이사무실을 마련해 놓고 대기한다. 신고가 들어오면 바로 출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준비다. 해양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바다의 특성상 인명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해경의 출동 시간이 생명과 직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해경에서는 파출소마다 신고 후 출동까지의 시간을 수치로 정한 '출동시간 목표관리제'를 시행하고 있다. 신고를 받은 시간부터 배의 시동을 걸고 닻줄을 풀어 출발하기까지의 시간을 정한 것이다. 각 출동 장소의 특성을 반영해 정해졌으며 하늘바다파출소의 경우 주간 5분, 야간 7분 안에 출동할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다.하늘바다파출소 김정용(52) 경위는 "바다는 매일 물때가 다르고 갑자기 안개가 끼거나 풍랑이 거세지는 등 날씨의 변화가 크다"며 "이러한 변화가 어민이나 낚시인 등 바다에 있는 분들에게는 큰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인명 구조를 최우선 가치로 놓고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해양경찰이 탄생한 것은 65년 전인 1953년이다. 해양경찰청의 전신인 '해양경찰대'가 이때 창설됐으며 내무부 치안국 소속이었다. 해양경찰대는 경비함정 6척에 정원 658명인 작은 조직으로 시작했다. 청사는 부산에 마련했다. 1960년대까지 해양경찰의 주 업무는 일본 어선이 우리 해역에 침범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다고 한다. 2000년대 중국어선이 서해 우리 어장에서 불법 조업을 벌이는 것과 같이 당시에는 일본 어선의 불법 조업을 막는 것이 해경의 주된 역할이었다. 1964년에는 월평균 300척의 일본어선이 우리나라 해역을 침범해 연간 22만t의 수산물을 잡았다. 이 때문에 일본어선의 불법 조업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컸다. 당시 부족했던 해양경찰의 경비함정을 마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금 활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해양경찰대가 부산에 설치된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일본의 불법 조업이 점차 감소하면서 인천의 중요성은 점차 부각됐다. 수도권에 있고 서해 5도 등 북한과 가까운 접경지역이기 때문이다. 중국어선의 불법 조업도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렸다. 2012년 정년퇴임한 인천해경 재향경우회 이병일(66) 회장은 1974년부터 40년 가까이 해양경찰에 몸담았다. 이병일 회장은 "해양경찰대가 부산에 설치된 것은 당시 성행했던 일본의 불법 조업을 막기 위한 측면이 컸다"며 "이후 점차 해경이 확대되고 인천 바다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1979년 해경본부가 인천에 들어섰다"고 설명했다.해양경찰대는 1979년 인천 중구에 터를 잡았다. 이후 40년 가까이 인천에서 본부를 운영하면서 발전을 거듭했다. 해양경찰대는 1996년 독립 외청인 '해양경찰청'으로 그 위상이 강화됐고 장비와 인원도 보강됐다. 맨 처음 6척이었던 함정은 323척으로 50배 이상 늘어났으며, 인원도 1만1천여명으로 확충됐다.외형적으로 성장을 거듭했지만 20~30년 전만 해도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특히 소형 경비함정에서 근무할 경우 한 번 근무에 길게는 1주일 이상을 바다에 있어야 하는데, 화장실이 없는 경비함정이 많았다는 게 당시 근무했던 직원들의 설명이다. 조병문(61) 인천해경 경우회 회원은 "1980년대만 해도 선박 내에 화장실이 없어서 갑판 위 깃대를 잡고 용변을 봐야만 할 정도로 시설이 열악했다"며 "쥐가 신발과 양말을 갉아 먹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박성국(62) 전 인천해경서장은 "기상 상황이 좋지 않으면 이틀로 예정했던 함정 생활이 1주일까지 길어지기도 한다"며 "간혹 식량이 떨어져서 섬 주민들에게 식량을 얻은 적도 있었다. 주민들이 반갑게 맞아주면서 먹을거리를 한가득 안겨줬다"고 말했다.외형적 성장에 치우친 나머지 해경에 필수인 수상구조 훈련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2014년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는 30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사고 때 해경 책임론이 대두되면서 해양경찰청은 해체돼 외청 독립 이후 18년 만에 독립기관의 기능을 상실했다. 이후 2017년 해양경찰청은 다시 독립기관으로 환원됐지만, 세월호 참사의 영향은 이어지고 있다.인천에는 현재 중부지방해양경찰청, 인천해양경찰서, 서해5도 특별경비단 등이 운영되고 있다. 이 중 중부지방해양경찰청은 해경이 해체된 뒤 생겨난 중부지방해양경비안전본부가 이어진 것이다. 수도권이면서 북한과의 접경지역, 중국어선 출몰 해역이라는 인천의 중요성이 반영된 결과이면서도 세월호 참사로 인한 조직 구조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인명 구조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면서 연안구조정 등의 장비가 지역마다 신규로 배치됐다. 하늘바다파출소의 연안구조정도 세월호 참사 이후 추진된 구조역량 강화사업 일환으로 2016년 배치됐다.이병일 인천해경 재향경우회장은 "우리나라는 바다가 없으면 살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바다에서 해경의 중요성은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바다를 지키고 바다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해경으로서 그동안 부족했던 부분도 있었다. 앞으로 더욱 보완해야 하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해경뿐 아니라 나라가 발전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인천 왕산해수욕장 일대에서 활동중인 인천해양경찰서 하늘바다파출소 대원들.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인천시 중구 왕산마리나에 정박해있는 인천해양경찰서 하늘바다파출소 연안구조정.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지난해 11월 서해5도특별경비단이 우리 해역에서 불법 조업 중인 중국어선을 단속하는 모습. /중부지방해양경찰청 제공1996년 해양경찰청이 독립 외청으로 승격하면서 진행된 현판식 모습. 이 청사는 해양경찰 본부가 인천으로 올라온 1979년부터 사용됐다. 현재는 서해5도특별경비단 청사로 활용하고 있다. /중부지방해양경찰청 제공지난 7일 인천해경이 인천 자월도 인근 해역 갯바위에 고립된 사람을 구조하는 모습. /인천해양경찰서 제공

2018-09-12 정운

[zoom in 송도]인천시 'GCF Complex·바이오융합 산업기술단지' 추진

환경국제기구 연관산업 집적화연면적 9만㎡ '컴플렉스' 조성市, 文 '금융도시' 공약 맞물려정부 주체 국가사업 진행 요구11공구 바이오융합산업기술단지중견·중기 250개 유치 고용 창출삼성바이오로직스등과 '시너지''제품 쇼핑 스트리트몰'도 계획박남춘 인천시장이 최근 문재인 대통령 주최로 열린 민선 7기 첫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송도국제도시와 관련해 'GCF(녹색기후기금) Complex'와 '바이오융합 산업기술단지' 조성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다. GCF Complex는 송도에 있는 GCF를 기반으로 국제기구, 인증기구, 금융, 기업을 유치·집적화하는 '녹색기후금융·산업 글로벌 비즈니스 플랫폼'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바이오융합 산업기술단지는 바이오 분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하는 공간 조성을 목표로 한다. 관련 산업을 특화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업 혁신을 이뤄내겠다는 게 인천시 전략이다. 인천시의 'GCF Complex'와 '바이오융합 산업기술단지' 조성계획을 소개한다.■ GCF Complex인천시는 G타워 인근 송도동 24-1·2·3 부지(약 1만 8천500㎡)에 지하 3층, 지상 33층, 연면적 9만㎡ 규모로 GCF Complex를 조성할 계획이다. 예상 사업비는 토지 매입비를 포함해 총 2천594억 2천500만 원이다. 이곳에는 GCF를 비롯한 유엔기구, 인증기구, 해외 국가기관, 국내외 기업 등이 입주하고 국제회의장 등이 조성될 예정이다. GCF 연관 산업 집적화와 클러스터 구축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미국,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덴마크 등은 유엔 건물을 가지고 있다. 이들 건물엔 적게는 1천 명, 많게는 9천 명이 상주하고 있다. 대부분 정부가 건물을 건립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2017년 7월 발표)에는 인천 송도를 녹색기후금융도시로 조성하겠다는 공약이 반영된 바 있다. 인천시는 "각 국가의 유엔 및 국제기구에 대한 정책은 정부가 주체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2011년 조성된 덴마크 코펜하겐 'UN City'도 정부 주체로 건립됐다"고 했다. GCF Complex 조성을 국가사업으로 추진해달라는 게 인천시 건의사항이다.인천시는 GCF Complex가 ▲유엔 및 정부 위상 제고 ▲직접적인 국가 자산 증가 ▲GCF 기구 확대로 인한 공간 부족 문제 해소 ▲새로운 국제기구 유치를 위한 국가적 인프라 확보 ▲신성장 동력 확보 및 일자리 창출 등의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이오융합 산업기술단지인천시는 송도 11공구 연구시설용지 18만 4천588㎡에 '바이오융합 산업기술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바이오 중견·중소기업 250개를 유치해 6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목표다. 바이오융합 분야 세계시장은 현재 450조 원 규모다. 연간 12.3% 성장해 2020년에는 약 715조 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인천시는 바이오, 뷰티, 의료기기 등 산업 분야별 특화지구를 조성해 기업의 연구개발 및 제조시설을 유치하기로 했다. 또 바이오공정전문센터를 구축해 전문 고급 인력을 양성하고, 벤처·스타트업·바이오서비스기업의 입주를 이끌어 내기로 했다.'바이오융합 스트리트 몰' 조성도 추진된다. 인천시는 바이오융합 산업기술단지 중심가 주변에 국내 최초의 바이오융합 제품 특화형 쇼핑 스트리트 몰을 조성할 계획이다. 송도에는 셀트리온,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등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바이오융합 산업기술단지가 조성되면, 이들 글로벌 기업과 중소·중견기업 간 협력이 강화될 것으로 인천시는 기대하고 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GCF(녹색기후기금)가 입주해 있는 송도 G타워 전경.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올해 4월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마련한 바이오 관련 포럼에서 인천대, 연세대, 겐트대 글로벌캠퍼스, 셀트리온그룹, 삼성바이오로직스, 한국바이오협회, 가천대 길병원, 유타-인하DDS 및 신의료기술개발공동연구소 등이 '송도 글로벌 바이오 허브' 조성에 협력하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한 모습.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2018-09-09 목동훈

[zoom in 송도]송도국제도시 브리핑

■'IFEZ 투자·일자리 박람회' 참여 접수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오는 11월 14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2018 IFEZ 투자유치 홍보 및 일자리 박람회'를 연다. 산업통상자원부와 6개 경제자유구역청이 후원하는 행사다.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중소기업진흥공단 등의 기관이 도움을 준다.인천경제청은 이번 행사를 통해 송도 등 인천경제자유구역을 홍보하고 구직자와 구인업체를 이어줄 계획이다.행사 참여를 희망하는 기업은 인천경제청 홈페이지에서 신청서를 내려받아 작성 후 10월 5일까지 이메일(kcyor@korea.kr)로 신청하면 된다. 자세한 사항은 인천경제청 투자유치기획과(032-453-7304)에 문의하면 된다.■관광공사 경인지사, 송도컨벤시아 입주인천 송도컨벤시아에 한국관광공사 경인지사가 입주한다.한국관광공사는 송도컨벤시아 3층에 경인지사를 설치하고 오는 19일 개소식을 열 예정이다. 한국관광공사는 2014년 본사를 서울에서 강원도 원주로 옮긴 이후 수도권 사업을 전담할 신규 지사가 필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서울센터 기능은 유지된다.한국관광공사 경인지사가 인천 송도에 문을 열면 인천시, 인천관광공사와의 공동 마케팅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여 대규모 마이스 행사 유치, 일자리 창출 등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핼러윈 페스티벌' 내달 27일 커넬워크서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10월 27일 송도 커넬워크에서 '2018 핼러윈 페스티벌'을 개최할 예정이다.인천경제청은 내외국인이 함께하는 특색 있는 행사를 고민해오다 인천경제자유구역 거주 외국인들 의견을 수렴해 '핼러윈 페스티벌'을 기획하게 됐다. 행사는 어린이 핼러윈 코스튬 패션쇼, 청소년 핼러윈 댄스 공연, 마술쇼, 좀비 댄스 공연, 핼러윈 코스튬 퍼레이드 등으로 구성된다. 페이스 페인팅, 캐리커처, 핼러윈 용품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된다.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커넬워크 상권이 침체한 점을 고려해 (인천경제청 내부적으로) 행사 장소를 정했다"면서 "행사 주관 대행사가 선정되면 일시, 장소, 프로그램을 협의해 확정할 계획"이라고 했다.인천경제청은 인천경제자유구역을 홍보하고 거주 외국인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지구촌 명절 축제, 체육대회, 역사 탐방 등 다채로운 행사를 기획·진행하고 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8-09-09 목동훈

[zoom in 송도]4공구 상업·업무용지 7개 공개입찰 매각… 17일 마감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송도국제도시 4공구 상업·업무 용지 7개를 공개입찰 방식으로 매각한다.매각 대상 토지(면적)는 인천 연수구 송도동 ①10-7(4천982.5㎡) ②10-110(4천982.4㎡) ③10-96(1천241.6㎡) ④10-92(2천431.3㎡) ⑤10-94(2천423.4㎡) ⑥10-97(2천469.2㎡) ⑦10-99(2천483.2㎡) 등 7개다. → 위치도 참조이들 토지는 인천도시철도 1호선 인천대입구역, 신세계복합쇼핑몰 및 롯데쇼핑몰 건립 예정 부지와 가깝다. 지식정보산업단지와 인천대 등 풍부한 배후시장을 가지고 있다. 매각 예정 금액은 ㎡당 418만 5천~494만 5천 원 수준이다. 계약금 10%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2년간 4회 균등분할 납부할 수 있다. 전자입찰서 접수 마감 일시는 오는 17일 오후 4시이며, 개찰은 다음 날 오전 10시다. 허용 용도 중 오피스텔은 과잉 공급에 따른 학교시설 부족을 우려하는 인천시교육청 의견을 반영해 연면적의 30% 이하로 제한될 예정이다. 토지 용도, 건폐율, 용적률 등 자세한 사항은 온비드 또는 인천경제청 홈페이지(www.ifez.go.kr)에 게시한 매각공고문에서 볼 수 있다.인천경제청 관계자는 "향후 송도국제도시 토지 공급 상황을 고려할 때 이번 매각 토지는 희소성이 있다"며 "입지와 가격 측면에서 투자 가치가 높을 것"이라고 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8-09-09 목동훈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33]컨테이너와 컨테이너 수리업

직육면체 규격화된 컨… 선적·운반 기계화·화물보호에 탁월15년 수명 불구 충격·부식 탓 활동마친 설비 10대 중 3대 손상작업자들, 국제 기준에 맞춰 작은 틈·찌그러짐 꼼꼼하게 복구1970년대 리어카로 첫발뗀 인천업체, 남항·신항등 15곳 활동컨테이너. 우리가 수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나라에서 원하는 화물을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안전하게 받아볼 수 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구다. 국제적으로 규격화된 컨테이너는 1950년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해 물류업계의 혁신을 가져왔다. 종류와 크기, 무게 등 천차만별인 화물을 배에 싣고 내리기 위해선 사람이 직접 들고 날라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이 과정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고 비용 또한 컸다. 컨테이너는 이 과정의 기계화를 가능하게 했다. 사람이 싣고 내려야 했던 화물은 거대한 크레인이 대신 나르게 됐고, 부두 내에서 화물을 옮기는 일도 지게차와 트럭이 맡게 됐다. 컨테이너의 '규격화'도 물류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철강판으로 둘러싸인 직육면체로 투박해 보이는 컨테이너는 화물의 안전한 이동에 큰 도움이 됐다. 장거리 이동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충격과 폭우 등 기상 상황으로부터 화물을 보호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세계적 석학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는 이 컨테이너를 '세계 경제사를 바꾼 대혁신적 발명품'이라고 칭하기도 했다.물류에서 없어선 안 될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게 된 컨테이너는 선적·하역 등 이동 과정에서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빈 컨테이너의 무게는 2~3t에 달한다. 물건을 채우면 최대 30t까지 나간다.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과정에서 외부 충격 등으로 찌그러지거나 찢기는 경우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렇게 손상된 컨테이너를 되살리는 이들이 있다. 바로 컨테이너 수리업체다. 컨테이너 수리업체의 수리공들은 손상된 컨테이너가 다시 제 모습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8월 31일 인천 신항 선광컨테이너터미널 내에 있는 컨테이너 수리업체 '콘테이너 테크닉큐 서비스(주)'의 작업 현장은 분주했다. 곳곳이 찌그러지거나 파여 있는 컨테이너들이 산처럼 쌓여 수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대형 지게차는 이들 컨테이너를 수리할 수 있도록 작업장에 하나씩 펼쳐놨다. 작업장 한편에선 컨테이너 내부 바닥을 고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수리공들은 앞서 수리가 필요한 부분에 검사원들이 분필로 적어놓은 일종의 '작업지시서'대로 작업하고 있었다. 컨테이너 내부 바닥은 21겹으로 된 70㎏ 정도의 무거운 합판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소형 지게차들이 화물을 싣고 내리는 과정에서 깨지거나 부서진다. 보통은 새 바닥용 합판을 크기에 맞게 잘라서 부서진 합판을 뜯어내고 새로 까는데, 경우에 따라선 합판 전체를 교체해야 할 때도 있다. 뜨거운 여름철 컨테이너 내부 온도는 섭씨 50도에 달할 정도로, 잠시만 있어도 땀으로 바닥이 흥건하게 젖을 정도라고 한다. 찌그러진 부분은 4~5㎏짜리 대형 망치로 때려서 펴는 작업을 한다. 경우에 따라 유압으로 찌그러진 부분을 펴는 기계를 사용하기도 한다.밀폐된 공간으로 바다에 빠졌을 때 물에 뜨기도 하는 컨테이너의 수명은 보통 15년 정도다. 시간이 갈수록 부식이 진행돼 작은 망치로 치면 구멍이 뚫릴 정도로 약해진다. 수명 전이라도 컨테이너에 작은 구멍이 생기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수리 대상이다. 컨테이너 내부에 물이 스며들면 컨테이너에 실린 화물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력 10년의 이 회사 김형수(40) 과장은 "작은 구멍을 찾기 위해 컨테이너 안에서 문을 닫고 내부로 새어 들어오는 빛이 없는지를 확인하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올여름은 무더위에 특히 힘들었던 것 같다"며 "망치 같은 단단하고 무거운 물건을 다루는 만큼, 한번 실수로 크게 다칠 수 있어 항상 안전에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컨테이너 수리는 싣고 온 화물을 비운 컨테이너가 다시 컨테이너 부두로 들어올 때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별도의 자격을 갖춘 검사원이 컨테이너 내·외부를 꼼꼼히 살피며 수리가 필요한 컨테이너인지를 가린다. 평균 컨테이너 10대 중 3대 정도는 손상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손상 판단 여부는 국제 기준을 따른다.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국제 컨테이너 임대사 협회'(IICL) 규정엔 손상 정도에 따라 수리가 필요한 경우가 구체적으로 제시돼 있다. 컨테이너를 소유하고 있는 선사별 수리 매뉴얼도 있다. 이들 매뉴얼은 컨테이너를 수리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페인트칠, 용접, 내부 청소까지 마무리한 컨테이너들은 다시 새로운 화물을 실을 수 있도록 야적장으로 옮겨지게 된다.인천에는 컨테이너부두가 있는 남항과 신항을 중심으로 15개 컨테이너 수리업체가 활동하고 있다. 컨테이너를 소유하고 있는 선사와 계약을 맺고 수리업을 하는 경우도 있고, 선사가 직접 운영하기도 한다. 인천 최초의 컨테이너 수리업은 70년대 후반 산소용접기 등을 리어카에 싣고 다니며 타이어 구멍을 때워주던 이름 모를 인부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인천항엔 컨테이너 관련 인프라가 부족했다. 전문 수리업체가 없는 상황에서 한 화물차 기사가 그에게 '컨테이너도 때우는 것이니 어차피 그 일이 그 일 아니겠느냐'며 제안한 게 시초였다는 것이다. 컨테이너 수리업 30여 년 경력의 이선연(51)씨는 "내항만 있을 때였는데, 인천항을 드나드는 컨테이너가 많지 않아 용접기만 있으면 컨테이너 수리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인천 컨테이너 수리업의 시작은 그때라고 선배들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이후 남항에 컨테이너터미널이 들어서면서 인천의 컨테이너 수리업이 본격화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컨테이너는 단순 화물만 옮기던 것에서 각종 활어나 신선식품도 실을 수 있도록 점점 첨단화되고 있다. 포대에 담아 옮겨야 했던 곡물을 직접 빨아들여 저장하는 '사일로'(Silo) 시설이 생기고, 드럼통에 담아 옮기던 유류를 배에서 직접 빼낼 수 있도록 '돌핀 부두'가 만들어지듯 발전한 것이다. 컨테이너 수리업도 기술적으로 함께 발전했다.이선연씨는 "컨테이너 수리업은 컨테이너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한 계속 성장·발전할 것"이라며 "수리공들이 점점 고령화되고 있어 걱정인데, 많은 젊은이가 컨테이너 수리업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했다. 글/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지난달 31일 오전 인천 송도 신항 선광컨테이너터미널 내에 있는 컨테이너 수리업체 '콘테이너 테크닉큐 서비스(주)'의 작업장에서 수리공들이 파손된 컨테이너 속에서 수리작업을 하고 있다.'콘테이너 테크닉큐 서비스(주)'의 관계자가 컨테이너 파손상황을 설명하고 있다.신항 선광컨테이너 터미널 입구에서 컨테이너 파손 유무를 육안으로 확인하는 모습.파손된 컨테이너 모습.하역작업도중 파손이 확인된 컨테이너가 수리작업장으로 옮겨지고 있다.

2018-09-05 이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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