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인천)

[푸른인천글쓰기대회]이모저모

■'기자 되어보고…' 시청자미디어센터 '뉴스제작체험' 인기○…"푸른 인천 글쓰기대회 현장에서 앵커 박지원이 전해드립니다."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가 마련한 '뉴스제작체험'을 통해 너도나도 아나운서, 기자, 기상캐스터가 되어보며 즐거운 한때.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는 이동식 스튜디오를 이날 글쓰기대회 현장에 설치, 참여 아이들이 각자 역할을 맡아 실시간으로 뉴스를 제작. 또박또박 원고를 읽는 미래의 아나운서, 기자, 기상캐스터들을 보는 학부모 표정도 흐뭇. 영종초 2학년 박지원 군은 "원래 기관사가 꿈이었는데 아나운서도 멋있는 직업 같다. 아나운서로 꿈이 바뀔 것 같다"며 함박웃음.■문학경기장 행사무대 '추억만들기' 인증샷 찍기 행렬○…문학경기장 북문광장에 설치된 무대는 공식행사가 끝난 뒤 참가자들의 기념촬영 장소로 인기. 대회가 시작된 지 1시간이 지나면서부터 작품을 다 쓴 참가자들은 하나 둘 자신이 쓴 원고지를 들고 이날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 기념사진을 촬영. 한 어린이는 비어 있는 무대에 올라서서 흘러나오는 동요에 맞춰 춤을 추는 등 장기자랑 공간으로도 활용. 학부모 김지현(여·38)씨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어서 너무 좋다"며 "오늘을 추억하기 위해 무대를 배경으로 아이들 사진을 찍어줬다"고 설명.■세 딸과 참여 '열혈 아빠' "내년엔 넷째 아들도 데려올 것"○…초등학교 3학년, 1학년과 유치원생인 세 딸을 홀로 이끌고 계양산 대회장을 찾은 다자녀 아버지 황수연(40)씨. 초등학생 참가자인 두 딸의 글을 봐주며 셋째 딸도 돌보는 등 만능 아버지 모습을 보여. 내년 대회에는 현재 8개월 된 넷째 아들과 대회장을 찾겠다고 약속. 황수연씨는 "아이들이 글을 쓰는 걸 제대로 본 건 이번이 처음인데, 아이들이 생각보다 글을 잘 써서 많이 놀랐다"며 "아내가 현재 다섯째를 임신하고 있다. 내년에는 가족 모두가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웃음. /정운·박경호·윤설아기자 jw33@kyeongin.com'오늘은 내가 아나운서!' 인천시청자미디어센터의 이동식 스튜디오를 찾은 어린이들이 뉴스제작 체험을 하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4-29 정운·박경호·윤설아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15]인천과 포구(上)

황무지였던 소래포구, 한국전쟁 이후 '실향민들' 정착항로 표지 시설·전봇대 직접 설치하며 터전으로 일궈새우젓 등 1970년대부터 전국 입소문… 문학에도 등장최근 어획량 감소 위기 '국가어항' 지정되며 희망 살려인천 남동구 논현동 포구로. 소래포구와 어시장, 소래어촌계 등이 이 일대에 있다.작은 어선이 있고, 배들이 정박하는 물양장 앞에는 갓 잡아온 수산물이 판매된다. 강원도나 충청도 어촌에 있을 법한 모습이 펼쳐지는 곳이다. 포구와 접한 곳에 있는 어시장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소래포구와 어시장을 찾는 사람이 한 해에 2천만명이다. 새우젓과 꽃게를 사러, 회를 먹으러. 사람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어시장은 상인과 손님의 흥정하는 목소리, 어시장이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젖은 바닥에서 나는 발소리, 인천 어느 바다에서 잡혀 왔을 물고기들이 살아 푸덕거리는 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생동감을 자아낸다. 도심에서 어시장을 거쳐 바다 쪽으로 향하다 보면 작은 바다와 어선, 각종 어구가 나타난다. 많은 이가 도시에서는 흔치 않은 어촌의 고즈넉함을 만끽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소래포구에서 5분 정도 걸으면 고층 아파트가 줄지어 있다. 인근엔 아파트를 짓기 위한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멀지 않은 곳에는 수원과 인천을 연결하는 '수인선'이 운행하고 있다. 이러한 풍경은 소래포구가 '도심 속 포구'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유이기도 하다.이토록 활기차고 평화로운 소래포구의 시작엔 '수탈과 전쟁'이 있었다. 한국 현대사의 아픔이 켜켜이 배어 있는 곳이 바로 소래포구다.소래포구의 시작은 일제강점기로 전해진다. 과거 이 일대에서 생산된 소금을 수탈하기 위해 일제가 수원에서 소래를 거쳐 인천항까지 연결하는 수인선 철도를 건설했고, 건설 현장과 염전에서 일하는 일꾼을 실어 나르기 위해 나룻배를 정박한 게 소래포구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때만 해도 어업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어업이 시작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실향민들이 소래에 정착하면서부터다. 실향민 전규식(93), 박지화(90)씨 등 황해도에서 어업을 하던 이들이 이 지역에 터를 잡고 나무로 만든 작은 범선으로 고기를 잡기 시작한 것이 1960년대 초. 실향민은 지금의 소래포구를 있게 한 뿌리라는 것이 소래 어민들의 이야기다.1996년부터 2000년까지 소래어촌계장을 맡았던 전익수(65)씨는 '소래포구 1세대 어민'들과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그는 "당시 이곳은 허허벌판에 작은 집 몇 채밖에 없는 작은 바닷가였다"고 말했다.실향민 등으로 구성된 어민들은 1963년 소래어촌계를 설립했다. 당시 등록된 어선은 28척으로 인근 마을까지 소래어촌계에 포함됐다고 한다. 그때는 어민들이 잡아온 고기를 팔 수 있는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았다. 일부는 포구 앞에서 판매했지만, 대부분은 바다에서 잡아온 물고기를 수인선이나 경인전철을 이용해 서울과 인천항 등지로 가져가 팔았다.소래어촌계원 조인권(62)씨는 "60년대 초반 처음 이곳에 왔는데, 말 그대로 황무지였다"며 "움막 같은 몇 채의 집과 갯벌, 작은 목선이 있었을 뿐"이었다고 회상했다.점차 마을이 커졌지만 1970년대까지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어민들은 꼬불꼬불한 물길 때문에 항해에 어려움을 겪었는데, 제대로 된 항로표지시설도 없었다. 이 때문에 어민들이 직접 전봇대를 세우고, 뱃길을 표시하기 위해 대나무를 갯벌에 박아 넣기도 했다. 전익수씨는 "당시 한국전력에서 전기선은 연결할 수 있지만 전봇대를 세우지는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어민들과 주민들이 함께 전봇대를 세웠다"고 말했다.소래포구는 1970년대 이후 어민이 점점 늘었다. 어민들이 직접 잡은 수산물을 싸게 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지금도 어업 활동을 하는 김남석(66)씨는 1978년 소래포구에서 어업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 왔을 때만 해도 제대로 된 선착장이 없어 배의 동력으로 갯벌 위에 배를 올려 놓고, 장화를 신고 걸어서 뭍으로 와야 했다"며 "70년대 후반부터 방송과 신문에 소래가 소개되면서 찾는 이들이 급격히 많아졌다"고 했다.경향신문은 1981년 6월8일 "서해 경기해안의 미항인 소래항. 이곳은 올해 들어 관광객이 부쩍 늘어 비좁은 포구는 원색의 인파로 흥청거린다"며 "소래항은 싱싱한 해물이 많이 나 각종 공해에 찌든 도시민들이 마음 놓고 하루를 즐길 수 있는 수도권어항으로 새로운 각광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소래포구의 주 어종은 '새우젓'이다. 아직도 소래 새우젓은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지금은 냉장시설이 잘 돼 있지만 1970~1980년대 소래 새우젓의 주 보관 창고는 부평동굴이었다. 지금은 전국적인 관광지가 된 '광명동굴'도 소래포구 새우젓의 보관 장소였다. 김남석씨는 "당시 냉장시설이 미비했기 때문에 새우젓 대부분을 부평과 광명에 있는 동굴에 보관했다. 지금도 부평동굴을 냉장 창고로 활용하고 있다"며 "1980년대엔 250㎏짜리 새우젓 수천 통을 동굴에 저장했다"고 말했다.소래포구 새우젓은 문학작품에도 종종 등장한다. 시인 정세훈(인천민예총 이사장)은 '소래포구'라는 제목의 시에서 '휘몰아치던 서해 바닷 바람은 / 어머니 품안에 찾아들 듯 고요히 안겨오고 / 새우젓배들 너울너울 바람 타고와 / 끝없는 그리움처럼 줄 이어 새벽을 열었겠지'라고 했다.현재 소래어촌계에 등록된 어선은 256척이다. 2008년에 347척까지 늘어났다가 줄어들고 있다. 소래포구 어민 절반 이하는 다른 지역에서 어업을 하다가 소래로 옮겨온 이들이다. 시흥, 안산, 인천 만석·화수부두 등지에서 소래로 왔다. 소래 어민이 늘어난 것은 개발사업 영향이 컸다. 시화방조제가 건설되면서 시흥의 어민들이 소래로 삶의 터전을 옮겼고, 1974년 인천항 갑문이 준공되면서 만석·화수부두의 소형 어선들이 소래로 왔다. 전라도와 충청도 등지에서 온 이들도 있다.소래 어시장은 지속적으로 확장됐지만 소래 어민은 줄어드는 추세다. 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바다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시화방조제 건설, 공유수면 매립을 통한 송도국제도시 및 인천 신항 건설 등이 소래 어민들의 조업에 영향을 미쳤다.고철남(54) 소래어촌계장은 "지속적인 매립사업으로 조업할 수 있는 바다가 축소됐다. 단순히 면적이 줄어든 것뿐 아니라 어획량도 많이 감소했다"며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갯벌 매립과 바닷모래 채취로 인한 생태계 변화가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소래포구는 지난해 국가어항으로 지정되면서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고철남 계장은 "소래포구가 활성화될 수 있었던 건 어민들의 어업 활동이 바탕이 됐다. 하지만 어시장이 활성화된 것과 다르게 어업 시설은 굉장히 낙후됐다"며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만큼 소래의 낙후한 시설을 현대화하고, 어민들의 어업 활동이 보장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이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활기차고 평화로운 소래포구의 지금을 있게 한 데에는 '수탈'과 '전쟁'이라는 아픔이 있었다. 실향민의 어업 활동을 시작으로 발전을 거듭한 소래포구는 주변에 아파트숲과 지하철이 연결돼 있어 '도심 속 포구'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사진은 드론을 활용해 찍었으며 소래포구 너머 고층 아파트가 보인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1980년대까지 소래포구는 전기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고 물길을 표시하는 시설이 없어 어업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어민들은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섰고, 이는 소래포구 발전의 바탕이 됐다. 사진은 어민들이 전신주를 세우고, 물길을 표시하기 위해 대나무를 갯벌에 박고 있는 모습. /전익수씨 제공1983년 소래포구 모습. 1980년대 초 소래포구에는 제대로 된 선착장이 없어 배를 갯벌 위에 세워 놓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소래역사관 제공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2018-04-25 정운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14]인천항 연안여객선(下)

석모대교 개통 후 이용객 급감한 외포리 선착장유일한 정기선 삼보 12호, 섬주민들 마지막 보루서해5도 등 임산부 출산·응급 환자 이송·피난…수십년 실어나른 일상, 선원들 책임·사명감 느껴지난 6일 찾은 인천 석모도 석포 선착장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식목일이 지난 4월 초순이라는 시점과는 어울리지 않는 추운 날씨와 강한 바람, 미세먼지는 선착장 분위기를 더욱 스산하게 했다. 지난해 석모대교가 개통하면서 외포리 선착장과 석모도를 연결하는 배편이 끊긴 이후 이런 모습이 일상이 됐다.이곳에서 30년간 밴댕이젓과 순무김치 등을 팔아온 문유자(60·여)씨는 "그전엔 수시로 배가 다녀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 물건도 잘 팔렸는데, 지난해 석모대교가 생기면서 이곳(석포)을 다니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며 "'나룻부리항시장'으로 새롭게 가꾸고 장사를 하고 있지만, 일부러 찾아야 하는 곳이 돼 오늘도 개시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강화 외포리 선착장의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주문도와 아차도, 볼음도로 향하는 '삼보12호'를 기다리는 차량 몇 대와 10여 명의 사람이 작은 대합실을 지키고 있었다. 삼보12호는 석모대교 개통 이후 외포리 선착장의 유일한 정기 여객선이 됐다.현대문학상과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한 시인 이수익의 시에 나오는 '새우깡을 좋아하는 갈매기들'은 여전히 선착장 주변을 맴돌며 '비루한 생의 곡예'를 하는 듯했다. 새우깡을 던져줄 사람들을 찾지 못한 그들에겐 왠지 모를 허기가 느껴졌다. 1987년부터 외포리 선착장을 지켜온 삼보해운의 최경락 상무는 "석모대교 개통의 직격탄을 맞았다. 직원 수를 기존의 절반 수준인 20여 명으로 줄였고 임금도 대폭 낮췄지만, 회사를 운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여객선 준공영제를 하게 되면 주문, 아차, 볼음도를 연결하는 노선을 포함해달라는 건의를 군에 해 놓은 상황"이라며 "여객선에 대한 정부 지원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외포리 선착장에서 만난 차춘자(77) 할머니는 "한평생을 볼음도에서 살았다"며 "이 배(삼보12호)는 여전히 섬사람들에게 중요한 교통수단"이라고 했다. 그는 "풍선(돛단배)을 타고, 연락선도 타던 시절보다 배 타는 환경이 많이 좋아졌지만, 볼음도를 오가는 배가 더 자주 다녔으면 하는 바람은 늘 있다"고 했다.섬과 육지가 다리로 연결되고 육상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운항을 멈추는 항로가 생기고 있지만, 차춘자 할머니의 말처럼 인천의 연안여객선은 여전히 중요한 교통수단일 수밖에 없다. 그 속엔 섬과 육지를 잇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도 하다.1980년대 후반만 해도 인천과 백령도를 오가는 배편이 일주일에 2~3회 정도에 불과했다. 시간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긴 10시간이나 걸렸는데, 백령도를 출발해 인천으로 향하던 배 안에서 임산부가 아이를 낳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휴가철 덕적도를 찾은 50대 남성이 인천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졌는데, 자동심장충격기를 활용한 선장 이하 선원들의 신속한 응급조치로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있었던 2010년엔 놀란 주민들을 육지로 실어나르는 피난선 역할을 연안여객선이 했다.백령도와 연평도, 덕적도 등 섬을 연결하는 케이에스해운(주) 황성만 대표는 "섬 주민들이 자동차 부품을 구해달라고 하면 어떻게든 구해서 전해주고, 생필품 좀 사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면서 정이 쌓였다"며 "섬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까지 많이 알게 됐다"고 했다. 연안여객선이 승객뿐만 아니라 정도 함께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한 것이다. 해운업에 종사한 지 34년째라는 그는 배가 끊기면 섬을 오가는 주민과 관광객들의 발이 멈출 수밖에 없는 만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노선을 운항하는 게 필수라고 강조했다. 섬 주민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이 지금껏 해운업을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그는 설명했다.인천 연안여객선에게 인명 사고의 아픔은 예외일 수 없었다. 1949년 10월 추석 전날 인천에서 강화도로 향하던 '평해호'(平海號)가 작약도 부근에서 전복돼 70여 명이 숨졌다. 당시 이 배에는 정원(50명)보다 4배 많은 200여 명이 타고 있었다고 한다. 1963년 2월엔 인천을 떠나 강화 교동도로 가던 '갑제호'가 유빙에 부딪혀 침몰하고 승객 6명이 숨진 사고가 발생했다. 1986년 11월에는 외포리를 출발해 석모도로 향하던 '카페리2호'가 전복돼 12명이 물에 빠져 숨지고 16명이 실종됐다. 인천항을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 침몰 사고는 지난 16일 4주기를 맞았고, 추모 분위기는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연안여객선 선원들의 고령화는 요사이 업계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다. 토요일과 일요일, 명절 따로 없이 매일 운항해야 하고 바람 같은 기상 문제로 마음을 졸여야 하는 게 현실인 상황에서 젊은 직원들이 버텨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50명 가까운 선원이 근무하는 한 연안해운사의 경우, 근속 기간이 30년 이상 된 직원이 절반을 넘는다. 60세 정도가 그나마도 젊은 축에 든다고 한다.업계 한 관계자는 "주말도 없이 일해야 하는 힘든 환경 탓에 젊은이들이 선원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며 "들어와도 몇 개월을 못 버티다 나간다"고 했다. 이어 "선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낮은 것도 선원 수급이 어려운 하나의 원인"이라고 했다. 그는 "선원으로 일하는 사람에게 병역 면제 혜택을 주는 등 젊은이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인책이 필요하다"며 "아니면 외국인 근로자라도 쓸 수 있도록 정부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글/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이미지/아이클릭아트강화도와 석모도를 잇는 석모대교가 개통하면서 강화 외포리 선착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삼보12호가 외포항에서 주문도와 아차도, 볼음도에 들어가는 승객들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모습.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석모대교 개통 직전 외포항에서 출발한 정기선이 석모도로 향하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 정박중인 정기여객선 모습.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석모대교 개통전 강화와 석모도를 오가는 정기선에서 차량들이 나오는 모습.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인천과 백령을 잇는 여객선 모습.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4-18 이현준

[zoom in 송도]1공구 10만㎡ '역세권 알짜 땅' 나온다

인천도시공사, 송도내 상업업무용지C3-1·I3등 7개 필지 공급 '관심집중'6·8공구 국제업무지구역 인접 '장점'8공구 R2블록 연내 매각 어려울 듯인천도시공사가 올해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상업업무용지 7개 필지를 공급한다.NSIC(송도국제도시개발유한회사)가 시행하는 송도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주주사 간 갈등으로 2년 넘게 중단된 데다, 송도 6·8공구 중심부 128만㎡를 개발하는 사업도 지난해 국제공모가 무산된 터라 이번 공급 물량에 관심이 쏠린다. 역세권에 위치한 땅으로 송도 6·8공구와 가깝다는 장점이 있다. → 위치도 참조올해 공급 대상 토지는 ▲중심상업지역=C3-1(9천476㎡), C3-2(1만2천32㎡), C4-3(1만2천223㎡) ▲일반상업지역=I2-1(1만1천150㎡), I2-2(1만5천219㎡), I3(2만3천874㎡), I4(1만7천537㎡) 등 7개다. 송도 1공구에 위치한 땅으로, 인천도시철도 1호선 국제업무지구역에서 가깝다. 건축 연면적의 70% 이상을 오피스텔이 아닌 업무시설로 건축해야 하는 토지다. 중심상업지역은 건폐율 80%에 용적률 600%, 일반상업지역은 건폐율 70% 용적률 500% 또는 650%를 적용한다. 앞서 인천도시공사가 내놓은 C6-1(9천32㎡)블록은 지난달 317억원에 팔렸다.인천도시공사가 당초 올해 공급 물량에 포함했던 송도 8공구 말발굽 모양의 상업업무용지 R2(15만 8천906㎡)블록은 연내 매각이 어렵게 됐다. 인천도시공사 관계자는 "R2블록은 송도 6·8공구 전체적인 부분을 고려해 개발 방안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에 연내 공급이 불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R2블록은 주거시설 배치 최소화로 인구 과밀 우려를 해소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이를 위해 인천도시공사와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R2블록 개발 방안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운영 중이다.한편, 인천도시공사가 올해 공급하는 영종도 토지는 ▲영종하늘도시 공동주택 A48 ▲미단시티 중심상업1~8, 문화1, 숙박1~3, 위락1, 공동주택4·5·9, 교육연구1~3 등 총 22개다. 영종하늘도시 A48(5만 7천345㎡)은 면적이 넓어 고급빌라를 짓기에 적합하고, 미단시티 위락1(9만 1천38㎡)은 복합개발이 가능하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8-04-15 목동훈

[zoom in 송도]'인재 잡아라' 발품파는 인천글로벌캠퍼스·입주대학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인천글로벌캠퍼스 운영재단과 입주대학들이 학생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인천글로벌캠퍼스운영재단은 지난 9일 베트남 하노이 교육부 및 교육계 인사 10명을 초청해 입학설명회를 했다. 이는 베트남의 인재들을 유치하기 위한 행사로 현재 인천글로벌캠퍼스엔 베트남 학생 5명이 재학 중이다. 이번 행사에서 한국뉴욕주립대, 한국조지메이슨대, 겐트대 글로벌캠퍼스,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입학 담당자들은 각 대학의 입학 정보를 설명했다. 베트남 교육 관계자들은 프로그램, 학비, 장학금 등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하는 등 인천글로벌캠퍼스 입주대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겐트대 글로벌캠퍼스는 오는 28일 오후 2시 대강당에서 '2018학년 9월 학기 입학설명회'를 개최한다.이번 설명회에서는 겐트대 글로벌캠퍼스 학과 및 장학금 제도 등 전반적인 입학전형이 안내될 예정이며 개별상담을 통한 맞춤형 입학 컨설팅도 이뤄진다. 재학생들을 통해 궁금한 학교생활과 앞으로 진로 등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캠퍼스 투어도 제공된다.한국조지메이슨대도 가을학기 입학설명회를 준비 중이다. 인천과 서울에서 각각 입학설명회를 열어 학과와 입학전형을 소개하고 지원 방법을 알려줄 계획이다. 한국조지메이슨대 학생·교수·직원은 지역사회와 소통하고자 오는 26일 인천문학경기장에서 SK 와이번스를 응원할 예정이다.유타대 아시아캠퍼스는 가을학기 입학설명회를 지난달 삼성 코엑스에서 편입학생 및 해외 고교생, 재수생 등을 대상으로 개최한 데 이어 몇 차례 더 계획하고 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8-04-15 목동훈

[zoom in 송도]송도국제도시 브리핑

■송도서 내달 24~27일 'KPGA 제네시스 챔피언십'오는 5월24~27일 나흘간 송도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에서 'KPGA 제네시스 챔피언십'이 열린다. 인천시, 현대자동차,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코리아는 최근 'KPGA 제네시스 챔피언십' 대회의 성공을 위한 업무협약을 했다. → 사진협약에 따라 올해부터 3년 동안 인천에서 대회가 열린다. 인천시 관계자는 "총 상금은 15억원(우승 상금 3억원), 4만명 이상의 갤러리가 관람할 것으로 예상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105개 노선·공사 현장 주변 손상 도로 정비·점검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겨울철 혹한과 염화칼슘 살포에 따른 도로 손상을 정비하고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16~27일 송도국제도시 공사장 주변 도로를 점검한다.점검 대상은 송도 내 105개 노선(74.8㎞)과 공사 현장 주변이다. 인천경제청은 위험 요소를 발견할 경우 재포장 등 긴급 정비하고, 건축자나 사업시행자 등 파손 원인자를 상대로 필요한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송도는 각종 개발사업이 활발히 진행돼 건설 장비 이동이 빈번하다"며 "안전사고 예방과 쾌적한 도로 환경 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9월 5일부터 송도컨벤시아서 '인천국제기계전'인천관광공사와 인천국제기계전 사무국은 오는 9월5일부터 사흘간 송도컨벤시아에서 '제2회 인천국제기계전'을 개최한다. 인천관광공사, 경기인천기계공업협동조합, 전시전문기획사 (주)이상네트웍스가 공동 주최하고 인천시가 후원하는 행사다. ▲냉동 공조 및 냉난방 ▲수질관리 및 수처리 ▲폐기물 처리 ▲스마트공장 솔루션 ▲로봇산업 ▲3D프린터 및 관련 기기 ▲자동화 기기 등 기계와 관련된 분야의 제품들이 전시될 예정이다. 참가·참관 문의는 전시회 사무국 전화(02-3397-0966) 또는 홈페이지(inmacexpo.kr)로 하면 된다.■한국뉴욕주립대, 20여개국 한인언론인 초청 행사송도국제도시에 있는 한국뉴욕주립대학교는 최근 세계한인언론인 초청 행사를 성황리에 마쳤다고 15일 밝혔다. → 사진이번 행사는 제17회 세계한인언론인대회 일환으로 진행됐으며 미주·아시아·유럽·아프리카 등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온 한인언론사 대표, 발행인 및 기자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한국뉴욕주립대 김춘호 총장의 환영 인사, 대학에서 운영 중인 스토니브룩과 FIT 프로그램 홍보, 재학생 캠퍼스 생활 소개 등의 순서로 1시간가량 진행됐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8-04-15 목동훈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13]인천항 연안여객선(上)

19세기 말부터 조곡·물품 이송 목적으로 활성화… 함경도·황해도까지 정기운항한국전쟁 이후 당진선·목포선 등 12개 지역 노선 운영 '주요 교통수단' 자리매김 자동차 보급·도로망 확충되면서 승객수 급감… 매일 오가던 항로 점차 사라져육지~섬 '주민·관광객 수송' 중요성 여전 최근 10년간 이용 규모 꾸준한 증가세인천과 인천의 섬을 잇는 관문인 인천연안여객터미널은 '설렘'과 '일상'이 혼재된 공간이다. 이곳을 매일 같이 드나드는 연안여객선은 터미널을 찾은 사람들의 설렘과 일상을 실어 나르며 그들의 수많은 이야기를 품는다.최근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만난 한지원(49·인천 남동구)씨는 "사진 모임과 함께 백령도를 가는데, 인천에 살면서도 백령도를 처음 가게 돼 설렌다"고 했다. 그는 "백령도의 기암괴석 같은 자연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 한다"면서 "주변에선 아무래도 북한과 가까운 지역이니 조심하라며 걱정을 많이 한다"고 했다.박경란(85) 할머니는 대합실에서 자월도행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 진료차 나왔는데, 인천에 있는 자식 집에도 들러 며칠 만에 돌아간다고 했다. 할머니는 "평생 자월도에서만 살았다"며 "겨울엔 배가 자주 끊겨 불편하지만, 아무래도 배도 커지고 훨씬 편리해져 다니기가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출항 10분 전까지 개찰을 완료하오니 탑승을 서둘러 달라"는 내용의 안내방송에 따라 대합실 승객들은 저마다 자신의 목적지로 향하는 여객선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뛰, 뛰, 뛰'. 승객을 태운 여객선들은 큰 고동 소리를 울리며 부지런히도 선착장을 벗어나 목적지를 향해 뱃머리를 돌렸다.지금도 여전히 인천 섬 주민들의 중요한 교통수단인 연안여객선의 출발점엔 연안해운업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의 목적은 사람보다는 물건을 실어나르기 위한 경우가 훨씬 잦았다. 정부가 운영한 연안해운은 1886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으로부터 해운 업무를 인수한 전운국(轉運局)이 해룡호, 광제호, 조양호 등 3척의 기선으로 지방의 조곡을 인천으로 운반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관영기업인 이운사(利運社, 1893년)가 창설돼 인천~마포 간 강운(江運)과 인천~ 군산 조곡 해운을 주요 업무로 삼았고 갑오개혁 이후 일본우선회사가 인천을 기점으로 전라도의 군산, 목포, 여수, 경상도의 삼천포, 마산, 부산, 염포, 함경도의 원산, 서포, 신포 등 지역까지 배를 정기적으로 운항했다. 이 시기 쌀과 하포(夏布), 면반물(綿反物), 동물 가죽, 대두 등의 인천항 반입이 활발했다고 한다. 군산과 목포에선 쌀이, 부산에선 생선, 해초, 솜, 직물 등이 반입됐다. 원산에선 명태 등이 인천항으로 들어왔다.당시 인천항에서 연안해운 업무를 진행한 주요 민간선사는 대한협동우선회사, 통운하, 호리조운사 등이 있었다. 정부 관료였던 이윤용(대한협동우선회사), 인천의 유지(통운사), 일본인 호리부자(掘久太郞, 호리조운사) 등이 각각 설립했다. 황해도와 충청도, 전라도는 물론 인천~평양 간 정기 항로를 개설해 운영하기도 했다. 이 시기 연안무역선들의 규모는 파악할 수 있지만, 여객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파악할 수 있는 구체적 자료는 부족하다.인천의 연안여객선 운항은 해방과 한국전쟁 등을 겪은 뒤 본격적으로 활성화된다. 인천에서 백령도와 덕적도, 연평도, 용유도, 대부도 등을 연결하는 지금도 익숙한 항로는 1950~60년대에도 있었다. 눈에 띄는 건 당시 인천에서 강화 교동도를 연결하는 뱃길은 물론, 인천과 충청권을 연결하는 정기적인 여객선이 운항했다는 점이다. 1956년 발간한 '경기도지'는 인천항을 기점으로 하는 항로가 당진선, 목포선을 비롯해 총 12개 노선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의 여객선은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건 물론,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수단이었던 것이다.30대 시절 충남 당진에서 뱃길로 인천을 종종 오갔다는 박영수(76·인천 남구)씨는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는 서산의 구도포구와 명천포구, 당진의 한진포구와 외성포구 등에서 지금의 올림포스호텔 인근의 인천항을 잇는 4개 항로가 있었다고 했다. 1974년 인천항 제2선거 완공으로 지금의 연안여객터미널 자리로 여객선 부두가 이전하기 전 일이다.박씨는 "그때는 100명 정도 탈 수 있는 목선이 항로별로 하루 한 차례 정도 다녔고 당진에서 인천까지 8~9시간이 걸렸다"며 "당시에는 폭풍, 안개주의보 같은 게 없어 배를 타고 다니기가 여간 고생스러운 게 아니었다"고 했다. 이어 "70년대 들어서면서 200명 정도 타는 강선으로 바뀌어 속도가 많이 빨라졌다"고 덧붙였다. 그는 "팔미도 앞을 지나면 인천 쪽으로 눈에 띄는 건물이 올림포스 호텔 하나밖에 없었다"며 "당시엔 인천항 도크가 없어 올림포스 호텔 앞에 배가 닿았는데, 아직도 그때 모습이 생생하다"고 했다.1964년엔 인천에서 만리포를 거쳐 제주를 연결할 정기여객선 은하호가 취항했다. 은하호는 203t의 현대식 철선으로 길이가 40m, 너비 6.4m, 16노트의 빠른 속력을 가진 배였다. 정원은 210명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최대의 여객선으로 소개됐다. 요즘 큰 축에 드는 하모니플라워호(인천~백령)의 t수가 2천100t 정도니 10분의 1 크기라고 할 수 있다. 인천과 제주 간 항로는 2014년 4월 300여 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운항이 전면 중단된 상황이다.육상교통의 발달과 차량 보급은 충남과 인천 간 뱃길을 없어지게 한 주된 요인이었다. 경부고속도로가 생긴 이래, 각종 도로망이 확충됐고 자동차 보급 대수도 빠르게 증가했다. 꼬박 하루가 걸리던 게 차로 2~3시간 정도면 돼 인천~충남 간 여객선을 이용하려는 승객이 급격히 줄면서 결국 항로가 없어지게 됐다.인천의 여객선들은 지역과 지역이 아닌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역할로 축소됐지만, 그 중요성은 변함없다. 인천과 각 섬을 잇는 14개 항로가 지난 30여 년간 비교적 큰 변화 없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백령도와 연평도, 이작도와 장봉도 등을 연결하는 항로는 낙도보조항로로 분류됐다. 특히 운항에 11시간 걸리는 백령도와 6시간이 걸리는 연평도는 한 달 다섯 차례 정도 운항할 뿐이었다. 승객이 적어 정부가 여객선 운항에 필요한 비용을 대는 구조였던 것이다. 덕적도와 용유도, 대부도, 영흥도 등은 30년 전에도 선사 자체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일반항로였다.시간이 갈수록 낙도보조항로 비중은 줄어들고 일반항로 비중이 커졌다. 그만큼 항로 수익성이 개선됐다고 볼 수 있다는 게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의 설명이다. 80년대 14개 항로 중 8개 항로가 낙도보조항로였지만, 현재는 3개뿐이다. 백령도, 연평도, 이작도 등 낙도보조항로 노선이 모두 일반항로로 전환됐다. 항로 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백령도에서 오전에 출발하는 배는 선사의 적자 문제 등으로 2014년부터 2년 6개월 여 동안 운항하지 못하는 등 운영상 어려움을 호소했었다.지난해 인천 연안여객선을 이용한 사람은 147만1천여명이다. 인천해수청은 연도별로 증감은 있지만, 최근 10년간 꾸준히 이용 규모가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섬 지역 군 병력은 물론 정부와 자치단체의 요금 할인 정책 등으로 섬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는 점이 요인으로 평가되고 있다.인천해수청 관계자는 "섬으로 가는 연안여객선은 여전히 중요한 교통수단"이라며 "연안여객선을 타고 섬으로 가는 승객들을 대상으로 한 운임 지원, 섬 관광 활성화 등의 영향으로 연안여객선 이용객 수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글/이현준기자 uplh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인천과 각 섬을 잇는 14개 항로를 오가는 연안여객선은 지난 30여년간 비교적 큰 변화 없이 꾸준히 유지되며 현재까지 섬을 드나드는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사진은 백령발 여객선을 통해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한 승객들이 하선하는 모습.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4-11 이현준

[zoom in 송도]송도국제도시 브리핑

11일 송도컨벤시아서 계획 설명·제언 수렴 ■11공구 '글로벌 바이오허브 조성 심포지엄'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오는 11일 오후 2시 송도컨벤시아 프리미어볼룸에서 '글로벌 바이오허브 조성 심포지엄'을 연다.인천경제청은 올 2월 '개청 15주년 IFEZ(인천경제자유구역) 목표와 과제' 발표회에서 송도 11공구에 세계 최대·최고의 바이오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인천경제청은 이번 심포지엄에서 송도 11공구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계획을 설명하고 바이오 업계 오피니언 리더 등 전문가들의 제언을 수렴한다. 바이오 업계와 지원기관이 협약을 통해 바이오 클러스터 조성 협력을 다짐하는 시간도 있을 예정이다.인천경제청은 바이오산업 육성과 투자 유치 확대를 위해 2013년부터 매년 바이오 관련 심포지엄을 열고 있다.수험생·학부모등 대상 14일 인천대 송도캠서 ■수능·대입 정보 제공 'EBS 입시설명회' 개최오는 14일 오후 2시 송도국제도시에 있는 인천대학교 대강당에서 'EBS 입시설명회'가 열린다.자유한국당 민경욱 의원(인천 연수구을)은 EBS 강사진으로 구성된 국내 최고의 입시전문가들이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수능 및 대입 정보 등을 설명하는 'EBS 입시설명회'가 2년 연속 송도에서 열린다고 밝혔다.이번 입시설명회는 민 의원 요청에 따라 열리는 것으로, 2019학년도 수능과 대입에 관심이 있는 고교생, 학부모, 교사 등 누구나 별도의 신청 없이 입장할 수 있다.1부는 인천하늘고 출신 김창재 강사가 '2019 수능 대비 EBS 활용 전략 및 학습법', 2부는 윤윤구 강사가 '2019 대입의 이해 및 성공 전략'에 대해 강연한다. 질의응답 시간도 마련될 예정이다.교육·주거·합창등 11개부문 400여명 활동 ■포스코건설 '재능기부 봉사단' 확대 운영송도국제도시에 입주해 있는 포스코건설(사장·이영훈)이 재능기부 봉사단을 확대 운영한다.포스코건설은 회사 업무를 통해 축적한 지식과 경험, 임직원 개개인의 재능으로 사회 배려 계층에게 도움을 주고자 2015년 4월 재능기부 봉사단을 창단했다. 지난 3년간 934명의 임직원이 9천600여 시간 동안 인천·광양지역의 청소년, 어르신, 장애우 등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했다.재능기부 봉사단은 ▲중학교 자유학년제를 이용해 학생들에게 건설 관련 직업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건설교육 봉사단 ▲집수리로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주거환경 봉사단 ▲문화·예술 취약 계층을 위한 합창 봉사단 등 11개 봉사단으로 구성돼 있다. 포스코건설은 재능기부 봉사단원을 300여 명에서 400여 명으로 늘려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강화할 계획이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8-04-08 목동훈

[zoom in 송도]인천경제청·도시공사, 송도 8공구 'R2블록 TF' 가동

상업업무용지 용적률·건축높이 완화에주민 "오피스텔 들어서면 인구 과밀" 우려상업시설만 허용하면 토지 매각 어려움'민원 반영+경제성 확보' 해법찾기 나서'학교총량제' 발목잡힌 초교 증설도 쟁점"외부용역등 통해 '개발 적정방안' 마련"인천 송도국제도시 8공구 상업업무용지 R2블록의 개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인천경제자유구역청과 인천도시공사는 'R2블록 개발 방안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했다. TF팀은 인천경제청 송도사업본부장과 인천도시공사 마케팅본부장이 팀장을 맡았으며, 담당 부서 직원들이 팀원으로 참여한다. 지난달 20일 인천경제청에서 1차 회의를 한 데 이어 이달 중 2차 회의를 열 예정이다. 송도 8공구 R2블록은 15만8천905.6㎡ 규모의 상업업무용지로, 말발굽 모양이다. 인천시가 인천도시공사에 현물출자한 땅이다. → 위치도 참조인천경제청과 인천도시공사가 TF팀까지 운영하는 이유는 민원 때문이다. 송도 8공구 아파트 입주예정자 등은 송도 8공구의 인구 과밀을 우려해 R2블록의 용적률과 건축 높이를 애초대로 환원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오피스텔 건립에도 반대하고 있다. 용적률과 건축 높이가 완화되면서 상업시설이 아닌 오피스텔 등 주거시설로 고밀도 개발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게 주민들의 걱정이다.R2블록 애초 용적률과 건축 높이는 '500%', '70m 이하'다. 인천도시공사와 인천경제청은 2016년 12월 용적률을 '800%'로 상향 조정하고, 건축 높이를 '170m 이상' '130~150m' '130m 이하'로 세분화했다. 이는 토지 가치 상승과 스카이라인을 고려한 조치였다. R2블록은 지구단위계획상 일반상업지역으로, 오피스텔(단 1·2층 불허) 건립이 허용돼 있다.TF팀의 주요 논의 과제는 ▲용적률과 건축 높이 등 지구단위계획 재검토 ▲매각 시기·방법 검토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개발 가이드라인 설정 등이다. 인천도시공사가 R2블록을 판매하지 않고 직접 개발할 수 있는지, 학교 공급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도 TF팀에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주민 요구사항, 경제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R2블록의 개발 방안을 찾고자 한다"며 "실질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TF팀에서 논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인천도시공사는 필요시 외부 연구용역을 통해 적정한 방안을 찾겠다는 구상이다. 공사 관계자는 "필요하면 용역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며 "민원을 수용하면서 사업성도 일정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한 것 같다"고 했다.주민들은 '용적률 및 건축 높이 환원'과 '오피스텔 건립 반대'를 요구하는데, 오피스텔 건립을 완전히 불허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상업시설만 지어 분양 또는 운영하라고 하면 토지 매각이 어렵다는 점에서다. 이 때문에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토지의 사업성도 일정 부분 확보하는 '적정선'을 찾는 게 숙제다.학교 공급 문제는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송도 8공구는 해양1초등학교와 해양5초등학교 건립이 확정된 상태다. 하지만 개발사업 및 수용인구를 고려하면 초등학교가 2개 더 필요하다. 학교 설립을 위해선 교육부 중앙투자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교육부는 '적정 규모 학교 육성정책(학교총량제)'을 적용해 학교 신설을 제한하고 있다. 또한 인천시교육청은 원인자 부담 원칙에 따라 개발사업자가 학교 용지와 건립 비용을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아이클릭아트아파트 단지 건설현장 사이에 위치한 땅이 송도국제도시 8공구 R2블록(상업업무용지·15만8천905.6㎡)이다. 이 사진은 올해 2월 R2블록 북동쪽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사진 중앙부에 있는 교량이 송도와 영종을 잇는 인천대교 진입도로다. /경인일보DB

2018-04-08 목동훈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12]인천의 해원양성 교육기관

일제에 의해 1919년 교육기관 설립1947년엔 국립해양대학 잠깐 둥지1981년 34년만에 선원학교 문열어1993년 국립인천해사고로 개편바로 취업시장에 투입되는 학생들인프라 부족 탓 타지서 승선 실습졸업후엔 업체 몰린 부산으로 떠나지역 전문가 배출, 국가 관심 필요"선장이 돼 맘껏 세계를 누비며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싶어요."지난 3월23일 오전 10시께 인천 중구 북성동 국립인천해사고등학교. 실제 화물선 기관실처럼 꾸며진 선박 조종 시뮬레이션 교실에서 해사고 3학년 학생 4명이 배를 운항하는 실습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눈·비가 내리거나 다른 선박이 가까이 다가오고, 파도가 크게 몰아치는 등 다양한 가상 상황이 모니터에 연출됐다. 학생들은 선장, 항해사, 조타수가 된 것처럼 바다를 항해했다. "충돌 위험, 스타보드(Starboard) 10도(오른쪽으로 10도 타격)."'Hanjin Korea'라는 가상 화물선이 배에 급격히 다가오자 조타수가 급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선장은 키(배의 방향을 조종하는 장치)를 오른쪽으로 급하게 틀었다. 항해사 역시 선박이 제 각도로 피했는지 끝까지 확인했다. 선박 충돌 사고는 가까스로 막을 수 있었다. 이날 선장을 맡은 이대영(3학년)군은 "실제 선박을 운항하는 것처럼 임하면 나중에 배를 안정적으로 잘 조종하는 선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학생들은 졸업 후 해기사 4급을 취득해 화물선, 무역선 등 선박 인력에 즉각 투입된다. 일부 학생은 이미 해운사 장학생으로 뽑혀 마지막 학기 실습을 마치면 바로 취업해 배를 몰기도 한다. 흥아해운 장학생으로 뽑힌 김민성(3학년)군은 "전 세계를 누비며 세계 여행을 많이 하는 선장이 되는 게 꿈"이라며 웃어 보였다.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데 필요한 자질 중 하나는 협동심이다. 인천해사고 교훈도 '협동'이다. 이 때문인지 인천해사고의 전신인 인천선원학교 출신은 선장, 기관사, 선원, 회사원 등 각자 다른 위치에서도 지금까지 동문회를 이끌어오는 등 남다른 우애를 자랑한다.인천선원학교는 턱없이 부족했던 선원 수급을 위해 정부가 1979년 설립해 준비 기간을 거친 뒤 1981년 개교했다. 1기부터 3기까지는 1년제로 운영됐으며 4기부터 3년제로 변경됐다. 12기부터 현재 인천해사고등학교 모습을 갖췄다. 100여 명이던 선원학교 학생 정원은 현재 360여 명까지 늘었다.선원은 선내에서 생활하면서 해상에 도사리는 각종 위험 속에 인명과 재화를 관리해야 해 군대처럼 엄격한 조직체계를 갖춘 게 특징이다. 인천선원학교 역시 군 조직과 비슷했다. 주말에 자유롭게 학교 밖을 나가기도 어려웠던 데다 취침 점호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날 밤을 꼴딱 새울 정도로 군기가 셌다는 게 졸업생들 이야기다. 인천선원학교를 2기로 졸업하고 10여 년 선원 생활을 한 임용선(53)씨는 "분위기가 거의 군대와 같았다. 주말에도 자유로운 출입이 통제돼 2m 높이의 담장을 통해 월미유원지에 놀러 온 외부 여성과 대화나 교제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학교 특성상 강한 체력과 인내심을 기르는 훈련이나 강도가 센 해난 훈련을 해 심신이 여린 학생들은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학생들은 학교 일에 동원되기도 했다. 현재 학생들이 쓰고 있는 운동장과 조경수는 선원학교 1~3기 학생들이 조성한 것이다. 선원 수급 부족으로 학생들은 바로 취업 시장에 투입됐다. 이 때문에 가정 형편이 어렵거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정규 고등학교에 가지 못했던 학생들이 주로 입학했다고 한다.인천선원학교 이전 인천에는 일제가 설립한 '해원양성소(조선총독부 체신국 해원양성소 인천지사)'가 있었다.1845년 영국이 항해사와 기관사의 자격 조건으로 승선 경력 이외에 국가시험을 거쳐 해기사면장(海技士免狀)을 발급하기 시작하자 다른 나라에서도 차례로 해기사 제도를 시행했고 우리나라에도 1913년 해기사 면허제도가 도입됐다. 근대적인 선원 양성기관이 설립된 것은 인천의 해원양성소가 최초였다. 이는 현재 부산에 있는 한국해양대학교의 전신이다.1919년 7월 해원양성소를 세운 일제는 선원이 부족하자 신입생에게 징집 유예 등 혜택을 주며 선원을 뽑았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해운 업계 일손이 부족하자 월급을 많이 주기도 했다. 그러나 까다로운 시험·체격 기준과 일제에 대한 반발 등의 이유로 정작 선원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해원양성소는 인천항을 모항으로 한 '광제호(光濟號)'를 실습선으로 썼다. 고종 황제는 1903년 열강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우리나라 최초 군함인 양무호(揚武號)를 일본에서 도입했는데 유지비가 많이 들고 효율성이 떨어져 군함으로 쓰지 못했다. 이에 골머리를 앓던 대한제국 정부가 새로운 군함 발주를 계획해 일본으로부터 1904년 도입한 것이 광제호였다. 광제호는 무선 전신시설을 처음 장치한 군함이었다. 그러나 1905년 을사조약 체결로 통감부 정치가 시작되면서 광제호는 군함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채 해원양성소 실습선으로 쓰였다.당시 해원양성소를 나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렵고 비참한 상황에서 근무했다. 1926년 12월22일자 동아일보 '취직난 중에도 해원은 유부족'이라는 기사를 보면 '취직난은 누구나 동감하지만 해원계는 반대로 구인난을 겪고 있다. 조선 유일 해원양성소가 인천이며 당시 졸업생은 거의 조선 청년으로 근실하고도 박봉을 감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해원양성소는 1927년 부산 진해로 옮겨져 진해고등해원양성소로 개편됐으며, 1946년 진해해양대학이 됐다. 같은 해 인천에도 인천해양대학이 설립됐다. 이후 진해해양대학이 1947년 1월 인천으로 이전하면서 인천해양대학과 병합해 '국립해양대학'이 됐지만, 고작 4개월만인 5월 다시 군산으로 옮겨졌다. 이후 '해양도시' 인천에는 인천선원학교가 설립되는 30년 동안이나 선원 양성 전문기관이 없었다.해양도시이자 수도권의 관문인 인천은 최초의 철도대학이 설립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1905년 5월 인천 제물포에 개교한 철도이원양성소(鐵道吏員養成所)마저 1907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인천은 철도 전문인 양성의 맥도 끊기게 됐다.선원의 업무는 선박을 안전하게 운항해 여객과 화물을 보호·관리하는 것이다. 선박의 대형화·다양화와 기술 발달로 오늘날 선박 운항은 전문적인 지식과 기능을 필요로 한다. 유능한 선원을 갖추는 것이 해양도시의 기본이며 곧 해양 경쟁력인 이유다. 그러나 인천은 해양 교육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다. 부산은 국립한국해양대, 국립부경대 등이 있으나 인천에는 인천해사고와 인천해양과학고 등 중등교육기관이 전부다. 교육 환경도 열악하다. 학생들은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 있는 실습선을 이용해 6개월간 승선 실습을 마친 뒤, 민간 해운회사에서 상선을 이용해 남은 6개월을 채우는 상황이다. 굵직한 해운 회사도 부산에 몰려 있다 보니 해사고 졸업생의 80%는 부산 소재 해운 회사에 취직한다.여기에 인천은 월미도 인근 지역을 개발할 경우 민간투자 등을 위해 해사고 이전이 필요하다는 주민·정치계의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해기사에 대한 대체복무 특혜까지 없어질 위기에 처해 해원 양성 교육의 위축이 우려된다. 인천이 해양도시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해운 교육계에 관심을 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명식 해사고 교장은 "해운 산업이 지금은 위축됐지만 지금까지 대한민국 발전을 견인한 공이 크다. 앞으로도 우리나라 발전을 이끌어갈 수 있는 중요한 산업"이라며 "해양 분야 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도록 국가와 국민들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글/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국립인천해사고등학교 학생들이 선박조종시뮬레이션실에서 가상 화물선을 인천항으로 인항하는 선박 운항 실습을 하고 있다. /국립인천해사고 제공인천해사고등학교 전경.인천해사고 학생들이 학교 내 수영장에서 해상훈련을 받고 있다. /국립인천해사고 제공국립인천선원학교 학생들이 해변에서 해상 훈련을 받고 있는 모습. /국립인천해사고 제공국립인천선원학교 학생들이 실제 선박 기관으로 실습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국립인천해사고 제공

2018-04-04 윤설아

[zoom in 송도]송도컨벤시아 2단계 '국비 확보' 나섰다

국회가 BTL로 바꿔 승인 지원 약속 민간 건립 후 경제청 임차 사용 탓국가 부담 임차료의 50% 요청하자포괄보조금 까먹는 생활계정 제시"경제구역 기반시설이라는 점 부각"경제청 특별보조금 요구 설득 계획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송도컨벤시아 2단계 건립사업과 관련해 국비(임차료) 확보에 나섰다. 송도컨벤시아 2단계 건립사업은 1단계 시설 옆에 연면적 6만4천207㎡ 규모의 시설을 증축하는 것으로 올해 7월 완료될 예정이다. 2015년 12월 공사를 시작했으며 올 2월 말 기준 공정률은 80.54%다. ┃표 참조2단계 사업은 BTL(임대형 민자사업) 방식이다. 민간 사업시행자 '더송도컨벤시아(주)'가 건립하면 인천경제청이 일정 기간 임차해 사용하게 된다. 인천경제청은 재정사업으로 2단계 사업이 추진되기를 희망했는데, 국회에서 BTL 방식으로 변경·확정됐다. 국회는 송도컨벤시아 2단계 사업을 BTL 방식으로 승인하면서 국비 지원을 약속했었다. 임차료의 50%를 국가에서 부담하기로 했다.지난해 인천경제청은 송도컨벤시아 2단계 시설 임차료를 '지역발전특별회계 경제발전계정'에 편성해달라고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 등에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은 '지역발전특별회계 생활기반계정'에서 2단계 임차료를 확보하라고 했다. 생활기반계정은 정부가 지역 발전을 위해 각 지자체에 주는 '포괄보조금' 개념이다. 반면 경제발전계정은 특정 사업을 위한 '특별보조금' 성격을 띤다. 생활기반계정에서 2단계 임차료를 확보하면, 그만큼 포괄보조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다른 사업들을 추진하는 데 차질이 생기게 된다.송도컨벤시아 2단계 시설 임차 기간은 20년이다. 인천시와 정부는 매년 72억2천800만 원씩 더송도컨벤시아(주)에 줘야 한다.인천경제청은 산업부, 기재부 등 중앙부처와 국회를 설득해 경제발전계정으로 2단계 시설 임차료(50%)를 확보할 계획이다. 송도컨벤시아는 경제자유구역 활성화를 위한 기반시설이다. 마이스(MICE) 산업의 핵심 시설로, '외국인 투자유치' '무역 증대' '일자리 창출' 등 국가경쟁력 강화에 기여한다. 인천경제청 관계자는 "다른 도시에 있는 전시시설과 달리 송도컨벤시아는 경제자유구역에 위치한 시설"이라며 "국가 성장 동력인 경제자유구역의 시설인 점을 고려해 경제발전계정으로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송도컨벤시아 2단계 시설 국비(임차료) 확보에 나섰다. 인천경제청은 송도컨벤시아가 경제자유구역 활성화를 위한 기반시설인 점 등을 들어 포괄보조금 개념의 생활기반계정이 아닌 특별보조금 성격의 경제발전계정에 2단계 임차료를 편성해달라고 산업통상자원부에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9월 촬영한 2단계 시설 공사 현장 모습이다. 2단계 시설은 올해 7월 준공 예정이며, 올 2월 말 기준 공정률은 80.54%다. /경인일보 DB

2018-04-01 목동훈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11]해양 안보와 인천(下)

소규모 한국군으로만 수행한제2차 인천상륙작전재탈환한 시청에 남겨져 있던 김일성 초상화 아직도 생생'모른 척 돌아서 가면/가시밭길 걷지 않아도 되었으련만/당신은 어찌하여 푸른 목숨 잘라내는/그 길을 택하셨습니까 (중략) 당신의 넋은 언제나/망망대해에서 뱃길을 열어주는/등대로 우뚝 서 계십니다 (후략)' -유연숙의 시(詩) '넋은 별이 되고' 일부연평해전·천안함 피격 일어난 인천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정부와 별도로 진행전우의 죽음 직접 목격한 영웅들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모두 불행하게 만들어""그 누구도 다시 고통 받는일 있어선 안돼" 평화 유지할 '강한 군사력·안보' 강조지난 23일 오전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열린 인천 월미공원 해군2함대사령부 기념비 앞. 인천지역 학생을 대표해 국립인천해사고등학교에 다니는 유태영(3학년)군이 헌시 '넋은 별이 되고'를 낭송하자 500여 참석자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인천 바다에서 목숨을 잃은 55명 해군 장병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약속했다.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이 일어난 곳은 모두 인천이었다. '서해수호의 날'이 제정된 이후, 인천이 정부 행사와 별도로 3년째 자체 기념식을 치르고 있는 이유다. 지난해 인천시는 '호국·보훈의 도시'를 선언하기도 했다.인천에서 전쟁을 치러낸 이들에게 인천의 바다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1950년 2월 해군사관학교 3기생으로 졸업·임관해 한국전쟁을 겪은 최영섭(90·예비역 해군대령) 해양소년단 고문에게 인천의 바다는 전쟁터였다.최 고문은 인천상륙작전과 대청도·소청도 탈환 작전 그리고 제2차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한 산증인이다. 그는 대한민국 해군 최초의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 갑판사관 겸 항해사, 포술사로 해군 장교의 첫 함정 경험을 시작해 백두산함 함장, 충무함(DD-91) 함장, 51전대 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1968년 해군대령으로 전역했다.특히 그가 겪은 제2차 인천상륙작전은 많은 이가 알고 있는 인천상륙작전과 달리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서울과 인천은 다시 북한군과 중공군에 넘어갔다. 2차 인천상륙작전은 바로 이러한 상황이던 1951년 2월10일 한국 해군·해병대가 소규모의 병력으로 벌인 작전이다."백두산함 등 6척의 함정과 각 함정에서 차출한 승조원 73명, 그리고 덕적도 주둔 해병대 1개 중대가 인천 동구 만석동(조선기계제작소 해안)에서 상륙작전을 감행했죠. 1·4후퇴 후 한 달여 만에 인천을 재탈환한 것인데, 인천시청에 걸려있던 스탈린과 김일성의 초상화가 아직도 생생합니다."이 작전으로 적군 82명을 사살하고 1명을 생포했다. 전차 1대와 야포 8문을 노획하는 전과도 올렸다. 작전 성공 이후 인천항을 통한 대규모 군수 지원이 가능하게 됐으며, 국군과 유엔군이 수도 서울을 재수복하고 영토를 다시 찾는 데 큰 기반이 됐다.한일 월드컵 경기가 열리던 2002년 6월29일 제2연평해전에 참전한 권기형(39) 예비역 하사에게도 인천 바다는 잊을 수 없는 곳이다.당시 '참수리 357호'에서 M60 사수 임무를 맡았던 그는 "부사수인 후배 부사관 서후원 하사(당시 계급)가 가슴에 총탄을 맞고 갑판에 무릎을 꿇던 순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그는 당시 고속정 좌현에서 북한 경비정과 마주하고 있었다. 워낙 가까운 거리여서 북한 경비정 승조원들의 표정까지 관찰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굉음과 함께 팔과 어깨에 총탄을 맞고 갑판으로 튕겨 나갔다. 부사수로 그 대신 자리를 지킨 건 서후원 하사였다. 그는 서 하사가 힘없이 주저앉는 모습을 지켜보며 죽음을 직감했다고 했다.그는 그때의 부상으로 8개월간 병상에 있다 전역했고, 현재는 해군 무기를 만드는 방산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전우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그에겐 전쟁과 평화에 대한 의미가 남다르다.그는 "제2연평해전은 분명히 '승리한 전쟁'이다. 하지만 전쟁에서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전쟁은 불행이다. 승자도 패자도 모두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무엇보다 전쟁이 벌어지지 않도록, 전쟁을 억제하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강한 군사력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그의 바람은 단 한 가지. 그는 "1년 내내 기억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며 "딱 하루만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군인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달라"고 했다.곽진성(37) 예비역 해군 병장도 제2연평해전이 벌어진 그날 K-2 소총수로 같은 장소에 있었다. 참수리 357호 함교가 그의 자리였다.전투가 끝나고 며칠간은 거의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오직 분노의 감정만 가슴에 남아있었다.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안정을 조금씩 찾아가자 차츰 기억이 되살아났다."정장과 부정장이 쓰러져 있고, 갑판 위로 핏물이 흐르고, 손에서는 피가 흐르고…."시간이 퍽 오래 지났음에도 그는 그날을 이야기할 때마다 매번 힘들고 분하다고 했다. 최근 남북 관계가 급변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의 마음도 복잡해진다. 통일을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복잡하고 허탈한 기분이 드는 것은 그에게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그는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그날을 겪은 우리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언제든지 또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런 비극으로 다시 고통받는 일이 있어선 안 됩니다."#바다를 지킨 인천 인물인천에는 해양 안보와 관련이 깊은 인물이 많다.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군함 '양무호'의 함장으로 알려진 신순성(1878~1944) 함장이다. 그는 동경고등상선학교에서 4년간 근대식 항해교육을 받고 갑종 항해사 자격을 땄다. 구한말 대한제국 고종 황제는 일본으로부터 군함을 도입해 나라의 무력을 키운다는 뜻의 양무호로 명명하고 신순성을 함장으로 임명했다. 신순성 함장은 일본에서 이 배를 이끌고 1903년 인천항에 닻을 내렸다. 그는 두 번째 군함인 '광제호' 인수 작업도 맡았다.안병구(69) 제독은 한국 해군 제1번 잠수함 '장보고함'의 초대 함장을 지낸 인물이다. 1949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그는 인천중(16회), 제물포고(13회), 해군사관학교(28기)를 나왔다. 1988년 해군 잠수함사업단 요원으로 근무하던 중 1990년 장보고함 초대 함장으로 선발됐다. 승조원들과 함께 독일에서 2년 동안 잠수함과 관련한 교육 훈련을 받고 1992년 현지에서 장보고함을 인수했다. 2005년 전역할 때까지 잠수함 부대의 전대장, 전단장 등 잠수함 부대장을 역임했다.윤영하(1973~2002) 소령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측 경비정과 벌인 제2연평해전에서 목숨을 잃었다. 윤 소령(당시 대위)은 참수리 357호 정장으로 참전했으며, 그가 졸업한 인천 송도고등학교에는 흉상이 있다. 정부는 그의 희생에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지난 23일 오전 인천시 중구 월미공원 해군2함대사령부 기념비에서 열린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인천지역 학생 대표들이 헌화·분향을 하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제2차인천상륙작전 전승비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3-28 김성호

[zoom in 송도]송도국제도시 브리핑

스마트 마이스 조성 3차연도 사업 착수인천경제청, 컨벤시아 중심 시스템 구축#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마이스(MICE) 플랫폼 운영 및 서비스 확대 등을 뼈대로 한 '스마트(SMART) 마이스 조성 3차연도 사업'에 본격 착수했다.스마트 마이스 조성사업은 송도컨벤시아를 중심으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구축하고 지역 마이스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것으로, 2019년까지 4차례로 나눠 진행되고 있다.3차연도 주요 사업은 ▲송도컨벤시아 자율주행 로봇 및 실외 디스플레이 도입 ▲송도컨벤시아 무선 WiFi 시스템 구축 ▲상권 활성화를 위한 마이스패스 개방형 마켓 플레이스 및 위치기반 모바일 스탬프 투어 시스템 개발 ▲웹·앱 동시사용 가능 이동형 화상회의 시스템 구축 ▲외부 참관객에 회의 등 컨벤션 행사 실시간 중계를 위한 시스템 도입 등이다. 인천경제청 성용원 기획조정본부장은 "스마트 마이스 조성사업이 인천의 지속가능한 마이스산업 성장 기반을 마련하고 고도화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스마트시티 플랫폼 기반 버스정보시스템올 7월 개발 완료… IFEZ내 단계별 시행#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은 스마트시티 플랫폼 기반의 'IFEZ형 WEB 버스정보시스템' 개발이 올 7월 완료돼 IFEZ 전역에 단계별로 서비스될 예정이라고 밝혔다.현재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버스정보시스템은 폐쇄적인 구조로 데이터 연계가 어렵고, 장애 시 즉각적인 유지 보수가 어려운 문제가 있다. 인천경제청이 개발한 시스템을 도입하면, 정확성과 관리 효율성이 크게 향상되고 구축비도 약 20~30% 절감될 예정이다. 인천경제청은 IFEZ 버스정류장에 우선 적용할 예정이며, 2단계로 인터넷 등을 통해 버스 도착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송도 유수지 배수갑문 통합원격제어 체제수문 개폐 즉각적 대응… 장마철부터 가동# 송도국제도시 유수지 배수갑문 통합원격제어시스템이 올해 장마철부터 본격 가동된다.송도에는 집중호우 시 침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총 4개의 수문이 설치돼 있다. 만조 시에는 바닷물의 역류를 막고 간조 때는 유수지에 일시적으로 모아둔 빗물을 바다로 배수하는 역할을 한다.현재는 근무자가 현장에서 수문을 직접 개폐하는 방식으로, 유사시 즉각적인 대응이 어렵다. 폭우나 낙뢰 속에서 수문을 가동해야 하기 때문에 근무자의 안전 문제도 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8-03-25 목동훈

[zoom in 송도]IFEZ홍보관 개관 3주년

송도·청라·영종 등 대상투자 외국인 '필수 코스'국빈·세계 장·차관급 등 하루 643명, 67만명 방문전망시설·VR존·멀티룸개발 현황·잠재력 한눈에정보 제공 시설 보강 계획인천 송도국제도시 G타워 33층에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홍보관'이 문을 열고 외국인투자자와 관광객을 맞이한 지 3년이 됐다.IFEZ 홍보관은 홍보와 투자유치 기능을 한다. 송도·청라·영종 등 IFEZ를 벤치마킹하거나 이곳에 투자할 의향이 있는 외국인의 필수 코스다. 인천 도시 개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IFEZ이기 때문에 인천의 발전상을 소개할 때도 홍보관을 활용한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청장·김진용)은 최근 개관 3주년을 맞아 IFEZ 홍보관 운영 실적과 시설 보강 계획을 발표했다.# IFEZ 홍보관, 하루 평균 643명 방문G타워 IFEZ 홍보관은 2015년 3월24일 개관했다. 이전에는 갯벌타워 21층, 컴팩스마트시티(현 인천도시역사관)에 홍보관이 있었다. 송도국제도시 개발 초기에는 송도홍보관(현 송도국제어린이도서관)이 운영됐었다.G타워 IFEZ 홍보관 방문객 수는 총 67만3천343명으로, 하루 평균 643명이 찾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29만1천151명이 찾아 하루 평균 방문객이 811명에 달했다.홍보관을 찾은 주요 인사로는 압델 파타흐 엘시시(Abdel Fattah El Sisi) 이집트 대통령, 유틴쩌(U Htin Kyaw) 미얀마 대통령, 루이스 기예르모 솔리스(H.E Luis Guillermo Solis) 코스타리카 대통령, 페루 메르세데스 로살바 아라오스(H.E. Mercedes Rosalba ARAOZ)부통령 등이 있다. 국빈과 세계 각국 장·차관급 주요 인사들의 방문이 이어진 것이다.인천경제청 관계자는 "홍보관이 IFEZ 개발 현장을 알리고 투자유치를 이끄는 견인차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며 "아시아 지역 경제자유구역 관계자들도 방문하는 등 필수 벤치마킹 코스로 급부상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IFEZ 홍보관은 365일 운영된다. 평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 주말·공휴일에는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오후 6시에 닫는다. G타워 1층 안내데스크 옆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면 된다. 영어·중국어·일본어 회화가 가능한 자원봉사자들이 있으며, 단체 관람객(10명 이상)은 예약해야 한다.# 개관 3주년 맞아 시설 보강IFEZ 홍보관은 송도센트럴파크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시설, IFEZ의 과거·현재·미래를 소개하는 코너, VR(가상현실)존, 에코존, 홍보 동영상을 볼 수 있는 멀티룸 등으로 구성돼 있다. VR존은 자원봉사자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평일 오전 10시~낮 12시, 오후 3~5시에만 이용할 수 있다. 멀티룸은 관람 예약이 필요하다. 멀티룸에는 '다면(3면) 영상관'과 '원형룸'이 있다. 여기에서는 IFEZ 홍보 영상을 볼 수 있으며, 디지털 영상 지도를 통해 송도·청라·영종 개발 현황과 발전 잠재력을 살펴볼 수 있다.인천경제청은 멀티룸에 뉴욕, 런던, 파리, 로마 등 세계 주요 도시의 라이브 영상을 볼 수 있는 대형 LED 전광판을 설치할 계획이다. 또 대형 화면을 통해 IFEZ의 과거와 현재, 일조권, 가시권, 건물 높이, 매각 예정 필지 등의 정보를 관람객들에게 제공하는 '3차원 공간 정보 영상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IFEZ 3차원 모델링 자료를 기본으로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2D, 3D, 항공-VR 모습을 조회·열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인천경제청 관계자는 "IFEZ 홍보관은 지난 3년 동안 개발 현장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IFEZ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며 "앞으로도 국내외 주요 방문객을 대상으로 방문 목적별 맞춤형 브리핑을 제공하는 등 IFEZ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지난 24일 개관 3주년을 맞은 인천경제자유구역(IFEZ) 홍보관. 송도국제도시 G타워 33층에 있는 홍보관은 IFEZ 현황과 발전 잠재력을 널리 알리는 공간이다. 송도국제업무지구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외국인투자자는 물론 인천시민 등 내국인도 많이 찾는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그린스마트시티 홍보 코너.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비전센터(멀티존) 입구.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원형룸. /인천경제자유구역청 제공

2018-03-25 목동훈

[바다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10]해양 안보와 인천(上)

나당연합군·서구열강 침략·천안함 피격등끊임없는 무력 충돌 '평화 유지' 중요 장소1945년 창설한 해군, 이듬해 인천에 첫기지한국전쟁 전 몽금포작전으로 北 기지 타격인천 바다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남과 북이 맞닿아 있는 바다의 경계선인 서해 북방한계선(NLL, Northern Limit Line)에서는 남북의 무력 충돌이 빚어졌고,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제국주의 세력의 전쟁터가 되기도 했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인천 바다가 해양안보와 국가안보의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얘기다.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라고 말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인천 바다는 우리나라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장소였다는 것이다. 인천 바다를 이야기할 때 전쟁이라는 단어뿐 아니라 평화를 함께 언급하게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매년 3월 네 번째 금요일은 '서해수호의 날'이다. 정부는 서해에서 끊이지 않았던 무력 충돌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자 '서해수호의 날'을 정해 기념하고 있다.■ 전쟁의 아픔이 서린 인천 바다인천 바다는 전쟁의 역사를 품고 있다.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당연합군의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대군을 이끌고 인천 바다를 통해 백제를 침공했다. 덕적군도의 하나인 소야도(蘇爺島)의 이름은 소정방이 대군을 이끌고 정박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소야도 북악산 기슭에는 소정방이 진을 쳤다는 '담안'이라는 유적이 남아 있다.1866년에는 프랑스 함대가 바다를 통해 조선을 침략해 강화도를 점령·약탈한 병인양요가 있었다. 서세동점(西勢東漸) 시기 조선이 서구 열강과 한반도에서 대결한 첫 전쟁이다. 1871년에는 조선과 미군이 강화도 앞바다에서 역사상 첫 교전을 벌인 강화도 손돌목 전투로 시작된 신미양요가 있었다.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 또한 인천이 핵심 지역이었다. 특히 러일전쟁 당시에는 러시아 함대와 일본 함대가 인천 앞바다에서 전투를 벌였다.1950년 9월15일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은 인천의 바다로부터 팔미도 등대와 주변 섬을 장악하며 시작됐다.1999년 6월15일에는 정전협정 이후 발생한 남북의 첫 해상 교전인 제1연평해전, 3년이 지난 2002년 6월29일에는 6명의 해군이 전사한 제2연평해전이 벌어졌다. 2010년에는 46명의 해군 장병이 바다에 잠들게 된 천안함 피격 사건, 2011년에는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가한 도발이 있었다.■ 인천의 해군주권을 가진 나라가 반드시 갖춰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바다에서의 전쟁을 막아 평화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해군력이다. 특히 인천은 우리나라 해군의 역사(史)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도시다.우리나라 해군은 1945년 11월11일 손원일 제독이 창설한 해방병단(海防兵團)으로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해군은 첫 기지를 인천에 창설했다. 해방병단이 창설된 이듬해 4월15일 가장 먼저 인천기지를 설치한 것이다.현재 인천을 지키고 있는 해군 부대는 해군 제2함대사령부 예하에 있는 인천해역방어사령부(이하 인방사)다. 인방사가 속한 해군 제2함대사령부는 앞서 말한 인천기지가 모체다.인천기지는 해군이 성장하며 함께 이름과 규모를 바꾼다. 인천기지는 1949년 6월1일 인천경비부로 승격해 인천특정해역사령부를 거쳐 1973년 7월1일 제5해역사령부, 1986년 제2함대사령부로 재창설된다. 1999년 11월13일 인천을 벗어나 경기도 평택으로 기지를 옮겼다. 인방사는 항만방어대, 항만방어전대, 201방어전대 등으로 부대 이름을 바꿔오다 2함대가 평택으로 자리를 옮긴 1999년 7월1일 인천에 남은 부대가 지금의 인방사가 됐다.1946년 4월15일 설치된 인천기지는 미군 선발대에 의해 꾸려졌다. 초대 군사영어학교 교장이었던 리스(Rease) 미 육군 소령이 월미도의 용궁각을 기지 청사로 정하고 임시로 기지사령관을 맡았다. 이후 진해에서 선발된 60명의 해방병단 대원들이 인천으로 파견돼, 미군으로부터 수리·운전·통신기술 등을 배운 후 4월23일 인천기지를 정식으로 인수했다. 초대 인천기지사령관은 백진환 정위(현재의 대위)가 맡았다.인천기지는 해군의 첫 기지라는 타이틀뿐 아니라 남한 단독정부 수립 후 최초의 해군 관함식이 열린 장소이기도 하다. 정부 수립 1주년을 기념하고 발전한 해군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행사였다.1946년 인천 앞바다에서는 일본으로부터 인수한 9척의 함정이 편대 기동훈련을 선보였는데, 손원일 총참모장의 안내로 이승만 대통령이 기함에 탑승해 이를 지켜봤다. 정부각료와 국회의원, 시민들도 편대 기동훈련을 참관했다.인천기지는 우리나라 군 처음으로 한국전쟁 이전 진행된 대북 작전인 '몽금포 작전'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몽금포 작전은 한국전쟁의 전운이 감돌던 1949년 8월17일 해군이 북한군 기지로 특공대를 보내 다수의 병력을 사살하고 함정을 파괴한 작전이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승인 아래 진행된 이 작전에서 특공대원 20명이 함정 6척을 타고 북한 몽금포항에 침투해 북한 경비정 4척을 격침하고 1척을 나포했다. 또 북한군 120여 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앞서 언급한 관함식을 일주일가량 앞두고 인천에 있던 주한미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장군의 전용선을 북에 도둑맞은 것을 응징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해군 창설 초기 좌익 승조원들에 의해 함정 4척이 납북되고 9척이 납북미수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북에 대한 응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어 감행된 작전이었다. 인천 월미공원에는 몽금포 작전 전승비가 세워져 있다.1·2대, 미군서 인수해 1978년·1994년 퇴역해군 차기 호위함 3대, 유도탄·어뢰등 무장■서북도서 수호자 '3대의 인천함'우리나라 해군 함정 중에는 인천의 이름을 딴 전투함이 여럿 있었다. 역대 3척의 '인천함'이 인천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우리 바다를 누볐다.1대 인천함(AKL-902)은 1944년 건조된 미국 해군의 경수송함을 한국 해군이 1951년 9월10일 인수한 것으로, 1978년 4월1일까지 운용됐다.2대 인천함(DD-918)은 전투함이다. 이 함정 역시 미국 해군으로부터 도입한 것으로, 승조원 280여 명이 탑승하고 33.2kts까지 속도를 낼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1944년 3월 건조된 함정이며, 1974년 1월25일 취역해 1994년 12월30일 퇴역했다.3대 인천함은 현재 활동 중인 해군의 첫 차기 호위함인 인천함(FFG-818)이다. 해군은 서북 도서의 행정을 관할하는 인천광역시에서 이름을 따 '인천함'으로 명명하며 서해 NLL과 서북 도서 방어 의지를 피력했다. 대함유도탄 방어 무기와 함대함 유도탄, 어뢰 발사대 등 국내에서 개발한 향상된 무기 체계를 탑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해 2011년 4월29일 진수식을 갖고 2013년 1월부터 6월까지 전력화 기간을 거쳐 7월 배치됐다. 3대 인천함은 2013년 8월 인천시와 자매결연을 했다. 글·사진/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아이클릭아트몽금포작전 기념비3대 인천함(FFG-818) /해군본부 제공1대 인천함(AKL-902·사진 위)과2대 인천함(DD-918)

2018-03-21 김성호

[zoom in 송도]송도국제도시 브리핑

IFEZ 스마트시티 인프라 구축 확대송도 5·7공구 내년 7월 준공 등 순항# 스마트시티 인프라를 송도 등 인천경제자유구역 전역으로 확대하는 사업이 순항하고 있다.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 따르면 송도 5·7공구 스마트시티 기반시설 구축사업이 내년 7월 준공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6월부터 광통신 기반망 설치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송도 6공구는 통신 관로 구축공사가 이뤄지고 있으며, 송도 8공구는 도로 및 공동구 내 통신 관로 구축공사가 지난해 7월 완료돼 스마트시티 기반시설 구축을 위한 실시설계가 시작될 예정이다.청라국제도시 투자2블록('스타필드 청라' 조성 대상지) 스마트시티 기반시설 구축사업은 2019년 11월 준공을 목표로 올 상반기 착공한다. 영종하늘도시 1단계 사업(시행자·LH)과 미단시티 사업(시행자·인천도시공사)의 스마트시티 기반시설은 오는 6월 인천경제청에서 인수할 예정이다.인천경제자유구역의 스마트시티 기술력은 국내를 뛰어넘어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인천경제청은 '스마트시티 산업특화형 모델 발굴 연구용역'을 진행 중으로, 국토교통부 '스마트시티 국가전략 R&D 실증단지' 공모에 참여할 계획이다.인천경제청 외국어 홍보물 감수위 구성홈페이지서 오류 표기 신고센터도 운영#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외국어 홍보물 등을 감수하는 위원회와 외국어 오류 표기 신고센터를 운영한다.인천경제청은 외국어 홍보물과 각종 도로 안내표지판에 적힌 외국어의 정확한 표현을 위해 '외국어 홍보물 감수위원회'를 구성하고 원어민 교수 3명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외국어 홍보물 감수위원회는 인천대, 한국조지메이슨대, 채드윅국제학교 원어민 교수 3명과 인천경제청 외국어 전문요원 등 총 7명으로 구성됐다.인천경제자유구역 외국어 오류 표기 신고는 인천경제청 홈페이지(www.ifez.go.kr)에 개설한 신고센터 또는 투자유치기획과(032-453-7304)로 하면 된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8-03-18 목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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