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선택 6·13 인천시장 후보군]치열한 與… 현역은 '친박꼬리표' 떼기

민주당 박남춘·김교흥·홍미영·윤관석 4인 경쟁한국당 "유정복은 경선 불필요" 치적 내세울듯문병호·이학재는 정당 통합문제 걸려 셈법 복잡6·13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할 인천시장 후보군들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면서 여·야 정치권의 선거 레이스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올해 지방선거는 문재인 정부 1년을 평가할 수 있는 첫 시험대로 선거 결과에 따라 정국이 요동칠 수 있다. 특히 수도권 '빅3'에 포함되는 인천의 경우 시장 선거 결과의 상징적인 의미도 커 벌써부터 여·야 후보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문재인 대통령 당선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여당의 경우 당내 경선이 본선보다 치열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는가 하면 야당의 경우 자유한국당 소속 현 유정복 인천시장의 재선 도전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간 통합이 가시화 되면서 후보군들의 셈법이 더욱 복잡해졌다. 자유한국당 유정복 인천시장의 재선 도전이 사실상 확정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에선 박남춘 국회의원(인천시당 위원장)과 김교흥 국회 사무총장, 홍미영 부평구청장, 윤관석 국회의원 등이 시장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에선 각각 문병호 전 국민의당 최고위원과 이학재 국회의원이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지만 이들 정당이 통합될 경우 어떤 후보가 시장 선거에 나설지는 아직 안갯속이다. 정의당은 김응호 인천시당 위원장의 출마가 유력하다.여·야 후보군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홍미영 부평구청장이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선언을 한 상태다. 홍 구청장은 지난 12월 13일 인천시청 브리핑룸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사람이 중심인 도시 인천을 만들겠다"며 "사람 중심의 철학, 지속가능 발전의 철학, 평화 우선주의 철학을 구현하는 첫 번째 인천시장이 되겠다"고 밝혔다.박남춘 의원과 김교흥 사무총장, 윤관석 의원 등은 출마 선언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안팎에선 이들 4명 후보군의 출마 의지가 강해 결국 경선을 통해 후보가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본선보다 당내 경선이 더 치열할 것이란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당내 경선이 진행된다면 여성 가산점, 현역 의원 감점 제도를 비롯해 여론조사 방식 등 여러 변수가 많아 '경선 룰'을 놓고도 후보들 간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질 전망이다.박남춘 의원을 비롯한 김교흥 국회 사무총장, 홍미영 부평구청장, 윤관석 의원 등은 당내 조직력과 여론 등에 있어 모두 자신들이 우위에 있다며 한 치 양보 없는 자존심 싸움을 벌이고 있다. 자유한국당에선 유정복 인천시장의 재선 도전이 확실시된다. 유 시장은 임기 내 가장 큰 치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인천시 부채 감소, 제3연륙교 건설 문제 해결, 경인고속도로 일반화 착공 등을 전면에 내세워 선거전에 나설 전망이다. 유 시장에게 붙어 있는 '친박 꼬리표'를 떼고 임기 내 달성한 객관적인 성과로 시민들로부터 평가받는다는 전략이다.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또한 유정복 시장의 경우 경선을 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최근 밝혀 유 시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홍 대표는 지난해 11월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2주기를 맞아 부산을 찾은 자리에서 "내가 친박 청산을 한다 하지마는 인천시장은 여론이 좋다. 거기는 경선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 유정복 시장의 여론 추세대로라면 경선도 안 할 것이고 경선 부담도 안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문병호 전 최고위원과 바른정당 이학재 의원도 출마 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통합 문제 등 당내 상황이 복잡해 어떤 결론을 내릴지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김응호 정의당 인천시당 위원장도 시장 선거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명호·이현준기자 boq79@kyeongin.com[선택 6·13 인천시장 후보군]치열한 與… 현역은 '친박꼬리표' 떼기

2018-01-01 김명호·이현준

[인터뷰]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장

"인프라가 마무리 됐기 때문에 이제는 국민적인 관심이 모아질 수 있게 하는데 집중하겠다."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이희범 조직위원장은 이제 한달여 남은 기간 동안 성공적인 대회로 평가받기 위해 분주하다. 이 위원장은 경기장으로 대변되는 시설물의 공사 진행사항을 점검하는 한편, 세계인의 대회로 만들기 위해 홍보에도 집중하고 있다.선수와 미디어, 관람객 등 올림픽 참가자들에게 불편이 없도록 대회 운영과 관련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유관기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직접 방문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이 위원장에게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의 준비 상황과 성공적인 대회로 마무리 짓기 위해 어떤 것을 준비하고 있는지 직접 들어 봤다.이 위원장은 인터뷰 시작과 함께 "지난달로 경기장을 포함한 대회 시설의 전체 공정률이 99.8%을 보임에 따라 국민들의 관심이 평창으로 모아지게 하는데 집중하겠다"며 구상을 밝혔다.그는 "오는 16일이면 각국 선수단이 들어 온다. 개막은 다음달 9일이지만 선수단이 입국해 대회 출전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대회는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며 "지난해 11월에 체코 프라하에서 ANOC(국가올림픽위원회 연합) 총회가 열렸는데 'pyeongchang is ready to welcom'이라는 내용으로 스피치를 했다. 평창은 이미 세계를 맞을 준비가 돼 있다"고 전했다. 개막까지 30여일 남은 지금 조직위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에 대해 질문했다.이 위원장은 "2016년이 최순실 게이트와의 전쟁이었고 지난해는 적자와의 전쟁이었다면 남은 기간은 패럴림픽 홍보 및 티켓 판매와의 전쟁"이라고 말했다.이어 이 위원장은 "올림픽 입장권의 경우 요즘 제 전화로도 입장권 문의가 빗발치는 것을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없어서 못 팔때가 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성공 올림픽의 8부 능선은 넘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그는 "다만 올림픽 열기는 이렇게 점점 높아지는데, 아직까지 패럴림픽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저조한 것이 사실"이라며 "남은 기간 정부, 강원도, 개최도시와 힘을 합쳐 국민들의 관심을 올림픽과 패럴림픽으로 모아지도록 하는 것이 앞으로 남은 저희들의 숙제"라고 강조했다.북미 관계가 악화되면서 북한 참가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북한의 도발로 안전 문제도 대두되고 있다. 또 지난해 지진으로 인해 시설물 안전문제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이 위원장은 이런 국내외의 우려에 대해 솔직한 생각도 밝혔다.그는 "평화를 사랑하는 어느 나라, 어느 선수도 평창대회에 참여할 권리가 있고 의무가 있다. 이게 올림픽 정신이며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고 전했다."올림픽과 정치는 별개의 문제"라고 말을 이어간 이 위원장은 "스포츠는 대북제재와 관련이 없다. 스포츠는 근본적으로 평화를 상징하고, 올림픽도 평화의 정신을 가진 이벤트다. 스포츠를 통한 남북관계는 우리가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이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부터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계속 독려해 왔고,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 역시, 북한 선수들이 평창 출전권을 획득할 수 있도록 적극 도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며 "북한의 참여가 IOC의 입장이고 우리 정부의 입장이며, 조직위의 입장이다"고 전했다.또 이 위원장은 "문 대통령이 "성급하게 기대하지도, 그렇다고 비관할 필요도 없고, 마지막 순간까지 문을 열고 기다리겠다"고 했던 것처럼 저희 역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북한의 참가를 위해 노력해서 꼭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개최하겠다"고 말했다.그리고 이 위원장은 "평창대회는 테러나 지진, 폭설 같은 안전관련 문제에 대해 여러가지 방책들을 준비해 유사시 상황을 대비하고 있다"며 "역대 가장 안전한 대회 개최를 목표로 조직위와 정부, 지자체 합동으로 대응체계를 구축하고 대회 안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최순실 사태 이후 기업들이 후원을 기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며 적자 올림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조직위에서는 흑자올림픽을 목표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목표로 하고 있는 흑자올림픽, 경제올림픽 달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이 위원장은 이런 일각의 우려에 대해 "우려일 뿐"이라며 반박했다.그는 "흑자를 봤던 서울올림픽과 평창올림픽을 비교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시는데 두 올림픽은 개념이 다르다. 서울올림픽 때는 방송중계권을 조직위원회가 정했고 올림픽선수촌 또한 조직위가 분양해 1천억원의 차액을 남겼다"며 "기념 주화도 1천300억원 어치가 팔렸고 국민 성금으로만 560억원이 들어 왔다. 온 국민의 열정 속에 첫 올림픽 개최라는 이유로 어디든 손을 대면 이익이 나는 구조였다"고 설명했다.이어 이 위원장은 "하지만 지금은 방송중계권을 올림픽 주관사가 가져갔고 기념주화도 안팔린다. 물론 청탁금지법의 영향도 받는다"며 "후원금 9천400억원 목표도 채웠고 지난 1년간 판공비와 인건비를 줄이고 끊임 없이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다. 강릉과 평창 등 개최도시 인근 지역의 인적, 물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려하고 있는 만큼 '경제올림픽 달성'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기업들의 기피 풍조에 대해서도 실제와 다르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그동안 후원사 유치 문제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얼마 전 평창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 대회의 국내 후원과 기부액이 당초 목표액인 9천400억원을 넘어 1조439억원을 달성했다"며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 SK, KT 등 재계 20위 이내 대부분의 기업이 참여하는 등 총 78개 후원사를 모집한 상황이다. 공공기관도 한국전력공사, 한국공항공사,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 등에서 적극적으로 동참해 줬다"고 설명했다.그는 "평창동계올림픽과 동계패럴림픽은 우리 세대에 다시 오기 힘든, 어쩌면 일생에 단 한번 뿐일 수도 있는 지구촌 최대의 겨울스포츠 축제다"며 "평창올림픽의 '하나 된 열정(Passion. Connected)'슬로건 처럼 국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응원해 주시고 입장권도 많이 구매하셔서 역사의 현장에 함께 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2018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평창사무소에서 가진 본지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이희범 조직위원장이 "성공적인 대회로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역사의 현장에서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패럴림픽대회 조직위원회 제공이희범 평창동계올림픽·폐럴림픽 조직위원장

2018-01-01 김종화

[경인일보 신춘문예]文靑(문학청년)들이 뜨겁게 펼친… '서른두장' 꿈의 페이지

눈을 떴다. 파란색을 약간 섞어 바른 핸디코트 벽 위에 걸린 시계로 눈이 간다. 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부끄러움 없이 투명 유리 안에서 몸을 섞고 있다. 커튼 밑 부분을 잡고 젖혀본다. 벌어진 틈만큼 직사각형의 네모난 햇빛이 열 두 평 오피스텔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깊은 숨을 쉰다. 초등학생처럼 색색의 옷을 입은 행거에 걸린 옷걸이들이 보인다. 어젯밤 벗어놓은 흰색 원피스가 허리를 꺾은 모습 그대로 그 위에 가로질러 누워있다. 원피스를 내려 기다란 타원형의 전신거울로 다가가 몸에 대어본다. 거울 속의 여자가 웃고 있다. 브이자로 파인 목과 민 소매, 샤넬라인의 원피스는 빛을 받아 한층 하얗다. 어제는 금요일이었다. 나는 금요일마다 나이트 클럽에 간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서. 창가에 놓인 허브는 오늘도 싱싱하다. 허브, 읊조려 본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닿을 듯 말 듯 바람이 인다. 외로움의 냄새를 잡아먹는 향이라고 주문을 걸며 사다놓은 허브가 바람에 무게를 실으며 하느작거린다. 몸을 일으켜 싱싱한 허브잎사귀를 똑, 똑 소리나게 딴다. 파인애플민트향의 허브가 물 속에서 둥글게 원을 그리며 녹색 향을 뱉기 시작한다.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초록빛 허브 차를 한 모금 마신다. 따뜻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진다. 남은 허브잎사귀를 욕조에 떨어뜨리고 더운물을 받는다. 수증기가 올라오는 욕조에 소금가7루를 솔솔 뿌려 넣는다. 거실바닥에 신문을 길게 펼친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신문보기다. 손님과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서 스포츠란까지 꼼꼼히 읽는다. 신문 귀퉁이 박스란에 구스타프 말러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어릴 때의 반복되는 정신적 외상은 뇌의 발달에 영향을 주어 성격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증상'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외상을 극복하기 위한 무의식적인 수단중의 하나가 '반복 강박'이다. 두려움의 대상과 관련되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체험함으로써 이를 극복하려는 집착 행동이 반복 강박이다. 구스타프 말러는 작곡가다. 십사 형제의 둘째로 태어나 아홉 명의 형제가 반복적으로 죽는 충격적인 어린 시절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에 간직된 마음의 상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반복하며 극복하려는 집착행동으로 나타나는데 어떤 행위, 그것은 작곡이었다. 나는 구스타프 말러의 기사가 실린 신문을 들고 가위를 찾는다. 가위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질 않는다. 캇터칼로 신문의 박스 기사를 오린 뒤 수첩 속에 끼워 넣는다. 신문을 펼쳐 놓은 채 욕실로 들어간다. 욕조에 몸을 누인다. 감은 눈꺼풀 위로 찬 물방울이 떨어져 순간 움찔한다. 바다 속 깊은 곳에 둥실 떠있는 느낌이다. 따뜻한 물 속에서 하릴없이 흘러 다닌다. 저 어디쯤, 사랑하는 이를 죽이지 못하고 물방울이 된 인어가 살고, 아버지를 위해 바다에 몸을 던진 효녀 심청이가 살고 있는 용궁이 있지 않을까. 발목에 물컹, 무언가가 닿는다. 온몸에 은빛 가루를 덮어쓴 갈치다. 내 키보다 더 큰 갈치가 몸을 일자로 세우고 물결을 가르며 내게 다가온다.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입술을 달싹일 수 없다. 갈치에 몸이 감긴 나는 깊숙이 깊숙이 가라앉는다. 숨 쉴 수 없어 손사래를 치다 머리가 어딘가에 쿵하고 부딪힌다. 물의 온기에 깜빡 잠이 들었던가. 머리를 흔들자 물방울이 사방으로 튄다. 물살을 떨치며 욕조에서 일어선다. 은색가루 대신 배와 허벅지에 허브잎사귀가 붙어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차가운 물로 몸을 헹구고 물기를 닦는다. 샤워코롱을 온몸에 스프레이 한다. 창문을 활짝 연다. 태양은 여전히 작열하고 있다.담요를 뒤집어쓴다. 하나, 두울, 세엣… 육십을 세고 담요를 벗는다. 하나, 두울, 세엣… 육십을 세고 다시 담요를 뒤집어쓴다. 처음에는 여기저기 퍼렇게 멍이 들던 풍욕이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몸이 바람을 잘 받아들인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오래 묵은 비린내를 큰 숨을 쉬며 내보낸다. 암환자나 깊은 병을 앓는 이들이 몸 속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 하는 민간요법인 풍욕. 엄마는 지금도 풍욕을 하고 있을까? 아버지가 잠든 밤 마루에 서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풍욕을 할 때의 엄마는 평화로워 보였다. 엄마가 어떻게 아버지와 결혼을 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여자다. 그리고 생선을 팔고 있기에는 너무 예뻤다. 철이 들면서 엄마에게 나는 늘 말했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손톱청소 도구와 매니큐어가 든 바구니를 들고 와 신문 위에 놓는다. 손톱의 반달모양 위로 약간씩 비집고 나온 살점을 깨끗하게 민다. 손톱 주위의 지저분한 살점은 손톱깎이로 잘라내고 줄칼로 긴 손톱을 맵시있게 다듬는다. <2001년 소설부문 당선작-나여경, 금요일의 썸머타임 일부>저 숲의 적막속에서 한 生의 불씨를 당겨/純銀의 매듭을 풀고 알몸으로 깨인 넋이/이제 막 피를 吐하며 둥지트는 이 새벽.//외곬 달아나다 못다챙긴 깃털들이/觸手의 귀 곧추잡고 비늘터는 어둠 저 끝/오늘도 한기둥 나무로 서서 다시묻는 내 안부여.//빛으로 서는 餘白 둘레 둘레 잎 모우고/부채살 이우는 가지 무지개빛 새살이 돋아/그 맥박 거친 숨소리 결 고르는 쪽 빛 하늘.//태고의 허물벗고 다시 서는 오늘앞에 /이제 막 깨어난 눈빛 새筍돋는 풀꽃 바다/숲은 숲, 바다는 바다 아~꺼지지 않는 생명이여. <1988년 시조부문 당선작-홍승표의 詩새벽, 숲길에서><1> 가을 내내 나를 옭아 맨/비밀한 느낌 어디가고/북간도 어디쯤에 있을 나/찾아낼 일이다/그대 영혼 사이 오만하게 스치는/칼바람 볼 일이다/창자에 낀 어둠, 쌓이는 먼지/방금 가슴을 밟고 지나는/포크레인의 흉악한 음성 들을 일이다/후지필름 통안에서 질식사한 개미 한 마리/뚜껑 사이 바스라진/더듬이의 슬픔 볼 일리다/다급한 외침에도/구원은 느린동작으로 오고 있음을/똑똑히 알 일이다/자유는 무한이 될수 없음을 안/서른 넷의 물적증거 소멸할 일이다 <2> 옥상위엔 순백의 자유가 펄럭인다/그리움은 대로를 직진하고/물구나무 선 거리가 나를 압도한다/바닥은 언제나 머리 위에 있고/빙벽엔 발가벗은 내가 부동으로 서 있다/무섭다, 곡기끊긴 사랑과 결박당한 눈물/꿈은 역마살이 끼었는가/뿌리까지 얼게하는 카랑한 냉기/가슴엔 빙산 갈라지는 소리/통사정해도 되돌릴수 없는 시간 쌓이고/오물까지도 저리게 하는 바람/새벽은 내게 간통녀 되기를 강요하고/새들은 날개를 잃었다/회색의 풍선 하나가/지하로 곤두박질한다/모두가 수혈을 기다리는 사람 뿐/우체부는 발길을 끊고/전화는 수리 중/밤은 그뭄 밤,/누군가의 흐느낌 소리 들어야하는 밤도/이미 쉼표는 아니다. <1989년 시부문 당선작 김인자의 詩겨울여행>[경인일보 신춘문예]文靑(문학청년)들이 뜨겁게 펼친… '서른두장' 꿈의 페이지

2018-01-01 경인일보

경인일보 신춘문예 32년의 발자취 …

시·시조·소설·동화신인 71명 배출지역·나이 뛰어넘어 '공정한 심사'최연소 이승혁·최고령 김진기 '화제'안은순 등 문단 중견작가 자리매김지난 198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의 첫 공고가 나간 이래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올해(2018 신춘문예)로 32번째를 맞았다. 30여년간 총 71명의 문인이 경인일보를 통해 문단에 데뷔했으며, 많은 당선자들이 꾸준히 창작활동을 펼치며 한국문단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초창기(1986~1991년)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소설과 시, 시조 등 3개 부문에서 공모를 진행해 신인작가들의 등용문 역할을 했다. 그러다 1993년 시조를 대신해 동화부문을 신설하고, 1995년까지 3년간 당선작을 뽑아 문인을 배출했다. 1994년에는 당선자 23명의 작품 126편을 모아 사화집((詞華集) '우리시대는 文學的이다'(경인신춘문학회)를 펴냈다.지난 30여년간 경인일보 신춘문예는 남녀노소, 지역을 가리지 않고 공정한 심사를 통해 문학청년의 등용문으로서 입지를 공고히 해왔다. 지난 2010년 시 부문에 당선된 김진기씨는 당시 73세라는 응모 나이로 그해 '전국 신춘문예 최고령 당선자'라는 타이틀을 얻고 여러 매체에 소개되기도 했다. 김씨는 2012년 시집 '차우차우'를 발표해 다시 한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최연소 당선자는 2012년 당시 인천 강화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승혁씨로 시 '우물이 있던 자리'로 시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심사를 맡은 민용태 시인은 '어린 나이 답지 않은 성숙한 시적 감수성을 지녔다. 황지우 시인의 초기작을 보는 듯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1989년 등단한 김인자 시인은 시뿐 아니라 여행에세이 등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 독자들과 공감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인일보에 '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을 연재하며 잔잔한 감동을 전해 독자들과의 소통을 이어갔다. 지난 2001년 단편소설 '금요일의 썸머타임'으로 당선된 나여경 작가는 창작집 '불온한 식탁'과 '포옹', 여행 산문집 '기차가 걸린 풍경' 등을 출간하며 소설가로서 입지를 굳히고 있으며, 1992년 소설부문 당선자인 안은순 작가는 등단 20년만인 2012년 첫 소설을 발표하며 식지 않는 문학에 대한 열정을 보여줬다. 한국문단에 중견작가로 자리매김한 김현영·홍명진·심은섭 작가도 경인일보가 배출한 대표적인 작가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경인일보 신춘문예 32년의 발자취…

2018-01-01 김성주

[김나인 선생, 무술년 국운을 예견하다]소용돌이 속 '개의 해'… 국민 합심해 민족 주체성 세울때

영역싸움·쟁투·대립으로 물고 뜯는 사회 혼란 더해냉해·가뭄·지진·화재 등 재난 예고… 대비책 급선무한반도 핵위기로 불안감·국제사회도 '힘의논리' 지배단기4351년 서기2018년은 개의 해로서 무술년(戊戌年)이라고 한다. 육십갑자중 35번째 배속돼 있으며, 주역으로는 풍천소축(風天小畜)괘로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 하였으니, 외부 문제보다 경제, 국방 등 국내 문제가 우선인 바 통치자를 통심으로 정치권은 굳건한 의지와 명분을 갖고 경제활성화와 국토 안보 수호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특히 북한 김정은 정권의 핵위협과 주변 패권주의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외부 간섭과 침략에 대비해 강한 군사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암시가 짙게 깔려있다고 보는 것이다.무술년은 넓고 광활한 대지 위에 끝없이 펼쳐진 풍성한 가을 들판의 형상으로 비춰지기도 하나, 지지(地支) 술토(戌土)의 특성상 전체적인 분위기는 병신년, 정유년을 지나면서 태양의 빛도 사라지고 별빛도 땅아래로 침몰하고 노을 속에 저물어가는 어두컴컴한 형상으로 비춰지고 있다. 때문에 국운 또한 안정과 성장보다는 암울하고 침체된 분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보여진다. 무술년은 개의 해로서 등에 누런 털을 갖고 있는 황구의 형상으로 비춰진다. 개와 인간은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생활해온 동물로서 순종 복종의 의미가 강하며, 특히 집을 지켜 도둑을 막아주는 지킴이로서 그 의미가 크다고 볼수 있다. 하지만 무술년의 황구는 인간과 함께 생활하며 집을 지키며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애완견의 의미가 아니라, 빛이 없어 희미하고 어두운 넓고 황량한 들판을 배회하고 어슬렁거리며 먹잇감을 찾아 배회하는 들개의 형상으로 비춰지고 있다. 따라서 이를 국운에 대비하면 국가의 국민은 있어도 모두가 각자의 환경에서 영역싸움과 쟁투를 벌일뿐 주인 의식이 없는 모습이 개가 요란하게 짖어대는 모습처럼 비춰지니 나라 안팎으로 시끄럽고 혼란스런 국면으로 치닫게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땅 속에 불을 품고 있어 푸석푸석하고 땅이 타들어가는 형상이니 냉해나 가뭄 등으로 농작물 등에 큰 피해가 예상되며 급작스런 피부발진을 일으키는 전염병이 난무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가능성 또한 매우 크다. 한반도 역시 지진의 공포로부터 안전한 지대가 아님이 밝혀졌듯이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고, 도로지반이 침수 함몰돼 땅이 꺼지며, 대규모 산불이나 건물붕괴, 화재 등으로 이어지는 재난이 예고돼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를 구축하는 일이 시급하다 할 것이다. 올해는 지방선거가 있는 해로서, 무술년은 빛을 발하는 양기(陽氣)가 땅속으로 꺼져 음기(淫氣)에 갇혀 빛을 발하지 못하고 갇혀있는 형상이니, 정치권은 물론 사회 각층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개가 요란하게 짖어대듯 여기저기 쟁투와 대립으로 인한 사회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우울하고 침체된 국면 앞에 국민들이 겪는 고통과 시련 또한 커질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무술년은 겉으로는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이 서로 협력하는 상생적인 분위기로 이어질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힘을 힘으로 누르며 첨예하게 대립하고 충돌하는 서로 물고 뜯고 뜯기는 상극적 의미가 강한 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온 국민이 힘을 합쳐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고 한민족의 위상을 정립하는 것이 그 어느 해보다 중요한 때라고 생각된다. 한반도는 북한의 핵개발이 실전 배치되어 어느때 보다 핵위기로 인한 공포와 불안감이 커질 것이며, 미국을 위시로 한 국제사회와 북한의 대립구도가 격화돼 외나무다리의 혈전을 불사하는 세계대전의 위험한 국면으로 치닫는 극도로 위험한 한해가 될수있으니 만반의 대비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무술년은 국제적으로도 약육강식의 토대 위에 힘의 논리가 지배되는 격동의 한 해가 될것으로 보여지며, 중동지역에서 군사충돌이 발생해 세계정서는 더없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으로 예견한다.김나인 선생, 무술년 국운을 예견하다 /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2018-01-01 경인일보

[2018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린을 찾아가는 길

돌풍의 시작은 '2041년에 다녀왔어요'라는 제목의 글 '과거 속의 후회! 미련! 아쉬움! 잠시나마 날려버리세요!'아이엠 트립의 광고문구가 입에 텁텁하게 남아 맴돌았다필립은 요즘 '아이엠 트립(IM Trip)'에 푹 빠졌다. 아이엠 트립은 일종의 환각제였다. 영어 단어 이매지너리(imaginary)의 앞 글자 두 개를 따서 붙여진 이름인 만큼 말 그대로 '상상의 여행'을 가능하게 만드는 약이었다. 아이엠 트립이 처음으로 시판된 건 이천 오십 칠년이었는데 사실 그 당시만 해도 광고를 본 대중들의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다. 광고 문구는 대략 이랬다. '당신을 잠들지 못하게 하는 과거 속의 후회! 미련! 아쉬움! 잠시나마 날려버리세요!' 약을 복용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잠들기 전 캡슐 형태의 아이엠 트립을 하나 먹는다. 그리고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장면을 집중하여 떠올린다. 그러면 잠이 드는 동시에 그 과거로 돌아갈 수 있었다. (당연히 실제로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 타임 워프 개발은 수십 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미진했다.) 아이엠 트립이 선사하는 상상 속의 과거는 굉장히 현실 같았다. 보통의 꿈처럼 맥락 없이 끊어지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생생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냄새, 맛, 촉감까지도. 그렇게 선연하게 재생되는 과거의 어느 날을 예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한번 살아보는 것. 그게 바로 아이엠 트립의 목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의학적으로 인체에 해롭지 않다고 결론이 났다 할지라도, 그리고 국가가 허락하는 수준이라 할지라도 환각 작용이 주된 효능이었기에 아이엠 트립은 출시되자마자 많은 비난을 받았다. 특히 아이를 가진 부모들의 반발이 거셌다. 그렇지 않아도 몇 년 전 몇 가지 마약이 합법화된 뒤로 아이들도 쉽게 그것을 구할 수 있게 되어 환각으로 인한 교내 사건사고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던 차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USNS(United Space Network Service)를 이용하여 종로 근처의 아이엠 트립 본사 앞에서 판매 중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열었다. SNS를 쓰던 스마트 세대 이후 등장한 스페이스 세대는 시간을 넘나들지는 못하지만 공간을 넘나드는 데에 성공한 첫 세대였다. 그들은 국가 분쟁을 막기 위해 제한된 지역만 아니라면 어디든지 USNS를 통해 마음대로 체크인하곤 했다. 당연히 시위는 매일 열릴 수 있었다. 날마다 전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마약 합법화라는 이슈에 편승해 시민들을 홀려 돈을 버는 기업'이라며 회사 측을 비난했다. 연이은 시위에 결국 회장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그런 기회주의적인 마인드로 제품을 출시한 게 아니며 그저 스페이스 세대가 아직 이루지 못한 '시간에 대한 통제'를 조금이나마 이루려는 시도였다고 밝혔다. 회장이 무언가 더 말하려고 했을 때 기자회견은 아쉽게도 바로 끝났다. 누군가 그곳의 위치를 USNS에 슬쩍 흘려서 항의하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들이닥쳤던 것이다. 그러나 짧은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드디어 일각에서 아이엠 트립을 구매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거였다. 그 움직임은 대중의 뜻에 반하는 것이었기에 처음에는 매우 조심스러웠다. 사람들은 분명 합법인데도 밀거래라도 하듯 아는 이를 통해서만 약을 건네받곤 했고 그마저도 겁이 났는지 USNS에 비밀 채팅방을 만들어 거래하는 장면을 들키지 않을 만한 장소를 찾으려 애썼다. 심지어 김진오라는 스물한 살의 청년이 아이엠 트립을 구매한 사실을 들켜 직장을 잃었다는 이야기가 뉴스에 소개되면서 아이엠 트립과 관련한 커뮤니티는 갈수록 음지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사회적 분위기는 놀랍게도 한순간에 극적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아이엠 트립을 먹었다고 밝힌 사람들의 생생한 후기가 여러 차례 포터넷(Post-Internet)을 휩쓴 탓이었다. 돌풍의 시작은 한 사이트에 올라온 '2041년에 다녀왔어요.'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글쓴이는 말했다. 아이엠 트립으로 어머니가 죽은 해로 돌아가 그때 당시 지키지 못했던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고, 자신은 아이엠 트립을 먹은 걸 후회하지 않으며 필요하다면 다시 복용할 거라고. 드라마에나 자주 나올 법한 스토리였다. 달리 말하자면 드라마에 자주 등장할 만큼 언제든 쉽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스토리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어머니의 임종'은 식상하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눈물을 자아내는 소재였으므로. 그 글은 포터넷 유저들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많은 이들이 글쓴이가 태그해둔 어머니의 묘지에 체크인하여 꽃과 함께 뒤늦은 조의를 표했고 동시에 아이엠 트립을 향한 관심을 드러냈다. 점점 포터넷 내 대부분의 사이트에서 'oooo년에 다녀왔어요.'라는 제목이 베스트 순위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물론 모든 후기들은 진위 여부를 두고 언제나 시끄러웠다. 실제로 과거에 돌아가는 게 아닌, 오롯이 사용자의 상상에 기반을 둔 그 경험 속에서 눈에 보이는 증거를 남기기란 불가능했다. 따라서 상상의 경험을 진짜로 겪은 거라고 한들 증명할 방법이 없었으며 거짓으로 꾸며낸 거라고 한들 가려낼 방법도 없었다. 그저 각자의 생각에 맡긴 채 믿거나 믿지 않거나 그럴 수밖에. 어쨌든 믿는 사람들보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고 할지라도 끊임없이 후기는 올라왔고 어느덧 아이엠 트립은 확실하게 화제의 중심에 놓였다. 회사 측이 발표한 판매량만 봐도 갈수록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었으며 더 이상 유저들은 숨어서 아이엠 트립을 사지 않았다. 이제는 오픈된 장소로 당당하게 체크인하여 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뒤늦게나마 직장에서 잘렸었던 청년, 김진오가 누군가의 지적으로 다시 주목받았다. 사람들은 '김진오를 다시 직장으로!'라는 구호를 내세운 집회를 열어 부당 해고의 철회 및 개인 선택의 자유를 주장했다. 필립이 그 집회에 간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우연보다는 실수에 가까웠다. 여든이 갓 넘은 필립은 (아무리 지금이 여든 정도로는 어디 가서 노인 취급도 못 받는다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로 나오는 시대이긴 하지만) 워낙 스마트 세대로 살아온 세월이 길어 요즘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USNS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종종 체크인 장소를 잘못 입력하곤 했다. 단순히 예전처럼 글자로 주소를 입력하는 거라면 큰 어려움이 없을 터였지만 USNS는 3D 화면을 눈앞에 띄워놓고 그 속에 걸어 들어가 양손으로 거리를 확대, 축소하여 최종 목적지를 터치해야 했기에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조금 서툴 수밖에 없었다. 버벅대며 겨우 성공하거나, 자식에게 부탁하거나, 그냥 포기하거나. 세 가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필립은 그 중 첫 번째, 혼자서 어떻게든 물고 늘어져 힘들게라도 성공하는 타입이었다. 다른 노인들처럼 도움을 구할 자식도 없거니와 만약 자식이 있었다 해도 딱히 필립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 도와달라고 부탁할 일은 없을 거였다. 필립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본인의 부족한 깜냥을 쉽게 인정하고 포기할 사람도 아니어서 항상 조금 버벅대더라도 끝까지 붙잡고 늘어졌다. 그렇게 하면 (아주 가끔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는 가까스로 해내곤 했다.하지만 그날은 영 아침부터 정신이 없었다. 필립이 교장 직을 맡고 있는, 시에서 가장 큰 펫스쿨(pet-school)의 입학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이천 십년대 후반만 해도 다섯 가구 당 한 집 정도만 반려동물과 같이 살았었는데 어느 순간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구의 수가 그렇지 않은 가구 수의 두 배를 넘어섰다. 자연스럽게 펫 시장 역시 엄청난 속도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고 그 안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변화를 보인 것이 바로 펫스쿨이었다. 과거에는 반려동물을 펫스쿨에 보내는 게 유난 떠는 일이라며 손가락질까지 받곤 했으나 이제 펫스쿨은 엄연히 국가 차원에서 의무화한 일종의 공식적인 교육 제도였다. 이천 사십년 대 후반, 동물의 언어를 번역할 수 있는 기계가 발명되고 난 뒤 수많은 동물들의 이야기가 그 기계를 통해 번역되며 곳곳에서 인간 사회의 성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성난 대중의 반응에 정계는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동물권 보장을 시대의 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었고 곧 여러 제도를 개편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르면 ① 모든 반려동물은 가까운 펫스쿨에서 최소 일 년 간 교육을 받아야 하며 그 이상은 재량에 맡긴다. ② 입학 시기는 반려동물의 종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존재한다. ③ 교육 및 훈련은 동물권을 박탈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지며 특히 인간을 따르기 위한 훈련은 세부 교칙에 의해 어느 정도 제한된다. ④ 보호자도 보호자로서 필요한 과정을 밟아야 반려동물이 정식으로 졸업할 수 있다. 이렇게 체계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한 펫스쿨에서는 반려동물들을 직접 가르칠 펫티처 뿐만 아니라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관리할 사람들도 필요했다. 그래서 은퇴한 선생님들을 여러 요직에 앉히기 위해 데려갔는데 필립도 그런 케이스였던 셈이다. 사실 처음에 필립은 교장 직을 단호하게 거절했었다. 펫스쿨 의무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더 이상 교직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 학교든 동물 학교든 마찬가지였다. 거의 오십 년을 꼬박 학교에 매달려 있다가 퇴직한지 겨우 몇 달째였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푹 쉬고만 싶었다. 게다가 이렇게 지쳐버린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필립이 은퇴하던 해에 학교 폭력으로 학생 한 명이 옥상에서 뛰어내린 거였다. 그때 교감이었던 필립이 소식을 들은 건 오후 다섯 시 무렵이었다. 필립은 하얗게 센 머리를 몇 번 쓸어 넘기다가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몇 번 두드렸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벌떡 일어나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던 다른 선생님들 앞에서 소리쳤다. "왜 하필이면!" 그 짧은 비명과도 같은 외침 뒤에 생략된 말은 뻔했다. 왜 하필이면 올해인 것인가! 왜 하필이면 내가 교감으로 재직 중일 때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가! 필립은 오십 년의 교직 생활을 별 탈 없이 마무리 지을 수 있길 바라고 또 바랐다.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조용하게 사건을 덮었다.그런 상황을 겪고 난 뒤였으니 필립이 펫스쿨 교장 직을 거부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로 청을 받았을 때 놀랍게도 필립은 조금 망설였고 세 번째에는 결국 마음을 바꿨다.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의아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사실 필립 본인에게 그 변심은 갑작스러운 변덕이라고 할 수 없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필립은 몇 달째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형식적으로 찾아간 학생의 장례식에서 학생의 영정 사진을 본 뒤로 계속 그랬다. 대부분의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제대로 모른 채 학교를 이끌어가던 필립이었건만 영정 사진 속의 얼굴은 신기하게도 자신이 아는 얼굴이었다. 언젠가 교감실의 청소를 맡았던 학생 중 하나였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특별한 기억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아는 얼굴이라 잠시 기이한 기분이 들었을 뿐 별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왜 하필이면.' 다시 한 번 속으로 되뇐 그 문장 뒤에 생략된 말은 여전히 예전과 같았다. 분명 그랬었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다녀오고 나서 필립은 매일매일 잠을 설치기 시작했다. 피곤한 상황에서도 도무지 깊게 잠들 수가 없었다. 매번 악몽을 꾸었으나 꿈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일어나면 무슨 내용이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피로만 쌓여갈 뿐이었다. 정확한 원인을 파악해서 해결하면 제일 좋을 터였지만, 아무래도 시기를 미루어 짐작해보았을 때 가장 타당한 원인은 장례식일 수밖에 없는데 필립은 그게 영 이해가 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좋지 않은 사건은 맞지만 이미 여차여차 수습된 사건이기도 하기에 계속해서 꿈자리가 사나워 고생하는 게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상태는 더 심해졌고 심지어 밤새도록 한숨도 못 자고 뜬눈으로 보내는 날도 더러 생겼다. 필립은 마침내 불면증의 유일하고도 유력한 원인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 사건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거였다. 펫스쿨 교장 직을 수락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마음의 변화였다. 비록 사람 학교에서의 역할은 끝났지만 이렇게 다시 학교라는 공간에 불려가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형용할 수 없는 부채 의식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덜고 싶었다.그렇게 펫스쿨의 교장이 된 필립은 학교에 몹시 전념했다. 단순히 집과 교장실만 왔다 갔다 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모든 학교 행사에 적극 참여하며 학생들과 직접 소통하려고 애썼다. 펫스쿨이라고 해도 막상 겪고 보니 이전의 사람 학교들과 엄청나게 다르지는 않았다. 그냥 동물일 뿐, 얌전한 학생도 있었고 활발한 학생도 있었으며 말을 잘 듣지 않는 학생도 있었다. 당연히 극성스러운 학부모들도 있었다. 일에 열정적으로 빠지자 필립이 악몽을 꾸는 빈도는 다행히 낮아졌다. 아주 가끔 다시 잠을 설치는 경우가 생기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다음 날에 학생들과 더 많이 지내면 당분간은 괜찮았다. 이런 생활을 하고 있던 필립에게 펫스쿨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인 입학식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굳이 교장인 자신이 직접 그럴 필요는 없는데도 필립은 새로운 학생들을 맞이하고 각각을 배정된 반으로 안내하여 반장 선거를 할 수 있도록 도왔다.그러다가 일이 터졌다. 신입생 중 하나가 탈출을 꾀했다. 다들 정신없는 틈을 타서 학교를 빠져나간 거였다. 펫스쿨 공식 계정으로 USNS에 긴급 공지 글이 올라갔다. '이름: 사라, 나이/학년: 6개월(1학년), 종: 강아지(슈나우저/사진 첨부). 오전 10시 경 보호자의 손을 벗어남.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라 그리 멀리는 못 나갔을 거라 추정. 많은 제보 바람.' 글이 올라가자마자 학교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제보가 쏟아졌다. 그리고 선생님들은 그 제보 속에 찍힌 곳으로 곧바로 체크인하여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다 살펴봤으면 그 다음 장소로 체크인하고 그런 식이었다. 필립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서둘러 자신의 USNS를 켜 성큼성큼 3D 화면 속으로 걸어 들어가 제보된 장소 중 하나를 과감하게 터치했다. 평소에는 수십 번 망설임 끝에 이루어졌을 모든 움직임들이 너무나도 순식간에 벌어졌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순식간에 필립은 '김진오를 다시 직장으로!' '아이엠 트립을 복용할 자유를!' 하고 외치며 행진하는 사람들 사이로 체크인하게 되었다.필립은 아이엠 트립에 대해 잘 몰랐다. 그냥 그런 비슷한 이름 때문에 세상이 조금 시끄럽다고,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얼떨결에 집회 현장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도 그 집회가 어떤 집회인지 관심 없었다. 원하던 장소가 아닌 곳에 체크인 됐다는 사실도 눈치 채지 못한 채 이런 곳에 학생이 숨어든다면 찾기 힘들겠구나 하는 걱정만 들었다. 그저 사라의 이름을 외치며 사람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그런데 필립의 눈에 누군가가 들고 있던 아이엠 트립이 들어왔다. 정확히는 아이엠 트립의 포장에 쓰여 있는 광고 문구가 필립의 시선을 끌었다. '당신을 잠들지 못하게 하는 과거 속의 후회! 미련! 아쉬움! 잠시나마 날려버리세요!' 필립은 다리가 무언가에 붙잡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후회, 미련, 아쉬움……. 장례식에서 본 학생의 영정 사진이 머릿속을 스쳤다. 필립은 아이엠 트립을 들고 있는 사람의 팔을 붙잡아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보시오. 이게 대체 무슨 약이오?" 사실 모르는 사람에게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필립에게는 낯설기 짝이 없는 행위였다. 그러나 이번엔 어쩐지 치솟는 궁금증을 이겨내기 어려웠다. 다행히 아이엠 트립의 대단히 열성적인 유저였던 그는 필립의 질문에 흥분을 숨기지 못하는 표정을 지으며 기다렸다는 듯이 약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았다. 포터넷을 휩쓸었던 후기들부터 본인이 직접 겪은 경험들까지 이야기하며 필립에게 아이엠 트립으로 상상의 시간 여행을 꼭 하기를 거듭 권했다. 그러고는 목적지를 터치할 필요 없이 바로 내재된 체크인 장소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USNS용 체크인 칩 하나를 선심 쓰듯 건네주었는데, 그러면서 이곳에 가 자신의 이름을 대면 싸게 구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필립은 자신의 오른손에 놓인 칩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칩을 완전히 감싸며 주먹을 한번 힘 있게 쥐었다가 다시 서서히 폈다. 솔직히 쉽게 믿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심지어 필립은 평소에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누구보다 믿지 않는 편이었다. 아무래도 칩을 다시 돌려주는 게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됐소.' 하고 운을 떼려는 순간 필립의 초점이 칩이 아닌 칩을 감싸고 있던 자신의 손에 맞춰졌다. 평생 매끄러웠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비참하게 쪼그라든 볼품없는 손이었다. 조금 전에 중얼거렸던 아이엠 트립의 광고 문구가 텁텁한 입 속에 남아 미련하게 맴돌았다. 필립은 재차 주먹을 쥐었다. 그는 굳게 쥔 필립의 주먹을 바라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즐거운 여행하시길." 필립은 그가 자리를 뜨고 나서도 사라를 찾았다는 펫스쿨 계정의 공지가 올라와 알람이 울릴 때까지 한참 동안 집회 현장을 서성거렸다.삼일 뒤, 필립은 결국 USNS에 칩을 꽂고 거래처로 이동했다. '체크인하시겠습니까. YES/NO'라는 문구 앞에서 한동안 망설였지만 막상 YES를 눌러 아이엠 트립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자 구매는 생각보다 쉬웠다. 물론 약을 샀다고 해서 바로 복용한 건 아니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또다시 삼일이 지나고 나서야 필립은 드디어 처음으로 아이엠 트립에 도전하기로 했다. 어렵게 내린 결정이었다. 침대에 앉아 캡슐 형태의 아이엠 트립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일종의 환각제에 의존해야한다는 점이 꺼림칙해 다시 한 번 갈등했지만 마침내 아주 천천히 캡슐 하나를 삼켰다. 필립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장면을 떠올렸다. 처음 학생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듣던 바로 그때를. 최대한 집중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 당시 따사로운 햇볕이 교감실을 내리쬐고 있었고 필립은 의자에 몸을 맡긴 채 졸고 있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노크도 없이 문이 열렸고 당황한 표정의 몇몇 교사들이 들이닥쳤다. 깜짝 놀란 필립이 한 마디 하려는데 어쩐지 교사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한 명은 심지어 울고 있었다. "교감 선생님, 큰일 났어요. 학생 한 명이……." 현실은 몇시간일 터인데 상상의 과거는 며칠씩 흘렀다 "린, 금방 가마" 필립의 쭈그러든 손이 YES에 닿았다"뉴스 못보셨어요? 사실은, 어제 김진오가 자살했어요"필립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불현듯 깨달았다.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음을. 아이엠 트립이 선사하는 상상 속의 과거로 들어왔음을. 자각은 어렵지 않았다. 전해들은 대로 모든 감각이 실제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등 뒤로 느껴지는 햇볕의 따스함과, 깜짝 놀라며 잠에서 깬 자신의 심장 소리, 손에 배인 땀, 선명하게 보이는 교사들의 표정, 더없이 뚜렷하게 들리는 울음소리까지. 이보다 현실적일 순 없었다. 필립은 양손을 비벼 땀을 없애며 아이엠 트립은 상상의 여행이 아닌 타임 워프를 가능하게 만드는 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신뢰도 높은 모든 후기들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을 때 실제로 바뀐 과거는 없었음'을 알리고 있었다.이는 아이엠 트립 회사 측에서 공식 발표한 주의사항과도 똑같았다.) 그저 얼떨떨해하던 필립이 정신을 차린 것은 탁자 위 공간에 설치해둔 3D 시계를 보았을 때였다. 시계는 오후 다섯 시를 막 넘기고 있었다. 필립이 익히 알고 있는 순간이었다. 필립은 실제로 과거의 당시에 오후 다섯 시를 막 넘기던 시계를 보며 오십 년의 교직 생활을 떠올렸었다. 그리고 소리쳤었다. 왜 하필이면!더 이상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필립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상상의 여행이든 타임 워프든 상관없었다. 어쨌든 자신은 과거로 왔다. 그것도 밤마다 좀 더 괜찮은 과거를 살지 못했음을 부끄러워하고 후회한 뒤에 돌아온 과거였다. 수없이 상상했던, 좀 더 나은 과거를 만들어볼 기회가 온 셈이었다. 필립은 돌아온 과거 속에서 이번에는 왜 하필이면! 이라는 말을 뱉지 않았다. 대신 철저하게 조사에 응하여 학교 폭력을 일삼은 가해자들을 제대로 가려내기를, 언론에 많이 노출되는 것도 마다하지 않기를 지시했다.그리고 교무 회의를 열어 은퇴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지만 남은 교직 생활 동안 학교 폭력을 없애기 위해 학생들 곁에서 최선을 다하겠으며 다른 선생님들도 성실히 돕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과거의 시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현실에서 잠든 시간은 고작해야 몇 시간일 터인데 상상 속의 과거는 며칠씩 흘러갔다. 그 며칠 동안 필립은 죽은 학생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이리저리 발로 뛰었다. 펫스쿨의 교장이 된 뒤 학교에 전념했듯이, 그렇게 애썼다. 그리고 이번에도 학생의 장례식장에 가서 영정 사진을 마주했다. 필립의 입술이 떨렸다. 그 떨림은 상상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생생했다. 필립은 매일 속으로 되뇌고 또 되뇌었던 말을 드디어 떨리는 목소리로 내뱉었다."미안하네. 정말 미안했네."필립은 눈을 떴다. 동시에 필립의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눈물을 미처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자 어느새 장례식장이 아닌 자신의 방이었다. 현실로 돌아온 거였다. 현실인데도 오히려 조금 전까지 머물렀던 상상 속의 과거보다 더 현실감이 없는 거 같았다. 필립은 한참이나 멍하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렇게 가만히 누워 자신이 새로 만든 과거의 순간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계속 상기시켰다. 기껏 바꾼 과거가 상상에 불과하다니 아무래도 약간의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과거 속에서 조금 더 머물고 싶었다. 그래도 어쨌든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더 컸다.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렇게 말하지 말 걸.' 했던 말을 하지 않고 넘어갔기에. '그렇게 할 걸.' 했던 행동들을 할 수 있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전하고 싶었던 말을 전할 수 있었기에. 필립은 눈물로 베개가 축축해진 것을 느끼며 그만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필립이 아이엠 트립에 푹 빠진 건 그때부터였다. 하루에 적어도 하나씩은 먹었다. 그리고 자신의 기억 속에 찝찝하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채로 남아 있던 사건을 다시 찾아갔다. 매일 다양한 시대를 넘나들었다. 어쩔 땐 천구백팔십 년대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부모님께 버릇없이 굴었던 날을 다시 살아보기도 했고, 어쩔 땐 처음으로 민주적 절차를 거쳐 대통령을 탄핵했던 이천십 년대 후반의 어느 날로 돌아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보기도 했다. 또 어쩔 땐 이천삼십 년대 초반에 있었던 세계 여성 혁명의 날에 직접 참여하여 여성들을 비롯한 유색 인종, LGBT 등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행진하기도 했으며, 어쩔 땐 이천사십 년대 초반에 머물며 그때 당시에는 진짜로 성공할 줄 몰랐던 USNS에 과감하게 투자해보기도 했다.새로 만들어보고 싶은 과거의 순간은 생각하면 할수록 많이 떠올랐다. 필립의 다이어리는 돌아가고 싶은 언젠가의 날들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 찼다. 어쩌면 모든 날들을 다시 살고 싶은 것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가끔은 상상 속의 과거가 끝나는 아쉬움이 너무 커서 현실로 돌아오자마자 연속해서 아이엠 트립을 먹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면 어느 쪽이 진짜 현실인지 잘 구별이 되지 않았다. 필립은 그 모호해진 경계가 마음에 들어 더욱 자주 상상의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리고 필립은 어느 순간 자신의 성격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부탁하지도 않았었고 자신의 잘못을 굳이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필립뿐만 아니라 아이엠 트립을 복용하는 사람들 모두가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변화였다.과거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을 후회하여 바꾸겠다는 의지였으므로 자주 과거로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상상과 현실과의 경계를 모호하게 느끼면 느낄수록 성격은 바뀌는 게 당연했다. 문제는 그렇게 성격이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초래한 '새로운 과거'는 아무리 새로워봤자 결국 '상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었다. 다시 말해서 과거 속 후회와 미련과 아쉬움은 아무리 노력해도 여전히 현실로 존재할 수밖에 없고 스스로 내적 변화가 있든 없든 자신이 만들어낸 그 '진짜' 삶의 흔적을 언제까지나 떠안고 갈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필립이 이를 인지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처음 교직 생활을 시작한 이천 육년으로 돌아갔던 경험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초보 선생 특유의 서투름과 어설픔으로 저질렀던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실수들을 만회해보고자 필립은 그날도 어김없이 아이엠 트립을 하나 먹고 누웠다. 그리고 가장 만회하고 싶은 기억의 장면을 집중하여 떠올려 당시로 돌아갔다. 몇 번을 겪어도 현실처럼 생생한 감각에 기분이 좋았다. 특히 이렇게 젊은 시절로 돌아가면 젊음을 다시 한 번 누리는 느낌이라 더 좋았다. 그런데 얼추 원하던 대로 상상 속 과거의 일부를 완성했을 때였다. 갑작스럽게도 필립은 예상하지 못한 변수를 맞닥뜨리고 말았다. 바로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녀는 당시 같은 학교에 근무했던 동료 선생으로 필립이 짝사랑하던 여자였다. 필립은 여태껏 아이엠 트립을 먹고 과거로 돌아갔을 때 새로운 과거를 만들어내는 것과 관련이 없는 다른 주변 환경에 한 번도 신경 쓴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녀를 보았을 때, 필립은 교실에 있었고 그녀는 운동장에 있어 둘 사이의 거리가 매우 멀었는데도 필립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녀에게로 향했다. 거의 습관처럼.실제로 과거에도 필립은 멀리서 그녀를 몰래 지켜보곤 했었다. 고백할 생각은 없었다. 워낙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애초에 좋아한다는 감정을 인정하기까지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인정하고 나서도 고백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감당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그냥 짝사랑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딱히 가까워지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가까워지면 더 좋아하게 될 터였는데 예전의 필립에게 그런 감정의 변화는 그리 달가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녀가 너무 빨리 전근을 가버렸다는 점이었다. 같은 학교에서 일한지 일 년 만에 필립은 그녀를 영영 볼 수 없게 됐다.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었으니 근무지가 멀어지면 그대로 끝일 수밖에 없었다. 필립은 비로소 조금 후회했다. 자신이 감당하기 싫어 포기한 경우의 수는 어쩌면 자신의 소심함에 대한 변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생각이 들었다한들 필립에게는 뒤늦게라도 연락처를 알아내 친해질 그런 용기마저 없었다. 후회되어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감정이란 건 식기 마련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닳아 없어질 거였다.하지만 상상 속의 과거에서 필립이 우연히 그녀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필립은 그 감정이 닳아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세월이 흘러 예전처럼 감정의 형태가 견고하지는 않았으나 분명 그것은 자신의 마음 깊숙한 곳에 여전히 특유의 흔적으로 남아 있었다. 그 흔적은 후회이자 미련이자 아쉬움이었고 또한 그리움이었다.필립은 그녀와의 관계를 새롭게 만들어보고 싶었다. 새로운 과거를 상상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웬만하면 그 새로운 과거 속에서 오래도록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필립은 혼자만의 계획을 세웠다. 아이엠 트립을 이용하여 만들어내는 개별적인 상상의 과거들을 하나의 상상으로 연결시키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중요한 가설 하나를 입증해야 했다. '상상 속에서 바뀐 과거도 자신의 의식 혹은 무의식 아래 저장된 일종의 실제 기억이므로, 아이엠 트립을 통해 실제 과거가 아닌 가짜 과거로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 필립은 제일 먼저 그녀가 전근 가던 날로 돌아갔다. 당시에는 그녀가 동료들의 배웅을 받으며 차를 타고 가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럴 필요도 없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 필립은 마치 펫스쿨 입학식 때 학교를 빠져나갔던 사라를 찾으러 갈 때처럼 성큼성큼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 앞에 서자 정말 현실인 것처럼 그녀의 향수 냄새가 났다. 필립은 어쩔 수 없이 조금은 달아오른 얼굴로, 하지만 과감하고 당당하게 연락처를 물어보았다. 그녀는 담당하던 학년도 다르고 평소에는 친하지도 않았던 필립의 갑작스러운 요청에 꽤 당황하는 거 같았다.필립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화끈거림도 그녀의 표정에 묻어나는 당황스러움도 무척이나 생생했다. 필립의 '진짜' 기억에 충분히 각인될 만큼. 다행히 그녀는 당황하는 기색을 곧 거두고 미소를 지으며 필립의 핸드폰에 자신의 번호를 입력한 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 초 뒤 그녀의 코트 주머니에서 진동 소리가 났다. 필립은 핸드폰을 다시 건네받고 그녀를 향해 중얼거리듯 말했다. "늘 이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부터 하면 되죠." 필립은 드디어 가설을 입증해보기로 했다. 아이엠 트립을 먹고 자리에 누웠을 때 그녀와 연락을 이어가던 상상 속의 어느 날을 집중해서 떠올리고 또 떠올렸던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 가설은 옳았다.아무리 환상이라고 한들 선연한 인상을 지닌 채 의식 속에 각인된 일종의 경험이었기에 필립은 상상 속에서 그녀와 연락을 지속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모든 필립의 개별적 상상이 필립의 의도 아래에서 하나로 연결되기 시작했던 셈이다.새로 만들어내기 시작한 거대한 과거 속에서 필립은 실제로 젊었던 필립보다 용감했고 배려심이 있었으며 또한 대범하고 너그러웠다. 물론 종종 원래 필립의 성격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한번은 그녀가 필립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당신은 내가 생각했던 거랑 참 다른 사람인 거 같아." 그 순간 필립은 깜짝 놀라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눈을 피해 시선을 내리깔고 말았다. 젊어진 자신의 손이 보였다. 분명 삼십 대의 피부로 돌아왔는데도 왠지 쭈그러든 노인의 피부를 보는 것 같았다. 필립은 천천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내 마음은 항상 이랬어." 어쨌든 그렇게 좀 더 괜찮은 성격으로 거듭난 필립은 그녀와 순탄한 연애 시절을 보냈고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게다가 예쁜 딸도 얻었다. 필립은 자신의 품 안에서 잠든 딸의 고른 숨소리에 더할 나위 없이 벅차올랐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필립은 천천히 딸의 호흡을 따라했다. 딸이 숨을 들이쉬면 필립도 숨을 들이쉬었다. 딸이 숨을 내쉬면 필립도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한참을 함께 호흡한 뒤 필립은 딸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뺨을 어루만졌다. 따뜻하고 보드라웠다. 필립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때 필립에게 다가온 그녀가 필립의 뺨에 입을 맞췄다. 필립은 그녀의 가슴에 기대어 잔뜩 목이 멘 채 중얼거렸다. "린. 린이라는 이름이 좋겠어." 언젠가 딸이 있다면 지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름이었다. 이제 필립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아이엠 트립에 완전히 빠졌다. 현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매일매일 상상 속의 과거에서 그녀와 린과 함께 지냈다. 심지어 과거의 시간이 흘러가는 방식은 현실과 같지 않아서 하룻밤을 누워서도 여러 계절을 보낼 수 있었다. 필립은 그렇게 상상 속에서 몇 번이나 봄을, 여름을, 가을을, 겨울을 보냈다. 점점 필립에게 현실과 상상의 구분은 무의미했다.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현실로 돌아온 필립은 약이 다 떨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미리 많이 사뒀다고 여겼는데 언제 다 먹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미처 정리를 못해 지저분한 책상 위를 서둘러 헤집었지만 아무리 찾아도 남은 약은 없었다. 필립은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왜 하필이면!" 애가 탔다. 상상 속의 과거에서 필립과 그녀는 막 린의 유치원 학예발표회에 함께 가려던 참이었다. 얼른 약을 먹고 다시 돌아가야만 했다. 그녀와 린이 자신을 기다리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필립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떨리는 손으로 USNS를 켰다. 읽지 않은 메시지가 가득 쌓여 있었다.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며칠 째 결근 중이었기에 대부분 펫스쿨 측에서 온 메시지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메시지를 무시한 뒤 필립은 아이엠 트립 거래처가 내재된 체크인 칩을 USNS에 꽂았다. 곧 자주 가서 익숙한 배경이 3D 화면 속에 펼쳐졌고 '체크인하시겠습니까. YES/NO'라는 문구가 떴다. 필립은 망설이지 않고 화면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YES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터치하기 직전, 린이 나중에 자라서 자신에게 최신 기계에 대해 가르쳐주는 모습을 상상했다.분명 다급했는데도 절로 웃음이 났다. 이제 더 이상 필립은 뭐든 혼자 물고 늘어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린, 금방 가마." 필립의 쭈그러든 손가락이 YES에 닿았다.거래처는 평소와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다들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거나 무리지어 수군거리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심각했고 자연히 전체적인 분위기도 아주 가라앉아 있었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필립에게는 아이엠 트립을 당장 사는 게 더 중요했기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곧바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VIP라는 글자가 새겨진 삼 층으로 올라갔다. 언젠가부터 필립은 아이엠 트립의 VIP고객이 되었다. 항상 조금 더 할인된 가격으로 그리고 조금 더 적은 대기 시간으로 약을 사는 게 가능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어쩐 일인지 조용해야 할 VIP 전용 층도 아래층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소란스러웠다.과연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 필립은 그나마 덜 바빠 보이는 직원에게 다가갔다. 직원은 미간을 한껏 찌푸린 채 포터넷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소?" 필립의 물음에 직원은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오히려 본인이 더 어리둥절한 표정을 한 채 되물었다. "아, 혹시 뉴스 못 보셨어요?" 필립이 머리를 긁적이자 직원은 설명하기가 조금 난감하다는 듯이 살짝 웃으며 좌우를 살폈다. 그러곤 곧바로 웃음기가 싹 가신 얼굴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게 사실은, 어제 김진오가 자살했어요." 필립은 김진오, 하고 두어 번 중얼거렸다. 분명 들어본 이름이었다. 그리고 들어본 적 있다고 생각하자마자 필립의 머릿속에 익숙한 구호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김진오를 다시 직장으로!' 그랬다. 이제는 아이엠 트립의 상징적인 인물이 된 김진오, 그가 죽은 거였다. 그래서 아이엠 트립 측에서도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필립은 곧바로 관련된 뉴스를 찾아보았다. 그제야 어리둥절했던 직원의 태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포터넷은 온통 그 사건으로 도배되어 떠들썩했다. '아이엠 트립 후유증? 김진오 자살의 세 가지 의문점.' '환각제 유통 이대로 괜찮은가.' '아이엠 트립 측, 확실한 증거 없어. 루머 법적 대응할 것.' '반대세력 오늘 저녁부터 다시 집회 열 듯.' 종합해보면 직장으로 다시 복귀한 김진오는 회사 생활을 하면서 계속 아이엠 트립을 복용해왔고 최근 보름 동안 무단결근을 했으며 어제 집에서 자살한 채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한쪽에서는 아이엠 트립 때문이라고 주장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김진오가 보인 일련의 행동에 뚜렷한 인과성이 없으므로 결정적인 원인은 알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필립은 포터넷 상단에 뜬 '김진오의 마지막 영상'이라는 제목을 눌렀다. 누군가와의 영상 통화 기록처럼 보였다. 김진오의 얼굴은 알려진 바와 다르게 굉장히 초췌했다.다크서클도 짙고 수염도 깎지 않았다. 그런 얼굴을 거칠게 매만지며 김진오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 돈 노 후 아이 엠 애니 모어(I don't know who I am any more). "평소처럼 처방받으시는 거죠?" 필립은 직원의 말에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회사 곳곳에는 '진실은 밝혀진다.'라는 문구가 적힌, 아이엠 트립의 결백을 믿어달라고 호소하는 포스터가 붙여져 있었다. 그러나 회사 측 입장과는 별개로 이런 사건이 생기면 매출은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 확실히 보통 때보다 손님 수가 훨씬 적었다. 그나마 VIP층은 변화가 적은 편에 속했다. 필립은 조금 전 지나왔던 아래층을 떠올렸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사람들 대부분이 직원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수많은 손님으로 발 디딜 틈도 없었던 예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긴 했다. 필립은 문득, 언제부터 주먹을 쥐고 있었는지 모를 자신의 양 손을 내려다보았다. 평생 부드러웠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거칠고 초라한 노인의 손이었다. 필립은 천천히 주먹을 폈다. 그때였다. 엘리베이터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난데없이 누군가의 절규가 삼 층을 가득 메웠다. 필립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속옷만 입은 한 젊은 여자가 울부짖었다."빨리! 빨리 달란 말이야! 지금 당장 가야해……." 여자의 머리는 자다 일어난 것처럼 형편없이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여자는 자신의 상태가 어떻든 신경도 쓰지 않는 거 같았다. 그저 비틀대며 빨리! 만을 외쳤고 호흡곤란으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듯 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어딘가 아슬아슬하다고 느낄 무렵 여자는 결국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여러 명이 재빨리 여자에게 달려갔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필립은 자신의 호흡까지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밭은 숨을 거듭 내뱉었고 그러다 불현듯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아, 필립은 흐느끼며 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부여잡았다. 사실 필립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한들 앞으로도 오후 다섯 시만 되면 죄책감에 휩싸이리라는 것을. 학생의 죽음보다 자신의 은퇴를 더 걱정했던 과거의 흔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또한 이 세상에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상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이상 그들을 만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있는 힘껏 애를 써 봐도 그녀와 린의 존재는 끝끝내 환상에 불과하리라는 것을. 새로 만들어낸 과거는 아무리 생생하고 뚜렷해도 결국 '만약에'라는 가정 속에서만 성립하는 신기루일 수밖에 없었다. 없어지지 않고 남을 수 있는 건 '진짜' 삶의 흔적뿐이었다. 이제껏 쌓아올렸던 여러 추억이, 그리고 새롭게 바랐던 미래가 필립의 마음속에서 모래성처럼 속절없이 무너졌다. 필립은 괜찮은지 묻는 직원에게 오늘은 이만 가봐야겠다고 말하기 위해 가까스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막 운을 떼려던 차에 누군가가 외쳤다. 이봐요, 호흡하세요! 하나 할 때 들이쉬고 둘 할 때 내뱉으세요! 하나! 둘! 하나! 둘! 다시 필립의 눈길이 여자 쪽을 향했다. 여자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중 몇 명이 하나! 둘! 하나! 둘! 하며 똑같은 박자로 호흡을 유도하고 있었다.필립은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 박자에 맞춰 천천히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나, 둘, 하나, 둘. 그렇게 한참을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가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필립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품 안에서 잠들었던 린의 고른 숨소리를, 린의 호흡을 따라하던 순간을 떠올렸다. 덧없이 무너진 기억 어딘가에 각인된 더없이 벅차올랐던 그 시간을. 필립은 어쩐지 텁텁한 입 안을 마른 침으로 축이고 또 축였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역시 딱 한 번만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김진오에 관한 뉴스는 계속해서 실시간으로 쏟아지고 있었고 여자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아이엠 트립에 반대하는 세력들이 예고한 집회 시간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필립은 손을 내밀었다. 직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약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여행하시길. 필립은 속으로 직원의 말을 되뇌었다. 즐거운 여행하시길. 그러곤 약 봉투를 든 손에 천천히 힘을 주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어쩐지 제대로 주먹이 쥐어지지 않았다. 필립은 왠지 모를 아득함을 느끼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끝내 오므라들지 못한 주먹이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끝>

2018-01-01 경인일보

[인천공항 럭셔리 복합리조트 '에어시티']카지노·5성 호텔·골프장… 밤이 없는 고급 관광단지

인천국제공항 주변에서는 여의도 면적의 3배에 달하는 800만㎡ 규모의 '에어시티(Air City)' 개발이 한창이다. 에어시티 개발에 따라 인천공항은 여객·화물을 처리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여객을 창출하는 기능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지난해 4월 인천공항 제1국제업무지역(IBC Ⅰ)에 문을 연 동북아시아 최초 카지노복합리조트인 '파라다이스시티'가 대표적이다. 파라다이스세가사미(지분율 파라다이스 55%, 세가사미홀딩스 45%)는 1단계 1차 사업으로 1조 원(잠정치)을 투입해 5성 호텔(711개 객실), 컨벤션(국내 특급호텔 기준 최대 규모 그랜드볼룸), 외국인 전용 카지노, 미슐랭 2스타 고급 레스토랑과 바(bar), 특화된 라운지(클럽 라운지, 패밀리 라운지, 크루 라운지) 등을 조성했다. 올해 9월에는 뷰티크 호텔, 스파, 광장 클럽, 원더박스(키덜트 실내 테마파크), 리얼 전시관(영화세트장), 문화공원 등을 추가로 건설해 개장할 계획이다. 5천억원을 투입해 공연장, 호텔, 상업시설, 오피스텔 등을 개발하는 2단계 사업도 추진한다.올해 파라다이스시티 인근에서는 오렌지엔지니어링(40%), 오렌지이앤씨(40%), 오렌지링스(20%) 등 관계 기업으로 구성된 영종오렌지 컨소시엄이 18홀 규모의 대중골프장을 개발하는 사업을 본격 추진할 예정이다.인천공항 제3국제업무지역(IBC Ⅲ)에서도 '인스파이어' 카지노복합리조트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MGE(Mohegan Gaming & Entertainment·옛 MTGA)는 국내 기업인 KCC와 공동으로 (주)인스파이어인티그레이티드리조트를 설립, 지난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공모에 참여해 카지노복합리조트 사업자로 선정됐다. 인스파이어는 IBC Ⅲ 내 286만6천㎡ 부지에 1조8천억원을 투입해 호텔·카지노, 테마파크, 상업, 컨벤션, 복합업무시설 등을 개발할 계획이다. 현재 실시계획 변경, 기반시설·건축 인허가 등 절차가 진행 중이다. 오는 18일 개장하는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T2)을 지원할 제2국제업무지역(IBC Ⅱ, 면적 16만1천㎡) 개발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IBC Ⅱ에 호텔과 오피스텔을 개발할 사업자를 공모할 계획이다. /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1단계 1차 시설을 개장한 파라다이스시티.

2018-01-01 홍현기

[인천공항 물류확대 인프라 밑그림]날개 펴는 '신성장화물' 아시아 허브로 뜬다

터미널 인근에 신선제품 전용시설 등보관·취급 까다로운 '특수화물' 유치미주·유럽 노선수 亞 최다 강점 활용3단계 단지 추가조성 사업 본격 시동새해 들어 인천공항의 물류경쟁력이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천공항 물류단지 확장, 화물터미널 추가 개발, 보관·취급이 까다로운 '신성장화물' 인프라 구축 등이 예정돼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올해부터 인천공항 자유무역지역(공항 물류단지) 추가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인천공항공사는 지난해 전문 용역업체를 통해 인천공항 물류단지 3단계 개발사업의 타당성 평가를 진행했고, 경제성을 확보했다는 결론을 얻었다. 물류단지 3단계 기반시설공사 사업의 B/C(비용 대비 편익 비율)값은 '1.19'로 경제성을 판가름하는 기준인 1을 넘었다. 이에 따라 총 사업비 약 540억원을 투입해 32만㎡ 규모의 물류단지를 추가로 조성하는 사업이 본격화할 수 있게 됐다. 인천공항공사는 장기적으로 인천공항 4단계 물류단지(55만㎡)를 개발할 계획이다. 인천공항 물류단지 1·2단계 구역 내 미개발지에도 추가로 물류업체가 입주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천공항공사는 지난해 인천공항 물류단지 1·2단계 구역 미개발지(7개 필지, 6만310㎡)를 개발할 사업시행자를 찾는 모집 공고를 했는데, 9개 물류 업체가 사업제안서를 제출한 바 있다.인천공항 물류단지는 인천공항 바로 옆에 위치한 탁월한 입지여건과 저렴한 임대료 등의 강점이 있어 물류업계 등으로부터 인기가 높다. 이미 조성된 인천공항 물류단지 1단계(99만2천㎡)와 2단계(55만3천㎡)에는 모두 31개 기업이 입주했고, 평균 입주율은 96.7%에 달한다.인천공항공사는 인천공항의 물류 허브 기능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글로벌 특송항공사 맞춤형 화물터미널'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세계 최대 항공 특송 회사인 페덱스(FedEx Express)와 '인천공항 FedEx 전용 화물터미널 개발 및 운영사업'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인천공항공사가 페덱스의 요구를 반영한 '맞춤형' 화물터미널을 건립해 임대하는 'BTS(Build-to-Suit)' 방식으로 사업이 추진된다. 화물터미널은 물류창고, 사무실, 캐노피를 포함한 연면적 2만3천425㎡ 규모다. 페덱스는 여기에 자동화물분류시스템 등 최첨단 물류설비를 구축하고 2021년 상반기부터 운영을 시작한다. 인천공항에서 화물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는 항공화물회사인 에이에이씨티(유)도 신규 화물터미널 개발을 시작한다. 미국 화물 전용 항공사인 아틀라스에어와 (주)샤프가 공동 출자해 설립한 에이에이씨티는 직접 화물터미널을 개발해 20년간 운영한 뒤 소유권을 인천공항공사로 이전하는 BOT(Build-Operate-Transfer) 방식으로 터미널을 개발한다. 제2화물터미널은 북측 화물터미널 확장부지에 지하 1층, 지상 3층, 건축연면적 약 1만6천500㎡ 규모로 연내 준공할 예정이다. 인천공항공사는 세계적인 국제특송기업 DHL과도 인천공항 화물터미널 증축 관련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항공화물 증가에 따라 수·출입 화물 및 환적화물 처리 능력 향상을 위해 화물터미널 증축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 외에 관련 기관 협업을 통한 통관절차 간소화 등 제도 개선을 지속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인천공항공사는 최근 물류 수요 변화에 맞춰 농수산물, 반도체, 의약품 등 보관·취급이 까다로운 특수화물이나 전자상거래 물품 등을 일컫는 '신성장 화물' 유치에 노력하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특히 여객터미널 인근에 신선화물 전용처리 시설을 건립할 계획이다. 인천공항의 경우 별도 화물기보다는 여객기 화물실(Belly Cargo)을 활용한 화물 운송 비중이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해 여객터미널 근처에 이같은 시설을 개발하게 됐다. 제2여객터미널 인근 신선화물센터는 총 사업비 약 160억 원을 들여 약 1만9천846㎡ 규모로 건립되며, 대한항공이 운영하게 된다. 제1여객터미널 인근 신선화물센터는 총 30억원이 투입돼 2천808㎡ 규모로 개발된다.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인프라뿐만 아니라 제도적 기반 마련, 전략적인 인센티브 시행 등을 통해 항공화물 처리량 증대 및 수송품목 다변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 해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인천공항 내 다양한 물류 인프라 개발은 기존 인천공항의 경쟁력과 함께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인천공항은 미주 및 유럽지역 취항 화물기 노선 수가 아시아 경쟁공항보다 다양하다는 강점이 있다. 신속한 통관 절차, 높은 조업 퀄리티 등도 인천공항의 화물 경쟁력이다. /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

2018-01-01 홍현기

[인천공항 여객확장 4단계 사업 시동]연간 1억명 운송 '메가포트' 활주로 오른다

T2 확장·제4활주로·제2교통센터 건설홍콩·푸둥·창이공항 등과 경쟁력 확보생산유발 8조원·취업유발 5만여명 효과최종 단계 1억3천만명 수용, 개발 지속오는 2023년이면 인천국제공항은 연간 여객 1억 명을 처리할 능력을 갖추게 될 전망이다. 인천공항은 제2여객터미널 등 3단계 사업을 마무리한 올해부터 제2여객터미널(T2)을 확장하고 제4활주로를 건설하는 내용의 4단계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 사업비 4조1천800억원이 투입되는 4단계 사업이 완료되면 인천공항이 동북아시아 대표 허브공항으로 재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국토교통부는 이미 지난해 11월 인천공항 4단계 사업 계획을 포함한 '인천국제공항 개발 기본계획 변경안(제9차)'을 고시한 바 있다. 인천공항 4단계 사업은 KDI(한국개발연구원)의 예비타당성 조사도 통과했다. 4단계 사업의 B/C(비용 대비 편익 비율)값은 '1.46'으로 경제성을 판가름하는 기준인 1을 넘었다. AHP(종합평가)도 기준치(0.5)보다 높은 0.59를 받았다.4단계 사업은 18일 개항하는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확장하고, 새로운 활주로를 짓는 것을 골자로 한다. 4단계 사업에 따라 조성되는 비행장 시설로는 ▲제4활주로(길이 3천750m, 너비 60m) ▲제2활주로 연결 고속탈출유도로 ▲여객계류장(86만1천㎡) ▲화물계류장(12만6천㎡) 등이 있다. 2터미널에는 수화물 처리시설, 탑승교, 건축 설비 등 31만6천㎡ 규모의 시설을 추가로 설치한다. 단기주차빌딩 등의 역할을 하는 제2교통센터도 건립된다.4단계 사업에 따라 인천공항 연간 여객 처리 능력은 1억 명까지 높아진다. 3단계 사업에 따라 올해 2터미널이 개장하면, 인천공항은 연간 약 7천 200만명의 여객을 처리할 수 있게 된다. 4단계 사업으로 2터미널을 확장하고 제4활주로를 조성하면 연간 2천800만명의 여객 처리 능력이 새로 생긴다. 4활주로 건설이 완료되면 제1·2활주로와 제3·4활주로의 항공기 이착륙이 독립적인 시스템으로 각각 운영된다. 1·3 활주로는 이륙, 2·4 활주로는 착륙 전용으로 활용된다.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인천공항 항공기 이착륙 가능횟수가 시간당 100회 이상의 능력을 갖추게 되고, 일일 1천600회·연간 56만 회 이상의 항공기 운항 실적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한다"며 "연간 여객 1억 명 운송 가능한 메가(MEGA) 공항의 반열에 서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인천공항은 저비용항공사(LCC)의 성장, 항공자유화 등에 따른 아시아태평양 지역 항공수요 등을 고려해 4단계 사업을 추진한다. 향후에도 성장세를 이어갈 항공시장을 선점하고 동북아시아 대표 허브공항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은 2023년, 2터미널은 2019년에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4단계 사업은 동북아시아 주요 공항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홍콩공항의 경우 확장 사업에 따라 2020년이면 연간 여객 처리 능력이 1억1천만 명 수준으로 올라간다. 2025년 싱가포르 창이공항은 1억3천500만 명, 중국 푸둥공항은 1억6천만 명에 달하는 여객 처리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인천공항 4단계 사업으로 생산유발 8조522억 원, 부가가치유발 2조8천626억 원, 취업유발 5만640명 등 막대한 경제적 파급 효과도 기대된다. 4단계 건설기간 중에만 5만 명의 일자리 창출, 8조 원 규모의 생산 유발, 2조8천억 원에 달하는 부가가치 창출이 예상된다.인천공항은 4단계 사업 이후에도 최종 단계까지 연간 여객 1억3천만 명 수용 능력을 갖추도록 확장 사업을 계속 추진한다. 화물청사 철도역 인근과 스카이 72 골프장 지역에 제3여객터미널과 제5활주로를 건설할 계획이다. 최종 개발이 완료되면 인천공항은 싱가포르 창이공항(1억3천500만명, 2025년), 두바이 알막툼공항(1억 6천만명, 2030년)에 이어 세계 3번째 수준의 국제선 수용 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인천공항 4단계 사업 조감도 /인천공항공사 제공

2018-01-01 홍현기

[김유겸 서울대 교수가 말하는 '평창의 성공 조건']누굴 위한 올림픽인가? 답은 미래세대

국민들의 무관심, 넘어야 할 가장 큰 산대상 좁혀 유소년들에게 집중해야 할 때올림픽 가치 전해줄 '스토리' 개발해야주변 사람들에게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이름이 뭐냐고 한번 물어보시라.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가? 안다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단한 스포츠 팬이거나 스포츠 관련 직업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제 겨울 두 달도 남지 않은 평창올림픽에 도무지 국민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평창올림픽은 준비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 이러한 국민들의 무관심이다. 사실 이러한 무관심에는 이유가 있다. 유치과정부터 유치의 필요성과 실익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없었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다. 때문에 출발부터 유치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또한 아시안게임 등 최근 국내에서 열린 대규모국제 스포츠 이벤트들의 경제적 실패로 인해 국제스포츠 이벤트 주최에 대한 반감이 폭넓게 형성되었다. 따라서 평창올림픽에 대한 무관심은 이유 있는,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평창올림픽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또한 평창올림픽의 성패는 강원도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가 걸려있는 중차대한 일이다.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평창 올림픽의 실패가 우리나라에 미칠 악영향을 예측하는 것은 그동안의 선례를 살펴보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장 최근에 열린 2014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은 54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했으나 이러한 투자에 걸 맞는 효과를 거두지 못해 빚더미에 앉았고, 1998년 나가노 대회도 대회 후 12조원이 넘는 적자를 떠안게 되었다. 12조원은 우리나라 문화체육관광부와 외교통일부의 1년 예산을 합친 것 보다 많은 액수다. 2004년 그리스 하계올림픽 실패는 그리스 국가채무상환불능(디폴트) 사태의 주요 원인중 하나로 꼽힌다. 잔치를 잘못 열어서 패가망신한 것이다. 사실 남의 나라 이야기까지 갈 것도 없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인천시는 광역자치단체 최초 재무상환불능 사태를 간신히 피했다. 이렇듯 올림픽의 실패는 적당히 손해 좀 보고 넘어갈 수 있는 성격의 일이 아니다. 지금 평창올림픽을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러한 국민들의 자포자기로 인한 외면을 극복하는 일이다. 모든 국민들의 관심과 성원 없이 올림픽이 성공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게다가 이러한 관심과 성원이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있고 없고 그 자체가 올림픽의 성공과 실패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흑자를 거두었다고 해도 국민들이 좋아하지도 않고 지원하지 않는 올림픽을 성공한 올림픽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반면에 경제적으로 많은 희생을 치렀다 할지라도 그 나라 국민들이 애정을 가지고 보람을 느꼈다면 성공한 올림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평창올림픽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마케팅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좋은 대화 되려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지 분명해야 한다. 대화 상대가 공감할 수 있는 목적이어야 말이 통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진행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분석해 보면 이번 평창올림픽의 의미가 무엇인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미디어콘텐츠를 분석해 보면 가장 많이 등장하는 평창올림픽 마케팅 키워드는 "입장권 판매", "D-Day ???일", "공식온라인스토어 오픈", "항공부문 공식파트너 협약식" 등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평창올림픽을 통해 추구하는 핵심 가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또 이런 메시지가 전달된다고 한들 평창 올림픽을 치르는데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도 알 수 없다. 뚜렷하고 의미 있는 목적을 세우기 위해서는 마케팅의 대상이 분명해야 한다. 마케팅 대상을 분명하게 하지 않는 것은 누구한테 말하는지 모르면서 아무 말이나 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누구한테 말하는지도 모르고 허공에 대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정보과잉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한테 하는 이야기도 아닌데 왜 귀한 시간을 누구한테 하는지도 모를 혼잣말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지금까지 평창올림픽 마케팅은 전 국민과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해왔다. 이는 전형적인 매스마케팅(Mass Marketing)이다. 모두를 설득하려고 하다가 누구도 설득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다. 남은 시간도 없거니와 지금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다. 대상을 좁히고 분명히 하고 목적과 스토리를 최적화해야 한다. 일단 전 국민이 아니라 미래세대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최대관심사는 유소년이다. 올림픽의 유산도 결국 유소년들의 몫이고, 올림픽에 들어간 막대한 비용도 올림픽이 미래세대인 유소년들에게 의미 있는 일이 될 수만 있다면 아까운 비용이 아니라 현명한 투자가 될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중요하게 될 가치를 올림픽이 제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다면 성공한 올림픽이 아닐까? 올림픽은 전 세계인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매우 귀한 기회를 제공한다. 아이들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이런 기회를 놓쳐서야 되겠는가? 지금이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올림픽을 통해 줄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이를 전달하기 위한 스토리를 개발하는 아이들을 위한 "미래 올림픽"을 만드는데 역량을 집중한다면, "성공한 올림픽", 가능할 것이다./김유겸 서울대 교수김유겸 서울대 교수

2018-01-01 김유겸

[4차 산업혁명 준비된 '스마트 인천공항']AI·생체정보인식 시스템… 막힘 없는 탑승수속 구현

인천공항 4단계 사업은 인공지능(AI), 생체인식,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최첨단 기술을 도입하는 '스마트 공항' 구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휴대물품을 소지하고 터널을 통과하면 자동으로 보안검색이 이뤄지는 '터널형 보안검색(그래픽)'은 여객 편의를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되는 부분이다. 터널을 통과하는 동안 여객의 ▲행동분석 ▲금속탐지 ▲폭발물 감지 ▲신발 스캐닝 등을 완료하는 방식이다. 여객이 손 정맥, 지문 등 생체정보를 사전 등록하고, 이를 활용해 셀프체크인·백드롭(수화물 위탁)·보딩(탑승)을 할 수 있는 '생체인식 기반 탑승수속'도 인천공항에 도입할 예정이다. 인공지능(AI)이 수하물 X-ray를 판독해 위험물질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스템 구축도 계획돼 있다.인천공항공사는 자택이나 KTX역 등에서 미리 짐을 보내고 공항으로 편히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수하물배송 서비스'도 4단계 사업에 맞춰 도입할 계획이다.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집에서 수하물을 위탁한 여객이 공항에 도착한 뒤 사전 등록 정보를 바탕으로 셀프체크인 등을 하고, 터널형 보안검색을 거치면서 막힘없는 수속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며 "체크인에서 비행기 탑승까지의 전 과정을 여객이 주도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인천공항공사는 이 외에도 ▲공항 이용객의 질문에 인공지능(AI)이 답해주는 '챗봇'(Chatbot) ▲증강현실(AR) 기반 길 안내 ▲가상현실(VR)을 이용해 상품 체험을 하는 스마트 면세점 등을 도입할 계획이다. /홍현기기자 hhk@kyeongin.com 사진/연합뉴스여객터미널에 배치된 청소로봇.

2018-01-01 홍현기

[경기천년, 새로운 시작]천년 세월 넘어온 도시 너의 이름은 경기

고려 현종, 개성 주변부 12개현 하나로 묶어오랫동안 분열된 영토·문화 통합 중심 역할조선시대 들어 사회개혁·시대정신 꽃 피워아파트·공장 개발… 눈앞 이익만 쫓은 현대삶 윤택해졌지만 누구도 정체성 고민 안해기록지 않는 전통·문화·일상 점차 잊혀져가철저한 자기반성 '새로운 천년' 여는 첫걸음 '성종6년(987) 5부의 방리(坊里)를 갱정(更定)하였고, 14년(995) 개성부(開城府)를 만들어 적현(赤縣) 6곳, 기현(畿縣) 7곳을 관장하도록 하였다. 현종 9년(1018)에 부(府)를 폐지하고, 현령(縣令)을 설치하여 정주(貞州)·덕수(德水)·강음(江陰) 3개 현을 관리하게 했다. 또 장단현령(長湍縣令)에게 송림(松林)·임진(臨津)·토산(兎山)·임강(臨江)·적성(積城)·파평(坡平)·마전(麻田) 7개의 현을 관리하게 했는데, 모두 상서도성(尙書都省)에 직속시켰으니 이것을 경기(京畿)라고 한다' -고려사 권 56, 지리지 '왕경 개성부' 中에서# 경기천년의 역사2018년은 경기천년의 해다. 정확히 표현한다면 '경기정명 천년'의 해다. 그 유래는 앞서 밝힌 고문에서 비롯됐다. '고려사' 권 56, 지리지 왕경 개성부에 1018년 고려 현종 9년에 고려의 도성이었던 개경을 둘러싼 외곽지역(개성, 정주, 덕수, 강음, 장단, 송림, 임진, 토산, 임강, 적성, 파평, 마전 등 12개 현)을 묶어 정식으로 '경기'라 칭했다고기록했고, 이것이 천년의 시작점이다.그러나 이 당시 고려의 경기는 지금의 경기도와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오히려 지금의 경기도는 조선에 이르러 수도를 천도한 이후 한양을 중심으로 재편된 지역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고려시대의 문헌에서 지칭된 '경기'에서 작금의 '경기천년'의 의미를 찾는 것은 그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됐다.고려 태조 왕건이 천명한 건국 이념은 '일통삼한(一統三韓)'이다. 고려는 조각조각 나뉜 후삼국을 통일해 성립된 국가다. 오랜 시간 분열됐던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를 하나의 국가로 통합하는 일은 고려사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그러나 고려가 추구한 통합의 가치는 한가지 틀에 갇혀 사회를 통제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고려사회가 추구한 통합은 다원성을 기반으로 개방적이면서 변화에 유연했다. '경기'라는 통합된 지역구조를 설정한 것도 고조선 이후, 삼국시대와 남북국 시대, 후삼국 시대 등 오랫동안 분열해 온 역사적 경험을 통해 각 지역과 민중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중앙의 통치력을 효과적으로 강화하는 제도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이는 천년의 세월이 흘러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려의 경기가 분열된 땅을 통일하고 민중을 통합하는 기제였다면, 조선의 경기는 수도 한양과 왕실을 지원하는 기본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조선의 정신을 선도하는 중심역할을 했다.특히 현실에 매몰되지 않고 사회개혁을 주도했던 학문들이 경기도에서 탄생했다. 파주의 율곡 이이는 그 대표주자다. 율곡은 '동호문답'에서 200년 조선사회의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고, 조선의 개혁 방향을 제시했다. 또 '만언봉사' '육조계' '시폐칠조책' 등을 통해 양역변통을 통한 신분제 완화와 수미법, 호포제 같은 개혁제도를 서슴없이 이야기했다. 완벽한 신분제 사회였던 당시의 조선에서 대단히 파격적인 제안들이다. 조선 후기에는 경기도를 중심으로 '실학'이 융성하게 발전했는데, 두 번의 전란 이후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담아내지 못하는 전통 유학의 한계를 깨기 위해 시작됐다.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등 경기도가 낳은 실학자들은 백성의 현실을 직시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당면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문을 갈고 닦았다.경기도 땅에서 꽃피운 학문은 곧 '시대정신'이었다. 뚜렷한 현실 인식과 철저한 자기 반성,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의 희망과 대안을 고민하고 제시했다.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경기도의 정신이다.# 경기도를 기록한다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경기도는 시대정신을 고민하지 않는다. 지나간 것은 지나쳐 버릴 뿐 돌아보지 않았고 그저 눈 앞의 이익만 쫓아 앞만 보며 달렸다. 서울에서 떠밀려 내려오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막무가내로 자연을 훼손하고 택지를 개발해 아파트를 지었고, 시커먼 공장단지도 서울과 인접하고 국가 산업 발달에 도움이 된다면 무분별하게 세웠다. 예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만큼 자본의 발전을 이룬 지역도 있지만, 여전히 낙후되고 뒤처진 지역이 공존한다. 윤택해졌지만 경기도의 정신과 정체성은 없다. 천 년의 경기는 허울 좋은 이름만 있을 뿐 누구도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았다.새 천년을 시작하는 경기천년은 철저한 자기 반성부터 시작해야 한다. 부끄러운 역사라 할지라도 사라져 버린 것들과 곧 사라질 위기에 있는 경기도의 모든 과거와 현재를 철저하게 기록하고 복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명제를 실천하는 건 세계적 추세다. 이미 수많은 선진국에선 세계지식재산권기구를 중심으로 자국의 전통 지식과 유산을 보호하는 데 힘쓰고 있다. 미국의 경우, 아예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모든 것에 대해 독자적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 국가 정체성을 구축하는데 활용한다. 굳이 다른 국가의 예를 들지 않아도 된다. 수원 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누가 어디서 와서 무엇을 얼마 동안 일했고, 얼마의 삯을 받았는지까지 기록된 그 꼼꼼함 때문이다. 결국 기록하는 행위는 과거와 현재를 반성하고 성찰하는 과정이며 이것이 생략된 경기천년은 그저 구호에 불과하다. 우리가 기록해야 할 것이 많다. 청자와 백자, 나전칠기, 농악 등 경기도가 지정한 무형문화재 중에는 구전을 통해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의 명맥을 근근이 이어가는 것들이 많다. 이들이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문화재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경기도의 근현대사이기도 하다. 기록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의 일상에서도 기록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동두천의 미군기지, 기지를 둘러싸고 번성했던 클럽과 기지촌, 인천과 수원간 소금 등 자원을 실어나르던 수인선 협궤열차 선로 등은 목적을 잃고 갈 곳을 찾지 못해 방황 중이다.점차 줄어드는 5일장, 동두천 양키시장, 안성 우시장, 성남 인력시장, 평택 국제시장 등도 지금 기록해두지 않으면 점점 빛을 잃고 퇴색돼 갈 것이다. 이뿐 아니다. 연천 UN화장장 시설이나 비무장지대 안 대성동 마을 등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공간도 기록해야 할 시점이다. 이들 모두 경기도가 지나온 흔적이고 거대한 역사다,경인일보는 올해 새 천년의 경기도를 마주하며, 지나쳐 버린 경기도의 모습을 기록할 예정이다. 사라져 버린 역사를 되짚고, 흔적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들의 가치를 되찾아 줄 계획이다. 지난한 과정일테지만, 희망찬 새 천년의 도약을 위한 첫 걸음이 될 것이라 믿는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사진/경기문화재단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2018-01-01 공지영

['알고가면 좋은' 평창]멋나는 평창, 맛나는 평창

'아시아의 알프스' 대관령 꼭 들러야설경서 맛보는 최고 품질 한우 '백미'메밀파스타·송어만두등 특선메뉴도오죽헌·선교장 등 전통 명소도 즐비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스케치북처럼 새하얀 설상과 빙상에 새겨질 선수들의 감동스토리와 함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다.해발 700m의 '하늘 바로 아래 땅' 평창, 바다와 호수가 어우러진 강릉, 우리 민족의 가락인 아리랑의 혼이 깃든 정선은 사계절 언제 방문해도 먹거리와 볼거리가 가득하다.평창으로 가면 꼭 들려야 할 곳이 대관령과 횡계리다.'아시아의 알프스'로 불리는 대관령은 겨울이면 하얗게 뒤덮인다. 고원에서 자란 대관령 한우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설국의 마을 횡계리에서는 겨울마다 대관령 눈꽃축제가 열려 눈꽃과 얼음이 어우러진 환상의 세계가 펼쳐진다.투명하게 얼어붙은 오대천을 발밑에 두고 송어를 낚는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는 평창 송어축제는 대표적인 겨울 축제다. 차갑고 맑은 계곡 물에서 자란 평창 송어는 육질이 차지고 맛이 좋다. 특히 이번 평창동계올림픽 방문객을 위한 한우불고기, 메밀파스타, 송어덮밥, 메밀더덕롤까스, 황태칼국수, 송어만두 등 특선메뉴도 준비됐다.강릉 경포대는 빙상경기장이 밀집된 강릉 올림픽 파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경포대는 하늘과 바다, 호수, 그리고 술잔과 눈동자에 떠 있는 달을 볼 수 있는 명소다. 경포대 인근에는 허난설헌 생가,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오죽헌,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한옥으로 알려진 선교장 등 전통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문화재들이 즐비하다.또 경포호 인근에 자리 잡은 초당마을에는 옛날 방법 그대로를 고수하며 초당순두부를 만들고 있다. 초당순두부는 깨끗한 바닷물로 간을 맞추어 만든 두부로 부드럽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강릉의 특별함으로 '커피'도 빼놓을 수 없다. 강릉은 인구가 22만 도시에 불과하지만 카페가 300곳이 넘는다. 카페가 아니더라도 골목길 언저리에서는 커피를 볶는 풍경을 볼 수 있다.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경기가 펼쳐지는 정선은 올림픽 경기 비중은 적지만, 꼭 들려 봐야 할 곳이다. 그 옛날 유배 온 연산군 폐세자의 눈물, 아우라지를 사이에 둔 애틋한 연인들의 연모, 동강 뼝대(절벽의 강원도 방언)에 할멈과 할아범의 그리움, 화암의 여덟 보석이 간직한 전설이 깊고 푸른 동강 줄기처럼 잔잔히 흐른다. 특히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자란 천년의 소리 '정선아리랑'의 애잔한 노랫가락을 듣고 있으면 왠지 모를 뭉클함이 솟아난다. 옛 장터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시골 장터의 따뜻한 정과 푸짐한 인심도 느낄 수 있다. /강승호기자 kangsh@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2018-01-01 강승호

[평창올림픽 G-38]전통 문화·현대 예술 버무린 '문화올림픽'

한지공예·봉산탈춤 등 '체험존' 운영근현대 미술작 전시·미디어파사드 쇼LTE 보다 40~50배 빠른 '5G' 선보여자율주행차 다니고 인공지능 통·번역국민통합·국가브랜드 긍정영향 기대현대경제硏 "직간접적 경제효과 65조"강원도 평창의 올림픽 플라자에서 개막하는 평창 동계올림픽(2월 9~25일)은 17일 동안 평창, 강릉, 정선 일원에서 전 세계 100여 개국을 대표하는 5천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해 15개 세부종목에 걸린 102개의 금메달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세번의 도전끝에 독일 뮌헨과 프랑스 안시를 따돌리고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평창조직위원회는 '하나 된 열정(Passion. Connected)'이라는 슬로건과 경제·평화·환경·문화·정보통신기술(ICT) 주제를 앞세워 막바지 대회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 조직위의 문화올림픽을 위한 고민대회 기간 문화올림픽의 중심은 개·폐막식이 열릴 평창올림픽플라자다. 평창올림픽플라자는 이번 올림픽의 5대 목표인 문화, 환경, 평화, 경제, 정보통신기술(ICT) 올림픽을 상징하는 5각형 모양으로 지어졌다.평창올림픽플라자의 문화ICT관에선 비디오아트를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근현대 미술작품들이 전시될 예정이다. 건물 외부에선 현대적 기술과 전통미를 기반으로 한 미디어파사드 쇼가 매일 저녁 열리고 평창올림픽플라자 내에선 매듭장, 침선장, 옥장 등 무형문화재 기능장의 시연과 대금, 가야금, 판소리 등 예능장의 공연을 매일 즐길 수 있다. 야외 전통문화체험존에선 한지공예, 민화 그리기, 봉산탈춤, 평택농악 등 전통 공연으로 우리 전통문화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메달플라자에선 매일 저녁 메달 시상식을 전후해 다양한 공연과 불꽃축제가 펼쳐질 예정이다. 낮에는 대형스크린으로 주요 경기 생중계를 보며 응원전이 펼쳐진다.또 조직위는 K팝 콘서트, 난타 공연, 3D 홀로그램 콘서트, 동계올림픽 종목 가상현실(VR) 등을 즐길 수 있는 라이브사이트를 운영해 축제 분위기를 고조 시킬 예정이다.올림픽의 꽃이자 하이라이트인 개·폐막식은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우리의 전통과 현대, 미래의 잠재력이 어우러진, 눈을 떼기 힘든 쇼와 축제의 장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평창과 세계 최고 기술의 한국 ICT 기술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첨단 ICT(정보통신기술)의 축제가 될 전망이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첫선을 보이는 5세대(G) 이동통신부터 사물인터넷(IoT), 초고화질 방송, 인공지능, 가상현실까지 각종 신기술이 이전과는 다른 올림픽 무대를 만든다. 평창올림픽 주관 통신사 KT는 세계 최초로 5G 시범 서비스를 운영한다. 5G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LTE 보다 40~50배 빠른 최대 속도가 20Gbps(초당 기가비트)에 이른다.KT는 5G 통신망을 활용해 생생하게 올림픽을 즐길 수 있는 360 VR·싱크뷰·타임슬라이스 등의 실감형 콘텐츠를 대거 선보인다. 실감형 콘텐츠는 경기장과 체험관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를 통해서도 체험할 수 있을 전망이다.국내 지상파 방송사들은 올림픽 경기를 UHD 화질로 생중계한다. 국내 기술로 구현한 'UHD 체험스튜디오'도 평창 일대에 들어선다.인공지능을 활용한 통·번역 기술은 올림픽의 언어 장벽을 크게 낮출 것으로 기대된다. 평창올림픽의 공식 통·번역 앱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지니톡으로 서비스 언어는 영어·중국어·일본어·프랑스어·스페인어 등 29개 언어다. 올림픽 기간 평창 일대에는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누빈다.국토교통부와 현대자동차가 만든 자율주행차는 개막일 서울톨게이트에서 올림픽 행사장까지 시연 주행을 하고, 올림픽 기간 내내 일반 시민을 위한 셔틀로 운영될 예정이다. #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올림픽 유산들치열한 경쟁 속에 올림픽을 유치했지만, 손해를 보는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하지만 지난해 말까지 국내 후원과 기부금액이 1조원을 넘어서며 이런 우려는 사라지고 있다.조직위에 따르면 후원사는 총 78곳이다. 2014 소치(44개), 2010 밴쿠버(56개), 2006 토리노(34개) 대회보다 많다.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 SK, KT 등 국내 재계 20위 이내 기업 대부분이 참여했다. 지난달 말 기준 이들 기업을 비롯해 공공기관 등에서 후원한 금액과 기부금은 1조439억원이다.현재 추진 중인 계약을 완료하면 후원사는 80개에 달할 거라는 게 조직위의 설명이다.경제적 파급효과도 크다.산업연구원은 총생산 유발액 20조4천973억원, 바구가치 유발액 8조7천546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또 현대경제연구원도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해 직·간접적 경제효과가 65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이런 수치적인 부분 외에도 비경제적 효과도 상당하다.국민 통합 및 자긍심 고양, 국가 브랜드 및 부가가치 제고 등 국가 발전의 에너지로 승화 선진국 진입의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림픽이 끝난 후 남는 시설뿐만 아니라 그 정신과 문화를 일회용으로 사용하지 않고 이어가면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198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캐나다 캘거리가 38년 만인 2026년 대회를 다시 유치하는 데 강조했던 것도 이 올림픽 유산이다.1988년 대회 유치를 위해 설립한 '캐나다 올림픽 개발협회(CODA)'가 올림픽 이후 '윈스포트'라는 비영리 기관으로 전환돼 올림픽 공원과 캔모어 노르딕 센터 등을 소유·운영하며 '올림픽 유산'을 지켜나가고 있다.30년 가까이 지났지만 꾸준한 관리 덕에 스피드스케이팅 경기가 열린 캘거리 올림픽 오벌, 빙상과 아이스하키 등이 열린 스탬피드 클러스터, 나키스카 스키장, 캔모어 노르딕 센터 등이 2026년 개최지로 결정된다면 사용될 예정이다. /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평창조직위원회가 막바지 대회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진은 스키점프 등이 열리는 알펜시아 전경. /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를 8주 가량 앞둔 12월 15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올림픽 플라자 모습. 이곳에서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개·폐막식이 열린다. /연합뉴스대회기간 문화올림픽 추진개요

2018-01-01 김종화

[2018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소감]이명선, "홀로 서기를 마무리하며"

며칠째 계속되던 한파주의보가 해제되었습니다. 당분간 한랭전선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전선이 사라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안도합니다. 사라지지 않았는데 보이지 않을 때 저는 안도합니다. 베란다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올겨울 들어 처음 올려다봅니다. 시립니다. 시린데 온몸으로 퍼지지 않습니다. 지금 제가 뜨겁기 때문입니다. 눈이라도 펑펑 내린다면 더 시린 하늘을 찾아서 밖으로 나가려는 충동이 일 것입니다. 듣고 있던 노래의 볼륨을 더 줄입니다. 아예 들리지 않는다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제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혼자 생활하는 것이 편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걷다 보면 물 위거나 구름 위였습니다. 빠지거나 떨어질 수 있는 불편에 대한 직감으로 자주 붉거나 창백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낀다는 것이 평범이라는 걸 알지만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났나 봅니다. 그래서 늘 혼자 지냈습니다. 외출할 때마다 자주 모자를 썼습니다. 모자를 푹 눌러쓰면 타인의 시선뿐만 아니라 제가 보고자 하는 것들에서 가려질 것 같았습니다. 어떤 욕망도 제 것이 될 것 같지 않았습니다. 사라지지 않았는데 보이지 않을 때 저는 안도합니다. 저의 하루는 단순했습니다. 온종일 음악을 들으며 혼자 중얼거리는 것이 유일한 일이었습니다. 중얼거리다 보면 모든 중얼거림은 저에게로 다시 되돌아오곤 하였습니다. 되돌아오는 중얼거림을 언제부턴가 받아 적었습니다. 혼자 지내는 일치곤 매력적인 일이었습니다. 당선 소식을 받았습니다. 순간 혼자 중얼거릴 수가 없었습니다. 무작정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여전히 없었습니다. 이제 사람과 사람 사이를 걸어가야겠습니다. 그 길을 내주신 경인일보사와 저의 중얼거림을 받아주신 심사위원님께 큰절 올립니다. 저에게 최초로 시를 보여주고 시의 길을 내준 이돈형 시인과 시의 날개를 펼치게 한 김지명 시인께 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쓰겠습니다. 이 말이면 될 것 같습니다. 늘 애틋하게 지켜봐 주는 이종영, 이영선, 이영예, 김병찬 그리고 끝끝내 사랑인 재인이에게도 깊은 마음 전합니다.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 엄마, 아버지 곧 사진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2018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분 당선자 이명선.

2018-01-01 경인일보

[2018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평]홍정선 평론가·이인성 소설가, "정체성·존재에 대한 묵직한 성찰"

"SF적인 요소를 넣어 재밌으면서도 삶에 대한 근원적 문제에 접근하는 작품"'2018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위원들은 당선작 '린을 찾아가는 길'에 대해 등단작품이라고 보기에 이미 상당한 수준이라는 호평을 내놓으며, 이견 없이 당선작으로 선정했다.심사위원들은 총 148편의 응모작 가운데 본심에 오른 18편의 소설을 두고 별다른 의견차 없이 이중 5편을 다시 추렸다. 최종 심사에는 '린을 찾아가는 길' 외에도 '매일 빌리는 남자' '세신' '호랑나비와 춤을' 등 실험적 도전부터 정통 소설문법에 충실한 작품까지 다양한 경향의 작품들이 올라왔다.먼저 '세신'은 화자를 관(棺)에 두고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독특한 관점으로 풀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흘렀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호랑나비와 춤을'의 경우는 밑바닥 삶의 씁쓸한 풍경을 객관적 시선으로 담담하게 잘 그려냈다는 점에서, '매일 빌리는 남자'는 표절이 표절이 아니라 일종의 패러디나 오마주로 받아들여지는 아이러닉한 상황을 풍자하는 데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야기의 전개나 서술 방식이 너무 평면적이라는 한계가 지적되었다.심사위원들은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이민자의 삶이나 청년실업, 동성애 등 여러 세태를 반영하는 소설들이 다수 투고됐지만 문학적으로 설득력을 갖춘 작품은 많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문학적 실험이나 활기, 자신의 문학적 세계를 집요하게 추구하는 의지 등을 작품 속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고 했다. 예외적으로 '린을 찾아가는 길'에 대해 기억을 자기 정체성의 문제와 연결해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유발시키려는 주제의식부터 만만치 않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꿈속으로 여행을 하면서 행복한 기억을 만들려 하지만 그것이 결국 가짜라는 반전을 통해 현실성을 되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되고, 밀도 있는 구성과 세련된 문장으로 시종일관 독자를 사로잡는다고 호평했다. 마지막으로 심사위원들은 소설가를 꿈꾸는 예비 작가들에게 고전에 대한 독서를 권했다. 많은 작품을 읽는 과정을 거치면서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이인성 소설가(왼쪽)와 홍정선 평론가(오른쪽)가 2018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을 선정하기 위해 논의를 하고 있다. /김성주기자ksj@kyeongin.com

2018-01-01 김성주

[2018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소감]황윤정, "한줄한줄 행복한 글쓰기"

중학생 때 숙제로 소설을 썼다가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 반 친구들 앞에서 낭독을 한 적이 있다. 아마 그때부터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던 거 같다. 학업 등으로 바쁜 시기에도 늘 마음 한 구석에는 소설을 향한 동경을 품어왔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직접 쓰기로 결심하고 한 편씩 완성하기 시작하자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물론 때로는 그 과정이 너무 길게만 느껴지기도 했으나 창작을 하는 수많은 이들이 공감하듯 항상 괴로움보단 즐거움이 더 컸다. 나만의 문장을 만들어내고 그걸 통해 나의 세계관이 담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일은 무엇보다 근사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소설로 나를 드러낼 수 있어 더없이 기쁘다. 앞으로도 계속 치열하게 쓰고 싶다. 그리고 이를 위한 첫 걸음을 경인일보와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스럽다. 처음으로 소설을 쓰겠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모님과 말레이시아의 티오만이라는 작은 섬에서 맥주를 마시던 차였다. 당시 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그런 선언을 한다는 건 상당히 긴장되는 일이었지만 기분 좋은 바다 냄새와 밤바람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나의 떨리는 고백을 귀 기울여 들어주시고 그 뒤로도 언제나 묵묵하게 나를 응원해주신 부모님께 먼저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자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인 수민에게도 고맙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저를 이끌어주신 이평재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선생님을 만나고 제 인생은 놀라울 만큼 많이 변했습니다. 가르쳐주신 대로 처음의 뜻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가고 싶습니다. 또한 같이 공부하는 예술서가 문우들, 든든하게 곁을 지켜주는 친구들 모두 다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소중한 기회를 주신 경인일보와 심사위원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2018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분 당선자 황윤정

2018-01-01 경인일보

[2018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심사평]김명인·김윤배 시인, "절제·인내로 묘사한 인류의 비극"

"비극적 상황을 절제와 인내로 직시한 작품"이명선 당선자의 '한순간 해변'은 지난 2015년 9월 시리아 난민 아이의 죽음을 소재로 인류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이 인류가 저지르고 있는 비극을 그리면서도 인내와 절제가 미덕인 시 세계를 펼쳤다고 평가했다.총 1천158편이 접수된 '2018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서 본심 심사위원들은 18편의 시를 골라 평가했다. 이 가운데 4편이 당선작 후보에 오르며, 심사위원의 매서운 심사대에 올랐다.'한순간 해변'과 '익투스' '수수께끼 나라의 첫 인사법' '미역국을 삼킨다는 것', 등이 당선 경쟁을 벌였다. 우선 '미역국을 삼킨다는 것'은 의미가 함축되도록 말을 활용하는 솜씨가 두드러진 작품이라는 평을 받으며 심사위원을 사로잡았다. 시상을 단단하게 다뤄본 느낌을 준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심사위원들은 섬세하게 형상화하는 작업이 아쉬웠다고 평했다.종교적인 느낌이 강한 '익투스'는 시를 조여내는 실력, 한 편의 작품을 완성시키려는 의지가 읽히는 작품으로 잘 조정된 시적 발화를 보여줬다는 평을 이끌어냈다. '수수께끼 나라의 첫 인사법'은 시문이 유려하고 상상력이 돋보인 작품으로 마지막까지 당선작과 자웅을 겨뤘다.본심 심사위원들은 '한순간 해변'의 이명선 당선자가 당선작 외에도 응모한 시가 고루 상당한 실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줬다. 좋은 시인을 발굴했다고 입을 모았다.반면 심사위원들은 응모자들이 실험적인 작품쓰기에 주저한 것에 대해선 아쉬움을 표했다.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시에서 사유의 날카로움이 드러나지만, 대체로 서정적인 작품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심사위원들은 가족과 개인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좁아진 것이 각박한 현실 속을 살아가는 이들의 생존법을 반영한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했다.마지막으로 시인을 꿈꾸는 응모자들에게 시를 통해 가보지 않은 낯선 곳에 가려는 노력을 당부했다. /김성주기자 ksj@kyeongin.com김명인 시인(왼쪽)과 김윤배 시인(오른쪽)이 2018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을 선정하기 위해 논의를 하고 있다.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2018-01-01 김성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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