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19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심사평]김명인·김윤배 시인, "사물 바라보는 시선 깊고 메시지 견고"

"나이가 무색할 만큼 젊은 작가가 보여준 농익은 작품에 놀랍고 신선함을 느꼈다." '2019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들은 올해의 당선작을 '숲에서 깨다'로 정하는데 이견이 없었다. 심사위원들은 당선작에 대해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고, 전하는 메시지가 견고하다고 호평하며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심사위원들은 올해 시 부문 응모작 총 1천423편 가운데 본심에 오른 30편의 시 중 6편을 다시 추려 평가하며 고심을 거듭했다. 최종 심사에는 '곱슬의 방향', '가위 ', '호출신호, 창백하고 푸른 플라스틱', '걸리버여행기' , '구석의 깊이-비의 팔랭프세스트' 등 다양한 작품이 올라왔다. 올해 출품된 작품들은 주제에 있어 차별성이 있었다는 평을 받았다. 시리아 난민 등 애도가 짙고 다소 어두운 주제가 많았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감을 비롯해 실업, 경기침체 등 사회·경제적 문제, 정치적인 이슈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또 20~30대 젊은 응모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아 신선하고,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았다.아쉬운 점도 지적됐다. 젊은 문학도들의 출품작들이 최근 유행하는 시의 경향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심사위원들은 주로 생경하고 낯선 이미지들이 서로 결합하거나 시를 비학적으로 전치시키는 모습을 보여줘 시 읽기가 곤혹스러웠다고 말했다.그에 비해 하채연 당선자의 '숲에서 깨다'는 시의 짜임새를 갖추면서도 시인만의 깊은 세계관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차별점을 선사했다. 새벽의 숲을 열어 재치는 해맑은 생각들이 긍정적으로 명랑하게 펼쳐있고, 숲에 존재하는 한 작은 개인이 우주와 교감하는 듯한 느낌을 안겨줬다며 이미지 자체가 매우 신선했다고 평가했다. 더불어 당선작을 포함해 응모된 작품 상당수가 어느 하나 크게 뒤처지는 것 없이 모두 고르게 작품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강효선기자 khs77@kyeongin.com(좌)김명인 시인·김윤배 시인

2019-01-01 강효선

[2019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소감]전태호, "언어로 할 수 있는 실험 정신 지켜 나가겠다"

이 소설을 쓰고 있을 때로 기억한다. 우연히 찍힌 내 사진에서 작중 주인공의 얼굴을 보았다. 웃고는 있었지만 서글픈 눈을 감추지 못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은 표정을.작중 주인공이 되어 생활하는 동안 '절망'이라는 단어가 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수백 번 문장을 읽고 나면 꿈에서까지 같은 괴로움에 시달려야 했고, 그러다 가끔은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기도 했다. "나가라고, 나가라고" 외치던 그의 잠꼬대가 요즘도 귓가를 맴도는 듯하다. 일기장을 들여다보면 당시 그가 내 손을 빌려 채운 글로 빼곡하다."외국어로 된, 그러니까 나 혼자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떠드는 기분이 어떤 건 줄 아세요?"예술 작품을 즐길 때는 얼마만큼 작가가 투영되어 있는지 눈여겨보곤 한다. 작중 인물과 작가가 일치할수록 세상 어디에도 없는 이야기가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나는 현재 몇 가지 이야기를 구상 중이고 또 어떤 건 쓰고 있다. 아직 역량이 부족해서, 때가 되지 않아서, 생각의 정리가 필요해서 머릿속에 묵혀둔 이야기도 어서 꺼낼 날을 기다려 본다. 모두가 좋아하는 글, 읽었을 때 남들이 안심하는 글, 탕아가 돌아오는 글은 앞으로도 쓸 생각이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언어로 할 수 있는 실험 정신을 지켜 나가겠다.늦었지만 심사위원 선생님께, 경인일보 관계자 분들, 나를 오래도록 지켜봐 온 사람들, 그리고 '타동사 연습'을 끝까지 읽어준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2019-01-01 경인일보

[2019 경인일보 신춘문예 총평]1646편 출품… 젊은 문학도 '뜨거운 열정'

30여 년 간 대한민국 신진작가 발굴에 앞장서 온 '경인일보 신춘문예'가 올해도 가능성 있는 신인 작가를 발굴하며 그 저력을 입증했다.경인일보는 각 부문별 심사위원들과 심사숙고 끝에 ▲단편소설 부문-'타동사 연습(전태호)' ▲시 부문-'숲에서 깨다(하채연)' 등 2개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특히 이번 신춘문예는 근래 들어 가장 많은 수의 작품이 접수됐고 특히 20, 30대 젊은 문학도들의 참여가 늘어났다. 지난해 11월 첫 공고가 나간 이후 총 1천 646편이 접수됐는데, 이 중 시는 1천423편, 소설은 223편이 출품돼 치열한 경쟁을 치러 문학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체감케 했다.덕분에 예심과 본심에 참여한 심사위원들의 즐거운 고민도 늘었다. 특히 지난해에 비해 편수가 확연히 늘어난 소설부문은 김남일 소설가가 예심 심사위원으로 나서 옥석을 가렸고 홍정선 평론가와 정과리(본명·정명교) 평론가가 본심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최종작을 선정했다. 시 부문은 김명인·김윤배 시인이 심사를 맡아 작품을 엄선했다. 각 부문별 심사위원들은 올해 신춘문예에 출품된 상당수 작품이 예년과 비교해 '문학의 짜임새를 갖춘 수준급 작품'이었다고 총평했다. 시상식은 오는 9일(수) 오후 3시 경인일보 본사 3층 대회의실에서 부문별 심사위원, 당선자, 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될 예정이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2019-01-01 공지영

[2019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심사평]홍정선·정과리 평론가, "재미있는 비유로 세태 풀어나간 발상 신선"

"재미있는 비유를 통해 지금의 세태를 풀어나간 발상이 신선하다."2019 신춘문예 소설부문은 그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했다. 예년보다 편수가 많았던 탓도 있지만, 읽을만한 소설의 구조를 갖춘 작품들이 많아 심사위원들의 고민이 깊었다.당선작인 '타동사 연습'은 서사를 풀어가는 방식에서 심사위원에게 신선함을 안겼다. 소설은 나이가 들어도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는, 수동적인 인생을 사는 젊은 세대의 단상을 주제 삼아 그럴 수 밖에 없는 그들의 모습을 이해하면서도 비판적 시각 또한 겸비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세태를 풍자하는 방식의 새로움을 높게 평가받았다. 주인공인 자기 자신이 타동사의 목적어로서만 기능했다는 점을 인지하고,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고 살 길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타동사로 비유하면서 힘있게 풀어나갔다.소설 부문 심사를 맡은 홍정선 심사위원(평론가)은 "소설이란 것이 모두 아는 이야기가 주제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써나가는 방식의 차이로 다른 평가를 받는데, 그런 면에서 현 세태를 풀어가는 방식이 독창적이었다"고 평가했다.타동사 연습과 함께 최종 후보작으로 경쟁했던 '총부리'와 '불편한 골짜기'는 제법 소설다운 모습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얻었지만 주제가 진부하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한국군의 잔인한 폭력성을 주제로 다룬 총부리는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힘과 재미가 있지만,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가 특유의 도그마가 눈에 띄어 호불호가 가릴 수 있다고 평가받았다. 인공지능 로봇과 첫사랑을 주제로 한 불편한 골짜기의 경우 플롯은 색다른 맛이 있지만, 파편적으로 흩어진 이야기가 하나의 주제로 모이지 않으면서 소설이 주는 정서적 의미가 미약했다고 평가했다.이번 심사를 마친 심사위원들은 소설가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정과리 심사위원(평론가·연세대 교수)은 "많은 작품들이 세상의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주관적 시각이 강하고, 이야기의 범위가 '나'에 한정됐다"며 "소설은 어디까지나 더불어 사는 세상의 이야기다. 경험의 폭을 넓히고 시야를 넓게 가지는 연습을 통해 보편적 의미를 끌어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지난 20일 서울 연세대학교 정과리 심사위원(본명 정명교·국문학과 교수) 연구실에서 홍정선(왼쪽), 정과리 심사위원이 2019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심사를 하고 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2019-01-01 공지영

[2019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소감]하채연, "시 쓰기… 종착역 없는 기차 타고 가는 기분"

돌아가신 할머니가 잘 영근 알밤 무리를 쌓아올리고 있는 꿈을 꾼 날, 고향에 가는 길에 당선소식을 전해 받았습니다. 할머니의 뒷모습으로부터 이어진 긴 강, 시쓰기. 종착역 없는 기차를 타고 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길고 긴 언어의 숲에서 제 나무 하나 찾는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누군가 놓고간 전언을 받아든 기분이었습니다. 너무 소중해 조심히 받아들고 한참을 곱씹었습니다. 시 한 편이 너무 무거워 쩔쩔매던 밤들, 설익은 마음 탓에 쓰기를 주저했던 순간들이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듯 했습니다. 쭈뼛쭈뼛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이는 우리들일지라도 질기고 질긴 젖줄로 연결되어있다는 사실도 잊지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가끔 세상이 믿기지 않아 눈을 비비고 다시 볼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반짝하는 건 무엇인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의 착각이나 일렁임 같은 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늘 고민하고 그려 시 한 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다 나라고, 너라고도 부를 수 있는 개, 고양이, 동물, 숲, 나무, 풀잎 늘 사랑합니다. 늘 친구처럼 손잡고 시 이야기하는 엄마, 가족들 항상 고맙고 감사해요. 제겐 고마운 스승들이 많이 계십니다.고등학교 시절 가르쳐주신 선생님들, 아흔 아홉개의 빛으로 빛나는 선생님, 동국대학교 선생님들, 박형준 선생님 부끄럽고 부족한 제 시 봐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곳에서 응원해주시는 지인들께도 두손 모아 감사를 전합니다. 아무것도 될 수 없어도 시쓰는 우리라서 너무 행복해. 동국대학교 시분과 영원하길! 나를 사랑하는 만큼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끝으로 아직도, 혹은 영원히 모를 시에게. 뜨고 다시 떠도 뜰 눈이 너무 많네요. 용기를 갖고 더 정진하겠습니다.

2019-01-01 경인일보

[이역만리 3·1운동의 불씨를 찾아서·(1)프롤로그]들불처럼 일어난 외침 "대한독립 만세"

무력 식민통치 전분야 개인의 권리 침해기미년 1월22일 고종 승하, 반일감정 증폭美 대통령 윌슨 '민족자결주의' 기폭제로100년 전 전국적으로 거센 들불처럼 일어난 3·1운동은 민주주의, 평화와 비폭력의 정신이 빛난 독립운동이다.3·1운동이 일어나기 전 일본 제국주의의 무력 식민 통치가 고조되고 있었고 한국인에게 참정권,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를 박탈했다. 종교와 기업의 자유를 구속했으며 행정·사법·경찰 등 모든 통치기관이 개인의 권리를 침해했다. 이런 상황 속에 1918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제1차 세계대전 후 패전국의 처리에 대한 문제를 논의한 파리 강화회의에서 '각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이 스스로 결정'하는 민족자결주의를 주장했다. 윌슨 대통령의 주장은 강대국에 의해 고통을 받던 약소국들에게 독립에 대한 의지를 키워주는 기폭제가 됐다. 또 1919년 1월22일 고종 황제가 갑자기 승하(죽음)하자 일본인들이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일본에 대한 증오심이 극에 달했다.10여일이 지난 2월8일 일본에 유학 중이던 한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선언서와 결의문을 선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유학생들은 '한일합방이 한국민의 뜻에 반하는 것인만큼 일본은 한국을 독립 시킬 것, 미국과 영국은 일본의 한국합병을 솔선 승인한 죄가 있으므로 속죄의 의무를 질 것, 이에 응하지 않을 때는 우리 민족이 생존을 위해 자유행동을 취해 독립을 달성할 것' 등을 선언했다. 2·8독립선언이라고 불려지는 이 사건이 국내의 민족지도자와 학생들에게 알려졌고, 3·1운동이 벌어지는 한 계기가 됐다.3월1일 새벽 '독립선언서' 배포 시작 알려3월 하순~4월 초순 전국 각지 시위 절정인구 10%·200만명 참여, 2만3천명 사상# 한반도를 뜨겁게 달군 3·1운동3월 1일 서울의 만세시위는 이른 새벽에 학생들이 시내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시작됐다. 정오 무렵부터 학교를 빠져나온 학생들은 속속 탑골공원에 집결했고 민족대표들은 태화관에 모였다. 오후 2시 민족대표들은 독립선언식을 갖고 경찰에 그 소식을 알렸다. 곧 헌병과 경찰에 체포됐다. 같은 시각 수천 명이 운집한 탑골공원에서는 독립선언서가 낭독됐다.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가행진을 시작했다. 철도역이 있는 평양, 진남포, 안주, 선천, 의주, 원산 등 6개 도시는 최남선이 작성한 '기미독립선언서'를 전날 혹은 당일날 전달 받아 낭독하는 등 만세 시위에 동참했다. 3·1운동 초기에는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만세 운동이 진행됐지만 3월 중순을 넘어서는 경기도를 중심으로 중남부 지방에서 주로 일어났다. 3월 하순에 북부지방에서 만세시위가 이어지면서 3월 하순부터 4월 초순까지 만세시위의 절정기를 이뤘다. 매일 50~60여회에 이르는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3·1운동은 3월 1일 시작되어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도시에서 농촌으로, 국내에서 국외로 퍼져나갔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따르면 인구의 10%나 되는 200만여명이 만세시위에 참여해 7천500여명이 살해당했고 1만6천여명이 부상했다. 49개의 교회와 학교, 715호의 민가가 불에 탔다. 경찰은 그해 12월까지 4만6천명을 검거해 1만9천54명을 검찰로 송치했고 이 중 7천여명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3·1운동을 모의한 민족대표 대부분은 '보안법', '출판법', '형법'의 소요죄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일제탄압 피해 러시아로 한인 이주 급증1917년 첫 한인 중앙기관 '고려족회' 결성대한국민의회로 개편… 상해 임정과 합병# 연해주와 임시정부의 탄생한인의 러시아 이주는 1863년 13가구가 두만강을 넘어 포시에트 구역의 지신허(地新墟)에 정착하면서 시작됐다. 한인 이주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연추·추풍·해삼위·소왕령·수청 등지를 중심으로 연해주 도처에 한인사회가 형성됐다. 1905~1910년 사이에는 일본의 탄압을 피해 정치적 망명인사들이 급증했다. 국내에서 의병전쟁이 확대 격화되던 1907, 8년을 전후해 연해주 한인사회에서도 항일의병이 편성되어 국내진공작전 등 활발한 항일전을 전개했다.국치 이후 러시아 한인사회는 현실적이고도 장기지속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1911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자치결사 권업회(勸業會)를 조직했다. 이어 이듬해에는 '대동공보'가 발간되어 1910년 국치 때까지 항일언론을 폈다. 이후 신채호를 주필로 '대양보', 권업회가 운영한 '권업신문' 등이 활동했다. 신문 간행사업과 함께 권업회는 인재양성과 민족의식의 고취를 위해 민족주의교육 진흥에도 심혈을 쏟았다. 권업회가 운영한 대표적인 한인 교육기관이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의 한민학교이다. 한민학교는 블라디보스토크 시내 개척리 시절의 계동학교(啓東學校)에서 유래한다.제정 러시아가 붕괴되어 구심력이 약해지고 여러 계층과 민족이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하려는 활동들이 일어나자 96명의 한인 대표들이 1917년 6월 우수리스크에 모여 '제1차 전러시아한인대표자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서는 러시아 한인사회 첫 중앙기관인 전로한족회중앙총회(고려족회)가 결성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종결되고 국제 정세가 새롭게 전개되자 이에 대처하기 위해 총회는 1919년 3월 17일 대한국민의회로 개편했다. 최고의결기관인 총회와 이를 대행할 상설의회, 사법과 행정 기능까지 갖췄다. 의회는 대한민국의 독립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혈전 결의를 선포했고, 국내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의연금을 모집하고 군사교육을 위해 뤄쯔거우(羅子溝)에 훈련소를 설치했다. 상해임시정부와 합병하고 1919년 8월 해산을 결의했다. /김종화·공지영기자 jhkim@kyeongin.com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러시아 크라스키노지역에 안중근 의사가 1909년 3월초 항일투사 11명과 함께 동의단지회를 결성하고 독립운동에의 헌신을 다짐한 것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단지동맹 기념물.러시아 우수리스크에 위치한 고려인문화센터내 안중근의사 추모비. /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

2019-01-01 김종화·공지영

'평양 엘리트서 양장점 주인으로'… 한 세기 살아낸 김용민 할아버지

평양시내서 보릿고개 없이 유복한 유년시절'공부 잘하는 학생'으로 명문 평양고보 졸업고향근처 국민학교 교편 잡은것 행복했지만100년처럼 느껴진 일제강점기 36년의 '악몽'2019년 대한민국을 존재하게 한 외침이 있었다. 꼭 100년 전 일제의 총칼 앞에서 굴하지 않은 선조들이 목놓아 부르짖은 '대한독립' 만세다. 그 울림은 대한민국의 지난 100년을 지탱해 온 원동력이었다. 경인일보는 지난 한 세기를 오롯이 살아낸 한 사람의 미시사(微視史)를 통해 갈등과 반목으로 가득 찬 혼돈의 100년을 넘어 화합의 새 시대를 준비한다.1919년생 김용민 할아버지. 그는 수원에서 제3의 인생을 살고 있다. 김 할아버지는 분단된 남북의 지식인 다수를 배출한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전쟁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꿨다. 고향을 뒤로하고 남쪽으로 내려온 그는 양장점을 운영하다 30년 전 은퇴해 성남·이천에 거주하다 수원에 정착했다.# 평양 엘리트를 억누른 일제강점기 36년"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내가 약골이라고 생각했는데, 100살이 다 되도록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워."김 할아버지는 평양의 중심 남문리 80번지 포목점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대부터 평양 시내에서 알아주는 포목점을 운영했기 때문에 보릿고개도 경험하지 않고 유복하게 자랐다.평양 상수소학교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이었던 그는 평양고보에 진학했다. 졸업 후 평양에서 30리 남쪽에 있는 평안남도 여포국민학교에서 1941년부터 4년간 교사로 일했다.조선인 김용민에게 일제강점기는 36년이 아니었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길고 긴 인고의 시간이었다."일제 36년 36년 하는데, 내가 겪은 일제시대는 지독히도 길었어. 너무 길어서 100년처럼 느껴졌어. 다른 조선인들도 다 마찬가지였을 거야."목욕탕 이용도 차별을 당했다. 교사 김용민이 근무한 여포국민학교에는 2명의 일본인이 있었다. 1명은 교장이고 1명은 평교사였는데, 둘 사이는 그닥 좋지 않았다. 그런데도 교장 관사에 있는 목욕탕에서 씻을 수 있는 교사는 일본인 평교사 1명 뿐이었다.차별과 멸시 속에서도 조선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 자체를 감사했다."한 면에 국민학교가 딱 하나 있었는데, 내가 고향 가까운 곳의 조선인 아이들 앞에서 교편을 잡을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행복이었지. 옆 반 담임교사가 음악 수업을 하기 싫어해서 음악 수업을 맡아서 풍금을 치며 동요를 가르쳤던 기억이 아직 생생해."그의 기억 속에는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항일 의병장 홍범도 장군이 있었다. 평양일보라는 매체에 홍범도 장군이 전투 중 숨졌다는 기사가 나와 평양 사람들이 숨죽여 슬퍼했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전사한 줄 알았던 홍범도 장군이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했다는 것을 80세가 다 돼 알게 됐다. 김 할아버지는 수년간 이역만리에서 조국을 그리워하다 광복을 맞지 못하고 숨졌다는 것을 알고 또 울었다."일제가 항일 활동 열심히 하는 사람들을 흩어놓으려고 중앙아시아로 이주를 시킨 거야. 홍범도 장군도 죽은 것이 아니라 카자흐스탄으로 끌려가서 숨죽이고 목숨을 부지하셨던 거지. 일제가 다 그렇게 끌어다 이주를 시키니까 조선인들은 항상 억눌려 있었어."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고통, 일왕 항복에 종지부평양 군중대회서 직접 본 김일성 '30대 젊은이'해방 기쁨도 잠시… 동족 상잔 비극 '한국전쟁'큰 형님과 중공군 피해 남쪽으로 걷고 또 걸어# '찰나의 기쁨' 해방과 지옥 같았던 한국전쟁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일본의 압제가 종지부를 찍고 해방이 찾아왔다. 일왕의 항복 선언은 김 할아버지에게 새로운 시작이었다.김일성 북한 주석을 직접 본 일화도 소개했다. 김 할아버지는 해방 직후인 1945년 10월 14일 평양 기림리공설운동장(현 김일성운동장)에서 열린 평양시 군중대회에 참석했다. 10만여명의 '인민'이 모인 운동장에서 그는 조만식 선생과 테렌티 포미치 스티코프 소비에트연방 육군 중장(소련군정 조선 최고지도자), 김일성 조선인민위원회 위원장을 만났다."해방된 뒤 평양 사람들 인사가 '김일성 장군님 오셨나'였어. 그만큼 신망이 두터웠던 거야."인민들은 만주에서 항일운동하던 백발이 성성한 장군님을 고대했다. 스티코프 장군은 '조선에서 난 위대한 장군님'이라고 김일성을 소개했다. 그의 눈앞에 나타난 김일성은 30대 젊은이였다."신출귀몰한 반일 항쟁을 했다는 김일성 장군님을 뵙고 싶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어. 머리카락을 '꼬딱' 세우고 곤색 양복을 맞춰 입은 젊은이가 나와서 분위기가 술렁술렁했지. 학생들은 가짜 김일성이라고 삐라를 만들어 뿌리기도 했어."평양 중산층은 소련군이 주둔하고 공산주의 지도체제를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가진 것을 내놓아야 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북녘의 주요 요직은 결국 함경도 사람들이 다 차지했다.평양 시내의 이름난 포목점 막내아들이었던 김 할아버지에게도 동족 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은 '괴로움'이었다. 교사였던 김 할아버지는 가족들을 뒤로 하고 피란했다. 1950년 12월부터 시작된 1·4 후퇴 당시 김 할아버지는 큰 형님과 함께 중공군을 피해 남쪽으로 걷고 또 걸었다.황해북도 서북단 황주군에서 철수 도중 도태된 영국군과 만난 기억도 또렷하게 남아있다. 24살의 젊은 군인은 70여㎞ 떨어진 후퇴 집결지 신막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행군 도중 전열에서 이탈해 홀로 남아 있었다."고보에서 영국식 영어를 배웠기 때문에 발음을 알아듣기가 어렵지 않았어. 지금은 '마더'라고 하잖아. 그런데 영국 애들은 '모도'라고 발음해. 둘이 이런 저런 이야기하면서 같이 걸었지."평양에서 서울까지 중공군을 피해 논밭은 물론 깊은 산 계곡을 가로질러 일주일을 걸었다. 발바닥 전체에 물집이 잡혀 앞서 가는 6살짜리 아이의 걸음을 좇지 못할 정도였다.서울서 만난 동창생 집에서 남녘의 새 삶 시작 양장점 운영하며 대한민국 관통한 사건들 목도"무슨 일이든 좋게 해결하는 방법 분명 있었어 다투지 말고, 오래들 살았으면 해" 화합 당부# 그들의 서울, 우리의 서울우여곡절 끝에 크리스마스 이브날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시청 앞 사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어떤 선택지도 없이 큰 형님과 폐허가 된 서울 한복판에서 하늘과 땅만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은인을 만났다. 평양고보 동창생이었다. 동창생은 부산행 열차표를 끊고 가족들을 데리러 가는 길이었다.텅 빈 광화문네거리 돈화문 앞 2층 동창생 집에 김 할아버지는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낯선 서울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서대문네거리 피난민 증명소에서 김 할아버지는 3살을 더 먹게 된다. 사연인즉슨 피난민증명서를 발급받는 과정에서 연령 오기로 1919년생이 된 것."서울에 합법적으로 거주하기 위해선 피난민증명서가 있어야 했어. 길게 늘어선 인파 속에서 분명히 29살이라고 말했는데, 32살로 오기가 됐고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을 때 이 증서가 근거가 돼 1919년 2월 2일생이 된 거야."김 할아버지는 해방 전엔 나이가 너무 어려서 징용을 피했고, 전쟁이 끝난 뒤엔 호적상 나이가 30대 중반이 돼 국군 징집도 피했다.전쟁 직후 총각 김용민은 청진에서 난리를 피해 내려온 처녀 최옥선을 만나 백년가약을 맺는다."우리 마누라가 재단을 정말 잘했어. 영등포구 신길동에 신길양장점을 차려서 30년 넘게 운영을 했지. 여의도 국회에서 일하는 단골들도 많았지."반세기를 지내오면서 김 할아버지는 투표가 가능한 대통령 선거는 꼬박꼬박 투표소를 찾아 한 표를 행사했다.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 유신 헌법, 광주 민주화운동에 이어 세월호 참사까지 반세기 대한민국을 관통한 사건들은 김 할아버지 집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통해 전해 들었다."가족의 단란한 삶 말곤 더 바란 게 없었어. 통행금지 시간엔 안 돌아다녔고, 국가에서 하지 말라는 것은 안 했지. 대학을 못 가 봤는데, 기회가 됐다면 영문학과에 들어갔을 거야. 무슨 일이든 좋게 해결하는 방법이 분명 있었어. 다투지들 말고 오래들 살았으면 해."김 할아버지는 얼굴에 깊게 팬 주름만큼이나 굴곡진 인생을 겪었다. 하지만 김 할아버지는 중견 기업 이사로 퇴직한 큰아들과 멋들어진 헤어숍을 운영하는 작은아들, 한 남자의 아내로 옹골찬 가정을 이루고 사는 딸을 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아버지로 지난 100년을 살아냈다.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대한민국의 아버지로 지난 100년을 살아오신 김용민 할아버지가 일제강점기,한국전쟁 등 격동의 한 세기를 술회하고 있다. /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2019-01-01 손성배

[통일 이후 한반도는?]남쪽 생활수준으로 통일땐 코리아 경제, 英·佛 제친다

회의적 시각 속 '실용주의 통일론' 부상동·서독 통일후 세계 4위 경제대국으로값싼 땅·노동력+자본·기술 = 파급력 커2030년대 경제순위 세계 6위 긍정 전망철길복원 유라시아 대륙 잇는 루트 기대하계올림픽 성적도 5위권이내 진입 가능'통일' 그리고 '한반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어다. 현재의 분단 상황을 통일로 종식시켜야만, 꿈에 그리는 하나의 한반도가 완성되기 때문이다. 한때 통일은 민족의 염원이며 우리의 소원이었다. 이유를 불문하고 우리는 한민족이기에, 분단의 역사를 접고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의식이 자리 잡았었다. 하지만 분단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왜 통일을 해야 하나"라는 회의론적 시각도 많아진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대한민국의 100년 미래를 위해 통일이 필요하다는 실용주의적 통일론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정치강국, 경제강국이 되기 위해선 통일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최대 사회문제인 '일자리' 해결도 결국은 통일에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래 대한민국 성장동력이 통일에 있다는 게 요점이다. 통일 이후의 한반도는 '민족의 통일', '경제적 도약'으로 요약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막연하기만 한 통일과 통일 후 한반도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지, 미리 그림을 그려 본다.# 자원과 기술의 결합, 통일이 만든 경제 시너지우리에게는 통일의 모범 사례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 후 현재 독일은 세계 4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물론 구 동·서독간의 경제 격차 등 아직도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지만, 통일이 이뤄낸 경제적 효과는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독일은 통일 이후 1인당 GDP가 2000년대 들어 영국·프랑스를 앞섰고, 내수 시장이 확보되면서 경제규모도 덩달아 확대됐다. 구 동독지역의 저렴한 토지와 노동력 그리고 구 서독의 자본과 기술이 만난 시너지 효과는 상상 이상의 결과를 낳았다. 한반도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2014년 국회 예산정책처가 펴낸 보고서 '한반도 통일의 경제적 효과'에서 남북통일의 경제적 편익은 1경4천451조원으로 비용인 4천657조원의 3.1배에 달한다고 평가했다. 예산정책처는 2015년 한반도가 평화 통일되는 것으로 가정하고 2016년부터 2060년까지 45년간 가져올 통일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했다. 통일한반도의 경제규모(GDP)는 2060년 5조5천억달러로 세계 9위, 1인당 GDP는 7만9천달러로 세계 7위로 도약할 것으로 전망됐다. 또 원화로 환산한 통일한국 GDP는 2016년 1천318조원에서 2060년 4천320조원으로 연평균 2.7%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이러한 분석은 국내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2026년 10위권에 진입하고, 남한의 생활 수준으로 통일이 이뤄진다면 2030년대에는 영국과 프랑스를 제치고 6위로 뛰어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영국 싱크탱크 경제경영연구소(CEBR)가 2018년 발표한 연례 '세계경제 순위표(League Table)' 보고서에서 달러화 기준 국내총생산(GDP)으로 현재 11위인 한국 경제가 2026년에 10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했다. 이 전망은 지난해 말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가 2022년 10위로 올라서고 2032년 8위가 될 것이라는 전망보다는 늦춰진 것이다. 그러나 통일이 된다고 가정하면 상황은 달라진다.이 연구소는 2033년까지 한국 경제가 10위에 머물 것으로 내다보면서 '남한 수준'으로 통일이 된다는 가정에서는 한국 경제 규모가 프랑스를 제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구소는 "남한 생활 수준으로 통일된 한국은 2030년대 영국과 프랑스를 모두 제치고 세계에서 6번째로 큰 GDP를 갖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반도 통일 후 7천만명 이상의 내수가 확보 가능해 지고, 남측의 자본 및 기술과 북한의 자원·노동력 결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두고 분석한 결과다.# 진정한 아시아의 중심 그리고 세계의 중심을 꿈꾼다통일 후 한반도의 변화는 경제로만 오는 게 아니다. 사회·문화·체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가장 기대되는 분야는 관광이다. 한류를 통해 이미 고정 팬과 경쟁력을 확보한 관광산업은 북한 지역의 대규모 개방에 따른 관광 인프라 투자로, 세계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여행의 신기원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제주도부터 백두산은 물론 서울과 평양을 잇는 새로운 관광축. 특히 대륙을 잇는 철도길 복원이 이뤄지면, 한반도를 시작으로 유라시아 대륙 전반을 육로로 여행할 수 있는 새로운 루트가 마련된다.실제 현대경제연구원과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등에 따르면 한반도는 통합 또는 통일 10년 후 외국인 관광객 수가 지금의 3배로 늘어나고 그에 따른 관광 수입도 418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 독일 역시 통일 후 20년간 관광객이 2배가량 증가한 사례가 있다. 북한의 세계에서도 미지의 세계로 손꼽힌 점을 보면, 관광객 증가 효과는 독일 사례를 훌쩍 뛰어 넘을 것으로 보인다.통일된 한반도는 체육 강국으로도 떠오른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남북 통합 초기 스포츠 부문에서 남북한 단일팀을 구성할 경우 한국의 하계올림픽 종합 순위는 2000년대 이후 평균 8위권에서 5위권 이내로 뛰어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통일 이후 남북에서 고루 인재를 발굴하고 체계적 훈련 프로그램을 가동할 경우 그 순위는 세계 4위권까지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체육계의 분석이다. 물류의 중심지로도 한반도가 또다른 세계의 중심이 될 수도 있다. 통일한국과 연계되는 유라시아대륙과 아시안 하이웨이는 한반도를 대륙의 관문이자 동북아의 거점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김태성기자 mrkim@kyeongin.com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2019-01-01 김태성

[앞으로의 100년 먹거리는?]5세대 이동통신 상용화… 미래식탁이 풍성해진다

ICT로 운영 '스마트공장' 대대적 확충생산성 30% ↑·원가 15.9% 절감 효과올해 3월께 개인용 5G 서비스 막 올라VR·AR게임 출시 등 유통업계도 변화'AI 확산' 물류 등 일자리 축소 우려도이동통신의 발달에 맞춰 미래 먹거리 사업이 진화하고 있다.세대가 거듭될수록 신규 일자리 창출 및 연관 산업 규모가 커지고 있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직업군도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하지만 기술 발달로 인한 일자리 감소 등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기술이 발전할 수록 파생되는 산업군도 더욱 늘어날 수 밖에 없어 기술 발전이 곧 신규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특히 올해부터는 차세대 이동통신으로 주목받는 5세대 이동통신의 상용화가 본격 시작되면서 또 다른 미래 먹거리 산업이 만들어질 전망이다.# 제조업 혁신 스마트공장 확산 중제조업의 혁신이라고 불리는 스마트공장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차세대 미래 먹거리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고 있다.스마트공장은 제품의 기획, 설계, 생산, 유통, 판매 등 전 생산 과정을 정보통신기술(ICT)로 통합해 최소 비용과 시간으로 최적의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공장을 뜻한다.중소벤처기업부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년 동안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기업은 생산성 30% 향상, 불량률 43.5% 감소, 원가 15.9% 절감, 평균 2.2명 추가 고용 등의 효과를 냈다.정부는 지난달 13일 '중소기업 스마트 제조혁신 전략'을 발표하면서 제조 중소기업의 50% 스마트화 달성을 목표로 오는 2022년까지 스마트공장 구축 목표를 기존 2만개에서 3만개로 확대하기로 했다.지난해 4월에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상생형 모델'을 도입했다. 현재까지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대기업은 총 120억6천억원을 출연해 중소기업의 스마트공장 지원 사업을 돕고 있다. 상생형 모델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업해 스마트공장을 구축하면 정부(30%)와 대기업(30%)이 구축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삼성전자는 2022년까지 매년 100억원씩 총 500억원 지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경기도에도 스마트공장 확산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전국적으로 보급된 스마트공장은 총 4천805개로 경기도는 전체 보급의 25.9%(1천245개)를 차지했다.경기지방중소벤처기업청은 지난한해에만 550여개사의 스마트공장이 구축된 것으로 보고 있다.지난해 9월 산업단지공단은 반월 및 시화, 시화MTV의 3대 국가산업단지를 대상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스마트공장은 산업단지 차원에서 민간 자생적인 확산 모델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특히 5G 기술이 스마트공장에도 적용돼 스마트공장의 시너지 효과는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SKT는 지난달 20일 안산 스마트제조혁신센터에서 제조 공장이 스마트 팩토리로 쉽게 전환되도록 5G네트워크·특화 솔루션·데이터 분석 플랫폼·단말을 '올인원 패키지'로 제공하는 내용을 담은 5G 스마트팩토리 확산 전략을 발표했다.올인원 패키지는 스마트공장 구축 단가를 낮추고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현장 노하우를 데이터베이스로 축적할 수도 있다. 이날 SKT는 5G와 첨단 ICT를 접목한 5G 다기능 협업 로봇, 5G 소형 자율주행 로봇(AMR), AR스마트 글라스 등 솔루션을 시연하기도 했다.삼성전자, 마이크로소프트, 보쉬, 지멘스 등 각기 다른 스마트팩토리 분야에서 활약 중인 기업들은 5G-SFA를 통해 분절된 기술·규격을 통일하고 범용 솔루션을 만든다. 5G를 활용한 상용 기술, 사업 모델도 공동 개발한다.통일된 규격이 마련되면 5G 스마트팩토리 솔루션 개발 속도가 빨라지고 비용이 절감된다. 중소기업의 솔루션 업그레이드도 쉬워진다. SKT 뿐만 아니라 KT와 LGT도 스마트공장 지원을 위한 5G 기술 도입을 준비 중이다. # 5G 서비스 산업 발전과 부작용 이동통신업계는 지난달 초 5G 모바일 라우터(네트워크 중계장치·동글)를 이용한 기업용 5G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데 이어 5G 스마트폰이 출시되는 올해 3월께 개인용 5G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다.이에 따라 개인용 초대용량 데이터 전송이 단시간에 이뤄질 수 있게 되면서 포켓몬고와 같은 가상현실(VR) 게임이나 증강현실(AR) 게임이 대거 출시될 가능성이 있다.5G가 무거운 헤드셋, 멀미 등 이용자 불편사항을 해소하고 쾌적하고 실감 나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상거래 부문도 큰 변화를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용자가 구매를 결정하기 전에 가상의 방에 소파 등 다양한 제품을 배치해보고 AI로 인간 아바타를 구현해 방안을 걸어 다니며 제품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국제단체 VR·AR연합은 유통업계가 연간 10억달러를 VR·AR 솔루션에 투자하고 있으며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240%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하지만 5G 발전으로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5G가 발전되게 되면 AI(인공지능) 관련 산업도 급속도로 발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인데 AI가 유통·물류·운수·제조업에서 현존하는 직업의 90%가량을 대신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도맡았던 단순 노동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세계경제포럼(다보스)에서는 2020년까지 전세계적으로 507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업종별로는 사무·행정 479만개로 가장 많고 제조·생산 160만개, 건설·채굴 49만개, 예술·디자인·미디어 15만개, 법률 10만개, 시설·정보 4만개 등이다.제조업 중심의 우리나라 역시 전체 일자리 중 43%가 AI로 대체될 것이라고 LG경제연구원은 내다봤다. 다만 AI 기술이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들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앞선 1차·2차·3차 산업혁명에서도 증기기관이나 발전기 등 기계가 사람의 일을 대신했지만 오히려 일자리는 증가했다는 이유에서다. AI를 선제적으로 도입한 미국 패스트푸드점과 영국 콜센터 등도 일자리가 기존 대비 각각 20%, 400% 늘었다. 정부와 기업들의 투자계획도 AI 기술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정부도 당장 올해까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 1만명의 인재를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삼성과 LG, 현대자동차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도 AI 등의 기술 증진과 인재 육성을 위해 올해에만 수조원의 투자 계획을 밝힌 상태다. 고용정보원 관계자는 "AI와 연관된 고숙련 노동자에 대한 수요는 더욱 커질 것"이라며 "관련 새로운 일자리가 더 많이 창출돼 사라지는 일자리의 문제를 상쇄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김종찬·황준성·이원근기자 chani@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삼성전자 미국법인 저스틴 데니슨 상무가 선보인 폴더블폰(접었다 펴는 폰) '인피니티 플렉스 디스플레이'. /연합뉴스KT가 5G 네트워크를 적용한 서울 서초구 삼성생명 사옥에 있는 무인 로봇카페 '비트'. /KT 제공

2019-01-01 김종찬·황준성·이원근

육·해·공 무한으로 확장하는 인천의 물류지도

고속도로 등 화물차 전용차로 도입·도로망 확대… 차량 흐름 속도 개선신항 배후단지 영하 162도 콜드체인클러스터 조성 '냉장물품' 유치 계획항공 혁신센터 설립 추진… 비행기 대기시간 활용 '전문 정비센터' 그림항만-철로 연결… 트럭 → 철도 운송비중 조정 '모달 쉬프트' 정책 속도2019년 새해는 인천항과 인천국제공항이 앞으로의 100년을 준비하는 중요한 해이다.인천항 컨테이너 물동량의 증가를 책임질 신항 1-2단계 부두 건설 사업이 추진되고, 인천국제공항은 4단계 개발 사업도 본격화한다. 인천항에서는 매년 300만 개의 컨테이너와 1억1천여t의 벌크 화물이 처리된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수출입하는 화물은 연간 300만t에 달한다.인천시가 앞으로 10년 동안 인천항과 인천공항, 인천지역 산업단지에서 생산하는 화물을 효과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제3차 지역물류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인천시는 이 계획을 바탕으로 인천을 수도권 거점 물류 도시로 도약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물류는 인천시가 지역의 특성·강점과 성장 가능성 등을 고려해 선정한 8대 전략산업 중 하나다. 특히 인천지역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만(인천항)과 공항(인천공항)은 운송업 등 물류산업을 기반으로 한다. 인천시 관계자는 "물류 환경은 국내외적으로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이번 지역물류기본계획을 토대로 지역경제 발전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 우리 인천시가 물류산업에 있어서 약진하는 도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물류의 핵심은 도로와 화물차인천시는 화물차 흐름을 원활하게 하도록 일반 승용차와의 혼재율이 30%대에 달하는 도로에는 화물차 전용차로를 도입할 방침이다. 인천시는 제2경인고속도로(인천시점~서창JCT·혼재율 40.3%), 인중로(수인4거리~우회고가4거리~송현4거리·34.1%), 서해대로(서해4거리~수인4거리·35.4%), 중봉대로(송현4거리~북항고가~서인천선착장입구·30.8%)를 화물차 전용도로 시범 구간으로 선정했다. 또 화물차의 도심 진입을 방지하기 위해 북항 배후단지와 남항 배후단지인 아암물류단지, 신항 배후단지에 화물차 전용 진출입로를 만들 예정이다.인천시는 화물차 불법 주정차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화물차 공영차고지를 늘리는 방안도 계획안에 담았다. 화물차 운전사와 업체들이 가장 선호하는 주차장 장소인 중구, 대규모 물류시설이 자리 잡고 있지만 주차장이 없는 동구와 미추홀구, 남동구에 공영 주차장을 우선 설치할 방침이다. 기존 휴게시설과 공공 부지를 활용해 500대 규모의 주차휴게소를 만드는 것도 계획에 포함했다.빠른 물류 네트워크를 실현하기 위한 광역·간선 도로망도 구축할 계획이다. 우선 내년부터 수도권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안산 구간(22.3㎞) 공사가 시작된다. 이 도로는 인천 중구 신흥동에서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까지 연결하는 노선으로, 최근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비용편익(B/C)값이 1.01로 나왔다. B/C값이 1을 넘으면 비용보다 편익이 커 경제적 타당성이 있음을 뜻한다.인천시는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안산 구간, 영종~강화 연결도로(30㎞), 문학~검단 도로(18.2㎞), 장수~서창 간 고속도로(4㎞) 등 4개를 남북 방향 도로망의 핵심축으로 삼았다. 동서 방향으로는 청라국제도시 진입도로 가정IC~청라 구간(7.5㎞), 영종~청라 간 도로(7.1㎞)를 만들 방침이다.# 물류 기반 시설 확충인천 신항 배후단지에는 수도권 냉장 화물을 유치할 콜드체인 클러스터가 만들어진다. 인천 신항 배후부지 22만9천㎡에 조성하는 콜드체인 클러스터는 1㎞가량 떨어진 한국가스공사 인천 LNG 인수기지에서 발생하는 영하 162도의 초저온 냉열 에너지를 공급받아 냉동·냉장 창고를 운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올 12월 완공되는 평택 초저온 물류단지에 이어 두 번째로 조성되는 시설이다. LNG 냉열을 활용하기 때문에 보통의 냉동 창고처럼 대량의 전력을 소모하는 냉동기를 설치할 필요가 없다. 인천항만공사는 기존 냉동 창고보다 연간 29억원의 전기료를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인천시는 조속한 사업 추진을 위해 국비를 확보한 뒤, 입주업체에 시설 설치비를 지원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인천권 물류 거점 시설도 연수구와 중구 일대에 건립된다. 수도권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안산 구간 건설사업이 추진되는 데다, 아암물류1·2단지와 신항 배후단지 등 주요 물류시설이 연수구와 중구에 있기 때문이다. 물류 거점 시설 규모는 9만 54㎡(연면적)이며, 137억7천700만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항공화물을 위한 인프라 구축인천시는 항공화물 복합물류 체계 구축에 나선다. 인천공항 배후단지 인프라를 활용해 항공화물을 하역한 이후, 다음 비행까지 대기시간에 항공기를 점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게 인천시 계획이다. 이를 위해선 항공정비단지(MRO·Aircraft Maintenance, Repair, Overhaul) 조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천공항에서는 항공정비 분야 중 상대적으로 난도가 낮은 운항 정비는 상시로 이뤄지지만, 기체 중정비, 엔진 정비 등은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저비용항공사(LCC), 외국 항공사뿐만 아니라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양대 국적항공사의 정비 물량 상당수가 해외로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인천공항 인근에는 120만여㎡ 크기의 MRO 부지가 조성돼 있다. 인천시는 항공기 제작사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항공 관련 혁신센터를 설립한 뒤, 전문항공기 정비센터를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인천에 항공정비단지가 조성되면 직간접 고용 약 1만9천600명, 생산유발 약 5조4천억원 등 경제 파급효과가 뒤따를 것으로 인천시는 기대하고 있다.# 철도를 활용한 물류 체계 확보인천시는 인천 신항까지 잇는 철도 건설을 추진한다. 인천항을 통해 수출입하는 화물은 대부분 도로를 통해 운반되기 때문에 교통 체증이 발생하고, 대기오염과 소음 등에 의해 인근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한다. 인천시는 인천 신항과 수인선을 연결하는 13.1㎞ 길이의 철도를 만들어 신항에 하역되는 화물을 철도로 운송하는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이를 바탕으로 인천시는 '모달 쉬프트(Modal Shift)' 정책을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모달 쉬프트는 유통 경로에서 트럭 운송 비중을 줄여나가는 것을 뜻한다. 인천시는 항만과 철도·도로를 잇는 운송 체계가 확립되면 인천항 컨테이너 물동량이 늘어날 뿐 아니라 화물차 운송에 의해 발생하는 온실가스 감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계획안에서는 모달 쉬프트 활성화를 위해 인천시가 업체에 운송비 지원, 탄소포인트 제공, 세금 감면 등의 혜택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경인일보DB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2019-01-01 김주엽

[2019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타동사 연습① /전태호

타동사는 발산의 성질 띠고 있어서 소리가 크다 따라서 반드시 무언가를 괴롭힌다엄마·아빠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목적어 취급… 어깨는 티 안나게 움츠러들었다 제 방에 틀어박힌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동생도 평생 목적어에만 머물러소리가 크면 반드시 무언가를 괴롭힌다. 타동사는 발산의 성질을 띠고 있어서 소리가 크다. 따라서 타동사는 반드시 무언가를 그러니까 목적어를 괴롭힌다.화요일타동사가 기능하려면 주어가 필요하다. 아빠는 아침부터 꽝 소리가 울리도록 현관문을 열어젖혔다. 신발을 벗자마자 집이 떠나가라 큰기침을 해댔고, 식탁이 쨍쨍대거나 말거나 유리컵을 함부로 내려놓았다. 내 방 바로 앞에선 신문지를 짜증스럽게 넘겼다. 나의 잠은 이미 타동사에 의해 깨어지고 머리맡의 유리창과 블라인드는 가늘게 흔들거렸다. 주황색 귀마개는 밤사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타동사는 나를 이불 속으로 숨어들게 만들었다. 침대에 걸터앉았다가 도로 눕게도, 냉랭한 방바닥에 납작 엎드리게도, 나중에는 그저 가만있게도 만들었다.아빠가 잠을 청하기 전까진 내 방에 있으면서도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아빠는 오전 교양 프로그램을 틀고 볼륨을 어지간히도 키워 놓았다. 채널을 돌리면서 정치인을 헐뜯기도 하고 약 떨어진 리모컨을 손봐주고 나서는 거실 바닥을 발뒤꿈치로 쿵쿵 굴렀다. 배까지 움켜잡고 웃어 댈 즈음 엄마도 참다못했는지 안방 문을 열고 나왔다. 이어 나를 대신해서 빨리 좀 자라고 잔소리를 퍼부었고, 위아래 작업복을 벗긴 뒤 아빠를 안방으로 밀어 넣었다. 엄마 역시 스스로 주어라는 걸 알고 주어들처럼 행동했다. 나를 생각해서 나름 믹서나 그릇을 조심히 다루는 듯했지만 내 귀에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거슬렸다. 가스레인지 경고음을 무시하고 불을 켤 때는 순간 가슴이 철렁하고 머리칼까지 곤두섰다. 부엌 쪽에서 소리가 잦아들고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쯤 엄마는 내게 식사하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이제 밖이 위험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소리가 작으면 아무것도 괴롭히지 않는다. 자동사는 수렴의 성질을 띠고 있어서 소리가 작다. 따라서 자동사는 아무것도 괴롭히지 않는다. 자동사도 기능하기 위해선 주어가 필요하다. 나는 살짝 목감기에 걸렸는지 말이 제대로 안 나오고 그마저도 목소리가 갈라졌다. 햇살이 들어오는 거실 창문 아래에 섰더니 부엌에서 국을 뒤적이는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부엌 바로 옆으로 보이는 동생 방은 오늘도 굳게 닫혀 있었다. 아빠는 안방에서 코를 골았는데, 한 번씩 숨을 몰아쉬거나 컥컥 숨을 뱉을 때마다 내 귀는 쫑긋 섰다. 돌아서지는 못하고 고작 한 걸음 옆으로 비켜서는 순간, 테이블 아래에 있던 페인트 붓과 롤러가 발에, 그러니까 털슬리퍼에 밟혔다. 엄마는 배고플 텐데 어서 밥부터 먹으라며 나를 부엌으로 불러들였다. 나는 순순히 식탁 의자에 앉았다. 된장찌개엔 지나칠 정도로 건더기가 담뿍 들어 있었다. 숟갈에 뭐라도 걸릴라치면 나를 위해 따로 빼놓은 것 같아서 마음이 몹시 무거워졌다. 엄마는 어질러진 페인트 도구까지 대신 정리해 주었다. 불러들인다든가 위한다든가 정리한다든가 하는 세 가지 행위 모두 타동사였다. 타동사는 아무리 의도가 선하다 한들 반드시 목적어를 괴롭힌다. 내 입술은 일자로 굳게 다물리고, 어깨는 티 안 나게 움츠러들었다. 엉덩이는 밥상머리에 붙박였다. 큰소리를 내지 않으면 비록 주어로 태어났을지언정 끝내 누군가의 목적어가 되고 만다. 엄마와 아빠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를 목적어 취급했다.내 꼴은 회사에 속해 있는 동안 이렇게 되고 말았다. 처세술이랄까, 동기들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타동사를 구사하니, 사회생활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금방 주어 자리를 하나씩 꿰찼다. 나는 딱히 밉보인 것도 아닌데 목소리 큰 주어들 틈에서 점점 작아지다 결국 목적어 자리로 밀려났다. 그래도 퇴사 직후에는 일부러 더 주어처럼 굴었다. 집안에서 입지가 흔들린다 싶을수록 목소리를 높였고, 고민 끝에 프리랜서 번역가가 되겠다고 밝혔더니, 어느 순간 엄마와 아빠의 입은 목적어처럼 떡 벌어졌다. 굳이 두 사람의 입을 틀어막기도 전에 나는 일본 식자재 쇼핑몰을 운영 중인 지인으로부터 일감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타동사로 큰소리치는 게 어려워졌다. 무역 거래 조건까지 공부해 가며 일에 파묻혀 지냈건만, 건당 수입은 기껏해야 커피 값 수준에 지나지 않았고, 지인의 사업 악화로 나도 덩달아 빈둥빈둥 놀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어서 좋은 색싯감을 찾아야 할 텐데…… 라고 아빠가 한마디 던졌다. 술김에 건성으로 한 소리란 걸 알면서도 지금 누굴 놀리나 싶었다. 타동사 중에서도 놀린다는 표현은 유독 날을 세우고 있었다. 똑같이 타동사로 받아치고 싶었지만, 짧은 사이 몇 가지 생각이 스치면서 내 말문은 콱 막혀 버렸다. 아빠는 비록 24시간 격일제로 근무하기는 하지만, 안정적인 직장에서 꼬박꼬박 돈을 벌어왔다. 벌어오는 것은 틀림없는 타동사이다. 따라서 타동사는 큰소리를 낼 수 있다. 반면 불안정한 프리랜서 생활만으로는 돈을 거의 못 벌었다. 문득 세상만사가 거대한 문법에 의해 돌아가는 듯했고, 그날 이후로 내 입에선 큰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엄마는 옥상에 방수 페인트를 칠하려고 준비를 서둘렀다. 아빠는 여전히 세상 모르고 벽을 뚫을 기세로 코만 골았다. 물론 세탁기가 탈수를 돌릴 때는 아빠가 깨는 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졸아들었다. 나는 엄마가 현관을 나서자마자 허겁지겁 욕실로 들어갔다. 변기 물을 내리고 몸을 씻는 동안엔 큰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내리거나 씻는 건 의심의 여지 없이 타동사이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잠을 자거나 집을 비울 때에만 타동사를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처럼 조용한 시간을 틈타 번역을 해야만 했다. 최근에는 그래도 번역 중개 사이트 서너 군데에 유료로 멤버십 가입을 하고,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등록해 두었더니 조금씩 의뢰를 받기 시작했다. 꾸준히 번역을 하고 돈을 벌면 눈치 안 보고 큰소리를 낼 수 있다. 버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타동사이다. 아빠 몰래 타동사를 통장에 쌓아 두고 벼르다 보면 기회를 잡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나는 옷을 갈아입자마자 노트북을 켠 뒤 의뢰인 메일을 열었다. 모니터 한쪽에는 인터넷 사전을 띄워 놓고 전문 용어로 된 내용을 찬찬히 살폈다.삿포로 다시 이리 미소의 분석치에 관해서.표준치 색(Y%)은 27.5%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가공 시 작업자가 수치를 높이면 색(Y%)은 하얗게 변합니다. 반대로 낮추면 색(Y%)은 검게 변합니다. 파랗게 변색된 부분은 효모에 의한 발효 과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2월 출하분의 색(Y%)은 26.2%로 기준치에 적정하다고 판단됩니다.번역을 해 놓고도 무슨 의미인지 도통 읽어낼 수 없었다. 몇 번을 다시 읽어 내려가며 내 방식대로 정리하고 이해해 보려 했다. 우선, 작업자는 수치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 색(Y%)의 수치는 규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작업자는 규정되어 있는 색(Y%)의 수치를 높이거나 낮출 수 있게 된 것일까. 규정된 것을 높이거나 낮출 수는 있다. 그렇지만, 높이는 것을 규정될 수는 없다. 낮추는 것도 규정될 수 없다. 반면, 높이는 것을 규정할 수는 있다. 낮추는 것도 규정할 수 있다. 나는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아까와는 다른 심장 소리를 오래도록 들었다. 색(Y%)은 왜 스스로 규정하지 않고 규정되기만 할까. 어째서 제 뜻과 상관없이 높아지고 낮아지는데 잠자코 있기만 할까. 타동사 때문이라고 납득은 하면서도 뭐랄까, 갑갑한 느낌을 견디다 못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나머지 부분을 번역하고 있을 때 하품 소리를 듣고 말았다. 엄마가 현관문을 여는 바람에 그만 아빠가 눈을 뜨고 기지개를 켰다. 시간은 어느덧 오후 4시가 되어 있었다. 나의 온 신경이 자꾸만 바깥으로 쏠렸다. 아직 일이 남았는데 집중력도 흐트러졌다. 나는 다시금 자동사의 영역으로 내쫓겼다. 늘 그렇듯이 타동사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아빠가 전화기에 대고 귀청이 따갑도록 목청을 높였다. 그기 아이라 카이, 현장에 반장님 없능교? 그라믄 내가 내일 확인해 볼게예, 그라게심더. 통화를 마친 뒤에는 본인의 타동사를 과시하고 싶은지 엄마를 찾았다. 여보야 여서 일하는 젊은 아들 어뜬 줄 아나, 아침에 내 가면 눈만 껌뻑껌뻑하고 있는 기라, 반장도 내 없으믄 일이 안 된다 카더라. 억센 사투리로 된 아빠의 말은 절반도 이해되지 않았다. 다만 매사에 둔감하고 무딘 점이 주어들의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빠는 대수롭잖은 일로 작업반 동료들을 들이받고, 집에 돌아와선 그걸 또 자랑삼아 떠벌리고, 자기 방식만 고집하는 데다 나이를 먹을수록 남의 말도 거의 안 들었다. 저러다 꼭 말을 함부로 하니까 오래 못 붙어 있는 거라고, 엄마도 가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주어는 타동사로 목적어를 괴롭힌다. 그러나 아주 가끔 형세가 뒤집힌다. 타동사를 많이 가진 쪽은 무조건 주어 자리를 차지한다. 타동사를 적게 가진 쪽은 끝내 다 잃고 목적어 자리로 내몰린다. 일자리를 전전한다는 건 아빠의 타동사도 의외로 별 볼 일 없다는 뜻으로 풀이되었다. 자꾸만 입가가 실룩거리고 절로 코웃음이 나왔다.해가 저물고 화장실이 급해서 안달하던 차에 엄마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코 골고 취침함. 내일 근무임. 엄마도 곧 취침. 가스레인지 위에 알탕 있음. 나는 우선 화장실을 다녀온 뒤 창가 블라인드를 끝까지 걷어 올렸다. 망설이다 노트북 단자에서 이어폰을 빼고 고막이 찢어지도록 볼륨을 높였다. 금속성 록 음악을 따라 흥얼거리기도, 몸부림치듯 온몸으로 리듬을 타기도 했다. 나중엔 기지개를 쭉 켜고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내일 하고 싶은 일을 하나씩 정리해 봤다.수요일현관 타일 바닥에다 딱딱 발뒤축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큰기침도 한바탕 터지는가 싶더니 현관문이 안전하게 닫혔다. 발소리 때문에 계단이 울렸지만 곧 잦아들었다. 시동이 켜지면서 밤새 얼어 있었을 경유차 엔진이 탈탈거렸다. 마모된 브레이크 라이닝 소음도 차츰 멀어졌다.나는 슬리퍼를 벗어던지고 방문을 활짝 열었다. 티브이를 켜고 낄낄 웃음을 터뜨리다 가죽 소파를 쓰다듬으며 햇빛 속에서의 자맥질을 즐겼다. 그러다 문득 아주 작은 인기척을 느끼곤 주의 깊게 우리 집 전체를 둘러봤다.3층에는 내 방이 있고, 중앙으로 거실과, 여러 살림살이와, 부엌이 있고, 현관부터, 안방과, 화장실과, 여동생 방이 붙어 있다.2층에는 월세로 내놓은 빈 방과, 50대 남성 세입자가 있다.1층에는 40대 남성 세입자와, 60대 남성 세입자가 있다.아무래도 동생이 지금 제 방에 틀어박혀 있는 듯했다. 그릇과 접시를 꺼내려고 찬장을 여는 순간, 급히 침묵이 만들어지는 걸 보고 알아차렸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라 아빠가 있는 날에도 수없이 되풀이되었다. 밤늦게 내가 전기밥솥을 열고 밥 한술을 떠먹거나, 흔적을 지우려고 잽싸게 설거지를 할 때, 화장실 변기에 앉아 힘을 줄 때면 동생 방은 수상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내가 알기로 동생은 평생 목적어 자리에만 머물러 있었다.한때 나는 월급을 받으면 어깨를 으쓱하며 동생에게 용돈을 줬다. 그러면서 공무원 시험 준비는 잘 하고 있는지, 노량진에 보내 준다는데 왜 싫다고만 하는지 등을 빼놓지 않고 물었다. 아무리 물어도 자동사밖에 돌아오지 않으니까 나는 종종 동생 방 앞에서 귀를 대고 엿들었다. 잘못 들었길 바랐지만 동생은 의지박약 탓인지 책상 앞에는 붙어 있지 않고 늘 빈둥거리기만 했다. 바닥에 늘어지거나 쿠션 또는 인형에 파묻혀 있었고, 내가 퇴근해서 돌아올 시간이면 게임이나 유튜브에 빠져 지냈다. 결국 공부는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해야 하는 거라고 꾸짖고 말았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회사 내에서 목적어 자리로 밀려났다. 요새도 아빠가 없는 날이면 엿듣기 위해 동생 방 앞으로 갔다. 하지만 이제는 무슨 소리를 듣더라도 그냥 못 들은 척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동생이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동생은 돈을 못 버니까 큰소리를 못 냈다. 나 또한 용돈을 못 주니까 큰소리를 못 냈다. 주는 것은 타동사이다. 나로서는 역시 번역 일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 뜨거운 물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었다. 시간을 들여 면도를 한 다음엔 온몸에 로션을 살뜰히 발랐다. 흰색 와이셔츠 단추를 채우고 칼라를 빳빳하게 세우며 아까부터 내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침 엄마가 현관문을 열더니 백시멘트 포대를 안으로 끌어당겼다. 이어서 백색 가루를 한 바가지 덜어 놋쇠대야에 넣고 물을 부어 개기 시작했다."2층에 내려가 보니까 천장에 금이 갔나 봐. 곰팡이가 시퍼런 게 아주 엉망이더라. 엄마는 가서 시멘트 좀 바르고 올게. 시끄럽겠지만, 대못을 쳐서 천장을 좀 부술지도 몰라."나는 손 소독제를 손에 받아 비비면서 넌지시 물었다."도와줘?""아아냐, 네가 무슨."엄마는 어렵사리 꺼낸 나의 타동사를 단숨에 두 동강 내버렸다. 타동사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여러 조각으로 부서지고 흩어졌다. 손쉬운 소일거리조차 내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현관 앞의 운동화와 슬리퍼도, 거실 건조대 위의 빨래도, 욕실 수납장 속 수건과 속옷도, 변기 옆 두루마리 화장지도, 음지 또는 양지에 있는 화분도 이미 엄마에 의해 질서가 잡혀 있었다. 엄마는 밖에서 발디딤용 나무 의자랑 흙손이랑 쇠망치 등을 챙겨 왔다. 방이 오랫동안 놀아서 그저께는 손수 찌든 때도 벗겨냈다. 하루하루 그렇게 2층에 세입자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부터 층간소음 문제가 걱정되었다. 그럼에도 세입자는 내게도 도움이 되었다. 월세를 받으면 엄마는 큰소리를 낼 수 있다. 게다가 엄마는 법적으로 우리 집을 가지고 있다. 받는 것도, 가지는 것도 타동사이다. 아빠는 돈을 벌어오기만 할 뿐, 집을 가지지는 못했다. 두 개의 타동사는 한 개의 타동사보다 큰소리를 낼 수 있다. 머지않아 나의 타동사까지 보태면 도합 세 개가 된다.엄마는 가급적 혼자 사는 남자를 세입자로 들였다. 한집에 둘 이상을 들일 경우 내 신경이 곤두선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래층에서 부부싸움이라도 벌이면 내 머릿속에는 집집마다 주어 자리를 놓고 다투는 광경이 그려졌다. 이제는 가물가물하지만 엄마와 아빠도 처음에는 집주인과 세입자로 만났다. 당시 나는 유치원생이나 겨우 됐을까, 물론 이따위 문법에 사로잡혀 있지도 않았다. 전세 계약이 끝나고 아빠를 내가 사는 3층에 들인 결정에 대해선 어찌되었든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가뜩이나 젊은 나이에 미망인이 됐을 텐데, 어린 목적어 둘을 건사하겠다고 애쓰던 장면 장면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러면서도 엄마는 사실혼 관계를 고집했다. 아빠와의 사이에서 새로운 목적어를 낳지도 않았다. 그렇게 자기만의 원칙에 따라 타동사를 지키고 있었다.엄마는 내려갈 채비를 거의 끝내고 내 쪽을 힐끔 보더니 미소와 울음을 동시에 머금은 채 말했다."마주쳐도 그냥…… 그냥, 무시해버려.""어어, 알았어."귀가 번쩍 뜨여서 잠시 머뭇거렸다. 당장 내 방으로 아니면 화장실로 내빼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런 대화가 동생 방에서도 들릴 것 같았다. 내가 목적어라는 사실을 엄마도 알고 아빠도 분명 알 테고 이제는 동생 귀에도 들어가고 말았다. 엄마는 입을 삐죽이며 작정한 듯 말을 이었다."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뭐.""알았어, 알았어.""요즘은 엄마도 할 말 다 해.""응, 알았으니까…… 알았어."내 가슴 한쪽이 우그러들었지만 일부러 고분고분하게 굴었다. 차근차근 타동사를 모으는 중이라고,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을 키우는 중이라고, 제발 부탁이니 알아서 해결하게 좀 내버려 두라고, 말대꾸하고 싶었지만 그냥 그러지 않았다. 타동사를 하나도 갖고 있지 않으니까 뜻대로 할 수 없었다. 엄마는 타동사를 하나 갖고 있으니까 끈질기게 덧붙일 수 있었다."여긴 아빠 집도 아닌데, 뭐.""알았어. 그렇게 할게.""그래."가만히 서 있는데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엄마에게서 놓여나자마자 내 방으로 돌아와 차가운 방바닥에 퍼더앉았다. 잠시 뒤 현관문이 열리고 엄마가 계단을 내려갔다. 다시 한 번 현관문이 열리고 이번엔 동생이 우당탕 도망치듯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도저히 계단을 내려갈 수 없었다. 계단을 내려가면 사회생활 당시처럼 주어들과 부딪치고 만다. 내려가는 건 마찬가지로 타동사이다. 타동사는 발산의 성질을 띠고 있어서 또 다른 →계속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2019-01-01 경인일보

[2019 경인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타동사 연습② /전태호

돈 버는 것은 타동사이다 큰소리를 낼 줄 알면 처음 얼마 동안 두려워지지 않아엄마·동생이 사라지자 목적어·주어가 아닌 나는 문장 밖 문법 너머에 있었다괴롭히지 못하면 타동사는 기능 상실한다… 결국 주어도 기능을 상실한다주어들과 부딪칠 수밖에 없다. 주어들과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두려워진다. 그런데 나와 같은 처지의 동생은 대체 어떻게 계단을 내려간 걸까. 엄마는 내가 소리 때문에 내려가지 못한다고 어느 정도 맞게 짚어 냈다. 하루는 아빠가 없을 때 나를 거실로 내보내고 계란판처럼 생긴 차음재와 스펀지 같은 흡음재를 가져왔다.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동안 엄마는 방음 장치를 내 방 벽과 문에 설치해 주었다. 달라진 내 방 앞에서 좀처럼 입은 떨어지지 않았지만, 또 그냥 있을 수만은 없어서 고맙다고 멋쩍게 속삭였다. 엄마는 난생처음으로 내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쩔쩔맸다. 고마워한다는 건 어찌됐든 타동사이다. 타동사는 아무리 의도가 선하다 한들 반드시 목적어를 괴롭힌다. 나는 잠깐이지만 주어 자리에서 어떤 식으로든 엄마를 괴롭힌 셈이다. 요즘도 엄마가 번역 열심히 하라고 응원을 해줄 때, 월세를 받아서 일본어 원서를 사줄 때, 결과물에 깊은 관심을 가져줄 때면 고마워해야 하는데 오히려 두려워졌다. 나는 엄마를 괴롭혀서 조금이나마 얻은 타동사로 몸을 일으켰다. 쥐어짜듯 방문을 닫고 노트북을 열었다. 노트북이 열리자마자 웹 브라우저를 열었다. 웹 브라우저가 열리자마자 포털사이트를 열었다. 포털사이트가 열리자마자 메일함을 열었다. 메일함이 열리자마자 의뢰인 메일을 열었다. 다른 의뢰인 메일도 열었다. 더 이상 고마워하지도 두려워지지도 않을 때까지 의뢰인 메일을 죄 열어 보다 첨부 문서 여럿 가운데 하나를 열었다. 파일명은 '일본 고용법'으로 대충대충 훑어보다 잠시 손을 놓았고, 다시 페이지를 쭉쭉 넘기다 시선을 끄는 조항을 골라 읽었다.제 7 장 정년퇴직 및 해고(정년 등)제 38 조직원의 정년은 만 65세로 하고 정년에 이른 날이 속하는 달의 말일을 가지고 은퇴한다.(퇴직)제 39 조전 조항(제38조)에서 정하는 것 외에, 직원이 다음 중 하나에 해당하는 때에는 퇴직한다.① 퇴직을 청원 회사에서 승인된 때 또는 퇴직 원을 제출하고 14일이 경과한 때.② 기간을 정하여 고용되는 경우 그 기간이 만료된 때.③ 사망했을 때.다시 넘기려다 말고 정년퇴직에 관한 조항을 한 번 더 읽었다. 혹시나 해서 아빠의 나이를 따져 봤지만 아무리 하여도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대략 예순에서 예순둘 사이로 어림잡았는데, 다 떠나서 아빠는 오늘 당장 퇴직할지도 몰랐다. 아빠는 하루걸러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을 내려가면 무수히 많은 주어들과 부딪친다. 처음에는 싸워 이길지 몰라도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두려워진다. 법적 구속력을 지닌, 그 거대한 타동사 앞에서는 다들 납작 엎드린다. 아빠는 돈을 벌어오지 못하게 되는 순간, 그나마 하나 있던 타동사마저 잃게 된다. 그러면 나랑 동생처럼 목적어 자리로 밀려난다. 이 순간을 얼마나 오래 기다렸나 싶으면서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천장만 올려다봤다. 아무리 엄마의 타동사라 할지라도 나와 동생과 그리고 아빠까지 건사할 수는 없었다. 몸부림치며 미쳐 날뛸 것만 같은 기분을 죽을힘을 다해 억눌렀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나서 다시 마우스를 이리저리 놀려 보았다. 관련 정보를 죄 열어 보는 동안 나도 모르게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뜨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소액 결제로 논문 몇 편과 기사 몇 토막을 받아 열었더니, 하나같이 우리나라 정년퇴직 기준은 만 60세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아아, 앓는 소리를 내며 방문을 확 열어젖히고 번역 중이던 문서를 닫았다. 문서가 닫히자마자 메일을 닫았다. 메일이 닫히자마자 메일함을 닫았다. 메일함이 닫히자마자 포털 사이트를 닫았다. 포털 사이트가 닫히자마자 웹 브라우저를 닫았다. 웹 브라우저가 닫히자마자 노트북을 닫았다. 너무 많이 열고 닫았더니 타동사가 바닥났다.어지러워져서 침대에 누웠다. 눈앞이 흐려지는가 싶더니 눈이 저절로 감겼다. 온몸이 차가워지고 오슬오슬 떨렸다. 몇 푼 안 되는 타동사를 모으는 족족 이렇게 다 써버릴 셈이야? 그러면 하나든 둘이든 커다란 타동사는 결코 거머쥐지 못할 거야. 결코 거머쥐지 못할 거야. 거머쥐지 못할 거야. 못할 거야. 못해. 못해. 못해. 못해. 못해.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못. 못. 못. 못. 못. 못. 못.못. 못.못.못.못. 못. 못. 못. 그기 아이라 카이. 못. 못. 못. 못. 못. 여보야 요새 젊은 아들.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어뜬 줄 아나?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현장에 반장님 없능교? 못. 못. 못. 못. 못. 못. 반장도 내 없으믄.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일이 안 된다 카더라. 못. 못. 못. 그라믄 내가.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내일 확인해 볼게 예. 못. 못. 못. 못. 못. 못. 아침에 내 가면 눈만.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껌뻑껌뻑하고 있는 기라.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그라게심더. 못. 못. 빨리 잠 좀 자라고. 못. 못. 못. 못. 아아냐, 네가 무슨. 못. 못. 못. 마주쳐도 그냥 무시해버려.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배고플 텐데 어서 밥부터 먹어. 못. 못. 못. 못.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지.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아아냐, 네가 무슨. 못. 못. 못. 못. 못. 못. 요즘은 엄마도 할 말 다 해.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아아냐, 네가 무슨. 못. 못. 여긴 아빠 집도 아닌데 뭐.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2층에 금이 갔나 봐.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대못을 쳐서.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천장을. 못. 못. 못. 못. 못. 못. 아아냐, 네가 무슨. 못. 못. 못. 못. 부술지도 몰라.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책장 못. 못. 못. 못. 못. 못. 못. 책장 서랍장 못. 못. 못. 못. 못. 책장 조명 방문 못. 못. 못. 책장 공기청정기 라디에이터 못. 못. 못. 침대 나 의자 책상 못. 못. 못. 못. 못. 옷걸이 노트북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블라인드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못 목못요일 못머릿속이 밤새 울린 탓에 목부터 어깻죽지까지 결렸다. 옆집은 아침부터 공사를 하려는지 자재를 연신 옥상으로 나르기도 하고 괄괄한 목소리로 한바탕 웃기도 했다. 반면 여기 집안에서는 어쩐 일인지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이미 나를 괴롭히고도 남았을 아빠 차가 오늘따라 보이지 않았다. 창가에 우두커니 서 있을 때 냉장고 여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아빠가 지금 내 방에다 귀를 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문손잡이에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나는 방에 꼼짝없이 갇혀 있으면서 계속 안절부절못했다. 방광이 터질 것만 같아 앉았다가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 방바닥에 누웠다가 꿇어앉았다가 얼마 안 있어 다시 일어났다. 그때 방문이 꼭 안 닫혀 있었는지 바람결에 홱 열렸다. 순간 너무 놀란 나머지 뒤에 있던 의자에 걸려 넘어졌다. 엄마가 현관문을 닫다 말고 이쪽으로 달려왔다."저런, 안 다쳤니?""응."햇살이 현관과 거실을 지나 내 방을 잠깐 기웃거렸다. 아빠의 신발이나 청색 작업복은 다행히 보이지 않았고, 대신 둘둘 말린 하얀색 벽지와 신문지만 눈에 들어왔다."배고프지? 어서 와 밥 먹어.""응."엄마는 내게 아침 식사를 차려 주고, 냄비에 밀가루 풀을 쑤기 시작했다."내일은 하루 휴가 신청했다고 사람들이랑 술 마신대. 오늘은 거기 기숙사에서 잘 거고."비로소 입맛이 돌고 밥이 목에 넘어갔다. 아빠가 없어지니까 아빠의 타동사도 사라졌다. 이제 1층부터 3층까지 우리 집은 엄마의 타동사가 차지했다."글쎄, 집에 사람들을 끌고 온다는데, 미쳤어? 안 된다고 했지.""어어, 근데 옆집은 방수 공사하나 보네.""응? 아 그러게. 강판으로 옥상을 덮을 건가 봐. 남자 여럿이 엄청 낑낑대네. 그러고 보면 엄마는 여자 혼자서 참 대단하지?"엄마는 부엌 창으로 옆집을 힐끔거리며 신나게 주걱을 저었다. 집안에서 다른 주어와 부딪칠 일 없으니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다시 입맛이 달아나고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식탁에서 일어나 소파에 널브러져 있다가 슬그머니 화장실로 들어갔다. 넋이 나간 채로 변기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다리가 저려 오는 것도 한참 만에 느껴졌다. 그때 톱니바퀴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분명 동생 방 문손잡이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방문이 빠끔히 열리고 믿기지 않았지만 동생이 방에서 나왔다. 잠이 덜 깬 듯한 느려 터진 목소리가 귀에 들어왔다."아직도, 뭐가, 남았어?""응. 엄마는 내려가서 도배 좀 하고 올게."동생의 하품이 길게 이어졌다."엄마아, 그걸, 혼자서, 다 하려고?"한다는 건 타동사이므로 순식간에 나를 찌르고 들어왔다. 동생이 갑자기 주어로 느껴지고 화장실에 숨어 있는데도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엄마는 바로 전 동생의 말을 받았다."그럼, 혼자 하지.""그래도……""아니야.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조용히 해."타동사가 한 번 더 나를 찌르고 들어왔다. 이 와중에도 나는 누가 화장실 문을 열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바로 어제 두 동강 나버린 나의 타동사도 자꾸만 눈에 아른거렸다. 엄마는 방문을 닫으면서 동생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추우니까 나갈 때 따뜻하게 입어. 오후에 아르바이트 마치면 꼭 전화하고."귀가 한순간에 뜨이면서 이제야 머리가 돌아가는 듯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돈을 벌 수 있다. 돈을 벌면 큰소리를 낼 수 있다. 버는 것은 타동사이다. 큰소리를 낼 줄 알면 처음 얼마 동안은 두려워지지 않는다. 계단을 내려갈 때도 나를 깎아내릴 때도 두려워지지 않는다. 동생도 곧 내게 용돈을 주는 건 아닐까, 공무원 시험은 아예 때려치운 걸까, 아니면 아르바이트와 병행하는 걸까, 하나부터 열까지 걱정됐지만 조금 뒤엔 전부 부질없는 짓으로 여겨졌다.맥이 풀린 채로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현관문이 여닫히고 엄마가 계단을 내려갔다. 곧이어 또 현관문이 여닫히고 동생이 계단을 내려갔다. 두 번 모두 발소리 때문에 계단이 울렸지만 곧 사라졌다. 엄마가 없어지니까 엄마의 타동사도 사라졌다. 동생이 없어지니까 동생의 타동사 역시 사라졌다. 타동사가 남김없이 사라지자 나는 더 이상 목적어가 아니었고, 물론 여전히 주어는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닌 나는 그럼에도 있었다. 문장 밖에 있었고 문법 너머에 있었다.하지만 그런 상태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갑자기 밖에서 타동사가 집안을 흔들어 댔다. 옆집에서 언성을 높여가며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집은 계속해서 흔들리고 나는 다시 문법에 사로잡히면서 문장 속 목적어 자리로 떨어졌다. 처음에는 공사 도중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싶었는데, 어쩐지 그쪽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울려오는 듯했다. 작은 부엌 창으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환풍기 파이프를 타고 소리가 들어왔다. 엄마는 계단을 내려갔기 때문에 옆집 주어와 부딪치고 말았다."저기 아주머니, 내 집에다 덮개도 맘대로 못 씌워요?"엄마도 스스로 주어라는 걸 알고, 똑 부러지게 따지고 들었다."여기 좀 보세요. 배수관 구멍을 우리 집 쪽으로 내시면 안 되죠.""아니, 여기가 아주머니 댁이에요? 예? 아주머니 댁이냐고요.""물이 우리 집 보일러실로 떨어지잖아요. 저러면 또 곰팡이 슬 텐데, 우리는 어떡해요.""어디요, 뭐, 보일러실이요?""네.""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아주머니네 담벼락 끝에만 스칠까 말까구만.""……"옆집 주어가 엄마의 타동사를 두 동강 냈는지 더 이상 소리가 이어지지 않았다. 서 있지 못할 만큼 숨이 가빠지고 피가 마르더니 팔다리는 따로 놀았다. 높이는 것을 규정될 수는 없다. 낮추는 것도 규정될 수 없다. 반면, 높이는 것을 규정할 수는 있다. 낮추는 것도 규정할 수 있다. 나는 규정할 수 있다고 소리 내어 읊조려 봤다. 덕분에 전에 없던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몸이 커 보이게 황급히 항공 점퍼를 찾아 걸치고 현관문을 있는 힘껏 밀었다. 설마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번진 건 아니겠지. 옆집 주어가 엄마를 목적어로 만든 건 아니겠지. 갔는데 타동사가 날아오면 어떻게 맞받아치지. 그때 황소바람이 창문을 요란하게 뒤흔들었다. 어찌 손쓸 새 없이 현관문도 재빨리 닫아 버렸다. 다시 현관문을 열면 되는데,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목이 잠겨서 이제는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타동사도 없이 갔다가 우스운 꼴만 될 것 같았다. 당장 계단조차 내려갈 수가 없었다. 마침 거실 전화기가 눈에 들어왔다. 경찰, 경찰밖에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와 동시에 계단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조금씩 커지고 가까워졌다. 그림자 하나가 창가에 어른거렸다. 얼굴에 피가 몰리고 똥줄이 타들어 가고 있을 때 뜻밖에도 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아휴, 사람들이 왜 그러냐."엄마는 질렸다는 표정만 짓고 있었다. 다행히 어디 잘못된 데도 없어 보였다.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어물거렸다."뭐가 우리 집 쪽으로 넘어온 거지?""응. 말이 안 통해서 잠깐 기다려 보시라 하고, 아빠한테 전화했네.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아빠가 설명하니까 그제야 알겠다더라."우두커니 서 있는데 느닷없이 오금이 저려 왔다. 옆집 주어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아빠는 생각보다 훨씬 커다란 타동사를 갖고 있었다. 타동사 단 하나로 옆집 주어를 단숨에, 그것도 전화 한 통으로 물리칠 수 있었다. 덤빌 테면 덤벼 보라고 실은 나를 두고 비아냥거리는 듯했다. 엄마는 속이 다 후련한지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보고했다. 월세를 받으면 엄마는 지금보다 큰소리를 낼 수 있다. 법적으로는 이미 우리 집도 가지고 있다. 받는 것도, 가지는 것도 타동사이다. 아빠는 돈을 벌어올 뿐만 아니라 실은 집도 잘 지킨다. 도합 네 개의 타동사는 당연히 큰소리를 낼 수 있다. 아빠는 돈을 못 벌어오게 되어도 집은 꾸준히 잘 지킬 것이다. 도합 세 개의 타동사는 여전히 큰소리를 낼 수 있다. 동생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곧 월급도 받을 것이다. 나만 떨어져 나왔구나 싶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고마워했다. 아빠에게 고마워할 수밖에 없었다. 고마워하고 또 고마워해서 차라리 펑펑 소리 내어 울고 싶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고마워했다.금요일보스턴백을 어깨에 메고 현관문을 천천히 열었다. 구둣주걱을 사용해서 운동화를 신고 밖을 내다보았다. 조용히 현관문을 닫으며 시리도록 청량한 아침 공기를 들이마셨다. 밤새 내린 비로 대리석 특유의 냄새와 촉촉한 부엽토 냄새가 올라왔다. 파르스름한 가로등 불빛도 얼마 만에 보는 건지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몇 계단 아래에 떨어져 있는 신문을 집어 베란다 위에 올려놓았다. 간밤에 유명인이 자살했다는 기사를 힐끗 본 뒤 걸음을 재촉했다. 이렇게 꾸물거리고 있다간 아빠와 마주칠지도 몰랐다. 내게 승산이 없다는 걸 깨달은 뒤로 진지하게 고민해 봤다. 집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를 밤새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평생 목적어로 사느니 사라지기로 마음먹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생각보다 발걸음이 쉽게 떨어져서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대문을 열고 집 앞 언덕을 내려가며 발소리를 크게도 작게도 내보았다.낯선 동네라 조금 걱정했지만 다행히 제대로 찾아왔다. 간판 끄트머리에 맺힌 빗물이 똑똑 떨어지는 걸 보았다. 여기 단층짜리 직업소개소 앞에는 빈 승합차 한 대만 세워져 있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 물기가 없는 장의자 위에 짐을 내려놓았다. 더러워져도 상관없는 낡은 청바지를 입고 오길 잘한 것 같았다. 물을 마시고 잔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새하얀 입김이 차가운 공기 중에 흩어졌다. 침을 한 번 삼키고 나서 패기 있게 타동사를 연습해 보았다."일은 아무거나…… 다시, 아아, 몸 쓰는 일은 뭐든 자신 있습니다. 장점은 큰 목소리입니다. 여기서 멀리…… 아니, 기숙사 생활도 괜찮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지금쯤이면 아빠가 주차를 하고 계단을 올라왔을 것이다. 엄마도 동생도 이제 막 하루를 시작했을 것이다. 이러한 일상으로 미루어 앞으로 일어날 일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소리가 크면 반드시 목적어를 괴롭힌다. 타동사는 발산의 성질을 띠고 있어서 소리가 크다. 따라서 타동사는 반드시 목적어를 괴롭힌다. 하지만 목적어가 사라지면 괴롭히지 못한다. 괴롭히지 못하면 타동사는 기능을 상실한다. 타동사가 기능을 상실하면 결국 주어도 기능을 상실한다. <끝>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2019-01-01 경인일보

[신년 인터뷰]김순재 경기도농업기술원장… 농업 새미래 발상 전환, 부농시대 희망 일굴것

인터넷 직거래·홈쇼핑 판매 등농산물 생산·가공·유통 시너지부가가치 높이면 농가소득 향상"농업기술이 발전해야 농촌이 잘 삽니다. 경기도 부농(富農)시대를 열겠습니다."농산물 소비 감소 등으로 농업의 위기라는 말들이 많다. 농촌에는 일손이 부족할 정도로 인구 유출만 있을 뿐, 유입이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농업의 수장인 김순재(사진) 경기도농업기술원장은 농업의 발전과 농촌의 희망을 이야기한다.발상의 전환을 이루면 농업에서 새로운 미래를 찾을 수 있다는 게 김 원장의 생각이자 자신감이다.그는 "농사만 짓는 시대는 끝났다. 농촌에서 농산물도 생산하고 이를 가공·유통하고 판매도 해야 한다"며 "이럴 경우 부가가치가 높아져 농민의 소득도 올라가고 다시 농촌에 사람이 몰리게 된다"고 설명했다.김 원장은 이같은 이야기가 허황된 게 아니라고 했다. 연천군 등에서는 도농기원이 보급한 쌀품종인 '참드림'을 생산해 인터넷 직거래를 통해 농가가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고, 양평 등에서도 농민들이 마을기업을 만들어 들깨를 생산하고 이를 들기름으로 가공해 홈쇼핑 등에 판매중이다.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우수한 농업기술 보급을 통한 '돈 되는 농업'은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실제 도농기원은 이같은 실용농업기술을 기반으로 경기도 농업과 농촌 부흥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느타리버섯·인삼 등 특화작물은 전국 최고의 생산 기반을 통해 농가 소득 증대의 주역이 됐으며, 선인장·다육식물 등의 신품종 개발을 통해 도내 원예농가의 경쟁력도 높아지고 있다. 경기북부는 도농기원의 거점 전략을 통해 콩 특화단지로 주목받고 있으며, 미래성장산업으로 곤충산업 육성도 도농기원이 맡고 있다. 김 원장은 일자리 창출도 농업이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그는 "생산·가공을 함께하는 마을 기업을 육성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며 "농산물종합가공센터 운영과 소규모 창업 지원 등도 농업·농촌 일자리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아울러 "현재 청년 농업인 4H회원이 경기도에 500여 명 수준인데, 올해 지금보다 2배 가량을 발굴·육성할 것"이라며 "청년 농업인의 농촌 정착을 통해 농촌에서도 아기울음소리가 들리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김태성기자 mrkim@kyeongin.com

2018-02-05 김태성

[신년 인터뷰]서재형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 원장… 경기 농산물 경쟁력 높아, 온라인 유통채널 강화

다양한 가격 상품군 선택폭 넓혀야쌀 이외에 채소·과일 홍보도 주력시장조사 중요 컨설팅등 농민 지원지난 2005년 출범 이후 경기녹지재단·경기농림진흥재단이란 이름을 갖고 있던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이하 진흥원)은 지난해 4월 농식품 유통 플랫폼을 구축하고 농업과 식품산업·체험·관광을 연계할 수 있는 유통전문기관으로 재탄생했다. 9개월 남짓 진흥원은 오프라인 유통 채널을 강화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등 제 역할을 찾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서재형 경기농식품유통진흥원 원장은 "2018년에는 오프라인 뿐 아니라 온라인 유통 채널을 강화하고, 경기 농산물을 홍보하기 위한 노력을 더욱 기울이겠다"고 신년 포부를 밝혔다.롯데슈퍼 등 민간기업에서 유통업무를 맡아온 서 원장은 '시장조사'를 강조했다. 서 원장은 "최근 조사를 해봤더니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형마트들에서 경기쌀을 취급하는 비중이 30%에 불과했다. 신기하게도 외국계 기업인 코스트코가 70% 이상 경기쌀을 취급하고 있었다. 내셔널브랜드인 이마트와 홈플러스의 경기도 점포에서 경기쌀을 진열하고 판매해달라는 요청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서 원장은 시장조사와 함께 다양한 가격의 상품군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30여년을 유통 업계에 종사하며 잔뼈가 굵은 서 원장은 선택의 폭을 넓혀 상품성을 키우는 것을 새해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았다.그는 "쌀 생산자들은 경기쌀이 시장에서 무조건 높은 가격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저가부터 고가까지 다양한 상품이 있어야 오히려 소비를 많이 하게 된다"면서 "농산물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유통부문을 강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쌀 뿐만 아니라 경기도에서 생산된 채소와 과일 등의 상품성을 높이는 것도 진흥원이 해야 할 몫이다. 서 원장은 "최근에 우체국 사이트에 검색을 해봤더니 '배' 단일 상품의 브랜드만 40개 이상이었다. 평택에서 배가 재배되는데 소비자에겐 좀 더 많은 브랜드가 소개돼야 하고, 이를 위해 진흥원이 농민들에게 유통채널을 소개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서 원장은 경기도 농산물의 경쟁력을 높게 평가하며 성장 잠재력이 있다고 봤다. 그는 "(경기도 농산물은) 소비시장과 가깝다는 점이 최대 장점이다. 이동거리에 따라 들어가는 비용 차이가 큰데 이를 자동으로 낮출 수 있는 구조다. 이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환경이 좋아서 좋은 상품을 생산해 낼 수 있는 동네가 경기도"라면서 "경기도 농산물 홍보에 매진하고 현직 유통 전문가의 컨설팅을 직접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등 다방면으로 농민을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2018-01-30 신지영

[신년 인터뷰]이해우 인천항운노조 위원장… "내항 TOC 통합, 40년 경험 쏟을 것"

고용대책 조합원 의견 수렴하역료 덤핑행위 강력 대처이미지 개선 지역 봉사활동인천항운노조는 2007년 항운노조원 상용화 이후 가장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인천 내항에 있던 10개 부두운영사(TOC)를 하나로 통합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TOC 통합에 따라 노조 인력이 줄어들거나 직제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어서 노조의 역할이 중요해졌다.이해우 인천항운노동조합 위원장은 30일 "지난 40년 동안 인천항에서 일하면서 경험한 모든 것을 내항 TOC 통합에 쏟을 예정"이라며 "조합원의 지속가능한 고용 대책 수립과 근로조건이 유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이 위원장은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조합원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여러 변화를 눈앞에 두고 있는 만큼 조합원의 작은 애로사항도 놓치지 않고 귀담아들어야 조합원의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며 "평조합원의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만들어 이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그는 조합원의 기본권이 보장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다. 이 위원장은 "TOC 통합 법인이 출범하면 비정규직 조합원은 작업장이 줄어들고, 근로조건이 나빠져 어려움이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했다.이 위원장은 "TOC 통합을 틈타 하역료를 덤핑하는 행위를 반드시 막아내겠다"고 강력히 말했다. 그는 "정부에서 정한 하역요금이 버젓이 있음에도, 화주와 하역사가 이면 계약서를 작성하는 일이 과거에 있었다"며 "이는 조합원의 노동 가치를 깎아내리고, 인천항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했다. 이어 "조합원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서라도 하역료 덤핑 행위가 적발되면 전 조합원이 강력한 투쟁에 나서겠다"고 덧붙였다.아직 인천항운노조는 인천시민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로 남아 있다. 과거부터 수차례 반복된 채용비리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 이 위원장의 생각이다. 이 위원장은 "조합원이 채용·승진과 관련해 금품을 수수할 경우 조합에서 즉각 제명하겠다는 내부 규정을 만든 뒤에는 이 같은 사건이 사라졌지만, 시민들 뇌리에는 안 좋은 생각이 박혀 있는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이에 이 위원장은 "지역사회와 더욱 가까워질 수 있는 항운노동조합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올해는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뿐만 아니라, 주민들이 인천항과 노조에 더욱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마지막으로 그는 "인천항은 오랫동안 인천경제를 이끌어 왔다"며 "인천항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천시민의 애정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이해우 인천항운노동조합 위원장은 30일 인천항 내항 부두운영사가 통합돼도 조합원의 고용 및 근로조건이 유지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인천항운노동조합 제공

2018-01-30 김주엽

[신년 인터뷰]김재복 LX 인천지역본부장… 발전 가능성 큰 인천, 구도심 활성화 돼야

재개발 정상화 필요성 제기"답은 현장" 직원들에 강조"신뢰 받는 지적측량 노력""국민에게 정확하고 신속한 측량 과정과 믿을 수 있는 측량 결과를 제공하는 LX(한국국토정보공사) 인천지역본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김재복 LX 인천지역본부장은 경인일보 인터뷰에서 "LX는 풍부한 경험과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정확하고 다양한 지적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이달 2일 취임한 김 본부장은 인천남부·북부·중부와 강화 등 4개 지사를 찾아가 업무 현황을 파악하고 직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또 인천지역 기관·단체를 방문하거나 관계 기관 협의회를 열어 협력 사항을 논의했다. 그는 "인천은 앞으로 무궁한 발전이 있을 것 같은데, 개발지역 등 대단위 사업장이 없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면서 "업무를 많이 발굴할 계획"이라고 했다. 인천은 면적과 인구 등 규모 면에서 다른 도시에 뒤지지 않는다. 구도심 재개발사업 상당수가 정체된 것이 문제다. 김 본부장은 "남구 등 구도심의 경우 많은 지역이 주택재개발구역으로 묶여 있다"고 했다. 재개발사업이 정상화되거나 재개발구역에서 해제돼야 하는데, '사업성 부족'과 '매몰비용(추진위원회·조합이 쓴 돈) 처리 문제'로 쉽지 않다. 그는 "도시개발사업과 신도시 조성사업이 우리 본부에 도움이 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인천은 구도심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했다.LX 인천지역본부는 이 같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난해 매출 161억원, 당기순이익 39억원의 성적을 냈다. 김 본부장은 "작년에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며 "올해에도 공간정보사업, 지적재조사, 지적확정측량을 적극 추진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김 본부장이 취임식에서 직원들에게 강조한 단어가 있다. '우문현답'이다.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뜻이다. 그는 "고객이 오케이 할 때까지 현장을 떠나지 말고, 고객의 궁금점이 현장에서 모두 해소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직원들에게) 강조했다"고 했다.김 본부장은 "고객으로부터 신뢰받는 인천지역본부가 되기 위해 무엇보다 모든 직원이 청렴해야 한다"며 "고객이 지적측량 등을 신청하지 않으면, 우리의 업무는 없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공간정보사업도 국가가 국민들에게 필요한 공간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고 덧붙였다.그는 "지적시장 민간 개방 가속화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할 때"라며 "인천지역본부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직원들의 자기 계발과 변화에 대한 유연성을 키우는 데 노력하겠다"고 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김재복 LX 인천지역본부장은 신년 인터뷰에서 업무(사업) 발굴, 고객 만족도 향상, 본부 경쟁력 강화 등을 강조했다. /목동훈기자 mok@kyeongin.com

2018-01-29 목동훈

[신년 인터뷰]양복완 경기복지재단 대표… '현장·연구 선순환' 초점, 새로운 복지발전소될 것

생활 필수적인 서비스 공급역할사회 전반 아우르는 안전망 필요과학기술 활용등 시대변화 대응경기복지재단은 지난해 10주년을 맞았다. 4명으로 출발한 조직은 올해 108명으로 늘어났고 4억 남짓이었던 예산은 올해 550억 원으로 불어났다. 양복완 경기복지재단 대표는 "자신감이랄까 자부심이 축적된 10년이었다"고 평가했다. 11년째를 맞는 복지재단은 올해 양적 성장과 함께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양 대표는 "지금까지 해왔던 일의 연장 선상에서 (새로운)방향을 설정하겠다"고 말했다.양 대표는 복지재단의 역할을 '복지발전소'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석탄이나 원자력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소처럼 복지재원을 활용해 도민의 생활에 전기 같은 필수적인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이 재단의 역할이라는 의미다.그는 "(재원)전달에 누수가 없게 하는 것, 정책이 의도한 대로 현장에 적용되도록 하는 것이 재단이 할 일이다. 특히 현장과 정책, 정부와 민간, 수요자와 공급자가 잘 연계되도록 하는 경기도의 '복지발전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것도 재단이 당면한 올해 과제다. 지난해 연말 양 대표가 직원들에게 강조한 메시지 역시 변화에 대한 인식에 바탕한 것이다. 양 대표는 종무식에서 복지의 중요한 흐름 4가지를 꼽았다. 과학 기술을 이용한 복지와 선별적·보편적 복지의 종말, 지자체의 복지경쟁, 복지의 혁신이 그 내용이다.양 대표는 "지금까지 복지는 사람이 하는 것이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은 복지를 담당할 인원을 줄이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제는 고령자를 돌보는 데 로봇이 사용되는 시대가 온다. 이 변화에 미리 대처해야 한다"면서 "게다가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지고 소득 양극화가 심각해지면서 선별·보편복지라는 말이 의미 없는 시대가 됐다. 사회 전반에 복지가 필요한 시기다. 복지를 종류별로 나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일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사회 안전망이라는 말은 낡은 복지를 상징하는 말이 되었지만, 이제 다시 (사회 안전망이)부활할 때"라고 덧붙였다.이어 "경기도의 일하는 청년이나 성남시의 무상 복지만 보더라도 이제 국가 뿐 아니라 지자체가 복지 정책을 내놓고 경쟁하는 '복지의 지방분권화'가 도래했다. 복지 정책에 대한 판단은 별개로 하더라도 앞으로 이런 지자체발 복지 정책들이 많이 나온다는 사실은 자명하다"며 "우리 재단이 이런 것들(지자체의 복지정책)을 객관적으로 진단할 역량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그는 마지막으로 '검증의 시대'를 맞아 재단도 혁신해야 한다는 점을 과제로 꼽았다. "기사의 객관성조차 의심하는 시대, 무엇이든 검증하는 시대가 왔다. '지난해 이렇게 했으니 올해도 그냥 이렇게 가자'는 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면서 "현장이 반영되는 연구, 연구가 반영된 현장. 우리 복지재단의 모토다. 연구와 현장이 늘 선순환되는 재단을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2018-01-25 신지영

[한신협 공동 신년기획 '분권개헌 내 삶 바꾼다']④·끝·20년전 시작된 日 지방분권

장기침체 중앙집중식 발전 '한계' 분권 대안 떠올라1995년 추진법 시행 2001년 국가보조금·세제 개편국가-지방 세입비율 8대 2 → 6대 4 재정 독립성 강화정부, 지방행정 포괄적 지휘감독 폐지 통큰 권력이양지역 개성 살린 자립능력 국가 역동성 향상 '공감대'인구감소 대책도 '마을·일자리·사람 선순환'에 초점 요코하마, 도시재생 '미나토미라이21' 지자체 주도'주민의견' 최우선 반영 고용창출 도시부흥 이끌어일본과 우리나라는 산업화에 접어든 시기는 다르지만 사회경제적 구조, 법률 및 행정 체계 등이 비슷하다. 이 때문에 일본은 여러 면에서 수년 뒤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인구감소나 조선업 쇠퇴 등 심각한 우리의 현안 과제들도 일본은 일찍부터 겪고 대응책을 고심해 왔다. 지방자치, 지방분권도 비슷하다. 일본은 수도권 집중화, 인구감소 등의 대책 마련을 위해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헌법을 토대로 한 지방분권 개혁을 시작했다. 법률과 행정체계가 비슷한 일본의 분권 사례는 서양의 사례보다 훨씬 우리나라에서 적용하기가 수월하다. 진행 중인 일본의 분권 추진 과정의 성과와 과제를 경청해야 하는 이유다. ■지방분권 움직임1947년 일본은 지방자치법이 공포되고 신헌법이 제정되면서 현대적 형태의 지방자치 제도를 갖추게 됐다. 이후 신헌법을 토대로 1995년 지방분권추진법이 시행되면서 1차 지방분권개혁이 시작된다. 지방분권추진법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행정을 자주적이고 종합적으로 담당한다고 명시했다. 국방 같이 전국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을 제외하곤 지역의 일은 지역에서 주체적으로 처리한다는 것을 만방에 선언한 것이다.이어 2001년 국가보조금 개편을 통한 세제개혁인 일명 '삼위일체' 개혁이 시작됐다. 2006년엔 지방분권추진법 개정이 이뤄지며 2차 지방분권개혁 시기에 접어 들었다. 법의 개정뿐만 아니라 내각총리대신이 중심이 된 분권추진본부 등이 세워지며, 1차 개혁에서 미진한 부분을 보완했다. 그 결과 지금의 일본 지방분권 수준은 우리보다 훨씬 강력하다. 중앙정부의 지침이나 허락 없이 지역 스스로 자치단체의 통폐합을 추진할 수 있고, 지역의원 수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지방경찰도 마약부서를 둘 것인지 여부 등을 중앙 경찰과 별도로 알아서 정한다.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업무를 분산시키는 일명 '기관위임사무'도 폐지됐다. 정부가 지방행정에 대한 포괄적 지휘감독권을 놓았다는 뜻이다. 자연스레 대형 지역개발 사업에서 중앙정부의 입김이 최소화하는 등 지역으로 권력이 크게 이양됐다. 일련의 분권 개혁은 지방의 개성이 살아난 발전 없이는 국가적 역동성을 살릴 수 없다는 헌법적 공감대가 있어 가능했다. 요코하마시 정책국 관계자는 "헌법을 바탕으로 한 지방분권이 없었다면 창조도시로 불리는 요코하마도 없었을 것"이라며 "중앙집중 행정이 불러온 한계상황을 풀 수 있는 것이 지방분권이다. 지역의 일은 지역 스스로 책임질 때 결과가 가장 좋다"고 말했다.■선택이 아닌 필수, 지방분권사실 일본도 지방자치를 '떠밀려서 했다'는 표현이 적합하다. 1990년대 초반부터 정계, 경제계, 노동계 등 각계에서 지방분권을 강력히 요구했다. 무엇보다 장기경제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정부 재정이 나날이 악화됐다. 수도권 집중화 등으로 경제의 탄력성이 떨어졌다. 중앙 집중식 성장의 한계가 드러나 그 타개책으로 지방분권 개혁이 시작된 것이다.지방분권 핵심도 결국 재정 즉 '돈' 문제로 귀결된다. 재원 없이 늘어난 자율권은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사실상 권력이양이 아니기 때문이다. 2001년 시작된 삼위일체 개혁은 국고보조부담금 개혁·국가로부터의 세원이양·지방교부세의 재검토를 의미한다. 이 개혁을 통해 일본은 2004~2006년 국고보조금 4조6천661억엔(약 45조300억원)을 삭감하고 지방교부세 총 5조1천억엔(약 49조2천100억원)을 축소하는 대신 3조엔(약 28조9천500억원) 규모의 세원을 지방에 넘겨줬다. 그 결과 국가세입과 지방세입의 비율이 8대 2에서 6대 4 수준이 됐다. 최종적으론 4대 6으로 바꾼다는 계획을 세우고 여전히 개혁 작업이 진행 중이다. 정부로부터의 재정적 독립성 강화로 지방 정부의 중앙 정부 '눈치보기'는 크게 줄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8대 2 수준에 머물러 있고, 문재인 정부의 장기 목표가 현실화한다고 해도 6대 4 수준이다.재정위기에서 시작된 삼위일체 개혁에 대한 비판도 있다. 지방 세수의 비중은 늘었지만,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다 보니 실질적인 세수 증가는 미진하다. 오히려 지방정부의 재정 건전성이 나빠지고, 중앙정부의 재정 위기를 지역에 넘겼다는 비판도 나왔다. 지역 간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에 대해 부산대 강재호(행정학과) 교수는 "지역분권 개헌이 현실화하려면 지역에서도 효율성을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며 "국세와 지방세 비중 조정은 매우 필요하기 때문에 요코하마의 녹지세처럼 필요하다면 지역단체장이 증세를 할 수 있는 결단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인구절벽 문제, 지방분권이 되어야 가능2014년 6월 일본 내각부 산하의 지방분권개혁 유식자회의에서 정리한 '개성을 살린 자립한 지방을 만든다'는 보고서엔 "일본 총인구의 지속적인 감소가 예견되는 가운데,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해 다양화하고 증대하는 행정 수요에 대응해서, 지방이 더욱 건강해질 것이 요구되고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지방분권 실현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인구절벽의 대안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중앙행정의 집중력은 국가경쟁력 저하를 유발하고 결국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또 젊은층이 수도권에 집중하면 세대 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전반적인 삶의 질은 저하된다. 팍팍해진 삶은 결혼 및 양육에 대한 부담으로 이어진다. 반면 노년층의 비중이 늘어난 지방은 이들에 대한 복지 부담이 증가되고, 노년 세대 문제는 더욱 악화한다. 일본은 인구감소 대응을 위해 2015년 지역 일자리와 사람의 선순환 확립, 지역 활성화를 위한 '마을·사람·일자리 창생 장기 비전 및 종합전략'을 수립해 실천에 옮기고 있다. 지역의 자치단체와 주민이 주역이 돼 지역자원을 활용한 일자리·인구 증가 지역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형태다. 도쿄로의 인구유입을 막는 방안도 지역 차원에서 세운다. 마을·사람·일자리 선순환구조를 만드는 게 최종 목표. '로컬 아베노믹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방분권을 진행 중인 일본이 아직 수도권 집중화를 해소하지 못한 것처럼, 인구감소 문제도 시급하지만 해결이 극히 어려운 국가 현안이다. 더욱이 '창생 장기 비전 및 종합전략'은 2060년을 목표로 장기비전이 세워지는 만큼 아직 그 결실을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지역 발전이 없으면 인구 문제가 해소될 수 없으므로 지방분권을 위한 법적 제도적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엔 일본 내 의견 일치가 이미 이뤄진 상황이다.■지역 스스로 이뤄낸 부흥, 요코하마요코하마의 성장은 '미나토미라이21'이라는 도시재생 사업의 성공이 비결이다. 그리고 이 사업은 지방분권을 뒷받침하는 헌법이 원동력이 돼 가능했다.요코하마의 심장인 '미나토미라이21' 지구에 들어서면 도시적 세련미에 감탄하게 된다. 일본 두 번째 초고층 빌딩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296m)'를 비롯해 수십층의 고층빌딩들이 조화롭게 해안 도심을 채우고 있다. 비즈니스 타워부터 호텔, 쇼핑몰, 공연장은 물론 '코스모월드'라는 대형 놀이동산까지 들어서 있다. 여기에 곳곳이 녹지다. 건물 간격이 넓고, 곳곳에 공원과 쉼터가 있다. 이곳은 원래 조선소가 있던 공업단지였다. 일본 조선업의 위기가 본격적으로 감지되던 1983년 미쓰비시 조선소를 옮기는 데 정부와 지역사회의 합의가 이뤄져 본격적인 재생사업이 시작됐다. 지역 주민의 의견을 최우선시해 난개발을 피하고 지속가능성이 보장된 도심을 만들겠다는 게 사업의 핵심이었다.결과는 매우 성공적이다. 현재 입주기업은 1천780여 개에 달하고 고용인원도 10만명을 훌쩍 넘는다. 2010년보다 입주기업은 400개가량, 고용인원 3만명가량 늘어났다.미나토미라이21의 성공비결은 '조화로운 개발'과 이 기조를 꾸준히 유지해온 '지속성'이다. 지역사회가 사업의 주체가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당시 정부안은 쇠퇴하는 공업지역을 빌딩 숲으로 대체하는 것이었고, 지역 사회는 반대했다. 그 덕에 철저히 지역사회 중심으로 도심재생이 진행됐다. 미나토미라이21은 국책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요코하마시 그리고 토지소유자·지역 기업 등 민간 차원에서 출자한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주)'와 함께 중앙정부도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사업 관리 및 조정 업무를 비롯 기반시설 건설까지 큰 틀을 철저히 시가 맡고 있다. 정부의 역할은 공공청사 건설 같은 것에 머물러 있다. 운영자금도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지역 민간사업자들이 내는 운영비, 자체 수익사업으로 각각 3분의 1씩 충당된다. 전적으로 지역사회 중심으로 움직이는 구조다. 이러다 보니 지역내 주체성과 책임감이 생기고, 이상적인 도시재생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한신협 공동취재단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요코하마 시내 곳곳에서 녹지와 시민 휴식 공간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한신협 공동취재단미나토미라이21지구 내 남아있는 조선소 도크의 흔적. /한신협 공동취재단일본에서 두번째로 높은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 지구 풍경. 지역이 자율성을 갖고 추진한 이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 요코하마는 성장하는 도시의 발판을 만들었다. /한신협 공동취재단

2018-01-22 경인일보

[신년 인터뷰]남창현 농협중앙회 경기본부장… 현장 귀기울여 농가소득 5천만원 시대 준비

유통채널·수출확대 노력생산자·소비자 연결 역할조직 신설 유통망 촘촘히"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여 농민을 받들겠습니다."지난 1일 취임 이후 잇따른 현장 경영 행보에 나서고 있는 남창현 농협중앙회 경기지역본부장은 "농업인들은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어야 한다. 경기 농협이 유통 채널과 수출을 확대해 농민들의 걱정을 덜겠다"고 강조했다. 도내 농업인들이 '농가소득 5천만원'시대를 열어가는 데 조력자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남 본부장은 이를 위해 '농업인과 함께하는 N·E·W 경기농협'이라는 경영 철학을 내놓았다. 농업인이 필요할 때(N, Necessary) 어디든지(E, Everywhere) 언제나(W, Whenever) 낮은 자세로 섬기겠다는 의미다. 이 같은 철학의 배경에는 농사를 짓는 아버지 곁에서 농사일을 거들며 농업과 농촌 현장에 있었던 그의 삶이 녹아 있다. 남 본부장은 평소에도 "농업인과 경기농협 사이의 간격을 좁혀 가려면 농업, 농촌현장에서 문제와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남 본부장은 농산물 생산지와 소비지가 혼재된 경기 지역 특성에 맞는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도·농 복합지역인 경기 지역에서 생산한 신선하고 안전한 농산물들이 제값을 받을 수 있도록 도심 소비자와 농촌 생산자를 연결하는 게 중요하다. 그게 경기 농협의 역할"이라고 밝혔다.그동안 경기 농협은 로컬푸드 직매장에 힘을 쏟아부어 직매장 매출이 2016년 360억원에서 지난해 634억원으로 급증했다. 남 본부장은 여기에 더해 올해 '품목연합부'라는 조직을 신설해 유통망을 더욱 촘촘하게 짜고 있다. 그는 "농업인은 계약에 따라 고품질 농산물 생산에 집중하고, 산지농협이 유통을 책임지며, 시도·시군별 연합사업단과 조합공동사업 법인이 판매 전략을 세우고 실행하는 구조를 만들겠다"고 설명했다.남 본부장은 내년 3월 전국 조합장 동시선거와 관련해서도 "농축협 선거관리단을 오는 8월부터 설치·운영할 예정"이라며 "후보자와 조합원들이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에 나서 줄 것"을 당부했다. /조윤영기자 jyy@kyeongin.com농업인들이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현장에서 충실한 조력자가 되겠다고 강조한 남창현 경기농협 본부장. /조윤영기자 jyy@kyeongin.com

2018-01-22 조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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