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경인일보 창간70기획 그때]현대화의 출발선 ‘국도 1호선’

평북 신의주~전남 목포 잇는 1068㎞… 조선시대 연행로 이용일제 대륙침략로 직선화후 6·25전쟁으로 문산서 끊기는 비극전후 경기도등 산단 물류 혈맥으로 ‘코리아 성장신화’ 이끌어국도 1호선은 남북 분단의 상징이자,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의 다양한 사건과 이야기를 담고 있는 길이다.국도 1호선을 남북 분단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분단 이전에는 전남 목포에서 평북 신의주까지 연결된 전체 노선 약 1천68㎞의 주요 도로였지만 현재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구간은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까지 498.7㎞다. 국도 1호선은 조선시대 주요 도로로 사용됐다.우선 의주에서 서울로 연결된 도로는 조선시대 중국과 교류를 하기 위해 사신이 다니던 연행로와 거의 겹친다. 그리고 서울에서 수원까지의 구간은 조선시대 정조가 아버지의 묘인 융릉을 방문하기 위해 지나던 길과 겹친다.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는 일본의 대륙 침략의 중심 도로로 이용하기 위해 조선시대에 사용했던 도로를 중심으로 직선화하며 정비한 후 지방 도로를 만들어 연결하기 시작했다.6·25 전쟁이라고 불리는 한국전쟁 당시 국도 1호선은 피란을 떠나는 사람들이 이용하던 도로였고 전쟁을 위한 군수물자가 쉼 없이 이동하던 길이었다. 승자와 패자도 없는 한국전쟁은 신의주역까지 뚫려 있어야 할 국도 1호선을 문산에서 끊어놔 국토 분단의 비극을 고스란히 간직하게 됐다.전쟁이 끝난 후 국도 1호선은 남북을 잇는 ‘소통의 길’, ‘교역의 길’에서 휴전선이 가로 막으며 실향민의 아픔이 남아 있는 ‘분단의 길’로 남게 됐다.국도 1호선은 한반도의 역사가 깊게 담긴 도로다.#경제 성장의 중심에 서 있는 국도 1호선전쟁 이후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룩하는 과정에 있어서 국도 1호선은 남한의 경제 성장을 이끄는 중심 도로로서 역할을 한다.또 전쟁 이후의 빠른 경제 성장은 ‘도시화’와 맞물려 있다.산업화를 이루는 중심이 한국 최초의 자동차 전용도로인 경부고속도로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경부고속도로가 개통하기 전에 물자와 사람이 가장 빈번하게 오고가던 도로가 국도 1호선이다.성장의 신화는 이제 명품도시로 탈바꿈되고 있고,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기록이 담긴 ‘1번국도’ 역시 현존하고 있다.국도 1호선 경기도 구간은 크게 3개 도로로 나뉘어 불리고 있다.평택시 신평동 안성천교~화성시 진안동 대황교까지를 경기대로로, 수원시 권선구 대황교~안양시 만안구 석수역 구간을 경수대로로, 고양시 덕양구 동산동~파주시 진서면 판문점까지는 통일로로 불린다.하늘에서 내려다 본 국도 1호선 경기도구간 주변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상징이다.수원과 화성, 오산, 평택 등으로 이어진 국도 1호선 경기 남부권 구간은 산업단지가 밀집되어 있다.국도 1호선 경기 북부 구간도 마찬가지다. 경제 성장으로 인해 서울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자 고양시에 대규모 신도시가 들어섰다.파주시에는 LG LCD공장을 비롯한 공장들이 들어섰고, 포천시와 의정부시에도 잇따라 공단이 들어서며 한국의 경제 성장을 도왔다.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이뤄진 신도시가 국도 1호선 주변에 빽빽히 들어서 있다.한국전쟁 이후 경제 성장과 도시화는 바로 이 국도 1호선 경기도 구간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경제 성장의 신화는 이제 명품도시로 탈바꿈되고 있고,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기록이 담긴 ‘국도 1호선’ 역시 현존하고 있다. /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행주산성 전망대에서 바라본 방화대교와 한강의 전경. 고양/김재영기자 kjyoung@kyeongin.com국도 1호선 수원 구간에서 매년 열리고 있는 화성문화제 능행차 모습. /수원화성문화재단 제공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삼성전자가 조성중인 DSR-Project 건립 공사장 입구.파주 LG디스플레이단지.

2015-10-06 김종화

[경인일보 창간70기획 그때]경인일보가 기록한 시·군 변천사

서울 분리 20여년 만인 1967년 도청사 수원 이전 道역사 큰획항만 관문도시로의 역할 대두 1981년 인천 직할시 승격·분리‘1239만명’ 전국 1/4 가까운 국내 최대 인구밀집지 자리매김경기(京畿)라는 단어의 어원은 서울과 그 주변 지역을 포함한 의미다. 본격적으로 ‘경기’라는 명칭이 나왔던 고려시대 개경(지금의 개성시)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을 경기로 칭했다. 서울 역시 경기도의 일부였다. 조선시대 서울은 경기도에 소속된 한성부였고, 일제강점기에도 경기도 경성부에 속해 있었다.#<광복 전후와 군정기> 경기도의 독립된 역사 시작광복 이후 경기도의 독자적인 역사의 태동이 이뤄졌다. 1946년 9월 28일 경기도 서울시가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되면서 경기도는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완벽한 행정 독립은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경기도청사가 서울에 위치해 있었고, 경기도는 서울을 보조하는 지역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949년 수원군 수원읍이 수원시로 승격(나머지 수원군은 화성군으로 변경)되면서 경기도는 독자적인 역사의 시작을 알린다.#<1960~1970년대> 격변의 역사서울시 인구가 244만여명에서 836만여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대대적인 서울시 행정구역 개편작업이 이뤄졌고, 경기도 역시 행정구역 변화 물결에 합류하게 됐다.1963년 시흥·양주·광주·김포군의 일부가 지금의 서울 강남·서초·송파구를 비롯해 강동·구로·금천구 등으로 흡수됐다. 서울 행정구역이 비대해졌지만 경기도 역시 독자적인 행정구역으로 발전했다.특히 1967년 6월 23일 서울특별시에 있던 경기도청이 수원시로 이전하면서 경기도 역사의 한 획을 긋는다. 경기도청사의 이전은 도내 행정업무 효율성을 끌어올림과 동시에 상징적인 독립을 위해 이뤄졌다. 또 경기도는 같은 해 7월 1일 의정부시에 경기도 북부출장소를 설치했고, 북부출장소는 훗날 경기도 제2청사로 거듭난다.#<1980~1995년> 인천의 광역시 승격경기도 역사에 두 번째 큰 획을 긋는 사건은 1981년 7월 1일 경기도 인천시가 인천직할시(1995년 인천광역시로 개칭)로 승격한 것이다. 당시 인천은 경기도 소속이었지만 항만을 중심으로 관문도시의 역할 등을 해내기 위해 직할시로 승격됐다. 동시에 1989년 1월 1일 김포군 계양면이 인천직할시 북구에, 경기도 옹진군 영종·용유면이 인천 중구에 흡수됐다. 또 1995년 3월 1일에는 옹진·강화군 전역과 김포군 검단면이 인천으로 편입됐다.인천시 승격 이외에도 경기도내 행정구역의 변화는 잇따랐다.서울의 행정업무 등을 수행할 위성도시의 필요성이 늘어나면서 아직까지 서울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하지 못한 경기도가 행정구역 개편의 대상이 됐다. 1986년 시흥군의 과천읍이 분리되면서 시로 승격, 서울의 일부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위성도시가 됐다.#<1996~현재> 신도시 개발과 늘어나는 인구, 광역시 문제1996년 성남의 분당, 고양의 일산, 안양의 평촌 등 5개의 경기도 1기 신도시가 세워지면서 2003년에 경기도는 인구 1천만 명을 돌파, 지금에 와선 1천239만명에 이른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1996년 3월 1일 용인·파주·이천군이 시로 승격됐고, 1998년부터 2001년 사이에는 안성·김포·화성·광주군이 시로 승격됐다. 비슷한 시기에 양주·포천군과 최근 여주군이 시로 개편됐다.그 밖에도 2000년대 들어서 인구가 꾸준히 증가, 신도시 필요성이 대두 되면서 성남의 판교, 수원용인의 광교, 화성의 동탄신도시 등 5개의 2기 신도시가 생겼다.하지만 인구 증가로 수원시·고양시가 100만 명이 거주하는 지자체가 늘어나면서 다시 광역시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새로운 광역시 출범은 도내 양극화를 가속한다는 반대 입장에서 경기도가 서울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찬성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이다. /김범수기자 faith@kyeongin.com숫자로 보는 경기도 역사 그래픽/성옥희기자1969년 8월 26일 연막소독중인 수원의 전경. /경인일보 DB1967년 8월, 시흥군 당시 안양유원지. /경인일보 DB

2015-10-06 김범수

[개발과 보존의 기로에 서 있는 DMZ·11]인터뷰/카린 코볼 분트 프로젝트 팀장

토지주 상당수가농사나 가축 길러생계 잇는 사람들지역 떠나지 않게인근 땅과 맞교환 "시민사회의 공감대를 이뤄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카린 코볼(사진) 분트 튀링엔 지역 그뤼네스반트 프로젝트 팀장은 "DMZ 보존을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공감대가 이뤄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코볼 팀장은 "토지 매입을 위한 막대한 자금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에서 모두 부담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다"고 독일내 상황을 소개했다.이어 코볼 팀장은 "이런 이유로 인해 시민사회에서 공감대가 형성돼 자발적인 토지 기부를 유도해 내기도 하지만 토지주 중 상당수가 농사를 짓거나 양을 키우는 등 생계를 이어나가는 데 활용하고 있어 기부 또한 어려움이 많다"고 덧붙였다.그녀는 "하지만 시민사회에 그뤼네스반트 지역의 보존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고, 그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분트에서 기부금을 모아 토지를 매입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코볼 팀장은 "그뤼네스반트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지역을 떠나지 않도록 그뤼네스반트 지역 인근에 토지를 매입해 맞바꾸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또 매입한 토지는 그냥 내버려두지 않고 지역 생태 환경에 맞는 연구 복원 활동에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또한 코볼 팀장은 "토지 매입을 위한 지역 사회의 공감대도 중요하지만 그뤼네스반트 지역을 어떻게 보존해 나갈지에 대한 고민도 지역사회와 함께 해야 오랜 시간 보존해 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코볼 팀장은 "독일은 통일을 갑자기 맞아들였기 때문에 그뤼네스반트 지역을 어떻게 보존할지를 통일 이후에 논의할 수밖에 없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지금부터 논의한다면 독일과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 수 있다. 특히 미래에 있을 통일을 대비해 철저히 준비한다면 DMZ 지역의 보존 및 친환경 활용을 위한 준비도 더 쉽게 진행될 수 있을 것이다"고 조언했다.글/김종화기자 사진/김종택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4-11-04 김종화

[개발과 보존의 기로에 서 있는 DMZ·11]DMZ사유지 활용 방안과 대책

그뤼네스반트 사유지 20% 불과한데도일부 소유주 매입 거부해 어려움 겪어시민사회 공론화 끝에 '공유화' 결론 한국 비무장지대 길이 248㎞ 면적 992㎢ 파주시·연천군 423.92㎢ DMZ에 포함 사유지 57%·소유 미상 토지도 15.6% 남한 지적 정리불구 소유권 분쟁 가능성보존 가치 높아 통일전 토지 대책 절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한반도, 한반도의 DMZ는 개인의 소유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지역이다.DMZ는 남북간 군사적 무력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1953년 7월 27일 국제연합군 총사령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이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면서 생긴 공간이다.정전 협정을 체결할 당시에는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더 이상의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군대를 주둔시키지 않기로 했었다.그러나 정전 협정을 체결한 지 60여년이 지난 현재 그 약속이 정확하게 지켜지지 않고 있다.휴전선을 중심으로 2㎞씩 물러나기로 했던 철책선이 비무장지대 안쪽으로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통일 이후에는 토지 소유권 문제가 달라진다. 분단 당시 개인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지만 통일이 이뤄진 이후에는 토지가 사유화되고 개발도 가능하다.이 공간은 60여년째 사람의 발길이 끊어지며 한반도 원시 환경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전쟁이 중단된 후 죽음의 땅으로 불렸던 DMZ는 수십 년이 지난 현재 자연 환경에 대한 보존 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이 지역을 보존하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고 있다.# 논란의 소지가 많은 비무장지대 토지 소유권비무장지대 일원의 토지는 해방과 함께 한국전쟁이 발발해 소유 관계 정리에 어려움이 있다.또한 지금까지 나와 있는 자료들 대부분이 오래된 자료를 반복 재인용해 자료로서의 신뢰성도 떨어진다.비무장지대 일원의 토지에 대해서는 수시로 지적공부 정리 작업을 하기 때문에 자주 변경된다.특히 최근에는 행정기관의 주도로 토지 소유관계 작업인 지적공부 정리가 안정되어 가면서 군사분계선 이남지역인 남한쪽 비무장지대 일원의 토지에 대한 소유관계 정리 작업은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지적공부는 정리되었지만 소유자 미복구 토지가 상당수 미등록 상태로 있어 통일 이후 원소유자가 나타날 경우 소유권 등록 작업이 필요하고 소유권 분쟁이 예상된다.# 사유지 비중이 높은 DMZ길이 248㎞의 DMZ는 넓이가 992㎢에 이른다.이 중 경기도 지역의 경우 파주시와 연천군의 일부가 DMZ에 포함되어 있다.경기도 지역의 토지 소유 현황을 보면 파주시가 129.52㎢, 연천군이 294.40㎢로 총 423.92㎢에 이른다. ┃표 참조 이 중 사유지는 전체 면적의 57.0%인 241.61㎢에 이른다.또 국·공유지는 27.4%인 116.35㎢고 소유 미상 토지는 15.6%인 65.96㎢다.아직 비무장지대 내 토지에 대해서 정리되지 않은 토지가 상당수 있고 미복구 토지 대부분이 비무장지대 내에 위치해 있다.현재 남북이 대치해 있는 점을 생각한다면 정확한 소유권 파악이 이뤄지려면 상당히 많은 시일이 소요될 수 있다.# DMZ 사유지 처리 제도에 대한 논란과 독일 사례DMZ는 60여년간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면서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종을 비롯한 희귀동식물 등 생태적 보전가치가 높은 생태자원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이다. 이로 인해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표와 같이 경기도 지역 파주시와 연천군 DMZ 지역 토지 중 57%가 민간 소유 토지이기 때문에 DMZ 보존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될 경우 토지 소유권 문제가 쟁점화될 수밖에 없다.여기에다 아직까지 소유주가 확인되지 못한 토지까지 생각한다면 토지 소유주의 동의없이는 DMZ 보존 문제는 이뤄질 수 없는 문제다.앞서 통일을 이룬 독일의 경우 그뤼네스반트 지역의 토지 사유지가 20%에 불과하다.사유지가 20%에 불과한 독일도 그뤼네스반트를 보호하기 위해 토지주들과 갈등이 일었고 일부 지역의 경우 토지 매입을 거부해 보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토지주들의 반대 외에도 독일은 경제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토지 매입 자금 문제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독일 정부는 그뤼네스반트 지역의 토지 매입을 위해 1996년 접경토지법을 제정했지만 오히려 사유지가 증가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독일 시민사회는 공론화 끝에 토지 완전 공유화라는 합의를 이뤄냈고, 토지공유화라는 기본 방침 아래 토지소유자들을 이해시키고 설득시켜 나가는 작업이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글/김종화기자 사진/김종택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독일 정부는 그뤼네스반트 지역의 토지 매입을 위해 1996년 접경토지법을 제정했지만 오히려 사유지가 증가하는 상황이 발생해 독일 시민사회가 토지 완전 공유화라는 합의를 이뤄냈다. 토지공유화라는 기본방침에 토지소유자들을 이해시키고 설득시켜 나가는 작업이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사진은 독일 튀링엔 산악지역에서 양떼를 방목하는 모습.

2014-11-04 김종화

[개발과 보존의 기로에 서 있는 DMZ·10]인터뷰/독일 휴전선 지역 연구하는 '그뤼네스반트'

연방정부·분트 지원 받아 연구 국가 동서로 나눈 1393㎞ 철의장막전체 지역에 대한 보존계획 수립중생태·환경·지질학적 특성 파악후구간별로 특화된 프로그램 추진한국DMZ 거주민 관심·자부심 중요통일 전 공론화 거쳐 계획 수립해야 한반도와 같이 분단을 겪은 독일은 연방정부와 시민단체인(NGO) 분트(BUND)의 지원을 받아 독일 분단 당시 휴전선 지역이었던 그뤼네스반트를 연구하는 기관이 운영되고 있다.연구기관은 휴전선 지역의 이름과 같은 그뤼네스반트라고 불린다.연구기관인 그뤼네스반트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찌당의 중심 도시였던 뉘른베르크에 위치해 있다.그뤼네스반트를 2년 전 처음 방문했을 당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2개의 나라로 분단을 시킨 나찌의 중심 도시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게 다가왔다.뉘른베르크도 독일의 여타 도시와 마찬가지로 고성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고 도심 중앙에 있는 뉘른베르크 성에는 아직도 제2차 세계대전의 흔적인 포탄 자국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뉘른베르크 성 바깥에 위치한 그뤼네스반트는 한국의 연구소와 달리 단독 건물이 아닌 일반 주택건물에 들어서 있다.그뤼네스반트에서는 독일 전역을 동서로 나눈 1천393㎞의 철의 장막 전역에 대한 보존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특히 그뤼네스반트에서는 독일 전체에 대한 큰 프로젝트를 설립한 후 각 주별로 보존되어야 하는 부분들에 대해 세분화해 각 지역에 연구 과제를 보내준다.이렇게 주별로 결정된 연구과제들은 또다시 주별로 자기 지역에 맞는 프로젝트로 한번 더 변화 시킨 후 연구 또는 보존 활동을 벌이게 된다.연방정부가 지방정부와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듯 그뤼네스반트는 각 주가 연계되지 않고 독자적인 활동을 하지 않도록 독일 전역에 대한 짜임새 있는 프로젝트가 추진되도록 하고 있다.지난 8월 그뤼네스반트의 운영에 대해 설명을 듣기 위해 뉘른베르크를 방문했다.그뤼네스반트 사무실에 들어서자 책임연구원인 리아나 가이데찌스 박사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가이데찌스 박사는 "경인일보 취재진과 많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오늘 하루 연구를 안하기로 했다. 먼길 오셨는데 궁금한 것이 있다면 뭐든지 물어봐 달라"며 반겨줬다.사실 가이데찌스 박사와는 2년 전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후 이번 연재를 준비하며 꾸준히 연락을 해 오고 있었다.앞서 방문한 하르쯔국립공원의 프리드하트 크놀레 박사와 아이히스펠트 국경박물관 게오르그 바우메어트 환경교육 팀장은 가이데찌스 박사가 소개해 줘서 만날 수 있었다.우선 첫번째 질문으로 "그뤼네스반트의 보존활동을 하며 그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과의 상생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 내고 있는가"에 대해서 물어 봤다.가이데찌스 박사는 간단하게 답변했다. 답변은 "지속적인 관계를 통해 이해를 시키고 있다"였다.그녀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토지를 매입하고 싶어도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그곳 주민들이 동의해 주지 않으면 할 수가 없다.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지만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왜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지역 환경단체와 지방 정부의 그뤼네스반트 담당자들이 노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실제 튀링엔주 그뤼네스반트 지역에서 만난 스텔라 슈미갈레 튀링엔 자연보호재단 그뤼네스반트 프로젝트 담당자도 지역 주민과의 협력 활동에 대해서 강조했었다.이어서 가이데찌스 박사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주도해서 하는 사업은 한계가 있다. 결국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보존에 대한 필요성과 가치를 알아야 오랜 시간 유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우베 프리델 그뤼네스반트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는 "지역별 특화된 프로그램 개발"을 꼽았다.프리델 코디네이터는 "1천393㎞의 구간이 모두 똑같은 생태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을 수는 없다. 지역별로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생태적, 환경적, 지질학적인 특성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그는 "지역별 특성을 알아야 지역에 맞는 프로젝트를 설정할 수 있다. 그리고 프로젝트 구상과 함께 그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홍보활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이어 프리델 코디네이터는 "자신의 지역에 위치한 그뤼네스반트 일대가 어떤 가치가 있는지 알아야 그 가치에 대한 자부심도 생긴다. 지역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 줘 지역사회 스스로 지켜 나갈 수 있는 분위기를 형성하게 유도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가이데찌스 박사는 "그뤼네스반트 독일 구간이 이렇게 자리잡아 가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는 독일에 국한하지 않고 냉전시대 이데올로기로 인해 수십년간 설치됐던 철의 장막 복원작업도 바로 이런 틀에서 진행되고 있다. 크게는 각각의 국가 그리고 그 국가 안에서는 주 또는 지역별로 시민사회의 공감대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다니엘라 라이쯔바흐 그뤼네스반트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는 "한국의 DMZ가 독일의 그뤼네스반트보다는 길이가 짧지만 비슷한 노력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지켜 나가고 보존해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 그 지역 사람들이기 때문에 독일과 같이 지역 사회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오랜 시간 보존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라이쯔바흐 코디네이터는 "개발 문제도 마찬가지다. DMZ에 대한 개발을 법률적으로 제한할 수도 있지만 지역 사회 스스로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 지역을 생태공원으로 만들 수도 있고 자연보호구역으로 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사회가 공감하지 못한다면 보존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가이데찌스 박사는 "한국은 독일의 그뤼네스반트보다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다. 또 아직 통일이 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부터 어느 부분에 대해 보존해 나갈 것인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해 나갈지 사회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면 독일과는 다른 더 발전된 방향의 보존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글/김종화기자 사진/김종택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그뤼네스반트 책임연구원 가이데찌스 박사는 한국의 DMZ에 대해 "아직 통일이 된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부터 어느 부분에 대해 보존해 나갈 것인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해 나갈지 사회적인 공론화 과정을 거친다면 독일과는 다른 더 발전된 방향의 보존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리아나 가이데찌스 그뤼네스반트 책임연구원.▲ 독일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고성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는 뉘른베르크성 전경.

2014-10-28 김종화

'무재해 3천일' 달성… 이상권 전기안전公 사장을 만나다

임기내에 전기재해율현 21% → 15% 감축안전기획단 신설등대대적 조직개편 단행선진국 벤치마킹사고 예방 체계 마련전기사업법은 기업중심소비자위한 법 필요사장 '지휘'아닌 '지원'노조·직원과 소통해야서민 에너지복지·봉사공기관으로서 할 일"안전은 우리 삶의 기본이고 미래다."한국전기안전공사 경기지역본부를 처음 방문한 전기안전공사 이상권 사장이 밝힌 안전의 필요성이다.전기안전공사는 지난 4월 세월호 참사에 이어 지난 17일 저녁 발생한 성남 판교 야외공연장 환풍구 붕괴 사건까지 안전불감증으로 인해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무재해 3천일을 달성해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이상권 사장이 지난 2월 제15대 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후 본사 지방 이전(6월), 전기재해율 감축을 위한 조직개편(7월), 소통 경영과 각종 사회공헌 활동 등 공기업으로서의 혁신적인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지난 16일 무재해 3천일 달성을 축하하기 위해 경기지역본부를 방문한 이 사장과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이 사장은 우선 임기 중 역점을 두고 추진할 사업을 묻는 질문에 서슴지 않고 "전기재해율 감축"이라고 밝혔다.이 사장은 전기재해율 감축을 위해 선진국에 대한 벤치마킹을 바탕으로 현재 21%에 이르고 있는 전기재해율을 자신의 임기인 2016년 말까지 15%대로 감축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내세웠다.이를 위해 지난 7월 전기재해감축부, 신전기안전서비스기획부를 관할하는 '안전기획단'을 신설하는 등 대대적인 조직개편도 단행했다.이 사장은 전기재해율 감축을 위해 조직개편을 단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사 소속 직원들의 의식 개선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취임사를 통해 '본(本)경영'을 선언하며 확고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본경영은 기본(Basic) 임무에 충실하되, 항상 고객에게 열린(Open) 자세로, 현장업무 수행에 책임(Responsibility)을 다하는 기업으로 새로이(New) 거듭나겠다는, 영어 'BORN'의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이 사장이 기본에 충실한 경영을 강조하는 건 안전이 바로 원칙과 기본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이런 관점에서 직원들에게 안전수칙 준수를 철저히 강조하고 있다. 특히 현장 업무 수행 과정에서 안전 확보를 위한 상시적 현장지도 활동은 물론, 사내 교육과 근무규정 강화 등을 통해 직원 관리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안전장구를 착용하지 않거나 안전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은 채 현장 업무를 진행하는 직원에 대해선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강도 높은 징계조치를 내리고 있다.그는 "안전사고는 늘 기본을 지키지 않을 때 발생한다. 방심과 부주의가 안전사고의 원인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이 사장은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수사를 맡았던 주임 검사였다. 당시 누명을 쓸 뻔한 토목기술사를 불구속하고 사고 책임자를 끝까지 찾아내 법의 처벌을 받도록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사장이 안전에 대한 책임의식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세월호 사고는 안전과 예방을 사명으로 하는 우리 공사에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는 사건이었다"며 "안전은 우리가 지켜야 할 여러 가치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그 자체로서 전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이 사장은 '사후 약방문'식 안전관리가 아니라, 사전예방 관점의 선제적인 안전관리 체계를 마련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대신 공사의 주요 법정업무 가운데, 국민에게 까다롭고 무용한 규제로 여겨지는 것은 과감히 폐기하거나 개선해 나가겠다는 생각이다.이 사장은 전기재해율 감축과 함께 임기내 꼭 이루고 싶은 업무로 전기안전공사의 업무와 관련한 법령을 제정하는 문제를 꼽았다. 현재 전기안전공사의 운영에 대한 부분은 전기사업법에 규정돼 있다.그는 "전기사업법은 전기사업을 하는 기업을 위한 법령이다. 즉 공급자 중심의 법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제는 소비자 중심, 즉 전기를 사용하는 국민을 위한 법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설명했다.특히 이 사장은 "별도의 법을 제정해 전기를 사용하는 소비자인 국민과 기업들의 안전을 어떻게 지켜 나가야 할지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 사장은 원칙과 기본을 강조하는 경영 방침을 내세우고 있지만 직원들의 의견에 귀기울이기 위해 회사 외에서는 소탈한 모습을 보여 주기로도 유명하다. 특히 경영진으로서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 있는 노조와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기 위해 노조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직원들의 생각을 청취한다.이날 경기지역 본부 첫 방문에서도 직원과 대화의 시간을 만들어 지역본부 직원들이 느끼고 있는 애로점을 청취하며 본사 운영 방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이 사장은 "사장이 해야 할 몫은 직원들을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평소 본사 직원들에게도 '사장실 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며 "신뢰와 소통은 노와 사, 회사 구성원 전체가 함께 뜻을 모을 때 가능하다"고 말했다.이어 "좀 더 많이 듣고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직원에게 군림하는 경영인이 아닌, 직원과 함께 하는 경영인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이 사장은 취임 후 바쁜 일정 중에도 직원들과 함께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는 이유에 대해서도 귀띔했다.그는 "사회공헌 활동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공기관으로서 기본 책무다. 최근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에너지 안전복지에 관한 관심과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정부의 역점 추진과제도 '서민 에너지복지 강화'다"며 "생활이든 안전이든 계층이나 지역, 남녀노소에 따라 차별을 받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공사는 그동안 우리 사회 소외계층을 위한 안전복지 확대를 위해 선제적으로 노력해 오고 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모든 국민이 안전복지로부터 소외받지 않고, 전기재해로부터 국민 누구나가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 공사의 궁극적인 소명이다. 앞으로 더욱 책임있는 역할을 펼쳐나가도록 이끌겠다"고 덧붙였다.이 사장은 여름철 못지않게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는 겨울을 앞두고 소비자들이 전기를 절약하며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노하우를 소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그는 "겨울철에는 전열기 사용이 많아 합선으로 인한 화재사고가 빈번하다. 전열기를 장기간 사용할 때는 플러그, 스위치 등의 연결점이 파열되어 탈 수 있다. 전열기 케이스에도 열이 축적돼 바닥 및 주위의 인화물질을 태울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이 사장은 마지막으로 "누전차단기 정상동작 여부는 매월 1회 이상 꼭 확인을 부탁드린다. 전기사용 중 불편사항이 생기면, 언제든 공사의 긴급출동 고충처리 '전기안전 119(1588-7500)' 서비스를 이용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상권 사장 프로필▶ 충남 홍성(55) ▶ 홍성고·건국대 법학과 ▶ 사법고시 24회 ▶ 청주지방검찰청 부장검사 (1999년~2000년) ▶ 인천지방검찰청 부장검사 (2000년~2001년) ▶ 제18대 국회의원(지식경제위원회) (2010년~2012년) ▶ 새누리당 인천광역시당 위원장 (2012년~2013년) ▶ (현)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대담=김성규 경제부장·정리=김종화기자▲ 한국전기안전공사 이상권 사장이 무재해 3천일 달성을 기념해 지난 16일 경기지역본부에서 가진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임기중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14-10-21 김종화

[개발과 보존의 기로에 서 있는 DMZ·9]인터뷰/독일 최대 환경단체 '분트(BUND)' 바이거 의장

그뤼네스반트, 동·서독 아픔 알려주는 역사이자 생태계의 보고NGO 노력덕에 2002년부터 유럽 '철의 장막'도 보존 필요성 인정강원도 DMZ 보고 '독일이구나'라고 생각… 韓·獨 역사적 동병상련 관계왜 통일해야 하고 비무장지대 어떻게 활용할지 시민 스스로 고민해야"DMZ가 보여주는 분단의 역사는 현실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미래다."독일은 동·서독 분단시대 양 국가를 갈라놓았던 그뤼네스반트를 보존해 나가고 있다. 단순히 보존을 넘어서 그 공간에 대한 생태환경의 복원, 그리고 연구 활동까지 진행하고 있다.물론 이런 모든 활동은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고 있다. 그뤼네스반트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역사적인, 생태·환경적인 가치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이끌어 낸 시민사회단체가 독일 최대의 NGO인 분트(BUND)다.독일 정부에서 그뤼네스반트에 대한 연구와 보존에 소요되는 예산을 편성할 수 있도록 이끌어낸 단체도 분트다. 통일 이전부터 시작된 그뤼네스반트의 보존운동은 1989년 통일 이후에 본격화 됐지만 2000년대 들어서는 냉전 시대 유럽 전체를 갈라놓았던 철의 장막 복원 운동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분트는 작게는 독일의 그뤼네스반트, 넓게는 유럽 전체의 철의 장막 복원 사업의 중심에 서 있다. 강원도 평창에서 열린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 독일 대표로 한국을 방문한 분트의 의장 바이거(Hubert Weiger)씨를 만났다.바이거 의장은 한국에 방문한 소감에 대해 "한국과 독일은 경제적 관계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동병상련'의 관계"라고 말했다.이어 바이거 의장은 "얼마전 강원도 지역의 DMZ를 방문했을 때에는 '독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DMZ가 보여주는 분단의 역사는 현실이지만 동시에 통일을 준비하면서 DMZ는 한국인들의 미래가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그를 DMZ에 대한 인터뷰 초반부터 거론하는 건 독일의 분단지역인 그뤼네스반트가 분트에서 보존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낸 인물이기 때문이다.바이거 의장은 분트가 탄생되기 전인 1970년대 초반부터 그뤼네스반트 지역에 멸종위기 조류와 생물들이 살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독일 사회에 보존의 필요성을 홍보하기도 했다.이런 활동이 알려지며 분트의 창립에도 깊이 관여하게 됐다.그는 "분트가 하루 아침에 탄생된 단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독일 사회에서 분트와 같은 환경단체의 탄생이 필요하다는 것이 오랜 시간 제기됐었고 1913년 탄생한 바이에른 자연보호단체가 중심이 돼 1970년부터 논의가 시작됐다"고 소개했다.이어 그는 "1975년 첫 출범 당시에는 바이에른 자연보호단체장을 맡고 있던 후버트 바인찌얼(Hubert Weinzierl) 박사와 당시 바이에른 주지사를 맡고 있던 헬무트 슈타이니거(Helmut Steiniger)씨가 중심이 됐고 저도 함께 했다. 당시에는 제가 가장 젊은 창립 멤버였다"고 덧붙였다.바이거 의장은 "그뤼네스반트는 역사적으로는 분단의 아픔을 후손들에게 반복되지 않도록 알려주는 중요한 자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의 발길이 끊어져 있었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가 남아 있는 천혜의 보고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바이거 의장은 분트의 그뤼네스반트 보존 활동의 시작은 독일의 통일과 함께 봐야 한다고 소개했다.유럽 사회주의 붕괴의 시작인 '페레스트로이카'를 소련이 선언하면서 동유럽에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2차 대전 후 냉전체제에서 분단된 독일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을 감지했다.특히 1989년 라이프치히에서 민주화운동이 절정에 달하면서 거리에 많은 시민들이, 또 이들을 저지하는 군인들이 충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평화시위는 40년 이상의 분단 상징인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는 결정적 역할로 이어졌다.약 2주후 동독과 서독 자연보호 관계자들이 모여 환경주제로 회의를 했다. 사실 그전에 서독과 프랑스는 DMZ에서 희귀 동식물을 찾았고, 보호관찰 필요성과 중요성에 의견을 모았다.이 회의의 중심에 서 있던 사람이 바로 바이거 의장이다.독일은 1989년 12월 DMZ 1차 회의에서 DMZ는 보호받아야 하고 지켜야하고 미래세대를 위해 잘 보존해야한다는 합의점을 찾는다.하지만 회의를 마친 후 진행된 모니터링과 보호활동 프로그램을 통해 DMZ내 환경이 87%가 보존되고 있었지만 나머지는 파괴되고 황폐화되고 있음이 확인됐다.바이거 의장은 "꾸준한 NGO의 노력과 정부의 협조관리 아래 2002년 독일내 DMZ뿐만 아니라 냉전시대 '철의 장막(Iron Curtain)'이라 불리던 곳도 보존의 필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런 활동에는 독일 통일에도 깊이 관여한 고르바초프의 역할이 크다. 그는 지금 분트 후원자이기도 하고 지지자로 활동하고 있다"고 소개했다.철의 장막은 핀란드부터 발칸반도까지 이어진 냉전시대 분단의 장벽이다. 약 24만5천㎞의 길이로 유럽의 환경보호단체들은 유럽벨트로 명명하고 보존작업을 벌이고 있다.과거 '철의 장막'에는 철조망이 쳐지고 배치된 군인들이 이 곳을 감시하기 위해 여러가지 시설물을 설치했었다. 기록에 의하면 1천여명이 이 장막을 넘으려다 즉결처분으로 죽었다.바이거 의장은 "이런 철의 장막이 지금은 평화자연보호지역으로 과거의 역사를 이해하고, 지구상에 사라져가는 동식물을 볼 수 있고 또한 보존돼야 할 생태계보존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바이거 의장은 "여기에는 철의 장막이 있었던 국경지대 국가들과 분트를 비롯한 시민단체의 노력이 숨어있다. 핀란드와 러시아, 독일과 체코, 몬테네그로 등은 이곳을 평화지대 유럽벨트, 그린벨트로 만드는데 합의하고 지원하며, 각국 시민단체나 NGO단체들은 이곳을 보호관찰, 홍보활동을 하며 시민참여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고 소개했다.또 "이러한 노력은 정부와 NGO 협력에 좋은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는 단지 유럽이야기가 아니고 지구촌에서 알아야하고 배울 가치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내에서는 철의 장막-DMZ를 생태공원, 국립공원, 유럽그린벨트 지정과 더불어 국가기념사업, 나아가 유네스코 등록까지 목표를 두고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바이거 의장은 "국가 차원에서 통일기금을 마련하고 통일을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통일 비용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고 이런 노력의 출발을 먼저 준비한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다"고 말했다.그는 "이와함께 동시에 진행되어야할 부분은 바로 시민들의 참여와 NGO단체의 활동이다. 학술회의나 시민들의 인식변화 그리고 '통일을 왜 해야 하고 현재 남북한 사이에 있는 이 DMZ지역을 어떻게 활용하고 보존해야 하는지'등 이런 고민이 시민들의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이어 바이거 의장은 "물론 동·서독과 달리 한국은 남·북한이 분단되고 민간교류가 힘든 상황인 것은 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고 행동한다면 그 과정의 노력은 언젠가 긍정적 결과로 이어진다. 또한 한국은 통일준비과정에서 독일에 배울 수 있지만 분명 두 나라 사이에는 정치·경제·지리적 차이점이 있다. 그래서 독일 통일을 참고하면서 한국 스스로 통일과정 경험을 만들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글/김종화기자사진/김종택기자 통역=박혜진 통역사※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는 독일 대표로 분트 소속 바이거 의장을 비롯해 니콜라 우데(좌) 박사와 리차드 메르그네 박사 등이 참석해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다.

2014-10-21 김종화

[개발과 보존의 기로에 서 있는 DMZ·8]미래 평화 준비하는 '아이히스펠트 국경박물관'

입출국 허가 받던 건물 내부만 리모델링 40년간 분단 상황 사건별·시대별 정리독일 정부, 국가지정문화재로 원형 보존 그뤼네스반트 시설물·생태계 그대로 전시야외엔 군용차·헬기… 감시탑·철조망도 박물관 입구 분단영상에 한국DMZ 보여줘한반도 DMZ 인근에 위치한 경기 북부 연천군에서는 대북전단 살포 문제를 놓고 갈등이 일고 있다. 북한이 일부 보수단체의 대북전단, 일명 '삐라'를 향해 쏜 총탄이 연천군 민간인 거주 지역에서 발견된 후 지역 주민과 보수단체간의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단을 살포하고 있는 보수단체 측은 '대북전단이 북한 주민들의 의식을 개선할 수 있는 가장 평화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접경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주민 안전과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며 반발하고 있다.이런 갈등을 바라보며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이룬 독일을 떠올린다. 최소한의 소통과 교류가 있었던 독일, 하지만 끝없는 대립과 갈등만이 있는 한반도의 모습이 너무 상반돼 보이기도 한다.# 분단부터 통일까지 아이히스펠트 국경박물관아이히스펠트 국경박물관은 독일 정부가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한 건물에 위치해 있다.독일 정부가 아이히스펠트 국경박물관 건물을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한 이유는 동서독의 40년간의 분단을 느낄 수 있는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아이히스펠트 국경박물관은 동·서독 국민이 상대국가를 방문하기 위해 입·출국 허가를 받던 곳에 위치해 있다.마치 한국 국민이 개성공단을 방문하기 위해 입경 절차를 밟는 경기 파주시에 위치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와 같은 곳이다.박물관의 본관 건물도 당시 동독 정부에서 사용하던 건물을 내부 리모델링만 해서 활용하고 있다.박물관 본관 건물에 들어서면 첫 번째 만나는 영상이 분단이다.독일의 분단과 통일, 그리고 현재까지도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한국 DMZ를 영상으로 보여준다.영상을 본 후 동·서독이 교류를 하기 위해 설치한 입경 시설물이 연대별로 얼마나 늘어났는지와 당시 접경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의 생활상 등을 전시물로 보여준다.특히 아이히스펠트 국경박물관에는 자유를 찾아서 분단 장벽을 넘어선 사람들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그들이 장벽을 넘기 위해 준비했던 과정과 사용한 물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연 등이 전시되어 있다.여기에다 아이히스펠트 국경박물관은 분단부터 통일까지 40여년간의 역사를 중요한 사건별로, 또는 시대별로 전시하고 있는 점도 이채롭다.# 그뤼네스반트에 대한 보존과 연구아이히스펠트 국경박물관은 박물관 본관 건물 전시물 외에도 다양한 시각 자료들이 야외 전시공간에 전시되어 있다.우선 박물관 본관 건물로 이용하고 있는 입경사무소 건물 주변에 분단 당시 동독 군인들이 사용하던 군용 차량과 헬기 등도 전시되어 있고, 서독으로 망명을 꿈꾸며 장벽을 넘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감시탑도 그대로 남아 있다.감시탑 안에는 당시 군인들이 사용했던 물건들도 그대로 복원해 보여 주고 있다.그 곁에 있었던 동독 지역의 그뤼네스반트 시설물(철책과 감시 초소, 시멘트로 만든 동독 군인의 이동 도로, 감시탑 등)도 넓은 평야와 언덕을 따라 남아 있다.한국의 박물관이 울타리를 쳐 관람객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는 것과 달리 이곳 야외 전시장은 박물관과 사유지를 나누는 울타리가 없어 관람객과 그뤼네스반트를 자전거로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함께 어우러져 관람한다.이렇듯 야외 전시장은 그냥 버려져 있는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다.분단 당시 설치된 철조망이 남아 있지만 통일이 된 하나의 국가이기 때문에 억지로 복원하기보다는 분단 당시 모습이 세월에 녹아들 수 있도록 특별히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대신 그뤼네스반트의 생태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시설물과 식물들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하는 안내문이 곁에 있다.게오르그 바우메어트 아이히스펠트 국경박물관 환경교육팀장은 "분단이라는 문화재는 억지로 만들 수 있는 유형 문화재가 아니다. 과거에는 있었지만 현재에는 사라져 버린 지나버린 역사다. 하지만 분단이 독일인들에게 남겨준 상처는 잊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분단이라는 문화재와 세월이라는 이름의 시간이 잘 어우러지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글/김종화기자 · 사진/김종택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관람객들이 박물관에 전시된 철책을 바라보고 있다.▲ 분단 당시 철책 주변에서 감시활동을 했던 헬리곱터가 야외전시장에 전시돼 있다.▲ 독일 통일 당시 독일국민들이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는 모습.

2014-10-14 김종화

[개발과 보존의 기로에 서 있는 DMZ]인터뷰/게오르그 바우메어트 국경박물관 환경교육팀장

"분단 당시 동·서독은 최소한의 교류가 보장되어 있었다."게오르그 바우메어트(사진) 아이히스펠트 국경박물관 환경교육팀장은 "분단 당시에도 동·서독은 최소한의 교류가 보장되어 있었다. 아이히스펠트 국경박물관은 당시 입출경 시설물을 이용해 만들어진 박물관이다"고 설명했다.바우메어트 팀장은 "동독에서는 자국민들이 서독으로 망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입출경 시설물과 그뤼네스반트 5㎞ 지역까지는 살 수 없도록 했다"고 말했다.이어 그는 "강제 이주를 추진했지만 안 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그는 "아이히스펠트 국경박물관은 분단 40년간의 모습과 통일 당시의 상황이 그대로 전시되어 있다. 과거와 오늘을 통해 미래 독일을 이끌어갈 다음 세대가 건전한 역사관을 만들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고 말했다.바우메어트 팀장은 "아이히스펠트 국경박물관은 단순히 전시물만 있는 게 아니다. 독일 통일 기념일을 전후해 통일 당시의 모습과 순간의 느낌을 재현하는 행사도 하고 있다. 또 세미나와 교육활동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며 분단이라는 게르만족 최대의 상처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생각할 시간도 만들어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글/김종화기자 · 사진/김종택기자※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4-10-14 김종화

[개발과 보존의 기로에 서 있는 DMZ·7]'작은 베를린' 뫼들라로이트

2차세계대전 이후 냉전시대 동·서독으로 경계선정치체제 나뉘어졌지만 주민들 정부에 교류 요청하루 한번 우체부 장벽 넘어 가족·친척 소식 전해정부 허가 받으면 국민들 양국 여행 기회 얻기도강원 고성·경기 연천 등 한반도 '한 마을 두 국가'친인척 생사조차 확인 못하는 남북 '완벽한 단절'접촉 끊지않은 독일, 남·북한 통일시대 좋은 선례"통일은 흥분됐지만 문화적인 이질감이 두려웠다."작은 베를린이라고 불리는 뫼들라로이트에서 만난 독일인들이 말한 통일 당시 이 지역 분위기다.뫼들라로이트는 마을 자체가 동서독으로 분단된 특이한 사연의 마을이다.그렇다 보니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 또한 분단 당시 동독 또는 서독에서 각기 다른 이념의 국가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많다.2년만에 방문한 지난 8월말 뫼들라로이트 국경박물관에서 만난 독일인들은 서로 다른 이념체제에서 성장해서 결혼한 사람들이었다.그들은 통일 당시의 분위기를 묻자 "흥분을 넘어 자칫 폭동으로 갈까 걱정이 앞섰다"고 전했다.상대방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생각과 생활환경의 차이로 인해 갈등이 심했다는 것이다.특히 뫼들라로이트 근교에 위치한 도시인 플라우엔 지역에는 사람들의 충돌을 막기 위해 곳곳에 경찰이 배치될 정도였다.이들은 "40년이라는 분단의 시간을 극복하지 못해 갈등이 있었는데 한국은 60여년 넘게 단절되어 있다면 서로간의 이해가 더 많이 필요하다"며 "꾸준한 대화와 교류만이 통일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작은 베를린 뫼들라로이트뫼들라로이트는 하나의 마을이 하천을 중심으로 동·서독으로 나뉜 곳이다.이런 이유로 독일인들은 작은 베를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독일인들에게 뫼들라로이트는 단지 동서독의 분열기에 하나의 마을이 분단됐기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되고 있는 건 아니다.뫼들라로이트의 분단 역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부터 시작된다.1차 대전이 끝난 후 뫼들라로이트는 바이에른주와 튀링겐주로 나뉘어졌었다.바이에른주에는 교회가, 튀링겐주 지역에는 학교를 비롯한 일반 편의시설들이 포함되어 있었고, 당시에는 주경계선만 나뉘어져 있었을 뿐 서로 이용하는데는 불편하지 않았다.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냉전시대가 시작되며 이념이 다른 국가로 새롭게 태어난 동·서독은 뫼들라로이트에 장벽을 세웠고 서로간의 교류가 단절된다.그렇다고 완벽한 단절은 아니었다.하나의 마을이었기 때문에 가족간, 또는 친척간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양국 정부에 교류를 지속적으로 요청했고 이 요청이 받아들여져 하루에 1회 우체부가 장벽을 넘어 왕래할 수 있도록 했다.# 소통의 끈을 놓지 않은 뫼들라로이트 주민들2년만에 또다시 그뤼네스반트의 취재를 나서며 뫼들라로이트를 찾게 된 건 이 곳에서 독일인들이 40여년간 통일을 준비한 소통의 역사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뫼들라로이트는 도심에서 떨어진 외진 시골 마을이었기 때문에 마을 구성원 대부분이 친인척 관계였다.정치적인 이유로 나라가 분단됐지만 이들에게 분단은 다른 나라 이야기일뿐 한 가족과 같이 지냈던 마을 구성원들은 마을이 나뉘어지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동독 정부에 의해서 장벽이 세워졌을 때도 이들은 서독에 속한 마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소통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고 관철시켰다.뫼들라로이트와 같이 하나의 마을이 분단으로 나뉘어진 곳은 한반도에도 여러 곳이 있다.강원도 고성군의 경우 DMZ가 하나의 군을 2개의 지역으로 나누고 있고 경기도 연천군의 일부 지역도 북한에 편입되어 있어 60여년째 분단 되어 있다.특히 연천군의 백학면, 왕징면 등 2개 면의 일부 지역이 북한에 편입되어 있어서 하나의 행정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독일은 이런 분단된 마을이 정치체제는 나뉘어져 있지만 서로간의 소통은 단절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교류를 허용했지만 한반도는 60여년이 넘도록 단절 된 채 친인척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독일은 뫼들라로이트에만 이런 소통의 기회를 준 것은 아니다.동·서독 정부는 양국 국민이 자국 정부에 허가를 받고 상대 국가를 여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이런 최소한의 교류가 40여년 가까이 서로 다른 정치 체제 안에서 멀어질 수 있는 게르만족을 통일 이후 빠르게 하나의 국가 안에서 화합할 수 있도록 하는 기반이 됐다. 글/김종화기자 사진/김종택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작은 베를린이라고 불리는 뫼들라로이트 마을에 분단의 상징인 철조망과 감시탑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하천을 중심으로 동·서독으로 분단됐던 뫼들라로이트. 동독에서 바라본 서독 시골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분단 시절에 동독 군인들이 사용했던 2만여점의 군사장비들이 뫼들라로이트 국경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독일 뫼들라로이트 국경박물관에서 관람객이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2014-10-07 김종화

[개발과 보존의 기로에 서 있는 DMZ]인터뷰/로베르트 레베게언 국경박물관장

"서로간의 소통이 이뤄져야 통일 이후 빠르게 안정을 찾을 수 있다."로베르트 레베게언(사진) 뫼들라로이트 국경박물관장은 "독일이 통일 이후 빠르게 안정을 찾을 수 있었던 건 단절이 아닌 소통이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로베르트 관장은 "통일이라는 흥분되는 역사적인 사건 속에서도 독일인들은 서로를 어떻게 이해해 나갈까 고민했다. 그런 고민이 오래 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40여년간 완벽한 분단이 아닌 소통이 이뤄졌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이어 로베르트 관장은 "동서독 정부의 꾸준한 대화도 있었지만 민간 차원의 교류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뫼들라로이트는 이런 민간차원의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다"고 소개했다.그는 "한국 사회는 60여년간 서로를 불신하며 대화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점이다. 통일을 생각한다면 서로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로베르트 관장은 "특히 민간차원의 교류는 정말 중요한 일이다. 민간차원의 교류가 끊이지 않아야 한다.한반도도 독일과 같이 소통을 통해 화합의 시대가 열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글/김종화기자사진/김종택기자※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4-10-07 김종화

[개발과 보존의 기로에 서 있는 DMZ]인터뷰/하르츠국립공원 홍보담당 프리드하트 크놀레 박사

하르츠국립공원 홍보 및 지역개발을 맡고 있는 프리드하트 크놀레 박사(사진)는 "하르츠국립공원에 대한 보전가치는 산업화 시기인 200여년 전부터 제기됐지만 통일을 앞두고 자본가들의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해 국립공원 지정이 추진됐다"고 설명했다.하르츠국립공원에는 동서독 분단 당시 휴전선인 그뤼네스반트가 지나고 있다.크놀레 박사는 "분단으로 인해 자연이 파괴된 부분도 있지만 분단으로 인해 사람의 손길이 끊어져 종 다양성과 같은 부분이 잘 보존된 곳 중 하나가 하르츠국립공원"이라고 말한 후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인간과 자연의 차단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이 파괴되지 않도록 인간이 이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만들어 두고 있다"고 소개했다.하르츠국립공원에는 800㎞에 이르는 산책길이 있고 브로켄산 정상에는 분단 당시 동독에서 서독 지역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해 둔 시설물에 전시관과 호텔을 지어 관광객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는 "원칙은 자연보전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의 출입을 무조건적으로 통제한다면 무분별한 난입으로 인해 자연이 피해를 볼 수 있다. 또 하르츠국립공원의 생태계가 얼마나 소중하고 잘 보전되어야 하는지 환경보전교육 프로그램도 만들어 운영해 이용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연을 지켜 나갈 수 있도록 유도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글/김종화기자  사진/김종택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4-09-30 김종화

[개발과 보존의 기로에 서 있는 DMZ·6]통일과 환경 함께 고민한 독일 - 하르츠국립공원

1990년 가치 높은 5곳 국립공원화서독, 동독 도와 환경보전 이끌어산업화·세계대전후 황폐화됐던 하르츠는 통일 결정 이틀전 지정식물 생태계 인위적 개입 최소화 산책길·관광열차 등 친환경개발 독일도 유럽의 여타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자연환경과 사람이 거주하는 도시환경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는다. 베를린과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와 같은 대도시를 벗어나면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은 중세시대가 연상되는 오래된 건물과 그 곳을 오고가는 사람들의 여유로운 발걸음이다.물론 옛 건물 속에 채워져 있는 것들은 현대적인 것들이지만 옛것과 현대적인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다.옛 문화를 지키며 살아가는 독일인들의 생활문화는 자연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숲도 인위적으로 조성하기보다는 자연이 훼손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런 독일인들의 의식은 통일을 앞두고도 작용했다. 20세기초부터 국립공원 지정 논의가 이뤄졌던 하르츠국립공원이 통일이라는 민족 최대의 결정을 2일 앞두고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통일을 앞두고도 자연환경보전을 고민한 독일독일은 분단 이후에도 정치적인 교류뿐 아니라 민간차원의 교류도 꾸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런 교류는 수십년간 단절될 수 있던 문화 교류에 숨통을 열어줘 통일이후 일어날 수 있는 동·서독간의 제도적인, 문화적인 이질감을 최소화, 단일 국가화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독일은 단순히 문화 교류에만 국한하지 않았다.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서독은 동독에 경제원조를 하며 환경보전운동도 이끌어냈다. 그 중 하나가 보존가치가 높은 지역에 대한 국립공원 지정이다.특히 독일은 통일을 이뤄내는 1990년 뮈리츠국립공원과 작센바이츠국립공원 등 보전가치가 높은 지역 5곳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1990년 지정된 국립공원 중 하르츠국립공원과 포어포메른보덴란트샤프트국립공원은 독일 통일 2일전인 10월1일 국립공원으로 지정받았고 두 곳 모두 동독지역에 위치해 있다는 점, 동독 정부에서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통일 독일 정부에 넘겨줬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포어포메른보덴란트샤프트국립공원이 로슈톡 북동쪽의 발트해와 포어포메른의 석호연안 지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하르츠국립공원은 북독일에서 가장 높은 브로켄산(Brocken, 해발 1천141m)을 중심으로 넓은 평야에 녹색 섬처럼 자리하고 있다.하르츠국립공원은 산업화 시기와 제1·2차 세계대전이 진행될 당시 자연 파괴가 심각했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내륙의 녹색 섬 하르츠국립공원을 지켜라독일 위성사진을 보면 하르츠국립공원이 위치한 니더작센주와 작센안할트주의 경계선 주변은 짙은 녹색으로 되어 있다. 마치 평야지역 가운데에 위치한 녹색 섬과 같이 느껴진다.하르츠국립공원은 브로켄산에 둘러싸여 있고, 독일가문비나무와 산딸기 종류인 유럽 마가목류의 나무들, 브로켄산 정상 부근의 고원지대에서만 자라는 브로켄아네모네꽃 등 생물의 다양성 보존을 위해 유럽 최대의 생태보호구역인 '나투라 2000(Natura 2000)'에 지정됐다.하지만 과거 하르츠국립공원은 대표적으로 환경이 파괴된 숲이었다.제1차 세계대전 당시 광산 개발로 인해 숲이 파괴됐고 이로 인해 늑대와 시라소니, 살쾡이 등이 멸종되거나 멸종 위기에 빠졌다. 이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이 발생하기 전 국립공원 지정이 추진됐지만 세계대전과 분단으로 인해 잊혀졌다.분단이 되며 브로켄산 주변에 위치한 댐의 관리문제를 놓고 동서독간의 분쟁이 일어났고 하르츠국립공원 내에 독일 분단선인 그뤼네스반트가 위치한 지역 주변에 군사 시설들이 설치되며 환경이 파괴되는 고통을 겪었다.동·서독을 구분하지 않고 독일 사회에 브로켄산 주변의 환경보전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고 마침내 통일을 이틀 앞둔 1990년 10월1일 동독지역인 작센안할트주 지역을 호흐하르츠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4년 뒤인 1994년 1월1일 니더작센주 지역이 하르츠국립공원으로 지정됐고 관리의 효율성 등을 고려해 2006년 1월1일부터 통합되어 현재의 하르츠국립공원이 됐다.# 자연 중심의 보전 정책을 펼치는 하르츠국립공원하르츠국립공원은 니더작센주와 작센안할트주에 걸쳐 2만4천700㏊에 이른다.하르츠국립공원 외곽지역은 개인 차량으로도 접근이 가능하지만 공원 내부를 접근하기 위해서는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또 유럽은 레저스포츠의 천국이라는 명성에 맞게 독일도 자전거와 트레킹으로 국립공원 주요 지역을 방문할 수 있고, 자전거 하이킹과 도보 트레킹으로 이용할 수 있는 산책길이 800㎞에 이른다.재미있는 것은 1800년대에 사용했던 증기기관차를 관광용 열차로 활용해 브로켄산 정상과 하르츠국립공원 인근 마을을 연결해 주요 교통편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친환경 관광자원에 대한 개발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국립공원내 생태환경 보전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우선 국립공원내 95%를 차지하고 있는 수종인 독일가문비나무가 벌레 또는 환경적인 문제로 고사돼도 인위적으로 수종을 심기보다는 자연적으로 수종이 정착하도록 유도하는 등 식물 생태계에 대해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있다.대신 산업화로 인해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동물에 대해서는 종복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하르츠국립공원은 멸종을 막기 위해 동물원에서 보호하고 있던 유럽 시라소니를 2000년부터 4년간 19마리를 방출했고 최근에는 살쾡이 복원도 추진하고 있다. 글/김종화기자 사진/김종택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북독일에서 가장 높은 브로켄산(해발 1천141m)을 중심으로 넓은 평야에 녹색 섬처럼 자리하고 있는 하르츠국립공원. 국립공원내 95%를 차지하고 있는 독일 가문비나무가 벌레 또는 환경적인 문제로 고사돼도 인위적으로 수종을 심기보다는 자연적으로 수종이 정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브로켄산 정상과 하르츠국립공원 인근 마을을 연결해 주는 증기기관차.▲ 하르츠국립공원은 자연방사한 살쾡이에게 먹이를 주며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2014-09-30 김종화

[개발과 보존의 기로에 서 있는 DMZ·5]독일과 한국, 생태계 보존 상반된 모습

튀링엔 발트 자연공원 그뤼네스반트 정비 남녀노소 자발적 참여가문비나무·하이디 군락 등 자생식물 서식지로 연구 가치 높아봉사 참가 초등학생 "내가 살고 있는 생태계 배우며 중요성 느껴"경기지역 DMZ는 습지 발달보존 노력 미흡 개발 논란만"주민 참여로 생태축 살려야"지난달 28일 오전 독일 동·서독 냉전시대 철의 장막이었던 그뤼네스반트 취재를 위해 방문한 튀링엔 발트 자연공원에서 이색적인 모습을 발견했다. 휴대전화도 잘 연결되지 않는 숲 속 깊은 곳에서 10여명의 사람이 그뤼네스반트 일대를 정비하고 있었다. 이색적으로 다가온 이유는 연령대가 너무 다양했기 때문이다.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유아부터 60대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숲 정비에 나서고 있었다.# 시민사회와 함께 지켜나가는 그뤼네스반트이들이 정비하고 있는 숲에는 독일 가뭄비나무와 자생식물인 하이디 군락이 자라고 있어서 식물학적으로 연구 가치가 높은 곳이라고 한다.하지만 바람을 타고 날아온 여러 식물의 씨앗이 뿌리를 내려 하이디 군락이 파괴되고 있어 인위적으로 군락을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가문비나무와 하이디 군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는 독일 중부지방인 튀링엔 발트 지역의 천연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서다.특히 하이디 군락지가 형성된 지역은 습지가 만들어지기 전 단계의 자연형태를 띠고 있어 자연과학에서 연구 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평가하고 있다.여기에다 동·서독 분단으로 그뤼네스반트 지역에 사람의 발길이 끊기며 튀링엔 발트 지역의 원시 자연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이 지역의 자연 생태계 연구에 중요한 표본이 될 수 있다.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튀링엔 발트 자연공원은 사유지였던 그뤼네스반트 지역을 직접 매입하거나 또는 대체 토지와 교환하는 형태로 공유화하고 있다.취재진의 눈에 들어 온 또 다른 이색적인 모습은 정비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구성이었다.이날 취재진이 만난 사람들은 유아와 초등학생, 중학생이 각각 1명씩이었고 성인은 8명이었다.프란츠 리하르트(8학년)군은 "방학기간 친구들과 숲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 이번 정비 사업 자원봉사 참가를 신청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생태계를 배워서 좋고 그 동안 모르고 있었던 숲의 중요성도 배울 수 있어서 즐겁게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소감을 전했다.성인 중에서 튀링엔 발트 자연공원 소속 직원 1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7명은 모두 인근 지역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튀링엔 발트 자연공원 소속 직원 1명을 제외한 10명이 모두 자원봉사자였다.유아부터 노년기의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참여하고 있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슈미 갈데 튀링엔 발트 자연공원 그뤼네스반트 프로젝트 담당자는 "그뤼네스반트 지역을 정비하기 위해 별도의 인력을 채용할 수 없어 인근 주민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해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그는 "인근 주민들도 이 지역의 역사적으로나 생태적으로 중요한 이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그뤼네스반트 지역을 보존하기 위해 참여율이 높다. 지속적으로 인근 주민들에게 그뤼네스반트를 지켜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도 갖는다. 왜 지켜 나가야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고 설명했다.# 개발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접경지역 습지들한반도 DMZ는 한국의 지형적 특징인 동고서저(東高西低) 지형을 잘 보여주고 있어 학술적으로 연구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가장 동쪽에 위치한 동해안 지역은 험준한 산지와 해안지역으로 형성되어 있고, 중부지역은 백두대간을 잇는 높은 산악지역이다. 그리고 연천군과 철원군 등의 중부 내륙지역은 용암대지로 이뤄져 있고, 서쪽 해안지대는 구릉지와 염습지가 많은 게 특징이다.산악지역으로 되어 있는 강원도지역의 DMZ와 달리 경기도는 지질적으로 용암대지 형태, 그리고 임진강과 한강하구로 인해 습지 생태계가 잘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국제 조약인 람사르협약에 따르면 습지란 '자연적이거나 인공적이거나, 영구적이거나 일시적이거나, 물이 정체하고 있거나, 흐르고 있거나, 담수이거나 기수이거나 관계없이 소택지, 늪지대, 이탄지역 또는 수역을 말하고 여기에 간조시 수심 6m를 넘지 않는 해역을 포함한다'고 정의하고 있다.즉 습지는 갯벌, 호수, 하천, 양식장, 해안은 물론 논도 포함하고 있다.대한민국의 습지보전법에는 습지를 '담수, 기수 또는 염수가 영구적 또는 일시적으로 그 표면을 덮고 있는 지역으로서 내륙습지 및 연안습지'로 규정하고 있다.2008년 창녕 우포늪에서 개최된 람사르 총회 당시 장항습지를 비롯해 임진강과 한강하구 다수의 습지에 대한 보존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하지만 습지만이 아닌 습지 생태계에 영향을 주는 주변 지역에 대한 관리와 그에 따라 지역 사회가 겪어야 할 다양한 문제에 대한 논의는 부족했다.창녕 람사르 총회가 끝난 지 6년여가 지난 현재 정부 주도의 DMZ세계평화공원과 접경지역 일대의 법률적 제한 해제 움직임이 시작되며 습지가 가지고 있는 생태적인 중요성에 대해서는 또다시 잊혀 가는 분위기다.슈미 갈데 튀링엔 발트 자연공원 그뤼네스반트 프로젝트 담당자는 "한반도는 북한 사회가 폐쇄적이기 때문에 보존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없다면 남쪽의 한국만이라도 먼저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한반도 DMZ 생태축을 남북한 모두 살릴 수 있는 중장기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이런 중장기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인근 주민들의 동의와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한데 한국 사회는 이것부터 먼저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김종화기자 사진/김종택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튀링엔 발트 자연공원내에 위치한 그뤼네스 반트는 자원봉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 관리해 나가고 있다.▲ 장항습지. /경인일보 DB▲ 끈끈이주걱. /경인일보 DB

2014-09-23 김종화

[개발과 보존의 기로에 서 있는 DMZ·4]독일 드레스덴과 DMZ세계평화공원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는 화약고로 불리는 한반도에서 DMZ는 60여년간 멈춰 있는 한국전쟁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 왔다.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설치된 DMZ(비무장지대·Demilitarized Zone)는 최첨단 무기들의 경연장으로 부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입장에서는 평화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DMZ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후 전쟁의 상흔으로 물들어 있는 공간을 자연 스스로 극복해낸 공간이다. DMZ는 60여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치열한 경쟁을 벌이던 혼란했던 시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있었다. 그러했기에 DMZ는 전쟁과 개발 논란 속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었다. 혹자들은 DMZ 주변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났던 총격전과 크고 작은 남북한간의 충돌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국지전 성격을 띤 충돌이었을 뿐 한반도 전체가 전쟁의 회오리에 휩싸이지는 않았다.# DMZ세계평화공원 왜 드레스덴인가지난 3월 28일 독일을 방문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5대 명문 공대 중 하나인 드레스덴 공대를 방문해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을 발표했다.한반도와 같이 분단이라는 아픔을 겪었던 독일이라는 국가를 방문해 그들이 일궈낸 통일 과정을 배운다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이 공감을 했다.천안함 사태 이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있던 남북간의 교류와 통일 문제에 대해 공론화를 이끌어 냈다는 점에 대해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의 많은 도시 중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한 드레스덴이라는 도시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의아한 반응이 많았다.드레스덴이 독일 내에서 가지고 있는 상징적인 위치를 안다면 이런 오해는 해소될 수 있다.작센주의 주도인 드레스덴은 엘베강 연안에 위치해 있는 아름다운 도시다. 1711~22년에 건립된 바로크 양식의 츠빙거 궁전을 비롯해 다양한 왕성과 옛 건축물들로 인해 독일의 피렌체라고 불리기도 한다.19세기부터는 독일의 교통·공업 중심지의 하나로 성장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군수물자를 공급하는 주요 도시였다.이로 인해 미·영 공군의 폭격을 받아 구시가지 대부분이 파괴됐었다.드레스덴이 독일의 주요 공업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1875년에 창설된 드레스덴 공대가 중심이 돼서 항공기 제조, 정밀광학기기 기계, 화학 분야 등이 발달했기 때문이다.그리고 드레스덴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기 명화와 루벤스, 렘브란트 등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드레스덴 국립미술관, 드레스덴 교향악단·국민극장 등이 있어 독일인들에게 예술 도시로서도 유명하다.# 엘베강의 신화 드레스덴드레스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영 공군의 집중 폭격을 받아 구도심의 80% 이상이 파괴됐었다.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후 동독 영토로 편입됐던 드레스덴은 동독 지역의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경제난으로 인해 재건 작업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통일을 전후해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구도심의 파괴된 건물들은 옛 사진과 그림, 각종 문헌에 나온 기록을 통해 옛 모습을 추정해 복원하는 과정을 거친다.외형적인 모습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지만 내부는 현대적으로 꾸며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데 불편하지 않게 하고 있다.구도심 건물 중 성당과 왕궁, 관공서 건물을 제외한 일반인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들은 호텔과 음식점 등으로 꾸며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드레스덴 구도심은 독일 통일 25주년을 맞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복원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석재 중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분류해 건축자재로 그대로 사용해 복원을 진행했다.특히 독일은 복원사업이 진행중인 드레스덴 구도심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구도심 복원에만 멈추지 않고 도심을 가로지르고 있는 엘베강에 근대 기록에 많이 등장하는 증기기관선을 현대적으로 복원해 유람선으로 활용하고 있다.도심에서는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거리 공연을 진행하고 있고, 수도사와 중세 상인 등 중세시대 복장을 입은 해설사들이 거리를 오고가며 드레스덴과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스토리텔링도 발굴해 관광객에게 볼거리로 제공하고 있다.중세와 근대 건축물들이 복원되고 있는 드레스덴 구도심과 별개로 독일 남동부 지역 경제 중심 도시로서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공업단지와 신도시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 드레스덴에서 DMZ세계평화공원을 엿보다드레스덴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처참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보았던 도시다.이런 드레스덴이 통일 이후 독일 문화를 상징하는 문화 예술 도시, 그리고 동서독 통일을 상징하는 도시로 거듭난 점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특히 빠른 복원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옛 모습을 완벽히 복원하기 위해 치밀한 준비를 하는 독일인의 모습, 그리고 복원된 각종 문화재를 중심으로 다양한 관광자원 콘텐츠를 개발해 활용하는 모습은 한국 사회에서도 충분히 배워 나갈 필요가 있다.이런 드레스덴에서 한반도 평화와 한민족 통일의 초석이 될 DMZ세계평화공원 구상을 발표한 것은 전쟁으로 파괴된 문화자원을 철저한 준비를 통해 복원해 나가는 독일에서 배워 나가자는 의미가 클 것이다.새로운 프로젝트가 진행될 때마다 옛 것을 파괴하고 개발에만 치중하는 잘못된 개발 문화를 가지고 있는 한국사회의 개발 문화에 옛 문화를 지키고 복원한 후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잉태하는 독일의 모습을 배워 나가야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을 것이다.DMZ는 60여년간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미지의 공간이었다. DMZ세계평화공원은 역사적인 의미뿐 아니라 이런 생태·환경적으로 가치가 높은 DMZ의 가치도 함께 담겨 있어야 한다.드레스덴을 보며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원시 자연을 파괴하기보다는 현재 있는 것을 바탕으로 옛 모습이 어우러진 친환경적인 DMZ세계평화공원을 꿈꿔 본다. 글/김종화기자 사진/김종택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2014-09-16 김종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