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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 큰 기사-컬러콤플렉스·(3·끝)차별과 혐오를 넘어]울타리 밖 '차별금지법'…공존사회 여는 8번째 도전

13년간 7차례 법안 발의·무산정의당 21대 국회서 다시 올려88.5% 찬성여론 "모두 위한 법"2020년 한국사회는 '차별과 혐오'를 걷어내고 공존사회로 나아가는 디딤돌을 마련할 수 있을까. 지난 2007년 처음 시도된 차별금지법은 7번의 실패를 거듭했다. 8번째에 성공해 '칠전팔기(七顚八起)'의 기록을 써내려갈 수 있을 지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대한민국헌법 제11조 1항은 평등권을 보장한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밝히고 있다.하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존재한다. 그것은 북한 프레임이 씌워진 '레드 콤플렉스'가 될 수 있고 '무지개'로 상징되는 성 소수자일 수 있다. 외국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온 이주노동자가 차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편견과 혐오를 지양하기 위한 법적 장치인 '차별금지법'은 13년 동안 총 7번 발의돼 모두 폐기되거나 철회하는 등 난항을 겪었다.이번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심사하고 있는 차별금지법안은 8번째 시도다. 정의당은 8번째로 21대 총선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정책공약으로 내세웠고,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지난 6월29일 '차별금지법안'을 대표 발의했다.이 법안은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용모, 혼인 여부, 임신 또는 출산,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 고용형태, 사회적 신분 등에서 합리적인 이유가 없는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채용과정에서 성별 등을 기준으로 채용 인원수를 구분하거나 서류 전형이나 면접 시 직무와 관련 없는 성별 등의 정보를 요구하는 등의 행위를 금하고, 성별 등을 이유로 교육활동에 대한 지원이나 교과 과정을 다르게 하지 못하게 하는 등 차별에 대한 경우를 구체화했다.국가인권위원회 권고 조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 부과 등 차별 행위 시정에 강제성을 부여하기도 했다.차별 금지 법률 제정에 대한 찬성 여론도 높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진행한 '2020년 차별에 대한 국민의식조사'에서 응답자의 88.5%가 차별금지 법률 제정에 찬성했다. 차별 금지 법률에 찬성하는 응답자 비율은 성, 연령대, 거주지역별로 유의미한 차이 없이 전체 결과와 유사했다.일각에서는 차별이 비단 소수자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정혜실(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이주민방송 대표는 "차별은 소수자뿐 아니라 각 영역에서 우리 모두가 받을 수 있는 문제"라며 "차별금지법은 우리 모두를 위한 법"이라고 말했다. → 연혁 참조■ 차별금지법2007년 처음 정부가 발의했던 차별금지법은 차별의 범위를 성별, 연령, 인종, 피부색, 출신 민족, 출신 지역, 장애, 신체 조건, 종교, 정치적 또는 그 밖의 의견, 혼인, 임신, 사회적 신분, 그 밖의 사유 등 13가지로 정했다. 하지만 지난 6월 발의된 차별금지법은 차별의 정의를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신체 조건, 혼인 여부, 임신·출산, 가족·가구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고용 형태, 병력 또는 건강, 사회적 신분 등 23가지로 확대했다.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사진은 지난 2018년 9월 8일 인천시 동구 동인천역북광장에서 열린 '인천퀴어문화축제' 행사장에서 참가자들과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대립하고 있는 모습. 2018.9.8 /경인일보DB

2020-10-27 경인일보

[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정혜실 이주민방송 대표

파키스탄인 남편, 입국심사부터 차별비영리단체 만들어 본격 '인권 운동'한가지씩 개선 '평등 수준' 상향 한계 "자신들이 필요해 불러놓고 정작 한국에 정착할 권리를 보장하는 데는 소홀해요. 한국 정부가 이주민을 대하는 이중적 태도지요."정혜실 이주민방송(MWTV·Migrant World TV·사진) 대표가 말했다. 정 대표는 27살이던 지난 1994년 파키스탄 남성과 결혼한 것을 계기로 한국의 인종 차별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 파키스탄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김포공항 입국 심사대를 통과하려는데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남편만 따로 불러 한 시간 넘게 추궁했다. '어떻게 한국 여성과 결혼했느냐'는 것이었다. 정 대표는 "피부색에 따른 차별이 그렇게 심각한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차별은 법적으로도 이어졌다. 지난 1997년 국적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한국 여성과 결혼하는 외국인 남성은 한국 국적을 받기 어려웠다. 외국인과 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역시 한국 국적을 받기 어려웠다. 정씨는 서류상 미혼, 두 자녀들은 외국인이 됐다. 정 대표는 2000년부터 안산 외국인노동자센터(현 안산이주민센터)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지난 2004년 이주민방송의 전신인 '이주노동자의 방송'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인권 운동을 시작했다. 이주민방송은 이주민이 자신의 이야기를 미디어 콘텐츠로 전하는 비영리단체다. 이주민과 선주민이 더불어 살아가며 겪는 이야기를 전하는 '이주민라디오(MWFM)'를 운영한다. 인권 운동가가 마을을 직접 찾아가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는 '평등UP! 마을UP!'도 유튜브 채널 '이주민방송'에서 볼 수 있다. 매년 이주민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한다. 지난해 열린 제12회 이주민영화제 슬로건은 '우리는 모두 이주민이다'였다.최근 이주민방송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이슈는 '고용허가제'다. 한국은 중국과 수교 이듬해인 지난 1993년 산업기술연수생 제도를 시행해 이주민을 본격적으로 불러들였다. 인권 침해 등 논란이 일자 지난 2004년 이 제도를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바꿨지만 노동자가 자유롭게 직장을 옮길 수 없는 등 인권 침해 논란은 없어지지 않았다.'고용허가제'에서 이주민은 한 직장에서 일하며 '성실 근로자'로 인정받아도 5년 이상 근속하지 못한다. 또 사업장을 옮길 권리도 임금 체불, 폭행 등 엄격한 요건을 충족할 경우에 한해 최대 3번으로 제한된다. 정 대표는 이에 대해 "영주권을 주지 않기 위한 것"이라며 "이주민을 노동력으로만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많은 차별은 복합적으로 일어난다. 이주민이면서 성 소수자일 수 있다. 한 가지의 차별만 개선해서는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고 사회 전반의 평등 수준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 정 대표가 지난 2010년부터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으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성희롱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어요. 마찬가지로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만 차별이 무엇이고 왜 잘못됐는지 사회적 인식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이주민방송을 통해 이주민 인권 보장이 곧 한국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는 길이라는 걸 설득하고 싶어요."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2020-10-27 경인일보

[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김한올 정의당 경기도당 성소수자위원장

기존의 개별법안으로 '명확한 판단' 어려워교육 변화·미디어의 책임감있는 태도 필요"차별금지법 제정은 평등과 정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김한올(사진) 정의당 경기도당 성소수자위원회 위원장은 현재 국회에서 심사 중인 차별금지법안에 대해 이 같은 생각을 밝혔다. 그는 "차별금지법은 2007년 첫 발의 이후 난항을 겪고 있는데 이런 역사 속에서 정의당은 꾸준히 시민들을 설득하고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노력을 지속해 추진해왔다"며 "지난 총선에서 공약했고 정당적 역량을 모아 발의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김 위원장은 기존에 차별을 금지하는 개별 법안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장애인차별금지법, 남녀고용평등법 등 각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있지만 차별은 출신 지역, 성별, 교육 등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개별법으로는 차별을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그는 "국가인원위원회법은 주어진 권한 자체가 강제성이 부여되지 않은 '권고'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이번에 발의된 법안은 차별 시정 권고를 지키지 않을 때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권고 수용률을 높이는 장치들이 마련됐다"고 덧붙였다.현재 차별금지법은 여러 반대의 목소리에 부딪혀 있다. 기독교는 물론 재계에서도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개신교는 종교적인 이유로 반대를 하고 있고, 재계에서도 반대 여론을 형성하는데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며 "채용 과정에서 차별 금지 등으로 기업의 자율권이 침해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이어 "차별금지법안과 같은 첨예한 반대 의견이 형성될 때마다 나오는 논리가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못했다'는 것인데 법안 제정이 오히려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며 "현재 발의된 차별금지법안은 인권과 차별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돼 있어 지금까지 피상적으로 생각했던 개념들에 대해 합의를 이루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 사회에서 차별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들로 교육 과정의 변화와 미디어 매체들의 책임감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공교육에서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가치'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며 "용어를 사용할 때도 중립적이고 차별이 배제돼 있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2020-10-27 경인일보

[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2016년 한국 정착 예멘 출신 다나트씨

전쟁 피한 난민… 차별·편견 견디며 일상 생활공동체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 두 아들 걱정난민을 비롯해 외국에서 온 이주민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따뜻하지만은 않다. 2016년 한국에 정착한 예멘 출신 다나트(여·가명)씨는 공격적인 말투로 "왜 한국에 왔느냐"라고 하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했다. 예멘은 2015년부터 현재까지 내전이 진행되고 있다. 다나트씨는 전쟁을 피해 한국에 왔고, 난민으로 받아들여졌다. 두 아들과 함께 한국에서 생활하는 그는 수차례 혐오 섞인 발언을 들어야 했다. 2018년에 가장 심했다. 당시 예멘에서 500여명이 제주도로 와 난민신청을 했다. 이를 두고 우리 사회는 비판적인 목소리를 쏟아냈다. 난민 인정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으며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예멘 난민 추방을 요구하는 의견이 올라왔다. 다나트씨는 당시를 "힘든 시기였다"고 했다. 그는 "이전까지 친절하게 대해주던 분들도 태도가 차가워졌다"며 "많은 분들이 화를 내는 것처럼 '왜 한국에 왔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같은 해 그는 작은 박스 제조공장에 취직했다. 이곳에서 그는 욕설과 폭언을 들어야 했다. 공장 사장은 외국인에게만 큰 소리를 내고 욕을 했다고 한다. 다나트씨는 어렵게 구한 일자리이지만 2개월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다나트씨는 초등학교 1, 3학년인 두 아들에 대한 걱정도 크다. 그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친구들이 많지 않은 것 같다"며 "함께 거리를 걷다가 주변에 또래 아이들이 보이면 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피부색 등의 차이로 아이가 학교에서 적응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는지 걱정이다. 그는 한국사회가 외국에서 온 이주민을 같은 공동체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다나트씨를 보는 시각도 냉랭해졌다. 다나트씨는 "물론 따뜻하게 대해주시는 분들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도 많다"며 "코로나19와 관련해 외국인을 더 위험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고 했다.다나트씨는 이주민이자 싱글맘이다. 차별과 편견을 견디면서도 자녀들을 키우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언어 등의 이유로 취직을 하는 것도 어렵고, 종교적 이유로 히잡을 쓰는 것도 지적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그는 "한국 사회가 이주민에게 더욱 열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2020-10-27 경인일보

[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말이 칼이 될 때' 저자 홍성수 교수…혐오의 권리 누구도 없다

'반대할 자유' 그럴듯하게 포장 하지만결국 소수자 위한 제도 만들지 말란 것차별 바탕에는 '적과 나' 이분법적 사고경제·사회적으로 어려울수록 더 위력적"누군가를 혐오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우리 사회에서 혐오 정서는 아직도 확산하고 있다. 혐오를 바탕으로 한 차별도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 동성애를 비롯한 성 소수자에 대해서는 "동성애를 반대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2018년 출간된 '말이 칼이 될 때(부제:혐오표현은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의 저자인 숙명여자대학교 홍성수(법학부) 교수는 "특정한 정치적 의견이나 성적 지향·정체성 등을 가졌다고 해서 그들을 혐오하거나 차별할 수 있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며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나 아동, 노인을 차별하거나 혐오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성향 등을 이유로 한 차별·혐오도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는 우리 사회의 혐오 정서가 오래전부터 존재했으며 과거에는 '혐오'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을 뿐이라고 했다. 대표적으로 '레드 콤플렉스'를 꼽았다. 이념 갈등 등으로 불렸으나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이뤄진 폭력이라는 점에서 혐오와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다. 현재는 특정 정치적 성향을 상대로 한 혐오 정서가 다양한 방식으로 확산하고 있다고 했다.특히 '반대할 자유'를 이유로 혐오를 정당화하는 주장을 비판했다. 일각에서 종교의 자유를 이유로 '동성애를 반대할 자유'를 달라고 하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홍 교수는 "그럴듯하게 포장하지만 결국은 소수자를 위한 법과 제도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라며 "가부장제, 남성중심 등 여러 가치관을 가질 수 있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이 표출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이분법적 사고'가 혐오·차별 확산의 바탕에 있다고 진단했다. '적과 나를 나누면서 적이 없어져야 내가 살 수 있다'는 식의 인식이 팽배하다는 것이다. 홍 교수는 "혐오와 차별을 부추기는 이들은 피아를 명확히 구분하면서 상대를 공격하는 방식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경제적·사회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했다.과거 '빨갱이'라는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이가 있고, 지금도 성 소수자와 외국인 노동자는 여러 차별과 혐오를 견디고 있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익명을 바탕으로 한 혐오 표현은 늘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를 지양하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홍 교수는 "과거와 같은 일이 쉽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며 점차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어떤 '계기'를 통해 혐오와 같은 부정적 인식이 순식간에 확산할 수도 있다"고 했다.우리 사회가 공존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제도적 장치와 인식 개선이 중요하다고 했다. 또 정치인의 역할도 강조했다. 홍 교수는 "최소한 주류 정치에서만큼은 혐오와 선을 그어야 한다"며 "그렇다고 해서 혐오가 없어지진 않겠지만 극단적인 형태로 확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2020-10-27 경인일보

[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차별·혐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796명에 물었다

응답자의 10.5% '나도 성소수자' 답변'자녀가 성소수자와 친밀' 절반 '허용''지인이 동성애자란 사실 알게되면?'55.2% '관계 변화 無'… 23.8% '변화'대다수 '차별은 잘못' 큰 틀 공감하나'교과 도입' '동성혼' 반대비율 높아져차별과 혐오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 차별·혐오의 대상자로 지목되는 소수자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고, 앞으로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경인일보는 지난 8일부터 19일까지 자체 페이스북 계정에서 네이버 오피스 폼을 이용해 '차별 및 혐오 실태에 대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했다.796명이 응답한 이번 조사에서 지인 중에 성 소수자가 있다는 응답이 37%로 나왔다. 또 자신을 성 소수자(동성애자, 양성애자)라고 답한 응답자의 비율은 10.5%(83명)에 달했다. 우리 사회에 성 소수자가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성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어떨까. '지인이 동성애자 등 성 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관계에 변화가 있을 것 같은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23.8%는 '관계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19.2%는 '중립'이라고 했다. 응답자들은 "동성이기 때문에 약간은 있을 것 같다", "혐오하기 때문에" 등의 이유를 들었다. 절반 이상인 55.2%는 '변화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내가 알던 사람 자체는 같은 데 변화가 있을 이유가 없다"는 등의 응답도 나왔다.'자녀가 동성애자 등 성 소수자와 친밀하게 지내는 걸 허용하겠느냐'는 질문에 찬성한 비율은 49.7%로, 앞선 질문에서 '변화가 없을 것 같다'고 답한 비율 55.2%보다 낮았다.이유를 주관식으로 물었을 때 "'내로남불'이지만 내 아이는 (성 소수자가) 아니었으면 하는 게 부모 마음"이라는 대답도 눈에 띄었다.차별 경험에 대해 물었을 때 설문 참여자 중 573명(72%)은 자신이 성별, 성적 지향, 이념, 인종 등을 이유로 차별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또 614명(77.1%)은 다른 사람이 차별받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차별을 받은 장소(복수응답 가능)는 직장(41.5%)이 가장 많았고 학교(30.7%), 가족(20.5%), 이웃(13.7%)의 순이었다. 다른 사람이 차별받는 걸 본 장소도 직장(46.4%), 학교(38.6%) 이웃(21.1%) 가족(14.8%)의 순이었다.차별을 받거나 보았어도 대다수는 이를 바꾸기 위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차별을 경험했을 때 어떻게 대응했습니까'(복수응답)를 물었을 때 응답자 중 394명이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았다'(49.5%)고 했다. 가해자에게 시정을 요구했다고 한 답변은 142명(17.8%), 시민단체나 공공기관에 도움을 요청한 응답자는 22명(2.8%)이었다.'차별받는 것을 본 적이 있었을 때 어떻게 대응했습니까'(복수응답)라는 질문에는 '당사자의 이야기를 들어줬다'(331명·41.6%)가 가장 많았고, '아무 행동을 하지 않았다'(258명·32.4%), '가해자에게 시정을 요구했다'(128명·16.1%) 순이었다. 시민단체나 공공기관에 도움을 요청한 경우는 26명(3.3%)으로 가장 낮았다.응답자 대다수는 큰 틀에서 차별이 잘못됐다는 데에 공감했다.'소수자가 다른 국민과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전체의 7.7%만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서도 14.5%만 반대 의견을 나타냈다.그러나 구체적인 정책 변화를 묻는 질문에는 반대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다.학교 정규 교육 과정에서 동성애나 제3의 성을 가르치는 데 대해 전체의 22%가 반대했다. 동성혼 법적 허용에 대해선 26.7%가 반대했다. 또 응답자의 21.8%는 유색인종이 대통령이 되는 것에 반대했다.마지막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기술해달라는 요청에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지향합니다", "소수자도 함께 사는 이웃이다", "그냥 다른 거예요, 틀린 게 아니라. (후략)", "(전략)유색인종 및 성 소수자는 싫음. 그들의 권리주장과 이득을 위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다면 안 받는 게 낫다고 생각함(후략)".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일러스트. 2020.10.27 /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

2020-10-27 경인일보

[통 큰 기사-컬러콤플렉스·(2)빛나지 못하는 무지개]다름을 인정한 엄마는 '내편이 됐다'

중학교때 동성애자 정체성 깨달은 정예준씨, 4년전 털어놔부모님, 성소수자 부모모임 등 나가 조언 구하고 위로받아"가족인 내가 내 아이 부정하면 누가 지키겠나" 받아들여A="동성애 반대하십니까?", B="반대하지요."A가 재차 묻는다. "동성애 반대하십니까?", B는 같은 답을 한다. "그럼요."2017년 있었던 대통령선거 후보 토론회의 모습이다. 이때 A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B는 문재인 후보다. 선거결과 A는 2위로 낙선했고, B는 당선돼 대통령이 됐다. 두 후보의 합산 득표율은 65.1%다. 우리 사회가 성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했던 이들은 무엇을 반대할까. 동성애는 행위가 아니라 존재다. 성 소수자 모두가 그렇다. 다수의 기준과 비교했을 때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이 다르게, 그냥 그렇게 있는 것이다.고양 일산에 사는 강선화(52)씨는 4년 전 자녀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이 토론회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난 18일 강선화·정예준(25) 가족을 인터뷰했다. 강선화씨는 "'내가 내 아이를 부정하면 누가 내 아이를 지키겠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들 예준씨가 커밍아웃한 뒤 든 여러 생각 중 하나였다. 예준씨는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남자아이를 짝사랑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았다. 처음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그 친구를 피해 다녔지만 이내 다른 남자아이에게 두근거림을 느꼈다. 고민 끝에 20살이 됐을 때 가장 친한 친구에게 자신이 남자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고민 끝에 어렵게 말했는데 친구는 예상외로 시큰둥한 반응이었어요. '뭐 어쩌라고'라는 투였죠. 이후 1년 동안 다른 친구들에게도 알렸고, 부모님에게도 말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정예준씨는 편지로 부모에게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렸다. 그가 식탁에 올려두고 떠난 편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부모님께. 심호흡을 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저는 사실 동성애자예요'. 아들이 게이일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부는 큰 충격을 받았다.직업이 항공승무원인 선화씨는 "일 때문에 다음날 미국으로 떠나야 했는데, 비행기 탑승 전부터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48시간 가까이 잠을 못 잤다"며 "아이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면 아이가 두 번 다시 다수의 삶으로 못 돌아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불안했다"고 했다. 선화씨는 힘들게 아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에게 시간을 주면 좋겠다. 어떻게든 잘 헤쳐나가고 싶은데 아직은 힘이 드네'.한국에 남아 있던 남편 정동렬씨는 아들의 권유로 커밍아웃 사흘 만에 '성 소수자 부모모임'에 나갔다. 같은 처지의 부모에게 위로를 받고 아들과 함께 조언도 구했다.선화씨가 미국에서 돌아오고 세 가족이 만났다. 소주에 삼겹살을 곁들이며 예준씨는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선화씨는 "아이가 혹시 우리한테조차 버림 받을까봐 500만원 정도 모아뒀더라구요. 부모한테 말도 못하고 혼자서 얼마나 끙끙 앓았을까 하는 생각에 안쓰러웠죠"라며 그날을 회상했다. 또 "가족인 내가 아이를 부정하면 누가 내 아이를 지키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말했다.커밍아웃을 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선화씨는 남편과 함께 '성 소수자 부모모임'에 참여했다. 처음 자기소개를 할 때 '저는 한 달 전에 아들이 게이라고….'라며 말을 못 잇고 계속 울었다. 4년이 지난 지금은 모임 운영진을 맡고 있다.예준씨의 커밍아웃을 계기로 선화씨 가족은 모두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선화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남편과 함께 성 소수자 관련 집회에 참석한다. 서울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에서 '나는 게이 아들을 둔 부모입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군대내 동성 간 성행위 처벌법인 군형법 제92조 6항 폐지를 위한 집회에도 참여한다. 예준씨도 인권단체에서 제대로 공부하며, 게이합창단 단원으로 무대에 서고 있다.많은 성 소수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감춘다.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을 드러내지 못해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성 소수자가 많다. 드러내놓고 그들의 존재를 "반대한다"고 하는 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선화씨는 많은 성 소수자가 마음 놓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더라도 불편함 없는 사회가 되길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서 차별 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캐나다에 있을 때 만난 사람들은 자식이 커밍아웃을 해도 우리처럼 슬퍼하지 않더군요.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등의 걱정이 없기 때문이겠죠. 한국 아이들이 커밍아웃을 하지 못해 힘들어하는 시간을 줄이려면 차별금지법이 꼭 필요합니다."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4년 전 아들 정예준(25·오른쪽)씨가 가족들에게 자신이 성 소수자임을 밝혔을 때 어머니 강선화(52)씨는 큰 충격 속에서도 아들을 품고 이해하기로 했다. 아들의 고백 이후 가족들은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등 성 소수자를 대변하는 '인권 운동가'로도 활동 중이다. 지난 18일 고양 일산에서 만난 강선화씨는 "우리 사회가 성 소수자들이 마음 놓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도 불편함이 없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0.10.26 /기획취재팀

2020-10-26 경인일보

[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트랜스젠더 이한결씨의 '새 인생'

여성으로 출생… 정체성 고민 털어 놓자어머니 "차라리 레즈비언으로 살았으면"수술후 법원 성별 정정 기각, 1년뒤 허가"다른 소수자 상담… 함께 변화 만들것""모두가 여자 혹은 남자 어느 한 성별로 저를 규정하려 해요. 저는 그냥 저인데."이한결(26)씨는 트랜스젠더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수술을 통해 남성이 됐다. 이씨와 같은 트랜스젠더는 미국에 100만명 정도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2017년 미국 공중보건 저널(Public Journal of Public Health)은 인구 10만명 당 390명이 트랜스젠더로 확인됐다는 내용을 게재했다. 우리나라는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10만명 안팎일 것으로 추정된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한 MtF(Male to Female)가 더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씨와 같은 FtM(Female to Male)은 트랜스젠더 중에서도 소수다.그는 "제가 가진 성 정체성대로 살기 위해 가족을 설득했고, 수술을 받고도 법정에서 성별 전환이 거부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가 자신의 성 정체성대로 살기 위해 노력한 기간은 10년이 넘는다.이씨는 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6~7세 때부터 자신이 지정받은 성별(sex)은 여성이지만, 사회적 성별(gender)은 남성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등학교 학예회 때 치마 대신 바지 한복을 입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여성에게 이끌렸다. 당시 모습을 보고 이씨의 어머니는 '딸이 레즈비언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그는 "학교 다닐 때부터 가슴이 나오는 게 싫어서 없앴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그는 중학생 무렵부터 어머니에게 가슴 제거 수술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성인이 돼 뒷자리가 '2'로 시작하는 주민등록번호를 받은 후에도 한결씨는 여성 애인을 소개하는 등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 이씨의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레즈비언으로 살면 안 되겠느냐"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가족 입장에서는 수술을 해야 하고, 타고난 생물학적 성별과 다르게 사는 트랜스젠더보다는 레즈비언으로 사는 게 나아 보였던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씨는 "틈날 때마다 성별 정체성과 성적 끌림, 젠더에 대해 알렸다"며 "어머니는 피곤해 하고 간혹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러다 가끔 질문이라도 하면 너무 반가워서 열정적으로 설명했다"고 말했다. 3년 전인 2017년 마침내 어머니를 설득했고,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법적으로 성별을 바꾸기 위해 그해 11월에 가슴 제거 수술을, 이듬해 1월에 포궁(자궁) 적출 수술을 받았다. "수술날 마취가 덜 풀려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입으로 어머니에게 말했어요. '고맙다'고. 어머니는 '이제 만족하냐?'고 하셨는데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수술은 끝났지만 또 다른 난관이 있었다. 성별정정허가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된 것이다. 그는 다른 법원에 다시 신청했다. 성별정정허가신청은 판사의 재량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씨는 성장환경진술서에 '어릴 적부터 파란색과 로봇을 좋아했다'고 쓰는 등 한국 사회의 성별 고정관념에 맞춰 조사에 임했다. 인내심을 발휘한 끝에 지난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이씨는 퀴어 커뮤니티에서 '봉레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뮤지컬 아카데미 '밤 아카데미'에서 영상 촬영과 편집을 맡고 있고, 트위터와 유튜브에 '성 소수자의 일상'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성 정체성대로 살지 못한 기간을 '벽장 안에 있었다'고 표현했다."벽장을 나오기 전 저는 어머니와 한참 싸우고 울던 사람이었지만 이제 '오픈리(직장 가족 대중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한 성 소수자)'가 돼 다른 성 소수자들의 고민을 상담해주기도 해요. 이 변화의 중심엔 어머니가 있고 앞으로도 많은 변화를 함께 만들 것을 의심치 않아요."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지난해 여성에서 남성으로 법적 성별 정정에 성공한 이한결(26)씨. 2020.10.26 /이여진 기자 aftershock@kyeongin.com

2020-10-26 경인일보

[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퀴어 관점 문학평론 팟캐스트 진행자 '보배·다홍씨'

"친구들 알지만 가족은 까맣게 몰라"법이 차별 묵인할 때 문학으로 위로"우리 방송 성감수성 높이길 바라"성 소수자가 커밍아웃을 주저하는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생계'다. 직장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은 이들이 성 정체성을 숨기도록 압박한다.퀴어문학플랫폼을 표방하는 '무지개책갈피'에서 문학평론 팟캐스트 방송 '무책임라디오'를 진행하는 보배(32·활동명)씨도 이런 경우다. 보배씨는 "22살 무렵부터 친구들에겐 제가 성 소수자라는 사실을 이야기했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른다"며 "해고될까 하는 걱정에 직장에도 전혀 알리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지난 2000년 방송인 홍석천씨가 자신이 게이임을 커밍아웃했다. 이는 성 소수자 관련 담론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됐다. 이듬해인 2001년엔 트랜스젠더 하리수씨가 광고 모델로 지상파 방송에 데뷔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현재도 여전히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보배씨는 "이성애자들은 연애 사실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직장을 잃을까 걱정하지 않는다"며 "성 소수자는 능력이 충분하더라도 성적 지향 때문에 해고를 걱정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보배씨와 함께 '무책임라디오'를 진행하는 다홍(23·활동명)씨 역시 "군형법 제92조 6은 항문성교를 한 사람을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는 성 소수자에 대한 엄연한 차별"이라며 "지난해 인천퀴어퍼레이드에 갔을 때 일부 집단이 '동성애는 죄다,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라'며 제 몸을 밀쳐서 그 충격으로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다"고 말했다.법과 제도가 차별을 묵인할 때 이들은 문학에서 위로를 받았다. 보배씨는 지난 2015년 다른 성 소수자와 함께 퀴어문학을 소개하고 비평하는 비영리단체 '무지개책갈피'를 창립했다. 지난해부터는 이 단체 회원 3명과 퀴어문학을 평론하는 팟캐스트 '무책임라디오'를 진행하며 청취자를 만난다.모두 30회 진행된 이 방송은 회당 누적 조회수가 1천회가 넘는 등 반응이 좋아 지난달엔 첫 광고를 받기도 했다.퀴어 당사자의 관점으로 문화 콘텐츠를 비평하는 것이 무기다. "여성의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지만 전형적인 '메일 게이즈'(남성이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시선) 양상을 보이고 있다"(제29화 '이제 해도 될까요, 아가씨?' 중)와 같은 비평은 퀴어 청취자에겐 공감을, 비퀴어 청취자에겐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보배씨는 "대놓고 혐오 발언을 하는 사람이 드물어졌다고 해도 무례한 발언들은 일상에 여전히 존재한다"며 "수다를 엿듣는 것 같은 우리 방송이 한국 사회의 성적 감수성을 높이길 바란다. 이런 변화가 성 소수자가 해고될 걱정 없이 직장에서 커밍아웃하는 시기를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지난 14일 서울시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퀴어 문학 동아리 '무지개 책갈피' 회원 보배(왼쪽·활동명)씨와 다홍(활동명)씨가 팟캐스트 녹음에 앞서 경인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성 소수자 임을 밝히면 직장까지도 잃을까 걱정된다며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한국 사회에서 계속되고 있다고 했다.

2020-10-26 경인일보

[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다양성 존중' 갈 길 먼 우리 사회

사회 분위기 탓에 '공개' 많지 않아100% 가까워야 평등 '무지개 지수'한국 8.08%… 러 10.2% 보다 열악성 소수자는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 신체상 성적 특징 등에서 사회적 소수자인 사람들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게이나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렌스젠더 등을 지칭하며, 이를 통칭해 '퀴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성 소수자를 상징하는 색은 빨강부터 보라까지 '무지개'다.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의미로, 성 소수자의 상징이 됐다.# '성 소수자' 다양한 색 품은 무지개와 닮아일반적으로 타인에게서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는 성적 지향에 따라 남성이 남성을 좋아하는 게이, 여성이 여성을 좋아하는 레즈비언으로 불린다. 만약 자신의 성 정체성이 태어날 때 성별과 다를 경우 전환 수술을 하기도 하는데 이들은 트랜스젠더다. 성 소수자들은 여기에 머물지 않고 복합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게이이면서 트렌스젠더일 수 있다. 또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간성(intersex)도 존재한다.성 소수자가 한국에서 얼마나 존재하는지 보여주는 정확한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사회적 분위기나 주변의 시선 탓에 성 소수자임을 떳떳하게 밝히려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성 소수자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2∼5%가량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통계는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고 추정한다.지난해 인천에서 열렸던 '인천퀴어 문화축제'에 5천여명이 참가하는 등 성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조금씩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소수자가 광장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한국 성소수자 인권 '세계에서 가장 낮고, 최근에는 하향세'SOGI(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 연구회는 매년 '한국 LGBTI 인권현황'을 발표한다. LGBTI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인터섹스를 뜻한다.'2019년 한국 LGBTI 인권현황' 보고서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성 소주자 인권지수(무지개 지수)는 8.08%로 전년 11.7%보다 3.62%p 감소했다. 유럽 49개국과 비교하면 46위 러시아(10.2%)보다도 열악한 수준이다. 한국보다 성 소수자 인권지수가 낮게 평가된 국가는 아르메니아(6.49%), 터키(5.16%), 아제르바이잔(3.33%)에 불과했다.무지개 지수는 수치가 100%에 가까울수록 성 소수자가 평등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지난해 한국 사회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동성 간 혼인 등이 제도화되지 않은 점이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하고 있다.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 표현이 계속됐고, 혐오 범죄를 규제하는 법률이나 정책이 없다는 점도 감점 요인으로 들었다.퀴어 문화축제 광장 사용이나 성 소수자 인권단체의 사단법인 설립이 불허된 사례, 자녀가 있는 트랜스젠더가 성별 정정을 해도 가족관계등록부에서는 '부'나 '모' 등 성별 전환 이전과 같이 표기되는 점도 이번 평가에 반영됐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9 사회지표(Society at a Glance 2019)' 중 국가별 동성애 수용도(2001∼2014년 기준)를 보면 한국은 2.8점으로 조사 대상 36개 국가 중 32위에 머물렀다. OECD 평균인 5.1점의 절반 수준이다. 반면 같은 아시아 국가인 일본은 4.8점으로 25위를 기록했다.이런 인식은 시민들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인천시가 지난 1월 발표한 '2019 인천의 사회지표'를 보면 여성, 아동·청소년, 노인, 장애인, 이주외국인, 결혼이민자, 중국 동포, 북한 이탈주민, 성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로 분류된 9개 그룹 중 성 소수자는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55.4%)'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성 소수자에 대해 '존중받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도 8.8%에 그쳐 가장 적었다.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2020-10-26 경인일보

[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 황인근 집행위원장

퀴어축제서 축복기도 '2년 정직' 처분목회할 수 없는 '수위 높은 징계' 받아동조 아닌 '소수자 사랑' 실천했을 뿐"성 소수자에 대한 축복기도는 죄가 될 수 없습니다."지난 15일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온누리큰빛교회에서 열린 교회 재판에서 기독교대한감리회(이하 기감)는 이동환 수원영광제일교회 담임목사에게 2년 정직을 선고했다. 이 목사는 지난해 8월 인천퀴어문화축제에서 열린 '성 소수자 축복식'에서 집례자로 나서 이들에게 꽃을 뿌리고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했다.교단 측은 이 목사의 행동이 교단 헌법(교리와 장정)에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로 규정한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며 이 목사를 재판에 넘겼다.재판 결과가 나온 직후 이동환 목사를 변호했던 '성 소수자 축복기도로 재판받는 이동환 목사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판결에 불복해 재심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지난 16일 경인일보와 만난 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 황인근 담임목사(김포 문수산성교회)는 이번 판결에 대해 "2년 정직은 정직 중에서도 가장 수위가 높은 징계로 면직에 준한다고 볼 수 있다"며 "설교, 세례 등 목사로서 목회를 할 수 없도록 한 것인데 축복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이런 징계를 받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대책위는 이 목사의 행동이 '동성애를 찬성하고 동조'한 것이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었다고 강조했다. 황 목사는 "교회는 다친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데 앞장서서 차별과 혐오를 선동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어 "이 싸움은 이동환 목사를 구명하겠다는 싸움이 아니다"라며 "합리적이고 건강한 신앙으로 교회가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싸움"이라고 강조했다.이 목사는 평소 해고 노동자들의 인권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교회 청년 중 한 명이 이 목사에게 자신이 성 소수자임을 밝히면서 동성애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황 목사는 "커밍아웃을 한 청년을 교회에서 내칠 수도 없었고 교인들도 점차 이 사실을 받아들이게 됐다"며 "이 사람이 성 소수자라고 해서 이웃이 아닐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또 재판에서 다뤄졌던 논점과는 별개로 기독교적 관점에서 '동성애가 죄'인가에 대해서는 치열한 논의와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황 목사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면 왜 동성애가 죄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토론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대책위는 앞으로도 교회의 이같은 결정에 항소할 뜻을 분명히 했다. 황 목사는 "축복은 목사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복을 내려주시길 바라는 것"이라며 "이번 교단의 결정을 뒤집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황인근 담임목사.

2020-10-26 경인일보

[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임신규 '인천퀴어축제' 집행위원장, "인천퀴어문화축제 올해도 개최할 것"

즐기는 동시에 혐오·차별에 대한 저항코로나 영향, 행진 대신 실내행사 검토"차별금지법 계기, 변화 이어질 수 있어""인천퀴어문화축제는 올해에도 열립니다."퀴어문화축제는 서울과 대구에서 10년 넘게 진행되고 있다. 인천에서는 2018년 동인천북광장에서 첫 행사가 열렸다. 첫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부터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축제 현장 인근에서 반대 집회가 열렸고 욕설이 난무하기도 했다. 지난해 열렸던 2회 행사 때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인천퀴어문화축제 임신규 집행위원장은 "그 정도 심한 반대가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며 "서울에서도 반대 의견을 피력하긴 하지만 행사를 진행하는 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앞서 진행된 축제보다 축소된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또 행진 대신 실내에서 행사를 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임 위원장은 "성 소수자들은 광장으로 나오고 싶어도 활동할 수 있는 공간에 한계가 있다"며 "퀴어문화축제가 성 소수자가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퀴어문화축제는 미국에서 시작됐다. 전 세계 곳곳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린다. 이는 성 소수자가 즐기는 축제이면서 혐오범죄나 차별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그는 "성 소수자가 비 성 소수자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며 "보수 기독교 세력 등은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성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배제를 강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그는 '학교 교육의 변화'를 강조했다. 어렸을 때부터 성 소수자에 대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제대로 된 교육과정이 없기 때문에 성 소수자들은 어렸을 때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인지하기도 어렵다"며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어려움을 겪었을 때 상담 등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우리나라는 성 소수자에 대한 포용력이 다른 국가에 비해 낮다. 반면 국민 인식은 개선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개신교 신도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찬성이 반대 의견보다 많았다. 임 위원장은 차별금지법이 성 소수자의 인권을 높이기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차별금지법이 당장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는 못한다"면서도 "제도적으로 차별을 가했을 때 제재하도록 했기 때문에 성 소수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이는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임신규 집행위원장.

2020-10-26 경인일보

[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우리 언어'에 담기지 않은 그들의 사랑

2012년 '표준국어사전' 정의 변경애정 등 5개 단어 '남녀 → 두사람'반대 거세지자 2014년 '남녀' 포함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는 "언어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다. 성 소수자와 관련해 우리 언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국립국어원은 2012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랑', '애인', '애정', '연애', '연인' 5개 단어의 정의를 변경했다. 기존에는 '남녀'라고 표현했던 것을 '두 사람'이라고 바꾼 것이다. '남녀'라는 표현이 동성애자 등 성 소수자를 배제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남녀'라고 했을 때 최소 10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트랜스젠더, 동성애자 등 성 소수자를 이 단어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14년에는 이 중 '사랑'과 '애정'의 정의에 '남녀'가 포함됐다. 국립국어원이 단어의 정의를 변경하자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셌기 때문이다.김하수 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전문가들도 대중의 여론을 반영해 사전의 정의를 바꿀 수밖에 없다"며 "2012~2014년에 동성애 관련 논쟁이 있었을 때도 민원이 다량 발생했던 것으로 전해 들었다. 국민의 인식이 바뀌어야 사전도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우리 언어는 성 소수자를 배제하는 언어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OECD 국가 중 동성애 수용도가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점은 이를 방증한다.김 전 교수는 지난 2004~2006년 국립국어원 언어정책부장을 지냈다. 2005년 국어기본법이 제정되며 출범한 국어심의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김 전 교수는 국립국어원이 소수자를 배려하는 방향으로 단어의 정의를 다듬어야 한다고 했다.그는 "국립국어원이 조금만 세심해지면 소수자를 배려한 표현을 사전에 담을 수 있다"며 "다수 국민의 인식이 당장 바뀌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사전이 조금 더 친절하게 설명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랑을 '남녀 간의 애정'으로 정의하더라도 이 정의는 개신교의 시각이라는 설명을 다는 등의 방식을 예로 들었다.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

2020-10-26 경인일보

[통 큰 기사-컬러콤플렉스 인터뷰 전문]아들의 커밍아웃 받아들인 강선화씨 가족

Q. 예준 씨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언제 처음 느꼈고, 부모님께 왜 커밍아웃을 했나.A.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남자아이를 짝사랑하면서 성 정체성을 깨달았다. 아무리 애써도 그 아이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애를 피해 다녔지만 그 아이를 잊으니 또 다른 남자아이에게 두근거렸다. 그때 마침 성 소수자 이야기를 다룬 웹툰을 봤고 내가 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러나 '게이'나 '동성애자'같은 단어는 목구멍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든 말이었다. 부모님은 모두 훌륭한 분들이셨지만 부모님에게조차 말하기 무서웠다. 그래서 어느 공간에서든 만성적으로 답답함을 안고 살았다. 20살이 돼서야 당시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처음으로 커밍아웃을 했다. 그런데 별일 아니라는 투로 반응했다. '뭐 어쩌라고'라는 식이었다. 이후 1년간 거의 모든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했다. 내 성 정체성이 바뀌지 않는 이상 부모님에게도 커밍아웃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면전에 대고 말하면 격앙될 것 같아 편지를 썼다. 한 달 간 썼다 지우다 하면서 설득될 만한 표현을 찾았다. 내가 어떤 자기 부정의 시간을 지나서 부모님을 믿고 커밍아웃하는지 표현했다. 그렇게 2016년 7월 '이번주 목요일에 중대발표를 한다'고 예고한 후 식탁에 편지를 올려두고 친구 집으로 피신했다.Q. 선화 씨는 커밍아웃 당시 느낌이 어떠셨나.A. 4년 전 일인데도 아직도 그날 기억이 생생하다. 너무 충격이었다. 직업이 항공승무원이어서 다음날 미국으로 떠났는데 비행기에 타고 나서 호텔방에 도착해서까지 48시간 가까이 잠을 못 이뤘다. 예준이가 준 '성 소수자 부모 인터뷰집'과 '성 소수자 부모를 위한 가이드북'은 차마 펼쳐보지 못했다. 용기가 안 났다. 내가 받아들이면 예준이가 다시는 다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두려움이 엄습했다.이런 태도가 바뀐 건 예준이가 컴퓨터 바탕화면에 내려받아 놓고 간 영화 '바비를 위한 기도' 때문이었다. 영화 주인공 바비는 부모가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않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내가 멍 때리고 있다가는 아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준이에게 카톡을 보냈다. '엄마에게 시간을 주면 좋겠다. 어떻게든 잘 헤쳐나가고 싶은데 아직은 힘이 든다'는 내용이었다.불현듯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그동안 아이 혼자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예준이는 그야말로 '학교에 겨우 다녔다'고 할 정도로 공부에 흥미를 못 느끼고 친구도 많이 없었는데 그게 성 소수자였기 때문이었나 하고 짐작해 봤다. 아이는 중학교 3학년 시절 기술을 배우겠다며 대학과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겨우 설득해서 인문계고등학교에 보냈는데 학교에선 자고 기술학원에서 공부하고 밤새 기술학원 숙제하고 게임을 하는 등 밤낮이 뒤바뀐 생활을 했다.그래도 우리는 비교적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 정체성에 대해서만큼은 속 시원히 말하지 못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한국 사회가 게이를 못 받아들이니 부모도 받아들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Q. 예준 씨는 커밍아웃 후 어떤 기분이 들었나.A. 1분에도 몇 번씩 감정이 바뀌었다. '내가 왜 이처럼 힘든 일을 겪어야하나'라는 분노와 함께 '어쨌든 중요한 숙제를 마쳤다'는 후련함이 들었다. 한편으론 슬프기도 했다. 편지를 남긴 직후엔 친구와 PC방에 갔다가 찜질방에 갔다. 게임에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부모님에게 폭언을 듣거나 집을 나와 혼자서 제2의 삶을 꾸리는 상황 등을 상상했다. 이미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해 1년 간 500만원을 벌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걱정이 많이 됐다.Q. 이후 가족끼리 언제 재회해 어떤 말을 나눴나.A. (아이)아빠랑 둘이서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입을 떼기가 두려웠다.커밍아웃 나흘 만에 귀국해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남편과 예준이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연애는 했니' 등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는 커밍아웃 3일 만에 부모모임에 나가서 위로와 지지를 받고 와서 이미 괜찮아진 상태였다.Q. 어떤 과정을 거쳐 예준 씨의 성 정체성을 이해하게 됐나.A. 처음엔 거짓 죄책감이 들었다. '예준이가 성 소수자가 된 게 혹시 내 탓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었다. 그래서 예준이에게 '엄마가 너를 이렇게 낳아 힘든 인생을 살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예준이는 '그것도 나에겐 상처가 된다, 내가 게이가 된 게 엄마 잘못도 아닌데'라고 했다. 순간 부모의 죄책감이 아이에겐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가급적 죄책감을 자제하려 노력했다. 어찌 됐든 부모로서 자식을 행복하게 살게 해 주는 게 내 목표라고 생각했다. 커밍아웃 한달 후인 8월부터는 부모모임에도 참석했다. 아이 아버지는 커밍아웃 3일 만에 모임에 참석해온 상태였다. 처음에 한사람씩 자기소개를 하는데 내 차례가 되자 '저는 한달 전에 아들이 게이라고...'하면서 말을 못 잇고 계속 울었다.Q. 커밍아웃한 뒤 어떤 차별을 겪었나.A. 혐오의 말은 늘 듣는다. '부모가 저 모양이니까 자식이 저렇지'하는 말들이다. 지난해 인천 퀴어 퍼레이드에 부모 모임 회원 자격으로 참석했을 때 그런 말을 들었다. 동성애 혐오 세력이 우리를 에워싸거나 멱살을 잡고, '부모모임' 명칭이 쓰여 있는 티셔츠를 잡아당기기도 했다. 땅에 주저앉아 엉엉 울기도 했다.네티즌 또한 아들에 대해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한다. 어쩌다 유튜브를 한번 찍으면 댓글이 폭격 수준이라 소송을 생각할 정도다.일상에서도 차별의 시선이 있다. 예준이가 애인과 길에서 손잡고 뽀뽀하고 다니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본다. 아이는 오히려 그걸 즐긴다. 그러나 부모로서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혹시라도 예준이가 상처받지 않을까, 폭행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Q. 그래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건가.A. 그렇다. 한국에서 성 소수자들이 커밍아웃을 못 하는 이유가 '힘들게 살까봐' 이다. 차별금지법이 있으면 사회안전망이 생기니 아무래도 이런 걱정이 덜할 것이다. 캐나다에 잠깐 있다 왔는데 그 나라 부모들은 자식이 커밍아웃을 해도 우리처럼 슬퍼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해고당할 우려 등 걱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나라 아이들은 13~14살에 일찌감치 커밍아웃을 한다고 한다. 아이도 부모도 덜 힘들다.Q. 그런데 왜 법이 제정되지 않는다고 보나.A. 정치인의 표 계산 때문이다. 특정 종교나 정치 계파가 차별금지법에 항의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어찌 됐든 자기 지역구에서 또 해먹어야 하는 게 정치인들이다. 예전에 부모모임에서 국회의원실을 방문해 자료를 전달하며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해 볼까 했는데 실패로 돌아갔다. 정치판 뚫기는 역시 힘들었다. 그 와중에 기득권을 내려놓고 소신 있게 차별금지법 찬성 발언을 해 주는 장혜영 의원 등에게 감사하다. 사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진정으로 고민하는 정치인도 있다고 느꼈다.Q. 차별금지법 이외에 어떤 수단이 필요한가.A. 학교 성교육이 달라져야 한다. 선생님 중에서도 성 소수자를 잘 몰라서 함부로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2011년 조사에서 성 소수자 비율은 3.8%였다. 성씨 중 '강 씨' 보다 많은 수치다. 이들의 존재를 알릴 기회가 정규 교육 과정에 없는 것이다. 이미 장애인에 대한 교육은 정규 교육에서 이뤄지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성 소수자에 대한 교육은 아직 학교에서 못 한다. 제도적 개선도 필요하다. 여학생은 치마 교복을, 남학생은 바지 교복만 입을 수 있는 제도 등을 고쳐 성적 다양성을 허용해야 한다.Q. 예준 씨의 커밍아웃과 성 소수자 부모모임이 선화 씨의 삶에서 어떤 의미였나.A. 처음엔 그저 '우리 아들이 좋아하니까' 부모모임에 단순히 참석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남편과 함께 시간이 날 때마다 성 소수자 관련 집회에 참석한다. 최근 서울에서 열린 퀴어 퍼레이드에서 '나는 게이 아들을 둔 부모입니다'라고 쓰인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군대 내 동성 간 성행위 처벌법인 군형법 제92조 6항 폐지를 위한 집회에도 참여한다. 예준이도 인권단체에서 에이즈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며 게이합창단 단원으로 무대에 서고 있다. 커밍아웃을 계기로 가족이 모두 '인권 운동가'로 바뀐 셈이다.한편으로는 부모의 역할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 '비단 성 소수자 부모가 아니더라도 부모는 이래야 하는구나'라고 말이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특정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식 입장에선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자식이 자신의 삶을 살게 놓아두고 부모는 묵묵히 그 길을 함께 가줘야 한다. 때로 아이가 가는 길이 너무 험할 때 손잡아 일으켜 주고, 돌이 있으면 치워 주는 게 부모의 일이다.Q. 퀴어 퍼레이드에서 성 소수자 부모모임의 '프리 허그' 행사를 인상 깊게 봤는데 어떤 의미인가.A. 성 소수자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인정하는 의미다. 한국 사회에서 성 소수자는 마음 놓고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 그래서 자해나 자살을 시도할 확률이 다른 집단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들은 1년에 한 번 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해 부모 모임 회원의 품에 안긴다. 어떤 분은 내 품에 안겨서 그저 눈물만 흘리셨다. '프리 허그에서 받은 힘으로 1년을 버틴다'고 했다. Q. 다른 성 소수자 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A. 누군가 자녀에게 커밍아웃을 받으셨다면 내가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나 또한 남편과 부모모임 활동을 하며 비로소 아이들과의 벽이 허물어진 것 같아 좋다. 우리 세대에서 듣지 못한 이야기를 들으니 '괜찮은 어른'이 돼 간다./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4년 전 아들 정예준(25·오른쪽)씨가 가족들에게 자신이 성 소수자임을 밝혔을 때 어머니 강선화(52)씨는 큰 충격 속에서도 아들을 품고 이해하기로 했다. 아들의 고백 이후 가족들은 퀴어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등 성 소수자를 대변하는 '인권 운동가'로도 활동 중이다. 지난 18일 고양 일산에서 만난 선화씨는 "우리 사회가 성 소수자들이 마음 놓고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도 불편함이 없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2020.10.26 /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장예준씨는 20살 되던 해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편지로 부모에게 알렸다. 이 때 편지를 어머니 강선화씨는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강선화씨 제공장예준씨는 20살 되던 해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편지로 부모에게 알렸다. 이 때 편지를 어머니 강선화씨는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강선화씨 제공

2020-10-26 경인일보

[통 큰 기사-컬러콤플렉스·(1)붉은 망령]혐오, 대한민국을 물들이다

21세기 들어서도 계속된 '빨갱이 낙인'존재 자체를 반대 당하는 성소수자 등다름을 인정 않고 배제하는 사회 정서확산 거듭하며 또다른 비하·차별 불러당신이 보는 사회는 무슨 색(色)입니까.최근 정부는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근무 중 월북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공무원이 바다에서 표류하다 북측 바다로 이동하게 된 건지 아니면 스스로 월북 의지를 갖고 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가 북한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점은 확인됐다.지난 15일 고양시 일산서구 황룡산 '금정굴'에 20여명이 모였다. 70년 전인 1950년 10월 이곳에서 학살당한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제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위령제에 참여한 이들은 학살당한 희생자의 유가족이다.별개인 듯한 두 사건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사건 당사자의 가족들이 모두 '빨갱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공무원이 실제로 월북을 시도했는지 알 수 없다. 금정굴 희생자가 북에 부역을 했는지도 확실치 않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었고, 지금도 비슷한 일이 자행되고 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 20년이 지났음에도.금정굴 희생자 가족들에게 지난 70년은 아픔의 연속이었다. 사람들은 붉은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봤다. 대북 관련 사건이 터지면 어김없이 '빨갱이'라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고, 금정굴 희생자 가족들은 숨을 죽이고 살아야만 했다.수십년 간 금기의 색으로 작용했던 'RED'는 점차 균열이 생겼다. 2000년 남과 북이 손을 잡고 6·15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고, 자유롭게 금강산을 여행했다. 2002년엔 전국의 광장이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더 이상 붉은색은 '빨갱이'를 의미하지 않게 되는 듯했다. 하지만 수십년 간 이어진 우리 사회의 색안경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정치권에서는 '종북' 논란이 휘몰아쳤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당이 해산됐다. '종북 아니냐'는 물음은 상대를 제압하는 쉬운 무기로 작동했다. 2020년 발생한 공무원 실종 사건에서도 월북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어김없이 '빨갱이'가 등장했다.무지개로 상징되는 성소수자는 우리 사회 가장 큰 갈등의 축이 되어버렸다.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간성 등 국가에서 정하는 '남과 여'라는 이분법적 성별로 설명할 수 없는 성소수자는 우리나라에 1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반대' 의견이 크다. 엄연히 우리 옆에서 생활하는 그들의 존재 자체를 반대한다.'공존'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다. 공존의 전제는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이다. 무지개와 붉은색 등의 색으로 설명할 수 있는 우리 사회 혐오 정서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배제하고 차별한다. '공존'으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 이런 혐오 정서는 확산을 거듭하고 있다. 소수자를 비하하는 표현을 담아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는 혐오와 차별의 바탕이 되고 있다. 경인일보는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로 가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약자에게 좋은 사회는 모두에게 좋은 사회다.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금정굴사건'은 1950년 고양시 황룡산 금정굴에서 한국전쟁 당시 북에 부역했다는 혐의로 150여명을 재판 없이 살해 후 매장한 사건이다. 지난 15일 이병순씨가 70년 전 자신의 아버지 고 이봉린씨가 죽임을 당한 금정굴을 둘러보고 있다. 그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수십 년 동안 이곳을 찾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병순씨는 우리 사회의 아픈 기록이다. 2020.10.25 /기획취재팀

2020-10-25 경인일보

[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70년 풀지 못한 恨 '금정굴 학살'

6·25전쟁 당시 인민군이 장악했던 지역'부역자 색출'… 민간인 150여명 암매장가족들, 수십년 차별·비판 '고통' 감내경기도의회, 위령탑 등 추진 '20년 지연'부동산 가격 ↓ 우려… 유해 안치 '기피'1950년 10월 고양시 황룡산 '금정굴'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150여명이 학살됐다. 1950년 6월 한국 전쟁 발발 이후 인민군이 이곳을 장악했을 때 그들에게 부역했다는 이유였다. 같은 해 9월에 있었던 인천 상륙작전으로 한국 전쟁의 전세가 역전됐고, 적군에게 부역한 혐의를 가진 이들을 학살한 것이다.70년이 지난 2020년 10월15일 오전 학살로 희생된 이들의 가족 20여명이 학살의 현장에 모였다. '제70주기(제28회) 고양지역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합동 위령제'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유해를 이곳에 안치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했다.이날 현장을 찾은 이병순(87)씨는 희생자 이봉린씨의 아들이다. 이봉린씨가 죽임을 당한 날은 70년 전 10월14일이다. 이병순씨가 10대였을 때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 수십 년 동안 숨어 지내다시피 하면서 살았다"며 "금정굴은 어릴 때 자주 찾던 놀이터 같은 곳이었지만, 사건 이후 40여년 동안 이곳을 찾지 않았다"고 말했다.그는 수십 년간 '빨갱이'라는 말을 들으며 살았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의 비판에 대해 떳떳하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마을에서 농작물 재배 현황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북에 동조했다'는 혐의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정치적인 성향과는 상관없이 희생됐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이병순씨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아버지에 대해 부끄러움은 없었다"면서도 "지금은 그래도 나아졌지만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하는 '빨갱이'라는 말을 들어야 했고,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그가 한국전쟁 이후 학살 현장을 찾은 것은 학살 40년이 지난 1990년대다. 한국 전쟁 이후 40년이 지나서다. 지역 시민단체와 유가족을 중심으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첫 위령제가 1993년 열렸다. 이씨는 매년 현장을 찾아 다른 유가족과 함께 위령제에 참여했다. 1995년부터 유해 발굴 작업이 진행됐다. 금정굴에서는 유해가 발굴됐고,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유가족은 다시 아픈 과거에 아파해야 했지만, 이를 두고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있었다.1999년 경기도의회는 '진상조사특별위원회 조사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금정굴 사건에 대해 "부역자를 색출한다는 명분 아래 경찰 주도로 우익단체가 가세해 다수의 민간인을 불법 학살 암매장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와 함께 경기도의회는 유골 수습·안치와 위령탑 건립을 건의했다.20년이 지났지만 경기도의회 건의는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당시 보훈단체 등이 위령사업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사업이 지연됐고,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2005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출범했고 금정굴 사건에 대해서도 다뤘다. 2007년 진실화해위도 금정굴 사건이 불법학살이라고 규정했다.경기도의회와 진실화해위가 불법 학살과 억울한 희생임을 밝혀냈지만, 유해는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떠돌고 있다. 대다수 유가족은 "유해가 이곳에 안치되길 바란다"고 했다. 유족의 바람과는 달리 1995년 발굴된 유해는 안치할 곳이 없어 서울대학교병원 법의학교실에 보관됐다.이후 고양시 청아공원 납골당, 하늘문공원 납골당을 거쳐 현재는 세종시 '추모의 집'에 안치돼 있다. 유족들은 명절 때마다 유해가 안치된 곳을 찾아 성묘를 지내기도 했다. 20년 전과 같이 유가족에게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적어졌지만, 이곳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유해가 이곳으로 오는 것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한 고양시의원은 금정굴 희생자 유해가 황룡산으로 이전하면 부동산 가격이 하락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다른 방식으로 '기피'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이병순씨는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이 빨리 고향으로 돌아왔으면 한다"고 했다./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이병순(87)씨가 한국전쟁 당시 북에 동조했다는 혐의를 받아 정치적인 성향과는 상관없이 희생된 아버지 고 이봉린씨의 사진을 어루만지고 있다.지난 15일 금정굴 현장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위령제가 열렸다.

2020-10-25 경인일보

[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불편한 시선 여전 '북한 이탈 주민'

공직사회서 '낙하산' 취급… 대북이슈땐 곱지 않은 시선한국 국적 취득해도 인정 못 받아 '인권·정착'위한 활동북한에서 이탈해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은 올해 6월 기준(누적) 3만3천670명.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었음에도 이들이 한국에서 온전하게 자리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많은 탈북민들은 한국 사회의 불편한 시선을 견뎌야 했고 차별을 겪으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한국 정착 12년차인 김혜성(45·여)씨는 공무원의 삶을 선택했다. 지역고용노동센터, 부천시청을 거쳐 올해부터 서울 양천구청에서 임기제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시인으로 활동하면서도 최근 대학원에 진학해 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바쁜 삶을 살고 있다.높은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으로서의 삶을 사는 등 한국 사회에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지만, 김씨의 한국 사회 정착 과정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정착 초기 서류를 통과하더라도 북한에서 왔다는 소식을 알리면 면접에서 떨어지기도 했고, 다단계에 휩쓸려 빚을 지기도 했다. 새 출발을 위해 상담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의 노력 결과 공무원 신분이 됐지만 공직 사회에서도 편견과 차별이 있었다. 그가 몸담고 있었던 한 기관에서는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낙하산'이라는 소문이 돌아 한 달여 동안 말을 거는 사람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김씨는 "'총 쏘는 것 밖에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돈이 없으니 우리와 같이 식사를 하지 말자'는 얘기도 들었다"며 "대북 관련 이슈가 있을 때마다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도 느꼈다"고 말했다.이어 "일을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동료들과 소통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고 덧붙였다.허초희(51·여)씨는 3번의 탈북 시도 끝에 한국에 올 수 있었다. 그는 13여년 간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고 있지만, 정착 과정에서 차별이라는 난관을 이겨내야 했다. 지난 2012년부터 최근까지 인천 남동산단에서 일을 했던 허씨는 정착 이후 주변으로부터 '못사는 데서 왔다', '먹을 것도 없는 나라에서 왔다'는 등의 발언도 묵묵히 감내했다.그는 한국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을 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가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한국 국적을 취득했음에도 '한국 사람'으로 인정을 받지 못할 때라고 설명했다.허씨는 "경기 침체로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주말 근무 인원을 줄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한국인들은 일을 계속 했지만, 나와 외국인 근로자들은 더 이상 나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기도 했다"며 "한국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회사에 강하게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탈북민들의 선배 격이기도 한 이들은 탈북민들의 인권과 정착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아직 많은 탈북민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행정 용어나 영어식 표현이 익숙하지 못한 데서 오는 문제는 물론 남북한의 문화 차이도 존재했다.아울러 탈북민에 대한 행정 서비스 개선은 물론 '탈북'이라는 단어 대신 다른 표현을 쓰는 것도 북한 이탈 주민들을 배려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김씨는 "북한 이탈 주민들을 위한 보다 실질적인 행정 업무 대행이나 심리 상담 등이 필요하다"며 "'탈북'이 부정적인 표현을 담고 있는 만큼 남·북쪽에 고향을 두고 있다는 의미로 남향민, 북향민과 같은 동등한 개념의 단어 수용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탈북민 김혜성씨. 지금은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이들은 정착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불편한 시선들도 이겨내야 했다.탈북민 허초희씨. 지금은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이들은 정착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불편한 시선들도 이겨내야 했다.

2020-10-25 경인일보

[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 "통진당 해산 억울"

"헌재, 北 사회주의 추종·의원직 박탈 판결… 근거 없어"탄압받는 사람들 연대… 국민 스스로 '색안경' 벗을 것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국회의원직을 잃은 김재연 전 의원. 현재 진보당 상임대표로 활동하는 그는 "2020년 현재도 레드 콤플렉스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레드 콤플렉스는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반감이 극대화된 것을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 상대 정치 세력을 좌익·친북·종북으로 몰아가며 비판하는 현상을 말하기도 한다.통합진보당이 해산한 2014년은 한국 사회에서 레드 콤플렉스가 강력하게 영향을 미쳤던 시기다.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가 정당을 해산한 초유의 사태를 맞이한 김재연 상임대표는 삭발 등의 방식으로 반발했다. 김 상임대표는 "6년이 지난 지금 헌재 해산심판 결정문을 다시 봐도 납득할 수 없다"며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숨은 목적을 가진 정당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정당이 해산됐을 때 의원직까지 박탈된다는 건 헌법은 물론 법률에도 근거가 없다"며 "법보다 상위에 있는 것이 '색깔 공세'라는 의미"라고 말했다.2014년 박근혜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통진당 해산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관 8명이 찬성하고, 1명이 반대해 통진당은 해산됐다. 지역구 국회의원 3명과 비례대표 의원 2명은 의원직이 박탈됐다. 통진당 해산의 정당성 여부와는 별개로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까지 자리에서 내려오도록 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그러나 이러한 목소리는 오래가지 않고 사그라들었다. 김 상임대표는 "당시 새누리당이 쳐놓은 '종북'이라는 프레임에서 민주당이 옴짝달싹 못했고 진보진영조차 통진당 해산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낼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그는 통진당이 해산된 이후 국회에서 북측과의 평화적 공존을 주장하는 정당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고 강조했다. 현재 정치 지형에서 가장 진보적인 축에 속하는 정의당이 최근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에 대해 "북 함정을 격파했어야 한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예로 들었다. 또 최근 치러진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서 '평화'와 '통일'을 강조한 후보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그는 "레드 콤플렉스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북과의 냉전 구도를 강화해 이익을 보는 일부 세력 때문에 북측과 평화적 공존을 도모하는 목소리가 묻히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올해 총선에서 경기 의정부을 지역구에 출마해 5천536표를 얻어 낙선했다. 득표율은 4.33%.김 상임대표는 "국민들이 (붉은)색안경을 스스로 벗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며 "의정부에서 대중 속에 들어가 고립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작은 서점을 운영하고 있고 정치인으로서 활동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또 "사회의 건강함을 회복하기 위해 힘쓸 것"이라며 "이를 위해 탄압받는 사람들과 연대할 것"이라고 했다.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지난 2014년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후신 '진보당'을 이끌고 있는 김재연(40) 상임대표. 그는 "한국 사회에서 '레드 콤플렉스'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했다.

2020-10-25 경인일보

[컬러콤플렉스-공존사회 걸림돌]한국 사회 뒤흔든 '레드 콤플렉스'

일제강점기 이후 뿌리 박힌 '이념 적개심'국가보안법 제정… 1961년 '반공' 국시로'인혁당 사건' 등 다른 생각 탄압도구 활용헌정 최초 '종북 논란' 통진당 해산 판결北 적개심 낮아졌지만 '혐오 정서'는 여전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RED(레드)'다. 붉은색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상징한다. 한반도는 일제 강점기부터 좌우 갈등이 극심했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휴전'상태에 있다. 남측은 '자유민주주의'를, 북측은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좌우 이념 차이는 상대에 대한 적개심으로 표출됐고, 이는 남측 구성원 대다수에게 깊숙하게 뿌리박혔다. '레드 콤플렉스'는 한국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막을 내리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년이 흘렀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도 하고, 이념의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는 레드 콤플렉스를 빼놓을 수 없다. 사회주의와 북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감도 남아 있다. 북과 관련돼 있으면 '차이'는 '틀림'으로 간주된다.'레드 콤플렉스'는 일제강점기 때 시작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이 곳곳에서 일어났고, 독립을 위한 방법은 각자가 달랐다. 사회주의를 추구하기도 했고, 자유주의 방식이 답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해방을 맞이했으나 38선이 그어졌다. 각각의 이념은 38선 이남과 이북에서 세력을 키웠다. 이념의 차이는 갈등의 모습으로 곳곳에서 나타났다. 여순사건, 제주 4·3항쟁 등은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남과 북을 더 갈라놓았다. 전쟁은 3년간 이어졌고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고양 일산 금정굴 등지에서는 민간인이 학살되기도 했다. 전쟁의 결과는 '휴전'이었고 38선보다 조금 북쪽에 휴전선이 설치됐다.한반도 남쪽에는 '레드 콤플렉스'가 공고해졌다.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제한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이 제정됐고, 1961년 반공은 국시(國是)가 됐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권력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를 탄압하는 도구로 활용됐다.대표적인 예는 1964년과 1974년 발생한 인민혁명당 사건이다. 당시 정부는 '국가 변란을 목적으로 북한의 지령을 받는 지하조직을 결성했다'고 발표했다. 언론인, 교수, 학생 등이 검거됐다. 일부는 사형으로 목숨을 잃었다. 시간이 지나 2007년 사법부는 관련자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고문에 의해 조작됐다고 밝혀진 것이다.엄혹한 사회에서도 남과 북의 공존을 향한 노력은 이어졌다. 1972년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고, 1991년에는 남북 화해와 불가침, 교류협력 등에 관해 합의한 '남북공동합의서'가 발표됐다. 더 이상의 전쟁은 없어야 한다는 공감대는 점차 확산됐다.2000년엔 광복 이후 처음으로 남과 북 정상이 만나 손을 맞잡았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두 정상은 6월15일 '통일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6·15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남과 북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평화와 통일에 대한 담론이 넘쳐났다. 개성공단 사업이 추진되는 등 민간 교류가 활발해졌다. 이러한 추세 속에서 2002년 대한민국에서 월드컵이 열렸다.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의 광장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수백만 명이 'be the reds'라고 쓰인 붉은 티셔츠를 입었다. 번역하면 '빨간 사람이 되자'정도가 된다. 수십년 전만 해도 붙잡혀갈까 두려워 입 밖에도 내기 어려웠던 금기시되는 내용이다. 한국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가 줄어든 것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왔다.2003년엔 육로를 통한 금강산 관광이 이뤄졌다. 통일부는 대학생 등에게 경비를 지원하며 금강산 관광을 독려했다. 각 대학에서는 '금강산 모꼬지'를 모집했고 대학생들은 설악산 가듯 금강산을 다녔다.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기점으로 무르익었던 '평화 모드'는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2008년 금강산 관광을 하던 박왕자씨가 북에 의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후 남북관계는 급속도로 경색됐다. 금강산 관광은 중단됐다. 2010년엔 백령도 앞바다에서 천안함이 침몰됐고, 서해 작은 섬 연평도는 포격을 맞았다. 남북 교류 사업은 중단되거나 미뤄졌다.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 '종북 논란'이 불붙었다. 통합진보당이 중심이었다. '북의 지령을 받고, 북에 종속돼 있다'는 뜻을 가진 '종북'이라는 단어는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2013년 대한민국 국무회의는 법무부가 긴급 안건으로 상정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건'을 심의·의결했다. 2014년 12월19일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을 내렸다.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앞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종북'의 핵심인물로 지목됐다. 2013년 내란 음모 혐의로 구속됐고, 2014년 11월 서울고등법원은 이석기의 내란 선동에는 유죄를, 내란 음모에는 무죄를 선고했다. 이를 계기로 당시 "종북 아니냐"는 질문은 상대를 제압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쓰였다.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남북 관계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는 다시 손을 잡았고, 2018년 판문점선언이 발표됐다. 다양한 교류 협력 사업이 선언에 담겼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실현되지 못하는 사업들이 많다. 여전히 남북은 긴장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레드 콤플렉스가 존재하고 있다.최근 발생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서 온라인에서 '빨갱이'라는 표현을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남북관계는 수십년 간 화해와 긴장을 오갔다. 그 사이 경제력 차이는 크게 벌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북에 대한 적개심은 낮아졌다는 평가가 많다. 다만 이를 대신하는 것은 비하와 조롱, 혐오의 정서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두려움의 대상에서 '이해하기 힘든', '경제력이 떨어지는', '이상한' 국가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방식이 달라졌더라도 '레드 콤플렉스'가 여전히 유효한 모습을 보여준다. /기획취재팀※기획취재팀글 : 정운차장, 이원근, 이여진기자사진 : 김도우기자편집 : 박준영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인민혁명당 사건은 한국 현대사의 부끄러운 기록이다. 국가는 '북한의 지령을 받는 지하조직을 결성했다'며 교수, 학생 등을 검거했고 일부는 목숨을 잃었다.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이 2007년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자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2008년 금강산 관광을 하러 갔다가 북측에 의해 목숨을 잃은 박왕자씨 빈소. 이 사건으로 남북관계는 급격하게 악화됐다. /연합뉴스

2020-10-25 경인일보

[58년생 김영수-베이비부머 이야기·(3·끝)브라보, 마이 라이프]연륜과 감각이 통했다… 그렇게 닮아가는 우리

'30년 터울' 신경철 명장·우진구 대표 협업수제가구 품질·마케팅 조화… 젊은층 어필서로에게 멘토 역할도… 세대간 장벽 넘어용인에서 원목 가구 주문제작 기업 '블라노스'를 함께 이끄는 우진구(33) 대표와 신경철(63) 명장에게 '30년 터울'은 세대 간 장벽이 아닌 서로를 잇는 '연결다리'였다. 신 명장이 쌓은 40년의 기술이 우 대표 사업의 뿌리가 됐고, 정보기술(IT) 시대에 걸맞은 고객 맞춤형 서비스와 마케팅 능력이 뛰어난 우 대표는 신 명장과 젊은 소비자 사이의 간격을 좁혔다. 살아온 시대가 다른 둘은 서로 이해하고 멘토가 되어주면서 그들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한참 어린 우 대표가 사업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내민 손을 신 명장이 열 번이나 뿌리쳤다. 어떤 이유였을까?신 명장은 대한민국의 전통가구목공예 명장(제16-명71호)이다. 최고의 숙련 기술을 보유한 사람에게 국가가 부여하는 자격이다. 그는 수제 가구를 만들기 시작한 1977년부터 40년 넘는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수십 년 간 제조 공장만 운영하다가 직접 판매까지 하는 매장을 차렸는데 경기 불황에 부닥치며 큰 피해를 봤다. 우 대표가 2016년 말 처음 찾아와 사업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했을 때도 이 같은 실패를 물려줄까 봐 거절했다. 하지만 이후 1년간 열 번이 넘도록 끈질기게 요청한 우 대표의 '십고초려'는 결국 신 명장의 마음을 돌렸다. "주문 제작 가구는 가격이 비싸지만 수요가 적어 수익을 올리는 데 기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계속 거절했는데 매일같이 찾아와 시키지도 않은 일을 도우며 매달리니 결국 마음이 움직이더라고요. 과거에 내가 사업에 실패했던 건 마케팅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에요. 그런 점을 우 대표가 채워주고 있습니다."우 대표는 수년간 호흡을 맞춘 젊은 동료 가구 디자이너가 곁에 있었다. 하지만 그가 신 명장을 고집했던 이유는 자신만의 고유한 디자인과 품질을 갖춘 주문 제작 가구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제 가구 40년 인생을 살아온 신 명장과의 협업이 필요했다."젊은 기업 대표로서 마케팅과 고객서비스 등은 물론 기술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아무 매장에서나 볼 수 있는 기성 제품은 싫었어요. 오랜 연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단 하나뿐인 가구를 만들어 내는 명장님과 어떻게든 협업을 해야겠다고 판단했죠. 30년의 나이 차는 걸림돌이 아니었습니다."베이비붐 세대인 신 명장은 "나도 꼰대"라고 말한다. "우리 땐 '까라면 까!'라는 게 있었는데 요즘 세대는 그런 걸 찾기 힘들어요. 대신 요즘 젊은이들한테 느끼는 열정은 분명 남다르죠."하지만 우 대표는 신 명장을 꼰대로 보지 않는다. "분명 자기 고집도 있으실 텐데 절대 본인 의견만 내세우지 않고 뭘 제안하든 끝까지 들으세요." 그렇게 블라노스에서는 신 명장의 오랜 기술과 경험, 우 대표의 젊은 감각이 합쳐져 단 하나밖에 없는 원목 수제가구가 만들어진다. 열 번의 거절 끝에 우 대표의 요청을 받아들인 신 명장도 "젊은 대표와 함께 일하는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기획취재팀▶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 임승재차장, 김준석, 배재흥기자 사진 : 조재현, 김금보, 김도우기자편집 : 김동철, 박준영차장, 장주석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원목 가구 기업 블라노스의 공장에서 '젊은 대표' 우진구(33)씨와 '40년 기술 명장' 신경철(63)씨가 나란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수제가구에 평생을 바친 신 명장의 오랜 기술과 경험, 정보기술(IT) 시대에 적합한 우 대표의 젊은 감각이 합쳐져 세상에 단 하나뿐인 원목 가구가 만들어진다. 2020.9.22 /기획취재팀인터뷰 하는 신경철 명장. 2020.9.22 /기획취재팀인터뷰하는 우진구 대표. 2020.9.22 /기획취재팀

2020-09-22 경인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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