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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리얼리티·(1)성장]주거·산학연 정책 공백, 그늘은 있었다

#'한국판 베벌리힐스' 꿈꿨지만…건교부·LH, 중·대형 위주 건설… '소형' 설자리 잃어종사자 71% 차지하는 20~30대, 타지역 거주 76.37%#'우수 인력' 절박한 기업들지자체장 '부지개발권' 없어 지역민 필요로 이용 불가임창열 前 도지사 "국토부등 모든 부처 머리 맞대야"도시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도권의 몇 남지 않은 녹지, 온통 배 밭 뿐이던 판교가 자급자족 신도시로의 개발을 선언하며 갖은 역학관계를 헤쳐나간 과정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그 수고로움 덕일까. 취재진이 만난 대다수 행정가, 기업인들은 판교가 나름 기대치를 뛰어넘는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특히 숱한 반대와 불안한 전망 속에서 미련할 만큼 고집스럽게 애초의 계획대로 도시를 설계한 것이 큰 밑거름이 됐다는 게 중론이다.하지만 우리는 판교를 한꺼풀 더 깊숙이 들춰 봤고, 그 속살에서 '절반의 성공'이라는 차가운 현실과 마주했다.우선 판교는 주거정책에서 실패했다. 판교 테크노밸리에서 일하지만, 정작 판교에선 살지 못하는 게 이곳을 구성하고 있는 인력들의 현실이다. 2016년 기준, 판교 테크노밸리 종사자 중 20~30대가 71%를 차지한다. 거주지를 조사해보니 전체 종사자 중 76.37%가 성남시를 벗어나 살고 있었다. 경기 남부에서 34.27%가, 서울에서 33.51%, 인천에서 4.40%가 판교에 직장을 두고 있지만 '타지'에 거주했다.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 2017년에는 62.98%가, 2018년에는 68.13%가 다른 곳에 살면서 출퇴근을 했다. 판교의 주거정책은 왜 테크노밸리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했을까. 판교의 주택공급은 건설교통부와 LH가 전담했다. 애초에 판교의 성공을 내다보지 못했던 두 주체가 판교 테크노밸리의 주류를 이끄는 20~30대 젊은 인력들이 살만한 공간을 종합적으로 설계하지 못한 건 필연에 가깝다. 당시 건설교통부와 LH가 세운 판교 주택정책의 목적은 강남의 고급주택 수요를 끌어들이겠다는 데 있었고, 그렇다 보니 '한국의 베벌리힐스'를 표방하며 주택을 설계했다. 그 결과 25~40평형대의 중·대형 주거형태 위주로 건설을 계획했고 젊은 세대가 일과 주거를 병행할 수 있는 18평 이하의 소형 주택은 설 자리가 없었다.판교의 취약점 또 하나, 산업과 연구소는 있지만 학교가 없다. '산학연'이 제대로 운용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수 연구개발 인력을 창출하는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구인을 위해 절박하게 뛰어야 한다. 절반의 실패로 평가받는 요인이다.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경기도가 판교를 구상할 땐 서울 및 경기도권 우수 대학의 유치를 통한 산학연이 강조됐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바탕에 '스탠퍼드 대학'이 있듯 판교도 원활한 인력 수급과 활발한 연구지원을 위해 대학 등 교육기관과의 연계를 중요하게 여겼다. 실제로 초기 경기도의 판교 구상안에는 입주 예상 벤처업체 부지로 62만5천여평, 입주희망 기업연구소 부지로 21만6천여평, 수도권 대학의 벤처관련 학과 이전부지로 14만8천여평 등이 담겨있었다. 수도권 10개 공과 및 전문대학원들이 경기도에 공식적으로 입주를 희망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의견은 당시 산업자원부와 정보통신부도 동일해, 벤처기업 신규입주로 30만평, 기존 벤처업체의 이전 또는 확장 수요 17만5천여평, 수도권 대학의 관련학과 및 대학원 이전 부지 15만평 등을 각각 제시했다. 이 같은 현상은 당시의 판교 개발규모가 '20만평'에 머물렀던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국토 개발의 전권이 건설교통부(지금의 국토교통부)에만 집중돼 있어 지역민의 필요에 따른 개발이 불가능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법은 상당히 딱딱한 규제로 둘러싸여 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계획, 광역도시계획 및 도시·군계획의 관계'를 규정하면서 광역도시계획 및 도시·군 계획은 국가계획에 부합돼야 하며 광역도시계획 또는 도시·군계획의 내용이 국가계획의 내용과 다를 때에는 국가계획의 내용이 우선한다고 정했다. 또 중앙행정기관의 장이나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면적 이상의 구역 등을 지정하거나 협의하여야 하며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국토교통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판교 개발을 주도했던 임 전 지사도 이 문제를 가장 강하게 꼬집었다. "국토교통부는 '주택공급' '집값 안정'만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다. 반면 지자체장은 주택공급·집값 안정 외에도 일자리, 상권, 문화공간, 교육시설 등 주민의 삶 전반을 고민해야 하는 종합행정을 한다. 이미 제한적인 성격을 가진 조직이 도시 개발의 전권을 쥐고 흔드니, 종합적인 도시가 탄생할 수 없다. 지금이라도 법을 바꿔, 지자체 중심으로 국토부, 산자부, 기재부 등 모든 부처가 함께 머리를 맞대는 방식으로 국토개발이 이뤄져야 한다." 당시 임 전 지사와 함께 판교 개발의 실질적 역할을 담당했던 이재율 전 경기도부지사 (당시 정책기획관)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만약에 원래 계획대로 판교 테크노밸리를 100만평에 지을 수 있었다면, 지금 문제로 돌출되는 주거, 산학연, 주차 등의 다양한 문제가 많은 부분 해소됐을 것"이라며 "(경기도가) 당장의 성과보다 10년을 미리 바라다봤기 때문에 20만평이라도 받아 지금의 판교를 만들 수 있었다. 국토개발은 반드시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혜안이 필요하다." /기획취재팀▶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도움주신 분들임창열 킨텍스 대표이사,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재율 前 경기도행정1부지사, 이상후 前 LH 부사장,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 오세일 이너보틀 대표, 오보영 이트너스 이사, 엄정한 컴퍼니B 대표,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성남시, 성남산업진흥원, 판교박물관■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영상 : 강승호기자, 박소연 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판교 테크노밸리 일대 전경. /경인일보DB판교 테크노밸리의 20~30대 젊은 직장인들은 대부분이 타지역에서 출퇴근 한다.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2020-01-05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판교 리얼리티·(1)성장]스스로 운명 개척한 판교의 진짜 이야기

대한민국 신도시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본 역사가 없다.필요해서 기획됐고 필요한 것만 지어졌다. 필요한 만큼 의무가 주어졌고 필요가 없으면 버려졌다. 서울을 에워싼 경기도 신도시가 감당해야 할 의무는 특히 더 명확했다. 서울이 토해내는 인구를 받아내는 일. 미친 듯이 치솟는 서울 집값의 완충재, 그 이상 그 이하의 역할은 없었다. 그래서 낮에는 불이 꺼지고 밤에만 불을 밝히는, 소비는 있지만 생산은 없는, 살아있지만 죽은 도시. 대한민국 신도시가 떠안은 숙명은 늘 초라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슬픈 일은 새롭게 만들어진 '신'도시가 새로운 꿈을 품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대로 터를 일궈 온 역사와 전통의 삶이 사라진 자리에 동일한 욕망이 넘실대는 아파트만 대책 없이 넘쳐났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집값이 더 오르기를 기대하는 욕망만 들끓었다. 그런데 판교는 다르다. 지금까지 보아 온 신도시의 풍경과 사뭇 다르다. 매일 아침 판교로 향하는 도로에는 활발한 움직임이 가득하다. 성남·안양·수원·용인 같이 경기도권 주변 도시에서 판교로 모여드는 일도 새롭지만, 서울에서 판교로 줄줄이 '역이동'하는 풍경은 생경하기까지 하다. 아침이면 서울로 빠져나가는 게 신도시의 일반인데, 판교는 거꾸로 아침마다 생기가 넘쳐난다.판교는 꿈을 품었다. 건물마다 매일 희망의 꿈을 좇아 새로 도전하는 것이 빈번하고 좌절하면서도 다시 일어나는 역동이 넘친다.2018년 기준 판교 매출액 87조5천700억원, 입주기업 수 1천309개, 종사자 수 6만3천50명이라는 우수한 성적표를 굳이 읊지 않더라도 판교는 명실공히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상징되고, 대한민국 IT 산업의 심장으로 우뚝 섰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래서 도시 개발 소식이 들리는 신도시 후보지마다 '제2·제3의 판교'가 되겠다는 구호가 난무하다.그래서 궁금했다. 과연 보이는 대로 판교는 성공한 신도시일까. 성공의 속살에 낀 거품은 없을까. 밤낮으로 휘황한 불빛들 아래 가려진 판교의 이면은 무엇일까. 이 물음을 안고 지난 12월, 한 달간 판교에 깊숙이 들어갔다. 과거의 판교를 만들고 지금의 판교를 이끌며 미래의 판교를 꿈꾸는 다양한 이들을 만나 판교의 이야기를 들었다. 판교는 대한민국 신도시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기획취재팀▶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도움주신 분들임창열 킨텍스 대표이사,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재율 前 경기도행정1부지사, 이상후 前 LH 부사장,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 오세일 이너보틀 대표, 오보영 이트너스 이사, 엄정한 컴퍼니B 대표,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성남시, 성남산업진흥원, 판교박물관■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영상 : 강승호기자, 박소연 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2020-01-05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판교 리얼리티·(1)성장]"삼성·현대 다음으로 한국경제 책임 지는 곳"

건교부서 분양 전권받은 道 '세부 계획' 수립업종제한·저렴한 용지 '자급자족 도시' 성공손학규 前 도지사 "첨단 기업들 판교로 모여"강남 집값 수요를 잡을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지만, 고급 연구인력이 오가는 첨단지식산업단지로도 판교는 이미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였다.하지만 당시 건설교통부는 이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수요예측과 달리 산업단지의 분양이 쉽지 않을 거라 판단했고, 슬그머니 경기도에 분양 전권을 떠넘겼다. 자의반 타의반, 경기도가 자연스럽게 판교 테크노밸리의 세부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입주자를 선정하는 등 전체의 기획을 하는데 주도권을 갖게 됐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게 결과적으로 판교를 나름 성공작으로 만들게 한 단초가 됐다. 경기도는 첨단지식산업단지에 걸맞게 IT(정보기술), BT(바이오), NT(나노기술), CT(문화산업) 등으로 엄격하게 업종을 제한했다. 대신 이들 기업에 조성원가 수준으로 용지를 값싸게 공급했다. 당시 책정된 토지공급가격은 3.3㎡당 평균 952만원대였는데, 강남 테헤란밸리 땅값에 절반도 안되는 수준에 불과했다. 2001년 기준 테헤란밸리의 임대료가 3.3㎡ 당 1천만원 수준이었던 것을 비교하면 얼마나 저렴하게 기업에 부지를 제공했는지 알 수 있다. 이른바 토지개발로 얻어지는 수익성보다 벤처기업 수요에 초점을 맞춘 것도 주효했다. 이를테면 일반연구와 연구지원용지(공공지원센터, 산학연 R&D센터)를 구분한 건 판교가 첫 사례인데, 연구를 지원하고 협력하는 공공기관과 금융서비스 등이 한 공간에 자리한다는 점은 연구소를 보유한 중견기업들 90% 이상이 판교를 선호한 이유 중 하나였다.경기도는 첨단산업을 이끄는 대·중견기업의 수요를 맞춰주면서 지가 상승으로 차익을 얻으려는 시도는 원천 봉쇄했다. '10년간 전매제한' 제도를 둬 제 3자에게 양도를 제한한 것. 더불어 20년간 판교 테크노밸리의 입주기업 업종을 제한하는 정책도 폈다.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판교테크노밸리는 조기분양과 입주에 성공했다. 이 과정을 주도했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현 바른미래당 대표)는" 입주를 희망하는 기업들이 많아 당시 경쟁이 치열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부지조성공사가 완료된 후 1차 공급에 삼성테크윈, 넥슨, 안철수연구소, 엔씨소프트 등 내로라하는 국내 첨단산업의 대기업들이 경쟁에 나서 39개 중 29개 용지를 선정했다. 2차 용지엔 LIG넥스원, 차그룹, NHN 등 7개 기업, 3차 공급에선 삼성중공업, 삼양사, 한화 등이 입주했다. 그 경쟁이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당시 경인일보 기사를 통해 살펴보면 "NHN은 1차 공급에서 엔씨소프트와 동일한 필지에 신청했다 보기 좋게 낙방했고 2차에 네오위즈와 컨소시엄을 구성해 재도전 결과, 어렵게 입주에 성공했다"고 설명됐다. 초기 판교 테크노밸리의 안정적 출발은 애초 목표였던 '자급자족 산업도시'의 모습을 갖추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판교 테크노밸리는 매년 놀라운 성장세를 선보였다. 판교 테크노밸리 입주기업의 매출액은 2013년 54조원을 시작으로 2014년 69조원, 2015년 70조원, 2016년 77조원, 2017년 79조원, 2018년 87조5천억원으로 급증했다. 손 전 지사는 "솔직히 판교 테크노밸리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것이라고는 당시 생각 못했다. 그만큼 기술을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 기업들의 목마름이 판교로 모였던 것"이라며 "입주 기업을 모집할 때부터 많은 서울 소재 기업들이 판교로 내려오길 원했다. 삼성, 현대 다음으로 한국 경제를 책임지는 것이 판교"라고 추켜세웠다. /기획취재팀▶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도움주신 분들임창열 킨텍스 대표이사,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재율 前 경기도행정1부지사, 이상후 前 LH 부사장,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 오세일 이너보틀 대표, 오보영 이트너스 이사, 엄정한 컴퍼니B 대표,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성남시, 성남산업진흥원, 판교박물관■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영상 : 강승호기자, 박소연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판교의 심장부 테크노밸리에 자리잡은 첨단 IT기업들. /경인일보DB판교 테크노밸리 일대 야경.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제공경인일보속 판교-(왼쪽부터)2000년 10월 19일, 12월 4일, 2001년 9월 29일, 2003년 8월 15일자 지면.

2020-01-05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판교 리얼리티·(1)성장]판교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건교부 vs 경기도'강남의 베드타운 계획' 중앙부처와 조성방향 마찰"양보다 질로 개발" 대통령 직접보고 '승부수' 성공#60만평 vs 10만평건교부, 합의 뒤집고 '주택공급에 중점' 부지 축소道 '첨단산단 요구' 민간단체 가세… 20만평 '타협''판교를 주거단지로 개발하는 것은 우리 경제 도약의 중요한 기회를 일실하는 결과 초래'.2000년 12월 1일, 김대중 대통령이 경기도청을 방문했다. 예정된 도정 업무보고였지만, 대통령 앞에 선 경기도 공무원들의 표정은 자못 비장했다. 판교의 운명을 가를 승부수를 던져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상황을 임창열 전 경기도지사(현 킨텍스 대표이사)는 이렇게 회상했다. "단순히 국가가 주도해서 국토균형발전의 관점에서만 수도권 개발을 바라보면 판교 개발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경기도가 아무리 싸우자고 덤벼도 건설교통부(지금의 국토교통부) 장관이 말을 안 들어주면 끝이다. 법이 그렇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우리나라는 대통령제 국가니까 도정보고를 이용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하는 방식을 택하면 되겠다 싶었다. 대통령께 직접 설명하면 분명 이 사업의 중요성을 이해할 것이라 확신했다." 판교는 운명을 스스로 개척했다. 판교를 품고 있는 경기도의 고집이 지금의 판교를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여느 신도시처럼 판교도 한때는 서울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한 베드타운이 될 뻔했다. 서울 강남과 근접한 훌륭한 입지조건을 갖췄고 앞서 개발된 분당신도시의 긍정적 이미지가 강남수요를 잡기에 손색없어서였다. 서울 강남 집값을 잡는 것이 정권의 승패를 결정짓는 상황이었는데, 번듯한 요건을 갖춘 판교를 두고 군침을 흘리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국가 국토개발의 전권을 쥐고 있는 건설교통부가 280만평에 이르는 판교 택지개발사업을 '주택공급'에만 주안점을 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였다.그런데 경기도가 제동을 걸었다. 더 이상 수도권에 주민의 90%(2001년 기준)가 서울 등 타 지역으로 출퇴근하는 1기 신도시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던 셈이다.그러면서 들고 나온 것이 '첨단벤처산업단지' 개발을 동반한 신도시 건설이었다. 경기도가 꿈꾼 건 '자급자족'이었다. 판교에 벤처산업단지가 들어서면 이 곳에서 일하는 IT인력들이 판교에 살면서 회사와 연구소를 오가고, 저녁과 주말에는 상권과 문화를 즐기는 자급자족의 도시가 될 것이라는 게 경기도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건설교통부의 입장은 '반대'였다. 끈질기게 벤처산업단지를 요구하는 경기도와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골이 깊어졌다.경기도정 업무보고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수도권에서는 양보다는 질 위주로 개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며 사실상 경기도의 손을 들어준 뒤 '60만평' 개발로 합의를 해놓고도 건설교통부는 2001년 6월, 별안간 합의를 뒤집고 벤처산업단지 부지를 '10만평'으로 축소 발표해버렸다. 임 전 지사는 "대통령도 건설교통부에 경기도 의견을 무시하지 말고, 수렴해서 결정하라고 메시지를 줬는데 당시 민주당을 등에 업고 건설교통부가 끝까지 반대했다. 대통령 보고 이후 60만평까지 합의가 됐는데 민주당 보고 이후 다시 '주택 공급' 위주로 개발계획이 돌아섰고 10만평으로 확 줄어버렸다"고 회상했다. 당시 경기도와 벤처기업협회 등에서 실시한 수요조사에서는 2005년에 이르면 벤처기업 수가 4만3천여개에 이르고, 860만평 이상의 신규입지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벤처기업협회는 2000년 10월에 기자회견까지 열고 "서울 테헤란로와 양재, 포이동으로 이어지는 벤처밸리는 이미 과포화 상태로 비싼 임대료 등 여러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며 "80년대 이후 수도권 68개 지구 230만명 수용규모의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자족기능 확충을 위한 시설은 한 번도 마련되지 않았다. 판교는 베드타운이 아닌 높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첨단산업단지가 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더불어 경기도경제단체연합회, 경기도상공회의소연합회, 경기벤처협회 등 경기도 경제를 주도하는 민간단체들도 언론매체에 판교 벤처단지 조성을 찬성하는 광고를 게재했다. '60만평의 판교벤처단지 조성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것입니다' '판교벤처단지 조성은 경기도지사의 사사로운 건의가 아니라 대통령님과 당대표께 건의드리고 당 및 건설교통부와 공식협의를 거친바 있습니다' '판교벤처단지 20만평에 용적률 200%는 경기도측 요구내용과 전혀 다릅니다' 등 건설교통부의 일방 행보를 비난하는 목소리들이었다.특히 이들이 낸 '건교부의 판교벤처 불가론에 대한 반박문'에는 흥미로운 내용도 포함됐다. 이들은 "건설교통부가 그동안 경기도 5대 신도시를 개발하면서 1조8천930억원의 이득을 취했다"고 꼬집으며 "이런 일이 반복돼선 안되며 판교개발로 얻어진 이익은 당연히 판교개발과 관련한 사업에 재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만, 말레이시아 등 경쟁상대국은 지식집적지 조성을 위해 특별법까지 제정해 조세감면, 재정지원을 아끼지 않고 중국의 경우 베이징시 중관촌에 지식집적지 조성을 위해 국가가 28조원을 투입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2001년 9월, 경기도와 건설교통부는 판교벤처용지 개발에 '20만평'을 사용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지금 판교의 성장에 비추어보면 지독히도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경기도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 첫 성공사례였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 ■도움주신 분들임창열 킨텍스 대표이사,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재율 前 경기도행정1부지사, 이상후 前 LH 부사장, 김동욱 와이즐리 대표, 오세일 이너보틀 대표, 오보영 이트너스 이사, 엄정한 컴퍼니B 대표,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성남시, 성남산업진흥원, 판교박물관■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영상 : 강승호기자, 박소연 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1990년대 후반 개발이 본격화 되기 전 판교일대 전경(왼쪽)과 개발이 시작된 직후 판교 일대 전경. /성남시 제공조성작업이 한창인 판교 테크노밸리 일대 전경. /성남시 제공

2020-01-05 공지영·신지영·김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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