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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이대론 쓰레기에 묻힌다·(1)가까워지는 대란]2025년 종료 앞둔 수도권 매립지

인천시, 폐기물법 따라 매립지 종료 '확고'한해에 50만여t 쓰레기 처리할 곳 없어져64개 기초단체 공문… 각자해결 대책 요청# 인천시 종료 의지 확고, 발생지 처리 원칙 지켜야지난달 19일 인천시는 수도권 매립지로 폐기물을 반입하는 64개 기초지자체에 공문을 보내 2025년 수도권 매립지 3-1 매립장 반입을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인천시의 의지는 확고하다. 2025년 이후 수도권 매립지 운영은 불가하며 폐기물은 발생지 처리 원칙에 따라 지자체가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인천시는 공문에서 "환경부와 3개 시·도는 수도권 매립지의 사용 최소화 노력을 전제로 지난 2015년 3-1 매립장을 추가 사용하기로 했다"며 "그럼에도 4자 합의 이후 4년 7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대체 매립지 조성은 지연되고 있고, 친환경 매립 방식 도입에 대한 합의 이행과 대체 매립지를 친환경 매립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에 대한 이행 담보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인천시는 3-1 매립장 사용을 끝으로 매립지 운영을 종료하고 폐기물관리법 제4조의 규정에 따라 폐기물 발생지 처리 원칙에 따른 수도권 매립지 종료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각 지자체에 요청했다. 아울러 친환경 매립 방식 도입을 위해 생활폐기물 직매립을 금지하고, 건설·사업장 폐기물 매립량도 감축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했다.# 수도권 매립지 운영 중단, 쓰레기 대란 불 보듯2025년 매립지 운영이 당장 종료될 경우 서울과 경기 지역 지자체들의 쓰레기 대란은 불 보듯 뻔하다. 수도권 지역에 매립(2019년 기준)하는 53만9천800t 규모의 생활폐기물을 처리할 곳이 없어지기 때문이다.당장 25개 지자체 모두가 생활폐기물을 수도권 매립지로 반입하는 서울시는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 내 폐기물 처리시설은 인천, 경기 지역과 비교했을 때 턱없이 부족하다.현재 서울시는 총 5곳의 소각 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가동 용량은 2018년 기준 일 평균 2천898t이다. 생활폐기물 발생량이 같은 해 기준 일 평균 8천586t임을 감안했을 때 재활용을 제외하고 일 평균 839.9t을 매립 해야 한다. 특히 서울시 금천구는 별도 폐기물을 소각하지 않고 전량 수도권매립지로 생활폐기물을 보내고 있다.인구당 소각시설 현황을 보면 인천시(9개 소각시설)는 32만명 당 1곳, 경기도는 50만명 당 1곳, 서울시는 194만명 당 1곳이다. 1일 평균 소각용량도 서울시가 1인당 297g으로 인천시 297g과 같지만, 경기도 383g에 비하면 100g 가까운 차이를 보인다.경기도도 총 26개 소각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매립지를 이용하는 지자체가 계속 늘어나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경기지역 지자체들의 수도권 매립지 이용이 늘어나게 된 것은 택지개발에 따른 인구 증가, 소각 시설 노후화에 따른 소각장 성능 감소, 소각시설 보수공사 등 다양하다.소각장 용량은 하루 50t이지만 시설 노후화로 소각 규모가 하루 40t 정도인 안성시는 소각 후 남는 생활폐기물 처리를 위해 지난 2017년부터 매립지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천시와 광주시, 하남시, 양주시, 양평군 등은 공동으로 하루 300t 규모의 광역소각장을 보유하고 있지만 보수 공사 등으로 폐기물 처리가 어려울 경우를 대비해 지난 2018년부터 수도권 매립지에 생활폐기물을 일정 부분 반입 중이다.1인당 매일 발생량 0.85㎏ 달하는 서울시소각시설 5곳 불과… 매립량은 인천 '3배'운영 시작이후 전체 반입물량 55.9% 차지# 1인당 생활폐기물, 서울시 최다수도권에서 종량제 봉투에 넣어 처리하는 생활폐기물은 최근 10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9년 수도권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하루 평균 2만73.7t에서 2018년 2만433.3t으로 359.6t 늘었다. 시·도 별로 보면 2018년 기준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경기도가 9천861.3t으로 가장 많았고 서울시 8천586.9t, 인천시 1천985.1t 순이었다.생활폐기물 총량에서는 경기도가 총인구에 비례한 1일 평균 생활폐기물 양이 3개 광역 지자체 중 가장 많다. 총인구에서 쓰레기 발생량을 나눈 1인당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오히려 서울시가 경기도보다 더 많다. 2018년 기준 경기도 인구는 1천349만3천700명, 서울시는 1천4만9천600명으로 경기도 인구가 344만4천명이 더 많다. 2018년 1인당 생활 폐기물 발생량은 서울의 경우 하루 평균 0.85㎏인 반면 경기도는 0.73㎏을 나타냈다. 인천시는 0.65㎏으로 가장 적었다.수도권 기초 지자체별로도 1인당 생활폐기물 발생량이 많은 지역은 서울시다. 서울시 중구는 1인당 2.71㎏의 생활폐기물이 발생해 1인당 생활폐기물이 가장 많았고 종로구 2.07㎏, 마포구는 1.13㎏이 발생해 뒤를 이었다. 경기도는 연천군이 1.12㎏을 기록해 1인당 생활폐기물이 가장 많이 발생했고, 다음으로 과천시(0.94㎏), 의정부시(0.92㎏) 순으로 집계됐다. 인천시는 서울시와 경기도보다 1인당 발생량이 가장 적다. 2018년 인천시의 1인당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0.65㎏였으며 기초 지자체별로는 중구 1.06㎏, 옹진군 0.87㎏ 순으로 조사됐다.경기지역도 인구수 늘고 소각시설 노후화반입등록 시군 16 → 24곳… 대책마련 시급# 수도권매립지 반입량도 서울시 최다수도권 매립지 운영이 시작된 1992년부터 2018년까지 매립지에 매립된 전체 폐기물은 약 1억4천943만450t이었다. 이중 서울시가 절반이 넘는 8천359만8천270t(55.9%)의 쓰레기를 매립지에 묻었다. 경기도가 4천160만1천49t(27.9%)으로 뒤를 이었고 인천시는 2천419만9천567t(16.2%)으로 가장 적었다. 서울시가 인천시의 3배, 경기도의 2배 많은 양의 폐기물을 지금까지 수도권매립지에 버린 것이다.수도권매립지에 매립된 생활폐기물 역시 최근 5년간 통계를 보더라도 서울시가 가장 많았다. 서울시가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매립한 총 생활폐기물은 143만6천577t. 경기도와 인천시는 같은 기간 각각 116만9천243t과 44만7천551t을 기록했다. 서울이 인천보다 3배가 넘는 생활폐기물을 매립지에 버렸다. 연간 매립량은 서울시가 2019년 기준 34만6천429t으로 2015년 24만5천482t보다 10만947t(42.1%) 증가했다. 경기도는 2015년 16만1천708t에서 2019년 31만3천86t으로 15만1천378t(93.6%)이나 늘었다. 인천시의 생활폐기물 수도권 매립지 반입량은 2015년 5만7천871t에서 2019년 12만6천604t으로 2배 이상 증가해 증가 폭이 가장 컸다.경기 지역에 인구가 늘고 소각 시설이 부족해지면서 도내 지자체들의 수도권매립지 반입량이 늘었다. 2015년 수도권 매립지에 생활폐기물을 반입 등록한 경기 지역 지자체는 16곳에 그쳤지만, 지난해에는 24곳으로 확대됐다. 2017년 들어서는 안산시(3만3천257t), 시흥시(3만3천239t), 평택시(3만2천753t)가 생활폐기물 수도권 매립지 반입량 1∼3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평택시가 4만1천306t으로 매립지에 반입하는 기초지자체 중 가장 많은 반입량을 나타냈고, 고양시(3만7천287t), 부천시(3만6천774t)가 뒤를 이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기획취재팀 글: 이원근, 이준석, 공승배기자사진: 강승호차장, 조재현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2020-03-11 이원근·이준석·공승배

[수도권, 이대론 쓰레기에 묻힌다·(1)가까워지는 대란]'잘못된 분리배출' 반입량 늘려

종이상자·스티로폼 담아 배출… 폐기물 둔갑 1인당 하루배출량 255g중 53% '재활용 가능'정부, 친환경 소비 확대·선별체계 개선 노력# 종량제 봉투속 무분별하게 버려지는 재활용 쓰레기지난 2일 오후 10시. 인천 계양구 한 폐기물 수거업체 근로자들의 하루는 늦은 밤부터 시작됐다. 3인 1조로, 7t의 폐기물 압축차량을 타고 동네를 돌기 시작했다. 2명은 차량 뒤에 매달려 폐기물 수거를, 나머지 한 명은 운전을 담당했다. 차량은 약 5m 간격으로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거의 모든 가로수 아래에는 쓰레기 더미가 쌓여있었다. 폐기물 수거업체 근로자들이 수거하는 폐기물은 종량제 봉투에 담긴 '생활폐기물'이지만, 투명 봉투에 버려진 재활용 폐기물도 차량에 함께 실었다. 이물질이 묻은 라면 용기, 물기가 남아 있는 페트병 등이 담긴 봉투였다. 이물질이 있는 폐기물은 재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재활용할 수 있는 쓰레기가 무분별하게 버려져 불필요한 매립이 이뤄지고 있다.12년째 폐기물 수거 일을 하고 있다는 정모(53)씨는 "원칙대로 종량제 봉투만 수거하면 다음날 쓰레기가 치워지지 않았다는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친다. 재활용품이라도 현장 판단에 따라 재활용할 수 없어 보이면 가져갈 수밖에 없다"며 "주민들이 나름대로 재활용이라고 분리해 내놓지만, 실상은 음식물 찌꺼기, 물기가 있어 재활용할 수 없는 게 태반"이라고 했다.아파트 단지는 쓰레기 분리 배출 사정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주택가로 들어서자 상황은 심각했다. 재활용할 수 있는 스티로폼이나 종이상자에 각종 쓰레기를 담아 놓는 등 생활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 분리 배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주택가 곳곳에 설치된 '무단투기 금지'를 알리는 스티커와 현수막 앞에도 분리 배출하지 않은 쓰레기더미가 쌓여 있다. 쓰레기봉투 하나를 찢어보니 캔, 비닐, 피자 상자 등이 섞여 있었다.일반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분리하는 것도 작업자들의 몫이다. 작업자들은 깨끗한 상태의 재활용 폐기물, 종이상자는 남겨 놓고 분리 배출하지 않은 쓰레기는 가져간다. 정씨는 "종량제 봉투 안에도 재활용 쓰레기가 20~30%는 포함돼 있다. 축축한 종량제 봉투는 모두 그 안에 음식물까지 포함된 것"이라며 "눈에 띄는 재활용 쓰레기는 수거하며 분리하지만, 불투명한 종량제 속에 있는 것까지 골라내기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날 쓰레기 수거는 적환장에서 쓰레기차를 비우고 다시 수거하기를 2차례 반복했고, 작업은 다음날 오전 8시까지 이어졌다.# 매립·소각 종량제 생활폐기물 53% 재활용 가능5년마다 진행되는 제5차 환경부 전국폐기물 통계조사(2016년 기준)에 따르면, 종량제 봉투에 버려지는 생활폐기물 중 절반 이상은 재활용 가능한 자원이다. 전국에서 하루 1인당 배출하는 종량제 폐기물은 255g으로, 이 중 53%(136g)가 재활용이 가능한 폐기물이다. 인천 등 광역시 단위에서 시민 1명이 하루 배출하는 종량제 폐기물 양(318g) 중에서도 약 43%(138g)가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수도권매립지에 매립되는 생활폐기물을 줄이려면 무엇보다 분리 배출이 중요하다. 수도권매립지에 반입된 생활폐기물은 2015년 약 46만5천t에서 2018년 약 70만6t으로, 3년 사이 약 50% 증가했다.특히 올해는 각 시·도가 2018년 생활폐기물 반입량 대비 10%를 감축해야 하는 '반입 총량제'까지 실시되고 있지만, 생활폐기물은 여전히 줄지 않고 있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에 따르면 반입총량제가 실시된 올해 1월, 수도권매립지에 반입된 생활폐기물 양은 4만8천500여t으로, 지난해 1월보다 1천700여t 증가했다. 2018년 1월과 비교해도 약 24%(9천600여t) 증가한 수치다.종량제 봉투에 버려지는 생활폐기물 중 절반가량이 재활용 가능한 자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분리 배출만 제대로 해도 생활 폐기물 매립량의 절반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다. 환경부 관계자는 "2018년부터 폐기물의 발생 억제, 순환이용 촉진을 위한 제1차 자원순환기본계획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며 "친환경 소비를 확대하고 배출·수거·선별 체계를 개선해 버려지는 자원을 줄여 재활용률을 점차 높여 나가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도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기획취재팀글: 이원근, 이준석, 공승배기자사진: 강승호차장, 조재현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수도권매립지 3-1 공구 생활폐기물 매립구역에서 잘못된 분리배출로 인해 음식물 찌꺼기가 섞인 쓰레기가 매립되고 있고 이를 먹기 위해 주변을 배회하는 갈매기들이 뒤엉켜 있다. /기획취재팀

2020-03-11 이원근·이준석·공승배

[수도권, 이대론 쓰레기에 묻힌다·(1)가까워지는 대란]매립지는 어떻게 운영될까

통합계량대 검사… 성분분석 후 반입결정차량서 쏟고 펼침·다짐 거친후 중간 복토1·2매립장 면적 축구장 717개 맞먹을 정도# 쓰레기, 어떻게 처리되나환경부의 전국폐기물 발생 및 처리 현황에 따르면 전국에서 하루 평균 약 4만6천700여t(2018년 기준)의 생활폐기물이 쏟아진다. 매일 25t 덤프트럭 1천800여대로 옮겨야 하는 수준이다. 이중 절반에 가까운 약 43%(약 2만t)가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지역에서 발생한다.쓰레기는 어떻게 처리될까. 종량제 봉투에 생활폐기물을 담아 배출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보자. 지역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규격별 흰색 종량제 봉투를 사용한다. 아파트와 같은 공동주택은 한 곳에 쓰레기를 모아 버리지만, 주택가는 대부분 자기 집 앞에 쓰레기를 배출한다.배출된 쓰레기는 각 자치단체와 위탁 계약을 맺은 폐기물 처리 업체에 의해 수거된다. 작업자들이 하루 약 10시간 동안 일명 '쓰레기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버려진 쓰레기를 수거한다. 이렇게 각 동네와 공동주택, 건물 등에서 수거된 쓰레기는 적환장으로 모인다. 적환장에서는 폐기물 압축 등의 과정이 이뤄진다. 압축된 폐기물은 대형 폐기물 차량으로 옮겨진다. 소각장과 매립장에는 '쓰레기차'가 진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이후 쓰레기는 각 지역의 소각장이나 수도권매립지로 향한다. 쓰레기차에 한번 담긴 폐기물은 소각이나 매립, 둘 중 한 가지 방식으로 처리된다. 재활용이 가능한 폐기물이 섞여 있더라도 이를 걸러내는 건 불가능하다. 폐기물 수거 업체는 통상적으로 이틀은 소각장에, 하루는 매립지에 폐기물을 버린다. 현재 수도권매립지에는 서울·경기·인천 지역 66개 기초자치단체 중 인천 옹진군과 연천군 2곳을 제외한 64곳의 폐기물이 반입되고 있다.# 수도권매립지 반입과정수도권매립지의 반입 첫 과정은 통합 계량대에서 시작된다. 모든 폐기물 차량은 반입 전 이 계량대에서 검사받아야 한다. 검사는 크게 ▲지정 검사대상 폐기물 검사 ▲정밀검사 ▲일반검사 세 가지로 분류된다. 소각재 등 지정 폐기물 17종과 오니 등은 시료 채취 후 성분 분석 결과에 따라 반입 여부가 결정된다. 정밀검사는 반입 규정 위반으로 반출이 잦았던 차량 등에서 무작위로 선정돼 이뤄진다. 매립장 내 정밀검사 구역에서 모든 폐기물을 하역한 후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감독관, 주민감시요원이 폐기물의 상태를 검사하게 된다. 반입 규정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벌점이 부과되거나 매립 자체가 불가능하다.통합 계량대를 통과한 차량은 매립장 내부로 진입해 폐기물을 쏟는다. '쓰레기 직매립' 방식이다. 현재 매립이 진행 중인 3-1 매립장은 240m×220m 크기를 1블록으로 해 모두 16개의 블록으로 이뤄져 있는데, 정해진 구역부터 폐기물을 매립한다. 차량에서 내려진 폐기물은 펼침, 다짐 작업을 거쳐 매일 흙으로 덮는다.수도권매립지의 매립은 5m 높이를 1단으로 해 모두 8단으로 이뤄진다. 1단이 쌓일 때마다 50㎝씩 중간 복토가 이뤄지며, 매립이 완료되면 매립장은 40m 높이의 폐기물이 쌓이게 된다. 폐기물은 땅속에서 부패하면서 침하가 이뤄지는데, 매립이 완료된 제2매립장은 현재 약 10m 높이의 언덕이 됐다.매립된 폐기물에서 발생하는 침출수는 수집정을 통해 처리장으로 옮겨지며, 매립 가스는 포집정을 통해 발전소로 가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제1매립장에는 8년간 약 6천400만t, 제2매립장에는 18년간 약 8천만t의 폐기물이 매립됐다. 두 매립장의 매립 면적만 해도 축구장 717개 규모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 글: 이원근, 이준석, 공승배기자사진: 강승호차장, 조재현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2020-03-11 이원근·이준석·공승배

[희망의 그늘 쌍용차 그리고 평택·(3·끝)결국 문제는 '일자리']일자리 엔진 다시 뛰는… '쌍용차는 달리고 싶다'

10년 지나도록 찾지못한 처방전그래도 풀어야하는 공존 해결책결국 문제는 '일자리'다. 쌍용차를 직접 겪은 평택사람들은 일자리가 생계이고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평택에서 만난 모든 이들이 정부라도 나서 민간기업에 불과한 '쌍용차'를 살려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이유다.동료였던 이들이 산자와 죽은자로 나뉘어 극렬하게 대립한 것도,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까지 죽은 이들이 그리워했던 것도, 기나긴 고통 속에서 10년을 하루같이 돌아갈 날만 기다리며 투쟁을 벌여온 것도 모두 일터로 돌아가 평범했던 지난 일상을 되찾고 싶어서였다.서둘러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 했다. 평택과 가장 유사한 산업구조를 가졌던 군산을 찾아갔다. GM공장이 문을 닫은지 2년, 도시는 을씨년스럽게 변했다. 그곳에서 만난 이들도 '일자리'의 중요성을 깊이 체득하고 있었다. 또 희망을 잃지 않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 지역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더불어 정부가 추진 중인 상생형 일자리의 롤모델, 독일 폭스바겐 볼프스부르크 공장의 'Auto 5000'의 사례는 양보와 상생이 주는 긍정적 성과를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가정일 뿐이다. 평택과 쌍용차가 처한 상황에 딱 맞는 해결책은 찾기 어려웠다.그래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쌍용차 사태의 아픔을 오랜 시간 겪어왔음에도 우리 사회가 얻은 교훈이 없다. 여전히 노사갈등은 창과 방패처럼 팽팽히 맞서고, 해고가 곧 살인이 될 만큼 사회 안전망은 헐겁기 짝이 없다. 오히려 최선이라 믿었던 그 선택의 결과를 잘 알고 있기에 지금의 선택을 더욱 어렵게 한다.그럼에도 다시 위기는 도래했고, 우리는 살기 위해 답을 찾아야 한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김금보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쌍용자동차가 직면한 위기는 모두가 함께 힘을 합쳐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다. 그래야 쌍차도 살고 평택도 살고 사람도 산다. 13일 코로나19 여파로 생산을 중단했던 쌍용자동차가 조업을 재개했다. 사진은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생산라인. /기획취재팀

2020-02-13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희망의 그늘 쌍용차 그리고 평택·(3·끝)결국 문제는 '일자리']'공존'은 가능한가

마힌드라 수천억 투자 약속 '회생 불씨'전문가 '평택형' 대안 현실화 노력 강조임금차등·생산라인 공유 등 숙제 산적# 평택형 일자리 가능성은물론 군산의 GM공장처럼 쌍용차 평택공장이 문을 닫을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 쌍용차가 절박한 위기상황이긴 하지만 유일한 생산기지인 평택공장을 닫는 것은 스스로 생명줄을 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여러 지역에 생산공장을 두고 있는 GM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여기에 쌍용차 노사가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자구책을 마련 중이고,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가 수천억원의 투자를 약속함과 동시에 정부도 쌍용차 회생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고 있기에 아직 솟아날 구멍은 있다. 특히 쌍용차 지원을 고민하는 정부는 '명분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무턱대고 민간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등의 정부 지원은 부담이 크다. 적절한 명분을 찾아야 하는데, '일자리 창출'이 그 명분으로 거론되고 있고 평택형 일자리가 관심을 받고 있다.아직 뚜렷한 구상이 드러난 건 아니다. 다만 2018년 쌍용차 노노사정의 전원복직 합의과정에 참여했던 문성현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이 마힌드라 측과 평택형 일자리를 논의하려 했다는 것 정도만 알려졌을 뿐이다. 여러 방면에서 거론되고 있는 평택형 일자리의 추진 방식을 분석해 실효성을 살펴봤다. 먼저 중국 자본을 통한 전기차 업체가 현재 쌍용차 평택공장 내 유휴 상태인 1개 조립라인을 임차해 별도 법인형태로 근로자를 채용해 전기차를 생산하는 형태다. 하지만 이 같은 방식은 물리적 여건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게 쌍용차의 반론이다.공장 안에 여러 단계의 생산공정이 함께 설비돼 있는데, 일부 라인만 빌려서 다른 차를 만들겠다는 것은 기술유출 등의 위험이 있어 어렵다는 것이다.또 같은 공장에서 똑같이 자동차를 만드는데, 임금과 노동형태가 다른 근로자가 동시에 근무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쌍용차 관계자는 "자동차 생산은 도장기술이 핵심인데 지금 쉬고 있는 조립라인 바로 옆이 도장 라인인 데다 일부 생산라인 설비를 바꾸면 다른 공정 설비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며 "또 한 공장 내에서 기존 쌍용 직원과 별도 법인 직원이 같이 일하면 다른 임금 수준 때문에 노조가 반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광주형 일자리처럼 평택 내 새 부지에 공장을 조성해 일자리를 만드는 방식도 있지만, 이 역시 막대한 비용문제가 발목을 잡아 추진하기 쉽지 않다. 여러 논란 속에서 평택형 일자리가 뜨겁게 관심을 받고 있는 건 그렇게 해서라도 쌍용차가 경영을 개선해 지역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다.그래서 전문가들은 쌍용차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평택형 일자리와 같은 대안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광주형 일자리 등 오랜 기간 정부 일자리 정책 연구에 참여한 이문호 워크인연구소장은 "(쌍용차가) 극한의 위기에 내몰린 만큼 오히려 (노사) 협상과정에서 상생의 대안이 나올 수도 있다"며 "광주형 일자리의 모티브인 독일 폭스바겐의 'Auto 5000'도 같은 공장 내 서로 다른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근무하며 갈등도 있었지만 서로 양보하고 견뎌낸 끝에 5천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겼고 생산성 향상까지 이뤄내 큰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김금보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현재 쌍용차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쌍용차 노사가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해 자구책을 마련하고, 대주주인 인도 마힌드라의 투자와 동시에 정부도 쌍용차 회생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사진은 쌍용차 평택공장. /기획취재팀

2020-02-13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희망의 그늘 쌍용차 그리고 평택·(3·끝)결국 문제는 '일자리']일자리 잃은 도시, 군산의 풍경

2012년 전북수출 29.3% GM공장… 4년만에 6.4%로 추락노동자 떠나자 상권 침체 전국 지가상승률 꼴찌 전기차 생산거점 조성 활로 모색2년 전, 전라북도 군산에 있던 한국GM 자동차공장이 문을 닫았다. 그로 인해 군산은 많은 것을 잃었다. 전북지역의 수출효자 노릇을 해왔던 군산은 이제 옛말이 됐다. 2012년 35억달러를 달성하며 전북지역 수출의 29.3%를 차지했던 군산의 GM공장 수출액은 2016년 4억달러까지 떨어져 6.4%에 그쳤다. 지역 내 총생산 규모도 2012년 4조8천억원에서 2016년 1조원 규모로 줄어들었고, 공장이 문을 닫은 지금은 이마저도 사라졌다. → 표 참조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건 지역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고용인원이 1만명 넘게 줄면서 1만2천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군산을 떠났다. 2011년만 해도 3천600명 이상이었던 GM공장 고용인원이 2017년 약 2천명으로 줄고, 이듬해엔 공장이 폐쇄되며 대부분 지역을 등졌다. 이 때문에 지역 내 170여개 자동차·부품 협력업체들도 휴폐업을 피하지 못해 100여개로 감소했다. 이에 따른 고용인원도 1만명에서 4분의 1수준까지 감소했다. 지역의 서민경제를 책임지던 수많은 공장 노동자가 떠나자 그 고통은 군산 시민들의 몫으로 돌아왔다.지난 달 28일, 군산을 직접 찾았다. 지역경제가 침체된 모습은 도시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자동차 부품 등 GM 협력업체가 입주한 군산2국가산업단지는 문을 닫아 텅 빈 공장과 건물이 즐비했다. 근로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오식도동 식당가에는 점포마다 '임대문의'를 걸어두었고 아예 영업을 그만 둔 곳들도 눈에 띄었다. 해장국집을 운영하는 A씨는 "점심에도 얼마 안 되지만 저녁은 손님이 거의 없고 회식예약도 지난해부터 전혀 없다"며 "현대 조선소에 이어 GM군산공장까지 문을 닫으면서 지역상권에 타격이 너무 크다"고 안타까워했다.다세대주택이 몰려있는 원룸촌도 '임대'를 알리는 현수막이 건물 벽마다 펄럭거리고 있었다. 넓은 면적의 아파트 단지가 많아 GM공장 직원들이 주로 거주했다는 군산 나운동의 아파트 단지들도 공장 폐쇄 이후 빈집이 늘어난 상태다. 나운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산업단지와 인접한 소룡동과 달리 면적이 큰 아파트가 많은 나운동에 GM공장 직원들이 많이 살았다"며 "그런데 공장이 문을 닫고 지역을 떠나면서 부동산에 매물로 나온 집이 많은데 땅값이 뚝 떨어져 잘 나가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월 군산은 전국에서 지가상승률 꼴찌를 기록했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GM공장이 문을 닫은 지 2년, 일자리를 잃은 도시의 절망이 가득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군산형 일자리'가 계획됐다. 기존 GM공장을 전기차 생산거점으로 새롭게 조성해 일자리를 다시 만들겠다는 것이다. 군산형 일자리는 '광주형 일자리'로 이미 주목받은 정부의 상생형 일자리 정책이다. 군산시와 전라북도가 한국노총·민주노총 등과 함께 협력해 새 일자리를 만들면 정부가 복지·금융 등의 지원을 한다. 이에 따라 현재 중견 자동차기업 (주)명신을 소유한 MS그룹이 GM공장을 매입해 기존의 내연기관 자동차 생산설비를 전기차로 바꾸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MS그룹 외에도 총 5개 자동차·부품업체가 2022년까지 4천122억원을 투자해 전기 승용차·버스·트럭·카트 등 총 17만여대를 생산할 계획이다. 이들은 향후 2년간 중국 전기차 바이톤의 위탁생산과 자체생산 플랫폼 구축을 위한 연구개발로 자생력을 키운 다음, 2023년부터는 자체 전기차 모델을 생산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같은 정책을 통해 군산은 당장 내년에 900개의 일자리가 새로 창출된다. 또 2022년까지 최종 1천900명이 채용될 예정이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김금보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2020-02-13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희망의 그늘 쌍용차 그리고 평택·(3·끝)결국 문제는 '일자리']구조조정보다 나은 길… 함께 그릴 '큰 그림'

적자누적 폭스바겐, 노조에 'Auto 5000' 제안별도 생산법인 만들어 실직위기 근로자 채용극한 대립서도 공동의 목표 공유 전략 '성공'장시간 이어진 싸움… 사회 시선까지 '냉랭'2009년보다 '강도 높은 자구책' 필요한 시점모두가 바라는 건 오직 '일자리' 잊지 말아야# Auto 5000독일 폭스바겐의 생산공장 중 하나인 볼프스부르크 공장의 'Auto 5000'은 국내 첫 상생형 일자리로 추진되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의 모델이다. Auto 5000은 노사가 함께 머리를 맞대 일자리를 창출한 상생 모델로 주목받았다. 특히 자동차 산업의 위기와 폭스바겐의 경영악화, 구조조정 등 쌍용차가 처한 위기상황과 닮은 점이 적지 않아 참고해 볼 만하다.1993년 독일의 자동차산업 침체로 볼프스부르크 공장은 생산량이 감소했다. 당시 5만4천명의 근로자가 근무 중이었는데 이 중 3만여명이 유휴인력에 달할 정도였다.계속해서 적자가 반복되자 결국 1999년 폭스바겐은 구조조정과 같은 중대한 결단을 해야 했다. 하지만 폭스바겐의 결정은 파격적이었다. 손쉽게 해고를 통한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오히려 노조에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공장 내 별도의 자동차 생산법인인 'Auto 5000'을 만들자는 것.기존 폭스바겐 직원 임금의 80%만 받는 대신 임금을 줄인 비용으로 Auto 5000에 5천개의 새 일자리를 만들어 실직 위기의 근로자를 다시 채용하는 방식이다. 물론 주당 노동시간, 임금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기도 했다. 특히 한 지붕 아래 2개의 회사와 각각의 노조가 설립돼 대립도 심했다.하지만 갈등이 벌어질 때마다 독일 정부와 전문가들은 노사에만 맡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개입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노사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대안까지 제시하며 신뢰를 지켜 나갔다.그 결과 2005년엔 Auto 5000의 신모델 '투우란'이 독일 미니밴 시장의 27%를 점유하는 커다란 성과를 내며 경영도 정상화되기 시작했다. 또 폭스바겐이 Auto 5000의 채용·생산평가 등의 제도를 본사에 이전시키고, Auto 5000 법인까지 흡수 합병했다. 결과적으로 Auto 5000 근로자는 다시 '폭스바겐'에 돌아왔다.광주형 일자리 정책 연구를 맡은 한국노동연구원도 Auto 5000의 성공 요인에 대해 "극한의 대립 속에서도 노사 모두가 '일자리 창출이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의제'라는 목표를 공유하면서 전략적 협상을 해 나갔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 상생의 대안, 가능할까정부의 상생형 일자리 정책이 현재 쌍용차 위기를 해결하는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2009년보다 더 강도 높은 자구책이 필요한 지금, 다시 '대규모 구조조정'을 선택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는 점이다.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다함께 살아남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이문호 소장은 "'해고는 살인이다'란 말이 우리나라 상황에선 진실에 가깝다"며 "2009년에도 노사가 극단적인 대립상황까지 치달았던 건, 해고가 됐을때 우리 사회의 안전망이 너무 헐겁기 때문이다.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고 재기할 수 있는 여건조차 녹록지 않다는 것이 쌍용차 사태뿐 아니라 다른 노동현장에서 증명되지 않았나. 2009년과 비교해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2천646명이 한순간에 직장을 잃고 도미노처럼 지역 경제가 무너졌던 평택의 지난 10년은 우리 사회 안전망의 부재를 보여주는 증거다. 2011년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가 평택시·평택대학교와 진행한 쌍용자동차 해고자 실태조사 자료는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주장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줬다. 쌍용차 구조조정으로 명예퇴직했거나 무급휴직 또는 정리해고된 노동자 547명(전체 조사대상자 1천994명 중 547명 응답)을 대상으로 생활여건·심리상태 등을 조사했는데, '자살 등 극단적 선택의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52.5%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중 9%는 '매우 자주 있다'고 응답했다. '직장을 잃은 뒤 가족관계가 어떻게 변화했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5.8%가 '안좋아졌다'거나 '매우 안좋아졌다'고 말했다. 또 '가장 힘든 부분'이 무엇이냐는 질문(복수응답 가능)엔 407명이 '경제적 부분'을 가장 힘든 이유로 꼽았고, '언제 취업될 지 희망이 없어서'가 216명, '가족들 보기가 힘들다'란 답변이 212명으로 뒤를 이었다.해고노동자의 상당수가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한 것은 해고와 함께 찾아온 경제적 위기, 그로 인해 발생한 가정의 붕괴가 원인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해고 이후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힌 '생계문제'와 관련해서는 실제 생활비 지출 규모보다 수입액이 적은 가정이 많았다. '한 달 간 가족 생활비 지출'을 묻는 질문이 있었는데 '200만~300만원'이라고 한 답변이 36.7%였던 반면 '한 달 간 총수입'은 '200만원이 안 된다'는 답변이 47.9%로 훨씬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렇다 보니 당시의 해고자들은 정부나 지자체에 생계비 지원과 구직과 관련된 도움을 가장 절실하게 요구하고 있었다.'평택시가 도움을 주기 바라는 부분'에 대해서 응답자의 30.9%가 '생계 지원비'라고 했고, 26.4%는 '직업 알선', 19%는 '자녀학비 지원'을 원한다고 했다. 이 설문조사가 쌍용차 사태를 겪은 후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실시한 조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 지역내 서민경제의 어려움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됐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 조사를 담당했던 시민연대는 보고서를 통해 "정리해고와 무급휴직이 조치된 노동자에 대한 정확한 실태파악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구체적 대안이 마련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이번 조사를 통해 향후 재발될 수 있는 대량해고로 인한 사회불안을 억제하고 사회안전망 확보를 위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지금도 개선되지 않은 게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다. 더욱 안타까운 건 긴 시간을 이어 온 싸움에 쌍용차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냉랭해졌다는 것이다. 이은우 평택시민재단 이사장은 "시민의 입장에서 볼 때 상하이차나 마힌드라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게 사실이다. 투자와 같은 실질적 행동을 하지 않은 것 아니냐. 외국 투자에 대한 신뢰도는 갈수록 낮아지고 덩달아 쌍용차를 바라보는 시선들도 회의적으로 변해가는 게 가장 안타까운 점"이라며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쌍용차 직원과 평택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건 '일자리'다. 모두가 바라는 건 오직 일자리이고 불안도 일자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을 해서 자동차를 만들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아 가족과 평범한 삶을 살고 싶은 것 뿐"이라고 말했다.돌고 돌아 다시 답을 찾아야 할 때다. 시간을 되돌려, 2009년의 쌍용차가 근로자의 절반을 거리로 내모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쌍용차는 어땠을까. 2020년의 위기 앞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김금보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쌍용자동차 평택 출고센터. /기획취재팀

2020-02-13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희망의 그늘 쌍용차 그리고 평택·(2)흔들리는 지역사회]평택에서 쌍용차는 생계다

'해고는 살인이다' vs '회사가 없으면 노조도 없다' 대립…남은 것은 먹고 사는 일에 직면한 성실한 서민들 상처뿐우리가 그간 쌍용차 사태를 바라본 관점은 매우 일정했다. '해고는 살인이다'와 '회사가 없으면 노조도 없다'는 이분법. 쌍용차 사태에서 증명했듯 해고는 정말 사회적 살인과 같았다. 쌍용차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30명의 사람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고, 수천명의 사람들이 지난 시간 실직의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회사가 없으면 노조도 없다는 것 역시 대단히 상식적이다. 회사가 망하고 조직이 와해되면 근로자가 설 자리 또한 사라진다. 그렇게 따지고 보면 두 관점 모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때문에 정해진 틀 안에서만 쌍용차 사태를 쉽게 단정짓고 오해하게 만든 원인이 됐다. 그래서 직접 평택을 찾아 평택의 사람들을 만났다. 쌍용차 직원이거나 직원이었던 사람들, 협력업체, 정치인, 공무원, 지역의 보수 및 진보 시민단체, 일반 시민들을 만나며 쌍용차 사태를 물었다.그렇게 당사자들이 전한 현실을 마주하니, 그간 쌍용차 사태를 '노사갈등'으로만 해석한 것이 편협했음을 깨달았다.또 혹자는 '이제 평택에 삼성 같은 굴지의 대기업이 들어섰는데, 쌍용차 문제가 대수겠냐'는 의견도 던진다. 우리가 들은 답을 전하자면 '속도 모르고 떠드는 이야기'라는 핀잔 뿐이다. 평택에서 쌍용차는 '생계'다. 지난 10년 간 각종 매체를 통해 정치적 구호들이 난무했지만 남는 것은 '먹고사는 일'이었고 성실한 서민들만 상처받았다. 그것이 지난 10년의 '팩트(fact)'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김금보기자편집: 김영준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에서 생계를 유지하는 수 많은 직원들이 오전 조업을 마치고 퇴근하고 있다. /기획취재팀

2020-02-12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희망의 그늘 쌍용차 그리고 평택·(2)흔들리는 지역사회]공사장 내몰린 아빠와 아들… 내 이웃의 삶이 무너졌다

1979년 동아車 칠괴동 터잡은뒤 지역경제 근간 역할2009년 2397명 실직 발생… 동네 상권까지 '치명상'"밥봉사 회장, 동료들 괴로움 보다못해 스스로 퇴사"법정관리 신청했을땐 170개 시민단체 '회생 목소리'시청서 '살리기 운동본부' 궐기대회 2만5천명 집결# 그날이 바꿔놓은 '일상의 풍경'평택 토박이면서 소사벌 상업지구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조성훈(44)씨는 '쌍용차 사태'를 묻자 10년 전 어느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2009년 평택의 한 건설회사에서 일했던 조씨는 일용직 건설근로자를 고용하고 관리하는 일을 담당했다. 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인력사무소에서 소개받은 여러 명의 근로자를 만났는데, 그 중 회색점퍼를 입은 한 남자가 유독 눈에 띄었다. 점퍼 앞뒤로 '쌍용차' 로고가 박힌 회색 점퍼는 평택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쌍용차 작업복이었다. 그는 고등학생 즈음 돼 보이는 남자와 함께 왔는데, 아들이라고 소개했다. "부자(父子)가 함께 일하러 현장을 찾아오는 건 좀처럼 보기 힘든 일이라 1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나요. 특히 같이 온 아들이 고3이라 혹여 다칠까봐 자꾸 신경이 쓰였죠."당시는 쌍용차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감행하면서 노동조합과 팽팽하게 맞서던 때였다. 그때의 기준으로 그는 '산자'였다. 하지만 살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회사가 공장가동률을 줄이면서 그는 3일에 1번꼴로 근무했다. 턱없이 줄어든 월급보다 급한 건 고3 아들의 대학등록금이었다. 그래서 일이 없는 날, 작업복을 입고 건설현장에 나왔다. 아들의 손을 잡고."20일 정도 우리 현장에서 일했어요. 아버지가 공장에 나가 건설현장에 오지 못할 때도 아들은 나와서 일을 했어요. 현장에서 꼭 안전화를 신어야 하는데, 그냥 일을 하더라구요. 그게 마음이 아파 내가 아이한테 안전화를 사줬어요. 등록금을 모으려면 다른 현장에 가서도 일할 것 같아 걱정이 됐거든요."안전화를 사주고 조씨는 마음이 복잡했다. "사실 현장에서 회색 점퍼를 봤을 땐 좀 의아했어요. 평택에서 쌍용차 직원은 중산층이거든요. 당시만 해도 평택에 쌍용차 말고는 대기업이 없었으니까. 월급도 우리네보다 훨씬 많이 받고. 예전에 쌍용이 잘 나갈 때는 평택 서민들이 은근히 시기도 많이 했죠. 또 돈 좀 잘 번다고 쌍용 직원들이 식당 같은 데 와서 건방지게 굴기도 해서 안 좋은 인상도 있었고. 그런데 하루아침에 멀쩡하던 직장이 저렇게 흔들리고, 오죽하면 건설현장에 아들을 데리고 나왔을까 싶기도 하고, 그 아버지 심정이 어땠을지…" 2009년 쌍용차 사태 때 평택시가 추정한 실직인원은 약 4천427명이다. 실직자 2천397명이 발생한 쌍용차를 포함해 협력업체까지 모두 합한 수다.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충격이었다. 오직 '쌍용차'외에 먹거리가 없는 소도시에서 대규모 실직은 치명타였다. 실직자가족, 동네 상권까지 고려하면 피해 범위는 상당했다. 1979년 동아자동차가 평택 칠괴동에 터를 잡고 1988년에 쌍용자동차로 이름을 바꾼 후 쌍용차는 평택 경제의 근간이었다. 2009년만 해도 쌍용차 직원 7천400여명 중 4천500여명이, 협력업체 직원 중 5천500여명이 모두 평택시민이었다. 쌍용차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근로자의 70~80%가 평택시민이란 점은 지역경제와도 직결된다.실제로 시가 추산한 이들의 소비액은 엄청났다. 하루 평균 2억3천여만원, 한달 기준 70여억원이었고, 연간으로 치면 1천500억원 가량을 평택지역에서 소비했다. 시민의 입장에선 쌍용차의 위기는 곧 서민경제의 위기였고 직원들의 어려움은 내 이웃의 어려움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위기 때마다 도움의 손길 건넨 지역주민들 "에휴, 상하이차 오기 전까지 경기가 아주 좋았지. 특히 우리 같은 장사는 먹고 살만 했어."평택 통복시장 상인회장이자, 30년째 식자재 도매업을 하는 임경섭씨는 쌍용차의 위기를 화두로 꺼내자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쌍용차는 상하이차가 인수하면서 위기가 온 것이고 경영을 잘못한 걸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뒤집어쓴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내가 납품하는 곳뿐 아니라 평택시내 음식점, 술집마다 쌍용차 직원들로 꽉꽉 채워졌다고. 근데 상하이차가 인수한 뒤 투자도 안 하고 기술만 빼먹고, 엉망으로 운영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어요. 사실 이때부터 이미 힘들어졌어. 쌍용차도, 우리도 같이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인구 40만명 조금 넘는 작은 도시에서 5천~6천명의 쌍용차 직원은 정말 많은 수예요. 가족까지 합하면 진짜 많지."임씨가 이렇게 열변을 토하는 건 단지 먹고 사는 것이 힘들어서만은 아니다. 그는 쌍용차와 인연이 깊다."2009년 파업하기 1~2년 전에 매주 일요일만 되면 쌍용차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리 매장에 물건을 사러 오더라고. 한두 번도 아니고 매주 오는 것이 신기해서 물어봤지. '연탄길'이라는 사내 봉사동아리 소속 직원들인데, 주말마다 남부 복지관에 밥봉사를 하러 간대요. 그게 기특해서 나도 같이 봉사를 시작했지요."1년이 넘게 지역봉사를 하며 임씨와 직원들은 정을 쌓았다. 그러던 중 대규모 구조조정이 시작됐고, 함께 봉사하던 직원들 상당수가 정리해고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때 연탄길 동아리 회장은 진짜 봉사심도 깊고 좋은 사람이었어. 본인은 (구조조정) 명단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동료들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다가 스스로 그만둬버렸지."임씨에게 쌍용차 직원들은 이웃사촌이었다. 직원들이 옥쇄파업을 할 때, 굴뚝 위에 올라갔을 때, 구속됐을 때도 마음이 무척 아팠다고 했다."파업이 한창일 땐 현장에 식자재도 대주고, 나중에 구속됐을 때 면회도 다녀왔어요. 봉사를 같이 한 사람들도 있고, 원래 알고 지낸 동네 선후배들도 있으니까. 같이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또 무급휴직했거나 해고된 직원들이 당장 생계가 막막해 하는 걸 보니 안타까워서 우리 시장 상인들한테 소개해 몇 명은 시장 가게에서 일했지. 나도 2명 정도 채용해 매장에서 같이 일하기도 했고.""그 친구들이 참 방황을 많이 했어. 매달 몇백만원씩 받던 사람들이 시장에서 많이 줘봐야 150만원인데, 적응이 참 쉽지 않았겠지. 우울증 걸리는 것도 많이 봤고. 아는 동생도 하나 죽었어요.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려요."임씨 뿐이 아니었다. 쌍용차가 위기에 놓일 때마다 평택 시민들은 '쌍용차 살리기'에 나섰다. 2006년 상하이차가 인수하기 전, 2009년 쌍용차 사태 전후 등 어려울 때마다 돕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서민경제를 지탱하는 주춧돌이기도 했지만, 함께 사는 이웃을 지키고 싶은 마음도 적지 않았다. 쌍용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했을 때 평택시민연대, 학교, 상인연합회, 아파트입주자대표회의 등 범시민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파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때에는 지역 내 170개 시민단체가 동참해 '시민 목소리 릴레이'를 진행하며 노사, 정부, 채권단에 쌍용차 회생을 요구하기도 했다.당시 지역의 원로들과 정치인, 시민단체 등이 모여 구성한 '쌍용차살리기운동본부'에서 기획실장으로 활동했던 이동훈 평택발전협의회 회장은 시청 광장에서 열었던 궐기대회를 이야기했다. "일반적으로 궐기대회를 열어도 몇천명 오면 진짜 많이 오는 수준이었는데, 이때 2만5천여명이 왔어요. 쌍용차는 오랫동안 우리 지역에 뿌리내린 토종기업이고 근로자 상당수가 평택사람이니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다들 한목소리로 '정부가 쌍용차를 살려내라'고 외쳤고, 쌍용차 타기 운동도 벌이고, 호소문도 배포하고…"/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김금보기자편집: 김영준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2020-02-12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희망의 그늘 쌍용차 그리고 평택·(2)흔들리는 지역사회]성실했던 선배도 아는 동생도 '세상을 등졌다'

특공대 진입 전까지 파업 참여한 前직원동료 복직소식 들릴때면 '이번엔 잘 되길'당시 中企 570곳 '1사 1인 퇴직자 채용운동'인근상점들 장사 접고 '소등'으로 힘실어시민들은 모두 "약속한대로 일자리 줘야"# '실낱 같은 빛'은 고문으로쌍용차 공장 인근에서 부인과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는 서승기(가명)씨는 쌍용차 사태 때 경찰 특공대가 진입하기 직전까지 파업에 참여했다 희망퇴직을 선택한 쌍용차 직원이었다. 지금 운영하는 음식점은 쌍용차를 다니던 시절, 자주 찾던 단골집이다. "군대 제대하고 바로 쌍용차에 입사해서 15년을 다녔어요. 회사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을 만큼 난 자신이 있었어요. 진짜 착실하게 일했거든요. 결근 한번 한적 없이요. 그래서 내가 구조조정 명단에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었어요.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어요. 왜 해고돼야 하는지."그래서 그는 공장 안에 스스로 갇혔다고 했다. 무서웠지만, 성실하게 살아온 청춘에 최소한의 해명이 필요했다. "끝까지 버티고 싶었어요. 근데 아내가 엉엉 울면서 계속 전화했어요. 제발 나오라고. 회사 안 다녀도 되니까 그냥 나오라고. 경찰특공대가 진입하기 직전이어서 그랬나봐요. 사실 저도 많이 지쳐서 희망퇴직 신청하고 나왔어요. 지금도 가만히 있으면 그때 공장에 같이 누워있던 선배가 생각나요. 그 형은 스스로 세상을 떠났어요. 진짜 일만 죽도록 했던 착한 사람이었는데…"그렇게 회사를 나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그는 지인의 소개로 통복시장에서 임씨가 운영하는 식자재 가게에서 일을 했다. 부인은 쉬라고 만류했지만, 가만히 있으면 이상해질 것 같았다. 식자재를 배달하는 일을 1년쯤 하다, 중고로 지입차를 구입해 6년을 운전했다. 지금 그가 운영하는 음식점에도 식자재를 배달했다. 늘 손님으로만 오던 곳이었다. 당시의 사장은 그를 안쓰럽게 여겼다. "동료들이랑도 많이 왔지만, 가족들과도 자주 오던 식당이었죠. 어느 날 사장님이 그러대요. 가게 인수하라고. 그럭저럭 장사는 된다고. 고민하다 아내랑 같이 시작하게 됐죠. 처음엔 동료들 마주칠까봐 자꾸 피했는데, 지금은 다 내려놨습니다." 그럼에도 서씨는 동료들의 복직소식이 들릴 때마다 '이번엔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지난 10년 복직이 될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 그는 그것을 '고문'이라고 말했다.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삶이 무너지는 일이다. 쌍용차 사태로 삶이 무너졌다. 그 삶들이 지탱하던 도시도 크게 휘청였다. 2009년 1~4월 평택시 긴급생계지원 대상이 250명인데, 전년동기대비 3배 이상 늘어났다. 시는 "대량 실직자, 빈곤가구가 늘어 지역공동체 해체위기를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그러나 무너진 삶과 휘청이는 도시를 붙잡은 건 사람들이다. 2009년 평택의 중소업체 570개사는 시가 추진한 '1사 1인 쌍용차 퇴직자 채용운동'에 참여해 일자리를 잃은 이웃을 채용하는 데 나섰다. 당시 등록공장이 총 1천576개였는데, 36%의 기업이 참여했다. 쌍용차 인근 상점들은 파업기간 동안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 장사를 포기하고 가게의 불을 끄는 '소등운동'을 벌였다. 평택시 소상공인 상인연합회 회장인 임용필씨는 "어릴 때부터 알고지낸 동네 선후배, 친구들"이라며 당시에 파업 중인 직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싶어서 불을 껐다고 말했다.우리가 만난 평택시민들은 출근 투쟁 중인 46명 복직자에 대해서 한목소리를 냈다. 지역에서 보수성향으로 분류되는 이동훈 회장은 "복직시켜준다고 노사정이 손잡고 약속하지 않았나. 생활의 어려움이 클텐데, 고통을 분담해야한다"고 말했다. 통복시장 상인회장 임경섭씨도 "46명은 유급이 문제가 아니라 일하는 것을 원하고 있다. 뜻이 있고 생각있는 평택시민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사벌에서 갈빗집을 운영하는 신희철씨는 "아무리 사정이 안좋다고 해도 46명 들어갈 자리가 없겠나. 46명이든, 100명이든 약속대로 일자리를 줘야 한다. 10년간 다같이 고생하지 않았나"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김금보기자편집: 김영준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2020-02-12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희망의 그늘 쌍용차 그리고 평택·(2)흔들리는 지역사회]밖에선 호재 가득하다는 평택… 주민들 생각은

자영업자들 체감 경기, 2009년 상황 비슷산단인부들 외부 출퇴근… 쓰는 돈 없어"쌍용차 존재해야 서민들 생존권 보장돼"평택이 아닌, 외부에서 볼 때 2020년의 평택은 호재가 가득하다. 이미 조성이 완료된 진위LG전자산업단지에, 삼성전자가 단군 이래 최대 투자를 한다는 고덕삼성전자산업단지(산단)가 조성 중에 있고, 평택항은 연일 자동차 수출량 최대치를 갱신하며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연일 부수고 새로 짓는 개발이 도시 안에서 심심찮게 일어나는데, 도시 안 시민들은 입을 모아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한숨만 쉰다.꽃집을 운영하는 김복순씨는 평택 AK플라자에서 일할 때 이야기를 들려줬다. 평택 AK플라자는 2009년 4월에 개점했는데, 그 시기가 묘하게 쌍용차 사태와 맞물렸다. "AK 평택점은 사실 쌍용차를 보고 들어온 거였어요. 입점 매장을 모집할 때도 '쌍용차 직원들 대부분이 평택에 거주한다'는 걸 내세워 홍보했으니까요.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죠. 저는 AK에서 꽃집을 했는데, 문 열고 한 5년은 계속 힘들었어요. 그러다 2015년 후반부터 매출이 조금씩 상승했고 2017년 초반까지 괜찮았는데, 다시 안 좋아졌어요." 김씨의 이야기는 2009년 이후 쌍용차의 상황과 절묘하게 일치한다. 쌍용차 사태가 끝나고 법정관리, 매각, 판매부진 등 여러 차례 고비를 맞았고, 2015년 소형 SUV 티볼리를 출시하며 활로를 찾았다. 하지만 2017년부터 다시 적자가 누적되며 현재 2009년 이후 최대의 유동성 위기가 찾아왔다.평택 자영업자들은 지금 체감하는 경제위기가 2009년을 전후로 겪었던 그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소사벌 상업지구는 가장 최근에 완성된 평택 최대 상업지구 중 하나다. 조성된 지는 2년여가 다 돼가는데, 아직 비어있는 가게들이 눈에 많이 띈다. 평균 20~30% 가량 점포가 비어 있다고 했다. 노래방을 운영하는 윤용덕씨는 "쌍용이 존재해야 서민들의 생존권도 보장된다"고 강조했다. "여기는 600여개 점포가 있는 큰 상업지구인데, 약 95%가 적자를 보고 있어요. 쌍용차 적자가 계속되고 주 52시간까지 적용되니까 회식도 거의 없고, 일부 조립라인은 가동도 중단된 상황이니… 월급이 줄어드니까 오히려 쌍용차 직원들이 저녁에 대리운전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걸 종종 봤어요."쌍용차를 대신해 삼성· LG 같은 대기업이 평택에 들어서 지역경제가 호황을 맞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실소를 터트렸다. 맥주집을 운영하는 심성보씨는 "지금 삼성산단에 가 보았나. 아침 저녁으로 대형 출퇴근버스가 몇십대씩 드나든다. 심지어 산단을 짓는 인부들도 외부에서 채용하니까 출퇴근버스로 태우고 다녀 여기서 쓰는 돈이 없다. 하물며 정식 직원들이 여기서 살 것 같냐. 출퇴근버스 타고 왔다갔다 할 것이 뻔하다. 쌍용차가 아직 평택 서민경제의 80~90%를 차지한다고 말하는 건 그 직원들이 평택사람이기 때문이다. 평택에서 살기 때문에 지역경제가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자동차 산업은 '일자리 창출'에 있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2018년 경기연구원이 연구한 '경기도 산업구조변화와 입지정책방향'을 살펴보면 반도체·의약·정밀기기 등 고위기술산업이 1인당 생산액과 부가가치 창출은 높지만 고용창출이 낮은 대신, 자동차·전기·기계·부품소재 등 중위기술산업은 고위산업보다 경기도 평균 2배 이상의 '고용창출' 효과를 보였다. 그래서 고용을 늘리려면 자동차 등 중위기술산업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평택의 경우 자동차와 관련한 완성업체 및 연구소, 중견기업 등이 집적돼 있어 고용창출에서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쉽게 말해 평택시민이 평택에 속한 대기업 직원이 되고 평택에서 소비를 해야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는 셈이다. 실제로 평택시 세입 중 쌍용차 종업원이 차지하는 주민세 추이를 살펴보면 2008년 14억3천200만원이었다가 구조조정과 파업이 일어난 2009년 7억5천800만원으로 절반가량 뚝 떨어졌다. 그러다 2014년에는 14억7천만원으로 다시 예전 수준으로 올라오더니, 2015년부터 지금까지는 꾸준히 상승세다. 주민세는 평택시민이 내는 것이다. 그래서 쌍용차와 그 직원들의 향방에 시민들의 신경이 곤두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 ※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김금보기자편집: 김영준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지난 6일 쌍용자동차 하청업체가 몰려 있는 송탄산업단지에서만 23년째 음식점을 운영해온 서기월(75)씨가 텅 빈 가게에 앉아 TV를 보고 있다. 서씨는 이날 점심시간에 고작 11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기획취재팀

2020-02-12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희망의 그늘 쌍용차 그리고 평택·(1)반복되는 위기]쌍용차의 짧았던 아침… 다시, 밤이 깊다

티볼리 흥행에 반짝 회생 기대판매부진 탓 유동성 위기 수렁10여년 만에 공장 돌아온 46명기쁨도 잠시… '유급휴직' 비수10년의 진통 끝에 마지막 해고자 46명이 쌍용자동차 공장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제는 '끝이 났다'며 기뻐했는데, 유급휴직이라는 비수가 날아왔다. 잃어버린 일자리를 온전하게 되찾고자 출근 강행투쟁을 벌이는 그들의 마지막 싸움을 기록하기 위해 우리는 20일간 함께 새벽이슬을 맞았다. 하지만 목도한 것은 '희망의 그늘'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일터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그 아래, 유동성 위기의 어둠이 짙게 깔렸다. 쌍용차 그리고 평택에 다시 그림자가 드리웠다. 2009년 '쌍용차 사태'로 해고된 노동자들이 복직한 2020년, 지나온 10년보다 더 풀기 어려운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쌍용차 사태를 촉발한 2009년의 위기가 세계적 금융위기, 상하이자동차(SAIC)의 '먹튀' 등이 원인이었다면 이번 위기는 빠르게 변화하는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쫓지 못한 어리석음과 미미한 투자, 영업 부진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쌍용차는 소형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티볼리'의 흥행에 힘입어 회생하는가 싶더니 2017년부터 다시 영업 부진에 빠졌다. 기존 내연기관 차량의 판매 부진 속에 신차 개발이 지연됐고, 거기에 전기차와 수소차로 대변되는 차세대 자동차 개발까지 지지부진하자 지난해 서서히 유동성 위기가 표면화됐다.지난 2017년 65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쌍용자동차는 이듬해에도 643억원의 적자를 봤다. 지난해(2019년) 적자는 2천819억원으로, 2009년 이후 사상 최대치다. 전년 대비 적자 폭도 3배가 넘는다. 그렇게 지난 3년간 누적된 적자만 모두 4천114억원이다.통상적으로 신차 개발에 3천억원 이상이 투입되는데 신차 개발을 해도 모자랄 시기에 개발 비용만큼의 적자가 발생한 셈이다.쌍용차의 위기는 평택 지역사회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매출이 급감하며 서민경제가 악화됐고, 무엇보다 10년 전의 갈등이 재현될까 두려워한다. 2009년 쌍용차 사태에서 정부와 회사가 감행한 해결법은 '구조조정'이었는데, 데칼코마니처럼 지금의 위기에도 '구조조정'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동이 트는가 싶더니 깊은 어둠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그 어둠 속으로 마지막 복직자 46명이 출근길에 나섰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김금보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지난 2009년 쌍용차 사태를 겪은 마지막 해고 노동자 46명이 무기한 유급휴직이라는, 반쪽짜리 복직통보를 받은 가운데 온전한 복직을 바라며 출근 강행투쟁을 벌이는 그들에게 경영난과 구조조정이라는 그림자가 또다시 엄습하고 있다. 11일 먼동이 틀 무렵 평택 쌍용자동차 본사 공장이 어슴푸레 보이고 있다. /기획취재팀

2020-02-11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희망의 그늘 쌍용차 그리고 평택·(1)반복되는 위기]유급휴직자 출근 투쟁기

생계 꾸리던 기존 직장까지 그만두고 귀환통행증 겸한 사증 못 받아 정문부터 '난관'희망고문에 극단적 선택 않을까 동료 걱정마힌드라 경영자 방문에도 "큰 소득 없어"투쟁 길어져도 '우리 차 좋다' 자부심 여전# '10년7개월 만에 밟는 공장 정문'"일찍 자야 하는데 적응이 안 돼서 잠이 안 오네." "나도 잠이 안 와서 술 한잔 하고 겨우 잤어." 지난달 9일, '출근 강행 투쟁' 3일째. 10년7개월 만에 이른 새벽 출근길에 나선 복직자들의 대화 속엔 설렘이 묻어났다. 그러나 46명은 아직 해야 할 일을 부여받지 못했다. 회사는 2018년 노노사정(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기업노조·쌍용자동차·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합의에 따라 마지막 남은 해고자 46명의 복직에 대한 약속을 이행해야 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쌍용차는 노조와 협의를 거쳐 이들 46명의 복직을 '유급휴직'으로 전환했다. 회사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46명은 올해 조업 시작일인 지난달 7일부터 출근을 강행했다. 새벽 동이 트는 즈음부터 민주노총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실 겸 모임 장소로 활용하는 공장 앞 카페 차차에 모여 함께 출근한다. 이 곳엔 2009년 쌍용차지부장이자,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잘 알려진 한상균씨도 있었다.잠시 커피를 마시고 환담을 나누던 이들은 오전 6시 45분, 공장 정문 앞 경비실에 섰다. 새로운 사번은 받았지만, 출입증을 겸한 사증은 받지 못했다. 사증을 찍어야 열리는 정문 게이트로 들어가지 못하고, 정문 경비실 출입대장에 이름과 사번을 적고서야 공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같은 시간, 정문게이트에는 수천 명 출근자가 우르르 몰려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지나가는 길에 한 복직자가 '사회적 합의 이행하라'는 팻말을 들고 섰다.# 현대·기아차보다 '우리 차'가 좋다투쟁 7일째인 13일. 카페 차차 테이블 위에는 쌍용자동차 사내 구입 프로모션 브로슈어가 널려 있었다. 쌍용차 직원이 쌍용차를 구매하면 혜택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이날 출근길 대화의 주제는 '쌍용차'였다.한 복직자는 "20년째 같은 차를 탔어. 2009년에 차를 바꾸려고 했는데, 사태가 터져서 차를 못 바꿨지. 매연을 내뿜는다고 이제 서울에선 운전도 못해. 매연저감장치를 달면 되는데 쌍용차용은 안 나와서 큰일이야"라고 걱정했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자랑도 섞었다. "그런데 20년이 됐는데도 하체가 하나도 부식되지 않았잖아. '우리 차'는 프레임을 통짜로 써서 엄청 튼튼해."이날은 복직자 5명이 공장 정문 앞에서 완전 복직을 요구하며 피켓 시위를 펼쳤다. 복직자 김득중씨는 "46명 중 31~33명이 매일 출근한다"면서 "나머지 동지들이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복직이 연기된 충격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2018년까지도 (쌍용자동차 해고자 중)자살자가 나왔다. 출근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다. 모임이라도 나오라고 하지만 부서 배치받기 전까지는 안 오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이어 "SNS 단체 채팅에서 '안 읽음' 표시가 '0'인걸 보고, 그래도 메시지는 읽는구나 싶어 안심한다. 지나온 10년 투쟁도 힘들었지만, 희망고문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복직자 46명은 복직과 관련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36명이 설문에 응했는데 이들 중 24명은 복직을 하기 위해 그동안 생계를 꾸리던 기존 직장을 그만뒀다고 답했다.응답자 중 11명은 "회사가 복직을 미룬 이유가 무엇인가"란 질문에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더 받아내려고"라고 생각했다.# 복직과 정부지원의 상관관계14일, 출근강행투쟁 8일째. 쌍용차 기업노조 집행부는 정문 앞에서 유인물을 뿌렸다. '노동조합은 대주주의 2천300억원 직접 투자를 비롯해 정부와 금융권의 기술지원 및 자금지원, 전략적 제휴로 미래 비전을 반드시 현실화시킬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기업노조는 "무급휴직에서 유급휴직 전환으로 인한 46명 동지들의 아픔과 허탈한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면서 "노동조합은 해고복직자 동지들과의 소통을 통해 사회적 합의 과정을 완성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카페 차차에 모인 복직자들은 기업노조 유인물을 물끄러미 바라봤다.투쟁 9일째인 15일 새벽은 영하 5도로, 기온이 어제보다 더 떨어졌다. 사내 40여개 소모임 중 하나인 '현장실천 동행'은 이날 정문 앞에서 유인물을 배포했다. 이들은 "46명 휴직연장은 쌍용차 정상화의 자충수"라면서 "46명만 휴직을 해야 할 근거와 명분이 없다. 또 다른 논란과 갈등이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미 재현됐다"고 주장했다.정문 앞에서 만난 조립 3팀의 진성만씨에게 공장 분위기를 묻자 "다수의 동료들이 46명 복직자를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니 빨리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답했다. # 대주주의 방문, 고통이 끝날까 투쟁 10일째인 16일에는 인도 마힌드라의 경영자인 고엔카 의장의 방한 소식이 전해졌다. 고엔카 의장은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 이어 산업은행까지 방문하는 일정을 소화했다. 이날 오전 평택공장에서 진행된 노사 간담회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오갔다."46명 복직이 무산되며 신뢰를 쌓아야 할 시기에 회사 이미지가 좋지 않을까 걱정된다."(노조)"회사를 인수한 뒤 많은 해고자와 무급 휴직자가 돌아왔다. 이제 46명이 남았는데 그분들은 임금 70%를 받으면서 (업무)배치를 못하고 있다. 회사 여건이 갖춰질 때 해결될 것이라고 본다."(고엔카 의장)"마힌드라 투자 외에도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만약 정부 지원이 불가능할 경우 대책은 무엇인가."(노조)"정부 지원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흑자전환에 필요한 자금이 5천억원인데 마힌드라 단독지원은 무리가 있다. 부족한 부분은 정부와 산업은행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엔카 의장)"인수할 때 쌍용자동차와 마힌드라는 한 번의 만남이 아닌 영원한 결혼식이라고 했는데 변함없는가."(노조)"이혼할 생각 없다."(고엔카 의장)간담회가 끝난 후 복직자 김득중씨는 "별다른 소득은 없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21일 오후 7시, 46명은 부서배치를 요구하는 촛불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마이크를 잡은 복직자 김상민씨는 공장 정문을 향해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2001년에 입사했다. 평범하게 가정을 이뤄 사는 게 꿈이었다. 2009년 결혼했고 그 해 첫 딸이 아내의 뱃속에 있었다. 왜 해고자가 돼야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 심정이 2009년 심정이다. 아니, 사실 조금 더 심하다. 이제 기다릴 수 없다. 쌍용자동차! 더 미루면 가만두지 않겠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김금보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쌍용자동차 해고 복직자 퇴근길 선전전.쌍용자동차 해고 복직자 촛불문화제.쌍용자동차 해고 복직자 촛불문화제.쌍용자동차 해고 복직자 촛불문화제.쌍용자동차 해고 복직자 촛불문화제.

2020-02-11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희망의 그늘 쌍용차 그리고 평택·(1)반복되는 위기]구조조정의 그림자

17만대 팔아야 흑자로… 10년간 달성 못해러시아·우크라이나 무역분쟁 탓 수출 급감전기차 출시 지연으로 400억 영업손실 전망노사 위기 극복 노력… 복지비 500억 절감산업은행에 대출 만기연장·추가자금 요청선 그었지만… 2009년 구조조정 악몽 아른# 쌍용차, 위기의 실체마힌드라 고엔카 의장의 지원 요청에 산업은행은 "마힌드라의 구체적인 투자 계획과 의지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고엔카 의장이 산업은행을 찾은 직후, 산업은행장과 만난 자유한국당 원유철(평택시갑) 의원은 "마힌드라가 투자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확인했다"고 면담 내용을 전했다.국내 자동차산업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결국 산업은행이 지원은 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쌍용자동차 정상화는 지원으로 풀릴 문제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1987년부터 국책 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에서 연구 활동을 펼쳐왔고 지난 1999년, 2009년, 2018년 쌍용차 관련 정부 TF에 모두 참여한 인물이다.2013년 산업연구원이 2곳의 회계법인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 쌍용차는 매년 17만대를 팔아야 흑자로 전환(BEP)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쌍용차 사태 이후 10년 간 한 번도 달성한 적이 없는 수치다. 쌍용자동차는 2018년 14만3천309대, 지난해 13만5천235대를 판매했다. 특히 쌍용차의 위기는 수출이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지난해에도 내수가 10만7천789대, 수출이 2만7천446대였다. 한때 쌍용차도 수출이 호조일 때, 연간 8만대 가량을 해외에서 판매했다. 그 중 3만 대를 러시아·우크라이나에 팔았다. 이 두 국가는 쌍용차의 주요 수출국이었는데, 지난 2013년부터 무역분쟁을 겪으며 수출이 급감했다. 연간 약 8천대를 팔았던 이란은 핵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겪으면서 수출길이 막혔고, 연간 1만5천대를 수출했던 페루·칠레·베네수엘라 등 남미 국가는 멕시코 장벽 건설 이후 경기 부진과 내부 분쟁으로 수출 악재를 겪었다. 결국 5만대 정도의 수출물량이 순감했고, 유럽과 뉴질랜드·호주 등 아태 지역에만 연 3만대 가량을 수출하고 있다. 수출 물량의 급감보다 더 큰 문제는 유럽 시장이다. 오는 2021년부터 유럽은 내연기관 차량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를 ㎞당 130g에서 95g으로 강화한다. 배출 규제를 넘기면 g당 95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 이 연구위원은 "쉽게 얘기해 100원을 벌더라도 130원을 벌금으로 내야 하는 꼴"이라고 비유했다. 쌍용차는 중형차에 해당하는 C세그먼트 전기차를 내년에 출시한다. 일각에선 올해 전기차를 생산해야 했지만, 만들지 못했다. 그로 인한 영업손실은 약 400억원에 이를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미래 자동차 시장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방증인데, 국내 자동차 산업의 틀에서 보면 더욱 절망적이다. 이 연구위원은 "더 심각한 건 국내 자동차 부품 업체 중 미래차를 준비하는 업체가 4%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품 업체가 뒷받침이 돼야 완성차 업체도 미래차를 생산할 수 있는데 당장은 그럴 수 있는 부품업체가 거의 없다. 해외 산업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는데, 전혀 따라가질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2009년보다 해법이 더 복잡해졌다"면서 "쌍용차 문제는 자동차 산업 전체의 문제와 이를 대비하지 못한 부품 산업의 문제가 얽혀 있다"고 설명했다.게다가 국내시장도 문제다. 쌍용차의 최대 강점인 'SUV'가 시장의 포화를 겪고 있는 것. 쌍용차는 준중형에 해당하는 B세그먼트에 티볼리, 중형차인 C세그먼트에 코란도, D세그먼트에 G4 렉스턴을 주력 차종으로 생산한다. 2015년 출시 이후 티볼리가 연간 10만대 규모인 B세그먼트 SUV 시장을 휩쓸었지만, 현대자동차의 베뉴·코나와 기아자동차의 니로·스토닉·셀토스, 한국GM의 트랙스·트레일블레이저, 르노삼성의 QM3 등 다양한 차들이 진입하며 예전만큼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쌍용차와 한국GM, 르노삼성 등 이른바 자동차 '3사'의 역학관계도 난제다. 한국GM은 산업은행이 2대 주주였기 때문에 비교적 지원의 명분이 있었지만, 쌍용차에게 산업은행은 단순 채권자에 불과하다. 여기에 서서히 위기가 표면화되고 있는 르노삼성도 문제다. 만약 산업은행이 쌍용차를 지원할 경우, 르노삼성도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2022년이면 한국GM의 지원 5개년 계획이 끝나는데,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3사가 모두 정부 지원을 바라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많다.이 연구위원은 "쌍용차에 포드 간판을 붙여 팔겠다는 계획도 있는데, 지난해 포드 영업이익이 5%에 불과했다. 평균 영업이익이 7~8%였는데 이를 밑돌았다는 건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1% 정도만 해도 천문학적인 액수라 (포드 매출) 타격은 클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마힌드라가 5천억원에 쌍용차를 인수해 1천300억원만 투자했다. 연평균으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다. 그런 면에선 2009년과 지금 유동성 위기를 겪는 형태는 너무나 비슷하다"고 덧붙였다.결국 현재 쌍용차가 겪는 위기는 상하이차 인수 이후 맞았던 2009년과 닮아 있으면서도 해법을 찾는 과정은 더 복잡하고 어렵다.# '데칼코마니', 겨울이 다가온다다시 찾아온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고자 쌍용차 노사는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노사가 위기 진화에 나선 건 지난해 9월부터다. 직원 복지 축소와 비업무용 토지·설비 매각에 나섰다. 토지와 설비 매각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고, 복지 축소를 통해서만 500억원 가량의 지출을 줄였다.지난해 12월에는 임금을 삭감하고 상여금을 반납해 500억 원 이상을 줄였다. 이 과정에서 마힌드라는 500억원을 유상증자했고 산업은행은 평택공장을 담보로 1천억원을 대출했다. 노사는 마힌드라가 약속한 직접 투자액 '2천300억원'에 산업은행의 지원을 합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쌍용차 관계자는 "신차 개발이 36개월에서 길게는 48개월까지 걸리고 3천500억 원에서 4천억 원이 투입된다. 이 비용이 한 번에 투입되는 건 아니고 금형을 만드는 작업부터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단계마다 마힌드라 투자액에 매칭으로 산업은행이 자금을 투입한다면 단번에 큰 비용을 들이는 부담 없이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는 "차세대자동차 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현대차와 쌍용차 두 곳만이 2.5단계 자율주행 기술을 가지고 있다. 내년엔 전기차 SUV도 출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율주행 2단계는 방향과 가속·감속을 차량이 스스로 제어하는 기술을 뜻하고 3단계는 고속도로 등 특정한 조건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한 수준을 말한다.이를 근거로 쌍용차는 산업은행에 당장 상반기에 도래하는 만기 대출금 1천억원의 상환을 연장하고, 추가 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시계를 10년 전으로 돌려보면, 불행했던 과거의 장면들이 반복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2009년 쌍용차 사태가 터지기 전, 정부와 산업은행은 "공적자금을 투입하기 위해선 '선(先) 구조조정 후 가능'"이란 입장을 내세웠다.당시 금속노조가 정부 측에 제공한 '위기극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노조의 제안' 문서에 따르면 노조는 "정부나 산업은행이 자금지원은 하지 않고 인력감축을 강요했다. 실제로는 노조에 대한 공격의 무기로 공적자금투입을 활용하는 형국"이라면서 "공적자금 지원과 구조조정 문제를 연계시키는 것은 '병은 발에 생겼는데 머리를 수술하는 행위'와 다름 없다"라고 주장했다. 또 "정부는 쌍용차에 대한 공적자금 지원 시 GM대우차도 지원해야 하는 형평성 문제 때문에 어렵다고 한다"는 당시 상황도 적혀있다. 지금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이후의 상황은 모두가 아는 바다. 회사는 구조조정을 강행했고, 2천여명의 직원들이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 과정에서 10년 간 3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외부로 나간 해고자들과 회사는 끊임없이 갈등을 반복했다.이번 위기에도 '구조조정'의 그림자는 어른거린다. 평택시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지원의 선제조건으로 '최대주주 마힌드라의 증자'와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시가 직접 산업은행과 접촉한 건 아니다. 쌍용차의 말과 산업은행과 만난 정치권의 말을 종합하면, 이 2가지가 은행 측의 요구"라고 전했다.다만, 산업은행 측은 "지난해 연말, 만기가 도래한 300억원의 대출을 연장했고, 공장 담보로 추가 1천억원을 대출했다. 그 건 외에 오고 간 대화는 없다. 쌍용차가 2천700억원 추가 지원을 요청했다는데 공식적으로 요청이 온 적도 없다. '강력한 구조조정'은 완전히 루머"라고 선을 그었다.아직까지 '구조조정'은 지금의 쌍용차 위기에 공식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단어다. 그럼에도 대규모 구조조정을 선택했던 10년 전 쌍용차 사태를 노동자들은 물론, 모든 이가 기억하고 있다. 근거 있는 불안이 희망을 잠식하고 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바로가기 (사진을 클릭하세요!)※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김금보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

2020-02-11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판교 리얼리티-성공, 그 이후]게임콘텐츠특구·AI클러스터… '지속성장 밑그림' 쏟아진다

성남시, 규제완화로 문화축제 활성道, 글로벌 스타트업 허브화등 전략경기남부권TV 동반발전안은 '미흡'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끄는 중심지로 거듭난 판교테크노밸리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청사진이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다만 판교의 지속 성장이 경기남부 테크노밸리 전반의 동반 성장을 촉진한다기 보다는 '판교의 더 큰 성공'으로만 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판교를 품고 있는 성남시는 지난 6일 이곳을 '게임·콘텐츠 문화특구'로 거듭나게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특구가 되면 게임업체들에 적용되는 규제가 완화되는 한편 이곳에서 게임 축제·문화 행사 등을 진행할 때 도로 점용도 가능해진다. 옥외광고물에 대한 제약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판교테크노밸리에 다수 입주한 게임업체들에 활력을 불어넣고, 이곳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돼 온 야간·주말 상권 공동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다. 3월부터 기본계획을 마련, 6월에 중소벤처기업부에 특구 지정을 신청할 예정이다.경기도에서 판교테크노밸리를 총괄하는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에선 이곳을 AI클러스터로 거듭나게 한다는 방침이다. AI 관련 산업체·연구기관 등을 집약한 공간으로 조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끄는 중심지로서의 정체성을 굳건히 하겠다는 복안이다. 이와 관련 김기준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판교테크노밸리를 대한민국 최고의 혁신 중심지로, 글로벌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AI 클러스터로 만들어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그에 앞서 경기도는 올해 미국 테크스타스 등 세계적인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육성 기관·기업)가 판교에 입주하는 것을 계기로 이곳을 국내 스타트업의 세계 시장 진출 허브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제시하기도 했다.총선과 맞물려 판교의 지속 성장을 위한 안이 꾸준히 제시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판교의 성공이 다른 지역 테크노밸리의 동반 성장으로 이어지게끔 하는 방안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모두 판교·광교·안산 등으로 이어지는 첨단연구개발벨트를 조성, 시너지 효과를 창출케 해 경기남부를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혁신 클러스터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각 밸리간 연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진 않고 있다는 얘기다.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2020-01-16 강기정

[판교 리얼리티·(4·끝)유산]첨단산단 그후… '3기 신도시' 성공의 가늠자

접근성·목적의식·집적효과·재투자 '성공공식''3기' 자족시설용지 판교 8배… 공급과잉 우려"서울 마곡·성남 판교이외 성공사례 거의 없어"올해부터 입주기업 '전매제한' 본격적 해제시세 크게 뛰어 '테크노밸리 생태계' 변수로10년뒤 업종제한도 풀려… '자생' 모색할때# 포스트 판교는 실현될 수 있을까판교의 성공은 신도시의 희망이 됐다. 판교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이후 등장한 신도시들은 하나같이 '자급자족'을 목표로 첨단산업단지를 유치하고자 했고 그 노력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들의 기대만큼 판교 이후 신도시는 '포스트 판교'가 될 수 있을까.제3기 신도시는 남양주, 하남, 인천, 고양, 부천, 과천이다. 판교가 힘겹게 정부와 싸워 '벤처산단용지'를 얻어냈던 과거와 달리, 이제 3기 신도시는 '자족시설용지(벤처기업 집적시설·소프트웨어 연구소·일반업무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한 업무지역)'가 처음부터 계획됐다. 용지 규모만 보더라도 그 기대감이 얼마나 큰지 쉽게 알 수 있다.남양주 왕숙(140만㎡)·하남 교산(92만㎡)·인천 계양(90만㎡)·고양 창릉(135만㎡)·부천 대장(68만㎡) 모두 판교 테크노밸리(66만㎡)보다 넓은 면적의 자족시설용지를 가지고 있다. 과천은 신도시 대상 부지에 자족시설용지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과천 지식정보타운(22만㎡)과 가깝다. 3기 신도시의 자족시설용지를 모두 합한 면적은 525만㎡인데 판교의 8배 가량이다. → 그래프 참조여기에 기존의 광명·시흥테크노밸리(202만㎡), 일산테크노밸리(85만㎡), 구리·남양주테크노밸리(22만㎡), 양주테크노밸리(30만㎡)가 조성 중이고 판교에는 제2테크노밸리(43만㎡)와 제3테크노밸리(58만㎡)가 후속으로 조성 중이다. 이들 테크노밸리를 모두 합하면 여의도 3개를 합친 면적에 달한다. 과연 이들 신도시의 계획대로 자족시설용지 모두에 판교처럼 빽빽하게 규모 있는 기업을 유치할 수 있을까. 3기 신도시의 계획이 확정되기 전부터 의문부호가 제기되는 건 이른바 공급과잉이 우려되기 때문이다.이상후 전 LH부사장은 "첨단산업단지라는 이름으로 수도권에 우후죽순 업무지구가 들어서고 있다.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LG그룹이 이전한 서울 마곡지구와 성남 판교외엔 (첨단산업단지) 성공사례가 없다. 앞으로도 서울과 인접한 과천지식정보타운 정도만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신도시가 성공하려면지금의 판교는 공식이 존재한다. 첫째, '뛰어난 서울 접근성'이라는 장점이 특출났다. 우리가 만난 판교 기업인과 직장인 대다수가 서울 강남과 가깝다는 것을 최고의 성공비결로 꼽았다. 둘째, 판교는 이 장점을 무기로 '자급자족' 도시 건설의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었다. 특히 경기도와 성남시가 판교 개발의 주체가 됐고, '서울 위성도시'로 밀어붙이는 정부의 도시개발을 막아냈다. 이는 지자체가 당시 산업 수요를 정확히 분석하고 예측했고, 정부에 주도권을 뺏긴 채 진행된 1기 신도시 정책에 대한 뼈 아픈 반성에서 비롯된 결과다.셋째, 산업단지를 분양할 때 다양한 정책을 구사해 '초기 집적효과'를 탄탄하게 다졌다. '업종제한'과 '전매제한'을 통해 첨단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투기세력을 강하게 견제했다. 또 대기업에는 적절한 임대정책을, 중소기업에는 컨소시엄 구성을 통해 입주가 가능하도록 문호를 열어주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어우러진 초기 산업 생태계를 구축했다. 특히 도시개발의 주체가 돼야 할 지자체가 개발정책을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면 자칫 '투기'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는 판교와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인천 테크노파크 1차 산업기술단지의 사례를 보면 반면교사 할 수 있다. 지난 2001년 분양한 인천테크노파크는 15만5천㎡ 부지에 30여개 기업이 입주했다. 대부분이 인근 남동산업단지 소재 기업이 연구소 목적으로 설립한 것이다.조성원가 70% 수준으로 기업에 땅을 공급하며 입주했지만, 클러스터의 핵심인 집적효과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는 분양 당시보다 지가가 20배가량 올라 입주기업들이 '재테크'만 성공했다.허동훈 인천연구원 부원장은 "중소기업이 R&D를 위해 찾는 첨단산업단지의 분양면적은 평균 100㎡ 이하인데 이보다 넓은 땅을 싼 가격에 파니까 지가 상승을 기대한 기업들이 들어왔다"고 분석했다. 저렴한 분양가는 서울 소재 기업을 이전시킬 수 있는 미끼인 동시에 첨단산업단지의 정상적인 성장을 막는 '양날의 검'이었던 셈이다. 판교와 함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서울 마곡지구 역시 저렴한 분양가가 성공의 핵심 요인이지만, 적절한 '당근'정책을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어우러진 산업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허 부원장은 "판교테크노밸리는 대기업이 단독 건물을 지어 입주하고 여유 공간은 임대했다. 큰 부지를 살 수 없는 작은 규모 기업들은 컨소시엄을 구성해 부지를 분양받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중소기업이 어우러진 생태계를 갖추게 됐다. 마곡지구도 입주 후 5년 뒤 임대가 허용된다. 여유 공간을 분양하거나 임대할 수 있으니 (기업으로선) 마곡지구에 올 이유가 충분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마곡지구 주변 지역은 면적당 약 1천900만원이었지만 마곡지구는 면적당 1천50만원에 공급해 입주를 희망하는 기업이 많았다. 기업이 모이니 지가가 뛰어 지금은 면적당 3천만원 정도 한다.결국 적절한 정책을 통해 지가상승이 예상되는 신도시의 특성을 제대로 활용해야 초기에 많은 기업을 불러모을 수 있고 '집적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허 부원장은 기업이 투자를 펼칠 수 있게 유인책을 펴되 '최종 입주자'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부원장은 "판교나 마곡처럼 여유공간을 분양하거나 임대할 수 있도록 해주되, 최초에 부지를 분양받은 기업이나 기관이 개발이익을 독식하지 않고 최종적으로 지역에 입주하는 업체에게 혜택을 돌려줘야 한다. 개발초기에 최종 입주자(기업)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구조를 만들면 집적이 집적을 불러 클러스터가 형성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마지막 공식은 개발로 얻은 수익을 다시 판교에 재투자한다는 것이다. 경기도는 '판교 테크노밸리 조성사업 공기업 특별회계'를 제정해 판교를 조성하며 분양으로 거둔 수익을 특별회계로 묶고, 특별회계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판교에 재투자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도시 발전의 지속성을 스스로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세출·세입에 따라 판교 특별회계의 자산총계는 유동적이지만 현재 5천억원 내외의 자산이 유지되고 있다. 실제로 판교는 특별회계를 통한 재투자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경기도는 민간기업이 주를 이룬 판교에 특별회계 재원 1천600억원을 투자해 글로벌 R&D센터·공공지원센터(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산학연 R&D센터(스타트업캠퍼스)를 세웠다. 이 건물을 세워 입주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저렴한 임대료의 업무공간을 마련해 스타트업에 제공했다. 이는 한 발 앞서 스타트업 시장을 선점한 셈인데, 그 덕에 판교는 현재 'IT 창업의 성지'로 자리매김했다. '판교의 것은 판교에게 돌려준다'는 특별회계의 취지는 향후 개발될 신도시가 반드시 유념해야 할 원칙 중 하나다.# 판교는 오늘도 진화한다10년 전매제한이 본격적으로 해제되기 시작하는 2020년은 판교의 현재가 미래에도 지속 발전할 것인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해다.과학기술용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마이다스아이티'(MIDAS Information Technology Co., Ltd)는 지난 2010년 4월 3일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SKn 테크노파크에서 판교의 세븐벤처밸리로 사옥을 이전했다. 올해 4월이면 이전 10년을 맞는 마이다스아이티는 성남시 정자동 163으로 둥지를 옮길 예정이다. 정자동 163은 인근에 네이버 사옥이 있고, 길 건너에 두산사옥이 신축 중인 '알짜배기' 땅이다. 2천832㎡ 규모의 이 부지는 시유지였으나 지난 2017년 첨단산업 부지로 마이다스아이티에 매각이 결정됐다.업계는 마이다스아이티의 이전을 판교 테크노밸리 '10년 전매제한' 해제에 따른 '기업 엑소더스'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이다스아이티를 포함해 판교에 가장 먼저 세워진 세븐벤처밸리 입주기업들이 올해부터 전매제한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판교의 터줏대감인 엔씨소프트는 2023년, 넥슨은 2024년이 되면 입주 10년을 맞는다. 조성원가인 면적당 1천만원 가량에 분양받은 판교 사무공간이 현재 2배 이상 시세가 뛰어 기업이 매각을 결정할 유인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 판교 테크노밸리 생태계를 뒤흔들 대형 사건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 경기도는 내부적으로 전매제한 해제 후 약 10%의 기업이 판교를 떠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문제는 전매제한 해제뿐이 아니다. 앞으로 10년이 더 지나면 IT·BT·CT·NT로 제한한 업종 규제도 추가로 해제된다. 더불어 개발이 추진 중인 제2·3 판교테크노밸리 역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경기도시공사, 경기도, 성남시가 일정 비율 사업지분을 나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가 분양부터 관리까지 도맡았던 판교테크노밸리와 달리 제2·3 판교는 시설의 관리·지원 주체가 제각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일부 시설이 준공돼 기업들이 입주한 제2 판교만 봐도 LH와 도시공사가 동일한 성격의 기업성장센터 2곳을 각각 별도 조성해 운영한다. 이 같은 문제들은 첨단산업단지의 정체성마저 흐릴 수 있다. 결국 초기의 판교를 단단하게 다졌던 규제들이 서서히 풀리면서 이제 진짜 '자생'해야 하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판교는 경기도와 성남의 작은 도시를 넘어서 대한민국 경제를 책임지고 있으며, 세계 IT 기업들과 실력을 겨루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판교 리얼리티'의 막을 내리며 다시 찾은 판교는 밤늦도록 기업과 연구소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판교는 오늘도 진화하고 있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신지영·김준석기자 사진: 임열수부장·강승호차장·김금보기자 편집: 안광열차장·장주석·연주훈기자 그래픽: 박성현·성옥희차장대한민국의 경제를 책임지며 세계 IT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고군분투중인 판교신도시 테크노밸리단지에 늦은 밤까지 기업들이 밝힌 희망의 불빛이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기획취재팀첨단산업의 중심지로 떠오른 판교 테크노밸리 일대. 판교 개발 이후 대한민국 신도시들은 '포스트 판교'를 꿈꾸고 있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2020-01-08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판교 리얼리티·(3)실패]화려한 판교의 초라한 밤… '상권 공동화'

판교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출퇴근 시간이 지나면 어둠 속에 갇힌다. 하루 7만명의 직장인이 오가고 10만명의 인구가 거주하지만 밤이 되고 주말이 되면 판교의 상가는 불이 꺼진다.바닥을 치는 매출과 비싼 임대료를 견디지 못한 상인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판교 테크노밸리 인근 상가에는 공실이 넘쳐난다. 판교역이라고 상황이 다른 것은 아니다. 역 주변의 대형 복합쇼핑몰에도 '임대 문의' 전단이 붙은 텅 빈 가게들이 곳곳에 보이고, 대기업이 운영하는 마트가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철수를 결정했다.'상권 공동화' 현상은 곧 판교의 위기다. 상권은 기업환경을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다. 기업 구성원들의 생활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프라가 무너지면 판교를 탄탄하게 지켜 온 기업들의 이탈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2018년 판교 테크노밸리 매출 87조원. 반짝이는 성공에 가려진 판교의 어둠을 들여다봤다. /기획취재팀 ▶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 ※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 사진: 임열수부장, 강승호차장, 김금보기자 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평일 저녁과 주말이면 텅 비어버리는 판교 테크노밸리 중심가. /김금보 기자 artomate@kyeongin.com

2020-01-07 공지영·신지영·김준석

[판교 리얼리티·(3)실패]어둠속 상권

판교역 광장에는 출퇴근 직장인들만 오간다. 판교는 평일 저녁과 주말이 되면 어둠에 잠긴다. 7만명 직장인이 오가고 10만명의 인구가 거주하지만 밤이 되면 상가에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상권 공동화'가 심각하다.주말이던 지난달 21일 저녁 판교테크노밸리 내 U스페이스를 찾아 가보니 10개 가게 중 2곳만 영업 중이었다. 그나마도 식당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건물 1층 카페 2곳만 겨우 문을 열어 놓은 모습이었다. H스퀘어도 상황은 마찬가지. N동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식당 주인은 "대부분 너무 장사가 안되고, 평일에도 밤 10시 이후면 아예 손님이 끊긴다. 그래도 장사를 해야 하니까 주말에도 열고 평일에도 새벽 5시까지 영업하지만 매출은 바닥"이라며 "이 곳 식당 상당수가 부동산 중개업소에 가게를 내놨는데 너무 안 빠져서 마지못해 운영하는 곳이 많다. 우리 가게도 중개업소에 내놓은 지 5년이 지났다. 유럽에서는 밤 10시면 문 연 식당이 없다고 하는데 판교가 딱 그런 상황"이라고 씁쓸하게 웃었다.김동욱 와이즐리 대표도 "1년 이상 판교에서 사무실을 운영했는데 회식은 고작 2차례밖에 안 했다. 직원들이 회식하자는 이야기가 없어 싫어하는 줄 알았다"면서 "서울 왕십리로 회사를 옮긴 뒤 회식이 부쩍 많아졌다. 판교에선 직원들이 퇴근하기 바빴는데, 이제는 삼삼오오 모여 저녁도 먹고 얘기도 하다 퇴근하는 문화가 생겼다. 회사 주변 상권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평일 저녁과 주말 공동화 현상은 판교를 품고 있는 성남시의 가장 큰 근심거리이기도 하다. 높은 지가와 임대료에 비해 매출이 신통치 않으면서 영세상점부터 대형 상가까지 공실이 늘어나고 있는 것. 전동억 성남시 아시아실리콘밸리 담당관은 "저녁과 주말의 공동화가 판교의 문제다. 판교가 오직 업무타운이 돼 버려 생긴 현상이다. 시도 상권이 붕괴되는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공통된 현상 한 가지를 증언했다. 그나마 유동인구가 있는 판교역 주변 상권만 활성화됐을 뿐, 판교의 나머지 상권은 '붕괴' 직전이라는 것이다. /기획취재팀▶디지털 스페셜 '판교리얼리티' 바로가기※기획취재팀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사진: 임열수부장, 강승호차장, 김금보기자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주말마다 인적이 끊기는 판교 테크노밸리 중심가는 '상권 공동화' 현상이 심각하다. /김금보 기자 artomate@kyeongin.com

2020-01-07 공지영·신지영·김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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