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강다니엘·지민,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주고 싶은 男 연예인 1·2위

워너원 출신 강다니엘과 방탄소년단 지민이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주고 싶은 연예인으로 선정됐다. 강다니엘은 지난달 21일부터 지난 11일까지 중·고등 인터넷 수학교육업체 세븐에듀가 1만 67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서 51.4%(5484명) 득표를 받았다. 지민은 40.2%(4285명)를 받으며 2위에 올랐고, 육성재 5.5%(582명), 박보검 1.6%(166명), 정해인 1%(102명) 등이 뒤를 이었다. 세븐에듀 측은 "강다니엘이 갖고 있는 소년의 이미지가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에게 첫사랑 판타지를 자극시킨다"라며 "무대 위에서 대중을 압도하는 듯한 모습과 예능에서 보여주는 소탈하고 멍뭉미 넘치는 상반된 모습이 대중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발렌타인데이는 매년 2월 14일 통상적으로 여성이 남성에게 초콜릿을 주는 날로 기록되지만, 유래는 조금 다르다. 로마시대 서기 269년, 당시 로마 황제였던 클라우디스 2세는 결혼 금지령을 내렸다. 발렌티노 주교는 그러나 젊은 연인들을 교회로 찾아오게 했고, 주례를 대신 서며 결혼을 시켜줬다. 이를 알게 된 황제는 분노했고, 같은해 2월 14일 발렌티노 등을 몽둥이질과 돌팔매질을 동반한 처형을 명했다. 로마 사람들은 이후 매년 2월 14일이 되면 발렌티노의 정신을 기념하고는 했다. 국가별로 발렌타인데이를 보내는 방법은 다르며,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댄스파티를 해 하트와 큐피트가 그려진 카드를 만들어 보낸다. 덴마크에서는 아네모네라는 하얀 꽃다발을 친구에게 전달한다고. 우리나라의 경우 일본에 영향받았다. 1936년 일본 고베의 한 제과점(모로조프)이 발렌타인데이와 초콜릿을 연계해 광고했다. 이후 일본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1960년 일본 모리나가 제과에서 여성들이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마음을 표현하고자 장려하는 캠페인을 열었고, 오늘날의 문화가 생겨나게 됐다. /손원태 기자 wt2564@kyeongin.com강다니엘·지민,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 초콜릿 주고 싶은 男 연예인 1·2위 /연합뉴스

2019-02-14 손원태

김지은 "성폭력 당하고 스스로 격리…미투는 마지막 외침"

안희정 전 충남지사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폭로한 전 충남도 정무비서 김지은 씨는 미투 운동의 주요 쟁점을 분석한 신간 '미투의 정치학'에서 추천사 형식의 글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김 씨는 "'미투'는 마지막 외침이었다. 이 싸움의 끝에는 정의가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이어 "내가 원한 건 이타적인 예민함이었다. 마지막 희망을 품고,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대선캠프에 들어갔다"며 "그러나 성폭력을 당하고, 사람과 세상으로부터 스스로 격리됐다"고 덧붙였다.이 책은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폭력문제를 연구해온 모임 '도란스'의 권김현영, 루인, 정희진, 한채윤이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비서 성폭력 사건 등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미투 운동을 다룬다.책 머리말에도 애초 이 책에 실을 예정이었던 김 씨의 원고 일부를 인용했다.여기서 김 씨는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충남도청에서의 지난 8개월, 나는 드디어 성폭력에서 벗어났다"며 "내 눈 앞에, 더 이상 그의 범죄는 없다. 폐쇄된 조직 안에서 느꼈던 무기력과 공포로부터도 벗어났다"고 썼다.책은 크게 4개 장으로 구성됐다. 안희정 사건 재판을 방청하면서 여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분석하고, 미투 운동을 중심에 두고 여성에 대한 폭력과 젠더 개념을 설명한다.또한 고전 소설 '춘향전'을 여성주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면서 성적 자기결정권 문제를 다루고, 페미니즘과 퀴어를 나눠 진영화하려는 흐름을 비판한다.저자들을 대표해 머리말을 쓴 여성학자 정희진 씨는 "미투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스스로의 인권 의식이 높아진 결과"라며 "미투는 한국의 남성 문화가 내부에서 다른 남성들조차 버틸 수 없을 만큼 조직의 '지속 가능성'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또한 그는 "미투 운동의 핵심이 '위력'이며 그 위력의 작동 방식과 맥락은 젠더 의식 없이는 설명될 수 없다"며 "안희정 사건은 근본적으로 노동시장의 성차별 문제"라고 주장했다./디지털뉴스부지난해 8월 14일 오후 수원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안희정 전 충남지사 1심 무죄 선고에 대한 기자회견에서 경기여성네트워크 회원들이 안희정 성폭력사건 무죄판결을 규탄하고 있다. /손성배기자 son@kyeongin.com

2019-02-14 디지털뉴스부

발렌타인데이,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 주는 날? '日 광고에서 시작'… 화이트데이 차이점은?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네티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발렌타인데이는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에게 초콜릿 주는 날로. 남자가 여자에게 사탕을 주는 화이트데이와 유사하다. 그러나 발렌타인데이 유래는 따로 있으며, 기원은 로마시대 서기 26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로마의 황제였던 클라우디스 2세는 결혼 금지령을 내렸지만, 발렌티노 주교는 젊은 연인들을 아무도 모르게 교회로 찾아오게 했다. 그는 주례를 서고 결혼을 시켜줬다. 황제는 주교에 항명하는 것이라며 분노했고, 같은해 2월 14일 발렌티노는 몽둥이질과 돌팔매질을 당하며 결국 처형됐다. 로마 사람들은 이후 매년 2월 14일이 되면 발렌티노의 정신을 기념하고는 했다. 국가별로 발렌타인데이를 보내는 방법은 다르며,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댄스파티를 해 하트와 큐피트가 그려진 카드를 만들어 보낸다. 덴마크에서는 아네모네라는 하얀 꽃다발을 친구에게 전달하고, 이탈리아에는 발렌타인데이 축제가 따로 열린다. 한국의 경우 일본으로부터 영향받았으며, 1936년 일본 고베의 한 제과점(모로조프)이 발렌타인데이와 초콜릿을 연계해 광고했다. 이후 일본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1960년 일본 모리나가 제과에서 여성들이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마음을 표현하고자 장려하는 캠페인을 열었고, 오늘날의 문화가 생겨나게 됐다. /디지털뉴스부발렌타인데이, 여자가 남자에게 초콜릿 주는 날? '日 광고에서 시작'… 화이트데이 차이점은? /연합뉴스

2019-02-14 디지털뉴스부

1888년 자주적 철로 사업 추진… 한국의 '철도역사' 앞당겨졌다

경인선 개통 11년전 대미협상 담겨美제시 계약서 '철도약장' 초안 발견외세 의한 강제 부설 주장 뒤집어우리나라 최초의 철도 경인선 개통 11년 전인 1888년 조선이 자주적 철도 부설을 위해 미국과 협상을 벌인 사실이 문서를 통해 최초로 확인됐다. 한국 철도 도입 과정의 역사가 앞당겨졌음은 물론 조선이 자주 근대화를 위해 철도 사업을 적극 추진했다는 사실도 입증됐다.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1850~1927) 선생의 후손이 기증한 유품에서 이 같은 내용의 문서가 발견됐다고 13일 밝혔다.이상재 선생은 1888년 1월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 D.C.에 주미공사관을 개설하고 그해 11월 귀국했다. 이 문서는 이때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견 자료는 문헌자료 5점과 사진자료 3점인데, 이 가운데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錄)'에는 그간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경인철도 부설 관련 미국과의 협상 내용이 등장한다.미국 뉴욕의 법관 '딸능돈'(달링톤의 당시 번역어로 추정)과 미국 사업가들은 1888년 10월 회사를 설립해 경성과 제물포 사이에 철로를 설치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리고 만약 조선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바로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계약서인 '철도약장'(鐵道約章)을 작성해 주미공사 측에 전달했다. 이번에 발견된 문서는 철도약장의 초안인 '미국인약초(美國人艸初)'다. 철도약장은 주미공사 박정양의 미국 기행기인 '미행일기(美行日記)'에 등장하지만, 그 실체가 확인되지 않아 언제, 어떤 내용으로 작성됐는지는 알지 못했으나 미국인약초로 그 내용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됐다.고종은 당시 미국의 철도 부설 제안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미국 측이 내건 세금 면제 조항 등 조건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박정양이 만류해 실제 성사되지 않았다. 이 문서의 발견은 우리나라 철도 역사를 10여 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고종이 미국 현지에서 직접 철도 부설 협상을 추진했다는 점은 외세에 의해 강제로 철도가 놓였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서 추가 연구가 요구되고 있다.그간 우리나라 철도의 역사는 조선으로부터 철도 부설권을 허가받은 미국인 사업가 J.R. 모스가 1897년 3월 22일 인천 우각리(현 경인전철 도원역 부근)에서 경인선 기공식을 가진 것으로 시작하고 있다. 코레일도 철도 연혁을 1897년으로 시작하고 있다. 모스는 이후 일본에 철도 부설권을 넘겼고 1899년 9월 18일 제물포~노량진 구간이 개통했다.문화재청 관계자는 "1888년 조선은 철도부설 사항을 주미공사관을 통해 미국 측과 논의하고 있었으며 관련 계약서의 조문까지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있었음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며 "미국인 사업가 모스 이전에는 철도 관련 기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 존재를 확인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도원역 인근 '철도 최초 기공지' 기념비-13일 오후 경인전철 도원역 인근에 설치된 '한국 철도 최초 기공지'기념비를 배경으로 경인선 전철이 달리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최근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의 후손이 보유한 유품에서 경인선 개통 11년 전인 1888년 조선이 자주적 철도 부설을 위해 미국과 협상을 벌인 사실이 담긴 '미국공사왕복수록(美國公私往復隨錄)'이 발견됐다고 이날 밝혔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9-02-13 김민재

"조선이 철도부설 사업 직접 뒷받침" 배경·역사 재정립은 과제

단서조항 등 구체적 제안 오고가美 지나친 특혜 요구 '부정적 영향'1897년 모스 부설권 日에 넘어가전문가 "고종, 외교적 관점서 추진"월남 이상재 선생의 유품에서 발견된 조선-미국 간 철도 부설 협상 내용은 우리나라 철도 도입 과정의 역사를 앞당겼다. 근대화의 초석이라고 할 수 있는 철도 부설을 조선이 자주적으로 추진했다는 사실도 새로이 확인되면서 우리 철도 역사 연구에 많은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미국공사왕복수록'에 실린 철도약장 초안을 보면 1888년 미국 관료와 사업가는 철로, 가스등, 양수기 등 3건의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조선에 제안했다. 초안에는 10월 10일이라는 날짜만 나와 있으나 이상재 선생이 미국에 머문 시기를 따져봤을 때 1888년이 확실하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우체국인 인천우체국의 초대 우체국장이기도 하다.특히, 철도의 경우 "조선 경성 제물포 사이에 설치하고 개설 도로와 역사 건축 부지의 토지는 특별히 면세해달라"는 구체적인 협상안까지 제시한다. 이를 조선 정부가 승인하면 9개월 안에 시공하고, 그 기간 안에 착수하지 못하면 계약은 자동 파기된다는 단서조항까지 달았다. 미국 측은 조선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조선기계주식회사'라는 회사를 설립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이 철도 사업이 성사되지 못한 이유는 미국의 지나친 특혜 요구 때문이었다. 이들은 토지에 대한 면세뿐 아니라 15년 동안 기계 수입에 대한 관세까지 면해달라고 요구했다.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은 이런 이유 때문에 고종에게 사업을 부정적으로 보고 했다.이 협상은 비록 무산됐지만, 고종이 미국 워싱턴에 설치한 공사관을 통해 조선 내 철도 유치를 직접 추진했다는 점은 우리 철도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일본은 조선을 대륙 진출의 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철도 부설권을 호시탐탐 노렸고, 결국 1897년 미국인 사업가 모스로부터 부설권을 사들였다. 1937년 일제는 우리나라 최초 철도인 경인선 구간 개통일(1899년 9월 18일)을 '철도기념일'로 삼았고, 1964년 11월 우리 정부가 이날을 '철도의 날'로 이어받아 지난해 대한제국 철도국 창설일(6월 28일)로 바뀌기까지 사용해왔다. 이처럼 철도는 일본에 의한 식민지 근대화론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하지만, 고종이 공식 외교 라인을 통해 자주적으로 철도 유치를 직접 추진해왔고, 구체적인 검토까지 했다는 점은 이런 식민지 근대화론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됐다.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협력지원팀장은 "조선시대 외교 자료는 굉장히 귀한데 철도 역사를 앞당길 수 있는 자료까지 확인되면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며 "이 문서는 조선이 근대화의 총화라 할 수 있는 철도 부설을 직접 추진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고 했다.이번 문서 발견을 계기로 우리나라 철도 역사의 재정립과 추가 연구가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1897년 미국인 사업가 모스가 했다는 경인철도 기공식 장소는 오늘날 인천의 경인전철 도원역 부근으로 추정될 뿐 정확한 장소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또 고종이 미국 측과 철도 협상을 하게 된 과정, 관련 문서가 미국에 남아 있는지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학계에서도 우리나라 철도 역사의 출발점을 어디로 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초대 주미공사 박정양 연구자인 동국대 한창호 역사교육과 교수는 "고종은 철도 부설을 통해 미국이 조선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외교적 관점에서 사업을 긍정적으로 검토했으나 박정양이 만류했다"며 "1888년 조미 철도 협상의 구체적 배경과 조선기계주식회사 설립 추진의 실체, 철도 역사 재정립 등 앞으로 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말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2019-02-13 김민재

주민 모두가 만세운동 '뜨거웠던 화성의 봄'

100년 전의 수원과 화성은 한 지역이었다. '수원군'으로 통칭했고 동향의 정을 나누는 한동네 주민이다. 100년 전 가장 뜨거웠던 그 봄, 수원과 화성의 주민은 한마음, 한뜻이었다. 오직 대한의 독립을 열망했고 양반, 농민,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주민 전체가 만세운동에 뛰어들어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짖었다. 특히 화성지역의 만세운동은 열기가 더 뜨거웠다. 주민 모두가 '주동자'라 할 만큼 자주적인 독립운동의 양상을 띤다. 우정과 장안면 등 2개 면에 불과한 일부 지역에서만 2천여 명의 주민들이 만세운동에 동참했다.이들의 성과도 눈부시다. 일제 수탈의 본거지였던 면사무소 2개와 일본 순사가 상주하는 주재소 1개를 파괴하고, 총을 쏘는 일본 순사에게 달려들어 처단했다. 나라 잃은 민족의 굳건한 독립의지를 여실히 드러낸 역사의 명장면이다.이 때문에 3·1만세운동 뿐 아니라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수원·화성의 만세운동이 갖는 역사적 가치는 재평가돼야 한다. 민중이 중심이 된, 가장 자주적이면서 공격적인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알려지며 확산세를 보였고, 겁을 먹은 일제가 제암리 학살사건을 자행했다. 이후 일제는 문화통치로 지배방식을 바꾸기도 했다. 이뿐인가. 향토 학계에서는 이 지역의 만세운동은 임시정부 설립은 물론 무장독립투쟁의 단초가 됐다는 점을 다시 평가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2019-02-13 공지영

韓中카페리 '사드 시련' 벗어났다

1월 10곳 항로 여객수 7만9227명2년전보다 44% ↑… 1년새 79.9%中당국 해제조치·대형 선박 영향석달 연속 ↑… 업계 마케팅 속도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큰 타격을 입었던 한중카페리 여객이 사드 여파에서 벗어났다.13일 인천항만공사에 따르면 인천과 중국을 연결하는 10개 항로 카페리의 지난달 여객 수는 7만9천227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 4만4천49명보다 79.9% 늘어난 것으로 사드 보복이 이뤄지기 이전인 2017년 1월(5만4천683명)와 비교해도 44%나 증가했다. 지난해 11월 26%(1만8천430명↑)과 12월 29%(2만578명↑)에 이어 올 1월 (2만4천544명↑)까지 3개월 연속 사드 보복 이전(2016년 동월)보다 여객 수가 늘어났다.한중카페리 여객 수는 2017년 3월 중국 정부가 자국 여행사에 '한국 관광 상품을 팔지 말 것'을 지시한 이후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이용이 뚝 끊기면서 급격히 줄었다. 그해 60만359명의 여객 수를 기록하며 사드 갈등 이전인 2016년(92만391명)보다 38.4%나 감소했다. 지난해 여객 수는 80만9천58명으로 전년보다는 34.7% 증가했지만, 2016년의 88% 수준에 불과했다.인천항만공사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 정부가 한국 단체관광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면서 한중카페리 여객 수가 회복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인천에서 웨이하이(威海), 칭다오(靑島) 항로 카페리를 운항하는 위동항운 관계자는 "중국 춘절 연휴가 막 끝난 시점인 13일에도 120명의 단체관광객이 우리 배에 탔을 정도"라며 "업계에서는 중국의 단체관광 금지 조치가 완전히 해제된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에는 중국 장쑤성(江蘇省)에 있는 초등·중학교 학생 2천700여명으로 구성된 수학여행단이 한중카페리를 타고 인천을 방문했다.'한중카페리 선박 대형화'도 여객 수 증가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힌다. 인천과 롄윈강(連雲港)을 오가는 연운항훼리는 2017년 12월부터 기존 선박(1만6천t급)보다 2배 이상 큰 '하모니윈강호'(3만5천t급)를 운항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위동항운이 '뉴골든브릿지2호'(2만6천t급)를 '뉴골든브릿지7호'(3만322t급)로 교체 투입했다.인천항만공사 관계자는 "한중카페리 항로는 사드 보복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정상화됐다"며 "여객을 늘리기 위해 인천에서 중국으로 가는 단체관광객을 유치하는 등 마케팅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겠다"고 말했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2019-02-13 김주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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