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경기)

[이슈&스토리]인천에서 출발한 화교사회 '한국 근대사의 거울'

1882년 정착… 단순 이주민 아니라 고유 정체성 유지 대부분 산둥성 출신… 해방前 농업 등 경제활동 요직 1992년 형성된 서울 대림 차이나타운과 비교 '시사점'이달 말 북미 정상회담에 이은 미국과 중국 간 정상회담이 예고됐다. 연쇄적인 이번 정상외교가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정세 변화를 이끌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이처럼 중국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한반도에 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한반도에 접한 지정학적 위치상 앞으로도 중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반도에서 가장 가까운 중국인은 화교(華僑)라 할 수 있다. 화교는 130년 넘게 한반도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역사적·문화적으로 우리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하지만 중국을 더욱 세밀하게 이해하기 위해선 한반도 속 화교부터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 근대 시기 화교가 어떻게 한반도에 진출했는지, 이후 어떠한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을 이어왔는지를 살피면 '앞으로의 한반도와 중국'이 보인다.# 한반도 화교의 시발지, 인천중국인의 한반도 이주는 고대부터 있었지만, 이들을 화교라 부르진 않는다. 다른 나라로 이주한 중국인이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사회단체를 조직하고, 경제활동을 이어갈 때 단순한 이주민이 아닌 '화교'라고 분류해 칭한다. 이 같은 화교 인구는 전 세계에 약 1억명으로 추산된다.한반도 화교는 인천에서 출발했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명성황후의 요청으로 리훙장(李鴻章)이 이끄는 청나라 군대 3천명이 인천에 주둔했다. 이때 군역상인 40여명이 함께 들어왔다. 이들이 인천과 서울 등지에서 상업활동을 하면서 인천에 정착한 것을 한반도 화교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다. 이를 계기로 조선과 청은 1882년 중국인의 조선 이주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개항장에서 상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을 체결했다. 1884년에는 인천 개항장에 청나라의 치외법권지역인 '청국조계'가 지금의 북성동 일대에 설정됐다. 청국조계에는 청국영사관이 설치돼 중국인들의 행정을 관장했고, 사회단체, 학교, 중국식 사당인 의선당 등이 들어서면서 화교 사회의 체계를 다졌다. 당시 화교들이 구축한 집단거주지가 오늘날 인천차이나타운으로 1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인천대학교 중국학술원 이정희 교수가 쓴 '화교가 없는 나라'(2018)에 따르면, 1883년 조선 화교 인구는 166명에 불과했다. 10년 동안 2천100여명으로 급증했다가 청일전쟁(1894~1895년)으로 상당수 중국인이 본국으로 귀환했으나, 1907년에는 7천739명으로 또다시 큰 폭으로 늘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1910년 1만1천818명으로 처음으로 1만명을 넘어섰고, 이후 꾸준히 증가해 1930년에는 6만7천794명에 달했다. 1931년 발생한 이른바 '화교배척사건'과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화교 인구가 증감을 반복하다가 해방 직전인 1944년에는 7만여명으로 증가했다. 당시 외국인 인구의 90% 이상이 화교였다.# 화교를 통해 본 근대 경제사한반도 화교는 다양한 경제활동으로 개항기부터 해방기까지 근대사의 한 축을 담당했지만, 상대적으로 조명되지 않았다. 화교들은 가위(양복점), 면도(이발), 식칼(중화요리)로 상징되는 '삼도업'(三刀業)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꾸렸다. 가장 친숙한 중화요리점은 1880년대 말부터 서울과 인천 등지에서 영업하고 있었다. 1906년 인천에서는 연남루, 동흥루, 합흥관, 사합관, 동해루, 흥륭관 등 중화요리점 6곳이 운영하고 있었고, 널리 알려진 공화춘은 1912년께 설립됐다. 초기에는 중국에서 이주한 화교가 주요 고객이었지만, 한국인들에게도 대중화하면서 1930년에는 전국에 중화요리점이 1천635곳에 달했다. 갑오개혁의 하나로 '양복 착용 허용'과 '단발령'이 공포된 1895년 이후부터는 화교가 운영하는 양복점과 이발소가 성업하기도 했다. 중국인의 이미지 가운데 하나인 '비단장수 왕서방'도 이 시기에 한국인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상하이에서 영국산 면직물, 중국산 비단·삼베 등을 대량으로 수입해 국내에 판매한 화교 주단포목상점은 1930년 전국에서 2천116곳이 영업했다. 일본인 상점 714곳보다 1천402곳이나 많았다. 하지만 일본이 중국산 비단에 높은 관세를 매기고, 중일전쟁 등을 거치면서 점차 쇠락했다. 화교는 솥 등을 만드는 주물업과 건축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했다. 인천 답동성당, 서울 명동성당과 약현성당, 전주 전동성당 등 대표적인 근대 종교건축물은 모두 벽돌조 건물인데, 화공(華工)이라 불린 중국인 노동자들이 시공을 도맡다시피 했다. 당시 화공이 조선인과 일본인보다 임금이 저렴하고, 기술력, 성실성 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근대 한반도에 이주한 중국인 대부분은 산둥성 출신이다. 산둥성은 중국 대륙의 채소 생산기지이기도 하다. 화농(華農)이라 불린 화교 농민들은 인천과 부천지역에서 채소를 재배하면서 지금의 인천 신포시장 쪽에 처음으로 채소 상설시장을 열었다. 당시 인천의 채소 수요 70%를 화교가 공급했다. 인천뿐 아니라 서울, 평양, 원산, 청진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도 화농이 채소 공급을 독점했다. 다양하고 저렴한 채소를 재배하는 화농에 한국인 농민들은 밀릴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 채소 농가가 다시 주도권을 잡은 것은 해방 이후다. # 노(老)화교와 신(新)화교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차이나타운은 인천차이나타운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은 서울 대림차이나타운이다. 두 차이나타운의 성격은 정반대라고 볼 수 있다. 인천차이나타운은 137년 전 정착한 한족 출신 화교들이 4~5세대까지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다. 사회단체인 인천화교협회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유치원과 초·중·고교 과정이 있는 인천화교학교, 중국식 사당인 의선당, 인천중화기독교회가 있어 국제적인 차이나타운의 요건을 고루 갖췄다. 인천차이나타운 같은 화교 사회를 '노화교'라고 부른다. 반면 대림차이나타운은 1992년 한중수교 이후 국내로 이주한 재한조선족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이들을 '신화교'라고 한다. 인천차이나타운 화교 인구가 3천명 안팎인데 비해 대림차이나타운의 화교 인구는 2만6천명을 넘어섰지만, 화교학교나 의선당 등이 없어 전통적인 차이나타운의 모양새는 아니다. 음식점 또한 인천은 '한국화'한 중화요리이고, 대림은 본토의 맛에 가깝다는 평가다. 노화교와 신화교를 비교하는 것은 한국 화교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이정희 교수는 경인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한반도는 중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 화교의 배경에는 중국이 있다는 점에서 다른 외국인 문제와는 다르다"며 "근대 시기 화교의 한반도 진출, 현재의 화교 사회 등을 통해 앞으로 우리가 중국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시사점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인천차이나타운에 있는 인천화교중산학교에서 열린 쌍십절(대만 건국 기념일) 기념행사에서 화교 학생들이 용춤을 추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주말이면 국내외 방문객들로 북적이는 인천차이나타운 풍경.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1910년대 지어진 청국영사관 부속건물인 '회의청'(會議廳) 내부에 마련된 화교역사관.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9-02-07 박경호

[우리시대의 품앗이人(K-Pumassian)]'역대 최장시간 봉사' 광명 정기숙 할머니

17년간 4190곳서 1만4568시간 활동'市 명예의 전당'에 1호로 이름 올려대학시절부터 60년간 문해교육 지속"자원봉사를 하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서 이 일을 자꾸 찾아서 하게 됩니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요."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60여 년 동안 봉사활동을 천직처럼 여기며 꾸준히 펼치고 있는 80대 할머니가 화제다.광명시자원봉사센터는 최근 정기숙(81·철산동) 할머니를 역대 최장시간 자원봉사를 한 자원봉사자로 선정하고 자원봉사자들의 공로를 드높이기 위해 마련한 '광명시 명예의 전당'에 1호로 이름을 올렸다.봉사자들의 봉사시간을 집계하기 시작한 지난 2001년 12월부터 지난 17일까지 17년 동안 총 4천190곳에서 모두 1만4천568시간을 봉사했다.지난 1960년대에 대학을 다닌 정 할머니는 국문과 학생이었고 이때부터 뜻을 같이하는 선후배 등 지인들과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수많은 사람에게 문해교육 봉사를 시작했다. 국가에서 문맹 퇴치를 위해 국민운동으로 전개한 이 사업에 참여한 것이 평생을 봉사자로 살게 한 계기가 됐다.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 정 할머니는 지금까지 10년 정도만 교직에 몸 담았을 뿐 대학 시절에도, 졸업 후에도, 그리고 결혼 후 자녀를 키우면서도 지금까지 문해교육 등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현재 대한적십자사 광명시지구협의회, 광명시평생학습원, 광명시자원봉사센터, 광명시노인복지관 등을 거의 매일 오가면서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는 정 할머니는 "젊었을 때는 주로 몸으로 하는 봉사활동을 했으나 지금은 힘이 들어서 상담 등 안내 봉사를 하고 있다"며 "언제나 봉사를 내 일상처럼 하고 있기 때문에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특히 "봉사를 명예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며 "봉사는 겸손하게 남과 소통하면서 배려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고, 절대 무엇을 바라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정 할머니는 또 "봉사하기 위해 공공기관이나 봉사단체를 찾아가면 나이부터 묻는다"며 "100세 시대를 맞아 노인들에게 맞춤형 봉사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등 여전히 봉사활동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끝으로 "나에게 자원봉사란 '내 삶의 활력소' 같은 것"이라며 "봉사하는 곳을 버스를 타고 찾아다니기 때문에 매월 10만 원 정도의 교통비가 필요해 이 돈을 제일 먼저 용돈으로 빼놓는다"는 정 할머니는 "지금처럼 계속 건강해서 더 많은 봉사를 하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광명/이귀덕기자 lkd@kyeongin.com광명지역에서 역대 최장시간 자원봉사자로 선정돼 '광명시 명예의 전당'에 1호로 이름을 올린 정기숙 할머니. 광명/이귀덕기자 lkd@kyeongin.com

2019-01-29 이귀덕

[인터뷰… 공감]'전국 지방자치단체 1호 정식 임명' 김준재 경기도 역학조사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처음으로 '정식' 역학조사관이라는 명함을 갖게 된 김준재(59) 조사관을 인터뷰하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지난달 안양지역에서 발생한 홍역이 이달 들어 하루가 멀다 하고 안산·시흥지역에서 집중 유행한 탓이었다. 올해 들어 도내에 발생한 홍역 환자는 13명. 다행히 더 이상 환자가 늘지 않은 채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최일선에 있는 김 조사관은 환자들의 상태를 점검하고 이들과 접촉한 1천600여명을 살피느라 한 달 가까이 밤낮을 잊은 모습이었다. 25년가량 일반 병원에서 소아과 의사로 지내왔던 그가 50대 후반, 일반인들에겐 이름조차 생소한 '역학조사관'의 길을 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잠시 허락된 시간. 지방자치단체 1호 역학조사관인 그의 이야기를 짧게나마 들어봤다.# 베테랑 소아과 의사의 '새 길'역학조사는 감염병의 발생 원인과 특성을 파악하는 일이다. 이에 대한 전문가가 역학조사관이다. 질병의 원인을 수사하듯 다방면으로 찾아 감염병을 예방하고 실제 발생 시 확산을 막는 게 주된 업무다 보니 '질병 수사관'으로도 불린다.과거에도 역학조사관이 있었지만 그 중요도에 비해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비교적 적었다. 많지 않은 역학조사관들의 헌신에 기대 이뤄지는 게 보통이었다. 같은 의사들 조차 역학조사관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을 때였다. 지자체의 역학조사관들의 사정은 더욱 좋지 않았다. 한 조사관의 근무기간이 1~2년 정도에 그치다보니 지자체에 감염병 관리 노하우가 축적되기 쉽지 않았다. 그러다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가 전국을 강타했다. 시·도 단위에도 전담 역학조사관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이뤄졌다. 제도가 정비됐고 교육과정도 강화됐다.김 조사관이 '역학조사관'이 된 것은 메르스 사태 이후인 2016년이다. 서울에서 일반 병원을 개업해 25년가량 소아과 의사로 일했다. 아이를 건강하게 기르는 점에 대한 저서에 참여하기도 했다. 보람된 일이었지만, 의사로서 더욱 새롭고 의미 깊은 일을 하고 싶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고민하던 차에 경기도의 역학조사관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마침 공중보건의사로서 역학조사관으로 일했던 대학 후배가 큰 도움이 됐다. 김 조사관은 "소아과 전공의 시절 감염학에 관심이 있어 감염 관련 일을 같이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에는 개업의사로서만 일했다. 보람됐지만 의사로서의 전문성,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뭔가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렇게 '수습' 역학조사관이 됐다.정식 역학조사관이 되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2년간의 수습기간 수차례의 교육을 받아야 했고 유행역학조사보고서·감염병 감시분석보고서도 각각 2편 이상씩을 써야 했다. 논문도 1차례 작성해 게재해야 했다. 그러면서 매일 경기도 곳곳을 다니며 각종 감염병 발생 가능성을 살피고 이를 사전에 차단하는 데 매진했다. 회의·학회·세미나도 수없이 다녔고, 보건소·기관 교육 역시 그의 업무였다. 그렇게 올해 1월 9일 전국 지자체에선 처음으로 정식 역학조사관이 됐다.# 24시간이 모자라…"홍역, 예방접종으로 조절 가능해"그의 하루 일과는 작은 틈 하나 없이 가득 차있었다. 출근하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각 지역 보건소에서 올라온 감염병 보고 상황을 꼼꼼히 살피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당장 처리해야할 일, 직접 현장에 가서 살펴야할 일 등으로 내용을 분류한 후 해당 지역 보건소에 상황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오전 시간이 모두 지나간다. 오후에는 현장으로 향한다. 병원·보건소, 기타 시설 등에서 환자의 증상, 일련의 행보 등을 살펴 감염병의 유입·확산 경로 등을 파악한다. 이후 현장 조사 보고서를 정리한다. 이번 홍역 사례처럼 감염병이 번지기라도 하면 일은 갑절로 늘어난다. 24시간 내내 긴급사항을 각 지역 보건소에서 유선으로 보고받고 상황을 판단해 적절한 지시를 내린다."요즘처럼 감염병이 확산되면 정말 정신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김 조사관은 자칫 걷잡을 수 없이 번질 수 있던 감염병을 조기에 차단한 일들을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감염병 발생 소식에 부랴부랴 현장으로 달려갔다가 '음성' 판정을 받아들고 가슴을 쓸어내린 순간들을 그는 회고했다. 김 조사관은 "의료기관에서 발생하는 감염병을 막기 위해 병원 감염병관리팀, 관련 의사들을 수도 없이 설득했던 일, 아파트·사우나 시설에서 레지오넬라증(박테리아의 일종인 레지오넬라균에 감염돼 나타나는 폐렴 등의 증상)이 발생했던 일, 친구들끼리 백일해(보르데텔라 백일해균에 감염돼 발생하는 호흡기 질환)에 감염돼 대처했던 일 등이 떠오른다"며 "한번은 쥐가 옮기는 질병의 유행이 의심된다는 이야기에 헐레벌떡 현장에 가서 살폈는데 다행히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다. 긴장이 풀리면서 안심이 됐다"고 말했다.최근 안산지역 등에서 확산됐던 홍역에 대해선 이른 예방접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홍역은 1세 이후에 접종을 2번 하면 97% 이상 항체가 생긴다. 예방접종으로 조절 가능한 질환"이라며 "질병관리본부의 안내에 따르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인터뷰 내내 그는 "제가 지방자치단체에선 메르스 사태 이후 강화된 규정에 따라 처음으로 수습을 뗀 역학조사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유일무이한 조사관은 결코 아니다"라고 거듭 설명했다. "이전에도 많은 역학조사관들이 감염병 예방, 확산 방지를 위해 애써왔다. 도청에만 저 포함 6명의 조사관이 있는데 다들 일선 현장에서 홍역 등의 확산을 막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도와 시·군, 각 보건소 등에서도 함께 노력하는 중"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사진을 찍는 찰나의 순간에도 그의 휴대전화가 연거푸 울렸다. 홍역 확산 상황을 묻는 내용이었다. 짧은 만남을 서둘러 끝낸 그가 말했다. "곧 또 현장에 가봐야할 것 같아요."경기도 '1호' 정식 조사관인 그의 뒷모습이 자못 비장했다. 글/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김준재 경기도 역학조사관은?▲1960년 서울 출생▲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1984년 의사면허 취득▲1991년 서울대학교병원 소아과 전공의 과정 수료·전문의 자격 취득▲1991년 3월~1992년 1월 동부제일병원 소아과 과장▲1992년 1월~ 소아과 개원병원 의사▲2016년 9월~ 경기도 역학조사관# 저서: '프로엄마, 건강한 아이' (참육아 연구회·공저자, 2002)메르스 사태 이후 강화된 규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1호 정식 역학조사관이 된 김준재 경기도 조사관이 최근 안산지역 등에서 확산됐던 홍역 등 감염병에 대한 예방접종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사진/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2019-01-29 강기정

[FOCUS 경기]'中企 육성터' 광주시의 눈길 끄는 행보

화학물질 등 법규 중첩규제로 열악한 환경 속교육지원·해법모색 통해 고통받는 업체 구제SOS 처리 道평가 10년간 9번 대상 수상 영예상생협의체 운영·현장간담회 등 다양한 노력기업을 운영함에 있어 규제는 '족쇄'와도 같다.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경기도 광주시는 기업하기 무척 힘든 곳이다. 시 전 지역이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자연보전권역으로 묶여 있고, 팔당호 상수원수질보전특별대책지역 1권역에 속해 제약을 받는 사안이 한 두개가 아니다.또 지역 내 20%는 팔당 상수원보호구역이고, 24%는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있다. 환경정책기본법 등 각종 법규의 중첩규제를 받고 있는 곳이 바로 광주시다.하지만 많은 중소기업들이 꾸준히 광주시를 찾는다. 설령 시를 떠나는 기업이 있다 하더라도 언젠가 다시 돌아올 날을 기약한다.규제(공장 입지 문제 등)로 인해 지역을 떠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일할 맛 나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광주시의 몸부림을 알기에 섭섭함이 큰 것이다.기업지원에 힘써 '중소기업 육성터'란 별칭까지 얻은 광주시의 기업행정을 들여다봤다.# 위기의 중소기업, 해결사 광주시 경기 광주에 위치한 포장재 인쇄업체 J사는 지난해 개정·시행된 화학물질관리법으로 인해 졸지에 폐업위기에 처했다. 법 시행 이전부터 운영되던 사업장이라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강화된 법률로 인해 하루아침에 범법자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기존에 적법하게 사용해오던 화학물질이 '화학물질의 평가 및 등록에 관한 법률'에 따라 유독물질로 지정·고시됨에 따라 유해화학물질 영업허가를 득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하지만 이럴 경우 수도법에 따른 공장설립제한 및 승인요건이 적용되지 않아 사실상 문을 닫아야 했다.이런 애로사항을 현장에서 듣게 된 광주시 기업지원과는 마음이 바빠졌다. 우선 이 같은 처지의 기업들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기업현황 파악에 나섰다. 이후 관계기관과 협의를 거쳐 개정된 법으로 속앓이하는 기업들에게 실질적 교육을 지원했다. 이와는 별도로 애로사항과 관련해 법률자문을 의뢰하고 환경부를 찾아 건의했다. 중소기업청 옴부즈만실과 현장 방문에 나서고, 경기도와도 지속적으로 협의해 나갔다. 그러기를 10개월. 결국 시 고문변호사 법률자문 및 경기도 사전컨설팅감사를 통해 환경부의 유권해석을 확보, '수도법'의 입지제한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또한 법제처 유권해석 및 헌법재판소 결정자료를 근거로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과 '건축법'상 문제점을 해결해 유해화학물질 사용업 허가를 받을 수 있게 됐다.이는 J사에 그치지 않고, 수도법에 의해 공장설립 제한을 받는 한강수계 7개 시·군(경기도)을 비롯한 금강수계(충청도), 낙동강수계(경상도), 영산강수계(전라도)에서 공장설립을 받아 운영 중인 중소기업들의 유해화학물질 사업 허가도 가능하게 하는 단초가 됐다.이런 사례는 일부일 뿐이다. 시는 이밖에도 기업들이 법령을 몰라 어려움을 겪거나 불합리한 제도적 문제로 고통을 받는 것을 지난 십여년간 꾸준히 지원해오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IBK기업은행과 우수기업 육성을 위해 동반성장협력자금 60억원을 조성해 중소기업 지원에도 나섰다. 우수기업 육성은 곧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기업SOS 처리 9년 대상 수상광주시의 이 같은 열정은 경기도가 매년 도내 31개 시·군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기업 SOS 처리 시스템 운영실적 평가'에서 7년 연속 '대상'이란 쾌거를 이루게 했다. 지난 2008년과 2009년 대상 수상에 이어 2010년 장려를 포함해 10년 연속 수상이라는 진기록과 함께 10년 동안 9차례 대상을 수상, 명실상부 도내 최고의 '기업하기 좋은 도시'임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시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조성을 위해 2008년 '광주시 기업 SOS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데 이어 매년 '기업 SOS 시스템 운영계획'을 수립해 유관기관 합동 현장방문과 원스톱 처리 회의를 상시 가동하고 있다. 2017년 한해 동안에는 공장설립, 기반시설, 판로·수출 등 다양한 유형의 기업애로 240여건을 해결하는 성과를 거뒀다. 또한 특수시책으로 기업SOS운영과 지원시책을 접하지 못한 중소기업들에게도 손을 내밀고 있다. 기업애로 해결부터 지원사업 참여, 기업 홍보까지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찾아가는 기업토털 솔루션'을 운영, 기업지원 사각지대를 축소했다. 아울러 기업에서 공감할 수 있는 공통적인 애로사항을 발굴하기 위해 '광주시·경제단체 상생협의체'를 운영하고, '광주시 차세대 경영인' 육성지원, '찾아가는 기업애로 현장방문' 및 현장간담회 등 다양한 기업지원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석태훈 시 기업지원과 팀장은 "한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기 위해선 살펴봐야 할 법령도 많고, 시간도 많이 투자해야 한다. 관계부서와 협의도 해야하는데 모든 일이 100% 해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다양한 애로사항을 풀어가다 보면 고용 창출과 뿌리부터 튼튼한 기업환경이 조성되는 만큼 전 직원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광주/이윤희기자 flyhigh@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신동헌 광주시장이 관내 기업인들과 만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있다. /광주시 제공지난해 7년 연속 경기도가 평가하는 '기업SOS운영'에서 대상을 수상한 기업지원과 직원들과 신동헌 광주시장. /광주시 제공

2019-01-27 이윤희

[FOCUS 경기]인터뷰|신동헌 광주시장

올해 기업들의 경기전망을 나타내는 지표는 그 어느 때보다 흐리다. 한국은행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4월 2.9%에서 지속적으로 낮춰 최근엔 2.6%로 하향 조정했다. 경제 둔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인데 기업들 역시 잔뜩 움츠려 있다.신동헌(사진) 광주시장은 올해 경제와 관련, '기업생태계 살리는 생산도시 광주'를 모토(신조)로 삼았다. 기업이 살아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기업과 지역사회의 선순환을 이뤄내겠다는 것이다.신 시장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미래 성장 동력을 창출해 기업생태계를 살리는 생산도시 광주를 만들겠다"고 각오를 내비쳤다. "기업과 사회적 경제주체를 육성하고 시정과 유기적 협력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 4차 산업을 통해 기업의 생산효율을 높이면, 생산과 소비가 어우러진 자족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복안을 전했다.이를 위해 광주역세권 허브형 하이테크노밸리 조성과 온라인 상생장터 플랫폼 구축사업을 통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청년창업 인큐베이터센터 설치도 추진할 예정이다. 전문적인 기술지원 및 컨설팅 등 성공적인 창업지원 체계를 구축해 2차적인 고용증대 및 연계산업으로 확산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밖에도 관내 우수기업에 대한 지원 및 육성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할 계획이다. "기업의 판로 확보 및 다양한 지원시책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그는 "서민경제 활성화에도 역점을 두겠다"고 강조했다.취업 사각지대에 있는 저소득층의 생계안정과 지역사회 고용촉진을 위해 지역일자리 창출에 힘쓸 계획이다. '희망구구단사업' '지역공동체 일자리사업' '희망일자리사업' '꿈꾸多 청년 일자리창출 프로젝트' 등을 통해 다양하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발굴, 광주의 경기전망을 '맑음'으로 이끌어나가겠다고 의지를 전했다. 광주/이윤희기자 flyhigh@kyeongin.com

2019-01-27 이윤희

[이슈&스토리]인천 지역사회 '경인고속도로 요금 폐지' 촉구

수익총액 1조2863억원… 건설·유지비 총액의 두 배 초과당초 30년 수납기간 '연장' 유료도로 통합채산제 전환 탓시민 "부당 이득" 소송… 法 "수익 적은 지역위해 불가피"예외 적용 법 개정 추진돼 군·구의회도 지원사격 '새 국면'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인 경인고속도로가 개통한 지 꼭 50년이 되는 지난해 12월 인천시 10개 군·구의회는 일제히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폐지 촉구 결의안'을 채택했다. 여야 할 것 없이 118명의 인천 군·구의원들이 한목소리로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징수가 부당하다며 정부와 국회에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수입이 건설 투자·유지비의 2배를 초과한 상황에서 아직도 일반 승용차 기준 900원의 통행료를 징수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이유다.반대로 정부는 모든 고속도로 노선이 통합 채산제로 운영되고 있어 특정 고속도로에서 수익이 초과 발생했다고 해서 통행료를 면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2017년 12월 경인고속도로 구간 중 인천 기점~서인천IC 구간이 일반도로로 전환되면서 통행료 논란에 다시 불이 지폈다. 그리고 경인고속도로 개통 50주년이었던 지난해 12월 인천 기초의회가 일제히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경인고속도로의 어제와 오늘경인고속도로는 1967년 3월 24일 착공해 1968년 12월 21일 개통한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다. 서울 영등포~인천 가좌동 구간이 먼저 개통됐고, 1969년 7월 21일 인천항(용현동 인천 기점)까지 연결됐다. 완전 개통 당시 기준 고속도로 총 길이는 29.5㎞였고, 이 가운데 인천 구간은 17.3㎞로 전체의 60%를 차지했다.1965년 1월 정부는 부평·주안 공업단지 조성, 인천항 제2도크 공사로 인천~서울 간 교통 수요가 늘어나자 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했다.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사업의 첫해인 1967년 사업비 2천만원을 확보해 공사를 착수했다.경인고속도로는 착공 20개월이 지난 1968년 12월 21일 개통했다. 경인고속도로를 건설하기까지 총인원은 60만5천명, 장비는 연 11만2천대, 시멘트 40만포, 철근 2천650t, 아스팔트 3만2천드럼이 투입됐다.건설비는 공사비 23억3천300만원과 용지보상비 5억4천900만원, 기타 부대비용 2억6천800만원 등 총 31억5천만원이 투입됐으나 이후 확장 공사를 거치면서 건설 투자비는 수천억원 대로 늘어났다.경인고속도로는 1985년 11월 12일 서울 신월IC~양평동 구간 5.5㎞가 일반도로로 전환돼 서울시에 이관됐다.1993년 기존 왕복 4차선의 신월IC~서인천IC 구간(12.3㎞) 도로 폭이 8차선으로 확장됐고, 1999년 인천IC~서인천IC 구간(10.5㎞)이 왕복 6차선으로 확장됐다. 2014년에는 서인천IC~청라국제도시 직선화 구간(7.5㎞)을 개통하기도 했다. 2017년 12월 인천 기점~서인천 IC 구간(10.45㎞)이 일반도로로 전환돼 인천시로 이관됐다.# 통행료를 폐지하라!경인고속도로 개통 이후 2017년 말까지 걷힌 통행료 수익은 총 1조2천863억원으로 건설·유지비 총액(8천801억원) 대비 247%에 달한다. 도로관리비와 유지보수비용을 뺀 순수 회수액만 6천억원이 넘는다. 이 역시 건설 투자비용 2천700억원의 두 배 이상이다. 경인고속도로 개통 당시 통행료 수납 기간은 30년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1998년 징수 기간이 지난 후에도 계속 통행료 수납 기간을 연장했고, 지금까지 이르렀다.경인고속도로 통행료 논란의 시작은 정부가 1980년 유료도로법을 개정해 2개 이상의 노선이 지나는 유료도로를 통합채산제로 운영하면서부터다. 통행료 수익이 고속도로 노선별로 차이가 커 형평성 문제가 있고, 낙후지역에 신규 노선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통합채산제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런 통합채산제는 오히려 통행료 수납 총액이 건설유지비 총액을 초과한 도로에서 통행료를 징수하는 것이 합당한지에 대한 논란으로 번졌다.1999년에는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납부 거부 시민대책위'가 구성돼 통행료 폐지를 촉구 했지만 정부는 이를 외면했다. 2011년 인천시민 30명이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징수가 부당하다며 그동안 낸 통행료를 반환하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도 이들의 청구를 기각했고, 2015년 대법원에서 판결이 확정됐다.당시 원고들은 "이미 수익이 회수된 고속도로에 통행료를 내는 것은 부당 이득"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통합채산제 도입 취지와 관련한 정부 논리를 그대로 인용했다.법원은 "경인고속도로는 전국의 다른 고속도로와 교통상 관련성이 있고, 통행료를 고속국도별로 받는 경우 통행료 수입의 지역적 불균형이 초래돼 통행료 수입이 적은 도로의 유지·수선이나 새로운 고속도로 신설이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헌법재판소도 앞서 2014년 통행료 부과가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유료도로법 개정경인고속도로 통행료 폐지는 통합채산제에서 경인고속도로를 제외하는 유료도로법 개정 추진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자유한국당 민경욱 국회의원(인천 연수구을)은 지난해 3월 경인고속도로처럼 개통 50년이 지나고, 통행료 순수익이 건설투자비의 2배를 초과한 유료도로는 통행료를 폐지한다는 내용의 유료도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국회교통위원회에 상정됐으나 아직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계류 중이다.민경욱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보면 통행료 폐지 대상에 포함하는 노선은 경인고속도로와 언양~울산고속도로(울산선) 뿐이고, 경부고속도로는 현 추세대로라면 2024년이면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울산선은 현재 투자 대비 회수율이 244%이고, 경부선은 146%다.경인고속도로의 경우 2019년 예상 수입이 458억원이고 2025년 521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법 통과가 늦어질수록 경인고속도로의 수익은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인천지역 10개 군·구는 결의안을 통해 민경욱 의원이 발의한 유료도로법 개정의 신속한 통과를 국회에 요구하고 있다. /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1968년 12월 21일 개통한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인 경인고속도로 요금소 전경. /경인일보DB인천지역 시민단체들이 지난해 1월 인천시청에서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경인일보DB인천 동구의회는 지난해 12월 경인고속도로 통행료 폐지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고 정부와 국회에 전달했다. /동구의회 제공

2019-01-24 김민재

[인터뷰… 공감]'하남시 백년도시위원회 위원장' 김신일 前 교육부총리

김상호 시장이 위원회 의견 존중하겠다는 분명한 의지 밝혀 참여 결심집단지성 발현 통해 갈등 최소화, 위원회 논의 품질 끌어올리는게 핵심3기 신도시 선정 교산지구, 먼저 주민 마음 이해하고 목소리 대변할 것하남시는 김상호 하남시장 취임 이후 중요 정책과 현안 사업을 소수 정책결정자의 판단이 아닌 민간의 자문과 제안을 바탕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민간의 자문과 제안을 할 기구가 바로 '하남시 백년도시위원회'다.대학교수·기업인·시민·시의원·공무원 등 지난해 말 공모를 거쳐 선발된 50여 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백년도시위원회는 시 중요정책과 현안사업에 대한 자문 및 제안에 대한 역할을 수행하며 숙의 민주주의를 기본원칙으로 합의적 의사결정을 통해 운영될 예정이다.김신일 전(前) 교육부총리를 위원장으로, 일자리경제위원회(10명), 복지문화위원회(10명), 안전도시위원회(10명), 교통환경위원회(10명), 자치행정위원회(10명) 등 5개 분과로 나눠 운영될 백년도시위원회는 하남시 미래발전에 대한 목표 및 방향성 설정, 공약사항 이행 평가, 중요정책의 자문 형성 과정에 직접 참여해 민선 7기 시장의 개혁 의지를 실천할 방침이다.백년도시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김 위원장과 인터뷰를 통해 백년도시위원회의 의미와 역할을 알아봤다.김 위원장은 백년도시위원회에 대해 "지방자치단체는 단체자치(지방분권)와 주민자치(주민참여)라는 두 가지 부문으로 구성되는데 지난 1987년 지방자치단체가 부활한 이후 30년 동안 단체자치 부문은 상대적으로 많은 진전이 있었으나, 주민자치 부문은 아직 보완할 부분이 많다"며 "문재인 정부도 단체자치보다 주민자치를 강조하고 있고 백년도시위원회 역시 주민참여를 위한 제도적 장치 중의 하나"라고 소개했다.백년도시위원회는 5개 분과 위원회를 운용해 전문성을 높이고 위원회 자체적 판단에 의한 자문활동과 공론화를 포함한 다양한 자문 방법의 활용 등이 보장돼 있어 '강화된 형태의 자문위원회'로 평가된다. 위원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더 높은 수준의 주민참여를 위한 훌륭한 가교역할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중앙정부에는 각종 위원회가 있고 그 위원회를 통해 국민과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듣고 국정을 운영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지방자치단체도 시장이 권력을 휘두르거나 자기 주변 소수의 얘기만 들으면서 부정부패가 만연해 왔다"고 지적하며 "김 시장이 위원회를 제대로 운영하고 위원회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분명한 의지를 밝혀 위원회에 참여하게 됐다"고 참여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백년도시위원회가 출범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점도 있지만, 명확히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에 대해 김 위원장은 "기본적으로 위원회는 시장이 부의한 시정 사항을 자문하는 기구이지만, 제3기 신도시 교산지구와 관련한 긴급 현안회의를 진행했던 것처럼 위원회 자체적으로 활동계획을 세워 심의 및 자문할 수 있다"고 말했다.또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위원들이 참고할 수 있는 100년을 내다보고 하남의 밑그림을 그려보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워크숍 등을 통해 역량을 키워 올 하반기부터는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6호기 재추진 여부를 결정하면서 널리 알려진 숙의 민주주의를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최초로 백년도시위원회가 도입해 기대와 함께 우려도 있다는 것에 대해 김 위원장은 "신고리 5, 6호기 재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숙의 민주주의 구현을 위해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지만, 한 단계 높은 의사결정이었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또 "집단지성의 발현 과정을 통해 갈등을 최소화하자는 것이 숙의 민주주의의 기본목표"라며 "하남시는 원도심과 신도시, 그리고 새로운 인구 유입으로 인한 갈등요소가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데 숙의 민주주의 활용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평가했다.그는 "위원회를 통한 심의는 그 자체로 숙의 민주주의적 성격을 띠는데 위원회의 논의 품질을 어떻게 끌어 올릴 수 있느냐가 핵심으로, 정확한 정보 제공, 개인적인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의견 개진, 안건에 가장 적합한 논의 방법이 관건"이라며 "숙의 민주주의가 정착된다면 행정은 결정자에서 조력자로, 시민사회는 행정의 대상으로부터 정책과정의 참여자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제3기 신도시로 하남 교산지구가 선정된 것과 관련, 찬성과 반대 목소리가 공존하면서 이 문제를 백년도시위원회가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데 대해 김 위원장은 "먼저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50여 년 동안 재산권을 제한받았는데 또다시 신도시로 지정된 주민들은 억울한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먼저 주민들의 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또 "지난번 자문회의에서 시장에게 교산지구 대책을 제안했는데 중앙정부에서 일방적으로 지정했다고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신속하게 대응해야 할 것과 중장기적으로 대응할 것을 구별하고 하남시의 여러 구성원과 함께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며 "신도시에 시민들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위원회의 역할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개발결과와 관련해서는 시민이 원하는 신도시의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위원회도 주어진 상황에서 개발과정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개발의 결과가 최대한 미래지향적인 것이 되도록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글·사진/문성호기자 moon23@kyeongin.com■김신일 백년도시위원장은▲학력-청주고 졸-서울대 사범대 교육심리학과 졸-서울대 대학원 교육학과 졸-교육학박사(미국 피츠버그대) ▲경력-1993~2003년 교육개혁과교육자를위한시민회의 공동대표-1994~1998년 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1998년 대통령자문 새교육공동체위원-2000년 동아시아사회교육포럼 회장-2006년 서울대 교육학과 명예교수(현)-2006~2008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2010~2012년 UNESCO 국제교육상심사위원-2010~2015년 백석대 대학원 석좌교수-2011~2012년 대통령직속 사회통합위원회 위원 ▲상훈-홍조근정훈장(2006)-청조근정훈장(2009)김신일 하남시 백년도시위원회 위원장은 백년도시위원회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로 하남의 미래를 설계하겠다고 강조했다.하남시 백년도시위원회가 첫 워크숍을 열고 첫발을 내딛었다.하남 백년도시위원회 위원들이 제3기신도시로 지정된 교산지구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하남시 제공

2019-01-22 문성호

[우리시대의 품앗이人(K-Pumassian)]조덕환 김포시 고촌읍 생활안전협의회장

목장 운영하며 고향발전 '헌신봉사'경찰들과 수시로 밤 늦게까지 순찰소외된 사람들 찾아 온정 베풀기도"내 한 몸 힘들어도 그저 이웃들의 환한 미소만 보면 온갖 시름이 다 날아갔어요."김포시 고촌읍 신곡리에서 평생 소를 키우며 살아온 조덕환(61)씨는 행복한 축산인이다. 어려움을 겪는 이웃이 있으면 자기 일처럼 팔을 걷었고, 고향 발전에 도움이 되는 곳이라면 주저 없이 뛰어갔다. 고촌중학교 초대 운영위원장으로 신설 학교 안정화의 틀을 다지는 데 일조한 조 씨는 본업인 목장경영 외에 현재 고촌읍 생활안전협의회장을 맡아 이웃들의 안녕을 몸소 지켜주고 있다. 그에게는 중요한 행복이다.그는 "목장 일이 고된 날에는 '이제 편안하게 노후를 보내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면서 "하지만 내가 발품 조금 팔고 내가 손길 조금 더 내밀면 누군가에게는 큰 선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알기에, 건강이 허락하는 한 주어진 소임에 온 힘을 다하려 한다"고 말했다.지난 2008년께부터 10여년간 마을 이장을 지낸 경험은 여생을 이웃들에게 헌신 봉사하겠다는 그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쳤다. 목장 일이 아무리 바빠도 이웃들의 손과 발이 돼주는 게 우선이었던 시기였다. 조 씨는 "역지사지의 생활자세를 그때 많이 깨우쳤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요즘은 경찰들을 도와 매달 한 번씩, 필요한 경우 수시로 밤늦게까지 고촌읍 일대 순찰을 다닌다. 생활안전협의회 회원들과 함께 일선 파출소 사기 진작에 힘을 보태고 관내 소외이웃들에게 온정을 전달하기도 한다. 대외적으로는 전국 농협중앙회 수상자 모임인 '새농민회' 총무를 거쳐 부회장으로 봉사중이다.인생의 보람으로 기억하는 순간은 송아지가 세상으로 나오는 순간을 꼽았다. 고촌읍은 물론 김포 전역이 빠르게 도시화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태어나 주는 송아지들을 보면 "소 키우며 참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조 씨는 "소를 키우는 것도, 사회에 봉사하는 것도 주어진 여건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 자신이 가장 큰 위안을 얻고 있더라"며 축사 앞에서 환한 웃음을 지었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김포에서 평생 소를 키우며 봉사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는 조덕환 씨가 "가족이나 다름없다"며 사육중인 소들을 소개하고 있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2019-01-21 김우성

[FOCUS 경기]경기 창조오디션 공모 대상 사업 '음악역 1939' 본격 운영

가평역 개통 연도로 명명… 문화공간 '재탄생'공연장, 세계적 음향 전문가 샘 도요시마 설계우수 녹음시설 갖춰 음반작업·공연 한곳에서페스타·포럼 통해 다양한 무대·인재양성 포부추억의 경춘선 옛 가평역이 뮤직 빌리지 '음악역 1939'로 새롭게 태어났다.'넥스트 경기 창조오디션' 시작 원년인 지난 2014년 가평군의 '뮤직 빌리지 조성사업'이 대상을 수상한지 5년여 만의 일이다.뮤직빌리지는 지난해 12월 준공식 및 오픈기념 콘서트를 열고, 브랜드 네임 '음악역 1939'로 명명하고 운영에 들어갔다.이곳에서 365일 크고 작은 음악페스티벌을 개최해 대한민국 유일무이한 음악 도시가 될 것으로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또 연간 200만명 방문, 31억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와 최대 1천명의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보고서는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가평 뮤직빌리지가평에 음악을 테마로 한 복합문화공간 '가평 뮤직빌리지'가 올해 1월 문을 열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가평군은 '넥스트 경기 창조오디션' 시작 원년인 지난 2014년 '뮤직 빌리지 조성사업'으로 공모해 대상수상과 함께 100억원의 특별조정교부금을 지원받았다. 이에 군은 총사업비 406억여원(국비 5억원, 도비 119억원, 군비 257억원, 기금 25억원 등)을 투입해 가평 구 역사 일원(3만7천579㎡)에 뮤직센터 등 음악이 중심이 되는 창작 및 서비스, 비즈니스 시설을 집적화시켜 새로운 동력을 얻는 복합문화단지를 조성했다.특히 뮤직빌리지는 세계적인 음향 전문가 샘 도요지마가 설계한 세계적 수준의 공연장이 있는 뮤직센터와 스튜디오, 연습동, 레지던스 등 음악 관련 4개 시설과 레스토랑, 로컬푸드 매장 등의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브랜드 네임 뮤직빌리지 '음악역 1939' 출발'음악역 1939'의 '1939'는 경춘선 가평역이 처음 문을 연해다. 전철 개통으로 지난 2010년 경춘선이 폐선되자 문을 닫은 가평역 부지를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곳이 바로 음악역이다. 이에 뮤직빌리지는 지난해 12월 14일 브랜드 네임을 뮤직빌리지 '음악역 1939'로 명명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준공 행사와 오픈 기념 콘서트를 개최했다.이날 오픈 기념 콘서트에는 송홍섭 앙상블, 무형문화재 제30호 여창가곡 이수자 강권순, 가수 장필순·백지영, 홍대 인디밴드 잔나비 등이 출연해 뮤직 빌리지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기념 콘서트는 '음악역 1939' 오픈을 축하하는 수많은 관객으로 전 좌석이 가득 채워졌으며 향후 '음악역 1939'의 방향성을 보여준 재즈부터 국악, 대중가요, 인디 음악 등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폭넓은 공연으로 많은 관객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또 오픈 기념 콘서트에 앞서 1939년 처음 개장한 가평역의 역사를 이어 80년 만에 새로운 기능을 할 음악역의 첫 출발을 알리는 '음악역 1939' 준공식이 진행됐다.# '음악역 1939' 둘러보기'음악역 1939'는 뮤직 존, 플라자 존, 숙박·체류 존, 커뮤니티·상업 존 등 4개 공간에서 음악인은 창작 활동과 공연을 펼치고 방문객들은 연중 크고 작은 무대를 즐길 수 있다.야외공연장, 레스토랑, 로컬푸드 매장도 갖췄다. 가장 중심이 되는 뮤직센터에는 세계적인 음향 전문가 샘 도요시마가 설계한 공연장이 있다. 그는 비틀스가 녹음한 애비로드 스튜디오를 설계했고, 88 서울 올림픽 행사 음향을 맡기도 했다. 뮤직센터에는 작은 상영관 2곳도 있다. 이전까지 개봉관이 없어 영화를 보려면 멀리 나가야 했던 가평군민들이 이제는 가까운 곳에서 최신 개봉작을 볼 수 있게 됐다.'음악역 1939'의 핵심은 단연 스튜디오다. 이곳은 70∼80명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공연하면서 녹음하고 숙박할 수 있는 시설은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에 5대밖에 없을 정도로 귀한, 9억원 가량의 최상급 아날로그 콘솔(니브 88 RS)을 마련했다. 50m 떨어진 공연장과 지하 광케이블로 연결해 그곳에서 연주하는 소리를 이곳 스튜디오에서 녹음할 수 있다.이곳에선 대중음악뿐 아니라 클래식, 재즈, 국악 등 다양한 음악이 살아 숨 쉴 예정이다. 크고 작은 공연을 연중 펼치는 건 물론, 음악을 주제로 한 포럼과 토크 콘서트, 전시회 등도 펼친다.또 스튜디오에서 앨범을 제작하고, 이곳에서 열리는 공연 실황을 스튜디오에서 녹음해 라이브 음반으로도 발매할 예정이다. 전문 음악가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연습실을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음악을 배우고 싶어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음악교실도 마련된다. # '음악역 1939' 자리매김프로그램은 공연과 축제를 의미하는 '페스타(FESTA)'와 한국 음악 산업 현안에 대해 고민하는 '포럼(FORUM)' 등 두 가지 콘셉트로 나뉜다.페스타는 'The Show'를 비롯해 'Ensemble', 'Festa', 'Record Label' 등 4개 프로젝트 19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고 포럼은 포럼, 토크 콘서트, 아카데미 등 3개 프로젝트 4개 프로그램을 운영된다 즉 '음악역 1939'에서는 연간 7개 프로젝트, 25개 프로그램, 70여 회 공연이 진행될 예정이다.음악성이 있으나 평소 접하지 못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펼쳐지고 세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콜라보레이션을 만날 수 있다.대중음악의 현재와 미래를 고민하는 포럼이 열리고 다양한 분야의 인사를 초청, 대중음악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는 토크 콘서트도 열린다.음악 교실과 신인 발굴 프로젝트, 비전공자와 동호인 등을 대상으로 한 강좌도 개설된다. 가평/김민수기자 kms@kyeongin.com가평뮤직빌리지 '음악역 1939' 중앙에 위치한 뮤직센터동. /가평군·뮤직빌리지 제공준공식에서 김성기(오른쪽) 가평군수가 음향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가평군·뮤직빌리지 제공지난해 12월 14일 열린 가평 뮤직빌리지 '음악역 1939' 준공식. /가평군·뮤직빌리지 제공준공식과 함께 열린 가평 뮤직빌리지 '음악역 1939' 오픈 기념 콘서트. /가평군·뮤직빌리지 제공'음악역 1939' 뮤직센터동 내 세계적인 음향 전문가 샘 도요시마가 설계한 공연장. /가평군·뮤직빌리지 제공가평 뮤직빌리지 '음악역 1939' 오픈 콘서트 무대에 오른 가수 백지영. /가평군·뮤직빌리지 제공

2019-01-20 김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