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경기)

[인터뷰… 공감]민선 6기 임기 마치는 인천 '마지막 남구청장' 박우섭

혼자 살수 없는 세상두 개 주고 한 개 받는다는마음으로 살아가시기를착한 사람이 잘 살려면모두가 착해져야…인천 남구가 7월 1일부터 '미추홀구(區)'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시작한다. 방위를 뜻하는 '남(南)'이라는 이름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인천의 역사와 정체성이 깃든 인천의 옛 이름 '미추홀'로 명칭이 바뀌는 것이다. 박우섭(63) 구청장은 남구의 마지막 구청장으로 남게 됐다. 이임식 없이 오는 29일 그동안 함께 한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30일인 토요일에 마지막 퇴근을 한다. 박 구청장은 "새로운 출발의 터전을 닦아 놓은 마지막 남구청장이 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퇴임 소감을 밝혔다. 그는 "수인선과 인천도시철도 2호선이 개통됐고, 옛 인천대 주변과 동양화학 부지를 활용한 개발 사업도 잘 진행돼 지역이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조성되는 등 재임 중 주민들이 크게 느낄 만한 변화가 많았다"며 "이러한 남구의 마지막 구청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1968년 남구 개청이래 남구에서 일한 구청장 18명 가운데 마지막 구청장인 그는 민선 3·5·6대 남구청장을 지냈다.최근 지방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그를 적잖이 속상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세간의 화제가 된 '이부망천' 이야기 속에 바로 남구가 언급된 것이다. 박 구청장은 "망해서 살기 어려워지면 가는 도시에 인천 남구가 지목돼 안타까웠다"며 "주민 모두에게 힘이 되어주고, 어려운 분들이 와서 희망을 갖고 무언가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게 하는 곳이 바로 남구"라고 했다.구청장 퇴임을 앞둔 소회로 그는 "며칠 남지 않은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거추장스러운 구청장직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일과 만난다는 설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새로운 것이 주는 설렘 때문에 많은 일을 저질러왔다"고 했다.퇴임 이후 6개월 치 일정이 그의 머리 속에 벌써 빼곡히 차 있다. 7월 1~3일은 강원도 인제에 있는 한국DMZ평화생명동산에 미리 다녀온다. 4~5일에는 부산의 지인과의 만남이, 5~6일 충북 영동에서 열리는 교육이, 7일에는 '좋은 사람들과 산행' 일정이 잡혀 있다. 이어 10일부터 9박10일 일정으로 시베리아를 다녀올 예정이다. 귀국한 뒤 인제 한국DMZ평화생명동산에 8월 말까지 머무르며 공부한다. 9~10월은 철원의 한 사찰에서 머무르고, 11~12월에는 지리산에서 도를 닦고 있다는 친구와 만날 예정이다.그는 재임 기간 남구에 일어난 변화 가운데에서도 시민회관과 주안역과 석바위 사거리에 횡단보도가 들어선 것을 가장 의미있는 변화로 꼽았다. 그는 "횡단보도를 만드는 것이 어려워서도 아니고 돈이 들어서도 아니고 결국 시민의식의 변화가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며 "운전하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참고, 장사하는 사람들 장사가 안되는 불이익을 참으면서도 횡단보도를 만드는 것이 '더 좋은 일이고, 바른 일이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의 의식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이었다"고 했다.아쉬움도 있었다. 그는 착한 사람들이 잘사는 남구를 만들겠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종종 "착한 사람이 잘사는 곳을 만들겠다면서 우리를 못살게 구느냐"는 민원인을 만나기도 했다. 주로 행정 문제나, 건축관련 민원에 관한 일이었다. 그는 "그러한 부분까지 사실 완전히 해소해드렸어야 하는데, 그걸 못해 드려 죄송한 마음이 든다"며 "착한 사람들이 잘살려면 모두가 착해져야 한다. 사회는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들고, 만들어진 법은 잘 지키려는 사회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새로 오는 구청장께서 고민해야 할 과제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그는 지난해 구청장 불출마를 선언했다. 퇴임 이후에는 '평화생명' 운동에 몸담겠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계획을 수정했다. 그는 "이 시대 마지막 풀어야 할 과제가 남북한의 평화와 화해, 종전선언, 북미수교, 한반도 비핵화 등 이런 것들로 생각하고 이것들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지금 문재인 대통령께서 너무나 잘하고 계셔서 굳이 나까지 할 필요는 없겠다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대신 남북한을 철도로 연결하고 나아가 시베리아와 유럽까지 연결하는 운동에 매진할 생각이다.미추홀구의 신임 구청장에 대한 남구 마지막 구청장의 조언은 '자신감'이었다. 그는 "사람이 바뀌면 새롭게 해야 한다"며 "당선자 본인 뜻대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다. 다만 현실과 타협을 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려면 지혜로워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자기의 뜻을 펼치려면 공무원들의 동의나 지지도 있어야 하고 주민들의 지지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것이 정치라고 했다.그는 "정치인은 이상만 가져도 되지만 행정가는 이상을 현실로 구현해내는 능력도 가져야 한다"며 "후임 구청장이 잘하실 거라 믿는다"고 했다. 남구 주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기며 지혜로운 시민이 돼 달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그는 "나만큼 사랑받은 구청장도 없을 거라"며 "일할 기회를 주신 남구 주민에게 무엇보다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그가 인천 남구에 정착해 정치한 기간이 20여 년이 넘는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많은 주민들이 동의하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고 또 많은 지지를 보내주시고, 지금도 격려하고 응원해주시는 게 큰 힘이다"며 "내 모든 것을 다 바쳐도 구민들이 주신 은혜와 사랑에 보답하지 못할 정도로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다"고 했다."지혜로운 미추홀구민이 되어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결코 혼자 살 수 없는 세상에서 '두 개 주고 한 개 받는다'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셨으면 좋겠다"며 "모든 구민들이 다 같이 그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신뢰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신뢰사회를 만드는 조건으로 "잘못을 한 사람을 확실하게 벌해야 하고 잘못된 것을 벌할 때는 함께 나서주는 것도 필요하다"며 "서로 오래도록 접촉하고 좋은 평판을 유지하고 그렇게 살아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박우섭 구청장은▲ 1955년 충남 예산 출생▲ 1966년 충남 당진 초등학교 졸업▲ 1972년 서울 용산고등학교 졸업▲ 1972년 서울대학교 입학(1994년 졸업)▲ 1987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1988~1990년 민주화운동 청년연합의장▲ 1991~1992년 민주당 부대변인▲ 2002~2006년 민선 3기 남구청장▲ 2008년 국회의장 비서실장▲ 2010~2018년 민선 5·6기 남구청장오는 7월 1일 미추홀구로 명칭을 바꾸면서 마지막 남구청장으로 기록되는 박우섭 남구청장이 "나만큼 사랑받은 구청장도 없을 것"이라며 "일할 기회를 주신 남구 주민에게 무엇보다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소회를 밝히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6-26 김성호

[우리시대의 품앗이人(K-Pumassian)]이광재 연천군 군남사랑봉사회 회장

부친 적십자활동 이어 '온정 대물림'운영비 부족땐 공공근로 통해 적립뇌출혈수술 불구 집수리 '솔선수범'"이웃을 생각하는 행동이 곧 나를 이롭게 합니다."연천군 군남면 군남사랑봉사회장 이광재(57)씨는 '봉사활동은 곧 순환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정의했다. 부친의 대한적십자사 봉사활동에 이어 2대째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그는 농사일을 생업으로 하며 동료 지인들과 마음을 모아 어려운 이웃 지킴이로 마을 모범생 역할을 해내고 있다.봉사회는 지난 2016년 3월 봉사회를 창립해 3년 차에 불과하지만 이장과 부녀회장들로 구성된 모임의 봉사만큼은 단단한 결속력을 자랑하고 있다. 봉사회 구성원이 20여 명 남짓하지만 그나마 바쁜 생업 때문에 100% 참석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은 시간이 허락되는 회원부터 독거노인 밑반찬 제공, 저소득 가구 도배와 장판 갈아주기, 동네 환경정화 등 너나 할 것 없는 이웃봉사 활동에 불평 한 마디 없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이 회장은 "집수리 봉사를 하면서 갑자기 구렁이가 발견돼 아찔하거나 쓰레기가 너무 많아 군부대 지원을 받아야 했던 상황도 있었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집안을 보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매월 임원 및 월례회를 거쳐 봉사활동 방향을 계획하는 이들은 운영회비가 모자라면 공원 가꾸기 등 공공 근로 일당벌이로 기금을 적립하기도 한다. 농촌 지역 특성상 회원들이 자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없지만 전화 한 통이면 서로가 이심전심이다. 회원들의 친목과 화합으로 남을 이롭게 하는 행동의 중심에 바로 그가 있다.지난해 과로로 인해 뇌출혈 증상으로 수술까지 받았지만 그럴수록 그는 이웃 일이라면 솔선수범을 자청하고 나선다. 혹여 다음 날 봉사활동 계획이 잡히면 그는 자신의 농사일을 새벽부터 서둘러 마친 뒤 봉사장소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이 회장은 '군남 사랑 봉사회 결성 이전에도 많은 봉사활동을 벌여왔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마음을 모으니 세상이 따뜻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며 "함께하고 있는 동료 회원들에게 무한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연천/오연근기자 oyk@kyeongin.com연천군 군남사랑봉사회장 이광재(57)씨가 "봉사활동으로 몸은 힘들어도 마음이 즐겁다"며 활짝 웃고 있다. 연천/오연근기자 oyk@kyeongin.com

2018-06-25 오연근

[이슈&스토리]'경기도민의 친구' 동수원병원 1968년 첫발… 의료봉사 외길 50년

1991년 지역응급의료센터 지정1997년 양·한방 협진 자리매김주민 건강강좌·저소득층 지원수해·지진등 의료봉사도 열정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의료법인 녹산의료재단 동수원병원은 강산이 5번이 바뀌는 동안 지역 의료법인으로 경기도민들과 함께 했다.변상현 이사장이 지난 1968년 수원에 변외과의원을 개원하면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녹산의료재단은 1975년 수원제일병원을 거쳐 1983년 동수원병원으로 성장했다. 녹산의료재단은 설립 이후 '환자중심의 병원'이라는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최첨단 의료장비와 체계적인 의료시스템, 신뢰할 수 있는 전문 의료진을 기반으로 50년째 지역 주민과 함께 해 오고 있다. 녹산 의료재단은 동수원(D,S,W)의 영문이니셜 약자를 상징화해 헌신(Devotion), 공감(Sympathy), 존중(Worth)을 핵심가치로 모든 진료가 환자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병원이다.녹산의료재단은 동수원병원에 1991년 응급센터를 준공해 24시간 언제든지 응급수술을 시행할 수 있는 지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 받았다.지난 1997년에는 환자에게 보다 나은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동수원한방병원을 개원해 명성 있는 양·한방 협진병원으로 자리매김했다. 녹산의료재단은 종합병원이 없는 화성시 서부권 시민들의 의료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지난 1997년 110병상 규모의 동수원남양병원을 개원, 2014년까지 운영했다. 사실 동수원남양병원은 의료재단으로서 수익 보다는 지역 주민의 의료 혜택 제공을 위한 차원에서 개원하게 됐다. 동수원남양병원 개원 이전까지는 화성시 서부지역은 24시간 진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이 없었다. 하지만 동수원남양병원 부근이 대대적인 택지개발에 들어가면서 문을 닫았다.녹산의료재단은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한 소통과 나눔 활동도 다양하게 펼치고 있다. 1998년 6월에는 경기도 안성군 보개면, 8월에는 경기도 고양시와 파주시, 1999년 8월에는 파주시 문산읍의 수해지역에서 의료 자원봉사를 실시하는 등 실의에 빠져 있는 이재민들에게 사랑의 인술을 펼쳤다. 또한 1999년에는 지진피해로 많은 사상자를 낸 터키 얄로바시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펼쳤다. 수원시와 함께 2008년과 2009년 2012년 2016년 캄보디아 시엠립주 프놈끄라움 수원마을에 의료봉사단을 파견해 국제적인 의료봉사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녹산의료재단은 매년 어려운 이웃을 직접 찾아가는 의료봉사와 의료지원뿐만 아니라 지역민들을 위한 건강강좌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저소득환자 생계비 지원을 위한 협약과 최근 수원시 팔달구보건소와 재활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각각 체결했다. /김종화·공지영기자 jhkim@kyeongin.com동수원병원은 개인병원으로 시작해 대표 지역종합병원으로 우뚝섰다. /녹산의료재단 제공동수원병원은 수원에 변외과로 1968년 첫발을 내딛은 후 경기도민과 50년째 함께하고 있다. /녹산의료재단 제공동수원병원은 지역사회와 함께 하기 위해 다양한 사회활동도 펼치고 있다. /녹산의료재단 제공

2018-06-21 김종화·공지영

[이슈&스토리]인터뷰|변상현 녹산의료재단 이사장

수원서 개원 50년간 추억 많아'사각지대'에 종합병원 열기도요양병원 부지 매입 설립 노력"환자들에게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이 되기를 바란다."녹산의료재단 변상현 이사장은 앞으로도 동수원병원과 동수원한방병원이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 받는 병원이 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변 이사장은 "국립의료원에서 외과 전문의 과정을 밟고 스태프로 근무하다 수원에 개원한게 1968년이다. 50년이라는 동안 지역과 함께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저는 외과 전문의지만 제 전문분야가 아닌데도 찾아 오는 분들이 참 많았다. 찾아 오는 환자분들을 돌려 보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경기 남부권 시민들에게 좋은 의료 혜택을 제공하자는 생각에서 변외과를 확장해서 제일병원을 개원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변 이사장은 "지역 거점 병원으로서 전문 의료진이 더 많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동수원병원을 개원하게 됐다"고 소개했다.녹산의료재단은 현재 동수원병원과 동수원한방병원 2곳을 운영하고 있다. 양·한방 협진이 정착하기 전 동수원한방병원을 설립한 곳이 녹산의료재단이다.변 이사장은 "양방이 절대적이지만 한방도 장점이 있다. 양방에서 부족한 부분을 한방에서 채워주고, 한방에서 하지 못하는 부분을 양방에서 채워 주는게 협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환자 중심 병원을 강조한 변 이사장은 "그런 차원에서 화성시 서부권 지역에 의료 혜택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수원남양병원도 개원했던 것"이라며 "지난 2014년에 문을 닫은 후 그 부지를 매각한 돈으로 요양병원을 설립하기 위해 부지를 매입했다"고 밝힌 후 "제 세대에서는 못할 수 있지만 다음세대에서는 꼭 이뤄내기를 바란다"고 전했다.마지막으로 변 이사장은 "지난 50년간 외형적인 성장을 하며 지역에 뿌리를 내렸다면 앞으로는 내실 있는 병원이 되어 주기를 바란다. 내실은 바로 좋은 의료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진료를 잘해서 지역사회에 인정 받는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의료법인 녹산의료재단 변상현 이사장이 변외과를 시작으로 현재 동수원병원까지 지난 50년을 말하고 있다. /녹산의료재단 제공

2018-06-21 김종화

[인터뷰… 공감]김경성 (사)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

中 전지훈련장 지원 계기, 10년 이상 교류대회 개최 등 北 축구발전 노력 결실남북 대치상황속 유소년들 우정… 북측 신뢰 33만㎡ 부지 무상이용 허가 받아남북·북미 정상회담 기회로 정치개입 뛰어넘어 '스포츠 기본조약' 체결 됐으면남북이 15년 만에 평양과 서울에서 통일 농구 경기를 연다. 또 오는 8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남북이 공동으로 참가하는 등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공동 입장과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에 이어 남북체육 교류가 결실을 맺고 있다. 남북 체육 교류는 그동안 군사적 대치와 냉전 속에서도 풀뿌리처럼 이어왔다. 물론 남북 체육 교류의 중심은 김경성(59) (사)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그는 한해 5차례 이상 북한을 방문하면서 남북한 체육 교류를 지켜온 인물이다. 김 이사장은 '북한 사람', '외곬의 사업가' 등 애칭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이사장은 남북 공식 채널이 무너지고 정치적 해법도 없는 가운데에서도 축구 교류를 이어왔고, 지난 2015년에는 최전방 서부전선인 연천 지역에서 포탄을 주고받는 등 남북 관계가 악화 일로를 맞고 있는 가운데 평양에서 국제 유소년축구대회를 열기도 했다.김 이사장은 "당시 남북한의 군사적 충돌은 평양 축구대회를 가로막지 못했다. 축구공이 총과 칼보다 먼저였다"면서 "지난 10여년간 남북 축구 교류를 이어오면서 희망과 좌절을 경험했다. 주마등처럼 지나간다"고 말했다.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역사적인 남북 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단일팀이 꾸려졌고, 북한의 참가는 '평화올림픽'의 업적을 만들었다. 또 평화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됐다. 4월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6월에는 북미정상회담까지 탄탄대로였다.그럼에도 김 이사장은 불안감을 내비쳤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앞으로 이산가족이 상봉하고, 경제협력도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북 스포츠 기본 조약 체결이 먼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권이 바뀌거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더라도 남북이 스포츠로 교류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스포츠 교류만큼 정치가 개입되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지난 1970년대 동서독은 스포츠 기본조약을 체결했고, 그 결과 스포츠 교류만큼은 냉전 속에서도 명맥을 이어왔기 때문이다.#김 이사장은 어떻게 남북 교류를 해왔을까. 그는 1990년대 보험업에 뛰어들었고, 금융보험서비스 업체를 직접 운영하면서 신촌로터리 빌딩까지 보유할 정도로 일취월장했다. 그러나 김 이사장을 축구계로 불러들인 것은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였다. 한일월드컵 때 한 정당의 월드컵 홍보 단장을 맡은 그는 이후 고향에 세워진 포천축구센터 이사장을 맡았다. 전지훈련이 필요하다는 코치진의 제안에 중국 윈난성 쿤밍을 현지답사한 김 이사장은 이후 중국의 담배제조 업체인 '훙타스포츠클럽'의 축구장을 임차해 각국 축구팀의 전지훈련을 유치했다.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그는 일대 전환기를 맞는다. 최종예선에 참가한 북한 대표팀과의 만남이 대북사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중국 윈난성 축구협회 명예 주석직을 맡았던 김 이사장은 2005년 이란, 일본, 바레인과 2006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맞서게 된 북한 대표팀에 전지훈련 지원 의사를 제안했다. 그는 "북한 관계자가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 남한 출신임을 알고 잠시 꺼렸지만 이내 나의 진심에 수긍했다"면서 "이후 북한의 청소년 축구와 탁구, 마라톤 등 다른 종목까지 지원의 폭을 넓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2006년 5월 북한을 대표하는 4·25체육단과 해방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이 '남북체육교류계약'을 맺었다. 이는 북한이 나를 신뢰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김 이사장을 북한 정부가 신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답은 김 이사장이 북한 축구 발전에 큰 공헌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 U-20 여자대표팀 아시아 최초 월드컵 우승(2006년), U-17 여자대표팀 월드컵 우승(2008년), AFC U-19 챔피언십 우승·남자대표팀 남아공 월드컵 출전(이상 2010년), 동아시안컵 여자축구 우승(2013년) 등 북한 선수들의 쿤밍 전지훈련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김 이사장은 "민간 차원의 대북 교류는 정부 승인하에 이뤄진다"며 "남북 체육 교류는 민간에서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정치는 절차가 복잡하고, 정권이 바뀌면 책임까지 지게 돼 소극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남북한은 지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2009년 북한 2차 핵실험, 2010년 천안함 사건 등 크고 작은 일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는 2006~2018년 6월까지 12년 동안 남북한에서 12차례, 중국에서 8차례 등 축구교류 사업을 계속했다.그는 "2007년 북한 청소년대표팀의 남한 전지훈련을 이뤄냈고, 2011년부터 중국의 쿤밍과 하이난, 광저우에서 인천평화컵 국제유소년대회를 개최했다"면서 "2014년부터는 개성공단 폐쇄로 가동이 중단된 평양의 축구화 공장을 중국 단둥으로 옮겼고, 제품명인 '아리'를 바탕으로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대회'를 연천과 북한의 평양, 중국의 쿤밍에서 차례로 개최했다"고 밝혔다.특히 2015년 8월21일 평양 5·1경기장에서 열린 제2회 아리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는 남북 갈등 상황 속에서도 축구를 통한 남북 유소년들의 우정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당시 휴전선에서 북한의 목함지뢰가 폭발했고 8월20일에는 남한의 대북 확성기 가동을 이유로 남북 양쪽에서 포격이 벌어지는 등 상황이 더욱 나빠졌다. 김 이사장은 "당시 정부에서 선수단을 철수시키라고 연락받았지만, 남북 양쪽 모두를 설득해 대회를 치렀다. 21일 경기도 대표팀과 중국 유소년팀, 강원도 대표팀과 우즈베키스탄 유소년팀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대회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고 밝혔다.김 이사장은 평양에서도 인기가 높다. 북한은 2007년 한국에서 열린 U-17 청소년월드컵 조추첨식에 북한의 공동단장 자격으로 김 이사장이 직접 추첨하도록 했고, 평양 능라도에 '김경성 체육인 초대소'(호텔)를 짓기도 했다. 게다가 평양에 33만578㎡(약 10만평) 땅을 50년 무상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기도 했다.이런 북한의 신뢰와 인적 네트워크는 김 이사장의 역할에 힘을 실어주었다. 김 이사장은 "축구라는 매개체를 통해 남북 체육 교류가 이어지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나를 도와준 많은 (남북)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김 이사장은 북한 프로축구 선수가 국내 K-리그에서 뛰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는 "남북 축구의 프로축구 팀들이 정기 교류전을 펼치고 북한 선수를 남한 프로팀에 입단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북한의 축구리그는 1~3부로 돼 있는데 1부인 갑급 연맹전에는 4·25팀, 소백수팀, 기관차팀 등 12개 팀이 소속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과 대만처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절실하다. 체육을 통해 정치적 문제가 해소되고 나아가 통일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사진/경인일보DB■김경성 이사장은▲1959년, 포천▲경기대학교 한반도전략문제연구소 부소장▲통일부 통일교육위원▲고양시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체육위원회 위원장▲경기도청 균형발전기획실 통일기반조성담당관▲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수상▲DMZ평화상▲천지인상 평화통일인상#저서▲'불굴의 아리랑'(북스타)▲'포화 속에 핀 평화의 꽃, 벽을 넘어서'(북스타)지난 2006년부터 정치적 대립을 떠나 남북 축구 교류를 추진하는 등 체육 교류의 명맥을 이어온 (사)남북체육교류협회 김경성 이사장.평양 능라도에 위치한 '김경성 체육인 초대소' 모습. /남북체육교류협회 제공성공적으로 대회를 마치고 입국하고 있는 경기도 선수들의 모습.지난 2015년 8월 남북 갈등 속에서도 열린 제2회 아리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 평양 개막전 모습

2018-06-19 신창윤

[우리시대의 품앗이人(K-Pumassian)]김종훈 청록엔지니어링 회장

4년전부터 5월마다 한마당 축제 열어금촌역 광장서 무료 급식소 운영 등고액기부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수년 째 '어르신 한마당잔치' '사랑의 밥차' 등을 운영·후원하며 지역 어르신들을 부모님 같이 모시고 있는 기업인이 있다.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파주시 소재 환경전문 기업 (주)청록엔지니어링의 김종훈(64·사진) 회장이다. 파주시 법원읍 출신인 김 회장은 4년 전부터 매년 5월이 되면 법원읍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어르신 한마당축제'를 연다. 또 지난해부터는 적십자봉사회가 경의중앙선 금촌역 광장에서 운영하고 있는 '사랑의 밥차'를 후원하고 있다.지난 5월 9일 열린 제4회 '어르신 한마당 잔치'에는 어르신 800여 명이 참석해 김 회장 측에서 마련한 음식과 경품에다 흥겨운 노래자랑 등 하루 종일 즐거운 한마당 잔치를 즐겼다. 해마다 김 회장이 1천여만 원을 들여 개최하는 '어르신 한마당축제'에는 적십자봉사회, 초호쉼터(대표·우능제), 법원읍 이장단, 새마을부녀회, 인근 군부대 장병 등 사회단체가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김 회장은 "어르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맛있는 음식을 드시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내는 것 또한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조촐한 잔치이지만 고향 어르신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또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사랑의 밥차'가 운영되는 금촌역 광장은 어르신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오전 11시부터 걸어오거나 열차를 타고 오는 어르신, 적십자봉사단이 모시고 오는 거동이 불편 어르신 등 500여 명 어르신들이 모여 사랑의 밥차가 준비한 맛난 점심을 먹고 '바리스타봉사단(단장·조동순)'이 만들어 준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며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눈다.김 회장이 후원하고 대한적십자봉사회 파주지구협의회(회장·연진흠)가 진행하는 '사랑의 밥차'는 지산고와 파주여고, 파주광일중 등 학생적십자(RCY) 회원들이 참여해 '어른 공경'이라는 따뜻한 나눔을 배우고 직접 실천하는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주말이면 노인회관이 문을 닫아 식사를 거르는 어르신들이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적십자봉사회와 사랑의 밥차를 운영하기로 했다"면서 "대도시에서는 오래전부터 운영된 사랑의 밥차가 파주는 좀 늦었지만 따뜻하고 훈훈한 지역사회를 일구는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한편 김 회장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정회원으로 참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파주/이종태기자 dolsaem@kyeongin.com

2018-06-18 이종태

[FOCUS 경기]가평축산농협 '조합원 최우선 가치' 성장세

전국평가 우수·G마크 인증 '가평 한우'셀프음식점 확대·자라섬 이동 판매장사골곰탕 개발 과잉물량 해소 상품화보험 판매 道 1위·고객만족도 'S등급'가평축협은 조합원이 생산한 축산물을 판매하는 가평 한우 전문점인 한우 명가 운영과 학교급식·군납 사업을 확대하는 등 조합원을 최우선 가치로 한 협동조합 기본이념을 실천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판매가 부진해 처치 곤란이었던 사골과 잡뼈를 활용한 잣 고을 한우 사골 곰탕을 개발하면서 사골 등의 과잉물량해결 및 고부가가치사업으로 성장시켜 조합 수익 면에서도 커다란 성과를 이뤄 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특히 가평축협은 가평군 잣 고을 한우 경기도 축산진흥대회 종합우승, 경기농협 손해보험 TOP-CEO 보장성 보험 판매 1위, 2018년 서비스엔이모션 1회차 고객만족도 조사 평가 우수사무소수상 등 대외적으로도 성과를 내면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유통사업가평 한우는 생산지의 큰 일교차로 쇠고기의 풍미를 개선해 주는 올레인산 함유량이 일반 한우보다 월등히 높고, 가평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보급하는 친환경 발효 미생물 및 가평군 한우연합회에서 생산된 생균제를 먹여 소화율과 면역력을 향상했다.그동안 가평 한우는 전국한우경진대회 대통령 수상, 제13회 전국한우능력평가대회 우수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경기도지사가 인증한 'G 마크'를 획득하는 등 대외기관으로부터 이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가평 한우를 맛보기 위해 본점인 가평읍 한우 명가를 비롯해 청평·설악·조종면에 설치된 3개 지점에 이용객들이 크게 늘면서 한우 명가가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또한 가평축협은 지난 3월부터 자라섬 캠핑장 등에서 이동판매차량을 이용, 소비자들이 손쉽게 정육을 구매할 수 있는 '찾아가는 정육 코너' 사업을 시작해 호응을 얻고 있다. 캠핑을 즐기기 위해 자라섬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가평의 우수한 축산물을 홍보할 뿐만 아니라 신선한 정육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정육 코너는 매주 금·토요일에 5~10% 할인된 금액으로 축산물을 판매하고 있다.축산물이동판매차량은 가평축협의 대표 브랜드인 잣 고을 한우 판매촉진을 위해 지난해 지자체협력사업으로 가평군청, 농협 은행 가평군지부, 가평축산농협 등이 공동 구매, 축산인과 소비자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운행하고 있다.■ 경기농협 손해보험 TOP-CEO 수상가평축협은 NH 농협손해보험 경기총국에서 진행하는 '2018년 3월 경기농협 TOP-CEO 프로모션'에서 보장성보험 판매 부문 1위를 차지했다. 평가그룹 중 3그룹에 속한 가평 축협은 그룹평가지표 월 700만 원 대비 2천315만 원을 달성해 330.8%의 달성률을 기록했다.이는 경기도 관내 161개 농·축협 중 그룹 지표대비 경기도 전체 1위의 기록이다.특히 2018년 조합 건전결산 달성을 위해 비이자 수익사업추진을 강화해 손해보험판매 특별이벤트를 진행하고 전 직원이 전사적으로 행사를 펼친 결과 경기 도내 최우수의 실적을 얻을 수 있었다.■ 2018년 서비스앤이모션 1회차 고객 만족도 조사 평가 우수사무소 수상전국 농·축협 3천84개 사무소를 대상으로 한 2018년 서비스앤이모션 1회차 고객 만족도 조사에서 가평축협은 S등급을 달성, 우수사무소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서비스앤이모션이란 고객의 감성에 좋아하는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기업 및 제품에 대한 호의적인 반응을 일으켜 마케팅성과로 이어지는 방식을 뜻한다. 가평축협은 지속해서 금융기관 최고수준의 CS(친절 봉사) 교육을 시행하고 전 직원들이 고객가치실현중심의 업무능력을 발휘, 이번 평가에서 우수사무소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어낸 것으로 자평하고 있다. 가평/김민수기자 kms@kyeongin.com 사진/가평축협 제공가평축협 한우 명가 본점 전경가평읍 자라섬에 마련된 찾아가는 정육코너가평축협 본점 전경.가평 한우

2018-06-17 김민수

[FOCUS 경기]인터뷰|조규용 가평축산농협 조합장

"9월24일까지 미허가축사 적법화 촉박지속가능 친환경축산 발전 힘모아야"조규용 조합장은 "조합창립 35년 동안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성장과 발전을 지속해 왔다"며 "지난해 말 총자산은 3천900억 원, 총 사업량은 6천860억 원을 달성하는 성과를 이뤄냈으며 이는 무엇보다 조합원님들께서 보내주신 신뢰와 헌신적인 사업 참여 덕분"이라고 강조했다.이어 그는 "미허가 축사 적법화의 가축 분뇨법 개정으로 인해 오는 9월 24일까지 미허가축사 적법화 이행계획서는 제출해야 하나 법에 맞게 미허가 축사를 개선하기엔 역부족이다. 정부는 미허가 축사 적법화를 위한 제도개선 노력 없이 모든 책임을 축산 농가에 떠맡기려 해서는 안 된다"며 "지속 가능한 친환경축산업발전을 위해 모든 축산업 관계자들이 힘을 모아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정부와 축산업계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협력을 당부했다.조 조합장은 "앞으로도 가평 축협은 한우 산업이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한우개량사업, 안전한 친환경 축산물생산, 안정적인 축산물 판매확대 등으로 잣 고을 한우가 전국 최고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지점마다 한우 명가(셀프 식당 4곳)를 집중적으로 육성해 조합원은 안심하고 생산에만 전념하고 축협은 조합원이 생산한 축산물 판매를 통해 서로 성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가평/김민수기자 kms@kyeongin.com조규용 조합장

2018-06-17 김민수

[인터뷰… 공감]데뷔 40주년·12년 장수 DJ, 인천 가수 백영규

'백가마' 진정성 있게 다가가… 공연 음악다방 콘셉트도 방송하며 영감준비 없는 큰 성공 결국 다 잃더라… 그래도 꾸준히 작업 정규앨범 15장전주만 1분 '감춰진 고독' 가장 애착, 이런 곡 써봤기에 친숙한 곡 만들어감성 사라지면 어떻게 살지… 음악하며 얻은 감성 지키는 것이 삶의 목표1978년 혼성 듀오 물레방아로 데뷔해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가수 백영규(66)는 지난달 19일과 20일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백다방 콘서트'를 가졌다. 백영규는 이번 공연에서 1970~1980년대 대표적 청춘 문화의 상징인 음악다방을 콘셉트로 내세웠다. 이틀 연속 460여석의 공연장을 메운 관객들은 백영규의 음악 인생 40년을 축하하며 공연 내내 환호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공연 당일 백영규의 노래 13곡과 백영규가 작곡해 다른 가수가 부른 13곡이 함께 실린 데뷔 40주년 기념 앨범(2CD)이 출시돼 의미를 더했다. '순이 생각'부터 '잊지는 말아야지', '슬픈 계절에 만나요'로 연이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백영규는 지난해 낸 '술 한 잔'까지 정규앨범 15장과 싱글앨범 5장을 냈다. 또한 박정수가 부른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 등을 작곡하는 등 한국저작권협회에 등재된 발표곡이 210곡에 이른다. 현재도 싱어송라이터이자 라디오 방송 DJ로 활동 중이다. 12년째 경인방송(FM 90.7MHz)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이하 백가마)을 진행하고 있는 백영규를 지난 11일 방송 진행에 앞서 만났다.지난달 열린 40주년 기념 공연에 대한 이야기부터 나눴다."중장년층의 음악팬들이 공연을 선택해서 볼 게 없는 상황에서 그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준비한 게 적중한 거죠. 추억을 송환하는 무기 중에 여러가지가 있는데 음악과 함께 음악다방이 제대로 역할을 했습니다. 웃고 우는 관객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백영규는 음악다방 콘셉트를 방송 DJ로 활동하면서 얻었다고 했다. 백가마를 공연장으로 옮겨 놓은 것이다."매주 수요일 백가마에선 음악다방 코너를 마련해 놓았어요. 팝송을 틀어주는 최장수 코너인데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과거 동인천역 인근에 있었던 음악다방으로서 상징성이 짙은 별다방을 공연 제목으로 정할까 하다가 청취자들이 정해준 제 이름이 들어간 '백다방 콘서트'로 정했죠."12년 동안의 방송 진행의 힘은 '청취자와 음악적 공감'에서 비롯됐다고 했다."방송을 통해 청취자들을 많이 만나죠. 단순한 청취자가 아닌 저와 공감하는 가족 같은 사람들이에요. 저를 백가마의 촌장으로 불러주시니 촌장처럼 행동해야 돼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모습, 야누스가 되어선 청취자들에게 다가갈 수 없다고 봐요. 진정성 있게 다가서야 하는 거죠. 그런 면에서 방송은 저를 채찍질하는 스승처럼 느껴져요. 음악적으로도 과거 주변에서 '백영규는 너무 자기 음악만 한다'는 평을 들었는데, 방송이 저를 바꾸게 해줬어요. 방송을 통해 자신이 성숙해짐을 느끼면 큰 소득이죠. 나가라고 할 때까지 방송할 겁니다(웃음)."자연스레 음악으로 화제를 옮겼다. 백영규는 쉬지 않고 신곡을 발표 중이다. 최근 들어 올해 발표할 곡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 편곡자와 만남의 자리도 자주 갖고 있다."곡을 잘 쓰려고 하지는 않아요. 그때 그때 느끼는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려고 하죠. 제가 쓴 곡들을 통해 지난 40년의 음악 인생을 돌아보게 돼요. 곡을 쓸 때 고뇌하게 되는데 저는 그런 시간까지 즐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설레죠. 앞으로 또 어떤 곡을 쓸지."몇몇 가수들을 제외하고 1970~1980년대 왕성하게 활동했던 다수의 가수들이 잠시 동안 활동 중단 후 음반을 내고 후속 활동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히트곡을 통해 얻은 유명세를 회복하지 못하면서 겪는 스트레스에 당시 상황(아날로그 시기) 만을 생각하다 보니 지속성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저는 준비 없이 큰 성공을 얻었어요. 다들 히트곡을 내기 전에 힘든 준비 과정을 겪는데, 저는 나오자마자 고생 없이 얻었죠. 그러다 보니 다 잃게 되더라고요. 음악적 부분에서 저를 가이드 해줄 사람이 부재하다 보니 내 기준이 앞서게 된 부분도 있었죠. 그래도 저는 곡을 만들고 음반을 내는 게 습관화 되어 있었습니다. 1980년대 초 소리창조라는 음반 제작사를 만든 적이 있는데, '나이 50~60세에 이르렀을 때 누가 내 음반을 내주겠냐'는 고민에서 비롯됐죠. 히트 시키진 않았지만 내 흔적으로 여기고 지속적으로 음반을 낸 게 제 힘이라고 생각해요."백영규가 가장 애착을 갖는 곡은 2007년 내놓은 13집 'As First'에 수록된 '감춰진 고독'이다. 백가마의 시그널 곡이기도 한 '감춰진 고독'은 가수 백영규를 잘 설명하는 곡이라고 한다. 도입부 1분 5초가 반주로 시작하는 4분 26초짜리 곡이다."전주만 1분이어서 방송에서 틀기 힘든 곡이죠(웃음). 프로그레시브에 록까지 가미된 이 곡이 발표됐을 때, '백영규가 현실을 너무 외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어쨌든 이와 같은 곡도 쓰고 불러봤기 때문에 대중과 친숙한 곡도 만들어야 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매우 어렵겠지만, 음악성도 있고 대중적이기도 한 음악을 만드는 게 요즘 화두예요."내친김에 음악과 삶의 목표에 대해 질문했다."음악적 목표는 계속 창작하는 거죠. 지금도 막 쓰고 싶고요. 거기서 부수적으로 나타나는 생각들을 짚어보고 감성을 지킨다는 것은 삶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감성이 사라지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죠. 결국 제게 음악과 삶의 목표는 연관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더욱 겸손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하는 부분도 지켜나갈 것입니다."인터뷰 말미, 질문은 안 했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그는 "백영규와 백가마의 팬이 나뉜다"면서 "'슬픈 계절에 만나요'가 발표된 1980년 오빠와 형으로 불러준 팬들이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히 응원해주시고 있다. 팬들을 위해서라도 더욱 좋은 노래를 만들고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오는 22일 한국싱어송라이터협회와 삼익문화재단이 주최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들의 릴레이 페스티벌 '명가의 품격-백영규' 공연이 서울 지하철 7호선 학동역 인근 엠팟(삼익악기 빌딩 3층)에서 개최될 예정이다.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가수 백영규는경기도 양평 태생인 그는 초교 5학년 때 인천으로 이주해 동산중·고교와 한국외대(이태리어학과)를 졸업했다.1978년 '순이 생각'으로 가요계에 데뷔했으며 1980년 MBC 10대 가수상 신인상을 받았다. 2016년 올해의 인천인상 문화예술 대상과 자랑스런 동산인 대상을 수상했다. 현재 경인방송에서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을 12년째 진행하고 있으며 대중문화예술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올해로 가수 데뷔 40주년을 맞았으며 12년째 방송 DJ로 활동 중인 백영규는 "곡을 만들고 부른 흔적들이 결국 40년 음악 인생이 됐다"며 "방송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당대 음악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부분도 가수로서나 인간으로서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줬다"고 돌아봤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6-12 김영준

[우리시대의 품앗이人(K-Pumassian)]이상기 나눔자리문화공동체 대표이사

시흥지역 '봉사 아이콘' 상징적 인물공부방·주방 등 갖춘 '청소년 쉼터'30년 반찬나눔등 활동 530여명 동참"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도록 더욱 노력할 겁니다."시흥시 대야동에서 비영리 법인을 이끌고 있는 나눔자리문화공동체 대표이사인 이상기(60)씨. 시흥지역에서 봉사하면 연상되는 대표적 인물을 꼽으라면 결코 그 누구도 주저치 않는다. 그만큼 지역 봉사의 상징적 인물로 그녀가 베푸는 봉사의 손길은 이미 지역에서 인정받고 있다.대야초등학교 정문 한 모퉁이에 자그마한 크기의 공부방과 골방, 작은 주방 등을 갖춘 나눔자리 사무실은 '마음을 채우는 놀이터'의 부제를 단 '꾸러기 다락방'으로 꾸며져 있다.그 규모는 비록 작고 남루하지만 이곳에서 바로 봉사의 샘물이 솟아나고 있다. 청소년 상담사로 관내 곳곳의 학교를 돌며 상담에 나서기 시작해 학생들의 꿈을 한 곳으로 모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이씨는 지난 16년간 대야동과 신천동 일대 청소년들을 위한 마음의 쉼터로 이곳을 제공하고 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겐 공부방, 누구에겐 고민을 나누는 상담실 역할을 하고 있다.현재 30여 명의 성인봉사자와 500여 명의 청년들이 이 법인체 봉사에 동참하고 있다.그녀는 "처음 힘들게 건사했던 아이들이 이제 성인으로 훌쩍 커 다시 어려운 학생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 정말 큰 보람을 느낀다"며 "오늘을 있게 해준 가족들의 희생이 미안하고 정말 고맙다"고 표현했다.동네에서 국수를 말아 어려운 이웃에게 아낌없이 나눠줬던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았다는 그녀. 지역에서 '봉사의 대모(大母)'로 인정받게 된 것은 반찬 봉사를 하면서다. 30년 전부터 시작된 봉사의 시작과 끝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독거노인과 편부모 가정, 다문화 가정 등을 대상으로 반찬을 제공하는 봉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종교단체와의 작은 인연으로 시작된 반찬 봉사는 관내 100여 개 가정에 고정적으로 반찬을 제공하고 있다.이씨는 "무조건적으로 반찬을 제공해 주다 보니 발전도 없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부정적 요소가 강했다"며 "최근에는 수혜자들을 봉사에 참여시켜 느끼게 하고 보람을 함께 찾도록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수십년 간 이어온 봉사에 대한 그녀의 철학이 일궈낸 또 다른 발상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그녀는 "무조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와 동참을 이끌어낼 줄 아는 것 역시 참된 봉사라고 생각합니다"고 말했다. 이씨는 끝으로 문화공동체 봉사와 관련해 "많은 학생들과 청년들이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한편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올곧게 성장하도록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시흥/심재호기자 sjh@kyeongin.com나눔자리문화공동체 이상기 대표는 청소년들을 위한 공부방 운영과 함께 수십년간 지역 소외계층에 대한 반찬 봉사를 통해 봉사의 대모로 인정받고 있다. 시흥/심재호기자 sjh@kyeongin.com

2018-06-11 심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