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경기)

[FOCUS 경기]인터뷰|김지원 그린영농조합 대표

'그랑꼬또'의 성공은 양질의 포도와 그린영농조합 김지원(사진) 대표의 노력이 있어 가능했다.무엇보다 대부도는 미네랄이 풍부한 토양과 비교적 강우량이 적고 뜨거운 기온, 서해안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해풍과 적당한 습도, 낮과 밤의 큰 일교차 등 포도나무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조건(일명 테루아)을 모두 갖춘 천혜의 포도 재배지역이다. 거기에 김 대표의 와인에 대한 열정과 '절대 실패해선 안 된다'는 절박함이 더해져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대부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로 농협에서 근무했던 김 대표는 1993년에서야 농사를 시작한 늦깎이 농부였다. 포도 농사를 짓던 김 대표가 와인을 공부하며 인생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김 대표는 "초창기에는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전 세계 어디든 와인이 있는 곳은 다 찾아다녔다. 공부했고, 배운 대로 써먹었으며, 더 나은 방법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했다"며 "와인 품질의 70%는 포도밭에서 결정되고 사람의 정성과 열정 그리고 좋은 기술이 30%"라고 단언했다. 그는 특히 "이제 어디 내놔도 절대 기죽지 않을 만큼 자신감이 생겼다. 자연 그대로의 정직한 맛과 향으로 세계에서 통하는 와인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재 사단법인 한국와인생산협회 회장인 김 대표는 공인된 '마스터 소믈리에(master sommelier)'다. 안산/김대현기자 kimdh@kyeongin.com

2018-09-09 김대현

[FOCUS 경기]안산시 또다른 명물 '그랑꼬또'

2000년 농기센터 도움으로 조합 창립 2003년 브랜드 출시국내외 각종 상 수상·포털사이트 판매 1위 등 매출 급성장아시아협회 소속 국내 유일… 화이트 '청수' 등 9가지 생산전문가들 "향 풍부·산뜻" 호평… 市, 판로 확대 지속 지원청포도가 익어가는 섬, 안산시 대부도에서 생산되는 '그랑꼬또' 와인이 국내외의 각종 상을 휩쓸며 국가대표 와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그랑꼬또' 와인은 안산시의 자문과 예산으로 설립된 그린영농조합 작품으로 안산시를 대표하는 또하나의 '명품'으로 성장하고 있다.윤화섭 시장은 '그랑꼬또' 와인을 안산시와 경기도를 대표하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와인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적극 홍보하고 지원한다는 계획이다.석양이 아름다운 서해바다 대부도. 그곳엔 붉은 석양빛을 닮은 와인, '그랑꼬또(Grand coteau)'가 있다.대부도 와인은 포도나무 캠벨얼리 50주를 심었던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1997년부터 대부도 농가들이 모여 공동으로 포도즙을 생산하던 중 2000년에 안산시 농업기술센터의 자문과 예산을 지원받아 그린영농조합(대표·김지원)을 만들었다.영농조합은 '제대로 된 국산 와인을 만들어보자'란 도전으로 2001년 처음으로 와인을 생산해 2년 동안 숙성시킨 후 2003년 9월 '그랑꼬또'란 브랜드를 세상에 내보냈다. 첫 해 생산량은 2천병. 국산 와인이 생소하던 시절이라 판매가 쉽지는 않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전량 판매되는 성과를 거뒀다.김지원 대표는 "당시 국내 와인 시장이 크지도 않았고 국산 와인은 생소했다"며 "와인에 대해 배울 곳도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100명 중 한두 명을 제외하곤 모두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강행했고, 인내와 끈기로 버텼으며 이제 그 성과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그랑꼬또'는 최근 몇 년 전부터 국내외 각종 상을 휩쓸며 인지도를 높였고, 매출도 크게 성장하고 있다. 2014년부터 3년 연속 아시아 와인 콘테스트에서 잇달아 은상을 수상한 데 이어 마침내 2017년에는 금상을 받는 쾌거를 이뤄냈다. 특히 지난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 과실주 부문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그 진가를 인정받았다.매출도 안정적으로 늘고 있다. 2015년부터 공급하고 있는 광명동굴에선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가 높으며, 최근에는 유명 포털사이트 온라인 술 판매 부문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김 대표는 "안산시의 지원으로 시작된 그랑꼬또가 이제는 거꾸로 안산시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며 "아시아와인협회에 소속돼 있는 국내 유일의 와인이자 영어와 독일어로 소개될 만큼 세계적인 국가대표 와인이라는 자부심이 크다"고 소개했다.현재 '그랑꼬또'는 레드, 화이트, 로제, 아이스 등 9가지 종류가 생산되고 있다. 그 중 가장 최근에 개발돼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청수(靑水)'에 대한 기대가 높다. 청수는 농촌진흥청이 1993년 생식용 품종으로 개발한 청포도 품종으로 추위와 병에 강하며 당도가 20브릭스(Brix)에 이를 만큼 높아 소믈리에들로부터 화이트 와인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전문가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장인 고재윤 경희대 교수는 "과일향이 풍부하며 산뜻하고 가볍다. 깔끔하다. 알코올, 산도, 당도, 향 등의 밸런스도 탁월하다. 생선회, 생선요리, 게찜, 대하 등과 어울린다"고 극찬했다.윤화섭 시장은 "안산시에서는 그랑꼬또 와인 포장재를 지원하고 있으며, 그랑꼬또의 상품 차별화를 통한 판로 확대를 위해 포장재·용기 등 디자인 개발·변경, 제품 브랜드 개발 및 BI·CI, 브랜드 상표 출원 등을 지원할 예정"이라며 "특히 내년에는 대부도의 다양한 관광지와 연계한 와인페스티벌을 개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안산/김대현기자 kimdh@kyeongin.com안산 대부도 '그랑꼬또' 와인. /안산시 제공 /아이클릭아트안산 대부도의 '그랑꼬또' 와인이 우리나라의 국가대표 와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진은 '그랑꼬또' 와인 전시·판매장. /안산시 제공안산 대부도 '그랑꼬또' 와이너리(양조장)를 방문한 관람객들이 와인을 시음하고 있다. /안산시 제공

2018-09-09 김대현

[이슈&스토리]신도시 중심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 명과 암

주민 소통 목적으로 개설… 이웃 간 교류 '반상회' 역할까지 담당24시간 누구에게나 개방, 지역현안부터 일상까지 자유롭게 공유민원 과정서 공무원 개인정보 노출·문자폭탄등 본래취지 잃기도익명성 탓 님비현상 경계해야… 많은 주민 적극 참여할때 순기능지난달 인천시가 송도 워터프런트 사업 일부만 우선 추진하기로 하자 송도 주민들이 하나 된 목소리로 반발했다. 주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하나로 모은 것은 송도국제도시 지역 커뮤니티였다. 이처럼 지역 온라인 카페는 지역사회에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고 있다. 주민들은 카페를 통해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지역 현안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는 것이 일상이 됐다. 지역 커뮤니티는 송도국제도시, 청라국제도시 등 신도시를 중심으로 활성화되고 있다. 송도국제도시의 '올댓송도'·'송도국제도시맘', 서구의 '달콤한 청라맘스'·'너나들이검단맘' 등이 대표적이다.이렇게 형성된 지역 커뮤니티는 이해관계가 비슷한 주민들이 지역 현안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고,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기피시설 설치 등 문제에 대해서는 커뮤니티가 지역이기주의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간 지역 소통 송도국제도시를 대표하는 커뮤니티인 '올댓송도'는 지난 2013년 4월에 만들어졌다. 카페 설립자 김성훈 올댓송도 대표는 2011년 송도국제도시로 이사를 왔다. 이사 간 아파트에서 입주자대표가 된 김 대표는 2007년 출범한 입주자연합회에 참여했다. 입주자연합회는 송도 아파트 단지 대표들이 지역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자리였다. 하지만 김 대표는 입주자연합회에서 주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눈을 돌린 것이 실시간으로 많은 사람이 글을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 카페였다. 김 대표는 "지역에 함께 사는 주민들이 다양한 의견을 자유롭게 올리고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개설 시기는 각자 다르지만, 주민과의 소통을 목적으로 지역 커뮤니티는 만들어졌다. 시간과 비용을 많이 투자하지 않고도 언제, 어디서든 이웃과 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의 강점이 지역사회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지역 현안부터 실생활 정보까지 정보공유의 장 지역 커뮤니티"한 달에 한 번 마을 주민들이 모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이웃 간 친목을 다졌던 '반상회'. 이제는 그 역할을 지역 커뮤니티가 담당하고 있다. 반상회가 제한된 인원, 한정된 시간 등의 제약이 있었다면 온라인 카페는 24시간 누구에나 개방돼있는 정보공유의 장이다. 주민 개개인이 다루기 힘들었던 지역 현안부터 서로의 일상을 주고받는 커뮤니티는 지역사회의 큰 변화를 가져왔다.지역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서 주민들은 다수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 집단민원을 넣는 등 지역 현안에 대해 적극적이고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지난달 인천시 지방재정투자심사위원회가 송도 워터프런트 사업 일부 공사만 허용하자 송도지역 온라인 카페에서는 투자심의회 결과에 반발하는 수많은 글이 올라왔다. 송도 주민들은 이러한 의견을 모아 민원, 집회 등 집단행동에 나섰다. 주민들의 하나 된 목소리에 연수구의회에서는 지난달 28일 '송도국제도시 워터프런트 지방재정투자심사 재개최 검토 촉구 결의안'을 가결했다. 이날 이강구 의원은 5분 발언에서 올댓송도의 주민성명서를 낭독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청라국제도시 국제업무지구에 스마트 업무단지와 지원단지를 조성하는 G-City 사업이 난항을 겪으면서 '청라국제도시' 등 지역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의견을 모아 G-City 사업을 촉구하는 집단민원을 제기하고 있다.지역 현안에 대한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 카페는 하나의 '마을공동체' 역할을 하고 있다. 서로의 일상을 주고받고, 교육·부동산·날씨·환경·건강 등 지역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한다. 서구 '너나들이검단맘' 카페는 '우리동네 미세먼지'라는 게시판을 운영하면서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 수치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전북 군산시에서 송도국제도시로 이사왔다는 김모(45·여)씨는 "신도시의 경우 타지에서 이사를 온 사람들이 많아 자녀교육 등 정보가 필요해도 서로 접근하기 힘든 면이 있다"며 "하지만 지역 카페에서 활동하면서 이웃들과 활발하게 소통하고, 다양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지역 커뮤니티가 지역사회에서 갖는 장점이 적지 않다. 성동규 중앙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지역 커뮤니티는 과거 '관'이 주도했던 반상회와 달리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주민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다"며 "주민들 스스로 운영해나가는 구조기 때문에 지역 현안 등에 대해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했다.#"지역 이기주의로의 변질 경계해야"지역 커뮤니티는 뿔뿔이 흩어진 주민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합쳐 지역 사회에 전달하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커뮤니티가 소수의 인원이 지역 여론을 주도하거나, '내 지역'의 이익만 생각하는 지역 이기주의의 장으로 변질될 것이란 시민, 전문가들의 우려도 적지 않다.지난달 14일, 송도의 한 지역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워터프런트 폐기 수순 - 강력 항의'라는 제목의 공지글이 올라왔다. 워터프런트 단계 추진에 항의하자는 내용이었다. 글에는 개인정보가 적혀 있었다. 박남춘 인천시장, 이용범 인천시의회 의장뿐만 아니라 행정부시장, 대변인, 비서실장 등 인천시 공무원에 대한 개인 전화번호가 나열돼 있던 것이다. 이렇게 개인 휴대폰 번호가 노출된 사람은 20명이 넘었다. 글쓴이는 이들에게 '워터프런트 1-1공구, 1-2공구 모두 조건없는 통과'라는 제목의 글을 복사해 보낼 것을 요청했고, 결국 주민들의 문자 폭탄에 인천시 업무가 차질을 빚는 일까지 발생했다. 인천의 한 대학 교수는 "학계 보고에 따르면 지역 커뮤니티에서도 다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침묵하는, 침묵의 나선 이론 현상을 보인다"며 "워터프런트 사업 경우와 직접 연관 짓기는 힘들지만, 지역 커뮤니티의 의견이 모든 주민의 생각이라고 볼 수 있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현재 이 같은 커뮤니티는 송도와 청라, 검단 등 신도시 위주로 형성돼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타 지역 주민들이 커뮤니티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도시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신도시에서 다수의 주민이 한목소리로 문제 개선을 요구하는 게 자칫 '지역 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동구에 살고 있다는 윤모(24·여)씨는 "다른 지역에서는 신도시 위주의 지역 커뮤니티를 긍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며 "지역 커뮤니티다 보니 자신 지역 위주로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신도시는 이미 많은 투자와 지원이 이뤄진 곳이지 않나. 때로는 주민들의 요구가 '무리하다'라고 느껴질 때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역 커뮤니티의 본래 취지를 잃지 않기 위해선 많은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임운택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지역 커뮤니티를 좋다, 나쁘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인터넷의 익명성 때문에 님비(NIMBY) 현상이나 지역 이기주의 현상이 심화될 위험성은 있다"며 "한 특정인이 의견을 주도한다면 여론몰이와 같이 조직에 안 좋은 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태양·공승배기자 ksun@kyeongin.com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2018-09-06 김태양·공승배

이정미 정의당 대표 "약자 대변·인천발전에 최선"

송도서 워터프런트 집회 방문 등환경·교육 지역구 현안 파고들어주 52시간이 도입된 후 정치판에도 바뀐 것이 있다. 오전 8시 30분께 진행하던 각 당 지도부 회의나 의원 총회 등 회의 일정이 1시간가량 늦춰졌다. 이런 변화를 이끈 건 이정미(52) 정의당 대표다. 출입 기자들의 근로 시간 단축을 위한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정의당이 시작하니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등 다른 당에서도 안 따라갈 수가 없었다.그런데 정작 이정미 대표는 퇴근은커녕 끼니를 거를 때도 허다하다고 한다. 비례대표 의원, 당 대표로서의 역할을 하기에도 버거운 판에 인천을 오가며 지역구 현안을 속속들이 챙기기 때문이다. 경인일보와의 인터뷰가 있던 지난 1일에도 인터뷰 시간 직전까지 송도 워터프런트 재심사 요구 집회 현장을 방문하고 왔다고 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이정미 대표는 이마에 맺힌 땀을 채 닦기도 전에 집회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이정미 대표는 "송도 워터프런트 재심사 요구는 단순히 수변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것 이상으로, 송도 주민들의 누적된 억울함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것"이라며 "잘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계획된 사업은 무산된 채 악취, 학교·인프라 부족 등의 문제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발에 치우쳐 정작 소홀히 여겨졌던 사람, 환경, 교육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비례대표 의원인 이정미 대표가 인천 송도에 지역사무소를 개소한 지 1년 하고 2개월이 조금 넘었다. 그는 송도의 3대 현안인 6·8공구의 학교·도로 등 인프라 부족 문제, 원인 불명의 악취 문제, 송도 워터프런트 조성 사업에 매달리고 있다. 이 대표는 "최근 교육부에서 직접 보고를 받았는데 6·8공구의 경우 학교 신설 재심사로 2개 학교만 신설된다 하더라도 평균 급당 인원이 67명이라 반드시 4개교가 신설돼야 한다"며 "가장 심각한 악취 문제는 원인 파악이 우선이라 악취 포집기를 추가 설치하는 데 노력했다"고 말했다.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정치인' 중 한 명이기도 한 이정미 대표는 지역구 의원보다 더 열심히 지역 현안에 파고든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정미 대표는 "약자를 대변하는 정의당의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며 "앞으로도 인천의 발전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

2018-09-04 윤설아

[인터뷰… 공감]인천에서 자란 정치인, 이정미 정의당 대표

#사무실 연 송도, 무엇이 과제인가6·8공구 인프라·악취문제 등 심각개발과정 주민피해 함께 해결해야#국비확보 의원 간담회 제외 논란유정복 시장때도 참여, 한국당 반대지역의원 협력해야… 자리 약속받아#선거구 획정 등 정치개혁 방향은다당제 민의 반영되는 국회구성 사활과도하게 높은 교섭단체 문턱 낮춰야#문재인 정부의 정책 어떻게 보나남북관계·적폐청산은 잘하고 있지만소득주도 성장·경제 민주화 속도내야이번 주 일요일, 그러니까 오는 9일은 노회찬 정의당 전 대표가 서거한 지 49일째 되는 날이다. 49재 풍습이 널리 퍼져 있는 우리에게는 아주 특별한 날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진보 정치계의 한 축이자 정의당에서 큰 자리를 차지했던 노 의원의 서거는 정의당에 '날벼락'과 같은 사건이었다. 민주평화당과 어렵게 구성한 공동교섭단체 지위도 잃었다. 그런데 이후 정의당의 반격이 심상찮다. 한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에서는 노 전 의원 서거 이후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지지율을 넘어섰다. 4만 명이었던 당원 수는 5만 명으로, 몇 주 새 1만 명이 늘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제1야당으로 도약하기 위한 당 안팎의 관심이 뜨거워진 요즘이다. 그 중심에 이정미 당 대표가 있다.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노회찬 전 대표의 서거는 정의당에게는 타격이 큰 사건이었지만 이후 정의당에 보내준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니 더는 슬픔에 빠져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당은 앞으로 나아가 달라, 정의당을 사랑해달라'는 노회찬 전 대표의 뜻을 따라 계속해서 약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당장 닥친 과제는 선거 개혁이다. 내년 4월까지 국회의원 선거구를 확정하려면 공직선거법상 10월에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구성돼야 한다. 이정미 대표는 "민의를 반영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혁은 시대의 흐름이고, 여기에는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물론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이 모두 동의하고 있는 지금이 골든타임"이라며 "다당제 민주주의에서 여러 민의가 반영될 수 있는 국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 개혁에 사활을 걸겠다"고 했다. 국회의원 특수활동비 폐지에 이은 각종 정치 개혁에도 힘쓸 예정이다. 그는 "국회의원 특활비는 물론 모든 공직 분야에서의 특활비를 없애 국민들에게 돌려줄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또한 이번 교섭단체 박탈로 절실히 느낀 만큼 교섭단체 문턱이 과도하게 높은 점도 개혁해 나갈 것"이라고 꼬집었다.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잘하고 있는 점'과 '잘못하고 있는 점'을 분명하게 나눴다. 이정미 대표는 "남북관계, 이전 정부의 적폐청산은 잘하고 있지만 경제 정책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수십 년간 재벌 위주의 경제 패러다임이 한계에 부딪혔는데 계속 여기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된다. 소득주도 성장, 경제 민주화 정책에 지금보다 속도를 내야 하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살려 '을과 을의 싸움'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진보 정치인 이정미 대표가 지난 2016년 정의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처음 입성한 후 지역사무소로 둥지를 튼 곳은 '부자동네'로 이름난 인천 송도국제도시, 바로 '연수구 을' 지역이었다. 인천이야 유년시절 자라온 동네이자 노동운동을 시작한 본거지라 치더라도, 연수구는 크게 연이 있는 곳은 아니었다. 게다가 송도는 인천에서는 가장 잘 사는 사람들이 모인 '인천의 강남'으로 꼽혀 주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해온 정의당과는 그 이미지부터 딱 맞아떨어지지 않았다.이정미 대표는 "처음에 이곳을 택했을 때 '노동자들이 많이 사는 도시로 가지 그랬냐', '왜 송도로 갔냐'고 하는 말들이 많았지만 송도 주민도 노동자들이 있고, 아이를 키우는 여성이 있고 악취 등 환경 문제가 어느 지역보다 중요해 정의당이 추구하는 목표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6·8공구의 경우 올해부터 입주인데 도로며 학교며 어떤 인프라도 없어 안전 문제도 우려되는 데다가 아이들이 '콩나물시루'에서 공부하게 생겼다. 밤에 송도 악취는 어느 때는 너무 심해서 토할 지경이고, 가스 냄새로 안전까지 우려된다. 그간 행정에서 이런 것들을 풀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도시만 발전시키려 했기 때문에 이제 이 과제를 모두 해결해나가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이러한 활발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이정미 대표는 최근 국비 확보를 위한 인천 국회의원 정책 간담회에서 제외되는 이른바 '이정미 패싱' 논란도 있었다. 이정미 대표는 "유정복 시장 때도 참여했던 자리인데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참가하지 못했다"며 "인천에 의원이 한 명 더 생긴 거라고 생각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인천 시민에게 더 좋은 일인데 배제한 것에 대해 거칠게 유감을 표했으며 앞으로는 함께 자리할 수 있도록 약속을 받은 상태"라고 말했다.이정미 대표는 "인천은 인천공항, 인천항이 있으며 물류도시, 국제도시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높이는 데에는 여야가 힘을 합해야 할 것"이라며 "특히 송도는 아직도 많은 개발계획이 수립되고 진행되는 곳인데 이런 개발로 인해 주민들이 겪게 될 피해도 함께 해결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이정미 대표는 부산에서 태어나자마자 바로 인천 미추홀구에 올라와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는 부산에서 부모님과 같이 지냈지만 중학교 때부터 다시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박문여중과 인성여고를 나왔다. 최루탄 냄새가 진동하던 때 한국외대에 입학해 2년 만에 중퇴하고 노동 운동에 뛰어들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부평공단의 한 구두약 공장이었다. 이때부터 공단 노동 현장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며 본격적인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이정미 대표는 "2003년 권영길 민주노동당 당 대표 시절 중앙당에 당시 고위 당직자 30% 여성 할당제로 당시에는 굉장히 진보적인 당규로 중앙당에 처음 가게 됐는데 그때 사무총장이던 노회찬 전 대표를 만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고 말했다. 두 차례 낙선에 이어 지난 2016년 비례대표로 당선됐고, 지난해 당 대표로 선출됐다.이정미 대표는 "많은 유권자들이 정의당이 옳은 얘기는 한다면서도 힘이 없는 정당이지 않느냐며 선거 때 최종적 선택에서 배제하고 있다. 지난 지방 선거가 이를 잘 보여줬다"며 "이제는 다당제로 가고 있는 만큼 정의당에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 정권 교체로 인한 변화가 현실화되는 과정을 잘 추진해 나가고 견제할 수 있는 정당이 바로 정의당임을 잊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글/윤설아기자 say@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지역사무소 '정치카페테라스'에서 "이제는 다당제로 가고 있는 만큼 정의당에 힘을 실어주길 바란다. 정권 교체로 인한 변화가 현실화되는 과정을 잘 추진해 나가고 견제할 수 있는 정당이 바로 정의당임을 잊지 말아달라"고 밝히고 있다.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8-09-04 윤설아

[우리시대의 품앗이人(K-Pumassian)]빙인자 김포자율방재단 구래·마산동 대표

환경정화 등 각종 봉사 스케줄 빼곡어르신 마을버스 배차 불편 해소 등어려운 곳 달려가 도움 손길 힘 보태"타인의 도움을 받았던 대로 언제가 꼭 갚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빙인자(57) 김포시자율방재단 구래·마산동 대표를 만나기로 한 날까지 정확한 시간약속을 잡을 수 없었다. 이날 낮에만 두 군데 봉사활동이 계획돼 있던 그는 만나자마자 "언제 갑자기 불려갈지 모른다"고 했다. 세 번째 봉사활동인 금빛수로 환경정화에 참여한다면서 인터뷰를 마치고 서둘러 떠나는 광경은 스케줄에 치이는 스타를 연상케 했다.따져보면 빙 대표는 구래·마산동 민원인들의 인기스타다. 자율방재단 외에도 구래동 주민자치분과장, 구래동 나눔냉장고(소외이웃 식품 지원) 사무총장, 또 '우리동네 통장님'으로 일하며 하소연할 곳 없는 주민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 노인들의 마을버스 배차간격 불편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빙 대표만큼 '품앗이인'이라는 표현이 잘 들어맞는 사람이 없다. 몇 해 전 울산 수해 현장을 비롯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몸을 사리지 않고 뛰어간다. 종일 재난복구에 몰입하다가 기진맥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최근에는 신곡수중보 소방관 실종현장에서 밤늦게까지 조용히 밥차를 운영하며 힘을 보탰다. 빙 대표는 "가진 건 몸뿐이라 매사 온 힘을 다해 봉사하고, 안타까운 일을 당한 분들에겐 마음의 위로까지 드리려 한다"고 말했다.서울 성동구에서 작은 의류공장을 운영했던 그는 7년 전 김포로 이사하고부터 봉사활동에 눈을 떴다. 지병 수술을 하고 우울감이 찾아올 무렵 지인의 권유로 새마을부녀회 활동을 시작, 방범순찰과 사랑의밥차 봉사로 반경이 넓어지다가 지금에 이르렀다.빙 대표는 "IMF 직격탄을 맞고 얼마 뒤 남편과도 사별했을 때 주위에서 아이들 학비를 도와준 덕분에 착하고 바르게 장성했다"며 "당시의 기억이 평생 가슴 속에 있었고, 언젠가 갚아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살았다"고 회상했다.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을 정기적으로 후원하기도 하는 그는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나처럼 사회의 온정을 느껴서 절망하지 않고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며 "그 사랑이 결국 또 다른 누군가에게 퍼지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빙인자 대표는 "자율방재단이 좋은 일을 정말 많이 하는데 사람들이 무슨 단체인지 잘 모른다"고 서운해했다. 김포/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2018-09-03 김우성

[이슈&스토리]흩어진 독립운동 발자취 따라 만나는 '헌신과 조국애'

1917년 전로한족회 대표자회의 개최 '우수리스크' 이어구한말 의병근거지 '크라스키노' 3개 국경 접하는 '핫산''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까지 최재형 선생등 흔적 만나"조국에 희생한 분들 뜻 계승… 고려인들과 교류 필요"수원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지난 29일부터 9월1일까지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러시아 연해주지역 항일 투쟁의 흔적을 따라가는 탐방에 나섰다. 30여명으로 꾸려진 탐방단은 가을비를 맞으며 우수리스크와 크라스키노, 블라디보스토크 등 3개 도시에 흩어져 있는 항일운동의 흔적들을 찾아 전문가로부터 설명을 들었다. 척박한 환경을 개척해 나가며 항일운동에 나선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전해 들으며 탐방단은 숙연해졌다. 탐방단은 절박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조국애를 되새기며 길지 않은 4일을 보냈다.# 고려인의 어제와 오늘을 볼 수 있는 우수리스크탐방단이 러시아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우수리스크다. 한국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우수리스크는 사실 연해주 지역 고려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다.1917년 5월 21일부터 31일까지 11일 동안 한인대표 100여 명이 참가한 '전로한족회 대표자회의'가 개최된 곳도 바로 이곳 우수리스크다. 같은 해 12월 제2차 대표자회의를 열어 러시아 한인 최고자치기관이자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기관인 전로 한족 중앙총회(고려국민회)로 바뀐다.이후 전로 한족 중앙총회는 1919년 2월 대한국민의회로 확대 개편되며 노령 임시정부를 수립한다.이 곳을 방문한 이유는 크게 2가지다.첫번째는 이런 연해주 거주 고려인의 역사를 배워 볼 수 있는 공간인 고려인 문화센터가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을 기념해 2009년 건립된 고려인 문화센터는 고려인들의 연해주 이주 역사와 독립운동사까지 한눈에 살펴 볼 수 있다. 고려인문화센터 앞에는 안중근 의사와 홍범도 장군의 기념비가 있다.또 하나는 독립운동가 이상설 선생과 최재형 선생의 흔적을 찾아 만나 볼 수 있다.우수리스크에는 연해주 지역 대표적인 항일 독립운동가인 최재형 선생의 마지막 거처가 남아 있다. 최재형 선생은 사재를 독립운동자금으로 제공하면서 이범윤 의사와 함께 연해주 의병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고, 1919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재무총장에 선임됐다. 하지만 연해주를 침공한 일본군이 1920년 4월 참변을 일으켰을 때, 일본군에 붙잡혀 김이직·엄주필 등과 함께 총살 당해 순국하고 말았다.우수리스크 수이푼 강가에는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가 있다. 1948년 4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상설 선생은 조국 독립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자신의 유골을 화장해 이 곳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항일의병운동의 중심지 크라스키노와 핫산러시아에서의 둘쨋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비가 오는 날 탐방단은 버스를 타고 4시간이라는 시간을 달려 크라스키노에 도착했다. 크라스키노는 구한말 대표적인 항일의병근거지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는 최재형 선생을 비롯해 이범윤, 안중근, 유인식 등의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다.또 크라스키노에서 두만강 방면으로 조금 더 이동하면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 국경이 만나는 핫산이라는 곳이 나온다. 3개국 국경이 만나고 있기에 한반도 냉전이 종식될 경우 활발한 교역이 이뤄질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크라스키노와 핫산 일대에 대한 관심은 러시아 뿐만 아니라 한국과 북한, 중국 4개국 모두 관심을 갖고 있다.경제라는 이슈로 관심을 받고 있는 크라스키노와 핫산은 100년 전에도 제국주의를 앞세운 강대국들의 치열한 경쟁지였다.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인들이 척박한 땅을 개척한 곳이다. 크라스키노 부근에는 1863년 함경도 농민 13가구가 정착해 형성한 러시아 최초의 한인 마을인 지신허 마을이 위치해 있다. 그리고 크라스키노는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김기룡, 백규삼, 황병길, 조응순, 강순기, 강창두, 박봉석, 유치홍, 김백춘, 김춘화 등 12인의 독립운동가가 조국의 독립과 동양의 평화를 위해 단지동맹을 한 곳이다.# 관광지가 아닌 독립운동의 거점 블라디보스토크최근 몇몇 방송사 여행프로그램에 소개되며 2시간대에 갈 수 있는 유럽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는 한인독립운동의 중심인 신한촌이 있었다. 신한촌에는 헤이그 특사 중 한명이었던 이상설, 그리고 최재형, 이동휘 등이 활동했었다. 또 권업회, 대한광복군정부, 한인신보사, 일세당, 대한국민의회, 노인동맹단 등 독립운동 단체들도 활동했었다. 하지만 1937년 한인 강제 이주로 인해 완전히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모해 그 원형을 찾아 볼 수 없다.블라디보스토크는 냉전시대 구소련의 태평양 함대가 모항으로 사용하던 도시였기에 이런 흔적들이 기념물로 남아 있지 않지만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곳이기에 구시가지 곳곳에는 항일운동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가 남아 있다.옛 신한촌 자리에는 한인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신한촌을 잊지 않기 위해 지난 1999년 해외민족연구소가 한국에서 석재를 운반해 세운 기념비가 자리하고 있다.주영훈 수원청미래충전소 대표는 "3·1운동 100주년이 다가오면서 많은 분들이 항일독립운동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뜻이 후대에도 계속 계승될 수 있도록 꾸준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한준택 경기르네상스포럼 상임이사는 "연해주지역에서 우리 전통 문화를 지켜 나가고 있는 고려인들과의 다양한 교류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전했다. 블라디보스토크/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수원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러시아 크라스키노에 있는 안중근의사 단지동맹기념비 앞에서 추모 행사를 가진 후 만세를 외치고 있다. /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안중근 단지 동맹비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내에 설치한 안중근의사 기념비에 묵념하고 있는 탐방단. /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수원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러시아 크라스키노 전망대에서 이동근 수원시청 학예연구사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우수리스크 고려인문화센터에서 연해주 독립운동 관련 영상을 감상하는 탐방단. /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러시아 우수리스크에 위치한 독립운동가 최재형선생의 생가. /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러시아 연해주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한인 거주지인 신한촌의 역사적인 의의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한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기념비. /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2018-08-30 김종화

[이슈&스토리]인터뷰|연해주 고려인 민족문화자치회 김발레리아 부회장

고려인들의 연해주 지역 중심 도시인 러시아 우수리스크에는 지난 2009년 러시아 한인 이주 140주년을 기념해 건립됐다. 고려인문화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연해주 고려인 민족문화자치회의 김 발레리아(사진) 부회장은 "고려인문화센터는 한국 사람들의 꾸준한 관심으로 건립됐다"고 소개했다.김 부회장은 "고려인 문화센터가 건립되기 전에는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부모님으로부터 전해 들은게 전부다였다"며 "이 곳이 생긴 후 연해주 지역 고려인들이 자신의 뿌리에 대해 올바로 알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그는 "고려인들은 전통을 이어 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한국인을 통해, 또 이 곳을 통해 한국과 교류하면서 고려인의 뿌리인 한국 문화를 배워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연해주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이 곳 고려인문화센터를 방문하는 이들도급증하고 있다. 김 부회장은 "고려인문화센터를 방문한 한국인은 2016년에 1만6천명이었다. 지난해 3만명이 방문했고, 올해에는 지난달까지 방문한 숫자가 3만명이다"고 소개했다.그는 "임시정부가 있었던 이 곳에 대해 한국인과 한국 정부가 관심을 가져 주는 것에 고려인들은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마지막으로 김 부회장은 "한국인과 고려인은 국적은 다르지만 같은 역사를 갖고 있다"며 "이곳 고려인문화센터가 앞으로도 한국인과 고려인의 연결 고리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우수리스크/김종화기자 jhkim@kyeongin.com

2018-08-30 김종화

[인터뷰… 공감]'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 순수를 노래한 가수 예민

젊은 시절 천재적인 재능… 박선주 데뷔곡 '귀로' 등 만들고 1·2집 내며 유명세성공 뒤로하고 미국서 공부… 2001년부터 자비 들여 122개 분교 음악회 대장정대중음악계 떠나 2007년부터 뮤뮤스쿨 운영, 아이들 '영감' 일깨우는 예술 교육아무 의미 없는 한적한 곳에서, 작은 과수원 가꾸며 곡도 쓰고 책도 읽고 싶어단출한 차림으로 활짝 웃으며 그는 나타났다. 요즘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치즈 만들기에 몰두해 있다고 소개했다. 밥 먹고 차 마시며 이어지는 대화 속에 굳이 자신을 꾸미려 하지 않았고, 카메라 의식 없이 이따금 편안하게 담배도 피워물었다. 언론 인터뷰에 좀처럼 응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그는 "자연스럽게 잊히는 게 좋고, 잊혀도 상관없다"고 했다. 예민이라는 가수는 몰라도 자신의 음악은 끊임없이 새로운 연을 맺으며 살아움직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지난 2008년, 20여 년의 음악인생을 집대성한 앨범 '오퍼스'를 내고 가수활동을 접은 지 꼭 10년이 된 예민(52)은 "그냥 그때의 나는 그때의 나일 뿐이다. 한창 음악 활동할 때라든지 또 분교음악회 다닐 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동일인인가 싶다"고 말했다.당사자는 수긍하지 않지만, 예민은 젊은 시절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故김광석의 모교인 서울 대광고를 졸업한 그는 대학에 갓 진학한 1980년대 중후반부터 박선주의 데뷔곡인 '귀로', 여행스케치의 '난 나직이 그의 이름을 불러보았어' 등을 만들고 하수빈의 데뷔앨범을 프로듀싱했다. 스스로는 '아에이오우', '서울역'이 수록된 1집과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 '꽃이 바람에게 전하는 말'이 수록된 2집을 발표해 유명해졌다. 전부 3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이룬 것들이다. 이 시기 그의 서정적이고 아릿한 음악은 1980~90년대를 살아간 이들의 정서에 한 부분을 차지한다.예민의 음악은 자전적인 감성이 배어 있다. 노랫말에 실존 명칭이나 구체적인 연도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그의 음악에 가장 영향을 끼친 인물은 아버지다. 국민들이 애창하는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는 아버지 페인트공장이 있던 경기도 의왕의 유년기를 배경으로 한다."아버지와 나눈 이야기, 아버지와의 생활공간과 주변 모든 게 내 생각이나 음악, 사람을 대하는 마음을 만들어줬어요. 안양역에서 시외버스 갈아타고 내려서도 20분을 걸어 들어가는, 그 당시 의왕은 서울에서 두 시간이 넘는 거리였어요. 공장 근처에 밭이 한 200평 정도 있는 조그만 농가주택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1년에 대여섯 번씩 그 집의 색깔을 바꾸셨어요. 분홍색 초콜릿색 빨간색, 주말에 둘이 같이 칠하곤 했죠. 아버지는 직업화가도 아닌데 회화작품을 200여 점이나 남기고 항상 음악을 들려주시기도 했어요. 정원도 예쁘게 가꾸셔서 꽃 이름도 많이 알았고요. 일찍부터 자연과 예술을 가까이 접하게 해주신 게 저에게 컸어요. '산골 소년의 사랑 이야기'에 묘사한 풍광은 거의 그 동네 얘기예요."2집 발매 직후 예민은 대중적인 성공을 뒤로하고 돌연 미국으로 떠나 공부했다. '키요라', '세발 자전거와 바둑이'가 수록된 3집과 '마술피리', '기억 속에, 그 애가 있었네'가 수록된 4집 등 귀국 후 그의 음악은 자연의 품에서 삶을 관조하고 있었다. 계속 음악활동을 하는가 싶더니 그는 갑자기 또 기타 하나 메고 1년 여정의 분교음악회를 기획했다. 자비를 들여 2001년 9월부터 1년 동안 오산 삼미분교에서 도서벽지까지 전국 122개 분교, 7만여㎞를 순례하는 대장정이었다."음악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나를 분교로 데려간 것 같아요. 나한테 있어 음악은 무엇일까. 주어진 무대에서 관객과 만나 노래를 부르던 게 일반적인 형식이었는데 과연 음악이 인간을 그렇게 만났을까? 어떤 틀에 갇혀서 그것만이 음악이고 옳은 표현이라며 살아왔던 건 아닐까? 내 노래가 항상 내 입을 쫓아다녔다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1년 동안 내 노래가 어울리는 곳, 내 노래가 불렸을 때 행복해하는 공간으로 찾아간 것이죠."첫 분교음악회에서 노래를 불러주자 아이들은 전혀 집중을 못 하고 떠들어댔다. 심지어 노래를 하고 있는 그에게 "옥수수 드시라"며 말을 건넸다. 일방적으로 음악을 들려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실정에 맞춰 접근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였다.이후부터는 음악회를 하기에 앞서 정성스럽게 식탁보를 깔고 둘러앉아 아이들에게 코코아를 대접하며 대화를 나눴다. 아이들을 성숙한 인격체로 존중한다는 의미였다. 아이들의 꿈을 키워 줘야 한다는 그의 뜻에 동참해 아나운서 이금희, 피아니스트 박종훈 등 문화예술인들도 힘을 보탰다. 분교음악회에서 잠깐 마주한 두세 시간의 기억을 곱게 간직한 아이들은 성인이 돼서도 여전히 이메일로 안부를 전해온다."최근에야 문화사각지대라는 말이 실감 나지 않을 텐데, 당시는 연예인이 문화소외지역을 찾아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없었어요. 분교를 섭외하려 들면 '애들 몇 명 데리고 무슨 음악회?'라는 반응이었고 당연히 무대랄 것도 없었죠."교사와 주민들에게 일일이 상황을 설명해 가며 분교음악회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수많은 언론에서 관심을 가졌고, 찾아가는 문화예술프로그램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분교음악회가 이슈로 떠오르면서 CF 섭외까지 들어오던 때 그는 다시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별안간 이유 없이 떠나서 머물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라크와의 전쟁이 벌어진 날 미국의 거리는 여느 때처럼 사람들이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전날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거예요. 아, 이게 전쟁이 난 나라인가? 저쪽에서는 포탄이 터지고 공포에 휩싸여 있다는 걸 이들이 알까? 그런 괴리감이 들어 인도로 무작정 넘어갔다가 열병을 두 번 앓고 겨우 살아났죠."목숨 잃을 뻔한 경험을 하고 2000년대 중반 귀국한 예민은 버팀목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작곡에 착수해 2008년 '연리지', '빛나호' 등이 수록된 마지막 앨범을 발표한다. 80대 고령의 할머니가 부른 이 앨범의 타이틀곡 '나의 할머니, 그녀의 첫사랑'에는 그의 음악과 인생에 대한 철학이 담겨 있다. 혹자는 산골 소녀가 나이 들어 부른 노래 같다고도 했고, 예민만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이라는 호평이 따랐다."저는 음악프로그램에 출연해 노래해 본 게 총 세 번이에요. 제 음악이 홍보라는 매개로 사람들과 인위적인 연을 맺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먼 훗날 호흡과 성량이 희미해졌을 때 '산골 소년의 사랑이야기'를 불러보고 싶다는 바람은 있었는데, 음악을 재개하게 된다면 미련 없이 뒤돌아보지 않기 위해 정리한 게 마지막 앨범입니다."대중음악계를 떠난 예민은 2007년부터 음악인류학·고고학·음악교육학에 근간을 둔 아동 대상 문화교육프로그램 '뮤뮤스쿨'(Museum & Music School)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제3세계 악기를 두드리고 만지고 냄새 맡게 한다. 아이들은 악기의 소리가 아닌 두꺼비 소리와 비 오는 소리,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체험이 끝나면 저마다 원하는 재료로 세상 하나뿐인 악기를 창작하고 연주회를 열어 '내 악기만큼은 세계에서 내가 제일 잘 알고 내가 제일 잘 연주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얻는다.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의뢰로 올해 초 평창문화올림픽에서 '1학교 1국가 문화교류' 프로젝트를 감독했던 예민은 "영감을 통해 동기가 생기고 그 동기를 실현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경험, 그리고 피아노교본을 보며 예술이 아닌 손가락기술을 습득하는 경험 중 어느 방향으로 아이들을 이끌어야 할지 고민은 어른들의 몫"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다음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 의미 없는 한적한 곳에서 작은 과수원 가꾸며 곡도 쓰고 책도 읽고 싶다"며 미소 띤 채 먼 곳을 응시했다.글/김우성기자 wskim@kyeongin.com 사진/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예민은?▲1966년 서울 출생▲2003년 美코니시예술대학 현대음악작곡 전공▲1990년 1집 '아에이오우'▲1992년 2집 '산골소년의 사랑이야기'▲1997년 3집 '노스탤지어'▲2001년 4집 '나의 나무'▲2008년 5집 '오퍼스'▲2003년 '분교음악회 숲이 된 122개의 추억'(샘터) 발간▲2007년 (주)아티움오퍼스 설립▲2018년 평창문화올림픽 '1학교 1국가 문화교류' 축제형프로그램 총괄기획예민은 머리가 아닌, 손과 땀방울이 기억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 중 하나가 치즈만들기다. 주위에서는 "더 큰 일을 할 수 있으면서 왜 소박한 꿈만 꾸느냐"고 의아해 하지만, 그는 "의미 있는 일에는 크고 작은 게 없다"고 말한다. 사진/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사진/황성규기자 homerun@kyeongin.com/아티움오퍼스 제공문화소외지역을 대상으로 한 '찾아가는 음악회'에 대해 공감대가 전혀 없던 시절, 예민은 의문부호를 먼저 내미는 마을 주민과 교사들을 설득하고서야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었다. /아티움오퍼스 제공

2018-08-28 김우성

[평화시대, 경기도가 주도한다-미군 공여지](2·끝)국가주도개발 해외 사례는?

국유지로 추진되는 한국과 차이필리핀은 경제특구로 지정 활용미군 반환 공여지를 국가주도로 개발하기 위해선 먼저 반환 사업을 수행했던 다른 국가의 사례를 참고해 방식과 절차를 정립하는 등의 대응이 필요하다.일본 오키나와현은 전체 면적의 10%에 해당하는 2억2천800만㎡ 가량이 미군전용시설로 사용됐다. 일본 전체로는 미군전용시설의 73%가 오키나와에 밀집해 있는 것으로, 이는 전체 미군 공여지의 87%(2억1천57만㎡)가 몰린 경기북부와 상황이 비슷하다. 일본은 미군전용시설 면적 절반 정도를 반환받아 민간을 통해 주거지역으로 개발하고 있다. 공공은 토지정리·개량 등의 역할을 하며 반환은 일본 방위시설청이 전담해 진행한다.일본의 경우, 토지 소유권을 국가·민간·오키나와현이 30%씩 분담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군 공여지가 국유지인 우리와는 다른 상황이다.독일·필리핀도 미군 반환 공여지 문제를 겪었다. 우리와 같이 국유지를 미군에 공여한 독일과 필리핀은 전담기구를 통해 개발 작업을 벌였다. 독일은 연방부동산관리청을 통해 부지를 매각하고, 매각된 토지를 지자체·민간이 개발하는 방식을 취했고 필리핀은 공여지 구역을 경제특구로 지정해 활용하며 각각 차이를 보였다.경기북부 공여지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한 위탁 개발, 서울 용산기지의 경우처럼 국가 예산을 직접 투입하는 방법 등이 모두 거론되고 있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2018-08-27 신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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