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경기)

[이슈&스토리]광역철 스크린도어 설치, 어디까지 왔나

139개 역중 66개 역은 설치 안했거나 작동안해5년간 96명 사망·70명 부상 안전사고 쏠림현상교통약자·음주후 부주의 폭넓게 손배책임 인정공사작업 '현실적 고충' 작년 100% 완료 못지켜미설치역 선로당 안전요원 2명뿐 실효성 논란내달까지 모든역 가동… 현실적 보완대책 필요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현장에서 바뀐 것은 거의 없는 상태다. 광역철도를 이용하는 국민들의 '안전'은 당초 계획보다 늦어지는 스크린도어 설치로 또 한 번 유예됐다. 지난 2015년 국토교통부와 한국철도시설공단(공단)은 국민의 안전을 위해 2017년까지 총 139개 역에 이르는 모든 광역철도역에 승강장안전문(스크린도어)을 설치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8월 스크린도어 미설치 역에서 투신사고가 잇따르고, 기한 내 스크린도어 설치는 무리라는 지적이 제기되자 국토부는 2017년내 '100%' 설치 완료를 공약했다. 하지만, 2018년 1월 현재 139개 역 중 66개 역은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았거나, 설치됐지만 작동되지 않고 있다. 이때문에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든다는 문재인 정부의 약속이 공염불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 투신사고 몰리는 스크린도어 미설치 역지난해 8월31일 안산선(4호선) 중앙역에서 A(22·여)씨가 선로에 스스로 뛰어들어 오이도 방면으로 향하던 전동차에 치여 숨졌다. 같은 달 2일 비슷한 투신사고로 50대 남성이 사망한 지 불과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4개월 후인 12월에는 80대 남성이 선로에 뛰어들어 진입하던 전동차에 치여 숨졌다. 한 해 같은 역에서 3번의 투신사고가 벌어진 것이다. 당시 중앙역에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았다. 스크린도어 미설치 역인 초지·수리산역(안산선)에도 각각 2건과 1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하는 등 2017년에만 총 6건의 광역철도역 투신사고가 잇따랐다. ┃표 참조4일 자유한국당 박완수 국회의원이 국토부와 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2012~2016년)간 투신·추락 등 승강장 안전사고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총 96명이다. 부상자 70명까지 포함하면 사상자는 모두 166명에 이른다. 지난해는 8월 기준 8명이 사망하고 6명이 다쳤다.문제는 스크린도어 미설치 역이 이미 투신사고 빈발지역으로 낙인됐다는 것. 이로 인해 미설치 역이 주소지 근처가 아니더라도, 투신을 하기 위해 미설치 역을 찾는 경우도 발생했다. 실제 지난해 8월 중앙역에서 투신한 A씨의 주소지는 안산시가 아닌 서울시였다.경기도자살예방센터 관계자는 "장소와 시간 등은 매우 민감한 부분이다. 비슷한 장소에서 연속된 투신사고가 잇따르는 건 넓게는 '베르테르효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통약자 보호 못하는 정부지난 5년(2012~2016)동안 '지하철 추락 사상사고' 현황을 보면 총 25건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중 3명이 사망하고, 22명이 중·경상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눈에 띄는 것은 사망하거나 다친 25명 중 10명이 시각장애인이거나 (전동)휠체어를 타는 교통약자였다. '시각장애인 추락'이 2건, 휠체어 조작 미숙으로 인한 사고가 8건이다. 나머지는 술을 마셨거나,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부주의로 인한 사고였다. 결국 스크린도어 설치 없이는 보호가 필요한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의 안전은 담보할 수 없는 셈이다.일각에서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것이 아닌, 이러한 사고가 개인의 부주의로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난 2012년 1급 시각장애인인 B씨가 선로로 추락해 한국철도공사에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법원은 "스크린도어 미설치 등 장애인에 대한 안전조치 보호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에 책임이 있다고 보아 손해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또 같은 해 교통약자가 아닌, 음주 후 부주의로 인한 추락사고에 대해서도 법원은 "추락사고를 가장 잘 예방할 수 있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고, 예방을 위한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지 않았다"며 철도공사 측에 일부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스크린도어 미설치에 대한 안전책임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스크린도어 설치 안하나, 못하나각종 투신·추락사고를 예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역철도역 스크린도어 설치는 계속 늦어지고 있다.사실 국토부와 공단의 '2017년' 설치완료는 무리한 계획이었다. 사고가 잇따르자 부랴부랴 당초 설치계획을 6년이나 앞당긴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토부와 공단이 두 차례에 걸친 공언에도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은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설치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공단 측은 공사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실제 설치작업은 협소한 공간에서 벌어지다 보니, 많은 노동자를 투입한다고 해서 일의 효율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하루 작업은 열차 운행이 모두 종료된 새벽 시간 3~4시간 정도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스크린도어 가동에 필요한 '비상전원 공급장치' 납품업체가 갑자기 부도가 나는 악재도 겹쳤다. 이로 인해 53개 역은 스크린도어 설치를 완료하고도, 운영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단 관계자는 "군포역 등 53개역은 비상전원 공급장치 등이 설치되면 즉시 시운전을 시행하여 2월까지 정상가동하고, 승강장 구조보강공사 등이 추진 중인 13개역은 2월부터 순차적으로 정상가동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예된 안전 지킬 방안은광역철도 모든 역에 대한 스크린도어 설치완료와 가동은 다음 달 말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남은 건 계획보다 늦어진 스크린도어 미설치 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투신·추락사고를 '어떻게' 예방할 것인가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이다.국토부와 공단은 지난해 1월부터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승객이 몰리는 출·퇴근 시간대에 승강장 안전요원을 배치하여 안전사고 예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지난해 발생한 대부분의 투신사고는 현장에 '안전요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것이어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실제 스크린도어 미설치 역의 안전요원은 선로 당 2명에 불과한 실정이다. 10량에 달하는 열차 구간을 단 2명이 맡아서 투신·추락예방 등 안전관리를 하고 있어 스크린도어 설치가 완료될 때까지만이라도 이에 대한 보완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갑자기 뛰어드는 사람들을 막는 것은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 현재 배치된 안전요원을 제외하고도 공단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 안전관리도 진행하고 있다"며 "안전사고 예방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지난해 5월 출근과 등교를 앞둔 승객들이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은 승강장에서 들어오는 열차를 기다리고 있다. /경인일보DB

2018-01-04 배재흥

[인터뷰… 공감]'인천시 산업평화대상' 전국자동차노련 인천노조 김성태 위원장

도로위 4800여 조합원에 수상 영광 돌려1975년 고속지부 조직부 노동운동 첫발1980년 강제해산 재설립까지 8년 '공백'취임 초기 계약직 전환·임금체불 '심각'준공영제 도입 정규직 비율 80%로 올려근로조건 개선으로 서비스 질 향상 뿌듯동네 방방곡곡에 실핏줄처럼 퍼져 시민의 발이 되어주고 있는 시내버스는 그 어떤 사업장보다도 노사관계가 중요하다. 버스 노동자와 사용자 간 관계가 어긋난다면 매일 버스를 타는 시민들이 정상적인 일상을 누리기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2009년 인천시가 인천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도입한 이후 버스운송사업의 공공성은 더욱 커졌다. 인천시는 건전한 노사관계로 지역경제 발전에 이바지한 단체의 공로를 기리는 취지로 매년 '인천시 산업평화대상'을 수여하고 있다. 2017년 제27회 수상자로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인천지역노동조합이 선정됐다. 운수분야 노동단체가 개인이 아닌 단체자격으로 인천시 산업평화대상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전국자동차노련 인천노조는 총 29개 지부(시내버스 23개, 시외버스 5개, 화물 1개)를 뒀고, 조합원은 4천800명에 달한다. 인천 버스노동자의 95%가 조합원이라서 교섭대표권을 가진 노조다.김성태(70)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인천지역노동조합 위원장은 "시내버스 준공영제 시행 이후 대중교통문화 정착과 인천지역 경제발전을 위해 더욱 전력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며 "산업평화대상 수상의 영광은 열악한 근로여건에도 묵묵히 참고 견디며 도로 위에서 고생하는 4천800여 조합원에게 돌린다"고 소감을 밝혔다.전국자동차노련 인천노조는 1988년 9월 설립돼 올해로 꼭 30년째를 맞았다. 당시 9개 회사의 노동조합에 조합원 1천300여 명으로 출범해 지금의 규모로 확대됐다. 하지만 전국자동차노련 인천노조의 역사는 30년에 그치지 않는다. 전국자동차노련 인천노조는 전두환 정권 초기에 단행한 '노동조합 정화지침' 중 '지역지부 폐지' 명령에 따라 1980년 해산된 바 있다. 김성태 위원장은 1975년 3월 전국자동차노련 고속지부 조직부에 입사해 지역지부 폐지 조치 당시 인천노조에서 일하고 있었다. "20대 후반에 전국자동차노련 고속지부 차장으로 인천에서 노동운동의 첫걸음을 뗐습니다. 새벽 5시에 시내버스 노선에 나가 조합원인 운전기사들에게 자동차노보를 나눠주면서 조합원들의 고충을 실감할 수 있었어요. 새벽 4시에 출근해 자정까지 운전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운수노동자들의 뒷모습을 보며 고군분투하겠다고 결심한 게 40년 넘게 노동운동에 투신한 원동력입니다. 전두환 정권의 정화 조치로 인천노조가 강제 해산됐을 땐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좌절하지 않고 전국자동차노련 인천연락협의위원회(인천지역협의위원회)를 구성해 사무국장을 맡았어요."노조를 재설립하기까지 8년간의 공백기는 인천지역 운수종사자들의 암흑기나 마찬가지였다. 군사정권 속 인천연락협의위원회는 조합비를 걷을 수조차 없어 형편이 어려웠지만, 운수종사자들의 저임금 문제와 열악한 근무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애썼다. 1983년부터 소비조합을 열어 조합원에게 생필품을 비롯한 각종 상품을 저렴하게 공급해 간접적으로나마 임금인상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화물운전기사 조합원이 교통사고로 숨졌는데, 장례비가 없어 유가족이 어려움을 겪자 김성태 위원장이 직접 염(殮·시신을 수의로 갈아입혀 베로 싸는 의식)을 한 적도 있다."그때만 해도 운수분야가 차종별로 특수성이 있어서 버스는 동료가 죽으면 가지만, 화물은 잘 안 갔어요. 다들 어렵게 살 때니까. 조합원이 죽고 나서 염을 몇 번이나 하면서 이 사람들을 위해 과연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이 많았습니다."김성태 위원장은 1985년 쌍마교통을 시작으로 인천지역 택시업계 노동조합 설립에 적극 나섰다. 현재 택시노조는 전국자동차노련에서 분리됐지만, 1988년까지 인천에는 43개 택시회사에서 노조가 탄생했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1987년 택시노동운동에 뛰어든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국회의원과도 이때 인연을 맺었다. 김성태 위원장은 "송영길 국회의원, 한국노총 출신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비롯해 노동운동하다 만난 노동계 출신 정치인들과는 여야 가릴 것 없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라고 했다. 김성태 위원장은 전국자동차노련 간사장을 거쳐 2000년 5월 인천노조 위원장에 당선돼 현재까지 연임하고 있다. 위원장을 맡자마자 인천지역 버스회사들이 소속 운전기사들을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임금 체불 문제도 심각했다. 김성태 위원장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2001년 6월 버스운송사업조합 사무실에서 점거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전국자동차노련 인천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다음 날인 2001년 6월 29일 밀린 임금을 지급하기로 사업주들과 극적으로 합의해 점거농성은 일단락됐다. "위원장을 맡아 10일 동안 사측인 버스운송사업조합을 점거하면서 강력하게 투쟁했고, 한국노총 중앙협의회도 전국자동차노련 인천노조 사무실에서 개최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사업주와 인천시를 압박했습니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확산하는 것을 막지 못해 아쉬웠습니다. 2002년 임단협 체결 때 인천지역 시내버스 경영악화로 인천에서 가장 큰 제물포버스 등 일부 회사의 부도위기로 조합원 상여금을 2년간 반납한 적도 있었고요. 조합원 모두가 살과 뼈를 깎는 고통이 있었지만, 회사가 부도나면 조합원이 일자리를 잃기 때문에 버스회사를 회생하는 데에 앞장서기로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부도위기 속 기사회생해 지금까지 노사분규 없이 건전한 노사관계로 발전했습니다."김성태 위원장은 시내버스 민영제에서 일어난 '경영악화~체불임금~서비스 저하'라는 악순환을 극복하기 위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댄 시내버스 준공영제 도입을 소중한 성과로 꼽았다. 전국자동차노련 인천노조가 시내버스 준공영제를 요구한 것은 2004년 임단협 교섭부터다. 사측과 노조, 인천시 간 협상과 연구를 이어오다가 2009년 도입했다. 버스 준공영제 시행으로 75%가 비정규직이던 시내버스 운전기사의 정규직 비율은 80%까지 올랐다. "이미 8년 전부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 시작해 문재인 정부보다 한발 앞선 정책의 결실이었다"고 김성태 위원장은 강조했다. 근무여건도 격일제에서 1일 2교대로 바꿔 근무시간을 단축했다. 버스 1대당 운전기사 수는 평균 1.9명에서 2.35명으로 늘었다. 인천 시내버스 교통사고율은 19% 줄어 운전기사 처우 개선과 시내버스 서비스 향상에 모두 이바지했다는 평가다. 2016년에는 임단협을 통해 월 24일 근무에서 임금을 보존한 월 23일 근무로 전국 최초로 근무일을 1일 줄였다. "버스 준공영제의 핵심은 그동안 부실경영에 찌든 버스업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경영 효율성을 담보하는 동시에 버스 운전기사 등 내부 구성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바로 대(對) 시민 서비스 질의 향상으로 나타납니다. 대중교통정책은 복지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2016년 7월 말 인천도시철도 2호선 개통에 맞춰 시내버스 노선이 전면 개편됐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노선 개편으로 현재 시내버스 수입금이 200억원 이상 줄었습니다. 자연스레 준공영제 재정지원액이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준공영제의 제도가 잘못돼 재정지원이 증가한다고들 하지만, 오해가 있습니다."김성태 위원장은 시내버스 운행은 '대중교통복지'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시내버스 준공영제는 사업주가 이윤추구에 몰두해서도, 인천시가 수익성만 따져서도 안 된다는 게 그의 철칙이다. 김성태 위원장은 "시내버스 준공영제가 인천시민의 세금으로 지원되는 만큼 법률에 근거한 행정관리로 사용자에 대한 지원 예산은 정확한 용역을 통해 해야 한다"며 "철저한 관리·감독으로 세금이 헛되이 새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운수종사자들은 인천시민이 불편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에 역점을 두겠다"고 다짐했다. 전국자동차노련 인천노조 사무실은 인천 남구 수봉공원 쪽에 있다. 1980년에 지어 지금까지 쓰고 있는데, 노조위원장실 안에 있는 소파부터 메모함까지 사무실 건물과 나이가 같다. 김성태 위원장은 "조합원들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노조를 운영하기 때문에 메모함 하나라도 쉽게 바꾸지 않으려 한다"며 "앞으로도 지속해서 장시간의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노력하고, 운전자의 충분한 휴식시간이 보장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김성태 위원장은?▲1948년 충남 서산 출생▲인천 송도고 졸업, 서강대 산업문제연구소 수료▲1975년 전국자동차노련 고속지부 조직부 입사(사진)▲1980년 전국자동차노련 인천지역협의위원회 사무국장▲1987년 전국자동차노련 간사장▲2000년~현재 전국자동차노련 인천지역노조 위원장▲2000년~현재 한국노총 인천본부 부의장·지도위원▲2001년~현재 전국자동차노련 부위원장▲2002~2017년 인천지방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2012년~현재 인천시 수입금공동관리위원회 위원▲1990년~현재 새얼문화재단 운영위원김성태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인천지역노동조합 위원장이 "시내버스 준공영제 시행 이후 대중교통문화 정착과 인천지역 경제발전을 위해 더욱 전력하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며 "산업평화대상 수상의 영광은 열악한 근로여건에도 묵묵히 참고 견디며 도로 위에서 고생하는 4천800여 조합원에게 돌린다"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김성태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인천지역노동조합 위원장(가운데)이 2001년 인천시 버스운송사업조합 사무실 점거농성 당시 체불임금 지급 등을 요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전국자동차노련 인천노조 제공

2018-01-03 박경호

[이슈&스토리]예술 작품 속 이야기가 된 인천의 섬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의 '인천아라리'장봉도 '인어설화' 재즈 더해 재창작굴포문학회 27명, 여름 내내 섬 찾아시·수필·소설 담긴 작품집 '섬' 발간 인천 '토박이 서양화가' 고제민 작가포구·개항장 일대 등 캔버스에 담아섬은 영화나 소설 등의 무대로 단골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인천의 바다에는 170여개의 섬이 뿌려져 있는데, 최근에도 이러한 활동은 활발하다.# 음악으로 부활한 섬지난 26일 인천 송도신도시 트라이보울 공연장에서는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의 '인천아라리' 공연이 열렸다.'인천아라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2017전통예술 지역브랜드 상설공연 지원사업'에 선정된 작품으로 '장봉도 인어설화 음악으로 부활하다'는 부제가 붙은 공연이었다.이 공연은 인천의 섬 지역에서 만선과 풍어를 기원하며 부르던 어민들의 소리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보인 창작 작품이다.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은 인천에서 활동해 온 창단 25년 전통의 문화예술 사회적기업으로 인천아라리는 잔치마당의 대표 레퍼토리다.인천 앞바다 장봉도에서 어부의 은덕을 만선과 풍어로 보답한 '인어설화'를 모티브로 제작된 공연으로 전통 연희의 원음에 재즈의 느낌을 더해 재창작했다.해안가와 농지가 공존한 과거 인천의 고유한 소리와 이야기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해석해 선보였다.이날 공연은 첫 곡으로 연주된 '나나니타령'으로 시작됐다. 전통 북과 꽹과리, 장구 등의 악기에 신디사이저, 일렉기타 등이 곁들여진 음악이 시작되자 8명의 아낙들이 호미를 들고 갯벌에 나섰고, 모두 허리를 숙이고 조개를 캐기 시작했다. 조개를 캐고 한 번씩 펴고 숙이기를 수차례, 바구니를 조개로 가득 채운 아낙들은 이내 밝은 표정으로 수다를 떨며 웃음을 지었다.고층 빌딩이 가득한 송도 신도시에 우주선을 닮은 공연장 안에서 인천의 섬마을에서조차 자취를 감춘 노동요를 감상한 외국인 관광객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시종일관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나나니타령은 인천 앞바다 여러 섬지방의 아낙들이 굴이나 바지락을 캐면서 부르던 노래로 인천시 무형문화재 제3호인 인천근해갯가노래보존회 차영녀 보유자를 비롯한 회원들이 나서서 첫 무대를 꾸몄다.첫 곡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얼씨구', '절씨구', '잘한다'하는 추임새와 박수가 터져나왔고 외국인들도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이날 공연은 총 3마당으로 구성됐다.잔치마당은 1마당은 '인천의 바다'를 주제로 인천의 바다와 섬을 주제로 한 '만선가', '술비타령' 등의 곡을 선보였고 2마당에서는 '인천의 육지'를 주제로 설장고 시나위와 세벌매기 등의 곡을 들려줬다.인천의 아리랑을 재현해 선보인 3마당 '인천아리랑'도 무척 흥미로운 무대였다.인천아리랑은 조선말기와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쓴 미국 감리교 선교사이자 교육자인 호모 헐버트 박사에 의해 채보된 곡으로 1894년 우편호우치 신문에 수록돼 '인천 제물포 살기는 좋아도 왜인 등살에 못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어얼쑤 아라리야'라는 가사와 함께 기록이 남아 있었다.이를 김영임 명창이 부른 '쌀의 노래 아리랑'음반에 수록, 발매돼 있다. 최근에는 영화 '대장 김창수'에서 경인철도 공사를 하는 노동자들에 의해 '인천아리랑'이 불리는 모습이 나와 눈길을 끌기도 했다.# 문학으로 부활한 섬지난 24년간 단 한차례의 결산 없이 해마다 동인지를 펴낸 여성 문인회 '굴포문학회'는 올해 섬을 주제로 '섬'이란 제목의 작품집을 발간했다.굴포문학회 27명의 회원들이 여름내내 섬을 스케치하고 편집한 시와 수필, 소설이 담겼다.27명의 필자가 각인각색의 섬을 재창조했다.소야도, 영종도, 제주도, 원산도, 울릉도, 굴업도, 우도, 자월도, 거제도, 세어도, 운염도, 풀등, 홍도, 무의도, 마라도, 누렴, 무인도, 오륙도, 이작도, 석모도 등을 모셔와 고운 문자를 입혀 책으로 펴냈다.세상엔 섬 아닌 것이 없다. 창밖의 뭍을 바라보는 이태원 헬 카페도 섬이고, 건너갈 다리가 없는 우주의 모든 별도 섬이고, 벽에 걸린 모자도 섬이다. 구부정하게 책을 읽는 노인의 미소도 섬이고, 벙어리장갑 속에 갇힌 열 개의 손가락도 섬이고, 가려운 등짝 손이 닿지 않는 부분도 섬이다.사는 동안 수심을 앓는 여자들, 바다를 겹겹이 입은 여자들의 향긋한 비린내를 좇아 작품집 '섬'을 여행하다 보면, 다람쥐처럼 저장해놓고 까마득히 잊어버린 미안한 과거가 문득 생명을 얻어 부화하는 기쁨을 맛보게 된다.강명미(시), 고경옥(시), 구자인혜(소설), 김상기(수필), 김수지(시), 김순자(시), 김순희(수필), 김진초(소설), 민순영(수필), 배천분(수필), 신경옥(시), 신미송(소설), 양진채(소설), 유로(수필), 윤한나(시), 이난희(수필), 이목연(소설), 이상은(시), 이성재(수필), 이수니(시), 이혜숙(시), 장향옥(시), 정이수(수필), 조경숙(시), 조연수(시), 최추랑(시), 허은희(시) 등의 작가가 참여했다.# 화폭에 담긴 섬인천 토박이 서양화가 고제민(57) 작가는 인천의 섬을 비롯한 인천의 모습을 그린 그림과 짧은 글 등을 담아 최근 작품집을 냈다.지역의 한 인터넷 매체와 인천시 소식지에 연재한 작품을 추려 책으로 엮었는데, ▲인천항 ▲인천의 섬 ▲인천 마을 이야기 ▲글과 스케치 등 4부로 구분해 작품을 실었다. 작가는 1960년 인천 남구 숭의동 '독갑다리'라고 불리는 옛 공설운동장 인근 동네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좋아하는 그림 공부를 하기 위해 고등학교와 대학을 서울로 다니다, 1984년부터 다시 인천으로 와 30여 년간 인천에서 미술교사로 재직 중이다. 작가는 50이 다 돼서야 인천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고, 인천의 섬과 바다, 노을이 깔린 북성포구,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송월동 골목길, 백령도·굴업도 등 개항장 일대 등을 캔버스에 차곡차곡 담아 그려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송도신도시 트라이보울 공연장에서 열린 전통연희단 잔치마당의 '인천아라리' 공연. 인천의 섬 지역에서 만선과 풍어를 기원하며 부르던 어민들의 소리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보인 창작 작품이다.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제공인천 토박이 서양화가 고제민 작가가 인천의 섬을 비롯한 인천의 모습을 그린 그림과 짧은 글 등을 담아 낸 최근 작품집. /굴포문학회 제공지난 24년간 단 한차례의 결산 없이 해마다 동인지를 펴낸 여성 문인회 '굴포문학회'. /굴포문학회 제공굴포문학회가 올해 섬을 주제로 발간한 작품집 '섬'. 굴포문학회 27명의 회원들이 여름내내 섬을 스케치하고 편집한 시와 수필, 소설이 담겼다. /굴포문학회 제공

2017-12-28 김성호

[인터뷰… 공감]42년 공직생활 마감 앞둔 홍승표 경기관광공사 사장

문학소년, 가정형편 어려워 대학진학 대신 택한 길경인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 이후 비서실로 자리옮겨열심히 산 덕에 선·후배 신망 높아… 명퇴 후 비서실장 복귀흑자 전환 등 성과로 화답… 이제 글 많이 쓰고 싶어평생 글쟁이로 살고 싶었다. 절절한 시구처럼, 시를 위해 살고 싶었다. 하지만 인생은, 꿈처럼 살 수만은 없었다. 그 시대는 다 그랬다. 전쟁이 막 끝난 1956년, 경기도 광주 시골마을에서 6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난 홍승표는 하고 싶은 공부를 다할 수 없었다. 특히 시를 사랑하는, 심성 착한 문학소년은 내 욕심만 부릴 수 없었다. 홍승표 경기관광공사 사장은 오는 29일을 끝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한다. 글쟁이로 살고 싶었던 문학소년이 생계를 위해 공직에 입문한 지, 42년 5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반세기에 가까운,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첫머리로 그는 문학소년이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연세대학교에서 주최하는 전국 고등학생 문예콩쿠르가 있었어요. 난 시조를 써 냈는데 장원을 했지. 그 문예콩쿠르는 국문학과 장학 특전도 있어 대학에 진학해 공부를 해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형은 군대에 가 있고, 밑으로 딸린 동생들이 수두룩해 집안 형편상 차마 대학 가겠단 말을 못하겠더라고. 학교 선생님들이 학비를 지원해준다 했지만, 광주 시골에서 서울까지 하숙비를 감당할 수 없으니까." 때마침 광주시 공무원 채용공고가 났는데, 그는 혹시 하는 생각에 가볍게 시험을 봤단다. 그리고 덜컥 합격을 하면서 공직에 들어섰다. "대학은 나중에라도 갈 수 있으니, 일단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어요. 그때 아버지는 미안하셨는지, 공무원을 반대하시더라고.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공직생활이지만, 글 짓는 재주 덕에 공보실로 발령받아 보도자료 쓰는 일을 했다. "공직생활을 돌아보면 홍보와 인연이 깊어요. 처음 공보실로 발령받고 보도자료를 썼는데, 그래도 잘 썼는지 내가 쓴 대로 신문에 나는 적도 많았어요. 전입시험을 봐 도청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공보실에서 일했는데 그때도 계속 보도자료를 썼어요. 공무원 되고 내리 3년은 보도자료만 작성한 것 같아요." 업무에서도 계속 재주를 써먹은 덕일까. 1988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새벽, 숲길에서'로 당선됐다. 공무원 홍승표 이름 뒤에, '시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순간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글 잘쓰는 공무원으로 소문이 난 덕에 그의 공무원 인생에 변화가 일었다. 비서실 근무가 계기다. 당시는 임명제인 관선 도지사 시절로,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각 과에서 도지사의 기념사를 준비했는데 그 수준이 형편없었단다. '글 잘 쓰는 놈'을 골라오라는 도지사의 엄포에, 마침 신춘문예에 당선된 그는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비서실로 끌려갔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도지사를 수행하는 비서실 근무를 연이어 했다. 관선시절 임사빈 지사를 시작으로 이재창, 윤세달, 심재홍, 임경호 지사의 비서실에서 일한 데 이어 민선 도지사인 임창열 지사와 남경필 지사까지 총 7명의 도지사를 보좌했다. 경기도를 이끄는 수장의 곁을 지키는 일은 보람되지만, 고달픈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 능력을 인정받아 문화정책, 관광, 총무, 자치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고 과천시·파주시 부시장, 자치행정국장, 도의회 사무처장, 용인시 부시장 등을 역임하며 동료, 선후배들의 신망을 쌓았다. "당시 인사계에 와서 인사기록카드를 보니 광주시와 달리 도는 대학 나온 사람도 많고 행정고시 출신도 많았어요. 뒷배도 없고, 학력도 짧은 시골 촌놈 입장에선 황당하더라구요. 큰일 났다 싶어 무조건 열심히 했어요. 매일 제일 먼저 새벽 출근해서 가장 늦게까지 일했어요. 성실함을 좋게 봐준 덕에 좋은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특히 그는 동료와 후배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공무원으로 유명하다. "지금도 비슷하지만, 당시 7급 봉급이 봉지쌀로 6개, 연탄 20장 살 돈 밖에 안되는 월급이었어요. 내가 힘들었던 만큼, 주사보 이하 후배들은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이 간부가 돼 가장 먼저 들었어요. 그래서 같이 일하는 직원들 밥은 무조건 제가 사줬어요. 지갑을 못 열게 했죠. 또 총무과장을 할 때, 도지사를 설득해 도청 공무원 건강검진에 암 검진을 항목에 넣었어요. 그때 실제로 10명 가량의 직원들에게서 암이 발견됐고 치료를 받았어요." '경기도를 빛낸 영웅' 선정, '다산대상 청렴봉사 대상' 수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그지만, 도청 공무원들이 직접 선정한 '함께 근무하고 싶은 베스트 간부 공무원'에 4년 연속 선정된 것이 가장 보람차다. 그 마음 때문일까. 그는 2013년 용인시 부시장을 끝으로 명예퇴직을 했지만, 세간의 시선을 무릅쓰고 남경필 지사와 후배 공무원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다시 비서실장을 했다. 1급 관리로 퇴직한 그가 4급으로 돌아왔고, 연금도 전부 중지되고 퇴직금도 반납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그 마음 속에서는 30년을 몸담은 도청 식구들과 새 도지사가 화합해 도민을 위한 도정을 꾸리는 데 도움이 돼야겠다는 한가지 마음 뿐이었다.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일했던 지난 2년의 시간도 그는 허투루 쓴 적이 없다. 비싼 관용차 타고 '사장' 역할만 하지 않았다. 경기도 산하기관장이 직접 도내 31개 시군을 돌아다니며 공동 관광 마케팅과 상품개발 협력을 위해 뛰었다. 덕분에 31개 시군과 관광마케팅을 진행하고, 연천군과 연강 갤러리·그리팅 맨 설치사업을, 수원시와 2016 수원화성 방문의 해 협업을 해냈다. 또 민간업계와 적극적인 스킨십을 통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다양한 프로모션을 추진했다. 임기 마지막 달인 12월에도 그의 일정은 일거리로 빠듯했다. 아시아나와 협력해 대만 관광 프로모션을 성대하게 진행해 타지역 관광공사들로부터 시샘을 받았다."산하기관장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들이 많아요. 공무원 시절엔 사실 비행기 탈 기회도 없는데, 기관장이 되니 비행기 탈 기회도 많구요. 하지만 꼭 필요한 일 외에는 직원들을 보냈어요. 비즈니스 좌석을 바꿔 이코노미로 타고 줄인 비용으로 직원을 더 데리고 갔죠. 생각해보세요. 나는 임기가 끝나면, 갈 사람이지만 직원들은 이곳에 남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 관광공사를 책임지고 사장까지 해야 돼요. 그 토대를 마련해주려고 더 열심히 했습니다." 매일 적자였던 공사는 홍 사장의 취임 후 15억 흑자 기관으로 바뀌었고, 다양한 사업을 통해 경상비용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에 올랐다. 전국 공공기관 내부만족도 조사에서 1위를 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그간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니, 천생 공무원이다. 또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선배다. "공무원은 권한이나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닙니다. 국민이 위임한 일을 심부름하는 역할입니다. 일부 선후배 공무원들이 그것을 권력이라 착각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은퇴 후에 결코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없어요. 공무원은 내가 맡은 이 업무가 국민의 불편을 덜게 하는데 쓰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후배 공무원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며 그가 후배들에게 던지는 조언이다. 간결하지만, 정확하다.이제 무엇을 할 것이냐 묻는 질문에 그는 쑥스럽게 웃으며 '무조건 쉴 것'이라고 답했다. 한시도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해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를 법하다. "이제 두달 간은 아무 생각없이 쉬어보려고 합니다. 그 후의 일은 또 연이 닿는 만큼 해봐야죠. 적십자나 공동모금회 같은 봉사단체에서도 일하고 싶고, 무엇보다 글을 많이 쓰고 싶어요." 쉬겠다면서도 그는 또 꿈을 꾼다. 아마도 그것이 그의 인생을 반짝이게 하는 원동력이리라. 글/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홍승표 사장은 누구?▲1956년 경기 광주 출생▲광주상업고-국제사이버대학 법률행정학사-경기대행정대학원 행정학과 석사▲1975년 경기 광주 공보실에서 공직생활 시작▲과천시부시장-파주시 부시장-경기도 자치행정국장-경기도의회사무처장-용인시 부시장▲2014년 7월~12월 경기도 비서실장▲2015년 1월~ 경기관광공사 사장 - 수상경력▲경인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1988)▲정부 모범 공무원(1986)▲국무총리 표창(2003)▲다산대상 청렴봉사부문 대상(2010)홍승표 경기관광공사 사장은 반세기에 가까운 공직생활을 회상하며 "공무원은 권한이나 권력을 가진 자가 아니며 국민이 위임한 일을 심부름하는 역할"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2017-12-26 공지영

[우리시대의 품앗이人(K-Pumassian)]홍미선 동두천 엔젤 봉사회장

보산동 주공아파트 부녀회장 맡아 인연회원들과 요리로 소통… 남편들도 동참폐지·고철·공병 팔아 경로잔치 등 앞장15년간 부업·기부 바쁜 삶 '감동 스토리'"남편과 아이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없다면 이웃을 돌아볼 겨를조차 없을 거예요"회원들과 함께 손발을 맞춰가며 밑반찬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있는 동두천시 엔젤 봉사회장 홍미선(55) 씨는 음식을 만들 때면 재미가 절로 난다면서 함박웃음을 지었다.지난 1990년 공무원인 남편 서재석(62) 씨와 결혼한 뒤 충남 당진이 고향인 그녀는 동두천시 보산동 주공아파트 부녀회장 직을 맡게 됐고 봉사활동과 연을 맺었다.폐지와 고철, 공병을 주워 팔아 마을 노인들을 위한 경로잔치 자금을 마련한다는 것이 힘들고 낯설었지만 그녀는 '작은 노력으로 남을 이롭게 한다'는 마음 하나로 주민화합에 앞장섰다.부녀회장직을 맡은 지 3년이 지나자 그녀는 통장도 맡게 됐다. 그녀는 동사무소와 마을 구석구석을 다니며 행정기관과 주민들 간 사랑의 연결고리에 나섰고 봉사를 위한 발걸음은 이전보다 더욱 바빠졌다. 때문에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들과 딸은 '엄마가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늘 말을 꺼내면 '봉사 활동을 하러 나가시는구나'하고 자연스레 받아들였다.지난 2008년부터 그녀는 엔젤봉사회에 가입해 주 1회 장애인, 독거 노인, 한 부모가정 등 30가구에 밑반찬을 제공하기 시작했다.밑반찬 전달 하루 전에 회원들이 모여 김치와 고기, 생선요리를 만들면서 주방은 동네 이야기방이 됐고 풍성한 가정사와 세상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매주 전달된 반찬 통이 비워진 것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하는 그녀는 '고맙다'라는 인사말보다는 건강한 모습으로 얼굴을 대할 때 행복감이 더 크다고 말했다.운영비 50%를 개인 2만 원 이상 회비로 충당하는 봉사활동이지만 '받아먹기만 해서 정말 미안하다'는 어떤 주민은 5년째 해마다 10~30만 원을 기부하고 다른 이는 자신이 재배한 배추, 무, 파, 호박 등을 봉사회 주방 앞에 몰래 가져다 놓고 가는 등 봉사자들에게 감동과 힘을 보태주고 있다.아줌마들만 있던 봉사회에 4년 전부터는 남편들까지 합류해 아내 손에 힘을 실어주고 오손도손 호흡을 맞추고 있다.지난해 41년 공직생활을 마감한 남편 서 씨는 "혹여 바쁜 일과로 아내 건강이 염려스럽지만, 27년 동안 나보다 아픈 가슴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스러워 동참을 결심했다"고 말했다.15년 동안 하루 4시간씩 우체국 집배원 아르바이트와 동 협의체 위원장까지 맡은 그녀는 자정 가까이 잠들기 전까지 직장인보다 더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그녀는 "많은 주부들이 봉사활동에 참여해 지역에서 서로 소통하며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면서 아름다운 지역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동두천/오연근기자 oyk@kyeongin.com봉사활동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면서 아름다운 지역공동체가 되기를 희망한다는 홍미선(55)씨. 동두천/오연근기자 oyk@kyeongin.com

2017-12-25 오연근

[이슈&스토리]한국판 메가시티 '광역서울도' 태풍인가 찻잔 속의 태풍인가

中 베이징권-日 도쿄권-美 대도시권인접 도시 연결·개발 효과 시너지 추진규제대신 고향세·국가공동세 도입 주장극대화된 이익, 수도권 밖 지역과 나눠부산·광주·대구등도 광역도 여론 형성내년 지방선거 '핵심 어젠다 부각' 예고'경기도 포기' 위기에 몰린 남경필 지사1200만 도민 '명확한 필요성 설득' 과제#21일 오전 7시 광역서울도민 김가정씨는 부천구(區) 당아래에서 송파구 잠실까지 운행하는 GTX를 탔다. 잠실 회사까지 30분 정도를 이동하는 동안 김 씨는 휴대전화로 '고향세(稅)'에 대해 검색했다. 연말이 가기 전, 내년에 낼 세금을 한 푼이라도 줄이고 싶었던 김 씨는 고향인 광역광주도 목포구에 10만 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광역서울도 대신 타지방에 고향세를 납부하면 10만 원 한도 내에서 내야 할 주민세와 소득세를 공제받을 수 있다. 연말 회사 송년회가 있는 이 날, 김 씨는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다 택시를 이용해 귀가할 예정이다. 예전 같으면 GTX 막차 시간에 맞춰 눈치껏 회식 자리를 벗어났겠지만, 경기도와 서울시가 광역도로 통합된 뒤 시외할증요금이 폐지되면서 요금 부담이 줄었다. 이윽고 '광역서울도 송파구청 역'에 하차한 김 씨는 역명이 여전히 낯설다는 생각을 하며 회사로 걸음을 옮겼다.위 사례는 현재까지 상상에 불가하지만 서울, 경기, 인천을 합치는 광역서울도가 출범하면 현실이 될 장면이다. 경기도민과 인천시민이 광역서울도민이 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광역서울도, 南柯之夢(헛된 꿈을 이르는 말)?= 현역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사면초가다. 적폐와 거리를 두겠다며 창당에 참여했던 소속 바른정당은 공중분해를 앞두고 있고, 내년 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후보군에게 큰 격차로 뒤처진 상황이다. 5선 국회의원과 도백(道伯)이란 화려한 경력을 뒤로하고 정치 낭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위기의 남 지사는 돌연 '경기도를 포기'하고, 서울시와 합쳐 '광역서울도'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세간의 평가는 처참했다. 도청 직원들까지 "경기도는 남 지사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고, 한경대 행정학과 이원희 교수는 "어리석은 구상이다. 실현 가능성을 차치하고 지방분권에도 역행하는 처사"라고 평했다.남 지사는 돌발 발언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여러 연령층, 다양한 도민들을 대상으로 FGI(포커스그룹인터뷰·표본 면접 조사)를 해보니 처음에는 의구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그 효과와 영향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차츰 찬성 의견으로 돌아섰다"면서 "앞으로 도 전역을 순회하며 광역서울도 구상을 도민에게 직접 설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 지사의 구상대로라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그의 대표공약 중 하나는 바로 이 광역서울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메가시티(mega city), 세계는 지금= 중국의 베이징권과 일본의 도쿄권, 미국의 대도시권 등 세계 각지의 메가시티(mega city)와 경쟁하기 위해선 수도권을 통합해 시너지를 내야 한다는 게 광역서울도 구상의 근거다. 일본은 지난 2014년 7월 도쿄권·나고야권·오사카권을 리니어 중앙 신칸센으로 연결해 슈퍼메가리전(Super Mega Region)을 만들겠다는 '국토그랜드비전 2050' 계획을 발표했다. 각각 국제적 기능, 첨단 제조업, 문화·역사·상업의 중심지인 3대 도시권을 연결해 그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구상이다.중국 지도자인 시진핑 주석 역시 베이징과 톈진, 허베이성을 연결하는 징진지(京津冀)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세 지역의 인구만 1억 명 이상으로 수도 베이징은 정치, 문화, 국제교류의 중심지로 육성하되 톈진과 허베이성은 제조업과 상업·무역 위주로 발전시키고 있다.미국의 'America 2050'도 있다. 미국은 오는 2050년 전세계적으로 10개의 메가리전(Mega-Region)이 출현할 것으로 분석하고, 초고속철도를 이용해 Cascadia(시애틀-포클랜드-밴쿠버-브리티시 콜롬비아)·Northern California·Texas Triangle 등 인접 지역을 묶어 개발하는 계획을 추진한다.■ 지자체 통합이란 오래된 미래= 국내에서도 과거 도시를 통합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경기도 남부 지역에선 수원·화성·오산, 동부권에선 성남·하남·광주, 북부에선 의정부·양주·동두천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하지만 이해득실에 따라 입장이 엇갈렸고, 통합 대상 일부 시군의 반대로 경기도 내에서 시군 통합은 성사되지 않았다. 광역서울도 찬성론자들은 시군 단위의 통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거론하며, 광역도라는 큰 단위의 통합이 선행되면 시군을 재편하는 작은 단위의 통합을 손쉽게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한다.광역서울도는 해묵은 문제이자 경기도의 숙원인 '수도권 규제 완화'를 성사시킬 수 있는 묘책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통이었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저서 '경제철학의 전환'에서 "수도권은 경쟁관계에 있는 해외 대도시권을, 비수도권은 경제력이 집중되어 있는 수도권을 각각의 경쟁 상대로 설정하고 있다"면서 "비수도권->수도권->해외 경쟁 대도시권으로 이어지는 비대칭 구조가 수도권 규제의 효과와 부작용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변 전 실장은 "균형발전이 실현 가능한 정책적 목표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 검토가 필요하다"며 '균형발전'이란 미명으로 수도권 규제를 지속하는데 대해 회의감을 표하고, 규제를 완화하되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을 나눠야 한다고 설명한다.바로 이 부분이 남 지사의 광역서울도 구상과 변 전 실장의 주장이 만나는 지점이다.■ 광역도, 무엇이 어떻게 변하나= 광역서울도는 일종의 발전론이다. 광역도의 핵심축은 국제 경쟁력과 이익 공유를 통한 동반성장인데, 남 지사는 서울·경기·인천의 통합과 함께 고향세와 국가공동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경기도는 토착민보다는 산업화시대 이촌향도(離村向都)를 통해 외부에서 유입된 인구가 많다. 고향세는 이에 착안해 고향에 일정 금액을 기부하면 그 중 일부를 거주지에 내야 할 세금 일부로 공제해주는 방식이다. 세수가 부족한 수도권 외 지역에서 재정을 보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국가공동세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특정 세목을 지정해 공동으로 걷고 나눠 쓰는 제도다. 이 방식을 도입하면 지역 별 세수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남 지사는 더 나아가 광역서울도를 통해 얻게 될 이익을 지자체와 주민에게 직접 나눠주는 형태까지 거론하고 있다.특히 주민들에겐 진보 진영의 대표 정책인 '기본소득' 방식으로 광역서울도 통합의 이익을 나눠주겠다고 발언하고 나섰다.광역서울도가 출범하면 광역지방정부의 역할은 이해관계 조정 정도로 축소되고 기초지방정부의 권한이 대폭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남 지사는 "해외에 나가면 수원에 산다. 서울에 산다고 얘기하지 '경기도에 산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역민의 아이덴티티(정체성)는 바로 도시"라면서 "광역서울도의 권한은 줄이고 시장·군수의 자치권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광역도 통합 실현 가능성은= 남 지사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야권의 핵심 어젠다는 '광역도 통합'이 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미 부산에서 광역도 구상에 찬성한다는 입장이 나왔고, 광주광역시와 전남·대구광역시와 경북의 바닥 민심에서도 "뭉쳐야 산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는 분석이다.광역도가 실현되기 위해선 통합 대상인 지자체의 당선자들이 이 같은 구상에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통합 방식은 지난 2012년 통합한 청주·청원시의 사례처럼 주민투표를 하거나 마산·진해·창원시 통합과 마찬가지로 지방의회의 의결을 통한 통합 모두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법적, 절차적 문제보다 큰 문제는 광역서울도 자체의 내부 논리다. 남 지사가 역설한 고향세와 공동세는 이미 문재인 정부의 과제 중 하나로 도입이 추진 중이고, 수도권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광역서울도를 출범시키는 것은 '배보다 배꼽이 큰 꼴'이라고 보는 회의적 시각이 다수다.무엇보다 1천200만 경기도민에게 "왜 경기도와 서울, 나아가 인천까지 합쳐야 하는가"를 명확히 설명해 내는 것이 과제다. "경기도를 포기하겠습니다"라는 구상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태풍으로 부상할지,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지 지켜볼 일이다. /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2017-12-21 신지영

[인터뷰… 공감]'모던 인천 시리즈 1' 펴낸 일본인 건축가 도미이 마사노리 교수

1930년대 조감도·사진첩 토대 지역별로 기록… 세밀함에 놀라관동갤러리 리모델링 작업 참여… 부평 영단주택 주제로 강연도학생들 열정에 반해 한국 정착… 월미도·인천항·강화도에 관심일본식 건축구조에 온돌 접목 등 독특한 특성 연구에 힘보탤 것인천은 일제 시대 지어진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1883년 개항이 이뤄지면서 일본인들이 대거 이주해 살았고, 이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건축물을 지어 생활했다. 이 건축물들은 하역사 사무소, 주택 등으로 활용됐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도 일본식 건축물은 잇따라 지어졌고 이러한 흔적은 인천 중구, 부평구 등 1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인천 곳곳에 스며 있다. 도미이 마사노리(富井 正憲·69) 한양대 객원교수(건축학과)는 이러한 인천의 매력에 빠진 일본인 건축가다.그는 지난 8월 1930년대 인천의 모습을 담은 책 '모던 인천 시리즈 1'을 펴냈다. 김용하 전 인천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인천에 사는 일본인 작가 도다 이쿠코 등이 공저자다. 1930년대 조선신문사가 발행한 조감도 '대경성부대관'과 사진첩 '대경성도시대관'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책은 당시 인천을 소개하고 있다. 조감도와 사진첩의 '인천부' 부분을 바탕으로 인천 중구 관동, 사동, 율목동, 북성동, 해안동 등 각 지역별로 1930년대 인천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사진첩을 설명한 부분에서는 개항장을 중심으로 인천의 명승지나 사찰, 관공서, 학교, 병원, 민간회사, 상점, 공장 등을 망라해 간단한 설명을 붙였다. 이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에 대해서는 현재 용도와 상호 등을 넣어 현재와 과거 인천을 비교할 수 있도록 도왔다.그는 "사진첩의 존재는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조감도인 대경성부대관은 오랫동안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며 "처음으로 조감도 존재를 안 시기는 2011년이며, 그 세밀함과 아름다움에 놀랐다"고 했다.이어 "인천은 개항장을 중심으로 일본인이 거주했던 지역과 한국인이 살았던 지역이 확연하게 구분되며, 조감도에 이러한 부분이 명확하게 드러난다"며 "또한 개항장 뿐 아니라 부평 등 근대건축물이 남아 있는 곳이 곳곳에 있다. 이러한 건축물은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역사이기도 한만큼 가능하면 남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도미이 교수는 2015년 인천 중구 개항장에 있는 근대건축물 '관동갤러리'의 리모델링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개항장 뿐 아니라 부평 영단주택 등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의 도쿄대 박사학위 논문도 한국과 대만, 중국의 영단주택을 비교·분석한 내용이 주제다. 최근 부평지역 시민들을 대상으로 '부평 산곡동 영단주택의 건축학적 조명'을 주제로 강연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그는 "당시 백마장이라고 불렸던 산곡동 영단주택은 다른 나라의 영단주택과는 달리 한국인을 위한 구조로 설계됐다는 특징이 있다"며 "이는 당시 한국인이 설계와 감리를 맡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이 지역은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지만, 일부라도 현재 자리에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이어 "산곡동 영단주택은 당시엔 드물게 700호에 이르는 공동주택일 뿐 아니라, 일본식 건축구조에 온돌이 접목되는 등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그는 또한 한국의 근대건축과 관련한 자료이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은 자료가 일본에 많이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인천에 살다가 해방 이후 일본으로 돌아간 이들이 소장하고 있는 자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포스터, 그림, 엽서, 지도, 사진, 도면, 스케치 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도미이 교수는 "한국에 거주했던 일본인들이 자료를 가지고 일본으로 갔고, 그들은 당시 한국의 모습에 대해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며 "하지만 그 아들이나 손자 등은 그 자료에 대한 관심이 없을 것이다. 소중한 자료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그는 인천시와 인천 지역 연구자들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그가 김용하 박사와 펴낸 '모던 인천시리즈 1'과 같은 책은 지역에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천시나 중구, 인천지역에 있는 대학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한다"며 "인천은 많은 역사 자산을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다. 앞으로 인천을 조명하는 작업이 더욱 활발히 이뤄져야 할 것이며, 그 주체는 지역의 연구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가 한국과 처음 연을 맺은 것은 1983년이다. 이후 논문을 집필하기 위해서 3년간 일본과 한국을 오가면서 연구를 했다. 이후 한국에 정착하게 된 것은 2004년부터. 한양대학교에서 초빙교수로 지내면서 한국에 살게 됐다. 이후 같은 학교에서 전임교수를 거쳐 객원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도미이 교수는 한국에 정착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일본학생과는 다른 한국 학생들의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학생들이 유학을 하지 않고도 일본의 건축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에서 13년간 한국에서 가르치고 있다. 당시 일본에 남아 있으라는 주변의 이야기를 뿌리치고 한국 정착을 결심했다.그는 "제가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인천의 젊은 연구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최근에는 대한건축사회 인천시건축사회와 요코하마건축사협회가 교류하는 장을 마련하는 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고 생각하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것이지만, 아직 그 시기가 언제 올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도미이 교수는 최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역은 월미도, 인천항, 강화도라고 했다.월미도는 좁은 공간에 유원지시설과 군사시설이 모여있다는 특징이 있다고 했다. 가장 상반되는 시설이 한 공간에 모였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는' 공간이라고 표현했다.인천항에 대한 관심은 인천 바다의 조차와 관련돼 있다. 조수간만의 차가 9m에 이르는 바다는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인천에는 이러한 특징 때문에 갑문이라는 구조물이 생기기도 했다. 도미이 교수는 인천바다의 조차로 인해서 생긴 건축물과 생활양식 등이 흥미로운 연구주제라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강화도를 자주 찾았다고 한다. 강화도는 '지붕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역사자산을 품고 있는 곳이다. 도미이 교수가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고려시대 자산과 강화성공회교회와 같은 근대 건축물 등이다. 도미이 교수는 "인천은 다양한 역사자산과 상반되는 특성이 공존하는 독특한 도시"라며 "제가 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연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천의 젊은 연구자들이 이러한 부분 등에 대해 연구를 진행한다면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그는 건축가로서의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최근 경상북도 경주와 경기도 용인시 등의 주택 설계를 담당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에 지은 주택에 대해서는 마당의 쓰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며 "건축하는 모든 부지는 생활하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당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하느냐가 생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근대건축물에 대한 책을 펴냈지만, 건축가는 과거보다는 미래를 조망하고 대비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며 "저의 연구와 건축·설계 등 작업이 미래 세대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도미이 마사노리 교수는?▲일본 도쿄 출생 (1948년)▲1973~2008년 가나가와대학 재직▲ 1986~1987년 서울대학교 연구원▲1996년 도쿄대학 박사학위▲1997~2009년 동경대학 생활기술연구소 연구원▲2004~ 현재 한양대 건축학부 교수도미이 마사노리 교수가 2015년 리모델링 작업에 참여한 인천 중구 근대건축물 '관동갤러리'. 이 건물은 여러 세대가 지붕과 벽체를 공유하는 전형적인 '나가야(町屋)' 형식의 일제시대 서민 주택이다. 왼쪽은 관장 부부가 사는 살림집으로, 오른쪽은 갤러리로 쓰이고 있다. 사진은 건물 전경과 도면. /경인일보DB1930년대 인천의 모습을 담은 책 '모던 인천 시리즈 1'을 펴낸 도미이 마사노리(富井 正憲·69) 한양대 객원교수는 "인천은 다양한 역사자산과 상반되는 특성이 공존하는 독특한 도시"라며 "인천의 젊은 연구자들이 이러한 부분 등에 대해 연구를 진행한다면 자신이 도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2017-12-19 정운

[우리시대의 품앗이人(K-Pumassian)]김종식 평택 서정동 주민자치위원장

홀몸어르신·한부모 가정 아이들 '인연'IMF 당시 사업 실패 좌절 봉사로 극복집수리·소독·반찬나눔등 각종활동 열심부녀회 등과 '행복 가정 만들기' 운동도"주변 어려운 이웃들이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키워 나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봉사의 가치는 진심이 담긴 '나눔'입니다"평택시 서정동 김종식(59) 주민자치위원장은 후덕한 인상 만큼이나 직접 몸으로 뛰는 봉사 활동을 벌이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동네 머슴', '천사 남자' 등이다.홀로 생활하는 어르신들은 그를 '아들'로, 한 부모 가정 아이들은 '삼촌', '아빠'로 대한다. 김 위원장이 이들과 가족의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진심이 담긴 대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그는 "가족이란 울타리가 없어 상처를 입는 이웃들의 가장 큰 아픔은 외로움이다. 쌀, 라면 등 물질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진심으로 마음을 나누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주변 이웃들의 아픔을 보기 시작한 것은 IMF 당시 자신의 사업이 실패하면서부터다. 좌절과 실의에 빠졌던 그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다.그때부터 그는 경제적 어려움에 고통받는 이웃, 가족이 해체돼 상처를 입는 이웃들과 마음을 나누고 절실함을 함께 공유했다. 그가 20여 년이 넘게 어려운 이웃들을 살뜰히 챙기는 가장 큰 이유다.어르신 반찬 봉사, 집 수리, 소독 봉사 등은 기본이고 3년 전부터 주민자치위원장을 맡아 제도권 밖에 있어 지원을 받지 못해 생활에 불편을 겪는 이웃들을 챙기는 일도 열심이다.특히 그는 서정동 새마을 지도자회, 부녀회, 바르게살기협의회, 통장협의회, 체육회, 복지협의회, 청소년 선도위원회 등과 힘을 합쳐 '행복한 가정 만들기 운동'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엄마 또는 아빠가 없는 한 부모 아이들을 초청해 영화도 보고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해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생각하게 해주면서 주민들의 신뢰를 얻고 있다.또 아이들이 방학 때만 되면 박물관, 국회의사당 등은 물론 대기업 견학 등을 통해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등 행동하는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김 위원장은 "봉사는 물질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진심을 담은 따뜻한 마음이다"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이웃들과의 사랑 나누기를 계속 할 것이다. 나를 통해 주변 이웃들이 위안과 삶의 용기를 얻어 행복해 질 수 있다면 내 자신 또한 좋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택/김종호기자 kikjh@kyeongin.com김종식 평택시 서정동 주민자치위원장. /김종호기자 kjh@kyeongin.com

2017-12-18 김종호

[천사의 다른 이름을 찾아서…세상의 아이들·12(끝)]# 자연, #그 안에서 자라는 아이들- 세계의 아이들

툰드라·북유럽인·잉카원주민 등 바람소리 맞으며 스스로 견디게… 혹한 길들이기히말라야에선 백일 안된 아기 마당서 오일 마사지·가족들 외출후 '정화의식' 치러자립심과 이기심을 혼동 독불장군 아쉬움·나보다 우리가 우선인 사회를 꿈꾸며…*보다 건강한 아이를 위한 육아툰드라 지역에 사는 유목민들은 아기가 태어나면 그 혹한 속에서도 대지의 신께 아기의 영혼을 의탁한다는 의식을 치르고 하루에 한번 아기를 강보에 싸서 밖으로 나가 대자연과 교감하는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어떤 어려움(기후 조건)에 부딪히더라도 두려움 없이 헤쳐나가라는 의미란다. 북유럽인들 역시 한겨울에 아기가 태어나도 요람에 눕혀 늦은 밤까지 정원 나무 밑에 아기를 두는 것이 일상이란다. 아기도 자연의 일부여서 자연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라 거기에 맞게 단련하는 거라고, 자연에서 지혜를 얻고 건강을 지키며 그 아기가 자라 걸음마를 배울 땐 수없이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나도록 격려하고 기다리며 어른이 도와주는 일은 없단다.우리 조상의 시원이라는 바이칼이나 북몽골에서 순록을 키우며 사는 차탕족도 그랬고, 안데스 골짜기에서 알파카를 키우며 사는 잉카원주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바깥기온이 영하 40도로 뚝 떨어져도 아기가 태어나면 산모 곁에만 두지 않고 매일 일정시간 밖에서 햇빛을 받게 하고 바람소리, 풀잎 흔들리는 소리 같은 자연과 교감을 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란다.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만난 출생 20일 된 아기는 털옷을 겹겹이 입고 있었다. 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데 털옷이라니 아무리 신생아라도 너무 덥지 않을까 싶었는데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프리카의 뜨거운 기후에 적응시키지 않으면 수많은 풍토병과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지킬 수가 없게 되니 그럴 수밖에 없단다. 그야말로 이열치열인 셈이다.히말라야에선 백일이 채 안된 아기를 햇살 좋은 낮 마당에 발가벗겨 놓고 오일마사지를 해주는 건 기본이다. 저녁이 되면 아궁이에 불을 피우고 그 앞에서 벗긴 아기를 따듯이 데운 겨자오일로 마사지를 해준다. 오일을 눈과 귀에도 몇 방울 넣어주는데 아기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곤히 잠이 들곤 했다. 외출에서 돌아온 가족들은 아기에게 나쁜 기운이 전염되지 않도록 손발을 불에 쬐는 정화의식을 치른다. 그건 아기도 마찬가지인데 물을 맘대로 쓸수 없는 고산지역에서 아기에게 면역을 키워주는 좋은 방법이라고.어느 날은 젊은 엄마가 출생한 지 이틀 밖에 안된 아기를 강보에 싼 채 밖으로 나와 일광욕을 하기에 너무 빠르지 않을까 했지만 히말라야 눈(雪)의 신께 아기를 맡기고 자라는 동안 거친 자연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매일 조금씩 길들이는 통과의례라고 했다.종교적 의미도 있겠지만 그들은 하나 같이 아기가 태어나면 부모보다는 자연과 교감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고, 반드시 치러야할 과정이라 믿는 반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지나친 보호를 자처한다. 혼자 걸을 수 있음에도 안아주거나 손을 잡아줘야 하고 행여 다치기라도 하면 모두 내 탓이라 자책한다. 밥은 혼자 먹을 수 있어도 떠넣어 준다. 밥을 거부하면 백미터 달리기를 해서라도 쫓아가 기어이 입에 넣어준다. 그렇게 키우다 보니 우리 아이들에게 밥은 태어나서 어른을 이길 수 있는 첫번째 무기가 된다. 세상에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 단 하나의 장난감도 가져보지 못한 아이와 먹을 것이 없어 영양실조나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부지기수다. 학교라면 문턱도 넘어보지 못한 아이와 평생을 화장실이 없는 집에서 사는 아이들과 태어나서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고 죽어가는 아이들도 수없이 많다. 경험을 이길 자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들의 모든 아이는 가족이나 자연이라는 공동 그룹의 일원이 아니라 독불장군으로 키운다. 모험을 피해 오로지 안전하게 살고자 하는 그 아이들이 자라 모두가 일등이 되고 행복한 성년으로 살 수만 있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요즘은 자연을 모르고 대가족이라는 소중한 공동체 삶을 뒤로하고 물질과 자신이 우선인 우리 아이들을 지켜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어른은 아이와 평생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행여 상처받고 마음 상할 세라 최고의 것을 제공하며 강하게 키우지 못한다. 자립심과 이기심을 혼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대자연을 외면하지 않고 나보다는 우리가 우선인 사회를 꿈꾸어본다. 아이보다 더 분명한 미래는 없을 테니까. /김인자(경인일보 신춘문예 출신 시인·여행가)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사진/김인자 시인 제공사진/김인자 시인 제공사진/김인자 시인 제공사진/김인자 시인 제공사진/김인자 시인 제공사진/김인자 시인 제공사진/김인자 시인 제공사진/김인자 시인 제공사진/김인자 시인 제공

2017-12-18 경인일보

[FOCUS 경기]연천 한탄강 관광지

주상절리 비경 한국관광 100선2008년 오토캠핑장 명소 재탄생편의시설·물안개·산책로 '인기'연천군 한탄강관광지가 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가 공동주관하는 2017~2018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됐다. 북한 평강군이 발원지인 한탄강은 신비로운 주상절리가 대표적인 관광지로 한 번 가 본 사람은 또 찾게 되는 인연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한탄강 관광지 조성 배경=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한탄강관광지는 둥근 모래 퇴적층이 쌓인 곳으로 물이 맑기로 유명했다.피서철이면 특별 수송열차로 인파를 실어나를 만큼 호황세를 누렸던 이곳은 지금은 캠핑장이 조성되면서 깔끔한 명소로 재탄생 됐다.지난 1996년과 1999년 두 번 침수 피해를 입은 이곳은 31만2천㎡ 부지에 199억 원을 들여 카라반, 캐빈하우스, 자동차야영장, 각종 편의시설을 갖춰 2008년 7월 개장했다.■ 오토캠핑장 콘텐츠=한탄강관광지 오토캠핑장 특색은 항상 청결 유지관리와 친절, 고객사랑이다.캐빈하우스는 나무데크와 고정식 테이블을 비치해 야외 바비큐 이용에 적당하고 절경을 감상하며 연인과의 대화 장도 안성맞춤이다. 캐빈하우스와 카라반은 TV, 냉장고, 에어컨을 비롯해 주방기구와 침구류 일체가 잘 구비되어 있다. 또 105면 야영장은 충분한 배전시설과 공동취사장이 마련돼 있을 뿐만 아니라 샤워시설까지 겸비해 이용객 불편을 최소화 했다.■ 희희낙락(喜喜樂樂)=사시사철 이용이 가능한 오토캠핑장은 계절마다 각양각색 색깔을 지녀 눈과 얼음이 만든 겨울세상부터 여름철 물놀이장 슬라이드, 피크닉장 등 풍부한 야외 가족놀이 공간을 만끽할 수 있다. 자전거타기와 전동스쿠터를 이용할 수 있고 축구장과 풋살경기장, 농구장, 족구장, 인라인스케이트 등을 즐길 수 있다.특히 이곳은 아침이면 주상절리 아래로 자욱하게 내려앉은 물안개를 감상하고 밤이면 산책로를 걸으며 행복지수를 높일 수 있다.캠핑장 이용객은 주변 전곡선사박물관 관람을 놓칠 수 없는데 다양한 고고학 체험과 정보를 얻고 성탄절에는 산타가 선물하는 깜짝 이벤트가 개최된다.선사박물관은 내년부터 평일 최대 35% 입장료 할인혜택이 주어진다.■ 이용요금 및 할인과 예약=오토캠핑장은 평일 이용 시 최대 35% 할인된다.할인 적용시 3~4인용 3만9천원, 중형 A 5만2천원, 중형 B 5만8천원, 캐빈하우스 6만5천원이다(지역주민, 장애인, 국가유공자, 관내 군장병, 생계급여자, 학교수련활동 등은 연중 20% 할인).예약은 매월 초 홈페이지(http://www.hantan,co.kr)를 이용하면 된다. 문의 : 한탄강관광지 관리사무소 (031)833-0030. 연천/오연근기자 oyk@kyeongin.com한탄강관광지캠핑장. /연천군 제공

2017-12-17 오연근